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2 1573년 12월 중순



시즈코 밑에서 뿌리를 내린 마사유키(昌幸) 등 사나다슈(真田衆)는, 환경의 차이도 있어 당황하기는 했으나, 1개월도 지나기 전에 오와리(尾張)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기쁜 오산(誤算)으로서, 간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평가해주는 마사유키를 의지하고 타케다(武田) 가문의 간자들이 속속 출분(出奔)하여 모여들었다는 것이 있었다.


"돌아가신 신겐(信玄) 공(公)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간자들을 그대로 몽땅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타케다 가문은 고심해서 구축한 정보망을 잃고, 지금은 매일의 연락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더군요. 우리들은 누워서 떡먹기(濡れ手で粟を掴む)로 그들의 손발을 잘라낼 수 있는 겁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시즈코의 가신 중 한 명이 마사유키 밑으로 간자들만이 늘어가자, 외부인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것을 걱정하여 시즈코에게 경고를 했다.

그에 대한 시즈코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확실히 숫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타케다 가문에서 보내어진 간자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마사유키가 손을 써서 품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의 지적대로, 현재의 타케다 가문은 정보망이 기능하지 않아, 자신들의 영토 이외의 정세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쇄국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적국에 접하는 영지를 가진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바깥의 정보를 필요로하여 간자들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한 번 기운 저울이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미츠모노(三ツ者)', '유랑 무녀(歩き巫女)' 같은 첩보원(諜報員)들을 총괄하고 있던 조직이 붕괴하여 외부의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국내를 정리하는 데 필사적인 카츠요리(勝頼)는 이것들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꽤나 사람이 늘어났네요. 저번의 보고 시점에서 200명 정도였다고 했는데, 매일 합류해오고 있는 모양이니 실제 숫자는 더 많겠지요"


"신겐 공 직할의 집단도 있었으니, 실태를 파악하고 있던 것은 신겐 공 뿐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사유키는 모여드는 간자들을, 자신을 정점으로 한 조직에 포함시키고, 재편된 조직의 개요를 시즈코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마사유키는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지휘계통이 붕괴된 조직을 재구축하고, 새로운 첩보망으로서 전개하여, 수시로 각지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체재를 갖춰가고 있었다.

급조된 조직이라 그런지 정보 밀도의 편중이 존재하기는 하나, 인원이 고르게 배정되면 정보를 고르게 얻을 수 있기에, 큰 문제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무리하게 지휘계통을 바꿀 필요는 없겠네요. 종래의 지휘계통 위에 사나다 님을 두는 것과, 감사요원(監査要員)을 끼워넣는 정도일까요? 급격한 조직 개편은 혼란을 불러옵니다.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바꿔가죠"


"옛"


"그건 그렇고, 단기간에 용케 이만큼 조사했네요. 주상(上様)께서도 칭찬하셨습니다. 지금부터의 활약에도 기대하고 있겠어요"


"기대에 부응하도록 분투(奮励) 노력하겠습니다"


마사유키에게는 지금이 승부처(正念場)였다. 예전의 무공 따위 오다 가문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일하면 일할수록 평가받아, 활약할 장소가 넓어진다.

간자 조직을 쇄신하여 각지의 정보를 적절히 수집하고, 그것들을 집약, 정사(精査)하여 노부나가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체제. 이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무공으로 평가받았다.

오가 가문에 있어 유용하다면, 그 공은 전쟁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평가 방침은, 휘하에 병력을 갖지 못한 마사유키에게 대단히 고마운 것이었다.

사나다 가문을 출분하면서 유능한 장병들은 대부분 본가(本家)에 두고 왔다. 마사유키는 어디까지나 '후계(家督) 다툼에 패하여 추방되었다'라는 모양새가 아니면 안 된다.

자신에게 추격대까지 보낸 본가였지만, 자신이 원인이 되어 옛 보금자리(古巣)에 엉뚱한 의혹을 받게 하는 것에 부끄러운(忸怩たる) 마음이 있었다.


"너무 과하게 몰두하지는 마세요"


보기에도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는 마사유키를 보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충고했다.




겨울도 깊어져 12월에 들어서자, 전쟁의 기색은 멀어졌다. 농한기(農閑期)야말로 싸움을 걸기 좋은 건 상식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긴박한 이유가 존재했다.

오다 가문에 관한 것만 들어도, 쿄(京)나 오우미(近江) 등 키나이(畿内)의 곡창지대로부터의 세금을 집계해보니, 대규모의 흉작(不作)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측량(検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평균적인 수확량의 계산은 못하고 있었으나, 백성들의 말에 따르면 예년의 6할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지배지에서 식량에 여유가 있는 것은 미노(美濃)와 오와리 뿐으로, 새롭게 산하에 편입된 키나이의 영지에서는 여유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예년 수준인 경우에도 간신히 먹고 살 정도라는 상태였기에, 4할이나 부족하다고 하면 비상사태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백성들은 굶주리고, 일향종(一向宗)이 선동하면 쉽게 잇키(一揆)로 발전한다. 잇키가 발생하면 사카이(堺)와 쿄, 오와리를 잇는 물류(物流)의 대동맥(大動脈)이 정체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노부나가는 미노나 오와리의 잉여미(余剰米)나, 새로운 지배지용으로 쌓아놓고 있던 비축미(備蓄米)까지 방출했다.

이 시책의 덕분도 있어, 키나이에서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노부나가에게 전쟁이 가능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당장 닥친 위협도 없었기에, 노부나가는 지배지 전역의 통치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의해 각지의 통치를 맡고 있던 가신들도, 측량이나 농업개혁 같은 부국정책을 중시한 영지 경영에 힘쓰게 되었다.


"농업개혁은 좋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날 의지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어"


노부나가의 지배지 곳곳에서, 농업지도를 할 수 있는 인원을 파견해 달라느니, 비상식적일 정도의 짧은 납기로 농기구를 대량으로 준비해 달라느니 하는 요구가 올라오는 것에 시즈코는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현지에서 산업을 일으켜서 내수(内需)를 확대하는 방침을 취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生き急ぐ) 무장들에게 기다리라는 것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현지 근처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상인들의 연줄을 통해 융통하고, 그것조차 어려운 것은 시즈코가 준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새에도 계절은 흘러가 12월도 중반이 되었다. 연말(年の瀬)을 앞두고 다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즈코도 바쁜 일의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돈이 든 나무 상자를 들고 가신들의 집으로 갔다.


"시즈코 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달려갔을텐데요"


겐로(玄朗)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타케다 군의 격퇴로 시작하여, 그 후의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전투에서도 눈부신 무공을 세운 겐로는, 노부나가로부터 무사의 신분(士分)을 받았다.

무사의 신분이라고 해도 아시가루(足軽)가 아니라, 말을 타는 것을 허락받는 무사의 신분으로 대우받았다.

성(名字)을 쓰는 것을 허락받은 겐로는, 성을 오와리쿠스노키(尾張楠木), 이름(仮名)을 겐로라 하고, 휘(諱)를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 시즈오키(静興)라고 쓰게 되었다.


신분에 걸맞는 의류나 가구(調度), 무가 저택(武家屋敷)등도 주어졌고, 노부나가로부터 하사(拝領)받은 칼을 차,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내일조차 알 수 없는 거렁뱅이(食い詰め者)였던 시절에서 보면 믿을 수 없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이루어, 주위에 어엿한 승리자(成功者)로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신을 키워준 시즈코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한층 더 충성을 맹세했다.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겐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요. 올 안 해, 정말로 수고했어요"


시즈코가 그렇게 말하자, 뒤에 시립하고 있던 소성이 앞으로 나왔다. 소성은 겐로의 앞에 상(膳)을 놓고, 인사를 한 후 뒤로 물러났다.

시즈코는 자신이 안고 있던 나무 상자에서, 미농지(美濃紙)로 포장된 돈을 꺼내 늘어놓은 후, 상을 겐로 쪽으로 밀었다.

현대에서 말하는 겨울 상여금이다. 연말에서 새해에 걸친 기간에는 이것저것 필요해진다.

새롭게 가문을 일으킨 겐로의 경우 한층 더 그렇기에, 그것을 보태주기 위해서도 시즈코가 포상금을 제도화했다.


"각별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다른 가신들에게도 나눠주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신경써주는 시즈코에게 겐로는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겐로는 공손히 상에서 돈을 받아들어 품 속에 넣었다.


"사실은 근황 같은 거 묻고 싶지만, 오늘밖에 모두의 집을 돌 시간이 없으니, 미안하지만 실례할게요"


"옛!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도 다가오고, 사람들의 통행도 많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시즈코 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일본 전체의 손실. 이 겐로, 무슨 일이든 제쳐놓고 달려갈테니, 용건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네, 충분히 주의할게요. 하지만 연말은 푹 쉬어요. 몸을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옛!"


가볍게 대화를 나눈 후, 시즈코는 겐로의 저택을 떠났다. 지금부터 니스케(仁助) 등의 집도 돌 필요가 있다.

원래는 시즈코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저택으로 불러서 포상을 건네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나, 시즈코 직속의 공을 세운 가신들만이라도 직접 가서 사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 공을 치하하고 싶다는 시즈코의 마음에, 근시(近侍)들도 결국 두 손을 들어, 줄지어서 상을 주러 다니고 있다.

물론, 전원을 다 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기에, 안전상의 배려 등에서도 측근이나 특히 공을 세운 자들로 대상이 한정되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아, 있다 있어"


탁 트인 땅에 덩그러니 서 있는 도장(道場) 같은 건물에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와 함께 들어갔다.


"아니 시즈코 님.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목적의 인물은 사이조(才蔵)였다. 이 건물은 수련장(鍛錬場, ※역주: 원어는 '단련'이지만, 우리말에서는 '단련'이라고 하는 것보다 '훈련'이나 '수련'이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수련으로 번역)이라고 하여, 나가요시(長可)가 애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이조나 타카토라(高虎)도 촉발되어 단련을 하게 되었다.

케이지(慶次)는 뭔가 이유를 붙여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카부키모노(傾奇者)로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다는, 그 나름의 긍지가 있었다.


"수련을 중단시켜서 미안해요. 자, 전에 말했던 겨울의 포상금을 주려고 왔어요"


"시즈코 님이 직접 오시지 않아도, 부르시면 제가 갔을텐데요"


"신경쓰지 말아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웃으면서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서 돈을 받아서 그것을 사이조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사이조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인사를 한 후 돈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수련은 순조롭나요?"


"부끄럽지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즈코는 질문하면서도 사이조가 매달아놓았을 종이를 보았다. 시즈코의 시선 끝을 보며 사이조가 자조하면서 대답했다.


사이조가 하고 있는 수련은 단순했다. 들보(梁)에 실을 매달고, 그 끝에 구멍이 뚫린 종이를 매단다.

제 1단계는 매달린 종이를 창으로 벤다. 제 2단계는 종이를 찌른다. 최종 단계는 문(鎧戸)을 열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를 베거나 또는 찌른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하면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길이 3미터 정도의 스테인리스제 낚싯대를 준비해서, 끝부분에 젖은 청바지를 매단다.

그 상태에서, 가능한 한 낚싯대를 길게 잡고 끝부분을 대(台座)에 올리려고 하는 난이도일까.

중심이 전방으로 치우쳐 있기에, 앞쪽 끝부분(先端)을 정지시키는 것조차 어렵고, 뒤쪽 끝부분(末端)을 잡고 있기에 약간의 움직임이 앞쪽 끝부분에서는 큰 움직임이 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사이조가 사용하는 대신창(大身槍)쯤 되면, 창날(穂先)이 2척(尺)을 넘는 다마스커스 강으로 되어있기에,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서 말한 중심 밸런스에 더해, 자루 자체가 무게로 휘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종이에 맞추는 것조차 보통 사람에겐 어렵다.


"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찌르려고 하니 이야기가 다릅니다"


과연 창의 명수인 사이조답게, 앞쪽 끝부분의 흔들림도 없이 기합(気合)과 함께 일섬(一閃)으로 표적을 갈라 보였다. 다음으로 창을 몸 가까이 당겨 허리에 대고 자세를 취한 후, 창을 바짝 당겼다 찔러냈다.

하지만, 창의 앞쪽 끝부분은 표적에서 벗어난 공간을 관통했다. 창이란 기본적으로는 후려치는 것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딱 좋게 창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이조는, 좌우로 공간이 없어도 공격할 수 있는 찌르기나, 찌르기에서 참격(斬撃)으로 변화시키는 수련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고 있었다.

쓸 것인지 아닌지는 상황에 달렸지만, 쓸 수 있는 패(手札)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중량을 실어 후려치면 갑주 위에서도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만, 날카롭게 찌르고 거둘 수 있다면 상대를 처치한 후 더욱 빠르게 다음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후려쳐서 넘어뜨린 후에 찔러죽인다는 두 동작보다도, 찌르고 거두면 다음 공격 준비도 된다. 이상적으로는 일격일살(一撃一殺)이 바람직하다.

이 생각은 당연히 전쟁터에서도 유효하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등에서 호위를 맡는 호위대(馬廻衆)로서의 개념이 강하게 드러나있었다.

군중에 섞여 귀인(貴人)을 습격하는 자를, 사람들의 틈새로 재빠르게 처치한 후 다음 공격에 계속 대비한다.

군중뿐만 아니라 동료를 방패로 삼는 경우도 고려하여, 약간의 간격이라도 찔러낼 수 있는 정밀도를 몸에 익히려고 열심히 생각한 끝의 수련이었다.


"뭐, 이런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참고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니가 긴 무기를 쓸 때는 비틀면 앞쪽 끝부분이 안정된다고 말했었어요"


"호오! 비트는 것입니까?"


"뭐더라, 자이로 효과? 어쨌든 창을 회전시키면서 찌르면, 앞쪽 끝부분은 안정되는 모양이에요"


"비튼다…… 뭔가 빛이 보인 느낌이 듭니다"


"손끝에서만 비틀면 반대로 더 흔들린다고 했던가요? 뭐, 주워들은 이야기니까 참고 정도로만 들어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제 노력이 올바른지, 계속 자문자답하면서 수련하겠습니다"


"그럼 좋아요"


사이조의 말에 시즈코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겨울 상여금 전달을 마친 시즈코는, 드디어 연말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전처럼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답답하더라도 지시를 내리고 수하들에게 작업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으ー음, 새해맞이(年越し) 준비는 재미있는데 말야"


소매를 걷어올리며 의기양양하게 새해맞이 준비에 참가하려던 시즈코였으나, 아야(彩)와 쇼우(蕭)에게 "주인께서 준비에 바쁘시게 되면 고용인(家人)들의 능력을 의심받게 됩니다. 부디 자중해 주십시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시즈코는 해야 할 작업을 리스트업하여 그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그 후에는 일체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실질적으로 집 안의 일은 아야와 쇼우가 관장하고 있으며 시즈코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에, 예상외로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부하가 우수하면 편하지만,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위에 서는 사람의 숙명이지"


시즈코의 불평에 아시미츠가 대답했다.

이전에는 시즈코 한 명에게 부하(負荷)가 집중되었으나, 전쟁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야나 쇼우가 집을 지키면서 단련이 되어 그녀들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났다.

이제 시즈코에게 남은 것은 보고를 듣는 것과, 그녀가 아니면 결재할 수 없는 사안이나,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 등에 한정된다.


"내 역할은, 돈을 마련하는 것(金策)과 각 부서의 조정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요"


"사장이나 회장이 일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 났으니 밭일이라도 하는게 어떠냐"


"……없어요. 다들 우수해서, 내가 작업할 게 없어요"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일부 품종의 재배를 제외하면, 시즈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작업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작물에 담당자가 붙어서, 처음에야 조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훌륭하게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문자의 읽고 쓰기를 교육시켰기에 재배 기록이 작성되고, 우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교재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것들 전부가 출세욕 같은 게 아니라 항상 바쁜 시즈코를 편하게 해주자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녀로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망고라던가 남국(南国) 계열의 과실(果実)에서도 손떼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카카오도 내년 5월 쯤에는 열매를 맺을 것 같고…… 커피콩도 순조롭고……. 새로운 작물의 씨앗이라도 수입할까요"


"생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아까부터 손이 멈춰있다. 생각할 시간(持ち時間)은 이제 없으니까 고려 시간을 다 쓰기 전에 다음 수를 둬라"


모래시계를 가리키면서 아시미츠는 장기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국(戦局)은 이미 시즈코의 패배개 9할쯤 확정된 상태였다. 중요한 말(大駒)인 비차(飛車)는 남아 있었지만, 적진에 홀로 남겨져 움직이지 못하고 보기좋게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왕을 둘러싼 말들도 반쯤 붕괴되어, 아시미츠에게 한 수의 여유가 생기면 시즈코의 패배가 확정된다. 시즈코로서는 아시미츠에게 계속 장군(王手)을 부르지 않으면 즉각 패배한다는 낭떠러지에 몰려 있었다.


"아니, 여기에 계마(桂馬)를 두면, 견제(合駒)는 할 수 없으니 외통수(詰み)죠!"


"안타깝지만, 그래서는 장기말(駒)이 하나 모자란다. 자, 이렇게 도망치면 다음 장군은 부를 수 없지"


"크으으으윽"


장기판을 핥을 듯 쏘아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을 부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수가 비게 되면 그 후에는 아시미츠의 장군 연타를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投了)하게 된다.


"졌어요. 이 녀석한테 속았네요…… 에잇"


패배를 선언하는 말을 하고 고개를 숙인 시즈코였으나, 지는 것은 분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승패를 가른 아시미츠의 '은(銀)'을 향해 자신의 '보(歩)'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그만둬라"


튕겨나간 장기발을 아시미츠가 잡아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솔직히 태도를 고친 시즈코에 대해 아시미츠 주도로 복기(感想戦)를 하여, 각각의 국면에서의 최선의 수를 모색했다.

그게 끝나자 장기판과 장기말을 치우고, 아시미츠는 완전히 식어서 미지근해진 차로 목을 축였다.


"다음은 지지 않아요. 오랜(積年) 굴욕을 풀거에요!"


"그렇게 말하지만 꽤나 패배가 쌓여 있다. 감정에 내맡기지 말고 패한 원인을 연구해서 정진해라"


"내가 장기(将棋)를 가르쳐 줬는데!!"


"뭐, 그건 나이를 괜히 먹은 건 아니라는 거지"


시즈코가 리턴 매치(再戦)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다시 장기판을 되돌려놓고 장기말을 늘어놓았다. 시즈코다 자신의 장기말을 늘어놓은 후, 후리고마(振り駒, ※역주: 일본 장기에서, 선수(先手)·후수(後手)를 정하기 위해 세 개 또는 다섯 개의 ‘歩’를 장기판 위에 던지는 것)를 하여 선수를 정했다.


"그렇지, 새 집으로 옮긴 이후 저택 안이 시원해졌구나"


이번에는 시즈코가 선수를 잡아, 서로 장기말을 두는 소리만 나고 있을 때 문득 아시미츠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전의 시즈코 저택에서는 부지(敷地) 면적에 비해 물건이 많아서, 어수선(雑然)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새 집으로 옮긴 이후에는 고용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세세한 곳까지 눈이 가서 정리정돈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느낌이 있었다.


"5S를 가르쳐서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PDCA 사이클 같은 건 아직 무리겠지만, 5S는 기본이니까요"


5S란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서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슬로건이다.

"정리(整理), 정돈(整頓), 청소(清掃), 청결(清潔), 예절(躾)의 5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어, 로마자로 표기하면 모두 머릿글자가 S가 되기에 5S라고 부른다 (※역주: 정리 - seiri, 정돈 - seiton, 청소 - seisou, 청결 - seiketsu, 예절 - sitsuke).

5S란 특별한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명확히 하고,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로 임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항목을 더욱 추가하여 7S나 10S로 하는 경우도 있다.


시즈코는 이 가장 기본적인 5S를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철저하게 주입시켰다.

매일 아침 사훈(社訓)을 외우게 하는 경영자처럼, 5S를 확인하게 하는 시간을 각 식사 전에 두고, 암송할 수 있으면 반찬이 하나 늘어난다는 눈에 보이는 사탕을 주었다.

이건 젊은 사람일수록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서, 고용인들의 업무 수행에 대해 아야나 쇼우에게서 듣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수자를 모두의 앞에서 칭찬했다.

5S를 철저히 하면 시즈코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하여, 모두가 경쟁하듯 5S를 배우고 또 실천했다.

이 덕분도 있어, 새 집에서는 설거지칸(洗い場)에서 물에 담궈둔 채로 놓여있는 식기(食器) 등도 보이지 않게 되고, 뚜껑이 열린 상태인 큰 상자(長持)도 자취를 감추었다.

확실히 정리정돈이 구석구석까지 미친 일터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도 있어, 사소한 실수나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은 더욱 효율이 좋은 정리정돈법을 모색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체계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러 있었다.


"읽고쓰기와 주판에 더해, 이런 생활의 기초를 가르치면 다른 집에서 일할 때도 도움되니까요"


"이제는 시즈코의 도서관(図書館)에서 책을 읽는 하녀도 있는 모양이더군"


당초에는 많지 않았던 장서(蔵書)도, 수집이 계속됨에 따라 방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한 장의 미농지(美濃紙)를 둘로 접어 철하는(綴じる), 봉철(袋綴) 식의 소위 말하는 화장본(和装本, ※역주: 일본 재래식으로 제본한 책)으로 책을 관리하기로 했다.

크기도 형식도 제각기 다른 두루마리(巻物)나 종이 뭉치(紙束)를 정리해서 모아, 규격화된 미농지에 등사판 인쇄하여 실로 철했다. 원본은 창고에 보관하고, 복제본에 일련번호(連番)를 붙여 목제 책장에 꽂아두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서고(書庫)라고 불렸으나, 시즈코가 평소에 도서실(図書室)이라고 불렀기에, 언젠가부터 도서실이라는 호칭이 퍼지게 되었다.


"학습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해요. 적성이 있는지는 본인에 달렸지만"


"배운 것은 헛되지 않지. 지식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재산이 되니까 말이다"


시즈코의 말에 아시미츠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자(従者)들은 새해맞이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주인인 시즈코는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다. 오랜만에 책이라도 읽으려고 그녀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즈코 님"


도서실에는 선객(先客)이 있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에서 바쳐진 인질로서 머물고(逗留) 있는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 훗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이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더니, 나무 책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시즈코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한 후 말했다.


"최근에는 도서실의 터주(主)로 불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예. 이곳에는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책들이 모여 있어, 모두 읽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돈을 뿌려서 여기저기서 긁어모았으니까. 돈이 꽤나 들었지만, 그에 걸맞는 수집은 되었다고 생각해"


"장서의 양만 따진다면 승원(僧院) 쪽이 많겠죠. 하지만, 양과 질이 전혀 다릅니다. 이만큼 넓은 범위에 걸친 영지(叡智)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는 이 일본 전체를 찾아봐도 이곳 이외에는 없겠지요"


"그렇게 말해주면 모은 보람이 있네"


"게다가 일부를 제외하고 그 대부분을 무료로 개방하다니, 처음에는 제정신인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용하면서 그 의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흐ー음, 그 의의라고 하면?"


"모두가 이곳에서 지식을 얻으면, 오다 가문 전체의 교양이 높아집니다. 아랫사람이 공부하고 있는데 윗사람이 배우지 않아서는 본보기가 서지 않지요.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공부에 힘쓰게 되어, 오와리 전체에 지혜가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요"


"꽤나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된 모양이네"


"다만, 남만의 책은 난해하여, 일본의 언어로 고쳐 쓰여져 있음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필기체에서 인쇄용의 블록체로 고쳐서 그걸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거야. 원본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나도 못 읽을 정도지"


"저것도 읽기 쉽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키헤이지는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만인인 코타로(虎太郎)가 해독해주지 않으면 그런 독특한 글씨(くせ字)는 구별할 수 없어"


인질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즈코의 시원스런 태도에 키헤이지도 긴장이 누그러졌는지, 꽤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란 감성으로 쓰여진 책에는, 일본의 책에는 없는 재미(趣)를 느낍니다. 가능하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남만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으ー음, 남만어 사전도 만들고는 있지만 말야. 다만, 아무래도 사본으로 만들지 않은 원서는 폐가(閉架) 서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열람하려면 주상의 허가가 필요하니까 대출은 무리려나?"


시즈코의 말대로, 그녀의 도서관의 폐가 서고에는 현대에서 말하는 희귀본(稀覯本)이 산더미처럼 잠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1543년에 출판한 '천체(天球)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판본(初版本).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di Bernardo dei Machiavelli)의 '군주론(君主論)'이나 '전술론(戦術論).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우신예찬(痴愚神礼賛)' 이나 '교정판(校訂版) 신약성서(新約聖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발표했다고 하는 '95개조 반박론(論題)' (※역주: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

155년에 리용(Lyon)의 마세 보놈(Macé Bonhomme)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노스트라다무스(M. Michel Nostradamus)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Les Prophéties de M. Michel Nostradamus)'의 초판본 등이다.


개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수고(手稿, ※역주: 손으로 쓴 원고)라는, 현대에서는 유실된 것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진위 여부(真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2만 페이지나 될 듯한 방대한 자료가 만에 하나 진품일 경우, 유실되는 것은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한 시즈코가 사들인 것이다.


그밖에도 카톨릭 교회가 위험시하고 있는 서적의 리스트인 '금서목록(禁書目録)'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한 책들이 일본으로 반입된 데는, 위정자(為政者)나 종교가(宗教家)들의 타협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는 금서로 지정된 서적은 처분하고 싶다. 하지만, 방대한 자금을 들여 만들어진 책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아깝다.

가능하다면 들어간 비용은 회수하면서 현물은 어둠 속으로 묻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거기서 선택된 것이 일본으로의 매각이었다. 비 기독교 국가이자, 왕성한 지식욕과 돈을 아끼지 않는 구매력에 상인이나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책을 가지고 왔다.


통상적으로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 서적 같은 건 소수의 호사가(好事家)들이 사모으는 정도지만,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매입을 선언했다.

그 결과, 서양에서 반입되는 서적의 대부분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도 위험한 지식은 처분되고, 대가로서 적지 않은 돈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쌍방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 시즈코는 서양의 책을 제한없이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을 코타로가 블록체로 옮겨쓴 것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제판(ガリ切り)되어 등사판 인쇄로 돌려진다.

그렇게 하여 원본과 복제된 인쇄물에 관리번호를 붙이고, 원본과 원어판은 폐가 서고에 보관되고, 일본어 번역판에 관해서도 검열을 받아 문제없다고 판단된 것만이 개가(開架) 서고에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개가 서고에 진열된 서적이라면,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했다.

시녀들은 '침초자(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등에 열중하고, 소성(小姓)들은 '도연초(徒然草)'를 읽고 내용에 관해 토론했다.

등사판 인쇄에 적합한 얇고 튼튼한 종이를 준비할 수 없는 것과, 진열 공간의 물리적 문제에 의해 여러 권이 있어야 할 책은 항상 누군가의 손에 있어, 순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도 꼽히는 '방장기(方丈記)'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하면 인기가 없었다.


"뭐, 남만의 언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익히면 좋을 거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대환영이니까. 게다가 다른 나라의 사상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 환경이 다르니까 모든 것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개념도 있고 말야"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가지고 돌아온 서적이 놓여 있는 책장에서 한 권을 빼들었다.

이 도서실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암묵적인 룰이 딱 하나 있었다. 새롭게 도서실에 진열된 책을 최초로 읽는 것은 시즈코라는 룰.

그 때문에, 이치죠다니에서 가져와서 복제되기를 기다리는 원서가 진열된 책장은 아무도 손대지 못한 상태로, 시즈코만이 순서대로 빌려서 읽고 있는 상태였다.


"좋아, 오늘은 이것의 대출을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시즈코는 책과 함께 나무패(木札)를 사서(司書)에게 건넸다. 시즈코의 도서실에서 사서를 맡고 있는 것은, 키묘마루(奇妙丸)의 교육 담당이기도 했던 할아범(爺)이었다.

키묘마루가 성인식을 치르고 노부나가 밑에서 활동하게 되자, 그는 감시역(お目付け役)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되었다.

시즈코는 교양도 있고 학문에 조예(造詣)도 깊은 인재를 묻히게 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여, 도서실의 사서로 일하지 않겠냐고 타진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대우는 파격적으로 좋았기에, 할아범은 쾌히 받아들였다. 그 이래, 시즈코의 도서실에서의 대출을 전담하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는 방법은 현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우선 사서에게 신청하여 개인용의 도서실 이용 카드에 해당하는 나무패를 받는다. 빌리고 싶은 책을 대출대까지 가져가서, 자신의 나무패와 함께 제출한다.

사서인 할아범이, 책의 관리번호를 나무패와 대장(台帳)에 기입하고, 대장에는 추가로 대출 날짜와 대출받은 사람을 기입한다. 나무패는 사서가 맡아서 도서실에서 관리하고, 책을 반납하면 나무패를 돌려준다.

책을 험하게 다루거나 훼손하거나 하면 피해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기입을 마친 후 할아범은 시즈코에게 책을 건네주고, 나무패를 벽에 설치된 대출패 보관함에 끼워넣었다.


"그럼, 나는 실례할게. 너무 몰두하지 말고 가끔은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중요해"


책을 받아든 시즈코는, 독서에 집중하는 키헤이지에게 말을 건 후 도서실을 나왔다. 책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귀에 그녀의 충고가 들렸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책을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시즈코는 어디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안녕? 잘 되어 가요?"


"어이쿠, 주인님. 웬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손으로 더듬어가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코타로가 관리하는 와인 양조장(醸造蔵)이다. 양조장이라고는 해도 부지 대부분이 저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와인은 레드, 화이트, 로제의 세 종류가 있으며, 주요 제조 공정은 공통된다. 레드 와인은 껍질째로 담그고, 화이트 와인은 껍질이나 씨를 제거하고 발효시킨다.

로제 와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제법이 존재하지만, 코타로는 세녜(Saignee) 방식이라고 불리는, 도중에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시키는 제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수확된 코우슈(甲州) 포도는 옅은 적자색(赤紫色)의 껍질을 가지고, 과실은 부드러운 인상의 연분홍색(薄桃色)을 띠었다. 신맛은 약하고 단맛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와인 제조에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서양에서 와인 제조의 권익은 교회가 쥐고 있어, 그들은 한결같이 포도밭을 개간해서 양조 기술을 갈고닦았다.

개중에는 교회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와인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어,이것이 선술집(居酒屋)의 원조라고도 전해진다. 또, 현대에서처럼 와인을 병입(瓶詰め)하여 코르크로 마개를 하게 된 것은 17세기 말의 일이다.

그런 배경도 있어, 교회의 비의(秘儀)에 속하는 와인의 제법은 비밀로 지켜져, 와인 그 자체라면 몰라도 포도의 씨앗이나 묘목에 이르면 즉시 반출이 어려워진다.

예수회에 요청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전망이 보이지 않아,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하려면 코우슈 포도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통에 넣었다는 건 지금부터 숙성하는 거에요?"


"떡갈나무(樫)로 된 작은 통에서 발효를 했는데, 고향의 오크(Oak)와는 달라서 어떤 향이 붙을지 모르겠습니다. 맛을 보았을 때는 약간 싱거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코타로가 담근 것은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

우선 수확된 포도 열매를 송이(房)에서 한 알씩 떼어낸다. 이 때 포도를 씻으면 표피에 붙어있는 효모균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씻지 않도록 한다.

다음으로 포도 열매를 가볍게 압착해서 과즙을 짜내고, 준비한 작은 통에 통째로 옮겨서 발효 공정으로 들어간다.

그 후에는 하루에 몇 번 저어주어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하면서 몇 주일에 걸쳐 발효시킨다.


어느 정도 발효가 진행된 단계에서, 세녜(프랑스어로 피빼기를 의미한다)를 하여, 액체 속에 껍질이나 과육, 씨앗의 비율을 높여 응집감(凝集感)을 낸다.

이렇게 추출된 부분이 레드 와인이 되며, 남은 부분은 로제 와인으로서 다음 공정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를 1차 발효라고 하며, 1차 발효가 끝나면 과즙만을 추출하고, 남은 껍질이나 씨앗에 강한 압력을 가해 압착한다. 이것들의 혼합물을 다시 알코올 발효시킨다.


이게 끝나면, 저장용의 통으로 옮겨서 숙성시킨다. 여기까지의 공정을 2차 발효라고 한다.

이 후에는 숙성 기간이 지남에 따라 통의 하부에 앙금(澱)이라 불리는 다양한 침전물이 모이기 떄문에, 앙금빼기(澱引き)라는, 위쪽의 맑은 부분(上澄み)만을 다른 통으로 옮기는 작업을 몇 번 한다.

숙성을 마친 와인은 남은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과되고, 마지막으로 병입을 한다.


하나같이 단순한 작업이지만,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이나 숙성시키는 통의 재질, 통의 가공처리나 숙성시키는 기간 등에 따라 와인의 맛은 변화한다.

같은 와인이라도 숙성 없이 마시는(若飲み) 것과, 장기간의 숙성을 거친 후 마시는 것은 다른 풍미를 보인다.


와인을 마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서 디캔터(decanter)를 들 수 있다. 가게 등에서 보틀(bottle)을 주문하면, 탁상용의 용기에 옮겨담아준다. 이 용기를 디캔터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카라페(carafe)'와 '디캔터'의 두 종류가 있으며, 각각 용도가 다르지만, 여기서는 디캔터만을 다루기로 한다.

와인을 디캔터에 옮겨담는 것을 디캔터쥬(décantage, ※역주: 디캔팅(decanting))라고 부르며, 주로 침전된 앙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

병입 후에도 와인의 숙성은 계속되어, 그 과정에서 색소 성분이나 타닌(Tannin)이 결합하여 앙금이 된다. 이 앙금은 와인의 맛을 크게 해치기 때문에, 일부러 옮겨담는 것으로 앙금을 제거하는 것이다.

장기간 숙성된 빈티지(vintage) 와인은 디캔터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단,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는 디캔터에 옮기면 매력을 잃는 경우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잘 되면 맛있는 와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피 같은 색상이 기피될지도 모르겠지만요"


"팔리지 않으면 제가 책임을 지고 소비할테고, 남만인들에게 줄 선물도 되겠지요"


"부디 과음에는 주의해 주세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몸이 나빠지기 전에 취해 쓰러지니까요"


"그건 그거대로 감기 같은 거에 걸리니까 걱정인데요"


"혼자서 마시는 건 자제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이 이상 집요하게 말해봤자 역효과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그를 신용하기로 했다.


"뭐, 적당히 마시세요. 나는 마실 수 없지만, 주상께서는 와인에 흥미를 가지신 모양이니까요"


"숙성이 끝난 단계에서 잘 만들어진 것을 골라 헌상하겠습니다"


"맡기겠어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발길을 돌려 와인 양조장을 나갔다.




미노와 오와리의 시장에는 소량이지만 노부나가의 신 화폐(新貨幣)가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라가질 못해, 시장에서는 혼재되어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동화(銅貨)의 유입에 의해 약간씩이기는 해도 아전(鐚銭)이 회수되기 시작하여, 시장에서 화폐의 열화(撰銭)에 기인하는 소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폐의 명칭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노부나가였으나, 가장 친숙한 동화가 종래의 영락전(永楽銭)과 마찬가지로 원형에 구멍이 뚫려 있었기에, '앞을 볼 수 있다', '장사의 운(円, ※역주: '원(동그라미)'이라는 뜻인데, 운수(縁)라는 한자와 일본어 독음이 같음)이 좋아진다'라고 하여 언제부터인지 엔(円)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장의 움직임과 별개로, 시즈코는 새 집 옆에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숙(私塾), 현대에서 말하는 사립학교(私立学校)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도제(徒弟) 제도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쳐 전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선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후배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선배들은 본래의 업무가 소홀해지고 수배에 대해서도 교육의 질(度合い)에 편차가 생긴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거 학교를 건축하여, 전문의 교육기관으로서 독립시키기로 했다.

학교라고는 해도 수용 인원은 백 명도 안 되고, 단층집(平屋) 구조인데다 방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단, 교실 이외에도 특수 교실로서 도서실, 기술실(技術室), 가정과실(家庭科室), 음악실(音楽室), 미술실(美術室), 무도장(武道場)에 운동장(運動場) 등, 현대의 중학교 정도의 설비는 갖춰져 있었다.


뭐든지 맨땅에 박치기(手探り)하는 식으로 시작한 학교이기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시즈코의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 한정되었다.

교육 내용은 기본적인 문자의 읽고 쓰기에 더해, 주판(算盤)을 이용한 사칙연산(四則演算)까지를 필수로 쳤다.

이 밖에도 필수 기술로서 요리에 재봉, 청소에 세탁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르쳤다.

선택과목으로서, 희망자에게는 농기구 등의 정비나 수리, 악기의 연주나 악보(譜面) 보는 법, 회화(絵画)나 서예(書道), 꽃꽂이(華道), 다도(茶道) 등의 예사(芸事) 등도 배울 수 있다.


(무예에서 나기나타(薙刀)의 지도(指南)가 가능한 사람은 쇼우 짱이 소개할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자, 검술 사범(指南役)은 누구로 할까.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는 아직 멀었고,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은 벌써 죽었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 ※역주: 코우이즈미 노부츠나라고도 함)은 무리겠지. 그렇게 되면, 역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에게서 면장免状)을 받은 야규 무네토시(柳生宗厳) 밖에 없나. 지금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를 섬기고 있을테니 어려우려나…… 언제 한 번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상담해 볼까)


"오, 시즈코. 여기 있었냐…… 아,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서 돌아보았다. 노부타다(信忠)가 말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말에서 내리려고 하는 시즈코를, 노부타다는 손으로 제지했다.


"이쪽에 얼굴을 비추다니 웬일이야?"


"가끔은 시즈코의 얼굴을 봐야지"


그런 말을 하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힐끗힐끗 시선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볼 때 뭔가 좋은 일이 있었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꺼려지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달라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부러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토라져버려도 귀찮다고 생각하여 양보하기로 했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훗훗훗, 알아보겠냐? 꼭 알고 싶다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귀찮네)


노부타다의 텐션이 올라갈수록 시즈코의 텐션은 끝없이 하강했다. 하지만,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는(有頂天) 노부타다에게는 시즈코의 태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듣고 놀라거라, 시즈코! 나는 연초부터 아버님께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총대장으로 임명될 것이 결정되었다!"


"헤ー, 잘됐네"


"야! 좀 더 기뻐해줘도 되잖아!"


"응, 잘됐네. 착하다 착해"


"그만두지 못하겠냐! 난 이제 곧 20살이란 말이다!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기뻐할 나이가 아냐!"


머리를 쓰다듬자 노부타다가 창피한 나머지 외쳤다. 그 목소리에 놀란 말이 움직이려 했기에, 고삐를 당겨 제동을 걸었다.

그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노부타다의 머리를 시즈코는 실컷 쓰다듬었다.


"그래서, 토우고쿠 정벌은 언제부터 시작하는데?"


노부타다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더니 시즈코는 토우고쿠 정벌로 이야기를 돌렸다.

토우고쿠 정벌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타케다라고 생각해도 좋다. 우에스기는 이미 신하가 되었지만, 그게 영향을 끼쳤는지 타케다는 점점 더 태도를 경직시켜 오다 측과의 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노부나가로서도 타케다의 태도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어, 반복되는 교섭은 '대화는 충분히 했다'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새해가 되자마자라도 군을 출동시키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사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정보를 모아야해. 특히 적 측의 성의 배치나 보급로, 수원지(水源地)나 하천의 위치 등도 알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그런 정보들을 입수한 후에 필살의 작전을 짜서 단번에 박살내는 게 이상적이다. 물론, 타케다가 움직이지 않는 게 전제이지만 말야"


"일단은 쳐들어가고 현지에서 작전을 생각한다던가 하는 소릴 했으면 따귀를 때려서라도 말릴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네"


"아무래도 예전의 단기 돌격(単騎突撃)같은 짓은 안 한다. 필승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일격에 처치해야 해"


"도쿠가와, 우에스기와의 연대도 생각해야지"


"그래. 우에스기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아도 돼. 쳐들어갈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타케다로서는 병력을 쪼개야 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건?"


"호죠(北条)다. 지금도 여전히 놈의 기치(旗幟)는 정해지지 않았어. 하지만, 적이 된다면 타케다과 함께 박살낼 뿐이다"


"카츠요리의 부인은 호죠 사람이니까. 그걸 고려해도 호죠는 움직일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걸로 상관없다. 타케다가 멸망하면 호죠가 뭘 어떻게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미 상황은 뒤집을 수 없지. 호죠만 쳐부수면 남는 건 오합지졸들이다. 그 후에는 천천히 압력을 가하면 되지.


이미 머릿속에는 큰 틀의 계획이 보이고 있는지, 노부타다의 태도에는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타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피아의 전력을 생각하면, 신중하게 계획을 진행하여 확실히 타케다만 멸망시킨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든 된다.

오다에게 투항하면 좋고, 아니면 적으로서 쳐부술 뿐. 노부나가의 수법을 흉내내고 있지만, 정석(定石)에 따른 것이며 거기에 크게 잘못된 점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기묘한 불안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다.


(……그만두자. 근거없는 불안으로 손을 멈추면 기회를 잃으니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때야말로 위태롭다. 호사다마(好事魔多し)라는 옛말이 있듯, 일이 지나치게 생각대로 잘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불안을 털어낸 후,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잘만 하면 토우고쿠는 몇 년 안에 평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랬으면 좋겠군"


시즈코의 말에 노부타다는 태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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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1 1573년 10월 중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가문의 멸망으로부터 1개월이 경과했다. 그동안 노부나가는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秀吉)와 미츠히데(光秀)는 대립을 표면화시키면서도, 각자 노부나가로부터 맡겨진 영지의 통치에 부심(腐心)하고 있었다.

당초의 쟁점이었던 쿠로쿠와슈(黒鍬衆)는, 도로정비로부터 돌아온 인원을 포함해 균등하게 분배하여 각자에게 공평하게 할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데요시에게는 첫 성이다. 자신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또 부하들의 구심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조속히, 그리고 사카모토 성(坂本城)에 지지 않는 성을 짓고 싶다는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우선적으로 자재를 돌려줬으면 한다고 해도…… 내 재량 밖이거든"


역사적 사실에서는 향년 62세에 사망한 히데요시의, 30대도 후반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짓는 성이 되는 나가하마 성(長浜城). 편의를 봐주고 싶지만, 어느 한 쪽의 편을 들 수도 없다.

자칫 편의를 봐 주었다가는 잘못된 정치적 메시지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번만큼은 양쪽이 사용하는 건축자재의 가격을 아슬아슬하게까지 낮추는 것으로 납득하게 하기로 했다.


"자, 하나 처리됐다. 다음은 수확에 관한 보고네"


"옛. 쌀에 관해서는 작년과 비슷한 수확이 될 거라는 예상입니다. 그 외의 곡물이나 야채에 대해서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며, 병충해의 피해도 최소화되었습니다. 해산물에 관해서는 양식(養殖) 부문이 호조이며,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연어(鮭)는 벌써부터 풍어(豊漁)라는 보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가. 연어의 치어(稚魚)를 잔뜩 방류했으니 그 결과가 나오고 있는거네. 하지만 연어의 회귀율(回帰率, 방류한 연어가 돌아오는 비율)은 낮으니까, 하다못해 1퍼센트 정도만 돌아와 주면 좋겠는데 말야"


연어는 한 번의 산란에서 30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모든 과정을 자연에 맡긴 경우, 무사히 성어(成魚)가 되어 강으로 돌아오는 것은 몇 마리 정도가 되어버린다.

자연 산란의 경우에는, 우선 부화할 수 있는 확률부터 4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사히 치어가 되었다고 해도, 성장 과정의 도태에 의해 숫자가 줄어들어, 최종적으로 번식할 있게 되는 개체는 엄청나게 적다.

하지만, 인공부화를 하는 경우에는 부화율을 95퍼센트 가까이까지 끌어올릴 수 있고,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회귀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자연 산란의 연어는 회귀율이 0.5퍼센트 정도인 데 대해, 인공부화를 한 경우의 회귀율은 조건에 따라 4에서 6퍼센트까지 된다.


"일 파ー센토, 입니까?"


"백 분의 일이라는 의미야. 자연이라는 건 약육상식이거든. 더 많이 돌아와주게 하기 위해서도, 내년도의 방류 숫자는 더 늘릴거야. 거슬러 올라온(遡上) 연어는 포획해서 계속 인공수정을 시켜줘"


"예, 옛"


백분율을 나타내는 퍼센트라는 낯선 단어에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던 쇼우(蕭)였으나, 시즈코의 지시를 받고 생각을 새로 정리했다.

시즈코는 만족하지 않는 모습이었으나, 흥분한 어조로 어획량을 이야기하는 보고를 받은 쇼우는 시즈코가 내다보는 미래의 아득함에 전율했다.

올해의 연어의 소상량(遡上量)은 문자 그대로 단위가 다른데, 시즈코에게는 그조차도 통과점에 불과한 것이다.

시즈코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떠올리려고 한 쇼우는, 강에서 연어가 넘치려 하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뇌리를 스치며 몸을 떨었다.


"연어의 풍어에 대해 듣고, 귀가 밝은 상인들이 모여있는 모양이네. 고노에(近衛) 님의 칸파쿠(関白) 취임도 있어서 상당수를 유통시키지 않고 확보해 두어야 하니까, 어느 정도를 시장에 풀 지가 고민거리네"


"연어는 그렇다치고, 예넌과 마찬가지로 농산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습니다. 영지로부터의 세수(税収)도 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백성들로부터 감사의 표시로서 헌상되고 있습니다"


"으ー음…… 오곡풍양(五穀豊穣)의 답례인 것 같은데, 우리 집은 신사(神社)가 아니거든. 모두의 호의니까 함부로 할 수도 없네"


"그럼, 올해도 수확제(収穫祭)에서 뿌리는 것으로 방출하죠"


그밖에도 세세한 보고를 한 후, 쇼우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올해도 예상 이상의 수확을 거두어, 백성들이 굶을 상황은 회피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여, 곳곳에 비축미(備蓄米)를 집적해놓고 있기에, 유통이 차단되는 것 같은 대재앙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거라 예상되었다.


"모처럼의 수확기니까, 이것저것 사들여볼까. 시험해보고 싶은 요리도 있고"


가을이라고 하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라는 말이 있듯이, 식재료가 풍부한 계절이다. 예전이라면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質素倹約)을 강요받아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일찍부터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고, 직업군인을 다수 보유하는 오다 군에 대한 영향은 경미하지만, 많은 나라에게 겨울 준비는 사활문제가 된다.

오와리(尾張)에서도 소규모 농가 등은 주머니 사정이 빡빡해지기에, 조금이라도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시즈코는 가을에 다양한 요리를 시험해보고 있었다.


"아야(彩) 짱ー, 돈 줘ー"


"……아, 벌써 그런 시기군요. 알겠습니다"


시즈코는 금고지기를 자인(自認)하는 아야에게 돈을 졸랐다. 벽에 걸린 달력을 확인하면서 아야가 대답하고, 금전이나 물품의 출납을 관리하는 출납부를 펼쳤다.

예산의 계상(計上)에서 출금까지를 아야에게 부탁한 후, 시즈코는 호위대(馬廻衆)를 불렀다.

사이조(才蔵)는 항상 곁에 있으니 문제없었지만, 케이지(慶次)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가요시(長可)에게 물었더니 '아침 일찍부터 나갔다'라고 듣고 포기하기로 했다.


"자, 그럼 새로운 식재료를 찾으러 출발이다"


의기양양하게 호령을 내리며 시즈코는 사이조와 병사들을 대동하고 항구마을로 출발했다.




시즈코가 가고 있는 항구마을에는, 혼간지(本願寺)의 인간이 들어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 뛰어난 무장인 동시에 유명한(名うて) 정치가이기도 했다.

혼간지의 중요 인물이기도 한 그가 직접 잠입해 있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전부터 시즈코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간자를 풀어 정보를 모으고 있었으나, 도무지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간자의 잠입 자체는 성공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精彩を欠く). 몇 번이나 인원을 교체했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기에, 참다 못해 직접 나선 것이다.


(이 마을(街)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라이렌은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을 돌아보며 간자들이 정보를 가지고 돌아가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마을의 생활은 독이다. 청결하고 쾌적하며 자유롭다. 이 상황에 익숙해진 자가 위기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 따위 불가능하다. 하물며 편한 것을 배운 사람이, 그 생활을 버릴 수 있을 리도 없다)


간자로서 마을에 살며, 자리를 잡고 활동하면 할수록 쾌적한 환경이라는 독이 정신을 갉아먹는다. 사람, 물건, 돈이 모여들어 활기가 넘쳐흐르는 항구마을에서는 일자리도 많아서 먹고 사는 데 곤란할 일은 없다.

손톱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일향종(一向宗)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가능한 한 체류를 연장하여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 결과, 라이렌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가 모여들지 않는다.

담당에서 뺀 간자들이 그 후 연락이 끊긴 이유도 이걸로 확실해졌다. 라이렌조차 겨우 며칠의 체류로 결의가 둔해질 정도였으나, 다른 사람이라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고난에 견딜 수는 있어도, 쾌락을 끊는 것은 어렵다. 빠르게 조사를 마치고 귀국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라이렌의 눈에 묘한 인파가 들어왔다.


"이거 보십쇼! 오늘 아침에 막 올라온 대물입니다. 본 적도 없는 생선이지유?"


"아침에 딴 채소가 들어왔습니다ー!"


"산의 먹거리(山の幸)라면 우리 가게가 제일이에요!"


엄청나게 북적이는 인파에 다가감에 따라, 그들의 외침 소리가 라이렌의 귀에도 들려왔다. 누군가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고 있는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기에는 파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다.


"실례, 이건 대체 무슨 행사(催し)입니까?"


이미 장사가 끝났는지, 떨어진 위치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상인에게 라이렌은 말을 걸었다.

승려의 모습을 한 라이렌이 말을 걸자 대단히 놀란 상인이었으나, 검소한 옷차림에 호감을 느꼈는지 쾌히 알려주었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연례 행사요. 이 시기가 되면 시즈코 님이 연일 큰 돈을 가지고 오셔서, 이런저런 것들을 대량으로 사가시지"


"호오…… 꽤나 이름있는 부호(御大尽)이겠군요"


"뭐, 오가는 금액의 자릿수가 다르니까 부호이신 건 맞겠군.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외다. 여기서 거래된 것들은, 조금 지나면 재미있는 것으로 변하여 돌아온다고"


"어떻게 말입니까?"


"스님, 이 마을은 처음이신가? 그럼,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마을이 있는 건 알고 있소?"


상인의 물음에 라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구 마을에 오기 전에 지나친, 중계지(中継地)가 되는 큰 마을일 거라고 추측했다.


"그럼 얘기가 빠르지. 그곳은 시즈코 님의 직할(お膝元)인데, 여기서 산 것을 사용해서 이런저런 요리를 시험하시지. 그 요리를 만드는 법이, 각 마을의 요리점들에 공표된다오. 절임(漬物) 같은 보존식(保存食)에서, 큰 가게의 주인이나 드실 듯한 고급요리까지 폭넓게 알려주시니 고마운 일이야. 말하자면 사가신 물건들은 훗날 날개돋친 듯 팔릴 게 틀림없다는 거지"


"과연…… 요리?"


"그렇지. 이 항구마을에서도,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요리점 거리가 있으니 가보슈. 직할 마을 만큼은 아니지만 맛있는 요리가 갖춰져 있지. 바다의 재료에 한정한다면 여기가 최고지. 어이쿠, 슬슬 돌아가서 사입(仕入)을 하지 않으면 장사할 기회를 놓치지. 스님도 조심해 가슈"


인파가 흩어지기 시작할 시점을 가늠한 상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라이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떠나갔다.

바쁘게 대화가 끊겼지만, 그래도 많은 수확이 있었다. 요리점에 대해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시즈코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상황을 살폈다.

눈에 띄는 인파가 적어지고, 큰 거래를 성공시켰는지 아주 기분이 좋은 상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만한 숫자의 사람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사들이다니…… 꽤나 사정(羽振り)이 좋은 모양이군)


인파는 사라졌지만, 시즈코들이 떠날 기색은 없었다. 매물(出物)이나 대물(大物)을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인 듯한 그 모습에서 윤택한 자금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다의 비정상적인 융성(隆盛)도, 놈의 존재가 있기 때문인가. 몇 번이고 크게 뿌려도 마르지 않는 재산을 어떻게 모은다는 것인가)


라이렌은 시즈코의 끝을 알 수 없는 재력의 원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별 뜻 없이 본 가게의 장식용 접시(絵皿), 그 멋진 꽃무늬(大輪)를 본 그는 천계(天啓)를 깨달았다.


(그런가! 놈은 자신의 영유지(所領) 뿐만이 아니라, 오와리(尾張) 일대 전체를 번영시킨 것이다!)


그것을 깨닫자, 지금까지는 각각의 점으로박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선을 이루며 형상(像)이 되어 떠올랐다.

전국시대에서의 부(富)란, 풍요로운 타인의 땅을 빼앗는 것에 있다. 지금 있는 것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

그 점에서, 타인의 부를 빼앗는 방법은, 싸움이라는 도박을 통해, 이기면 즉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오와리의 가치는 기라성(綺羅星)처럼 높아져, 내버려둬도 사람이나 물건, 돈이 모여든다.

오와리 한 나라만으로도 무서울 정도의 물량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 따위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점이라면 포위하여 가두기라도 하겠지. 무수한 점을 이은 면을 상대로, 약간의 점을 없애봤자 다른 점들이 그것을 보완해버린다. 주요 도로를 봉쇄하려 해도, 오다 령을 통하는 모든 길을 봉쇄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자신들이 현재 상황을 얼마나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곡해하여 인색하고 있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이제와서는 오다를 포위하는 것 따위 불가능했다.

반 오다 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죽을 각오로 저항한다면 가능성도 있겠지만, 통일성 없는 잡다한 집단(寄り合い所帯)에 단결 따윈 바랄 수도 없다.


(너무 늦었다(遅きに失した). 이제와서 시즈코를 조사해도 의미가 없다. 이미 놈이 없어도 번영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그래도 시즈코를 처리하면 약간의 유예는 얻을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 필요해지는 희생이 너무 크다)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최초의 오다 포위 때, 얼마만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다방면에서 동시에 공격을 했다면, 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우에스기(上杉)가 오다에게 굴복한 것도, 이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차선책을 모색한 결과, 인가)


계속 쓰고 있던 깊은 삿갓(深編笠)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라이렌은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떠나갔다.




라이렌이 낙담해서 떠나갔을 때, 시즈코는 사들인 것들의 목록과 예산을 비교하며 주위에 말했다.


"쫓아가지 않아도 돼요"


시즈코를 호위하는 사이조는 물론이고, 병사들도 수상한 승려 차림의 사내를 눈치채고 있었다. 라이렌이라고 꿰뚫어본 것은 아니고, 혼간지의 간자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시즈코는 추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주위에서 괴이쩍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신의 위기관리라는 한 가지에 있어 시즈코의 신용은 낮다.


"아니, 저렇게 노골적이면 아무리 나라도 눈치채요. 저 모습을 보니, 성과가 나지 않아서 현장을 보러 온 윗사람(上役) 쯤 될테고,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가지고 돌아가주는 쪽이 내부의 사기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어요. 자, 계속 물건을 사러 가죠"


사이조의 충고를 솔직하게 받아들인 후, 시즈코는 항구마을에서의 쇼핑을 계속했다.

규모가 큰 거래 이외에는 현물과 현금으로 거래하기 떄문에, 어느 정도 짐이 쌓이면 짐꾼을 고용하여 순차적으로 시즈코 저택으로 운반하게 했다.

이게 며칠이나 계속되니, 상인들이 장사할 기회라고 기합을 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는 타이밍을 살펴서 귀가했다.


시즈코 저택에서는, 미츠오(みつお)와 고로(五郎)가 시즈코들에 앞서 운반되어 온 식재료를 앞두고 신음하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시로(四郎)가 밑준비 등의 잡일을 하고 있었으나, 시즈코는 면식이 없었기에 새로운 하인(下男)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만큼 신선한 식재료를 모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하네…… 재력만으로는 무리니까. 하지만, 이만큼 있으면 뭣부터 쓸지 고민되네"


"그렇지. 하지만, 그걸 어떻게 요리하는지가 실력이지"


"아뇨…… 시식하시는 분(味見役)들이…… 그……. 너무 도전적인 요리는 피하는 게……"


미츠오의 말에 나란히 앉아있는 시식자들을 훔쳐보았다.

옆의 손님방(座敷)에는 노부나가를 필두로, 노부타다(信忠) 등 오다 일족,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등 마침 짬이 난(都合のついた) 오다 가문 가신들에 더해, 조금 떨어진 가까운 쪽(手前側)의 자리에는 카네츠구(兼続)나 카게카츠(景勝) 등 우에스기 가문 사람들까지 있었다.

시식회(試食会) 참가를 절실히 희망(切望)하고 있던 이에야스(家康)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나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꼭 불러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게다가 한식구(身内枠)로서, 쿄(京)로 갔어야 할 사키히사(前久)가 앉아 있었는데, 오직 시식회에 참가하기 위해 잠시 돌아왔던 것이다. 케이시(家司)인 신도 나가하루(進藤長治)도 빈틈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식구인 나가요시와 케이지 등, 시즈코의 가신들도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명백하게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면면이구만"


"식탐(食い意地)이 강한 분들이네…… 어쩔 수 없지. 사력을 짜내 볼까!"


결사의 각오로 기합을 넣는 그들에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시즈코가 식재료를 운반해 왔다.


"상황은 어때요?"


또 새로운 식재료가 추가되었다고 미츠오들이 질린 표정을 짓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톱밥이 가득 찬 상자에서 내용물을 꺼냈다.


"완전히 얼어붙어 있어서, 빙실(氷室)에서 꺼낸 지 꽤 지났는데도 반도 해동되지 않았네요"


시즈코가 운반해온 것, 그것은 회귀한 연어를 이케지메(活け締め)하여 내장을 뺀 후에 냉동해둔 생연어였다.

기생충의 감염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장기간 냉동해두었고, 그중 몇 개를 골라 해동하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당연하게 식탁에 올라오는 생연어이지만, 전국시대에는 한정된 사람밖에 먹을 수 없는 고급품이다.

냉동기술이나 수송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아무리 돈을 내더라도 제철(旬)인 시기와 입지(立地)를 겸비한 영지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고급품(逸品)이었다.

고로가 머리를 잡고 들어올려 해동 상태를 확인하고 있자 시식자들의 자리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제철의 회귀 연어인데다 이만큼 대형의 것은 영주(国人)라 하더라도 쉽게 볼 수 없다.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했던 그거, 내볼까?"


"아, 차가움과 식감이 재미있는 요리였지. 반응이 좋을지도 모르겠군"


"불평을 피하기 위해서도 단골(定番) 요리도 내죠! 연어의 뫼니에르에 지게미 장국(粕汁)…… 아! '하라코(はらこ) 밥' 같은 건 어떨까요?"


"연어알의 간장절임이 있었던가? 좋아, 연어 잔치(尽くし)로 해볼까"


연어를 중심으로 야채나 조미료가 든 상자를 뒤집으면서 미츠오들이 의견을 교환했다. 시즈코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듯 하여,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어떤 요리가 나올까"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시즈코는 턱을 괴면서 중얼거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연어를 넣어 지은 밥인 '하라코 밥', 연어의 뫼니에르, 연어의 루이페(녹은 음식이라는 의미의 아이누어, 반해동 상태의 생선회), 연어 껍질 구이와 연어의 지게미 장국입니다"


시식자들 앞에 놓인 요리는 연어 잔치의 이름에 걸맞는 메뉴였다.




대호평 속에 끝난 시식회로부터 다시 1개월이 경과했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고 생각될 무렵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에서 귀환했다. 예상 밖의 인물을 데리고.


"응, 사나다(真田) 가문 사람들은 예상했었는데, 어째서 우에스기 가문까지?"


토우고쿠(東国)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우에스기를 의지하여 출분(出奔)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은 했찌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까지 동행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저번에 대면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약간 적개심이 느껴졌다. 사정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아시미츠만을 불러세워 사정을 물었다.


"……고코타이(五虎退)의 양도는 상관없지만, 금주령(禁酒令)에 가까운 주량 제한 따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주량 승부(呑み比べ)를 해서 이기면 내가 시즈코에게 이야기해주겠다고 말했지"


고코타이란 켄신이 에이로쿠(永禄) 2년(※역주: 1559년)에 상락(上洛)했을 때,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으로부터 하사받은,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가 만든 단도(短刀)이다. 견명사(遣明使,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에서 명나라에 파견한 사절)가 이것을 사용해 다섯 마리의 호랑이를 쫓았다는 일화가 있어, 그것이 이름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금주에 반발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주량 승부로 결판을 낸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량을 제어하는 게 건강에 도움된다고 전해줬어요?"


"술의 양을 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더 이상 들은 척도 않더군. 고집이 센 녀석이다"


그렇게 말하며 아시미츠는 시즈코에서 시선을 피했다. 감이 좋은 시즈코는, 그 모습에서 아시미츠가 굳이 그 이상의 설득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헤아렸다.


우에스기 켄신이라고 하면, 3합(合) 용량의 '마상배(馬上盃)'를 애용할 정도의 대(大) 주호(酒豪)이다. 그 애주 때문에 고혈압성 뇌출혈을 일으켜 49세라는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일설에 의하면 켄신은 40살 때도 가벼운 뇌출혈을 일으켜 왼쪽 다리에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고도 한다. 그걸 알고 있던 시즈코는, 켄신의 다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약간 끄는 듯한 버릇이 있었으며, 다리도 붓기가 있었다. 때때로 여기저기를 긁는 것을 보니, 전신에 가려움이 나타다고 있는 것이리라.

현대에서 작성했던 흑역사(黒歴史) 노트에는, 켄신을 아군으로 끌어들였을 때의 알코올 의존증 대책을 이것저것 조사했었기에, 어느 정도의 대책은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출혈의 직접적 원인은 고혈압이니, 시즈코는 우선 고혈압 대책에 착수하려고 생각했다. 고혈압의 요인은 운동부족에 알코올이나 염분의 과잉 섭취를 생각할 수 있다.

전국시대의 사람이 운동부족이 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문제는 식생활과 알코올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얄궂게도 켄신의 아시미츠에 대한 태도가, 그의 알코올 의존증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사람은 음주의 폐해를 모른 척 하지. 공격적이 되는 것도 의존증의 심리에 맞아떨어지고, 이건 슬슬 강제력을 동반한 치료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되려나)


역사적 사실대로 켄신이 죽으면, 후계(家督) 싸움에서 '오타테(御館)의 난(乱)'으로 발전할 것은 명백하다.

그걸 이유로 우에스기 가문에 개입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토우고쿠의 견제를 위해 켄신은 건재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켄신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동안, 그 동안에 타케다(武田)나 호죠(北条), 모가미(最上) 등의 츄우부(中部), 칸토(関東), 토호쿠(東北)에 걸친 영주들을 장악한다.

여기까지 진행되면, 우에스기 가문의 후계자 싸움이 어떻게 결판이 나던 대처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네. 자신이 제안한 승부에서 지면 변명도 못 하겠지. 이번의 폭음(暴飲)은 필요경비라고 납득하죠"


"놈은 서약서(誓紙)를 준비해 두었다. 신앙심에 걸고라도 약속을 깨지는 않겠지. 뭐, 상대는 미츠오다. 그 녀석이 출입금지를 당한 무한리필(飲み放題) 이자카야(居酒屋)는 셀 수도 없지"


"객기를 부릴 것 같으면 말려줘요. 이것 때문에 간경변(肝硬変)이나 뇌경색(脳梗塞)이 오면 의미가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다. 약간 수상한 기색(挙動不審)을 보인 아시미츠였으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자루에 손을 댔다. 여차하면 힘으로라도 막겠다는 뜻이리라.

약간 어이가 없어졌으나,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하고 시즈코는 안쪽에 대고 말했다.


"쇼우 짱, 미츠오 씨를 데려와줘"


순수하게 1대 1 주량 승부를 하려고 한 시즈코였으나,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직접 대결하는 것보다, 팀 대항전으로 해버리는 쪽이 부담도 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발길을 돌리려던 쇼우를 멈춰세우고,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도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당신들,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주호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 없어요?"


이리하여 오와리(尾張) 팀과 에치고 팀에 의한 주량 승부가 벌어졌다. 차례차례 술통이 개봉되고, 알코올 냄새가 감도는 대회장에서 일찌감치 퇴장한 시즈코는, 다음 날 우승자로부터 직접 결과를 들었다.

오와리나 미노(美濃), 에치고의 위신을 건 주호들의 주량 승부, 날이 밝았을 때 서 있었던 것은 미츠오 단 한 사람 뿐이었다.




주량 승부에서 소비된 술의 양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지만, 시즈코는 켄신이 약속대로 술을 끊을 결의 표명으로서 '마상배'를 깨버린 것을 알고 기뻐했다.

치열하기 짝이 없었던 주량 승부였으나, 당사자인 미츠오 본인은 일부 사람들로부터 '주신(酒神様)'이라고 숭배받아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잠정적으로 천하제일의 주호가 된 미츠오에게 츠루히메(鶴姫)가 새삼 다시 반하여,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미츠오가 자랑질(惚気)을 해댄다고 아시미츠는 씁쓸한 표정으로 내뱉았다.


"사이가 좋은 건 아름다운 것일까요. 자, 드디어 완성되었나요, 신(新) 화폐(貨幣)"


시즈코는 쟁반에 놓인 신 화폐를 바라보았다. 금(金), 은(銀), 동(銅)의 세 가지 주화였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노부나가는 삼화제도(三貨制度)의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화폐는 천한(卑しい) 것이라는 가치관이 많았기에 뒤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노부나가'에게는 여력도, 새로운 가치관을 꺼내들고 보급시킬 발신력(発信力)도 있었다.

노부나가는 불환지폐(不換紙幣)를 시기상조(時期尚早)라며 포기하고, 삼화제도를 통해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로 유도하여, 이윽고 태환화폐(兌換貨幣)로의 전환을 내다보고 신 화폐의 운용을 개시했다.


새 제도라고는 해도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동화(銅貨)는 유통되고 있는 영락전(永楽銭)과비슷하게 주조하고, 은화(銀貨)는 사각형의 판 모양, 금화(金貨)는 에도(江戸) 시대에 유통되었던 짚신(草鞋) 모양의 코반(小判)이었다.

교환 레이트를 크게 변경하면 혼란을 가져오기에, 동화 1닢을 현재의 정전(精銭)과 같은 가치로 하고, 은화 1닢을 동화 100닢으로 정했다.

그리고 금화 1닢을 은화 10닢과 같게 하여, 금화 1닢으로 1000문(文), 즉 1관문(貫文)으로 정했다.


각각의 화폐의 금속 혼합비는 극비로 하여, 통화 발행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도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전용(全容)을 파악하고 있는 것은 노부나가와, 통화좌(通貨座)를 총괄하는 기술자들 뿐이다.


도래전(渡来銭, 중국의 전화(銭貨))의 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나, 일본의 통화를 통일하려면 이행 기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도래전, 노부나가의 신 화폐, 각국이 독자 주조하고 있는 영국(領国) 화폐(貨幣)의 세 종류가 혼재하게 되리라.

노부나가 자신도 성급한 화폐 이행은 경제에 영향이 나온다고 생각하여, 금후 20년을 잡고 신 화폐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신 화폐의 보급은 쿄(京)나 사카이(堺) 등 키나이(畿内) 일대(一帯), 오와리나 미노 등 노부나가의 직할령 내에 그칠 것이라 예상하고, 일본 전체의 통화 제도의 쇄신을 노부타다의 역할로 삼았다.

태환지폐(兌換紙幣)나 불환지폐에 관해서는, 노부타다의 자손의 과제로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내년부터 세금의 징수는 이 신 화폐로 이루어지는 건가"


올해의 세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대로 하고, 내년부터 납세에 한해 신 화폐로만 하게 된다. 아전(鐚銭)은 오와리와 미노에서만 다른 곳보다 앞서 올해까지만으로 사용 제한을 두었다.

아전이나 정전의 신 화폐로의 교환은 항상 이루어지기에, 노부나가의 직할령(お膝元)에 한정한다면 빠른 단계에서 전환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오와리나 미노를 시금석으로 삼아, 쿄나 사카이 등 키나이 권역은 3년을 잡고 아전 구축을 실시한다. 각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영국 화폐에 대해서는 5년을 기준으로 사용 불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조정의 이름으로 전국에 포고되고, 위반한 경우에는 조적(朝敵)으로서 처벌된다는 엄격한 내용이었다.


"위조화폐인 사주전(私鋳銭)을 만들면 조적이 되고, 사용 기한을 넘은 통화를 납세에 사용하면 사형인가. 용서없네. 뭐, 몇 년의 유예가 있는데 환전하지 않은 거니까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겠지"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통화를 사용'할 경우에 한한 제한 사항이며, 사용기한을 넘은 통화를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죄로 간주되지 않는다.

현대에서도 사용할 수 없는 통화, 소위 말하는 고전(古銭, ※역주: 옛날 돈)을 수집하는 콜렉터는 많다.

공적인 장소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신 화폐 이외의 것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어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행 기간을 지나면 환전할 수 없게 되어, 고전에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호사가(好事家)들 사이에서만 거래가 성립하게 된다.


"흐ー음. 큰 상거래를 하려면 금화 한 종류 만으로는 불편하려나. 은화, 금화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를 준비하도록 주상께 상신해 둘까"


"시즈코 님. 사나다 님이 오셨습니다"


"안내해줘요"


신 화폐를 앞에 두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성(小姓)이 사나다 마사유키의 내방을 알려왔다.

즉시 안내하도록 시즈코가 명령하자, 소성 한 사람이 마사유키를 데리러 가고, 나머지는 알현의 준비를 갖추었다.

숙취인지 안색이 좋지 않은 케이지나 사이조 등도 집합하고 잠시 지나자, 소성의 안내를 받아 사나다 마사유키와 몇 명의 남성들이 들어왔다.


"푹 쉬었나요?"


"과분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쇠약해져 있던 처자식도 완전히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시즈코의 질문에 대해 마사유키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시미츠가 마사유키를 데리고 돌아온 직후의 상태는, 극도의 피로 때문인지 심하게 쇠약해져있어, 먹을 것도 고형물(固形物)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대화 같은 게 가능할 리도 없어, 시즈코는 마사유키들에게 며칠 휴양을 취하라고 했다.


"자, 아시미츠에게서 개요는 들었습니다만, 확인의 의미도 겸하여 다시 묻겠습니다. 사나다 가문의 사정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를 가능한 한 자세히 말해 주세요"


"옛"


마사유키는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한 마디로 대답하더니 품 속에서 종이(懐紙)를 꺼내어, 그걸 확인하면서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사나다 가문을 둘러싼 상황에 관하여, 사나다 가문은 마사유키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유키타카(幸隆)가 건재했으나, 적자(嫡男)인 노부츠나(信綱)와 둘째 형(次兄)인 마사테루(昌輝)가 모두 전사했다.

그래서 3남인 마사유키가 급거 사나다 가문에 복귀하여 가문(家督)을 이었다.

그러나, 이미 적자인 노부츠나가 당주가 되었었기에, 이 가문 계승은 혼란의 방아쇠를 당기게 되었다. 먼저 마사유키는 무토우(武藤) 가문의 후계를 포기하고, 대신 무토우 츠네아키(武藤常昭)가 가문을 이었다.

그리고 죽은 장남 노부츠나(信綱)의 적녀(嫡女, 정처(正妻)의 장녀(長女))인 세이온인(清音院)을 처로 맞이했다. 이것으로 사나다 가문 당주로서, 적류(嫡流)의 혈통(血筋)이라는 정당성을 담보하려 했다.

바로 그 때, 마사유키는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로부터 영토(所領) 일부에 대한 몰수를 통고받았다. 사나다 가문에게는 청천벽력이라, 사나다 가문에서 계승 문제가 다시 타올랐다.

주군 가문(主家)인 카츠요리에게 마사유키의 복성(復姓, ※역주: 성을 되찾는 것)과 가문 상속은 인정받았으나, 갑자기 영지를 몰수당하는 사람을 사나다 가문 당주로 앉혀놓아도 되는가라고 가신들이 갈라졌다.

거기에 남은 영토에 대해서도 다른 곳보다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어, 마사유키 배척 세력의 기세가 강해졌다.

이 소동은 앞서의 계씅 문제보다도 오래 계속되어, 타케다 가문에 인질을 보낼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마사유키는 아버지인 유키타가와 상의하여, 이 이상의 소동은 사나다 가문을 단절로 이끌거라고 판단했다. 마사유키가 당주인 한 이 소동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기에, 마사유키는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그래서 에치고를 오다 군이 방문했을 때, 마사유키는 자신이 쫓겨나는 형태로 사나다 영토를 뒤로 하고 에치고 영토로 가서, 그곳에서 오다 군과 합류하여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올 것을 계획했다.

용의주도한 것으로 유명한 마사유키가 드물게 발작적으로 행동했기에, 이런저런 착오가 발생했다.

사나다 영토를 출발한 뒤에 일행에 노부유키(信之)가 포함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완전히 사나다 가문을 배신한 도피행으로서 사나다 가문에서 추격대가 붙게 되었다.


"뭐랄까…… 긁어 부스럼(藪蛇)이랄까, 역효과가 나버린 감이 있네요"


경위를 듣고 있던 시즈코는, 계획성의 결여와 나쁜 타이밍에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이례적인 행동이었기에 도망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꼼꼼히 계획하고 행동하는 마사유키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만큼, 크게 우회한 탈출 경로를 택할 거라고 예상되었고, 추격대의 숫자가 적었기에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사나다 가문과 적대한 것에 대해 생각했으나, 이미 움직여버린 사태는 바꿀 도리가 없다.

마사유키의 건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에게도 보고하였고, 필요한 정보를 얻어낸 후에는 그의 처우를 시즈코에게 일임한다는 말을 들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언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처우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마사유키의 뒤에 있던 남자 한 명이 나섰다. 마사유키가 그의 움직임을 막으려 했으나, 시즈코는 그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상관없습니다. 발언을 허가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착오가 있었기에 주군께서는 직속 부대(手勢)를 이끌지 않으시고 저희들 랍파(乱破)들만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전력으로는 칠 수 없는 저희들이지만, 전쟁터 이외에서의 그늘에 가려진 일들(陰働き)에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부디 주군께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의 비장한 결의를 듣고 시즈코는 인식이 어긋난 것을 깨달았다.

마사유키는 몸만 달랑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와서 사나다 가문과 온건하게 결별한 후에 직속 부대를 부를 생각이었기에, 그가 데려온 것은 약간의 측근과 마사유키의 눈과 귀가 되는 많은 간자들 뿐이었다.

전국시대의 상식에서 볼 때, 그들은 도저히 전력으로 칠 수 없다. 짐덩어리로서 냉대받는 게 아닌가 하고 그 간자 사내는 생각한 것이리라. 대단한 오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오해가 있는 듯 하니 정정하겠습니다만, 나는 애초에 당신들에게 전력을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곳의 방식(流儀)에 물든 정규병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랍파 쪽이 고마울 정도입니다. 나는 사나다 님의 지혜를 기대하고 초대한 것입니다. 판단의 재료가 되는 정보를 가져오는, 눈이나 귀인 당신들 랍파를 가벼이 여길 리가 없지요. 나는 전쟁터에서의 무공보다, 그러기까지 어떻게 정보를 얻는가, 전쟁터에서도 한발 빨리 정보를 얻는 것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생각은 시즈코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노부나가의 방침이 시즈코나 다른 가신들에게 즉각 전달되는 것은, 노부나가 자신이 정보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도로 정비의 일환으로, 각지에 '역(駅)'을 건설했다.

