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2 1576년 5월 하순



노부나가들이 떠들썩한 꽃구경(花見) 주연(酒宴)을 열고 있을 때,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에서는 대조적으로 버려진 폐허 같은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혼간지 내부에서는 라이렌(頼廉)이 이끄는 온건파가 주류가 되고, 쿄뇨(教如)처럼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강경파는 세력을 잃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조직이 더욱 과격하고 급진적이 되는 것이 예상사이며, 예외가 되지 않고 쿄뇨 등 강경파도 무장해제에 응하지 않고 산 속의 승방(僧房)을 점거하고 틀어박혔다.

또, 어느 쪽의 세력에도 속하지 않는 승려들은, 휴대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이미 포위가 풀린 혼간지에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본 신도들도 혼간지의 말로를 깨닫고, 가라앉는 배에서 쥐가 도망치듯 앞다투어 흩어졌다.

무장 해제에 응했다고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이었던 혼간지 안에는 다양한 물자가 비축되어 있어, 신도들은 내친 김이라고 말하듯 냄비나 솥 같은 생활 잡화까지 가지고 가버렸다.

예전에는 각 산문 앞에 산처럼 쌓여 있던 무구(武具) 종류는 오다 군이 가져가 버렸기에, 신도들이 손에 넣을 수 있던 돈이 될만한 물건이 제한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보고를 받은 라이렌은 "그런가"라고만 중얼거렸을 뿐, 뭔가 조치를 취하려 하지는 않았다.


"법주(法主)님"


라이렌은 켄뇨(顕如)가 유폐되어 있는 감옥 앞에 서 있었다. 현재의 혼간지 대표는 라이렌이며, 법주의 자리에서 쫓겨난 켄뇨는 일개 승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라이렌에게 법주란 켄뇨 밖에 없다. 오다 가문과 교섭하기 위해서는 혼간지 대표가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켄뇨를 유폐시킨 후에도, 라이렌 자신이 법주라 칭하는 일은 없었다.


"법주님"


땅거미가 지려고 하는데 등불조차 켜지 않는 감옥의 주인을 향해 라이렌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라이렌은 대답이 없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변명을 하더라도 혼간지에게 있어 자신은 배신자에 지나지 않는다.

켄뇨가 완강하게 대화를 거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대답이 없어도 이렇게 매일 찾아와서 그날그날의 보고를 어둠을 향해 계속하고 있었다.


"법주님, 오다와의 강화(和睦)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강화에 의해, 우리들은 오다의 관리 아래 놓이게 되며, 그 증거로서 이곳 혼간지를 내줄 것입니다"


노부나가와의 강화에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 그것이 일향종(一向宗)의 총본산(総本山)인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였다.

이시야마 혼간지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혼간지 문도들에 있어 신앙의 거점(拠り所)이며,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와 햇수로 10년 이상에 걸쳐 싸울 수 있었던 요새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노부나가가 강화를 맺는 최저 조건으로서 혼간지로부터의 퇴거를 요구할 것은 확실했다. 뒤집어 말하면, 혼간지만 제압하고 있다면, 각지에서 잇코잇키(一向一揆)가 발발하더라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전비(戦費)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들이대겠지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신도'들은 사이카슈(雑賀衆)가 받아주기로 하였습니다"


라이렌은 예전부터 켄뇨가 신경쓰고 있던 신도들의 금후(今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단 신도들은 처벌을 받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수를 썼으나, 상층부의 지도자들에 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라이렌은 노부나가와의 밀약에 의해, 혼간지 문도에 대해서는 혼간지 퇴거 후에도 신앙(信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언질을 받았다.

노부나가가 혼간지에 금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무력을 가지는 것의 금지,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개입 금지이다.

노부나가에게 종교란 생활의 규범이자 정신을 기댈 곳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부처의 위광을 빌려 신도들의 미래를 제어(舵取り)하려는 것 따위 불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움직임이 있다면, 다시 오겠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켄뇨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라이렌에게 그것은 매번 있는 일이었기에, 감옥을 향해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라이렌이 떠나가고 얼마 후, 어둠 속에 잠긴 감옥 안에서 오뇌(懊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라이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육친의 정을 끊지 못하겠다. 내가 좀 더 일찍 쿄뇨를 처단했더라면……"


그 이상의 말이 흘러나오지는 않았고, 감옥은 다시 고요함에 휩싸였다.




한편, 하리마(播磨)에서는 히데요시(秀吉)가 고전하고 있었다. 하리마란, 오늘날의 효고(兵庫) 현(県)의 남서부에 해당한다. 영내에 히메지(姫路) 항구 등의 큰 항구를 가지고 있기에 항만도시를 중심으로 경제가 발달되어 있어, 그 때문에 많은 세력들이 서로 이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된다.

카마쿠라(鎌倉) 시대부터 조정이나 무가(武家), 불가(仏家) 등이 식지(食指)을 뻗친 것으로 전란에 휘말려, 그 때문에 중앙 정권에 대해 강한 반골정신을 품기에 이르렀다.

개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아카마츠씨(赤松氏) 였다. 그들은 일본 역사상 조정이나 막부(幕府) 등의 체제에 가장 반항한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1333년, 후에 아시카가(足利) 막부를 열고 쇼군(将軍)이 되는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가 쿄(京)를 공격했을 때, 카마쿠라 막부의 중요 거점이었던 로쿠하라 탄다이(波羅探題)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때 하리마 영주들을 이끌고 큰 공을 세운 것이 아카마츠씨 제 4대 당주인 아카마츠 노리무라(赤松則村, 후에 출가하여 법명을 엔신(円心)이라 했다)였다.

그 후, 켄무(建武) 정권으로부터 냉대받았기에(정쟁(政争)에 휘말려들었다고도 한다), 타카우지의 거병에 호응하여 켄무 정권을 쓰러뜨리고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성립에 다대한 공헌을 한다.

그 후에는 아시카가 쪽을 편들고 있었으나, 무로마치 막부 6대 쇼군이자 공포정치를 지향하여 가혹(苛烈)한 처단(処断)을 거듭하여 만인공포(万人恐怖)의 별명을 가지게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를 연회 자리에서 살해해보인 것도 아카마츠 미츠스케(赤松満祐)이다.

이렇듯 아카마츠씨는 정권의 세력다툼에 휩쓸리는 일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 독립독보(独立独歩)의 기풍을 가지며 반골정신도 유독 높다.

특히 자신의 '밥줄'을 빼앗기려고 할 때, 그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되게 된다.


"핫핫핫. 꽤나 기개(気骨)가 있잖은가"


그러한 배경 때문에 히데요시의 하리마 공략은 그 아카마츠씨에 의한 맹렬한 반격을 받고 난항을 겪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어려움(苦境)과는 별개로, 시즈코 군에서 파견된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지휘하는 저격부대(狙撃部隊)는 착실하게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신병기의 실전시험(実地試験)을 하기 위해 히데요시 군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황이 좋지 않았기에, 바보처럼 솔직하게 원군을 요청했다라는 걸 밝히면 고전하고 있는 히데요시 군의 사기는 붕괴해 버린다. 그래서 노부나가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특수부대로서 취급하여, 유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다른 부대와의 접점을 최소화한다.

그 결과, 히데요시 군의 대부분에게 저격부대의 존재는 부스럼을 만지는 듯한 취급이 되었다. 게다가 행동을 함께한 부대들은 저격부대의 용맹함과는 동떨어진 전술에 대해 비난이나 모멸에 가까운 인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도 개인의 무용이 존중받는 히데요시 군에게 그들의 전투교의(戦闘教義, doctrine)은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엄폐물 뒤에 숨고, 높은 곳에 포진하여 적을 찾고, 병졸을 모아 지휘하고 있는 하사관만을 저격하기만 하고는 냉큼 후퇴해버리는 것이다.

직접적인 교전은 가능한 한 회피하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적군의 예상 침공 루트 위에 함정을 설치하여 발을 묶은 후에 일방적으로 학살하면서 도망친다는, 전쟁터의 명예에서 가장 동떨어진 전법을 취한다.

시쳇말로 하면 비겁하고 치졸하여, 히데요시 군의 장병들이 볼 떄는 찔끔찔끔 적에게 출혈을 강요하고 있을 뿐, 결정적인 전과를 올리지 않는 겁장이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법은 반골정신이 넘치는 아카마츠씨에게 보기좋게 들어먹혔다. 적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군의 하사관들만이 차례차례 당한다는 상황에 빠지면, 통상적인 정신력으로는 견디지 못하고 병사들도 앞다투어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하사관들이 우선 겁을 먹는다. 왜냐하면 하사관을 제외하면 공격받지 않으니, 부대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마츠씨에 한해서는 이 상식이 들어맞지 않았다.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무턱대고 들이대는 것이었다. 먼저 대장의 갑주가 무겁고 두꺼운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조차도 관통하는 것을 보자, 체면(外聞) 따윈 버리고 몸에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방패를 붙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착탄의 충격에 의한 낙마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드디어 말에서 내려 아시가루(足軽)들과 섞여 행군해온다는 체면 따윈 내다버린 모습을 보였다. 이것에는 제아무리 마사유키라도 경악하여 위의 말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비겁한 전법에도 꺾이지 않고, 지혜를 쥐어짜 대처하면서 곧장 다가오는 적에 대해, 어디까지나 교전을 회피하는 전법을 관철하는 마사유키의 태도에 히데요시 군의 장수들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험담하게 되기까지 했다.


"대장. 저런 소리 하게 놔둬도 되는 거야?"


저격부대 중 한 명, 키쿠(菊)가 철수준비를 하면서 마사유키에게 물었다. 키쿠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저격병(sniper)라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병과임에도 그녀는 여성이다.

게다가 저격병과 세트로 운용되는 관측수(spotter)는 그녀의 오빠인 이치로(一郎)와 여동생인 치사(ちさ)가 담당한다. 그녀들은 다른 군과 비교해도 예외 투성이인 시즈코 군에서조차 드문, 남매가 3인 1조(three-men cell)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녀들이 종군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키쿠는 경애하는 시즈코를 위해서이며, 오라비인 이치로는 여동생들을 굶기지 않고 배부르게 먹여줄 수 있어서이고, 최연소인 치사는 언니오빠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딱히 상관없다. 우리들은 애초에 이물(異物)이니, 꺼려지는 것은 당연하지. 우리들은 그들이 할 수 없는 저격이라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은 소수인 우리들은 할 수 없는 근접 공격을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쓰임새가 근본적으로 다른 도구인 것이지. 생선을 손질하는 데 톱은 쓰지 않잖느냐? 그런 것이다"


마사유키는 키쿠의 자칫 건방지다고도 할 수 있는 말투를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자신도 신분 차이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뭐 나를 평가해주시는 건 시즈코 님이니까, 다른 쓰레기(塵芥)들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지만 말야. 그렇지만 시즈코 님까지 모욕당하는 건 참을 수 없거든?"


"오다 가문이라는 큰 나무의 그늘을 함께 공유하는 자들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다른 군이기에 우리들의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뭐, 그들도 공공연한 자리에서 시즈코 님을 비난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기를 기도하도록 하지"


"키쿠, 품에 넣은 수첩(帳面)을 꺼내봐라. 역시 암살장(暗殺帳)이냐…… 그렇게 매번 들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참아라"


그렇게 말하고 이치로는 키쿠에게서 빼앗은 수첩에서 한 장을 찢어냈다. 거기에는 아까 저격부대에 대한 악담을 구실로, 비겁한 싸움만 하는 건 주군이 연약해서(女々しい) 라는 둥의 말을 한 자의 특징과 소속부대가 적혀 있었다.

이치로의 역시라는 말대로, 키쿠가 이런 보복을 꾸미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야음(夜闇)을 틈탄데다 사고로 위장하여 습격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녀의 손에 의해 다친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다.


"흠. 할 거면 시즈코 님께 결코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기…… 사나다 님. 언니를 부추기지 말아 주세요. 언니는 시즈코 님 일이 되면 제동이 걸리지 않으니……"


재미있어하며 키쿠를 부추긴 마사유키에 대해 치사가 불평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키쿠는 시즈코 교(教) 원리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즈코에게 빠져 있어, 숭배 대상인 시즈코에 대한 모욕에는 처단으로 대응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뭔가 다른 보복수단이나 진정(ガス抜き) 수단을 찾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농담은 그만두고, 의외로 잘 명중하는군. 저격이라는 건 10번에 한 번 맞으면 잘 맞는 편이라고 들었다만"


"그건, 내가 우수하기 때문이야. 시즈코 님께 직접 칭찬을 받았을 정도니까!"


연령으로 볼 때 슬플 정도로 빈약한 가슴을 편 키쿠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애니나 영화의 그것과는 달리, 현실의 저격병은 무서울 정도로 평범한 작업을 반복하는 인대력이 요구된다. 격앙되기 쉬운 키쿠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녀는 특이한 상황 아래에서 비정상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격의 훈련이란 저점(狙点)을 정하고 사격하고, 그 다음에 관측을 하여 차이를 기록한다는 작업의 반복이 된다. 변화가 거의 없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사격할 때마다 환경수치나 결과를 세세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될 정도로 몰입하기 쉬운 기질을 가지고 있어, 침식을 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얻기 힘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이 성질은 일상생활에서는 족쇄가 될 뿐이다. 특히 그녀가 자란 농촌 등에서는, 잡초베기를 부탁받으면 비가 오던 해가 지던 묵묵히 잡초베기만을 반복하는 키쿠를 요령 없는 아이라고 헐뜯었다.

농촌 같은 공동체에서는, 주위의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이 요구되지만, 그녀에게 그런 것은 어렵다. 따라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계속 밥값 못하는 밥벌레라고 불리며 업신여김 당해왔다.

그런 그녀를 발탁한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였다. 그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현대에서는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부르며, 그런 사람들의 존재와 특징을 알고 있던 시즈코는 키쿠가 가진 천성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것은 경이적인 집중력 및 그 지속력과, 초인적인 시간, 공간 인식 능력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거의 정확하게 시간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거의 오차없이 맞췄다.

시즈코는 그녀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장소로서 측량부대와 저격부대를 소개했고, 키쿠 남매들의 생활은 비약적으로 향상되게 된다. 이러한 배경도 있어서인지, 키쿠는 자신을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준 시즈코에게 경도되어, 지금은 시즈코와 신불(神仏)은 동등한 존재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또 시작이냐……"


"땀이 눈에 들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즈코 님이 이마에 감아주신 수건을 아직도 감실(神棚)에 모셔두고 있으니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반복된 키쿠의 자기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치로와 치사는 그 모든 것을 뜨뜻미지근한 눈빛으로 흘려들었다. 마사유키도 당초에는 놀랐으나, 지금은 멈출 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라며 흘려듣고 있었다.


"사푸렛사... 였던가? 아시미츠(足満)님께서 주신 부품은 굉장하지만, 총을 쏜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맘에 안 드네"


키쿠는 그렇게 말하며, 총구에 비틀어넣는 형태로 접속된 부품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서프레서(소음기, suppressor)란, 총구에 장착하는 것으로 총탄의 발사음이나 섬광을 경감하는 장치이다.

서프레서의 원리는, 총탄이 발사될 때 기세좋게 총구에서 뿜어지는 연소 가스를 분산시키는 것으로 소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콜라의 페트병을 기세좋게 열면 푸쉭 하고 큰 소리가 나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비틀면 쉭 하고 기체가 빠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개인적인 취향은 둘째치고, 키쿠에게도 아시미츠는 두려운 존재였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에는 정평이 난 키쿠였으나, 아시미츠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존 본능에 기반한 공포로 몸이 굳는다.

시즈코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키쿠였으나, 아시미츠에게만큼은 거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누가 그를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鬼)'라고 말해도 순순히 납득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험 데이터는 확실히 기록해라?"


"붙였다 떼었다 할 때마다 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하니까 귀찮은데…… 계속 해야 해?"


키쿠는 자신의 저격 스타일에 고집(拘り)이 있어, 평소의 절차를 변경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부품에는 시즈코 님께서도 기대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빨리 수첩을 돌려줘! 바로 기록하고 다음 사격 준비를 해야 해!"


이치로의 말 한 마디에 즉시 태도가 바뀌는 키쿠에게 일동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사유키가 이끄는 저격부대가 현재 뭘 하고 있느냐고 하면, 저격병이라는 병과의 단독운용 및 다른 부대와 연계하여 운용했을 경우의 실전 훈련이었다.

기본적으로 저격병은 전투의 결정력이 될 수 없다. 애초에 특수한 병장(兵装) 및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숫자를 준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물량에 의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대단히 약하여, 한 번이라도 적의 접근을 허용하면 도주하는 것조차 어렵다. 반면, 적에 대해 몇 배의 사정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운용하면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훈련을 쌓더라도, 실제 전쟁터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지, 또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오빠, 적은?"


"남서 방향, 거리 약 300미터, 고저차는 대략 마이너스 30미터다"


오빠인 이치로가, 시차식(視差式) 측거기(測距儀)를 사용하여 계측 결과를 전달했다.


"치사?"


"주위의 야생동물이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 부근에 인간은 없네. 아직 이쪽은 발견되지 않았어"


"오케이(了解). 4발 쏘면 이동할 거니까 준비 부탁해"


키쿠는 그렇게 대답하고 육안으로는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표적을 향해 연이어 네 번 사격했다.

치사가 계속 주변을 경계하고, 오빠인 이치로가 측거기에서 망원경으로 바꿔잡고 사격 결과를 전달했다.

결과는 2발 명중, 한 발이 근처에 맞았고(至近弾), 남은 한 발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갓는지 착탄을 관측할 수 없었다.

명중률 5할이라고 하면 낮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서 총이라는 것은 일단 탄이 똑바로 날아가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코앞이라고 할 정도의 거리까지 끌어들여서, 많은 숫자로 탄막을 쳐야 간신히 전력이 된다.

그런 상식을 비웃는 것처럼 소리도 없이 날아드는 죽음의 탄환(礫)에 맞고 아군이 죽었다는 사실은 병사들의 발을 멎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마른 나뭇가지를 사용한 간이 삼각대에서 키쿠가 총신을 분리하고, 분해할 수 있는 부품을 분해하여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치로가 부피가 나가는 짐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치사가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면 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사나다 님도 용서가 없네. 대장격을 대충 다 처리했더니, 다음에는 '눈'을 빼앗으라고 하니까"


체력이 있는 이치로가 선두를 맡고, 그 바로 뒤에 몸이 가벼운 치사가 따르며 진로를 지시한다. 최후미(最後尾)의 키쿠는 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면 된다.

사전 조사로 발견해 둔 다음 저격 지점까지 다들 묵묵히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키쿠가 앞쪽에 말을 걸었다.


"척후(斥候)나 선도자(先導役), 보초(物見) 등을 먼저 처치해 두면 놈들의 진군 속도는 확 떨어지니까"


마사유키는 각각의 저격대를 돌며 지시를 내리고 있어 이미 이곳에는 없지만, 그가 키쿠들에게 명령한 것이 위의 내용이었다.

적의 무장은 자신의 명령을 중계할 하사관을 잃고, 이어서 적을 찾기 위한 눈을 잃었다. 제아무리 아카마츠 군의 무장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이 되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적의 저격에 대비하여 밀집대형을 취한 후, 병사를 지휘하여 후퇴했다. 저격수들이 적의 무장을 노리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히데요시의 요청을 받고 파견된 저격부대가 차례차례 적장을 쓰러뜨린다는 화려한 전과를 올려버리면, 히데요시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군끼리 전공을 다퉈서 어쩌겠다는거지?"


"전공을 다투게 하는 쪽이 간단히 사기를 올릴 수 있으니까겠지. 오히려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즈코 님께서 걸출하신 것 뿐이야"


"쓸데없는 얘기는 슬슬 그만해. 곧 도착할 거야"


세 사람의 예정된 저격 지점에 도착하자, 이치로와 치사가 주변을 경계하면서 적의 흔적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안전이 확보된 시점에서 키쿠가 저격 포인트를 정하고, 그 주변에 짐을 내려놓은 후 다시 총을 조립했다.

딱히 사전에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어, 촌각의 지체도 없이 저격 준비가 갖춰져갔다.


"좋아, 배치 끝. 지시를 부탁해"


총신에 금속 가이드로 연결된 총탄을 장전하고 키쿠는 사격 태세를 취했다.




5월에 들어선 이래, 노부나가의 기분은 악화의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짜증스러움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다만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말이 없는 노부나가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노히메(濃姫)라 하더라도, 노부나가의 기분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


노부나가의 짜증스러움의 원인은, 그가 손에 든 서신에 있었다. 그것은 시즈코로부터 온 '청가(暇乞い, 현대에서 말하는 휴가신청)'의 서신이었다.

그 내용이란 비트만에 이어 짝인 바르티도 건강이 나빠져, 두 마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다.

처음(最初期)부터 자신과 함께 있어준 충신의 마지막에 가능한 한 곁에 있어주고 싶기에, 당분간 일을 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청가에 대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드디어 쉴 생각이 들었나'라고 안도했을 정도였다. 그럼 뭣 때문에 짜증이 났느냐고 하면, 자신의 어리석음(不明)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군. 시즈코가 청가를 요청하기 전에 그 녀석의 어려움을 헤아려주지 못하다니……)


돌이켜보면 시즈코를 주워온 지 1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무리한 난제(無理難題)를 떠넘겨왔으나, 시즈코는 공사 양면에서 자신을 뒷받침해 주었다.

만약 '시즈코를 주워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자신이 있었을까'라고 자문할 경우, 즉각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으리라.

뭔가의 운명(巡り合わせ)으로 천하인(天下人)에 손이 닿을 곳까지 왔다고 해도, 지금처럼 반석같은 체제는 구축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개중에서도 제일가는 계기(転機)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을 저지했을 때이리라. 누구나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노부나가 자신조차, 자군의 승리를 3할로 예측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신겐이 이끄는 타케다 군은 강했다.


(단 하루의 싸움이 내 입장을 뒤바꿔놓았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직전가지는 '오다의 천하도 여기까지다'라고 자신을 저버리고 떠나가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밤이 지나 이튿날이 되어,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손바닥을 뒤집는 자들이 속출한 것이다. 그 날을 경계로 대세(潮目)가 확연히 바뀌었다.

그만큼 큰 일을 해낸 최대의 공로자임에도, 시즈코만은 전투를 전후하여 전혀 변한 곳이 없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전혀 들뜬(気負った) 기색이 없이, 점심식사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나 하는 것 같은 가벼운 태도로 귀환 인사를 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그 때 처음으로 시즈코가 무섭다고 느꼈다. 시즈코는 때때로 자신보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시즈코에게 있어 미카타가하라 전투란, 이판사판의 운명을 건 결전이 아니라, 오늘과 연속되는 내일로 이어지는 일상의 연장일 뿐이었다.

그런 시즈코가 지금, 명백하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놓인 상황을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함과 동시에, 묘한 이야기이지만 인간다운 감정을 자신에게 드러내준 것을 기쁘게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짐승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언제 어느 때나 시즈코의 곁에 있던 최초의 벗이니 말이다"


노부나가는 그 늑대에 대해 시즈코가 품는 심정은 육친의 그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의 말하지 않는 시즈코의 부탁이다. 노부나가로서는 만난(万難)을 물리치고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거의 없다. 하다못해 시즈코가 사소한 일에 붙잡히지 않도록 손을 써 주는 것이 주군의 도리인가……"


그렇게 말하더니 노부나가는 우필(右筆)을 불러 몇 장의 서신을 쓰게 하여 곳곳에 보내게 했다.

하다못해 시즈코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시즈코에게 귀찮은 일을 가져올 만한 패거리를 미리 견제하는 것이다.


"훗"


거기까지 신경쓰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노부나가는 웃었다. 그의 가혹한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상대를 배려해준 일 따위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뿐이다.

천하인이라고 떠받들어지는 자신이, 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이 차이가 있는 시즈코에게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항상 녀석에게는 놀라게 된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악마같다고 형용되는 자신에게 이런 일면이 있었다니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전국시대에서는, 타인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자살행위다. 설령 피가 이어진 육친이라고 해도, 야심을 위해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시즈코만은 다르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항상 배신에 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멍청이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신기함 때문에 주워온, 쓰고 버릴 장기말이었다. 그 장기말은 차례차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여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데다, 새롭게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아첨을 하지 않기에 때때로 부딪히는 경우도 있지만, 시즈코는 항상 정직했다. 얼핏 노부나가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듯 보여도, 항상 노부나가의 이익이 되도록 움직여주었다.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내게 바란 것은 묘한 것들 뿐이었다. 밭을 경작할 인부에서 시작하여, 남만이나 명나라(明)에서 재배되고 있는 작물이 씨앗이라느니, 본 적도 없는 짐승이라느니. 그러다가 종교세력(寺社)이나 공가(公家)의 낙서(落書き)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돌아버린 건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립군…… 그리고 이번에는 휴식을 원한다니, 정말이지 시즈코에게는 휘둘릴 운명인 모양이다"


말의 내용과는 반대로, 노부나가의 표정에 직전까지의 언짢음은 없고 오히려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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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1 1576년 4월 하순



4월을 눈앞에 두고 봄이 한창때라는 무렵이라 그런지, 노부나가는 신하들에게 꽃구경(花見) 연회(宴) 개최를 알렸다.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講和)는 아직 전망이 서지 않았으나, 공을 세운 가신들에게 상을 주는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시즈코의 경우, 노부나가로부터 주연(酒宴)에 관한 다양한 물품을 준비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내용에서 '주연을 핑계로 자신이 단 것을 먹고 싶어졌다'라는 노부나가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비트만의 일도 있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것은 피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으나, 조금 상태가 안정된 것과, 아야(彩) 등이 등을 떠민 것도 있어, 오랜만에 공식적인(晴れ) 자리에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노부나가의 부하들도 대규모가 된 결과, 이름높은 무장들은 일본의 각지에 흩어져 있다. 연회에 관한 물품의 조달을 담당하는 시즈코를 제외하면, 키나이(近畿) 지역에 본거지를 두는 무장들은 여유를 가지고 아즈치(安土)에 도착했다.

시즈코 자신은 물자의 수배를 끝내자 한 발 앞서 아즈치로 향하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 혼간지와의 강화에 대해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의 양부(養父)이기도 한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로, 시즈코 자신이 그에게서 요청이 있다면 지원하는 정도의 관여밖에 하지 않았기에 가볍게 행동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의상에 돈을 들이는 의미(意義)를 알 수 없었는데, 지금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사교 자리에서의 복장이 갖는 의미가 이해되게 되었어. 이 특주(特注) 후리소데(振袖)…… 대체 얼마나 들었는지 듣지 못했지만, 절대로 더럽힐 수 없는 분위기가 있네"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 으리으리한 포장(行李)에서 꺼내져서 옷걸이(衣文掛)에서 존재감을 호소해오는 후리소데를 바라보았다.

이번의 연회에서 아야와 쇼우(蕭)는 시즈코의 의상으로 준비한 비장의 의복을 선보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시즈코는 복장을 꾸밀 기회 같은 것 없었고, 지위에 걸맞는 복장을 할 경우에도 정장의 경우 남장이었으며, 소재나 봉제(縫製) 등은 일급품을 사용하고 있지만 화려(華美)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주최하는 꽃구경이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절에 어긋나지만 않으면 조금 긴장을 풀어도 질책받을 일도 없다.

그것을 알게 된 아야들의 행동은 재빨랐다. 가장 빛나야 할 소녀(娘) 시대의 대부분을 밭일과 피비린내나는 싸움으로 보내고, 미혼인 채 양자라고는 해도 1남 1녀를 얻었다.

지금을 놓치면 시즈코가 여자로서 공식적인 무대에 올라갈 일은 없다고 생각한 아야들은, 단 한 번의 기회로 오랫동안 후세에까지 전해질 정도의 인상을 남기기로 했다.

시즈코로서는 묘하게 기합이 들어간 아야들과 관계없이 평소대로의 남장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준비된 의상을 눈으로 보고 기겁하게 된다.


그녀들이 시즈코의 앞에 내놓은것은, 현대에서 미혼여성의 제일의 예복(礼装)으로 치는 오문(五つ紋, ※역주: 등, 양 가슴, 양 소매 등 다섯 군대에 가문의 문장을 넣은 것)이 들어간 혼후리소데(本振袖, ※역주: 소매가 긴 후리소데를 말하는 듯함)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혼 여성에게 한정된 것은 근년의 일이며, 전국시대에는 그런 제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에도(江戸) 시대, 한창때인 17~19세를 넘기면 후리소데를 입지 않게 되었다고 하나, 그 때도 기혼미혼은 따지지 않았다.

미혼여성의 상징으로서 취급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일설에는 '소매를 휘두른다'라는 행위가 신사(神事)에서의 무녀(巫女)의 카구라마이(神楽舞)나 타마후리(魂振)에 통하기 때문에, 에도 시대에 마음 속에 있는 상대를 돌아보게 하는, 또는 상대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행위로서 '소매를 휘두르'게 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결과, 후리소데는 미혼여성이 입는 의상으로서 정착되어, 결혼 후에는 소매가 짧은 토메소데(留袖)를 착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밖에도 시대극 등에서 외출하는 반려자에 대해 부인(奥方)이 부싯돌을 딱딱 부딪히며 전송한다는 표현이 보인다.

그것은 소리를 내어 공기를 흔들고 불꽃을 튀겨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있다. 그것이 바뀌어서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손을 흔들어 전송한다는 등의 행위로서 간략화되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건 그렇고 적자색(magenta) 바탕이라니…… 빨간색 정도는 아니지만 충분히 요란하네. 무늬도 '납결염색(ろうけつ染め, ※역주: 臈纈 또는 蠟纈)'을 쓴 길상(吉祥)의 화초(草花)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염색해서 묘하게 눈에 띄고"


소재에는 본견(正絹)을 쓰고, 바탕색에 포멀한 검은색이 아닌 우아한 적자색을 골랐다. 게다가 단색이 아니라 그림에 맞춰 바탕색도 그라데이션이 들어가 있어, 염색사(染物師)의 집념 비슷한 열의를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백색이 강한 무늬와 합쳐졌을 때의 화려함은 눈이 크게 떠질 정도이면서, 불쾌하지 않도록 고급스럽게 마무리되었다는, 그야말로 어그레시브한(攻めた, ※역주: 문맥상 의미가 aggressive라는 느낌인데 그냥 '공격적인'이라고 번역하면 뉘앙스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어그레시브라고 씀. 다만 아래에서 노히메의 대사에서는 '대담한'이라고 의역함) 후리소데가 되어 있었다.


"이런 걸 입으면 걷는 것만 해도 고생인데?"


"안심해 주십시오. 당일에는 가마(輿)에 타시게 됩니다"


"으ー음, 아무래도 20세를 넘은 퇴물인 내가 이런 차림새는…… 애처로워 보이지 않을까?"


"시즈코 님의 의상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주상 가족분들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시즈코 님의 모습이야말로 유행이 됩니다"


시즈코는 슬며시 평소의 남장을 희망했으나, 오늘의 아야들은 완고하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녀들도 뭔가 생각이 있어 이 의상을 추천했고, 그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주는 것을 배려하여, 시즈코는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아, 띠(帯)를 보여달라고 하질 않았네. 뭐, 괜찮으려나. 일임한 이상은 각오를 굳히자)


한 번 태도를 정해버리니, 오히려 어떤 취향을 살린 띠가 나올지 기대되는 여유조차 생겼다.


당일이 되어 의복을 정제할 때 본 띠도 화려한 것이긴 했으나, 어중간하게 무늬가 들어가 있어 기묘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의복 정제가 끝나고 전체 모습을 전신거울(姿見)로 확인했을 때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후리소데의 무늬가 띠와 합쳐져도 그림으로서 성립하게 되어 있는 거구나. 이 후리소데 전용의 띠인가……"


자신이 이후에 몇 번이나 이 후리소데를 입을 기회가 있을지를 생각하면 어쩐지 무섭기도 했지만, 띠와 후리소데가 일체감을 드러내고 있어 훌륭한 완성도였다.

트집을 잡자면 시즈코의 체형에 맞추었다는 점이고, 또 정교하고 치밀한 무늬 때문에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기도 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곧 가마가 올 테니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응. 섣불리 움직일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좀 쉴게"


그렇게 말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아야나 쇼우를 향해 시즈코는 소매를 흔들었다.

그 모습은 화초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우아하여, 몇 명이나 되는 몸종들이 그 모습에 넋이 나가 손을 멈출 정도였으나, 시즈코만이 깨닫지 못했다.


"시로쿠(四六)나 우츠와(器)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겠찌만, 이번에는 참가 인원이 엄선되어서 말이지"


이번 연회에 초대받은 것은,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와의 일련의 소동에서 특별히 공이 있다고 인정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미츠히데(光秀)는 초대받았으나 히데요시(秀吉)는 부름받지 못했고, 내조(内助)의 공이 있었던 것도 아닌 시로쿠나 우츠와도 당연히 대상이 아니다.

초대객의 선발 자체는 노부나가가 독단으로 행하여, 그 선발 기준은 알 수 없지만, 남편이 집을 비운 도중 집안을 잘 관리하였다고 하여 내조의 공을 평가받은 것인지, 처자나 친족의 동행을 허락받는 사람도 있었다.


출발(出立) 직전에 노부나가로부터의 사자가 찾아와, 그 '준비'를 마친 시즈코는 아야들의 시중을 받으며 준비된 가마에 올라탔다.

평소에는 자기 발로 걷거나 말로 이동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에, 인력으로 떠메고 이동하는 가마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동안으로, 꽃구경의 연회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그 느릿한 걸음과 약간의 아래위로의 움직임에, 전철(電車)의 리듬 비슷하네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연회장에 도착하여 가마가 내려지고 발(御簾)이 걷어올려지자, 쇼우의 손을 빌려 땅으로 내려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즈코 님"


안내 역할을 붙여준다는 노부나가의 말대로, 도착한 시즈코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그쪽으로 눈을 돌리자 문장이 들어간(紋付) 예복(裃) 차림의 호리 히데마사(堀秀政)가 고개를 숙여 인사(お辞儀)하는 자세에서 얼굴을 들어, 시즈코의 아름다운 모습(艶姿)을 보고 굳어 있었다.

지금은 근시(近習)의 필두(筆頭)로 알려져 있으며 노부나가의 신임도 얻고 있는 그는 시즈코와 얼굴을 마주할 일도 많다.

그러나, 그런 그조차 이번의 시즈코의 모습은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 듯, 예절에 밝은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말없이 응시당하여 조금 거북해진 시즈코는 자신이 말을 걸기로 했다.


"호리 님께서 직접 마중해주시다니 황송합니다. 이번에는 꽃구경 자리라고 하여, 눈을 어지럽힐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였으나, 시시한 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枯れ木も山の賑わい)고 하니 양해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조(自嘲)하듯 시즈코가 미소를 짓자, 호리는 튕기듯이 고개를 숙이며 무례를 사죄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시즈코 님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을 잃었습니다"


"호리 님 같은 분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면, 나잇값도 못하고 이런 차림새를 한 보람이 있군요"


시즈코는 빈틈이 없는 호리의 립 서비스(社交辞令)라고 판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넘겼으나, 호리는 진심으로 경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의 시즈코는 발톱부터 머리 끝까지 아야와 쇼우의 손에 의해 단장되어, 평소의 남장 차림의 시즈코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그 격차에 놀라게 된다.

머리카락은 동백기름을 배합한 특제 트리트먼트로 정리하여, 햇빛을 받아 고운(艶やかな) 광택을 보이고 있었으며, 피부는 납을 함유하지 않는 특제의 백분(白粉)을 시작으로 한 기초화장품으로 현대에서 말하는 내추럴 메이크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내추럴 메이크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장한 것을 알 수 없도록 자연스러움을 보이게 화장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점에서 아야와 쇼우의 실력은 일급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 호리, 결코 입발린 말 같은 것은 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처럼의 아리따운 모습을 주상께 보여드리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급작스럽지만, 안내하겠습니다"


호리의 말에 시즈코는 긍정하고는 연회석의 주 회장에서 약간 떨어진 위치에 세워진 정자(四阿)로 안내되었다.

주최자 자신이 연회장을 놔두고 뭘 하고 있나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연회장의 누구로부터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묵인하기로 했다.


"주상, 시즈코 님이 오셨습니다"


정자에서는 붉은색 깔개(緋毛氈)가 깔린 평상(縁台)에 앉아있는 노부나가가 절정기(花盛り)의 벚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옛"


"시즈코, 가까이 오거라"


"옛"


노부나가의 대답을 듣고 호리는 정자 바깥쪽으로 물러가고, 그와 교대하여 시즈코가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의 벚꽃으로 시선을 향했던 노부나가가 돌아보더니, 약간 숨을 들이킨 이후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야말로 '옷이 날개(君飾らざれば臣敬わず, ※역주: 신분이 낮은 사람이라도 꾸미면 그럴듯해 보인다는 뜻)'로구나. 훌륭하게 변신했군, 몰라볼 정도였다 시즈코. 뭐 좋아, 너도 앉아라"


"실례합니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앉아있는 평상으로 시즈코를 불렀다. 주군과 동석이라는 건 대단히 황송하지만, 본인이 앉으라고 하고 있으니 시즈코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지만, 정자 주위에는 호위들이 배치되어 있고, 호리도 가까이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가 이만큼 가까우면 대화가 밖으로 새어나갈 일은 없다.


"하여, 일은 어찌 되고 있느냐"


"매우 좋습니다. 서쪽으로는 모우리(毛利), 동쪽으로는 호죠(北条)까지 주요 지역은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대놓고 조적(朝敵)이 되고 싶은 영주(国人)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킥 하고 미소지었다. 조적이란 천자(天子)에게 반기를 드는 역적(逆賊)을 말한다. 명분 사회인 무가(武家)에서 조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하다.

한 번 조적으로 지정되면 일본 전국의 영주로부터 노림받게 된다. 이것을 회피하려면 조정에 대해 항복할 뜻을 밝히거나, 토벌군을 격퇴하고 유리한 조건에서 강화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조금은 뱃심(腹芸)이 늘었느냐?"


"좋은 선배들의 지도가 있었던 덕분입니다. 게다가 '저는' 예사(芸事)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제법 웃기는구나"


시즈코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는 큰 웃음을 떠올렸다. 이미 시즈코의 인생 업무로서 인정받고 있는 예사 보호의 활동은, 조정의 지원도 있어 널리 일본 전국에 주지되기에 이르렀다.

시즈코는 그 성과를 자료로서 편찬하여 정기적으로 천황(帝)에게 헌상하고 있었다. 카메라의 실용화 이후로는, 누구의 눈에도 뚜렷하게 알기 쉬운 자료가 도착하게 되어,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은 그 실적에 대한 상으로 어떤 윤지(綸旨)를 내렸다.

그 윤지란 '시즈코의 예사 보호는 조정의 사업이므로, 협력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최대한의 편의를 보아 주도록'이라는 것이었다.

즉, 시즈코는 예사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대의명분이 있다면, 설령 적대하는 영주의 영지라 하더라도 프리 패스에 가까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적대 세력 하에서는 감시도 붙지만, 자국 내에서 시즈코 일행의 몸에 무슨 일이 있다면 자신의 무능함(不手際)을 추궁받게 되기에, 직속 부하들에게 호위를 맡길 필요까지 있었다.


"만난(万難)을 배제하기 위해서도 고노에(近衛) 가문 분들에게 이것저것 협력을 받았기에, 조금 큰 비용이 들기는 했습니다만 안전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 명목으로 어느 정도' 기록(網羅)할 수 있었느냐?"


"주요 도로(街道)를 따라서는 전부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야심만만한 노부나가가 이 굴러들어온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예사 보호 요원들 속에 당초 간자를 잠입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것을 잘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초록은 동색(蛇の道は蛇)이랄까, 간자는 간자를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기로 했다. 그것은 예사 보호의 일환이라고 칭하여 측량 도구를 반입시키고, 상감의(象眼儀) 등을 이용하여 간이 측량을 하고 다니게 했다.

이 시대에서 토지 측량(検地) 등에 사용되는 원시적인 측량 도구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기에 얼핏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점도 맞물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여기저기를 측량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럼, 부탁했던 '단것(甘味)'을 가져와라"


"옛, 이쪽입니다"


대답과 함께 시즈코는 후리소데의 소매에서 몇 개의 봉투를 꺼내 보였다.

노부나가의 앞에 늘어놓아진 봉투에는, 겉에 서쪽에는 '아키(安芸, 모우리의 본거지)'에서 북쪽은 '카이(甲斐, 타케다(武田)의 본거지)', 남쪽은 '아와(安房, 호죠(北条)의 영토)'까지 주루룩 놓아져 있었다.

게다가 '하리마(播磨)'나 '사카이(堺), '미카와(三河)'에 '이즈(伊豆)'나 '사가라(相模)' 등의 전략상의 중요 거점도 있었으며, 개중에서도 '미카와'나 '야마토(大和)', '에치고(越後)' 등 아군의 토지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쪽이 고노에 가문의 명물 '쿄 소식(京便り)'입니다. 꽤 재미있는 물건이거든요?"


'쿄 소식'이란, 고노에 사키히사가 발행하는 주간(週刊) 신문에 가까운 것을 가리킨다. 구독할 수 있는 사람은 공가(公家)로 한정되며, 일본의 정세 동향에서 쿄에서의 유행, 제사(祭事)나 행사(催し物) 등의 알림 등 폭넓은 정보를 제공한다.

자신이 속하는 파벌의 정보 공유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착수한 정보지인데, 지금에 와서는 쿄의 공가들 중 이것을 읽지 않는 사람은 유행에서 뒤떨어진다고 하여 다들 하나같이 찾는 것이 되었다.

지면을 통한 교류도 꾀해져, 조정에서의 인사나 문상(お悔み) 등의 정보, 구독자끼리 자작의 시(和歌)를 게재하는 코너를 개설하는 등,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저가격에 제공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것에는 까닭(絡繰り)이 있는데, 아무리 권세를 자랑하는 고노에 가문이라고 해도 돈 먹는 하마인 종이를 써서, 역시 신기술의 결정인 인쇄를 하여 내보낸다고 하면 벌이가 없어서는 계속할 수 없다.

이 정보지에 돈을 낸 것은 상인들이었다. 현대에서도 텔레비전 CM이나 인터넷 광고 등에 기업이 광고료를 지불하듯, 조금이라도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력자들의 대다수가 읽는 매체라는 것에 자신의 상품을 게재할 수 있다는 메리트를 놓칠 리가 없다.

게다가 뭣보다 이 '쿄 소식'에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명백히 오다 가문과 친한 사이(懇意)인 고노에 사키히사가 주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다 가문의 사업과 적대 관계에 있는 상인이라도 출고(出稿)할 수 있었다.

어디의 누구던 간에, 지면을 점하는 비율에 맞는 일정의 광고료를 지불하면, 자신의 주장을 지면에 게재할 수 있었기에, '쿄 소식'의 사회면은 활기에 차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있어, 시의 교류 코너에서도 공연하게 오다 가문을 비꼬는 내용의 시가 게재되고, 그것을 부추기는(囃し立てる) 시도 다음 호에 실렸다.

오다 가문을 기껍게 생각하지 않는 종교가(宗教家)들이 지면에서 논진(論陣)을 펴 보는 등 혼돈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의부께서 어디에서 '쿄 소식'을 인쇄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천하인(天下人)을 대놓고 비판해도 어디에서도 질책이 없다면 한패끼리의 서신 교환의 연장선상이라고 안심해버린 것이겠군요"


사키히사는 법에 어긋나지 않은 한 어떠한 내용의 원고도 게재했고, 누구에게도 그 내용을 흘리지 않았다.

물론, 대놓고 천황을 비난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고, 공가들도 자신들의 기둥(屋台骨)인 황실을 비판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않는다.

공가들은 자신들(身内)만이 구독할 수 있다는 성격상, 모두가 공범자이며 공가 내부의 비밀이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는다고 굳게 믿어버리게 되었다.


"쿄에 있는 네 저택은, 칸파쿠(関白) 님의 휴게실(立ち寄り所)이라고 불리는 모양이다"


"쿄에서 윤전기(輪転機)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제 별저(別邸) 뿐이니까요. 제 쿄 저택에는 모든 '쿄 소식'이 한 부도 빠짐없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시즈코의 쿄 저택은, 지금은 사키히사의 저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 쪽이 많을 정도라서, 고노에의 본가(本宅)를 찾아가기보다 시즈코의 쿄 저택을 찾아가는 쪽이 사키히사와 만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은 누구였더냐?"


"글쎄요, 그렇게 심보 고약한 분은 알지 못합니다"


"뭐 좋다. 이걸로 시끄럽게 재잘대는 참새들의 동향도 훤히 보이게 되었으니, 혼간지가 정리되는 대로 대청소를 해주겠다"


전국시대 최대의 무장 종교세력인 혼간지가 쓰러지면, 다른 종교가들로는 노부나가에 대항할 세력은 될 수 없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면, 큰 종교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에 그 싹을 뽑아버릴 수도 있는데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 만한 지도자(神輿)도 적임자가 없다.

권모술수(搦め手)에 능한 공가의 동향은 사키히사의 손에 의해 오다 가문에 고스란히 새어 나가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노부나가는 먼저 모든 무가를 자신의 지배하에 넣으려고 획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쪽으로는 모우리, 동쪽으로는 타케다과 호죠를 무찌르지 않으면 무가의 통령(統領)을 자처할 수 없다.


"놈들의 놀라는 표정이 기대되는구나"


적에게 주어진 일시적(仮初)인 자유인 줄도 모르고 구가하며, 지면 상에서 노부나가를 촌놈(鄙)이라고 얕보고 있는 공가들이 자신의 앞에 엎드릴 때를 생각하니 몹시 기대되는 노부나가였다.




시즈코가 넘긴 측량도(測量図) 등의 문서를 노부나가가 직접 엄중하게 보관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꽃구경 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역인 노부나가의 등장과, 평소답지 않게 화려한 시즈코의 차림새에 주위의 동요가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노부나가 자신이 시즈코를 데리고 나타난다는 행위는, 시즈코의 입장이 더욱 강고(強固)한 것이 되었음을 주위에 알리고 있었다.


"호홋. 너로서는 드물게 대담한(攻めた) 복장이 아니냐"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노히메(濃姫)가 재미있는 듯 중얼거리더니, 그녀의 손에 의해 시즈코는 남자들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교장으로 납치되었다.


"주군께서는 충분히 시즈코'로' 즐기셨을 테니, 이 이후에는 소첩들이 시즈코'로' 즐기도록 하지요"


노히메의 속셈을 헤아린 것인지, 아니면 귀찮음을 피한 것인지, 노부나가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좋을대로 하라고 내뱉았다.

그리하여 시즈코가 끌려온 곳은, 남자들의 연회장에서 조금 떨어진 벚꽃나무들(桜並木) 아래 준비된 다화회(茶会) 자리였다.


(아아, 겨우 아야 짱과 쇼우 짱이 필사적으로 이걸 입히고 싶어한 이유를 알겠어)


시즈코는 지금까지 활동 장소의 주축을 남자 사회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남자들의 역학(力学)에서 분리된 여자들의 정원이었다.

지금까지 시즈코는 남장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격의(隔意)가 있다고 간주되고 있었으나, 간신히 입장에 걸맞는 의상을 갖추고 내측(奥向き)을 관장하는 여성 사회의 사교장으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시즈코의 연령을 생각하면 너무 늦지만, 입장을 생각하면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첫 선을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얕보이면 서열의 아래위에 끼어들어오기에 쉽게는 부상(浮上)할 수 없다.

그래서 아야와 쇼우는 가진 권력을 총동원하고, 쓸 수 있는 연줄은 모두 써서, 최첨단이면서 누가 봐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명품(逸品)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보람이 있어, 다화회에 동석하는 귀부인들의 눈은 시즈코에 못박혀있었다. 주가(主家)의 여주인인 노히메가 총애하고 있기에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조야(粗野)하고 거칠다(がさつ)고 야유하고 있던 시즈코의 우아함(手弱女)은 그녀들의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자신도 저렇게 화사하게 염색된 옷을 입어보고 싶다. 평소의 시즈코가 보이는 햇볕에 탄 피부를 희게 보이게 하는 마법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누구나 생각했다.

여성의 사회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정의이며, 동경을 품게 된다는 것만으로 다들 한 수 물리게 된다. 누구나 동경을 품는 유행을 발신하는 시즈코를 가볍게 볼 수 있는 사람 따위 이곳에는 없었다.


시즈코는 자신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바뀐 것은 깨달았으나, 이러한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 알지 못해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상황에서 시즈코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항상 그렇듯 노히메들이었다. 그녀들은 입을 모아 시즈코의 차림새를 칭찬하고, 주위에도 동의를 구하며 극히 자연스럽게 환영 무드를 만들어냈다.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시즈코에게는 직접 대화하지 않고, 비교적 시즈코에게 호의적인 여성진을 중심에 둔 후, 시즈코의 품평회가 시작되었다.


"시즈코 이것아, 거기서 빙글 돌아보거라. 과연, 바탕색에 농담(濃淡)을 주는 것으로 색감의 폭을 보여주는 것이냐. 이 정교하고 치밀한 무늬는 또 어떠하느냐! 이것은 네 영지의 염색사의 솜씨더냐?"


"아, 네. 저희 영지에서 새롭게 개발한 납(蝋)을 쓴 '납결 염색'에 의한 것입니다. 종래의 것보다 더욱 색의 흐려짐이 없어져 뚜렷한 무늬가 되는 듯 합니다"


"과연. 나도 한 벌 맞추도록 할까?"


시즈코에게 보이도록 히죽히죽 약간 짓궂은 미소를 떠올린 노히메는, 대회에서 흐름을 유도했다.

이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정점에 있는 노히메가 좋다고 인정하고, 그 물건을 주문하려 하는 것이다. 이미 유행은 발신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약 시즈코가 혼자였을 경우, 이만큼 교묘하게 주위에게 인정하게 할 수 있었을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보시는 바와 같이 소매의 길이를 길게 하였기에, 사용하는 천도 많아집니다. 필연적으로 그만큼 가격이 나가기에 가게에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어용상인에게 말씀해주시면, 그에 걸맞는 시간이 들기는 하겠습니다만, 여러분께 준비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귀부인들은 바쁘게 대화를 나누었다. 시즈코의 어용상인이라고 하면 '타나카미야(田上屋)' 일문을 가리키며, 그야말로 일본 국내의 어디에든지 분점(暖簾分け)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배경도 있어 갑자기 여성진의 구매 의욕이 불타올랐을 때, 시즈코가 옷감(着物生地)의 견본장(見本帳)을 펼치자 단번에 물욕이 구체화되었다.

"이 옷감이 멋지다", "이쪽 무늬가 예쁘다" 등 주위는 그녀를 중심으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어갔다.


"아직 머리가 굳은 것들이 있으니 손이 가겠지만, 이걸로 여자 사회에서도 시즈코의 지위는 확고한 것이 되겠지"


주위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노히메는 혼자서 웃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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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0 1576년 3월 하순



비트만의 용태는, 이례적인 조기 발견과 그 대처가 빨랐던 점도 있어 소강상태를 되찾았다.

시즈코는 그 동안 계속 곁에 있으면서 헌신적으로 간호를 도왔다.

의사 및 가축의 전문가인 미츠오(みつお)의 견해에 따르면, 비트만의 구토 및 토혈은 아마도 폐렴일 거라는 것, 대처로서 수분과 영양을 섭취하게 하고 안정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즈코의 정성스런 간호 덕분인지, 비트만은 곧 의식을 되찾았으나, 준비된 먹이나 물에 거의 입을 대지 않고, 들창(明り取り)의 격자(格子)에서 보이는 먼 산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비트만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가르쳐준 것은 미츠오였다.


현대에서 축산업에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가축이나 애완동물의 생사(生死)의 현장에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많이 입회했던 만큼, 죽을 시기를 깨달은 애완견의 행동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비트만은 자신의 목숨이 끝나려 하는 것을 깨닫고, 죽음(死出)의 준비를 시작한 것일 거라는 말이었다.

지금의 비트만의 체력으로는 이미 먹을 것을 소화시키는 것도, 물을 섭취하는 것도 어렵다.

혹독한 야생 환경에서 살아남는 늑대의 습성으로서, 무리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개체는, 스스로 무리를 떠나 모습을 감추는 쪽을 선택한다.

주인으로서, 아니 가족으로서 그 최후까지를 지켜보고 싶다고 바라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의 에고(ego)이며, 다만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 된다고 담담하게 시즈코에게 들려주었다.


순간 감정이 폭발하여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고 한 시즈코였으나, 그 입에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시즈코에게 비트만의 결말을 들려주는 미츠오의 표정은, 평소의 쾌활한 미소와는 동떨어진, 울음섞인 미소 같은 참괴(慙愧)를 되씹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즈코는 미츠오도 크게 원통(無念)한 것이라 깨닫고 말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본 미츠오는, 자신의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나이대의 여성이, 가혹한 환경에 필사적으로 맞서려 하고 있는데 또다시 고난을 떠넘기는 것이냐고 하늘을 저주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어. 이전부터 노화의 징후는 있었는데 받아들이지 못했어. 계속 못본 척 하고 있었던 거야…… 미안해, 비트만)


미츠오의 말에 의하면, 이제부터 비트만이 회복하는 것은 연령적으로도 어렵기에, 조만간 모습을 감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오늘밤일지도 모르고, 내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자력으로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보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도.


시즈코는 옆에 웅크리고 있는 비트만에게 손을 댔다. 비트만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식어 있었다. 아마도 이미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 것이리라.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 탕파(湯たんぽ)를 준비하게 한 후, 그의 목이나 겨드랑이 아래, 허벅지 안쪽 등 굵은 혈관이 집중되어 있는 부위에 두어 따뜻하게 해주기로 했다.


"알게 되어버려. 이 시대에 온 후로, 현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삶과 죽음을 보아 왔으니까. 생명의 불꽃이 꺼지려고 하는 걸, 어쩐지 알 수 있게 되어버려"


자신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시즈코는 마지막으로 한 번 비트만을, 깨지기 쉬운 것을 만지듯이 소중하게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늠름하고 듬직했던 몸은 여위고 쇠약해져, 예전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탄력을 돌려주지 않지만, 확실히 아직 살아 있다는 온기가 있었다.

비트만은 시즈코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만, 힘겹게 머리를 들더니 몸을 끌어안고 있는 시즈코의 뺨을 핥으면 한 번 울었다.

그의, 아마도 이미 보이지 않을 눈은, 그래도 시즈코를 똑바로 마주하고, 코로 시즈코를 밀어 떠나도록 재촉했다.


"그러네. 내가 이래서는, 너도 걱정되서 떠날 수 없겠지……"


시즈코는 소매로 거칠게 얼굴을 훔치고는 주위의 고용인(家人)들에게 명했다.


"이 시간 이후로, 이 방의 출입을 일체 금지합니다. 빗장을 걸지 않고 대문은 열린 채로 두세요. 또, 밤중에 늑대의 모습을 보더라도 일체의 접촉을 금지합니다. 이것은 영지 내의 모든 마을에 통지하세요!"


주군의 뜻을 받든 종자들이 즉시 움직였고, 시즈코 저택에서 가까운 산까지의 길에는 야간의 외출금지가 통보되었다.




그 후에도 시즈코는 하루에 한 번 비트만이 있는 곳을 찾아가, 거의 손대지 않은 식사와 물을 바꿔주고, 미지근해진 탕파의 내용물을 버리고 따뜻한 물로 바꿔넣는 것을 일과에 추가했다.

비트만의 최후는 멀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가 일생을 바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주인이 되자고, 시즈코는 결의를 새로이 굳혔다.


"우선은 폐를 끼친 모두에게 사과하고, 쌓여 있는 일거리를 확실히 처리해야지"


그렇게 결심하는 시즈코가 있는 곳에,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생명력의 덩어리 같은 인물이 찾아왔다.


"오랜만입니다, 시즈코 님!"


그것은 일본인에게는 드물 정도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머리에 두건(頭巾)이라 불리는 육각형의 모자를 쓰고, 터질 것 같은 육체를 검은 색(墨染)의 수행자 복장(山伏装束)으로 감싸고 있었다.

알현실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도, 시즈코는 밀착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별 일은…… 없으신 듯 하군요. 카레이교자(華嶺行者)"


시즈코는 그가 발하는 열기에 당한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말했다.

시즈코 저택에 승려가 찾아오는 것 자체는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는 그들과는 선을 긋는 존재였다.


만남의 발단은, 노부타카(信孝)로부터의 상담을 받은 것이었다.

즉, '이세(伊勢) 참배(詣) 길의 산야(山野)에 텐구(天狗, ※역주: 붉은 얼굴에 코가 긴 요괴인데, 여기서 우리말로는 문맥상 '도깨비' 정도의 뉘앙스로 이해하면 됨)가 나타난다'는 것으로, 참배객들이 습격받는 일은 없었으나, 짐을 나무그늘에 두고 물을 마시러 갔더니 짐을 도둑맞았다느니, 들개에게 공격받을 뻔 했는데 도움을 받고, 대금으로서 된장과 소금을 요구받았다느니 하는 소문이었다.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방치해서는 영주로서의 체면에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생각한 노부타카는 몇 번이나 병사를 파견했으나, 그 모두가 허탕으로 끝났다.

많은 숫자로 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기다리고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인원을 분산시켜 널리 배치하면 그 압도적인 몸놀림으로 농락당하여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몹시 곤란하진 노부타카는, 창피를 무릅쓰고 시즈코에게 고개를 숙이며 실력있는 무예가(武芸者)를 빌리기로 했다.

즉, 시즈코의 측근인 케이지(慶次),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가 텐구 퇴치에 동원되었다.

애초에 언제 어디에 나올 지 모르는 텐구 퇴치에 그다지 의욕이 없었던 세 사람이었으나, 해가 지고 야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텐구가 갑자기 나타났다.

소문과 다르지 않은 괴이한 모습(異形)과 올려다볼 정도의 체구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소리를 내지 않고 나타난 것 치고는 그 발걸음은 휘청휘청거리는 것이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나가요시는, 누군지 묻지도 않고 수리가 막 끝난 바디시(bardiche)로 베어 들어갔다.

그에 대한 텐구의 반응은 번개같았다. 비몽사몽(夢見心地)에서 깨어난 건지, 손에 든 금강장(金剛杖)으로 교묘하게 바디시의 칼날 안쪽을 때려 튕겨내고, 거체를 가볍게 뒤집어 공중제비를 넘었다.

착지의 빈틈을 노리고 날아든 사이조의 신속(神速)의 찌르기는, 칼날 끝을 텐구의 한쪽 나막신(下駄)에 밟혀 땅에 박혔다.

그야말로 원숭이같은 몸놀림과, 숙달된 무인에 필적하는 동체시력을 가진 괴물이었다.

나가요시와 사이조가 전율하는 가운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케이지는 갑자기 냄비를 휘저어서 내용물을 공기(椀)에 담아 텐구를 향해 내밀었다.


"냄새에 끌려 온 거지? 댁도 먹을래?"


그에 대한 텐구의 반응은 천둥같은 뱃속 벌레의 울음소리였다. 김이 샌 나가요시와 사이조도 무기를 내려놓았고, 텐구도 가면을 벗더니 턱 하고 앉아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되어버리니 하나같이 실력에 자신있는 무예가들끼리 의기투합하는 데 그다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텐구는 세상을 버리고 수도자(修験者)가 된 행자(行者)로, 산에서 너무 오래 산 결과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런 그를 유혹한 것은 시즈코가 만든 카레 가루가 듬뿍 들어간 카레 전골(カレー鍋)이었다.

그 맛과 향에 하늘의 계시(天啓)를 받은 텐구는 스스로 카레이(華嶺)라는 이름을 쓰기로 하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지않은 카레 가루를 제조한 시즈코를 주군으로 섬기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한 경위도 있어, 고용된 지 아직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 신체능력 및 은형(隠形) 능력은 숙달된 닌자는 고사하고 야생동물조차 능가하는 영역에 달해 있어, 외교승(外交僧)으로서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텐구의 가면을 벗어도 햇볕에 탄 붉은 얼굴은 텐구스러웠고, 키도 6척(약 180cm)를 가볍게 넘는데도, 혼잡함 속에 스며들면 즉각 모습을 놓쳐버린다.

또 근골이 늠름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학식에도 밝아, 젊은 시절에 명(明) 나라로 건너가 치수(治水)와 토목기술(土木技術)을 배운 학식승(学僧)이기도 했다.


"시즈코 님, 무례하여 죄송하지만 먼저 그 가루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보고는 이미 사무원들(事務方)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네? 아! 바로 준비시킬께요"


"감사합니다. 남은 게 얼마 되지 않아, 양을 줄여서 근근히 지내왔기에, 보십시오! 이렇게 손에 떨림이……"


"잠깐!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이상한 약처럼 들리잖아요! 그건 그냥 혼합조미료거든요?"


길 없는 산야를 어렵지않게 답파(踏破)하며 도로 따윈 필요로 하지 않고 직선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그는,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으로서 얻기 힘든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 이외의 누구도 그를 쓰려 하지 않는 이유는, 그 풍모와 성격에 능력을 웃도는 난점이 있기 때문이다.


"오호(嗚呼)! 그야말로 천축(天竺)의 향기. 한번 맡을 때마다 깨달음에 다가가는 기분조차 드는군요. 다시 불도(仏道)에 귀의(帰依)해야 할지…… 고민스럽군요"


"상당한 양을 건넸었다고 생각하는데, 뭐에 쓴 건가요?"


"동면에서 막 꺠어난 곰을 만나서 말입니다. 그쪽도 공복이라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이겠지요. 공격받았기에 할 수 없이 죽였습니다. 산의 규칙에 따르면, 죽였으니 먹어야 하지요. 하지만, 갑자기 습격받은 탓에 목을 졸라 죽여버려서, 전신의 고기에 피가 배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즈코 님께 받은, 그 가구를 써서 전골로 만들어 공양했지요"


"곰을 맨손으로 목졸라 죽였다는 말로 들렸는데요…… 뭐, 그건 좋다 치고 맛있었나요?"


"피비린내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생각된 고기도, 그 가루에 걸리니 야취(野趣) 넘치는 풍미로 변해, 소승의 피와 살이 되었습니다. 털가죽이나 간도 감사히 챙겨, 노자에 보태 썼지요. 자연이란 참으로 자비롭습니다!"


"승적(僧籍)으로 되돌아가면, 육식은 못 하게 되는데 말이죠……"


불도에서 산악신앙(山岳信仰)이나 불교, 밀교(密教) 등이 절충된 수행도(修験道)에 몸을 던진 그는, 적극적으로 살생을 하지는 않지만, 피비린내를 없앤다(※역주: 살생을 끊는다라는 의미인듯)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진결제(精進潔斎)는 과연 고귀한 가르침입니다만, 산을 앞에 두면 고기도 야채도 아무 차이가 없지요. 어느 쪽도 그 목숨을 뺏은 이상 맛있게 먹는 것이 소승 나름의 공양 방법. 소승은 저를 살게 해주는 모든 것에 감사를 바치고, 그 양식을 받을 뿐입니다"


"슬슬 점심식사 시간인데, 함께 하시겠어요? 멧돼지 고기의 도기판구이(陶板焼き)인데요……"


"흠, 이 향기는 된장이 타는 냄새. 이미 빼앗은 생명은 돌아오지 않으니, 감사히 먹기로 하지요! 멧돼지도 소승의 피와 살이 되어 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기뻐할 것입니다"


"……뭔가 궤변으로 들리지만, 그럼 준비시킬게요"


"산이시여 신불(神仏)이시여, 그리고 시즈코 님! 오늘도 여러분 덕분에 식사가 맛있습니다!"


텐구라기보다 그냥 파계승(破戒僧) 아냐?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 시즈코였으나, 계율을 개똥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상대에게 그런 얘기를 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시즈코 님, 뭔가 고민이 있으신 모습이군요"


"……그렇게 알기 쉬운가요?"


"조금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채겠지요. 그 정도로 당신(御身)께서는 경애받고 계시는 것입니다. 물론, 소승도 그 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하지만, 이건 스스로 처리해야 하니까요"


"시즈코 님, 부처의 가르침에 기대고 싶다면 소승이 도움을 드리지요. 하지만, 부처의 말은 듣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가르침을 들은 후에 '생각하고 대치(対峙)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네요"


"불타(仏陀)의 가르침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 스스로가 바뀌려고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시즈코 님을 도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께서 그 손을 잡지 않는 한, 그들은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다가오지 않겠지요"


"그러네요. 이러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모두에게 도움받고 있는 거네요. 그들의 손을 잡고,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면목이 없지요"


"생각하고, 고민하여 낸 대답이야말로 당신 자신의 초석이 되겠지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보고는 사무원들에게 맡겨두었으니, 설교같은 참견은 이쯤 하겠습니다"


제법 좋은 말을 하던 카레이교자였으나, 소의 울음소리같은 뱃속 벌레의 울음소리가 다 잡쳤다.


"후훗. 배는 정직하군요. 어느 정도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먼저 점심식사를 하세요"


"실로 부끄럽습니다만, 소승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아직 먼 듯 합니다"


한 번 몸을 꺾듯 하여 깊이 고개를 숙이더니, 그는 그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몸놀림으로 소리도 없이 방에서 나갔다.

만면에 미소를 떠올리고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은 차라리 상쾌하기까지 하여 작게 미소를 떠올리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소성(小姓)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어나감에 따라 표정이 조여졌다.


"드디어 끝날 때가 왔구나"


혼간지(本願寺)를 장악한 라이렌(頼廉)이, 드디어 오다 가문과의 강화(和睦)를 위해 움직였다. 카레이교자가 가져온 보고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혼간지가 오다 가문에 대해 강화를 요청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전국시대의 일대 세력이었던 혼간지가 노부나가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같은 서로의 태세를 정비하기 위한 일시적인 강화가 아닌, 자주독립을 버리고 완전히 오다 가문의 비호 아래 들어가는 것을 약속하는 강화였다.

쿠데타 발발로부터 몇 달을 거쳐, 라이렌은 장로들(年寄衆) 등의 혼간지 수뇌부를 장악하고, 조정에 오다 가문과의 중재를 의뢰했다.

이에 대해 조정은 칙사를 파견하여 몇 번의 교섭을 거쳐, 이번에 조정이 정식으로 강화를 중재할 것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강화가 성립하는 것이 곧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로부터의 혼간지 세력의 퇴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혼간지 측이 요청한 이상, 노부나가가 내걸고 있는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明け渡し)는 확실히 실행되어야한다.

세세한 조건에 대해서는 화의(和議) 자리에서 이야기되겠지만, 주요 안건이 되는 것은 교주(教主)였던 켄뇨(顕如)와, 그의 자식인 쿄뇨(教如)의 거취에 관해서이리라.


"이번의 화의에는 조정측에 아버님(義父上,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이 나오십니다. 저도 관계자로서 부름을 받았기에, 당분간은 혼간지 강화의 건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길어도 한 달은 걸리지 않을거라 생각하지만, 그 동안 사이조 씨는 저와 함께 행동해 주세요. 다른 사람들은 제 2차 토우고쿠(東国) 정벌 준비를 해 주세요"


혼간지와의 강화가 공식화되자, 시즈코는 측근들을 소집했다. 평소에는 아즈치(安土)에 틀어박혀 있는 타카토라(高虎)도 이 때만큼은 돌아와 있었다.

곧 아즈치 성이 완성(落成)되니 머지않아 임무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토목건축이나 축성에 대해서는 다들 한 수 물리게 되었지만, 무사로서 싸움터에서 공을 세우고 싶다는 심리가 있었다.

시즈코가 공을 세울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약속해주긴 했으나, 입을 벌리고 먹이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다.


"사용하지 않고 끝나면 좋겠지만, 일단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는 포(砲)의 준비를 해 주세요"


"쿄뇨냐"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강경하게 오다에 대한 항전을 주장했던 쿄뇨가, 이번의 강화를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의 일파에는 아와지(淡路)나 사이카슈(雑賀衆) 등, 혼간지와 오다 가문이 대립하고 있기에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혼간지가 강화 같은 걸 한다면 자신들의 밥줄이 끊어져버리기에, 어떻게 해서든 강화를 방해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수(旗頭)가 되는 것은, 강경파의 수괴(首魁)이기도 한 쿄뇨일 것이다.


사실, 역사적 사실에서도 켄뇨가 이시야모 혼간지를 포기햇을 때, 그는 켄뇨의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혼간지를 점거했다.

그 후, 혼간지는 당시의 위정자였던 히데요시(秀吉)나 이에야스(家康)에게 거듭 이용당하고, 최종적으로는 이에야스가 동서(東西) 혼간지 체제를 확립시킬 때까지 동란(動乱)의 시대를 보낸다.


(동서 혼간지 체제가 구축될 때, 그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부풀린 결과, 마치 주상께서 악행을 저지른 것처럼 퍼뜨려서 그게 정착되었지. 이것만큼은 피해야 하니까, 켄뇨의 후계자는 이쪽에서 지정해야 해……)


무장 세력으로서의 혼간지가 사라진다면, 노부나가도 시즈코도 그다지 개입할 생각이 없었다.

현시점에서도 이래저래 악평이 끊이지 않는 노부나가에게, 저지르지도 않은 악행까지 떠넘겨져서는 답이 없다.


"쿄뇨가 볼 때는, 주권을 찬탈한 라이렌의 말 따위 따르지 않겠죠. 친아버지인 켄뇨의 말조차 따르지 않았으니까요. 어떻게든 실권을 되찾아서 혼간지에 농성하는 철저 항전을 부르짖겠죠. 이제 움직일 수 있는 병사도, 그들을 먹일 돈도 쌀도 없는데……"


"저항한다면 혼간지와 운명을 함께 하면 되는거야. 하지 않는다면 내버려두면 되는 거고. 솔직히, 이미 혼간지에 저항 같을 걸 할 여력은 없겠지"


나가요시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최근의 노부나가는 싸움을 걸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무력충돌이라는 알기쉬운 싸움을 하지 않고 있는 것 뿐이며, 혼간지에 대해 경제 전쟁이라는 이름의 싸움을 계속 걸고 있었던 것이다.

무력충돌을 기다지 않고 경제적으로 몰려서 백성들에게 충분히 밥을 먹일 수 없게 된 혼간지에게 승산은 없었다.

라이렌은 그 현실을 이해했기에, 아직 모양새가 사는 동안 강화라는 형태로 항복하겠다고 노부나가에게 요청했다.


"여력이 있고 없고는 별개로 치고, 지금의 쿄뇨는 이판사판인 상황이야. 이런 상대(手合い)가 가장 까다로워. 지나치게 높은 자존심을 버릴 수 없기에, 현재 상황을 정상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도 덤벼들 가능성이 있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잔챙이(小物)는 너무 몰아붙이면 위험해"


"누굴 깨물 건지는 모르지만, 이쪽으로 온다면 박살낼 뿐이야"


"……뭐, 그것밖에 없으려나. 아무에게나 닥치는대로 달려드는 위험분자 같은 건 누구에게든 불이익밖에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라이렌으로서는 적자(嫡子)인 쿄뇨를 살려두고 싶을거야. 이건 조절(落としどころ)이 어려울지도 모르겠어"


"뭐, 그 부분은 오다 나으리가 정할 일이지. 여기서 시즛치가 고민해봐야 어쩔 수 없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케이지가 옆에서 참견했다.

실제로, 그의 말처럼 강화 조건 등의 모든 것에 대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노부나가이다. 시즈코가 진언해도, 노부나가가 아니라고 하면 끝이다.


"……그러네요. 이 이상은 내가 고민해봐야 어쩔 수 없네요. 달리 이야기가 없다면 이걸로 작전회의를 해산합니다"


참가자 전원을 보면서 시즈코가 말했다. 그에 대해 다들 침묵으로 대답했기에, 작전회의는 거기서 끝났다.

각각 부대를 가지고 있는 케이지나 나가요시는 방에서 나갔으나, 시즈코의 호위인 사이조만은 시즈코를 따르고 있었다.


(라이렌과 주상이 뒤에서 이어져 있다고 하면, 주상 이외에 혼간지에 손을 쓰고 있는 세력이 보이지. 지금은 확실한 증거도 없지만, 십중팔구 타케다(武田)나 호죠(北条)의 배후에 그가 있어. 역시 역사적 사실대로,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는 듯 하네)


타케다가 호죠와 동맹을 맺는 것은, 지금의 토우고쿠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지이다. 한편, 호죠는 한물 간데다 약해져 있는 타케다와 동맹을 맺을 의미가 약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호죠와 타케다는 손을 잡고 오다 가문의 토우고쿠 정벌에 대해 이빨을 드러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호죠 뿐만이 아니다.

에치고(越後)의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도사리고 있는 친 호죠 파가, 오다 가문의 토우고쿠 정벌에 맞춰 움직일 기색을 보였다.

지금까지는 각자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명백히 누군가가 깃발을 흔들어 보조(歩調)를 맞추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보이면 이야기는 빠르다.

우에스기에 오다와의 동맹을 파기시키도록 획책하고, 패주한 타케다와 이해가 충돌하는 호죠를 동맹으로 묶고, 내켜하지 않는 모우리(毛利)를 혼간지의 원조에 끌어냈다.

제 3차 오다 포위망을 만들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인물.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아직 쇼군(将軍)의 자리에 미련을 못 버렸나)


일이 이 상황에 이르렀어도 자신의 야심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남겨진 정치력을 구사하여 노부나가에게 이빨을 드러내려 하는 인물의 이름을, 시즈코는 마음 속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작전회의가 큰 진전도 없이 끝난 후, 아시미츠는 시즈코 저택의 안뜰(中庭)에 있는 정자(四阿)에 서서, 봄의 도래를 예감하게 하는 연못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풍경을 즐기고 있는 듯 가장하고 있었으나, 그의 내심은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죽여도 성이 안 풀린다!)


무의식중에 손가락 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펴며 아시미츠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분노를 드러내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가 시즈코를 해하려고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작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쿄(京)에 가까운 장소에 가게를 낸 여관(旅籠)의 주인으로부터 아시미츠에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주인의 여관은 제법 비싼 숙박료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날을 연속으로 숙박할 것을 신청한 숙박객의 차림새나 인상이 나빠서, 슬며시 상황을 살피도록 가게 직원에게 지시해 두었다.

요리를 운반하던 하녀가, 복도에서 '시즈코'라는 이름을 남자들이 몇 번이나 말하는 것을 듣고 주인에게 보고했다는 경위였다.

주요 도로(街道)를 따라 여관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에게는 모두 아시미츠가 뇌물(鼻薬)을 좀 먹여두었기에, 그 정보는 얼마 안 가 아시미츠에게 전달되게 되었다.

수상하다는 것만으로 아시미츠에게는 충분하여, 즉시 수하를 동원하여 문제의 숙박객 전원을 납치했다.

아시미츠는 일체의 주저 없이 고문을 행하여 주모자에게 깡그리 실토하게 했다.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놀랍게도 시즈코의 암살계획으로, 그 외에도 건달(ならず者)들끼리 연락을 취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

목숨을 아까워하여 여기까지 이야기한 주모자가 그 후 어떤 운명을 맞이하였는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계획을 알게 된 아시미츠는, 열화(烈火)와 같은 기세로 계획에 가담한 패거리를 말살해나갔다. 동시에 건달들에게 정보나 돈을 제공하여, 시즈코의 암살을 시도한 흑막을 조사하게 했다.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을 경유하게 하여 진짜 흑막이 누군지 파악하지 못하게 했던 모양이지만, 아시미츠는 그 모두를 줄줄이 사탕(芋づる式)으로 추궁하여 흑막에 도달했다.


(요시아키(義昭) 놈! 오다에 적의를 가지고 오다 포위망을 만들려 한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시즈코를 직접 노린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까마귀에게 먹이더라도 성이 풀리지 않는다)


요시아키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장 의지하고 있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을 저지하고, 고생해서 포위망을 구축하여 오다를 몰아붙여도, 오다 가문는 피폐해지기는 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 체제를 구축한 시즈코의 존재는, 방해 수준이 아니라 원적(怨敵)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요시아키 자신이 모우리 가문에 맡겨진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다의 기세를 꺾으려 책략을 궁리하여 실행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불발 내지는 시도는 했는데 간지럽히지도 못하고 있었다.

요시아키에게는 '장수를 쏘려면 먼저 말을 쏴라(射人先射馬)'에서의 말(馬)이 시즈코였다.

그러나, 노부나가 자신이 시즈코의 중요성을 잘 알고(知悉) 있기에 그녀의 보호는 견고했다.

우선 그녀의 영지 자체가, 몇 겹이나 주위를 둘러싼 오다 세력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외부 세력이 쉽사리 접근조차 할 수 없다.

게다가 시즈코 본인이 '군자는 위험에 다가가지 않는다(危邦不入)'에 철저하여,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보호 안쪽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시즈코의 경비가 약화되는 찬스가 찾아온다. 정월(正月)의 새해 인사 때문에 뒤늦게 아즈치(安土)로 이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요시아키에게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찬스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시즈코 습격의 실행범 선정이 잘 되지 않았다.

요시아키로서는 시즈코를 습격하는 것은 그녀의 통치에 불만을 가진 시즈코 영토 내의 파락호(破落戸)들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즈코의 통치 아래 있는 백성들은 시즈코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았고, 또 불만이나 요망을 상신하기 위한 경로가 정비되어 있었다.

따라서 시즈코 영토 내에는 소위 '건달'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전원이 불만을 품지 않는 통치 따윈 있을 수 없으니 시즈코에 반골심을 품는 자는 당연히 발생하지만, 그들을 받아들일 틀(枠組み)이 준비되어 있었다.

난폭자나 소행이 나쁜 자들은 병사(兵隊)의 적성이 있다는 것으로 예비역 병사로 편입되어, 그들에게 알기 쉬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군대라는 질서에 편입된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것은 의식주가 충족되고, 매일 할 일이 있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여 보상받는다면 의외로 나쁜 짓 같은 건 잘 저지르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악명높은 악당이나 구제불능의 쓰레기라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가?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배제된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궂은 일(汚れ仕事)을 맡는 사람들밖에 모른다.


요시아키가 생각한 시즈코 암살계획은 잘 짜이기는 했으나, 마무리가 어설펐기에 실패했다.

그것을 알게 된 요시아키는 분노로 펄펄 뛰며 주위에다가 화풀이를 해댔으나, 그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은 것을 깨닫지 못했다.


"가볍게 보답(意趣返し)을 해 줬지만, 도저히 속이 진정되지 않는군"


아시미츠는 요시아키에 대해 인사를 대신한 선물을 보냈다. 그것은 그의 아침식사로 시즈코 습격 계획에 가담한 자들의 신체의 일부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베갯머리에 암살계획을 꾸민 것을 파악하고 있으며, 반드시 자신의 소행을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열의가 넘치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모우리 측도 요시아키가 해를 입어서는 체면이 서지 않기에(外聞が悪い) 경호를 엄중히 했으나, 그걸 비웃듯 매일같이 요시아키에게 열렬한 선물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죽여봐야 의미가 없다. 자신이 저지른 짓의 중대함을 이해할 때까지 들이대어, 죽여달라고 애원할 때까지 몰아붙여야지"


애초에 형제라는 혈육 의식은 희박했으나, 시즈코에게 해를 가하려 한 시점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멸망시킬 적이 되었다.

한 번 스위치가 들어가버리면 시즈코 이외에 그를 막을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설령 노부나가가 제지(掣肘)하려고 한다 해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밀어붙인다. 그것이 아시미츠라는 남자였다.


"훗, 놈의 일은 일단 나중이다. 지금은 시즈코의 명령을 완수해야지"


포의 준비에는 시간이 걸린다. 한 발의 포탄을 발사하는 데 필요한 화약의 양만 보아도, 신식총(新式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자원을 소비해서라도 포를 사용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알기쉬운 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적 단체(単体)를 공격할 뿐인 총과 달리, 곡사탄도(曲射弾道)로 날아들어 주위 일대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포는 피해 발생 형태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아무리 견고한 성벽으로 지켜지는 성채에 틀어박히더라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괴의 비에는 대항할 방법조차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적의 마음을 꺾을 것이다.

항복하여 목숨을 건질 것인가, 무의미하게 이빨을 드러낸 끝에 시체조차 남지 않는 살육을 당할 것인가라고 듣고 후자를 선택할 미친 자는 많지 않다.


"아마도 다음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시즈코에게 '여유를 과시하라'고 오다가 명하겠지"


신겐(信玄)과의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는 자군의 총력을 동원한 '방어전(防衛戦)'에 승리했다.

세상에서는 다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즈코의 마음 속에서는 상대를 자신의 홈 그라운드로 끌어들여, 사전에 조사한 지형적인 이점을 살린 방어를 성공시켰다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은 그 반대가 되어 이쪽이 공격자가 되는 것이다. 전장은 선택하지 못해도, 공격 시간과 공격 방법도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은 크다.

게다가 이전과 비교해도 장족의 공업화를 이루고 있어, 군비의 증강은 헤아릴 수 없다.

바로 전(直近)의 전쟁에서 패배를 겪은 만큼, 다음 정벌에서는 압도적인 전과를 세상에 과시해보일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가 무엇을 이루어낼지, 지금부터 기대된다고 아시미츠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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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9 1576년 2월 중순



오우미(近江) 유수(有数)의 대상점인 '타나카미야(田上屋)'의 점주이자 시즈코의 어용 상인이기도 한 큐지로(久次郎)는 큐슈(九州)로 발길을 뻗치고 있었다.

그가 볼 때, 혼간지(本願寺)와의 연계를 잃은 모우리(毛利)로는 오다 가문의 패업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멀지 않아 전화(戦火)는 큐슈로 다가올거라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전쟁 재해(戦災)에 의한 유실을 피하기 위해 시즈코가 예사(芸事) 보호에 나설 것은 자명하며, 그러기 위한 발팜으로서 자신이 현지로 가서 시즈코를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려 분투하고 있었다. 상인과의 거래와는 달리, 무가(武家)인 영주(国人)들과의 거래에서는 현금이나 현물이 아니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리 시즈코라고 해도 멀리 떨어진 큐슈에서 큰 돈이나 그에 준하는 가치있는 현물을 준비하려면 해로(海路)를 통해 수송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용상인이기도 한 자신이 큐슈에 먼저 거점을 가져서, 현금이나 현물의 편의를 보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도착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데다 해난사고(海難事故) 등에 의한 전손(全損)까지도 있을 수 있는 해운과 달리, 현지에 신용할 수 있는 상인이 있어, 그 자리에서 자금을 준비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영주끼리의 거래쯤 되면 막대한 금액이 움직이게 되고, 그에 따라 큐지로가 받을 수 있는 수수료도 막대한 것이 된다.

게다가 시즈코의 어용상인으로서 이름을 팔 수 있어, 오우미에서 멀리 떨어진 큐슈에서도 지반을 굳힐 수 있다.

그 후에는 큐슈의 특산품을 토우고쿠(東国)로 유통시키고, 토우고쿠의 각종 물품을 사이고쿠(西国)로 순환시키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얼마만한 것이 될 지 알 수 없다.


큐지로는 지금까지 시즈코와 어울리면서 현대식의 기업 운영에 대해 듣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은 주식을 발행하는 것에 의해 자본관계로 이어진 그룹 기업의 구축이었다.

시즈코로서느 각각 특색을 갖게 한 분사화(分社化)를 이야기한 건인데, 기초지식이 떨어지는 큐지로는 소위 말하는 '(장기 근속 종업원에게) 분점을 차려주는 것(暖簾分け)'의 발전형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자본관계 만으로 이어진 냉철한 분사 독립보다, 가족적인 성격이 남아 있는 큐지로의 분점을 차려주는 방식 쪽이 시대에 잘 맞아서, 기이하게도 그의 방법은 성공했다.

덕분에 큐지로의 상호(屋号)인 '타나카미야'는 이례적인 전국구에서 이름이 알려진 대상점이 되어, 일본에서 가장 큰 판도를 갖는 일대 상업 컨글로머릿(conglomerate, ※역주: 거대 복합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타나카미야가 구축한 그룹 기업망을 이용하면, 오와리(尾張)에서 현금을 맡기고 큐슈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현대 사회의 은행이 담당하는 송금 기능이 확립된 것이다.

이 공적이 평가되어, 큐슈의 영주들에게도 널리 시즈코의 어용상인으로서 주지(周知)된 결과, 상인이면서 예사 보호에 관한 현지 총대리인의 지위를 얻어, 현지의 영주들과의 교섭까지 맡겨지게 되었다.


"큐지로 씨는 호타루마루(蛍丸) 건으로 교섭중이었던가?"


현대에서는 태평양 전쟁 종결시의 혼란기에 소재 불명이 된 라이 쿠니토시(来国俊)가 만든 큰 칼(大太刀)인 호타루마루는, 전국시대에서는 아소(阿蘇) 씨가 가보로서 소지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아소 씨가 시마즈(島津) 씨에게 항복한 것을 계기로 전국시대 다이묘(戦国大名)로서의 아소 씨는 멸망하고, 후에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큐슈 제압 때 아소 신사(阿蘇神社)의 대궁사(大宮司: ※역주: 신사나 신궁 등에서 일하는 신직의 우두머리)로서 재흥(再興)했다.

그 가혹한 변천의 한복판에 있을 때도 호타루마루를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아소 신사 궁사 가문(宮司家)이 되었을 때에도 보도로서 봉납하여, 이후 계속 비장(秘蔵)했던 것 때문에 어려운 교섭이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자신이 가진 커넥션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즉, 의부(義父)인 사키히사(前久)를 통해 조정으로부터 호타루마루 대여(借用)에 관한 칙서(勅書)를 받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대리인인 큐지로를 보내, 적의 내부로 뛰어드는(懐に飛び込む) 상인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으로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의 배경에,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오다 가문의 중진이라는 무력의 뒷받침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상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는 그에 걸맞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복잡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여가 이루어지면, 우선은 현물의 사진을 찍어서 파일링하고, 그 후에 사본을 제조할까"


시즈코가 소유하는 도검은 3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첫번째는 본과(本科)라고 불리는, 말하자면 진품. 두번째는 본과가 유실된 사본, 세번째는 본과가 존재하는 사본이다.

본과란 본가(本歌)라고도 쓰며, 사본의 바탕이 되는 도검을 가리킨다. 이번의 아소 씨처럼 차용에는 응하더라도 양도는 바랄 수 없는 경우 등에 본과를 본떠서 사본을 만들게 된다.

제조과정이 밝혀져 있다면 나름 정교한 사본을 기대할 수 있으나, 많은 명도(名刀)들은 도검을 제련한 본인조차도 두번다시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도검의 연구를 하는데 있어 사본을 제조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정력적으로 도공(刀工)들을 지원하며 사본을 만들게 하고 있다.

지금은 시즈코의 애도(愛刀)로서 알려진 오오카네히라(大包平)도, 시즈코가 평소 차고 있는 것은 사본이다.

본과는 더욱 정교한 사본을 만들기 위해 칼상자에 수납되어 엄중히 관리되고 있다.

본과의 오오카네히라를 볼 수 있는 것은 시즈코 또는 시즈코에게 허락받은 도공들 뿐이며, 특별한 행사 이외에는 시즈코 자신도 몸에 지니지 않는다.


또, 부속된 자료 등이 유실되어도 본과와 사본이 혼동되지 않도록, 시즈코가 만들게 한 사본에는 슴베(茎, 칼자루에 들어가는 칼의 손잡이 부분)에 표시(工夫)가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칼자루에 장식되어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곳에 제조연월일과 '정사(静写, ※역주: 시즈코의 사본이라는 의미인 듯)'의 표시(銘)를 새기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참고로 도공들이 제조를 위해 본과에 접촉할 때는, 주변을 시즈코 군의 정규병이 지키고, 거기에 간자들까지 동원되는 치밀함을 보인다.

감시받는 쪽인 도공들은, 안전이 확보되는데다 의식주에서 재료까지 보장되기 때문에 도검 제련에 전념할 수 있다며 오히려 환영하기까지 했다.


"'닛카리아오에(にっかり青江)'처럼 매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었지"


시즈코는 중얼거리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닛카리아오에'란 빗츄 아오에(備中青江) 파(派)가 만든 큰 요도(大脇差)로, 이름의 유래는 여러가지가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공통된 부분은 '생긋(にっこり) 웃는 여자 유령을 베고, 다음날 아침 벤 장소를 확인했더니 돌로 된 등롱(石燈篭)이 두 토막이 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유령을 베었다고 하는 무사도 세 명의 이름이 전해지며, 벤 장소 외에도 여자와 어린애를 둘 데리고 있는 유령이라는 등 세부적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도 비슷한 일화를 가진 도검이 있으며, 그쪽은 비젠 오사후네 나가미츠(備前長船長光)가 만들었기 때문에, 닛카리 나가미츠(にっかり長光)라고 불린다.


"시바타 님은 이름보다 실리를 택했으니, 기쁜 반면 쓸쓸하기도 했었지"


닛카리아오에의 소유자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로, 시즈코로서는 교섭하기 쉬운 반면, 대여에 그칠 거라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시바타는 즉석에서 양도를 약속하고, 그 대신 그의 영지 경영을 보좌하게 되었다.

물론, 오다 가문에게도 시바타가 호쿠리쿠(北陸)를 번영시켜 확실히 다스려주는 것은 바라는 바이기에, 노부나가의 허가를 얻어 협력하는 흐름이 되었다.

시즈코는 멋대로 시바타를 자신과 같은 도검을 사랑하는 동호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었기에, 매입이 이루어져 기쁘면서도 배신당한 듯한 복잡한 심경이었다.

또 스리아게(磨上げ, 일본도를 짧게 고쳐 만드는 것)를 하지 않은 상태이기에, 현대의 그것과는 달리 닛카리아오에는 큰 요도가 아니라 장검(太刀)으로 분류된다.


"연구를 위해 본과를 쓰는 건 리스크가 따르고, 그렇다고 해서 뭐든지 다 사본을 만들기엔 비용이 부담되네"


도검이 고가로 거래된다는 인식이 퍼져나가면, 당연한 듯 나쁜 마음을 먹는 패거리가 생겨난다. 만약 시즈코가 대여하고 있는 도검이 도난을 당할 경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녀의 신용은 실추된다.

신용은 잃기는 쉽지만 얻는 데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도난을 허용하면 이후의 대여는 어려워진다.

권력이나 무력을 배경으로 밀어붙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무리하게 억지를 부린 대가는 반드시 따라오고, 언젠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리스크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대여한 도검은 사진을 시작으로 하여 상세한 계측 데이터를 얻은 후, 신용할 수 있는 도공에게 사본 제작을 의뢰한다.

사본의 제작중은 물론이고, 본과에 대해서는 운송중에도 직속 부대가 경비를 맡으며, 대여 기간에 여유가 있다면 그동안 보관하기 위해서 가장 경비가 엄중한 시즈코 저택에 있는 창고로 운반된다.

이렇게 제작된 사본은, 소정의 처리를 한 후에 시즈코에게 전달된다.

최근에는 시즈코가 소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관록이 붙는 것인지, 사본에도 일정한 가치가 발생하게 되어, 사본의 취급에도 주의가 필요하게 되어버렸다.


"자, 휴식은 끝. 일을 할까"


대자로 누워 천정을 보고 있던 자세에서 기세를 붙여 일어난 후, 시즈코는 책상(文机)에 놓인 서류함에 손을 댔다.

이 무렵, 시즈코가 직접 손대야 하는 일거리라고 하면 사무처리가 되어 있었다.

자기가 아니면 안 되는 일거리를 줄여나간 결과이긴 하나, 그래도 총괄하는 입장이 아니면 판단할 수 없는 결재사무는 남게 되는 것이라, 정신없이 바쁘달 정도는 아니지만 편하게 쉴 수는 없었다.

시즈코 자신이 갑주를 걸치고 행군해야 하는 사태는 토우고쿠 정벌 이래 끊긴 지 오래된다.

설령 출진할 일이 있다고 해도, 시즈코의 입장으로는 후방에 진을 치고 지시를 내릴 뿐이다.

활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근접전투력은 전혀 없는 거나 다름없고, 체력이나 완력으로 남성에게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즈코 휘하의 장병들이 시즈코를 얕보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그것은 그녀의 보기드문 지휘(采配) 능력이나 넓고 크게 사물을 보는 시점에 의해 군의 생명선인 병참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그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병참이 무언지를 모르는 외부의 부대라면 여인이라는 것만으로 시즈코를 얕보는 경우도 있지만, 시즈코 군에 편입되어 좌학(座学)을 시작으로 하는 군사훈련을 마친 정병은 완력만이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흐ー음. 이건 가결, 이쪽은 기각이려나? 이만한 예산을 필요로 하는 근거를 첨부해서 다시 제출하시오, 로"


서류를 한 장씩 확인하고, 문제없으면 결재 도장을 찍어 결재가 끝난 서류함으로 옮기고, 기각하는 것은 기각 이유를 첨부하여 다른 서류함으로 분류한다.

모든 서류에 대해 재가가 끝나면, 소성(小姓)이 각각의 서류함을 사무원들이 일하는 방으로 운반하여 이후의 처리가 인계되게 된다.

휴식을 취하며 한숨 돌린 시즈코는, 집중력을 발휘하여 차례차례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를 처리해 나갔다.


"어머니(かかさま), 일 끝났어요?"


마지막 서류를 결재가 끝난 서류함으로 옮겼을 때, 시즈코는 방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우츠와(器)가 맹장지를 약간 열고 그 틈으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지금 막 끝났어. 무슨 일이니?"


그렇게 물으며 시즈코는 자신의 기억을 뒤져, 우츠와와 뭔가 약속을 했는지 떠올리려고 했다. 이쪽에서 말을 걸면 대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말을 거는 일이 잘 없는 우츠와가 그랬다는 것이 시즈코에게는 마음에 걸렸다.


"저기, 오늘은 아야가 칭찬해 줬어"


"오오! 그건 굉장하네! 그 츤데레(ツンデレ) 아야(彩) 짱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칭찬해 주다니, 굉장히 잘했구나!"


"츤데레?"


"어흠, 아무 것도 아니야. 그보다 그런 곳에 있지 말고, 이리 오렴"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몸 전체를 돌려 우츠와를 향해 손짓했다. 잠시 망설인 우츠와였으나, 시즈코가 떠올린 미소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시즈코가 내민 양 팔 사이로 들어왔다.

시즈코는 자신의 무릎 위에 우츠와를 앉히고, 마치 껴안듯 서로 마주보며 우츠와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춰주었다.

전국시대의 상식으로 볼 때는 눈을 찌푸릴 만한 행동이지만, 우츠와는 시즈코의 양녀가 될 때까지의 학대로 인해 감정이 희박한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걸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애정과 스킨십이라고 시즈코는 굳게 믿었다.

성별 차이가 있기 때문인지, 시로쿠(四六)는 쑥쓰러워하며 안겨주지 않는 것이 현재의 고민이었다.

다행히 둘 다 시즈코에게는 마음을 열어주고 있고, 시로쿠에게는 다소 소행이 불량하지만 케이지(慶次)라는, 성별이 같고 믿음직한 형님뻘 되는 존재가 있다.

시즈코 자신이 이성과의 감정의 기미에 대해 괴멸적이기에, 케이지가 형님 역할을 해 주는 것은 기쁜 오산이었다.


"오늘은 말이에요, 산수 시험이 있었어. 어려웠지만 열심히 했더니, 아야가 잘했다고 했어"


"응"


"그리고 밥도 남기지 않고 먹었어. 목욕도 혼자서 했어"


더듬더듬 말하는 우츠와의 말에 따르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우츠와를 칭찬한 모양이다.


"응 (챠챠(茶々) 님이나 하츠(初) 님과 비교하면…… 아니, 그 두 사람은 규격외인가)"


"평소에는 무섭지만, 칭찬해 줄 때는 웃어줬어"


"그러네. 아야 짱은 평소 무표정하지만, 그만큼 웃어줄 때는 예쁘지. 착한 일을 하면 칭찬하고, 나쁜 일을 하면 꾸짖는다. 이건 모두와 함께 살 때 굉장히 중요한 거란다"


"응. 사실 항상 칭찬받고 싶지만, 역시 야단맞을 때도 있으니까. 조금씩 야단맞지 않게 되고 싶어"


"초조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야단맞지 않게 하는 것보다, 칭찬받을 일을 늘리는 쪽이 즐겁거든? 나도 아야 짱도 우츠와를 정말 좋아하니까, 사실은 매일이라도 우츠와를 칭찬하고 싶단다"


우츠와의 머리를 가슴에 품듯 하며 시즈코는 우츠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우츠와는 싫어하는 기색도 없이 시즈코에게 몸을 맡긴 채 눈을 가늘게 뜨고 기분좋은 모습이었다.

니글렉트(neglect)의 영향은 아직 우츠와에게 짙게 남아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혼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발상으로서는 다소 건전하지 못하다.

우츠와에게는 보통의 아이들보다도 더욱 뚜렷하게 말과 태도로 애정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자신이 어머니 흉내를 내는 것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우츠와의 양육(生育)과 저울질할 것은 아니다.


"사실은 오라버니처럼 말할 수 있게 되고 나서 말하려고 했는데, 기분이 좋아졌어"


우츠와는 성장 과정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뇌의 언어 영역(言語野)의 발달이 늦어졌다.

오빠와 둘만의 생활에서 다른 아이들도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 때문에, 우츠와 자신도 자신이 잘 대화하지 못하는 것을 신경쓰고 있다고 보고는 들었다.


"잘 말하고 있어. 시로쿠 오라버니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조금씩 매일 어머니랑 이야기하자!"


"응"


"실례합니다, 시즈코 님. 이시키리마루(石切丸)의 사본이 도착했습니――"


우츠와와 멈추지 않는 대화를 계속하고, 어쩌다 대화가 끊긴 타이밍에 아야가 보고하러 나타났다.

마치 계산한 것처럼 좋은 타이밍에, 그녀의 배려를 느끼고 기뻐진 시즈코는 우츠와를 안은 채로 아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츤데레"


고맙다고 시즈코가 말을 걸기도 전에, 우츠와가 아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순간 아야의 얼굴에서 감정의 색이 빠져나가고, 연극 가면(能面)같은 무표정으로 변했다.


"시즈코 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츠와 님, 저녁식사 준비가 되었으니, 모두와 함께 식사해 주십시오.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응, 알았어"


"감사합니다"


아야를 가리켜 츤데레라고 부른 우츠와에게, 아야는 기품있는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시즈코는 그 아름다운 미소 뒤에 원한(怨嗟)의 표정을 떠올린 한냐(般若, ※역주: 요괴의 일종)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 후, 굳게 닫힌 실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시즈코는 결코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아시미츠(足満)는 최근, 기술자 마을에 열심히 드나들며 목공 기술자나 금속 세공사, 주물사(鋳物師) 등과 면밀한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목재를 가공하면 어쩔 수 없이 단재(端材)라 불리는 어정쩡하게 남은 쪼가리가 생겨버린다.

그밖에도 산의 정비에서 발생하는 간벌재(間伐材)나 임지잔재(林地残材) 등, 장사나 건축자재로서는 쓸 수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목재가 발생한다.

보통은 일회용 젓가락(割り箸)이나 이쑤시개(爪楊枝) 등의 작은 것들로 가공하여 재이용한다.

현대에서도 일회용 젓가락이 자원 낭비의 상징처럼 부각되어 환경보호의 대의명분 아래 단죄되었으나, 본래는 버리는 목재를 유효 활용하여 삼림자원을 보존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였다.


역사적 사실에서 일회용 젓가락이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확실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에도(江戸) 후기(後期), 분세이(文政, 1818~1831년) 시대라고 한다.

에도 시대 후기의 에도, 쿄(京), 오사카(大阪)의 사물을 소개한 백과사전 같은 서적, 모리사다만코(守貞謾稿)에 의하면 당시에는 와리바시(割り箸, ※역주: 쪼개 쓰는 젓가락이라는 의미)라는 명칭이 아니라, '히키사키바시(引き裂き箸, ※역주: 찢어 쓰는 젓가락이라는 의미)'라고 불렸던 모양이다.

역사보다 앞서 기술자 마을에서 생산되는 일회용 젓가락은, 다행히 '쪼갠다(割る)'라는 행위가 '일을 시작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신사(神事)나 경사(祝い事) 등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용되어, 서민들에게도 퍼져나갔다.

목제 뿐만 아니라 대나무로 만든 일회용 젓가락도 생산되어, 음식점에서도 일회용 젓가락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싼 가격으로 공급되게 되었다.


그러한 배경도 있어, 적당한 크기의 단재를 손을 넣을 수 없었던 아시미츠는, 임지잔재를 사람까지 고용하여 회수하고 사들여서는, 목공 기술자들을 찾아 다양한 형태로 가공하도록 의뢰하고 있었다.

다양한 기술자에게 분산하여 발주하였기에 아시미츠 이외에는 전체 이미지를 알 수 없지만, 상당히 정교한 기구를 가진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을 기술자들은 짐작하고 있었기에, 아시미츠의 요구를 맞출 수 있도록 분투하고 있었다.

아시미츠는 모든 부품이 손에 들어오자, 접착제나 나사를 사용하여 조립을 개시, 현대인 남성이라면 향수(郷愁)를 불러일으킬 듯한 형태로 조립했다.


"좋아! 기대 이상의 정밀도로군. 흔들리는 부분도 없이 제대로 조립됐어"


원리적으로는 일회용 젓가락으로 만든 고무줄 총을 크게, 총신이나 그립에도 신경쓴 어른의 완구라고 할 만한 품질이었다.

아시미츠는 주물(鋳物) 트리거 가드로 보호된 단철(鍛鉄)로 만들어진 방아쇠를 당겨 고정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을 말하자면 니스를 칠하거나 도색을 하고 싶지만…… 우선 모양새가 갖춰진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아시미츠가 단재를 사용해 만든 것은, 오토매틱 핸드건 타입의 고무줄 총이었다.

공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황산(硫酸)이나 질산(硝酸) 등 필수 기재(基材)가 되는 산(酸)의 수요가 늘고, 부산물로서 수지(樹脂)나 팩티스(factice)의 여분을 이용한 고무줄(輪ゴム)이 대량으로 보급되었다.

물론 천연 고무 정도의 탄성은 없지만, 적절한 두께의 것을 준비하면 충분히 고무줄 총에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아시미츠 안에 살고 있는 소년의 혼이 외치기 시작했다.

아시미츠의 취향은 오토매틱보다도 리볼버 타입의 핸드건이지만, 회전식 탄창과 고무줄 총은 상성이 나쁘기에 단념했다.


"우선은 고무줄 총으로 연발식 총을 보여주면 그 유용성을 드러낼 수 있겠지. 언젠가는 리볼버를 휴대하고 싶군"


실제로 실탄을 사격할 수 있는 권총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볼트액션 라이플조차 세미오토에 멈춰 있는 현재 상황에서 차례를 건너뛰는 기술 혁신은 바랄 수 없다.

실탄과 달리, 완전히 똑같은 부분에 복수의 탄체(이 경우에는 고무줄)를 장전할 수 있는 고무줄 총은, 연발식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교재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었다.


"공이치기(撃鉄) 대용의 톱니바퀴에 거는 형태로, 12발까지 고무줄을 장전할 수 있지. 시험삼아 5자루 만들었으니, 미츠오(みつお)나 고로(五郎), 시로(四郎)도 불러서 시험삼아 총싸움을 해볼까"


금속제 프레임을 갖는 실총이라면 어려운 쌍권총(二丁拳銃)도, 기구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목제인 고무줄 총이라면 여유롭게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자신용으로 2자루 확보하여 허리 양쪽에 허리띠에 꽂아넣고는, 나머지 세 자루와 고무줄을 보자기에 싸서 바쁘게 나갔다.


며칠 후, 연병장 한 구석에서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아저씨들 네 명이 그야말로 즐겁게 총싸움을 하는 모습을 많은 병사들이 목격하게 된다.

어째서인지 다들 마음 속에서 끌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조용한 붐이 일어나, 철포 기술자(鉄砲鍛冶)가 도면을 그리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등, 마개조가 시작되었다.




때는 흘러 2월 중순. 우뚝 버티고 선 아야와, 그 앞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는 시즈코라는 평소의 그림이었다.


"시즈코 님, 언제쯤 그 괴이(面妖)한 호칭해서 해방시켜 주시는 건가요?"


아야의 조용한 분노 앞에서 시즈코는 자신의 힘이 부족함을 한탄하고 있었다. 즉, 우츠와가 아야를 '츤데레'라고 부르는 버릇이 들어버린 것이다.


"당신께서는 따님에게 뭘 가르치고 계신 건가요?"


"미안해. 결코 나쁜 의미는 아니야. 얼핏 보기엔 까다로워보이지만, 내심은 상냥한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거든?"


아야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즈코는 고개를 숙인 채 간신히 거짓은 없는 변명을 입에 올렸다.


"그 말씀은?"


"나쁜 말이 아니라 칭찬하는 말이라고 우츠와에게도 설명했더니, 어감(音の響き)이 마음에 든 모양이라……"


시즈코는 우츠와에게, 칭찬하는 말이지만 그다지 고상한 말은 아니니 쓰지 말라고 설득을 시도했으나, 짧은 센텐스(sentence)로 정확(的確)하게 아야를 표현하는 어휘가 마음에 들어버려서 자주 사용하게 되어 버렸다.

시즈코의 태도를 보니 그 의미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본의는 아니지만 아야는 자신이 참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을 가리키며 뭔지 모를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의외로 신경이 쓰입니다"


"미안해"


"이제 괜찮습니다.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야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호칭이지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때문에 우츠와도 마음에 들어하는 구석이 있었기에, 우츠와가 얼른 싫증내주기를 바라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그만 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를 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야는 자신이 시즈코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시즈코가 의도적으로 '그 화제'를 피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며, 그러나 시간적 제한 때문에 미룰 수도 없는 안건이었다.

비정하다고 비난받더라도 시즈코가 문제를 바로 마주하게 해야 한다.

이 문제에서 도망쳐봐야 가장 후회하는 것은 시즈코 자신이 된다, 그래서 아야는 마음을 독하게 먹을 각오였다.


"아야 짱이 하려는 말은 이해하고 있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고, 몇 년 전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어…… 아니,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정작 눈 앞에 닥쳐오니 안 되네……"


평소의 시즈코와는 달리, 피로에 지친 노인 같은 힘없는 중얼거림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흐를 것 같은 무언가에 저항하기 위해, 시즈코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나 애처로운 나머지 아야는 순간 시선을 돌릴 뻔 했으나, 의식을 강하게 조여서 억눌렀다.

아야의 앞에 있는 것은, 어떤 역경에서도 어딘가 태평하고 쾌활한 시즈코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잃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 오래 산 편이라고. 약도 전문 의사도 없는데 여기까지 살았다는 걸 말야. 그거 알아? 야생의 수명이라면 지금의 반도 안 되거든"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뒤로 미루는 것에도 한계가――"


"알고 있어!"


힘껏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시즈코가 외쳤다.

큰 소리가 났지만, 아야는 포커 페이스를 무너뜨리지 않았고, 누군가 달려오는 기색도 없었다.

다만, 아야는 시즈코에게서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손톱이 손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미안해. 알고는 있어. 내가 이 꼬락서니라 일에 지장이 생기고 있는 것도, 아야 짱이 정말로 나를 배려해주고 있는 것도 알고는 있어……"


"지장 같은 건――"


"그래도, 이번만큼은 마음이 따라오질 않아. 미안해, 스스로도 이대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어. 시간이 없는 것도 알고 있지만, 조금 더 시간을 줘……"


몇 가지 말이 뇌리를 지나갔으나, 그 어느 것도 아야의 입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람이 좋지만, 필요하다면 냉혹해질 수도 있는 시즈코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 앞에서 아야는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괴로울 때 항상 곁에 있어 준 시즈코에 대해 힘이 되어줄 수 없는 자신이 답답했다.


"미안. 당분간 혼자 있게 해 주겠어? 일은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야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곱씹으며 시즈코의 방을 나갔다.

시즈코는 자신의 감정에 몸을 맡기기에는 너무 지위가 높아졌다. 그녀가 하는 말 한 마디는, 때때로 사람의 생사까지 좌우하는 한 마디가 된다.

만약 설령 시즈코가 짜증이 난 상태에서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강하게 질책했다고 하자. 이 시대의 그것은 질책받은 쪽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주인의 노여움을 산 하인(家人)의 입장 따위, 부스럼이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최악의 경우, 가족까지 모조리 영지 밖으로 추방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신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죽이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봉사해 오셨습니다. 이별(別離)의 시간 정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도 좋을텐데……) 실례하겠습니다"


아야는 깊이 머리를 숙이고, 실내와 밖을 구별짓는 맹장지를 닫았다. 하지만, 실내에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즈코의 상태는 어떠하더냐?"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아야의 옆에서 말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니, 그곳에 있던 것은 이치(市)였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야를 바라보는 그녀에게서는, 제 집마냥 거리낌없이(我が物顔) 시즈코 저택을 활보하는 여성은 없었다.

이치의 물음에 아야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치도 그 대답을 예측하고 있었던 듯, 괴로운 듯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너로서도 무리인 것이냐"


"어쩔 수 없습니다. 상대가 상대…… 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야는 며칠 전을 떠올렸다. 시즈코가 울적해지게 된 발단은, 2월 초순의 차가운 진눈깨비가 내린 날이었다.

전날의 따뜻함이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고, 급격한 추위와 함께 음습한(陰陰滅滅) 습기가 밀려들었다.

이렇게 악천후라면 달리 할 일도 없어서, 시즈코의 일도 순조롭게 처리되어, 점심식사를 마칠 무렵에는 시간이 비게 되었다.

평소라면 미리미리 처리하려고 새로운 일거리에 착수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아 곁에서 엎드려 누워있는 비트만 패밀리로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시즈코가 잠들 때까지 늑대들이 지켜보지만, 그날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즈코가 카이저에게 기대어 눈을 감고 일 각(刻) 정도 지났을 무렵. 비트만이 갑자기 기침을 하며 헉헉 하고 거칠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탁한 가르릉거림(喘鳴)과 물소리가 섞이는 기침과 함께, 피가 섞인 토사물을 토해냈다.

노화의 징후로서 이전보다도 수면시간이 길어졌고, 부름에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있어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급격한 증상은 예상하지 못했다.

당황한 시즈코는 일단 의사를 부르도록 명하고, 그 동안 비트만의 곁에서 간병을 계속했다.

바르티나 카이저들도 거친 호흡을 반복하는 비트만을 걱정하는 건지, 멀찌감치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다른 개과 동물의 건강상황을 진찰하는 의사가 도착하여, 비트만은 들것에 실려 운반되어 갔다.

비트만이 토해낸 토사물도 회수되었고, 주위는 비트만이 없는 것 이외에는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

육친이나 다름없는 상대(相棒)의 용태(容態) 악화를 겪어, 시즈코의 안색은 갱지(わら半紙)처럼 변해 있었다.

아야로서는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잘 알지 못하면서 별 소용없는 말(気休め)을 하는 것도 꺼려져, 시즈코의 곁에서 등을 쓸어주는 데 그쳤다.

그러한 아야의 헌신도 있었던 덕분에 간신히 조금 진정한 시즈코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작게 말했다.


"이제 오래 버티지 못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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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8 1576년 1월 중순



예기치 못한 내방자가 있었긴 했으나, 별 탈 없이 새해 행사를 마친 1월 중순. 일본을 군웅할거(群雄割拠)하는 영주(国人)들 사이에 격진(激震)이 일어났다.


"여러분도 이미 아시고 계시듯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에서 모반(謀反)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였던 켄뇨(顕如)와 쿄뇨(教如)는 구속되어 혼간지 내부에 유폐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번의 사건의 주모자입니다만……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입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혼간지의 산문(山門)은 닫히고, 모든 문 앞에 게시판(高札)이 세워졌다.

그것에는 '구원을 바라고 모여든 중생을 현혹하여 수라도(修羅道)로 빠뜨리려 한 불적(仏敵)을 친다'고 쓰여 있었으며, 무장 해제가 끝날 때까지 폐문한다고 했다.

간자들로부터 제 1보가 들어온 직후부터, 시즈코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에게 명하여 자세한 정보 수집을 실시하게 했다.

현장은 혼란에 빠져 있어, 혼간지 내부에서는 불이 났는지 연기가 올라오는 장면조차 있었다고 한다.

작전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아연실색하여, 정신이 들자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라이렌이라고 하면 혼간지 세력의 지낭(知恵袋)이며, 오다 군에게는 몇 번이나 호되게 당한 원적(怨敵)이다.

머릿수만 많았지 숙련도가 낮은 혼간지 세력이, 그럭저럭 오다 군의 정예와 선전(善戦)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라이렌의 존재에 의한 부분이 크다.


"지금까지 행방을 감추고 있던 라이렌이, 이 시점에 와서 하극상을 꾸민데다 무장해제를 선언하다니……"


"사망설까지 흘렀던 라이렌이니, 이걸 예상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겠지요"


"애초에 라이렌은 어떻게 병사를 데리고 혼간지에 들어간 거에요?"


"전제조건으로서 혼간지로의 주요 육로(陸路) 및 해로(海路)는 사쿠마(佐久間) 님의 직속 세력에 의해 봉쇄되어 있습니다. 라이렌은 사쿠마 님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고 혼간지로 들어갔다는 말이 됩니다"


"모반이 성공할 정도의 숫자의 병사들이 움직였는데 발견되지 않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봉쇄되기 전에 내부에 숨겨뒀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러운가……"


"아마도 난민 틈에 섞어서 내부에 침투시키고, 기회를 보아 일제히 봉기한 게 아닐까 추정합니다"


"혼간지로의 보급로는 지금은 수로(水路) 뿐이고, 그것도 바다 쪽에서 거슬러 올라가는 쪽은 사쿠마 님이 이미 봉쇄했다고 하면, 남는 건 밤에 어둠을 틈타 상류에서 강을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 많은 병사들을 태울 여유는 없겠지요"


"침입로가 어디에 있었던, 혼간지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현실성이 낮아 보여도, 불가능을 배제하고 남은 것이 진실에 가깝다.

보급로의 봉쇄를 담당하고 있던 사쿠마가 노부나가로부터 질책받고 있지 않는 이상, 노부나가 자신도 봉쇄를 몰래 뚫고 라이렌이 혼간지로 들어갔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리라.

게다가, 시즈코가 모반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을 때도, 노부나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담담하게 듣고 있었다.


(설마…… 이번의 모반, 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것은……)


때마침 강설(降雪)이 많아지는 1월 중순이다. 눈이 깊은 동해(日本海) 측의 육로는 대부분이 쓸모없어지고, 남은 도로는 오다 가문 소속 사람들이 엄중히 경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혼간지에서 모반이 일어났다는 정보는 '필연적으로 전달되기 어렵게' 된다. 설령 정보가 샜다고 해도, 역적인 라이렌을 토벌하러 군을 보낼 수가 없다.


"도로 및 관문(関所)의 인원을 증원하세요. 손이 모자라면 오와리(尾張)의 방위를 위해 남겨두고 온 병사들을 동원해도 상관없어요"


사건의 흑막을 헤아린 시즈코는, 그가 바라는 결과를 뒷받침하기 위해 손을 썼다. 즉, 내부의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지 않게 봉쇄하는 것과, 외부로부터의 간섭 배제이다.


"누가 뒤에서 조종했던 간에, 이번의 모반은 우리들에게 이익이 됩니다. 이 흐름을 좋게 보지 않는 세력에게 정보가 새어나가면 곤란하니, 혼간지의 무장 해제가 끝날 때까지 엄중 경계 태세를 취하겠어요"


"옛!"


"관문에서는 여자나 아이들의 출입을 엄중하게 확인하게 하세요. 정보를 가진 채 타국으로 도망치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사나다 씨는 간자 사냥을 철저하게 해 주세요. 누구 소속인지를 확인할 필요도 없어요. 발견되는 대로 처리하라고 명해 주세요"


"옛"


이 시대의 정보는 사람에 의해 옮겨진다. 즉, 사람의 출입을 제한해버리면 정보의 이동을 봉쇄할 수 있다. 하지만, 인원 한계상 모든 정보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

통상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산길 등을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한 가지 더 방법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보의 교란도 하죠"


"교란…… 입니까?"


"완전히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거기에 엄중하게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고 눈치채게 되죠. 그렇다면 아예 자의적(恣意的)으로 정보를 준 사람을 놓아주면,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선전해 줄 것 아니겠어요? 뭐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퍼뜨려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거라 생각하니, 진실을 반, 공통된 정보를 3할, 개별적인 거짓을 2할 섞어서 퍼뜨립니다. 진실과 공통 부분은 전원이 똑같은 이야기를 할 테니까 금방 공유되겠지요. 마지막 2할의 거짓에 의해 충분한 정밀 조사(精査)가 끝날 때까지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쐐기를 박는 거에요"


"꽤나 악랄한 수법을 쓰네, 시즛치는"


휘파람을 불며 농담하는 케이지(慶次)였으나, 시즈코의 계책이 유효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람의 입에 자물쇠는 채울 수 없으니, 비밀을 언제까지나 비밀로 하는 것 따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실의 정보라는 물(真水)에 거짓이라는 이름의 독을 섞는다. 그곳에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걸 알고 그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능한 한 몇 번이나 확인하여 독이 포함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 겨우 마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물과 마찬가지로 정보에는 신선도라는 것이 있어서, 그때 즈음에는 이미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정보전이라는 건 평범한 노력을 거듭한 쪽이 승리하는 거에요. 외부에 흘릴 이야기가 완성되면 외견(外見)이 좋은 사람을 골라서 정보를 흘려 주세요. 정보는 누구에게서 들었는가라는 것도 신빙성을 좌우해요. 유복해보이는 사람, 차림새가 좋은 사람으로부터의 정보는 비교적 받아들이기 쉬우니까요"


"이쪽의 입김이 닿은 상인들에게는 전하지 않는거야?"


