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1 1574년 10월 상순
"미끼"
마고이치(孫一)가 괴이쩍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라이렌(頼廉)은 마고이치의 물음에 긍정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오다의 동향을 엿보고 있었소.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 않고(微に入り細を穿って) 정보를 모아, 그 자리마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수를 계속 둬 왔소. 하지만 현실은 어떻소? 상황이 호전되기는 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몰려 있소. 즉, 오다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미끼가 되어 요란하고 대대적으로 움직여보이는 것으로 진짜 책략을 감출 수 있었던 게 아니겠소?"
"과연…… 우리들은 머리를 쫓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요란하게 치장된 꼬리였다는 거군요. 하지만, 뭐든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며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오다가 진짜 책략을 맡길 수 있는 상대 같은 것이 있을까요?"
"보통은 없지만, 놈만큼은 감춰놓고(囲って) 있지. 남자가 아니기에 출세의 야심이 없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데다 유능하며,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명령의 뒤에 감춰진 큰 줄기를 읽고 단독으로 책략을 굴릴 수 있는 인물. 이번의 사이카(雑賀)의 수난(受難)에도 반드시 관여하고 있을 것이오"
"……고노에(近衛)의 딸인가"
손에 든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중앙의 화톳불에 던져넣으며 마고이치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소속된 각자의 조직 중, 마고이치가 소속된 사이카슈(雑賀衆)가 입은 피해가 현저하게 많다. 영주(国人)도 아닌데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이, 지금은 그런 업취도 없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게다가 사이카슈의 대부분이 상인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의 입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상인으로서는 웃기는 화제를 제공하여 거래 상대의 관심을 끌려고 하기에, 소문에서의 사이카슈는 괴멸했다는 취급이었다.
이렇게 되면 용병집단으로서의 사이카슈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지니 점점 더 장사로 경도(傾倒)되게 된다. 사이카슈의 개개의 세력이 개별적으로 윤택해지는 것과 맞바꾸어 사이카슈의 평판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오다의 세력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정보를 담당하게 한 것도 절묘한 수법이지. 상재(商材, ※역주: 장사할 거리)를 손에 들고 전국으로 일제히 퍼져나가는데다, 전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지. 철저 항전을 외치던 무리들도 정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기세를 잃고 있소. 전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재가 없기에 장사로는 먹고살 수 없는 자들 뿐이오"
"적을 칭찬해서 어쩌자는 거요!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선조들께서 쌓아올린 사이카슈가 붕괴할 것이란 말이오!"
"무리요. 우두머리(棟梁)의 호령 하나에 전원이 움직이는 체제였다면 모를까, 합의제(合議制)였기에 붕괴는 피할 수 없소. 다들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시작한 것이오. 다시 모으는(纏め上げる) 것은 쉽지 않지"
마고이치는 냉혹할 정도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을 들여 키워내고 함께 싸워온 사이카슈를 붕괴로 이끈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미웠다. 하지만, 사이카슈가 살아남을 것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해야 한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선단(船団)을 버리고, 자신과 같은 방향을 향하는 배들만을 묶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예전의 영화를 아쉬워해서 때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손절(損切り)이지만, 마고이치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저울에 재어, 타인이 살아남는 쪽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그런 비인간적인 결벽함(潔さ)이 마고이치에게는 있었다.
"게다가 오다에게 부추겨진 패거리들을 신경쓰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소"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지금까지 듣는 역할에 철저했던 에케이(恵瓊)가 의문을 입에 올렸다. 마고이치는 한번 크게 한숨을 쉬더니 에케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패거리들도 사이카슈가 미워서 결별한 것은 아니오. 상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될 거라 믿고 전향한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기에 모두를 이끌기 위해 주류파(主流派)가 되려 하겠지. 이렇게 항전파(抗戦派)는 소수파(少数派)로 몰려, 변화 없는 상황(ぬるま湯)에서 썩어가게 될 것이오. 우리들이 이빨을 잃었을 때, 오다에게 대항할 방법 따윈 없건만……"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모두에게 밝히고 재기를 꾀해야 하는 게 아니오?"