역은 소규모의 것부터 여관마을(宿場町)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규모의 것까지 있지만, 하나같이 갈아탈 말과 전령들의 휴게소, 식량이나 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설비가 갖춰져 있다.

전령이 릴레이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속도와 은밀성을 유지하며 가신들에게 정보가 전달되고 있었다.

이러한 정보나 물류의 인프라 정비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있어, 간자를 천한 것으로 보는 풍조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걸 듣고 안심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명심해 주세요. 정보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는(見極める) 눈은 엄격해집니다. 당신들이 모아온 정보로 우리들은 싸움의 향방을 판단합니다. 잘못된 정보를 가져오면, 이길 수 있는 싸움에 지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몸을 던지게 되는 겁니다. 그 정도로 정보라는 것은 '무거운' 것입니다"


시즈코의 말에 간자 사내는 경탄의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巷)에서는 싸움의 승패는 머릿수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아닌지에 우리들의 운명은 크게 좌우됩니다. 결코 천한 일이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마세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해두지요. 정보는 양만 많으면 되는 건 아닙니다. 정보가 '없다'는 것도 또한 정보입니다. 어째서 '없다'고 판단했는지를 추적해보면 훌륭한 성과로 판단합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의 누락'입니다. 정보가 없을 때 억지로 보고하려고 하지 말고,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얻어주면 됩니다. 좋은 정보에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약속하지요"


"그것은……"


"신상필벌. 공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내리고, 죄과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벌합니다. 딱히 이상한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간자 사내가 말하려 했으나, 시즈코의 대사가 사내의 발언을 막았다. 간자 사내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을 가져와요"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시즈코는 소성에게 명령하여 나무 상자를 가져오게 했다. 소성들은 하얀 나무(白木)로 만든 나무 상자를 마사유키 앞에 몇 개 늘어놓고 인사를 한 후 구석으로 물러났다.


"뭘 하더라도 자금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당신들은 아직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로부터의 세금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는 없습니다"


거기서 말을 끊고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나무 상자를 열어보도록 했다.

마사유키가 나무 상자 중 하나에 손을 대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빈틈없이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엄청난 거금이 준비되어 있는 것에 마사유키는 경악했다.


"그렇기에, 사비(私費)로 착수금(支度金)을 준비했습니다. 이만큼 있으면 당분간의 자금은 곤란하지 않겠지요. 이 이후에는 기본적인 보수에 더해, 성과에 따라 성과보수도 지급하겠습니다"


"각별하신 배려…… 이 마사유키,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한 가지 충고하면, 남의 돈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은 고생하지 않고 얻은 공돈(あぶく銭)을 간단히 낭비해 버립니다. 이걸 잃으면 이제 다음은 없는, 생명줄(命銭)이라 생각하고 유효하게 사용해 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시즈코의 충고에 마사유키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뭘 하려고 해도 마사유키는 우선 오와리에 생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당분간의 주거를 알선하고 자리를 잡도록 명령했다.

몸만 달랑 오와리로 왔기 때문에 생활 거점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토지나 저택의 취득은 현지 사람의 협력이 없이는 대체로 잘 되지 않는다.

우선은 자리를 잡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는 태세를 갖추는 것이 그의 첫 임무가 되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어떤 명령을 내렸다.

그녀가 명령한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것, 그것도 카이(甲斐) 출신 중에서 류우지(竜地)나 단고(団子) 등 코우후(甲府) 분지(盆地)에 있는 마을 출신자들 또는 그 마을들에 대하 잘 아는 사람들을 찾게 했다.

마사유키는 시키는대로 직속 부하들로부터 대상자를 선출했는데, 모여든 것은 겨우 4명에 지나지 않았다.


"'도로카부레(泥かぶれ)'라는 병을 알고 있나요?"


모여든 사람들에 대해 시즈코가 물었을 때, 마사유키를 포함한 전원은 시즈코의 말을 이해했다.


도로카부레, 후에 일본주혈흡충증(日本住血吸虫症)이라고 명명되는 풍토병(地方病)이다.

초기에는 발열이나 설사 등의 경미한 증상이지만, 병이 깊어지면 팔다리가 야위고 배가 부풀어올라 죽는다.

흙탕물병에 해당하는 병이 처음으로 기재된 문헌은 갑양군감(甲陽軍鑑)이며, 병이 깊어진 오바타(小幡) 분고노카미(豊後守) 마사모리(昌盛)가 카츠요리에게 휴가를 요청했을 때의 상황이 적혀 있다.

이것이 카이에 도로카부레가 만연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기록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이 질병이 언제부터 퍼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천년 이상 옛날부터 계속 유행해온 질환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서는 '코우후 분지의 백성들은 도로카부레로 죽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이것은 지배자 계층이 거의 감염되지 않고, 백성들이나 소작인(小作人)들에게만 발병률이 집중된 것에 기인한다.

그렇기에 유행지인 어떤 마을에 딸이 시집갈 경우, 관(棺桶)을 등에 짊어지게 해서 보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였다.

백성들도 유행지가 편중되어 있는 것은 깨달았으나, 어떤 원인으로 발병하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 도로카부레에 정부(行政)가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메이지(明治) 14년(※역주: 1881년). 유행의 종식이 선언된 것은 무려 헤이세이(平成) 8년(※역주: 1996년) 2월 19일이다. 그야말로 115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친 도전이었다.


"배가 부풀어 죽는 병 말씀입니까?"


간자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며 발언했다. 시즈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맞아요. 당신들의 임무는, 도로카부레가 발생한 마을을 이 지도에 표시하는 거에요"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기억할 수 있는 한 전부를 부탁해요. 예방 대책은 있지만, 아직 카이는 타케다가 지배하는 땅. 지금은 상황을 파악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시즈코가 '예방 대책이 있다'고 말한 순간, 네 명 중 한 명이 눈을 크게 떴다.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발병한 후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무엇에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요. 남만(南蛮)에도 같은 질병이 있고, 거기서 어느 정도 효과를 올린 대응책이 있거든요"


물론, 시즈코는 현대의 지식으로 감염원(感染源)도 대응 방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걸 알려줘봤자 의미가 없다.

시즈코가 취할 수 있는 대책이란 감염원에서 멀어지는 것이며, 감염원을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기에, 생활하면서 감염원에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그들에게 알려줘봤자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도로카부레는 기생충증(寄生虫症)으로, 오염된 물 등에 접촉하는 것으로 감염된다.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유생(幼生)인 세르카리아(cercaria)는, 물 속에 숨어서 종숙주(終宿主)인 포유류와 접촉하면 그 피부를 물어뜯고 체내에 침투하여 번식한다.

이 세르카리아는 대단히 작아서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근절 대책을 위해 취해진 시책은, 일본주혈흡충의 중간숙주(中間宿主)인 미야이리가이(ミヤイリガイ, ※역주: 宮入貝, 학명 Oncomelania hupensis, 다슬기 비슷하게 생긴 고둥)의 멸종이었다.

일본주혈흡충의 중간숙주는 반드시 미야이리가이여야만 하며, 다른 담수산 고둥(巻き貝)류에는 기생할 수 없다.


일본주혈흡충의 생활사(生活史)는, 분변(糞便)을 통해 물 속으로 흩어진 알(虫卵)이 부화하여, 미라시디움(miracidium)이 된다. 이 미라시디움이 미야이리가이와 접촉하여, 이 고둥의 체내에서 세르카리아로 성장한다.

세르카리아는 미야이리가이를 벗어나 물 속으로 이동하여, 물과 접촉한 포유류를 경피(経皮) 감염시킨다.

포유류를 감염시킨 세르카리아는 성충(成虫)인 일본주혈흡충이 되어, 그 이름 그대로 혈관 내부에서 하루에 3000개나 되는 알을 낳는다.

이것이 분변을 경유하여 다시 밖으로 배출되어, 비 등을 통해 물 속으로 돌아가는 라이프 사이클이다.


이 생활사에서, 인류의 감염원이 되는 것은 미야이리가이에 기생할 수 있었을 경우 뿐이기에, 미야이리가이를 근절할 수 있으면 일본주혈흡충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야이리가이 자체가 번식력이 왕성하고, 물 속에 그치지 않고 땅 위에서도 생활할 수 있기에 근절은 대단히 어렵다.

실제로, 유행지에서 미야이리가이를 구축할 때까지 70년이나 되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여담이지만 일본주혈흡충은, 종숙주인 포유류에 기생할 때까지 타이트한 타임 리밋이 존재한다.

알에서 부화한 미라시디움은 18시간 이내에 미아이리가이로, 유충인 세르카리아는 48시간 이내에 종숙주에 기생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이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여, 미라시디움의 단계에서는 인간을 감염시킬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야이리가이만 멸종시킬 수 있다면, 일본주혈흡충의 알이 얼마나 남아있던간에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렇……습니까"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는지, 간자는 얼굴을 손으로 덮고 눈물을 흘렸다. 가까이 있던 다른 간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위로했다.


"죄송합니다. 그의 여동생은 도로카부레로 목숨을 잃었기에……"


"그건 유감이에요. 하지만, 그의 여동생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이 임무에 진지하게 임해 주세요.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면 됩니다. 감염자를 낸 마을에 표시를 해 주세요. 내 생각이 맞다면, 특정한 하천(河川) 유역(流域)에 집중되어 있을 거에요"


"옛!"


간자들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네 명이 서로에게 달라붙듯 지도를 각각 한 손에 받쳐 들고 방을 나갔다. 함께 나가려던 마사유키였으나, 시즈코가 제지했다.


"……당분간 토우고쿠의 정보 수집을 부탁해요. 특히 타케다의 동형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부탁해요. 측량(検地)이나 상공업(商工業)에 대한 관여, 부국(富国)에 이어지는 정보를 중점적으로 모아 주세요"


"옛!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타케다에게 예전의 영광은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됩니다. 그만한 인원을 할당할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만"


"아니오. 지금의 타케다는 궁지에 몰린 쥐(窮鼠)에요"


시즈코는 마사유키의 말을 명확하게 부정했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패배시킨 시즈코가 그렇게까지 단언하는 것에 마사유키는 놀랐다.


"우리들은 승리를 얻기 위해 준비를 갖추고, 이길 수 있는 장소로 끌어들여, 상대의 실력을 봉쇄하는 형태로 승리했어요. 상대의 앞마당(土俵)에서 승리한 게 아니에요. 궁지에 몰려서 남은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된 쥐는 고양이에게도 이빨을 들이댑니다. 방심하고 얕보다가는 뼈아픈 일격을 당하게 되겠죠"


시즈코의 말에 마사유키는 공감가는 곳이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안주할 땅을 누군가가 빼앗으려고 하면 죽기살기로 저항한다. 거기에 이길 수 있느니 없느니의 승산은 관계없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단기적으로는 보통 사람(常人)을 능가합니다. 본거지만 남은 타케다에게는 물러설 곳이 없어요. 각오가 서게 되면, 카이의 정병(精兵)은 위협적이에요. 다시 힘을 되찾지 못하도록, 완전히 쇠약해진 시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정보수집이 필요해집니다"


"눈이 확 트였습니다.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이지요"


"잘 부탁합니다. 다른 이야기인데, 자녀분들은 건강해졌나요?"


갑작스런 화제 전환에 당황한 마사유키였으나, 시즈코에게 다른 뜻이 없음을 알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지나치게 건강해서 감당이 안 됩니다"


"그거 잘 되었군요.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 맹장(猛将)이 될 것입니다. 아까운 것은, 우리들이나 당신의 활약에 따라 태평한 세상이 되면 활약할 장소가 없어지는 것 정도일까요"


"확실히 그렇게 말할 수 있군요. 하다못해 10년, 아니 5년만 빨리 태어났더라면 도움이 되어드렸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가(武家)의 남자가 연약해서는 안 되지요. 언젠가 시기를 봐서 단련에 참가시키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마사유키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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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0 1573년 8월 중순



"히익! 어, 어째서 네놈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아사쿠라(朝倉) 마고하치로(孫八郎) 카게아키라(景鏡)는 공황 상태에 빠져 외쳤다. 그의 눈 앞에는 참수되었어야 할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가 서 있었다.

요시카게의 등 뒤에는, 그의 측근인 토리이(鳥居)나 타카하시(高橋)도 서 있었고, 다시 그 뒤에 코토쿠인(高徳院), 코쇼쇼(小少将)를 필두로 부인(妻)들이 서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는 배신자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카게아키라는 아까까지 수다스럽게(饒舌) 떠들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요시카게를 배신하고, 아사쿠라 가문을 휘어잡은 후에 코토쿠인 등도 추방하고, 이치죠다니(一乗谷)를 선물로 오다에 투항할 생각이었는지를.

요시카게들은 그 자초지종(一部始終)을 옆방에서 듣고 있었으며, 도중에 자리를 뜬 미츠히데(光秀)에 이어 방에 들어온 것이다.


카게아키라는 오다 가문에게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이미 버림받았다.

미츠히데의 유도에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배신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들이 직접 처단할 정도의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떴다.


"뭐, 뭐냐 그 눈은! 네놈 때문에 이치죠다니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물론 들었다. 이 전쟁 뿐만 아니라, 시종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유부단함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지. 약육강식의 난세에서 예능(芸事)에 열을 올린 어리석고 암울한 당주, 그야말로 맞는 말이다"


"그, 그렇다! 네놈의 우유부단함이 오다에게 이득을 보게 한 것이다! 싸움을 싫어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린 머저리(腑抜けもの)이다! 백 년의 영화를 자랑한 이치죠다니를 멸망시킨 것은, 요시카게! 네놈이다!"


요시카게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것을 보고, 카게아키라는 자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요시카게를 통렬하게 비난했다.


"네놈 말대로, 후세에 나는 암군(暗君)으로서 이름을 남기겠다"


그러나, 라고 중얼거리며 요시카게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그에 반해 카게아키라는 빈손이었다. 조금이라도 미츠히데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자청한 결과였다.


"네놈이 배신한 것은 아사쿠라 가문 뿐만이 아니다. 네놈 자신의 목숨만을 아까워하여 지켜야 할 백성들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우매한 나에게 정이 떨어져 저버리는 것은 상관없다. 내 목을 선물로 삼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했다면 다들 네놈을 용서했으리라……"


"히, 힉! 자, 잠깐! 이곳은 오다의, 아케치(明智) 님의 진이다! 여기서 나를 베면, 네놈의 처자도 연좌(連座)를 면하지 못한다!"


"애초에 다들 각오한 바이다!"


"큭! 미쳤구나"


카게아키라는 사지(死地)를 벗어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활로(活路) 따윈 없었다. 게다가, 이만큼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오다 군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기색도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봤자 구원은 오지 않는다. 애초에, 이 자리는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준비한 카게아키라 단죄(断罪)의 자리였다.


"카게아키라, 나도 곧 따라갈 것이다. 지금부터 고난을 받을 에치젠(越前)의 백성들에게 지옥에서 계속 사죄하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칼이 내려쳐졌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쳐 비스듬하게 베인 카게아키라는, 멍하니 선 채로 상처를 부여잡으며, 쿨럭 하고 피를 토하더니 쓰러졌다.

아사쿠라 가문을, 나아가서는 에치젠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생존을 꾀한 카게아키라의 최후는, 배신자의 말로다운 가여운 것이었다.


"끝났군요"


카게아키라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려 미츠히데가 돌아왔다. 미츠히데가 상좌(上座)에 앉자, 요시카게는 칼을 칼집에 넣고, 허리에서 풀어 멀리 던져버린 후 엎드려 절했다.


"배신자의 처리도 끝났습니다. 이제 미련은 없습니다. 제 목으로 이 전쟁의 결판을 짓도록 하지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어깨의 짐이 덜어졌습니다. 이치죠다니 백 년의 영화를 수호하는 아사쿠라 가문 당주. 재주 없는 몸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예능에 넋을 뺀 댓가가 이것이군요. 저를 따라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면목이 없습니다만, 겨우 어깨의 짐이 덜어져서 안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시카게의 말에는 아무런 현기(衒氣)도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항상 허세를 부리던 어깨의 힘이 빠져, 평온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에치젠의 지보(至宝), 이치죠다니는 잿더미로 변하겠지요. 에치젠의 백성들은 아사쿠라 가문을 섬긴 벌을 받고, 당신은 그것을 지켜본 후 참수되게 됩니다. 아사쿠라 가문 당주 최후의 의무, 훌륭하게 수행하십시오"


예전에 주군으로 섬겼기 때문인지, 미츠히데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시카게가 죽지 않고서는 이 싸움의 결판은 바랄 수 없다. 어떻게 손을 쓰더라도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목을 이치죠다니가 보이는 장소에 묻어 주십시오. 설령 잿더미가 되어서라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그것은……"


미츠히데는 망설였다. 이치죠다니를 불태워버린 후, 그 계기가 된 요시카게의 묘(墓所)가 가까이 있을 경우 백성들의 증오는 어디로 향한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어떤 죄를 지어도 죽으면 다들 부처(仏)라고는 하나, 곤경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런 입바른 소리가 통용될 것인가, 묘가 파헤쳐지고 죽은 후에도 모욕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쭉은 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겠다고 백성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달게 받아들이지요. 이치죠다니의 멸망을 초래한 저야말로 그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거기까지 각오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츠히데가 부탁을 받아들인 것으로, 아사쿠라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다. 요시카게는 이치죠다니의 멸망 후에 참수, 토리이와 타카하시는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겠다(菩提を弔う, ※역주: 네이버 일한사전에서 검색되는 표현이긴 한데, 여기서는 남은 평생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요즘 흔히 쓰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하는 단순한 인사말과는 다름)고 했다.


"훌륭한 각오였습니다. 이 어미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시카게의 등 뒤로 코토쿠인이 말을 걸었다. 죽으러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미의 마음 속은 어떠할까. 표정은 감출 수 있어도 목소리까지는 다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코토쿠인은 속세를 떠나 남은 평생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며 지내게 된다.

코쇼쇼나 요히라(四葩)도 출가하여 비구니(尼)가 되어, 마찬가지로 명복을 비는 것을 택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할 경우 원하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히데요시(秀吉) 등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약한 대응이지만, 미츠히데는 결판이 난 지금 쓸데없는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형(刑)의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 마지막 이별(別離)을 준비하십시오"


미츠히데의 선언으로 예전의 주종(主従)은 결별(決別)했다. 요시카게들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아사쿠라 가문의 조상 대대로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인 신게츠지(心月寺)에서 통고(沙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치죠다니의 외연(外縁)부에 설치된 임시 진에서 미츠히데로부터 경위를 들은 시즈코는, 저물어가는 낙일(落日)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남은 건 아자이(浅井) 가문 뿐…… 아자이 가문이 멸망하면, 전국시대는 종언(終焉)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아자이도 곧 뒤를 따른다. 타케다(武田)는 이미 시간 문제이며, 우에스기(上杉)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었다.

남은 대국은 아키(安芸, 현재의 히로시마(広島) 현(県) 서부(西部))의 모우리(毛利)와, 큐슈(九州)를 나눠먹고 있는 류조지(龍造寺), 시마즈(島津), 오오토모(大友) 등 세 가문을 들 수 있다.

시코쿠(四国)의 유력자(雄), 쵸소카베(長宗我部)는 미츠히데를 통해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어 시코쿠 통일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상, 쵸소카베도 노부나가에게 복종하게 된다.

토우고쿠(東国)의 호죠(北条)는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고 있찌 않지만, 타케다가 쇠퇴하고 우에스기도 포섭된 이상, 거취의 판단이 강요되어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몇 년만 지나면 오다 가문에 의한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어)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부이기는 하나, 시즈코는 전국시대의 종언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치죠다니가 미츠히데의 손에 의해 함락되고 아사쿠라 가문이 멸망했다는 소식은 아자이를 공략중이던 히데요시의 진에도 전해졌다.


"지금이 호기(好機)다! 책략(調略)과 진군을 밀어붙여라! 큰 도박이지만, 여기가 승부의 갈림길이다!"


아사쿠라 가문 멸망의 소식에 적과 아군이 모두 동요하는 가운데, 히데요시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노부나가에게 판단을 묻지 않고 독단으로 오다니 성(小谷城)으로 단번에 치고올라갔다.

후에 '오다니 성 하룻밤 함락(一夜落とし)'이라고 칭해지는, 히데요시의 약진(躍進)을 결정한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한편, 아자이 쪽은 전투를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아자이의 편을 드는 자들은 없었고, 유일한 희망(頼みの綱)이었던 아사쿠라 가문도 스러졌다. 아자이는 이미 가라앉는 배가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오다니 성을 지키는 방어시설에서 병사들이 도망쳐, 히데요시의 쾌진격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히데요시는 오다니 성의 혼마루(本丸, ※역주: 예전에 등장했을 때는 본채라고 의역했으나, 여기저기 일본 성 특유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여기서는 혼마루라는 독음을 적었음)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자, 히데나가(秀長)가 이끄는 책략조(調略組)와 히데요시 자신과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이끄는 공성조(城攻め組)로 군을 나누었다.


"단숨에(一気呵成) 치고 올라가라! 시간을 주면 다른 자들도 따라오게 된다. 지금이라면 공을 독점할 수 있다!"


히데요시는 병사들을 고무하면서 오다니 성을 공략했다. 그 때, 시즈코에게서 빌린 텟포슈(鉄砲衆) 250이 한층 이채(異彩)를 뿜고 있었다.

아자이 측의 철포부대(鉄砲部隊)가 사정거리 밖에서 총격을 받고 차례차례 쓰러졌다.

화승총(火縄銃)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직진성이 가져오는 긴 사정거리와, 미리 부대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듯 선정된 위치로부터의 저격이 맹위를 떨쳤다.

텟포슈에 의한 선제의 일격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옆에서 히데요시의 선봉대(先駈け)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분쇄해 갔다.

아자이 측도 다수의 '쿠니토모즈츠(国友筒)'라 불리는 화승총을 갖추고 있었으나, 발포하기 전에 사수가 죽음을 당했기에 의미가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히데요시의 군세가 시미즈다니(清水谷)의 급경사로부터 쿄고쿠마루(京極丸)를 급습하여 함락시켰으나, 이 전투에서는 산노마루(山王丸), 코마루(小丸) 등 두 개의 곡륜(曲輪)을 정면에서 돌파하여, 겨우 반나절만에 쿄고쿠마루에 접근했다.


"아마도 당주인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는 혼마루에 있을 것이다! 먼저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 본채를 고립시킨 후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말을 들은 나가마사(長政)는 반사적으로 부정할 뻔 했다.


(아니, 아버님은 쿄고쿠마루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설명하기 힘든 부자(親子)의 직감으로, 나가마사는 아버지는 히사마사가 쿄고쿠마루에 있을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책략조의 히데나가가 나카마루(中丸, ※역주: 독음이 츄우마루인지 나카마루인지 확실하지 않음)에서 합류해왔다.

나카마루를 지키는 아자이 가문 중신인 아자이 시치로 이노리(浅井七郎井規), 민타무라 사에몬노죠(三田村左衛門尉)、오오노기 시게토시(大野木茂俊) 등이 변절하여 히데나가의 무대를 들여보냈기에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쿄고쿠마루에 도착했다.

히데요시의 군세는 쿄고쿠마루의 출입구인 방어시설, 코구치(虎口)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좁은 넓이 때문에 숫자의 유리함을 살리지 못하여, 히데요시 측에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합류한 히데나가는 책략의 경과 보고를 겸하여,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를 히데요시에게 귀엣말로 전달했다.


"형님, 아카오(赤尾) 미마사카노카미(美作守)는 혼마루에 틀어박혔다고 합니다"


아카오 미마사카노카미 키요츠나(清綱)는 아자이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다.

아카오에 카이호 츠나치카(海北綱親), 아메노모리 키요사다(雨森清貞, 아메노모리 야헤에(雨森弥兵衛)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음)를 더한 세 명은, 아자이 삼장(三将)으로 불리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아카오가 쿄고쿠마루 같은 중요 거점을 지키지 않고 혼마루에 틀어박혀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아마도 아자이 나가마사 님의 적자(嫡男)인 만푸쿠마루(万福丸)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과연…… 히사마사에게는 직계의 후계자, 나가마사 님이 이쪽에 붙었다고 해서 죽이거나 하지는 않겠죠. 분명히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 차기 아자이 가문 당주로서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치에 맞는군요"


여기서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버리면 남은 혼마루는 벌거숭이가 된다. 하지만, 쿄고쿠마루와 혼마루 사이에는 폭이 약 25m나 되는 거대한 해자(大堀切)가 가로놓여있다.

히데요시의 진격을 막는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혼마루로부터의 원군이 달려오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턱에 손을 대고 금후의 방침을 생각했는데,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기에 히데나가에게 명령했다.


"아카오에게 만푸쿠마루를 데리고 투항하면 오다니 성의 성주로 삼겠다고 타진해라"


"주상께 상의 없이 성주의 약속은 아무래도 독단이 너무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상관없다! 오다니 성만 함락시킬 수 있다면 주상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다! 내가 출세할 수 있을지 아닐지의 갈림길(瀬戸際)이다! 어서 책략을 실행해라!"


"네에네에, 사람을 참 부려먹으시는군요 형님도"


히데요시의 기세에 히데나가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쿄고쿠마루는 함락되었다.

병사들에게 조사하게 했으나, 히사마사 발견의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더 참지 못하게 된 히데요시는 먼저 혼마루를 함락시키기로 했다.


"수괴(首魁)인 히사마사는 혼마루에 있다! 쿄고쿠마루를 거점으로 하여 혼마루로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호령에 병사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쿄고쿠마루의 북쪽에 위치하는 코마루에서 아자이 히사마사는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코마루는 히사마사가 은거한 후의 거처이며, 나가마사로부터 가문(家督)을 되찾은 히사마사는, 쿄고쿠마루가 공격받고 있다고 듣자마자 코마루에서 출진하여 쿄고쿠마루로 달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쿄고쿠마루에서 히사마사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가마사와 엔도(遠藤), 미타무라(三田村)는 쿄고쿠마루의 숨겨진 방에서 히사마사를 발견했으나, 숨겨진 방 자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용하여 그의 존재를 은폐했다.


"……왜 그러느냐, 내 목을 베지 않을 것이냐"


히사마사는, 이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아들을 괴이쩍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이 자리에는 그 외에도 아자이 코레야스(浅井惟安, 후쿠쥬앙(福寿庵)이라는 별명(庵号)을 가진다)와 무악사(舞楽師)인 모리모토(森本) 츠루마츠타이후(鶴松大夫) 두 사람이 있었다.

이제 여기까지라고 각오한 히사마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술잔을 나눈 후 자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직전에 나가마사가 숨겨진 방으로 들어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아버님의 참수는 피할 수 없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아버님의 진의를 여쭘고 싶습니다. 어째서 아버님은 완고하게 형님(義兄上)에게 계속 거역하신 것입니까? 타케다(武田)가 패했을 때, 지금부터는 오다의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겁니까!?"


"그렇다. 타케다가 패했다고 듣고, 우리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자이의 편을 들어 함께 멸망하는 것은 아사쿠라 정도일 거라고도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 때 오다에 투항했다면……"


"그럴 수는 없다!"


나가마사의 말을 끊으며 히사마사가 말했다.


"그것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오우미(近江)는, 내가 롯카쿠(六角)의 침공을 막아내고, 얼마만큼 좌절과 쓴맛을 보면서도 지켜낸 나라다. 그걸 어떻게 생판 남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나가마사의 질문에 대해 히사마사는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그는 필사적(一所懸命)이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오우미에 집착했다. 그렇기에 오우미를 넘기고 오다의 신하가 된다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었다.


"물론, 이 결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용맹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나, 전투에 능한 너와는 대조적으로 전투의 재능이 없었다. 아카오에게는 '천하태평한 세상이었다면 주군께서는 명군이 되셨겠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난세를 살아남을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히사마사는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난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들인 나가마사라는 것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오우미를 지켰으면 했다. 하지만, 나가마사는 오우미보다도 넓은 세계를 꿈꾸며 뛰쳐나가 버렸다.

고루한 노인(旧弊)으로 변한 자신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조상들이 사랑한 오우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오다니 성을 공격해들어온 무장…… 분명히 하시바(羽柴)라고 했더냐. 그놈의 맹렬한 진격을 보고 깨달았다. 이 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내 멋대로의 행동(我儘)에 마지막까지 함께하려고 한 가신들에게 자유를 명했다. 목숨을 아껴 도망치는 것도 좋고, 나와 함께 싸워 산화하는 것도 좋고, 살아남은 자들을 모아 적에게 투항하는 것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이다. 아카오에게는, 그놈(※역주: 히데요시)이 책략을 부리면 그에 응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아카오에게는 네 적자인 만푸쿠마루를 맡겨두었지"


"만푸쿠마루가 살아있는 겁니까!"


"멍청한 놈! 이유도 없이 손자를 죽이는 사람은 없다. 만푸쿠마루에게는 아자이 가문을 맡길 생각이었다……"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일별했다. 격렬하게 대립하기는 했으나, 나가마사가 밉다고 손자를 죽일 정도로 노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푸쿠마루에게 다음 대의 아자이 가문을 맡기기 위해 당주로서 키워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아자이 가문은 오다가 만드는 세상에서 배신자로서 이름을 남기겠지. 너도 이제 아자이라는 성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자이의 망령인 내가 모든 오명을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소리높여 외친 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떠밀어버렸다. 갑작스런 일에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나가마사는 등부터 벽에 충돌했다.

폐의 공기가 밀려나와 기침을 하는 나가마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히사마사는 단도를 쥐더니 가로 일자로 배를 갈랐다.


"사루야샤마루(猿夜叉丸)야…… 너는 아자이에 얽매이지 말고 살거라……"


"아……, 아버님!!"


"아자이의 죄와 오명은 내가 짊어지겠다. 너는 내 목을 가지고 아자이의 종언(終焉)을 지켜보아라. 하지만, 죽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던, 너는 살아라"


"아버님……"


나가마사가 달려가기 전에, 아자이 코레야스가 카이샤쿠(介錯, ※역주: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것)으로서 히사마사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히사마사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가마사는 몸을 떨면서 히사마사의 머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아버님……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오우미에 고집하는 아버님을, 시세(時世)를 읽지 못하는 고집불통 노인이라고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나가마사는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펑펑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오우미는 할아버님, 아버님이 가신들과 피투성이가 되며 손에 넣은 땅. 롯카쿠를 상대로 대승한 것으로 우쭐해져, 오우미 한 나라에 그칠 그릇이 아니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승리도 아버님이 꾸준히 준비를 해오셨기에 가능했던 것……. 저는 정말로 불효자입니다"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대고 이야기했다.


"저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 조금 싸움에 능할 뿐인 범백(凡百)의 장수인데, 위대하신 형님의 눈에 띈 것으로 자신까지 특별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는데……"


나가마사는 이를 악물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더니 뺨을 때리며 얼굴을 들었다.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 반드시 이루어 보이겠습니다.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더라도 살아남아, 난세의 끝을 지켜보고, 저 세상에서 아버님께 들려드리지요"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서원(誓願)한 후, 그 머리를 소중히 천으로 감쌌다.




아자이 히사마사의 할복 후, 아자이 코레마사와 모리모토 츠루마츠타이후도 주군을 따라 할복 자결했다. 주군인 히사마사와 같은 장소에서는 감히 할 수 없다며, 뜰로 내려가서 배를 갈랐다.

나가마사가 직접 두 사람의 카이샤쿠를 맡고, 그들의 목을 엔도와 미타무라에게 맡겼다. 히사마사의 목은 자신이 들고 히데요시가 있는 곳으로 보고하러 갔다.


"히사마사는 자결했나. 혼마루도 곧 함락되겠지. 나가마사 님은 그 목을 주상께 전하러 가시오"


히사마사의 수급이 올라온 것으로 히데요시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가 수급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아자이의 멸망을 나타내기 위해 히사마사의 목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마사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고 노부나가가 있는 본진으로 향했다. 도중에는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죽은 자도 산 자도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 본진에 도착했다.


"다들, 자리를 비우도록"


노부나가는 나가마사가 올려든 히사마사의 목을 보고 가신들에게 명령했다. 가신들은 적 대장의 목에 흥분하는 일 없이 숙연하게 진에서 나갔다.


"히사마사의 최후는 어땠느냐?"


"오우미의 국주(国主)에 어울리는 최후였습니다. 아버님과 마지막으로 대화해보고 스스로의 미숙함과 어리석음(不明)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대한 꿈에 취해, 그 패도(覇道)의 진실(中身)을 보지 못했습니다"


"……"


"저로서는 도저히 형님과 나란히 설 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매사의 표면만을 보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대로 오우미의 국주로 있었다면, 이곳에 목이 나란히 놓여있었겠지요"


자조를 떠올리며 나가마사는 말했다. 노부나가는 그 모든 말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가마사가 모든 것을 토해낼 때까지 기다렸다.


"저는 결국, 무엇도 될 수 없었습니다. 아자이는 아버님이 끝내셨습니다. 저는 그냥 나가마사로서 이 난세의 향방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명(天命)을 가진다. 네 천명은 패도의 증인(見届け人)이었던 것 뿐이다. 나도 히사마사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방법을 바꿀 수 없다. 자신을 고쳐 바라보고, 이제부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너를 부럽게까지 생각한다"


"설마요! 형님께서 저 따위를 부러워하시다니……"


노부나가의 말에 나가마사는 경악했다. 노부나가는 천하에 손이 닿을 거리에 있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무가(武家)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망하는 위치에 있다. 그 노부나가가, 나가마사가 부럽다고 말한 것이다.


"나가마사여. 천하의 패도를 가는 자는 고독하다.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할 수 없다. 수많은 쓰레기들(塵芥)로부터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때로는 함께 걷는 가신들에게 죽음을 명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목숨과 뜻(想い)을 맡은 이상, 나는 멈출 수 없다. 나아가는 길 끝이 낭떠러지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멈춰서서, 뒤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


그것은 나가마사가 갖지 못한 시점에서의 말이었다.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의 시선을 깨닫고는, 자조기미로 말을 이었다.


"너는 내 패도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네 주인인 시즈코가 말하는 미래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욱 앞을 보고 있다"


"형님, 그것은……"


"하지만, 시즈코가 어떠한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먼저 일본을 손에 넣는다. 시즈코가 그리고 있는, 끝을 볼 수 없는 꿈(見果て)의 저편이 어디에 있던, 나는 나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너도 네 발걸음으로 쫓아와라. 나는, 먼저 꿈의 끝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완곡하기는 하나 노부나가는 나가마사를 배려하고 있었다. 싸움으로 가득한 난세의 끝을 목표로, 같은 길을 걷는 노부나가가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다.


"형님, 저는 어리석은데다 맥까지 빠졌던 모양입니다. 형님의 패도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벗어나 방관자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형님의 말에 각오가 섰습니다. 아무리 꼴사납더라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발버둥쳐, 형님의 발자국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냐…… 나가마사. 어엿한 무사의 표정이 되었구나. 내가 걷는 길은 험난하다. 각오하고 따라와라"


결연하게 얼굴을 든 나가마사에게 노부나가는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끝까지 꿈을 꾸고, 이치(市)를 행복하게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노부나가는, 드디어 에치젠과 오우미를 장악했다.


"강북(江北) 아자이 옛 영토 전부(浅井跡一職進退)를 하시바 츠쿠젠노카미(筑前守)에게 일임한다"


"이치죠다니의 처리, 아케치 코레토휴우가노카미(惟任日向守)에게 일임한다"


북 오우미(北近江)는 히데요시가 다스리고, 에치젠의 일부는 미츠히데가 통치하게 되었다.

미츠히데는 이미 사카모토(坂本) 일대를 다스리고 있어, 그게 이유이기도 한지 에치젠의 지배지는 약간 작아졌지만, 이걸로 두 사람 모두 10만 석(石)이 넘는 영주(国人)가 되었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모두 신참자(新参者)임에도, 오다 가문을 대대로 섬겨온 후다이(譜代)의 신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시즈코는 지배는 없지만, 막대한 재화에 더해 고서(古書)나 예술품(芸術品) 같은 문물이 내려졌다.

아자이, 아사쿠라가 남긴 문물에 더해, 에치젠이나 오우미의 기술자들 등의 인재도 보수로 하사되었다.

논공행상도 큰 문제 없이 끝나고, 이후에는 귀국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뭐지, 이 상황은……)


시즈코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즈코는 자신의 진에서 오른쪽을 미츠히데와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고, 좌측에는 히데요시의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다.

두 유력자(雄)들에게 문자 그대로 샌드위치가 되어 시즈코는 탄식했다. 그들은 쿠로쿠와슈(黒鍬衆)를, 나아가서는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에 협력을 요청하려고 했다.

이 시대, 자신의 지배지에는 거점이 되는 성을 짓는다. 이것은 그 땅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명확히 하고, 내외에 오다 가문의 세력권 안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위행위이기도 했다.


"실은 전부터 댁(お前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


"핫핫핫, 그거 이상한 우연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시즈코를 끼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서로 견제해댔다. 이 무렵 쿠로쿠와슈는 석공(石工) 집단인 아노우슈(穴太衆)도 받아들여, 성곽 건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좋게 말하면 투박(無骨)한, 나쁘게 말하면 실용 일변도의 성을 건축했었다. 그러나, 사카모토 성(坂本城)의 건축에서 실용성은 유지하면서 미관도 겸비하게 되었다.

숙련된 기술이 승화된 결과인데, 사카모토 성은 아름다운 성으로서 일약 천하의 이목을 모았다. 그 이래로, 지배지에 세우는 성은 지배자의 얼굴로서 아름다움도 요구되게 되었다.


히데요시도 미츠히데도 모두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히데요시에게는 첫 성이 된다. 건축에 들이는 기합은 미츠히데보다도 강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츠히데도 에치젠에는 보통이 넘는 집착이 있었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아사쿠라 요시카게 밑에서 10년을 지냈던 땅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인 우위성을 이야기하자면, 동해(※역주: 원문은 日本海)에 접한 에치젠은 츠루가 항구(敦賀港)를 가지기에 동해 주변의 해운(海運)의 요충지로서 주목받고 있었다.

츠루가 항구의 권익 자체는 노부나가가 장악하더라도, 해로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장악하면 얻을 수 있는 권익은 막대하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땅이 된다.


(곤란하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 모두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제아무리 쿠로쿠와슈라고 해도 한 번에 두 개의 성을 지을 수는 없다.

무리하게 인원을 쪼개봤자 우열(優劣)이 발생하게 되고, 떨어지는 쪽의 축성을 허용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으면……)


한 달이 지나면, 도로 정비를 담당하던 쿠로쿠와슈의 태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하지만, 어느 족도 한 달이나 기다린다는 끈기가 필요한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시즈코! 아직 진에 있었느냐, 마침 잘 되었다"


시즈코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거친 발소리와 함께 노부나가가 진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북 이세(北伊勢)가 소란스럽다. 진압하러 키묘(奇妙)를 보내기로 했다. 시즈코에게는 그 녀석의 보좌를 맡기겠다"


"옛"


기가 막힌 타이밍(渡りに船)에 시즈코는 냉큼 달라붙었다.


"거기 둘. 성은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쿠로쿠와슈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는 준비는 있겠지. 인력(人手)을 보내줄테니, 준비를 하고 쿠로쿠와슈를 기다려라"


"예, 옛!"


할 말을 다 하자 노부나가는 가버렸다. 톱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면, 이후에는 그에 따라 조용히 진행할 뿐. 시즈코는 북 이세를 진압하면 그대로 귀국할 수 있겠다고 기뻐했다.

축성에 필요한 건축자재의 수배로 두 사람이 다시 으르렁거리기 전까지는.




히데요시와 미츠히데의 대립에 말려들어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두 사람을 잘 다독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새로운 불씨를 찾아내기 전에, 시즈코는 얼른 노부타다(信忠)를 따라 북 이세로 향했다.


"북 이세의 말썽꾸러기(跳ねっ返り) 놈들, 한꺼번에 밟아주겠다"


노부타다(키묘마루(奇妙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아사쿠라 공격도, 아자이 공격도 전선에 설 수 있었던 건 초반 뿐으로, 그 이후에는 후방에서 손가락을 빨며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쌓이고 쌓인 울분을 북 이세에서 발산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나이가 젊고 공을 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노부타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한 재치(機転)도 뛰어나, 명장의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만 산 놈들 같으니. 자기 뒤도 제대로 못 닦는 거냐"


눈 깜짝할 사이에 북 이세를 진압하고 기후(岐阜)로 돌아가는 길에 노부타다가 투덜거렸다. 이세에 관해서는 노부나가의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와 3남인 노부타카(信孝)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노부나가로부터 도로 정비의 허술함을 추궁받아서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정비를 추진한 결과, 일향종의 암약에 의한 폭동을 선동당해버렸다.

또다시 실책를 보인 두 사람에게 노부나가는 진압을 명하지 않고, 노부타다를 파견하게 되었다.


"대장이 직접 돌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거다"


시즈코의 쓴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노부타다는 대꾸했다. 북 이세에 도착한 노부타다는, 전황을 파악하자 기마 부대만을 이끌고 적의 중심부라고 간주된 집단을 단숨에 박살냈다.

노부타다의 수읽기는 정곡을 찔러, 반란은 주도자를 잃고 붕괴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적진 속에 고립되어서 전사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가신들은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가신들이 입아프게 노부타다에게 쓴소리를 했기에, 노부타다도 옹고집이 생겨 듣지 않겠다는 태도가 되어버려, 감시역(お目付け役)인 시즈코가 나서야 하게 된 것이다.


"뭐, 괜찮지만"


시즈코에게까지 잔소리를 듣자 아무리 노부타다라도 반성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전령이 달려왔다.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인가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타다에게 말해 전군을 정지하게 했다.

전령에게서 서신을 받아들도 노부타다와 함께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에치고(越後)인가……"


"음, 뭐냐? 우에스기가 배신하기라도 했다는 거냐?"


"아냐. 우에스기에 기술 공여를 할 것이니 그 회담에 참가하라는 이야기야. 으ー음, 너는 관계없으려나? 응, 직접적으로는 관계없네. 어쨌든 일단 오와리(尾張)로 돌아가서 군을 재편성해야겠네"


"이대로 기후에서 가면 되는 것 아니냐"


"군사행동은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성의 물자를 쓸 수는 없어. 에치고로 갈 계획을 다시 짜야 해. 그리고 며칠 정도 쉬고 싶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북 이세 진압 축하 연회에는 나와라"


"여유가 있으면"


그 후에는 딱히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은 기후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노부타다가 시즈코 저택을 습격하여 억지로 축하 연회 자리로 끌고나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싸움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낸 후가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그녀는 오와리로 귀환하자 군을 해산시키고, 목욕탕에 들어가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 쇼우(蕭)와 마주쳤다. 기막힌 타이밍이라 말하듯, 에치고의 우에스기를 방문할 때 가져갈 토산품(土産)을 수배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의범절(礼儀作法)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지만 어차피 벼락치기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무가의 딸인 쇼우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잘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쇼우가 토산품을 건넬 상대와 선물을 물건을 고르는 동안, 시즈코는 짧은(束の間) 자유를 만끽했다. 아무리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로 들어왔다고 해도, 여전히 오다 가문에 복종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많다.

그것을 잘 알면서 시즈코를 에치고로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우에스기가 청한 빈객(賓客)인 시즈코에 대해 어떠한 불상사(不手際)가 있을 경우, 그것은 우에스기에게 큰 과실이 된다. 우에스기 가문 내부의 인사에 간섭당해도 켄신(謙信)으로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미끼로서 생각하면 시즈코는 적임이었다. 가장 먼저 우에스기 가문이 초빙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노부나가의 대리인(名代)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신분이 있는, 집안도 실적도 흠잡을 데 없지만 여자이다.

상대에게는 얕보기 쉽고, 적의를 보이기 쉽다. 그런 상태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즉시 대응하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인재라고 하면 시즈코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맙소사, 상대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또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인원수라)


꽤나 까다로운 임무라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시즈코로서는 거절하기는 커녕 바라던 바였다. 문제의 싹은 커지기 전에 뽑아버리는 게 가장 좋다. 이것은 농업에 대한 시즈코의 지론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크게 의욕을 보이고 있었으나, 사절단의 진용을 알게 된 노부나가가 제동을 걸었다.

'정치가 관계되는 교섭 자리에 밀고 당기는 응수를 하지 못하는 네가 가지 마라. 아시미츠(足満)를 대리인으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기합을 넣었던 만큼 김이 샌 기분이 든 시즈코였으나, 자신이 가지 않아도 아시미츠가 특유의 후각으로 나쁜 싹을 뽑아 줄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시미츠와 함께 협의한 결과, 에치고에는 아시미츠가 병사 3000을 이끌고 가게 되었다.

단, 기술지도를 할 사관(士官) 이외의 텟포슈(鉄砲衆)는 전부 두고간다. 텟포슈는 적은 인원으로도 위협적이라, 쓸데없이 에치고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

켄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만 정도이며, 켄신 이외의 가신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많아봤자 1000을 약간 넘는 정도일 것이다.

켄신이 배신하면 제아무리 아시미츠라도 끝장이지만, 그 경우에는 에치고에 숙청의 태풍이 몰아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란에 가담한 일족은 모조리 몰살을 당하게 된다.

노부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로부터의 배신을 대단히 싫어한다. 다음 지배자가 누가 되던, 어리석은 지도자를 섬긴 에치고의 백성들은 길고 괴로운 시련을 강요받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내 대리로 에치고에 가줄 수 있겠어요?"


"시즈코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잘 알았다"


시즈코의 긴한 부탁이라고 하면 아시미츠에게 거부는 없었다. 켄신이 시즈코를 신경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시즈코가 직접 에치고로 가는 사태는 회피하고 싶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노부나가도 같은 의견이며, 아시미츠는 그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사키히사(前久)였으나, 그의 경우에는 시즈코가 에치고로 간다면 자신도 동행할 생각이었다.


"기술 공여를 해봤자 사람이나 물자의 교유가 없으면 시작되질 않아요. 우선은 도로가 정비되어야 처음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와 줄래요? 언젠가는 영토 내에서 통용될 화폐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기상조겠지요"


"도로정비만으로 문제없겠지. 제설 도구나 융설제(融雪剤) 이야기만 해도 우에스기 입장에서는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일 것이다"


"유리 제품의 소재로서 컬릿(cullet)을 만들 때 염화칼슘(calcium chloride)이 부산물로 산더미처럼 병산(併産)되니까요.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충분히 주의해줘요. 켄신 자신은 신용할 수 있어도, 가신들이 야심을 품지 않았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충분히 주의하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즈코는 사나다(真田) 가문의 동향에 주의해라. 놈들, 슬슬 집안싸움(内輪もめ)에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했지. 머지 않아 내란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일단 간자를 통해서 듣고는 있는데, 친 타케다 파(親武田派)와 오다로 갈아타는(鞍替え) 파벌이 대립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계속 상황을 보겠지만, 그쪽으로 연락이 가면 보호를 부탁해요. 적대한다면 용서는 필요없어요"


"이제와서 적대한다면 그런 놈들의 미래는 뻔하다"


사나다 가문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의 오다 가문으로 갈아타려는 혁신파(革新派)와, 신겐(信玄)으로부터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 타케다의 보수파(保守派)로 갈려 있었다.

혁신파가 세력을 얻은 이유로서,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의 억지 징세에 의한 점이 컸다.

신겐의 시대에도 시장에 대한 화폐의 공급 부족 때문에 화폐 가치의 상승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물가의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카츠요리가 추가적으로 징세 때의 화폐 기준을 조였기 때문에 급격한 디플레를 초래해 버렸다.

노부나가의 지배지 이외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것을 통과한 아전(鐚銭)이라면 징세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신겐의 방침을 이어받아, 정전(精銭) 이외의 것으로의 납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떄문에, 급격하게 시장에서 화폐가 고갈되어, 지금까지의 두 배는 되는 기세로 디플레가 진행되었다.

카츠요리에게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탄원서가 끊임없이 도착했으나, 그는 그 모두를 묵살하고 있었다.


"먼저 참을성이 바닥나는 것은 친 타케다 파겠지. 설령 불안요소(獅子身中の虫, 우에스기)와 손을 잡는다 쳐도, 사나다 가문 당주가 전쟁터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아니라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였던가요? 그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쪽의 계책을 즉시 채용할 정도로 유연하니까, 어쩌면 뭔가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로서는 어서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에요. 여차할 때는 잘 부탁해요"


"뭐, 좋은 소식은 자면서 기다리라고 하잖느냐?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다오"


그다지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아시미츠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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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9 1573년 8월 중순



시즈코의 노림수대로, 아케치(明智) 군의 후방을 시즈코 군 본대가 따라가고, 시즈코와 용기병(竜騎兵), 호위들만이 미츠히데(光秀)와 함께 행동하는 모양새로 아사쿠라(朝倉) 군을 추격하게 되었다.

서로 함께 싸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앞뒤로 나누어 배치했다는 것이 미츠히데의 말이었으나,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전공은 아케치 군에 있다고 노부나가가 인정하고 있으니, 전공을 얻을 기회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이 포진도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좋았다. 기세에 탄 이긴 싸움이라고는 해도, 백병전이 되면 병사의 소모는 피할 수 없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소화 시합(消化試合)에서 약간의 공만을 세우기 위해 고심해 키워낸 병사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맹렬하게 추격하는 아케치-시즈코 군이었으나, 에치젠(越前)과 오우미(近江)의 국경 부근에서 그 발이 멈추었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아사쿠라 군이 어느 쪽 길로 갔는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요시카게(義景)가 토네사카(刀根坂)를 통해 히키다 성(疋壇城) 쪽으로 갔다고 하지만, 이미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기에 역사적 사실대로 토네사카를 선택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면에 남은 발자국으로 판단해보려고도 했으나, 양쪽 길 모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고 생각되는 무수한 새로운 발자국이 남아있어 판단의 재료가 되지 못했다.


(전술적으로 생각해도 역사적 사실대로 히키다 성과 츠루가 성(敦賀城)이 있는 토네사카 방면을 선택할 거라 생각되지만, 궁지에 몰려 길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신들린 듯 날카로운 감각을 보이는 노부나가가 없는 이상 대장인 미츠히데가 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그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귀중한 시간을 덧없이 소모하고 있던 그 자리에, 잡병(雑兵)들의 공포에 질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적의 공격(敵襲)인가 하고 경계하기도 했으나, 곤혹스러운 분위기가 있을 뿐 전투의 기색은 없었다.

병사들의 바다를 헤치듯 하며 다가오는 사람 모습이 보이고, 그것은 말에서 내리더니 무기를 말에 기대어 세워놓고 맨손으로 걸어왔다.


"여어! 이런 데서 언제까지 밍기적대고 있는 거야?"


귀에 익은 목소리에 미츠히데나 시즈코도 어꺠의 힘을 뺐지만, 상대가 다가옴에 따라 그 비정상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목소리의 주인은 에치젠으로 가는 지름길인 츠바키자카(椿坂)로 통하는 길에서 나타난 나가요시(長可)였다.

하지만, 그 풍모는 다가올수록 농밀해지는 피냄새와, 아직도 김을 풍기고 있는 피와 기름기(血脂)로 번들번들 빛나는 갑주에 의해 거의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피와 내장을 뒤집어쓴 것 같은 꼴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을 잃고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사쿠라 군 본대는 이쪽을 선택하지 않은 모양이야"


자신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가요시는 대담하게 웃었다.


"아사쿠라 군은 츠바키자카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고 봐도 틀림없겠나?"


미츠히데가 확인을 겸해 못을 박았다. 나가요시는 전의로 고양된 흉상(凶相)을 떠올리며 단언했다.


"'이곳을 지나간 아사쿠라 병사는 없다'"


본인의 말대로 아사쿠라 군 본대는 아니라고 해도, 적지 않은 사람 숫자의 발자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요시는 단언했다.

지금도 갑주에서 흘러내리는 적의 피와, 그가 남긴 시뻘건 발자국을 보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적은 츠바키자카가 아니라 토네사카를 통해 철수하고 있을 것이다. 아군의 성으로 도망쳐 들어가기 전에 추격한다!"


판단의 재료를 얻은 미츠히데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아사쿠라 군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다. 미츠히데의 호령을 들은 아케치 군은, 대열을 정비하고 토네사카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그 폭풍우 속에서 용케 앞질렀네"


노부나가가 오오즈쿠 성(大嶽城)을 공격하고 있었을 때, 케이지(慶次)와 나가요시는 직속 부하들을 이끌고 아사쿠라 군의 진을 돌파하여 배후로 빠져나갔다.

야간의 폭풍우 때문에 보초가 줄어들어 있었다고는 해도, 들키면 포위되어 섬멸당했을 결사의 행동이다.

보기좋기 아사쿠라의 감시를 돌파하여, 그들은 이 분기점에 먼저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도 여기서 시즈코와 같은 명제에 골머리를 썩게 된다.

둘 중 하나에 걸고, 츠바키자카 안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매복했다.

아깝게도 당첨되지는 않아서, 그들은 본대에서 낙오된 병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추격해올 아군에게 올바른 루트를 알려주기 위해 합류했던 것이다.


궤주(潰走)하고 있는 아사쿠라 군이 볼 때는 나가요시와 마주쳤을 때의 절망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리라.

배후에서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을 오다 군이 전방에도 나타났다. 앞으로 가도 지옥, 뒤로 돌아가도 지옥이라면, 이라고 생각하여 전방 돌파를 꾀한 병사들은 모조리 목숨을 잃었다.

냉정하게 피아의 전력차를 비교할 수 있었다면 자군 쪽이 우세라고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공황 상태에 빠진 병사들은 무구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후방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선두 집단과, 쫓겨서 필사적이 된 후방 집단이 격돌하며 그들의 혼란은 정점에 달했다.

아군끼리조차 싸우기 시작한 아사쿠라 군을 상대로, 케이지나 나가요시들은 개수일촉(鎧袖一触)의 승리를 거두었다.


"지금부터 아사쿠라 군 본대를 칠 건데, 올 거야?"


원래는 시즈코도 미츠히데와 함께 이동해야 하지만, 나가요시들에게 다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에게는 각자의 재량으로 움직이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다.


"간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피곤하네. 나는 괜찮아도 병사들이 피로에 지쳤어. 나와 케이지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일단 본진으로 돌아가겠어. 너는 아사쿠라를 확실히 멸망시키고 와"


"알았어. 습격해 오는 아사쿠라 병사는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일단 조심해"


"어. 길게 휴식을 취한 후에 전원 다 같이 이동하겠어. 뭐, 아사쿠라 병사를 발견하면 패죽여놓을게"


"적당히 해"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말머리를 돌려 떠나갔다.

그녀가 떠난 후 잠시 간격을 두고, 이윽고 케이지들이나 나가요시의 병사들도 따라붙었다. 그들도 나가요시 정도는 아니라 해도 전신을 적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이쿠, 조금 늦었나. 뭐, 이쯤에서 휴식한 다음 진에 돌아가서 잘까"


"아무래도 피곤하네. 어차피 도망칠 거면 에치젠까지 단번에 도망칠 거라 생각했는데"


"예측이 빗나겠네. 잡병들 뿐이었고 본체는 반대로 향한 거겠지"


"다음이 있아면 이번엔 놓치지 않아"


서로 그런 말을 나누면서 그들은 자기 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깃발(旗印)조차 새빨갛게 물들어 적인지 아군인지 판별할 수 없는 피투성이 군단이 다가왔을 때, 진을 지키는 병사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를.

공격할 기색도 없고 천천히 다가오는 피투성이 집단을 괴이쩍게 여긴 위협사격을 받게 되자 처음으로 깃발의 참상을 깨닫고, 예비의 것과 교체하는 것으로 간신히 아군끼리 싸우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한편, 미츠히데와 시즈코는 아사쿠라 군을 쫓아 밤의 어둠을 질주하고 있었다.

배후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군세에 퇴각을 포기한 야마자키 나가토노카미(山崎長門守) 등, 몇 안되는 무장들은 몇 번인가 반전하여 오다 군에게 과감하게 덤벼들었다.

이 결사의 반격에는 제아무리 아케치 군이라도 발을 멈추고 응전하여, 본대의 추격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계속 쫓기며 소모될 대로 소모된 후위(殿軍)로는 기세를 타고 있는 아케치 군을 당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결국 야마자키도 전사했다.


후위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벌어낸 시간도 허무하게, 아사쿠라 군이 토네사카의 중간 쯤에 걸쳤을 무렵, 시즈코 군은 드디어 그 꼬리를 물어뜯었다.

그들을 격파하면 남는 것은 요시카게와 얼마 안 되는 병사들 뿐이다.

하지만, 썩어도 마지막까지 요시카게를 따른 가신들은 침착했다. 이제 철수는 불가능하다고 알게 되자 반전하여 시즈코들을 거꾸로 물어뜯으려고 덮쳐왔다.


"2식(弐式) 관탄(관통탄(貫通弾))을 장전. 신호와 함께 일제 발사하라"


시즈코는 신겐(信玄)에게서 물려받은 지휘부채(軍配)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진로가 제한되는 외길(一本道)이라는 것은, 신식총의 특수 탄종의 관통탄 및 산탄이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지형이다.


"일제 발사!"


지휘부채가 휘둘러내려짐과 동시에 뇌명(雷鳴)과 닮은 총성이 울려퍼졌다. 2식 관탄은 인체를 상대로도 그 관통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예상 이상의 전과를 올렸다.

총탄이 관통했기에 즉사는 면했으나, 최전열에 부상병의 산이 생겨나고, 그 뒤에 시체의 산이 쌓여졌다.

시체의 산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밟고 넘는다 해도, 부상자를 밟아죽이는 것은 쉽지 않다. 필연적으로 돌격은 기세를 잃고, 아사쿠라 병사들은 최후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일순 주저했으나, 시즈코는 고개를 흔들어 망설임을 떨쳐내고 추가 소사(掃射)를 명령했다. 다시 굉음과 함께, 경단(団子) 모양으로 뭉쳐 있던 집단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완전히 기세를 잃은 아사쿠라 군에게, 미츠히데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덮쳐갔다.

과연 미츠히데의 주력부대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격류를 역행하는 물고기처럼 적병을 짓밟고 찢어발기며 전선을 밀어올렸다.

사기에 더하여 병장(兵装)도 숙련도도 앞서는 아케치 군은, 닥치는 대로 적진을 난도질했다. 아사쿠라 군은 정면에서 물어뜯겼고, 무장들도 빗의 이빨이 나가듯 전사해갔다.


토네사카 전투에서, 아사쿠라 군은 아사쿠라 미치카게(朝倉道景)나 키타노(北庄) 성주(城主) 아사쿠라 카게유키(朝倉景行) 등 일족들(一族衆),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吉家)나 카와이 요시무네(河合吉統) 등 유력 무장까지 잃어, 아사쿠라 군의 중핵을 구성하는 부대는 괴멸 직전의 상태였다.

후의 수급 확인(首実検)에서 판명되는데, 예전에 노부나가에게 함락된 이나바 산성(稲葉山城)의 예쩐 성주인 사이토 타츠오키(斎藤龍興)도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싸움에서 요시카게를 본 사람은 없었고, 아케치 군과 시즈코 군은 사전에 정한 대로 약간의 병력만을 남기고 주력부대는 요시카게를 쫓았다.

목표는 요시카게 뿐이라는 의견이 일치한 미츠히데와 시즈코는, 최소한의 휴식조차 아끼며 추격했다.

이 신속(神速)이라 해야 할 행군 덕분에, 히키다 성으로 도망쳐 들어간 요시카게는 이치죠다니(一乗谷)로 가지 못하고 포위되었다.


직접 전투를 하지 않은 시즈코 군의 후방지원부대는,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이치죠다니로 통하는 길과, 비와 호(琵琶湖)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 양쪽을 완전히 봉쇄했다. 포위의 완성을 기다려 미츠히데가 책략(調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가 적에게 전한 내용은 '요시카게가 항복한다면 가신들도 함부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이 단 한번의 권고를 거부하고 항전을 선택할 경우, 여자고 어린아이고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겠다'였다.

공성에는 시간과 많은 병력을 필요로 한다. 증원이 오지 않는 절망적인 농성을 하고 있는 아사쿠라 군에게는, 힘으로 공격하기보다 공갈을 포함한 책략 쪽이 효과적이라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성에서 보이는 범위를 시즈코 군에게 맡기고, 아케치 군이 배후에서 많은 군기를 내걸고 실제 숫자보다 많아 보이게 한 결과, 아사쿠라 군의 전의는 꺾였다.

거의 시간을 끌지 않고 아사쿠라 요시카게, 요시카게의 측근인 토리이 카게치카(鳥居景近), 타카하시 카게아키라(高橋景業), 히키다 성 성주 히키다 로쿠로사부로(疋壇六郎三郎) 등이 성문에서 나왔다.

요시카게 본인은 성 안에서 할복할 생각이었는지, 갑주를 몸에 걸치고 있지 않았다. 노림수대로 요시카게를 산 채로 붙잡을 수 있었던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사쿠라 가문 당주(当主), 아사쿠라 사에몬노카미(左衛門督) 님으로 보입니다만, 틀림없습니까?"


초췌한 나머지 인상(人相)조차 변해 있었기에, 미츠히데가 만약을 위해 확인했다. 요시카게는 체념한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똑바로 미츠히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미츠히데는 시즈코에게 눈짓을 했다.

시즈코는 말없이 큰 지휘부채를 휘둘렀고, 그에 맞춰 성을 포위하고 있던 시즈코 군은 포위를 풀고 시즈코의 등 뒤에 정렬했다. 길을 봉쇄하고 있던 사람들도 봉쇄를 해제하고 돌아와 있었다.


"약속대로, 포위는 해제했습니다"


미츠히데의 선언과 함께, 따라붙어 있던 시즈코 군 본군은 아사쿠라 병사들의 무장 해제와 철수 준비를 개시했다.

그 후에는 이치죠다니 성(一乗谷城)만 남았지만, 당주인 요시카게가 항복한 이상, 이미 그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었다.

미츠히데는 오다 군에게 히키다 성에서의 무장 해제와 개방을 맡기고, 이치죠다니 성으로 향할 군을 재편성했다.

광대한 성시(城下町)를 품은 이치죠다니 성으로 한꺼번에 몰려가서 잡병들이 폭주해버리면 답이 없기에,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인원을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코토쿠인(高徳院)만 포박할 수 있다면 에치젠은 함락된 거나 마찬가지다"


코토쿠인이란 요시카게의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밖에도 코쇼쇼(小少将)나 요시카게의 차남인 아이오마루(愛王丸) 등 요시카게의 혈족을 포박하면 아사쿠라 가문은 멸망한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런 인물들보다 요시카게의 딸 요히라(四葩)를 최중요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그녀는 이치죠다니에서 도망쳐, 그대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리고 예전부터의 약정대로, 혼간지 켄뇨(顕如)의 장남인 쿄뇨(教如)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 후, 켄뇨와 쿄뇨에 대해 요히라가 어떤 이야기나 부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년 후에 에치젠에서 잇코잇키(一向一揆)가 발발한다. 이 때, 노부나가에게 변절했던 아사쿠라 가문의 대부분이 사망(討ち死に)했다.


"아케치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즈코는 이치죠다니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미츠히데에게 말을 걸었다. 미츠히데는 연전에 의한 피로를 보이지 않고 시즈코 쪽을 돌아보았다.


"실은,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즈코는 이곳에 올 때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을 미츠히데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놀라던 미츠히데였으나, 시즈코의 이야기를 다 듣자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 쪽이 좋겠지요. 주상께서도 다기(茶器)를 손에 넣기 위해서, 라고 하면 불태우지 않아도 탓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시즈코의 이야기란,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을 늦추는 것이었다.

이치죠다니에는 많은 문화재나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들이 남아 있다. 현대에서도 불탄 흔적에서 다기가 출토되고 있기에, 당시부터 많은 다기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본심을 말하자면 문물(文物)의 보호를 빼더라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은 회피하고 싶었다. 이치죠다니는 에치젠 문화의 집결지이기에, 이걸 불태워버리면 에치젠의 백성들에게 큰 화근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치죠다니는 아사쿠라 가문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그 붕괴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도 이치죠다니를 불태우는 것은 불가피한 사건이었다.

이것을 늦추는 것에 노부나가가 난색을 표할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도(茶の湯)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노부나가로서는 다기의 보호를 구실로 삼으면 당분간이라면 참아주기도 할거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역사적 사실대로 성시를 포함하여 잿더미로 변하겠지만, 그래도 시즈코는 최저한의 문화재 보호가 끝난 후에 그렇게 했으면 했다.


"그쪽에 대해서는 이미 주상께 올릴 서신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마도 서신만으로 문제없다고는 생각합니다만, 만약의 일이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럼, 주상께의 대응은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병사들이 약탈하지 않도록 감시의 눈을 강화하겠습니다. 명물(名物)의 보호는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이치죠다니에 불을 지르지 않는다. 문화재를 가장 먼저 반출하고, 노부나가에게는 다기를 수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병행하여 다기의 회수도 진행하여, 발견된 다기를 노부나가에게 보내면 노부나가도 시즈코의 부탁을 함부로 거절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와 미츠히데는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었던 느낌을 받았다.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요시카게를 붙잡기 조금 전, 노부나가는 오다니 성 부근에 설치된 본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는 이미 아사쿠라가 멸망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 에치젠에 대한 견제로서 배치했던 시바타들도 오다니 성 포위에 참가하도록 명령했다.

오다 군이 총력을 기울여 오다니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시즈코로부터 서신을 받은 히데요시(秀吉)는 자기 진으로 돌아가자 히데나가(秀長)를 호출했다.


"네에네에, 무슨 용무이십니까 형님"


평소와 같은 표표(飄々)한 태도로 응하는 히데나가에게 히데요시는 물어뜯을 듯 추궁했다. 그는 히데요시가 뭘 묻고 싶은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전혀 내색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너, 시즈코에게 무얼 내놓았느냐!?"


히데요시는 시즈코로부터 걷네받은 서신을, 작전지도를 펼쳐놓은 탁자에 내려치듯 놓으며 외쳤다. 히데요시가 격앙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의 서신에는 오다니 성에 관한 기밀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부근 일대의 상세한 지형도에 더해, 오다니 성의 방어시설의 규모와 상세한 정보가 망라되어 있어, 군사기밀을 알고 있는 내통자로부터 얻은 정보인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무얼 내놓았는가, 그것이 히데요시의 관심사였다.


"그 뭐냐, 얼마 전에 아사쿠라 가문의…… 뭐였죠"


"에치젠 오오노 군(大野郡)의 군사(郡司)를 맡고 있는 아사쿠라 마고하치로(朝倉孫八郎)다"


"네네 맞습니다, 그 아사쿠라 마고어쩌고를 필두로 몇 명인가가 요시카게를 배신하고 오다 군에게 유리하도록 병사를 움직일테니 대신 목숨을 살려달라, 는 내용을 연명(連名)으로 쓴 서신이 도착했잖습니까? 그것과 교환했습니다"


"그것 말이냐…… 어, 그것 뿐이냐?"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내놓은 것을 알게 된 히데요시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었다는 점에 맥이 빠져버렸다.

배신의 증거라고는 해도, 구명의 탄원서의 용도 따윈 히데요시에게는 짐작가는 것이 없어, 그의 마음 속에서는 휴지조각으로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요시카게나 에치젠의 백성들이 품을 원한을 유도하기 위해 쓰겠지요. 자신들을 패배시킨 상대보다도, 배신한 아군 쪽이 증오할 상대로서 적합하니까요"


"과연. 하지만, 탄원서를 받아놓고 그걸 무시한다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구명의 탄원서인가 하는 건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에 없는 이상은, 우리들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그걸로 된 거 아닙니까. 아사쿠라 토벌에서 최대 무공은 아케치 님으로 확정입니다. 그렇다면 아사쿠라의 일족들을 살려줘봤자 우리들에게 이익 따윈 없을 겁니다. 그 놈들이 어찌되던 우리들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죠"


"뭐, 그렇구나"


히데나가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한 히데요시는, 이 이상 탄원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시즈코에게서 받은 서신을 정리하여, 작전회의용으로 펼쳐놓은 지도와 비교해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오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에 전력을 쏟도록 하자. 이 정보가 있으면 확률이 높은 도박을 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때다"


"그 말씀 대로입니다, 형님"


히데요시의 힘있는 선언에 히데나가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오다니 성에 관한 기밀을 흘리다니, 이거 참 놀랍군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상세한 정보를 입수한 걸까요. 그녀의 휘하에 있는 간자들의 움직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후훗, 뭐 좋겠죠. 이번에는 탄원서 정도로 형님께 무공을 올릴 기회가 굴러들어온 것이니까요. 쓸데없이 캐다가 풀을 쳐서 뱀(아시미츠(足満))이 나오면 곤란하죠)


탁자에 펼쳐진 서신의 내용을 읽으며 히데나가는 웃었다. 지금까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금후에는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으리라. 왜냐하면 다른 무장들도 시즈코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한 명의 여자에게 다 큰 남자들이 정신이 필린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연애질(色恋沙汰)에 넋이 나간 어리석은 자들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이곳 이외에 활로(活路)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시즈코 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이 금후의 향방(行方)을 좌우합니다)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한 히데나가는 점점 더 미소가 짙어졌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와 함께 이치죠다니에 들어갔다. 이치죠다니 성을 지키는 장병들이나 이치죠다니의 성시에 사는 백성들은 오다 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당황해서 도망쳤다.

평시라면 북적거릴 성시의 왕래도 끊기고, 백성들이 도망칠 때 떨어뜨린 천쪼가리 등이 바람에 휘날려올라가 쓸쓸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백 년의 영화(栄華)를 자랑한 이치죠다니도 이렇게 되어버리면 폐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복병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토리이 님, 쓸데없는 살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투항을 권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요시카게의 측근인 토리이가 권고하면 병사들도 항복하기 쉬울거라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궁지에 몰려 자포자기한 적병이 같이 죽자고 거리에 불을 지르는 것을 회피하고 싶었다.


"시즈코 님은 문화재의 보호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미츠히데가 역할을 지정하고, 각자가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시즈코는 문화재의 보호, 회수를 정력적으로 수행했다. 시즈코 군의 병사들은 말단까지 통제가 잘 잡혀 있어, 만에 하나라도 약탈을 저지를 우려가 없었기에 적임이었다.

실제로 시즈코 군의 수완은 매우 뛰어나서, 문화재의 보호나 숨어 있던 장병들의 처자들의 보호 등도 효율좋게 수행했다.

속속 모여드는 문화재를 보자, 나름 지식을 갖춘 시즈코조차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중국(唐物)의 밥공기(茶碗) 같은 것도 있네"


정원이나 건축물 등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 또는 반출할 수 없기에 아예 파괴되어 버린 것 이외의 것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첨부되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태반은 어떤 시대에 어떤 경위로 들여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눈여겨본 밥공기 이외에도 꽃병(花瓶)이나 항아리(壺, 회화(絵画), 족자(掛け軸), 편지(手紙), 서적(書物) 등 회수된 물건들은 다종다양했다.


"꽤나 많이 모였네"


"시즈코 님! 그쪽은 장부 기재(記帳)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만져보실 거라면 이쪽의 장부 기재가 끝난 물건들로 부탁드립니다"


시즈코는 산더미처럼 쌓인 서적들 중 한 권을 손에 들고 펼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화재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던 병사에게 야단을 맞았다. 거북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시즈코는 서적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고 물러났다.


"야단맞아버렸네. 기록이 끝난 것부터 읽어볼까"


아무래도 숫자가 방대했기에, 목록에 기재된 것들부터 임시 보관소로 징발된 무가(武家) 저택(屋敷)에 분류하여 운반되고 있었다.

그곳에 놓인 서적이라면, 이후에는 포장해서 노부나가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기에, 포장될 때 까지는 읽어도 문제없었다.


"시즈코 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섰을 때, 소성 한 명이 시즈코를 불렀다.

기세가 꺾인 느낌이 들었지만, 노부나가가 필요로 하지 않는 문화재를 상으로 받을 예정인 것을 떠올리고, 나중에라도 괜찮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다시 앉았다.


"무슨 일이죠?"


"옛. 실은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모친인 코토쿠인이 시즈코 님을 만나뵙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케치 님이 대화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저한테 무슨 용건일까요? 뭐, 여기서 입씨름을 해봐야 소용없죠. 만날테니 이쪽으로 안내하도록 전해주세요"


"옛, 바로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한 소성은 코토쿠인을 불러오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잠시 후 억세 보이는 귀부인과, 그 뒤에 몹시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여성이 따르고, 여성의 뒤에 숨으려는 듯 하는 가장 나이어린 여성이 안내되었다.

시즈코는 사전에 얻은 정보로부터, 억세 보이는 귀부인을 코토쿠인, 그 뒤가 요시카게의 처인 코쇼쇼, 가장 뒤의 여성이 바로 요히라일거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시즈코는 앉아 있던 걸상(床几)에서 일어나 그녀들의 대표인 코토쿠인에게 이름을 밝히고 자리를 권했다.


"제가 시즈코라고 합니다. 자, 앉으시기 바랍니다. 행군중이기에 아무래도 좋은 가구(調度)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땅바닥에 앉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코토쿠인이 감사 인사를 하고 앉자, 멍하니 있던 코쇼쇼와 요히라도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여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용건을 듣기 전에 우선 한 잔 올리지요. 독 같은 건 넣지 않습니다. 당신들을 독살할 필요성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손수 차를 끓이고, 먼저 입에 머금어 보였다. 그대로 같은 찻주전자(急須)에서 차를 따라 세 명에게 건넸다.

시즈코가 독이 없음을 보였지만, 코토쿠인은 생사여탈을 상대방이 쥐고 있는 지금 독살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주저없이 차를 마셨다.

코쇼쇼와 요히라는 코토쿠인의 모습을 흘끔거리면서 쭈뼛쭈뼛 차를 마셨다.


"그럼, 제게 용건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어떤 용건이신지요? 저희 군의 최고 책임자는 아케치 님입니다. 제가 어떠한 판단을 하더라도, 아케치 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걸로 결정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여쭙겠습니다만,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에치젠은 주상께서 지배하시게 되고, 아사쿠라 가문은 단절되겠지요. 주상께서는 아사쿠라 가문에 몇 번이나 호되게 당하셨습니다. 이제와서 용서를 빌어도 용서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요시카게가 노부나가와 적대할 것을 표명한 지 3년. 노부나가는 몇 번이나 쓴맛을 보았고, 아사쿠라가 오우미(近江)에 있는 것만으로도 견제를 위해 병력을 쪼개야 했다.

특히 신겐(信玄)이 직접 나선 카이(甲斐) 타케다(武田)의 대원정(大遠征), 즉 서상작전(西上作戦)에서는, 오다 가문의 운명을 걸어야 하기까지 했다.

그만한 짓을 한 이상, 노부나가가 아사쿠라 가문에 온정을 베풀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아무리 재보를 내놓더라도 요시카게와 그 적자(嫡子)의 참수는 피할 수 없다.


"패자(敗者)의 일족(一族) 단절(断絶)은 난세(乱世)의 상식.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와서 저항하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은 요히라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느냐고 하셔도……"


"시치미떼지 마십시오. 저는 요히라를 확실하게 붙잡으라고 당신이 명령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들(愚息)이 아니라 요히라를 붙잡으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이제부터 죽으러 가는 사람에 대한 전별(手向け)로서 부디 온정을 베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겨우 이해가 간 시즈코였으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시즈코는 분명히 요히라를 반드시 붙잡으라고 명령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을 알기에, 그녀가 살아서 혼간지에 도착하면 훗날 에치젠에서 잇코잇키가 발발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배지역에서 잇코잇키가 발생하면 진압하는 데 적지않은 희생이 생긴다.

이 이상 에치젠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문제의 싹을 자르는 의미에서 그녀의 포박을 명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시체라도 상관없다고 덧붙여서.


그 명령을 어떤 경위로인지 알게 된 코토쿠인이, 시즈코에게 본심을 들으러 온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요히라가 시즈코를 바라보는 겁먹은 시선에도 납득이 갔다.


