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25 1575년 4월 하순



소동의 원인은 이세(伊勢)의 정세에 있었다. 북(北) 이세는 칸베 토모모리(神戸具盛)의 양자(養子), 노부타카(信孝)가 다스리고 있다. 한편 남(南) 이세를 다스리는 것은 이세 국사(国司), 키타바타케 토모후사(北畠具房)의 양자가 된 노부카츠(信雄)였다.

당초 이세 일대의 개발이 제안되었을 때, 북 이세를 다스리는 노부타카만이 계획에 참가할 의사를 밝혔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미노(美濃), 오와리(尾張), 북 이세를 잇는 경제권을 개발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거기에 느닷없이 노부카츠가 제동을 걸었다. 새삼스레 트집을 잡는 노부카츠의 태도에 노부타카는 격노했다.

하지만 노부카츠는 뻔뻔한 표정으로 이 개발은 이세 전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신을 빼놓으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애초에 서로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은데다 영지의 국경이 맞닿아있는 것도 있어 무슨 일만 있으면 이해관계로 다투는 일이 잦아 두 사람의 사이가 험악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발 시작 단계의 곡곳에 대한 조정이나 개발지역 일대의 조사 비용 등을 일체 부담하지 않고, 사업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 무임승차를 허용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한 이야기이니, 노부타카가 분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노부타카와 노부카츠는 정면에서 대립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의 수하들까지 끼어드는 큰 싸움으로 발전했다. 개발사업의 총 책임자 역인 노부타다(信忠)가 두 사람을 진정시키려 갖은 수를 썼으나, 두 사람 모두 서로 상대를 계획에서 배제하지 않는 한 일체의 양보를 하지 않겠다고 완고하게 주장했다.


곤란하기 짝이 없어진 노부타다는, 아즈치(安土)로 옮겨간 노부나가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노부나가로서는 노부타다의 기량을 확인해보고 싶다는 속셈도 있었으나, 쿠로쿠와슈(黒鍬衆)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인원, 물자, 돈이 동원되었기에 그것들을 의미없이 놀려둘 수는 없었다.

최종적으로 노부나가는 노부타카, 노부카츠 두 명에 대해 주인장(朱印状)을 보냈으며, 노부카츠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모자람(不明)으로 늦었으면서 고생 없이 거저 먹으려(濡れ手で粟を掴もう) 하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断). 선임자(先人)가 치른 대가에 걸맞는 수준의 출자(出資)를 하여야 처음으로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꾸짖고, 노부타카에 대해서는 '동주상구(同舟相救)라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서로 반목하더라도 같은 목적을 가지게 되면 협력할 수 있는 법. 보기좋게 성과를 내어 스스로의 기량을 증명해 보여라'고 설득했다.

제아무리 두 사람이라도 노부나가로부터의 중재를 무시하거나 할 수 있을 리 없었기에, 즉시 창을 거두기는 했으나, 만사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북 이세는 입지를 고려하여 인원을 보내고, 남 이세는 선행투자분도 포함해서 여분으로 돈을 낸다는 걸로 마무리되었는데, 노부타카와 노부카츠 사이가 나쁘다는 건 정말이었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노부카츠는 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멍청이(うつけもの)'라고 평가되는 한편, 노부타카는 견실하게 실적을 쌓아올려 서서히이긴 하나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전국의 세상의 서열에서는 항상 노부카츠에게 뒤쳐졌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자신이 실력을 드러내도 여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노부타카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노부타카의 평가가 부당하게 낮은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노부카츠와 대립하여 성가신 일을 만들기 때문에 공적이 상쇄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의 개발에서도 솔선해서 나선 것은 노부카츠를 추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북 이세를 번영시켜서 남 이세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만들어, 이번에야말로 서열을 뒤엎겠다고 꾸민 걸까?"


형제끼리 일으키는 골육상쟁을 조정하기 위해 고생한 시즈코는, 그 실익이 적은 것에 크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오와리 전역에 배포되는 오와리 쌀의 모가 푸릇푸릇해지는 3월. 노랗게 익어서 시들어버리지도 않고, 구획마다 생육 상황이 정렬된 모들이 늘어서 있었다.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오와리 전역으로 재배 규모가 확대되었기에, 취급하는 모의 숫자가 종래와는 단위가 달라졌다. 반송(搬送)이나 작부(作付け) 일정을 고려하여 조금씩 생육상황을 어긋나게 하여 키워진 모들이 준비되고, 각자의 모내기 시기가 되면 순차적으로 출하되어간다.