"이렇게까지 용의주도한 책략을 구사하는 놈들이 그럴 여유를 줄 리가 없소. 반드시 제 2, 제 3의 화살을 쏘아넣어 서로 상잔하도록 유도하겠지. 그렇게 다들 피폐해졌을 때 오다가 평정하겠다는 계산인 것이오"
"과연…… 오다는 힘들이지 않고 사이카를 쓰러뜨리고, 혼간지(本願寺)는 모우리(毛利) 이외의 기댈 곳을 잃게 되겠군.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은 쉽게 오다에게 구실을 주어버려 이미 풍전등화(風前灯火). 키이(紀伊) 문도(門徒)들도 사이카슈라는 버팀목을 잃게 되면 머지 않아 와해되겠지요. 혼간지가 살아남으려면 농성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원군이 올 곳이 없는 농성 따윈 자살에 불과하오"
"지금 상황은 '외통수'요"
라이렌이 씁쓸함에 찬 목소리를 쥐어짰다. 이미 어지간한 한 수로는 반면(盤面)을 뒤집을 수 없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댓가로, 한 번에 두 수를 두는 것 같은 대 이변(大番狂わせ)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라이렌의 눈은 죽지 않았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한 수를 믿고 승기(勝機)를 기다리는, 궁지에 몰린 쥐의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한 것이오…… 최초로 포위했을 때, 얼마만큼 뼈아픈 피해를 입더라도 오다를 멸망시켰어야 한다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듯 라이렌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두 사람은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에취……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뭐, 그건 그렇고…… 또또 성가신 일이야……"
노부나가에게서 온 서신을 본 시즈코가 투덜거렸다.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면 '시즈코의 다실(茶室)을 쓸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기다려라'였다.
기후 성(岐阜城)에 설치된 노부나가 근제(謹製)의 다실이 아니라 일부러 시즈코의 저택에 있는 다실에서 다화회(茶会)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즈코 저택에 있는 다실은 질박(質素)하다.
애초에 다도(茶の湯)에 거의 흥미가 없는데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만들게 한 황금의 다실을 알고 있었다. 호화찬란(絢爛豪華)한 다실 따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사치스러움을 배제하고 극력 간소한 다실로 만들었다.
다실의 넓이는 객층(客層)을 고려한 최저한인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 ※역주: 약 2.25평). 소위 말하는 '코마(小間)'를 채용했다. 여담이지만 다다미 넉장 반 이하의 공간을 코마, 넉장 반 이상을 히로마(広間)라고 부른다. 다다미 넉장 반은 '코마'도 되고 '히로마'도 된다.
기본적인 설계는 소우안(草庵) 다실(茶室)을 참고로 했다. 지붕은 짚(藁)으로 이고(葺), 벽도 무미건조한(素っ気の無い) 흙벽. 창문도 바탕창(下地窓, ※역주: 명칭은 직역. 벽에 흙을 다 바르지 않고, 뼈대인 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게 해 창으로 쓰고 있는 것(흔히, 다실(茶室) 따위에 씀))이라 불리는, 벽을 거기만 칠하다 만 듯한 간소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 짝이 없어, 중앙부에 다다미 반 장의 로 다다미(炉畳, ※역주: 화로를 설치하기 위해 화로의 크기만큼 잘라낸 다다미)를 놓고, 주위를 풍차의 날개처럼 둘러싸는 다다미가 있을 뿐으로, 그 밖에는 역시 간소한 토코노마(床の間, ※역주: 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 놓음; 보통 객실에 꾸밈))가 있을 뿐이었다.
토코노마에는 노부나가가 쓴(揮毫)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족자(掛け軸)와, 시장에서 사온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 놓여있고, 계절에 따라 눈에 띈 화초(草花)를 꽂았다.
외견으로는 아담하고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는 하나 질감(風合い, ※역주: 용법 확실하지 않음)이 있었다. 센노 리큐(千利休)가 완성시킨 소우안 다실의 아취를 느끼게 하는 제법 괜찮은 다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주위에서는 '음침하다(陰気臭い)', '초라하다(みすぼらしい)' 등 심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재수(運気)가 없어지겠다고까지 험담한 다실을 쓰고 싶다니…… 누구한테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걸까?"
최근의 다화회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은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였다. 다실에 히가시야마고모츠가 있다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이며,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즈코의 다실은 그야말로 훌륭한 것일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현실은 히가시야마고모츠는커녕, 노부나가 본인의 손에 의한 글씨(書) 이외에는 가치있는 것 따위 일체 없다는, 아예 시원스러울 정도의 다실이었다.
"뭐, 주상이시니까, 뭔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고 보신 거겠지만……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생각해봤자 소용없으려나. 슬슬 자자"
불을 끈 시즈코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비트만들이 주위에 웅크려 있었기에 이불 주변은 약간 더울 정도였다.
가끔 고양이가 이불 위로 올라오지만, 자는 도중에 가슴을 압박당하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에 방 한 구석에 모포를 깐 바구니를 놓아두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대신할 침상을 제공하려는 것이었지만, 이용되고 있는 기색은 없었다.
다음날, 시즈코는 다실의 준비를 명한 후, 하루의 업무를 오전중에 처리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자기 방에서 비트만들과 느긋하게 늘어져서 보냈다.