"그것은 요히라 님이 혼간지 켄뇨의 적자와 혼인할 약정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간지로 도망쳐서 켄뇨의 비호를 받아 잇코잇키를 선동해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잇코잇키가 발생하게 되면, 가담한 일향종(一向宗)은 씨를 말릴 것입니다"


"만약 잇코잇키가 발생했다고 하면, 그 때 에치젠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견(私見)입니다만, 이라는 전제를 두겠습니다. 우선 아사쿠라 가문을 배신하고 오다 가문으로 변절한 자들이 혼란을 틈타 살해되겠지요. 그 후, 오다 군이 진압을 위해 출진하여, 일향종을 뿌리째 뽑아버립니다. 나가시마(長島)에서는 이유가 있었기에 이시야마 혼간지로 돌려보냈습니다만, 이곳 에치젠에서의 잇코잇키에는 그러한 이유가 없기에,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처치할 것입니다. 몇 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게 됩니다. 물론, 일향종이 된 에치젠의 백성들이, 말입니다"


알아듣기 쉽도록 차근차근(噛んで含める) 코토쿠인에게 들려주었다. 실제로는 나가시마 때와 마찬가지로 일향종을 이시야마 혼간지로 떠밀어보내게 되겠지만, 그보다도 처참한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억지력이 된다.


"제 예상이라고는 해도,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 분께서는 잘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걸 아시고도 도망치실 생각이라면 혼간지로 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희들도 추격대를 보낼 것이지만, 도망치는 데 성공하시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


"하지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번 싸움이 시작되면, 많은 피가 흐르고, 수많은 목숨이 사라집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에치젠의 백성들'의 죽음을 '평생 짊어지실 각오'가 없으시다면 섣부른 행동은 그만두시기 바랍니다"


담담한 시즈코의 말투가 공포를 부채질했는지, 요히라가 손이 떨려 잡고 있지 못하게 된 밥공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거기에 허리에 힘까지 빠졌는지, 뒤로 쓰러질 뻔한 것을 코쇼쇼가 얼른 부축해 주었다.

싸움터의 의자기에 등받이가 없었고, 그 때문에 쓰러지고, 그 때문에 즉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지만, 부축한 코쇼쇼도 공포에 움츠러든 상태여서 조금 가엾게 느껴졌다.


"조금 으름장이 심했군요. 하지만,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미래입니다. 에치젠에 시체의 산을 쌓고 그 땅을 선혈로 물들여서라도 저희들에게 한 방 먹일 것인가, 아니면 원한(禍根)을 품으면서도 조용히 여생을 보내실지, 그 선택을 하시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코토쿠인은 똑바로 시즈코를 바라보고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안색은 창백해지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승패는 병가(兵家)의 상사(常), 원한을 잊으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들어올린 주먹을 내려치실 곳도 필요하시겠죠. 그것을 고려하여, 저는 지금부터 어떤 서류를 분실할 것입니다. 패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생각하시는 것도 좋겠죠"


말을 끝내자 시즈코는 일어서서 소성에게서 서신(書状)을 받아들고,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으로 코토쿠인 쪽으로 떨어뜨린 후 자리로 돌아갔다.

시즈코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코토쿠인이었으나, 서신을 펼쳐 내용을 읽어본 그녀의 수려한 미간에 점점 주름이 패였다.


"……전쟁의 향방은 알 수 없는 것. 부모 마음으로서는 아들이 이겨줬으면 했습니다. 여기까지 몰려서, 간신히 당주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건만……"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듯, 코토쿠인은 서신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 자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융성(隆盛)할 때는 실컷 단물을 빨아놓고, 일족의 위기에 처하자 당주에게 거역할 뿐만 아니라 행패(足蹴)를 부리고, 나아가 당주를 팔아넘기는 패거리들 따위……"


시즈코가 코토쿠인에게 보여준 것은 카게아키라(景鏡)의 구명 탄원이 적힌 서신의 사본이었다.

요시카게와 카게아키라의 다툼(禍根)으로 아사쿠라 가문이 쪼개져서 훗날의 에치젠 잇코잇키로까지 발전하는 이상, 여기서 재앙의 뿌리를 뽑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정치적인 판단이며, 시즈코도 본심을 말하자면 이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화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싹은 잇코잇키라는 형태로 싹을 틔워, 훗날 몇 만이나 되는 목숨이 사라진다.

설령 정도에 어긋나더라도, 때로는 위정자는 비정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실제 체험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이쪽의 지시에 따라주신다면, 카게아키라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드리지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고 있던 코토쿠인이 시즈코의 말에 얼굴을 들었다.


"단, 저희들이 드리는 것은 기회 뿐입니다. 카게아키라를 처치할지, 아니면 모른 척 할지, 그것은 당신들의 자유입니다. 저희들은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말씀드리지요. 이것은 아케치 님도, 그리고 주상께서도 인정하신 이야기입니다. 남은 것은 당신들의 판단으로 결정됩니다"


"……"


"내통한 자를 팔아넘기는 것은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배신이라는 것은 본래 들키면 파멸할 각오를 하고 저지르는 것. 이것도 사견입니다만, 아마도 주상께 카게아키라는 이미 이용가치가 없는 것이겠죠"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후 손뼉을 쳤다. 그 소리에 놀란 코토쿠인과 코쇼쇼가 움찔하며 허리를 폈다.


"지금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카게아키라를 용서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 뿐입니다"


코토쿠인은 시선을 시즈코에서 서신으로 돌렸다. 잠시 서신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였으나, 천천히 서류를 움켜쥐고는 둘로 찢어버렸다.


"좋습니다"


그것이 코토쿠인의 대답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가까이 있던 소성에게 명해 코토쿠인이 찢은 서류를 미츠히데에게 전하라고 했다.




이치죠다니 성 함락 소식은 즉시 노부나가에게 전해졌다.

단, 성시를 포함한 이치죠다니 일대의 소각(焼き討ち)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이유로서 다기(茶器) 등의 명물품(名物品)을 회수하여 전비(戦費)를 충당하기 위해서라는 보고가 올라갔다.

모든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떠올라있지 않아, 미주하고 보고를 마친 병사는 이마에 땀이 솟으며 입술이 퍼래질 정도로 깨물고 있었다.

좌우에 있던 오다 가문 중신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노부나가의 말을 기다렸다.


"보고,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그 한 마디를 들은 병사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떠나가는 병사를 노부나가는 재미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실제로 노부나가는 흥이 깨진 상태였다.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오다니 성에 대해서는 히데요시가 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자이(浅井)-아사쿠라 토벌을 내걸고 출진했는데 스스로의 손으로 직접 결판을 지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뻔히 결과를 알고 있는 보고를 그냥 기다린다는 것이 이 정도로 따분할 줄은 몰랐다. 무료함을 달래려 해도, 그게 가능할 만한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버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유쾌함의 씨앗(愉快の種)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노부타다(信忠)가 노부나가에게 진언했다. 기분전환 정도는 될 거라 생각하여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발언을 허락했다.


"듣자하니 아사쿠라 가문 당주 및 적자는 아직도 참수되지 않고, 이치죠다니의 소각도 미루어진 듯 합니다. 전비 회수를 위해 다기나 명물을 모은다고는 해도, 이래서는 조금 약하다고 생각됩니다"


"……키묘(奇妙) 이외에는 물러나라"


엉뚱한(頓珍漢) 소리를 한 노부타다에게, 노부나가는 눈가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지시대로 좌우에 있던 중신들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 노부나가와 노부타다만이 남겨진 것을 확인한 후, 노부나가는 말을 이었다.


"아사쿠라가 어떻게 되던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번의 일은 시즈코가 영주(国人)가 될 수 있을지, 그 시련이 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시련…… 입니까?"


"그렇다. 시즈코는 여차할 때(ここ一番) 마무리가 허술하다. 타케가와의 싸움에서도, 녀석은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를 놓쳤다. 나가시마 일향종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통치하기 위해서라느니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고는 있지만 말이다"


"그것은……"


놓아준 채로 괜찮은 건가 하고 의문을 입에 올리려던 노부타다는 말을 삼켰다. 괜찮지 않다고 판단되었다면 시즈코는 이미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현재 시즈코가 처벌을 받지 않은 이상,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허술함(甘さ)을 이해하면서 그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즈코의 허술함에도 이용가치는 있다. 하지만, 위정자는 때로는 비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부하에게 죽으라고 명령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대를 살리기 위해 소를 죽이는 것을 못하고 있다"


"그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아사쿠라는 딱 좋은 상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지금까지처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즈코가 스스로의 의지로 쳐들어가서,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하오나…… 할 수 있겠습니까? 시즈코는 지금까지 정치적 판단을 피해 왔습니다"


"할 수 있다. 시즈코는 반드시 적을 처단한다. 그게 우연히 아사쿠라였다는 것 뿐이다"


지금까지 시즈코는 잡병이나 아시가루(足軽), 무장(武将)들을 처치해왔다. 하지만 타국을 침공하여 영주를 처형한 적은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본인이 피했던 것도 있지만, 그러한 냉혹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항상 노부나가나 아시미츠가 대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을 스스로 해야만 한다.


"항상 아시미츠가 있어줄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녀석도 언젠가 그 허술함 때문에 시즈코의 몸이 위험에 처할 것을 고려하여 내 시련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지"


"아버님은 시즈코를 그렇게까지 평가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물론이다. 녀석이 훌륭한 영주가 된다면, 오와리(尾張)를 맡겨도 좋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오와리를 맡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노부타나는 뼈아플 정도로 이해했다. 자신의 근거지(お膝元)를 맡기는 것은 노부나가의 아버지 대부터 섬겨온 가신들에게조차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어엿한 영주로서 성장한다면, 오와리라는 한 나라(一国)를 맡겨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까지 특별 취급되는 것에, 노부타다는 질투를 금할 수 없었다.


"지금은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영주가 되어, 우에스기(上杉)나 도쿠가와(徳川)와 연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에 능숙해지게 되면 토우고쿠(東国)의 견제는 완벽해진다. 나는 사이고쿠(西国)의 지배에 집중할 수 있지. 등 뒤를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정말로 편하다"


과연 시즈코는 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노부타다는 의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미 확신하고 있는지, 자신이 부여한 시련을 시즈코가 극복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노부나가의 확신이 올바른 것임을 노부타다는 알게 된다. 카게아키라의 목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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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 앞부분부터 읽으시려 할 떄 편리하도록 목차 링크 페이지를 만들어보았습니다. 링크 등을 하실 경우에도 본 페이지로 하시면 편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에이로쿠(永禄) 8년 노부나가(信長) 공(公), 만남의 때


001 - 1565년 3월 중순

002 - 1565년 3월 하순

003 - 1565년 4월 상순

004 - 1565년 4월 하순

005 - 1565년 5월 상순

006 - 1565년 5월 중순

007 - 1565년 5월 중순

008 - 1565년 6월 상순

009 - 1565년 7월 중순

010 - 1565년 8월 상순

011 - 1565년 8월 하순

012 - 1565년 10월 중순



에이로쿠(永禄) 9년 오와리 국(尾張国)의 농업개혁


013 - 1566년 4월 상순

014 - 1566년 6월 상순

015 - 1566년 9월 중순

016 - 1566년 9월 중순

017 - 1566년 10월 상순

018 - 1566년 10월 상순

019 - 1566년 10월 상순

020 - 1566년 10월 중순

021 - 1566년 10월 하순

022 - 1566년 12월 상순

023 - 1566년 12월 상순



에이로쿠(永禄) 10년 천하포무(天下布武)


024 - 1567년 1월 상순

025 - 1567년 1월 상순

026 - 1567년 1월 하순

027 - 1567년 2월 하순

028 - 1567년 3월 중순

029 - 1567년 3월 하순

030 - 1567년 4월 상순

031 - 1567년 4월 상순

032 - 1567년 4월 중순

033 - 1567년 4월 중순

034 - 1567년 4월 중순

035 - 1567년 5월 상순

036 - 1567년 5월 상순

037 - 1567년 5월 상순

038 - 1567년 5월 상순

039 - 1567년 7월 중순

040 - 1567년 9월 중순

041 - 1567년 9월 중순



에이로쿠(永禄) 11년 상락(上洛)


042 - 1568년 1월 초순

043 - 1568년 2월 초순

044 - 1568년 2월 하순

045 - 1568년 4월 중순

046 - 1568년 6월 상순

047 - 1568년 6월 중순

048 - 1568년 6월 중순

049 - 1568년 8월 중순

050 - 1568년 8월 중순

051 - 1568년 12월 중순



에피소드 1 (통합)


분노의 무신(武神) 혼다 헤이하치로 타다카츠(本多平八郎忠勝)

시즈코가 만들고, 노부나가가 먹는다

좋아, 그렇다면 전쟁이다

노부나가 둑(信長堤)

전국시대식 양치

도쿠가와(徳川)의 참마즙 보리밥

마성(魔性)의 여인 노히메(濃姫)

쌀 + 마 = 바이오 플라스틱



에이로쿠(永禄) 12년 이세(伊勢) 평정(平定)


052 - 1569년 1월 상순

053 - 1569년 1월 상순

054 - 1569년 3월 상순

055 - 1569년 3월 상순

056 - 1569년 5월 상순

057 - 1569년 5월 상순

058 - 1569년 6월 하순

059 - 1569년 7월 중순

060 - 1569년 8월 하순

061 - 1569년 9월 상순

062 - 1569년 12월 상순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包囲網)


063 - 1570년 1월 상순

064 - 1570년 3월 상순

065 - 1570년 5월 중순

066 - 1570년 6월 하순

067 - 1570년 6월 하순

068 - 1570년 8월 하순

069 - 1570년 9월 하순

070 - 1570년 11월 중순

071 - 1570년 12월 하순

072 - 1570년 12월 하순

073 - 1570년 12월 하순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4 - 1571년 1월 상순

075 - 1571년 3월 상순

076 - 1571년 4월 상순

077 - 1571년 4월 하순

078 - 1571년 5월 중순

079 - 1571년 8월 중순

080 - 1571년 9월 중순

081 - 1571년 9월 중순

082 - 1571년 10월 상순

083 - 1571년 11월 하순

084 - 1571년 12월 하순

085 - 1571년 12월 하순



겐키(元亀) 3년 결전、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6 - 1572년 1월 상순

087 - 1572년 3월 상순

088 - 1572년 5월 상순

089 - 1572년 7월 상순

090 - 1572년 7월 하순

091 - 1572년 8월 중순

092 - 1572년 9월 상순

093 - 1572년 9월 하순

094 - 1572년 11월 하순

095 - 1572년 12월 중순

096 - 1572년 12월 하순

097 - 1572년 12월 하순

098 - 1572년 12월 하순

099 - 1572년 12월 하순



에피소드 2


01 - 아버지들의 고뇌

02 - 다채로운 기술자 집단

03 - 여자식(女子式) 다도회(茶の湯)

04 - 창고 청소

05 - 면(麵) 전쟁(戦争)

06 - 난월어기(卯月御記) (현대어 스타일)

07 - 죽을 장소를 버렸다

08 - 끓어오르는 피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의 종언(終焉)


100 - 1573년 1월 하순

101 - 1573년 2월 중순

102 - 1573년 3월 중순

103 - 1573년 4월 중순

104 - 1573년 5월 중순

105 - 1573년 6월 상순

106 - 1573년 6월 상순

107 - 1573년 8월 상순

108 - 1573년 8월 중순

109 - 1573년 8월 중순

110 - 1573년 8월 중순

111 - 1573년 10월 중순

112 - 1573년 12월 중순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3 - 1574년 1월 하순

114 - 1574년 1월 하순

115 - 1574년 3월 상순

116 - 1574년 3월 하순

117 - 1574년 6월 중순

118 - 1574년 7월 중순

119 - 1574년 9월 상순

120 - 1574년 9월 하순

121 - 1574년 10월 상순

122 - 1574년 12월 상순

123 - 1574년 12월 하순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4 - 1575년 2월 하순

125 - 1575년 4월 하순

126 - 1575년 5월 중순

127 - 1575년 5월 중순

128 - 1575년 9월 중순

129 - 1575년 9월 중순

130 - 1575년 9월 중순

131 - 1575년 10월 중순

132 - 1575년 11월 중순

133 - 1575년 11월 중순

134 - 1575년 11월 중순

135 - 1575년 12월 중순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6 - 1576년 1월 중순

137 - 1576년 1월 중순

138 - 1576년 1월 중순

139 - 1576년 2월 중순

140 - 1576년 3월 하순

141 - 1576년 4월 하순

142 - 1576년 5월 하순

143 - 1576년 6월 상순

144 - 1576년 6월 상순

145 - 1576년 6월 상순

146 - 1576년 8월 중순

147 - 1576년 9월 상순

148 - 1576년 10월 상순

149 - 1576년 10월 중순

150 - 1576년 10월 중순

151 - 1576년 12월 하순



에피소드 3


01 - 식(食)에의 집착

02 - 홍등가(花街)의 여인

03 - 힘없는 상냥함은 무책임일 뿐이다

04 - 소년이여, 카레이(かれい)를 먹어라

05 - 심심풀이(退屈しのぎ)

06 - 잊혀진 이야기

07 - 호죠(北条) 가문의 실패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2 - 1577년 1월 하순

153 - 1577년 3월 하순

154 - 1577년 3월 하순

155 - 1577년 4월 상순

156 - 1577년 4월 상순

157 - 1577년 4월 상순

158 - 1577년 4월 상순

159 - 1577년 4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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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 목차  (0) 2019.07.26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8 1573년 8월 중순



8월 11일. 히데요시(秀吉)로부터 정치적인 공작(調略)을 받고 있던 야키오 요새(焼尾砦)를 지키는 아사미(浅見) 츠시마노카미(対馬守)가 꺾여서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그 소식은 즉시 노부나가에게 전해져,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 이은 정치적 책략의 성공에, 시즈코를 제외한 오다 가문의 주요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야키오 요새가 함락된 이상, 남은 것은 오오즈쿠 성(大嶽城) 뿐이었다. 오오즈쿠 성까지 히데요시가 함락시킬 경우, 이번의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토벌에서의 제 1공은 히데요시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 내에서의 히데요시의 발언력은 더욱 강해지기에,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한편, 권력 다툼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에게는 동요도 없고, 담담하게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진으로의 물자 반입 및 텟포슈(鉄砲衆)의 배치를 하고 있었다.

야키오 요새 소식을 들은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게 되어 필요 이상으로 발이 묶였지만 대략 예정대로 일을 마쳤다.

이튿날인 12일, 역사적 사실에서는 밤중에 뇌우(雷雨)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시즈코는 낮의 구름의 움직임 등을 볼 때 날씨가 나빠지는 것은 다음날로 미뤄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시즈코의 예측대로, 12일 밤에는 바람은 강했지만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


"날씨가 나빠지는 걸 마냥 기다린다, 는 것도 할 일이 없어 꽤나 따분하네"


케이지(慶次)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이런 날씨에 맡긴 작전이라"


"상관없어. 요는 하늘이 우리들의 편을 들지, 아니면 적에게 붙을지, 그런 천명(天命)을 점치는 것도 멋진 일이야. 그런데, 정말로 할 거야? 나는 전혀 상관없지만, 실패하면 아무리 시즛치라고 해도 호되게 혼나는 정도(大目玉)로는 끝나지 않을 걸?"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다, 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즈코의 대꾸에 의표를 찔려 일순 멍해진 케이지였으나, 파안(破顔)하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다른 뜻(含むところ)이 일체 없는, 유쾌해서 견딜 수 없다는 웃음이었다.


"시즛치도 웬걸, 훌륭한 카부키모노(傾奇者)잖아. 확실히 보통이라면 하지 않겠지.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어. 내 병사들은 의욕이 넘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에 끼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야"


"자칫 잘못하면 추위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의욕적인 말이 나오는 건 놀랍네요"


"그럴지도. 하지만, 계책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놈들의 표정은 꽤나 볼만하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케이지 부대 중에서도 강자(猛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왔다.

대장인 케이지의 영향인지, 다들 제각기 튀는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傾いていた). 개중에는 어지간한 무공을 세우지 않으면 들 수 없는 붉은 창(朱槍)을 들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 먼저 케이지 씨한테 이야기했지만, 이번의 계책이 승인되었어요. 계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내용에서 변경은 없어요. 최고(ここ一番)로 튀어보일 기회(傾きどころ)에요.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적에게 똑똑히 보여주세요"


시즈코의 말에 모여든 카부키모노들은 굵직한 미소를 떠올렸다. 기세(意気込み)는 충분했고, 이후에는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13일. 아침부터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올 기색이 농후하게 감돌고 있었다. 아침 일찍 시즈코는 자기 진에서 고용한 츄우겐(中間)들의 명부를 보고 있었다.


"여기랑…… 이 집단은 꽤나 오랜 기간동안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슬슬 익숙해져서 의식이 느슨해질 듯 하니까, 일처리를 잘하면 보수를 더 얹어줘요. 숙련자라면 보수가 많아도 문제없겠죠"


"그래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게 되어 버립니다만……"


"자신의 목숨을 도박판(賭け皿)에 걸고 있는 그들에게 정신론(精神論)이나 근성론(根性論)은 먹혀들지 않아요. 일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평가와 보수를 주면 그들은 최대로 힘을 발휘해요. 격전을 거듭하는 우리 군에서 반복해서 고용하고 있다면, 역전의 병사로 대우해 줘야죠. 일의 성과에 따른 보수를 주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촉발되어서 분발하게 될 거에요. 게다가 불평이나 하며 제대로 일하지 않는 패거리는 매사 구실을 붙여 일하지 않게 돼요. 그런 자들은 다음부터 고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츄우겐을 고용하면, 항상 같은 구성으로 오는 사람들이 생긴다. 츄우겐으로서 한데 묶어(十把一絡)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성과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시즈코는 말한 것이다.


"옛! 잘 알겠습니다"


"도구류의 정비는 제대로 되었어요? 도구가 좋고 나쁘고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니까요"


"예, 문제없습니다. 기술자들이 전량 검사하여 문제없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노동 사이사이에는 휴식을 취하고 하고 있죠? 어떤 사람이라도 장시간 일하면 피로가 쌓여요. 피로가 쌓이면 판단을 잘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실수를 하거나 하니까요"


"과부족없이 휴식시간을 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단히 기운이 넘치는 츄우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럼 좋아요. 당신들도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세요. 일하면 피곤해져요. 그건 육체 노동이든 두뇌 노동이든 마찬가지에요. 누군가가 탓한다면 저한테 보고하세요. '신하(臣下)를 챙기는 것(保障をする)'은 제 의무니까요" 


"옛! 시즈코 님의 배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부하의 말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항상 말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오다 군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縁の下の力持ち)이에요. 결코 화려한 활약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다 군이 쾌진격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뒷바라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강철같은 결속으로 흔들림 없는 실적을 쌓아올려, 이제부터도 오다 군의 병참을 계속 담당합니다"


"옛!!"


후방지원부대의 대장들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본진을 떠났고, 그와 교차하듯 케이지나 사이조(才蔵)들이 시즈코가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 하늘 모습과 비 냄새…… 이제 곧 날씨가 나빠질 거에요. 그게 개시의 신호……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 잘 부탁해요"


"맡겨둬. 재미있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게"


나가요시(長可)가 힘있게 주먹을 쥐며 기합을 어필했으나, 케이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령 나가요시가 폭주하더라도 케이지가 함께라면 어떻게 해 주려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는 이번의 작전에 한 가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가요시가 폭주해버린다는 가능성.

최근,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키나이(畿内) 각지의 소동 진압 임무에 나섰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착임하는 것과 동시에 뚝 하고 소동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나가요시의 악명은 키나이에도 퍼져 있어, 타케다(武田)의 적비대(赤備え)조차 쓰러뜨리는 잔학무도(悪逆非道)한 무뢰한(無頼漢)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은 소동이 발생하더라도 나가요시가 달려갔을 무렵에는 해결되어 있어, 그의 불완전연소에 의한 욕구불만은 쌓여만 갈 뿐이었다.

이제 충분히 적과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혈기가 넘치는 나가요시가 폭주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사이조 씨와 요키치(与吉, 타카토라(高虎)) 군에게는 본진의 수비를 부탁해요. 텟포슈의 태반을 각지에 파견했으니, 본진에는 약간의 텟포슈와 용기병(竜騎兵) 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방심하지 말도록 부탁해요"


"옛!"


텟포슈는 겐로(玄朗)가 대대장(大隊長)을 맡고, 그 아래에 200명 정도를 1개 부대로 하여 지휘하는 대장들이 몇 명 존재한다. 그 대장 중 한 명이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였다.

그의 출신에서 볼 때는 그런 지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는 단지 일개 병졸로서 재출발하여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엔도(遠藤)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이제는 완전히 숙련된 텟포슈가 되어 있었다.

그 나가마사가 지휘하는 부대를, 시즈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히데요시가 있는 곳에 배치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아케치(明智) 님이 용기병 50을 써서 아사쿠라의 진을 흔들고 있었지. 그건 주상께서 도발하라고 명하신 건가?"


"아마 그렇겠죠. 적의 소모를 노리고 계시니까요. 용기병의 기동력이라면 한번 부딪히고 즉시 철수하는 일격이탈(一撃離脱) 전법을 쓸 수 있으니 딱 어울릴 거에요"


용기병은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대이며, 말에 탄 채로 장거리 저격이 가능한 병종이다.

정밀사격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말에서 내리지만, 그 이외에는 기동력을 살려 적과 접촉,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방적으로 사격을 퍼붓거나 적을 끌어들이며 사격을 계속한다는, 종래에는 없었던 공격이 가능해진다.

말에 의한 기동력과 신식총의 압도적 성능에 의해, 겨우 50기 뿐인 용기병이라도 10배의 적을 교란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기병인 이상, 시야가 양호하고 발밑의 지반이 든든해야 한다는 제약은 피할 수 없다.


"멀리서 보고 있었는데, 아사쿠라 군 입장에서는 거슬리기 짝이 없겠지. 그만큼 일방적으로 당해도 요시카게(義景)가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금쯤 아사쿠라의 가신들은 요시카게에게 따지고 있었지. 이번만큼은 요시카게의 생각이 맞지만 말이다"


아시미츠(足満)가 웃으면서 시즈코의 말을 보조했다.

현 시점에서는 어디의 진을 공격해도 신식총으로 무장한 텟포슈가 100명 이상 있다. 백병전의 거리까지 다가갈 무렵에는 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

그걸 생각하면 도발에 응하지 않고 수비를 굳히는 요시카게의 전법이 이치에 맞는다. 단, 기습을 받고 총탄을 뒤집어쓰는 쪽은 오래는 버틸 수 없다.


"어쩔 수 없어요. 총격을 받아도 계속 버텨라, 고 해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어선 견딜 수 없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슬슬 그 고생도 끝나겠죠. '그 사람'이 하시바(羽柴) 님과 접촉한 모양이니…… 며칠 안에는 결판이 나지 않을까요"


"영고성쇠(栄枯盛衰)는 세상의 상리(定め). 명가(名家)의 미명(美名)에 안주하여 정진(精進)을 잊은 자에게 미래는 찾아오지 않지"


"뭐, 미련이 남지 않게 깨끗하게 목을 쳐 주는게 무사의 정이라지. 맡겨둬, 내가 일도양단해줄게"


"에잇, 카츠조 군. 일도양단하면 안 돼. 이번 작전은 요시카게가 핵심이라고"


"안심해, 시즛치. 카츠조가 바보짓을 할 것 같으면 후려갈겨서라도 막을테니까"


케이지가 때려서 막으면, 그 자리에서 대 난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진 시즈코였으나, 시즈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 앞에서 아군끼리 싸우는 것만큼은 참아줘요"


"실례네. 나도 상황을 파악하는 분별은 있…… 겠지?"


"어째서 자기가 말해놓고 의문으로 생각하는 거야. 괜히 더 불안해지잖아. 뭐 여기서 말해봤자 소용없나. 하지만, 이번에는 케이지 씨랑 카츠조 군 밖에 활약할 기회가 없는데, 다른 두 사람은 혹시 불만 같은 거 있어요?"


사이조와 타카토라는 본진의 수비. 케이지들이 날뛰고 있을 때도 시즈코의 호위라는 중대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地味) 임무를 맡는다. 아시미츠의 경우에는 본진에서 나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화려한 전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불만은 없느냐고 시즈코는 물어보았다.


"소생은 오랜만에 호위대(馬廻衆) 다운 일을 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터에서의 무공을 세우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다고(吉) 감이 속삭이고 있기에 불만도 없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희망이 있으면 말해줘요. 가능한 한 맞춰볼테니"


"시즈코 님의 배려(心遣い)에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사이조와 타카토라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망설이지 마라. 시즈코는 단지 명령하면 되는 거다. 나는 그에 응할 뿐이다"


아시미츠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망설임없이 단언했다. 그답다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요, 그럼 이야기는 끝이네요. 자, 나는 지금부터 키묘(奇妙) 님을 달래고 올게요. 가까이 있으면서 이틀이나 내버려두다니 어떻게 된 거냐, 라고 펄펄 뛰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그건 중요한 일이군. 힘내, 시즛치"


무거운 한숨을 쉬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진심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말을 하며 그녀를 전송했다.




노부타다의 진은 불온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노부타다 때문에 진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를 뿜고 있는 듯 했다.

노부타나는 이미 노부나가의 후계자로서 내외에 알려져, 언젠가 천하인(天下人)의 뒤를 이을 것이 결정되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신들은 노부타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언동을 두려워하게 된다.


"슬슬 댓발이나 나온 입을 좀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네"


다만 시즈코가 볼 때는 챠마루(茶丸, 키묘마루(奇妙丸)) 시대의 인상이 강하여, 언제까지나 손이 가는 남동생처럼 생각되었다.

성인식(元服)을 치른 이래로, 노부타다는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각지에서 싸우고는 있지만 한 번도 시즈코와 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시즈코가 싸워온 전장은,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호담한 것으로 유명한 노부나가라도 적자(嫡男)를 그런 장소에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의 아자이-아사쿠라 토벌이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다. 노부타다는 그렇게 기대로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시즈코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머무르고 있고, 각 진영의 지원이나 조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쁜 듯 하지만 전선에 나올 기색은 없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노부타다에게 가신들은 위축되어, 결과적으로 그의 본진은 기능부전에 빠져 있었다.


"시즈코가 아버님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해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번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아자이-아사쿠라 양쪽을 멸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자이는 하시바 쪽이 처치하겠지. 이쪽이 나설 일은 없어. 아사쿠라는 아버님이 직접 계책을 짜고 계시지. 만에 하나라도 우리들이 나설 장면은 없을 거다. 이 싸움이라면 시즈코와 함꼐 싸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렇게 땡깡을 부려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이게 내 땡깡이라는 것도, 함부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입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듯 하나, 도저히 납득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 노부타다의 태도에 시즈코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우선 노부타다의 가신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이 있어봤자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긴장을 강요당한 그들에게야말로 휴식이 필요하다.

가신들을 떨어뜨려놓은 것으로 비밀의 작전같은 연출을 할 수 있고, 노부타다의 본심도 끌어내기 쉬워진다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 건 하시바 님과 아케치 님 양쪽이 관계되어 있는걸까?"


본심을 들켜 경악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추리는 아냐. 적자이면서도 눈에 띄는 무공이 없는 너랑, 주상을 따라 각지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중신(重臣), 어떻게 해도 비교해버리고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여전히 날카로운 건지 맹한 건지 판단하기 어렵구나. 그래, 나는 초조하다. 애초에 나이부터 다르니까 비교해도 소용없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무공을 세울 수 있는 전장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노부타다도 시즈코 상대로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어서인지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시즈코의 예상은 옳았다. 노부타다의 무공이라고 하면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 토벌이지만, 그건 충분히 판이 깔린 상황을 틈탄 것 뿐으로, 솔직하게 자랑할 수 없었다.

전장에 나간 것(いくさ働き) 자체가 몇 년밖에 되지 않으니, 생애의 절반 이상을 계속 싸워온 히데요시나 미츠히데(光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노부타다 자신도 그렇게 이해하고는 있지만, 마음만 조급해져 버린다.

이대로 대단한 무공도 없이 노부나가의 후계자(後釜)가 되어봐야, 과연 부하들은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인가라고.

하다못해 천하인의 자리에 걸맞는 무공을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하고 싶다고 노부타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내 지론(持論)인데 말야, 인생은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산의 높이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누구나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 그 길은 여의치 않고(不如意) 시련에 가득차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여정(道行)에 망설이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망설인 이유를 '남 탓'으로 해버리면 두번 다시 걸어갈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


"……"


"챠마루 군, 너는 초조해하고 있어. 하시바 님, 아케치 님, 그리고 누구보다도 주상이 걸어오신 산의 높이와 그 발걸음(歩調)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말야, 목표로 하는 정상도,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도,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도 사람마다 다 달라. 타인의 발걸음을 보고 초조해져서 자신의 발걸음이 엉켜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네가 지금 걸을 수 있는 발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쪽이, 멈춰서서 초조해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갈 수 있어"


시즈코의 이야기를 다 들은 노부타다는 볼을 긁었다.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타인을 질투할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해서도 지금은 일단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라는 것이다.

시즈코다운, 에두르면서도 배려에 가득한 말에 노부타다는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ー 이제 됐어! 시즈코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 스스로의 소심함(小ささ)이 싫어진다"


얼굴에 손을 대고 노부타다는 하늘을 보았다.


(이래서는 언제까지나 어린애 취급이겠군)


성인식을 치르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깥쪽 뿐으로, 알맹이는 여전히 어린애인 채라는 것을 노부타다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타인의 무공에 초조해져서 주위에 화풀이나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곤경에 처할수록 뻔뻔스럽게 웃어라, 예전에 시즈코가 했던 말을 노부타다는 떠올렸다.


"그래서, 기분은 나아졌어?"


"나아졌다 나아졌어. 그래서, 말이지. 뭔가 좋은 계책은 없어?"


전환이 빠른 건 장점이네, 라고 내심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잠시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귀 좀 빌려줘. 실은 말야ーー"




8월 13일 밤, 강풍과 뇌우를 동반하는 격렬한 비가 쏟아졌다. 후세에서도 '이날 밤은 폭풍우였다'라고 신장공기(信長公記)나 아사쿠라 가문의 기록에 남아 있다.

옥외에 있으면 1분도 지나지 않아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천둥 소리와 퍼붓는 빗소리로 주위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오오즈쿠 성을 지키는 자들은 다들 안으로 틀어박히고, 얼마 안 되는 보초(物見)들만이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 출진이다!!"


코를 붙잡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 노부나가는 호위대만을 이끌고 오오즈쿠 성으로 출진했다. 그 앞의 야키오 요새는 이미 함락되었기에, 그들은 상처없이 오오즈쿠 성으로 접근했다.

목적지인 오오즈쿠 성의 불빛이 보이게 될 듯할 때, 노부나가는 이변을 눈치챘다. 적측이 야습을 눈치채고 응전하고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즉시 그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달았다.


"쳐라!! 쳐라!!"


노부타다가 이미 오오즈쿠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예상밖의 사태였으나, 이런 계책을 떠올릴 듯한 인물에 생각이 미치자 미소를 떠올렸다.

크게 고함치고 있는 노부타다의 근처까지 말을 몰아가서 뇌우에 지지 않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키묘!! 내게 상의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노부나가의 목소리를 들은 노부타다가 돌아보았다. 그는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님!! 뇌우는 오다 가문에게 길조(吉兆)!!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습니까!!"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다들!! 키묘에게 지지 마라!! 쳐라!!!"


노부타다의 호위대에 더해, 노부나가의 직속 부하들도 공성에 가세했다.

이 사태에 대해, 오오즈쿠 성의 수비를 맡은 사이토 교부쇼유(斉藤刑部少輔)나 수하의 병사들은, 시종 선수를 빼앗기고 있었다.

노부타다의 군세의 접근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성문에 접근을 허용하여, 칼날이 목젖에 들이대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뇌우에서는 우군이 눈치채고 달려와줄 가능성은 낮았고, 원군을 부르려 해도 오다 군의 포위를 뚫고 어느 쪽으로 달리면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혈기왕성한 오다 군을 상대로 겨우 수백 명의 피로할 대로 피로한 병사들만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폭풍우를 받으면서도 기세등등한(逸る) 오다 군과 대조적으로, 코앞까지 적이 쳐들어온 상황이 된 아사쿠라 병사들의 사기는 계속 떨어졌다.


"아버님의 직속에 지지 마라, 쳐라!!"


이리하여 노부나가와 노부타다의 전격(電撃) 작전에 오오즈쿠 성은 겨우 몇 시간만에 함락되었다. 오오즈쿠 성의 낙성(落城)은, 비가 그친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오오즈쿠가 함락되었다는 것이냐!"


오오즈쿠 성 함락 소식에 아자이-아사쿠라는 공황 상태에  빠졌으나, 오다 군도 적지않게 동요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야키오 요새를 함락(調略)시킨지 겨우 이틀,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의 국면을 맞이한다.

노부나가의 전격적인 행동에, 가신들조차 상황 파악이 필요한 상태였다. 히데요시는 히데나가(秀長)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그밖의 주요 가신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설마 주상께서 친히 함락시키실 줄이야…… 키묘 님께서 먼저 공격하셨다고 하니, 우리들은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히데요시는 탄식하면서도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지도를 펼치고는, 아자이와 아사쿠라가 완전히 분단된 상태를 붓으로 적어넣었다.

전령이 가져온 서신에는, 노부나가는 그대로 쵸노 성(丁野城)을 공격하러 가고, 노부타다는 오오즈쿠 성의 수비가 맡겨졌다.

이 때, 통상적으로는 일가친지까지 몰살될 장병들을,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본진으로 쫓아버렸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는지, 히데요시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히데요시만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무장들도 마찬가지로 노부나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부나가는 쵸노 성을 책략(調略)을 써서 수중에 넣고, 성을 지키던 적병들을 쫓아낸 후, 쵸노 성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것들이 끝나자, 노부나가는 쵸노 성 부근에서 무장들을 소집했다.


"오늘 밤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알겠느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놈들의 등 뒤를 찔러 아사쿠라를 섬멸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재삼 무장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말에는 망설임이 전혀 없어, 그가 오늘 밤의 아사쿠라 철수를 확신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예언이라고도 해야 할 발언을 들은 무장들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발언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아자이-아사쿠라 모두 시체나 다름없으며, 그걸 겨우 며칠만에 해낸 노부나가의 수완은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신이 아닌 인간. 적이 후퇴하는 날짜까지 맞출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쉽게는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노부나가의 분노를 사더라도 아사쿠라 철수의 근거를 들었더라면, 그들의 뼈아픈 실패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리라.




"역시, 어떤 무장도 움직일 기색이 없네"


해가 저물어도 전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시즈코는 탄식했다.

노부나가가 거듭 아사쿠라 군의 철수를 예고했으나,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등 무장들의 진은 고요했다.

지도와 전황을 보면 일목요연한데, 노부나가가 설명하지 않은 걸까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쿠라 본진은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있다. 본진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보이는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들이 어떤 심경에 빠질 것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를 저지르며 가신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요시카게는 무리를 무릅쓰고 출병했다.

아사쿠라 가문의 주력 중신들이 출진을 거부하여, 장병들의 사기가 낮은 상태에서의 출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함락되었다.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장병들을 붙잡아둘 힘은 없었다. 여기서 철저 항전을 부르짖어봤자, 누구 하나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퇴로를 차단하고 억지로 싸우는 상황에 몰아넣어도 장병들의 마음은 철수로 기울어져 있다. 싸우면 일단 이길 수 없고, 여기서 패배하면 아사쿠라 가문은 붕괴한다.

싸움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솔선하여 오다 가문과 내통하는 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키묘 님은 오오즈쿠 성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그렇다치고…… 슬슬 아케치 님 쯤은 뭔가 행동을 시작할 것 같긴 하려나ー"


아사쿠라 야습에 관해 시즈코는 호출되지 않아서, 아자이의 견제 역할로서 사이조, 타카토라와 함께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태평한 모습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와 별의 운행에 대해 떠올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느긋한 시간은, 소성(小姓)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리에 끝을 고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이 급히 진으로 오셨습니다"


"서울러서 이쪽으로 안내해주세요. 아마도 시간 여유는 없을테니까요"


"예? 옛"


마치 미츠히데의 용건을 알고 있는 듯한 시즈코의 말에 멍해졌던 소성이었으나, 즉시 발길을 돌려 미츠히데와 세 명의 가신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무례함은 알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없기에, 서로 속을 떠보는 것은 생략했으면 합니다"


"용건은 아사쿠라 군에 대한 야습에 관한 것이지요? 주상께서 재삼 말씀하신 듯, 일단 틀림없이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겠지요"


"저 자신의 우둔함이 아쉽습니다만, 지금 가장 주상의 마음을 이해하고 계시는 건 시즈코 님이시지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도 섞여 있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시즈코의 서두(前置き)에 미츠히데는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누구이건, 가르침을 청하는 경우라면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에겐 할 수 없는 행위였다.

바로 그렇기에,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오다 가문 가신들(家中)의 필두(筆頭)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각 진영의 포진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아사쿠라 군의 시점에서 생각해 주십시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놓고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마주보았다. 탁자 위에는 현재 상황을 나타낸 지도가 놓여 있었다. 시즈코는 그 지도에 붓으로 작은 선과 화살표를 써넣었다.


"아사쿠라 군의 장병들은,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겠죠. 두 개의 성이 함락된 지금, 아사쿠라 군은 오다니 성(小谷城) 부근(近辺)의 방벽을 잃은 상태입니다. 방어 시설도 없는 본진에서 철저 항전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흠"


"다음으로 아사쿠라 가문 당주인 요시카게입니다. 그는 과거의 실패와 이 전황에 의해 구심력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이 싸움에서도 '몸이 안 좋아서'라며 출진을 거부한 가신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자이의 운명(命運)이 다한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지금,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방어하는 쪽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철수한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쪽으로 변절하는 무장들이 생겨나니까요"


"과연. 거기까지 읽는다면 아사쿠라 군이 오늘 밤 철수한다고 주상께서 예고하신 것도 당연한가요"


요시카게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 지금까지처럼 우유부단(優柔不断)하게 행동하다가 기회를 놓치면, 이번에야말로 가신들에게 버림받게 되어 그 목을 선물로 오다 가문으로 변절하려는 자가 나올 가능성까지 있다.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도, 요시카게는 즉각 결단했다. 물론, 이치죠다니로 철수하는 결단이다.


요시카게의 입장에서는 첫 영단(英断). 하지만 노부나가는 요시카게가 그렇게 결단하는 것까지 계산해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후퇴한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슬슬 아사쿠라 군의 철수가 시작될 때가 아닐까 합니다"


2만이나 되는 군을 이끌고 철수하려면 신속한 행동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사쿠라 군은 지금까지 신속한 행군을 해본 경험이 없다. 게다가 전날의 폭우에 의해 지면은 진흙탕으로 변해 있는 상태이다.

평소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 것은 명백했다.


"아케치 님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미츠히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밀어진 서신을 받아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저희 진에 남아있는 텟포슈에 대한 명령서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명령서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따르라'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제 몸은 뒤의 두 사람에게 맡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쿠라 군을 섬멸하는 것이 주상의 목적입니다. 누가 무공을 세웠다, 라는 것에 집착하여 공격할 기회를 놓치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주상이시니까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도록 하지요. 이 자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미츠히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뒤에 있는 가신들도 그에 따랐다. 시즈코도 그를 따르는 모양새로 미츠히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기를 들자, 미츠히데는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명령서를 품 속에 넣더니 재빨리 나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을 너무 편드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던 타카토라였으나, 미츠히데가 떠나가자 의문을 입에 올렸다.

쓴소리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구석구석 골고루(満遍なく) 지원하고 있던 시즈코가, 미츠히데에게만 눈에 보이는 지원을 한 것이 그에게는 의문이었다.


"딱히 아케치 님이 아니더라도, 처음에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라도 괜찮았어. 아무도 안 왔다면 텟포슈를 빌려줄 일도 없었지. 이번의 주상의 발언을 가신들 중에서 가장 믿고 있던 것이 아케치 님이었던 것 뿐이야"


"하지만, 굳이 텟포슈를 다 빌려주실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는 분명히 있어. 생각의 실마리를 줄까? 철포는 쏘면 큰 소리를 내지. 이걸로 대답을 알 수 있을거야"


"…………아!"


힌트를 받은 타카토라는 곤혹스러워했으나, 이윽고 어떤 해답에 도달했다. 이해한 타카토라를 보고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야습의 개시를 알리는 효시(嚆矢)가 되지. 내 지원은, 맨 먼저 공격한다는(一番槍) 신호를 다른 무장들에게 보낼 권리를 얻은 것에 불과해. 뭐, 전투가 시작한 걸 알게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나올 것 같긴 하지만"


신식총이던 화승총(火縄銃)이던, 화약이 폭발하는 이상 큰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진다. 소리가 들리면 눈치빠른 사람은 깨달을 것이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고, 그것을 오다 군이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시즈코는 어깨의 힘을 빼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뭐, 내일에는 결과가 나올거야"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야음을 틈타 철수할 것을 결정했다. 그는 약간의 병사들을 남겨 소리를 내도록 명령했다.

사기를 북돋우는 함성(鬨)을 지르면 철수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을 오다 군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사라면 도망치는 것도 쉽다. 밤이 지나면 철수를 들키기 떄문에, 남겨놓는 병사들은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자들을 골랐다.


하지만, 그런 잔재주는 확신을 얻은 노부나가에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함성의 보고를 들은 오다 가문 가신들은 아사쿠라가 철수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나, 노부나가와 미츠히데는 철수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철수하는 아사쿠라 군을 최초로 덮쳐간 것은 미츠히데였다. 그와 노부나가는 다른 무장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군이 없다는 것은 미츠히데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쏴라!!"


아사쿠라 군의 후위(殿)에 따라붙자마자, 미츠히데는 우선 텟포슈로 선수를 쳤다. 어둠 저편에서 굉음과 함께 총탄이 날아온다. 아사쿠라 군은 어지간히 혼이 빠질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아사쿠라 군은 패닉에 빠졌다. 차례차례 병사들이 쓰러져가는 참상에, 모두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생각했다.

종자(従者)는 주인(主人)을, 주인은 종자를 밀어젖히고 도망치려고 하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다른 무장들이 참전했다면, 이렇게 사정없이 총탄의 비를 쏟아부을 수는 없었으리라.


텟포슈로 실컷 아사쿠라 군의 공포를 부추긴 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케치 군의 주력이 아사쿠라 군을 덮쳐갔다. 이미 싸울 의사조차 없는 아사쿠라 병사들이었으나, 아케치 군은 용서없이 베어넘겼다.

아케치 군이 전진할 때마다 진흙투성이의 아사쿠라 병사들의 시체가 나뒹굴며 시산혈해(屍山血河)가 이러할까 싶은 광경이 벌어졌다.

주변에는 피와 내장이 풍기는 쇠(鉄)와 녹(錆) 냄새가 가득하고, 여기저기에 타다 버린 말이나 무구, 군기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사쿠라 군이 얼마나 혼란에 빠졌는지 쉽게 엿볼 수 있는 증거였다.


아케치 군은 아사쿠라 군의 배후를 급습했다. 갑작스레 총격을 얻어맞은 아사쿠라 병사들은, 적의 규모도 어디서 공격받은지도 모르고 어쨌든 앞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앞은 전날의 폭우로 질퍽거려서 마음대로 전진할 수 없다. 이윽고 죽음은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여 혼란에 박차가 가해졌다.

앞에 가는 병사를 짓밟더라도 자신만은 살고 싶다며 무턱대고(遮二無二) 도망친 결과, 아군을 짓밟더라도 도망치려고 하는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뭣이라!! 주상과 아케치 님이 아사쿠라 군에게 야습을 걸었다고!!"


다음 날 아침, 아사쿠라 군을 추격할 것을 자신이 명령한 자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노부나가가 소탕전에 나선 것에, 오다 가문 가신들은 겨우 깨달았다.

준비를 하면서 함성 소리에 완전히 방심해버렸던 그들은, 다급하게 노부나가를 쫓았다. 그들이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것은 토네자카(刀根坂)의 바로 앞이었다.

도중의 시체나 무구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볼 때 격렬한 소탕전이 벌어진 것은 명백하여, 오다 가문 가신들은 스스로의 실수를 이해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다"


가신들에게는 아사쿠라 병사들의 참상보다 노부나가의 조용한 분노 쪽이 무서웠다. 노부나가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갑작스레 명령한 게 아니라, 사전에 선봉 무장까지 결정된 상태에서의 태만이다.

결과적으로 무공은 미츠히데가 독점하게 되었으나, 그에 대한 불만을 표정에조차 드러낼 수 있을 리도 없어, 실수한 무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선봉을 맡았던 자는 앞으로 나와라"


노부나가의 말대로 시바타나 히데요시가 앞으로 나섰다. 노부나가는 전원에게 한 방씩 주먹을 내려쳤다. 범한 실수에 비해 지나치게 온건한 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참수 명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이걸 기회로 아사쿠라를 섬멸한다"


"옛!"


"낑깡(미츠히데)! 너는 이놈들을 이끌고 아사쿠라를 추격해라"


그 순간, 아사쿠라 토벌의 최대 공로자는 미츠히데로 결정되었다.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킨 공적은 미츠히데가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해도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라는 입장에 불과하다.


"송구스러우나 주상, 저들은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온 모습입니다. 병사들도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이니, 헛되이 병사를 소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은 가장 피로가 적은 시즈코 님의 군을 빌리고 싶습니다"


"녀석은 오다니 성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부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미츠히데의 말에 노부나가는 노려보면서 의문을 말했다. 싸늘한 눈빛을 앞두고 미츠히데는 평소의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미 불러 두었습니다. 이제 곧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미츠히데의 말이 올바른 것을 증명하듯, 노부나가는 조금 멀리서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저만큼 일사불란하게 겹치는 말발굽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도가 높은 군은 하나 뿐이다.


"핫! 손이 빠른 녀석이구나! 좋다. 아까의 무공을 봐서, 멋대로 시즈코를 불러들인 것은 불문에 부치겠다"


"관대하신 조치,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곳에 있는 자들은 병사들을 쉬게 한 후 오다니 성으로 돌아가라! 빠르게 준비하라!"


다른 무장들은 당했다, 라고 이를 갈았다. 만회하려면 시즈코 군의 텟포슈가 필요해진다. 없어도 된다고 하면 좋겠지만, 자군이 입을 피해의 단위가 달라진다.

시즈코 본인이 왔다고 하는 이상, 텟포슈도 데려왔을 것은 확실하다고 무장들은 생각했다. 미츠히데의 교활함과 치밀한 계산에 무장들은 새삼 분노를 느꼈다.


"기다리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주상"


사반각(四半刻) 후, 시즈코가 노부나가가 있는 진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일별한 후, 미츠히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낑깡, 텟포슈는 몇 명 데려가겠느냐"


"가능하면 돌파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300명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즈코, 텟포슈는 몇 명 데려왔느냐"


"오다니 성 앞의 진에는 겐로를 필두로 예비병을 포함하여 700. 이쪽에는 600을 데려왔습니다"


순간 무장들이 웅성거렸다. 시즈코의 텟포슈는 1000명이라는 대부대다. 하지만 방금 그녀의 말을 믿을 경우, 약간이지만 텟포슈의 총 숫자가 늘어난 것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텟포슈가 있다는 것은, 만회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 다양한 속셈을 품고 다음에 취할 행동을 생각했다.


"600이라…… 400을 남기고, 나머지 200은 오다니 성으로 배치한다. 너는 400의 텟포슈를 이끌고 낑깡과 함께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켜라"


"옛!"


노부나가에게 인사한 후 시즈코는 즉시 준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다소 느긋하게 행군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속도가 필요해진다.

미츠히데가 어떤 배치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텟포슈와 호위 역할의 병사들이 최전열(最前列), 그 뒤에 미츠히데의 주력부대, 후방에 시즈코의 군이라는 배치일거라고 짐작했다.


"하시바 님, 지금,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앙? 뭐냐, 시즈코"


오다 가문 가신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시즈코는 히데요시에게 다가갔다.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무장들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시즈코는, 생긋 웃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봉서(封書)를 내밀었다.


"네네(ねね) 님으로부터 편지를 맡아두었습니다. 내용은 부끄러우니까 '진에서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뭐? 어…… 어어, 미안하구나. 하여간 네네 그것이 참"


일순 멍한 표정을 지은 히데요시였으나, 즉시 헤벌레한 표정을 떠올렸다. 멀리서 보고 있던 무장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히데요시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가짜 웃음(作り笑い)이었다.

히데요시는, 시즈코가 뭔가 타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건네줬다는 것을 즉시 헤아렸다.


"하시바 코이치로(羽柴小一郎) 님께 전해드리려 했습니다만, 그런 편지는 형님께 직접 전해 주십시오, 라고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고맙다, 시즈코. 나중에 읽지"


거기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무장들도 시즈코들로부터 의식을 돌렸다. 문제없지만 방심은 하지 말자고 시즈코는 긴장을 조였다.

히데요시에게 건넨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면 확실하게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도 내용물은 흥미를 끌지 않는 것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딱히 히데요시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지만, 야차(夜叉, 아자이 나가마사) 씨가 꼭 오다니 성 공격에 참가하고 싶다고 필사적이니)


친지(身内)나 지인이라도 있는 걸까, 라고 시즈코는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오다니 성의 예전 성주이자, 아자이 가문의 당주인 나가마사가, 한번 더 아버지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싶어해서였지만.

시즈코의 속셈과 나가마사의 속셈, 그리고 히데요시의 속셈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오다니 성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다. 그것이 후에 히데요시의 대활약으로 이어지는 무공의 원천이 된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 나중에 보자고"


가벼운 인사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자기 진이 가까워지자 히데요시는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타케나카 한베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굉장한 기세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어깨로 숨을 쉬고 있는 히데요시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서둘러 돌아가자. 오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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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7 1573년 8월 상순



정신없었던 6월과 정반대로, 7월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가끔 나가요시(長可)가 출전하고, 불완전연소였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정도로,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사이조(才蔵)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호위에 전념하고, 타카토라(高虎)는 쿠로쿠와슈(黒鍬衆)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기에 빈번하게 집을 비우게 되어, 얼굴을 보이는 적이 드물었다.

한편, 케이지(慶次)는 카게카츠(景勝) 등 인질의 감시라는 명목으로, 매일 그들과 함께 놀러다니고 있었다.

시즈코는 집들이 연회(新築祝い) 소동으로 정체되어 있던 정무를 처리하는 나날을 보냈지만, 정무 담당자들이 사무 작업에 숙달되기 시작했기에 의사 결정을 하면 나머지 처리를 이어받아주게 되어, 직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는 상태와는 인연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 평온한 나날들도, 7월 중순에 들어서자 끝을 고했다. 노부나가가 드디어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가문 토벌의 호령을 내렸다.

이 출전에서는 노부나가 스스로가 총대장으로 출전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구(旧) 키묘마루(奇妙丸))도 부대장이라는 지위로 노부나가를 따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호출되어, 그녀 자신도 출전하게 되었다. 오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노부나가의 의지(意気込み具合)를 내외에 천명했다.


"에ー, 이번 싸움에서 주상(上様)께서는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시키실 생각이십니다. 상대도 물러설 곳이 없기에 죽기살기로 저항할 것이 예상됩니다. 방심하다가 다치거나 하지 않게 빈틈없이 대응하죠"


평소대로 어딘가 맥이 빠진 시즈코의 훈시에, 작전회의에 모여든 평소의 멤버 8명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들은 아사쿠라 가문의 대응에 집중합니다. 아자이 가문 측의 공략은 하시바(羽柴) 님이 진행하고 계셨기에, 지금까지대로 하시바 님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괜히 나섰다가 불화를 부르면 본말전도니까요. 하시바 님 측에서 의뢰가 있으면 대응하는 정도로 좋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주상으로부터 하명이 있겠죠"


그 말대로, 시즈코는 자군(自軍)을 아사쿠라 가문에만 집중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전술한 대로, 히데요시(秀吉)가 선임으로서 아자이 가문에 대응하고 있던 것도 있지만, 아사쿠라 가문이 사용하는 성채(城砦)가 아자이 가문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였다.

특히 오오즈쿠 성(大嶽城)은 이 싸움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이 된다. 오오즈쿠 성은 아자이 가문의 거성(居城)인 오다니 성(小谷城)과 마찬가지로 오다니 산(小谷山)의 북쪽에 위치하는 성이다.

오다니 성보다 북쪽에 지어져, 아사쿠라 가문의 거성인 이치죠다니 성(一乗谷城)의 중계점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이곳을 노부나가에게 함락당할 경우, 아자이 가문은 목젖에 칼이 들이밀어진 상태가 된다.

아자이 가문은 아사쿠라 가문과 완전히 분단되어, 병력 수에서 밀리는 아자이-아사쿠라 측의 유일한 이점인 연대(連携)를 취할 수 없게 되어 각개 격파당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시카가(足利) 쇼군(将軍) 가문이 쿄(京)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뭔가 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은 쇼군 추방 후에 이루어질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이름뿐인 쇼군이니까, 아예 처치해 버리면 뒷탈(後腐れ)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말야ー"


"주상께서는 쇼군을 살해한 찬탈자라는 악명을 싫어한 거겠죠. 거기에 형식상으로는 상대가 항복하고 그걸 받아들인 것이니, 사리(筋)는 지켜야 해요"


"흐ー음"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가 대답했다. 딱히 깊은 의도는 없었는지, 나가요시는 성의없는 대답을 하여 대화를 끝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오우미(近江)로 출전하여, 도중의 작전회의에서 말하겠어요. 평소대로, 준비를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작전회의는 종료에요. 예정일까지는 각자 예기를 북돋아주세요"


아자이-아사쿠라 전투 출전의 작전 회의는 단시간에 끝났다.

기본적으로 시즈코가 전달 사항을 늘어놓았을 뿐, 상의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었던 것이 원인이다. 노부나가는 아자이-아사쿠라 두 가문의 영토를 빼앗은 후, 엣츄(越中) 일향종(一向宗)까지 박살낼 생각이었다.

엣츄 일향종은 에치고(越後), 미노(美濃), 에치젠(越前)에 둘러싸이게 되어 완전히 갈 곳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노부나가에게 굴복하거나, 몰락해가는 타케다(武田)에게 비호를 요청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포자기하여 어딘가로 쳐들어가거나를 선택하게 된다.

엣츄 일향종이 그것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노부나가로서는 상황이 좋았다. 엣츄 일향종만 처리하면,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의 병력은 키슈(紀州) 문도(門徒)들만이 남게 된다.

혼간지는 히에이 산(比叡山) 등의 종교 세력(寺社勢力)과는 달리, 자체적인 승병(僧兵) 집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강점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도들을 동원한 잇코잇키(一向一揆)라는, 필요할 때 임시로 편성되고, 용무가 끝나면 해산되는 자유도가 높은 전력이다.

그 기초는 문도들이며, 그것이 감소하면 필연적으로 혼간지의 영향력은 약체화된다.

따라서 노부나가는 동일본(東日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엣츄 일향종의 씨를 말려, 혼간지의 문도를 자기 영토의 서쪽에만 한정시킬 생각이었다.


"이걸로 오케이"


시즈코는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여 노부나가에게 보낼 서신을 준비했다.

이번의 싸움에서는 공격이 아니라 후방 지원에 전념할 필요가 있었다. 오우미는 영토의 중앙에 비와 호(琵琶湖)가 존재하는 관계상, 필연적으로 평야 부분이 적어져 영토 대비 수확량이 다른 곳보다 떨어진다.

그렇기에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은 어렵고, 이세(伊勢)나 미노, 오와리(尾張)에서도 군수물자를 운송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선임인 히데요시도 물자 보급에 관해 미노로부터의 지원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이번에 전군이 오우미에 전개하게 되면, 물자의 조달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 우려를 회피하기 위해서도,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가 병참을 담당하여 과부족없이 물자 공급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 군이 움직이면 인질인 요로쿠(与六) 군들은 어떻게 하지? 케이지 씨에게 맡길까. 나머지는 이걸 쇼우(蕭) 짱에게 맡기고, 출납(出納) 관리는 아야(彩) 짱이 하니까…… 음, 이거면 되겠지?"


필요 서류를 작성한 시즈코는, 소성(小姓)을 불러 쇼우에게 전달하도록 명령했다. 그 후에는 쇼우와 아야가 필요한 것을 갖춰서 후방지원부대에 연락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오다 가문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인 병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지 경영도 순조롭고, 이번의 싸움에서 받을 영향도 적지. 고노에(近衛) 님은 쿄로 이주하신 후에 칸파쿠(関白)가 되실 게 확정되었으니…… 고서(古書) 편찬(編纂) 사업도 본격화되려나"


오우닌의 난(応仁の乱) 이후의 혼란기에 귀중한 고서가 유실되고, 지금도 여전히 고서가 흩어져 없어지고(散逸) 있는 것을 걱정한 시즈코는, 역사적 사실에서는 하나와 호키이치(塙保己一)가 편찬한 '군서류종(群書類従)'과 마찬가지로, 흩어져 없어진 고서를 편찬하는 사업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다만, 이 사업은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寺社)에 다대한 영향력을 갖는 사키히사(前久)의 협력이 필요불가결했다.

다행히도 보전 사업에 흥미를 보인 사키히사는 시즈코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다만, 현물을 양도받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즉, 원본을 빌려서 사본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편찬하는 방식이 된다.


방대한 시간과 인원, 비용이 필요해지는 것 치고는 이익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돈보다도 꾸준히 이어진 역사의 집대성인 고서가 사라지는 것을 문제시하여, 잉여(余剰) 기미였던 개인 자산에서 비용을 내기로 약속했다.

문화에 가치를 인정하고 고서를 남기려고 하는 사업은, 의외로 조정을 포함한 공가 사회나 종교 세력 등의 문화인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에서는 10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일본후기(日本後紀)' 전 40권이, 사본이기는 하나 15세기 이래 1세기를 거쳐 재결집하게 되었다.

조정 비장(秘蔵)의 서적에 대헤서도 사본 제작 허가를 얻을 수 있었고, 공가나 종교 세력들이 비장하고 있는 다양한 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해지며, 단시간에 사본 제작이 끝나는 고서 따윈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카미교(上京)가 불타버렸지만, 그게 없었으니 고서들이 남아있던 걸까? 뭐, 어쨌든 서적의 소실이나 분실은 후세에 큰 손실이니까, 만회가 가능한 지금 전집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해야지"


여담이지만, 하나와 호키이치는 계 1273종의 편집에 40년 가까운 세월을 들였다. 그 이상의 고서가 모일 듯한 시즈코의 고전(古典) 전집(全集) 편찬사업은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사키히사가 칸파쿠라는 조정의 정점에 취임하는 시기에 시작해야 한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편찬에는 고노에 님도 협력해 주실테니, 이후에는 끈기있게 사업을 계속하는 것 뿐이지만 말야"


시즈코가 벌인 고서(※역주: 원문에서 고서랬다가 고전이랬다가 일관적이지 않음) 전집 편찬사업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먼저 가능한 한 고서의 사본을 얻는다. 이 사본을 바탕으로, 기재된 문자를 규격화된 한자와 히라가나(平仮名), 카타카나(カタカナ)로 옮겨적는다.

이것은 고서에 쓰인 문자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규격통일된 표기를 사용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정보로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문자의 통일이 완성되면, 그것들을 활판인쇄(活版印刷, 현대의 원고용지와 마찬가지의 세로쓰기(縦書き) 줄맞춤(段組み) 포맷)하여 서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사본을 그대로 인쇄할 수 있는 목판이 완성되면 종료된다.


"그럼, 달리 일거리는 없고…… 이리 와, 비트만"


방 구석에서 얌전히 있던 비트만들에게 시즈코는 손짓을 하며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전원이 벌떡 일어나서 쏜살같이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시즈코가 비트만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화답했다. 즉시 카이저들도 나도나도 하면서 조르기 시작해,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원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좋아! 산책이라도 할까!"


한동안 오랫만의 스킨십을 즐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날씨도 좋았기에 밖에 나가려고 생각했다.

생각난 김에 하자(思い立ったが吉日)는 듯 갑자기 일어선 시즈코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려다보던 비트만들이었으나, 시즈코가 외출 준비를 시작하자 목적을 헤아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무리의 우두머리인 시즈코가 선두를 걷고, 그 옆 또는 뒤에서 꼬리를 흔들며 쫓아갔다.


"오늘은 좋은 날씨네!"


넓은 정원에 나오자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면서 실컷 햇빛을 쬐었다.

최근 틀어박혀서 사무처리만 하고 있었기에, 오랜만의 태양은 조금 눈부셨다. 비트만들도 시즈코를 따라 제각기 기지개를 켰다.


"내일도 날씨가 좋으면 햇볕이나 쬐는 것도 좋을지도"


좋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빌면서, 시즈코는 비트만들과 함께 걸었다.

다음날은 아쉽게도 비가 올 듯한 날씨였다.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최후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반납하고, 적자인 요시히로(義尋)를 아시카가 가문의 후계자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요시아키 자신은, 쿄를 떠나 빈고(備後) 국으로 하향한다. 적자인 요시히로를 차기 정이대장군으로 만들기 위해 노부나가가 책임을 지고 키워낸다는 이야기였으나, 누구나 요시히로를 인질이라 보고 있었다.

요시아키 자신의 퇴위도 건강 문제(体調不良)에 의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누구의 눈에도 노부나가의 손에 의한 추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썩어도 전 쇼군이라는 위광은 남아서, 그의 생활이 곤궁해질 일은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카가 막부가 존속하고 있지만, 쿄의 백성이나 조정, 공가, 타국의 영주(国人)들은 막부가 멸망했다고 생각했다.

후세의 역사서에는 1573년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 멸망이라고 기록된다.


요시아키가 쿄에서 추방당했기에, 그를 통한 노부나가의 간접적인 지배는 끝나고, 노부나가 자신이 천하인(天下人)으로서 행동하는 시대가 막을 올렸다.

노부나가는 즉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예전 직할지(御料所)를 자신의 영토로 접수하고, 현재의 원호(元号)를 겐키(元亀)에서 텐쇼(天正)로 개원(改元)했다.

또, 지금까지 막부가 하고있던 업무를 자신의 가신이자 교토(京都) 쇼시다이(所司代, ※역주: 무로마치 막부에서의 장관 대리, 차관 정도의 직위)인 무라이 사다카츠(村井貞勝)에게 하도록 명했다.


"시대가 변하겠네. 지금부터는 주상의 시대…… 아니, 다들 왜 그래요?"


쿄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읽으면서 시즈코는 시대의 변곡점(変わり目)을 직접 겪을 수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감회가 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니…… 더워"


그것은 전원이 더위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습을 봐도 명백했다. 올해는 예년보다도 기온이 몇 도나 높아서, 현대에서 말하는 폭염(猛暑)이 이어지고 있었다.

케이지 같은 경우에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사이조는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그럴 기력이 솟지 않는지 잔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털가죽을 두르고 있는 비트만 패밀리, 타마나 하나 등의 동물들도 타는 듯한 햇살을 피해 그늘에 머무르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의 시즈코 저택에서, 기운이 넘친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네요. 출진도 가까워졌으니,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할지도요?"


"그보다…… 어째서 시즈코는 멀쩡한 거야. 나는 더워서 죽을 것 같아"


"어째서라니, 여름은 더운 거잖아요?"


시즈코도 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에 고기압이 상주하기 때문에, 일본의 여름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 기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빙하기(小氷河期)인 전국시대의 여름은, 현대 일본의 혹서일(酷暑日)이 계속되는 작열지옥(灼熱地獄)보다는 꽤나 시원하다.

에어컨에 의한 열섬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포장된 도로의 열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별로 불지도 않는 바람을 차단할 정도로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밀성(気密性)이 높은 건축 양식까지 더해져 실온(室温)이 계속 오르지도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더한 지옥을 실제 체험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가 볼 때, 이 정도의 더위는 다소 불쾌한 정도이며, 케이지들처럼 익어버릴 정도로 덥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네요. 빙고(氷室)에서 수박이라도 꺼내서 먹는 건 어때요?"


수박의 9할은 수분으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시원함(涼)을 연출하는 여름의 단골 과실이라 할 수 있다.

또, 붉은 과육에서 알 수 있듯이 베타(β) 카로틴이나 리코펜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의외로 칼륨도 많이 함유하고 있기에 피로 회복이나 이뇨 작용이 높다.

단지 수분이 많은 단 과실이 아니라,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합리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지만, 그건 수박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ー, 확실히 우물물로 식힌 수박이나 토마토는 맛있지"


"자자, 늘어지지 말아요! 지금 준비하게 할 테니 기운을 내요(しゃきっとしなさい)"


잠시 후 차갑게 식은 수박과, 아까까지 우물물로 차게 식히고 있던 갓 수확한 토마토가 나왔다.


"음ー, 더운 날에는 역시 이거군"


케이지들은 찬물이 든 통에 발을 담그면서, 토마토나 수박을 먹으며 폭염을 이겨냈다.




출진 준비도 끝나고, 예정일까지 한가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시즈코는 농기구를 걸머지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 날은 희한하게 바람이 강해서 더위는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평소에는 나무 그늘이 정위치인 비트만들도, 시즈코의 뒤를 기운차게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는 시원한 날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름의 햇살은 강하다. 시즈코는 수제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흐흥~. 여름이야말로 밭일의 본편(本番)이지요"


쌀은 가을 무렵에 수확기를 맞이하기에, 미묘하게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한 여름에 밭일에 힘을 쏟는다. 여름 야채 등의 가지치기(整枝)나 잎사귀 따기(摘葉), 그리고 수확이 기본적인 작업이다.

익숙한 손길로 시즈코는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가지치기와 잎사귀 따기를 했다. 수확 시기인 야채나 과일은 바구니에 넣고, 솎아낼 것은 땅에 묻었다.


"비트만은 이쪽. 카이저, 그 바구니 갖다줘. 아델하이트, 이 끈 당겨줘…… 좋아, 고정됐어. 이제 놓아도 괜찮아"


비트만 패밀리와 협력하여 밭일을 처리했다. 비트만들도 익숙해져서, 시즈코의 지시에 정확하게 반응해서 일을 척척 해냈다. 점심때를 조금 넘겼을 무렵, 예정된 작업은 종료되었다.


"음ー, 이걸로 완료. 이동을 생각하면 8월 3일이나 4일이 출진일테니, 앞으로 며칠은 밭일을 할 수 있겠네"


기지개를 켠 후, 시즈코는 나무 그늘에서 휴식했다. 비트만들은 시즈코의 주위에 진을 치자 시즈코와 마찬가지로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 살포시 불어와서 햇볕에 탄 몸을 식혀주었다.

기분좋은 따스함(陽気)에 졸음을 느낀 시즈코였으나, 땀을 흘린 채로 잤다간 확실하게 감기에 걸리기에 뺨을 때려 기합을 넣었다.


"좋ー아, 땀을 흘리자. 그 후에 느긋하게 쉬는거야"


카이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시즈코는 벌떡 일어났다. 농기구의 정리를 허드렛일꾼(下働き)에게 맡긴 후, 시즈코는 흙과 땀 투성이가 된 몸을 목욕탕에서 씻어냈다.

목욕탕을 나온 후에는 약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가볍게 사무처리를 하며 보냈다.


출진 전의 긴장감을 띠면서도 느긋한 분위기는, 오다 가문 중진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허락된 약간의 휴식이었다.

조용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전쟁터로 갈 날은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평온한 일상을 그녀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머, 윳키랑 시로쵸코잖아. 희한하네"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입구를 열고 설표인 유키와 시로쵸코가 들어왔다. 두 마리는 시즈코가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소매를 물고 잡아당겼다.

앉아있기만 할거면 이쪽에 신경쓰라, 는 의사표시였다. 시즈코로서도 급한 서류는 아니었기에, 책상 위에 내려놓고 윳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가 일을 중단한 것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비트만 패밀리였다.

그들은 시즈코의 일을 중단하는 폭거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일이 끝났다는 걸 알자 표정을 조인 후 발군의 팀워크로 시즈코의 주위에 포진했다.

정위치(定位置)를 확보하고 승리의 표정(勝ち誇った顔)을 떠올리는 비트만들이었으나, 윳키와 시로쵸코는 자리 순서에 집착이 없는지, 비트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꼬리를 흔들거리며 시즈코에게 아양을 부렸다.


"그렇게 밀집하면 덥거든. 자자, 너는 턱을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했지?"


머리나 턱을 쓰다듬고 있자, 어느 틈에 타마와 하나도 방에 들어와 있었다. 시로가네나 쿠로가네, 아카가네는 열어젖혀진 맹장지 밖에서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시즈코의 주위는 어지간한 동물원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즈코는 뒤에 있던 카이저의 등을 쓰다듬은 후, 그 위에 머리를 올리고 드러누웠다.


"이게 제일 마음이 편해지네"


중얼거리면서 다시 기분좋은 피로를 느낀 시즈코는, 저항하지 않고 의식의 끈을 놓았다.


실컷 밭일을 하고 비트만 패밀리를 시작으로 동물들과 노는 나날을 보내다가 맞이한 출진의 날.

시즈코는 비트만들에게 집을 지킬 것을 부탁하고, 출진을 위해 갑주를 입었다. 전쟁용 복장(戦装束)을 걸쳤을 때, 평소의 느슨한 표정을 떠올리는 시즈코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아자이-아사쿠라와의 싸움도 마지막이다. 이번에 결판을 낸다"


"옛!!"


"자, 출진이다!!"


병사들의 호응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떠올린 시즈코는 출진 호령을 내렸다. 행군을 시작한 지 조금 지났을 때, 시즈코는 카네츠구(兼続)가 전송하러 온 것을 발견했다.

시즈코는 미소를 띠고는, 오른손을 왼쪽 상박(二の腕)에 대고, 왼팔을 위로 굽히는, 소위 말하는 승리 포즈(ガッツポーズ)를 취해보였다.

낯선 몸짓에 놀란 카네츠구였으나, 알통(力こぶ)을 솟게 해보이는 몸짓이라는 걸 깨닫자 미소를 떠올리며 시즈코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어쩐지 의미는 통했다고 시즈코는 느꼈다.


8월 6일, 오다니 성 포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시즈코가 진에 도착했다. 동시에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의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노부나가 측으로 변절했다는 소식이 오다 진영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비밀리에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던 아츠지였으나, 짐짓 오다 측으로 변절할 것을 내외에 선언했다. 이 소식을 받았을 때, 노부나가는 기후(岐阜)에서 오우미로 출진했다.


8월 8일, 노부나가가 야마다무라(山田村) 부근에 포진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아사쿠라는 다음은 없다고 이해했는지 전군을 이끌고 출진하여 키노모토(木之本) 부근에 포진했다.

오다 군과 아사쿠라 군은 타카토키가와(高時川) 또는 야마다가와(山田川)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오다 군은 아사쿠라 군과 대치하면서, 오다니 성의 견제로서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도 병사를 배치했다.


여담이지만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본진을 두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고, 다른 무장들을 어떻게 배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상으로서는 아사쿠라 일문 사람들(一門衆, ※역주: 고유명사인지 그냥 명사인지 확실하지 않음. 일어 위키에는 혼간지의 특정 집단에 한정된 의미로서의 고유명사로 설명되어 있음)이 요시카게의 본진을 둘러싸듯 배치되고, 노부나가와 대치하는 타카토키가와 부근에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義家) 등이 포진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에 대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등을 배치하고, 토라고젠 산에 하시바 히데요시, 그 부근에 노부타다 두 사람이 아자이의 견제로서 배치되었다.

노부나가 본진과 토라고젠 산의 중간쯤에 있는 쵸노 성(丁野城)의 견제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배치되었다. 그밖에 이나바 잇테츠(稲葉一鉄)나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등이 노부나가의 본진 부근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가 어디에 포진했는가 하면, 그건 노부타다의 곁이었다. 하지만, 노부나타의 곁에 진은 있었으나, 정작 시즈코는 그 장소에 없었다.