"이번에는 혼간지로부터 도망쳐온 사람들, 또는 그들과 접촉한 사람이라는 명분이 중요하니까. 몇 번이나 같은 수법을 쓰면 간파당하기 쉬워지거든, 카츠조(勝蔵) 군. 사나다 씨는 정말로 혼간지에서 도망쳐온 사람과도 접촉해 주세요. 같은 편이라고 가장해서 보호해주겠다고 제안하고, 이쪽이 원하는 정보를 주입한 후에 도망을 원조해주죠"


"옛, 알겠습니다"


마사유키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들이 가진 작전회의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토우고쿠(東国)나 서쪽(西)의 모우리(毛利) 세력권에서 혼간지에 관한 다양한 소문들이 무성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목숨을 걸고 진실을 가져온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미 옥석을 구별할 수 없는(玉石混交) 상태가 된 와중에 진실만을 건져내는 것 따윈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혼간지에서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그 결과로서 "혼간지가 붕괴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다. 아니, 오다 가문이 철저히 숨기려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혼간지가 포위를 돌파하여 오다 가문에 육박하고 있다"라는 등 정반대되는 내용의 소문이 무책임하게 흩뿌려지게 되었다.


"어려운 임무를 멋지게 달성해 주어서 감사드려요"


"황공한 말씀입니다"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지수의 상황을 멋지게 제어한다고 하는 것은, 입으로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다.

마사유키가 벌어준 시간은, 혼간지가 개방될 때까지의 안전을 담보하는 천금과 같은 시간이 된다.

일이 이쯤에 이르면, 시즈코가 손을 쓰지 않아도 무장세력으로서의 혼간지 붕괴는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 한 수에 의해 쓸데없는 피해를 막아서 혼간지 평정 후의 일본 통일을 향한 기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정말로 속아 넘어갈(出し抜かれる) 줄은 몰랐어요, 주상)


시즈코는, 라이렌의 모반을 성공으로 이끈 흑막을 노부나가라 확신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에게 확인한 것도, 혼간지 측에서 정보가 들어온 것도 아니지만,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노부나가에게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참기로 했다.


"그래서, 혼간지 측의 움직임은 어때요?"


"여전히 산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만, 사이카슈(雑賀衆)를 태운 배가 강을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


"……용병을 해방시켰다는 건, 무장해제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라이렌은 어째서 모반을 일으킨 걸까요? 하극상의 야심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몇 번이나 기회는 있었을텐데……"


라이렌에게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군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그라면 더 이른 단계에서 실권을 쥘 수 있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만큼 악화된 후에 권력을 쥐어봤자 단물 따윈 전혀 없고, 오히려 전후처리에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추측입니다만, 짐작가는 부분(目星)은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수고해주세요.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여기서 무리를 해서 유능한 아군을 잃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노부나가로부터 명확한 지시가 없는 이상, 리스크를 감수하고 깊이 추적하는 것보다 리스크를 억제하면서 가능한 한의 정보를 줍는 쪽이 상책이라 할 수 있다.


"게시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무렵이겠죠. 아마도 승병(僧兵)들 정도가 승방(僧房)에 틀어박혀 항전하고 있겠네요. 섣불리 벌집을 건드릴 수도 없으니, 여기서는 조용히 지켜보면서 정보를 모으죠"


"알겠습니다"


정찰(物見役)로부터의 보고로는, 때때로 산 중턱 부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목격되고 있었다.

중앙 집권화되어 있다고는 해도, 특수한 사회구조를 갖는 종교 결사 특유의 문제가 가로막아서 그리 쉽게는 무장을 해제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시즈코로서도 혼간지에만 신경쓰고 있을 수는 없다.


(요키치(与吉) 군은 슬슬 아즈치 성(安土城)의 낙성(落成)으로 한가해지게 되지. 축성에 관해 부르는 곳(引く手)은 많지만, 아즈치 성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쉽게 움직일 수는 없어. 게다가 마사유키 씨도 충분히 실적과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슬슬 알기쉬운 공적을 세우게 해주고 싶어. 그렇게 되면,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히데나가(秀長) 님의 속셈을 따를 수밖에 없으려나)


현재, 오다 가문 가신단에서 크게 체면을 구겨버린 것이 히데요시(秀吉)였다. 모우리를 억제하는 교두보를 구축한다는 어려운 임무였으나, 그만큼 보기좋게 완수하면 일약 가신단 필두로 부상할 가능성까지 있었다.

하지만 모우리의 수비는 탄탄하여, 벳쇼(別所)를 시작으로 오다 편을 드는 영주들의 배신을 허용해 버렸다. 최종적으로 벳쇼의 정치적 책략(調略)에 넘어가지 않고 오다 측에 붙겠다고 명언한 동(東) 하리마(播磨)의 영주들은 겨우 두 명이었다.


"하시바(羽柴) 님은 병력 숫자에서 다른 곳에 밀리니까……"


시즈코의 군도 병력 숫자로 말하면 중간 규모이지만, 높은 숙련도와 충실한 최신식 장비라는 우위성이 있다. 그렇기에, 다소의 병력 차이는 힘으로 뒤엎을 수 있는데,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히데요시 군은 병력 숫자에 비해 지휘하는 장수가 적고, 병사들 자체도 무장 농민이나 토착 무사(地侍), 낭인(牢人) 등이 많다. 그 때문에 히데요시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돈 욕심에 지배된 군대가 되어 있다.

이것은 히데요시 군 특유의 사정은 아니고, 이 시대의 무장들이 갖는 보편적인 문제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히데요시 자체가 벼락출세(成り上がり) 중인 인물인 것에 기인하는, 후다이(譜代)의 가신(※역주: 대를 이어 섬기는 신하) 부족에 있다.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은 무가(武家)의 출신이기에, 대대로 가문을 섬겨온 노장(老将)이나 측근들이 있다.

하지만, 아시가루(足軽) 또는 백성(百姓)에서 출세했다고 하는 히데요시에게는 그렇게 보조해줄(脇を固める) 인재가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얽매임(しがらみ)이 없는 것은 메리트이기도 하지만, 디메리트도 크네"


자신의 힘만으로 사람을 모을 필요가 있었기에, 사람을 홀린다(人たらし)고까지 하는 히데요시의 재능이 개화한 것이리라.


"자…… 어떻게 움직일까"


큰 종이에 모사한 지도를 필치고 각 진영의 상황을 정리햇다. 라이렌의 모반에 의해 모우리 측은 약간 열세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중간에 혼간지를 끼우고 있었기에 직접 대결을 피할 수 있었다는 상황이었으나, 혼간지가 오다 측으로 넘어와 버리면 정면에서 오다 가문과 대결해야 한다.

그에 대해 오다 가문은, 토우고쿠는 약간 불안은 있지만, 츄우부(中部) 지방에서 킨키(近畿)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모우리에만 주력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모우리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큐슈(九州) 세력을 등 뒤에 두고, 남쪽으로는 오다 가문과 손잡은 쵸소카베(長宗我部)가 버티고 있다.

제아무리 모우리라고 해도 세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받으면 남아나지 않는다. 여기서 오명을 씻고(汚名返上) 권토중래(捲土重来)를 노리는 히데요시를 참가시켜야 한다.


"하시바 님이 하리마의 벳쇼와 탄바(丹波)의 하타노(波多野)를 쓰러뜨리면 다시 모우리 대 오다의 직접 대결로 몰고 갈 수 있어"


히데요시를 모우리 공격에 참가시키려면, 그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너무나 가혹해진다. 결코 실패가 용납되지 않고, 모우리 공격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히데나가가 비밀리에 시즈코에게 협력 요청을 타진해 왔다.

스스로의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위해서라고는 하지 않고 오다 가문을 위해서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부분이 교활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군을 대량으로 동원하는 것도 곤란하다는 땡깡스런 주문까지 하고 있으니 귀찮네"


시즈코 군을 대량으로 끌어들여, 최신식의 무장으로 역할을 완수했다고 해도, 그것은 과연 히데요시의 공적이라고 인식될 것인가?

그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시즈코에게 맡기고 히데요시는 빠져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들으면 반론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어디까지나 주역은 히데요시 군이면서, 돌파력이 뛰어난 '딱 좋은 군세'의 파견을 히데나가로부터 요청받았다.

배부른 소릴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겠지만, 금후의 전개를 생각하면 시즈코에게 빚을 만들어서라도 공적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리고 있었다.


"응, 상의해보자!"


자기 혼자 생각해봤자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을 자각한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 케이지, 마사유키의 세 명을 호출했다.


"그런 이유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저쪽이 원하는 대로 신식총(新式銃) 부대만을 보내면 되는 거 아냐?"


경위를 설명한 후 시즈코가 세 사람에게 의견을 구하자, 가장 먼저 케이지가 성의없이 대답했다.

명백히 내키지 않는 태도를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케이지에게 있어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는 거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하시바 님의 요구는, 우리들을 전면(矢面)에 세운다면서 공적은 자기들이 받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재주는 곰에게 넘게 하고 돈만 챙기려는 패거리는 좋아하지 않아!"


"뭐 좋고 싫음은 별개로 치더라도, 이번의 싸움은 우리들에게 '이득(旨み)'이 없는 것이 신경쓰이는군"


케이지의 의견에 대해 아시미츠가 실리면을 강조했다. 아시미츠에게 있어 시즈코가 출진한다는 리스크가 있는데, 그럴 만한 메리트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확실히 명확하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해준 것은 아니네요. 하지만, 모우리에 관해서는 주상께서도 골치아파하고 계시니까요"


"정말 어떻게 하고 싶으면, 직접 시즈코에게 명령이 있지 않을까?"


"두 분과 같은 의견입니다. 주상께서 모우리 공격에 시즈코 님을 지명하시지 않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현재, 아무런 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이치에 맞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케이지에 이어 아시미츠도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고, 최종적으로 마사유키도 그에 동의했다. 시즈코로서도 원래 많은 병력을 보낼 생각은 없었고, 전황이 우세해진다면 일찌감치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부정적인 의견이 모이는 이상, 병력을 보내는 것 자체에 좋은 감정을 품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아, 맞다!"


협력 요청을 거절할까 생각하려던 시즈코였으나, 한 가지 걸리는 점이 떠올랐다.


"아시미츠 아저씨, 저격병을 훈련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상황이에요?"


"현재 저격이라 할 수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5명 정도군. 총탄을 금속 가이드로 연결한 5연장탄은 완성되었으나, 장전할 때마다 유저(遊底) 볼트를 조작할 필요가 있어서 다시 조준을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린다. 뭐, 1분에 2, 3발 쏘면 잘한 편이지"


"그래도 상대에게 발견되지 않는 거리에서 선수를 칠 수 있다면 좋은 거에요. 그럼, 여기서 실전에서의 최종 조정을 해보지 않을래요?"


시즈코가 말하려고 한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일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였지만, 금방 표정을 조였다.


"아무래도 무사(侍)가 나설 곳은 없는 것 같군. 그럼, 나는 토우고쿠 정벌에서 부름이 있을 때까지 영기(英気)를 축적하겠어"


애초부터 의욕이 없는 케이지는, 자신이 나설 일이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흥미를 잃고 자리를 떴다.

마사유키도 마찬가지로 자리를 뜨려 했으나, 그걸 시즈코가 손으로 제지했다.


"이번에, 저격병 부대를 사나다 씨가 지휘해 줬으면 해요"


"소생이 말입니까!? 하지만, 지휘한다고 해도 소생은 저격이라는 것 자체를 모릅니다. 실정(実情)을 잘 아시는 아시미츠 님께서 지휘하시는 게 도리 아닙니까?"


"아시미츠 아저씨는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돼요. 일단 협력요청에 응하여 파병하는 이상, 받아들이는 쪽의 부대와 연계도 해야 하고, 상대의 반응을 보면서 임기응변(腹芸)도 해야 하거든요?"


"과연, 확실히 그쪽은 소생이 잘하는 것. 너구리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군요"


시즈코의 말에 마사유키가 웃음을 떠올렸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웃음을 떠올렸으나, 사회부적응자(社会不適合者) 같인 말을 들은 아시미츠는 시무룩했다.


"제가 할 말은, 적과 접촉할 듯한 전투는 피해달라는 걸까요?"


"그래서는 시즈코 님이 겁장이라고 불리며 체면에 먹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 저격이라는 건 그런 거에요. 발견된 시점에서 패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수한 저격병은 겁장이어야 해요. 만용을 자랑하기 위해 공들여 키워낸 저격병을 잃을 수는 없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그 이외의 운용은 소생에게 일임해 주신다는 것입니까?"


시즈코의 각오를 시험하듯 마사유키가 물었다. 무사에게 불명예가 되는 행동이라도 필요하다면 실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헤아린 시즈코는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저격병의 성질을 생각하니, 사나다 씨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다고 저는 판단했어요"


시즈코는 마사유키의 질문에 대해 책임은 자신이 진다고 보증했다. 마사유키는 표정을 조이고는 아시미츠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생은 저격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지금의 소생이 저격병을 이끌어봐야, 그들의 진가를 발휘하게 해줄 수 없겠지요. 그러니 소생에게 저격의 '기초'를 가르쳐 주십시오"


"……벼락치기로 만든 칼은 무뎌지기 쉽지. 누구던지 용서하지 않고 엄하게 가르칠텐데, 상관없겠지?"


마사유키는 시즈코에게 불명예가 될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자신을 아시미츠가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살살 해서는 의미가 없다. 저격이란 무엇인지는 단시간에 체득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이시야마 혼간지에 세워진 게시판들은 철거되었다. 그와 동시에 각 문 앞에 무기가 상자에 넣어진 상태로 산처럼 쌓여 무장 해제가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는 한편, 문은 여전히 닫힌 상태였다.

혼간지는 전력(戦力)을 포기했지만, 명확히 오다에게 항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모우리 측과 연락을 취하려 하는 것도 아닌 채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라이렌의 속셈을 읽을 수 없는 각 세력은, 각자 혼간지에 대해 사자를 보냈으나, 모두 문전박대당하는 결과가 되었다.

무장 해제를 계기로, 노부나가는 사쿠마에 대해 봉쇄를 풀도록 명했으며, 짐을 검사받기는 했으나 물자의 보급이 재개되었다.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성적을 올리고 있네"


혼간지에 대해서는 일단 옆으로 밀어놓고, 시즈코는 자신이 관여하는 각 사업의 정기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사업을 계속하는 이상, 매일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그것들은 적절하게 처리되어 치명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상당히 경영을 맡길 수 있게 되었네"


조직이란 어떤 목적을 향해 대응하는 질서있는 집단을 가리킨다. 이렇게 정의되듯, 조직에서는 목적이 대단히 중요시된다.

지향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향한 길을 찾는 것이 전략이며, 더욱 효율적인 순로(順路)를 결정하는 것이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에 있어 지향해야 할 목표가 명시되고, 조직원 전원이 그것을 의식하며 매일 진척 상황을 보면서 매진(邁進)하는 조직은 강하다.

반대로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채 막연하게 업무에 착수하고 있는 조직은 조직원들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조직 전체가 서서히 썩어버린다.


"비싼 연수비를 내고 MG연수에 참가시켜줬던 할아버지에게 감사해야겠네. 뭐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거구나"


MG란 매니지먼트 게임(Management Game)이라고 불리며, 전 소니 사원이었던 니시 준이치로(西順一郎) 씨가 1976년(쇼와(昭和) 51년)에 세상에 내놓은 경영자 육성 게임이다.

소니가 개발한 게임이기에, 소니의 사상이나 이념을 이어받은 소니맨을 육성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디자인되어 있다.

이 게임의 우수한 점은, 경영이란 무엇인지 전혀 모르더라도, 사칙연산만 가능하면 게임을 통해 기업 운영의 핵심을 알 수 있는 것에 있다.

시골의 부농(豪農)이라고는 하나, 일국의 주인(一国一城の主, ※역주: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남의 원조·간섭 없이 독립한다는 의미를 가진 듯함)이 될 것이 내정되어 있는 시즈코는, 할아버지의 소개로 14세 때부터 MG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경영의 '경' 자조차 모르는 시즈코는, 할아버지에게 순수하게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즐기고 오라고 보내어져, 2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는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러 번 하다보니 이해가 깊어지고 참가자와의 교류도 늘어나, 즐기며 자발적으로 달려들게까지 되었다.

연수의 성격상, 이 연수를 받는 대상은 신입사원이나 경영자 등 간부사원인 경우가 많다. 그곳에 여중생이 섞인 것이다. 모두가 시즈코를 귀여워한 결과, 거래가 있는 은행과 경영에 관해 구체적인 숫자를 사용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여중생이 탄생했다.

MG 연수를 통해 알게 된 저명한 경영자들에게 배운 것도 있어, 경영 계획에 은행원을 끌어들여 융자 이율을 낮추는 것의 실현까지 가능하게 된 시즈코였다.


MG 연수를 추천한 할아버지로서는, 게임 형식으로 경영을 배울 수 있다면 시즈코에게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례적인 발탁으로 당주가 될 것이 내정된 시즈코에게 관록이 붙는다면 더 바랄 게 없다라고 생각해서 신청한 것인데, 본인에게 예상 이상의 적성이 있었던 것은 기쁜 오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첫번째 MG 연수에서 돌아온 시즈코의 녹초가 된 모습을 본 시즈코의 할머니를 시작으로 한 여성진으로부터는 자신들의 사정으로 시즈코에게 무리를 시키고 있다고 힐책당하여, 시즈코에게 미소가 돌아올 때까지 바늘방석 상태가 되었다.


"그거 덕분에 경영을 알기쉽게 타인에게 전할 수 있으니, 자신과 같은 시점에서 경영을 볼 수 있는 사람을 키울 수 있어. 저작권적으로는 아웃이지만, 일단 니시 선생님의 이름은 넣었으니 눈감아주시길 바라자"


시즈코는 자신이 모든 경영을 보고 있는 상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자신 이외에도 경영자를 육성하려고 문관 후보에서 숫자에 강한 면면을 발탁하여 간이판 MG 연수를 만들어 함께 시행했다.

아라비아 숫자는 물론이고 알파벳에조차 거부감을 느끼는 그들을 다독여 함께 게임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올지 서로 의논하고, 이윽고 각자가 독자적인 전술을 창안해내게 되었다.

이윽고 그들과 숫자를 섞어가며 경영 계획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은 다시 부하들에게 MG의 화(和)를 퍼뜨려 간다는 호순환이 시작되었다.

언젠가는 시즈코의 학교에서도 커리큘럼에 포함시킬까 생각할 정도로 설비도 충실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업의 운영을 수하들에게 맡길 수 있게 되어 시즈코에게 여유가 생기는 체제가 갖춰진 순간에 돌발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라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코쿠는 쵸소카베 씨가 분발하고 있으니, 뒤에서 약간 서포트해주면 충분하겠네. 사이카슈는 결국 대부분이 상업으로 돌아갔으니, 용병집단으로서의 사이카슈는 폐업이려나"


혼간지를 벗어난 사이카슈는, 노부나가의 알선도 있었기에 정상적인 장사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용병 사업을 고집하고 싶어도, 무장을 갖추기 위한 돈조차 없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하니, 노부나가는 그들에게 초기 비용의 융통까지 제안했다.

사이카슈와 오다 가문의 불화는 서로 목숨을 걸고 다투었던 만큼 간단히는 씻어낼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융자를 은의(恩義)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사이카슈의 주류파가 되어간다면, 언젠가 오다 가문과의 불화도 거론되지 않게 될 것이다.


"혼란되었을 때 관문에서 키슈(紀州) 아리타(有田)의 귤(키슈 귤)을 손에 넣었는데, 본격 재배는 모(苗)가 한참 더 많이 필요하네. 기왕이면 씨 없는 귤로 만들고 싶지만, 이 시대에서는 재수가 나쁘니……"


이 시대에서는 씨가 없으면 자손복이 없다는 미신이 뿌리내려있어, 메이지(明治) 시대가 될 때까지 씨 있는 귤이 선호되고 씨 없는 귤은 기피되었다.

참고로 씨 없는 귤도 바나나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우연의 돌연변이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뿌리깊은 미신도 있어 달고 씨가 없는 온주(温州) 귤의 재배는 어렵다. 시험적인 재배는 가능하겠지만, 본격적인 영리(営利) 재배를 하게 되면 키슈 귤을 선택하는 쪽이 수익이 기대된다.


"큐슈라고 하면…… 또 큐지로(久次郎) 씨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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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7 1576년 1월 중순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을 보았기에, 시즈코는 방문자 명부를 꼼꼼히 뜯어보다 못해, 등불에 비추며 뒤쪽부터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도 화려한 묵흔(墨痕)으로 쓰여진 이름이 변화할 리는 없고, 물론 본래 있었던 이름에 덧쓰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달필(達筆)이라 잘못 읽은 게 아닐까 했는데, 아무리 봐도 칸베 산시치로 (神戸三七郎, 오다 노부타카(織田信孝))잖아. 아니 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당연히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시즈코는 오다 가문 적류(嫡流, 이 경우, 노부나가, 노히메(濃姫), 노부타다(信忠))와는 친하게 지냈지만, 서류(庶流)에 위치하는 노부타카와의 교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류 중에 교류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면, 노부나가의 친여동생인 이치(市)를 들 수 있지만, 그녀들은 오다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아자이(浅井) 가문의 사람으로 간주된다.

노부타카에 관해서는, 예전에 이세(伊勢) 도로 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노부나가의 분노를 사서, 자칫 참수당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상황을 시즈코가 진정시킨 경위가 있고, 그 후에도 이세 방면 개발 사업에서 협력한 적은 있지만 그 외에 내왕이 없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노림수는 알 수 없지만, 면회를 거절할 수도 없고, 만나볼까"


노부타카의 속셈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노부나가의 직계(直系)에 해당하는 인물인 만큼 어설프게 대응할 수는 없다.

즉시 답장을 쓴 후, 노부나카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사자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시즈코는 새해 인사 희망자들에 대한 대응에 끌려나와 있었다. 이번의 대응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으로, 대응 순번에 신분이 고려되지 않고 접수한 순서대로 실시되게 되었다.

노부타카에게는 전날 사자를 통해 면회의 순서를 앞당기는 것에 대해 타진했으나, 그런 배려는 필요없다고 사양하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오후 첫번째로 접수했다고 전했다.

그의 신분을 감안하면 순서를 앞당겨도 문제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고지식하게(律義) 순서를 지키는 부분이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와 다른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칸베 산시치로 님께서 오셨습니다.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어요. 안내하세요"


시즈코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부터의 인사를 받을 시간이 다가올 무렵, 소성(小姓)이 노부타카의 내방을 알려왔다.


(노부카츠가 얽히지 않으면 상식인이지…… 무슨 용건일까?)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노부타카의 이미지는, 노부카츠와 함께 뭔가 문제를 일으키는 유감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이세(伊勢) 일대의 개발 사업을 진행했을 때 받은 보고로부터는 성실(実直)하고 총명한 호인물(好人物)이 되어 있어 시즈코의 이미지와 달라져 있었다.


"삼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지내셨습니까?"


노부타카는 시즈코와의 회견에서 당당하면서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매사 노부카츠에게 대항심을 품고 성마른 행동을 보이는 이미지와는 크게 동떨어진 노부타카의 모습이었다.

침착한 태도와 세련된 행동으로, 새해 벽두부터 바쁜 시즈코를 배려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노부타카가 뛰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노부나가의 재능을 가장 짙게 이어받고 있는 것은 노부타다(信忠)이지만, 노부타카도 노부타다에게는 뒤지더라도 그렇게 크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노부카츠가 얽히면 유감스러운 부분이 클로즈업되어버려, 그 인상이 인물의 이미지로서 정착되어 버렸다는 불운한 사내였다.


(이 애는 노부카츠가 얽히면 이래저래 추태를 보이지만, 그 이외에는 큰 공적도 없는 대신 '뼈아픈 실패도 하지 않았지')


좋게 말하면 견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인 것이 노부타카였다.

자신의 영지에 관해서도, 노부나가의 수법을 본보기로 삼아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으며, 싸움에 관해서도 견실한 전술을 선호하는 숙련자(巧者)이다.

영토상으로는 가까이 위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노부타카 측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오지 않았기에, 시즈코로서는 노부타카에 관한 정보를 모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탓에 어떤 속셈으로 노부타카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으ー음, 잡담하러 왔을 리가 없으니, 여기는 약간 운을 띄워볼까?)


인사를 시작으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항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잡다한 이야기(世間話)를 줄곧 나누고 있었지만, 노부타카가 아까부터 몇 번이나 본론을 꺼내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기에 좀 거들어주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작년말에는 이세(伊勢) 신궁(神宮)에서의 큰 액막이(大祓)에 많은 참배객들이 모였다고 하던데, 제법 성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가끔 산적(野盗)이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참배객들에게 큰 피해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이세 참배객의 보호에 관해서는 주상(上様)께서도 신경쓰고 계시니까요"


노부나가는 항상 "나는 종교의 씨를 말리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하는 게 아니다. 신앙을 미끼로 신자를 모아서, 숫자를 믿고 권력을 가지려고 야심을 품는 패거리를 배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것은 휘하의 무장들 뿐 아니라, 와판(瓦版, ※역주: 에도(江戸) 시대에 찰흙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기와처럼 구워 신문이나 공보 비슷하게 배포하던 것. 유명한 요미우리(読売) 신문의 요미우리라는 단어가 원래 이 와판을 팔고 다니던 것을 뜻한다 함)을 통해 널리 백성들에게도 노부나가의 말이 알려지도록 하고 있었다.


(그건 프로파간다(propaganda)라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되니, 그 부분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관여하고 있는 거겠지)


전국시대에서는 와판조차 획기적인 매스미디어이기에, 현대의 신문에 가까운 포지션을 확립하고 있다.

여전히 펄프 종이가 개발되지 않아, 갱지(わら半紙)에 등사판 인쇄한 와판이라고 해도 원가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와판 사업에 큰 조성금(助成金)을 내는 것으로 널리 값싸게 와판을 백성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부나가에게도 값싼 투자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매스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에는 그만한 지출을 허용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즉, 스폰서인 노부나가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백성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사고(思考)가 유도된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정책 덕분에 오다 영토 내에 한정한다면 식자율(識字率, ※역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비율)도 향상되어 있어서 현재로서 그의 정책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참, 이세 신궁이라고 하니 출입하는 상인들이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칸베 님의 시간이 괜찮으시면 들어보시겠습니까?"


"이세 신궁에 관여된다고 하면 남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꼭 듣고 싶습니다!"


노부타카는 옳거니라고 말하듯 달라붙었다. 시즈코는 그의 태도에서 그의 본론이 이세 신궁에 관한 무언가에 있다고 때려맞췄는데,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노부타카로서는 자신의 약점을 여인인 시즈코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주저가 있었으나, 그녀가 먼저 화제를 꺼내준다면 꽤나 이야기를 꺼내기 쉬워진다.

노골적으로 기분이 좋아진 노부타카를 보고, 시즈코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세 신궁에 대한 참배(参詣)에 관해, 해로(海路)를 이용할 수 있다면 쾌적한 여행이 됩니다만, 민초(民草)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비싼 뱃삯은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로(陸路)는 도로가 정비되었다고는 해도, 고저차에 따른 경사(勾配)도 있어 안온하다고는 하기 어렵지요"


"그렇습니다. 육로를 이용하면 시간이 걸리고, 그에 비례하여 많은 식량이 필요해집니다. 그렇지만 휴대할 수 있는 짐에는 한계가 있어, 육로를 걷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짐을 줄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과연 칸베 님, 상인들이 한 이야기도 바로 그것입니다. 도로의 길이에 비해 식사나 잠자리를 제공할수 있는 시설이 부족합니다. 지금은 행상인들이 길가에서 노점을 여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겨울이 되면 노숙은 힘들고, 눈이라도 내리면 즉시 물류가 끊겨버립니다. 물론 영주이신 칸베 님께서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그러한 진정은 몇 번이나 받았습니다. 풍요로운 계절이라면 부근의 마을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겨울에는 마을에도 잉여 식량은 적어서 죽는 사람조차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상황의 인식이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즈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참배객의 증가에 맞추어 숙박지 마을(宿場町)을 확대하고, 상인들에게 점포를 임대하는 것은 어떨까요?"


"장사 허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쪽이 점포를 준비해서 상인들에게 임대하라는 말씀입니까!?"


"네. 도로가 정비되고 치안이 좋아졌기에, 오와리(尾張) 일대를 시작으로 자금 사정이 좋아진 백성들이 너도나도 참배하러 외출하는 작금, 그들의 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급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점포를 준비할 수 있는 상인의 경우 당연히 그 숫자가 적기 때문에 도저히 수요를 맞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큰 자금이 필요해지는 점포를 이쪽에서 준비해주는 것으로, 소규모 상인들에게도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에는 큰 가게의 상인들이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을테니, 분리를 시킵니다. 큰 가게의 상인들에게는 유복한 층을 상대하게 하고, 우리들은 저렴함을 원하는 여행자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것입니다"


"과연! 신규 참가의 문턱을 낮추고, 우리들은 매상에 부과하는 세금과 임대료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인군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형태가 되는 큰 가게의 상인들에게도, 직접 점포를 준비한다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해주면……"


"과연 칸베 님, 임기응변(当意即妙)이 뛰어나시군요. 물건을 파는 가게에 관해서는 이걸로 좋다고 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여관이겠지요. 이미 있는 여관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쉽게 묵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준비하는 여관에서는, 땔나무와 쌀값 정도로 묵을 수 있는 대신 큰 방에서 혼숙(雑魚寝)한다는 것은 어떨까요?"


시즈코가 말한 여관의 원안(原案)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에도(江戸) 시대에 사용된 여관의 방식이다.

시즈코가 말하는 낮은 가격에 잠만 자는 여관을 키친야(木賃宿, ※역주: 싸구려 여인숙)이라 부르며, 개인 방이 주어지고 식사도 제공되는 형식의 여관을 하타고(旅籠)라고 불렀다.

키친야는 문자 그대로 자취하기 위한 땔나무와 주식인 쌀을 제공할 뿐인 여관으로, 식사 준비 등은 공용의 화덕(竈)을 사용하여 스스로 할 필요가 있었다.

숙박비에 관해서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에, 현대의 화폐가치로 환산한 일례를 들어본다면 키친야에서는 1박 800~900엔 정도인 것에 대해, 하타고에서는 4000~7000엔 정도로, 5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설정되어 있었다.


"흠, 노숙과 비교하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데다 화덕도 쓸 수 있다고 하면 이용자는 많아지겠지요. 숙박지(宿場)마다 그러한 여관이 있다고 하면, 이세 참배의 안전성은 높아져서 더욱 많은 집객(集客)도 기대할 수 있겠군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과연 주상의 혈통, 이해가 빠르고 응용도 잘하네)"


"하지만, 모든 숙박지에 대해 상응하는 숫자의 점포를 준비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자금 문제가 골치로군요"


"우선은 숙박지 사이의 거리가 멀고 불편한 입지를 선택해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다음 숙박지까지의 거리가 멀다고 하면, 조금 비싸게 먹히더라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고 하겠지요. 새로운 숙박지 마을을 처음부터 만들게 되면 많은 자금이 필요해지지만, 이거라면 금방이라도 시작할 수 있고, 잘 돌아가는 것 같으면 차례때로 전개해가면 되겠지요"


"그렇군요. 이미 여행길이 힘들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으니,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만에 하나, 장사가 실패하더라도 건물만 남아있으면 우리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계산인가요"


"사람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물건이 움직입니다. 그곳에는 반드시 장사할 기회(商機)가 있으니, 여관이나 가게가 아니더라도 물자를 비축해 둘 창고로서 이용한다면 헛되지는 않겠지요"


"우리들은 이세 참배에서의 참배객들에 대해 이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면,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는 영주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겠군요"


그 대책을 세우지 않는 영주인가 하는 게 누군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지만, 어설프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일도 없다며 침묵을 지키고 미소를 떠올리는 데 그치는 시즈코.


"과연 명성이 자자한 '오다 가문 상담역(織田家相談役)',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 안건을 가지고 돌아가 신하들 모두와 협의하지요…… 즉단즉결(即断即決)을 하지 못하는 게 제가 생각해도 한심하지만, 성격이니 어쩔 수 없군요"


노부타카는 자조하듯이 중얼거렸다. 과단(果断)하기로 정평이 난 노부나가와 비교하여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듯 생각된 시즈코는, 무의식중에 말을 꺼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담하시는 칸베 님이시기에 뒷받침하려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스스로를 비하하면 나를 따르는 가신들도 비하하게 되는 것인가요. 제 생각이 얕았습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아니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니, 시즈코 님의 말씀은 실로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처럼 남의 위에 서게 되면, 역정을 사게 될 것을 알면서 간언하는 사람은 적지요. 이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으로 찾아온 가치가 있었습니다"


노부타카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시즈코에게 새해 인사를 하도록 권한 아버지, 오부나가의 진의를 깨달았다.

노부타카는 시즈코를 적류 편을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편견(思い込み)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 짧은 시간에 헤아릴 수 있었다.

노부카츠와의 사건으로 폐를 끼친 것도 있어 스스로가 사양하여 관계를 멀리하고 있었을 뿐, 그녀는 내밀어진 손을 쳐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노부타카와 노부카츠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쓸데없는 소동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쪽을 편들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녀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아버지가 시즈코 님을 중용하시는 것도 당연한 것인가)


이곳에 올 때까지,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고 시즈코로부터 이익을 끌어낼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고민을 시즈코에게라면 털어놓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탁월한 식견을 가지신 시즈코 님께, 한 가지 상답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상담…… 입니까?"


"조금 복잡한 사정이기에 바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복잡한 사정이라는 말을 듣고, 시즈코에게는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견원지간인 노부카츠와의 불화(確執)에 관한 일이라고 짐작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 좋을 내용이 아니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소성을 불러, 최저한의 경비를 남기고 사람들을 물리도록 전했다. 시즈코의 신변을 호위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이조(才蔵)조차 맹장지 한 장 건너편의 방으로 물렸다.

그것을 보고 노부타카도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시즈코에게 맡기고, 자신의 종자(従者)들도 다른 방으로 물러가게 했다. 그것이 시즈코의 성의에 답하는 것이 될 거라고 노부타카는 생각했다.

사람들을 물린 후, 실내에 고요함이 가득하게 되자 떄를 보아 노부나카가 입을 열었다.


"이미 헤아리고 계시듯, 상담의 내용이란 우리들 형제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말하기도 꺼려집니다만, 저는 큰 공적을 세우지 못하는 대신, 뼈아픈 실패를 범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예외적으로 이세 도로 정비에 관해 아버지에게 직접 질책받는다는 추태를 보였습니다만, 아버지는 그 이후의 성과로 공과 죄를 상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노부타카의 인식은 틀리지 않았다. 오다 가문의 중신들이 보는 가운데 노부나가에게 얻어터진 끝에 자칫 참수까지 당할 뻔 했으나, 노부나가는 스스로의 실패를 후회하고 행동을 고치는 사람에게는 관대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부나가가 공과 죄를 상쇄한다고 했다면, 예전의 실패는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도 좋으리라.


"바로 그렇기에, 여전히 언동을 고치지 않고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놈보다 아래에 놓인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역시 노부카츠보다 서열이 낮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구나. 확실히 실력주의인 오다 가문에서 뚜렷하게 공적에 차이가 나고 있는데 서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나……)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타카가 노부카츠를 싫어했다고 말하는 1차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지위(立場)를 생각하면, 그러한 자료가 남을 리 없다는 것도 시즈코는 이해하고 있었다.

설령 존재하였더라도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노부카츠 측에서 말소할 것이고, 노부타카 측의 가신들도 추문을 꺼려하여 증거가 남지 않도록 손을 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압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노부나가조차 그의 내면에 관한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심정을 토로하는 듯한 자료나 그 인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만한 자료는,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전국시대의 관습상 남을 가능성은 적다.


"예전에 주상께서는, 피를 나눈 친동생과 후계자 싸움을 벌이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와 제 경우는 사정이――"


"그 후계자 싸움을 뒤에서 조종했던 것이 친어머니였다고 하면 어떠십니까? 주상 스스로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만, 그 심정은 결코 평온하지는 않으셨겠죠.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골육상쟁을 주상께서 기피하시는 것도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려던 노부타카였으나, 이어지는 시즈코의 말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버지인 노부나가가 친동생과 후계자 싸움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뒤에서 손을 쓴 것이 다름아닌 노부나가의 어머니였다는 것은 몰랐다.


"그래도 주상께서는 동생의 모반을 한 번은 용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생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하신 어머니가 다시 동생을 내세워 배신했다면, 아무리 주상이시라도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으셨겠지요. 그렇기에, 주상께서는 자기 자식이 지위를 둘러싸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한 번 정한 서열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여주면, 야심을 품은 제 3자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었습니까……"


"물론, 이것은 제 추측이고, 주상의 마음 속은 들여다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칸베 님께서 아무리 공을 쌓으셔도, 반대로 키타바타케(北畠) 님께서 어떤 실패를 하시더라도, 형제간의 서열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납득하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아니, 이해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불만은, 아버지가 저를 인정해주시지 않는 것은 제 어머니의 신분이 낮기 때문이라고 섣불리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그 놈은 이미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피를 보고 있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 사이가 틀어지도록 부추겨졌다고 짐작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본인들께서 어찌되셨던, 각각을 모시는 가신들 사이에서 이해가 충돌하게 되면 반드시 역학관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것을 극력 배제하기 위해 고려된 결과가, 형제간의 서열 부동인 것이겠죠. 최상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심정(心情)이 관계되는 일이기에 달리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령이 없으신(不器用) 주상께서 최대한으로 보이신 혈육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은 마음도 진정되지 않으시나요?"


"후후, 요령이 없는 것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것이군요. 아아, 목에 걸렸던 가시가 빠진 느낌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확실한 정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아버지와 형님(여기서는 노부타다를 가리킴)의 패업(覇業)을 그늘에서나마 뒷받침하지요"


노부타카의 표정은 침착해져 있었다.

이미 대립구조가 생겨버린 노부카츠와의 불화는 그렇게 간단히는 없어지지 않지만, 적어도 노부타카 측에서 싸움을 거는 것은 없어질 거라고 시즈코에게는 생각되었다.


('사내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한다(男子三日会わざれば刮目して見よ, ※역주: 삼국지에 나오는 '괄목상대(刮目相待)'라는 고사성어의 변형(원래는 '사내'가 아니라 '선비')으로 보임)'라는 속담이 있는데, 노부타카가 변한다면 할복을 명령받게 되는 미래도 변하려나? 키묘(奇妙) 님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지만, 노부타카가 느닷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도 주상께서 뒤에서 손을 쓰시고 계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


시즈코가 본 노부타다는, 때때로 노부타카를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후계자(跡目)에 관한 형제간의 심리적인 불화가 있는 걸까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부타카와 접하는 동안 노부타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노부타카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노부나가의 재능을 짙게 물려받고 있다. 그가 노부타다와 비교할 때 명백하게 한 수 떨어지고 있던 것은, 스스로의 심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서로 발목잡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명백한 결점이 극복된다면, 카리스마 타입의 노부타다와는 다른 호소력(訴求力)을 가진 영주(国人)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숨기고 있었다.

중앙집권형의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와는 달리, 노부타카를 이해하고 그를 뒷받침하려고 가신단(家臣団)이 힘을 모은다는,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 가까운 국가 건설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서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를 생각하면, 노부타다의 초조함도 기우라고는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런 상대의 성장을 촉진한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라고 알게 되면 노부타다로서는 불만 한 마디 정도는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즈코의 사람됨을 노부타다 자신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니 불만이라기보다는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고, 노부타다는 동생의 성장을 쓴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형님께서는 무탈하십니까?"


"연말에 뵈었을 때는 별 일 없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새해가 된 이후로는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만, 내일 주상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갈 때 뵙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드리겠습니다만?"


"아니, 무탈하시다면 됐습니다. 시즈코 님이라면 아실까 해서 여쭤본 것 뿐입니다"


"아뇨아뇨, 보모(お守り) 흉내를 내야 했던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모르는 일 쪽이 많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까 (시즈코 님이 품은 형님에 대한 인상은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에 대한 누이의 그것이군. 과연 형님이 시즈코 님을 아버지에게서 빼앗을 수 있을까?)"


노부타다가 시즈코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노부타카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을 가엾게 생각하면서도, 재미있으니 말없이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시즈코로부터 노부타카와의 전말(顛末)을 들은 노부나가는 한 마디만 중얼거렸다.


"아는 척 나불대기는"


그렇게 일견 기분나쁜 듯 보이는 태도를 취한 노부나가였으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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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6 1576년 1월 중순



텐쇼(天正) 3년의 설날(元旦)을 맞이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라면 타케다(武田) 군이 패주한다는 역사적 전투인 '나가시노(長篠) 전투'가 벌어진 해이다.

매년 항례(恒例)의 일이기는 하나, 설의 시즈코 저택은 시녀나 몸종(小間使い)들을 집으로 돌려보냈기에 한산했다.

지금도 시즈코 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정월(正月) 근무에만 지급되는 각종 선물(祝いもの)과 할증수당(割増手当)을 노리는 위병(衛兵)들과, 아야(彩)처럼 천애고독(天涯孤独)한 신세라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잘 부탁해요"


정숙에 휩싸인 시즈코 저택의 안채에서 시즈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물게 당당한 표정으로 모두에게 말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시즈코 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의 인사에 대해, 반대쪽에 정좌(正座)하고 있는 시로쿠(四六)가 답례 인사를 했다. 그에 이어 동석하고 있던 모두도 순서대로 인사를 마치자 시즈코가 말했다.


"좋았어! 그럼, 여긴 추우니까 거실(居間)로 돌아가죠"


그렇게 말하자마자 가장 먼저 거실로 돌아가서 겉옷(半纏)을 껴입고는 코타츠에 발을 밀어넣었다.

사전에 불을 넣어둔 코타츠는 충분히 따뜻하여, 그 열을 만끽하며 얼굴이 풀어지는 모습은 어린 계집아이(童女)같았지, 도저히 오다 가문 중진(重鎮)의 위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시즈코에 이어 아야, 아시미츠(足満), 시로쿠, 우츠와(器)도 코타츠를 둘러쌌고, 혈연 관계는 전혀 없지만 가장 가까운 시즈코의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일단 안주(祝い肴)와 제주(神酒)가 준비되어 있으니, 시로쿠와 우츠와는 맛만 봐. 재수를 비는 것(縁起物)이니까 무병무탈(無病息災)을 기원한다는 의미로"


시즈코는 금주령 때문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혀끝을 적시기만 했고, 아야와 아시미츠는 잔을 단번에 비웠다.


"그럼, 요리를 먹어볼까. 하지만, 설날 뿐이네, 먹고 자고 할 수 있는 건"


예년이라면 이틀째에 주군인 노부나가나 노부타다(信忠)에 새해 인사와 주연(酒宴)의 참가, 3일째 이후에도 오다 가문 가신(家中)들과 인사를 하러 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자기 영지 내의 도시에서 새해를 축하하고, 시즈코가 총괄(元締め)하는 각종 사업의 시무식(初出式)에도 참가하는 등, 연초부터 이벤트가 꽉 짜여 있었다.

또, 시즈코의 자식인 시로쿠와 우츠와를 양자로 맞이하였기에, 시즈코에 대한 주위의 대응이 여실하게 변화했다.

지금까지는 시즈코가 자식을 가지지 않고 어떤 가문과도 명확히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았기에, 아무리 영달을 하더라도 1대에 그치는 벼락출세라고 간주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군의 가문에서 후계자를 얻은 것에 의해 주가(主家)가 시즈코의 가계(家系)를 정식으로 승인했다고 인식되었다.

즉, 시즈코가 죽은 후에도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신하로 대우받는 가문이 된 것이다. 게다가 주가와 극히 가깝고 많은 사업을 거느린 권세를 자랑하는 존재라는 것이 된다.

이것은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었기에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즈코의 내심은 어찌되었던 세상에서는 좋은 일이라고 간주된다.


"내일부터는 바빠집니다. 작년 말에 사전 연락(先触れ)을 받은 분들만 해도 재작년의 배 이상은 되고, 그 이외에도 시즈코 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예고 없이(飛び込み) 새해 인사를 오는 분들은 대체 얼마나 될지……"


권세가 계속될 거라 인식된 순간부터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시즈코와 관계를 맺으려 하기 시작했다. 지조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기왕 남에게 의지할 바에는 힘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게 좋다(寄らば大樹の陰)'라는 말도 있듯,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뭣보다, 시즈코에게는 일일이 그런 것에 어울려줄 의리는 없지만,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그녀는 그것들을 받아들일 생각인 듯 했다.


"저녁에는 쇼우(蕭) 짱이 돌아오니까 최종확인을 부탁해. 당일이 되면 나는 장식품(置物) 상태가 될 테니, 아무래도 그 사람 수를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 말야"


"알겠습니다"


시즈코가 쓴웃음을 지으며 아야에게 명했다. 예년, 새해 인사에 관한 것은 일체 아야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에는 사람 수가 배 이상으로 뛰어오르고, 대응에 가문의 격(家格)이 요구되는 인물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아야 뿐만이 아니라 쇼우도 참가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야는 시즈코의 가신으로서는 최고참이며 금고지기까지 맡는 측근 중의 측근으로서 시즈코의 신임을 가장 두텁게 받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도 아야의 배경은 평민 출신이라 가문의 격 따윈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도 시즈코의 집에 귀인(貴人)이 찾아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전원이 사정을 파악하고 있어 아야에 대해 뭔가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없다. 평민 출신의 아야를 내세우면, 방문객들은 불만을 품게 되고, 그녀도 불쾌한 말을 듣게 된다.

그런 속 좁은 인물과는 얼굴을 마주칠 필요는 없다고 시즈코는 분개했으나, 수하의 사정으로 주군의 행동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아야가 말을 꺼냈기에 급거 쇼우가 발탁되게 되었다.


"올해는 나도 동석하지. 사이조(才蔵)와 함께 등 뒤에 서서, 분별없는 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도록 견제해주마"


신주 이후에는 아츠칸(熱燗)을 자작(手酌)하고 있던 아시미츠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로쿠는 끼어들지 않고 듣는 역할에 충실했고, 우츠와는 배가 부른 것과 따뜻함에서 오는 수마(睡魔)에 견디지 못하고 코타츠의 상판(天板)에 얼굴을 올려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시즈코는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半纏)을 벗어 잠든 우츠와의 등에 걸쳐주고, 다른 겉옷을 꺼내 입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적당히 해요. 우리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게 되니까, 어지간히 심한 경우라면 부탁할게요. 아시미츠 아저씨는 흉안(凶顔)이랄까, 시선에 살기가 어린 것처럼 보이니까요"


"……상대 나름이지"


살기를 품고 있다는 자각은 있는건지, 시즈코의 지적에 아시미츠는 시선을 피했다. 의외로 어린애같은 아시미츠의 반응에 시즈코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꺠달은 아시미츠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뭐, 인사의 대응은 귀찮지만, 예전과는 달리 시즈코와 결혼하려고 하는 놈들이 없는 것만으로도 나아진 건가"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시즈코는 조정(朝廷)의 정점,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딸이며, 게다가 시즈코 본인이 관위(官位)를 받은데다 오다 가문 내에서도 손꼽는 중진이 되어 있다.

전국시대의 상식에 따르면 이미 한창때가 지난 시즈코지만, 그 지위는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고 할 수 있었기에 이미 쉽게 말을 거는 것조차 어렵다.

하물며 가문끼리의 인연을 맺는 결혼쯤 되면, 주군인 노부나가나 양아버지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의 뜻도 관여되기에, 섣불리 욕심을 드러냈다간 목숨이 위험해진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만 않을 뿐, 결혼하여 출세하는 것(玉の輿)을 노리는 어리석은 자들은 매번 있습니다만, 금년엔 쫓아낼까요?"


"괜히 엄하게 원망받아도 곤란하니까, 그런 사람들은 적당히 응대하면 비빌 구석이 없다는 걸 깨달아주거든"


아야의 말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적당히 응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예전에 시즈코가 아야노코우지(綾小路) 가문의 차기 당주로 내정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남편 문제였다.

누구라면 당주의 배우자가 되는 데 어울릴지를, 현 당주인 시즈코의 할아버지나 아버지, 숙부, 백부가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곧 시즈코의 할머니가 알게 되고, 아직 어린 시즈코에게 당주를 떠넘기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가문의 편의에 따른 배우자까지 떠넘기려 하다니 너무 심하다고 비난했다.

그 덕분인지, 시즈코의 남편감 고르기는 보류되고, 남자 친족들이 비밀리에 상대를 찾는 데 그치고 있었다.


시즈코도 사람인 이상 연애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누군가를 좋게 생각한 적은 있고, 연애소설이나 만화를 읽고 그 극적으로 타오르는 듯한 사랑을 동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10대 소녀로서 당연한 감정과는 별개로, 시즈코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교제 경험은 전무하지만, 여자가 몇 명이나 모이면 연애가 화제가 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누가 취향인지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즈코가 말한 인물의 이름은, 친구들이 입을 모아 "그 녀석은 그만둬"라고 말할 정도였다.

시즈코의 언니 말로는 , "남자로 보기 이전에, 인간으로 본 시점에서 문제가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시즈코는 소위 말하는, 남자를 못쓰게 만드는 여자의 전형적인 예로, 다소의 결점(타인이 볼 때는 다소 정도가 아니다)은 자신이 함께 커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말할 때마다 모두 달려들어 부정하는 것에 실망한 시즈코는, 10대 중반쯤 되어 달관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즉, "나를 걱정해주는 조부모나 부모님이 정한 인물과 연애를 하자"라는, 일종의 체념(諦観)과 비슷한 수동적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위도 있어, 노부나가가 "내 자식을 양자로"라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시즈코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나를 가장 높이 평가해주시는 주상께서 정하셨으니 괜찮다"라고, 오히려 안도감조차 느끼고 있었다.

결점만을 보지 않고 미점(美点)을 찾아내어 본다는 시즈코의 연애음치(恋愛音痴)는, 인재 발굴, 인재 육성이라는 점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하니 얄궂다고밖에 할 수 없다.


"가문이 관계되는 나보다, 시집갈 나이대인 아야 짱이야말로 상대를 생각해야지. 좋은 상대를 찾아주실거야! 주상께서!"


자신의 남성관이 형편없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는 시즈코는, 아야의 결혼상대를 노부나가에게 찾아달라고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야 자신이 결혼을 내켜하지 않았기에 이야기는 허공에 붕 뜬 상태였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시즈코 님을 보고 있으면, 걱정되서 도저히 결혼같은 걸 할 수 없습니다"


"흐흥-! 인간은 성장하는 생물이거든. 이래보여도 나는,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고!"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가정을 가지게 되어 곁을 떠나도 괜찮은 거군요?"


"어!? 아! 그렇게 되는건가…… 아니, 잠깐 기다려. 역시 불안이 있으니, 아야 짱만 괜찮다면 함께 있어주지 않을래?"


"네, 알겠습니다"


이미 아야가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었던 시즈코는, 두 손을 들어 항복하고는 창피고 체면이고 없이 남아줄 것을 요청했다.

심정적인 면을 무시하고 인적 자원으로서만 본 경우에도, 아야는 시즈코의 급소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만약 아야가 없어진다고 하면, 오다 가문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재산을 자랑하는 금고를 맡길 만한 인물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즈코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나라를 뒤흔들 정도의 재력과 권력을 앞에 두고 무욕(無欲)을 관철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조건이 뭍으면, 사막에 떨어진 한 알의 다이아를 찾는 거나 다름없는 난이도가 된다.

몇 년씩 걸려 다양한 상황에서의 행동을 지켜본 후에 선별하고, 이어서 그 지위에 걸맞는 교육을 시켜야 겨우 금고지기를 맡길 수 있게 된다.

이 녀석에게 속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신용할 수 있는 인간, 그것이 시즈코에게 있어서의 아야였다.


"시로쿠는 언젠가 내 뒤를 잇게 될 거야. 좋은 인연을 맺어서, 진심으로 신용할 수 있는 인재를 지금부터 확보해 두도록 해"


"네"


시즈코의 말에 시로쿠가 결연하게 대답하고, 아직 꿈 속에 있는 여동생을 보며 더욱 결의를 굳히는 모습이었다.

시즈코는 약간 긴장이 지나친 듯 보이는 시로쿠의 모습을 보고 조금 불안한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실패도 경험이 된다고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는 이상, 그 이상의 간섭은 삼가기로 했다.

정말로 쓰러져 버릴 것 같으면, 사전에 자신이 도와주면 된다. 나무 위에 서서 바라본다는, 시즈코는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부모(親)'라는 한자의 유래에 따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보다 시로쿠의 측근도 모집해야겠네. 내 측근처럼 괴짜(色物) 집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 좋겠는데"


"괴짜라니 섭섭하구나"


"자신이 지금 시대의 주류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어요?"


"…………충의(忠義)의 신하이긴 하다"


잔뜩 시간을 들여 대답한 아시미츠였으나, 시즈코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시점에서 규격외의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뭐하지만, 내가 괴짜니까 '유유상종(類は友を呼ぶ)'으로 다들 모여든 걸까요?"


"세상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괴짜라 해도 부끄러워할 필요 같은 건 없다"


"뭐, 그러네요. 아! 맞다, 새해 첫 승부를 하자고요!"


"또 장기냐. 나는 상관없는데, 매번 질 걸 알면서 잘도 계속 도전하는구나"


"장기말 떼는 것 없이 평수로 둘 수 있게 되었으니 곧 본때를 보여주겠어요"


"훗…… 그거 기대되는군"


아시미츠의 여유작작한 듯한 태도에 시즈코가 한껏 허세를 부렸다.

아시미츠에게는 어린애가 약올라하는 것 같아 오히려 사랑스럽다고까지 생각되었기에, 그가 시즈코를 놀리는 것은 당분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큭! 맥주 제조가 궤도에 올랐다고 방심하고 있으면 뒤통수를 맞을거에요!"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자신이 잘하는 방향에서 공격하기로 했다.

일본주보다도 맥주를 선호하는 아시미츠는, 마찬가지로 애주가인 미츠오(みつお)(이쪽은 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전부 좋아함)와 결탁하여 맥주 제조에 정열을 쏟고 있었다.

현대의 주세법(酒税法)과는 달리, 개인적인 연구 범위 내에서의 주조(酒造)는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오다 영지의 특산품이 될 산업의 연구라고 둘러대면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당당하게 맥주 제조에 착수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제조된 분량 전부를 자신들이 소비할 뿐인 결과가 되어도 말이다.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는 아시미츠의 태도에 위기감을 느낀 시즈코는, 그를 맥주 제조의 총책임자에 임명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듯,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르면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 조치였다.

최신 설비와 인원이 주어지고 예산도 붙어서 훌륭한 사업체로서의 체제가 갖춰지자, 태도를 바꾼 건지 아니면 기대에 부응하려고 한 것인지 사람이 확 바뀌어 확대 노선으로 변경, 홉 밭이나 보리밭을 정비하고, 그와는 별도로 콩밭도 정비하기 시작했다.


"풋콩(枝豆)은 탄바(丹波)의 풋콩이 최고지!"


맥주의 안주로 풋콩이 먹고 싶다고, 전략물자이기도 한 콩을 다 자라기 전에 수확하여 풋콩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을 보고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쥐게 되었다.

아시미츠가 말하는 '탄바의 풋콩'이란 탄바구로(丹波黒)라고도 불리는 품종인데, 콩은 알이 굵고 둥글며, 입에 닿는 감촉(口当たり)이 좋은 식감을 가지고 있고, 표면에 하얀 가루를 뿌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현대에 있을 때 그걸 먹어본 아시미츠는 탄바의 검은 콩(黒豆)에 반해 버렸다. 옛부터 사사야마(篠山) 지방에서 재배되어 세금(年貢)으로 바쳐지고 있었다고 아시미츠는 도서관을 다니며 얻은 지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탄바구로의 뿌리는 에도(江戸) 시대에 하베 로쿠베에(波部六兵衛)와 하베 모토지로(波部本次郎) 등이 탄생시킨 우량 품종 '하베구로(波部黒)'에 있다고 전해진다.

농업에 관해서는 할아버지에게 철저하게 영재교육을 받았던 시즈코는, 그렇기에 전국시대에는 탄바의 검은 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걸 들어도 아시미츠의 정열이 흐려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베구로'의 기원이 되는 재래종이 있을 거라고 주장하며, 억지를 써서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에게 콩을 융통받은 후, 자신들이 만들어내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밭에 심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예전의 탄바의 검은 콩보다는 못하더라도, 직접 공들여 만든 맥주와 풋콩! 나는 지금, 최고로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굳이 빙실(氷室) 안에서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식힌 찻종(湯呑)에 맥주를 따르고, 마찬가지로 초가을(秋口)에 수확하여 냉동해둔 풋콩을 해동하여 소금으로 데친 풋콩을 우물거렸다.

코타츠(コタツ)로 몸을 따뜻하게 하며 풋콩을 먹으면서 차가운 맥주를 들이킨다. 그야말로 아저씨 스타일을 고수하는 아시미츠에 대해 시즈코는 한숨을 쉬고는 최대한의 반격으로서 야유를 했다.


"아시미츠 아저씨, 중년 같아요"


"중년……"


시즈코의 한마디가 예상 이상의 효과를 올렸다.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仏頂面)이 거짓말인 것처럼 아시미츠는 맥없이 고개를 떨궈버렸다.

나는 배도 안 나왔고, 머리도 벗겨지지 않았고, 노인 냄새(加齢臭)도 나지 않을텐데 라는 등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시미츠가 가지고 있는 중년의 이미지는 현대의 그것에 고정되어 있는 듯 했다.

남성에게 중년이라는 단어는 금지어인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치명적인 정신적 대미지를 받은 아시미츠의 등을 문지르면서 그의 중얼거림에 일일이 괜찮다고 추인하며 위로했다.

아야와 시로쿠는 처음 보는 아시미츠의 추태에, 한여름에 눈이라도 내린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품고 있는 아시미츠의 이미지라고 하면, 질실 강건(質実剛健)하고 냉혹비정(冷酷非情)하며, 필요하다면 갓난아기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베어버리는 인물이다.

그 요불요(要不要)의 판단조차 기준이 그 자신이 아니라 시즈코에게 메리트가 있는가 아닌가로 결정하고 있는 경향이 있어, 설령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이라고 해도 시즈코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주저없이 반항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좋은 시즈코와 달리, 다른 사람들이 기피하는 행위라도 필요하다면 솔선해서 손을 대는 등, 어두운 부분(暗部)을 담당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품은 아시미츠의 이미지였다.

위정자라는 것은 깨끗하기만 해서는 해나갈 수 없고, 당근과 채찍 중 채찍 부분만을 솔선해서 맡아주는 아시미츠의 존재는 시즈코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불가결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누구로부터의 악평도 신경쓰지 않는 아시미츠가 이렇게까지 의기소침해하는 모습 같은 건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항상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는데, 혹시 그것도 싫었어요?"


"그건 상관없다. '아저씨(小父さん)'라고 경애해주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중년은 다르다. 나는 TV에서 지겨울 정도로 봤단 말이다. 한심하게 튀어나온 배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피부, 딸에게도 냄새나니까 따로 세탁해달라는 소리를 듣는 존재. 나는 결코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게다가, 중년이라고 하면 미츠오 같은 이미지 아니냐?"


"아아! 고로(五郎)씨도 미츠오 씨를 '아저씨(おっさん)'라고 부르니까요. 가끔 츠루히메(鶴姫) 짱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는데, 본인은 깨닫지 못한 걸까요?"


"고로는 둔하다. 그리고 그렇게 불리는 본인인 미츠오가 신경쓰지 않으니까 괜찮은 거겠지. 그보다, 미츠오의 가족 자랑이 더 진절머리난다"


"나도 툇마루(縁側)에서 이야기하는 미츠오 씨들을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그건 굉장하네요. 잘도 매일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 있구나 하고 감탄이 나오고, 넘쳐나는 애정과 그걸 표현하는 미사여구로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이었어요"


"한 번도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데, 전체적으로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니 그걸 들어야 하는 쪽은 배겨내질 못하겠지만 말이다"


"츠루히메 짱도 지금은 1남 1녀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놀랍네요. 몸도 꽤나 튼튼해진 모양이고요"


순조롭게 화제가 바뀐 것에 안심하면서, 미츠오의 이름이 나온 것에 시즈코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미츠오의 부인인 츠루히메는, 장녀를 낳고 몇 년 후에 장남, 츠바키마루(椿丸)를 출산했다. 츠루히메는 적자(嫡男)를 바랐지만 얻은 것이 여아였기에, 다시 임신을 바란 츠루히메에 대해 미츠오가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을 최우선시킨 결과였다.

애초에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출산했기에 모체에 극도의 부담이 가해졌던 것이다. 시즈코가 병원을 만들지 않았었다면 세상을 떠났을 거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훌륭한 후계자를 낳는 것이야말로 스스로의 제일가는 존재 의의라며, 강박관념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주입된 츠루히메에게는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츠오는 매일 츠루히메의 곁에 달라붙어 자신이 얼마나 츠루히메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기를 3개월. 간신히 츠루히메가 자신의 의지를 꺾고 요양 기간을 두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때의 부작용도 발생하여, 츠루히메가 품는 미츠오에 대한 애정은 편집(偏執)의 영역에 달해 버렸다.

현대라면 독점욕에 의해 얀데레(ヤンデレ)라도 되겠지만, 그건 고상한 교육을 받은 양가의 자녀, 비정상적으로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고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미츠오 자체도 지나치게 무거운 부인의 사랑을 받아들일 만한 도량이 있었다. 같은 또래였다면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두 세대는 연상이기에 모든 것을 감싸안는 어른의 여유였다.

누구의 눈에도 금슬이 좋은 잉꼬 부부였지만, 현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이탈리아인 수준으로 노골적인) 미츠오의 애정표현은 전국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자극이 지나치게 강했다.


"미츠오 님은…… 그…… 정열적인 분이시니까요"


"아야 짱. 무리해서 칭찬하지 않아도 돼. 그건 누가 봐도 도가 지나치니까…… 알겠지?"


아야도 미츠오와 츠루히메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드물게 뺨을 붉히고 눈썹을 모았다.

이 시대에서의 무가의 여자라고 하면 후계자를 낳고, 남편이 발을 들이지 않는 집 안쪽의 모든 것을 지휘하며 집안을 지키는 것이 역할이다.

남자가 바깥쪽, 여자는 안쪽이라고 분업이 되어 있어, 그 관계성은 남녀라기보다 파트너에 가깝다.

물론,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오이치(お市),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오네(おね),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오마츠(お松)처럼 서로 사랑하여 부부가 된 예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후세에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라서 기록에 남아있다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 미츠오와 츠루히메였다. 축산시험장에서 일하는 미츠오에게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매일같이 찾아가는 츠루히메.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무 그늘에서 미츠오의 무릎 위에 앉은 츠루히메가 미츠오의 입에 손으로 요리를 넣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대였다고 해도 아무래도 속이 울렁거릴 만한 광경이기에,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말이 필요없으리라.


"딸바보(親馬鹿)가 아니라 아내바보(嫁馬鹿)다! 그건 말이지"


"아무래도 그건 말이 지나쳐요. 애처가라고 해야죠"


"그런 어설픈 게 아니다! 예전의 '형사 콜롬보'인가 하는 것도 꽤나 부인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미츠오의 그것은 도가 지나치다"


지친 듯 무거운 한숨을 쉬는 아시미츠를 보고, 그(미츠오)를 맥주 제조에 참가시킨 탓에 자랑질(惚気話)의 표적이 된 아시미츠가 조금 가엾게 생각되었다. 뭣보다 대신해줄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었지만.


"그렇게 굉장하신 분인가요? 그 미츠오 님이라는 분은"


유일하게 미츠오와 츠루히메의 관계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시로쿠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입에 올렸다.


"으ー음. 인품도 천하지 않고, 우수한 기술도 가지고 있고, 가정인(家庭人)으로서 생각했을 때는 이상적인 아버지겠지만……"


드물게 시즈코가 말을 흘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다음 말을 쥐어짜냈다.


"어머니로서 그걸 보여줘도 되는지 고민스럽지만, 뭐든지 경험이겠네. 미츠오 씨를 만날 거라면, 그 후에 아무 예정도 없는 날로 잡도록 해"


"알겠습니다. 언젠가 시기를 봐서 찾아가겠습니다, 시즈…… 어머니(母上)"


시로쿠는 시즈코 님이라고 말하려다 당황해서 말을 바꾸었다. 시로쿠가 시즈코를 어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은, 연말에 케이지(慶次)의 부추김을 받고 시즈코의 방을 찾아간 것이 계기였다.

시로쿠는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지금까지 자신들이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시즈코는 자신을 어머니라고 불러준다면 그게 최고의 답례가 된다고 말했다.

욕심을 말하면 우츠와처럼 자발적으로 어머니라고 불러줬으면 했으나, 성별이 다른 남자애였으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결과였다.

아이를 낳기는 커녕 연인조차 없는 자신이 모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도 있었으나, 하지 않고 망설이기보다 하고 고민하는 편이 낫다고 각오를 다졌다.


"미츠오 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 꼭 나한테 말을 할 것. 예상 이상으로 힘들테니까, 따뜻한 밥과 목욕을 준비해 줄게"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미소지었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며 그 후의 일에 마음을 쓰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가족끼리 오붓한 정월 기분은 끝을 고하고, 정월 이틀째는 이른 아침부터 도박장(鉄火場)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낮은 신분이라면 최저한의 인사 외에는 할 일도 없어서 몸을 푹 쉴 수 있지만, 오다 가문 유수의 중신인 시즈코에게 주어진 휴가는 하루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노부나가가 기후 성(岐阜城)에 있었기에 그다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새해 인사를 하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에는 노부나가가 아즈치(安土)에 있었기에, 최소한의 일행을 데리고 짐을 실어놓은 말에 올라타 꼬박 하루 이상을 들여 갈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경위도 있어, 시즈코 자신이 이틀째의 대응에 정신없었던 것도 가미되어, 예년에는 노부나가에게 이틀째에 인사하러 갔지만, 올해는 7일째에 가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의 결과에 대한 벌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실은 시즈코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한 배려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시즈코의 가신들도 이틀째가 되자 차례차례 돌아왔다. 그들은 시즈코에게 새해 인사를 마치고 나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게 된다.

오다 가문의 주요 중신들은 전날부터 아즈치에 들어가 있어, 이 날 시즈코가 있는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근린(近隣)의 유력자들 외에 공가(公家) 들의 사자들 등이 줄을 잇고 있었다.

작년보다 준비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뭔가 차질이 있어서는 시즈코의 명예에 흠이 가기 때문에, 시종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전쟁터나 마찬가지가 된 2일, 3일이 지나면 손님들은 일단락되기에, 이번에는 시즈코가 짐을 정리하여 아즈치로 출발하게 된다.

개중에서도 정월 3일에는 노부나가에 대한 인사를 마친 오다 가문의 관계자들이 직접 오거나 대리인을 보내오거나 하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수 없는 대응으로 기진맥진해진 시즈코는 짐을 꾸리면서 기둥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예전에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거점을 아즈치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오와리의 본저(本宅) 이외에 각 거점에 대해 별저(別宅)를 갖추기로 했다.

노부타다의 앞마당인 기후, 천황(帝)이 있는 수도이자 양아버지인 사키히사(前久)도 이용하는 쿄 저택(京屋敷), 그리고 주군인 노부나가의 거점인 아즈치에도 별저를 만들도록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의외의 인물이 활약하게 된다. 일찌감치 시즈코와 친분을 맺어 신용을 획득한 상인으로서, 큐지로(久次郎)는 오우미(近江)에서도 유명한 큰 가게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다양한 사업을 취급하는 시즈코에게 대응하기 위해 이렇다 할 종목(商材)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의 상품을 조달하는, 현대에서 말하는 종합상사(総合商社) 같은 업태를 취한 이례적인 상회, 이름(屋号)을 '타나카미야(田上屋)'라고 했다.

그는 이름의 유래가 된 타나카미 산(田上山)의 노송나무 목재(檜材)를 독점 취급하는 시즈코의 총대리점(総代理店)이 되어, 그의 관리(差配)에 의해 양질의 목재를 공급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시즈코에 관한 상품으로 일정 이상의 규모의 거래를 하려고 할 경우 타나카미야를 통하지 않으면 조달할 수 없다. 이러한 특권을 가졌으면서도 큐지로는 손을 늦추지 않았다.

파는 사람 좋고, 사는 사람 좋고, 세상에도 좋은 산포요시(三方よし, ※역주: Win-Win)의 가르침을 지키며, 자신을 정점으로 한 조직을 구축하여 재분배하는 것에 의해 지역 일대의 명사로 급부상, 주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런 남자가, 시즈코의 아즈치 진출의 소식을 듣고 그냥 놔둘 리가 없다. 즉시 나서서는 시즈코의 아즈치 저택의 모든 것을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타나카미 산의 노송나무 목재를 듬뿍 사용하고, 건축중에도 계속 깃발(のぼり旗)을 세워놓아, 타나카미야의 이름을 오다 가문을 편드는 세력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시키는 데 성공했다.

시즈코라는 주목의 대상에 대해 현대에서 말하는 스폰서가 되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장사, 그리고 그 융성함을 선전해보인 셈인데, 시즈코는 큐지로의 은혜갚음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의리가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시즈코는 무상으로 훌륭한 저택을 얻고, 큐지로는 오다 영토 각지의 유력자들에게 편의를 봐 주면 은혜를 알고 보답해주는 의리 깊고 신용할 수 있는 상인이라고 선전할 수 있었으며, 주변 지역의 사람들을 인부(人足)로 고용하여 고용을 창출했으니, 보기좋게 산포요시를 체현해 보인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는 물건(物件)인 아즈치의 저택에 시즈코 일행이 도착한 것은 5일 저녁 무렵이었다.


"자, 모레 낮부터 인사니까, 그 때까지는 푹 쉴까"


그렇게 중얼거린 시즈코였으나, 실제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사반각(四半刻, 30분) 뿐이었다.


"쉬시는 데 죄송합니다. 시즈코 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 분들이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무리지만, 이름을 알려주면 이쪽에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전해 줄래요?"


예상치 않았던 대규모 방문객에 고용인(使用人)들은 크게 당황하게 되었다. 최우선적으로는 모레 오후에 예정된 노부나가와의 알현이기에, 그 이외의 건에 대해서는 우선순위를 매겨 대응할 필요가 있다.

별저에서도 인사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고용인들도 최소한의 인원밖에 데려오지 않아서, 대부분은 현지에서 채용한 더부살이(住み込み) 고용인들 뿐이다.

실례가 되지 않게 대응할 수 있는 인원수를 상정하면서 방문자들의 일람을 보고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어!? 어째서 이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거야?"


방문자 명부의 중간쯤 되는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칸베 산시치로(神戸三七郎),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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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5 1575년 12월 중순



머뭇거리며 시즈코가 등 뒤를 돌아보자, 매력적(艶然)인 미소를 떠올린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그녀는 시즈코와 시선이 마주치자, 아주 노골적으로 얼굴을 숙이며 꽤나 슬픈 듯이 말을 이었다.


"일본에서 첫번째라는 영광은 주군께야말로 어울리지. 허나, 주군께서는 천하의 대업으로 오와리(尾張)를 비우고 계셔서 사정이 맞지 않으신다. 그래서 극명(克明)한 모습(絵姿)을 얻을 수 있다는 '카메라'로 나를 찍어서 바쁘신 주군께 하다못해 내 모습을 가지고 계셨으면 한다는, 모자란(いじましい) 여심을 시즈코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구나. 나는 시즈코를 내 자식 이상으로 귀여워했는데, 정말로 한탄스럽도다……"


노히메가 명백하게 거짓으로 울기 시작하자 등 뒤에 시립하고 있던 시녀도 "아아, 너무나 안타깝습니다"라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뜬금없이 시작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연극(茶番)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섞인 시선에 시즈코는 견디지 못하고 변명을 시작했다.


"결코 노히메 님을 가벼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코타로(虎太郎)도 희망자가 없다면 자신이 하겠다고 하였고, 미츠오 씨 일가는 순서에 구애받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호호호, 네가 준 거울(姿見)과 매일 마주하고 있는 내게 그것을 묻는 것이냐? 그만큼 또렷하게 비치는 거울을 쓰기 시작한 지 제법 되었다만, 내가 앓아누운 적은 한 번도 없느니라. 즉, 미신에 속한다는 것이지"


깔깔깔하고 재미있다는 듯 웃는 노히메를 보고 시즈코는 지긋한 시선을 보냈다.


"아까의 그 연극(小芝居)은 이제 된 건가요? 꽤나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이었습니다만……"


"됐다 됐어. 일본 최초를 기분좋게 양보해줄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나도 속이 깊음을 보여야 하겠지. 그럼 가자꾸나. 이미 준비는 마쳐두었으니, 가능하면 아름다운 모습을 주군께 전해드려야지"


아주 좋은 기분으로 미끄러지듯 걸어가는 노히메의 등을 바라보며 시즈코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미츠오도 시즈코와 눈이 마주치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순서를 양보해주기로 했다.

코타로도 사정을 이야기하자, 원래부터 희망자가 없다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선 것이며, 일본 최초를 빼앗겼다고는 해도 이방인(異人) 중 최초라면 된다고 이해해주었다.


이리하여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인물 촬영은, 멀리 설산(雪山)을 배경으로, 가까이는 분홍색(薄紅)으로 물든 동백꽃(山茶花)에 손을 대고 미소짓는 노히메의 모습이라는 구도가 선택되었다.

급거 촬영반(撮影班)으로 발탁된 미츠오가 즉석의 반사판(レフ板)을 들어올려 음영(陰影)에까지 신경쓴 사진이 촬영되어, 노부나가에게 보낼 수 있을 만한 사진으로 마무리되었다.

즉시 현상이 이루어져서, 아릅답게 프린트된 것에 화가(絵師)가 색을 입혀 의사적(疑似的)으로 컬러 사진으로 마무리한 것을 액자(額縁)에 넣어, 노히메의 선언대로 아즈치(安土)에 있는 노부나가에게 보내어지게 되었다.

이어서 일부러 일본 복장(和装)을 입은 코타로가 촬영되고, 마지막으로 화목한 모습의 미츠오 일가가 사진으로 찍혔다.


"그런데 노히메 님, 사진의 근원이 되는 건판(乾板)은 어찌하실 건가요? 이게 있으면 같은 사진을 몇 장이나 만들 수 있습니다만, 주상(上様) 이외의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다소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시즈코의 손으로 보관해다오. 내게는 주군께 보낸 것과 한 쌍이 되는 한 장만 있으면 충분하느니라. 시즈코니까 그것도 자료로 남기고 싶은 게 아니더냐?"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결코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엄중히 보관하겠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촬영에 사용된 건판은, 세계 최초의 인물 촬영에 사용된 기자재로서 후세에 그 존재만이 전해지게 된다.


오와리에서의 소동으로부터 반 개월 정도가 지나, 노부나가가 있는 아즈치에서는 사진에 발단을 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오노(お濃) 그년이 일본 최초를 빼앗아간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다. 허나, 나의 토라지로(虎次郎, 노부나가의 애묘)를 놔두고 도둑고양이(野良猫)가 먼저 사진에 찍히다니 참을 수 없다! 시즈코를 이리로 불러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토라지로가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야 한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주상의 사진이 나돌게 되면 옥체가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제가 케이세츠(蛍雪, 미츠히데(光秀)의 애묘)와 함께 주상 대신 그 역할을 맡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케치(明智)님 역시 탄바(丹波) 공격의 총대장(御大将). 만에 하나의 일이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여기는 소생이 레이게츠(令月, 호소카와(細川)의 애묘)와……"


"아니아니, 여러분께서는 전쟁터에 서시는 몸. 모습(似姿)이 남아서는 지장이 있겠지요. 폐하(帝)께서도 사진에는 적지 않은 흥미를 보이고 계시는 듯 하니, 우선은 제가 사쿠야(開耶, 사키히사(前久)의 애묘)와 찍도록 하지요"


아즈치에 있는 노부나가의 임시 궁궐(仮御殿)에서는, 평소답지 않은 모습의 노부나가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것을 진정시키듯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진언하고, 나아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앞다투어 나섰다.

결정타라고 하는 듯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자천(自薦)하여 나서, 상황은 혼돈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노부나가 이외에 누구나 명분(建前)을 내걸고는 있으나, 전원의 마음은 일치하고 있었다. 안전이 담보된다면 자신이야말로 최초가 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은 야심가들의 특징이다.


의논에 결판이 나지 않은 채, 어쨌든 시즈코와 사진기술자를 되불러들이는 것만이 결정되어, 오와리로 파발마가 달려갔다.

결사(決死)의 형상을 띤 사자로부터 서신을 받아든 시즈코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용건에 죽은 생선처럼 허무한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고양이 사진 같은 거 보내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결론으로서, 각자가 촬영된 건판을 각자 보관하고, 전사(転写)된 사진도 모두 각자가 관리하는 것으로 결판이 났다.

먼 길을 달려온 시즈코들은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촬영에 끌려다녔다.

노부나가는 '애묘와 함께 촬영된 일본 최초의 영주(国人)'가 되고, 사키히사는 '애묘와 함께 촬영된 일본 최초의 칸파쿠(関白)', 미츠히데는 '애묘와 함께 촬영된 일본 최초의 무장(武将)'이, 후지타카(藤孝)는 '애묘와 함께 촬영된 일본 최초의 문화인(文化人)'이 되었다.

모두 각자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간수하는 모습을 본 시즈코는, 남자는 몇 살이 되어도 1등이 좋은거구나라고 약간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 무렵, 사카이(堺)를 목전에 둔 가도 연변(街道筋)에서는 나가요시(長可)가 진을 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도 변함없는 행동은 계속되어, 대낮부터 술을 마신 끝에 칼을 뽑아들고 날뛰는 주취자(酔漢)를 반쯤 죽여놓고, 불운하게도 나가요시의 후각에 걸려든 산적(夜盗) 집단을 괴멸시키고, 불법 관문(関所)을 불태우면서 온 것이었다.

스스로의 존재를 일체 감추려 하지 않았기에, 그들 일행의 접근은 일찌감치 사카이의 상인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나가요시의 목표가 된 호상(豪商)은 이미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자, 너희들은 상인 같아 보이는 여행자들을 모조리 데려와라. 사카이에 출입하는 모든 상인들에게 내가 목표로 하는 인물과 목적을 알려줘라"


나가요시의 명령을 받은 부하들은 그의 지령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즉각 상인들만을 멈춰세우는 간이 관문이 생겨났다.

그 날이 가기 전에 노부나가에게 반항한 호상에게 항의(苦情)가 쇄도하여, 그는 나가요시의 행패를 막으려고 사자를 보냈다.

호상의 무법을 멈추라는 요청에 대해, 나가요시의 대답은 "주상의 명에 따라라. 따를 때까지는 여기에 머무르겠다"였다.

호상의 사자는 이리저리 교섭을 시도했으나, 나가요시로부터 일체의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터덜터덜 사카이로 돌아갔다.

이미 일차적 목표를 달성한 나가요시들은 상인들에 대한 검문을 중단하고 있었다.

사카이에 출입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자신들의 목적과 표적이 되는 인물을 주지시킬 수 있었기에, 이 이상은 필요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호상의 입장에서는 대답을 할 때 까지의 유예로밖에 생각되지 않았기에, 언제 재개되어서 다시 항의가 쇄도할 지 몰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인내심 대결을 하게 된 나가요시와 호상이었으나, 먼저 참지 못하게 된 것은 역시랄까 나가요시 쪽이었다.

과연 노부나가에게 반항할 수 있는 상인인 만큼, 바늘방석에 앉아서도 견디고 있었다. 나가요시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단념하고 다음 책략을 짜기 시작했다.

주위의 무관계한 사람들로부터 너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비난받으면 일찌감치 손을 들 줄 알았는데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사카이의 거리 곳곳에 잠입시킨 간자들로부터의 보고로는 다른 대상인들도 다음 번엔 자기 차례일 수 있다고 결탁하여 나가요시의 표적이 된 호상을 옹호하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 시작하여 하나로 단결되어 있다고는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쪽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남은 건 소극파의 등을 떠밀어주면 균열은 손쉽게 퍼져나갈 거라고 나가요시는 판단했다.


나가요시가 처음으로 사자에게 용건을 전한 지 8일이 경과했을 때, 나가요시의 진을 찾아온 일행이 나타났다.

그것은 몰라보게 변한 예의 그 호상이었다. 본인을 시작으로, 나가요시에게 사자로 왔던 지배인(番頭) 같은 사내도 머리카락을 자르고 민머리를 드러낸 승려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우리 진에 잘 오셨소. 그쪽에서 찾아와 주었다는 것은 좋은 대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우리들 무변자(武辺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보니 대단한 대접도 해드리지 못하나, 그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용건으로 찾아오신 것이오?"


그에 대한 나가요시의 모습은 명랑하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들은 호상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대머리(禿頭)를 땅바닥에 비비듯 하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이번에 불미한 일을 일으킨 점,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모두 주상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었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이후 가산(身代)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저는 이대로 은거하겠으니, 모리(森) 님께서 주상께 관대한 처사에 대해 말씀드려주십사 하여 찾아왔습니다"


마치 학질(瘧)에 걸린 듯 온몸을 벌벌 떨면서 호상은 필사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주인을 따르듯 다들 엎드려서 바닥을 기듯 나가요시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우선 고개를 드시오. 우리들도 악마(鬼)는 아니오. 토지의 거래가 없었던 것으로 되기만 하면 소생이 주상께 말씀을 드리지요. 하여, 대답은 어떻게 하시겠소?"


엎드려 조아린(土下座) 자시에서 나가요시를 올려다보는 호상의 안색은 죽은 사람처럼 흙빛으로 물들었다. 손주 정도는 될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는 이 사나이는, 호상들의 태도를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다만 '결과'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에 몰린 호상은, 떨리는 손으로 품 속에서 증서를 꺼내더니 나가요시에게 내밀었다. 그곳에는 노부나가가 문제시했던 토지의 거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거래 상대에게서 증서를 되찾아 왔습니다. 이 이상은 부디…… 부디 자비를……"


나가요시는 호상이 내민 증서를 받아들고 내용을 죽 읽어본 후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청, 확실히 들었소이다. 이것을 보시면 주상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오. 우리들도 빠르게 진을 철수하고 주상께 보고드리러 가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소. 아참, 가산을 물려준다고 하셨는데, 주상께서도 그것은 바라고 계시지 않소이다. 지금부터도 '변함없이' 상업(商い)에 매진하시오"


나가요시의 대답을 들은 호상은 벼락에 맞은 듯 떨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호상에 대해, 도망치는 것을 금지한다고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거래를 파기해 신용이 박살난 호상에게, 은퇴조차 허락되지 않고 장사를 계속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수치를 공언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상은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어차피 힘자랑이나 하는 난폭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가요시를 얕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리석음의 대가를, 굴욕적인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고작 일 각(刻)도 되지 않는 회견에서 눈에 띄게 야위어버린 주인을 부축하듯 하며 사카이로 돌아가는 일행을 나가요시는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모리 님. 저놈은 어째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입니까? 거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이상, 적지 않은 손해를 볼 텐데요"


"응? 어, 확실히 내가 직접 움직인 건 아니니까 모르겠느냐. 좋아,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한 가지 가르쳐주도록 하지!"


평소답지 않게 기분이 좋은 나가요시는, 희희낙낙하며 자신의 책략에 대해 부하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사정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소름이 끼칠 비정한 내용이었다. 나가요시는 사카이에 잠복하는 간자들에게 명하여 호상들의 회합을 염탐하게 했다.

거기서 노부나가에 대한 반항을 지지하고 있는 면면들을 조사하게 했다. 그리고 나가요시는 반항파의 상인들의 가족들을 주목하고, 간자들에게 명해 그들의 동향을 탐색하게 했다.

다음으로 나가요시는 반항파의 상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들이 노부나가에게 반항적인 것을 파악하고 있고, 또 그들의 가족의 동향까지 포착하고 있다는 냄새를 풍겼다.

회합의 내용이 모조리 새나갔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들에게까지 손이 뻗친다고 하면, 어차피 남의 일일 뿐이었던 호상을 계속 편들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서로 배신자를 찾으면서 의심암귀(疑心暗鬼)에 빠진 끝에, 빗살(櫛の歯)이 빠지듯이 한 명, 또 한 명 반항파가 순종파(恭順派)로 변해갔다.

나가요시의 수법은 몸통(本丸)인 호상 본인에게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주위의 아군을 몰래 쳐내어 호상을 벌거숭이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호상은 아군이 차례차례 협박에 굴하여 의견을 뒤집는 가운데 그 자신만이 무사히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뭐랄까…… 처절하군요. 저놈은 바늘 방석 따윈 애교로 생각될 정도로 산 지옥을 맛보았겠죠"


"뭐, 이런 심리전(駆け引き) 같은 건 번거로워서 취향이 아니지만,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는 거지. 민폐료(迷惑料) 명목으로 상당한 돈을 받았으니, 오와리로 돌아가면 화끈하게 놀자고!"


나가요시는 호상이 민폐료 명목으로 두고 간 나무 상자에 앉아서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음험한 수법과는 정반대로 활달한 모습인 나가요시를 보고, 부하는 자신들의 주인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다.


사카이에서의 교섭을 잘(上首尾) 마무리한 나가요시 일행은, 온 길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며 쿄에 도착했다.


"겨우 쿄에 도착했나. 하여간 악당이라는 건 어디서든 솟아나서 번거롭다니까"


나가요시는 자신에 대해서는 싹 무시한 불평을 하면서, 애창(愛槍)이 된 닝겐무코츠(人間無骨)를 휴지(懐紙)로 닦고 있었다.

나가요시가 버린 휴지에는 피와 기름이 잔뜩 묻어 있어, 누군가가 그 창에 당한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 각지에서 사람이 모여드니, 오는 길의 호위로 고용되었던 낭인(牢人, ※역주: 浪人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작가가 잘못 쓴건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쓰기도 하는 건지는 모르겠음)이 일거리가 없어서 바보같은 짓을 저지르는 거겠죠"


쿄는 미야코(都, ※역주: 수도(capital)라는 뜻)의 어원이 된 미야도코로(宮処, ※역주: 궁궐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 나타내듯 천황(帝)이 있는 곳으로, 일본의 수도로서 국내 뿐만이 아니라 해외의 선교사들에게도 널리 인식되어 있었다.

오우닌의 난(応仁の乱) 이후에는 심하게 피폐해졌으나, 노부나가의 상락(上洛) 이래로 활기를 되찾아, 지금은 누구나 쿄야말로 정치의 중심이라고 인지할 정도의 번화함을 보이고 있다.

치안이 유지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장사 기회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지방 사람들도 한밑천 벌어보려고 쿄를 향하게 되어, 재산을 상품으로 바꾸고 호위를 데리고 찾아온다.

여기까의 흐름은 문제없지만, 치안이 좋은 쿄에 도착해버리면 힘쓰는 것만이 특기인 호위는 필요없어진다.

자신을 어필하는 데 재주가 있는 붙임성있는 낭인은 쿄에서 지방으로 향하는 상인의 호위로서 고용되기도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일거리가 없어지고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써버린 그들은, 단속이 심한 쿄에서 나가 근처의 도시나 마을에서 문제(揉め事)를 일으키게 된다.


문제라고 해도 취해서 난동을 부리는 정도라면 귀여운 축이다. 하지만, 원래부터 소행이 나쁜 산적이나 다름없는 낭인들은 자기 힘을 믿고 강도로 돌변하거나, 도당을 결성하여 산적질(野盗)에 골몰하거나 했다.

기세가 붙은 그들은 각지에서 무법을 행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패지 않으셔도…… 목을 날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닙니까?"


"바보는 입으로 말해도 모르니까 말이지. 누가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게 벌해야 한다"


나가요시의 창에 걸린 것도 전술한 무법자들이었다. 나가요시가 직접 목을 베어 전시해놓은 산적 두목의 모습은, 나가요시의 싸움질을 익숙하게 보아 온 부하들조차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말에 올라탄 기세에 맡긴 채 두목의 어깨를 손에 든 창으로 관통하여 땅바닥에 박아넣더니, 말에서 뛰어내려 올라타 앉아서 얼굴을 몇 번이고 후려갈겼다.

나가요시의 토시(篭手)에는 강철(鋼)이 들어가 있어, 그런 걸로 얼굴을 구타당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광대뼈가 박살나고 입이나 눈, 코에서 피거품을 뿜으며 눈 뜨고 볼 수 없는 면상으로 변모한다.

두목이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자, 나가요시는 참상에 부들부들 떨고 있던 잔당들도 덮쳐갔다.

두목에게서 창을 뽑아들고 휘두르며 도망치려 우왕좌왕하는 잔당들의 다리를 걸어서 두들겨패서,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는 피바다로 변했다.

소문을 듣고 쿄에서 달려온 치안유지경라대(治安維持警ら隊)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원래보다 두 배는 부풀어올라 눈과 코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수급(生首) 하나와, 목부터 위쪽이 고기를 반죽해 만든 경단처럼 된 시체가 몇 구 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들은 대처하기가 곤란했다. 주위에는 전쟁터가 이럴까 싶을 정도로 무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라, 어느 쪽이 무법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대는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는 나가요시이다. 어설픈 소리를 해서 비위를 거슬렀다간 자신들도 비참한 시체가 될 지도 모른다.

치한유지의 직무를 행하도록 엄명을 받은 그들이었으나, 나가요시를 제대로 취조도 하지 않고 해산시키고 보니 현장의 수습에 착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나가요시에 대해, 쿄에 도착하면 경라대의 대기소(詰め所)에 출두하도록 전달한 것은 훌륭하다고 칭찬해야 할 것이다.


"뭐, 지난 일은 됐잖아. 그보다 모처럼의 쿄니까, 여관(旅籠)에 짐을 풀고 놀러가자고!"


"예, 예에……"


기염을 토하는 나가요시를 흘긋 보면서 부하 중 한 명이 괜찮으려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의 걱정은 현실의 것이 되었다.


"카츠조(勝蔵) 군, 잠깐 거기 정좌(正座)하시지"


그곳에는 사키히사에게 쿄로 초대받아, 고노에 저택에 체재하고 있을 때 나가요시의 소행에 대해 알게 된 시즈코의 모습이 있었다.




"어, 어우우…… 다, 다리가 저려서 움직이지 않아"


시즈코에게 붙잡혀서 시즈코의 쿄 저택(京屋敷)으로 연행된 나가요시는, 흙마루(土間)에 정좌(正座)당한 상태로 몇 시간 동안 실컷 쥐어짜였다.

시즈코의 귀에 나가요시의 소행이 들어간 것은 나가요시의 자업자득이었다.

얌전하게 경라대의 대기소에 출두했으면 일이 커지지 않았을 것을, 괜히 거들먹(横着)거린 탓에 곤란해진 경라대가 시즈코에게 상담하게 되어 현재에 이른 것이다.


"카츠조, 다리가 저린 것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묘약이 있다만?"


"아니 기다려! 확실히 목이 떨어지면 다리가 저린 것 따윈 신경쓰이지 않겠지만, 그래서는 본말전도(本末転倒)잖아!"


"시즈코 님의 당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장식같은 머리 따위 목 위에 놔두지 않아도 좋지 않겠느냐?"


진지한 표정으로 나가요시의 목에 창을 가져다댄 사이조(才蔵)에게 나가요시는 당황하여 말렸다. 애초에 농담을 하지 않는 사이조인 만큼, 정말로 죽는 게 아닐까 하고 나가요시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여튼! 시즈코 님께서 여기저기 머리를 숙이고 다니셔서 네놈이 벌인 일이 그 정도로 수습된 거다. 자비로우신 주인을 얻은 것에 감사해라"


"아, 알고 있어. 아니, 바다보다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반사적으로 항변하려고 했던 나가요시였으나, 몸 속부터 얼어붙는 듯한 사이조의 시선을 깨닫자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어설픈 말을 했다가는 정말로 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반성은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내라"


"……노력하겠어. 그런데 시즈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 나간거야?"


"몸단장을 하고 계신다. 지금부터 하세가와(長谷川) 뭐시기와 만나신다고 하더군"


"아, 그놈"


여기서 말하는 하세가와란 신슌(信春), 훗날 토우하쿠(等伯)라는 호를 쓰는 사내로, 시즈코가 소장한 외국(舶来)의 미술품을 접할 자격이 있을지 없을지의 시험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 그 결과를 보이고 싶다는 신청이 있어 회견을 가지게 되었다.

시즈코는 과제를 말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꽤나 빠른 보고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나, 신슌으로서는 해가 가기 전에 결과를 내야 한다고 조급해하고 있었다.

언제까지라고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마음만 조급해져서 앞이 막혀, 이 이상 시간을 들여봤자 지금의 작품보다 좋은 것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시즈코의 준비가 끝나자, 사이조는 호위대(馬廻衆)로서 곁에 섰다. 존재 자체가 예사(芸事) 쪽이 취향은 아니고, 거기에 방금 막 야단맞은 참인 나가요시는 이 기회에 도망치기로 했다.


"오늘은 저를 위해 시간을 내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즈코는 자신의 쿄 저택에 있는 응접실(客間)에 하세가와를 안내하게 하여 그와 마주보고 앉았다. 본래 용건이 문안을 드리는 것(ご機嫌伺い)이 아니었기에 시즈코 쪽에서 본론으로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그럼, 벌써 제가 낸 과제에 대한 성과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는데, 틀림없으신가요?"


"옛. 시즈코 님께서 소장하시는 명품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하나, 제 능력 전부를 쏟아부은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에 차지 않으실 것(お目汚し)은 알고 있으나, 부디 보아 주십시오"


신슌은 예를 올리더니 돌아서서 일어나 자신의 등 뒤에 놓아두었던 병풍으로 다가갔다. 신슌은 병풍의 뒤로 돌아들어가더니 가림막으로 씌워두었던 흰 천을 치웠다.

시즈코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화투(花札)에서 말하는 '소나무에 학(松に鶴, ※역주: 화투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다른 우리말 명칭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슴)'과 닮은 의장(意匠)으로 그려진 2선(扇)의 병풍이었다. 다만 소나무는 분재(盆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있어, 화투의 소나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시즈코가 잘 알고 있는 화투의 그림이 정착된 것은 에도(江戸) 시대 이후라고 하니, 우연히 닮아버린 것일 거라 생각되었다. 학과 소나무는 어느 쪽이던 번영을 나타내는 재수를 비는 것(縁起物)이니 그렇게 희한한 일은 아니다.


"흠"


하지만, 배색이 지나치게 야릇(突飛)했다. 병풍화에는 채색이 되고, 극채색(極彩色)을 보이는 작품도 있지만, 신슌의 그것은 원색이 성가실(煩い) 정도로 자기주장을 하고 있어 조화를 무너뜨려버리고 있었다.

병풍의 바탕(素地)이 염색하지 않은 색(生成り色)인데 반해, 학의 흰색, 소나무의 검은색, 태양의 빨간색 등 병풍에서 떠올라 보일 정도여서, 마치 모던 아트(Modern Art) 작품이 아닐까 착각되었다.


(어떻게 된 걸까……)


시즈코는 내심 신음하고 있었다. 너무나 기이함만을 추구하여, 신선하기는 하지만 신슌의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크게 어긋나버렸다.

자신이 꾸준히 쌓아올린 작풍(作風)을 버리고, 완전한 신천지를 개척한다는 것은 상당한 각오가 필요했을거라고 헤아렸으나, 이래서는 병풍화의 장점을 죽여버린다.

이렇게까지 크게 마음먹고 시도할 거라면, 아예 병풍화에서도 벗어나서 캔버스에라도 그렸다면 한 폭의 회화로서 성립했으리라.


(의욕이 묘한 방향으로 헛돈걸까?)


미간을 좁히며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중얼 뭔가 중얼거리는 시즈코의 모습을 본 신슌은 안절부절 못했다.

그 자신이 헤메이고 있다(迷走)는 자각이 있었으며, 앞이 막힌 끝에 괴로워하면서도 그려낸 작품이다. 아마도 시즈코가 기대하는 작품과는 거리가 먼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여자답지 않게 도검을 수집하고, 기묘하고 이상야릇(奇天烈)한 물건을 차례차례 세상에 내놓는 여걸(女傑)이라는 시즈코의 인물평에서 조금이라도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했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 버렸다고 신슌은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쁘지는 않지만, 이미 이래서는 병풍화의 영역을 넘어서는군요. 저는 당신이 지금까지 꾸준히 그려오셨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 보고 싶었습니다"


"옛…… 그러면……"


신슌은 자신의 작품이 시즈코의 눈에 차지 않았다는 것에 의기소침했다.


"저도 출제 방법이 나빴던 것이겠죠. 이것만을 가지고 하세가와 님의 실력을 가늠하지는 않겠습니다. 다시 과제를 내도록 하지요. 그에 앞서 어느 정도의 열람 허가를 내겠습니다. 그것들로부터 배우고 자극을 받은 후, 하세가와 님 다운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시즈코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신슌은 잠시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의 의미가 이해되자, 신슌은 그 자리에 몸을 날리듯 엎드려 그녀에게 절했다.


"이만한 추태(失態)를 보였음에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기쁨입니다! 재주 없는 몸입니다만, 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올리겠습니다"


시즈코는 스스로 어설픈(甘い) 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상하게 자극을 해버려서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기는 예술가의 미래를 닫아버리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했다.

신슌은 거듭 예를 올리고 응접실에서 물러나갔다. 그것을 전송한 시즈코는 한 번 탄식한 후, 자신이 마음먹고 욕심(色気)을 내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도 지나치게 긴장했던 모양이니, 조금 원조를 해둘까"


시즈코는 손뼉을 쳐서 소성(小姓)을 부르고는, 신슌과 그의 가족에게 작품의 대가로서 돈을 건네주도록 명했다.




시즈코가 쿄 저택에 체재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손님들이 연일 밀어닥치는 가운데, 신슌과의 회견을 마친 시즈코는 내방 신청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오랫동안 비우게 되어버렸던 오와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이고쿠(西国) 방면은 수상함이 감돌고 있었으나, 시즈코가 쿄에 있어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마도 새해를 앞두고 사태가 움직여서 히데요시(秀吉)도 철수하게 될 거라고 예측했다.

그렇게되면 하리마(播磨)나 셋츠(摂津)는 반 오다 세력에 포함되게 되고, 노부나가는 사이고쿠 정벌의 발판을 잃게 된다.


"으ー음, 하리마는 오다 가문의 세력 아래 두고 싶었네. 뭐라해도 세토(瀬戸) 내해(内海)의 풍부한 해산물은 매력적이고, 해운을 휘어잡을 더없는 기회였는데 말야"


비관적인 말과는 달리, 시즈코의 표정은 비교적 환했다. 이미 시대는 오다로 기울고 있어서, 다소 저울 기울기가 되돌아갔다고 해도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시바(羽柴) 님은 이번 전비가 부담되었던 걸까? 오네(おね) 님을 통해서 유리 공예에 이은 새로운 산물에 대한 상담이 들어와 있었으니…… 뭐, 하시바 님만 그런 것도 아니지만……"


히데요시라고 하면 눈치빠른 전국시대 무장의 필두이지만, 새롭게 산업을 일으키는 건 이야기가 다른 것인지, 부인의 연줄(奥向きの伝手)까지 동원한다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최근 연이어 전쟁을 벌였던 오다 가문의 중진들은 다들 새롭게 얻은 영지의 운영에 고심하고 있었다.

카가(加賀)를 지배하에 둔 시바타(柴田)에게는, 현대에서도 유명한 야마시로(山代) 온천(温泉)에 야마나카(山中) 온천, 카타야마즈(片山津) 온천의 존재를 슬쩍 알려주었다.

그중에서도 야마시로 온천과 야마나카 온천은 천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탕(古湯)이며, 비교적 역사가 짧은 카타야마즈 온천조차도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다.

기존 산업으로서 시즈코도 원했던 도석(陶石)이 산출되는 것 외에, 칠기(漆器)나 금박(金箔), 수많은 공예품 등 잠재적인 저력(地力)은 높다. 그 외에도 동해(日本海) 측 영지 특유의 해산물이 풍부하여, 시즈코도 어업 관련 기술자들을 파견하여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 탄바(丹波) 평정의 임무를 받은 아케치 미츠히데로부터도 산업 진흥에 관한 상담이 들어와 있었다.

탄바라고 하면 탄바 밤(栗)을 시작으로 하는 임산물(山の幸)이 풍부한 땅으로, 탄바 검은콩(黒豆)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검은 콩(黒大豆)이나 다이나곤 팥(大納言小豆) 등 유망한 장삿거리(商材)가 늘어서 있었다.

미츠히데에게는 토지에 뿌리내린 농산물이야말로 보물이며, 그것들을 특산품으로서 선전하기만 해도 충분히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상담료 명목으로 상당한 사례를 받았는데, 나한테 돈이 남아돌아도 소용없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하시바 님 쪽으로 돌릴 만한 구실이 뭔가 없을까?"


새로운 영지로 가서 착착 기반 다지기를 시작한 시바타나, 착실하게 지배 지역을 넓히고 있는 미츠히데와는 달리, 히데요시의 거점인 이마하마(今浜)는 영 신통치가 않다.


"유리 공예는 고급품이라서 즉시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어렵기는 해도 사카이에서 쿄, 에치젠(越前), 에치고(越後)로 이어지는 도로의 통과점에 위치하니까 언젠가 자금은 모여들텐데 말야"


이미 패색이 농후하고, 소비한 전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영지조차 잃게 되면, 히데요시의 오다 가문 내에서의 영향력은 크게 추락해 버릴 것이다.


"아ー, 우울해지네. 저쪽을 신경쓰면 이쪽이 잘 되지 않고, 지금부터 점점 정치가 얽힌 이야기가 들어올 것 같아. 내 몸 하나만 걱정하고 있을 수 있었던 때 쪽이 편했던 걸까?"


시즈코는 역사의 필연으로서, 이제부터 전쟁은 종식(終息)으로 향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타네가시마(種子島)의 등장으로 가속된 변혁은, 다름아닌 시즈코들이 만들어낸 신식총(新式銃)이나 대포의 존재에 의해 가속되고 있었다.

큰 화력을 뿜어내는 대포 앞에서는 견고한 성이라고 해도 그다지 우위를 차지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금후의 오다 가문은 국지적인 패배는 하더라도, 대국적으로는 천하통일을 향해 똑바로 전진하게 되리라.


(태평한 세상이 되면 무(武) 대신 돈이 중요해지게 되지. 돈을 낳는 시스템에는 이권이 개입되고, 권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정치가 얽혀들어)


전란이 종식으로 향하는 가운데, 시대의 패자가 될 오다 가문 내에서는 권력투쟁의 불씨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사람은 서로 다툴 운명인가 하고 탄식하고 싶어졌으나, 시즈코가 바라지 않더라도 그녀의 의사에 관계없이 말려들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출세를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시즈코는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이며, 돈 되는 것들(金のなる木)은 시즈코가 있는 곳에 집중되어 있는 이상, 누구나 시즈코를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예 속세를 버리고 출가해서, 절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하는 편이 좋은 거 아닐까?)


그런 약한 소리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이미 그게 허용될 입장도 아니다.

고민해봤자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마법 같은 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시즈코는 오와리 쪽 방향에 줄지어 서서 자기주장을 하는 산들을 올려다보며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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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4 1575년 11월 중순



사상 최초가 되는 사진 촬영은 소모품이 고갈되면서 끝을 고했다.

노부나가나 조정의 압력이 있었다고는 해도,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사진 촬영에 협조해 준 호우류우지(法隆寺)의 승려들에게, 시즈코는 정중하게 예를 표함과 함께 기증한 사진을 넣기 위한 액자(額縁)를 선물했다.

한 마디로 액자라고 해도, 최첨단의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간 특제품이며, 장식이 없이 수수(無地)하면서도 묵직한 중후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해외에서 들여온(舶来もの) 흑단(黒檀) 무구재(無垢材)를 연마한 프레임에 얇고 투명도가 극히 높은 유리를 끼운, 세계가 넓다고 해도 시즈코밖에 준비할 수 없는 명품(逸品)이었다.

사진은 외기(外気)에 노출되면 변색되거나 퇴색된다는 것을 말하고 액자에 넣어 보존할 것을 진언한 후 철수 준비에 착수하게 되었다.


기술자들이 기재(機材)의 해체와 포장을 시작하고, 호우류우지 바깥에 진을 쳤던 병사들에게도 철수 준비를 하도록 통고한 후에 할 일이 없어진 시즈코는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사진기사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코타로(虎太郎)가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말을 걸었다.


"태엽식의 셔터가 고장난 원인은 주인님이 명하신 장치 자체의 소형화에 따른 폐해라고 합니다. 어째서, 소형화를 고집하신 겁니까?"


코타로의 질문을 받은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현재 상황에 만족해서 정체되어 버리면 의미가 없어요. 확실히 큰 부품이라면 큰 오차를 허용할 수 있으니 튼튼한 장치를 만들 수 있어요. 하지만, 연료가 불필요한 소형 동력장치인 태엽은, 카메라 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용도로 수요가 생길 거에요. 대량으로 만들게 되면 커다란 태엽은 그만큼 여분의 재료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 차이는 제조하면 할 수록 가속도적으로 늘어가게 되죠. 그렇죠? 조금이라도 이른 시기에 소형화하는 쪽이 좋다는 게 이해되죠?"


"분명히 회중시계(懐中時計)라고 하셨던가요? 주인님이 열중하고 계시는 기계식 시계는 문자 그대로 품(懐) 속에 들어가서 개개인이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드신다고 하셨죠"


"이 태엽식 셔터도 일정한 시간을 계측하고 있는 거에요. 작동시키면 반드시 같은 초수(秒数)로 셔터를 닫지요. 이번에는 태엽을 구성하고 있는 얇은 강철판이 감아올리는 힘에 버티지 못하고 파손되어 버렸지만, 재료를 바꾸거나 두께를 바꾸거나 해서 재도전할 생각이에요"


"여전히 시행착오를 계속하실 거군요?"


"오늘의 실패를 기록하고, 어째서 실패였는지를 분석해서, 내일에야말로 성공시키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 거에요. 나는 그것을 '과학(科学)'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지식이나 경험을 정리하여 미래로 계승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세계의 진리를 밝혀내어 지식으로 정리하는 연구는 결코 멈출 수 없어요. 뭐, 돈이 되지 않는 연구도 많으니, 돈이 될 만한 연구를 전면으로 내세워야 하지만요"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무리했다. 시즈코는 그녀의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영재교육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농업을 통해 연구 현장에 관여했었다.

농업의 연구라고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결과가 나오는 것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즈코는 할아버지가 매일 달라붙어 있는 기초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할아버지돠 함께 농작업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즈코의 안에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하여, 시즈코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그 중 하나가 현실에서 결실을 보았다.

당시 일본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던 코시히카리(コシヒカリ) 계열의 쌀을 개량하여, 수확량은 유지하면서 키를 3할 정도 낮춘 품종으로서 정착시켰다.

시즈코의 할아버지가 탄생시킨 품종은, 키가 작기 때문에 잘 쓰러지지 않고 병충해에도 강한데다, 재배에도 손이 가지 않는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의해 시즈코의 할아버지는 그 해의 자수포장(紫綬褒章, ※역주: (학문·예술 등에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정부가 주는) 자줏빛 리본이 달린 기장)을 수상하게 된다 (후에 황수포장(黄綬褒章)도 수상).

이러한 경위도 있어, 그녀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직접 보았기에, 기술자들에게도 연구를 권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연구하는 데 있어 큰 문제가 드러났다.

그것은 학문으로서 과학이 정착되지 않은 전국시대에는, 연구 성과를 어떻게 전하는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없었던 것이다.

현대에서 시즈코 자신은 연구 성과의 하나인 논문을 볼 기회는 있었으나, 자신이 논문을 쓰는 상황에 처한 적은 없었기에 연구 논문의 요제(要諦)를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현대에서 가져온 휴대전화에 보존되어 있던 데이터를 배터리가 가동하는 동안 종이에 옮겨썼던 특허 신청에 관한 자료를 찾아내어 그것을 베이스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이론을 전개하기 위한 포맷으로서, 사상(事象)을 관찰하고, 거기서 추론을 끌어내어,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바탕으로 실험을 하여, 실험 결과에 대한 고찰을 첨부한다는 일련의 개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연구 성과가 결실을 맺었을 때는, 연구를 하게 된 전제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거명하며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정리하여, 최종적으로 결과로서 보고한다는 형식을 기초로 정했다.


시즈코로서는 나름 자신을 가지고 도입한 제도였으나, 도입 당초에는 잘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틀(枠組み)을 이해하고, 포맷을 이용하여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에 상당하는 학식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즈코는 기술자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솔선하여 자료를 작성하고, 의미를 들려주고, 실제로 실험을 하게 하여 자료를 만들게 하고 그것을 평가했다.

이리하여 서서히 연구 수법은 모두에게 침투해 갔으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떠올랐다. 그것은 실패의 은폐였다.

실패가 즉시 목숨에 직결되는 전국시대 특유의 사정도 있어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다.

실패라고 해도 어째서 실패했는지 원인을 찾고, 그것을 성과로 삼는 것을 장려하고 있었으나 실제는 잘 되지 않았다.

연구자는 자신이 세운 가설에 집착하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결과만을 보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이기에 즉각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후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의식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흠, 과학입니까. 그것은 주인님의 도서실에서 본, 당(唐)의 '과거지학(科挙之学)'과는 다른 것 같군요"


중국에서 과학이라고 하면 과거지학의 약어이며, 12세기 무렵부터 사용된 듯 하다.

그에 반해 일본은 막부(幕) 말기에서 메이지(明治)에 걸쳐 과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게 되었다.

뭣보다, 당시에 그 단어를 사용했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나 이노우에 코와시(井上毅) 같은 인물들은, 체계화되고 정리된(분과(分科)된) 학문의 집대성으로서 과학이라고 불렀다.


"으ー음, 발단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과거(科挙)는 광범위한 지식을 묻는 시험이지만, 과학은 체계별로 분류된 학문이라는 느낌일까요?"


"흠…… 주인님의 나이에서 이만큼 함축적인 단어를 만들어 내려면 얼마만한 경험을 쌓아오셨는지 흥미가 끊이지 않는군요"


"아하하ー……"


시즈코로서는 선인(先人)이 고심 끝에 만들어낸 성과를 표절하는 듯 하여 켕겼지만, 솔직하게 이유를 들려줄 수도 없으니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코타로는 시즈코의 모습을 보고, 이 건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았으면 하는 듯 하다고 헤아리고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주인님, 이 정도로 정밀한 기록이 가능한 사진인데, 인물은 촬영하지 않는 겁니까?"


"아ー, 응. 그건 생각했는데 말이죠. 일본에는 사람 모습을 한 것에는 혼이 깃든다는 생각이 있어서, 이만큼 똑같이 모습을 찍어내면 혼이 그쪽으로 옮겨가 버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 말씀은, 주인님은 다른 견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당연하죠. 그 논리로 따지면, 고요한 수면에 모습이 비치면 물 속으로 혼이 빠져나가나요? 그렇지는 않잖아요? 오래 남으니까 서서히 혼이 빠져나가 일찍 죽는다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매일 물가에서 일해서 수경(水鏡)에 모습이 비칠 기회가 많은 수부(水夫)는 육지 사람들보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찍 죽지 않는 게 이상할텐데 말이에요"


"과연, 탁월하신 식견(卓見)이시군요. 그렇다면 실제 예를 만들어버리면 됩니다. 만약 희망자가 없다고 하면 이 코타로가 맡아 보이죠"


코타로는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를 보고 웃었다.

시즈코의 눈에 비친 코타로는 실로 흥미깊은 듯한 표정으로, 제물(人柱)이 되어주겠다 같은 비장한 결의는 보이지 않았다.

본인이 바란다면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코타로에게 대답했다.


"그러네요, 오와리(尾張)까지 돌아가서 카메라 수리가 끝나면 촬영할까요"


"오오! 들어주시는 겁니까. 크크크, 이걸로 최초로 사진에 찍힌 인물로서 후세에 전해지겠지요. 저를 파문한 교회 놈들은 이를 갈며 분해하겠군요!"


평소에는 파문 같은 건 신경쓰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데 빈틈없이 원한을 가지고 있던 코타로와 그 보복 방법에 시즈코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는 얽매이지 않는 거 아니었어요? 뭐, 상관없지만"


흥분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코타로를 바라보면서 시즈코는 철수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 호우류우지의 승려들에게 떠나겠다는 뜻을 전달한 후, 중계지가 된 쿄(京)를 향해 출발했다.


"쿄에 도착하면 아이들과 합류해야지. 자자,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쿄에 남겨놓고 온 시로쿠(四六)나 우츠와(器)가 떨어져 있던 동안 어떤 생활을 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쿄까지 한나절 정도 남은 곳에서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로부터 파발마가 도착했다.

듣자 하니, 시즈코가 아니라 나가요시(長可)를 지명한 출두 의뢰였다. 나가요시는 자기 군의 지휘를 부관에게 맡기고 사자와 함께 선행하여 츠네오키의 쿄 저택으로 가게 되었다.


나가요시가 저택에 도착하자, 츠네오키가 직접 마중하며 안채(奥座敷)로 안내되었다. 사람들을 물린 후, 츠네오키가 말한 내용은 단순한 명령이었다.

사카이(堺)의 어떤 호상(豪商)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온 토지를 타인에게 양도해버렸기에, 그에 대해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였던 아스카(飛鳥) 시대라면 몰라도, 토지의 개인 소유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는 전국시대에서 토지의 매매에 노부나가가 개입하는 것은 묘하다고 생각하여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양도 대상자가 외국인이었다.


"과연, 일벌백계(一罰百戒)로군. 매국노의 말로를 세상에 보이면 되는 것인가"


그걸 들은 나가요시는 즉시 노부나가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일본의 백성에게 토지를 양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게 외국인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일본 내에 타국의 영토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천황(天皇)을 받들며 천하통일을 이우려록 하는 노부나가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행위였다.

물론, 노부나가로서도 정보를 탐지한 후 여러 번 거래를 중지하도록 서신이나 사자를 보냈다.

이 호상이 무엇을 꾀하고(企図)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노부나가의 요구를 거절했다.

마침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실패가 전해진 것과 같은 시기였기에, 노부나가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보고를 받은 노부나가는, 그 이상의 교섭을 중단하고 무력으로 제재를 가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그 실행자로서 나가요시가 선택된 셈이다.


"주상(上様)의 명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사카이로 가려 해도 여행 준비도 할 수 없고, 곧 해도 질 것입니다. 오늘 밤은 쿄에 머물며 우리 주군에게도 상황을 보고한 후, 내일 아침 쿄를 출발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네. 하지만, 사카이가 솔직하게 모리 님을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주상께서는 '허튼 수작을 부리려는 놈들이 벌벌 떨도록 해라'고 하셨네"


"과연, 저(拙者)에게 맞는 명령, 잘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의 말은, 나가요시에게 사카이를 불태워도 좋다고 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전권 위임장이나 마찬가지의 권한을 얻은 나가요시의 머릿속에서는 상대를 어떻게 요리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무변자(武辺者)의 인상이 강한 나가요시였으나, 공성에서의 허래스먼트(Harassment) 이래, 이런저런 책략을 구사하는 것도 능숙해져 있었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며 애걸하는 것을 생각하니 지금부터 기분이 고양되는 나가요시였다.

제아무리 나가요시라도 같은 진영의 연장자인 츠네오키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예의바르게 물러나온 후 시즈코의 쿄 저택으로 향했다.


"늦었네. 그래서, 이케다 님은 뭐라셔?"


"주상으로부터의 밀명으로, 사카이의 말썽꾸러기를 처리하게 되었어"


"사카이를 잿더미(焼け野原)로 만들지는 말아줘?"


나가요시를 지명한 말살 지령이니만큼, 사카이를 불태울거라고 생각된 나가요시는 분개했으나, 동석하고 있는 사이조(才蔵)도 시즈코와 같은 의견이었는지 약간 어이없는 모습으로 나가요시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아니, 아무리 나라도 이유도 없이 사카이 정도의 도시를 불태울 리가 없어! 그렇게 신용이 없는거냐, 나는"


"자기가 말하고 있잖아, 이유가 있다면 불태울 수도 있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네가 저질러 온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과장스러운 것도 아니야"


시즈코의 냉정한 지적에 나가요시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세상에서는 '오다에게 적대하면 붉은 악마(赤鬼)가 나타난다'라고 하고 있을 정도로 나가요시의 일화에는 살벌한 것이 많다.

붉은 악마란 적의 피를 뒤집어써 새빨갛게 물든 나가요시를 가리키는 은어(隠語)로, 오다 가문에 적대하면 나가요시가 나타나 지옥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되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빌려준 닝겐무코츠(人間無骨, 십자창(十文字槍))이 완전히 네 상징으로서 정착되어 버렸잖아"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역시 이즈미노카미(和泉守)의 작품이야. 손에 딱 붙더라고"


나가요시의 혹사를 견뎌낸 바디시(bardiche)였으나, 아무래도 무리가 쌓였는지 한 번 해체해서 다시 벼려낼(打ち直す) 필요가 생겼다.

그때까지 맨손으로 지내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서 시즈코가 나가요시에게 빌려준 것이 앞서 말한 닝겐무코츠였다.

그 때까지는 바디시나 도깨비방망이(金棒) 같은 중량으로 깨부수는 무기를 사용해 온 나가요시였으나, 역사적 사실에서도 나가요시가 애용했다는 닝겐무코츠의, 중량과 예리함을 겸비한 느낌은 그를 매료시켰다.


"불법으로 설치된 관문(関所), 대체 몇 개나 박살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20개부터는 세지 않았어!"


당시에는 영주(国主)가 설치하는 공적인 관문 외에, 대관(代官)이나 현지 유력자가 사적으로 설치한 불법 관문이 곳곳에 존재했다.

존재 그 자체가 불법인 것이기에 어떻게 처리하던 문제가 없는 것을 악용하여 나가요시는 그런 관문을 즐겨 습격했다.

그 밖에도 취객(酔漢)과 요란하게 싸움을 벌이거나, 사찰(寺)을 불태우거나, 민가로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애초에 주정뱅이는 무전취식을 해놓고 점주를 위협하여 금품을 강탈하려고 한 놈이었으며, 불태워진 사찰도 금지된 고리대금업에 손을 댄 땡중(生臭坊主)을 처리한 결과였다.