딱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물없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와 느긋한 시간을 공유한다. 시즈코 정도의 입장이 되면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게 사치가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추워지겠지만, 지금은 지내기 좋은 기후네"
"웡"
시즈코의 혼잣말에 카이저가 한 번 짖어서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단지 우연이 겹친 것 뿐인지는 시즈코에게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맞장구를 쳐준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드디어 남만 과일들도 내 손을 떠났고, 남만 상인에게서 산 데이츠(dates)는 애초에 손이 안 가니까"
데이츠란 대추야자(ナツメヤシ)의 과실이다. 남만 상인이 보존식으로 가져온 것을 시즈코가 흥미를 느끼고 사들인 것이다.
인류에 의한 대추야자 재배의 역사는 오래되어,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6천년 무렵에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일본에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아서 단일 품종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4백 종류 이상이나 되는 품종이 있으며, 예전에 대추야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지역에서는 과실의 숙성 정도에 따라 몇 종류나 되는 명칭이 주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식량이었다.
건조 기후대(乾燥帯)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건조함이나 온도변화에 강하고 가혹한 재배환경에도 견디며 잘 성장한다. 일본의 기후에서는 습기에만 신경쓰면 0도를 크게 밑돌지 않는 한 시들어버리는 경우는 드물어, 온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즈코의 환경에서는 손이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드라이 프루츠(dry fruit)로 가공된 후에도 발아할 줄이야…… 무서운 생명력이네"
공업적인 가열처리를 하지 않은 천일(天日) 건조였기에 발아 능력이 없어지는 온도까지 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먹은 후의 데이츠의 씨앗을 조사하기 위해 물에 담궈놓았는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1.5배 정도까지 부풀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흙에 심어봤더니 발아했다.
아무래도 모든 씨앗에서 발아하는 건 아니고, 발아율은 1할에도 미치지 못햇지만 시즈코는 대단히 기뻐했다.
성목(成木)이 될 때 까지는 저온에 주의할 필요가 있기에, 화분에 옮겨심어 재배를 계속하고 있었다. 문제는 데이츠가 자웅이주(雌雄異株)에 의한 결실성(結実性)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 성질 때문에 암수(雌雄) 포기가 함께 있지 않으면 과실의 수확은 기대할 수 없는데, 꽃이 피기 전에는 암수의 판별이 불가능한 것이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서 소개되었던 데이츠의 기사를 읽었었기에, 암포기(雌株)는 아래를 향해 꽃이 피고, 수포기(雄株)는 위를 향해 꽃이 파운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10개 정도의 모를 키우고 있지만, 그것들이 전부 어느 한 쪽의 포기에 편향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뭐, 딱히 열매를 수확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만, 열매를 딸 수 있게 되면 '돈까스(とんかつ) 소스'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다행히 남만 상인들은 데이츠가 상품이 될 거라고 생각해준 모양이니,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사들일 수 있겠지"
대추야자는 중동에서는 인기있는 식품이며, 데이츠를 날것으로 먹은 후의 씨앗은 그냥 버려두어도 잘 발아한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암수를 판별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수그루가 하나 있으면, 50개 정도의 암그루에 수분(受粉)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수한 수그루 이외의 가치가 대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뒤늦게(後発) 재배하는 입장에서는 극히 불리한 경쟁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남만 상인들에게 데이츠는 보존식으로서 외에는 중요시되지 않아, 중량당 거래가격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 시즈코에게 우선적으로 돌려지게 된다.
시즈코는 이것을 이용하여 금후에도 건조 데이츠에서 씨앗을 회수하여 재배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시원한 오후의 한때를 만끽하고 있던 시즈코의 귀에, 깔려져 있는 자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비트만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 님, 주상으로부터 파발(早馬)이 도착했습니다. '내일 점심떄가 지나서 도착한다'라고 하십니다"
"알겠어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다실의 청소를 하도록 쇼우(蕭)에게 전해줘요"
"알겠습니다"
툇마루(縁側)에 앉아 있는 시즈코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원을 빙 돌아서 보고하러 온 소성(小姓)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시즈코는 덮은 책을 툇마루에 놓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아쉽지만 평온한 시간은 끝났다. 표정을 조인 후, 시즈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착수했다.
다음날 오후. 쇼우들이 꼼꼼하게 손질해놓은 다실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이라고는 해도 10월의 기후에는 조금 쌀쌀하다.
방의 중앙에 설치된 화로(炉)에 숯을 늘어놓고 삼발이(五徳)를 놓은 후, 그 위에 차관(茶釜)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방 전체가 따뜻해져서, 바깥 기운을 쐰 손님이 실내에서 몸을 녹일 수 있게 된다.