예전에 시즈코가 촌장으로 취임했던 최초의 마을에 발단한 인력 모내기 기계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세련된 것으로 진화되어 있었다.

초기형의 것과 비교해서 대형화되고, 소에게 끌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 6조식(条植)의 축력(畜力) 모내기 기계와, 반대로 소형경량화를 추진하여, 심플하고 잘 고장나지 않는 종래대로의 2조식 인력 모내기 기계의 두 계통으로 갈라져 있었다.

구획정리의 상황(都合)에 따라 경사지나 계단식 논(棚田), 변형된 밭 등에서는 오로지 인력 모내기 기계가 사용되고, 규격화된 크기의 대형 포장(圃場)에서는 축력 모내기 기계가 활약하고 있다.

6조식의 축력 모내기 기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인력 모내기 기계조차 숙련된 사람이 사용하면, 1헥타르의 토지에 대한 모내기를 하루에 끝낼 수 있다.

이것은 종래의 완전 수작업과 비교하여 실로 7배에 가까운 효율을 보이며, 축력의 것은 10배를 넘어간다. 이러한 농기구들은 오다 가문과 계약을 맺고, 적절하게 운용한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물론 무제한이라는 것은 아니어서, 마을의 작부 규모에 따라 대여되는 숫자의 상한이 결정된다. 그러나, 필요한 숫자를 빌려서 적절한 인원이 일제히 모내기를 하면, 1주일 정도면 모든 토지에 모내기를 끝낼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오와리와 타국을 비교했을 때, 인구당 작부 면적이 몇 배나 되는 규모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작업이 파토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아무래도 오와리 전역에 배포하게 되면 규모가 단위가 달라지네"


모내기 기계에 맞춰 규격화된 모 상자가 정연하게 놓여지고, 대여되는 농기구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시즈코가 혼잣말을 했다.

당초부터 언젠가는 오와리 전역으로의 확대를 시야에 넣고 계획되어 있었던 만큼, 대여되는 농기구류의 숫자는 여유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작부 규모의 확대 자체는 이번이 두번째 시도가 되기에, 첫번째 때와 같은 혼란은 회피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운용상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저번에 대응할 수 있었기에, 이번의 작업에 불안은 적었다.

오와리 쌀의 작부에 대해서는 오와리로만 제한되기는 하나, 오와리 방식의 농법에 대해서는 언젠가 오와리 전역에서 중부지방(中部地方) 전역으로, 나아가서는 오우미(近江)나 에치젠(越前) 등도 포함한 오다 가문의 지배지 전역으로 순차 전개가 예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전국 전개의 시금석이 되는 시도인 만큼 오다 가문 내부의 유력자들이 주시하고 있어,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계획이기도 했다.


"큰 문제점들은 저번에 찾아냈고,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해도 저번을 경험한 우수한 스태프가 있으니 안심이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네"


그렇게 입 밖에 내어 중얼거리며 각오를 굳힌 시즈코였으나, 결과적으로 시즈코의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운반 도중의 사고로 일부 모가 폐기처분되기는 했으나, 예비의 모로 벌충할 수 있는 분량이었기에 큰 문제 없이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다.


4월 하순, 순조로웠던 작부와 대조적으로, 또다시 이세 개발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노부나가의 조정을 통해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한 미노, 오와리, 이세 포괄경제권(包括経済圏) 구상인데, 계획을 시동할 때의 회합 자리에 노부카츠의 모습은 없었다.

관계자 전원의 스케줄을 조정한 후에 일정이 짜여져 반드시 본인이 출석할 것을 당부하였던 회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부카츠는 대리인(名代)을 내세워 결석했다.