"토라고젠 산의 요새는 수리가 필요…… 오다니 성의 견제로 텟포슈(鉄砲衆) 250을 배치. 물자는 우선 열흘치를 놔두겠어요. 6일이 지나면 보급부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시즈코 부재의 이유는, 이번의 주 목적이 병참 담당이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로서는 이번 싸움으로 아자이-아사쿠라를 멸망시킬 생각이었기에 확실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총대장인 자신이 여기저기 이동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목된 것이 시즈코이다.

타케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시즈코는 적극적으로 전과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발언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파견 등의 원조를 받는 입장이기에, 다른 무장들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번거로운 방법이네. 하지만 천하가 가끼워지면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테고, 주상께서 움직이시면 영향력이 너무 크니 어쩔 수 없나)


기본적인 배치는 노부나가의 결정이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시즈코에게 일임되어 있었다.

보기에 그럴싸한(体の良い) 조정자 역할을 떠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노부나가가 정치적인 재량을 시즈코에게 맡기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신뢰의 증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토라고젠 산에 물자가 운반되는 대열이 이어졌다. 아자이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도 물자 운반에 사용되는 리어카의 숫자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계책은 나름 효과가 있었던 듯, 아자이 군은 오다 가문이 운용하는 압도적 물량에 전율하고 있었다.


"순조로운 것 같군요"


후방지원부대에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있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마저 내린 후, 시즈코는 타케나카 한베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 순조롭습니다. 이쪽에는 텟포슈를 250 배치하겠습니다. 뭐, 아자이는 남은 병력이 적으니까 공격해 오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만, 만일에 대비해서요"


"이쪽의 조사에 따르면 많아봤자 2000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느낌이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고도 합니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다가는 뼈아픈 반격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방심은 금물이죠. 그런데 어떤 용건이신가요?"


타케나카 한베에다 순수하게 잡담을 하려고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고는 그녀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오다지 성을 함락시키느냐 마느냐에 하시바의 무공은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잡담할 여유 따윈 없다, 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헤아리신 대로입니다. 실은 하시바 님이 시즈코 님께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합니다. 그리 많은 시간은 뺏지 않겠습니다. 잠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아케치 님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이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은 낼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요"


시즈코는 부탁에 응하면서도 내심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미 오다 가문 내부의 유력자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이 무렵, 미츠히데는 다른 가신들보다 발언력이 강해져 있었다. 노부나가의 의도를 이해하여 쿄를 지배하고, 사카모토(坂本)에서는 명군(名君)의 이름을 한껏 드높이고 있었다.

신중 일변도인가 하면, 때때로 대담한 정치적 책략(調略)을 구사해보는 등, 그 일처리 솜씨는 노부나가가 직접 칭찬할 정도였다.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바라지 않는 시즈코가 볼 때는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빨라진다고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가신들이 볼 때는 탐탁찮은 이야기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남은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타케나카 한베에의 안내를 받아 히데요시의 진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작전회의장에서 지도를 앞에 두고 끙끙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히데요시는 한 발 빨리 시즈코를 발견하자마자 생글생글 사람좋은 웃음을 떠올렸다.


"오오! 기다렸다, 시즈코. 아니,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군. 실은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를 지도 앞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무공을 세울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고생에 보답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도 더욱 높은 보수와 지위를 얻고 싶어 필사적이었다.


"실은 여기부터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의견이 갈려서 말이지. 모두와 의논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좋은 의견이 없다. 그래서, 시즈코에게 외부인인 제 3자의 시점에서 본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네…… 원하신다면 괜찮습니다만"


대답하면서도 시즈코는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히데요시의 동생인 히데나가(秀長)만이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대장인 히데요시의 방침이라고는 해도, 외부인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까지 작전회의에 참가해서 머리를 쥐어짠 사람으로는 탐탁할 리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적의(敵意)로도 해석될 수 있는 시선 속에서 위장이 아프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지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번 싸움에서 초점(焦点)이 되는 장소, 그것은 야키오 요새(焼尾砦, ※역주: 검색해봐도 焼尾의 독음을 알 수 없어 임의로 적음), 오오즈쿠 성(大嶽城)이 됩니다. 특히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자이와 아사쿠라의 연락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반대를 무릅쓰고 출진한 아사쿠라는 아자이를 저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지형적 이점(地の利)은 상대측에 있습니다.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히데나가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히데나가가 시즈코의 의견의 허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고 히죽거리는 웃음을 떠올리며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붓을 들어 지도에 뭔가를 그려넣더니 들어올려보였다.


"그건 이걸 보시고도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고 히데나가를 포함한 전원이 지도를 바라보았으나,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케나카 한베에가 즉시 적군의 병력이 시계열적으로 변화하는 모양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늦게 히데나가도 깨닫고 신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핫핫핫, 형님. 보는 법만 알면 실로 명료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오즈쿠 성을 함락시키고, 아자이가 오다이 성에서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기 위해 출진했다고 하죠. 그 움직임이 이 기호입니다. 오다니 성에 남은 병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 뻔하지 않느냐. 오다니 성의 방비가 줄어들었다면, 그 틈을 찔러 공격…… 앗!"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간신히 히데요시도 이해했다. 시즈코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를.


"그렇습니다. 아자이나 아사쿠라가 오오즈쿠 성으로 향한다면, 숫자에서 앞서는 오다 군에게는 그들의 배후를 칠 호기입니다. 숫자에서 밀려 신중해져 있는 상대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어정쩡한 병력으로는 탈환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을 파견하면 본진이 함락됩니다. 유일한 연락로는 분단되어, 서로의 생각(思惑)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완전히 외통수로 몰아넣은 반상(盤面)입니다.


타케나카 한베에가 부채로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와 의미를 해설하면서 설명했다. 히데요시의 가신들도 그제서야 시즈코의 뜻을 이해하고, 동시에 경탄했다.

머리를 맞대고 계속 고민했던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시즈코는 너무나 간단히 깨닫고 지적해 보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만, 동시에 질 수 없다고 분발하게 되었다.


"즉, 우리들만으로 야키오 요새와 오오즈쿠 성, 이 둘을 함락시키면 대 전공(大戦功)이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형님!"


"말 안해도 알고 있다! 과연…… 이 둘, 아니 오오즈쿠 성만이라도 함락시키면 승리의 저울은 우리들에게 기울게 된다!"


"주상께서 저 위치에 본진을 두신 것도, 이걸 내다보신 것이겠지요. 아마도 며칠 안에 뭔가 움직임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 때 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고 시즈코는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여 시간을 추측했다. 지금부터 출발하면, 미츠히데가 있는 곳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 계산했다.

미츠히데의 군은 유격대이기에 규모가 작아서,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배치에 그다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내일은 아사쿠라 방면의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의 진에 갈 예정이기에, 오늘 업무는 예정대로 끝날 계산이었다.


"그럼 시간이 촉박하여,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즈코는 히데요시들에게 인사했으나, 이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지도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 필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공에 대한 집념이 히데요시 군의 강점이리라. 시즈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몸을 돌렸다.


(과연 시즈코 님. 정확하게 사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그걸 알기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군. 자자, 이번 싸움을 그녀는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시즈코가 작전회의장에서 떠나는 모습을, 히데나가는 즐거운 듯 웃으며 전송했다.




조금 발길을 서둘러서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진에 도착했다. 사전에 통보했기에, 경비하는 병사에게 용건을 전하자 즉시 물자의 반입이 시작되었다.

미츠히데가 공략하는 쵸노 성 공격 부대에는 텟포슈가 100명 배치된다.

히데요시에게 250, 시바나타 마에다에게 450이라는 비율을 보면 적게 보인다. 이건 미츠히데의 부대가 유격대로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인원을 데리고 다니면 필연적으로 행군 속도가 늦어지므로, 100명만 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츠히데의 진에는 텟포슈 외에도 용기병(竜騎兵,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騎兵))이 50기 배치되었다.

텟포슈 100에 용기병 50, 이들을 운용하여 미츠히데는 쵸노 성을 공격한다.


"수고하십니다, 시즈코 님"


물자 반입의 지휘를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미츠히데가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 그러나 생긋 웃는 표정으로 미츠히데에게 대답했다.


"아케치 님"


"아, 딱딱한 인사는 생략하지요. 신속한 물자 반입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쪽의 텟포슈도 탄약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신식총의 배치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다. 높은 공작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제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종래의 화승총이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적에게 노획되는 것을 노부나가가 두려워하여 배치할 곳을 엄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약에 관해서는 시즈코가 초기부터 계속 제조하고 있었기에, 다른 영주들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충분한 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부족해지면 말씀해 주십시오. 추가로 3백 30관(약 500kg)까지라면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주상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약 500kg라는 물량에, 가까이 있던 병사들이나 시동(小間使い) 몇 명이 반응했다. 눈치가 빠른 미츠히데는,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군요. '저희 진에만 해도 3백 30관'이나 더 융통해 주실 여유가 있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본진에는 그 이상'의 여유가 있다니, 그건 정말 잘된 일입니다"


반응을 보인 시동이나 병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여, 다급히 일을 다시 시작했다.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미츠히데로서는 드물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이거 참 안 되겠군요. 나이를 먹으면 저도 모르게 젊은이들을 놀리고 싶어집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자, 이거 서서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이 후의 예정은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저녁이라도 하시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떠보기(腹芸)를 앞두고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히데요시 때와 마찬가지로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저녁식사는 질박(質素)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영양은 섭취할 수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미적 화려함은 없었다.

사치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역시 식사는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 님, 잠시만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식사였으나, 그것은 미츠히데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게 되어 끝을 고했다. 미츠히데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도 긴장을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요"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맡고 있는 사카모토의 도시(街)에 대해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떤 내용인가요?"


사카모토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延暦寺)의 관문도시(門前町)나 석조(石積み) 도시(町)라고 한다. 특히 아노우슈(穴太衆, ※역주: 일본의 근대 초기에 해당하는 쇼쿠호(織豊) 시대(역주: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활약한 석공 집단)의 아름다운 석조가 유명하다. 현대에서는 나라에서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사카모토에서 미츠히데에게 맡겨진 역할은, 엔랴쿠지의 감시와 비와 호의 지배, 거기에 쿄로 통하는 도로 확보다. 그러기 위해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사카모토 성의 축성을 명했다.


미츠히데는 축성에 조예(造詣)가 깊고, 그렇기에 사카모토 성을 비와 호의 물을 이용한 수성(水城) 형식(形式)으로 설계했다. 거기에 대천수(大天守)와 소천수(小天守)를 얹은 호화현란(豪華絢爛)한 성으로 축성했다(※역주: 천수(天守)란 천수각(天守閣)이라고 하는, 일본의 성 중심부에 위치하는 가장 높은 망루 부분을 가리킴).

역사적 사실에서는 텐쇼 10년(※역주: 1582년)에 아케치 미츠히데가 성에 불을 질러 일족과 함께 자살할 때까지, 사카모토 성은 아즈치 성(安土城) 다음가는 아름다운 성이라고 루이스 프로이스가 평가했다.

현재의 사카모토 성의 대부분이 비와 호의 호수 밑바닥에 잠들어있어,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돌담(石垣) 뿐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사카모토의 도시를 한 번, 철저하게 불태웠습니다. 그렇기에 주민들의 반발이 강하여 통치에 조금 애를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시즈코 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사는 집이 불태워진 것에 기인하는 악감정은 아무리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노력할 정도라면, 도로를 정비하여 조금이라도 생활 환경을 향상시키는 쪽이 유익합니다"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시즈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가혹한 의견에 미츠히데는 약간 멍해졌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백성들은 누가 지배자이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지켜주는, 좋은 미래를 주는 지배자'를 환영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도시를 불태운 우리들은 생활의 파괴자이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가재(家財)를 빼앗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품을 사람은 없다. 적지 않게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다.

특히 사카모토의 도시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의 관문도시로서 번성했었다.

엔랴쿠지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단물을 빨고 있던 사람들이 볼 때, 오다 가문은 자신들의 밥줄을 빼앗은 증오스러운 상대이다.


"이걸 전제로 하면, 권력자를 회유하는 것이 흔히 실시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라면 권력자도 빈민(貧民)도 모두 평등하게 한 개인으로 취급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통치를 실시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불만도 나오겠죠. 하지만, 그러한 불만들 중에 '무엇을 해소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가?'를 생각해서 정책을 펼치면 불만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수파를 무시하고 탄압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것은 전원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전원의 최대 행복이 최상. 하지만 신이 아닌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은 사소한 일로도 충돌하는 생물이다. 전원의 최대 행복을 실현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상은 전원의 행복이라고 정해두고, 현실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다.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나은' 정책이 아닐까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


미츠히데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동석하고 있던 아케치 가문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발언을 돌이켜보았다. 자신이 말한 내용은 민주주의의 사상에 가까웠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를 설파해 봤자 찬동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떄문이다. 민주주의에서도 그렇지만, 그런 사상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게 된 후에 사상이 태어나는 것이다.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데 적용하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뿐으로 사회는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진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읽은 남만의 책의 영향이 나왔군요. 죄송합니다, 머리를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아, 예……"


서둘러 변명을 하며 시즈코는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다행히 미츠히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까와 다름없이 멍한 상태였다.


"사카모토니까, 역시 비와 호에 항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수운(水運)은 물론이고, 사카모토의 경관은 훌륭합니다. 이 경관을 즐기는 관광선 같은 것도 운행한다던가…… 그렇게 하여 사카모토에 돈이 떨어지게 되면, 서서히 불만은 사라져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 비와 호는 이런 모양이니…… 항로는 이곳과 이곳을 잇는 느낌으로 어떨까요"


도중에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시즈코는 종이에 비와 호의 모습을 대충 그렸다. 그곳에 사카모토와 오오츠(大津), 아즈치(安土), 나가하마(長浜) 등을 그려넣고 동그라미를 친 후, 그것들을 선으로 연결했다.

간소하게나마 항로를 그린 종이를 미츠히데에게 건네주었다. 읽고 있는 도중에 진정되었는지, 그는 시즈코가 그린 비와 호의 항로 제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항구가 있으면 도시는 사람과 물건으로 넘쳐나지요. 사람과 물건이 모이면 상거래가 시작되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죠.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으면, 사카모토에 떨어지는 돈도 많아져서 불만도 서서히 작아지겠군요"


"네, 네에……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실패작이 되어버린 중형(中型)의 수송선, 그것을 비와 호의 상선으로 개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오, 그건 흥미깊은 이야기군요"


시즈코가 말하는 실패작이 된 중형의 수송선이란, 스크류 프로펠러 수송선이다. 물론, 화선(和船)이 아니라 용골(竜骨)이 있는 배다.

건조된 배는 몇 번인가 사용되긴 했으나, 하천에서 쓰기에는 너무 크고, 해상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라는 저평가를 받았다.

그렇기에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수송선도 비와 호에서 쓴다면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행히 실패작이라고 들었음에도 미츠히데는 수송선을 채용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비와 호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을 무렵에는, 미츠히데도, 미츠히데의 가신들도 시즈코가 이야기한 민주주의 비슷한 사상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것에 내심 쾌재를 부른 시즈코였다. 다만 시즈코는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는다, 라고 미츠히데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깨닫지 못했다.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가 끝, 이라는 식이 되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직전, 미츠히데의 진으로 노부나가의 사자가 왔다. 내용은 미츠히데가 아니라 시즈코에 대한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본진으로 와라, 였다.


호출 소식을 들은 후 시즈코는 바쁘게 움직였다. 식사를 부어넣듯이 마친 후, 병사들의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남은 일에 대한 지시를 빠르게 내렸다.


"정신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뇨아뇨, 천만에요.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또 기회가 있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시즈코는 전송하러 나와준 미츠히데에게 사과했으나, 미츠히데 본인으로부터는 신경쓰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후,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그럼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남겨놓은 병사에게 물어주십시오. 담당자가 대답해드릴 것입니다. 그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는 말을 달리게 했다. 서둘러 달려가는 시즈코의 모습에 미츠히데는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즈코에게는 그걸 눈치챌 여유조차 없었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본진에 도착하기 전에 밤이 되어버린다. 그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시즈코였다.

다행히 말을 혹사시킨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저녁(日暮れ)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본진에 도착했다.


"늦다"


하지만, 노부나가에게서는 입을 열자마자 불만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만큼 급한 용건이 있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면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사죄했다.


"이것을 보아라"


노부나가는 간소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대로 시즈코는 지도를 보았다. 히데요시의 그것과 달리, 적과 아군의 포진 상황 등 자세한 정보가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즉, 아자이와 아사쿠라 양 진영에 정치적 책략의 손길이 깊이 침투해 있다고 해도 좋았다. 아니면 이만큼 상세하게 적의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사쿠라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번 출진을 결정했지. 그렇다면, 요시카게에게 반감을 가진 일족이나 가신이, 노부나가의 정치적 책략에 달려드는 것도 당연한가) 거의 승리, 로군요"


"이유를 말해라"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이 노부나가의 귀에도 들어갔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지도의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키오 요새의 공략이 성공하면, 남는 것은 오오즈쿠 성 뿐입니다.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에 몰립니다. 아사쿠라는 이번에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출진했습니다.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원군으로 달려온 대의명분을 잃게 됩니다"


"계속해라"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사쿠라 군에 동요가 퍼져나가고, 철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이것에는 요시카게도 거스를 수 없겠죠. 하지만, 아사쿠라 군이 철수하려면 본진에서 츠루가(敦賀)까지 가늘고 긴 산길을 지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일직선으로 긴 행군을 강요받게됩니다. 이후에는…… 엉덩이를 창으로 찔러주면 끝나게 됩니다"


"그걸 감안해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노부나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시즈코는 명령받은 대로 노부나가에게 '자신이라면 이렇게 한다'라는 내용을 말했다.

아무래도 큰 목소리로 말할 내용은 아니었기에, 노부나가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지만.


"재미있군. 날씨(天候)에 좌우되지만, 놈들의 혼을 빠지게 할 수 있겠군. 크큭, 그런 그렇고, 이것에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


"계책이라는 것은 '설마 그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군에는 이러한 계책에 딱 맞는 인물이 있습니다"


"유쾌하구나. 야키오 요새의 공략은 내일에라도 끝나겠지. 네 이야기를 듣고 원숭이(※역주: 히데요시)가 필사적으로 계략을 짜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시즈코가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을 노부나가는 어떠한 수단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미츠히데에게 이야기한 내용도 그는 파악하고 있을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만, 미츠히데의 이야기는 흥미의 대상이 아니었는지, 노부나가가 사카모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오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바빠지겠구나"


진심으로 즐거운 듯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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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6 1573년 6월 상순



"에취! 으으……,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케이지(慶次)가 코타로(虎太郎)와 술판을 벌이고 있을 무렵, 시즈코는 유태인 소녀 '모미지(紅葉)'를 대동하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방문 목적은 망고가 수확 시기가 되었기에, 우선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로 한 것이다.

망고는 비교적 빠르게 상하는 과일이다. 현대의 환경에서도 냉장으로 며칠, 냉동이어도 2개월 정도밖에 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간편하게 냉장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전국시대인만큼, 작부(作付け, ※역주: 작물을 심는 것) 시기를 엇갈리게 하여, 수확 시기가 흩어지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년에는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없어 한꺼번에 작부를 해 버렸다.

그 때문에 같은 시기에 대량의 망고가 익어버리게 되어, 수요량을 공급량이 상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생각없이 유통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썩게 놔두는 것도 아깝다.

뭔가 좋은 처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이 집들이 연회(新築祝い)를 틈타 초대객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현대라면 생식(生食) 이외에도 망고 처트니(chutney)나 잼 등으로 가공하여 장기보존도 가능하지만, 하나같이 대량으로 설탕을 사용하는데다, 처트니의 경우에는 귀중한 후추나 다른 향신료 등도 필요해진다.

아직 설탕이나 향신료가 귀중한 전국시대에서는 코스트상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들이 연회에서 생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소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운반하는 걸 돕게 해서. 다들, 주상(上様) 상대로는 위축되어 버려서 말야……"


"괘, 괜찮, 습니다"


모미지는 기특하게도 시즈코에게 작은 주먹을 쥐어보이며 의욕이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본인은 기합을 넣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든든함보다 어린애 특유의 사랑스러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 저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시즈코는 낯익은 세 사람을 발견했다. 도쿠가와(徳川) 가문 가신(家臣)들인 타다카츠(忠勝), 한조(半蔵), 야스마사(康政)였다. 상대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타다카츠를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이 방이면 되겠지. 그럼 간다"


"음. 하나, 둘ー"


구령소리와 함께 한조와 야스마사가 또다시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酩酊)인 타다카츠를 방으로 던져넣었다.

그야말로 집어던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익숙한 동작이었으며, 던져지는 타다카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일단 타다카츠가 무사히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조가 한숨을 쉬었을 때, 두 사람은 이쪽을 바라보는 시즈코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어이쿠, 시즈코 님.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헌데, 뭔가 기묘한 것을 들고 계시군요"


"무엇이라고요ー!"


한조가 시즈코에게 말을 건 순간, 갑자기 각성(覚醒)한 타다카츠가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타다카츠를 던져넣은 방의 바깥은 툇마루(縁側)와의 사이에 있는 복도(廊下)로 되어 있어, 방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사람은 타다카츠의 돌진을 정통으로 받았다.

갑작스런 일에 두 사람 모두 낙법조차 치지 못하고 들이받혀 날려간 기세대로 툇마루에서 정원으로 얼굴부터 다이빙했다.

그것이 그치지 않고, 타다카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격돌에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져 복도를 핥게 되었다.

얼굴부터 정원으로 떨어져 몸을 새우처럼 꺾은 채 쓰러진 한조와 야스마사, 얼굴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어서 몸부림치는 타다카츠.

극히 흔한 복도에서의 대화가,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불명예스러운 참상을 보고, 시즈코는 살짝 모미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다들,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니, 지금 본 것은 잊도록 해"


"네, 네에"


시즈코의 말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모미지는, 시즈코가 손을 떼자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주위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 했다.

시즈코가 다시 타다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타다카츠에 의해 날아간 두 사람이 일어서서 타다카츠와 치고받으며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건, 말릴 수 없겠네"


취객이라고는 해도, 맹장(猛将) 세 사람이 치고받는 것이다.

시즈코 같은 여자가 말리러 들어가봤자 간단히 날아가 버릴 것이 눈에 선했다. 언제 끝날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결판의 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타다카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두 사람도 나름 꽤 술을 마셨다. 그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 같은 걸 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기다려! 두 사람 다…… 우풉, 위험하다……"


"으윽…… 여, 여기는 일시 휴전……"


"그렇…… 군"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이성이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세 사람 다 취객의 벌건 얼굴에서 푸른 색을 넘어서 흙빛으로 바뀌더니, 입을 틀어막고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아마도 측간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하고는 눈을 계속 가리고 있는 모미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눈을 떠도 돼. 그럼 갈까? 모미지 짱"


모두 못본 적으로 하자, 누구에게든 그게 제일 온당한 결과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모미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리하여 그들의 체면은 지켜졌다.


생각지도 못한 소동에 말려들었으나, 그것들 전부를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대량의 망고를 들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기 직전, 예상치 못하게 노부나가와 마주쳐버렸다.


"그 녀석이 이번에 고용한 남만의 계집이냐"


시즈코 뒤에 낯선 소녀가 서 있는 것을 깨달은 노부나가가 모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놀란 모미지는, 그래도 짐을 든 채로 엎드려 절했다.


"네, 착한 아이입니다"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들어라. 흠, 머리는 검지만 눈이 우리와 다르구나. 비취(翡翠)같은 푸른색(碧色)을 띠고 있군. 이런 남만인도 있는가"


모미지의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머리인 흑발이며, 눈동자는 파란색을 띤 녹색이었다.

선교사들과는 약간 느낌(面持ち)이 다른 모미지의 외모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서양인의 골격에 흥미를 가진 건지, 노부나가는 모미지를 자세히 관찰했다.

배려가 없는 시선에 노출되어 위축된 모미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주상, 모미지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 쯤에서 용서해 주십시오"


"딱히 적의를 보인 건 아니다. 신기한 눈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빛의 정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답구나"


턱에 손을 대며 노부나가는 모미지의 눈을 칭찬했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걸 할 리가 없는 노부나가의 말에, 노여움(勘気)을 두려워한 모미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방인(異人)을 품는 것에 대해 뭔가 말하는 놈도 나오겠지만, 내가 허락하겠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하는 한 쓸데없는 소리(文句)는 못하게 하겠노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여, 시즈코. 뭘 들고 있는 게냐? 아아, 아마타마(甘珠, ※역주: 직역하면 단 구슬)이냐"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시즈코가 바구니 속에서 하나 꺼내서 보여주자, 그는 망고의 별명을 말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이 마음에 든 것에 대해 별명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네이밍 센스는 너무 뜬금없어서 다른 사람에겐 이해하기 어렵지만, 간결하게 특징을 포착하고 있었다.


"네, 이번에 수확을 하게 되었기에, 우선 주상께 헌상할 겸, 식후의 감미(甘味)로서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쁘지 않다. 마침 단 과일이라도 집어먹을가 생각했던 참이다. 남만의 케이크인가 하는 건 달지만, 너무 달아서 끈적인다고 느꼈지"


그 한 마디로 망고의 처리방법이 확정되었다. 시즈코는 망고를 주방으로 운반하여, 서둘러 접시에 담아 내도록 명했다.

망고를 생식할 경우,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있는 씨를 피하여 과실을 세 개로 자른다.

씨앗이 있는 중앙부를 제외하고, 양쪽의 과실에 대해 껍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주사위 모양으로 칼집을 넣은 후, 마지막으로 껍질을 뒤쪽에서 밀어 꺾으면 먹기 좋은 형태가 된다.

노부나가에게 제공되지 않은 씨앗이 붙은 부분은, 과육과 씨앗으로 나누어진다. 과육 부분은 혜택(役得, ※역주: 직업이나 업무 수행 중에 얻게 되는 이득을 말함)으로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장으로 들어가지만, 씨앗은 껍데기(外殻)와 속껍질(渋皮)을 벗긴 후에 재배로 돌려진다.


이 망고의 씨앗은, 꺽꽂이(挿し木)와는 별도로 키우기 때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려면 최소한 6년 정도 걸린다.

이것은 시즈코가 해외에서 들여온 다양한 품종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꺽꽂이나 분주(株分け)에 의한 카피가 아니라 씨앗부터 재배하면, 유전이나 돌연변이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경우가 있다.

더 달고, 더 싱싱한 우량 품종을 얻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려고 씨앗부터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 잊을 뻔 했다. 사모님(奥方)들께도 가져다드려"


시즈코는 노히메(濃姫)들에게도 망고를 내놓도록 명령한 후, 모미지와 함께 주방을 나섰다.




시즈코 저택의 집들이 연회는 떠들썩하면서도 탈없이 종료되었다.

그만큼 준비했던 술을 남김없이 마셨는데도 인사불성에 빠진 사람이 없었으니, 에치고(越後) 사람들에는 주호(酒豪)가 많다는 것은 정말이구나라고 감탄했다.

예상대로, 시즈코가 켄신(謙信)과 차분히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신하가 되었다고는 해도, 즉시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내에서도 주목받는 중진(重鎮)인 시즈코에게 거리낌없이 접촉했다가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에게 알랑거린다는 이미지를 주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 각각의 가신들끼리 다툼을 시작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켄신으로서도 남들의 눈이 있는 상태에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의도를 헤아리고 있었는지, 노부나가도 켄신의 태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주(国人)의 비애(悲哀)려나. 마음 속을 터놓고 나누고 싶은 말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럼, 슬슬 괜찮으려나?)


조직끼리 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긴장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오다 가문 가신(家中)들조차 서로 견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아야(彩)를 대동하고 감옥으로 향했다.

시즈코 저택에 갖춰진 지하 감옥은, 단단한 암반이 깎여나가 생겨난 천연의 동굴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출입구는 견고한 쇠창살로 막혀 있어, 빈손으로 갇히게 되면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감옥의 입주자(入居者)는, 사나다(真田) 가문을 섬기는 간자였다.


"깨어 있어?"


"깨어 있다"


감옥의 쇠창살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즈코가 어둠에 대고 말했다. 잠시 간격을 두고, 감옥 안에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되돌아온 것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즉시 이해했다. 타케다(武田) 가문은 유랑무녀(歩き巫女)를 많이 쓰고 있기에, 간자가 여자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는 것을.


"미안해, 부자유스럽겠지만 조금 더 참아줘.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입막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다. 사치스런 소리를 하자면, 손발의 족쇄를 풀어줬으면 하는데"


"그건 당신의 자유를 뺏는 동시에, 당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기도 해. 지금은 풀어줄 수 없어.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나는 건네준 서신 이외의 것은 듣지 못했다"


"서신에서 대략적인 사정은 파악했지만, 그 이외에 알리고 싶은 정보가 있지 않아?"


시즈코의 물음에 간자는 침묵했다. 이건 묵비(黙秘)가 아니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계기를 부여했다(呼び水をさす).


"(지금, 억지로 캐물어봐도 소용없으려나) 뭐, 괜찮겠지. 일단 조금만 더 참아줘. 아, 탈출하려고는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감싸줄 수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만 전하고 싶군. 주군(主)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당장은 올 수 없지만, 반드시 당신에게 달려오겠다고 하셨지"


"알고 있어.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그에게 전하기 위해서도 얌전히 있어줘. 며칠만 참으면 돼. 그럼"


들을 것은 들었다. 그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아야를 데리고 감옥을 나섰다.

시즈코가 말한대로, 사나다 가문의 간자는 며칠 후, 적당한 이유를 붙여 풀어주었다.

그 때 서신의 답장은 들려보내지 않았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있기에, 간단히 구두로 대답을 전하기로만 했다.


"자, 이번에야말로 평화가 올 거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시즈코였으나, 그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사나다 가문의 간자를 풀어준 지 일주일 후. 계절은 장마(梅雨)로 변하여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시즈코가 담당하고 있는 인프라 정비 사업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가 성립한 이래, 정력적으로 인프라 정비에 착수했다.

쿄(京) 주변은 물론이고, 오우미(近江)나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미노(美濃), 오와리(尾張)에 이르는 대동맥(大動脈)을 정비하는 대사업이었다.

미카와(三河)나 에치고(越後)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에야스(家康)가 인프라 정비에 의욕을 보였기에, 조만간 제 2차 인프라 정비사업으로서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금일 하늘 맑음(本日は晴天なり, ※역주: 무선전화설비의 테스트 등에서 쓰이는 표현. 단순히 의미는 '오늘은 날씨가 좋음'이지만, 옛날식의 말투라서 일부러 저렇게 번역함), 이랄까"


장마 기간중에 멀리 나가게 되었으나, 기후 성으로 가는 날은 다행히 맑은 하늘이었다.

우비(雨具) 준비가 필요없었기에 가는 것은 쉬웠으나,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후에 도착한 후에도 날씨가 악화될 기색은 없었다.


"이쪽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역을 맡은 호리(堀)에게 안내된 방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의 부름을 기다렸다. 계획은 순조 그 자체로, 큰 문제도 없기에 보고에 불안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의 여정을 짧게 계산하여, 경비병도 사이조(才蔵)를 포함한 얼마 안 되는 수하만 데리고 왔다.


"이번의 보고에는 딱히 걱정할 만한 사항은 없네. 당초에 휴일(休日) 제도를 도입한다고 건의했을 때는 설명하는 데 한나절이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가 될 때까지 명확하게는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것은 우란분재(齋)와 연말(盆暮れ正月), 설날(正月), 그리고 축제일 등의 특별한 날에 한정되었다.

다만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는 가(假)라고 하는 정기 휴일이 있었다.

매일이 노동이고 몸을 쉴 틈도 없어서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위에 말한 휴일을 제정했다.

막연히 매일 일하기보다, 휴일을 정해 완급을 조절하여, 노동자가 건강하게 페이스 조절(メリハリ)을 하며 일하는 것으로 효율이 올라가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설명했다.

요일의 제정은 오와리에밖에 침투해있지 않기에, 인프라 정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간이적은 휴일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제도는 대단히 단순명쾌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날이 6일 모이면 다음 날은 하루종일 휴일로 했다. 반대로 말하면, 목표 미달이 계속되면 영원히 휴일은 오지 않는다.

이 휴일은 노동에 면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일에 상당하는 급료가 지급되는, 말하자면 '유급휴가'였다. 휴일을 지내는 방법에 규정은 없었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뭘 해도 좋다고 하였다.

노동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술을 마시던 행락(行楽)을 가던 자유였다.

미지의 제도이기는 하나,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은 커녕 유리한 제도이며, 휴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노동자들은 다들 열심히 휴일을 얻으려고 분투했다.

종래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날씨를 이유로 일이 없어도 급료는 나오지 않았기에, 일하지 않고도 급료를 받을 수 있는 특전에 분기(奮起)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부름이 늦네……. 휴일 제도의 성과를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슬슬 부름이 와도 좋을 텐데……"


그런 말을 딱히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생각한 후, 옆에 있는 사이조에게 얼굴을 돌렸다.


"기분 탓은 아니죠?"


"소생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저건 맹장지가 찢어지는 소리일까요?'


"으ー음, 수상한 자(曲者)가 침임했다…… 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일단 확인하러 가죠"


여차하면 사람을 부르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와 수하의 병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소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주의하면서 다가갔으나, 소음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대기실(控えの間)까지 들릴 정도의 소음이 끊기지도 않는 것에, 시즈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긴장을 조였다.


"이 어리석은 놈이!!"


"아, 아버님! 기다…… 커흑!"


노부나가의 노성이 들린 순간, 전원이 유사시(荒事)에 대비해 전투태세에 들어갔으나, 이어지는 노성의 내용을 이해하자 몸에서 힘을 뺐다.

흘러나오는 내용을 볼 때 노부나가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사태는 아니고, 노부나가 자신이 친족 중 누군가에게 격노하고 있다고 전원이 헤아렸다.

시즈코가 눈짓을 하자, 사이조를 필두로 모든 병사들이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돌렸다. 노부나가가 주위를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관여되지 않는 편이 좋은 게 당연했다.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 내가 직접, 그 목을 날려주마!!"


노부나가의 노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시즈코는, 자기가 생각해도 손해보는 성격이라고 어이없어하면서 중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실내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분노한 표정으로 뽑아든 칼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두 명의 남성을 베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두 사람은, 안색이 푸른 색을 넘어서서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코나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인 것은 틀림없었다.

최근 한동안 좋은 일이 계속되어 어지간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웬일로 이 정도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호리나 란마루(蘭丸)가 필사적으로 다독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다가갔다.


"주상, 지나치게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웬 놈이냐! 음, 시즈코냐. 너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 쓰레기들을 처단한 후에 네 보고를 듣도록 하지"


"주상, 무례를 무릅쓰고 간언드리겠습니다. 분노에 휩쓸려 가신을 베면, 후대에 수치로서 전해질 것입니다. 여기는 일단 칼을 거두시고, 일의 전말과 주상의 뜻을 이 시즈코에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가 원인으로 노부나가가 이 정도로 격앙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기에 휩쓸려 가신, 그것도 친족의 목을 날렸다고 하면 불명예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평소답지 않은 시즈코의 장광설이 노부나가에게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게 했는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혀를 차고는 노부나가는 칼을 칼집에 넣어 란마루에게 던져주었다.


"반년이다. 반년의 유예를 주어도 여전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친자(親子)의 연을 끊겠다! 이게 최후의 자비인 줄 알아라!"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내뱉은 후, 노부나가는 어깨로 숨을 쉬며(肩を怒らす) 걸었다. 간신히 칼부림 소동(刃傷沙汰)을 피할 수 있었던 것에 전원이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노하신 주상을 말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색이 새파래진 호리가 시즈코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쓰레기 취급받은 두 사람은 멍한 상태여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는 노부나가의 칼을 받아든 채로 굳어있는 란마루의 어깨를 쳤다.

그걸로 제정신이 든 란마루에게, 호리는 의사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쓰레기라고 불린 두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리라. 란마루는 칼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위험한 외줄타기이긴 했으나 어찌어찌 참극을 회피한 시즈코에게는, 아직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 시즈코, 너는 따라오지 못하겠느냐! 나머지는 물러나라! 바보 아들놈에게는 일에 착수하라고 전해라!"


"(아아,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그럼 여러분,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열어젖힌 맹장지 저편에서 노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진척 보고에 더해, 노부나가의 넋두리(愚痴)를 받아준다는 일거리가 추가되었다. 사이조들에게는 먼저 돌아가도록 전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하여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멍청한 자식놈들이다!"


시즈코가 내민 항아리에서 콘페이토(金平糖)를 한웅큼 집어 입에 털어넣고 거칠게 씹어부수며 노부나가가 내뱉았다.


"노여움의 원인은 이세의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가시마(長島)를 함락시킨 지금, 오와리와 이세와의 해운(海運)은 내가 장악했다. 그렇기에야말로, 오와리와 이세에서 뻗어나가는 도로 정비는 중요해진다. 항구에서 운반되는 물건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상인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 질수록 오다 영지는 윤택해진다. 육로(陸路)의 정비는 속도가 관건인데, 바보 아들놈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혼간지 쪽 놈들에게 허를 찔리는 상황이다!"


(상인들로부터 소문을 듣고있었지만,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구나, 도로정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넋두리에서 사태의 전말에 대해 대략적인 추측을 했다.

이세는 키이(紀伊) 반도(半島)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세 만(伊勢湾)을 장악한 지금, 노부나가는 전국으로부터의 해운을 받아 육로로 연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쿄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럿 있는 쪽이 바람직하다. 설령 다시 오다 포위망이 구축되어 해상 봉쇄를 당하더라도, 육로가 건재하다면 노부나가를 가두는 것은 곤란해진다.

어느 한 쪽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병력 수송도 물자 운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세를 포함하는 지역은 가파르고 험준한(急峻) 지대라서 교통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산을 깎아서 길을 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만, 그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요?"


"다소의 지연이라면 문제삼지 않는다.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놈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납득했습니다"


만회 불가능한 실패가 아니라면, 노부나가는 실패에 대한 처벌을 내리더라도 만회할 기회 또한 준다. 만회할 수 있으면 좋고, 실패하면 거기까지다.

노부나가의 임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몇 번이나 실패를 반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걷는 길이라면, 나도 실패에 대해 고려한다. 그 실패를 연구하는 것으로 뒤를 잇는 자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멍청한 자식놈들은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낭비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도 뒤처리를 해준 이후보다도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덤까지 붙여서 말이지"


"새로이 반년의 유예를 주신 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인가요. 확실히, 그 말씀을 들으면 충분히 온정을 베푸신 것이군요. 이래도 실패한다면, 참수를 당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자,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네 보고를 들어보자"


노부나가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시즈코도 본론으로 들어가며 표정을 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삼스레 보고할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건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다, 고 그녀는 내심 웃었다.


"보고라고 하셔도, 현재 상황은 제 2단계, 제 54공정까지 차질 없이 끝났습니다. 계획보다도 앞서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빠르구나. 제 54공정이라고 하면, '다음 달부터 개시될 예정' 아니었더냐? 예정된 것 이상이라는 것은 훌륭하다. 지금부터도 한층 더 분발하도록"


"감사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약간의 휴가와 포상을 주고 예기를 가다듬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날씨가 나빠지기 쉬운 시기이므로, 노동 환경이나 위생 환경에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마의 시기는 우천시에는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어, 공기(工期)가 늦어지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강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인프라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대사업이므로,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 노동자를 혹사시켜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인프라 사업과는 별도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말해봐라"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하에 따르면 쿄나 오우미 등에서는 물물교환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속히 화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페를 늘린다, 라는 말에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안색에서 추측컨대, 노부나가도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에 대해 유효한 조치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부나가를 무지하다고 비웃을 수는 없다. 경제학 따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화폐를 늘린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리 사고가 유연한 노부나가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 생각하느냐. 역시, 화폐가 문제인 것이냐"


"통화(通貨) 발행에 관한 권한은 조정으로부터 오다 가문이 위임받았습니다. 최상책은 불환지폐(不換紙幣)로 경제를 컨트롤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화(銀貨), 금화(金貨)를 주조하여, 시장의 거래 규모에 맞는 화폐량을 담보하는 것이 급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모자라면, 만들면 된다라. 훗……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한번에 건너뛰는 식(一足飛び)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노부나가는 자조하듯 웃었다. 화폐가 부족하면,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여 투입한다. 대단히 간단한 대책이지만, 그 해답조차 자신은 찾아내지 못했다.

시즈코가 지금도 여전히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평범한 것들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최종적으로 목표한 지점은 보이고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아전(鐚銭, ※역주: 표면이 닳아버리거나 불순물이 섞인 돈)을 구축하고, 새로운 화폐로서 금, 은, 동전을 유통시키는 것이 선결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어째서 화폐가 줄어드는 것이냐? 그걸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


"그렇군요…… 가령 일본 전체에 동전(銅銭)이 1천만닢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발행 당시에는 일본에 1천만닢의 동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을 거치는 과정에서 동전은 마멸되거나, 녹여서 불순물을 섞어 구리(銅)의 비율을 줄이거나 하여 아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아전의 존재와 정전조문(精銭条文)에 의해, 유통되는 화폐의 숫자가 변합니다. 알기 쉽게 절반이 정전(精銭), 절반이 아전이라고 가정합니다. 아전은 5닢에 정전 1닢으로 친다고 하면, 동전 자체는 1천만닢이 있지만, 정전 5백만닢과 아전 1백만닢의 합계 6백만 문(文)밖에 통용되지 않게 됩니다. 당초에 유입된 동전의 숫자보다 화폐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물가가 떨어집니다"


영락전(永楽銭)은 명나라(明)에서 수입하고 있는 동전이다. 화폐 공급량이 제로인 현 상황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는 줄어들기만 할 뿐이다.

지금은 정전이더라도, 언젠가 아전으로 바뀌고, 나아가 화페 가치를 끌어올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 경제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지금이 디플레 경제 상태이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내수의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수를 확대하려 해도, 거래량에 걸맞는 만큼의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시즈코는 기존의 역사를 본받아, 동전뿐만이 아니라 금이나 은의 화폐도 투입하도록 진언했다.


"주상께서 정하신 정전조문은, 금의 '무게'에 대해 교환할 수 있는 '돈'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화폐는 계속 줄어듭니다. 금이나 은을 가공하여 화폐로서 유통시키고, 그런 후에 공공 투자를 하여 내수의 확대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흠…… 금이나 은은 남만과의 거리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걸 우리 나라에서도 사용한다는 것이냐. 당면의 과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조속히 금이나 은을 모아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할 필요가 있겠구나"


"새로운 화폐의 모양 같은 건 정하셨습니까?"


"지나치게 기발(奇抜)해도 쓰기 불편하겠지. 영락전과 비슷한 모양이면서 위조를 방지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위조한 놈에게는 일가친지 몰살(根切り)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옛부터 통화 위조는 중죄…… 일가친지 몰살, 즉 일족 도당을 모두 죽이는 정도가 타당합니다"


"이야기는 결정되었구나. 당장 기사들을 모아라. 기사들에게도 엄한 감시를 붙여라. 금은으로 돈을 만드는 것이다. 사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부터 통화 제조에 종사하는 것은 엄격한 감시 하에 놓였다.

에도(江戸) 시대에서는, 에도 막부(江戸幕府)가 통화를 제조하는 킨자(金座), 긴자(銀座), 도우자(銅座)라는 화폐주조기관을 설립하고, 각각의 기관(座)에 통화를 제조하게 했다.

특히 가장 가치가 높은 금화를 주조하는 킨자는, 막부로부터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고위의 직책(役職)에 부임할 수 있는 가문을 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으로서 채용될 때는 서약서의 의무화, 작업자에 의한 상호감시체제, 봉행소(奉行所)로부터의 순시(巡視) 등이다.


특별히 에도 막부가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도 지폐 제조에 관한 기술은 극비 취급이 기본이며, 관련되는 직원이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제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서약서의 의무화, 직원의 상호 감시, 제 3자에 의한 순시 등의 규정이 필요하겠군요. 각 직원에게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 자를 밀고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말해두면 배신자도 나오기 어렵겠지요"


"역시 빈틈없구나"


시즈코의 설명에 노부나가는 히죽 웃었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의 예를 취했지만, 그 하나만으로 신종(臣従)이 담보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신하의 증거로서 인질이 노부나가에게 보내질 것이 결정되었다.

누굴 보낼 것인가라는 선별은 의외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인질이 되는 것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다. 이것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가 호죠(北条) 가문 출신인 데 비해, 카게카츠는 우에다(上田) 나가오(長尾) 가문 출신인 것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에치고 나가오 씨는 오랫동안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우에다 나가오 가문과 코시(古志) 나가오 가문은 현재도 적대하고 있어, 코시 나가오 가문의 입장에서는 인질의 건은 카게카츠를 추방할 둘도 없는 찬스였다.


카게카츠는 카네츠구(兼続) 등 약간의 측근만을 데리고 에치고를 출발했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岐阜)에 도착하여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마쳤다.

노부나가는 카게카츠가 보내어진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인질로서 맞아들였다.

원래대로라면 기후의 성시(城下町)에서 생활하겠지만, 미노와 에치고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연락도 취하기 쉽다는 불안이 있었기에, 카게카츠는 오와리에서 인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와리의 경우, 카게카츠를 돌봐줄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아ー, 뭐ー, 그렇게 되지 않을까ー 라고 생각했었어"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성의없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미노에 카게카츠를 계속 두게 되면, 켄신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와리까지의 경우 물리적인 거리가 가로막는다. 간자를 보내려 해도 발견될 가능성은 높아지기에, 켄신도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주상의 명령입니다. 견실하게 실행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질인가. 그래서, 란마루. 너, 시즈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냐?"


다부진 표정으로 말하는 란마루에게, 나가요시가 히죽히죽 웃으며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란마루는 나가요시의 말을 흘려들었다.


"주상의 명령에 이의 따위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형님, 이 자리에서 저는 주상의 사자(使者). 그런 거친 말투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게 되었구나"


"자, 거기, 일일이 트집을 잡지 마. 받아들이는 건 딱히 문제 없어요. 세세한 지시는 전부 적혀있으니까요. 그래서, 우에스기 가문의 인질의 취급에 대한 건 이족에 일임된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거죠?"


"예. 주상께서는 '귀여워해줘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잘 알겠어요. 수고하셨어요"


딱히 질문이 없었던 시즈코는 거기서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 후, 란마루가 기후로 돌아가고, 이쪽의 지시에 따라 카게카츠들이 측전(側殿)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일들이 끝나자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도착 인사일 거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즉시 부르도록 소성(小姓)에게 명령했다.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라고 합니다. 길어질지, 아니면 짧아질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히구치 요로쿠(樋口与六)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몇 가지 행동에 제한은 두겠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도 상관없어요"


시즈코는 두 사람에게 세세한 제한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과도한 제한을 둔 결과, 감시측의 인원 부족에 빠져버려서는 얘기가 안 된다.

또, 아무리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겠다고 결정해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패거리들에게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인질의 취급은 엄격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을 하면, 노부나가나 켄신이 제재(粛正)를 가할 때 대의명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흑심(下心)도 있었다.


"지금 있는 집 안이라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상관없지만, 외출시에는 이쪽에서 사람이 따라붙으니까 그것만 주의해줘요"


"과분한 온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대충 이 정도일까? 나머지는 감시역인 케이지 씨에게 그때그때 물어주세요"


그 후, 카게카츠와 카네츠구는 케이지를 따라 퇴출했다. 나가기 직전에 술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대화가 들렸기에, 시즈코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술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이제 곧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침공일까, 라고 시즈코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금속 가공에 종사하고 있던 전직 노예인 야이치(弥一)와 루리(瑠璃)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출한 기억이 없었기에 뭔가 상담할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귀찮지만 알현실까지 이동했다.

생각대로, 두 사람은 상담할 일, 이라기보다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시즈코와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집을 가지고 싶어요?"


그건 둘이서 살 집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상담이었다. 각자 일하는 장소가 다르기에, 현재 야이치와 루리는 따로따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없었기에, 이것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허가 없이 생활(待遇)을 바꾸면 질책받을 거라고 야이치가 생각하여, 시즈코에게 허가를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응, 딱히 상관없어요. 그걸로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면 이쪽도 거절할 이유는 없어요"


시즈코의 허가를 받자 야이치와 루리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노예 생활이 길었기에 그들은 고용주의 허가를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런데 일은 순조롭나요?"


"네. 처음에는 어색한 관계였습니다만, 지금은 여러분이 매우 잘 대해주십니다. 다만, 기술자들의 진지함, 만은 지금도 어색합니다. 조금, 따라가기 힘듭니다"


"젊은 사람이나 정열적인 사람으로부터는 선생님이나 스승이라고 불려서 기쁩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진지하여, 이쪽이 반대로 미안해져 버립니다"


"그런가요, 그거 다행이네요. 뭐 우리 기술자들은 지는 걸 싫어하니까요. 두 사람의 기술을 배워서 언젠가 그걸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이치나 루리와 기술자 마을의 기술자들의 관계는 양호했다. 그들이 만드는 상품도 날개돋친 듯 팔린다, 까지는 아니지만 서서히 주목받게 되고 있었다.

특히 1mm 정도의 가느다란 바늘 모양의 은이나 금으로 세공한 허리띠(帯飾り)는, 평소에 장식품을 달지 않는 무가(武家)의 부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인기 상품이 되어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동포들이 지금도 불우한 취급을 받고 있다, 고 생각하면, 저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성실한 건지, 야이치는 자신만이 구원받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루리가 야이치의 등을 문지르며 위로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하, 네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게냐"


시즈코가 건넬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코타로가 야이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야이치가 돌아보았으나, 그런 그를 보고 코타로는 코웃음을 쳤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애숭이가 우쭐하지 마라. 자기 몸 하나 뜻대로 하지 못하는 네가, 다른 사람의 몸을 걱정하다니 웃기는구나"


"……네"


"지금은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자신이 홀로 설 수 있게 되는 걸 우선시해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건 그 다음이다"


주인인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보다, 같은 유태인인 코타로의 말이 납득하기 쉬웠는지, 아까까지 외곬으로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야이치였으나, 지금은 고민이 해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이치의 표정에 만족했는지, 코타로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미안합니다, 주인님.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이제와서 늦은 얘기네요. 이번에는 괜찮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순서를 지켜 주세요"


"노력하죠.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 와인을 만들고 싶으니, 그 환경을 갖춰 줬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배운 거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근히 건방진 말투에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던 시즈코였으나, 와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독교에서 와인이란 '신의 피'이며, 대단히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실은 유태 교에서도 와인은 기쁨의 상징, 안식일에 기도를 드리는 등 중요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대 교에는 계율에 적합한 카슈루트(kashrut, 코셔(Kosher)라고도 한다)라는 식사 규정이 있다.


카슈루트를 엄격하게 지킨다면, 와인은 유태 교도가 순서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병에 담은 것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카슈루트에 적합한 와인을 이교도가 만져도 마찬가지로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건 계율에 따른 포도주를 만들고 싶다는 건가요?"


"응? 아핫핫핫, 계율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순수하게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 것 뿐입니다. 하지만 포도를 모으는 건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니, 주인님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라면 몇 달만 기다리면 코우슈(甲州) 포도가 수확할 시기가 될 거에요. 그 때, 생식에 맞지 않는 것을 와인용으로 쓰죠"


"잘 부탁합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코타로는 몸을 돌려, 용무는 끝났다고 말하듯 알현실을 나갔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졌으나, 케이지와 시즈코만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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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5 1573년 6월 상순



5월 하순, 전국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미노(美濃)의 기후 성(岐阜城)에서 막을 올렸다.

전국시대를 대표하는 다이묘(大名) 중 한 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인 기후 성에서 신하의 예를 올렸다.

이것으로 에치고(越後)는 노부나가의 지배하에 편입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나라가 함락되었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미노보다 동쪽에 있는 나라들은 상락(上洛)하려고 하면 반드시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땅을 통과해야 하며, 결과적으로 상락이 불가능해졌다.

오다, 도쿠가와(徳川), 우에스기의 3개국으로 사이고쿠(西国)로 통하는 길을 틀어막았다.

이 사실은 노부나가에게 토우고쿠(東国)에 대해 동원할 병력의 수를 줄일 수 있으며, 동시에 사이고쿠 문제에 집중 대응할 수 있게 되는 메리트를 가져온다.

한편, 세력이 분단된 형태가 된 엣츄(越中)나 에치젠(越前)의 일향종(一向宗)은 궁지에 빠졌다.

육로를 통한 보급로가 끊기고, 오다-우에스기의 양쪽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게 된다. 무력에서 떨어지는 일향종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도식이 성립되었다.


주변국이 갑작스럽게 뒤바뀐 세력구도에 대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원흉(元凶) 중 한 명인 시즈코는 다른 일로 정신없이 바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되어 지금의 상황이 된 건지, 시즈코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에스기 켄신이 노부나가를 방문하고, 신하의 예를 올릴 때까지는 예정대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 집들이가, 어느새 우에스기 가문을 환영하는 주연(酒宴)으로 바뀐 거지?"


시즈코는 혼자서 불평했다. 새 집이 완성되었으나 집들이를 하지 못했기에, 가까운 사람들(身内)을 초대하여 한식구(内輪)끼리 축하연을 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주군인 노부나가나, 그 맹우(盟友)인 이에야스(家康)가 참가하는 것까지는 간신히 납득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그 축하연에 우에스기 켄신까지 참가할 것이 결정되었다고 듣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애초에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가 되는 것을 축하해도 되는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지금부터는 우리들도 시즈코 님과 한식구가 됩니다. 한식구의 경사에 불만 같은 게 있을 리 없지요"


하지만, 켄신 본인이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그러긴 커녕 시즈코 저택의 구조(造り)에 흥미진진하여 축하연에 참가한 상황이었다.


"이것이 오와리(尾張)의 최신(今様) 저택…… 곳곳에 여러가지 배려(工夫)가 되어 있군"


"영주님(御実城様), 한동안 체재해보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만, 옛것과 새로운 건축 양식이 훌륭하게 융합되어 있습니다!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로 훌륭한 저택이군요, 시즈코 님"


"어이쿠, 이건 시즈코 님, 대단히 멋진 궁궐(御殿)이군요. 소생도 언젠가 이런 저택을 가지고 싶습니다"


"카하하핫, 좋구나 좋아(善哉善哉)! 경사스런 일이 겹치니, 우리들의 미래도 밝을 것이야"


그 후에도 초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까지 차례차례 방문해왔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수고 우에스기가 신하가 된 것에 의해 당면한 위협이 없어진 것 때문인지, 오다 가문의 중신들도 거리낌없이 집들이에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예상외의 대 북적임에 수용 능력이 시험받게 되었으나, 기적적으로도 참가자 전원이 연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아져 있었기에, 어디에 누가 있는지 상좌(上座) 부근을 제외하면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제 딱히 우리 집 집들이가 아니어도 괜찮은거 아닌가"


시즈코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날을 위해 준비해온 디저트의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였다.

딸기라고 해도 현대와 같은 양딸기(オランダイチゴ)가 아닌, 일본에 옛부터 자생하고 있는 산딸기(キイチゴ) 속(属)의 장딸기(クサイチゴ)를 사용했다.

장딸기는 산딸기 중에서도 대형이고, 현대의 품종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강한 단맛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품종과 달리 약간 자기주장이 강한 신맛을 갖지만, 잼 등으로 가공해버리면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신맛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럽을 졸여 약간 불을 들였다.


여담이지만 스폰지와 크림을 층층이 쌓아서 크림 장식과 함께 딸기 등의 과일을 얹은 쇼트케이크는 일본이 발상지이다.

영어권에서는 레이어(layer, 또는 레이어드(layered)) 케이크라고 부르는 비슷한 케이크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용되는 반죽(生地)은 스폰지가 아니라 비스킷이라고 불리는 단단한 식감의 반죽을 사용하며, 크림이나 과일을 중간에 끼워넣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의 정석이 되는 딸기의 쇼트케이크라는 것은 일본에만 존재한다.


"으ー음, 역시 케이크는 좋아. 너무 많이 먹으면 살찌지만…… 아니, 예전과는 운동량이 다르니까, 하나쯤 더 먹어도 괜찮…… 을지도 몰라"


하나쯤 더,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둥글둥글한 자신을 상상하고 자제했다. 그리고 쟁반에 쇼트케이크를 몇 개 얹은 큰 접시를 놓은 후, 이것을 노히메(濃姫)가 있는 곳으로 가져가도록 몸종(小間使い)에게 명했다.


그 후, 별실(別室)에서 자유롭게 집주인이 없는 집들이를 만끽하고 있던 노히메들에게 말을 걸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상좌로 발을 옮겼다.

축하받을 입장인 집주인인데 어째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건가 하고 일순 쓸데없는 생각을 했으나,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노부나가 등 비호자(庇護者)들이 정치적인 협상을 취사선택해줄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다들, 오늘은 실컷 마시고 먹고 즐기자꾸나"


그 후, 노부나가가 개회사를 하여 시즈코 저택 집들이 연회가 개막되었다.




처음 본 에치고(越後) 사람들을 한 마디로 나타내지면, 그들은 술에 대해서는 사양하지 않았다. 에치고 사람들이 있는 자리와 없는 자리는 술통의 소비량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무서운 기세로 마시고 있는데 취해 쓰러지지 않는 술고래(蟒蛇) 투성이였다.

소문이 헛되지 않은 에치고 주호(酒豪) 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제아무리 노부나가나 이에야스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전히 내 금주령은 풀리지 않았지만…… 말야)


흐르는 작업처럼 술통에서 퍼올려져서 운반되어가는 술병(徳利)을 보면서 시즈코는 자신에게 채워져 있는 목줄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을 위해서 대량으로 술을 준비하고 술가게(酒屋)에서도 대량으로 사들였으나 남을 일은 없을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우에스기 사람들에 비해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사람들은 아직 청주에 익숙하지 안하, 그 소비 페이스는 느릿했다.

지금은 미카와(三河)나 토오토우미(遠江)에도 오와리나 미노에서 생산된 청주가 팔리게 되었으나, 아직 생활에 침투하는 데는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노부나가는 평소처럼 자신의 페이스로 마시고 있었다. 애초에 술을 잘 못 마시는(下戸) 것으로 알려진 노부나가였기에, 그다지 많은 양의 술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그는 술보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식구끼리의 속편한 연회가 어쩐지 거창한 주연(酒宴)이 되어 버렸네)


주역이기에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상좌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노부나가, 이에야스,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우에스기 켄신이라는 쟁쟁한 인물들이었기에 조금도 긴장이 늦춰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후, 노히메들과도 얼굴을 맞댈 필요가 있다.


(마음이 무겁네)


조금도 편히 즐길 수 없는 연회가 계속된다고 하면 아무리 시즈코라도 기분이 처진다. 하지만 입장상, 축하받을 집주인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폭거는 있을 수 없기에, 결국 포기의 경지에 도달했다.


"죄송합니다. 용무가 있어 잠시 실례(中座)하겠습니다"


슬슬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자리를 비울 것을 알렸다. 노히메들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머리를 탁탁 하고 가볍게 친 후에 말했다.


"뼈는 주워주마"


"아니, 죽으러 가는 건 아닙니다만"


"평소에도 종잡을 수 없는(一筋縄ではいかぬ) 오노(お濃)에 술까지 들어간 상태다. 제대로 된 결과로 끝날 리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하지만 주군의 눈 앞에서 그 부인(細君)의 험담을 긍정할 수도 없어 다급히 태도를 바로했다.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시즈코는 조용히 연회장을 나왔다. 애초에, 연회도 절정을 맞이하여 취객들로 넘쳐나고 있는 연회장이었다.

설령 시즈코가 알기쉽게 연회장을 나섰다고 해도 신경쓰는 사람은 적었으리라.


"후우…… 피곤하네"


연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을 때 시즈코는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걷고 있자니, 모퉁이에서 아야(彩)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시즈코를 발견하자, 발소리를 내지 않고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뭔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 있는 건가, 라고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가까운 방으로 아야를 부르며 먼저 들어갔다.

잠시 간격을 두고 아요도 시즈코를 쫓아 방으로 들어왔다.


"영내에 잠입해 있던 사나다(真田)의 간자를 포박했습니다. 그런데 기묘한 것이, 그 간자는 시즈코 님께 이 서신을 전해달라고……"


"용케 들어왔네…… 아니, 지금이니까 그런가. 외부인이 이렇게 많이 들어오는 건 지금밖에 없으니까"


자신이 예전에 썼던 계책을 쓴 거라는 것을 시즈코는 헤아렸다.

오다, 도쿠가와, 우에스기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초대객까지는 파악할 수 있어도, 수행원들 한 사람 한 사람 까지는 아무래도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의 감시원(空番)'만은 속일 수 없었던 듯 합니다. 비밀리에 처분하려고 했습니다만, 사나다로부터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듣고, 지금은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애들보다 사람 숫자가 많으니까. 뭐, '하늘의 감시원'인 까마귀들이라면 숫자도 충분하지만 말야"


비트만들이나 시로가네 등, 시즈코의 저택을 구역으로 삼고 있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같은 공간을 구역으로 정하고 있는 동물은 있다.

가장 많은 것이 까마귀 패밀리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100마리 가까이가 시즈코의 저택 부근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

청소부(scavenger)의 지위대로, 시즈코의 저택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의 처리를 까마귀들이 맡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시즈코의 저택에 간자가 숨어들려 해도, 먹이를 다투는 적으로 인식되어 어디에 숨어있었냐고 묻고 싶어질 정도의 숫자로 간자들을 덮쳐간다.

생활 쓰레기를 지정한 장소에 버리기만 하면 되는, 천연의 간자 대책이었다.


"흠…… 흠"


사나다로부터의 서신을 아야에게서 받아들고 시즈코는 서신의 내용을 확인했다. 읽어감에 따라 시즈코의 표정이 험악해졌고, 필연적으로 아야의 긴장도 높아져갔다.


"곤란하네, 이건"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요"


"간단히 말하면 집안 소동. 되돌려보낸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사나다 가문을 이었지만, 그가 타케다륵 등지고 오다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투고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전투중에 후퇴 명령이 나오기 전에 군을 물렸기 때문에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는 것 같아. 타케다 가문의 간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인 모양이지만"


서신에는 타케다 가문의 상황과, 사나가 가문이 놓여 있는 상황이 적혀 있었다. 우선 무토 키헤에는 정식으로 사나다 가문을 이어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로 개명하였다.

하지만 사나다 가문을 잇자마자 그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신겐(信玄)의 후퇴 명령보다 앞서 병사를 물러나게 한 책임을 추궁받았다.

책임을 추궁한다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요는 패전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보전하기 위해 본보기로서 영지를 몰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마사유키를 시작으로 사나다 가문 전체가 가볍게 보이고있다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본보기로 이용된 것은 타케다의 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츠요리(勝頼)는 신겐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간자 조직을 '얄팍한 쓰레기(人でなし)들의 집단'으로 단정했다.

그리고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다 측의 정보를 모으지 못한 것의 책임을 그들에게 지웠다.


이에 의해 타케다 직속의 간자 네트워크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된다.

훗날 카츠요리가 범한 뼈아픈 실책으로서 종종 거론되게 되는데, 전국시대에서 간자를 경시하는 것은 극히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모아온 정보가 음미하지도 않고 버려져서야 사기를 유지할 수 없다.

예쩐에 타케다를 섬겼던 간자들이 신겐이 죽은 후에 사나다의 밑으로 모여든 것도 새롭게 태어난 사나다가 정보를 중요시하여 간자들을 버리는 돌처럼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본보기…… 입니까?"


"단적으로 말하면 조직 전체의 문제를 특정 개인에게 떠넘겨서 체재(体裁)를 보존한 거야. 손실도 보전할 수 있으니까. 그 상황에서는 사나다가 병사를 물리지 않았어도 승산 따윈 없었지만…… 뭐, 생트집이네"


"그건, 자신의 팔다리를 먹어서 배고픔을 채우고 있을 뿐으로, 팔다리가 없어지면 밭도 일구지 못하는데요……"


"그런 거야. 타케다는 조직 전체로서 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그 뿐만 아니라, 일부의 겁장이들이 발목을 잡았다고 자기 보신(保身)을 꾀한 거야. 이쪽 입장에서는 좋은 경향이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자를 가진 조직은 머지앖아 붕괴하니까"


어디보자, 라고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이미 역사는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났다. 이제부터는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대로 각 세력이 움직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걸 생각하면 사나다 마사유키에게는 빨리 복귀해 줬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시될거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자는 당분간 감옥에 가둬놔. 괜히 움직이게 해서 이 이상 정보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확실히 제거될 테니까.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감옥에 넣어두고 나중에 풀어주는 게 좋아"


"알겠습니다. 간자에 대해서는 함구(秘匿)하도록 명해두었고, 만에 하나 알려져도 정보 수집중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지금부터의 싸움은 정보가 중요해져. 지금 이상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하고, 그러러면 실력좋은 간자가 많이 필요해지니까"


이걸로 이야기는 끝, 이라고 말하듯 시즈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히메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시즈코는 아직이냐, 라고 중얼거렸다. 몸종들은 허리를 꼿꼿이 펴며 아직 안 오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숨을 쉬면서 노히메는 몸종들을 물러나게 했다.


"노히메 님, 시즈코는 오라버니께 붙잡혀 있겠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치(市)가 노히메를 다독였지만, 정작 노히메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주군께서도 시즈코를 너무 부려먹으시느니라. 모처럼의 경사이니, 마음 편하게 지내게 해주면 될 것을…… 그렇지 않느냐, 이치"


"제게는 오라버니의 생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자리를 만드신 걸까요"


"주군의 생각은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하느니라. 아마 시즈코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계시겠지. 바깥에도, 안에도 말이다"


말하면서 노히메는 앞에 있던 접시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었다. 이치에게는 노히메가 약간 초조해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남자 사회에서밖에 통하지 않는 논리다. 여자가 아닌 주군께서는 그걸 알지 못하시지. 여자 사회에서는,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집안을 잘 관리하고, 각 가문의 부인(奥方) 들을 잘 상대(切り盛り)하고, 적자(嫡子)를 키워내야만 제 몫을 다 했다고 간주되지. 그 관점에서 본다면, 시즈코는 아무 의무도 다하지 않고 있는 밥벌레(穀潰し)이니라"


"확실히 시즈코는 집을 가지더라도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라버니의 밑에서 천하통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의 생활이 풍족해진 것도, 오다 가문이 융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시즈코가 진력한 결과이겠지요"


"이치, 슬픈 일이다만, 인간이란 그렇게 매사를 잘 이해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라. 시즈코가 얼마만큼 어려운 일을 해내더라도, 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그 한 가지만으로 비난하는 패거리는 얼마든지 있느니라. 특히 집이라는 좁은 세계에 틀어박혀 자기 자식을 키우는 것만을 유일한 자랑으로 삼는 '무능한' 년들 중에 말이지"


드물게 감정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욕설을 하는 노히메에게 이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치를 신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낯간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노히메가 말했듯, 전국시대의 무가(武家) 사회의 최심부(最奥), 여자 사회에는 명확한 의무가 존재했다.

남자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도 그 영향에서 단절된 사회에서는, 아무리 남자 사회에서 유용함을 드러낸다 해도 여자 사회에서는 그에 대해서는 일체 평가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때때로 시즈코에게 벅찬 일을 시키시는 거군요"


여자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사회의 정점인 노히메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다. 당연히 아래의 여자들이 기껍게 생각할 리가 없다.

하지만 노히메로부터 각별한 돌봄을 받으면서도 성가신 일을 떠맡게 되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 어떨까?

시즈코에게 질투하면서도, 그 입장을 대신하고 싶다는 여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시즈코가 선보이는(発信) 다양한 문물을 노히메가 대신 퍼뜨리는 것으로 가볍게 보이는 일도 없이 받아들여져, 시즈코 본인은 그렇다치고 시즈코가 생산하는 물건들은 유용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배려들이 있기에 비로소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만 전념할 수 있으며,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에도 여자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여자들에게 시즈코는 유용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일신에 총애를 받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불우(不遇)하다는 절묘한 배역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단순히 시즈코를 귀여워하여 돌봐주면, 그 비뚤어진 생각(僻み)이나 질시(嫉み)는 시즈코에게 집중되지. 아무리 사회 전체에 대해 유익하더라도, 여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는 한 가지만 가지고 악(悪)으로 몰리는 것이니라"


어느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보수만을 받는 자는 미움받는다. 설령 어떤 위업을 해내더라도, 꾀를 부렸다고 하여 평가받지 못한다.

예를 들면 주식(株式)의 오발주(誤発注)가 벌어져, 실수로 비정상적으로 싸게 방출된 상표(銘柄)를 매점하여 적정 가격으로 파는 것으로 거액의 부를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세상은 그를 높이 평가할 것인가?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폭리를 취했다던가,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평가받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 아닌가만이 운(運)의 요소이며, 비정상적인 낮은 가격을 꿰뚫어보는 눈이나, 즉석에서 가능한 한 사들인다는 결단력과 자본력이라는, 그 자리에 서기 위해 보이지 않는 중첩된 요소(積み重ね)가 존재한다.

이러한 요소를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시즈코의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 얼마 안 되는 이해자가 노히메이며, 운만으로 출세한 여자라는 불필요한 질투나 따돌림(隔意)에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이기도 한지, 시즈코는 남자 사회에서는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으로서 경의를 받게 되고, 여자 사회에서도 자신들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고생을 도맡아 하는 사람(苦労人)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관계되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즈코에 대해 질투를 품는 자들이 생겨난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모두에게 보이도록 시즈코를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즈코는 주군께서 내리신 최대의 난제, 타케다 토벌을 해냈느니라"


"그렇군요. 지용(知勇)을 겸비한 많은 장수들을 거느린 타케다를 쓰러뜨리라니, 터무니없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즈코는 해냈다. 이것으로 남자 사회에서의 지위는 확고해졌지. 그렇게 되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부채로 입가를 가린 노히메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치는 이해했다. 이치도 노히메를 따라,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주군께서는 시즈코에게 주군의 아이를 양자로 보내신다고 한다. 이걸로 무능한 놈들은 조용하게 만들 수 있지)"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오라버니의 아이를 자기 아이로 삼는 것으로, 오라버니에 대한 충성을 드러낼 수 있지요.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요)"


"(음. 주군께서도 시즈코의 남편감에 대해서는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몇 번을 고노에 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애초에, 이건 시즈코가 문제라기보다, 녀석의 군이 붕괴하는 쪽이 큰 문제이기 때문이지)"


"(오라버니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 군이 있는 덕분에 전쟁에서 해야 할 번거로운 일들이 반으로 줄었다고. 과연, 이제부터 두 배로 일을 하라, 고 해도 불만이 분출하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시기는 알 수 없기에, 이렇게 우리들이 시즈코를 지켜야 하느니라)"


"(노히메 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 실로 감복했습니다. 그렇다면, 미력하지만 이 이치도 돕겠습니다)"


"(이것아, 어렵게 생각하지 말거라. 평소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평소대로, 말이지)"


그걸 마지막으로 노히메는 부채를 접었다. 비밀 대화는 종료, 라는 신호다. 이치도 조금 늦게 부채를 접었다.




아야와 헤어진 후, 시즈코는 노히메들이 있는 여자용의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시즈코였으나, 무시할 수도 없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연회장이라고 해도 노부나가가 있는 대연회장처럼 딱딱하지는 않다. 오히려 격식을 차리는 것은 주최자인 노히메가 싫어하기 때문에, 대단히 느슨한 분위기로 가득차 있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자, 이쪽으로 오거라"


가장 먼저 시즈코를 발견한 노히메가 손짓을 했다. 노히메의 말대로 시즈코는 노히메가 지정한 장소에 앉았다.


"설계 단계에서도 보았지만, 꽤나 훌륭한 저택이다. 주군께서도 지나치게 기합을 넣으셨구나"


"네에…… 확실히 과분한 대저택(豪邸)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들었느니라. 마츠(まつ) 님의 딸 뿐마니 아니라, 아케치(明智) 님의 딸도 고용했다더구나"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씀이 맞습니다. 어째서인지 다들, 우리 딸은 어떻소, 라고 하시네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딸, 이름을 타마(珠, 타마(玉)라거나 타마코(珠子)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는 타마(珠)를 채용함)라고 했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 기독교도가 그녀를 칭찬했기 떄문에, 오늘날에는 호소카와 가라샤(細川ガラシャ)라고 하는 쪽이 유명하다.


새 저택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이였기에, 아야나 쇼우(蕭) 만으로는 관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즈코는 새로 사람을 고용하기로 했는데, 이걸 들은 미츠히데가 "제 딸은 어떠십니까"라고 추천했다.

이게 방아쇠가 되었는지, 다른 무장들도 앞다투어 그 뒤를 따르려고 하여 일종의 소란이 벌어졌다.

모르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야, 라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무장들을 딸을 맡는 형태로 고용하게 된다. 당초에는 불안도 있었지만, 본래 교육을 받은 무장들의 딸들이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생활과 전혀 다른 환경 때문에 행동이 불안불안했으나, 곧 적응하자마자 척척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래도 국어(国語)나 산수(算数)같은 시즈코 저택에서만 필요한 지식 레벨이 낮았기에, 종종 그것들의 보충수업(補習)을 하여 지식의 기본 바탕을 높이고 있었다.

덕분에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딸에게서 한자로 쓰인 편지가 왔다, 라는 유쾌한 상황이 여기저기의 가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쇼우(蕭)짱은 기운이 넘치지만, 타마 짱은 호기심이 왕성하네요ー. 제가 고용한 남만인(南蛮人)에게도 겁먹지 않으니까요. 뭐 지나치게 저돌맹진(猪突猛進)한 것이 옥의 티입니다"


"괜찮지 않느냐. 그 쪽이 재미…… 어흠, 유쾌하니 말이다"


"얼버무리려조차 하지 않으시네요!"


말을 바꾸는 건가 생각했는데, 노히메는 단지 의미는 같지만 다른 단어를 말했을 뿐이었다. 어깨에서 힘이 축 빠진 시즈코는, 피로한 듯한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적의가 없는 미소를 계속 짓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피곤한 것 같구나. 그럴 때는 실컷 노는 것이 중요하느니라"


"이게 끝나면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지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복도 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급한 용무라도 있었나, 라고 시즈코가 입구 쪽으로 얼굴을 돌린 순간, 맹장지가 기세좋게 열어젖혀졌다.


"도착ー!"


"착ー!"


맹장지 너머에 있던 것은 챠챠(茶々)와 하츠(初)였다. 주위가 놀라는 것을 무시하고 둘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목적의 인물인 시즈코를 발견하자, 표정을 풀며 그녀에게 돌격했다.


"시즈코오ー! 새 집, 축하하느니라ー"


"니라ー"


둘은 어린아이, 하지만 전 체중을 실은 태클은 어린아이라도 위력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즈코는 둘의 태클을 받아냈다. 하지만 둘은 신경쓰지 않고, 새끼 고양이처럼 시즈코의 품에서 아양을 부렸다.


"자, 두 분. 갑자기 입구를 기세좋게 열면 안 돼요. 물건은 소중히 다루도록 해요"


"네ー"


시즈코의 말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둘이었으나,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까지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이해하기보다 먼저, 흥미의 대상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즈코ー, 이거 모야ー?"


챠챠는 시즈코의 등에 올라타며 쟁반에 올려져 있는 과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남만의 과자에요.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갸토(gateau, 프랑스어로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부르고 있어요"


케이크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고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달콤한 빵이 케이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플라켄타(プラケンタ)라고 하는 고대의 치즈케이크도 탄생했지만, 오늘날의 케이크와는 성향이 조금 다르다.

현대인이 떠올리는 케이크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1천년 가까이 지난 중세 유럽 시대, 현대의 굽는 방법이 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수 세기를 거친 17세기라고 한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에 전래된 카스테라가 케이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수 세기를 걸쳐, 타이쇼(大正) 시대에 후지야(不二家)가 현대의 쇼트케이크를 개발, 판매했다.


