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7 1575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쿄(京)에 도착하자, 일단 자신의 쿄 저택에서 한숨 돌렸다. 방문의 사전 연락을 보내어, 가장 먼저 교토소사대(京都所司代)를 맡고 있는 무라이 사다카츠(村井貞勝)와 약속을 잡았다.
무라이는 예전부터 노부나가를 섬겨온 행정관(行政官)으로, 오다 가문과 조정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며, 궁궐(禁裏)의 수복 공사나 니죠 성(二条城)의 조영(造営), 공문서 조사에서 계쟁(係争)의 조정 등, 그가 해낸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쿄에서의 행정 전반을 관장하며 노부나가의 대리인(名代)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무라이를 가리켜 루이스 프로이스는 '수도(都, 교토(京都))의 총독(総督)'이라고 칭했다.
무라이가 '수도의 총독'이라면, 시즈코는 말하자면 '오와리(尾張)의 총독'으로, 서로의 임지(任地)가 결정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직접 교류를 깊이 할 기회가 없었다.
올해는 다행히 시즈코가 쿄로 가게 되었기에, 급작스럽기는 하나 회담을 가지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에는 갑작스런 신청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즈코 님은 주상께서 오와리를 맡기실 정도의 분. 소문은 항상 듣고 있습니다"
"하하하, 들으신 것이 좋은 소문이면 좋겠습니다만, 풋내기(若輩者)다보니 실수(不手際)도 많아,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 같은 것도 있지 않았던가요?"
자칫하면 조부(祖父)와 손녀 정도의 나이 차이가 있는 시즈코를 상대로 무라이는 대단히 정중하게(下にも置かない) 대접하며 온화한 태도로 대응하고 있었다.
거기에 시즈코가 쿄에 체재하는 것은 무라이에게도 메리트가 있었다. 시즈코가 이끌고 온 군은, 시즈코가 쿄에 채재하는 동안 교대로 휴가가 주어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긴급 소집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멀리 가지는 못하고 쿄의 이곳저곳에서 무료함을 달래게 된다.
휴가중이라고는 해도, 정예의 군속(軍属)이기에 태도(物腰)부터 일반인과는 다르다. 필연적으로 악인(悪人)들은 모습을 감추고, 쿄의 치안은 안정되게 된다.
또, 시즈코 군은 지갑 사정이 넉넉한 것(羽振りが良い)으로도 유명하여, 말단의 병사들에게까지 비교적 돈이 넉넉하게 돌아가고 지갑 끈이 느슨하다.
병사들은 신기한 쿄의 토산품을 사거나, 쿄의 거리(街並み)나 구경거리(見世物) 등을 보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때아닌 호경기에 도시가 들썩이고 있었다.
"그럼, 우선 카모가와(鴨川, 또는 賀茂川) 공사(普請)에 쿠로쿠와슈(黒鍬衆)를 파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뇨아뇨, 카모가와의 안정(安堵)은 쿄에 있어 중요한 사항.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다면 다행입니다"
카모가와는 과거에 몇 번이나 범람을 일으킨 난폭한 강(暴れ川)이다.
애초에 강 자체에 급격한 구배(勾配)가 있어 자연스럽게 유속(流速)이 빨라지는데 더해, 수원지(水源地)인 키타야마(北山)의 수목이 벌채되어 보수력(保水力)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末期)에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른 시라카와(白河) 법황(法皇)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서 '카모가와(加茂河)의 물'을 들었을 정도로 당시의 지배자들을 애먹게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현대에서 카모가와(鴨川)에 賀茂川라는 글자를 쓰는 경우가 있다. 독음은 같지만 표기가 다른 이유는, 카미가모(上賀茂) 신사(神社)와 시모가모(下鴨) 신사에 기인한다.
각각의 신사가 자신들의 지배지역을 흐르는 강을 신사의 이름을 따서 賀茂川와 鴨川로 불렀기 때문에, 현재의 카모(加茂) 대교(大橋)보다 상류를 賀茂川, 하류를 鴨川로 구별하고, 통칭을 鴨川로 표기하고 있다.