대리인에 의해 전달된 편지에는, 영지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영주인 노부카츠가 아니면 대처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결석하겠다고 쓰여 있었으나,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노부타카는 분노를 풀 길이 없는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고,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끼워달라고 말해놓고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면 아무래도 기량을 의심받지)


노부타다와 함께 오와리 대표로서 참석하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타카가 말하는 노부카츠에 대한 불만을 흘려들으면서 노부카츠의 진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선 노부카츠의 인물평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들 중 좋은 소문은 거의 없다. 평소에는 정무를 수하에게 몽땅 떠넘겨놓고 일절 관여하려 하지 않지만, 가끔 생각났다는 듯이 참견하며 현장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선대(先代)인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教)가 살아있을 때는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썼지만, 토모노리를 시작으로 한 키타바타케 일문(一門)을 처형한 이래, 노부카츠의 방종함(放埓)은 멈출 줄 몰랐다.

토모노리의 처형에 대해서도,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이 실패했을 때, 노부카츠가 토모노리나 주요 키타바타케 일족이 신겐과 밀약을 맺었다고 단정하고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관계자를 모조리 처형했다.

그 처형에 대해서도 억지스러운 방식을 취했는데, 은거상태였던 토모노리의 저택을 습격하여, 일체의 반론이나 항변을 허용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베어죽여버렸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말이 딱 맞게, 격렬하게 저항했기에 어쩔 수 없이 베어버렸다는 노부카츠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일련의 숙청이 노부카츠의 독단에 의한 것인지 노부나가의 지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이후 키타바타케 일문은 급속하게 힘을 잃어, 지금은 완전히 노부카츠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다.

노부카츠의 무법함을 꾸짖으려 해도, 노부나가의 후계자인 노부타다 다음가는 서열에 위치하는 노부카츠에게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키타바타케는 이름만을 남기고 완전히 장악되어 버렸다.


"듣고 계십니까, 시즈코 님!"


"네? 아, 네, 듣고 있습니다"


갑자기 노부타카가 말을 걸었기에 시즈코는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명백히 듣고 있지 않았지만, 노부타카는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노부카츠에 대한 불만이 재개되었다.


"놈에게는 남 이세의 국주(国主), 키타바타케 가문을 이었다는 자각이 없다. 틀림없이 저번의 건과 시마 국(志摩国)의 건 때문에 지르퉁해져 있겠지"


시마 국은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가 1569년에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나라이며, 옛부터 내륙부(内陸部)로 해산물을 공급하는 요지였다.

이세 만(伊勢湾)이라는, 어업을 하기에 절호의 입지를 가진 시마 국은, 한층 더 어업을 확대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시즈코로서는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통해 요시타카에게 수산자원의 공동개발을 타진했다. 요시타카로서도 영지의 산업진흥은 바라는 바였기에 두말없이 수락하였고, 즉시 시즈코 직속의 수산관계자가 파견되었다.

이리하여 오와리에서 사업 개척(立ち上げ)이라는 고난을 극복한 수완가(辣腕家)가 실력을 발휘하여, 시마 국은 일약 양식업(養殖業)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요시타카는 수산업으로 윤택해진 재원을 바탕으로, 장래적으로는 오와리에서 방문하게 될 해로를 통한 이세 신궁(伊勢神宮) 참배객을 예상하고 남 이세까지의 도로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항구 도시의 숙박 시설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 주변의 여관(旅籠) 등에도 충분히 장사로서 성립할 수요가 기대된다.

그러나, 인프라 정비는 거대 사업이기에 아무래도 그렇게 쉽게 시작할 수 없어서, 아직은 계획 단계에 그치고 있었다.


노부타카가 말하는 시마 국의 건이란, 이 일대 이권에 대해 (노부카츠) 자신이 파고들지 못했던 것을 가리킨다. 오와리와 시마(志摩)를 직접 해로로 연결하기에, 도중에 위치하는 남 이세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도로 정비의 실패(不首尾)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황실(皇室)의 수호신(氏神)인 아마테라시마스(天照坐) 스메오오미카미(皇大御神)를 모시는 이세 신궁의 비호자(庇護者)의 지위를 반납하게 된 원한(逆恨み)도 더해졌다.

원래는 남 이세의 비호하에 있었던 이세 신궁이었으나, 전혀 진척이 없는 도로 정비나, 비호자로서의 의무를 충분히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세금만 부과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세금(賦税)을 내라고 하는 데 반발했다.

노부나가로서도 일족(身内)의 잘못(落ち度)인데다, 조정과 인연이 깊은 이세 신궁을 적으로 돌릴 수도 없어, 재력 및 정치적 수완이 뛰어난 시마 국의 비호 아래로 재편했던 것이다.