시즈코가 만든 케이크는 한입 사이즈의 스폰지 사이에 크림과 과일을 끼워넣고, 위에 버터 크림으로 약간 장식을 한 정도의 미니사이즈 케이크이다.

하지만 설탕이나 계란, 생크림에 버터를 듬뿍 사용하기에, 미니사이즈라고는 해도 권력자밖에 맛볼 수 없는, 그냥 고급이 아니라 '초' 고급 과자가 되었다.


"달아ー, 셔ー, 근데 달아ー"


"천천히 드셔야 해요ー. 신맛이 있는 건, 장딸기가 끼워져 있어서 그래요"


전술한 듯이 장딸기는 약간 신맛이 강하지만, 그래도 야생 딸기(野イチゴ) 중에서는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한 품종이다.

재배도 쉬워서, 건조와 일조량에만 신경쓰면 수고를 들이지 않고 늘릴 수 있다.

다만, 땅에 심으면 지하경(地下茎)을 뻗어 한없이(野放図) 증식하기 때문에, 배지(培地)를 한정할 수 있는 플랜터 재배가 바람직하다.


장딸기는 갓 수확한 것에 시럽을 끼얹어 단맛을 강조하고 있지만,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에는 산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미묘하게 셔. 하지만 달아서 신경 안 쓰여"


이러니저러니 말하면서도, 챠챠와 하츠는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마음에 들어하여, 놓여진 미니사이즈 케이크를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하지만, 둘 다 한자릿수 나이의 어린아이, 배가 부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족이니라ー"


"니라ー"


배를 문지르며 둘은 시즈코에게 기댔다.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면서도 몸종에게 모포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하지만, 시즈코는 곧 후회하게 된다. 모포를 덮어주자, 챠챠와 하츠가 본격적으로 잠이 들어버려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전신이 저리네"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곤란해하는 시즈코를 보다 못한 노히메가, 챠챠와 하츠의 유모를 불러 둘을 회수하게 했다. 시즈코는 노히메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 근처를 산책했다.

연회장을 살짝 들여다보았는데, 이미 만취한 사람들이 잔뜩 있었기에 시즈코는 살짝 입구를 닫고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으ー음, 몸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나네"


관절에서 뚝뚝 하는 소리를 내면서 시즈코는 기지개를 켰다. 이대로 잘 되면 몇 년 안에 일본이 오다 가문에 의해 통일되겠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건 모든 일이 잘 되면, 의 이야기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엎어질(とん挫)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오다 가문이 천하통일을 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既定路線)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저건……"


"시즈코 님"


멀리 뭔가 보인 시즈코였으나, 눈을 가늘게 뜨기 전에 이름을 불리웠기에 그녀는 그쪽으로 의식을 향했다.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약간 술냄새가 나는 미츠히데가 있었다.

그는 시즈코가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것을 알자 인사했다.


"제 딸이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딸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미츠히데의 질문에 시즈코는 말 대신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한 미츠히데였으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을 보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잘 있습니다. 보시는 대로, 기운이 좀 넘치지만요"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에는, 미츠히데의 딸인 타마가 고양이 장난감(猫じゃらし)을 한 손에 들고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지금은 시즈코의 집들이, 몸종들 중 하나인 그녀도 필연적으로 바빠지는데, 그녀는 땡땡이를 치고 있었다.

짐작컨대 고양이가 신경쓰여서 그쪽으로 의식이 집중되었기에, 일을 잊어버린 것일거라 시즈코는 이해했다.

미츠히데로서는 창피한 나머지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지경이라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버릇이 없는 딸이라 죄송합니다. 잘못을 저지르면 사양치 말고 꾸짖어주셔도 좋습니다"


"평소에는 제대로 일을 잘 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 눈을 부릅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내버려두면 우쭐할 지도 모릅니다. 잠시, 실례를"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히데는 타마를 향해 큰 걸음으로 다가갔다. 고양이에게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고양이 장난감을 흔드는 데 정신이 팔려 미츠히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미츠히데가 바로 뒤에 서자, 그제서야 타마는 등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미 때는 늦었다.


"아, 아버님! 이, 이건 그…… 고양이가 귀엽습니다!"


"그런 건 알고 있다! 타마! 일을 잊어버리고 고양이와 놀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꺄웅!"


(아, 타마 짱이 꿀밤을 맞았다. 변명하기보다 얼른 사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말야ー)


마음 속으로 조언을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결코 미츠히데와 타마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10분 정도 혼이 난 후, 두 사람은 함께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꿀밤이 아팠던 듯, 타마는 머리를 열심히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에 시즈코는 이제 쓴웃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똑바로 일을 하도록 말해두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짓을 한다면 사양말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직접 처단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일하는 걸 잊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미츠히데가, 그에 뒤따르는 형태로 타마가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들어 주세요, 아케치 님. 타마 짱이 혼난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없습니다. 자, 타마 짱. 늦은 걸 만회할 정도로 일해줘"


"네, 네!"


기운차게 대답한 후, 타마는 빠르게 뛰어갔다. 달릴 때도 고양이를 놓지 않았찌만, 도중에 싫증이 났는지 고양이가 타마의 손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일순 멈춘 타마였으나 미츠히데에게 혼난 것을 떠올렸는지,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서둘러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맙소사, 어린애라고는 해도 좀 더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군요"


타마의 어수선함에 한숨을 쉬는 미츠히데였다.




"영감님, 들어간다ー…… 여전하구만"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케이지(慶次)는 코타로(虎太郎)가 틀어박힌 방으로 들어갔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들어간 순간, 방의 난잡함에 케이지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여기저기에 휘갈겨쓰이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도식(図式)이나 계산식은 학문이 없는 케이지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데나 흩어놓는 건 좀 그렇다, 고 그는 생각했다.


"……어엉? 뭐냐 애숭이(若造)냐. 부탁받은 일이라면 처리했다"


의자에 앉은 채 자고 있었는지, 잠이 덜 깬 눈으로 코타로가 말했다. 지금은 별을 관측할 필요가 있어서, 코타로는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감님, 술이라도 한 잔 하겠어?"


"거절하면 어차피 거기서 마실 거 아니냐. 하여튼, 조금은 노인을 배려해주는 게 어떠냐"


"배려하니까 너무 몰두하다가 쓰러지지 말라고 이렇게 왔잖아"


"뭐…… 그건 일리가 있군"


훌륭한 턱수염을 훑으며 코타로는 작은 테이블을 잡아당겼다. 도중에 테이블 모퉁이가 가까이 있던 책더미에 걸려 더욱 노출된 바닥 면적이 줄어들었으나, 코타로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구는 순조롭수?"


"순조……롭다고는 못 하겠지만, 좋은 기자재가 준비되어 있어서 곤란하지는 않다"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른 후, 케이지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우며 물었다. 코타로의 연구란 지동설(地動説)이 올바른지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시즈코로부터 이런저런 기자재를 받았다. 망원경(굴절식)은 물론이고, 태양 투영판(投影板)이나 전용의 태양시계 등이다.

특히 태양 투영판은 우수하여, 이것 덕분에 코타로는 실명의 걱정 없이 태양을 관측할 수 있다.

투영판이라고 거창한 이름은 붙어 있지만, 원리는 단순하여, 천체망원경의 접안렌즈의 연장선상에 하얀 종이나 판을 설치할 뿐인 단순한 것이다.

관측 대상이 태양이기에 저배율의 접안렌즈라도 기능(機能)은 하지만, 대상을 관측하면서 미세한 조정을 할 수 없기에, 태양을 투영판에 비추는 수고만큼 쓸데없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결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가.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영감님이 즐거워 보이니 다행이네"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를 번역한 것 뿐으로, 원래는 그렇게까지 흥미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하지만, 알면 알 수록 재미있다. 게다가, 이게 올바르다고 판명할 수 있으면, 교회 놈들이 울상을 짓게 만들어줄 수 있지"


"즐거워 보이네, 영감님. 하지만, 즐긴다는 건 중요하다고"


"이제 높으신 분들의 안색을 살피며 비굴하게 사는 건 사양이다. 어차피 사람의 삶은 한 번 뿐, 그렇다면 후회없이 죽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재미있지"


"맞아맞아, 맛있는 걸 먹고, 햇빛 잘 드는 곳에서 뒹굴거리면서 지내는 것도 즐겁다고. 오늘은 경사가 있으니 맛있는 걸 슬쩍해오는 것도 간단하고 말야"


"뭔가 소란스럽다고 생각햇는데, 그런 걸 하고 있었나. 애숭이, 너는 안 나가도 되는거냐?"


"나는 그런 딱딱한 자리는 질색이야. 서로 뱃속을 탐색하면서 마시는 술 따위 맛도 없잖아"


"그 말이 맞다"


거기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웃고, 그리고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처음에는 기묘한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익숙해지니 이 술도 맛있군"


"헤헷, 오늘은 경사니까. 좋은 술이 잔뜩 나왔거든. 조금 넉넉하게 슬쩍해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셈이지"


"과연. 그런데, 고향의 와인이 몹시 마시고 싶어지는군. 주인에게 말하면 흥미를 끌 수 있으려나…… 아니, 주인이라면 와인을 만드는 법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군"


"시즛치라면 알고 있어도 이상하진 않지. 지금 마시는 이 술도 시즛치가 지휘(音頭)해서 만들기 시작한 거야. 뭐,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게 하면 이래저래 야단이 나서 다들 시즛치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말야"


"술주정(酒乱) 같은 것인가. 그 정도가 딱 좋지. 인간은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으니까"


"음ー, 술주정…… 이려나. 뭐, 술버릇이 나쁘다는 점은 같은 얘기겠네. 어쨌든 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것을 알고 있을테니, 어쩌면 만드는 법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몰라"


애매한 대답을 괴이쩍게 생각한 코타로였으나,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않았기에 흘려듣기로 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이것저것 담소하며 때때로 술을 들이켰다.


"남만은 어떤 느낌이야?"


"어떠냐…… 고 해도. 나는 어떤 학자 밑에서 일하고 있었지. 학자라는 건 세상사에 둔감해서 말야. 그 덕분에, 나도 속세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채로 나이를 먹었지"


"그거 큰일이네. 인생은 즐기지 않으면 손해야. 가끔은 실컷 놀아야지"


"내 경우에는 놀기 시작한 게 좀 늦은 것 뿐이다"


"오, 제법 좋은 말을 하잖아, 영감님"


히죽 웃은 후, 케이지는 잔의 술을 비웠다. 조금 늦게 코타로도 잔을 비웠다. 케이지가 코타로의 잔에 술을 따랐고, 무뚝뚝하게나마 코타로도 케이지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네가 말하는 남만은, 단적으로 말하면 최악이다. 종교로 백성들을 속박하고, 암흑시대를 나아가고 있지. 주인에게 말했지만, 나는 유태인. 기독교도 놈들이 볼 때는 유태인이라는 것만으로 악(悪)으로 취급받지"


"시답잖은 얘기구만"


"어, 실로 부조리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가 형성되고, 그 나라의 국교(国教)로서 정착되었다면, 그런 사고방식이 상식이 되지. 뭐, 우리들 유태인들도 배타적인 부분이 있으니, 다수파가 되면 다를 바가 없겠지만 말이다"


"묘한 얘기군. 내가 볼 때, 믿는 신은 똑같은 거잖아? 일본에서도 같은 부처를 섬기면서, 다양한 종파로 갈려 있어. 그리고 자신이 속한 종파 이외에는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가르침은 같으니, 해석의 차이에 불과한 것인데 다투는 건 무의미(不毛)할 뿐이야"


"그렇지.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종교가(宗教家)가 세력을 떨치지 못하는 게 좋군. 성지 탈환이라느니 이단자 사냥이라느니, 그런 바보같은 소동에 말려드는 건 질색이다"


"우리는 신앙을 강요하는 게 없으니까"


"자신의 수하가 무엇을 믿던 구애받지 않는다는 건가, 그것도 주인의 방침인가. 그것 때문에 생각났는데, 주인은 대체 정체가 뭐지? 저 나이에, 저만큼 달관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아직까지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견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말이지"


"글쎄?"


"글쎄…… 라니"


케이지의 성의없이 들리는 대답에 코타로는 어이가 없어졌다. 주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그뿐만 아니라 흥미도 없다는 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코타로의 표정을 눈치채고, 케이지는 악의없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시즛치의 진짜 정체가 뭔지, 같은 건 알아봤자 의미는 없어. 흥미도 없지. 우리들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건 시즛치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야"


"……"


"시즛치가 하는 일은 재미있고, 다음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기대와 흥미로 두근거리지. 그것만으로 충분해"


"과연. 확실히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뭐 주인의 경우, 맥락이 없는 일에 너무 폭넓게 손을 대서, 뭘 하고 싶은지 보이지 않는 게 난점이지만 말이지"


"그것조차 즐길 수 있게 되면 영감님도 어른(一人前)이 된 거지"


"연장자를 어린애(半人前) 취급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 이후에도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대화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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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4 1573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고 해야 할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으로부터의 항복 수락을 전하는 서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릴 때, 노부나가의 대응은 빨라도 다음 날 아침이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달받은 노부나가는 내용을 파악하자 정무를 중단하고, 정확성이 높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준비에 시간을 잡아먹는 호위대(馬廻衆)를 놔두고 혼자서 말을 몰아 먼저 달려갔다.

강의과단(剛毅果断). 가장 빠르게 행동하는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사람은 없었다.

통상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를, 말을 바꿔타며 겨우 몇 시간만에 질주한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였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으로부터의 서신에 대해 묻고 싶은 것(疑義)이 있으니, 사자(使者)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이동했을 노부나가였으나, 그에게서는 피로감 등은 보이지 않고 넘쳐나는 패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건네받은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은 후, 다짜고짜 용건을 꺼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기세에 멍해졌지만, 즉시 그의 요구를 이해하자 카네츠구(兼続)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견 절차를 갖추었다.

카네츠구 자신도 노부나가를 알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알현에 임했다.


"사자님께 묻지. 즉시 결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가 설령 어린애(童)라고 해도,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가문의 사자로서 취급했다. 카네츠구도 예상보다 꽤나 빠른 알현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영주님(御実城様)께서 숙고(熟考)하신 결과입니다"


"우에스기의 가신(家臣)들에게 불만은 없었는가"


"불만이 있던 없던, 영주님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 가신. 물론 소생에게 불만 따윈 없습니다"


"우에스기가 바라는 요구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소생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햇사옵니다. 다만, 난세(乱世)의 종언(終焉)과 백성들에 충분한 먹거리를 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조차 압도되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겁먹지 않고 말을 늘어놓은 카네츠구를 노부나가는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씩 하고 한층 깊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냐"


"영주님께서 신하의 예를 취하실 때까지 인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영주님께서 약정을 어기신다면, 이 목,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 나이 치고는 훌륭한 각오로군. 흠…… 대략 그쪽의 사정은 파악했다.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옛"


"밤도 깊었으니 밖을 돌아다니기는 불편하겠지. 특별히 시즈코의 집에 방을 마련하게 할 테니, 한동안 몸을 쉬도록"


"과분한 배려, 황공하옵니다"


카네츠구 자신도 (요구에 대해) 듣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는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질의를 마친 노부나가는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하고 독백했다.


"큭큭큭, 이렇게까지 노린 대로 움직이면 어쩐지 무섭기까지 하군"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쳐부수고, 쌍벽을 이루는 우에스기 켄신까지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들을 겨우 반년만에 해낸 것이니, 노부나가가 아니더라도 웃음이 멈추지 않을 상황이리라.


"아자이(浅井)와 아사쿠라(朝倉)가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굼벵이(愚図) 놈들이, 내 서신을 무시한 것을 후회하고 있겠지. 실로 유쾌하구나!"


한발 빨리 시류(時流)를 판단한 우에스기와, 대조적으로 우둔한 아자이, 아사쿠라의 행동을 돌아보고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이 때의 노부나가의 모습을 기록한 책에 '각별(格別)한 만족감'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노부나가가 기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우에스기의 굴복(臣従)이라는 사건은 그의 패도(覇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며, 천하통일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즈코! 술창고를 열고 술을 대접하거라!"


그 후, 겨우 쫓아온 호위대(馬廻衆)나 소성(小姓)들도 함께하여 조촐하지만 연회(宴)가 열렸다. 평소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노부나가도, 이 때 만큼은 모두와 잔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댔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출발하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풍처럼 기후(岐阜)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쓸데없이 혼자서 달려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행동에 겨우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부나가의 습격(襲来)으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후 그로부터의 접촉은 없었고, 또 싸움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라,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네츠구는 인질이라는 취급이었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그를 데리고 나가서 마을에서 놀며 돌아다녔다. 한가로운 분위기에 기분도 느슨해져, 시즈코도 오랜만에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카카오 나무는 성목(成木)이 되었고, 커피 나무도 70cm 정도까지 성장하였으며, 후추는 순조롭게 포기 수를 늘려서 양산에 기세가 붙었다. 라이치나 망고스틴 등의 남국(南国) 계열 과수(果樹)의 생육도 순조로웠다.

육성 환경이 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비옥한 토양과 기후 조건 등으로 적당한 스트레스가 걸리는 환경에 있는 것이 식물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빠르게 성장하여 자손을 남기려고 하고 있는게 아닐가 하고 시즈코는 추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 된 것 때문에 농사일에만 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각 작물마다 담당자를 배정하고 실제 작업에서는 손을 떼고 있었다.

고생하여 들여온 작물에 관여하지 못하는 불만은 있었으나, 생육이 순조로운 것을 시즈코는 기뻐했다.


"슬슬 바나나의 3배체(倍体)에도 도전해 볼까. 아마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를 조합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역시 바나나는 씨없는 바나나여야지"


자연환경에서 우발적으로 바나나의 3배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씨없는 수박 등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의 교배에 의해 3배체 바나나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3배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약제인 콜히친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통풍(痛風)용의 약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부작용도 강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통풍에 콜히친이 처방되는 경우는 드물다.


"뭐, 뭐든지 시험해봐야 하니까, 4배체 바나나 만듥기 도전부터 시작했지만…… 3배체가 나오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현대의 씨없는 수박을 만드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바나나의 싹에 아마도 추출할 수 있었을 콜히친 추출액을 처리햇다.

다만, 이게 성공했는지, 애초에 콜히친이 정상적으로 추출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콜히친의 추출 자체는 수입한 콜키쿰(イヌサフラン, Colchicum autumnale, autumn crocus)의 종자(種子)나 인경(鱗茎)을 에탄올로 열처리하면 추출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결정화하려면 초산(酢酸) 에틸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추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고 처리를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방식이다.

애초에 4배체가 얻어질 확률 자체가 많아봤자 10퍼센트 정도이므로, 씨없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으ー음, 걱정없이 밭일에 전념할 수 있는 건 즐겁네"


비닐하우스(엄밀히는 비닐이 사용되지 않음)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기세좋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일을 끝내면 툇마루(縁側)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수박이라도 먹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슬슬 다들 자리가 잡혔을 무렵이니, 집들이(新築祝い)라도 할까"


그 후에 시즈코는 이 발언을 후회하게 된다.




시즈코가 집들이 연회를 연다. 그 정보는 순식간에 노부나가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귀에도 들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게도, 조금 늦게 도쿠가와(徳川) 가문과 주요 가신들에게도 정보가 흘러갔다.

시즈코로서는 한식구끼리 조촐한 연회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사방천지에서 집들이 축하 선물(新築祝い)이 산더미처럼 도착했다.

급히 참가자 명부를 작성한 쇼우(蕭)가, 씨족(氏族) 별로 정리된 명부를 시즈코에게 건넸는데, 시즈코는 건네받은 명부의 두께를 보고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기ー, 어째서 이렇게 많이 축하 선물을 받은걸까? 그보다 나, 집들이 이야기는 주상 외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시즈코 님이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의미를 모르겠어 쇼우 짱. 어쨌든 식재료도 집기(什器)도 부족할테니 잔뜩 사들여와. 이걸 보여주면 돈은 아야 짱이 준비해 줄 테니까"


"옛! 그럼, 사야 할 것들 목록을 준비할테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잘 부탁해"


기운좋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시즈코는 다시 한 번 명부를 읽어보았다.

위로는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정말 어디의 누구냐고 묻고싶어지는 사람들까지 참가자 숫자는 부풀어올라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걸까, 라고 조금 경계심을 품은 시즈코는 케이지를 불렀다.


"그야 시즛치지.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인 시즛치의 동향. 누구라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저택은 눈에 띄니까 감출 방법이 없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된 케이지는, 반쯤 어이없어하면서도 대답했다.

좋든 나쁘든 시즈코는 감시받고 있다. 당사자가 평상시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그녀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뭔가를 하면, 적어도 오다 영토 내에서는 전원에게 훤히 알려진다.

다른 영토인 도쿠가와 가문에까지 전해진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리라.


"으ー음, 그냥 좀 신경쓴 식사회가 될 예정이었는데, 엄청 큰 일이 되어버렸네"


"포기할 수밖에 없어. 무토(武藤) 아저씨도 말했지만, 시즛치에게 줄을 대보려는 놈들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지.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패거리는 조심해야돼"


"작작 좀 했으면 좋겠어요. 권력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권력투쟁은 나라 안을 너덜더덜하게 만들 뿐이라고요"


"그러네. 하지만 시즛치는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잖아?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사정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거야. 돈과 권력, 사람이 길을 잘못 들기에는 충분하지"


"돈도 권력도,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 쪽이 이 세상엔 많은 거야"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주의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도 좋지 않아"


"그럴게요. 미안해요, 오래 붙잡아둬서"


"신경쓰지 마. 요로쿠의 상대를 하는 건 재밌거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요로쿠가 인질이라는 입장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점일까?"


켄신이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래,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켄신과 연락을 했다. 그 때 교환된 문서에 의해, 카네츠구는 정식으로 오다 가문에게 맡겨진 몸이 되어, 켄신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실상의 인질로서 취급되게 된다.

이 정도의 중대 안건에 인질이 근시(近習) 한 명이냐고 노부나가는 의심하기도 했지만, 만약 켄신이 약정을 어기면 어린애 한 명에게 책임을 씌워 내버렸다고 선전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여 카네츠구의 신병을 인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카네츠구는 케이지 감시 하에 시즈코 저택에서 묵고 있었다.

하지만, 감시가 붙어있다고는 해도 행동이 제한되는 경우 같은 건 거의 없고, 때때로 둘이서 함께 거리로 나가서는 밤늦게 돌아온다는 경우도 흔했다.


"그건 케이지 씨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실례네. 제대로 감시는 하고 있어"


"감시라는 명목 하에 데리고 놀러다니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점심때쯤 일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카네츠구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가고, 돌아와서는 배불리 밥을 먹고 잔다.

케이지는 방심을 유도하여 본성을 보고 있다, 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카네츠구도 예의가 필요한 장소에서는 무가(武家)다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케이지와 어지간히 상성이 좋은지, 둘이 함께 있으면 즉시 정신이 느슨해진다. 얼핏 보기에는 얼빠져 보이지만, 이런저런 입장을 다 배제하고 나이에 맞는 소년다움이 드러난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된 건가. 좀 있으면 우에스기가 주상께 인사드리러 올 테니, 그 때까지라고 생각하면 눈감아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 거지. 그럼, 난 이만 실례하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방을 나갔다. 스킵(skip, ※역주: 한 발씩 번갈아서 껑충껑충 뛰는 것)이라도 할 것 같을 정도로 즐거운 분위기라고 느꼈기에, 또 거리에라도 놀러갈건가 하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그럼…… 우에스기는 언제쯤 오려나. 뭐, 그건 주상께서 생각하고 계실테니 신경쓸 필요는 없으려나. 나는 집들이 참가자 처리를 하자"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즈코가 집들이 준비에 정신이 없을 무렵,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켄신의 항복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혼간지는 다급하게 노부나가에게 강화를 타진해왔다.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충격을 받았지만, 노부나가에게 그들은 이미 의식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혼간지와의 강화 조건으로, 반드시 통화발행권(通貨発行権)을 인정하게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통화발행권의 중요성을 혼간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통화발행권을 손에 쥐려는 노림수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가 그 밖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혼간지에 제시한 것은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부풀리기(ふっかけ)'이다.

도어 인 더 페이스 테크닉(door in the face technique)이라고 불리는, 요구의 낙차(落差)를 이용한 교섭술이다. 일본에서는 양보적 요청법(譲歩的要請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처음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당연히,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

거기서 서서히 요구를 낮추어,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한 요구를, 마치 그만큼 양보했다고 생각하게 하여 상대에게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술이다.

이것은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라던가 '호의를 보인 상대에게는 호의로 보답한다' 등, 베품(施し)이나 호의를 받았을 경우 뭔가 답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라고 불리는 심리 법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 교섭술을 쓰는 이유는 명백하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양보했다'는 시늉을 대외적으로 보이면서 자신이 바라는 요구만을 확실하게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혼간지는 뭔가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교섭해올 것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혼간지 측으로부터는 우는 소리에 가까운 탄원서가 도착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들"


노부나가는 싱글벙글 웃으며 미리 준비해둔 '2번째'의 강화 조건이 쓰인 서신을 혼간지에 보냈다. 당연히, 그것도 혼간지가 거부할 것은 예상한 바였다.

설령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노부나가에게는 본래의 조건에 덤으로 붙어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세 통 째의 강화 조건을 보낼 뿐이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던 노부나가에게 손해는 없었다.


"곧 비명을 지르겠지. 다른 곳에서 압력이나 항의(苦情)가 들어오면 대답을 늦춰라. 금방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킬 것이다"


교섭이 난항을 겪어 싸움을 걸어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노부나가는 두 번이나 양보해보인 것이다.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싸움을 걸어온다면 혼간지에게 대의(大義)는 없다. 도량을 보인 노부나가와, 자기본위에 도량이 좁은 혼간지. 사람들이 어느 쪽을 지지할지는 명백했다.

당황해서 강화를 신청한 시점에서 혼간지에 승산은 없었다. 노부나가는, 언제 켄뇨(顕如) 등이 강화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자포자기(破れかぶれ)하여 싸움을 걸어올지 남몰래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속이 시커먼 외교와는 인연이 없는 케이지는, 오늘도 카네츠구를 데리고 오와리(尾張)를 여기저기 산책하고 있었다.

카네츠구는 인질의 신분이지만, 감시역인 케이지는 전혀 신경조차 쓰고있지 않았다. 카네츠구를 데리고 온종일 놀러다니고 있었다.


"음……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민초(民草)들의 표정이 밝군. 병자나 말라비틀어진 노인 따윈 어디에도 없어. 어린애들(童子)조차 기운차게 뛰어놀고 있군"


"지금은 이렇지만, 10년 전만 해도 말도 아니었어. 오다 나으리는 이 주변 일대를 갈아엎어버리고 상행위 자리를 만들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비옥한 대지가 많은 오와리이지만, 물론 모든 땅이 비옥했던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말라비틀어진 땅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시즛치가 처음으로 손을 댄 마을에 살던 녀석들이 있는 곳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기대되는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시즈코가 처음으로 맡았던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카네츠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괴이한 광경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되었다.

늘어서 있는 비닐하우스, 물방앗간(水車小屋)과 연결된 수직농장(垂直農場) 용의 설비 등, 그의 뇌리에 있던 전원풍경과는 전혀 다른 경관이었다.


"이 무슨…… 뭐지 이건?"


카네츠구는 눈 앞의 광경에 혼란스러워져 멍하니 멈춰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인마! 누구야, 밭을 어지럽히는 녀석은!"


옆쪽에서 날아온 노성(怒声)에 카네츠구는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상당한 거리를 걸었던 듯, 그의 발은 밭의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케이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건지, 카네츠구로부터 시선을 떼고 있었기에 그도 카네츠구가 밭에 걸어들어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구야 너희들…… 아니,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아, 너는 빨리 밭에서 나와!"


간신히 케이지도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네츠구를 붙잡아 밭에서 끌어낸 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남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눈을 뗀 바람에 밭을 어지럽혀 버렸네"


"아, 아니아니,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어린애는 누굽니까?"


"아ー 시즛치의 손님, 일까?"


인질이라고 하면 듣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여, 케이지는 카네츠구의 정체를 얼버무렸다. 남성도 그렇게까지 카네츠구에게 흥미는 없었는지, 케이지의 말을 듣고 납득한 표정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기에, 넋이 나가버려 논밭을 어지럽혀버렸소.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고함쳐서 미안했어. 아, 나는 타고사쿠(田吾作)라고 해. 촌장…… 시즈코 님의 손님이라면, 우리들에게도 손님이야.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천천히 있다 가라고"


"요로쿠라고 합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하나같이 새로운 것을 뿐이군요"


아까와는 정반대로 타고사쿠는 우호적인 태도가 되었다. 시즈코의 이름을 꺼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뀌는 건가, 라고 카네츠구는 새삼 시즈코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수수께끼의 것들이 많구만"


"헤헷, 여긴 시즈코 님이 바쁘셔서 못 하시는 일을 이것저것 맡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다른 마을에서 온 녀석들은 거의 다 쩔쩔매고 있지요"


"괜찮다면,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네츠구의 말에 타고사쿠는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옆에서 케이지가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카네츠구는 타고사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잠깐 기다려줍쇼…… 있다, 이거군. 우선 이걸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간 타고사쿠였으나, 금방 뭔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카네츠구는 타고사쿠가 들고 있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는 투명한 상자에 초목(草木)이 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수경재배(水耕栽培)라고 하는 새로운 농법이거든요. 시즈코 님은 이 녀석의 연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우리가 수경재배의 연구를 맡은 겁니다. 관리가 어렵고, 저는 배운 게 없으니 흙도 없는데 어째서 자라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수경재배란 종래의 흙에서 재배하는 농법과 달리, 물에 담궈서 재배하는 농법이다. 통상적으로는 무기(無機) 비료(肥料)를 사용하지만, 현대에서는 유기(有機) 액체비료(液肥) 등 유기 비료를 사용한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안 가는군요"


"그렇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라거든! 정말, 시즈코 님은 머리부터 우리와는 다르다고!"


수경재배에도 놀랐지만, 카네츠구가 가장 놀란 것은 시즈코가 생각한 것을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듯 기뻐하는 타고사쿠였다.


"타고사쿠 님은,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요"


"헤헷, 뭐 지금에야 다들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거든. 왜냐하면 갑자기 여자, 그것도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애가 촌장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오다 님의 명령이라도 그건 좀…… 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잔뜩 있었지"


"촌장……? 혹시 시즈코 님은 예전에 이곳의 촌장을 맡으셨던 겁니까?"


"어! 우리 마을은 세금으로 바칠 수확(年貢)의 양이 나빠서 말야. 그 때, 마을을 없애지 않는 대신, 시즈코 님이 파견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순식간에 굶어죽어가던 마을이 부활했다고. 저기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많은(年嵩) 애가 있지? 저 녀석, 예전에는 빼빼 마른 굶주린 꼬맹이였는데, 지금은 배터지게 밥을 먹고 크게 자랐어. 저 녀석 엄마가 밥을 준비하는게 큰일이라고 투덜거릴 정도의 대식가라고"


타고사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카네츠구는 얼굴을 돌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들 혈색이 좋은 피부를 하고 있었다. 타고사쿠가 가리킨 인물은, 그 중에서도 한층 키도 크고 폭도 넓었다.


"어때, 시즛치가 목표로 하는 세상이 조금은 보였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케이지가, 아이들이 노는 광경에 못박혀있는 카네츠구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을 홀린 듯 보고 있던 카네츠구가, 케이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충분해. 하지만, 이래서는 무사(いくさ人)는 필요없어지겠군. 슬픈 이야기지만, 이런 세상에 싸움만을 업으로 하는 자들은 소용없을테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는 카네츠구는, 말과는 달리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5월 중순,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강화가 성립했다. 노부나가가 가장 원했던 통화발행권을 그는 보기좋게 획득했다.

그 밖에도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들에 대해 편의를 제공할 것, 토지의 소유자 정리에 협력할 것,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한 도로 정비 등의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출자할 것 등, 그 밖에도 세세한 내용이 정해졌다.

주위에서 보면 노부나가가 토지를 얻은 것도 아니고, 또 배상금을 얻은 것도 아니다. 꽤나 온당한 강화로 보였으나, 혼간지 자체는 노부나가를 경계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표를 달성한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않고 가신들에게 통화의 개발을 서두르도록 명했다.


"교통편이 좋아지면 반드시 경제는 발전한다. 자금은 혼간지가 낼테니, 신경쓰지 말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라. 특히 생활이 곤란한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주어라"


그와 함께 노부나가는 도로 정비도 가신들에게 명했다. 어찌되었던 도로 정비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길 없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건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류를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쿄(京) 주변에만 길이 정비되어 있어서는 부족하다. 일본 각지, 벽지(僻地)에까지도 노부나가는 모든 장소에 길을 낼 생각이었다.

물론, 도로에 관해서는 운용부터 관문(関所)까지 여러 가지 법이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법들에 대해서는 혼간지도 준수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토지는 전부 조사(検地)하라. 방해하는 자는 무력으로 침묵시켜도 좋다. 토지의 소유주는 자발적(差出方式)으로 결정하라"


토지의 소유자를 확정시키기 위해, 도로 정리와 함께 가신들에게 명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여, 지배 체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 세력(寺社勢力)이나 공가(公家)가 가진 장원(荘園)을 포함하여, 대체 어디에 얼마만한 토지가 있는 정확한 수치를 손에 넣는 것이다.

영토 내부를 일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가 필요 불가결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징세(徴税)를 하면 혼란은 적어지고 지역간에 차이가 나는 것에 의한 항쟁도 사라지게 된다.


"알겠느냐, 절대 소홀히 하지 마라. 측량(検地)을 얼버무린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打ち首)할 것이다"


그 한 마디에 가신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노부나가는 규율을 깨뜨린 자를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한 과거가 있다. 따라서 조사를 대충 얼버무렸다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문 폐쇄(お家取り潰し)에 가까운 징벌이다.

그것을 이해한 가신들은, 노부나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소홀히하지 않고 맡은 일을 수행해나갔다.


한편, 노부나가와 혼간지가 강화한 것에 의해 켄신은 카가(加賀)나 엣츄(越中)의 일향종(一向宗)과 간접적인 강화를 하게 되었다. 물론, 조부(祖父)의 대부터 싸워온 사이이므로 강화라고는 해도 순순히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간지가 강화한 것과, 강화 조건에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자는 오다 측에서 어떻게 처분하던지 혼간지는 간섭하지 않는다, 는 조건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군. 쿄에서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나란히 오다 님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켄신은 정예병 5000을 이끌고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을 나섰다. 아무리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약속이 되었다고 해도, 켄신은 그것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 중에는 나오에 카게츠나(直江景綱)나 카와다 나가치카(河田長親) 등, 켄신의 측근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혼죠 사네요리(本庄実乃) 등에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치고(越後)를 맡겼다.


"……내 몸은 오다 가문에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미 쇼군(将軍)이 아니다. 이번은 예외 중의 예외이다"


"핫핫핫, 그렇겠지. 지금은…… 어이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네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말아주게"


아시미츠(足満)는 켄신에 대해 마지못해 대꾸를 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사키히사(前久)가 아시미츠를 놀렸다.

말하는 도중에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았기에, 사미히사는 마지막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명백히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한 아시미츠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게. 이제 곧 만날 수 있을테니"


"……네놈,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으음? 말해도 좋은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키히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혀를 찬 후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핫핫, 너무 놀린 모양이군. 기다리게 친구여. 아무 의미도 없이 놀린 게 아닐세. 자네는 짜증스러…… 어흠, 지나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네. 좀 더 웃는 게 어떤가"


"쓸데없는 참견이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짓던 말던 네놈에겐 관계없지 않느냐"


"친구로부터의 조언일세. 조금은 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아시미츠와 사키히사의 투닥거림을 켄신은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별 뜻 없이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겉치레(建前)를 배제한 채 본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얻기 힘든 기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에치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무사가 토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때문에 내란이나 가신들끼리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초기의 우에스기 가문에서는 지역별로 파벌이 생길 정도였다.

초기의 켄신의 측근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가 행방을 감추고(出奔), 후에 타케다 가문에 들어간 것도 에치고의 특수한 환경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또는 파벌투쟁의 영향으로 쫓겨났다고도 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켄신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 같은 건 바랄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부럽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고, 곤란한 길을 걸으려 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군"


"영주님(御実城様)"


"미안하다. 단지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 것 뿐이다"


그 말만 하고 켄신은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말을 건 카게츠나는 켄신의 마음 속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헤아렸다.

하지만, 그 말을 카게츠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면 켄신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혼간지에서 독립 경향이 강한 카가나 엣츄의 일향종이라도, 아무래도 켄신의 정예병과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 군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길에 요여(神輿)를 놓는 등 약간의 방해공작을 하면서 본격적인 대치는 피했다.

요여란 단적으로 말하면 신이 계시는 가마(輿)이다. 그렇기에, 요여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가져다 버려라"


하지만, 방해공작이라고 해도 아시미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반대로 아시미츠의, 어떤 의미에서는 냉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현실주의(realism)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길에 놓인 요여를 쓰레기로 단정하고, 부근의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중량이 있는 요여가 낙하의 충격으로 여기저기 박살이 났다.

무참한 모습이 된 요여를 일별조차 하지 않고 아시미츠는 행군을 재개했다. 신벌(神罰)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 켄신의 병사들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무섭군. 그는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인가"


역전의 맹장(猛者)인 카케츠나조차 신벌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 오히려 카게츠나의 태도야말로 전국시대의 무사로서는 보통이었다. 아시미츠처럼 요여를 태연하게 던져버리는 짓이 가능한 쪽이 이단(異端)이었다.


"그에게는 신도 부처도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겠지요. 제게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뭐, 녀석의 생각 따윈 누구도 이해할 수는 없겠죠"


"저런 자를 데리고 있으면서 오다 님은 불안해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처음에는 놀랐겠죠. 하지만, 때로는 그와 같은 인물조차 부릴 필요가 있다, 고 오다 님은 생각하고 계시겠죠. 때때로 그에게 임무를 명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로서는 오다 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임무를 맡기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말과는 반대로 사키히사가 가벼운 말투로 카게츠나의 의문에 대답했다.

아시미츠는 신불(神仏)에 대한 경의도, 우려움도, 아무런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사키히사에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아시미츠는 예전에 쇼군(将軍) 시절의 그와는 다르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아시미츠는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내다버린,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주의자다. 그래도 뿌리 부분이 변하지는 않았기에, 사키히사는 변함없이 아시미츠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노에 님도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한 번은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졌지요. 이것도 신불의 배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손득(損得)을 배제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벌보다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스스로 원하여 신벌에 말려들려는 것 따위, 세상에서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 인연도 그 신불이 내려주신 것. 이것을 소중히 하는 것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요. 아니, 확실히 우습겠군요"


카게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사이가 나빠 보여도, 사키히사와 아시미츠는 깊은 부분에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손득이나 세상의 소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친구를 위해 움직인다. 심플하고, 그리고 전국시대에서는 이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오, 소생은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란 그렇게 고마운 것, 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한 표정이 사라지고, 카게츠나는 사람좋은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부나가와 화평을 맺은 혼간지는, 병행하여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타케다(武田) 군은 하룻밤만에 패배했는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노부나가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개월에 걸쳐 알아낸 내용, 그것은 켄뇨(顕如)나 라이렌(頼廉)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럼 오다는, 처음부터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여 행동했다는 것인가?"


켄뇨들을 놀라게 한 내용, 그것은 노부나가가 오다 포위망을 공략할 때, 끌려나온 타케다를 쳐부술 것을 전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오다 포위망에는 강력한 군이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켄신보다 타케다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고 노부나가는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타케다는 카이(甲斐)에서 출진하여,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패배를 맛본다.

타케다가 오다 포위망에 참가한 것도, 그 후의 혼간지나 다른 세력이 한 일도, 처음부터 노부나가가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 라는 것이 된다.

요약하면, 반 오다 연합은 노부나가의 손바닥 위에서 춤춘 것에 불과하다.


"그럼 강화 내용에도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오!?"


"기다리시오. 그건 우리도 생각했소. 하지만, 놈은 토지를 요구하거나 우리들에게 퇴거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소. 게다가, 그 이상 버텼다간 오다에게는 우리들에게 강화의 의사가 없다고 보였을것이오"


"우리들에겐 모우리(毛利)의 지원이 있소. 우리들은 농성하며 오직 버티기만 하면 되오. 돈도 쌀도 무진장(無尽蔵)으로 있지. 그 동안 놈들의 자금줄을 포위하면 자동으로 국력을 잃게 될 것이오"


"외람되지만"


간자들의 보고로 당황하는 켄뇨의 측근들이, 라이렌(頼廉)이 말을 꺼내자 뚝 하고 대화를 멈추었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보다,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의 주력인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의 대책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지만…… 어차피, 여자 아니오? 뭘 어떻게 할…… 아니, 실례했소"


라이렌의 말에 한 명의 승려가 반론했다. 그러나 라이렌이 노려보자, 그는 다급히 의견을 집어삼켰다. 라이렌은 켄뇨의 측근들을 한 번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자 상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은 그 여자의 계책에 패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서 변명을 늘어놓아봐야, 우리들의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얕본 채로 또다시 발목을 잡혀, 손을 쓸 방법도 없을 정도로 패배하는 미래를 바라십니까?"


라이렌의 말에 켄뇨까지 입을 다물었다.

실은 켄뇨로서도 그래봤자 여자라고 약간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 지휘관인 동시에 뛰어난 정치가인 라이렌은 시즈코를 얕보지 않았다.

그는 시즈코가 여자이기에 이 정도로 치고 올라올 때까지 누구나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헤아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여자인 것 때문에 얕보는 인물이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얼 해도, 어떤 공적을 세워도 얕보이는 것이다.

상대에게 얕보게 할 수 있으면 불리한 상황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니 시즈코의 입장이 대단히 부럽다고 라이렌은 생각할 정도였다.


"여자라고는 해도, 아니, 여자이기에 상대를 방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즈코의 술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방심은 금물(油断大敵). 우리들은 놈을 여자가 아니라 오다와 어꺠를 나란히 하는 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을 타케다와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다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시즈코인지 하는 건 완전히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한 강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시즈코에 대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즈코 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탁월한 지혜를 가진 것, 칼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놈은 관리하는 토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그리고 놈이 이끌고 있는 군이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헛기침을 하여 라이렌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 자신도 여기까지 여자를 적수로 보는 것은 굴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눈이 흐려지면 여자에게 어이없게 패한 나약한 놈, 이라고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굴욕보다도 참고 승리를 얻어야 한다, 고 라이렌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놈의 군에는 8명의 측근이 있습니다. 모리 카츠조(森勝蔵),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 아시미츠(足満), 토우도 요키치(藤堂与吉),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 전원이 이색적인 출신을 가진 자들이오. 보통이라면 군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개성이 강한 자들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휘능력은 뛰어나다고 봐도 좋습니다"


"확실히…… 특히 마에다 케이지는 우리들의 귀에도 들어올 정도의 카부키모노(傾奇者).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에도 굴하지 않는 사내가, 어째서 얌전히 군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거야말로 놈의 강점. 하지만, 어떤 강자에게도 약점은 존재합니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는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렌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오다와 정면 충돌해도 승산은 없다. 또, 농성을 하려고 해도 오다 측에는 수수께끼의 발파통(発破筒)이 존재하기에, 성문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손으로 악수하는 척을 하면서, 반대쪽 손으로 후려갈길 수 있는 시기까지 오로지 기다린다, 이것이 지금의 혼간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선택지였다.


"지금의 우리들은 오다의 세력을 꺾을 약점을, 고노에 시즈코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계속 견디는 것이 최선. 비웃는 자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됩니다. 우리들이 마지막에 이기면, 그런 비웃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소! 시모츠마(下間) 형부경법교(刑部卿法橋) 님의 말대로이오!"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람의 승려가 일어서며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마지막에 이기면 되는 것이오"


"오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되오. 짐승같은 무사에게 구름 위의 존재(雲上人)인 승려가 패할 리가 없소! 마지막에는 부처의 가호가 있는 우리들이 승리할 것이오!"


"당장 농성을 대비해 손을 쓰도록 하지요. 뭐, 돈도 쌀도 무진장으로 있소. 10년이고 20년이고 견뎌내 보이겠소"


지금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인 것처럼, 전원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 저하를 신경쓰고 있던 라이렌은 그들의 태도에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라이렌도, 그리고 켄뇨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시즈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일부러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서로 보완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대응은 또 바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결국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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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3 1573년 4월 중순



노부나가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귀가길에 올랐다.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 저택(静子邸)의 본전(本殿)에서 고용한 노예 네 명을 기다리게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알현실로 걸음을 서둘렀다.


"갑작스럽지만, 네 사람은 각자 일을 맡아줘요. 코타로(虎太郎) 씨는 서적(書物)의 번역을, 야이치(弥一) 씨와 루리(瑠璃) 씨는 각자 금속 가공과 융단(絨毯) 제조법의 전수, 모미지(紅葉) 짱은 어떤 식물의 재배 기록을 관리해 주겠어?"


유럽 각국에서 쓰여진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려면 현대의 사전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즈코가 가져온 전자사전 종류는 현대어의 그것으로, 중, 근세의 문법이나 어법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번역가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언어학자이자, 모국에 있을 때부터 번역을 하던 코타로는, 라틴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그리스어까지 능통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복수의 언어를 알고 있었기에 교회의 눈에 띄어, 이단 심문을 받게 된 것이지만.


"번역 자체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신 것 같군요"


"보수라고 하긴 뭐하지만, 지동설(地動説)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주지요"


지동설이라는 단어를 듣고 코타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시의 주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는 지구의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는 설, 즉 천동설(天動説)이었다.

이에 대해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지구나 그 외의 행성(惑星)은 태양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고 외친 것이 지동설이다.

지동설로 유명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이지만, 최초로 제창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라고도 한다.


기원전 2세기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의 차고 이지러짐, 달과 태양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에서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달과 태양의 거리에 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이 상현(上弦)이나 하현(下弦) 달일 때, 태양은 바로 옆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달은 일직선의 위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달과 지구의 앙각(仰角)을 측정하면, 지구로부터 달, 또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계측을 하여, 그 결과로부터 태양은 지구에서 볼 때 달의 19배(실제로는 약 390배)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는 월식(月食)으로부터 달의 크기를 계측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숨기 때문에, 달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햇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측하여, 지구의 직경은 달의 3배(실제로는 약 4배)라고 계측 결과를 정리했다.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태양은 지구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고 그는 결론짓기에 이르렀다.

가설을 세워 실증하고, 그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론으로부터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보다 큰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쪽이 자연스립다'라며 지동설을 발표했다.

물론, 중세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천문학의 권위자들로부터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일축되고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2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16세기의 중세 유럽, 카톨릭 사제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아리스타르코스의 연구 결과에 착안하여, 오차나 결점을 독자적인 계산으로 보완하여 재계측한 결과, 지동설이 올바르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의 상식인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것을 두려워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에 겨우 발표했다.


어째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발표를 두려워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신은 대지를 움직이지 않게 했다'라는 한 줄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즉,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이 틀렸다고 규탄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 국가에서는 사활문제가 되는 위험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완강하게 지동설을 부정해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고 태양계 같은 천체는 우주에 무수히 있다고 제창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이단 심문에 넘겨져 이단으로 선고받았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기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된 후, 그의 유해는 강에 버려졌고, 교회는 유족에게 장례식이나 묘의 설영(造営)을 금지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의 지독한 대응을 알고 있었기에,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올바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여기서 올바르다고 주장해봤자 당신은 납득하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올바른지 어떤지는 당신이 증명하면 됩니다. 내가 제시한 근거가 틀렸다면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하면 되겠지"


"과연, 어쨌든 제 눈으로 실험하여 확인해야 하겠군요"


시즈코의 말에 코타로의 웃음이 깊어졌다.


이미 지동설이 상식인 세계에서 살아온 시즈코가 코타로에게 지동설을 확인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즈코가 '결과'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그녀의 근거는 '그렇게 배웠으니까'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코타로에게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로 계측하게 하여 증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동설을 증명할 근거라고 한 마디로 말해도, 상세히 파고들면 여러가지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에 위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공전의 근거로 삼았고,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나 태양의 흑점의 움직임에서 행성이 자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케플러의 법칙을 확립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에 의한 천문표 '루돌프 표(※역주: 루돌프 행성 운행표)'(당시의 행성 운행표(星表)와 비교하여 30배나 되는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도 발표되어, 지동설에 유리한 근거는 얼마든지 나와 있었다.


그래도 반론은 적지 않았다. 개중에서도 '지구가 한 번도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의 '운동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관성(慣性)을 정식화한 것에 의해 지동설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다만, 아무리 근거있는 데이터가 나와도,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승인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로부터 수백년 후인 1992년이었다.


"융단, 인가요"


"그래요. 그게 나중에 단통(緞通, ※역주: (중국·인도·페르샤 등이 원산지인) 여러 가지 무늬의 두꺼운 양탄자)으로 이어지니까요"


"저어…… 단통이라는게 뭔가요"


"말하자면 융단의 친척, 이라고도 할까요. 뭐, 세세한 걸 신경쓸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융단의 제법을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면 문제없어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멋대로 개조하겠죠"


코타로와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루리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단통이란 깔개(敷物)용 직물의 일종으로 중국제의 융단을 가리킨다. 융단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물건이다. 이런저런 차이점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두께이다.


페르시아 융단은 대단히 얇은 융단이지만, 단통은 두께를 준 융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법도 크게 달라서, 페르시아 융단은 날실(経糸)과 씨실(横糸)을 엮지만, 단통은 씨실에 날실을 통과시킬 뿐이다.


"네, 네에……"


"과거를 끄집어내게 되겠지만, 융단 제법의 전수가 끝나면 그 후에는 조언이나 감독을 하는 정도면 문제없어요"


이것은 후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일인데, 루리는 한때 아랍에서 노예로 팔려서 융단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했었다.

때로는 기술자들을 돕는 경우도 있었기에, 제법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알게 된 제법을 오와리의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다.

단,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진짜 기술자와는 다르기에 간략화된 순서 등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배운 기술자들이 알아서 보완할 거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페르시아 융단은 일본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 생각되지만,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이미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당대의 권력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페르시아 융단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재단하여 전쟁터에 나갈 때 입는 겉옷(陣羽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간단히 들리지만, 융단이나 단통은 외화(外資)를 얻기 위한 귀중한 상품이 될 거에요. 그러니 그 점만은 주의해 주세요"


"네, 알겠, 습니다"


"좋아요. 야이치 씨는 이제와서 이야기할 건 없겠죠.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보고 멋대로 대항의식을 불태우며 흉내내서 뭔가를 만들겠죠"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루리와 마찬가지로, 야이치가 할 일도 단적으로 말하면 기술의 계승, 그것 뿐이었다. 단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였으니 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관없어요. 이런 건 위에서 이야기를 해봐야 기술자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대항심을 불태울 상황을 만들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평소에 하던 일이라도, 시즈코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로 좋은 기술이 확립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지는 그녀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질 않는다. 따라서 해외의 기술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도입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요ー. 그럼 마지막으로 모미지 짱. 너는…… 그렇지, 님 나무(インドセンダン)의 재배 기록이라도 관리해 주겠어?"


"네, 네!"


말을 걸자 깜짝 놀랐는지, 모미지는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뭔가 긴장할 만한 말을 했나, 라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진정해. 어느 정도는 가르쳐주겠지만, 그게 확실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게 일이야. 별로 어렵지는 않거든? 올바르다면 재배할 수 있는 것이고, 틀렸다면 시들 뿐이니까"


"어, 시들게 해도, 되는 건가요?"


"확실히 검증한 결과라면야. 무의미하게 시들게 할 생각은 없거든? 뭘 어떻게 했더니 시들었다, 라는 기록은 남겨줘. 그런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진실에 도달할 열쇠가 되는거야"


"네. 아, 알겠습니다"


모미지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모미지에게 재배시키는 님 나무(영어 명칭 Neem, 이후 님으로 표기함)은, 이름 그대로 인도 원산의 식물이다 (※역주: 일본어 명칭인 インドセンダン은 직역하면 인도 멀나무라는 의미).

인도에서는 옛부터 만능약으로서 가정에 상비된 나무인데, 최근에 해충 퇴치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나무 전체에 뭔가의 효과가 있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आयुर्वेद, Ayurveda)에는 님의 씨앗이나 나무껍질, 잎사귀를 쓴 약이 여럿 기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씨앗이나 나무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오일이다. 아자디락틴(azadirachtin)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이 수백 종류나 되는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

또, 이것을 섭취한 벌레는 성장 호르몬의 작용이 방해받아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만한 효과가 있는데, 곤충 이외의 동물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기름을 짜낸 씨앗 찌꺼기를 가루로 만든 것은 님 파우더(Neem powder)라고 하며, 땅 속에 숨은 해충을 퇴치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효과는 1, 2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기에, 정기적으로 님 파우더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미지 짱의 일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네. 끊임없이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 뿐이니까"


화학 농약을 입수할 수 없는 전국시대에서 님 나무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오일 등은 화학 농약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편리한 존재이다.

다만 님 나무는 열대지역이 원산이기 때문에, 기온과 습도에 주의하며 재배할 필요가 있다. 내한(耐寒) 온도는 10도로, 그루(株)가 작을 때는 특히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이 있다.

재배의 평균 기온은 20도에서 25도, 햇볕이 잘 들면서 물빠짐이 좋은 땅이 필요하다. 물빠짐이 나쁘면 뿌리가 썩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縄) 등의 아열대 지역에서밖에 야외(戸外) 재배를 할 수 없고, 일본의 혼슈(本州)에서는 겨울이 되면 실내(戸内) 재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화분에 심어 재배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다.

나무 그 자체가 해충 대책이기에 질병이나 해충은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은 있찌만, 재배 그 자체는 나름 난이도가 높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한숨 돌린 후 시즈코는 다시 전원을 둘러보았다.


"그럼 대략적인 일의 설명은 했다고 생각해. 이건 전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비는 시간에는 뭘 해도 좋아. 물론, 우리나라를 적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하겠지만 말야"


보답이라는 단어에 조금 긴장한 네 사람이었으나, 시즈코는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평범하게 우리 나라의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생활하면 거의 문제는 없어.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하러 와도 좋아. 중요한 건 혼자서 끌어안지 않는 거야"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소근소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잘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의식주에 대해 안내하게 하지. 소성(小姓)들, 안내하도록"


네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시즈코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성들에게 네 사람을 안내할 것을 명했다.




그들을 맞이한지 3주일이 지났다. 표면적으로는 딱히 말썽도 없었고, 처음에는 기술자들과 다소 삐걱대기는 했으나, 신기함(物珍しさ)에서 오는 서먹함이었기 때문에 2주일이 지나자 사이가 좋아졌다.

루리는 사람이 어려운 모양이라, 오빠인 야이치의 뒤에 숨는 일이 많았다. 물론 기술자들의 부인들에 의한 기관총같은 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코타로는 번역을 재빠르게 마친 후, 지동설의 검증에 착수했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웠으나, 가끔 나와서는 케이지들과 술을 마셨다.

와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는 걸 듣고, 곧 와인 양조에 손댈 가능성이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이치는 과묵한 기술자로, 묵묵히 제품 제조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코 기술자들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기독교도들로부터 계속 거절당해왔기에 어떻게 접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무뚝뚝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말을 하게 되었다.


모미지는 진지했다. 진지함이 지나쳐 일에 너무 열을 올리게 되어버리는 것이 옥의 티였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세 사람과 달리 타인과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일본어의 습득은 조금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응, 문제없네"


3주일이 지난 후 시즈코는 아야(彩)로부터 네 사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내용은 충분했고, 특별히 문제가 될 점은 보이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기대 이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시즈코 님이 모미지에게 너무 신경을 쓰셔서 본래의 일이 늦어지고 있는 점이네요"


"아ー 그건, 미안해. 어떻게든 때에 맞출게"


"신경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면 모미지가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사게 됩니다. 시즈코 님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신 몽입니다. 뭐든지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오, 질투일까? 나는 항상 아야 짱이 너무 좋은데?"


말하자마자 시즈코는 아야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야는 샥 하고 몸을 젖혀 시즈코의 포옹을 피했다.


"부ー, 아야 짱은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바보같은 말씀 마시고, 스스로의 일을 끝내 주십시오. 10만 석을 다스리는 것이니, 지금 이상으로 서류가 늘어납니다"


"그걸 대비한 직원들은 다 준비해놨어. 나는 결재할 뿐이라서 그렇게까지 일은 늘어나지 않아"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10만 석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부터 통치에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10만 석 중, 5만 석은 사키히사가 어떻게 다스릴지에도 달렸지만, 남은 5만 석은 시즈코 혼자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시즈코는 5만 석을 세분화하고, 각자 전임(専任)의 대관(代官)을 두었다.

세금 관리의 가장 작은 단위를 다스리는 사람을 시장(市長), 복수의 시장 위에 서는 사람을 구장(区長), 그 구장들을 통솔하여 가장 위에 서는 것이 시즈코이다.

시즈코가 주로 하는 일은 법 정비, 세제 개혁, 시장 개혁, 토지의 소유자 정리, 인프라 개발, 금융 개혁, 예산의 입안과 집행이다.


"금융에는 은행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주상께서 통화 발행권을 얻을 필요가 있지. 뭐, 지금도 은행은 가동시키고 있으니 문제는 없지만"


은행에는 '금융중개(金融仲介)'와 '결제기능(決済機能)'과 '신용창조(信用創造)'의 3대 기능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보다도, 은행은 백성들로부터의 신용이 중요해진다. 신용이 없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중개는 할 수 없다. 신용없이 결제 기능은 사용되지 않는다. 신용없이 신용창조는 할 수 없다.

뭐든지 백성들로부터 신용이 있을 것, 이것이 없으면 백성들이 돈을 맡기지 않고, 빌려준 돈이 제대로 변제되지도 않는다.


금융중개는 이름 그대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중개를 하는 기능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를 잘 조정하여, 거래의 리스크나 코스트를 경감할 수 있다.

결제기능은 예금을 사용하여 현금을 쓰지 않고 송금이나 지불을 하는 기능이다. 결제기능은 은행의 네트워크와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처음으로 실현된다.


신용창조는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히 말하면 예금과 대부를 반복하는 것으로 처음에 은행이 받은 금액의 몇 배나 되는 예금 통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씨와 B씨가 각자 1천만엔씩 은행에 맡겼다고 하자. 이 때, 은행에는 2천만엔의 본원적(本源的) 예금이 존재한다.

이 중, 준비예금(準備預金)이라는 일정한 금액을 남기고, 남은 금액을 대부의 자금으로 돌린다.

그리고 C씨가 은행에서 1천만엔을 빌렸을 때, 은행에는 A씨 예금 1천만엔, B씨 예금 1천만엔, C씨에 빌려준 1천만엔 등 합계 3천만엔이 은행의 계좌예금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최초의 본원적 예금이 2천만엔이었기에, 은행에는 새롭게 1천만엔의 신용이 창조된 것이 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통화가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원활해진다. 이 기능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다만 이름 그대로, 은행에 신용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기능이다.


"뭐ー 은행이라고 해도, 지금은 신용이 없으니 돈을 맡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은행이 생긴다는 것은 즉시 돈을 맡아준다, 라는 게 되지는 않는다. 은행이라는 기능 자체가 처음이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 것으로 일정한 신용을 얻었는지 서서히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정도다.

하지만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고객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신용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이긴 하지만 예금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출입하는 상인들이 일제히 맡긴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입하는 상인, 특히 큐지로(久治郎)는 은행의 메리트를 남보다 빨리 깨달았다. 그것은 현금을 은행에 맡겨두면 서류(紙)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돈을 처리할 수 있어, 현금을 들고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안전하다는 것이다.

설령 결제가 실행되지 않더라도, 계좌의 잔고만 확보해 두면 은행의 책임이 되므로 큐지로의 신용에 흠이 가지 않는다.

큰 상담(商談)을 마무리할때도, 자본주(金主)를 찾아서 상대마다 조건을 붙이며 교섭하지 않아도, 은행측이 많은 자본주들을 모아서 중개해 주므로, 많은 자금을 더욱 싸게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돈거래가 빠르고 쉽다, 이 두 가지가 큐지로에게 큰 메리트였다.


"큰 돈이 예금되었네. 이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내외의 적은 용서없이 철저하게 단속해줘. 한패가 있다면 토할 때까지 용서없이 취조하는 것도 허가할게"


"네. 경비에 관해서는 최상위의 상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시큐리티가 확실한 것, 이게 우선 신용을 얻는 첫걸음이다. 경비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시큐리티 대책도 없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바보는 없다.

돈을 약탈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한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신용은 얻을 수 있다.

특히 전국시대에서는, 은행강도범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고 일가친지를 연좌시켜 효수(晒す)하는 정도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된다.


"법적으로도 은행강도범의 살해는 문제없지만, 다 죽여버리면 배후관계를 밝힐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대응하도록 말해줘"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해ー. 아마 몇 달 동안은 큰 움직임도 없을거라 생각하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런 말을 한 시즈코는 후에 이 때의 발언을 후회한다.

그 빅 뉴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뉴스를 알게 되었을 때, 누구나 "설마 그럴리가"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시즈코도, 계책을 실행한 노부나가조차 예상외의 사건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을 진감시킨 일대 뉴스. 그것은 에치고(越後)의 용, 즉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수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식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이었다.


"시즈코 님을 뵙고 싶소!"


자칫하면 뻔뻔한 태도로도 보이는 소년이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4월 중순을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소년이라고는 해도 차림새는 훌륭하고 풍채도 어엿한 무사라고 생각되었기에, 문지기는 잠시 머뭇거린 후 사람이 찾아온 것을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쇼우(蕭)에게 스케줄을 확인했으나, 그녀는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돌아가라고 할 상황이지만, 혼자서 찾아온 사람을 함부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소년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알현실에서 소년의 모습을 보고 간신히 시즈코는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라, 요로쿠(与六) 군이잖아. 이래저래 1년만…… 인가? 이번엔 무슨 용무일까?"


"오늘은 배알할 기회를 주셔서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오늘 찾아뵌 것은ーー"


가벼운 태도로 방문의 이유를 묻는 시즈코에 대해, 카네츠구(兼続)는 자세를 단정히하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뱃속의 벌레가 성대하게 울어제꼈다.


침묵이 자리를 지배했다. 다들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말을 집어삼켰다. 누구의 뱃속 벌레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은 꺼려졌다.

볼을 긁던 시즈코는, 천정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한 후,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하죠. 오늘은 좋은 생선이 들어왓으니, 맛의 감상을 들려줬으면 하네요"


"……예, 옛.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카네츠구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기껏 폼을 잡았는데, 보기좋게 마각을 드러내 버렸으니 창피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는 깊게 지적하지 않고 손뼉을 쳐서 소성들에게 점심식사 준비를 명했다. 잠시 후, 진수성찬에는 거리가 멀지만 따뜻해보이는 식사가 전원의 앞에 놓여졌다.


"그럼 들도록 하죠"


"잘 먹겠습니다"


식전의 인사를 한 후,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낀 카네츠구는, 처음에는 천천히 먹었지만, 공복에는 이길 수 없었던 듯 도중부터 퍼넣듯 먹고 있었다.

저번에 우정이 싹텄는지, 그냥 단순히 배가 고팠던건지, 케이지나 나가요시(長可)도 식사를 하는 스피드가 올라갔다.


"밥을 더 줘! 밥그릇(椀)으론 부족해. 나는 밥통(お櫃)째로 가져와!"


"아, 치사해! 야, 소성, 내게도 밥통으로 부탁해! 케이지보다 큰 걸로 말야!"


"케이지 님, 카츠조(勝蔵), 너희들 시즈코 님 앞에서ーー"


"나도 질 수 없군! 가장 큰 밥통으로 밥 추가 부탁해!"


사이조가 쓴소리를 했지만, 그 목소리는 케이지나 나가요시에게는 닿지 않았다. 뭔가 불이 붙었는지, 카네츠구까지 밥통으로 밥 추가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에잇! 소성이여! 나(某)에게도 밥통으로 가져와라!"


드디어 사이조의 경쟁심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다.


"다 어디에 들어가는 걸까"


눈 앞에서 벌어지는 많이먹기(大食い) 경쟁에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먼저 나가요시가 탈락하고, 이어서 사이조,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일대일 대결(一騎打ち)이 되었으나, 몸 크기 때문에 케이지가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그 모습을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본 시즈코였다.

차를 다 마시고 쟁반 위에 올려놓은 후, 신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워 있는 카네츠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온 걸까?"


"우풉, 편지를 전하러 왔어. 그리고, 빌린 돈의 변제도 겸해서"


뱃속이 괴로운 듯한 모습으로 카네츠구는 편지, 이어서 돈이 든 자루를 내밀었다. 양쪽을 소성이 받아들고 안을 확인한 후 시즈코에게 가져왔다.


"돈은 아야 짱에게 건네줘요. 편지는 내용을 확인하겠어요"


"옛"


명을 받은 소성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제와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야?"


"네가 가져왔으니, 돈자루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도 없겠지"


대자로 누워 있는 카네츠구의 질문에 시즈코는 편지를 펼치면서 대답했다. 애초에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돈을 카네츠구는 일부러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는 없고, 빌려간 금액이 확실히 들어 있을 것이다, 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돈보다 편지 내용이 뭐냐……가 중요하지. 어디보자……)


드러누워있는 인간들을 내버려두고, 시즈코는 편지의 글자를 좇았다. 읽음에 따라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읽었을 때 시즈코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편지를 읽었다.

네 번 정도 편지를 다시 읽은 후, 시즈코는 곱게 편지를 접었다.


"혹시 몰라 확인하는데, 농담이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농담으로 끝날 내용이 아니겠지. 설령 농담이라면 여기에 오기 전에 내 목이 날아갔을걸"


"그러네…… 미안, 설마 이럴리가, 라는 내용이었거든"


"뭐 편지를 보면, 누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겠지. 내용을 들었을 때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하지만 영주님(御実城様)이 숙고하신 결과로 내리신 결론이야. 나는 그것에 따를 뿐이지"


"그래, 알았어"


카네츠구의 대답을 들은 후, 시즈코는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필묵을 준비하세요!"


입구로 얼굴을 돌리고 시즈코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거의 내지 않는 시즈코의 큰 목소리에 소성이 무슨 일인가 당황하며 지필묵을 준비했다.

준비된 종이에 시즈코는 편지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2통을 썼다.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화압(花押)을 찍어 곱게 접었다.

그리고 원래 편지를 함께 넣어 나무상자에 봉인한 후 소성을 불렀다.


"빠른 말을 바꿔타면서 주상께 가장 빠르게 전달하도록 전령에게 전하세요"


"옛!"


편지를 소성에게 건네주고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있음을 신신당부하도록 명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소성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뛰쳐나가듯 방을 나갔다.


"……무슨 내용인데?"


지나치게 다급한 모습에 편지가 궁금해진 나가요시가 머리만 들어서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아래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을 하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나가요시가 질문해온 것을 깨닫자 요약한 문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여기에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의 신하가 되겠으니(臣従), 그것을 주상께 전해달라, 는 내용이 적혀 있어"


"…………으억!?"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이어서 머리를 몇 번 흔든 후,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는 나가요시. 이윽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는지, 케이지나 사이조조차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가짜, 는 아니겠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랑 고노에(近衛)님이 함께 이름을 올렸으니(連名), 가짜나 농담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뭣보다 요로쿠 군을 써가면서까지 이쪽을 속일 이유도 없어. 거짓 하나 없이(正真正銘), 이건 우에스기 가문의 항복 문서야"


"진짜냐……"


편지가 진짜라고 이해하자 나가요시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우에스기 켄신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호적수라고 평가될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전투 한 번 벌이지 않고 항복에 동의하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쪽이 무리한 얘기다.


"하지만,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고 항복한다는 것에 용케 동의했네"


"……만약 오다 가문과 싸울 경우, 우에스기 가문은 에치고를 업고 싸우게 되니까. 무사라면 전력차를 신경쓰지 않고 화려하게 산화한다는 길도 있겠지만, 백성을 업고 그런 짓을 하면 망국의 싸움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긍지를 버리더라도 에치고에 있어 뭐가 가장 좋을지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


노부나가와 켄신이 전투를 벌일 경우, 노부나가는 방면군(方面軍)을 파견하지만 켄신은 본인이 출진하는 본토결전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설령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지만, 켄신은 패하면 거기서 끝이다.

켄신에게 있어 노부나가와 전투를 벌일 경우,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연전(連戦)이 상대의 힘이 다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건 싸움에서, 적과의 전력차를 뒤집을 수 없는 경우, 결국 계속 소모되어 마지막에는 반드시 패배한다. 그 때, 에치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전투를 벌여도 벌은 받지 않는 거 아냐?"


"우에스기 가문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거든"


에치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때, 켄신은 무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소심(臆病)한 행위라는 비난을 외부에서 받고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터져나오더라도 이 시기에 항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주상의 적, 또는 적이 될 것 같은 패거리들은 서쪽에 혼간지(本願寺), 혼간지를 따르는 사이카슈(雑賀衆)나 일향종(一向宗), 모우리(毛利) 가문, 아자이(浅井) 가문, 아사쿠라(朝倉) 가문. 동쪽은 명확하게 적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호죠(北条) 가문에 오우슈(奥州, ※역주: 현대의 후쿠시마(福島) 현, 미야기(宮城) 현, 이와테(岩手) 현, 아오모리(青森) 현에 해당)의 영주(国人)들, 등 잔뜩 있어. 이 상태에서 우에스기 가문이 싸움을 벌일 경우, 상황이 나빠진 후에 항복해도 주상께서 받아들이지 않게 돼. 왜냐하면, 타케다 가문에 이어 우에스기 가문을 격파했다, 라는 관록이 붙으니까. 그 쪽이 몇 배나 외교적으로 유리해지거든"


"어, 음"


이해가 잘 안되는지 나가요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케이지는 일부러 흘려듣고, 사이조는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내용은 절반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계속 대자로 드러누워있었다. 담력이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신경이 굵은건지 판단이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상께는 우에스기 가문을 굴복시켰다, 는 관록이 붙겠네. 다만, 그것과 맞바꿔서 우에스기 가문이 무슨 말을 할 지, 가 신경쓰여"


"항복하는 거니까 머리 숙이고 끝, 아냐?"


"아니, 그럴 리 없잖아. 항복한다고 해도 조건은 내걸겠지. 아마도 우에스기 가문에게 항복 조건을 교섭하는 자리야말로 외교라는 이름의 전쟁터가 되겠지"


아래턱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켄신이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서 무얼 제시해 올지를.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것은 토지(土地)다. 에치고의 영주는 토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전 영토의 소유권을 인정받는다(安堵)는 조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그 밖에 생각되는 것은 칸토칸레이(関東管領,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가 칸토(関東)를 다스리기 위해 카마쿠라(鎌倉)에 둔 벼슬)를 유지(固持)하는 것이다. 요시아키(義昭)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을 반납한다고 해도, 무로마치 막부가 내린 모든 직책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때까지,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에 의한 무로마치 막부의 잔재(残滓)는 계속 남는다. 설령 권위와 권력을 잃고 완전히 노부나가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라고 해도.


"(아니, 칸토칸레이는 인정되지 않으려나. 그걸 인정했다간 우에스기 가문은 오다 가문을 뒷배경으로 삼아서 칸토 일원의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하겠지. 아무래도 그건 인정할 수 없어. 가장 유력한 타협안은 켄신의 신변보장과 토지의 소유권 인정이려나) 어쩄든 주상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가 문제네. 내일 아침에는 오시겠지. 주상을 모셔야 하니 오늘중에 식료품을 구입해 둬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낼 요리의 식재료를 사두도록 밖에 있는 소성에게 명했다. 소성은 대답을 한 후 시즈코의 명령을 전당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리고 모포를 한 장 가져와요. 호담한 아이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예? 옛"


조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소성은 명령을 따랐다. 구매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식료품을 구매할 것을 전하고, 모포를 한 장 들고 돌아왔다. 시즈코에게 모포를 건넨 후, 소성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정말로 호담하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대자로 누운 채 잠들어있는 카네츠구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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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2 1573년 3월 중순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아시미츠(足満)에게 밀명을 내렸다. 내용에 대해서는 시즈코에게까지 비밀이었으며, 아시미츠가 출발하기 직전에 집을 비운다고 말했기에 그 존재를 인식했을 정도였다.

자신의 가족(身内)에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위험이 미칠 우려는 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아시미츠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하고 일체의 의문을 삼킨 채 전송했다.

타이밍 나쁘게 시즈코도 또한 쿄(京)에 갈 필요가 생겨, 시간적으로 캐물을 여유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령 물어봤다고 해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시미츠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시미츠가 받은 밀명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대동하고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녹기 전의 잔설(残雪)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에 일부러 하는 강행군. 정치적으로도 위험도적으로도 시즈코에게는 덮어두는 편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좋다고 아시미츠는 판단했다.


"이번 길은 목숨을 건 가혹한 것이 된다.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다"


"신경쓰지 말게. 내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니. 가끔은 객기를 부리는 것도 좋겠지"


돌려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아시미츠였으나, 사키히사는 이해하면서도 흘려들었다. 뜻을 꺾는 것(翻意)은 무리라고 생각한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한대책은 확실히 해 둬라. 겨울의 산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준비를 게을리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말할거라 생각해서, 사전에 시즈코 님에게 방한 장비의 준비를 의뢰해 두었지"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는 시선에 위험(剣呑)한 빛이 서렸다. 하지만, 시선을 받는 본인은 표표(飄飄)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것을 예측하고 반년이나 전에 의뢰했네. 이번 건과 연결짓지는 못하겠지. 우연히 이번에 처음 쓰는 것 뿐, 설산을 상정한 본격적인 것일세"


"……그런가"


사키히사가 나무 상자에서 꺼내기 시작한 장비를 보고 아시미츠는 납득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는, 기름과 밀랍으로 처리되어 발수(撥水) 능력을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안쪽에는 기모(起毛) 처리된 털가죽을 붙여놓아, 보온능력도 높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가죽제의 장화도 기모 처리는 물론이고, 앞부분에 충진물(詰め物)이 들어 있었고, 바닥면에는 징(鋲)이 박혀있어 미끄럼 방지 가공도 되어 있었다.

게다가 휴대용의 간이 설피(かんじき)까지 들어있어, 상황에 맞춰 구별하여 쓰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의류도 두꺼운 천을 주머니 모양으로 꿰매고 안쪽에 솜을 넣은(※역주: 누빔) 실용성이 높은 것이었다.

외견으로 볼때는 조금 뚱뚱해질 정도로 입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제품의 질을 알고 있는 아시미츠가 볼 때도 보증할 수 있는 장비였다.


"눈보라가 칠 때 필요해지니, 두건(頭巾)이나 목도리(襟巻)도 준비해 둬라"


"그런가, 충고에 감사하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자네가 챙겨주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네"


"웃기지 마라"


사키히사의 대답에 본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아시미츠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등을 돌리더니 사키히사를 두고 걸어갔다. 사키히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의 등 뒤를 쫓아갔다.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로 출발하는 한편, 시즈코도 쿄로 출발했다. 병사들을 데리고 쿄에 들어간 후, 그녀는 즉시 최초의 목적인 타지마 소(但馬牛)의 매입을 실시했다.


타지마 소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에 편찬된 속 일본기(続日本紀)에도 등장하는, 옛날부터 이 나라(本邦)에 뿌리내린 소다.

현대 일본의 와규(和牛) 중 8할 정도가 타지마 소의 계통이라, 와규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품종이다.