시즈코의 다실에서는 다다미의 일부를 잘라내고 마룻바닥 아래에 설치된 이로리(囲炉裏)인 로단(炉檀)에 솥을 설치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참고로 솥이 다다미 위에 놓인 화로에 걸리는 양식을 풍로(風炉)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다양한 예법(作法)이나 절차(手順)가 전해지지만, 초대받았을 때 창피를 당하지 않을 최저한밖에 알지 못하는 시즈코는, 대접하는 입장으로서 방을 따뜻하게 해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실내가 충분히 따뜻해졌을 무렵, 밖에 대기하고 있는 소성이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렸다. 안내하도록 명한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렸다.
이윽고 지면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자니 기묘한 것을 눈치챘다.
안내하는 소성은 도중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발소리는 1인분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누굴까 하고 괴이쩍게 생각하고 있을 때, 노부나가에 이어 본 적 없는 인물이 다실로 들어왔다.
외모에서 추측컨대 50대(五十路) 근처, 무인(武人) 특유의 타인을 압도하는 듯한 기세가 없었기에 시즈코는 상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가(公家)일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노부나가가 상대에 맞춰 장식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공가에 대해 시위(示威)를 한다면,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유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노부나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은 시즈코도 다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인물의 정체(出自)를 알 수 없어 눈썹을 찡그리게 되었다.
"신경쓰지 마라"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챈 노부나가가 웃으면서 명령했다. 노부나가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이상 시즈코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어, 예정대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거북해)
시즈코로서는 초대객 측의 예법이라면 어느 정도 익히고 있지만, 호스트(亭主)로서의 예법 같은 건 알 방법도 없어, 시대극 드라마 등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대충 흉내내기(見様見真似)로 차를 끓였다.
마루(床) 앞에 있는 귀인(貴人)용 다다미에 떡 하니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노부나가에게서 떨어져서, 손님용 다다미에 정좌(正座)한 그 인물은 시즈코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관찰하고 있었다.
다실을 만들기는 했으나, 호스트가 되는 것 따위 상정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좋게 말하면 아류(我流)로, 나쁘게 말하면 서투른(稚拙) 동작(所作)으로 차를 끓였다.
호스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하는 태도를 볼 때 손님은 다도인(茶人)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기에는 시즈코의 솜씨를 알고 있는 노부나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경우, 시즈코의 실수(不手際)는 주인인 노부나가의 불명예로도 이어지기에 창피를 당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의도와, 손님의 속셈 양 쪽이 분명치 않았기에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드십시오"
본래의 예법이라면 우선 차과자를 권하고, 손님이 다 먹는 시점을 헤아려 차를 내놓는 것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먹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양쪽을 한꺼번에 제공했다.
"흠, 또 신작(新作)이냐. 겉보기는 그렇다치고, 맛은 좋구나"
노부나가는 예법에 맞지 않음(無作法)을 신경쓰지 않는지, 우선 차과자를 먹어치우고, 다음으로 엷게 끓인 차(薄茶)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즈코가 폭거(暴挙)를 감행했다.
다른 찻종(茶碗)으로 끓인 차를, 또다시 차과자와 함께 손님에게 권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행동에 기겁한 손님이었으나, 잘 먹겠습니다(頂戴します)라며 인사를 하고 노부나가를 따라 차과자와 엷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어서 토코노마에 장식된 꽃병(花入れ)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이것은 범부채열매(射干玉)를 본딴 것이군요. 가을의 긴 밤을 연상시키는 반들반들한 검은색, 차과자(茶菓子)로 계쩔을 연출하면서 맛도 일급품. 실로 훌륭한 솜씨(点前, ※역주: (다도(茶道)에서) 가루 차를 달여 손님에게 내는 법식)였습니다"
"네, 네에. 칭찬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던 시즈코는,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어쩔 줄 모르게 된(褒め殺し) 상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시즈코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노부나가는 손님의 정체를 밝혔다.
"다행이구나, 시즈코. 보아하니 소우에키(宗易)의 기준에 합격한 모양이다. 입발린 칭찬 따위를 하지 않는 소우에키가 격찬을 하다니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소우……에키……? 앗!"
눈 앞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이해한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아는 이름을 말하려다 다급하게 말을 삼켰다.
센노 소우에키(千宗易), 현대에서는 센노 리큐(千利休)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다도(茶湯)의 천하 3대 종사(天下三宗匠) 중 한 명이었다.
노부나가가 사카이(堺)를 직할령으로 삼았을 때, 이마이 소우큐(今井宗久), 츠다 소우큐(津田宗及) 등과 함께 다도 사범(茶頭)으로 고용했다.
여담이지만 후세에 전해지는 리큐의 이름을 썼던 시기는 짧다. 그는 그 인생의 대부분을 법명(法名)인 소우에키로서 활동했다.
리큐의 이름은 1585년, 히데요시가 칸파쿠(関白) 취임의 답례로 궁중(禁裏) 다화회(茶会)을 열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다.