민가에 쳐들어간 사건은, 나가요시의 부하가 집주인에게 부인을 빼앗긴데다 도적(賊)으로 꾸며져 입막음을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사정을 모르면 무법자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 편(身内)에 대한 속깊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가요시를 좋아하는(慕う)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도중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말야, 어째서 타인의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는 거냐고……"


"시즈코도 항상 말했잖아. 재화는 써야지 의미가 있다. 죽은 자는 재산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면 불타버리지. 그렇다면 가지고 와서 내가 쓰는 편이 좋은 게 도리에 맞잖아?"


"아아, 그래……"


어디까지나 세상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나가요시에게 시즈코는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가볍게 집을 불태우지 말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이만큼 방약무인하게 행동하는데도 처벌이 없는 것은, 나가요시가 노부나가의 총애를 받고 있기 떄문이었다.

아무리 시즈코가 꾸짖어도, 노부나가가 용서해버리면 시즈코로서도 추궁할 수 없다.

노부나가로서는 자신이 믿는 도리를 따르며 우직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나가요시를 좋게 생각하고 있어, 나가요시가 저지르는 짓을 짓궂은 장난(やんちゃ) 정도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동료인 케이지(慶次)는 나가요시를 난폭한 구석(暴れ癖)이 있는 녀석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분별하고 있는 한은 참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좋아, 결정했어. 이번의 주상의 임무는, 무력을 쓰지 않고 상대를 징계하고 와"


"야야, 주상께서는 처단(始末)하라고 하셨다고. 무사가 무력을 쓰지 않고 어떻게 처단하라는 거야"


"변명은 필요없어.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전에 머리를 쓰라고. 만약 금지령을 깨고 사카이를 공격했다간 군을 보내겠어!"


시즈코의 말에 제아무리 나가요시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시즈코가 군을 보내게 되면, 개인의 무용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는 싸움이 된다.

나가요시로서도 자신을 높게 평가하여, 재능을 발전시키고 키워준 시즈코를 적대하고 싶을 리가 없다.

게다가, 개인의 무용 승부가 된다고 해도, 나가요시는 자신이 사이조에게 이길 수 있는 비전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격 능력만을 따진다면 자신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자신도 있다.

그러나, 사이조는 무인으로서 원숙기(円熟期)에 접어들고 있어, 단순한 힘자랑으로는 당해낼 수 없는 수련을 우직하게 쌓고 있었다.

그의 방어를 돌파하여 칼날을 찔러넣는 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밖에 할 수 없다.


"알았어알았어. 하지만, 힘으로 안 되면 교섭인가……"


"어머? 나는 한 번도 '교섭으로 해결해라'고 하지 않았거든?"


"어? 아! 그런 얘긴가. 전부터 생각했지만, 얼핏 얌전해 보이는 시즈코 쪽이 더 무섭단 말이지"


간신히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고 있는지 나가요시는 헤아렸다. 시즈코가 금지한 것은 사카이를 공격하지 말아라, 사카이를 불태우지 말아라이며, 드러나지만 않으면 무력을 써도 문제없는 것이다.

애초에 노부나가가 교섭을 중단한 상황인데, 자신이 대리로 교섭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눈에 보이는 무력 이외의 것을 사용한다면 뭘 해도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


"맡겨둬! 열흘도 지나기 전에 그놈을 주상께 사죄하러 가게 만들겠어!"


나가요시가 직접 무력을 쓰고 있는 상황은 차라리 나은 편으로, 계략(搦め手)을 쓰게 되는 쪽이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을 사카이슈(堺衆)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의 일이었다.




다음날, 나가요시는 약간의 부하들(手勢)만을 이끌고 사카이로 떠났고, 시즈코는 쿄 저택에 남겨둔 예비 촬영기자재를 반출하여 전용의 보관 장소 이외에서의 보관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시로쿠나 우츠와는 사키히사(前久)가 우차(牛車)에 태워서 데리고 카미교(上京)를 돌아다니고 있었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동행하고 있는 요시나리(可成)로부터 특별히 보고가 없는 것을 보니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 나가요시는 사카이로, 시즈코는 예비의 유리 건판과 계란지를 사용하여 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에 착수했다.


"오, 저건 어떨까?"


시즈코가 보존상황의 확인용으로 선택한 피사체는, 볕이 잘 드는 장소에서 뒤엉켜 자고 있는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였다.

현재의 카메라의 성능으로는 움직이는 것을 사진에 담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딱 맞춘 것처럼 햇볓을 쬐며 자고 있는 새끼 고양이라면 촬영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분내키는 대로 선택한 이 한 장의 사진이 후에 소동을 일으키게 되지만, 당시의 시즈코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습기를 피해 어둡고 서늘하면서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 보관했기 떄문인지, 사진은 문제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내친 김이라는 듯 시즈코는 기술자들에게 명하여 추가로 쿄의 거리 모습을 촬영하게 했다. 마침 딱 좋게 날이 흐려져 햇빛이 약해진 것도 있어, 촬영이 완료될 때까지 30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조건 아래에서 촬영하면, 움직이고 있는 인물은 찍히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거리 모습만이 감광되어 상을 형성하게 된다.

현실과는 다른 무인(無人)의 거리 모습을 보고, 사진의 원리까지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 기술자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시즈코는 새끼 고양이의 사진과 함께 늘어놓고 찍히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언젠가 쿄의 거리 모습은 오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겠지요. 그렇기에 '지금'을 사진에 담는 것이에요. 우리들이 보고 있는 쿄의 '지금'을, 삶의 모습을 미래에 전하기 위해서, 말이죠"


몇 장의 풍경사진을 찍고 문제없이 보관된 것이 확인되자, 시즈코는 잘 찍힌 2, 3장의 사진을 서신과 함께 노부나가에게 보내도록 수배했다.


"하ー, 끝났다 끝났어"


쿄 저택에 남겨놓은 예비의 기자재와 교환하는 방법으로 응급 수리를 마친 카메라의 사용감을 확인한 시즈코는 다시 포장할 것을 명하여 오와리로 가지고 돌아갈 짐에 합류시켰다.

용무가 끝나니 한가해져서, 저택의 자기 방에서 사키히사와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멍하니 기다리게 되었다.


"결국, 시로쿠와 우츠와는 고노에 님께 계속 맡겨뒀었네"


그대의 아이라면 내게는 손주나 마찬가지, 때로는 할아버지에게 맡기는 것도 좋다는 말을 들은 시즈코는 솔직하게 호의를 받아들였다.

영특한 시로쿠와, 오와리에서 살게 된 이후 감정을 드러내 보이게 된 우츠와가 사키히사의 마음에 들었는지, 솔선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이래저래 돌봐주는 모습이 요시나리의 보고에 올라왔었다.

24시간 부모와 달라붙어 있어도 숨이 막히려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떠들썩하면서도 발랄한 두 명이 없는 것에 약간 쓸쓸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즈코 님, 사이조 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알겠어요. 직접 이쪽으로 안내해줘요"


"옛"


오랜만의 느긋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소성(小姓)이 사이조의 귀환을 알려왔다.

사이조에게는 쿄 주변의 순찰이라고 칭하여 혼간지(本願寺) 세력의 동태를 살피게 했었다. 이번에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를 쓰지 않고 사이조를 보낸 것에는 노림수가 있었다.

시즈코의 심복(腹心)으로서 이름이 알려진 사이조가 드러내놓고 움직이는 것으로 혼간지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는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노부나가의 방침은 표면상 혼간지와의 교섭을 모색하고 있는 듯 행동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혼간지 측이 인내심이 바닥나서 오다의 세력으로 침공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세한 방침은 듣지 못했으나, 상황을 보고 판단해보니, 혼간지 본체보다도 모우리(毛利)와 혼간지를 잇는 세토(瀬戸) 내해(内海)의 보급선을 끊으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히데요시(秀吉)가 츄고쿠(中国) 지방에 파견되고, 탄바(丹波)에는 미츠히데(光秀)를 보냈다. 육로(陸路)를 제압당하면 해로(海路)를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다짜고짜 미안하지만, 보고를 부탁할 수 있겠어요?"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혼간지는 거북이가 되어 있습니다"


"아직 움직이지 않나요"


혼간지는 교주(教主)인 켄뇨(顕如)가 태도를 보류하고 있었기에, 쿄뇨(教如)가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혼간지 전체로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까지 궁지에 몰렸음에도 여전히 켄뇨가 지침(指針)을 내보이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았으나, 그가 심복으로서 믿고 있던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소식이 끊긴 이후로 확연히 말수가 줄어들었다는 소문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모우리는, 하시바(羽柴) 님과 아라키(荒木) 님이 코우즈키 성(上月城)의 아마고(尼子) 님을 원호하러 갔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습니다"


츄고쿠 지방에서는, 모우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대군을 이끌고 코우즈키 성을 포위하고 있어, 성주인 아마고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은 노부나가가 히데요시와 아라키 연합군을 파견한 모양새다.

현재 상황에서는 소규모 충돌이 때때로 발생하는 정도로, 양군이 서로 견제하고 있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현지의 정보가 적고 정확성이 낮기는 하나, 미키 성(三木城)의 벳쇼 나가하루(別所長治)가 적 쪽으로 붙을 가능성이 있기에 대담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주상께는 모우리 공격의 선봉을 맡겠다고 했는데, 성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은 배신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벳쇼의 부인(奥方)의 친정인 탄바 국의 하타노(波多野)도 호응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하시바 님이라도 협공을 당하면 당해낼 수 없겠지요"


"그렇게 되면 코우즈키 성을 버리고 아마고와 함께 미키 성을 공격할 수밖에 없나요. 모우리 공격의 교두보를 잃는 것은 뼈아프지만, 등 뒤를 찔리는 상황은——"


말하던 도중에 시즈코가 부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사이조가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들어 타인의 접근을 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즈코 님. 사나다 님께서 주상으로부터 서신을 맡아오셨습니다. 어찌할까요?"


"알겠어요. 보고도 있을테니, 이쪽으로 안내해 주세요"


"옛"


시즈코가 대답을 하자 소성이 발길을 돌렸다. 소성의 발소리가 멀어져가는 것을 들으며, 시즈코는 어느 틈에 멈춰 있던 호흡을 재개했다.


"방심하지 못하는 건 피곤하네요"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시즈코 님께서는 오다 가문에 있어서도 급소가 되셨습니다. 하물며 이곳은 오와리와는 달리 충분한 경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리게 됩니다만, 당분간 신변에 유의해 주십시오"


"알고 있어요. 경호하는 모두에 비하면 내 마음 고생 같은 건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오와리로 돌아가고 싶네요"


자신도 모르게 시즈코의 입에서 불평이 흘러나왔을 때, 다시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성에게 안내된 마사유키가 도착하여 실내로 들어와 인사를 대략 마친 후 마사유키가 말을 꺼냈다.


"호리(堀) 님으로부터 하시바 님의 상황을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곤란에 처해 계신 모양입니다. 아라키 님도 마찬가지로, 등 뒤를 신경쓰느라 모우리를 제대로 공격하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마사유키의 보고에 의해 사이조의 보고가 뒷받침되자 거의 틀림없는 상황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예전에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서상작전(西上作戦)을 개시했을 때 이래로 최대의 위기였다.

한 수만 잘못 두어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되어, 최악의 경우 오다 가문은 쿄에서 쫓겨나게 된다.

히데요시가 소심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뭐라 해도 상대는 사이고쿠(西国)의 영웅, 모우리 테루모토이다.

모우리 테루모토라고 하면, 예전에 120만 석(石)을 자랑한 아마고의 영토를 야금야금 빼앗아 북(北) 큐슈(九州) 일대를 지배하는 오오토모 소우린(大友宗麟)과 싸움을 벌여 모조리 모우리 가문의 승리로 이끈 존재다.


"이번엔 어쩔 방법도 없겠네요. 이 상황에서 오와리로 돌아가는 건 괴롭지만, 우리들이 여기 있어봐야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까요"


포기에 가까운 시즈코의 말에 아무도 반론할 수 없었다.




마사유키와의 회담 후, 시즈코는 예정대로 시로쿠와 우츠와와 합류하여, 좀 더 있다 가라고 붙잡는 사키히사를 떨쳐내고 오와리로 돌아왔다.

귀로 도중에 아즈치(安土)에 들려 노부나가에게 상황을 보고했으나, 그는 사이고쿠의 상황은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에게 오와리로 돌아가도록 했다.

약간 수상한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오아리로 돌아와서 긴 여행의 피로가 풀렸을 무렵, 뒤로 미루어 두었던 코타로의 촬영을 둘러싸고 한 차례 소란이 일어났다.

일의 발단은, 계란지에 인화된 흑백사진을 본 미츠오(みつお)의 한 마디였다.


"헤에, 계란지에 인화하면 처음부터 컬러 사진이 퇴색된 것 같은 세피아 색이 되는군요. 컬러 사진은 바랄 수 없어도, 이만큼 선명하게 찍힌다면 제 가족사진도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미츠오의 가족이라고 하면, 시마즈(島津) 가문에서 시집온 츠루히메(鶴姫)와 그 시녀인 시바(柴), 츠루히메가 낳은 여아이자 만 3세가 지난 아오이(葵)를 의미한다.

본래 현대인인 미츠오에게 사진에 대한 기피감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고, 그의 소지품인 원래 컬러였던 사진(이쪽은 경년(経年)에 의해 퇴색됨)을 본 츠루히메도 마찬가지였다.

시즈코는 촬영 의뢰를 한 이후, 얼마나 아오이가 사랑스러운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설명하는 미츠오의 말을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오이라는 이름은 말이죠, 제 부인이 오와리에만 피는 꽃, 해바라기(向日葵)에서 따서 항상 햇님을 보고 피는 해바라기(葵)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붙인 것입니다. 정말로 귀여워서 말이죠, 저희들의 태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저번에도 '아빠(ととさま), 일하러 가지 말아요'라고 했단 말입니다! 몇 번이나 사육장에서 돌아가려고 생각했는지……"


여전히 기세를 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하는 미츠오의 말을 끊으며 시즈코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네요. 일본 최초를 외국인인 코타로가 차지하면 그에 대한 비난(風当たり)이 강해질지도 모르니, 우선 미츠오 씨 댁을 찍어볼까요. 이어서 코타로도 촬영하면 최초의 인물 촬영의 피사체로서 역사에 이름이 남을테니——"


시즈코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부드럽게 뻗어온 가냘픈 손(繊手)이 시즈코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거 참, 시즈코는 일본 최초가 될 기회에 나를 부르지 않다니, 꽤나 박정해졌구나"


명백히 꾸민 느낌의 슬픈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귀인(貴人)의 목소리에 시즈코는 돌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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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3 1575년 11월 중순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전후처리가 일단락된 11월 중순, 시즈코는 군을 이끌고 쿄(京)를 향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칩거를 명받은 상황이었으나, 예외적으로 외출이 인정되는 예사(芸事) 보호의 일환으로서 호우류우지(法隆寺)로 가기 위해서다.

직접 야마토(大和, 현재의 나라(奈良))로 가지 않고 쿄를 경유하는 것은, 호우류우지가 자랑하는 금당벽화(金堂壁画)를 열람하기 위해 사방으로 손을 써 준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에게 감사를 겸하여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금당벽화란 호우류지의 금당(金堂, 본존(本尊)을 안치하는 건물) 내부를 둘로 구분하는 내진(内陣, 부처님을 모시는(祀る) 장소), 외진(外陣, 참배하는 공간)에 배치된 흙벽의 벽면에 그려진 불교 회화(絵画)이다. 역사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에 작자 미상(作者不詳)으로, 7세기 말 무렵에 그려졌다고 한다. (※역주: 예전에 한국에서는 호류사(호우류우지) 금당벽화를 그린 것이 고구려 승려 담징이라고 배웠는데, 인터넷을 좀 검색해보니 담징설은 어떤 뚜렷한 문헌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일본에서 구전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며, 연대적 정합성 등의 문제로 현재는 한국 사학계에서도 별로 지지받는 설은 아니라고 합니다. 자세하게 아시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1949년에 원인 모를 화재(不審火)로 외진이 소실되어버려, 수복을 위해 떼어내었던 내진 소벽(小壁)의 벽화 20면만이 화를 면하고 현존하고 있다.

그러한 경위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조금이라도 보존 상태가 좋을 때 사진으로 찍어 자료를 남기려고 생각했다. 간신히 실용 시험에 다다른 사진이 제 구실을 할 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는 사업이기도 했다.

시즈코가 태어난 시대에는 이미 영구히 잃어버린 존재를, 모사(模写)가 아닌 사진으로서 후세게 전할 기회를 얻은 거에 시즈코는 토우고쿠 정벌보다도 고양되어 있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예술품을 볼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예사 보호의 혜택(役得)이지!"


처음에는(端緒) 조정으로부터의 의뢰를 받아 노부나가로부터 명령받은 예사 보호 임무였으나, 지금에는 명실공히 시즈코의 인생사업이 되어 있었다.

설령 노부나가가 임무를 그만두라고 명했다 하더라도 완고하게 달라붙을 생각조차 있었다. 현대에 있었을 때의 시즈코는 소위 말하는 역녀(歴女), 유구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당시의 풍물을 꿈꾸는 소녀였다.

현대라면 국보급에 해당하는 물건들을 직접 보거나 만질 수 있는 특권을 누구에게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평소에는 자기 주장이 약한 시즈코가, 예사 보호나 도검 수집에 관해서는 귀기(鬼気)어린 집착을 보이는 것이 알려지자, 그 열심인 모습에는 노부나가도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자 다들, 이 원정의 결과에 따라 카메라의 가치가 결정되는 거에요. 기합을 넣고 가죠!"


시즈코는 대열의 중간 쯤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아마도 쿄라고 생각되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호령했다. 평소와 달리 고양되어 있는 시즈코의 모습에 주위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엄숙(粛粛)하게 나아갔다.


"나는 시즈코가 의욕을 보이는 구석을 모르겠어"


"나는 조금 알 것 같군. 시즈코 님이 신경쓰시는(肝煎り) '카메라'를 선보이는 것이지. 오랜 수련의 성과를 보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겠지?"


"나는 그것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누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카메라'의 가치는 이미 시즛치와 주상(上様)께서 인정하고 있으니 흔들릴 리가 없어. 뭐, 그렇게 말해도 절간의 낙서를 보려는 것만으로 야마토 같은 변두리까지 가는 건 별나다고(酔狂) 생각하지만 말야"


나가요시(長可)의 중얼거림을 들은 사이조(才蔵)의 말을 케이지(慶次)가 이어서 총평을 내렸다. 당사자인 시즈코는 콧노래라도 부를 듯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로, 그들의 속삭임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 야마토로 가는 대열은 평소와 다르게 대규모였다.

나가요시, 사이조, 케이지 등 세 명은 당연하다고 치고, 시즈코 군 내에서도 정예가 선발되어 5천 명이나 종군하고 있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주군인 시즈코는 물론, 이번의 주체(目玉)인 사진기사 및 촬영기자재 일식(一式).

도중에 쿄를 경유하기 때문에, 의부인 사키히사와 대면시키기 위해 시로쿠(四六)에 우츠와(器), 교육 담당자가 된 모리 요시나리(森可成)도 동행하고 있다.

거기에 새롭게 들인 고용인(家人)으로서 코타로(虎太郎), 야이치(弥一), 루리(瑠璃), 모미지(紅葉) 등 유태인 네 명도 사키히사에게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각자 한 가지 뛰어난 재주의 소유주들로, 사키히사와 인연을 맺어두어 결코 손해될 일은 없다.

게다가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그들은 일에 몰두하여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즈코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하여, 이렇게 소개(顔見せ)라는 명목으로 유람(物見遊山)에 데려왔다. 물리적으로 일할 방법이 없는 환경에 두면 그들도 기분전환이 될 거라는 속셈이다.

참고로 시즈코 자신이 워커홀릭에 빠져 있어 관계자들을 안달복달하게 만든다는 것에는 자각이 없었다.


(주상께서 주인장(朱印状)을 발부해 주신 덕분일까, 가는 길이 쾌적하네)


시즈코의 야마토 행에 대해 사전에 경로상의 영주(国人)들에게 대해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이 도착했다.

당연히 시즈코 자신도 흑인장(黒印状)을 내어 편의를 보아 달라고 의뢰했으나, 노부나가로부터의 주인장에는 그 이상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즉, '시즈코의 야마토 행에 대해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고, 만에 하나 발칙한 짓을 하는 놈(不埒もの)이 나온다면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라는 노부나가로부터의 협박에 가까운 명령이었다.

주인장을 본 영주들은 안색이 변하여 영토 내의 순로(順路)를 확인하러 가서 길이나 다리 등이 상했을 경우 서둘러 공사(普請)를 하고, 부근의 산들에 대해서도 산적 토벌을 하여 도적(野盗)을 일소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앞서의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일패도지(一敗塗地)했다고는 하나,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타케다(武田)-호죠(北条) 연합군을 산산히 흩어버렸다는 무용담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시즈코의 노여움을 사는 것만도 무서운 판에, 게다가 노부나가로부터도 신신당부를 받은 모양새가 되자, 조금의 불찰(粗相)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영주들이 직접 관문(関所)까지 마중나가는 영지까지 있었다.


게다가 시즈코 군에 대한 소문도, 그들이 느끼는 공포를 부채질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이야기에 따르면, 시즈코 군을 구성하는 인간들의 출신은 천차만별로, 순수(生粋)한 무인(武人) 뿐만이 아니라, 먹고 살 길이 없는 백성들이나 기술자(職人)들의 아들들이나, 낭인(浪人)은 고사하고 도적(野盗) 출신의 불량배(ならず者) 출신들까지 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는 깡패 집단(愚連隊)이 되는 게 고작인 오합지졸을, 시즈코를 정점으로 하는 강철같은 결속을 자랑하는 조직으로 만들어냈다.

남 험담하기좋아하는 자들은 그들을 가리켜 시즈코를 숭배하는 광신자(狂信者)라고 할 정도로 시즈코에게 심취해 있어, 내부에서 시즈코 군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한 자들은 거꾸로 수하를 빼앗기고 후회했다.

그러한 경위로, 시즈코 군의 내부 사정(内情)은 외부에 거의 전해지지 않아, 정치적 책략(調略)에 실패한 자들이 분풀이 삼아 유포시킨 악평들만이 과장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한 정보를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火のない所に煙は立たぬ)'라는 속담도 있어, 영주들은 그들 일행을 움직이는 천재지변으로 간주하고, 만난(万難)을 물리치고 통과시키는 것에 진력하게 되었다.


"이번의 순로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일정에 여유가 생기면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도 들리고 싶네…… 보물창고(宝庫)에 '그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시즈코가 말하는 '그것'이란, 1939년(쇼와(昭和) 14년)에 보물창고 천정 뒤에서 발견된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카마쿠라(鎌倉)에 걸친 명도(名刀) 12자루를 가리킨다.

언제쯤 감춰졌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제 2차 세계대전 종결 전에 발견되었기에 전후에 GHQ가 실시한 칼사냥(刀狩り)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은 부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면에서 수색을 요청하면 먼저 발견되어 은닉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보물창고 열람의 허가만을 얻을 수 있게 손을 썼다.

애초에 들릴 예정은 없는데다 허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음에도, 시즈코는 일행에 궁전목수(宮大工, ※역주: 신사, 절, 궁전 등의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를 시작으로 건물을 해체하여 재구축할 수 있는 기술자들을 동행시키고 있었다.


(아마도 현 시점에서도 감춰져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확증은 없으니까……)


역사적 사실에서는 칼날에 녹이 슨 상태로 발견되었으나, 현 시점이라면 좀 더 보존상태가 좋은 상태로 발견할 수 있다. 아직 보지 못한 국보급으로 간주되는 명도를 꿈꾸면서 시즈코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시즈코 일행은 대인원이었기에 쿄로 이어지는 경로로 육로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상수운(湖上水運)이 정비되어 있다고 해도, 소형에서 중형 선박이 주류였기에 대규모 인원 수송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키히사에 대한 선물(土産) 등은 일행에 앞서 비와 호(琵琶湖) 경유로 쿄로 보내고, 시즈코 일행은 아즈치(安土)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노부나가가 있는 곳(御座所)이기도 한 아즈치에서는, 어떠한 신분의 인물이라도 하룻밤 묵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배알하고 인사를 했다.

그 밖에도 온 길의 상황 등을 이야기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온 후, 타카토라(高虎)에게 근황을 묻고자 사람을 보내 부르려 했으나, 아즈치 성의 공사가 가경(佳境)에 달해 있어 시간이 맞지 않았다.

대신 총 책임자(総奉行)인 니와(丹羽)가 와서 상황을 설명하게 되었다.

듣자하니 연초에는 천수(天守)까지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어, 그걸 기다려서 노부나가가 이주할 것이 예정되어 있었으며, 그렇게 되면 노부나가가 일본에서 최초로 고층 건물에서 생활한 인물이 된다.

아즈치 성 축성에 관계된 관계자들이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시즈코가 있으면 상대하지 않을 수도 없어 그들의 방해를 하게 된다. 최소한의 인사만을 마친 시즈코는, 이튿날 아즈치를 출발하여 곧장 쿄로 향했다.

역시 아즈치-쿄 사이의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어, 시즈코 일행은 곧 쿄에 들어섰다.


"잘 왔네. 오랜 여행의 피로도 있을테니 잠시 쉬는 게 어떻겠나?"


시즈코는 쿄에 들어서자 쿄 저택으로 들어가 즉시 사키히사에게 사전 연락(先触れ)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이 사키히사의 말이었으며, 때를 보아 사키히사 쪽에서 마중을 보내겠다고 했다.

시즈코는 사키히사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여장을 풀고 목욕을 하며 몸단장을 했다.

마치 시즈코의 준비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타이밍에 사키히사가 보낸 사람이 찾아와 시즈코를 대동하고 고노에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사키히사의 별실로 안내된 시즈코를, 웬일로 의관(衣冠, 궁중 등의 근무복) 차람의 사키히사가 직접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쿄에 들어서기 전부터 도착한다는 연락은 보냈는데, 어쩌면 궁중(内裏)에서 서둘러 돌아와 준 것일지도 모른다.

사키히사와 유자(猶子)를 맺기 전부터 그다지 귀족다운 모습을 보지 못한 시즈코는, 그의 모습을 보고 새삼스레 섭정(摂政)이라는, 궁중의 정점에 군림하는 존재라고 자각했다.

사키히사는 표정(相好)을 풀고 호의적으로 시즈코를 대했으나, 고노에 가문의 고용인들이 떠올리는 표정은 딱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키히사는 시즈코의 사람됨을 잘 알고(知悉) 있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공가(公家)들이 곤궁한 가운데, 고노에 가문의 재정은 융성(隆隆)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오섭가(五摂家) 필두인 고노에 가문의 재산(身代)은 그리 쉽게 바닥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즈코를 유자로 맞이한 이후 극적으로 불어났다.

오와리(尾張)에서 발신되는 다양한 문물을 쿄로 전하는 유행의 전도자(担い手)로서, 시즈코의 지도를 받아 장원(荘園) 운영 개혁을 추진한 결과, 예전에 '망월가(望月の歌)'를 지은 후지와라(藤原) 경(卿) 만큼은 아니라 해도 명실공히 공가의 정점으로 솟아올랐다.

오늘의 빈객(賓客)은 그것들의 원동력이 된 인물이며, 만에 하나라도 노여움을 산다면 자신 한 명 파멸하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거라는 절박한 마음이 고용인들을 위축시키고 있었다.


"자, 오랜만에 만나는데 이렇게 딱딱해서는 마음도 편치 않겠지. 별채에 한 자리 준비시켰으니, 그쪽에서 이야기(土産話)라도 들려주지 않겠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시즈코가 응답하자 사키히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선도하는 형태로 별채로 자리를 옮겼다.

사키히사가 자랑하는 별채에는 김을 피워올리는 전차(煎茶)와 가벼운 식사(軽食)가 두 상 준비되어, 의부와 수양딸이 마주하는 형태로 자리에 앉았다.


(과연 쿄네. 식사 하나만 봐도 오와리나 미노(美濃)…… 아니, 무가(武家) 양식(様式)과는 다르네)


가벼운 식사라고는 해도, 요리의 모양새(盛り付け)나 곁들임(あしらい)까지 배려하여, 쟁반(膳)이나 그릇, 소품(小物)에 이르기까지 사치를 부린 실로 우아한 카이세키(懐石)가 되었다.

그에 반해 오와리나 미노에서는, 좋게 말하면 실리주의이며 허식을 배제하고 요리의 맛과 양으로 승부한다는 호담함이 있었다.

어느 쪽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문화의 차이라고 받아들였다.


"이번의 야마토 행은 예사(芸事) 보호를 하는 데 있어 시금석이 될 거라는 소문을 들었다만?"


"꽤나 귀가 밝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전부터 계속 연구를 거듭해온 '카메라'가 드디어 모양새가 갖춰졌습니다"


"호오! 그것은 순식간에 세계를 비춰낸다는 소문의 그것인가?"


"정말 귀가 밝으시군요. 이번의 야마토 행에서 실용이 가능한 지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쿄에서도 퍼뜨리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게 되면 저번 전쟁에서 많은 문물들이 유실된 것이 안타깝군"


저번 전쟁이란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을 가리키며, 나라 시대에서 헤이안(平安)에 걸쳐 영요영화(栄耀栄華)의 극에 달했던 조정문화(朝廷文化)는 잿더미가 되었다.

무려 11년에 걸쳐 계속된 전란으로 쿄는 황폐화되고, 쿄의 시가지의 경우 북부 일대가 불타버렸다.

치안의 악화로 강도(夜盗)가 횡행하고, 그 밖에도 종종 싸움에 휘말려 역사적 가치가 높은 기록(書物)이나 금품, 예술품 등이 모두 유실되어 버렸다.

현재는 노부나가의 비호 아래 치안도 회복하여 일본 유수의 도시로서 부흥되었다.

쿄에 평온이 돌아오자, 천황(帝)을 중심으로 한 조정 문화와, 대중을 중심으로 한 서민 문화가 상호간에 영향을 주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이미 잃어버린 것은 어쩔 도리가 없지만, '카메라'가 있으면 사물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존해 둘 수 있는 것이겠지?"


"예사 보호의 역할을 맡은 이래, 쿄에서도 잃어버렸다고 생각되고 있던 자료들을 발견한 적도 있습니다. '카메라'가 자료를 복사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주게 됩니다. 예사 보호에도 탄력이 붙겠지요"


"그건 아주 좋군. 언젠가 '카메라'인가 하는 것을 보고 싶네"


시즈코의 예사 보호가 유명해짐에 따라, 일본 전국으로 흩어졌던 문예품(文芸品)이나 자료들이 속속 모여들게 되었다.

군서류종(群書類従)에 가까운 자료를 편찬하는 가운데, 도난 피해를 당했다고 알려졌던 고서가 발견되거나, 전란을 피해기 위해 반출되었던 자료가 돌아오기도 했다.

이러한 고서나 자료 등은 다시 분실되지 않도록 시즈코의 손에 의해 복제가 만들어져 고노에 파벌의 공가들에게도 일부가 맡겨져서 조정 문화의 보관을 담당하고 있었다.

역사나 격식을 중시하는 공가들 중에서,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고노에 파벌의 공가들에게는 다들 한 수 물리게 되어, 어느새 일대 파벌을 형성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나쁘게 말할 생각은 없지만, 대체로 무가 사람은 예사를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지. 개중에는 이해를 하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돈이 되는지 아닌지로 평가를 나누네. 물론, 금전적 가치도 중요한 지표라고는 생각하지만, 수필(随筆) 등도 후게에 남겨야 할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군"


"그것만큼은 개인의 성향이니 어려운 면도 있겠지요. 무가 분들은 치열하게 사는 분들도 많아, 비교적 몸 가까이에 있을 터인 도검 수집 등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도 종종……"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이란 그리도 어렵지. 하다못해 좀 떨어져서 공존(棲み分け)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힘을 쏟아야 하네"


"미력하지만 돕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시즈코는 고노에 저택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전말 밤에는 사키히사가 자신의 파벌의 공가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기에 성대한 회식이 되었다.

시즈코가 가져온 진기한 식재료나 시즈코가 데려온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들이 나와서 사키히사도 면목약여(面目躍如)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사키히사가 자기 파벌의 공가들을 연이어 소개했으나, 시즈코의 머리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낯만 익혀두면 된다고 결론짓고 생긋 웃으며 대응했으나 내심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아침 안개가 낀 가운데 시즈코 일행은 고노에 저택을 나섰다. 시로쿠와 우츠와, 교육 담당인 모리 요시나리는 고노에 가문에 남아서 야마토로부터 돌아올 시즈코 일행을 기다리게 된다.

여기서 시로쿠아ㅗ 우츠와는, 공가의 자녀로서 최저한 익혀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된다.

그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사키히사가 맡아준 것도 있고, 요시나라도 동행하고 있기에 나쁘게는 하지 않을거라고 판단했다.

이리하여 곧장 호우류우지로 향한 시즈코 일행은, 사전에 호우류우지와 교섭 역할을 맡고 있던 아시미츠(足満)와 합류하여 호우류우지 주변에 진을 쳤다.

예전에 노부나가가 토우다이지(東大寺)에서 그러했듯, 시즈코도 부근의 치안을 안정시키도록 병사들에게 명하고 호우류우지 측에 도착했음을 전했다.

사전에 교섭이 끝나 있던 것도 있어, 경내(境内)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된 것 외에는 별다른 주문도 없었다.

시즈코로서도 무장한 병사들을 잔뜩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어, 최저한의 인원만을 수행시키는 것을 수락했다.


호우류우지는 7세기 무렵에 창건된 쇼토쿠(聖徳) 태자(太子)와 인연이 있는 사원이다.

시즈코가 목표로 한 금당이 존재하는 서원가람(西院伽藍)은, 현대에서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들로 불리고 있다.

사진 촬영이 순조롭게 끝나면, 이어서 몽전(夢殿)을 중심으로 한 동원가람(東院伽藍)의 조사도 신청해 두었다.

호우류우지 측으로서는 무법자의 인상이 강한 무가의 개입을 극력 배제하고 싶지만, 노부나가의 심복(懐刀)이자 조정으로부터 예사 보호가 맡겨진 인물이기에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 절충안으로서 승려들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는 시간에 한해 수락했다.

쌍방이 각자의 조건을 비벼댄 결과, 촬영에는 호우류우지 측 사람이 반드시 입회할 것, 촬영이 끝나는 즉시 신속하게 철수할 것, 촬영 기재나 현상기구 등은 고가인데다 위험한 약제도 존재하기에 결코 허가없이 손대지 말 것 등을 정했다.


이리하여 시즈코가 호우류우지 앞에 진을 친 지 며칠 후, 세계 최초가 되는 사진 촬영이 이카루가(斑鳩)에서 실행되게 되었다.

반입된 카메라는 2대. 필름 카메라에서 말하는 필름(ネガ)에 해당하는 유리 건판(乾板, 이후 건판이라 부름)은 수백 장이 준비되었고, 인화지에 해당하는 계란지(鶏卵紙)의 소재로서 고급 에치젠(越前) 화지(和紙)가 천 장 정도 반입되었다.

현상용의 기재는 대형의 것들도 많아, 문자 그대로 문외한인 호우류우지의 승려들은 미지의 도구를 다루는 기술자들을 멀리서 겁먹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선 탑(塔, 오층탑(五重塔)을 가리킴)의 외관을 촬영합니다"


현대에서 주류가 된 소위 말하는 디지털 카메라는, 렌즈를 피사체로 향하고 버튼을 누른 순간 촬영이 완료되어 디지털 화상이 저장된다.

그에 반해 시즈코들의 건판 사진은 촬영 전후에 다양한 작업이 필요해진다.

우선 카메라를 삼각대로 고정시키고, 자바라(蛇腹)를 열어 렌즈를 부착하고, 빛을 차단하는 검은 천을 씌우고, 렌즈를 열어 초점경(ピントグラス)이라고 하는 젖빛 유리(曇りガラス)에 비춰진 상(像)을 돋보기로 확인하며 초점을 맞춘다.

다음으로 암막(暗幕)으로 덮인 즉석의 암실(暗室) 안에서 건판을 필름 홀더에 세팅하고, 셔터를 닫아 조리개를 조인다.

초점경을 닫고 필름 홀더를 세팅한 후, 필름 홀더에서 차광판(遮光板)을 뺀다.

그 상태에서 기계식 셔터를 한 번만 작동시켜, 규정한 시간동안 노광(露光)시키는 것으로 촬영이 완료된다.

그 후, 다시 차광판을 필름 홀더에 끼워넣고, 암실 안에서 건판을 꺼낸다는 일련의 작업을 사진 한 장마다 하게 된다.

이것도 감광 기재의 개량으로 노광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던 편이며, 한 장의 사진을 찍는데 평균 5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습판(湿板) 시대의 수십분이 걸리는 촬영에 비교하면 현격한 진보를 거둔 것이다.


"촬영 완료입니다! 지금부터 현상합니다"


촬영을 마친 필름 홀더를 든 기술자가 암실로 가서 현상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 필름에 기록된 상은 명암이 역전된 네거티브 이미지라고 불리는 상태가 되어 있어, 이것을 인화지라 불리는 감광재료를 칠한 종이에 전사하는 것을 현상이라 부른다.

이 현상의 메커니즘에 의해 한 장의 네거티브 이미지에서 복수의 사진을 얻을 수 있어, 똑같은 사진을 대량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번에 시즈코들이 선택한 인화지는 계란지라 불리는 것을 사용한다. 계란지의 특징으로서는 싼 값으로 대량 생산에 적합하며, 콘트라스트가 강한 선명한 상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암실에서 침침한 조명 아래, 질산은(硝酸銀) 수용액(水溶液)에 담근 계란지를 건판과 접착하여, 암실에서 꺼내 노광시키는 것으로 건판의 화상을 인화지에 전사한다.

이 때, 필름을 통해 전사된 상은 명암 및 좌우가 반전된 상이 된다. 충분히 노광시킨 계란지를 건판에서 신중하게 떼어내, 흐르는 물로 씻으면 서서히 상이 떠오른다.

딱 좋게 선명한 상이 얻어진 시점에서 인화지를 정착액(定着液)에 담가, 그 이상 화학 반응이 진행되는 것을 멈춘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계속 반응이 진행되어, 최종적으로는 인화지 전면이 시커멓게 물들게 된다.

여기까지의 절차를 밞음으로서 간신히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 한 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원래는 연속으로 팍팍 촬영을 계속해야 하지만, 우선은 한 장 인화되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다. 다들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기술자가 현상실에서 나왔다.


"시즈코 님, 성공입니다!! 이것을 확인해 주십시오!"


어린애처럼 눈을 반짝이며 기술자가 내민 한 장의 계란지. 거기에는 세피아 톤의 배경에 검개 떠오른 5층탑이 흘립(屹立)하고 있었다.




현대에서는 더 선명하게 컬러로 촬영된 화상을 몇 번이나 보았을 테지만, 이만큼 감동한 적은 없었으리라.

자료에 의지하여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 처음부터 만들어낸 사진이 이곳에 있다. 그 감동이란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었다.

시즈코는 자세히 뜯어보며 충분히 사진을 감상한 후, 가장 먼저 호우류우지의 승려들에게 사진을 돌렸다. 도저히 붓(絵筆)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하고 선명한 화상이 그곳에 찍혀 있었다.

승려들은 사진과 실제로 존재하는 5층탑을 비교하면서 그 높은 재현성에 경탄했다. 같은 절차를 통해 3장의 사진이 현상되고 각각 돌려보았다.

평소에는 매사 동요하는 법 없이 표표(飄飄)한 태도를 관철하는 케이지조차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사진의 개발에 적지 않게 진력한 아시미츠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편, 예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기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나가요시,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굉장하다고 감탄하는 사이조 등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좋은 완성도군요. 이거라면 주상께서 칭찬해 주시겠지요"


"옛! 이걸로 돈 먹는 벌레라고 비난받던 나날과도 이별입니다!"


길고 따분(地道)한 연구를 거듭한 결과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본 기술자들 중 한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이걸로 사진에 대한 평가는 변한다, 기술자들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자,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요. 현상은 나중에 해도 좋으니, 찍을 수 있는 만큼 찍죠"


"옛!"


시즈코의 호령에 의해 기술자들이 다시 촬영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합과는 달리 카메라는 완전하게 기능하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태엽식의 셔터가 작동하지 않게 되어, 모래시계를 한 손에 들고 셔터를 손으로 조작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밖에도 촬영 작업에 익숙해지자 절차를 소홀히하게 되었는지 건판을 빛으로부터 보호하는 차광판을 끼우는 걸 잊거나, 운반 도중에 건판을 떨어뜨려 깨뜨려 버리는 등의 트러블이 속출했다.

현상 작업에서도, 약제가 고가이기에 연속 내용(耐用) 실험을 하지 않았던 영향이 여기에서 표면화된다. 정착액은 공기에 접촉하거나 처리할 때마다 그 품질이 열화된다.

한계까지 정착액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에, 충분히 정착되지 않고 감광이 진행되어버려 시커먼 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현장 운용에서 많은 실패도 했으나, 그래도 금당의 벽면 전체에 더해, 5층탑의 입면도(立面図)에 상당하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고, 금강역사(金剛力士) 상(像)인 '아형(阿形)'과 '후형(吽形)'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또, 휴가를 쓰게 할 목적으로 데려왔던 유대인 야이치였으나, 촬영된 사진을 보고 뭔가 머릿속에 스친 것이라도 있었는지 시즈코에게 촬영 허가를 요청했다.

기술자들의 관점과는 다른 시점에서 촬영된 사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촬영 허가를 내주었고, 야이치는 코타로를 통역으로 삼아 기술자들에게 촬영할 포인트를 지시했다.


"다음 사진은 이 지점에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각도로 부탁합니다"


카메라의 시점을 얻기 위해 땅바닥에 쭈그려 앉은 야이치가 코타로를 돌아보며 기술자들에게 내용 전달을 부탁했다.

정면에서 찍은 영상을 찍고 싶어하는 기술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야이치는 투영도(投影図) 같은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사진을 선호했다.

이리하여 호우류우지에서 촬영을 계속하길 열흘. 드디어 건판의 재고가 바닥났다.

쿄의 시즈코 저택에 얼마간 예비 건판이 남아 있지만, 필요한 양은 촬영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촬영의 종료를 선언했다.


"이것은……"


촬영 기채를 엄중하게 포장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시즈코는 촬영에 입회하지 않았던 호우류우지의 고승(高僧)들에게 몇 장의 사진을 기증했다.

처음 보는 사진의 선명함은 늙은 고승들의 마음에도 감동되는 것이 있었는지, 사진을 악귀(悪鬼)의 소행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바르게 평가해준 것 같았다.


(사실은 사람도 찍고 싶었지만 말야……)


전국의 세상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한 것에는 혼이 깃든다고 믿어져 왔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사진의 여명기(黎明期)에는 사진에 인물을 찍으면 혼이 사진에 갇힌다고 생각되어 기피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역주: 비슷한 얘기로, 중학교 다닐 때, 사진으로 동물(애완동물)을 찍으면 혼이 빠져나간다고 정말로 믿고 있던 녀석을 실제로 보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라고 생각하며 어이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뭐, 급격한 변혁은 반발을 초래하니, 서서히 보급하면 되겠지. 맞다! 우리 집 동물들부터 시작하자!)


"주인님은 꽤나 기분이 좋으신 것 같군요"


코타로가 어이없는 듯 중얼거렸다.


"즐겁지요. 이렇게 새로운 것의 성과가 나왔을 때는 특히 더요. 뭐, 이번에는 잘 풀린 부류지만, 대부분 뭔가 문제가 따라오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실패에 대해 관대하시군요?"


"같은 실패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면 질책도 하거든요? 처음 도전한 결과로 실패한 거라면, 그 실패조차도 귀중한 경험이에요. 실패를 산처럼 쌓아올린 끝에 누구나 선망하는 성공이 있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어요"


시즈코의 말을 듣고 코타로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지당한 말씀(至言)이군요. 실패 없는 기술 따윈 위험해서 쓸 수 없지요. 실패를 탓하여 위축시키기보다, 실패에서 배워서 성공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으로 삼으면 되는 것이군요"


"그러네요. 과도하게 실패를 두려워해서 성공만을 추구하다보면 근시안적이 되어 막다른 길에 빠져들어요. 그러니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폭넓게 연구를 하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얼핏 실패로 보여도, 거기에서 새로운 싹이 트는 경우도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가, 눈앞의 헛됨(無駄)에 마음이 꺾이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거에요"


"하하하. 그래서 배포좋게 설비투자를 거듭하시는 겁니까"


"우수한 연구 성과는, 우수한 환경에서 태어나기 쉬워요. 뭐, 그 탓에 연구 비용은 천정을 모르고 늘어나는게 고민이에요. 지금은 내 이익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右肩上がり) 그래도 남지만요"


"꿈을 쫓으면서 현실도 확실히 보고 계신가는 건가요?"


"단기적인 성과로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백년, 이백년 앞을 내다보고 기초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는 거에요"


"과연.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한 발자국 앞을 목표로 하라는 거군요"


"연구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걷기를 멈추면, 그 때부터 천천히 썩어가기 시작하는 거에요"


시즈코의 말에 코타로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렇게 정체되어 버린 조국을 버리고 신천지(新天地)를 찾았다. 자신은 재미있는 주인과 만날 수 있었다며 홀로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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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2 1575년 11월 중순



"이번 싸움은 패전이지만, 키묘(奇妙)를 사지(死地)에서 무사히 끌고나오고 피해를 억제한 것으로 상벌을 상쇄하겠다"


제후들이 늘어서 있는 알현실에서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말은 질책은 아니었다. 시즈코로서는 패전의 책임을 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예상외의 조치였다.


"우세이면서 확실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태풍 때문에 군을 흩트렸다. 즉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전의 책임은 키묘가 지겠으나, 너도 당분한 칩거(蟄居, 폐문(閉門)하고 자택 근신하는 것)를 명한다"


"예, 옛!"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서 그 뒤에 숨겨진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노부나가로서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상 시즈코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내린 밀명을 완수한 데다, 대장의 궁지를 구해 생환시킨다는 어려운 사명을 달성했다.

그래서 대외적인 상벌로서 공과(功罪)를 상쇄하고, 실질적으로 공직(公職)에서 해임(免除)하는 칩거를 명했다. 야심가인 가신들에게는 징벌이 되겠지만, 시즈코에게는 포상이 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에 시즈코에게 내려진 칩거의 경우, 오다 가문의 공식 행사에 대한 참가가 금지되고, 또 조정에 출사(出仕)하는 것도 금지된다.

하지만, 시즈코의 후계자가 자라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영주로서의 임무는 시즈코가 수행할 필요가 있다. 오다 가문의 사정과는 별개로 조정으로부터 임명받은 예사(芸事) 보호에 대해서도 차질없이 수행할 의무가 있었다.

실질적인 제한으로는 자기 영토를 나갈 때는 노부나가의 허가가 필요해지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택 근신이 아닌 오와리(尾張) 근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의 실험운용은 포기했지만, 이제 곧 카메라의 현장(実地) 실험이 시작되지. 이것도 예사 보호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 실제 시험에도 참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호우류우지(法隆寺), 아니면 토우다이지(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일까?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 같은 것도 기록에 남길 의의가 있지! 후훗, 기대되네)


카메라가 실용화되면,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에서는 비약적인 진보가 된다. 시즈코는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측면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사진은 그 순간의 세계를 잘라내어 보존한다.

당연히 노광(露光) 한계 등은 있지만, 자신이 본 그대로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초래하는, 척후나 정찰은 물론이고 관측 등에서도 비약적인 진보를 촉진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후에 알릴 때까지 저택에서 근신하고 있도록. 다음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오명을 씻을 기회를 줄 테니, 비열한 호죠(北条)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라. 그 때까지 영지에서 힘을 축적하고 있도록"


"옛"


노부나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음 토우고쿠 정벌이 있을 것을 명확히 말했다. 가신들은 시즈코에 대해 동정인지 연민(憐憫)인지 구별되지 않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명을 씻을 기회라고 하면 듣기엔 좋지만, 많은 희생을 치를 필요가 있는 국면에 서게 되는 것인데, 사명을 다해도 겨우 실점을 만회하는 것 뿐이다.

이래서는 채무를 진 것 같다, 고 가신들은 생각했다. 노부나가가 총애할 터인 시즈코에게조차 이런 엄격한 처분을 내린 것으로 가신들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가신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明日は我が身)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시즈코는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암중에 휴가를 받아 당분간 정치에 관여할 필요가 없어진데다, 오다 가문은 호죠에 대한 적대 자세를 명확히 했다.

일이 여기에 이른 이상, 호죠 토벌에 대한 신중파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토우고쿠 정벌에 대한 분위기를 키우는 것을 노부나가가 맡아주게 되어, 시즈코는 어깨의 짐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노부나가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고 알현실을 나온 후, 시즈코는 어떤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감시역(お目付け役)인 시즈코에게조차 벌이 내려졌는데, 총책임자인 노부타다(信忠)에게는 얼마만큼 엄격한 조치가 내려졌을까?

노부나가는 토우고쿠 정벌을 앞두고 노부타다에게 "신겐(信玄)이 없다 하나 카츠요리(勝頼)는 전쟁의 명수(いくさ巧者). 결코 얕보지 말고 신중하게 임하라"고 말했다.

노부타다는 젊은이면서도 첫 전투를 보기좋게 제압하고, 기세를 타고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조급해하는 부하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부주의한 장소에 진을 친 결과 태풍을 맞았다.

부하의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했다는 명백한 추태이기에, 노부타가가 질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내 잘못도 있어. 그에게 패배를 배우게 한다는 거에 지나치게 고집해서, 그를 보좌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보좌를 게을리 해버렸어)


시즈코가 자성하면서 걷고 있을 때 노부타다의 소성(小姓)이 그녀를 불렀다. 들어보니 노부타다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즉석에서 수락하고 소성에게 안내받아 노부타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부타다와의 회견은 성시(城下町)에 건설중인 그의 저택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노부타다의 희망에 따라 시즈코와의 1대 1 대담이 되기에, 사이조(才蔵)나 소성들도 물러나게 하자 실내에는 둘 만이 남았다.


"이거 말야? 아버지에게 힘껏 얻어맞은 흔적이지"


시즈코는 노부타다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 왼쪽 눈 아래에서 뺨에 걸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노부타다는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익살스러운 태도로 노부나가에게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얻어맞은 곳은 크게 부어올라, 왼쪽 눈의 아래쪽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있었기에 시야가 나빠 보였다. 아마 입 안도 터진 듯, 말하면서 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치료해야지! 일단 얼음주머니를 가져오게 할 테니——"


"아니, 이대로 괜찮다. 이건 내가 져야 할 실패의 낙인(烙印)이다. 나이가 많은(年かさ) 수하들이 반발할 것을 두려워하여 위험을 용인한 내 한심함(ふがいなさ)의 증거지"


상처를 치료하려고 한 시즈코를 노부타다가 제지했다. 시즈코는 두 배는 부풀어오른 뺨을 보고 낭패스러워했으나, 노부타다는 별로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노부타다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반성도 할 수 있지만, 태풍 속에서 비바람을 피하려고 헤매인 끝에 동사(凍死)한 장병들은 후회조차 할 수 없는 거라고 자조해보였다.


"그건 우리들 장수들 전원이 져야 할——"


"시즈코, 나는 토우고쿠 정벌의 총대장이다. 그곳에 진을 친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나다. 과정이 어찌되었던, 최종적으로 결단한 것이 나인 이상,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패전의 책임은 총대장 뿐만이 아니라 무장들 전원에게 있다고 시즈코는 말하려 했으나, 노부타다가 억지로 말을 막았다.

노부타다는 올바르게 패배를 배웠다.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시즈코의 진력(尽力)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다행히 다음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얻었다.

노부타다는 실패를 가슴에 새기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내일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고 있었다.


"자포자기했을 줄 알았는데, 기운이 있어보여 안심했어"


"드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감정에 맡겨 자포자기해봤자 내 발목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는 패거리들을 기쁘게 할 뿐이다. 쇠는 뜨거울 때 쳐야 한다. 언제까지나 미적거려서야 부하들을 실망시키게 되어버리지"


"알고 있다면 굳이 간언할 것까지도 없네"


시즈코는 자세를 바로하고 정면에서 노부타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타케다(武田)와 호죠에게 답례는 하겠지?"


"당연하지. 도쿠가와(徳川)를 물어뜯은 보복은 했지만, 오다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에 대해 아직 버릇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이번 일로 뭐든지 내가 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우에스기(上杉) 내부의 친(親) 호죠 파에 대한 대처를 시즈코에게 맡기고 싶다. 시즈코의 밑에는 간첩(間諜)에 능한 자들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 동안 타케다와 결판을 내겠다. 그렇게 하면 호죠만 남게 되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포석을 구는 거네. 하지만, 군을 움직이게 되면 주상(上様)의 판단을 아우르지 않으면……"


"문제없다. 아버지에겐 시즈코의 손을 빌리는 것, 타케다에 대한 보복의 개요를 이야기하고 승낙을 받았다. '튼튼한 화살이라고 생각하며 지푸라기에 기댄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그것은 다소 바뀌기는 했으나, 예전에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했던 말이었다. 아마도 노부나가가 뒤에서 손을 써서 노부타다의 귀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리라.

노부타다는 그것을 잘 씹어 자신의 재기에 거는 신념으로서 노부나가에게 이야기해보인 것이다.

노부나가가 그린 그림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이번의 패전에 의해 노부타다가 배운 것은,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첫 패전과 가신들의 면전에서 질책당한다는 좌절을 맛보았음에도 불만을 품지 않고 재기를 향해 최선의 수를 둘 수 있다.

이번의 패전을 거쳐 노부타다는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사내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한다(男子三日会わざれば刮目して見よ, ※역주: 삼국지에 나오는 '괄목상대(刮目相待)'라는 고사성어의 변형(원래는 '사내'가 아니라 '선비')으로 보임)'는 그야말로 이것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음 토우고쿠 송격에서 시즈코는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을 들려주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에게 출진을 요청할거야. 그렇게 되면 에치고(越後)에 둥지를 튼 친 호죠 파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지. 타케다와 호죠가 멸망해버리면 그들은 고립되어 파벌을 유지할 수 없게 돼. 그들이 우에스기 가문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될 테니까"


"과연 시즈코로구나. 이번 싸움에서는 친 호죠 파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들의 패배로 놈들은 기세가 붙어 있겠지. 거기서 빈틈을 보여주면 간단히 달라붙는다는 계산인가!"


"야심을 버리지 않는 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봉기(蜂起)밖에 없어. 켄신에게는 사전에 부대를 매복시켜놓고 진군하게 해서, 봉기 소식이 전해진 순간 반전해서 매복시킨 부대로 포위하면 일망타진. 그들에게는 성을 침대삼아 전사할 각오 같은 건 없을테니, 일부러 도망칠 길이나 하나 남겨놓으면 고생하지 않고 처치할 수 있을거야"


노부타다는 시즈코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엿볼 수 없는 것이라, 미래를 예측해도 불확정요소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좁혀버려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시즈코의 전략안은 두렵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하면서 쓰러져 가리라. 결판은 바둑판(盤) 밖에서 이미 났고, 현실은 감상전(感想戦)처럼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시즈코도 심보가 고약해졌구나. 그건 아시미츠(足満)의 영향인가?"


"남 들을까 무섭네! 나는 아군의 희생을 조금이라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뿐이야. 그들에게는 이미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어. 야심 때문에 그것을 뿌리치고 적대하는 길을 선택했으니, 그에 걸맞는 결말은 각오해야 하잖아?"


"친 호죠 파 놈들은 노름판(賭け皿)에 제놈들 목숨이 얹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겠지. 그 때까지는 실컷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난동피우는 손오공처럼 우쭐하게 놔두면 된다"


"헤ー, 서유기(西遊記)에서 인용하다니, 최신 서적도 읽고 있나보네?"


"그래, 아버지는 남만(南蛮)에 눈을 돌리고 계시니, 나는 반대로 당(唐, 외국 전반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명나라(明)를 의미함)에서도 배운다. 나는 언젠가 오다 가문을 이을 몸. 아버지가 걸어가신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두고 봐라 시즈코. 나는 반드시 재기하여, 오다 가문에는 노부타다가 있다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


주먹을 굳게 쥐며 노부타다는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노부타다와의 회견을 마친 시즈코는 곧장 자기 영토로 돌아갔다. 칩거 지시도 내려졌으니, 전쟁을 하는 동안 쌓인 일거리 등을 처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운 동안의 일은 아야(彩)를 필두로 하여 고용한 문관들에게 권한을 위임(委譲)했기 때문에 기존의 안건에 대해서는 과부족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규 안건이나 돌발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는 시즈코의 판단을 아우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서류들은 시즈코의 책상의 문서함에 쌓여서 결재를 기다리게 된다.

물론, 시간상 결재를 기다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문관들의 합의로 결정하던가, 파발마를 보내어 시즈코에게 전달하는 등으로 대응한다.


"으ー음…… 당장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뿐이네"


시즈코의 기반은 농업에 있다. 지금에야 생산에서 가공, 유통까지 포괄하여 운영하는 6차 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나, 물자가 없으면 얘기가 되지 않기에 기점은 1차 산업이 된다.

그리고 농업의 질을 좌우하는 큰 요인에 수리(水利)가 있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듯이, 생명에 직결되는 농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수리권(水利権)은 많은 소동의 원인이 되었다.

시즈코의 경우에는 노부나가가 강권(強権)으로 수리를 파악하여 도시 계획을 입안하고 시즈코에게 농지를 맡겼다.

처음부터 가능한 한 평등한 수리를 부여하는 계획 아래 농지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도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구의 증가나 호농(豪農)들에 의한 농지의 통폐합 결과, 서서히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증가 일로를 걷고 있는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농지는 점점 확장되었다.

한없이 넓어지는 농지에 대해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을 만한 체재는 미처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수리를 둘러싸고 농민들끼리 다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노부나가가 제정한 법에 의해, 허가를 받지 않고 하천에 손을 대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대관(代官)을 통해 영주인 시즈코에게 수리의 조정을 부탁하는 진정(陳情)을 넣는 것 뿐이었다.


(이 농지에 물을 돌리면 하류 지역(下流域)이 부족할 것은 뻔히 보여. 이건 근본적인(大元) 수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아이치(愛知) 용수(用水)는 아직 진전이 없어. 조정지(調整池)를 준비해서 수량을 늘릴 수밖에 없나…… 조사가 필요하겠네)


저쪽을 손대면 이쪽이 탈이 난다는 상황의 진정서를 바라보며 문관들이 첨부해 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끙끙거리며 처리해갔다.

시즈코는 며칠간 달라붙어 서류를 집중해서 모두 처리했다. 귀찮고 섬세한 작업이지만, 수리권을 소홀히 하면 나라의 근간인 '식(食)'이 붕괴해 버린다. 시즈코로서는 결코 대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소우에키(宗易) 님으로 부터인가. 하세가와(長谷川) 님은 시험에 응할 결단을 했구나. 이쪽은 기한을 정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금년 연말까지를 기한으로 삼고 싶다는 요청인가. 그걸로 의욕이 생긴다면 뭐 좋을대로 하게 할까"


승낙하는 내용의 답장을 쓴 후, 시즈코는 처리가 끝난 문서함에 넣었다. 이것은 문관들에게 회수되어, 정식 서한으로서 정리되어 발송되게 된다.


"다음은, 쿄(京)로부터의 보고인가"


쿄에 배치한 간자들로부터의 보고를 정리한 서류를 넘기면서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보통은 마사유키(昌幸)가 확인하여 그의 권한으로 결재하기 때문에 시즈코에게까지 올라오는 서류는 드물다.

뭔가 큰 문제라도 일어났나하고 약간 불안감을 품으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확실히 이건 자신이 아니라 노부나가에게까지 보고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었다.


(예수회가 갈라졌나……)


보고에 따르면 발단은 쿄에 있는 기독교도들(キリシタン)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며, 간자가 예수회와 거래하는 상회나 유력자들 등의 동향 등을 기초로 뒷조사를 한 결과, 아무래도 진실인 것 같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시즈코와도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오르간티노와, 일본 교구(教区)의 책임자인 카브랄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브랄은 오르간티노가 비단 등을 사용한 화려(華美)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어, 청빈(清貧)해야 할 성직자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카브랄의 말로는, 오르간티노는 상인들과 결탁, 돈벌이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신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오르간티노는, 전임자인 토레스(Cosme de Torres)가 말했듯이 일본에서 몸단장을 소홀히 해서는 모멸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고국이 아닌 일본에서 몸단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모을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한 노력은 포교를 위해 불가결한 행위이고, 자신에게 신벌(神罰)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반론했다.

현장에 나서지 않는 카브랄의 눈에는 오르간티노가 상업주의의 주구(走狗)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건조한 조국과 달리, 습윤(湿潤)한 일본에서는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에 걸맞는 노력과 돈을 필요로 한다.

자금과 수고를 들여 청결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인물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루종일 실내에 틀어박혀 있는 카브랄과, 포교를 위해 정력적으로 돌아다니는 오르간티노 등 현장의 수도자들은 애초에 필요한 의복의 양부터 다른 것이다.

예수회 내에서의 계급(位階)으로는 카브랄 쪽이 상위였으나, 현장에서 포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지지는 오르간티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게다가 오르간티노는 천하인(天下人)으로 지목받고 있는 노부나가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제아무리 카브랄이라고 해도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었다.


"뭐 카브랄이 부임했을 떄부터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카브랄은 종교가로서는 우수하고 예수회에서도 엘리트이지만, 이상을 고집하는데다 유럽 중심주의자니까. 지금의 일본의 정세 하에서의 포교를 생각하면 오르간티노가 목표로 하는 융화책(融和策)이 바람직한데…… 뭐, 이건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네. 아마도 진주의 수출에 식지(食指)를 꿈틀거린 것이 본국의 높으신 분들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진주는 성경에서도 최고의 보석으로서 등장한다. 관용구로서 유명한 '돼지 목에 진주(豚に真珠)'라는 말도, 성경에 쓰인 '돼지 앞에 진주를 던져서는 안 된다'라는 일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카브랄의 눈에는 일본의 진주 거래를 장악하여 막대한 이익을 낳으려고 하는 오르간티노가 배신자(背信者, ※역주: 원문에 흔히 쓰이는 裏切者가 아닌 背信者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일반적인 '배신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배교자(背教者)나 이단자라는 느낌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한자 그대로 표기했음)로 보이는 것이리라.


"거래되는 진주가 양식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카브랄은 홧병으로 죽는 게(憤死) 아닐까?"


묘한 상상을 하며 시즈코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 속을 새롭게 한 후, 시즈코는 보고서를 계속 읽었다.


"예수회의 분열은 기독교도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네"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카브랄의 포교 방침은 선교사나 일본인 신도들과의 사이에 골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카브랄의 방침이 갖는 치명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카브랄의 방침에 따르면 기독교야말로 지상(至上)의 가르침이며, 미숙하고 조야(粗野)한 현지의 종교 따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이 시대의 쿄에서는 각 종파에 의한 설법(説法)이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각자의 종교의 교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설령 글을 읽고 쓰지 못하더라도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농담같은 신도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의 설법에 얼굴을 내미는 백성들은, 볼품없는 차림새를 하고 있더라도 선교사 뺨치는 지식을 가지고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는 경우조차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존의 종교나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선교사는 공부가 부족하며 머리가 나쁘다라고 간주되어 경멸받았다.

일방적으로 기독교의 미점(美点)만을 계속 늘어놓는 설법으로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아, 카브랄의 방침은 일본의 신자들 뿐만 아니라 포교자인 선교사들로부터도 기피되게 되었다.

구세(救世)를 외치는 종교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사회 정세가 불안하다는 요인이 있다. 노부나가에게로 권력이 일점 집중되어 치안이 안정된 쿄에서는 선교사들의 가르침도 썩 와닿지 않는다는 뒷사정도 있었다.


"어설프게 움직이면 바테렌(伴天連) 추방령이 떨어진다는 현실을 카브랄은 이해하고 있는걸까? 지금은 주상께서 포교의 자유를 담보하고 있지만, 포교의 실패(不首尾)를 빌미로 정치에 손을 대면……"


종교가가 정치적인 야심을 품고 신도들의 숫자를 배경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것을 노부나가는 대단히 싫어한다. 혼간지(本願寺)나 엔랴쿠지(延暦寺)도 부처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권력을 수중에 넣어 무장했기 떄문에 적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떄문에 노부나가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와 무려 11년에 걸친 전쟁을 벌이고, 엔랴쿠지에게도 집요하게 무장 해제를 요구하며 결국 사카모토(坂本)를 불사르기에 이르렀다.


"뭐, 나가사키(長崎)에서의 전례가 있으니 추방령이 떨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겠지"


키나이 지역(近畿圏)에 거점을 둔 기독교도들에게는 큰일이었지만, 시즈코는 필연적인 사상으로서 가볍게 흘려버렸다.

예수회와 시즈코와의 관계성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부나가가 바테렌 추방령을 내리면 시즈코로서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무리하게 감싸거나 할 만한 관계도 아니고, 통치자가 법을 가벼이 여기는 모습을 보이면 언젠가 백성들도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그것만큼은 통치자가 범해서는 안 될 최대의 금기였다.


"아! 하세가와 님의 건에 대해서는 보충을 해야겠네! 과제에 착수하는 데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양말고 말하라고 첨부해야지"


아까 처리가 끝난 문서함에 넣었던 서신을 꺼내어 여백에 문자를 작게 써넣었다. 조금 예의에 벗어나기는 하나, 격식에 따른 형식이 필요한 상대도 아니고, 의도가 전해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문서함에 되돌려놓았다.


"자자, 어떤 작품이 완성될까"


하세가와 신슌(長谷川信春)의 작품, 지금부터 기대되어 어쩔 줄 모르는 시즈코였다.


"어디어디 우에스기 가문으로부터인가…… 흠, '방어치기(鰤起こし)'에 협력해 주는구나!"


방어치기란 이시카와 현(石川県) 카나자와(金沢) 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호쿠리쿠(北陸)에서는, 11월 중순 무렵부터 12월에 걸쳐 심하게 천둥이 치거나 맹렬하게 바람이 불어닥치는 날이 있어, 그걸 가리켜 '방어치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 무렵에 동해(日本海)를 회유하고 있는 겨울 방어(寒鰤)가 잡히기 시작하기에, 어부들이 그물을 '친다(起こす)'는 것과 자고 있는 방어를 '깨운다(起こす)'라는 의미를 합쳐 '방어치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회유해오는 방어는 그 몸에 기름이 듬뿍 올라 대단히 맛있다고 한다. 미식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시즈코로서는 당연히 놓칠 수 있을 리 없어, 예전부터 켄신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시즈코가 아는 바다는 태평양(太平洋) 쪽이며, 그 이외에는 비와 호(琵琶湖) 등의 호수에 지나지 않는다. 겨울의 동해의 거친 파도에 대해 경험이 없는 시즈코들이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어, 방어를 잡기 위해서는 켄신의 협력이 불가결했다.

첨언하면, 잡힌 방어를 신선한 상태로 아즈치(安土)나 쿄, 오와리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길을 수호하는 시바타(柴田)의 협력도 필요했다. 시바타는 오다 가문 내부의 인물이라 일찌감치 수락을 받을 수 있었으나, 켄신의 경우에는 한동안 시간을 필요로 하여 이제 겨우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강을 이용해서 한번에 운반하고 싶지만, 보냉용의 얼음을 윤택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도중에 썩어버리겠지…… 계절적으로 호수의 얼음을 잘라내도 괜찮겠지만"


동해 측에서 잡아올린(水揚) 겨울 방어를 멀리 떨어진 아즈치까지 운반하려면 이런저런 절차가 필요해진다.

현대라면 대형의 수조에 넣어서 살아있는 채로 방어를 운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바랄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필요해지는 것은 물고기의 이케지메(活け締め)라고 부르는 기법이 된다.


물고기에 한정되지 않고 많은 동물들은 그 육체를 움직이기 위해 ATP(아데노신 3인산, adenosine triphosphate)라 불리는 물질을 소비한다. ATP는 호흡으로 체내 물질을 소비하는 것으로 생성된다.

온도가 낮은 물 속에서 생활하는 물고기에게 있어 잡혀올려진 후의 상온(常温)의 땅 위는 작열(灼熱)의 지옥이 된다. 이 때문에 물고기는 체내의 aTP가 고갈될 때까지 있는 힘껏 날뛰게 된다.

이렇게 죽은 물고기는 체온 상승으로 자신의 살을 태우고, ATP를 다 소비한 몸은 사후 경직이 발생하며, 몸 안에서 근육이 분해되는 자기소화반응이 시작된다.

참치 등의 거대한 물고기는 이 경향이 현저하여, 미야케(身焼け)라고 부르는 변색을 일으킨 살은 신맛을 띠게 되어 개도 먹지 않는다고 불린 어육(魚肉)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물고기의 선도(鮮度) 저하를 막는 것이 이케지메라고 불리는 기법이다. 잡아올려진 물고기에 대해 그 자리에서 이케지메를 하는 것으로 물고기를 즉사시켜 ATP의 소비를 막음으로서 사후 경직을 늦출 수 있다.

이케지메는 물고기의 척추(脊髄)를 절단하여 뇌로부터의 신경 신호를 차단함으로서 물고기를 즉사시킨다. 하지만, 그래도 근육은 반사(反射)에 의해 움직이므로, 철사(針金) 같은 가늘고 긴 금속을 사용해 연수(延髄)를 파내어 연수와 함게 신경을 긁어내 버린다.

이것과 병행하여, 상온이 되는 순간 잡균의 번식이 시작되어 비린내의 원천이 되는 혈액을 몸 밖으로 방출시켜 선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가리켜 이케지메라고 부른다.

이러한 처리를 함으로서 물고기의 선도를 장기간에 걸쳐 유지할 수 있어, 냉장환경 하에서 천천히 자기소화를 촉진시켜, 근육을 분해하여 이노신산(inosinic acid)으로 변화시키는 숙성 등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물고기의 처리는 화학이네"


이케지메를 함으로서 조리 시간에서 역산(逆算)하여 방어의 유통을 계획할 필요가 있어, 그에 맞춰 얼음이나 톱밥 등을 준비할 양을 정하게 된다.

이케지메 뿐만이 아니라, 잡아올린 직후에 아가미와 내장을 떼어내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것은 바닷물에서 산소를 취하는 아가미에는 다양한 잡균이 달라붙어 있어 부패나 악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장은 기생충의 온상으로, 물고기가 죽으면 내장은 가장 먼저 부패하기 시작한다. 이 때, 기생충은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내장을 벗어나 근육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어, 내장을 제거하는 데는 선도를 유지하면서 기생충 리스크를 회피한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수고를 거쳐 겨우 노부나가의 입으로 들어가는 방어가 된다.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수고를 들이는 것은 노부나가가 겨울의 풍물시(風物詩)로서 방어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한 것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태평양 측에서 잡힌 방어를 먹었던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겨울 방어라면 더 지방이 올라서 맛있고, 이케지메를 하면 선도를 유지한 채로 오와리까지 운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것에 기인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노부나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겨울 방어를 맛볼 수 있게 하라고 시즈코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식사에 고집하지 않고 물에 만 밥(湯漬け)으로 만족하셨던 주상이 그립네……"


사정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네가 원인이잖아!"라고 큰 소리로 지적당할 불평은 겨울의 밤하늘로 빨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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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1 1575년 10월 중순



오와리(尾張)에 남은 아시미츠(足満)는, 기술자 마을에 존재하는 병기 공장(兵器廠)에 틀어박혀 있었다.

전선에서 파발마(早馬)로 전달된 박격포의 운용 데이터와, 파손 부위의 스케치를 바라보며 아시미츠는 신음하고 있었다.


"화포 자체가 미성숙한 지금이라면, 야포(野砲)와 박격포의 장점만을 취합한 병기가 통용될까 하여 개발했으나, 선인(先人)이 다져놓은 길을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병기는 그리 쉽게 완성되지 않는가……"


파손된 현물은 중량이 있기에 파발마로는 운반할 수 없어서 종이에 먹으로 그려진 부품 그림 뿐이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원인으로 고장이 발생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시미츠가 개발한 박격포는, 엄밀히는 박격포라 부를 수 없다. 박격포란 높은 사격각(射角)을 취하여 발사의 충격을 지면으로 흡수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어, 사정거리나 정밀도를 희생하는 대신 대단히 심플하고 가벼운 포이다.

그에 반해 사정거리나 명중 정밀도를 요구받은 화포가 야포나 캐논포라고 불리는 포가 된다. 장대한 포신과 견고한 지지대(支持架)를 필요로 하는 복잡하면서 중량급의 포이다.

박격포가 더 간소하고 더 경량이라 운반성(可搬性)이 우수한 방향성을 갖는 것에 비해, 야포나 캐논포는 더 멀리, 더 정확하게 포탄을 날리게 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전술한대로 박격포는 사정거리나 정밀도를 희생하여 심플한 발사구조를 실현했기에, 서로 상반되는 설계 사상을 갖게 되었다.

아시미츠는 시즈코가 태어난 시대로 흘러들어갔을 때, 도서관에 다니면서 화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긴 사정거리와 큰 위력을 가진 병기에 매료되어, 각각의 포의 구조와 이점이나 결점, 진화의 발자취를 머리에 쑤셔넣었다.

거기에, 화포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과도기의 지금이라면, 야포나 캐논포보다도 구조가 심플하면서, 순수한 박격포보다도 사정거리가 길고 정밀도가 높은 포가 만능병기로서 통용될 거라 생각했다.


"역시 격라식(隔螺式) 폐쇄기(閉鎖機)는 공정 정밀도상 어려운가"


격라식 폐쇄기란, 포신의 뒤쪽에서 포탄을 넣은 후, 나선형의 홈을 판 스크루를 끼우는 것으로 포를 폐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포탄이 발사될 때의 폭발에 의한 추진력을 포탄에 남김없이 전달할 수 있다.

폐쇄기 상부에 존재하는 핸들을 돌리는 것으로 뚜껑의 개폐 및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구조가 복잡해지고, 가동부가 많기 때문에 고장이 발생하기 쉬워졌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그곳에 문제가 발생하여, 핸들을 떼어낸 후에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식으로 운용했다고 했다.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사간격이 길어졌지만, 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기에 그대로 운용했다.

그리고 다음 문제가 드러났다. 그것은 포를 구성하는 소재의 강도 부족이었다. 반복되는 포격에 의한 열과 충격 때문에 서서히 포신에 비틀림이 발생하여, 이윽고 박격포 2문 중 한쪽의 포신에 균열이 생겨 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거기서 폭압이 새어나가고, 최악의 경우에는 포신이 폭발하여 대참사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포탄은 아직 남아있었으나 포격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숫자의 원리를 뒤집는 병기의 완성은 아직 멀었나. 시즈코가 궁지에 몰려서 그 포탄을 쓰지 않고 끝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아시미츠는 보고서를 한 손에 들고 기술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별(場所)한 장소에는 시즈코에게 건네준 것과 같은 형태의 포탄이 나무 상자에 든 상태로 안치되어 있었다.

나무 상자가 놓인 선반에 붙은 이름표에는 '백린탄(白燐弾)'이라고 적혀 있었다. 백린탄이란 현대에도 존재하는 연막탄의 일종이며, 봉입된 백린이 대기중에서 연소하면 습기를 흡수하여 시인성(視認性)을 저해하는 대단히 투과성이 나쁜 연막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아시미츠가 시즈코의 몸을 지킬 최종 수단으로 맡긴 무기가 그냥 연막일 리가 없다. 아시미츠가 준비한 백린탄에는 소이(焼夷) 효과가 부여되어 있었다.

연소중의 백린이 불꽃 입자가 되어 쏟아져내려, 연막을 무시하고 시즈코를 추격하려 한 자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화상을 입힌다. 달라붙은 백린 자체가 화학적으로 연소하기 때문에 쉽게 불을 끌 수 없어, 노출된 피부 등에 닿을 경우 몸이 불타는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시야를 차단하면서 추격도 저지하기 때문에, 도망친 방향조차 파악하게 하지 못하는, 철수시에는 대단히 유효한 병기이지만,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서는 아군까지 파멸로 몰아넣기 때문에 도망칠 때 밖에 쓸 수 없는 운용이 어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타케다(武田) 영토로 침공해 들어간 노부타다는, 때 아닌 태풍에 직격당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전공을 목표로 조급해하는 부하들을 제대로 억누르지 못하고 시야를 차단하는 것조차 없는 평야부에 진을 쳤기 때문에 피해가 확대되었다.

격렬한 비바람에 노출되어, 잡병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인솔하는 장병들조차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에, 노부타다의 주위에는 호위대(馬廻衆) 등 최저한의 측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전날의 혈기왕성하게 진격을 주장하던 작전회의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참담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칠게 날뛰는 대자연의 맹위 앞에 박살이 난 노부타다는, 예전에 시즈코가 말했던 "싸움에 이기고 있을 때일 수록 사소한 실책이 군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


한편, 타케다 측에서는 카츠요리(勝頼)가 갈등하고 있었다. 정찰로부터 보고를 받고 노부타다의 본대가 태풍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걸 호기로 보아 추격대를 내보낼지 망설이고 있었다.

호우(豪雨)에 의해 대지는 진흙탕으로 변해 있어, 타케다가 자랑하는 기마대의 기동력은 죽어버린다. 게다가 무적이라고 불리웠던 신겐(信玄)조차 쳐부순 시즈코 군의 존재가 있었다.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도깨비 상자 같은 존재이며, 타카텐진 성(高天神城)에서의 전투에서는 하늘에서 죽음의 돌덩이를 쏟아붓는다는 요술같은 수법으로 우군인 호죠(北条) 군을 괴멸로 몰아넣었다.

노부타다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이면서, 치명적인 역습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여 추격의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카츠요리는 오다를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타케다 가문의 태세를 재정비할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오다에 대해 타케다는 얕볼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할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그 때 타이밍 좋게 호죠로부터 공투(共闘)의 제안이 있었다. 만약 신겐이 살아있었다면 원군을 의지하지 않고, 호죠의 제안의 뒷면에 존재하는 노림수까지 꿰뚫어보고 응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타케다 가문 내부에서 고립되어 궁지에 몰려 있던 카츠요리는, 영주(国人)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아서 정치적인 시야가 부족한 점도 있어, 호죠의 감언(甘言)에 달려들어 버렸다.

그리고 일단 뚜껑을 열어보니, 타카텐진 성에서의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대패. 호죠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었던 간에 도저히 수지가 맞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래도 노부타다의 목을 취하면 본전은 찾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절호의 기회인데, 카츠요리는 좋지 않은 예감을 떨치지 못해 주저하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자국 영토에 있는 타카토오 성(高遠城)으로 철수했으나, 호죠는 달랐다. 카츠요리를 부추겨 싸움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게 일방적으로 박살나서 간과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무엇하나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서는 설령 말석이라 할지라도 오다 가문에 관계되는 무장의 수급(首級)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태풍이 밀어닥쳤다.

다행히 철수하던 길에 있던 절에 몸을 맡겨 태풍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때 노부타다 군의 본진이 태풍으로 괴멸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눈 앞에 대장의 목이라는 대박(金星)이 대롱거리게 되자, 호죠 군은 급거 군을 재편성하여 노부타다 군의 본진터에 습격을 가했다. 아무리 큰 추태를 연출하였더라도, 차기 오다 가문 당주의 목을 딴다면 메꾸고도 남는다.

그러나, 애초에 패주중이었기에 사기도 낮고, 속력 우선으로 부상자를 운반하는 짐수레를 끄는 말까지 기마로 삼아 억지스런 편성을 했기에, 오합지졸에 뒤죽박죽인 부대가 탄생했다.


한편, 노부타다 군의 본진터에는 이미 나가요시(長可)와 케이지(慶次)가 도착하여 본진의 재편을 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의 협력도 있어, 토사(土砂)가 무너져 통행이 불가능해진 길을 피해 뒷길(裏道)을 지나서 일찌감치 합류할 수 있었다.

시즈코의 허가를 받지 않고 출진했기에 많은 물자는 가지고 올 수 없었고, 병력(手勢)도 소수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과병(寡兵)이라 해도, 평소부터 나가요시의 무지막지한 행군에 따라가는 일기당천의 강자(猛者)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약간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지참한 양식이나 의약품에 의해 노부타다 군의 본진도 다소 진정되고 있었다. 그곳에 호죠 군 잔당이 진흙탕을 헤집으며 대열을 길게 늘인 상태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시즈코 군 제식 채용의 원안경(遠眼鏡, ※역주: 망원경)으로 한발 빨리 그것을 발견한 나가요시 군은, 꼼꼼히 준비를 갖추고 매복을 걸었다. 신식총(新式銃)은 숫자가 제한되어 있기에, 노획(전장에서 적으로부터 탈취하는 것)한 화승총(火縄銃)까지 사용하여 일제 사격으로 기습했다.

사정거리도 명중 정밀도도 다른 무기를 사용한 사격 따위 초장에 한 번 밖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가요시 군은,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들을 남겨놓은 채 화승총을 던져버리고 돌격했다.


"으랏차아아!!"


나가요시가 애용하는 모닝스타가 기마의 다리를 분쇄했다. 진흙탕에 발이 묶여 속도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갑주를 입은 상태에서 낙마한 무장의 운명은 밟혀죽을 수밖에 없다.

운나쁘게 머리부터 떨어진 무장은 목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인 무참한 시체로 변했다. 총격을 받고 발이 멈췄을 때 옆에서 공격받은 호죠 군은 군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렸다가 긴 무기(長物)를 들고 소부대로 공격해오는 나가요시군에 대해, 연대를 잃은 개인들에 불과한 호죠 군에게 승산은 없었다.


"휘익ー! 여전히 엄청난 기세구만. 자, 이쪽도 질 수 없지"


나가요시 군의 돌파력에 휘파람을 분 케이지는, 호죠 군이 재편하고 있던 창 부대의 후방에서 기습을 걸었다. 설령 연대가 되지 않는 잡병이라도, 창을 들려놓고 충분한 숫자를 모으면 적의 돌격을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기습을 받아 한창 혼란에 빠진 와중에 그래도 창 부대를 재편한 호죠 군의 지휘관은 우수했으나, 케이지의 책략은 그를 뛰어넘었다.

기마 뿐만 아니라 보병을 수반하고 있던 것을 볼 때 혼란이 가라앉으면 태세를 재정비할 거라 읽은 케이지는, 수풀에 몸을 숨기고 등 뒤로 돌아가, 그야말로 나가요시 군에게 반격하려고 하던 딱 그 때에 덮쳐갔다.


기습에 이은 기습을 받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말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무장이 갑자기 낙마했다. 뒤늦게 울려퍼진 메마른 총성이 그가 총격을 받은 것을 알려주었다.

발이 멎어 멍하니 선 기병 따위,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의 적은 아니었다. 보병의 방어를 넘어 말 위의 무장을 차례차례 쏘아 떨어뜨렸다.

호죠 군의 대열이 길게 늘어진 것도 좋지 않게 작용하여, 전력의 축차(漸次) 투입이라는 추태를 초래했다.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무장들을 가엾게 생각했으나, 케이지가 사정을 봐 주는 일은 없었다.


"이쪽은 나설 차례가 없어서 한가했거든. 여긴 한바탕 화려하게 가보실까!"


말과 함게 케이지가 들고 있던 할버드가 번쩍했다. 발밑이 불안정했기에 크게 내딛지 못하고 다리에 힘을 준 상태에서의 횡베기였으나, 잡병의 목 세 개가 허공을 날았다.


"좋았어! 한번 더!"


경쾌한 고함 소리와 함께 기세를 죽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빙글 회전한 케이지가, 이번에는 한 발 내딛으며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이번에는 목이 아니라, 할버드의 회전반경 안에 존재했던 잡병들이 열 명 정도 맞아 쓰러졌다.

긴 무기의 원심력과 중량이 있는 도끼가 뿜어내는 참격은 잡병들의 갑주를 박살내고 절명시켰다. 그 참상을 목격한 잡병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도망쳤다.


"도망치지 마라! 나랑 싸우라고!!"


적이 도망쳤다고 해서 곱게 보내줄 나가요시 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치는 적들의 등 뒤로 따라붙어 칼로 베어넘기고, 주운 창으로 찌르고, 창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도망친 적에게는 돌을 던져 공격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단말마(断末魔)의 외침 소리가 울려퍼지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토우고쿠(東国) 녀석들은 철포(鉄砲)가 없는거냐? 이래서는 상대가 안 되잖아!!"


아무리 나가요시가 강하다고 해도, 철포 앞에서는 똑같이 목숨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토우고쿠에 철포나 화약이 흘러가지 않도록 조이고 있었기에, 토우고쿠의 철포 보유수 그 자체가 적었던 것이다.

당연히 호죠 군도 철포는 보유하고 있지만, 기병을 주체로 한 기습을 할 생각이었기에 거의 가져오지 않았고, 거기에 혼란의 한복판에서 화승(火縄)이 젖어버려 발포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히익! 악마(鬼)다! 지옥문이 열렸다ー!!!"


호죠 군의 아시가루(足軽)가 비통하게 외쳤다. 그의 눈에는 뒤집어쓴 피로 새빨갛게 물든 채 본 적도 없는 무기를 휘둘러 차례차례 아군을 때려죽이고 다니는 나가요시가 지옥의 옥졸(獄卒)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우. 속은 시원해졌는데, 냄새가 장난 아니군"


주위에서 비명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가요시는 품에서 수건(手拭い)을 꺼내 피투성이 얼굴을 닦았다.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었던 것도 있어, 피화장(血化粧)이 닦여나가자 상쾌한 미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애초에 숫자에서 밀리기 떄문에 나가요시 군은 이 이상의 추격을 중단하고 케이지들과 합류하여 노부타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수, 수고하였다. 그…… 다치지는 않았느냐?"


전신에 적의 피나 육편(肉片), 내장 조각(臓物)이 달라붙은 상태인 나가요시는 속이 뒤집힐 듯한 피냄새를 풍기고 있어 도저히 무사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 전투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상태인 케이지는 나가요시가 부상을 입었다는 생각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다.


"문제없습니다. 있는 대로 흩어버렸기에 금방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디만, 이곳은 적지의 한복판. 오래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지나온 뒷길로 안내해드리겠으니, 시즈코가 기다리는 중계지까지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그렇구나. 알겠다, 다들 부피가 큰 짐은 버려도 상관없다. 철수한다!"


승전에서 일전(一転)하여 패주하는 것에 노부타다가 난색을 표할 거라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솔직하게 철수를 받아들여준 것에 케이지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독단전횡도 노부타다의 목숨을 지켜냈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며, 본래는 징벌을 받아야 할 행동으로, 자칫하면 모반이라고 단정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대체 뭘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노부타다가 목숨을 잃을 거라고 주장하며 케이지를 설득하여 억지로 출진한 나가요시도 안도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케이지를 선두에 세우고, 중간쯤에 노부타다를 배치하고, 후위(殿)는 나가요시가 맡는다는 대열로 물자 집적 거점을 향했다. 노부타다는 나가요시에게 협력한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도중에 지나친 마을들에서 호죠 군에게서 빼앗은 금품을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오다 군의 편을 들면 이익이 있다는 것이 되니 다음에 왔을 때의 협력을 얻기 쉬워진다. 게다가 설령 타케다 군이나 호죠 군이 추격대를 보냈다 하더라도, 도중의 마을들의 사정이 좋다면 그들은 그쪽에 시선을 빼앗겨 추격이 느슨해질지도 모른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아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추가적인 국력의 약체화를 초래하게 된다. 일석이조의 책략이지만,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싹은 트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음으로 이어지는 투자로 삼기 위해, 노부타다는 사비(身銭)를 들여서라도 타케다 영토의 영민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며(施し) 철수해갔다.


다행히 타케다, 호죠 양측의 추격을 받는 일 없이 노부타다는 시즈코가 기다리는 중계기지에 도착했다.

노부타다는 철수를 결정했을 때 우군인 도쿠가와 군에게도 연락을 보내어, 시즈코 군, 타키카와(徳川) 군과 함께 도쿠가와 군도 합류해 있었다.


"이번에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한 명의 탈락자도 내지 않으신 도쿠가와 님과의 차이를 절감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젊으신 당신께서 나이든 저와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으시면 연장자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궁지에 몰렸음에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해야 할 것, 타케다를 쫓아내고 뼈아픈 일격을 안겨준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지요"


"각별하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은 일단 오와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세세한 전후 처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드리지요"


이에야스(家康)로서는 자국 영토를 침공한 타케다-호죠 연합군을 쫓아낸데다, 역으로 얼마간의 타케다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노부타다 군은 큰 피해를 입은 모양이지만, 자신의 군에는 피해랄 만한 것은 전무했다. 대단히 좋은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에야스의 예상으로는, 이번의 실패를 발판삼아 노부타다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다음에 토우고쿠 정벌이 일어날 때는, 이번의 반성도 검토하여 만반의 상태로 임하여 반드시 타케다를 타도해 보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군인 동안에는 든든하지만, 자신이 천하를 노린다면 반드시 눈 앞을 가로막을 강적이 될 편린(片鱗)을 느끼고 있었다.


노부타다와 시즈코는 이에야스와 헤어진 후 오와리로 돌아갔다. 시즈코는 오와리에서 전후처리를 하고, 노부타다는 한 발 먼저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아즈치(安土)로 떠나갔다.

시즈코 자신도 노부나가에 대한 보고 의무가 있지만, 노부타다가 먼저 보고하고 다음에 시즈코가 보고한다는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노부타다의 체면을 뭉개게 되어 버린다.

신속한 정보전달이 요구될 정도로 정치가 얽혀 있는 상태라, 체면을 중시한다는 건 귀찮네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자신의 군을 해산시켰다.


(태풍의 도래는 예상 밖이었지만, 주상(上様)의 과제는 해결된 걸까)


노부타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人事)을 모두 하여 급제점 이상의 운용을 해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아군의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한 그의 편을 들지 않았다.

하늘이 그에게 미소짓는 시기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어쩔 방법이 없는 불합리한 실패도 일어날 수 있어. 스스로가 뼈아픈 실패를 하지 않는 한 배울 수 없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 어떤 의미에서 하늘은 나에게 미소지은 걸까?)


노부나가가 노부타다에게 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패배를 연출하려고 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패배를 모르는 대장은 우세할 때는 듬직하지만, 한 번 열세에 몰리면 버티지 못한다. 패배가 소리없이 다가오는 기색을 자신의 피부로 느끼고 패배의 기척에 민감해지지 않으면 언젠가 발목을 잡힌다.

이것만큼은 누구도 가르칠 방법이 없고 스스로가 패배 속에서 배울 수밖에 없기에, 위험을 각오하고 자신의 자식을 천길 낭떠러지(千尋の谷)로 떨어뜨리는 것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이 패배는 노부타다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다. 자신들의 세력(手勢)을 잃은 아군(身内)으로부터 규탄을 받거나, 대외적으로 전쟁을 잘 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부나가는 그 역경(苦境) 속에서 노부타다가 다시 일어설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혼자서는 어렵더라도, 곁에 있는 듬직한 선도역(先導役)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키묘(奇妙)님이 연서(恋文)라니 말야"


시즈코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고 표정이 풀어졌다. 노부타다가 토우고쿠 정벌에 의욕적으로 착수하고 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보통 이상으로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 얕보이지 않도록, 자신이야말로 다음 대의 오다 가문을 짊어질 존재라고 어필하려고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니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속된(下世話) 말이지만 남자가 의욕을 쥐어짤 때, 그 그늘에는 여자의 존재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시즈코는 역녀(歴女)의 교양으로서 노부타다에 관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여자를 위해 분발하는 것도 남자의 주변머리(甲斐性)라고 생각하여 지켜보고 있었다. 패전을 거쳐 오와리로 귀환하던 도중, 물어보려면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노부타다에게 물어보았다.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타케다에 고집한 이유는, 혹시 마츠히메(松姫)일까?"


그 순간, 노부타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주위를 굳히고 있는 호위들과는 거리가 있어, 그의 이변을 눈치챈 것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시즈코 뿐이었으리라.

마츠히메란, 지금은 세상에 없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6녀로, 에이로쿠(永禄) 12년(1569년)에 노부타다 11세, 마츠히메 7세에 약혼했다.

그러나, 신겐의 서상작전(西上作戦)에 의해 이 약혼은 파기되게 된다. 전국시대의 약혼은 현대의 그것돠는 달리 결혼과 거의 같은 의미로, 약혼한 시점에서 처는 남편에 대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약혼이 파기된 후에도 마츠히메는 노부타다에게 마음을 바쳐, 비밀리에 서신을 교환하며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마츠히메에게는 약혼 파기 후에 몇 번인가 혼담(縁談)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결코 고개를 세로젓지 않았다.

당시의 여성은 정치의 도구이며, 적이 된 노부타다에게 정조를 지켜 혼담을 계속 거절하는 마츠히메가 받는 대우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편지를 통해 그 상황을 알고 있던 노부타다는 그녀를 구출하려고 분발했었던 것이다.


"시즈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느냐?"


"누구라니, 편지를 전달하는 간자들의 총 책임자(元締め)는 나거든? 편지는 주상께서 검열하시고, 나는 내용까진 보진 않지만 어디로 전달되는 지는 알고 있거든요?"


노부타다는 말 위에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몸부림쳤다. 평소에 짐짓 여자에게는 관심없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여왔던 누나에게 자신이 직접 쓴 러브레터를 들킨 심경이라고 하면 그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노부타다는 한결같이 자신을 사모해주는 마츠히메에게 끌리게 되어, 언제부터인지 그도 그녀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약혼이 파기되고 서로가 적과 아군의 진영으로 갈린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마츠히메가 놓인 상황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구출할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합이 들어가지 않는 남자는 없으리라.


"아, 아니다 시즈코.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차기 오다 가문 당주인 이 내가, 겨우 여자 한 명에게 그렇게 공사혼동적인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


"딱히 나는 마츠히메도 이유였을까라고 물어본 것 뿐이지, 그게 주 요인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그야말로 자기 무덤을 판(語るに落ちる) 격으로, 노부타다는 다시 얼굴을 감싸고 말 위에 엎드렸다.


"괜찮지 않아?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분발할 수 있는 남자애는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틀리…… 지 않다. 이제 됐다. 그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알았어. 하지만, 의외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는데"


"잠!! 잠깐 기다려라 시즈코! 그, 그건 누구냐? 말해라ー!!"


노부타다가 평정심을 잃고 외쳤으나, 시즈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린 채 흘려들었다. 주위를 굳히고 있는 호위대(馬廻衆)도 늘 있는 일이라고 흐뭇하게 지켜볼 뿐 두 사람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고로 노부타다를 궁지에서 구출해낸다는 초대박(大金星)을 터뜨린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행위에 대해서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큰 공인 반면, 군대라는 강기숙정(綱紀粛正)을 제일로 여기는 조직에서는 중대한 위반도 범한 것이다.

그들은 직속 상사인 시즈코에게 무단으로 군을 움직이고, 거기에 극비 취급인 신식총(新式銃)이나 총탄까지 반출하여 사용했다. 이것은 현대 일본에 비유한다면, 자위대(自衛隊)가 최고 지휘감독자인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의 허가를 받지 않고 멋대로 출격하여 타국과 전투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인 폭거(暴挙)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노부타다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은 높아서, 대외적으로는 나가요시와 케이지는 출진하지 않았고 노부타다는 혼자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 도망쳤다는 것이 되었다.

물론 그들의 목숨을 건 행동에 대한 보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그들을 따른 부하들에 대해서는 딱히 처벌받거나 하지 않고, 정당한 군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수가 지불된다.

한편, 그들을 이끈 두 사람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징벌이 주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만한 짓을 해버리면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그들을 감쌀 수 없다.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두 사람에게는 명예도 보수도 없고, 노부타다의 개인적인 인상이 좋아진 것이 유일한 보수이리라. 그들에게 주어진 징벌은, 견책(譴責) 처분(실패나 부정을 엄하게 질책하는 것)이 되어 군법위반자(軍規違反者)로 기록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봉급도 깎이고, 휴가나 자유재량권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제한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군이 단독으로 행동했으니까 내부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설령 같은 오다 군이라도 다른 조직과 합동으로 작전행동을 하고 있는 도중에 독단전횡을 저질렀다간 최악의 경우 모반이라고 판단되어 사형에 처해질테니 주의해줘요. 행동의 발단이 카츠조(勝蔵) 군 개인의 감이었다고 해도, 상담을 하면 무시하지는 않을거라 약속할테니 두 번 다시 하지 말 것. 대외적으로는 '없었던 일'이 되어 있으니, 이 건에 관해서는 관계자 전원에게 함구령(箝口令,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겠어요"


시즈코는 관계자 전원을 모아놓고 부하들의 면전에서 두 사람에게 처벌을 이야기했다. 부하의 눈 앞에서 견책을 받는 것은 두 사람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두 사람 다 시즈코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달게 처분을 받아들였다.

나가요시의 감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이유로 군을 움직이게 되면 시즈코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시즈코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고 생각한 끝에 한 행동이지만, 역으로 시즈코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오와리로 돌아가는 길에서 두 사람은 말에 타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영창(営倉)을 대신하는 짐수레에 처박히게 되는 근신처분에 대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가 군을 해산시키고 저택으로 돌아가자, 아야(彩)를 필두로 쇼우(蕭), 시로쿠(四六), 우츠와(器) 등 시즈코와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시즈코를 마중했다. 파발을 통해 싸움에 졌다는 것은 전해졌고 시즈코가 무사한 것도 전해졌을 테지만,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의사와 의약품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과보호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면서 겨우 자신의 집에 돌아왔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다녀왔어, 다들 마중나와줘서 고마워. 아ー, 졌다 졌어. 이만한 대패는 우사 산성(宇佐山城) 이래 처음이려나? 나중에 주상께 꾸중을 듣겠지만, 우선은 목욕을 하고 싶네. 준비해 줄 수 있겠어?"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바로라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싸움 후에도, 밭일 후에도 일을 마친 후에는 우선 목욕이라고 말했었기 떄문인지 입욕 준비는 갖춰져 있었다. 아야를 필두로 시녀들의 손을 빌려 시즈코는 전쟁용 복장(いくさ装束)을 벗고 다급하게 목욕탕으로 향했다.

재빠르게 몸을 씻은 후, 약간 뜨거운 욕조에 어깨까지 푹 담갔다.


"끄아아…… 후우…… 천연 온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 권리(役得)만큼은 포기할 수 없네"


서서히 올라오는 열기에 떠밀리듯 입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시즈코는 온천을 만끽했다. 넓은 욕조에서 팔다리를 쭉 뻗고 크게 기지개를 켜자 마치 전신에 뭉쳐 있던 피로가 욕조에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극락같은 기분에 자기도 모르게 잠들 뻔 했으나, 간신히 버티면서 평소보다 긴 목욕을 즐겼다. 딱 좋게 달궈진 피부에 시원하게 바깥공기를 쬔 후, 옷을 갈아입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시즈코의 방을 아지트로 삼고 있던 비트만이나 설표인 윳키와 시로쵸고와 함께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y)라는 건 정말 효과적이네. 이 시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주인의 귀환에 대한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해주는 비트만들의 환영을 받으며 타케다-호죠 연합군과의 싸움도 과거의 일이 되어갔다.


"결국,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둥지를 튼 친(親) 호죠 파는 봉기하지 않았네. 타카텐진 성에서의 압승을 듣고 시기를 미룬 것 뿐일까?"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궐기(決起)에 호응하여 뭔가 행동을 일으킬거라 생각되었던 친 호죠 파는 기분나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본래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싸움이 장기화되어,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로부터의 원군 요청에 응하여 출진하여 자리를 비웠을 때 행동할 셈이었으리라.

그들의 예상으로는 타카텐진 성은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손에 떨어져, 적어도 농성전으로 싸움이 장기화될 거라 내다보았던 것이리라.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격전(電撃戦)으로 결판이 나버려서 원군 요청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켄신이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튼 짓은 할 수 없어서 면종복배(面従腹背)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마각(馬脚)을 드러내 주면 편했을텐데…… 어느 쪽이든, 이번 일로 호죠는 곤경에 처하게 되겠네"


호죠가 당당하게 적대하여 정면에서 싸웠다면 노부나가에게도 일고(一考)의 여지가 있었으리라. 설령 패배하여 오다에게 항복하게 되더라도 호죠 가문의 존속이 허락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고식(姑息)적으로 허점을 찔러, 중립을 가장하면서 기습을 가하는 듯한 짓은 노부나가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이후, 호죠 가문의 태도는 신뢰할 수 없다고 하여 가문 단절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생각으로 호죠는 거병하였는가?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수지가 맞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폭거에 시즈코의 사고는 출구 없는 미로에 빠져들었다.


"정보가 부족하네. 생각하는 걸 관두자"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깨닫고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훌륭해"


시즈코는 전달된 칼을 손에 들고 빛에 비추어보며 황홀하게 중얼거렸다. 뺨을 상기시키고 황홀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어, 다른 사람이 보면 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듯 했으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람잡는 칼(人斬り包丁), 즉 일본도(日本刀).

명백히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으로 보였으나, 시즈코의 도검 수집벽은 주지의 사실이 되어 있어 그걸 입 밖으로 내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즈코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옛날 칼(古刀)이 아니라, 예전부터 의뢰해서 드디어 완성된 도검이었다.

그것도, 제조방법이 전국시대의 것이 아니라, 일부러 카마쿠라(鎌倉) 시대의 수법으로 제련된 물건이었다.

현대에서는 실전되어 버린 기술이지만, 도검수집의 과정에서 기술을 전하는 일족이 발견되었기에 시즈코가 일족의 보호와 맞바꾸어 의뢰한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린 그 칼이 드디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시즈코가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 자리를 비웠던 동안 도착한 편지들을 처리할까"


실컷 감상하여 만족한 후, 시즈코는 칼을 칼집에 넣어 사슴 뿔로 만든 칼걸이(刀掛け)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흥분의 여운을 흩어버리고, 귀가한 이래 결재를 보류하여 제끼고 있던 서류에 손을 댔다.

우선순위가 높은 쪽부터 위로 가도록 쌓여진 서류를 파라락 넘기면서 그 분량을 보고 진절머리가 났다. 게다가, 가득 쌓인 서류를 기합으로 처리하고,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아즈치로 갔다가 다시 오와리로 돌아왔을 때 똑같은 분량이 쌓여있다는 미래를 그녀는 아직 모른다.


"가을은 수확 관계도 있어서 이것저것 판단할 것들이 많네"


서류의 태반은 보고였으며, 결재할 것은 그리 많지는 않다. 보고서는 대충 훑어보는 정도였으나, 그 중 한 장에 시즈코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호오! 운석(隕石)과 운철(隕鉄), 양쪽 다 손에 들어왔구나"


시즈코가 말하는 운철이란 현대에서의 '시라하기 운철(白萩隕鉄) 1호'이다. 1890년에 토야마 현(富山県) 카미이치가와(上市川) 상류에서 절임용 누름돌(漬物石, ※역주: 절임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서 쓸데없는 수분을 빼기 위해 절임통 뚜껑 위에 올려놓는 무거운 돌)를 찾고 있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철운석(鉄隕石)은 크기에 비해 대단히 무겁기에 절임용 돌로 적합하다)). 또, 그 발견으로부터 2년 후에 같은 지역에서 '시라하기 운철 2호'가 발견되었다.

시즈코가 운철의 장소를 알고 있었던 이유는, 이 운철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장도(長刀) 두 자루에 단도(短刀) 두 자루인 유성도(流星刀)의 일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서 메이지(明治) 시대에 에노모토 타케아키(榎本武揚)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운철로 만든 칼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시대의 흐름(時勢)도 시즈코를 도왔다.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것을 계기로, 켄신에게 허가를 받아 운석 수색을 개시했다. 그것이 드디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운석은 1885년에 타나카미 산(田上山)에서 한 백성(百姓)이 우연히 발견한 일본 최대의 운석이다. 타나카미 운석이라고도 불리며, 이쪽도 철운석이라 그 중량은 무려 173.9kg나 나갔다.

시즈코가 있던 시대에서는 도쿄의 국립과학박물관의 입구 저면에 전시되어 있던 물건인데, 시즈코가 이걸 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늘로부터 날아온 것이라, 운을 따지는(縁起を担ぐ) 일이 많은 무가(武家)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즈코 자신의 수집욕도 작지 않은 이유였으나, 노부나가 자신은 운을 따지지 않더라도 부하들에게 상으로 내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무상으로 헌상할 생각 따윈 전혀 없어, 그의 비장의 도검 등과 교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 당사자의 내심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냥 돌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안심해, 나도 모르겠다"


시즈코의 양자인 시로쿠는 시즈코가 득의만면한 미소와 함께 이 운석을 보여줬을 때, 곤혹스러워하며 그렇게 말했다. 시로쿠의 옆에서 시즈코의 설명(講釈)을 듣고 있던 케이지도 상쾌한 미소를 떠올리며 동의했다.

큰 돈을 내고 한 아름도 더 되는 바위 덩어리를 사들였다고 들었을 때는 시즈코가 제정신인지 의심했다. 확실히 같은 크기의 돌에 비하면 무겁지만, 그렇다고 그게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 사물의 핵심을 이해하는(粋を理解する, ※역주: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음) 케이지로서도 수상쩍은 물건이었다.


"마에다(前田)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뭐, 시즛치의 말처럼 절임용 누름돌로는 좋아 보이지만, 그 이외에는 모르겠어. 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잖아. 시즛치가 기뻐하는 것 같으니 돈을 낸 가치는 있었다는 거지"


"그런 건가요……"


이전과는 달리 묘하게 시즈코를 의식하고 있구만이라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부모가 큰 인물(大人物)이라면 자식은 위축되거나 반발하는 법인데, 시로쿠의 모습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왜 그래?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시즈코 님께서 저희들에게 애정을 주고 계신다는 건 주위 분들의 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잘 실감이 나지 않달까요,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츠와는 느끼는 건지 완전히 시즈코 님께 마음을 열고 시즈코 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시즈코 님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걸까 생각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와하하핫!"


시로쿠가 시즈코를 신경쓰고 있는 이유를 알고 케이지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시로쿠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져서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웃으시는 건 너무합니다!"


"미안미안, 네가 웃겼던 게 아니야. 좀 예상외의 사실에 기뻐져서 말이지. 뭐, 방향성이 틀렸지만 말야"


시로쿠의 항의에 케이지는 솔직히 사과했다. 담뱃대(煙管)를 재떨이(煙草盆)에 두들겨 재를 떨어뜨린 후 케이지는 다시 담배를 채우며 말을 이었다.


"애정 같은 건 이해하는 게 아니야. 배아파서 낳았으니 자식을 사랑하는 걸까?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자기 자식을 버리는 부모 따위 썩어날 정도로 많아. 너는 어설프게 머리가 돌아가다보니 쓸데없는 걸 생각하는 거야. 시즛치를 믿고 본심으로 부딪히면 되는 거라고"


만약 자신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케이지는 말을 이었다.


"쑥스러움(恥)도 남의 눈치(外聞)도 걷어차버리고, 거절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말고 시즛치에게 안기고 와. 사람의 체온이라는 건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애정을 전해주거든?"


"네……"


일단 대답은 했으나,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일 뿐 전혀 행동하려고 하지 않는 시로쿠의 등을 케이지가 떠밀었다.


"야야, 어머니에게 어리광부리는 건 어린애의 특권이거든? 뭘 주저할 필요가 있어. 얼마 안 가서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된다고.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다, 하고 후회하는 쪽이 좋아. 시즛치가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잘 안되면 내가 좋은 곳에 데려가 줄게"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는 말이 막혔다. 시로쿠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 케이지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정했으면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얼른 갔다와. 지금이라면 시즛치도 바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케이지는 시로쿠를 억지로 일으켜세워 등을 떠밀어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돌아보자, 케이지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각오를 굳힐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시로쿠는 머뭇거리며 걸어갔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간신히 그 말만 하고, 고민이 해결되어 상쾌한 기분이 든 시로쿠는 기합을 넣고 시즈코의 방으로 갔다.


그 후, 시즈코의 방까지 간 건 좋은데, 중요할 때 말이 나오지 않아 풀이 죽은 채 돌아온 시로쿠를, 케이지가 위로해준다며 홍등가(色街)로 데려가려고 한 것을 아야가 발견하고(見咎め) 벼락을 떨어뜨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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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0 1575년 9월 중순



타카텐진 성(高天神城)을 둘러싸고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과 타케다(武田)-호죠(北条) 연합군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하룻밤이 지났다.

동쪽 하늘이 겨우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어스레한 무렵, 승려 차림의 인물이 홀로 타케다의 본진을 방문하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군을 물려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설마 그대가 사자(軍使)로 올 줄은 몰랐다, 무토우(武藤)…… 아니, 지금은 사나다(真田)인가. 돌아가서 그대의 주인에게 전해라. 토우고쿠(東国)에 오다와 타케다는 함께 설 수 없노라고. 지금이야말로 자웅을 가릴 때이다!"


사자로서 타케다 본진에 안내된 것은, 카츠요리(勝頼)가 말했듯이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 그 사람이었다. 원래는 타케다 가문을 섬기던 몸이라, 카츠요리 본인은 물론이고 많은 인물과 면식이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타케다 가문에서 볼 때는 주군 가문(主家)을 배신하고 오다로 변절한 배신자이며, 이렇게 본진에 도착하기 전에 살해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써가면서까지 마사유키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으로부터의 항복 권고이며, 철수한다면 추격은 하지 않겠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로부터의 서신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마사유키, 원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예전의 은혜에 보답할 최후의 봉사(御奉公)로서 사자를 지원했습니다만, 뜻을 바꾸지는 못하는 겁니까……"


"끈질기구나! 그대의 각오는 확실히 받았다. 그래도 굽힐 수 없다! 굽힐 수는 없는 것이다"


옛 주종(主従)에 의한 정전(停戦) 교섭은 결렬되었다. 마사유키가 자욱한 아침 안개 속에서 적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전송하고, 태양이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을 무렵, 양군은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쌍방의 진에서 성대하게 진태고(陣太鼓)가 울려퍼지고,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앞서 타케다-호죠 군이 진군을 개시했다. 한편,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밀집진형을 형성하고는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양군의 거리가 좁아짐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어, 양군이 서로의 진용을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한 그 때, 천둥번개(雷鳴)와 같은 굉음과 함께 타카텐진 성이 불을 뿜었다.

엄청난 작렬음과 함께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후방에 포진하고 있던 호죠 군에 불타는 죽음의 돌덩어리들이 쏟아져내렸다.

호죠 군 상공에서 작렬한 그것은, 철의 회오리바람으로 변하여 지상의 병사들을 휩쓸었다.

도쿠가와 군에 오다 군이 합류한 것으로, 타케다-호죠 연합군은 사정거리가 긴 신형총(新型銃)을 경계하면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전투에서 알게 된 신형총의 사정거리를 비웃는 듯한 거리였음에도 공격을 받았다.

게다가 단 한번의 공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명이, 어쩌면 백 명에 달할 지도 모르는 병사들이 죽고 다친다는 악몽의 광경이 펼쳐져, 장병들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적진 상공에서 작렬을 확인. 저점(狙点) 수정 필요성 있음, 거리 계측을 부탁함"


"방위각 수정 동쪽으로 3도, 거리 수정 전방 2백 미터"


적진에서 대혼란이 발생하고 있던 때, 타카텐진 성의 세번째 성곽(三の丸)에서는 철야로 보강이 더해지고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예전의 망루(物見櫓)에 시즈코 군의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다.

누각의 중앙에는 소형의 대포 같은 것이 2문 놓여져 바퀴막이(車輪止め)로 고정되어 있었다. 뭣보다 특징적인 것은, 망루의 좌우에서 돌출된 금속제 부품.

태양빛을 반사하며 불길하게 빛나는 이형(異形)의 물체.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형용하자면, 망루에서 수평으로 돌출된 게의 눈알처럼 보였다.


"아시미츠(足満) 아저씨의 비밀병기, '게안경(カニ眼鏡)', 즉 측거기(測距儀, 시차(視差)를 이용한 삼각측량(三角測量)을 하는 기계)는 문제없이 운용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쪽은 문제없습니다만, 박격포(迫撃砲)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쪽으로 운반하기 전의 시험 사격과, 아까의 제 1사에서 개폐기구(開閉機構)에 비틀림이 발생했습니다"


"으ー음, 실전 투입은 역시 아직 이르네요. 아시미츠 아저씨가 꼭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왓는데, 내구성에 문제가 있네요"


시즈코는 망루에서 떨어진 지상의 진에서 기술자의 조수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곧 경고 종소리가 울리고, 잠시 간격을 둔 후, 다시 굉음이 울려퍼졌다.

즉시 망루에 붉은 색의 손깃발이 올라갔다. 이것은 명중 표시이며, 보고하고 있던 조소는 인사를 하고 시즈코의 앞에서 물러나와 전성관(伝声管, ※목소리를 전달하는 관)에 달라붙었다.

전성관의 뚜껑을 열고 귀를 기울여 망루 위쪽에서 전달되는 내용을 메모하여 다시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서 보고했다.


"거리, 방위각 모두 양호. 포가 망가질 때까지 효력사(効力射)를 계속하겠다고 합니다"


"알겠어요. 포신(砲身)이나 개폐장치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으면 포격은 중지해 줘요. 아시미츠 아저씨가 만일을 위해서라며 건네준 이 포탄은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발 밑에 놓은 나무 상자에 모셔져 있는 한 발의 도토리 모양 포탄으로 시선을 돌렸다. 색이 칠해지지 않은 나무(無垢材)로 된 상자에 톱밥이 채워지고, 그 안에 덜렁 놓여진 무기질의 포탄.

나무 상자에는 붉은 색으로 '위험'이라고 크게 쓰여 있어 일종의 이상(異様)한 분위기를 뿜고 있었다. 자신이 시즈코와 함께 올 수 없기 때문에, 패주할 것 같으면 일단 바람 부는 쪽으로 도망쳐서 적진으로 쏘라며 건네준 포탄이었다.

아시미츠의 말로는 한 발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기사회생의 비밀병기라고 하는데, 시즈코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기에 봉인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일정 간격으로 울려퍼지던 포성이 갑자기 멎었다. 한동안 기다려도 재개될 기색이 없었고,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조수가 다시 보고하러 돌아왔다.


"박격포 2문 모두 폐쇄기구(閉鎖機構)가 파손되었습니다. 보수해서 무리한다면 한동안 더 포격은 계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적진이 붕괴했기에 중지했다고 합니다"


"알겠어요. 그럼 포격은 종료합니다. 필요한 계측을 마치면 철수 준비에 들어가 주세요"


시즈코의 지시를 받은 조수가 전성관으로 달려가고, 다시 주변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볼 수 없지만 멀리 떨어진 전장을 떠올리며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토우고쿠의 패권을 다툰 일전은, 개전으로부터 겨우 일 각(2시간) 정도에 끝을 고했다. 태양이 중천에 걸릴 무렵에는 이미 승패가 결정지어졌고, 패주하는 타케다-호죠 군에 대해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추격대를 보내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승리였다.


"카츠요리는 너덜너덜해졌군. 아마도 권토중래(捲土重来)를 꾀한 행군이었겠지만, 뼈아픈 일격을 당한 모양이 되었네"


카츠요리는, 어떻게 했는지 호죠의 협력을 얻어낸 것으로 욕심이 생겨버린 것이리라. 노린 장소도, 군의 진용도 문제없었다. 단 하나, 시기가 나빴다.

상대가 도쿠가와 군 뿐이었다면 기세를 타고 밀어붙여 얼마간 영토를 빼앗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통상적으로는 원군 요청을 보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원군이 달려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물러설 때를 잘못 판단했다. 예상보다도 빠르게 원군이 달려오고,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견제 상태가 되어, 불확정요소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는 시즈코 군의 깃발을 본 시점에서 물러나야 했다.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 무장으로서는 우수하지만, 영주(国人)로서는 미숙하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어"


군신(軍神)이라고도 불리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조차 경계하게 할 정도의 뛰어난 무장(いくさ上手)으로서 카츠요리는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시즈코 군의 등장에 의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의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듯, 이미 개인의 무용이 결과를 가져오는 개체의 전투가 아니게 되고 있었다.

자군의 총보다도 사정거리가 뛰어난 무기가 등장한 시점에서 시대의 변혁을 느끼지 못해서야 같은 경쟁선상에 설 수조차 없다.


"삼국지(三国志)에 등장하는 여포(呂布)같은 타입이었던 걸까, 카츠요리는. 전투에서는 귀신(鬼神)같은 강함을 자랑해도, 위정자로서는 2류에 그치네"


시즈코에게 용서없는 혹평을 들은 카츠요리였으나, 어쩔 수 없는 이유도 또한 존재했다.

카츠요리는 타케다 가문 당주가 되기 위해 키워진 것이 아니고, 어쩌다보니 차례가 된 것 뿐인 임시 당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위는 카츠요리에게 기대하지 않고, 다음 당주가 정해질 때까지 임시(腰掛け)로 그냥 거기에 앉아만 있을 것을 요구했다.

당연하지만 카츠요리로서는 유쾌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카츠요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타케다 가문 인물들(家中) 중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게 주종관계가 비틀린 결과, 알기쉬운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성과에 집착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저번 싸움 결과도 포함하여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의견이 듣고 싶어요. 이대로 토우고쿠 정벌에 나선다고 하면, 교묘한(上手な) 패배는 가능할까요?"


"십중팔구 무리겠죠. 우리 군은 전의도 고양되어 있고, 기세도 타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의 추세는 두 가지, 대승(大勝)이나 대패(大敗)겠죠"


전후처리가 시작된 타카텐진 성에 체재하고 있는 시즈코는, 마사유키를 비밀리에 불러내더니 입을 열자마자 숨겨진 목표 달성의 가능성을 물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곤 해도, 마사유키에게서 썩 좋은 대답은 얻을 수 없었다. 시즈코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더니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키묘(奇妙) 님께 눈에 보일 만한 허점이 없습니다. 행군 개시부터 지금까지의 지휘만 보아도, 스물 남짓한 젊은이에게 가능한 수준이 아닙니다. 본래는 기뻐해야 하겠습니다만, 이번에는 고민스럽군요"


"주상(上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 으려나요. 전황(戦況)을 다지더라도 패배가 용납되는 상황이라는 건 얻기 힘드니, 이 기회를 놓치면 좋지 않겠네요"


"이렇게 된 이상 운을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키묘 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단전횡(独断専行)을 하는 바보들이 속출하게 되면 패배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운에 맡기는 건가요"


이미 통상적은 방책으로는 목적 달성의 가능성은 없어졌다. 그래도 패배시키려고 한다면, 아군에 대해 파괴공작 같은 짓을 할 필요가 있어, 한 발자국만 잘못되면 아무리 시즈코라도 사형을 면할 수 없다.