영지가 줄어드는 노부카츠에게는 시마 국 아고 군(英虞郡)의 일부를 이세 국 와타라이 군(度会郡)으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밸런스를 맞추었으나, 노부카츠는 그것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이상의 사정으로 시마 국과 국경을 맞대는 남 이세의 국주인 노부카츠로서는, 원한을 품은 이웃 나라만이 윤택해지고 있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트집을 잡으려고 해도 노부나가가 중개한 안건인 만큼, 제아무리 노부카츠라고 해도 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인내를 요구받는 일이 적었던 노부카츠로서는, 자신의 위광이 통용되지 않는 노부타다나 시즈코, 자신보다도 낮은 서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노부타카와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싫은 상대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정도의 배짱(腹芸)이 없으면 앞으로 힘들텐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시류(時流)에 영합한 시마 국이 번영하는 한편, 남 이세는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노부카츠에게는 시마 국의 번영은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정도로 탐이 나는 것이었다.

시즈코는 이세 만이라는 외양(外洋)을 내다보는 해상 거점에서의 연구나 개발이 기대되고, 노부나가로서는 헌상되는 해산물이나 건물(乾物)을 조정에 바치는 것으로 정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남은 요시타카로서는 외자(外資)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적은 부담으로 산업 개발이 진행된다는 호혜관계(互恵関係)가 성립되었다.

노부나가, 시즈코, 요시타카 세 사람에 의한 호혜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한, 노부카츠가 이익에 파고들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노부타카도 나를 싫어하고 있겠지만, 그걸 삼키고서라도 노부카츠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향상심이 있어. 아니면 나를 이용해서 노부카츠를 몰락시킬 속셈일까? 뭐,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개인의 속셈에는 관여하지 않겠지만)


"……그만해도 되겠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해도 이익은 없다. 자, 면식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다시 각자를 소개——"


노부타카의 불만이 일단락되는 시점을 헤아려, 노부타다가 권연함(倦厭, 지긋지긋해하는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회합의 개시를 고했다. 노부타카는 그것을 듣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는지 자세를 바로했고, 노부타카의 빈정거림(当て擦り)에 계속 견디고 있던 노부카츠의 대리인은 간신히 살겠다는 느낌이 든 모양이었다.


"키타바타케 산스케(北畠三介, 산스케(三介)는 노부카츠의 통칭. 키타바타케 가문을 이었기 때문에 키타바타케 산스케 토모토요(北畠三介具豊)라는 이름을 썼다)의 부재는 유감이지만, 사업의 개요(あらまし)를 다시 설명하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노, 오와리, 이세의 3개국을 포함하는 경제권(経済圏)을 구축한다. 이 기회에 확실히 말해두지만, 이번의 계획은 이세에 대한 경제 지원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겉치레(建前)를 생략한 노부타다의 말에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세의 남북을 통합하려고 해도, 그 경제 규모는 오와리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다.

원래부터 육지의 고도(孤島)라는 열악한 입지도 그렇지만, 조기에 착수했어야 할 도로 정비를 소홀히 한 영향이 컸다.

사이카슈(雑賀衆)를 무너뜨릴 때, 오와리로부터도 지원(梃入れ)을 받아 우선적으로 정비한 도로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불충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거대한 미노와 오와리의 경제권에 포함시켜, 특히 오와리에서 현저한 잉여 자금을 이세 개발에 투입하기로 했다. 자금 투입의 결정에는 시즈코의 의향이 크게 관여하고 있다.

이미 오다 가문의 지배지역은 경제 자원의 일극집중(一極集中)을 할 시기를 지나, 더욱 큰 경제권을 구축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결함에 의해 갈수록 불안해지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부정은 할 수 없습니다. 오와리는 이미 토우고쿠(東国) 제일의 대국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사람, 물건, 돈이 모여들고, 또 각지로 퍼져나갑니다. 이 상황 아래에서, 우리들 이세는 오와리에 기생하는 짐덩어리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훌륭하다. 자, 그럼 이세와 오와리를 육로로 연결하는 데 있어, 키소(木曽) 삼천(三川)이 난제로 가로막고 있다. 개발에 앞서 우선 치수공사(治水工事)를 완수해야 한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입지적으로 가까운 우리 북 이세가 인원을 제공하고, 남 이세는 자금을 부담합니다. 틀림없겠지?"