그 다화회의 호스트를 맡는 소우에키의 신분이 서민(町人)이었기에, 그가 궁중으로 예궐(参内) 할 수 있도록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이 '리큐'라는 거사호(居士号, ※역주: 법명 아래에 붙이는 칭호 중 하나)를 소우에키에게 내린 것에 의해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다도인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소우에키는 화려함(華美)을 좋아하지 않아, 사치를 잔뜩 부린 다실이나 히가시야마고모츠 등의 명물이 존중받은 다화회에 싫증을 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초라…… 질박(質素)한 다실인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시다면 미리 알려주셨다면——"
"알려주면 너는 자리를 꾸미려고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소우에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후에 차성(茶聖)이라고도 불리는 다도(茶道)의 대가 앞에서 서투른 솜씨를 드러낸 시즈코의 항의를 노부나가는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사전에 알았다면 시즈코는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그 자리를 꾸몄으리라.
그렇게 꾸며진, 그 자리에서 끝나는 다화회로는 의미가 없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던 것이다.
"어떠냐, 소우에키. 요즘 다들 칭찬하는 유행과는 정반대를 가는 이 다화회, 사양할 필요 없으니 생각한 바를 말해보아라"
"……그렇군요. 다도(茶の湯)의 예법으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한 잔의 차를 얼마나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차과자와 말차(抹茶)를 한꺼번에 내어서는 소용없습니다"
"네, 네에. 부끄럽습니다"
노부나가조차 한 수 물릴 수밖에 없는 소우에키가 볼 때, 시즈코의 솜씨는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예법에 한정된 이야기로,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라는 본질은 짚고 있었으며 좋게 평가할 곳도 많았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세(当世)의 '다도(茶の湯)'의 예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다실도 그렇지만 이 다화회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네에……"
"예를 들면 토코노마의 꽃병. 명품이라는 것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도기(陶器)에 역시 흔하디 흔한 범부채(檜扇)를 꽂아두었을 뿐입니다. 일견 아무 생각 없이 꽂아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잎사귀와 꽃과 열매라는 보기 알맞은 시기(見頃)가 각기 다른 가을의 시간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의 변화(移ろい)라는 웅대함에 비해 자칫 무미건조할 정도의 그릇. 거기에 부족(不足)의 미(美), 유한(幽閒)한 정취(侘び)가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거창하게 칭찬받고, 시즈코는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실로 좋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다실을 보고, 저는 제가 목표로 하는 곳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말하고 소우에키는 계속 찡그리고 있던 표정(渋面)을 풀고 처음으로 웃음을 떠올렸다.
"저는 최근의 다도, 특히 외국(唐物)의 다기를 편중하는 흐름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할 뿐',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불평불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다도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스스로가 좋다고 믿는 것을 제시하지 않고 타인의 동의 같은 것은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노부나가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떠냐, 시즈코는 재미있지? 조금은 자극이 되었느냐?"
"예, 뜻하지 않게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이 추구하는 다도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극한까지 낭비를 배제하고 허식을 없애는, 메마른 유현(幽玄)의 미(美)인가 하는 것이냐"
"이 이상 아무 것도 깎아낼 수 없을 때까지 깎아내어, 간소함 속에 아취(趣)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와비차(侘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 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일까요"
"호화찬란(豪華絢爛)함을 중시하는 우리들 영주(国人)들의 다도와는 대조적이군. 그 또한 좋겠지"
와비차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우에키는 눈을 감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와비차의 방향성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뜬 후, 소우에키는 자세를 바로하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시즈코 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입니까?"
"무례한 이야기입니다만, 저 꽃병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소우에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고 시즈코는 꽃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다 할 만한 눈을 끄는 곳이 없는,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다.
젊은 기술자의 습작(習作)인지,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하나만 남아있던 것을 시즈코가 산 것이다.
녹로대(ろくろ)조차 쓰지 않았는지, 모양도 균일하지 않고 일그러져 있고, 색채도 촌스러웠다.
"오늘이라는 날을 잊지 않도록, 길을 헤멜 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정표로서, 부디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대가 따위 시즈코 님께서 보시기엔 하찮은 것, 하지만 무엇이든 내어드릴 생각입니다"
"어, 아뇨.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가져가 주십시오. 대가는 필요없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겠습니다"
설마 시장에서 10엔(오다 영토 내의 새 화폐의 단위, 현대 가격으로 환산하면 몇백엔 정도)에 산 것을 가지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갑자기 대답하기가 곤란해져 버린 것이었다.
시즈코는 밖에 대고 사람을 불러 꽃병을 포장하게 한 후 소우에키에게 손수 건넸다.
