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9 1577년 4월 중순



노부나가는 봄인데도 몸이 떨릴 정도의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눈 앞의 시즈코는 생긋 미소짓고 있음에도, 몸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팽팽해져 있어, 칼집에서 뽑혀나온 칼날이 목에 들이대어져 있는 듯한 숨막힘조차 느껴졌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와 만난 지 10년도 넘는 시간이 경과했지만, 이 정도까지 분노를 드러낸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으, 음. 지금 돌아왔다. 내가 없는 동안 별 일은 없었느냐?"


심상치 않은 모습의 시즈코에 대해, 노부나가는 탐색을 해볼 생각으로 말을 건넸지만, 운나쁘게도 보기좋게 지뢰를 밟아버렸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진심으로 어이없다고 말하는 듯한 시즈코의 대꾸에, 노부나가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기에, 계속 말을 이으며 연착륙을 시도했다.


"네가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기에 일부러 물어본 것 뿐이다. 그래서,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말해보거라"


그리하여 시즈코의 입에서 흘러나온 경위는, 노부나가를 뼛속까지 서늘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노부나가가 전신전화(電信電話)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노부나가는, 자신의 부재시에 자신과 동등한 결재권을 갖는 '부재시 권한대행(留守居役)'이라는 직책을 만들어서, 자신이 없을 때 일을 대행하는 호리 히데마사(堀秀政)를 이에 임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화라는 거리와 시간을 초월하는 도구에 홀려버린 노부나가는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자신이 정보를 듣고 판단하여 지시를 내릴 수 있으니 부재시 권한대행은 필요없다고.

그 결과로서 노부나가가 서둘러서 토우고쿠(東国)를 향해 출발한 후, 호리는 노부나가의 위임장을 대신하는 주인(朱印)을 받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호리는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다. 혁신적인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대담한 권한 이양이 추진된 결과, 군사에서도 각 방면군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체재개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타국과의 전쟁을 시작하는 등, 국가의 일대사가 되면 노부나가의 판단을 통해 결재를 받을 필요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수하들에 의한 그 자리에서의 판단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비극은 일어난다. 사이고쿠(西国)의 일익을 담당하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새롭게 빼앗은 영토에서, 시즈코가 중대 전염병으로 지정한 '천연두(天然痘)'의 유행이 보고되었던 것이다.


천연두란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공기감염성의 감염증이다.

인류에 대해 대단히 높은 감염력을 자랑하며, 한 명이라도 환자가 발생하면 주위 사람들의 8할 이상이 감염되고, 그 반수 가까이가 목숨을 잃는다는 무서운 질병으로 여겨졌다.

때로는 국가가 멸명하는 원인조차 되는 무서운 감염증이기에, 시즈코는 이것을 중대 전염병으로 정하고 정보가 모여드는 체제를 구축했던 것이다.

시즈코가 원래 있던 시대에서는 근절된 지 오래된 천연두이지만, 그 무서움은 여전히 전해지고 있었기에, 그녀도 이른 단계에서부터 축산을 맡기고 있는 미츠오(みつお)와 연대하여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했던 종두(種痘)의 도입이었다.

종두란 소가 걸리는, 천연두와 매우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우두(牛痘)'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중증화하지 않는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요약하면 사람에 대해 일부러 우두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우두에 걸리게 하는 것으로 천연두에 대한 저항력을 높인다는 면역요법의 시작이었다.

여담이지만 훗날의 연구에 의해 우두 바이러스와 천연두 바이러스에는 면역 교차 작용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시즈코와 미츠오는 우두 바이러스나, 말이 걸리는 마두(馬痘) 바이러스를, 질병에 의해 생기는 '두(痘, 종기(おでき))'에서 고름이나 딱지를 채취하여 백신의 재료로 삼았다.

이것들을 분지침(二股針, bifurcated needle)이라 불리는 기구의 끝에 붙여, 피험자의 상완부(上腕部)에 상처를 내어 피부 안에 심는다. 이렇게 하면 접종 후 며칠 안에 농포(膿疱, 고름 주머니)가 생기고, 약 1개월 정도에 당시에 '마맛자국(あばた)'이라고 불린 반흔(瘢痕, 켈로이드 형상의 흉터)를 남기고 치유된다.

당연하지만 의학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시즈코들의 시도는 잘 되지 않았다. 시즈코가 전국 시대에 왔던 당초에 전자서적에서 옮겨적은 정보 등을 참조하여 길고 괴로운 시행착오가 반복되게 되었다.

종두를 접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했던 면역을 얻지 못하거나, 종두가 원인으로 위독한 폐렴이 발병하는 환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한 희생을 바탕으로, 독성이 약하면서 면역을 얻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계속 선별되었다.

이러한 경위 끝에, 드디어 최근에야 백신을 접종하는 리스크에 대해 얻을 수 있는 메리트 쪽이 크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레벨의 백신이 제조되게 되었다.


이 백신 말인데, 약체화되었다고는 해도 병원성(病原性)을 유지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취급이 잘못되면 대참사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에, 사용할 대에는 반드시 노부나가의 결재를 받도록 정해져 있었다.

시즈코의 본거지(お膝元)인 오와리(尾張)부터 서서히 영민들에 대해 예방접종을 확대하고 있었으며, 그 때마다 노부나가의 승락을 얻었던 것이다. 무허가로 시행했을 때에는 엄벌에 처한다고 명문화(明文化)되어 있기까지 했다.

이러한 노력과, 영양상태 및 위생환경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도 있어, 주요 오다 영토 내에서 실제로 천연두의 유행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획득한 영토나 타국과의 접촉이 빈번한 최전선은 다르다. 천연두의 유행은 필연적으로 발생했다. 그것도 최악의 타이밍이라는 부록까지 붙어서였다.

의료기술이 발달했다면 천연두가 발병해도 화학요법 등으로 대처 가능하지만, 전국 시대에서는 바랄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병에 걸리면 격리시키고 자연 치유에 맡기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시즈코들이 개발한 종두를 접종하면 감염 전은 물론이고, 극초기라면 감염해도 어느 정도의 면역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오다 가문을 섬기는 중신으로서 이러한 정보가 공유되었던 미츠히데의 행동은 신속했다.

수하에게서 받은 정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여, 틀림없이 천연두 특유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발생했고, 그것이 자신의 영토 내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상황을 확인했다.

그 후 긴급통보로서 사자(先触れ)를 파견하여, 백신을 보유 및 보관하고 있는 시즈코 및, 그것의 사용 결정권을 쥐고 있는 노부나가(부재였기에, 여기서는 부재시 권한대행인 호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하필 이번에는 호리는 결재권을 받지 못했고, 또 불행하게도 노부나가가 후지(富士) 유람(遊山)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대동하고 있었기에, 극비 중의 극비인 전화를 사용한 정기 연락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는 대응이 늦으면 늦는 만큼 피해가 확대되어 수습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유행지의 백성들에게는 이동을 금지시켜서 감염의 확대를 격리하는 것으로 봉쇄하고 있기는 하나, 격리 지역은 지옥이 된다.

걸리면 살아날 수 없는 죽음의 병이 만연하여 언제 자신도 병으로 쓰러질 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주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봉쇄된 가운데 오직 죽음을 기다릴 뿐인 백성들의 심정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이럴 수가…… 그러면, 내 변덕 때문에 살아날 수 있던 백성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두고보아야 했다는 것이냐?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휴우가노카미(日向守, 미츠히데를 말함) 녀석에게 그런 짓을 하게 했다는 것이냐……"


"아니오, 제가 독단으로 백신을 운반시켜 종두를 실시했습니다. 아케치 님과 주상께서 정하신 법과의 사이에 끼어 고민하시던 호리 님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고 그 자리에서 결단했으니, 피해는 최소한도로 억제되었겠죠"


"정말이냐!? 잘했다, 시즈코!"


"칭찬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벌을 받으려 합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의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더냐!?"


"지금도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더라도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악법도 또한 법이라고 합니다. 설령 법 쪽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어긴 자가 처벌받지 않아서는 본보기가 서지 않습니다"


"내가 정한 법이니라! 시즈코가 한 일은 내가 용서하겠다――"


"안 됩니다! 법이란 만인이 동등하게 지켜야 하는 것. 윗사람이 지키지 않는 법 따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법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스스로 보여주어야하만 합니다"


"내게…… 내 뒷처리를 해준 너를 벌하라는 것이냐……"


"네. 주상께서 모두에게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당연히 주상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겠지요. 그래도 참으시고 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노부나가는 전에 없을 정도로 고뇌하고 있었다. 노부나가 자신이 정한 규범인 '오다 가문 제법도(織田家諸法度, 오다 가문 관계자들이 지켜야 할 법)'에는 중대한 명령위반에 대한 형벌이 규정되어 있다.

이번에 시즈코가 저지른 명령위반은, 멋대로 제외국(諸外国)에 대해 전쟁을 건 것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그 양형(量刑)은 영지를 몰수한 후 당주를 포함하는 직계친족(直系姻族)에게 할복을 명하는 '가문 단절(お家断絶)'에서 연간 세금(年貢)의 가증(加増)까지로 되어 있었다.

즉, 노부나가가 얼마나 참작(心を加える)을 하더라도, 최고로는 시즈코에게 죽음을 명하게 되며, 최저한도로 잡더라도 시즈코가 바치고 있는 막대한 연간 세금에 대해 1할을 추가로 부과하게 되는 것이다.

1할 증가라고 하면 "뭐야, 그 정도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통상의 영지 운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1할이나 되는 추가 세금 부담을 요구하면 가처분 소득은 격감하고, 잘못하면 먹고사는 것조차 곤란하게 될 수 있는 가혹한 것이다.

덧붙이자면, 시즈코의 경우 본업인 농업만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기에, 그것들 모두에 대해 일률적으로 1할의 추가 세금 부담이 발생해 버린다.

필두(筆頭) 납세자(納税者)인 시즈코가 바치고 있는 세금의 1할쯤 되면, 중간 규모의 영지의 연간 세금 총액에 상당하여, 제아무리 시즈코라고 해도 쉽게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금액은 아니다.


"괜찮은 것이냐? 네가 내는 연간 세금의 1할쯤 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된다. 게다가 그 손실분을 백성들에게 부담시킬 수도 없는 것이 아니냐……"


"네. 다행히 제게는 충분한 비축이 있습니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영지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괘념치 마시고 처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미안하다. 내가 어리석었다. 두번 다시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네게 맹세하마"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에 대해 땅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였다. 만약 여기가 시즈코 저택이 아니었고,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본다면 엄청난 문제가 될 정도의 사죄였다.


"주상, 고개를 드십시오"


시즈코는 노부나가 앞으로 걸어가서, 그가 움켜쥔 채 땅바닥에 짚고 있는 주먹을 가만히 손으로 잡았다.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는 주먹을 부드럽게 펴면서 시즈코는 그에게 말했다.


"이번의 일은 저도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억지를 써서라도 아케치 님에게 힘을 보태지 않으면 큰 화근이 되어 주상께 돌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시즈코……"


"주상, 저는 주상께서 그리시는 일본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아무리 견고한 제방을 쌓아도 개미 구멍 하나부터 붕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충신이신 호리 님이나 아케치 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이번의 소동은 결판이 나게 되었다. 주군이 자리를 비운 동안 전결사항(専決事項)인 타 영지에 대한 지원을 행한 시즈코에게는 연간 세금 1할 증가의 벌이 내려질 것이 알려졌다.

또, 그 추징(追徴)한 세금으로 기금이 창설되어, 전염병에 대한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오다 가문에 관계되는 사람에게는 차별없이 의료 지원이 행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기관에 대해 전염병의 대처에 관한 권한을 노부나가로부터 위임하여, 긴급시에는 독자의 판단으로 백신의 배포 등이 가능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을 알게 된 제장(諸将) 들은 법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또, 노부나가 자신이 스스로의 어리석음(不明)을 부끄러워하며 법을 수정하여, 두번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자세를 보고 엄격한 법 운용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이웃나라인 명(明) 나라의 고사(故事)에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딱 그것이었다고 전해지게 된다.




노부나가가 코우슈(甲州)에서 돌아와 아즈치 성(安土城)으로 들어간 후,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처리가 이루어졌다.

제장들에 대해 법을 어긴 시즈코를 처벌(処断)한다는 내용이 통보되는 것과 함께, 노부나가의 방계(傍系) 친족에 해당하는 일족이 가문 폐쇄를 당했다. 가계도(家系図)에서도 그 일족이 말소된다는 가혹한 처분이 내려졌다.

한쪽에서는 스스로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노부나가를 위해 죄를 덮어쓴 시즈코와, 스스로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가 전복을 꾀한 역적과의 대비에 제장들은 자세를 바로하게 되었다.

설령 노부나가가 자리를 비우고 있더라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하늘의 눈 같은 감시 기구가 존재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일련의 소동이 가라앉고 4월도 절반이 지나갔을 무렵. 코우슈에서의 일처리를 이어받았던 노부타다(信忠)가 기후(岐阜)로 돌아왔다.

원래는 이대로 단번에 호죠(北条) 침공을 할 예정이었으나, 예년보다 기온의 상승이 느린 탓인지 잔설(残雪)이 심하여, 일단 계획 그 자체를 재검토할 필요에 따른 귀환이었다.

코우슈 정벌 자체가 예정보다 앞서서 진행되었기에, 이 시점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일 필요는 없다. 차분하게 계획을 다시 짜서, 만전의 태세를 갖춘 후에 오다와라(小田原) 정벌에 나서게 된다.

갑자기 뚝 떨어진 듯한 공백의 기간에 대해, 각 진영 모두 사태가 움직이는 것은 눈이 녹는 것을 기다린 이후가 될 거라 인식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활발한 정보 수집이 이루어지고, 각 진영의 간자들이 암약하게 된다.

이 때 시즈코는 명령위반에 대한 교훈(戒め)으로서 자주적으로 저택의 문을 닫아걸고 칩거(蟄居, 자택근신 같은 것)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던 우에스기(上杉) 가문의 인질들이 모습을 감춘 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시로쿠(四六)를 데려가는 걸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시로쿠 자신이 원했다면 어쩔 수 없으려나. 하지만 기묘한 첫 출전을 하게 될 것 같네"


시즈코에게 오산이었던 것은, 우에스기 가문의 소동에 가세하러 간 케이지(慶次)에 시로쿠까지 따라간 것이었다.

케이지들이 에치고(越後)를 향해 출발한 다음 날 아침, 시로쿠의 방에는 편지 한 장 만이 남겨져 있었으며 주인의 모습은 없었다. 편지에는 "견문을 넓히고 오겠습니다"라고만 쓰여 있었다.

보호자인 시즈코로서는 차기 당주인 시로쿠의 제멋대로의 행동을 간과할 수 없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시즈코는 시로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날 것이기에 언젠가 자립해야 할 때는 오게 되어 있다.

지나칠 정도로 말을 잘 듣는 경향이 있는 시로쿠의 각오를 존중하자고 시즈코는 결심했던 것이다.

형 같은 존재인 케이지가 시로쿠의 동행을 허락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각오와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보였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전멸하는 경우조차 있을 수 있는 작전에 굳이 짐덩어리를 떠안고 가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시즈코로서는 시로쿠가 걱정되어 견딜 수 없었다. 전쟁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시로쿠를 잃고 마지막 순간(死に目)을 함께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안절부절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무사히 살아서 돌아와 주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나……"


그런 시즈코의 고뇌와는 별개로, 오다 가문에는 격진(激震)이 흐르고 있었다. 칩거중인 시즈코가 이 소동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뜻(天の配剤)이었으리라.

사건의 발단은 노부타다가 노부나가에게 상담하지도 않고 느닷없이 "마츠(松)를 정실(正室)로 삼겠다"고 주위에 선언한 것에 있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이것에는 격노하여, 노부타다를 아즈치로 불러내어 철회하도록 명했다. 그런데 이것에 노부타다가 반발하여, 끝내 고개를 가로젓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타다는 시오카와(塩川) 호우키노카미(伯耆守) 나가미츠(長満)의 딸인 스즈히메(鈴姫)를 내후년에 처로 맞아들이고, 그 이듬해에는 적자(嫡子)인 산포시(三法師)가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今世)에서는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모반을 일으키지 않아, 노부나가와 시오카와가 접근하지 않았다는 어긋남(齟齬)이 발생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아라키 무라시게의 모반 따위 일어날 리도 없었기에, 노부타다의 정실의 자리는 공석이 되어 있다.

원래는 마츠히메(松姫)가 바로 노부타다의 정실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다 가문과 타케다(武田) 가문이 적대하여 동맹이 파기됨에 이르러 혼약은 취소되고, 동시에 정실 이야기는 없던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노부타다가 마츠히메를 처로 맞아들이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정실로 앉히는 일은 없을거라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정실이라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강하게 얽혀들기 때문에, 망국의 공주인 마츠히메를 그 자리에 앉히는 메리트는 전혀 없다.

반대로 타케다 가문의 복권(復権)을 꿈꾸는 잔당들이 파고들 틈을 보이게 될 가능성이 있어, 디메리트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의 노부타다의 선언에 대해, 노부나가 뿐만 아니라 노부타다의 측근들로부터도 다시 생각해보도록 몇 번이고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노부타다가 고집을 굳히게 만들어버렸다. 한 번 이거라고 정하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부나가의 장점이기도 하며 단점이 될 수도 있는 특징을 노부타다도 확실히 이어받아버렸다.


"오랜만의 부자(親子) 싸움인가. 그 애도 자신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질 생각일테니, 내가 할 말은 아무 것도 없겠지"


방법이 없어진 노부타다의 측근이, 그의 누나 같은 존재인 시즈코에 대해 중재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내왔다. 그러나, 시즈코는 칩거중인 것을 이유로 이 일에 관여하는 것을 거절했다.

지금까지도 비슷한 충돌은 몇 번이고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노부나가, 노부타다 모두 서로 타협점을 찾아내어 적당히 마무리지었다. 외부에서 손을 쓰지 않더라도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정실로 삼는 것에 집착한 걸가? 야심이 있다고 간주되면 처단되는 마츠히메 쪽이 그걸 바랄 리도 없고, 측실(側室)이라고 해도 딱히 불편(不都合)은 없을 텐데. 그 애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이상, 어설프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짓은 안 하는 쪽이 좋겠지"


이런 생각도 있어, 시즈코는 이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에도 정보수집은 계속하도록 수하의 간자들에게 명하긴 했지만, 신경쓰일 만한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때, 지금까지와는 성격이 다른 긴박한 보고가 시즈코에게 들어오게 된다.


"설마 정면에서 덤벼올 줄이야"


지금까지 보이지 않게 암약하고 있던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가 자신의 입장을 친(親) 호죠 파로 표명하고, 시즈코 저택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카게카츠(景勝)에 대해 "결판(雌雄)을 내자"라고 서신을 보내온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고, 켄신(謙信)이나 카게카츠에 대해 책략을 구사하며 모략(謀略)을 통해 우에스기 가문을 장악하려고 했던 카게토라가, 이제와서 직접 대결을 요구한 이유에 대해 시즈코는 생각했다.


"코우슈 정벌이 끝난 것에 의해 상황이 변한 것이겠지"


에치고 국은 아직 오래된 사상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땅으로, 강자야 말로 정의라는 풍조가 있다.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 되기를 결심했을 때도, 이것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켄신이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째서 지금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토우고쿠 정벌의 남은 표적은 호죠인 이상, 에치고에서의 소동에 대해 호죠 가문이 원군을 보낼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자복(雌伏)의 시간으로, 때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코우슈 정벌의 소문을 듣고 호죠의 미래가 어둡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고 생각한 걸까"


어느 쪽이든 카게토라 본인을 제외하면 그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없다.


"동원할 수 있는 직속 세력(手勢)에서는 열세이지만, 정면에서 도전해오면 나가오(長尾) 님도 거절할 수 없으려나. 본인을 지명한 결투라면 켄신이라도 개입할 수 없을테고"


카게카츠는 오다 가문에 대한 인질로서 바쳐진 것으로,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카게토라와 비교해 명백하게 적다. 카게토라는 지금이라면 가장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카게카츠를 지명한 결전이라면, 켄신의 후계자로서 카게카츠의 자질을 시험받게 되므로, 다름아닌 켄신이라도 개입할 수 없다.

반대로 카게카츠가 켄신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이야말로 켄신의 후계자 자격이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겁장이(腰抜け)라고 경멸당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카게카츠는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힘만으로 카게토라와 싸워야 한다. 확실히 카게토라의 입장이라면 여기밖에 승기가 없다고 할 수 있으리라.


"병사의 숫자에서 뒤떨어지고, 직접 승부를 걸어왔기에 기습한다는 길도 막혔어. 명백히 열세인 상황에서의 어려운 싸움이 되겠지. 케이지 씨는 바로 그래서 재미있어하겠지만 말야. 우리 집의 소중한 후계자의 첫 출전으로는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그런 내용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녀는 말하는 것만큼 시로쿠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는 않았다. 카게카츠가 이끄는 병사들은 오와리의 문화를 겪고, 근대적인 훈련도 받았다.

뭣보다 그들은 매일의 단련 상대로 오와리의 최정예 부대와 몇 번이나 특훈을 거듭했다. 단순히 숫자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요인이 있는 것을 잊고 있다가는 허를 찔리게 되리라.

상대를 계책에 걸려들게 했다는 생각에 가득한 카게토라가, 카게카츠들의 실력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조금 재미있게 생각된 시즈코였다.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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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8 1577년 4월 상순



텐모쿠 산(天目山)이란, 현재의 야마나시 현(山梨県) 코우슈 시(甲州市) 타이와쵸(大和町) 토쿠사(木賊)에 존재하는 산이다. 옛날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에 쫓긴 타케다 씨(武田氏) 13대 당주인 타케다 노부미츠(武田信満)가 자결하여, 여기서 타케다 씨의 맥이 한 번 끊어졌다.

그 후 재건된 타케다 가문 최후의 당주인 카츠요리(勝頼)가, 텐모쿠 산을 결판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비교적 표고가 낮은 텐모쿠 산의 산봉우리 부근에 세워진 카츠요리의 진은 철거되고, 잡초를 베어내고 땅바닥을 단단히 고른 듯, 시야가 잘 트인 광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침 안개가 낀 가운데, 그 광장의 중앙에서 카츠요리가 걸상(床几)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약간의 직속 수하들만을 거느린 노부타다(信忠)가 산길을 똑바로 올라왔다.


"……왔는가"


노부타다의 모습을 확인한 카츠요리가 중얼거렸다. 카츠요리는 수하들을 멀리 물려두고, 결전장에는 누구도 다가가지 않도록 엄명해놓았다.

카츠요리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곁에 세워두었던 붉게 칠한 대신창(大身槍)을 손에 들었다. 카츠요리의 모습은 타케다가 자랑하는 적비대(赤備え)의 군장을 착용하고, 위압적인 모습의 투구(面頬)까지 장착한 완전무장 상태였다.

그에 대해 결전장에 나타난 노부타다는 이 시대의 상식에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기토(一騎打ち)를 신청한 것은 그쪽일 터. 승패에 관계없이 자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업신여기는 것인가?"


카츠요리의 물음에 대해 입회인(見届け人)인 나가요시(長可)를 제외한 부하들을 창이나 칼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물리며 대답했다.


"업신여겼다면 일기토 따윈 하지 않고 끝장을 냈을 것이오. 카이(甲斐) 타케다의 무(武)를 잇는 사나이라고 인정했기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 보아하지 기력도 체력도 충분한 것 같군"


"베품(施し)을 받아서 하는 말은 아니나, 정말 그런 모습으로 괜찮은 것인가?"


질문을 받은 노부타다는 확실히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에는 오다 군 표준의 목이 높은(編み上げ) 부츠에 현대의 카고 팬츠 같은 투박한 바지(下履き) 위에 정강이받이(脛当)를 차고 있었다.

몸통에는 아무래도 몸통갑주(胴鎧)를 두르고, 허리 부분을 커버하는 쿠사즈리(草摺, ※역주: 아래 링크 참고)는 카츠요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덮어야 할 오오소데(大袖, ※역주: 아래 링크 참고)는 없고, 손목에서 팔꿈치까지를 덮는 토시(籠手)가 약간 대형화되어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투구 종류를 일체 쓰고 있지 않은 무방비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설마 이제와서 화살을 쏘아붙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니오? 그러니 경험에서 뒤지는 쪽 나름대로 연구를 한 것이지"


노부타다는 그렇게 말하고 수하로부터 자신의 키보다 약간 긴 단창(手槍)을 받아들고는 물러나게 했다. 나가요시는 마주보는 두 사람의 중간 정도에 서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동향을 지켜보았다.

당세구속(当世具足)으로 완전 무장하고 장대한 대신창을 무기로 삼은 카츠요리에 대해, 간격에서 뒤지는 단창 외에는 허리에 장검(太刀)을 차고는 있는 게 보이는, 명백한 경장(軽装)인 노부타다는 아무래도 불리해보였다.

노부타다의 준비가 갖춰진 것을 본 카츠요리는 손에 든 대신창을 머리 위에서 크게 원을 그리듯 돌려보이더니 옆으로 내리며 노부타다 쪽으로 창끝을 향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지금부터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무예로 뜻을 나타내도록 하지. 언제라도 오라!"


카츠요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발을 멈추고 노부타다의 반응을 살폈다. 그에 대해 노부타다는 간격에서 불리하기에 섣불리 치고들어가지도 못하고 발을 끌며 조금씩 간격을 좁혔다.

반 발자국만 더 가면 단창이 상대에게 닿을 위치에서 카츠요리가 움직였다. 옆으로 쥐고 있던 대신창을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뜨리듯 전방으로 찔러내어, 예비동작이 거의 보이지 않음에도 충분히 위력이 실린 찌르기를 뻗어냈다.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을 노부타다였지만, 반응이 반 박자 늦었기에 회피할 시간이 없어 대신창의 진로상에 단창을 세워 창끝을 빗나가게 하고, 그 반동으로 역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카츠요리의 대신창은 창날 길이가 1척(尺, 약 30cm) 이상이라, 그 칼날(刀身)이라고도 부를 만한 창끝이 단창의 자루를 깎아내며 파고들었다.

본래는 중량이 있는 대신창을 다루는 것은 어려워서, 위력이 실린 찌르기를 회피당하면 큰 빈틈이 생겨날 터였다.

그러나 카츠요리는 측면으로 빗나간 힘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옆쪽을 향한 힘에 자신의 힘과 추가로 몸의 비틀림까지 더하여 몸을 꺾듯이 하며 컴팩트하게 대신창을 회전시켜, 대각선 위쪽에서 후려치는 듯한 일격을 날렸다.

피한 곳에서 후려치듯이 내려쳐지는 일격을 본 노부타다는, 단창으로 완전히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몸을 날려 옆으로 뛰어 회피했다.


땅바닥을 구르면서 일어난 노부타다가 본 것은, 다시 옆으로 잡은 대신창을 겨누고 있는 빈틈이 없는 카츠요리의 모습이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잘못 판단했군)


이 일기토를 타진하기 전부터 카츠요리 개인의 무위(武威)에 대해서는 간자(間者)에게 조사하게 했다. 그러나, 부대의 지휘에 뛰어나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어도, 카츠요리 본인이 무예에 뛰어나다는 정보는 결국 들어오지 않았다.

이름높은 무예자들이 모여 있는 타케다 가문에서 카츠요리 본인은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고 노부타다가 판단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 갑주, 겉보기와 같은 무게가 아니군?"


"겨우 일 합에 거기까지 꿰뚫어본 건가. 사전 평판(前評判) 따위 믿을 게 못 되는군. 애초에 이쪽은 도전하는 입장. 오다 칸쿠로(織田勘九郎), 이대로 간다(推して参る)!"


카츠요리의 지적은 정확했다. 노부타다의 갑주는 모두 특별제로, 오와리(尾張)의 최첨단의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간 명품이다.

평범한 천으로 보이는 카고 팬츠도, 녹인 유리가 솜사탕(綿菓子)을 만드는 기계 같은 것으로 불어져서, 원심력을 이용하여 가늘게 가늘게 뽑은 유리 섬유를 표면에 짜넣었다.

당연히 그대로는 피부에 닿으면 가느다란 베인 상처가 생겨서 따끔거리기에, 뒷면에는 통상적인 천 재질이 대어져 있다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것만이라면 조금 튼튼하고 잘 타지 않는 천에 지나지 않지만, 정강이받이나 토시 부분에 쓰인 장갑판은 한술 더 떴다.

오와리에서만 만들 수 있는 강철을 냉간(冷間) 선인발(線引き)이라는 기법으로 상온(常温) 상태에서 가늘게 잡아뽑는다. 이것은 물레방아(水車)나 가축의 힘(畜力)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증기 기관에 의한 거대한 힘을 균일하게 지속적으로 가할 수 있게 되어야 처음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에 의해 피아노줄 정도는 되지 못하더라도, 철사(針金)라기보다 가느다란 연줄(タコ糸) 정도의 강선(鋼線)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메쉬(mesh) 형상으로 짜넣은데다 북가시나무(赤樫)의 얇은 판에 몇 겹이고 붙이고, 그것들을 수지(樹脂)로 굳힌 것이다.

철판과 다름없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면서도, 중량은 5분의 1 정도라는 완전히 오버 테크놀러지의 방어구로 완성되었다.


다음에는 자신이 선공을 하기 위해 노부타다가 달렸다. 당세구속은 화살을 막기 위해 틈새를 적게 하는 설계가 되어 있어, 방어력이 높은 반면 시야가 필연적으로 좁아진다.

카츠요리와 마주보고 왼쪽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시야에서 벗어나면서, 게다가 쓰는 팔의 뒤쪽을 돌아들어가는 것으로 추가 공격을 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하려는 작전이었다.

이것에 대한 카츠요리의 대응은, 노부타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몸을 구부린다는 기묘한 것이었다. 몸을 작고 둥글게 구부리는 모습에, 노부타다는 극한까지 눌려 축적된 반동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았다.

등골에 얼어붙는 고드름이 꽂히는 듯한 오한에, 노부타다는 즉시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생각대로 노부타다의 발 밑에 섬광이 지나갔다. 뒤늦게 풍절음이 들려올 정도로 날카로운 참격이 지나가고, 짧게 베여서 정리되었던 잡초들이 더욱 짧아졌다.

어떤 자세에서도 자유롭게 창을 휘두를 수 있는 비범한 체간(体幹)과, 날카로운 찌르기(刺突, ※역주: 칼날 등으로 찌르는 것을 가리킴) 및 참격을 낳는 괴력(剛力). 천하무쌍의 장수(侍大将, ※역주: 의역했음)라고 부를 수 있는 무서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건 간담이 서늘했소. 카이의 무사는 다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중거리에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노부타다는, 아까처럼 카츠요리의 공격이 닿기 어려운 방향으로 달리면서도 거리를 좁혔다.

대신창 같은 자루가 긴 무기는, 밀착 간격에 들어가버리면 리치가 거꾸로 단점이 되어 공격이 맞지 않게 되어버린다.

당연히 그 정도는 숙지(知悉)하고 있는 카츠요리는 창을 지탱하는 왼팔을 안쪽으로 접고, 자루를 밀어내는 오른손을 크게 바깥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컴팩트한 참격을 날려왔다.

간발의 차이로 이것을 피한 노부타다는, 카츠요리의 눈 앞까지 육박했다. 대신창의 창끝은 카츠요리의 뒤쪽 멀리 돌아가 있어, 지금이 호기라는 듯 노부타다가 크게 치고 들어갔다.

퍼엉! 이라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노부타다가 크게 후퇴했다. 노부타다의 몸통갑주는 측면이 우그러져, 자세히 보면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대체 뭔가 그건!? 바위라도 두들긴 것 같군"


예상대로 카츠요리가 날린 것은, 창의 밑둥(石突)에 의한 찌르기(打突, ※역주: 날붙이가 아닌 것으로 찌르는 것을 가리킴)였다. 옆으로 쓸어가는 참격에서 직선의 찌르기로 이어지는 빈틈없는 연계에, 노부타다는 비장의 몸통갑주가 우그러진데다 간격 밖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시즈코 특제의 갑주지! 그리 쉽게 뚫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라!"


그렇게 포효하더니 노부타다는 세 번째의 돌격을 감행했다.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아래에서는, 예상 이상으로 기력 및 체력을 소모한다.

유효타는 되지 않았지만 뼈아픈 일격을 먹은 노부타다보다도, 그때그때 카운터를 날려 체력을 온존하고 있는 듯 보인 카츠요리 쪽이 피로해 있었다.

시야의 바깥에서 찔끔찔끔 거슬리는(厭らしい) 공격을 해오는 노부타다의 행동은, 상상 이상으로 카츠요리의 체력을 깎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카츠요리의 피로는 발한(発汗)을 촉진하여, 흡수의 한계를 넘어선 땀방울이 한쪽 눈을 막았다.

그 순간적인 빈틈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빈틈이 운명을 갈랐다. 크게 치고 들어온 노부타다는 단창을 카츠요리의 눈앞의 땅바닥에 박아넣더니, 허리의 장검을 뽑아 구르듯 카츠요리의 겨드랑이 아래를 빠져나갔다.

단창이 방해가 되어 창을 질러내지 못한 카츠요리의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카츠요리의 오른 팔의 뿌리부분에서 선혈이 뿜어졌으나, 신경쓰지 않고 창을 버리고 왼손으로 허리의 장검을 뽑으려 손을 뻗었다.

다시 등 뒤에서 참격이 날아와, 이번에는 왼팔의 팔꿈치부터 앞부분이 날아갔다. 양 팔을 잃은 카츠요리는 패배를 깨닫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등을 쭉 펴며 외쳤다.


"훌륭하다! 이 상처로는 곧 소생의 목숨도 사라지겠지. 자결하려고 해도 팔이 없군. 카이샤쿠(介錯, ※역주: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것)를 부탁할 수 있겠나?"


그것에 노부타다가 응하여 외쳤다.


"박빙의 승리였소. 부족한 몸이지만 카이샤쿠를 해드리지"


노부타다는 그리 말하고, 등을 쭉 뻗어 목이 보이도록 머리를 숙이고 있는 카츠요리의 등 뒤에 서서, 장검을 높이 쳐들었다.


"하라!"


카츠요리의 말과 함께 칼날이 휘둘러쳐 내려지고, 한 칼에 카츠요리의 목이 떨어졌다. 뒤늦게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타케다 가문 최후의 당주는 세상을 떠났다.


"이 갑주가 없었다면, 천하(泉下, ※역주: 저세상)에 간 것은 나였겠지. 타케다 시로(武田四郎), 진정한 무사였노라"




타케다 카츠요리의 전사, 이 소식은 오다 가문의 손으로 퍼져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토로 전해졌다. 아무리 몰락했더라도 전국시대 최강으로 불렸던 타케다 가문의 멸망은, 일본 전역의 영주(国人)들을 떨게 만들었다.

이에 의해 오다 가문이 무가(武家)의 두령(頭領)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 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호죠(北条)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상 묵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불구대천(不倶戴天)의 원수가 되었던 타케다 가문의 멸망에도 노부나가는 단 한 마디 "그러냐"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타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던 타케다 가문이지만, 막상 멸망했다고 듣자 가슴에 남은 것은 메우기 힘든 공허감이었다.

이익에 밝고 성질이 급한 사카이(堺)의 상인들은, 후에 노부나가에 대해 축하 선물을 보내고, 입을 모아 타케다 가문을 깎아내리고 오다 가문을 칭송했다. 그런 영언(佞言, 아첨하는 말)을 내뱉는 패거리는 모두 말없이 위압(威圧)했다.

노부나가가 내뿜는 뼛속까지 추워지는 듯한 시선과, 물리적 압력을 동반하는 듯한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상인들은 얼른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었다.


시간은 되돌아가서 노부나가와 노부타다 군 및 도쿠가와(徳川)-아나야마(穴山) 연합군이 집결할 수 있는 장소로서 신푸 성(新府城)이 선택되어, 관계자들이 모여 전후 처리를 의논하게 되었다.

카츠요리를 처치한 노부타다 군이 먼저 입성하여 준비를 갖추고, 남부로부터 진군해온 도쿠가와-아나야마 연합군이 합류했다. 그들은 무혈개성(無血開城)이긴 했지만 약탈이 있었는지 황폐해진 성 안을 청소하여 겉보기에는 문제없도록 했다(表面を取り繕った).

그러한 보이지 않는 노력 끝에, 뒤늦게 달려온 노부나가 및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노부나가는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논공행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관계자들을 모았다.


"이번의 승리는 오랫동안 타케다의 침공에 저항해 왔던 미카미노카미(三河守) 님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 제 1공으로서 상을 준 것은 이에야스(家康)였다. 그가 타케다의 침공에 대해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의 승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제 2차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는 큰 전공을 세우지 않았으나, 과거의 성과를 감안한 평가였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 대해 스루가 국(駿河国)을 내렸다.

다음으로 타케다 씨의 본국이기도 한 카이 국(甲斐国)은, 쿠로호로슈(黒母衣衆) 필두이자 토우고쿠 정벌에서 노부타다를 모신 카와지리 히데타카(河尻秀隆)에게 주어졌다.

다음으로 이나 국(伊那国)은 노부타다의 직속 신하인 모우리 나가히데(毛利長秀)에게, 코우즈케 국(上野国)과 시나노 국(信濃国)의 일부는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타키카와에게 주어진 영토에는 예전의 사나다 령(真田領)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당사자인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이미 오와리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기에 딱히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타케다 씨가 멸망했기에 내전 상태에 빠져든 영토에 대해서는,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 출중(出色)한 공을 세운 나가요시에게 주어지게 된다.

겉보기에는 손해보는 역할을 떠맡은 모양새가 된 나가요시였으나, 노부나가는 나가요시라면 그것들을 진압하면서 잘 다스릴 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의 총대장이자, 카츠요리를 직접 처치한 공로자이기도 한 노부타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포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총대장이면서 지시를 어기고 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기토를 한 벌이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내뱉듯 말했다. 확실히 오다 가문의 적자(嫡子)이면서, 생명의 위험이 있는 일기토를 벌인 것은 경솔한 짓이었으리라.

그러나 토우고쿠 정벌의 절반을 이루어낸 공적과 상쇄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노부나가가 이어서 말했다.


"저놈에게는 타케다의 유아(遺児)인 마츠히메(松姫)를 처로 맞아들이는 것을 허가해 주었다. 타케다의 복권(復権)은 용납하지 않지만, 피의 존속을 허락한 것으로 상으로 간주한다"


여기까지 듣자 노부나가의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어서 노부나가는, 마지막까지 카츠요리를 따라 싸운 충신 50여명에 대해 "적이지만 훌륭하다"라고 평하고, 본인을 포함한 일가친지(一族郎党)에게 죄를 묻지 않을 것을 확약하고 생활을 보장(安堵)했다.

반대로 타케다 가문이 열세에 몰린 후에 배신하고, 그러면서 오다 가문의 편을 들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그 우유부단함의 죄를 물어 엄벌에 처해졌다.

가문의 존속을 위한 배신은 전국시대의 예상사라서, 그것만을 이유로 가문 단절로 몰아넣거나 하지는 않지만, 학살을 포함한 약탈을 벌인 자는 참수되었다.

그 가혹한 대응을 본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는, 가장 먼저 배신한 것에 대해 죄를 물을까 공포에 질렸지만, 영지의 가증(加増, ※역주: 늘어남)과 보장(安堵)을 받고 깜짝 놀랐다.

반대로 미묘한 시기에 배신을 타진해왔던 아나야마에 대해서는 대응이 까다로웠다. 이미 도쿠가와의 신하가 되어서, 노부나가라도 해도 그 인사(人事)에 대해 참견할 수는 없다.


"코우슈(甲州)에는 '도로카부레(泥かぶれ)'라는 병이 있지. 아나야마 님은 이에 대한 진두지휘를 해 주시게.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이 나중에 알릴 테니, 이 병의 근절을 위해 진력하시오"


노부나가의 말을 들은 아나야마는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로카부레'라는 죽음의 병에 대해 처음부터 지휘계통을 재구축하는 것보다, 현지의 주민과 연결고리가 있는 영주를 책임자로 세우는 쪽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된 것이다.

이에 의해 아나야마의 영토는 보장되어, 도쿠가와 가문 수하의 신하로서 일하면서 코우슈 전역을 잠식하는 죽음의 병과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옛! 이 아나야마, 목숨을 걸고 이행하겠나이다"


노부나가의 결정과 그것을 받아들인 아나야마를 보며 이에야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부로부터 침공해왔던 도쿠가와 군은, 코우슈 분지 부근의 유행지에서 '도로카부레'의 확진자(罹患者)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에서 남부로부터 북상하는 루트를 취한 도쿠가와 군에 대해,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도로카부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물 속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뱃속에 자리잡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등의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다름아닌 시즈코로부터의 정보인 것과, 상세한 병리(病理)에 대해 키록된 자료 및 사진이라는 설득력이 높은 시각 정보가 결정타가 되었다.

그러한 이유도 있어서인지, 이에야스는 아나야마를 받아들인 후에 현지를 안내하게 했다. 거기서 그는 지옥도에 나오는 아귀(餓鬼)처럼 배가 부풀어오르고 팔다리가 막대기처럼 바싹 마른 주민들을 보게 된다.


그 이후 이에야스는 '도로카부레'에 대해 만전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로부터 감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시즈코로부터 대여받은 생석회를 뿌리거나, 방비를 갖춘 병사들에게 잡초를 베게 하는 등 안전을 확보하면서 진군했다.

그 결과, 진군 속도는 대폭 떨어져서 신푸 성이 함락될 때까지 합류할 수 없었으나, 실제로 방역을 하면서 진군한다는 얻기 힘든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 '도로카부레'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는 없다. 중간 숙주인 미야이리가이(ミヤイリガイ)를 경유하지 않으면, 감염능력을 갖는 세르카리아(cercaria)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 분변이나 오줌에 포함된 벌레알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미야이리가이를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감염되는 경우는 있다.

미지의 공포스러운 죽음의 병의 현 상황을 알게 된 이에야스는, 아나야마가 '도로카부레'를 박멸하는 데 주력하는 것에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이것으로 논공행상을 끝내겠다. 나는 지금부터 아즈치(安土)로 돌아갈테니,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연락이 있을 것이다"


"기다려 주십시오, 오다 님"


할 말을 마친 노부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걸음으로 방을 나가려고 했을 때 이에야스가 불러세웠다. 노부나가가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냈지만,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말을 이었다.


"들으니 후지(富士) 산을 구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저희 영토를 이용해 주십시오. 후지 산을 마주보는 명당(景勝地)을 안내해드리지요"


"……확실히 후지 산은 험난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 제안을 고맙게 따르기로 하지"


"맡겨 주십시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직접 후지 산을 등산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야가 탁 트인 언덕에서 일출을 반사하여 빛나는 후지를 사진에 담아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바가 없어서, 계획성이 없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거기에 이에야스의 제안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에야스가 솜씨를 보일 상황이 된다. 노부나가 일행의 안내를 맡는다는 것은, 그 길의 사전 정리도 포함된다.

즉 도중에 건달패거리와 조우하는 것 같은 해프닝이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에야스는 가신들에게 지시를 내려, 노부나가 일행이 통행할 루트를 정하고는 그 정비를 명했다.

가는 길에 산이 있으면 산적 토벌을 하고, 물이 불어나 다리가 끊어진 강이 있다면 벼락치기 공사로 재건시켰다. 게다가 숙소가 되는 절이나 사찰에 관해서는, 사전 연락을 보내어 총력으로 청소를 하게 하고, 금은을 기진(寄進)하여 숙방(宿坊)은 물론이고, 노부나가를 따르는 병사들의 침상까지 만들게 했다.

그렇게 이에야스가 분발하고 있는 와중에, 노부타다와 나가요시는 잠시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의 싸움은 대체적으로 순리대로 결판이 났군요"


"뭐, 총대장이 공이 없다는 흠은 생겼지만 말이지"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농담을 하는(混ぜっ返す) 노부타다의 모습에 나가요시는 짓궂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주 목적인 혼인 허락은 딱 받아내시는 부분은 빈틈이 없으시군요"


"타케다의 당주를 처치했다는 명성과, 토우고쿠 정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실적. 이것들이 갖춰지면 마츠(松)를 처로 맞아들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


"아무래도 좀 지나치게 멋대로 행동하셨다고 주상(上様)께서는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만?"


"신상필벌을 철저히 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화내고 계신 듯 보이지만, 결국 처벌(お咎め) 없이 용서받았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지"


"그 노기는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좋겠죠. 그보다 노부카츠(信勝)는 어땠습니까?"


"성장했다면 무서운 실력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카츠요리가 전사한 후, 자결해서 뒤를 따를 거라 생각되었던 노부카츠였으나, 예상을 뒤엎고 노부타다에게 일기토를 신청했던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를 패배시킨 노부타다에게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마지막에 한 방 먹이겠다고 도전한 것이리라.

결과는, 제대로 치고받는 일도 없이 한 칼에 베여 쓰러졌다. 일기토를 앞두고 노부카츠는 가신들에게 뒤를 따르는 것을 금했기에, 그들은 무장을 버리고 오다 군에게 투항했다.

검분(見分)이 끝난 카츠요리의 목과 노부카츠의 유체를 돌려받은 호죠 부인(北条夫人)은, 출가하여 평생 그들의 명복을 빌며 살 것이라 했다.


"그보다도 문제는 '도로카부레'로군. 뭔가 시즈코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인데, 자세한 보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방침으로서는 유행지에서 주민들을 격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었는데"


"어!? 병마에 당한 녀석들을 움직여도 괜찮은 거야?"


놀랐는지, 얼결에 원래 말투로 돌아온 나가요시가 노부타다에게 물었다.


"어, 듣자 하니 뱃속에 벌레가 들어앉는 병인 모양이다. 병자의 뱃속에 들어찬 벌레들은 어지간해서는 다른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더군"


"아, 사진으로 지겹게 봤던 그거로군. 새끼손톱 끝부분보다도 작은 크기인 모양인데,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우글거린다는 건 소름이 끼지는 이야기야"


"듣자 하니 기생충이라는 생물인 모양이야. 타인의 생혈(生血)을 빨아 살을 찌우는 거머리 같은 생물이군"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성가시지만, 그 뭔가 하는 조개를 씨를 말리면 되는 거지?"


"그래. 하지만, 그게 터무니없이 어렵다고 들었다. 조개의 숫자가 까마득하게 많은데다, 물이 있는 곳 뿐만 아니라 땅에도 있어서, 조금이라도 남기게 되면 순식간에 불어난다고 하더군……"


'도로카부레'의 근절이라는 장대한 난제의 일단을 얼핏 엿본 두 사람은, 그 밑 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일에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카부레' 박멸의 제 1보는 역사적 사실대로 병리해부(病理解剖)로 막을 올렸다. 아무리 병리적 메커니즘(機序)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배를 열어 간장(肝臓)의 상태를 확인하고 틀림없이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정해야 한다.

다행히 전시(戦時)였기에 검체(検体)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전사한 유체들 중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배가 부풀어 있는 자들을 골라 배를 열었다.

종군하고 있던 방역부대인 금창의중(金瘡医衆)은, 물이 새지 않는 수지(樹脂)로 된 장갑이나 앞치마(前掛け)로 몸을 감싸고, 유체의 배를 열어 간장을 노출시킨 후, 그 문정맥(門脈)에 칼을 넣었다.

절개된 문정맥 내부에는 벌레알이 가득 차 염증을 일으켰고, 그것을 부풀어오른 살이 감싸는 육아종(肉芽腫)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도로카부레'의 병변(病変)과 그 원인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작업들과 병행하여 중간 숙주인 미야이리가이의 회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청취 조사가 이루어져, 급속도로 연구 거점이 구축되어 갔다.

'도로카부레'를 규명(究明)하는 금창의중들은 시즈코에게서 역사적 사실대로의 실험을 하도록 지시받았기에, 정해진 수순(手順)에 따라 착착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체제가 갖춰지는 것을 지켜본 노부나가는, 강기슭을 피해 도쿠가와 군과 함께 남하하면서 후지 산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일본 제일로 이름높은 영봉(霊峰), 후지인가!"


이에야스에게 안내된 장소에서 바라보는 후지 산은 그야말로 절경(絶景)이었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들판(裾野)에서 산기슭까지 물들이는 푸르름이 선명하게 보였으며, 도중부터 희게 잔설(残雪)이 남은 산꼭대기 부분이 빛나는 듯 했다.

절경에 취해 있던 노부나가는 제정신을 차리자, 즉각 기술자들에게 이 풍경(眺望)을 사진에 담도록 명했다. 망원렌즈나 고감도 필름 등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의 촬영은 난항을 겪었으나, 그래도 간신히 아름다운 후지 산을 담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시종 기분이 매우 좋았던 노부나가였으나, 이에야스는 물 위의 백조처럼 우아한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무리해서까지 노부나가를 초대하여 접대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금후의 오다 가문에 대해 도쿠가와 가문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타케다의 침공을 막는 최전선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인정받았던 도쿠가와 가문이다. 그 타케다 가문이 멸망한 이상, 금후에는 그 이용가치의 저하에 의해 도쿠가와 가문의 지위가 하락할 우려가 있었다.

이미 호죠를 공격해 멸망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도쿠가와 가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낙관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의 코우슈 정벌에서 대활약한 나가요시의 전과를 보면, 오다 가문 혼자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예전부터의 약정에 따라 스루가를 얻었으나, 이 다음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 없다"


현재의 도쿠가와 가문은 미카와(三河), 토오토우미(遠江), 스루가의 세 나라를 품고 있으나, 이대로 오다 가문이 약진을 거듭한 경우에는 자주독립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적어도 금후 십 년을 내다보고 행동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겨 시끌벅적한(湧きたつ) 도쿠가와 가문에서 이 얼얼할 정도의 긴장감을 품고 있는 것은 이에야스 뿐이었다. 다른 가신들은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계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동맹의 중요 인물인 노부나가를 대접하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사라는 인식은 공통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가로막은 것인 텐류가와(天竜川)의 도하(渡河)였다.


"아바레텐류(暴れ天竜, 텐류가와를 말함, ※역주: 직역하면 '난폭한 텐류')에 다리를 놓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미증유(未曾有, 옛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의 대공사입니다!"


"코텐류(小天竜)라면 놓을 수 있겠지만, 오오텐류(大天竜)는 불가능합니다"


"여기는 안전을 꾀하여 배편으로 건너도록 하죠"


현재의 텐류가와는 유역(流域)이 일원화되어 있지만, 이 시대에는 동쪽에 한 줄기, 서쪽에 두 줄기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동쪽을 오오텐류, 서쪽을 코텐류라고 불렀으며, 스와 호(諏訪湖)를 수원지로 가져 방대한 수량을 자랑하는 하천이었다.

그 때문에, 한 번 큰 비가 내리면 빈번하게 홍수를 일으켜서 '아바레텐류'라고까지 불리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겐로쿠(元禄) 시대에서 메이지(明治) 초기에 이르는 약 170년 동안 40회의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5년에 한 번은 홍수가 발생한다는 계산이니 다리를 놓는 것 따위 꿈 같은 소리여서, 놓아봤자 떠내려갈 게 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그 '아바레텐류'를 제어하여 배를 띄워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판을 놓은 선교(船橋)를 놓겠다고 제안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해내야 사람이 감동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얼마나 자금이 들던 성공시키라고 엄명했다.

그리하여 노부나가 일행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변 일대에서 배를 닥닥 긁어모으고, 목수들을 유괴나 다름없이 데려와서 공사를 하게 했다.


이러한 결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노부나가가 텐류가와에 도착할 무렵에는 훌륭하게 일렬로 이어진 선교가 완성되어, 일행이 다 건널 때까지 무너지지도 않았다.

벼락치기 공사를 한 탓인지 배의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교판(橋板)이 여기저기서 기울어 있거나, 걷기에 어려울 정도의 단차가 생겨 있거나 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것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종 매우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즐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게 기분이 좋은 노부나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노기를 띠고 있는 시즈코의 모습이었다.

평소 온화한 사람일수록, 표변했을 때의 낙차가 크다고 한다. 그것을 몸으로 알게 된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생각하고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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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7 1577년 4월 상순



타케다(武田) 영토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동쪽으로부터는 오다 군이 노도의 기세로 공격해오고 있었고, 퇴로가 되어야 할 남쪽으로부터는 도쿠가와(徳川) 군이 착실하게 쳐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타케다 가문을 이끄는 카츠요리(勝頼)와 영민(領民)들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특히 타케다 영토의 서쪽 끝 부근, 미노(美濃)와의 국경 부근의 마을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국과 내통하여 오다 군을 영내로 끌어들이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는 주로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에 의한 정치적 책략(調略)의 영향이 크지만, 본래 당주(当主)를 보좌해야 할 일족들(一族衆)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영민들을 돌아보지 않는 압정(圧政)을 펼친 카츠요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영내의 상황은 적군이 다가올수록 심각함을 더해가서, 결국 타케다 가문 일족들의 필두(筆頭)인 아나야마 노부타다(穴山信君)가 오다 가문으로 변졀한 것을 계기로 조직이 완전히 붕괴했다.

주군을 저버린 일족들은 오다 군을 마주치자 일찌감치 항복하고, 또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후(戦後)를 맞이하기 위해 오다 군에게 편의를 봐 주는 사람도 많이 나왔다.


"이름높은(名にし負う) 타케다의 운명도 이제 여기까지다. 그대는 부모가 있는 호죠(北条)로 돌아가도록"


카츠요리는 회한(悔恨)이 묻어나오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카츠요리에게 오다 군이 곧 타카토 성(高遠城)에 다가온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아내인 호죠 부인(北条夫人,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6녀라고 하는데, 이름은 확실하지 않기에 이렇게 호칭한다) 및 적자(嫡子)인 노부카츠(信勝)를 후방의 이와도노 산성(岩殿山城)으로 피난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와도노 산성을 다스리는 타케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장로(家老衆)이자 타케다 24장(将) 중 한 명으로도 꼽히는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는 이미 오다 가문으로 변절한 상태라, 사전 연락(先触れ)을 보냈더니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뜻이 담긴 대답이 돌아오게 되어 카츠요리는 패배를 깨달았다.

퇴로가 끊긴 카츠요리에 대해 아들인 노부카츠는 함께 자결하자고 진언하기까지 했다. 예전에 신겐(信玄)을 섬겼던 많은 무장들이 카츠요리를 떠났으며, 예전의 주군에게 칼끝을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자취를 감추거나, 보신(保身)을 위해 카츠요리의 거성(居城)인 신푸 성(新府城)으로 공격해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과 적자인 노부카츠의 목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요하지만, 동맹을 맺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던 호죠 부인의 목까지는 베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카츠요리는 아내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지만, 호죠 부인은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죠에서 시집왔을 때부터 이 몸은 시로(四郎) 님과 함께 있사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사옵니다"


"……그런가"


아내의 결의를 들은 카츠요리는 번의(翻意)를 촉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당주인 카츠요리가 처자식을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신푸 성에 몰려 있던 장병들도 앞다투어 도망치고 있어, 이제는 그녀를 호죠까지 데려갈 직속 부하들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이미 오다 군은 타카토 성에 접근하여, 머지않아 함락(落城)되겠지. 후방을 지키고 있던 아나야마가 도쿠가와와 호응하여 공격해오겠지만, 그보다도 빨리 오다 군이 이곳으로 밀어닥칠 거라 보고 있다"


카츠요리는 머지않아라고 말했으나, 이 시점에서 이미 타카토 성은 함락되어 있었다. 이미 사기가 붕괴한 타케다 군은, 나가요시(長可)들 별동대와 합류한 노부타다(信忠)가 이끄는 본대의 맹공을 견뎌내지 못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어 버렸다.

나가요시들의 공성에서도 드러났듯이, 기술 레벨이 동떨어진 상태에서의 농성전은 성립하지 않아서, 당주인 카츠요리에게 함락 보고를 전할 전령을 도망치게 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노부타다는 함락된 타카토 성에 최저한의 병사들만 남기고 즉시 신푸 성을 향해 진군했기에, 카츠요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까지 육박하고 있었다.


"저승길(死出の旅)을 갈 준비도 제대로 할 겨를이 없다니 오다 나으리(殿方) 께서도 성미가 급하시군요. 하지만 조용히 목숨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본때를 보여주지요"


"그렇군. 카이(甲斐)의 타케다가 여기 있다고 보여줘야 하겠지"


이미 죽음을 기다릴 뿐이라는 상황에 놓인 호죠 부인의 익살(軽口)에 카츠요리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즉시 표정을 조이고 말했다.


"후카시 성(深志城)으로부터의 전령이 가져온 보고가 사실이라면, 타카토 성은 이미 함락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푸 성을 지킬 병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대들에게 평온한 최후를 선택하게 해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시로 님께서는 치고 나가실 생각이시지요? 그렇다면 시로 님께서 숙원(本懐)을 이루시는 것을 지켜본 후에 뒤를 따르겠사옵니다. 게다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사옵니다"


지금 신푸 성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상처를 입어 도망칠 수 없는 병사들이나, 설령 도망쳐봤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카츠요리가 직접 키워낸 직속(子飼い) 부하들은 남아있었으나, 그러한 은의(恩義)나 충의(忠義)에 의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가라앉은 배에서 도망치는 쥐새끼들처럼 앞다투어 도망친 자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감사해도 벌은 받지 않을것이라고 카츠요리가 감상적이 되어 있을 때, 맹수의 울음소리같은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 이거야 원(これはしたり). 부부의 오붓한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나, 뱃속 벌레가 울어젖혀 버렸소이다"


비감한 장면(愁嘆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허를 찔린 카츠요리가 호죠 부인을 등 뒤로 감추며 목소리의 주인의 정체를 따져물었다. 방심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카츠요리 역시 버젓한 무인으로, 이 정도로 가까이까지 접근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카츠요리의 눈에 비친 인물은 무기(寸鉄)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으나,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거구에 한 눈에 알 수 있는 늠름한 근육이 터질 듯 법의(法衣)에 감싸인 괴위(魁偉)한 모습이었다. 생물로서의 본능이 카츠요리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것을 의지의 힘으로 억눌렀다.


"잠시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들켜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요. 소인(拙者)은 별볼일없는 수행자(山伏)인 카레이(華嶺)라 하외다. 타케다 시로 님이 맞습니까?"


"이제와서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내가 타케다 시로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내 목이냐?"


"핫핫핫, 농담은 그만두시지요. 아직 수행중이라고는 하나 예전에는 승려를 꿈꾸었던 몸, 목숨을 빼앗을 때는 그 목숨을 남김없이 먹는 것을 스스로의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동족을 먹고 싶지는 않군요"


카레이교자(華嶺行者)는 그렇게 말하고 쾌활하게 웃었으나 카츠요리는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산에서 곰을 만났을 때에도 느꼈던, 거대한 짐승이 뿜어내는 열기와 같은 기운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그 날의 곰은 변덕으로 떠나갔지만, 이 괴인은 그러지 않으리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호죠 부인을 도망치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빈틈을 엿보았으나, 카레이교자는 딱히 무슨 자세를 취하고 있지도 않은데 빈틈이랄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그 카레이 님이 내게 무슨 볼일이지?"


"오다 칸쿠로(勘九郎) 님으로부터의 전언을 맡아가지고 왔습니다. 마츠히메(松姫)를 싸움에서 피하게 해준 것에 보답하고 싶으니, 타케다 시로 님과 일기토(一騎打ち) 승부를 하고 싶습니다. 하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일기토라고!?"


카레이교자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카츠요리는 괴이쩍은 표정을 떠올렸다. 일기토를 할 것까지도 없이 이미 대세는 결판이 났고, 압도적으로 우위인 오다의 총대장인 노부타다가 위험한 짓을 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소인은 무사가 아니라 그 뜻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쓰러지기 보다, 대장들끼리의 일기토에서 산화하시는 쪽이 명예가 되지 않겠소이까?"


"내가 처음부터 진다는 말투로군"


"핫핫핫. 칸쿠로 님은 실로 제 주인께서 직접 단련시키신 분. 젊다고 방심했다가는 자기 목이 떨어진 것도 깨닫지 못하실 거외다"


"나 역시 무문(武門)의 명문, 타케다의 당주이다. 그리 쉽게 져줄 수는 없다!"


"그리하면 결투(果し合い)로 자웅을 결하시겠다는 뜻으로 보아도 좋겠습니까?"


카레이교자의 물음에 카츠요리는 눈에 열기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아까까지의 체념(諦観)에 물들었던 카츠요리가 아니라, 무인다운 패기에 가득찬 사나이(偉丈夫)의 모습이 있었다.


"각오는 틀림없이 확인했소이다. 차후 사자가 상세한 이야기를 전하러 올 것입니다"


의외로 붙임성있는 미소를 떠올린 카레이교자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공중제비를 넘으며 열려 있던 문(板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카츠요리도 다급하게 뒤를 쫓았으나, 그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도 말했듯이 타카토 성은 전투가 시작된 후 겨우 하루만에 함락되었다. 그 이유는 실로 단순하여, 패러다임 시프트라고도 불러야 할 혁명적인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선발대(先遣隊)인 나가요시 군과 본대인 노부타다 군은 타카토 성을 눈앞에 두고 합류하여, 사전에 전달된 정보 및 변절한 타케다 측 무장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퇴로를 차단하도록 포진했다.

약간 멀찌감치 포진하고 그 날이 가기 전에 타카토 성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진군 속도가 늦은 부대를 기다려 부대를 재편성할 시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과 함께 전투 북(戦太鼓)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굉음이 울려퍼지며, 견고할 터인 성문이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것은 야음(夜陰)을 틈타 성문에 폭약을 설치해 둔 결과이지만, 타케다 측에서는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혼란을 틈타 정면에서는 노부타다 군이 대거 밀어닥쳤다. 때를 같이하여 뒤쪽에서는 척탄통(擲弾筒)을 장비한 나가요시 군이 차례차례 방어 설비를 파괴하며 공격해 올라갔다.

애초에 도망자가 줄을 이어 수비병도 줄어든 상태에서 방어 설비를 아랑곳하지 않는 맹공을 받고, 전의를 상실하고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높이 떠오른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성주인 니시나 모리노부(仁科盛信)는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분투하기는 했으나 오야마다 다이가쿠노스케(小山田大学助)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패배를 깨달았다.

부하 장수들에게 자신의 목을 가지고 오다에게 투항하라고 전한 후 자결했다.



전국시대에서도 굴지의 규모를 자랑한 타카토 성이 함락된 요인은 오로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견고한 성에 틀어박혀 싸우면, 자군의 배가 되는 적을 상대로도 선전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대구경의 포나 고성능의 화약 앞에서는, 종래의 성문이나 성벽은 조금 튼튼한 칸막이에 지나지 않는다.

타케다도 완강하게 구태의연한 전법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철포(鉄砲)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숫자를 갖추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성공체험에 뒷받침된 기마대 편중의 부대 편성이나 철포를 경시하는 흐름을 뒤집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기마대의 돌격 거리를 훨씬 상회하는 사정거리와 충분한 명중 정밀도와 위력을 갖춘 신식총(新式銃)의 등장에 의해 그것들은 과거의 것이 되었다.

성벽에 둘러싸여 구불구불하게 휘어진(九十九折) 길에 의해 적 부대를 길게 늘려, 총안구(銃眼)나 성가퀴(矢狭間)로부터 공격을 가한다는 정석적인 방어는 힘없이 먹히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하필이면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는 대포를 사용하여 성벽을 일직선으로 뚫어가며 전진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곳곳에 분산되어 배치된 병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졌고, 최단거리를 공격해 들어왔기에 물을 채운 해자(堀) 이외에는 발목을 잡지도 못했다.


"타카토 성을 하루만에 함락시키고, 나아가서 대장인 카츠요리를 일기토로 처치한다. 타케다가 자랑한 '무(武)'와 '군(軍)' 양쪽을 철저하게 박살내어 승자와 패자의 모습을 뚜렷하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가요시는 유쾌한 듯 웃으면서 옆에 서 있는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함락된 타카토 성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노부타다는 어느 정도의 부대를 남겨두고 진군을 개시했다.

지금까지 별동대를 이끌고 있던 나가요시는 충분히 전공을 세웠다고 하여 후방으로 돌려져, 대장인 노부타다를 곁에서 모시는, 영예롭기도 하면서 폭주하는 나가요시를 매어둘 목줄이기도 한 역할이 주어졌다.