그런 시즈코의 고민과는 별개로, 노부타다와 이에야스는 군을 재편성하여 타케다 영토를 향해 진군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카츠요리 자신은 타케다 영토로 도망쳐 돌아가 다시 방어를 위한 진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볼 때, 무장으로서의 자질은 대단히 높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다 죽어가는 타케다가 방어 태세로 전환해봤자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카이(甲斐)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하니까 사진 촬영용의 기재 운반도 포기했는데, 여기에 밀명이랄까 주목적을 달성할 전망이 서질 않아…… 토우고쿠 정벌은 고난의 연속이네"


이미 달관(諦観)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어느 시점을 경계로 상황이 변화했다. 시즈코 입장에서는 운이 좋았지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도쿠가와 영토에서 타케다-호죠 연합군을 격퇴한 것을 계기로 작전회의가 열렸다.

의제는 타케다 영토를 침공할지 아닐지였다. 통상적이라면 일정수가 신중론을 외치겠지만, 전의 일전(一戦)에 의한 손해가 거의 없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강경론 일변도가 되어 버렸다.


"타케다가 패주한 지금이야말로 공격할 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토우고쿠의 영웅(雄)이라 불린 호죠도 꼬리를 말고 도망쳤소. 타케다를 쳐부순 김에 호죠까지 평정해주겠소!"


타케다-호죠 연합군은 약하다. 그런 오만(増長)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정에 지배된 무장들은 한결같이 진군을 요구했다.

가장 강경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노부타다 진영으로, 그 다음이 도쿠가와 진영. 타키카와(滝川) 군은 다소 신중한 의견을 내면서도 진군에 반대라고는 하지 않았다.

대 전과를 올린 시즈코 군이었으나, 비장의 비밀병기가 일찌감치 파손되어버린 것만을 보고하고 후방지원에 전념하겠다는 말만 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 방심하는 걸까. 승전은 사소한 실수로 총체적 붕괴가 일어나기 쉬우니 좀 무섭네)


카츠요리는 당주로서의 호소력(訴求力)은 떨어졌으나, 일단 전장에 서면 일기당천의 무장으로 활약할 수 있다.

호죠 군은 박격포의 집중포화를 얻어맞아 큰 피해를 내고 궤주(潰走)했으나, 카츠요리가 지휘하는 타케다 군은 군으로서의 체재를 유지한 채 퇴각했다.

상대에게 지형적 이점이 있는 타케다 영토로 침공해 들어갔다가 반격을 당해 아군이 붕괴했다고 하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노부타다에게 패배를 경험시킨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노부타다가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싸움을 걸고, 그것을 상대가 한 수 위를 가던가 예상밖의 사건으로 실패하게 되어 스스로의 모자람을 통감하면서 패배해야 한다. 단순히 운이 나빴다, 로는 패배하는 의미가 없다.


(자, 어떡할까…… 응ー?)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회의만큼 쓸데없는 시간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창문을 통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시즈코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가을 낮인 만큼 하늘은 높고 맑게 개어 있었으나, 먼 쪽의 하늘은 납빛으로 구름이 낀 것이 보였다.


(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어!?)


구름의 이동속도는 평균 시속 50km 정도이지만, 계절에 따라서는 그 두 배나 되는 경우가 있다. 전형적인 가을의 하늘 모습에서 구름이 빠르게 흐르게 되는 요인은 하나 뿐이다. 즉, 저기압의 접근이다.


(이건 며칠 내에 비가 내리겠네. 비옷(雨具) 준비를 해두자)


맑은 날들이 계속된 후의 저기압 도래는 높은 확률로 우천이 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서도 상세한 관측 데이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꾸준히 기록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라면 기상위성이라는 신의 시점으로부터의 정보를 얻어 실시간으로 기후 변동을 감지할 수 있지만, 이제 겨우 기계화의 문턱에 닿았을 뿐인 전국시대에 그런 걸 요구하는 건 가혹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대책으로서 비옷의 준비만을 지시하자고 결론내렸다.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네)


강경파의 의견에 지배되어가고 있는 작전회의는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날씨가 크게 나빠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 각(刻) 정도 지나,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먹은 작전회의는 결론을 냈다.

간단히 도쿠가와 영토로 침공하려는 생각 같은 것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도 타케다 영토로 진군하여 어느 정도의 전과를 올린다.

전군이 진군해봤자 길이 나빠서 한번에 진군할 수 있는 병력이 제한되기 때문에, 추격부대는 노부타다 군과 이에야스 군만으로 결정되었다.

타키카와 군은 이대로 타카텐진 성에 체재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된다. 시즈코 군은 본진을 타카텐진 성에 두고, 이에야스와 노부타다가 추격하기 쉽도록 후방지원부대를 보내기로 했다.


(다 내던지고 그냥 종군하기만 하는 거라면 이만큼 속편한 것도 없는데 말야)


노부타다 군의 편성을 들은 시즈코는 그렇게 탄식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만의 극치(増上慢)라 할 수 있는 진용이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전공을 세운 적이 없는 사람들만 대충 모은 듯한, 너무나도 심각한 아군의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마도 노부타다 본인의 의향보다도 주위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일거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나가요시(長可)가 타케다 사천왕(四天王)의 일각을 쓰러뜨려 무명(武名)을 얻은 것처럼, 예전만큼의 세력이 없다고는 해도 타케다를 상대로 이기고 있는 싸움이다.

노부타다나 이에야스의 가신들이 타케다를 쳐부순 자라는 명성을 원한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그리고 노부타다나 이에야스에게는 조급히 날뛰는(逸る) 그들을 다독이기에 충분한 논거(論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흥분해 날뛰는 개의 목줄을 그들의 주군이 쥐고, 그들의 싸움의 판을 깔아주고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피곤한 역할(貧乏くじ)을 타키카와와 시즈코가 맡게 되었다.


"하아…… 어쩌지?"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한 시즈코는, 무의식중에 위장 언저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타케다, 호죠, 두려워 할 것이 못 된다! 놈들에게 보여주자, 진정한 토우고쿠의 패자에 어울리는 것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타카텐진 성에서 보급을 마치고 군을 재편성한 노부타다와 이에야스는 카츠요리를 쫓아 타케다 영토를 향해 출진했다.

스와(諏訪)의 요충지인 타카토오 성(高遠城)을 함락시키는 것을 목표로 정했는데, 타카토오 성을 빼앗길 경우 타케다에게는 목젖에 칼이 들이밀어진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된다.

타카토오 성을 카이 공략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다면, 토우고쿠 정벌은 단번에 현실감을 띠게 된다.

아무래도 전국시대를 살아온 무장들인 만큼, 아무리 자만하더라도 현재의 군세로 타케다 본국을 침공하려고 할 정도로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노부타다와 이에야스가 출진한 후, 시즈코는 주요 가신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열고 있었다.


"자, 키묘 님과 도쿠가와 님께서 출진하셨는데…… 사나다(真田) 씨는 계속해서 정보 수집을 부탁드려요. 특히 키묘 님의 본진의 움직임을 주의해서 살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키묘 님이라면 크게 움직이기 전에 이쪽에도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보통이라면 그러겠죠. 다만, 욕심에 눈이 먼 사람들은, 자신의 전공에 참견받는 것을 싫어해서 보고를 왜곡하거나 은폐하거나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군은 기세가 있지만, 반면 통제를 잃기 쉬워요. 한 번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빠지면, 와해되기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요"


"잘 알겠습니다"


"다른 모두는 보급부대의 지원을 부탁해요. 솔직히, 지금의 타케다에게 유격대를 조직해 보급부대를 칠 여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싸움에 한해서만은' 천성(天稟)을 타고난 것이 카츠요리니까요"


카츠요리는 자기 영토로 도망친 이후 일체 공세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호죠는 어지간히 피해가 컸는지, 타케다 영토로는 퇴각하지 않고 그대로 자국으로 퇴각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의리는 지켰다는 걸까요, 호죠는. 일단 확인하겠는데, 만약 호죠가 퇴각한 척 하고 몰래 돌아온다면 어떻게 할 거죠?"


"물론, 날려버리겠어"


나가요시가 즉시 대답했다.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도 같은 의견이었는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좋아요. 다음에 호죠 군을 발견하면 용서없이 두들겨줘요. 본래는 주상께 여쭈어야 하겠지만, 깨물렸는데 두들기지 않는 쪽이 주상의 심기를 더 상하게 할 테니까요"


토우고쿠에 진군하고 있는 그들은 알 수 없었으나, 타케다와 호죠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격노하고 있었다.

사전에 호죠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타케다와 손을 잡으면 오다를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고까지 얕보여서는 노부나가가 아니라도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기는 싸움이란 건 재미가 없군"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서 따분했는지, 케이지가 하품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사이조가 가볍게 옆구리를 찔러 반성을 재촉했지만, 케이지가 태도를 바꾸는 일은 없었다.


"일단 적지로 향하고 있다고는 해도, 전선은 아득히 멀고, 이렇게 시야가 탁 트인 장소에서 적 습격 따윈 있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행군속도가 느린 보급부대와 발을 맞추고 있으니, 케이지 씨가 따분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네요.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편한 일을 하루 하면, 그 날이 끝날 때는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다고"


"보급물자에는 술도 있으니까, 그 이득(役得)은 기쁘군. 저쪽에 도착할 때까지 술이 남아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아무래도 그건 곤란해요. 뭐, 농담은 이쯤 하고, 이번에도 확실하게 부탁해요"


"시즈코 님, 이 녀석이 적에게 밀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위험이 닥쳐오지 않는 한 술만 마시다 끝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케이지의 태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지, 사이조가 이야기에 끼어들어 쓴소리를 했다.


"케이지 씨가 적 습격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할 일을 제대로 하면서 조금 긴장을 푸는 정도로 눈을 부릅뜰 생각은 없어요"


예상 이상으로 시즈코에게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낯간지러워졌는지 케이지는 얼굴을 돌리고 뻑뻑 담배연기를 피워댔다.


"사이조 씨가 하고 싶은 말도 알겠어요. 하지만, 이건 케이지 씨를 가신으로 삼을 때 맺은 약속이에요"


"……그렇다면 시즈코 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시즈코 님과 이 녀석이 한 것. 소생이 꾸짖는 것은 괜찮으시겠지요?"


"그건 상관없어요. 불만을 계속 쌓아두면 비틀림이 생기니까요. 직접 말로 하는 쪽이 건전하겠죠"


애초에 타인의 이해를 얻으려고도 생각하지 않는 카부키모노(傾奇者). 올곧은(実直) 사이조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우리들은 후방 지원에 전념합니다. 당장은 보급부대의 호위에요. 습격자는 산적이건 적군이건 싸그리 섬멸합니다. 나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어요"


쓸데없는 이야기가 늘어나지 않도록 말을 조심하면서 시즈코는 작전회의를 마무리했다.




노부타다와 이에야스가 타케다 영토에 침공해 들어간지 벌써 5일이 경과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타케다 가문에, 나아가서는 카츠요리에게 비협조적이었다.

그에 반해 노부타다는 개전 전에 사모아서 시즈코 군의 보급부대에게 운반하게 했던 잉여식량을 아군에게 협력한 현지 백성들에게 상으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거기에 마사유키가 노부타다에게 진언하여, 이 노부타다의 방침을 타케다 영토 전역으로 퍼뜨리도록 움직이고 있었다.

타케다 영토에 들어선 이래로 어디의 농촌이건 다 곤궁해있어, 사전에 소문을 듣는다면 더욱 스무스하게 이야기가 진행될거라 생각한 노부타다는 마사유키의 계책을 수락했다.


가는 곳마다 식량을 뿌리며 다니고 있었기에, 노부타다 군의 진군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

하지만, 타케다 영토에 들어섰는데 타케다 군은 저항다운 저항은 보이지 않아서, 노부타다도 이에야스도 김이 빠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과 각지에서 받는 환영에 타케다 군의 붕괴를 느꼈는지, 노부타다 휘하의 젊은 계층은 더욱 자만했고, 그 고삐를 쥐는 노부타다는 통제를 유지하는 데 고심하고 있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비가 오네"


시즈코는 비가 오기 시작한 바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아직 약할 때 노부타다와 이에야스의 진에 물자를 전달한 부대가 돌아와서, 다시 보급물자의 적재가 시작되어 있었다.

카이는 오와리(尾張)나 미노(美濃)에 비해 도로 정비 같은 건 없는 거나 다름없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게 되면 노면은 진흙탕으로 변하여 물자 운반은 커녕 병사들이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된다.

그것을 내다보고 다음 진의 출발은 비가 멎을 때까지 보류하도록 노부타다로부터 시즈코에게 전언이 와 있었다.

타카텐진 성에 주둔하고 있는 타키카와 군과, 타카토오 성을 향하는 노부타다-이야스 군의 중간 정도 위치에 시즈코 군의 중계기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물자 집적소도 겸하기 때문에, 즉석이기는 하나 프리패브(prefab) 건축의 응용으로 지붕이 있는 작은 건물(小屋)을 여러 채 가진 진이 건축되어 있어, 다소의 비바람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 구조가 되어 있었다.

시즈코의 예상으로는 이후 빗발(雨脚)이 강해질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쿠로쿠와(黒鍬) 부대가 총동원되어 보강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는 자신에게 할당된 건물 안에서 마사유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키묘 님은 타카토오 성 바로 앞에 진을 치셨군요"


"예. 하지만, 이 빗속에서 평야부에 진을 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폭풍이 될 예감을 느낀 이에야스는, 진로상에 있던 함락된 성에 머무르며 폭풍이 지나가게 하려고 생각했다.

한편 노부타다는 부하들의 의견도 있어 진군을 계속하여, 타카토도 성을 바라보는 평야부에 진을 치게 되었다.

큰 비가 예상되는 가운데, 산기숡의 평야부에 진을 치는 것은 홍수(鉄砲水)의 위험조차 있다.

그러나 한 번 뇌우(雷雨) 속에서 야습을 성공시켰던 노부타다였다. 이번에도 같은 수단을 취하는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늦었고, 애초에 의견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네요"


"제가 주제넘게 나선 탓에…… 면목이 없습니다"


"상관없어요. 나도 그렇게까지 전공에 조바심을 내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마사유키는 시즈코의 판단을 묻지 않고 노부타다에게 협력자에 대한 포상 이야기를 유포하도록 제안했었다.

이것 자체는 시즈코도 노부타다도 문제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효과적인 제안(立案)이라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공을 서두른 부하들에게는 외부인인 마사유키의 공이 인정받았다는 것이 조급함을 낳았다.

자신들이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고 있는데, 안전권인 후방 지원만을 하고 있는 자가 주군의 칭찬을 받았다.

이 일 하나가 노부타다의 부하들을 몰아세워 무리한 진군으로 이어져 버렸다.


"어쨌든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방법이 없어요. 지금부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기분을 새로이 하죠"


"옛"


"문제는 날씨가 어떻게 진행될지네요. 바람도 점점 강해지고 있고, 어쩌면 폭풍이 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빈지문(雨戸)이 움직이지 않도록 못(目釘)을 박아놓았는데도 불어닥치는 바람 때문에 덜컹덜컹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시즈코는 이게 단순한 비가 아니라 때 아닌 (季節外れ) 태풍이 도래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게 태풍이라면……)


최악의 케이스를 상상한 시즈코는, 그 생각을 털어내듯 머리를 흔들었다.




대체적으로 나쁜 예감이라는 것은 적중하는 법이라, 시즈코의 예상은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일몰을 맞이했을 무렵, 약간 빗발은 약해졌으나, 그 대신이라고 하는듯 바람의 기세가 강해졌다.

풍속을 계측하지 않고 있기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체감적으로는 낮의 몇 배는 되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망루(櫓)가 쓰러지고 키가 큰 수목이 쓰러졌다는 보고가 연이어 들어왔다.

시즈코는 작은 건물(小屋)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조금 갑갑해지겠지만 전원을 물자반입용 창고로 대피하도록 명했다.

이 건물이 가장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고, 또 보급물자의 나무상자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에, 고립되더라도 물자가 부족해질 일은 없다.


"으으, 추워…… 이래서는 밖에 나갈 수 없어"


"이럴 때야 말로 따뜻한 국물이 온몸에 스며드네"


기온은 그렇게까지 낮아진 것은 아니지만, 비에 젖은 몸이 강한 바람에 노출된 결과로 체온을 급격하게 빼앗긴 병사들은 벌벌 떨고 있었고, 병사들에게는 화로(火鉢)를 둘러싸고 몸을 덥히도록 명했다.

젖은 의복은 갈아입게 하고, 따뜻한 된장국(味噌汁)을 나누어주도록 지시했다. 젖은 상태로 방치해두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저체온증에 걸려서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의식을 잃게 된다.


"이 폭풍우에서는 야외에 진을 친 키묘 님 쪽은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폭풍우의 기세가 약해지는대로 키묘 님과 도쿠가와 님의 진을 확인하고, 타키카와 님이 기다리는 타카텐진 성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 생각한다. 많은 물자들은 이곳에 포기하게 되는데다 발디딤이 불안한 상황에서의 어려운 작업이 될 거라 생각하나 잘 부탁한다"


태풍이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시즈코는 후방지원부대의 대장들을 불러모아 상황이 안정된 후의 활동 방침을 전달했다.

비교적 견고한 건물에 틀어박혀 있는 상황에서 이 지경이다. 산기슭에, 그것도 야외에 진을 친 노부타다가 있는 곳에서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보고에 따르면 도쿠가와 군은 성에 들어갔다고 하기에 일단 이에야스는 걱정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야외에 고립되어 있는 노부타다 군이다.

하지만, 이 폭풍우 속에서 야간 행군으로 노부타다의 진으로 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밖에 되지 않아, 노부타다를 구하기는 커녕 쓸데없이 희생자를 늘리게 될 뿐이다.

시즈코가 할 수 있는 것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오직 견뎌내고, 폭풍이 지나간 후에 되불어오기(吹き戻し) 전에 구조하러 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 뿐이었다.


태풍은 밤늦게까지 맹위를 떨치고, 아침햇살에 동쪽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에 잔잔해졌다.


"꼴이 말이 아니네……"


망루는 하나도 남김없이 쓰러졌고, 바람에 의해 날아온 것들이 충돌했는지 몇 채의 작은 건물들이 뭉개져 있었다.

외벽(外壁)으로 세워둔 벽판(壁板)도 쓰러져 있어, 외부에서 시즈코들이 틀어박혀 있던 창고가 훤히 보이고 있었다.

사이조를 대동하고 중계기지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시즈코는, 몇 개의 부대가 모습을 감춘 것을 깨달았다.

도망이라는 말도 일순 머리 속을 스쳤지만, 폭풍우가 미친 듯 불어닥치는 상황에서 안전한 실내보다 실외를 선택할 얼간이는 없다.


"……묘하게 병사들이 적은데, 카츠조(勝蔵) 군은 어디 외출한 건가요?"


"예, 옛, 그런 것 같습니다!"


우연히 가까이 있던 나가요시 군의 병사에게 확인하자,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면서 대답했다. 뭔가를 알고 있지만 함구를 당하여 보고도 하지 못하는 것이라 헤아린 시즈코는 질문을 바꿨다.


"키묘 님의 진을 확인하러 간 걸까요?"


"그, 그렇——"


"라는 건 핑계(建前)고, 키묘 님의 진을 적이 덮치기 전에 먼저 손을 쓸 생각이겠지요, 그 두 사람은"


나가요시와 케이지가 생각할 법한 일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신식총(新式銃)을 다루는 병사들과 화약이나 탄약류를 가지고 나간 걸 보니, 접근전을 거는 게 아니라 지체방어(遅滞防衛, 발을 묶는 것에 주안점을 둔 전법)를 할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주군의 허가 없이 무기탄약을 반출한데다, 독단전횡(独断専行)으로 병사들을 끌고 나갔다.

본래는 처벌될 것은 확실하지만, 애초에 시즈코는 두 사람 중 한쪽을 노부타다의 진 방어로 돌릴 생각이었기에 온건하게 해결하기로 했다.


"이거 참, 확실히 키묘 님의 진을 구원하러 가라고 '명했'지만, 둘 다 가라고 한 건 아닌데 말이에요"


"예? 아, 그렇습니까?"


멍한 표정으로 병사가 되물었다가, 사이조가 가볍게 노려보자 병사는 다급하게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명령이 잘못 전달된 걸까요? 이 폭풍우에서 키묘 님의 진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있었겠죠. 그렇다면, 그 틈을 노려 타케다가 병사를 파견할 가능성은 높아요. 뭐라 해도 대장의 목이 눈 앞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빨리 키묘 님의 진으로 가라고 명했던 거에요"


애초에 두 사람 다 사후승낙으로 용서받을 거라는 묘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동일 거라고 생각하자 시즈코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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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9 1575년 9월 중순



통상 하루이틀만에 종료되는 가을의 미각축제(味覚祭り)였으나, 이번에는 이례적인 장기간 개최가 되었다.

노부나가가 끌어낸 동맹 관계에 있는 각 가문과의 친목회를 겸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가을을 테마로 하여 한껏 사치를 부린 요리가 매일 밤낮으로 제공되는 연회가 되어 있었다.

당초 예상했던 식재료로는 당연히 충분할 리가 없어서, 시즈코는 조리장을 고로(五郎)와 조수인 시로(四郎)에게 맡기고, 메뉴(献立)를 생각하면서 식재료 조달을 지시하거나 손님을 맞이하거나 하는 등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빴다.

하지만, 돌발적으로 공전(空前)의 규모가 된 연회에 대해, 술도 요리도 빠짐없이 계속 제공할 능력이 있다는 오와리(尾張)의 저력을 보게 된 타국의 영주(国人)들은, 그 풍요로움에 전율마저 느끼고 있었다.


"겨우 끝났다……"


아무래도 오와리 체재가 1주일 가까이 되자, 아즈치를 맡고 있는 호리(堀)에게서 노부나가에 대한 귀환 재촉이 자주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번 읽기만 하고 무시했던 노부나가였으나, 문면(文面)에 비장함이 서리기 시작하자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부나가의 귀환을 신호(皮切り)로 가을의 미각 축제도 막을 내리게 되고, 동행해온 사키히사(前久)와 켄신(謙信)도 함께 각자의 영국(領国)으로 돌아갔다.

당초의 주빈(主賓)이었던 이에야스(家康)도, 갑작스럽게 예정외의 폐를 끼친 사죄로서 시즈코가 들려준 산더미같은 토산품(土産)과 함께 미카와(三河)로 돌아갔다.

유일하게 노부타다(信忠)만큼은 돌아갈 곳이 가까운 미노(美濃)였고, 시즈코의 자식이 된 시로쿠(四六)와 우츠와(器)와의 접견을 희망했기에 남아 있었다.

공식적인 회견으로 하면 관계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시즈코 저택 깊숙한 곳의 한 방에서 당사자들만이 모이게 되었다.


"너희들이 시즈코의 자식인가. 그리 긴장하지 말거라. 어머니는 다르더라도 같은 아버지의 자식이니, 우리들은 형제가 되는 것이다"


노부타다는 시로쿠와 우츠와에게 웃으면서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말대꾸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이미 저희들은 시즈코 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습니다. 가신의 자녀로서 대해 주십시오"


시로쿠의 대답을 듣고 노부타다는 약간 멍해졌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야무진 대답, 거기에 혈연에 안주하지 않고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한 발언 내용.

과연 자신이 같은 나이였을 때 이러한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노부타다는 이 한 마디의 말에서 시로쿠가 어린애로 있을 수 있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배경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은 노부타다가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겉치레를 꾸민 처세술이 아닌, 본래의 사람됨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여 방법을 궁리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시즈코의 태도를 보아라. 주가(主家)의 적자(嫡子)에 대한 경의 따윈 찾아볼 수도 없지 않느냐"


노부타다는 웃으면서 손에 든 부채로 시즈코를 가리켰다.

시로쿠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즈코는 졸린 듯한 모습을 감추려 하지도 않은 채, 입가를 소매로 가리고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딱딱한 태도를 싫어한 게 누구였더라? 나는 딱히 격식을 차린(余所行き) 태도라도 상관없는데?"


자식의 눈 앞에서의 추태(失態)는 아무리 시즈코라도 창피했는지, 약간 원망스러운 듯 노부타다에게 시선을 던졌다.


돌이켜보면 노부타다가 처음으로 출진했을 때, 시즈코는 가신으로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때까지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 온 시즈코가 갑자기 서먹서먹해진 듯 느껴져서, 원래대로 행동하라고 명한 것은 다름아닌 노부타다였다.

그 이후에도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면 시즈코는 이전과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하고, 노부타다도 그것을 기분좋게 생각했기에, 나쁘게 말하면 야자(慣れ合い) 비슷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었다.

공사의 분별은 하고 있었고, 비공식 접견이라는 선언도 했기에, 노부타다는 자신이 물러서기로 했다.


"아니, 시즈코는 이대로가 좋다.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시로쿠들은 학교에 다니게 하고 있는 건가?"


"으ー음, 이제 곧 농한기(農閑期)니까 시기적으로는 좋지만 말야. 조금 더 신변이 안정된 다음이 좋으려나라고 생각하고 있어"


시즈코의 생각은, 시로쿠와 우츠와 두 명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되는 기간으로서 1년 정도를 보고 있었다. 그 후, 본인들이 희망한다면 학교에 다니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보다 일찍 희망한다면 다니게 하는 것에 이의는 없다.


"내 직감이 말하고 있다. 시로쿠는 빨리 학교에 다니게 해야 한다. 학우(学友)를 얻어 좋은 자극을 받는다면, 이 녀석은 걸물이 될 지도 모른다"


"과분하신 말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입발린 소리가 아니다. 너희들의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시즈코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말하자면, 겉모습만으로 매사를 판단하는 어리석은 놈들 쪽이 많지. 그러니까 시즈코의 학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일본의 최고 학부(学府)로 불리게 되겠지. 그곳을 수료했다고 하면, 너희들에게도 관록이 붙게 된다"


"관록, 말씀이십니까?"


시로쿠의 말에 노부타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개설한 학교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평민도 있고, 귀족이나 무가(武家)의 자녀들도 재적하며, 그들을 구별하는 것은 학습 수준(習熟度合)뿐이다.

단위 제도를 도입했기에, 각자가 목표로 하는 진로에 맞춰 교육이 실시되지만, 일반 교양 등의 공통분야에 관해서는 남녀의 구별없이 같은 교실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배우게 되어 있다.

현실문제로서 고등 교육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진로가 제한되어 있기에 희망자 자체가 적기는 하지만, 원할 경우 여성이라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최저한의 교육만으로 한정하더라도, 글의 읽고 쓰기에 주판(算盤)을 시작으로, 지리나 역사에 도덕까지, 생활하는 데 있어 실용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애초에 아무리 풍요로운 오와리라도 해도 노동력이 되는 연령에 달한 남녀를 놀게 해 둘 정도로 여유가 있는 부모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 평민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최저한의 교육만에 그치는 경향이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듣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던 시즈코는, 처음의 인사 이후로 우츠와가 입을 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우츠와에게 시선을 돌리자, 노부타다와 시로쿠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따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만에 하나 노부타다 앞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거나 했다가는 큰일이기에, 시즈코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기로 했다.


"둘이서 이야기를 할 거라면, 나와 우츠와는 먼저 실례하려고 생각하는데?"


"음, 그러고보니 어린아이에게는 가혹한 시간인가. 애초에 잘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 뿐이니 우츠와는 상관없다. 먼저 쉬게 하도록. 하지만, 시즈코는 안 된다"


"시로쿠에게 열심이신 것 같으니 내가 남는 건 상관없는데, 먼저 용무를 처리해야겠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손뼉을 쳐서 옆방에 대기하고 있던 아야(彩)를 불러 우츠와를 잠자리로 데려가도록 부탁했다.

노부타다는 아야에게 손을 이끌려 방을 나가는 우츠와의 모습을 보면서, 우츠와의 자의식(自意識)이 희박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영 속세를 떠난 것(浮世離れ) 같달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달까, 적어도 시로쿠와는 다른 의미에서 어린애답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시즈코가 초조해하는 기색이 없었기에, 딱히 뭐라 말할 것도 없어 입을 다물기로 했다.


"자, 시로쿠. 시즈코의 학교를 수료한 후에 나를 섬기지 않겠느냐?"


노부타다는 내일의 날씨를 말하는 듯한 태평함으로 시로쿠의 일생을 좌우할 권유를 했다.

예상 밖으로 중대한 내용과, 애초에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가도 하지 않고 있는 노부타다의 태도에 시로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의 자식인 채였다면, 후계자 지위를 둘러싸고 다투는 입장이 되기에 이러한 권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즈코의 자식이 된 지금이라면, 형제끼리 손을 잡을 수 있지. 내게는 마음 속을 떠보지 않아도 되는 심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로쿠, 너는 스스로 시즈코의 자식이라고 단언했다. 설령 그게 본심이 아니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 나는 네 각오와 재능을 높이 사고 있다"


"하…… 하지만, 저는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학업을 닦으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패도 끝에는 전란이 사라진 태평한 세상이 되겠지. 싸움밖에 할 줄 모르는 놈들은 10년도 지나지 않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지금 당장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학업을 닦아 보여라"


"예…… 옛! 키묘(奇妙) 님의 기대와 어머니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한층 더 분발하겠습니다"


시로쿠는 노부타다의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깊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모습을 노부타다는 만족스럽게 지켜보았다.


"꽤나 파격적인 등용이네"


"다름아닌 시즈코, 너 자신이 보여주지 않았더냐? 출신이 백성이던 죄수(牢人)이던, 재주를 발굴하여 올바르게 이끌어 주면 제구실을 하는(一廉)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유능하다면 출신을 묻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야에 묻혀 있던 재능의 발굴과 육성을 시야에 넣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느낌이 있는 사상을 이야기하는 노부타다에게 시즈코가 야유를 해보았으나, 예상외의 반격을 받게 되었다.


"올바르게 사람의 재능을 꿰뚫어보는 눈과, 그것을 제대로 써먹는 주인으로서의 재능도 시험받게 되지만, 그건 추후에 증명할 수 있겠지. 전라의 세상을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를 내다본 준비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유능한 자는 결코 놓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 눈 뜨고 놓쳐서 나중에 적대하게 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지"


"(으ー음, 예상 이상으로 시야가 넓어져 버렸네. 사상이 너무 앞서나가서 고립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흐ー음,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네"


가까운 장래 뿐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에 의한 일본 통일 이후도 내다본 포석을 이미 두기 시작하는 노부타다를 보고, 시즈코는 위태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친부인 노부나가도 타인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언동을 하기 때문에 만들지 않아도 될 적을 만들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대로는 노부타다도 같은 길을 걷게 된다는, 돌출된 재능을 가지는 것에 의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번 더 주위와 발걸음을 맞추거나 다른 사람의 이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노부타다에게는 패배를 배우게 해야 한다.


(옛날부터 영특한 아이이긴 했는데, 이제와서 단번에 개화한 느낌이네. 역사적 사실에서도 주상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전쟁도 정치도 고르게 재능을 보였다고 했던가.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는데 내가 훈수(入れ知恵)를 둔 것 때문에 크게 꽃을 피웠다는 걸까? 그렇다고 하면, 과거의 행적이 돌고 돌아서 지금의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건 꽤나 심한 아이러니네)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 노부타다에게 패배를 배우게 한다는 노부나가의 속셈은, 다름아닌 노부타다 자신의 재능에 의해 실패할 공산이 높아진 상태였다.

원래부터 앞을 예측하기 힘든 토우고쿠 정벌에 추가적인 불안요소가 늘어난 것으로,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상태로 진행된다.


"나도 언제까지나 아버지나 시즈코의 등 뒤를 쫓고 있던 꼬맹이(童)가 아니다. 선인(先人)에게 배우고 따라잡아 추월하도록 노력도 하지"


시즈코의 걱정도 모른 채 노부타다는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 10월이 되려고 하던 때, 연기만 피워올리고 있던 오다와 혼간지(本願寺)를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혼간지의 중핵을 이루는 인물 중 한 명,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아즈치에 들어선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노부나가의 직할령인 아즈치라는 것도 있어, 혼간지 측은 노부나가가 라이렌을 암살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에 대해 노부나가는, 암살할 생각이라면 자신에게 혐의가 씌워지는 아즈치가 아니라, 라이렌이 혼간지에 있을 때를 노린다.

애초에 라이렌을 암살까지 해가면서 배제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혼간지의 본거지에서라도 라이렌을 암살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으로, 역설적으로 암살의 용의를 부인해 보인 것이다.

이것에는 제아무리 혼간지라도 할 말이 없어져, 이 이상 추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라이렌이라는 혼간지 존속을 바라는 온건파의 필두를 잃은 것에 의해, 오다와의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쿄뇨(教如)를 시작으로 하는 강경파가 혼간지의 주류파가 되었다.

한동안 이어진 융화(融和)에 질린 쿄뇨 등 강경파는 오다 가문과의 긴장을 높이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노부나가는 서로 타협점을 찾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고 켄뇨(顕如)에게 친서를 계속 보냈으나, 모두 쿄뇨가 중간에서 가로채 버렸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혼간지 법주(法主)인 켄뇨는 스스로의 의향을 드러내려고는 하지 않고, 다만 말없이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름 억지를 쓰고 있다는 자각은 있는 건지, 쿄뇨는 켄뇨가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것에 미간을 좁혔으나, 침묵은 용인(容認)의 증거라고 속편하게 해석하고는 곧 의식 밖으로 밀어냈다.

정력적으로 행동하며 강경하게 반말하는 쿄뇨의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노부나가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이었다.

라이렌 암살설을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영내에 동원령을 내려 라이렌의 수색을 명하고, 이 건에 관해서는 라이렌 수색을 자청하는 혼간지 신자에게도 편의를 봐 주도록 당부했다.


노부나가를 죽여야(誅戮) 한다고 소리높여 외치는 쿄뇨였으나, 그에 대한 혼간지 내부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먼저, 법주인 켄뇨가 아직 의향을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 두번째로, 라이렌이 노부나가의 손에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적대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쿄뇨가 켄뇨의 친자식이라 해도, 현 법주의 의향이 정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그의 명에 따르는 것은 꺼려졌다.

라이렌이 소식이 끊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시체나 소지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설령 라이렌이 죽었다고 해도, 그게 오다의 손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도 없다.

게다가 아즈치는 노부나가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간자의 도가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되어 있었다.

오다와 혼간지를 싸우게 하기 위해 다른 세력이 라이렌을 납치했다는 가능성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한 배경도 있어, 아무리 쿄뇨가 전의를 부추기더라도, 피리를 불어도 아무도 춤추지 않는다는(笛吹けど踊らず)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먼저 조바심을 참지 못하게 되는 건 쿄뇨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에요. 아무리 쿄뇨가 경솔하더라도, 아무래도 이 상황에서 강경책을 취했다가는 같은 편에게 죽게 될 거에요"


혼간지의 상황을 살피게 했던 간자가 가지고 돌아온 정보를 바탕으로 시즈코는 작전회의 자리에서 입을 열자마자 선언했다.

다들 정기적으로 열리는 작전회의에 의해 정세를 파악하고 있는지, 시즈코의 의견에 반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쟁터에서의 후각이라는 본능에 가까운 능력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나가요시(長可)조차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법주인 켄뇨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것하고 라이렌이 실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전쟁이 벌어진다면 토우고쿠 정벌 후가 되지 않을까요?"


"맡겨둬! 혼간지 따위 언제든지 날려버리겠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언급된 것만으로도 나가요시가 주먹을 손바닥에 내려치며 전의를 드러냈다.


"아니, 그러니까 먼저 토우고쿠 정벌이 기다리고 있다니까"


"토우고쿠라니…… 타케다(武田)는 이미 기울고 있고, 호죠(北条)는 고립되어 있잖아……"


토우고쿠 정벌이라고 들은 나가요시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타케다에 예전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어서, 여전히 군비 증강에 힘쓰고 있는 듯 하지만 타국을 침공하러 움직일 정도의 여유는 볼 수 없었다.

오랫동안 타케다와 국경에서의 소규모 분쟁을 계속해온 도쿠가와 가문(徳川家)이었으나,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이후에는 그러한 소규모 분쟁조차 끊겼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궁지에 몰린 사람은 예상외의 반경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건 그거대로 기대되는데,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의 괴력(火事場の馬鹿力)이 오래 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전쟁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건 상관없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지 말도록"


주 목적이 싸우는 것이 되어버린 나가요시를 사이조(才蔵)가 타일렀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탈선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나가요시는 항변하지 않고 물러섰다.


"불확정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쉬운 싸움이 되진 않을 거야. 아직도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은 호죠의 행동에 따라서는, 에치고(越後)를 근거로 하는 친 호죠 파와, 타케다의 세력도 더해진 대규모 반항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위해서 우에스기(上杉)가 있는 거 아냐?"


"설령 토우고쿠 정벌에서 타케다와 싸움을 하게 된 경우, 주상께서는 우에스기에도 참전을 요청하실 거라 생각해. 혼간지라는 불안 요소를 품고 있는 이상, 조기에 결판내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니까"


"과연. 에치고의 용이 집을 비우면, 그 틈에 호죠의 세력(手勢)을 끌어들여 봉기한다는 건가……"


토우고쿠의 영웅이었던 타케다가 몰락(凋落)하여, 토우고쿠 3대 세력인 우에스기, 타케다, 호죠의 역학관계는 우에스기가 한 발 앞선 형태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타케다와 호죠가 손을 잡으면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다.


"만약 최악의 경우, 즉 타케다, 우에스기, 호죠 연합군을 상대하게 될 경우, 그 시점에서 토우고쿠 정벌은 실패한 거라 생각해. 그 떄는, 키묘 님을 오다 영토까지 피신하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지"


"한꺼번에 박살내버리면 되는 거 아냐?"


"가능 불가능은 별개로, 타케다와 호죠 뿐만이라면 그 논리로도 상관없는데, 우에스기가 얽히면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든.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해명할 자리도 주지 않고 몰살시켜버리면, 함께 싸워준 우에스기 군과의 사이에 불화(確執)가 생기게 돼. 그런 쓸데없는 불화의 씨앗은 가능한 한 안고 가지 않으려고 하거든"


"흐ー음. 뭐, 승패는 병가지상사. 큰 피해를 입기 전에 철수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격받았는데 반격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가 불온한 미소를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주위는 나가요시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그를 제지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전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우에스기에 관해서는 주상의 의향에 달렸지만, 그 이외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끌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나와야지!"


사실상의 용인 선언을 듣고 나가요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위(殿)는 가장 피해가 커지는 곳인데도 오히려 전의가 고양되는 나가요시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대략적인 방침은 정해졌고, 급하게 우리가 뭘 해야 할 것도 없어요. 키묘 님은 여전히 병량을 매입하시고 있으니, 토우고쿠 정벌의 호령이 떨어지는 건 머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때까지는 각자 예기를 가다듬어 주세요"


필요한 정보는 공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이 말과 함께 작전회의를 마쳤다.




라이렌 실종을 계기로 긴장을 띠게 된 오다 가문과 혼간지와의 관계는 다시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잠시간의 평온의 종언을 고한 것은, 누구나 예상조차 하지 않았던 땅에서 도착한 소식이었다.

도쿠가와 영토에서, 카이(甲斐), 사가미(相模)의 동향을 한발 빨리 감지할 수 있는 요충지, 타카텐진 성(高天神城)에 타케다 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낙성(落城)을 면하고는 있으나, 수비측 2천에 대해 타케다 군은 1만을 넘는 군세로 포위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측도 타케다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으나, 도저히 대군을 타국에 파병할 여유는 없다는 방심이 있었다.

이미 사태는 도쿠가와 한 나라를 넘어서 오다 가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노부나가는 이에 응하여 노부타다를 대장으로 삼은 토우고쿠 정벌군을 파견했다.


누구나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던 토우고쿠 정벌군은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그날로 오와리를 출발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타카텐진 성을 포위하는 타케다 군의 부대를 덮쳐갔다.

적은 포위망 안쪽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타케다 군은 예상외의 습격을 받고 뿔뿔이 흩어졌고, 포위를 풀고 아군의 진으로 퇴각해 갔다.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타케다 군을 무찌른 토우고쿠 정벌군은, 부대의 일부를 성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이외에는 성 밖에서 진을 쳤다.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달려온 오다 군보다 늦게 도쿠가와 군이 합류하자, 대장인 노부타다의 진에서 작전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저희들의 궁지에 이렇게 빨리 달려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찰(物見)로부터의 보고에 따르면, 타케다 군의 후방에 호죠의 깃발(旗指)이 보였다고 하는데, 놈들이 손을 잡았다고 하면 일이 간단하지는 않겠습니다"


"다 죽어가던 타케다가 기사회생의 한 수를 치고나온 것도 호죠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놈들도 여기서 영지를 빼앗기게 되면 머지 않아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을 터, 결코 방심해도 되는 상대는 아닙니다"


역전의 노장인 이에야스에 대해, 노부타다는 실전경험도 얼마 되지 않고 나이도 한 세대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

서전(緒戦)에서 성과를 올린 것도 도움이 되어, 노부타다는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주를 상대로 당당하게 대화를 나누어 보였다.

서전은 발이 빠른 부대만을 선행시켜서 적군의 등 뒤를 급습하는 것으로 승리를 잡아챘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성을 사이에 두고 양 군이 대치하는 야전(野戦)이 무대가 된다.

지금도 속속 병참부대 등의 발이 느린 부대가 합류해오고 있었다. 적군이 포위하는 가운데 성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던 부대는 많지 않다.

어떻게 군을 편성하여 성 안의 부대와 어떻게 연대하여 싸울지가 과제가 된다.


(선진(先陣)은 도쿠가와, 그것을 잇는 형태로 오다 군이 공격해 들어간다, 라)


작전회의 결과, 최초로 타케다 군을 치고 들어가는 것은 도쿠가와 군. 그것을 잇는 형태로 오다 군이 뒤따라가게 되었다. 오다 군은 원군이며, 어디까지나 토우카이(東海)의 영주는 도쿠가와라는 자부심도 있어서이리라.

노부타다로서도 도쿠가와의 체면을 뭉갤 수도 없어 이에야스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럼 작전회의 결과, 도쿠가와 군이 선진을 맡고, 우리들은 유격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좋았어! 선봉은 내게 맡겨라!"


유격이라는 말을 들은 나가요시가 가장 먼저 나섰다. 다른 부대와 발걸음을 맞출 필요가 없고, 어느 정도 독자적인 재량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격부대는 나가요시의 취향에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케이지(慶次)는 유격부대로서 기습하기보다도 정면에서의 힘겨루기를 선호하고, 사이조는 시즈코를 호위하는 임무 때문에 본진에 남는다.

유격부대에는 기동력이 요구되기에, 간자(間者)를 포함하여 군의 대부분을 보병이 차지하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도 또한 잔류하게 된다.

그리고 아시미츠(足満)와 타카토라(高虎)에 관해서는 혼간지에 대한 대비로서 오와리에 남아 있었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반대의견도 없는 것 앝으니, 타케다 공격의 선봉대는 카츠조(勝蔵) 군에게 맡기겠어"


"따귀를 호되게 후려갈겨주겠어!"


"……적당히 해. 너무 깊이 들어가면 포위되고, 뭣보다 유격대가 본대보다 전과를 올리는 건 문제니까 말야"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 자리에 한정할 경우 주역은 도쿠가와 군이 된다.

이곳을 탈환한 후에 적군을 추격하는 자리가 된다면 새롭게 활약할 장소를 얻을 수 있으니, 지금 무리할 필요성은 적다.


"아무리 나라도 유격대로 적진에 특공같은 걸 하진 않아. 도쿠가와 군만 보고 있는 멍청이들의 눈을 뜨게 해줄 뿐이야"


"그걸 이해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어. 괜히 잔소리를 길게 해봤자 소용없으니, 나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어요"


정치가 얽힌 싸움은 성가시다고 시즈코는 혼잣말을 했다.

작전회의에서 얻은 정보로는 호죠 군이 섞여 있는 것은 확실했으나, 그들에게 호응하여 우에스기 가문 내부의 친 호죠 파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노부타다에게 패배를 배우게 한다는 목적에서 볼 때는 타케다와 호죠를 동시에 상대하는 양면 작전까지는 허용할 수 있다. 전국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에스기의 동향이 열쇠가 된다.


우에스기 가문 내부의 동향은, 켄신이 에치고에 기거하고 있었기에 전혀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래저래 암약하고 있는 호죠의 지원에 따라서는 켄신조차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타케다, 호죠 연합군 만으로 도쿠가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예상했던 걸까?

각각의 세력의 속셈이 교차하는 이 자리에서 어떤 역사가 짜여질지, 그것은 이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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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8 1575년 9월 중순



정신없게 시즈코의 인사(挨拶回り)가 일단락되고 오와리(尾張)의 정세가 안정될 타이밍을 가늠하여 노부나가가 드디어 행동을 개시했다.

명목상으로는 조정으로부터 전란(戦乱)의 진압(鎮圧) 명령을 받았다는 것으로 꾸미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우리(毛利)의 하리마(播磨) 침공을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노부나가는, 오사카(大阪)에 사쿠마(佐久間), 탄파(丹波) 방면에 미츠히데(光秀), 하리마 방면에는 히데요시(秀吉)를, 각자가 지휘하는 방면군(方面軍)을 파견했다.

조정으로부터 윤지(綸旨)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행군을 개시했으나, 즉시 진군할 수 있었던 점을 볼 때 사전에 주도면밀한 준비가 갖춰진 것은 명백했으며, 모우리 측의 대응이 늦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아키(安芸)의 동란(動乱)에 대해서는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고, 시코쿠(四国)의 움직임은 봉쇄되었어요. 응, 이거라면 의외로 빨리 결판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토우고쿠(東国)의 동향은 어떤 느낌인가요?"


"옛. 호죠(北条)가 타케다(武田)와 손을 잡으려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 내의 호죠 파도 호응하듯 기세를 올려, 착실히 세력(手勢)을 늘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토우고쿠 정벌시에는 그쪽에도 주의를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시즈코는 정보수집을 담당하고 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에게는 토우고쿠 정벌의 숨겨진 다른 목적, 즉 노부타다(信忠)에게 패배를 배우게 한다는 뜻을 전해 두었다.

이것은 모은 정보를 취사선택할 때, 무엇을 목표로 삼을지에 따라 정보의 중요도가 변화하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을 감추어서는 본래 필요로 했던 정보를 빠뜨릴 가능성이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뒷사정을 들은 마사유키는 처음에는 동요했으나, 아무 질문도 없이 받아들이고는 철수에 주안점을 둔 보고를 올리게 되었다.


"우에스기 님이 견제하고 있는데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건 봉기(蜂起)할 준비가 갖춰진 걸까요? 주상(上様)이시라면 그걸 알고도 우에스기 님을 출진시켜 반란을 부추길지도 모르지만요……"


"그럴 가능성은 크겠지요. 이야기를 토우고쿠 정벌로 돌리겠습니다만, 키묘(奇妙) 님께서 주도하시는 타케다 가문과 영민에 대한 '이간공작(離間工作)'이 상상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타케다 가문 영토에서 농지를 포기하고 도망치는 백성들이 끊이지 않고, 이 악순환을 끊어낼 만한 힘이 지금의 타케다 가문에는 없습니다. 타케다 가문은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灯火)라고 할 지경입니다"


"으ー음, 자칫하면 이쪽이 손을 쓸 것도 없이 상대가 자멸하게 되는 게 문제려나요"


이 토우고쿠 정벌은, 노부타다에게 노부나가의 비호가 있는 동안에 패배를 배우게 하는 기회임과 동시에, 유사시에 본성을 드러내는 '내부 변절자(獅子身中の虫)'를 추려내는 것도 목적이어서, 어떻게 해서든 '효과적'으로 패할 필요가 있었다.


타케다 가문의 정세로서, 신겐(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에 의해 원래부터 적었던 식량의 비축을 토해내게 되어, 영민들은 극도의 긴축 상태(爪に火を点す)로 간신히 먹고살고 있었다.

그러한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츠요리(勝頼)는 타케다 가문의 내부의 장악을 우선시하여 군비에 자금을 썼기 때문에, 굶주린 영민들이 결속하여 대규모 잇키(一揆)로 발전하는 곳조차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 이외에도 불안요소가 있네요……"


"그리 말씀하심은?"


"키묘 님을 너무 단련시켰달까, 작전 입안 단계에서 우에스기 가문 내의 불온분자들의 동향이나, 타케다와 호죠에 더해 우에스기 가문의 반란분자들에게 포위당했을 경우까지 상정해서 준비하고 있는 구석이 있어요"


"세 개의 세력에 포위당해 버리면, 철수하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타케다 영지의 마을들에 식량이나 물자, 금품을 뿌리면서 철수한다는 지시서가 준비되어 있거든요"


"……과연, 상당히 효과적인 책략이군요"


호죠나 우에스기 가문의 반란분자들에게 있어 타케다 영지의 곤궁함 같은 건 파악할 방법이 없는 일이다. 오다 군이 남기고 간 물자가 있으면 당연한 권리로서 그것들을 회수할 것이다.

하지만, 기아(飢餓) 상태에 빠져 있는 영민들에게 있어, 일단 손에 들어온, 내일을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 그 자체가 된 물자를 빼앗으려 들면, 죽기살기의 저항이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현장은 혼란에 빠져, 추격을 보낼 상황이 아니게 될 테고, 호죠나 우에스기 가문으로서는 동맹자의 영민을 해쳤다고 추궁받게 된다.

일석이조 이상을 노릴 수 있는, 상당히 악랄한(いやらしい) 계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누구에게 영향을 받은건지, 용의주도한데다 만만찮은 전법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마사유키에게는 비슷한 전법을 사용하는 인물에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을 정도의 분별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주상의 후계자라고 해야 하겠군요"


아군이 우수해서 곤란할 일이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시즈코였다. 노부타다는 기후(岐阜)로 거처를 옮긴 이래, 타고난 재능을 개화시켜 짦은 기간에 미노(美濃) 및 오와리를 장학하여 장족(長足)의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의 신변에야 직속(子飼い) 부하로 굳히고는 있지만, 그 이외에는 각 파벌로부터 밸런스 좋게 인재를 받아들이고, 주위의 의견도 잘 들으면서 엇나가지 않도록 지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 방향의 정면 작전이 되면 철수하는 데 이의는 없겠지만, 좀 더 빠른 단계에서 철수를 지시했을 경우에 부하들이 따라 줄지가 문제려나요"


"아마도 패한 척을 하면서 유인당할테니, 승리에 기세가 붙은 패거리들이 명령을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뭐, 그 때는 버릴 수밖에 없죠. 총대장에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노부타다 자신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직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부하가 성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단 궁지에 빠졌을 때, 노부타다의 지시에 목숨을 걸어줄 무장이 얼마나 있을지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일어난 '카네가사키 퇴각전(金ヶ崎の退のき口)'처럼, 따르지 않는 부하를 버리고 자신만이라도 철수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의 노부타다다 어떤 행동에 나설지, 그의 성장 덕분에 예측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뭐, 무슨 속셈이었던 간에 그에게는 철수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후위(殿)를 맡죠.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입수해야죠"


"잘 알겠습니다"


어떻게 사태가 진행이 되던 나오던 시즈코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가능한 한 보험을 들어두기로 했다.




5월은 전란(戦乱)의 분위기가 감도는 상태에서 바쁘게 지나갔지만, 장마가 시작됨과 동시에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중부지방(中部地方) 전역에 걸쳐 예년보다도 강수량이 많았지만, 각지에 건설된 저수지(溜め池)를 활용하여 계획적인 수량 조절을 실시했기에, 고민거리였던 하천의 범람 등이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7월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고, 8월에 들어서자 쿄(京)에서는 노부나가가 주최하는 불꽃놀이 대회의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사전에 널리 알려져, 천황(帝)이 임석(臨席)한다는 것도 맞물려서 노부나가의 권위를 천하에 드러내는 공전절후의 대 이벤트가 된다.

노부나가는 오다를 편드는 사람들은 물론, 명확하게 적대 자세를 보이는 혼간지(本願寺)나 모우리 가문, 사이카슈(雑賀衆)에조차 이 일대 사업에 초대해보였다.

귀중한 화약을 불꽃놀이라는 형태로 대량으로 소비하고도 여전히 오다 가문은 가렵지조차 않다는 것을 시위(示威)하는 것이 목적이긴 했으나, 너희들로는 적수조차 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명백한 도발이긴 했으나, 이 초대에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이 사이카슈였다.

경제적으로 곤궁했던 것도 있어, 철저 항전파조차 반목(確執)을 일단 접어두고, 장사할 거리(商材)를 가지고 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곤궁한 것에는, 노부나가가 시코쿠에 만들게 한 항구의 존재가 크게 관여하고 있다.

홀수선이 얕아 외양(外洋)에 나가지 못하는 일본 배(和船)에게, 큐슈(九州) 방면과의 교역을 생각할 경우 토사(土佐)에 출현한 거대한 항만도시의 존재는 매력적이었다.

충실한 항만 설비와 반대로, 저렴한 항만 이용료나 오와리로부터 차출된 숙련된 하역부(荷役夫)들의 일솜씨는 화주(荷主)들을 크게 만족시켰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무라카미(村上) 수군(水軍)에 지불하고 세토(瀬戸) 내해(内海)를 항행하기보다 멀리 돌아가게 되는 토사 경유의 항로를 선택할 정도로.


"이익보다도 반석같은 거점을 구축하는 것을 우선시하라"


항만도시에서 날마다 들어오는 막대한 이익은, 노부나가의 명령 한 마디에 의해 항만도시로 재투자될 것이 결정되었다.

본래라면 항만도시 정비를 위해 가져온 자금을 조금이라도 회수하고 싶지만, 일부러 연기했다.

얼핏 보면 무모하게도 보이는 자금 운용이지만, 일본은 물론이고 해외로부터의 외양선(外洋船)까지 받아들여 그 수익은 착실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요란하게 선전했기 때문인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었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 장사 기회가 생겨난다. 장사 기회가 있으면 어디에서라도 모여드는 것이 상인이다. 그리고 상인들은 먼 땅(遠地)의 얻기 힘든 정보도 가지고 온다.

시즈코는 마사유키 휘하의 간자들에게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여, 지방의 상인들로부터 정보를 모으도록 명했다.

그렇다는 해도, 외부의 상인들의 신용을 얻으려면 그들과 가까워져야 하기에(彼らの懐に飛び込まねばならず), 간자들이 상인들과 술을 마시고 다니는 광경을 쿄의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임무에 따른 이득(役得, ※역주: 임무나 의뢰 등을 수행하면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이득)이긴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한은 다소 느슨해지더라도 잔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푹푹 찌네요. 바람이 불지 않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의 열기가 굉장한 탓일까요?"


"쿄의 여름은 원래 이렇다"


아시미츠(足満)의 쓴웃음 섞인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든 부채를 부쳐도, 향목(香木)의 방향(芳香)과 함께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미지근한 바람이 일어나기만 했다.

본래 시즈코가 체재하고 있어야 할 쿄 저택에는 이것저것 더위 대책이 취해져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쿄 저택은 노부나가와 사키히사(前久)에게 점거되어버렸다.

엄청나게 높으신 분들(雲上人, ※역주: 사전에는 궁중 사람이나 궁중에 출입하는 귀족이라고 되어 있으나 일부러 의역) 두 분 상대만으로도 고생을 강요받고 있는데, 거기에 시즈코까지 체재해서는 고용인(家人)들이 안심할 틈이 없을거라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최저한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여관(旅籠)에 묵고 있었다.


"뭐, 어전 불꽃놀이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이 더위에 견딜 수밖에 없겠네요. 사진(写真) 기술의 실용화의 전망이 섰으니 얼른 오와리로 돌아가고 싶은게 본심이지만요"


"유리 건판(乾板)의 품질이 안정되기 시작했으니 말이지. 습판(湿板)에 비해 응답성(応答性)이 높으니, 실제 시험에서 문제가 없으면 본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지. 문화의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천문학이나 지리학, 의학에 군사 등, 그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 성능이 안정되지 않았던 유리 건판이었으나, 유리판에 도포하는 사진유액(写真乳剤, 감광재료(感光材料))의 원료를 재검토하여 실용화가 가능한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까지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질산은(硝酸銀) 등 필수 약품은 여전히 고가였으며, 디지털 카메라 같은 사용법은 바랄 수도 없지만, 한 장의 사진에 성인 여러 명이 한 달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 날아간다는 상황은 벗어날 수 있었다.

재료에 관해서는 기술이 확립되면 공업적인 생산과 함께 추가적인 코스트 다운을 기대할 수 있다.

건판 자체는 보관에 다소 주의할 필요가 있지만, 밀폐된 상자에 넣어두기만 하면 원하는 때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실용시험의 결과에 달렸지만, 토우고쿠 정벌에도 쓸 수 있겠네요. 중량이 나가는데다 깨지는 물건이니 많이는 가져갈 수 없지만…… 톱밥이라도 넣어서 운반할까요?"


"카이(甲斐)는 오와리만큼 도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다. 행군중에는 길 아닌 길을 가는 경우도 있겠지. 완충재를 넣어도 주의해서 운반해야 할 거다"


"치중대(輜重隊)에 전용 짐수레를 끌게 할까요. 그건 그렇고 덥네요…… 얼른 어전 불꽃놀이 대회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익을 듯 푹푹 찌는 더위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불평했다.

시즈코가 익숙하지 않은 쿄의 더위에 진절머리 내기를 며칠, 간신히 천황이나 주요 공가(公家) 들과 노부나가의 일정 조정이 끝나, 어전 불꽃놀이 대회가 개최되게 되었다.

발사 장소는 현대에서는 바랄 수도 없는 카모가와(鴨川) 하천 부지(河川敷)로, 카모가와의 양 기슭에 구경꾼들이 대거 몰려와 지켜보는 가운데, 불꽃놀이 기술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드디어 이 날이 왔다. 천자(天子) 님께서 임석하시는 전대미문의 행사다. 화약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녀석들을 위해서도, 우리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공시켜야 한다! 쿄 녀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자! 기합을 넣어라!!"


"""옛(応)!"""


두령(頭領)의 호령(発破)에 답하여 기술자들이 기염을 토했다. 낮은 위치에 있는 강바닥(川底)에서 양쪽 기슭을 올려다보면 새까맣게 모인 인파들이 밀어닥치는 듯 했지만, 기술자들에게 주눅들은 기색은 없었다.

경비 문제도 있어 기술자들에게 보이는 위치에 천황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강변의 떠들썩함(喧噪)에서 떨어진 조용한 저택에서 천황이나 사키히사를 포함하는 고노에 파(近衛派)의 공가들, 관위(官位)를 가진 노부나가의 관계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택 일대는 통행금지(人払い)가 되어 있고, 거기에 주위를 둘러싸듯이 노부나가의 병사들이 경비하고 있었다. 쥐새끼 한마리도 놓치지 않는 엄중한 경비였으나, 고양이라면 다른 곳도 아닌 천황의 무릎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다.


"어전에 내놓을 요리를 맡는 건 대단한 영광이지만……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네"


천황이나 공가들을 포함하여, 노부나가의 관계자 등 귀빈들에게 식사를 낼 요리인으로서 고로(五郎)가 발탁되어 버렸다.

그는 쿄에서 요리의 수행을 쌓다가 인연이 닿아 오와리로 흘러들러가서 노부나가나 노히메(濃姫)의 요리사를 맡아온 인물이다.

전통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노부나가가 보증하고, 천황이 그것을 인정했기에 실현된 인사(人事)였다.

고로에게는 승전(昇殿)이 허락되는 종5위하(従五位下)가 내려졌고, 대임을 멋지게 수행할 경우 대선직(大膳職, 천황 이외의 신하에 대해 요리(饗膳)를 내는 관청)의 관직이 주어지게 된다.


"투덜거려도 소용없겠지. 뭐, 실패하면 배를 가르게 될 뿐이니까"


고로의 보좌는 시로(四郎)가 하고 있었다. 정체(出自)가 수상한 시로가 주방에 서 있는 것도, 노부나가가 신원을 보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실패는 노부나가의 추태(失態)로 이어진다는 책임이 막중한 상황이기도 했다.

참고로 시로는, 고로와 의기투합한 이래로 종종 그의 요리를 돕게 되었고, 요리의 온도를 꿰뚫어보는 천성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판명되어, 지금은 고로의 보좌를 맡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아직 만들어보지 못한 음식(献立)이 산처럼 많다고. 그렇게 쉽게 죽을 순 없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자, 오늘의 요리는 완전히 똑같은 음식을, 소금간만 바꿔서 두 종류 준비할 거야. 평소에 몸을 움직이지 않는 공가님들은 옅은 맛으로, 주상을 필두로 하는 무가 사람들에게는 진하게 간을 해서 제공한다"


"그래서 주방을 두 개 전세낸건가. 밑준비는 고용인들에게 맡길 수 있지만, 맛을 결정하는 단계가 되면 고로가 솜씨를 보일 수밖에 없겠지"


"조리 순서를 조정하고 있으니, 순서대로 돌리기만 하면 요리는 완성돼. 문제는 몇 번이나 간을 보다 보면 혀가 둔해진다는 거지. 시로의 눈썰미를 믿고 있다네, 동지(相棒)!"


"책임이 막중하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각오를 굳힐 수밖에 없겠지"


천황이라는 귀인의 정점에 위치하는 사람에게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권력을 이용하여 산해진미를 모으게 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노부나가답게, 그릇까지 일급품을 준비하는 철저함이었다.

어중간한 요리로는 그릇에 져버리기 때문에, 요리장인 고로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틈이 없었다.

전쟁터 같은 상황인 주방을 뛰어다니며 어찌어찌 모든 요리가 운반되어 나갔을 무렵에는 두 사람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자,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어. 남은 건 심판을 기다릴 뿐인데, 실패했을 때는 함께 처벌받게 되어버리겠지. 미안해 시로"


"신경쓰지 마.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너와는 오랫동안 사귄 막역한 친구라고도 할 수 있을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런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도 하나의 재미지"


고로의 사과를 시로는 가볍게 흘렸다. 귀족들에게는 소재의 맛을 활용한 섬세한 간을 하고, 무인들에게는 펀치력이 있는 강한 간을 했다.

도저히 소금간을 할 수 없는 요리에는, 얼레짓가루(片栗粉)로 끈기를 주어 맛을 오래 남기는 수법을 써서 해결했다.


(주사위는 던져져 버렸다…… 이젠 될 대로 돼라(野となれ山となれ), 다)


사람 기척이 뚝 끊긴 주방의 땅바닥에 등을 맞대고 주저앉아, 어느 틈에 두 사람은 수마(睡魔)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들 혼신의 요리가 쿄의 귀인들에게 예상 이상의 호평과 함께 받아들여져서 두 사람 모두 기겁하게 되는 것은, 어전 불꽃놀이 대회가 끝나버린 후의 일이 된다.




어전 불꽃놀이 대회는, 호르륵호르륵 하고 피리소리 비슷한 소리가 난 후, 밤하늘에 작은 꽃잎이 피는 것을 신호로 시작되었다.

전기식의 연속착화장치 같은 건 있을 리도 없기에, 나름의 간격을 두고 밤하늘에 그려지는 빛의 꽃들.

뱃속에 울리는 듯한 포성과, 아득한 상공에서 작렬하는 파열음. 그리고 밤하늘을 캔버스삼아 흐르는 인공의 유성들.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풀밭에서 삶을 구가하는 벌레소리. 감도는 화약연기 냄새와 별이 떨어지는 듯한 연소음(燃焼音).

모두가 체험한 적이 없는 흥분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도화선의 길이를 조정하여 동심원 형태로 발사통을 배치하는 것에 의해 실현된, 로켓 불꽃(打ち上げ花火) 16연발은, 쿄의 사람들의 기억에 강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강변(河原)에서 떨어져있기는 하나, 밤하늘에 퍼져가는 꿈결같은 광경과,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요리를 맛보며 천황은 물론이고 공가들도 꿈꾸는 듯한 느낌을 맛보았다.

이리하여 어전 불꽃놀이 대회는 대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쿄의 사람들은 불꽃놀이에 열광하였으며, 어전 불꽃놀이 대회를 연 노부나가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았다.


이 결과를 안 노부나가는 혼자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두가 혈안이 되어 전쟁을 위해 모으고 있는 화약을, 여흥을 위해 성대하게 소비해보이는 것으로, 문화인(文化人)들에게는 노부나가라는 인물이 거칠기만 한 무사(猪武者)가 아님을 드러냈다.

그 한편, 노부나가에게 적대하고 있는 무장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지상에서 하늘높이 쏘아올려져 커다란 꽃을 피운 불꽃놀이였으나, 그게 밤하늘이 아니라 자신들의 거성(居城)에서 작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단지 여흥을 위해서 그만큼 소비되었는데, 얼마만한 양을 퍼부어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화살과 창으로 전쟁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싫어도 납득하게 되어 버렸다.


"이번 불꽃놀이 대회, 실로 수고하였다. 그대에게 쿄에서의 불꽃놀이 대회를 개최할 칙허(勅許)를 내리노라"


노부나가는 천황으로부터 어가상(御嘉賞,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독점적으로 불꽃놀이 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권리는 받아, 이후 여름의 풍물시(風物詩)로서 불꽃놀이 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현재 상황에서 반 노부나가의 급선봉인 혼간지는, 불꽃놀이의 포화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는 했으나, 한 번의 불꽃놀이 대회에서 사용된 화약의 양을 알게 되자 "이걸로 당분간 노부나가가 전쟁을 벌이지는 않겠지"라고 안도하고 있었다.


어전 불꽃놀이 대회로부터 몇 주일이 경과하여, 가을이 깊어짐과 함께 각지에서는 작물의 수확 시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영주가 직접 주도하여 농업개혁에 나선 것도 있어, 농업지도를 받은 에치젠(越前)이나 오우미(近江)에서는 현저하게 수확량이 증가되어 있었다.

특히 전쟁 피해(戦災)로부터의 복구에 힘을 쏟고 있는 에치젠에서는, 전에 없던 수확량과 극심한 기온(寒暖) 차이가 낳은 예상 이상의 음식맛(食味)에 들끓고 있었다.

한편, 오와리-미노는 안정된 고수확을 보이고 있었다. 남는 쌀은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그것이 타국으로 전매되어 유통, 되어야 했다.


"남는 쌀을 비싸게 사들이겠다. 원하는 사람은 말하라"


이것에 노부타다가 제동을 걸었다.

위와 같은 통고를 각 농촌에 보내고, 농민들도 노회한(海千山千) 상인들과 교섭하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하여, 전량을 매입할 것을 약속해준 노부타다의 매입에 응했다.

그 결과, 방대한 양의 쌀이 노부타다에게 모여들었다.

그 양은 근년에 소문이 돌고 있는 토우고쿠 정벌을 시야에 넣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어서, 그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던 적국의 간자들은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약간 수상함이 감돌 무렵, '에치고(越後)의 용(龍)', 즉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상락(上洛)을 개시했다.

명목으로서는 노토 국(能登国)을 지배하에 둔 것에 대한 보고 및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전의 상락 이후로 끊겼던 천황에 대한 인사차 가는 것이라고 했다.

켄신의 행동 자체에는 아무런 수상한 점은 없지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켄신이 이 시기에 상락하게 되자, 주변의 여러 진영들은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주위의 속셈과 무관하게, 노부나가의 직속 부대(手勢)와 합류하여 켄신은 무사히 상락을 마쳤다. 선언한 대로 천황에 대한 인사와 보고를 끝내고, 이어서 교우가 있는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의 저택을 방문했다.

그 후, 사키히사와 함께 아즈치(安土)로 가서 노부나가와 회담을 가졌다.


"……그래서, 어째서 마지막은 우리 집인데?"


시즈코는 덮져온 재난에 자기도 모르게 불평했다. 켄신은 사키히사를 동석시켜 노부나가와 비밀 회담을 가진 후, 노부타다와 인사(顔つなぎ)를 하기 위해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했다.

여기까지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기후 성을 방문한 후, 노부나가까지 동행하여 시즈코 저택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유(道理)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가 불타면 일본의 세력구도가 일거에 뒤바뀌어버리지 않을까?"


"불길한 말씀을 하지 마시고, 주상과 고노에 님의 상대를 부탁드립니다"


"응, 항상 갑작스러워서 미안하지만, 뒤쪽(裏方)의 지휘를 부탁해"


아야의 변함없이 냉정한 지적을 받고 제정신이 든 시즈코는, 한숨을 삼키면서 자신의 주인인 노부나가에게 인삿말을 늘어놓았다.


"주상께서도 편안하신 듯 하여……"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다. 마음에도 없는 겉치렛말을 하지 않아도 네 얼굴에 본심이 쓰여 있느니라. 갑작스럽게 밀고들어와서 민폐라고 말이다"


"아신다면, 하다못해 사전 연락이라도……"


그렇게 시즈코가 말을 마치기 전에, 노부나가의 수도(手刀)가 그녀의 머리에 작렬했다. 충격을 남김없이 전달했을 때 특유의 둔중한 소리가 나며,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직한 것은 미덕이다만, 때로는 겉치레(建前)도 중요하느니라"


"아파요…… 하지만, 정말 무슨 용무이신가요? 지금 이 시기에 주상께서 아즈치를 떠나실 정도로 화급한 안건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오다 가문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오다 가문 1강(強)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위협으로 거론되는 것은 혼간지였으나, 이미 그 경제력도 군사력도 오다 가문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모우리의 견제로 사이고쿠(西国)에 수하를 파견하고, 토우고쿠의 동향은 노부타다에게 맡기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양쪽의 보고를 받아야 하는 노부나가가 거점인 아즈치 성을 비워도 괜찮은 이유는 하나도 없다.

그것조차 무시하고 노부나가 자신이 왔으니, 예상 외의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가 걱정하고 있을 때, 노부나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작년에는 첫 수확제(初穂祭)를 구실로, 꽤나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하더구나"


"……혹시 가을의 미각 축제(味覚祭り) 말씀이신가요?"


시즈코가 말하는 '가을의 미각 축제'란, 시즈코의 영지에서는 항례(恒例)가 되어 있는 행사를 가리킨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시즈코가 큰 돈을 가지고 성시(城下街)를 방문하여, 여기저기서 다양한 식재료를 사들여서 신작 요리를 선보이는 일련의 이벤트이다.

만들어진 요리는 각지의 첫 수확제에서도 뿌려지고, 후일 조리법도 공개된다. 누구에게도 입막음 같은 것은 하지 않았기에, 돌고 돌아 노부나가에게 전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부자유스러움을 참고 있을 때, 너희들만 맛있는 것을 독점하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네 주인이 누군지 다시 한 번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아즈치로 거처를 옮긴 후에 생활에 불만이 쌓여 있던 걸까)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리(堀)에게 확인해보자고 마음 속으로 정한 후, 시즈코가 직접 노부나가를 자리로 안내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성(小姓)을 붙일 계산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 요리는 기대하고 있다. 그 후에, 네 양자도 만나보고 싶다. 절차는 맡기지"


어깨를 두드린 것은 노부타다였다. 그는 자신의 용건만을 말하고 웃으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앗 하는 사이의 사건이라, 시즈코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가. 주상께서 오신다면, 그가 동행하는 것도 당연하네"


노부나가에 노부타나, 사키히사에 켄신 등, 하나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호화스러운 면면이었다.

아까의 농담이 아니라도, 이 자리를 습격할 수 있다면 단번에 천하를 눈앞에 둘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혼노지 사변(本能寺の変)처럼 부하들이 소수라면 모를까, 이곳은 시즈코의 앞마당이다.

시즈코 직할의 군에 더해,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의 신변을 경호하는 정병들 외에, 켄신이 끌고온 에치고 군까지 있다.

애초에 시즈코가 쳐놓은 경비망에 걸리지 않고 여기까지 군대를 진군시킬 수 있고 게다가 이 포진을 돌파할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벌써 천하를 손에 넣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 우에스기 님에게는 의사의 진찰을 받게 해 줘요. 결과에 따라서는 소량의 음주라면 허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옛, 알겠습니다"


켄신은 시즈코에게 금주를 맹세했지만, 몸 상태가 허락한다면 소량의 음주를 허가해도 괜찮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모처럼의 연회석에서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도 멋대가리 없으니 말야. 남은 건 도쿠가와(徳川) 님인데…… 이 멤버에 놀라시지 않을까?)


당초에 '가을의 미각 축제'의 내빈(来賓)은 이에야스(家康) 뿐일 예정이었다. 부쿄(奉行) 취임(就任)의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미각 축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꼭 참가하고 싶다는 부탁을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시즈코의 손님맞이 준비로서는 이에야스와 그의 가신들 외에, 시즈코와 그녀의 직속 신하들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 외의 인물이 네 명이나 더해져버린 것이 현재 상황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켄신이 이 행사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 노부나가와 노부타다는 당연히 알고 있었을테고, 사키히사는 그들의 꿍꿍이에 재미있어하며 끼어든 것이리라.


"식재료가 충분하려나?"


돈을 아낌없이 들여 대량으로 사들였지만, 단숨에 늘어난 초대객 때문에 식재료의 수배가 불안해진 시즈코였다.




노부나가가 도착한 후 약간 늦게 이에야스도 시즈코 저택에 도착했다.

시즈코로부터 예정 외의 손님에 대해 듣고는 약간 놀란 모습이었으나, 과연 역전의 노장(古強者). 즉각 머릿속을 비우고는 다른 초대객들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뭔가 굉장한 일이 되어버렸구만"


몸종(小間使い)들 뿐만 아니라 소성들까지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케이지(慶次)와 나가요시(長可)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 마주보았다.

잘 알고 지내는 동료들끼리의 거리낌없는(無礼講) 자리에서 상황이 일변하여 상당한 예의범절이 요구되는 연회석으로 변해 있었다.

평소에는 조리장(調理場)에 숨어들어 술안주를 슬쩍했겠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내키지 않았다.


"모처럼의 축제였는데 말야"


"그렇군. 나는 영감님이 있는 곳으로라도 도망칠까. 딱딱한 연회석 따윈 절대 사양이야"


"적당한 술통을 슬쩍할까"


처음부터 상사(上司)가 자리하는 딱딱한 연회석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참을 수도 있지만, 직전에 물을 뒤집어써서는 흥이 깨진다.

그래서 상사의 접대는 시즈코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자신들끼리 조용히 가을의 은혜(恵み)를 즐길 속셈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있었나"


어떻게 안주를 조달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사이조(才蔵)가 말을 걸어왔다.

좋지 않은 인물에게 들켜 버렸다고, 두 사람은 시선으로 서로 확인했다.


"나는 참가하지 않겠어"


"마찬가지"


"이놈들아…… 마음은 알겠지만 시즈코 님의 체면도 있다. 참아라"


두 사람의 태도에 사이조는 한숨을 쉬었다.


"무리무리. 겉모습만 꾸며봐야 마각이 드러날 뿐이야. 억지로 참가했는데 시즛치의 체면까지 구겼다고 하면, 아무리 나라도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하아…… 하여간. 시즈코 님이 말씀하신 대로군"


"응? 시즛치가 뭔가 말했나"


"그래, 의례적인 자리가 되었으니 네놈들은 확실히 도망칠 테니까, 못본 척 해주라고 하셨다. 하다못해 시즈코 님의 마음 씀씀이라도 전하려고 말을 건 거다"


"역시, 시즛치는 말이 통한다니까. 주인의 마음 씀씀이를 감사히 생각하며 나는 참가하지 않겠어"


의리가 강한(義理堅い) 케이지 치고는 묘하게 완강한 태도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이조는 물러서기로 했다.


"별채(離れ)에 술과 요리를 보내겠으니, 마찬가지로 도망치고 싶은 녀석과 먹고 마셔라, 고 하셨다"


"준비성이 좋구만"


"네놈들의 방식을 존중해주시는 시즈코 님께 감사하면서 먹어라. 소생은 시즈코 님을 그 자리에 혼자 둘 수 없으니 말이다"


가볍게 손을 휘두르며 사이조는 그 자리를 떠났다. 손해보는 성격이구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케이지는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면서 나가요시도 뒤를 따랐다.


"그럼, 잔소리 심한 녀석들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별채로 도망칠까"


"그렇군"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파에 섞여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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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7 1575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쿄(京)에 도착하자, 일단 자신의 쿄 저택에서 한숨 돌렸다. 방문의 사전 연락을 보내어, 가장 먼저 교토소사대(京都所司代)를 맡고 있는 무라이 사다카츠(村井貞勝)와 약속을 잡았다.

무라이는 예전부터 노부나가를 섬겨온 행정관(行政官)으로, 오다 가문과 조정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며, 궁궐(禁裏)의 수복 공사나 니죠 성(二条城)의 조영(造営), 공문서 조사에서 계쟁(係争)의 조정 등, 그가 해낸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쿄에서의 행정 전반을 관장하며 노부나가의 대리인(名代)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무라이를 가리켜 루이스 프로이스는 '수도(都, 교토(京都))의 총독(総督)'이라고 칭했다.

무라이가 '수도의 총독'이라면, 시즈코는 말하자면 '오와리(尾張)의 총독'으로, 서로의 임지(任地)가 결정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직접 교류를 깊이 할 기회가 없었다.

올해는 다행히 시즈코가 쿄로 가게 되었기에, 급작스럽기는 하나 회담을 가지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에는 갑작스런 신청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즈코 님은 주상께서 오와리를 맡기실 정도의 분. 소문은 항상 듣고 있습니다"


"하하하, 들으신 것이 좋은 소문이면 좋겠습니다만, 풋내기(若輩者)다보니 실수(不手際)도 많아,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 같은 것도 있지 않았던가요?"


자칫하면 조부(祖父)와 손녀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는 시즈코를 상대로 무라이는 대단히 정중하게(下にも置かない) 대접하며 온화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거기에 시즈코가 쿄에 체재하는 것은 무라이에게도 메리트가 있었다. 시즈코가 이끌고 온 군은, 시즈코가 쿄에 채재하는 동안 교대로 휴가가 주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긴급 소집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고 쿄의 이곳저곳에서 무료함을 달래게 된다.

휴가중이라고는 해도, 정예의 군속(軍属)이기에 태도(物腰)부터 일반인과는 다르다. 필연적으로 악인(悪人)들은 모습을 감추고, 쿄의 치안은 안정되게 된다.

또, 시즈코 군은 지갑 사정이 넉넉한 것(羽振りが良い)으로도 유명하여, 말단의 병사들에게까지 비교적 돈이 넉넉하게 돌아가고 지갑 끈이 느슨하다.

병사들은 신기한 쿄의 토산품을 사거나, 쿄의 거리(街並み)나 구경거리(見世物) 등을 보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때아닌 호경기에 도시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럼, 우선 카모가와(鴨川, 또는 賀茂川) 공사(普請)에 쿠로쿠와슈(黒鍬衆)를 파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뇨아뇨, 카모가와의 안정(安堵)은 쿄에 있어 중요한 사항.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카모가와는 과거에 몇 번이나 범람을 일으킨 난폭한 강(暴れ川)이다.

애초에 강 자체에 급격한 구배(勾配)가 있어 자연스럽게 유속(流速)이 빨라지는데 더해, 수원지(水源地)인 키타야마(北山)의 수목이 벌채되어 보수력(保水力)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末期)에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른 시라카와(白河) 법황(法皇)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서 '카모가와(加茂河)의 물'을 들었을 정도로 당시의 지배자들을 애먹게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현대에서 카모가와(鴨川)에 賀茂川라는 글자를 쓰는 경우가 있다. 독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른 이유는, 카미가모(上賀茂) 신사(神社)와 시모가모(下鴨) 신사에 기인한다.

각각의 신사가 자신들의 지배지역을 흐르는 강을 신사의 이름을 따서 賀茂川와 鴨川로 불렀기 때문에, 현재의 카모(加茂) 대교(大橋)보다 상류를 賀茂川, 하류를 鴨川로 구별하고, 통칭을 鴨川로 표기하고 있다.

무라이가 말한 공사란, 강바닥을 파내려가는 것(掘り下げ)과 제방(堤防)의 구축, 노후화된 고죠(五条) 대교와 시죠(四条) 대교에 더해, 역사적 사실에서는 에도(江戸) 시대에 공의교(公儀橋, ※역주: 에도 시대에 에도, 오사카(大阪), 쿄 등에서 에도 막부(幕府)의 경비로 가설, 교체, 수복이 진행된 다리를 말함)로 지정된 산죠(三条) 대교의 수복을 가리킨다.


천황(帝)이 있는 궁궐(御所)에서 멀다고는 해도, 전략적 가치를 가지는 다리의 공사를 맡는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권력도 권력이지만, 그것을 현실의 계획으로 실현시키는 무라이의 높은 조정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리를 정비하여 교통 편의성을 좋게 하는 것은 방어력의 저하를 불러오지만, 원래 쿄는 공격하기 쉽고 지키기 어려운 땅이다.

쿄까지 군세가 공격해 들어온 시점에서 진 싸움이기에,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쿄에서의 방어전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무라이와의 회견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는 것에 따른 고충에 대해 불평을 나누었다.

성별도 연령도 초월한 중신끼리의 회담은 쌍방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지만, 둘 다 바쁜 몸이었기에 겨우 일 각(刻) 만에 끝나게 되었다.


"아쉽습니다"


"이쪽이야말로, 명성 높으신 시즈코 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각고정려(刻苦精励)하여 주상의 일본 통일을 떠받칠 때. 천하통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서로의 신변도 조용해지겠지요"


"그 때는 부디 오와리에 들러 주십시오. 이번엔 제가 성심껏 대접하겠습니다"


"이름높은 오와리의 풍물(風物),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즈코의 작별인사와 함께 무라이와의 회담은 끝났다. 무라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시즈코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하고 간신히 어깨의 힘을 빼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소문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되는구나. 타케다(武田)를 쓰러뜨린 강자(剛の者)라고 들었기에 어떤 도깨비같은 여자(鬼女)가 나타날까 했는데, 기품조차 느껴지는 우아한 여인(手弱女)이구나"


"실로 아까운 분입니다. 여자만 아니었다면 천하를 넘볼 수 있는 그릇이었겠죠"


무라이의 보좌를 맡는 장남, 사다나리(貞成)가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아들의 빗나간 의견을 무라이는 껄껄 웃어넘겼다.


"시즈코 님에게는 천하를 손에 넣는다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던가 하는 속인(俗人)이 품는 야심은 없을게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옛말에 있는 '왕좌(王佐)의 재능'. 주상과 함께하여야만 빛을 내겠지. 유일하게 난점을 들자면……"


사다나리는 아버지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무나 나이 차이가 나고, 또 그녀는 재능이 너무 뛰어나다. 시즈코 님을 대하고 있으면, 손주처럼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진다"




정신없이 바쁜 무라이에게는 시즈코가 찾아가는 형태를 취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시즈코의 쿄 저택을 방문했다.

공가(公家)에 한정되지 않고 무가(武家) 사람들이나, 불가(仏家)까지 시즈코와 인연을 맺기 위해 접견(目通り)을 바라며 줄지어 있었다.

천하를 손에 넣기 직전인 노부나가의 심복(懐刀)이자 온화한 인격자로 이름높은 시즈코에게 줄을 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 사람들이 자아내는 욕망과 책략(駆け引き)에 질색을 하면서도,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차별 없이 시종 생긋 웃는 태도로 대응했다.


시즈코는 다음으로, 자신의 후견인이자 양아버지(義理の父)에 해당하는 사키히사에게 사전 연락을 보냈다. 타이밍 나쁘게 사키히사는 급한 용무로 사카이(堺)로 가 있어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시즈코가 사카이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사키히사의 집사(家宰, ※역주: 가주를 대신해 집안일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서양의 Butler와는 좀 다르지만 집사라고 해도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집사로 의역함)가 그럴 필요 없다고 사양했기에, 회담이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시즈코가 직접 쓴 편지와 각종 선물(手土産)을 집사에게 맡기고 고노에(近衛) 저택을 떠났다. 후에 시즈코와 길이 엇갈린 것을 알게 된 사키히사는, 시즈코와의 용건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전에 파발을 보내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묻도록 집사를 야단쳤다.


"으ー음, 노히메(濃姫) 님조차 싫어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뭐랄까 독기(毒気)에 휩싸이는 느낌이네"


약간 초췌한 표정으로 시즈코는 책상(文机)에 엎드렸다.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魚心あれば水心)'라는 옛말이 있지만, 시커먼 속(下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뇌물의 응수는 상상 이상으로 시즈코의 정신을 뒤틀리게 했다.

시즈코의 손이 정신 안정을 찾아 상상 속의 비트만을 쓰다듬으려고 했을 때, 소성(小姓)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서둘러 자세를 바로하고 소성의 부름에 대답했다.


"시즈코 님, 소우에키(宗易) 님이 접견을 신청하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라? 생각지도 않은 분이 오셨네요. 만나겠으니 그렇게 전해주세요"


"옛"


리큐(利休)가 회견을 요청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실익 없는 속 떠보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그와의 회담을 수락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괘념치 마십시오. 이쪽도 타산(欲得)에 가득한 면회에 식상해 있던 참이라서요. 함께 오신 분은 처음 뵙는 분이군요?"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시즈코는 리큐의 동행자로 화제를 돌렸다. 외견으로 볼때 30대 후반의 남성이며, 기술자(職人) 같은 예술가 계열의 인물로 보였다.

리큐가 정체가 수상한 사람을 데려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시즈코가 처음 보는 인물이라고 언급한 순간, 뒤쪽에서 대기하던 사이조(才蔵)와 소성들은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갈 자세를 취했다.


"실례했습니다. 늦었지만 소개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제 친우로, 이름을 하세가와 신슌(長谷川信春)이라고 합니다"


리큐의 소개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시즈코는 남자의 이름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하세가와 신슌, 훗날 토우하쿠(等伯)라고 칭하는 그는, 하세가와 파(長谷川派)라고 불리는 파벌을 구성하는 화가(絵師)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당시 화단(画壇)의 톱이었던 카노우 파(狩野派)를 위협할 정도의 존재가 되는 하세가와 파를 일으킨 인물이지만, 이 때는 아직 자복(雌伏)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아는 사람은 안다는 정도의 지명도였다.

사이조 등 호위들의 경계는 느슨해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현대에서 얻은 역사의 지식에서 이 시기의 그는 리큐나 일련종(日蓮宗)의 승려, 닛츠(日通)와 교류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세가와…… 과연. 그럼 당신이 니치교(日堯) 상인(上人)의 초상화를 그리신 분이시군요"


시즈코가 하세가와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정체를 헤아린데다 작품의 하나를 입에 올린 것에 두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큐는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을 알아맞혀진 신슌 자신이 노골적으로 당황했다.


"저는 이래뵈도 예사(芸事) 보호(保護)를 맡고 있습니다. 장래 유망하다고 하는 분들의 정보는 많건 적건 제 귀에도 들어오게 되어 있지요"


"옛! 칭찬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제정신이 든 신슌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재야(在野)에 묻혀있는 자신에게 눈길을 준 시즈코에게, 그는 그 팔 넓음에 경악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즈코로서는 훗날의 업적을 알고 있기에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 선견지명도 뭣도 아니어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제게 소개하신다는 것은, 뭔가 노리는 것이 있으시겠지요?"


조정으로부터 예사 보호를 맡은 시즈코에게는 노부나가가 집착하고 있는 다기(茶器)는 물론이고 다양한 미술, 예술품이 모여든다.

또, 사원(寺院) 등이 비장(秘蔵)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특별히 열람을 허가받을 권한을 위탁받고 있었다.

이 시기의 신슌은 연줄(伝手)을 이용해 다양한 미술품을 접하고, 맹장지(襖)나 칸막이(衝立)에 그려진 장벽화(障壁画)라 불리는 장지화(障子絵)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것들에 자극을 받아 지식과 기술을 흡수하여 독자적인 화풍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신슌의 재능을 인정한 리큐가, 가장 많은 미술품을 관리하는 시즈코에게 그를 소개하여, 조금이라도 많은 작품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예, 이 남자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개화하려면 당분간 더 수양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 일급의 작품들을 관리하시는 시즈코 님의 소장물을 개진(開陳)하여 주실 수 없을까 하여, 대단히 뻔뻔스러운 부탁입니다만 데리고 왔습니다"


"흠"


정체는 리큐가 보증한다면 문제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이익도 없이 그만을 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들 보기에 좋지 않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에게 미술품 열람의 허가를 내주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리큐 이외에도 시즈코의 지기(知己)를 통해서 동등한 허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쇄도할 것은 뻔히 보였다.

시즈코 자신은 신슌이 대성할 것을 알고 있지만, 현 시점의 신슌은 무명의 존재이며, 그만을 우대할 가치가 있다고 만인이 인정하게 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소우에키 님의 소개이니, 그 인품이나 실력은 확실하겠지요. 하지만, 그만을 우대할 근거로 삼기에는 약합니다. 그가 금후의 미술계를, 나아가서는 화단을 견인하게 될 제 1인자가 될 것이라는, 우대할 가치가 있다는 실적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소성에게 지시하여 어떤 병풍(屏風)을 운반해오게 했다. 병풍은 좌우 다른 모티브로 그려져 있었는데, 왼쪽의 병풍의 2면을 사용하여 소나무가, 오른쪽의 병풍의 2면에는 노송나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곡일쌍(四曲一双)이라 불리는 작풍(作風)으로, 그 화려한 색채나 약동감 넘치는 정교한 필치(筆致)는 초보자의 눈에도 뛰어난(一廉) 인물의 손에 의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병품은 하나의 면을 선(扇)이라 부르고, 하나로 이어진 선의 숫자에 따라 2곡(曲), 4곡, 6곡 등 짝수로 늘어간다. 그리고 좌우 한 조가 되는 작품을 쌍(双), 단독으로 성립하는 병풍은 척(隻)으로 세었다.


"이것은 카노우(狩野) 님(카노우 에이토쿠(狩野永徳))이 제게 헌상해주신 병풍입니다. 당대 제일로 이름높은 카노우 님을 넘어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이것을 보고 제가 당신을 우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의 작품을 그려 주세요. 그것으로 허가를 내릴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카노우의 병풍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는 신슌에게 시즈코는 결연하게 선언했다.




"지금 당장 이것을 뛰어넘는 재주를 보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 화단의 정점에 선 인물의 작품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아 주세요. 명확한 기한은 두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사람이나 물건, 돈도 지원하죠. 대신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이 되는 작품을 제출해 주세요.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즈코의 제안에 대해 신슌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하는 대신,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조건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손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시간만 있으면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고, 그 시점에서의 최선을 다한 작품으로 당대 제일의 재능과 겨루라는 엄격한 조건이다.


"잠시,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미치지 않더라도 좋지만, 그 시점에서의 최고의 재주를 보이고 뒤떨어지는 것을 인정하라는 엄격한 조건에, 신슌은 겨우 그 말만 짜낼 수 있었다.

대답이 보류된 형태의 시즈코였으나, 그녀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대답이 나오면 리큐를 통해 전하라고만 했다.

신슌의 용건이 끝나자 리큐는 그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리큐는 신슌과 시즈코를 만나게 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뿐이며, 그 자신은 이렇다 할 용건이 없었다.


"조금 지나치게 엄격한 주문을 한 걸까? 하지만, 명백하게 특별대우를 하려면 그럴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실적이 필요하지. 누구에게라도 쉽게 보일 수 있는 개가방식(開架方式)이 아닌 이상, 자질을 보여주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게 되니까"


중국(唐)의 작품이나 동서고금의 일급품을 볼 수 있을가 하고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엄격한 조건이 들이밀어진 것이다. 그 낙차(落差)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자, 다음은 오르간티노 님인가. 요즘 남장을 안 했더니 영 답답하네"


시녀에게 하얀 무명천(サラシ)으로 가슴을 모아올리게 하면서 남장을 갖추는 시즈코가 투덜거렸다.

슬슬 정체를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노부나가에게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남장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노부나가는, 처음의 만남 이래로 동석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즈코에게 남장을 시키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답답한 차림새에 견디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회담 준비가 갖춰졌다고 소성이 알려왔다. 기합을 한 번 넣고 어깨를 돌린 후, 시즈코는 알현실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의 활약은 멀리 떨어진 고향에서도 종종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접견할 수 있게 되어, 건강하신 모습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これはご丁寧に). 과연 오르간티노 님이라고 할까요, 저희 나라의 문화에도 정통하시군요. 그쪽은 별 일이 없으신가요?"


알현자를 대표하여 오르간티노가 인삿말을 늘어놓고, 그것에 시즈코가 답했다. 이번에 알현하려 찾아온 것은 오르간티노, 프로이스, 로렌초 세 명이었다.

수도사들은 각각 포교에 열심인지, 요즘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전의 임지(任地,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 주)에서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쪽의 더위는 한층 다르군요. 이렇게 뵙기 전에는 목욕(行水)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쿄는 분지(盆地)라서 습기가 차게 되어 아무래도 더위나 추위가 혹독해지지요. 해질무렵이 되면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만"


오르간티노는 바로 용건을 꺼내지는 않았다. 우선 인사부터 시작해서 근황을 이야기하며 대화에 활기를 띠게 하여 상대와의 공감을 얻는 것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잡는다.

필연적으로 오르간티노가 화제를 제공하는 일이 많아지지만, 그의 화술은 대단히 뛰어났다.

실제 체험이 뒷받침된 풍부한 화제에, 말의 억양이나 말 사이사이에 간격을 두는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실패담조차 유머를 섞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젓가락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도구입니다. 당초에는 그런 막대기로 식사가 가능한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일단 숙달되어버리니 그만큼 만능의 도구도 없더군요. 손으로 면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는 고향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숙달에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익숙해지면 팥(小豆)이나 콩(大豆)을 접시에서 분류하거나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동그란 콩을 미끄러뜨리지 않고 잡을 수 있게 되면 도전해보고 싶군요. 아참, 콩을 잡는다는 얘기 때문에 떠올렸습니다만, 전에 말씀하신 진주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오르간티노가 잡담의 연장선에서 실로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이야기를 유도했다. 오르간티노가 방문을 신청한 시점에서 시즈코는 대략 그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영토에서 양식하고 있는 진주에 대해 뭔가의 진전이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쌍방에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물론입니다. 우선 전 임지인 고아와, 저희들의 고향의 왕후귀족(王侯貴族)들에게 정보를 흘렸더니, 대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할 것을 재촉했다.

크게 시대를 앞서간 양식진주가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는 신이 아닌 시즈코로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르간티노의 말에 따르면 호평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즈코는 이야기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그 색상(色合い)입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진주란 은(銀)에 가까운 색상을 띠고 있습니다만, 각하께서 준비해주신 진주는 순백에 가까운 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흠, 색상인가요. 과연……"


당시 유럽에 유통되고 있던 천연 진주는 은색, 그에 반해 양식의 아코야 조개에서 나는 진주는 백색이 된다. 이것은 진주질(真珠質)을 분비하는 모개(母貝)의 종류에 기인하고 있다.

당시의 세계에는 은을 귀히 여기는 풍조가 있었기에, 시즈코는 백색보다도 은색 쪽이 유럽인들의 취향에 합치된다고 생각했다.


"색상을 은빛에 비슷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른 종류의 진주로서 팔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상대가 양보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각하께서 희망하시는 가격보다 어느 정도 가격 인하를 요구받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주신다면 교섭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르간티노는 시종 상냥하게 선의로 교섭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했다. 시즈코는 그에 대해 과연 선교사라고 혀를 내둘렀다.

색상의 취향이라는 건 확실히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자(瑕疵)를 지적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싸게 들여가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리라.

그들이 손을 쓰면 색상의 취향 정도는 어떻게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재료로 가격 교섭을 걸어온다. 마음씨좋은 할아버지처럼 행동하면서도 제법 만만찮은 책략가였다.

하지만, 오르간티노를 가리켜 속이 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배짱(腹芸)이 없으면 모국이라는 뒷배가 없는 적지에서 침략 행위에 가까운 종교의 포교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플랜 B를 채용할 때!) 당연하겠군요. 파는 쪽으로서는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고 싶습니다만, 살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는 상품이 되지 않지요. 가격 인하도 필연적이겠죠"


"현명하신 헤아림에 감사드립니다"


"그것들을 고려하여, 이쪽은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겠습니다. 하나는 매입 가격을 낮춘 통상의 거래, 또 하나는 가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의 독점판매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즈코의 말을 듣고 오르간티노가 띠고 있던 분위기가 변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경계하면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야심이 그에게서 흘러나와버린 것이리라.

손맛이 있었다.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건을 쓰고 있었기에 표정은 읽히지 않았으나, 그래도 말에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화를 진행했다.


"통상의 거래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야기할 것은 없습니다. 독점판매계약에 대해서 설명드리지요. 우선 매입 가격입니다만, 이전에 이쪽에서 제시한 가격으로 제공하게 됩니다. 대신 원칙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진주의 전량을 당신들에게만 판매합니다. 판매가 잘 되지 않아 재고가 쌓일 가능성을 포함합니다만,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서 산출되는 진주를 취급하는 유일한 창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 낳는 우위성은, 장사에 밝으신 오르간티노 님이시라면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오르간티노라면 독점계약을 선택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최근에 프로테스턴트 계열의 상인들이 동양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카톨릭 계열의 상인에게 들었던 것이다.

아직 동남아시아 각국이나 중국, 일본 시장에는 진출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예수회 파벌이 독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프로테스턴트 측의 상인들이 동양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독자적인 항로를 확립한 것을 의미한다.

몇 년만 지나면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의 프로테스턴트 국가가 극동(極東) 일본까지 진출하여 상권 확장을 둘러싸고 카톨릭 국가와 패권을 다투게 될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대단히 흥미깊은 이야기입니다만, 제 재량을 좀 넘어서는군요. 일단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가서 다시 날을 잡아 뵈어도 괜찮겠습니까?"


눈 앞에 매달린 먹이에 달려들 거라 생각했지만, 오르간티노는 냉정하게 판단을 보류했다.

시즈코로서는 상대를 속일 생각도 없고, 거래 상대를 예수회에 한정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거기까지 고려가 끝난 플랜 B였기에, 모두 상정된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상관없습니다. 이쪽도 우리 나라의 진주가 각광을 받을거라 생각하여 조금 지나치게 서둘렀군요. 충분히 검토하신 후에 좋은 대답이 있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각하의 의향을 고국게 전달하여, 반드시 좋은 대답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오르간티노 님이 맡아주신다고 하면 이 이상 든든할 수 없겠지요"


오르간티노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이고, 피곤하다 피곤해……"


자기 방으로 돌아와 남장에서 해방된 시즈코는, 전신을 쭉 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뭉친 어깨를 풀면서, 회담 도중에 로렌초와 프로이스 두 사람이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주의 건도, 그 이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오르간티노였으며, 의견을 물었을 때 이외에는 두 사람이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창구 담당은 오르간티노로 단일화되는 거겠지. 그리고 두 사람은 스무스하게 이어받을 수 있도록 서포트에 치중하는 걸까?)


시즈코와 예수회의 인연을 맺은 것은 프로이스와 로렌초였다. 그 두 사람이 어떤 경위로 시즈코와 교섭역에서 빠지고 오르간티노에게 뒤를 맡겼는지는 알 수 없다.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마음 속 한 구석으로 치워두기로 했다.


"자, 슬슬 일단 오와리로 돌아가고, 그 후에 도쿠가와(徳川) 가문에 인사하러 가야겠네"


이에야스(家康)의 기분을 살피는 것(機嫌窺い)은, 노부타다(信忠)로부터의 명을 받아 그의 대리인으로서 수행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노부나가가 오와리와 미노(美濃)를 맡기게 되어, 정식으로 오와리 부쿄(奉行) 및 미노 부쿄(奉行)에 취임한 것을 동맹국이자 이웃나라이기도 한 미카와 국(三河国) 및 토오토우미 국(遠江国)에 알릴 겸 인사하러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쿄라고 하면 오오오카 에치젠(大岡越前)이나 토오야마 킨시로(遠山金四郎)를 떠올리는 분도 많겠지만, 그것들은 에도 시대 이후의 마치부쿄(町奉行, ※역주: 검색해보니 영지 내의 주요 도시의 행정 및 사법을 담당하던 기관이라고 하는데, 현대 기준으로 하면 시청과 경찰서, 소방서 등이 통합된 기관으로 보면 될 듯 하나, 그 규모는 끽해야 현대의 구청 규모 정도였던 듯)이며, 여기서 말하는 부쿄란 조정에서 임명되는 공적 직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다 영토 내에서만 통용되는 직책이다.

부쿄의 주된 임무는 오와리 및 미노의 슈고(守護)에 취임하는 노부타다의 보좌이며, 실무를 실행하는 사무장관(事務長官) 같은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노부타다 본인은 오와리와 미노의 수하들의 고삐를 쥐는 데만도 벅차서, 도저히 외교에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련의 예정에 대해 준비를 한 것은 노부나가로, 그가 이에야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드디어, 토우고쿠(東国) 정벌이 시작되는건가)


시즈코의 도쿠가와 영토 방문은, 토우고쿠를 다스리는 각 영주(国人)들에 대해, 깃발 색을 뚜렷하게 할 기회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메시지였다. 즉,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다.

아즈치 성(安土城) 축성의 움직임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시즈코군의 중핵을 이루는 병참군(兵站軍)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 머지 않아서, 빠르면 여름이 끝날 무렵에라도 토우고쿠 정벌이 시작될 것이다. 시즈코는 그렇게 예상하고있었다.


(확실히 임무를 수행해야지)


쿄에서 돌아온 시즈코는 오와리에 며칠 머물며 준비를 갖추고, 다시 이에야스가 있는 토오토우미를 향해 출발했다.

미카와 국에 들어서자 안내인을 맡은 나츠메 요시노부(夏目吉信)와 합류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이에야스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이에야스를 대신하여 목숨을 잃은 인물인데, 지금도 살아있는 것에 시즈코는 기묘한 감개를 느끼고 있었다.

안내인이 필요해지는 이유는, 미카와나 토오토우미는 도로 정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아, 현지 사람이 아니면 길 위에서 고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안내역을 맡은 나츠메의 선도는 확실하여, 시즈코 일행은 아무 문제 없이 이에야스의 거성인 하마마츠 성(浜松城)에 도착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쿠가와 님도 건강하신 듯 하여 기쁩니다"


알현 장소에서 이에야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문득 시야의 한 구석에서 타다카츠(忠勝)가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한조(半蔵)와 야스마사(康政)에게 팔꿈치치기를 맞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때에까지 개그(漫才)를 하는 걸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촌극이라고 해도 몰래 주위의 눈을 신경쓰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의식을 되돌렸다.

노부나가로부터 명확한 메시지나 문서를 받지 않은 이상, 토우고쿠 정벌의 화제 같은 건 꺼낼 수 있을 리도 없다. 오와리-미노 부쿄 취임의 인사를 마치자, 시종 잡담(世間話)의 연장선상에 있는 화제를 주고받았다.

시즈코로서는 인사하러 방문한 것 뿐이고 원래부터 오래 머물 생각도 없었기에, 회담 후 며칠 머물고는 오와리에 귀국하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의 안내인은 타다카츠가 맡게 되었는데, 한조와 야스마사가 뒤에서 손을 썼는지, 시즈코의 주변 경비를 담당한 것은 타다카츠의 숙부인 혼다 타다자네(本多忠真)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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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6 1575년 5월 중순



오와리 팀(尾張勢)과 에치고 팀(越後勢)으로 나뉜 씨름대회(相撲大会)는, 근소한 차이로 에치고 팀이 승리한 모양이었다.

모양이었다라고 하는 건, 시합 후에 승패에 관계없이 연회로 몰려가서 관계자 전원이 엉망으로 취한 결과, 모두의 기억이 애매해져서 아마도 에치고 팀이 이겼던 게 아닐까라는 것밖에 판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회에서 다 소비하지 못한 술은 승자의 권리로서 에치고 팀에게 넘겨져, 오와리의 명물로서 고향에 보내거나, 동료끼리 모여서 주연을 열거나, 개인이 달구경(月見酒)이라는 멋을 내거나 하는 등 각양갹색으로 소비되었다.


"부추겼다고는 해도, 술창고 한 채 분량이 사라졌다는 건 역시 굉장하네"


시원하게 비워진 창고 안쪽을 보면서 시즈코는 감개가 깊은 듯 중얼거렸다. 맡긴 열쇠를 반납받았기에, 확인이나 청고를 위해 창고 문을 열었는데, 상량(棟上げ)했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텅텅 빈 창고 안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에치고 팀 사람들이 감사의 표시로서 청소를 한 것이리라. 광이 나는 기둥이나 먼지 한 톨 떨어져있지 않은 바닥을 보니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시즈코는 다시 창고에 자물쇠를 채우고 쇼우(蕭)에게 창고 열쇠를 맡겼다. 재삼 쇼우에게 창고 상황을 확인한 후, 새로운 술들을 운반해넣도록 명했다.


"시즈코 님, 아무리 동맹을 맺은 에치고 사람들이라고는 하나, 아무래도 너무 멋대로 하게 두시는게 아닌가요?"


집무실로 돌아오자, 서류 정리를 해주고 있던 아야(彩)가 한 마리 쓴소리를 했다. 카게카츠(景勝)들의 신분은, 켄신(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증거이며, 나쁘게 말하면 모반에 대비한 인질이다.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건 아니지만, 손님처럼 대접할 것도 아니지 않을까 하고 아야는 생각하고 있었다.


"인질 생활이라는 건 의외로 마음 편할 날이 없거든. 가끔은 기분전환도 중요해. 아직 우에스기(上杉)의 후계(家督)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니, 그들과 우의를 맺어두는 건 의미가 있고 말야"


"그렇다고는 해도 한도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케이지(慶次) 님이 함께 있다고는 하나, 요로쿠(与六) 님이 이틀이나 연락이 끊겼습니다. 다행히 윤락가(花街)의 유곽(遊郭)에 계속 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한 발자국만 잘못되면 외교 문제도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만?"


"아ー…… 그건, 아무래도 곤란하네"


케이지가 카네츠구를 데리고 이른 아침부터 외출하고는 그대로 이틀간 소식이 없어서, 하마터면 도로를 봉쇄하고 수색대를 파견하기 직전까지 갔던 사건을 떠올렸다.

하루 정도라면 아침에 돌아오는(朝帰り) 범주이며 딱히 문제시하지 않았지만, 전혀 연락이 없는 상태로 이틀째가 되면 그럴 수도 없다.

아무리 케이지라고 해도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니, 허를 찔리면 실패할(不覚を取る) 수도 있다. 그럴리가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케이지가 죽음을 당하고 우에스기로부터의 인질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모두가 초조해하면서 결단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이틀째의 저녁 시간에 두 사람이 홀연히 돌아왔다. 당장 추궁하자, 두 사람 다 '서로 상대방이 연락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문책이 없을 수는 없어서, 두 사람 다 반년 동안의 밤놀이(夜遊び) 금지에 처했다는 결말이었다.


"뭐, 뭐어, 이것도 전략의 하나야. 이렇게까지 인질에 대해 자유를 주고 정중하게 대우하면, 에치고(越後)에서 정변(政変)이 일어나더라도 오다 가문에 대해 의리를 저버리기 힘들게 될 테니……"


"거기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저는 시즈코 님께서 인질을 관리하는 것이 귀찮으셔서 방치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경솔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얕은 헤아림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아니, 그렇게 긴장하지 마. 그러네, 아야 짱 말대로, 조일 부분은 조이고 있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네. 하지만, 지금은 미묘한 시기니까 당분간은 현상 유지로 부탁해"


마음 속을 읽히고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정중하게(殊勝に)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눈을 반쯤 뜨고 있는 모습에서 본심이 엿보였다. 시즈코로서는 케이지라면 문제없다고 신뢰하여 맡겼기에, 무슨 일이 있을 경우 책임을 질 각오만 있다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케이지가 마음을 허용하는 상대가 자신들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가능성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즈코 님, 타키카와(滝川) 님과 니와(丹羽) 님이 함께 오셨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응? 사전 연락은 없었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알았어, 바로 갈게"


시즈코가 아야의 시선을 받으며 거북한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소성(小姓)이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며 아야의 추궁을 피해 그쪽의 대처를 하기로 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응접실로 들어가며 시즈코는 두 사람으 기다리게 한 것을 사과하고, 상좌(上座)가 아니라 두 사람을 마주보고 앉았다.


"이쪽이야말로, 사전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타키카와와 니와도 무례한 내방을 사과하며 시즈코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저와 이쪽의 니와 님 모두 시즈코 님께 알려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우선 저부터"


각자 인사를 마쳤을 때 타키카와가 솔선해서 입을 열었다.


"앞서 주상께 토우고쿠(東国) 정벌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싸움 준비를 갖출 것인데, 우선 참전(参陣)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날짜에 여유가 없기에 좀 정신없는 인사가 된 점을 사과드립니다"


"급작스런 요청에도 불구하고 즉시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타키카와 님의 조력이 있어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토우고쿠 정벌군의 편성에 있어,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가 이끄는 타키카와 군도 마찬가지로 막하(幕下)에 편입되었다. 하리마(播磨)나 모우리(毛利) 가문 등 사이고쿠(西国)에 대한 위협에 대비하는 군에는 히데요시(秀吉)와 미츠히데(光秀)가, 호쿠리쿠(北陸)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시바타(柴田)를 필두로, 삿사(佐々)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담당한다.

즉, 토우고쿠 정벌의 진용은 노부타다(信忠)를 필두로 시즈코와 타키카와가 양익(両翼)을 떠받치는 형태가 된다. 또, 동행하고 있는 니와의 경우, 아즈치 성(安土城) 축성(普請)의 최고 책임자이기도 하기에, 일련의 군사행동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참고로 시즈코 군 중 실전부대 이외에는 각 방면군에 병참 담당으로 임대되어 있기에, 오다 가문 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영항력을 미치는 장수로서 인식되고 있었다.

지금은 원활한 군사 운용은 물론이고, 물류나 토목공사 같은 대규모 사업은 미리 시즈코와 상의를 해 두었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에, 후다이(譜代)의 중신들이라도 시즈코에 대한 인사를 빼먹을 수는 없게 되었다.


"제 용건은 아즈치 성 축성에 대한 상담입니다. 앞서 낙뢰(落雷)에 의한 산불 때문에 노송나무 목재(檜材)의 제재소가 불타버려, 예정했던 재목 조달의 전망이 서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정말 죄송스럽지만, 시즈코 님께서 보유하고 계신 노송나무 목재를 이쪽으로 돌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시즈코가 보유하고 있는 노송나무 목재란, 타나카미 산(田上山)에서 산출되는 노송나무를 말한다.

비와 호(琵琶湖)의 수해를 억제하기 위해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청하여 타나카미 산의 벌채를 돌아가며 순번제(輪番制)로 하는 계획성(計画性) 임업(林業)으로 변경한 것이 발단이 되어, 오우미(近江) 일원의 노송나무 목재 공급을 전담하게 되었다.

시즈코로서는 유통에 제한을 두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양을 시장에 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급하고 대량의 재목이 필요하게 된 경우, 그것을 융통할 수 있는 것은 시즈코를 제외하면 달리 없었다.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재가 끝난 것으로 괜찮으시다면 상당한 양의 비축이 있습니다. 다만, 타마기리(玉切り, 일정한 길이로 절단하는 것) 후의 통나무(丸太材)라면 그렇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습니다"


시즈코는 소성에게 명령해 재목의 비축 자료를 가져오게 하여 서류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목재라는 것은 산에서 잘라내어 바로 건축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조시키거나 잿물을 빼거나(灰汁出し) 하는 등, 판자나 목재로 가공하기 전의 단계에도 손이 많이 간다. 일정한 규격으로 제재한 후에도 건조를 시키지 않으면 수분이 빠지는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변형되기 떄문에 쓸 수 없게 된다.

갑자기 요청을 받고 즉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아무래도 재목의 총 책임자(元締め)인 만큼 충분한 양의 비축이 준비되어 있었다.


"쿠로쿠와슈(黒鍬衆)나 도편수(棟梁)들의 예상으로는 이 정도의 자재가 있으면 충분할 거라는 서류를 받아 왔습니다"


니와가 품 속에서 꺼낸 서류를 소성이 받아서 시즈코에게 건넸다. 건축에 관해서는 시즈코가 이전에 MKS 단위계로 기준을 정했기에, 전문가가 아닌 니와는 대략적인 어림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는 자료였지만, 시즈코는 문제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규격의 목재라면 충분히 융통해드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나중에 정식 인도서를 작성하여 니와 님께 전달해 드리지요"


"옛!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용건은 일찌감치 끝나 버렸다. 자신의 용무가 끝나자마자 자리를 뜨는 것은 지나치게 실례이기에, 두 사람은 시즈코와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야말로 큰 공을 세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멀리 떨어진 땅(飛び地)인 토우고쿠의 영지를 하사받더라도 처치곤란인 것이 난점이군요"


"현재로서는, 토우고쿠는 미노(美濃)와 오와리(尾張)에 사람, 물자, 돈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키묘(奇妙) 님의 토우고쿠 정벌이 성공했을 때에는 호죠(北条) 영토인 사가미(相模) 쯤까지 번영시킬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군요"


"그렇습니다! 쿄(京)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僻地)라고 생각해서인지, 가신들도 좋은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지금의 오와리처럼 번영할 거라 생각하면 모두를 독려할 수 있겠습니다만"


"쿄라고 하시면,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작년, 주상께서 중지하신 납량(納涼) 어전(御前) 불꽃놀이 대회(花火大会). 올해야말로 반드시 여시겠다고 기세가 대단하시더군요. 준비에 시간을 들인 만큼 성대하게 하시겠다고 하시니, 이래저래 전대미문의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아ー, 저도 얼핏 들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공가(公家)의 일파가 방해를 꾀했다던가요…… 제 귀에 들어왔다는 것은, 당연히 주상께서도 알고 계실테고, 주상의 분노를 산 그들의 거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저라 해도 쿄에서 쫓겨났겠지요. 잘못하면 목이 붙어있을지 어떨지…… 날씨나 폐하(帝)의 건강이라는 이유라면 몰라도, 권모술수의 고식(姑息)적인 수작이라면 주상께서 용서하실 리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사람들의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는 없는 법, 어째서 자신들만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견(私見)입니다만, 그러한 계략(謀)을 좋아하는 패거리들은 자신들만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근거없이 믿고 있는 것이겠죠. 자신을 지혜롭다고 착각한 어리석은 자들의 숫자만큼 많은 것도 없겠지요"


"환담하시는 중에 실례합니다"


쿄의 소문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입구 저편에서 소성이 시즈코를 불렀다.


"시즈코 님, 아케치(明智) 님께서 오셨습니다"




"오늘은 갑작스런 손님들이 많으시군요. 유감이지만, 지금은 두 분과 협의를 하는 중이므로, 잠시 기다리시거나, 날을 잡아 이쪽에서 찾아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미츠히데의 이름을 듣고 니와, 타키카와 두 명이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중립을 표방하는 시즈코로서는 모르는 척 하고 소성에게 명령했다.

미츠히데가 미움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카가(加賀) 일향종(一向衆, ※역주: 一向宗을 잘못 쓴 듯)을 공격할 때 사전 상의 없이 미끼 역할을 떠맡게 된 지 시간이 얼마 흐르지도 않았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는 대인배들 뿐이라면 아무도 고생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대국적으로 보면 미츠히데가 기세를 꺾어놓은 덕분에 전국(戦局)을 시종 유리하게 진행시킬 수 있어 결과적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해도, 심정적인 응어리는 어쩔 수 없다.


"저희들의 경우를 모른 척 하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만, 이런 급작스런 내방이라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까?"


"주상이시라면 사전 연락을 하고 오시는 쪽이 드뭅니다만, 다른 분들은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타키카와의 질문에 시즈코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당시의 유력자에 대한 내방은, 사전에 사키부레(先触れ)라고 하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예정과 용건을 미리 전달한 후 일정을 조정하고 날짜를 잡아 방문하는 것이 예의였다.

노부나가처럼 상대의 상황도 확인하지 않고 직접 본인이 온다는 건, 화급한 용건이라고 해도 말도 안 된다.

예정이 꼬이니까 사전에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노부나가가 태도를 바꿀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거듭 죄송합니다. 시즈코 님의 말씀을 전달했습니다만, 그…… 시코쿠(四国)의 일로 화급한 용건이시라고……"


"알겠습니다. 하지만 곤란하네요"


소성이 말을 흐리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미츠히데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헤아렸다.


(어쩌지)


시코쿠의 일로 긴급하다고 하면, 노부나가와의 중개 역할을 담당한 시즈코로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먼저 찾아온 타키카와와 니와 두 사람을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미츠히데와의 용건을 이야기하는 동안 기다리게 할 수도 없다.

선약이 있었던 것도 아닌 미츠히데를 우선시하여 두 사람을 돌려보내는 것도 실례가 아닐까 하고 시즈코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저희들도 예정에 없이 방해한 입장이니 급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요. 착임(着任)할 때 다시 인사드리러 오겠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실례하겠습니다"


허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잇는 시즈코에게 타키카와가 한숨과 함께 물러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니와도 타키카와에게 동조하여 마찬가지로 물러가겠다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변변찮은 대접도 해드리지 못하고"


"배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즈코 님께서는 충분히 저희들에게 보답해 주셨습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니와와 타키카와가 방을 나간 후, 시즈코는 소성에게 시코쿠에 관한 자료를 가져오라고 명하고, 다시 차와 차과자 준비를 갖춘 후에 미츠히데를 안내하도록 했다.


"무리한 청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주상을 알현하기 전에 꼭 시즈코 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여 상담을 드리러 왔습니다"


"이쪽이야말로, 급하신 용건임에도 기다리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시간도 촉박할테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응접실로 안내된 미츠히데가 인삿말(口上)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것에 시즈코가 대응한 후에야 미츠히데가 일어서서 자리에 앉았다. 함께 온 가신들도 주군을 따라 고개를 들고, 안내받은 자리에 착석했다.