"제가 목표로 하는 다도가 모양새를 갖추면, 가장 먼저 시즈코 님을 초대하겠습니다"
"네,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우에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실을 나갔다. 한편, 노부나가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지 귀인용 다다미에 책상다리를 한 채로 과자 쟁반의 내용물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우에키는 와비차로 머리가 가득 찼는지, 노부나가가 남아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와비차라. 영 내키지 않는구나. 화려하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화려함이 없으면 차맛도 흐려지겠지"
소우에키가 떠나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끓인 호지차(焙じ茶)를 찻잔(湯呑)으로 마시면서 말했다.
"주상께서 좋아하시는 다화회와는 정반대쪽(対極)에 위치하는 것이겠지요"
"……뭐 좋다. 소우에키가 유한한 정취에 경도된다면 이쪽도 나쁠 것이 없지"
"그건 무슨……"
질문을 말하던 도중에 시즈코는 이해했다. 소우에키가 목표로 하는 와비차는 노부나가가 좋아하는 '카라모노스키(唐物数寄, ※역주: 외국의 다기 등을 선호하는 것)'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다.
명품(외국산의 다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우에키의 사상이 침투하면, 그것(명품)을 자신이 손에 넣기 쉬워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와비차가 주류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으나, 역사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보다 야마토(大和)로 갈 준비는 되었겠지?"
"예, 옛"
"그럼 됐다. 쿄(京)에서 며칠 체재하고, 그 후에 야마토로 간다. 확실히 맡은 역할을 다해보이거라"
노부나가는 그 말만 하고는 시즈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실을 나갔다.
소우에키와의 해후(邂逅) 이후로 시즈코는 정신없이 바빴다. 시즈코는 예전부터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쇼소인(正倉院)의 보물(宝物) 열람 허가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올렸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조정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발단은 오다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생각한 공가(公家)들이 결탁하여 천황(帝)의 의향을 무시하고 시즈코의 열람을 허가해버린 것에 있었다.
사후승낙이라는 형태로 알게 된 천황이 화를 내며 공가들의 월권행위를 책망했으나, 공가들은 '오다 님의 후원(引き立て)을 받아 공가 일동이 한뜻을 모아 정무에 힘써야 할 때에 형식에 구애받아 기회를 놓치는 것 어리석은 일'이라며 천황에 대한 불만을 일기에 남기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공가와 천황이 다투고 있냐고 하면, 금년이 연이은 가뭄에 의한 피해가 컸던 것에 있다.
오와리(尾張), 미노(美濃) 등 노부나가 직할의 곡창지대는 항상 가뭄 대책을 취하고 있고 설비도 충실했기에 영향은 경미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복하여 기우(雨乞い) 의식(儀式)이 치러지고, 음양사(陰陽師)를 초빙하여 점괘(占筮)를 보았다. 결과는 드물게 보는 재앙(凶事)이라고 나와서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뭐 이런 비과학적인'이라고 일소에 붙이겠지만, 이 시대에서의 역점(易占)의 신빙성은 높아서, 각지에서 가지기도(加持祈祷)가 활발하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륙에서 유래한 사고방식인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에는 그것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의 부덕함(不徳)을 하늘이 꾸짖는(咎) 것이라는 천인상관설(天人相関説)이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규모의 가뭄 피해가 벌어졌다고 하면, 천황의 부덕함을 하늘이 꾸짖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통렬한 천황 비판이 줄을 잇고, 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역사적 사실에서는 노부나가가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양위를 강요했다는 설이 있다(정반대로 양위를 간(諫)했다는 설도 있다). 그것이 때마침 궁중(禁中)의 괴이한 일(怪異)이나 대재해(大災害)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해의 일이었던 것이다.
즉 노부나가는 당시의 천황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아니고, 천재지변(天変地異)이나 대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도 양위해 주십시오라는, 당시의 가치관으로서는 당연한 것을 요청한 것 뿐이었다.
참고로 오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의 양위 요청을 물리쳤고, 그가 혼노지(本能寺) 사변에서 횡사하는 마지막까지 양위를 계속 거부했다.
이러한 소동도 맞물려, 정식으로 쇼소인에 대한 출입허가가 내려진 것은 노부나가가 쿄에 도착하고 며칠 후라는 꼬락서니였다.
물론 노부나가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즈코는 양부(養父)인 사키히사(前久)에게 요청하여 조정 내부의 조정(調停)을 꾀하게 하였기에 간신히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상황이었다.
번거로운 얘기라고 생각한 노부나가였으나, 딴 마음(下心)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에게 편의를 봐주려 한 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서, 소동의 원인이 된 것을 사과하고 쌍방을 위로하는 데 그쳤다.
그 후에는 아무 일 없이 야마토로 들어가 토우다이지(東大寺)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거기서 전군에 대해 '무법(無法)의 엄금(厳禁)'을 명령했다.