"이 싸움에 앞서, 타케다 님은 내 아내가 될 마츠히메를 에린지(恵林寺)로 피신시켜준 은혜가 있다. 이대로 무명의 병사에게 죽기보다는 일기토로 결판을 내는 쪽이 무사로서 바라는 바이겠지"


"확실히 어설프게 도망쳤다가 패잔병(落ち武者) 사냥에 걸려들거나 하면 비참한 최후가 되겠군요"


"그리고 타케다가 오다 앞에 굴복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여주는 이점도 있지"


"이제와서 일기토를 방해하려는 발칙한 놈(不心得者)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두 분께서 자웅을 결하는 자리에는 소생이 동행하지요"


"자네만 믿겠네, 오니무사시(鬼武蔵, 나가요시의 별명)"


그렇게 말하고 노부타다와 나가요시는 마주보고 웃었다. 시즈코 저택에서는 서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으나, 전쟁터에는 엄격한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무법자로 보이는 나가요시였으나, 군에서의 상하관계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 자리에 걸맞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의 전령(早馬)에 따르면 조만간 주상(上様)께서 이쪽으로 오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즈코 님도 오시겠군요"


"아버지와 시즈코, 어느 쪽도 대체 불가능한 우리 군의 급소.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나, 한 번에 잃을 우려가 있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만"


"과연. 주상께서는 저희들의 모습을 보신 후, 후지(富士) 산을 구경하시고 오와리(尾張)로 돌아가신다고 하였습니다. 후지 산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후지 산은 시즈코도 신경쓰고 있었지. 하지만, 그 주변은 도쿠가와의 영토이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에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는 신푸 성에 도착했다. 사전에 사자가 파견되어 카츠요리와 교섭한 결과, 신푸 성은 무혈(無血) 개성(開城)하여 노부타다의 본대는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카츠요리는 자신의 직속 부하들만을 이끌고 텐모쿠(天目) 산에 진을 쳤고, 거기서 일기토를 할 예정이었다. 신푸 성 안에 남겨져 있는 것은 병자들이나 부상자들, 투항할 의사가 있는 자들이 무장을 해제한 후 한 방에 모아져 있었다.

가능성은 낮다고 하나 속임수(騙し討ち)를 경계하면서 진군했지만, 카츠요리는 약정한 대로의 조치를 취한 후 철수하였고, 노부타다는 군을 기동력 중시의 소부대로 재편성했다.


"자, 연이은 싸움으로 다들 피곤할 거라 생각하니, 오늘은 여기서 충분히 영기(英気)를 비축하여 내일의 결전에 대비하도록"


노부타다의 호령에 의해 군은 신푸 성에서 휴식을 취했다. 군 끼리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고, 남은 것은 대장들끼리의 일기토라는 영웅담(英雄譚) 같은 전개에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날이 밝자 노부타다는 직속의 정병 1천 명만을 이끌고 곧장 텐모쿠 산으로 향했다. 기마를 중심으로 편성했기에, 노부타다의 부대는 겨우 한나절 정도에 카츠요리가 진을 치고 있는 텐모쿠 산 기슭에 도착했다.

곧 해가 질 무렵이기도 했기에, 서로의 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노려본다는 기묘한 구도가 되었다. 그리고 노부타다가 일기토의 시간(刻限)을 전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려 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노부타다의 진을 찾아왔다.


"재미있군. 만나도록 하지"


노부타다의 진을 찾아온 것은 타케다 카츠요리 본인이었다. 사전 연락도 없이 몇 명의 종자만을 데리고 찾아온 카츠요리를, 노부타다는 자기 진으로 맞아들이며 정면에서 마주보는 형태로 대면했다.

카츠요리는 일기토를 제안한 노부타다를 신뢰해서인지, 전쟁 복장인 상태이긴 했으나 칼을 맡겨놓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가. 나는 타케다 시로, 아버지 신겐의 뒤를 이은 타케다 가문 20대 당주이외다"


"처음 뵙겠소. 나는 오다(織田) 단죠노죠(弾正忠)의 적자(嫡子), 칸쿠로이외다. 그럼, 서로 칼날을 맞대려 하는 전날 밤에 직접 진을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이오이까?"


노부타다의 질문에 카츠요리는 깊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우선은 패군(敗軍)의 장인 내게 예의를 갖춰주신 점에 감사드리오. 내일은 일기토에서 자웅을 결하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 이기던 간에 우리 군은 귀군에게 투항할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든 카츠요리의 눈은 죽어 있지 않았다. 성을 나와 진을 치고 있었기에 약간 지저분해져 있긴 하나, 카츠요리는 패기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뻔뻔하다는 것은 알지만 부탁드리겠소. 승패의 여하에 관계없이 나는 자결할 것이오. 대신 내게 따라와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해주시기 바라오"


"귀하와 아드님(御嫡男) 이외에 대해서는 내 이름에 걸고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겠소. 단, 주군의 뒤를 따르려는 자들은 막을 수 없소이다"


"감사드리오. 그렇다면 일기토를 앞두고 이 이상 자리를 함께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만 실례하겠소"


카츠요리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따라와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줄 것을 탄원했다. 그리고 노부타다는 카츠요리와 그의 아들인 노부카츠 이외에 대해서는 보증할 뜻을 확약했다.

이 시대에서는 대장과 그 적자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책임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그것을 얻어낸 카츠요리는 노부타다의 진을 떠나려 했다.


"기다리시오. 보아하니 충분히 준비를 갖추지 못하신 것으로 보이오. 다른 천막에 목욕물과 식사를 준비시킬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오"


"이미 온정은 충분히 받았소. 이 이상은 필요없소이다"


"동정하는 것이 아니오. 일기토 상대가 볼품없어서는 내가 곤란하오. 만전의 태세를 갖춘 귀하에게 승리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도 받아들여 주시오"


"……알겠소"


카츠요리는 노부나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무를 추구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마지막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의가 무뎌지지 않도록 머리를 숙인 채 등을 돌리며 카츠요리는 노부타다와의 회담을 끝냈다.

노부타다로서오 이 일기토에는 큰 의미가 있다. 타케다의 총대장을 자기 손으로 처치하는 것에 의해 처음으로 가슴을 펴고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질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었으나, 승패는 병가지상사이기에 노부타다도 목욕물을 가져오게 하여 몸을 씻고 수염을 정리하고, 머리카락에 기름을 발라 정돈했다.

내일이 되면, 일본의 추세(趨勢)를 좌우하는 일기토가 벌어진다.




긴장이 고조되는 카이에서 멀리 떨어진 오와리에서는, 시즈코가 오랜만에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시즈코 저택에 머물고 있던 노부나가가, 전화(電話)에 의한 정시 연락을 통해 노부타다와 카츠요리의 일기토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다급하게 직속 부하들을 모아 카이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 왈 "만에 하나라도 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하나에 대비해야 한다. 괜한 걱정이었다면 유람이나 즐기자"라는 것으로, 속도를 중시한 편성을 한 군을 이끌고 곧장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진로는 노부타다의 침공 루트를 따라가는 형태가 되어, 노부타다의 군이 구축한 중계 기지마다 말을 바꿔타고 가는 강행군이 된다.

당초에는 시즈코를 동행시킬 예정이었으나, 우연히도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노부나가와 동행하게 되어서 시즈코는 오와리에서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 분이 함께 유람 여행이라니, 주군도 참 팔자가 좋으시구나"


노부나가가 오와리를 떠난 것과 교대하듯 기후(岐阜)를 지키고 있던 노히메(濃姫)가 시즈코를 찾아왔다. 이번의 노부나가와 사키히사에 의한 토우고쿠(東国) 원정은 십중팔구 유람 여행이 될 거라 판단한 노히메는 드물게 투덜댔다.

시즈코는 노부타다가 자리를 비운 동안 기후 성을 맡아보고 있어야 할 노히메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되는가 하고 물었으나, 정작 본인은 입가에 손을 대고 매력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까지 자리를 비웠으니 발칙한 것들이 움직이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시즈코가 자랑하는 전신(電信)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후와 오와리 정도라면 모두 내 손바닥 위에 있느니라"


일부러 자리를 비움으로서 내버려두고 있던 용의자들을 유인해낼 생각이라는 것을 헤아린 시즈코는 어쩐지 무서워졌다.

노히메가 아무리 우수한 첩보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인 거리가 엄연히 가로막고 있다. 어떻게 그녀가 정보를 얻고 있는지, 시즈코로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노히메 님께서는 사전에 막으려고는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호호호. 사람이 욕심을 가지는 한 악의 싹은 사라지지 않느니라. 그런 걸 아무리 뽑아도 끝이 없지. 그렇다면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가까운 존재를 통해 적당히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확실히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변함없으니, 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부추기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마(魔)가 낀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마라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 숨어있는 것이니라. 진짜 마가 자라기 전에 내가 솎아내주고 있는 것이지. 친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시즈코도 조직을 이끄는 지위에 있기에 노히메가 하려는 말은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나 달콤한 유혹에는 저항하기 힘들기에, 엄격히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쉽게 휩쓸려 버린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신앙이라거나 주군에 대해 손득(損得)을 초월한 은의라거나 하는 것인데, 노히메는 그런 불확실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일벌백계를 통해 경고하는 것이다.

결코 입 밖으로 꺼내거나 태도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그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고를 해도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니 인간의 업보라는 것은 구제불능인 것이다.


"언니, 이곳에 계셨습니까"


"이치(市) 아니냐.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느냐?"


노히메와 이야기하면서도 시즈코가 업무를 계속하고 있을 때 오이치까지 나타났다. 이거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이 되질 않겠네라고 시즈코가 포기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용무가 있는 것은 노히메였기에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말없이 귀만 기울인 채 업무를 계속했다.


"시즈코도 있다니 마침 잘 됐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출발하신 것을 마치 재고 있었던 것처럼, 친족 중 한 명이 내게 언니의 소행(所業)에 대해 떠들고 다니더군요. 아무래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어서 언니께도 상담드리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아아, 그 녀석 말이냐? 주군 앞에서는 빌려온 고양이처럼 얌전히 행동하지만, 이렇게 빈틈을 보이면 당장 마각을 드러내지. 그야말로 범의 위세를 빌리는 여우로다"


그에 대해 노히메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듯,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소를 떠올렸다. 이러한 뒷공작은 본인에게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눈 앞에 드리워진 먹이에 달려들어 버린 꼴이 되었다.


"오늘 마지막 정시 연락은 아까 끝났으니, 긴급이 아닌 한 주상께 연락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호호호. 이런 사소한 일로 주군의 심기를 어지럽힐 것도 없겠지. 오다 가문 내부에서 조용히 대처할 것인데, 이치도 그걸로 괜찮겠느냐?"


"언니께서 아시고 계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시즈코는 아직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의 지위를 반납하지 않아서 이렇게 오다 가문 내부의 추문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노히메가 대처한다.

시즈코는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된다. 조금 소화불량이긴 하지만, 이걸 캐물어봐야 얻는 것도 없었기에 내버려두고 있었다.


"뭘 하실 생각이신진 모르겠지만, 너무 일이 커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호호호.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이 그대로 되돌아오는 것 뿐이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아니냐?"


(아, 이거 내쫓기는 거구나)


오다 가문 내에는 적류(嫡流)와 서류(庶流)라 불리는 구분이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본가(本家)와 분가(分家)에 해당하는데, 노부나가도 따져보면 서류 출신이었다.

그러나, 적류였던 아버니 노부히데(信秀)의 정실(正室)이 이혼(離縁)당하고 노부나가의 어머니가 후처(継室)가 된 것으로 노부나가는 노부히데의 후계자가 되어 적류로 편입되게 된 경위가 있다.

서류는 적류를 뒷받침할 의무가 있는 것과 동시에, 적류도 서류를 안정(安堵)시킬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구조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야심을 품고 자신이 적류가 되려는 자들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난다.

적류의 비호를 받으면서 그에 대해 이빨을 들이대려고 하는 버릇없는 개의 말로 따위 뻔한 것이다.


"안 그래도 전시(戦時)인데, 집안 소동 같은 건 일으키지 말아 주세요"


"그놈 정도로는 그다지 소란도 안 일어난다. 얌전히 있으면 모른 척 해주었을 것을…… 어리석도다"


(보이는 곳에 먹이를 매달아뒀으면서 이런 말이라니)


"분수를 모르니 파멸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지"


"이치의 말대로니라. 나도 걸려온 싸움은 받아줘야 하지"


"싸움조차 안 되잖아요……"


시즈코가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손오공(孫悟空)'과, 그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았던 '석존(釈尊)' 같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참으로 시즈코는 상냥하구나. 하극상을 꾸민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꿈을 이루려 도전하는 것. 그 꿈이 깨졌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뒷담화(陰口)를 하고 다니는 게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설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죠……"


"그런 뒷담화라는 것은 의외로 성가신 법이니라. 들은 쪽이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조금씩 앙금처럼 마음에 쌓여서, 뭔가의 계기로 싹을 틔우기 때문이지"


"이치의 말대로니라. 그러니 내가 나쁜 짓은 파멸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들이대주는 것이지. 참으로 관대하지 않느냐?"


이미 그 사람의 미래는 정해져 버린 것 같다고 시즈코는 깨달았다. 어울리지 않는 야심을 품은 그는, 과연 물어뜯으려 든 상대의 거대함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름을 들어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그에게 조금이지만 연민을 느낀 시즈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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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6 1577년 4월 상순



히데요시(秀吉)가 안고 있는 문제란 '시즈코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으로 집약된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에 취임한 이래로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히데요시로부터의 문의가 유독 많았다.

자신의 영지인 이마하마(今浜, 현재의 나가하마(長浜))의 운영에 실패했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의존해버린 것이 발단이었지만,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강심제(カンフル剤, kamfer)나 마찬가지인 시즈코의 경제 대책은 자신이 내놓는 시책과의 차이를 부각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자신의 시책에 자신을 갖지 못하여, 큰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시즈코에게 의견을 구하게 되어, 그 자세를 본 오다 가문 내의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히데요시를 시즈코의 꼭두각시 인형(操り人形)이라고 야유했다.

그런 와중에, 간신히 하리마(播磨) 평정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올린 것으로 히데요시가 재평가되고 있었다. 난세에서는 전쟁 수완이 뛰어난 것이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경위를 감안하면, 아리마(有馬) 온천(温泉) 개발에 다시 시즈코의 조력을 구하는 것은 히데요시의 평가를 낮추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우려하고 있었다.


"코우베(神戸) 항구의 개발에 관해서는 제가 발안자이기에 각 방면에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거기에 아리마 온천 개발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안건에 제가 관여하면, 하시바(羽柴) 님의 체면을 구기게 되지 않을까요?"


코우베 항구는 시즈코가 주력하고 있는(肝煎り) 안건이라, 조정(朝廷) 방면에 관해서는 고노에(近衛) 가문이, 무가(武家) 사회에 관해서는 노부나가의 연줄을 단단히 이용하여 조정을 꾀했다. 그렇기에 코우베 항구 개발에 관해서 대놓고 불평을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었다.

정치적 뱃심(腹芸)에 능한 히데나가(秀長)는, 시즈코가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마 온천 개발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면 체면을 버리고라도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겨우 재평가되고 있는 형님의 평가는 다시 땅바닥을 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背に腹は代えられぬ)입니다"


아리마 온천 개발의 결과로서 창출될 부(富)는, 이러한 불리함을 덮고도 남는 이익을 히데요시에게 가져올거라고 히데나가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고심 끝의(苦渋) 결단에 대해 순풍이 되는 움직임도 있다.


"이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만, 실은 쵸소카베(長宗我部) 님의 영토에 항만도시를 건설할 계획이 있습니다. 게다가 상업으로 되돌아간 사이카슈(雑賀衆)와 연계하여, 내륙으로부터 하천을 통해 사카이(堺)를 경유하여 코우베까지 이어지는 일대 상권(商圏)을 구축하는 구상입니다"


"그렇게까지 큰 이야기가 비밀로 되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가 당연한 의문을 말했다. 그 물음에 대해 시즈코는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한 끝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は一見に如かず)'이라고 판단하고 소성(小姓)에게 지도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잠시 후, 이 시대에서는 이례적인 정밀도를 자랑하는 키나이(畿内)에서 츄고쿠(中国) 지방, 시코쿠(四国)를 경유하여 큐슈(九州)까지 그려진 지도가 놓였다.

시즈코는 역시 소성에게 준비시킨 긴 탁상(長机) 가득히 지도를 펼치고, 히데나가들에게 이것을 보도록 손짓했다. 당시의 가치관으로 지도라고 하면 극비 중의 극비이기에 칸베에는 움찔해버렸지만, 히데나가나 한베에(半兵衛)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랐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륙과 사카이를 잇는 동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栓)이 혼간지(本願寺)입니다. 그들이 퇴거하면 호쿠리쿠(北陸)에서 이마하마, 비와 호(琵琶湖)를 경유하여 우지가와(宇治川), 요도가와(淀川)를 통해 내해(内海)로 나갈 수 있습니다"


시즈코는 호쿠리쿠에 위치하는 에치젠(越前)에 손가락을 놓고, 엣츄(越中)와 노토(能登) 사이를 빠져나가 카가(加賀), 에치젠을 거쳐 비와 호가 있는 오우미(近江)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그대로 비와 호의 남단에서 하천을 따라서, 도중에 아구라이케(巨椋池)를 경유하여 오사카 만(大阪湾)으로 빠져나갔다.

시즈코가 그어보인 경로는 동해(日本海) 측과 태평양 측을 잇는 거대한 유통 경로로 성립된다. 종래에는 전부 육로를 통하거나, 북쪽으로 도는 경우 츠가루(津軽) 해협(海峡)을 빠져나가 크게 우회하거나, 또는 남쪽으로 돌아서 칸몬(関門) 해협을 빠져나가 빙 돌아서 세토(瀬戸) 내해를 경유할 필요가 있었다.

호쿠리쿠 지방은 육로이기는 하나, 나머지를 수운(水運)으로 일직선으로 잇는 새 유통로는 엄청난 시간의 단축을 실현한다. 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이 유통로가 창출하는 권익은 막대한 것이 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쵸소카베 님이 다스리는 토사(土佐)에 항만을 정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다의 지배권을 잇는 유통로를 면종복배(面従腹背)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카이에게 움켜쥐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사카이를 배제하더라도 성립하는 항로를 성립시키기 위해, 오와리(尾張)에서 키이(紀伊)를 경유하여 토사를 잇고, 거기서 더욱 멀리는 명(明) 나라나 남만(南蛮)과의 교역을 실현합니다. 우선 치쿠젠(筑前)까지 연결하기만 해도 사이고쿠(西国)의 유통을 지배할 수 있겠지요"


혼슈(本州)와 시코쿠를 잇는 세토 대교(大橋)나 아카시(明石) 해협 대교, 세토우치(瀬戸内) 시마나미(しまなみ) 해도(海道) 등의 혼슈-시코쿠 연락교(連絡橋)는 당연히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량의 육상물류를 실현할 철도는 시야에 넣고 있지만, 바다를 격한 지역을 이으려면 해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혼자서 너무 잘나가면 미움받는 것이 예상사이기에 사카이를 상권에 포함시키고는 있으나, 급소를 쥐었다고 우쭐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경로를 동시에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과연. 이미 모우리(毛利)와의 '전쟁 이후'를 내다보고 계시는 것이군요"


시즈코의 말에서 칸베에는 모우리의 멸망을 확정 사항으로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모우리의 패배를 의심하고 있지 않다. 다소는 고전을 강요받을지도 모르지만, 지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녀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지 의문을 품은 칸베에였으나, 그녀의 경력을 돌이켜보면 짐작이 갔다. 시즈코가 올린 최대의 무공이라고 하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과의 결전이 되지만, 그 이외에는 애초에 전쟁 자체를 벌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이자면, 초기의 전력(戦歴)을 보면 패전 쪽이 많다. 그래도 그녀가 착실히 세력을 확대해온 것을 생각하니 경악할 만한 사실이 떠올랐다. 즉, '싸우지 않고 이긴다'를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발전시켜 치고받을(切り結ぶ) 것도 없이, 그 이전의 단계에서 결판을 내버려서 적대 세력을 모조리 병탄(併呑)하고 있다는 사실에 칸베에는 전율을 느꼈다.


"네,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패할 생각으로 싸우고 계시는 건가요?"


"물론 이깁니다!"


히데나가가 약간 말을 끊듯이 대답했다.


"여러분게서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가신다면 모우리 토벌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남은 것은 그것이 빠른지 느린지라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시즈코의 말을 들은 칸베에는 자기도 모르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도 그녀의 진의를 깨달은 듯, 두 사람은 잠시 마주보았다. 시즈코가 말한 일대 유통로는 단순히 경제권의 확립에 그치지 않는다.


(모우리 포위망……)


이 거대 상권이 성립되어버리면, 모우리는 사지가 잘려나가게 된다. 제아무리 모우리라 해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데다 경제에서도 차단되면 저항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유일하게 오다 가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동해측으로 나가려면 험한 산맥을 넘어야 하기에 도저히 장사로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이 상황으로 몰리게 된 단계에서 모우리는 이미 외통수에 걸린 것이다.


"그럼, 본론인 아리마 개발에 대해서입니다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시다는 말씀은?"


"남만에는 '나무를 감추려면 숲 속'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즉, 더 큰 계획의 일부로 포함시켜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상(上様)께서 친히 선언해주신다면, 제가 원조할 대의명분이 되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비축되었던 돈을 꽤나 써버렸기에,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건은 1만 관(貫, 현재의 화폐가치로 약 10억 엔) 정도입니다"


"1만!!"


자기도 모르게 외쳐버린 칸베에였으나, 계속 말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그는 시즈코가 중장기적으로 출자해주게 된다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는 이 자리에서 당장 1만 관이라는 거금을 준비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이라고는 해도, 일 개인이 독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칸베에는 이해했다. 시즈코라느 격류를 가두고 있는 거대한 제방(堰)이라는 것을. 그녀가 한 번 움직이면, 터무니없는 규모의 인원, 물자, 돈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놓칠 리 없는 게 당연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주상께 보증(お墨付き)을 받는다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시즈코의 협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한 한베에는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쁘게 말하면 거대 상권 구축의 떡고물을 받아먹는 모양새가 되지만, 번영을 누릴 수 있다면 아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주상께 이야기를 가져가게 되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침 주상께서 이곳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노부나가를 만나기 위한 절차를 모색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 시즈코가 폭탄발언을 던져넣었다. 설마하던 장날(ニアミス, ※역주: near-miss. 원래는 (보통 비행기끼리의) 비정상적인 접근 또는 아깝게 빗겨갔다는 의미인데, 그걸 그대로 직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여기서는 가는 날이 장날의 '장날'로 의역했음)에 시즈코 이외의 면면의 안색이 새파래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부나가가 시즈코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에 새롭게 준비된 통신기(通信機)의 시험운용을 하는 것이 포함된다. 시즈코에게 억지를 써서 임무를 마치고 해체를 기다릴 뿐이던 검증용의 통신기를 사용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아즈치 성(安土城)으로 운반시킨 후 오와리와 아즈치를 통신으로 연결하여, 어느 정도의 상황파악과 지시를 내리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아주 좋아서,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시즈코 저택에서 쉬면서 아즈치에서 지시를 내리고(差配) 있는 것과 큰 차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혁명적인 통신 수단은 군사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나 경제라는 생활에 직결된 분야조차 일변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자재(機材)가 애초에 고가인 점. 그리고 통신을 제어하는 기술자나, 제한된 시간에 더욱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절차(手順)에 숙련된 통신수(通信手)가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낙관시하고 있었다. 일본에 철포(鉄砲)가 전래된 이후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듯이, 이 정도의 편리함을 가져오는 기술이 지지받지 않을 리가 없다.

전신(電信)은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으며, 기술을 독점하고 있기에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겠지만, 언젠가는 일본 각지를 통신으로 연결한 정보망이 구축될 것이다. 그것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그것들을 메우고도 남을 이익을 창출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흠, 이거면 되었겠지. 상황이 변할 때마다 연락하도록 전하라"


"옛!"


그렇게 말하고 노부나가는 대기하고 있던 소성에게 직접 작성한 서류를 맡겼다. 소성은 이 서류를 사무 담당자(事務方)에게 맡겨 통신 양식에 따라 청서(清書)하게 하고, 전신실(電信室)로 운반된 그것은 전파에 실려 아즈치로 전달되게 된다.

지금쯤 멀리 떨어진 아즈치에서는 호리(掘)가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을 읽고 있을 것이다. 전신 기술은 아직 여명기(黎明期)였기에, 통신 품질이 나빠서 남성의 낮은 목소리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통신수는 모조리 여성이 기용되어, 전신실은 여성의 직장이 되어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오와리라면 고도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여성에 학문은 필요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오와리만큼은 마치 특이점(特異点)처럼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완전히 전신의 세계에 매료되어, 그 편리성을 탐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요 인물과의 면회쯤 되면 며칠 걸려도 아즈치로 돌아갈 필요가 생기지만, 그 이외의 경우라면 오와리에 있으면서 정무를 수행할 수 있다.

'一所懸命(열심히)'라는 말이 있듯이, 토지에 집착하여 목숨을 거는 무사(武士)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역주: 一所(한 곳)이라는 의미에 대한 말인듯), 노부나가는 토지에 대한 집착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즈코가 전신을 비밀로 하는 이유를 잘 알겠군. 이것은 무서운 '힘'이니라.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다니, 신불(神仏)에게나 가능했던 공상(空想)의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혼자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통신을 이용한 새로운 전략이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럴 때, 맹수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가 노부나가의 배에서 울려퍼졌다.

노부나가는 전신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식사를 하는 것도 잊고 몰두하고 있었다. 머리는 흥분으로 맑아져 있었지만, 제대로 연료를 보급받지 못한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뭐가 재미있는지, 노부나가는 크큭 하고 웃더니 소성에게 명했다.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도록 시즈코에게 전하라"


"예, 옛!"


소성은 노부나가의 말을 듣자마자 문자 그대로 나는 듯 달려갔다.


"이런 어정쩡한 시간에……"


노부나가의 요구를 전해들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주군인 노부나가를 접대하기 위해, 당연하지만 오찬(昼餐)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노부나가는 "필요없다!"라는 한 마디로 잘라버리고 전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 식어버린 요리를 낼 수도 없고, 그것들은 이미 신하들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다. 게다가 지금은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의 중간이라는 실로 어정쩡한 시간이라서, 요리사들도 자신들의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었을 때였다.

그럴 때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하니까 답이 없었다. 평소라면 저녁 식사 때까지 기다릴 노부나가가, 뭘 생각했는지 간식이 아니라 식사를 원하는 것이다. 시즈코는 호스트(亭主)로서 이것에 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최근 갑자기 식(食)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노부나가의 식사는 어렵다. 사고가 둔해진다며 술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 차를 요구하고, 다양한 식재료에 대해 독자적인 집착을 발휘한다.

기본적으로는 진한 맛을 좋아하지만, 야채류에 관해서는 조린 것(煮物), 삶은 것(炊きもの) 보다도 찜 요리(蒸し料理)를 선호하는데, 그런가 하면 고기 요리를 낼 때는 야채에도 강한 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식사 같은 건 배에 들어가면 뭐든 좋다고 말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어쩔 수 없나. 휴식중에 미안하지만 요리사들에게 준비하도록 말해줘"


"알겠습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낄 정도로 배가 고팠던 노부나가는, 평소답지 않은 왕성한 식욕을 발휘하여 차려진 요리를 남김없이 비웠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본래 시간에 맞춰 차려진 만찬에도 얼굴을 내밀어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를 했다.

제아무리 대식가(健啖家)라고 해도 아무래도 과한 식사량이라, 중년의 영역에 달해 있는 노부나가는 배탈이 나서 드러눕게 된다.


"……저는 만찬 시간을 늦추거나 중지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복통으로 앓아누워있는 노부나가에 대해 시즈코는 쓴소리를 했다. 거북해진 노부나가는 고개를 돌리며 이불을 끌어올리고는 시즈코의 말을 흘려들었다.

아무래도 노부나가가 과식으로 앓아누웠다고는 할 수 없기에, 시즈코와 비밀스런 회담을 하고 있다고 하여 사람들을 물리쳐놓고 안쪽 방(奥の間)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딱히 배가 아픈 건 아니다. 네녀석이 걱정이 많은 것 뿐이다"


"네네. 알겠으니 이걸 드셔주세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노부나가에 대해, 시즈코는 항변을 흘려들으면서 찻잔(湯呑)을 내밀었다. 즉효성이 있는 위장약 따윈 존재하지 않기에, 시즈코가 내민 찻잔의 내용물은 무를 갈아서 천으로 거른 뒤, 소량의 벌꿀을 넣어 마시기 편하게 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팽만감(膨満感)에서 오는 구역질에는 학을 떼었는지, 얌전히 이 간이 위장약을 비우고는 다시 시즈코에게 등을 돌리면서 말했다.


"대머리쥐(ハゲネズミ)의 수하들이 와 있는 것 같더구나"


노부나가가 말하는 대머리쥐란 히데요시를 가리키며, 수하한 말할 것도 없이 히데나가 및 한베에와 칸베에를 나타낸다. 원숭이를 닮은 것으로 유명한 히데요시였으나, 노부나가는 그의 궁상맞은 얼굴을 가리켜 대머리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의 히데나가들은 시즈코와의 회담 후, 준비부족인 상태에서 노부나가와 만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 시즈코 저택의 한 방을 빌려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을 시작했다.


"지금쯤, 주상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시겠지요. 한동안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흥, 간신히 좋아지기 시작한 흐름을 어지간히 끊고 싶지 않은 걸로 보이는구나. 대머리쥐는 요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니(鳴かず飛ばず) 말이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히데요시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것은 히데요시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고, 전쟁을 하면 할수록 돈을 잃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다.

전쟁은 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날개돋친 듯 줄어들고, 설령 영지를 얻어냈다고 해도 거기서 수익이 나는 것은 나중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간신히 적자를 내지 않고 있는 미츠히데(光秀)는 보기드문 수완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최근 생각없이(安易) 잉여 자금을 환류(還流)시켰기에, 자신의 통치가 성공한 요인이라고 믿는 분들이 늘고 있어서……"


시즈코는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준비를 하는 한편, 자신이 있는 곳에 쌓여있던 잉여 자금을 오다 영지의 각지에서 뿌렸다.

그야말로 외적 요인에 의해 솟아난 호경기에 기분이 좋아진 영주들은, 그것을 자신의 수완에 의한 것이라고 자만하는 풍조가 보이게 되었다.


"내버려둬라. 그 정도로 착각하는 놈들은 스스로 매운 맛을 보기 전엔 이해하지 못한다"


시즈코는 자신의 부족함을 후회하고 있었으나, 노부나가는 도움의 손길(梃子入れ)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자들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었다.


"……좋아. 어찌 되었든, 사카이가 과도하게 부유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의미에서도 아리마 개발에는 의미가 있겠지. 녀석들에게 돈을 내주어라"


"알겠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냐?"


"저도 주상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내는 이상, 그냥 다 떠넘기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시킬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든 뭐로든 참견할 것이니까요"


시즈코의 말을 들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음을 떠올렸다. 시즈코로서도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이라면 이의는 없다. 게다가 직접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코가 융자를 한다고 하면, 창구가 되는 것은 어용 상인인 '타나카미야(田上屋)'가 가게를 내게 된다. 이미 전국 규모의 타나카미야가 현대에서 말하는 은행업을 담당하는 것이다. 아리마 온천의 이권은 이미 시즈코가 움켜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아라"


"맡겨 주십시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은 시즈코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노부나가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튿날이 되어, 히데나가는 시즈코로부터 노부나가의 허가를 받았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사태가 진행되었기에 히데나가로서는 재미없었으나, 처세술에 능한 그는 그래도 표면상으로는 태도를 꾸며보였다.

불만을 추호도 드러내지 않고 시즈코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히데나가 일행은 오와리를 떠났다. 그들은 오와리 항구에 도착하자, 때마침 출항 직전이었던 코우베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우리들의 엉성한 계획 같은 건 필요없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재미는 없지만, 우리들이 역할을 달성한 것에는 변함이 없소. 그것도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조건의 융자를 받았다는 덤까지 따라왔지요"


히데나가는 갑판에 나가서 해면(海面)을 보면서, 옆에서 계속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는 칸바에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만(湾)을 나와서 안정적인 항행에 들어가자, 히데나가가 할 일이 없어 난감해하던 칸베에를 갑판으로 불러낸 것이다. 혼자 남겨진 한베에는 뱃멀미를 하지 않는 체질 덕분에 오와리에서 손에 넣은 책들을 읽기로 한 듯, 히데나가의 말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초기 비용으로서 1만 관. 거기에 사업계획을 책정하여 제출하는 것과 병행하여, 반 년에 한 번 시즈코 님이 지정하시는 회계 보고인가 하는 걸 제출하면, 다시 추가로 2만 관을 융자해 주신다, 라"


"이야기가 지나치게 좋군요. 이것에 함정(裏)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거기에 그 회계 감사(会計監査)라는 것이 수상쩍습니다.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이 다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리마 개발 자체가 '그림의 떡(絵に描いた餅)'이 되겠지요"


칸베에는 회계 보고의 견본으로서 건네받은 책자와, 복식부기(複式簿記)의 기본이 적힌 서적을 앞에 두고 절망적인 표정을 떠올렸다. 실무에 관여할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 히데나가는 회계 보고를 압도적으로 가볍게 보고 있었다.

부기를 조금이라도 배운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본어와 사칙연산을 할 수 있다면 부기의 3급 정도라면 고교생 레벨의 학력으로 충분히 취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고교생 상당의 학력이라는 허들이 이미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생트집을 잡아 융자를 거절할 셈인가라고 생각했더니, 불안하다면 회계에 밝은 인원을 파견, 교육까지 돌봐준다고 한다. 칸베에에게는 시즈코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모르겠다…… 이것을 하는 것에 무슨 이익이 있다는 거지?)


칸베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회계 보고라는 것은 기업의 어떤 기준일 시점에서 봤을 때의 업적 평가로, 어폐가 있음을 감안하고 말한다면 통신부(通信簿)에 가깝다.

MG 연수의 훈도(薫陶)를 받은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성적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경영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속셈이 있지만, 뭐든지 차례를 건너뛰어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이 때문에, 통일된 평가기준으로 사업 운영을 평가할 수 있는 회계 제도의 도입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출자자인 시즈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영자가 되는 히데요시에게도 이점이 있는 것이지만, 상인 가문(商家) 출신이 아닌 칸베에에게 그것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하리라.


"뭐가 어찌되었든, 좋은 자극이 되었겠지요. 하여, 시즈코 님을 어찌 보셨습니까?"


마치 칸베에의 마음 속이 보이는 것 같은 타이밍에 히데나가가 물었다. 히데나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의 기미(機微)를 헤아리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알고는 있어도 매번 놀라게 된다.


"참으로 가늠할 수 없는(掴みどころの無い) 분이군요. 사람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패기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엿볼 수 없는데, 아득히 먼 곳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솔직히 속을 알 수 없습니다"


"후후후. 처음 얼굴을 마주친 정도로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얄팍한 분은 아닙니다. 뭐, 이제부터 싫어도 오랫동안 알고 지나게 됩니다. 천천히 그 눈으로 평가하시는 게 좋겠죠"


"그건 그렇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海の物とも山の物ともつかぬ) 사업에 턱하니 1만 관을 내놓다니 제정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시즈코 님이라도 1만 관은 큰 돈이겠지요?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푼돈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분께는 모두 잃더라도 그다지 뼈아프지는 않겠지요. 시즈코 님의 본질은 어디까지 가더라도 백성(百姓)입니다. 불모의 대지에 도전하여 씨앗을 뿌리고, 크게 맺힌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투자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시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준 후에 손을 대어 가꾸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겁니까?"


"코우베 항구의 사업을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분께서 하시려는 일의 가장 좋은 표본이겠지요.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씨앗을 뿌리고 손을 대어 가꾸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아시고 계시는 것이죠"


마치 꿰뚫어본 듯이 웃으면서 히데나가가 말했다. 항만을 만든다는 것은 일대 사업이며, 히데요시도 호상(豪商)이나 유력자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시즈코는 그것을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만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데, 시즈코 저택의 모습(佇まい)은 검소하고, 본인에게도 화려하게 꾸민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전혀 사욕(我欲)을 느끼게 하지 않는 시즈코의 사람됨을 접하고, 칸베에는 그런 인간이 있는 것인가 하고 실로 수상쩍게 느끼고 있었다.


"그만한 자금력이 있다면, 아리마의 사업을 빼앗겨버리는 게 아닙니까?"


"시즈코 님께 그럴 뜻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능하겠지요. 바로 그렇기에, 결코 억지스러운(無体な)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가능하기에 하지 않는다는 히데나가의 말이 칸베에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푹 빠져버린 것처럼 보인 칸베에는, 자신이라도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경계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의심하고 시작하면 본질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충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칸베에는 히데나가에게 등을 돌려 선실로 돌아갔다. 말과는 반대로 태도를 딱딱하게 굳힌 칸베에를 보고 히데나가는 혼자서 득의의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재미있어질 것 같군요"


히데나가의 중얼거림은 배 위에 부는 바람에 실려,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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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5 1577년 4월 상순



잔설(残雪)도 녹아 도로(街道)의 왕래가 회복된 3월 하순, 동해(日本海)를 바라보는 츠루가(敦賀) 항구에 아시미츠(足満)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군을 이끌고 에치고(越後)로 들어가 사도가시마(佐渡島)로 향하려고 생각했으나, 눈에 갇힌데다 집안 소동을 끌어안고 있는 에치고는 마치 벌레독(蟲毒)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설령 동맹관계에 있다고는 해도 오다(織田) 가문의 수하가 진군하면 쓸데없는 알력을 발생시키게 될 거라고 시즈코에게 설득되어, 와카사(若狭) 국에서 츠루가로 집결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대한 배려 따윈 없는 아시미츠였으나, 다름아닌 시즈코의 바람이었기에 계획을 수정했다.

와카사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달력상으로는 봄이었지만 아직 동해의 파도는 높고 거친 상황이었기에 아시미츠들은 며칠 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날짜가 늘어날 때마다 아시미츠의 기분은 가속도적으로 나빠져서, 부하들조차 '뜨끔할' 듯한 긴장감을 느낄 무렵, 드디어 날씨가 회복되었다.

이 때를 놓칠 수 없다고 아시미츠들은 선단을 꾸려 츠루가 항구에서 출항했다. 오다 가문의 지배권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면장(免状)을 가지고 있는 시즈코는, 아시미츠들이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사도가시마 직전에 보급기지를 마련해두었다.

현재의 이시카와 현(石川県) 북부에 위치하는 와지마(輪島)에 보급물자를 집적해두고, 선단이 한번에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의 허용량이 없는 와지마 항구에 순차적으로 기항하여 보급을 실시한 후, 다시 집결하여 사도가시마의 마노(真野) 만(湾)에서 상륙했다.


한데, 외딴 섬이라고 해도 사도가시마는 큰 섬이다. 이 섬의 내부에는 혼마 씨(本間氏)가 다섯 개의 씨족으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다는, 전국시대의 축소판 같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곳 사도가시마는 금은 광산(金銀山)으로 성립되고 있는 섬인 만큼, 각 씨족들은 금광산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무렵이 되면 장남 가문(惣領家)인 사와다(雑太) 혼마 씨는 세력이 약화되고, 대신 지방 마름(郷地頭, ※역주: 마름(地頭)은 일본 중세의 장원(莊園)에서, 조세(租稅) 징수·군역(軍役)·수호(守護) 등을 맡았던 관리자, 향(郷)은 '지방'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지방 마름으로 번역)이라 불리는 자들이 태두하기 시작했다.

즉, 니시미카와(西三河) 금광산을 지배하는 하모치(羽茂) 혼마, 니이보(新穂) 금광산을 가지고 있는 쿠지(久知) 혼마와 카타가미(潟上) 혼마, 츠루시(鶴子) 은광산을 확보한 카와하라다(河原田) 혼마와 사와네(沢根) 혼마이다.

개중에서도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섬의 북부를 세력하에 둔 카와하라다 혼마와, 남부를 지배하는 하모치 혼마였다. 이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입지적으로 편리했던 사와네 혼마를 아시미츠는 교묘한 말로 변절시켰다.

그리고 오다의 군기(軍旗)를 내건 선단이 사도가시마 남서부에 위치한 마노 만에 나타났을 때, 이것을 맞아 싸우기 위해 연안에 포진했던 것일 사와네 혼마 씨가 한번 싸우기는 커녕 그들을 불러들임으로서 그의 배신이 드러나, 다가오는 전란의 징조에 전 섬이 벌집을 쑤신 듯한 상태가 되었다.


한 마디로 상륙이라고 해도 선단 규모가 되면 그에 걸맞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이것을 저지하려고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카와하라다 성을 가지고 있는 카와하라다 혼마였다.

그들은 미리 모아둔 백 척 가까운 배들과 육상으로부터의 부대로 협공하기 위해 출격했다. 그리고, 적을 시야에 포착할까 말까 하는 단계에서 산산이 박살나 버렸다.

애초에 관측 정밀도 및 병기의 유효사정거리가 차원이 달랐기에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상황을 본 각 혼마 씨들은 전율하여, 쇠락했다고는 하나 장남 가문인 사와다 혼마 씨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이리하여 사와다 혼마의 호출로 씨족들의 대표가 모였는데, 아시미츠 군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고 우쭐한 사와네 혼마는 '호가호위(虎の威を借りる狐, ※역주: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를 해버렸다.

말인즉슨, 혼마들 사이에서 아무리 강해봤자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이니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개명적(開明的)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자신은 그것을 한 발 빨리 깨달았기에 단장(断腸)의 아픔을 감수하며 그들을 맞아들였다.

쓸데없이 피를 흘릴 것이 아니라, 전봉(転封)을 약속받을 수 있을 때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다. 자신이 주선해 줄테니 신천지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털어놓았다. 


이것을 들은 다른 혼마 씨들은 당연히 격노했다. 씨족의 총의(総意)로서 철저 항전하기로 결정한 것을 파기한데다, 외환(外患)이라는 재앙을 불러들여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너희들도 똑똑해져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교섭은 결렬되어, 사도가시마는 진흙탕의 내전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사와네 혼마 본인은 오랫동안 혼마 씨의 저변(底辺)에서 억압받았던 반동으로 실책을 저지른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운명의 톱니바퀴는 움직였고, 혼마 씨를 멸망의 길로 굴리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현대 일본의 형법(刑法)에서도 외환 유치(誘致) 죄는 정해져 있다. 외환 유치란 외국의 세력과 통모(通謀)하여 자국에 대해 무력 행사를 하게 하는 국가반역죄의 하나로, 이 매국 행위에 대한 형량은 사형 뿐이다.

아직까지 적용된 예는 없지만, 연좌제(連座制)가 폐지된 현대 사법(司法)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것만 봐도, 국가의 존망을 뒤흔드는 중죄로 생각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사도가시마에서 아시미츠들은 틀림없는 외환이며, 이것을 안으로 불러들여 버린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알게 되면 사형 반대론자들도 입을 다물 것이다.


"우리들은 외부인(外様, ※역주: 사전에는 '방계' 등의 의미로 나오는데, 문맥상 '외부인'이 맞는 것 같아 의역함). 어디까지나 혼마의 싸움은 혼마의 손으로 결판을 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이 선두에 서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되지"


유지되고 있던 사도가시마의 균형을 근본부터 파괴하여 전란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은 아시미츠는 그렇게 말했다. 아시미츠들은 후방에서 독전(督戦) 및 원조(援助)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역은 사와네 혼마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여, 사와네 혼마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와네 혼마와 나머지 혼마 씨와의 대립구조가 성립하고, 사와네 혼마는 항상 최전선에서 계속 소모되어 갔다. 처음에야 나야말로 혼마의 두령(頭領) 자격이 있다며 혈기왕성했으나, 아시미츠의 원호는 소극적이라서, 자군의 소모가 쌓여감에 따라 불신이 싹트게 된다.

그에 대해 아시미츠는 자신들이 활약해서는 혼마의 싸움이 되지 않는다고 후방에 계속 머물렀고, 죽었다 깨어나도 아시미츠들에게 이길 수 없는 사와네 혼마는 손잡을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며 후회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시미츠는 사와네 혼마에게 적의 투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명목상으로는 포로를 먹여살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나, 여자나 아이들,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취급한다고 하여 사와네 혼마는 전율했다.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돕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로 다툰다고 해도 암묵적인 공감대로서 지나친 행위에 대한 금기가 존재한다.

설령 모두에게 미움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동네조리(村八分)라고 하여, 화재나 장례식 때 만큼은 돕는다는 것이 가장 좋은 예이리라. 그리고 다음 세대를 짊어질 여자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 같은 행위는 명확하게 금기에 저촉되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져 버렸다. 이미 다른 혼마 씨와 대립해버린 이상, 아시미츠의 협력을 얻지 못하게 되면 다른 혼마 씨는 사와네 혼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가도 지옥, 뒤로 가도 지옥이라면이라는 심정으로 사와네 혼마는 아시미츠의 요구(要望)를 수용했다. 그것이 혼마 일족 전체의 파멸을 결정짓는 최후의 한 수(一押し)가 되는 것을 사와네 혼마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아시미츠에 의한 멸족(族滅)의 최초의 희생이 된 것은 카와하라다 혼마였다. 사와다 혼마에 의한 중재가 결렬된 이래, 각자가 전쟁 준비를 갖추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카와하라다 혼마는 다른 혼마 씨에 의한 증원을 기대하고 카와하라다 성에 농성한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화력을 갖추고 있을 경우, 이 전법은 성립될 수 없다.

성문 및 성벽을 화포로 파괴당하고, 강제로 뚫린 큰 구멍에서 사와네 혼마의 병사들이 밀려들었으며, 나아가 자군의 화승총(火縄銃)을 뛰어넘는 사정거리와 정밀도의 신식총(新式銃)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버렸다.

카와하라다 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함락되었고, 성주인 혼마(本間) 사도노카미(佐渡守) 타카츠나(高統)는 막아낼 수 없음을 깨닫자 성에 불을 질러 자결했다. 그리고 이 일전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형되었다.

그 악랄한 행위는 목숨만 간신히 건져 도망친 사람들이나 다른 혼마 씨의 척후(斥候) 등에 의해 알려져, 사와네 혼마는 혼마 일족의 배신자로서 불구대천(不倶戴天)의 원수가 되었다.

이 카와하라다에서의 학살로 인해, 사와네 혼마의 당주인 혼마 사마노스케(本間左馬助)는 지옥으로의 편도 티켓을 들고 달려나가게 된다.


다음으로 아시미츠는 사와네 혼마에게 섬 남부의 최대 세력이었던 하모치 혼마를 공격하게 했다. 최전선에 서서 직접 칼날을 부딪히는 사와네 혼마의 병사들이야 소모되었지만, 하모치 성도 별다른 저항 없이 함락되었다.

카와하라다 성에서의 학살에 대해 알고 있던 하모치 성주인 혼마 타카모치(本間高茂)는 근신(近臣) 들과 함께 친동생이 성주를 맡고 있는 아카도마리 성(赤泊城)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틈을 주지 않고 추격이 따라붙어, 아카도마리 성도 맥없이 낙성(落城)해 버린다.

그 때 최후의 싸움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사와네 혼마 당주인 사마노스케가 '유탄'에 의해 전사하여, 승자가 없는 상태로 혼마 일족의 4백년이나 되는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듯 외환이라는 위협은 문화도 가치관도 다른 자에 의한 침략으로, 미증유의 재앙이 되어 덮쳐온다. 사도가시마에 파멸을 가져온 외환인 아시미츠는, 재미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본토에서 오다 가문의 대관(代官)을 맞아들여 따르도록 사와네 혼마의 잔당들에게 명령하고는 사도가시마를 떠났다.




장소는 바뀌어, 지금 마침 오와리(尾張) 항구에 한 척의 아타케부네(安宅舟)가 입항하고 있었다. 오와리 항구는 일본 유수의 거대 항구로, 항만시설이 충실하기에 대형 선박이 몇 척이나 정박하여 북적이고 있다.

항구로 이엉지는 항만도시오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결과, 항구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의 대도시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매일 많은 배가 오가고, 그에 따라 막대한 돈이 시즈코의 품으로 굴러들어온다.

북쪽으로는 토호쿠(東北) 지방에서, 남쪽으로는 큐슈(九州)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측에 위치하는 다양한 장소에서 끊임없이 배들이 찾아오고 나간다. 개설 당초의 오와리 항구는 츄우부(中部) 및 토우카이(東海) 지방과 사카이(堺)를 잇는 지방 항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다 가문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항만 설비는 충실해지고, 그와 반비례하듯이 세율이 낮게 억제되었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 유수의 무역항으로 치고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오와리에만 존재하는 특산품의 품목이 충실해짐에 따라, 키이(紀伊) 반도를 끼고 서쪽의 사카이, 동쪽의 오와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공업화가 진행된 끝에 기계화된 항만 설비에 의해 명실공히 일본 제일의 처리능력을 가진 항구라고 할 수 있으리라. 코우베(神戸) 항구가 개설된 이래, 정기편(定期便)도 개통되어 사이고쿠(西国)와의 유통량이 늘어났다.

이 확립된 항로에 편승하여 시코쿠(四国)를 다스리는 쵸소카베(長曾我部)와도 정기편을 통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지금 막 계류삭(もやい綱)에 의해 계류된 배의 갑판에 나와 있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이것이 오와리 항구……. 아타케부네도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는 어떤가! 마치 거인의 나라를 방문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구나……"


오와리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선박들은, 쿠키(九鬼) 수군(水軍)으로부터 불하된 것이나, 시험적으로 건조된 끝에 민간으로 방출된 것들도 많았고, 외륜선(外輪船) 등은 겉보기부터 이질적이기에 그들의 눈을 끌었다.

게다가 대형의 동력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모습은, 거인의 팔이 움직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팔이 운반한 컨테이너에서 반출되는 화물을 차례차례 삼키는 거대한 창고는 마치 거인의 입이었다.

일본 최첨단이자 토우고쿠(東国) 최대의 물자집적지, 그것이 시즈코가, 나아가서는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오와리 항구였다.


"상상 속 이야기(お伽噺ばなし) 같지요? 이것들 모두를 실질적으로 관리하시는 것이 시즈코 님이십니다. 명목상은 오다의 도련님(若様, 노부타다(信忠)를 말함)의 직할이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완전히 위임받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세상에……"


그 때까지 아타케부네의 선장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하시바 히데나가(羽柴秀長)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칸베에에게 이야기해보였다.

눈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만으로도 압도되고 있던 칸베에는, 이만한 규모의 항구가 창출하는 부가 어느 정도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것들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마(有馬) 개발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이야기도 납득이 되었다.


"이곳 오와리를 관장(仕置, 영지의 통치 전반을 가리킴)하시는 것이 시즈코 님, 미노의 통치 및 오와리의 감독을 하고 계시는 것이 도련님이라고 생각하시면 알기 쉬우실 겁니다"


"여인의 몸으로 이 정도의 영지를 맡고 계시는 겁니까!?"


"쉿, 큰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입니다. 이곳 오와리는 시즈코 님께서 멸사봉공(滅私奉公)하시어 키워내신 땅, 그렇기에 백성들은 누구나 그분을 경애하고 있습니다"


"혈기왕성한 뱃사람들이라면 말보다 먼저 주먹이 날아오겠군요"


히데나가는 처음으로 오와리를 방문하는 칸베에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시즈코 본인은 대놓고 매도당하거나 하지 않는 한, 뒷담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는 거라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하기 어려운 폭거가 된다. 실제로 생각없는(向こう見ず) 젊은 선원이 대놓고 시즈코를 비판했을 때, 나이든 선원들이 모조리 달려들어 바다에 처박아버렸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만이라면 우스갯소리로 끝나겠지만, 아이치(愛知) 용수(用水)로 빈곤의 나락에서 구원받은 치타(知多) 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그들에게 시즈코는 구세주이자 밝은 미래의 상징적인 존재이기에, 그것을 더럽히는 존재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배제된다. 즉, 운 좋으면 몰매(袋叩き), 운이 나쁘면 두 번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우선은 여관으로 가서 한숨 돌리도록 하지요. 그 후에는 다 같이 뭐라도 먹으며 즐겨볼까요"


"우리들은 유람(物見遊山)을 온 것이……"


칸베에가 항변하려 했으나, 히데나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탄식하는 칸베에를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린 한베에가 그에 뒤따르고, 칸베에도 어쩔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관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온 일행 중에서 가장 들떠서 모두를 끌고다니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칸베에였다.


다음 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흥분이 식지 않은 칸베에와, 촌뜨기(お上りさん)의 뒷바라지를 한베에에게 떠넘겨놓고 빈틈없이 휴가를 만끽한 히데나가는, 명백히 피로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의 한베에를 데리고 시즈코 저택으로 향했다.

히데나가 일행은 시즈코 저택에 도착하자 목욕(湯浴み)을 하도록 권유받고, 시즈코의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대기실에서 쉬고 있었다. 당초의 예정으로는 점심 시간을 지난 후의 면회였으나, 소문이 자자한 시즈코 저택을 한 번 보고 싶다고 칸베에가 말했기에 예정을 앞당길 수 있을지 타진했던 것이다.

시즈코 본인은 점심식사 시간이었기에 함께 식사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아야(彩)에게 기각당해버렸다. 그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두터운 대우를 해서는 상대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게 되어버리는 것과, 안 그래도 바쁜 시즈코에게 하다못해 점심식사 정도는 느긋하게 했으면 하는 배려에서였다.


"호오! 이거 좋은 차가 나오는군요. 향기로우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이 느껴지는군요"


칸베에는 긴장 떄문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만, 시즈코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 한베에와 히데나가는 준비된 다과(茶請け)를 우물거리면서 차를 마시며 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래도 한베에는 사이고쿠에서의 싸움이 신경쓰이는 모양이었으나, 히데나가는 완전히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봤자 오와리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와리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고 히데나가는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에 히데나가들이 도착한 지 반 각(刻,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시즈코의 준비가 갖춰졌다고 소성(小姓)이 알려왔다.

이 때가 되자 각오가 선 칸베에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리고 일어났고, 일행은 알현실로 안내되었다.


알현실에서는 이미 시즈코가 기다리고 있었으며, 히데나가 일행은 엎드려서 각자 인삿말을 한 후에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히데나가의 대각선 뒤쪽에 앉아있는 칸베에는, 히데나가의 어깨 너머로 처음 보는 시즈코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처음에 든 감상은 생각 외로 작다는 것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에서는 큰 여자의 부류에 드는 시즈코였으나, 그녀의 업적과 일화가 앞서나간 결과, 누구나 그녀를 체구가 큰 여걸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의 시즈코는 농사일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고운(優し気) 얼굴도 있어 날씬하고 우아한 여성(手弱女)으로 보였다. 노히메(濃姫)처럼 한번 보면 알 수 있는 위엄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칸베에는 정발로 그녀가 입지전(立志伝) 속의 인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의문이 빗나갓음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섬기는 사람들은 딱 봐도 패기에 넘치고, 자신의 직책에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섭가(五摂家)의 아가씨(姫)라는 지위나, 노부나가의 총신(寵臣)이라는 것만으로는 부하들의 사기는 올라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상대를 섬기기 때문에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시즈코 님께 진심으로 반해 있는 것이겠지. 이익만을 가지고 자기 편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정으로까지 이어진 관계는 굳건해진다. 확실히 무서운 분이군)


기본적으로 주종관계라는 것은 이익에 의해 성립된다. 주인에게서 주어지는 이익이 있기에 은혜갚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주인이 자신이나 자신의 일족을 지켜주기 때문에 주인을 목숨바쳐 섬기는 것이다.

주인이 부하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인덕(人徳)으로 부하에게서 존경받게 되면 그 관계는 더욱 견고한 것이 된다. 정에 의한 관계는 때로는 이해타산(損得勘定)을 넘어선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손익(損得)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대는 군사(軍師)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랜만에 뵙는데, 별 일은 없으신가요?


"옛! 덕분에 형님과 함께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청에 응해주셨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지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군요, 한참 전쟁중인데 잡담은 어울리지 않겠지요. 본론이라 함은 아리마 개발에 관한 것이겠군요"


시즈코의 입에서 아리마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칸베에는 경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지명을 거론할 정도로 이쪽의 수가 다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지원을 요청하는 쪽이기에 입장이 약한데라며 조급해져 버렸다.

한편, 히데나가는 시즈코에게 마음 속을 읽히는 것 따위는 항상 있는 일이라고 신경쓰지 않았으며, "과연 시즈코 님, 현명하신 헤아림이십니다"라는 식으로 맞장구칠 여유까지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아리마의 개발에 지원을 받고 싶어 왔습니다. 다행히 코우베 항구는 순조롭게 시작되었습니다만, 부근의 하리마(播磨)나 셋츠(摂津)에 이렇다 할 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셋츠는 아리마의 땅에 솟는 온천을 이용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히데나가의 말을 들은 시즈코는 지당하다며 긍정했다. 실제로 히데요시(秀吉) 및 히데나가 형제는 이마하마(今浜, 현재의 나가하마(長浜))의 통치에 관해 몇 번이나 실패했다. 그곳에는 거점(御座所)인 이마하마만 부유해지면 되고 나머지는 적당히 하면 된다는 좁은 시야가 이유였으리라.

지금까지의 씁쓸한 경험을 바탕으로, 히데요시는 하리마나 셋츠 일대를 포함시킨 경제권을 부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구상은 크지만 구체적인 것(先立つもの)이 없었다. 그럴 때 시즈코가 코우베 항구의 개발을 타진해 왔기에 즉각 달려든 것이다.

시즈코가 손대는 항구라고 하면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실제로 히데요시의 예상대로 코우베 항구는 예전의 한촌(寒村)이었들 때의 흔적조차 없을 정도의 번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항구만으로는 영지 전체가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코우베 항구는 큐슈와 사카이를 잇는 중계지(中継地)이며, 계속된 발전을 바란다면 항구 주변의 지역에 특산품이라던가 멀리서도 찾아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승지(景勝地)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때 시즈코의 마을도 당초에 온천으로 이름을 날린 것에 생각이 미쳐, 아리마를 주목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확실히 아리마는 양질의 온천이 솟고 있으니, 개발하면 좋은 탕치장(湯治場)이 되겠지요"


시즈코로서도 아리마 온천의 개발은 매력적이었다. 현재에도 칸사이(関西)의 온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거명될 정도로 유명하며, 역사적 사실에서도 히데요시와 아리마 온천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가까운 장래에 킨키(近畿) 일원(一円)을 덮치게 되는 '케이초(慶長) 후시미(伏見) 지진(地震)' 이후, 아리마 온천 전체의 탕 온도(湯温)가 상승되어버려 입욕에 적합하지 않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을 걱정한 히데요시는 지진이 난 이듬해부터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벌여, 아리마 온천의 천원(泉源)을 정비했다. 이로서 탕 온도는 안정되었고, 또 어느 정도의 조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리마 온천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원에 대해 공사를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결단이 아리마 온천의 번영을 뒷받침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시즈코에게는 아리마 온천의 개발을 하는 데 있어 우려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히데요시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한베에는 시즈코의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으나,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칸베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은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해온 사람과, 하리마 침공에 의해 새롭게 부하가 된 사람의 차이이리라. 히데요시라기보다 하시바 씨(羽柴氏) 일문(一門)이 가지고 있는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인 해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말씀하시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리마가 아니라,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도"


씁쓸한 침묵 이후, 한베에는 그 이유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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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4 1577년 3월 하순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제 1단계인 코우슈(甲州) 정벌은 나가요시(長可)가 이끄는 선발대(先遣隊)의 쾌진격으로 막을 올렸다.

기후 성(岐阜城)을 출발한 나가요시는 병기창(兵器廠)에 억지를 써서 가지고 나온 대포를 사용하여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가 농성하고 있는 키소(木曽) 후쿠시마 성(福島城)을 구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발대보다 더 앞서나간 척후가 가지고 돌아오는 정보를 들어보니, 이 진군 속도로는 도저히 때에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한 나가요시는 비장(虎の子)의 대포를 버린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다 군에게 전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 병기인 대포를 아무데나 내다버리는 건 말도 안 된다. 후방까지 수송하려고 해도 부대를 나누어 호위를 붙일 필요가 있기에, 완전히 이도 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거기서 나가요시는 아예 서전(緒戦)인 이와무라 성(岩村城) 공략에 사용하고, 그 후에는 점령한 이와무라 성 안의 방위설비로 삼으면서 회수를 기다리면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여기서 일본 최초의 포격에 의한 공성전을 받게 된 이와무라 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이와무라 성은 카마쿠라(鎌倉) 시대에 토오야마 카게토모(遠山景朋)가 구축한 산성(山城)에 발단을 두고 있다. 후세에 일본 3대 산성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위용과 비할 데 없는 견고함을 자랑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겐키(元亀) 3년(1572년)에 이와무라 토오야마 가문 당주였던 토오야마 카게토우(景任)가 죽은 것을 계기로, 남겨진 여성주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숙모에 해당하는 '오츠야노카타(おつやの方)'는 한동안 타케다(武田)와 싸우면서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이듬해 타케다 측의 무장인 아키야마 노부토모(秋山信友)와 결혼하여 타케다 측으로 변절했기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한편 이 시대에서는 겐키 3년말의 단계에서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전사하여, 정세는 타케다로부터 오다로 크게 기울었다. 역사를 앞당긴 것에 의한 영향인지 토오야마 카게토우가 역사적 사실보다도 일찍 서거하고, 신겐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을 계기로 오츠야노카타는 역시 오다 측에서 타케다 측으로 변절해 버렸다.

당연하지만 친족의 배신에 노부나가는 격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이상이나 그냥 놔두었던 것은 노부나가에게 타케다 측의 중요성이 낮아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의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확실히 공략 목표로 설정되어 있었으니, 슬슬 끝장을 내 주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이와무라 성이라고는 해도, 원군의 희망이 없는 단계에서의 농성은 말도 안 된다.

성이 있는 산의 산기슭에 지어진 망루(物見櫓)에서 오다 군 접근의 보고가 올라온 것을 계기로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영격(迎撃) 부대가 출진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망루에서도 영격 부대에서도 연락이 끊겨버렸다. 이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해 성주인 아키야마 노부토모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마냥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에 대해 나가요시는 가장 발이 느린 대포부대를 최전열(最前列)에 둔다는 상식 밖의 부대 운용을 하고 있었다. 이 한 싸움만 탄약이 버티면 된다고 작심(割り切り) 하고 대포를 원없이 써먹을 작정인 것이었다.

전투에서는 일반적으로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유리해지지만, 나가요시는 이것을 힘으로 뒤엎어보였다. 자군의 척후(物見)로부터 산문(山門) 뒤에 적이 집결해 있다고 듣자마자, 옆에 세워진 망루 및 산문 일대에 대해 포격을 명했다.

나가요시는 대포 부대를 최전열 중앙에 놓고, 주위를 기습에 대비해 철포대(鉄砲隊)로 방어한 후 관측 사격도 하지 않은 채 포격을 개시했다.

당연하지만 초탄은 노린 지점에 착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 측은 낙뢰같은 굉음과 함께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으리라고 신뢰하고 있던 돌담(石垣)이 크게 뜯겨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차탄은 우연히도 망루의 중간쯤에 직격하여 망루를 꺾어버렸다. 이것을 본 적들은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틈을 두지 않고 계속 날아드는 포탄은 용서없이 방어시설을 파괴해 나갔다.

나가요시 측으로부터는 앙각(仰角)인 관계로 적군은 배치는 알지 못한 채, 맞으면 다행이라는 식으로 그때그때 목표를 수정하면서 마구 쏴갈겼다.

이것을 산기슭의 방어시설이 괴멸할 때까지 반복하여, 병사 한 명의 희생도 내지 않고 나가요시 군은 아키야마 군을 농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본래는 산기슭이 공략되었다고 해도 산꼭대기 부근까지 공격해 올라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기슭과 산꼭대기를 잇는 루트는 후지사카(藤坂)라고 불리는 좌우가 숲으로 둘러싸인 급격한 오르막길 뿐이기 때문이다.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천연의 요새가 가로막는다.

방어측은 산 속에 병사들을 매복시킬 수도 있고, 또 높은 위치를 이용하여 중량물(重量物)을 굴리기만 해도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한 우위성을 가진다.

한편 공격자인 나가요시는, 또다시 힘으로 이것을 돌파하게 된다.

거듭된 포격을 받고 여기저기 붕괴했다고는 해도, 역시 돌담으로 된 산성은 견고하여, 대포를 산꼭대기를 향해 늘어놓고 곡사 탄도의 포격을 명했다.

아시미츠(足満)의 손으로 마개조를 거친 대포는 구조적으로 암스트롱 포에 가까워서, 포신에 새겨진 라이플링과 밀착하도록 탄체에도 홈을 파놓은 모밀잣밤나무(椎) 열매(実) 형상의 포탄, 소위 말하는 미니에 포탄을 사용하여 개량된 갈색화약으로 쏘아내는 구조이다.

여담이지만 공업화가 진행된 것에 따라 황산(硫酸)이나 질산(硝酸)을 사용할 수 있는 관계로 화약을 무연화약(無煙火薬)으로 전환시키려는 흐름이 되어 있었는데, 현장에서는 아직 재고가 윤택한 갈색화약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꾸준한 기술개량의 결과, 나가요시가 사용하는 대포는 조금 구형이 되지만 그래도 최대 사정거리가 2000미터를 자랑하게까지 되었다. 그에 대해 이와무라 성은 표고 700미터를 좀 넘는 정도이니, 일부러 위험한 등판 루트를 가지 않고도 산기슭에서 곡사로 포격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동떨어진 기술 수준의 병기에 공격당한 쪽은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산기슭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정찰을 내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산기슭에서 끊임없이 천둥소리(雷鳴) 같은 포성이 울려퍼졌다.