타지마 소의 특징은 뭐라 해도 그 맛에 있다. 물론 통상의 소와 마찬가지로 농경(農耕)이나 하역(荷役)에도 쓰이지만, 수명이 길고 여러 번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축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옛부터 거론(取り沙汰)되어온 타지마 소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록(書物)에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오오사카 성(大阪城)을 축성했을 때, 단 하루 뿐이지만 무사의 신분이 부여된 타지마 소까지 존재한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래종과의 교잡으로 추가적인 품종 개량을 추구한 결과, 순혈종이 격감해버려서 한 떄는 멸종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기적의 네 마리라고 불리는 순혈종이 남아있던 것에 의해 부활하여, 오늘날의 와규를 탄생시킨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타지마 소의 매입을 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타지마 소의 고기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용소(御用牛) 같은 취급이 되어, 쿄에 갈 때마다 타지마 소를 사들여서 미츠오(みつお)에게 사육과 품종개량을 맡겼다.

시즈코가 매입해오는 타지마 소는 순혈종이라, 품종개량된 현대의 지식은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고 외래종과 교잡 같은 걸 하려고 했다가는 메이지 시대의 실패를 반복해버리게 된다.

순혈종의 좋은 점을 남기면서 더욱 좋은 맛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졌으나, 미츠오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들인 소를 상인이 오와리(尾張)까지 운반하지만, 이번에는 시즈코 자신의 쿄 체재가 단기간이기에 그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 함께 운반하게 되었다.

사전에 교섭은 끝났기에 딱히 다투는 일 없이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후에는 시즈코가 쿄로 오게 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이었다.


"아무리 지나도 남장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시즈코가 쿄를 방문한 이유. 그것은 외국의 기사(技師)를 포섭하는 것이다. 포섭한다고 해도, 현대처럼 기술을 가진 개인이 멋대로 망명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국가에 유익한 기사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은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석은 있지만, 그러면 빼앗긴 쪽이 경계심을 품게 된다.

정치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즈코는 맹점이 되어 있는 루트를 통해 기사를 사들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노예 매매이다. 노예로 전락한 기사를 사들인 것이다.

물론 기사가 노예로 전락한 경우, 국가가 그 매각처에 눈을 빛내며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매각처에서 다시 전매(転売)된 경우에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광산 노동 등의 가혹한 노역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노예 매매가 본격화되고 대규모화되기 전이기에 가능한 편법(荒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항해시대라고도 하는 전국시대에서도 노예의 매매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까운 중국, 마카오는 아시아 최대의 노예 집적지가 되어 있었다. 높은 기술을 가진 노예를 감추는데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된다.


"……하지만, 굉장한 이유로 노예로 삼네,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이번에 사들인 노예 4명의 경력서를 확인하고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을 떠올렸다. 4명 모두 화형이라는 극형이 내려졌으나, 관대한 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광산 노동으로 변경되었다.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노예로서 팔아치우는 것이니 말은 하기 나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어디어디…… 천동설(天動説)을 부정했다? 허가없이 주님의 우상(偶像)을 만들었다?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뭐야 이게. 바테렌(伴天連)은 바보밖에 없는 거냐?"


시즈코가 보고 있는 경력서를 등 뒤에서 엿보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독교를 모르는 나가요시에게는 그게 죽을 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도 포함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시즈코조차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고 있던 것이 중, 근세까지의 기독교권(教圏)이다.

 

"저쪽은 대단히 진지해. 사회는 급격한 변혁을 싫어하니까, 우리들에게는 바보스럽게 생각되는 내용이라도, 사회를 뒤흔드는 큰 죄가 되는거야"


"시즈코 님, 노예상인이 왔습니다"


경력서를 쟁반 위에 되돌려놓음과 동시에 소성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항상 쓰는 두건을 쓰고, 나가요시에게 소정의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들여보내세요"


소성에서 명령한 후 조금 지나자, 포르투갈인으로 보이는 노예상인과, 그가 데려온 남녀 네 명이 실내로 안내되었다.

야심만만한 포르투갈인 모험가 출신의 상인인 듯, 불손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동시에 장사꾼답게 돈줄이 될 수 있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의외로 만만찮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인사를 나누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상인은 이후에도 계속적인 거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 나불나불 떠들며 자신을 선전하려고 했다.


"주군, 아케치(明智) 님께서 오셨습니다"


슬슬 시즈코를 포함한 전원의 노여움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그 때, 겐로(玄朗)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내방을 알려왔다.


"알겠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그걸 핑계로 상인을 쫓아냈다.

상인으로서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언질을 원했겠지만, 주위가 발하는 위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후회하는 심정으로 떠나갔다.


"신세를 지네요, 겐로 할아버지"


상인이 나간 후,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미츠히데의 내방은 겐로가 즉석에서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요인(要人)들끼리 사전 연락도 없이 상대를 방문하는 것 따윈 있을 수 없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겐로가 눈치챌 정도의 노여움(鬱憤)을 눈치채지 못한 상인의 무신경함(図太さ)은, 어떤 의미에서는 칭찬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흉내내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도 아니고, 흉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소생은 이만"


겐로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시즈코는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네 사람의 노예에게 시선을 돌렸다.

40줄의 남성, 30줄의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여성, 10대로 보이는 소녀 등 네 명이다.

애초에 시즈코는 외국인과의 접점이 적었기에 외국인의 용모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10대의 소녀는 대단히 이질적이었기에 그녀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기름으로 떡져있었지만, 촉촉한 검은 머리에 보석이라고 착각할 듯 선명한 녹색 눈(翠眼)이 인상적이었다.


경력서에 따르면 연장자인 남자는 복수의 언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라는 전력(肩書)도 있었기에, 통역 겸 번역자로서 채용했다.

30줄의 남성은 금속가공 기술자이며, 여성은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여동생에 해당한다. 기술자는 남성 뿐이고, 여동생은 연좌제로 노예로 전락된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마지막 소녀가 수수께끼였다. 직업의 기재가 없는 대신, 마녀의 자식이라는 기재가 있었다. 이걸 볼 때 아마도 약사(薬師)일 거라고 시즈코는 어림짐작했다.


"………배가 고프겠지. 나는 옷을 갈아입을테니, 그들에게 식사를 주도록"


경력서를 죽 읽어보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이었다.

노예에게 이름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이 붙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름이 없어서는 불편하다.

어쨌든, 우선은 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뭣보다 답답한 남장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자신의 처우를 결정하지 않고 퇴출한 주인에게 곤혹스러워진 그들을 놔두고, 시즈코는 얼른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평소의 차림새로 갈아입은 후, 다시 실내로 돌아와 상좌에 앉았다.

시즈코의 맨얼굴을 보고 네 사람은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소녀를 제외한 전원에게, 자신들보다 젊은 여자가 주위에 있는 남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있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식사는 입에 맞았나?"


시즈코의 질문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인 소녀였다. 그는 목을 삐끗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장자인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식사의 내용에 문제는 없는 듯 묵묵히 먹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제공된 식사의 맛에 놀라며 불만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식사는 치킨 크림 스튜에 하얀 빵, 사슴고기 튀김(唐揚げ), 생야채 샐러드, 그리고 맑은 물이었다.

현대의 유럽에서는 육식화가 진행되어 빵이나 야채는 곁들이는 것 취급이다. 하지만, 근대 초기까지는 일본과 다름없이 곡물 중심의 식사를 했다.

서민들 뿐만 아니라 부농(豪農)이나 지방 영주(地方領主), 하급 귀족(下級貴族) 등의 식사도 곡물이 주체였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세금으로서 징수되는 밀(小麦)이 아니라 호밀(ライ麦), 귀리(えん麦)나 보리(大麦), 메밀(蕎麦) 등을 거칠게 갈아서 물이나 우유로 끓인 포리지(porridge)나, 그보다도 옅게 하여 물로만 끓인 그루엘(gruel)이라는 죽으로 먹었다.

빵은 빵가루를 만들 때 제분(製粉)할 필요가 있다. 제분(粉挽き)은 영주의 전권 사업이며, 영주 소유의 제분소(粉挽き所)를 사용하여 사용료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택의 돌절구(石臼)를 사용하여 거칠게 가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고운 가루로 만들려고 해도 시간을 들이면 마찰열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에 거친 가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금(食塩)조차 넣지 않고 물만으로 개어, 보존을 제일로 생각하여 굽기(焼しめる) 때문에 딱딱하고 퍼석퍼석한 빵이 되었다.

이 때문에 빵이라고 하면 스프에 적시거나 음료로 불려서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먹고 있는 빵은 놀랄 정도로 하얗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함유 수분량도 많고, 소금은 물론이고 계란이나 버터까지 넣어 충분히 발효시킨 극상품이었다.

부드럽고 단맛조차 느껴지는 하얀 빵에 그들이 도연(陶然)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양에서 사냥(狩猟)은 귀족의 특권으로 취급되었고, 사냥감의 고기들 중에서는 사슴 고기가 가장 선호되었기에, 사슴 고기는 사치스러운 고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상의 사치로 친 것은 생야채였다.

현대 일본에서는 누구나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이것은 발달된 유통이나 우수한 보존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에서는, 신선한 생야채 같은 것은 전용의 밭이나 고용인을 집 안에 두고 있는 한정된 왕후(王侯), 귀족(貴族)들의 먹거리였다.

서민들은 설령 생산자라 하더라도 팔고 남은 말라비틀어지고 썩기 시작한 야채를 먹었으며, 생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무도 안 뺏어간다"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에게 시즈코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대귀족이라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을 앞두고 그들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튜, 튀김에 생야채 샐러드, 산더미처럼 준비된 빵이 위장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기 시즈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 귓말을 했다. 괜찮다, 는 말의 의미를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는 나가요시에게 귓말로 대답했다.


"(일정한 조사는 빠짐없이 했어. 그걸 했으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네 명밖에 모으지 못한 거야)"


나가요시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럽 각국이나 기독교(伴天連)의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노예가 실은 일본 국내의 내정(内情)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은 스파이라는 가능성은 시즈코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조사'를 아시미츠에게 의뢰했다.

그리고 그의 '스크리닝(screening) 검사'를 마치고 문제없다고 인증된 것이 지금 눈 앞에 있는 네 사람이다.


"(뭘 어떻게 '검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시미츠 아저씨가 문제없다고 보증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어…… 확실히 아시미츠 아저씨는 지독(苛烈)하니까. 그럼 괜찮은가)"


아시미츠가 조사했다, 라는 그 한 마디에 나가요시는 납득했다. 나가요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즈코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다른 이유는 그들이 '파문(破門)'된 점이다.


파문이란 교의(教義)에 반하는 신도를 종문(宗門)에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파문되면 기독교 신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는데, 중, 근세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신자로서 인정받는 권리나 자신이 소유하는 재산, 파문된 사람이 왕족이라면 왕위나 영토, 게다가 적자(嫡子)에게 그것들을 상속할 권리를 잃는다.

게다가 교회에서 종교적 의식을 받을 권리를 잃어, 죽은 후에도 묘에 들어갈 권리조차 잃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추방된다', 그것이 중, 근세의 기독교의 파문이다.


중세에서 유명한 사건으로서 '카놋사(Canossa)의 굴욕' 등 공격적인 면도 있지만, 파문은 기본적으로는 이단적 신앙을 막는 교회의 조치이다.

그렇기에 교의의 해석 차이에 의한 성직자끼리의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 서로 파문되는 상호 파문(相互破門)이라는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11세기에 기독교회와 동방정교회(東方正教会)로 분열되었으나, 이 때 쌍방의 최고위 책임자가 상호파문된 것이 분열의 이유이며, 상호파문의 가장 유명한 예로 들어진다.


(이 경력서를 보니, 제일 나이가 어린 소녀는 서자(庶子)인가. 이거 또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네)


서자란 기독교 세계에서는 '불의(不義)한 자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자에게는 부모에게서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또 세간으로부터도 냉랭한(厳しい)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독교의 교의, 즉 신학적으로 성행위는 원죄(原罪)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한 혼인의 결과로서 자손을 얻기 위한 성행위는 신에게 인정받은 것이기에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정당한 혼인 이외의 성행위는 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악마의 유혹에 빠진 죄가 무겁고 사악한 행위로 생각되게 되었다.


(평민의 서자라는 것만으로도 괴로울텐데, 거기에 종교재판에 넘겨져 마녀로 판단된 여자의 딸, 게다가 교회에서 파문이라.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시즈코는 전원이 식사를 마친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구나, 라고 생각한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머릿속을 새로이 했다.


"식사는 만족했으려나? 아무도 남기지 않은 걸 보니 만족했다고 생각하지. 그럼 먼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줘"


헛기침을 한 후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적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뭐 일본어의 공부를 시켰으니 당연한가) 그럼 좋아. 너희들의 경력은 확인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경력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마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험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건 참고 정도다. 우리 나라, 적어도 주상(上様)의 통치 아래 있는 땅에서는 출신이나 피부색으로 차별은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파문? 서자? 모두 고려할 가치가 없다. 인종이나 신앙이 다르더라도 유능하기만 하면 된다"


옅게 웃은 후, 시즈코는 경력서를 둘둘 말아 뒤로 던져버렸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으나,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쁜 풍습(因習)을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의에 반하더라도 그게 유익하다면 나는 인정하지. 애초에 나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니 교의에 따른 판단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


"너희들은, 지금 먹은 식사를 다시 한 번 먹고 싶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게 스스로의 재주를 보여라. 너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면, 나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지급하지. 내가 할 말은 이상이다. 뭔가 질문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사양말고 하도록"


위엄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시즈코는 약간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네 사람에게 선언했다.

네 사람은 각자 고민하고, 때로는 넷이서 서로 상의했다. 이윽고 결론이 나왔는지,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헛기침을 했다.


"아ー, 제가 대표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남성이 말했다. 어쩌면 프로이스보다 일본어를 잘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관없다. 말하라"


"그럼…… 우선 저희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내려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식사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


"아까 당신은 출신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묻겠습니다. 저희들은 유태인입니다. 그걸 알고도 아까의 말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역주: 원문에는 평어와 경어가 뒤섞여있는데, 아마도 일본어가 아직 조금 서투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뒷부분은 또 경어가 이어지길래 어째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전부 경어체로 통일했음)


유태인. 현대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종이지만, 중, 근세에서 그들의 취급은 탄압이라는 한 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중세에서는 '유태인은 어떠한 권리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유럽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생략하겠지만, 유태인은 당시 유럽 전체에서 미움받고 있었다.

가장 흔한 유태인에 대한 비난이 '그들은 고리대금업자(高利貸し)이다'라는 점이다.


오해가 없도록 부연하겠는데, 유태 교에서도 고리대금업은 금지되었고, 종종 지도자들인 랍비들에 의해 고리대금업의 금지가 설파되었다.

하지만, 대부업 이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면 유태 교의 랍비들도 고리대금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유태 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 있는 금지 내용을 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세 기독교(キリスト教)의 성직자들은 자산가들이었으며, 성직자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役割)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대부업이 있었다. 다만, 중세 교회는 성직자의 대부업을 종종 금지했다.

1179년의 제3 라테란(Lateran) 공의회(公会議)에서 '대부업을 하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 매장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라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쪽인 왕이나 귀족, 상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돈을 빌려줄 존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는 상대가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회의 위광(威光)을 두려워하여 임차(賃借)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가 대부업에서 구축되고 유태인이 그 뒤를 이었을 때, 유럽인들의 적의는 유태인을 향하게 되었다.

평소에 경시하고 있는 유태인에게서 돈을 빌린다. 그것만으로도 굴욕인데, 높아진 적의를 품은 기독교도들은 돈을 빌렸으면서 유태인 따위에게 돈을 갚고 싶지 않다, 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런 반감을 이용하여, 돈을 갚을 수 없게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단, 이라는 핑계를 대고 빚을 갚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유태인이 무기 휴대 금지, 토지 소유를 금지당한 것에 착안하여, 폭동을 일으켜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틈에 차용증(借金の証文)를 파기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차용증(借用書)이 파기되면 유태인의 소유자(대부분은 왕)는 변제를 청구할 수 없게되어(※역주: 원문이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유태인에게 왕이 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소유자라는 것은 유태인 채권자를 뜻하고 채무자가 대부분 왕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일단은 직역했음), 결과적으로 채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번 더 선언하지. 너희들은 유능함을 증명하면 된다. 출신이나 피부색 같은 건 사소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씀을 신용하고,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내가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양하지 않고 말하도록. 뒤를 쫓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도록. 자신의 재주에 안주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을 잊었을 때, 나는 용서없이 너희들을 내치겠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반응을 보였으나, 시즈코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사람은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사는 의미를 갖는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단지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릴 뿐인 가축은 필요없다"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무릎을 치며 표정이 풀렸다. 그것은 모멸이 아니라 환희의 웃음으로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젊으신데도 잘 배우셨군요. 사실을 말하면, 말씀을 나눠보기 전에는 어떤 바보 상대를 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인은 입만 살았지 머리 쪽은 텅 빈 분들이 많았거든요"


웃음을 거둔 남성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걸 본 나머지 세 사람도 그에 따랐다.


"저희들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마음껏 저희들을 부려 주십시오"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합격, 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만점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최고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성은 웃었다. 이번에는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떠올렸다.

조용히 상황을 듣고 있던 나가요시들은 곤혹스러워했으나, 시즈코와 유태인들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아, 깜빡할 뻔 했군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라면야"


"아니오, 단순한 청입니다. 저희들에게 이름을 주십시오"


남성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조스럽게 웃으면서 남성은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유태인. 다툼에 져서 기독교로 개종되어, 지금까지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저희들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롭게 태어나서 출발지로 삼고 싶습니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 달성 후, 기독교로 개종된 유태인이나 북서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은 신(新) 기독교도(cristianos nuevos)라고 불렸다.

하지만 개종자라는 의미에서의 콘베르소(converso)나, 심한 경우에는 마라노(marrano, 스페인어로 돼지, 더러운 사람이라는 모욕)으로 멸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종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강제 개종령이 떨어지거나, 경제적인 곤란이나 사회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이거나 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동하는 것은 희랍어나 아랍어로 된 이름을 버리고 세례명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또, 개종하는 것으로 유태인 공동체로부터는 비판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기독교도들로부터는 항상 배교의 의심을 받았다.

개중에는 개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규제의 대상에서 풀려나 권력을 얻어 벼락출세한 유력한 유태인도 있었다.


"그건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제 종교에 휘둘리는 건 사양입니다. 하나같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만 동료 취급을 하고, 곤란할 때는 내쳐버립니다. 그런 놈들과는 결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뱉듯이 남성이 말했다. 시즈코가 시선만을 나가요시들에게 돌리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봐도 남성의 말에 거짓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애초에 아시미츠의 조사를 통과한 이상, 어딘가로부터의 스파이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흠…… 그럼 나중에 이름을 알려주지. 오늘은 그만 쉬도록"


"주인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남성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후일, 시즈코는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가장 유창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코타로(虎太郎)', 과묵한 30대의 남성에게는 '야이치(弥一)', 그 여동생은 '루리(瑠璃)', 10대의 소녀는 '모미지(紅葉)'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패배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모우리(毛利) 가문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몸이 나빠져 정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장기 요양을 위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천황(帝)에게 반납한다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쿄의 백성들이나 주변국의 백성들은 거의 믿지 않았고, 노부나가에게 반역했기에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짐정리나 인원 확보 등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요시아키가 쿄를 떠나는 때, 그것이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가 문을 닫는 날이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막부를 멸망시켰다는 소문(外聞)이 떠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역할은 요시아키의 자식을 다음 대의 정이대장군에 걸맞는 자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반 오다 세력에 견제를 날린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후(岐阜)에 도착했을 무렵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기후에 남기로 했다.

새롭게 지어진 시즈코의 기후용 저택에 군을 놔둬도 되었지만, 이렇다 할 목적도 없고, 또 노부나가로부터 지시도 없었기에, 지휘를 겐로(玄朗)에게 맡기고 오와리에 동착하는 대로 군을 해산시키라고 명했다.


"또 변덕이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이 무렵의 노부나가는 다실(茶室)을 밀회 장소로 삼고 있었기에, 시즈코가 안내된 장소도 다실이었다.

보통의 다실과 다른 점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경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주상, 부르셨습니까"


"들어와라"


다실 밖에서 말을 걸자 즉시 노부나가에게서 입실 허가가 떨어졌다. 시즈코는 숨을 한 번 내쉰 후, 조용히 손님용 입구로 걸어갔다.

다실에 있는 손님용 입구는 '무릎걸음입구(躙り口, ※역주: 직역)'라고 불리고 있다. 좁은 입구이기에 무릎을 대고 들어갈 필요가 있고, 기세좋게 발을 들이미는 것은 불가능하여, 급소를 상대에게 보이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으로 적의가 없음을 보일 수 있다. 무릎걸음입구는 센노 리큐(千利休)가 배의 내부구조(舟座敷, ※역주: 검색해봐도 정확한 의미가 걸리지 않아 확실하지 않음)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 한다.

아직 센노 리큐의 와비차(わ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는 대성(大成)하지 않았기에, 손님용의 입구는 약간 낮은 정도로 억제되어 있었다. 물론, 다실에 들어가려면 무기나 방어구를 풀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례합니다"


입구를 조용히 열고 인사를 한 후 시즈코는 다실로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까 남만의 노예를 샀다고 들었다"


시즈코의 앞에 차가 놓였다. 노예를 산 이유를 말해라, 라는 뜻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찻잔(茶碗)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노예 구입의 이유를 말했다.


"남만의 기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전할 수 있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노예 상인으로부터 기술자를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이유로는 약하다"


"그러기 위한 언어학자입니다"


"호오?"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흥미를 보인 것을 확신했다.


"바테렌(伴天連)이 우리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쪽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저쪽에서 언어의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끌어들이려 해도 상대가 경계심을 품게 되어버립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언어학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은 노부나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즈코는 그런 차이점을 생략했다.


"하지만, 노예라면 그런 쓸데없는 마찰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자가 파고들 가능성은 있으니, 그 점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검사했습니다"


"흠…… 바테렌 놈들의 언어라. 확실히 알아둬서 손해는 없구나"


턱에 손을 대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남만의 언어를 알아두어서 손해는 없다. 놈들이 밀담(密談)하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시미츠가 검사했다면 간자로서 끈이 달려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차가 식는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끓인 차를 마셨다. 많이 식어서 미지근해졌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4, 5회에 걸쳐 차를 다 마셨다.


"그럼 남만의 노예의 건은 됐다. 우리 나라 이야기를 하자"


"알겠습니다"


"네가 내놓은 계책대로, 붙잡은 일향종(一向宗) 놈들을 대량으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보내줬다. 처음에는 효과가 보이지 않았찌만, 최근의 보고를 듣고 겨우 네 속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노부나가의 학살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 이외의 효과가 있었나 하고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혼간지는 지금, 나가시마(長島) 잇코슈(一向衆)를 먹이기만도 벅차지. 교의(教義)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다. 무구(武具)가 없기에 병사로 삼을 수도 없지. 굶주린 놈들을 받아들이면 치안이 흐트러지고 역병이 유행한다. 아주 좋은 계책이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간신히 깨달았다. 나가시마 잇코슈에 얼마만한 인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2만 명이 타죽었다고 하니 적어도 수만 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만한 난민이 이시야마 혼간지로 밀어닥친다. 받아들이는 측인 이시야마 혼간지에 있는 켄뇨(顕如)와 측근들은 머리를 감싸쥐었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식량은 거의 소지하지 않았고, 무구는 압수당해서 아무 것도 없고, 돈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수만 명이나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성질상, 밀어닥치는 난민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니 사기가 떨어지고, 치안은 악화되고, 자칫 잘못하면 역병이 유행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재(私財)를 털어서 수만 명의 난민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계책은 쓸만하다. 이후에도 일향종은 껍질을 홀랑 벗겨서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라고 각 방면에 전달했다"


"(효과가 있는 걸 알면 용서없이 계책을 실행하는 건 여전하네) 알겠습니다. 저희 군도 일향종과 상대했을 때, 가능한 적을 죽이지 않고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음. 자, 다음 이야기인데, 네게 10만 석(石, ※역주: 1석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곡식(쌀)의 양을 말하는 단위)의 영지를 내리겠다"


"네? 저어ー, 토지를 받아도 저는 관리할 수 없습니다만……"


아자이(浅井) 멸망 후에 히데요시(秀吉)가 노부나가에게 맡겨진 영지가 약 12만 석이라고 한다. 즉, 10만 석이라고 하면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 시바타(柴田)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지를 소유하는 것이 된다.

명실공히 다이묘(大名)라 할 수 있지만,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토지의 관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다.


"서두르지 마라. 우선 10만 중에 5만은 고노에(近衛) 가문의 것이다. 이것은 키나이(畿内)의 토지 정비를 했을 경우, 고노에 가문의 장원(荘園)이 줄어드는 것에 따른 조치이다. 이 5만 석에 대해 너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5만석인데요. 저, 토지의 관리는 무리일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보좌관의 파견은 하겠다. 몇 년만 지나면 토지의 관리에 지장은 없어지겠지"


"(아~, 결정사항인 거군요) 알겠습니다. 이것저것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노부나가의 안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그렇지만 갑작스런 명령은 좀 자제해줬으면, 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말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오다 노부나가이므로.


"중간에 낀(板挟み) 보좌관이 위통(胃痛)으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심해라. 쓰러질 정도라면 목을 날리겠다"


그 목을 날린다는 건 해고라는 말인지, 아니면 참수라는 말인지 조금 신경쓰였다. 하지만, 지적하는 것보다 못 들은 것으로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럼, 이제 곧 키나이는 소란스러워지겠군. 각 진영에 복종과 철저 항전,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놈들은 어떻게 할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겠지"


흡족스러운 얼굴고 노부나가는 말했다. 오다 포위망의 앙갚음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는 매우 즐거운 듯 했다. 왜냐하면 반 오다 연합의 생명줄이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이 시기, 오다 진영이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승기가 있을 때 수고를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수를 모두 쓰는 것이 노부나가이다.


각 진영에 기치(旗幟)의 선언의 타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목적이 그것뿐이 아닌 것을 헤아렸다.

이 시기에 항복을 권유하면, 자신의 관대함을 널리 날릴 수 있다. 또, 복종을 거부한 경우, 전쟁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편지 따윌 보낼 리가 없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아시미츠가 급거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 이전에 사키히사가 방한용구를 발주했던 것, 그리고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보낸 복종을 권유하는 편지.

그 모두를 이어붙이자,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복종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냥 블러프(bluff)이고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가 손 안에 넣고 싶은 진영은 단 하나다. 그밖에는 노부나가가 보낸 복종의 편지의 대답으로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노부나가에게 사소한 일이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디서 누가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차와 함께 말을 삼킨 시즈코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 번역수정공지: 예전에 jerom님이라는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바탕으로 지금껏 별 생각 없이 편의상 일괄적으로 '카톨릭'으로 번역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원문에도 구체적으로 'カトリック'라는 용어가 별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キリスト教'과 '伴天連' 등은 카톨릭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서의 '기독교'(후자의 경우 상황 등에 따라 그냥 '바테렌'으로 쓰고 한자를 병기하는 식)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후 번역시에 새로운 기준을 반영하고, 기번역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수정에 들어갑니다. 물론 지금껏 해온 분량이 있으니 -ㅅ-;; 수십화 분량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기번역 분량에서의 수정은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수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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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1 1573년 2월 중순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자업자득에 의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평가받으며 반 오다(織田)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한 수 아래라고 생각된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게 처절할 정도의 패배를 맛보았다.

시류(時流)를 잘못 읽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반 오다 연합의 영주(国人)들은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이탈해 갔다.

아사쿠라(朝倉)의 경우에는 2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번도 창칼을 맞대는 일 없이 자기 영토인 에치젠(越前)으로 도망쳐갔다.

반 오다 세력의 급선봉, 혼간지(本願寺)는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의 패잔병 수용으로 자승자박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패잔병에게 필요 최저한의 식량만 줘서 해방시켰기에, 혼간지에 도달할 무렵에는 굶주려서 살기를 띤 난민으로 화해 있었다.

이것을 저버리면 중생구제(衆生救済)를 외치는 혼간지는 대의명분을 잃는다. 받아들이면 머지않아 식량부족으로 파탄이 날 것이 뻔히 보였다.

교의(教義)를 바탕으로 민중을 동원한 만큼 행동에 제약을 받아, 교의 때문에 파멸로 나아가게 된다는 노부나가의 책략에 항거할 수 없었다.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붕괴도 시작되고 있었다. 우선 요시테루(義輝)가 암살되었을 때부터 지지해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이탈했다.

그대로 미츠히데(光秀)를 통해 오다에 투항하여, 요시아키 진영의 내부 사정까지 모조리 밝혀지게 되어버렸다.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탈하기 전에 요시아키에게 한 마지막 말이 "이젠 정나미가 다 떨어졌다"였다.

이바라키(茨木) 성주(城主)인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도, 미요시(三好) 가문에서 오다 가문으로 옮긴 것도 있어 새로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선언했다.


이미 요시아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없었고, 하물며 이제와서 병력을 내겠다는 말을 하는 기특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상황 하에서, 타케다 군을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쓰러뜨린 오다 군을 이끄는 노부나가가 쿄(京)로 온다.

요시아키 뿐만 아니라, 반 오다 연합의 편을 들었던 영주들은 잠못드는 밤을 보내며, 도망칠 수 없는 죽음의 기척에 떨며 지내고 있었다.


"후훗, 귀여운 녀석이로다"


일약 화제의 인물(時の人)이 된 노부나가였으나, 그는 서양의 고양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공가(公家) 필두(筆頭)의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오다 가문에서 쿄의 중심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그리고 요시아키를 떠난 호소카와 후지타카 등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칸파쿠(関白), 니죠 하루요시(二条晴良)는 노부나가로부터 미움받아 세력을 잃었고, 그를 옹호하던 요시아키도 무력화(死に体)되었기에 고립되어, 노부나가가 천황에 올린 상소도 있어 사키히사는 귀락(帰洛)이 허용되었다.

사키히사는 니죠 성(二条城) 앞에 새 집을 지을 예정이었으나, 그때까지는 지금까지처럼 기후(岐阜)에서 지내고 있었다.


"정말로 사랑스러운 몸짓(仕草)이로군……"


오늘은 배에서 온 고양이를 선보인다는 명목으로 세 사람은 특별히 초대받았다.

뭣보다 터키시 앙골라를 노부나가로부터 양도받아 키우고 있었기에, 네 사람의 친교는 생각보다 깊어져 있었다.


"냐ー 냐ー"


"냐옹"


쟁쟁한 멤버들이지만, 고양이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고양이들은 자유분방하게 행동하였고,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기에, 발톱질을 당한 다다미는 너덜너덜해지고, 미닫이문(障子)이나 맹장지(襖)는 구멍투성이라는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노부나가들은 그걸 탓하기는 커녕, 거리낌없는 표정으로 털을 고르고 있는 모습에 표정이 느슨해져 있었다.

귀인(貴人)을 위한 사치스러운 과자에도 손을 대지 않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고양이의 모습(生き様)을 사랑했다.


"마치 고양이 카페네요"


현대의 애니멀 카페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완전히 풀어진 표정을 보면 그들의 체면(沽券)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여 뒤쪽으로 물러나있던 그녀였는데, 그 생각은 맞았다.

아마도 네 사람의 현재 상태는, 그들의 수하들에게는 도저히 보일 수 없는 꼴이리라.

매일매일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릴 것을 요구받고, 항상 긴장을 강요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 탓인지, 고양이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와, 기품조차 느껴지는 자유분방한 행동에 매료된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양이들이 크게 기지개를 키더니 웅크리며 자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낮잠 시간이라는 것을 헤아린 시즈코는, 전원에게 들리도록 일어서며 손뼉을 쳤다.


"자, 끝입니다ー"


네 사람은 불만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으며 돌아보았다. 아무리 불만이라도, 이 이상은 고양이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암묵적으로 좀 더 연장하라고 요구하는 네 사람에게, 시즈코는 손가락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됩니다. 이 이상은 고양이가 싫어한다고요"


고양이가 싫어한다는데야 네 사람도 물러설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군, 고양이를 쉬게 하지. 옆에서 장기라도 둘까?"


"주상(上様), 소생이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소생이 기록을 맡지요"


"그럼 저는, 조금 바깥 공기를 쐬고 오지요"


네 사람은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행동이 기묘한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그들을 제지했다.


"기다리세요! 여러분, 뭘 품속에 넣고 계신 건가요?"


움찔이라는 의태어가 귀에 들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버린 네 사람은, 시즈코의 시선을 피하듯 노골적으로 등을 돌려 딴청을 부렸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그것으로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한 마리를 품속에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로 나쁜 손버릇에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한 분당 한 마리까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좋아! 언질을 받았다. 들어와라 이놈들아"


노부나가의 말과 함께, 입구에서 고양이 운반 전용의 바구니를 든 소성(小姓)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의 소성들에게 품에서 꺼낸 고양이를 맡기며 바구니에 고양이를 재우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철저한 준비성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시즈코였다. 이윽고 네 사람은 노부나가가 사이베리안, 사키히사가 브리티쉬 숏헤어, 미츠히데가 노슈크 스쿠캇, 호소카와 후지타카가 이집션 마우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시즈코는 시종(使用人)들과 함께 남은 고양이를 케이지에 넣은 후에 앉아서 한숨 돌렸다.


"이렇게까지 고양이에 열광할 줄이야. 천황(帝)이나 쿄의 백성들도 터키시 앙골라에 푹 빠져있고 말이지"


노부나가에게서 선물받은 터키시 앙골라를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은 깊이 사랑했다. 우다(宇多) 천황과 마찬가지로 고양이 일기를 매일 쓰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고양이가 제일 귀엽다!'고 주위에 자랑하고 있었다.

일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오기마치 천황은 터키시 앙골라를 위한 '전용의 집(小屋)'을 세우고, 고양이 돌보미(世話役)를 다섯 명을 두고, 가까운 곳에 수의사를 대기시켰다.

그 열광하는 모습은 천황의 총애를 다투는 여성들을 질투하게 하고, 후궁의 여인들(後宮女房)이나 공가의 인물들(公家衆)도 애증이 뒤섞이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오오기마치 천황보다 조금 늦게 쿄의 백성들에게도 터키쉬 앙골라가 선물되자, 쿄의 백성들은 '하양이님(お白さま)'이라 부르며 대단히 귀여워했다.

백성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을 것도 없이 솔선하여 터키쉬 앙골라를 돌보고, 아이들도 스스로 놀이상대를 해주고 있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에 심취하는 원인의 하나가 된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개도 마찬가지로 애완동물이긴 하나, 한때 쿄에서 맹위를 떨친 들개의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어, 개의 인기의 복권(復権)은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쇼군과 교섭한다고 햇던가. 고노에 님은 문제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괜찮으려나"


이번의 교섭에서는, 요시아키에게 아들을 인질로서 노부나가에게 내놓고, 칩거중에 가신들로부터 간언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요시아키는 옹고집(意固地)을 부리면 주위를 살피지 앟는다. 처형되지 않는 것을 믿고 철저 항전 태세를 취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이 교섭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어떻게 요시아키를 제어할 수 있을지, 그것이 시험받는 자리가 된다.


"적반하장(逆恨み)으로 한번쯤 더 싸움을 걸어올 것 같네"


그런 미래를 예상하며 투덜대는 시즈코는 모른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말한 목표는 어디까지나 최저한이며, 진정한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의 진정한 목적. 그것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스스로 막부(幕府)를 폐쇄하는' 것이다.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숨통을 끊는 것, 아시미츠는 그야말로 딱 맞는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오다 가문과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교섭은, 도저히 교섭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시미츠는 입을 열자마자 일방적으로 요구를 들이댔다.


"이의가 있으면 말해보아라. 그 시점에서 '나의 적'이 되겠지만 말이다"


정숙이 지배하는 자리에서, 아시미츠가 아시카가 쇼군 가문을 섬기는 자들을 흘겨보았다(睥睨). 그 모습은 비정상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오다 가문의 교섭역으로서 왔을 터인 아시미츠가, 본래 요시아키가 앉아야 할 상좌(上座)에 앉아 있었다. 정작 요시아키는 아시미츠의 엉덩이 밑에 깔려 방석(座布団) 역할을 맡고 있었다.

요시아키의 얼굴은 훌륭하게 부어올랐고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들어있는 것을 볼 때, 아시미츠가 요시아키를 때려서 침묵하게 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오다는 이 멍청이의 자식을 쇼군으로 옹립하려 하고 있지. 허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자리를 반납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이다"


"혀, 형님…… 그건 너무…… 크헉!"


요시아키가 반론하려고 했으나, 아시미츠는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요시아키의 머리를 짓밟아 그의 얼굴을 마룻바닥에 비벼문댔다.

아시미츠의 완력에 저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요시아키는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마룻바닥에 이마를 비비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는데 아직도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들. 천하가 태평하다면, 네놈들 무능한 놈들이 놀고 있더라도 세상은 돌아간다. 하나 지금은 난세(乱世)이다. 네놈이 쇼군 자리에 연연하여 달라붙어서 무능함을 계속 드러낸다면 백성들은 꾸준히 이어져내려온 쇼군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타케다가 오다를 쓰러뜨리면 아시카가의 세상이 돌아온다고? 헛소리하지 마라. 타케다가 오다로 바뀔 뿐 아시카가의 세상 따윈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난세에서 힘이 없는 것은 죄악이다. 힘없는 쇼군을 따르는 자 따윈 없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지반을 굳힐 때까지의 이음새에 지나지 않으며,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죄를 뒤집어쓰고 단죄될 것이 뻔하다"


설령 타케다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격파하여 상락에 성공했다고 치자. 스스로가 믿는 종교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신겐(信玄)이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권위를 이용하는 데 주저할 리가 없다.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가혹하게 요시아키를 이용하여, 세력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숙청을 거듭하고, 그 모든 것을 요시아키에게 죄를 물어 처단할 것이다.

결국, 싸울 힘을 가지지 못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잡아먹힐 뿐인 약자에 지나지 않는다.


"카미교(上京, ※역주: 교토 일부를 가리키는 지명)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을 바라느냐, 아니면 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떠나겠느냐, 원하는 쪽을 선택해라.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가지만 알려주마. 네놈들이 다시 오다에 반기를 들었을 때, 그 앞에 서는 것은 '나'다"


아시미츠는 허리에 찬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소리에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사람들은 아시미츠를 올려다보고, 그리고 말을 삼켰다.


그들은 아시미츠의 표정을 보고 벌벌 떨었다. 예전의 그를 아는 사람은, 변모한 그의 모습에 곤혹스러워졌다. 아시미츠의 표정은 도저히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악귀나찰(悪鬼羅刹) 같은 존재의 것이었다.

의견을 말할 것도 없이, 시선을 맞대기만 해도 죽음을 당한다. 기묘한 열기를 띠면서도 등골을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자, 자신들이 한 칼에 베여버리는 미래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어, 얼굴을 드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아시카가 가문도 무가(武家)의 일문(一門). 개중에는 호담(豪胆)한 자도 있었겠지만, 다들 하나같이 침묵한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고 있었다. 그들은 아시미츠를 '두려워하고(畏怖)'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비명에 간 원령(怨霊)이 현현(顕現)한 것이 아닐까라고조차 생각했다.


"말해두지만, 나는 나를 저버린 아시카가 가문을 원망하거나 하진 않는다. 추호도 말이지. 나는 다양한 요인을 재어보고, 아시카가 가문에게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농담처럼 말하는 아시미츠였으나 누구도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을 수 없었다.

웃음소리를 내는 순간 아시미츠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도박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나도 악마(鬼)는 아니다. 이쪽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유종의 미를 거두게 해주지. 아시카가 가문은 타케다의 '부추김을 받았다'라던가 하는 식으로라도 해명을 하라. 내가 오다에게 잘 말해주지"


"알겠, 습니다.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조건, 전부 받아들이고 항복하겠습니다"


결국, 이것은 교섭이 아니라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항복 조건을 고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시카가 쇼군 가문에게는 처음부터 항복이냐 죽음이냐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다가 타케다를 격파했기에 세상의 흐름은 오다 가문으로 기울었다. 지금까지 반 오다 연합에 가담했던 영주들도 차례차례 이탈하고, 급선봉이었던 혼간지조차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완전히 고립된 아시카가 쇼군 가문으로서는 애초에 교섭의 무대에 설 수조차 없다.


"그 말, 잊지 마라"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요시아키에게서 일어나서 주위의 시선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방을 나갔다.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시카가 쇼군 가문 일동이 성대하게 한숨을 내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부나가가 요시아키에게 내민 조건은 여러 가지였으나, 주된 것은 이하와 같다.

하나,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정이대장군에서 '자주적으로 물러나', 그 지위를 조정에 반납한다.

하나, 아시카가 가문에 전해지는 보도(宝刀)나 명도(名刀), 그 외에 사유재산의 전부를 오다 가문(실제로는 아시미츠)에게 양도한다.

하나, 쿄에서 퇴거하여, 이후에는 모우리(毛利) 가문에 의탁한다.

하나, 적자(嫡子)인 아시카가 기진(足利義尋)을 노부나가에게 인질로 바친다.




쇼군 요시아키와의 교섭도 무사히 종료되었다고 듣고 시즈코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노부나가의 귀국을 따라 돌아갈 뿐이지만, 출발 소식이 영 오지 않았다.

귀로 도중에 이세 신궁(伊勢神宮)에 들러야 하기 떄문에 그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그것마저 끝나자 본격적으로 할 일이 없어졌다.

노부나가는 권력자로서의 접대(付き合い)나 결재해야 할 안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사키히사는 건설중인 자택을 시찰하거나, 관계자에 인사를 하거나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엄선한 소수의 인물들밖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농지(農地)가 없는 쿄에서는 시간때우기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뭘 할까 고민했던 시즈코였으나, 쿄에서만 가능한 조사를 하자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것은 시장조사(市場調査)였다. 오와리(尾張)-미노(美濃)에 대해서는 말단까지 파악하고 있지만, 교토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 가게가 무엇을 어디서 얼마만큼 들여와서 그게 얼마나 시장으로 흘러가고, 남은 것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세히 조사하자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의 돈줄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다.


혼간지로 대표되는 종교 세력은, 키나이(畿内)에 그물망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작물이나 상품의 공급량을 조정하여 높은 시장 가격을 유지하여 폭리를 취한다는 과점기업(寡占企業)같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무장한 승병(僧兵)을 보유하고, 전매품(専売品)에 의한 시장 조작을 자행하는 거대한 조직. 조정이나 많은 무가와 연줄을 가진 그들을 쳐부수려면, 단순히 무력으로만 밀어붙여서는 효율이 나쁘다.


거기서 시즈코가 착안한 것이 경제였다. 경제를 거론하려면 경제학이 나와야 하지만, 고교생이었던 시즈코에게는 버겁다. 그 쪽은 아시미츠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대 일본의 고등 교육을 받은 시즈코는 방대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있고, 원래부터 역사를 취미로 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본 역사과 경제는 일견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정치와 경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특히 노부나가가 취한 시책(施策)들은 경제에 기인(根差)한 것이 많았고, 그 때문에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후세에서 노부나가가 신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도, 운부천부(運否天賦)가 좌우하는 상매매를 하면서 그 운명을 관장한다는 신불을 모시는 종교 세력을 정면으로 상대했기 때문이다.


"으ー음, 생활 필수품이 꽤나 비싸네. 특히 기름이 비싸"


전국 시대, 기름은 등유(灯油)로서 수요가 높다.

특히 사찰이나 신사는 야간에 하는 행사가 많았고, 그 때문에 기름을 독점적으로 다루는 아부라자(油座)가 사찰이나 신사에 많았으며, 개중에는 지닌(神人, ※역주: 중세에, 속인(俗人)인 채 신사(神社)에서 잡역을 하던 사람들)의 자격을 가진 아부라지닌(油神人)이라고 불리는 상인들이 있었다.

특히 유명한 아부라자가, 이궁(離宮) 하치만궁(八幡宮)의 오오야마자키(大山崎) 아부라자이다. 물론 오우닌(応仁)의 난(乱)에서 막부의 권위가 실추됨과 동시에 그들의 권력 또한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지는 생각할 수 없으려나"


파고들 틈은 보였다. 하지만, 시기를 잘못 판단하면 생각치 못한 반격을 받게 된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오셨습니다"


어떤 개입이 바람직할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소성이 노부나가의 내방을 알렸다. 딱히 급한 용건도 없었기에, 바로 갈테니 먼저 노부나가를 안내하도록 명하고 준비를 갖추었다.


"아시미츠 이외에는 물러나라"


노부나가와 그와 동행한 아시미츠, 그리고 그들을 맞이한 시즈코가 자리에 앉자, 노부나가는 입을 열자마자 사람들에게 물러나도록 명했다. 소성들이 숨을 들이켰지만, 노부나가의 무언의 압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란마루(蘭丸)만이 미묘한 표정을 떠올렸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에 거역할 수 있을 리도 없어, 모두와 함께 방을 나갔다.

세 사람만 남은 방에서, 노부나가는 준비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래서, 무얼 꾸미고 있느냐"


"네?"


"……요즘, 시장 조사라는 핑계로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고 있지 않았더냐. 또다시 뭔가 계책을 떠올린 것이겠지. 무엇을 할 셈인지 미리 말하라, 고 하는 거다"


노부나가의 질문에 대해 멍한 대답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노부나가는 한숨을 쉬며 경위를 설명했다. 시즈코가 시장 조사를 시작한 것은 바로 노부나가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매상을 조사하고 있는 것 뿐이다. 웬만한 상인이라면 자신이 취급하는 상품에 대한 정도라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천하인(天下人)의 심복(懐刀)으로서 이름높은 시즈코가 직접 손댈만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아…… 네. 단적으로 말하면, 혼간지의 힘을 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개피리를 불어 개들에게 주위를 경계하게 한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고 계책을 설명했다.


"혼간지를 시작으로, 종교 세력은 키나이의 경제를 한 손에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재력은 막대하여, 우리들이 무력으로 압도하려고 해도, 그들은 경제력을 배경으로 항전을 계속하겠지요. 그렇다면, 보급을 지탱하는 경제력을 끊어버린다는 것이 저의 계책입니다"


"그것과 시장 조사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해라"


"그들의 시장 지배는 자(座)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독점 판매권(独占販売権, 비과세권(非課税権), 불입권(不入権) 등의 특권을 방패삼아 경쟁 원리를 배제하고, 생활 필수품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품을 조사하여, 더욱 싼 가격으로 시장에 푸는 겁니다.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면, 이익에 밝은 상인이라면 달려들겠지요. 그렇게 되면 그들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 원하는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세상이라도 군사력을 지탱하는 것은 경제력입니다. 경제력을 잃으면 자연스레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자(座)라는 것은 특권을 가진 일부의 사람들이 상품을 독점하여 비싼 값으로 시장에 유통시키는 구조이다. 이것이 종교 세력에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이라고 시즈코는 말하는 것이다.

이 구조를 파괴하고 경쟁 원리가 작용하는 시장을 되찾는 것으로, 기득권익을 갖는 종교 세력의 힘을 깎아내고 활발한 경제 활동을 촉진시켜, 백성들에게까지 그 이익을 환원시킨다.


"흠, 아시미츠와는 다른 방향인가"


"어라, 아시미츠 아저씨도 뭔가 생각했었어?"


"……단적으로 말하면 금융 정책이다. 그러기 위해 화폐 발행권을 손에 넣는다. 이것만 장악하면, 누가 어떤 권리를 휘두르던 관계없다. 돈을 통해 상업이 성립하는 한, 누가 시장을 지배하던간에 그 이익을 가로챌 수 있지. 통화(通貨)를 지배하는 자, 즉 그것이 경제의 지배자가 된다"


신용을 배경으로 무(無)에서 돈(金)을 낳고, 그 돈을 돌게 하는 것으로 더욱 많은 돈을 창출하여 이익을 얻는다. 아시미츠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상거래의 원칙은 물물교환이며, 그것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통화가 존재한다. 모든 상거래가 통화로 이루어지면, 통화를 제조하는 사람이 물건의 가치의 지배자가 된다.

에도(江戸) 시대의 막부 지배가 반석의 체제였던 것도, 화폐 주조(鋳造)는 다른 곳에 위탁하기는 했으나 통화 발행권을 독점하여 경제를 계속 지배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통화 발행권은 지배자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뭐 확실히…… 지폐(紙幣)를 발행하는 거야?"


"그것도 불환지폐(不換紙幣)를 말이지"


불환지폐란 금화(金貨)나 은화(銀貨)의 교환이 보증되지 않는 지폐를 가리킨다. 금은의 가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부의 신용으로 유통되는 화폐이기에, 신용지폐(信用紙幣)라고도 한다.

현대의 선진국은 불환지폐로, 경제 정책이나 공급량의 조정을 하여 통화 가치의 신용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관리통화제도(管理通貨制度)라고 한다.


그에 반해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의 지폐는 태환지폐(兌換紙幣)라고 하여, 금화나 은화로 교환하는 것을 전제로 한 지폐였다.

지폐라기보다, 화폐가 되는 금이나 은 등의 귀금속의 보관증(預かり証)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불환지폐와 달리, 교환할 금은 등의 귀금속의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권위와 신용은 조정과 오다 가문이 담보하고, 시장에 유통하는 것은 사찰이나 신사에게도 협조하게 하면 된다. 그놈들이 쓴다고 하면 인지도는 높아지지"


불환지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냥 종이쪼가리다. 그 종이쪼가리를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신용, 인지도, 그리고 충분한 양이 시장이 공급될 것이다.

신용은 조정이 보증하지만, 그것이 통용된 것은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귀금속이기 때문이다.

화폐 그 자체에 가치가 없는 불환지폐를 담보하려면 조정만으로는 부족하여, 오다 가문이 뒷받침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오다 가문에도 부담이 가해지지만, 그 대신 다양한 특권도 얻을 수 있다.

우선 통화 발행을 조정에서 위탁받는다는 형식을 취하면, 통화를 위조한 상대를 역적(朝敵)으로서 대의명분 하에 처벌할 수 있다.


그밖에도 조정으로부터 신용(信認)을 얻을 수 있는 점도 크다. 정치의 실권을 잃은 조정이라 해도, 끊임없이 이어진 천황(帝)의 권위는 비할 데 없는 것이며, 그 뒷배경을 얻는다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된다.


마지막으로 불환지폐를 발행하는 것에 의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누구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나 금융에 어두운 무가는 물론이고,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이라도 미지의 사정에 대해서는 대처할 수 없다. 그게 어떠한 메리트를 오다 가문에 가져오는 지 알게 될 때는 이미 늦게 되는 것이다.


"타케다가 패배한 것으로, 혼간지는 오다 가문과 화해하지 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대량의 짐덩어리를 끌어안고 있는데, 지금 오다 가문과 다투는 것은 자살행위일 뿐이지. 그 때, 조건으로서 여러가지를 인정하게 하면 된다. 놈들은 언젠가 반기를 들 생각이니, 공수표로서 조건을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겠지"


"송전(宋銭)이나 명전(明銭)은 슬슬 한계다. 새로운 화폐가 필요해지지. 하지만, 그것을 지금처럼 외국(唐)에 의존해서는 외국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게된다. 정전(精銭)과 아전(鐚銭)의 교환 비율을 정했지만(에이로쿠(永禄) 12년에서 이듬해에 발령(発令)된 선전령(撰銭令)), 상인들로부터 번거롭다는 불평도 많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폐의 발행을 장악하는 게 가장 좋지"


"화폐의 권위는 조정이 보증하고, 그 가치를 담보하고 제조, 발행을 맡는 것이 오다 가문, 유통을 추진하는 것은 종교 세력이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시기에 상대의 경제 기반을 축소시키는 것은 좋은 생각은 아니네요"


"그렇다.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의 유통을 이용한다. 하지만 시즈코의 계책도 나쁘지는 않다. 지금은 화폐를 우선시해야 하는 것 뿐이다"


과연 하고 시즈코는 납득했다. 노부나가로서도 종교 세력의 경제력을 깎아내고 싶다. 하지만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려면 종교 세력이 가진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쪽이 유리하다.

경제력을 빼앗을 것인가, 새로운 화페의 유통 촉진인가를 저울에 달아보고, 노부나가는 화폐가 유통된 후에도 경제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먼저 새 지폐의 유통과 인지도 향상을 우선시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럼 새 지폐의 유통과 동시에, 장부 기재를 상인들에게 의무화시키는 게 좋겠죠. 위에서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수고는 들지만 매상에 따른 세금을 부과하고, 1년에 한 번 장부를 제출하게 하여 초과 납부한 세금의 환급이나, 세금을 속이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장부의 기재에 응하지 않는 자들은 미리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장부라.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다"


"장부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그게 있으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고 하면 실행하도록 해라"


"나중에 가르쳐주지. 우선은 통화 발행권을 얻는다. 이게 최초이자 최대의 중요 사항이다. 이게 있고 없고로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이것만큼은 절대로 양보해서는 안 된다"


"알겠다. 혼간지에는 그 밖에도 세제(税制)나 토지 개혁을 인정하게 해야 하지만, 통화 발행권은 확실하게 인정하게 하지"


혼간지가 화평을 청해왔을 때, 노부나가는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게 할 생각이었다. 도로 정비, 토지의 소유자 문제, 세제 개혁, 시장 개혁 등이다.

도로 정비는 물론 유통을 정비하기 위해서다. 군용 도로로서 정비해도 평소의 유통에도 대단히 도움이 된다. 지름길이 생기거나 하면 사람이나 물자의 유통이 촉진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토지의 소유자 문제란, 현재의 토지에는 복수의 소유자가 있는 문제이다.

선조 대대로 토지를 다스려온 사람과 막부로부터 토지를 받은 사람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투어, 무력 충돌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상태에서도 각자가 세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세금을 낼 곳이 2중, 잘못하면 3중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을 정비하는 것이 노부나가의 토지 개혁이다.

구체적으로는 자발적(差出)으로 측량(検地)을 하게 하여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한다. 이 자발적 방식으로의 측량을 전국 규모로 행한 것이 훗날의 '태합검지(太閤検地)'이다.


"하지만 토지 문제는 꽤나 다툴 것 같은데요?"


"그 때는 군대를 보여주어 조용하게 만들겠다"


"아, 그런가요"


시즈코가 지적을 했으나, 노부나가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 듯 막힘없는 대답이 나왔다.

즉 자발적 방식에 따라라, 아니면 죽어라라는 이야기다. 상당히 억지스럽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토지 문제는 평생 해결되지 않는다, 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토지의 소유자가 명확히 결정되면, 공가나 종교 세력들은 장원의 권리를 잃는다. 하지만 백성은 복잡한 다중 과세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부담이 경감되어 기뻐한다. 오다 가문에도 지배 체계를 간략화할 수 있어 정비하기 쉬워진다, 라는 것인가요"


"그렇다. 시장 개혁은 말할 것도 없이 낙시낙좌령(楽市楽座令)이다. 이것은 현지(地元)의 요청도 있으니 내용은 지역마다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네요. 우선은 도로 정비를 해서 유통을 촉진시키고, 다음으로 토지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시장 개혁일까요. 통화의 발행은 처음부터 계속해갈 필요가 있으니, 순서대로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하게 되겠군요"


"그렇다. 그럼, 이야기는 대충 이것으로 끝이다. 나중에 세부적인 조정을 하도록 하지. 나는 배가 고프다. 뭔가 맛있는 밥을 준비해라"


대화가 끝나자 노부나가는 자세를 풀고 그런 말을 했다. 전환이 빠른 건 여전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노부나가의 정무가 끝남에 따라 시즈코도 기후로 귀국했다. 도중에 이세 신궁에 들려서 식년천궁(式年遷宮)을 위한 자금으로서 3000관문을 기부했다.

갑작스런 오다 군 방문에 이세 신궁의 신관들은 크게 당황했으나, 기부의 이유를 듣고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밖에도, 노부나가가 가신들을 격려하면서 귀국했기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렸다. 겨우 기후에 도착한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돌아왔을 때 깜짝 놀랐다.


"크다"


그것은 시즈코가 쿄에 가 있는 동안 저택이 완성되어, 이미 새 집으로 이사가 끝난 것에 기인한다. 이사만이라면 문제없다. 아야(彩)에게도 이사에 관한 이야기는 사전에 의뢰해두었다.

문제는 자택의 문이, 이전의 그것과 비해 월등히 거대해진 것이었다. 성이 아니기에 방어시설은 적었으나, 성문을 지키는 병사 등은 이전과 다름없었다.


"크네ー"


집을 보고 시즈코는 그 이외의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은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가장 큰 본전(本殿)이다. 집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시설이라고 하는 쪽이 맞다. 현대에서 말하는 청사(庁舎)에 가까운 역할로, 그녀 이외의 사람이 정치 업무를 하는 경우에도 이용된다.

노부나가가 정치나 정책을 펼칠 때 이용되는 것도 고려되어 있어, 시즈코의 집이라기보다 오다 가문의 통치용 시설이라는 면이 강하다.

물론, 시즈코도 접견하거나 회의를 열거나 하는 경우에 이용하는 시설은 본전이 된다.


다음으로 두 사이즈 정도 작은 후전(裏殿)이다. 이곳이 시즈코의 집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그녀를 위한 프라이빗 공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신이나 그 가족들이 머물거나 하는 경우도 있기에, 전부가 그녀의 공간은 아니다.

본전에도 주방(台所)은 있지만, 후전은 식량 보관 창고에 가깝고, 물터나 목욕탕도 있다. 시즈코는 물론, 아야나 쇼우(蕭)의 방도 있다.

지위가 낮아짐에 따라 방이 좁아져서, 시녀들은 공동으로 방을 쓰게 된다.

그 밖에도 비트만 패밀리나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 하나. 설표인 윳키,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 등, 시즈코가 키우고 있는 동물들의 잠자리도 후전 안에 있다.


마지막이 측전(側殿)이다.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무장들이 머무르는 시설이다. 본전이라는 정치 시설이 있는 관계상, 이러한 시설이 필요해졌다.

다른 것과 달리 무가 저택을 작게 만든 것이 몇 채 늘어서있을 뿐이다. 노부나가용 시설만이 한층 더 큰 것은 알기쉬운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비닐하우스들이나 논밭, 식량이나 무구, 시즈코가 수집한 칼, 헌상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 닭이나 집오리 등의 가축을 사육하는 구획, 마굿간, 방어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기숙사나 부수 시설, 공방 등 다종다양한 시설이 존재한다.

그것들을 성벽으로 빙 둘러싸고, 바깥쪽에 해자(堀)가 있는 것이 시즈코의 새 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거점이라고 하는 쪽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새 집에서 일하는 스태프들도 전보다 한층 늘어났다.


"이제 그냥 웃을 수밖에 없네"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시즈코는 후전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당신들은 전용의 방이 있을텐데요?"


들어가려다가 뒤에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나가요시(長可) 등 평소의 멤버가 있는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런 넓은 장소에선 마음이 편하지 않아"


"소생은 호위대(馬廻衆)니까요"


"나,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말야, 고양이들이 놓아주질 않아서 말이지"


새 집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아시미츠와 타카토라(高虎)는 전체를 둘러보고 오겠다며 갔으나, 언동을 볼 때 그들도 이 거점으로 옮겨살게 될 것일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결국, 평소와 다름없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새로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에서 깨달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대인원이 오락가락한 흔적이 보였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 시즈코는 휴식(寛ぐ)을 위한 방으로 이동했다.


"오오, 드디어 돌아온 것이냐"


시즈코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했다. 후전의 주인이 휴식하기 위한 자기 방에, 주인인 시즈코보다 더 느긋하게 쉬고 있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그녀 뿐만이 아니었다. 이치(市)나 마츠(まつ), 네네(ねね) 등, 평소대로의 멤버도 다 모여 있었다.


"……뭘 하고 계신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보면 모르겠느냐. 쉬고 있느니라"


"아니, 그건 알겠습니다. 더 이상 확실할 수 없을 정도로요. 제 질문은, 어째서 제 집에서 쉬고 계신가, 인데요"


"새 집을 축하하러 왔는데, 정작 집 주인이 없더구나. 하여 집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쉬고 있던 것이니라"


전반과 후반이 지나칠 정도로 전혀 이어지지 않아서,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오, 드디어 왔느냐. 기다리기 지쳤노라"


시즈코가 무거운 한숨을 쉴 때, 아야가 쟁반에 무언가를 받쳐들고 들어왔다. 시즈코에게 인사를 한 후, 아야는 쟁반을 노히메들의 앞에 놓았다.

쟁반에는 푸딩(プリン)이 놓여 있었다. 현대와 같은 노란색이 아니라 백색의 푸딩이었으나 '기포(す)'가 없이 깨끗한 표면을 가지고 있었다.


"남의 집 식재료를 다 먹어치우실 생각이신가요"


"어차피 다 쓰지 못해서 썩히고 있을테니, 내가 유효하게 이용하고 있는 것 뿐이니라"


"윽, 아픈 곳을……"


소비보다 공급이 꽤나 오버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식재료를 소비해주는 인물은 고마웠다.

하지만, 노히메는 무엇을 얼마만큼 소비하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 점만이 시즈코의 두통거리였다.

하지만 소비하지 않으면 썩어버릴 공산이 컸기에, 식재료의 소비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체적으로 다다미(畳)를 깔다니 꽤나 크게 마음을 먹었구나"


"다다미 생산이 따라오질 못해서 아직 다다미가 들어가지 않은 방도 있지만요"


"전부터 하고 있던 연구가 성공해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더구나"


다다미는 에도 시대,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가 쿄호(享保) 개혁을 하여, 간척이 적극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재료인 골풀(藺)이 대량 생산되어 가격이 하락했지만, 그때까지는 고급품이었다.


물론, 노부나가도 시즈코의 진언을 따라 간척을 적극적으로 행하여, 골풀의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재배는 기본적으로 3단계로 나뉜다. 최초의 전묘(畑苗, 1차 모종). 이것은 다른 것과 다르지 않게 바탕이 되는 모종(苗)을 만드는 밭이다.

12월 무렵에 모종을 심어, 그대로 모가르기(苗わり)를 하는 이듬해 8월까지 기다린다.

시기가 오면 골풀은 모밭에서 2차 모종의 밭으로 이동시킨다. 모종을 뽑아내어 진흙을 털어내고, 모종을 하나하나 갈라서 심어간다.

심은 직후에는 한 그루의 모종이지만, 골풀의 생명력은 강하기 때문에 차례차례 새로운 싹이 난다. 몇 달만 지나면 처음의 연약한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몰라볼 정도로 훌륭한 모종으로 성장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종을 재배할 본밭(本田)에 심는다. 하는 작업은 1차 모종을 2차 모종의 논밭에 옮겨심는 내용과 같지만, 모종이 큰 만큼 재배할 논밭에서 하는 작업에는 숙련된 솜씨가 요구된다.

모종을 심은 지 2년 후인 7월에 골풀은 수확된다. 그 후, 진흙염색(泥染め)이라는 염토(染土)를 녹인 물에 담근 후, 건조시켜서 드디어 완성되는 것이다.


골풀의 재배는 숙련된 솜씨가 필요하지만, 시즈코는 전 공정의 대부분을 기계로 대용하는 연구를 하여 멋지게 성공하였기에, 오와리의 골풀 생산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골풀의 이식기(移植機), 수확기(収穫機), 골풀 돗자리(畳表)의 제직(製織) 등등, 그런 전용의 기계를 개발하여 고품질의 다다미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요가 폭등하여, 공급이 따라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대량 생산도 일장일단이 있구나"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생활의 질은 올라가지 않지요"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차과자(茶請け)가 없어졌으니, 뭔가 맛있는 것이라도 부탁하자꾸나"


그 말을 듣고 시즈코는 쟁반을 보았다. 쟁반 위에 있던 푸딩은 어느 틈에 전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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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0 1573년 1월 하순



연말(年の瀬).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속해있는 진영에 따라 뚜렷하게 명암이 갈려 있었다.

오다 가문을 중심으로, 동맹 관계에 있는 도쿠가와(徳川) 가문도 화려한 새해를 기대하며, 바쁘면서도 활기찬 연말을 보내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반 오다 동맹의 면면들은, 장례식 같은 묵직한 분위기 속에 저물어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반 오다 동맹의 우두머리(旗頭)였던 타케다(武田) 가문의 패배라는 사실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지적인 패배가 아니라, 타케다 가문의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완패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패배를 맛본 것이다.


반 오다 세력은, 누구 하나 타케다의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으며, 다소의 고전은 할지라도 타케다 군의 상락(上洛)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수괴(首魁)인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시작으로,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라는 타케다 사천왕(四天王) 중 무려 세 명이나 전사했다.

간신히 스와 시로 카츠요리(諏訪四郎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는 도망쳤으나, 타케다 가문의 유력한 무장들이 줄줄이 전사하여, 타케다 가문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정도의 참상이 벌어졌다.

그에 비해 오다 측의 손해는 경미하여, 오다-도쿠가와 합쳐서 500 정도의 사상자를 내기는 했으나, 유력한 무장이 전사하지는 않았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압승하여 천하를 진감(震撼)시킨 오다-도쿠가와 군이었으나, 그 이후의 오다 군의 행동은 반 오다 동맹의 참가자들을 기겁하게 했다.

타케다 군의 역사적 대패로부터 2일. 막심한 혼란에 빠져 있는 오다 포위망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노부나가는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나가시마(長島)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14개에 달하던 방어의 핵심이던 요새들도 하루에 3개라는 비상식적인 속도로 함락되었다.

세상이 타케다 가문의 패배라는 충격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가시마는 깨끗하게 털리고, 오다 군에 의한 나가시마 성(長島城) 침공이 시작되기 전에 항복의 쓰라림(憂き目)을 맛보았다.

이 충격적인 침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자군의 승리를 확신하고 여력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천하에 알린 것이다.


12월 중순 무렵에 도쿠가와 가문에 대한 증원을 결정하고, 겨우 반 달 정도만에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역사의 전환점이었겠지만,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는 사람은 죽을 맛이다.

특히 상황이 뒤바뀌어 열세에 몰린 반 오다 동맹 편 사람들에게, 이 해의 연말은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에 몸이 얼어붙는, 숨을 돌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혹한 것이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노부나가가 타케다 신겐을 쳐부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가 나가시마 일향종(一向宗)을 박살낸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오다 가문 내에서는 그 모든 대업을 뒷받침한 시즈코의 존재야말로 승리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로, 도쿠가와에 대한 원군(後詰め)으로서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가서, 핍박하는 전황을 두려워하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까지 설득하여 미카타가하라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나가시마에서의 쾌진격을 뒷받침한 병사들의 숙련도와 무장을 갖춰낸 것도, 모두 시즈코가 주도면밀하게 세운 계획의 성과였다.


기묘하게도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예언했던 것처럼, 오다 가문 안팎으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시즈코는, 평소라면 자택에서 보낼 설날(元日)의 해가 뜨기도 전부터 노부나가의 호출을 받았다.

그것도 첫 해돋이(初日の出)를 볼 테니 함께 와라, 라는 이유에서였다.


"추워……"


"춥다고 생각하니 추운 것이다"


"아니 실제로 춥거든요. 그보다 어째서 저인가요. 일출까지는 따뜻한 집에서 뒹굴게 해 주세요"


노부나가가 천하에 손을 대던, 시즈코가 얼마나 무공을 쌓아올리던, 주위에서 보는 눈길은 변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뭐, 네게 이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이유 따윈 필요없지"


"그런가요"


너무나도 노부나가다운 말에 시즈코는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뜨기 전의 추위(冷え込み)에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말수가 적어져,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거북한 침묵은 아니고, 조용히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자, 밤의 어둠에 한 줄기 광명이 비추었다.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빛을 향해 눈을 돌리자, 지평선 너머로부터 주위를 아침햇살(朝焼け)로 물들이며 태양이 떠올랐다.


"와아"


그건 멋진 첫 해돋이 광경이었다. 공기가 맑기 떄문인지, 현대보다도 뚜렷하게 밤이 밝아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담이지만 설날의 해돋이를 가리키는 말로서 '해맞이(ご来光, ※역주: 우리말에는 ご来光이나 初日の出을 따로 구분하는 명사가 없는 듯 하여 임의로 의역함)'와 '첫 해돋이(初日の出)'가 있으며, 이 두 가지는 혼동되기 쉽다.

하지만 '해맞이'는 높은 산에서 보는 일출을 의미하며, 석존(釈尊, ※역주: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줄임말)이 후광(光背)과 함께 내영(来迎, ※역주: 사람이 죽을 때 부처나 보살이 극락정토로 맞이하러 오는 것)하는 것에 빗대어진 것이다. 즉, 신앙의 대상은 부처(仏陀)이며, 불교 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에 반해 '첫 해돋이'는, 일출과 함께 세덕신(年神様)께서 강림하신다고 믿어졌기에 참배 대상이 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세덕신이며, 신토(神道, ※역주: 일본의 토속 신앙)에서 정월(正月)의 중심 행사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오랫동안 가로막고 있던 걱정거리가 불식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설날(元旦)이라는 것도 맞물려, 노부나가는 재생되는 태양을 평소보다 신성하고 장업한 것으로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를 쳐부술 줄이야"


노부나가조차 지금도 가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진짜 자신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타케다를 격파하지 못하고 기후 성(岐阜城)에 틀어박혀 다가오는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으며, 지금의 자신은 절망 속에서 꾸는 희망사항으로 가득한(都合の良い) 물거품 같은 꿈이 아닐까 하고.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은 해도, 때때로 확인하게 되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승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훗…… 그건 그렇고 그 신식총(新式銃)은 흉악하구나. 저쪽의 공격이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노리고 쏠 수 있으니 말이다. 상호간에 총격전(撃ち合い)이 벌어지기 전에 큰 손해를 강요받게 된다면, 아무리 머리가 나쁜 멍청이(撃ち合い)라도 주저하겠지"


"총만의 공적은 아닙니다. 모두가 제 말을 믿고 따라와 주었기에 이 큰 전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의 전공은 저 개인이 받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변함이 없구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 것도 변함이 없다"


과거를 그리워하듯 말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묘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신비하게도 어딘가 차분한 안정감이 있었다.

끝없이 대지에 도전하는 농업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인지, 굳건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기묘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큰 전과를 세웠음에도 추호도 흔들리지 않고 처음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계속 마음껏 가지를 뻗어내기에, 가지치기를 하는 데 손이 무척 많이 가지만 커다란 열매를 가져오기도 하는 큰 나무와 같은 '이상한 녀석'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이제부터도.


"타케다가 옛 기세를 되찾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우에스기(上杉)의 귀추(帰趨)는 모르겠다만, 호죠(北条)는 심하게 동요하고 있지. 혼간지(本願寺)도 믿었던 패가 사라졌기에 내부적으로는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일어났겠지.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쇼군(将軍)에게는 아시미츠(足満)를 보내겠다"


"아시미츠 아저씨를요?"


"음. 녀석을 보고도 여전히 헛된 꿈을 꿀 수 있을 깜냥이라면 다시 볼 법도 하지만, 그런 기량은 없을게다. 아무래도 이번 건에서 어설픈 대응은 할 수 없지. 아들을 인질로 바치게 하고 녀석 자신은 칩거(蟄居)하도록 하겠다"


강한 어조와는 반대로 노부나가의 모습에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느낌(徒労感)이 엿보였다. 쇼군 요시아키(義昭)에 대한 것은 노부나가에게 두통거리일것이다.

아무리 장식뿐인 요여(神輿)라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정치 감각이 없으면 떠받들고 있는 쪽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 1년이다. 네 군은 하나로 합쳐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로 재편성하여 활약해줘야겠다. 물론, 네 비장(虎の子)의 텟포슈(鉄砲衆)도 포함해서 말이다"


"반석의 지배체재를 확립하기 위해서인가요?"


"지금의 통치로는 각지에서 반기를 들면 그것만으로도 병력의 운용에 지장이 생긴다. 키나이(畿内)의 안정(安堵)은 혼간지를 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뭐 너 자신이 나가야 할 일은 그다지 없겠지만 말이다"


"어,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시즈코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노부나가는 히죽하고 웃음을 떠올릴 뿐이었다. 이런 태도를 취할 떄의 노부나가는 대부분 자비없는 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시즈코는 경험적으로 배웠다.


"너 자신이 어찌 생각하던, 타케다와 나가시마(長島)와의 싸움에서 보인 시즈코 군의 활약은 압도적(頭抜け)이었지. 그 시즈코 군의 본대가 움직이지 않고, 각지에 별동대가 파견된다면 적은 어찌 받아들이겠느냐?"


"……별동대의 파견은 경고. 설령 물리쳤다 해도, 그 몇 배의 군세에게 공격받아 멸망당한다는 것일까요"


"좋은 수읽기(読み)다. 간단히 굴복했다고 하면 체면이 서지 않겠지만, 타케다조차 꺾어버린 본대가 상대로는 싸움이 되지 않지. 경고 단계에서 얼마나 잘 대처할지, 목표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고생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정신적 중압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제는 부성(付城) 전술이 표준화된 오다 군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를 포위당하여, 치고 나가려고 해도 신식총에 박살나고, 원군이 없는 절망적인 농성을 강요당한다.

사방팔방으로부터 언제 공격받을지도 모른 채 시시각각 줄어가는 병량(兵糧)을 바라보며, 이윽고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는 완만한 자살. 보통의 신경으로는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뭐, 일벌백계(一罰百戒)를 실천하고 있는 것 뿐이다. 죽은 자의 살을 먹고 피로 목을 축이는 참상을 알게되면, 섣불리 대들려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겟지"


"일벌(一罰)이 너무 가혹한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만, 뭐 그건 어쩔 수 없겠죠. 피아의 차이를 추정하여 최선의 수를 강구하는 것이 영주(国人)의 임무이니까요. 판단을 잘못한 영주를 모신 댓가는 치루어야만 하겠죠"


"그 말대로다. 자, 첫 해돋이도 충분히 만끽했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노(濃, ※역주: 노히메) 녀석이 설날 요리를 다 먹어버리겠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부나가는 발을 돌렸다. 멍해져 있던 시즈코였으나, 정신이 들자 당황해서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올해도 천하를 얻는 데(天下取り) 바쁠 것 같구나"


시즈코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부나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설날(元日) 아침, 노부나가가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그의 일가친지(一族衆)라고 정해져 있다. 이것은 '가족이나 친족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가신이나 병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라는 노부나가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

솔선해서 모범을 보이고자, 노부나가는 정월(正月)을 처자나 친족들과 함께 맞이했다. 즉, 그 이전에 시즈코와 일출을 보러 나간 것은,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노부나가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것인지는 그 이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


"에취. 우우……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첫 해돋이를 본 후에 일단 집으로 돌아온 시즈코였으나, 점심 때가 지났을 무렵 다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설날에 열리는 노부나가의 다과회(茶会)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항상 참가하지 않았던 시즈코였으나, 아무래도 올해만큼은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찮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몸단장을 마친 시즈코는 아야(彩)의 전송을 받으며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으로 출발했다.


아무래도 정월쯤 되면 사람들의 왕래도 줄어들어, 상인들이 빽빽하게 오가는 큰길도 한산했다.

주요 도로(街道)는 물론이고 도로 근처의 큰 길은 모두 포장되어 있는 덕분에,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되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쯤 되면,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방문한 사람들이 줄을 짓고 있어, 수행원들도 포함하면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즈코는 낯익은 소성(小姓)에게 말을 맡기고는 만나기로 한 사람들을 찾았다.


"분명히 현지 집합이라는 이야기였는데…… 아, 저기 있네"


사이조(才蔵)나 나가요시(長可)도 정월에는 부름을 받았지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었기에 점심때부터 노부나가에게 인사하러 갈 때 현지에서 집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시즈코는 사이조의 모습을 발견했다. 시즈코가 사이조의 곁으로 달려가자, 사이조도 시즈코를 확인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즈코 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게 끝나자 사이조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뒤에 섰다. 새해 첫날부터 호위대(馬廻衆)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사이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그 후, 나가요시에 아시미츠(足満), 타카토라(高虎)가 차례차례 합류했다. 놀랐던 것은, 케이지(慶次)가 새해 인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무래도 올해는 갔다와라, 고 양부(養父)께서 말씀하셔서 말야"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케이지도 은혜를 입은 양부에게는 약하여, 올해는 인사를 드리고 와라, 라는 양부의 말에 거역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케이지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좋은 양부시잖아요. '효도하고 싶을 때 정작 부모님은 안 계신다'고 하잖아요"


"알고는 있어. 하지만, 아무래도 이 나이가 되면 뭘 해야 좋을지"


지금까지 카부키모노로서 살아온 케이지에게 무엇이 양부에게 효도하는 것이 될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뜯어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그는 몹시 괴로워하며 정월을 맞이했다.