무라이가 말한 공사란, 강바닥을 파내려가는 것(掘り下げ)과 제방(堤防)의 구축, 노후화된 고죠(五条) 대교와 시죠(四条) 대교에 더해, 역사적 사실에서는 에도(江戸) 시대에 공의교(公儀橋, ※역주: 에도 시대에 에도, 오사카(大阪), 쿄 등에서 에도 막부(幕府)의 경비로 가설, 교체, 수복이 진행된 다리를 말함)로 지정된 산죠(三条) 대교의 수복을 가리킨다.
천황(帝)이 있는 궁궐(御所)에서 멀다고는 해도, 전략적 가치를 가지는 다리의 공사를 맡는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권력도 권력이지만, 그것을 현실의 계획으로 실현시키는 무라이의 높은 조정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리를 정비하여 교통 편의성을 좋게 하는 것은 방어력의 저하를 불러오지만, 원래 쿄는 공격하기 쉽고 지키기 어려운 땅이다.
쿄까지 군세가 공격해 들어온 시점에서 진 싸움이기에,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쿄에서의 방어전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 후에도 무라이와의 회견은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는 것에 따른 고충에 대해 불평을 나누었다.
성별도 연령도 초월한 중신끼리의 회담은 쌍방에게 유익한 시간이 되었지만, 둘 다 바쁜 몸이었기에 겨우 일 각(刻) 만에 끝나게 되었다.
"아쉽습니다"
"이쪽이야말로, 명성 높으신 시즈코 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각고정려(刻苦精励)하여 주상의 일본 통일을 떠받칠 때. 천하통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서로의 신변도 조용해지겠지요"
"그 때는 부디 오와리에 들러 주십시오. 이번엔 제가 성심껏 대접하겠습니다"
"이름높은 오와리의 풍물(風物),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즈코의 작별인사와 함께 무라이와의 회담은 끝났다. 무라이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시즈코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하고 간신히 어깨의 힘을 빼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소문이라는 건 믿을 게 못 되는구나. 타케다(武田)를 쓰러뜨린 강자(剛の者)라고 들었기에 어떤 도깨비같은 여자(鬼女)가 나타날까 했는데, 기품조차 느껴지는 우아한 여인(手弱女)이구나"
"실로 아까운 분입니다. 여자만 아니었다면 천하를 넘볼 수 있는 그릇이었겠죠"
무라이의 보좌를 맡는 장남, 사다나리(貞成)가 아버지의 말을 받았다. 아들의 빗나간 의견을 무라이는 껄껄 웃어넘겼다.
"시즈코 님에게는 천하를 손에 넣는다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던가 하는 속인(俗人)이 품는 야심은 없을게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옛말에 있는 '왕좌(王佐)의 재능'. 주상과 함께하여야만 빛을 내겠지. 유일하게 난점을 들자면……"
사다나리는 아버지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무나 나이 차이가 나고, 또 그녀는 재능이 너무 뛰어나다. 시즈코 님을 대하고 있으면, 손주처럼 성장을 지켜보고 싶어진다"
정신없이 바쁜 무라이에게는 시즈코가 찾아가는 형태를 취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시즈코의 쿄 저택을 방문했다.
공가(公家)에 한정되지 않고 무가(武家) 사람들이나, 불가(仏家)까지 시즈코와 인연을 맺기 위해 접견(目通り)을 바라며 줄지어 있었다.
천하를 손에 넣기 직전인 노부나가의 심복(懐刀)이자 온화한 인격자로 이름높은 시즈코에게 줄을 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 사람들이 자아내는 욕망과 책략(駆け引き)에 질색을 하면서도,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차별 없이 시종 생긋 웃는 태도로 대응했다.
시즈코는 다음으로, 자신의 후견인이자 양아버지(義理の父)에 해당하는 사키히사에게 사전 연락을 보냈다. 타이밍 나쁘게 사키히사는 급한 용무로 사카이(堺)로 가 있어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시즈코가 사카이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사키히사의 집사(家宰, ※역주: 가주를 대신해 집안일을 관장하는 직책으로, 서양의 Butler와는 좀 다르지만 집사라고 해도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집사로 의역함)가 그럴 필요 없다고 사양했기에, 회담이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시즈코가 직접 쓴 편지와 각종 선물(手土産)을 집사에게 맡기고 고노에(近衛) 저택을 떠났다. 후에 시즈코와 길이 엇갈린 것을 알게 된 사키히사는, 시즈코와의 용건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전에 파발을 보내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묻도록 집사를 야단쳤다.