경사와 고저차가 있기에 착탄점을 관측할 수 없어 포격의 명중 정밀도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목표가 컸기 때문에 그런대로 맞았다. 높이 쌓여진 견고한 돌담도, 높은 곳이라는 지리적 우위성조차 의미가 없는 나가요시의 공격에 아키야마의 마음은 꺾여 버렸다.

설령 당주가 항전을 명했다 하더라도, 앞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한 군중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옥과 같은 반 각(刻, 약 1시간)이 지났을 때, 나가요시로부터 투항을 권고하는 사자가 파견되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성주인 아키야마 노부토모는, 그 처인 오츠야노카타와 함께 붙잡혀, 이후에 합류해올 후속 부대에 맡겨지게 되었다. 난공불락으로 이름높은 이와무라 성이, 겨우 반나절도 되지 않아 함락된 것이다.




나가요시가 이끄는 선발대의 쾌승은, 전신(電信)에 의해 요점만이 속보로서 전해졌다. 이후에 보내진 상세한 소식은, 시즈코 저택에 상주하고 있는 통신수(通信手) 부대가 수신하여, 사무원(事務方)이 청서(清書)하여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자기 집에 앉아서 시나노(信濃) 국의 전황을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하는 시즈코의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내심 신음하고 있었다. 개명적(開明的)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노부나가조차 전신이 가져오는 혁신성은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임시 속보나 정시 연락을 통해 그때그때 갱신되어가는 입체 지도상의 전황도(戦況図)와 물자의 잔량을 보고 노부나가는 전쟁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뀐 순간에 서 있음을 자각했다.

노부나가는 코우슈 토벌의 선발대 및 본대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입체 지도 위에 화살표 모양의 장기말로서 배치되어 있는 예상 진로상에 존재하는 공격 목표를 보았다.

나가요시 등 선발대는 이와무라 성을 나와 북상하면서 키소 후쿠시마 성으로 향한다.

농성하고 있는 키소 요시마사가 버텨낸다면, 합류한 후에 타케다 군을 쳐부수고, 토리이(鳥居) 고개(峠)를 빠져나가 키쿄가하라(桔梗ヶ原, 나가노 현(長野県) 시오지리 시(塩尻市))를 경유하여 스와 호(諏訪湖)로 가는 진로를 잡는다.

한편 노부타다(信忠)가 이끄는 본대는 이와무라 성을 출발하여, 텐류가와(天竜川)를 따라 남하하면서 타키자와 성(滝沢城)을 함락시킨다.

여기서 북상하면서 신푸 성(新府城)을 향하며 도중에 있는 마츠오 성(松尾城), 이이다 성(飯田城), 오오시마 성(大島城)을 공략, 타카토 성(高遠城)에서 선발대와 합류하여 이곳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스와 호 연안(沿岸)의 우에하라 성(上原城)을 거쳐 신푸 성으로 향하는 진로가 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쪽의 루트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타케다 군 방어의 핵심이 되는 것이 타카토 성이다. 타카토 성은 타케다에게 있어 스와에서 이나(伊那)로 향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슨푸(駿府)나 토오토우미(遠江)를 견제하는 전선기지가 된다.

타카토 성은 타케다 신겐의 손으로 오오시마 성이나 이이다 성과 함께 대규모의 확장이 되어 있어, 타케다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타카토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타케다의 멸망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푸 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타카토 성보다 동쪽에는 타카토 성조차 함락시킬 수 있는 군대에게 대응할 수 있는 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자의 보고에 따르면 타케다는 호죠(北条)로부터 부족한 군비(軍備)를 융통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죠로부터의 원군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겠지요"


미간에 주름이 진 표정으로 입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의 계획으로는 노부나가는 아즈치 성(安土城)에서 연락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혼자서 오와리(尾張)까지 와 버렸다.

노부나가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을 노히메(濃姫)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만으로 그 가능성을 시즈코에게 말하지 않았다. 시즈코의 눈이 죽은 생선처럼 흐려 보이는 것은 결코 기분 탓 같은 것이 아니다.


"호오! 원군이 아니라 군비를 바란 것이냐"


"타케다에게도 무가(武家)의 두령(頭領)으로서의 긍지가 있습니다. 또 호죠에게도 타케다의 지원에 쪼갤 여유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어쨌든 무구나 식량, 화살에 철포와 탄약이 도착한 모양입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전국(戦局)은 움직이지 않겠지요"


"우리 쪽의 군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만사 차질없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하시바(羽柴) 님 등 사이고쿠(西国)를 제압하고 계시는 분들께 추가 식량 발송도 완료하였습니다"


"흠. 완벽하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주상(上様). 병참(兵站)에 완벽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졌다. 높아지는 긴장감에 주위 사람들은 침묵했으나, 시즈코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계속했다.


"전황이라는 것은 항상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이걸로 완벽하다고 손을 멈추면, 그 시점부터 정보가 진부해지기 시작하여, 현장과 후방 사이에 어긋남(齟齬)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피하려면 항상 '꾸준히 완벽하게 하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럼, 언제가 되면 준비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은 후세에서 역사를 연구하는(紐解く) 학자들이 판단하게 되겠지요"


판단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다라고 시즈코가 단언했다. 이것을 들은 노부나가는 눈꼬리를 내리며 미소짓더니, 시즈코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구 헤집었다.


"좋은 기개다! 하지만 항상 지나치게 긴장(気負)하고 있으면 머지 않아 대 실패를 저지를 것이다. 여기서는 솔직하게 칭찬받거라"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엉망진창이 된 시즈코의 머리를 통통 하고 쓰다듬었다.


"예, 예에……"


"좋아. 그렇지, 나는 목이 마르다. 뭔가 모두가 절찬하고 있는 음료가 있다고 들었느니라. 여기서도 나만 따돌릴 생각이냐?"


조금 민폐라는 듯 빗 대신 손(手櫛)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하면서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어지는 노부나가의 말에 그가 일부러 오와리까지 나온 이유 중 하나에 짐작이 갔다.


(누구한테 벌꿀 레몬의 이야기를 들은 거지?)


토우고쿠 정벌을 앞두고 나가요시가 훈련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 시즈코가 운동부 연습을 떠올리고 레몬의 벌꿀절임을 만들게 한 것이 일의 발단이다.

육체 피로시의 비타민 보급과 빠른 영양 섭취에 적합한 레몬의 벌꿀 절임을 만들고, 남은 절임즙(漬け汁)을 버리기도 아깝다고 생각하여 소량의 소금을 넣고 물로 희석한 벌꿀 레몬 드링크로 가공했다.

이것 역시 훈련 후의 병사들에게 차게 식혀서 제공했더니 절찬을 받았으며, 그 상쾌한 새콤달콤함과 몸에 스며드는 듯한 맛이 입소문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 버렸다.


(같은 것을 내는 것도 센스(芸)가 없고…… 으ー음, 탄산수로 희석해서 벌꿀레몬 소다로 만들까? 이거라면 일본 최초라고 할 수 있을테니)


독특한 자극은 있지만, 탄산이 들어간 주스를 처음으로 마시는 것이 된다고 하면 노부나가의 기분도 좋아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제공할 음료를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즈코는 노히메의 존재를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일본 최초를 노리려고 한다면, 그녀가 없을 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의 진군 속도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가요시의 출발보다 4일 늦게 뒤를 쫓기 시작한 본대였으나, 나가요시가 대포를 가지고 나간 것도 있어 이와무라 성에 도착했을 때는 그 차이가 하루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대포를 이와무라 성에 남겨놓고 간 것 때문에 다시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가 점령하에 있는 이와무라 성에 도착하여, 전후 처리나 중계거점으로서의 정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발대는 키소 후쿠시마 성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押っ取り刀) 키소 후쿠시마 성에 도달한 선발대였으나, 성은 포위되기는 커녕 좀 떨어진 지점에 진을 친 타케다 군과 대치하고 있고, 때때로 소규모 전투가 발생하는 정도라는 상황에 김이 빠지게 된다.

키소 후쿠시마 성에 들어간 선발대는 성주인 키소 요시마사와 합류하여 부대를 재편성하여, 농성에서 일전(一転)하여 타케다 군에게 급습을 가했다. 애초부터 지리적 이점은 키소 측에 있고, 주변 지리를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요란하게 보병부대를 늘어놓더니 타케다 군을 위압하듯 진군을 개시했다.

예상 이상의 규모가 된 나가요시-키소의 연합부대를 본 타케다 군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 산을 샅샅이 알고 있는 키소 군의 안내를 받은 나가요시 군의 신식총(新式銃) 부대와, 키소 군의 철포대나 궁병대가 산봉우리에 숨어서 위치를 잡았다.

개전 신호는 신식총에 의한 일제 사격 소리로 시작되었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대군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옆에서 강렬한 일격을 받은 것이다.

거리가 있었던 것과, 나무에 방해되어 조준이 틀어진 점도 있어 그렇게 많은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식의 바깥쪽에서 공격을 받은 타케다 군은 패닉을 일으켰다.

그 동안에도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정면에서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거기에 주위에서 화살이나 철포의 탄환이 쏟아붓는 상황에 타케다 군은 대나무나 나무를 엮은 방패로 방어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으로 혼전으로 끌어들여 화살이나 철포의 비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한편,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타케다 군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후퇴를 시작하였고, 타케다 군은 총탄와 화살에 쫓기듯이 토리이 고개로 끌려들어가버려, 여기서 양군이 본격적으로 격돌하게 되었다.

토리이 고개는 험준한 외길이기에 대군이 충돌하기에는 부적합하여, 필연적으로 부대가 길고 가늘게 늘어지게 된다. 전방은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에 막히고, 뒤는 아군 부대가 가득하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측면에서 총격을 받는다는 사지(死地)에 타케다 군은 끌려들어와 버렸다.

이리하여 타케다 군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면서 허둥지둥 패주하였고, 이것을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매복시켜놓았던 철포 및 궁병대와 합류하여 추격하게 된다.


후퇴를 거듭한 타케다 군은 나라이가와(奈良井川)와 그 지류(支流)인 타가와(田川) 사이에 낀 키쿄가하라에 진을 재구축했다.

나라이가와의 선상지(扇状地)이며, 벌판(原野)이 넓게 펼쳐진 대지(台地)인 키쿄가하라는 대군끼리 충돌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입지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타케다 군은 그 때까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서, 이미 숫자의 우위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승전으로 기세에 탄 나가요시-키소 연합군과 숫자에서 밀리는데다 사기가 저하된 타케다 군이 충돌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시종 오다 측 우세로 상황이 진행되어, 타케다 군은 또다시 산산히 흩어져 패주하게 된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사냥하는 것이 전국시대의 관습이지만, 여기서 나가요시-키소 연합군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 이상의 추격은 허가할 수 없다! 남쪽을 통해 침공하고 계시는 칸쿠로(勘九郎) 님(노부타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도 이곳 키쿄가하라에 진을 치고 우에하라 성을 공격할 발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적의 대부분은 북쪽의 후카시 성(深志城, 훗날의 마츠모토 성(松本城))을 향해 도망쳤다. 이걸 방치해두면 우에하라 성을 공격할 때 배후를 찔릴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나가요시는 어디까지나 추격을 주장하는 데 대해, 선발대의 군감(軍目付)으로서 동행하고 있는 오다 나가마스(織田長益)는 발판을 굳혀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의견이 갈렸다.

나가마스는 노부나가의 동생에 해당하기에, 제아무리 나가요시라도 이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가요시는 자신의 주장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가마스의 의견에 따를 생각도 전혀 없었다.


"나는 주상께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 게다가 후카시 성에는 바바 마사후사(馬場昌房)가 틀어박혀 있다고 하잖아! 여기에 타케다의 잔당이 합류하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어버린다고!"


나가요시는 작전회의 장소에 놓여있던 긴 테이블(長机)에 힘껏 주먹을 내리치며 외쳤다. 나가요시의 완력에 테이블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며, 위에 놓여 있던 전황을 나타내는 약도 등이 흩어졌다.


"아니면 뭐야?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적이 태세를 정비하는 걸 손가락을 빨며 지켜본 결과, 보기좋게 등 뒤를 찔려서 졌습니다라고 너는 주상 앞에서 말할 수 있냐!?"


나가요시는 격정에 휩싸인 채 다리가 부러진 테이블의 잔해를 움켜쥐고 던져버렸다. 결코 가볍지 않은 테이블이 가볍게 허공을 날아, 막사를 지탱하는 기둥(幕串)에 부딪히더니 성대하게 쓰러뜨리면서 박살났다.


"이 이상 새가슴(腑抜け)과는 같이 못 해먹겠다! 나는 내 멋대로 하겠어. 남고 싶은 녀석들은 이 진에 틀어박혀 있어라! '그건' 후카시 성을 공격하는 우리들이 가져갈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내뱉은 나가요시는, 그야말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습으로 진을 나가버렸다. 신중파를 이끄는 나가마스는 나가요시가 태풍같이 날뛰는 모습이 아연실색했지만, 그래도 그를 말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군감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명백한 군법 위반이지만, 거칠게 날뛰는 나가요시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가요시에게 동조하는 무리들도 그를 따라 진에서 나가서 썰렁해진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작전회의는 계속되었다.


"모리(森)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루를 꼬박 발이 묶였다. 이 이상 지체할 수는 없어"


나가요시의 뒤를 쫓으며 측근 한 명이 물었다. 나가요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손바닥을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나가요시의 대응에 탄식하면서도 측근은 바쁘게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銃兵) 100명이 각자의 장비와 짐의 확인을 하고 있었다.


오다 가문과 타케다 가문의 운명이 교차하고, 그 후의 성쇠(盛衰)를 결정지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전쟁에 관한 일대 패러다임 시프트가 발생했다.

지금은 시즈코의 부하로서 간자를 총괄하고 있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의 형인, 죽은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가 깨달았듯이 단순히 병사의 많고 적음이 전쟁의 추세를 결정짓는 시대는 끝을 고했다.

철포가 전래된 이후로 그러한 경향은 있었으나, 신식총의 등장에 의해 결정적이 된다. 즉, 얼마나 철포와 총탄을 많이 준비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좌우하는 큰 요인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철포라고 해도, 종래의 화승총(火縄銃)과 시즈코 군이 제식 채용하고 있는 신식총은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미카타가하라 전투가 증명해버렸다.

그 후에도 신식총의 확충이 꾀해진 결과,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은 정규병 3000명을 넘고, 훈련중이나 예비역이 된 예비병이 500명, 거기에 총병의 관측수도 담당하는 지원병(支援兵)이 3500명을 정원으로 하는 대부대가 되어 있다.

약 7000명이라는 대인원을 총괄하는 것은 초창기부터 변함없이 시즈오키(静興, 겐로(玄朗)를 말함)이지만, 아무래도 직할로 관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기에 정규총병 500명, 지원병 500명을 합쳐 1000명으로 7개의 대대(大隊)를 구성하고, 각각에 대대장을 두어 총괄한다.

게다가 대대 밑에 정원 250명의 중대(中隊)를 4개 배치하고, 그 밑에 정원 50명의 소대(小隊)를 5개라는 편제를 취하고 있다. 신식총병의 수요가 높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대 단워로 파병이 이루어진다.


"정말로 총병 2개 소대 100명 전원을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들은 선발대 전체에 대해 배정된 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건 지원병 뿐이니까, 전원 데려가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여기에 두고 가면 또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빼가기들을 시작할 테니 말이야. 실전부대(実働部隊)를 권위를 세우는 장식품으로 쓰려는 바보에게는 아깝잖아?"


"아무도 빼가기에 응하지 않으니 점점 권유 수법이 억지스러워진다는 불평이 있었습니다. 설령 빼가봤자 장비와 숙련도 유지조차 할 수 없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열광적인 시즈코 신자들이 꽤 있으니까"


"모리 님께서도 한통속이시죠"


"뭔가 말했느냐?"


"아니오, 아무것도"


나가요시가 노려보았지만, 측근은 모른 척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어 보였다. 측근의 태도에 혀를 한 번 찬 나가요시였으나, 의외로 그런 측근을 그는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리 님, 후카시 성을 공략하신 후에는 다시 이리로 돌아오는 겁니까?"


"그럴 예정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출발 준비를 하고 오겠습니다"


평지에 쌓은 성(平城)이라고는 해도, 혼마루(本丸),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 모두 해자(水堀)를 격하고 있기에 방어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후카시 성을 당연한 듯 공략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말하는 주인을 든든하게 생각하는 측근이었다.




나가요시가 이끄는 부대가 키쿄가하라를 출발하여 오로지 후카시 성을 향해 북상했으나, 적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의 뒤를 쫓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는 점도 있지만, 후카시 성은 무려 16개나 되는 성이 주위에 존재한다는 요새 지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그 중 어디로 잔당이 도망쳐 들어갔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북상을 계속하던 나가요시 군이었으나, 진로를 따라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아카기 성(赤木城)이 보이는 위치까지 전진했을 때 발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느닷없이 나가요시가 전군 정지를 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가요시의 명령으로 주위의 산들을 망원경으로 둘러보자, 딱 길이 좁아지는 곳의 벼랑 위에 몇 명의 병사가 매복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용케 눈치채셨군요"


"아니, 나도 보인 것 아니다. 하지만, 나라면 여기에 병사를 매복시키겠지라는 좋은 위치였으니 말이지, 만약을 위해 확인하게 한 것 뿐이다. 적은 이쪽에게 들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테니, 잠시 휴식하는 척 하면서 '그것'을 준비해라"


그리하여 나가요시가 지시한 대로 부대 전체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해 아카기 성의 복병들은 조금이라도 적의 정보를 얻으려고 엄폐물(物陰)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요시 군의 병사들은 휴대하고 있는 수통에서 물을 마시거나, 휴대식량을 먹거나 하면서 주위를 계속 경계했다.

아카기 성의 병사들은 몸짓으로 누군가에게 신호를 하고 있는 듯 하여, 보이지 않는 장소에도 병사들이 숨어있을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나가요시의 호령에 따라 다시 행군을 개시하듯 보인 나가요시 군이었는데, 행군 치고는 묘한 형태로 대형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무기를 가지지 않고 큰 짐을 메고 있는 병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배낭에서 가죽 자루로 감싸인 봉 모양의 물건을 꺼내 뭔가 작업을 개시했다.

그것은 빛을 반사하지 않도록 매트(matte)한 검정색으로 도장된 강철제로 생각되는 통 모양의 물체에 다리가 하나 달린 듯한 기묘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45도 정도 경사지게 지면에 설치한 후, 양 무릎으로 끼우듯 하여 고정하고, 통의 앞쪽으로부터 주먹 크기의 물체를 굴려넣었다.

처음에 일어난 일은 펑 하고 뱃속에 울리는 듯한 중저음, 이어서 기묘한 통 모양의 부품이 불을 뿜었다. 수수께끼의 공격은 벼랑 위에 숨어 있던 아카기 성의 부대를 가볍게 뛰어넘어, 먼 후방에 풍절음과 함께 죽음의 비를 뿌렸다.


나가요시가 사용한 것은 일반적으로 척탄통(擲弾筒)이라고 불리는 병기였다. 아시미츠가 만든 그것은 추발식(墜発式, 떨굼 방식)이라 불리는 구조를 하고 있어, 포구의 앞쪽에서 포탄을 떨궈넣어, 그 포탄 아랫부분의 파이어링 핀이 격돌하는 것으로 발화한다.

포탄 아랫부분에는 발사용의 폭약이 들어 있어, 이것이 기폭하여 포탄 아랫부분을 팽창시키며 배후로 연소 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발사된다. 폭압에 의해 팽창된 포탄 아랫부분은, 포신에 설치된 라이플링에 맞물리면서 회전하며 직진력을 얻는다.

발사된 포탄은 안정익(安定翼)이라 불리는 날개 모양의 부품에 의해 높은 확률로 앞부분부터 착탄하여, 그 충격으로 다시 포탄 내부의 폭약이 기폭하면 폭풍과 함께 금속 파편을 흩뿌려 주변을 공격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수류탄을 쏘아내는 그레네이드 런처를 설치형으로 만든 박격포에 가까운 병기였다. 쏘아닌 포탄은, 숲 속이라는 점도 있어 나무들에 가로막혀 직격한 것은 적었다.

그러나, 상공에서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는 쇳조각을 맞은 쪽은 견딜 수 없다. 광범위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흩뿌려지는 파편들에 의해 아카기 성의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공황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포격을 저지하기 위해 돌격하러 한 것일까.

어쨌든 숨어 있던 장소에서 뛰쳐나오더니, 그 중 일부가 나가요시 군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 기다리고 있었던 나가요시 군이 순순히 공격당하는 것을 기다릴 리도 없어서, 신식총의 총격이나 활의 사격에 의해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흥, 보아하니 이와무라 성에서 도망친 녀석이 정보를 전했군. 대포를 앞에 두고 농성은 무의미하다고 깨닫고, 야전(野戦)을 걸기 위해 매복하고 있었던 거겠지"


"이 앞에는 코야 성(小屋城)이 있습니다만, 그쪽도 치고 나올까요?"


"어떨까? 지금의 공격을 받고 도망친 녀석이 알린다면 농성할지도 모르지. 그거라면 그거대로 공격할 방법은 있다"


과연 나가요시의 말대로, 다음 코야 성에서는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했다. 장기전이 되면 보급을 받을 수 없는 나가요시 군이 불리해지기에, 척탄통으로 이번에는 철갑탄(徹甲弾)을 쏘아넣어 성문을 파쇄하고, 같은 요령으로 방벽을 무효화시켜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했다.

이렇게까지 손쉽게 성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의 요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일대는 몇 년 전에 야케다케(焼岳) 화산의 분화 피해를 입고 아직 다 복구되지 않았다. 애초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적기에, 소수 부대의 나가요시 군에게 실컷 유린당해 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막아선 이가와 성(井川城)의 경우에는, 포탄이 날아들자마자 병사들이 쓰고 있던 '삿갓(笠)을 흔들어(당시에 투항할 때 하던 신호)' 차례차례 투항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성주도 항복하여, 거의 무혈입성이 되었다.

실제로는 척탄총의 포탄은 시즈코 군에게도 비용이 부담되어 그렇게까지 대량으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져서 착탄과 동시에 광범위하게 피해를 흩뿌리는 미지의 병기에 타케다 군은 진심으로 공포에 떨었다.

최종적으로 후카시 성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포탄이 열 몇발이라는 상황까지 소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일제 사격을 받은 것만으로 적군이 항복하고, 그에 따라 주변의 성들도 무장 해제에 응하게 된다.




한편 사이고쿠에서는 히데요시(秀吉)의 하리마(播磨) 평정이 가경(佳境)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발판을 굳히라는 명령을 받은 히데요시는, 코데라 마사모토(小寺政職)에게서 빼앗은 히메지 성(姫路城)의 개축에 착수했다.

이것은 모우리(毛利) 정벌의 전선거점으로 삼는다는 명목이었으나, 빈틈없이 혼마루에 천수(天守)를 증축하도록 지시하여 방어기능보다도 외관의 호화로움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히데요시가 미츠히데(光秀)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의 진력에 의해, 이제 곧 하리마 평정이 이루어진다. 여기가 중요한 시점이니라!"


히데요시는 부하들의 일처리를 칭찬하면서도 박차를 가했다. 하리마와 타지마(但馬)가 평정되면 본격적으로 모우리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모우리와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획책하고 있었다.

이것을 놓치면 미츠히데와의 차이가 결정적이 된다고 생각한 히데요시에게는, 조금이라도 빨리 하리마를 평정하고 그 이후의 전쟁에 대한 준비가 갖춰져 있음을 노부나가에게 어필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당연히 히데요시의 이런 움직임은 미츠히데도 잘 알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듯 맡은 지역의 평정을 서두르고 있다.


"타케나카(竹中) 님, 하리마는 작년에 흉작(不作)이었던 지역이 많아, 백성들은 물론이고 장병들조차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굶지 않음(食い扶持)을 보장해 준다면 이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히데요시가 하리마 정벌에서 손에 넣은 것 중에, 스스로 그 자신에게는 과분하다고 평가한 쿠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통칭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 이후에는 잘 알려진 칸베에(官兵衛)라고 씀)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의견을 말했다.

노부나가가 하리마 침공에 착수했을 무렵부터 칸베에는 노부나가의 장래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칸베에는 원래 전술한 코데라 마사모토를 섬기고 있었으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모반의 징후를 보인 것에 호응하려고 했기에 주군에게 간언했으나 거꾸로 감옥에 유폐되었다.

최종적으로 아라키는 모반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코데라는 히데요시의 정치적 회유(調略)에 응하지 않았기에 전사하게 되었고, 그 때 유폐되어 있던 칸베에는 구출되어서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노부나가에게 반항했던 코데라의 가신이었기에, 인질로서 아들인 쇼우쥬마루(松寿丸)를 내놓았음에도 신용받지 못했고, 인질의 대우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한 것이 타케나카 한베에였다. 한베에는 이른 단계에서 칸베에의 능력을 발견하고, 히데요시에게 그의 대우를 개선하도록 호소했던 것이다.

그것을 안 칸베에는 한베에의 대우에 크게 감사하며, 그에 대한 감사를 자손 대대로 잊지 않도록 석병(石餅)이라는 타케나카 가문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흠. 먹을 것을 줘봤자 그 때가 지나면…… 이라는 상황이 되지 않겠소?"


"그건 굶지 않을 최저한도로 조절하여, 이것에 감사할지 불만을 품을지로 선별하는 것입니다. 불만을 품는 패거리를 감시하고, 모반의 징후가 있다면 처치하면 되겠지요. 적어도 굶지 않을 것을 보장했다는 대의(大義)는 있습니다"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은 날카로운 수완이군요"


한베에는 칸베에의 계책에 감탄했다. 칸베에는 한베에에게 대우받기 전부터, 신용받지 못함에도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리마 평정의 계책을 내놓았다.

히데요시의 하리마 정벌이 차질없이 진행되게 된 것은 한베에와 칸베에가 서로 영향을 끼치게 된 덕분이리라. 뭣보다 칸베에는 하리마에 대해 정통하여, 그가 세우는 계책은 알고 있더라도 회피하지 못하고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칸베에도 한베에라는 자신과 동등한 두뇌(知恵者)의 의견을 듣고 한층 더 갈고닦은 계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계책을 받아들이는 히데요시의 도량과, 그 계책을 실행할 수 있는 실전부대의 활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오, 이런 곳에 계셨소이까"


칸베에와 한베에가 서로 계책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홀연히 히데나가(秀長)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대로의 표표(飄飄)한 태도로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히데나가의 모습을 본 칸베에와 한베에의 표정이 조여졌다. 칸베에는 히데요시를 섬기기 시작한 당초부터 그에 대해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접하게 되어 사람됨을 알게 되자, 틀림없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준비가 갖춰졌습니다. 곧 코우베(神戸) 항구로 이동하여, 그 후에 배로 오와리로 향합니다. 작전회의도 좋지만, 이번의 오와리 행은 중대사입니다. 그쪽에도 의식을 할애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리마(有馬)의 재건이었지요. 하지만, 히데나가 님께서 말씀하시는 시즈코 님인가 하시는 분이 정말로 자금을 대어 주시는 겁니까?"


"예, 틀림없이 출자하실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가 투자하는 사업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경쟁하듯 돈을 내놓겠지요"


소문은 여럿 들었지만, 시즈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칸베에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시즈코 님께서 투자하시는 사업은 예외없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지요.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코우베 항구의 모습은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렇게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시즈코를 잘 알고 있는 한베에가 실제 예를 들어 논거(論拠)를 덧붙였다. 칸베에도 신뢰하는 한베에의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확실히 쓸쓸한 한촌(寒村)이었던 코우베가 지금은 많은 상인들도 붐비고 있어, 부근 일대가 활기에 차 있습니다"


코우베는 칸베에의 말대로, 원래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쓸쓸한 한촌에 불과했다. 거기에 시즈코의 개발에 의해 간이적인 군항(軍港)이 정비되자마자, 노도와 같은 기세로 상인들이 밀려들어왔다.

현지의 상황을 잘 아는 칸베에에게는, 갓 정비되었을 뿐이라 아직 작은 코우베 항 주위의 한적한 토지를 앞다투어 사들이고, 토지가 부족하면 벌판을 개척하면서까지 정비하는 모습에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한발 빨리 자신의 가게를 갖춘 상인들은, 다른 곳에서 운반되어오는 화물을 사들이거나, 선원들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거나 하는 등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 성장의 연쇄는 점점 가속되어, 지금은 항구도시(港町)라고 해도 손색없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직접 배를 준비하여, 해상 운송업자(廻船問屋)의 하청(走り)이라는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카이(堺) 같은 대규모 항구의 경우, 기득권익이 딱 맞물려 있어 신규 참가가 어렵지만, 이곳 코우베 항구라면 서쪽에서 도착한 화물을 오와리까지 운반하는 것만으로도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코우베 항구를 기점으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딱히 바다에 관한 일 뿐만은 아니다. 몸 하나로 서쪽으로 동쪽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보따리상(棒手振)이 다수 유입되었다.

멜대(天秤棒) 하나를 어깨에 메고, 앞뒤로 화물이 든 통을 매달아 행상하는 그들은, 근거리의 운반이나 판매를 담당하는 자신들이 활약할 곳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대로, 코우베 항구의 확장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항만 관계짜나 상인들, 나아가서는 그 상품을 사들이는 일반인까지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너무나도 급격한 번영에 해산물은 물론이고, 청과물(青物) 등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항구도시 바깥쪽에 위성도시 같은 농지(農地)까지 펼쳐지게 되었다.

수리(利水)가 뛰어난 하천 옆의 경작지는 인기가 높아서, 대상인(大商人)이라 불리는 사람들까지 사재를 털어 개척을 시작하는 상황이다. 일등지(一等地)는 이미 시즈코가 확보하고 있었기에, 바깥쪽으로 개발이 계속 확장되어갔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위에 점점 사람이 모여들어 이미 항구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시즈코 님은 계획 단계의 시점에서 쌀과 술쌀(酒米), 콩, 메밀(蕎麦) 및 야채를 평지에서 재배하고, 경사지(傾斜地)에서는 과일 재배를 하겠다고 전해 오셨습니다"


"꽤나 폭넓게 취급하시는군요"


"아뇨아뇨, 이것은 농업만의 이야기로, 사업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농업 이외에도 임업(林業), 수산업(水産業)에 토목공사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만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솔직히 말해 큰 은혜가 있는 한베에의 말이 아니라면 칸베에는 "그런 만능의 존재 같은 것 있을 수 없다"고 일소에 부쳤을 것이다. 히데나가도 한베에의 말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일 거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꼭 눈으로 보고 싶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다. 이 이상 정보를 얻어봤자 인물상은 애매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칸베에는 시즈코와 만나는 것이 기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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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3 1577년 3월 하순



항만 개발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던 도중, 정신을 차려보니 한 달 이상이 지나 있었다. 사이고쿠(西国)에서는 돌발적인 소규모 충돌이 발생하기는 했으나, 대규모 전투로 발전하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주로 공격하는 쪽이 소극적이 되어 있는 것에 기인하는데, 그 배경에는 노부나가로부터 히데요시(秀吉) 및 미츠히데(光秀)에 대해 "침공속도를 늦추고 기반을 다지도록 하라"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사이고쿠 정벌을 뒷받침하는 유통의 거점이 되어 있는 것은 여전히 쿄(京)로, 쿄에서 탄바(丹波)를 경유하여 하리마(播磨)로 보급선이 늘어져 있었다. 전선으로의 보급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도 조속하게 물류의 전선기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셋츠(摂津), 탄바에 대해서는 거의 제압이 완료되어 있었기에, 제 1단계로서 물류 거점을 탄바까지 밀어올린다. 다음으로 탄바와 하리마의 경계 부근에 중계기지를 마련하여, 최전선인 북 하리마 및 동 하리마를 뒷받침하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적에게 들키지 않고 진행하기 위해서도, 히데요시와 미츠히데 두 사람은 소규모 충돌을 계속하면서도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육로(陸路)는 탄바에서, 해로(海路)는 셋츠 경유로 하리마 국 경계까지 물류망이 이어졌고, 두 분의 진력에 의해 지역의 안정화도 아주 잘 되고 있네요. 코우베(神戸) 항구의 개발은 순조롭나요?"


"토우도(藤堂) 님의 정기보고에 따르면 계획에 큰 지연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바닷속 작업이 발생하는 돌제(突堤)의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에치고(越後) 같은 곳과 비교하면 따뜻하다고는 해도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으니까요. 무리해서 수중 작업이 가능한 숙련공을 잃는 것은 피하고 싶으니, 돌제의 공사는 계획을 재검토하죠"


오와리(尾張)와 비교하면 따뜻한 경향에 있다고는 하나, 본래 겨울 바다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수지(樹脂)로 된 웻 수트(Wet Suit)를 개발하고는 있으나, 단열이 충분치 않아 장시간의 작업에는 견딜 수 없다.

돌제가 없어도 소형의 선박이라면 정박 가능하기에, 해운(海運)은 보조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고, 당분간은 육로를 중심으로 한 물류망으로 운용하게 된다.

항만도시를 정비하는 데 있어 항구만 생겨도 의미가 없다. 해로를 통해 운반되어 오는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반할 육로의 정비도 병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잔뜩 항구만 만들어서 어쩔 건데?"


시즈코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물었다. 그가 지적한대로, 시즈코는 코우베 항구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의 지배 아래 있는 각지에서도 항만도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오와리와 사이고쿠를 잇는 항로의 중간점에 위치하는 키이(紀伊, 현재의 와카야마 현(和歌山県)) 방면에도 항만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즈코는 정력적으로 노부타카(信孝)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물류를 지배하면 자연스레 적의 움직임이 보이게 되거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게 제일 빠른 길이야"


"그런 건가. 확실히 전쟁처럼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에 걸맞는 물자가 움직이게 되니, 자연히 시즈코가 알게 되는 건가……"


히데요시의 손으로 아카시(明石) 부근까지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시즈코는 사탕과 채찍을 병용하면서 기존의 효우고(兵庫) 항구 및 아마사키(尼崎) 항구를 지배하에 두었다. 거기에 항만 운용에 엄격한 룰을 적용하여 새는 화물(抜け荷, 소위 말하는 밀수(密輸))을 단속했다.

게다가 부두에 대규모의 창고를 건설하고 중기(重機)를 이용하여 화물을 부리기 떄문에, 종래의 인력으로 운반하는 방식과는 효율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어느 쪽을 이용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한 번 벌어진 차이는 계속 벌어질지언정 좁혀질 일은 없어서, 물류는 시즈코의 손에 의한 독점 내지는 과점(寡占) 상태가 되어 있다.


"아무리 나라도 재미(道楽)로 항만 개발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확실히 이유(目論見)가 있어서 하는 거거든?"


"오다 가문의 가신들 중에서도 아직 시즈코의 항만 개발을 쓸데없다고 단정하는 패거리가 있으니까 말이지. 뭐 이렇게 이례적인 화물의 움직임이 있을 때 그 징후를 탐지할 수 있게 되면 적도 힘들어지겠지"


"아무래도 자급자족하고 있는 물자나, 하리마보다 서쪽에서 운반되어 오는 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무구(武具) 종류에 관해서는 그렇지도 않으니까. 특히 화약은 사카이(堺)를 장악하고 있으니, 주상(上様)의 허가가 없으면 운반조차 할 수 없고 말야"


"설령 새는 화물로 반입하려고 해도, 길 없는 산야(山野)를 혼자서 주파하지 않는 한 반드시 네게 탐지되겠지"


물류망을 구축한 시즈코는, 운송회사를 창업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최대 업체로 부상했다. 독점상태가 되면 경쟁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에, 회사를 여럿으로 나누어 독립채산제(独立採算制)로 한 뒤에 노부나가와 노부타다(信忠)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기술의 발전이나 업무의 개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다만 경영권을 맡겼다고는 해도, 시즈코가 대규모 출자자인 것에 변함은 없어서, 업계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인재를 육성해서 회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재미있거든. 아마도이지만, 나는 전쟁보다 이런 일 쪽이 성격에 맞는다고 생각해"


"뭐, 시즈코는 전투에 관해서는 일반인 수준을 넘지 못하니까. 예전에는 이상한 활을 쓰게 하면 놀라운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고 말야. 묘하게 감이 좋으니 지휘관으로서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래도 비범하다고는 할 수 없겠네"


"우사 산성(宇佐山城)에서 패전을 경험한 이래, 머지않아 짐덩어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후방지원 부대를 주력으로 한 거야. 이거라면 전쟁을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실제로 싸움을 하는 카츠조(勝蔵) 군들을 징원할 수 있으니까. 타케다(武田)와의 전투에서는 변화하는 전황을 최전선에서 즉각 판단하고 그에 대응하는 지시를 할 필요가 있었으니 예외적으로 전선에 있었지만 말야. 금후에는 인재부족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전선에 설 일은 없지 않을까?"


"당연하지! 누가 널 대신할 수 있다는 거야. 안 그래도 요즘에는 나중에 필요해질 물건까지 미리 보내져오니까 네가 전선에 나온 게 아닌가 하고 초조해져 있는데"


"경향과 대책이야. 기록은 그냥 남기기만 해서는 아깝잖아? 분석하고 활용하면 상황에 맞춰서 필요해질 물건의 경향이 보이게 되거든"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인간은 종종 성공체험을 바탕으로 행동을 패턴화시키기 일쑤이다. 그리고 개인을 묶어 군을 구성할 경우에는, 더욱 개성은 집단에 매몰되어버리고 패턴화로 수렴된다.

충분한 양의 사례가 축적되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한해서는 높은 정밀도로 필요한 물자 등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항상 예측하지 못한 사태는 발생할 수 있기에, 유비무환(転ばぬ先の杖)으로서 잉여 물자나 예비 부재(部材) 등도 '항상 일정량이 비축'되도록 수배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었을 때만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기에 미래를 예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특훈 안 하고 있지?"


시즈코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요시가 쉬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물었다. 노부나가가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호령을 내린 이래로, 나가요시와 그 부하들은 연일 특훈이라 칭하고 행군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2월에 들어서서 연습은 격일(隔日)이 되고, 1주일에 한 번이 되고, 최근에는 기본 교련 이외에는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음, 오늘은 완전 휴양일로 했어. 행군할 때의 움직임은 몸이 기억할 때까지 훈련시켰으니, 남은 건 숙련도(練度)를 유지하며 몸 상태를 갖추는 쪽으로 바꾸었지"


"과연. 확실히 그 훈련 내용으로는 부상도 끊이지 않을테고, 몸 상태가 나빠지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그럼 특훈은 전혀 안 하는 거야?"


"아니, 격주로 1, 2회 실시하고 있어"


거친(粗暴) 행동이 눈에 띄기 때문에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찬 듯이 생각되기 십상인 나가요시이지만, 의외로 행동은 계산에 뒷받침되어 있다. 격렬한 훈련을 반복하면 근력 등은 향상되지만, 피로의 축적에 비례하여 면역력이 계속 저하된다.

적당히 회복기를 두지 않으면, 언젠가 회복이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훈련이 역효과가 되는 것이다. 나가요시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이른 단계에서 기초를 주입시키고, 이후에는 그것을 유지하며 부대 전체의 건강상태를 베스트로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무래도 특훈 이외에는 먹고 자기만 하는 생활은 계속하기 어려우니까. 인간은 그렇게 장기간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아. 가끔은 맛있는 걸 먹고 술을 마시며 놀아야지"


"그 자리에 상사인 네가 있으면 다들 불평을 말할 수 없으니까 여기 있다는 거네?"


"힘든 훈련을 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불평 한 마디 하고 싶어지겠지. 그걸 계속 담아두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말야. 어때, 나도 제법 생각하고 있지?"


그렇게 말하고 가슴을 펴는 나가요시를 보고, 시즈코는 그의 성장을 기쁘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초봄도 끝나가는 3월이 되자, 행군 연습의 비율이 늘어나는 대신 기초수련의 내용은 줄어들고, 식사나 수면시간도 배려하도록 지시가 나왔다.

병사 숙소(兵舎)에서 나오는 식사 내용도 원정중에는 보급하기 어려운 생야채나 과일에 계란 요리의 등장빈도가 올라갔다. 고단백 저칼로리였던 종래의 식사에서, 여차할 때의 비축이 되는 지방이 되기 쉬운 당분(糖質)이나 기름기(脂質)가 중심으로 이행되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에 의해 병사들의 몸집도 달라져갔다. 강철의 선을 묶은 듯 조여진 육체에서, 그 위에 얇게 지방의 층이 붙은 (비교적) 날씬한 씨름선수(力士) 체형이라고 하면 상상하기 쉬울까.


"크으윽…… 아, 아프지는 않아!"


그렇게 육체개조를 하고 있는 그들이 열심히 달라붙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목욕하고 나온 후의 발 경락 마사지였다.

발단은 에치고(越後) 사람들 중 한 명이 탈의실 구석에 새롭게 설치된 나무로 된 발 경락 매트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것은 욕실용의 '발판(すのこ)'을 만들었을 때 남은 자투리 재료(端材)와, 군용 부츠의 밑창을 만들었을 때 남은 수지를 조합하여, 판 사이에 놓고 밟아도 잘 미끄러지지 않게 처리가 되어 있다.

목재 표면에 강가에서 주운 듯한 표면이 깎여나가 둥글어진 돌이 몇 개나 박혀 있는 이상한 물체. 주의사항에는 맨발로 '천천히' 올라서도록 적혀 있었다.

주의사항을 읽지 않았던 그는, 발 경락 매트에 기세좋게 뛰어 올라서 버렸다. 직후에 터져나온 절규와 발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구는 남자가 한 명 생겨났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던 사람들 전원이 달려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목욕탕의 관리자로부터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으면 아프게 느껴지지만, 문제가 없으면 딱 좋은 자극이 된다고 듣고 쇼크를 받게 된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나를 봐라!"


"네놈도 무릎이 후들거리고 있잖나!"


발바닥 근육이 피로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서 있는 자세에 문제가 있어서 중심이 흐트러졌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장심(土踏まず)이라는 평소에 자극을 받을 일이 잘 없는 곳이 민감해져 있었던 것일까.

다들 발 경락 매트에 도전했다가 격침되는 것을 반복하여, 언제부터인가 목욕하고 나오면서 줄을 서서 순서대로 발 경락 매트에 올라서서 그 위에서 안 아픈 척 참는다는 광경이 풍물시(風物詩)가 되었다.

처음에야 전원이 몸부림을 쳤지만, 그러면서 다들 자극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정말로 몸 상태가 좋고 나쁜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여 인기를 모으게 되어, 몸이 식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입욕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어딘가 평화로운 건강지향 붐에 들끓고있던 3월이 지나갈 듯한 하순에, 드디어 노부타다가 주요 부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의 개시를 선언했다.


"다들 잘 들어라! 우리들이 그 패전에서 배우고, 비밀리에 혹독한 훈련을 해온 것을 잘 모르는 쿄나 사카이의 참새(雀)들은 "이번에도 또 꼬리를 말고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고 지저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힘은 주상께서 휘두르시는 칼날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결코 얕보여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얼굴에 옹이구멍이 뚫린 참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노부타다가 토한 기염에, 집결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어 화답했다. 열병장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들 즉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즈코 저택에서도 이 움직임은 다를 것이 없어, 나가요시가 이끄는 부대가 타케다 전에서 선봉(一番槍)을 맡기 때문에 부대의 편제나 장비의 점검에 분주했다.

그래도 출정 자체를 향해 평소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도 있어, 일시적인 소동은 빠르게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특훈에서 얻은 힘을 실컷 발휘하고 와"


"음! 맡겨둬, 무사의 숙원(本懐)을 이룰 기회니까 말이지. 즐기고 오겠어!"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는 주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이 상황에 이르면 잔소리나 충고 같은 것은 필요없고, 서로가 재회를 전제로 한 인사를 나누고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이놈들아! 까짓 타케다의 찌거기(残滓) 따위가 뭐라는 것이냐! 우리들의 힘을 세상이 알도록 해주자!"


"오오!!"


나가요시가 부하들에게 호령을 하자, 다들 나란히 주먹을 한 곳을 향해 치켜올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시즈코는, 나가요시 군의 병사들에게서 김(湯気)이 피어오르는 착각을 받았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진 열기가 흔들흔들 피어오르는 듯 보이는 광경에, 모두가 이 때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가요시 군이 오와리에서 타케다의 본거지인 카이(甲斐)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가요시 군도 합류하여 무려 수만명으로 불어난 노부타다 군의 '본대'가 기후 성(岐阜城)에서 화려하게 출진했다.




때는 노부타다의 출진으로부터 한 달 정도 거슬러올라간다. 당시의 타케다는 아슬아슬하게 군으로서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어, 무엇 하나라도 실수했다간 붕괴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붕괴로 이어지는 개미 구멍 하나가 뚫려 버렸다. 대(対) 오다의 최전선에서 침공을 막는 역할을 맡겨놓고, 지원은 커녕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힘을 깎아먹는 카츠요리(勝頼)에 대해 불만이 커져가고 있던 시나노(信濃) 국의 키소다니(木曾谷)의 영주,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가 노부나가의 회유(調略)에 응했다.

키소는 그의 친동생을 인질로 오다에 바치고 타케타로부터 이탈할 것을 맹세했다. 그 인질이 기후 성에 도착한 것은 3월 15일이었다. 타케다에게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이동했던 키소의 친동생은, 호위가 붙여져서 다시 노부나가가 있는 아즈치(安土)까지  이동했다.

이것을 계기로 노부타다는 가신들에게 고했다.


"지금부터 코우슈(甲州) 정벌의 선발대(先遣隊)를 파병한다"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개전의 허가를 주상께 받지 못했――"


"이 상황에서 불허하실 리가 없다. 게다가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려서는 늦는다! 타케다가 키소의 배신을 알기 전에 공격한다! 지금부터는 일각을 다투지 않으면 기선을 제압할 수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시작해라!"


"죄송합니다만, 선발대의 일부가 준비되지 않았습……"


"선발대의 임무를 받아놓고 준비하지 않은 덜렁이(粗忽者) 따위 내버려둬라!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옛.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 님 휘하의 모리(森) 님은, 하명만 하시면 즉시 출발할 수 있다고……"


그 보고를 들은 노부타다는, 자기 군의 부하에게 선봉을 맡기기보다,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실리를 택했다. 나가요시 및 그 시점에서 준비가 되어있던 선발대를 즉시 출진시켰다.

이것이 3월 18일의 일로, 3월 22일에 수만의 군세를 이끌고 본대가 다른 루트를 향해 출진했다.

나가요시 군을 포함하는 새 선발대는, 기후 성을 출발하여 에나(恵那, 현재의 기후 현(岐阜県) 에나 시(恵那市))에 있는 이와무라 성(岩村城)을 목표로 했다.

그들은 이와무라 성을 함락시켜 중계지로 삼은 후, 타케다로부터 이탈한 키소가 다스리는 키소 후쿠시마 성(福島城, 현재의 나가노 현(長野県) 키소 군(木曽郡) 키소 정(木曽町))으로 들어가, 그 후 스와 호(諏訪湖) 부근에 위치하는 우에하라 성(上原城)을 공략한 후에 남하할 예정이었다.

그 후, 적의 수괴(首魁)인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가 있는 신푸 성(新府城)을 향해 북쪽으로 도는 진로를 계획하고 있었다.

한편, 본대인 노부타다 군은 이와무라 성까지는 같은 루트를 타고, 그 후에 남쪽으로 도는 루트로서 루트 상에 있는 타키자와 성(滝沢城), 마츠오 성(松尾城, 현재의 나가노 현 이이다 시(飯田市)), 이이다 성(飯田城)을 함락시키며 북상하여, 남쪽으로부터 신푸 성으로 치고 올라가는 진로를 예정하고 있었다.

이 루트들은 예전부터의 과제였던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유행지를 피하면서 동시에 대군이 이동 가능하다는 진로가 된다. 일본주혈흡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주혈흡충은 한 번이라도 기생당하면 즉각 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반복적으로 몇 번이나 기생당하는 것으로 중증화되기에, 대책을 취한 상태에서 하천이나 유행지를 피하면 충분히 대처 가능한 것이다.


"호오,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출진했는가. 재미있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볼만하겠구나"


기후 성에서 오와리를 경유하여, 전신(電信)으로 노부타다 출진의 보고를 받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었다. 그는 아시미츠(足満)가 가져온 전신이라는 혁명적인 통신 수단이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고, 즉시 호죠(北条) 공격의 임무를 맡는 별동대를 포함하는 나머지 토우고쿠 정벌부대에 호령하여 출격명령을 내렸다.


오다 가문의 주요 무장들이 오우미(近江) 일원에서 곧장 동쪽을 향해 출진해가는 모습을 본 백성들은, 드디어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 정벌에 나섰다며 떠들어댔고, 그 정보는 킨키(近畿) 지역에 퍼지게 되자 상인들의 손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으로 확산되어갔다.

노부나가의 호령 하나로 즉시 군사 행동이 가능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종래의 농업이란 모든 사람들이 종사하는 살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다양한 개혁과 효율화가 가해진 오다 가문에서는 분업화된 하나의 산업에 불과하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종래의 절반 이하의 노력으로 농작업이 수행되기 때문에, 단순 계산으로도 오다 군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인구 대비 다른 나라의 배가 된다. 이들은 예비역이나 반농반병(半農半兵)인 사람들도 포함하기 때문에, 직업군인은 훨씬 적다.

그래도 이 시대에서 상비군(常備軍)을 조직하고 운용이 가능한 것은 노부나가 뿐이리라. 즉, 오다 가문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비밀로서, 상비군과 그 외의 혼성부대로 군을 나누는 것에 의해 돌발사태에 대한 즉응성(即応性)을 높인 결과였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 카츠요리의 귀에도 노부타다 출진 소식이 들어가게 된다. 이 보고를 카츠요리가 받은 것은 키소 요시마사의 배신을 알게 되어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를 대장으로 삼아 토벌군을 보낸 후였다.

이에 맞서는 키소는, 이대로는 오다 가문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토벌군에게 포위당할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행군을 지체시키기 위해 성을 나가서 야전(野戦)을 걸고자 출진했다.

그에 대해 토벌군은 이마후쿠 마사카즈(今福昌和)가 지휘하는 부대가 선행하여 키소 후쿠시마 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자는 3월 28일, 토리이 고개(鳥居峠, 현 나가노 현(長野県) 시오지리 시(塩尻市) 나라이(奈良井))에서 격돌한다. 초전(初戦)은 지리적인 이득이 있는 키소 군이 우세하게 진행되나, 타카토 성(高遠城)에서 파견된 토벌군의 원군이 더해지자 즉시 뒤바뀌어 방어에 급급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희생을 내면서도 키소 요시마사는 패주하여 키소 후쿠시마 성에 농성했다. 한편, 키소 군을 물리친 토벌군은, 토리이 고개에 가까운 나라이나 사이카와(犀川)에 진을 치고 키소 군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없다고 초조해진 키소는, 사자를 파견하여 카츠요리에게 변명을 시도했다. 당연하지만 키소로부터의 변명은 묵살되었고, 카츠요리 자신은 아들인 노부카츠(信勝)를 데리고 신푸 성에서 우에하라 성으로 이동했다.


"으ー음, 주혈흡충(住血吸虫) 대책을 중시한 게 역효과가 났네. 역시 때를 못 맞췄나……"


그 보고를 노부타다 군에게서 전신(電信)으로 받은 시즈코는, 예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된 것에 탄식했다.


"무어 유쾌한 일이라도 있었더냐?"


시즈코의 옆에서 우아하게 차를 즐기고 있던 노히메(濃姫)가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시즈코의 그것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렇게 혼자서 시즈코 저택을 방문하고 있었다.


"키소 요시마사가 토리이 고개에서 타케다 군과 격돌하여 패전했습니다. 키소는 키소 후쿠시마 성으로 도망쳤습니다만, 타케다 군이 나라이가와(奈良井川)에 진을 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흠. 타케다는 키소를 패주시켰지만, 처치하지는 못하고 농성을 허용해버렸다는 것이냐. 그놈은 주군의 군이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키소 후쿠시마 성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은 뼈아프겠구나. 한편으로 키소를 품고 있는 우리들도 초전에서 패전이라니 모양새가 좋지 않구나"


"그렇네요. 야전에서 승리해놓고 키소 후쿠시마 성을 포위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이가와까지 '후퇴'한 것이 고전한 것을 말해주고 있군요. 그리고 이 사태는 카츠요리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寝耳に水)겠네요. 승리 소식을 들었을텐데, 성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까요"


야전에서 승리한 경우, 보통은 추격을 하여 패주중인 군을 몰아넣는다. 그것을 포기하고 나라이가와까지 후퇴하여 진을 친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공성을 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홋. 키소 한 명이 배신한 것만으로 기둥뿌리가 흔들리다니, 타케타도 쇠락했구나"


"타케다의 약체화를 꾀하도록 지시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힘이 떨어졌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흠, 타카토라(高虎) 군에게서 하리마 평정의 물자 상황이 도착했네요. 아, 카츠조 군에게서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호오, 속보라고 했는고? 무어라 하고 있느냐?"


"억지를 써서 가지고 나간 대포 말입니다만, 진군 속도의 족쇄가 되어서 이와무라 성에 놔둘테니 회수하러 와 달라고……. 그래서 가지고 가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한건데"


시즈코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통신수가 받아적은 전신 내용을 청서(清書)한 것이 차례차례 전달되어 왔다. 이번의 전쟁은 종래와는 달리 양면 작전(二正面作戦)을 동시 진행하기 때문에, 중심지인 오와리에는 양쪽의 정보가 그때그때 들어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요술이로구나, 그 전신인가 하는 것은. 이곳에 앉아서 하리마와 시나노의 정보가 그때그때 들어오다니 말이다"


"과연 노히메 님, 눈이 높으시네요. 이걸 본 높으신 분들은, 전령이 가져오지 않는 정보 따윈 신용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전신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보 발신원(情報発信源)은 신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 부분을 이해하시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즈코가 사용하고 있는 전신(좁은 의미로는 통화(通話)를 하고 있기에 전화(電話)이지만, 여기서는 전파를 사용한 통신 전반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의 전신을 가리킴)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세계를 축소시켰다는 말까지 들은 혁신적인 기술이다.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전자 공작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중학교 이과(理科) 수업 및 고등학교의 물리(物理)에서 배우는 정도의 기초 뿐이다. 그래도 시즈코가 초기에 필사한 전자기(電磁気)의 교과서는, 아시미츠의 지식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전신기(電信機, 송신기(送受信))가 실용화된 후에도 아시미츠는 추가적인 개량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 시점에서는 전신기 자체가 너무 크고, 전원을 확보하기 위한 발전기도 소형화하거나 전지의 성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다.

전신기에는 납 축전지(鉛蓄電池)가 병설되어, 상시 수력발전기로부터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수력발전기라고 해도, 폭포 같은 큰 낙차를 이용한 터빈 방식의 것이 아니라, 하천 등의 흐름에 대해 드릴 같은 구조의 나선식(螺旋式) 수차를 설치하는 발전기이다.

이 발전기는 다소의 고저차(高低差)와 어느 정도의 수량(水量)만 있으면 전신기 한 대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량을 확보할 수 있다. 시즈코가 원래 있던 시대에서는 신기할 것도 없는 발전기이지만, 이 발전기를 전국시대에서 재현하는 데는 몇 가지 과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문제는 축받이(軸受け)였다. 축받이란 회전하는 축을 지지하면서 부드러운 회전을 실현하는 기구를 가리킨다. 핸드 스피너 등에서 축받이에 의한 마찰의 경감으로 회전력이 유지되는 모습을 떠올리면 잘 이해될 것이다.

축받이의 핵심을 구성하는 작은 강철 구슬, 소위 말하는 볼 베어링을 완전한 구 형태의, 일정한 규격에 따른 치수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업력이 없으면 안 되며, 또 소재가 되는 철강이나 유압 프레스에 기계와의 마찰을 경감시키는 작동유(作動油), 무섭도록 단단한 쇠구슬을 정밀하게 연마하는 장치 등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시즈코가 지금까지 배양해온 오와리의 기술력을 결집시킨 정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이 일련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신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않더냐?"


"예, 타케나카(竹中) 님 같은 분은 전신의 가능성에 매혹되어서, 지금도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통신기나 그 기술자들을 부리려면 자신도 최저한의 지식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겠죠"


시즈코는 노히메의 말에 대답하면서, 전신을 통해 들어오는 포진 상황을 나타내는 '입체 지도(立体地図)' 위에 배치된 말(駒)을 움직였다.


"그것이 예사(芸事) 보호를 빙자하여 만들어낸 지도인가 하는 것이더냐?"


"누가 들으면 오해하실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건 꾸준한 측량의 결과입니다. 확실히 예사 보호의 일환으로 찾아갔을 때 측량한 것도 있습니다만……"


"호호호, 말은 하기 나름이구나. 조정(朝廷)의 권위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


시즈코의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입체지도는, 지형의 기복이 실제의 축척(縮尺)에 따라 어느 정도 재현된 디오라마 같은 것이다.

한 번 산 속에 들어가버리면 등고선(等高線)도 알 수 없기에 시야가 트인 장소로 한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행군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은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마을의 규모나 하천의 위치, 다리의 유무 등, 싸움을 하는 데 중요해지는 정보는 빠짐없이 재현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얻는 데 있어 측량기기와 사진이 크게 활약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사진 자체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사전 준비라고 하면 측량을 하더라도 추궁받을 일은 없다. 거기에 조정의 권위, 나아가서는 천황(帝)의 권위를 한껏 활용하여 사진의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측량하는 곳에 대해서는 반드시 풍경사진을 촬영하고, 그 중에 탈이 날 일 없는 몇 장을 현지의 유력자에게 기증하고 있다.

또, 그 사진에 채색을 한 것을 천황에게 헌상하고 있고, 그것이 대단히 호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대놓고 촬영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궁궐(内裏)에 틀어박혀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에게, 시즈코에게서 헌상되는 사계절마다의 풍경사진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그 마음을 크게 위로해주는 것이 되어 있었다.


"저도 조정에는 꽤나 편의를 보아 주고, 금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계속 지원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해도 벌은 안 받겠지요?"


"좀 더 직설적으로 대가를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만 말이다. 시즈코는 그쪽 방면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모양이구나. 이렇게까지 해주고 얻은 것이 정 3위(正三位)와 곤츄나곤(権中納言, ※역주: 벼슬의 명칭으로, 작중에서는 문맥상 명예직에 가까운 것으로 보임) 뿐이 아니더냐?"


"그렇게 말씀하셔도, 궁중에 입궐(参内)하라고 해도 곤란하니, 가벼이 보일 일 없으면서 큰 영향력도 가지지 않는게 제일이지요"


"시즈코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느니라. 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유행하는 물건들은 무엇 하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게 쿄의 상류계급 사이에서 한결같은 소문이니라"


노히메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시즈코가 다양한 산물을 탄생시키고,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연출을 곁들여 선전해온 결과, 공가(公家)의 유행에 오와리 양식(尾張様)이라는 브랜드가 확립되었다.

식료품은 말할 것도 없고, 차나 과자 같은 기호품에 술이나 향신료 등도 오와리의 것이야말로 일류로 치게 되었으며, 그 모든 산업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는 시즈코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환담하시는 중 실례합니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맹장지 너머로 말을 걸어온 소성(小姓)이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중간에 끊겨버려서 나머지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소성을 밀어젖히듯 하며 실내로 들어온 인물은 입을 열자마자 말했다.


"또 재미있는 것을 하고 있구나, 시즈코. 나를 끼워주지 않다니 섭섭하지 않느냐!"


"늦으셨군요, 주군"


깜짝 놀라는 시즈코의 옆에서, 노히메는 부채를 펼치고 재미있는 듯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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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8 공습(空襲)



엣츄(越中) 쿠로다(黒田) 세력의 화살이 닿는 거리보다 훨씬 앞에서 시마다(島田) 하사(三曹)의 포가 불을 뿜었다. 첨벙첨벙하고 강물을 밀어내면서 장갑차의 포는 두번 세번 굉음을 발했고, 나무로 된 망루(櫓)나 대(棚)가 맥없이 박살났다. 특히 6, 7명의 병사가 올라가 있던 망루는, 그 받침 부분에 직격탄을 맞고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쿠로다의 병사들도 용감했다. 아마도 100% 죽을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음에도, 그래도 짐승같은 고함을 지르며 돌진해왔다. 장갑차의 병사들이 상당히 겁을 먹은 것을 기숡에 서 있는 이바는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격(銃火)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돌출되어 있던 쿠로다 병사들은 모두 맥없이 총격을 받고 물가에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시마다는 뭔가를 깨달은 듯, 강기슭으로 단번에 차량을 올라가게 한 후, 경사가 끝나고 평탄해지기 시작하는 부근에서 갑자기 차량의 방향을 바꾸어 적에 대해 옆구리를 보였다. 상대가 아무런 화력도 없는 것을 알기에 부린 재주이다. 병사들은 일제히 뛰어내려 그 뒤로 숨었다.

가볍지만 소리만큼은 요란한 장갑차의 포가 연속적으로 불을 뿜고, 놀랍게도 기총(機銃)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마루오카(丸岡)와 시마다가 이때다 하고 쏴갈기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찌르는 사람이 있기에 돌아보니, 젊은 일병(一士)이 무전기(tranceiver)를 들고 서 있었다.


"적은 농가를 방패로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마다의 목소리가 무전기 속에서 들려왔다.


"농가는 태우지 마라. 우회해서 소사(掃射)해라"


이바가 명령하자, 장갑차는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전진을 시작했다. 이미 화살 소리는 사라졌고, 병사들은 차량 뒤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이바는 카게토라(景虎)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와- 하는 환성을 올리며 나가오(長尾) 부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소름끼칠 듯한 칼날의 빛이 잠시동안 강을 뒤덮었다.


"이건 엄청난 칼싸움(チャンバラ)인데"


무전기 속에서 시마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새 6, 7명의 대원이 이바 주위에 몰려들어 총을 겨누고 반대편 기슭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 라는 기쁨보다, 이바는 바위밭을 떠나온 사내들의 태도에 감격하고 있었다.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바위밭을 떠나는 것은 이바 자신에게도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게토라 씨들이 적을 쫓고 있습니다. 이미 싸움(斬り合い)이 벌어지는 곳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는 녀석들을 쫓아 점점 멀리 가고 있습니다. 이런 근거리 전투에서는 전혀 쏠 수 없습니다"


이바는 시마다의 보고를 정확(的確)하다고 생각했다. 칼과 창의 전투로는 금방 격투가 되기 십상이다. 다음 기회에는 피아간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두지 않으면 뭘 위한 근대 화기인지 모르게 된다.


"요시아키(義明) 님이시오……?"


갑자기 무전기에 카게토라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이바입니다. 말씀하십시오(역주: 일본에서 무전기로 통신할 때 どうぞ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버(over)'에 해당하지만, 여기서는 대화의 흐름을 고려하여 일부러 '말씀하십시오'로 의역함)"


"들리는 걸까?"


카게토라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있는 모양이다.


"들립니다. 말씀하십시오"


"오오, 들렸다"


"카게토라 님, 말씀하십시오"


"어떻소. 이대로 미야자키(宮崎) 요새를 함락시킬 수는 없겠소이까"


이바는 즉시 대답했다.


"요새를 불태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돌아와 주십시오. 카게토라 님만 오셔도 됩니다……"


"오오, 그렇소?"


그 말만 하고 통신이 끊기고, 이윽고 반대편 기슭의 사면(斜面)을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가 혼자서 달려내려와 강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카게토라는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이바는 카게토라와 나란히 바위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시아키 님에게 어떤 계책이 있는지, 이제 그것만이 기대되어 달려왔소이다"


카게토라는 약간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요새를 태우러 가죠"


"저 요새는 견고하게 지어져 있소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목조(木造) 아닙니까"


"그렇소.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는 하오만……"


"그럼 간단합니다. 둘이서 불태워 버리죠"


"둘…… 나와 그대가 말이오?"


카게토라는 발을 멈추고 말했다.


"시미즈(清水) 상사(一曹)에게 헬기를 준비시켜라. 적의 요새를 불태울 것이다"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은 조금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이바를 보더니 즉시 달려갔다.


"카게도라 님은 배멀미를 하시는 편입니까"


"아니오. 배멀미는 하지 않소"


"그럼 안심입니다. 요새를 불태우고, 덤으로 적의 모습을 하늘에서 구경하고 오죠"


카게토라는 기겁하여 멈춰섰다.


"하늘……"


"나는 겁니다"


이바는 짓궂게 웃었다. 음…… 하고 신음하는 카게토라의 등을 가볍게 치며,


"카게토라 님 정도 되시는 분이, 하늘 한두번 나는 정도가 뭐라고 그러십니까"


라고 놀렸다.