일련의 의식(儀式)같은 행위를 마친 후, 시즈코가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재촉하고, 미츠히데가 입을 열었다.


"예. 시코쿠 통일의 기한이 임박하고 있는 것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건에 대해, 3년의 기한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무리를 거듭하여, 자칫 잘못하면 통일은 고사하고 현상 유지조차 불가능하게 될 듯 합니다"


쵸소카베(長宗我部)의 수군을 담당하는 이케 씨(池氏)와 회담했을 때, 오다 군으로부터의 원조를 멈추는 대신 3년 안에 시코쿠 통일을 이루겠다고 이야기했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 있었던 것도 있어 쵸소카베의 시코쿠 통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지나치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호사다마(好事魔多し)'라는 말이 있듯, 시코쿠 제패가 현실로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 사건이 일어났다.

3년 이내의 시코쿠 통일을 목표로 세우고 그것을 향해 매진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무리를 강요했다. 그 결과, 아군(身内)에게 발목을 잡혀, 지금은 집안 소동(お家騒動)으로 발전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확실히 화급한 용건이군요"


미츠히데의 설명을 다 들은 시즈코는 아래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3년의 기한이란, 쵸소카베에 대한 오다 군의 개입을 중지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시즈코가 제시하고, 이케가, 나아가서는 쵸소카베가 가능하다며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기에, 설령 3년이 지났다고 해서 당장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노부나가 자신이 만사 순조로운 인생을 걸어온 것도 아니라는 점도 있어, 그는 의외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해 관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노부나가의 인품을 잘 아는 시즈코였기에 가질 수 있는 시점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가혹한 주군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걸 전혀 문책하지 않는다면 호언장담하고 임무를 맡아놓고는, 결과적으로 펑크를 내어 피해를 내는 패거리가 만연하게 되어 조직이 유지되지 못하게 된다.


(주상께 3년 안에 통일한다고 큰소리를 쳐놓고 불가능했습니다라고는 말하기 어려우니, 어떻게든 원만하게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상담하고 싶다는 걸까?)


바보처럼 솔직하게 노부나가에게 보고하면 오다 군의 개입이 재개될 것은 자명한 이치. 그걸 피하면서 자주독립을 유지하고 3년의 제한을 풀고 싶다.

거기에 여유를 가지고 쵸소카베에게 시코쿠를 통일시켜 자신들의 지지 기반도 보강하고 싶다는 것이 미츠히데의 노림수일 것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갑작스런 정책 전환을 하게 됩니다만, 지배 지역은 유지한 채로 집안 소동의 진정을 꾀하는 것은 가능한가요?"


"그것만이라면 가능합니다. 외적(外敵)과 내우(内憂) 양쪽 모두에 대처할 여유가 없기에 답보 상태에 있습니다만, 대처를 어느 한 쪽으로 집중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흠. 그거라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상께 재가를 받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주상께 말입니까. 하지만 그것은……"


노부나가에게 보고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순간 미츠히데가 우물거렸다.

노부나가에는 알리지 않고 몰래 일을 처리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노부나가에 대한 보고는 자신이 할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즈코의 개입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속을 떠보는 짓(腹芸)을 좋아하지 않는 시즈코는, 다른 사람을 끼워넣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당사자가 직접 전하여 오해를 낳지 않는 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숨겨봤자 언젠가 주상의 귀에 들어갈 거라 생각하는데 말야) 우선은, 어떤 이야기를 가져갈지,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시즈코는 미츠히데에게 떠올린 방법을 이야기했다.




미츠히데와의 회담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시코쿠의 건으로 상담드릴 것이 있다는 편지를 써서 파발마를 보냈다. 5월이 되자마자 노부나가로부터 답장이 와서, 1주일 후에 아즈치에서 회담하게 되었다.

당일이 외자, 시즈코는 미츠히데 및 쵸소카베 휘하의 이케와 합류하여 아즈치에 도착했다. 아즈치에서는 목하(目下) 최대의 사업인 아즈치 성 축성이 진행되고 있어, 곳곳에서 땀을 흘리는 인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즈코들은 우선적으로 정비된 도로를 통해 곧장 노부나가의 임시 궁궐(仮御殿)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아! 혹시, 주상과 면회할 약속을 잡는 게 어려우니까 아케치 님도 이케 님도 주저했던 걸까?)


임시 궁궐이라고는 해도 천하인(天下人)으로 지목받는 노부나가의 거처(御座所)이다. 노부나가와의 면회를 바라는 사람들이 보낸 사자들이, 대합소(待合所)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있었다.

면회의 예약을 잡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그들 옆으로, 시즈코들은 소성에게 선도되어 임시 궁궐의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알현실로 이어지는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시즈코들의 순서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묘하게 기특한 소리를 하는구나. 하여, 내게 상담하고 싶다는 시코쿠의 일이라는 게 무엇이냐?"


정형화(定型句)된 인삿말을 가로막고 노부나가는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다. 가벼운 말투와는 반대로 날카로운 시선을 시즈코와 미츠히데, 그리고 이케에게 향했다.

내성(耐性)이 없는 이케는 성대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으나,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세 사람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있는 것을 헤아릴 수 있었다.


"(주상께서도 사람이 나쁘시다니까) 예. 주상께는 이전에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코쿠 통일 후의 영지 개발 계획에 대해 재검토를 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기다려 인원을 시코쿠에 파견해서 농산물이나 해산물의 연구나 항만 정비를 실시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통일을 연기하더라도 먼저 사람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노부나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시코쿠 통일을 연기한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것을 감수하면서 계획을 앞당길 필요성이라는 것에 노부나가는 흥미를 보였다.


"(내가 보고한다고 정해놓길 잘했네. 주상께 위압당해서 속사정(舞台裏)을 들켜도 곤란하니까) 쵸소카베 님의 현재 상황을 보니, 약간 통일을 지나치게 서두르신 경향이 있어 발 밑이 허술해진 듯 보였습니다. 이래서는 시코쿠에서 적을 쫓아내도 아군 속에서 적이 생겨나게 되어버립니다. 시코쿠는 모우리나 큐슈(九州) 세력을 공략하는 데 있어 중요한 땅. 이곳이 반석같지 않다면 도저히 사이고쿠 정벌은 이룰 수 없습니다"


"발판을 단단히 다질 유예 기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그것은 입식(入植)을 서두르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통일을 미루면서까지 입식을 진행하는 노림수는 무엇이냐?"


"시코쿠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모우리는 목젖에 칼날이 들이대어진 형세가 됩니다. 토우고쿠 정벌을 앞둔 이 시기에, 모우리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지금은 일부러 통일을 피하고, 그로 인해 생겨난 유예 기간에 아와 국(阿波国)에 항구를 정비합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시코쿠의 요새화(要塞化)를 진행합니다"


"요새화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와의 항구를 확충하여, 군항(軍港)을 시야에 넣은 해운 거점으로서 항구마을까지 포괄한 개발을 진행합니다. 그와 동시에 오와리에서 파견한 인원 및 현지 사람들을 써서 시코쿠의 식량 생산량을 최저라도 두 배로 늘립니다. 군항을 중심으로 주위에 위성도시(衛星都市)를 짓고, 그것을 떠받치는 농림수산업(農林水産業)의 효율화를 꾀합니다. 5년을 목표로 이 계획을 추진하면, 적지인 이요 국(伊予国, 현재의 에히메 현(愛媛県))을 제외한 삼국만으로 통일 후의 시코쿠를 상회하는 사람, 물자, 돈을 시코쿠 내부에서도 조달할 수 있게 됩니다"


시즈코의 설명을 말없이 들으며 노부나가는 숙고하고 있었다.

모우리에게 경계심을 주지 않는 상태이면서 통일 후를 상회하는 생산량을 선취한다. 화려함은 없지만, 메마른 땅에 물이 스며드는 듯한 착실한 침략의 형태.

이 계획이 성공하면 시코쿠에 대군을 주둔시키는 것도 가능해져, 단번에 대공세를 걸어 시코쿠 통일은 물론이고 모우리의 급소에 일격을 가하는 것조차 가능해진다.

거기에 군선(軍船)이 주둔하는 군항을 정비하여 대대적으로 운용을 개시한다면 키이(紀伊) 수도(水道)를 통해 해운업으로 벌어먹는 사이카슈(雑賀衆)의 목줄을 죄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다"


웃으면서 노부나가는 중얼거렸다. 시코쿠 통일은 쵸소카베의 비원(悲願)이지만, 현재 상태로 3년에 한정된 통일을 추진하면 사상누각(砂上楼閣)처럼 어이없이 무너진다.

이 정도의 논리라면 당사자 중에서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3년이라고 큰소리를 쳐놓았으니 계획의 연장에 대해 말을 꺼내지 못하는 쵸소카베에게 편의를 봐주고, 노부나가에게 중개 역할을 할 계획을 내놓는다.

아마도 시즈코는 그렇게 말을 꺼냈으리라. 하지만, 군항과 생산거점에 시즈코가 관여한다고 하면, 쵸소카베의 심장을 움켜쥐는 것이나 다름없다.

곳곳에 편의를 봐주고 관계자 전원에게 이득을 주면서도, 중요한 곳은 확실히 확보한다. 산포요시(三方よし, ※역주: Win-Win)을 신조로 삼는 오우미 상인 뺨치는 수완이었다.


(벌레도 죽이지 못할 얼굴로 여전히 징그러운(厭らしい) 계책을 내놓는군. 스스로 떠넘기는 게 아니라, 상대의 궁지를 구해주면서도 은근슬쩍 독을 먹이지. 그러면서 관계자들은 아무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그림을 그리는가……)


생각을 정리하기위해서인지, 단순한 무료함 때문인지, 노부나가는 손에 든 부채로 다른 한 손을 쳤다. 탁탁 하는 리드미컬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케는 등을 움츠리고, 미츠히데는 이야기의 결말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마음 속에서 손득(損得)의 저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헤아리고, 대답이 나올 때까지 지켜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혼간지(本願寺)는 그렇다치고, 모우리를 없애려면 아직 몇 년은 더 걸리겠지. 그렇다면 시코쿠 통일을 늦추어서 모우리의 방심을 유도하는 편이 유리해진다. 게다가 쵸소카베의 기간산업(基幹産業)에 시즈코가 관여하면, 쵸소카베의 배신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이 크다. 더욱 큰 과실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모자란(不出来) 꽃은 솎아내는 것이 최고지. 쵸소카베의 몸 속의 고름은 모조리 짜내게 하는 편이 좋다)


게다가 뒤에 예정된 큐슈를 고려했을 때도, 반석같은 보급기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전략이 크게 달라진다. 육로 뿐만이 아니라 해로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면, 연안부(沿岸部)의 나라에 대해 큰 중압(重圧)이 될 수 있다.

그걸 찔러서 큐슈의 세력을 무너뜨리면, 설령 모우리가 큐슈에 어딘가와 손을 잡는다고 해도 큐슈를 전란(戦乱) 상태에 빠뜨려 모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으리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게 손해는 없다. 시코쿠 통일을 늦추더라도 요새화를 진행하는 계책은 유용하군)


팡 하고 한층 강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원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가운데 노부나가가 부채를 강하게 접었을 때 난 소리였는데, 모두의 시선을 모은 것을 기회로 노부나가가 말했다.


"좋다. 애초에 쵸소카베에 의한 시코쿠 통일은 네가 그린 그림. 네 뜻대로 해라"


"옛!"


맨 먼저 시즈코가 대답하고, 한 발 늦게 미츠히데와 이케가 그에 따랐다.


"내정(内政)을 주로 하여, 확실히 발판을 굳혀라. 싸움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적절히 대응하라. 이요 국에서는 손을 떼도 상관없지만, 적이 이요 국에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의 재가를 얻은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투에 대해서도 현재의 세력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침공한 지점을 포기해도 좋다는 허가까지 받았다.

내정에 대해서는 쵸소카베의 정치적 수완에 달렸지만, 미츠히데가 가능하다고 맡고 나선 이상, 그가 책임을 지고 성공시켜줄 것이었다. 시즈코는 그렇게 낙관시하고 있었다.


"물러가도 좋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들은 깊이 고개를 숙이고 알현실을 나섰다.




노부나가와의 알현을 마친 시즈코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시 대기실로 안내되었다.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다행이군요. 어깨의 짐이 덜어졌을 때의 차 한잔은 각별합니다"


일거리 하나를 마쳤다는 태도의 시즈코는 완전히 이완된 표정으로 차를 홀짝였다. 미츠히데와 이케도 이에 따랐으나, 시즈코만큼 개방감을 얻지는 못했다.


"시즈코 님. 이번에도 적잖게 조력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주군도, 이걸로 꽤나 마음이 편해지시겠지요"


살겠다는 기분이 든 이케가 시즈코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어서 중개해 준 미츠히에데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건 다행입니다. 이쪽으로서도 시코쿠는 반석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한 수고를 아낄 생각은 없습니다"


시즈코로서는 시코쿠 통일이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하지만, 서두른 결과로서 불안정한 정권이 된다면,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농업이나 수산업의 연구 같은 건 대단히 불안해진다.

게다가 지배가 확립된 땅에 동맹국으로서 인원을 파견하는 것과, 상대의 초빙을 받아 산업 시동(立ち上げ) 때부터 관여하는 것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에 큰 차이가 생긴다.


"지금부터의 일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락망은 현재 상황을 유지합니다. 계속 아케치 님과 이케 님께 시코쿠에 관한 조정(取りまとめ)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쿄에 연락원을 남겨둘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그쪽을 통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계획을 앞당긴다고는 해도, 현재 상태의 쵸소카베, 미츠히데, 시즈코의 연락망을 변경할 필요성은 없다. 시즈코로서는, 당분간은 이전부터 데워놓고 있던 계획을 실행 계획으로 재정리하는 것만 해도 벅차게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휴식을 마치고 임시 궁궐을 나와서 미츠히데와 이케에게 작별을 고하고 시즈코는 오와리로 발길을 서둘렀다. 귀가하여 바로 집무실에 들어가 쌓여 있던 서류를 확인했다.

우선순위대로 놓여진 서류를 차례차례 확인하자, 농업에 관해서는 큰 문제도 없이 진행(推移)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인력에 의한 농작업의 효율화는 한계에 부딪혀서, 사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은 작아져 있었다.

한편, 내년부터 스털링 엔진을 탑재한 경운기(耕運機)의 실용시험(実用試験)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것이 성공하면 추가적인 비약을 기대할 수 있었다.


"우선 가장 힘이 필요한 경운기인데, 스털링 엔진의 소형화가 가능해지면 언젠가는 벼 이앙기(田植機)로, 좀 차원이 다르게 어렵지만, 언젠가는 콤바인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기계를 도입해서 편해지는 것에 기피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써 보면 그 유용성은 이해할 수 있겠지"


새로운 기술이란 어떤 것이라도 처음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그 의견이 이치에 맞다면 경청하겠지만, 단순한 감정에서 오는 반발이라면 들을 생각도 없고, 권력을 사용해서라도 기계화를 추진할 생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곧 고노에(近衛) 님이나 도쿠가와(徳川) 님 등, 각 방면에 인사하러 가야지……"


5월은 쿄에 있는 사키히사(前久), 토오토우미(遠江)에 있는 이에야스(家康) 등, 이곳저곳의 관계자들에게 인사하러 갈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렇다 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커넥션의 유지는 중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5월 중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시즈코는 이곳저곳에 인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우선은 아즈치로 가서 주군인 노부나가의 기분을 살폈다.

그 때 모인 군자금이나 군수물자, 그밖의 답례품(贈答品)으로 쓰이는 각종 생산물도 상납했다. 이러한 생산물들은 평시에는 시즈코의 창고를 압박하는 짐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정치에 능숙한 노부나가의 손에 들어가면 납탄 이상가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오와리에는 흔해빠진 물건이라도, 쿄까지 운반하면 오와리의 유행품으로서 가치가 더해진다. 안 그래도 가치가 높은 물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입지, 그 점에서 아즈치는 이상적이었다.


"네 충의(忠義), 확실히 받았느니라. 수고하였다"


짧은 인사를 나눈 후, 시즈코는 아즈치를 떠나 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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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5 1575년 4월 하순



소동의 원인은 이세(伊勢)의 정세에 있었다. 북(北) 이세는 칸베 토모모리(神戸具盛)의 양자(養子), 노부타카(信孝)가 다스리고 있다. 한편 남(南) 이세를 다스리는 것은 이세 국사(国司), 키타바타케 토모후사(北畠具房)의 양자가 된 노부카츠(信雄)였다.

당초 이세 일대의 개발이 제안되었을 때, 북 이세를 다스리는 노부타카만이 계획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미노(美濃), 오와리(尾張), 북 이세를 잇는 경제권을 개발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거기에 느닷없이 노부카츠가 제동을 걸었다. 새삼스레 트집을 잡는 노부카츠의 태도에 노부타카는 격노했다.

하지만 노부카츠는 뻔뻔한 표정으로 이 개발은 이세 전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을 빼놓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애초에 서로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은데다 영지의 국경이 맞닿아있는 것도 있어 무슨 일만 있으면 이해관계로 다투는 일이 잦아 두 사람의 사이가 험악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발 시작 단계의 곡곳에 대한 조정이나 개발지역 일대의 조사 비용 등을 일체 부담하지 않고, 사업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무임승차를 허용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한 이야기이니, 노부타카가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노부타카와 노부카츠는 정면에서 대립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의 수하들까지 끼어드는 큰 싸움으로 발전했다. 개발사업의 총 책임자 역인 노부타다(信忠)가 두 사람을 진정시키려 갖은 수를 썼으나, 두 사람 모두 서로 상대를 계획에서 배제하지 않는 한 일체의 양보를 하지 않겠다고 완고하게 주장했다.


곤란하기 짝이 없어진 노부타다는, 아즈치(安土)로 옮겨간 노부나가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노부나가로서는 노부타다의 기량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속셈도 있었으나, 쿠로쿠와슈(黒鍬衆)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인원, 물자, 돈이 동원되었기에 그것들을 의미없이 놀려둘 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 노부나가는 노부타카, 노부카츠 두 명에 대해 주인장(朱印状)을 보냈으며, 노부카츠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모자람(不明)으로 늦었으면서 고생 없이 거저 먹으려(濡れ手で粟を掴もう) 하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断). 선임자(先人)가 치른 대가에 걸맞는 수준의 출자(出資)를 하여야 처음으로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꾸짖고, 노부타카에 대해서는 '동주상구(同舟相救)라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서로 반목하더라도 같은 목적을 가지게 되면 협력할 수 있는 법. 보기좋게 성과를 내어 스스로의 기량을 증명해 보여라'고 설득했다.

제아무리 두 사람이라도 노부나가로부터의 중재를 무시하거나 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즉시 창을 거두기는 했으나, 만사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북 이세는 입지를 고려하여 인원을 보내고, 남 이세는 선행투자분도 포함해서 여분으로 돈을 낸다는 걸로 마무리되었는데, 노부타카와 노부카츠 사이가 나쁘다는 건 정말이었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노부카츠는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멍청이(うつけもの)'라고 평가되는 한편, 노부타카는 견실하게 실적을 쌓아올려 서서히이긴 하나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전국의 세상의 서열에서는 항상 노부카츠에게 뒤쳐졌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신이 실력을 드러내도 여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노부타카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노부타카의 평가가 부당하게 낮은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노부카츠와 대립하여 성가신 일을 만들기 때문에 공적이 상쇄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의 개발에서도 솔선해서 나선 것은 노부카츠를 추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북 이세를 번영시켜서 남 이세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만들어, 이번에야말로 서열을 뒤엎겠다고 꾸민 걸까?"


형제끼리 일으키는 골육상쟁을 조정하기 위해 고생한 시즈코는, 그 실익이 적은 것에 크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오와리 전역에 배포되는 오와리 쌀의 모가 푸릇푸릇해지는 3월. 노랗게 익어서 시들어버리지도 않고, 구획마다 생육 상황이 정렬된 모들이 늘어서 있었다.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오와리 전역으로 재배 규모가 확대되었기에, 취급하는 모의 숫자가 종래와는 단위가 달라졌다. 반송(搬送)이나 작부(作付け) 일정을 고려하여 조금씩 생육상황을 어긋나게 하여 키워진 모들이 준비되고, 각자의 모내기 시기가 되면 순차적으로 출하되어간다.

예전에 시즈코가 촌장으로 취임했던 최초의 마을에 발단한 인력 모내기 기계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세련된 것으로 진화되어 있었다.

초기형의 것과 비교해서 대형화되고, 소에게 끌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 6조식(条植)의 축력(畜力) 모내기 기계와, 반대로 소형경량화를 추진하여, 심플하고 잘 고장나지 않는 종래대로의 2조식 인력 모내기 기계의 두 계통으로 갈라져 있었다.

구획정리의 상황(都合)에 따라 경사지나 계단식 논(棚田), 변형된 밭 등에서는 오로지 인력 모내기 기계가 사용되고, 규격화된 크기의 대형 포장(圃場)에서는 축력 모내기 기계가 활약하고 있다.

6조식의 축력 모내기 기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력 모내기 기계조차 숙련된 사람이 사용하면, 1헥타르의 토지에 대한 모내기를 하루에 끝낼 수 있다.

이것은 종래의 완전 수작업과 비교하여 실로 7배에 가까운 효율을 보이며, 축력의 것은 10배를 넘어간다. 이러한 농기구들은 오다 가문과 계약을 맺고, 적절하게 운용한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무제한이라는 것은 아니어서, 마을의 작부 규모에 따라 대여되는 숫자의 상한이 결정된다. 그러나, 필요한 숫자를 빌려서 적절한 인원이 일제히 모내기를 하면, 1주일 정도면 모든 토지에 모내기를 끝낼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오와리와 타국을 비교했을 때, 인구당 작부 면적이 몇 배나 되는 규모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작업이 파토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오와리 전역에 배포하게 되면 규모가 단위가 달라지네"


모내기 기계에 맞춰 규격화된 모 상자가 정연하게 놓여지고, 대여되는 농기구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시즈코가 혼잣말을 했다.

당초부터 언젠가는 오와리 전역으로의 확대를 시야에 넣고 계획되어 있었던 만큼, 대여되는 농기구류의 숫자는 여유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작부 규모의 확대 자체는 이번이 두번째 시도가 되기에, 첫번째 때와 같은 혼란은 회피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운용상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저번에 대응할 수 있었기에, 이번의 작업에 불안은 적었다.

오와리 쌀의 작부에 대해서는 오와리로만 제한되기는 하나, 오와리 방식의 농법에 대해서는 언젠가 오와리 전역에서 중부지방(中部地方) 전역으로, 나아가서는 오우미(近江)나 에치젠(越前) 등도 포함한 오다 가문의 지배지 전역으로 순차 전개가 예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전국 전개의 시금석이 되는 시도인 만큼 오다 가문 내부의 유력자들이 주시하고 있어,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계획이기도 했다.


"큰 문제점들은 저번에 찾아냈고,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저번을 경험한 우수한 스태프가 있으니 안심이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네"


그렇게 입 밖에 내어 중얼거리며 각오를 굳힌 시즈코였으나, 결과적으로 시즈코의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운반 도중의 사고로 일부 모가 폐기처분되기는 했으나, 예비의 모로 벌충할 수 있는 분량이었기에 큰 문제 없이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다.


4월 하순, 순조로웠던 작부와 대조적으로, 또다시 이세 개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노부나가의 조정을 통해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한 미노, 오와리, 이세 포괄경제권(包括経済圏) 구상인데, 계획을 시동할 때의 회합 자리에 노부카츠의 모습은 없었다.

관계자 전원의 스케줄을 조정한 후에 일정이 짜여져 반드시 본인이 출석할 것을 당부하였던 회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부카츠는 대리인(名代)을 내세워 결석했다.

대리인에 의해 전달된 편지에는, 영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영주인 노부카츠가 아니면 대처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결석하겠다고 쓰여 있었으나,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노부타카는 분노를 풀 길이 없는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고,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끼워달라고 말해놓고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면 아무래도 기량을 의심받지)


노부타다와 함께 오와리 대표로서 참석하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타카가 말하는 노부카츠에 대한 불만을 흘려들으면서 노부카츠의 진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노부카츠의 인물평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들 중 좋은 소문은 거의 없다. 평소에는 정무를 수하에게 몽땅 떠넘겨놓고 일절 관여하려 하지 않지만,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참견하며 현장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선대(先代)인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教)가 살아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썼지만, 토모노리를 시작으로 한 키타바타케 일문(一門)을 처형한 이래, 노부카츠의 방종함(放埓)은 멈출 줄 몰랐다.

토모노리의 처형에 대해서도,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이 실패했을 때, 노부카츠가 토모노리나 주요 키타바타케 일족이 신겐과 밀약을 맺었다고 단정하고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관계자를 모조리 처형했다.

그 처형에 대해서도 억지스러운 방식을 취했는데, 은거상태였던 토모노리의 저택을 습격하여, 일체의 반론이나 항변을 허용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베어죽여버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말이 딱 맞게, 격렬하게 저항했기에 어쩔 수 없이 베어버렸다는 노부카츠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일련의 숙청이 노부카츠의 독단에 의한 것인지 노부나가의 지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이후 키타바타케 일문은 급속하게 힘을 잃어, 지금은 완전히 노부카츠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노부카츠의 무법함을 꾸짖으려 해도, 노부나가의 후계자인 노부타다 다음가는 서열에 위치하는 노부카츠에게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키타바타케는 이름만을 남기고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다.


"듣고 계십니까, 시즈코 님!"


"네? 아, 네, 듣고 있습니다"


갑자기 노부타카가 말을 걸었기에 시즈코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명백히 듣고 있지 않았지만, 노부타카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노부카츠에 대한 불만이 재개되었다.


"놈에게는 남 이세의 국주(国主), 키타바타케 가문을 이었다는 자각이 없다. 틀림없이 저번의 건과 시마 국(志摩国)의 건 때문에 지르퉁해져 있겠지"


시마 국은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가 1569년에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나라이며, 옛부터 내륙부(内陸部)로 해산물을 공급하는 요지였다.

이세 만(伊勢湾)이라는, 어업을 하기에 절호의 입지를 가진 시마 국은, 한층 더 어업을 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시즈코로서는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통해 요시타카에게 수산자원의 공동개발을 타진했다. 요시타카로서도 영지의 산업진흥은 바라는 바였기에 두말없이 수락하였고, 즉시 시즈코 직속의 수산관계자가 파견되었다.

이리하여 오와리에서 사업 개척(立ち上げ)이라는 고난을 극복한 수완가(辣腕家)가 실력을 발휘하여, 시마 국은 일약 양식업(養殖業)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요시타카는 수산업으로 윤택해진 재원을 바탕으로, 장래적으로는 오와리에서 방문하게 될 해로를 통한 이세 신궁(伊勢神宮) 참배객을 예상하고 남 이세까지의 도로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항구 도시의 숙박 시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주변의 여관(旅籠) 등에도 충분히 장사로서 성립할 수요가 기대된다.

그러나, 인프라 정비는 거대 사업이기에 아무래도 그렇게 쉽게 시작할 수 없어서, 아직은 계획 단계에 그치고 있었다.


노부타카가 말하는 시마 국의 건이란, 이 일대 이권에 대해 (노부카츠) 자신이 파고들지 못했던 것을 가리킨다. 오와리와 시마(志摩)를 직접 해로로 연결하기에, 도중에 위치하는 남 이세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도로 정비의 실패(不首尾)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황실(皇室)의 수호신(氏神)인 아마테라시마스(天照坐) 스메오오미카미(皇大御神)를 모시는 이세 신궁의 비호자(庇護者)의 지위를 반납하게 된 원한(逆恨み)도 더해졌다.

원래는 남 이세의 비호하에 있었던 이세 신궁이었으나, 전혀 진척이 없는 도로 정비나, 비호자로서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세금만 부과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세금(賦税)을 내라고 하는 데 반발했다.

노부나가로서도 일족(身内)의 잘못(落ち度)인데다, 조정과 인연이 깊은 이세 신궁을 적으로 돌릴 수도 없어, 재력 및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시마 국의 비호 아래로 재편했던 것이다.

영지가 줄어드는 노부카츠에게는 시마 국 아고 군(英虞郡)의 일부를 이세 국 와타라이 군(度会郡)으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밸런스를 맞추었으나, 노부카츠는 그것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상의 사정으로 시마 국과 국경을 맞대는 남 이세의 국주인 노부카츠로서는, 원한을 품은 이웃 나라만이 윤택해지고 있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노부나가가 중개한 안건인 만큼, 제아무리 노부카츠라고 해도 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인내를 요구받는 일이 적었던 노부카츠로서는, 자신의 위광이 통용되지 않는 노부타다나 시즈코, 자신보다도 낮은 서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노부타카와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싫은 상대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의 배짱(腹芸)이 없으면 앞으로 힘들텐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류(時流)에 영합한 시마 국이 번영하는 한편, 남 이세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노부카츠에게는 시마 국의 번영은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정도로 탐이 나는 것이었다.

시즈코는 이세 만이라는 외양(外洋)을 내다보는 해상 거점에서의 연구나 개발이 기대되고, 노부나가로서는 헌상되는 해산물이나 건물(乾物)을 조정에 바치는 것으로 정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남은 요시타카로서는 외자(外資)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적은 부담으로 산업 개발이 진행된다는 호혜관계(互恵関係)가 성립되었다.

노부나가, 시즈코, 요시타카 세 사람에 의한 호혜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 노부카츠가 이익에 파고들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노부타카도 나를 싫어하고 있겠지만, 그걸 삼키고서라도 노부카츠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향상심이 있어. 아니면 나를 이용해서 노부카츠를 몰락시킬 속셈일까? 뭐,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개인의 속셈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그만해도 되겠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해도 이익은 없다. 자, 면식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시 각자를 소개——"


노부타카의 불만이 일단락되는 시점을 헤아려, 노부타다가 권연함(倦厭, 지긋지긋해하는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회합의 개시를 고했다. 노부타카는 그것을 듣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는지 자세를 바로했고, 노부타카의 빈정거림(当て擦り)에 계속 견디고 있던 노부카츠의 대리인은 간신히 살겠다는 느낌이 든 모양이었다.


"키타바타케 산스케(北畠三介, 산스케(三介)는 노부카츠의 통칭. 키타바타케 가문을 이었기 때문에 키타바타케 산스케 토모토요(北畠三介具豊)라는 이름을 썼다)의 부재는 유감이지만, 사업의 개요(あらまし)를 다시 설명하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노, 오와리, 이세의 3개국을 포함하는 경제권(経済圏)을 구축한다.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지만, 이번의 계획은 이세에 대한 경제 지원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겉치레(建前)를 생략한 노부타다의 말에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세의 남북을 통합하려고 해도, 그 경제 규모는 오와리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원래부터 육지의 고도(孤島)라는 열악한 입지도 그렇지만, 조기에 착수했어야 할 도로 정비를 소홀히 한 영향이 컸다.

사이카슈(雑賀衆)를 무너뜨릴 때, 오와리로부터도 지원(梃入れ)을 받아 우선적으로 정비한 도로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불충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거대한 미노와 오와리의 경제권에 포함시켜, 특히 오와리에서 현저한 잉여 자금을 이세 개발에 투입하기로 했다. 자금 투입의 결정에는 시즈코의 의향이 크게 관여하고 있다.

이미 오다 가문의 지배지역은 경제 자원의 일극집중(一極集中)을 할 시기를 지나, 더욱 큰 경제권을 구축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에 의해 갈수록 불안해지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부정은 할 수 없습니다. 오와리는 이미 토우고쿠(東国) 제일의 대국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사람, 물건, 돈이 모여들고, 또 각지로 퍼져나갑니다. 이 상황 아래에서, 우리들 이세는 오와리에 기생하는 짐덩어리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훌륭하다. 자, 그럼 이세와 오와리를 육로로 연결하는 데 있어, 키소(木曽) 삼천(三川)이 난제로 가로막고 있다. 개발에 앞서 우선 치수공사(治水工事)를 완수해야 한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입지적으로 가까운 우리 북 이세가 인원을 제공하고, 남 이세는 자금을 부담합니다. 틀림없겠지?"


"예, 옛.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남 이세 대표의 대리인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노부타카가 못을 박았다. 뱀에게 노림받은 개구리처럼, 대리인은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이 대리로 온 사람도 고생이네. 이 상황이면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오게 될 것 같아)


의사(議事)의 진행을 노부타다에게 맡기고 자신은 듣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카츠의 대리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노부카츠로부터 남 이세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으리라. 명백하게 소극적인 자세를 보는 한, 죽 늘어앉은 국주들에게 불이익을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 따위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터덜터덜 귀국했다가는 노부카츠의 분노를 사서 경질될 것은 뻔했다.


"흐ー음…… 시즈코. 그대는 뭔가 할 말이 있나?"


의논이 정체되었을 때, 노부타다가 시즈코의 의견을 물었다. 생각을 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는 있던 시즈코는 즉시 대답해 보였다.


"그렇군요. 다른 곳에는 없는, 이세만의 특색. 이것을 내세우지 못하면 한때의 융성함은 얻을 수 있더라도, 계속적인 번영은 바랄 수 없겠지요"


"그리 말씀하심은?"


시즈코의 발언을 듣고 노부타카가 약간 앞으로 숙이며 계속할 것을 재촉했다.


"네. 오와리라면 '오와리 양식(尾張様式)'이라고 불리게 된 문물이나, 오와리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이 있습니다. 미노에는 미노와 쿄(京)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나라를 연결하는 중계지(中継地)로서의 역할이 있어, 물류를 지탱하는 산업이 자라고 있습니다. 뒤집어 봤을 때, 이세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특색이 있습니까?"


시즈코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세 일대에서는 시마 국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한 특색을 갖추고 있다. 평생 한 번은 방문하고 싶다고 하는 이세 신궁을 품고, 풍요로운 해양자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해운의 요충지가 되는 이세 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의 이세 국에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시마 국으로의 통과점에 불과하다. 당초 예정되어 있던 도로 정비만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킨키(近畿) 지방과 토우카이(東海)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 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에서도 에도(江戸) 시대에 토우카이도(東海道)에서 분기된 이세 도로(伊勢街道)가 정비되어, 남쪽 방면의 육로를 지탱하는 중계지로서 번영하게 된다.

그리고 첫 수에서 실패한 노부카츠, 노부타카 형제가 다스리는 이세에는, 대규모의 인프라 정비를 할 여력조차 없었다.


"사람을 모으려면 '특산품(目玉)'이 필요합니다. 조금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세에 들르자고 생각할 만큼의 무언가가 없으면, 언젠자 미노에게 그 지위를 뺴앗기겠지요"


"크음…… 그리 말씀하시지만, 그런 게 있으면 우리들이라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시즈코가 말하는 내용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특산품이 될 수 있는 유망한 존재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아 의도하지 않게 반발해버렸다.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도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적어도 10년의 여유는 얻을 수 있겠지요. 그 시간을 이용해서 특산품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다행히 남쪽에 위치하는 이세에는 일조량이 좋은 사면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타국의 특산품과 겹치지 않는 밀감(橘)이나 홍귤(柑子)을 키우는 건 어떨까요?"


밀감이나 홍귤은 일본에 옛부터 자생하고 있는 감귤류이다. 밀감의 존재는 일본서기(日本書紀)나 고사기(古事記)에도 등장하며, 불로불사의 영약인 '토키지쿠(非時)의 향과(香果)'가 밀감이라고 한다.

'토코요(常世) 국(※역주: 고대 일본에서 바다 저편에 있는 다른 세상이라고 믿어진 곳으로, 도원경 등의 이상향과 유사한 개념인 듯)'에서 가지고 돌아와, 생명이 시들어버리는 겨울에도 푸릇푸릇하게 잎사귀를 드리우는 영원한 생명을 연상시키는 과일, 현재는 야마토타치바나(ヤマトタチバナ)로 알려진 품종이 그것이다.


시즈코는 가능하다면 온주(温州) 귤(みかん)을 재배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현 시점에서 온주 귤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다, 씨앗이 없는 품종이기에 재수가 나쁘다고 기피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재수를 역이용하여, 불로불사의 영약이라고도 했던 밀감이라면 이세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흠…… 귀중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즈코 님의 제안은, 돌아가서 가신들과 상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시즈코에게 크게 놀란 노부타카는, 시즈코가 말하는 아이디어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만큼, 그 자리에서 결단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큰 줄기가 정해져 있던 회합이니만큼, 이세가 취해야 할 방침이 정해지니 그 후에는 이야기가 금방 마무리되었다. 노부타카는 이세의 특산품을 어떻게 할지라는 점에 대해서 가지고 돌아갈 숙제가 생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작업을 진행할 뿐이다.

유일하게 노부카츠의 대리인만이 비장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 이세에 유리한 조건은 고사하고, 돈을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와리와 미노에서 차입해서라도 마련하라고 주군에게 전해야 한다.

주군의 노여움을 살 것은 확실하며, 자칫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詰め腹) 판이다(※역주: '강제로 할복하게 되다'와 현대식의 '강제 사직당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 중 작가가 의도한 것이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목이 날아간다'로 표현). 암담한 기분을 감추려 들지도 않는 대리인을 꽤나 유쾌하게 바라보는 노부타카의 모습을 시즈코는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업에 궤도에 오르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


노부카츠는 그렇다치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된 노부타카조차 공동사업주가 되는 노부카츠의 실각을 바라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종종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은 뻔히 보였다.

형제 싸움 때마다 중재를 요구받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일찌감치 사업 계획의 요체(要諦)를 정리한 후, 전임(専任) 담당자를 선출하도록 아야(彩)에게 전달하고 자신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


"아ー, 의욕이 깎이네"


토코노마(床の間)에 대자로 드러누워서 전신을 쭉 뻗으며 불평했다. 일은 내일 하자라고 목소리로 내어 결의하고, 시즈코는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할 자세가 되었다.

한동안 말없이 비트만들의 옆에 누워 있는데, 뭔가 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듯한 시끄러움이 시즈코의 귀에도 들려왔다.

위험을 고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냐 하면 축제 분위기에 가깝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목소리의 출처를 찾으려고 일어섰다.

시즈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비트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시즈코는 혼자서 방을 나서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소리의 발생원에 다가감에 따라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린 시즈코였으나,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의 한 구석에 있는 무도장(武道場)이었다.

시즈코 저택의 무도장에는 오락이기도 한 씨름(相撲)을 하기 쉽도록 훌륭한 씨름판(土俵)이 설치되어 있었다. 씨름판 뿐만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싸는 관객석도 설치된 본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ー, 하고 있네"


무도장의 씨름판에 다가가자, 남자들이 대환성을 지르며 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인전인지 단체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 쪽이 씨름판을 내려가고 이긴 쪽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승자전(勝ち抜き戦)인 것은 확실한 듯 했다.


"힘내라ー! 아니 시즈코 님!?"


큰 소리를 지르며 성원을 보내고 있던 한 명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 시즈코의 존재를 깨닫고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걸 계기로 그렇게 소란스럽던 관객들이 고요해지고, 인파가 갈라지며 공백지대가 딱 생겨났다.


"미안해요, 방해되었나요? 잠깐 지나갈게요"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에 약간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관객석의 맨 앞줄로 발을 옮겼다.


"어라 시즛치, 시끄러웠어?"


씨름판 앞까지 가자, 방금전까지 씨름을 하고 있었는지 반라(半裸)의 모습에 흙으로 지저분해진 케이지가 있었다.

그밖에도 나가요시(長可)나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도 있어, 이쪽에 오다 가문의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듯 했다. 반대쪽을 보니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등 에치고 인(越後人)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니, 즐거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말이에요. 조금 궁금해져서 와 봤어요"


"핫핫핫. 보는 대로, 오다 대 우에스기의 단체전이야. 물론, 이겨도 져도 원망하기 없기의 승부지만 말야"


"응. 사정은 알겠어요. 서로 다치지 않게 해요"


시즈코가 가만히 지켜볼 태도를 보이자, 다시 드잡이질이 시작되었다. 오다 측 인원들과 우에스기 측 인원들의 교류전이라는 건 알았으나, 그렇다고 해도 조금 궁금한 것이 있었다.


"꽤나 달아올랐네요. 연승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시즈코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관객들의 열광도와 선수들의 집중도(入れ込み具合)였다. 오다 측 인원들과 우에스기 측 인원들로 나뉘어 씨름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전부터 종종 벌어졌다.

시즈코가 아는 한 이번만큼의 흥분(盛り上がり)을 보인 적은 없어서, 그 한 가지가 의문(気掛かり)이었다.


"이번에는 진 쪽이 승자측의 밥값을 부담하기로 했거든. 조촐하지만 내기 요소가 있으면 다들 태도(盛り上がり)가 달라지는 거지"


시즈코의 의문에 나가요시가 대답했다.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서로의 선수들의 승패에 밥값을 걸고 내기를 하며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납득이 간 시즈코는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전문 도박꾼(胴元)이 끼어드는 도박도 아니니 눈을 부릅뜰 정도도 아니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말했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어요. 서로 긍지를 걸고 실컷 싸우세요"


"과연 시즛치! 말이 통하잖아"


"하지만, 승자에 대한 상이 밥값만이라는 것도 멋이 없네요. 한창 재미있을 때 찬물을 끼얹은 데 대한 사죄의 표시로, 내가 약소하나마 상품을 제공하려고 하는데, 어때요?"


드물게 치기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시즈코의 말에, 일순의 고요함 후에 환성이 폭발했다.


"내가 제공하는 상품은 이것. 일부 사람들은 이 표딱지(札)가 붙은 열쇠가 어디 열쇠인지 알겠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단체전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 속에서 상품이 될 열쇠를 꺼냈다. 어디에나 있는 맹꽁이 자물쇠(南京錠)의 열쇠처럼 보였으나, 달려 있는 표딱지에는 '술(酒)'이라는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즈코가 꺼낸 열쇠는, 시즈코가 관리하는 술창고(酒蔵) 중 하나의 열쇠였다. 시즈코 자신이 음주를 금지당했기에 보관되어 있는 술의 태반은 손대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

개중에는 천황(帝)에게 헌상하기 위해 담근 술이나, 노부나가나 사키히사(前久) 등 일부 사람밖에 마실 수 없는 특급주(特級酒)도 있다고 그럴싸하게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실은 시바타(柴田) 님에게 진중(陣中) 위문(見舞い)으로 준비한 술이 남아서 말이에요, 술의 처분이 곤란하던 참이에요. 승자에게는 승리의 미주(美酒)가 어울리잖아요?"


꼴깍 하고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즈코는 귀빈용의 관람석(桟敷席)에 열쇠를 놓더니, 손뼉을 쳐서 전원의 시선을 모았다.


"오다 대 우에스기의 단체전, 승리(勝ち星)가 많은 쪽에 이 열쇠를 맡기겠어요. 물론, 안에 있는 걸 어떻게 하던 자유에요!"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승리의 함성(鬨とき) 소리가 아닐까 할 정도의 대함성이 씨름판을 뒤흔들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비장의 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인데 흥분하지 않을 주당(呑兵衛)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에치고 사람들은 술창고 내부를 상상할 수 없을테니, 우선 쌍방의 대표자를 선출해 주세요. 실제로 창고 안의 물건들을 보여드리죠"


대화 끝에 오와리로부터는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에치고로부터는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선출되었다. 시즈코는 네 사람을 애동하고 술창고까지 가서, 자물쇠를 열고 닫혀있던 문을 열어젖혔다.


"어이어이, 이건 오와리 다이긴쥬(大吟醸)야. 게다가 2년 전이라고 하면 대박(大当たり)이 났다고 했던 거잖아!"


"이쪽에도 굉장한 게 있어! 폐하(帝)께 헌상되는 어용주(御用酒)와 함께 담궈진 통이야! 선발에서 떨어졌다고는 해도 천하일품의 보증이 붙은거라고!"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눈을 빛내면서 술통에 붙어있는 표서(表書き)를 확인했다. 한편, 그들이 무엇 때문에 놀라고 있는지 모르는 카게카츠와 카네츠구 등 에치고 팀이었다.

다만, 술친구인 케이지가 눈을 빛낼 정도로 좋은 술이 늘어서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부풀었다.


"뭐, 술은 마셔보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거기에 시음용 잔이 있으니까 잠깐 맛보시겠어요?"


시즈코는 술통 하나를 쓰러뜨리고 '맞춤못(ダボ, ※역주: 확실하지 않음)'이라고 불리는 나무 마개를 빼서 '주둥이(呑み口)'를 끼웠다. 다시 술통을 세운 후, '주둥이'의 마개를 뺐다.

시음용의 잔이라며 꺼내온 것은, 붉게 칠해진 큰 잔(大盃)이었다. 그 큰 잔에 찰랑찰랑 부어진 술을 들고 네 사람이 먼저 창고를 나서고, 시즈코가 다시 자물쇠를 잠궜다.

무도장의 씨름판으로 돌아가자, 다들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즈코들이 돌아온 것을 깨닫자, 앉아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모여들었다.


"승리의 미주 중 하나를 골라서 가져왔어요. 돌려서 마시게 되겠지만, 참가자는 차례대로 맛을 보도록 해요"


큰 잔을 들고 있던 케이지가, 우선 에치고 측이 마셔야 한다며 카게카츠에게 건넸다.

상당한 중량이 있는 큰 잔을 받아든 카게카츠는, 술잔에서 피어오르는 감미로운(芳醇) 향기에 깜짝 놀랐다.

다들 숨을 멈추고 지켜보는 가운데, 큰 잔에 입을 대고 술을 입 속으로 흘려넣었다.


"오오, 이것은……"


입에 머금고 굴리며, 혀 위에서 맛보고, 마지막으로 목구멍 속으로 내려보냈다(嚥下).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한숨이 새어나왔다.

단 한 모금, 하지만 한 모금. 그가 맛본 술은, 단 한 모금으로 그를 매료시켰다. 어떻게 담그면 그렇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투명할 정도로 맑으면서도 어딘가 탁주(濁り酒) 같은 끈적한 느낌(口当たり)이 있었다.

달고 부드러운 느낌이면서, 목구멍을 불태울 듯 강한 주정(酒精)이 몸에 스며들었다. 목구멍을 지났을 때에 느껴지는 꽃과 같은 향기는 그의 미간의 주름을 펴게 했다.

그의 반응을 보고 그 술이 얼마나 맛이 있는건가 하면서 목젖을 울리는 에치고 인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시즈코는, 순서대로 큰 잔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관객석에 술창고의 열쇠를 놓았다.


"자, 승리의 미주는 마음에 들었어요? 상품은 이것과 동등한 술이, 여기에 있는 전원이 뒤집어쓸 정도로 마셔도 남을 정도 있어요. 자, 실력에 자신있는 사람은 나서보세요!"


시즈코의 부추김에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단체전의 매칭은 전에 없던 규모가 되었다.


"그럼, 양쪽 모두 부상만은 입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세요"


시즈코는 그 말만 하고 씨름판을 떠났다. 무도장에서 밖으로 나온 직후, 등 뒤에서 대환성이 들려왔다.

벌써 드잡이질이 시작된 모양이다. 우에스기 쪽에 약간 머뭇거림(遠慮)이 보였기에 약간 부추겨보았는데, 예상 이상의 효과였구나라고 새삼 생각했다.


"뭐, 조심해도 다치는 사람은 나오겠지. 미리 의사를 수배해 둘까"


시즈코가 상황을 살피러 왔을 때 이상의 떠들썩함을 보이는 무도장을 뒤로 하고, 시즈코는 아야가 있는 안채(母屋)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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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4 1575년 2월 하순



텐쇼(天正) 2년은, 노부나가가 기후 성(岐阜城)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마지막 해가 된다. 노부나가의 아즈치(安土) 이전 계획은 이미 주위에 알려져 있고, 아즈치 성(安土城)이 완공될 때까지의 임시 궁궐(仮御殿)도 완성되었으며, 이전을 향한 세세한 준비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연말연시를 모두가 평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아즈치로의 이전 예정일은 새해 15일 무렵으로 정해졌다. 노부나가가 떠난 후의 기후 성에는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가 들어가서 기후를 통치하게 된다.

 

"설날(元日)만큼은 느긋하게 보낼 수 있네"

 

항상 그렇듯 설날에는 시즈코의 수하들도 대부분이 집으로 귀성한다. 잔류하는 사람은 돌아갈 집이 없거나 또는 돌아갈 생각이 없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시즈코는 이곳이 집이며, 아야(彩)는 돌아갈 집이 없다. 작년까지는 둘만의 정월(正月)이었으나, 올해에는 시로쿠(四六)와 우츠와(器)가 더해져 조금 활발한 분위기가 되었다.

고용인(家人)들도 최저한의 인원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평상시에는 그렇다치고, 정월 동안 정도는 푹 쉬었으면 하는 시즈코의 배려였다.

 

저택의 규모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작은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즈코는 옆에 뒹굴거리고 있는 비트만들을 쓰다듬고 있었다.

비트만 패밀리 중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비트만과 바르티는 요즘 누워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비트만 패밀리 전체가 노경(老境)에 달해 있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에 관해서는 출생일을 알 수 없기에 연령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으로 말하면 80세 이상에 해당할 거라고 미츠오(みつお)가 말했었다.

울프독(wolfdog)이라는 종을 남겼기 때문인지, 사육되는 것에 의해 본능이 옅어졌는지, 비트만 패밀리에는 순혈의 후계자가 끊겨 버렸다.

여기에 있는 패밀리가 전부이며, 그들이 생을 마쳤을 때 그들의 일족은 사라지게 된다.

 

"너도, 이제 할아버지구나.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생물로서의 수명만큼은 어쩔 수가 없네……. 그 때를 위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쓰게 하고 싶지 않아"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늙은이와 남겨지는 이의 생활은 힘들다. 생명력이 뿜어내는 거친 기세는 자취를 감추고, 다만 평온하고 조용하게 최후를 향해 착실히 걸어간다.

시즈코의 뒤를 쫓는 것을 그만두고, 그래도 시즈코가 있을 장소를 지키며 기다려주는 비트만이 늙어가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언젠가 확실히 찾아올 그 때를, 아무 준비도 없는 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부심하는 것이 시즈코 나름대로의 도리를 지키는 법이었다.

비트만에 이어 카이저나 쾨니히 등도 순서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카이저들, 제 2세대의 수명에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아델하이트나 루츠의 얼굴에서 정한(精悍)함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풍모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인(飼い主)의 숙명인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괴롭네"

 

중학 시절의 친구가,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 자라온 애견(愛犬)과의 이별을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렸다.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자신의 반신(半身)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가족이 떠나간다.

그 때는, 친구의 고뇌와 비애를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역시 어딘가 남의 일이었으리라. 이 정도로까지 절실한(身につまされる)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어울리는 인물이 되었을까?"

 

말로 꺼내어 물어보았으나,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즈코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바르티가 시즈코의 손을 핥았다. 그녀의 체온과 친애의 정이 전해져오는 듯 했다.

 

"그런가…… 고마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시즈코를 무리의 리더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는 바르티의 목에 팔을 감고 끌어안았다.

평소에는 과도한 접촉을 싫어하는 바르티였으나, 이 때만큼은 시즈코가 하는 대로 몸을 맡겨주었다.




정월 2일째 이후로는 예년(例年)대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특히 기후 성에서는 노부나가의 전출에 따라, 노부나가, 노부타다 양쪽에 인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듯 예년 이상의 장사진이 형성되었다.

인사를 받는 노부나가들이 바쁜 것은 물론이지만, 그 뒤(裏方)에서 일하는 근시(近侍)들은 그야말로 앉은 자리를 데울 틈도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여러분꼐서 바쁘실 거라고 생각해 인사를 미루고 있었는데, 본인께서 직접 오시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무슨 말이냐. 아즈치로 옮겨가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찾아올 수도 없게 된다. 조금 아쉬워해도 벌받을 일은 아니니라"

 

기후 성의 소란(喧噪)을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裏方)에게 들은 시즈코는, 좀 진정될 무렵 인사하러 가겠다고 편지를 보내고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즈코가 가면, 시즈코를 목적으로 한 혼잡이 더해져, 제아무리 근시들(近侍衆)이라도 손님들을 다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노부나가에게 비중이 높은 시즈코는 앞다투어 인사하러 갈 필요성이 적다. 안 그래도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裏方)에게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기후 성이 진정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밤이 깊은 후라고는 해도 노부나가 본인이 시즈코 저택으로 쳐들어왔다.

 

"함부로 기후 성을 비우시면, 주상의 재가(裁可)를 기다리는 사람들(裏方)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요?"

 

"당분간은 인사 뿐이라서 결재 따윈 필요없다. 그보다 어서 '케이크'라는 걸 내지 못하겠느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와 버린 이상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케이크 만드는 것을 재개했다.

현대의 품질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고는 해도, 초콜렛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행히 신선한 계란은 내다 팔 정도로 많았기에, 계란과 초콜렛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가토 쇼콜라(gâteau chocolat)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즈코 저택의 평소의 면면에 대해 초콜렛 케이크를 만든다고 선언한 것을 들은 듯한 타이밍에 노부나가가 등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케이크 만들기는 시간이 걸리기에, 노부나가에게 기다리는 동안 집어먹을 것을 내기 위해 손쉽게 만들수 있는 팬케이크를 먼저 제공했다.

시즈코가 초콜렛을 중탕(湯煎)에 녹이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長可)가 극한(極寒)의 빙실(氷室)에서 므랭그(meringue)를 만들고 있었다. 냉장고 같은 편리한 것은 없기에, 이빨이 덜덜 떨릴 듯한 환경에서 계란 흰자(卵白)를 계속 섞어줄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가 있는 곳은 따분함과는 인연이 없구나"

 

주방(厨)에 서는 시즈코의 뒷모습을 보면서 노히메(濃姫)가 중얼거렸다. 추가인원은 노부나가 뿐이었지만, 팬케이크를 굽는 냄새에 끌렸는지, 노히메나 이치(市), 챠챠(茶々)에 하츠(初)도 나타나 앉았다.

아무래도 젖먹이인 고우(江)에게 줄 수는 없어서, 유모와 고우만이 다른 방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서둘러 귀인(貴人)들의 숫자만큼 팬케이크가 구워지자, 각자 쟁반에 담겨 운반되었다. 갓 구운 팬케이크가 풍기는 식욕을 끄는 향기에, 위장이 소리를 내며 가볍게 항의하였으나 무시하고, 잔열(粗熱)을 받은 초콜렛에 계란 노른자(卵黄)를 섞어 반죽했다.

 

"시, 시, 시즈코!, 이, 이이, 이거! 다 됐어"

 

그 때 타이밍 좋게 나가요시가 나타나서, 간신히 므랭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물체를 가져왔다. 고맙다고 말하고 받아들며 나가요시의 상태를 살피자, 얼어붙어버렸을 입술은 보라색이 되어 있었고, 이빨이 덜덜 떨려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케 여기까지 마무리해 줬네. 고마워, 카츠조(勝蔵)군. 목욕탕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얼른 가"

 

정당(精糖) 기술도 어설프고 핸드 믹서 같은 편리한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결이 고운 므랭그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가열하면서 만드는 스위스 므랭그를 이용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부드러운 케이크로 만들기 위해서는 꼭 프렌치 므랭그가 필요했다.

몸을 부여잡는 듯 하며 목욕탕으로 향하는 나가요시를 전송하고, 시즈코는 일단 뿔이 선 상태의 므랭크를 몇 번에 나누어 초콜렛 반죽(生地)에 섞어넣었다.

므랭그를 뭉그러뜨리지 않도록 깔끔하게 섞은 후, 사전에 준비해 둔 금형(金型)에 유채 기름(菜種油)을 엷게 바른 것에 초콜렛 반죽을 흘려넣고 통통 두드려서 공기를 뺐다.

 

"시즈코는 지금부터 '케이크'를 굽는다고 한다. 우리들은 이걸 먹으면서 기다리도록 하자"

 

노부나가는 김을 풍기는 팬케이크에 벌꿀을 잔뜩 바르고, 젓가락으로 솜씨좋게 둘로 접어 입으로 가져가 크게 베어물었다.

'주룩'하며 스며드는 벌꿀과, 그것을 묵직하게 받아내는 케이크 반죽의 향기로우면서도 달콤한 맛에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풀렸다.

 

"맛있구나!"

 

유리 제품의 부산물인 중탄산소다(重曹)가 듬뿍 들어간 팬케이크는 현대의 그것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완성도였으며,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노히메들도 눈을 크게 뜨고 맛보고 있었다.

빨리도 한 장을 먹어치운 노부나가는, 다른 한 장에 다른 접시에 올려진 크림과 감(柿)의 잼을 발라 우물거리고 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구나 하고 시즈코는 어딘가 흐뭇한 느낌으로 바라보며 예열(余熱,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予熱과 착각한 듯함)해둔 돌가마(石窯)에 케이크의 금형을 투입했다.

 

"단 것과 함께 마시면 이 떫은 홍차(紅茶)라는 것도 각별하구나. 약간 신맛을 느끼지만, 되려 마음에 든다"

 

티 컵에 든 홍차를 흔들면서 이치가 중얼거렸다. (좀 지나치게) 가느다란 손잡이가 달린 티 컵에 망설였던 이치였으나, 지금은 우아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달아ー"

 

"달아ー"

 

챠챠와 하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팬케이크를 먹어치웠다. 메인인 초콜렛 케이크에 대한 예고편(前座)이고, 어른과 달리 많이 먹지 못하는 그녀들의 팬케이크는 작다.

일찌감치 다 먹어버려서 어른들의 팬케이크를 먹고 싶은 듯 바라보았으나, 더 맛있는 초콜렛 케이크의 등장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방의 상황을 살피면서 돌가마의 상태를 보고 있던 시즈코는, 꺼낸 초콜렛 케이크에 대나무 꼬치를 꽂고, 설익은 반죽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미소를 지었다.

초콜렛의 품질 문제인지, 므랭크가 충분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 겉보기가 좋지 않기는 해도 일본(本邦) 최초의 초콜렛 케이크가 무사히 구워졌다.

시즈코는 금형에서 꺼낸 케이크에 식칼을 넣어 한 홀을 8등분하여 잘랐다. 손님방에 앉아있는 귀인은 5명, 큰 역할을 한 시즈코와 나가요시가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고, 마지막 한 조각의 행방이 파란(波乱)을 불러올 듯 했다.

 

"……참으로 농후하고 향기로운 맛이구나"

 

"남만의 언어로 가토 쇼콜라(프랑스어로 초콜렛 케이크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일본 최초라는 말에 가장 먼저 입으로 가져간 노부나가는 말을 잃었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감상을 짜냈다. 초콜렛이 갖는 고혹적(蠱惑的)인 향기와, 풍부한 유분(油分)과 당분(糖分)이 가져오는 펀치력이 노부나가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대화하는 옆에서 노히메들도 케이크를 맛보고 그 맛에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챠챠와 하츠에게는 초콜렛의 쓴맛이 강했는지, 팬케이크용의 크림을 발라서 우물거리고 있었다.

 

"시즈코야, 이건 더 만들 수 없느냐?"

 

재료 자체는 존재했으나, 므랭그를 만드는 작업이 가혹하여 그리 쉽게는 만들 수 없다고 설명하자, 전원의 눈이 케이크 접시에 남겨진 최후의 한 조각에 못박혔다.

시즈코는 스스로 불똥을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을 피하여 얼른 퇴장했으나, 행운을 붙잡지 못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또다시 나가요시가 빙실로 보내지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신없이 바쁜 노부나가가 일부러 찾아온 것이다. 케이크만으로 만족할 리가 없어, 와인이나 맥주 외에, 그에 맞는 만주류까지도 토산품(土産)이라 칭하며 가지고 갔다.

기후와 오와리(尾張) 사이의 거리니까 가볍게 찾아올 수도 있으나, 아즈치로 옮겨가면 식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생활 양식에 제한을 받게 된다.

냉장이나 수송 기술 수준이 낮았기에, 천하인(天下人)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숙명이었다.

 

(아즈치 성에서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하라고 할 것 같아……)

 

아즈치로 옮겨가면 노부나가의 분방함도 자취를 감출거라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노부나가가 변함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無茶ぶりをする) 미래가 상상되어 버려서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태풍같은 방문을 소화해낸 시즈코였으나, 하늘은 그녀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드디어, 인가"

 

전달된 편지를 읽던 시즈코는, 만감(万感)의 심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편지에는 천하오검(天下五剣) 중 마지막 한 자루, 쥬즈마루(数珠丸)를 입수했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도우지기리(童子切) 야스츠나(安綱), 오니마루(鬼丸) 쿠니츠나(國綱), 미카즈키(三日月) 무네치카(宗近), 오오덴타(大典太) 미츠요(光世) 등 네 자루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즈코가 있는 곳에 모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자루인 쥬즈마루(数珠丸) 츠네츠구(恒次)의 입수는 대단히 어려웠다. 왜냐하면 쥬즈마루는 니치렌(日蓮) 상인(上人)의 유품으로, 다른 유품과 함께 오랫동안 미노부 산(身延山) 쿠온지(久遠寺)에 퇴장(退蔵)되어 있었다.

시즈코가 꾸준히 쌓아올린 문예(文芸) 보호(保護)의 실적이 평가받아, 조정(朝廷)으로부터의 공작(働きかけ)도 있어, 이번에 겨우 쥬즈마루 츠네츠구만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길고 어려운 교섭이 벌어졌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온갖 난관을 배제하고 결과를 이끌어낸 조정의 담당자와, 최종적으로 양보해준 쿠온지의 승려에게 시즈코는 감사했다.

 

"하지만, 카츠조 군이 오오덴타 미츠요를 필요없다고 할 줄이야…… 케이지(慶次) 씨나 사이조(才蔵) 씨도 받으려고 하지 않고"

 

천하오검이 모이기는 했으나, 사장(死蔵)시켜서는 의미가 없다. 자료를 남긴 후, 현물을 수하의 장수들에게 하사하려고 했으나, 누구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수하의 장수에 대한 대외적인 포상(褒美)으로서, 케이지와 사이조에게는 이미 천하오검을 하사했지만, 모두의 앞에서 하사되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며, 케이지와 사이조 모두 칼 본체는 시즈코 저택의 창고에 보관해둔 채였다.

일단 소유권이 이전되었기 때문인지 가끔 본인들이 손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귀성할 때도 가지고 갈 기색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번의 나가요시에 이르러서는, 애초에 하사받는다는 형식조차 불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따라서 미카즈키 무네치카만 평소부터 아시미츠가 소유하고 있지만, 다른 네 자루 및 오오카네히라(大包平)라는 명도(名刀)를, 칼을 휘두를 일이 없는 시즈코가 소장하게 되어 버렸다.

아시미츠 자신은 시즈코가 원한다면 미카즈키 무네치카를 넘겨줄 생각이었지만, 시즈코로서는 실용품을 사장시키는 건 부끄럽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계속 아시미츠가 관리하게 되었다.

 

"뭐, 괜찮으려나. 역사적 자료가 흩어져 없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보다, 영지에서의 진정(陳情)이……"

 

"시즈코오!"

 

진정서를 확인하려고 시즈코가 책상에 손을 뻗은 순간, 방을 구획하는 맹장지가 난폭하게 열어젖혀졌다.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은 저택에서도 몇 명 밖에 없기에 자연히 범인을 알 수 있었다.

 

"일을 하면 아니 된다. 백부(伯父, ※역주: 검색해보니 한국과는 다소 명칭의 차이가 있는 듯 하지만(한국 기준으로는 외숙이나 외숙부라고 하며 어머니의 오빠에 대해 백부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 듯함), 여기서는 일단 원문의 한자인 백부를 그대로 읽겠슴)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느니라!"

 

득의만면(得意満面)한 모습으로 가슴을 펴는 것은 챠챠였다. 워커홀릭인 시즈코에 대해 외교(外交)를 금지시킨 정도로 쉰다면 고생할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한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감시역으로 챠챠를 발탁했다.

경애하는 백부인 노부나가로부터 대임(大役)을 받은 것과 챠챠 자신이 시즈코가 상대해주는 것을 즐기는 것이 화근이 되어, 시즈코가 일을 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챠챠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어린애였기에 집중력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결점은 있으나, 천성적으로 좋은 감을 발휘하여 타이밍좋게 방해하러 나타나는 챠챠에게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애를 먹고 있었다.

 

"이건 일이 아니에요. 편지를 읽고 있을 뿐이랍니다"

 

"아니 된다! 그 표정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표정이니라!"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여기저기 움직여버리는시즈코를 수상쩍게 보던 챠챠는 시즈코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그렇고, 챠챠 님. 지금 시간은 공부(座学) 시간이 아닌가요?"

 

의무교육의 중요성을 몸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인만큼, 시즈코 저택에 체재하는 일정 연령의 사람들은 빠짐없이 교육이 실시된다. 본래는 동년배 아이들과 책상을 나란히하고 면학(勉学)에 힘쓰고 있어야 할 시간이며, 챠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태업을 의미한다.

 

"공부보다 임무가 중요하노라!"

 

시즈코의 지적에 챠챠는 눈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뒤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증거, 둘이서 셋트인 하츠가 없는 것도 고려하면, 혼자서만 도망쳤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챠챠 님, 이런 곳에 계셨군요"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돌연 뻗쳐온 손이 챠챠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우왓! 등 뒤에서라니 비겁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놓ー아ー라ー!"

 

멋진 수완으로 챠챠를 구속한 아야는, 챠챠의 저항을 무시하고 그녀를 끌고 떠나갔다. 챠챠의 목소리는 서서히 멀어져서,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을 때 쯤 뚝 하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진정서, 읽을까"

 

일련의 사건을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책상에 놓인 서류 상자에 손을 뻗어 가장 위에 놓여있던 진정서를 들어올렸다.




1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아즈치의 임시 궁궐로 본거(本拠)를 옮겼다. 빈 기후 성에는 노부타다가 입성하고, 노부나가의 아즈치 이전을 알게 된 사람들은 드디어 혼간지(本願寺)와의 결판을 낼 생각이구나라고 수근거리고 있었다.

혼간지 입장에서는 그래봤자 소문이라며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혼간지에 남겨진 전력은 키이(紀伊) 문도들(門徒衆) 뿐으로, 나머지는 사이고쿠(西国)에 모우리(毛利) 등의 협력자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토우고쿠(東国)에 뿌리내린 문도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도 없어, 도저히 전력으로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카이(甲斐)의 타케다(武田)나,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北条)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그 사이를 차단하는 형태로 시즈코를 거느린 노부타다가 포진하고 있다.

토우고쿠로부터의 지원이라는 한 팔이 뜯겨나간 상태에서 노부나가와 대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혼간지 수뇌부의 골머리를 썩게 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멸망의 위기에 서 있습니다"

 

혼간지에서 개최된 대(対) 노부나가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頼廉)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소심한 자세라고 다들 입을 모아 비난했으나, 라이렌이 한 번 노려보자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전국에 퍼져 있는 문도들에게 결기(決起)를 촉구하여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다의 손에 의해 각지의 문도들은 진압당하여, 이제는 혼간지 문도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꺼려지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일대 거점이었던 나가시마(長島)와 카가(加賀)도 빼앗기고, 쫓겨난 문도들이 난민이 되어 밀어닥쳐, 오늘날 우리들의 곤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편 오다는, 그들의 생활 기반을 병탄(併呑)하여 기세를 불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키이 문도들만으로는 노부나가를 저지하는 것 따위 불가능한 이상, 많은 난민들을 데리고 있는 우리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음을 기다릴 뿐이라는게 현재 상황입니다"

 

"하지만, 굶주린 신도들을 저버릴 수는……"

 

"우리들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 하나는 모든 것을 내던져 오다를 치는 철저 항전. 다른 하나는 패배를 받아들이고, 폐하(帝)를 통해 조정(調停)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조직으로서의 혼간지는 사라지지만, 종교로서는 존속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해산되고, 이곳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를 넘길 것을 요구받아——"

 

"아니 되오!"

 

라이렌이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明け渡し)를 언급한 순간, 어떤 인물이 그걸 가로막으며 노성을 질렀다.

목소리의 주인은 쿄뇨(教如). 혼간지 법주(法主)인 켄뇨(顕如)의 장남으로, 오다와의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급선봉이었다. 그와 그를 지지하는 일파는 강경하게 철저 항전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것이 훗날, 혼간지를 동서로 가르는 비극을 낳게 된다.

 

"일향종(一向宗)의 일향(一向)이란 일의전심(一意専心). 갈 길을 굽혀서는 무엇이 일향종이라는 것이오! 나아가면 극락왕생(極楽往生), 물러나면 무한지옥(無限地獄)에 빠질 것이오. 우리들에게 항복이라는 선택지는 없소!"

 

평소처럼 작전회의가 소극적이 되려고 할 때 쿄뇨가 독려를 했다. 오다와의 일시 강화에 대해서조차 난색을 표하는 그들은, 실질적인 패배를 받아들이는 조정안(調停案) 따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주장은 과대망상의 영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 여쭙겠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 오다를 타도할 것입니까?"

 

"우리들이 신심(信心)을 버리지 않는 한, 부처께서는 반드시 혼간(本願, ※역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부처의 서원(誓願))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오!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우리들에게 패배는 없소!"

 

"……그래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해도, 현세에 남는 것은 시체의 산이겠지요. 우리들이 문도를 잃을 때마다 우리들의 힘은 약해집니다. 우리들이 약해지면, 오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 세력(寺社)들도 적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라이렌의 지적에 쿄뇨는 말을 잃었다. 혼간지의 적은 오다 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혼간지가 괴롭혀온 종교 세력이, 반역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혼간지가 세력을 잃으면, 종교 세력은 오다에게 영합하여 일향종을 철저히 짓밟으려고 적대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렇기에 라이렌은, 궁지에 몰린 지금이야말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한 발짝 잘못 내디디는 것만으로 지금까지의 협력자까지 보신을 위해 오다로 변절하게 된다.

 

"하지만, 혼간지를 잃어서는, 교의(教義)를 위해 순교한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소"

 

여전히 물고늘어지는 쿄뇨였으나, 라이렌은 이미 전쟁의 결론(落としどころ)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 결단할 수 없다면, 제가 한 가지 판단재료를 늘리도록 하지요"

 

"대체 무엇을?"

 

"제가 직접 어떤 인물과 만나, 우리들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죠. 그것을 바탕으로 여전히 철저 항전할 것인지, 명예를 버리고서라도 실리를 취하여 살아남는 길을 모색할지를 판단했으면 합니다"

 

"어떤 인물이라 하면?"

 

쿄뇨가 숨을 들이키며 묻자, 라이렌은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오다가 심복(懐刀)으로서 신뢰하는 자. 오다 님의 최대의 이해자이자 타케다 패배의 공로자.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 고노에 가문(近衛家) 영애, 시즈코입니다"

 

"뭣!"

 

고요해진 작전회의장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시즈코라고 하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며, 혼간지가 규합한 오다 포위망의 핵심인 타케다 군을 괴멸시킨 원적(怨敵)이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를 경제적으로 조이고 있는 수괴(首魁). 노부나가와 표리(表裏)를 이루는, 오다 가문의 얼굴이라 할 인물이었다. 그 시즈코와 직접 만나겠다고 라이렌은 선언한 것이다.

이것에는 항상 냉정한 켄뇨도 경악하여 라이렌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물론, 면회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운좋게 면회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전후에 적의 함정에 걸려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을 오다의 악행으로 하여 혼간지의 대의를 선전할 수 있겠지요"

 

"오다는 수하가 멋대로 한 짓이라고 발뺌할지도 모르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에 깊이 뿌리내린 거목(大樹). 그걸 보신을 위해 잘라내면 오다의 대들보가 흔들립니다. 혼간지의 중신인 제가 목숨을 걸기만 해도 다름아닌 오다가 모든 어려움을 배제하고 저를 지켜야 하며, 회담을 끝낼 때까지 오다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게 됩니다. 회담이 성사되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금후의 판단 재료가 늘어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우리들에게 손해는 없습니다"

 

"음……"

 

쿄뇨는 라이렌이 말하는 계책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라이렌이 단독으로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 거기서 얻은 정보로 다시 방침을 정한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지고 돌아온 정보를 소홀히 취급하거나 할 수는 없으니, 작전회의는 반드시 항복 쪽으로 흘러가리라.

라이렌은 혼간지를 버리고, 무장세력으로서의 혼간지를 해산해서라도 종교로서의 일향종을 남길 속셈인 것이다. 쿄뇨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놔두지는 않는다! 거점으로서의 혼간지를 잃으면, 구심력을 잃고 조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이쪽이 만나고 싶다고 바란다고 바로 만날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 그 절차를 밟는 동안, 시즈코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말할지를 상담하도록 하죠"

 

본심은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에 뻔뻔한 소리를 한다고 쿄뇨는 마음 속으로 내뱉았다.




2월에 들어서, 오다 가문으로부터의 양자인 시로쿠나 우츠와를 받아들인 시즈코의 생활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교(外交)를 금지당했다고는 해도, 영주(領主)인 이상 영지 운영에 관한 일거리가 발생하고, 시즈코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는 사안도 쌓여갔다.

시즈코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가신들이 극력 작업을 대행하고 있었으나, 결국 시즈코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을 재개하면 공적인 시간이 많아져, 당장 시로쿠나 우츠와와 접할 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시로쿠나 우츠와가 아무 부자유없이 살기 위해서도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일과 가정 사이에 끼어 고뇌하는 아버지의 기분을 점점 느끼고 있는 시즈코였다.

 

"……좋아, 이걸로 됐겠지"

 

오전 시간을 총동원하여 쌓여 있던 결재 문서의 처리를 끝내고 자기 방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퍼넣듯이 식사를 마친 후, 복장을 고치고 응접실로 향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요. 바로 보고를 부탁해요"

 

응접실에는 오랫동안 토우고쿠에 정보 수집차 나가 있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시즈코 휘하의 장수들은 사이조를 남기고 전부 나가 있었다.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오우미(近江) 일원(一円)의 치얀유지 활동에 동원되었고, 케이지는 경비가 허술해진 시즈코의 영지를 혼자서 순찰하고 있었다. 타카토라(高虎)는 여전히 아즈치 성 축성 때문에 쿠로쿠와슈(黒鍬衆)를 이끌고 오우미에 머물고 있었으며, 아시미츠(足満)는 사이고쿠에 대한 첩보활동과 우에스기 가문(上杉家)에 대한 관계 유지(顔つなぎ)를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나가요시 이외의 전원이, 시즈코가 명령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 지침을 정하고 시즈코의 허가를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시즈코의 주변을 탐색해봐도 각지에 흩어진 장수들의 속셈은 파악할 수 없다.

 

"역시 오와리와 미노(美濃)의 영향범위 바깥의 시장은 축소 경향에 있나요……"

 

"예. 미카와(三河)는 절약하는 분위기 정도입니다만, 그보다 동쪽의 시장은 물류 자체가 줄어서 긴축상태(緊縮状態)에 있습니다"

 

시즈코는 마사유키에게 토우고쿠에 위치하는 각 시장의 조사를 명령했었다. 그 결과로서, 각국의 시장 규모가 서서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오랫동안 계속된 전쟁 때문에 한창 일할 때의 남성 인구가 줄어들어, 물자의 생산력 및 구매능력 자체가 떨어진 것.

또 하나는, 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시장에 돌릴 수 있는 돈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시통제(戦時統制)에 의한 긴축재정(緊縮財政)을 취하면서 다음 전쟁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나, 마사유키의 조사에 의하면 군수물자의 유통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정말로 여유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면 상거래는 성립되지 않게 되고, 애초에 시장이 서지 않게 된다. 시장이 서지 않는다면, 이익에 민감한 상인들이 일부러 위험을 감수하면서 발을 들여놓을 리가 없다.

가라앉는 배에서 쥐가 도망치듯 앞다투어 철수하고, 이후에는 다가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사나다 님은 계속 조사를 부탁해요. 다음에는 한 발자국 더 들어가서, 민초(民草)들의 생활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조사해 주세요"

 

"옛"

 

"그리고 임무를 수행한 간자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해 주세요. 피로를 남겼다가 판단력이 떨어져서, 정체를 들켜 흔적이 남아도 곤란하니까요"

 

"옛.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보고를 마치고 다음 임무를 받은 마사유키는 응접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그와 교차하듯, 아시미츠가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노린 듯한 타이밍에 시즈코는 놀랐지만, 그대로 대응하기로 했다.

 

"우선은 수고했어요. 그래서, 뭔가 단서는 잡았나요?"

 

"혼간지에 움직임이 있었다. 켄뇨는 여전히 방침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을 필두로 하는 항복파와, 쿄뇨가 주도하는 항전파가 대립하고 있지. 그리고 작전회의 자리에서 라이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라뇨?"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하며 아시미츠에게 되물었다. 아시미츠는 작게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 너와 회견해서 금후의 방침을 결정한다는 모양이다"

 

"흐ー음…… 어? 네!?"

 

시즈코는 일순 흘려들을 뻔 하다가 당황해서 아시미츠에게 다가가더니 목소리를 낮춰 귓말을 했다.

 

"나는 외교를 금지당했으니 애초에 만날지 만나지 않을지의 판단을 할 수 없어요. 뭣보다, 정치에서 멀어져 있는 나랑 만나서 어쩌겠다는 건가요?"

 

"글쎄. 나는 그놈이 아니니까 알 수 없지만, 놈에게는 너와 만나는 것에 의해 얻는 것이 있다고 판단한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시즈코와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아아! 나와 회담하는 것 자체를 정치적 협상에 이용할 생각인가, 거 참 민폐스러운 얘기네……"

 

아시미츠의 말을 듣고 잠시 허공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시즈코였으나, 상대의 노림수를 이해하고 탄식했다. 상대의 내부 사정은 모르더라도, 상대의 입장과 목적을 알게 되면, 그 속셈은 자연히 꿰뚫어볼 수 있다.

 

"즉 라이렌은, 승산 없는 전쟁을 계속하기보다 조기에 항복해서 살아남는 걸 꾀하고 있다는 거네요"

 

라이렌은 자신의 마음 속을 읽혔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시즈코를 여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역녀(歴女, 역사를 좋아하는 여성)로 분류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듯, 장기적 시점에서 역사를 부감(俯瞰, ※역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보는 것)하면 종종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도 체계화된 지식으로서 배워익히고 있었다. 유사한 사례에서 상대의 노림수를 추측하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

 

시즈코의 추리로는, 라이렌의 노림수는 강화(講和)에 있다. 그는 이미 오다를 적대자(敵対者)로 보고 있지 않고, 혼간지 내부의 항전파를 잘라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리라.

따라서 라이렌은 시즈코와 회담이 성사되던 아니던, 강화로 이어지는 길을 가기 위해 행동할 거라 생각된다. 쿄뇨를 시작으로 하는 항전파에게 있어 불리한 상황에서의 강화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라이렌은 이 이상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오다 가문이라고 해도 혼간지 정도의 거대 종교 조직을 완전히 씨를 말리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심은 개개인의 마음 속의 문제이기에,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파고들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조직과의 대립은 오래 계속되고, 그리고 그 때문에 강화에 조건을 붙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혼간지측이 신도를 줄이면서 무장해제에 이르는 것이 가장 온건하면서도 이상적인 종전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라이렌의 활로(活路)가 존재했다. 설령 쿄뇨 등 항전파와 대립하여 종파를 둘로 갈라 상쟁하게 되더라도, 어느 한 쪽만이라도 살아남을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예전의 동포로부터 배신자라는 욕을 먹게 되고, 설령 강화가 성립하더라도 누구로부터도 칭찬받지 못하는 수라(修羅)의 길이었다. 라이렌은 그것들을 각오하고 시즈코와의 회담에 임하려 하고 있었다.

 

"내가 라이렌을 만나지 않으면 전쟁이 오래 끌게 되고, 만나면 정치적 대결(駆け引き)에 휘말려들게 되네. 회담 전에 라이렌의 몸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들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니, 내부 항쟁의 암살(凶刃)로부터 라이렌을 지켜야 하나……"

 

정말로 짜증나는 계책을 생각해낸 셈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라이렌은 자신의 목숨 외에는 잃어버릴 것이 없지만, 도박에 승리하면 본래의 가치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게 되어버린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불쾌하네요. 혼간지에 이용당하는 것도 화가 나니까, 여기는 제3의 선택지를 선택하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시즈코가 웃으면서 말하자, 아시미츠는 맡겨두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달력은 2월로 접어들었다. 노부나가가 아즈치로 거처를 옮긴 지 한 달이 지나려 하고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혼간지도 라이렌의 행동을 지켜볼 셈인지, 조정을 경유하여 시즈코와의 회담을 타진해와, 노부나가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었다.

노부나가 자신은 제 3차 오다 포위망이 형성되지 않도록 각 방면의 역학관계를 조정하면서 직할령인 아즈치의 정비에 힘을 쏟고 있었다.

2월 하순이 되자,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정3위(正三位)의 품급과 우근위대장(右近衛大将)의 직책을 하사받았다.

노부나가는 머지않아 종2위(従二位)에 서임되어 내대신(内大臣)을 겸직하게 될 것이라고 조정 내부에서 그럴싸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니히메(仁比売)가 종3위(従三位)에 서임되고, 시즈코도 부지런함(精勤)을 평가받아 종3위를 하사받게 되었다.

니히메에게는 병행하여 곤츄나곤(権中納言)에 임명되었으나, 시즈코에게는 관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조정이 양쪽을 저울질하여 양쪽 모두에게서 이익을 끌어내려고 하고 있는 걸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보낸 주인장(朱印状)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전히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니히메였으나,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천황과의 서신 교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슬슬 그런 인물은 없다는 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뭐 드러나게 될 것 같으면 병사한 걸로 해서 성대하게 화장(荼毘)하여 얼버무리겠지……)

 

애초에 병약해서 밖에 나오지도 못한다는 설정의 니히메이다. 급서(急逝)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견인인 노부나가가 장례식을 치르면, 이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 따윈 없다.

 

"자자, 슬슬 영주의 일을 해야지. 오와리 뿐만 아니라 키묘(奇妙)님의 미노 쪽 치다꺼리도 해야 하니 큰일이야"

 

노부나가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관리(仕置き, 영주로서의 통치 전반)을 명했다. 노부타다의 직속 신하들에게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寝耳に水) 격인 사건이었던 듯, 입을 모아 노부타다에게 명령을 번복하도록 간언했다.

그러나, 노부타다는 그들의 간언들 듣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시즈코에게 미노의 국주(国主)가 되라고 명한 게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실무에 관여해오지 않았기에 미노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안 그래도 아버님으로부터 미노를 이어받은 것으로 현장은 혼란스러워하고 있겠지. 그렇기에 종래의 방식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조력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 모두의 말뜻은 알겠으나, 시즈코 없이 미노나 오와리를 운영하는 것 따윈 꿈 같은 소리(夢物語)에 불과하다. 선임자(先達)의 방식을 바로 곁에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고 시즈코 이상으로 영지를 번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어디까지나 시즈코는 길잡이(水先案内人)이며, 최종적인 판단은 모두 노부타다가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외교의 자리에도 동행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의 대리인(名代)으로서라고 단언했다.

주군이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신으로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즈코 자신도 야심과는 인연이 없는 성격이며, 멋대로 행동할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체시키면 안 되는 대사업은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와 키소(木曽) 삼천(三川)의 정비려나?"

 

아이치 용수는 치타(知多) 반도(半島) 전역에 혜택을 줄 상하수도용의 용수다. 그 용도는 농업에 한정되지 않고, 공업이나 상업까지 폭넓게 예상되고 있다. 사업에 착수한 지 이미 몇 년이 경과했으나, 아직 먼 꿈이라는 상태였다.

그래도 천하인이 행하는 일대 공공 사업이며 금후의 막대한 이익이 예상되다보니, 자금력이 있는 유력자들은 하나같이 이 사업에 투자했다.

공사 자체의 기초적인 기술은 실증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단순히 노력을 필요로 할 뿐이기에 안정된 이익이 기대되는 사업이 되어 있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키소 삼천의 정비였다. 키소가와(木曽川)와 나가라가와(長良川), 그리고 이비가와(揖斐川)의 세 강은 하류부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유량(流量)에 비해 강바닥이 얕기 때문에 종종 수해를 일으켰다.

상류부나 중류부에 저수지를 설치하려 해도 발본적(抜本的)인 해결을 꾀하지 않는 한 수해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뭐, 유역(流域) 전역이 오다 가문의 지배 하에 들어온 것은 평가할 수 있으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치수(治水) 기술의 미숙함에 기인하는 공사 자체의 난이도에 더해, 각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의 이해가 대립하여, 수리(水利)를 둘러싸고 다투었기 때문에 치수 대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노, 오와리, 이세(伊勢) 등 유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나라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어, 노부나가라는 카리스마의 호령 하나에 모두 한덩이가 되어 치수 대책에 달라붙어 있었다.

 

미노나 오와리의 이점으로는, 안정된 사업용수를 확보할 수 있는 점, 홍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남은 이세가 받는 이익으로는, 상공업의 중심지인 오와리와 육로가 개통되는 것이 컸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북(北) 이세가 키소 삼천에 대한 치수공사를 추진하기에는 충분했다. 현재로서는 키소 삼천의 하류역(下流域)을 도하(渡河)하는 것은 어려워서, 직선거리로는 오와리와 가까운데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나가도 이세 침공 당시 최단거리를 택하지 않고 일단 미노로 나가서 크게 우회하여 이세로 향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해로를 이용하면 오와리와도 교역할 수 있다고는 하나, 육로를 이용할 수 없어서는 교통의 요충지는 될 수 없다. 오와리에서 발단하는 융성의 파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와리에서 이세로의 대동맥(大動脈)을 뚫을 필요가 있었다.

 

"모두가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데, 형제 싸움에 휘말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어……"

 

시즈코는 의도하지 않게 노부나가의 직계 형제들의 다툼에 말려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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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3 1574년 12월 하순



노부나가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반목(確執)은 역사를 대폭 반복하는 형태로 결판이 났다. 말할 것도 없이 오다 측의 압승이며,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세력구도가 뒤바뀌게 되었다.

이 전쟁에 도중 참전한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군신(軍神)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 눈 깜짝할 사이에 혼간지(本願寺) 세력을 구축하더니, 노토 국(能登国)을 지배하에 두었다.

전후처리(戦後処理)에 애를 먹고 있던 시바타(柴田)는, 켄신에게 한 발 뒤쳐지면서도 카가 국을 지배하에 두었다. 이로서 호쿠리쿠 정벌은 완료되어, 양자가 각각 지배력을 강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켄신의 영토가 확대되게 되었으나, 노부나가는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토우고쿠(東国)에서 혼간지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카가 일향종 정벌, 실로 수고하였다"


노부나가는 시바타를 시작으로, 카가 일향종 정벌에 참전한 무장들에게 감사장과 상을 하사했다.

외국(唐物)의 다기(茶器)까지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시바타는 다화회(茶会)를 주최하는 것을 허락받아 크게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혼간지는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가 일향종을 잃은 것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토우고쿠에 구축해 왔던 교두보가 붕괴한 것이다.

혼간지가 주도한 오다 포위망에 큰 구멍이 뚫려, 반 오다를 내걸었던 동맹은 이 시점에서 와해되었다. 남은 반 오다 세력이 개별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되지 못하고, 기세를 타고 있는 오다 상대로는 성과를 바랄 수 없었다.

현 시점에서는 오다와 강화를 맺고 있는 혼간지였으나, 그 기색(旗色)은 좋지 못하였다. 융성을 자랑하는 오다 가문의 경제력에 압도되어, 혼간지의 경제활동은 축소 일로를 걷고 있었다.

조정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칸파쿠(関白) 취임한 이래로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주류파가 되지 못하고 배척된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일이 여기에 이르면, 혼간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적다.

노부나가가 제창하는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혼간지는 가진 것 전부를 던져 노부나가에게 저항하던가, 주의주장(主義主張)을 굽혀서라도 살아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투항할 수밖에 없다.


"휘이ー, 이걸로 대충 다 끝난 걸까?"


시즈코는 목과 어깨를 돌리면서 사무업무로 굳은 몸을 풀었다. 오다 가문은 카가 평정에 들떠 있었으나, 시즈코는 후방지원은 했어도 직접 참전하지 않았기에 어딘가 남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노부나가로부터 감사장이 보내지지도 않았으나,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잠시나마의 평온을 만끽하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정형화된 사무작업은 아야(彩)들에게 맡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기에, 시즈코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판단과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에 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신에 대한 회신이었다.

현대라면 메일도 아니고 메신저 어플에서의 한 마디로 끝날 용건이라도 형식을 중시한 서신을 교환했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운송할 필요가 있다.

시즈코의 지위 향상과 함께 교제나 인사의 중요성이 늘어나, 연말쯤 되면 세밑 선물(お歳暮) 준비에 쫓기게 된다.

교제 범위가 좁았을 때는 직접 시즈코가 가서 인사도 할 수 있었으니, 이제는 그런 걸 바랄 수도 없다.

대리인(名代)을 세워, 무례(不義理)를 사과하는 서신과 함께 세밑 선물을 전달하도록 수배한다.

대리인이라고는 해도 상대의 가문의 격(家格)에 맞는 인선이 요구되었기에, 스케줄 정리에 난항을 겪어서 지금 막 작업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정이었다.


"연말연시 준비도 시작해야지"


세세한 업무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호출이 도착했다. 새해 이후의 아즈치(安土) 이전에 관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岐阜)로 향했다.


"양자 결연(養子縁組)……인가요? 굉장히 갑작스런 이야기네요. 그래서, 어느 분과 결연을 맺게 되는 건가요?"


밀담(密談)용의 다실(茶室)이 아니라, 사람은 물리기는 했지만 성 안의 알현실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갑작스레 꺼낸 양자결연의 화제를 듣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자식을 어딘가의 집에 후계자로서 양자로 보내는 거라 생각했다.

드물게 헤아림이 둔한 시즈코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 자식을 네게 양자로 보낸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에, 그건 참으로…… 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흘려듣고 있던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당사자라고 선고되자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당황하여 자세를 바로한 후,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노부나가가 중대사를 갑작스레 말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비밀리에 처리될 만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귀인지도 모를 놈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영주의 후계자가 부재인 상태로는 백성들도 불안을 느낄테고, 뭣보다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놈들이 나타나게 된다"


"……뭐, 확실히 그렇군요"


시즈코의 감각으로는 슬슬 결혼을 의식할 나이이지만, 평균수명이 짧은 전국시대에서는 이미 퇴물(年増)로 분류된다.

이 시대, 유력자의 자녀라면 빠르면 10세가 되기 전부터, 늦어도 10대 후반쯤 되면 배우자를 얻는다.

20세를 넘어서도 미혼인 상태라는 것은, 불문(仏門)에 귀의(帰依)하여 출가한 것이라도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은 사전 통보(内示) 단계라고는 해도, 장차 오와리를 맡을 영주에게 후계자가 없다고 하면 집안 소동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 지금 너는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영애(姫). 그리고 오다 가문에서도 견줄 사람이 없이 출세가 빠르다(出世頭). 네가 남자가 아니기에 원숭이놈(※역주: 히데요시)이 제일 출세가 빠른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말이다. 네 입장은 수하의 장수에는 머무르지 않고, 나라의 초석이 되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지간한 사람으로는 네가 맡은 중책을 나눠맡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상의 자녀분을 양자로 삼아라, 그런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후계자가 생겼다고 하면 집안 사람들도 너를 보는 눈이 달라지겠지"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가 긍정했다. 시즈코는 여자이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후계자를 만들지 않았기에, 출세 경쟁에 방해된다고 간주되지 않아왔다.

그러나, 이제와서 주인 가문인 노부나가의 자식을 후계자로 얻었다고 하면, 주위의 인식은 달라진다.

기다리고 있으면 사라져 주는 1대 한정의 공로자에서, 세습에 의해 오다 가문의 중신의 지위를 점유할 수 있는 장애물로.


"그래서, 네게 맡길 자식은 '사연이 있'다……"


시즈코의 후계자가 '사연이 있'기만 하면, 시즈코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리라도, 시즈코만 없어지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게 하여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보좌역으로서 요시나리(可成)를 붙이겠다. 녀석이라면 부족하지 않겠지"


"부족은 커녕, 너무 거물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그……"


"공신(功臣)을 한직(閑職)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이느냐? 나는 애초에 남의 말(風評)을 신경쓰지 않고, 요시나리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놈은 '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天之道)(공을 이루었으면 후진(後進)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 올바른 도리이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하여 말했다. 늙은 몸으로 후진의 육성에 관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이지"


"본인들이 납득하였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사연이 있'다 라고 하시면?"


노부나가에게 자식에 대해 묻자, 그물게 미간을 찡그리며 복잡한 표정을 떠올렸다. 마음 속으로 다양한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쌍둥이다"


그래도 간신히 뱉어낸 말로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출산 자체가 어려운 일(難事)이었던 전국시대에서, 한 번의 임신으로 얻을 수 있는 아기(赤子)는 한 명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쌍둥이나 세쌍둥이는 비정상적인 사태로서, 종종 모자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기에 기피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개나 고양이처럼 한 번에 많은 자식을 낳는 '짐승배(畜生腹)'라고 경멸되어, 무사히 태어났다고 해도 아기를 '처분(処分)'하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거친 일(荒事)이 생업인 무가에서 노부나가의 피를 잇는 직계는 중요하며, 후계자 다툼의 씨앗이 되지 않는 만일에 대한 대비로서 오늘까지 살아있게 했었던 것이리라.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쌍둥이를 맡기는 이유. 그것은 노부나가 자신이 완강하게 말로 꺼내려 하지는 않지만, 오다 가문에 두고 있는 한 불우한 입장에서 평생 썩게 되는(飼い殺し)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 헤아렸다.

예전에 시즈코는 츠루히메(鶴姫)가 임신했을 때 당시의 출산에 관한 상식을 철저할 정도로 파괴했다.

임신의 메커니즘은 말할 것도 없고, 아기를 가지기 쉬운 날의 법칙에 대해서도 공개하여, 오다 가문 내부의 비전(秘中)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다 가문 내에서 후계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집안에는, 시즈코에게 배운 노히메 전속 시녀가 파견되었고, 그에 의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수많은 인습(因習)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온 시즈코가, 쌍둥이를 멋지게 키워낸다면, 쌍둥이에 대한 주위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노부나가가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요시나리에게 들어라"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알현실을 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란마루(蘭丸)의 안내를 받아 요시나리가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사정에 대해서는 주상께서 말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소개하지요. 남자 쪽이 시로쿠(四六), 여자 쪽이 우츠와(器)라고 합니다"


요시나리는 시즈코에게 양자가 될 쌍둥이를 소개한 후, 그 자신의 입으로 상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두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남자 쪽은 아침 4시에서 6시 사이에 태어났기에 시로쿠라고 이름붙여지고, 여자 쪽은 출산 직후에 남자아이가 산유(産湯)로 씻겨지는 동안 옆의 통(桶)에 넣어진 것 때문에 우츠와(※역주: 그릇)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참으로 성의없는(場当たり的) 네이밍이라 어이가 없어지지만, 노부나가의 자식들은 왕왕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피가 통한 부모는 아니지만, 오늘부터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겠어. 잘 부탁해"


시즈코의 말을 듣고 쌍둥이는 나란히 예의바르게 머리를 숙였다. 두 사람의 나이는 14세, 만으로는 13세이다. 하지만, 시즈코의 눈에는 나이보다 꽤나 작아보였다.

참고로 그들을 낳은 모친은 산후의 예후(肥立ち)가 좋지 않아 치료한 보람도 없이 죽었다.

전국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다고 하여 한쪽만을 양자로 내보내거나, 양쪽 다 처분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 자신의 강한 의향에 의해 특례적으로 둘 다 시즈코의 양자가 되게 되었다.


"재수가 좋고 나쁨 같은 건 시즈코에게는 관계없다. 어미를 잃은데다 부스럼(腫物) 취급받으며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다름아닌 시즈코가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떼어놓자는 것이냐?"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니 공신(功臣)인 시즈코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노부나가에게 진언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는 의외로 인정어린 말(人情じみた言葉)로 물리쳤다.

이것을 본 가신들은, 드디어 시즈코도 노여움을 샀나 하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까지 이상으로 중용될 징조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억측들을 제외하더라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두 사람에게 흐르는 노부나가라는 패왕(覇王)의 피가 시즈코에게 맡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나요?"


"주상께서는 '시즈코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시즈코 님은 스스로가 생각하시는 어머니로서 행동하십시오. 무가(武家)의 관습에 밝지 못하신 것은 알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은 제가 보충하겠습니다. 늙은 몸에는 애보기(子守)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핫핫핫"


"아뇨, 모리(森) 님을 보모(子守) 취급이라니…… 도저히 감히……"


자신을 노인이라 칭하는 요시나리였으나, 그를 앞에 두고 '늙었다'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없다.

현역인 케이지(慶次)조차 "예전에도 무서웠지만, 지금 쪽이 더 무섭다"고 말했고, 사이조(才蔵)는 "뽑아든 칼(抜き身の刀) 같던 무위(武威)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면도칼(剃刀) 같은 예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인 나가요시(長可)의 경우에는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등이 다시 멀어졌다"고 말했다.

3인 3색의 평가였지만, 공통된 점은 '요시나리는 지금 쪽이 무섭다'였다.


"어머니로서, 인가요"


시즈코는 요시나리의 말을 되씹으면서 쌍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몸단장은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벼락치기였으며, 평소에 소홀히 대해졌던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방임주의(放任主義)인 것을 이용하여, 재수도 나쁘고 거의 틀림없이 후계자가 되지 않을 쌍둥이에 대해 유모(乳母)가 거칠게 대응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시중을 담당했던 유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요시나리하고만 함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유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즈코가 묻자, 요시나리는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시즈코에게 가까이 가서 귓말을 했다.


"유모는, 쌍둥이에게 해온 일을 자신의 몸으로 맛보고 있소"


그렇게 말하며 내밀어진 글에는 유모에게 내려진 처벌이 쓰여 있었다. 쌍둥이를 맡고 있던 유모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니글렉트(neglect, 육아포기)를 했었다.

두 사람에 대해 극히 위압적으로 굴고, 외부에 대해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돌봄을 거부했다. 말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번거롭게 하면 폭력으로 응했다.

주어지는 식사도 최저한이어서, 비교적 풍요로운 오와리에서 두 사람의 발육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그것에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무리 기피되는 자식(忌み子)이라고는 해도, 유모 따위가 노부나가의 자식을 함부로 다루어도 될 리가 없다. 유모의 소행이 발각되었을 때, 노부나가가 물리적으로 목을 날려버리려 했는데, 요시나리가 제지했다.


"아이들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편히 죽게 하는 것 같은 자비는 필요없습니다. 두 사람에게 한 일을, 같은 세월만큼 그 몸에 새겨주는 것이야말로 벌이 되겠지요"


요시나리의 진언을 받아들여, 노부나가가 내린 판결은 '14년의 유폐(幽閉)'였다. 두 사람의 유모는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지하로 쫓겨나, 항상 폭력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벌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이미 유모의 눈에서는 빛이 꺼져가고 있다고 서신은 글을 맺고 있었다.


"일단, 목욕하자!"


처참하고 가혹(苛烈)한 처벌에 전율하며 현기증이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시즈코는 입욕을 제안했다.




쌍둥이를 데리고 저택에 돌아온 후, 시즈코는 목욕탕 준비를 명했다. 그에 병행하여 두 사람의 옷을 준비(見繕う)하도록 쇼우(蕭)에게 의뢰한 후, 시즈코 자신이 우츠와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자, 조금 쓰릴 테니 눈을 감아ー"


우츠와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시즈코는 주의를 당부했다. 이성(異性)인 시로쿠의 입욕에 대해서는 같은 또래의 소성(小姓)들에게 맡겨두었다.

13세쯤 되면 이미 사춘기를 맞이하여, 여자인 자신이 몸을 씻겨주는 것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입욕하고 알게 된 것인데, 우츠와는 시즈코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랐다.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몸을 내맡겼다.

예의를 차리고(遠慮)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어떤 지시에도 주저없이 따르는 걸 볼 때 그런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다 깨끗하게 씻었을 무렵에는 다소는 마음을 열어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지만, 그 기대는 보기좋게 박살나게 되었다.


"휘이ー. 목욕은 좋네. 하루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 같아"


먼저 우츠와를 탕에 들어가게 한 후, 시즈코도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갔다.

원래는 시즈코에게는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의 일거리가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것과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에 대한 인사 등 의례적인 것 일체를 맡아주었기에 그녀의 부담은 단번에 줄어들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휴가에 당황한 시즈코였으나,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이 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애초에 겨울은 농한기(農閑期)로, 외교(外交)를 제한해버리면 시즈코 자신이 손대야 할 일은 없다.

육아에 전념하라는 대의명분 아래, 워커홀릭인 시즈코에게 강제적으로 휴가를 쓰게 하는 일석이조의 책략이었다.


(현장에서 손을 떼는 대신 연구개발비를 두 배로 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일에만 몰두한 인상은 없는데 말야)


지금까지도 일하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말했으나 전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시즈코에게 답답해진 노부나가의 조치였으나, 시즈코 자신에게는 과하게 일을 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확실히 매일 뭔가 할 일에 쫓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즈코 기준으로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잠도 충분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밤새 일을 한다는 것 같은 개념이 없는 시대에서 보면, 시즈코는 명백하게 오버 워크라서 보는 쪽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손에 뜬 물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우츠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표정(百面相)을 짓기라도 했나 하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쑥스러운 미소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목욕 끝나면 밥 먹자"


입욕시에 알몸을 보고 깨달은 것인데, 우츠와의 영양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위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성징(性徴)이 시작되는 지금 시기라면 아직 늦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게 해야 한다.


"자, 나갈까"


시즈코가 말하자 우츠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준비되어 있던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방으로 돌아가자 이미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먼저 와 있었는지, 깨끗해진 모습의 시로쿠가 요시나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럼, 식사를 하죠"


시즈코와 요시나리가 쌍둥이를 가운데 두는 평소와는 다른 자리 순서로 앉힌 후, 시즈코는 식사 개시를 고했다.




쌍둥이를 양자로 받은지 1주일이 경과했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우츠와도, 지금은 시즈코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지? 어째서 대화가 없는 걸까……"


쌍둥이가 시즈코 저택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시즈코는 낙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시즈코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점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말을 걸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로, 부정의 의사조차 표시해주지 않았다.

고용인들의 이야기로는 몇 명인가와는 대화를 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닌만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움받는 걸까? 그렇겠네, 갑자기 어머니입니다라고 해도 곤란하겠지……"


시즈코는 팔짱을 끼면서 현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의사소통을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쪽의 물음에 대해서는 반응해준다.

다만, 자발적으로 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도 시즈코에 대해서만 그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으ー음. 아! 혹시 주상께서 붙이신 이름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그 센스는 좀 아니지. 성인식(元服)도 가까우니, 뭔가 특별한 이름을 생각하자. 이거라면 두 사람의 희망도 들을 수 있고, 대화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이 시대,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는 성인식을 기회로 아명(幼名)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빠져든 시즈코는, 두 사람의 침묵을 노부나가의 네이밍에 대한 불만이라고 단정하고, 묘한 방향으로 엉뚱하게 달려가기(迷走) 시작했다.

엉뚱하게 달려가고 있다고는 해도, 명확한 지침을 얻은 시즈코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평소답지 않게 경쾌한 느낌으로 복도를 걸어, 모퉁이 바로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너 말야, 아직 시즛치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케이지와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이 들렸기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엿듣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케이지의 상대가 아마로 시로쿠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벽에 달라붙듯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것뿐만은 아니잖아? 뭘 물어봐도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려고는 하지 않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거야?"


"그 분에게…… 시즈코 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안 그래도 기피되는 쌍둥이를 떠맡았는데,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조마조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일순 케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시즈코는 당황해서 머리를 숨겼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척에 민감한 케이지가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벽에 달라붙듯 하며 모퉁이 너머를 엿보았다.

역시 케이지의 대화 상대는 시로쿠였다. 케이지는 시로쿠와 함께 덧문 밖 툇마루(濡れ縁)에 앚아서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구가 큰 케이지와 나란히 있으니 불안해질 정도로 체격이 작은 시로쿠의 시선은 정원이 아니라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핫핫핫. 그거 크게 나왔군! 시즛치에게 미움받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항상 상식을 깨는 시즛치가 쌍둥이라는 것만으로 싫어할 리가 없어. 애초에, 정말로 싫다면 오다 나으리에게 그렇게 말했겠지. 시즛치는 그래도 용서되니까 말야"


"그건……"


"여기서 7일을 지내보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시즛치가 한 번이라도 너희들을 싫어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어? 세상의 상식을 비웃는 이 저택에서의 생활에는 놀랐지? 그걸 탄생시킨 굉장한(とびっきり) 괴짜(変人)가 시즛치라고. 쌍둥이라서 재수가 없어? 그럼 저기서 느긋하게 굴러다니고 있는 녀석들도 재수가 없는 걸까?"


그렇게 말하며 케이지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煙管)로 정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트만이 누워 있었으며, 그 옆에 짝인 바르티가 달라붙어 있었다.

무슨 용무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케이지가 손을 살래살래 흔들자,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거 말야, 시즛치가 가장 신뢰하는 가신이야. 짐승배를 싫어한다면, 애초에 짐승 같은 걸 곁에 둘 리가 없어. 저렇게 큰 짐승을 집 안에 두는 괴짜를 달리 본 적 있어?"


실례네! 라고 시즈코가 드물게 분개했다. 시즈코 자신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녀가 저질러온 상식파괴를 열거하면 양손양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는 어림도 없다.


"네.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무엇 하나 통용되지 않아요"


"그렇지. 그 비상식적인 건 불쾌해? 처음에는 당황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곳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 게다가 말야, 너는 좀 어린애답지가 않아. 어린애로 있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어린애로 있어도 돼. 어린애니까 좀 더 어른을 의지하라고. 그게 어린애의 특권이야"


"그러네요. 그 분은, 지금까지의 어른과는 달라요. 그렇기에 그 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시즛치는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려고 하고 있어. 내 태도에도 불만을 말하지 않는 시즛치야. 너희들이 서먹서먹하게 구는 것(他人行儀)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조금은 신용해보는 게 어때?"


"……"


"뭐, 갑자기 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 우선은 인사 정도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때? 자, 나는 슬슬 실례하겠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케이지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시즈코가 숨어있는 반대쪽으로 떠나갔다. 남겨진 시로쿠는, 케이지가 떠난 후에도 툇마루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케이지가 떠난 것과 동시에 시즈코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두 사람의 대화를 떠올렸다. 문득, 예전의 아야(彩)을 떠올렸다.

아야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것은 자신의 입장이 불안정하여,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어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시로쿠도 또한, 어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유년기를 버리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애로 있을 수 없는 어린애라……"


13년. 자신이 지내온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그들이 보아왔을 세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을 생각하니 시즈코는 마음이 괴로워졌다.


"시즈코 님. 이 서류에 재가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는지, 아야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즈코는 겨우 바깥쪽으로 의식을 돌렸다.


"아, 미안해.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서류네, 고마워"


"제 역할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마도 방 입구에서 몇 번이나 불렀으리라. 그래도 반응이 없었으니 실내로 들어오며 불렀을 것이다. 명백하게 쓸데없는 수고가 늘어난 것인데, 아야의 태도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게 참으로 기분좋게 느껴져,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파안(破顔)했다.


"고마워. 다음부터는 주의할께"


"……아닙니다. 외람되다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참견을 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지금의 당신께서는 아이들에게 대가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


아야의 발언에 시즈코는 멍해졌다. 너무나 예상밖이라서 아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떠올려 주십시오. 저와 둘이서 살았을 때를. 고용인(家人)도 없고, 이런 저택도 아니고, 외풍(隙間風)이 들이치는 허름한 집(安普請)이었습니다만, 당신께서는 항상 웃고 계셨습니다"


이어지는 아야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간신히 이해했다. 아야도 또한 어른스러운 어린애였다. 그런 그녀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행동했었던 걸까.

답은 자연히 나왔다. 신분이나 출신 따위 신경쓰지 않고, 아야의 태도가 어떠하던 자신은 아야를 귀여운 여동생처럼 대하며 매일 자신의 즉흥적인 생각(思い付き)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렀다.


"건방진(かまびすしい) 말씀을 드렸습니다. 꾸중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시즈코 님께서 웃는 표정이 아니시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시즈코 님의 웃는 표정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불안한 것입니다. 당신의 웃는 얼굴에는 그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아야는 머리를 땅에 대며 말을 이었다. 주인을 화나게 할 것을 각오한 간언(諫言)이었다. 그리고 내용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시즈코는 자각하지 못하는 와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걸 지적받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볼을 긁었다.


"그러네. 나는 언제부터인지, 어린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어. 나도 아직 멀었네…… 나는 우선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했었던 거네. 응, 고마워 아야 짱"


"아닙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딱딱하네. 그런 아야 짱은 벌로 나한테 꼭 안기는 거야!"


자, 이리온이라고 말하듯 양팔을 펼치는 시즈코에 대해 눈이 가늘어지는 아야. 다분히 어이없음을 품고 있는 시선에 시즈코는 움찔할 뻔 했으나, 뜻을 정하고 말했다.


"이건 명령이에요"


"그런 시덥잖은 명령을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어? 아야 짱. 권력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거야!"


좋은 미소를 띠고 잘라 말하는 시즈코를 보고 아야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양팔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는 시즈코를 보고, 글러먹은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자신이 굽혀야 한다고 판단한 아야는, 한숨을 쉬더니 쭈뼛거리며 시즈코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후후. 항상 마지막에는 굽혀 주네"


"시즈코 님이 고집이 세서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있던 시간은 짧았다. 약간 시간을 두고 아야는 시즈코의 포옹에서 스륵 하고 빠져나왔다. 닌자(忍者)같네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좋아! 기운을 받았어. 그럼, 나는 시로쿠나 우츠와를 찾아올게. 그리고, 지금처럼 두 사람을 꼭 안아주고 올게"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합니다만?"


"핫핫핫. 대(大)는 소(小)을 겸한다고 하니까 괜찮아 아야 짱"


껄껄 웃으며 시즈코는 방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아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방을 나가려다 깨달았다.


"시즈코 님, 서류를 잊으셨어요…… 아 진짜……"


아야는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듯 머리를 흔들고 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결재의 기한을 적어서 시즈코의 책상(文机)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놔두고 나갔다.




생각을 고쳐먹은 시즈코는, 어떤 의미에서는 태도를 싹 바꾸었다. 어딘가 자신은 어른이니까라면서 폼을 잡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표면적인 것들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스트레이트로 두 사람에게 전하도록 접했다.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것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노골적이라고도 생각될 정도의 감정 전달 방식을 택했다.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허그(hug)를 해보거나,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자거나 하는 등, 시즈코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타인으로부터 애정 표현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시로쿠나 우츠와는 당황했으나, 마찬가지로 애정을 표시하면 탐욕스럽게 받아들이는 비트만들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참고로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과하게 신경써주려고 하는 시즈코를 기피하여 그녀를 낙담하게 했지만.


"저는, 가족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핫핫핫, 그래서 말했잖아? 시즛치에게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야.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지?"


불평(愚痴)하는 모양새였지만 어딘가 기쁜 듯 이야기하는 시로쿠를 보면서 케이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츠와 앞에서 저 짐승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어요"


"딱히 상관없잖아? 시즛치도 본성을 보이고 있으니, 너도 본심으로 부딪혀주면 되는거야"


"그런 건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는 한숨을 쉬었다. 친족은 물론이고 유모에게까지 꺼려졌던 자신들이 이곳에 온 후로는 되롭다고 느낄 틈조차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냥 무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꾸짖고, 무엇이 나빴던 것인지를 확실히 들려준다.

이쪽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밭일이니 학교니 생각나는대로 끌고다닌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지?"


지금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당하자 시로쿠는 자기도 모르게 케이지를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요즘에는 우츠와도 웃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동성(同性)이라는 점도 있어서인지, 우츠와는 요즘 시즈코를 잘 따르게 되었다. 셋이서 잘 때도, 가끔 같은 이불에서 자는 경우가 있다고 시로쿠는 우츠와에게 들었다.

적의나 혐오감을 받는 것보다 가족으로 다루어지고 애정을 가지고 접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거라고 시로쿠는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같은 때에 태어나서 같은 경우를 견뎌온 동지이자 자신보다도 약한 우츠와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습득한 어른의 껍질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시즛치는 성과를 요구하는 게 아니야. 네가 정말로 시즛치를 신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솔직해지면 되는거야"


"네"


"뭐, 시즛치의 후계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게 고된 수행도 필요하지만 말야, 와하핫"


"……무리겠죠. 그 분은 입지전(立志伝)적인 인물, 그것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걸물(傑物)입니다. 그렇게 높은 목표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요"


"그야 그렇지. 가능하다고 해도 곤란하고, 네가 목표로 할 것은 그게 아냐. 아무리 발버둥쳐도 너는 시즛치가 될 수 없어. 그러니, 너는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어른이라는 것을 목표로 하는거야"


"그게 시즈코 님이라서 곤란한 겁니다만…… 감사합니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시로쿠는 그 나름대로 시즈코에 대해 알아보고 다녔다. 고용인을 시작으로, 도서관의 사서 등에게도 물어보고 다니며 좋든 싫든 이해하게 되었다.

시즈코가 여자의 몸이면서 오다 가문의 중진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겨우 10년도 되지 않아 그녀가 쌓아올린 거대한 재력과 권력, 군사력이 결집되어 있는 이 땅을.


"이런 데 있었네"


한동안 양쪽 다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아까까지 화제로 삼았던 시즈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지는 뒤쪽으로 쓰러지듯 하며 돌아보고, 시로쿠는 몸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시즈코 쪽을 향하여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케이지 씨, 망년회(忘年会) 겸 환영회(歓迎会)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아……"


질문을 받고 케이지는 떠올렸다. 연례행사(恒例)가 된 망년회를, 시로쿠나 우츠와의 환영회를 겸해 성대하게 할 거니까 참가자의 의향을 확인해달라고 의뢰받았던 것을 잊고 있었다.

카네츠구(兼続)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까지는 기억에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우물거리는 케이지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대답은 모레까지 해 줄래요? 노파심에서 말해두지만, 참가표명이 없는 경우에는 참가하지 않는 걸로 간주될 거에요. 참가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지만 식사는 준비되지 않으니까, 그 경우에는 따로 외식을 해야 할테데……"


"아니, 참가할거야! 나는 물론 참가하지만, 요로쿠(与六, 카네츠구)의 대답을 듣지 못해서 보류하고 있었어"


"요로쿠 군이라면 얼마 전에 주인인 나가오 키헤에지(長尾喜平次,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군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대답을 받았어요"


"그, 그랬었나. 아니, 서로 연락이 어긋난 모양이네.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


"그럼, 케이지 씨도 참가네요. 아, 요로쿠 군은 주빈(主賓)이니까 강제 참가야. 그럼, 나중에 봐요들"


할 말을 마치자 시즈코는 서둘러 떠나갔다. 케이지는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해위험해, 모처럼의 망년회를 놓칠 뻔 했어"


"망년회라는 게 뭔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시즛치가 연말에 여는 연회야. 한 해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해에 대해 마시고 먹고 떠드는 연회지"


"그건 꽤나 거창한 연회로군요"


"그렇지? 게다가, 시즛치는 이런 특별한 시기(節目)의 행사에는 힘을 쏟거든. 해를 거듭할 때마다 요리나 술의 종류가 늘어나고 내용도 호화로워지고 있어. 뭐, 그에 비례해서 참가인수도 증가 일로를 걷고 있지만 말야"


"그러고보니 남만인도 고용하고 계시더군요.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핫핫핫. 눈은 파랗고 덩치가 크니까. 하지만, 이야기해보면 재미있는 영감님이야. 여자들과는 접점이 없어서 사람됨을 모르겠지만 말야"


모미지(紅葉)는 한결같이 작물의 연구나 성장기록을 관리하기 때문에 농장(圃場)이나 밭에 있는 경우가 많아 케이지와 얽힐 기회가 거의 없다. 모미지 자신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에 교우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교섭없음(没交渉)을 보완하듯, 코타로(虎太郎)는 사교적이었다. 주인인 시즈코에게는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케이지와는 10년은 된 친구처럼 거리낌없이 대하고 있었다.

지위(立場)로 따지면 케이지 쪽이 윗줄이지만, 그런 지위를 신경쓰지 않고 대하는 코타로를 케이지는 좋게 보고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거야. 망년회에도 나올테니까. 여기가 아니면 결코 해볼 수 없는 체험이니까,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을 쌓아두라고?"


곤혹스러워하는 시로쿠에 대해 케이지는 가벼운 말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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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2 1574년 12월 상순



노부나가의 야마토(大和) 순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귀로(岐路, ※역주: 작가가 음이 같은 帰路를 잘못 쓴 듯) 도중에 쿄(京)에 들러, 란쟈타이(蘭奢待)에서 잘라낸 한 조각을 오오기마치(親町) 천황(天皇)에게 헌상하고 기후(岐阜)로 귀국했다.

노부나가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던 시즈코는, 기후에서 노부나가와 헤어져 오와리(尾張)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수고했어"


저택에 돌아가자, 한 손에 주먹밥을 든 나가요시(長可)가 마중나왔다. 카가(加賀) 공격이 끝났다고는 듣지 못했기에 돌아와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놀랐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미 대세는 결정지어졌고, 잔당 사냥이나 병량(兵糧) 공격에 참가할 생각도 없어서 귀환했다는 듯 했다.


"그런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네. 병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돈은 계속 줄어드니까"


"군의 규모도 축소 경향이라서 말야, 예상이 빗나갔는지 케이지(慶次)도 돌아왔어. 미노(美濃)까지는 함게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어딘가로 사라졌지"


"아ー, 어쩐지 알겠어"


목적을 정하지 않았을 때의 케이지는 바람 부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기하게도 위급할 때는 지각하지 않기 때문에, 실이 끊긴 연 같은 거라고 다들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뭐, 시음회(試飲会)까지는 돌아오겠지"


"시음회?"


익숙치 않은 단어에 시즈코는 고개륵 갸웃했다. 실언을 깨달은 나가요시가 다급히 발길을 돌렸으나, 달려나가기 전에 시즈코에게 목덜미를 꽉 붙잡혔다.


"질문받고 도망친다는 건, 뒤가 구린 일이 있다는 거겠지?"