"뭐, 천천히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고 하니까요. 슬슬 가죠"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모두와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아시미츠가 옆에 서고,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는 시즈코의 뒤를 따랐다.

가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 내용은 다양해서, 시즈코의 업적을 칭찬하는 것도 있고, 선망이나 질투, 욕설(悪罵)에 가까운 것까지 있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국시대 최강의 자리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최강의 자리에 있는 한, 이 이상의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즈코의 무공에 트집을 잡으면 창피를 당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되는 것이다.

타케다를 패배시켰다는 것은, 시즈코를 기껏해야 뒷바라지 역할(裏方)이라고 가볍게 여기던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견줄 수 없는 압도적인 무공이었다.


한편, 질투나 악의를 받는 시즈코는, 뉘집 개가 짖느냐는 식으로 태연하게 받아흘리고 있었다.

사람이란 감정의 생물인 이상, 그러한 악의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달관하고는, 상대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신경을 껐다.

건설적인 의견이나 의미있는 비판이라면 받아들이지만, 단순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비방중상(誹謗中傷) 같은 것은 피곤해질 뿐 얻는 것도 없기에 상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설날의 노부나가는 오전을 가족이나 일족과 함께 지내기에, 필연적으로 대외적인 인사는 오후에 집중된다.

주요 가신들도 마찬가지지만,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어, 설날의 기후 성에서 사람의 기척이 끊기는 일은 없다.

애초에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2일 이후에도 방문객이 끊기는 일은 없다. 어쨌든 시즈코도 다른 방문객과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노부나가와의 접견을 허락받고 정월 인사를 올렸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


시즈코가 정월 인사를 했을 때, 노부나가는 대담한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은 적중했다.




(어ー, 그러니까, 어째서 이런 상황이 된 걸까)


시즈코는 내심 머리를 감싸쥐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 사양할 필요 없다. 원하는 것을 말해라"


노부나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의 눈 앞에는 요우헨텐모쿠챠완(曜変天目茶碗)이 놓여 있었다.

현대에서는 국보(国宝), 그것도 현존하는 것은 3개 뿐이라는 최상급의 텐모쿠챠완(天目茶碗)인 요우헨텐모쿠챠완이 아까운 기색도 없이 놓여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노부나가가 애용하는 다기(茶器)가 늘어놓아져 있었다. 다기 뿐만이 아니라 히노모토고우(日本号)나 짓큐미츠타다(実休光忠) 등의 명창(名槍)이나 애용하는 칼까지 놓여 있었다.


명품들을 앞에 두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노부나가는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고, 또한 나가시마의 잇코슈(一向衆)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최대 공로자인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저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이런저런 현물(現物)을 시즈코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논공행상을 시작했다.


(어쩌지. 다기 같은 건 필요없고, 취급에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칼이나 창이라는 것도 멋대가리가 없겠지)


마음 속으로 신음하면서 시즈코는 생각했다. 갑작스레 정월에 논공행상을 하는 것도 노부나가에 뭔가 생각이 있어서일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현물이 잔뜩 있는데 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시점에서, 말로만 하지 않았지 뭔가 속셈이 있는 논공행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시 생각한 후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라면 노부나가의 체면을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영…… 어흠, 그러시면 '주상(上様, ※역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주상(主上)으로 의역)'께 세 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주상(上様)이란 노부나가의 경칭이 된다. 전까지는 '영주님(お館様)'이었으나, 연말 무렵부터 주위에서는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타케다와 나가시마를 쓰러뜨린 것 때문에 호칭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즈코도 노부나가를 '주상'이라고 고쳐 불렀다.


"말해보아라"


노부나가의 재촉을 받고 시즈코는 자세를 바로했다. 히죽 웃으며 이야기를 들을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언동을 재미있어하는 듯 보였다.


"……그럼 첫번째로, 싸움에서 죽은 자들의 영을 진혼(鎮魂)할 신사(社)의 건축 허가를 받고 싶사옵니다. 두번째는 토우시로 요시미츠(藤四郎吉光)의 칼 수집에 조력을 부탁드립니다. 세번째는 히노모토고우를 받고 싶사옵니다"


"좋다, 히노모토고우는 네게 주마"


시즈코의 청을 노부나가는 주저없이 승낙했다. 일순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시즈코 쪽이 당황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당황하는 것을 보고 히죽 웃을 뿐이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하여 마음을 가라앉힌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공하옵니다(有り難き幸せ). 하면,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위해 이만 실례하겠사옵니다"


히노모토고우를 운반할 준비를 한다, 는 명목으로 시즈코는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지쳤다고도 할 수 있다. 조금 휴식할 시간이 있었으면 하여 말한 이유였으나, 노부나가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승낙했다.


"붙잡히거든 포기하거라"


마지막에 노부나가가 한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한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시즈코. 내게 인사도 없이 돌아가려 하다니 꽤나 몰인정(不人情)한 처사로구나?"




"피곤해. 이제 두번다시 가고 싶지 않아"


히노모토고우의 운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운나쁘게 노히메에게 붙잡혔기에 시즈코는 크게 고생을 했다.

간신히 운반에 관한 지시는 내렸지만, 그 이상 뭔가 말하기 전에 시즈코는 노히에메게 질질 끌려갔다.

도중에 이치(市)와 챠차(茶々)들의 눈에도 띄여서, 그대로 여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그로부터 시즈코에게는 지옥이었다.

노히메와 이치의 콤비는 전혀 자비가 없었고, 반대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미 시즈코에 대해 뭔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대응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주상께 야겐(薬研)이나 란(乱) 같은 것의 하사를 확약받았으니 잘됐다고 생각할까……"


야겐토우시로(薬研藤四郎)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의 보물(重宝)이었으나, 마츠나가(松永) 단죠(弾正)가 아시카가 요시테루(足利義輝)를 암살했을 때, 후도우쿠니유키(不動国行) 등과 함께 빼앗아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겐키(元亀) 4년 1월 10일에, 마츠나가 단죠는 야겐토우시로와 후도우쿠니유키를 노부나가에 헌상했다고 전해진다.


"아, 기왕이면 후도우쿠니유키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뭐, 애도(愛刀)로 삼으실테니 무리겠지만"


"시즈코 님, 집계가 끝났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야가 말을 걸어왔다. 정월부터 일을 시키게 되어버렸으나, 그걸 생각해도 조금 곤란한 상황이 시즈코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됐어?"


"'주상'으로부터의 하사금을 합쳐 2만 7500관문(貫文)이 됩니다"


문제는 시즈코가 소지한 돈이었다.


"큰 돈을 받아도 곤란한데 말야"


"어쩔 수 없습니다. 오와리(尾張)나 미노(美濃)의 것은 대부분 시즈코 님이 관여하고 계시니까요. 그러니 돈이 가장 무난한 것이겠죠"


어째서 시즈코가 큰 돈을 소지하고 있냐 하면, 노부나가는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다기나 돈으로 보수를 지불하고 있었다.

무장들이 다기를 원하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에서 돈을 받아서 개간(開墾)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언제부터인지 시즈코에게는 돈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와리, 미노에서는, 치타 반도(知多半島)에 농업용수를 끌어오는 등의 국가적 초대형 공사 이외에는 어느 정도 개간은 끝나 있었다.

다른 지역은 각각 지배자가 있기에 시즈코는 개간에 대해 참견할 권리가 없다.

그녀의 영향력은 오와리, 미노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노부나가의 직할지(膝元)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특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까…… 아, 이세(伊勢) 신궁(神宮)이 있었지. 신궁 식년천궁(式年遷宮, ※역주: 신사(神社)에서 일정한 해에 새 신전을 짓고 제신(祭神)을 옮기는 일)을 위해서 기부하자. 일단 3000관 정도면 되려나"


"시즈코 님이시니 가신이나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것도 좋지만, 슬슬 다른 곳에도 돈을 돌게 해야지. 그러러면 큰 곳에 쓰는 편이 편해. 기부하면 나중에 '오다 가문은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멸망시킬 생각은 없다'는 어필도 되고 말야"


노부나가는 종교 세력에 가혹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었다. 적대한다면 어떤 종교, 종파를 불문하고 싸우고, 중립이나 아군 진영의 편을 든다면 평등하게 보호했다.

시즈코가 포경(捕鯨)에 활용하고 있는 고래 신사(鯨神社)가 노부나가에게 아무 말도 듣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은 노부나가와 적대할 생각은 없이 말 그대로 고래에 관한 일에만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무구(武具)를 구입하고 낭인(浪人)을 고용하기 시작하면 노부나가의 눈길을 끌게 된다.


"일단 주상께 이세 신궁에 대한 기부에 대해 허가를 받아줘. 그 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ー. 이제 곧 이사인데, 이사가 끝나면 모두에게 직함 같은 걸 줘야겠네. 슬슬 제대로 조직화하지 않으면 누가 뭘 담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니까"


노부나가가 준비한 시즈코의 저택에 이사하면, 지금 이상으로 고용인(家人)이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처럼 어정쩡한 조직으로는 운영할 수 없게 된다. 원활하게 가문을 운영하기 위해서도 직함을 정해줄 필요가 있었다.


"이미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가요"


"일단 바깥쪽과 안쪽을 구별해야지. 바깥쪽은 케이지 씨나 카츠조(勝蔵) 군들이 정점이고, 안쪽은 아야 짱이나 쇼우(蕭) 짱이 정점이려나"


"……그건……"


아야는 약간 망설였다. 쇼우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마츠(まつ)의 딸이다. 집안(家柄)은 흠잡을 데 없고, 실력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다. 지금에 와서는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서류(書状)에 '쇼우(蕭)'라는 도장(印鑑)을 찍어 처리할 권한도 있다.

즉, 시즈코의 집은 쇼우가 관리(切り盛り)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반면 아야의 작업은, 지금도 시즈코가 사적, 공적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관리이다. 즉, 창고의 물건과 돈의 관리. 바꿔 말하면 아야의 일은 현대에서 말하는 관재인(管財人)이 된다.


"집안 같은 건 신경쓸 필요 없어. 그렇다기보다 나는 창고의 관리를 누구에게 맡길지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었거든"


"그건 어째서인가요"


"간단해. 내 창고에는 여러가지가 들어있어. 그 중에는 아직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어. 그런 것들의 유혹에 지지 않고 제대로 관리하는 사람이 창고를 담당해 줬으면 하는거야. 타케다와의 싸움도,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신식총이 유출되었다면 지금같은 결과가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


돌려 말한 것이지만 시즈코가 하고 싶은 말은, 가장 신용하고 있는 것은 아야라는 것이었다.


"시즈코 님의 믿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은 편하게(デレ) 가자고, 아야 짱. 지금은 다른 사람도 없으니까, 자! 언니의 가슴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거라!"


양손을 펼치고 웰컴(welcome)을 하는 시즈코를 보고, 신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사한 마음이 싹 날아간 아야였다.


"그럼 3000관문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어~이, 이대로는 나는 꽤나 썰렁한데 말야…… 큭, 아야 짱이 편하게 행동하는 날은 언제가 되는 것이냐"


"바보같은 말씀 하지 마시고, 정월다운 일을 하며 지내 주십시오"


그런 말을 하는 아야는 깨닫지 못했다. 그녀 자신이 희미하게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이제 곧 이사라는 타이밍에 노부나가로부터 쿄(京)로 동행하라는 명령이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매사냥을 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진짜 목적은 달리 있다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애초에 매사냥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무장(武装)을 지시받았기 떄문이다.

명백한 시위(示威) 행위였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보여, 적대자들의 반항의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시즈코 군을 활용할 생각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꽤나 심한 생각을 하시네. 뭐 이걸로 싸움이 줄어든다면 좋은 거지만"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아야에게 평소의 멤버를 모으도록 지시했다. 케이지만큼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시간은 걸렸지만, 어찌어찌 전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후아아~, 자고 있는데 깨우다니, 시즛치는 너무한데"


"미안해요. 뭐, 일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요. 이게 끝나면 아마 한가해질 거라 생각하니까"


크게 하품을 하면서 불평하는 케이지에게 시즈코는 한 손을 세우며(拝む) 사과했다. 케이지도 그렇게까지 불만은 아니었던 듯, 사이조가 팔꿈치로 찌르자 볼을 긁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단순히 쿄로 가기만 하는 거에요. 다만 이런저런 속셈들이 얽혀 있으니, 제대로 무장을 하고 가는 거에요. 뭐 이쪽은 이만한 힘이 있다, 라고 보여주기 위한 거겠죠"


"그거 참 의욕이 솟지 않는 얘기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나갈 필요가 있는거야?"


"자자, 이 정도로 떨어져나가는 상대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힘을 보여주고, 그래도 싸울 기개를 가진 상대를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뭐…… 그건 그렇네"


가장 먼저 불평하던 케이지를 시즈코는 간신히 설득했다. 의욕이 솟지 않는 것은 시즈코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타케다와의 싸움에서 실컷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이상 보란 듯이 뭘 할 필요는 없다고 시즈코도 생각하고 있었다.


"뭐, 쿄에서는 놀아도 문제없지 않겠어요? 비용이라면 어느 정도는 내줄게요"


"휘익ー, 과연 시즛치. 말이 통하잖아"


"이봐, 한심한 소리를 하지 마라. 평범해 보이지만, 시위 행위도 중요한 일이라고"


"알고있어. 알고는 있지만, 재미없는 건 재미없다고"


"뭐ー 나도 내키진 않아요. 하지만, '그것'을 수령해야 하니까,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오, 그럼 드디어 양도받을 수 있는 건가!!"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가 반응했다. 나가요시의 질문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두 손을 쳐들며 기뻐했다.

'그것'은 해외의 토종(土着) 고양이였다. 터키시 앙골라에 반한 이후, 노부나가는 다른 해외의 고양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많은 해외의 고양이가 가지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그런 욕구를 품게 된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다른 고양이도 모아라'고 명했다.


가지고 있는 연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시즈코는 서양 고양이를 모았다.

우선 러시아 동부에서 자연발생한 토종 고양이 사이베리안(Syberian). 서력(西暦) 1천년 무렵부터 존재가 확인되어, 지금은 러시아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고양이다.

호기심이 와성하고 두뇌가 명석하면서 온화하고 참을성이 강하며, 그리고 어리광이 많은 성격의 고양이다.

그러면서 탁월한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어, 물을 기피하는 고양이 종류임에도 물고기를 포획하는 사이베리안까지 확인되었다.


다음으로 영국의 토종 고양이인 브리티쉬 숏헤어(British Shorthair). 그 시작은 고대 로마가 영국을 침공했을 때, 식량을 노리는 쥐 대책으로 데려온 고양이가 시초라고 전해진다.

20세기에 품종의 표준화가 확립되었으나, 그보다 1세기나 전에 영국 국내에서 토종 고양이로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본종(本種)은 단모종(短毛種)이지만, 장모종(長毛種)으로서 브리티쉬 롱헤어(British Longhair)라는 고양이도 존재한다. 이쪽은 비교적 새로운 고양이 품종이다.


다음으로 노르웨이의 토종 고양이 노슈크 스쿠캇(Norsk skogkatt, ※역주: 구글번역에서 들은 발음대로 적음). 영어로 노르웨지언 포레스트 캣(Norwegian Forest Cat)이라고 불리며, 의미는 노르웨이어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숲 고양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옛부터 존재하는 토종 고양이인데, 4천년 이상 전부터 존재하는 고양이라거나, 남유럽에 있던 단모종이 노르웨이의 추위에 견디기 위해 장모종으로 변화했다거나, 11세기에 바이킹이 데려온 고양이가 원조라고 하는 등, 지금도 그 기원이 뚜렷히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방수기능이 있는 2중 털 등, 노르웨이의 환경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다만 한랭지방에 적응한 품종이기에, 아열대나 열대 지방에서는 열중증(熱中症)에 걸리기 쉽고, 방수를 위한 피부는 피부염에 걸리기 쉬운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된 집고양이라고 하는 이집트의 토종 고양이 이집션 마우(Egyption Mau). 마우란 고대 이집트어로 고양이를 의미한다.

피라미드의 벽화에도 이집션 마우로 보이는 것이 그려져 있어, 이집션 마우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존재했던 게 아닐까라고 추측되고 있으나 확증은 없다.

반점(斑点) 무늬를 가진 고양이인데, 이 무늬는 고양이 품종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손이 닿아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반점 무늬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현대의 이집션 마우는 가장 오래된 고양이로 유명한데, 러시아 왕녀 나탈리(Natalie Trubetskaya)가 이집트에서 집고양이를 몇 마리 들여와서 미국에 고양이들과 함꼐 망명한 후에 품종개량된 고양이가 정식 품종으로 등록되었기에, 비교적 새로운 미국 원산(原産)이라고도 한다.

시즈코가 들여온 것은 나탈리 왕녀가 이집트에서 들여왔다고 하는 집고양이다. 혼란을 막기 위해 시즈코는 이집션 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러한 토종 고양이들을 구입한 시즈코였으나, 그 구입 방법은 조금 특수했다. 일단 이 시대에, 고양이는 짐을 쥐로부터 지키는 중요한 존재였다.

항상 보아 익숙한 토종 고양이라고는 해도, 남만 상인들은 고양이를 간단히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고양이를 일시적으로 맡아서, 일본에서 번식시킨 후에 남만의 배에 부모 고양이를 반납한다는 방법을 취했다.

물론, 그 동안 선박은 이동할 수 없게 되지만, 그에 드는 비용은 노부나가(정확히는 사카이(堺)의 상인들)가 부담했다.


이렇게 키워진 새끼 고양이가 드디어 양도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양도는 언제나처럼 쿄에서 이루어진다.

그밖에도 시즈코가 의뢰한 것들이 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어도 문제없었다.


"좋아좋아, 나는 의욕이 마구 솟아나는데"


"타산적(現金な)인 녀석이군"


나가요시의 180도 달라진 태도에 사이조는 어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의욕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쪽이 낫다고 생각하고 그 이상의 쓴소리는 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의욕이 없는 태도이기는 했지만, 시간때우기는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뭐, 편한 마음으로 가자고요. 그럼 잘 부탁해요"


시즈코의 마무리에, 각자 나름대로 대답했다.




1월 하순, 쇼군 요시아키는 타케다가 패한 것 때문에 마지못해 노부나가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노부나가 본인은 요시아키가 오다 가문에 적대하여 거병했던 것조차  몰랐다.

몰랐다, 라기보다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은 시즈코가 타케다를 쳐부술 때까지 계속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알게 된 미츠히데(光秀)도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타케다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쿄에 돌아왔을 때 요시아키로부터 사자가 와서 겨우 기억해냈다는 상황이었다.


그 정도로 요시아키의 거병은 노부나가에게는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이번에, 형식상으로는 경솔하게 거병한 요시아키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형태이지만, 쿄의 모든 사람이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를 징벌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생각은 맞았다. 단지 질책할 뿐이라면 군대를 끌고오지는 않는다. 군대는 요시아키에 대한 위압과 위협을 위한 것이라고 쿄의 백성들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오다 군이 오는 모양이야"


"쇼군 님은 거병했다면서 한 번도 싸우기 전에 항복한 건가. 하여간 한심하구만"


"맞아맞아, 하다못해 한 번은 좀 싸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의 언동이 겹쳐서, 쇼군 요시아키에 대한 경의 따윈 바랄 수도 없었다. 애초에 경의가 없다면 천하인조차 바보 취급하는 것이 쿄의 백성들이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항복했다고 하면 아무리 쇼군이라고 해도 비웃고, 웃음거리로 삼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그들이 향하고 있던 쪽과는 반대쪽에서 남자가 한 명 달려왔다.


"오, 상황을 보러 간 녀석이 돌아왔네. 어땠어?"


"어, 어어어어떘어가 아냐! 이, 일단 물러나, 너희들!"


무릎에 손을 짚고 호흡을 고른 남자는, 다급하게 밀어내듯이 남자들을 가장자리로 비켜나게 하려 했다. 곤혹스러워진 남자들이었으나, 그 비정상적인 당황함에 투덜거리면서도 그 말을 따랐다.

도로 가장자리로 비켜나고 조금 지나자, 오다 군의 깃발이 보였다. 보려고 목을 길게 뺀 남자를,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다급히 잡아끌었다.


"(뭐, 뭐야. 보는 정도는 문제없잖아)"


"(됐으니까 내 말대로 해!)"


그러고 있을 때 오다 군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상황을 보고 왔던 남자가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를 그들은 알게 되었다.


오다 군의 행진은 대단히 통솔이 잘 잡혀있었다. 5명을 한 줄로 하여, 굵은 나무 같은 열을 짓고 있었다.

보통, 잡병이나 아시가루(足軽)가 뒤섞이면 대열은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가늘고 긴 형태가 된다. 그런데 등간격(等間隔)으로 열을 짓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광경이다.


게다가 무장도 놀라웠다. 양쪽 끝의 사람들은 창을 들고 있었으나, 안쪽의 세 명은 총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게 길게 열을 짓고 있다. 이해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대량의 화승총을 소지하고 있다, 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멀리서 보고 있던 간자들이라면, 그 광경만으로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골머리를 썩을 것이다.


(거 참, 주상께서도 짓궂으시다니까. 분명히 쇼군하고 쿄에 있는 간자들 양쪽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거겠지. 현대에서 말하는 군사 퍼레이드일까?)


벌써 몇 번째 본건지 알 수 없는 쿄의 백성들의 놀란 얼굴을 흘려보면서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도보 행진 훈련은 현대의 자위대도 할 정도로 체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한 기본적인 훈련이다.

또 하나, 지형의 파악이라는 목적도 있지만, 시즈코는 체력의 향상을 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병사 훈련소에서는 기본 중의 기본이며, 입대한 사람 모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한다.

훈련에 따라서는 배낭의 무게가 바뀌어, 가벼우면 20kg, 무거우면 60kg를 짊어진다. 거리도 짧으면 몇 km이지만, 길면 오와리에서 기후까지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시즈코 군을 쿄로 데려왔다. 통솔이 잡힌 군대가 많은 화승총(절반 이상은 훈련용의 사격성능이 없는 목업)을 장비하고 있는 광경은 적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하다.

무장하고 행진하기만 하면 반항의 싹을 자르고, 쓸데없는 싸움을 줄이며, 적을 편드는 자들까지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노부나가를 따르는 것은 타케다를 쓰러뜨린 시즈코 군이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효율이 좋은 책략은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걷기만 하는데 적이 줄어드는 것이니.


(뭐,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건 나도 찬성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목적지로 향했다.


그들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 쿄의 백성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뭐, 뭔가,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거 아냐? 오다 군은"


누군가가 중얼거리고, 이어서 겨우 실감이 났는지 남자들은 얼굴에서 땀을 흘렸다.


"장난 아닌데…… 저런 놈들에게 거스르려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맞아맞아. 게다가 생각해봐. 오다 군이 강하다는 건, 이 도시가 안전하다는 이야기야"


"소문으로는 타케다 군이 전력으로 싸웠는데 박살을 내서 쫓아버렸대"


"으ー음, 오다 군은 굉장하네"


그 후에도 남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해, 어느새 원래 이야기에 꼬리 뿐만이 아니라 다리까지 붙어서 멋대로 부풀려져버렸다.

쿄의 백성들의 오다 군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노부나가는 남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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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2 켄신(謙信)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배려하여 가져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은 외통수 장기(詰将棋) 같은 대화를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 하나로 영구히 접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회담을, 두 사람은 끈기있게, 원하는 방향을 찾으며 계속했다.


"지금 에치고(越後)는……"


이라며 사내는 정세를 이야기했다. "북쪽으로 이로베(色部) 씨, 남쪽으로 아시나(蘆名), 우에스기(上杉), 무라카미(村上)의 각 가문, 그리고 서쪽으로는 진보(神保) 씨와 그것을 등 뒤에서 조종하는 아사쿠라(朝倉) 씨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다난(多難)한 때를 보내고 있소이다. 우리 주군이신 코이즈미(小泉) 에치고노카미(越後守)는 맹주(明主)이시나, 아무래도 강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싸움에 쫓기고 있어, 예전에 우리 영지(領国)였던 아가노가와(阿賀野川) 이북을 이로베 일족에게 빼앗겨도 되찾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외다. 여기에 당신들과 싸우게 되면, 먼저 이 사카이가와(境川) 맞은편 기슭의 미야자키(宮崎) 요새(砦)에 있는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 놈이 기뻐하며 치고 나올 것이 틀림없소"


그렇기에 이 문제는 온건하게 처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바(伊庭)도 그 점에서는 이의가 없었다.


"기일(期日)에 관해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희들이 완전히 우군에게 버림받았는지 어쩐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언제 이 상태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당분간 이 지점을 떠날 수 는 없습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이곳을 떠나면, 그야말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오. 당신들이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으시던, 싸울 걱정만 없다면 전혀 상관없소. 그러나, 이곳에 수십일이나 가만히 있는 것은 불편하시지 않겠소이까?"


"곤란한 건 그것입니다. 저희들의 물자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이 식량입니다"


"도움을 드리지요. 단, 신명(神明)을 걸고 적으로 돌아서지 않는다고 맹세해 주신다면 말이오"


"그거야 뭐…… 당신들 뿐만 아니라, 강 저편에 있는 쿠로다인가 하는 사람의 병사들과도 전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쿠로다 세력과는 싸우게 될 거요(역주: 원문의 討たれい라는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음). 히데하루 놈과는 지금 한창 전쟁중이외다"


"허허……"


이번에는 이바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카이가와가 엣츄와 에치고의 경계인 이상, 이곳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전투 상태가 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느긋한 풍경이었다. 사내가 분노한 표정으로 설명한 것에 따르면, 쿠로다 히데하루라는 인물은 원래 코이즈미 가문의 가신(家臣)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밀리에 시나노(信濃)의 우에스기 가문과 내통하여, 주군인 코이즈미 에치코노카미 유키나가(行長)가 호쿠에츠(北越)의 이로베 가문을 치러 나간 사이에 돌연 반기를 들어 영지를 지키고 있던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를 죽여버린 것이다. 하루카게는 이 사내의 형에 해당하며, 그 후에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서 쫓겨나자 엣츄의 진보 가문으로 가서, 하필이면 그 에치고 측 최전선인 미야자키 요새의 수비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슬러올라가면 나가와 가문과도 혈연관계가 있는 사이인 모양이라,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증오가 양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거 곤란하군요"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 반대편 기슭을 보았다. "당신과의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면, 저 양반(あちらさん)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거군요"


"과연, 저 양반이라……"


이바의 말투가 웃겼는지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실례입니다만, 한번 더 당신의 성함을"


옆에서 말없이 듣고있던 히라이 상병이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오 헤이조 카게토라(長尾平三景虎)"


사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위(三尉)님, 이 분은 혹시……"


"뭔가 상병(陸士長)"


"나가오 카게토라, 그……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아닐지요"


이바는 깜짝 놀라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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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1 사자(使者)



이바(伊庭) 소위(三尉)의 손목시계는 그 때 3시 무렵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시 몇분인지 이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전원의 손목시계가 완전히 엉망진창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누구도 설명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들을 덮친 시간 이변에 관계되어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연의 돌제(突堤)를 형성하고 있는 그 바위밭의 주위에 초긴급으로 철조망이 쳐지고, 대원들이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바 소위는 진정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진지 안을 걸어다니며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45분 간격으로 장갑차 앞쪽의 길을 보고 있었다.


"소위님, 무얼 신경쓰고 계신 겁니까"


반라의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보다 못한 듯 물었다.


"안 된다. 빨리 옷을 입어라"


이바는 히라이 상병을 보더니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자신은 푹 젖은 상태로, 어깨나 팔 부근은 이미 마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곧 마릅니다"


"빨리 입어라. 손님이 올 거다"


"손님이라뇨……"


"강 저편에서 사무라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잖나. 그들에게 우리는 침입자다. 반드시 사자(使者)가 올거다"


"사자입니까"


히라이 상병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니와가 사용한 사자라는 단어가, 아까 강 건너편에 보였던 사무라이들의 모습과 겹쳐서 대단히 옛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


"이바 소위님, 전방에 적입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반사적으로 이바와 히라이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국도(国道) 8호가 있었던 부근에서 창끝이 반짝하고 빛났다. 히라이는 당황해서 셔츠를 걸치고 소매에 팔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전원에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발포하지 말라고 해라. 단, 결코 큰 목소리를 내지 마라. 상대를 자극할 만한 행동은 일체 삼가도록"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 장갑차 앞으로 나왔다.


길에 40명 정도의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통솔이 잡힌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한동안 바다를 향해 횡대(横隊)를 짜고 있었으나, 개중 약 절반 정도가 강을 향해 빠릿한 걸음걸이로 이동하고, 나머지 20명 정도가 길에서 벗어나 장갑차로 통하는 언덕길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윽고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정지하여, 3열종대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창이 10자루 정도 파란 하늘을 향해 늘어섰고, 그 끝부분에 달린 짧은 칼날(白刃)이 끊임없이 태양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났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가죽 상의를 걸친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아마도 싸움터에서 입는 겉옷(陣羽織) 같은 것일텐데, 그건 약간 짧은 편인 감(紺)색의 바지(袴)나, 허리에 찬 큰 칼(大刀)과 잘 매칭되어 있어서, 자위대원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전적으로 보였다.


사내의 몸은 탄탄했고, 키(上背)도 꽤 커 보였다. 다만 복장의 가로폭이 넓어서, 그런 복장이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키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피부는 햇빛에 검게 타 있었고, 눈썹은 검고 굵었으며, 긴 구렛나룻이 정한(精悍)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모(冠)를 쓰지 않은 머리에는 이마부터 깨끗이 깎여 있었고, 후두부로부터 정수리로 굵은 상투(髷)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 무사는 헬리콥터가 보이는 위치로 오자 발을 멈추고, 꾸밈없는 태도로 감탄한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위에 쳐진 철조망을 알아차리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그 가시 부분을 쿡 하고 찔러보았다. 조금 아팠던 듯, 깜짝 놀란 듯이 손가락 끝을 바라보더니, 하얀 이빨을 보이며 이바 소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바는 그에 낚인 것처럼 미소로 답했다.


"좋은 날씨(日和)외다"


뱃속에 스며드는 듯한 중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바는 천천히 턱을 끌어당겨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날리던 것은 저것이오이까?"


"그렇습니다"


이바가 대답했다. 그 말투에 다소의 위화감이 있었던 것이리라. 사내는 "호오, 호오"라며 감탄한 듯한 탄성을 내고, 이바의 얼굴을 보며 걸어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바가 말했다.


"허허, 기다리셨다 함은?"


"이쪽의 영토 안에 이런 무리가 출현했으니 당연히 어느 분이던 이야기하러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라고 합니다. 부하는 합계 27명. 그 밖에도 세 명, 배에 탄 자들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자리를 비우고 없습니다"


"나가오(長尾) 헤이조(平三) 카게토라(景虎)라고 하오"


사내는 천천히 인사하며 말했다. "카스가야마(春日山) 성주(城主), 코이즈미(小泉) 사에몬(左衛門) 고로(五郎) 유키나가(行長)님을 섬기고 있으나, 다만 지금은 카츠야마 성(勝山城)에 거하며 엣츄 입구(越中口, 역주: 확실하지 않음)를 지키고 있소"


"호오, 이 부근에 성이 있는 겁니까"


그러자 사내는 뒤돌아보며 왼쪽의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부근이 우리 카츠야마 성이오"


"저희들은 이 부근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른다라…… 하면 뭣 때문에 이곳으로 오셨소"


이바 소위는 당혹한 듯 잠시 눈을 감더니, 자조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표류자(漂流者)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거 고생이시겠구려"


사내의 표정에 약간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배는 어쩌셨소"


"지금 현재, 저희들은 버려진 상황입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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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8 끓어오르는 피



"다녀와라, 요시나리(可成)"


식사 자리에서 노부나가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에게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런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사고가 따라가지 못해 술잔을 한 손에 든 차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즉시 노부나가의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예, 아니…… 소생(某)은……"


이해했지만 모리 요시나리는 곤혹스러웠다. 은퇴한 노인이 이제와서 어정어정 나갈 자리가 아니다, 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미련이 막심한 것을 노부나가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말했다.


"그걸로 네가 납득할 리가 없지 않느냐. 결판을 짓고 와라"


말한 후 노부나가는 잔을 기울였다. 반대로 모리 요시나리는 술잔을 손에 든 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나누고 있는 대화는, 모리 요시나리에게 타케다(武田)와의 싸움에 따라가라, 는 내용이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어깨의 부상으로 전선에서 물러나, 이후에는 노부나가의 정부를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항상 맺힘이 남아 있었다. 나가요시(長可)를 훈련시키고 있을 때 모리 요시나리는 그것을 깨달았지만, 억지로 마음 속 깊숙히 가두어놓았다.


"나는 화려하게 죽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네가 생각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만 대답해라. 주위가 무슨 말을 해도 신경쓰지 마라. 내가 입을 다물게 하겠다"


"영주님……"


모리 요시나리는 한 번 예를 올린 후 잔을 비웠다. 단번에 넘어간 강한 주정(酒精)이 목구멍을 태우며, 모리 요시나리는 전신이 뜨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불초(不肖), 모리 산자에몬 요시나리(森三左衛門可成). 미련이 남아있습니다. 그렇기에, 피가 끓는 것에 따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번뇌하던 태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리 요시나리는 한 조각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선언했다.

타케다 와의 싸움이라고 하면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확률 쪽이 적다. 죽어버리면 노부나가의 보좌를 할 수 없게 된다.

노부나가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뜻(我)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군의 정무에 차질을 줄 지도 모르는 것이다. 모리 요시나리로서는 고민 끝에 낸 결론이었다.


"보고를 기다리고 있겠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마라, 라고 말하듯 가볍게 대답했다.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의 대답을 듣고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부터 수라(修羅)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고 모리 요시나리는 자리를 떴다. 남겨진 노부나가는 잔의 술을 한 입 머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끝나면, 지금부터 세상은 철포(鉄砲)가 주체가 되지. 무용을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은 철포가 주전력(主戦力)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철포를 소유하는가에 의해 싸움의 승패가 갈린다, 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고로슈(根来衆)나 사이카슈(雑賀衆)가 대접받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작전이 성공하면 오다의 텟포슈(鉄砲衆)가 일본 제일의 자리에 오른다.

이미 혼간지(本願寺)나 우에스기(上杉)조차 두려워할 게 되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무명이 높은 명장이라 하더라도, 이름없는 병사가 쏘는 한 발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개인의 무용이 대접받는 시대는 끝난다. 지금부터는 집단전법이 기본이 되며, 무장은 전투능력이 아니라 지휘능력이나 용병능력을 시험받게 된다.


"하지만, 요시나리도 곤란한 녀석이군. 가고 싶으면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을……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군"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였으나, 문득 어떤 것을 떠올리고 엷게 웃었다.


"아니…… 지금까지 실컷 녀석을 고생시킨 것은 나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요시나리의 충근(忠勤)에 대한 보답이 되겠지"


스스로 술을 잔에 따랐다. 흔들흔들 흔들리는 술의 수면을 노부나가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시나리, 실컷 날뛰고 와라. 너를 붙잡는 멍청이(阿呆)가 있다면, 내가 그놈의 목을 날려주마"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잔을 하늘높이 치켜들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잔의 술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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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7 죽을 장소를 버렸다



케이지(慶次)는 툇마루(縁側)에서 혼자 달구경(月見)을 하며 술을 즐기고 있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수천만의 별들, 한층 더 밝게 빛나고 있는 달, 현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밤하늘의 광채가 술안주였다.

누워서는 밤하늘을 감상하고, 생각난 듯 일어나서는 잔을 기울였다. 느긋한, 그러나 자유로운 시간의 흐름을 케이지는 즐기고 있었다.


"괜찮겠나"


케이지의 귀에 발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를 향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처음부터 앉을 생각이었던 듯, 케이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툇마루에 앉았다.


"예쁜 여자라도 한 명쯤 데려와라, 사이조(才蔵)"


"술을 마시는 데 여자를 데려올 필요는 없잖나"


옆에 앉은 인물, 사이조에게 익살맞게 말을 건 케이지였으나, 사이조의 진지한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부터 본심은 아니었지만, 사이조는 항상 진지하게 받는다. 하지만, 그게 케이지에게는 마음이 편했다.


"한 가지 묻고 싶다"


잠시 서로 말없이 달구경을 하며 술을 즐기고 있었으나, 그 침묵을 깬 것은 사이조였다. 그는 시선을 달로 향한 채 말을 이었다.


"요즘 아무래도 맥이 빠진 듯 보이더군.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냐. 단지, 죽을 장소가 없어졌구나라고 생각한 것 뿐이야"


"그런가"


케이지의 대답에 사이조는 그 말만 하고는 술을 마셨다. 말하고 싶으면 해라, 하기 싫으면 화제를 바꿔라, 라고 케이지는 사이조의 태도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케이지는 작게 한 번 웃더니, 잔에 있던 술을 비웠다.


"나와 싸운 사나다(真田)는 '지금부터는 철포(鉄砲)의 세상이다'라고 말했어. 그런 건 예전부터 이해하고 있었지. 그 총을 봤을 때 말야"


"그것과 죽을 장소를 잃은 것에 무슨 관계가 있나"


"간단해. 그건 강력한 무기야. 지금부터 칼이나 창으로 싸우는 싸움은 줄어들겠지. 돈의 힘과 그 총의 힘, 그것만으로 적은 항복해. 내가 죽을 장소를 정할 싸움은 이제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아. 그게 굉장히 슬프다"


"죽을 장소인가…… 확실히 그 말대로군. 이제 무사의 세상은 끝을 맞이할지도 모르지.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고,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는 이단자(はみ出し者)로 취급받게 되지"


"쓸쓸한 세상이군. 하지만, 이게 세상의 흐름인지도 몰라"


술을 다 마시자 케이지는 드러누웠다. 그것을 본 사이조도, 자신의 잔에 남아있는 술을 마셔버리고 케이지를 따랐다.

툇마루에 남자 두 명이 드러누워 달을 바라본다. 화려함은 없었지만, 마음이 느슨해지는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철포의 세상이라. 사실은 더 전부터 알고 있었어. 시즛치의 방식은 싸움을 줄여서 세상을 평온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도 말야"


"그런가"


"이해한 후, 그래도 생각했어. 시즛치가 그리는 세상은 어떤 걸까 하고. 설령 죽을 장소를 버리게 되어도, 말야. 하핫, 사나다 녀석은 지금쯤 웃고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죽을 장소를 자주 바꾸지 말라고"


"좋지 않나. 죽을 장소는 꼭 전장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사이조는 잔을 기울여 술을 입에 머금었다.


"소생은 단순하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지금부터도 시즈코 님을 섬긴다. 바라자면, 죽어서도 그 분을 섬기고 싶다"


사이조답다, 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시선을 달로 항하고 케이지는 지금까지의 일을 돌이켜보았다.

처음에는 엉망진창인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말썽꾸러기(暴れん坊)인 카츠조(勝蔵), 까다로운 사이조, 그리고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자신. 평범하게 생각하면 제대로 기능할 거라 생각되지 않는 조합이다.

그러나 시즈코라는 윤활유가 사이에 들어가게 되자, 아귀가 맞지 않던 톱니바퀴가 함께 돌기 시작했다. 시즈코의 존재를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카츠조 녀석은 어떡할까"


"훗, 녀석은 이래저래 말은 하지만, 무슨 일마다 시즈코 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있지. 이제와서 녀석이 시즈코 님의 곁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아ー, 그럴거야. 설령 떼어놓으려고 하면 전력으로 투정을 부리겠지"


만약 시즈코의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나가요시(長可)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상상한 두 사람은, 소리죽여 웃었다.


"뭐, 그런 나도 떠날 생각은 없지만 말야"


"맛있는 밥과 술이 없어지니까 말이지"


"풍요로운 인생을 보내는 데 맛있는 밥과 술은 중요하다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밥 이야기를 하면 배가 고파지는군"


"창고 열쇠는 받아놓았지만, 저번 같은 실수를 하면 문제야"


"그건 그렇군"


케이지가 말하는 저번의 실수란, 술안주를 찾아 창고를 열었을 때,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 위해 준비한 '전복 간 젓갈(塩辛)'을 술에 어울린다며 전부 먹어버린 사건이다.

항아리에 '취식(つまみ食い) 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으나, 꺼냈을 때 떨어진 모양이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취해 있었기에 종이가 붙어 있었어도 눈치챘을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다음 날 다 먹어버린 것을 알게 된 시즈코에게 케이지와 사이조, 그리고 이곳에 없는 나가요시가 나란히 사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술을 못 마시면서 시즛치는 어째서 그만한 술안주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듣자 하니 아버님이나 할아버님께 자주 만들어드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재료만 있으면 어느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가. 하지만 오다 나으리에게서 여전히 금주령이 내려져 있잖아? 그만큼 맛있는 술안주를 만들 수 있으면서 술을 못 마신다니 아깝네"


"술안주는 밥에도 어울리지, 그렇게 곤란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그렇네"


그 후에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두 사람은 가끔 술을 마시고는 달을 바라보고, 드러누워서 담소하기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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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6 난월어기(卯月御記, ※역주: 우즈키(卯月) 기록(御記)) (현대어 스타일)



4월 14일


오다(織田) 단죠노죠(弾正忠)로부터 헌상된 고양이는 매우 아름답고, 기품있는 태도에는 눈을 끄는 구석이 있다.

이름을 우즈키(卯月)라 하고, 오늘부터 짐이 돌보게 되었다.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公家)의 자들은 짐이 돌보는 것에 난색을 표했으나 어쩔 수 없다.

짐은 오다 단죠노죠에 거스를 힘 따위 없다. 헌상된 고양이를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놈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짐이 스스로 돌보는 것이 조정이 살아남을 길이리라.

그건 그렇고 우즈키는 귀엽구나.



5월 23일


우즈키가 온 지 30일은 지났는가. 평소에는 어딘가 어두운 궁궐(御所)이 밝아보인다.

다들, 우즈키의 아름다우면서 자유로운 태도에 미소를 짓고 있다.

귀여우면서도 우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모습은 훌륭하도다.



6월 4일


우즈키의 식욕이 나쁘다. 오다 단죠노죠에게 물었더니 흔히 있는 일이라 한다.

신경쓸 필요 없다, 라고 해도 신경쓰인다. 빨리 건강해지도록 짐은 신불(神仏)에게 기도하였다.



6월 6일


뭔가 먹이고 있는 것이 문제, 라고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당장 평소에 먹이고 있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빨리 건강해졌으면 좋겠구나.



6월 9일


우즈키의 몸이 좋지 않은 이유가 판명되었다.

아무래도 파 종류를 삶았던 냄비로 함께 우즈키의 식사를 만들고 있었던 듯 하다.

고양이에게 파는 안 되는 것인가. 짐은 한 가지를 배웠노라.

당장 우즈키를 위한 냄비를 준비하자, 라고 생각햇더니 오다 단죠노죠가 냄비를 선물로 보내왔다.

처음에는 난폭한 토호(土豪)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알뜰한 듯 하다. 짐은 아직 멀었구나.



6월 15일


우즈키의 몸이 좋아져, 오늘도 힘차게 밖에서 뛰놀고 있다.

아름다운 몸을 가졌으면서,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뛰놀 수 있는 자유로움은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즈키의 매력이다.



6월 16일


오늘은 축축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우즈키가 쓸쓸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진다. 내일은 맑아지거라, 고 신불에게 기도했다.



7월 1일


지긋지긋한 장마가 지나가고 매일 더위를 느끼는 성하지절(盛夏の候). 제아무리 우즈키라도 더위에는 당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요즘 짐의 차양막(日避け)에 들어와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귀엽구나.



8월 4일


우즈키가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쉰다. 즉시 오다 단죠노죠에게 서신을 보냈다.



8월 6일


열중증(熱中症)이라고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회신이 왔다. 당장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방에서 쉬게 했다.



8월 8일


우즈키가 건강해졌다. 짐은 신불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8월 15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서신이 왔다.

자신이 키우고있는 토라지로(虎次郎)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한 자랑이 길게 쓰여 있었다.

이 무슨 굴욕인가. 답신에 우즈키의 사랑스러움을 시(和歌)로 적어보냈다.

결국은 시골(田舎) 호족(豪族)일 뿐인가. 우즈키가 가장 귀여운 게 당연하지 않은가.



9월 10일


평소에는 나무에서 놀지만, 최근 다치지나 않을지 조마조마해지는 경우가 있다.

잠시 생각한 후, 전용의 집(小屋)을 세우는 게 좋다는 결론에 달하였다.

당장 기술자를 부르도록 명했다. 비용은 오다 단죠노죠에게 내도록 명하였다.



9월 18일


우즈키 전용의 집이 완성되었다. 제법 잘 만들어졌다.

우즈키도 마음에 든 듯 벌써부터 놀고 있다. 잘 되었구나.



9월 21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시가 도착했다. 내용은 토라지로에 대한 것이었다.

짐에게 거역하다니 어리석구나. 바로 우즈키의 사랑스러움을 시로 적어보냈다.

어리석은 놈이. 우즈키가 가장 귀여운 게 당연하지 않느냐.

어서 포기하거라.



10월 6일


오다 단죠노죠의 말이 바르다면, 우즈키와 똑같은 고양이는 세 마리가 더 있다고 한다.

고노에(近衛)에 아케치(明智), 그리고 호소카와(細川)인가. 다른 고양이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10월 9일


요즘 우즈키가 쌀쌀맞다.

혹시 다른 고양이를 만나보고 싶다, 고 생각한 것이 원인인 것일까.



10월 12일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이 짐은 고양이를 지나치게 소중히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잊고 있었다. 우즈키는 자유롭고 마음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10월 13일


또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이 쓴소리를 했다.



10월 15일


어제와 오늘, 이틀이나 우즈키를 예뻐하지 않았다.



10월 16일


오늘도 지나치게 우즈키를 예뻐하지 않도록 했다.

업무는 차질없이 마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피로를 느낀다.



10월 17일


기분이 좋지 않다. 중요한 업무만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18일


몸이 좋지 않다. 우즈키에게 병이 옮지 않도록 떨어져 지낸다.

허탈감이나 피로감이 든다. 현기증이 나고, 뭘 하려고 해도 기력이 솟지를 않는다.

우즈키는 집에 끈으로 매어두었다고 한다.



10월 19일


병이 전혀 낫지를 않는다. 오늘은 죽 밖에 입에 대지 않았다.

이래서는 우즈키를 만날 수 없지 않은가.



10월 20일


오늘은 우즈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된다, 우즈키는 이곳에 없다.

짐의 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아니, 짐보다, 짐이 없어진 후에 우즈키는 어떻게 될 것인가.



10월 21일


오늘도 몸은 좋지 않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업무를 끝냈다.

사소한 소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10월 23일


자리에 누워 있는데 우즈키가 모습을 보였다. 짐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는지 한 번 울었다.

한동안 우즈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진 모습에서 신성한 분위기를 느꼈다.



10월 24일


오늘은 몸 상태가 좋다.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다들 신기해 했다.

밤에 우즈키가 짐을 만나러 온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10월 25일


신기하다. 신하에게 들으니, 우즈키는 끈으로 매여 있다고 한다.

어째서 짐이 있는 곳을 올 수 있는 것일까.



10월 26일


오늘도 우즈키는 짐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이건 이제 신불이 우즈키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는 증거.

짐은 미리 사람을 대기시켜 두었다. 우즈키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다들 크게 놀랐다.

역시, 우즈키는 신불에게 축복받은 고양이인 것이겠지.



11월 4일


짐의 침실에서의 사건 이후, 우즈키를 끈으로 매어놓으려는 자는 한 명도 없게 되었다.

후궁 여인들이나 공가의 자들도 신불에게 사랑받고 있는 우즈키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시끄럽게 잔소리를 들을 일도 없어지고, 반대로 짐의 곁에 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11월 24일


오다 단죠노죠의 이야기로는 이제 곧 우즈키의 나이는 (세는 나이(数え年)로) 2살이 된다고 한다.

성대하게 축하해 주어야겠다.



12월 3일


추운 날이다. 요즘, 우즈키는 매일 밤 짐의 침소에 숨어든다. 곤란한 녀석이다.



12월 6일


오다 단죠노죠로부터 이불(布団)이라는 것이 헌상되었다. 푹신푹신하고 따뜻하다.

이거라면 겨울의 추위도 견딜 수 있다. 우즈키도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밤 온다.



12월 14일


조금 이르지만 우즈키의 2살 생일을 미리 축하(前祝い)했다.



12월 28일


이제 연말(年の瀬)이다. 우즈키와 지낸 나날들을 되돌아본다.

대단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12월 30일


이걸 쓰고 있을 무렵, 이미 이듬해가 되어 있으리라.

내년도 잘 부탁한다, 우즈키.



후세에서 우다 천황(宇多天皇), 이치죠 천황(一条天皇), 오오기마치 천황(正親町天皇)은 '3대 고양이 애호 천황'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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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5 면(麵) 전쟁(戦争)



현대 일본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면(麺)을 좋아하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발전한 랍면(拉麺,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일본풍의 일본식 라멘과는 구별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일본에 옛부터 있는 소면(素麺)에 소바(ソバ, ※역주: 메밀국수. 여기서는 고유명사 등의 관계로 그냥 소바로 쓰겠음), 우동 등 화양중(和洋中)을 막론하고 일본의 곳곳에서 즐겨지고 있다.

개중에는 본고장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본에서 창작된 요리도 존재한다. 면요리에 국한되지 않고, 창작 요리에 대해 듣고 본고장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압도적으로 창작 요리가 풍부하다.


전국시대, 시즈코의 마을에서는 다양한 면요리가 경쟁하고 있었다. 가장 구하기 쉬운 소바가 가장 강하지만, 우동이나 라멘도 지지 않는다.

라멘이라고 해도 현대 일본처럼 밀가루와 물, 간수(かん水)로 뽑은 면이 아니라, 중국의 랍면인 밀가루와 물, 소금으로 면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쫄깃함이 없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인 랍면이 된다.

간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합하는 데 비용이 들기에, 기본적으로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처럼 초목(草木)을 태운 잿물을 졸여서 위에 뜬 것을 간수의 대용품으로 사용한다.


"어서옵쇼, 어서옵쇼. 우리 집 소바는 오와리(尾張) 제일입니다ー!"


"까불고 있네! 남자라면 소바가 아니라 우동이지ー!"


"뭐라고! 우동이나 소바보다 당연히 소면이지!"


"새로운 '라아멘'은 어떠십니까? 소바나 소면에는 없는 새로운 맛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ー!"


여기저기서 호객 소리와 함께 다른 면을 깎아내리는 말이 날아다녔다. 이미 이해불가(摩訶不思議), 혼돈에 빠진 세계에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활기가 있는 건 좋지만, 활기가 지나쳐도 문제네"


시찰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는 싸움이 날 듯한 소란스러움을 보고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시찰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길을 걸었다.

어느 가게나 손님들의 흥미를 끌만한 화려한 깃발(のぼり旗)을 세워놓고 있었다. 종가(宗家)라느니 원조(元祖)라느니 이것저것 쓰여 있었지만, 이미 뭐가 종가인지 쓴 본인도 모를 것이다.


"소바(蕎麦), 소면, 우동, 랍면이 4대 면인 거겠네. 하지만 뭐 토핑에도 집착이 있겠지"


소바 하나만 봐도 덴뿌라에 튀김 찌꺼기(天かす), 파(葱), 개중에는 생선을 얹는 가게도 있었다.

소바도 모리소바(もりそば, ※역주: 국물에 찍어먹는, 김을 올리지 않는 소바), 자루소바(ざるそば, ※역주: 김을 올려먹는 소바), 카케소바(かけそば, ※역주: 국물을 넣어 먹는 소바) 등 종류가 풍부하여, 다양한 조합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뭔 소리야! 자루소바라고 하면 대나무발(竹ざる)이 당연하지!"


"멍청아! 옛날부터 자루소바는 나무찜통(蒸籠, ※역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에 올리게 되어 있는 거야! 대나무발 따윈 사도(邪道)다!"


"아이고~~~, 너 진짜 모르는구나. 덴뿌라는 마지막에 올리는 거야 등신아!"


"츠키미소바(月見そば)의 계란을 뭉개지 마ー!!"


하지만 조합의 종류가 풍부하다는 것은, 먹는 방법의 파벌이 생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기저기서 먹는 방법에 대해 다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떠들썩한 건 좋은 일이지만, 그 에너지를 다른 것에 쏟지 못하나, 하고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식사, 특히 맛에 경제적인 리소스를 할애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사람들에게 여유가 있는 시대는 식사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가 조성(醸成)된다. 하지만, 생활에 여유가 없을 경우, 화려한 문화 따윈 태어나지 않고 식사도 심플한 것 투성이가 된다.


"면 만으로 저만큼 난리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


식사라는 것은 문명의 척도이며, 그 나라의 축도(縮図)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평소에 무엇을 먹고 있는지로 그 나라의 생산력, 경제력을 알 수 있으며, 메뉴의 풍부함은 그만큼 잉여 생산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식재료가 풍부한 것은 유통이 발전되어 있는 것을 알려주며, 요리의 색이나 겉보기는 사람들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길러졌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고작 요리, 하지만 나라의 문화, 문명의 척도를 알려주는 것, 그것이 요리이다.


면요리 가게가 늘어선 길을 빠져나와 시즈코는 다른 요리점 거리를 걸었다.


"다른 데도 별 차이 없네"


"면만이 식사는 아니라는 거지"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에게 케이지(慶次)가 가볍게 대답했다. 면요리점과 다르지 않은 도발적인 깃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호객 소리, 식사에 거는 열의는 면요리에 뒤지지 않았다.


"가까운 곳엔 항구가 있지. 그리고 양식을 통해 식재료는 대량 생산되고 있지. 산의 먹거리(山の幸)도 어느 정도는 유통되고 있으니, 이 마을 사람들이 요리에 열의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잖아?"


"열의가 지나쳐도 문제에요. 뭐 폭력사태로 번져 싸움을 하거나 가게를 부수는 게 아니라면 딱히 상관없으려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량스러운 거리로밖에 안 보이겠지만요"


애초에 시즈코가 요리점 거리를 시찰하고 있는 이유는 요리점 거리에 불평이 어느 정도 쌓인 것이 이유였다.

사정을 모를 경우 요리점 거리의 다툼은 어쩔 도리가 없는 광경으로 보였다. 그것이 단지 열의가 지나친 것인지 정말로 싸움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인지 확인하기 위해 시즈코가 시찰하게 되었다.

시즈코가 케이지 말고 다른 사람을 데려오지 않은 것도 괜히 시찰이라는 게 알려져서 사람들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자주 이 거리를 돌아다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위험하면 그 전에 보고가 올라올테니까요. 그렇다고해서 방치해둘 수도 없잖아요. 제대로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어둬야죠"


"그러네. 뭐, 문제없으면 적당히 뭐라도 먹고 가자고"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돌아가지 않으면 집에서 밥을 짓고 잇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잖아요"


"그러네"


케이지는 시즈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요리점 거리의 시찰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점심식사 후, 그녀는 요리점 거리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개입할 필요 없음, 이라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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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6 가상적(仮想敵)



작은 초계정은 엔진이 수리되어 힘찬 소리를 내기 시작한 직후였다. 마치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듯, 산에 가려진 사카이가와(境川)의 하류쪽에서 더 큰 엔진 소리가 들리고, 그것은 이윽고 제트 헬리콥터 특유의 금속성 울림이 되어 날아올랐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는 환성이 바위밭의 사내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V-107이 숲 위로 모습을 드러내, 몹시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경사진 자세로 튀어나오더니, 착지 지점을 찾아 보급소 위를 호버링했다. 상공에서 당황한 듯 잠시 그러고 있었으나, 이윽고 장갑차보다 꽤나 앞쪽의, 절벽 끝부분의 바위밭에 사뿐히 착지했다. 큰 기체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굴러떨어지듯 뛰쳐나와서는 장갑차를 향해 달려왔다. 둘 다 상사(一曹)였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바(伊庭) 앞에서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초계정은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파도를 박차고 떠나갔다.


헬리콥터 또한 타임 슬립에 말려든 모양이다. 시간 이변은 바위밭의 보급소를 저변(底辺)으로 하는 입방체(立方体) 속에서 일어난 듯 했다. 헬리콥터는 순간적으로 시대를 이동하여, 그 직후에 그 돌풍에 휩쓸려 강의 상류에 착지해버린 것이다. 상공에서 가옥이나 사람을 꽤나 목격했다고 한다.


"마치 이건 칼싸움의 세계입니다"


파일럿은 그렇게 말하며 목을 움츠렸다.


"야, 들었냐"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은 칼싸움 시대로 와버린 거다. 굉장하잖아. 저것 봐, APC에 버톨(Vertol, 역주: V-107)에 초계정. 거기에 다들 64식 소총을 가지고 있다고. 너, 64식은 1분에 몇 발 쏠 수 있는지 말해봐라"


장갑차 아래에서 젊은 대원이 대답했다.


"예. 7.62mm NATO탄을 실용 최대속도 분당 100발입니다"


"저것 봐라. 트럭 25대에 석유가 잔뜩 실려있고, 바주카나 지뢰나 MAT까지 있는 모양이야. 재미있어졌잖아"


시마다는 그렇게 말하며 소리높여 웃었다. "로빈슨 크루소치곤 아주 좋아. 무슨 시대인진 모르지만, 하여간 이곳 녀석들이 불쌍하구만"


"하사,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이바가 나무랐다.


"맞은편 기슭에서 뭔가 하는 모양입니다"


옷을 벗어 장갑차 위에 널고 있던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외쳤다. 다들 일제히 사카이가와의 엣츄(越中) 쪽을 보았다. 꽤나 거리가 있었으나, 반대편 기슭의 절벽 위에서 칼과 창을 번쩍이는 무사(武士)로 보이는 한 무리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시마다는 잽싸게 장갑차로 들어가서, 작은 포탑을 선회시켰다.


"공격해 올까요?"


히라이 상병이 말했다.


"기다려, 침착해라. 하사에게 발포하지 말라고 말해라"


히라이 상병은 다급히 장갑차로 뛰어올라갔다.


"다들 발포하지 마라.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는 거다. ……보급대원, 철조망의 포장(梱包)을 풀어라. 풀어서 이 지점에 침입하지 못하게 헬리콥터가 있는 쪽부터 철조망을 치는거다"


이바 소위(三尉)는 그렇게 명령하고, 맞은편 기슭의 무사들을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전투는 할 수 없다. 저것도 일본인이다"


그 옆에서 키무라(木村) 상병은 생기를 되찾은 듯, 부하들인 보통과 대원들을 정렬시켜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하러 달려갔다.

파도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오고, 하구(川口)의 수면을 기듯이 제비(燕) 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30명 정도의 자위대원들이, 확고한 지휘계통도 없는 채로, 자주적으로 경계를 갖춰갔다.


지켜야 할 국민도 없이 시대에 고립된 채, 지금 그들은 일본인을 가상적(仮想敵)으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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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5 토론(議論)



상투(髷)를 튼 남자는 그 이상 다가오려고 하지 않고 허둥지둥 도망쳐 버렸다.


"뭡니까, 저 남자는"


그 질문에 이바(伊庭)는 조금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어쩌면, 현지인(現地人)일지도 모른다"


"현지인……"


다들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좋아. 반론이 있다면 사양않고 말해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바는 입술을 핥았다. "이곳은 쇼와(昭和)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떨어진 거다"


침묵하고 있었다. 누구도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고, 믿기지도 않겠지. 하지만 철도 선로가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국도(国道) 8호도 사라져버렸고, 차도 사람도 지나가지 않는다.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아까부터 나는 그 이외의 이런저런 설명을 생각해보았지만, 그 이외의 적당한 답이 없다. 어쩌면 이 바위밭째로 옮겨져서 어딘가 먼 장소로 와버린 걸까라고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노토(能登) 반도(半島)이고, 이쪽의 지형도 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있었던 거다. 우리들을 쇼와 시대에서 날려버린 무언가가……"


"타임 슬립입니다"


무기대원인 카노(加納) 일병(一士)이 오른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훈련이 끝나도 원대로 복귀할 수 없는 겁니까"


12사단의 보급대원이었던 사토(佐藤) 이병(二士)이 말하자, 이바는 그제서야 쓴웃음 같은 걸 떠올렸다.


"만약 내가 생각한 대로의 상황이라면, 이미 훈련 따윈 없다"


"즉 우리들은 고립되어버린 거군요"


장갑차 위에서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놀랍게도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다"


이바는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언제 쇼와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마루오카(丸岡). 소위(三尉)님을 곤란하게 하지 마라. 이건 천재지변이다. 소위님도 그런 건 모르신다고"


시마다는 부하인 마루오카 일병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소위님. 조금 더 정세를 살핀 후에 결론을 내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발언자는 동료들의 등 뒤에 숨은 듯 알 수 없었다.


"정세……"


이바는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몇 명 정찰을 내보내죠"


보통과 대원인 키무라(木村) 상병(士長)이 말했다.


"안 돼. 만약 거기 일병이 말하는 타임슬립이라면, 그건 지진 같은 것일지도 모르잖나. 여진(揺り戻し)으로 즉시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싫습니다. 정찰하러 나간 동안 다들 원래 시대로 돌아가면, 말 그대로 버림받게 되어버립니다"


키무라의 부하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제각기 그렇게 말했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키무라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고함쳤다.


"소위님"


학교의 학생처럼, 그 부하들 중 한 명이 이바의 얼굴을 보며 손을 들었다.


"말해봐라"


이바는 그 안경을 쓴 젊은 사내에게 말했다.


"아가타(県) 일병입니다"


그 사내는 큰 소리로 말한 후, "이건 완전히 초상(異常)적인 상황으로, 우리들 자위대원의 의무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른 시대로 우리들이 표류했다고 하면, 이 시대에는 다른 사회가 있고, 우리들이 복종해야 할 모든 법률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우리들 사이에는 계급은 없고, 전원이 대등한 개인으로서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뿐이냐"


"예"


시마다 하사가 군화발로 장갑차의 어딘가를 걷어차고 있는 듯 했다. 쾅쾅쾅 하고 묘하게 텅 빈 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맙소사. 꼬맹이(餓鬼)들을 돌보는 건 피곤하군요"


시마다는 동정하듯 이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지"


"아가타 일병입니다"


"음. 아가타 일병의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자위대의 질서를 해체하고, 그러고 어쩔 것인가. 만약 그 쪽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쁘게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전투 집단으로서의 체제를 풀 수 있겠느냐. 아까 왔던 상투를 튼 남자가 이 부근의 주민이라고 하면, 이미 이 시대의 경찰조직…… 무사인지 관리(役人)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으로 보고하러 달려가고 있겠지. 우리들은 현재 이곳에 상륙한 침입자라는 모양새가 되어 있다. 무력행사도 있을 수 있지.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키무라 상병이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히 훈련을 받은 상급자가 지휘를 해야 합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 때, 초계정으로 온 해상자위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희들은 해상자위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니이가타(新潟) 항(港)에서 토야마(富山) 항으로 저걸 회송(回送)하는 도중에 고장을 일으켜 이 보급소에 들린 것 뿐입니다. 이쪽의 결정이 어찌되었든, 저희들은 엔진을 수리해서 즉시 토야마 항으로 급행해야 합니다"


"말도 안 돼. 이 땅이 어떻게 변해있는지 모르겠느냐"


이바는 분연히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어디까지나 해상자위대원입니다. 어쨌든 일단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초계정의 세 사람은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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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4 상투를 튼 사내(髷の男)



장갑차 옆에 웅크리고 있던 키무라(木村) 상병(士長)은, 문득 어깨 언저리가 심하게 젖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굳게 닫혀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지금 양 무릎을 꼭 껴안고 가슴을 그 무릎에 괴로울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 의식한 순간, 전신의 경직이 풀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완전히 어두웠던 세계가 점차 분홍색(桃色)으로 변하며, 이윽고 대낮의 태양빛이 내려쬐이는 바위 표면(岩肌)과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가……. 키무라 상병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굳게 깍지낀 두 손의 손가락을 풀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트럭과 물자의 산이 보였다. 하지만, 비가 한바탕 쏟아진 것처럼 모두 물방울에 젖어 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을까. 일어설 때 근육의 저항감으로 가늠해보니 꽤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기억이 끊긴 느낌을 볼 때 그것은 일순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공포가 마음을 지배하여, 빨리 뭔가 수를 써야 한다는 절박한 자위(自衛) 본능이 발동하고 있었다.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자, 대원들은 모두 똑같이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키무라는 불안해져서 동료들을 흔들어 깨우고 다녔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라고……"


어깨를 흔들자 사내들은 대단히 완만한 동작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키무라 자신도 그랬듯, 크게 숨을 내숴면서 천천히 눈을 떠 가는 듯 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일어서서 주위를 불안한 듯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뭐지. 폭풍(爆風, 역주: Storm이 아니라 Blast의 의미)이었나"


"폭풍…… 그러고보니 쿠웅 하고 흔들렸지"


"하지만, 어디서 폭발이 있었던 거지?"


장갑차의 주위에서 그런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바위 광장의 첨단부(とっさき)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은 일순 겁먹은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즉시 달려나갔다.


파도에 휩쓸린 것이리라. 바위에서 꽤나 떨어진 물 속에 이바(伊庭) 소위(三尉)와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초계정이 그 바로 옆에 떠 있어, 두 사람을 구출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초계정 위에는 세 명의 해상자위대원의 모습이 보였으며, 한 명이 큰 소리로 잔교(桟橋) 가장 끝부분까지 오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가자 흔들거리며 지금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무로 된 잔교의 끝부분으로 간 대원들은, 초계정에서 던져진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바위로 돌아왔다. 초계정은 밧줄로 잡아끌려져서 잔교에 가볍게 부딪혔다. 그러자 잔교는 휘청하고 무너지며 그대로 바다 위에 떠 버렸다.


물 속에 있던 두 사람은 초계정에서 손을 떼고 그 떠 있는 판자를 붙잡고 바위로 돌아왔다. 여러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온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바위 위에 섰다.


"소위님,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주위를 둘러싼 대원들이 일제히 물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파도에 휩쓸렸다"


히라이 상병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바 소위는 산을 바라본 채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선 채로 굳어 있었다.


그 옆으로 초계정의 세 명이 차례차례 뛰어내려왔다.


"왠지 으스스한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 명은 하사(三等海曹), 두 명은 이병(二等海士)이었다.


이바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25, 6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내들의 계급장을 확인하듯 바라본 이바 소위는, 자신보다 상급자가 없는 것을 알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변했다.


"APC의 뒤쪽에 공터(空地)가 있다"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걷기 시작했다. "하사(三曹). 자네가 차장인가"


"예"


"자네는 차로 돌아가서 듣고 있어주게. 침입자가 있으면 큰 소리로 알리도록"


명령받은 장갑차의 차장은 잽싸게 대원들 사이를 빠져나가 차로 달려올라갔다.


"알겠나. 전원 육지의 상황을 잘 관찰해봐라"


장갑차 뒤쪽에 약간 비어 있는 장소로 오자, 이바는 얼어붙은 표정을 유지한 채로, 정렬도 시키지 않고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숨을 들이켰다. 호쿠리쿠(北陸) 본선(本線)이 사라져 있었다. 국도(国道)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카이가와(境川)에 걸려 있던 콘크리트 다리도, 슬레이트 지붕의 민가도, 전신주도 전선도……. 그리고 산에서 뻗어나온 짙은 녹음이 이 천연의 돌제를 침범하듯 덮쳐오고 있는 것이다.


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장갑차의 옆에서 공터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멈춰라. 가면 위험하다"


이바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움찔한 듯 뒤돌아보았다.


"다들 사라졌어……"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래. 아무래도 이곳엔 우리들 뿐인 듯 하다"


반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저항하고 싶다. 하지만, 방금 경험한 그 정체모를 감각. 고독감, 공포, 그리고 비참한 무력감. 그것들이 자신들이 놓인 무상(無常)한 입장을 강제적으로 인정하게 해버리는 것이다.


"알겠나. 침착해라.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정함이다. 이 집적 지점에서 한 명도 나가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다"


대원들 사이를 침묵이 지배했다.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전원이 그저 완전히 변해버린 육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위님"


장갑차 위에 있던 차장인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낮은 목소리로 그 침묵을 깼다.


"누가 옵니다"


이바가 재빨리 돌아가서 차량에 숨어 살펴보자,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명의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큰 바구니(籠)를 메고 있는 듯 했다.


그 인물은 갑자가 멈취서더니, 다급하게 바구니를 땅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숙이는 듯한 자세가 되더니, 5, 6걸음씩 그늘(物陰)에서 그늘로, 짧게 끊어 달려왔다.


어느 새 전원이 장갑차 뒤로 몸을 숨기고 그 남자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저거 봐, 저 머리"


뒤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히 지저분한 봉발(蓬髪)이었으나, 점점 다가오고 있는 그것은 명백하게 상투(髷)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투(ちょん髷)잖아"


퍼런 왜바지(もんぺ) 같은 것을 입은 상투머리를 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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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4 창고 청소



시즈코가 보유한 창고는 많다. 세금으로 받은 것, 선물받은 것, 시즈코가 직접 구입한 것 등, 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다.

종류의 풍부함만으로 말하면 사카이(堺)의 상인들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술 등의 소모품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무한히 창고를 세울 필요가 생기기에, 시즈코는 반년에 한 번, 쓰지 않는 것들을 창고에서 꺼내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의 형태는, 에도(江戸) 시대에 다이묘(大名)가 상업도시에 설치한 쿠라야시키(蔵屋敷)에 가까웠다. 창고 안에서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것을 선별하여, 품질 체크를 한 후에 쿠라야시키로 내놓는다.


"매번 그렇지만 사람이 많네"


쿠라야시키를 개방하는 날, 멀리서 보고 있던 시즈코는 사람으로 북적대는 쿠라야시키를 보고 감상을 말했다. 진열된 품목은 특산품에서 의류, 식료품에 공예품 등 다방면에 걸쳤다.

서민들에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길 수 있고, 상인들은 싸게 들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날이다.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 난 이만 실례"


쿠라야시키에 들어서는 동시에, 케이지(慶次)가 한 손을 들어올리며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를 붙잡는 손이 두 개 있었다. 사이조(才蔵)와 나가요시(長可)였다.


"기다려, 일을 해라"


"술이 있는 곳으로 가게 하진 않겠어"


"놔라 이놈들아! 나는 술을 마실거다ー!"


평소에 사양않고 술을 마시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건가 하고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표면적으로 시즈코는 많은 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구입하거나 헌상받거나 다른 뭔가와 교환하거나, 술이 모이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금주령이 내려진 몸, 술을 받아도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그렇기에 쿠라야시키에서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거기 주당 세 사람, 그만큼 마시고 아직 부족해요?"


"부족해!"


어이없어하며 질문하자, 드잡이질이라도 시작할 것 같던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할 생각이 사라진 시즈코는 어이없어할 수밖에 없었다.


"뭐 당신들이 마시고 싶은 건 잘 알겠지만, 지금은 일을 해요"


시즈코의 한 마디에 세 사람은 성대하게 낙담했다. 술을 판매하게 되면, 함께 즐기는 안주(肴)도 같이 판매된다. 쿠라야시키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연회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려도 곤란하기에 시즈코는 마실 장소를 제공했다. 물론 무료는 아니고 오토오시(お通し)라는 자릿세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장사를 하는 상인도 세금이 있는데, 그것은 자릿세가 아니라 매상세(売上税)라는 것이었다. 매상과 장사한 장소에 따라 세율이 변동하는 구조다.

좋은 장소에서 많은 매상을 올린 사람은 세율이 높아지고, 반대로 장소가 나쁘거나 매상이 그닥인 경우에는 세율이 낮아졌다.


주당들의 자릿세와 상인들의 매상세, 그리고 팔린 물건들을 합산하여, 거기서 각종 경비를 제한 액수가 시즈코의 이익이 된다.

1년에 몇 번 밖에 개최되지 않지만 그런대로 이익은 나오고 있었다. 뭣보다, 이익이 나와도 바로 다른 것에 투자되기에 돈이 쌓이는 기색은 없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적지만, 좋은 물건들이 갖춰져 있구나"


"……또 무얼 하러 오신건가요, 오이치(お市) 님"


쿠라야시키를 시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어꺠를 쳤다. 뒤돌아보자, 그곳에는 다양한 천을 시녀들에게 들려놓고 희색이 만면한 이치가 있었다.

챠챠(茶々)나 하츠(初)가 없는 걸 보니, 집에 놔두고 온 것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는 곳도 있으니, 어린아이를 데리고 걷기에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무얼이라니 실례로구나. 좋은 물건을 사러 온 것이지. 내 눈에 드는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것 치곤 꽤나 사들이셨네요"


"챠챠나 하츠에게는 딱 좋은 것도 있었던 것 뿐이니라. 안심해라, 비용을 내는 건 오라버니이시니"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없네요. 너무 많이 사시면 영주님도 화내실텐데요?"


키모노(着物)의 옷감(生地)은 눈을 크게 뜰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지만, 결코 값싼 것도 아니다. 얼핏 봐도 이치는 옷감을 10종류 이상 들고 있었다. 나름 돈이 꽤 들었을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는 이 정도에 화를 내실만큼 도량이 좁은 남자가 아니다. 곤란하면 언니(노히메(濃姫))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느니라"


"아아…… 그러신가요"


오이치의 남편이었던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둘 다 천하인(天下人)에 대항했다가 멸망했다. 그리고 이치 자신도 최후에는 세상을 비관하여 자해했으므로, 그 파란만장한 인생 때문에 박복(薄幸)한 미녀라고 불렸다.

하지만, 눈 앞의 인물이 박복한 미녀라는 말을 들어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분방한 인물이기에.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한 인물로 보이는 노부나가이지만,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규칙을 지켜, 때로는 완고할 정도로 원칙을 고집하는 면이 있었다.


"적당히 조절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못을 박은 시즈코는 시찰을 계속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오이치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자자, 기다려라, 시즈코. 여기서 만난 것도 뭔가의 인연이지. 나와 함께 돌아보자꾸나"


"뭘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대단히 의문입니다만, 저는 일하는 중인데요"


"그렇게 딱딱한 소리를 하지 말거라.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지금 이 때를 즐기지 않으면 손해이니라"


"오이치 님은 조금은 앞일을 생각해 주세요"


이치와 시즈코의 일진일퇴(一進一退)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시찰은 딱히 의무는 아니지만, 시즈코에게는 이치를 상대하는 것보다 시찰 쪽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이치는 한 번 결정하면 어지간해서는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를 조종하는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말려드는 쪽은 배겨낼 수가 없다.