"송구스럽소. 요시아키 님은 참으로 호탕한 말씀을 하시는구료. 하늘 한두번이라니, 이건 꼭 우리 주군께 들려드려야 하겠소"


카게토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듯 했다.

시미즈 상사는 이미 헬기에 시동을 걸고, 히라이 상병이 나무 상자를 두 개 짊어지고 와서 헬기 안에서 뚜껑을 비틀어 열고 있었다.

카게토라와 이바가 탑승하자, 히라이는 내릴 기색도 보이지 않고 기세좋게 문을 닫고는 이바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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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7 출격(出撃)



"의논(談合)은 끝나셨소이까……"


카게토라(景虎)가 남성적인 얼굴에 미소를 띠며 돌아와 이바(伊庭)에게 말했다.


"그리 대단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부대의 규율을 이곳에 오기 이전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카게토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들의 전통(しきたり)은 아무래도 잘 이해되지 않는데, 장수와 병사의 규율이 조금 지나치게 느슨한 게 아니외까?"


이바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카게토라 님 같은 분이 보시기에는 오합지졸로 보이겠지요"


카게토라는 애매한 미소로 그에 답했다.


"그런데, 첩자의 보고로는 아무래도 쿠로다(黒田) 놈이 대군을 움직일 낌새이오"


"결전을 걸어올 생각일까요"


"글쎄,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미야자키(宮崎) 요새 너머에 있는 마츠쿠라(松倉), 나메리카와(滑川), 신죠(新庄), 토야마(富山) 등 진보(神保) 가문, 시이나(椎名) 가문 등의 각 성이 전투 준비에 바쁘다고 하오. 진보, 시이나 양 가문은 옛부터 우리 에치고(越後)의 적……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 놈이 교묘하게 부추겨 대군을 유도한 것인지도 모르오"


입는 자신의 지도를 펼쳤다.


"쿠로베(黒部), 토야마…… 과연, 이 사이에 있는 병력이 일제히 이쪽으로 향하게 되면, 이거 꽤 큰(ちょっとした) 싸움이 되겠군요"


"그렇소. 꽤 큰……"


카게토라는 이바의 표현이 느낌이 좋은 듯 흉내냈다.


"숫자는……"


"1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오. 7천이나, 7천 5백"


이바는 신음했다.


"이곳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7천이 움직이려면 사흘은 필요할 것이오"


운동성(運動性)이 나쁜 군사행동(軍事)이군, 이라고 이바는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 강을 확보해 두죠"


"뭐라고 하셨소?"


"사카이가와(境川)를 우리들의 방어에 이용하지요"


카게토라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카이가와를……"


"강 건너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강 저편에는 사카이(境)라는 이름의 땅이오. 백성의 집이 두 채. 이쪽보다는 약간 완만한 땅으로, 도로(街道) 외에는 숲과 밭 뿐이오"


"그러면 당신의 병사들을 모아 주십시오. 강의 저쪽 기슭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여, 엣츄(越中) 세력이 왔을 때의 제 1차 방어선으로 삼습니다. 강에 방어진을 치고 제 1차 방어선이 뚫렸을 때의 제 2차 방어선으로 하죠. 그리고 강을 건너오면 이쪽이 제 3의 방어선……"


카게토라는 입을 딱 벌리고 이바를 보았다. 천연의 방어 거점의 앞쪽에는 반드시 그것을 지키는 진지를 구축한다는 군사 사상의 초보적인 내용이, 이 시대의 무장에게는 천재적인 발상(ひらめき)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적지에 파고들어 수비를 굳힌다…… 이거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카게토라는 솔직히 고개를 숙였지만, 이바는 장갑차의 차장인 시마다(島田)의 성격을 계산에 넣은 것에 불과하다.

카게토라들은 쿠로다의 땅에 쳐들어가 싸우는 것이 우선 큰일이지만, 이바는 그런 적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다.


"언제 치고 나갈 생각이시오"


"지금입니다"


그것은…… 이라고 말하려던 카게토라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매서운 미소를 짓더니 빙글 몸을 돌려 달려갔고, 길로 나서자 큰 소리로 외쳤다. 공사 인부들이 즉시 무장병으로 모습을 바꾸어, 약 150명 정도의 부대가 대오(隊伍)를 갖추었다.


"시마다 하사(三曹). 장갑차(APC) 출동 준비"


옛, 하고 기세좋게 대답한 시마다는, 마루오카(丸岡) 일병(一士)과 함께 차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키무라(木村) 상병(士長).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을 정렬시켜라"


군장 소리가 나며 열 명의 보명이 APC 옆에 정렬했다.


"사카이가와를 도하(渡河)하여, 전방 적진을 파괴하고 에치고 병사들의 활동을 엄호하라. 목적은 교두보 확보 및 우군 방어전선의 구축"


장갑차가 굉음을 내고, 열 명의 병사가 그것에 뛰어 올라탔다.


"출발"


이바는 장갑차 앞을 천천히 걸어서 전국시대의 호쿠리쿠도(北陸道)로 나가자, 오른손을 휘둘러 장갑차를 우회전시켰다. 장갑차는 지금, 그 본래의 목적을 위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카게토라 님. 병사들이 저 차보다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지시해 주십시오"


"알겠소"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는 자군의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들으며 이바의 마음에 문득, 바위밭을 떠나는 데 대한 불안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여 이대로 고립된 입장이 되기보다는, 이 시대에 참가하는 확실함 쪽이 훨씬 자신을 행복하게 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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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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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06 의견(意見)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의 초계정(哨戒艇)은, 잔교(桟橋)가 없어진 바위밭에 접안했다. 타고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은, 주위에 이질적인 복장의 시대인(時代人)들이 있는 것을 보고도 그다지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계셔 주셨습니까. 정말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안도한 태도로 모두와 악수하며 걸었다.


"자네들은 어디까지 갔던 건가"


"어딘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항구랑 항구는 죄다 쬐끄맣고, 거기에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알고 있는 장소나 우군과 만날 때까지라고 생각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습니다만 그러다보니 해가 져버려서……. 밤이 지나고 육지를 보니 겨우 상황이 이해된 셈입니다. 소위(三尉) 님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엄청나게 옛날로 되돌아 와버린 것이군요. 연료가 아슬아슬해져서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만, 만약 이곳이 원래 시대로 돌아가버렸다면이라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대원들이 줄줄이 바위밭 가장자리로 모여들었기에, 이바는 갑자기 생각난 듯 쌓여있는 탄약 상자 위로 올라갔다.


"싸정은 이미 다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았다. "아직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지진에는 여진(余震)이라는 반동(揺り戻し)이 있으니, 자연계에는 우리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복원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서, 우리들은 하루를 24등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도 좋다. 시공연속체(時空連続体)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이 지금의 우리들의 기대에 따라서 움직여 줄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들이 영구하게 이 세계의 인간으로서 존재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견해를 말하자면 대단히 비관적이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초계정의 하사(三曹)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시간 이변이, 자연계의 복원력으로 우리들을 귀환시킨다고 하면, 그것은 대단히 짧은 시간에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다른 시대의, 게다가 우리들이 그 줄거리를 알고 있는 과거에 개입할 여지를 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과거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는가. 어리석은 얘기지만, 나는 지금 막 그것을 깨달았다"


"그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아가타(県) 일병이 안경을 빛내며 말했다.


"말해봐라. 이것은 전원이 대등한 의견교환이다"


"말하겠습니다"


아가타는 맨 앞줄로 나서며 말했다. "자연계까 우리들을 과거에 개입하게 하지 않는다면, 설령 개입하더라도 최소한도 내에서 그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시간은 우리들을 이곳에 표류시키고 방치했기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역사가 우리들 때문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그런 관점도 있다. 나도 아가타의 의견에 따르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감상적인 문제로 이치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쩐지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이 든다"


"불길한 예감은 분명히 다들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정상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이미 시대에 대한 개입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 자연계의 그 무엇보다도 강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복원력이 발동될 정도로 아직 우리들이 가한 상처는 크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가타는 우리들이 더욱 큰 개입을 하면, 시간은 우리들을 귀환시킬지도 모른다고 하는 거군"


장갑차의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손을 들었다.


"시마다 하사, 발언하겠습니다"


"좋다"


이바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시간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해"


시마다는 굵은 목소리로, 대단히 평이(平易)한 말투로 말했다. 발언시의 규칙에 따른 말투와,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의 평어체(仲間言葉)에, 그의 고참대원다운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강 저편의 사무라이들과 전쟁을 한판 해버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어. 생각해봐, 화살과 창의 세계에 이만한 도구를 가지고 왔다고. 누구에게도 사양하거나 신경쓸 필요 없이 갈겨대고 쓰러뜨려서, 하기 나름에는 일본을 정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남자로 태어나서 이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어. 게다가 이곳은 전국시대라고 하잖아. 학교에서 배웠지만, 백성들도 귀족(公家)들도, 이 시대 녀석들은 연이은 전쟁으로 지쳐 있어. 일본을 누군가가 하나로 통일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시대야. 한번 해보자고. 쇼와(昭和)의 일본인을 지키는 거나 이 시대의 일본인을 지키는 거나 똑같은 얘기야"


탄약상자 위에서 이바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카게토라는 배려한 것인지 도로 공사 현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튼, 우리들은 어느 쪽이든 이 시대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상당한 양의 휴대식량이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이곳의 영주인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 씨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고, 만일의 귀환에 대비하여 당분간은 이곳을 떠날 수도 없지. 그렇다면, 이 바위밭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도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소위님께 맡기겠습니다"


초계정의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어지간히 불안했던 것이리라. 의논을 거듭하여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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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05 황금(黄金)



카게토라(景虎)는 적극적이었다.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는 강기슭에서 오야시라즈(親不知)의 험한 곳(難所)으로 올라가는 호쿠리쿠도(北陸道)의 도로폭을 장갑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넓히고 길을 고르게 다지는(整地) 것을 제안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부터 무사(武士)와 백성(百姓)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여 공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모습은, 이 명령이 얼마나 자신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하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다. 카게토라의 지배가 잘 먹히고 있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사 모습은, 반대쪽 기슭의 쿠로다(黒田) 군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쪽 기슭에도 사람 모습이 늘어났고, 이윽고 급조한 것이긴 하나 삼엄한 대(棚)와 망루(櫓)가 출현했다.

카게토라는 그 진지구축을 보고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전쟁수레(いくさ車)의 화통(火筒)이 불을 뿜으면, 저런 요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재가 될 것이다"


라고 부하 무사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새 여자들이 취사도구를 가지고 모여들어, 공사에서 일하는 사내들이나 철조망 안의 자위대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양쪽의 밥도 반찬도 전혀 구별이 없는 것을 보고, 이바는 카게토라의 신경이 의외로 섬세한 것에 놀랐다. 식량의 분배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 이런 경우에 장수(将)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心得)이라는 것을 이바는 자위대의 간부교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요시아키 님"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지시하며 돌아다니고 있던 카게토라가, 점심 무렵이 되자 눈을 반짝거리며 이바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표시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오?"


카게토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바다 건너의 사도(佐渡)였다. 이바는 의자에 앉아서 카게토라가 건네준 지도를 무릎 위에 펼치고, 옅은 파란색으로 나타난 그 부분을 보았다.


"아……"


다음 순간, 이바는 어처구니없는 듯 카게토라를 올려다보았다. 카게토라는 뭔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당신은 놀라운 사람이군요"


"저는 놀라거나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바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현대어(現代語)의 애매함을 창피하게 느꼈다 (역주: 현대 일본어에서 '놀라운 사람(驚いた人)'이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놀란(驚いた) 사람(人)'이라는 뜻이 됨).


"아니, 경탄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거 송구스럽소이다"


"거꾸로 여쭙겠습니다만, 카게토라 님의 영지(領国), 아니 코이즈미 씨(小泉氏)의 영토인 이 에치고(越後)의 경제 상태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경제……"


이바는 볼펜을 꺼내어 지도 구석의 여백에 써 보였다.


"물산(物産), 축적(蓄積), 장사(商い)의 수지(収支)…… 즉, 풍요로움의 상태입니다"


"에치고는 금곡(金穀)의 나라라고 하지만, 지금의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꽤 궁한 형편이외다"


카게토라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 사내로서는 드물게 쑥스러워하면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전비(戦費)의 충당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소. 특히 선대(御先代) 시절에 아가노가와(阿賀野川) 너머의 오쿠고오리(奥郡)가 이로베(色部) 일족의 손에 떨어져, 쌀의 산지(米倉)를 하나 빼앗긴 상황이라서 말이오"


"그럼, 사도에서 황금(黄金)이 난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그건 알고 있소. 사도의 니시미카와무라(西三川村)는 옛부터 사금(砂金)이 났고, 근년에는 코후가와(国府川)의 어딘가에 황금이 산이 잠자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퍼쳐, 사도의 산야(山野)를 살피고 다니는 광맥꾼(山師)들이 늘어났다는 모양이오. 하나, 아직 그 황금의 산을 발견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외다"


이바는 볼펜 뒤를 눌러서 붉은 잉크로 바꾼 후, 카게토라의 지도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산은 이곳일 것입니다. 십중팔구, 이곳을 파면 황금이 나옵니다. 아니면 은(銀)일 수도 있습니다만, 은으로 괜찮다면 틀림은 없습니다. 이 츠루시(鶴子)라는 곳에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역시 그러한가. 어젯밤 내내 이 지도를 보았소만, 보면 볼수록 에치고를 철저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사도의 이 표시는, 어쩌면 황금이 있는 곳을 나타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소이다. ……그건 그렇고, 그대는 놀라운 사람이외다"


카게토라는 이바의 말투를 흉내내며 유쾌한 듯 웃었다. "땅에 묻혀있는 황금을, 자기 손바닥 위를 가리키듯 가리켜 보이다니, 그야말로 귀신이 따로 없군요……"


"사도에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까"


"음, 보내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광맥꾼 백 명을 당장이라도 긁어모아 황금백은(黄金白銀)을 파내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가지고 오게 하겠소"


"하지만, 그 때문에 사도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습니까"


"사도의 혼마 씨(本間氏)는 명가(名家)이외다. 허나, 아무리 요리토모(頼朝) 공(公) 때부터의 명가라 하나, 지금은 가세가 기울어 가신(家人)들 숫자도 백 명도 되지 않소. 황금이 나오면 코이즈미 가문만이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택(余恵)은 반드시 혼마 가문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 하면, 우리에게 반발하여 피를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仕儀). 늙었다고는 하나 혼마 가문에는 아직 그렇게 이치가 보이지 않는 자는 없을 거외다…… 허나, 만에 하나 혼마 가문이 대든다면, 에치고 일국의 안녕(安泰)을 걸고서라도 단번에 짓밟아버릴 뿐이오"


카게토라는 북쪽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외쳤다. 그 근본적으로(根太く) 사나운 논리에, 이바는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이 사내의 뇌리에 그려져 있는 조국이란, 사카이가와(境川)에서 네즈가세키(鼠ケ関)에 이르는 에치고 일국, 즉 니이가타(新潟) 현(県)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데와(出羽), 미치노쿠(陸奥), 시모츠케(下野), 코우즈케(上野), 시나노(信濃), 히다(飛騨), 엣츄(越中), 카가(加賀), 노토(能登), 그리고 에치젠(越前), 미노(美濃)…… 그 나라들은 모두 외국이며, 자신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인 것이다. 이만한 걸물(傑物)에게 이 정도로 좁은 세계관을 가지게 하고, 쇼와(昭和) 시대에서는 흔하디 흔한(凡愚) 자신에게 이 정도로 넓은 세계를 파악하게 하고 있는 역사의 흐름(積み重ね)에, 이바는 어쩐지 전율스러움을 느꼈다.

그 때 멀리 바다 위에서 폭음이 들려와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엇, 그대들을 마중하러 온 것이외까?"


카게토라는 크게 당황하여 말했다. 다가오고 있는 것은 토야마(富山)로 간다고 말하고 출발한 초계정(哨戒艇)이었다.


"유감이지만, 저것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표류자입니다"


이바는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빠르군. 물 위를 말보다도 빠르게 달려오다니. 저것 보시오, 저렇게 시원스럽게 박차는 모습을"


초계정은 카게토라의 말대로, 거친 파도 위를 박차고 뛰어오르며 다가왔다. "어떠한 수군(水軍)도 저 빠르기에는 당할 수 없겠소. 이거 참"


카게토라는 군사적 견지에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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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4 지도(地図)



"고맙소"


해가 저물어오는 바닷가에서,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는 이바(伊庭) 소위(三尉)에게 그렇게 감사의 말을 했다. 철조망 주위에 쿠로다(黒田) 병사들의 시체가 몇 굴러다니고 있었고, 부상당한 무사들이 자위대원들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무서운 도구로소이다"


카게토라는 장갑차의 바디를 두들기면서 말했다. "뭐라는 이름이오?"


이바는 뭔가 말하려다가, 곤란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장…… 전차(戦車)라고 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전차. 전쟁 수레(車)입니까. 아니, 이것 하나만 있으면 에치고(越後)의 싸움도 하루도 안 되어 진정되겠군요"


카게토라는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듯한 눈동자로 그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한번 더, 저걸 쏘아주실 수 있겠소이까"


이바는 그 어린애같은 바람에 미소를 지었다.


"어디를 향해 쏠까요"


"저곳에"


카게토라는 강 어귀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백 미터 정도의 거리이다.


"너무 가깝습니다. 저 쯤은 어떨까요"


이바는 맞은편 기슭에 보이는 뾰족한 바위를 가리켰다. 그것은 해가 지기 시작한 바다를 배경으로 예각적(鋭角的)인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것을……"


카게토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시마다(島田) 하사(三曹). 강기슭에 튀어나온 저 암각(岩角)에 포격해보게"


"라저. 그런데 좀 너무 가깝지 않습니까"


"세상에. 저래도 말이오?"


카게토라는 신음했다. 이바들의 역사에 따르면 타네가시마 토키타카(種子島時堯)가 시마즈 타카히사(島津貴久)에게 포르투갈 총을 헌상한 것이 텐분(天文) 12년(역주: 1543년). 이 세계에서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무사가 철포(鉄砲)의 철자도 모르는 것은 확실했다.

천천히 조준하고, 이윽고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반대편 기슭의 바위는 보기좋게 날아갔다.

카게토라는 어린애처럼 양손의 손가락을 귓구멍에 꽂고 생침을 삼켰고, 손가락을 뺴더니 묘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시아키(義明) 님을 우리 진(陣)으로 맞아들이고 싶군요"


이바는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우리들의 무력은 자위(自衛)를 위한 것입니다.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쓸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 될 거라 생각하오만……"


"그것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자연히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그러자 카게토라는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역시 요시아키 님이시오"


그렇게 말하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이 카게토라, 감복했소이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이로베(色部), 쿠로다 놈들은 하나같이 사리사욕. 영민(領民)을 도탄(塗炭)에 빠뜨리고 천하를 어지럽히며 혈족의 신의(信義)에 반하면서도 조금도 수치스러워하지 않소. 잘 말씀해 주셨소이다. 어느 쪽이던 의(義)에 따라 행동하신다는 본심, 틀림없이 보았소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 주인인 코이즈미(小泉) 에치고노카미(越後守)께 틀림없이 전하겠소"


맑은 눈동자에 넘치도록 신뢰를 담아보이는 카게토라에 대해, 이바는 그 해석이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후에 쿠로다 측은 공격해올까요? 이미 우리들은 중립을 지키는 데 실패해 버렸으니……"


"그야 물론, 틀림없이……"


"그렇게 되면, 그에 대비해야 하겠군요"


"다만……"


카게토라가 드물게 말을 흐렸다.


"다만, 뭡니까"


"공격대(寄手)가 나타나는 것은 언제일까이오. 오늘밤일지, 내일일지, 모레일지"


이바는 이 시대의 템포가 조금 이해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투도 상당히 슬로우 템포로 전개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발생하는 것은, 전략적인 타이밍보다 오히려 우발적인 '계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따라서 카게토라 같은 인물도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바는 문득, 이 시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근대화기가 무엇 하나 없더라도 승리해나갈 수 있을 듯한 예감을 받았다.

이바는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에게 말해서 이 일대의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우리들은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카이가와(境川). 카스가야마(春日山)는 이것입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지도를 펼치고, 일일이 알기쉽게 손가락으로 가리켜나가자, 카게토라는 홀린 듯 그것을 쳐다보았다. "적의 전선기지(前線基地)는 어디쯤일까요"

카게토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얼굴을 들어 이바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산의 모양도 강의 굽이도, 적지의 상황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지 않소. 이래서는 싸움이 되질 않겠소이다"


"한 장 드리지요"


"이것을 저에게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카게토라는 희색이 만면해졌다.


"예, 다만, 무익한 살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사이로……"


그러면서 이바는 국도 8호(国道八号)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이 지도에 있듯이, 길의 폭을 넓히고 길을 고르게 다져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 APC…… 아니 전차가, 언제 어느 때라도 적을 무찌를 수 있으니까요"


"음, 음"


카게토라는 흥분하여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오, 그렇다면 이 강 어귀에 요새(砦)가 하나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로군요"


그렇게 외치더니 일어나서 반대쪽 기슭을 노려보았다.


"요시아키 님의 힘을 빌려, 미야자키(宮崎) 요새에 있는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의 목을 벤다면, 카미고오리(上郡) 일대는 예전처럼 조용해질 것이 틀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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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3 전투(戦闘)



이바(伊庭) 소위(三尉) 등, 시간 이변과 조우하여 시대를 표류한 자위대원들이 도착한 것은, 서력 1500년대의 어딘가인 모양이었다.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라고 이름을 밝힌 사내는 그 해를 에이로쿠(永禄) 3년이라고 말했으나, 이바나 히라이(平井)의 지식으로는 환산할 방법도 없었고, 또 설령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연대로 환산했다고 해도, 과연 그게 정확히 이 시대와 그들의 고향인 시대의 시간차를 나타낼지 어떨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일직선으로 같은 시대를 역행한 것이 아니라, 약간이지만 양상(様相)이 다른 별개의 차원으로 날아들어 버린 듯 했다.


이바는 카게토라로부터, 당시의 주요한 사회 정세를 듣고, 자신들이 다른 차원(異次元)에 온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오와리(尾張)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죽었을 터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는 그 해 3월에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병사해버렸고, 뭣보다 오다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자체의 존재를 이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사내는 모르는 것이다. 또, 토우카이(東海)에서 한참 고생중이어야 할 마츠다이라(松平) 가문, 즉 도쿠가와(徳川) 가문도 이바가 알고 있는 역사처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시카가(足利) 막부(幕府)가 붕괴하여 전국시대 소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고나라(後奈良), 오오기마치(正親町)로 이어지는 천황가(天皇家)의 계보(系譜) 같은 것은 이바가 알고있는 지식대로인 듯 햇다. 즉, 중요한 역사의 기둥이 되는 부분은 같지만, 어디를 어떤 무사가 다스리고, 누구를 누가 쓰러뜨렸냐라는 세세한 부분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종방향과 마찬가지로 횡방향으로도 무한한 변화를 갖는 여러 차원에 이어져있는 것이라 하면, 이 세계는 이바들이 있었던 세계와 미묘하게 달라진 이야기를 갖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바들의 역사에서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될 터인 이 사내는, 켄신, 즉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던 무한한 가능성의 하나를 이바들의 세계의 동일 인물과는 다른 방향으로 선택해서 살고 있는 사내인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걸물(傑物)로 보였다. 이 카게토라도, 카스가 산성(春日山城) 성주 코이즈미 유키나가(小泉行長)의 부장(部将)으로서, 가장 분위기가 험악한 엣츄(越中) 국경(国境)의 수비를 맡고, 그곳에 자위대(自衛隊)라는 이물질이 등장했음에도 극히 합리적인 자세를 보이며 훌륭하게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꽤나 해도 기울었군요. 그럼 내일 아침, 바로 쌀이나 된장(米噌) 같은 것을 가져오게 하겠소"


"감사드립니다"


의외인 것은, 이바 소위는 그 카게토라에 대해 전혀 뒤떨어져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시대의 전체적 느낌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강점이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카게토라는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라는 사내에게 흥미와 경의를 느낀 듯 했다.


카게토라가 일어서서 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 저편에서 심상치않은 함성이 터졌다. 그제서야 강을 보니, 상당한 인원이 강을 건너서 반대쪽 기슭으로 전진하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쿠로다(黒田)의 정찰대(物見)입니다"


3열 종대(縦隊)로 늘어서 있던 남자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외쳤다. 이바들은 뒤섞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었으나, 아무래도 엣츄 측의 척후(斥候) 4, 5명이 강을 향해 수비태세를 갖추고 있던 카게토라의 부하에게 발견되어 쫓기고 있는 듯 했다. 강의 한복판에서 두 명 정도 창에 찔려 가라앉았.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나머지를 사내들이 무턱대고 쫓고 있었다.

그 때, 반대쪽 기슭에 백 명 정도의 무사들이 나타나 깃발을 들어올렸다. 크고작은 30여개 정도의 깃발이 서남풍에 휘날리며 위세좋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 아래쪽에서 일제히 짧은 활시위 소리가 울려퍼지고, 화살이 검은 호를 그리며 빗발처럼 사카이가와(境川)로 쏟아졌다. 경장(軽装)인 에치고 측 인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압도당하여 다급히 철수했다.

기마(騎馬) 무사가 10기 정도, 물방울을 튕기며 강으로 들어갔다. 하얀 칼날을 번쩍이며 등을 보인 사내들의 머리 위로 덮쳐갔다.


"가라……"


카게토라는 큰 소리로 외치며, 장검(大刀)의 칼자루를 쥐고 달려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부대가 맹렬하게 강으로 달려갔다. 반대쪽 기슭에서는 보병의 병사들도 내보냈다.


"3대 1이야"


장갑차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던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말했다. "저 양반(大将), 당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리는 없다. 우에스기 켄신이니까"


히라이 상병(士長)은 기도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말발굽 소리와 거친 욕설이 뒤섞였다.


"소위님. 적은 어느 쪽입니까"


헬기의 바로 옆에 있던 대원이 외쳤다.


"쏘지 마라. 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바가 목청껏 외쳤다.

길을 따라 에치고 병사들이 한덩이가 되어 물러났다. 그것을 강 저편에서 다가온 병사들이 에워싸듯 하며 베어넘겼다.

죽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지 못하고 에치고 병사들은 차례차례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바다를 등지고 뒷걸음쳤다. 그리고, 카게토라가 숙적(宿敵)이라 말한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의 병사들이 기세를 타고 그들을 찌르고 베었다…….

이바의 "쏘지 마라"라는 외침은 이걸로 몇 번째였을까. 그는 목이 심하게 말라서 연이어 생침을 삼켜야 했다.

길에서부터의 언덕길을 카게토라가 점차 후퇴해왔다. 혼자서 4, 5명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기마 무사가 2기, 그 공격측(寄手)에 비집고 들어와 덮쳐누르는 듯한 기세로 카게토라를 노리기 시작했다. 카게토라는 단숨에 달려서 20미터 정도 물러난 후 갑자기 옆으로 뛰었다. 그곳은 바위로, 기마 습격을 피하는 데는 절호의 위치였다. 그러나, 고립된 카게토라를 보고 쿠로다 병사들이 15, 16명, 엄청난 살기를 띠고 달려왔다. 앞의 4, 5명은 이미 바위에 올라가서 카게토라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요시아키(義明) 님……"


갑자기 카게토라는 그렇게 불렀다. 바위 위에 떡 버티고 서서(仁王立ち) 씨익 웃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놀고 있던 어린아이가 지나가던 친구(仲間)에게 인사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삿된 구석(邪気)이 없고, 계산(利害)도 없고, 승패조차 초월한 남자의 미소였다.

요시아키…… 그렇게 이름을 불린 이바 소위는, 그 생각지도 못한 친근함에 감동했다. 성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 부른다. 그런 친구를 잃은지 몇년이 지났을까. 초등학교 친구들조차 서로를 이미 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카게토라, 죽지 마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이바 소위는 64식 자동소총을 집어들더니, 미군식의 돌격자세로 카게토라에게 몰려드는 쿠로다 병사들을 향해 숙련된 짧은 연사(短連射)를 퍼부으며 전진했다.


"치사합니다, 소위님"


시마다 하사는 그렇게 고함치고는 장갑차 안으로 들어가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승무원인 마루오카(丸岡) 일병(一士)이 당황하여 장갑차에 뛰어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포탑이 회전하여 언덕길을 내려오는 3기의 무사의 한가운데를 조준하자, 듬직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인마(人馬)는 맥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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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2 1577년 1월 하순



새해가 밝았다. 달력 상으로는 텐쇼(天正) 4년(1577년)이 되어,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가 아즈치 성(安土城)의 축성(築城)을 개시한 해가 된다.

역사적 사실에 비해 1년 빠르게 완성된 아즈치 성에서 노부나가는 새해를 맞이했다. 오와리(尾張)는 물론이고 일본 전체의 정세도 종래의 역사와 비교해서 크게 변하고 있었다.

특히 백성의 시선에서 본 오다 가문은 융성의 극에 달하고, 반대로 전국시대 최강이라는 이름을 한껏 자랑했던 타케다(武田)의 몰락(凋落)이 두드러졌다.

누가 입 밖에 내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새해야말로 일본의 세력도가 크게 바뀌는 격동의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에 반해 사이고쿠(西国)의 영웅(雄)인 모우리(毛利)나, 토우고쿠(東国)의 핵심(要)인 호죠(北条)는 새해 벽두부터 내심 부끄러운 심정을 되씹게 된다.

백성들의 하마평(下馬評)에 따르면, 자신들은 순리대로 쓰러져야 할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고, 또 그것을 뒤엎을 만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심정적으로도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눈 앞에 버티고 있는(鎮座) 옻칠이 된 찬합(重箱)에 젓가락을 뻗었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은 4단 찬합에 들어있는 오세치(御節) 요리였다.

전개된 각각의 찬합에는 작년 말일부터 준비된 요리가 가득 들어있어, 색색의 요리와 중후한 칠기(漆器)가 자아내는 대비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애초에 '오세치(御節)'란, 중국에서 전해진 절공(節供, 절(節)이라 불리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풍작을 기념 또는 감사하여 공물을 바친) 행사에 발단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나라(奈良) 시대에 조정에서 치러진 절회(節会)에 기인한다.

그렇다고는 하나 나라 시대의 '오세치'는 현대의 그것과 달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밥과 가득 퍼담아진 나마스(膾)나 조림(煮物), 국, 구이 등의 소박한 것이었다.

시즈코들이 먹고 있는 것 같은 찬합에 가득한 오세치 요리가 일반적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타이쇼(大正) 시대 무렵이라고 한다.

원래 '오세치'라는 말은, 다섯 명절(五節句)의 하나인 정월(正月) 7일에 해당하는 인일(人日)에 나온 축하요리 전체를 가리켰다.

참고로 다른 명절은 3월 3일의 상사(上巳), 5월 5일의 단오(端午), 7월 7일의 칠석(七夕), 9월 9일의 중양(重陽) 등이다.

현대에서도 히나마츠리(雛祭り) 등으로 상징되는 3월 3일의 '삼짇날(桃の節句)', 어린이의 날로 인식되고 있는 5월 5일의 '단오절(端午の節句)', 견우(彦星)와 직녀(織姫) 이야기나 소원을 적은 종잇조각(短冊)을 대나무(笹)에 매다는 '칠석(笹の節句)'으로서 우리들의 생활에 뿌리내리고 있다.


"호죠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한 '오다와라 평정(小田原評定, 길게 끌기만 하고 결론이 나오지 않는 회의 등의 의미)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찬합과는 별도로 준비된 대합(蛤) 국물을 한 손에 들고 아시미츠(足満)가 시즈코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그릇에 쿠리킨톤(栗きんとん, ※역주: 강낭콩과 고구마를 삶아 으깨어 밤 따위를 넣은 단 식품)을 산처럼 퍼놓고 아까부터 자작(手酌)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의외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단 쿠리킨톤과 매운 맛의 청주(清酒)의 조합은 상성이 좋고, 또 쿠리킨톤과 대조를 이루는 대합 국물을 마시는 것으로 자꾸 먹게 되어버린다.

현대에서도 전해지는 찬합에 담긴 오세치 요리에는 엄밀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2단이나 3단의 것에서 5단을 넘는 호화로운 것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4단 찬합이야말로 정석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숫자의 3이 완성이나 안정을 나타내기에, 그 위에 한 층을 더 얹는다는 발전성을 바라는 재수를 비는(験担ぎ) 것이거나, 4라는 숫자가 사계절을 나타내어 1년을 내포한다는 의미를 가지거나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四)는 죽을 사(死, ※역주: 일본어에서도 넉 사와 죽을 사는 독음이 '시'로 같음)를 연상시키기에 재수가 나빠서, 독음을 요(与)로 바꾸어 넷째 단(与の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도 훗날에 생긴 예법(作法)이기는 하나, 찬합에도 양식이 정해져 있어, 바깥이 검정색이고 안쪽이 붉은색(朱)인 것이 정식 색상이 되었다.

안에 담는 요리에도 정석(定番)이 존재하여, 시즈코는 첫째 단에 어묵(かまぼこ)이나 검은 콩 이외의 명절 반찬(祝い肴)을, 둘째 단에는 도미(鯛)나 방어(鰤), 새우(海老) 등의 재수가 좋다고 하는 해산물의 구이를, 셋째 단에는 홍백 나마스나 연근 초무침(酢れんこん) 등의 초무침(酢の物)을, 넷째 단에는 토란(里芋) 등 산에서 나는 것들(山の幸)을 사용한 조림을 채워넣었다.


"빈말로도 농업에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칸토(関東)의 땅에서 왕도 낙토(王道楽土)를 건설하여, 칸토 8주(関八州) 국가의 맹주이자 칸토의 왕으로 불리기 직전에 창을 맞대지 않고 항복은 할 수 없다는 걸까요? 타케다 침공이 3월에라도 시작될테니, 그때까지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사회생의 한 수를 둘 수 없다면 외통수에 몰린 상황은 뒤집히지 않을텐데요"


"아마도 역사적 사실대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멸망하겠지. 하지만 우세하다고는 하다 방심은 금물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옛말(故事)도 있지"


"이긴 후에 투구끈을 조여라(勝って兜の緒を締めよ)고 하니까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요. 위험해요(剣呑), 위험해"


자만한 끝에 마무리에 실수하여, 마지막 순간에 역전당해서는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볼 때 토우고쿠 정벌은 한번 실패한 후에 권토중래(捲土重来)를 꾀한 공세이다.

이번에 토우고쿠를 완전히 정벌하지 못하고 비기거나, 하물며 패배를 당할 경우, 오다 군 전체의 강함을 의심받게 될 수 있다.

사태는 시즈코 한 사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오다 군의, 나아가서는 노부나가가 천하인(天下人)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 의심받게 된다.

의문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었다.


"토우고쿠가 정리되면 모우리는 곧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큐슈(九州) 세력만이 남게 되겠지. 그러고보니 토호쿠(東北)의 다테(伊達) 가문은 어떻게 되었지?"


"키묘(奇妙) 님께서 대(対) 호죠 전의 일환으로 이것저것 흔들고 계시는데, 썩 좋은 대답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이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호죠에 대한 경제 전쟁의 추이를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자격은 없지.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지만, 어디 선진적(先進的)인 테루무네(輝宗) 님은 어떻게 움직일까?"


"우리도 물류의 한계가 있으니 이른 단계에서 항복해 준다면 오우슈(奥州) 일대의 통치를 맡겨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걸 깨달을 수 있을지 어떨지에 달렸네요"


호죠 씨는 칸토 일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토호쿠에도 손을 뻗쳐 다테나 아시나(蘆名), 사타케(佐竹)에게도 협력을 받아 거대한 반 오다 연합을 결성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결속되어 있지만, 그 실태는 반석(一枚岩)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다테와 아시나는 서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고, 사타케는 어디까지나 협력관계에 있을 뿐이지 호죠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키나이(近畿)에서 츄우부(中部)-토우카이(東海) 지방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오다 연합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하다. 반 오다 연합이라기보다도 상호불가침 및 궁지에 빠졌을 때의 상호지원을 위한 구조라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예전에 혼간지(本願寺)가 맹주가 되어 구축했던 반 오다 포위망보다도 결속력이 약하다고 판단하고, 노부타다(信忠)는 성장의 여지가 있지만 곤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테 가문을 지목하여 정치적 책략을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2중, 3중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의미로서도, 아시나나 사타케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다테 가문이 오우슈를 통일하고 토호쿠의 패자가 되기에, 장래성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본텐마루(梵天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아명)는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노부타다는 다테 가문이 이쪽의 정치적 책략에 동조하면 좋고, 아니면 두각을 나타내기 전에 없애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급조된 연합은 허술하지. 혼간지의 제 2차 오다 포위망에서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호죠의 중신 놈들은 성공체험에 고집하여, 불리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船頭多くして船山に上る)'고 하니까요. 백성이나 부하들의 의견을 잘 듣고 공화제에 가까운 정치 형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훌륭하지만, 조직이 비대화되면서 의사결정이 둔중해지는 건 피할 수 없었던 거겠죠"


"어느 쪽이든 호죠와 우리들은 공존할 수 없다. 함께 설 수 없는 이상은 멸망시킬 뿐, 어차피 산화할 거라면 깨끗하게 산화하게 해주는 것이 무사(武士)의 정이지"


"네, 하지만 아시미츠 아저씨는 사도가시마(佐渡島)를 부탁해요. 가능하다면 빨리 처리하고 지원하러 달려와줬으면 좋겠네요. 조정에서 허가를 받았다고는 해도, 실효지배하고 있는 혼마 씨(本間氏)가 말없이 따를 리가 없으니 충분히 주의해주세요"


"알았다. '빠르게 처리하지'"


애초부터 실력행사를 염두에 두고 있던 아시미츠였으나, 시즈코의 희망이라면 늦을 수는 없다. 그다지 선택할 생각도 없었던 공략 수단이, 조기 해결을 꾀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가혹한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올해 안에 모우리(毛利)까지 처리되면 좋겠지만요. 시코쿠(四国)는 동맹관계에 있는 쵸소카베(長宗我部)가 분투하고 있고, 키나이는 거의 평정되었으니…… 예상밖이었던 건 혼간지의 철수가 늦어지고 있는 정도일까요. 신도들을 좀 너무 많이 보냈네요"


혼간지는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창구가 되어 지휘하여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에서 퇴거할 것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이시야마 혼간지에서 생활하고 있던 방대한 신도들이었다.노부나가는 혼간지를 궁지에 몰기 위해, 예전의 혼간지의 영토를 깎아내면서 거기에 살고 있던 신도들을 혼간지로 쫓아보냈다.

결과적으로 이시야마 혼간지는 허용량 한계의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신도들을 품게 되어, 막상 이시야마 혼간지를 퇴거하려고 해도 그들에게 안주(安住)할 땅을 줄 수 없어 빌빌거리고(四苦八苦) 있었다.

인원수가 인원수인 만큼, 그들 모두가 폭도로 화하게 되면 근린(近隣) 일대의 치안이 땅에 떨어지기에, 노부나가는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통해 원조하면서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이렌이 켄뇨(顕如)를 계속 유폐하고 있는 이유, 추측이지만 전후 처리의 불만을 그에게 향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겠죠"


"하극상을 꾀한 이상, 오명은 자신이 뒤집어쓸 생각이겠지"


켄뇨의 소재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안쪽의 사원(院)에 유폐되어 있을거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시즈코도 굳이 켄뇨를 출두시키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무장 해제가 된데다, 축적되어 있던 많은 재산은 신도들을 위해 환금하여 지급되었기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신앙의 기반(拠り所)이 되는 이시야마 혼간지를 잃은 상태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켄뇨가 재기를 꾀하려 해도 그의 말을 따를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이미 결판은 나 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가혹한 삶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켄뇨로서도 이제와서 일을 거칠게 만드는 짓은 안 하겠죠. 설령 한다고 해도, 규모가 확대되기 전에 진압될 것은 뻔히 보일테니까요"


무장 집단으로서의 혼간지는 죽었다. 라이렌의 책략에 의해 간신히 종교로서의 혼간지 교단이 목숨을 잇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간자들에 의해 항상 감시되어, 무장 봉기의 기색이 탐지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당할 것이다.

라이렌은 그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지만, 일말의 불안이 남아 있었다. 강경파였던 쿄뇨(教如)의 동향이 파악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번 더 파란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대로 순조롭게 일이 끝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시즈코였다.



작년의 정월은 노부나가의 배려에 의해 '비교적' 온당한 정월을 보냈던 시즈코였으나, 올해에는 다른 중신들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스케줄의 인사 행각(行脚)이 되었다.

노부나가나 노부타다, 의부인 사키히사를 시작으로 한 윗사람들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동격(同格)끼리 인사하러 다니게 된다. 이것이 일단락되어도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오와리에서 정월 인사를 받을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나서면 되는 상위자(上位者)에 대한 인사와 달리, 인사를 받는 쪽은 상상 이상으로 노력을 요구받는다.

가볍게 누구와도 면회해서는 쓸데없는 의심을 받는다(鼎の軽重を問われる,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의심받는다)

여기서의 주역은 시즈코가 아니라, 그들을 상대하는 가신단이 되기에 시즈코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결재 등의 이유로 시즈코의 판단을 요청받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맡기게 되므로 한가해진 시즈코는, 호출이 올 때까지 회식 늑대인 카이저 일가와 지내는 것으로 정신의 안정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월 무드는 1월 하순이 되자 일변했다.


"하시바(羽柴) 님은 포위(攻囲) 작전 중이니까 무구의 보급은 우선순위를 낮추고, 대신 식료품과 의료품, 생활잡화를 늘려서 발송하세요"


마츠노우치(松の内, 1월 중순까지)는 암묵적인 휴전 협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조용했지만, 서쪽으로는 하리마(播磨), 탄바(丹波) 평정과 혼간지의 해체작업. 동쪽으로는 타케다, 호죠 정벌을 향한 작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탄바 평정을 담당하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는, 작년 시점에서 대세를 결정지었고, 현재는 지반 굳히기에 착수하고 있기 때문이지 눈에 띄는 큰 움직임이 없다.

필연적으로 공성을 계속하고 있는 히데요시(秀吉)에게 주목이 모아지고 있었다.

문제의 히데요시는, 이곳이 자신의 분수령이 될 것을 이해하고 있어, 자군의 기강을 바로잡은 후 신중하게 공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명예보다 실리를 택하는 운용이 효과를 보았는지, 히데요시 군은 연전쾌승을 거듭하여 아카시(明石)까지 진공하는 데 성공했다.


"아카시를 되찾아도 여기부터가 난제네. 아카시 항구와 아마사키(尼崎) 항구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 해운(海運)으로의 물자 수송이 가능해진 반면, 이 거점을 지키기 위한 병력을 항상 쪼개야 하고, 해군을 조직할 필요도 있겠네"


말할 것도 없지만 아카시 항구와 아마사키 항구는 우량한 항구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곳들을 수중에 넣은 것으로 군자금은 물론이고 병참 유지라는 면에서 원정군이라는 불리함을 뒤엎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술한 대로 모우리가 지원하는 무라카미(村上) 수군(水軍)에 의해 해상봉쇄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마사키 항구에 관해서는 오다 세력권에 더 가깝기에 쉽게 손을 댈 수 없겠지만, 아카시 항구는 최전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진다.

최전선으로 직접 물자를 운반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적의 손에 떨어지면 다시 궁지에 몰리게 되므로, 지금까지처럼 공세일변도로 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게다가 아와지(淡路) 섬을 세력하에 두고 있지 않기에, 그곳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할 필요도 있었다. 아카시 항구는 요충지이지만, 이곳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히데요시는 생각했다.


"주상(上様)으로부터 신 항구(코우베(神戸) 항구) 개발 허가는 내려왔어요?


"옛! 전날에 재가를 받았습니다. 그에 따라, 사업계획대로 기사(技師) 집단을 파견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와 맞먹는 대규모의 국가사업이 될 거에요. 당분간은 전선에 대한 물자보급을 목적으로 하지만, 장래를 내다보고 설계하도록 지시해 주세요"


히데요시가 타진하고 시즈코가 입안한 것이 코우바 항구의 개항(開港)이었다. 롯코우(六甲) 산맥에서 오사카 만(大阪湾)에 걸친 험준(急峻)한 지형에 의해 해저가 크게 깎여나가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고 있기에 코우베에는 좋은 항구가 될 천혜의 소양이 있었다.

현대 일본에서도 5대 항구의 하나로 꼽히며, 국제 전략항만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코우베 항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오와다(大輪田)의 정박지(泊り)라고 불린 효고(兵庫) 항구가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효고 항구와 코우베 항구의 위치는 반도(半島)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늘어선 부채 형상을 취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송나라(日宋)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효우고 항구였으나, 전국시대의 발단이 된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에 의해 황폐화되어 버렸다.

한편, 훗날의 코우베 항구가 되는 장소에는 작은 한촌(寒村)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에 정부가 개항장(開港場, 외국 무역용의 항구)으로서 효고 항구를 지정하고 해역을 상세히 조사해보니, 단순한 후미(入り江)에 지나지 않았던 코우베 쪽이 항구로서 적합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거류지(居留地)가 설치되고 코우베 항구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항 당초에는 부두(波止場)의 길이가 짧고 수심이 얕았기에 대형선이 가로댈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심이 깊은 위치까지 돌출된 신항부두(新港埠頭)가 증축되게 되어, 국제 항만도시로서 발전하게 된다.


(발견된 것은 메이지 이후. 즉 지금은 한촌이 있을 뿐인 벽지(僻地). 덕분에 주상이나 하시바 님을 설득하느라 고생했지만, 장래를 내다본다면 단연 이쪽이지)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기득권익(既得権益)이 생겨나 있기에 이해관계의 조정이 까다롭다. 그보다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무구(無垢)한 토지에 새로운 항구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쪽이 모든 권익을 쥘 수 있어 이득이 크다.

한촌의 주민들에게 이주할 곳을 제시하고 퇴거시키면 이 계획에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항만의 규모가 확대되면, 현재의 코우베 항구처럼 두 개의 항구를 합쳐 코우베 항구로 부르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발전하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장래의 과제로서 후계자에게 맡기게 되리라.

시즈코는 이전부터 코우베 항구를 개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히데요시가 일대를 제압한 것에 의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배경이 있었다.


"본래는 한촌의 현지 백성들을 고용해서 현지에 부를 떨어뜨리는 게 상책입니다만, 모우리 측의 공작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항만 개발에 관여하는 단순노동자 이상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이쪽에서 보내는 것으로 대처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시바 님에 대해서는 일단락되었다고 하고…… 아케치 님에게 필요해질 것은 정치공작을 하기 위한 정보와 돈이려나요?"


정치의 세계는 청탁병탄(清濁併せ呑む, ※역주: 도량이 커서 어떤 사람이나 받아들이다)이라고 하듯, 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겉보기에 깨끗하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빠르게 지반을 굳히기 위해 필요해지는 것은, 누가 키 맨이 되는가라는 정보와, 그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돈이었다.

미츠히데는 오다 가문에 속하는 자들이 다수파가 되도록 다수파 공작을, 반 오다로 모여 있는 자들에게 이간(離間) 공작을, 현지 유력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주변 일대의 민심을 획득하는 로비 공작을 할 예정이라고 시즈코는 전달받았다.

다만 돈에 굽실거리는 자들은 더욱 큰 이익을 제시받으면 쉽게 배신하기에 감시가 필요해진다. 그래도 선조대대의 원한 등의 감정에 뿌리내린 관계보다는 다루기 쉽고, 이익을 계속 제공하는 한은 순종적이다. 필요없으면 관계를 끊으면 되기에 뒤탈도 없다.


"사이고쿠와 관해서는 적설(積雪) 등으로 교통이 단절되는 일은 일단 없으니, 이제부터는 사이고쿠의 정세가 중요해지려나요. 좋았어, '그걸' 가지고 있는 토우도(藤堂) 군에게 연락을 긴밀히 하도록 전해주세요"


"옛"


토우도 타카토라(藤堂高虎)가 가지고 있는 장비, 그것은 전신기(電信機)였다. 현대에서는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는 기계이다.

전신의 기술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지기에, 간단히 설명하면 음성을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그것을 증폭한 후에 전파로서 날려보내, 다른 수신기에서 수신한 신호를 증폭하여 다시 음석으로 변환하는 것으로 실현되는 무선통신이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즈코는 오와리에 있으면서 사이고쿠의 정보를 직접 입수할 수 있고, 또 토우고쿠 정벌의 상황을 그때그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사이고쿠에 관해서는 도중의 영역이 지배하에 있기에 중계기지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여, 현 시점에서는 송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토우고쿠 정벌에 관해서는 발전 설비와 전파 중계설비를 그때그때 설명하면서 진군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에 방대한 노력과 자금이 한창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러한 기술들을 실현하는 핵심이 된 인물이 아시미츠이다. 그는 타임 슬립했을 떄, 어린아이들조차 자신의 통신 단말을 가지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엄청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기초적인 지식은 은닉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자, 어째서인지 몹시 배우고 싶어졌던 것이다.


기억상실이었기에, 그 기묘한 열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 대형 도서관에 매일 드나들면서, 중학교 수준의 전자회로에서 시작하여, 광석 라디오를 거쳐 전자공작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전파의 정체가 자계(磁界)와 전계(電界)의 상호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수 있었을 무렵에는, 스스로 회로 설계도를 그려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전국시대에서도 발전기와 모터를 제조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전파의 송수신은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신호 증폭이라는 점에서 길이 막혀 버렸다.

현대라면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에 의해 극히 간단히 가능한 일이, 전국시대에서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아시미츠는 트랜지스터가 실용화되기 전의 진공관을 사용하기로 했다.

현 시점의 공작기술이 있다면 진공관 자체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고열이 가해지기에 핵심(基幹) 부품인 필라멘트의 소모율이 대단히 높아서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다는 결점이 있었다.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르는 진공관을 보완하기 위해, 전자회로는 규모가 대단히 커져서(冗長化) 거대화된다. 회로가 비대화되니 구리선(銅線)의 저항도 무시할 수 없게되어, 필요로 하는 전력도 크게 증가했다.


현대의 필라멘트에 쓰이고 있는 것 같은 텅스텐이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융점이 섭씨 3000도를 넘는 금속을 녹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또, 텅스텐을 함유하는 광상(鉱床) 자체가 대부분 중국에 분포하고 있고, 거기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에 집중되어 있기에 조달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현재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로(炉)를 사용하여 정제할 수 있는 고융점(高融点) 합금인 니켈과 크롬의 합금을 사용하여 필라멘트를 만들고 있다.

참고로 음성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여, 와인 양조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주석산(酒石酸) 나트륨의 결정, 소위 말하는 로셸염(Rochell Salt, ※역주: potassium sodium tartrate)을 사용한다.

주석산 나트륨의 포화용액을 만들어서 가능한 한 큰 결정을 분리(析出)해내면 준비는 완료된다. 종이컵 바닥에라도 붙여서 고정하고, 전극을 연결한 상태에서 종이컵에 대고 말하면 미약한 전류가 흐른다.

이 전극에 전선을 연결해 연장하여, 도중에 신호증폭기를 연결해서 똑같은 다른 종이컵에 전기신호를 입력시키면, 종이컵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경위 끝에 개발된 무선(無線) 전신기는, 대형이면서 거치형(据え置き型)이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도 오와리와 쿄(京)를 통신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이고쿠에 관해서는 이상이려나요. 토우고쿠에 대해서는 뭔가 보고가 있나요?"


"현 시점에서는 특필할 만한 보고는 없습니다. 타케다는 만성적인 물자의 공급부족에 빠져 있어, 생활 필수품을 마련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는 듯 합니다. 식량을 조달하는 게 고작이라는 상황이라, 전쟁 같은 건 말도 안 되겠지요"


"아주 좋군요. 자신들이 간신히 먹고살고 있는 상황이라도 적은 쳐들어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니, 계속 압박을 늦추지 않도록 사나다(真田) 씨에게 전해주세요"


"옛. 잘 알겠습니다"


"너무 조였다가 난민이 대량 발생해도 곤란하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조절을 잘 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잠시 순찰을 하고 오겠어요"


간자와의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연락담당자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자리를 떴다. 호위인 사이조(才蔵)를 대동한 시즈코는, 에치고로부터 맡아놓고 있는 인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요즘 연무관(練武館, 소위 말하는 무도장(武道場))에 죽치고 있어, 오늘도 예외 없이 다들 연무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닫혀져 있던 도장의 문을 사이조가 손을 뻗어 밀어젖혔다. 처음에 느낀 것은 겨울의 한기에도 아랑곳하지않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열기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단련을 하고 있었으며, 웃옷을 벗고 하카마(袴, ※역주: 검도복의 바지같은 주름잡힌 치마처럼 생긴 바지)만 입은 모습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쿠, 시즈코 님. 이런 장소에까지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열여젖혀진 입구에서 불어들어오는 찬바람으로 시즈코의 존재를 눈치챈 카게카츠(景勝)가 땀을 닦으며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는 그들에게 자신에게 상관하지 말고 훈련을 계속하라고 말하고는, 카게카츠를 연무관 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오늘은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습니다만, 드디어 전원분의 입욕 허가증(入浴手形)이 준비되었습니다"


"오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면 일자리(働き口)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그쪽에 대해서는 정식 명령서가 도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주상의 재가는 받았으니 가까운 시일내에 허가할 수 있겠지요"


시즈코의 대답을 듣고, 카게카츠를 시작으로 에치고의 모두는 환희에 들끓었다. 입욕 허가증이란 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기 위한 허가증이다.

그들도 상당히 오와리 양식의 생활에 물들어 있어, 단련을 하여 땀을 흘린 후에는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몸을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까지는 케이지(慶次)가 동행하고 있으면 단체로서 입욕이 허가되었으나, 그가 없을 경우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씻을 뿐이었다.

이제와서 그들이 나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무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寸鉄を帯びられない) 목욕탕 출입을 자유롭게 허가하는 것은 시즈코 한 사람의 재량의 범주를 넘어섰다.

최종적으로 노부나가가 내린 판단은, 한 번에 다섯 명까지의 입욕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주의사항으로서 오랫동안 목욕하는 것을 주의할 것과, 목욕탕에 주류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마도 케이지가 처음에 해 보였겠지만, 욕조에서 술 한 잔을 한다는 것은 에치고 사람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제아무리 에치고 사람(술고래)이라도 목욕탕에서 폭음(深酒)을 하면 기절하는 게 당연했다. 자칫 욕조에서 익사할 뻔한 소동이 발생하여, 이후의 주류반입은 엄히 금지되었다.


또, 카게카츠가 말한 일자리라는 것은, 본격적인 직업 알선이 아니라, 임시 아르바이트의 부류였다.

인질의 입장으로는 자리를 잡고 직업에 종사할 수도 없지만, 격일(隔日)로 한나절 정도의 일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질이기에, 비교적 유복한 무사와 같은 정도의 대우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여름 무렵에 근방(界隈)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맥주와 닭꼬치나 해산물을 듬뿍 사용한 반죽이 떠 있는 '오뎅(おでん)'으로 한잔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재량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용돈을 늘리고 싶다는 것이다. 최저한의 생계와는 별도로 사치의 부류에 들어가기에, 그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시대극에서는 무사의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지우산(番傘) 만들기가 단골이지) 노동에 관해서는 갑자기 외부로 나가는 것은 어렵기에, 우선 제 저택의 보수나 마을의 도로 보수 등에 종사하시게 됩니다"


오와리의 시즈코 저택도 그럭저럭 세월이 흐르면서 곳곳에 노휴화(老朽化)의 징후가 보이게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휴화라는 것도 표층 부분이나 가동부 등의 부하가 걸리는 장소에 한정된다.

이 정도의 보수라면 전문 목수나 쿠로쿠와슈(黒鍬衆) 등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몇 명의 목수와, 그들을 보좌하는 노동력으로서의 에치고 사람들이 있으면 충분하다.


"각별하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들! 지금부터 바빠질 것이다! 그러나 맛있는 것을 먹고, 욕조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오!!"


(기초 체력은 있겠지만, 무도(武道)와 목수일은 쓰는 근육이 다르다고 하니, 안마사(按摩師)도 수배해 둘까)


기염을 토하고 있는 카게카츠를 보고 흐뭇하게 생각하면서도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먼저 몇 명씩 한 조가 되어 번갈아가면서 노동에 종사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익숙하지 않은 노동으로 전신근육통을 앓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7 호죠(北条) 가문의 실패



토우고쿠(東国)에 속하는 나라들은 침묵을 지키면서도 반(反) 오다의 자세를 무너뜨리려고는 하지 않았다. 미카와(三河)의 도쿠가와(徳川)는 오다와 동맹을 맺고,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上杉)는 오다의 신하가 되었으나, 그 외의 나라들은 틈만 있으면 오다를 물리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자복(雌伏)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무장봉기를 할 일은 없다. 그들이 오다를 공격하려고 하면, 그 전에 가로막는 오와리(尾張)를 뚫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노부나가가 있는 곳(御座所)인 아즈치(安土)로 목표로 한다면, 진군 루트는 자연스럽게 세키가하라(関ヶ原)를 지나가는 루트로 한정된다. 멀리 우회하여 동해(日本海) 측에서 어프로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결국에는 오다 수하인 우에스기 가문과 부딪히게 된다.

우에스기와 싸움을 벌이면, 오와리, 미노(美濃)의 오다 세력이 가만히 있을 리 없으니, 오와리를 직접 노리는 것보다 불리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즉 오와리를 치지 않으면 우리들은 단죠노츄(弾正の忠, 노부나가)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다는 건가!"


호죠(北条) 가문의 작전 회의에서 무장 중 한 사람이 외쳤다. 짜증이 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말에, 작전회의 자리에 와 있던 제장(諸将)들은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다.

호죠 가문으로서는 오다 가문과 정면에서 총력전을 걸 수가 없다. 타케다(武田) 가문의 쇠퇴가 현저한 지금 상황에서 호죠 가문 단독으로 부딪힐 필요가 있으며, 조금이라도 승률을 올리려면 적지로 쳐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비가 갖춰진 자국에서 맞아 싸울 수밖에 없다.

방어전에서밖에 승산이 없는데 시간을 두면 오다 측이 유리해진다는 상황이라, 시쳇말로 하면 호죠는 외통수에 몰려 있었다.

직접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오다에 대해 이빨을 드러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들의 두령인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로서는, 한 번도 칼날을 맞부딪히지 않고 오다에게 항복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던 것이다.


(현재 상황을 후회해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오다를 너무 얕보았군)


작전회의가 정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타베오카 코우세츠사이(板部岡江雪斎)는 마음 속으로 신음했다.

호죠 가문의 사자로서 노부나가를 알현하기 위해 아즈치로 가려고 했던 그는, 그 도중에 주요 오다 세력하의 영토의 현재 상황을 목격했다. 그리고 귀국한 후에 주군인 우지마사에게 피아의 전력차를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융성의 극에 달해있는 오다와 적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가능하다면 오다와의 적대를 피하고, 융화노선으로 전환하도록 진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도 허무하게 우지마사는 타케다를 필두로 하는 토호쿠(東北) 세력과 연대하여 오다 가문을 타도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현재 상황 그대로 진행되면 우리들에게 승산은 없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지지 않는 길은 교착상태로 몰고가서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으로 강화를 맺는 수밖에 없다)


코우세츠사이는 호죠 가문이 승리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호죠 가문의 우필(祐筆)이자 우지마사의 비서나 외교승(外交僧)까지 맡는 그가 절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난공불락으로 이름높은 오다와라 성(小田原城)의 존재가 간신히 한 줄기 광명을 비추어, 호죠 가문이 살아남을 강화의 길을 잇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시간은 오다 측의 편인 이상, 일찌감치 손을 쓰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 자리에서 우리 측의 불리함을 말할 수는 없다. 분하지만 상황은 고노에(近衛)의 딸이 말한 대로 되었는가……)


지긋지긋한 듯 눈썹을 찌푸리며 코우세츠사이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노부나가와의 알현을 중재한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였다. 코우세츠사이는 그녀에게 노부나가와의 중재를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뜻을 바꾸라는 말을 들었다.

시즈코는 거듭 코우세츠사이에게 노부나가와의 면회를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코우세츠사이로서도 네 그렇군요라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절충안으로서 면회는 하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친서만이라도 시즈코에게 맡기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노부나가로부터의 답신은 그가 기대했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할 말은 없다. 그대들은 마음껏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노부나가로부터의 답신에는 요약하면 상기와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즉, 노부나가는 호죠를 공격해서 멸망시키는 것은 확정 사항으로, 교섭의 여지는 없다. 마음껏 발버둥치며 무사(武士)의 숙원(本懐)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는, 노부나가에게는 호죠 가문을 공격해서 멸망시킬 수 있을 만한 승산이 있으며, 이미 그 준비도 끝나 있다는 것을 헤아린 코우세츠사이는, 노부나가의 심복(懐刀)으로 이름높은 시즈코에게 교섭을 시도했다.

그러나, 시즈코로부터 돌아온 말은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떨어뜨렸을 뿐이었다.


'때를 놓쳤군요. 이미 주상(上様)께서는 방침을 정하셨습니다. 오다 측의 누구라도 교섭의 여지는 없습니다. 고향(国許)으로 돌아가셔서 그 내용을 전해 주세요'


이리하여 노부나가와의 교섭은 결렬되었다. 아니, 처음부터 교섭의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코우세츠사이는 실의에 빠져 사가미(相模) 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가 가지고 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작전 회의가 열리고는 있지만, 동시에 오다 가문의 융성함과 권세도 알게 되어, 작전회의 자리는 장례식(通夜)과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떄를 놓쳤다. 확실히 그러하겠지.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와 싸움을 벌이려고 하는데, 자신의 승리를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 신경쓰인다……"


코우세츠사이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큰 싸움을 앞두고 있는데, 시즈코라는 여성으로부터는 긴장이나 불안이 느껴지지 않았다.

코우세츠사이는 이기지 못해도 지지는 않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침착한 태도가 일말의 불안으로서 그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6 잊혀진 이야기



노부나가의 여동생에 해당하는 오이치는, 딸인 챠챠(ちゃちゃ), 하츠(初), 고우(江)와 함께 시즈코 저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예전에는 노부나가의 정처(正妻)인 노히메(濃姫)도 시즈코 저택에 체류(逗留)하고 있었으나, 의붓아들(義理の息子)인 노부타다(信忠)의 기후(岐阜) 입성(入城)에 맞추어 거처를 기후로 옮겼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와 교류가 끊기게 된 것은 아니고, 틈만 나면 오와리(尾張)의 시즈코 저택을 찾아와 휘젓는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노히메가 기후 성에 들어가는 것과 함께, 그녀의 남동생에 해당하는 사이토 토시하루(斎藤利治)가 노부타다의 측근으로 착임(着任)했다.

식객(居候)인 오이치들은 눈치보이는 생활을 하고 있을 리는 없었고, 생활의 편리성이나 위생수준만을 따지면 일본 제일로 이름높은 시즈코 저택에서 아무 부자유스러움 없이 살고 있었다.


"자 하츠야, 오늘은 뭘 하고 놀겠느냐?"


허리에 손을 대고 가슴을 젖히며 챠챠는 여동생인 하츠에게 말했다. 시즈코 저택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흥미로운 것들이 잔뜩 있지만, 어디까지나 어른용인 것들이 많아서, 귀중한 책(書物)이나 명화(名画) 조차도 그녀들에게는 빛이 바래보였다.

일단 시즈코 저택에는 어린아이들용의 놀이기구(遊具)나 교육완구(知育玩具) 등도 존재했으며, 안뜰의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는 것조차 가능하지만, 위험히 따르는 것에는 어른이 따라붙게 되어 있어 그녀들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언니! '카루타'는 어때요?"


"나와 하츠가 하면 승부가 뻔히 보인다. 질 것을 알고 있는 승부는 좋아하지 않느니라.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는 놀이가 하고 싶다"


"도서관의 금서고(禁書庫) 침입은?"


"어느 쪽이 먼저 들키지 않게 숨어들지를 겨루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꾸중들어서는 본전도 못 뽑는다"


이전에 실행했을 때, 성공하기 직전에 아야(彩)에게 들켜버려, 오이치에게 엉덩이가 빨개질 때까지 볼기를 맞은데다, 일주일 동안이나 간식이 없다는 엄벌이 내려졌다.

원래는 자신들도 먹을 수 있었을 과자를 다른 사람들만이 먹는다. 그 모습을 손가락을 빨며 지켜본 것은 어린 마음에 트라우마로서 각인되었다.


"그보다도 언니. 오늘 과제는 끝났어요?"


"후후후, 이 언니는 똑똑하니 말이다! '끝냈기에' 놀고 있는 것이니라"


"오오ー! 과연 언니. 하지만 아야가 언니를 찾고 있던데요?"


"그…… 글쎄? 무슨 용무일꼬? 뭐, 대단한 용무는 아닐게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며 챠챠는 시치미를 뗐다. 챠챠는 과제를 끝냈다고는 말했으나, 모든 답변란에 뭔가를 써넣은 것 뿐이지 성실하게 문제를 풀지 않았음은 일목요연했다.