"으ー음, 노히메(濃姫) 님조차 싫어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뭐랄까 독기(毒気)에 휩싸이는 느낌이네"
약간 초췌한 표정으로 시즈코는 책상(文机)에 엎드렸다.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魚心あれば水心)'라는 옛말이 있지만, 시커먼 속(下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뇌물의 응수는 상상 이상으로 시즈코의 정신을 뒤틀리게 했다.
시즈코의 손이 정신 안정을 찾아 상상 속의 비트만을 쓰다듬으려고 했을 때, 소성(小姓)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서둘러 자세를 바로하고 소성의 부름에 대답했다.
"시즈코 님, 소우에키(宗易) 님이 접견을 신청하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라? 생각지도 않은 분이 오셨네요. 만나겠으니 그렇게 전해주세요"
"옛"
리큐(利休)가 회견을 요청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실익 없는 속 떠보기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여 그와의 회담을 수락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괘념치 마십시오. 이쪽도 타산(欲得)에 가득한 면회에 식상해 있던 참이라서요. 함께 오신 분은 처음 뵙는 분이군요?"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시즈코는 리큐의 동행자로 화제를 돌렸다. 외견으로 볼때 30대 후반의 남성이며, 기술자(職人) 같은 예술가 계열의 인물로 보였다.
리큐가 정체가 수상한 사람을 데려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나,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시즈코가 처음 보는 인물이라고 언급한 순간, 뒤쪽에서 대기하던 사이조(才蔵)와 소성들은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갈 자세를 취했다.
"실례했습니다. 늦었지만 소개드리겠습니다. 이쪽은 제 친우로, 이름을 하세가와 신슌(長谷川信春)이라고 합니다"
리큐의 소개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시즈코는 남자의 이름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하세가와 신슌, 훗날 토우하쿠(等伯)라고 칭하는 그는, 하세가와 파(長谷川派)라고 불리는 파벌을 구성하는 화가(絵師)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당시 화단(画壇)의 톱이었던 카노우 파(狩野派)를 위협할 정도의 존재가 되는 하세가와 파를 일으킨 인물이지만, 이 때는 아직 자복(雌伏)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아는 사람은 안다는 정도의 지명도였다.
사이조 등 호위들의 경계는 느슨해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현대에서 얻은 역사의 지식에서 이 시기의 그는 리큐나 일련종(日蓮宗)의 승려, 닛츠(日通)와 교류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세가와…… 과연. 그럼 당신이 니치교(日堯) 상인(上人)의 초상화를 그리신 분이시군요"
시즈코가 하세가와의 이름을 들은 것만으로 정체를 헤아린데다 작품의 하나를 입에 올린 것에 두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큐는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을 알아맞혀진 신슌 자신이 노골적으로 당황했다.
"저는 이래뵈도 예사(芸事) 보호(保護)를 맡고 있습니다. 장래 유망하다고 하는 분들의 정보는 많건 적건 제 귀에도 들어오게 되어 있지요"
"옛! 칭찬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제정신이 든 신슌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재야(在野)에 묻혀있는 자신에게 눈길을 준 시즈코에게, 그는 그 팔 넓음에 경악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즈코로서는 훗날의 업적을 알고 있기에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 선견지명도 뭣도 아니어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제게 소개하신다는 것은, 뭔가 노리는 것이 있으시겠지요?"
조정으로부터 예사 보호를 맡은 시즈코에게는 노부나가가 집착하고 있는 다기(茶器)는 물론이고 다양한 미술, 예술품이 모여든다.
또, 사원(寺院) 등이 비장(秘蔵)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도 특별히 열람을 허가받을 권한을 위탁받고 있었다.