"괜찮지 않느냐"


"괜찮지 않아요. 애초에ーー"


두 사람의 다툼은 이어졌다. 쿠라야시키에 와 있던 사람들은 그것을 흐뭇하게, 하지만 말려들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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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3 증발(蒸発)



바위투성이의 해변가에 파고든 절벽에 달라붙는 듯한 모습으로 민가가 세 채 정도 나란히 있었다. 물방울과 바닷바람이 스며들어 검게 변색한 나무로 된 계단식 사다리(段梯子)가 개중 한 채의 뒤쪽에서 해변가로 내려져 있었다. 계단식 사다리가 닿아있는 해변가 바위 주변에는 40명 정도의 대원들이 한 덩이가 되어, 각자 다른 자세로 휴대 식량(携帯口糧)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대원들의 3분의 2 이상은 바다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산처럼 쌓인 보급물자와, 그 주변을 둘러싼 트럭. 그쪽을 볼 때 가장 왼쪽 길에 장갑차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완전무장한 보통과(普通科) 대원 10명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임시 보급소의 분위기에 관계없이 묘하게 정연하게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보통과 대원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앞바다에서 와서 곧 접안할 것 같은 해상자위대의 초계정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 몇 명인가는 특징적인 제트 헬리콥터의 엔진음에 자기도 모르게 바로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관객들의 눈 앞에서, 이 전대미문의 대 이변은, 실로 어이없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집적해두었던 보급물자의 산이, 그 사이로 보이고 감춰지던 사람 그림자와 함께, 차량과 함께, 일순간에 지워진 것이다.  초계정도 60식 장갑차도 완전 무장한 보통과 대원들도, 그리고 마침 바로 위에 있던 헬리콥터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만약 마술이라면, 일순간 해가 기울어 어두워진 것이나 일진광풍 같은 것이 그 기괴함을 연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일어난 이변(異常)은 지금 그곳에 있었고, 그리고 사라졌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어라……"


말끝의 톤이 올라가는(尻あがり), 어느 쪽이냐 하면 약간 늘어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지"


대원들의, 그 평범하고 그다지 동요도 없는 제일성(第一声)이야말로, 이 이변의 끝없는 황당함을 상징하고 있는 듯 했다. 사람에게 놀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의 이변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먼저 생각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으며, 갑작스런 소실(消失)을 착각이라고 느끼고 눈을 껌뻑인 사람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밤새 물자를 운반해온 것 자체를 의심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곳에 자신이 서 있는 것조차 의심하여, 꿈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한 사람도 있었다.


제일 처음 그 천연의 돌제(突堤)로 걷기 시작한 사내의 경우, 스스로 뭘 의심해야 할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듯 했다. 5, 6걸음 걷다가, 빙글 몸을 돌리더니 주박(呪縛)에 걸린 듯 움직이지도 못하는 동료들을 향해 사교성 웃음(愛想笑い)으로도 보이는 의미불명의 미소를 지었다.


"없어……"


그 짧은 한 마디가, 남자들 사이에서 공통의 체험이었다는 현실감을 되돌렸다.


"없어"


2, 3명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없어졌어……"


군화 바닥이 바위를 밟고, 지뢰밭으로 향하는 듯 머뭇거리며 발을 옮겼다.


"없어"


겨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분명히 있었어"


그렇게 서로 확인했다.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지"


전투복 차림의 횡대(横隊)가, 조용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확인하듯이 물자의 산이 있었던 바위 광장 쪽으로 전진했다. 트럭이 없다. 장갑차가 없다. 초계정도 없다. 드럼통이 사라지고, 탄약이 사라지고, 화약이 사라지고, 식량이 사라지고, 그리고 동료들이 사라졌다. 강한 바다 향기와 밀어닥치는 파도소리만이 남겨진 그 바위 광장을 향해, 대원들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그저 숨을 들이키며 걸어갔다.


소리높은 전기기관차의 경적소리가 산 아래를 지나가고, 육중한 열차 소리가 초여름의 햇빛이 넘치는 해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어느 부대의 지휘관인지, 한 명이 집합 호령을 내렸다. 자기 자신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부하들의 질서를 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는 어찌되었던, 그것은 이 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치였으리라. 애초에 소속이 제각각인 대원들은, 이변에 떨고 있는 개인에서 싸우기 위한 집단 구성원으로 변화하는 것에 의해 이해 불가능한 현상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차례차례 호령이 떨어지고, 바위 광장에 군화발소리가 어지럽게 울려퍼졌다.


뒤집어진 산 모양(逆山形)의 선이 세 개에 별이 하나인 소매 기장(袖章)을 단 한 사람의 상병(士長)이, 짧은 횡대를 구성한 부하들을 앞두고 적절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내렸다.


"이건 해석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현재 위치를 확보하라"


화창한 초여름의 대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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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2 이변(異変)



하구(川口)의 오른쪽 기슭은 꽤 넓은 천연의 돌제(突堤)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검고 건조한 바위 위에 드럼통이나 네모난 나무상자, 듀랄루민의 중형 컨테이너 등이 빽빽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평소에 그곳에 놓여있는 배나 선구(船具), 어망(漁網) 같은 것들은 사전에 지역 주민과 교섭하여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두었다.


국도에서 차로 그 장소로 들어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어서, 마지막으로 온 60식 장갑차가 집적 지점에서 방향전환하여 국도 쪽으로 짧은 포신을 형하고 정지하자, 이제 그것으로 차량의 진입은 불가능해졌다.


60식 장갑차는 APC라 불리며, 완전 무장한 병사 10명을 태우고 45km/h의 스피드로 이동할 수 있으며, 1일 기동능력은 200km를 넘는 국산의 신예 차량이었다. 차장(車長)은 시마다(島田) 하사(三曹)로, 그가 태우고 온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의 리더는 키무라(木村) 상병(陸士長)이다.


실전이라면 이미 보급 활동에 바빴을 테지만, 훈련에서는 완전히 할 일이 없어 따분할 뿐이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국도 8호를 지나는 자위대 차량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민간의 트럭이나 승용차가 바쁘게 달려갈 뿐이었다. 다만, 지역 주민들은 평소와 달리 하늘에 헬리콥터의 모습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전 부대가 우치나다(内灘)에 집결하고 있는거야"


바다 위의 하늘을 토야마(富山) 방면을 향해 날아가는 헬리콥터를 보면서 제1 사단에서 파견된 수송대의 지휘관, 이바(伊庭) 소위(三尉)가 말했다. 바다 향기가 감도는 바위 위에 앉아있는 전투복 차림새의 남자들은 그걸 흘려듣는 듯 말없이 파도가 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등뒤에 쌓여올려진 물자의 산을 에워싸는 형태로 그들의 트럭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낚시하면 낚이려나"


누군가가 살짝 중얼거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몇 개 떠 있었고, 초여름의 햇살이 사위를 태우고 있었다 (역주: 원문은 初夏の陽ざしがモロに鋲幅を焼く인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鋲幅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음).


"그보다 헤엄쳐서 작살을 찌르겠어. 그 편이 나아"


단단한 어깨 근육을 춤추듯 몇 번 위아래로 흔들면서 히라이(平井)라는 상병(士長)이 말했다.


"이 주변의 바다에는 전복이나 소라가 있겠죠"


"어, 있어. 나는 토야마 출신이니까 이 주변에 대해선 잘 알아. 맛있다고"


히라이 상병의 큰 목소리는 꽤나 떨어진 곳에 있는 무기과(武器科) 대원들이 있는 곳까지 들렸다. NATO탄이라고 쓰인 나무 상자 더미에 기대어 있는 카노(加納) 일병(一士)은, 그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수영하고 싶네"


카노 일병은 입대 1년차로 이제 막 만 19세가 되었으며, 히라이 상병도 21세. 다들 대단히 젊었다.


"저 배는 이리로 올 생각인 모양이네"


수송대의 지휘관인 이바 소위가 말했다. 토야마 쪽에서 온 초계정(哨戒艇)이, 함수(艇首)를 뚜렷하게 이쪽으로 돌려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일어선 이바 소위와 히라이 상병은, 어선용으로 만들어진 위태해 보이는 나무로 된 잔교(桟橋)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엔진을 단속적(断続的)으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고장인 모양인데"


직업상이라고는 해도, 역시 정확하게 엔진 소리를 귀로 구별해낸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탄약상자에 기대어 있던 카노 일병은 그 배는 보지 못했지만, 바로 위를 날고 있는 헬리콥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타고 있네"


빈 채로 날고 있다. 감으로 그걸 깨달은 듯 했다. V107이라 불리는 그 대형 제트 헬리콥터는 무장병 26명을 태우고 220km를 날아간다. 카노는 바로 얼마 전에 그것에 탔을 때의 괴로운 훈련이라도 떠올린 것이 틀림없다. 착지(降着) 10초 이내에 전개하라. 이탈시에는 20초 이내에 탑승하라. ……그 명령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괴로움이 아직 몸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이다. 헬기는 떠 있었다. 착지 전개는 차라리 괜찮지만, 이탈 탑승시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점프해서 달라붙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심했어"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변은 그 순간에 일어났다.


쿠웅……. 대지가 한 번 흔들렸다. 아니, 대지가 한번에 낮아진 듯 했다. 쌓여올려졌던 나무 상자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돌풍이 소용돌이치며 지나갔다. 바다가 부풀어오르고, 파도의 물방울이 장갑차 근처까지 덮쳐갔다. 모든 차량이 흔들흔들거리고, 카노는 풍압으로 숨이 막힐 듯 했다. 그 때문인지 방향감각이 헝크러져, 바다가 어느 쪽이고 산이 어느 쪽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여, 카노는 바위에 주저앉은 채 무의식중에 양쪽 무릎을 끌어안고 그 사이에 얼굴을 묻으려 하고 있었다. 카노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기괴한 자세로 웅크려버렸다. ……그것은 마치 태아(胎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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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3 여자식(女子式) 다도회(茶の湯)



전국시대, 다도회(茶の湯)는 무가(武家)나 공가(公家)에게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교양이었다. 상락(上洛) 시에 다도회에 착안한 노부나가는, 후에 어차탕어정도(御茶湯御政道)라는 정책을 실시한다.

간단히 말하면 다도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가신들에게 허가없이 다도회를 여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다.

노부나가는 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허가를 해주는 것으로, 다기(茶器)를 토지와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실제로 어차탕어정도라는 이름이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히데요시(秀吉)의 편지에 '다도회를 처음으로 허락받아 감동하였다'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다도회가 허가제였던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모반을 일으킨 자에게 다기를 헌상하면 용서해 준 것 등, 다기의 브랜드화나 가치의 창출에 노부나가가 힘을 쏟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노히메(濃姫)에게 다기는 그냥 그릇이었다. 그녀에게는 좋은 다기를 내놓아봤자 차가 맛있어질 리도 없고, 반대로 어깨가 뻐근해지는 답답함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남자들은 외국산(唐物) 다기니 뭐니 시끄럽지. 다도회 같은 건 맛있는 차와 차과자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니더냐. 딱딱한 예법(手順) 따윈 의미없느니라"


사키히사(前久)의 전차도(煎茶道)에 가깝게, 노히메의 다도회도 자유로웠다.

다도회라고 하면 다기와 차도구(茶道具), 차실(茶室), 그리고 주객(主客)에 이르기까지 일체감을 따지지만, 노히메의 다도회는 일체감 따윈 개나 줘버려였다.

도중에 자리를 떠도 문제없고, 잡담을 하면서 차과자를 집어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풍류 같은 것을 즐기는 것이 다도회라면, 노히메의 다도회는 차를 마시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었다.


노히메 류(流) 다도회는 남자 금지였다. 이유는 단순히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쌓였던 불만을 노히메의 다도회에서는 당당하게 이야기해도 된다.

당연히 대화는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을 수비의무(守秘義務)가 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다도회에는 참가할 수 없다. 본심을 말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지기 쉬운 노히메의 다도회였으나, 몇 가지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아까의 대화에 관한 수비의무도 글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차와 차과자가 맛있을 것이다.

또, '차과자는 차에 어울릴 것'이라는 규칙도 있다.


차과자는 중요하다. 맛있는 차, 그리고 차에 어울리는 맛있는 과자, 그 두 가지가 있기만 해도 대화는 활발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차와 과자가 맛없으면, 자연스레 대화도 네거티브한 것이 된다.

계절감을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지만, 그건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기에, 어디까지나 계절감은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권장사항에 불과했다.


"오늘의 차도, 차과자도 맛있구나"


"오늘은 좀 맛이 옅은 차라고 하여, 마른과자(干菓子)를 준비했습니다"


차과자로서 쓰이는 일본 과자(和菓子)는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주로 팥(餡)을 사용한 주과자(主菓子)와, 설탕이나 밀가루(粉) 등을 섞어 굳힌, 수분이 적은 편인 마른과자로 크게 구별된다.

양자를 구별하는 요령은 간단해서, 과자의 수분량이 적은 쪽이 마른과자, 많은 쪽이 주과자이다. 그런 이유로 맛이 진한 편인 차는 주과자, 옅은 편인 차는 마른과자가 좋다고 한다.


"라쿠간(落雁)으로 계절을 표현하다니, 꽤 좋은 취향이로다"


노히메가 접시에 담긴 일본과자를 집어먹었다.


라쿠간이란 건조시킨 쌀가루에 물엿, 설탕을 섞은 후에 반죽하여 틀에 넣어 착색한다. 이후에는 틀로 찍어 모양을 낸 후, 배로(焙炉)로 건조시키거나 자연건조시키면 완성이다.

세세한 공정은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하기에 깊이가 있어, 재료의 질이나 나무틀의 품질, 착색 방법이나 모양 등, 기술자의 기량과 센스가 시험된다.


"작은 새가 동백나무(椿) 가지에 앉아있는 그림인가. 실로 아름답구나. 먹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눈으로 즐기고, 향을 즐기고, 그리고 맛을 즐긴다. 남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오락이군요"


"다도회는 딱딱해서 곤란하지요"


"그렇지. 오락으로서 즐기지 못하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을까. 주군께서도 어깨의 힘을 빼는 오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셔서 말이지"


그런 불평을 이야기하면서 노히메들은 다도회를 즐겼다. 차를 마시고 과자를 집어먹으며 담소한다. 그녀들에게는 다도회도 정쟁(政争)의 도구가 아닌 오락이었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어디 있느냐"


"오다 님께 불려가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나의 즐거움을 빼앗다니, 주군께서도 멋없는 짓을 하시는군"


노히메의 다도회에 시즈코도 호출되었으나, 그걸 안 노부나가가 기회다 하고 시즈코를 불러냈다.

노부나가에게 어려운 일을 떠넘겨지는지, 아니면 노히메의 장난감이 되는지, 어느 쪽이든 시즈코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만, 어느 쪽이 나은지는 수수께끼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일했기에 우리들의 오락이 늘어난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자리에 없더라도 나중에 재미있는 것이 생겨날 거라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느니라"


"좋지 않습니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지 못하지요"


"그렇지요. 오락 없는 세상 따윈 참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 노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차과자를 먹으면서 그녀들은 담소했다. 매일 집을 지키는 그녀들도 때로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즈코 덕분에 다양한 휴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일하는 짬짬이 적당한 휴식이 가능하게 되자, 매일매일에 여유가 생기게 되어, 지금은 이렇게 다도회를 즐기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라아멘(らあめん)'이라는 걸 만들고 있더구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듣자하니 외국(唐)의 면(麺) 요리라고 하더군요. 어떤 맛인지 궁금합니다"


"이미 시즈코의 마을에서는 몇 군데나 '라아멘'을 내놓는 가게가 생겼다더군요"


"그렇군. 다음에 그 녀석에게 만들게 하자"


본인이 없는 것을 기회라고 말하는 듯, 그녀들은 마음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시즈코가 라멘 요리를 만드는 것은 그녀들 안에서 확정 사항이 되었다.


"에취!"


같은 시각, 등골이 서늘해진 시즈코는 크게 재채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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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02 다채로운 기술자 집단



시즈코가 이끌고 있는 쿠로쿠와슈(黒鍬衆)는 로마 군단을 베이스로 하고 있으나, 전국시대의 풍토에 맞게 세부적인 개량이 더해져 있었다.

로마 군은 우수한 병사인 동시에 뛰어난 공병(工兵)이기도 했다. 토목건축 기술의 기초를 교육받은 그들은, 스스로 수십 km나 되는 도로를 정비하고, 주둔지를 재빠르게 구축했다고 한다.


시즈코의 쿠로쿠와슈도 그에 필적하는 레벨이 되어 있었다. 병사로서의 훈련은 모두 받은 후, 토목건축 기술을 철저히 교육받았다.

로마 군단과의 차이점은, 병사들의 정신상태에 있었다.


"감독님(親方), 오늘은 무슨 일이신가요?"


집합을 명령받은 '코모리(子守)'들이 '감독'이라고 불린 인물에게 소집 이유를 물었다.


당연하지만 쿠로쿠와슈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감독은 어느 정도 규모의 쿠로쿠와슈를 이끌 수 있는 사람, 코모리는 소규모의 쿠로쿠와슈 멤버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무장과 부대장의 관계와 닮았다. 그렇기에 감독 밑에는 몇 명의 코모리들이 붙는 것이 기본이다. 다만 현대의 감독과는 달리, 코모리들은 감독의 제자는 아닌 경우도 있다.


"우리들은 물레방아(水車) 제작을 특기로 하고 있지. 그 때문에 시즈코 님께서 직접 일을 맡기셨다"


일, 이라는 단어에 코모리들이 반응했다. 쿠로쿠와슈는 각 방면에서 일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시즈코를 통해 의뢰되지만, 때때로 무장들로부터 직접 의뢰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에서는 정보가 범람하고 있기에 간단히 원하는 기술자(技術者)를 찾을 수 있지만, 전국시대는 솜씨좋은 기술자(職人)를 찾는 것만 해도 고생인 것이다.

또 직업의 세분화가 이루어져 있기에, 원하는 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찾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에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곳에만 의뢰하면 필요한 기술자를 찾아주는 창구가 있다고 하는 것은 획기적인 제도인 것이다.


"물레방아라면 둘이서 3개월만 있으면 충분하잖아요. 전원이 모일 필요는 없는 거 아닌가요?"


"말은 끝까지 들어라. 허둥대는 뭐시기는 동냥이 적다(※역주: 허둥대는 거지는 동냥이 적다(あわてる乞食は貰いが少ない)), 고 하잖아?"


코모리 중 한 명이 의견을 냈으나, 감독이 타이르자 물러섰다. 감독은 다시 코모리들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었다.


"아까의 의견도 있었지만, 물레방아 같은 건 2, 3명이면 충분하지. 재료도 비축분이 있으니, 3개월은 커녕 2개월만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일부러 모은 이유는 간단하다. 물레방아를 만들 장소가 많다. 여기까지 말하면 네놈들이라면 알겠지?"


감독의 말에 코모리들이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즉시 이해한 것에 기분이 좋아진 감독이 히죽 웃었다.


"그래! 이것은 시즈코 님으로부터의 도전장이다! 우리들이 '속도'와 '질'을 모두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지! 이놈들아 기합을 넣어라! 기간은 3개월이지만, 그렇게나 필요없다! 1개월 안에 모두 끝낸다!"


당연하지만 시즈코에게 기술자들에게 대한 도전, 같은 의도는 없다. 단순히 노후화된 물레방아를 일신하기 위해 기간을 넉넉히 잡고 있는 것 뿐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역시 그런 건가아아아아아아아아!!"


"역시 감독님! 객기가 넘치는구만요!!"


말과는 달리 코모리들은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당초에는 그냥 기술자 집단이었으나, 다양한 기술자들이 모이면서 서로 영향을 준 것이리라.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속도'와 '질'을 양립시키게 되었다. 통상 수 개월 걸리는 것을 절반의 기간에 끝내기도 했으나, 결코 대충 하지는 않는다.

빠르게, 하지만 완벽하게, 가 신조가 된 그들에게, 대충 한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나 빠르게, 하지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질 좋은 것을 만들지를 목표로 하여, 주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절차탁마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이,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는 싸움터에서 그들이 중히 여겨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설치 장소는 11개소다. 재료는 신청하면 부츠류슈(物流衆)가 운반해 줄거다. 그걸 생각해서 1개월! 물론,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5명까지다. 보통이라면 불평이 나오겠지만, 네놈들이라면 문제없겠지?"


"괜찮슴다. 우리는 저까지 합쳐서 4명만 있으면 되려나요"


"야야, 물레방아 같은 건 지겨울 정도로 만들어봤잖아. 나는 둘만 있으면 충분해"


"아니, 한명은 밥순이야. 밥을 소홀히 하면 시즈코 님이 엄청 화내시니까"


"어, 제대로 된 것을 먹지 않으면 혼나지. 평소에 형편없는 계획도 웃는 얼굴로 허가해 주시지만, 특히 식사에 관해서는 시즈코 님은 엄격하시니까"


코모리들의 말에 감독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말대로다. 밥순이는 꼭 데려가라. 바늘처럼 빼빼 말랐다가는 시즈코 님이 펄펄 뛰신다. 그 분, 식사랑 수면을 소홀히하면 일을 빼앗아가시니까 말이다"


"그러네요. 전에 늦어질 것 같아서 무리한 건 알지만 철야를 했더니 작업장에서 쫓겨나서 강제로 잠을 자게 되었으니까요"


"도구를 전부 몰수당한데다 병사들이 둘러싼 집에 밀어넣어졌었죠.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하지만 푹 잤더니 머리가 시원해졌고, 결과적으로 납기를 맞출 수 있었으니까 말야. 역시 밥이랑 자는 건 중요해"


"그래. 알겠냐, 철야를 해서 빨리 끝내려고 하지 마라. 평소대로 일하고, 그리고 빨리 끝내라. 뭐, 늦을 것 같으면 내게 말해라. 책임을 지는 건 내 일이니까"


"옙. 뭐 감독님이 고개를 숙이실 일은 없습니다"


"맞아요. 우리들, 그런 실수는 안 합니다"


"멍청아, 익숙하니까 더욱 긴장하라는 거다. 사고라는 건 사소한 방심 때문에 일어나니까 말이다. 너희들도 명심해둬라"


농담조로 말하던 코모리들이었으나, 감독의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긴장을 조였다.


"좋아, 좋은 표정이 되었군. 그럼 이야기는 끝이다. 각자, 담당 위치를 듣고 작업에 착수해라"


"옙!"


코모리들의 대답에 감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그들은 평소대로 일하고, 평소대로 물레방아를 1개월만에 제작 및 설치했다.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2


이것도 지난번처럼 짤막한 이야기들이 몇 개 나오는 것인데, 최근에 전쟁파트로 이어지는 이유도 있어 한동안 조금 급피치로 번역했더니 피로감이 느껴져서… 한꺼번에 모아서 번역하지 않고 하나씩 올리겠습니다.



01 아버지(父親) 들의 고뇌(苦悩)



사키히사(前久)가 시즈코로부터 양도받은 별저(別邸)에, 세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노부나가(信長), 사키히사, 아시미츠(足満)  등 세 명은, 요즘 빈번하게 모여서는 어떤 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하여, 시즈코의 혼사(婿取り)는 어찌하실 것이오?"


시즈코의 혼사,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중대사이며,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촌장이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의 시즈코는 천하에 가장 가까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자, 비공식적이긴 해도 오섭가(五摂家)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영애(姫)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정치적으로 볼 때, 혼사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 자신도 평범하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시즈코가 가진 문제란, 그 절대적인 사업 권익이다. 본인은 장부상의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지만, 그녀가 낳는 이익은 대영지(大領地)의 영주(国人)조차 능가할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이 시대의 관습상, 시즈코의 남편은 그 막대한 권익을 그대로 받게 된다.

돈, 권력, 무력 등 모든 것이 갑자기 손에 들어오면, 분수에 맞지 않는 힘을 가진 사람은 왕왕 그 자신을 망치게 된다.


"나는 시즈코가 원하는 남편 이외에는 용납하지 않는다. 설령 시즈코가 인정했다고 해도, 시즈코에게 불이익을 가져온다면 베어버린다"


아시미츠의 주장은 일관되고 '시즈코가 인정한 상대'일 것이었다.

시즈코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항상 아시미츠에게 품평(値踏み)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즈코의 주위에는 남녀 관계에 관한 소문(浮いた噂)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국(戦国)의 세상은 남성 사회이기에, 당연히 남자는 있지만, 시즈코를 여자로 보고 만만하게 여겨 다가오는 패거리는 사전에 아시미츠에 의해 차단되어 버리기에, 그런 관계가 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아시미츠 님의 이야기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독신으로는 시즈코 님도 불편해지겠지요. 난세(乱世)에서 20세를 넘어서 독신이라고 하면, 퇴물(大年増)이라는 비방을 면할 수 없지요"


사키히사의 지적도 당연했다. 현대 일본이라면 30대의 독신자는 드물지도 않지만, 전국 시대는 뭔가 이유가 있는 여자(※역주: 부정적인 의미임)라고 간주된다.

그건 무사의 존재 의의(在り方)가 '집을 지키는(핏줄을 후세에 남기는)' 것을 가장 우선하고(至上) 있는 것에 기인한다.

배우자를 맞이하지 않고 생애 독신을 고집하는 것은, 그 집안을 번영시켜야 할 당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 단정지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생애 독신을 고집한 우에스키 켄신(上杉謙信)이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 이이 나오토라(井伊直虎) 같은 예외도 있다.


"문제는, 시즈코의 머릿속에 천하를 뒤엎을 수 있는 비법이 잠자고 있는 것이지. 오다 가문의 재정이 왕성한 것도 시즈코가 가져온 지식이나 기술이 바탕이 된 것이다"


시즈코의 머리에는 다양한 기술이나 미지의 정보가 잠자고 있다. 노부나가 자신이 공개를 명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태반은 스스로 공개했다.

시즈코에게는 별거 아닌 기술이라도, 이 시대에서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헤아릴 수 없다.

노부나가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별 생각없이 기술 개혁 같은 걸 했다가는 영지를 통치하는 데 있어 문제가 된다.


"게다가, 시즈코 님은 시집을 가더라도 밭일을 계속할 것 같군요. 그러면, 그 가문은 급격하게 힘을 기르게 되지요"


설령 시즈코가 시집을 가더라도, 얌전히 안방마님 노릇 같은 걸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점이 문제였다.

자신이 먹을 정도의 논밭을 꾸리는 정도라면 문제없지만, 시즈코의 성격을 볼 때 주위를 끌어들여 대규모화할 것은 뻔히 보였다.

그렇게 자각 없이 이익을 뿌려대어 주위에 신봉자와 협력자를 끌어들이고, 그러다보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일대 세력이 된다. 그 범위가 집에서 마을(村)이 되고, 도시(街)를 거쳐 나라가 된다.


"시즈코를 아직 오와리(尾張)에 묶어두고 있는 것도, 녀석이 자리잡은 장소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 몸 하나로 재력과 권력을 모두 창출해 버리기에 아주 골치가 아프지"


"의도하지 않아도 나라를 비옥하게 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여유 때문에 영주(国人)들은 착각을 하지요. 그러면 난세(乱世)로 되돌아가는군요"


"수확량이 늘어난 정도로 천하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나는 벌써 열 번은 천하인이 되었을거다"


노부나가는 술잔을 기울여 단숨에 비웠다.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었다. 시즈코가 많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조금씩 내놓는 이유.

기술이란 축적하는 것이며, 다 건너뛰고 최첨단의 것만을 주더라도 그걸 뒷받침할 토대가 없으면 붕괴해 버린다.

우선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생활에 여유가 생겼을 때 기술자(職人)들을 모아서, 방향성은 주더라도 다양한 연구를 기초부터 시키고 있다.

오늘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한 잉여 식량을 창출해낸 것은 훌륭하다, 고 노부나가는 평가하고 있었다.

맨 처음부터 신식총(新式銃)을 만들려고 했다면 머지않아 실패했을 것이다.


"나는 시즈코를 신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남편은 아니지"


"애초에 시즈코 님이 시집을 가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남자가 있겠습니까? 그녀만한 재주가 있다면 집을 지키는 생활 따위 너무 따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군. 시즈코라면 남아도는 시간을 안온하게 지내거나 하진 않겠지. 일거리를 효율화시켜 여유를 만들고, 언젠가 제멋대로 뭔가를 시작하지"


"그 부분은 오노(お濃, ※역주: 노히메)와 닮아버린 건지도 모르겠군"


술잔을 기울이며 남자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그녀의 무장이나 병사들이 어떻게 될지, 는 간단히 상상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오다 가문에 남는 녀석은 있겠지만, 태반은 시즈코를 따라가겠지. 특히 쿠로쿠와슈(黒鍬衆)는 시즈코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지만 말이지"


"내가 시즈코 님과 만나기 전부터 키웠던 것 같군. 그 자들은 다양한 기술을 시즈코 님으로부터 계승하고 있어서 평시(平時)에도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라고 하던데"


"평시에는 물레바퀴부터 집까지 짓고, 여차하면 진지구축(陣立て) 성채 건설 등, 녀석들이 필요한 곳은 일일이 셀 수가 없지. 한 번은, 적이 틀어박힌 성의 코앞에서 녀석들이 공성병기를 만들기 시작한 적이 있는데, 그건 꽤나 유쾌했다. 성에 있던 놈들은 점점 조립되어가는 거대한 병기에 공포에 질려 일찌감치 항복 의사를 밝혀왔지"


무로마치(室町) 시대부터 직업은 세분화나 전문화가 진행되어, 각자가 최첨단을 달리는 스페셜리스트였다.

하지만 시즈코의 쿠로쿠와슈는 로마 병사들처럼, 토목건축 기술이라는 분야 전체의 기초를 철저히 교육받았다.

완전히 전문직화된 기술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수행할 수 있는 작업의 폭이 넓기에, 부대가 여럿으로 나뉘어져도 각 부대가 균일한 기술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문득 생각났습니다만, 만약 시즈코 님이 어딘가의 가문에 시집가게 되면, 그녀는 군을 해산시켜 버리겠지요. 그렇게 되면 시즈코 님의 후방지원부대가 거의 없어집니다. 현재 상황에서 그녀의 후방지원부대가 없어지게 되면 어렵지 않습니까?"


"어렵지. 이젠 오다 군의 장수들은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 길을 정비하고, 물건을 수송하고, 무구(武具)나 성을 수리하고, 진지를 세우는 그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하게 되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


"사람은 한 번 편한 걸 알아버리면 고생했던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지"


시즈코가 결혼하면 문제가 되는 건 권력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거느리고 있는 군의 취급 역시, 노부나가에게는 머리가 아파지는 문제였다.

측근인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평범하지 않은 자들이고, 병사들 또한 시즈코가 독자적인 생각으로 구축했기에 괴짜(色物) 군단이 되어 있었다.

보통이라면 바로 붕괴해버릴 아웃사이더(くせ者) 투성이인 군이 그런대로 군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도 시즈코라는 사람이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설령 남편이 그대로 이어받더라도 기능하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공중분해되어 완전히 군이 붕괴한다.


그리고 시즈코의 군이 붕괴하면, 오다 군에게는 대단히 큰 문제가 된다. 전력적인 면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시즈코 군이 오다 군의 병참을 떠받치고 있는 것에 있다.

무공(武功)을 추구하는 무장들과 달리, 시즈코는 그림자 역할에 철저하면서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다 군의 뒷바라지 역할(縁の下の力持ち)을 맡아왔다.

처음에는 삐걱댔으나, 지금은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는 오다 군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부대이다.

방면군(方面軍)이 원활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것도 병참을 시즈코 군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즈코 군의 후방지원부대를 잃는다는 것은, 오다 군에게 허용할 수 없는 큰 손실이 된다.


"……역시, 신랑감 고르기는 어려운가"


"현 상황을 생각하면, 결점이 너무 큽니다"


"애초에 시즈코가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다, 고 말하지 않는다. 나나 오다 님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지"


"하지만 말이지, 여자의 행복은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이 아닌가? 그걸 우리들의 편의 때문에 막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괴롭군"


술이 들어간 탓인지, 아니면 본심을 말해도 문제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평소의 노부나가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감상적인 대사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문제다. 시즈코가 주위의 소동에 말려들 가능성은 있지"


"하핫, 오다 님은 걱정이 많으시군요"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시즈코가 독신이라는 것 때문에 주위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듣는 게 싫을 뿐이다. 또 바보 아들놈 같은 놈이 나오면, 이번에는 모가지를 날려버리겠다"


그건 걱정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라고 생각한 사키히사와 아시미츠였으나, 지적하면 귀찮아질 것 같기에 흘려듣기로 했다.


"역시 말이지ーー"


"아니, 그건 좀ーー"


"두 분, 그건ーー"


밤이 깊어져도 남자들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기에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잊고 있었다. 문제를 뒤로 미룬 횟수가 이미 10번을 넘는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9 1572년 12월 하순



이 때, 확실히 역사는 움직였다.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 의한 타케다(武田) 군의 괴멸 및 신겐(信玄)의 전사는 일본을 뒤흔들었다.

패권의 세대교체를 고하는 소식은, 토오토우미(遠江)의 서쪽에 위치한 시라스카(白須賀)에 포진하고 있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에게도 새벽이 오기 전에 전해졌다.


"읏샤아아아아아!!!"


들어온 보고를 다 듣기도 전에 노부타다는 쾌재를 불렀다. 노부타다를 따라 수하의 무장들도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양손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며 환희했다.

개중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는 무장도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무리도 아니었다.


다들 불안했던 것이다. 어려움을 견디며 필사적으로 쌓아 온 모든 것이 타케다라는 압도적 폭력 앞에 손쓸 방법도 없이 빼앗긴다. 그 광경을 누구나 환시(幻視)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서 타케다 군이란 그 정도의 존재였으며,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카이(甲斐)에서 출진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로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공포.

이 길보(吉報)에 의해 공포는 불식되고, 위축되고 억압되어 있던 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비탄의 눈물이 아닌, 그만한 위업을 달성해낸 동료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자, 같은 깃발을 아우르는 일원이라는 환희의 눈물이었다.


이 소식은 멀리 떨어진 노부나가에게도 이윽고 도착했다. 밤을 새워 달려간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근시(近習)는, 거듭 확인하여 틀림없다는 것을 알자마자 남의 눈도 개의치 않고 달려갔다.

굉장한 기세(剣幕)에 호위병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발걸음 소리도 요란하게 노부나가가 있는 큰 방(広間)으로 달려들어갔다.


"주, 주군(ご注進)!! 저, 전령이 이것을 가져왔습니다!"


근시는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서장(書状)을 내밀려 했다.


"내용을 말하라!"


태연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누구보다 속앓이를 하고 있던 노부나가는, 근시의 무례함을 일체 탓하지 않고 전령의 내용을 말하라고 명했던 것이다.

근시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여 숨을 고른 후, 무시무시한 중압감을 내뿜는 노부나가의 시선에 견디면서 말을 이었다.


"미,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에서 우리 군과 도쿠가와 군이, 타케다 군을 격파했습니다!"


일순의 정적이 흐른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길보라는 걸 알게 된 오다 가문 가신들이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노부나가만이 아주 당연하다는 듯 태연한 태도였지만, 품 속에 감추고 있던 손으로 힘있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게다가 신겐을 처치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밖에도 이름높은 타케다 가문의 장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우선 타케다 가문 최강의 적비대(赤備え)인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는, 모리 카츠조(森勝蔵) 님이 일기토 끝에 처치하셨습니다!"


"오옷! 그 야마가타를 처치했다는 건가!"


"카츠조의 수훈에는 보답해줘야 하겠지"


타케다의 적비대라고 하면, 정강무비(精強無比)로 이름이 드높은 부대이며, 붉은 색 일색으로 통일된 갑주를 입는다.

전장에서의 붉은 무사(赤武者, 적비대)와 마주친 적은 전의를 상실하고 자발적으로 타케다의 군문(軍門)에 투신했다고까지 하는 정강함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적비대를 이끌고 있던 것이 야마가타 마사카게다. 그는 '야전(野戦)의 수싸움(駆け引き)에서는 비길 자가 없다'고까지 평가되어, 그 용명(勇名)은 후세에까지 전해졌다. 그야말로 타케다 가문 최강의 사나이였던 것이다.

그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한 전과는 크다. 노부나가가 바로 포상을 생각할 정도로 큰 공이며, 카츠조의 이름은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패배시킨 사람으로서 천하에 울려퍼지게 된다.


"이어서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를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님이! 그리고——"


차례차례 타케다의 주력인 무장들의 이름이 거명되고, 처치한 사람의 이름이 그 뒤를 이었다. 이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의 무공은 하늘을 찌른다고(青天井) 할 수 있었다.

타케다 군을 격퇴시킨 것이 아니라, 피해 규모를 보아도 괴멸시켰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말로 해냈구나. 준비는 갖춰졌으렷다!"


"옛! 일체의 차질 없이!"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은 후, 가신들에게 호령했다.


"지금부터 마지막 대청소를 한다. 다들, 타케다와 싸운 자들에게 지지 않도록 마음껏 무공을 세워라"




천하를 가르는 대전(大戦)에서 승리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면면은, 부상병들을 데리고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귀환했다.

전투중에는 흥분상태여서 깨닫지 못했으나, 하마마츠 성에 돌아오자 생환을 실감했는지, 병사들은 서로 껴안으며 무사함을 기뻐했다.


"아ー, 그런데 시즛치,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야"


시즈코들이 입성을 대기하고 있을 때, 문득 케이지(慶次)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보기에도 거북한 듯한 표정을 떠올리는 케이지를 보고 안 좋은 예감이 스쳐간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화내지 않을테니, 정직하게 말해요)"


"(저기, 말이지. 실은 어떤 무장을 붙잡았는데 말야…… 보고하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거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 님 말이에요?)"


"(아ー 맞아맞아. 본진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다보니 깜빡 잊어버렸네)"


정말 심한 이야기로, 생사여탈의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적진에 방치되는 건 고문에 가깝다. 몸둘 바 모르는 포로를 지금까지 방치해 둔 사실에, 시즈코는 눈가를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빨리 데려와요. 패군(敗軍)의 장수라고 하지만 신의(信義)에 어긋나요"


"어, 바로 데려올게"


시즈코에게 재촉받고 케이지는 서둘러 무토 키헤에를 부르러 갔다. 본인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드물게 겸허(殊勝)한 태도였다.


"당신이 총대장이십니까"


기다리다 진이 빠진 무토 키헤에는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취급되어도 불평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함부로 취급받고 유쾌하게 생각하는 인물은 없다.


"마에다(前田) 님을 맡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그렇게 됩니다. 우선 오래 기다리시게 한 불찰(不手際)을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이쪽도 태도를 고치도록 하지요. 앞서 약속의 절반은 지켜주었고, 남은 절반도 지금 지켜졌습니다"


시즈코가 케이지의 실수를 자신의 불찰로서 사과한 것에 놀란 무토 키헤에였으나, 즉시 의식을 바로하고 대답했다.


"하여, 참수는 언제쯤이 됩니까"


"네!? 싸움은 끝났습니다. 저는 수급을 원하지는 않고, 이제와서 목을 받아도 곤란한데요. 호송까지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돌아가시겠다면 뜻대로 하세요"


"네?"


시즈코의 너무나 상식에서 벗어난 말이 이해되지 않아 무토 키헤에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보통은 포로로 잡은 무장의 취급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보를 캐낸 후에 참수하여 처치한 수급으로서 무공으로 삼는다. 또 하나는 살려둔 채 수하로 받아들여 자신의 전력으로 하는 것이다.

시즈코가 말한, 포박한 무장에 대해 돌아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라는 것은 고생해서 붙잡은 의미가 없다.


"저는 제 목과 맞바꾸어 형님들의 목과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미 대가를 받았는데 뻔뻔하게 살아서 수치를 당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논공행상은 나중이라고 해도 이미 급한 전후처리는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승전 축하연(祝勝会)이라고 흥분해 있는 병사들에게 지금부터 지저분한 일을 부탁하는 건 미안하지요. 애초에 케이지 씨가 그 자리에서 목을 베지 않았잖아요?"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운 케이지가 의도적으로 목을 베지 않았으니, 그게 케이지의 판단이고, 그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었다.

출세를 바라지 않는 시즈코에게 수급 같은 건 굳이 바라는 것도 아니라, 부하의 공을 가로채는 것 같은 짓을 하면서까지 얻을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케이지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것만이 문제였다.


"내가 제시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카이로 귀국하는 것, 아니면 어디까지나 주군에게 충성하고 싶다면 목을 베어주지 못할 것도 없어. 뭐 원하는 대로 선택해"


시즈코의 마음 속을 헤아린 케이지는, 무토 키헤에 자신에게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하기로 했다. 예상외의 선택이 주어진 무토 키헤에는 숙고한 끝에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 바람을 말씀드리지요. 케이지 님이 말씀하신 두 가지 선택, 그 어느쪽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사나다(真田) 가문이 어찌될지 그것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나다 가문이 존속하던 대가 끊기던, 그 결과가 보였을 경우 반드시 당신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신다면 환영하겠지만, 배신자라는 비난은 면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사나다와 운명을 함께한다, 는 길을 선택하시는 것도 지금이라면 가능한데요?"


무토 키헤에의 말에 시즈코는 솔직한 의문을 던졌다. 형 둘을 잃은 사나다가 어떻게 될 지 지켜본 후 시즈코의 밑으로 오겠다고 무토 키헤에는 말했다.

이것은 명백하게 주군 가문(主家)인 타케다에 대한 배신이며, 주군 가문에게 칼을 들이댄 이상 두번다시 카이로 돌아갈 수 없다.

그의 말투를 볼 때, 가족과는 인연을 끊고 단신으로 시즈코에게 투항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두번다시 가족과 만날 수도 없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가족과 적대하여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수라(修羅)의 길이다.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당신의 가신들은 다들, 당신을 닮아서 지나치게 바보처럼 정직합니다"


"그게 어쨌다는 것인지?"


무토 키헤에의 거리낌없는 말투에 노기를 띤 병사들을 손으로 제지하며 시즈코는 말을 이을 것을 재촉했다. 대담한 웃음을 떠올린 무토 키헤에는 재촉받은대로 말을 이었다.


"지금의 저에 대한 대응, 그것이 당신을 위험하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의 가신이나 병사들은 당신에게 반하여(心酔)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목숨조차 내던지겠죠. 지금까지라면 그걸로도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타케다를 패배시켰다는 평가가 붙게 되면 그래서는 안 되지요. 그들의 태도는 알기 쉽고, 거기에 당신이 있다는 것이 쉽게 파악되어 버리는데다, 주위의 반응으로부터 당신의 의도를 읽혀 버립니다. 당신 대신 전면에 나서서 배짱좋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腹芸) 사람이 필요해지겠지요"


"그게 당신이라는 건가요"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미덕이겠지요. 허나, 남의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는 어떨까요? 이건 무능을 넘어선 해악(害悪)이 됩니다. 당신의 이름은 오다 가문에서 부동(不動)의 것이 되었지요. 이제부터는 알기쉽게 적대해주는 상대들 뿐일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친근한 태도로 다가와서 당신의 실각을 꾀하는 적들이 반드시 나타나겠지요"


"그 부족함을 당신이 메워주시는 건가요?"


시즈코의 질문에 무토 키헤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오만하다고도 받아들여지게 될 태도였으나, 그 정도의 담력이 없으면 머리좋은 자들(知恵者)을 상대로 속고 속이는 짓은 못 한다.

그에게는 뭐 하나 잃지 않고 고향(国許)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주위가 모두 적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유용함을 어필해 보였다.


무토 키헤에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타케다가 패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스로의 몸을 아끼지 않는 용맹한 장수들에, 그들을 거느리면서도 난세(乱世)梟雄의 효웅(梟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주군, 타케다의 패배는 필연적이었다.

이제부터도 타케다에게 예전의 힘이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오다 가문에서 요직(要職)을 맡으면서도 수비가 약한, 스스로의 힘을 살릴 수 있는 장소, 즉 시즈코의 수하가 되는 것이 가장 유망한 미래로 보였다.

단순히 타케다에서 오다로 갈아타봤자, 뒷배경이 없는(根なし草) 사나다 따위 훅 불면 날아가는 존재가 된다.

사나다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표리부동(表裏比興)한 자라고 경멸받더라도 시즈코의 직속 부하(直参)가 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능력을 파는(売り込み) 것이 아니다. 무토 키헤에와 사나다 일족 전체의 생존을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


"(과연 이에야스(家康)조차 두려워한 지장(知将)으로 이름높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인가) 좋아요.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반대로 제게 팔려고 한 당신의 수완을 사들이도록 하죠. 제가 마음대로 고용할 수는 없으니, 영주님(お館様)의 재가를 얻어야 하지만, 일단 반대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옛"


만년(晩年)은 불우했으나, 전국시대에 이름높은 지장, 모장(謀将)으로 활약한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시즈코는 기대에 가슴을 부풀렸다.


"그럼 하마마츠 성으로 가죠. 아까까지는 패군의 장수였지만, 지금은 임시라고는 해도 제 객장(客将)입니다. 당신에 대한 부당한 취급을 용납할 정도로 저는 마음이 좁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무토 키헤에의 구속을 풀도록 명령했다. 일순 놀란 병사들이었으나, 명령받은 대로 무토 키헤에의 구속을 풀었다. 그리고 압수했던 칼도 돌려주었다.


"지금까지의 저는 당신의 방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거짓으로 행동했으며, 실은 당신에게 한 칼 먹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 때는 너구리에게 한 방 먹고 죽은 얼간이가 있었다, 고 역사에 남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를 베면 당신은 후회하게 되겠죠. 사나다 가문은 객장이 되었으면서 은혜를 원수로 갚은 비겁자라는 이름을 남기고, 당신 자신은 죽음을 간절히 원할 정도로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확정된 미래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시즈코에게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묘하게도 그 말대로 될 것이라고 직감해 버렸다.


"하핫, 실례했습니다. 저는 너구리라고 자인(自認)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신은 귀신(鬼)을 키우고 계시는 듯 하군요"


무토 키헤에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돌려받은 칼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저의 당신에 대한 충성심입니다. 만약 수상한 거동을 보였다고 생각하시면 사양하지 마십시오"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이면 사양말고 베어버려도 좋다. 무토 키헤에의 태도는 그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얕볼 수 없는 너구리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스스로의 각오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시즈코를 시험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세상에 이름높은 지장과 진검승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바라더라도 불가능한 곳에 시즈코는 지금 서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기쁜 일은 없었다.


"맡아두도록 하죠. 하지만 쓸 일 없이 돌려드릴 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도록 하죠"


무토 키헤에의 칼을 시즈코가 받아들었을 때, 입성을 기다리던 행렬이 이동을 개시했다. 이제 곧 하마마츠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무토 키헤에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 나라에서 만든 술을 천천히 음미해 주십시오"




시즈코가 대량으로 수송시킨 것은 농성용의 물자가 아니라, 군수물자를 제외하면 싸움 전후에 열릴 연회를 예상한 식료품이었다.

당연한 듯 승리를 의심치 않고, 대량의 식료품과 술통이 반입되어 있었다.


"다들, 잘 싸워 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한다"


오다 군의 아시가루(足軽)나 잡병들을 향해 시즈코는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은 듣지 않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말을 이었다.


"하핫! 다들 내 말보다 얼른 술이 마시고 싶은 것이구나. 모처럼의 축하술이다, 예의 따위는 집어치우자(無礼講). 술도 음식도 잔뜩 준비시켰으니, 다들 실컷 먹고 마시도록!!"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좋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오늘만큼은 오다도 도쿠가와도 없다. 함께 강적과 싸운 전우들에게 내가 주는 작은 보답이다. 오늘은 딱딱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도록!"


시즈코의 목소리를 신호로, 병사들은 각자 요리에 달려들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취향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탁주(濁り酒)와 청주(清酒) 양쪽이 준비되었으나, 역시 보기 힘든 청주 쪽이 빨리 줄어드는 듯 했다.

후환(後顧の憂い)도 없어진 승리 축하연인 만큼, 싸움 전날의 연회보다도 떠들썩하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를 대동하고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시미츠 아저씨, 간자분 들에게도 음식과 술을 보내줘요. 눈에 보이는 전과는 없지만, 정확한 정보를 필요할 때에 전해줬으니까, 그에 맞는 보수를 줘야 해요"


"알겠다. 녀석들에겐 내가 말해두지"


"잘 부탁해요. 그럼 나중에 봐요"


거기서 시즈코의 호위는 아시미츠에서 사이조(才蔵)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선은 그대로인채 의식만을 토비카토(鳶加藤)에게 향하며 말했다.


"술과 음식을 놓아두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마시도록. 오늘만큼은 취해 쓰러져도 뭐라 하지 않겠다"


(……옛)


"……그리고 시즈코로부터의 전언이다.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다"


(……)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감사의 말을 실컷 음미해 둬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미츠는 시즈코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시미츠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무렵, 토비카토는 슬쩍 중얼거렸다.


(고맙다……라. 두려움의 대상이 된 적은 있어도, 감사의 말은 처음이다.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군)


그렇게 중얼거리고 토비카토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있던 장소에는 작은 물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다른 무장들이나 아시미츠와 합류한 시즈코는, 나란히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에야스가 있는 큰 방(広間)에 도착하자, 이미 축하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담소하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시즈코가 들어온 것을 알자마자 대화를 뚝 멈추고 시즈코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다들,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들은 타케다를 쓰러뜨린 영예를 얻는 동시에 우리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깜짝 놀라고 있는 시즈코에게 이에야스가 가신들의 행동을 설명했다. 심히 낯간지러운 태도를 감추지 않고 시즈코는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오다 군의 무장들이 모두 앉자, 이에야스는 술잔을 한 손에 들고 말했다.


"우선은 오다 님께서 보내신 원군의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들 도쿠가와는 타케다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만으로는 타케다의 발을 묶을 수 있었을지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이에야스의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는 참패했다.

하지만 시즈코들의 진력(尽力)에 의해 대패를 맛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야스의 인물상(人物像)을 상징하는 '찡그린 상(しかみ像)'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시즈코 님, 이번의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옛, 과분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다짜고짜 죄송합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시즈코의 대답에 이에야스는 싱긋 웃었다.


"그럼…… 이번 싸움에서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 죽은 자를 장사지낼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흠? 죽은 사람들은 모두 운구해왔다고 들었습니다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사상자 숫자는 적다. 거기에다 죽은 사람은 후에 장사지내기 위해 진으로 운구되었다.

사망자는 한꺼번에 화장된 후, 모발이나 유품의 형태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에 의해 정성껏 장례가 치러진다. 대체 누굴 장사지낼 생각인지 몰라서 이에야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마찬가지라, 시즈코가 장사지낼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 측은 경미한 손해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죽은 사람들은 많아서, 지금도 그 유해가 들판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들도 병사들을 잃었지만, 타케다가 잃은 병사들은 우리들과 비할 바가 아닙니다"


많은 시체가 들판에 널려서 부패하게 되면,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들이 역병(疫病)을 매개하여 주변 일대가 오염된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도 죽은 사람들을 반드시 매장해야 한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도쿠가와 님과 타케다 사이에 쉽게는 씻을 수 없는 불화(確執)가 있음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말씀드릴 생각은 없고, 받아들여주시지 않겠다면 포기할 생각힙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시야에는 눈가를 꾹 누른 채 오열하는 이에야스의 모습이 비쳤다.

이에야스 뿐만이 아니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나, 오다 가문 측 무장들조차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울 정도로 원한(確執)이 강했다면, 석회 처리 같은 걸로 어떻게 해볼까 하고 생각했을 때, 결연하게 얼굴을 든 이에야스가 소리쳤다.


"다들 들었느냐! 멋대로 쳐들어온 자들에게도 자비를 보이시다니…… 실로 시즈코 님께서는 자비로우시다.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감동했으며, 나 자신의 도량이 좁음이 부끄럽다"


"어, 저기, 잠깐 기다려 주세요. 뭔가 성대하게 어긋난 느낌이……"


"우리들도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어디라도 달려가서 그 목숨을 던지는 것이다. 타케다에게도 젊은이가 있었으리라.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처자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승리한 우리들이 장사지내지 않고 누가 그들을 장사지내겠느냐. 다들 오래된 원한은 있겠지, 하지만 죽으면 다들 곧 부처(仏)인 것이다. 훌륭하게 싸우다 죽은 타케다 가문의 사람들을 장사지내주도록 하자"


현재의 미카타가하라는 곳곳에 시체가 굴러다니며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河)의 양상을 띠고 있다.

시즈코는 위생면(衛生面)의 관점에서, 추위로 시체가 잘 부패하지 않는 지금 매장하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지만, 이에야스에게는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져 버렸다.


"(이제와서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 그래서, 그…… 매장해도 괜찮을지요?"


"물론입니다. 저희들도 도울테니, 뭐든지 명하십시오"


"각별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쓸데없는 말을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오해가 있어도 그대로 진행하는 쪽이 낫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오해를 해소하지 않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이에야스는 승리에 취해 있어 시즈코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진행했고, 때를 봐서 이에야스의 선언과 함께 승리의 연회가 개시되었다.




연회는 단시간에 종료되었다.

애초에 시즈코가 대량의 청주를 공출했기 때문에, 청주를 입에 댈 기회가 적은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다투듯 퍼마셨고, 상쾌한 첫맛과는 달리 강한 주정(酒精)에 취해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타다카츠(忠勝) 같은 경우에는 시즈코가 직접 잔에 술을 따라주자, 그대로 단숨에 마셔버리고 금방 취해서 쓰러져버렸다.

눈 앞에서 쓰러진 타다카츠에 시즈코는 당황했으나, 한조(半蔵)와 야스마사(康政)가 그녀를 손으로 제지한 후, 타다카츠를 문자 그대로 연회장에서 끌고나가서 빈 방에 던져넣었다.

비몽사몽(夢見心地) 간에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타다카츠를 음식물 쓰레기라도 보는 눈으로 운반한 두 사람은, 빈 방의 맹장지를 열어젖히고는 타다카츠를 던져넣었다.

기둥에라도 부딪힌 것인지 쿵 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으나, 타다카츠는 행복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조용히 맹장지를 닫아 봉인했다.


타다카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차례차례 취해 쓰러져 실려나가서 연회는 순식간에 종료되엇다.

물론, 시즈코는 한 방울도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로부터도 술을 권유받지 않도록 아시미츠와 사이조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시바타(柴田)와 미츠히데(光秀)가 번갈아가며 철벽의 방어로 봉쇄했다.


"후우, 끝났다"


밤바람을 쐬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술을 마신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로 취한 기분이 들었기에, 이렇게 밤바람을 맞으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쪽이 끝났으니, 이번에는 영주님이 나가시마 잇코잇키슈(長島一向衆)를 공격하게 되겠네"


타케다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싸워서 승리햇을 때, 시즈코의 최후의 작전이 발동한다.

그것은 타케다의 패배를 알고 주위가 혼란에서 깨어나기 전에, 나가시마를 공겨해서 그들을 쫓아내는 작전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수만 명이나 죽음을 당했다는 가열(苛烈)찬 나가시마 침공이었으나, 시즈코의 작전은 재빨리, 하지만 확실하게 공격하여 단기간에 결판을 내는 작전이다.

그러기 위한 밑준비를 1년을 들여 했던 것이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성공한 이상, 나가시마도 성공할 확률은 대단히 높다.

만이르이 사태도 생각되었으나, 그것은 시즈코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


"내일부터 오다 군의 대부분이 이동하겠네. 나는 남아서 토오토우미의 타케다 군 소탕에 협력하겠지만"


오다 군은 내일부터 복수로 나뉘어져 활동한다. 태반의 무장은 나가시마에서의 싸움에 참전하지만, 시즈코나 사이조, 나가요시들은 토오토우미의 성에 들어앉은 타케다 군 소탕을 도쿠가와 군과 공동으로 수행한다.

케이지(慶次)는 피곤하다고 말해서 나가시마 침공에는 참전하지 않고 귀국한다. 타카토라는 가장 많은 쿠로쿠와슈(黒鍬衆)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의 매장 작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시즈코 직속(肝いり)의 텟포슈(鉄砲衆)는 다른 가신들과 마찬가지로 나가시마로 가서 노부나가의 직할 무대로서 일하게 된다.


예상으로는 노부나가가 준비를 마치고 나가시마에 착진(着陣)하는 것과, 텟포슈나 무장들이 노부타다와 합류해서 나가시마에 도착하는 것은 거의 동시인 24일이나 25일이 된다.

정월(正月)까지의 날짜는 얼마 안 남았지만, 절반 정도의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으면 감지덕지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게 된다. 그것을 그녀가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아ー 관두자 관둬,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자 소용없어. 자, 다들 자자ー"


곁에 있는 비트만들에게 말하자, 그들은 꼬리를 흔들며 모여들었다. 시즈코는 비트만 패밀리에게 둥글게 둘러싸여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시즈코를 깨우러 온 도쿠가와의 소성(小姓)이, 그 광경을 보고 질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타케다의 패배와 신겐의 부보(訃報). 노부타다나 노부나가에게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반 오다 연합 진영, 그리고 중립을 지키고 있던 자들에게도 그 소식은 전해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아사쿠라(朝倉)는 즉각 귀국했다. 겨울이 깊어져 눈이 쌓여서 행군이 늦어진다는게 이유였으나, 누가 봐도 타케다의 패배를 알게 되어 반 오다 연합에서 재빨리 빠져나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자이(浅井)는 주요 가신들조차 어쩔 줄 몰랐고, 개중에는 오다와 내통하는 자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신들이 그런 상태였기에, 병사들 또한 보신을 위해 도망을 꾀했다.

오다니 성(小谷城)에 남겨진 병사들은 부상자들이나 병자들, 도망칠 여유가 없는 자들만 남게 되었다. 성의 방위에 돌릴 수 있는 병사들이 적어졌기에, 몇 개의 방어시설은 포기되었다.

그밖에 반 오다 연합에 참가한 소국의 영주(国人)들도 대응은 비슷비슷했다.


혼간지(本願寺) 등 종교 세력들(寺社勢力)도 충격을 받았다.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던 타케다 군이 서서히 패한 것이 아니라, 단 한번의 싸움에서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다.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에 있는 켄뇨(顕如)는 전령의 보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도 마찬가지로, 뭐가 어떻게 되어서 타케다가 패했는지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하지만 상황을 이해함에 따라, 그들은 지금 상태에서 오다와 싸우는 건 상책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문을 굳게 닫고 농성에 집중하는 한편, 각지에 간자를 풀어 정보수집을 수배했다.

문을 닫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것도 모른 채.


쇼군 요시아키(義昭)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보고를 믿을 수 없어서 전령을 큰 소리로 매도하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주위의 반응으로부터 전령의 보고가 사실임을 깨닫자, 급격히 소심해져서 머리를 감싸쥐고 벌벌 떨 뿐이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쇼군을 따라 오다에게 반역한 가신들도 정나미가 떨어졌다.


오다에 적대한 자들의 동요는 엄청났다. 그 정도로 타케다 신겐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무겁다.


반면 노부나가는 이 기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나가시마에서 일향종(一向宗)을 구축할 생각이었다.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짜증나는 존재인 일향종을 확실히 구축하려면 지금이 호기였던 것이다.

아사쿠라가 귀국한 것으로 서쪽의 방어망에 여유가 생긴 노부나가는, 당장 병사들을 데리고 나가시마로 향했다. 때를 같이하여, 하마마츠 성에서 출진한 오다 군은 노부타다와 합류하여 나가시마로 향했다.


24일 이른 아침에 노부나가의 본군, 노부타다의 2군, 합계 5만의 군세가 나가시마에 집결했다. 코키에 성(小木江城)에서 작전회의를 가진 후, 점심 전부터 복수의 군으로 나뉘어 침공할 것이 결정되었다.

쿠와나(桑名) 방면에서 지원이 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타키카와(滝川)나 쿠키(九鬼) 수군(水軍)이 도착하는 대로 해상봉쇄를 한다.

이리하여 각자의 행동이 확정된 후, 각자 진군을 위한 작업을 개시했다.


뭐니뭐니해도 신식총의 탄약 제조가 급선무였다. 이 신식총을 대량 투입할 수 있는지 아닌지로 전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료는 있어도 뇌관(雷管)을 만드는 것은 통상의 종이 약실(紙薬包)보다 훨씬 시간이 걸린다. 그 때문에, 전투 개시일에는 신식총의 대량 투입을 보류했다. 그래도 오다 군의 쾌진경은 멈추지 않았다.


"키묘(奇妙) 님, 이치노에 요새(一ノ江砦)를 함락시키고, 이어서 우구이우라 요새(鯏浦砦)로 진군중이라 합니다"


"아케치(明智) 님이 오오미나토(大湊)의 에고우슈(会合衆, ※역주: 자치회)로부터 간쇼지(願証寺)의 편을 들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시바타 님이 카토리 요새(香取砦)를 함락시키고 간쇼지로 진군중이라고 합니다"


"쿠키 님의 선단(船団)이 도착. 내일부터 해상 봉쇄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노부나가의 앞에 차례차례 보고서가 놓였다. 하나같이 노부나가를 만족시키는 것이었으며, 나가시마 잇코잇키슈가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리 견고한 문을 만들어도, 작렬통(炸裂筒) 하나만 꽂히면 산산조각으로 날아간다. 비장의 화승총을 꺼내려고 해도, 쏘기도 전에 오다 측의 신식총에 벌집이 된다.

나가시마 잇코슈(一向衆)에 처음부터 승산 따윈 없었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타케다는 싸움이었지만, 노부나가와 나가시마 잇코슈로는 싸움조차 되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사냥하는, 일방적인 유린,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가슴이 다 후련한 보고들 뿐이구나. 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무장들에게 명하라. 적은 가능한 한 많이 살려두라고 말이다. 놈들이 아군에게 우리들의 강함과 무서움을 선전해줄 것이다"


노부나가의 명령은 즉기 각 무장에게 전달되었다. 철저히 짓밟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 살려두어서, 도망친 적이 도망친 곳에서 오다의 무서움을 아군에게 이야기하게 한다.

노부나가는 타케다가 도쿠가와를 침공할 때 쓴 수법을 흉내낸 것이다. 결과는 예상 이상이었다. 타케다가 오다에게 패한 것과, 하루만에 요새가 함락된 것, 그것이 요새를 지키는 자들에게 상상 이상의 공포가 되었다.


요새가 하루만에 함락된다. 그것은 원군을 부탁해도 제때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새를 지키는 자들에게 이만한 공포는 달리 없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윤중(輪中) 바깥쪽에 있는 요새는,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항복을 타진했다.

노부나가는 무장 해제와 나가시마를 떠나서 곧장 이시야마 혼간지로 갈 것을 조건에 더해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물론,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거리를 하면 그 자리에서 일가친지를 씨몰살시키겠다는 협박도 전했다.


사방팔방에서 오다 군의 맹공에 노출된 간쇼지도 겨우 반나절만에 함락되었다. 이곳은 마지막까지 저항이 거셌으나, 오다 측의 손해는 거의 없었고, 태반이 일향종의 시체들이었다.

이리하여, 겨우 며칠만에 윤중에 있는 나가시마, 야나가시마(屋長島), 나카에(中江), 시노바시(篠橋), 오오토리이(大鳥居)의 다섯 개 성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함락되었다.


"내일부터 텟포슈가 최전선에 선다. 우선은 시노바시 성과 오오토리이 성이다"


지금까지는 요새였기에 빠르게 공격해서 함락시켰지만, 다음부터는 공성전이 된다. 적도 필사적이 되어 지킬 것이기에, 지금까지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라고 누구나 예측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마라. 이미 나가시마는 함락 직전이다. 지나치게 긴장해서 헛발질하지 말도록"


사쿠마(佐久間)나 시바타가 오오토리이 성, 츠다 노부히로(津田信広)나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가 시노바시 성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주위를 견제하면서 노부나가 본진이 나가시마 성을 공략하는 흐름이 되었다.

타케나카 한베에나 그가 데려온 병사들은, 오우미(近江) 나가하마(長浜)에 있는 히데요시에게 돌아갔다. 미츠히데도 오오미나토의 에고우슈와의 정치적 협상(調略) 후에 쿄(京)에서의 임무를 위해 쿄로 돌아갔다.

다른 세력에 대한 견제를 겸한 포진이었으나, 견제 따위 할 필요도 없었다. 누구 하나 방비가 허술해진 쿄에 손대려 하지 않았고, 노부나가의 쾌진격을 들을 때마다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히데요시 군이나 아케치 군이 빠져서 병력 수가 좀 줄기는 했으나, 오다 군의 맹공은 멈추지 않았고, 거꾸로 기세가 올라갈 뿐이었다.


"영주님! 나가시마 성 앞에 네고로슈(根来衆)와 사이카슈(雑賀衆)의 철포대(鉄砲隊)가 포진하고 있는 것을 확인! 그 숫자, 2000 정도로 보입니다!"


오시츠케 요새(押付砦)와 토노메 요새(殿名砦)가 있는 장소에 포진한 노부나가에게, 나가시마 성 앞에 철포대가 다 모여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신식총을 쓰는 오다의 텟포슈는 본진에는 300명 정도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다.

시즈코의 텟포슈는 총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2000이라는 숫자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영주님! 다른 부대에 분산시킨 텟포슈를 도로 데려와야 합니다!"


"필요없다. 300으로 문제없느니라"


진언하는 가신의 말을 노부나가는 일축했다. 깜짝 놀라는 가신을 무시하고, 노부나가는 텟포슈를 이끌고 있는 겐로(玄朗)를 불렀다.


"적은 2000으로 기다리고 있다. 너는 300의 텟포슈를 이끌고 보기좋게 쳐부수고 와라"


"2000입니까. 좀 부족하군요"


"핫핫핫, 잘 말했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대해 겐로는 씨익 웃더니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고 은언중에 내비쳤다. 그걸 들은 노부나가는 기분좋게 웃었다.


"그럼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일 각(刻)만 있으면 결판은 날 것입니다"


"반 각에 끝내라"


"알겠습니다. 사반각(四半刻)에 끝내겠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노부나가와 겐로의 대화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나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사반각 후에 알게 된다.


"다들, 우리들은 네고로슈와 사이카슈를 쳐부수는 임무를 받았다. 별 것 없다, 사반각만 있으면 충분하다. 얼른 끝내서 우리들의 힘을 알게 해주자!"


"오옷!!"


겐로는 텟포슈를 고무한 후,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포진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 후, 맞은편 기슭에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빽빽히 포진한 것이 보였다.

강폭이 가장 좁은 곳에서 도하하여 진군할 거라고 예상하고, 오다 군이 상륙하기 전에 철포로 섬멸한다는 작전이라고 겐로는 생각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상륙하려고 해도 도하 그 자체가 어렵다. 그리고 감시병을 두고 있을테니, 바로 발각되어 총알비가 쏟아지겠지.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뿐이다"


"겐로 님, 거리는 250에서 300미터 사이라고 합니다. 충분히 사정거리입니다"


"좋아, 일제 발사다!"


겐로의 호령과 함께 신식총에서 탄이 발사되었다. 강 저편에 있는 네고로슈와 사이카슈가 쓰러져갔지만, 겐로는 신경쓰지 않고 제압사격을 계속했다.

20분도 지나기 전에 결판이 났다. 네고로슈와 사이카슈의 사망자를 합치면 700정도, 부상자 숫자는 1000명 이상은 될 것이다, 그에 반헤 겐로의 텟포슈는 사망자 제로, 부상자 제로였다.

이 결과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네고로슈와 사이카슈는 탄이 닿지 않는데 반해, 신식총은 여유롭게 살상권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300 이상의 거리에서 사격 훈련이 거의 없었기에 탄의 명중률은 나빴다. 그것은 발사숫자로 커버했다.

명중률은 낮아도 압승이다. 누가 봐도, 어떻게 변명을 하더라도, 전국시대에서 철포 명수(名手)로 이름높던 사이카슈와 네고로슈가 구축된 것에 변함은 없다.


"과연 대단하다"


30분 후, 겐로가 있는 곳으로 온 노부나가는, 반대쪽 강기슭의 참상을 보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다 군은 파죽의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마를 침공하는 부대를 줄이고, 나가시마에 협력적이었던 호족(豪族) 들에게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여 차례차례 굴복(調略)시켜갔다.


나가시마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지금까지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끝까지 나가시마에게 협력한다면 풀뿌리를 파뒤집어서라도 찾아내어 일가친지까지 씨몰살시켜버리겠다.


노부나가의 말은 이것뿐이었다. 관계를 끊는다면 관대한 태도로 대응하겠다, 하지만 여전히 나가시마에게 협력한다면 씨를 말려주겠다. 이만큼 알기쉬운 내용은 없었다.

대부분의 호족은 노부나가에게 복종했다. 일부 반역한 호족들도 있었으나,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일가친지까지 몰살당했다.


29일 새벽, 최후의 저항이라고 말하든 시모츠마 라이탄(下間頼旦)을 시작으로 나가시마의 일향종을 지휘해온 자들과 정예병 1000이 노부나가 본진에 특공(特攻)을 걸어왔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본진에 도달하기도 전에 시모츠마 라이탄 이하 다수의 지휘관이 사살되는 결과로 끝났다.

이 결과를 알자, 모든 것에 절망한 간쇼지 5세인 켄닌(顕忍, 쇼이(証意)의 적자(嫡子))은 키소가와(木曽川)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이 이상의 저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가시마 측은, 노부나가에게 성문을 열 테니 전원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무장해제, 불필요한 재물의 반출 금지, 이쪽의 지시에 따라 나가시마를 퇴거하여 이시야마 혼간지로 곧장 갈 것을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들이겠다고 대답했다.

조금 시간은 걸렸으나 나가시마 측은 노부나가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야나가시마와 나카에 두 성에 대해 저항을 멈추고 노부나가의 지시에 따르도록 명했다.


29일 점심때부터, 각 성에 틀어박혀있던 병사들이나 일반인들이 오다 병사들에게 감시받으며 성을 나섰다.

노부나가는 퇴거가 끝난 성이나 요새를 검사했다. 어딘가에 재산이나 무기를 숨겨좋지 않았는지 조사한 것이다.

결과는 노부나가의 예상대로였다. 나가시마 성을 시작으로, 많은 성이나 요새에 금은이나 돈이 감춰져 있었다.

금은이나 돈을 감춰서 남겨놓은 이유, 그것은 그들이 훗날에 요새나 성을 빼앗으러 올 생각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항복은 이 자리를 면하기 위한 거짓에 불과하다, 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내심 분노가 치밀어오른 노부나가는, 병사들을 시켜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꺼내서 산처럼 쌓아놓았다. 다 쌓자, 노부나가는 나가시마 잇코잇키와의 싸움에 참전한 무장들을 모았다.


"뭐냐 이것은"


금은이나 돈을 앞에 두고 노부나가는 자군의 무장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노부나가는 무장들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부처를 섬기는 몸이면서 속세에 관여하고, 나아가 불필요하게 재물을 축적한다. 백성의 신심(信心)을 이용하여 앞잡이로 삼으면서, 자신들은 처자를 거느리고 윤택한 생활을 한다. 그런 놈들이 부처의 이름을 말한다는 거냐!"


노부나가는 쌓여있던 금은을 걷어찼다. 일부가 무너지며 여기저기 금이나 은이 굴러갔지만, 누구 하나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다들 노부나가가 뿜어내는 노기를 앞두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뭐가 부처의 가호냐. 결국, 놈들은 부처가 아니라 놈들 자신이 소중한 것 뿐이다. 추악한 놈들, 구역질이 난다!"


분노를 내뱉듯이 노부나가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 정도 진정된 노부나가는, 무장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군에게 약탈(乱取り)을 금지시키고 있다. 그건 어째서인가. 백성에게서 살아갈 양식을 빼앗으면, 백성들은 우리들을 위해 일하지 않게 된다.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면, 나라는 순식간에 기울게 된다. 그렇기에 약탈은 금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용서하겠다!"


"오오오옷!!"


약탈 금지령을 해제하는 명령에 아시가루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무장들도 병사들의 좋은 분풀이가 될 거라고 생각하여 노부나가의 약탈금지 해제를 기뻐했다.


"부처의 재물이라면 나도 약탈을 금하겠다. 하지만 놈들이 축적한 재물은 놈들 자신을 위한 것 뿐이다. 그런 놈들에게서 모조리 빼앗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뿌리째 남김없이 빼앗아라!"


약탈 금지 해제의 대호령이 발령되었다. 그날부터 이틀에 걸쳐, 나가시마는 구석구석 샅샅이 조사되었다.

무기 탄약은 물론이고, 금은이나 대량의 돈, 그리고 보존식(保存食) 등이 여기저기 감춰져 있었다.

그것들 모두를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빼앗았다. 개중에는 금괴를 잔뜩 가지고 돌아가는 아시가루나, 정월을 맞이하기 전에 가족에게 좋은 선물이 생겼다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기뻐하는 잡병들도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수만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하는 나가시마에서의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재물을 서로 빼앗는 인의(仁義)없는 싸움은 벌어졌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른채, 하마마츠 성에 있던 시즈코 군이 오와리(尾張)에 도착했다.


토오토우미의 타케다 군 소탕은 실로 맥없이 끝났다. 간자를 써서 타케다 군이 패배한 사실을 퍼뜨리자, 그때까지 강경 일변도였던 타케다 군은 앞다투어 도망쳤다.

이에야스가 우세해졌기에, 타케다의 군문에 투항했던 토오토우미의 영주들은 도쿠가와로 변절했다. 개중 일부는 선물이라고 말하듯, 카이로 철수중이던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나 코우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를 배후에서 습격했다.

그러나 '도망치는 데는 귀신(逃げ弾正)'이라는 별명을 가진 코우사카 마사노부 앞에서 토오토우미의 영주들은 가볍게 농락당했고, 스와 카츠요리는 변변한 피해도 입지 않은 채 카이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무인(無人)의 나가시마 성을 파괴하기 위해 쓰게 되었네, 최종병기"


저택으로 돌아온 후 나가시마의 보고를 받은 시즈코는, 최종병기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게 되었다. 시즈코가 말하는 최종병기는, 알루미늄 분말을 이용한 테르밋(Thermit) 탄 비슷한 것이었다.

알루미늄 우산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분말로 만들어 처리하여, 몇 가지 소재와 혼합하여 연소시키면 테르밋 반응을 일으킨다.

이 떄, 반응의 중심에서는 무려 섭씨 3000도에 달하는 고온이 발생하여, 복사열(輻射熱)이 주위를 덮틴다.

그렇게 되면 유효 범위내에 있는 인간은 '사라진다'. 연소조차 허용하지 않고 즉각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다.

운좋게 중심에 없더라도 반경 수 미터는 고온에 노출되어, 갑자기 불을 뿜으며 타오른다.

게다가 그 바깥쪽에 있더라도 뜨거워진 공기가 폐를 태워서, 한 호흡에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병기였다.


"뭐 당초의 예정과는 다르지만, 사람에게 쏘지 않았다면 괜찮겠지"


애초에 테르밋 탄은 이시야마 혼간지의 성문 등에 사용하여 저항은 소용없다고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할 예정이었다.

돌로 만들어진 성문이 일순간에 '녹아'내리면 농성 따윈 무의미하다고 생각할지도, 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노부나가도 그냥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나가시마 성에서 나가는 일향종에게, 테르밋 탄의 위력을 확실히 눈에 새기게 한 후 풀어주었다.


노부나가 자신이 선전(吹聴)하기보다, 아군으로부터의 보고 쪽이 몇 배나 공포를 부추긴다. 나가시마 일향종과의 싸움에서 노부나가는 그것을 배웠다.

동시에 시즈코가 완강하게 사람에게 쓰면 안 된다, 고 말했던 테르밋 탄의 위력도 인식했다.

그리고 인식한 후, 뒷날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테르밋 탄을 봉인하도록 명했다.


"자, 새해가 오고 조금 지나면 새 집(新居)으로 이동할테니, 짐정리를 해야 하는데…… 내년 일은 내년에 열심히 하자"


보고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방바닥에 누웠다. 가까이 있던 비트만 패밀리는 시즈코가 바닥에 눕자 즉시 일어나서 그녀의 주위에 자리잡았다.

시즈코가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 일이 끝났다, 는 것을 최근 비트만들은 학습했다. 그래서 시즈코가 드러눕지 않으면 곁에 자리잡지 않는다.


"후아~아, 내년에는 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네. 내년은 싸움 따위는 잊어버리고 밭일이나 하며 지내고 싶어"


매년 똑같은 것을 연말에 바라고 있지만 시즈코는 잊고 있었다. 그 바람이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오히려 타케다를 쓰러뜨린 주역(主役), 이라는 것으로 더욱 무대 전면에 나서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의식하지 않는 시즈코는 비트만들과 느긋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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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