"예, 옛. 그렇게 들었사옵니다"


남 이세 대표의 대리인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노부타카가 못을 박았다. 뱀에게 노림받은 개구리처럼, 대리인은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이 대리로 온 사람도 고생이네. 이 상황이면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오게 될 것 같아)


의사(議事)의 진행을 노부타다에게 맡기고 자신은 듣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카츠의 대리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도 노부카츠로부터 남 이세에게 유리한 조건을 받아오라는 명령을 받았으리라. 명백하게 소극적인 자세를 보는 한, 죽 늘어앉은 국주들에게 불이익을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 따위 가능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대로 터덜터덜 귀국했다가는 노부카츠의 분노를 사서 경질될 것은 뻔했다.


"흐ー음…… 시즈코. 그대는 뭔가 할 말이 있나?"


의논이 정체되었을 때, 노부타다가 시즈코의 의견을 물었다. 생각을 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는 있던 시즈코는 즉시 대답해 보였다.


"그렇군요. 다른 곳에는 없는, 이세만의 특색. 이것을 내세우지 못하면 한때의 융성함은 얻을 수 있더라도, 계속적인 번영은 바랄 수 없겠지요"


"그리 말씀하심은?"


시즈코의 발언을 듣고 노부타카가 약간 앞으로 숙이며 계속할 것을 재촉했다.


"네. 오와리라면 '오와리 양식(尾張様式)'이라고 불리게 된 문물이나, 오와리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이 있습니다. 미노에는 미노와 쿄(京)를 시작으로 하는 다른 나라를 연결하는 중계지(中継地)로서의 역할이 있어, 물류를 지탱하는 산업이 자라고 있습니다. 뒤집어 봤을 때, 이세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특색이 있습니까?"


시즈코는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세 일대에서는 시마 국만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한 특색을 갖추고 있다. 평생 한 번은 방문하고 싶다고 하는 이세 신궁을 품고, 풍요로운 해양자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해운의 요충지가 되는 이세 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의 이세 국에는 이렇다 할 특색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시마 국으로의 통과점에 불과하다. 당초 예정되어 있던 도로 정비만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킨키(近畿) 지방과 토우카이(東海) 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 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실제로 역사적 사실에서도 에도(江戸) 시대에 토우카이도(東海道)에서 분기된 이세 도로(伊勢街道)가 정비되어, 남쪽 방면의 육로를 지탱하는 중계지로서 번영하게 된다.

그리고 첫 수에서 실패한 노부카츠, 노부타카 형제가 다스리는 이세에는, 대규모의 인프라 정비를 할 여력조차 없었다.


"사람을 모으려면 '특산품(目玉)'이 필요합니다. 조금 멀리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세에 들르자고 생각할 만큼의 무언가가 없으면, 언젠자 미노에게 그 지위를 뺴앗기겠지요"


"크음…… 그리 말씀하시지만, 그런 게 있으면 우리들이라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시즈코가 말하는 내용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당장 특산품이 될 수 있는 유망한 존재 같은 건 떠오르지 않아 의도하지 않게 반발해버렸다.


"없으면 만들면 됩니다. 도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적어도 10년의 여유는 얻을 수 있겠지요. 그 시간을 이용해서 특산품을 만들어내면 됩니다. 다행히 남쪽에 위치하는 이세에는 일조량이 좋은 사면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타국의 특산품과 겹치지 않는 밀감(橘)이나 홍귤(柑子)을 키우는 건 어떨까요?"


밀감이나 홍귤은 일본에 옛부터 자생하고 있는 감귤류이다. 밀감의 존재는 일본서기(日本書紀)나 고사기(古事記)에도 등장하며, 불로불사의 영약인 '토키지쿠(非時)의 향과(香果)'가 밀감이라고 한다.

'토코요(常世) 국(※역주: 고대 일본에서 바다 저편에 있는 다른 세상이라고 믿어진 곳으로, 도원경 등의 이상향과 유사한 개념인 듯)'에서 가지고 돌아와, 생명이 시들어버리는 겨울에도 푸릇푸릇하게 잎사귀를 드리우는 영원한 생명을 연상시키는 과일, 현재는 야마토타치바나(ヤマトタチバナ)로 알려진 품종이 그것이다.