과제가 회수되고 교사가 채점하는 단계에서 태만이 발각되어, 아야가 챠챠를 찾으러 왔을 때에는 둘 다 학습실을 빠져나간 후였다는 상황이다.


"그런 것보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무얼 하고 놀겠느냐? 오늘 저녁 식사는 덴뿌라(天ぷら)가 나올 것이니 배를 꺼뜨려 두어야 하느니라!"


"어째서 언니가 식단을 알고 있는 거에요?"


"그게, 시즈코에게 본 적도 없는 훌륭한 새우(海老)가 도착했더구나. 시즈코가 주방에서 일하는 자들과 덴뿌라로 하면 어떨지 이야기하고 있었느니라. 그렇게 큰 새우이니 그야말로 맛있겠지!"


"과연, 시즈코의 말이라면 틀림없지요. 저는 또 언니가 몰래 집어먹었는 줄 알았어요"


"또라니 무슨 말이냐! 그렇게 자주는 하지 않느니라!"


챠챠는 벌컥 화를 내며 하츠의 부드러운 볼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갓 찧은 떡처럼 부드럽게 말랑말랑 변형되는 볼을 이리저리 잡아당겨도 하츠는 가만히 있었다.


"아! 언니, 뒤에 아야가!"


"히익! 하츠, 도망치자!"


"잘못 봤어요. 죄송해요"


"하츠는 사람을 놀래키는구나…… 간 떨어질 뻔 했느니라. 게다가 조금은 이 언니를 본받아서 애교있게 굴지 못하겠느냐?"


"언니의 본성은 이쪽"


"뭔가 말했느냐?"


애교가 좋은 것은 외면(外面) 뿐으로, 알맹이는 더없는 개구쟁이라는 것을 하츠는 서투른 어휘로 지적했다.

아픈 곳을 찔린 챠챠는 언니의 위엄으로 찍어눌렀고, 하츠도 입에 양 손을 대고 침묵했다.

그런 콩트 같은 응수를 하던 두 명이었으나, 문득 본래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손을 잡고 저택 내부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른의 높은 시점에서는 다 보이지만, 어린애들 나름대로 숨어있는 모습의 두 명을 고용인(家人)들은 보고도 못 본 척 해주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은 없는게냐…… 응?"


자신들의 흥미를 채워줄 것을 찾고 있을 때, 챠챠는 멀리서 맹렬하게 달콤한 향기가 풍겨오는 것을 깨달았다.

시즈코 저택에는 이 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 음식이 충실히 갖춰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생산량을 볼 때 설탕은 아직 고급품. 사계절의 제철과일 등도 손에 들어오는 시즈코 저택에서는 설탕이 듬뿍 사용된 과자는 군침이 흐르는 목표였다.


"하츠야, 눈치챘느냐?"


"네, 언니. 저쪽에서 냄새가 나네요"


두 명은 얼굴을 마주보더니, 살금살금 걸어서 향기의 발생원으로 향했다. 이 앞에 있는 것은 시즈코의 개인 방에서 맹장지 하나를 격한 측근의 대기실이다.

또다시 시즈코가 뭔가 새로운 단 음식을 떠올리고 시험삼아 만들어서 그걸 측근에게라도 나눠주려고 준비했을거라고 두 명은 추측했다.

대기실의 주인인 사이조(才蔵)는 그다지 단 것을 잘 먹지 못해서, 평소에는 떫은 차를 홀짝거리면서 그래도 시즈코로부터 받은 과자라며 고생하면서 먹고 있었다.

무리해서 먹을 정도라면, 단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자신들이 먹는 쪽이 단 음식도 기뻐할 거라고 두 명은 생각하고 있었다.


"오오!"


챠챠와 하츠가 맹장지 틈으로 방 안을 엿보자, 방 중앙에 밥상(ちゃぶ台)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담갈색(小麦色)의 구운 과자가 의젓하게 모셔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명에게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그것은 스위스의 전통과자인 '엔가디너(Engadiner)'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설탕과 물엿을 저온에서 졸여서 견과류나 드라이 프루츠(dry fruit)을 섞어 식혀서 굳힌 '누가(nougat)'를, 쿠키 반죽으로 감싸 구워낸 칼로리의 폭탄이라고도 해야 할 존재이다.

갓 구운 밀(小麦)의 향기와, 안에 들어있는 누가나 드라이 프루츠의 폭력적일 정도의 달콤한 향기가 빨리 먹으라고 재촉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과자의 배치를 깨달았겠지만, 달콤한 향기에 매료된 두 명이 함정을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잘 먹겠―― 우앗!"


접시 위의 구운 과자에 손을 뻗치려 한 순간, 바로 위에서 부스럭 하면서 광범위하게 무언가가 떨어져 펼쳐졌다. 챠챠와 하츠는 갑작스런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덮어씌워전 물건의 무게에 무릎을 꿇었다.


"뭣, 투망(投網)이라고!?"


"언니, 움직일 수 없어요"


두 사람을 덮어씌운 것은 수렵용의 투망이었다. 가장자리에 추가 달려있는 투망은, 재빠르게 대상을 덮어씌워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그물 자체가 나름대로 중량이 있기에, 어린 두 명은 머리카락이 얽힌 것도 있어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정도로 간단히 걸려들다니…… 좀 더 주의력을 키워야 하겠군요"


"아, 아야! 어째서 여기에?"


"그것은 챠챠 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그물에서 빠져나오려고 정신없이 버둥거리다가 점점 더 움직일 수 없게 된 두 명을 냉철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야였다.


"나는 오다 가문과 관계가 있는 공주(姫)이니라!"


"알고 있습니다만, 어머님으로부터 충분히 혼을 내 주라고 말씀이 있으셨씁니다"


아야도 어린아이를 거칠게 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챠챠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종종 문제를 일으키고는 도망친다는 일을 반복한다.

하츠가 자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지만, 언니와 함께 있으면 둘이서 함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고우는 혼자서 돌아다닐 수 없으니, 챠챠만 제압해두면 세 딸은 얌전하기 때문에, 오이치나 아야는 챠챠에게만 용서가 없었다.


"큭! 어머니는 배신자"


"오이치 님께서는 챠챠 님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숙녀로 키우려 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대로는 산속 원숭이가 이럴까 싶은 상황, 시집은 커녕 다른 집에 데려갈 수 없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으윽ー!"


이 시대의 여자는 정치의 도구이다. 최종적으로는 다른 가문에 시집가서,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어머니인 오이치는 그러기위한 무기로서 교양을, 야무진 처세술을 배우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럼, 챠챠 님. 당신께서는 어째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셔야 합니다. 면학(勉学)의 좋은 점은, 한 번 배우면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점에 있습니다. 도구나 재화와는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자, 우선은 과제를 다시 하는 것부터입니다!"


"다음에야말로 도망쳐 보이겠다ー!"


아야에게 끌려가는 챠챠는 두고보자는 듯 외쳤다. 뜻밖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과 역경에 지지 않는 바이탈리티(vitality)는 성장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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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5 심심풀이(退屈しのぎ)



봉건사회(封建社会) 뿐만이 아니라 현대에서도 권력자에 가까운 인물, 특히 배우자 등은 은연중에 권력을 가진다.

역사적 사실에서의 토요토미(豊臣) 정권에서는, 천하인(天下人)이 된 히데요시(秀吉)의 정실(正室)인 '네네(ねね)'는, 때로 히데요시에게 철주(掣肘, 움직임을 방해함)를 가할 정도의 영향력을 자랑했다.

이것은 시대가 변하여 에도(江戸) 시대가 되어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방(大奥, ※역주: 쇼군(将軍)의 부인이나 하녀들이 거처하던 곳)이라는 독자적인 사회가 형성된 것도 있어 그런 경향에 박차가 가해졌다.

남편인 쇼군이 죽은 후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정실(正室)까지 있었다고 한다.

천하인(天下人)으로 지목되는 노부나가의 정실인 노히메(濃姫) 또한, 영지나 군세를 갖지 않았음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놀러왔느니라. 내 무료함을 위로해다오"


"저희 집은 구경거리판(見世物小屋)이 아닙니다"


시즈코의 항변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노히메는 우아하게 미소지어보였다.

노부나가가 아즈치로 간 것을 계기로 시즈코 저택에 체류(逗留)하고 있던 노히메였으나, 노부타다(信忠)가 기후 성(岐阜城)에 입성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그녀도 기후 성으로 거처를 옮겼다.

기후를 본거지로 삼고도 여전히 노히메는 틈만 나면 기후 성을 빠져나와, 잠행(お忍び)이라 칭하고 시즈코 저택을 찾아온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주위에서는 좋은 표정을 짓지 않았으나, 노히메가 행동을 삼갈 리도 없었다. 근시(近侍)들이 노부나가에게 하소연해도 "마음대로 하게 놔둬라"고 방임하고 있었다.

성주(城主)인 노부타다 자신도 노히메가 얌전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부하에게 가끔 상황을 보고하게 하고 있었으나, 신기하게도 그녀가 자리에 없어도 집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노히메의 부재를 틈타 하극상(下剋上)을 꾀한다는 폭거에 나섰던 자도 있었다. 그러나, 모조리 뜻밖(不慮)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극상을 꾸민 본인은 물론, 그 행동을 간과했던 친족들에게조차 해가 미치게 되니, 재앙의 싹이 트기 전에 친족들에 의해 잘려나가게 되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요즘은 배짱(気骨)이 있는 자가 없어서 따분하구나. 내게 이빨을 드러내려는 젊은이를 노인들이 억누르고 있기에 놀리는 보람이 없어 한가하느니라"


"일부러 불순분자(獅子身中の虫)를 키우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이잖아요"


"젊은이는 계속 위를 목표로 야심을 가져야 하느니라. 그 결과 신세를 망치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이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후진(後進)을 몰살시킬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간자(間者)들을 가지고 놀고 있느니라"


"얼마 전에, 간자가 식단표(献立表)를 훔쳐내려고 했다는 영문모를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그거 노히메 님이 꾸미신 것입니까?"


오와리(尾張)에는 시즈코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의 손으로 구축된 감시망이 존재한다. 거미줄처럼 쳐진 감시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이 감시망에 기후 성(岐阜城)에서 문서를 반출하려 했던 간자가 걸려들었다. 당연하지만 포박되어, 가혹한 심문 끝에 간자가 반출한 문서를 숨긴 곳을 실토했다.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간자가 숨긴 문서를 찾아냈다는 보고를 받아든 마사유키는, 그 문서를 앞에 두고 곤혹스러워했다.

간자가 목숨을 걸고 반출하려 했던 문서란, 시즈코 저택의 주방이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식단표였으며, 일부러 훔쳐내지 않아도 주방에 붙어있는 공개 문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시한 것이라도, 중후한 겉상자(外箱)에 넣어두면 기밀문서로 보이는 법이더구나"


"아ー…… 중요한 듯 감추는 모습을 일부러 간자에게 보이신 거군요?"


"옻칠(漆塗り)이 된 오동나무 상자(桐箱)에 든 식단표를 소중히 품고 있는 얼간이의 모습은 볼만했느니라"


"장난에 참 공을 들이시네요"


"놀이는 전력으로 해야만 재미있는 법이니라"


(놀림당하는 쪽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지만요……)


지적하기에도 지친 시즈코는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는 것을 관두고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는데 그쳤다. 노히메는 시즈코의 개인 방에 당연한 듯이 자리를 잡고는, 남의 집이지만 익숙하다고 말하는 듯 유유자적하게 쉬기 시작했다.

이미 항례(恒例)가 되어버린 노히메의 행동이기에, 평소에는 시즈코의 개인 방을 둥지로 삼고 있는 동물들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개중에도 노히메가 와도 대담하게 자리를 지켰던 마눌고양이인 마루타(丸太)는 실컷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그 때문에, 마루타는 노히메의 냄새를 느꼈는지 벽장(押し入れの天袋)에 숨어버려 나올 기색도 없었다.


"남만의 과일은 참으로 향이 좋구나"


그렇게 말하며 노히메가 임으로 가져가고 있는 것은 시즈코의 과수원에서 수확한 망고스틴이었다. 지금도 계속 취급 품종을 늘려가고 있는 과수원인데, 개중에서도 망고스틴은 기적의 산물이었다.

씨앗 상태에서 수확이 가능하게 되기까지 5~6년이 필요한 망고스틴은, 발아에서 최소한 2년 정도는 차광률(遮光率) 7할로 키우고, 3년째 이후에는 빛을 쪼이게 하며 키울 필요가 있는 등 재배조건이 까다롭다.

그러한 재배조건을 발견할 때까지 몇 그루나 되는 모가 선 채로 말라죽어버렸으며, 최종적으로 화분에 심어 키운 몇 그루가 드디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것만큼은 여기서밖에 맛볼 수 없지. 열심히 드나든 내 특권이로다"


"제 과수원인데 말이죠. 씨앗만 확실히 남겨주신다면 조금 드셔도 문제는 없습니다만…… 조금은 사양하는 기색 정도는 보여주세요"


"섭섭한 소리를 하지 말거라. 나와 시즈코 사이에 사양 같은 건 필요없지 않느냐?"


(한 마디도 안 지려 한다는 것의 표본이네)


입으로는 못 이긴다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마음 속에서 탄식했다. 그러나 자신이 정성을 들여 재배한 과일을 노히메가 어린아이(童女)처럼 기뻐하며 먹는 모습은 재배한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기쁘다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노히메가 사양하는 일은 없었고, 그 후에도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죽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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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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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04 소년이여, 카레이(かれい)를 먹어라



카레이교자(華嶺行者)는 괴위(魁偉)한 풍모의 소유주이기에, 시즈코 저택은 물론이고 근린(近隣)에도 이름이 알려진 존재이다.

거리에 있으면 그나마 행자(行者)나 수도자(山伏)로도 보이겠지만, 산 속에서 맞닥뜨리면 텐구(天狗)나 요괴(妖怪) 같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도 카레이교자가 밤의 산속을 질주하고 있을 때, 모닥불 같은 빝이 보였다. 슬슬 식사라도 할까 생각하고 있던 때였기도 하여,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불씨나 얻으려고 다가갔다.

예상대로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있던 지저분한 행색의 남자들은, 어둠 속에서 모닥불의 빛을 받아 떠오른 카레이교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절규하며 도망쳤다.

참으로 형용하기 힘든 침묵이 내려앉은 자리에는, 카레이교자와 양팔을 뒤로 묶이고 재갈이 물린 상태로 쓰러져 있는 소년만이 남았다.

소년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나, 잠시 후 절망했는지 눈을 꼭 감고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소년이 절망하여 죽음을 각오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때의 카레이교자는, 해가 지기 전에 잡은 젊은 암사슴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장은 상하기 쉽기에 폐기했지만 걷다보면 피도 빠질 거라고 생각하여, 목에서 피를 흘리는 암사슴의 머리가 늘어져 있는 것이다.

떨어진 위치에서도 농밀하게 풍기는 피냄새와, 피에 젖은 사슴 털가죽이 발하는 짐승 냄새는 대형 육식동물을 연상시켰다. 다가오는 죽음 그 자체인 카레이교자는, 그러나 모닥불 앞에 털썩 주저안았다.

소년이 몸을 굳히고 있을 때, 지그시 허리 쪽을 붙잡혀서는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겨졌다. 소년은 자신의 몸에 짐승의 이빨이 박히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그 순간은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무슨 요술을 부린 건지,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새끼줄과 재갈이 사라지고 자유를 되찾은 것을 깨달았다.


"나…… 나는 살아난…… 건가?"


소년은 자신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모닥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예상대로 모닥불 건너편 쪽에, 만면에 웃음을 떠올린 카레이교자가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던 소년을 칭찬해주고 싶지만, 실제론은 다리가 떨려 일어설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침묵한 채로 계속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카레이교자를 소년은 바라보았다. 험상궂은 용모지만, 미소를 떠올리고 있자 신비한 애교가 있어, 여기서 처음으로 소년은 상대가 사람 형상의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御身)께서는 산의 신이시옵니까?"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주한 괴인에게 말을 걸었다.


"핫핫핫. 소승(拙僧)은 그런 거창한 자가 아니오. 불씨를 빌릴까 해서 온 여행중인 승려외다. 곤란하셨던 모양인데 별 일은 없소이까?"


눈 앞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웟으나, 카레이교자의 태연한 모습과 침착한 말투에 소년의 긴장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실례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이다. 고개를 드시오"


카레이교자의 말대로, 그는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멋대로 상대가 도망친 것 뿐이다. 소년의 구속을 풀어준 것도 한 손을 조금 놀린 것 뿐이다.


"소생(某)은…… 가문 이름은 이제 쓸 수 없군요. 소생은 시치스케(七助)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흠, 뭔가 사연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소승은 카레이(華嶺)라 하외다. 친한 사람들은 카레이교자라 부르고 있지요"


일순 말을 흐린 것만으로 사연이 있다고 꿰뚫어보기는 했으나, 그에 대해 묻는 법도 없이 대화를 계속하는 카레이교자와 소년은 차츰 분위기가 편해져갔다.


그 몸 하나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카레이교자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확실한 지성을 느끼게 하는 화법과는 정반대의 파격적(破天荒)인 행동에 소년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자, 수관(樹冠) 사이로 창백한 달이 보였다. 시치스케는 이 정도로 웃은 것은 대체 얼마만인가 하며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순간 시무룩한 표정을 떠올렸지만, 갑자기 눈썹의 힘을 풀더니 몸에서 힘을 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것도 뭔가의 인연. 카레이교자 님의 이야기와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소생의 신변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불문(仏門)에 몸을 두었던 적도 있지요. 방황하는 중생(衆生)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려워하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그리하여 시치스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국(戦国)의 세상에서는 흔해빠진 이야기였다.

이름에 칠(七)이 들어가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식이 많았던 집안의 시치스케의 형제들은, 부친의 급사를 계기로 골육의 후계자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치스케는 다툼에서 패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 의해 도망치게 되어, 고향(国許)을 쫓겨나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후계자 다툼을 벌일 정도의 집안이었기에 지금까지 여행 같은 걸 해본 적도 없는 시치스케는, 금방 노자를 다 써버려서 근근히 연명하는 생활이 되었다.

미칠듯이 배는 고팠지만, 자신의 긍지가 어쩔 수 없이 방해를 하여 도둑으로 전락하지는 못하고, 아예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여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산 속을 걷고 있자니, 아까의 산적 같은 패거리와 마주치게 되어, 이것만큼은 팔지 않고 있던 호신용 칼(懐刀)을 시작으로 가진 것을 몽땅 빼앗기고 인신매매자(人買い)에게 팔려가기 직전이었습니다"


"과연, 그거 고생하셨겠군요. 하지만, 죽고 싶다니 거 참 몹쓸 얘기외다"


"소생의 인생은 가문을 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는 필요없다는 소리를 듣고,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이었습니다만, 가문에서 쫓겨난 자신의 무력함에 어처구니가 없어져, 사는 데 지쳤습니다"


"흠, 그렇다면 시치스케 님. 소승이 한 가지 음식을 대접하지요. 배가 고프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며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뭣! 아무리 은인이라고 하나, 쓸데없는 생각이라니 들어넘길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렇지 않소이까? 배가 고프면 흥분하기 쉽지요. 그리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테니, 잠시 쉬고 계십시오"


격앙하여 대드는 시치스케의 분노를, 카레이교자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받아흘리고, 메고 있던 배낭(背嚢)에서 큰 쇠냄비(鉄鍋)를 꺼내 불에 올렸다.

시치스케는 카레이교자의 능숙한 솜씨에 분노도 잊고 홀린 듯 보고 있었다. 카레이교자는 근처에 있던 돌이나 나무조각 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즉석의 화덕을 만들어냈다.

그을린 냄비 표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려, 카레이교자는 품 속에서 기름종이 싼 흰 지방살을 꺼내 냄비에 던져넣었다.

흰 지방살이 가열되며 투명한 기름이 되자, 달콤한 듯 향기로운 듯한 냄새가 주위에 감돌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시치스케가 침을 꿀꺽 삼키자, 카레이교자는 어디에서 주워온 것일 호두(オニグルミ, ※역주: 검색해보니 가래나무 열매라고 하는데, 호두의 일종인지 비슷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래에서 호두라고 하니 그냥 호두라고 번역)를 맨손으로 깨서 알맹이를 꺼내고, 이것도 어디에서 채집한 것일 주아(むかご)와 함께 볶기 시작했다.

기름에 호두의 향기가 옮겨갔을 때, 암사슴의 등심(背肉)을 한입 크기로 잘라 차례차례 냄비에 던져넣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향기가 피어오르자, 시치스케는 달려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카레이교자는 젖버섯(チチタケ)이나 달걀버섯(タマゴタケ), 건조시킨 행자 마늘(行者ニンニク) 등도 던져넣더니 물을 붓고, 시치스케 쪽을 보며 히죽 웃고는 소중한 듯 꺼낸 용기에서 뭔가 노란색 가루를 냄비에 한웅큼 던져넣었다.

그 때 발생한 변화를 시치스케는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나쁘게 말하면 산나물(山菜)의 잿물(アク) 같은 것이 떠다니던 진흙탕같던 국이,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향기로운 국물로 변한 것이다.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치스케의 몸은, 생명력 덩어리 같은 향기에 솔직히 반응했다. 즉, 성대하게 꼬르륵 하고 울어제낀 것이다.


"자, 몸은 정직하지 않소? 머리로 죽고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도,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를 앞에 두면 살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외다"


"큭! 하지만, 소생은 이 정도로 배가 고파지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라 하는 요리입니까?"


"후후후.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見果てぬ) 천축(天竺)의 향기, 소승의 이름을 따온 지고의 명품, 그 이름을 '카레이(かれい)'라고 하외다"


"카레이……"


꿀꺽 하고 시치스케의 목젖이 울렸다. 충분히 불이 통해 끓었을 때, 카레이교자는 나무 그릇에 카레를 가득 퍼담아 시치스케에게 건네주었다.


"본래는 갓 지은 밥에 부어먹는 것이 극상(極上)이오만, 산 속이기에 국으로 끓였습니다. 자, 실컷 드시오. 이것이 '카레이'! 이것이야말로 사는 의미라는 것이오!"


시치스케는 카레이교자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국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가슴 가득히 빨아들이자 뇌수가 마비되는 듯 했다.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집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나무 그릇에 직접 입을 대고 흘려넣듯 퍼먹었다.

과장이 아니라 시치스케의 동공이 커지고, 전신의 땀구멍에서 땀이 분출되었다. 혀에서는 감칠맛과 매운맛이 폭발하며, 뇌에는 끊임없이 쾌락이 흘렀다.

소년다운 왕성한 식욕으로 단숨에 그릇을 비우고, 말없이 카레이교자에게 내밀었다. 카레이교자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넘칠 정도로 그릇을 채워서 되돌려주었다.

그러부터 두 사람은 각자 쾌재를 부르면서 매혹의 요리에 취하여 그 훌륭함을 찬양했다.


"푸웁…… 이, 이제 더 안 들어간다……"


시치스케는 대구(鱈)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었다. 카레이교자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훑어먹더니, 시치스케와 마찬가지로 벌렁 드러누웠다.


"자 그럼, 시치스케 님. 아직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시오?"


"크흐흐…… 짓궂은 말씀 하지 마시지요. 이 정도의 체험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할 리가 없지요. 과연, 배가 고프니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건 지당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소승은 이것을 먹고 싶었기에 사관(仕官)하여, 카레이 가루를 원하는 만큼 주시는 주인께 은혜를 갚고 있소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멋진 것들로 가득하군요. 소생이 멋대로 세상을 덧없이 여기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미워하여 솔직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군요"


"시치스케 님, 갈 곳이 없다면 소승의 주군을 섬기지 않겠소? 뭐가 어찌되었든 밥은 배불리 먹여주시는데다, 카레이 같은 훌륭한 요리를 맛보게 해주신다오"


"모처럼이니,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단지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산다는 것도 재미있겠으니 말입니다"


"그러신가. 그러면 오늘밤은 산을 베개삼고 달을 보며 자도록 하지요. 아침이 되면 산을 내려가 제 주인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그렇게 말하더니 카레이교자는 금방 색색거리며 잠들었고,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곁눈으로 보고 있던 시치스케는 부풀어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파격적이지만 매력이 넘치는 카레이교자가 주인으로 받드는 존재. 아직 보지 못한 주군에 대한 망상을 하면서 시치스케는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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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3 힘없는 상냥함은 무책임일 뿐이다



"시로쿠(四六). 지금의 나는 부모가 아니라, 영주로서 당신과 대면하고 있어요. 그러니 부모자식간의 정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뭔가를 말하려던 시로쿠의 말을 차단하듯 시즈코가 말했다. 자리의 분위기가 무게를 더해갔으나, 시즈코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말을 이었다.


"곤란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그 마음은 훌륭해요. 하지만, 위정자는 정으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성산(成算)이 없는 채 정으로 움직이면 높은 확률로 실패를 불러, 최종적으로 그 댓가를 치르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네"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면, 우선 이익을 설명하세요. 당신의 말을 따르는 것에 의해 상대가 얼마만한 이익을 얻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의 투자를 요구하고, 어느 정도의 승산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거에요. 귀중한 타인의 시간을 받는 것이니, 그 정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시즈코의 담담한 말을 들은 시로쿠는 강한 수치심을 느꼈다. 연민에 의해 발작적으로 행동하여, 그것이 초래하는 영향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의 미숙함을 후회했다.

가엾은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는 그럴 수 없다고 깨닫고, 비호자인 시즈코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매달린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시즈코는 확실히 시로쿠의 부모이지만, 동시에 한 나라를 맡은 영주이기도 하다. 그녀가 개인적인 정으로 움직이면, 반드시 그 이익에서 소외된 사람으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온다.


"힘없는 동정은 때로 독이 된답니다. 시로쿠, 당신은 자신의 양 손으로 구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항상 의식해야 합니다. 신이 아닌 이상, 무제한으로 구원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


"이야기는 이상이에요. 사나다(真田)님께 문의해서, 시로쿠가 보았다는 상황의 사실을 확인하죠"


고개를 떨구고 있던 시로쿠는, 생각지도 못한 시즈코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시로쿠, 당신에게는 이미 힘이 주어져 있어요. 자기 나름대로 조사해서 도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니 나에게 온 것이지요?"


"하지만, 방금은……"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정으로만 움직이는 것을 꾸짖은 것 뿐이에요. 당신은 자신의 재량으로 백성을 구하고 싶다고 바랬지요. 나는 부모로서 시로쿠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여, 또 영주로서 후계자의 성장에 필요한 투자라고 판단한 것이에요"


"어머니"


시즈코는 한 번 눈을 감은 후, 시로쿠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뒤를 잇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위에서는 당신을 내 후계자로서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입장은 당신에게 나름의 힘을 주지요. 그 힘은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큰 힘은, 반드시 힘의 크기에 걸맞는 반동을 낳게 되지요. 당신은 이 실패에서 배워야 합니다"


"네"


"우선은 자신이 가진 힘을 자각하세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파악하는 거에요. 난세에서 힘없는 정의는 무책임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자신의 힘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거에요"


시즈코 자신이 실패를 거듭하며 조금씩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되어 지금의 지위를 획득했다.

돕고 싶다고 바란 시즈코의 손에서 흘러 떨어진 생명들은 지금도 시즈코를 뒷받침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

자신의 무력함과, 힘만 있으면 구할 수 있었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된 시즈코는, 폐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위와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 설교는 여기까지 하죠. 시로쿠, 이번의 교훈을 잘 살리세요. 당신이 손을 내민 것으로 그들은 일시적으로는 구원받겠지요. 하지만, 마찬가지의 상황에 있으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또 그게 어떠한 영향을 그들에게 주는지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폐를 끼쳐드릴거라 생각합니다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실패는 그게 용납되는 동안 겪는 것이 가장 좋지요. 실패에서 배우는 사람만이 진실로 강해지는 것이니까요"


시로쿠는 시즈코의 말을 되씹으며 깊이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을 가늠하여, 시즈코는 옆방으로 이어지는 맹장지에 대고 말했다.


"엿듣는 것은 좋지 않아요, 케이지(慶次) 씨?"


"이럴 때만 감이 날카롭다니까, 시즛치는"


시즈코의 개인 방으로 이어지는 맹장지를 열고 들어온 것은, 멋적은 표정을 떠올린 케이지였다.


"어지간해서는 타인에게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 시로쿠가 나한테 직소(直訴)한다는 건 이상하잖아요? 누군가 시로쿠에게 귀띔을 했을거라고 생각하면, 시로쿠가 형처럼 따르는 당신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그리고 케이지 씨는 시로쿠를 부추겨놓기만 하고 방치하거나 하진 않잖아요?"


"이렇게 다 내다보면 거북하구만"


시즈코에게 지적받은 케이지는, 입가에 문 담뱃대(煙管)를 아래위로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시로쿠가 시즛치에게 상담하게 유도한 건 나야. 저 녀석은 어설프게 머리가 돌아가다 보니, 하고 싶다는 마음을 상쇄해버리거든. 행동하지 않는 방관자에 따라가는 녀석은 없으니까 말야"


"그런가요, 그걸 듣고 안심했어요"


"약한 입장의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로쿠는, 다음에 찾아올 태평한 세상에야말로 필요한 사람이야. 시즛치가 뒤처리를 해줄 수 있는 동안 실패하게 해서 배우게 하는 쪽이 좋잖아?"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에요. 부모로서의 욕심도 있지만, 시로쿠는 우수한 위정자가 될 수 있는 소질이 있어요. 가능하면 내 뒤를 이어서 영지를 다스려줬으면 해요"


"미래의 이야기 같은 건 누구도 모르는 거야. 나는 태평한 세상이 되면 넓은 세계를 보고 싶어. 코타로(虎太郎) 영감님이 말해준, 아직 본 적 없는 이경(異境)을 보고 싶어"


"세계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는 카부키모노(傾奇人)라는 것도 멋지네요"


"그렇지?"


케이지가 구김새없는 미소를 떠올렸고, 그걸 본 시즈코도 이어서 킥킥 웃었다.

이 전란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도 좋고, 살아남는다면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여행해보고 싶다. 종래의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바라는 모습은 실로 케이지답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바라건대 케이지가 전란을 살아남아 세계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시즛치는 태평한 세상이 되면 뭘 하고 싶어?"


"그러네요.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여러 나라를 유람하는(諸国漫遊) 여행일까요"


케이지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긴 시즈코는,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世直し) 여행을 계속하는 노인의 드라마를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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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2 홍등가(花街)의 여인



오와리(尾張)의 항만도시에 인접하는 홍등가(花街)는, 토비시마(飛島) 유곽(遊郭)이라고 불리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유수의 규모를 자랑하며, 토우고쿠(東国)에서 그냥 홍등가라고 하면 토비시마를 가리킬 정도까지 되었으며, 철저한 위생관리와 높은 치안을 이유로, 고급 환락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높은 치안에는 이유가 있는데, 노부나가가 신경쓰고 있는 항만도시에 인접한 지역인 만큼 엄격한 감시 아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홍등가의 성격상, 고지식(四角四面)하게 법을 지키게 하면 황폐해져버려, 어느 정도의 자치가 허가되어 있었다.

물론, 노부나가가 정한 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로 한정되고, 명확한 일탈(逸脱)이 드러나면 가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여명기(黎明期)에는 관청(お上)과 서로 속을 떠보기도 했지만, 이미 위험한 줄타기를 하면서까지 돈을 벌고 싶다는 어리석은 자는 도태되어 평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와하하핫!"


그런 토비시마 유곽을 케이지(慶次)와 카네츠구(兼続)가 찾아왔다. 슬쩍 내키는 대로 들르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걱정할 정도로는 빈번하게 다니고 있었다.

항구마을에서 맛있는 해산물에 입맛을 다시고, 노점상을 구경하다가 유녀(遊女)들의 선물을 사서, 그것들을 손에 들고 홍등가로 간다는 것이 평소의 패턴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 무단으로 외박을 했다가 크게 경을 쳤기에, 두 사람은 반드시 예정과 있을 장소를 각자의 감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케이지 님, 오늘은 '이것'을 하지 않겠소?"


술잔을 한 손에 든 카네츠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배 주변을 문지르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그걸 본 케이지가 다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유녀에게 신호를 했다.

케이지의 의도를 헤아린 유녀는 화악 하고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더니, 기품을 지키면서도 빠른 걸음으로 나간다는 묘기를 선보였다.

청초(楚々)한 태도를 지키면서도 살짝 볼을 상기시킨 유녀가 가져온 것은 이호(二胡), 현이 두 줄 쳐진 찰현(擦弦) 악기였다.

찰현 악기란 문자 그대로, 봉이나 활을 사용해 현을 문질러서 연주하는 악기를 말한다. 바이올린 등도 찰현 악기로 분류된다.


"내 초짜 연주를 마음에 들어하다니 신기하구만"


"술잔을 기울이며 케이지 님이 연주하는 음색에 취한다. 이게 꽤나 괜찮더군(癖になる)"


"저희들도 케이지 씨의 연주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초짜의 손장난(手慰み)이지만, 한 곡 선보이도록 할까"


쓴웃음을 지으며 이호를 잡은 케이지는, 음색을 확인하듯이 현을 누르며 활을 미끄러뜨렸다. 흘러나오는 것은 평소의 쾌활한 케이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서글픈 향수(郷愁)를 부르는 음색이었다.

아름답고도 그리운 음색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유녀들은 몽롱한 모습으로 음색에 취했으며, 카네츠구는 저물어가는 황혼(夕景)을 보면서 이곳이 아닌 먼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

호사다마(好事魔多し)라는 말이 있듯이, 기분좋은 시간이라는 건 대체적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곡의 전조(転調)에 맞추는 것처럼 아래층(階下)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홍등가에는 술에 여자에 돈이라는 다툼의 불씨가 부족하지는 않기에, 언제 어디서 타오르더라도 이상하지는 않은 것이다.

술에 취한 남자의 고함소리와 식기가 깨지는 소리에 여자의 비명소리가 섞였다. 멋없기 그지없는 소음을 연주중인 케이지나 곡을 감상중인 카네츠구가 깨닫지 못할 리가 없지만, 두 사람은 신경쓰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나이가 든(年嵩) 유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즐기는 중에 미안하지만 일할 시간이야. 으스대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패거리를 요리하는 건 간단하잖아?"


"아하핫! 언니(姐さん) 말대로네요. 잠깐 평화에 얼이 빠졌나봐요"


언니라고 불린 유녀의 신호를 받은 몇 명이 아래층으로 향했다. 홍등가에서의 싸움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양쪽 모두 처벌하는 게 원칙이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다툼이 일어난다.

항만도시에 가깝다는, 사람의 출입이 많은 지역이기에 존재하는 사정도 있으리라.


"역시 거물은 다르네. 쥐는 소란을 피워서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지만, 태산(泰山)은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나타내지. 고사(故事, ※역주: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와는 다르게, 이 태산이 움직이면 보통 일이 아니게 되겠지만"


나이가 든 유녀가 말하듯, 연주를 계속하는 케이지와 그 음색을 즐기는 카네츠구는 진정되고 있는 소란에도 여전히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방 밖은 모두 잡음이라고 치부해버리고, 유녀들도 계속 때아닌 연주회에 취했다. 그 이후로는 술을 잔에 따르는 소리, 유녀들이 움직일 때 옷이 마찰되는 소리만이 연주의 추임새(合いの手)가 되었다.

케이지의 이호가 꼬리를 끄는 듯한 음색과 함께 연주를 마치자, 그 자리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과연 케이지 씨. 좋은 음색이었어요"


"다음은 밝은 곡이 좋겠어요ー"


"벌써 다음 곡을 재촉하는 건가. 뭐,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연주해 볼까"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케이지는 유녀의 리퀘스트를 따라 밝은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아래층의 소동은 멈추고, 해가 지는 하늘에 케이지의 연주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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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1 식(食)에의 집착



천하인(天下人)으로 지목되는 노부나가를 자신의 연회(宴席)에 초대한다는 것은, 자신의 권세를 드러내는 데 있어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 반면, 노부나가를 접대한다는 것은 막대한 수고를 떠안게 된다.

애초에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주인데다가, 산해진미를 질리도록 먹고 있기에, 어지간한 요리로는 그의 기분을 맞추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이치(お市) 님 경유로 저한테 묻지 말아줬으면 합니다만……"


고민한 끝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매달리는 것이, 노부나가를 자주 접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시즈코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전과 달리 시즈코의 지위(立場)도 상당히 높아져 있다. 서신을 보냈다고 해서 반드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보장은 없다.

정신없이 바쁜 시즈코인만큼 답장이 언제가 될 지조차 알 수 없는데다, 이미 예정이 결정되어 있는 연회는 시시각각 다가온다.

그래서 시즈코에 대한 중개(橋渡し)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게 되는 것(白羽の矢が立つ)이다. 남자 사회가 아니라, 여자 사회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통해서.


"뭐, 너무 그러지 말거라. 오라버니를 초대한 연회를 성공시키면 모두가 한 수 물리게 되지. 아내로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필사적이 되는 것이 여자의 본성이니라"


"주상(上様)께서는 신경질적이시니, 고생하는 것에 비해 보상이 적다고 생각됩니다만……"


"너는 어떻게 대접하고 있느냐?"


"최근에는 도착하시면 우선 목욕을 하십니다. 이동에 따른 피로와 지저분함을 목욕에서 씻어내시고, 툇마루(縁側)에 나오셔서 바람을 쐬시며 욕의(浴衣) 차림으로 고양이와 노시거나, 우리 사람들이 씨름(角力)을 하는 모습을 보시거나 하는 느낌입니다. 그 후에는 주상의 심기에 따라 다릅니다만, 혼자서 식사를 하시거나, 누군가를 초대하여 함께 회식을 하거나 하십니다"


"흠, 시즈코에게는 당연한 대접이지만, 다른 사람은 우선 목욕탕을 준비할 수 없겠구나"


그렇게 평하며 꽤나 유쾌한 듯 오이치가 웃었다. 노부나가는 까다롭지만 예의를 중시하기에, 어지간한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목소리를 높이는 법도 없다.

다만 입맛이 떨어지거나 말수가 줄어들 뿐이다. 그러나, 그의 기분을 엿보는 입장에서는 그 침묵이야말로 두렵다.


"오라버니께는 마지막에 단 것(甘味)을 내드리면 되느니라. 조금 실수(手抜かり)가 있었다 하여도, 마지막 한 수로 만회할 수 있지. 저번에도 그걸로 명줄을 보존한 녀석들이 있지 않았더냐?"


"그걸 흉내내서 단 것만 잔뜩 내놓은 결과, 보기좋게 노여움을 산 분도 계셨지요"


"그건 오라버니께 단 것만을 내면 된다고 얕보았기 때문이겠지. 앞서의 예에서는 자신이 가능한 최대의 대접을 하면서 범한 실수였느니라. 실패는 용서받아도, 얕보이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확실히 건성(手抜き)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중인환시리(万座の席)에 창피를 준 것은 지나치다고 느꼈으나, 훗날 노부나가로부터의 감사장이 도착한 것으로 간신히 체면은 유지했다고 한다.

대접한 측도 얕볼 생각은 없었으리라.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밀어진 지푸라기에 매달린 결과이지만, 가느다란 지푸라기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힘을 다하지 않고 안이한 계책을 쓰려 한 결과이니라. 오라버니의 마음 속에서는 시즈코의 대접이 기준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식사로 주의를 끄는 것은 어렵겠지"


"단순히 미식(美食)에 눈을 뜨셔서 식(食)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것 뿐이 아닐까요?"


"애초에 오라버니는 밥은 물에 말면 충분하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다름아닌 시즈코, 네가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먹게 하여 오라버니의 혀를 살찌게 한 것이 발단이니라"


"뭐…… 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 주상께서 맛있는 듯 식사를 하시는 걸 보면, 저도 모르게 더 맛있는 것을 드시게 하고 싶어져서……"


실제로 시즈코가 없었다면 노부나가의 식생활은 예전대로의 소박한 것이었을 거라는 것은,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오이치의 말대로, 노부나가가 가지게 된 식에 대한 집착은 시즈코가 키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뭐, 평소대로 요리사를 파견해서 지도를 시켜다오. 그게 가장 서로에게 고생이 적을 것이니라"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듯 이야기를 마무리한 오이치는, 시즈코가 내놓은 과자에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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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51 1576년 12월 하순



노부나가가 발한 적의 일소(一掃) 선언으로부터 1개월이 경과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시즈코 군의 동향은, 전쟁 준비를 갖춘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즈코 군의 병사들은 집단으로 도시에 나가서 연일 먹고 마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대의 성질상, 전원이 일제히 휴가를 쓸 수 없었기에 교대로 외출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없던 규모로의 움직임이 보였다.

오다 가문 안에서조차 시즈코 군이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고 험담하는 자들이 있었다. 외부에서 볼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요란하게 놀고 있어도, 전쟁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량의 군수물자가 집적되고, 계획에 따라 곳곳으로 분배되어 갔다.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도 특히 카이(甲斐)로 파견되는 장병들에게는 특별 훈련이 실시되어, 새로운 장비나 지금까지 없었던 규칙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이 반복되고 있었다.

가혹한 훈련에서의 스트레스를 발산시키기 위해 특별수당을 지급하여 휴가중의 술판을 장려했기에, 대규모의 방탕하게 보이기도 하는 움직임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장비의 준비는 순조로운 것 같네"


재고 조사(棚卸し, 서류상의 숫자와 현물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가 끝난 보고서를 바라보면서 시즈코가 중얼거렸다.

무구(武具)의 조달에 관한 보고서인데, 이 무구들을 사용하는 것은 시즈코 군의 병사들이 아니다. 지금 시즈초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무구들을 사용할 것은 카게카츠(景勝)들이었다.

그들이 수행할 특수한 임무를 뒷받침하기 위해, 멀리서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카부키모노(傾いた)' 차림새가 되어 있어, 처음 지급 예정인 무구를 본 카게카츠는 얼굴이 굳어졌고, 대조적으로 카네츠구(兼続)는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고 있었다.


"목이 높은(編み上げ) 부츠도 정착된 모양이네. 카이에서는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에 주의할 필요가 있으니 필수장비인데, 통상의 부츠보다 통기성(通気性)이 더 나빠져 있는 게 고민이네"


시즈코는 이것만큼은 예외적으로 점잖은 갑옷 궤(鎧櫃, 갑주를 운반할 때 사용되는 전용의 용기)에서 눈을 떼고, 현대인이 보면 정글 부츠라고 생각할 듯한 목이 높은 부츠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각종 사이즈가 준비되고, 발끝에는 얇은 철판까지 들어간 그것은 세련된 기능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다 군에서조차 전원이 통일된 장비를 착용하는 제식(制式) 장비라는 개념이 없는 가운데, 발 부분만이라고는 해도 일개 병졸에 이르기까지 통일하려는 시즈코의 이질성이 엿보였다.

이 시대에서 일반적인 발 부분 장비라고 하면, 버선(足袋)을 신고 각반(脚絆)을 감은 후에 짚신(草鞋)을 신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비에는 방수성능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어, 카이 국으로의 출병에서는 치명적이 된다.


카이 국에는 일본주혈흡충의 중간 숙주가 되는 미야이리가이(ミヤイリガイ, ※역주: 宮入貝, 학명 Oncomelania hupensis, 다슬기 비슷하게 생긴 고둥)가 군생하고 있다. 이 미야이리가이는 물과 접촉하는 것에 의해 일본주혈흡충의 유생(幼生)인 세르카리아(cercaria)를 방출한다.

유행지(流行地)에서는 육상으로까지 서식범위를 넓힌 미야이리가이가 주택의 채광창에 무리지어있는 경우조차 있다고 한다.

즉, 아침이슬에 젖은 풀에 미야이리가이가 있는 경우, 일본주혈흡충이 체내에 침입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막기 위해 준비된 것이 목이 높은 부츠였다. 발목 뿐만이 아니라 무릎 아래까지 덮는 샤프트(shaft)라는 부위가 특징적이다.

철저한 방수 기능을 위해 샤프트에는 수지(樹脂)로 코팅된 범포(帆布)가 사용되어, 지극히 통기성이 나쁜 장비가 되었다.

여기까지 철저하게 해도 신발(履物)이므로 빈틈이 존재한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현대인이면 당연히 볼 수 있는 '접착 테이프(ガムテープ, ※역주: 접착 테이프 중에서 흔히 말하는 덕트 테이프(duct tape)에 해당하는 듯)'였다.


튼튼함과 편리성을 추구한 결과 천으로 된 접착 테이프가 되었다. 수분을 침투시키지 않도록 천에 수지를 코팅한 후에 접착제를 도포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연히 현대와 같은 공작 정밀도는 실형할 수 없기에,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접착 테이프에 비하면 훨씬 두껍고, 한 번 붙이면 떼는 것이 곤란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그래도 보수나 빈틈을 메우기 위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접착 테이프의 유용성은 의심할 바가 없다.

참고로 이번의 접착 테이프에 사용한 접착제는, 상온에서는 튼튼한 점착력을 자랑하지만 고온에 약하여, 무좀 대책도 겸하여 정기적으로 뜨거운 물에 부츠를 통째로 삶는 방식으로 가열하면 벗겨낼 수 있다.


"휴식을 취하시는데 죄송합니다. 오다 칸쿠로(織田勘九郎) 님에게서 파발이 도착했습니다"


"알겠어요"


보고서를 읽고 있던 시즈코는, 소성(小姓)으로부터 파발의 도착을 전해들었다. 서류에서 눈을 뗸 시즈코는, 소성으로부터 파발이 가져온 서신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시간을 내 달라는 것이었다. 토우고쿠 정벌에 관해서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기에, 이제와서 새삼스레 상담이 필요한 일 같은 건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대는 오다 가문의 차기 당주이기이에 함부로 대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게다가, 남몰래 오는 것(お忍び)이 아니라 사전 연락(先触れ)을 보내어 공식 방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마중하는 것 하나만 해도 그에 걸맞는 격이 요구되게 된다.

게다가 상담 내용을 알 수 없기에 시즈코는 무슨 상담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토우고쿠 정벌에 관한 자료나 자군에 관한 자료를 갖추기 위해 분주하게 되었다.


"으ー응,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벅찰지도. 현장 책임자를 부를 필요가 있으려나"


토우고쿠 정벌의 계획표나, 불안사항(懸念事項) 등이 정리된 서류를 꼼꼼히 읽어봐도 노부타다(信忠)가 상담하고 싶어하는 것이 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이게 되는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우선 간첩(間諜)을 총괄하고 있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에게 출두요청을 보냈다. 뭣보다 우선시해야 할 것은 토우고쿠 정벌 그 자체이기에, 예정외의 행동으로 현장을 혼란시키는 것은 본말전도(本末転倒)가 된다.

그래도 요청을 보낸 다다음날에는 마사유키 본인과 간자들을 지휘하고 있는 간자 우두머리(間者頭)라고 해야 할 지위의 사람들이 시즈코 앞에 모여 있었다.

시즈코에게조차 얼굴이 알려지면 업무에 지장이 생기기에, 마사유키 이외에는 복면을 쓴 상태에서의 면회가 되었다.


"우선은 급작스런 요청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여러분의 진력에 의해 우리 군은 유리하게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는 상태에요. 여러가지로 수고를 끼칠 거라 생각하지만, 지금부터도 잘 부탁드려요"


입을 열자마자 시즈코는 마사유키 일행에게 사의를 표했다. 간자들은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적지에 잠입하여 유용한 정보를 수집해서 가지고 돌아온다.

그들이 시즈코의 눈이나 귀가 되어주고 있는 덕분에 위험을 사전에 탐지하고 대책도 세울 수 있고, 적측이 품고 있는 약점을 효과적으로 찌를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간자는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裏方に徹する) 존재이기에, 그 존재는 알려지더라도 상찬받는 경우는 전무했다.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알고(知悉) 있는 시즈코나 노부나가조차, 공식적으로 그들을 표창할 수는 없다.

또 그들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유명해진다는 것은 즉 자신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명예(栄誉)는 그들의 두령(頭領)인 마사유키에게 모이는 것이며, 그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고 명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감정의 생물이기에, 이렇게 시즈코 같은 중진(重鎮)으로부터 면전에서 감사를 받으면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감격에 떨고 있었다. 그 정도로 세상에서 일반적인 간자의 지위는 낮게 억제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용하는 입장인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간자이며, 어설프게 두텁게 대우해서 간자들이 힘을 얻게 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러한 리스크들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들을 두텁게 대우하기로 했다. 다른 어느 곳보다 두텁게 대우해주는 주군에 대해 굳이 이빨을 드러내는 개라면 숙청할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는 하다.


"그럼 여러분은 타케다(武田) 및 호죠(北条)의 근황에 대해 신경쓰이는 점을 알려주세요. 정보의 정확도가 낮아도 상관없으니, 그러한 사실을 첨부해서 보고해주면 그때그때 감안하겠어요. 어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식사라도 하면서 가볍게 의견을 말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짝짝 하고 손뼉을 쳤고, 신호를 받은 고용인(家人)들이 밥상(机)과 요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원이 자리에 앉고 식사 배치(配膳)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 시즈코가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상관하지 않고 즐기라고(無礼講) 선언했다.

각각의 간자 우두머리들은 처음에는 곤혹스러워했으나, 두령인 마사유키가 크게 웃으며 먹고 마시면서 시즈코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점차 긴장이 풀렸다.

시즈코 이외의 사람들은 소량이라고는 하나 술도 제공되어, 연회가 열기를 띠기 시작하자 모두의 입도 매끄러워졌다.


"이것은 사실 확인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상당히 정확도가 높은 정보입니다. 요즘 아나야마 바이세츠(穴山梅雪)가 도쿠가와(徳川) 측과 접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흠. 아나야마라고 하면 타케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신하, 고이치몬슈(御一門衆)의 일각(一角). 그 정도의 거물이 도쿠가와와 내통하는 건가요, 현 당주(当代)인 카츠요리(勝頼)와의 사이에 불화가 있다고 들은 적도 없는데 확실한 건가요?'


아나야마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카츠요리를 배신하고 노부나가와 내통한 실적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기 시작한 현 상황에서 시즈코로서는 아나야마의 배신에 회의적이었다.

왜냐하면 개전하기 전부터 대세는 결판이 나 있기에, 이제와서 배신해 봤자 그가 두텁게 대우받을 일 따윈 있을 수 없다. 내통한 척을 하고 오다 측의 정보를 탐색하는 더블 스파이가 되어도 성가시기에, 이쪽으로 끌어들이는 것 자체가 좋은 수가 아니다.

뭣보다 타케다는, 오다 가문이야말로 무가(武家)의 통령(統領)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제물이다. 만신창이의 타케다를 쳐부수기보다, 조금이라도 충실한 진용의 타케다를 깨부수는 편이 선전 효과는 높아진다.


"그렇기에 도쿠가와 측인 것입니다. 오다 가문에는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도쿠가와 님이라면……"


시즈코가 말하려는 것을 헤아리고 간자 우두머리가 자기의 의견(自説)을 말했다. 확실히 적에게도 널리 문호(門戸)를 개방하고 있는 도쿠가와 가문이라면, 아나야마가 등용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과연. 도쿠가와 가문도 유능한 가신들을 데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패도(覇道)를 지향한다면 불안하다는 건가요"


아나야마로서도 뻔히 알면서 승산이 없는 전쟁에 뛰어들기보다, 아나야마 가문 당주로서 자신의 핏줄을 남길 의무가 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1부 상장(一部上場) 기업에 채용되지 못하더라도, 2부 상장(二部上場)의 기업이라면 제일선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도쿠가와 가문이라면 타케다의 중신(重臣)을 받아들일 경우, 카이 국을 지배하는 데 있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카이의 백성들에게도 친숙한 아나야마가 창구가 된다면 쓸데없는 마찰은 피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자신에게도, 유능하다면 적이라도 중용한다는 도량을 보이는 것으로 유능한 무장들이 모여들기 쉽게 된다.


"아나야마가 그런 속셈을 품는 건 자유겠지만, 전후(戦後)의 타케다 영토에 대한 관리(差配)는 주상(上様)의 전결사항(専決事項).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겠지요"


토우고쿠 정벌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선도(音頭)하고 있는 것은 노부나가이다. 이에야스는 어디까지나 노부나가와의 동맹관계에서 보좌를 자원하고 있는 것 뿐으로, 자칫 잘못하면 그들이 타케다와 맞부딪히지 않을 가능성조차 있다.

더 나아가, 오다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결속(結びつき)이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고해져 있다는 이유도 있다. 자본관계가 없는 별개의 기업이라고 생각했더니, 완전히 서플라이 체인에 포함된 그룹 기업을 닮은 위치가 되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현대의 국가에 빗댄다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 가깝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일본이 감기에 걸린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이미 오다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설령 도쿠가와 가문이 오다 가문에 반기를 들더라도, 이미 지배 영토도 보유 전력도, 경제력에서조차 차원이 다르다. 그러한 상황을 가장 가까기에서 시즈코를 창구로 삼아 관찰하고 있는 만큼, 도쿠가와 가문으로서도 섣부른 행동을 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극상(下克上)을 꾸미고 있다고 의심받는 것조차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이에야스도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언젠가는 오다 가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기까지의 상황을 고려하면, 도쿠가와 가문이 아나야마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당사자인 아나야마 본인이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별개로 치고 상당히 낮다고 예상된다.


"일단 남의 나라의 인사(人事)에 참견할 권한은 없지만, 아나야마는 주상의 노여움을 살 리스크를 범하면서까지 원할 만한 장기말일까요?"


"카이 국에 관해서는 그 문제(일본주혈흡충)가 있기에, 민초들의 생활양식부터 싹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전례를 답습하고 싶어하는 예전 통치자의 중신 따위는 해악밖에 되지 않겠지요"


"그렇네요. 배신하게 해놓고 버리는 것도 남 보기 좋지 않고, 애초에 교섭을 결렬시키는 게 현명한 방법이겠네요"


추가로 말하자면 행군을 함께 하는 이상, 카이 국이 품고 있는 주박(呪縛)이나 마찬가지인 환경 오염에 대해서는 설명이 끝난 상태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거듭해온 이에야스는, "네게는 무리지만 나라면 좀 더 잘 할 수 있어"라는 큰소리를 치지 않을 만큼의 분별이 있었다.

슬픈 일이지만 현대에서도 빈번하게 지도자들이 하는 말이 이 대사인데, 실제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절대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밖에서 보면 간단해 보이는 일이라도, 실제로 하게 되면 나름의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나야마 건에 대해서는 당분간 제 선에서 보류해 두죠. 어느 정도의 사실 확인이 되는 대로 제게 보고해 주세요. 제가 주상께 말씀드리겠어요. 도쿠가와 님이 주상께 뭔가 상담을 하셨다면 좋지만, 아니면 토우고쿠 정벌에 약간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주상께!? 그……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할 만한 증거는 아나야마 본인을 납치라도 하지 않는 이상 얻을 수 없습니다만……"


간자 우두머리가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과거에 노부나가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애매한 정보를 가져오거나, 반대로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서 중요한 정보를 보고하지 않은 간자들을 예외없이 처단했다.

노부나가가 그만큼 정보라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는 증거(証左)이지만, 간자들 입장에서 볼 때는 냉혹무비한 인물로 보였다. 노부나가로서는 얕보이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쪽이 좋다고 일소에 부치리라.


"정보에는 선도(鮮度)라는 것이 있어요. 부처님(釈迦)에게 설교(説法)하는 셈이지만, 확실한 증거를 얻기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들이기보다, 정보 정확도에 대한 내용을 첨부해서 보고하는 쪽을 주상께서는 기뻐하시겠죠. 그 분께서는 강의과단(剛毅果断)하시지만, 도량이 좁은 주군은 아니세요. 정보다 실리를 우선시하시는 분으로, 유용하다면 결코 함부로 대하거나 하지는 않으십니다"


"옛"


"금후의 방침으로서 아나야마의 동향에 한층 더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도쿠가와와 이어져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 이상의 감시는 필요없습니다. 반대로 교섭이 결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에도 감시를 종료해 주세요"


대사(大事)를 앞두고 있기에 거듭 신중하게 대책을 강구했지만, 시즈코는 이 건을 낙관시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보는 한, 이에야스는 틀림없이 유능한 인물이며, 이 정도의 국면에서 판단을 잘못 내릴만한 조무라기(小者)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머지않아 아나야마와의 교섭은 결렬되고, 실의에 빠진 아나야마는 달리 받아줄 곳을 모색하게 되리라. 도쿠가와 가문 내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면 곤란하지만, 그 이외라면 내버려둬도 상관없다는 것이 시즈코의 인식이었다.


"아나야마에 대해서는 이걸로 충분하겠지요. 그 밖에는 뭔가 있나요?"


"옛, 실은——"


시즈코가 다시 화제를 돌리자, 아나야마의 건이 계기(呼び水)가 되었는지, 다른 간자 우두머리들도 차례차례 말을 꺼내며 활발한 의논이 시작되었다.



노부타다로부터의 사전 연락을 받은 이래, 타케다와 호죠에 관한 정보를 정리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정장으로 몸을 감싼 시즈코가 직접 노부타다를 마중나왔다.

한편 노부타다의 경우, 수행원도 데려오지 않고 혼자 훌쩍 나타나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꽤나 멋을 부렸는데, 오늘은 뭔가 축하할 일이라도 있느냐?"


처음에는 노부타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시즈코였으나, 점차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시즈코는 짓궂은 장난을 친 어린애를 꾸짖듯 노부타다의 머리를 때리려고 했으나, 매일 수련을 하고 있는 노부타다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무슨 짓이냐, 위험하잖느냐"


"정식으로 사자를 보냈기에 그에 걸맞은 마중을 한 나한테 그런 말투가 어딨어?"


"과연,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냐. 시즈코가 평소에 아버지가 뜬금없이 밀고 들어온다고 불평을 하길래 사전 연락을 보낸 것 뿐이다. 나와 네 사이니까 딱딱한 형식 같은 건 필요없다"


"……알았어. 그럼 오다 가문의 차기 당주가 아니라, 이웃집의 악동 상대니까 만찬(晩餐)은 필요없겠네"


"모처럼 준비해준 것을 낭비하는 건 아까우니, 고맙게 먹도록 하지"


두 사람은 가볍게 잡담을 하면서 시즈코의 개인 방으로 이동했다. 당초의 예정으로는 노부타다를 상좌(上座)에 앉히고 알현실에서 회담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중지되었다.

맹장지 한 장을 사이에 둔 옆방에는 사이조(才蔵)나 소성들도 대기하고 있지만, 지금 이 방에 있는 것은 시즈코와 노부타다 두 명 뿐이 되어, 매립식 코타츠(掘り炬燵)에 마주보고 앉자 노부타다가 입을 열었다.


"차기 당주라고는 하지만, 알다시피 아버지가 건재(ご健勝)하시지. 당분간 내게 차례까 돌아올 일은 없을거다. 딱딱한 대응은 그만둬"


의외로 추위를 타는 노부타다는 코타츠의 상판(天板)에 턱을 괴고, 이불(掛布団)에 파고들듯 하며 온기를 쬐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면서, 직접 바구니에 쌓여 있던 밀감(蜜柑)의 껍질을 벗겨서 노부타다에게 내밀었다.

노부타다는 그것을 한 손만 이불에서 내밀어 받아들고는, 한 조각씩 나누어 입에 던져넣었다.


"갑자기 당주로 추대되는 것보다, 이렇게 습숙(習熟) 기간이 있는 편이 좋잖아?"


"확실히 그렇군. 그런데, 욕심이 많은(欲の皮が突っ張った) 놈들과 서로 속을 떠보는 짓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런 억지를 쓰려는 놈들은 꼭 쓸모없는 놈들이니 답이 없어"


"그러네. 하지만 전쟁이 없는 태평한 세상이 되면 그렇게 정치적 처신을 잘 하는(腹芸の出来る) 사람들이 태두하게 되거든. 무관(武官)들은 멋모르고 있다가는 한직으로 쫓겨날 지도 모른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토요토미(豊臣) 정권 하에서 무관과 문관(文官)의 대립이 보였다. 토요토미 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립을 부추겼다는 측면도 있지만, 무단파(武断派, 군무를 담당하는 파벌)과 문치파(文治派, 정무를 담당하는 파벌)은 서로 반목하며 대립이 깊어졌다.

무단파의 대표격인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나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등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천하통일이 진행됨에 따라 활약의 기회를 빼앗기고 맴돌게 된다.

한편,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나 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로 대표되는 문치파는, 정권의 내정을 담당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발휘하며, 서서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감쪽같이 토요토미 정권을 붕괴로 이끌어 천하를 손에 넣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후에 무단파와 문치파의 대립에 골치를 앓게 되는 것은 얄궂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다만, 도쿠가와 막부는 토요토미 정권과는 달리,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가 추진되어 있어, 강권(強権)으로 대립을 진정시킬 수 있었기에 일이 커지지는 않았다.


"시즈코라면 언젠가 찾아올 태평한 세상에서의 문관과 무관의 대립을 어떻게 수습하겠어?"


"그러네, 목숨을 걸고 출세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무관들에게는 영지라는 눈에 보이는 보상을 주고, 대신 관위(官位)는 주지 않겠어. 반대로 문치파는 영토를 주지 않는 대신, 직책(役職)이나 관위를 주어서 신분을 안정시켜 균형을 잡을까"


시즈코의 대답에 흥미를 느꼈는지, 노부타다는 반으로 가른 밀감을 한 입에 먹은 후 말했다.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지. 영토를 손에 넣었다면, 다음에는 관위를 얻고 싶다는 게 예상사 아닐까?"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양쪽을 모두 원한다면 군무, 정무의 양쪽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야겠지? 태평한 세상이 되면 무력이 가지는 중요성은 낮아지는 것이 도리.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이야말로 자연의 섭리야"


"반생(半生)을 무에 바친 노병에겐 가혹하군"


"영토와 관위의 양쪽을 얻어 절대적인 권세를 자랑하게 되면, 권력과 권위가 일극(一極)에 집중되니까 위험해. 특히 영토는 개인이 아니라 가문에 주어지니까 후계자가 우둔하다면 암군(暗君)을 낳게 되지"


에도(江戸) 말기까지의 일본에서는, 가문의 격(家格)을 관직(官職)과 위계(位階)로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전국시대에서도 조정에서 내려지는 관위는, 영지를 다스리는 대의명분으로서 이용되었다.

개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우에스기(上杉) 가문이 가진 칸토칸레이(関東管領)일 것이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이 직책을 구실로 몇 번인가 호죠를 침공했다.

현대에서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재산(영토)나 직함(꽌위)가 갖는 영향력은 크다. 어울리지 않는 지위를 얻은 자는 왕왕 문제를 일으킨다.


"본인이 자멸하는 건 자업자득이지만, 최종적으로 그 댓가를 치러야 하는 건 영민들이야"


"꽈연. 만약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그것을 이유로 가문을 없앨 수도 있다는 건가"


"뻔뻔한(阿漕) 수법은 반발을 부르거든?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긴 하지만, 생살여탈(生殺与奪)에 관계되는 일에 안이한 수단으로 대응하면 뼈아픈 반격을 받게 된다고"


태평한 시대가 오래 이어진 에도 시대에서는, 지방의 다이묘(大名)가 갖는 힘을 깎아내기 위해 참근교대(参勤交代, ※역주: 에도 막부가 지방 다이묘들을 교대로 일정 기간동안 에도에 머무르게 한 제도)나 전봉(転封, ※역주: 영지를 바꿔주는 것)이 시행되었고, 통치의 실패를 이유로 가문을 없애는 일이 횡행했다.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해. 지나치면 사회 불안을 부르지만, 당사자(渦中の人間)는 그걸 깨닫지 못하니까 문제네"


도쿠가와 막부에서 초대(初代)인 이에야스부터 3대 쇼군(将軍)인 이에미츠(家光)까지는, 막부에 의한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토요토미 계열의 다이묘를 없애고 다녔다.

가문을 없애면, 당연히 그 녹을 받고 있던 가신들도 밥줄이 끊겨, 낭인(浪人)이 되어 방황하게 된다.

낭인이 된 그들은 다시 사관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지만, 어지간히 재능이 있는 사람 이외에는 문전박대 당해버린다. 개중에는 무사(武士)의 신분을 버리고 농민이 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대접을 받은 자들의 불만은, 그 원인이 된 막부에 대해 케이안 사변(慶安の変)이나 죠오 사변(承応の変)이 되어 표면화되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이 더욱 무력에 의한 혁명을 기피하는 풍조를 낳아, 무단(武断)으로부터 문치(文知, ※역주: 작가가 文治를 잘못 쓴 듯)로의 방향전환을 뒷받침하게 된다.


"이거 참 공부가 되는군. 이대로 내 보좌도 해줬으면 좋겠다"


"우쭐하지 마. 제왕(王者)은 항상 고독한 법이야. 최종적으로 결단을 내리는 건 너니까"


"뭐 어떠냐. 나도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을 때도 있다고. 타케다에 관해서는 걱정거리도 사라졌지만, 호죠는 참 애매하다"


노부타다가 말하는 타케다에 관한 걱정거리란, 그가 예전부터 서신을 통해 관계를 다지고 있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5녀(五女)에 해당하는 마츠히메(松姫)였다.