이 시기의 신슌은 연줄(伝手)을 이용해 다양한 미술품을 접하고, 맹장지(襖)나 칸막이(衝立)에 그려진 장벽화(障壁画)라 불리는 장지화(障子絵)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것들에 자극을 받아 지식과 기술을 흡수하여 독자적인 화풍으로 승화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신슌의 재능을 인정한 리큐가, 가장 많은 미술품을 관리하는 시즈코에게 그를 소개하여, 조금이라도 많은 작품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예, 이 남자는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개화하려면 당분간 더 수양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 일급의 작품들을 관리하시는 시즈코 님의 소장물을 개진(開陳)하여 주실 수 없을까 하여, 대단히 뻔뻔스러운 부탁입니다만 데리고 왔습니다"
"흠"
정체는 리큐가 보증한다면 문제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이익도 없이 그만을 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남들 보기에 좋지 않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에게 미술품 열람의 허가를 내주는 것은 간단하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리큐 이외에도 시즈코의 지기(知己)를 통해서 동등한 허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쇄도할 것은 뻔히 보였다.
시즈코 자신은 신슌이 대성할 것을 알고 있지만, 현 시점의 신슌은 무명의 존재이며, 그만을 우대할 가치가 있다고 만인이 인정하게 할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소우에키 님의 소개이니, 그 인품이나 실력은 확실하겠지요. 하지만, 그만을 우대할 근거로 삼기에는 약합니다. 그가 금후의 미술계를, 나아가서는 화단을 견인하게 될 제 1인자가 될 것이라는, 우대할 가치가 있다는 실적을 제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소성에게 지시하여 어떤 병풍(屏風)을 운반해오게 했다. 병풍은 좌우 다른 모티브로 그려져 있었는데, 왼쪽의 병풍의 2면을 사용하여 소나무가, 오른쪽의 병풍의 2면에는 노송나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곡일쌍(四曲一双)이라 불리는 작풍(作風)으로, 그 화려한 색채나 약동감 넘치는 정교한 필치(筆致)는 초보자의 눈에도 뛰어난(一廉) 인물의 손에 의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병품은 하나의 면을 선(扇)이라 부르고, 하나로 이어진 선의 숫자에 따라 2곡(曲), 4곡, 6곡 등 짝수로 늘어간다. 그리고 좌우 한 조가 되는 작품을 쌍(双), 단독으로 성립하는 병풍은 척(隻)으로 세었다.
"이것은 카노우(狩野) 님(카노우 에이토쿠(狩野永徳))이 제게 헌상해주신 병풍입니다. 당대 제일로 이름높은 카노우 님을 넘어서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이것을 보고 제가 당신을 우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의 작품을 그려 주세요. 그것으로 허가를 내릴지 판단하려고 합니다"
카노우의 병풍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는 신슌에게 시즈코는 결연하게 선언했다.
"지금 당장 이것을 뛰어넘는 재주를 보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시점에서 화단의 정점에 선 인물의 작품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표현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아 주세요. 명확한 기한은 두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사람이나 물건, 돈도 지원하죠. 대신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이 되는 작품을 제출해 주세요.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즈코의 제안에 대해 신슌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을 하는 대신,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조건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 손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시간만 있으면 더 좋은 것을 만들 수 있었다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고, 그 시점에서의 최선을 다한 작품으로 당대 제일의 재능과 겨루라는 엄격한 조건이다.
"잠시,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미치지 않더라도 좋지만, 그 시점에서의 최고의 재주를 보이고 뒤떨어지는 것을 인정하라는 엄격한 조건에, 신슌은 겨우 그 말만 짜낼 수 있었다.
대답이 보류된 형태의 시즈코였으나, 그녀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대답이 나오면 리큐를 통해 전하라고만 했다.
신슌의 용건이 끝나자 리큐는 그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리큐는 신슌과 시즈코를 만나게 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뿐이며, 그 자신은 이렇다 할 용건이 없었다.
"조금 지나치게 엄격한 주문을 한 걸까? 하지만, 명백하게 특별대우를 하려면 그럴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실적이 필요하지. 누구에게라도 쉽게 보일 수 있는 개가방식(開架方式)이 아닌 이상, 자질을 보여주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게 되니까"
중국(唐)의 작품이나 동서고금의 일급품을 볼 수 있을가 하고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엄격한 조건이 들이밀어진 것이다. 그 낙차(落差)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자, 다음은 오르간티노 님인가. 요즘 남장을 안 했더니 영 답답하네"
시녀에게 하얀 무명천(サラシ)으로 가슴을 모아올리게 하면서 남장을 갖추는 시즈코가 투덜거렸다.