"어, 아니…… 하핫"


명백히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말도 하고는 있지만 완강하게 실토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이라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시즈코를 마중나온 사이조(才蔵)와 아시미츠(足満)에게 시선을 돌렸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건 남자들이 결탁해서 뭔가 나쁜 짓을 벌이고 있다고 헤아린 시즈코는, 한숨과 함께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네요. 창고의 열쇠를 녹여버리고(鋳溶), 창고 입구도 봉인하죠"


"""자, 잠깐!!"""


시즈코의 진심을 감지하고 세 사람이 안색을 바꾸며 시즈코를 제지했다. 시음회라고 하니 뭔가 새로운 술을 마시는 이벤트이겠지만, 이렇게까지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왜 비밀인 거죠?"


"……그, 뭐냐. 시즈코가 재배하고 있던 홉(hop)이 있었지?"


세 사람은 서로 눈짓을 햇지만, 이윽고 단념했는지 아시미츠가 대표하여 말하기 시작했다.


"응? 아, 그러고 보니 있었네요"


시즈코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보리(大麦)의 유효한 사용처로서 맥주 제조를 시야에 넣고, 이른 단계에서 남만 경유로 홉을 수입하여 재배하고 있었다.

애초에 한랭한 기후를 좋아하는 홉의 재배는 난항을 겪었으나, 올해가 되어 간신히 가공 가능한 품질의 것을 수확할 수 있었기에, 번식용의 포기와는 별도로 구별한 미수정(未授精)의 암그루(雌株)만을 수확했다.

성숙한 홉의 암그루는 '구화(毬花)라고 불리는 솔방울과 닮은 꽃 같은 것을 피운다 (엄밀하게는 꽃이 아니다).

시즈코가 가져온 지식에서는 미수정의 구화만을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수그루의 재배는 한정적이 되었다.

이 구화는 맥주의 원료 중 하나이며, 쓴맛이나 향을 연출하고, 잡균의 번식을 억제하여 보존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고보니 원료용으로 분쇄가공만 해서 보관해 둔 채였네요"


수확한 구화는 저온하에 두고 송풍(送風)하여 건조시키고, 그 후 분쇄한 것을 압축하여 펠렛(pellet)으로 가공한다. 이렇게 하는 것으로 보존성이 높아져서 수 년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역시 시간을 두면 풍미(風味)가 떨어지잖느냐? 그게 아까워서, 그만 전부 써 버렸다……"


그러고보니 아시미츠는 갓 수확된 구화를 둘로 갈라서, 중심 부근에 있는 레몬색의 '루풀린(lupulin) 알갱이'를 꺼내서 그 선명(鮮烈)하고 화려한 향기에 거하게 취해 있었다.

오랫동안 마시지 않은 맥주의 향기를 떠올리고, 그 무렵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잘 알겠어요"


세 사람이 조급해하는 이유, 그것은 주세(酒税)에 있었다. 오다 영토 내에서 주류는 담근 단계의 양에 따라 과세되며, 현물 또는 금전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다만 과세는 상용주조(商用醸造)에 한정되며, 연구개발이나 자가소비하는 분량에 대해서는 관례적으로 못본 척 하고 있었다.

이번의 경우에 적용한다면 자가소비라고 강변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아마 처음에는 평소의 네 사람만이 마실 양을 담글 예정이, 서서히 참가자가 늘어남에 따라 규모가 커져버린 것이리라.

그들이 시즈코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아무래도 이 양은 문제가 있지(拙い) 않을까라는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시즈코로서는 주조(酒造)의 총 책임자(元締)이기도 하며, 노부나가에게 바치는 주세의 총괄도 맡고 있다.


"참고로 만든 맥주는 어쩔 생각이었어요?"


표면적으로는 생긋 웃는 상태로 기묘한 박력을 띤 시즈코가 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졌다고 헤아린 아시미츠는, 사이조의 옆구리를 찔러 눈짓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이거 안 좋아진 것 같다, 솔직히 사과하자)"


"(알겠소)"


"(미, 미안. 내가 입을 잘못 놀려서……)"


"(오히려 전화위복(怪我の功名)이군. 여기는 어설프게 감추려고 하지 말고 밝힐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마실 만큼만 만들어서 전부 마셔버릴 생각이었다……"


시즈코는 두통을 참는 듯 미간을 손가락으로 주무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다 영토 내에서는 술을 담그려면 신청이 필요하고, 담근 양에 따라 납세의 의무가 부과된다고요. 개인이 소비할 정도의 양이라면 눈감아 줄수도 있지만, 모두가 마실 양이면 장사 규모잖아요? 위정자가 지키지 않는 법 따위 아무도 지키지 않게 되어버리니, 이후에는 반드시 상담해줘요? 알았어요?"


스스로도 잔소리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차근차근 말했다. 아마도 시즈코의 손을 번거롭게 하지 말자고 몰래 만들었을 아시미츠가 쓸쓸하게 고개를 떨구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아시미츠가 현대의 시즈코 집에서 얹혀 살았을 때, 그는 자주 시즈코의 아버지와 풋콩(枝豆)을 안주로 저녁에 맥주를 마셨었다.


"(임시 거처였다고는 해도, 향수를 느낄 정도로는 생각해 줬던 걸까?) 그래서, 시음회에 참가하는 건 누구에요?"


"예, 옛…… 저희들 세 명 이외에, 케이지 님과 미츠오(みつお) 님, 고로(五郎) 님――"


"알았어요. 예상 이상으로 대규모인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눈감는 정도로 끝날 양이 아닐테니, 주세는 모두의 급료에서 빼두겠어요"


가볍게 현기증을 느끼기 시작한 시즈코는 사이조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러 사람 손을 빌리는 동안 규모가 확대되어 간거겠지. 내 직속의 무장들이 무허가로 술을 담글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테니……) 용서하는 건 이번 뿐이에요? 다음에도 했다간 당신들이라고는 해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한테 그렇게 하게 하지 말아줘요?"


"시즈코, 정말 미안하다……"


아시미츠를 필두로, 다른 두 명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듯 하여, 시즈코는 이 이상의 질책은 필요없다고 판단했다. 그보다도 불미스런 일(不始末)에 대처하기 위해 움직이는 편이 건설적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끝이네요"


시즈코가 가볍게 한숨을 쉬고, 각종 수속을 하러 가려고 할 때, 마치 노린 듯한 타이밍에 쇼우(蕭)가 나타났다.


"이쪽에 계셨습니까, 시즈코 님. 노히메(濃姫) 님께서 오셨습니다. 시즈코 님과의 면회를 원하십니다"


"알겠어요. 아무래도 이 꼴로는 뵐 수 없으니, 목욕(湯浴み)을 하고 가겠어요. 그 동안의 환대(歓待)를 부탁해요. 그리고 주세의 신고 누락을 발견했으니, 아야 짱에게 전해줄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쇼우는 날렵하게 인사를 하고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쁘게 떠나갔다. 항상 묘하게 타이밍좋게 나타나네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을 시작으로 몸치장을 갖추는 동안 노히메를 꽤 오래 기다리게 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응접실로 이동했다.


"대단히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노라"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즈코의 지위(立場)가 높아짐에 따라 공식적인 자리 또는 그에 가까운 장소에서는 의례적인 대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신뢰할 수 있는(気心の知れた) 노히메 상대로도 마찬가지라, 고용인들(家人)을 물린 사적인 공간에서 대화를 하는 흐름이 되었다.


"후우, 참으로 딱딱하구나"


시즈코의 사실(私室)로 안내되자마자 노히메는 평소의 스스럼없는 태도로 돌아왔다. 노골적일 정도의 전환에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그만큼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서로 지위가 생겼으니 그에 맞는 행동을 요구받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노히메 님께서는 천하인(天下人)의 정실(正室)이시니까요"


"알고 있으니까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있지 않느냐? 애초에 천하인의 처(妻)이니 뭐니 떠받들려봤자 나 자신에게 무슨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情)으로 움직이는 여자가 정치에 관여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느니라"


"저기, 저도 일단 위정자인데요"


"시즈코는 숫처녀(未通女) 아니더냐? 여자로는 치지 않느니라"


"저는 그렇다치고, 본심은요?"


"정치는 남자의 일. 남자의 등을 슬쩍 밀어주고 지친 남자를 치유해주는 게 좋은 여자라는 것이니라"


"그렇겠죠"


노히메의 성격은, 천하인의 정실이라는 권위를 휘두르기보다, 자신의 기량만으로 내키는 대로 인생을 구가하는 쪽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입장상 정치에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이런저런 제약이 가해지는데도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아내는 노히메의 모습에 천하인의 처의 마음고생을 엿볼 수 있었다.


파앙-!!


"시즈코는 없느냐? 아, 언니(義姉上)! 먼저 오셨습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호쾌하게 맹장지를 열어젖힌 것은 오이치(お市)였다. 뒤에 챠챠(茶々)와 하츠(初), 유모(乳母)에게 안겨 있는 고우(江)가 있었다.

오다 가문의 여자들은 방문을 미리 알리지 않는 습관이라도 있는 건가 하고 의심하고 싶어지지만, 그러고보니 노부나가도 갑작스레 찾아오기 때문에 오다 가문의 혈통이라고 납득했다.


"호호홋, 내가 길을 서두른 것 뿐이니라. 신경쓰지 말거라"


"집주인인 저는 신경쓰이는데요…… 그런데 어떤 용건이신가요?"


요즘에는 노히메나 이치 등의 부인들(奥方衆)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히메 혼자라면 변덕(気紛れ)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명 동시가 되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고 시즈코가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거라. 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니라. 나와 오이치들 일동은, 당분간 오와리에 체류하게 되었느니라"


"네, 그러신가요…… 네!? 그건 대체 어째서?"


내년에 당장이라도 노부나가는 본거지를 아즈치(安土)로 옮긴다. 이미 임시 궁궐(仮御殿)은 완성되어 있지만, 새해맞이(年賀) 행사가 있기에 기후에 머물고 있으며, 정월이 지나면 아즈치로 이주할 것이 결정되어 있다.

이 시기에 노히메나 이치가 오와리에 머무르는 이유가 시즈코에게는 이해되지 않았다.


"아즈치라기보다 오우미(近江) 일원(一円)은 아직 안정되지 않았느니라. 그런 상황에서 주군의 급소가 될 수 있는 우리들이 무방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패거리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사람의 출입이 늘어나서 아무래도 경비가 느슨해지고, 간자들이 끼어들 여지도 늘어나겠지. 그래서 우리들이 오와리에 체류하게 된 것이니라. 주군께서 자리를 잡으실 때까지 당분간 신세를 지겠노라"


"과연, 사정은 이해햇습니다. 그 정도의 중대사인데, 사전에 당사자인 저에게 이야기가 오지 않았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만……"


"그거라면, 내가 중간에 막았느니라"


"아아…… 그런 건가요"


시즈코에게 소식이 오지 않은 것은 노히메의 소행이었다. 치기에 의한 장난인지, 아니면 심모원려(深謀遠慮)에 의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귀인(貴人)을 받아들이려면 준비가 필요하기에, 하다못해 한 마디 귀띔해줬으면 싶었던 시즈코였다.


"우리들 외에도 친족들이 오와리에 체재하겠지만, 시즈코가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은 나와 이치의 가족들 뿐이다. 수행원도 최저한으로 했으니, 그리 번잡하게 하지는 않을게다"


"잘 알겠습니다. 친족의 안전을 염려하여 피난을 권하시다니, 주상께서는 일가친지를 아끼시는군요"


"무슨 헛소리냐. 걸리적거리니 그런 것 뿐이다. 오우미는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 있는 기후나 오와리와는 다르다. 지금부터는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놈들이 아니라, 호의적으로 접하며 비벼보려는 놈들도 나오겠지. 그런 정세에서는 쓸모없는 아군만큼 골치아픈 것은 없느니라"


"어떻게 적에게 무능한 자를 떠넘길지는 옛부터 정치에서 쓰인 수법이군요. 그걸 생각하면 싸울 수 없는 아군은 방해된다고 주상께서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조차 없는 자는 급소가 될 뿐만이 아니라 아군을 피폐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적을 이롭게 하게 된다. 무능한 아군을 안에 품고 있으면, 적은 그냥 앉아서 유리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고사(故事)에 따라 아군에서 무능한 자를 배제하고, 유능하다면 적일지라도 받아들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런 것이니라. 우리들은 주군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다못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것이 내조(内助)의 공(功)이니라"


노히메는 일체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잘라 말했다. 노부나가로부터 방해꾼 취급을 받고 있는데도 신경쓰는 기색조차 없다.


"그래서, 본심은요?"


오래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라면 노히메의 속이 깊음에 감명을 받으리라. 하지만, 노히메가 그런 기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는 시즈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떠보았다.


"주군 공인의 휴가(骨休め)니라. 이걸 즐기지 않고 어찌할 것이냐!"


시즈코의 상상대로, 노히메는 노부나가의 태도 따윈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잘되었다며 아예 거리낌없이(大手を振って) 놀 구실로 삼을 속셈이었다.

이치가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말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걸 보니, 이미 계획은 짜여져 있는 것이리라.


"호호홋, 주군의 태도에 일희일비(一喜一憂)할 정도로 순진(初心)하진 않느니라. 게다가, 지금의 주군께서는 멸사봉공에 철저해야 하실 때, 친족들을 규합해서 주군을 보좌하는 게 처(妻)의 임무이니라"


"……강하시군요. 제겐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썩어도 살무사(蝮)의 딸, 미적지근한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느니라. 자, 따분한 이야기는 끝이다. 방의 준비를 부탁할 수 있겠느냐?"


"알고 있습니다. 쇼우에게 준비를 시킬테니, 이쪽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 쇼우를 불러 노히메들이 지낼 방을 준비하도록 명했다.




노히메들이 시즈코 저택에 기거하게 된 얼마 후, 남자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음회가 열렸다.

발기인(発起人)은 코타로(虎太郎). 부추긴 것은 케이지, 찬동자가 사이조, 나가요시, 아시미츠, 타카토라(高虎), 미츠오, 고로, 시로(四郎), 야이치(弥一)였다.


"훗훗훗, 작년의 와인은 실패였지만, 까마귀머루(エビヅル)인가 하는 것으로 담근 올해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백포도주라는 건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가는 제법인데, 포도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코타로가 준비한 와인은 두 종류. 일본의 고유종인 까마귀머루라는 포도를 사용하여 담근 적포도주와, 코우슈(甲州) 포도로 만든 백포도주였다.

당초에 코타로는, 준비되어 있던 코우슈 포도를 사용하여 적포도주를 담그려고 했다. 그러나, 서양의 품종에 비해 당도(糖度)가 낮아서인지, 가당(加糖)을 해도 여전히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부패해 버렸다.

썩은 와인을 폐기하는 현장에 우연히 나타난 미츠오가 와인 제조의 힌트를 주어, 올해의 와인 제조를 무사히 성공으로 이끌었다.


"어이쿠, 첫 선을 보이는 맥주도 잊으면 곤란하지. 아시미츠 아저씨가 웬일로 열심히 착수한 명품(逸品)이야. 원료도 시즛치가 공들여 키워낸 일급품, 맛이 없을 리가 없어!"


맥주가 든 통을 치면서 케이지가 웃었다. 단골이 된 청주(清酒) 외에 소주(焼酎)나 럼 주 같은 증류주들도 놓여있어, 그야말로 품평회라고 해야 할 분위기를 드러내어 참가자들은 어쨌든 흥분(高揚)했다.

그러나 아시미츠에 사이조, 나가요시 등 세 명은 침통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개중에도 나가요시는 창백해 보일 정도로 안색이 나빠, 한 눈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왜 그래? 다들 기운없는 표정을 하고? 성가신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술을 마시며 떠들자고"


케이지가 어깨를 치면서 나가요시를 격려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평소라면 기분을 고쳐먹고 함께 떠들텐데, 정말로 몸 상태가 안 좋은건가 하고 케이지가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미안해, 실은……"


나가요시가 사정을 말하기 전에, 입구의 문이 팡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심스레 사전 교섭을 한데다가 창고 안에서 몰래 개최하고 있었던 만큼, 사정을 알고 있는 세 사람 이외의 전원의 시선이 입구로 집중되었다.


"안녕? 몰래 모여있는 여러분. 밀조주(密造酒)의 제조는 엄벌에 처해진다는 건 알고 있나요?"


그곳에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박력을 띠고 있는 시즈코가 서 있었다. 몰래 소비할 만큼만 살짝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심상치않은 사태에 전율했다.


"미안, 말실수를 해버렸다……"


나가요시가 쥐어짜듯 말했다. 그 한 마디로 현 상황을 헤아린 남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머리를 감싸쥐고 싶어졌다.


"윗사람이 법을 무시하면 백성들에게 본보기가 서지 않잖아요? 그런 고로, 이 술에 대해서는 세금을 징수하겠어요"


"아니, 그, 말이지"


케이지가 어물거리면서도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시즈코는 그쪽을 한 번 노려보는 것만으로 그것을 봉쇄해버렸다.


"변명은 소용없어요! 처벌이 없을 수는 없으니, 다음 급료에서 주세를 빼겠어요. 그 대신 정식 품평회로 만들어 줄테니, 이런 좁은 곳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큰 방(広間)으로 모여요!"


시즈코는 그렇게 말하고 발길을 돌렸다. 남자들도 묘한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얌전히 시즈코를 따라 큰 방으로 향했다.

큰 방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이미 연회석 준비가 갖추어져 있어, 긴 탁자 같은 좌탁(座卓)이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 김을 풍기는 큰 접시에 담긴 요리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었다.


"특례 조치는 이번 뿐이에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모두를 처벌하고 싶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제대로 신고하라고요! 자, 설교는 끝. 모처럼이니 비교하면서 마셔보고, 요리와의 상성 같은 것도 나중에 보고해주면 좋겠어요"


타조 고기나 오골계(烏骨鶏), 오와리(尾張) 코친(cochin)의 닭튀김, 닭의 난반즈케(南蛮漬け), 어패류의 조림(煮付け), 각종 버섯 덴뿌라(天ぷら), 보울(bowl) 가득히 담긴 생야채 샐러드, 야채 절임(香の物)에 오와리 쌀의 흰쌀밥이 가득 담긴 밥통(お櫃)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의 보고를 바탕으로 주상께 헌상할 메뉴를 정할 거니까, 주의해서 맛보도록 해요. 그럼, 나머지는 잘 부탁해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맹장을 닫고 연회장으로 화한 큰 방에서 나갔다.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다들 성대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시음회는 계속해도 되는건가? 급료에서 깎이는 건 뼈아프지만, 그 이상의 요리가 놓여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뭐가 어찌되었든, 모처럼의 요리가 식어버린다. 촌스러운 말은 하기 없기야. 새로운 술과 맛있는 밥, 이걸 먹지 않겠다는 건 거짓말이지"


케이지가 부추기자, 의기소침해 있던 사람들도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주상께 헌상할 것을 정하는 이상, 취하도록 마실 수도 없지. 각각을 확실히 음미하고, 모두의 의견이 정리된 후에 실컷 마시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그건 어떨까? 나는 뭔가 시음회를 계속할 구실이 없으면 우리들도 흥을 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 시즛치의 배려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정말로 그런 걸 정할 생각이라면 시즛치는 더 정성껏 절차를 밟을거야"


"아마도 케이지의 말대로겠지. 하지만, 시즈코의 자비심(仏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각자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고, 내일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사이조의 말을 케이지가 부정하고, 아시미츠가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아시미츠 아저씨의 말대로네. 밀조주를 만든 건 아무래도 너무 지나쳤어"


머리를 긁적이며 케이지가 드물게 반성을 입에 올렸다. 모두가 각자 반성하고, 자리가 조용해졌을 때 미츠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하죠. 모처럼 시즈코 씨가 준비해준 요리입니다. 그 뜻을 헛되게 해서는 더더욱 면목이 없게 되겠지요"


"아저씨치고는 좋은 말을 하잖아! 좋아, 답답한 얘기는 끝이야. 마음을 새로이 하기 위해서도, 오늘은 밤새 마시자고!"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고로가 일부러 밝게 말하고, 그에 대해 미츠오가 단골 멘트를 날렸다. 평소대로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떠오르는 일동이었다.


"내 와인은 사전에 확실히 신고하고 세금도 제대로 납부했는데 말이지……"


"자자, 다행히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시음회니까,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죠"


혼자서만 뒤가 구린 곳이 없었던 코타로가 멋진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툴툴대고, 야이치가 달래면서 개회(開会)를 촉구했다.


"그럼, 시즛치의 관대한 조치에 감사하고, 또 충분히 반성했으니 시음회를 시작하자고!"


"오-!"


케이지의 선언에 남자들은 주먹을 치켜들었다.




"(현대인으로서는) '어쨌든 생(生)'이죠! 욕심을 말하자면 시릴 정도로 차게 한 것을 마시고 싶지만 말입니다"


중얼거리면서 미츠오가 맥주를 쭉 마셨다. 현대 일본에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맥주는, 라거(lager) 계열의 필스너(pilsner) 스타일로 제조되고 있다.

필스너 스타일의 역사는 184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체코의 플젠(Plzeň)에 있는 필젠(Pilsen) 양조장에 독일인 양조가(醸造家) 요제프 그롤(Yosef Groll)이 초빙되어, 이 때 제조된 맥주가 유명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 우르켈은 원조(元祖)나 오리지널(元)이라는 의미)'이며, 그 제조방법을 필스너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일본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맥주 메이커가 필스너 스타일을 채용하여 맥주를 제조하고 있다.


맥주는 크게 나누면 에일(ale)과 라거(lager)로 나뉘며, 발효 과정에서 효모(酵母)가 보리즙(麦汁)의 상부에 떠오르는 '상면발효(上面発酵)'로 만들어진 것을 에일이라 부르고, 반대로 아래로 침전되는 '하면발효'로 만들어지는 것을 라거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는 에일 쪽이 오래되었으며, 라거는 중세기 무렵에 탄생하여, 19세기 무렵부터 주류가 되었다. 이것은 라거의 발효 온도에 의한 부분이 크다.

일반적으로 20에서 25도의 상온에서 발효되는 에일은 잡균이 번식하기 쉽고, 그에 반해 라거는 5에서 15도라는 저온에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품질이 안정적이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의 흐름에는 품질이 안정적인 라거 쪽이 유리하여, 시대에 등을 떠밀리는 형태로 주류로 도약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라거를 주류로 밀어올리는 원동력이 된 것은, 프랑스의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1866년에 저온살균법(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이라고도 부른다)이라는 세균의 번식을 막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 크다.

맥주 양조의 과정에서 한발 빨리 저온살균법을 채용한 독일은, 부패(腐敗) 내성(耐性)을 향상시켜 고품질의 맥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본래 파스퇴르는 맥주를 위해 저온살균법을 발명한 것이 아니고, 프랑스 와인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연구를 계속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자국인 프랑스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독일을 대단히 싫어했던 그의 공적이 하필이면 독일 맥주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으리라.

후에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은 우유에도 응용되게 된다.

또, 일본에서는 파스퇴르보다 300년 이상 전에 일본주의 제조 공정에서 '히이레(火入れ)'라는 저온살균법이 경험적으로 탄생했었다.


에일과 라거는 발효 방법만이 아니라 마실 때의 적절한 온도도 다르다.

일반적으로 에일은 상온 부근이 적절한 온도라고 한다. 이것은 상온인 쪽이 맥주가 가진 향을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라거는 차게 해서 마시는 쪽이 적절하다.

이것은 차게 한 쪽이 라거가 가지는 섬세함(キレ)이나 쓴맛, 탄산(炭酸)의 상쾌함(爽快感)을 확실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특히 시릴 정도로 차게 한 라거가 선호되는 것은 기후에 의한 영향이 크다.

일본은 1년 내내 습도가 높고 여름의 더운 시기가 길다. 이 때문에 목넘김이 상쾌하고 청량감(清涼感)이 있는 차가운 라거가 선호되고, 상온의 에일은 기피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독일을 포함한 유럽은 건조하고 추운 기간이 오래 계속된다. 이 때문에 몸이 차가워지는 라거보다도 상온의 에일이 선호된다.


"크으으!! 직접 만든 맥주는 수고 때문에라도 맛도 한결 더 좋군요"


"묘하게 쓰고, 입속이 얼얼해.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군"


맥주의 평가는 딱 둘로 갈렸다. 맥주에 익숙한 아시미츠나 미츠오는 기세좋게 술잔을 비우고 있었으나, 나가요시나 타카토라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살짝살짝 핥듯 마시고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탄산의 자극에 익숙해지지 않아 조금식 마시고 있기에 목넘김(喉越し)이 좋다는 점이 느껴지지 않고 쓴맛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으음! 이 백포도주는 대단히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맛이군"


코타로의 말에 야이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숙성 기간이 짧기에 아직 거친 부분이 남아있는 마무리였으나, 작년의 곰팡이 투성이 포도주와는 한 획을 긋는 완성도였다.


"미츠오 님에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설마 이 정도의 맛이 될 줄이야……"


"하하하, 저는 텔레…… 어흠. 다른 사람에게 들은 지식을 말했을 뿐입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요"


순간적으로 텔레비전이라고 말하려던 미츠오는 다급히 얼버무렸다. 코우슈 포도가 백포도주에 적합하다는 것도, 까마귀머루로 적포도주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도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백포도주의 대략적(大雑把)인 제법과, 코우슈 포도가 재료로 적합한 점, 또 생식으로는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까마귀머루가 와인으로 만들면 훌륭한 맛을 낳는다는 정보만을 전달했다.

이 전국시대에서 원재료인 코우슈 포도나 까마귀머루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시즈코의, 나아가서는 오다 가문의 위광(威光)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겸손도 지나치면 아니꼬움(嫌味)이 되겠지. 당신의 지식은 크게 도움이 되었소. 나도 주인에 대해 면목이 서게 되었지"


"그런 건가요. 그렇다면 저도,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코타로의 사의를 받아들이자, 이번에는 미츠오도 생산자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감사를 표했다. 일순 멍해진 코타로였으니, 곧 파안(破顔)하더니 미츠오에게 적포도주도 권했다.


"백포도주도 좋지만, 이쪽의 적포도주도 지지 않지. 모국의 와인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소"


"아직 젊은 와인이라 그런지 신맛과 쓴맛이 강합니다만, 산양 치즈와 조합하니 끝내주는군요!"


"그 새빨간 와인이라는 건 그렇게 맛있어? 나도 한 잔 마셔볼까!"


"맛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던 케이지가 와인에 흥미를 보였다. 즉시 야아치가 비교적 마시기 쉬운 백포도주를 따라서 케이지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 크ー. 청주만큼 세지는 않지만 꽤나 강한 술인데. 포도다운 신맛이 재미있어"


"갓 담근 젊은 와인이니까요. 몇 년이나 숙성을 거듭하면 모난 부분이 없어져서 부드러워지고, 수분도 날아가 다른 맛이 됩니다"


"호오! 조금씩 맛이 변하는 건가, 꽤나 재미있는데. 다음에는 적포도주인가 하는 걸 부탁할까?"


"알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생긋 웃은 야이치가, 적포도주를 케이지에게 건네주었다. 와인글라스에라도 따라서 빛을 투과시키면 그렇지도 않지만, 아직 투명도가 높은 유리는 귀중하여, 와인글라스의 가격도 무섭도록 비싸다.

이 때문에 시음회에서는 기껏해야 보통 술잔(ぐい呑み)으로 마시고 있었기에 빛이 차단되어 피처럼 보였다. 피를 부정한 것(穢れ)으로서 기피하는 사람들은 적포도주를 기피하고 있었지만, 케이지에게는 관계없었다.


"술고래(蟒蛇)인 미츠오가 와인을 마시고 있는 틈에 내가 맥주를 마시지"


미츠오나 케이지가 와인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아시미츠는 맥주를 계속 마시고 있었다. 맥주병 같은 건 없었기에 통에서 직접 퍼마시고 있어, 몇 잔 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다지 과음(深酒)을 하지 않는 아시미츠의 페이스는 명백히 일본주(日本酒)를 마실 때보다 빨랐다.


"아시미츠 씨, 그거 몇 잔 째야?"


"처음부터 세지 않았다. 그런 걸 신경쓰고 있으면 술이 맛없어지잖나"


"아니, 과음은 좋지 않은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마신 축에도 안 든다. 그보다 네놈도 마시지 못하겠냐, 모처럼의 맥주가 미지근해진다"


"에엑!?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들이대는데……"


"시끄럽다. 내 술을 못 마시겠다는거냐?"


고로의 지적에, 아시미츠는 술주정뱅이의 단골(定番) 대사로 받아쳤다. 가까이서 듣고 있던 시로는 괜히 벌집을 건드릴 것 없다는 듯 그 자리를 떠났다.


"이 닭튀김이라는 건 맛있네. 이건 밥이 지나치게 당겨"


"카츠조(勝蔵)! 이 시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레몬 즙을 뿌리면 더 맛있어진다!"


"잠깐! 난 그 즙, 싫어한다고!! 아ー아, 전체에 다 뿌려버렸어……"


시로와 마찬가지로 아시미츠의 주사(絡み酒)를 피한 사이조나 나가요시, 타카토라는 닭튀김을 차례차례 먹어치웠다.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있던 큰 접시의 요리는 깨끗하게 사라졌다ㅑ.

요리가 없어진 후에도 그들은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담소하였으며, 그것은 미츠오 이외의 전원이 취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자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 동안, 시즈코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리하여 도깨비(鬼)를 퇴치한 모모타로(桃太郎)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보물을 가지고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잘됐네요(めでたし、めでたし)"


시즈코가 챠챠와 하츠를 선두로, 여성진 전원에게 상연(上演)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직접 만든(謹製) 종이연극(紙芝居)이었다.

서민을 위한 오락의 제공과 기본적인 교양의 습득, 권선징악(勧善懲悪)의 스토리를 고르는 것에 의한 도덕심의 향상을 노리고 시험적으로 만든 것이다.

화려한 색채를 가진 종이연극의 한 장에 챠챠가 관심을 가지고, 시즈코가 그것을 실연(実演)해보이자, 어른들도 끼어들 정도로 대호평을 받아, 끊임없이(延々) 상연을 반복하게 되고 있었다.


"저는 슬슬 자고 싶은데요……"


"아니 된다! 아직 그 밖에도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노히메와 이치의 기세에 눌려, 결국 시즈코는 밤새도록 종이연극을 계속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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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1 1574년 10월 상순



"미끼"


마고이치(孫一)가 괴이쩍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라이렌(頼廉)은 마고이치의 물음에 긍정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들은 항상 오다의 동향을 엿보고 있었소.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 않고(微に入り細を穿って) 정보를 모아, 그 자리마다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수를 계속 둬 왔소. 하지만 현실은 어떻소? 상황이 호전되기는 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몰려 있소. 즉, 오다는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미끼가 되어 요란하고 대대적으로 움직여보이는 것으로 진짜 책략을 감출 수 있었던 게 아니겠소?"


"과연…… 우리들은 머리를 쫓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요란하게 치장된 꼬리였다는 거군요. 하지만, 뭐든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하며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 오다가 진짜 책략을 맡길 수 있는 상대 같은 것이 있을까요?"


"보통은 없지만, 놈만큼은 감춰놓고(囲って) 있지. 남자가 아니기에 출세의 야심이 없고,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데다 유능하며,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명령의 뒤에 감춰진 큰 줄기를 읽고 단독으로 책략을 굴릴 수 있는 인물. 이번의 사이카(雑賀)의 수난(受難)에도 반드시 관여하고 있을 것이오"


"……고노에(近衛)의 딸인가"


손에 든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중앙의 화톳불에 던져넣으며 마고이치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세 사람이 소속된 각자의 조직 중, 마고이치가 소속된 사이카슈(雑賀衆)가 입은 피해가 현저하게 많다. 영주(国人)도 아닌데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이, 지금은 그런 업취도 없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게다가 사이카슈의 대부분이 상인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의 입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상인으로서는 웃기는 화제를 제공하여 거래 상대의 관심을 끌려고 하기에, 소문에서의 사이카슈는 괴멸했다는 취급이었다.

이렇게 되면 용병집단으로서의 사이카슈를 원하는 사람은 없어지니 점점 더 장사로 경도(傾倒)되게 된다. 사이카슈의 개개의 세력이 개별적으로 윤택해지는 것과 맞바꾸어 사이카슈의 평판은 땅바닥에 떨어졌다.


"오다의 세력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정보를 담당하게 한 것도 절묘한 수법이지. 상재(商材, ※역주: 장사할 거리)를 손에 들고 전국으로 일제히 퍼져나가는데다, 전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지. 철저 항전을 외치던 무리들도 정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기세를 잃고 있소. 전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재가 없기에 장사로는 먹고살 수 없는 자들 뿐이오"


"적을 칭찬해서 어쩌자는 거요!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선조들께서 쌓아올린 사이카슈가 붕괴할 것이란 말이오!"


"무리요. 우두머리(棟梁)의 호령 하나에 전원이 움직이는 체제였다면 모를까, 합의제(合議制)였기에 붕괴는 피할 수 없소. 다들 각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시작한 것이오. 다시 모으는(纏め上げる) 것은 쉽지 않지"


마고이치는 냉혹할 정도로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을 들여 키워내고 함께 싸워온 사이카슈를 붕괴로 이끈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미웠다. 하지만, 사이카슈가 살아남을 것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해야 한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선단(船団)을 버리고, 자신과 같은 방향을 향하는 배들만을 묶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예전의 영화를 아쉬워해서 때를 잘못 파악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손절(損切り)이지만, 마고이치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자신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저울에 재어, 타인이 살아남는 쪽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주저없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그런 비인간적인 결벽함(潔さ)이 마고이치에게는 있었다.


"게다가 오다에게 부추겨진 패거리들을 신경쓰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있소"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지금까지 듣는 역할에 철저했던 에케이(恵瓊)가 의문을 입에 올렸다. 마고이치는 한번 크게 한숨을 쉬더니 에케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패거리들도 사이카슈가 미워서 결별한 것은 아니오. 상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사이카슈의 이득이 될 거라 믿고 전향한 것이지. 자신의 생각을 믿고 있기에 모두를 이끌기 위해 주류파(主流派)가 되려 하겠지. 이렇게 항전파(抗戦派)는 소수파(少数派)로 몰려, 변화 없는 상황(ぬるま湯)에서 썩어가게 될 것이오. 우리들이 이빨을 잃었을 때, 오다에게 대항할 방법 따윈 없건만……"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모두에게 밝히고 재기를 꾀해야 하는 게 아니오?"


"이렇게까지 용의주도한 책략을 구사하는 놈들이 그럴 여유를 줄 리가 없소. 반드시 제 2, 제 3의 화살을 쏘아넣어 서로 상잔하도록 유도하겠지. 그렇게 다들 피폐해졌을 때 오다가 평정하겠다는 계산인 것이오"


"과연…… 오다는 힘들이지 않고 사이카를 쓰러뜨리고, 혼간지(本願寺)는 모우리(毛利) 이외의 기댈 곳을 잃게 되겠군.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은 쉽게 오다에게 구실을 주어버려 이미 풍전등화(風前灯火). 키이(紀伊) 문도(門徒)들도 사이카슈라는 버팀목을 잃게 되면 머지 않아 와해되겠지요. 혼간지가 살아남으려면 농성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원군이 올 곳이 없는 농성 따윈 자살에 불과하오"


"지금 상황은 '외통수'요"


라이렌이 씁쓸함에 찬 목소리를 쥐어짰다. 이미 어지간한 한 수로는 반면(盤面)을 뒤집을 수 없다. 그야말로 무언가를 댓가로, 한 번에 두 수를 두는 것 같은 대 이변(大番狂わせ)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라이렌의 눈은 죽지 않았다. 기사회생(起死回生)의 한 수를 믿고 승기(勝機)를 기다리는, 궁지에 몰린 쥐의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말한 것이오…… 최초로 포위했을 때, 얼마만큼 뼈아픈 피해를 입더라도 오다를 멸망시켰어야 한다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듯 라이렌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에, 두 사람은 해줄 말을 찾지 못했다.




"에취……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뭐, 그건 그렇고…… 또또 성가신 일이야……"


노부나가에게서 온 서신을 본 시즈코가 투덜거렸다.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면 '시즈코의 다실(茶室)을 쓸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기다려라'였다.

기후 성(岐阜城)에 설치된 노부나가 근제(謹製)의 다실이 아니라 일부러 시즈코의 저택에 있는 다실에서 다화회(茶会)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즈코 저택에 있는 다실은 질박(質素)하다.

애초에 다도(茶の湯)에 거의 흥미가 없는데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만들게 한 황금의 다실을 알고 있었다. 호화찬란(絢爛豪華)한 다실 따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사치스러움을 배제하고 극력 간소한 다실로 만들었다.


다실의 넓이는 객층(客層)을 고려한 최저한인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 ※역주: 약 2.25평). 소위 말하는 '코마(小間)'를 채용했다. 여담이지만 다다미 넉장 반 이하의 공간을 코마, 넉장 반 이상을 히로마(広間)라고 부른다. 다다미 넉장 반은 '코마'도 되고 '히로마'도 된다.

기본적인 설계는 소우안(草庵) 다실(茶室)을 참고로 했다. 지붕은 짚(藁)으로 이고(葺), 벽도 무미건조한(素っ気の無い) 흙벽. 창문도 바탕창(下地窓, ※역주: 명칭은 직역. 벽에 흙을 다 바르지 않고, 뼈대인 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게 해 창으로 쓰고 있는 것(흔히, 다실(茶室) 따위에 씀))이라 불리는, 벽을 거기만 칠하다 만 듯한 간소하게 보이는 것이다.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 짝이 없어, 중앙부에 다다미 반 장의 로 다다미(炉畳, ※역주: 화로를 설치하기 위해 화로의 크기만큼 잘라낸 다다미)를 놓고, 주위를 풍차의 날개처럼 둘러싸는 다다미가 있을 뿐으로, 그 밖에는 역시 간소한 토코노마(床の間, ※역주: 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 놓음; 보통 객실에 꾸밈))가 있을 뿐이었다.

토코노마에는 노부나가가 쓴(揮毫)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족자(掛け軸)와, 시장에서 사온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 놓여있고, 계절에 따라 눈에 띈 화초(草花)를 꽂았다.

외견으로는 아담하고 내부 장식도 간소하기는 하나 질감(風合い, ※역주: 용법 확실하지 않음)이 있었다. 센노 리큐(千利休)가 완성시킨 소우안 다실의 아취를 느끼게 하는 제법 괜찮은 다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주위에서는 '음침하다(陰気臭い)', '초라하다(みすぼらしい)' 등 심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재수(運気)가 없어지겠다고까지 험담한 다실을 쓰고 싶다니…… 누구한테 이상한 소리라도 들은 걸까?"


최근의 다화회에서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은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였다. 다실에 히가시야마고모츠가 있다는 것만으로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이며,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시즈코의 다실은 그야말로 훌륭한 것일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현실은 히가시야마고모츠는커녕, 노부나가 본인의 손에 의한 글씨(書) 이외에는 가치있는 것 따위 일체 없다는, 아예 시원스러울 정도의 다실이었다.


"뭐, 주상이시니까, 뭔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고 보신 거겠지만……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생각해봤자 소용없으려나. 슬슬 자자"


불을 끈 시즈코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비트만들이 주위에 웅크려 있었기에 이불 주변은 약간 더울 정도였다.

가끔 고양이가 이불 위로 올라오지만, 자는 도중에 가슴을 압박당하면 꿈자리가 사나워지기에 방 한 구석에 모포를 깐 바구니를 놓아두고 있었다.

고양이에게 대신할 침상을 제공하려는 것이었지만, 이용되고 있는 기색은 없었다.


다음날, 시즈코는 다실의 준비를 명한 후, 하루의 업무를 오전중에 처리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자기 방에서 비트만들과 느긋하게 늘어져서 보냈다.

딱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물없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동료와 느긋한 시간을 공유한다. 시즈코 정도의 입장이 되면 이렇게 시간을 쓰는 게 사치가 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추워지겠지만, 지금은 지내기 좋은 기후네"


"웡"


시즈코의 혼잣말에 카이저가 한 번 짖어서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건지, 아니면 단지 우연이 겹친 것 뿐인지는 시즈코에게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맞장구를 쳐준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드디어 남만 과일들도 내 손을 떠났고, 남만 상인에게서 산 데이츠(dates)는 애초에 손이 안 가니까"


데이츠란 대추야자(ナツメヤシ)의 과실이다. 남만 상인이 보존식으로 가져온 것을 시즈코가 흥미를 느끼고 사들인 것이다.

인류에 의한 대추야자 재배의 역사는 오래되어,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6천년 무렵에는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재배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일본에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아서 단일 품종처럼 생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4백 종류 이상이나 되는 품종이 있으며, 예전에 대추야자를 주식으로 삼았던 지역에서는 과실의 숙성 정도에 따라 몇 종류나 되는 명칭이 주어졌을 정도로 중요한 식량이었다.

건조 기후대(乾燥帯)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건조함이나 온도변화에 강하고 가혹한 재배환경에도 견디며 잘 성장한다. 일본의 기후에서는 습기에만 신경쓰면 0도를 크게 밑돌지 않는 한 시들어버리는 경우는 드물어, 온실을 이용할 수 있는 시즈코의 환경에서는 손이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드라이 프루츠(dry fruit)로 가공된 후에도 발아할 줄이야…… 무서운 생명력이네"


공업적인 가열처리를 하지 않은 천일(天日) 건조였기에 발아 능력이 없어지는 온도까지 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먹은 후의 데이츠의 씨앗을 조사하기 위해 물에 담궈놓았는데, 하룻밤 지나고 보니 1.5배 정도까지 부풀어 있어서 혹시나 해서 흙에 심어봤더니 발아했다.

아무래도 모든 씨앗에서 발아하는 건 아니고, 발아율은 1할에도 미치지 못햇지만 시즈코는 대단히 기뻐했다.

성목(成木)이 될 때 까지는 저온에 주의할 필요가 있기에, 화분에 옮겨심어 재배를 계속하고 있었다. 문제는 데이츠가 자웅이주(雌雄異株)에 의한 결실성(結実性)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 성질 때문에 암수(雌雄) 포기가 함께 있지 않으면 과실의 수확은 기대할 수 없는데, 꽃이 피기 전에는 암수의 판별이 불가능한 것이다.

시즈코는 현대에서 다이어트 식품으로서 소개되었던 데이츠의 기사를 읽었었기에, 암포기(雌株)는 아래를 향해 꽃이 피고, 수포기(雄株)는 위를 향해 꽃이 파운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은 10개 정도의 모를 키우고 있지만, 그것들이 전부 어느 한 쪽의 포기에 편향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뭐, 딱히 열매를 수확할 수 없어도 상관없지만, 열매를 딸 수 있게 되면 '돈까스(とんかつ) 소스'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다행히 남만 상인들은 데이츠가 상품이 될 거라고 생각해준 모양이니,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사들일 수 있겠지"


대추야자는 중동에서는 인기있는 식품이며, 데이츠를 날것으로 먹은 후의 씨앗은 그냥 버려두어도 잘 발아한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암수를 판별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우려고는 하지 않는다.

수그루가 하나 있으면, 50개 정도의 암그루에 수분(受粉)하는 것이 가능하며, 우수한 수그루 이외의 가치가 대체적으로 낮기 때문에 뒤늦게(後発) 재배하는 입장에서는 극히 불리한 경쟁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남만 상인들에게 데이츠는 보존식으로서 외에는 중요시되지 않아, 중량당 거래가격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 시즈코에게 우선적으로 돌려지게 된다.

시즈코는 이것을 이용하여 금후에도 건조 데이츠에서 씨앗을 회수하여 재배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시원한 오후의 한때를 만끽하고 있던 시즈코의 귀에, 깔려져 있는 자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시즈코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비트만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 님, 주상으로부터 파발(早馬)이 도착했습니다. '내일 점심떄가 지나서 도착한다'라고 하십니다"


"알겠어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다실의 청소를 하도록 쇼우(蕭)에게 전해줘요"


"알겠습니다"


툇마루(縁側)에 앉아 있는 시즈코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원을 빙 돌아서 보고하러 온 소성(小姓)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시즈코는 덮은 책을 툇마루에 놓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아쉽지만 평온한 시간은 끝났다. 표정을 조인 후, 시즈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착수했다.


다음날 오후. 쇼우들이 꼼꼼하게 손질해놓은 다실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다다미 넉장 반(四畳半)이라고는 해도 10월의 기후에는 조금 쌀쌀하다.

방의 중앙에 설치된 화로(炉)에 숯을 늘어놓고 삼발이(五徳)를 놓은 후, 그 위에 차관(茶釜)을 걸었다. 이렇게 하면 방 전체가 따뜻해져서, 바깥 기운을 쐰 손님이 실내에서 몸을 녹일 수 있게 된다.

시즈코의 다실에서는 다다미의 일부를 잘라내고 마룻바닥 아래에 설치된 이로리(囲炉裏)인 로단(炉檀)에 솥을 설치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참고로 솥이 다다미 위에 놓인 화로에 걸리는 양식을 풍로(風炉)라고 부른다.

현대에는 다양한 예법(作法)이나 절차(手順)가 전해지지만, 초대받았을 때 창피를 당하지 않을 최저한밖에 알지 못하는 시즈코는, 대접하는 입장으로서 방을 따뜻하게 해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실내가 충분히 따뜻해졌을 무렵, 밖에 대기하고 있는 소성이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렸다. 안내하도록 명한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도착을 기다렸다.

이윽고 지면을 밟는 발소리가 들려왔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자니 기묘한 것을 눈치챘다.

안내하는 소성은 도중에서 대기하기 때문에 발소리는 1인분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누굴까 하고 괴이쩍게 생각하고 있을 때, 노부나가에 이어 본 적 없는 인물이 다실로 들어왔다.

외모에서 추측컨대 50대(五十路) 근처, 무인(武人) 특유의 타인을 압도하는 듯한 기세가 없었기에 시즈코는 상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공가(公家)일 가능성도 생각했지만, 그렇다면 노부나가가 상대에 맞춰 장식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공가에 대해 시위(示威)를 한다면, 많은 히가시야마고모츠를 소유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노부나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은 시즈코도 다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인물의 정체(出自)를 알 수 없어 눈썹을 찡그리게 되었다.


"신경쓰지 마라"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챈 노부나가가 웃으면서 명령했다. 노부나가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이상 시즈코로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어, 예정대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거북해)


시즈코로서는 초대객 측의 예법이라면 어느 정도 익히고 있지만, 호스트(亭主)로서의 예법 같은 건 알 방법도 없어, 시대극 드라마 등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며 대충 흉내내기(見様見真似)로 차를 끓였다.

마루(床) 앞에 있는 귀인(貴人)용 다다미에 떡 하니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노부나가에게서 떨어져서, 손님용 다다미에 정좌(正座)한 그 인물은 시즈코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관찰하고 있었다.

다실을 만들기는 했으나, 호스트가 되는 것 따위 상정하지 않았던 시즈코는, 좋게 말하면 아류(我流)로, 나쁘게 말하면 서투른(稚拙) 동작(所作)으로 차를 끓였다.

호스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하는 태도를 볼 때 손님은 다도인(茶人)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기에는 시즈코의 솜씨를 알고 있는 노부나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 경우, 시즈코의 실수(不手際)는 주인인 노부나가의 불명예로도 이어지기에 창피를 당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의도와, 손님의 속셈 양 쪽이 분명치 않았기에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드십시오"


본래의 예법이라면 우선 차과자를 권하고, 손님이 다 먹는 시점을 헤아려 차를 내놓는 것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먹는 쪽이 좋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양쪽을 한꺼번에 제공했다.


"흠, 또 신작(新作)이냐. 겉보기는 그렇다치고, 맛은 좋구나"


노부나가는 예법에 맞지 않음(無作法)을 신경쓰지 않는지, 우선 차과자를 먹어치우고, 다음으로 엷게 끓인 차(薄茶)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즈코가 폭거(暴挙)를 감행했다.

다른 찻종(茶碗)으로 끓인 차를, 또다시 차과자와 함께 손님에게 권했다.

너무나 파격적인 행동에 기겁한 손님이었으나, 잘 먹겠습니다(頂戴します)라며 인사를 하고 노부나가를 따라 차과자와 엷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어서 토코노마에 장식된 꽃병(花入れ)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이것은 범부채열매(射干玉)를 본딴 것이군요. 가을의 긴 밤을 연상시키는 반들반들한 검은색, 차과자(茶菓子)로 계쩔을 연출하면서 맛도 일급품. 실로 훌륭한 솜씨(点前, ※역주: (다도(茶道)에서) 가루 차를 달여 손님에게 내는 법식)였습니다"


"네, 네에. 칭찬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던 시즈코는, 너무 과도한 칭찬을 받아 어쩔 줄 모르게 된(褒め殺し) 상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런 시즈코의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노부나가는 손님의 정체를 밝혔다.


"다행이구나, 시즈코. 보아하니 소우에키(宗易)의 기준에 합격한 모양이다. 입발린 칭찬 따위를 하지 않는 소우에키가 격찬을 하다니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소우……에키……? 앗!"


눈 앞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이해한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아는 이름을 말하려다 다급하게 말을 삼켰다.

센노 소우에키(千宗易), 현대에서는 센노 리큐(千利休)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다도(茶湯)의 천하 3대 종사(天下三宗匠) 중 한 명이었다.

노부나가가 사카이(堺)를 직할령으로 삼았을 때, 이마이 소우큐(今井宗久), 츠다 소우큐(津田宗及) 등과 함께 다도 사범(茶頭)으로 고용했다.


여담이지만 후세에 전해지는 리큐의 이름을 썼던 시기는 짧다. 그는 그 인생의 대부분을 법명(法名)인 소우에키로서 활동했다.

리큐의 이름은 1585년, 히데요시가 칸파쿠(関白) 취임의 답례로 궁중(禁裏) 다화회(茶会)을 열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다.

그 다화회의 호스트를 맡는 소우에키의 신분이 서민(町人)이었기에, 그가 궁중으로 예궐(参内) 할 수 있도록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天皇)이 '리큐'라는 거사호(居士号, ※역주: 법명 아래에 붙이는 칭호 중 하나)를 소우에키에게 내린 것에 의해 명실공히 천하제일의 다도인으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소우에키는 화려함(華美)을 좋아하지 않아, 사치를 잔뜩 부린 다실이나 히가시야마고모츠 등의 명물이 존중받은 다화회에 싫증을 내고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아는 한 가장 초라…… 질박(質素)한 다실인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러시다면 미리 알려주셨다면——"


"알려주면 너는 자리를 꾸미려고 하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소우에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후에 차성(茶聖)이라고도 불리는 다도(茶道)의 대가 앞에서 서투른 솜씨를 드러낸 시즈코의 항의를 노부나가는 한 마디로 잘라버렸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사전에 알았다면 시즈코는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그 자리를 꾸몄으리라.

그렇게 꾸며진, 그 자리에서 끝나는 다화회로는 의미가 없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던 것이다.


"어떠냐, 소우에키. 요즘 다들 칭찬하는 유행과는 정반대를 가는 이 다화회, 사양할 필요 없으니 생각한 바를 말해보아라"


"……그렇군요. 다도(茶の湯)의 예법으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고, 한 잔의 차를 얼마나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는, 차과자와 말차(抹茶)를 한꺼번에 내어서는 소용없습니다"


"네, 네에. 부끄럽습니다"


노부나가조차 한 수 물릴 수밖에 없는 소우에키가 볼 때, 시즈코의 솜씨는 애들 장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예법에 한정된 이야기로, 손님을 어떻게 대접하는지라는 본질은 짚고 있었으며 좋게 평가할 곳도 많았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당세(当世)의 '다도(茶の湯)'의 예법에 비추어 보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다실도 그렇지만 이 다화회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네, 네에……"


"예를 들면 토코노마의 꽃병. 명품이라는 것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도기(陶器)에 역시 흔하디 흔한 범부채(檜扇)를 꽂아두었을 뿐입니다. 일견 아무 생각 없이 꽂아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잎사귀와 꽃과 열매라는 보기 알맞은 시기(見頃)가 각기 다른 가을의 시간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의 변화(移ろい)라는 웅대함에 비해 자칫 무미건조할 정도의 그릇. 거기에 부족(不足)의 미(美), 유한(幽閒)한 정취(侘び)가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을 거창하게 칭찬받고, 시즈코는 조용히 묻어가기로 했다.


"실로 좋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다실을 보고, 저는 제가 목표로 하는 곳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말하고 소우에키는 계속 찡그리고 있던 표정(渋面)을 풀고 처음으로 웃음을 떠올렸다.


"저는 최근의 다도, 특히 외국(唐物)의 다기를 편중하는 흐름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말할 뿐', 새로운 길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불평불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요. 이런 다도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스스로가 좋다고 믿는 것을 제시하지 않고 타인의 동의 같은 것은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노부나가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물었다.


"어떠냐, 시즈코는 재미있지? 조금은 자극이 되었느냐?"


"예, 뜻하지 않게 초심(初心)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 자신이 추구하는 다도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극한까지 낭비를 배제하고 허식을 없애는, 메마른 유현(幽玄)의 미(美)인가 하는 것이냐"


"이 이상 아무 것도 깎아낼 수 없을 때까지 깎아내어, 간소함 속에 아취(趣)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와비차(侘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 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일까요"


"호화찬란(豪華絢爛)함을 중시하는 우리들 영주(国人)들의 다도와는 대조적이군. 그 또한 좋겠지"


와비차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소우에키는 눈을 감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와비차의 방향성이 형태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뜬 후, 소우에키는 자세를 바로하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시즈코 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입니까?"


"무례한 이야기입니다만, 저 꽃병을 제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소우에키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고 시즈코는 꽃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렇다 할 만한 눈을 끄는 곳이 없는, 아무 특징도 없는 도자기 꽃병이다.

젊은 기술자의 습작(習作)인지,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하나만 남아있던 것을 시즈코가 산 것이다.

녹로대(ろくろ)조차 쓰지 않았는지, 모양도 균일하지 않고 일그러져 있고, 색채도 촌스러웠다.


"오늘이라는 날을 잊지 않도록, 길을 헤멜 때 초심으로 돌아가는 이정표로서, 부디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대가 따위 시즈코 님께서 보시기엔 하찮은 것, 하지만 무엇이든 내어드릴 생각입니다"


"어, 아뇨.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가져가 주십시오. 대가는 필요없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겠습니다"


설마 시장에서 10엔(오다 영토 내의 새 화폐의 단위, 현대 가격으로 환산하면 몇백엔 정도)에 산 것을 가지고 싶어할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갑자기 대답하기가 곤란해져 버린 것이었다.


시즈코는 밖에 대고 사람을 불러 꽃병을 포장하게 한 후 소우에키에게 손수 건넸다.


"제가 목표로 하는 다도가 모양새를 갖추면, 가장 먼저 시즈코 님을 초대하겠습니다"


"네, 즐겁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우에키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다실을 나갔다. 한편, 노부나가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지 귀인용 다다미에 책상다리를 한 채로 과자 쟁반의 내용물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우에키는 와비차로 머리가 가득 찼는지, 노부나가가 남아있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


"……와비차라. 영 내키지 않는구나. 화려하기만 하면 된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화려함이 없으면 차맛도 흐려지겠지"


소우에키가 떠나고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끓인 호지차(焙じ茶)를 찻잔(湯呑)으로 마시면서 말했다.


"주상께서 좋아하시는 다화회와는 정반대쪽(対極)에 위치하는 것이겠지요"


"……뭐 좋다. 소우에키가 유한한 정취에 경도된다면 이쪽도 나쁠 것이 없지"


"그건 무슨……"


질문을 말하던 도중에 시즈코는 이해했다. 소우에키가 목표로 하는 와비차는 노부나가가 좋아하는 '카라모노스키(唐物数寄, ※역주: 외국의 다기 등을 선호하는 것)'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가진다.

명품(외국산의 다기)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우에키의 사상이 침투하면, 그것(명품)을 자신이 손에 넣기 쉬워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와비차가 주류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으나, 역사를 알고 있는 시즈코는 일말의 불안을 지울 수 없었다.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보다 야마토(大和)로 갈 준비는 되었겠지?"


"예, 옛"


"그럼 됐다. 쿄(京)에서 며칠 체재하고, 그 후에 야마토로 간다. 확실히 맡은 역할을 다해보이거라"


노부나가는 그 말만 하고는 시즈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실을 나갔다.




소우에키와의 해후(邂逅) 이후로 시즈코는 정신없이 바빴다. 시즈코는 예전부터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쇼소인(正倉院)의 보물(宝物) 열람 허가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올렸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조정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발단은 오다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생각한 공가(公家)들이 결탁하여 천황(帝)의 의향을 무시하고 시즈코의 열람을 허가해버린 것에 있었다.

사후승낙이라는 형태로 알게 된 천황이 화를 내며 공가들의 월권행위를 책망했으나, 공가들은 '오다 님의 후원(引き立て)을 받아 공가 일동이 한뜻을 모아 정무에 힘써야 할 때에 형식에 구애받아 기회를 놓치는 것 어리석은 일'이라며 천황에 대한 불만을 일기에 남기는 상황이었다.


어째서 공가와 천황이 다투고 있냐고 하면, 금년이 연이은 가뭄에 의한 피해가 컸던 것에 있다.

오와리(尾張), 미노(美濃) 등 노부나가 직할의 곡창지대는 항상 가뭄 대책을 취하고 있고 설비도 충실했기에 영향은 경미했으나,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복하여 기우(雨乞い) 의식(儀式)이 치러지고, 음양사(陰陽師)를 초빙하여 점괘(占筮)를 보았다. 결과는 드물게 보는 재앙(凶事)이라고 나와서 조정이 발칵 뒤집히는 대소동이 되었다.

현대인이라면 '뭐 이런 비과학적인'이라고 일소에 붙이겠지만, 이 시대에서의 역점(易占)의 신빙성은 높아서, 각지에서 가지기도(加持祈祷)가 활발하게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대륙에서 유래한 사고방식인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울 때에는 그것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의 부덕함(不徳)을 하늘이 꾸짖는(咎) 것이라는 천인상관설(天人相関説)이 널리 믿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규모의 가뭄 피해가 벌어졌다고 하면, 천황의 부덕함을 하늘이 꾸짖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통렬한 천황 비판이 줄을 잇고, 천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도 생겨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역사적 사실에서는 노부나가가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양위를 강요했다는 설이 있다(정반대로 양위를 간(諫)했다는 설도 있다). 그것이 때마침 궁중(禁中)의 괴이한 일(怪異)이나 대재해(大災害)로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해의 일이었던 것이다.

즉 노부나가는 당시의 천황에게 무례를 범한 것은 아니고, 천재지변(天変地異)이나 대재해를 다스리기 위해서도 양위해 주십시오라는, 당시의 가치관으로서는 당연한 것을 요청한 것 뿐이었다.

참고로 오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의 양위 요청을 물리쳤고, 그가 혼노지(本能寺) 사변에서 횡사하는 마지막까지 양위를 계속 거부했다.


이러한 소동도 맞물려, 정식으로 쇼소인에 대한 출입허가가 내려진 것은 노부나가가 쿄에 도착하고 며칠 후라는 꼬락서니였다.

물론 노부나가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시즈코는 양부(養父)인 사키히사(前久)에게 요청하여 조정 내부의 조정(調停)을 꾀하게 하였기에 간신히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상황이었다.

번거로운 얘기라고 생각한 노부나가였으나, 딴 마음(下心)이 있다고는 해도 자신에게 편의를 봐주려 한 자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서, 소동의 원인이 된 것을 사과하고 쌍방을 위로하는 데 그쳤다.


그 후에는 아무 일 없이 야마토로 들어가 토우다이지(東大寺)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거기서 전군에 대해 '무법(無法)의 엄금(厳禁)'을 명령했다.

이 금기를 깨면, 깬 본인은 물론이고 부대의 동료나 직속 상사까지 연좌하여 책임을 묻는다는 가혹한 것이었다.

거기에 토우다이지의 경내(境内)에 진을 치는 것도 금지하고, 경내 바깥에서 진을 칠 때도 불의 취급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금지령을 내렸다.

거기다, 노부나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냥 대기하고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니고, 주변의 치안 유지에 최대한의 협력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지시들을 내린 후, 노부나가는 최저한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토우다이지를 방문했다.

그 때에도 강권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형식대로의 절차를 밟아 쇼소인에 들어가, 황숙향(黄熟香, 란쟈타이(蘭奢待)라는 이름을 가진다)(※역주: 토우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있는 향목(香木))을 열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또, 자신이 보물창고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란쟈타이만을 꺼내게 하여 대승정(大僧正) 입회 하에 열람 및 2군데를 잘라내기로 했다.

노부나가라고 하면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화신(権化)이며 신도 부처도 두려워하지 않는 야만인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던 토우다이지의 승려들은, 실제의 노부나가를 보고, 예의바르고 당당한 행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야마토로 간 최대의 목적은 야마토를 지배하에 두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토우다이지나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 대해서는 시종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에 반해 야먀토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에 관해서는, 다시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서 지배하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게 했다. 노부나가의 도착을 알면서도 인사가 늦거나 또는 소식(音沙汰)이 없는 자들에게는 소규모의 군을 이끄는 사절을 보냈다.

또, 인사하러 온 사람들에게도 사전에 수집했던 정보와 본인이 제출한 정보를 대조하여 그 차이를 하나하나 지적해 보였다.

그 후 사실을 감추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것과, 영지 운영에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을 경우 그 지위를 박탈할 뜻을 전했다.


반골정신(反骨精神)이 넘치는 야마토의 호족(豪族)들이 노부나가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할 리가 없지만, 헌재 상황은 거역해봐야 승산이 보이지 않는 이상 위정자들은 노부나가의 분노(勘気)를 두려워하여 앞다투어 찾아오게 된다.

가장 먼저 인사하러 온 것은, 다름아닌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秀久)였다. 다른 유력자들은 노부나가가 진을 친 이후에 방문한 것에 반해, 마츠나가는 노부나가가 쿄를 나섰을 무렵부터 준비를 갖추고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노부나가의 도착을 엎드려 절하며 맞이했다.


"마중나오느라 수고했다. 오랜만이구나 마츠나가. 별 일 없는 듯 한데, 잘 있었느냐?"


"옛,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영민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은 거두어들였지만, 낙심하지 않고 충근(忠勤)한다면 언젠가 빛을 볼 날도 있을게다. 자, 다른 이야기다만 조정에서 맡은 예사(芸事) 보호의 일환으로 명품의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겠지? 네가 가진 히라구모(平蜘蛛)도 천하에 이름높은 명품(逸品)이라 들었다. 협력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 결코 나쁘게는 하지 않겠다"


"예, 옛!"


"흠, 실로 견실하게 일하고 있는 듯 하구나. 유일한 걱정거리는 츠츠이(筒井)와의 사이인가. 부디 경거망동을 삼가도록. 물러가도 좋다"


마츠나가는 땅바닥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마츠나가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강요는 하지 않았으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折に触れて) 히라구모를 내놓으라고 암묵적으로 요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히라구모를 내놓으면 무사히 반환될 거라는 보증은 없다. 노부나가가 명품 사냥으로 손에 넣은 명품은 셀 수도 없으나, 그것이 소유주에게 반환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대놓고 거절을 말하면 역적(朝敵)으로 처벌될 것은 확실했기에, 얄궂게도 히라구모의 존재가 마츠나가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것은 마츠나가에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역적이 되면 일족도당(一族郎党)의 씨몰살이 기다리고 있다. 마츠나가 개인으로서는 히라구모를 내놓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다.

그러나, 이 시대에서 개인의 감정으로 일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선택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마츠나가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히라구모를 내놓아야 한다는, 어려운 선택(かじ取り)을 강요받게 된다.


"히이익!!"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다니, 예의가 없지 않느냐?"


노부나가를 배알한 후, 그 길로 시즈코가 있는 곳에도 가려던 마츠나가였으나, 건물의 모서리를 막 돌았을 때 그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았던 인물과 직면했다.

생기(生気)가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昏い) 시선을 받고, 마츠나가는 목덜미에 칼날이 들이대어진 듯한,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즈코에게도 인사하러 갈 생각이냐?"


"……오다 님의 신임이 두텁고 조정으로부터도 예사 보호의 임무를 받은 분이시니, 가능하다면 뵙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주군을 모시는 신하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그건 기특한 마음가짐이구나. '어차피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 계집애, 어떻게든지 구워삶을 수 있다'라는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내 기분 탓이렷다?"


아시미츠의 말에 마츠나가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마츠나가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까 그 말도 결코 큰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은 아니다. 바로 옆에서 시중들고 있었더라도 들렸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남자는 낱낱이 되읊어보였다. 정말로 저 세상에서 되살아나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힘을 얻은 게 아닐까 하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츠나가. 나는 말이다, 네놈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느니라. 네놈이 지금도 목숨이 붙어있는 것은, 네놈의 재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렷다?"


"아, 아니오…… 결코 그러하지는……"


"……뭐 좋다. 사람의 마음까지는 속박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말이다, 마츠나가. 시즈코에게, 나아가서는 오다 님에게 적대하려 할 때는 명심하거라. 그 때, 네놈은 진짜 지옥을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간단히 죽어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그러했듯', 몇 번이고 저 세상에서 끌어와서, 죽여달라고 애원하던 말던 고통스럽게 해주마"


"히!? 히이이익!!"


그야말로 아시미츠는 지옥에서 되살아난 악귀(悪鬼)였다. 평범하지 않다고 의심하고는 있었으나, 드디어 본성을 드러냈다. 이놈의 손에 걸리면 죽어서도 안녕은 얻지 못할 것이라는.

아시미츠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마츠나가는 안면을 창백하게 물들인 채 네 발로 기듯이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싸늘한 시선으로 마츠나가의 등 뒤를 지켜본 아시미츠는, 발걸음을 돌려 시즈코의 진으로 돌아갔다.


마츠나가에게 불운했던 것은, 이미 시즈코와의 면회에 대해 사전 연락을 해버린 것이었다. 도망친 상대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털레털레 가야 하는 것이다.

악운(悪運)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째서인지' 사이조(才蔵)가 외부 순찰 경계를 맡았기에, 시즈코의 진 안에는 아시미츠 휘하의 병사들이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오와리의 명군(名君)으로 이름높으신 시즈코 님을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와리에 비해 촌구석인 야마토입니다만, 이 고장 사람인 저희들에게는 토지감(土地鑑, 그 지역에 대한 지리나 건물의 배치, 생활 습관 등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감(勘)'은 잘못 쓴 것)이 있사오니, 용무가 있으시면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마츠나가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문자 그대로 화살같은 시선에 견디며 시즈코에게 실례가 없도록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낮춘 인사를 했다.


"저 같은 풋내기(若輩者)에 대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야마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힘을 빌리게 될 때도 있겠지요. 그 때는 잘 부탁드립니다"


"옛! 미력하나마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마츠나가는, 아까부터 격하게 아파오기 시작한 배를 손으로 누르며, 발을 끌듯 시즈코의 진에서 멀어졌다.

소문으로 듣던 시즈코와는 첫 만남이었으나, 내외에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마츠나가는 한 눈에 이질적인 점을 깨달았다. 많은 병사들을 가질수록 모두의 속셈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邁進)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시즈코의 진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마음 속으로부터 시즈코를 사모(心酔)하여, 시즈코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종교적인 광신에도 통하는 기색을 느끼고, 마츠나가는 아시미츠와 같은 정도로 시즈코가 무서워 견딜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나를 저버렸다……. 몸을 사리고 오로지 마츠나가 가문의 존속만을 바라자)


예전에 암살했던 주군은 지옥에서 악귀가 되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악귀가 지키는 여자는, 하필이면 온 나라의 남자들을 홀리는 경국(傾国)의 악녀(悪女)였다.

야심을 죽이고, 몸을 사리고, 다만 우직하게 통치에만 힘쓰면, 마츠나가 가문은 모른 척 해주겠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이 수확이었다.

자포자기(捨て鉢)가 되어, 오다가 반드시 가지고 싶어하는 히라구모와 함께 저세상으로 도망쳐 한방 먹여줄까라고도 생각했으나, 아시미츠의 말에 의하면 그조차 불가능한 듯 했다.

마츠나가는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태어날 시대를 잘못 택했다고 후회했다.


완전히 초췌해진 마츠나가의 모습을 본 야마토의 호족들은, 비교적 온화한 통치를 한다는 평판이었던 마츠나가조차 저렇게 추궁을 당했으니 대체 어떤 처벌(仕打ち)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전긍긍하면서 알현에 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부나가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고생하지 않고 야마토의 유력자들을 굴복시킬 수 있게 되어 그 성과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날을 잡아 다시 방문한 토우다이지에서는, 대승정의 입회 하에 란쟈타이를 2군데 잘라냈다. 하나는 자신이 가지고, 다른 하나는 오오기마치 천황에게 헌상하게 된다.

그 때 노부나가는 대승정에게 조정으로부터 받은 예사 보호의 임무를 설명하고, 시즈코에게 편의를 봐 주도록 부탁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법한 일은 없을거라고 맹세하고, 시즈코의 인품에 대해서도 조정에서 직접 임무를 내릴 정도라고 설득(請け負)했다.

정치적인 판단을 요하는 일인만큼 그 자리에서의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고, 노부나가는 시종 좋은 기분으로 토우다이지를 나섰다. 이어서 방문한 카스가타이샤에서도 마찬가지의 자세를 관철하며 시즈코에 관한 이해를 구하는 데 부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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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0 1574년 9월 하순



"큭큭큭. 당대 제일로 이름높은 요우헨텐모쿠(曜変天目)가 모두 내 손 안에 들어왔도다"


노부나가는 아주 기분좋게 중얼거렸다. 요우헨텐모쿠 찻종(茶碗)은, 철을 포함한 흑색 잿물(黒釉)을 써서 특징적인 텐모쿠(天目) 형태로 구워낸 텐모쿠 찻종 중에서도 최고봉의 것으로 친다.

남송(南宋) 시대의 한 시기에, 건요(建窯)에서 극소수만 구워졌다고 하는 요우헨텐모쿠 찻종. 만든 이도 알 수 없으며, 두번다시 구워지지도 않아, 만들어진 나라(窯元)인 중국에는 도편(陶片) 밖에 남아있지 않다.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물건은 모두 바다를 건너 일본에밖에 존재하지 않는 등 여러가지로 불가해한 점이 있지만, 그릇 속에 별하늘(星空)을 담는 웅대한 조형은, 당시의 권력자들의 넋을 빼놓았다.

다기(茶器)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조차, 보는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신비적인 빛에 매료되었다.


"군태관좌우장기(君台観左右帳記)에 기록된 대로군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이 수집한 보물들의 목록인 '군태관좌우장기'에는, 각각의 보물의 등급이 분류되어, 그 모양이나 내력에서 실제로 입수햇을 때의 가격같은 것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모으는 데 있어, 가짜에 속지 않기 위해서도 군태관좌우장기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시즈코는, 현물을 앞에 두고 기술이 정확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흠…… 츠다(津田, 사카이(堺)의 호상(豪商)인 츠다 소우큐(津田宗及))의 요우헨은 다른 것에 비해 평범하구나. 그래도 다른 다기에는 없는 빛을 뿜고 있다"


"하지만, 욕심많은 상인이 용케 포기했네요. 다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요우헨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재력이나 권세를 담보해주는, 상인이라면 누구나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탐내는 명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재산이나 권세도 목숨이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과연 이름높은 호상이군. 시류를 잘못 읽지 않는다"


노부나가는 암암리에 협박해서 빼앗았다고 으스댔다. 그러면서 말을 할 때는 상대를 칭찬해 보이니 질이 나쁘다.

아마도 방방곡곡에서 츠다가 문물 보호를 위해 스스로 공출했다고 이야기하며, 선견지명이 있고 속이 깊은 인물이라고 칭찬하고 있으리라.

자신의 재력을 담보하는 명물을 빼앗겼다고는 해도, 천하인(天下人)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노부나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게 되면 그것이 대신 신용을 낳게 된다.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행동한다. 정치가로서도 일류의 재간을 보이는 노부나가는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참고로, 이것들은 노부나가가 사리사욕을 위해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정에서 임명된 문물보호의 명목으로 시즈코가 맡아가지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백지수표(空手形)라고는 해도 언젠가 반납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기에, 한가닥(一縷) 희망을 품으며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시즈코에게는 뿔뿔이 흩어졌던 예술품이나 수많은 서적들이 모여들어, 그것들을 집약해서 국문학(国文学)이나 국사(国史)의 편찬에도 착수하고 있었다.

명물을 강탈하기 위한 명목으로는 지나치게 유명해져서, 대놓고 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되었다.


"……헤아렸습니다"


"호오? 네게도 '뱃심(腹芸)의 기초'를 가르칠 때가 온 것이냐"


"진의를 감추고 전달되는, 주상의 명령을 몇 년이나 수행해 온 덕분입니다"


"핫핫핫, 너도 많이 컸구나. 그것도 시즈코라면 숨은 뜻을 헤야려 줄 것이라 기대하고 한 것이니라"


놀리자 노부나가가 웃었다. 입으로는 기특한 소리를 해보이지만, 종래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정작 노부나가 본인은 나란히 놓여있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눈으로 비교하고 손에 들어 손바닥에서 굴려보는 등 시종 매우 기분이 좋았다.


"흠, 충분히 즐겼노라. 하지만, 가치가 있는 물건은 세상에 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주상께서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정치에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노부나가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헤아리고 시즈코가 질문했다. 임기응변(当意即妙)의 대응을 보이는 시즈코를 만족스럽게 쳐다본 후, 노부나가는 부채를 펼쳐 스스로 부쳤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곳에 모든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모여 있으면, 큰 불이나 도난 등으로 모두 유실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신용할 수 있는 수하에게 분산시켜 관리하게 하면 더욱 안전해지겠지. 아니냐?"


"제가 목록을 만들고, 현물은 각지에 분산시켜 보관한다는 형태로 하사하실 생각이라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헤아림이 너무 좋은 것도 재미없구나"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치있는 것은 사용해야 가치가 있으며, 사장(死蔵)시켜서는 의미가 없다는 주상의 방침은 알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즉시 그렇게 하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을 듯 합니다"


"지금 당장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토우고쿠(東国) 정벌이 성공했을 때는 그에 걸맞는 상이 필요해지겠지. 그때까지는 네가 관리하여, 네가 집착하고 있는 '사진'인가 하는 것으로 '군태관좌우장기'를 뛰어넘는 자료를 만들어보여라"


노부나가는 현물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사진의 유용성이나 그 이용가치까지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어, 다양한 값비싼 시약(試薬)을 물쓰듯 쓰는 사진이라는 돈먹는 하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추진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옛,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사본(写し)이라고는 해도 당대 제일의 미술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면 돈을 아끼지 않을 호사가는 적지 않지"


시즈코의 각오를 노부나가는 호쾌하게 웃어넘겼다. 이어서 소성(小姓)을 불러들여서는 요우헨텐모쿠 찻종을 치우게 했다.


"요즘은 매사가 잘 풀리는구나. 아니, 지나치게 잘 풀린다"


요우헨텐모쿠 찻종 대신 아무 특징도 없는 찻잔(湯呑)으로 녹차를 즐기면서 노부나가가 중얼거렸다. 다소 계획(目論見)에 어긋남은 있어도, 큰 줄기에서는 노부나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推移)되고 있었다.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영토에 대해서도 착실히 잘라내고 있어, 눈이 쌓이는 겨울까지는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빼앗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3분의 2라는 숫자는 너무 많지만, 상대가 회복하기 전에 가능한 한 잘라내는 것은 정석이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곧 본거지를 아즈치(安土)로 옮긴다. 새해의 임시 궁궐(仮御殿) 준공(落成)에 맞추어 이주할 예정이다. 네게는 오와리(尾張)를 맡기겠다. 오와리 동쪽을 견제하라"


"키묘(奇妙) 님이 토우고쿠 정벌에 성공하면 애초에 견제할 상대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반의(叛意)의 싹(萌芽)이 있다. 어느 세상이든 무분별한 놈들(不心得者)은 끊이지 않는 법, 커지기 전에 네가 잘라내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수괴(首魁)인 혼간지(本願寺)가 무너지면, 종교세력(寺社) 놈들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다. 원래 통치자의 무법에 대항한다는 것이 무장(武装)의 명분(建前)이었지. 통치자가 무력이 아니라 만인이 지켜야 할 법으로 속박하는 이상, 놈들이 무장할 정당성은 사라진다. 무력을 가지기에 싸움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비무장한 상대끼리는 승부를 읽을 수 없기에 어설프게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겠지"


확정된 미래를 말하듯 담담하게 말을 마치자, 노부나가는 차로 목을 축였다. 한숨 돌린 후 말을 이었다.


"남는 것은 조정(朝廷)에 둥지를 틀고 있는 호리병박(うらなり) 놈들이다. 오다의 태두(台頭)를 좋게 보지 않는 공가(公家) 놈들이, 기득권익(既得権益)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암약하고 있다.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에는 '오다는 언젠가 쓰러질 것이다(高転びに転ぶ)'라는 평을 듣고 있다. 오만해진 내가 발목을 잡힐 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


이 '쓰러질 것이다(高転びに転ぶ)'라는 말은, 모우리(毛利) 가문의 외교(外交) 역할을 맡았던 승려, 안코쿠지 에케이(安国寺恵瓊)가 야마가타(山県) 에치젠노카미(越前守) 이노우에 하루타다(井上春忠)에게 보냈다고 하는 편지 안의 유명한 말(예언이라고 함)이다.

타인의 심정을 돌아보지 않고 가혹(苛烈)한 정치를 하는 노부나가는 천하를 얻을 수 없다. 조만간 노부나가의 천하는 끝나고 히데요시(秀吉)의 세상이 올 것을 예견했다고 한다.

에케이의 의도가 어떠했던,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光秀)에게 배신당해 혼노지(本能寺)에서 횡사(横死)했다. 그가 예견한대로 히데요시가 그 뒤를 이어 천하인이 되고, 에케이는 재빨리 그에 빌붙어 모우리 가문의 평안무사함(安泰)을 얻어낸다는 성과를 올렸다.

본래는 감춰져야 할 에케이의 말이 조정 내에서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노부나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세력이 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자연스럽다.


"그렇군요. 주상께서는 합리성을 추구하신 나머지, 심정을 경시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급진적(先鋭的)이라 다른 사람과의 공감을 얻기 힘든데, 말씀이 부족하니 스스로의 마음 속을 밝히지 않으시고, 그리고 땡깡(我儘)이 심하신 듯 합니다"


"본인을 앞에 두고 잘도 말하는구나!"


"하지만, 천하인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상을 제외하면 적임자는 없습니다. 스스로가 선두에 서서 개혁을 추진하고, 또 그 책임을 질 각오를 갖는 영주(国人) 따위, 주상 이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상의 치세(治世)는 길지는 않겠지요. 주상께서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는 개혁자(変革者)이십니다. 민중은 태평(泰平)을 바라며, 개혁(変革)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훗, 내 그릇에 일본은 좁다. 세상이 태평해지면, 키묘에게 뒤를 맡기고 세계로 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얏!"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시즈코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가볍게라고는 해도 무인(武人)의 일격에 시즈코는 일순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내 땡깡은 귀여운 수준이지"


"예!? 하지만 그게 먹고 싶다, 이게 가지고 싶다라고 발작적으로……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말이 나옴에 따라 험악해지는 노부나가의 시선을 받고 시즈코의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노부나가도 이것저것 무리한 요구(無茶)를 했다는 자각은 있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면 뭐가 권력자라는 거냐. 자, 슬슬 점심식사 때로구나. 식사 준비를 하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밥은 오와리 쌀(尾張米)의 햅쌀이다. 된장국에는 두부와 유부(油揚げ)가 좋겠구나. 반찬(菜)은, 그렇군, 저번에는 타조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오와리 코친(Cochin, 九斤黄)이 좋겠다. 식후의 단맛(甘味)은 제철 과일이 먹고싶다"


노부나가는 태도를 바꿨는지, 시원스러울 정도로 땡깡스러운 요구를 꺼냈다. 자각이 없는 땡깡도 골치아프지만, 배를 째라고 나오면 더 답이 안 나온다고 스스로의 실언을 후회하는 시즈코였다.




9월도 하순을 맞이하여, 오와리, 미노(美濃)에서는 세금(年貢)의 징수가 일단락되었다. 올해도 예측 수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어, 겨울을 날 수 없는 아사자(餓死者)가 나올 가능성은 낮았다.

납세의 의무를 이행하자, 백성들은 신사(神社)로 가서 무사히 수확을 맞이한 것을 신들에게 감사드리고, 내년의 풍작을 기원했다.

오와리, 미노에서는 쌀농사 이외의 산업도 번서하고 있기에, 도축(屠畜) 등으로 목숨을 빼앗긴 동물들을 공양하는 위령제(慰霊祭)도 열린다. 가축(家畜)이나 가금(家禽)은 말할 것도 없고, 양잠(養蚕)이나 양봉(養蜂)에 의한 곤충이나 어패류(魚介類)에 대해서도 함께 제사를 지낸다.

현대에서도 농업학교 등에서는 실습에서 희생되는 동물들을 제사지내는 공양탑(供養塔)이 존재하며, 매년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도 순조롭네. 병해(病害)나 충해(虫害)는 확대하기 전에 대처하고 있으니 손해는 허용범위 내로 억제되었어"


예년의 수확 실적에서 산출한 예측 수치와, 아야(彩) 들이 막 정리한 세수(税収) 실적을 비교하며 시즈코는 예산실적(予実)의 정밀도를 가볍게 계산했다.

다소의 오차는 발생하지만, 뭔가의 대처가 필요해질 정도의 오차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코의 창고(蔵)에 보관되기만 해서는 수확물에 상품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것은 백성들이 생각할 것이 아니라, 뭐가 어찌되었든 위정자(為政者)인 시즈코가 해야 할 일이다. 석고(石高) 상으로는 5만 석(石)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은 쌀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다종다양한 산물을 통합하면 백만 석은 될 듯한 수익이 발생했다.

항구 마을(港街)을 정비한 이래로 토우고쿠 경제의 현관문이 되어 있는 오와리에서는, 수확기 이외에도 항상 세수가 발생한다는 점이 크다.


"오와리 쌀을 어떻게 한다?"


손에 들고 있는 장부의 한 곳에 붓으로 밑둘을 그으며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오와리 쌀이라고 하면, 천황이 애용하는 쌀(御用米)로 이름을 날려, 천하 일품이라는 명예로운 쌀이 되었다.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스테이터스 심볼이며, 답례용(贈答用)이나 경사(祝い事) 자리에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름 그대로 오와리에서밖에 재배되지 않아, 유통량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희소가치를 낳고 있었다.

서민들이 볼 때는 한 그릇조차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가격이 되는 오와리 쌀이, 시즈코의 창고에는 산더미처럼 보관되어 있었다. 올해의 수확이 많았던 것도 한 이유지만, 최대의 원인은 작부량(作付け量)을 늘린 것이다.

노부나가의 방침에 의해, 오와리 쌀은 시즈코의 마을을 중심으로 한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생산되었다. 하지만, 오와리 쌀의 수요는 노부나가의 예상을 아득히 웃돌았다.

그 결과, 오와리 쌀은 식량으로서가 아니라 투기적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서 상인들이 매점하여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사장시키거나 하게 되었다.


고심해서 만들어낸 오와리의 명산품(名産品)이 돈벌이 도구가 되어서는 매우 화가 난다며, 노부나가는 한정시켰던 공급량을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품종개량이 된 오와리 쌀은, 통사으이 품종보다도 많은 시비(施肥, ※역주: 거름주기)를 필요로 하며, 종래의 품종에 비교해 키가 작기 때문에 수위(水位) 관리에도 신경쓸 필요가 있다.

만들라고 해서 금방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예상되는 유통량의 두 배 정도를 작부하게 하여, 시즈코의 마을 사람들에게 농사 지도를 하게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노부나가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해 보였다. 절반을 예상한 수확량은, 뚜껑을 열어보니 8할 이상의 수량이 되어, 오와리 쌀이 남아돈다는 진기(珍妙)한 현상이 발생해 버렸다.

노부나가로서는 투기적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싶을 뿐이며, 오와리 쌀의 가격이 폭락한다는 사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소량씩을 장기적으로 계속 공급할 수 있는 양을 확보한다는 작전이 역효과가 나버린 모양새가 되었다.

오와리 쌀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노부나가는, 남은 오와리 쌀의 처리 일체를 시즈코에게 일임했다. 일임했다고 하면 듣기는 좋지만, 시장에 낼 수 없는 물건이기에 용도는 제한된다.


"……일단 가문 내에 뿌릴까? 한식구끼리 소비하는 걸로는 시장 가치에 영향을 줄 거라 생각되지 않으니까"


고민한 끝에, 시즈코는 자신의 가신들이나,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 가신들을 중심으로 오와리 쌀을 선물하기로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을 것 같으면 가공해서 다른 상품으로 만들면 된다.

평소에 정치적인 선물에 대해서는 최저한으로 끝내는 시즈코가 대대적으로 오와리 쌀을 뿌리게 되면 야심이 있다고 간주될 게 뻔하다. 그래서, 시즈코는 '풍작의 나눔(お裾分け)'이라는 형태를 취하여 곳곳에 선물할 방침을 세웠다.


"사실은 술 쪽이 효율이 좋지만…… 남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네요. 어떻게 생각해요?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술고래(呑兵衛) 씨들"


시즈코가 장부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맹장지의 그림자에서 몇 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케이지(慶次)와 사이조(才蔵)가 멋적은 표정을 떠올리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이상하네. 기척은 지웠을 텐데……"


"매년 똑같은 문답을 주고받고 있잖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케이지 씨들이 마실 분량은 확보해 뒀어요. 고민되는 건,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술의 처리에요"


주조사업(酒造事業)의 총 책임자(元締め)인 시즈코에게는, 세금으로서 술이 현물로 납부된다. 술지게미(酒粕)나 감주(甘酒) 등은 쓸데라도 있지만, 통술(樽酒)의 경우 금주령(禁酒令)도 있어서 시즈코는 조리(調理) 이외에는 전혀 소비할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의 창고에는 몇 년의 숙성을 거친 청주(清酒)가 잠자고 있기도 하다.


"주상께서는 그다지 술을 드시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고노에(近衛) 님께는 이미 상당한 양을 돌리고 있으니, 이 이상은 가치의 폭락을 불러와버리겠죠.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면, 또 정치적인 의미를 의심받을테고…… 슬슬 놓을 장소도 문제네요"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책상 위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축하 자리에서 모두에게 뿌리거나, 바쁘기 짝이 없는 쿠로쿠와슈(黒鍬衆)에게 쏘기도(差し入れ) 하고 있지만, 그래도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나는 양이 웃돌고 있었다.

오와리 쌀이나 오와리의 청주라고 하면 상류계급 사이에서 종종 선물용(進物)으로 귀하게 여겨질 정도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었다. 쿄(京)에서 희소한 것에 의미가 있기에, 지방이라고는 해도 대량으로 방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시즛치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대로 하면 되는거야.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보호자가 나서주겠지"


"……그러네요. 지금 가장 무난한 건 카가 침공군에 보내는 걸까요. 진중위문(陣中見舞い)이라는 형태라면 소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테니까요"


"그럼, 시바타(柴田) 님께 파발(早馬)을 보내죠"


"아, 타진은 주상을 경유해서 해놓았어요. 주상께서도 소비한다면 상관없다고 말씀하셨고, 시바타 님에게서 '배려, 감사스립니다'라고 대답을 받았으니, 남은 건 규모의 조정을 하고 있는 단계에요. 단, 아케치(明智) 님만이 진이 멀리 떨어져서 고립되어 있으니 수송할 때는 호위의 숫자를 생각할 필요가 있으려나 해서요"


"어, 그러고보니 카가 일향종이 시바타 군과 전투를 시작했을 때, 에치젠 쪽에서 배후를 기습했던가? 첫 수에 큰 전과를 낚아챘는데, 그 이후에는 연계가 되지 않아 고립 기미라는 이야기였지"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긍정했다. 당초, 미츠히데는 시바타 군이나 하시바(羽柴) 군이 카가 일향종을 몰아넣을 때까지 국경 부근을 굳히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전 후에도 움직일 기색이 없는 모습으로 보고, 카가 일향종의 수뇌부는 아케치 군은 퇴로를 봉쇄하는 부대라고 단정짓고 전력을 전선에 집중시켰다. 후방에 대한 주의가 소홀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아케치 군의 복병부대가 급습했다.

이 미츠히데의 용병(用兵)은 시바타들에게도 사전에 전달되지 않은 완전한 기습(不意打ち)으로 기능하여, 자칫 후토게 성(二曲城)이 함락당할 뻔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케치 군도 본대는 아니고 유격대였기에 숫자에서 밀린다.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하자, 즉시 방어시설의 파괴로 방침을 전환하여, (櫓)이나 무기고에 불을 지르고 성문을 닫을 수 없도록 공작을 한 후, 화려하게 물러나 보였다.

이 일련의 움직임 덕분에 시바타 군은 단번에 깊숙한 곳까지 공격해 들어가, 후토게 성에 틀어박힌 카가 일향종은 해자(堀)와 성벽(廓)에 의지하여 절망적인 농성을 강요받고 있었다.

얄궂게도 미츠히데의 기습에 의해 카가 일향종은 치고 나가는 방침에서 농성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바타 군으로서도 깊이 추격하는 것을 피하고 토리고에 성(鳥越城)과의 연계를 끊으려 움직이고 있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공방에 의해 카가 일향종의 주력 부대는 그 숫자가 크게 줄어, 미츠히데의 전공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단 협공(挟撃)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아케치 님의 부대는 숫자가 적어요. 거기에, 시바타 님이나 하시바 님을 미끼로 해서 새치기(抜け駆け)한 형태가 되었으니 원군은 도저히 바랄 수 없겠죠. 그렇다고 해서 병력을 물릴 수도 없으니,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하겠네요"


"그걸 잘 알고 새치기한 거겠지. 사견이지만, 싸움이라는 건 무슨 짓을 해서든 이기면 된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야"


"동감이다. 아케치 님의 방식으로는 언제 새치기를 당할지 불안해져서 도저히 옆이나 등 뒤를 맡길 수 없지. 자신들만은 버려지지 않을 거라고 아무 근거없이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낙천적이 될 수는 없다"


(예견하고 있었지만, 역시 아케치 님의 평판은 나쁘네……)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가기에 독단전행(独断専行)에 빠지기 쉽고, 냉소가(皮肉屋)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를 파악 못하는 발언이 눈에 띈다. 대단히 뛰어난 능력 때문에 중용되고 있지만, 협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해도, 시즈코로는 미츠히데를 어떻게 할 수는 없고, 할 생각도 없다.


"뭐, 우리들이 참견할 일도 아니니, 깊게 관여하지 않도록 하죠. 자, 아케치 님에게는 누가 갈래요?"


"내가 가지"


일단은 가장 위험이 예상되는 미츠히데의 진에 화물을 운반할 부대의 호위역을 고민하고 있자, 빈말로도 일을 열심히 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케이지가 손을 들었다.


"……수송부대를 호위하는 것 뿐인데요?"


"그건 이해하고 있어. 대장이 미움받는다고 해도, 말단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있다고. 그 남자다움(漢気)에 보답해줘야 된다는 바보가 있어도 괜찮잖아?"


"음ー, 그런 바보는 싫지 않을것 같네요. 그럼, 아케치 님에 대한 수송부대의 호위를 케이지 씨에게 부탁할게요"


"맡겨둬"


카부키모노(傾奇者)의 방식(流儀)을 좋아하는 시즈코는 케이지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호위대(馬廻衆)의 임무는…… 아니, 말하지 않겠다. 그런 녀석이었지, 네놈은"


미츠히데의 부대가 고립되어 있기에 일부러 격려하러 간다. 위의 속셈은 어떻든간에, 현장의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부대의 숫자가 적고 포진이 얇다는 것은 적으로부터의 습격을 받기 쉽다는 것도 의미한다.

역경 속에서 원군으로 달려가서 운 좋으면 적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다면 통쾌할 것이다. 그런 카부키모노의 어쩔 수 없는 천성(性)을 느낀 사이조는 말없이 보내기로 했다.


"아무래도 시바타 님의 진에는 저 자신이 가야겠죠. 부하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본인은 후방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모양새가 안 좋으니까요"


"시즈코 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쓸데없는 위험을 피하는 것은 위에 서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소생이 대리(名代)로 가도록 하지요"


"으ー음, 그런가요?"


특히 급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직접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자, 소성(小姓)이 아시미츠(足満)의 귀환을 알려왔다.

즉시 이쪽으로 안내하라고 소성에게 명하고는 사이조 쪽을 돌아보았다.

시즈코가 잠깐 시선을 뗀 사이에, 어느새 케이지가 실내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위험이 따르는 임무를 앞두고 기분을 내려고(景気づけ) 유곽(花街)에라도 간 것이리라.

사전에 서로 짠 것도 아닌데 시즈코와 사이조가 서로 쳐다보고 어깨를 움츠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옷을 약간 지나치게 껴입은 차림새의 아시미츠가 들어왔다.


"일단 수고하셨어요. 귀환하자마자 죄송하지만, 서둘러 개요만이라도 구두로 보고를 부탁해요"


"인프라 정비에 관해서는 자연이 상대이니 다소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겠지만, 남은 건 시간 문제겠지. 문제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의 집안 소동이다. 시즈코의 판단대로 불온한 사태가 되어 있지. 지금은 후시키안(不識庵)이 제압하고 있지만, 카게토라(景虎,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친자식) 진영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후시키안이 오랫동안 에치고(越後)를 비우게 되면 무장봉기도 일어날 수 있겠지"


"흠흠.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 정벌에 주력하고 있을 때가 위험하려나요? 주상이시라면 일부러 봉기를 유도해서 쳐부술지도… 으ー음, 한번 상담을 해보는 편이 좋겠네요"


반 오다의 기수(旗頭)였던 타케다(武田) 가문을 잃은 지금, 혼간지에게 의지할 곳은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 외에는 없다. 이 무렵, 켄뇨(顕如)가 각 방면에 보내는 문면(文面)도 기세가 꺾여, 예전의 격문을 띄우던 기세는 자취를 감추었다.

만에 하나 호죠까지 오다 가문에 굴복하면, 혼간지의 운명(命運)은 끝장나버린다. 켄뇨로서는 저자세로 나가더라도 호죠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성가신 얘기네요. 반대로 말하면, 호죠를 제외하면 토우고쿠는 평정된 셈이려나요"


"그렇게 되겠지. 그보다, 좀 말해둬야 하는 이야기가 생겼다. 보고하러 들렀던 기후(岐阜)에서 오다 님에게 서신을 맡아가지고 왔다"


그렇게 말하고 아시미츠는 품에서 봉인된 서신을 꺼냈다. 시즈코가 내용을 확인하자, 노부나가가 야마토(大和)로 갈 때 동행하라는 내용으로, 일정과 경로(順路)가 적혀 있었다.

문면을 볼 때, 일단 쿄에서 합류한 후 야마토로 갈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노부나가가 야마토로 가는 노림수를 알 수 없었다.

딱히 의미도 없이 서신을 꼼꼼히 뜯어보던 시즈코였으나, 문득 어떤 것을 떠올렸다.


"츠츠이(筒井)와 마츠나가(松永) 사이의 불화(確執) 때문일까?"


츠츠이란 '야마토 네 가문(大和四家)'으로 꼽히는 츠츠이 씨(筒井氏)를 가리키며, 현 당주(当代)는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가 맡고 있었다. 이 쥰케이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에는 적지않은 악연(因縁)이 존재한다.

쥰케이는 예전에 마츠나가에 의해 거성(居城)인 츠츠이 성(筒井城)에서 쫓겨나 한동안 자복(雌伏)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미요시(三好) 3인방(三人衆)과 결탁한 쥰케이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서 츠츠이 성을 탈환했다는 경위를 가지고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서로 죽고 죽이던 두 사람이 함께 오다를 주군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그리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한편,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후, 그의 명령에 따라 타몬야마 성(多聞山城)을 넘겼다. 타몬야마 성에는 미츠히데나 시바타 등이 당번제(当番制)로 들어가게 되어, 야마토의 백성들에게 오다 가문의 세력 아래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츠나가는 거성을 빼앗긴 채 얌전히 있을 인물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오다에게 빈틈(綻び)이 보이면 그 목젖을 물어뜯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리하여, 각자의 속셈이 뒤엉킨 결과, 아직 야마토에는 수상한 전란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


"오다 님이 노리는 것은, 야마토의 권력자에서 민초(民草)에 이르기까지 지배자는 오다라는 것을 드러낼 생각이겠지. 흠……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군"


"어? 아시미츠 아저씨, 마츠나가 히사히데랑 교류가 있었어요?"


"음. 나는 그놈에게 '대단히 신세를 졌고', 이쪽도 이것저것 '편의를 봐 준' 사이지. 적지 않은 교분을 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실로 즐거운 듯한 미소까지 떠올리며 아시미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전히 사교적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아시미츠가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시즈코였으나, 어림짐작으로 교우 관계에 참견할 수도 없었기에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그럼, 주상께서 야마토에 도착하셨을 때 인사하러 오게 하도록 부탁할 수 있겠어요? 츠츠이 씨는 주상께 어머니를 인질로 바쳤을 정도니까 말할 것도 없이 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편지를 보내두죠"


노부나가가 일군(一軍)을 이끌고 야마토에 들어가고, 동시에 현지의 유력자들이 모조리 인사하러 간다는 구도는, 장병들이나 민초들에게도 알기 쉽게 지배구조를 어필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은 카가로, 요키치(与吉) 군은 계속 아즈치에 잔류. 그렇게 되면, 나는 사이조 씨가 시바타 님의 진에서 돌아오는 대로 주상과 동행하게 되는 걸까요?"


"야마토로 간다면 나도 동행하지. 다름아닌 마츠나가가 얽혀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직접 가서 녀석과 조금 '대화'를 할 필요가 있겠지"


"그러네요. 주상의 앞에서 츠츠이 쪽과 다투어도 곤란하니, 그런 부분은 교우(交友) 관계가 있는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길게요"


"거성도 잃고 처지가 곤란한 마츠나가에게는 나쁜 이야기는 아닐테지. 지기(知己)나 마찬가지인 내가 중재에 들어가는 것이니 '싫다고 하지는(無下にされる)' 않겠지" 


마츠나가의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弱り目に祟り目)으로 재난(災難)일 뿐이지만, 실로 기분좋게 이야기하는 아시미츠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주상께서 야마토에 체재하시는 동안에 문제를 일으키면 큰일이 될테니까요. 츠츠이 쪽도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을테고, 마츠나가 쪽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제어해 주는 거죠? 주상 앞에서 다툼이라도 일으켰다간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몰라요"


마츠나가는 노부나가가 대단히 원하는 차관(茶釜)인 코텐묘(古天明) 히라구모(平蜘蛛)(이후 히라구모라 부름)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츠나가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때 명품 '츠쿠모카미(九十九髪) 나스(茄子)'를 헌상했으나, 히라구모에 관해서는 몇 번 요청을 들어도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위도 있어, 히라구모를 바친다면 싸움을 해서 쌍방 모두 처벌하게 되어도(喧嘩両成敗) 마츠나가 측은 사정을 봐줄 가능성이 높다.  츠츠이 측으로서는 먼저 손을 쓰면 필패인 상황이 되니, 마츠나가만 제어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히라구모도 명물조사(名物調査)의 일환으로 맡게 되겠지만, 지금 시기에서는 억지력이 되니까 손대지 않는 편이 좋으려나요"


"호오…… 그러고보니, 시즈코는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도 수집하고 있었던가"


"딱히 금전적 가치가 있어서 원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들의 시대에서는 유실되었다는 것을 후세에 남길 수 있다면 내가 이 시대에 살았던 의미가 있으려나 해서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 뭐, 마츠나가에 대해서는 내게 맡겨둬라. 나쁘게 하지는 않을테니"


"응, 부탁해요. 이쪽은 야마토로 갈 계획을 세울게요"


"걱정말아라(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볼만하겠군)"


마츠나가가 아시미츠로부터의 편지를 받아들고 어떤 표정을 떠올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옅은 미소가 치밀어오르는 아시미츠였다.




노부나가의 야마토행이 착착 진행되는 동안,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에서는 내분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큰 이유로서는 노부나가가 새롭게 닦은 도로의 존재가 있었다.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오와리와 사카이(堺)를 육로로 잇는 정비된 도로는, 중소규모의 상인들의 교역을 활발하게 했다.

이세를 지배하에 둔 노부나가는, 오와리에서 축적된 해산물의 양식 기술을 이세에도 들여오게 했다. 양식이 궤도에 오르기에 앞서 가공시설이 가동을 시작하여, 말린 전복이나 말린 해삼이 비교적 싼 가격으로 유통되게 되었다.

말린 전복이나 말린 해삼은, 이웃나라인 명(明) 나라에서는 건화(乾貨)라고 불리며, 말린 표고버섯과 함께 인기높은 상품이다. 중량당 이익률이 높은 상품으로서 알려져 있지만, 종래에는 상선을 보유한 대상인이 아니면 취급할 수 없는 선망의 상재(商材, ※역주: 장사할 거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닦은 도로라면, 큰 가게라고 부를 수 없는 작은 상인들에게도 일확천금의 찬스가 주어졌다.

그 결과, 그야말로 골드 러시에 들끓었던 미국 서부 같은 성황(盛況)이 이세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야심을 품은 상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상품을 사입(仕入)하여 전국으로 흩어졌다. 대상인들은 종래대로 해운(海運)을 통한 해외무역을 하고, 그 이외의 상인들은 육로로 국내의 유통을 담당하여 자연스러운 분업(棲み分け)이 이루어졌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수요가 생겨나고, 그것을 기회(商機)로 시장이 들어선다. 시장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변 일대에는 전에 없었을 정도의 돈이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판을 깔아놓은 노부나가는, 이 거대한 권익구조의 일부를 이시야마 혼간지를 편드는 세력, 그것도 네고로슈(根来衆)나 사이카슈(雑賀衆)(오오타 당(太田党))에 나누어주었다.

적을 이롭게 하기만 하는 행위일 뿐이기에 처음에는 함정을 의심한 네고로슈나 사이카슈였으나, 전에 없던 기세로 팽창하는 재화(財貨)에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사이카슈는 원래 상인집단으로서의 측면도 가지고 있어, 상인들이 교역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무장한 결과 용병집단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상인으로서 키워온 연줄(縁故)에 의해, 서쪽으로는 큐슈(九州)에서 동쪽으로는 북(北) 칸토(関東)까지 커버하는 인맥(伝手)을 가지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장사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상인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당연히 나오게 된다.


이 일련의 흐름에야말로 노부나가의 매복(埋伏)의 독(毒)이 숨어 있었다.

사이카슈는 의사결정을 각 세력의 대표들에 의한 합의제에 맡기고 있었다. 사이카 당(雑賀党)과 오오타 당의 2대 파벌은 있지만, 그 밖에도 유력한 세력들이 군웅할거(群雄割拠)하여, 세력의 대표를 순번제(輪番制)로 맡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용병 사업에 특화되는 것으로 큰 이익을 내고 있었기에, 일단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세력 내부의 파워 밸런스가 크게 뒤흔들려 버렸다.


"오다에 빌붙는 얼간이들에게 제재(制裁)를!"


"어디서 흘러오건 돈은 돈이다! 이 상기(商機)를 놓치지 않고 힘을 축적하는 것이 선결이다!"


"오다의 주구(走狗)로 전락했느냐, 사이카슈의 수치(面汚し)가!"


"무기가 없으면 전쟁은 할 수 없다! 그리고 무기를 갖추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상이나 긍지만으로는 배는 부르지 않아!"


그들은 자신의 재화를 지키기 위해 무장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가 정한 상거래의 규칙(約束事)을 지키는 한, 적을 편드는 쪽이더라도 상인들을 비호해준다.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도 벌이가 적은 용병 사업을 버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파벌과, 어디까지나 자주독립을 관철하며 권력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생활을 계속하는 파벌로 나뉘어 다툼이 시작되었다.


"당했군"


노부나가가 펼친 사이카슈 붕괴의 책략을 깨달은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一)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제는 합의(合議)를 열려 해도, 회의(会議)가 분규할 뿐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연합 세력(寄り合い所帯)의 취약함이 드러나 버린다. 각각의 파벌이, 자신들이 속하는 집단을 이끌고 멋대로 행동하게 되어 버렸다.


"재편(立て直し)은 어려운가"


험악한 표정의 마고이치에 대해,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의문을 입에 올렸다.


"혼간지 내부에서도 승병(僧兵)의 도망이 줄을 잇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기를 같이 하여, 사이카슈의 내부 붕괴. 이것을 우연이라고 단정짓기에는 조금 지나치게 상황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라이렌 뿐만이 아니다. 그의 옆에는 승려 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에케이(恵瓊). 노부나가의 실추(失墜)를 예언했던 모우리(毛利) 가문의 외교승(外交僧), 바로 그 사람이었다.

세 사람은 화톳불을 둘러싸고 마주보고 있었다. 각각 중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실내조차 아닌 장소에서 대화를 나눈다는, 일종의 기묘한 상황이 생겨났다.

라이렌이 속한 이시야마 혼간지는 오다와 강화를 맺었고, 마고이치가 속한 사이카슈의 일파도 표면상으로는 오다에게 복종하고 있다. 직접 칼을 맞대지는 않았으나, 에케이가 섬기는 모우리에게 오다는 잠재적인 적이다.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이기에, 많은 상인들로 떠들썩한 야외에서 잡담(世間話)을 가장하여 비밀 회합을 가지고 있었다.


"오다에게 한 방 먹었군요"


"무력으로 상회하면서 정치적 책략(搦め手)까지 쓰다니, 합의제의 약점을 찔렸소"


"칼날을 맞대는 것만이 싸움은 아니라는 것이겠지요. 돈을 화살로 삼아 욕망을 꿰뚫는 싸움도 있다고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무변자(武辺者)라는 소문은 믿을 게 못되는군요"


에케이의 중얼거림에 라이렌은 팔짱을 끼고 말없이 생각했다. 대화를 주도하고 있던 그가 입을 다물었기에, 고요함이 자리를 지배했다. 때때로 들리는 벌레 소리와 장작이 터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라이렌은 자기 팔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눈부시게 머리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지금부터 노부나가가 취할 행동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이시야마 혼간지의 만회는 절망적이 된다.

숙고한 끝에 라이렌은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설마, 오다는 자신을 미끼로 삼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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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9 1574년 9월 상순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에 대한 대책이 시동되어 전쟁의 기운이 짙어지고 있었으나, 정작 노부나가는 변함없이 내정(内政)에 주력하고 있었다.

물론, 전혀 무관심할 리는 없고, 눈에 띄지 않게 착착 포석(布石)을 두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시즈코는, 히데요시(秀吉) 영토인 나가하마(長浜) 방면의 개발을 일단락짓고, 예전부터 요청이 있었던 오오츠(大津) 방면의 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즈코가 착수한 것은 타나카미 산(田上山)의 개발.

광물 자원의 채굴과, 그에 따른 도로 정비가 주된 사업이었다. 타나카미 산은 시가 현(滋賀県)에서도 남서부에 위치하는 오오츠의 다시 남쪽에 위치하는 산들의 총칭이다.

이 산들은 화강암(花崗岩)이 주체라서, 거의 전역(全域)에 걸쳐 화강암 광물이 산출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서 건축 자재로 중요시되는 어영석(御影石)이나, 현대에서는 보석이나 파워 스톤(power stone) 등으로 불리는 수정(水晶)이나 황옥석(黄玉石, 토파즈(Topaz))을 얻을 수 있다.

현대에서는 장식품이나 보석으로 가치가 있는 수정이나 황옥석이지만, 당시에는 양쪽 다 철(鉄)보다 단단하기에 가공할 수 없어, 오랜 세월 동안 무가치한 존재로 방치되어 왔다.

비교적 크게 성장하기 쉬운 수정 등은, 시대에 따라 신체(ご神体)로 숭배된 적도 있지만, 작은 황옥석은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국인 보석상이 그 가치를 찾아낼 때까지 길가의 돌멩이와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다.


무가치하다고 단정된 황옥석이지만, 시즈코가 볼 때는 보물의 산이었다. 수정은 철보다도 단단하고, 황옥석은 수정보다 더 단단하다.

충격에 대해 특이하게 깨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벽개성(劈開性)'을 가지기에 취급은 어렵지만, 단단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입경(粒径)이 작은 것이라도 연마제(研磨剤)로 이용할 수 있기에, 시즈코는 현지 백성들을 고용하여 대대적으로 수집하게 하고 있었다.

특히 비가 온 다음날이 호기로, 그 날은 위험수당으로서 일당에 2할을 더 얹어주면서까지 동원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사람을 모으는 이유는 황옥석의 비중(比重)에 있었다. 황옥석은 비중이 커서, 어지간한 비로는 쓸려가지 않는다. 비에 표토(表土)가 쓸려내려가서 비중이 큰 황옥석이 노출되는 것을 기대하고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표토가 쓸려내려간다는 것은, 지면이 진흙탕이 된다는 이야기다. 타나카미 산은 경사가 급한 사면(斜面)이 많아서, 발밑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따른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일. 소위 말하는 3D 노동이기에,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위험수당을 얹어주어 대우를 후하게 하여 인원을 확보했다.


여담이지만 황옥석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굴절률이 높고 장시간 빛에 노출되어도 퇴색(退色)되지 않는 것을 'OH 타입', 그 이외의 것들을 'F 타입'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산출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F 타입'이며, 대부분이 무색투명한 원석이다.

현대에서는 이것들에 가열이나 방사선(放射線)을 조사(照射)하여 인공적으로 착색한 것들이 유통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무색투명한 토파즈와 수정을 육안만으로 구별하는 건 어렵지만, 특성을 알고 있으면 간단히 판별할 수 있다.

수정과 마찰시켜 수정에 상처가 나면 토파즈이고, 상처가 나지 않으면 수정이다.


광석의 채굴과 병행하여, 시즈코는 타나카미 산에서 횡행하고 있는 남벌(乱伐)을 금지했다. 노송나무 목재(檜材)의 일대 산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던 타나카미 산은, 당시부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남벌되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남벌의 결과 민둥산이 되어, 유출된 표토가 하천으로 유입되어 홍수의 원인이 된 경위가 있다.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즈코는 거의 쓰는 일이 없는 강권(強権)을 동원하여 일대의 재목(材木)을 윤번제(輪番制)로 공급하는 계획성 임업(林業)으로 변경했다.

이것은 실제로 이와미 은광(石見銀山) 등에서도 채용되었던 시스템으로, 은광 주변을 32개소로 구획 정리하여 순번에 따라 벌채를 한다는 것이다.

벌채를 한 구획은, 다음 벌채에 대비해 식림(植林)을 하여 장기적으로 목재를 계속 공급한다는 형태를 취한다.

이전에도 언급했으나, 오오츠 방면의 하천에 토사(土砂)가 유입되어 유량(流量)이 제한되어 버리면 비와 호(琵琶湖)가 범람하여, 오우미(近江) 일대가 물바다가 된다.

한 번 홍수가 발생하면 우물물 등이 오염되거나, 모기 등이 대량 발생하는 등의 재해가 줄지어 일어난다(負の連鎖). 위정자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오우미의 치수(治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광대한 범위에 피해가 발생하니까. 뭐, 하시바(羽柴) 님의 영역이라서 내가 너무 참견하는 것도 꺼려할테니, 슬쩍 정보를 흘리고 나머지는 맡기도록 하자. 그보다 사진의 개발을 진행해야 해!"


사진이라고 해도, 현대인이 떠올리는 듯한 롤 필름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유리판에 유제(乳剤, 감광재료(感光材料)가 함유된 젤라틴)를 도포한 '유리 건판식(乾板式) 필름'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흑백사진이며, 컬러 사진 따윈 바랄 수도 없다.

은염사진(銀塩写真)의 감광 원리나 현상(現像)에 이르기까지의 이론 등에 대한 이해를 몽땅 건너뛰고 그런 물건이라며 억지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인지 실용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역사적 경위를 생각하면 동떨어진(隔絶) 기술 레벨이기에, 겨우 몇 년 만에 실용화시키려는 건 너무 뻔뻔한 이야기이다.


그렇게까지 하며 시즈코가 사진에 고집하는 이유는, 단지 '정보의 보존에 적합'하기 때문이었다.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잘라내어 보존할 수 있다.

문화재의 보호자에 임명된 시즈코는, 당시의 다양한 문화를 가능한 한 후세에 전하자고 생각했다.

문자(文字)나 도식(図式)이라는 기호(記号)로 기록된 문서는 사본을 만들면 복제할 수 있지만, 회화(絵画)나 입체(立体), 건축(建築)이나 정원(庭園) 등은 남길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진이라면 현물 그 자체는 무리라도, 그 때 그 장소에 존재했던 일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 등의 형태가 없는 것들조차도 풍경(風景)으로서 잘라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진의 원리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화학 반응 위에 성립되고 있다. 휴대가 가능하고 장기간의 보존에 견딜 수 있는 사진의 개발에는 아직 연구기간이 더 필요했다.


"불꽃(花火)은 뭐……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실력있는 기술자가 있어서 생각보다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말야"


현대인에게 여름의 풍물시(風物詩)가 된 불꽃놀이였으나, 그 정체는 화약과 금속 분말을 이용한 염색반응(炎色反応)이 가져오는 찰나의 예술이다.

언제쯤 일본에 불꽃놀이가 정착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국시대에는 전래되었을 거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당시에 전래된 불꽃은 로켓(打ち上げ式) 불꽃이 아니라, 고정식의 통에서 색이 입혀진 불꽃이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한편, 시즈코가 말하고 있는 불꽃이란 로켓 불꽃이다. 당초에는 총탄을 개발하면서 화약이나 탄두(弾頭)을 연구할 때, 탄두를 구리(銅)로 감싸는 방식을 제안했을 때의 여담이었다.

염색반응의 원리를 개진(開陳)하고, 실제로 가늘게 늘려뽑은 구리선을 로(炉)에 넣자 청록색의 불꽃이 튀는 것을 기술자들에게 보여주고, 이것을 이용한 불꽃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줘버렸다.

대부분의 기술자들은 감탄했을 뿐이었으나, 포탄 개발의 중심적인 기술자가 흥미를 보였다. 시즈코가 아니라, 아시미츠(足満) 주도로 진행되고 있던 대포의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며 연구를 신청했다.

당초에는 화약이 군수품이고 귀중한데다 취급이 어렵기에 시즈코는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다지 화약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모기향 불꽃(線香花火, 역주: ※직역)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것을 최초의 연구 과제로 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허가를 내렸다.

쇳가루(鉄粉)를 아교로 개어, 막대기에 화약과 함께 얇게 펴바르면 되는 모기향 불꽃이지만, 분말의 크기나 바르는 양 등 연구할 점은 많았다.


"설마, 로켓 불꽃에까지 다다를 줄이야……"


모기향 불꽃을 시작으로, 손으로 드는 불꽃(手持ち花火)을 개발하고, 다음으로 화약의 연소를 추력으로 하는 쥐불꽃(ネズミ花火)이 탄생했으며, 팽이불꽃(コマ花火) 등을 거쳐 이윽고 별(星)이라고 불리는 화약 덩어리를 쏘아올린다는, 대포로도 이어지는 원시적인 로켓 불꽃에까지 이르렀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국시대이니 채색광제(彩色光剤)로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구리나 주석(錫), 납(鉛)에 인(燐) 등이라, 색채는 파란색 계열에 치중되게 된다.

그러나, 불이라고 하면 붉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불꽃은 획기적이었다.


"점점 사용하는 화약량이 늘었으니 폭발사고 같은 것도 있었지만, 드디어 밤하늘에 선을 그리는 데까지 왔네. 그러고보니 주상께서, 여름 축제에 폐하(帝)의 임석(臨席)을 청하신다고 했었는데……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거겠지"


"시즈코 님"


천황(帝)을 들고나오는 이상 사소한 실패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꼼꼼하게 사전 준비를 하여 만에 하나라도 연소(延焼)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화지대(火除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것저것 고민할 게 늘어나네 하고 시즈코는 진절머리를 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때 방 밖에서 시즈코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시즈코 님, 카가 일향종의 건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거듭된 도발에 의해 긴장감이 높아져, 드디어 말단(末端)을 억제할 수 없게 된 듯 합니다"


"……수고했어요. 계속 감시를 부탁해요"


"옛"


목소리의 주인은 사나다(真田) 가문이 관리하는 간자였다. 간자답게 요점만을 간결하게 정리한 정기보고를 받고 시즈코가 치하하자, 목소리의 주인은 소리도 없이 떠나갔다.

카가 일향종에 대해서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를 총대장으로 하는 군세가 에치고(越後)로 보내어지는 기술자들의 호위라 칭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도중에 이것저것 수를 내어서는 일향종에 대한 도발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일향종의 총본산인 혼간지(本願寺) 측도, 이 노골적인 도발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가 일향종에 대해 도발에 응하는 것을 금하는 통보를 보냈다.

하지만, 혼간지의 대응을 비웃듯, 오다 군은 추가적은 도발을 거듭했다.

가는 곳마다 "혼간지는 자기들 목숨이 아까워 카가 일향종을 저버렸다"라는 식으로 떠들고, 침묵을 유지하는 카가 일향종을 "강한 자에게는 대들지 못하는 겁장이 무리"라고 선전(吹聴)했다.


오다 가문과 혼간지는 강화(和睦)를 맺었으나, 그건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일시적 평화에 불과하다. 개미 구멍 하나로도 쉽게 붕괴하여 다시 적대 관계로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그런 상대의 영토 내에서 사실과는 다른 악평을 퍼뜨리는 것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정보가 퍼지는 전국시대에서는 대단히 유효한 한 수가 되었다.

그게 어떤 집단이던, 무력으로 먹고사는 이상 얕보이고 침묵해서는 체면을 유지할 수 없다.