제 1차 토우고쿠 정벌 이후 끊겼던 서신 교환은, 카레이교자(華嶺行者)라는 규격외의 집배원의 등장을 계기로 재개되게 되었다.

단독으로 길 아닌 길을 답파(踏破)하여,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노부타다의 서신을 마츠히메에게 전달하고, 그뿐만 아니라 그녀로부터의 답장까지 가지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화제는 필연적으로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에 관한 것으로 모아져 갔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적이 될 운명의 장난에 농락당하는 젊은 두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구원의 손길이 내밀어졌다.

구원의 손길은 노부타다에게 서신이라는 형태를 취해 전달된다. 발신자는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로, 내용은 머지않은 미래에 적이 될 자신들 사이에 마츠히메를 말려들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가엾다.

적대하기에 앞서 마츠히메는 신겐의 선조 대대로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이기도 한 에린지(恵林寺)에 맡겨, 승자가 된 쪽이 맞이하러 간다는 것이었다.

이 카츠요리의 제안은 노부타다와 마츠히메 측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카츠요리로서도 자신이 패배한다고 해도, 타케다의 핏줄을 역사에 남길 수 있는 기사회생의 한 수이기도 했다.


"호죠의 건이라니…… 혹시, 시바타(柴田) 님이 관계된 그거?"


눈썹을 찌푸리는 노부타다에게 시즈코가 물었다. 시즈코의 질문은 정곡을 찌른 듯, 노부타다는 시바타의 이름을 듣자마자 몸이 굳어서는 입을 다물었다.

노부타다로서도 긴장이 풀렸던 것이리라. 누나 같은 존재인 시즈코에게는 결코 보일 생각이 없었던 약점을 보여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노부타다의 모습을 보고 상황을 헤아린 시즈코는 노부타다에게 들키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노부타다에게 후다이의 중신이라는 것은 성가신 존재다.

전술한 무단파의 급선봉이자,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도 호죠 정벌의 총대장을 맡는 등, 노부나가로부터의 신임도 두텁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라는 입장상, 노부타다가 토우고쿠 정벌 전체를 총괄하는 총대장에 임명되어 있지만, 무공의 부족은 다름아닌 노부타다가 가장 잘 자각하고 있으리라.


"의식하지 말라고 하는 게 무리겠지?"


"내가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무공을 세우지 않으면, 몸 하나로 출세한 그 사람에게 주눅이 들게 되어버려"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 분발할 수밖에 없네"


"기다려! 여기까지 창피를 당했다고, 뭔가 조언 한 마디쯤 있어도 되지 않아?"


"그건, 그거지. 나는 오다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에는 극력 관여하지 않고, 천하통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은거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시즈코가 은거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냐! 백주몽(白昼夢)이라고 해도 심하다"


"아냐아냐,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 출가하면 은거할 수 있을거야!"


"환속(還俗)이라는 수단이 있는 이상, 출가해봤자 도로 끌려올 뿐이지. 애초에 아버지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출가 따위 허락받지 못할 거다"


"……설령 출가해도, 절까지 밀고들어오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네"


노부타다가 말했듯이 출가해도 노부나가에게 휘둘리는 미래를 예견해버리고 시즈코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시즈코의 말처럼 시바타 님에게 대항하기 위한 무공을 세워봤자, 언젠가는 문치파의 태두가 기다리고 있지. 이미 무단파와 문치파의 대립의 전조는 보이고 있고, 그 때까지 나도 정무 능력에서도 공을 세워야 해"


"도움이 필요하면 카츠조(勝蔵) 군을 데려가겠어? 그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눈에 띄지만, 그의 진면목은 두뇌싸움에 있거든"


"그 언동(言動)에도 불구하고 문화인(文化人)이니까 말이지. 나가요시(長可)를 잘 모르는 사람은 대뜸 의심하겠지만, 그 녀석은 머리 회전도 빠르고 유연한 발상력을 가지고 있지. 다만 누구의 눈에도 알기 쉬운 폭력에 의한 해결을 선호하니까 난폭자로 보이는 거지만 말야"


단골 군법위반자인 나가요시이지만, 유행의 최첨단인 다도(茶の湯)를 즐기고, 붓을 잡게 하면 쿄(京)의 문인(文人)들도 감탄하게 한다. 게다가 시(和歌)를 읆게 해도 일류에 손색없을 정도니 놀라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 나가요시의 모습이 안 보이는 듯 하다만?"


"카츠조 군? 사지(死地)에 몸을 두겠다(身を置く)면서 케이지(慶次) 씨랑 숨바꼭질 하고 있어"


"그런가……"


노부타다는 자신을 도와줄지도 모르는 인물의 무사를 몰래 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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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50 1576년 10월 중순



"이번의 타케다(武田) 침공에 대해서는 주상(上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사정없이 날뛰어도 괜찮지만…… 적당히 해줘?"


"원한을 남길 만한 실수는 하지 않으니까 안심해"


지나치게 불온(不穏)한 말투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노부나가로부터 직접 마음대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점도 있어 묵인하기로 했다.

나가요시(長可)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은 다 전했기에, 다음으로 타카토라(高虎) 쪽을 바라보았다.


"토우도(藤堂) 군은 토우고쿠(東国) 침공이 아니라 서쪽의 방어를 맡기게 되었는데, 뭔가 요청 같은 것 있어?"


"특별히 없습니다. 뭐라 해도 재미있는 '도구'를 맡겨주셔서, 이렇게까지 가슴이 뛰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릅니다"


"아아, '그거' 말이지. 취급이 어려운 게 난점이지만, 잘 쓸 수 있겠어?"


"사전에 이론만큼은 아시미츠(足満) 님에게 좌학(座学)으로 확실히 배웠으니, 쓰는 것만이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만들라고 하시면 또 다르겠습니다만"


"으ー음, 니켈을 처리할 수 있는 로(炉)는 오와리(尾張)에만 있으니까. 게다가 광석 자체가 일본에서는 나지 않으니 수입하고 있는 만큼 비싸게 먹히지……"


"아시미츠 님이 말씀하신 전기를 쓰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토우고쿠 침공이라는 화려한 전과를 올릴 수 있는 기회에 참가하지 못하는데도 타카토라는 낙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이고쿠(西国) 쪽에 배치된다는 것은 손해보는 역할(貧乏くじ)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발명품의 존재가 그를 전공 같은 사소한 일에서 해방시켜버렸다.

이번에 타카토라에게 맡겨진 장비는, 오와리에 남는 시즈코가 있는 곳에도 같은 것이 하나 배치되고, 전선에 나가는 노부타다에게도 하나 배치되게 되어 있다.

가동부는 적지만 부품의 소모율이 높기에, 시즈코의 힘으로도 현재 3대를 가동시키는 것이 고작이라는 게 현 상황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아시미츠가 나왔기에 시즈코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맞다, 아시미츠 아저씨는 조금 별도 행동이 되겠지만, 사도가시마(佐渡島) 정벌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사도(佐渡)라…… 과연, 알겠다"


"궂은 일을 떠넘겨서 미안해요"


사도가시마는 현대의 니이가타(新潟) 현(県) 서부에 위치하는 외딴 섬이다. 일본 유수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금광산의 존재로 유명한데, 역사적 사실에서 금광맥이 발견된 것은 사반세기(四半世紀) 정도 뒤인 1601년의 일이다.

'사도 금산(佐渡金山)'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금광산과 은광산의 총칭으로, 개중에도 아이카와(相川) 금은산(金銀山)의 규모가 커서, 단순히 사도 금산이라고 말한 경우에는 아이카와 금은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도 에도(江戸) 막부의 중요한 재원으로서 중히 여겨져, 최전성기에는 1년에 금을 400kg, 은을 37t이나 생산했다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광산이다.

아이카와 금은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밖에도 츠루코(鶴子) 은산(銀山)이나 니이보(新穂) 은산, 니시미카와(西三川) 사금산(砂金山) 등 유망한 광산이 잠자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가 1589년에 멸망시킬 때까지 혼마 씨(本間氏)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아시미츠는 혼마 씨를 역사에 앞서 멸망시키는 것이 된다.


"시즈코가 신경쓸 필요는 없다. 오다의 패도(覇道)에는 필요하겠지"


참고로 사도가시마에 관해서는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에도 금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때, 당시에도 금이 산출되었던 것은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 표층(表層)에서조차 금을 함유한 광석이 노출되어 있었던 것인데, 문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노부나가는 꽤나 예전에 시즈코로부터 헌상받은 이래로, 전쟁의 전략을 짤 때에 일본지도를 읽고 있었는데, 사도에 다수의 금산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에 대해 시즈코에게 물어서 사도가시마에 거대한 금산이 잠자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즉각 조정에 손을 써서 사도가시마에 관한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카마쿠라(鎌倉) 시대부터 사도가시마를 계속 지배하고 있는 혼마 씨가 순순히 응할 리도 없어서, 노부나가는 다른 유력한 영지로의 전봉(転封, 나라(国)를 바꿔주는 것)도 타진했으나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이 타진이 혼마 씨를 자극했는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오다에 대한 적대를 결의한 낌새조차 있었다.

이 아시미츠의 임무에 대해서는 노부나가로부터 직접 명령이 내려왔는데, 노부나가로부터의 서신에는 표면적인 임무로서 혼마 씨와의 교섭에 아시미츠를 발탁한다고 되어 있었다.

묘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 시즈코는, 그곳에 모략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챈대로, 아시미츠는 처음부터 교섭 따윈 할 생각이 없었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 좋은 조건으로의 제안을 걷어찬 시점에서 혼마 씨는 멸망시켜야 할 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나다(真田) 씨는 타케타 침공에 참가합니다. 그게 끝나면 호죠(北条) 쪽으로 가 주세요. 사이조(才蔵) 씨는 처음부터 호죠로 부탁해요. 아, 사나다 씨는 타케타 영토에서 소문을 흘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면 어떠한 소문을 흘릴까요?"


"카이(甲斐)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현지 가격의 3배로 사겠다는 내용을 비밀리에 퍼뜨려 주세요"


"과연. 타케타가 눈치챘을 때는 반수 가까운 물자가 유출되었다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군요? 다급하게 물자를 사모으려 해도 영지 내에는 물건이 없고, 되사들이려 해도 3배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타케다는 설상가상(じり貧)이군요"


"머리가 밝은 상인이라면 대세(潮目)를 느끼고 상품을 판 후에는 그 길로 타케타 영토에서 도망치겠지. 품 속이 두둑해진 상인에게서 사재(私財)를 뜯어낼 수도 없고, 외부로부터 사들이려면 싯가의 3배 이상의 가격이 붙는건가. 시즈코는 여전히 지독한 방법을 생각하는구만"


"무기를 맞부딪히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야.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데"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는 반론했다. 그녀는 목숨이 아까워서 전쟁터에 서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시즈코의 전쟁터에서의 가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누군가로 대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득히 미래를 바라보고 국가 건설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유능한 관리(能吏)로서의 시즈코는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전쟁터에는 주위에서 절대로 내보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시즈코는 직접 전투 이외의 지원 전반에 주력하게 되었다. 무구(武具)의 제조, 정비는 물론이고 식량이나 연료, 의류에 의료품, 나아가서는 병사들의 정기검진이나 카운셀링에 의한 멘탈 케어 등도 포함할 정도다.

또, 상업 및 유통의 총 책임자(総元締め)적인 입장을 살려, 다양한 방면으로부터 항상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 시즈코의 커넥션은 조정(朝廷)을 시작으로, 칸사이(関西) 일원(一円)의 상업권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유력한 무장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도 시즈코에게 큰 빚이 있기에, 다양한 파벌의 무가 사회에도 상당한 융통력을 가진다.

게다가 수하에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지휘하는 간자(間者) 조직이 있기에, 개인 레벨의 소문에 이르기까지 망라되는 전국시대 최고의 정보통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생각한 건데, 내가 전혀 전쟁터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적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용상인인 '타나카미야(田上屋)'가 여기저기서 시즛치의 위업을 선전해대고 있으니 사망설은 흐르지 않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으스스하겠지. 착실하게 시즛치의 영향력이 자신의 발 밑까지 뻗어오고 있는데 동향은 파악할 수 없으니까 말야"


사망설이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사이조가 눈썹을 찌푸렸다. 케이지(慶次)의 말은 영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다 가문 안에 있다면 시즈코의 존재와 정보는 들어오지만, 한 번 외부로 나가게 되면 새어나오는 정보가 격감한다.

그러면서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칭송받았던 타케다를 쓰러뜨린 공로자이자, 오다의 융성을 떠받치는 원동력이 된 심복(懐刀), 장사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면 싫어도 시즈코의 이름은 귀에 들어온다.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에 대해 공세에 나서는 것은 언젠가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그 때가 되어도 시즈코의 동향만큼은 파악할 수 없다.

실제로 전쟁의 기운을 느끼고 있을 타케다나 호죠의 수뇌진은 초조해서 견딜 수 없으리라.


"으ー음. 내 노출에 관해서는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으려나요. 뭐, 그건 금후의 과제겠네요"


금후에도 때를 보아 작전회의를 열고 세부적인 조정을 할 필요가 있지만, 중요(喫緊)한 화제는 바닥났다. 평소라면 그 자리에서 해산을 선언하지만, 시즈코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곳곳에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돈을 썼으면 하는데, 누구 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시즈코가 질문을 던진 순간, 아시미츠와 사이조 이외의 전원이 손을 들었다.



시즈코에게 모여드는 돈은 방대하다. 이미 경제규모로 사카이(堺)를 능가하는 기세였기에, 부의 편중(偏在)이 현저해져 있었다.

노부나가가 전략적으로 돈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다 쓰지 못하거나, 또는 현금이 아니기에 쓰기 어려운 돈이 쌓여버린다.

국가 사업인 아이치(愛知) 용수(用水) 관련의 대규모 토목공사 때 발행한 채권의 변제에 쓴다는 방법도 있지만,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는 매년 일정 액수를 적립하여 정기적으로 갚는 쪽이 경제효과도 높다.

노부나가로부터는 시즈코가 이거다 하고 생각하는 일에 적당히 출자하라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지시가 내려와 있지만, 그렇게 그때그때 딱 좋은 투자처 같은 게 발견될 리도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와중에도, 오다 영토 내에서 유통되는 화폐 이외에 유입되고 있는 외화(外貨)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되어 버렸다.

이것에 관해서는 적절한 장소에서 소비하지 않으면 타국의 경제에서 화폐 부족이 일어나, 화폐의 희소성이 높아짐에 따라 물가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외화의 존재를 시즈코도 사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놓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다 가문 영향력 아래 있는 상업권에서는 오다 가문이 관리하는 통화(通貨)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다 영토 내에서는 외화가 과다해져, 환전상의 수중에서 쌓여가고 있던 외화는 오다 영토 내에서는 사용이 불편하지만, 모아두면 점차 가치가 올라가기에 사장(死蔵)된다. 이리하여 문제가 표면화되었을 때는 오다 가문의 영향 아래에 있는 쿄(京)에서조차 디플레이션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즉 시즈코는 어떻게든 쌓이고 쌓인 외화를 사들여서 외부로 다시 환류(還流)하는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가능한 한 조속히 대처해야 하여, 이제 낭비 운운을 신경쓸 수 있는 시기를 지나 버렸다.


"나는 돈의 낭비를 싫어해서 모으게 되기 일쑤이지만, 당신들은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요?"


그녀 자신이 말했듯 시즈코가 돈을 쓰는 경우, 쓴 이상으로 뭔가의 리턴을 예측한 소비를 하기 떄문에, 이 문제의 해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당초 시즈코가 투자하려고 했던 것은 토지개발에 항만사업, 대외무역의 확충 등이었기에, 노부나가로부터 제동이 걸려 버렸다.

노부나가로서는 시즈코가 자신의 신변에 돈을 써서, 그 지위에 걸맞는 저택이나 보석 장식품에 의복 등을 갖출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즈코에게서 노부나가에게 도착한 것은 신규 사업에 대한 기획서였다. 어떤 계획도 중장기적으로 수입이 기대되는 잘 짜인 것이었다.

그런 만큼 노부나가는 엄청나게 뒤통수를 맞은 허탈감을 느끼고, 결국 그는 시즈코 자신에게 돈을 쓰게 하는 것을 포기하고, 부하들에게 쓰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맡겨줘! 돈을 벌어오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쓰는 것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가슴을 펴고 나가요시가 흰소리를 했다.


"퇴짜맞은 것 이외에도 문화 진흥에 돈을 써 봤지만, 그것도 그냥 그랬던 것 같아"


"어, 칼을 모으거나, 낡은 절을 수선하거나, 비장의 뭐시긴가를 보며 돌아다니기만 한 거잖아? 하세가와(長谷川)인가 하는 얌생이를 데리고 갔던가?"


"하세가와 씨는 즐거워 했지만 말야"


시즈코는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이며, 조정으로부터 예사(芸事) 보호의 수호자로 임명되어 실제로 다양한 자료를 편찬하고 발표한다는 실적을 남기고 있다.

이 때문에, 본래는 문외불출(門外不出)의 것이나 비밀리에 감춰져 있는 보물조차도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세가와로서는 리큐(利休)의 연줄을 통해서도 열람이 불가능했던 비보(秘宝)를 볼 수 있게 되어, 그것들에 자극을 받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에 사용된 기술을 흡수해 나갔다.


"그 하세가와인가 하는 녀석은 결국 직속으로 삼을 거야?"


"과제를 내는 게 아니라, 평시에 그가 만들고 있는 작품을 슬쩍 봤는데, 그게 결정타였어. 그는 기합을 넣기보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있는 쪽이 실력을 발휘하기 쉬운지도 모르겠어"


하세가와는 예전에 시즈코가 낸 시험에 실패했다. 그렇기에 시즈코는 시험으로서 통지하지 않고, 그가 평소에 만들고 있는 것을 정기적으로 회수하여 그때그때 확인하기로 해 보았다.

시즈코는 회화(絵画)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을 받을 때마다 장족의 성장을 보이는 하세가와의 재능에는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이 있었다.


"그 자신이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도 영향을 받아서 재능의 편린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부자가 모두 장래가 기대되네"


"그것만을 위해서 집까지 준비해주는 두터운 대우가 내겐 이해되지 않아"


"미술의 세계는 감성에 의한 부분이 크거든. 입에 풀칠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작품 제작에 할애해 줬으면 하는거야"


시즈코가 하고 있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패트런(patron)과 닮았다. 그에 의해 하세가와 일가의 생활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의식주에 불안이 없는 상태에서 많은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환경 속에서, 하세가와는 지금 그야말로 재능을 개화시키는 중이었다.


"아까운 기색도 없이 쓰게 하고 있는 그림도구(画材)도 제법 가격이 나가잖아?"


"필요경비야. 카츠조(勝蔵) 군도 연습도 없이 내일부터 단궁(短弓)을 마상에서 쏠 수 있게 되라고 하면 곤란하잖아?"


"뭐, 그건 무리겠네"


"그는 지금, 번데기를 벗어나서 우화(羽化)하고 있는 나비야. 크게 날개를 펼쳐서 세계로 날아가고 싶으면 한동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걸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 아니겠어?"


"내겐 이해되지 않는 세계야"


눈썹을 좁히고 입을 삐죽거리는 나가요시의 모습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야기가 크게 벗어나버린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여 노선의 수정을 꾀했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그럼 목적의 도시에 도착하면 이 수표(手形)를 가까운 타나카미야에서 현금화해. 전액 다 써도 상관없으니까"


"오, 이야기는 끝났나. 뭐, 카츠조는 아니지만, 나도 돈을 쓰는 것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말야. 안심하고 맡겨줘"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생각했다. 가능한 한 빨리 출발하고 싶지만, 노부나가에게 아즈치(安土)를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주상께 오와리로 돌아갈 뜻을 전하고 올테니, 각자 출발 준비 만큼은 해둬요"


시즈코가 청가(暇乞い)를 냈을 때, 노부나가는 즉시 그것을 허락했다. 오다 가문의 세력 밖에서 돈을 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전쟁을 앞둔 지금 시기에 주요 수하 무장이 멀리 나가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우선은 아즈치를 나서서 쿄로 가, 며칠 체재한 후 사카모토(坂本)로 향하고, 이마하마(今浜)에 들렀다가 미노(美濃) 경유로 오와리로 돌아가는 순서를 취한다.

이 경로의 각지에서 돈을 쓰며 돌아다닐 필요가 있는데, 시즈코는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여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 벌써 다 썼어?"


쿄에 도착한 이후,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와 상의를 하거나, 사키히사가 주최하는 가회(歌会)에 얼굴을 내밀거나 하며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돈을 다 쓴 것에 놀랐다.


"흐흥. 이것만큼은 시즈코보다도 내 쪽이 잘 맞지. 돈은 혼자서 쓰기보다, 여럿이 쓰면 단번에 없어진다고"


나가요시가 돈을 쓴 방법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 중 유망한 사람들을 골라 밥이나 술을 사주고, 각자에게 어느 정도 뭉텅이 액수의 돈을 건네고 마음대로 쓰라고 했을 뿐이다.

나가요시의 부하는, 다시 자신의 부하들에 대해 나가요시가 했던 것처럼 뿌렸다. 이에 의해 수직형(垂直型)의 돈의 흐름이 생겨났다.

각자가 제각기 원하는 장소에서 돈을 쓰기 떄문에, 고급점(高級店)에서 대중점(大衆店)까지 다양한 장소에 돈이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수평적으로도 돈이 퍼져나가, 폭넓게 돈이 흘러갔다.


"과연. 나는 자신이 집약해서 큰 돈을 쓰는 쪽이 효과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소액씩 분산해서 소비로 돌리는 쪽이 빠르게 쓴다는 면에서는 이치에 맞네. 그런데, 예산 이상으로 돈을 쓰라고 말한 기억은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나가요시에게 청구서 다발을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나가요시의 이름으로 외상 처리된 방대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물론, 전액 시즈코가 대납했다.

돈이 부족해져서 외상으로 한 거겠지만, 자신의 소속을 이야기했으니 청구서가 시즈코에게 오는 것은 명백하리라.


"아니, 이건 내가 낼 생각이었어"


"상관없어. 네 이후의 급료에서 일정 금액을 계속 공제할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사카모토에서는 삼가주겠어? 쿄에서는 고노에 가문의 이름으로 신용이 있으니까 외상이 먹히지만, 사카모토에서 했다간 영업방해로 보일거거든?"


"아, 알았어"


몇 가지 가벼운 트러블이 발생하긴 했으나, 시즈코는 들르는 곳곳에서 나름의 자금을 뿌리는 데 성공했다. 금후에는 돈을 쓰는 사람의 폭(間口)을 넓히는 정책도 경우에 따라서는 유용하다는 것을 시즈코는 배웠다.



시즈코가 오와리로 돌아간 다다음날, 그녀는 케이지를 데리고 카게카츠가 있는 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의 거처(住居)로 초대받아 들어가자, 에치고(越後)에서 인질로 왔던 사람들 모두가 모여 있는 것을 눈치챘다.

이 상황을 얼핏 본 케이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헤아렸으나, 시즈코가 입에 올린 말은 그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어렴풋이 헤아리고 계신 듯 하니 확실하게 말하겠어요. 내년에 에치고에 큰 전기(転機)가 찾아오겠지요. 그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인하겠습니다"


케이지의 예상으로는 에치고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전달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즈코는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자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물은 것이다.

그들은 에치고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서 바쳐진 인질이다. 어떻게 하고 싶고 뭐고 그들에게 선택지 같은 건 없다. 본국이 배신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오와리에 체재할 뿐이다.


"인질로서의 입장은 일단 제쳐두세요. 당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오와리를 탈출하여 친(親) 호죠 파에 합류하는 길. 하나는 우에스기 가문으로 돌아가 가문을 위해 친 호죠 파를 토벌하는 길. 마지막 하나는 일이 끝날 때까지 이곳 오와리에 뿌리를 내리는 길. 지금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것도 제가 허용하겠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어째서, 우리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겁니까? 당신의 입장이라면, 우리들은 인질로서 오와리에 계속 있는 쪽이 유리한 게 아닙니까?"


카게카츠의 의문에 대해 시즈코는 생긋 미소를 떠올렸다.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카게카츠들의 관리가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인질이 멋대로 없어지면 그 책임을 추궁당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카게카츠는 물은 것이다.


"주상께서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셨고, 지금이니까 말하는 겁니다만 애초에 인질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시즈코와 노부나가가 내놓은 답은 달랐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인질을 쓸데없이 썩히는 것보다, 고향 이외의 세계와 새로운 가치관을 알게 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고 싶었다.

끝없이 넓은 세계의 일단(一端)을, 오와리라는 창을 통해 살짝 엿보고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가치관에 계속 속박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성질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들이 된다.

외부로 나가 넓은 세계를 보고도 여전히 자신의 가문 존속에만 급급하는 인질이라면 아예 본가와 함께 통째로 멸망시켜버리자는 것이 노부나가의 의향이기도 하다.


"하하하. 과연, 이건 우리들에게 주어진 졸업시험이라는 것이군요? 당신께서 뿌리신 씨앗이 어떠한 열매를 맺는지, 똑똑히 보여드리지요!"


시즈코의 말에 대해 카게카츠는 쾌활하게 웃어보였다. 카게카츠가 떠올린 미소와, 그에 이은 가신들의 열의에 찬 눈을 보니, 새삼 대답을 들을 것도 없었다.

아까까지의 어딘가 흐릿한 눈이 아니라, 미래를 쟁취하려는 무사(いくさ人)의 표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군요. 충분히 즐겨 두세요. 이 땅에서 배운 것은 어딘가 도움이 되겠지요"


"어차피 우리들은 없는 사람 취급받고 있는 인질이니, 전쟁터에서 산화했다고 해도 대세에 영향은 없습니다. 하지만, 숙원(本懐)을 이루게 되면 대성공(大金星)이 되겠지요. 이제와서 호죠를 편드는 세상물정 모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요"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서로 살아 있다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무용담을 들려 주세요. 저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상대해 드리는 것은 케이지 씨겠지만요"


금주령(禁酒令) 이야기로 시즈코가 농을 섞어 대답하자, 다들 왁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금생(今生)의 이별이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다들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세요"


그 말을 하고 시즈코와 케이지는 카게카츠의 거처를 떠났다. 두 사람의 모습을 전송하는 에치고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자, 그들의 인솔은 케이지 씨에게 맡길게요. 마침 가는 곳은 똑같으니, '여행은 길동무, 세상은 인정(旅は道連れ、世は情け)'이라고 하잖아요?"


그들의 깨끗한(潔い) 태도(生き様)를 보았기 때문인지 들뜬 걸음걸이로 복도를 걸으면서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말했다. 시즈코는 에치고에서 케이지들이 어떤 싸움을 할 지 기대되어 견딜 수 없었다.


"으ー음, 못 들어본 표현(言い回し)이지만 마음에 들었어. 실컷 휘저어놓을테니 보고를 즐겁게 기다려줘"


케이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즐거운 듯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비장의 장난(悪戯)을 떠올린 악동 그 자체였다.

여담이지만 케이지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대사는 에도 시대에 등장한 '에도 이로하카루타(いろはかるた)' 중 하나이기에, 지금의 케이지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카부키모노(傾奇者)의 면목약여(面目躍如)네요. 주 전장이 적지이고, 게다가 과병(寡兵, 전력이 적다는 뜻)이잖아요?"


에치고에 있는 친 호죠 파의 움직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보통제가 시작되었는지, 에치고의 정보는 오와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친 호죠 파가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은 틀림없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궁지에 몰린 자는 생각지 못한 반격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지형적인 이점은 상대측에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싸움을 강요받게 되리라.

게다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과 연대하는 것도 어렵다. 카게카츠들이 가는 것이 만에 하나라도 적에게 알려지면, 숫자에서 밀리는 그들은 포위섬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지들은 켄신으로부터 적이라고 의심받지 않게 하면서, 친 호죠 파와 싸워서 아군임을(身の証)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안요소가 산더미처럼 쌓인 외줄타기같은 싸움이 되겠지만, 바로 그렇기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케이지라는 남자였다.


"물론, 재미잇지. 요즘 세상에 이만한 싸움터를 준비해준다는 건, 무인으로서 과분할 정도로 고마운 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아, 일단 이걸 건네둘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품에서 종이다발을 꺼냈다. 표지에 아무 것도 쓰여져있지 않은 일본식으로 제본(和綴じ)된 책자를 손에 든 케이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나 나름대로 지금부터 일어날 법한 상황을 상정해서 세운 작전이에요. 정말 곤란할 때 생각나면 읽어봐요. 필요없다면 불쏘시개로라도 쓸 수 있으니 방해되진 않을 거에요"


시즈코로서는 케이지가 원하는 대로 실컷 싸워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반면,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가 생존을 바란다면 가능한 한 생환할 수 있는 구석을 남길 수 있도록 지혜를 쥐어짠 것이다.

케이지는 시즈코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책자를 품 속에 넣고는 한 마디 했다.


"고맙게 받아둘게. 갑주 밑에 넣어놓으면 총알막이는 되어 주겠지"


케이지는 그렇게 말하고 책자를 집어넣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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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9 1576년 10월 중순



시즈코는 자리한 면면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짐짓 목소리의 강약을 의식하며 말했다.


"토우고쿠(東国) 정벌 총대장, 오다 칸쿠로(織田勘九郎) 님"


"음!"


이름을 불린 노부타다(信忠)가 일어서서, 의연한 발걸음으로 대장 자리로 향했다. 그 태도에서는 한 번 패배를 겪은 것에 의해 기가 죽은 구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는 패기가 충만하여, 자신의 승리를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허세 같은 것이 아니라, 실력에 뒷받침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에야말로 꾸미는 것 없이 그 이름을 부르도록 해 보이겠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즈코의 곁을 지날 떄, 노부타다는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기대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시즈코가 공식적인 자리 이외에서 노부타다를 '키묘(奇妙)'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것은 시즈코가 노부타다를 깔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노부타다 자신의 희망에 의한 것이었다.

당초에는 노부타다의 성인식(元服)을 계기로, 시즈코도 호칭을 '칸쿠로 님'이나 '도련님(若様)'으로 바꾸었다.

이에 대해 노부타다는 참괴(慙愧)하여 견딜 수 없다(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한다는 등의 의미)라는 표정을 떠올리며 시즈코에게 부탁했다.


"오다 가문의 차기 당주를 이을 만한 무공을 세우지 못한 내가, 오다 가문 융성(隆盛)의 공로자인 시즈코에게 그 이름으로 불릴 자격은 없다. 내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무공을 세울 때까지 지금처럼 키묘라고 불러다오"


"성인식을 마친 당신을 아명(幼名)으로 부르는 것은 예에 어긋납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당신께서 얕보이시게 됩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외에서는 내가 아직 제 몫을 하지 못한다(半人前)는 교훈으로 삼고 싶다. 내가 생각해도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다고는 생각하지만, 이걸 타협해버리면 나는 평생 시즈코와 대등해질 수 없다"


"도저히 물러설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렇다면 주상(上様)을 설득해 주세요. 주상께서 허락하신다면 따르지요"


"좋아, 언질(言質)을 받은 거다? 이것에 대해서는 시즈코보다도 아버지를 설득하는 편이 쉽지!"


이런 응수 끝에, 노부타다는 노부나가에게 전술한 내용에 관한 허가를 요청했다.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올곧음과 융통성 없는 점에 자신이 젊었던 때를 떠올리며 낯간지러워지기도 했으나, 같은 남자로서 노부타다의 심정을 헤아리고 허가했다.

일부러 노부타다의 하자(瑕疵, 상처, 결점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으로 면종복배(面従腹背)하는 신하를 추려낼 수 있다는 속셈도 있었다.


"타키카와(滝川) 히코에몬(彦右衛門) 님. 계속하여 칸쿠로 님 휘하에서 토우고쿠 정벌 보좌를 맡깁니다"


"알겠습니다(承知)!"


"하시바(羽柴) 님. 계속하여 사이고쿠(西国) 하리마(播磨) 정벌의 총대장에 임명합니다"


"삼가 받들겠습니다!"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는 계속하여 노부타다의 휘하에 편입되어 토우고쿠 정벌의 핵심을 담당하게 된다.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총대장의 포진이 종래의 것과 동떨어진 배치가 되기 때문에, 타키카와가 맡는 역할은 크다.

또, 히데요시(秀吉)에 관해서는 하리마 정벌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으나, 계속하라는 명령을 들은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들떠 있을 수는 없었고, 여기서의 활약에 따라 진퇴가 좌우될 것을 이해하고 순순히 대답하게 되었다.


"아케치(明智) 코레토(惟任) 휴우가노카미(日向守) 님. 마찬가지로 사이고쿠의 견제로서 탄바(丹波) 정벌의 총대장에 임명합니다"


"명을 받듭니다"


히데요시에 이어 미츠히데(光秀)도 사이고쿠의 견제로서의 임무를 계속하게 되었다. 다만 미츠히데의 경우, 이미 탄바를 수중에 넣어가고 있었기에 불안은 없어서, 여기서 지휘자를 바꾸거나 하면 현장에 혼란이 발생하기에 중임(続投)된 것이었다.

히데요시와 마찬가지로 미츠히데도 하타노 씨(波多野氏)나 아카이 씨(赤井氏)에 의한 격렬한 저항을 받았으나, 미츠히데는 이것을 '받아넘기고' 뼈아픈 일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미츠히데와 히데요시의 대응에서 명암을 가른 원인은, 각자의 부대 운용에 있었다.

히데요시가 시즈코 군에서 파견된 신식총(新式銃) 부대나 저격부대(狙撃部隊)를 유격적으로 사용한 데 대해, 미츠히데는 정규군으로서 재편성했던 것이다.

이에 의해 미츠히데 군은 신식총의 긴 사정거리를 살려, 마주친 적군의 기세를 꺾거나, 열세의 군에 대해 원호사격을 하게 하는 등 효과적으로 운용해 보였다.

물론 신식총 부대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는 반면, 미츠히데 군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보병부대는 활약의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미츠히데는 이것을 논공행상의 기준을 바꾸는 것으로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직접 적의 수급(首級)을 취하는 것을 공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미츠히데의 지시를 지체없이 수행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평가가 바뀌는 것이다.

즉, 신식총 부대의 약점인 방어력을 보충하기 위해, 적의 횡격(横撃)을 막는 시간을 벌기만 해도 성과라고 인정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에게 공이란 보수의 액수를 좌우하기 때문에 필사적이 되는 것이라, 안전하게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목숨을 걸고 칼싸움을 벌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어디까지나 종래의 평가기준을 고집한 히데요시와, 새로운 병기의 등장에 유연하게 대응한 평가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던 미츠히데의 적응력 차이가 표면화(顕在化)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엄숙하게 포진의 전달이 계속되었다.


"칸베 산시치로(神戸三七郎) 님. 사이카슈(雑賀衆)의 잔당 추격 및,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에서 퇴거하는 사람들을 사이카노쇼(雑賀荘) 또는 짓카고우(十ヶ郷)까지 호송하는 역할을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헌데, 상담역(相談役)께 약간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호명된 노부타카(信孝)는 수락한 후에 시즈코에게 질문의 허가를 요청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힐끔 보았으나,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시즈코에게 대답하도록 했다.


"상관없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네. 맡겨진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사이카슈의 잔당을 추격하는 의도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무장세력으로서의 사이카슈는 죽은 상태입니다. 일부러 추격같은 걸 하지 않더라도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 자기 편에게 사냥당하겠지요. 그럼에도 굳이 토벌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현명하신 헤아림대로 사이카의 잔당 사냥은 표면적인 이유(建前)에 불과합니다. 진짜 노림수는 주상께 반기를 들려고 하는 패거리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에 있습니다"


"……과연. 잘 알겠습니다"


잠시 눈을 껌뻑거리던 노부타카였으나, 명언(明言)을 회피하는 시즈코의 말과 오다 가문을 둘러싼 정세로부터 노부나가의 노림수를 깨달았다.

사이카의 잔당 사냥은 병력을 보낼 구실에 불과하고, 본심은 키슈(紀州) 평정에 있다는 것을 헤아린 것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일부러 명언을 회피하는 이상 감춰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침묵하는 쪽을 선택했다.


역사적 사실에서의 키슈 정벌이란, 텐쇼(天正) 5년(1577년)에 노부나가가 벌인 사이카 침공과, 텐쇼 13년의 히데요시에 의한 키이(紀伊) 침공을 가리킨다.

어째서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명실공히 천하인(天下人)이 된 히데요시까지 키이를 공격했냐 하면, 키이에 사는 사람들에게 뿌리내린 사상(思想), 신조(信条)가 막부(幕府)에 의한 중앙집권을 노리는 그들의 사상과 정면으로 대립했기 때문이다.

키이에서는 잇키(一揆)나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의한 백성들의 단결에 의해 무가(武家)에 반박(反駁)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 순종하지 않는(服わぬ, 귀순하지 않는) 사상을 방치해두면, 또다시 주변국으로 전파되어 천하를 뒤흔드는 규모의 잇키가 되어 이빨을 드러낸다.

목표로 하는 이상이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물과 기름인 이상, 어느 쪽이 멸망할 때까지 대립이 그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노부타카에게 주어진 사명은, 키이의 백성들에게 "우리들은 너희들의 존재를 묵인할(見逃す) 생각은 없다", "따르지 않겠다면 무력으로 평정하겠다"라는 의미를 전하는 것에 있었다.

이것은 정규군에 의한 패잔병의 소탕이라는 편한 일거리가 아니다. 어떤 국면에서도 일체의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임무인 것이다.


"니와(丹羽) 님. 칸베 님 휘하에서 사이카슈 토벌의 보좌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호명되지 않았던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은 안색이 새파래져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방면군(方面軍)으로서 지방 안정(安堵)의 임무를 맡고 있는 몇 명을 제외하면, 무가가 마지막으로 활약할 장소(見せ場)에 달 자격이 없다고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호죠(北条) 정벌의 총대장, 시바타(柴田) 님"


"음!"


깨진 종 같은 거친 목소리로 대답하며 시바타가 일어섰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다들 그 큰 목소리에 눈썹을 찌푸렸으나, 불평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야생의 맹수가 이럴까 싶은 기염을 토하는 시바타의 기백에 눌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실질적인 토우고쿠의 지배자인 호죠 정벌의 총대장에 시바타가 임명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토우고쿠 정벌이라고 떠들고는 있으나, 타케다(武田)가 예전의 기세를 잃은 이상, 그 최대 목표는 호죠 정벌로 안착된다.

즉, 토우고쿠 정벌 자체를 지휘하는 노부타다를 제외하면, 시바타가 가신들 중에 필두(筆頭)가 된 것을 나타내는 인사였다.

그도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기세가 백배하여 당당한 걸음걸이로 총대장의 자리로 나아갔다.


"삿사(佐々) 님과 마에다(前田)님은 계속하여 시바타 님의 휘하에서 보좌를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한 박자 쉰 후에 시즈코가 말했다.


"토우고쿠 정벌을 확고한 것으로 하기 위해, 사쿠마(佐久間) 님과 하야시(林)님은 토호쿠(東北)의 견제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가 전쟁터에서 활약은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이미 40을 넘긴 노부나가보다도 20세나 더 연상으로, 노년에 이른 그가 전쟁터에 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야시는 정치 활동에서 많은 공적을 남기고 있다. 따라서 토호쿠에 도사리는 야심가들을 제어할 수 있다고 노부나가가 기대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게다가 실제로 싸움(荒事)이 일어났을 때의 보험으로서, 무력을 담당하게 하기 위해 사쿠마를 보좌로 붙인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사쿠마 님은 좌천(左遷) 인사가 되는 걸까?)


본래 맡고 있던 영지인 오사카(大阪)에서 쫓겨나, '미치노쿠(みちのく, ※역주: 陸奥, 리쿠젠(陸前), 리쿠츄(陸中), 무츠(陸奥)의 세 지방((지금의 후쿠시마(福島), 미야기(宮城), 이와테(岩手), 아오모리(青森)의 네 현(縣))), 오우슈(奥州) 또는 대표격으로 무츠로 부르기도 하는 듯)'로 통하는 토호쿠로 보내지는 것이다.

혼간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징벌적인 의미가 담겨 있겠지만, 본인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리라.


(설령 토우고쿠 정벌 동안 훌륭하게 토호쿠를 견제해 냈다고 해도 주어지는 것은 토우고쿠에 인접하는 땅이 되겠지)


오다 가문 내부에서의 역학에 둔감했던 시즈코조차 여기까지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사쿠마는 자신이 처한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사쿠마의 안색은 납빛처럼 허얘져서, 마치 학질(瘧)에 걸린 듯 작게 떨고 있었다.

시즈코로서는 모르는 사이도 아닌 만큼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노부나가가 숙고한 끝에 결정한 것인만큼 뒤집을 수가 없다.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억지를 쓰면서까지 그를 구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주요 진용은 이상과 같습니다. 이 이후에는 각자의 총대장 휘하에 속할 분들을 호명하겠습니다. 또, 종래대로 후방지원 및 병참은 '저희 군'이 담당합니다. 각각의 군세마다 연락 담당자(窓口)를 배치하겠으니,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다 칸쿠로 님의 휘하로서——"


주요 인사의 통보는 끝났으나, 이걸로 모두 끝난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를 대장으로 섬길 지를 전전긍긍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시즈코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적혀 있는 이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무려 일 각(刻, 2시간) 이상에 걸친 작전회의를 마친 시즈코는, 기진맥진하여 아즈치(安土)의 별저(別邸)로 귀가했다.


"피곤해…… 목이 갈라질 것 같아"


이불(掛布団)이 치워진 매립식 코타츠(掘り炬燵)의 상판(天板)에 엎드린 시즈코는, 너무 삶은 떡(餅)이 스르륵 녹는 것처럼 탈진해 있었다.

오와리(尾張)의 본저(本宅)와 달리, 별저에는 온천이 없었기에 목욕하고 싶으면 물을 끓일 필요가 있지만, 귀가 시간이 확실하지 않았기에 미리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시즈코의 귀가를 맞이한 고용인(家人)들이 물을 끓여주고는 있으나, 쓸데없이 큰 별저의 욕탕을 뜨거운 물로 채우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작전회의는 끝났으니까, 주상의 허가를 받고 쿄(京)로 가서, 아버님(義父上)과 혼간지의 처리에 대해 의논. 그게 끝나면 오와리로 돌아갈 수 있지만 사카모토(坂本)와 이마하마(今浜)에 들러야 하는 게 골치아프네"


시즈코 군은 유격대적인 지위인 것과 병참을 담당하기 때문에, 다른 무장들보다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렇기에, 군세를 이끌고 각지로 이동할 때에도 현지의 영주들이 최대한의 편의를 봐 주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이 특권은 뒤가 구린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혜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군대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퍼먹는다.

대인원인 시즈코 군이 이동하면 그에 걸맞는 돈이 영지에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치수(治水)나 도로 정비(道普請) 등의 상담에도 응해준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돈이 필요한 히데요시가 다스리는 이마하마와, 시즈코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는 미츠히데가 다스리는 사카모토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는 것이다.


"으ー음…… 응?"


언제까지나 멍해있을 수는 없다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있을 때, 멀리서 쿵쾅쿵쾅하며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어,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기세좋게 맹장지가 열렸다.


"시즈코! 이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맹장지를 파괴할 듯한 기세로 열어젖인 것은, 시즈코가 예상했던 대로 나가요시(長可)였다.

그는 큰 걸음으로 시즈코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거칠게 흔들었다.


"천하를 좌우하는 중요한 결전(大一番)인데, 우리들은 후방 지원에 전념한다는 건 어떻게 된 거냐고!"


"지지지…… 진정해! 눈이 돌아서 말을 못 하겠어……"


시즈코의 머리가 크게 앞뒤로 덜컥덜컥 호를 그리며 흔들렸기에, 시즈코는 이미 토할 것 같은 느낌을 참는 데 필사적이 되어, 필연적으로 그녀의 말소리는 약해져 나가요시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거 성대하게 토할지도 모르겠네라며 어딘가 남의 일 같이 생각하기 시작한 그 때, 갑작스럽게 시즈코는 격한 왕복운동에서 해방되었다.

그대로 픽 주저앉듯 쓰러지는 시즈코의 몸을 부축해 일으켜주는 사람이 있었다. 시즈코를 부축하고 있는 것과 반대쪽의 손으로 창의 창날 부근을 잡은 채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은 사이조(才蔵)였다.


"이봐! 위험하잖아!"


"문답무용(問答無用)! 시즈코 님께 위해를 가하려 하다니 버르장머리 없는 놈(慮外者) 같으니! 거기서 꼼짝마라, 그 목을 날려주마"


사이조는 깨지는 물건을 다루듯 하며, 아직도 눈이 돌고 있는 시즈코를 자신의 몸으로 막아선 후, 판자 사이를 뚫어버린 창의 밑둥(石突)을 회수하면서 반대쪽의 창끝(穂先)을 나가요시에게 겨누었다.

제아무리 나가요시라도 맨손으로 사이조의 창을 상대할 수 있을 리도 없었기에,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인물인 시즈코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러나, 정작 시즈코는 마룻바닥 아래까지 관통한 큰 구멍을 보며 낙심하여, 새로 지은 별저인데라고 상황에 안 맞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후우…… 덕분에 살았어요 사이조 씨. 나는 괜찮고, 카츠조(勝蔵) 군도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는 나를 봐서 창을 거둬 주겠어요?"


"시즈코 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이의는 없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살기를 뿜으면서 나가요시를 계속 노려보는 사이조에게 시즈코가 그렇게 중재를 하자, 사이조는 순순히 무기를 거두었다.

사이조는 품 속에서 가죽으로 된 창집(穂鞘)을 꺼내 창에 씌우더니 자신의 바로 옆에 기대어 세워놓았다.

눈 앞까지 다가왔던 죽음의 상징에서 해방된 나가요시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자리가 진정된 것을 가늠하여, 뼈가 있는 미소(含み笑い)를 지은 케이지와, 부엌에 나온 불쾌한 벌레를 보는 것 같은 차가운(氷点下) 시선을 던지는 아시미츠(足満),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는 타카토라(高虎), 연극용 가면(能面) 중 코오모테(小面, ※역주: 젊은 여성을 나타내는 가면)처럼 꾸며낸(張り付いた)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실내로 들어왔다.


"이미 도착했었다면 카츠조 군을 말려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금후의 방침을 전달한다고 들어서 말이지. 전원 다 모인 후에 오려고 집합하고 있었는데, 카츠조가 앞서나간 모양이네"


"이봐, 보고 있었다면 말리라고! 나는 하마터면 꼬치가 될 뻔 했어!"


"흥. 케이지가 말리지 않았다면, 사이조가 아니라 내가 그 목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사정을 이야기하는 케이지에게 대든 나가요시였으나, 이것도 배려받은 것이라는 사실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자, 장난(じゃれ合い)은 그만 쳐요. 다들 모였나요? 카츠조 군에 대한 설명도 포함해서, 모두에게는 여러가지 전달할 내용이 있어요"


시즈코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전원에게 말하자, 시즈코의 대각선 뒤쪽에서 좌우에 위치를 잡은 아시미츠와 사이조 이외에는 각자가 적당한 장소에 주저앉았다.

전원이 이야기를 들을 태세가 된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품 속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사전에 설명하지 못해서 카츠조 군이 어설프게 넘겨짚을 것 같다고 생각은 했는데, 직접 나한테 담판하러 올 줄은 몰랐어. 카츠조 군, 화내지 않을테니 솔직히 말해줄래? 이번의 후방지원에 대해 놀린 사람하고 싸운 거야?"


"윽…… 어. 두 번 다시 없을 중요한 결전에서 집을 지키는 데 만족하다니 한심하구나(不甲斐ない)라는 소릴 들었다고! 걸려온 싸움은 받을 수 밖에 없잖아!"


"으ー음, 역시 말이 부족했던 모양이네. 후방지원을 우리 군이 맡는다고는 했지만, '전군'으로 한다고는 안 했거든"


"어? 아! 그런 건가!"


시즈코의 말에 얼빠진 목소리를 낸 나가요시였으나, 즉시 이해가 갔는지 자신의 무릎을 쳤다.

처음부터 시즈코는 전군을 후방지원으로 돌린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자군을 몇 개로 나누어서 오다 가문 내의 각 군에 파견하거나, 병참을 유지하기 위한 별동대로 삼거나 하며 유기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즉, 시즈코가 직접 지휘하는 부대가 후방지원을 맡는다고 말했을 뿐, 나가요시처럼 전투에야말로 적성을 발휘하는 인재를 썩혀둘 필요는 없다.


"직정적(直情的)인 카츠조 군 같은 경우에는 어설프게 넘겨짚을거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작전회의 준비에 너무 바빠서 뒤로 미뤄버렸어"


"야!"


"지난 일은 그렇다치고, 카츠조 군도 눈치챈 것처럼 내가 지휘하는 본대는 후방지원에 전념합니다. 다만, 개인의 무용을 드러낼 수 있는 큰 전쟁은 이후 적어지겠죠. 그래서 모두를 말려들게 할 생각은 없어요"


작전회의 자리에서 처음에 노부나가가 말했듯, 오다 가문은 이로서 일본 전토의 적대 세력에 대해 전쟁을 시작한다.

시작으로 동쪽의 타케다와 호죠, 서쪽으로는 키이 세력과 모우리(毛利)와 충돌하는 양면작전(二正面作戦)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가요시같은 용맹한 무장을 놀려둘 여유는 없어진다.

그리고 서전(緒戦)을 제압해버리면, 동서의 거대 세력들을 병탄한 오다 가문에 대해 정면에서 대들 수 있는 세력은 바다 건너 큐슈(九州) 세력 정도만 남는다.

전화(戦火)가 거기까지 미칠 무렵에는, 개인의 무용이 전쟁의 향방을 좌우하는 전투는 자취를 감추고, 통제된 집단에 의한 숫자의 폭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시즈코는, 자신의 생애를 무(武)에 바친 무사(武士)들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실컷 숙원을 이루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가능한 한 모두의 희망에 맞출 생각이에요"


"그러네, 나는 재미있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싶어"


가장 먼저 케이지가 말했다. 실로 케이지답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승패가 쉬이 보이지 않는 재미있을 만한 전쟁터라면 어디든 좋은 것이다.

전쟁터에 서는 이상, 승패는 병가지상사이다. 지면 자신의 목숨을 잃지만,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우에스기(上杉) 가문으로의 원군이라는 형태로 집안 소동을 진정해 주겠어요? 이건 적지에서 상대의 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인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외부에서의 간섭이 있다면 우에스기 가문이라고 해도 만에 하나의 사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거 아주 좋군. 집안 소동에 외부인이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니 성가셔하기도 하겠지.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어!"


"뭐, 에치고(越後)에 가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긴 하지만요"


"조건?"


"그것에 대해선 오와리에 돌아가서 이야기할게요. 아무리 케이지 씨라도 상상할 수 없는 유쾌한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드물게 도발적인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히죽 웃음을 떠올렸다. 다음으로 시즈코는 나가요시에게 시선을 향했다.


"카츠조 군은 어쩌고 싶어?"


"나는 타케다야! 저번의 설욕을 해야 해. 이번에야말로 타케다를 날려버려주겠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주상께서도 '타케다를 철저히 쳐부숴라'고 하셨으니, 돌파력에 정평이 있는 네가 적임이려나?"


시즈코가 노부나가에서 맡은 임무는 후방지원이지만, 그 이외에도 몇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그 중 하나가 타케다에 대한 섬멸전(殲滅戦)이다.

쇠락했다고는 하나 타케다는 여전히 일본의 무력을 상징하고 있다. 즉, 타케다가 존재하고 있는 한, 그 무명(武名) 아래 모여드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서, 언제까지고 오다 가문이 무사들의 두령을 자처할 수 없다.

바로 그렇기에 타케다의 무력을 정면에서 깨부술 필요가 있었다. 의문을 남길 여지가 없는, 압도적인 승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철저하게 하는 것이라면 나쁜 의미에서 눈에 띄는 나가요시는 적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나가요시 군이 활약한다면, '무적의 타케다 군'이라는 환상을 꺠부수는 것도 가능하리라.

다만,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슨 불안이 있다는 거야! 틀어박혀 있는 타케다 따위, 내가 잡아 끌어내서 끝장내주겠어"


"너랑 네가 지휘하는 군은 군법(軍規) 위반이 많다는 불만이 나한테 들어와 있다고. 주상께서 직접 처벌하지 않으시겠다고 하고 계시니 다들 말이 없는 거지만, 좋게 생각되고 있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눈 앞에 승기(勝機)가 굴러다니고 있는데 다른 녀석들과 보조(足並み)가 맞춰지길 기다리다간 늦어버려!"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야"


시즈코도 승리를 눈 앞에 두고, 한식구끼리 공을 다투어서 기회를 놓쳐버리는 건 바보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무사라는 인종이 무(武)를 상품으로 팔고 있는 이상, 누가 공을 세우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단은 승리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으니, 나가요시가 앞뒤 안 가리고 승리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군법 위반을 범하면서도 계속 결과를 내고 있는 나가요시를 노부나가가 인정하고 있었다. 군법 위반을 저지른 만큼 공이 상쇄되고 있기에 제장(諸将)들도 그 이상 강하게는 말하지 못한다.


"나와 함께 행동하고 있을 때에는, 문제가 될 정도의 군법위반은 저지르지 말아줘?"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군법위반을 저지르는 현장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보고라는 형태로 불평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사실 확인을 하고 있으니 많든 적든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모든 불평이 진실이라는 것도 아니었다.

명령 전달의 서어(齟齬, 어긋남)에 의한 오해나, 나가요시를 모함하려는 허위 보고도 있었다.


"그야…… 뭐"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라고 나가요시는 마음 속에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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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8 1576년 10월 상순



가을이 깊어지며 겨울의 도래를 느끼게 할 무렵, 각지에서 수확된 쌀이 세금으로서 모여들고 있었다.

오와리(尾張)는 말할 것도 없고, 미노(美濃)나 오우미(近江) 등도 모두 풍작(豊作)이 되었기에 오곡풍양(五穀豊穣)을 축하하는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었다.

오와리의 평야 지대에서는 수요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오와리 쌀(尾張米)의 작부(作付け)를 늘렸기 때문인지, 전년의 배는 될 정도의 수량이 기록되게 되었다.

특히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치타 반도(知多半島)의 주민들이었다.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는 모내기(田植え) 시기에는 용수로가 개통되지 않았었기에 수확량 자체는 예년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작이었던 다른 지역보다도 주민들은 활기에 넘쳐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날씨에 맡긴 빗물에 의존했던 생활이 일변한 것이다. 강수량이 적은 해에는 물을 둘러싸고 피가 흐르는 일조차 있었는데, 맑은 물이 콸콸 끊임없이 흐르는 용수로 덕분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걱정하는 나날들은 과거가 되었다.

내년에야말로 풍작으로 넘치는 곡창지대와 마찬가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그들을 쾌활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밝은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시즈코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원인은 지난 달에 있었던 노부나가와의 다실에서의 회담이었다.


"으ー음. 저번에 주상(上様)께서 하신 말씀은, 슬슬 큰 전쟁을 시작할 테니 준비하라는 의미겠지"


명확하게 말로 들은 것은 아니지만, 말의 이곳저곳에서 노부나가가 자복(雌伏)의 시간을 끝내고 웅비(雄飛)의 때를 맞이하려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시즈코는 가까운 시기에 노부나가가 주요 가신들을 모아 개전(開戦)을 선언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예측대로 그녀에게 소집영장이 도착한 것은 며칠 후의 일이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있던 시즈코는 자신이 떠안고 있던 업무를 아야(彩)에게 인계하고, 이튿날에는 부하들을 이끌고 아즈치(安土)로 향했다.

가는 길은 순조로웠으며, 도중에 들린 미노에서 노부타다(信忠)가 합류했기에 대인원이 된 것 이외에는 문제없이 아즈치에 도착했다.

아즈치 성시(城下)에 있는 별저(別邸)에 들어간 시즈코는 도착을 노부나가에게 알리는 사자를 보낸 후, 할 일이 없어졌기에 남는 시간을 유효하게 활용하려고 움직였다.


"나 이외의 가신들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그 동안 알코올 스토브와 반합(飯盒)의 실전 시험(実地試験)을 하죠!"


시즈코는 데려온 기술자들을 정원에 모아놓고 선언했다.

현재 시즈코 영토에서는 대량의 목초액(木酢液)이 사장(死蔵)되고 있다. 목초액을 숯을 구울 때 나오는 연기(排煙)를 냉각하여 액화시키는 것으로 부산물로서 발생하며, 지금까지는 주로 살균이나 방충, 토양개량 등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 생산되는 공급량에 비해 수요는 적고, 그렇다고 해서 연기를 대기중으로 방출하면 환경을 오염시켜 버린다. 또, 목초액으로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정치(静置, ※역주: 가만히 놔두는 것)가 필요하기에, 필요해지면 바로 만들 수 있다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다.

이러한 경위 때문에 과잉이라고도 생각되는 양의 목초액이 계속 만들어져왔다. 계속 늘어나는 저장용의 도자기 항아리가 창고를 차지해버리는 것이 고민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가 떠올린 것이 목초액을 추가로 가공하여 메탄올을 생성하는 것이었다. 메탄올은 목정(木精, 영어로는 wood spirit)이라고 불리는 목재에서 생성되는 알코올 성분이다.

음료용의 에탄올과는 달리 인체에 유해하지만, 연료로서는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고, 부피가 크지 않은 액체연료의 수요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 소비처의 하나로서 떠오른 것이 알코올 스토브, 알기쉽게 말하면 휴대용 풍로였다.

휴대용이라고는 해도 재료는 철에 주석 도금을 한 양철제로, 현대의 것과 같은 알루미늄제의 그것에 비하면 상당히 무겁다.

그러나 대량의 장작을 운반하고, 취사할 때마다 처음부터 화덕(竈)을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그 편의성은 헤아릴 수 없다.

물론 메탄올은 휘발성 및 인화성이 강한 위험물(劇物)이기에 운반할 때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유리병에 넣고 나무 칸막이로 구분된 상자에 톱밥과 함께 채우면 충격으로 깨질 가능성도 경감할 수 있다.


"연료를 지급할 때 지급 담당자(支給係)가 대량으로 흡입하지 않게 주의해야 하지만, 그것만 주의하면 대단히 편리한 연료거든"


메탄올이 위험물인 이상, 일개 병사에게 많이 맡길 수는 없다. 사용할 때마다 취급 훈련을 받은 지급 담당자에 의해 지급되고, 남은 분량은 회수한다는 사용법이 된다.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짓을 하면서까지 휴대용 풍로를 도입하는 이유는, 진중식(陣中食)의 개선에 있었다.

전쟁터에서 먹는 진중식은 보존성과 휴대성을 중시하고 있기에, 수분을 뺀데다 염장한 것이 많아서, 빈말로도 맛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취사를 할 여유가 있다면 따뜻한 식사를 먹을 수 있지만, 취사의 연기가 보이는 것조차 꺼려지는 상황에서는 생식(生食)이 가능한 진중식을 억지로 물과 함께 삼키는 광경이 벌어진다.

시즈코 군에서는 현대에서 말하는 알파화미(アルファ米)를 사용한 진중식도 존재한다. 이것은 평범하게 지은 밥을 물로 씻은 후 오븐이나 돌가마로 수분을 날리거나, 또는 천일(天日) 건조로 바짝 마를 때까지 건조시킨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레토르트 식품 같은 것으로, 물에 불리면 수십분 정도만에 원래의 밥이 되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쓸 수 있다면 된장큐브(味噌玉) 등을 녹여서 불리면 따뜻한 죽으로 먹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물을 끓일 수 없는 경우에는 찬물로 불릴 수밖에 없어, 그 경우에는 차가운 죽을 홀짝거리는 상황이 된다.


다른 나라의 군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배리에이션을 자랑하는 시즈코 군의 진중식이긴 하나, 그래도 갓 조리한 따뜻한 식사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시즈코의 지론으로서 '전쟁은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고 있는 쪽이 이긴다'라는 것이 있어, 칼로리나 영양가에만 편중되기 쉬운 진중식의 개량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행군중의 취사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기에, 군의 존재를 쉽게 탐지당해 버린다. 그래서 연기를 내지 않고 조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졌다.

겨우 연기라고 얕보면 안 되는 것이, 취사의 연기에 의해 적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라던가, 행군 예정까지도 간파당하는 경우조차 있는 것이다. 적에게 주는 정보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여기서 알코올 램프를 떠올렸다면 알기 쉽겠지만, 연료용 알코올은 연소시에 거의 그을음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제품에 따라 다르긴 하나, 연료용 알코올은 에탄올 3할에 메탄올을 7할 정도 혼합한 것이 많다.

메탄올의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그을음은 적어지기에, 시즈코가 개발하고 있는 휴대용 풍로는 거의 연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취사 키트라는 것이 된다.


"제법 재미있는 것을 하고 있구나. 그러나, 김(湯気)은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다만?"


"바깥 기온과 수온에 차이가 있으니 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 김은 수증기가 식어서 물방울이 되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거야. 확산하면서 수증기로 되돌아가니까 금방 보이지 않게 돼. 게다가 김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까지 접근을 허용하면 은폐 같은 건 가능할 리가 없……어?"


등 뒤에서 들려온 의문의 목소리에 반론하면서 기껏 흥이 났는데 찬물을 끼얹는 건 누군가 하고 뒤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 시즈코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짓궂은 장난이 성공한 악동 같은 표정으로 버티고 서 있던 것은 본래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이었다.


"주, 주상! 언제 이곳에?"


"뭐, 네가 도착했다는 사자를 보냈길래 직접 온 것 뿐이니라"


낭패한 시즈코의 말에, 임석(臨席)하고 있던 인물이 노부나가라는 것을 알게 된 기술자들이 서둘러 엎드려 절했다.


"내게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너희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라"


예상 외의 노부나가 임석이라는 사태에 굳어 있던 기술자들이었으나, 다름아닌 노부나가 자신으로부터의 지시를 받고 작업을 재개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행동에 불평해봤자 소용없다고 포기하고, 소성(小姓)들에게 의자(床机)를 두 개 가져오도록 명했다.

노부나가는 준비된 의자에 털썩 하고 앉더니 시즈코에게도 곁에 앉도록 재촉했다.


"최근에는 밭에도 나가지 않는 모양이구나"


"네. 제가 없어도 모두 돌볼 수 있게 되었기에, 다른 것에 착수하고 있습니다"


"호오! 산 속에 저수지(溜池)를 만들어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더냐?"


"틸라피아(tilapia)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아직 주상께 헌상할 정도의 품질은 아닙니다만, 나중에 가져오겠습니다"


"흠. 재촉하려던 생각은 없었지만, 준비하겠다고 하면 먹도록 하지"


꽤나 노골적으로 화제가 돌려진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지적하지 않는 것이 정취(言わぬが花)라는 것이리라. 시즈코는 소성들을 부르더니, 틸라피아 요리를 만들도록 주방에 연락하게 했다.

노부나가가 지적한 대로 최근 시즈코는 양식업에 힘을 쏟고 있었다. 곡식류나 야채는 공급이 안정되었고, 양계(養鶏) 및 양돈(養豚), 양우(養牛)나 수렵에 의한 짐승고기도 시장에 유통되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코스트 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육식은 고가가 되기 쉬워서, 좀 더 값싸고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을 목표로 틸라피아의 양식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손을 써서 다양한 물고기를 들여오고 있는 모양인데, 내게 내놓는 것은 한 종류 뿐이냐?"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틸라피아는 조리법에 전망이 섰기에 주상께서 드실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육(魚肉)의 안정 공급을 꾀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한 종류에만 의존하면 병이 유행했을 때 대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들여오고 있는 종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이 강하고, 다소의 나쁜 환경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번식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 손을 떠나, 백성들의 손으로 키우게 하려면 섬세한 돌봄이 필요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과연, 너는 쌀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손으로 스스로의 식생활을 개선하게 하려고 꾀하고 있는 것이구나"


"다만 본래 이 땅에 사는 생물이 아니기에, 재래종(在来種)과 영역다툼을 벌이거나, 생태계를 변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현재는 단절된 환경에서 양식하는 것으로 회피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 백성들의 손에 맡길 수 있을 때까지 뭔가의 대처가 필요하겠지요"


양식하기 쉽다는 것은 식육(食肉) 공급이라는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반면, 한 번 세상에 풀려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로 틸라피아는 세계 각지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침략적(侵略的) 외래종(外来種)으로서도 인식되고 있다. 현대 일본에서도 틸라피아 종류가 정착했기 때문에 생태계가 무너져 다른 종이 살 수 없게 된 환경이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시즈코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한 폐쇄된 환경을 구축하고 거기서 양식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저수지 주변에 토끼장이나 닭장도 병설하여, 그들의 똥이나 먹고 남은 것들로 저수지의 플랑크톤이 자라게 되는 구조이다.