이 금기를 깨면, 깬 본인은 물론이고 부대의 동료나 직속 상사까지 연좌하여 책임을 묻는다는 가혹한 것이었다.
거기에 토우다이지의 경내(境内)에 진을 치는 것도 금지하고, 경내 바깥에서 진을 칠 때도 불의 취급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금지령을 내렸다.
거기다, 노부나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대기하고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니고, 주변의 치안 유지에 최대한의 협력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지시들을 내린 후, 노부나가는 최저한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토우다이지를 방문했다.
그 때에도 강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형식대로의 절차를 밟아 쇼소인에 들어가, 황숙향(黄熟香, 란쟈타이(蘭奢待)라는 이름을 가진다)(※역주: 토우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있는 향목(香木))을 열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또, 자신이 보물창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란쟈타이만을 꺼내게 하여 대승정(大僧正) 입회 하에 열람 및 2군데를 잘라내기로 했다.
노부나가라고 하면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화신(権化)이며 신도 부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토우다이지의 승려들은, 실제의 노부나가를 보고, 예의바르고 당당한 행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야마토로 간 최대의 목적은 야마토를 지배하에 두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토우다이지나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 대해서는 시종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에 반해 야먀토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 관해서는, 다시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지배하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게 했다.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면서도 인사가 늦거나 또는 소식(音沙汰)이 없는 자들에게는 소규모의 군을 이끄는 사절을 보냈다.
또, 인사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사전에 수집했던 정보와 본인이 제출한 정보를 대조하여 그 차이를 하나하나 지적해 보였다.
그 후 사실을 감추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과, 영지 운영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그 지위를 박탈할 뜻을 전했다.
반골정신(反骨精神)이 넘치는 야마토의 호족(豪族)들이 노부나가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할 리가 없지만, 헌재 상황은 거역해봐야 승산이 보이지 않는 이상 위정자들은 노부나가의 분노(勘気)를 두려워하여 앞다투어 찾아오게 된다.
가장 먼저 인사하러 온 것은, 다름아닌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秀久)였다. 다른 유력자들은 노부나가가 진을 친 이후에 방문한 것에 반해, 마츠나가는 노부나가가 쿄를 나섰을 무렵부터 준비를 갖추고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노부나가의 도착을 엎드려 절하며 맞이했다.
"마중나오느라 수고했다. 오랜만이구나 마츠나가. 별 일 없는 듯 한데, 잘 있었느냐?"
"옛,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영민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은 거두어들였지만, 낙심하지 않고 충근(忠勤)한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도 있을게다. 자, 다른 이야기다만 조정에서 맡은 예사(芸事) 보호의 일환으로 명품의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가 가진 히라구모(平蜘蛛)도 천하에 이름높은 명품(逸品)이라 들었다. 협력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결코 나쁘게는 하지 않겠다"
"예, 옛!"
"흠, 실로 견실하게 일하고 있는 듯 하구나. 유일한 걱정거리는 츠츠이(筒井)와의 사이인가. 부디 경거망동을 삼가도록. 물러가도 좋다"
마츠나가는 땅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마츠나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강요는 하지 않았으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折に触れて) 히라구모를 내놓으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라구모를 내놓으면 무사히 반환될 거라는 보증은 없다. 노부나가가 명품 사냥으로 손에 넣은 명품은 셀 수도 없으나, 그것이 소유주에게 반환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대놓고 거절을 말하면 역적(朝敵)으로 처벌될 것은 확실했기에, 얄궂게도 히라구모의 존재가 마츠나가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것은 마츠나가에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역적이 되면 일족도당(一族郎党)의 씨몰살이 기다리고 있다. 마츠나가 개인으로서는 히라구모를 내놓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개인의 감정으로 일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선택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마츠나가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히라구모를 내놓아야 한다는, 어려운 선택(かじ取り)을 강요받게 된다.
"히이익!!"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다니, 예의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를 배알한 후, 그 길로 시즈코가 있는 곳에도 가려던 마츠나가였으나, 건물의 모서리를 막 돌았을 때 그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물과 직면했다.
생기(生気)가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昏い) 시선을 받고, 마츠나가는 목덜미에 칼날이 들이대어진 듯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즈코에게도 인사하러 갈 생각이냐?"
"……오다 님의 신임이 두텁고 조정으로부터도 예사 보호의 임무를 받은 분이시니, 가능하다면 뵙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주군을 모시는 신하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그건 기특한 마음가짐이구나. '어차피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 계집애, 어떻게든지 구워삶을 수 있다'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내 기분 탓이렷다?"