적지 않게 이름을 날려 자존심이 비대해졌을 때 이런 취급을 받으면, 말단이 폭주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상대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는 사실만 있으면 그 뒤에는 어떻게든 명분이 서지. 만에 하나, 혼간지가 카가 일향종을 버리더라도 그 책임을 혼간지에게 묻는 것은 가능하니까"


노린 대로 카가 일향종이 오다 가문에게 덤벼들고 혼간지가 그에 동조하여 강화를 파기하면, 노부나가는 오히려 기뻐할 거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인내심 싸움(我慢比べ)도 슬슬 끝이려나)


시즈코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시야마(石山) 혼간지가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결전의 때는 착착 다가오고 있었다.




혼간지에서는, 노부나가가 기후(岐阜)에 계속 머물고 있었기에 방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휘하의 장병들은 카카 일향종에 대해 도발을 거듭하고 있지만, 노부나가 본인은 그 움직임을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사태의 추이를 살피고 있는(日和見) 수뇌진에서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만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꾸준한(地道) 조사의 결과, 시즈코의 동향은 물론이고 노부나가의 행동 경향까지 분석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향에서 볼 때, 노부나가가 조용히 바라보고(静観) 있을 때는 대부분 자복(雌伏) 하면서 힘을 축적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의 강화에서 이어지는 일련의 평화도 다음 싸움을 위해 군비를 갖추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애초부터 혼간지 측도 숙적(宿敵) 노부나가 상대로 항구적인 평화가 성립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언젠가 자웅을 겨울 때가 올 것이라 이해하고, 다가올 싸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중에도 계속하여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노부나가에 비해, 혼간지 측은 '당분간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시간을 낭비해 버렸다.


(모두를 아몽(阿蒙, 진보가 없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라 비웃을 수는 없다. 적지 않은 부(富)가 혼간지에도 유입되고 있으니, 당분간 싸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노부나가는 적대세력이라고 해서 혼간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제정책을 취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가 정한 상거래에 관한 규정을 지킨다면 그 문호는 만인에게 열려 있었다.

전쟁에도 물자의 대량 소비와 인구 조정이라는 측면이 있기에, 전쟁이 종결된 후에는 대부분 경제가 활발해진다.

소위 말하는 전쟁수요(戦争特需)로 활성화된 시장은, 유통 경로상에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

이 호경기는, 오다 포위망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부를 방출한 혼간지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었다. 표면적인 이유로서 다음 싸움에 대비한 축재(蓄財)라고 칭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다고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라이렌이 위구하고 있듯이 휴전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지금은 '오와리 양식(尾張様式)'이라 불릴 정도가 된, 오와리에서밖에 생산되지 않는 물건들을 차례차례 퍼뜨리는 노부나가와, 유통의 부수입(余禄)을 받아먹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 혼간지는 문자 그대로 수익의 단위가 다르다.

게다가 노부나가는, 얻은 이익을 재투자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호순환(好循環)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다 가문과 혼간지의 차이는 벌어져 버린다.


(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강화를 지금 당장 파기하고 오다 영토로 쳐들어가거나, 아니면…… 아니, 어느 쪽도 현실적이지 않다)


현 시점에서 강화를 파기하고 오다 가문을 공격할 수 있을 만한 대의명분이 없다. 혼간지 뿐이라면 신앙심을 부추겨서 사기를 유지할 수 있지만, 혼간지에 호응하는 각 세력은 그럴 수 없다.

만민(万民)에 대해 노부나가를 쳐부숴야 한다는 대의를 제시하지 못하면 동맹국도 병력을 내기 어렵다. 한편, 노부나가로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위에 서기 때문에,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오다가 이렇게까지 반석(盤石)인 것은…… 역시 시즈코에 의한 바가 큰 것인가"


라이렌은, 시즈코야말로 오다 가문 융성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시즈코의 정보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정보를 모으면 모을 수록 시즈코의 노림수가 보이지 않게 되어갔다.

시즈코의 사업은 너무나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다각경영(多角経営)이기에, 한두개의 사업을 없애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게다가 각각의 분야에서 시즈코가 일으킨 사업을 이어받을 인재들이 성장해버렸다. 오다 가문의 뼈대(屋台骨)를 기울게 하려면 오다 영토의 태반을 초토화시키는 수준의 전과가 필요하다.

라이렌은 신화에 나오는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를 상대로 하는 듯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가도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집요하게 이어지는 카가 일향종에 대한 도발은 말단 승병(僧兵)들의 격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혼간지로서도 한 번은 노부나가에게 항의를 했지만, "사람의 입에 자물쇠를 채울 수는 없는 법. 무력 행사를 하고 있다면 몰라도,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입을 다물게 하라는 건가?"라는 대답이 왔다.

노부나가는 암중에 "말단 병사들의 발언에까지 트집을 잡는다면 이쪽도 똑같은 대처를 요구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를 불적(仏敵)으로 간주하는 신자들은 많으며, 그들은 노부나가를 악귀나찰(悪鬼羅刹)처럼 욕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리하여 혼간지는 자승자박(自縄自縛)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라이렌은 몹시 후회스러운(臍を噛む) 심적으로 신자들의 인내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노부나가를 시골(田舎)의 토호(土豪)라고 얕보아서는 안 된다. 놈은 자신의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면, 숙적인 혼간지와도 강화를 맺어 보이는 도량이 있다)


그리고 라이렌의 사고는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이대로 손을 빨고 있다간 패배는 필연. 그러나, 오다 가문의 세력을 깎아내려고 해도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타격도 줄 수 없다.

숙고한 결과, 라이렌은 큰 도박에 나서기로 했다. 이 도박은 대단히 위험하여, 책략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파멸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몸을 아까워할 시기는 지났다.


"(……어쩔 수 없지) 누구 없느냐"


각오를 굳히자, 라이렌은 사람을 불러서 어떤 서신을 지정한 장소까지 전달하도록 명했다.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었다. 천황이 임석하여 개최될 예정이었던 불꽃놀이 대회였으나, 예년에 없던 무더위(真夏日)가 이어졌기에 9월로 연기되게 되었다.

분지(盆地)인 쿄(京)는 심각한 더위에 시달려, 사람들은 시원함을 찾아 그늘로 도망쳤다. 기온도 그렇지만 습도도 높았기에 불쾌지수는 미친 듯이 올라갔다.


오섭가(五摂家)의 일익(一翼),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유자(猶子)인 시즈코도, 필요에 의해 교토에 저택이 주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궁궐(御所)에 출사(出仕)할 필요가 없는 시즈코 저택은, 주인이 부재인 상태로 여름 사양으로 개수(模様替え)를 하고 있었다.

나무 문짝을 떼어내고, 바람이 잘 통하는 대오리문(簾戸)으로 교환하거나, 처마(軒)에 발(簾)을 매달아 햇빛을 막거나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그밖에도 풍경(風鈴)을 매달거나, 등나무로 짠 깔개(敷物)인 '아지로(籐)'를 깔거나 하는 등 곳곳에 배려가 되어 있었다.


"올해 여름은 더워 죽겠군……"


문제가 있다고 하면, 본래의 주인이 아니라 피서 목적으로 사키히사(前久)가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용인(家人)에게 준비시킨 차가운 차로 목을 축이면서 사키히사가 중얼거렸다. 시원함을 위해서라면 저택 내에 연못(池)이 있는 사키히사 저택에서도 충분하다.

일부러 멀리 나오면서까지 시즈코 저택에 드나드는 이유는, 쿄에서 유일하게 제빙기(製氷機)가 설치되어 있는 점이었다. 냉각재로서 질산암모늄(硝安)을 사용하기 때문에, 군수물자인 질산(硝酸)을 소비한다.

아무리 사키히사라도 제빙기만큼은 설치를 허락받지 못하여, 이렇게 시즈코 저택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는 것이다.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수분을 섭취하는 것은 좋지 않다. 급격하게 위장이 차가워지면 출혈하는 경우도 있다고 시즈코가 신신당부했었다.

그래도 끈적끈적한 더위에 지친 사키히사는 모르는 척 컵을 홀짝였다. 다른 사람의 눈이 있다면 사키히사도 자중했겠지만, 한식구만 있는 상황이라면 다소 긴장이 느슨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제빙기는 내구(耐用) 시험도 겸하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피서지 대용으로 삼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오와리에 도착한 보고를 받고, 시즈코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고서에는 귀인(貴人)이자 시즈코의 아버지이기도 한 사키히사를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 고용인들이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날씨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한창 더운 시기가 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폭발했네, 카가 일향종"


"오래도록 이어진 더위도 맞물려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겠지요"


시즈코는 사키히사의 보고서를 옆에 두고, 간자로부터 최신 상황을 듣고 있었다.

거듭된 도발에 참지 못한 카가 일향종의 일단(一団)이, 기술자들을 호위하는 오다 가문의 수하(手勢)들을 덮쳤다. 습격에 대비하고 있던 병사들은 이것을 무찌르는 것과 동시에, 일부는 일부러 놓아주었다.

도망친 일향종을 추격한 오다 군은, 그들이 도망친 절 '오야마고보(尾山御坊)'를 포위하고, 일향종의 습격으로 사망자가 나왔다고 떠들었다.

오야마고보는 말은 절이라고 해도 돌담(石垣)을 둘러친 성이나 다름없는 요새였다. 농성 태세를 보이는 일향종에게, 총대장인 시바타가 최후통접을 들이댔다.


"비열하게도 비무장의 기술자들을 습격하여 그 목숨을 빼앗았다고 하면 용서할 수 없다. 습격에 가담한 자들 및 이것을 지휘한 승려의 인도를 요구한다"


실제로는 기술자들에게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것이 난세(乱世)의 법칙.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습격하고 거기에 패주한 일향종에게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되지 않았다.

시바타를 필두로 하는 오다 군은, 카가 일향종의 거점이었던 토리고에 성(鳥越城)과 후토게 성(二曲城)도 포위하여 상호의 연계를 불가능하게 해버렸다.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는 포위와, 보급을 끊기고 정보조차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공황에 빠졌는지, 오야마고보의 승병들은 신자들을 이끌고 치고 나왔다.

이걸 기다리고 있던 시바타가 박살을 내고, 거기에 선제공격을 받았다며 다른 거점에도 압력을 가했다.

자포자기(捨て鉢)한 일향종과, 면밀하게 준비를 갖추었던 시바타 군으로는 싸움조차 되질 않아, 치고 나온 일향종의 거의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필연적으로 패배하게 될 개전에 당황한 이시야마 혼간지는 카가 일향종의 오야마고보 퇴거와 맞바꾸어 군을 물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했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군에게 호응하듯, 에치고의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카가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물론, 사전에 합의된 군사행동이지만, 노부나가는 대외적으로는 관계없음을 가장하여 국경에 병사를 파견하기까지 했다.

노부나가는 우에스기에 대해 아시미츠(足満)를 사자로 파견하여 그 진의를 묻도록 명했다. 그에 더해, 나가요시(長可)를 시바타가 있는 곳으로 보내어 상황을 확인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맡겼다.


"카츠조(勝蔵) 군이 봤을 때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말리고 와라라는 이야기였던 모양인데…… 명백히 인선(人選) 미스네. 부족하다면서 독전(督戦)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요"


"독전은 커녕, 선두에 서서 공성에 참가할 가능성까지 있지"


술잔을 한 손에 들고 케이지(慶次)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가요시의 코앞에 먹이를 매달아 놓고 참전하지 말고 보고하러 돌아오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無理難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소규모 전투(小競り合い)라도 시작되면, 바디시(bardiche)를 한 손에 들고 뛰어드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아케치(明智) 님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렇다는 건, 또 뒷말을 듣겠네요"


"국경의 견제가 임무이니 공성에 참가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아니, 자기 영토인 에치젠을 방어할 뿐이라면 여유가 있어요. 추측이지만, 카가 일향종의 주의가 시바타 님을 향하고 있는 동안, 유격부대를 배후로 침투시켜서 때를 보아 급습하지 않을까요?"


"과연…… 힘들이지 않고 전과를 탈취하는 것입니까. 확실히 뒷말 한두마디 정도는 듣겠군요"


시즈코의 이야기를 듣고 사이조(才蔵)는 이해가 갔다. 미츠히데(光秀)의 임무는 카가 일향종의 에치젠 도망을 허용하지 않는 것. 그것만 견지한다면, 여세를 몰아 공격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화살 앞에 서서 주의를 끌고 미끼가 된 쪽은 속이 좋을 수 없다.


"흐ー음, 카가 일향종이 공격한다고 하면…… 역시 하시바(羽柴) 군 쪽일까요? 군의 재편이 끝나지 않아서, 다른 곳과 비교해서 명백하게 압력이 약하니까요"


벼락출세한 히데요시는,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에 비해 가신단(家臣団)이 약하다. 상비군(常備軍) 같은 건 가질 수가 없어서, 대다수가 반농반병(半農半兵)의 아시가루(足軽)나 잡병(雑兵)으로 구성된다.

무가의 일문을 담당하는 시바타 군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숙련도 면에서 뒤떨어져버린다. 반면, 상승지향(上昇志向)이 강하고, 난장판(泥臭い)인 싸움에서야말로 진가를 발휘한다는 강점이 있다.

또, 오우미(近江)의 장병들을 자군으로 끌어들인 것에 의해 지휘계통의 재편이 끝나지 않아, 군으로서의 단결력이 약하다는 약점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사람을 홀리는 사람(人たらし)'인 하시바 님이라도 오우미의 장병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이번에는 뒷바라지일(裏方)에 전념하시지 않을까요?"


"하시바 님은 그렇다치고, 시바타 님 쪽은 전의가 높겠지요. 카츠조 군,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주면 좋겠는데…… 무공 운운하는 것보다 날뛸 수 있는 자리를 원하는 것처럽 보였으니…… 걱정이에요"


"저번의 아사쿠라(朝倉) 침공에서는 주력과 길이 어긋나서 기다리다 끝나 버렸고, 그 이후에는 활약할 자리가 없었으니까. 기운이 남아도는 카츠조가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런 잡담을 하는 세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의 걱정이 적중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된다.




달력은 9월로 접어들어, 아침저녁으로 싸늘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맹위를 떨친 더위는 자취를 감추고, 하루종일 시원하여 살기좋은 날들이 이어졌다.

더위에 약하여 늘어져 있던 동물들도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계절.

그러나, 같은 달에 예정되어 있던 불꽃놀이 대회는 중지되었다. 주빈(主賓)인 천황의 몸이 좋지 않아, 제 1회 대회에 반드시 천황이 임석하는 것을 바랐던 노부나가가 중지할 것을 결단했다.

노부나가는 분한 듯 했지만, 불꽃놀이 기술자들은 1년 동안의 연구(研鑽) 기간이 생긴 것을 기뻐했다. 노부나가는 행사의 중지와 천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서신을 작성하여 위문품과 함꼐 보냈다.


"공작(孔雀)의 장식깃털(飾り羽)이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구나……"


번식기(繁殖期) 숫공작(雄孔雀)을 상징하는 장식깃털(상미통(上尾筒))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귀하게 여겨졌다.

이 장식깃털은 매년 새로 나며, 번식기인 초여름을 지나면 빠지기 시작해, 가을을 맞이할 무렵에는 모두 빠진다.

그리고 다시 늦가울 무렵부터 새로운 깃털이 나기 시작하여, 한겨울에는 다시 다 난다고 한다.


처음에는 두 쌍으로 시작한 진공작(真孔雀)의 번식이었으나,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수입하거나 부화에 성공하거나 해서 숫자가 늘어, 지금은 15쌍이 생활하고 있다.

진공작의 장식깃털은 보석에 비유될 정도로 아름다워, 인도 공작의 그것보다도 가치가 높다고 한다.

그 상품가치는 일본 국내보다도 해외, 특히 유럽 각국에서 높아져서, 일본 국내에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빠져나간 장식깃털은 하나하나 정성스레 세척된 후 개별적으로 포장되어 바다를 건너게 된다.


공작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타조의 깃털(羽根)도 유력한 상품이 되었다. 주로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타조의 깃털은 장식품으로 애용되고 있었다.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후기인 17세기에 아프리카에서 입식자(入植者)들에 의해 상업 사육이 시작되어, 세계 각지에서 사육이 시작되는 21세기까지의 기간 동안 타조의 깃털은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나란히 아프리카의 특산품이었다.

오랫동안 남아프리카의 독점적 축산업으로 무역을 지탱해온 타조의 존재는, 노부나가에게 매력적인 산업으로 보여졌다.

그 거체(巨体)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는 타조는 환경의 변화에 강하고 성장도 빠르기 때문에 우수한 가금(家禽)이 된다.

단, 번식기에 들어가면 성질이 난폭해지기 때문에 취급에는 주의가 필요해진다.

진공작과 비교하면 사육이 용이한 타조는, 전용 목장에서 쑥쑥 자라고 있었다. 개체수가 일정치에 달하면 오래된 세대부터 도살하여 가공된다.


참고로 해외로 수출되는 것은 타조의 깃털과 가죽 뿐이며, 그 고기에는 상품가치가 안정되지 않았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도살된 타조의 고기는 대단히 피비린내가 심하여 식용에 적합하지 않다.

그 이유는, 타조는 무려 시속 80km에 달할 정도의 속력을 지탱하는 강인한 심폐(心肺)를 가지고 있어, 도살이라는 생명의 위기에 직면하면 그 우수한 순환기가 전력으로 전신에 피를 보낸다.

그 결과, 전신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근육 구석구석까지 혈액이 스며들어 개도 안 먹는다고 하는 고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타조 고기도 훌륭한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 비결은 도살 방법에 있었다. 도살할 타조를 한 방으로 이동시켜, 고농도의 탄산(炭酸) 가스로 기절(昏倒)시킨다. 실신한 상태에서 도살하는 것으로 식용에 적합한 고기로 가공하는 것이 가능했다.

정기적으로 손에 들어온다고는 해도, 상업적으로 유통시킬 만한 양은 확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타조 고기는 시즈코의 그녀의 관계자들이 소비하는 데 그쳤다.


현 시점에서 오와리에서 남만(南蛮)으로 운반되는 주요 수출품은, 비단(絹)이나 목면(木綿) 등의 섬유 이외에, 도자기(陶磁器)나 진주(真珠), 진공작, 타조의 깃털 등 장식품류, 간장(醤油)이나 된장(味噌) 등의 보존식이 선호되었다.

또, 이웃나라인 명(明)나라에는 칠기(漆器)나 부채(扇) 등의 가공품 외에, 표고버섯이나 해삼에 전복, 굴 등의 건물(干物)과 우뭇가사리(天草) 등의 해조류(海藻類)가 많았다. 그 다음으로 무구(武具)나 의류, 생활용품 등이 거래되고 있다.

이러한 수출품목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같이 시즈코가 손댄 산업에 의한 상품인 것이다.


"상당한 양을 계속 공급하고 있는데 의외로 수요가 줄지를 않네"


소모품과는 달리, 장식품류는 공급이 안정되면 가격이 내려갈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가격 변동이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유통을 담당하는 상선(商船)의 높은 손모율(損耗率)이 있었다.

이 시대의 해운 사정으로는, 일본을 출발하여 무사히 서양 각국까지 도착하는 상선은 많지 않아서, 절반 정도의 선박이 침몰하거나 난파의 고난을 겪거나 했다.

해난(海難) 사고가 드문 시대의 가치관에 기인한 맹점이었다.


"오, 이건 히가시야마고모츠(東山御物)의 보고서인가. 어디어디…… 순조롭게 수집이 진행되고 있다라. 뭐, 세세한 부분은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겨두자"


히가시야마고모츠는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 8대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수집한 회화나 다기(茶器), 문구(文具) 등의 총칭이다. 그 중에는 아시카가 쇼군 가문이 대대로 수집한 물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히가시야마고모츠는 메이지(明治) 이후에 정착된 호칭으로, 그 때까지는 히가시야마도노고모츠(東山殿御物 또는 東山殿之御物)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요시마사의 조부인 3대째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나 아버지인 요시노리(義教) 등, 역대 쇼군이나 아시카가 쇼군 가문은 외국 물건(唐物)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하여, 무역을 통해 많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또는 막부의 재정난(財政難) 때문에 매각되어 버리거나 했다. 그대로 소유자 불명, 소재 불명이 된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시즈코가 조정으로부터 예술품의 보호에 임명받은 것으로 상황은 일변한다.

노우아미(能阿弥)가 남겼다고 하는 히가시야마고모츠에 대해 편찬된 '어물어화목록(御物御画目録)'이나 마찬가지인 자료인 '군태관좌우장기(君台観左右帳記)' 등을 바탕으로 뿔뿔이 흩어진 히가시야마고모츠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했다.

소재가 확정된 시점에서 소유자에게 반환 요청이 들어간다. 왜냐하면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지보(至宝)에 관한 소유권은 현재 오다 가문이 이어받고 있다.

설령 정식으로 하사받은 것이라도 고려되지 않았다. 매각에 응하던가, 스스로 나서서 반환하던가, 그도 아니면 무력으로 빼앗기게 된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오셨습니다"


"알겠어요"


보고서를 읽고 있자, 소성(小姓)이 노부나가의 내방을 전해왔다. 노부나가가 오와리까지 온 이유를 시즈코는 헤아리고 한숨을 쉬었다.


"다기겠지, 틀림없이"


이유는 단순해서 히가시야마고모츠에 포함되는 다기나, 현대에서 국보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다기가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대에서 국보로 지정된 요우헨텐모쿠(曜変天目) 찻종(茶碗) 세 가지가 전부 모였다. 최고 걸작으로 이름높은 '이나마텐모쿠(稲葉天目)'의 이름으로 알려진 찻종을 노부나가가 그냥 지나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걸로 노부나가가 소유하고 있는 첫번째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함께 있으면, 일본에 존재하는 모든 요우헨텐모쿠 찻종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으ー음, 그렇게 투덜대시더니,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응접실로 향하면서 시즈코는 혼잣말을 했다. 당초, 시즈코는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노부나가가 소유한 요우헨텐모쿠의 대출(貸出)을 요청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거절하고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군태관좌우장기'의 기술이 정확한지 확인하게 해달라고 시즈코가 직접 가는 것을 제안했으나, 그조차도 기각되었다.

최종적으로 '다른 요우헨텐모쿠를 다 수집한다면 생각해 봐도 좋다'가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딱딱한 인사는 됐다. 오늘 온 이유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노부나가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시즈코는 소성에게 신호를 보냇다. 엄중하게 포장되어 있다고는 해도, 하나면 나라를 살 수 있다고까지 하는 다기인만큼, 이걸 운반하는 소성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무사히 나무 상자의 운반을 마치자, 완충재로 감싸인 다기가 보이도록 뚜껑을 열었다. 대임(大任)을 마친 소성들은 일단 안심하고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충분히 확인해 주십시오"


시즈코가 직접 요우헨텐모쿠 찻종에 씌워진 천을 제거하자, 노부나가의 눈에 선명한 색채를 자랑하는 다기가 들어왔다.

노부나가는 엷은 웃음을 떠올리며, 지참한 나무 상자에서 자신의 요우헨텐모쿠를 꺼냈다.

모든 요우헨텐모쿠가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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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8 1574년 7월 중순



시즈코가 시바타(柴田) 등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은 지 이미 1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작전회의가 재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시즈코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낙관시하고 있었다.

시즈코에게는 전쟁 준비보다도 카카오 빈즈의 마무리 쪽이 중대사였다. 기대대로 발효가 진행되었다면, 슬슬 다음 공정인 건조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발효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시즈코는 실제로 카카오 빈즈를 갈라 확인하는 컷 테스트(cut test)를 실시했다. 검사 항목은 두 가지. 색깔(色合い)과 향기(香り)를 확인하여 발효 상태를 평가한다.

발효 전의 카카오 빈즈라면, 단면은 폴리페놀(polyphenol)의 일종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에 의한 자색(紫色)을 띠고 있다. 이 자색은 발효가 진행되면서 발효열로 중합반응(重合反応)을 일으켜, 갈색(褐色)을 띠게 된다.

색깔에 이어 향에 대해서도 확인해본다. 초콜렛과는 거리가 먼, 어딘가 된장(味噌)을 연상케 하는 끈적임을 가지면서, 그러면서도 달콤한 듯한 향기가 난다.

순조롭게 발효가 진행되었다면 좀 더 산미(酸味)가 있는 향기가 나지만, 그것은 환경의 차이라고 포기하고 건조(乾燥) 공정으로 이행하기로 했다.


카카오 빈즈는 중량 중 3분의 1 이상을 수분이 차지한다. 이 수분량을 8~6% 정도까지 줄이는 작업을 건조 공정이라 부른다.

원산지에서 실시되는 건조 작업은, 노지(露地) 등에 1미터 정도 높이로 짜놓은 나무 틀(木枠) 위에 '대나 띠로 엮은 발 같은 것(すのこ)'을 깔고, 그 위에 카카오 빈즈를 늘어놓고 천일(天日) 건조를 한다.

이 건조 작업중에도 천천히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현지의 토양균(土壌菌)이나 건조 방법에 따라 카카오 빈즈의 맛이 좌우되게 된다.

현대에서는, 이 건조 작업을 거쳐 최종 품질 체크가 실시되고, 합격한 카카오 빈즈만이 마대자루(麻袋, 표준 60kg)에 넣어져 세계 각지로 수출된다.


"좋은 느낌으로 건조되고 있네"


일본은 온난습윤(温暖湿潤) 기후이며, 오래 이어진 장마(梅雨)의 영향도 있어 노지에서의 천일 건조가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당초 비닐하우스 내에서 천일 건조를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닐하우느 내부는 온천의 폐탕(廃湯)이 지나가고 있어 대단히 온도가 높은 환경이 되어 있었다. 명백하게 건조 공정에 부적절한 환경이었기에, 새롭게 폐자재(廃材)나 단재(端材)를 유용한 소형의 비닐하우스(투명 팩티스(factice)로 된)를 지었다.

금후의 재배 확장에 따라 언젠가는 대형의 건조 시설이 필요해지겠지만, 당분간은 이 시설로 운용하게 된다. 건조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통기성(通気性)을 중시한 설계가 되어 있고, 목재가 많이 사용되었다.

값비싼 투명 팩티스를 사용하는 부분이 천정 부분만이기에, 보는 느낌상으로는 비닐하우스라기보다 천창(天窓)이 달린 헛간(納屋)에 가깝다.

전용의 설비를 준비한 덕분도 있어, 비가 오는 날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빈즈는 잘 건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해도 '초콜렛의 재료가 만들어졌다'라는 것 뿐이며, 초콜렛으로 만들려면 추가적인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은 카카오 빈즈를 카카오 매스(cacao mass)로까지 가공해야지"


건조를 마친 카카오 빈즈는 당연히 단단한 외피(外皮)에 감싸여 있어, 카카오 매스로 가공하려면 이것을 제거하여 알맹이를 꺼낼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우선 카카오 빈즈를 가볍게 볶아서 외피(husk)에 금이 가게 한다. 이어서 수차(水車)를 동력으로 하는 분쇄기에 넣어 카카오 빈즈를 거칠게 분쇄한다.

분쇄된 카카오 빈즈를 풍구(唐箕, 볍씨(籾) 선별용(選別用)의, 수차 동력을 사용한 대형의 것)과 체(篩)를 사용하여 외피를 제거한다. 남은 배젖(胚乳, nib) 부분을 카카오 닙(cacao nib)이라고 부른다.

이 닙에는 지방질(脂質)인 카카오 버터(cacao butter)가 중량비(重量比)로 보면 5할 이상이나 포함되어 있다. 이 닙을 잘게 갈아서 페이스트(paste) 상태로 만드는 것을 마쇄(磨砕)라고 부른다.

이쪽도 수차 동력에 연결된, 기술자 마을(技術街)의 기술자 근제(謹製)의 마쇄기(磨砕機)에 의해 닙은 자잘한 조각으로 분쇄된다. 잘게 마쇄됨에 따라 함유되어 있는 카카오 버터가 유리(遊離)되어, 마찰열(摩擦熱)에 의해 녹으면서 페이스트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마쇄기의 최종 공정인 롤러 부분에서, 복수의 롤러 사이를 통과하여 페이스트 상태가 된 카카오 매스가 반출된다. 이 카카오 매스는 롤러에 달라붙어 있기에, 철제 칼날이 이것을 긁어내어 꺼내어진다.

현대의 기계라면 한 번의 작업으로 충분한 입자경(粒子径)이 될 때까지 마쇄되지만, 전국시대의 원시적인 기계에 거기까지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따라서 꺼내어진 페이스트 상태의 카카오 매스를 다시 마쇄기에 걸어, 반복 처리하는 것으로 정밀도를 보완한다.


이렇게 매끄러운 페이스트 상태가 된 카카오 매스는, 설탕과 무당연유(無糖練乳, 전분유(全粉乳)가 이상적이지만 제조 난이도가 높아서 포기했다)와 혼합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뒤섞이게 된다.

카카오 매스의 본질은 유지(油脂) 성분으로, 액당(液糖)이나 통상의 우유(牛乳)와는 잘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수분을 극력 제거한 상태에서 혼합시킨다. 그래도 페이스트 상태의 물체에 분말 등을 녹이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게다가 큰 저항이 걸리기에 강한 힘이 필요해졌다.

그 때문에, 여기서 사용하는 혼합기(믹서)의 동력은 축력(畜力)이 된다. 봉에 매여 혼합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소의 모습은, 가내수공업(家内制手工業)을 방불케 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초콜렛 도우(chocolate dough)라고 불리며, 초콜렛을 초콜렛답게 하는 특색있는 공정으로 진행된다.


1880년에 스위스의 루돌프 린츠(Rudolphe Lindt)에 의해 탄생되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00년도 넘는 세월동안 초콜렛 제조의 심장부라 불리는 것이 콘칭(conching) 공정이다.

콘칭이란, 간단히 표현하면 '반죽하는(練る)' 작업이다. 마쇄된 초콜렛 도우를 콘체(conche)라고 부르는 기계로 끊임없이 반죽한다.

장시간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반죽하기 때문에 다시 수차가 동력이 되어 콘체를 움직인다. 이 콘칭을 하는 것에 의해 도우에서 유분(油分)이 스며나와 서서히 연화(軟化)를 시작한다.

원초(原初)의 콘체로는 72시간 걸렸다고도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들여 반죽하는 것에 의해, 수분이나 불쾌한 냄새의 원인이 되는 성분이 증발하고 제거되어 특유의 아로마(aroma)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계속 반죽하는 것으로 수분과 유분이 섞이는 '유화(乳化)'가 진행되어, 걸쭉한 초콜렛 특유의 식감(舌触り)이 생겨난다.

이 공정을 마친 후, 다시 템퍼링(tempering)이라 불리는 온도조정을 행하여 카카오 버터의 결정 구조(結晶構造)를 정렬하는 것에 의해, 반질반질(艶やか)하고 식으면 단단히 굳은 초콜렛이 된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하게 먹을 수 있는 초콜렛 과자지만, 그 뒤에는 실로 수고스러운 제조 공정이 존재하고 있다.


시즈코는 완성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제조를 진행할 수 있지만, 제법이 고안될 때까지는 대단히 긴 역사가 있었다.

카카오는 16세기에 유럽에 전래되었으나, 19세기에 초콜렛의 4대 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혁신이 등장할 때까지 초콜렛이라는 것은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단, 당시의 초콜렛은 현대의 코코아 같은 것과는 다른, 쓴맛이 강하고 대단히 기름진 것이었다. 그 때문에, 당초에는 기호품(嗜好品)이라기보다 약으로 취급되어, 빈말로도 맛있는 음료는 아니었다.


그 후, 오랫동안 약으로 쓰인 초콜렛이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자 다양한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 그 선구(先駆け)라고도 불리는 발명은, 네덜란드의 식품 메이커 '반 호텐(Van Houten)'에서 태어났다.

반 호텐의 창업자인 카스파루스 반 하우텐(Casparus van Houten)은, 1828년에 카카오 빈즈에 50% 이상이나 함유되어 있는 카카오 버터를 유압식 압착기에 넣어 절반 정도까지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게다가 건조시킨 카카오 매스를 잘게 부숴 분말 상태로 만드는 것으로 뜨거운 물에 녹기 쉬운 코코아 파우더로서 유통시켰다.

그 뒤를 이은 2대 업주 콘라드 요하네스 반 하우텐(Coenraad Johannes van Houten)은, 카카오 빈즈를 알칼리 용액으로 처리하는 방법인 '더치 프로세스(Dutch process)'를 개발한다. 이것으로 발효 과정에서 생산된 산을 중화시켜, 수용성을 높인 '코코아'가 탄생한다.


이 기술 혁신을 계기로 1847년에 뜨거운 물에 녹이지 않고 직접 먹을 수 있는 고형 초콜렛을 고안하고, 1875년에 주식회사 네슬레(Nestlé)의 창업자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가 더욱 부드러운 밀크 초콜렛을 개발했다.

4대 혁명의 마지막은, 1879년에 루돌프 린츠가 우연의 산물(여러가지 설이 있음)로서 입 안에서 녹는 부드러운 초콜렛(후에 린츠 초콜렛이라고 부르는 브랜드가 된다)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콘칭 제법을 발견했다.


이들 4대 발명이 탄생하자 스위스에 린츠 사, 네슬레 사, 영국에 캐드베리(Cadbury) 사, 미국에 허쉬(Hershey) 사 등의 초콜렛 기업이 탄생하여, 공장에 의한 대량생산에 의해 그때까지 고급품이었던 초콜렛이 일반 대중도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보급되기 시작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인류에게는 맛있는 감미(甘味)일 뿐인 초콜렛이지만, 개나 고양이에게는 유해한 물질이 된다. 초콜렛에는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라 불리는 크산틴(Xanthin) 유도체(誘導体)가 존재한다.

이것은 카페인 등의 친척으로, 인간에게는 어지간히 대량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 등은 테오브로민의 대사속도(代謝速度)가 느려서, 과도한 흥분상태나 탈수증상을 일으켜, 최악의 경우에는 죽게 된다.


"콘칭은 하루 이상 걸리니까 얼른 시작하자"


각종 원료를 투입하고, 수차 동력을 전달받은 콘체가 가동을 시작했다.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상태를 지켜보면서 다 반죽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이리하여 약간의 여유를 얻은 시즈코였으나, 거기에 또다시 태클(横やり)이 들어왔다.


"……하아, 머리가 아프네"


전령이 가지고 돌아온 편지를 읽고,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편지의 내용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 토벌의 건으로, 극력 관여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일이 나쁜 쪽으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시바타(柴田)는 관계자를 모아 작전회를 여는 게 아니라, 시즈코의 생각을 결정사항으로서 문서화하여 각 무장에게 통지했다.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들었던 시바타들조차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던 내용이니만큼, 항목별로 적은(箇条書き) 문장을 받기만 한 무장들은 곤혹스러워했다.

아쉽게도 시바타 자신이 보냈었던 문서는 첨부되어 있지 않아서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시즈코 쪽으로 문의가 온 이상 치명적으로 설명이 부족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바타의 문서는 시즈코가 발안자라고 적혀있었던 모양이라, 편지를 통한 우원(迂遠)한 연락이 아니라, 모여서 작전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 시즈코도 참가해 줬으면 한다고 적혀 있었다.


(확실히 시바타 님은 주인의 의도에 관계없이 명령받은 것을 우직하게 수행하는 분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경위라던가 하는 것도 당연히 알고 싶겠지……)


작전회의에서 시즈코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초안(草案)의 내용을 전원에게 알기쉽게 전달하여 구체적인 계획으로 구현하는 군사(軍師)이다.

편지를 보낸 것이 시바타가 아니라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秀吉)였다면, 두 사람 다 책모를 구사하는 지장(智将) 타입이기에, 주도면밀한 사전 교섭(根回し)을 한 후에 작전회의를 열었으리라.

그에 반해 시바타는 '공격하는 시바타에 물러나는 사쿠마(かかれ柴田に退き佐久間)'라고 평가되었듯, 선봉을 맡는 일이 많은 저돌맹진(猪突猛進) 타입의 맹장(猛将)이다. 일단 명령이 떨어지면 망설임없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전쟁터에 나서는 호담한 사람은 많지 않다. 당연히 그런 명령은 따를 수 없다고 거부하게 되어, 시바타로서는 몸을 사리는 겁쟁이라며 격앙하게 된다.

이러한 쌍방의 어긋남이 악순환을 낳아, 양자의 골이 결정적인 수준으로 깊어지기 전에 시즈코가 호출되었다.


"이 얘기, 조절(匙加減)을 잘못하면 카가 일향종 정벌이 문제가 아니게 되겠네"


카가 일향종 정벌의 총대장은 시바타이다. 총대장의 명에 따르지 않는 집단 따위 이미 군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 카가 일향종은 어쨌든 수십 년에 덜쳐 카가를 계속 통치하고 있다.

군으로서의 통솔을 잃은 상태에서 상대할 수 있는 적일 리가 없다. 뭣보다 카가 일향종은, 나가시마(長島) 일향종보다도 광신적(狂信的)이라는 정보가 시즈코에게는 들어와 있었다.

종교적인 열광이라는 것은 탄압받을 수록 불타오른다. 그 신앙심을 무기로 집단으로 묶어 제어하고 있는 지휘 중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정을 볼 때 사전 교섭은 무리겠고…… 어느 정도 애드립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으려나. 우선 판단 재료가 없으면 이야기가 되질 않으니, 파벌이나 세력간의 정보를 파악하자"


그렇게 중얼거린 시즈코는, 쇼우(蕭)와 아야(彩)에게 명령을 내렸다.




6월 하순이 되자 겨우 작전회의가 열렸다. 전혀 진척을 보이지 않은 가신들의 모습에 노부나가가 짜증을 내고 있다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퍼지고 있었다.

작전회의의 장소는 시즈코가 운영하는 학교의 강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을 만한 넓이가 있고, 주위에 숨을 수 있는 장소 같은 게 없었기에, 병사들을 숨겨놓거나 무기를 숨겨놓거나 하는 좋지 않은 생각을 할 도리가 없었다.

회장의 경비는 시즈코 직속의 부대가 맡고, 주도면밀한 밑조사를 한 후에 사람들을 물려놓았다. 회장에는 시바타나 미츠히데, 히데요시 같은 주요 무장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다른 무장들도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시바타의 문서가 야기한 불신감은 어떻게 할 수 없는지, 다들 각자 불만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아 시작하기 전부터 찌릿찌릿(ギスギス)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상이 제 생각(案)입니다"


총대장인 시바타의 체면도 있기에, 시즈코는 흑판을 끌어내서 그림이나 도형을 그려가면서 문서의 내용을 '보충하는'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고생한 가치가 있었는지, 무장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으며, 시바타의 지시가 황당무계한 것이 아니라고 납득할 수 있었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설명은 스타트 라인에 지나지 않는다. 카가 일향종을 전쟁터에 세울 때까지의 무공을 따지지 않고, 그 후의 성과에 따라 무공을 정한다는 큰 줄기는 전해졌다.

그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아서, 어떤 위치에 포진하느냐라는 구체적인 작전으로 작전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되면 시즈코가 나설 일은 없고, 모두의 생각이 일치될 때까지 듣는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전원이 결론이 나지 않는 작전회의에 피로를 느꼈을 무렵, 미츠히데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흠…… 이대로는 끝이 안 나겠군요. 누구나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를 원하기에 이야기가 전혀 결판이 나질 않는군요"


작전회의가 분규하여 하나같이 짜증을 느끼고 있을 때, 미츠히데가 일부러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 그래도 나쁜 분위기를 굳혀 버렸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분위기 파악 못하는 점, 융통성 없음에 한숨을 쉬고는, 슬슬 때라고 생각하며 손을 들어 목소리를 냈다.


"발언의 허가를"


"말씀하십시오"


모두가 미츠히데의 무책임한 말에 노기를 띠는 가운데, 시바타가 즉시 허가했다.


"아케치(明智)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이대로는 무의미하게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여기는 일단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포진부터 확정해가는 게 어떨까요? 이 작전회의에 앞서 여러분의 상황을 조사했습니다. 애초에 완전히 평등한 배치 따윈 불가능하니, 큰 부분을 굳힌 후에 세부적인 것을 좁혀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포진이라는 것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시즈코가 한베에의 주인인 히데요시를 보자, 그는 시즈코를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히데요시의 사정(窮状)을 작전회의 자리에서 공표해도 상관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럼…… 하시바(羽柴) 님께는 군비(軍備) 제공을 맡아주십시오. 새 영지인 오우미(近江)는 아직 수확이 안정되지 않고, 이마하마(今浜)에의 투자로 군자금이나 군수물자의 비축이 충분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자금이나 물자는 저희 군이 제공하고, 그걸 각처에 전달하는 병참(兵站)의 일익(一翼)을 맡아줄 인원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그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부끄럽지만, 이마하마는 전쟁피해(戦災) 복구(復興)가 한창입니다. 치안유지를 위해서도 병사는 필요하며, 나라(国許)를 비울 수도 없습니다. 빌려주신 자금이나 물자는, 세수가 안정되는대로 서서히 갚겠습니다"


히데요시와 눈짓을 교환한 한베에가 대답했다.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되지만, 없는 건 어쩔 수 없다(無い袖は振れない). 히데요시로서도 스스로 말을 꺼내지 못한 약점을 밝히고 빚을 지면서까지 돈과 병사를 내놓은 것으로 일단 체면이 선다.

합격점을 받은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다음으로 아케치 님입니다만, 아케치 님께는 카가 일향종이 에치젠(越前)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견제해 주십시오. 그 때, 저희 군의 텟포슈(鉄砲衆) 300과 충분한 탄약을 제공하겠습니다. 거기에 산악 소탕전(山狩り)에 능한 병사와 군용견(軍用犬) 등을 예비병으로 5000 빌려드리겠습니다"


미츠히데에게는 카가 일향종이 에치젠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국경을 굳히는 역할을 담당하게 한다. 중심적인 인물이 한 명이라도 살아 도망치면 재기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른 사람보다 병사를 동원하기 쉬운 미츠히데가 적임이라 할 수 있었다.

숙련된 텟포슈 300으로 도로를 봉쇄하면, 얼마 안 되는 군세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방벽을 칠 수 있다. 길 아닌 길을 가려 해도, 군용견을 데리고 있는 병사들이 순찰하는 산을 빠져나가는 것은 어렵다.


"시즈코 님의 배려,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추가 파병에 의해 미츠히데는 유격군(遊撃軍)을 조직할 수 있어, 카가 일향종 공격에 돌릴 병력을 늘릴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포진이 결정되면, 나모지는 자동적으로 분배가 시작된다.

총대장은 시바타이기에, 시바타 파의 무장들이 정리되고, 이어서 아케치 파의 무장들이 에치젠 부근을 담당하게 된다. 하시바 파의 무장들이 조금 손해를 보는 모양새가 되지만, 대신 소모를 적게 억누를 수 있기에 표면적으로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즈코의 발언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작전회의는, 시즈코가 총대를 메어(身を切った) '세 사람이 한 냥씩 손해봄(三方一両損, ※역주: 고전 만담(落語)의 내용으로, A라는 사람이 3냥을 주워서 본래의 주인인 B에게 가져다주었는데, B는 일단 떨어뜨린 이상 자기 것이 아니라며 받지 않아 다툼이 일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영주 C가 1냥을 더하여 A와 B에게 2냥씩 나누어주어, A는 3냥을 주웠는데 2냥만 가지게 되었고, B는 3냥을 떨어뜨렸는데 2냥만 돌아오고, C는 1냥을 내주었으니 세 사람이 각각 1냥을 손해보았다는 이야기라 함)'으로 간신히 수습되었다.

한 번 치명적인 불화를 불러오게 되면, 아무리 오다 군이라고 해도 내부 붕괴는 면할 수 없다. 시즈코는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오다 군 전체로서 이득을 보는 쪽을 택했다.

한 때는 붕괴의 위기에 빠졌던 작전회의는 차질없이 끝나, 시바타가 마무리의 말을 했다.


"그럼 여러분, 결코 준비를 게을리하지 마시오"


이 말과 함께 작전회의는 해산되었다.


이 이야기는, 며칠의 시간을 두고 노부나가의 귀에도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보고를 다 듣더니, 매우 좋은 기분으로 각자의 행보(行く末)를 지켜보기로 했다.

한편, 시즈코는 위장이 아파질 듯한 작전회의가 끝났기에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있었다. 작전회의 전부터 준비를 진행했기에, 각각의 무장에 대한 지원에 관해서는 이미 시즈코의 손을 떠난 상태였다.


다시 자유로운 시간을 짜낼 수 있었던 시즈코는, 중단했던 초콜렛 제작을 재개했다. 콘칭이 끝나, 식혀서 굳힌 초콜렛을 꺼낸 후, 마지막 공정인 템퍼링에 착수했다.

템퍼링이란 온도조정이며, 우선 중탕(湯煎)을 이용해 초콜렛을 50도 가까이 가열하여 녹인다. 액상화된 초콜렛을 중탕에서 꺼내, 얼음물 등을 이용하여 28도 전후까지 식힌다.

그 후, 다시 중탕에 넣어 초콜렛을 덥혀, 30~32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 템퍼링의 온도는 초콜렛 메이커나 초콜렛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시즈코의 경우에는 불순물이 많을 것을 상정하여, 여유를 두고 온도 설정을 했다.


이리하여 매끄러운 상태로 마무리된 초콜렛을, 사전에 준비해 둔 틀에 부어넣고 식히면 완성된다.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에이징(aging)이라 불리는 정온 창고(定温倉庫)에서의 숙성기간이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라며 포기했다.

초콜렛으로 완성되어 버리면 유통기간이 3개월 정도로 한정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이번에 사용하지 않은 분량은 콘칭 전의 카카오 매스 상태로 보존하기로 했다.

식혀서 굳힌 카카오 매스 상태라면, 온도만 주의하면 1년 동안은 보존이 가능해진다.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갔지만, 드디어 완성이다! 음ー…… 아무래도 현대의 시판품보다는 몇 등급 떨어지네. 뭐, 가루가 날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식혀서 굳힌 초콜렛을 틀에서 떼어내어 접시 위에 담았다. 박리(剥離)가 잘 되지 않은 것, 금이 간 것 등을 제외하고, 보기 좋은 것들을 선별하여 노부나가에게 헌상할 분량으로 삼았다.

시즈코는, 박리에 실패해 쪼개진 초콜렛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기억에 있는 초콜렛은 좀 더 부드럽게 녹았지만, 혀 위에서 껄끔거리는데다가 목구멍에 달라붙네……"


시즈코는 불만스럽게 투덜댔지만, 함께 시식할 기회를 얻은 남자들은 놀라고 있었다.


"세상에! 입에 넣었을 때는 카키모치(かき餅) 처럼 딱딱한데, 입 안에서 곶감처럼 녹았다!"


"와하핫, 뭐야 이게? 쓴 건지 단 건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맛은 술에 어울릴 것 같군"


헌상품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초콜렛의 실패작은 케이지(慶次)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미지의 식감과, 긴장되는(引き締まる) 쓴맛과, 그 뒤를 잇은 단맛에 매료되어, 초콜릿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당신들, 먹는 건 좋은데 말이에요, 좀 더 맛을 음미해줬으면 하는데요? 그거 만드는 데 엄청나게 고생했거든요?"


"미안미안. 먹기 시작하니까 멈추지 않아서 말야"


"하여튼…… 주상께 헌상하러 갈 거니까, 외출 준비를 해둬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숨겨들고 있던 접시를 안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목표한 인물은 금방 발견되었다. 예상외의 진객(珍客)을 데리고 있었지만.


"시즈코 님, 주상께 가신 게 아니었나요?"


아야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진객, 즉 챠챠(茶々)와 하츠(初)가 목덜미를 붙잡혀 끌려가고 있는 것 보니, 또 짓궂은 장난이라도 쳐서 연행되고 있던 거라고 짐작했다.


"응. 그 전에 잠깐 용무가 있어서 말야. 아야 짱, 입을 벌려. 거부권은 없어. 이건 명령이에요"


"그 손에 들고 계신 것과 관계있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명령이라고 하시면 이의는 없습니다"


챠챠와 하츠를 마룻바닥에 굴려놓은 채로 아야는 얌전히 시즈코 앞까지 가더니 순순히 입을 벌렸다. 소위 말하는 아ー 라는 상황인데, 의외로 창피하게 느껴져서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아야의 입에 초콜렛 조각을 던져넣었다.

처음에는 씹지 않고 혀로 햝아 확인하던 아야였으나, 금방 눈을 크게 떴다. 입 안에서 초콜렛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뚜렷하게 모양을 갖춘 고형물(固形物)이 이렇게 녹아버리는 것이 기묘하게 생각된 것이리라.

눈을 껌뻑거리면서도, 그녀가 초콜렛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한 음식이군요. 단단하면서도, 전에 먹었던 물엿(水飴)처럼 녹아 사라졌습니다"


"맛있지?"


"그러네요. 신기한 향기와 녹는 단맛, 조금 씁니다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야의 기준을 만족시켰는지,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의 포커 페이스가 무너질 정도였으니 만든 보람이 있다고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ー, 나도ー, 아ー"


"아ー"


하지만 챠챠와 하츠의 목소리에 제정신을 차린 아야는, 평소의 포커 페이스를 떠올리고는 다시 챠챠와 하츠를 구속했다.


"우선은 야단을 맞은 다음입니다"


"하나 정돈 상관없어. 아야 짱의 흐트러진(デレた) 얼굴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먹이를 조르는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챠챠와 하츠에게 초콜릿을 던져넣어주었다. 그녀들은 즉시 씹어버렸지만, 그래도 입 안에서 녹는 초콜렛에 눈을 빛냈다.


"달아ー, 맛있어ー, 하나 더ー"


"하나 더ー"


"안 됩니다. 간식은, 야단을 맞으신 다음입니다"


아야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둘은 초콜렛을 하나 더 달라고 졸랐다. 아야는 따끔하게 호통을 친 후, 용서없이 둘을 끌고갔다.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둘은 몸부림쳤으나, 아야도 익숙해져서 어린아이(幼子)의 탈출은 불가능했다.


"남겨둘테니까, 제대로 사과하면 먹어도 좋아요ー"


"남지 않을게다. 남은 건 내(妾)가 먹을테니"


시즈코가 멀어지는 둘에게 말할 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접시의 무게가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즈코에게서 접시를 빼앗아 초콜렛을 입으로 가져가는 이치(市)가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시즈코. 별 일은 없느냐?"


"오이치(お市) 님, 언제 오셨나요?"


"아까 언니(義姉上, 노히메(濃姫))와 함께 왔다. 언니는 방에서 쉬고 계시니, 내가 시즈코를 부르러 왔느니라"


얼마 전부터 이치는, 출산을 위해 한동안 시즈코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자이(浅井) 세자매 중 막내인 고우(江)이다. 무사히 출산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난산(難産)이었기 때문인지 회복을 위해 한동안 입원한다고 했다.

퇴원했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환자 본인인 이치의 등장에 시즈코는 크게 놀랐다.


"오이치 님, 이제 몸은 괜찮으신 건가요?"


제아무리 아야라도 어머니인 이치 앞에서 챠챠와 하츠를 끌고 갈 수도 없어, 두 사람을 놔주고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좋아졌느니라. 미리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니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다. 이거 참 신기한 맛이구나"


"어머니ー, 저도ー!"


"도ー"


"안 된다. 너희들은 유모에게 야단맞고 오거라"


"부ー, 치사해요ー"


접시를 향해 손을 뻗는 챠챠와 하츠였으나, 이치는 접시를 높게 들어올려 방어했다. 의외로 예절교육에 엄격한 모습을 흐뭇하게 생각하였으나, 지적했다가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기에 시즈코와 아야는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일로 이쪽으로 오셨는지요?"


"아니, 시즈코에게 용무가 있었다만, 오라버니가 계신 곳으로 간다고 들었다. 아무리 나라도 오라버니를 앞지를 수는 없지. 시즈코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 이야기하도록 하겠느니라"


"(그건, 우리 집에서 묵으신다는 것 결정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오는대로 연락을 드릴테니, 그때까지 편하게 쉬고 계십시오"


"음, 부탁한다. 에잇, 그렇게 부어있지 말거라. 언니께 드린 다음, 너희들에게도 나누어줄테니, 어서 일을 보고 오너라"


시즈코의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이치는, 볼이 부은 챠챠와 하츠에게 말하고 조용히 떠나갔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몸짓과는 대조적으로 폭풍 같은 사람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면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기후 성(岐阜城)에 등성(登城)하자, 시즈코는 다실(茶室)로 안내되었다. 노부나가는 결정사항을 주지(周知)할 때는 큰 방(広間)에서 회담을 갖지만, 다실로 안내될 때는 비밀스런 이야기가 된다.

시즈코로서는 다실 따위는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지만, 의외로 안내되는 기회가 많아서 이미 달관(諦観)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평소와 같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맡기고, 손발을 씻고, 실내의 노부나가에게 말을 걸어 대답을 받은 후, 작은 출입구(躙り口)로 다실로 들어갔다.

칼을 맡기는 행위는 다실에 가지고 들어가는 건 풍류가 없다(無粋)는 면도 있지만, 상대에게 목숨을 내맡기는 자세를 나타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밀실인 다실로 초대받는 것은 노부나가로부터의 신뢰의 증거이며, 무기를 맡기고 빈손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에 답하는 의식(儀式)으로서의 일면을 가진다.

입실 전에 손발을 씻는 것도, 위생적인 면도 그렇지만 손발에 독을 묻히지 않았다는 증명이 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겨우 다실로 입실할 수 있다.


"실례합니다"


보온용의 질산암모늄(硝安)을 넣었기에 의외로 나무 상자가 커서, 우선은 초콜렛이 든 나무상자가 다실로 들어가고, 이어서 시즈코가 들어갔다.

물론, 헌상품인 초콜렛은 시식시종(毒見役)이 독이 없다고 확인한 것을 반입한 것이다. 다실에 들어가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본래는 쿄(京)에 있어야 할 미츠히데였다.

그는 시즈코를 보고는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시즈코도 당황해서 마찬가지로 인사를 했다.


"시즈코는 여전히 사람을 애타게 하는 게 능숙하구나"


"죄송합니다. 서둘러 왔습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관없다. 농으로 말한 것 뿐이다. 낑깡, 너도 먹어보아라"


바로 헌상된 초콜렛에 손을 댄 노부나가가, 나무 상자를 미츠히데 쪽으로 돌렸다. 품에서 회지(懐紙, ※역주: 접어서 품에 지니는 종이(과자를 나누거나 술잔을 씻을 때 씀))를 꺼내 공손하게 초콜렛을 집어올린 미츠히데였으나, 반들거리는 윤기를 띤 갈색의 물체를 앞에 두고 굳어 있었다.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했더라면 도저히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주인인 노부나가가 권한 이상에는 각오를 굳히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적인 텀을 거쳐 미츠히데는 초콜렛을 입에 넣었다. 처음에는 눈살을 찌푸렸던 그도, 서서히 부드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신기한 식감입니다. 손으로 잡을 수 있는데, 입 안에 넣으니 갓 만든 떡(餅)처럼 흩어지며 훨씬 부드럽게 녹습니다"


노부나가가 두 개째에 손을 뻗고, 이어서 미츠히데도 그에 따랐다. 두번째 이후에는 두 사람 다 주저없이 입에 던져넣었다. 잠시 동안 말없이 초콜렛을 맛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만족했는지 초콜렛 상자를 옆으로 밀었다.

다실의 온도에 녹으면 곤란하기에, 보냉제(질산암모늄)가 든 팩티스 자루를 넣고 나무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자, 미지(未知)의 과자를 즐겼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호죠(北条)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 키묘(奇妙)가 토우고쿠(東国) 정벌에 나서면, 반드시 부딪히게 되겠지"


"강화(和睦)를 목적으로 일전을 겨룰 생각일까요?"


"낑깡의 말대로, 나와 창칼을 맞대어 토우고쿠에는 호죠가 있다고 드러낸 후에 강화할 속셈이겠지"


노부나가는 전부터 호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적으로 돌아서던 노부나가의 밑으로 들어오던, 어느 쪽을 선택해도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호죠 가문에 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해두었다.

그리고 매일 전달되는 정보에서 호죠 가문의 주류파가 오다 가문과 교전하는 방향으로 뭉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가 처음부터 절충안(落としどころ)을 생각하고 있다면, 예전에 시즈코에게 말했던 계획이 빛을 보게 된다.


"타케다(武田) 가문의 무위(武威)를 꺾고 우에스기(上杉) 가문도 끌어들인 지금, 토우고쿠에 대한 준비(仕込み)는 거의 끝났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호죠 가문이 명확하게 우리들과 적대할 자세를 드러낸 경우, 이쪽에 이점이 생긴다"


"호죠 가문과 싸움을 하여 패하거나 또는 비기도록 하여, 오다 가문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을 색출한다, 라는 것입니까?"


"그 말 대로다. 타케다가 대패를 맛보고 우에스기가 우리들에게 항복한 지금, 호죠는 토우고쿠 최후의 대국(大国). 그렇기에 놈들이 '기대를 품는 상황'를 연출할 필요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반 오다 연합이 기대하는 결과란, 토우고쿠의 영웅(雄)인 호죠가 일어나 오다 가문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시즈코, 너는 상황을 만들어라"


"옛"


"낑깡은 그 후, 우리 편(身内)에 숨어있는 배신자, 모반을 꾸미는 자, 내통 등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자들을 모조리 조사해라"


"옛"


"놈들은 충분히 궁지에 몰려 있다. 먹이를 흔들어보이면 검정망둑(ダボハゼ)처럼 달려들겠지. 그 먹이 뒤에 낚싯바늘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놈들은 바늘에 걸리는 순간 끝장으로, 일망타진하여 쓸어버리겠다"


대국을 내다보고, 큰 승리를 얻기 위해 작은 패배를 받아들인다. 입으로 말하는 건 쉽지만, 실행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상대가 이겼다고 판단할 정도로는 피해를 받아야 하며, 그러면서 그 이상의 피해를 억누르며 철수해야 한다.

이 정도의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떄로는 노부타다(信忠)에게조차 비밀을 유지해야 하리라. 노부타다는 시즈코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기에, 일이 드러난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시즈코, 조정으로부터의 예사(芸事) 보호(保護)는 어찌되고 있느냐"


"호소카와(細川) 님 등 쿄의 유력자들의 조력을 얻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정에서 받은 역할에 대해 질문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현 상황을 보고했다. 예사 보호라고 해도 하는 일은 지루(地味)하다. 먼저 어디에 뭐가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한다. 그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그 중에서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선별한다.

마지막으로 현물(現物)을 확인하여, 문서 종류라면 현물 또는 사본을 얻는다. 회화(絵画)나 골동품(骨董品) 종류라면, 가능하다면 매입하고, 무리라면 소유주를 목록에 등록한다.

사진(写真)이 실용화되었다면 회화 종류에 대해서도 사본을 만들 수 있지만, 사진 기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진행하도록"


"옛!"


"음. 그럼 일단 물러가라. 나중에 용무가 있으니, 별실에서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는 일단 시즈코에게 퇴석(退席)하도록 명했다. 시즈코는 다실에서 나와서, 란마루(蘭丸)의 안내를 받아 가까운 곳에 지어진 정자(四阿)에서 쉬기로 했다.

최근에는 호리(堀)가 따라붙지 않고 란마루 혼자서 안내를 맡는데, 그는 매번 여러가지 표정(百面相)을 보여주기에 그걸 보면 지루하지는 않았다.

시즈코는 정자에 도착하자 내어진 차를 마시며 가져온 책을 읽었다. 잠시 후 노부나가의 호출이 떨어져, 책을 품 속에 넣고 다시 다실로 향했다.


"요즘에는 많은 일거리를 수하들에게 맡기고 있는 것 같더구나"


"네,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일거리는 적어졌습니다"


예전에 시즈코가 시작한 사업도, 서서히 수하들에게 인계되어, 각각의 분야에 전임(専任) 가신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후미(入り江)에서의 양식 사업(養殖事業)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시즈코의 손을 떠나, 지금은 보고서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것만큼은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유지하고 있던 남국(南国)의 과실(果実) 재배도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시즈코의 손을 떠나기 시작하리라.


"그러면 됐다. 너는 뭐든지 너무 혼자서 끌어안으려고 한다. 남에게 맡길 수 있는 건 맡기고, 너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해라"


"예"


"뭣보다, 너는 스스로에 대해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가신이나 기술자들의 휴식에는 신경을 쓰면서, 정작 너 자신은 쉬려고 하지 않지 않느냐! 그래서는 아랫사람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느니라!"


"예, 예에…… (어째서, 나는 잔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갑작스러운 노부나가의 질책에 시즈코는 곤혹스러워졌다. 시즈코의 내심은 신경쓰지 않고, 노부나가의 잔소리는 1각(刻, ※역주: 1각은 약 2시간)이나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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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7 1574년 6월 중순



4월. 채유(採油) 목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시야 한가득 들어오는 유채꽃(菜の花) 꽃밭이 최전성기를 맞이하여, 오와리(尾張)에 조금 늦게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따뜻해지며 사람들도 활동적이 될 시기를 가늠하여 노부나가가 몇 가지 새로운 법령을 발표(発布)했다. 그것은 천황(帝)의 칙허(勅許)를 얻은 전국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다 영지 내부를 대상으로 한 내향적인 것이었다.

오와리나 미노(美濃)는 물론이고, 새롭게 영지로 편입된 에치젠(越前)이나 오우미(近江)도 대상이기에, 영지마다 부칙(附則), 세칙(細則)이 추가되기는 했으나 대체적으로는 3개의 줄기로 구성되는 법령이었다.


첫번째는 '낙시낙좌령(楽市楽座令)'. 이것은 오와리나 미노에서는 당연한 것이 된 내용이지만, 전쟁피해 복구(戦災復興)를 고려하여 새 영지에도 확대한 것이다.

대체적으로는 '특권을 가진 상공업자(商工業者)를 배제한 자유거래시장의 창설과, 그것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벌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부나가의 눈이 미치기 쉬운 오와리, 미노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할령이 아닌 먼 땅에서의 도입이라는 실험적 시책이라는 측면도 있었다.


두번째는 소위 말하는 '칼사낭령(刀狩り令)'이라 불리는 무구징수령(武具徴収令)이었다. 이쪽도 오와리, 미노에서는 이미 시행되었으며, 새 영지에 대한 법령이다.

당시에는 전쟁 경험이 있는 농민이라면 칼이나 창 등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수리(水利) 등을 둘러싸고 마을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이런 무기들이 사용되어 쉽게 사상자가 나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리고 희생자가 또다른 희생자를 불러, 분쟁이 확대해가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의미에서도 무사(武士) 이외의 사람들은 무구의 소유에 제한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권력을 이용해 억지로 빼앗으면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이유가 있다면 소유가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 무구의 소유에는 관리책임이 따라서, 만에 하나 도난당하여 범죄에 사용될 경우, 소유주에게도 엄벌이 가해진다는 간과할 수 없는 리스크가 따라붙었다.

조기에 무장해제에 응할 경우, 무구 대신 오와리 식의 철제 농기구가 지급되었기에 무구의 소유를 고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가 '정교분리령(政教分離令)'이었다. 이것은 승려에 대한 법론(法論)의 금지와, 위정자에 대한 특정 종교에의 경도(傾倒)를 금지한 것이었다.

전자인 법론(종론(宗論)이라고도 한다)은 교의(教義)가 다른 종교 사이에 발생하는, 각자의 교의의 우열이나 진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말싸움이지만, 결판이 나지 않으면 무력에 호소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처음부터 상대를 병탄(併呑)하기 위해 싸움을 걸어서 무력 투쟁으로 세력을 확장한 법화종(法華宗)같은 예도 있었다.

난세를 종식시키려 하고 있는 때에 새로운 분쟁의 불씨를 흩뿌려서는 본말전도(本末転倒)가 되기에, 이 법령에 관해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관여한 자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엄벌이 가해졌다.

다음으로 위정자에 대한 종교색(宗教色)의 배제인데, 일례로서 승려 등을 부하로 쓰는 경우, 일정한 절차를 밟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또, 위정자 자신에게도 특정 종교에 대한 편들기나 변호(口利き), 그리고 반대로 특정 종교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금지했다. 예외적으로 종교 세력의 정치 개입에 대한 감시나,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는 것은 인정했다.

단, 무력 개입을 할 때는 위정자 이외의 감시역의 승인이 필요하여, 제멋대로(恣意的) 강권을 휘두를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기도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정자라도 일가족 몰살(根切り)조차 가능하다는 엄격한 처분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 법령에 따라 종교 세력(宗教家)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한 신앙(信教)의 자유를 인정받고 위정자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했다.


이 법령들은 오다 영지 내에 한정되는 영국령(領国令)이기에, 발표되어 주지(周知)되는 즉시 시행되었다. 우선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대한 철저한 무장해제가 이루어지고, 이어서 민중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

다음으로 특정 종교를 우대하고 있던 영주는 영지를 몰수당하고 추방당했다. 이것은 우대를 받던 측에도 적용되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영유지(所領)를 몰수당하고, 관계자 전원이 종교시설(寺社)에서 추방되었다.

당연히 이의나 반론으로 떠들썩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러한 것들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당했음에도 여전히 격하게 반응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추방 처분했다.

하나라도 예외를 인정하면 조금씩 다른 것도 인정해야 하기에, 최종적으로는 유명무실(形骸化)해지는 것을 노부나가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단호한 태도를 관철했다.

거기에 소극적인 반항인 사보타주(sabotage)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진척(進捗) 상황을 보고하게 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대처가 늦어질 경우 그게 누구든간에 벌을 내렸다.

반대로 노부나가의 위세를 빌려 종교 세력에 대한 협박이나 탄압을 행한 자는 역시 예외없이 참수되었다. 그리고 철저 항전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은 종교단체(寺社)들은 불태워서 씨를 말렸다.

공정하면서 가혹(苛烈). 그것이 노부나가의 정교분리령에 대한 평가가 되었다.


법령이 시행된 후 1개월 쯤 지나자, 공순(恭順)한 경우와 반항한 경우의 예가 쌓이게 되어, 다소의 불리함(不都合)은 있어도 따르는 편이 상책이라고 다들 생각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원활하게 무장해제가 진행되게 되어, 당장 할 일이 없어진 가신들에게 노부나가는 측량(検地)을 실시할 것을 명했다.


"쿠로쿠와슈(黒鍬衆)의 측량반(測量班)이 모두 나가 있는 건 그 때문인가……"


시즈코는 각지에서 밀려드는 쿠로쿠와슈 파견 요청서를 보고 중얼거렸다. 오다 가문에서는 이미 측량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측량을 실행할 수 있는 인원이라고 하면 시즈코의 쿠로쿠와슈 이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노부나가가 명한 측량에는, 불필요한 성의 철거가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의 토목공사가 필요해져, 직접 모두 처리하기보다는 순서를 기다리더라도 시즈코에게 인재파견을 요청하는 쪽이 싸게 먹히게 되었다.


"우선도가 높은 지역은 오우미와 에치젠입니다. 배치(差配)에 관해서는 아시미츠(足満) 님께 확인을 받았습니다"


쇼우(蕭)가 시즈코가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된 내용을 설명했다. 요청서를 받고, 쇼우가 기본 계획의 초안을 잡아, 아시미츠와 노부나가의 승인을 얻은 후에 인재 파견을 하고 있었다.

당초, 쇼우는 선착순으로 요청을 받아 측량지(測量地)의 넓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한 인원을 균등하게 파견하는 계획을 세웠다. 겨우 인재파견 쯤이야라고 쇼우가 얕보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계획서를 본 담당자들은 하나같이 불만을 이야기했다.

파견될 곳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허술(杜撰)한 계획에 영주까지 끼어들어 정치적인 다툼(駆け引き)이 시작될 상황이었기에, 아시미츠가 지휘하여 계획을 재검토했다.

영지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안건이기에, 파견될 곳의 사정이나 지리적인 정보, 파견 인원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쇼우는 꼼짝없이(否応なく)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정들은 처음부터 다 계산했다고 말하는 듯 자료를 한 손에 들고 차례차례 원안(素案)을 써내려가는 시즈코를 보고 그 넓은 견식과 높은 실무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묘하게 오우미 일대에 인원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어째서이지?"


"아즈치(安土) 주변의 조사와 그에 부수되는 공사들 때문입니다"


"과연"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이 될 아즈치 성(安土城)은, 군사적인 방어시설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편리성(利便性)을 중시하여 설계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즈치 성 근처에 있는 군사적 거점이 되는 성들은 모조리 파기된다고 했다.

총이나 화약의 등장에 의해 화력면이 돌출된 전국시대에서 난공불락의 성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예 방어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주변 지역에 대량의 군을 잠복시켜둘 수 있는 거점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쪽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도 쿄(京)나 사카이(堺), 오와리나 토우고쿠(東国)를 잇는 요충지에 위치하여, 물류의 동맥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절호의 위치였다. 쿄 방면이나 토우고쿠 방면 중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한편으로는 수운(水運)으로 갈아타기 전의 거점이 되고, 한편으로는 산을 넘는 것에 대비한 보급지(補給地)로서 기능하여, 아즈치에 대량의 돈이 떨어질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사카이의 호상(豪商)들도 앞다투어(鎬を削って) 가게를 내려고 하겠지. 어쨌든 알겠어. 공사가 개시되면 자재의 운반이 필요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괜찮으려나"


"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즈코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것에 쇼우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쇼우가 떠나간 후, 시즈코는 별도로 분개(仕訳)된 서류를 보았다. 내용은 시즈코가 운영하는 학교에 관한 것이었다.

당초에는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설학원(私塾)이었으나, 유능한 인재를 배출한다는 평가를 얻은 후에는 그 규모는 확대 일로를 걷고 있었다.

소문을 들은 유력자들이 경쟁하듯 자녀들을 보내게 되어, 도저히 시즈코 저택의 부지 내에서 해결될 규모가 아니게 되었다.

신분이 높은 자제들은 시중을 들어줄 인원도 데리고 오기 때문에, 급거 학교와 병설되는 기숙사(寄宿舎)도 짓게 되었다.

광대한 부지를 필요로 하는 만큼 시즈코 저택 부근에서 토지를 확보할 수 없어, 산기슭(山裾)에 있는 일대를 개척하여 토지가 준비되었고, 사상 최초의 완전 기숙사식 학교로서 5월부터 개교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거참, 면학(勉学)에 있어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전원 일률적인 환경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나"


머리를 긁적이며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할 예정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국내(本邦) 최고 학교라는 사전 선전(触れ込み)에, 오다 가문 일족이나 중신들의 자제들이 책상을 나란히하게 된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연줄을 만들려고 자녀들을 보내려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금은 윤택하게 모여, 학교의 정원은 200명 정도가 될 거라 예상되었다. 한편, 기숙사에 대해서는 500명 가까운 인원이 생활할 수 있는 규모가 필요해져, 대사원(大寺院) 뺨칠 정도의 시설이 생겨났다.


"뭐, 실제로 운용해보지 않으면 불편한 점 같은 건 알 수 없지. 예정보다도 정원이 많은 것은 모른 척 하자"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킨 시즈코는, 결재 서명을 하고는 서류를 치웠다. 이윽고 시일이 흘러 4월 후반. 멀리서 온 입학 희망자들을 기숙사에 받아들여, 예상보다 한 발 빨리 학교의 운영이 시작되었다.




5월이 되어도 노부나가의 내정 중시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순위 관계상 뒤로 밀려나 있던 삼림정비(森林整備)에도 착수하여, 정기적으로 간벌(間伐)과 식수(植樹)에 힘써, 마을 산(里山)의 전망(見通し)을 좋게 하여 산적(山賊)이나 강도(野盗) 등이 잠복할 장소를 없앴다.

계획적인 벌채(伐採)와 식수가 이루어진 덕분에, 표토(表土)의 유출이 적어져서 하천으로 유입되는 토사도 적어졌다. 산 뿐만이 아니라, 하천 정비(河川整備)에 수해 대책(水害対策), 항만 정비(港湾整備), 도로의 유지보수(街道普請), 측량(検地)과 병행하여 새 영지에 대한 호적(戸籍) 도입(配備), 자경단(自警団)의 조직과 범죄 단속 등을 행했다. 얼마나 노부나가가 내정에 힘을 쏟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사회에서 불안을 제거하여 활발한 경제 활동을 촉진하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풍족해진다는 것이 노부나가의 생각이었다.


노부나가는 자신 뿐만이 아니라 가신들에게도 사회 기반에 투자를 하여 정비하도록 명했다. 영주 자신이 주도하여 공공사업을 함으로써 고용을 창출한다. 백성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 경제 활동이 가속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힘을 쏟은 것이 도로 정비였다. 유통을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거듭 설명했다.

전국시대의 상식에 따르면, 도로 정비 같은 걸 하면 외적(外敵)의 침입을 쉽게 만드는 경국(傾国)의 정책이다. 이 때문에 하천에 다리를 놓으려고조차 하지 않고, 길도 가능한 한 구불구불하게(蛇行) 만드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적에게 공격받을 리스크보다도, 교통을 편리하게 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만드는 쪽을 우선시했다.


이 정책에는 오다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호죠(北条)도 크게 혼란스러워했다. 머지않아 시작될 타케다(武田), 호죠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될 뿐이기에, 노부나가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병행하여 실시된 '칼사냥'에 의해 병사가 될 백성들로부터 무기를 압수한 것이 혼란에 박차를 가했다. 각자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 긴급한 경우 즉시 대응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하게 이득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비군(常備軍)을 보유한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추진하고 있을 뿐이라 이미 정해진 노선이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전투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달려온다. 그 숙련도는, 무기를 들기만 했을 뿐인 초짜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상비군이란 것은 항상 자금을 소비하는 돈 먹는 하마(金食い虫)이다. 상비군을 가진다는 생각 같은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5월 중순을 지나도 노부나가에게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다.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후계자인 노부타다(信忠)도 군사행동을 하고 있는 기색이 없었다. 오다 군이 크게 움직일 때 반드시 큰 공을 세우는 시즈코도, 뒷바라지(裏方) 일에 종사하고 있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타국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무장해제에 응하지 않는 종교단체(寺社)들을 불태우고 있는 호리 히데마사(堀秀政) 뿐이었다. 노부나가로부터 대장으로 임명되고, 시즈코로부터 나가요시(長可)를 빌려 동분서주하며 세상을 떨게 하고 있었다.

종교단체에 대한 대처와 병행하여, 나가요시는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다른 임무에도 종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영지 내에 부정하게 설치된 관문(関所)의 발견과 파괴였다.

이러한 기강잡기(綱紀粛正)라고도 할 수 있는 규율(規律)의 집행(引き締め)은, 노부나가에 대한 반란을 꿈꾸는 반란분자들의 결탁을 저해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반란이든 혁명이든, 상대의 부정을 규탄한다는 대의명분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자타에게 모두 엄격하게 규율을 적용하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는 상대에게 원한을 품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렵다. 게다가 널리 민초(民草)들에게까지 개척이나 길의 유지보수 등의 일거리를 주고 있기에,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는 사람 자체가 적어졌다.

유교(儒教)의 경서(経書) 중 하나인 '대학(大学)'에서 말하길, '소인한거위불선(小人閑居して不善を為す)'이라 했다. 이것은 소인(별볼일없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눈이 없으면 나쁜 짓을 한다는 의미이다.

즉 널리 일거리를 주어 만민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관여하도록 유도하면, 자연스럽게 다툼은 적어지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이런 외향적인 움직임과 병행하여, 내부의 단속을 철저히 했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는 군사행동이 많아서 영지 내부를 비워두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내부에 부패가 생겨나게 되어버렸다.

그것은 세금(年貢)의 횡령이었다. 세금의 횡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부수입(役得)으로서 묵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와리에서는 징세(徴税)에 관계되는 인원 모두에게 그에 걸맞는 봉급이 지급되고 있기에 노부나가가 법령에 의해 금지할 것을 명언했었다.

법이 정비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추가적인 이익을 탐하여 나쁜 짓에 손대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었다.

지금까지는 전란(戦乱)에 정신이 없었고, 노부나가 자신도 세입(歳入)과 세출(歳出)이 지나치게 커져서 세세한 부분까지는 다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눈이 닿지 않는 것을 이용해서 다른 서류에 섞어넣거나 서류를 위조하거나 해서 사복을 채우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신히 노부나가 자신이 여유가 생겨서 내부 조사에 착수해보니, 놀랄 정도로 많은 횡령이 발각되었다. 하나같이 대규모 횡령이라고는 할 수 없는, 10석(石) 정도의 횡령을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상습범들이었다.

고작 10석, 하지만 10석. 횡령을 방치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나쁜 싹은 일찌감치 잘라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커져서 돌이킬 수 없는 부정이 되어 현실화(顕在化)된다.

백성이란 존재는 관(官)의 부정에는 민감하여, 관에 대한 불만이 쌓이게 되면 최종적으로 오다 가문에 대한 불만이 되어 열매를 맺는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실책을 반성하고, 대대적으로 칼질을 할(大鉈を振るう) 생각으로, 출혈을 각오하고 착수했다.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사복을 채우는 데는 머리가 잘도 돌아가는구만"


나가요시는 어이없다는 듯 내뱉았다.

총대장인 호리를 필두로, 나가요시는 영지의 순찰을 하고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임검(臨検)이지만, 실제로는 횡령 사실을 규탕하고 즉각 태도를 고치도록 경고하고 있었다.

과거의 횡령에 대해서는 불문에 부치고, 태도를 고친다면 지금의 지위도 인정(安堵)한다는 비교적 온화한 경고였다. 그렇기에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얼버무리려고 하는 패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최후통첩이기도 했다. 경고를 받아들여 개심한다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무력으로 처단당하게 된다. 실제로 호리와 나가요시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영주들의 목을 물리적으로 날려버렸다.


"어디, 이 주변이었던가? 신고(届け出)되지 않은 관문인가 하는 건"


신고되지 않은 관문 같은 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호리와 나가요시는, 밀고가 있었던 숨겨진 관문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봐도 관문은 커녕 작은 길(小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거짓 정보를 받은 건가?"


"아니, 그렇지 않아…… 냄새가 나는군. 소행(作為)을 감추려고 하는 조무라기(小者)의 냄새가 나"


한번 둘러보고 관문을 발견하지 못한 호리와 대조적으로, 나가요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감이, 교묘하게 위장된 부자연스러움을 꿰뚫어본 것이다.

주의깊게 주위를 관찰하고 있던 나가요시는, 위화감의 정체를 포착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잡초(下草)들의 높이가 기묘하게 균일했던 것이다. 나가요시는 시험삼아 잡초를 한 웅큼 움켜쥐고 뽑아 보았다.

그다지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깨끗하게 뿌리째 뽑혔다. 명백하게 인위적으로 심어진 것이었다. 표토를 발로 긁어내자, 밟아서 다져지고 건조한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도로폭을 볼 때 주요도로는 될 수 없지만, 개인이 밀수(抜け荷)를 하기엔 충분하군. 평소에는 이렇게 감춰놓고, 밀수를 하려는 상인과 결탁해서 뒷길을 이용한다는 거군. 어디까지나 소규모의 밀수에 그치니 쉽게는 발각되지 않지"


주요 도로(主幹道路)에서 떨어진 가느다란 길(細道)에서 근근(細々)하게 잔돈(小銭) 벌이나 할 생각이겠지만, 사태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금지품의 반입이나 범죄자의 유입이나 탈출 등 중대한 범죄로 이어지는 악행이었다.


"위장에 쓴 흙은 젖어 있는데 아래의 길은 말라 있어. 즉, 이런 짓을 한 패거리는 아직 가까이 있다는 거야"


나가요시는 히죽 미소를 떠올리더니, 장대한 바디시(bardiche)를 고쳐쥐었다. 그의 부하들은 사냥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각자가 손에 든 무기의 덮개를 벗겨내어 칼날을 드러낸 후 나가요시의 뒤를 따랐다.


"좋아, 그럼 갈까"


들토끼라도 사냥하는 듯한 태평한 말투로 나가요시는 호령을 내렸다. 나가요시의 부하들은 말없이 무기를 치켜들고 나가요시를 선두로 길 안쪽으로 분산되어 들어갔다.

아마도 산을 뒤지게(山狩り) 되겠지만, 호리는 말릴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은폐 공작의 증거로서, 부자연스럽게 잡초가 심어진 흙을 병사들에게 회수하게 했다.

이에 대해서는 실행범은 물론이고, 두목(元締め)에게도 책임을 지게 할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나, 호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영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6월을 코앞에 두고, 시즈코는 비닐하우스 내에서 작업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수확기를 맞이한 카카오에 있었다.

카카오의 모는 2, 3년이면 성목(成木)으로 성장한다. 1571년 1월에 심은 카카오도, 말라죽어버린 몇 그루를 제외하고 많은 모가 성목으로 성장했다.

카카오는 일반적인 과수(果樹)와 달리, 뿌리에 직접 꽃이 피며 열매를 맺는 생태(植生)를 보인다. 이것을 '간생화(幹生花)'라고 부르며, 카카오의 경우에는 수술과 암술이 같은 꽃에 있는 양성화(両性花)로, 벌레에 의해서만 수분(受粉)이 이루어진다.


카카오의 꽃은 계절에 관계없이 1년 내내 피며, 1년 전체로 보면 한 그루의 나무에서 5000에서 1만 5000개나 되는 꽃이 핀다고 한다. 하지만, 개개의 꽃의 수명은 대단히 짧아서 겨우 1, 2일만에 시들어버린다.

오후 늦게 개화를 시작하여, 다음 날 오전에 완전히 개화한다. 그리고 개화한 다음 날에는 그 전부가 시들어버린다. 즉, 수분이 가능한 시기가 대단히 한정되는 것이다.

게다가 가지나 뿌리의 구별없이 꽃을 피우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높은 곳에 꽃이 피는 경우도 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고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러한 이유로, 카카오의 결실률(結実率)은 1만 개의 꽃에 대해 열매를 맺는 것은 100개에서 300개 정도로 낮아져버린다.

당연히 모든 꽃에 대해 인공수분(人工授粉)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대량으로 깔따구과(ユスリカ)의 벌레를 양식하여 수분을 위해 풀어놓았다. 예전에 서양인이 카카오를 재배했을 때, 카카오 나무와 그 주변을 지나치게 청결하게 해서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시즈코도 카카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2년째부터 다양한 곤충을 투입하여 수분을 시도했다. 그 결과, 이 환경에서는 깔다구과를 풀어놓았을 때 수분률이 높았다.

이것을 고려하여 3년째가 되는 올해, 깔다구과의 벌레만 집중적으로 방충(放虫)했다. 상성이 좋았는지, 겨울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달리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는지 상세한 분석은 이제부터 해야 하지만, 어쨌든 많은 카카오가 열매를 맺었다.


방충에서 약 반년이 지난 현재, 많은 카카오 나무에 방울(鈴) 모양으로 카카오팟(cacao pod)이라 불리는 카카오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수확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시즈코가 아니라도 가능하지만, 그녀는 자신 이외의 사람이 수확 작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수확할 때 가지나 뿌리를 다치게 해버리면, 이듬해부터 그곳에는 꽃이 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즈코는, 손이 닿는 범위는 작은 칼 등으로 주의깊게 수확하고, 높은 곳에 있는 것들은 특주(特注)한 전정가위(高枝切り鋏)를 사용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같은 건 바랄 수 없다보니 통짜 철제(総鉄製)라서 그에 걸맞는 무게도 있기에 다루기가 어려워, 시즈코 혼자서 작업하고 있었다.


"좋아…… 이제 괜찮으려나"


시즈코는 눈 앞에 매달려 있는 카카오팟을 수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수확용의 작은 칼을 꺼내어 신중하게 열매 부분만을 잘라냈다.

수확된 카카오팟은 두껍고 단단한 껍질로 덮여 있으며, 그 안에서 하얗고 부드러운 과육(섬유질이기에 펄프(pulp)라고 부른다)에 둘러싸인 씨앗(種子), 소위 말하는 카카오 빈즈(cacao beans)가 30개에서 45개 정도 얻을 수 있다.

이 펄프 부분도 식용 가능하지만, 잘 익어 반투명하게 비치는 것이라면 약간의 단맛과 약간의 신맛을 갖는 나타데코코(nata de coco) 같은 식감을 가진다.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지만, 카카오 빈즈에 초콜렛의 풍미를 주기 위해 필요한 부위라서 펄프째로 씨앗을 꺼낸다.

현대에서의 1차 발효(発酵)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방법이 사용된다. 하나는 수확한 씨앗을 바나나 잎으로 감싸 발효시키는 히프(heap) 법. 또 하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등에서 채용되는 나무 상자를 이용한 박스(box) 법이 있다.

카카오 빈즈의 품종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방법을 채용하더라도 1주일 정도면 발효가 끝난다. 시즈코의 경우, 그다지 대규모가 아닌데다, 동시에 재배하고 있기에 바나나 잎을 입수할 수 있었기에 히프 법을 선택했다.


이 공정에서는 크게 만든 대나무 바구니에 바나나 잎을 가득 깔고, 그 위에 펄프로 감싸인 상태인 씨앗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바나나 잎을 덮는다는, 히프 법의 발전형인 배스킷(basket) 법을 도입했다.

현대에서는 '질'보다도 '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병변(病変)한 카카오 빈즈도 같이 발효시켜 버리지만, 시즈코는 꼼꼼하게 선별했다.

병에 걸려 검게 변색된 카카오 빈즈는 당연히 제거하고, 극단적으로 크기가 다른 씨앗도 선별하여 제거했다. 이 때 지나치게 커서 선별에서 떨어진 씨앗을 꺼내 주위를 덮는 펄프를 찢어서 입에 넣었다.


"음ー, 새콤달콤하네"


1차 산업 종사자의 특권인 집어먹기(つまみ食い)를 감행한 시즈코는, 증거인멸을 하듯 남은 씨앗을 품종개량용으로 분류했다.

카카오 빈즈를 발효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발아(発芽) 능력을 잃게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향미(香味) 물질의 전구체(前駆体, precursor)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발효 전의 카카오 빈즈는 전술한대로 점성(粘性)이 있는 펄프에 감싸여 있기에, 빈즈끼리 달라붙어 공기가 통하지 않는 혐기(嫌気) 상태가 되어 있다. 이 혐기 상태에서 활약하는 것이 '효모(酵母)'이다.

효모는 약 15퍼센트 정도 존재하는 펄프의 당분을 양식으로 활동하여, 당분을 알코올로 바꾼다.

이 1차 발효가 되는 것으로, 펄프가 분해되어 빈즈에서 벗겨져 떨어지던가 카카오 빈즈에 그 성분이 흡수된다.

그렇게 되면 카카오 빈즈가 공기에 접촉하는 호기(好気) 상태가 된다. 이 후, 카카오 빈즈 자신이 발효하는 2차 발효로 스테이지가 이동한다.


2차 발효에서는 활동의 주체가 '효모'에서 '유산균(乳酸菌)'이나 '아세트산균(酢酸菌)'으로 바뀐다. 2차 발효 초기단계에서는 유산균이 많지만,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아세트산균이 늘어난다. 이 때, 아세트산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차 발효에서 산출된 알코올을 베이스로, 아세트산균은 아세트산(酢酸)을 생산한다. 이 아세트산이 카카오 빈즈에 스며들면, 카카오 빈즈의 떫은 성분을 줄요준다. 거기에 알코올과 산이 반응하면 에스테르(ester)가 생성되어, 이것이 독특한 좋은 향기를 낳는 것이다.

2차 발효에서는 균류가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好気性)이기에, 하루에 세 번 정도 교반(撹拌)하여 발효를 촉진시키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카카오 빈즈의 알코올 발효를 이용하여 카카오 술을 만들 수 있다. 카카오의 원산지인 중남미에서는 옛부터 마시던 술이다.


시즈코가 집어먹던 씨앗을 포함하여 모양이 크고 무거운 씨앗을 선별하여 다음 세대의 모를 육성한다. 미리 준비해둔 화분에 씨앗을 뿌리고 느긋하게 생육을 지켜본다.

일본의 기후에 적응한 카카오 빈즈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큰 씨앗이 튼튼한 품종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양성을 가지게 하여 교배를 계속하면, 언젠가 우수한 유전형질이 표출될 가능성도 있다.


카카오의 씨앗을 심은 화분을 그늘(日陰)에 안치한 후, 다음으로 시즈코는 커피 나무를 확인하기로 했다. 역시 이쪽도 시즈코가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카카오와 커피 이외의 것은 시즈코의 손을 떠나 버렸다.

남은 식물들에 대해서는 전임(専任)의 관리자(世話係)를 붙여 인수인계를 실시했다. 그 이유는 시즈코는 바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횟수도 증가하기만 하는 경향이라, 시즈코를 전임으로 하면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커피 나무는 나무 높이(樹高)가 90cm까지 성장해 있었다. 100cm를 넘을 무렵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에, 당분간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온실환경에 있음에도 꽤나 느릿한 성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커피 나무의 상태를 관찰했다.

다행히 질병같은 징후도 없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 빈즈를 발효시키고 있는 대나무 바구니에 번호와 날짜를 적어넣고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부근에 있는 휴식용의 벤치에 앉아서 시즈코는 일련의 작업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기록했다.

시즈코가 꼼꼼하게 기록을 작성하기 때문에 비교적 용이하게 인수인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녀 자신도 그 때 어떤 의도로 작업을 했는지, 어떤 발견을 했는지 등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떄문에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

이제와서 기억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질 리도 없으니, 귀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카카오 나무와 커피 나무에 관한 작업 일지를 작성했다. 대략 다 정리가 끝났을 무렵, 반투명한 팩티스(factice) 너머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 모습이 보였다.

곧장 이리로 향하는 사람 모습이 몇 명으로 구성된 단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시즈코는 또 성가신 얘기가 들어왔구나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시즈코 님, 급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몸이 안 좋으시다면 다른 날에 다시 오시도록 전하겠습니다만?"


"괜찮아, 잠깐 생각을 좀 하고 있었던 것 뿐이야. 오늘 손님이 올 예정이 있었던가?"


"아뇨, 오늘 예정된 손님은 없습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쇼우가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급한 손님 방문이라고 하면, 대단히 귀찮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확신했다.


"그래서, 누가 왔어?"


"네. 시바타(柴田) 님과 삿사(佐々) 님, 그리고 저희 아버지입니다"


"……성가신 일, 확정이잖아"


시즈코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흘러나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에 대한 도발에 관해 작전회의가 분규(紛糾)하고 있다고 했다.

각각 세력이 팽팽한 상태에서의 파벌싸움이기에, 무공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는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각각의 파벌의 수장이 찾아왔다고 하면 피할 수도 없다.


"뭐, 이 꼴로 만날 수는 없으니…… 일단, 손님을 응접실(応接間)로 안내하고, 그 동안 갈아입을 옷이라던가 이런저런 준비를 부탁해"


"옛"


한 번 깊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준비를 위해 달려나갔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입욕을 마친 후 응접실로 가자, 그들은 이미 준비된 좌탁(座卓)에 앉아 있었다. 본래 시즈코를 따라와야 할 케이지(慶次)는,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얽혀 이야기가 탈선하는 것이 싫었는지, 술병(徳利)을 한 손에 들고 목욕탕으로 가버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사전 연락도 없이 방문했음에도 회의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이조(才蔵)를 대동한 시즈코가 상좌에 앉자, 시바타가 대표하여 인사를 했다.


"여러분도 바쁘시겠죠. 쓸데없는 말(建前)는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은 듣고 있습니다. 오늘 용건은 카가 일향종의 건이시겠죠?"


"헤아리신 대로, 저희들은 카가 일향종 공격을 앞두고, 첫걸음부터 발이 꼬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나다 가문(真田家)이라는 첩보부대를 거느린 지금, 외부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 내부의 동향도 실시간으로 시즈코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보고에 의해 대략적인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카가 일향종을 향한 도발에 관해서는, 누가 그걸 담당할지로 다투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도발(徴発, ※역주: 원문에는 '징발'로 되어 있는데, 이것도 작가가 도발(挑発)과 일본어 독음이 같은 한자를 잘못 쓴 것으로 보임)하고, 어떻게 상대에게 손을 쓰게 할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정벌의 대의명분을 얻은 사람에게야말로 제1 무공이 있다고 다들 생각하여, 서로 견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을 독점해서는 주위의 반감을 사게 되고, 그렇다고 중용(中庸)적인 안을 내놓으면 주위에서 반론이 나와 기각된다.


"지금 상태로는 시간만 흘러가 도저히 주상의 기대에 부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저희들 중 누가 주도해도 모가 나기 때문에, 제 3자인 시즈코 님의 조력을 얻고자 왔습니다"


"(으ー음,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군요. 무공을 둘러싸고 서로 견제할 정도라면, 아예 특정한 무공으로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만……"


"누구의 공인지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논공행상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바타가 입을 열기 전에 삿사가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그의 지적은 당연한 것으로, 책임이나 상벌의 소재라는 것은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다툼의 씨앗이 된다.

공이 있다고 인정받고, 보상이 있기에 목숨을 거는 것이며, 다소 무리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뇨, 무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 건에 대해서만' 전원의 연대책임이자, 전원의 무공으로 하는 겁니다. 그 이후의 무공에 대해서는 종래대로 각자 평가하면 되는 겁니다"


"음……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만……"


"죄송합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카가 일향종을 도발하여 전쟁터로 끌어내면 제1 무공이라고 생각하고 계시지요. 하지만 주상께는, 그들을 전쟁터로 끌어낸다는 것은 대전제(大前提)에 지나지 않습니다. 준비단계이기에, 이걸 전원이 해내야 하는 공통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해야 처음으로 각자 겨룰 수 있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전원의 책임이 됩니다. 카가 일향종을 전쟁터에 세우고, 그로부터 얼마나 빠르게 평정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겨루시면 됩니다"


설명을 들은 세 사람은 신음했다. 노부나가는 카가 일향종의 토벌을 명했다. 즉, 카가 일향종을 공격하는 데 충분한 대의명분을 얻는 것은 당연히 가능해야 하는 요건이 된다.

역설적으로, 거기까지의 단계는 노카운트로서 고려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참가자격으로 간주하며, 실제로 카가 일향종을 정벌한 실적에 따라 무공을 매기는 평가방식이라는 쪽이 공평하다.

구체적인 성과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기에, 노부나가로부터도 포상을 받기 쉬워진다.


"……확실히 그렇군. 주상께서는 도발하여 전쟁터로 끌어낸 후에 정벌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무공이라고 요란하게 떠들어봤자 명예(ほまれ)가 될 수 없겠지. 그보다도 주상의 기대 이상의 속도로 제압하면 주상께서 기꺼이 생각하시겠지"


"우선은 겨룰 무대를 준비하는 데까지 협력한다……라"


"이야기는 이치에 맞는군. 시바타 님도 토시이에 님도 이의는 없으시겠지?"


세 사람은 자신들 나름대로 납득하는 말을 찾아내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작전회의는 어떻게 되겠다, 고 시즈코는 휴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그렇게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릴 리가 없다, 라는 것을 그녀는 후에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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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6 1574년 3월 하순



시즈코는 중단했던 청서(清書)를 재빨리 끝낸 후,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알현에 임했다. 소성(小姓)이 도착을 알리고 시즈코가 방으로 들어가자, 미츠히데(光秀)의 사자는 엎드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인사치레는 필요없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해가 질 때 찾아와서 그 날을 넘길 수도 없다는 용건이니만큼, 시즈코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고자 재촉했다.

송구스러워하면서도 미츠히데의 사자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쿄(京)의 치안이 회복된 이래, 상인들이 들여오는 다양한 물건들이 유통되어, 공가(公家) 들은 물론이고 서민에게까지 폭넓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큰 길에는 큰 가게들이 늘어서서 진기한 것들을 팔고 있다.

개중에서도 가회(歌会)나 다도회(茶会)에 빠질 수 없는 과자를 취급하는 상점은 공가들의 심부름꾼들이 경쟁하듯 상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황(帝)이 주최하는 어전 가회(歌御会) 자리에서, 반(反) 고노에(近衛) 파의 공가들이 제공된 차과자(茶請け)에 트짐을 잡았다.


말하자면, 근년 조정에 유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노에 가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천황의 위광(威光)까지 흐려져 버렸다.

고노에 가문만 우쭐하게 하지 말고 천황의 권위가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불경(不敬) 죄를 물을 수 있는 도발적인 발언이지만, 이렇게까지 얕보이면 천황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황은 조정에 가까운 미츠히데를 의지하여, 고노에 가문을 통하지 않고 공가들을 놀라게 할 과자를 요청했다.


"……격조높고, 그러면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맛있는 과자 말인가요……"


용건을 듣기 전부터 안 좋은 예감은 들었지만, 나쁜 예감일수록 잘 맞는다. 격조 따위와는 거리가 먼 서민파의 시즈코로서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저희들도 백방으로 손을 썼습니다만, 결국 이거다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햇습니다……. 하지만, 제 주인은 시즈코 님이라면 좋은 지혜를 빌려주실거라고……"


"흠……"


시즈코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눈부시게 머리를 굴렸다. 대략적인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으며, 사자가 지참한 미츠히데의 서신으로부터 공가들의 노림수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정 내부의 권력투쟁의 일환인 것이다. 조정에서의 역학(力学)이 고노에 가문의 독무대인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는 세력이 있으며, 그들이 수하(手勢)를 이용하여 천황을 도발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실제로, 천황은 고노에 가문에 의지하지 않고 미츠히데에게 협력을 타진했다. 고노에 가문 일파를 배제하는 첫걸음에는 성공했으나, 천황이 의지한 상대가 나빴다.

조정의 사정에도 밝은 미츠히데는, 공가들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최선의 한수로서 시즈코를 지목했다.

시즈코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자의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올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시즈코의 할아버지가 황수포장(黄綬褒章, ※역주: 우리나라의 산업 포장에 해당함)을 받게 되어, 당시의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기념품의 존재였다.


"(그거라면 격조높고 천황의 권위를 나타낼 수 있겠네) 폐하께서 직접 의뢰하신 것이라면 거절할 수도 없겠군요.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폐하의 위광을 나타낼 수 있는 과자의 건, 잘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문의해볼까도 생각했지만, 흑막의 노림수가 드러난 이상 받아들이라고밖에 말하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미츠히데의 사자가 돌아간 후, 시즈코는 다시 천황에게 어울리는 과자에 대해 생각했다.

연출에 관해서는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문제없다. 중요한 내용물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 시즈코는 지혜를 쥐어짜게 되었다.


"확실히 나밖에 할 수 없는 의뢰려나. 고노에 님이 지나치게 힘을 가지는 걸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꽤나 어려운 문제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단순히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기만 하는 거라면 미츠히데에게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의 인맥(伝手)을 이용하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시즈코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


"천황이 자발적으로 찾아낸 오다 가문에 속하지 않는 세력. 그것을 내세워서 조정에서의 세력을 양분하려는 자들이 있다…… 라"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오다 가문과 친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조정에게 노부나가는 최대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정도 굳게 단결된 조직(一枚岩)은 아니라, 전원이 노부나가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세력 기반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품은, 오다 가문에 반항적인 공가도 존재했다. 무가(武家)나 불가(仏家)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가 내에서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키히사의 칸파쿠(関白) 취임 이래, 이 파워 밸런스가 크게 무너진 것이리라.

지금까지는 세력 유지에 급급하여 표면적으로 반항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하를 버림패로 쓰게 되더라도 큰 도박을 걸어온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대는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흑막까지 한꺼번에 뭉개버리는 것은 무리겠지만, 물어뜯어온 이상 팔다리 하나 쯤은 받아야겠지"


직접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천황의 위엄을 빌려 도박을 한다. 나쁘지 않은 수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략이 뛰어난 미츠히데의 눈에는 그 속셈이 뻔히 보였다는 데서 그들의 운이 다한 것이다.

간신히 찾아온 평화로운 시간에 쓸데없는 짓을 꾸며 여가를 빼앗겼으니,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으면 시즈코의 속이 풀리지 않는다.

이걸 기회로, 흑막의 목젖 앞에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중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좋아! 내용물은 그렇다치고, 겉포장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얼른 시작하자"


좋은 작전을 떠올린 시즈코는, 각처에 협력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붓을 들었다.




각처에 편지를 날린지 며칠이 지나, 시즈코가 머물고 있는 쿄의 저택에는 편지를 받은 상대들이 모여 있었다. 고노에 사키히사,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 등 세 사람이었다.

시즈코는 시제품(試作品)을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나쁘지 않은 취향이군요"


시험 제작된 그릇(容器)을 보며 호소카와가 감상을 말했다. 시즈코가 참고로 한 것은 봉보니에르(Bonbonnière, 봉봉 용기(容器)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황실(皇室)의 경사(慶事)의 축하연(祝宴)에서 답례품(引き出物)으로 나누어주었던 '과자그릇(菓子器)'이었다.

펼친 부채를 본떠, 유황으로 표면을 그슬린 은(いぶし銀)으로 표면을 마무리한 손바닥 사이즈의 봉보니에르는 우아하면서 중후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천박하지 않은 풍격(風格)을 갖추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과자는, 오와리의 술곳간(酒蔵)에 특별히 만들게 한 특히 진한 탁주를 넣은 일본주 봉봉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과자였다.

국화를 본딴 봉봉을 깨물면, 안에서 걸쭉하고 농후한 당액(糖液)이 퍼져나간다. 특별히 발효를 끝낸 거르지 않은 전국(醪)을 부숴넣어, 증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농도를 올린 탁주를 써서 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럽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과자의 발안자(発案者)를 '니히메(仁比売)'로 한다는 겁니까"


미츠히데의 말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대의 노림수는 노부나가와 미츠히데의 사이를 나쁘게 하는, 말하자면 이간(離間) 공작(工作)이다.

노부나가가 고노에 가문의 딸인 시즈코를 내세우고, 그에 대해 미츠히데는 천황의 신임이 두터운 '니히메'를 받든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로서는 오다 가문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동일인물이다. 그 사실을 모르면 적인 셈이다.

이걸 기회로 미츠히데에게는 반 오다 세력의 공가들이 접촉을 시도해오겠지만, 그 모두가 노부나가에게 그대로 알려지게 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분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계책이 성공했다며 마각(馬脚)을 드러낸다는 것인가"


사키히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핵심이 되는 가회(歌会)는 카노 쇼에이(狩野松栄)의 그림에 대해 시를 지어 그 완성도를 겨룬다는 것이다.

그림의 선정은 사키히사가 하고, 호소카와가 시를 생각하고, 미츠히데와 친밀한 사이인 공가가 그 시를 읊어 상을 탄다. 소위 말하는 조작(出来レース)이지만, 무대 뒤편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한, 적측인 사키히사가 끼어 있기에 들킬 일은 없다.


"이럴 때는 제 3자를 끼워넣는 게 좋지. 어딘가에 트집을 잡으면 여러 방면에 싸움을 거는 셈이 되니까"


시즈코는 속이 시커먼 남자들의 술책(駆け引き)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림은 카노 파의 것이고, 시에 대해서는 호소카와가 저명한 시인(歌人)과 협력하여 상을 타는 데 어울린다는 언질을 받는다.

그리고 천황의 위광을 나타내는 과자는, 눈이 높아진 사키히사가 봐도 발군(出色)의 완성도였다. 그림도 시에도 트집을 잡히지 않고, 상품(恩賜品)의 발안자는 천황이 아끼는 사람이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은 기세가 붙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 미츠히데라는 독을 마시고, 가진 패를 드러내어 실각한다는 미래를 향해 자기 발로 나아가게 되리라.


"승인을 받은 듯 하여 다행입니다. 그럼,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의 성과는 직방(覿面)이었다. 미츠히데는 반 오다의 공가들의 환심을 사서, 알게 된 정보를 사키히사에게 흘리는 것으로 반 오다 세력의 손발을 잘라나갔다.

그들은 의지할 곳을 찾아 미츠히데에게 기울었지만, 미츠히데와 사키히사가 공모하고 있었기에 사육(飼い殺し)되는 꼴이 되었다.


"순조롭네, 순조로워"


어전 가회(歌御会)에서 선보여진 봉보니에르는 천황의 위럼을 충분히 나타내었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사되는 물건으로 정착되었다. 용기에는 쥬로쿠야에오모에기쿠(十六八重表菊), 소위 말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황실에만 납품되게 되었다.

계속해서 황실에 봉보니에르를 납품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세 사람에게 뒤를 맡기고 쿄를 떠났다.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지정한 그의 다실(茶室)로 향했다. 다실의 작은 출입구(躙り口)를 어렵지않게 통과하여 다른 사람이 없는 실내로 들어갔다.

방 밖에 호위는 서 있었지만, 내부의 대회는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는다. 호위조차 배제할 필요가 있는 화제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자연스레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이걸 보아라"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도착에 대해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하기 전에 접혀진 서신을 던져주었다.

마주보고 앉은 노부나가에서 화로(炉)를 넘어 날아온 편지가 다다미(畳) 위를 미끄러져 시즈코에게 도달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내용을 읽었다.

내용은 호죠(北条)의 동향에 관한 보고서였다. 호죠 가문에 잠복시킨 간자가 보낸 정보인데, 읽어나가던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건…… 까다롭게 되었군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굼벵이(愚図)라고 얕보았는데, 이렇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평가를 수정해야겠지"


호죠 가문의 당주,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가 오다 가문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로서, 오랫동안(連綿) 계속 칸토(関東)를 지배해온 호죠 가문의 자부심이 있었다.

설령 오다 가문에 굴복하더라도, 호죠 가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武田)와의 전쟁이 된다. 영토를 조금 차지하는 싸움이 아니라, 쌍방의 존망(存亡)을 건 총력전(総力戦)의 선봉(先鋒)을 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민들에게도 막대한 부담을 강요하게 되고, 오다 가문의 이익에 따라 이용당하다 망하는 미래가 예상된다.

이 이상 결단을 미룰 수는 없어, 오다 가문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케다와 손을 잡고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호죠 우지마사는 여전히 결단을 보류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케다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에서 패배를 맛본 이후, 우에스기(上杉)의 남하(南下)를 걱정하여 호죠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기우에 그쳤습니다만…… 지금도 여전히 동맹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케다 정벌을 나서면 호죠와도 창칼을 맞대게 되겠지요"


잠재적인 적은 그밖에도 존재했다. 그것은 아군인 우에스기 가문이 품고 있는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7남(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의 존재였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예전에 양자로 들인 그의 진영이, 호죠의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불투명했다.


"훗…… 외국(唐, 여기서는 중국의 당(唐) 왕조가 아니라 막연하게 외국을 가리킴)의 고사(故事)에, 어려운 일에 맞서는 자세를 화살에 비유한 일화가 있지. 한 대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의 화살을 묶으면 부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말썽꾸러기. 이 세 놈이 견고하게 결탁하면, 아무리 우리들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고전을 강요받게 된다"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모우리 모토나리(毛利元就)의 '화살 세 대의 가르침(三矢の教え)'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우리 모토나리가 아들 세 사람에게 전했다고 하는 '화살 세 대의 가르침'은 후세에서의 창작으로 간주된다.

노부나가가 말한 중국의 '서진록(西秦録)'의 고사나,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일화, 이솝 우화 등 세계 각지에서 그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기(好機)라고도 볼 수 있지. 이걸로 키묘(奇妙)에게 싸움에서 '지는 법'을 배우게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칸토에 반 오다의 교두보가 생겨버린다는 위기(瀬戸際)인데, 노부나가의 입에서는 예상밖의 말이 흘러나왓다.

시즈코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노부나가는 즐겁다는 듯 웃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싸움에서 지는 법…… 입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승패는 병가지상사. 하지만, 키묘는 패배를 모른다. 상승무패(常勝無敗)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언젠가 반드시 패배를 맛볼 때가 온다. 하지만, 지는 싸움에도 잘 지는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빠른 단계에서 포기하고 재기로 이어지는 유리한 상황에서 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는 것을 모르면, 스스로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간신(佞臣, 주군에게 아첨하는 부하)에 둘러싸여 스스로의 패인(敗因)을 찾으려고조차 하지 않게 되겠지. 그런 놈에게 천하를 지배할 자격은 없다"


시즈코의 말을 자르며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욱 높은 목표를 향해 반성,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해진다. 내가 뒷처리를 해줄 수 있는 동안 키묘에게는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약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깔보았던 사람들이 자신보다도 강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삼국동맹(三国同盟)이 성립되어도 좋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젊은 키묘라면 노회(老獪)한 호죠에게 패하더라도 수치가 되지는 않는다"


"호죠가 적대하지 않고 군문(軍門)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 호죠가 아무리 얼간이라도, 한 번도 창칼을 맞대지 않고 항복하지는 않는다. 호죠를 얕보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놈에게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호죠 가문의 긍지인지, 아니면 고난을 받을 영민들을 생각해서의 자비인지도 모르지만, 호죠는 반드시 내게 이빨을 드러낸다"


"거기까지 내다보시면서도 패하실 것입니까"


호죠는 우유부단해서 기치(旗幟)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확정요소(不確定要素)가 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토우고쿠 정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거기까지 내다보면서도 일부러 후계자인 노부타다의 수행의 기회로 삼는다. 평범한 영주(国人)로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는 비정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싸움에서 지게 되면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조차도 만회할 수 있다고 호언(嘯)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호죠도 타케다도 우에스기도 노부나가의 예상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패한 후의 국면까지 꿰뚫어보는 노부나가의 안력(眼力)에 시즈코는 어쩐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즈코, 네게는 키묘의 감시역(目付役)을 명한다"


"감시역인가요?"


"패배를 모르는 키묘는, 열세에 몰리게 되면 역전할 방법을 모색하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장래에 화근을 남기는, 어설픈 패전을 연출하게 된다. 네가 눈을 빛내어, 불리한 도박에 나서려고 하는 키묘를 제지(掣肘)하는 것이다. 키묘가 진심으로 경의를 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지. 몇 안 되는 존재인 네 말이라면 흥분(逆上)한 키묘의 귀에도 들릴 것이다"


"미력하지만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승락의 말과 함께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러가지 걱정거리(懸念事項)는 존재했으나, 이번만큼은 노부타다의 안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흠…… 패전한 후에 재기를 다짐하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격려(景気づけ)입니까?"


"패전에서 배우고, 그리고 재기에 거는 키묘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 좋겠다. 패배를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말이 좋겠지"


"그렇군요……"


시즈코는 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꾸미든 패배는 패배, 그걸 받아들인 후의 긍정적인 자세를 강하게 나타낸다. 꽤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아까의 고사에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럼,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다발이 된 화살은 꺾이지 않지만, 다발이 된 지푸라기는 쉽게 꺾이지.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굵은 화살이라고 착각한 것이 패인이로다!"


"……훗, 큭큭큭, 하하핫! 지고도 여전히 과대평가를 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어지간한 승산(勝算)을 보이지 않으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재미있도다!"


시즈코의 제안에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 후, 쿄로 곧장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천황으로부터 계속적으로 하사품(恩賜品)의 주문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미츠히데를 통해 들어와서, 식재료나 기술자를 오와리와 미노에서 수배할 필요가 생겼다.

각각의 수배가 끝날 때까지 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파발마(早馬)를 통해 전하기로 하고 그대로 자택으로 향했다.

이번에 천황에게 헌상한 봉보니에르는 재료부터 엄선해서 최고의 기술자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오와리 최고의 기술자를 쉽게 빼내가게 둘 수는 없기에, 도제(徒弟)를 쿄로 파견하도록 손을 썼다.

일본주 봉봉에 대해서도, 원재료(原材料)야 오와리에서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재료만 반입하면 현지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황실 애용(御用達)의 과자점을 쿄에 열기로 했다.


시즈코는 기술자들의 이동이나 기계설비 등의 반송(搬送)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썼다.

그 덕분인지, 쿄까지 가는 도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올바르다.

반 오다 파의 공가들은 방해를 획책하여, 깡패(荒くれもの) 들을 고용하여 도적(野盗)을 가장한 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같은 날에 주변에서 산적 토벌이 이루어져, 그들은 습격 전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

습격의 실패를 알게 된 공가들은, 다음 한 수를 강구하려고 햇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깡패들을 고용한 공가의 심부름꾼이 구속되어, 줄줄이 사탕으로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버렸다.

도마뱀 꼬리를 자르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와 몸통을 남기고 팔다리가 전부 뜯겨나간 반 오다의 공가들은, 길고 괴로운 자복(雌伏)의 시간을 강요받게 된다.


그 후에는 차질없이 만사가 진행되어, 쿄에 도착한 후 몇 주일이 지나자, 다음 하사품의 용기가 될 봉보니에르를 헌상할 수 있었다. 최종 마무리에 관해서는 오와리에서밖에 할 수 없었기에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천황이나 공가들에게 탄성을 지르게 할 만한 물건이 완성되었다.

천황에의 헌상은 의뢰를 받은 미츠히데가 했으나, 발안자인 '니히메'에게 천황으로부터 하사품이 도착했다. 천황의 위광을 선양(発揚)시키고 체면을 지킬 수 있게 한 데 대한 답례였다.

시즈코는 오동나무(桐)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향목(香木)인 백단(白檀)의 나무조각을 섭새긴(透かし彫り) 아름다운 부채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시원함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향을 즐기기 위한 부채였다. 요양중의 몸이면서도 천황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생한(骨を折った) '니히메'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몰건이었다.

천황으로부터의 하사품을 소중히 품 속에 넣은 시즈코는, 결연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돌아가죠"


쿄에서의 인수인계나 잔무(残務) 처리를 마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했다.

자택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을 확인했다. 아야(彩)가 배려하여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위로 놓인 서류를 주욱 훑어보았다.

역시랄까,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한 요청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우미(近江)에서는 치수공사(治水工事), 에치젠(越前)에서는 츠루가(敦賀) 항구의 항만정비(港湾整備), 오우미로 이어지는 상업적 이용에 견딜 수 있는 도로 정비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줄지어 있었다.

게다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노부나가가 거점을 아즈치(安土)로 옮길 것이 결정되어, 그 밑준비로서 아즈치에서의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외에는 결재서류가 아니라 토우고쿠의 정치적 책략에 대한 보고서가 늘어서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니, 카츠요리(勝頼)라기보다 타케다 가문이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적혀 있었다.

타케다 가문의 중신들이 카츠요리를 얕보고, 그 태도에 반발한 카츠요리는 강경한 정책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영주들 사이의 불화에서 오는 채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은 영민(領民)들이다.

카이(甲斐) 국에 잠입시킨 간자들의 손에 의해, 타케다 가문의 불화나 추문(醜聞)은 밑바닥 계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백성들은 카츠요리라는 암군(暗君)은 물론이고, 암군을 제어하지 못하는 타케다 가문 자체에도 불만을 가지도록 유도되었다.

중신들 중 누군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카츠요리를 당주로서 지지하여 일치단결한다면 백성들의 불만은 얼마간 누그러졌으리라. 그러나, 이미 쌍방의 관계는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이건 예상밖이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카츠요리라기보다 타키데 가문 전체가 백성들의 신용을 잃고 있어. 주상께서는 패하는 싸움을 예상하고 계시지만, 싸움을 벌이기 전에 타케다 가문이 자멸할 것 같아"


역사적 사실에서도 카이 침공으로부터 1개월만에 대세는 결판이 났다. 이 상황이라면 1년도 가지 않아 타케다와 개전(開戦)하게 될 가능성도 생겼다. 이대로 카츠요리의 구심력이 계속 떨어지만, 일찌감치 타케다를 쳐부수고 여세를 몰아 호죠까지 쳐들어가서 승리를 주울 가능성조차 있다.


"후ー, 키나이(畿内)의 정무(政務)만 해도 바쁜데, 거기에 토우고쿠 정벌의 감시역이라. 머리가 아파……"


골치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실 앞에서 시즈코는 기분이 축 처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3월 하순이 되자, 시즈코는 자기 영지에 배포할 모(苗)의 생육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동시에 모내기에 사용할 각종 도구의 정비까지 지시했다.

오와리, 미노의 영민들은 직접 볍씨(種籾)를 뿌리지 않는다. 매년, 오다 가문에 의해 육모(育苗)된 모를 지급받아 이것을 심는다.

볍씨가 아닌 모의 상태까지 생육되어 있기에 발아율(発芽率)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환경의 변화에도 강하다. 오다 가문이 육모를 대항하는 동안, 백성들은 아라오코시(荒起し, ※역주: 경작의 준비 작업으로 논밭을 대충 갈아 엎는 일)라고 하는 논밭의 정비를 한다.

빠른 사람은 1월이나 2월부터 아라오코시를 시작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논밭을 가지지 않은 백성은 기온이 풀리는 3월 무렵부터 착수한다.


오다 가문이 모를 관리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볍씨를 직접 확보할 필요가 없다. 오다 가문은 모를 지급하는 것으로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모의 바탕이 되는 볍씨는, 세금으로 징수된 것 중에서 준비되기 때문에 백성들 측에 부담은 없으며, 모에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파기를 명령할 수 있어 질병이 만연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양쪽 모두에게 메리트가 있는 제도이지만, 모를 얼마만큼 준비할 수 있는지가 수확량으로 직결된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와리, 미노에 지급되는 모는 시즈코의 영지 내에서 전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각지로부터의 보고로는, 현재는 문제없는 것 같네"


"네. 순조롭게 생육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선별하신 볍씨도 순조롭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면서 시즈코는 아야에게 보고를 받았다. 심은 모가 순조롭게 생육하고 있다는 것은, 올해도 기대한 대로의 수확량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개척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년부터는 에치젠이나 오우미에도 모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양쪽 모두 수확량(石高)보다는 우선 지역의 안정화를 꾀하는 쪽이 선결이기는 하지만.


"오우미는 치수공사가 밀려 있네. 몇 번이나 세금을 경감해달라고 탄원했던 게 괜한 게 아니구나"


현대의 시가((滋賀) 현(県)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오우미는 수해(水害)가 많은 지역이었다. 특히 아네가와(姉川や野洲川)나 야스가와(野洲川) 유역은 수해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야스가와는 10년에 한 번 꼴로 수해가 일어났다. 주민들에게는 일상다반사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50년쯤 살면 몇 번은 겪는 이벤트다.


"우선은 하천(河川)의 확장공사가 있고, 거기에 쿄로 이어지는 수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와 호(琵琶湖)는 방대한 수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물을 배출하는 출구는 요도가와(淀川, 세타가와(瀬田川)라고도 한다)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에, 요도가와가 토사(土砂) 등으로 막히게 되면, 갈 곳을 잃은 호숫물이 범람하게 된다.

현대에는 치수나 이수(利水)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타가와 아라이제키(洗堰, ※역주: 댐(dam)의 일종인 듯)가 존재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난고 아라이제키(南郷洗堰)라는 옛 아라이제키가 건조되었다.