문제는 저수지의 성질상, 오랫동안 물이 체류(滞留)하기 때문에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틸라피아는 그래도 문제없이 자라지만, 이렇게 양식한 틸라피아는 몸에 악취가 배어든다.

그 때문에, 정기적으로 하천에서 새로운 물을 들여오고, 또 탁해진 물은 침전조(沈殿槽)를 거쳐 위에 뜬 맑은 부분(上澄み)만을 배출하는 것으로 수질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본래 예정되어 있었던 것은 재래종인 잉어(鯉)의 양식이었으나, 이것은 예상 외의 요인으로 실패했다.

식용 목적으로 양식을 장려했는데, 산악지대의 백성들은 키워낸 잉어를 매각하여, 그 수입으로 다른 식량을 산다는 길을 선택했다.

틸라피아는 일본에서는 식용으로 쓰이고 있지 않기에 현재는 수요가 전혀 없지만, 잉어는 옛부터 식용으로 쓰였기에 그 나름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잉어의 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개선된 식생활을 되돌려서는 본말전도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음 방법으로서 틸라피아의 양식에 착수한 것이다. 이쪽은 원하는 사람이 없기에 가격이 붙지 않아, 식용으로 쓰는 것 이외에 이용법이 없다.


"네가 고른 물고기니 맛도 기대할 수 있겠지. 게다가 그 밖에도 물고기를 모으고 있는 것을 보니, 귀인(貴人)이 먹기에 어울리는 것도 생각하고 있으렷다?"


"현명하신 헤아림에 놀랄 뿐입니다"


"'유비무환(転ばぬ先の杖)'이냐, 너는 항상 용의주도하게 준비하는 것이 특기이지. 그쪽도 보여보거라"


"확실히 입수는 했습니다만, 아직 숫자를 늘리는 단계이기에 올릴 수가 없습니다. 채란(採卵)했을 때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 용서해 주십시오"


노부나가의 지적대로, 시즈코는 틸라피아 이외에도 남국(南国) 계열의 갯농어(サバヒー)나, 토호쿠(東北) 연안(沿岸)에 서식하고 있는 철갑상어(チョウザメ)를 포획하여 양식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양쪽 다 오와리와는 서식 지역이 다르기에, 이 땅에서 양식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꾸준히 시험해 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철갑상어라고 하면 그 알을 소금에 절인 캐비어(caviar)가 유명하지만, 실은 어육 쪽도 고급 식재료로 분류될 정도의 맛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철갑상어(カラチョウザメ)를 황(鰉, 황제의 생선)이라고 부르며, 황제의 식탁에 올리는 식재료로서 귀중히 여겼다. 유럽에서도 로열 피쉬(royal fish)라고 부르며, 대관식이나 왕후(王侯)가 주최하는 연회에서 철갑상어 요리가 제공될 정도였다.

한편, 캐비어를 중요시하던 것은 러시아 뿐으로, 겨우 1세기만 거슬러올라가도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낚시용 미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쳐다보지도 않던 캐비어를 고급 식재료라고 세상에 알린 것은, 1917년의 2월 혁명에서 러시아로부터 프랑스로 집단 이주한 러시아 귀족들이다.

그들은 프랑스에 캐비어의 제법(製法)을 가져왔고, 프랑스의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극상의 식재료로서 전 세계에서 귀중하게 여겨지게 된다.


철감상어라고 하면 벨루가(beluga) 종이 유명하지만, 종류는 달라도 일본에도 고유종의 철갑상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환경성(環境省)의 레드 리스트(red list)에 '절멸종(絶滅種)'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철갑상어가 등장하는 것은, 1717년에 마츠마에(松前) 번(藩)이 '키쿠토지사메(菊とじ鮫)'로서 막부에 헌상한 기록이 된다.

그 이래, 메이지(明治) 시대 말기 무렵까지 철갑상어는 여름 생선으로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연이은 하천(河川) 개수(改修)나 캐비어 인기에 따른 남획에 의해 눈에 띄게 숫자가 줄어, 쇼와(昭和) 시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철갑상어는 멸종되어 버렸다.

시즈코도 현대에서 일본의 철갑상어를 본 적은 없지만,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전국시대라면 손에 들어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안자(発案者)인 시즈코도 철갑상어에 관한 자세한 지식 같은 건 가지고 있지 못하여, 현재는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는 단계이다.

현재 알게 된 것은 물을 청결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는 점, 수온은 15도에서 20도 정도에서 가장 활발해지는 점, 먹이는 작은 크기로 주지 않으면 먹지 않는 점, 아무래도 시력이 약한 것 같아서 냄새가 약한 먹이에는 달라붙지 않는 점 등이다.

틸라피아에 비하면 사육이 어려운에다, 수고를 들여서 환경을 갖춰주지 않으면 금방 쇠약해져 버린다.

도저히 서민의 입에 들어갈 수 있는 가격으로 시장에 나돌 일은 없지만, 이것은 고급품 노선으로서 키워나갈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분투하고 있었다.


"흠. 그럼 그 행운이 찾아올 날을 즐겁게 기다리도록 하지"


시즈코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부나가는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소집으로부터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주요 가신단은 아즈치에 집결했다.

오다 가문으로부터는 노부카네(信包)나 나가마스(長益) 등 노부나가의 형제에서 시작하여, 후계자인 노부타다, 그 형제인 노부카츠(信雄), 노부타카(信孝)가 뒤를 이었다.

지금은 필두(筆頭) 가신(家臣)으로 이름높은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로 시작하여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후와 미츠하루(不破光治),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카나모리 나가치카(金森長近), 카와지리 히데타카(川尻秀隆) 등 쟁쟁한 면면이 모여 있었다.

시즈코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 밖에도 많은 무장들이 모여 있었기에 대청(大広間)이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위장이 아파)


그런 대청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시즈코는 앉아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은 없었고, 한 단 더 높은 위치에는 노부나가가 앉아 있다는 상황이다.

즉, 노부나가와 옆으로 나란한 위치에 앉아, 다른 가신들을 흘겨보면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이건 장난아닌 중압(重圧)……. 그 때 주상께서 일부러 오셨던 건 이 때문이었나……)


시즈코의 별저에 노부나가가 직접 찾아간 것은, 시즈코가 생활하는 모습을 시찰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본래의 목적은 시즈코에게 작전회의(軍議)의 진행자 역할을 명하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노부나가가 작전회의를 진행하지만, 이 시점에서 시즈코를 발탁한 배경에는 가신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이 격렬해졌다는 사정이 있었다.

그런 때에 부하들을 집결해서 대호령을 내리게 되면, 작전회의의 석차(席次)조차 다툼의 씨앗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하여, 그 이상의 임팩트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보였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이라는 으리으리한 역할을 맡고는 있으나, 이것은 지금까지 유명무실한 명예직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를 문자 그대로 오다 가문의 수장에 대한 상담을 맡는 직책으로서, 노부나가의 의견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모두에게 전한다는 권위를 붙여주기로 했다.


"다들, 먼 길 잘 와주었다"


노부나가가 꺼낸 한 마디에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의 일언일구(一言一句)를 놓치지 않으려고 다들 노부나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원의 의식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을 파악한 노부나가는,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말을 꺼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모두는 막연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되는가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신들을 앞두고 노부나가는 일어섰다.


"일본에는 아직 우리들과 천하를 양분하는 자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는 모양이다"


노부나가는 대답한 미소를 떠올리며,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정말 한심스럽다, 세상의 도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놈들은 이래서 문제다라고 말하는 듯한 몸짓에 다들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마가와(今川)에 혼간지(本願寺), 천하무적이라 칭해졌던 타케다(武田)조차도 우리는 쳐부숴왔다. 그 때마다 '오다의 천하도 여기까지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매번 그것을 뒤엎어 보였다!"


그렇게 말하고 노부나가는 숨을 들이키는 가신들을 휙 둘러보았다.


"놈들의 패인은 단 하나. 하나같이 천하를 거머쥘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준비를 게을리하고, 하늘의 뜻(天意)이 찾아들 때를 기다리지 못했다. 반대로 나는 자복의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천하를 호령할 때를 맞이하였다! 타케다? 호죠(北条)? 그까짓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모우리(毛利) 역시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우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 따윈 없다는 것을 천하만민(天下万民)에게 알리는 것이다!"


완급을 조절하며, 억양이 깃든 노부나가의 말은 가신들에게 대공세가 시작된다는 것을 깊게 새겨넣었다.

그리고 일본 동서(東西)의 영웅(雄)이라고 칭해지는 노장(古豪)들조차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여 모두의 전의를 부채질했다. 


"모두에게는 내 앞을 가로막는 적을 일소할 것을 명한다. 지금부터 오다 가문 상담역이 진용을 발표할 테니, 다들 잘 듣고 명심하도록"


"옛!"


노부나가로부터 진행을 이어받은 시즈코는,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일어섰다. 단상에서 내려다보는 시즈코에게는 흥분한(殺気立った) 가신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지금부터 시즈코가 말하는 포진의 여하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시바타 등 중신들은 물론이고, 말석에 이르기까지의 무인들이 발하는 열기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시즈코였다면 질겁했으리라.

하지만 비트만과 바르티라는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 그녀에게 이 땅에서 살아남을 각오를 굳히게 했다.


"지금부터 여러분께 전해드릴 내용은 주상께서도 알고 계시며, 제 말은 주상의 말씀과 같다는 것을 주지해 주십시오"


이제와서 시즈코를 깔보는 자들은 소수파였으나, 그래도 뿌리깊은 여성 경시의 풍조는 존재한다.

자신의 생사조차 좌우하는 포진을 여자의 입에서 듣게 된 것에 반감을 품는 자들에 대해 쐐기를 박은 모양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가 자리한 가신들을 둘러보자, 분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는 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喉元過ぎれば熱さを忘れる)'는 속담대로, 아무리 큰 공적을 세워도 지난 일은 잊혀지고, 나도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예상사이다.

그리고 그 경향은 혈기 넘치는 젋은이들에게 많이 보인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름이 불린 분들은 제 앞으로 모여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가 두루마리의 봉인을 찢고 펼치자,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시즈코의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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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7 1576년 9월 상순



"우선은 상황을 정리해볼까. 이 유리펜을 판 상인은 처음부터 이걸 진열해놓고 있었어?"


"아니오. 이마하마(今浜) 토산품(土産)으로 작은 유리 제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제가 친정 사람들 선물을 고르고 있을 때, 돈 씀씀이가 좋아 보였는지, 특별히 이런 게 있다고 보여주었습니다……"


"대놓고 팔고 있던 건 아닌 것 같네. 그 상인은 유리펜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어?


"아뇨, 하나 뿐이라서 더는 없다고……"


"으ー음, 상인의 말을 믿는다고 하면, 반출한 시제품(試作品)은 하나뿐인가.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지. 여기는 히데나가(秀長) 님한테 수고해주시도록 할까? 그 정도의 빚은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붓을 들어 편지를 썼다. 내용은 이마하마의 새로운 명산품(名産品)으로서 개발하고 있는 유리펜의 시제품이 영외(領外)로 유출되었다.

그것을 시즈코가 발견하여 회수해놓았으나, 그 외에도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공방 및 관계자를 비밀리에 조사해달라는 것이었다.

시즈코가 손에 넣은 유리펜에는 제조번호가 새겨져있지 않아, 아마도 뭔가 문제가 있어 실패작으로 판단된 시제품일거라는 말도 덧붙여 놓았다.


"아, 맞다. 너는 그 상인의 인상(人相)을 기억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콧등에 큰 점이 있던 것과, 손등에 화상 자국이 있었습니다"


"오, 꽤나 특징적이네. 그럼, 기억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인상을 그려주겠어? 그것도 첨부해서 히데나가 님에게 맡기자"


시즈코는 종이와 유리펜, 먹물단지(墨壺)를 나이많은 쪽의 소녀에게 돌려주고 용모파기(人相書き)를 그리도록 했다.

그걸 기다리고 있는 동안 계속 궁리를 했다. 현 시점에서는 구멍이 몇 개 뚫려있는지 모르는 냄비에 대해 구멍 하나를 막으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히데나가에게 의뢰하는 것으로 구멍의 총 숫자를 파악하여, 이것 외에는 새어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이것 외에도 유출되어버린 경우의 대책도 필요해질 것이다.

즉, 고급의 예술품으로서의 노선은 버리고, 오직 실용성만의 방향성으로 이익을 낳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어, 벌써 다 됐어? 빠르네"


"호오! 훌륭하군. 어딘가 음침한 소악당(小悪党)이라는 느낌인가"


시즈코의 옆에서 용모파기를 들여다보고 있던 아시미츠(足満)가 소녀를 칭찬했다. 현대에서도 범인을 찾을 때 몽타주(似顔絵)가 작성되듯이, 의외로 사실적인 사진보다도 특징을 강조한 몽타주 쪽이 대상을 발견하기 쉬운 경우가 있다.

시즈코는 아시미츠의 반응과, 소녀의 빠른 작화 및 높은 응용력을 보고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시즈코는 소녀에게서 압수한 책의 한 페이지를 펼치며 소녀에게 물었다.


"이 책은 왼쪽으로 넘기고 문자는 가로쓰기라는, 평범하지 않은 양식으로 쓰여 있는데, 이건 일반 서적이 오른쪽으로 넘기고 세로쓰기인 것에 대해 반대로 해서 비밀이 잘 드러나지 않게 한 걸까?"


"네, 네에.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문자의 크기를 통일하여, 극력 사각지게 써서 세로로 읽으면 의미가 통하지 않게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네 친정은 뭘 하는 집안이지?"


"네…… 네에. 여기서 포목(呉服) 상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디 가족에게 연좌하여 죄를 묻는 것만은 용서해 주십시오……"


"어!? 아, 아냐아냐. 그게 아니라, 네 재능을 묻히게 하는 건 너무 아까워서, 이걸 직업으로 삼아보지 않겠어? 라고 생각해서"


"네…… 네에……"


"물론 이대로의 양식으론 지나치게 참신해서 사람들이 읽지 않을테니, 문자는 세로쓰기로 해서 두루마리 그림(絵巻物) 같은 형식으로 하고 싶은데, 할 수 있겠어?"


두루마리 그림(絵巻物)이란 일본의 회화 형식 중 하나로, 나라(奈良) 시대에 최초의 두루마리 그림이라고 하는 '회인과경(絵因果経)'이 만들어졌다.


가로로 긴 종이에 정경(情景)이나 이야기를 연속해서 묘사하고, 그림과 그 설명이 되는 설명문(詞書)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것도 있다.

두루마리 그림 형식이라면 소녀의 소설 형식과 비교적 가깝고, 공가(公家)들에게도 익숙해지기 쉽다.

그렇다, 시즈코는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발행하고 있는 '쿄 소식(京便り)'의 지면 일부에 4컷 만화처럼 게재하려고 획책한 것이다.

물론 지금 떠오른 것이며, 사전에 조율을 할 필요는 있지만, 최저한의 교양을 갖춘 공가의 읽을거리로서 새로운 오락의 제공은 그도 바라는 바이리라.


"이대로 계속 써도 되는 건가요?"


"필기구는 유리펜이 아니라 붓이 되겠고, 내용에 관해서도 온당한 것으로 해줘야 하지만, 기행문이라는 형식은 그대로 괜찮아. 물론 직업이니, 그에 걸맞는 급료를 지급할 것이고, 네 가족(ご実家)에게도 양해해주도록 부탁하러 갈거야"


"그, 그런! 황송합니다. 영주님이 원하시는데 거부할 수는 없고, 저도 하고 싶습니다"


"너는 쿄(京)의 공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책에 대해 원고를 제공하게 될 거야. 그 때 본명이라면 문제가 생기니, 필명을 생각해 두겠어?"


"네, 네에!?"


뜬금없이 취직자리를 알선받고, 어어하는 사이에 이야기가 완결되어 갔다. 소녀들은 서로 몸을 기댄 채 격류처럼 몰려드는 정보를 처리하는 데 필사적이었다.


"이 유리펜, 하시바(羽柴) 님은 주상(上様)께 헌상하면 관록이 붙어서 잘 팔릴거라 예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아마도 그 예측은 빗나갈 거라 생각해"


전국시대에서 귀인(貴人)이 스스로 글을 쓴다는 일은 드물다. 사적인 것이라면 몰라도, 공적인 문서라면 우필(右筆)이라 불리는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붓을 잡는다.

게다가 도구로서는 획기적이지만, 미술품으로 볼 경우 붓의 형태를 하는 것이 족쇄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평범한 인상을 씻을 수 없다.

같은 유리 제품인, 키리코(切子)라고 불리는 유리 용기에 비하면 화려함에서 뒤떨어져버리는 것이다.


한편으로 실용품으로서의 유리펜은 유망하다. 한 자루로 그런대로 두께가 있는 서적을 한 권 써낼 수 있을 만한 내구성에 더해, 붓글씨보다 훨씬 가느다란 문자를 높은 밀도로 적을 수 있다.

실용품이라면, 손으로 쥐는 부분을 목제 등으로 만들고, 펜촉 부문만을 교체방식으로 하여 계속적인 수요를 기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쿄 소식'의 제판(ガリ切り)에는 철필(鉄筆)이라 불리는 금속제의 펜이 사용되고 있다. 제판 전의 원고를 유리펜으로 쓰게 하여 제판의 수고를 줄일 수도 있으리라.

개명적(開明的)이고 선견성(先見性)이 있는 사키히사라면, 유리펜의 유용성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뭐라 해도 사키히사가 주선하고 있는 사업인 만큼, 그를 끌어들이면 주요 고객(大口顧客)이 될 것은 틀림없다.


"뭐,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으니까, 고급품으로서의 유리펜이 팔리는 경우도 있을 지도 몰라. 기우(杞憂)로 끝나면 좋겠지만,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의 대비는 해둬서 나쁠 것은 없겠지?"


히데요시(秀吉)에게 비장의 한 수가 되는 유리펜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익이 나오는 것이다.

이미 유리펜이 세상에 나돌아버려 주상에게 헌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충분한 이익이 기대된다고 하면 다소의 하자(瑕疵, 결점)에는 눈을 감으리라.


"네 필명이 유명해지면, 문구를 붓에서 유리펜으로 바꿔서 지면과 작품을 통해 유리펜을 홍보할 수도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이면, 그만큼 원하는 사람 숫자도 많아지지. '쿄 소식'에 광고를 내고 있는 상인들에게도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시즈코의 계책은 마케팅 분야에서 브랜딩이라고 불리는 수법이다.

저명한 작가가 애용하고 있는 물건이라고 매스미디어에서 선전하면, 고객들은 그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실패는 없을거라고 인지한다.

그리고 실제로 필기구로서의 유리펜은 우수하다. 그 신용이 더욱 그녀들의 지명도를 향상시켜, 추가적인 신용이 생겨난다는 호순환이 시작된다.

그녀들의 지명도가 올라가면, '쿄 소식'의 연재 이외에도 그녀들의 작품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본래 특기로 하는 작품도 받아들여지기 쉬워진다.

어느 시대의 세상이건 사람들의 흥미는 타인의 연애(色恋沙汰)나 추문(醜聞)에 집중되기 마련이므로.


"아야(彩) 짱, 그녀에게 방과 당분간의 활동비를 주겠어?"


"옛,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이상이야. 그리고 너는,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입을 다물어 주겠어?"


완전히 휘말려든 모양새가 된 소녀는, 시즈코의 말에 끄덕끄덕하고 고개를 세로젓는 수밖에 없었다.

시즈코는 소성(小姓)을 불러서 작성한 밀서(密書)를 건네고 히데나가(秀長)에게 파발마(早馬)를 통해 전하도록 지시했다.

히데나가의 조사 결과나 대처를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두 대의 화살을 메겨서 상황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유리펜을 유출시킨 범인은 그냥 우발적(出来心)으로 저지른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결과로서 히데요시의 정책 뿐만이 아니라 한 명의 소녀의 운명을 뒤틀어버리는 데 이르렀다.

바라건대 그녀의 미래가 밝은 것이기를 바라는 시즈코였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 아저씨가 손대고 있는 상품, 굉장한 반응(売れ行き)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는데요?"


"아, 닭꼬치(焼き鳥)말이구나. 모처럼 맥주를 만들었으니, 닭꼬치 정도는 있어도 벌은 안 받겠지?"


시즈코의 이야기에 아시미츠가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아시미츠와 미츠오(みつお)는 맥주 제조에 착수했으나, 사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추가적인 판매 확대를 위해 지원책을 마련했다.

여름의 더운 시기에 강물로 차게 식힌 맥주와 풋콩(枝豆)은 서민들의 혼을 빼놓았다. 하지만, 가을에 접어들며 시원해지게 되면 강렬히 자극적인 안주가 먹고싶어진다.

그래서 아시미츠와 미츠오의 술고래 두 사람이 고안한 킬러 컨텐츠가 닭꼬치였다. 이곳 오와리(尾張)에서는 양계(養鶏)가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채란(採卵)을 끝낸 늙은 닭의 고기는 대단히 싼 가격으로 입수할 수 있다.

그 고기를 설탕과 간장, 미림(味醂)과 술이라는 오와리의 명산품을 사용한 소스를 발라 구워낸 닭꼬치는, 주로 노동자들의 복음(福音)이 되었다.

하루의 일을 마친 노동자들에게, 간장이 타는 향기로운 냄새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닭꼬치는 효과 직방이었다.


"도로 정비나 용수 정비의 인부(人足)들을 메인 타겟으로 좁힌 거네요. 확실히 그들은 일당을 받는 사람들이니 현금을 가지고 있고, 육체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니 배도 고프겠지요"


"땀을 흘린 후에 마시는 맥주는 각별하지. 거기에 싸고 맛있는 안주가 있다면 마시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경제 활성화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프라이다. 역사적 사실에서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이 '열도 개조론(列島改造論)'이라는 일대 토목공사 프로젝트에 의해 부활(再生)한 것처럼, 도로로 대표되는 인프라는 사람, 물자, 돈이 모여 수요와 공급의 호순환을 발생시킨다.

토목용 중기(重機)가 실용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하나, 여전히 토목공사의 주역은 인간이나 가축이며, 그 규모에 맞춰 많은 인원이 필요해진다.

기계와 달리 그들은 연료를 소비하지 않는 대신 밥을 먹는다. 도구도 소모하고, 의류나 주거도 필요해진다.

즉, 노동자들은 시즈코에게 피고용자인 동시에 고객이 될 수도 있다. 그들에게 다소 많은 급여를 지급하더라도, 그만큼 오와리에서 마시고 먹게 하면 돈은 계속 돌게 된다.


아시미츠와 미츠오는 자신들이 술고래이기에,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닭꼬치의 라인업을 충실하게 갖추었다.

연골과 고기를 다져 민스(mince) 상태로 만들어서 꼬치에 감아 구운 '츠쿠네(つくね)', 닭의 꼬리 부근에 있는 대단히 지방이 오른 부위 '본지리(ぼんじり)', 그 자리에서 잡기에 제공할 수 있는 닭의 심장, 즉 '염통(ハツ)'에 모래주머니인 '닭똥집(砂肝)'.

그밖에도 간장(肝臓)인 '간꼬치(レバー串)'나, 뭐라해도 뺄 수 없는 것이 허벅지살과 대파를 교차로 꽂은 '네기마(ネギマ)'일 것이다.

노동자들은 그 충실한 상품의 배리에이션과, 뭔가 전문적인 듯한 상품 설명에 매료되어 매일같이 다니게 된다.

처음에는 한군데 뿐이었던 닭꼬치 포장마차였으나, 지금은 여러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어, 닭꼬치 거리가 생길 정도였다.


"탁주(濁酒)는 그렇다치고 청주(清酒)는 비싸니 말이지. 녀석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도록 맥주를 싸게 해서, 박리다매를 노렸는데 닭꼬치가 상상 이상으로 대박이 났군"


지금은 일이 끝난 노동자들이 맥주와 닭꼬치를 먹는 광경이, 가을의 풍물시(風物詩)로 인식될 지경이 되어 있었다.

맥주는 도자기로 만든 용기에 제공되고, 닭꼬치는 나무 그릇 위에 대나무 꼬챙이에 꽂혀서 나오기 떄문에 쓰레기가 적다는 것도 이점이다.


"덕분에 용수 정비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아직 지류수로(支流水路)를 넓혀야 하니, 사람들이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주는 것은 중요하네요"


이상적인 상승효과(相乗効果)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도로나 수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고용이 발생한다. 고용이 발생하면, 그들이 마시고 먹기 위한 식량 수요가 늘어나, 현지의 농작물이나 축산물이 팔려서 백성들도 사정이 좋아진다.

위정자 측은 회수한 자금으로 추가적인 공사를 계획하여, 오와리 전토로 인프라가 뻗어나가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었다.

도로기 정비되면 사람과 물건이 움직이고, 수로가 정비되면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논밭이 개척된다. 오다 영토 내의 다른 영지에서 돈을 벌러 온 노동자들도 모여들고 있어, 경제 성장은 점점 뻗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돈이 모인다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 개척된 논밭은 순차적으로 측량(検地)을 실시하고 기록하게 되어 있으나, 이것을 속이려는 대관(代官)이 생겨났다.

본인은 약간의 용돈벌이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걸 모른 척 하면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서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카츠조(勝蔵). 세수(税収)를 속이고 있다는 소문의 대관을 조사하러 간 거 아니었냐?"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즈코와 아시미츠를 앞에 두고 할 일이 없던 나가요시(長可)에게 케이지(慶次)가 말을 걸었다.


"어, 내정(内偵)하고 있던 녀석이 확인해서 말야. 약간 '설득'을 하고 왔어"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대화를 들은 시즈코가 물었다.


"아, 맞다 카츠조 군! 네 부대가 제출한 보고서에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떤 설득을 한 거야? 신식총(新式銃)은 이해하겠는데, 야포(野砲)와 그 포탄은 뭐에 썼어?"


시즈코에게 추궁당한 나가요시는,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침묵했다. 그것만으로 어떤 설득을 했는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


"일단 주상께서 인정하셨으니 잔소리는 안하겠지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밖에 못한다는 소릴 듣게 되니까 적당히 해"


"어, 음. 주상께서 일벌백계가 될 테니 요란하게 해치우고 오라는 명이 있었거든"


처음에는 대관 본인을 혼낼 생각이었으나, 세금을 속여서 사복(私腹)을 채운다는 것은 노부나가에게 대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천하 만민(天下万民)에게 알릴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나가요시는 무장한 부하들을 이끌고 대관의 저택으로 가서, 대관 및 그 가족과 고용인들을 구속하여 집 밖으로 끌어내더니, 그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빈 집이 된 저택을 대포로 산산조각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문자 그대로 목숨 이외의 모든 것을 잃은 대관에 대한 처벌은, 노부나가의 뜻대로 기강(綱紀)을 세우는 결과가 되었다.


"참고로 묻겠는데, 시즈코라면 설득에 응하지 않는 패거리에게는 어떻게 대처할 거지?"


"나? 설득에 응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들여봤자 소용없잖아? 그렇다면 그 사람에 넘어가는 돈을 압류해버리겠어. 부정하게 얻은 이익을 돌려주면 끝이라는 것이 아니니까, 확실히 죄값은 치르게 해야지"


"보급 차단(兵糧攻め)이냐……"


나가요시의 폭쇄(爆砕)와 비교하면 온당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시즈코의 수단은 경제활동의 틀에서 대관만을 쫓아내어,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시킨다는 처참한 것이 된다.

영주에게 밉보였다는 낙인이 찍힌 사람(凶状持ち)과 거래하고 싶어하는 상인 따윈 있을 리 없기에, 자신과 그 가족이 살기 위해 필요해지는 양식(糧)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를 체현하는 시즈코의 대답에 나가요시는 메마른 웃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의 묘지가 된 신체산(神体山)은 오오카미 산(大神山)이라고 명명되어, 산꼭대기에 건립될 예정인 신사(社)가 산기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산 전체가 금족지(禁足地)가 되어 있기에, 프리패브(prefab) 건축처럼 부품 단위로 만든 후에 가조립하고, 최종적으로 분해하여 산꼭대기까지 운반하여 돌을 쌓은 후에 설치한다는 식이 되었다.

이름높은 궁전목수(宮大工)들이 끌(鑿)과 대패(鉋)를 휘둘러, 화려하지는 않지만 엄숙한 신사가 매일 조립되어갔다. 깡깡하는 망치(槌) 소리를 들으면서도 시즈코는 서류 작업에 쫓기고 있었다.


당초의 계획보다 대폭 규모가 축소되었다고는 하나, 아이치 용수(愛知用水)라는 국가 사업의 제 1단계의 성과를 노부나가에게 직접 보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간선수로(幹線水路)에 물이 공급된 것을 시작(皮切り)으로 새로운 논밭의 신청이 연이어 제출되어, 어느 정도의 생산량이 기대되는지를 어림(概算)으로밖에 구할 수 없다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지난 달 말까지의 신청을 바탕으로 예상 석고(石高)를 산출한 것이 보고서로서 시즈코에게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시즈코는 사무원들(事務方)과 협의하면서 보고서를 정리한 후, 서류를 첨부하여 아즈치(安土)로 가게 되었다.

아즈치에 도착한 시즈코는 별저(別邸)에서 한숨 돌린 후, 이틀 후로 예정된 노부나가와의 알현을 앞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바쁘게 곳곳에 안시하러 돌아다니는 동안에 이틀이 지나, 드디어 노부나가와의 알현 날짜가 되었다.

아즈치 성(安土城)에 등성(登城)하자, 노부나가의 측근인 호리(堀)에게 안내되어 알현실이 아니라 직접 다실(茶室)로 안내되었다.


"주상께서 심기가 좋으신 듯 하여――"


"서두(前口上)는 필요없다. 오랜만이라고 할 정도도 아닌가? 조금은 진정된 모양이구나. 갑작스럽지만 미노(美濃)와 오와리를 잇는 용수의 성과를 보고하라"


시즈코의 발언을 가로막은 노부나가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시즈코의 거리를 좁혔다. 시즈코도 다다미(畳) 위에 자료를 펼쳐놓고, 무릎이 닿을 거리에서 보고를 시작했다.


"지난 달 말까지의 신청을 정리한 결과는 이상입니다. 현재의 생산력은 곡창지대의 그것과 비교하면 크게 떨어집니다만, 지선수로(支線水路)가 확충됨에 따라 늘어날 여지는 있으며, 개발특구(開発特区)로서 세율을 낮게 설정하고 있기에 이주자들도 늘어날 것이 기대됩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한 시간에 걸쳐 보고를 했다. 현재 상황으로는 인구가 적은 치타 반도(知多半島)이지만, 개발이 진행되면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는 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 기대된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불모(不毛)의 땅이라며 버림받았던 치타 반도가 곡창지대로 변한다면, 오와리는 지금 이상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치타 반도를 단순한 곡창지대로 끝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충분한 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을 만큼의 식량 생산력이 확보되는 대로, 치타 반도를 공업지대 및 중상정책(重商政策)의 거점으로 삼을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시즈코와 아시미츠가 일으킨 공업화의 파도는 노부나가의 힘을 비약적으로 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철(製鉄)에 방적(紡績), 기계공작(機械工作)에 토목건축(土木建築) 등 그 응용범위는 폭넓었고, 게다가 인력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치타 반도의 공업화 구상은 이세 만(伊勢湾)에 접하고 있기에 외양(外洋)으로 나가기 쉽다는 천연의 항만을 가진 입지와, 용수에 의해 공업에도 불가결해지는 대량의 물을 공급 가능하게 된다는 것으로 약진하게 된다.


"몇 년 뒤가 기대되는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노부나가의 뇌리에는 공장이 줄지어 서 있고, 조선소나 대형 도크를 갖춘 항만과 거기에 떠 있는 외양선(外洋船)의 모습이 보이고 있는 듯 했다.

꽤나 이야기가 과열되었기에 노부나가는 손수 차를 끓여서 시즈코에게 내밀고, 각자 한 모금씩 마신 후에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자, 너는 다가올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 호죠(北条)를 어찌 공격하겠느냐?"


입을 열자마자 노부나가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 제정신을 의심할 만한 발언을 했다.

그 때까지 토우고쿠 정벌이라고 하면, 우선 타케다(武田)를 처리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아, 호죠 공격 같은 건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호죠를 공격하는 것을 확정사항인 듯 이야기했고, 또 시즈코도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게다가 노부나가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바라는 것 자체가 드물다. 만약 이 자리에 호리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동석하고 있었다면, 노부나가의 대역(影武者)을 의심할 정도의 사태였다.


"오다와라 성(小田原城)은 견고한 요새입니다. 단번에 함락시키는 것은 어렵기에, 지성(支城)을 하나씩 공략하여 발가벗기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호오. 번거롭지만 견실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지성을 함락시켜봐야 오다와라 성만으로도 상당히 농성에 견딜 수 있다만?"


"그것은 예상한 바입니다. 우리 군의 대포를 사용하면, 이미 농성이라는 전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돌담을 쌓더라도 몇 발만 쏘면 돌무더기(瓦礫)로 변하니까요. 하지만, 처음부터 대포를 전면에 내세워 공격하면, 호죠는 성을 버리고 바다로 도망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멀리 돌게 되더라도 지성을 없애서 도망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은 후에 단번에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렇군. 지금까지는 타케다나 우에스기(上杉)도, 오다와라 성에 틀어박힌 호죠를 함락시킨 경우는 없지"


"물론, 타케다나 우에스기가 공격했을 때는 전 당주인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가 지휘하였기에, 현 당주인 우지마사(氏政)는 대응(采配)에 차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타케다조차도 격퇴시킨 실적이 있는 전법을 답습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오다와라 성은 광대한 대지면적(敷地面積)을 자랑하며, 내부에 성시(城下町)를 시작으로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식량을 공급하는 경작지까지 포함하고, 그 주위를 빈 해자(空堀)와 토루(土塁)로 격리하는 소가마에(総構え)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서양이나 대륙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타입의, 소위 말하는 성곽도시(城郭都市)인데, 일본에서는 주위를 바다라는 천연의 방벽에 의해 지켜지고 있어 이민족(異民族)의 습격을 받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던 것도 있어, 성곽도시 같은 막대한 코스트가 들어가는 중무장 도시는 발전하지 않았다.

즉, 이민족에 의한 습격은 영민, 영지를 포함한 지역 전체의 제압, 지배가 목적이므로 영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벽이 불가결한데 비해, 같은 민족끼리의 싸움은 주로 정쟁(政争)에 의한 내전(内戦)이 된다. 이 때문에 표적은 필연적으로 정적(政敵)만으로 좁혀지고, 영민들은 정복자의 통치 아래 들어가게 되기는 하나 목숨까지는 뺏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카마쿠라(鎌倉)나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 오다와라 성 등은 군웅할거하는 전란의 시대를 반영한 것인지, 주위에 방벽을 둘러친 성곽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그 결과로서 장기간의 농성에 견딜 수 있는 설계가 되어 있어, 원정(遠征)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는 타케다도 우에스기도 함락시키지 못했다.

이미 오다 측의 대포의 위력은 겪어봐서 알고 있을 호죠 군이지만, 평야 지대에서 사람을 향해 사용했기에 방벽이 의미를 상실할 정도의 위력이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농성이라는 전법은 원군이 올 곳이 있어 안팎에서 협공하거나, 또는 공격하는 쪽의 계전(継戦) 능력 한계를 기다려서 승리를 얻습니다. 우리 군도 예외가 아니라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원정이 되므로, 처음부터 야전을 버리고 농성할 가능성조차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군은 진군 경로상에 존재하는 지성을 빼앗아 물자 운반의 거점으로 삼고, 또 병행하여 해로(海路)로도 보급선을 확립합니다"


"제법 재미있구나. 정확한 포격을 지원하기 위해서도 그것이 활약할 것 같군.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나도 이미 입안해 놓았다"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품 속에서 전략의 초안(素案)을 꺼내 보여주었다. 세부적인 수치 등은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호죠를 농성시켜서 함락시킨다는 큰 줄기는 일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확실하게 농성을 선택하게 하기 위해, 지성을 함락시켰을 때 패잔병들을 일부러 오다와라 성 방면으로 놓아주도록 하지요. 적군에게 쫓기고 있는 영민을 저버린다는 전법을 호죠는 선택할 수 없을테니까요"


"영민을 지키기 위한 소가마에(総構え)이기에, 쫓기고 있는 영민이 있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가. 즉석에서 말한 것 치고는 잘했다. 우선은 합격이라고 할까"


대체 뭐에 합격한 건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시즈코였으나, 노부나가가 기분좋게 웃고 있는 것을 보는 한 그의 기대에는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무슨 변덕으로 이런 시험을 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런 의문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노부나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내심을 밝혔다.


"요즘, 우리들은 국소적인 패배는 있어도, 대국적으로는 항상 승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여 수비적이 되는 가신들이 많아서 말이지. 후다이(譜代), 신참(新参)을 가리지 않고 각자에게 내린 임무에 대해 시험을 내고 있느니라"


"주상의 모습을 보니, 합격을 받은 신하는 그렇게 많지는 않겠군요"


"훗. 너를 포함해도 다섯이 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항상 '지금'을 살며, 더욱 좋은 '내일'을 쟁취하기 위한 길을 계속 모색해야 한다. 사람은 과거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확실히 저는 최근 눈에 띄는 무공을 세우지 않았으니, 가문 내에서도 자질을 의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군요"


"너는 무공이야 세우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영지를 부유하게 하고 있다. 그것이 나아가서는 내 영토의 모두를 부유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패거리들이 많느니라. 후계자를 얻자마자 은퇴(楽隠居)하려 하고 있는 거라고 험담하고 있는 놈들조차 있는 모양이다"


"은퇴를 허락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라는 바(本望)입니다만"


"아니 된다. 이전에도 말했을 것이다. 네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은 그 목숨이 다할 때 뿐이라고"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진심으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고 있다.

비트만과 바르티라는 고락을 함꼐 한 가족과의 이별로 약한 면을 보이긴 했으나, 그 때도 업무를 인계한 후에 휴가를 청했었다.

뭣보다 시즈코는 현재의 입장을 버릴 수 없다. 그녀의 본질이라고도 해야 할 업보이리라. 한 번 식구로 받아들이면, 그것들을 쉽게는 저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네가 없으면, 이 세상이 재미없느니라"


"그리 말씀해주시는 것은 영광입니다만, 주상께서도 반드시 신변에 유의해 주십시오. 천하인(天下人)의 자리는 눈앞에 있습니다만, 세상일(物事)이란 이루어지기 직전에야말로 '신변'에 함정이 있는 법입니다"


"흠. 설마 네가 나를 배신한다는 것이냐?"


"농담이시겠지요. 제게 왕의 재능은 없습니다. 애초에 천하에 대하여 패권을 외치기에는 소중한 것을 너무 많이 품고 있습니다"


"크크큭, 알고 있다. 배신을 꿈꾸는 놈은 의심받을 듯한 기색을 보이지 않지. 하지만 나는 보고 싶다. 네가 천하인이 된다면 어떠한 세상을 만들지를 말이다. 물론, 나 역시 너 이상으로 유쾌한 세상을 만들어보이겠지만 말이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천하인에 되기에 어울리는 인물은 주상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있을 수 없지. 만약 내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진다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 묻는 노부나가에 대해, 시즈코는 틈을 두지 않고 대답했다.


"우선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럼에도 힘이 미치지 못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배신자의 목을 영전에 올려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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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6 1576년 8월 중순



신체산(神体山) 소동도 가라앉고 달력의 달이 바뀌었을 무렵, 시즈코에게 8월의 현장 복귀 요청이 도착했다.

오랫동안 현장을 비워두고 있었기에, 직장에 복귀하기 전에 확인해 두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 언제나처럼 시즈코는 정신없이 바빴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것의 실전시험(実地試験)을 앞두고 있던 것을 잊고 있었어. 어쩌지…… 주상(上様)께 보고드리면 틀림없이 타고 싶다고 하실텐데"


시즈코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열기구(熱気球)에 의한 유인비행(有人飛行) 시험에 관한 결재였다. 뭐라 해도 세계 최초이니, 처음을 좋아하는 노부나가가 손을 들지 않을 리가 없다.

열기구의 원리는 대단히 단순하여, 뜨거워진 기체는 팽창하기 때문에 부피가 늘어나서 밀도가 낮아져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갈 때 밀려난 공기의 중량이 매달려 있는 물체의 중량을 넘어서면 떠오른다는 것이다.

밀려난 공기 운운에 관해서는 목욕탕에 몸을 담궜을 때, 자신의 몸에 밀려난 물의 부피에 비례하여 부력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이므로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이 열기구는 딱히 재미(道楽)로 개발한 것이 아니다. 병행하여 개발하고 있는 또 하나의 기술과 조합하면 전략을 좌우하는 병기가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열기구 자체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난다는 물건은 아니고, 단순히 상공에 떠 있을 뿐이라는 물건이기에, 필요한 기술 레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열기구는 승무원이 타는 곤돌라 부분과, 뜨거워진 기체를 품어 부력을 얻는 구피(球皮, envelope)라는 부분으로 나뉜다.

열기구에서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구피는, 범포(帆布)라고 불리는 특이한 방식으로 짠 천으로 구성된다.

글자 그대로 범선(帆船)의 돛(帆)에 사용되는 천이며, 어쨌든 튼튼할 것이 요구된다.

이번의 경우에는 면사(綿糸)를 여러 가닥 꼬아 만든 두꺼운 실을 써서 종횡으로 촘촘하게 짠 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범포의 특징으로서 젖어도 물이 천(生地)의 틈새(目)를 막아버려, 내부까지 물이 잘 침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촘촘하게 짰다고는 해도 기체의 분자 사이즈에 비하면 지나치게 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라, 통기성은 오히려 좋을 정도라서 기밀성(気密性)이 요구되는 구피에 적합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예전부터 개발을 진행하고 있던 삼(麻)과 쌀(米)에서 만드는 바이오 플라스틱을 범포 표면에 도포(塗布)하여 강도와 기밀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버너의 화구(火口) 부근에 대해서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내열성이 섭씨 100도 정도이기에 그냥 범포 소재(면의 발화점은 섭씨 500도 부근)이지만, 대부분을 이 수지를 도포한 천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범포에 수지를 도포하는 형식의 소재는, 현대에서 소방 호스에도 쓰이고 있는 점을 볼 때 그 방수 성능과 기밀성의 우수함은 확실하다.

열원(熱源)에는 알코올 버너를 채용하여, 가압한 메탄올과 에탄올의 혼합용액을 가열한 증기로서 분출시켜 착화(着火)하는 것으로 출력을 높이고 있다.

이미 유인 이외의 비행시험에는 몇 번이나 성공했기에 그렇게 위험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열원 장치의 폭발이나 높은 곳에서의 낙하라는 생명의 위험이 항상 따라붙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노부나가가 승선을 포기하도록 하겠다고 결의를 새롭게 한 시즈코였으나,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적은 없었다.


"호오! 이것이 기구인가 하는 것이냐. 이런 문어인지 해파리인지 모를 것이 하늘을 난다니 실로 유쾌하구나"


"주상, 정말로 타시겠습니까? 만전을 기하고는 있습니다만, 옥체에 만에 하나의 일이 있으면……"


"끈질기구나! 날개를 갖지 못한 사람의 몸으로 하늘을 난다는 대망을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이루는데, 내가 날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시즈코와 노부나가는 산골짜기에 준비된 비행장에서 부풀어오르고 있는 기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전날 시즈코가 걱정했던 대로, 인류 최초의 유인비행 시험이라고 들은 노부나가는 공무(公務)를 조정하더니, 최저한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존재 자체를 비밀로 하고 있는 신병기인 만큼 사람들 눈에 보일 수도 없어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서의 비행 시험이 된 셈이지만, 시즈코는 살아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용도가 관측기구에 가깝기 때문에 지상과 계류 로프로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확실성이 낮은 낙하산 장치에 건다는 수단 외에, 계류 로프에 빌레이 디바이스(belay device)라고 불리는 기구를 걸고 현수하강(懸垂下降)으로 지상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

이러니저러니 하고 있는 동안에도 준비가 갖춰져버려서, 주임 기술자인 남성이 시즈코에게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시즈코에 대해 노부나가는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큰 걸음으로 기구의 탑승구로 걸어갔다.


"무얼 하고 있느냐 시즈코! 너도 오지 못하겠느냐!"


"예!? 저, 저도 말씀인가요?"


"네가 만들어낸 것에 네가 타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것이냐? 이 세상에서 첫 쾌거의 영광을 누릴 자격은 충분히 있겠지"


이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고 깨달은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함께 기구의 곤돌라에 탑승했다.

원래부터 4인승으로 설계되어 있는 곤돌라는, 노부나가와 시즈코 외에 조종수로서 기술자인 남성이 한 명 탑승하여, 이 세 명이 세계 최초의 유인비행을 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남기게 된다. (※역주: 천 년 이상 전에 남아메리카쪽 문명에서 열기구 비행이 이루어졌었다는 설이 있음)

노부나가가 흥미깊게 알코올 버너를 조작하는 기술자를 보고 있는 한편으로, 시즈코와 지상에 남겨진 기술자들이 곤돌라에 묶여 있던 모래가 든 무게주머니가 연결된 밧줄을 몇 개 풀어서 중량을 조정했다.

그러고 있자 드디어 결정적 순간이 찾아왔다. 기구의 부력이 중력과 평행해져, 곤돌라의 하부가 지면과의 마찰을 잃고 미끄러지기 시작하여, 이윽고 완전히 지면에서 떨어져 부유했다.

한 번 지면을 떠나게 되자, 기구는 순식간에 하늘 높이 올라갔다. 지상에서 백 미터 정도의 고도에 도달한 시점에서, 계류 로프가 완전히 당겨져 기구의 상승이 덜컹 하고 멈추었다.


"하하핫! 이것이 하늘에서 보는 세계인가! 보아라 시즈코, 지상에 있는 놈들이 깨알처럼 보인다!"


"네. 실제로는 이것의 다섯 배 정도의 높이에 달할 예정입니다. 여기도 상당히 쌀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여기보다 더욱 상공은 극한의 세계가 됩니다"


"그 정도의 높이에 달하면 확실히 화살도 철포(鉄砲)도 닿지 않겠군.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이 녀석'이 그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이냐"


"네. 그 유용성과 혁신성은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 이미 실증되었습니다. 하늘의 눈을 얻은 우리들이 타케다(武田)에게 밀릴 리가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술자 남성이 또 하나의 기재(機材)의 동작 확인을 마치고, 지상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부나가는 곤돌라에서 사방의 조망(眺望)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고, 기술자 남성이 립 라인(rip line)이라고 불리는 로프를 강하게 당겼다. 그러자, 구피 상부에 설치된 립 패널(rip panel)이라는 밸브(弁)가 열렸다.

뜨거워진 기체가 거기로 빠져나면서 서서히 기구가 고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아무 일 없이 기구의 고도가 낮아져, 기술자가 버너를 능숙하게 조작하여 완만한 착지를 성공시켰다.



시즈코의 위장에 심각한 대미지를 준 유인비행을 마친 노부나가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아즈치(安土)로 돌아갔다.

마치 태풍이 한 번 지나간 듯한 기분을 맛보고 있는 시즈코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오와리(尾張)가 거국적으로 착수하고 있는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에 관한 보고였다.


"치타(知多) 반도(半島)에의 물 공급은 순조로운가"


아이치 용수란 현대에서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오와리 구릉부(丘陵部)에서 시작하여, 치타 반도의 남쪽 끝까지 이어지는 간선수로(幹線水路)의 총 연장 112km라는 터무니없는 규모를 자랑하는 용수로(用水路)이다.

건축자재의 조달을 제때 할 수 없었기에 호안(護岸) 공사는 뒤로 미뤄지거나, 조정지(調整池)의 규모를 당초의 계획보다 축소하는 등 곳곳에 역사적 사실에 따른 아이치 용수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점은 있으나, 어쨌든 물을 공급한다는 그 한 가지에 있어 이례적인 속도로 실현되었다.

게다가 수심(水深) 문제도 있었다. 농업용수 겸 상수도용이라는 목적 외에, 수상 수송에도 이용하는 겻을 염두에 두고 계획되었으나, 선박의 통행을 기대하려면 수심 1미터 정도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수심을 깊게 하면 그에 따라 필요한 공기(工期)는 기하급수적(指数関数的)으로 상승해버린다. 그래서 시즈코는 처음부터 수운(水運)을 내다본 용수로라는 계획을 버리고, 우선 농업용수로서 이용할 수 있는 최저한의 깊이로 변경했다.


"간신히 수로의 공사가 일단락되었으니, 도통(導通) 시험을 겸해서 키소(木曽) 강에서 물을 넣은 거지. 지류수로(支流水路)는 물론, 간선수로조차 충분하다고는 하기 어려운 품질이지만, 일단은 관개(灌漑)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한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어"


완성형을 알고 있기에, 현재의 그것과의 차이에 실의를 감추지 못한 시즈코였으나, 치타 반도의 주민들에게는 그 느낌은 전혀 달랐다.

치타 반도는 토지가 전반적으로 완만하게 경사져있어, 평지가 적다. 게다가 큰 하천도 없고, 경사 때문에 물빠짐이 지나치게 좋아서, 항상 물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던 지역이다.

농업용수의 확보는 오로지 빗물을 저장한 저수지에 의존하고 있고, 반도라는 입지(立地)의 영향 떄문인지 우물을 파도 바닷물이 섞인 물밖에 얻을 수 없었다.

시즈코가 퍼뜨린 경제 정책에 의해 농업 이외의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역시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생활의 행방을 좌우하는 것은 쌀의 생산량이다.

거기에 시즈코가 치타 반도의 남쪽 끝까지 용수로를 개통한다는 터무니없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들은 당초에, 그런 꿈 같은 계획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착실하게 남하해오는 용수로 공사의 모습을 직접 본 주민들은, 서서히 기대를 품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위정자라는 존재는 안 그래도 적은 수확에서 연공(年貢)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뜯어갈 뿐, 주민의 생활 개선에는 그다지 기여해주지 않는 존재였다.

이미 오와리의 평야 지역이 곡창지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이상,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치타 반도까지 수로를 끌어올 필요성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나가와 시즈코는 그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는 계획의 제 1단계를 성공시켰다.

당연하지만 자선사업일리는 없어, 노부나가와 시즈코는 장래에 그만한 식량 생산량이 필요해질거라 내다보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길어봐야 자신을 포함한 조손 삼대 정도까지밖에 이해할 수 없는 백성과, 백 년 후의 일본을 떠올리며 계획을 세우는 위정자의 차이이긴 하다.


그래도 주민들에게 아이치 용수의 존재는 언제부터인가 희망이 되었다. 개통을 우선시하고 있기에 유량도 당초의 계획에 비하면 적은데다, 지류수로 등도 손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시즈코에게는 도저히 만족스러운 완성도가 아니지만, 주민들에게는 생명을 잇는 희망의 길로 보이고 있었다. 금후에도 이어지는 공사에 관해 남부의 주민들은 혈판장(血判状)을 만들어 협력할 것을 자청해왔다.


"토목공사를 하는 이상 항상 인력은 필요하니까 솔직히 도움되네. 자동차를 실현할 수 없는 이상, 사람 손에 의한 운반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아직 계획의 제 1단계가 완료되었을 뿐으로, 간선수로 이외에도 지선수로(支線水路)을 넓혀 모세혈관처럼 뻗어나가게 해서, 모든 주민들이 당연한 듯 담수(真水)를 마실 수 있고, 또 농업용수에 불안을 품을 일이 없는 상태까지 가져가려면 까마득한 시간을 필요로 하리라.


"그 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는…… 알 수 없나"


역사적 사설에서조차 1957년 착공, 1961년 완성이라는 기간을 필요로 한 대사업을, 400년 이상도 전의 단계에서 규모를 축소하였다고는 하나 성공시킬 수 있던 요인으로서 공사용 기계의 존재가 있었다.

목제(木製) 선반(旋盤)에서 시작하여, 제철(製鉄)을 거쳐 서서히 고도의 공작기기를 정비하고, 스털링 엔진의 실용화 이후에도 공업화는 축차적으로 추진된 결과로서, 스스로 달리지는 못하지만 토목용 중기(重機)의 시작(走り)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완성되었다.

동력으로서 증기기관을 채용하고, 유압 실린더에 의한 배력기구(倍力機構)를 갖춘 파워 셔블(パワーショベル, power shovel) '인왕(仁王) 3식(参式)'이 도입된 결과, 토목공사의 효율은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초대(初代) 인왕의 기부(基部)는 완전히 고정된 토대에 파워 셔블만이 붙어있던 물건으로, 2식(弐式)이 되어서 횡방향으로의 회전이 가능해졌다.

더욱 개량이 가해진 3식은, 드디어 토대를 수레(台車)에 태우고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져, 실제 토목 공사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암(Arm) 부분의 중량이 중심을 흐트러뜨리기에, 이동할 때는 매번 분해해서 운반할 필요가 있고, 금속 프레임의 토대가 붙은 수레는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인력으로는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설치할 때에 지면에 고정용의 말뚝을 박아넣고, 증기기관이 내는 폭음은 작업원끼리의 대화도 잘 되지 않을 정도의 음량에 달한다.

그래도 수백 kg에 달하는 바위를 파내어 옮길 수 있다는 인왕의 존재는 굴삭공사(掘削工事)의 혁명이 되었다.

실제로 공사현장에 투입된 결과, 인왕 3식에도 다수의 문제점(不具合)이나 소모에 의한 고장 등도 속출했다.

그러나, 현장에 간이 정비장을 세워서 서포트한 기술자들에 의해 정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축적된 정보가 후계기가 되는 인왕 4식(肆式)에 반영되는 것으로 지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주요 기종명과 그 형식이 숫자로 가산되어간다는 양식은, 시대에 맞춘 네이밍 센스가 결여된 시즈코의 훈도(薫陶)를 받은 기술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서양 문자(横文字)가 당연한 시대에 살았던 시즈코는, 자칫 방심하면 독일어나 영어에서 유래한 이름을 붙이려고 하기에, 전국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탄생시킨 기계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받아들여졌으면 하고 바라는 기술자들에 의한 고육지책이 이 명명(命名) 규칙이었다.


"이렇게 일을 재개하니, 내가 없어도 세상은 점점 나아가는 걸 알 수 있네"


당연한 얘기지만 시즈코가 멈춰서있던 동안에도 세상은 착실하게 전진해간다.

그렇게 되도록 씨앗을 뿌린 것은 다름아닌 시즈코였고, 한 번 싹튼 씨앗은 시즈코가 없어도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성장 결과를 예견하고 적절한 보살핌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성장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물은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다.


"나도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 열심히 늦어진 걸 만회해야지"


시즈코는 한 번 기합을 넣고는, 우선 이것부터라고 말하듯이 서류의 산으로 손을 뻗었다.



기세를 타고 일을 하고 있는 때일수록 꼭 묘한 소동에 말려든다. 그런 징크스가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시즈코가 생각할 만큼 현재의 상황은 혼란의 극에 달해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밧줄(荒縄)로 양 손을 뒤로 하여 구속된 소녀가 두 명 앉혀져 있었다. 소녀들은 허리에 밧줄이 묶였고, 그 밧줄의 끝은 강건한 병사들이 잡고 엄중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사이조(才蔵)는 시즈코의 호위를 자인하고 있기에 항상 곁에 대기하고 있으나, 소동을 전해듣고 구경하러 온 나가요시(長可)와 케이지(慶次)도 더해지고, 게다가 복귀 전의 시즈코의 상황을 보러 와 있던 아시미츠(足満)까지 모여 있었다.

소녀들에게는 영주(領主)의 앞에 끌려나온 것만으로도 공황에 빠지기 직전인데, 거기에 사방에서 이름높은 무인(武人)들에 의한 무언의 압력이 가해지자 질식하기 직전의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거릴 뿐인 불쌍한 상황이었다.


"어ー, 상황을 정리해 볼게. 거기 두 사람이 그늘(物陰)에 숨듯이 하며 뭔가를 거래하고 있었기에, 금지물품(禁制品)을 반입한건가 하고 들이닥쳐보니, 묘한 문서가 나와서 데려왔다는 거?"


확인하듯이 되묻는 시즈코에 대해 병사들은 직립부동의 자세로 긍정했다. 애초에 금지물품이 거래되었다고 해서, 그 처우를 둘러싸고 굳이 시즈코의 지시를 받으러 오는 것 따윈 말도 안 된다.

금지물품마다 조치와 형량은 정해져 있어, 원래대로라면 마치부쿄(町奉行)에 해당하는 관리(役人)의 권한으로 그녀들은 조사를 받은 후에 처단되었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을 다 건너뀌고 영주인 시즈코가 있는 곳까지 사안이 올라온 것이니, 나온 문서인가 하는 게 상당히 골치아픈 물건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시즈코로서는 제 컨디션도 아닐 때 골치아픈 일은 사양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간첩(間諜)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국방(国防)이라는 관점에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몰수한 문서를 상세히 조사했습니다만, 본 적도 없는 양식으로 문자인지 그림 같은 것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뭔가의 정보를 우리나라에서 유출시키기 위한 암호인가 하고 추측했습니다만, 해독은 여전히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특이한 양식의 문서야? 어디어디, 먹으로 착색되어 있기는 한데 붓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날카로운 무언가로 긁적인 듯한 가느다란 문자가 적혀 있었다라……"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필기구는 붓이다. 서민들이 나무조각에 먹으로 직접 문자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보고에 따르면 더욱 섬세한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암호에 대해서는 암호를 담당하는 아시미츠 자신이 재능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교육시키고, 거기에 아시미츠가 알고 있는 모든 암호 양식을 전수한 암호 취급 전문의 부서에서조차 전혀 짐작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애초에 암호라는 것은 당사자끼리 정한 약속에 따르면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성질의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암호 제작과 해석은 술래잡기의 관계가 된다.

그래도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일본인인 이상, 완전히 뜬금없는 암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은 제한적이고,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먼저 만들어낸 이론에 따르고 있기에 해독의 실마리 정도는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 암호라는 건 신경쓰이네. 잠깐 보여주겠어?"


암호라고 하면 너구리의 일러스트가 첨부된 '타'를 뺀 말(※역주: 너구리는 일본어로 '타누키'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문장에서 일부러 타(た)를 빼고(抜き) 쓴 것을 말함. 즉, 문장이나 글 전체에서 일부러 특정 글자를 빼고 쓴 것으로, 너구리를 뜻하는 타누키라는 말과 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여 '타'가 빠진 것이라는 힌트를 주는 것)이나, '센(せん)'』을 뺀 말(※역주: 마찬가지로, 여기서 '센누키'는 병따개(栓抜き)와 음이 같음)등, 퀴즈(なぞなぞ)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 시즈코가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화제의 암호를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즈코의 요망은 즉시 이루어져, 문제의 암호문서가 그녀의 앞에 대령되었다. 독극물 검사 등도 한 듯, 문서의 일부가 잘려나간 후 다시 붙여진 흔적이 있었다.

문서라는 말에서 막연히 한 장의 종이조각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눈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장정(装丁)이 되어 있는 일본식으로 제본된(和綴じ) 책이었다.

확싫이 책이라면 문장량이 많아져서, 필연적으로 해석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만큼 힌터가 되는 소재도 많아져서, 반대로 단서가 자연스레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이 보고해온 것처럼, 붓과는 다른 필치(筆致)로 문자나 그림이 불규칙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은 시즈코가 알고있는 만년필에 의한 필적과 많이 닮았다.


"흐ー음…… 확실히 특수한 필기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네. 그래서 내용은……"


그리고 시즈코가 본격적으로 내용을 읽기 시작하자, 주위의 남성들도 박식한 시즈코라면이라고 기대를 품었다.

뭔가 진전이 있는게 아닐가 하고 다들 기대를 품고 있는 가운데, 구속되어 있는 소녀 두 사람만이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전국시대에 살게 된 지 오랜 세월이 경과하여, 문자는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습관이 완전히 정착된 시즈코였으나, 이 문서는 아무래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거기에 위에서 아래로 읽어간다는 법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마지막 장까지 펼쳐보고 그 순서대로 읽어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즈코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이건 암호가 아냐. 그냥 18금 동인지(同人誌)야. 그것도 수륙양용(両刀)……)


이 시대에는 드물게 큰 삽화가 첨부된 소설 형식의 내용으로, 초반을 읽었을 때는 젊은 무가(武家)의 당주가 가문 단절(お家断絶)을 계기로 집을 떠나 마음내키는 대로 일본을 여행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목격한 풍물(風物)을 즐기며 기행문 같은 스타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번 여관에 도착하니 정사(色事)로 내용이 바뀌었다.

길에서 스친 여행자와 하룻밤을 함께 한다거나, 찻집의 간판 여점원(看板娘)과의 뜨거운 로맨스가 그려져 있질 않나, 강건한 낭인(牢人)에게 덮쳐지거나, 반대로 미소년을 덮치거나…… 하는 남색(衆道) 적인 전개까지, 서투르면서도 엄청난 열정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성대하게 뒤통수를 맞은 탈력감 때문에 한숨을 쉬고 싶어진 시즈코였으나, 역시 그 이야기를 쓴 필기구가 신경쓰였다.


"……이 두 사람의 소지품 중에 유리나 금속으로 된 가늘고 긴 봉 모양의 물건은 없었어? 아마도 끝이 뾰족하고 홈이 파여있을거라 생각해. 그리고 먹물 같은 것이 들어 있는 용기. 그걸 찾아와줘"


"옛"


시즈코는 최소한의 인정으로서 동성(同性)인 아야(彩)에게 두 사람의 소지품을 뒤지도록 명했다. 곧 아야가 두 사람의 짐에서 시즈코가 지정한 물건을 찾아내어 가지고 왔다.

경필(硬筆)을 모르는 아야에게는 뭐에 쓰는 건지 상상할 수 없는 모양이었지만, 시즈코가 볼 때는 일목요연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일체의 장식이 배제된, 실용성에만 집중한 투박한 디자인의 유리로 만들어진 펜이었다.

끝이 깨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인지 천으로 둘둘 말려 있긴 했으나, 먹물 자국에서 사용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 지금부터 내가 묻는 것에 정직하게 대답하도록 해"


"예, 옛"


"먼저 말해두면, 나는 이게 암호가 아니고 어떤 것인지 이해했어. 책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묻겠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건 자유지만, 나라는 이해자가 적으로 돌아서는 것은 각오하도록"


약간 과하게 겁을 준 후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자, 두 사람 다 창백한 안색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다.

시즈코가 앞서 명언한 대로, 문서 자체에는 윤리적인 면은 둘째치고 문제는 없었다. 필기구로 사용된 유리펜의 존재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 이걸 어디서 손에 넣었지?"


질문하면서 시즈코는 유리펜을 두 사람에게 보이도록 내밀었다.

유리펜이란 사사키 사다지로(佐々木定次郎)라는 풍경(風鈴) 기술자가 1902년에 고안한 필기구이다.

펜촉에 새겨진 홈에 의해 모세관 현상이 발생하여, 잉크병에 펜촉을 담그면 자동적으로 잉크가 보충된다는 것이다.

금속제의 펜촉을 갖는 만년필과는 달리, 상하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펜을 놀릴 수 있는 등의 이점도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전용의 잉크라는 것도 필요없어서, 먹물이나 수채화 물감 등 수용성(水溶液)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뭐든지 이용할 수 있어, 볼펜이 보급되기까지 일본에서 사무용품으로 중히 여겨진 명품(逸品)이었다.

소재에 유리를 사용하고 있기에 충격에 약하고, 끝부분이 마모되면 수리도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나, 그 매끄러운 필기감은 훌륭하여, 현대에서는 펜촉을 교환할 수 있는 방식의 것도 존재한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는 유리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기보다 이것의 제조법을 전수한 것은 다름아닌 시즈코이다.

따라서 유리펜의 현물이 여기에 있는 것은 딱히 이상하지는 않지만, 유리펜은 '아직 시장에 유통되고 있지 않다'라는 상황을 가미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책을 한 권 써낼 수 있는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현물이 있으면서 시장에 나돌지 않고 있는 이유. 그것은 유리펜의 제조를 전수한 기술자가 오와리가 아니라 나가하마(長浜)에 거점을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정의 심부름으로 이마하마(今浜, 현재의 나가하마)를 찾아갔을 때, 수상한 노점상(露天商)에게 샀습니다. 수상한 풍채의 상인이었습니다만, 마치 요술처럼 슥슥 글자가 써지는 모습과,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기에……"


벌벌 떨면서 서로 몸을 기대고 있는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쪽의 소녀가 입을 열어 구입한 경위를 밝혔다.

안 좋은 예감일수록 잘 맞는 법으로, 그녀의 증언을 다 들은 시즈코는 눈가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것은 자신만의 재량으로 끝낼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버렸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두통이 일었다.


"왜 그래 시즈코? 금지물품이라고 하면 현물을 압수하고, 유통에 관여한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면 끝나는 이야기 아냐?"