슬슬 정체를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노부나가에게서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은 남장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노부나가는, 처음의 만남 이래로 동석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즈코에게 남장을 시키고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답답한 차림새에 견디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회담 준비가 갖춰졌다고 소성이 알려왔다. 기합을 한 번 넣고 어깨를 돌린 후, 시즈코는 알현실로 걸어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의 활약은 멀리 떨어진 고향에서도 종종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접견할 수 있게 되어, 건강하신 모습을 뵙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これはご丁寧に). 과연 오르간티노 님이라고 할까요, 저희 나라의 문화에도 정통하시군요. 그쪽은 별 일이 없으신가요?"
알현자를 대표하여 오르간티노가 인삿말을 늘어놓고, 그것에 시즈코가 답했다. 이번에 알현하려 찾아온 것은 오르간티노, 프로이스, 로렌초 세 명이었다.
수도사들은 각각 포교에 열심인지, 요즘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전의 임지(任地, 인도 서해안의 고아(Goa) 주)에서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쪽의 더위는 한층 다르군요. 이렇게 뵙기 전에는 목욕(行水)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쿄는 분지(盆地)라서 습기가 차게 되어 아무래도 더위나 추위가 혹독해지지요. 해질무렵이 되면 조금은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만"
오르간티노는 바로 용건을 꺼내지는 않았다. 우선 인사부터 시작해서 근황을 이야기하며 대화에 활기를 띠게 하여 상대와의 공감을 얻는 것으로 대화의 실마리를 잡는다.
필연적으로 오르간티노가 화제를 제공하는 일이 많아지지만, 그의 화술은 대단히 뛰어났다.
실제 체험이 뒷받침된 풍부한 화제에, 말의 억양이나 말 사이사이에 간격을 두는 방식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실패담조차 유머를 섞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젓가락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도구입니다. 당초에는 그런 막대기로 식사가 가능한 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일단 숙달되어버리니 그만큼 만능의 도구도 없더군요. 손으로 면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는 고향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숙달에 조금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익숙해지면 팥(小豆)이나 콩(大豆)을 접시에서 분류하거나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상에! 동그란 콩을 미끄러뜨리지 않고 잡을 수 있게 되면 도전해보고 싶군요. 아참, 콩을 잡는다는 얘기 때문에 떠올렸습니다만, 전에 말씀하신 진주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도 괜찮겠습니까?"
오르간티노가 잡담의 연장선에서 실로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이야기를 유도했다. 오르간티노가 방문을 신청한 시점에서 시즈코는 대략 그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영토에서 양식하고 있는 진주에 대해 뭔가의 진전이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쌍방에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좋을까요?"
"물론입니다. 우선 전 임지인 고아와, 저희들의 고향의 왕후귀족(王侯貴族)들에게 정보를 흘렸더니, 대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할 것을 재촉했다.
크게 시대를 앞서간 양식진주가 받아들여질지 아닐지는 신이 아닌 시즈코로서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르간티노의 말에 따르면 호평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즈코는 이야기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그 색상(色合い)입니다.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진주란 은(銀)에 가까운 색상을 띠고 있습니다만, 각하께서 준비해주신 진주는 순백에 가까운 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흠, 색상인가요. 과연……"
당시 유럽에 유통되고 있던 천연 진주는 은색, 그에 반해 양식의 아코야 조개에서 나는 진주는 백색이 된다. 이것은 진주질(真珠質)을 분비하는 모개(母貝)의 종류에 기인하고 있다.
당시의 세계에는 은을 귀히 여기는 풍조가 있었기에, 시즈코는 백색보다도 은색 쪽이 유럽인들의 취향에 합치된다고 생각했다.
"색상을 은빛에 비슷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른 종류의 진주로서 팔 수는 없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상대가 양보하는 형태가 되기 때문에 각하께서 희망하시는 가격보다 어느 정도 가격 인하를 요구받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여주신다면 교섭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르간티노는 시종 상냥하게 선의로 교섭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했다. 시즈코는 그에 대해 과연 선교사라고 혀를 내둘렀다.
색상의 취향이라는 건 확실히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자(瑕疵)를 지적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싸게 들여가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리라.