아라이제키 같은 설비가 없다면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가 기록에는 남아있다. 메이지 29년(※역주: 1896년)에 발생한 홍수에서는, 범람한 비와 호의 물이 2개월 넘게 빠지지 않았다.

히코네(彦根)에서는 8할 이상의 지역이 수몰되었고, 오오츠(大津)에서는 중심부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야스가와도 물이 터져, 유역에 존재했던 거주구는 몇 개월에 걸쳐 수몰되게 되었다.

비와 호는 키나이의 중요한 수원(水源)이지만, 한 번 이빨을 드러내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칠게 날뛰는 용으로 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강바닥 준설(川浚) 세금이 추가로 들겠네"


강바닥 준설이란 강바닥에 쌓인 토사나 오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오우미의 치수의 역사는, 요도가와에 대한 강바닥 준설이라고 해도 좋다.

역사적 사실에서 에도 시대에는 오사카(大阪)에 준설 명가금(冥加金)이라 불리는, 수리(水利)의 덕(恩恵)을 보는 데 대한 대가가 존재했다. 이것은 적립금(積み立て)의 측면도 가지고 있어, 이것을 재원으로 하여 강바닥 준설이 실시되었다.

어느 쪽이든, 근간에 있는 것은 유입량에 대해 유출량이 제한되는 것에 기인한 범람이다. 아라이제키의 정비에 그치지 않고, 요도가와를 확장하여 소통 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직접적으로 덕을 보는 쿄나 사카이(堺)는 물론이고, 수운(水運)을 이용하는 에치젠 등에서도 임시 세금을 징수하는 듯 합니다. 제도가 안정되면 징수액 자체는 낮게 억제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카가(加賀) 국에도 청구할 수 있으려나? 과연…… 흠"


"수운의 이용 상황을 보는 한, 청구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합니다"


비와 호를 이용하는 지역에 평등하게 세금의 부담을 요구한다. 강바닥 준설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남는 것으로 하천 확장도 할 수 있는 절묘한 제도라고 시즈코느 생각했다.

교통망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육운(陸運)와 해운(海運)이 주역이며, 하천을 이용한 수운 등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전국시대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의 사후(死後)에 히데요시가 비와 호의 호상이권(湖上利権)을 지배했듯, 수송로로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중앙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수운과 달리, 크게 우회해야 하는 육로는 운송시간도, 그에 드는 비용도 늘어나는 경향에 있었다.

비와 호의 호상권(湖上権)을 노부나가가 쥐고 있는 이상, 세금의 납부를 거부하면 수송로가 닫히게 될 것은 뻔하다. 카가 일향종(一向宗)은 증오스러운 노부나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그럼, 일향종들은 얌전히 말을 들으려나? 뭐, 응하게 되면 지출이 쌓여서 점점 목이 조여들겠지. 반항하면 무력에 의한 제압이 기다리고 있고. 응, 빠른지 늦을지의 차이밖에 없네"


"새로운 육로를 열려고 해도, 오우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다 가문의 가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카가의 일향종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마지막 일격만 남은(後一押し) 상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뒷일은 시바타(柴田) 님에게 달렸으려나. 여기서 분발하면 호쿠리쿠(北陸) 일대가 시바타 님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되네. 그렇게 되면 삿사(佐々) 님이나 마에다(前田) 님(※역주: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도 호쿠리쿠의 다이묘(大名)인가"


"성공하면 가문 내에서 한 발짝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아케치 님이나 하시바(羽柴) 님도 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케치 님은 키나이에 있는 수송로의 권익을 대부분 쥐고 계십니다. 또, 시즈코 님께서 제공하신 수송선이 예상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어, 사카모토(坂本)는 쿄의 현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해양에서는 실패라고 결론지어진 중형 수송선이 비와 호에서는 각광을 받았다. 다소의 악천후 따위 끄떡도 하지 않고, 하루만 있으면 나가하마(長浜)에서 사카모토까지 항행하는 속도를 자랑했다.

또, 스크류 추진이기에, 배의 이동에 노(櫂)릃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의해 절약할 수 있었던 공간을 화물 스페이스로 전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결점은 증기기관이기에 목탄(木炭)이나 석탄(石炭)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홀수선(喫水)이 낮아서 운반하는 중량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오래 가지 않는 화물 등을 운반하는 상인들은 몇 척이나 되는 배를 수배하여 화물을 운반하게 된다. 배에 적재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나, 많은 화물을 운반하는 경우에는 육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호위나 인부(人足)의 수배를 생각하는 등 추가로 비용이 먹히게 되었다.


"아ー, 그거 말이지. 활약할 자리가 생겨서 다행이야. 기술자들도 기뻐하고 있었고"


"편수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하시바 님이나 아케치 님에 달렸으려나ー. 뭐, 어느 쪽도 장사할 기회가 늘어나니까 싫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또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될지도……"


비와 호의 호상권은 오다 가문이 쥐고 있지만, 비와 호에서 사용되는 상선 루트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현재는 계속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오우미의 복구를 우선시하고 있었기에 히데요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주도권을 탈환하려고 미츠히데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업이 번성함에 따라 수운의 중요도는 커져간다. 그에 비례하여 생기는 권익도 거대해지기에, 그들의 대립(因縁)은 깊어지고 있었다.


"뭐, 주 목적은 염전(厭戦)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거지만, 이렇게 노골적이면 아무래도 생각을 좀 해야될지도 모르겠네"


염전이란 전쟁을 싫어하는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정치가 불안정해서는, 짧은 생각(短慮)에 전쟁을 택하는 멍청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키나이에서만이라도 전쟁을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직 병농분리(兵農分離)가 완전하지 않은 이상, 병사의 태반은 백성들이다. 그 백성들이 전쟁을 싫어하게 되면, 전쟁을 하고 싶어도 병사가 모이지 않는다. 또, 칼사냥(刀狩り)도 하기 쉬워진다.


칼사냥에 의한 무장해제, 상인들의 활발한 활동, 치수 등의 공공 사업에 의한 재해 대책, 쌀이나 야채 등의 생산력 향상, 이것들을 실시함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간다.

생활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목숨을 걸면서까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적어진다. 농한기(農閑期)에 개척 등의 일거리를 만들면, 전쟁에 나가려는 마음은 한층 더 옅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전쟁보다, 견실하게 일하면 확실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세(伊勢)는 관할 밖이지만, 오우미나 에치젠에 관해서는 안정될 때까지 몇 년은 필요하려나"


"그 동안 혼간지(本願寺)를 정벌하시는 건가요?"


"아니, 혼간지의 정벌은 하지 않아. 세세한 조건은 있지만, 일향종의 존속을 인정하는 대신 이시야마(石山)에서 퇴거하라는 게 요점이려나"


"그것은……"


지금까지 멸망시킬 기세였던 노부나가의 행동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아야는 생각했다. 그런 아야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시즈코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켄뇨(顕如)를 '교섭하는 자리에 앉히는 데' 힘을 쏟고 있으니까. 그리고 혼간지를 완전히 멸망시키면 거꾸로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리니까, 살려두는 편이 좋아"


"그렇습니까?"


"흠…… 그럼 시즈코 언니가 아야 짱에게 정치 이야기를 해주도록 할께요"


아야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시즈코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에 대해 아야는, 그다지 흥미가 있다는 기색도 없이 시즈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 혼간지가 멸망했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신자들은 어떻게 할까?"


"개종할까요?"


"그러네. 하지만 신앙(信仰)은 내면의 문제야. 내일부터 다른 종파로 갈아타세요, 라는 말을 들어도 곤란하겠지? 내일부터는 기독교(伴天連)를 믿어라, 는 말을 들으면 아야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은……"


"그래, 당황하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걸 강제하면 탄입이 되고…… 억압받은 신도들은 일치단결해서 들고일어나서, 위정자에 대해 이빨을 들이대는거야. 그렇게 되면,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이 시작되어버려"


"그걸 막기 위해서인가요?"


"그래. 적에게 마지막 도망갈 길을 준비해 두는 것은 중요해. '혼간지를 위해서'라는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변명거리가 있다면, 아랫사람들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반대로 도망칠 길이 없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항하는거야. 게다가……"


"게다가?"


"혼간지의 경제력이나 다른 세력과의 연계는 아깝거든. 완전히 멸망시키기보다, 죽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되살아나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신의 장기말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 두는 편이 편리한 거야" 


일단은 납득한 아야였다. 하지만, 의문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즈코 님의 생각이시고, 주상의 생각은 아니지요?"


"오, 좋은 부분을 눈치챘네, 아야 짱. 확실히 세세한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하지만 나와 주상의 생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럴까요. 주상의 언동을 생각하면 화해(和睦)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건 아야 짱 나름대로 생각해서 해답을 도출하면 돼. 괜찮아, 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해서 의문을 품게 된 아야 짱이라면 분명히 가능할거야"


"칭찬받아서 송구스럽습니다만, 뭔가 대답을 얼버무리신 것처럼 생각됩니다"


"에엑ー, 거기는 기뻐해야 하는 상황 아냐ー?"


"과대평가입니다"


불만스럽게 말하는 시즈코였으나, 아야는 시즈코의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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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5 1574년 3월 상순



2월. 공기가 맑게 개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싹이 트는 계절인 봄을 절실히 기다리게 될 시기. 시즈코 저택의 주방에서는 취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수온이 낮은 쪽이 맛있다고 한다. 낮은 수온에 견딜 수 있도록 몸에 다량의 기름기를 축적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생선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겨울에 수확하는 무(大根)가 단맛이 나는 것도, 추위에 견디기 위해 수분을 줄이고 대신 당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물(真水)은 0도에서 얼어붙지만, 설탕물(砂糖水)은 얼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비점 상승(沸点上昇), 응고점 강하(凝固点降下)'라는 현상이다. 참고로 기온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끝부분은 해충 등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매운 맛이 나게 되는 거라고 한다.


"홋홋…… 겨울에는 역시 방어무조림(ブリ大根)이지"


입에서 열기를 발산시키며 시즈코가 중얼거렸다.

방어무조림이란 일본 전국에 전해지는 향토요리(郷土料理)인데, 토야마 현(富山県)의 겨울 방어(寒ブリ)를 쓴 그것이 유명하다. 여러가지 배리에이션이 존재하지만, 방어와 무를 간장으로 조리는 것은 공통되어 있다.

유통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동해(日本海) 쪽과 태평양 쪽에서 잡힌 방어의 가격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하하여, 동해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토야마 만(富山湾)까지 도착한 '히미(氷見) 겨울방어'는 겨울의 미각의 왕(王者)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유통이 발달하지 않는 전국시대에서 신선한 '히미 겨울방어' 따위 바랄 수도 없었기에, 시즈코가 조리에 사용한 것도 오와리(尾張)에서 잡힌 약간 작은 방어이다.


"생선을 먹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생선 같은 건 진흙냄새가 나거나 극단적으로 짜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참을 수 없군요!"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마사유키(昌幸)가 절찬했다. 오늘밤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와 그의 아들들, 노부유키(信之), 유키무라(幸村, 노부시게(信繁))를 초대한 저녁식사였다.

산간 지방(山国)인 카이(甲斐)에서는 바다 생선 따위 바랄 수도 없다. 진흙 냄새가 나는 민물고기(川魚)나, 장기간의 운반에 견딜 수 있게 강하게 염장(塩蔵)된 것에 한정된다.

고급품인 설탕(砂糖)을 아낌없이 쓰고, 간장(醤油)과 미림(みりん)을 넣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강(生姜)과 함께 조린 방어는 마사유키의 마음을 소년으로 되돌릴 정도의 것이었다.


"오늘 항구에 갓 올라온 방어가 들어왔거든요. 엣츄(越中)의 방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오와리의 방어도 제법 좋아요"


"세상에! 이것 이상가는 것이 또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마사유키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흥분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을은 긴장해서 쭈뼛거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린애가 사양 같은 거 하는게 아니야. 저쪽의 어른들을 보라고? 맛있는 걸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많이 먹고, 얼른 커야지"


어린애들을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어젖혀진 맹장지 사이로 보이는, 옆 자리에서는 케이지들이 밥통(櫃)에서 밥을 퍼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쟁반과 함께 나온 밥그릇(椀)으로 먹었지만, 번거롭다는 듯 밥통째로 가져오게 해서는 밥주걱을 집어넣어 호쾌하게 먹고 있었다.

어느 틈에 술까지 꺼내서는, 손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회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나쁜 어른의 표본이기는 하지만, 먹는 모습도 호쾌하여 사양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시즈코가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본래는 주인으로서 질책해야 하지만, 마사유키 자신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기에 내버려두었다.

시즈코로서도 식사는 즐겁고 떠들썩하게 하는 편이 맛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마음대로 하게 하기로 했다.


한편, 노부유키와 유키무라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권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무가(武家)의 남아(男児)로서 엄격한 예절 훈련을 받아왔다. 아버지나 아버지의 상사인 시즈코 앞에서 실례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린애가 어른의 사정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도 돼. 잘 먹고, 잘 놀고, 잘 공부해. 그게 어린애가 할 일이니까"


다시 한 번 촉구하자, 그제서야 두 명은 기세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매콤달콤하게 조려진 방어의 맛은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조차 매료시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둘 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애였기에 먹을 수 있는 양도 뻔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던 마사유키가, 두 명이 식사를 마치는 시점을 가늠하여 말했다.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노부유키도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약간 뒤늦게 유키무라도 그에 따랐다.


"변변치 못해 죄송합니다(お粗末様でした). 두 사람은 배부르게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던 시즈코가,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가 말을 건 두 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시즈코 님, 이렇게 환대해 주셨음에도 뻔뻔한 이야기입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가능할지 아닐지와는 별도로, 언제든지 들어볼 생각은 있으니까요"


"옛. 그럼, 사양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시즈코 님의 도서실(図書室)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시즈코의 도서실이란, 그녀가 모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금(古今)의 서적(書物)들이 한 곳에 모인 건물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한 방(一室)이었지만, 장서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창고(蔵)가 되고, 새 저택에서는 아예 독립된 건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명칭은 전부터 바뀌지 않아, 누구나 도서실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도서실은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널리 개방되어 있으며, 카게카츠(景勝)나 카네츠구(兼続)처럼 저택에서 기거하는 사람들에게도 열람 허가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마사유키같은 외부인이 이용하는 것은 어렵다. 시즈코가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즈코 저택에 출입하는 데 필요한 수속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으ー음, 안전 면에서도 책의 반출은 허가할 수 없네요. 그렇지, 7일마다 하루만 도서실 출입을 허가하죠. 모처럼이니 아이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저 뿐만 아니라 자식(愚息)들에게까지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첩보를 관장하는 마사유키로서는 군침이 넘어가는 대상인 도서실의 출입을 7일에 하루라고는 해도 허락받은 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다.

사서(司書)인 할아범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아야(彩)에게 건네주었다. 내일이 되면 즉시 심사와 수속을 해 줄 것이다.

시즈코로서는 도서의 대출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외부로 반출하는 것은 분실이나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도서실 내부에서의 열람으로 한정시키기로 했다.


"허가증이 발행되면 연락할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자가 나란히 멋지게 예를 올렸다. 통상의 일 때문에 바빠서 그다지 도서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7일마다 반드시 방문하는 노부유키가 카게카츠와 함께 도서관의 터주로 불리게 될 때까지 그다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3월에 들어서, 시즈코가 정한 새 달력으로는 봄이 되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의 출입도 적은 시즈코 저택의 한 구석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그곳은 시즈코 밑에서 일하는 문관들의 사무실(仕事部屋). 현대에서 말하는 결산보고서(決算報告書)에 해당하는 것을 아야를 필두로 한 그녀의 부하들이 총동원되어 작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손익계산서(損益計算書) 다 됐습니다!"


"확인합니다. 다음은 이쪽을 부탁해요"


방에는 아야를 포함하여 총 20명 정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맹장지를 걷어내고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었으나, 그래도 묘하게 비좁게 느껴졌다.

그 원인은, 복도(廊下)까지 밀려나가 있는 서류의 산이었다. 전원이 주판(算盤)을 한 손에 들고 자료를 검산(検算)하거나 새로운 서류를 작성하는 등, 각자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달의 마감일도 나름 바쁘지만, 이번에는 모든 부서의 연간(通年) 총결산(総決算)이기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야도, 이 때 만큼은 여유를 잃고 분투하고 있었다.


"내용 확인이 끝났습니다. 결재해 주시면 청서(清書)로 돌리겠습니다"


문관들이 각자가 담당한 분량을 가지고 와서 아야의 자리에 놓인 결재를 기다리는 문서함에 서류를 쌓아놓았다.

현대와 같은 복사기 따윈 존재하지 않기에, 여러 부가 필요한 서류는 지금도 청서반(清書班)이 별실에서 필사적으로 베껴적고 있다.

방에는 문관들이 경과를 보고하는 목소리 외에는 모두가 주판을 튕기는 소리나, 종이와 붓이 마찰하는 소리, 서류를 말리거나 먹이나 물을 보충하거나 하는 몸종(小間使い)들이 일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각 부서를 총괄하는 아야는, 쌓인 서류를 확인하고 크로스 체크(cross-check)를 반복하여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아야의 승인을 얻은 서류만이 시즈코에게 보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노부나가에게 도착하게 된다.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많고, 그 반면 문관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방에 가득찬 사람들의 표정에는 귀기(鬼気)가 서려 있었으며, 평소에는 제 세상인 양(我が物顔) 활보하는 비트만들도 이 며칠 동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기결산서(通期決算書)가 완성되었습니다.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서류와 격투를 벌이기를 14일. 간신히 마무리된 서류를 손에 들고 아야는 시즈코 앞으로 나아갔다.

어지간히 가혹한 작업이었는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아야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생겨 있었고,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었다.


"네,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겠지만, 오늘 일은 이걸로 끝내세요. 서류 사정(精査)이 완료되면 5일간의 특별휴가를 지급합니다. 부서 내에서 조정해서 각자 휴가를 쓸 수 있게 계획해 주세요"


특별휴가란, 유급휴가와는 별도로 그때그때 지급되는 유급의 휴가이다. 단순히 유급휴가 날짜가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알기쉽다.


"감사합니다"


"단, 특별휴가는 3월, 4월 두 달 동안만 쓸 수 있으니, 어렵다고는 생각하지만 조정을 부탁해요"


"맡겨 주십시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오늘은 푹 쉬어요"


다른 사람의 눈이 있기에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나, 시즈코는 피로가 역력한 아야가 얼른 쉬었으면 했다.

매사에 아무렇지 않은 척(強がる)을 하는 경우가 많은 아야도, 아무래도 꾸밀 여유도 없었는지 약간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결산서의 확인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시즈코가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시즈코가 확인을 하고 있으면 서류 작성자인 아야들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하나같이 차입금(借入金)이 없는, 말하자면 무차금(無借金) 경영(経営)이기에 확인은 쉽다.

사람, 물건, 돈의 흐름이 서류만으로 확실하게 추적되어, 이번 분기에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고, 자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그 이외에는 각 서류간의 수치에 관한 관련성 체크를 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하기 위한 요약서를 첨부하여 완성된다.


"그럼 결산서는 넣어두고, 먼저 빌렸던 책을 돌려주러 가자"


시즈코는 결산서를 자물쇠가 달린 서랍에 넣고, 도서실에서 빌렸던 책을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도서실에 들어가자, 열람석에 진을 치고 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작은 뒷모습은, 한 명이 카게카츠, 다른 한 명이 노부유키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노부유키가 이용하는 날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카운터로 가서 사서에게 반납 절차를 부탁했다.

반납을 마친 시즈코는, 다음에 빌릴 책을 물색하기 위해 책장 사이를 돌아다녔다.

이용자는 모두 책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소중히 다루고는 있지만, 인기있는 서적은 손땀이나 손기름 떄문에 어쩔 수 없이 상하고 있었다.


('열 권을 읽느니 한 권을 옮겨써라(十遍読むより一遍写せ)'라는 말도 있으니, 사본(写本)을 권장해서 매입하기라도 할까?)


이 속담(諺)이 의미하는 것은 독서의 요령이다.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내용을 한 번 옮겨쓰는 편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본을 만들기 위한 전문 부서가 있기는 하나, 장서의 숫자는 방대하여 책이 늘어나는 속도에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번 인쇄된 책이라고는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인쇄해 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지질(紙質) 관계상 한번 더 제판(ガリ切り, 등사판 인쇄(ガリ版印刷)의 원판을 만드는 것)부터 다시 해줘야 하니까……)


경질(硬質)의 펄프지와는 달리, 화지(和紙, ※역주: 일본 종이)에 왁스(蝋)를 바른 것을 제판에 사용하고 있기에 내구성에도 문제가 있어, 한 권만 인쇄하는 등의 세세한 대응(小回り)을 할 수 없다는 배경도 있었다.

시즈코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이 걸려왔다.


"엇, 시즈코 님.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책이 정신이 팔려서 실례했습니다"


그 점에서, 사본이라면 종이와 붓만 있으면 본인의 노력만으로 책이 늘어난다. 개가(開架) 서고(書庫)에 있는 책은 기밀성도 낮기에 내용을 기억하더라도 문제없고, 사본 자체를 사들이면 유출될 일도 없다.

이거라면 양쪽에 메리트가 있으니, 사본 제작 키트라도 만들까 하고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볼에 홍조(紅潮)를 띄우고 말을 걸어온 것은 노부유키였다.

아직 어린 노부유키의 목소리는 높고 잘 들렸기에 이용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주시(注視)했으나, 카게카츠는 익숙해졌는지 신경쓰지 않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올 때마다 인사할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고 꽤나 읽고 있는 모양이네? 열람석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아침부터 계속 있던 거야?"


시즈코가 쿡쿡 웃으면서 묻자, 노부유키는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네, 녜에. 이곳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분야별로 책도 정리되어 있어, 안내를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놀랐습니다!"


최근 비슷한 절찬을 들었네, 라며 카게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같은 자세를 취해서 몸이 굳었는지, 카게카츠는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체중을 맡기고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던 참이었다.

시즈코의 시선을 깨달은 카게카츠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책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는 열람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영리(利発)하고 어른스럽기는 하나, 그는 20세가 채 되지 않는 젊은이였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으면 빈틈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는 산처럼 쌓인 책을 정리하여, 조금이라도 어지럽다는 인상을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들은 어린애 같다고 시즈코는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꽤나 다양한 분야에 흥미가 있구나?"


노부유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실용서(実用書)에서 오락서(娯楽本)까지 있어 장르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무사의 자식이 좋아하는 전기(戦記)도 있고, 농업이나 원예(園芸)에 관한 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예. 저(某)는 어떤 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자고 정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목록을 보고, 흥미가 있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지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끝내면 아깝지. 읽은 내용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견문(見分.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見聞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을 넓히도록 해"


"옛,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아, 그러고보니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같이 점심식사라도 어때? 키헤이지(喜平次) 군도 같이 올 거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즈코의 권유에 카게카츠는 망설임없이 대답햇다. 모처럼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도 없고, 케이지가 자신의 소성(小姓)인 카네츠구(兼続)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있다는 이유도 컸다.

소성이 주인을 방치하고 놀러나간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断)이라고 생각될 법 하지만, 카게카츠 자신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부모의 품에서 멀리 떨어진 인질 생활이니, 가끔의 자유 정도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즉시 대답한 카게카츠와는 대조적으로 약간 망설힌 노부유키는, 그래도 카게카츠에게 촉발되었는지 경쟁하듯 대답했다.


"좋아좋아. 그러면 나중에 사람을 보낼게. 그때까진 자유롭게 독서하고 있어"


이 이상 오래 있으면 독서의 방해가 된다. 특히 노부유키는 7일에 한 번인 귀중한 기회이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도서실에서 나갔다.


점심식사는 장어구이 덮밥(ひつまぶし)이었다. 문자 그대로 배터지게(鱈腹) 먹은 두 사람은, 오후의 수마(睡魔)와 싸우느라 고생했다.




시즈코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있을 때,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는 쿄(京)에서 세력 확대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강권(強権)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뇌물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발신(発信)하고, 예술이나 유흥(遊興)을 진흥(振興)했다. 그는 빈번하게 공가(公家)들을 초대해서는 오와리에서 유래한 신기한 문물을 선보였다.

그것은 치안이 악화된 쿄를 버리고 지방의 장원(荘園)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쿄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상락(上洛) 이후, 철저한 단속으로 치안이 안정되어, 황폐해졌던 쿄가 옛 광채(輝き)를 되찾은 점도 컸다.


게다가 사키하사의 저택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연구(工夫)가 적용되어 있었다. 교토(京都)는 분지(盆地)로, 겨울이 되면 차가운 공기가 정체되어, 소위 말하는 '몸속까지 스며드는 추위(底冷え)'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밀(気密)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는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는, 여름에는 쾌적하더라도 겨울에는 화로를 끌어안고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추우면 사람의 활동성이 떨어져버린다. 현대에서는 단열성이 우수한 의복이 많이 있어 야외에서도 옷을 든든히 입으면 상당한 추위에 견딜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그런 의복은 존재하지 않고, 그냥 옷을 껴입는 것만으로는 우아하지 않다고 사키히사는 생각했다. 우아하게, 그러면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사키히사가 취한 대책이란, 오와리에서 기술자를 초빙하여 자택의 부지(敷地) 내에 기밀성이 높은 별채(別邸)를 짓는 것이었다.

외벽을 회반죽을 바른 흰 벽으로 마감하고, 내부를 중공 구조(中空構造)로 하여, 그 사이에 단열제로서 펠트를 끼워넣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별채의 외관과 내부의 공간에 차이가 있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키히사의 연구는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시즈코의 지식을 바탕으로, 체감온도(体感温度)에 습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가습기까지 준비했다.

물론, 전기식의 가습기 같은 것이 아니라, 물을 넣은 용기를 아래로부터 덥혀 증기를 보내는 원시적인 가습기이다. 하지만, 건조한 겨울의 공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어려운 것은 우아해야 하는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대책을 취해놓은 것이 보여서는 우아하지 않다.

그 때문에 가습기는 마룻바닥 아래의 공간에 설치되고, 펠트로 감싼 단열 파이프를 통해 조용히(密かに) 공기를 보낸다.

송풍구는 교창(欄間, ※역주: 문·미닫이 위의 상인방과 천장과의 사이에 통풍과 채광을 위하여 교창(交窓) 따위를 붙여 놓은 부분)으로 덮어서, 얼핏 보아서는 구멍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마룻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冷気)를 차단하기 위해 다다미(畳) 아래에서 펠트를 깔아, 별채의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 되어 있었다.


"과연 고노에 님. 유리(玻璃) 장지문(障子)이라니 아름답습니다. 따뜻한 실내에서 겨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각별하군요"


"아뇨아뇨, 저로서는 이 별채(離れ)를 준비하는 것만도 벅찹니다. 쿄에서 쫓겨난 촌놈(鄙, 田舎者)이 여러분을 충분히 대접하고 있는 것인지 내심 불안하군요"


시즈코에게서 직접 배운 차완무시(茶碗蒸し, ※역주: 계란찜의 일종)에 대만족하여 입맛을 다시며 초대받은 공가들이 입을 모아 사키히사를 칭찬했다. 사키히사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공가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늘은 사키히사가 주최한 가회(歌会, ※역주: 일본 시(和歌)를 짓고 서로 발표, 비평하는 모임)가 있었고, 그 후에 딱 적당한 시간이라는 이유로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안쪽부터 덥혀주는 식사와 절품(絶品)으로 이름높은 오와리의 청주(清酒)를 먹은 공가들은, 사키히사의 재력과 최첨단의 문화에 취했다.

여담이지만 천황(天皇)이 주최하는 가회는 어전 가회(歌御会)라고 하여, 그 해의 첫 가회를 첫 어전 가회(歌御会始, 타이쇼(大正) 시대에 歌会始로 개칭됨)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장 내부의 권력투쟁은 일견 노부나가들에게 아무 이익도 가져오지 않는 듯 생각되었으나, 투자하기체 충분한 이점이 있었다.

세상은 무가(武家) 사회가 되었다고는 해도, 명목상으로는 뭘 하더라도 조정(朝廷)의 권위가 필요해진다.

이렇게 사키히사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어 두면 여러 모로 편리해진다(融通が利く). 공가들에게 군사력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꾸준히 이어온 역사와 권위는 이용가치가 높았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공가들이 장원으로부터의 수입을 잃고, 토지나 재산을 담보로 상인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있는 공가도 있다.

개중에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서,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까지 빼앗기고 허름한 빈 집으로 이주하여 생활자금을 빌리며 근근하게 생활하는(爪に火を点す) 공가까지 있었다.


사키히사가 많은 공가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면, 그런 공가들의 경제 상황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溺れる者は藁をもつかむ)'라는 말처럼, 약간의 경제 원조로 사키히사의 파벌로 들어와 조정에 대한 발언력을 한층 더 강화시켜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책략을 노부나가가 쓰면 공가들의 긍지에 상처를 입힌다. 귀족들의 미묘한 심리(機微)를 잘 알고 있는 사키히사를 통해서 공작을 하는 쪽이 성공률도 높았다.


"겸손하시기는요. 아 그렇지, 따님(ご息女)의 소문, 제(麻呂) 귀에도 들리더군요"


"이거 괜한 이야기로 귀를 번거롭게 해드렸군요. 저는 쿄를 떠난 이후 오랫동안 무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 왔습니다. 덕분에 딸도 여자답지 않게 이것저것 손을 대고 있어 아직 시집을 갈 기색도 없군요"


"하지만, 따님의 조력이 있어 모두 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 공가와 무가를 잇는 가교(架け橋)로서 보기 드문 재주를 가지고 있다더군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공가가 웃었다. 여기서부터 서로의 속을 살피는 것(腹の探り合い)에는 사키히사가 실력을 발휘할 자리가 된다. 사키히사는 접대용 미소(愛想笑い)를 떠올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많은 포고령을 발표했다. 역법(暦法), 도량형(度量衡), 새 화폐(新貨幣) 등을 시작으로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다.

개중에는 사키히사를 통해 천황(帝)을 움직여, 공가들의 토지에 대한 덕정령(徳政令)도 내렸다. 덕정령은 채무(借金)의 불이행(踏み倒し)으로, 채권자(債権者)에게는 물론 환영받지 못한다.

상인들의 조합(組合)을 통해 노부나가에게 진정서가 도착했으나, 그는 '곤경을 틈타 터무니없는(法外) 이자를 받으며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을 속여 빼앗은 악랄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라고만 대응했다.

일부 상인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이 덕정령은 대체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부흥하고 있는 쿄의 토지를 계속 품어서 원한을 사기보다, 얼른 돌려주고 공가의 환심을 사는(取り入る) 쪽이 이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법이나 도량형을 제정하는 것은 지배자의 증거. 일본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틀림없이(否応なく) 노부나가의 시대가 왔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종3위(従三位) 참의(参議)에 임명되었다. 참의란 대신(大臣)이나 납언(納言, ※역주: 일본 관직명의 경우, 가독성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와 일본 독음을 경우에 따라 번역에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 다음가는 중요한 직책으로, 조정의 최고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의 관직 중 하나이다.

이름 그대로, 조정의 정무에 관한 의사(議事)에 참여할 수 있는 직책이다. 국정에 관여하는 고관(高官)이므로 취임하려면 조건이 존재한다.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동시에 종3위를 받았기에 참의가 될 수 있었다.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노부나가가 쿄에 체류중의 경비는 소수라도 유사시의 즉응력(即応力)이 높은 시즈코의 군이 맡게 되었다. 주력은 사이조(才蔵)가 이끌고 종군하고 있으며, 케이지와 나가요시(長可)는 유격대(遊撃隊)가 되었다.

케이지는 대기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쿄에 도착하자마자 부대를 남겨놓고 혼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가요시는 부대를 이끌고는 있었으나 케이지와 큰 차이가 없어, 경라(警邏)라고 칭하며 쿄의 거리로 끌고나갔다.

대기소(詰所)에 남아있는 것은 시즈코 직속의 용기병(竜騎兵, 총기병(銃騎兵)) 부대와 사이조 군 뿐이었다.

시즈코 자신도 케이지와 나가요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에, 적의 입장에서는 언제 케이지나 사이조와 조우하게 될 지 알 수 없어 긴장을 강요받는 상황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다.


"요키치(与吉) 군은 단독으로 아즈치(安土) 주변의 환경조사(環境調査).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는 오와리에서 내 대리. 뭔가, 나는 군을 유지하기 위한 장식품(置物)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만큼 시즈코 님께 구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즈코 님께서 계시는 것만으로 쿄의 백성들은 안심한다는 것이겠지요. 부디, 경거망동은 삼가시고 여기서 진득하게 계셔 주십시오"


시즈코의 중얼거림에 사이조가 다독였다. 노부나가의 영향인지, 시즈코에게도 갑자기 혼자서 말을 몰아 달려나가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단, 현재의 시즈코는 공가 필두(筆頭)인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이자, 오다 가문에서도 중진(重鎮)이라 불리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신분(肩書)과는 대조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연약한 여성으로, 혼자서 좋지 않은 일(厄介ごと)에 말려들게 되면 목숨을 잃을 위험조차 있었기에, 부하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그 때는 폐를 끼쳤어요. 뭐 불평은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짓은 이제 안 할 거에요"


까딱하다 책임문제가 되어, 경비 책임자인 사이조가 할복하겠다는 말을 꺼냈기에, 시즈코는 혼자서 몰래 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참고로, 천하인에 가장 가까운 노부나가는, 입장이 변해도 혼자서 암행(お忍び)이라 칭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불평 정도라면, 이 사이조가 얼마든지 받아드리겠습니다"


"종4위하(従四位下)에 서임되어 버렸으니까요. 아무래도 경솔한 행동은 할 수 없어요"


조정으로부터 예사(芸事)의 수호를 맡은 시즈코는, 그와 병행하여 종4위하의 품계를 받았다. 단, 관직은 주어지지 않아 무관(無官)이다.

원래는 품계(位階)를 내릴 예정은 아니었으나, 조정 측에서 의뢰한 형식을 취하는 이상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는 모양새가 나쁘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높은 지위에 임명할 수도 없었기에, 소위 말하는 명예찍으로서 종4위하에 임명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시즈코의 다른 이름인 '니히메(仁比売)'는, 당대의 천황으로부터 종4위상을 받았다.


조정을 분규(紛糾)하게 만든 시즈코의 서임이었으나, 당사자인 시즈코는 완전히 밖으로 밀려나 있어(蚊帳の外), 그녀에게는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대신해 받았다는 통지만이 도착하고 그녀에게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조정 내에 자신의 세력이 늘어나 발언력이 커지는 것이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미 시즈코는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여걸(女傑)이 되어 있어, 이제와서 감출 의미는 별로 없었다.


"뭐, 품계(官位)를 받아봤자 하는 일에는 변함은 없으니, 내일의 준비를 해 둬야겠네요"


손에 든 산더미같은 종이 뭉치를 치면서 시즈코는 입을 열었다.

품계를 받아 승전(昇殿)을 허락받는 전상인(殿上人)이 되더라도 시즈코가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는 것은 노부나가이고, 정치적 뱃심(腹芸)을 부릴 수 없는 자신이 정치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노부나가의 일본 통일을 향한 자복(雌伏)의 때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얌전히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일본의 현관문인 사카이(堺)에 가까운 쿄까지 온 것이다. 조금 정도 취미를 즐겨도 벌은 받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정력적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

출자(出自)나 배경 등은 묻지 않고, 쿄의 백성이던, 멀리서 찾아온 행상(行商)이던, 평소에는 관계가 없는 종교(寺社) 관계의 사람이던, 이 시대의 역사나 풍토를 알고 있는 정보원(情報源)을 찾고 있었다.


특히 시즈코가 좋아한 것은 예수회가 데려온 노예들이었다. 흑인 뿐만이 아니라 실로 다양한 인종이 노예로 취급되고 있었다.

아마도 스페인 인으로부터 얻었을 아즈텍 인이나 인디언, 아랍 계열, 아시아 계열의 인종도 있어, 외모 만으로도 혼돈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노예라고 하면 가장 먼저 흑인 노예를 들 수 있지만, 어떤 인종이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있었다는 산 증거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노예상에게 돈을 지불하고 노예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노예들의 삶이나 노예가 되기 전의 생활 습관, 문화, 풍습에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들었다.

질문받는 쪽은 옛날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노역을 면제받고, 게다가 약간의 보수까지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게 자신의 지식을 개진(開陳)해 주었다.

물론 일본인 이외의 노예에 대해서는 노예상이 통역을 붙여줄 필요가 있어 나름 비용이 꽤 들었지만, 책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즈코는 만족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런 이야기들을 요약해 기록하여, 후에 당시의 풍물을 알 수 있는 서적으로 편찬할 생각이었다.

현재 시즈코가 열심인 것은 인디언 노예가 말하는 선주민(先住民)의 문화에 대해서였다.

아즈텍 인 노예에게는 대화조차 거절당했으나, 인디언 노예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차이가 생긴 이유는 단순하여, 인디언의 가치관에 기인했다. 인디언 노예가 속하는 부족은 독수리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있어, 길들인 자에게는 일정한 경의를 표한다.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독수리의 깃털도 중요한 아이템이며, 그들이 쓰는 깃털장식은 '워 버넷(War Bonnet)'이라고 불리며,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훈장으로서 하나씩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경계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교섭할 때 하는 파이프 담배(煙草)를 돌려피울 때 '용감한 자에게라면 대답하겠다'고 그가 선언했기에, 시즈코는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를 인디언 노예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인디언에게 담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이프로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는,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하늘 위에 사는 위대한 존재와 대화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화평 교섭이나 거래 때에는 파이프 담배를 돌려피워서 약속을 위대한 존재에게 서약했다. 위대한 존재가 증인이 되어 서약한 내용은 절대로 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용감한 자여. 우리들은 죽음을 특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를 버리고 혼만 남게 되는 것 뿐이다. 혼은 불멸이며, 생명은 계속된다"


"어떤 걸 먹었어?"


"버팔로(buffalo)나 카리부(caribou) 등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곡물이다. 콩이나 옥수수, 호박도 먹었다. 콩이나 옥수수는 건조시켜(乾して乾燥させて) 저장했다"


통역을 통하고 있었기에 짧은 문장으로 집약되어버렸으나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았다. 인디언 노예의 말을 받아적고, 다음 질문을 계속했다.

점심 때가 되자, 그들의 식생활에 맞춘 옥수수의 포리지(porridge)를, 여름에 수확하여 보존해두었던 스위트 콘으로 만들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삶아서 불리기만 해도 달콤한 스위트 콘에 인디언 노예는 놀랐지만, 그가 생각하는 포리지의 맛과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 자신이 솜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용감한 자여, 또 만나자"


헤어질 때도 인디언 노예의 태도는 담백했다. 언제 누구에게 팔려갈지 모르는 신세인데, 그는 그것을 비관하고 있는 기색조차 없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으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꽤나 모였네"


자택의 창고에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를 보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종이의 원료에는 닥나무(楮), 삼지닥나무(三椏), 안피나무(雁皮), 삼(麻) 등 4종류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생하고 있는 것을 수확하거나 상인에게서 사들였지만, 시즈코는 종이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대대적인 원재료 생산에 착수하기로 했다.

만들어지는 종이의 품질을 생각하면, 안피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안피나무는 생육이 늦고 또 재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재배가 용이하며 매년 안정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닥나무를 주로 하고, 삼지닥나무를 부재료로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과연 에치젠(越前) 화지. 좋은 걸 만드네. 미노(美濃) 화지도 지지 않지만, 역시 장지문(障子)이나 포장지(包み紙)용이지"


청서(清書)용으로 준비한 에치젠 화지의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으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에치젠 제압 후, 시즈코는 에치젠의 기술자들을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당연히 화지 기술자도 있었다.

화지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시즈코는 화지 생산의 거점을 세우고 화지 기술자들을 그곳에 던져넣었다.

환경 차이에 당황했던 에치젠의 화지 기술자들도, 익숙한 도구나 설비가 없는 것만 빼면 좋은 대우인 것을 알자 열심히 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시즈코는 미노 화지 기술자들과 마찬가지로 솜씨가 좋은 기술자를 골라 '명인(名人)'이나 '달인(達人)'의 칭호를 내렸다.

하지만 칭호를 받은 기술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漉) 종이가 다른 기술자들의 것과 따로 취급되는 것과 약간 보수가 늘어나는 것 외에는 대우에는 변함이 없다.


기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이것은 판매하는 입장에서의 품질보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인'이나 '달인'이 만든 종이가 질이 좋은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그 상품 가치도 자연히 달라진다.

좋은 것을 싸게 제공한다는 사고방식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당연한 시대의 가치관이며, 공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국시대에서는 좋은 물건에는 그에 맞는 가격이 붙었다.

완성된 상품의 매매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서서히 '명인'이나 '달인'의 칭호를 갖는 기술자들에게 환원되는 보수는 늘어간다.

성과에 걸맞는 보수가 약속된다면, 기술자들은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더욱 좋은 물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미노 화지의 기본적인 품질도 올라간다.


단, 품질이 좋으면 팔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좋은 물건에는 그에 걸맞는 포장이 있으며, 가격에 걸맞는 선전이 필요해진다.

설량 일반인이 손댈 수 없는 가격이라도, 비싸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사들이는 사람은 있으며, 사용자의 주변에 그 상품가치가 퍼져나간다.


물론, 선전에만 그치지 않고 가격 설정에도 이런저런 연구를 한다. 심리적(心理的) 가격 설정(価格設定)이라고 불리는 가격 설정을 했다.

구매자는 가격이 비싼 것에는 가치가 있고, 가격이 낮은 것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명성가격(名声価格)이라고 부른다.

또,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어 고급품, 중급품, 보급품을 늘어놓으면, 많은 사람들은 중급품을 선택하기 쉽다. 이것을 단계가격(段階価格)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매자 심리를 찌른 가격을 제시하여, 시즈코는 구매자층을 분리시켰다.


즉, 에치젠 화지를 고급 브랜드 상품으로 삼고, 미노 화지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을 중급품, 일반적인 품질의 것을 보급품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연구를 한 가치가 있어, 각각의 화지는 서서히 침투해갔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청서해버리자"


시즈코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낮에 수집한 이야기의 내용을 에치젠 화지에 청서해갔다.

경필(硬筆, ※역주: 연필이나 펜 등의 총칭)에 익숙했던 시즈코는 당초에 모필(毛筆, ※역주: 붓)에 고생했으나, 이제는 붓 쪽이 빠르게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明智) 님의 사자가 왔습니다"


이제 곧 정리가 끝날까 싶을 때, 소성이 사자의 내방을 알려왔다. 중요한 부분은 끝났다고는 해도, 시즈코로서는 얼른 다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제 곧 해도 질테니, 내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요"


방에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대략의 시각을 추측했다. 이제 곧 해가 질 거라 생각한 시즈코는, 지금은 바쁘니까 다른 날에 다시 와 달라는 뜻을 전하도록 명했다.

소성은 짧게 대답한 후, 말을 전하러 갔다. 소성이 떠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작업을 재개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시즈코 님. 뭔가 화급(火急)한 용무라고 하시며, 오늘 중에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몇 장만 남았을 때 소성이 돌아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다 쓴 초고(下書き)의 매수(枚数)를 세었다.


"……조금 기다리라고 전해요. 먼저 방으로 안내해서 차와 차과자(お茶請け)를 내주도록 해요. 그리고 케이지 씨…… 는 아마 없겠네. 사이조 씨 등을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10분 정도에 끝내자. 그렇게 결의한 시즈코는 다시 붓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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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4 1574년 1월 하순



오다 군에 의한 군사 지원을 거절한다. 시즈코는 그 요청의 의도에 대해 생각했다.


"이쪽에서 부탁해 놓고 무슨 뻔뻔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쵸소카베(長宗我部)가 시코쿠(四国)의 패자(覇者)인 의미가 없습니다. 오다 님이 우연히 이야기를 한 것이 쵸소카베이며, 거기에 필연성은 없고 누구든 상관없었다는 게 됩니다"


이케(池)의 표정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사실 그 말대로라서, 시코쿠를 다스리기에 충분한 기량이 있다면 노부나가는 쵸소카베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쵸소카베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쭐할 정도로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코쿠를 통치하려면, 얕보인 채로는 지장이 생깁니다"


시즈코가 추측할 것도 없이, 이케 자신이 이유를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현재, 쿠키 수군의 활약만이 부각되며 쵸소카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오다 군이 쵸소카베에게 '시코쿠를 통일시켰다'라고 누구나 생각하리라.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거라면 직접 주상(上様)께 상소를 드리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미요시(三好) 건으로 화가 나 계시지만, 올바른 도리가 있다면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 예에,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노부나가에게 상소하라고 하자, 이케는 갑자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를 보고 시즈코에게는 짚이는 곳이 있었다. 승산(勝ち筋)이 보이기 시작한 후에 자신들에게도 활약할 장소를 달라고 청하는 것은 확실히 뻔뻔한 이야기이다.

최종적으로는 시코쿠의 안녕으로 이어지며 오다에게도 이익이 있는 일이지만, 이 제안을 한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노부나가의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쵸소카베까지 한꺼번에 멸망시켜버리라는 말이 나오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래서 노부나가 자신도 여러 모로 인정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중간에 서서 중재해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주상께서는 감정적이 되시긴 하지만, 감정에 맡긴 채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드문데…… 뭐, 이런 특징은 평소에 알고 지내지 않으면 모르겠지)


그리고 쿠키 수군의 실전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한꺼번에 물렸다가 역전당할 수는 없으니, 단계적으로 물리게 하여 본래의 목적으로 운용을 시작해도 좋을 무렵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방침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없다. 뭣보다 아직 미요시는 건재하여 노부나가의 의향을 이루지 못한 점이 걸린다.


"흐ー음. 주상을 설득하려고 하면, 그 나름대로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5년…… 아니, 3년 안에 미요시를 멸망시키실 수 있겠나요?"


"3년! 아니…… 이걸 하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오다 님께서도 저희들을 저버리시겠죠. 반드시 멸망시켜 보이겠습니다"


"(이게 절대 조건이라는 건 아니지만, 저쪽에는 그 정도의 각오를 해 주는 편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주상께 말씀드리지요. 시간은 좀 걸릴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이 건에 대해서는 아케치(明智) 님의 지원도 있습니다. 즉시 결단해 달라는 생각 따윈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케가 한 말에서, 시즈코는 누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했다. 애초에 쵸소카베는 미츠히데(光秀)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으로 세력 구도는 크게 변화했다.

이 요청을 계기로 다시 미츠히데의 영항력은 강해진다. 오다에게도 좋고, 쵸소카베에게도 좋고, 시즈코에게도 이득이 있다. 당연히 미츠히데의 이익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연 지장(智将)으로 이름높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절묘하게 이해관계를 조정해보인다고 시즈코는 감탄할 정도였다.


(의욕적(乗り気)으로 보인 것이 오해를 부른 걸까? 시코쿠가 통일된다면 누가 다스려도 나는 상관없는데)


시즈코로서는 시코쿠의 토지에 거대한 과수(果樹) 재배지대(栽培地帯) 벨트를 예정하고 있었다.

시코쿠는 중앙을 동서로 시코쿠 산맥(四国山脈)이 가로지르고, 그것을 경계로 북부와 남부는 기후가 크게 달라진다. 옛부터 한해(干害, ※역주: 가뭄 피해)를 입기 쉽고, 수경재배(水耕栽培)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조량이 좋은 산지에 물빠짐이 좋은 토양을 선호하는 과수를 심어 일본의 수요를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대로, 에히메 현(愛媛県)에서 귤 등의 감귤류를 재배하고, 카가와 현(香川県)에서는 올리브를 키우고, 평야(平野) 지대에서는 쌀만큼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밀(小麦)을 키울 생각으로 이것저것 수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물게 시즈코가 지배지에 대해 욕심을 보였기에, 미츠히데로서도 경계를 해버렸다는 배경이 존재했다.


미츠히데는, 이 이야기를 중재하는 것으로 쵸소카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시즈코에게 다른 뜻이 없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시즈코로서도 미츠히데가 고삐를 쥐어준다면, 준비가 헛되지 않게 되기에 바라는 바라고 할 수 있었다.

각자 다른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이해가 일치했기에, 원만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전원의 합의를 얻게 되자, 이케는 시즈코, 미츠히데 양쪽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퇴출했다. 미츠히데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용무가 있는 거라고 헤이란 시즈코는 내심 진절머리를 냈다.

억지로 자리를 떠도 되었으나, 다음에 갈 곳이 히데요시(秀吉)였기에 엉뚱한 혐의를 받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참기로 했다.


"번거로운 이야기를 가져와서 죄송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타마(珠)는 폐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타마 짱 말인가요? 요즘에는 일도 잘 배워서 손이 안 가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에는 신기한 동물을 봤다느니, 아름다운 채색이 된 유리(玻璃)를 봤다느니……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도무지 불안한 내용들 뿐이라서……"


시즈코의 대답에 미츠히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로는 근황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해져서 이렇게 묻게 된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무장(武将)이라고 해도 부모. 역시 자기 자식은 신경쓰이는 것이겠지)


세상에서는 오다 가문에서 가장 출세가 빠른 것(出世頭)으로 이름높은 미츠히데도, 자기 자식의 일이 되면 부모의 표정을 보였다. 체면을 차리는 것도 있겠지만, 의외로 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 후, 타마의 근황에 대해 시즈코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두세마디 더 나눈 후, 미츠히데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정신차려보니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있어, 시즈코는 히데요시로부터 사전 연락이 필요없다고 들었기에 그 길로 히데요시를 찾아갔다.

그러나, 타이밍 나쁘게 오우미(近江)에서 긴급한 연락이 도착하여 히데요시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를 데리고 기후(岐阜)를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회견은 연기려나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대리인(名代)으로서 남은 히데나가(秀長)와 만나게 되었다.


"우선, 이쪽에서 불러놓고 자리를 비운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이마하마(今浜, 나가하마(長浜)의 옛 이름. 히데요시가 이주한 후에 나가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에서의 축성에 조력해 주신 점, 형님을 대신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히데나가는 시즈코에 대해 사의(謝意)를 표하면서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순조로운 듯 하여 안심했습니다"


"공방 마을(工房街)의 보청(普請, ※역주: 건축이나 수선)을 현지 주민들에게 맡겨주신 것을 형님은 대단히(殊の外) 기뻐하고 계십니다. 올해 겨울에는 굶주리는 백성이 없을 것이라면서요"


"현지의 지형지리에 익숙한(土地勘) 현지 분들을 고용하는 쪽이 합리적이니까요"


히데나가로부터 정중한 감사를 받고 시즈코는 조금 당황했다.

보청이란, 널리(普) 청한다(請)는 글자 그대로, 사회 기반을 지역 주민들이 만들고 유지해가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시즈코가 한 것은 나가하마에 대규모 유리 공방지대(工房地帯)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와리(尾張)에서 시작된 유리제품 제조였으나, 점차 오와리에서만으로는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기술자들도 늘리고 규모를 확대하고 싶었으나, 시즈코의 영지는 주위가 농지(農地)에 둘러싸여 있어 용지의 확보가 어렵다.

원래는 실험적으로 소규모로 시작한 산업이었으나, 기술이 확립된 지금에 와서는 채산성이 높은 우수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제조업이라는 것은 왕왕 생활 양식이 특이하기에 거주구에서는 격리되어 집중시키는 쪽이 효율도 좋다. 시즈코가 어딘가에 광대한 토지를 확보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손을 들어올린 것이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는, 새로운 영지의 주요 도로를 따른 일등지(一等地)를 확보하여 유리 공방을 유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마하마는 교통의 요충이지며, 수도인 쿄(京)에도 적당히 가까워서 사치품(奢侈品)으로 간주되는 유리 제품의 생산지로 삼기에는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오와리 키리코(尾張切子)의 술잔은 폐하(帝)께서도 애용하시는 물건이라고 하니, 언젠가 이마하마로부터 헌상될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군요"


"그건 어떨까요? 폐하께 바치는 헌상품은, 품평회에서 최상으로 평가된 물건이지요. 제 기술자들도 그렇게 쉽게 그 영예를 양보하진 않을거라 생각하는데요?"


평소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시즈코가 드물게 자부심을 드러내보였다. 자신의 진퇴를 걸고 키워낸 산업이니만큼 애착도 강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정도의 산업을 이마하마로 옮겨도 괜찮으신 겁니까?"


"오와리의 공방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유리 산업이 퍼지는 것 자체는 대환영이지요"


"하하하, 겸손하시군요. 부를 자기들끼리(身内) 독점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 널리 민초(民草)들에게 부를 나누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도 여전히 어렵지요. 자, 너무 길게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형님께 받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네에"


"이마하마는 유리와 비단(絹)의 생산지로서 개발을 진행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필수품이 아니기에 미래의 전망에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이마하마 외에는 없다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히데요시의 상담이란 '나가하마에 특산품(特産品)을 만들고 싶다'였다. 확실히 나가하마를 포함하는 오우미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질 좋은 견사(絹糸)나 견직물(絹織物)의 산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그것도 과거의 영광에 불과하다. 오우미가 산출하는 비단 제품이 품질이 좋더라도 생산량이 부진하고, 거듭되는 전란으로 기술자(技術者)나 장인(職人, ※역주: 職人은 보통 '장인'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사용되는 뉘앙스는 '기술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職人은 기술자로 번역하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따로 기술자라는 표현이 등장했기에 職人을 장인으로 번역했음)들을 잃었다.

한 마디로 특산품이라고 해도 즉각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쌀의 생산량을 늘리는데 주력하여 특산품을 낳을 바탕을 쌓아올려야 한다. 하지만, 나가하마에서의 쌀농사에는 한 가지 과제가 존재했다.

후세의 이야기가 되지만, 오우미 지방에는 수해(水害)가 빈발했다. 아네가와(姉川)나 타카토키가와(高時川, ※역주: 아네가와의 반대되는 뜻으로서 이모우토가와(妹川)라고도 함)가 범람하거나, 이건 남부에서의 이야기이지만 타나카미 산(田上山)이 원인이 되어 세타가와(瀬田川)가 범람하기도 했다.

양질(良質)의 목재를 꾸준히 제공해온 타나카미 산도, 에도(江戸) 시대에는 '대머리 타나카미(田上の禿)'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민둥산(禿山) 지대가 되었다.

한 번 비가 내리면, 대량의 토사(土砂)가 세타가와로 흘러들어가, 하류 지역의 마을(集落)들이 이전할 정도의 피해를 냈다.

메이지(明治) 시대가 되자 본격적인 치수(治水) 공사가 정부 주도로 시행되어, 그 때 생겨난 것이 유명한 '네덜란드 언제(オランダ堰堤)'이다.


"오우미는 수해가 많고, 그 때문에 치수공사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그거 든든하군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어떻게든 수도(都)에 가까우면서도 수입이 안정되어 있는 오와리-미노(美濃) 지방에 영지를 원하는 가신들도 있습니다. 수해에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면, 오우미의 수리(水利)는 멋진 매력이 되겠지요"


이 시대의 일본에서 경제의 중심지는 오와리이다. 물류 면에서는 사카이(堺)에 한 발 양보한다고는 하나, 언젠가 일본의 현관문을 맡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거기서 멀리 떨어진 오우미의 땅으로, 영민들은 오다 가문 일당(一党)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고려하면, 히데요시의 가신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히데요시가 상담해온 것도, 나가하마의 장래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신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형님께서 상황을 정리하시고 본인이 시즈코 님을 찾아뵐 테니 그 때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전향적으로 검토해주신다는 회답만을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히데나가와의 회담은 종료되었다. 히데나가는 히데요시에게서 맡은 용건을 전달한데다 시즈코의 협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로 귀로에 올랐다.


(치수라고 하면 영주의 기량이 시험받는 분야. 아무 대가도 없이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녀의 권세는 그 정도에까지 이른 것일까요? 그녀는 쌀이야말로 힘이며, 돈이나 권력의 근원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똑같이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신다고는 해도, 시즈코와 히데요시의 관계는 현대풍으로 말한다면 그룹 회사 내부의 경쟁사(競合他社)이다.

그룹 전체가 착수하고 있는 주력상품 '쌀'에 관한 기술을 나눠준다는 것은 스스로의 어드밴티지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즈코는 기술공여를 수락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쌀본위제도(米本位制度)'에서 탈피하여 아득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의 속셈이 어찌되었던, 형님께서 이마하마로 옮겨가시면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付き合い)는 바랄 수도 없지요. 지금은 장래로 이어지는 포석을 둘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이것이 훗날 형님께 이익을 가져오기를 기대하도록 하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부주의하게 시즈코와의 거리를 줄이면, 그것은 주위의 경계를 초래한다.

히데나가는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다음으로 이어지는 한 수를 둘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났다.


(무리하게 다가가려고 하면, 이쪽도 가진 패를 내보이게 됩니다. 그녀가 하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우리들에게는 주옥같은 의미를 가지지요. 조용히, 천천히 낚아챈다. 흠…… 나쁘지 않군요)


이런 공작(工作)도 꽤 재미있다. 그렇게 생각한 히데나가는, 무의식중에 소리내어 웃었다. 호위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가 그것에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쵸소카베의 건을 보고하려고 알현을 신청했을 때, 예상보다도 빠르게 수락의 답변이 돌아왔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에 임했다.


"달력(暦), 인가요"


"음. 지금까지의 달력을 폐지하고, 새로운 달력을 제정한다. 새로이 퍼뜨리는 달력은, 네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달력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달력을 제정한다는 것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과 맞먹는 천하인(天下人)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옛부터 태음력(太陰暦)이 사용되었고, 메이지(明治) 6년에 태양력(太陽暦)으로 바뀔 때까지 실로 다양한 달력이 사용되었다.


"1년을 365일과 3각(刻, 6시간)으로 정하고, 12개월을 1년으로 하고,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한다. 2월을 윤년(閏年)의 조정월(調整月)로 하고, 평년(平年)은 29일, 윤년에서는 30일로 정한 달력 말입니까?"


"그렇다. 하루를 24시간으로 하고, 한 시간을 60개의 분으로 나누고, 다시 1분을 60개의 초로 나누는 것이었더냐? 꽤나 번거롭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매년 보고해 오는 연간(年間) 온도 경향(温度傾向)이나 작부(作付け)와 수확량(収量)의 자료를 보고 그 유용성을 이해했다"


태음력이란 달의 운행을 강하게 의식한 달력이며, 날짜와 달의 모습(見かけの形)이 일치한다. 따라서 달만 떠 있다면 그 날이 며칠인지 달력이 없어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태음력에서는 실제의 계절과 날짜가 점점 어긋나버려서, 날짜와 연동된 계절별 현상을 기대하는 근대 농법과는 상성이 나쁘다.

그래서 시즈코는 그레고리 력(暦)을 기준으로 독자적인 달력을 정리했다. 평년을 365일로 하는 관계상, 단순히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해서는 1년이 366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현대의 역법(暦法)과 마찬가지로, 2월을 29일로 하고, 400년에 97회의 윤년을 두는 방식을 채용했다.

어째서 2월을 하루 줄인 것인가 하면, 선인(先人)이 2월로 정하고 그것이 통용되고 있는 이상, 뭔가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업에 있어 편리하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걸 정식으로 채용해도 괜찮을까요?"


어디까지나 농업을 하면서 매년 같은 날짜 쯤에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을 의식하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그것을 노부나가는 일본 전토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달력으로서 제정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역사의 선별을 견뎌낸 그레고리 력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고친 것이기에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다. 날짜와 계절이 일치하면, 윤달(閏月) 같은 번거로운 것도 필요없지. 물론, 급격한 변혁은 혼란을 가져오니, 당분간은 옛 달력과 병용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미 노부나가의 마음 속에서는 결정 사항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 이상의 이득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는 앞서 한 말을 뒤집지 않는다.

시즈코는 번의(翻意)를 촉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용하면서 문제(不具合)가 생기면 그때그때 수정하는 방침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자, 내 용무는 끝났다. 네 용건은 무엇이냐?"


"예. 시코쿠 통일에 전망이 섰으니, 쿠키 수군을 쵸소카베에게서 빼내어 해상 봉쇄 임무를 수행하게 했으면 합니다"


"호오…… 그 노림수는 어디에 있느냐"


노부나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시즈코와 이케의 대화를 몰라도, 미츠히데나 쵸소카베의 속셈은 헤아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할지 판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주(国人)나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속하지 않는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 사이카슈(雑賀衆)에 대한 대책에 이용합니다. 사이카슈의 대부분은 소규모 세력의 집단입니다만,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市)가 이끄는 사이카토(雑賀党), 오오타 사다히사(太田定久)가 이끄는 오오타토(太田党)의 2대 재지영주(在地領主)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 대해 당근과 채찍에 의한 이간 공작(離間工作)을 하려고 합니다. 오오타토에게는 정치적 책략을 포함한 당근을 주고, 사이카토에 대해서는 해상봉쇄라는 채찍을 휘두릅니다"


"그런 허를 찌르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단번에 공격해서 멸망시킨다는 방법도 쓸 수 있겠지. 그걸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현재의 군사력을 생각하면 그 방법도 취할 수 있습니다만,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지역에는 사이카슈 외에도 코우야 산(高野山), 코카와데라슈(粉河寺衆), 쿠마노산 산(熊野三山), 네고로지슈(根来寺衆) 등 다섯 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 돌출된 새로운 세력이 발생하면, 그들은 외적을 배제하기 위해 손을 잡아, 오다 가문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을 형성하겠지요. 안 그래도 지리적 이점이 없는데다 까다로운 사이카슈를 상대해야 합니다. 다른 세력까지 참전해오면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사이카슈만 노려서 각개격파를 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흠"


"혼간지(本願寺)의 편을 드는 사이카슈라고 하나, 개중에서도 명확하게 오다 가문에 적대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이카토에게는 해상봉쇄를 하여 그들의 자금원인 해운(海運)이나 무역(貿易)을 차단합니다. 한편, 네고로지슈에 가까운 오오타토에게는, 그들을 통해 이익을 주어 우대합니다. 같은 세력 안에서 명확하게 균형이 깨지면, 내부 항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쿠키 수군을 쓰고 싶다는 것이냐?"


"사이카토도 해운이나 무역에 손을 대고 있는 이상 독자적인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과 싸워 승리하고,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해상봉쇄를 실행한다고 하면 쿠키 수군 이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쵸소카베도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거기까지의 숙련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시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혼간지는 우리들과의 강화(和睦)를 깨고 공격해오겠지요. 그들의 전력을 지탱하는 것은 모우리(毛利) 수군, 무라카미(村上) 수군, 그리고 사이카슈의 수군. 이들이 해상으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하여 지원을 꾀하겠죠. 하지만, 이미 쿠키 수군이 포진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후, 후하하하핫!"


갑자기 노부나가가 홍소(哄笑)했다. 갑작스런 일에 시즈코는 당황했으나, 그녀의 곤혹스러움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노부나가는 한바탕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너는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구나"


"예? 아니, 칭찬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싸움이란, 직접 칼날이나 화살을 주고받는 것 뿐만이 아니다. 사전에 얼마만큼 준비를 했는가, 그것이야말로 싸움의 근간이지. 가신 녀석들은 많은 병사를 보유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네가 가장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얄궂은 이야기구나"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웃음을 떠올리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좋다. 쿠키 수군은 네 뜻대로 해라. 쵸소카베의 속셈대로 되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음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옛"


노부나가의 결정을 듣고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쵸소카베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오다 가문에게 가치가 있는 한 수를 적보다 앞서 둘 수 있게 된다.

장기간 머나먼 시코쿠에서 전투행위를 계속해온 쿠키 수군에게는 충분하게 위로를 해줄 필요가 있다. 장비의 보급이나 개수도 포함하여 충분한 보수와 휴식을 주어, 다음 작전에 대비하게 하기로 했다.


(예상 이상으로 순순하게 받아들여졌네. 나가하마의 특산품을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겠어. 으ー음…… 나가하마의 특산품에 대해서는 명나라(明)에서 기술을 계승한 '치리멘(ちりめん, ※역주: 바탕이 오글쪼글한 비단)' 견직물이 좋겠지. 분명히 '하마치리멘(浜ちりめん)'이라고 불리웠으니…… 응, 그게 좋겠어)


역사적 사실에서의 '치리멘' 견직물은, 텐쇼(天正) 시대에 건너온 명나라의 직공(職工)이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센슈(泉州) 사카이에 발단을 두는 '치리멘' 견질물은, 그 생산지가 사카이에서 쿄(京)로, 쿄에서 탄고(丹後)로 옮겨간다. 훗날 '하마치리멘'이라고 불리는 나가하마에서의 생산은, 나카무라 린스케(中村林助)와 이누이 쇼쿠로(乾庄九郎) 두 사람이 탄고에서 기술을 배워오고, 또 탄고에서 기술자를 파견받아 기술을 정착시켰다.

이것은 에도 시대 중기(中期)의 일로, 현 시점에서는 사카이에서조차 퍼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정에서 받은 예사(芸事)의 수호(守護)에, 동료 가신들의 상담을 해주고, 자신의 영지도 관리해야 하지. 너도 항상 정신없이 바쁘구나"


"주상께서 일본을 통일하시게 되면 느긋하게 휴가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것에게는 아까울 정도의 우수한 가신들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네 가신들은 우수하지.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란 얻기 힘든 것이다.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아라"


"옛"


"널 위해서 내게 직접 담판까지 지었던 겐로(玄朗)는 내 밑에 두고 싶을 정도다. 너를 맹신하지 않는 점이 아주 좋더군"


고개를 숙이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겐로의 이름을 꺼냈다. 성(名字)을 얻은 겐로의 휘(諱)는 시즈오키(静興). 그의 휘를 정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겐로가 휘를 정할 때, 그는 주군인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고 싶다고 청했다. 시즈코는 이것을 쾌히 승낙하여, '시즈(静)' 한 글자를 내렸다.

그러나, 겐로가 세운 전공은 눈부신 것으로, 노부나가에게서 직접 '나가(長)'의 한 글자를 받는 영예를 얻었다. 관례로 볼 때는 시즈코의 주군에 해당하는 노부나가의 한 글자를 우선시한다.


이렇게 주군, 또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게서 이름 중에 한 글자를 받는 것을 편휘(偏諱)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편휘에서는 통자(通字)와는 다른 글자가 내려지는데, 드물게 통자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통자란, 그 집안에서 대대에 걸쳐 사용되는 글자를 가리키며,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노부(信)'의 글자가 해당된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信秀)에게서 노부나가로, 노부나가에서는 노부타다(信忠)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편휘의 관례에 따르면, 여러 사람에게서 이름을 받게 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휘가 편휘와 통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겐로의 경우,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나가(長)'를 위에 두고, 아래에 '노부(信)' 나 '시즈(静)', 코(子)' 등의 주군의 이름을 피한 통자를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겐로로서는 꼭 시즈코의 편휘를 쓰고 싶었다. 고뇌한 끝에 겐로가 내린 판단은, 노부나가의 편휘를 반납하는 것이었다.


"소생이 지금의 신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즈코 님께서 키워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시즈코 님께 편휘를 청해놓고, 주상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하여 바꾸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소생 따위가 주상께서 하사하신 것을 반납하는 것은 만 번 죽어 마땅한 무례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겐로, 목숨을 걸고 청원합니다. 시즈코 님의 편휘를 쓰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신다면, 이 목을 주상께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하사된 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위가 된다. 흰 옷(白装束)을 입고 노부나가에게 청원하는 겐로에 대해, 오다 가문 가신들은 실컷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중인환시리에 모욕을 당한 장본인인 노부나가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사람은 신분이 높아짐에 따라 초심을 잊어가지. 하지만, 이 겐로는 어떠냐! 일문(一門)의 두령(頭領)이 되어서도 여전히 시즈코에 대한 은의(恩義)를 잊지 않았다. 나와 시즈코에게 모두 예의를 지키기(筋を通す) 위해, 분노를 사서 죽음을 명령받을 것을 각오하고 청원하는 그 결벽함(潔さ), 실로 훌륭하다!"


이 한 마디로 판결이 내려졌다. 노부나가가 좋다고 한 이상, 주위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로서 노부나가로부터의 편휘는 없었던 것이 되고, 겐로는 시즈오키라는 휘를 사용하게 되었다.


"모두의 충의(忠義)를 받을 가치가 있는 주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엎드린 채 대답했기에 노부나가도 시즈코 본인도 깨닫지 못했으나, 시즈코는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귀가한 시즈코는 급히 달력을 문서화하는 데 착수했다. 노부나가가 안건을 채용한다는 것은, 나아가서는 세상에 공표할 초안(草案)을 제출하라는 의미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노부나가 자신은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즈코에게 명령한 이상 성과에는 그에 걸맞는 보수가 지급된다. 화려함은 없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의 치세를 지탱하는 받침대가 되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달력은 예전에 책정했을 때의 초고(下書き)가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자신의 행리(行李, 대나무나 등나무 등으로 짠 옷농(葛籠))을 뒤집었다. 그녀의 초고를 기초로 한 초안은 이와 같다.


제 1장 역법(暦法)

제 1조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날짜 수를 1년으로 정한다. 해가 뜨고, 진 후, 다시 떠오를 때까지를 1일로 정한다.

이에 따라, 1년을 365일로 정한다. 단, 365일로는 약간 계절과 역법에 어긋남이 발생하므로, 윤년(閏年)을 두어 이를 조정한다.

제 2조 윤년이란 1년을 366일로 하는 해로 정한다. 또, 365일인 해를 평년(平年)이라 정한다.

제 3조 윤년이 되는 해는, 이하의 규칙으로 구한다.

제 3조-제 1항 연수(年数)가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2항 연수가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3항 제 2항에서,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4조 1년을 12로 나누어 각각을 달(月)이라 정하고, 1월부터 12월까지로 한다

제 5조 홀수 달을 31일로 정하고, 짝수 달을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1항 2월을 윤년의 조정월로 정하여, 평년은 29일, 윤년은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2항 3월에서 5월까지를 봄, 6월에서 8월을 여름, 9월에서 11월을 가을로 정하고,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를 겨울로 정한다

제 6조 옛 역법의 사용을, 새 역법 시행 후 10년 동안은 인정하기로 한다.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에서도 새 역법 이외에는 사용을 금한다.


"아! 기년법(紀年法)에 대해서도 정해야지. 으ー음…… 역시 황기(皇紀)가 익숙해지기 쉬우려나"


역법의 초안을 정리하면서, 기점(起点)이 되는 시점을 정하지 않은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레고리력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에 서력(西暦)이 어울리지만, 서양의 성인(聖人)의 생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천황제(天皇制)와 연결된 황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황기란, 정식 명칭을 진무 천황(神武天皇) 즉위기원(即位紀元)이라고 부르며,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참고로 일본이 제정한 기년법이다.


"역법과는 달리 기년법도 제정해야겠네. 시각법(時刻法)도 필요하려나"


다른 종이를 준비하여, 시즈코는 기년법과 시각법의 조문을 적어넣었다. 그녀의 안(案)은 다음과 같다.


제 2장 기년법

제 1조 초대 천자(天子), 진무 천황의 즉위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제 2조 즉위년은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 일본기(日本紀)에서 구한다.

제 3조 제 1, 제 2조에 의해, 금년을 황기 2234년으로 한다.


제 3장 시각법

제 1조 시각의 단위는 '시(時)', '분(分)', '초(秒)'로 정한다. 1일은 24시간으로 하고,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정한다.

제 2조 9시를 정자(正子), 12시를 정오(正午)로 정한다.

제 3조 정자 및 정오는, 별도로 정하는 자오선(子午線)을 햇님(天道様)이 통과하는 시각으로 한다.

제 4조 시각을 12지(十二支)로 세는 것을 시각법 시행 후 10년간은 인정한다. 단,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도 시각법 이외의 사용을 금한다.


"후ー, 이 정도려나"


시즈코는 조문을 다 쓰자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문장으로 룰을 정하는 것은 예상 이상으로 피곤했다.

자연을 상대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쪽이 성격에 맞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일본이 평화로워지면 이런 사무처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것의 청서(清書)을 부탁해요"


시즈코는 서류를 근시(近侍)에게 맡겼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려면 초안을 기초로, 정식 서류로 작성하는 작업이 필요해지는데, 그것은 시즈코의 역할이 아니다.

본래는 우필(右筆)이라 불리는 문관이 담당하지만, 시즈코 저택에서는 서류를 담당하는 문관 중 누군가가 청서하여, 필두 문관(筆頭)이 확인하는 흐름이 된다.

그것을 시즈코가 최종 확인하고, 문제없다고 판단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된다.

번거로운 절차(手順)를 거치게 되지만, 노부나가도 지금은 많은 결재를 하는 몸이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는 서류는 그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귀찮지만, 반려되어 오면 괜히 수고가 더 들어가니까"


자신을 위로하듯 시즈코는 어깨를 주물렀다.

며칠 후, 시즈코의 초안을 기초로 한 정식 서류가 노부나가에게 전달되었다.




역법 전반의 정식 서류가 완성되기 전, 시즈코는 매일 들어오는 서신을 읽고 있었다.

겨울은 강설(降雪)에 의해 주요 도로 이외에는 통행불능이 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격감했다. 이 때문에, 시즈코가 집에 있을 것을 예상하고 서신이 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으로 읽은 서신의 발신인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금주령(禁酒令) 때문에 몸 상태가 좋아졌다'였다.


"가려움도 가라앉았구나. 알코올 의존증의 이탈기(離脱期)는 벗어났다고 봐도 되려나"


알코올 의존의 상태에서 주량의 감량 또는 금주를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을 가리켜 이탈증상(離脱症状, ※역주: 금단증상)이라고 한다. (작가 주: 알코올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탈증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초기에는 손이나 전신의 떨림, 발한(発汗)이나 집중력의 저하, 환각(幻覚)이나 환청(幻聴)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을 조기이탈증상(早期離脱症状)이라 부른다.

그에 반해 후기이탈증상(後期離脱症状)은, 음주를 그만두고 2~3일 후에 나타난다. 환시(幻視)나 소재식 장애(見当識障害, ※역주: 자기가 시간적·공간적·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라는 의식(의식의 이상(異常)을 판정하는 근거가 됨)), 비정상적 흥분이나 발열, 발한, 떨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이탈증상들은 강한 불쾌감을 동반하여,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계속 마신다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켄신은 수족의 부종(浮腫) 외에 전신의 가려움도 호소했으나, 그것들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이탈기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신에 적힌 근황에는 '요즘에는 식사가 맛있게 느껴진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금후에도 주의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처럼 영구 금주령(永久禁酒令)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잘 됐네 잘 됐어. 켄신의 후계자 싸움은 아직 표면화(顕在化)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 진영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으니까"


후계자 싸움은 당분간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은 했으나, 호죠(北条) 가문이 멸망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가장(家長)인 켄신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그는 건강을 유지해줘야 한다. 건강에 주의하지 않은(不摂生) 기간이 긴 만큼 장수(長寿)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향년 49세가 아니라 7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충분히 역사는 바뀔 수 있다.

반대파에게도 조금씩 이익을 줘서 회유와 포섭(取り込み)을 하면,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않고도 자국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다.


(흐ー음. 아직 켄신이 건재하고 당분간은 이쪽의 지시에 따라준다는 상황은 고맙네. 눈이 녹을 무렵부터 인프라 정비도 개시될 전망이고…… 다만 동해(日本海) 쪽에서는 눈이 내리는 시기가 기니까,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현대와 같은 제설용 중장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제설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눈을 버릴 땅도 확보할 수 없다. 눈을 운반하기 위해서도 정비된 인프라가 필요해진다.

현 단계에서 기계화된 제설기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연료의 확보나 한랭지(寒冷地)에서의 동작 시험 등 클리어해야 할 과제도 많다.

언젠가는 개발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달리 우선시해야 할 안건을 품고 있기에 전망이 서지 않고 있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하기보다 실제로 감독하는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적임이겠지. 왕왕 말이 좀 부족하지만……"


켄신의 서신을 치우고, 시즈코는 다음 편지를 손에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이 사키히사(前久)였기에, 무슨 일이 있나 하여 내용을 진지하게 음미했다.

그러나, 읽어나감에 따라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공가(公家)에 대한 정치적 책략을 하려고 하니 식재료니 뭐니를 보내달라, 는 건 알겠어. 하지만 마지막의…… 왜 고양이를 보내달라는 거야? 딸에게 사쿠야(開耶, 사키히사가 기르고 있는 터키시 앙골라의 이름. 코노하나사쿠야비메(木花開耶姫)에서 따온 이름)를 뺏기기 일쑤? 거기까진 책임 못 져……"


최근에 터키시 앙골라가 처와 딸에게 달라붙어버려 상대해주지 않아서 쓸쓸하니 새 고양이를 보내달라, 라고 편지에는 우아(雅)한 필치로 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설마, 역사적 사실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보낸 서신과 마찬가지인 서신을 받은 건 역사적으로 귀중하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사키히사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그 답례로 '고양이는 부인에게 빼앗겨 내 손에 없소. 딸도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모르오. 우선은 내 것이 있었으면 하오"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암묵적으로 딸의 것도 조르는 사키히사의 유쾌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문서이지만, 부탁받는 쪽은 배겨낼 수가 없다.


"그렇게 딱 좋게 새끼 고양이를 확보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번식기에 막 들어간 현재 상태에서는 일단 무리일 것이고, 설령 새끼 고양이를 수배할 수 있다고 해도 사키히사를 따를지는 고양이에 달렸다. 이상적으로는, 사키히사와 새끼 고양이를 만나게 하여 그가 마음에 든 새끼 고양이를 양도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사키히사는 이미 칸파쿠(関白)의 지위에 있어,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또, 자칫 이상한 것을 보냈다가는 오다 가문의 체면에도 관계된다. 사키히사 자신이 납득해도, 주위가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응, 다음이다 다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시즈코는, 다음 서신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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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3 1574년 1월 하순



설날(元日).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해 노부나가가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은 작년에 비해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혼잡을 예상하고 준비된 대합소(待合所)는 사람으로 넘쳐나서, 대합소에 들어가려고 해도 장사진(長蛇の列)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런 상태였기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당되는 시간은 엄격히 제한된다. 간결하면서 필요 최소한의 말로 노부나가에게 기억되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화톳불(篝火)이 피워져 있다고는 해도, 찬바람이 불어닥치는 시련을 견뎌내고 간신히 노부나가와의 알현이 이루어져도, 나눌 수 있는 말은 정형화된 인사 외에는 한두마디에 불과하다.

인사를 마친 사람이 실의에 잠겨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좀 더 잘해보이겠다고 야심을 불태우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가 맛있네"


설날쯤 되면 다들 본가(実家)로 돌아간다. 항상 소란스럽던 시즈코의 저택도 이 날만큼은 정숙함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소동을 일으키는 이치(市)와 챠챠(茶々), 하츠(初)도 정월(正月) 동안에는 오다 가문으로 귀성해 있었다.

시녀나 하인들에게도 휴가와 노잣돈(路銀)을 주어 돌려보내버렸기에, 시즈코의 저택에서는 사람의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들(側仕え)이 전부 나가 있기에 뭘 하려고 해도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지만, 시즈코는 이걸 불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로리(囲炉裏)에서 느긋하게 물을 끓여 직접 자신과 아야(彩) 몫의 차를 끓여 한잔 마시고 있었다.


"미노(美濃)에서 나는 좋은 찻잎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시즈코가 사용한 차통(茶筒)을 들어보이며, 포커 페이스에 어딘가 뽐내는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야와도 오래 알고 지냈기에, 약간의 표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맛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느긋한 시간도 포함하여 총평(総評)한 건데, 라고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아야답다고 시즈코는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두 사람 다 신분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항상 주위에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었기에, 둘만이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 같은 건 정월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최근의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집을 비우는 일이 많다. 한편, 아야는 시즈코가 없을 때 집을 보게 되므로, 쇼우(蕭)와 함께 집 안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엇갈리는 생활을 하게 되어, 대화는 커녕 자칫하면 한 달 넘게 얼굴을 마주칠 수 없는 경우까지 있었다.


"뭔가, 설(正月)이라는 느낌이 드네"


다른 사람 없이 아야와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한다. 겨우 그런 것이 어렵다. 지금의 시즈코에게는 1년에 한 번, 설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조금 옛날을 떠올려보았다. 지금의 저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좁은 방에 자신이 있고, 주위를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아야가 둘러쌌다.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다들 웃었던 것은 확실했다. 옛날 쪽이 나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시즈코는 꽤나 멀리 와버린 듯한 심정이었다.


"뭔가, 여러가지가 변해가네"


"시즈코 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지는 모르겟습니다만, 당신께서 필요없다고 하시지 않는 한, 저는 당신 곁에서 계속 모실 것입니다"


"……고마워"


아야의 꾸밈없는 말을 듣고 시즈코는 약간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어느 쪽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무언(無言)의 시간을 거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주상(上様)께서 일본을 통일하시면 조금은 조용해지려나?)


일본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세상에 태평(泰平)이 찾아오면 조용히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몽상을 하면서 시즈코는 아야와 둘만의 설을 보냈다.


하룻 밤이 지난 후, 다음날부터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고용인(家人)들도 돌아와서, 전날의 고요함이 거짓말처럼 떠들썩했다.

첫 일거리로서, 우선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간다. 올해부터는 노부타다에 대한 인사도 필요해져, 준비에 다들 정신없이 바빴다.

주군에 대한 인사를 마쳐도 쉴 수 있는 틈 따윈 없다. 사흘째가 되면 자신의 부하들이나 오다 가문 내의 요인(要人)들도 설 인사를 하러 시즈코의 저택을 방문한다.

상대에 맞춰 안내할 방에서 입을 의상까지 바꿀 필요가 있어, 사전에 쇼우와 상담했다고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는 점도 맞물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을 마치면, 다음은 자신의 관할령(所領)인 주요 마을(街)에 새해 인사를 하러 갈 필요가 있었다.

이때쯤 되면 케이지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시즈코 저택으로 돌아와 있기에, 행사에 호위로서 따라온다.

여기까지 만사 지장없이 끝낼 수 있다면 한숨 돌릴 수 있지만, 그때는 한달도 절반은 지나 있다.

애초에 마츠노우치(松の内, ※역주: 설에 門松(=대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를 세워 두는 동안(설날부터 7일 혹은 15일까지))라 불리는 기간은, '정월 대보름(小正月)'까지의 15일로 치기 때문에, 새해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간다.


"크어ー, 겨우 끝났다"


시즈코는 좌식 책상(文机) 위에 엎어져 있었다. 아직 선물(進物)의 체크가 남아 있었지만, 그건 크게 번거로운 것은 아니다.

시즈코가 새해 인사를 하고 있는 동안, 아야와 쇼우가 신분별로 정리한 자료를 준비해주었다.

그 후에는 시즈코가 내용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만 하면 되었다. 서류를 확인하고 추가로 몇 통의 글을 썼기 떄문에, 1시간 쯤 지나가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흐ー음. 쿠로쿠와슈(黒鍬衆)를 데리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사람들이 왔네"


미츠히데(光秀)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 등의 쿄(京)에 거점을 두는 유력자들이나, 히데요시(秀吉)를 시작으로 시바타(柴田)에 사쿠마(佐久間) 등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저한의 답신은 하고 있으나, 추가로 뭔가 선물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문득, 시즈코는 서류와는 별도로 두 통의 편지가 첨부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손에 들고 보니 한 통은 사키히사(前久)로부터 온 것이며, 다른 한 통은 아시미츠(足満)로부터의 편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키히사는 그렇다치고, 아시미츠가 편지를 보내다니 희한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급한 일이라면 직접 찾아올 아시미츠의 편지를 뒤로 미루고, 먼저 사키히사의 편지를 열어보기로 했다.

적혀 있는 내용은, 조정이 소유한 보물창고(宝物殿)인 쇼소(正倉)의 출입을 허가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건…… 흠흠"


쇼소란 당대의 조정이 재물(財物)을 보관하기 위해 마련한 창고이며, 현대에는 그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남도(南都) 7대사(七大寺)에 각각 쇼소가 줄줄이 세워져 있는 구획을 담벼락으로 둘러싼 '쇼소인(正倉院)'이 존재했으나, 현존하고 있는 것은 토우다이지(東大寺) 쇼소인 중 한 채만 남게 되어버렸다.

당시의 보물이 시간을 넘어서 아직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고상식(高床式)의 구조에 의해 습도에 의한 훼손이나 벌레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칙봉(勅封) 제도로 엄중하게 관리되어 함부로 개봉되지 않았던 점도 이유로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시기는 미정인가. 뭐, 당연하겠지"


엄중하게 봉인되어 제한된 사람들 밖에 볼 수 없는 쇼소의 보물을 열람할 수 있는 권리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에치젠(越前)에서의 행동이 있었다.

시즈코 자신이 의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치죠다니(一乗谷)에 있는 문물(文物)을 피난시킨 후에 불태웠다는 사실은, 문화의 수호자(担い手)를 자칭하는 공가(公家)나 조정(朝廷)에게 대사건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아사쿠라(朝倉)란 몇 번이고 골탕을 먹은 존재. 그 아사쿠라를 앞두고, 노부나가에게 문물을 반출할 유예를 청하고 그걸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무거웠다.

직접 노부나가를 만날 기회가 없는 공가들에 있어, 노부나가는 악마(鬼神)처럼 무서운 존재이며, 그 노부나가를 제어하여 문물을 보호하는 시즈코에게서 공가들은 '문화의 수호자'의 모습을 보았다.


"언제 허가를 받아도 괜찮도록, 준비만큼은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조정의 보물창고이기에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시즈코는, 뛰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상대방의 대응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즈코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쇼소의 출입허가증에 날짜가 기재되어 있지 않는 것에는 조정의 노림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만약 시즈코가 허가증의 내용에 불만을 품고 강권(強権)을 통해 출입을 요청하면, 조정 측은 이유를 붙여 거절할 생각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보물을 앞에 두고도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성적인 인물로 보이게 된 시즈코는, 옆으로 치워두었던 아시미츠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흐ー음, 검술사범(剣術指南) 역할로 야규(柳生) 가문의 협력을 요청하기로 했구나. 일부러 편지를 보내와서 대립 관계라도 된 줄 알았네"


현재의 야규 가문은, 아시미츠와 인연이 깊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를 섬기고 있었다.

그 마츠나가가 정월 인사를 하러 기후(岐阜)를 방문했을 때, 아시미츠는 억지로 교섭의 자리를 만들었다. 마츠나가는 '쾌히 승락'해 주었다, 고 편지에는 적혀 있었다.


"네놈에게는 거부권 따윈 없다. 승복할지, 싸울 준비를 할지, 원하는 쪽을 선택해라"


"절대로(努々) 도망치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라. 네놈의 일거수 일투족은 항상 감시되고 있다고 생각해라"


"여기서 결단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조건은 혹독해질 거라는 것을 명심해라"


"오해가 없도록 말해두지만, 이것은 내 뜻이 아니라 오다 님의 의향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들을 고려하여 가급적 신속하게 대답을 보내라"


"네놈이 야규를 아까워하여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쪽에도 생각이 있다. 그렇게 무서워할 것은 없다. 적어도 고향(国許)까지는 돌아갈 수 있겠지. '지금은' 말이다"


이러한 명백히 협박(恫喝)에 가까운 교섭이 이루어졌다. 교섭이라는 것은 말뿐이고 일방적인 최후통첩에 지나지 않는 내용을 모르는 시즈코는, 야규 가문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야규 가문 당주는 무네토시(宗厳)가 맡고 있다. 하지만, 무네토시 본인은 전쟁에서 귀국하던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다.

적자(嫡男)인 미치카츠(巌勝)의 경우에는 타츠이치 성(辰市城)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시중을 들어줄 사람(介添え)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후세에서 야규(柳生) 신카게류(新陰流)의 지위를 확립한 무네노리(宗矩)도, 이 시점에서는 나이어린 꼬마에 불과했다.

선조대대의 영토(所領)가 있기에, 누굴 파견해 올지 생각하니 일말의 불안이 있었다.


(순리대로 간다면 차남인 큐사이(久斎)일까? 3남인 토쿠사이(徳斎)는 어릴 때 출가했으니 일단 대상에 올라가지 않겠지. 4남인 무네아키(宗章)는 열 살도 되지 않는 소년…… 으ー음, 이건 어려우려나)


현재 상태에서 판단하면, 무네아키가 성인식(元服)을 치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현 시점에서는 만족스럽게 지도(指南)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의 직계 제자이자, 야규 무네토시를 쓰러뜨리고(여러가지 설이 있음), 역사적 사실에서는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나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 등에게 무술(兵法)을 전수했다고 하는 히키타 카게토모(疋田景兼)도 생각했지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가 후보로 올라가지 않는 이유로서, 그의 방랑벽(放浪癖)을 들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평생 무사수행(武者修行)의 길을 걸으며,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유랑 생활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검술 사범(指南)이, 무사수행 여행이라고 하고 종종 행방을 감추는 건 문제니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에게 추가타(追い打ち)를 먹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은 1월도 다 지나서 며칠만 있으면 2월이 되려는 시기의 일이었다.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고, 시즈코는 그의 거성(居城)인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에서는 호리(掘)와 란마루(蘭丸)의 울퉁불퉁(凸凹) 콤비가 여전히 만담(漫才) 비슷한 대응을 주고받으며 시즈코를 안내했다. 맹장지가 열리고 시즈코의 눈에 들어온 광경에 그녀는 엉거주춤했다.


"잘 왔다.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 놀란 것이 아니다. 상좌(上座)에 있는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좌우로 주루룩 중신(重臣)들이 모여 있는 현장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고 겁을 먹은 것이다.

적자인 노부타다를 시작으로, 히데요시(秀吉)에 미츠히데(光秀), 시바타(柴田)에 삿사(佐々),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에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등, 쟁쟁한 인물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자신이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것에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면서 시즈코는 상좌 가까이 준비된 자리에 머뭇거리며 앉았다.


"자, 시즈코의 도착으로 전원이 모였구나. 드디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


노부나가의 말에 전원의 표정이 조여졌다. 노부나가가 명언(明言)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노부나가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 자신들의 진퇴(進退)가 좌우될 것이라는 것을.

전원이 노부나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마른 침을 삼켰는데,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노부나가는 웃음을 떠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조바심내지 마라. 먼저 조정(朝廷)에서, 재미있는 칙서(勅書, 천황(天皇)으로부터의 명령서)가 왔다"


그 말과 동시에, 등 뒤에 시립하고 있던 소성이 움직였다. 두 명의 소성이 쟁반에 얹힌 칙서를 공손하게 받쳐들고 시즈코와 미츠히데 앞에 각각의 쟁반을 놓고 물러났다.

시즈코는 시선만을 미츠히데에게 향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의도치 않게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는 모습이 되었다.


두 사람의 행동에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턱짓으로 시즈코를 재촉했다. 읽어라, 라는 말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칙서의 내용을 확인했다.


"폐하(帝, みかど)께서 그대들 두 사람에게 예사(芸事)의 보호를 맡기고 싶으시다고 한다"


독특하고 난해한 표현(言い回し)에 애를 먹는 시즈코를 보고 노부나가가 칙서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했다.

새로운 직함을 만들고 조정이 후원할테니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예술품이나 기술자들의 보호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형식상은 명령이지만, 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간원(懇願)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조정의 보물을 맡는 토우다이지(東大寺)조차 과거에 두 번이나 불탄 적이 있다.

물론, 보물을 노린 방화(焼き討ち)는 아니었지만, 불교의 총본산 중 하나로 꼽히는 토우다이지조차 안전하지는 않다.

특히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미요시(三好) 3인방(三人衆)이 벌인 토우다이지 대불전(大仏殿) 전투는 공경(公卿 ,※역주: 조정에서 정3품, 종3품 이상의 벼슬을 한 귀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재미있으니, 시즈코가 맡아라. 낑깡은 그러한 것에는 관여하지 마라. 네게는 다른 일을 맡기겠다"


"옛, 잘 알겠습니다"


칙서를 건네주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노부나가가 방침을 결정했다.

노부나가의 말에서, 칙서에는 시즈코와 미츠히데 중 어느 한 쪽이 받아들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써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무가(武家)의 정점에 서서 천하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오다 가문의 위광과, 지방을 다스리는 사원들(寺社)의 힘을 합치면 문물의 보호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정은 생각한 것이리라.


(흠……)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받아들여봤자 노부나가에게 이익이 없는 것이 석연치 않았다. 예사에도 이해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노부나가는 그렇게까지 문예(文芸)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노부나가의 심금(琴線)을 울리는 요소가 있었는지, 그것을 파악해두지 않으면 노부나가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노부나가가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그 마음 속을 추측할 수밖에 없다.


(…………아, 알 것 같다)


노부나가가 시바타와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시즈코는 계속 심사숙고(沈思黙考)하고 있었다. 몇 가지 추론은 떠올랐으나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는 노부나가가 흘린 '다기(茶器)'라는 단어를 포착했다.

빠져 있던 퍼즐의 조각이 갖춰졌다. 시즈코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문물을 보호하게 되면, 당연히 다기도 그 대상에 포함되지. 폐하의 칙명으로 문예의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 이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어. 주상께서 마음에 들어하실 경우, 소유주에게는 기한을 정하지 않는 차용증(借用書)과 협력에 대한 감사장(感状)이 보내지겠지)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의 오다 가문에 더해, 쇠락하기는 했으나 결코 얕볼 수 없는 조정이 손을 잡았다. 무력으로는 오다 가문에게 밀리고, 대의명분조차 상대에게 있다.

이 상태에서 싸움을 거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 협력의 요청이라는 건 말뿐이고 징발 행위일 뿐이지만, 거역하면 '역적(朝敵)'으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주상의 노림수는 알겠는데, 처음부터 힘으로 밀어붙이면 반발이 무서우니, 우선 온건하게 진행하자. 고노에(近衛) 님이나 호소카와(細川) 님의 조력을 부탁할까?)


대의가 이쪽에 있다고는 해도, 처음부터 시비조로 임할 이유도 없다. 강권에 의지하는 것은 최종수단으로 하자, 그렇게 결론지은 시즈코였다.

시즈코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노부나가가 시바타의 처우를 발표했다. 호쿠리쿠(北陸)에 둥지를 튼 최후의 적,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토벌에 있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를 총대장으로 임명했다.

시바타가 이끄는 호쿠리쿠 방면군(方面軍)의 진용은, 히데요시나 삿사, 마에다 토시이에에 후와 미츠하루(不破光治) 등을 지원군(与力)으로 붙였다. 이 오다 가문 내에서도 손꼽는 군세로 호쿠리쿠를 평정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 인사(人事)를 볼 때 호쿠리쿠를 맡게 되는 것은 시바타인 것이 확정되었다. 가신들의 출세 경쟁에서는 시바타가 한 발 앞선 모양새가 된다.

영달(栄達)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를 제외하고 다른 중신들은 사태의 중대함을 이해하고 있었다.


(여기는 역사적 사실대로네)


역사적 사실에서는, 시바타 카츠이에가 1580년 11월 17일에 카가 국(加賀国)을 평정하여, 실로 90년이나 되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된 잇키(一揆)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의 경우에도 시바타가 평정의 임무를 받았으나, 역사적 사실과는 사회 정세가 달랐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카가 국까지 진출하여, 시바타는 테도리가와(手取川) 전투에서 켄신에게 호되게 당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우에스기 가문과는 동맹을 맺었으며, 정세를 돌아봐도 배신을 당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에치젠에는 미츠히데가 진을 치고 있어, 그는 카가 일향종의 퇴로를 끊는 임무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할 때, 카가 일향종에게는 처음부터 승산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무장을 해제하고 노부나가의 지배를 받아들이던가, 아니면 전멸할 때까지 싸우던가 둘 중 하나 밖에 길은 없었다.


"훌륭하게 대임(大役)을 수행해 보이겠습니다"


"결코 이쪽에서 먼저 쳐들어가지 말도록. 놈들을 계속 도발하여, 놈들이 쳐들어왔다는 대의를 얻은 후에 반격하라"


이것은 장렬(壮絶)한 인내심 싸움(我慢比べ)이었다. 현재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 화평을 맺고 있어, 이 동안 다른 혼간지 파가 노부나가를 공격했을 경우, 이시야마(石山) 혼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카가 일향종이 먼저 노부나가를 공격했다는 명분(体裁)만 있으면, 이시야마 혼간지는 병사 한 명조차 움직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화평의 약정을 깨면, 그것 자체가 노부나가에게 이시야마 혼간지를 공격하게 하는 대의명분이 되어 버린다.


"네 마음껏 공격해 보아라"


노부나가는 굳이 시바타에게 구체적인 방침을 내리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시바타에게 호쿠리쿠의 통치 및 켄신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슬슬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부나가가 시바타에게 시련을 내린 것은, 시바타가 어느 쪽이냐 하면 지시를 기다리는 타입의 무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셨기에 100의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었다. 주인의 명령을 받으면 주저없이 앞으로 나아가지만, 자신이 생각하게 되면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호쿠리쿠를 맡기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 노부나가의 눈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는 이상, 시바타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 맞는 대책을 취해야 한다.

이 카가 일향종 토벌은, 시바타가 호쿠리쿠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試金石)이 된다.


"옛! 반드시 낭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번의 인사(采配)에 하고 싶은 말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호쿠리쿠 평정에 주력하라. 이곳을 무너뜨리면 남는 거점은 키이(紀伊) 뿐이다. 너희들은 그쪽에서 공을 세우도록"


"옛!"


가장 먼저 시바타가 대답하고, 히데요시나 미츠히데도 그에 따라 엎드렸다. 그들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 네게는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재량을 주겠다. 이 세상의 누구도 네 움직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겠지. 일부러 너를 자유롭게 두는 것으로 자리를 휘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 옛"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백지 위임장을 받은 것에 가깝다. 노부나가의 지시를 받지 않아도, 시즈코의 판단으로 군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시즈코의 성격상, 오다 가문에게 불이익이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단독 부대라도 눈부신 전과를 올리는 시즈코 군이 공격으로 전환한다.

이만큼 적대 세력에게 위혐적인 것은 없다. 국면을 한 수에 뒤엎을 수 있는 '조커(鬼札)'가 보이지 않는 장소에 숨어있는 것이다.

이름높은 시즈코 군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적에게 계속 압력을 줄 수 있다.


(시즈코의 속박을 풀어주면, 가신들은 일제히 협력을 요청하려 움직이겠지. 우선은 집안 싸움을 제어하는 수완을 보도록 하자)


일부러 시즈코를 자유롭게 풀어준 이유.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야심이 넘치는 가신들의 움직임을 볼 속셈도 있었다.

지금은 서로 견제하며,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눈은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나 미츠히데, 그리고 시바타까지 어떻게 시즈코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일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럼, 이 녀석들을 인도(舵取り)할 수 있을지 아닐지, 그에 따라 나라를 맡길 수 있을지를 알 수 있지. 시즈코를 미끼로 모두가 움직이고, 결과가 어떻게 되던 내게 손해는 없다. 후훗, 어떤 결과가 나올지(鬼が出るか蛇が出るか) 즐겨보도록 하지)


노부나가나 시바타들의 생각과는 별개로, 시즈코는 태평하게도 어떻게 문물을 보호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침착함을 되찾을 무렵을 재어 노부나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호쿠리쿠에 이어, 노부타다에게 토우고쿠(東国) 토벌의 총대장을 명했다.

이미 예전의 기세는 없다 해도, 아직까지 강국(強国)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타케다(武田). 그리고 타케다나 우에스기에 필적한다고 하며, 아직까지 기치(旗幟)를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는 호죠(北条).

원래대로라면 삼자가 서로 견제하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三竦み)이지만, 우에스기를 받아들인 것으로 저울이 크게 오다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까지 밥상(お膳立て)을 차려놓으면, 노부타가가 후계자가 되는 데 어울리는 무훈(武勲)이면서도 목숨을 잃을 위험성은 현격하게 낮아진다.


"토우고쿠 정벌 임무, 삼가 받들겠습니다"


타케타다 호죠 등의 열강(列強)에 겁먹지 않고 노부타다는 당당한 태도로 명령을 받았다. 어엿한(一廉) 무장으로서의 편린(片鱗)을 보이기 시작한 노부타다에게, 노부나가는 미더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 후, 각자 준비를 게을리하지 말라는 노부나가의 말로 그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가장 먼저 시즈코에게 말을 건 것은 노부타다였다. 그는 용무도 끝났으니 얼른 퇴장하려고 하던 시즈코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끌고들어왔다.


"간자를 빌려달라고?"


기선을 제압하여 용건을 말하는 노부타다에게 수상쩍다는 시선을 보내면서 그녀는 노부타다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음. 앞서 토우고쿠 출신의 무장들을 받아들였지 않으냐? 뭐라고 했더라……"


"혹시 사나다(真田) 가문 말야?"


"그래그래, 그 사나다 뭐시기다. 빌리고 싶다고는 말했지만, 내가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나다 뭐시기가 지휘해서 소문을 흘려줬으면 한다"


"……어쩐지 노림수는 알겠는데, 네 입으로 정확하게 알려줬으면 하는데?"


소문을 흘린다는 시점에서 시즈코는 노부타다가 뭘 하고 싶은지를 헤아렸다.

노부나가는 대체로 말이 부족하여, 그의 마음 속을 헤아리는 것에 익숙해진 결과, 노부나가가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의도하는 바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헤아림이 좋은 것에 안주하여, 노부나가는 시즈코 이외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해달라는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하다못해 필요 최소한의 지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시즈코였다.


"노림수는 단순하다. 백성들의 마음을 타케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전쟁에서는 현지의 백성들이 협력적인지가 상황을 좌우하지. 원래부터 유리한 상황이기는 하나, 바로 그렇기에 더욱 우위를 흔들림없는 것으로 할 한 수를 강구하는 거지"


"적지에 침투하여 이반(離反) 공작을 하게 되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그건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당연하지. 서두르지 않고 지긋하게, 철저하게 한다. 카츠요리(勝頼)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더라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아냐? 라고 의심을 품을 정도로 말이지"


노부타다의 작전은 단순하지만 효과가 높다. 기본적으로 무사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작물을 키우는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아무리 군사력이 있더라도 전쟁이나 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

현저한 예로서, 역사적 사실에서의 '나가쿠테(長久手) 전투'에서의 이에야스(家康)의 행동이 있다. 이에야스는 각 마을의 촌장들에 대해 처자식을 인질로 바치게 하여 이케다(池田) 군과 내통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취했다.

이것은 도쿠가와(徳川)-오다 노부카츠(織田信雄) 연합군이 현지 백성들로부터 미움받고 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백성들의 마음의 떠나면, 그에 따른 이적행위(利敵行為)를 막기 위해 더욱 가혹한 조치를 취해야 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서의 노부타다는 겨우 한 달 정도만에 카이(甲斐)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는데, 이것도 백성들이 카츠요리를 싫어하여 위정자(為政者)를 갈아치우기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오다 군을 받아들여 타케다 군의 내정(内情)을 알려주고, 마을이나 논밭을 불태우면서까지 오다에게 항복했다.

민심이 떠난 것에 의해, 방어하는 측이 초토화 작전(焦土作戦)을 받는다는 굴욕적인 정세를 낳아, 단기 결판을 초래했다.


"거기까지 하게 되면, 카츠요리의 문제점을 찔러서 가신들에 대한 구심력(求心力)을 땅에 떨어지게 할 필요가 있네. 뭐, 지금도 이미 미움받고 있고, 타케다 가문의 가문(家督) 상속에 대한 교육도 받지 않아서, 후다이(譜代)의 신하들에게 얕보이고 있지…… 그런 의미에서는 조금 불쌍하네"


카츠요리가 걸어간 인생의 족적(足跡)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4남이기는 하나 서자(庶子)였기에, 카츠요리는 형제들 중에서 유일하게 모친의 생가(生家)인 스와(諏訪) 가문의 성씨(名跡)를 이었다.

타케다라는 성을 쓸 수 없었기에 가신들로부터 계속 얕보여서, 성인이 된 후에도 타케다 가문 직계의 남자들에게는 반드시 주어지는 '신(信)'이라는 이름 글자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카츠요리가 큰 불만을 품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신겐이나 후다이의 중신들은 그것을 묵살했다.


신겐이 죽은 후 타케다 가문의 당주가 된 카츠요리였으나, 처음부터 임시(中継ぎ) 당주 취급이었다. 특히 카이 수호직(甲斐守護職)이나 대선대부(大膳大夫) 등의 관위(官位)가 카츠요리에게는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싸움에 있어서도 풍림화산(風林火山), 타케다비시(武田菱) 등의 타케다 가문을 상징하는 깃발의 사용도 금지당했다. 그렇기에 집안(一門) 사람들이나 친족들, 후다이의 중신들은 카츠요리를 더욱 얕보았다.

솔선하여 카츠요리의 말을 거역하고, 카츠요리의 정책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좋은 성과가 나오면 공을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쁘면 카츠요리 탓을 했다.


타케다 가문을 이어받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신뢰할 수 있는 참모나 심복을 얻지 못한 채, 타케다 가문을 이었다.

그 때문에, 스와 가문에서는 '타케다 사람'이라고 거리를 두고, 타케다 가문에서는 '스와 사람'으로서 한층 낮게 보여졌다.

형식상이라고는 해도 주군을 주군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가신들을 규합하지 못하여, 신겐이 죽은 후의 타케다 가문의 몰락을 결정지은 우장(愚将)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선대(先代)가 위대했기 때문의 불우함에는 동정하지만, 봐주지는 않는다"


"……뭐, 그렇지"


역사적 사실 이상으로 가혹한 길을 걷기 시작한 카츠요리였으나, 그래도 타케다 가문을 이어받은 이상 손을 늦출 수는 없다.

타케다 가문을 쳐부수는 것으로 비로소 오다 가문은 무가(武家)의 정점에 섰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년, 아니 2년일까? 호상(豪商)들에게도 타케다 가문이 정체를 숨기고 거래를 요청해 오겠지만 신경쓰지 말고 거래해도 좋다고 통지해둘게"


"그래서는 타케다가 힘을 되찾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힘은 돌아오겠지. 하지만, 공을 서두른 카츠요리는 군비 확장을 강행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 군비를 사들일 자금은 어디에서 조달할 거라 생각해? 순리적으로 생각하면 영민들에게서 더욱 징수할 수밖에 없겠지. 지금의 타케다 가문의 전력으로는 타국을 침공할 여유 따윈 없으니까"


가능하다고 해도 국경 부근을 조금 빼앗는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약간의 이익과 맞바꾸어 타국의 원한을 살 뿐이다.

지금의 타케다 가문에는 영지(所領)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 이외에 취할 수 있는 부흥의 길이 없다. 가능하다면 신푸 성(新府城)의 축성에 착수해줬으면 하고 시즈코는 바랬다.

신푸 성의 축성은 경제 부흥을 목적으로 한 공공사업이지만, 그 이익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라서 나라 전체로 이익이 재분배되는 구조가 아니다.

과도한 부담을 짊어지게 되어 영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하면, 카이 곳곳에서 잇키(一揆)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과연…… 확실히 방법이 없군. 뭐, 세세한 건 그쪽에 맡기겠다. 시즈코나 사나다 뭐시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카츠요리에게서 멀어지게 해 줘. 나는 그 후의 통치에 대해 생각해 두겠다"


시즈코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한 노부타다는, 내용을 확인하는 의미도 겸하여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타다와 헤어진 후, 이번에야말로 귀가하려고 한 시즈코였으나, 방을 나서자 곧장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 님,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어 시즈코,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시즈코가 볼 때 오른쪽에서는 미츠히데가, 왼쪽에서는 히데요시가 말을 걸어왔다. 서로 상대의 존재를 깨달은 듯, 시즈코를 사이에 끼고 시선을 충돌시켰다.


""실은, 긴히 부탁할 것이……""


이거 번거로워졌네라고 시즈코가 생각하고 있을 때, 히데요시와 미츠데의 목소리가 깔끔하게 겹쳤다. 타이밍도 내용도 단어 하나하나까지 일치한 것에 서로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즉시 제정신이 들자 서로 불쾌한 듯한 표정을 떠올리며 상대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 이상 순번 때문에 다투시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운을 하늘에 맡기도록 하죠. 주사위 숫자가 짝수라면 아케치(明智) 님, 홀수라면 하시바(羽柴) 님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품에서 꺼낸 정육면체의 주사위를 던졌다. 주사위는 마루의 판자(板) 사이를 몇 번 굴러가며 맹장지에 부딪힌 후 움직임을 멈추었다.

히데요시도 미츠히데도 마른침을 삼키며 주사위의 숫자를 보았다. 나온 숫자는 '4(四)'였다. 자신이 먼저라는 것을 이해한 미츠히데는 득의만면해졌으며, 반대로 히데요시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의기소침해졌다.


"그럼, 아케치 님부터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후, 하시바 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사전 연락(先触れ)은 필요없다. 그 쪽의 용무가 끝나는 대로 아무 때나 와도 상관없다"


하늘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히데요시는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미츠히데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는 있었으나, 아마도 웃음이 짙어졌으리라.


"서서 이야기할 수도 없겠지요. 방을 준비해 두었으니, 그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


미츠히데가 직접 안내한 방은, 화려(華美)하지는 않으나 절묘하게꾸며진, 미츠히데답게 약간 멋을 부린 방이었다.

그러나, 세련된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몇 명, 좀 떨어진 아랫자리(下座)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약간 경계하면서도 시즈코는 상석(上座)으로 안내되고, 그 등 뒤에 사이조(才蔵)가 서고, 어느 틈엔가 달려와 있던 케이지(慶次)가 사이조 옆에 앉았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됩니다.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뒤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쪽은 쵸소카베(長宗我部) 님의 수군(水軍)을 맡고 있는 이케(池) 님입니다"


미츠히데에게 소개된 인물, 이케가 약간 앞으로 나서며 시즈코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생, 쵸소카베의 신하, 이케 시로자에몬(池四郎左衛門)이라 합니다"


"아, 정중한 인사 감사드립니다(これは御丁寧に, ※역주: 일본에서는 흔히 쓰이는데, 굳이 우리말로 하면 '아이고,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해 주시다니' 정도의 뉘앙스). 저는 시즈코라고 합니다"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시즈코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해버렸다.

이케 시로자에몬 요리카즈(頼和). 이케는 원래 토사(土佐)의 영주이며, 당초에는 쵸소카베 쿠니치카(長宗我部国親)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딸을 처로 맞은 이후에는 그 밑으로 들어가, 쵸소카베 수군의 주력을 맡게 되었다.

사카이(堺)와 활발하게 교역하여 쵸소카베의 재정을 뒷받침한 인물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후에 아내와 불화가 생겨 모반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그 당시의 주군인 쵸소카베 모토치카(元親)의 명령으로 자결하게 되었다.


"저희 주군을 위해 오랫동안 조력을 해주셨음에도 인사가 늦은 점을 사죄드립니다. 주군은 오다 님, 시즈코 님의 진력(尽力)에 대단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입니다 (실험장으로 삼았다고 말하면 화내려나?)"


이케가 감사의 말을 했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표면적으로는 생긋 웃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내심 볼이 경련하는 느낌이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토사를 통치하는 데 10년이 걸리고, 시코쿠(四国) 통일에 다시 10년이 소요된 쵸소카베가, 어떻게 12년이나 때를 앞당겨 시코쿠 통일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우연과, 쵸소카베에게 기가막힌 행운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가 상락했을 때,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아직 토사 통일을 이루고 있지 못했다. 그 후, 1년 정도 노부나가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갑자기 모토치카는 결단했다.

자주독립을 버려서라도,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는다. 최악의 경우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모토치카가 말했다. 당연히 가신들로부터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으나, 그는 그것들을 전부 침묵시켰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토사 한 나라조차 통일하지 못하는 모토치카와 동맹을 맺어봐야 전혀 이익이 없다.

첫번째는 만나보지도 못하고, 미츠히데에게 중재를 부탁한 두번째도 냉담하게 축객을 당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각오를 한 모토치카는, 삼세번(三度目の正直)이라고 말하듯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것 같은 조건으로 종속될 것을 청했다. 그래도 노부나가에게서 썩 좋은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뭔가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시즈코를 참고인(引き合い)으로 내세워, 모토치카에게 그녀와 동맹을 맺도록 유도했다.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모토치카가 노부나가에게 동맹을 요청한다는 것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쵸소카베의 취급을 둘러싸고 노부나가와 미츠히데가 반목하여 혼노지 사변(本能寺の変)이 일어났다는 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몸으로서는, 도저히 이것을 못본 척 할 수 없었다.

쵸소카베가 빠른 단계에서 시코쿠를 통일하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오다 가문에게 이익이 될 거라 판단한 시즈코는, 시즈코에게 동맹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무엇이 어떻게 이익이 되는 것이냐?"


"쵸소카베 님의 거점인 토사는 시코쿠의 하부(下部)에 해당합니다. 큐슈(九州) 원정을 고려했을 경우, 해로(海路) 상의 보급지점으로서는 대단히 좋은 위치가 됩니다. 또, 그가 조기에 시코쿠를 정리하게 되면, 츄고쿠(中国) 지방의 모우리(毛利) 등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주종관계를 확립하여 시코쿠에 교두보를 구축하면, 일본 통일을 향해 약진하기 위한 포석이 될 것입니다"


"호오, 제법 앞을 내다보고 있구나. 재미있다, 관리(差配)는 네게 일임하마"


시즈코는 현대에서 가져온 지도를 노부나가에게 보여주면서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확무비한 지형도가 그려진 지도 덕분도 있어,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이야기하는 이점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세 번째에 이르러 쵸소카베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게 되었다. 국력적으로 오다 가문과의 동맹은 이룰 수 없었으나, 그래도 오다 가문 비장의 시즈코와의 동맹은 훗날 뛰어난 성과가 되었다.


단, 이 시점에서는 쵸소카베의 입장에 변화는 없다. 그 후, 시즈코의 중재로 사키히사(前久)가 움직여, 조정에서 시코쿠 통일의 윤지(綸旨)가 나왔다.

하지만, 조정이 인정했다고 해도 멀리 떨어진 시코쿠의 땅에서는 실제 효력 같은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조정으로서는 쵸소카베를 시코쿠의 대표로서 인정합니다'라는 정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노부나가는 쵸소카베에 대한 군사적인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오다 포위망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의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부나가의 태도를 정반대로 바꾸어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시코쿠에서 쵸소카베와 패권을 다투고 있는 미요시의 군이, 노부나가가 남만에서 수배한 화물을 실은 배를 격침시켜 버린 것이다.

그 배에는 노부나가가 고심 끝에 남만에서 사들인 각종 광석(鉱石)이 가득 실려있었다. 당초, 미요시 군은 쵸소카베가 사카이와의 교역에 이용하고 있는 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요시는 노부나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노부나가가 다음 약진을 기하여 막대한 비용과 많은 시간을 들인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배가 격침당한 것을 알게 된 노부나가의 분노는 대단했다.

전국시대에 화물의 보험(保障) 같은 게 있을 리도 없고, 그보다도 방대한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다음 한 수를 두기 위한 기회를 놓친 것에 격노했다.

노부나가는 즉각 미요시를 멸망시키려고 시코쿠로 침공하려 했기에, 그를 뜯어말리기 위해 많은 가신들이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

파손된 기물도 많아, 맹장지의 경우에는 무사했던 것이 적었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연일 분노를 터뜨렸으나, 일전(一転)하여 냉정해지자 노부나가는 쵸소카베를 이용하여 미요시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토사 통일조차 애를 먹고 있는 쵸소카베였기에, 기폭제가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거기서 주목받은 것이, 오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쿠키(九鬼) 수군이었다.


스크류 선을 시작으로, 시즈코로부터 다양한 기술 공여 끝에 근대화를 달성한 쿠키 수군이었으나, 해전(海戦) 자체가 없었기에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

노부나가는 쿠키 수군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미요시를 상대로 시험(試し斬り)을 해볼 생각이었다.

이리하여 쵸소카베에게 쿠키 수군이 파견되어, 토사 통일을 하기도 전에 미요시와 전쟁을 벌인다는 생트집 수준의 과제(無理難題)가 쵸소카베에게 떨어졌다.

가신들은 밀어닥친 재난에 비탄(悲嘆)했으나, 모토치카는 "이 정도의 무리도 할 수 없다면 시코쿠 통일은 불가능"이라고 정색하며 가신들을 설득한 후 미요시에게 싸움을 걸었다.


급조한 연합군이었기에 처음에는 밀리는 느낌이었던 쵸소카베 군이었으나, 도중부터 상황이 호전되었다.

미요시 군의 유능한 무장이 '때마침(都合良く)' 병사하고, 미요시 군의 주력이었던 아와지(淡路) 수군이 쿠키 수군의 압도적 화력 앞에 전멸하기 직전까지 간다는 대패를 맛보았다.

게다가 미요시 군의 보급로를 끊기 위해 긴 사정거리를 살린 대지 포격(対地砲撃)을 반복하여, 그들이 사용하는 항구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다.

이에 의해 바다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미요시 군이었지만, 항구를 파괴했다는 것은 쵸소카베 군도 해상에서 육지로 공격해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의 양륙함(揚陸艦)에 가까운 수송선을 개발해놓았던 쿠키 수군은, 항구가 없어도 인원이나 물자를 실어날라 쵸소카베 군을 지원했다.


그러는 동안, 제 2차 오다 포위망이 시작되어 오다 가문의 상황은 어려워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상을 뒤엎고,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는 신겐을 격파하고, 겨우 며칠만에 나가시마(長島) 일향종을 쳐부쉈다.

이 급격한 전개에 쵸소카베 이외의 시코쿠의 영주들은 마음 속 깊이 두려움에 떨었다.

특히 미요시의 편을 드는 세력의 동요는 현저했다. 그에 반해 쵸소카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치적 책략(調略)과 무력을 번갈아 섞어가며 세력을 늘렸다.

지금은 시코쿠에서 쵸소카베를 다르지 않는 것은 미요시 세력만 남은 상태로, 다른 영주들은 모두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 굴복했다.


"(파죽지세라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자, 단지 인사만 하시려고 오셨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게 어떤 용무이신가요?"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시즈코는 이케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단순히 면회만 할 거라면 지금까지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미츠히데가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뭔가 중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옛.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실은 대단히 뻔뻔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시즈코 님께 긴히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부탁?"


시즈코의 질문에 이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그는 의외의 부탁을 말했다.


"실은…… 이 이상의 지원을 사양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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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