시즈코는 가능하다면 온주(温州) 귤(みかん)을 재배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현 시점에서 온주 귤이 존재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데다, 씨앗이 없는 품종이기에 재수가 나쁘다고 기피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재수를 역이용하여, 불로불사의 영약이라고도 했던 밀감이라면 이세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흠…… 귀중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즈코 님의 제안은, 돌아가서 가신들과 상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시즈코에게 크게 놀란 노부타카는, 시즈코가 말하는 아이디어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일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만큼, 그 자리에서 결단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큰 줄기가 정해져 있던 회합이니만큼, 이세가 취해야 할 방침이 정해지니 그 후에는 이야기가 금방 마무리되었다. 노부타카는 이세의 특산품을 어떻게 할지라는 점에 대해서 가지고 돌아갈 숙제가 생겼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작업을 진행할 뿐이다.

유일하게 노부카츠의 대리인만이 비장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남 이세에 유리한 조건은 고사하고, 돈을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와리와 미노에서 차입해서라도 마련하라고 주군에게 전해야 한다.

주군의 노여움을 살 것은 확실하며, 자칫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詰め腹) 판이다(※역주: '강제로 할복하게 되다'와 현대식의 '강제 사직당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 중 작가가 의도한 것이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목이 날아간다'로 표현). 암담한 기분을 감추려 들지도 않는 대리인을 꽤나 유쾌하게 바라보는 노부타카의 모습을 시즈코는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업에 궤도에 오르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


노부카츠는 그렇다치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된 노부타카조차 공동사업주가 되는 노부카츠의 실각을 바라고 있다. 이 상황에서는 종종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것은 뻔히 보였다.

형제 싸움 때마다 중재를 요구받는 것도 바보같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일찌감치 사업 계획의 요체(要諦)를 정리한 후, 전임(専任) 담당자를 선출하도록 아야(彩)에게 전달하고 자신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버렸다.


"아ー, 의욕이 깎이네"


토코노마(床の間)에 대자로 드러누워서 전신을 쭉 뻗으며 불평했다. 일은 내일 하자라고 목소리로 내어 결의하고, 시즈코는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할 자세가 되었다.

한동안 말없이 비트만들의 옆에 누워 있는데, 뭔가 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는 듯한 시끄러움이 시즈코의 귀에도 들려왔다.

위험을 고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냐 하면 축제 분위기에 가깝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목소리의 출처를 찾으려고 일어섰다.

시즈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비트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시즈코는 혼자서 방을 나서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갔다.


"……과연"


소리의 발생원에 다가감에 따라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린 시즈코였으나,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의 한 구석에 있는 무도장(武道場)이었다.

시즈코 저택의 무도장에는 오락이기도 한 씨름(相撲)을 하기 쉽도록 훌륭한 씨름판(土俵)이 설치되어 있었다. 씨름판 뿐만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싸는 관객석도 설치된 본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오ー, 하고 있네"


무도장의 씨름판에 다가가자, 남자들이 대환성을 지르며 씨름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인전인지 단체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 쪽이 씨름판을 내려가고 이긴 쪽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승자전(勝ち抜き戦)인 것은 확실한 듯 했다.


"힘내라ー! 아니 시즈코 님!?"


큰 소리를 지르며 성원을 보내고 있던 한 명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 시즈코의 존재를 깨닫고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그걸 계기로 그렇게 소란스럽던 관객들이 고요해지고, 인파가 갈라지며 공백지대가 딱 생겨났다.


"미안해요, 방해되었나요? 잠깐 지나갈게요"


주위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에 약간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관객석의 맨 앞줄로 발을 옮겼다.


"어라 시즛치, 시끄러웠어?"


씨름판 앞까지 가자, 방금전까지 씨름을 하고 있었는지 반라(半裸)의 모습에 흙으로 지저분해진 케이지가 있었다.

그밖에도 나가요시(長可)나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도 있어, 이쪽에 오다 가문의 관계자들이 모여있는 듯 했다. 반대쪽을 보니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등 에치고 인(越後人)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니, 즐거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말이에요. 조금 궁금해져서 와 봤어요"


"핫핫핫. 보는 대로, 오다 대 우에스기의 단체전이야. 물론, 이겨도 져도 원망하기 없기의 승부지만 말야"


"응. 사정은 알겠어요. 서로 다치지 않게 해요"


시즈코가 가만히 지켜볼 태도를 보이자, 다시 드잡이질이 시작되었다. 오다 측 인원들과 우에스기 측 인원들의 교류전이라는 건 알았으나, 그렇다고 해도 조금 궁금한 것이 있었다.