고민하고 있는 시즈코의 모습이 신경쓰인 나가요시가 난폭한 해결책을 입에 올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도 죽인다는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안색이 퍼런 색을 넘어서 납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번 무거운 한숨을 쉰 시즈코는, 두 명의 소녀를 남기고 사람들을 물러가도록 명했다. 두 사람의 신병을 아시미츠에게 넘긴 병사들이 물러나고, 실내에는 측근들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주위에서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기척으로 감지한 사이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다려 시즈코가 입을 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이건 하시바(羽柴)님이 이마하마의 명산품으로 팔려고 하고 계시는 유리펜의 시제품(試作品)이라고 생각해요"


"……"


시즈코로부터 전해진 충격적인 사실에 견디지 못했는지, 소녀 두 명은 졸도하여 쓰러져 버렸다.

즉시 두 사람의 목덜미에 손을 대고 맥박을 확인한 아시미츠였으나, 호흡에 이상이 없었기에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눕혀놓고 시즈코 쪽을 돌아보았다.


"요즘 한동안 하시바 님은 실패(不手際)의 연속으로, 주상께 좋은 보고를 드리지 못했었죠. 하리마(播磨)에서는 아카마츠 씨(赤松氏)의 저항에 애를 먹고 있고, 이마하마의 경제 상황도 전비(戦費)가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불안해요"


시즈코의 말대로, 최근의 히데요시(秀吉)는 울지도 날지도 못한다(鳴かず飛ばず, ※역주: 오랫동안 활약하는 일도 없이 남한테서 거의 잊혀진 상태에 있는 모양)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리마 침공에서는 공을 서둘렀기에 아카마츠 일족의 반란을 허용하고, 셋츠(摂津)조차 반(反) 오다 세력에게 빼앗겨 버렸다.

한 떄는 하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도 호응하는 듯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다행히 그가 반기를 드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가 노부나가에게 굴복했다는 상황의 추이에 의한 것이 다분하여, 히데요시의 분투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하리마 침공에서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한 히데요시는, 그의 영지(所領)인 이마하마의 경제상황도 핍박되어버렸다.

애초에 빚(借金)으로 경영하고 있는데, 무리해서 전비를 쥐어짜냈기에 자금 융통이 막혀버린 것이다.

시즈코가 밀어주고 있는 유리 제품이 없었다면 이마하마는 오다 영토 내에서도 최빈(最貧) 지역으로 전락해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다.


초조해진 히데요시는 추가로 실책을 저질러버린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도로 정비였다. 영지의 도로 정비는 오다 가문이 장려(推奨)하고 있는 사업이며, 언젠가 손을 대야 하는 과제이기는 하다.

도로 정비라는 인프라 사업은 예외없이 거액이 필요한데, 그 투자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데요시는 토우고쿠(東国) 정벌 후의 사람들의 이동을 기대하고, 토우고쿠에서 세키가하라(関ヶ原)를 지나 이마하마를 경유하여 쿄(京)로 향하는 주요 루트의 정비에 나섰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그렇게까지 뼈아픈 타격이 되지는 않지만, 세키가하라에서 이마하마로 향하는 길과 병행하여 세키가하라에서 마이바라(米原)로 향하는 루트에도 손을 대 버린 것이 치명상이 되었다.


히데요시의 예상으로는 마이바라에서 나가하마로 북상하는 사람들의 흐름이 생겨나야 했다. 세키가하라에서 마이바라로 길이 이어지자마자, 이마하마를 경유하지 않고 직접 아즈치(安土)로 남하하는 흐름이 생겨나버린 것이었다.

큰 돈을 썼는데 영지에 떨어지는 돈이 적어지게 해버렸다는 대 실패를 해버린 히데요시는, 히데나가(秀長)를 통해 시즈코에게 다시 상담을 요청했다.

뭔가 즉효성이 있는 시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해를 넘기지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히데요시에게 시즈코가 내준 것이 유리펜이었다.

이미 이마하마는 유리 제품을 다루는 공방이 많아져, 고급품의 유리 제품은 쿄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그 기술력을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이 유리펜이다.

정보 관리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받아드는 보고서의 대부분은 여전히 붓(毛筆)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붓으로는 어쩔 수 없이 기록 면적에 대해 문자 하나가 점유하는 영역이 커져서 보고서의 매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정보를 기록하여 장기간 보존할 수 있을 만한 품질을 가진 종이는 가격이 비싼 것을 고려하면, (유리펜의) 잠재적인 수요가 어느 정도가 될 지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실용품(実用品)으로서의 유리펜과, 예술품으로서 최고급의 유리펜을 주상께 헌상하고, 그걸 오다 영토 내에서 대대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으로 경제의 부활을 꾀하려고 했던 거에요. 그런 상황에서 시제품이 유출되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에서 처음을 좋아하시는 주상께서는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상품을 원하실까요? 뭐, 실용품 쪽에 관해서는 실리를 취하시겠지만요"


연민을 담은 시선을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보내고 있는 시즈코에 대해, 그런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배수진(背水陣)을 친 상태의 히데요시에게 이 유리펜은 실패할 수 없는 상품이다. 그만큼 시제품이 유출되어 버렸다라는 등의 불상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인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두 사람을 죽여서라도 입막음을 시도하고, 협력자인 시즈코에게도 침묵을 지키도록 요청해올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대로는 내게는 두 사람을 비호할 만한 명분이 없어요. 인도를 요청받으면 응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겠죠"


"……"


"가엾지만 몰라서 그랬다로는 끝나지 않아요. 실제로 시제품이 부정 유출되었다는 건 하시바 님의 실패(不手際)이지 이 두 사람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지만, 사람들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 없는 이상은……"


시즈코가 말하는 두 사람의 결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쾌한 것은 될 수 없었다. 차림새도 깔끔한 애젊은(うら若い) 소녀가 헛되이 목숨을 잃는 모습 같은 건 시즈코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정을 가졌다면 누구나 보고싶지 않으리라.

당사자 두 명은 정신을 잃고 있었고, 그 두 사람을 가엾게 생각한 사람들은 두 사람을 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침묵해버려 무거운 공기가 가득찼을 때, 시즈코가 크게 손뼉을 쳤다.


"뭐 최악의 상황으로는 그리 되겠지만, 본 적도 없는 상품에 가치를 발견하고 제대로 사용해보인 재녀(才女)를 헛되게 죽게 하는 건 아깝지요. 어떻게 될 것 같은 방법이 있는데, 다들 도와주지 않겠어요?"


막다른 곳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겠다고 말하는 시즈코의 비책을 방해하려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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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5 1576년 6월 상순



비트만과 바르티, 두 마리의 부보(訃報)는 노부나가에게도 즉시 전해졌다.


"그래, 갔는가"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그 한 마디만 중얼거리고, 그 날의 예정을 전부 중지하도록 지시를 내린 후,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엄명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매사를 예정대로 처리하고 싶어하는 노부나가로서는 이례적인 직무태만이지만, 도저히 그걸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부나가가 풍기는 분위기가 갑자기 잘 갈린 칼날처럼 예리해져, 자칫 말실수를 했다간 베여죽을 것이 예상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노부나가가 나간 후에도, 남겨진 소성(小姓)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굳은 상태였고,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꽤나 일찍 돌아오셨군요"


노부나가가 자기 방으로 이어지는 맹장지를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붉은 융단(緋毛氈) 위에 우아하게 앉아서, 붉게 칠해진 술병(銚子)에서 잔으로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부나가의 정실(正室)인 노히메(濃姫)였다.

노부나가는 본래 오와리(尾張)에 있어야 할 노히메가, 아즈치(安土)에 있는 저택(屋敷)의 자기 방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녀가 신출귀몰한 것은 늘 있는 일이라며 일찌감치 따져묻기를 포기했다.

노부나가는 불쾌한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노히메가 내민 잔을 받아들더니 단숨에 비웠다.


"이거이거, 주군답지 않게 드시는군요. 무어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사옵니까?"


"다 알고 왔으면서 뻔뻔하구나!"


노부나가는 노히메에게 거칠게 술병을 뺏어들고는 잔에 콸콸 술을 부어서 노히메에게 내밀었다. 노히메는 생긋 웃더니, 잔을 받아들어 마찬가지로 단숨에 비웠다.


"그래서, 너는 시즈코와 함께 있는 게 아니었느냐?"


"호홋. 자기 일 때문에 벅차할 때 윗사람이 있어서는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지요. 다행히 시즈코를 떠받쳐줄 사람은 짚이는 바가 있기에, 전언을 남기고 이쪽으로 와서 소첩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했나이다"


"……무어라 말했느냐"


마음의 기미(機微)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노히메가 남긴 말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노부나가가 물었다.


"당분간 네 일에만 신경쓰거라. 뒷일은 내가 잘 돌봐줄 터이니, 푹 쉬도록. 사례는 저번의 '초코렛케이크'면 되느니라 라고 했지요"


"후……. 그 녀석이 부담가지지 않도록 구체적인 사례까지 요구하다니. 너도 꽤나 시즈코에게는 무른 것 같구나"


"주군만 하실까요. 게다가 딴 마음 먹지 않고 그만큼 헌신해주는 신하가 달리 어디 있사옵니까?"


"확실히 그렇군. 그럼 시즈코는 네게 맡기겠다. 나는 내가 할 일이 생겼다"


"어머나, 그래서는 소첩이 청을 드리러 온 의미가 없사옵니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의 마음(我が侭)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옵니까?"


"흥! 어차피 나는 여심(女心) 따윈 모른다. 마음대로 말해보거라"


깔깔 웃으면서 노히메가 말하자,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찡그린 표정으로 일어나려던 동작을 멈추고 다시 주저앉았다.

말없이 노부나가가 내민 잔에, 노히메는 술병에서 술을 따르며 시즈코를 위해 노부나가가 수고해줬으면 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노부나가는 끼어들지 않고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술잔의 술을 다시 한번에 비웠다.


"거 참 번거롭군. 하지만 네가 말한다면 그것이 시즈코를 위한 것이겠지. 뜻대로 해라. 나는 영주(国人)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버렸다. 갑자기 인기척이 사라진 방 안에서, 노히메는 작게 중얼거렸다.


"참 요령 없으신 분이라니까"



비트만과 바르티가 시즈코의 곁을 떠난 밤이 지나고, 시즈코는 예정대로 산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폐쇄했다.

산은 옛부터, 신(神)과 동일시되었기에 사람의 섭리가 통하지 않는 땅이며, 늙은 짐승은 그 몸을 젊은 짐승에게 내맡기는 것으로 생명이 이어져간다.

그것은 유구한 옛날부터 반복되어 온 자연의 이치이자 법칙이었다. 그것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하다못해 그 모습을 사람들 눈에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가족인 시즈코의 바람이었다.

시즈코가 폐산 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것도, 그만한 시간이 있으면 그들의 유해는 백골화될 거라 예측하고, 그것을 회수하여 장사지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농담은 하지 말아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시즈코는 봉서(封書)의 내용을 다 읽자, 어깨를 떨구면서 말했다. 시즈코의 부탁으로 함께 내용을 확인했던 아야(彩)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즈코의 말에 대답했다.

시즈코가 농담인가 하고 의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조서(詔書)라고 하는, 천황(帝)의 명령을 전달하는 공문서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시즈코가 금족령(禁足令)을 내린 산을 신체산(神体山, 신이 깃들었다고 하는 산)으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조서라는 건 작성 절차가 복잡한데다, 폐하(帝)는 물론이고 공경(公卿, ※역주: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3품 이상의 고관)들 전원의 승인이 필요한 거 아니었던가?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언제부터 정해졌던 거지?"


조서란 문자 그대로 조(詔, みことのり, 천황의 명령)을 전하는 서류이다. 즉, 국가에 큰 일이 있을때 공포(発布)되는 중요 서류이며, 격식이나 절차가 중시되는 즉위(即位)나 개원(改元, ※역주: 연호를 바꾸는 것) 등 의례적일 때 사용된다.

시즈코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시작한 것에 대해 공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근대 일본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서가 쇼와(昭和) 천황(天皇)(※역주: 히로히토 일왕)이 내렸던 '대동아 전쟁(大東亜戦争) 종결(終結)의 조서'로, 소위 말하는 옥음방송(玉音放送)의 원고가 된 것이다. (※역주: '대동아 전쟁'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가리켜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의도가 담긴 명칭이긴 하나, 여기서는 작가가 해당 전쟁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쓴 게 아니고 그냥 해당 문서의 명칭의 일부이기에 원문대로 대동아 전쟁이라고 옮김)

현대에서도 국회의 소집이나 중의원(衆議院) 해산, 참의원(参議院)의 통상선거(通常選挙) 등이 있을 때 발행된다고 하면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상(喪)이 끝난 1년 후에 건립 예정인 신사에 대해서도, 시텐노우지(四天王寺)에서 콘고우구미(金剛組, ※역주: 시텐노우지 건설에 관여했던,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가 파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이름높은 번장(番匠, 현대에서 말하는 궁전목수(宮大工))들이 자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석공(石工)으로 유명한 아노우슈(穴太衆)는 언제라도 달려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잠깐, 잠깐! 뭔가 점점 일이 커지는 거 아니야? 나는 작은 신사(社)를 세워서 그 아이들을 기리려고 했을 뿐인데……"


시즈코의 말에 아야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시즈코의 자기 평가가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보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시즈코는 아무리 큰 일을 해내더라도 항상 대신할 사람이 있는 일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근저(根底)에 깔려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시즈코의 대역을 해낼 수 있는 인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즉, 시즈코의 동향은 항상 유력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런 시즈코가 모든 공직에서 벗어나 일 개인으로서 긴 휴가를 가진다라는 정보를 입수하면 어떻게 될까?

숙적(宿敵)으로 간주되었던 혼간지(本願寺)와의 결판이 난 직후의 일인만큼, 이상한 상상을 하는 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 때 노부나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시즈코를 위해서 번장들을 모집했기에 이번의 소동으로 발전되었다.


"폐하나 조정(朝廷)의 의향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번장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바가 있습니다"


"어!? 무슨 얘기야?"


"시즈코 님, 당신꼐서 지금까지 베풀어오신 은혜가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으ー음, 원한을 살 만한 기억은 꽤 많지만, 은혜갚음을 받을 건 그렇게 없는 것 같은데……"


도무지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듯 아야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시즈코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라, 결국 말로 하기로 했다.


"자각이 없으시다는 것도 문제군요. 시즈코 님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난세에서 다른 곳까지 원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기술의 보호나 계승을 목적으로 손을 내미셨겠지만, 건강이 나빠진 번장을 받아들이거나 자금원조를 제안하거나 한다는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란 말입니다. 자기 팔다리를 자르는 심정으로 동료를 저버려야 했던 그들이,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ー, 목수(大工) 일에 사고는 항상 따르는 거니까, 그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건 사용자 측의 태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나한테 은의(恩義)를 느껴줄 거라면 그걸 다른 사람한테 돌려줬으면 좋겠네. 분명히 은혜돌림(恩送り, ※역주: 우리말로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임의로 의역함, 영어로는 pay it forward라고 하는 듯)이라고 하지? 다만, 그런 거라면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으니, 이번에는 고맙게 받기로 할까"


"그러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처(仏)의 가르침에 '현정유수(懸情流水) 수은각석(受恩刻石) (정을 베푼 일은 물에 흘려보내고(※역주: 잊어버리라는 뜻), 받은 은혜는 돌에 새겨서 잊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시즈코 님께서 물에 흘려보내신 은혜가, 돌고 돌아 되돌아왔다고 생각하시고, 그들의 은혜갚음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은혜갚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게 두렵지만, 이번에는 솔직히 도움이 되네. 아무래도 역사적인 신사를 건립하는 기술은 우리들은 가질 수 없으니까"


"이것도 하늘의 뜻(配剤)이겠지요. 시즈코 님께 고난이 찾아오면, 그것을 돕겠다는 제안(申し出)이 있는 것이니까요. 당신께서 지금까지 타인에게 베풀어오신 공덕(功徳)을 하늘이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잘못된 길을 가시려 한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신하의 의무입니다"


"……고마워"


평소답지 않게 마음을 담아 말하는 아야를 앞두고, 시즈코는 간지러움을 느끼면서도 감사를 표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시즈코는, 머리를 흔들어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켰다.

조서의 건에 대해서는 조정이 선의만으로 움직일 리도 없기에, 뭔가 꿍꿍이속(下心)이 있는 것이리라.

그래도 한 번 공포된 조서가 취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그에 의한 영향을 제어하는 것이 위정자의 책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생활의 일부를 산에 의존하고 있는 백성들이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하지만, 전례가 없는 일인만큼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솔직히, 신체산이 되는 걸로 어떤 영향이 나올지는 예측이 되지 않아. 다만, 좋던 나쁘던 혼란을 틈타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은 나올테니, 평소 이상으로 주의해야해"


"네, 알겠습니다. 저희들의 힘에 부칠 것 같으면, 주상(上様)의 힘도 빌릴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괜한 걱정이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말야. 게다가 이 세상에 있는 비극이라는 건, 악의에서 비롯되는 것보다 선의에서 비롯되는 쪽이 많지. 비트만과 바르티의 상을 치르는 동안 정도는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했는데……"


"시즈코 님께서는 지금까지 지위에도 재산에도 명예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으니, 처음 보는 빈틈 때문에 기가 산 것이겠죠. 그러한 무례한 놈(慮外もの)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니 뭐, 적극적으로 적대하지 않아도 돼. 다만 주의는 하자"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함께 주의하자며 말을 마무리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녀들의 걱정은 기우(杞憂)가 되었다.

조정으로부터의 간섭에 대해서는,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조서를 막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철저하게 손을 써서 이후의 움직임을 모조리 봉쇄했다.

사키히사와는 대조적으로 노부나가는 정면에서 공가(公家)들을 규탄했다. 몸을 바쳐 섬겨준 신하의 공을 기려 휴양을 주었는데 거기에 소동의 씨앗을 가져온다는 것은 오다 가문에 대한 도전이냐고 물은 것이다.

한 쪽은 무가(武家)의 정점이 되어가고 있는 노부나가와, 칸파쿠(関白)라는 공가의 정점인 사키히사에게 양쪽에서 끼이게 되자,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버린 것을 깨달은 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시즈코로서는 거창한 의식 같은 건 치를 생각도 없었으나, 공포되어버린 조서의 영향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비트만과 바르티를 산의 진수신(鎮守神)으로 삼는 지진제(地鎮祭)가 치러지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지진제라고 되어 있으나, 그 내실은 장례(葬儀)와 장송(葬送)도 겸하고 있었다. 본래는 한식구끼리 조용히 치를 생각이었기에,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되는 것은 예상밖이었다.

조정으로서는 산꼭대기에서 의식을 치를 생각이었으나, 시즈코가 금족(禁足)을 완강하게 굽히지 않았고, 또 그녀의 후견인 두 사람이 그것을 지지했기에 산기슭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참석자들도 쟁쟁한 인물들 투성이였고, 그러한 권위를 신경쓰지 않는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케이지(慶次)나, 방약무인(傍若無人)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나가요시(長可)조차, 시즈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사람들은 모여 있으니까 용서해 주겠지?)


산꼭대기를 향해 시즈코는 눈을 감고 비트만과 바르티가 자신들을 지켜봐주기를 기도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천황의 위신에 관련되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천황의 대리인으로서 칸파쿠인 의부 사키히사를 필두로, 그의 파벌에 속하는 공가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또, 야마시나 토키츠네(山科言経) 등의 문인(文人)들도 참가했다.

토키츠네는 이 날의 사건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누구도 이름조차 모르는 산을 영산(霊峰)으로 삼는 제사(祭事)이지만, 시종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오와리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며,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참가자의 면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놀랍게도 혼간지(本願寺)로부터도 대리인(名代)이 참석했다. 아직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사자를 보내고, 또 그것을 받아들인 오와리 측의 도량넓음에는 놀랐다. 실컷 호된 꼴을 당한 상대조차 경의를 표하게 할 정도의 인물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목격한 시즈코의 모습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것은, 다분히 허를 찔렸기 때문일까.

그 이외에도 이 날의 일을 기록한 문인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지진제 그 자체보다도, 그 후에 열린 음복 잔치(直会)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오다 가문에서는 노부나가, 노부타다(信忠), 노부타카(信孝) 세 명이 참석하고, 노히메나 오이치(お市) 등은 참가를 삼갔다.

노히메는 시즈코가 요란하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어, 조금이라도 부담이 가벼워지도록 뒷바라지(裏方) 전반에 대한 협력을 자원해주었다.

그녀의 조력 덕분에 다소의 여유를 가지고 제사에 임하고 있는 시즈코는,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노부타다에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노부타카는 다른 누구에게 붙잡혔는지 이 자리에는 없었다.

담담히 고개를 숙이는 시즈코에 대해, 노부나가는 그녀에게 몸을 일으키게 하더니 어린애에게 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일에 시즈코가 놀라 눈을 크게 떴으나, 노부나가는 상냥한 눈빛으로 "너는 잘했다"고만 말하고 가버렸다.

노부타다도 노부나가를 따라 걸어갔으나, 시즈코와 엇갈릴 때 그녀의 어깨를 두 번 가볍게 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능한 그 나름의 최대의 위로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졌으나 눈물을 닦고 그들을 전송했다.


애초부터 정형화된 절차가 정해져 있는 지진제인 만큼 그다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종료되자, 연회에 해당하는 음복 잔치로 이행되었다.

음복 잔치란 신주(神酒)로 건배하고, 공양 음식(お供え物)을 다 같이 먹는 것을 말한다.

생각지 못하게 큰 일이 되어버렸으나, 그곳은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오와리의 산물이 어디 한번 보라는 듯 제공되어, 누구나 본 적도 없는 요리나 술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즈코의 식구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제사(祭事)라서, 술이 들어가버리니 엄숙한 분위기 따윈 날아가버리고 대단히 시끌벅적해져갔다.

기분이 처지고 있던 시즈코에게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고마웠다.


"시즈코 님, 소승(拙僧)도 약간 설교 흉내를 내도록 하죠"


대구(鱈)의 카레튀김과 야채볶음 큰 접시를 혼자서 비운 카레이교자(華嶺行者)가, 회장 구석에서 혼자 서 있는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명백히 괴이한 풍모를 하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않고, 시즈코 자신도 눈 앞에 올 때까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카레이교자는 시즈코가 진정하길 기다려,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닌데 신기하게도 뚜렷하게 귀에 남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시즈코 님께서는, 당신 곁을 떠난 두 마리에 대해 충분한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계시겠죠.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라는 것입니다.아무리 만전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후회는 남을테고, 신불(神仏)이 아닌 당신께서 아무리 손을 써도 완벽(十全)한 배려 같은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레이교자의 말은 결코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마음에 스르르 스며들어왔다.

시즈코보다도 훨씬 많은 삶과 죽음을 전송해온 사람이 도달한 경지에서 나오는 말은, 시즈코의 후회를 오만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을 조금 가볍게 해주기도 했다.


"죽음이란 종언(終焉)이 아닙니다. 가족인 두 마리가 빠진 일상의 시작이며, 남겨진 사람은 각자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떠나간 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에 붙잡혀서는 안 됩니다"


"……"


"이러한 신사(神事)를 열지 않아도, 산으로 돌아간 그들은 우리들을 지켜봐 주겠지요. 오다 님께서 부르짖는 천하포무(天下布武). 대단한 생각입니다만 산들이 볼 때는 그조차도 찰나(刹那)의 꿈. 설령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 스러지더라도 산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겠지요. 당신께서는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셔서(気負い過ぎ), 거꾸로 당신 자신이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겠지요. 바로 잊어버리시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당신을 지금 뒷받침해주는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조금 기분이 편해졌어요"


"이거 참, 땡중(生臭坊主)이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지금을 소홀히 하신다면, 두 마리도 안심하고 잠들 수 없음을 잊지 마시길"


그렇게 당부를 하며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카레이교자는 인파 속으로 되돌아갔다. 아까까지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모는 듯한 투명한 눈빛은 사라지고, 강렬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카레 전골의 냄새에 흔들흔들 이끌려가는 모습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그 너무나 큰 낙차(落差)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공복감을 떠올렸다. 그 때까지는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았던 요리에 젓가락을 뻗어 입에 넣고 씹자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의 헌신에 의해 시즈코는 이 전국의 세상에서 삶을 이었다. 그들의 주인으로서 시즈코가 해야 할 책무란, 비탄에 잠기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남겨준 생명을 다음 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자식인 카이저나 쾨니히 등은 동족의 자손을 남기지 않았으나, 울프독이라는 형태로 그 피를 남기고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이 끊겨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이해했다.


"달이 예쁘네"


음복 잔치라 칭한 연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으나, 서서히 그 규모는 작아지고 있었다. 잠들어버린 사람이나 취해 쓰러진 사람들은 그때그때 아시미츠(足満) 등이 밖으로 실어내가고 있었기에, 회장에 남아있는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급사(給仕)나 정리를 하고 있는 몸종(小間使い)이나 허드렛일꾼(下働き)들에게 뒤를 맡기고 시즈코는 음복 잔치 자리에서 나왔다.

이미 날은 완전히 저물어서, 하늘에는 현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맑은 달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자야지.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노부나가도 노부타다도 결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즈코는 그들이 자신의 복귀를 바라고 있는 것을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것에 대해서는 박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충분한 시간을 받았고, 개인적인 감정과 영주로서, 또 노부나가의 신하로서 수행해야 할 책무는 별도이다.

게다가 이걸로 그들(※역주: 비트만과 바르티)과 결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즈코의 인생은 지금부터도 계속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때때로 그들을 그리워할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부터 큰 일이 되려나"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독백했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통해 많은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으나,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천성의 감에 의해 그것을 감지한 노부나가는 자복(雌伏)의 시간을 끝내고, 웅비(雄飛)의 때를 맞이한 것을 천하에 알리려 할 것이다.


"주상께서는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신 걸까? 아무래도 지나치게 우쭐한 생각일까"


자조기미로 중얼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녀의 생각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단번에 공세에 나선다. 그러기 위해서도 자군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는 시즈코의 존재가 필요불가결했다.

그녀가 만전의 상태를 되찾을 때 까지는 싸움을 시작(戦端を開く)할 수는 없다고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녀가 전선(戦線)에 복귀하면 노부타나와 시즈코의 제 2차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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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4 1576년 6월 상순



벌레 울음소리조차 끊긴 밤중. 시즈코는 손등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차가움에 눈을 떴다.

시즈코는 가신들에게 협력을 부탁한 이래, 두 마리와 같은 헛간에 침구를 들여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뭔가 달랐다.

실내를 비추는 달빛에 의지해 주위를 확인하니, 비트만과 바르티의 침상이 비어 있었다.

애초에 채광용의 창문(突き出し窓)이 닫혀 있었기에 달빛이 비추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광원(光源)을 따라가보니, 역시 헛간의 입구가 열어젖혀진 상태였고, 거기서 푸른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람을 느낀 손등을 달빛으로 향해보니, 약간 젖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마리가 이별의 인사를 하고 간 것이리라.


"드디어 가버리는구나……"


이 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어버린 침상을 직접 눈으로 보니 쓸쓸함이 가슴에 치밀어올랐다.

볼을 흐르는 뜨거운 것을 느끼고, 시즈코는 자신이 눈물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거칠게 소매로 눈물을 닦았지만, 끊임없이 넘처흐르는 눈물은 멈춰주지 않았다.

이제 그들과의 이별(別離)은 피할 수 없으나, 전송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초여름이라고는 하나 밤의 공기는 차갑다. 시즈코가 달빛의 세계로 뛰쳐나가자, 옆에서 그녀에게 상의를 걸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시미츠(足満) 아저씨…… 어째서 여기에?"


"그런 얇은 옷으로는 감기 걸린다. 뭐, 두 마음 먹는 법 없이 널 섬겨준 충신들이 길을 떠나는 것(門出)이다. 전송하는 사람이 있어도 벌은 안 받겠지. 게다가 우리들 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아시미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자, 본채(母屋)의 툇마루(縁側)에 케이지(慶次)와 카네츠구(兼続)의 모습이 보였고, 더 안쪽에는 시로쿠(四六)도 있는 듯 했다.

시즈코가 아시미츠와 함께 저택의 정문까지 가자, 평소에는 닫혀 있는 문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최소한의 등불(燈明)만 켜놓고 좌우에 시립하고 있었다.

말없이 인사를 하는 문지기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두 사람은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달빛만이 어둠을 비추는 가운데, 두 마리의 늑대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서서히 작아지는 뒷모습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달려나가 버릴 듯한 자신을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웃으면서 보내주거라 시즈코. 금생(今生)의 이별이기는 하나, 저 녀석들은 멋지게 맡은 바 책무를 해낸 것이다. 늙고 추레해져 볼썽사나운 시체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의 긍지를 인정해주는 것이 주인이 할 일이다"


넘치는 눈물과 미쳐 날뛰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즈코는 자신의 양 뺨을 힘껏 손바닥으로 때렸다. 정숙이 지배하는 창백한 세계에서 박수를 치는 듯한 소리가 성대하게 울려퍼졌으나, 아픔 덕분인지 눈물도 멎고 각오가 섰다.


"고마워요, 아시미츠 아저씨. 우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전송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뿐이니까요"


비탄에 잠겨 울며 전송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헌신과 충의에 감사를 표하고, 언젠가 자신도 갈 곳으로의 출발을 웃는 얼굴로 전송하는 것만이 주인으로서 마지막 할 일이리라.

그렇게 시즈코가 각오를 굳히고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실로 많은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산으로 떠나가는 두 마리를 전송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불요불급(不急不要)의 야간 외출이 금지된 백성들은, 각자의 집에서 현관문 앞에 앉아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두 마리의 모습을 전송하고 있었다.

백성들에게도 시즈코의 곁에 붙어서 백성들에게 좋은 영주인 그녀를 지키는 늑대들은, 언제부터인가 짐승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되어 있었다.


"비트만, 바르티. 너희들의 삶을 인정하고, 감사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어.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해"


모두에게 전송받으며 멀어져가는 그림자는, 열려진 상태인 산으로 이어지는 외문(外門)을 지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팽팽해졌던 실이 끊어진 듯, 그 자리에 주저않은 시즈코에게 밤의 정숙을 찢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아오오오오ー옹"


시력은 쇠퇴했으나, 그들의 민감한 후각은 전송하러 나와 있던 시즈코의 존재를 느낀 것이리라.

이별을 아쉬워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준 주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쥐어짜 마지막 인사를 보낸 것이다.

단 한 번의 울음소리였으나, 시즈코는 그래도 비트만과 바르티와의 사이에 확실히 존재했던 인연(絆)의 증거를 느꼈다.

이별의 의식은 끝난 것이다.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리는 끊기고, 두 마리는 어둠 속에 솟아 있는 산 속으로 사라져갔다.



본채의 툇마루에서는 케이지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수다스러운(饒舌) 케이지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만 달을 올려다보면 잔을 비워갔다.

그의 왼쪽에는 카네츠구가 앉아, 마찬가지로 평온한 표정으로 술을 핥듯이 마시고 있었다. 동석하고 있는 시로쿠는, 두 사람과 달리 진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요?"


시로쿠가 결심하고 케이지에게 물었다. 시로쿠의 질문은, 비트만과 바르티가 헛간에서 떠나는 것을 그냥 말없이 전송한 것에 대해서이다.

툇마루에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전송하고 있는 케이지는, 그 뒷모습에 대고 "잘 가라(達者でな)"고만 말하고, 카네츠구는 "언젠가 우리도 갈 거다. 또 보자"고 말하고 잔을 비웠다.

어른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혼란을 일으킨 시로쿠였으나, 두 마리가 모습을 감추는 의미를 들었던 그는, 떠나가는 그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게 전부였다. 케이지와 카네츠구는 떠나가는 두 마리에 대해 시즈코에게 알리지조차 않고, 다만 툇마루에서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시로쿠에게는 그게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어,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를 진정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이미 각오를 굳혔다. 쓸데없는 도움은 녀석들의 각오에 먹칠을 하는 게 되지. 믿고 보내주는 게 예의라는 거다"


"그렇지. 그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소. 뜻밖의 이별이 아닌, 각오한 이별이오. 동정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인 실례가 되겠지"


방치(neglect)를 당하며 성장하고, 시즈코 저택에서의 두터운 대우에 의해 인간다움 감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시로쿠로서는,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케이지의 적요(寂寥)함을 띤 눈을 보자, 그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시로쿠의 모습을 두 명의 어른은 다만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상은 항상 부조리에 가득 차 있다. 그것과 어떻게 마주하고 타협해 가는지야말로 성장이 된다.

그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시로쿠의 갈등을 비웃지 않고, 또 아는 척 하며 대답을 떠넘기지도 않고, 그가 소화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로쿠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역시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논리가 아니라 '느낌으로' 납득하는 종륲의 것이겠지요. 저로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찌어찌 그렇게만 말한 시로쿠에 대해, 케이지는 술을 조금만 따른 잔을 내밀었다.


"모른다는 게 지금의 네 해답인거야. 해답이라는 건 쌓여나가면서 바뀌는 거지. 지금의 너는 모르더라도, 미래의 너는 다른 해답을 찾을지도 몰라. 단지 녀석들은 축축한 이별을 바라지 않을테니, 이걸 마시고 저 녀석들을 보내줘"


"……내일은 학교를 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에 대비해 단 것을 준비해 두지요"


"엉?"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 시로쿠가 숙취 때문에 학교를 쉴 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단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괴이쩍어하는 두 사람에게 시로쿠가 말했다.


"어머니(義母上)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숙취를 피하고 싶으면, 당분과 수분을 보급해 두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이라고"


술에 포함된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오면, 곳곳에서 흡수된 알코올의 대부분을 간장(肝臓)이 분해한다.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으나, 알코올의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에 의해 당신생(糖新生, 포도당의 생산)이 억제되어 버린다.

즉, 알코올을 많이 섭취하면 자연스럽게 저혈당 상태가 되어, 외부에서 당분을 섭취하도록 뇌가 명령을 내려 공복을 느끼게 된다.

술을 마신 후의 '마무리'로서 라멘이 인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탄수화물인 면(麺)보다도, 분해흡수가 빠른 단것이 적합하기 때문에, 포도당이 주성분인 라무네 과자 등은 최적의 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러한 욕구를 무시하고 당분 보급을 게을리하면, 기상시에 혈당치가 저하되어 있기에 두통이나 권태감 등의 숙취 증상이 나타난다.


오해가 없도록 말해두자면, 음주 후에 대량의 당분을 보급했다고 해도 음주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주량이나 개인의 알코올 분해능력에 따라 숙취를 확실히 회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하물며 '해장술(迎え酒)'이라면서 숙취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술에 포함된 당분에 의해 일시적으로 증상은 개선되지만, 그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 추가로 대량의 당이나 수분이 소비되기 때문에, 나중에 더 심각한 증상을 불러오게 된다.

음주 후에 단 것을 먹는 것은, 숙취를 예방하기 위한 효과가 비교적 높은 것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몸에 맞는 주량을 알고 적당히 즐기는 것이다.


"물론, 확실히 숙취가 없어진다는 보장은 없고, 어디까지나 예방책이라고 합니다"


"아아! 과연, 그래서 시즛치의 연회에서는 도중에 물을 마시게 하거나 마지막에 단 것이 나오거나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연회 도중에 과자를 내는 건 어렵기에, 티가 나지 않도록 당분을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요리를 내거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참 고마운 배려로군. 그런 체면(体面)까지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가능한 것은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어"


"그렇네요"


시로쿠는 케이지가 시즈코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자기 일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직도 쑥스러워서 말로는 못 하고 있지만, 시로쿠는 시즈코를 어머니로서 경애하고 있으며, 또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우츠와(器)는 이른 단계에서 시즈코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주위는 생각하고 있으나, 유년기를 함께 보낸 시로쿠만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우츠와 나름의 처세술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노골적인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게' 한다는 슬픈 처세술이다.

우츠와가 놓인 환경에서는,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조차 악의(害意)로 돌려받은 경위가 있어, 새로운 환경 아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우츠와의 몇 안되는 자위수단이었다.

그런 우츠와조차 지금은 진심으로 시즈코를 어머니로서 경애하고 있다. 세상에서 단절되었던 경위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浮世離れ) 성격까지는 바꿀 수가 없지만, 시즈코는 그것조차 이해하며 받아들여주고 있다.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우츠와보다 훨씬 증상이 심한(重篤) 사람들을 알고 있기에, 조금 엉뚱(突飛)한 행동을 하는 아이구나 하는 정도라며 신경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츠와에게는, 지금까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따돌림당하거나 학대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시즈코는 우츠와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비호자(庇護者)을 자임(自任)하고 있는 시로쿠에게도 얻기 힘든 이해자였다.


"시로쿠 님은 꽤나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


"그렇군요. 어머니께는 감사드리고 있고, 진심으로 존경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께서 슬퍼하시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소를 지어주시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머니께서 납득하신 이별에 개입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인지, 평소에는 마음 속에 감춰좋은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분명히 어머니와 늑대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수 없는 연(絆)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조금 부럽기도 하군요. 저희들은 아직 그만한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선인(先人)이 쌓아올린 결과니까 어쩔 수 없지요. 다만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미래에 어떠한 관계가 될 것인지는 두 분에게 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로쿠(与六) 님. 그렇군요, 그들이 빠진 빈 공간을 저희들이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건 아니다, 시로쿠"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하며 시로쿠가 말한 내용을 케이지가 부정했다. 생각지 못했던 반론에 케이지 쪽으로 눈을 돌리자, 케이지는 평소와 달리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대신이 될 필요는 없는거야. 누구도 저 녀석들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선 안 되지. 너는 네 방식으로 시즛치를 뒷받침해 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먼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야. 여기에 있으면 잊어버리기 십상인데, 이 세상은 아직 난세(乱世)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보증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 말야"


"그렇지요. 케이지 님의 말대로, 오늘을 힘껏 산 사람에게만 내일은 미소짓는 겁니다. 매일을 힘껏 살고 있으면, 막상 최후를 맞이할 때도 웃으며 갈 수 있겠지요"


그것은 무사(いくさ人)다운 생사관(死生観)을 가진 대사였다. 케이지도 카네츠구도 난세의 거친 파도를 뚫고 살아온 몸, 언제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명심해 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케이지는 시로쿠의 '비트만들을 대신'하여 '언젠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라는 생각을 부정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후회는 항상 나중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광이 다 빠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만연(漫然)하게 내일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떨구는 시로쿠를 보고, 케이지는 그 가느다란 어깨를 꽉 잡으며 히죽 웃어 보였다.


"뭐, 이건 마음가짐의 이야기야. 아니 뭐, 우리들도 완벽하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다만,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마음(心意気)과, 후회하지 않기 위한 각오라는 거지"


케이지가 그렇게 말하고 미소짓자, 시로쿠의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슥 하고 빠졌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고지식한 시로쿠에게는 좀 과도한 독려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케이지는 자신이 시로쿠 또래였을 때 대체 뭘 했었던가 하고 떠올려보면 도저히 설교 같은 걸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미래가 있는 젊은이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도 모르게 참견해버리는 것도 선배(先達)의 예상사라는 것이리라.

그것을 귀찮게 생각하지도 않고 올곧게 받아들이고 있는 시로쿠에게 케이지는 호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조금 부럽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먼저 쉬겠다며 떠나가는 시로쿠를 전송하며, 케이지와 카네츠구는 다음 대의 오와리(尾張)에 대해 상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비트만과 바르티의 걸음은 언제 멈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소 회복되기는 했으나, 서로 몸을 지탱하며 달빛이 비추는 산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두 마리의 체력은 이미 다하여,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몸이 휴식을 요구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저앉아버리면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두 마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일생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든 첫 만남(出会い)을 가져온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윽고 산길의 중턱 정도에 있는, 아무 특별한 점도 없는 조금 트인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전에 비트만이 바르티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무법자들에게 시즈코가 습격받았던 장소였다.

시즈코의 궁지를 구하고, 바르티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시즈코의 가족이 된 장소. 두 마리는 이곳을 자신들이 죽을 장소로 정하고 있었다.

두 마리는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가 꺾어져 쓰러졌다. 비트만이 산기슭 쪽으로 눈을 돌리자, 어둠 속에 오도카니 빛나는 점이 있었다.

저 빛이 있는 곳에 시즈코가 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는 이 땅은, 두 마리에게 최고의 침상이었다.

비트만도 바르티도,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대해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또, 그 생애의 대부분을 지낸 이 땅에 비하면 아무런 애착도 없었다.

두 마리는 서로 털을 골라준 후, 최후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명백하게 산꼭대기 쪽에서 두 마리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두 마리의 마음에 직접 울려퍼지는 무언가였다.

비트만과 바르티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 천천히 일어섰다. 신기하게도 이미 다했다고 생각된 활력이 가득 차 있어, 지금까지보다도 더 굳건한 발걸음으로 산꼭대기를 향했다.

두 마리는 자신들이 산을 향한 것처럼, 산이 자신들을 불러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망설임없이 곧장 산꼭대기로 걸음을 옮겼다.

비트만과 바르티가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때마침 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빼꼼 드러내며, 빛의 기둥이 천지를 잇듯이 산꼭대기의 한 구석을 비추었다.

두 마리는 자신들을 맑게 비추는 달을 향해 힘껏 포효했다. 그 힘찬 포효는, 멀리 산기슭의 시즈코에게까지 들렸으리라.



후세에 '오오카미(大神, ※역주: 한자가 일본어로 '늑대'의 한자와 음이 같음) 신사(神社)'의 기원(縁起)은 이렇게 적혀 있다.

전국시대의 총아(申し子), 아야노코우지 시즈코(綾小路静子)를 돕기 위해 하늘은 두 마리의 거대한 늑대를 보냈다. 그 모습은 눈처럼 희고 빛나는 듯한 털을 가진, 곰조차 능가하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전화(戦火)가 끊이지 않는 일본을 우려한 하늘이, 난세의 마왕(魔王)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그녀를 보냈다. 시즈코라는 여걸(女傑)은, 키가 6척을 넘는 늠름한 체구를 자랑하며, 신산귀모(神算鬼謀)로 노부나가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비할 바 없는 신력(剛力無双)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그 무서운 두뇌로 전국시대 최강을 구가했던 타케다(武田)를 쳐부쉈다. 또, 늑대에 타고 전쟁터를 달리며, 스스로 선봉에 서서 적을 분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들도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지자 그 역할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갈 때가 왔다. 그녀와 두 마리의 신의 사자(神使)들은,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달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하늘을 가르고 빛의 기둥이 땅으로 뻗어내려와, 산꼭대기와 하늘은 빛의 기둥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빛에 이끌리듯, 한 사람과 두 마리는 하늘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녀와 두 마리의 늑대의 공적을 기려, 노부나가는 산꼭대기에 '오오카미 신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시즈코가 실제로 이걸 봤다면 웃음을 터뜨렸을 기원이지만, 이것은 후세 사람들이 산과 신사의 권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것저것 계속 갖다붙인 결과였다.

애초에 오오카미 신사의 제신(祭神)이 된 비트만은 회색 늑대였고, 바르티도 같은 종류일 것이다. 빛나는 듯한 순백의 털 같은 것은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고, 아무래도 곰과 비교하면 꽤나 작다.

게다가 전국 시대의 세상에서는 큰 여자(大女)의 부류였다고는 하나, 시즈코는 체구가 작았고 비할 바 없는 신력과는 거리가 멀다.

나가요시(長可)를 필두로 한 부하들이 저지른 사건이 어째서인지 시즈코의 짓으로 전해진 결과, 그녀는 고릴라가 이럴까 싶은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曰く), 맨손으로 갑주를 입은 무사를 때려죽였다로 시작하여, 길 아닌 길을 늑대에 타고 달려가서, 하룻밤에 오와리에서 쿄(京)에 도착했다는 황당무계한 것까지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런 후세의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길이 불편한 산속의, 그것도 산꼭대기라는 외딴 위치에 있음에도 오오카미 신사는 대단히 북적였다.

시즈코의 신산귀모의 덕을 입으려는 학업성취(学業成就)를 필두로, 가내안전(家内安全), 액막이(厄年厄祓い), 사업안전(事業安全), 장사번성(商売繁盛), 사업번성(事業繁盛), 수험필승(受験必勝), 무병무탈(無病息災), 질병쾌유(病気平癒), 출산안전(出産安産), 신체건강(身体健康), 교통안전(交通安全), 소원성취(心願成就), 재난해결(諸災消除) 등 온갖 것들(八方除)에 효험이 있다고 믿어졌다.

다만, 시즈코가 평생 독신으로 지냈기에, 결연(縁結び)만큼은 이 신사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재미있게 보시고 후원(?)해 주실 분은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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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3 1576년 6월 상순



때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 5월 중순 무렵. 폐렴이라고 생각되는 증상으로 요양하고 있던 비트만의 용태(容体)는, 시즈코의 헌신적인 간호 덕도 있었는지 회복을 보였다.

위험한 상태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병에 의해 잃어버린 채력은 노령의 비트만에게는 쉽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고 있는 시간 쪽이 길어져 버렸구나……"


시즈코는 잠들어 있는 비트만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생명을 느끼게 해주는 반면, 표면에 탄력이 없어지고 얄팍해진 피부를 통해 뼈의 존재가 느껴져버리는 것이다.

예전(在りし日)의 비트만은, 설령 자고 있어도 시즈코가 다가가면 발소리에 반응하여 벌떡 일어나 달려왔는데, 이미 그러한 활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시즈코로서도 이대로 자게 해주고 싶었으나, 마음을 독하게 먹고 비트만의 몸을 흔들어서 그를 깨웠다. 이대로 계속 자게 해버리면, 다리가 쇠약해져버려서 두 번 다시 걷지 못하게 된다고 미츠오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의식을 되찾은 비트만은 눈이 아니라 냄새로 시즈코를 느끼고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갓 태어난 어린 사슴처럼 떨리는 발로 일어서더니 그녀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천천히 해. 천천히 해도 돼"


조금 나아가다 쉬는 것을 반복하면서, 헛간에서 나와 부근을 산책했다. 예전에는 단번에 질주할 수 있었던 거리가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비트만의 재활은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최후를 깨달은 비트만이, 빈번하게 산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을 장소를 산으로 정한 것이리라. 시즈코로서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봄에서 여름 사이라는, 신록(新緑)이 싹을 틔우고 매일 그 성장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명력 넘치는 계절인데 반해, 시즈코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늙은 존재가 떠나가고 새로운 생명이 대두(台頭)한다는 것은 자연에서의 세대교체의 섭리이지만, 오만(我侭)이라는 소리를 듣더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늘도 더워지겠네. 슬슬 돌아갈까?"


사반각(四半刻,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거기서 휴식과 수분보급을 한 후에 같은 시간을 들여서 돌아갔다.

이 일련의 산책이 시즈코와 비트만의 일과에 더해진 이래, 서서히 비트만의 신체 기능은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유별난 거구를 자랑하고 있던 비트만이었기에, 자신의 골격이 갖는 중량이 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짧은 산책을 마친 비트만 이 이후,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게 된다. 그에 따라 비트만이 수면중에 실례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변의(便意)를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그가 늙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시즈코는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시즈코는 비트만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청소를 빼먹지 않게 배려하고 있다.


"힘냈구나. 수고했어"


그렇게 말을 걸면서 시즈코는 비트만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시즈코는 비트만의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웅크리는 바르티를 바라보았다.

비트만의 짝인 바르티도, 비트만과의 접촉이 가장 길었던 때문인지, 조금 늦게 같은 증상이 발병한 것이다.

비트만보다 체력이 있었던 점이나, 집단감염을 의심하여 정기적으로 관찰했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우보다 빠른 조기 발견과 조기 대응으로 이어졌다.

바르티의 용태는 비트만에 비해 훨씬 경증이었지만, 그래도 체력의 소모와 쇠약은 피할 수 없어, 이렇게 같은 헛간에서 지내게 하고 있다.

비트만과 바르티는, 시즈코를 초기부터 뒷받침해준 가족이다. 그 두 마리 모두 죽음의 기척이 다가오고 있는 것에 시즈코는 공포를 느꼈다.

시즈코는 바르티 곁에 쭈그려앉아 그녀의 몸에 손을 대려 했으나, 결국 손대지 못하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만지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바르티의 노화를 알게 되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미안해"


사과의 말을 하면서, 알려고 할 용기를 갖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하고 있었다.



인물에 대한 평가라는 것은, 평가하는 쪽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 영토의 영민들이나 부하들에게 경애받고 있는 시즈코도, 반대로 오다 가문에 적대하는 쪽에서 볼 때는 원적(怨敵)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추진하는 경제 정책에 의해 세력을 늘리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그만큼 몰락(凋落)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것은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그 뒤에서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경제의 본질이기에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원칙이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자는 도태된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이지만, 패자의 입장에 몰린 자들은 왕왕 변화를 탄생시킨 사람에게 원한을 품는다.

그러한 자들이 볼 때 시즈코는 질서의 파괴자이며, 원적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타도해야 할 폭군으로 비친다. 만인의 호의를 받는 것 따위 불가능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즈코도 각오하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 그것은 내심의 자유로 끝나는 범주에 머물러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 순간, 그것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잠깐 실례. 좋아, 다들 모여 있군. 죽어라"


어떤 키친야(木賃宿)에 묵고 있던 낭인(牢人) 한 명을, 나가요시(長可)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려갈겼다. 낭인들에게는 침입자(闖入者)인 나가요시는,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한 가벼운 느낌으로 쇠몽둥이(金棒)를 휘둘렀다.

낭인들이 나가요시를 적이라고 인식하기 전에, 첫번째 낭인의 경추(頸椎)를 부수고 바닥에 박힌 쇠몽둥이가 다시 들어올려져, 두번째 낭인의 머리통을 석류(柘榴)처럼 터뜨려버렸다.

실내에 4명이 있던 낭인들 중 두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참살되자, 그제서야 남은 두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그러나, 칼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은 한 명 뿐으로, 다른 한 명은 일어서기 전에 나가요시가 치켜올린 기세대로 집어던진 쇠몽둥이에 복부를 관통당하여 벽에 못박혔다.


"네, 네놈! 어디서 온 놈이냐!?"


마지막 한 명이 뽑아든 칼을 겨누며 외쳤으나, 기세좋게 파고든 나가요시는 강철로 된 토시(篭手)를 휘둘러 낭인의 칼을 쥔 손을 후려갈겼다.

그 결과, 꽉 잡은 칼자루와 토시 사이에 낀 낭인의 손가락이 박살났고, 떨어뜨린 칼을 나가요시에게 빼앗겨 버렸다.


"상대가 맨손이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라도 한거냐? 이런 대량 생산된 싸구려로 날 베려고 하다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낭인이 박살난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격통으로 절규하려고 입을 연 순간, 어느 틈에 등 뒤로 돌아가 있던 나가요시가 밧줄로 된 재갈(猿轡)을 물렸다.


"소란 피우지 마라. 내키지는 않지만, 네게 물어볼 게 있는 사람이 있거든.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그 이외에는 무슨 짓을 하던 죽인다"


명백히 기분이 나쁜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나가요시가 낭인에게 말했다. 격통과 죽음의 공포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도, 낭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세로저었다.

확연히 순종적으로 변한 낭인을 재미없다는 듯 바라보면서, 나가요시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병사들은 낭인을 밧줄로 묶고, 허리에 묶은 밧줄(腰縄)을 잡고 어딘가로 연행해갔다. 실내에 남은 것은 말할 수 없는 세 구의 시체와, 그것들의 생산자인 나가요시 뿐이었다.

나가요시가 벽메 못박힌 낭인에게서 쇠몽둥이를 빼내려고 하자, 시체의 품에서 방수를 위한 것인지 기름종이로 싸인 물체가 미끄러 떨어졌다.

나가요시가 거칠게 기름종이를 찢자, 안에서 네 번 접힌 큰 종이가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강철 토시를 벗고 내용을 확인하자, 그것은 연판장(連判状)이었다.

연판장이란 목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약의 증거로서 이름을 적은 것이며,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담보이기도 했다.


"제길! 이놈이 주모자였냐. 어ー이! 이놈도 가져가줘"


중요 서류인 연판장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 낭인이야말로 습격부대의 리더이며, 그들을 고용한 흑막과 이어지는 인물이었다.

연판장에 흑막의 이름이 있을 것을 바라면서도, 나가요시는 짜증 때문에 행동이 조잡해진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나가요시의 기량이라면, 처음 두 사람은 그렇다치고 남은 두 사람은 생포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결과는 보는 대로. 거칠게 날뛰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죽일 필요가 없는 자까지 죽여버렸다.


"칫! 짜증나는구만"


나가요시의 짜증은 시즈코에 기인하고 있었다. 시즈코와의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즉, 시즈코의 곤경에 대해 자신을 의지해주지 않는 것과, 실제로 아무 힘도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짜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즈코가 약해져 있을 때야말로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이런 걸로밖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나가요시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불평은,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라졌다.



나가요시가 자신의 무력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에게 청가를 낸 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던 시즈코에게서 호출을 받았다.

입으로는 갑작스런 호출에 대한 불평을 말하면서도, 나가요시는 발걸음도 경쾌하게 시즈코 저택으로 향했다. 도중에 케이지(慶次)와 합류하여, 그와 잡담을 나누면서 객실(座敷)로 들어갔다.

지정된 시간보다 일렀음에도 불구하고, 시즈코를 제외한 전원이 모여 있었다. 평소라면 시즈코 자신이 가장 먼저 방에 들어와 모두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기에, 뭔가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시즈코가 도착한 것은 예정 시각의 직전이었다. 모두에게 늦은 것을 사과하며 상좌(上座)에 앉는 시즈코의 안색은 확연하게 나빴고, 곁에 평소에는 동석하지 않는 아야(彩)와 쇼우(蕭)를 대동하고 있는 것이 모두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초췌해진 모습의 시즈코에게 아시미츠(足満)가 가장 먼저 말을 걸었지만, "괜찮아요"라고밖에 대답하지 않았기에 그 이상은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어서 모이게 했어요. 이것은 공인(公人)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私人)으로서의 부탁이니 거부해도 상관없어요. 다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으니 여러분의 힘을 빌려줬으면 해요"


"섭섭한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바라는 것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해결해 주겠다. 얼른 원하는 걸 말해라"


시즈코의 서두(前口上)에 대해 아시미츠가 대답했다. 그의 말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총의(総意)이기도 했다.

난폭하게 들리기도 하는 아시미츠의 말에 뒷받침된 요령 부족한 상냥함에 시즈코는 약간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것은 비트만이 자신이 죽을 곳으로 정했을 산을 금족지(禁足地, 역주: ※출입금지 지역)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비트만은 시즈코의 곁을 떠나 산으로 돌아간다.

비트만의 마지막(終) 거처(棲家)이며 묘비(墓標)가 되기도 하는 산을 어지럽혀지고 싶지 않다는 것 뿐인, 완전한 시즈코의 개인적 감정에 발단한 이기적 행동(我が侭)이다.

물론, 산이라는 것은 부근 주민들에게 있어 공유재산이며, 살아갈 양식을 내려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영원히 금족지로 하는 것 따위 가능할 리도 없으니, 기한을 정할 필요가 있다.

시즈코는 그 기간을 비트만이 자신의 곁을 떠난 후, 그 유해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으로서 1년으로 정했다.

금지가 해제된 후에는 산을 개방하지만, 산꼭대기에 늑대를 모시는 신사(神社)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자, 모여든 사람들은 시즈코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

산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은혜는 막대하지만, 1년 동안으로 한정해버리면 시즈코의 사재로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

그럼 어째서 시즈코가 그러지 않는지는 명백하다. 권력자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공유재산을 독점하여 모두에게 불편을 강요하게 되면, 금지가 해제된 후에 건립되는 신사나 산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상황은 생활의 보상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기득권익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전례가 없는 일인만큼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하거나 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영주와 영민은 부모자식 관계에 빗대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시즈코가 하려고 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의 밥그릇에서 밥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리를 밀어붙여 이치를 억누르기 위한 무력도 필요해진다.


"뭐야, 나한테 딱 맞는 일이잖아! 좀 더 빨리 말하라고"


가장 먼저 나가요시가 가볍게 말했다. 자신의 이기적 발상으로 모두에게 궂은 역할을 떠넘긴다고 속을 썩이고 있던 시즈코는, 희희낙낙하며 수락하는 나가요시에게 놀랐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너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그걸 해결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야"


"그렇군, 카츠조(勝蔵)가 웬일로 좋은 말을 하는데"


"어이! 웬일이라니 무슨 뜻이야"


사이조(才蔵)의 지적에 나가요시가 반론했으나, 사이조는 괴이쩍다는 듯 그를 마주보았다.


"자신의 평소의 행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텐데……"


"모르니까 묻고 있는 거야!"


"자각조차 없었던 거냐……"


한숨을 쉬는 사이조를 보고 나가요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나가요시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카츠조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은 시즈코 님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시즈코 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저희들의 명예가 되겠지요"


"맞아맞아, 시즛치는 좀 더 우리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라고"


"케이지의 말대로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우리들은 힘을 아끼지 않는다"


모두의 따뜻한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시즈코였으나,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모두의 마음 씀씀이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다시 여러분에게 부탁할게요. 내 가족인 비트만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내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 산을 1년간 폐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분의 힘을 빌려 주세요"


시즈코는 꾸밈없는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고 힘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그에 대한 모두의 대답은, 모인 사람 숫자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들의 표정에는 드디어 시즈코가 자신들을 의지해준 것에 대한 기쁨조차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시즈코에게 받은 은혜를 갚을 때라고 모두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에 시즈코에게서 맡겨지는 임무라면, 어느 정도의 절차나 작업순서 등이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적인 의뢰였기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시즈코에게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으나, 이번에 한해서는 목적만을 이야기하고 다 떠넘기는 방식이라는 쪽이 유리했다. 왜냐하면 평범하게 작업을 진행할 때는 지침이 되는 절차가,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약간 거추장스러워지기 떄문이다.


"이제부터, 시즈코 님에 대한 접촉(取り次ぎ) 의뢰는 전부 '주상(上様)'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쇼우는 아야와 상담한 끝에 노부나가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상황이 좋지 않은(弱っている) 시즈코에게 접촉해보고자 선물이나 면회를 핑계로 찾아오는 어중이떠중이(有象無象)를 차단해 줄 것을 청했다.

윗사람을 창구로 삼는다는, 보통의 경우라면 무례한 청이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쾌히 수락한데다 접촉을 바랬던 자들의 명단을 요구했다.

시즈코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그녀에게 접촉하려고 하는 패거리들의 신분도 높아졌다. 아무리 쇼우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딸이라고 해도, 어차피 아무 권한도 갖지 못한 소녀이며, 상대의 체면을 뭉개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참, 나는 시즈코가 마음 편하게 휴양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모두에게 말했을텐데, 일부러 녀석의 영지까지 밀고 들어가서 면회를 요청하려 한 패거리들이 있는 모양이다"


급거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후들을 앞에 두고, 그는 쇼우에게서 받은 서류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며 잡담이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

노부나가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때보다도 조용히 규탄해올 때가 무섭다. 아마도 손에 들고 있는 서류에 의해 증거를 확보했으나, 지금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 결정을 따르지 못하겠다면 누구든 처단하겠다'라는 무언의 압력이 자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설마' 여기에 모인 모두들 중에 그러한 어리석은 자는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부하들이 멋대로 행동할지도 모르는 것이니 다시 한번 명하겠다. 휴양중인 시즈코에 대한 간섭은 용납하지 않겠다. 설령 수하가 멋대로 한 일이라도 연좌하여 처벌할테니 명심하라"


노부나가의 선언은 오다 영토 내에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문에 쿄의 공가(公家)들이나 호상(豪商)들도 부르르 떨었고, 영주(国人)들도 부하들을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야기는 노부나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아시미츠(足満) 등 세 사람에 의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불 속의 밤을 주우려고 해도, 자신이 타죽을 정도의 폭염에 팔을 집어넣을 수 있을만큼 배짱좋은 자는 없다.

그들의 진력(尽力) 덕분에 시즈코 저택은 오랜만에 고요함이 가득하게 되어, 고용인(家人)들이 완벽(十全)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


"폐산(閉山)에 따른 영향을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것과 병행하여, 현지에 사람을 파견하여 수치로서 보고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영향을 조사합니다"


시즈코의 금고지기인 아야는, 과거분의 납세 기록을 검토하여 보상에 필요한 예산의 대략적인 수치를 산출하고 있었다.

그것과 병행하여 현지의 주민들이 평소에 산나물 채집이나 불쏘시개용의 마른 잎사귀 등을 모으는 것 등의, 서류상으로는 나오지 않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시책의 경우, 포고(発布) 전의 절차가 중요해진다.

아무리 불이익을 입은 만큼 보전해준다고 말해도, 유력자의 구두약속만으로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현지의 유력자인 명주(名主, ※역주: 촌장 같은 것)나 책임자(取りまとめ役) 등을 통해 설득하게 했다.

그래도 납득하지 않는 말썽꾼(跳ねっ返り)들에 대해서는, 무력이라는 알기 쉬운 공통언어로 설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민들은 시즈코에게 호의적이어서 적극적으로 협력 의사를 표시해왔다. 게다가 나가요시의 악명이 나쁜 의미에서 떨쳐지고 있었기에,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는 바보도 없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영향 범위를 좁힐 수 있겠네요"


"실시 전의 단계'에서는' 말이죠.실제로 금족령(禁足令)이 포고되면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거라고 예상됩니다. 일단 의식주 및 의료에 관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거에요. 괜한 걱정이었다면 그걸로 좋은 겁니다. 실제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가능한 한 대책을 세우죠"


"네!"


아야가 진두에 서서 조사한 바로는, 그 산에서 가장 큰 재원이 되고 있는 것은 임업(林業)이며, 그 다음이 사냥꾼들이 조수(鳥獣)를 사냥하는 것에 의해 생산되는 피혁이나 깃털, 짐승고기 등의 자원이었다.

다행히 산을 통과하는 도로는 존재하지 않아 유통이 방해되는 일은 없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휴업보상에 관한 비용 뿐이며, 그밖에도 필요해지는 비용이 있다.

그것은 산의 출입을 금지하면, 당연히 산 속은 사람 눈이 미치지 않게 되므로, 세상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불량배(ならず者)들의 절호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치안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산의 출입을 감시하는 시설과 그러기 위한 인원을 수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생할 수 있는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할 조치를 강구하면서 예산안을 좁혀갔다.



모두를 호출했던 날 이후로, 시즈코는 하루의 대부분은 비트만이 지내는 헛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아야나 쇼우 및 케이지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시즈코가 마음 편히 비트만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그들의 성과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파랗네"


맑게 갠 오후(昼下がり, ※역주: 정오를 조금 지난 무렵), 툇마루(縁側)에서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은 끝도 없이 푸르게 개어 있었다. 눈을 감으면 초여름 특유의 풀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볼을 간지럽혔다.

본채(本邸)에서 떨어진 위치에 있는 헛간 부근은 결코 불쾌하지는 않은 정숙함으로 가득했다. 시즈코는 비트만, 바르티와 함께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위치로부터 자신을 경호해주는 병사들의 존재가 있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이 정숙은 지켜지고 있었다.

본심을 말하면, 자신과 늑대들만 있게 해줬으면 하지만, 그것을 바라기에는 시즈코는 지나치게 중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늙은 늑대들과 보내는 나날은 자유로웠던 옛날을 떠올려버려, 향수(郷愁)에 마음이 괴로워지고 있었다.


"아아, 또 쓸데없는(益体もない) 생각을 해버리네…… 어떻게 해도 너희들이 건강했던 때를 생각하게 돼……"


시즈코의 뇌리에는 있을 수 없는 가정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중책을 내던지고 일 개인이 된 시즈코와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늑대들이 있었다.

아무리 망상을 하더라도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쌓아올린 소중한 것들을 내던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가상의 세계로 의식이 향하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애도(哀惜)의 시간(刻)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껴버리기 때문이리라.


(하루가 짦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또 하루가 지나가버려)


정신이 들자 해질무렵이 되어 있어, 차가워진 공기를 타고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비트만들 곁에서 지내는 무위(無為)한 나날들이, 시즈코의 정신을 점차 진정시켜주었다.

체관(諦観)과는 다른,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시즈코는 점차 도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바쁘게 달려왔었네. 이렇게 느긋한 시간은 얼마만일까?)


전국의 세상으로 흘러들어온 이래, 항상 비트만은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지지해주었는지 깨달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개'를 키우세요. 아이가 갓난아이일 때 아이의 좋은 '보호자'가 될 겁니다. 아이가 유년기 때, 아이의 좋은 '놀이 상대'가 될 겁니다. 아이가 소년기일 때, 아이의 좋은 '이해자'가 될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죽음으로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줄 겁니다"


예전에 친구가 가르쳐준 영국의 격언(諺)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는 절묘하구나라는 정도의 감상밖에 없었으나, 이제와서는 그 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그래도, 비트만과 만나서 다행이었어"


비트만과 바르티가 자고 있는 헛간에서 석양을 보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그 날'이 언제가 될 지는 몰랐지만, 시즈코는 지금이라면 그들을 보내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날'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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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