그들이 손을 쓰면 색상의 취향 정도는 어떻게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걸 재료로 가격 교섭을 걸어온다. 마음씨좋은 할아버지처럼 행동하면서도 제법 만만찮은 책략가였다.
하지만, 오르간티노를 가리켜 속이 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배짱(腹芸)이 없으면 모국이라는 뒷배가 없는 적지에서 침략 행위에 가까운 종교의 포교 같은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플랜 B를 채용할 때!) 당연하겠군요. 파는 쪽으로서는 조금이라도 비싸게 팔고 싶습니다만, 살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는 상품이 되지 않지요. 가격 인하도 필연적이겠죠"
"현명하신 헤아림에 감사드립니다"
"그것들을 고려하여, 이쪽은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겠습니다. 하나는 매입 가격을 낮춘 통상의 거래, 또 하나는 가격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의 독점판매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즈코의 말을 듣고 오르간티노가 띠고 있던 분위기가 변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경계하면서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야심이 그에게서 흘러나와버린 것이리라.
손맛이 있었다.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승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두건을 쓰고 있었기에 표정은 읽히지 않았으나, 그래도 말에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화를 진행했다.
"통상의 거래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야기할 것은 없습니다. 독점판매계약에 대해서 설명드리지요. 우선 매입 가격입니다만, 이전에 이쪽에서 제시한 가격으로 제공하게 됩니다. 대신 원칙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진주의 전량을 당신들에게만 판매합니다. 판매가 잘 되지 않아 재고가 쌓일 가능성을 포함합니다만, 당신들이 우리 나라에서 산출되는 진주를 취급하는 유일한 창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 낳는 우위성은, 장사에 밝으신 오르간티노 님이시라면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는 있으나, 오르간티노라면 독점계약을 선택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최근에 프로테스턴트 계열의 상인들이 동양에 진출하여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고 카톨릭 계열의 상인에게 들었던 것이다.
아직 동남아시아 각국이나 중국, 일본 시장에는 진출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예수회 파벌이 독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별로 남아있지 않다.
프로테스턴트 측의 상인들이 동양에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이 독자적인 항로를 확립한 것을 의미한다.
몇 년만 지나면 영국이나 네덜란드 등의 프로테스턴트 국가가 극동(極東) 일본까지 진출하여 상권 확장을 둘러싸고 카톨릭 국가와 패권을 다투게 될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대단히 흥미깊은 이야기입니다만, 제 재량을 좀 넘어서는군요. 일단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가서 다시 날을 잡아 뵈어도 괜찮겠습니까?"
눈 앞에 매달린 먹이에 달려들 거라 생각했지만, 오르간티노는 냉정하게 판단을 보류했다.
시즈코로서는 상대를 속일 생각도 없고, 거래 상대를 예수회에 한정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거기까지 고려가 끝난 플랜 B였기에, 모두 상정된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상관없습니다. 이쪽도 우리 나라의 진주가 각광을 받을거라 생각하여 조금 지나치게 서둘렀군요. 충분히 검토하신 후에 좋은 대답이 있기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각하의 의향을 고국게 전달하여, 반드시 좋은 대답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오르간티노 님이 맡아주신다고 하면 이 이상 든든할 수 없겠지요"
오르간티노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아이고, 피곤하다 피곤해……"
자기 방으로 돌아와 남장에서 해방된 시즈코는, 전신을 쭉 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뭉친 어깨를 풀면서, 회담 도중에 로렌초와 프로이스 두 사람이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주의 건도, 그 이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은 오르간티노였으며, 의견을 물었을 때 이외에는 두 사람이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창구 담당은 오르간티노로 단일화되는 거겠지. 그리고 두 사람은 스무스하게 이어받을 수 있도록 서포트에 치중하는 걸까?)
시즈코와 예수회의 인연을 맺은 것은 프로이스와 로렌초였다. 그 두 사람이 어떤 경위로 시즈코와 교섭역에서 빠지고 오르간티노에게 뒤를 맡겼는지는 알 수 없다.
고민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마음 속 한 구석으로 치워두기로 했다.