아시미츠의 말에 마츠나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마츠나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까 그 말도 결코 큰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서 시중들고 있었더라도 들렸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남자는 낱낱이 되읊어보였다. 정말로 저 세상에서 되살아나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힘을 얻은 게 아닐까 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츠나가. 나는 말이다, 네놈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느니라. 네놈이 지금도 목숨이 붙어있는 것은, 네놈의 재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렷다?"
"아, 아니오…… 결코 그러하지는……"
"……뭐 좋다. 사람의 마음까지는 속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말이다, 마츠나가. 시즈코에게, 나아가서는 오다 님에게 적대하려 할 때는 명심하거라. 그 때, 네놈은 진짜 지옥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간단히 죽어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그러했듯', 몇 번이고 저 세상에서 끌어와서, 죽여달라고 애원하던 말던 고통스럽게 해주마"
"히!? 히이이익!!"
그야말로 아시미츠는 지옥에서 되살아난 악귀(悪鬼)였다. 평범하지 않다고 의심하고는 있었으나,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다. 이놈의 손에 걸리면 죽어서도 안녕은 얻지 못할 것이라는.
아시미츠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마츠나가는 안면을 창백하게 물들인 채 네 발로 기듯이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싸늘한 시선으로 마츠나가의 등 뒤를 지켜본 아시미츠는, 발걸음을 돌려 시즈코의 진으로 돌아갔다.
마츠나가에게 불운했던 것은, 이미 시즈코와의 면회에 대해 사전 연락을 해버린 것이었다. 도망친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털레털레 가야 하는 것이다.
악운(悪運)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째서인지' 사이조(才蔵)가 외부 순찰 경계를 맡았기에, 시즈코의 진 안에는 아시미츠 휘하의 병사들이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와리의 명군(名君)으로 이름높으신 시즈코 님을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와리에 비해 촌구석인 야마토입니다만, 이 고장 사람인 저희들에게는 토지감(土地鑑, 그 지역에 대한 지리나 건물의 배치, 생활 습관 등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감(勘)'은 잘못 쓴 것)이 있사오니, 용무가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마츠나가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문자 그대로 화살같은 시선에 견디며 시즈코에게 실례가 없도록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낮춘 인사를 했다.
"저 같은 풋내기(若輩者)에 대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야마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힘을 빌리게 될 때도 있겠지요. 그 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옛! 미력하나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마츠나가는, 아까부터 격하게 아파오기 시작한 배를 손으로 누르며, 발을 끌듯 시즈코의 진에서 멀어졌다.
소문으로 듣던 시즈코와는 첫 만남이었으나, 내외에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마츠나가는 한 눈에 이질적인 점을 깨달았다. 많은 병사들을 가질수록 모두의 속셈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邁進)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시즈코의 진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마음 속으로부터 시즈코를 사모(心酔)하여, 시즈코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종교적인 광신에도 통하는 기색을 느끼고, 마츠나가는 아시미츠와 같은 정도로 시즈코가 무서워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나를 저버렸다……. 몸을 사리고 오로지 마츠나가 가문의 존속만을 바라자)
예전에 암살했던 주군은 지옥에서 악귀가 되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악귀가 지키는 여자는, 하필이면 온 나라의 남자들을 홀리는 경국(傾国)의 악녀(悪女)였다.
야심을 죽이고, 몸을 사리고, 다만 우직하게 통치에만 힘쓰면, 마츠나가 가문은 모른 척 해주겠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이 수확이었다.
자포자기(捨て鉢)가 되어, 오다가 반드시 가지고 싶어하는 히라구모와 함께 저세상으로 도망쳐 한방 먹여줄까라고도 생각했으나, 아시미츠의 말에 의하면 그조차 불가능한 듯 했다.
마츠나가는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태어날 시대를 잘못 택했다고 후회했다.
완전히 초췌해진 마츠나가의 모습을 본 야마토의 호족들은, 비교적 온화한 통치를 한다는 평판이었던 마츠나가조차 저렇게 추궁을 당했으니 대체 어떤 처벌(仕打ち)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전긍긍하면서 알현에 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부나가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고생하지 않고 야마토의 유력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어 그 성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날을 잡아 다시 방문한 토우다이지에서는, 대승정의 입회 하에 란쟈타이를 2군데 잘라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다른 하나는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헌상하게 된다.
그 때 노부나가는 대승정에게 조정으로부터 받은 예사 보호의 임무를 설명하고, 시즈코에게 편의를 봐 주도록 부탁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법한 일은 없을거라고 맹세하고, 시즈코의 인품에 대해서도 조정에서 직접 임무를 내릴 정도라고 설득(請け負)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요하는 일인만큼 그 자리에서의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노부나가는 시종 좋은 기분으로 토우다이지를 나섰다. 이어서 방문한 카스가타이샤에서도 마찬가지의 자세를 관철하며 시즈코에 관한 이해를 구하는 데 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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