"자, 슬슬 일단 오와리로 돌아가고, 그 후에 도쿠가와(徳川) 가문에 인사하러 가야겠네"
이에야스(家康)의 기분을 살피는 것(機嫌窺い)은, 노부타다(信忠)로부터의 명을 받아 그의 대리인으로서 수행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노부나가가 오와리와 미노(美濃)를 맡기게 되어, 정식으로 오와리 부쿄(奉行) 및 미노 부쿄(奉行)에 취임한 것을 동맹국이자 이웃나라이기도 한 미카와 국(三河国) 및 토오토우미 국(遠江国)에 알릴 겸 인사하러 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쿄라고 하면 오오오카 에치젠(大岡越前)이나 토오야마 킨시로(遠山金四郎)를 떠올리는 분도 많겠지만, 그것들은 에도 시대 이후의 마치부쿄(町奉行, ※역주: 검색해보니 영지 내의 주요 도시의 행정 및 사법을 담당하던 기관이라고 하는데, 현대 기준으로 하면 시청과 경찰서, 소방서 등이 통합된 기관으로 보면 될 듯 하나, 그 규모는 끽해야 현대의 구청 규모 정도였던 듯)이며, 여기서 말하는 부쿄란 조정에서 임명되는 공적 직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다 영토 내에서만 통용되는 직책이다.
부쿄의 주된 임무는 오와리 및 미노의 슈고(守護)에 취임하는 노부타다의 보좌이며, 실무를 실행하는 사무장관(事務長官) 같은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노부타다 본인은 오와리와 미노의 수하들의 고삐를 쥐는 데만도 벅차서, 도저히 외교에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련의 예정에 대해 준비를 한 것은 노부나가로, 그가 이에야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드디어, 토우고쿠(東国) 정벌이 시작되는건가)
시즈코의 도쿠가와 영토 방문은, 토우고쿠를 다스리는 각 영주(国人)들에 대해, 깃발 색을 뚜렷하게 할 기회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메시지였다. 즉,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다.
아즈치 성(安土城) 축성의 움직임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시즈코군의 중핵을 이루는 병참군(兵站軍)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 머지 않아서, 빠르면 여름이 끝날 무렵에라도 토우고쿠 정벌이 시작될 것이다. 시즈코는 그렇게 예상하고있었다.
(확실히 임무를 수행해야지)
쿄에서 돌아온 시즈코는 오와리에 며칠 머물며 준비를 갖추고, 다시 이에야스가 있는 토오토우미를 향해 출발했다.
미카와 국에 들어서자 안내인을 맡은 나츠메 요시노부(夏目吉信)와 합류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이에야스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이에야스를 대신하여 목숨을 잃은 인물인데, 지금도 살아있는 것에 시즈코는 기묘한 감개를 느끼고 있었다.
안내인이 필요해지는 이유는, 미카와나 토오토우미는 도로 정비가 충분히 되어있지 않아, 현지 사람이 아니면 길 위에서 고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과연 안내역을 맡은 나츠메의 선도는 확실하여, 시즈코 일행은 아무 문제 없이 이에야스의 거성인 하마마츠 성(浜松城)에 도착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도쿠가와 님도 건강하신 듯 하여 기쁩니다"
알현 장소에서 이에야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문득 시야의 한 구석에서 타다카츠(忠勝)가 지나치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것을 눈치챈 한조(半蔵)와 야스마사(康政)에게 팔꿈치치기를 맞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때에까지 개그(漫才)를 하는 걸까?)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촌극이라고 해도 몰래 주위의 눈을 신경쓰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의식을 되돌렸다.
노부나가로부터 명확한 메시지나 문서를 받지 않은 이상, 토우고쿠 정벌의 화제 같은 건 꺼낼 수 있을 리도 없다. 오와리-미노 부쿄 취임의 인사를 마치자, 시종 잡담(世間話)의 연장선상에 있는 화제를 주고받았다.
시즈코로서는 인사하러 방문한 것 뿐이고 원래부터 오래 머물 생각도 없었기에, 회담 후 며칠 머물고는 오와리에 귀국하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의 안내인은 타다카츠가 맡게 되었는데, 한조와 야스마사가 뒤에서 손을 썼는지, 시즈코의 주변 경비를 담당한 것은 타다카츠의 숙부인 혼다 타다자네(本多忠真)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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