"꽤나 달아올랐네요. 연승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어요?"


시즈코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관객들의 열광도와 선수들의 집중도(入れ込み具合)였다. 오다 측 인원들과 우에스기 측 인원들로 나뉘어 씨름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이전부터 종종 벌어졌다.

시즈코가 아는 한 이번만큼의 흥분(盛り上がり)을 보인 적은 없어서, 그 한 가지가 의문(気掛かり)이었다.


"이번에는 진 쪽이 승자측의 밥값을 부담하기로 했거든. 조촐하지만 내기 요소가 있으면 다들 태도(盛り上がり)가 달라지는 거지"


시즈코의 의문에 나가요시가 대답했다.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서로의 선수들의 승패에 밥값을 걸고 내기를 하며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납득이 간 시즈코는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전문 도박꾼(胴元)이 끼어드는 도박도 아니니 눈을 부릅뜰 정도도 아니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말했다.


"그 정도라면 문제없어요. 서로 긍지를 걸고 실컷 싸우세요"


"과연 시즛치! 말이 통하잖아"


"하지만, 승자에 대한 상이 밥값만이라는 것도 멋이 없네요. 한창 재미있을 때 찬물을 끼얹은 데 대한 사죄의 표시로, 내가 약소하나마 상품을 제공하려고 하는데, 어때요?"


드물게 치기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시즈코의 말에, 일순의 고요함 후에 환성이 폭발했다.


"내가 제공하는 상품은 이것. 일부 사람들은 이 표딱지(札)가 붙은 열쇠가 어디 열쇠인지 알겠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단체전을 다시 시작하려는 것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 속에서 상품이 될 열쇠를 꺼냈다. 어디에나 있는 맹꽁이 자물쇠(南京錠)의 열쇠처럼 보였으나, 달려 있는 표딱지에는 '술(酒)'이라는 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즈코가 꺼낸 열쇠는, 시즈코가 관리하는 술창고(酒蔵) 중 하나의 열쇠였다. 시즈코 자신이 음주를 금지당했기에 보관되어 있는 술의 태반은 손대지 않은 채 잠자고 있다.

개중에는 천황(帝)에게 헌상하기 위해 담근 술이나, 노부나가나 사키히사(前久) 등 일부 사람밖에 마실 수 없는 특급주(特級酒)도 있다고 그럴싸하게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실은 시바타(柴田) 님에게 진중(陣中) 위문(見舞い)으로 준비한 술이 남아서 말이에요, 술의 처분이 곤란하던 참이에요. 승자에게는 승리의 미주(美酒)가 어울리잖아요?"


꼴깍 하고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즈코는 귀빈용의 관람석(桟敷席)에 열쇠를 놓더니, 손뼉을 쳐서 전원의 시선을 모았다.


"오다 대 우에스기의 단체전, 승리(勝ち星)가 많은 쪽에 이 열쇠를 맡기겠어요. 물론, 안에 있는 걸 어떻게 하던 자유에요!"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승리의 함성(鬨とき) 소리가 아닐까 할 정도의 대함성이 씨름판을 뒤흔들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비장의 술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인데 흥분하지 않을 주당(呑兵衛)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에치고 사람들은 술창고 내부를 상상할 수 없을테니, 우선 쌍방의 대표자를 선출해 주세요. 실제로 창고 안의 물건들을 보여드리죠"


대화 끝에 오와리로부터는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에치고로부터는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선출되었다. 시즈코는 네 사람을 애동하고 술창고까지 가서, 자물쇠를 열고 닫혀있던 문을 열어젖혔다.


"어이어이, 이건 오와리 다이긴쥬(大吟醸)야. 게다가 2년 전이라고 하면 대박(大当たり)이 났다고 했던 거잖아!"


"이쪽에도 굉장한 게 있어! 폐하(帝)께 헌상되는 어용주(御用酒)와 함께 담궈진 통이야! 선발에서 떨어졌다고는 해도 천하일품의 보증이 붙은거라고!"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눈을 빛내면서 술통에 붙어있는 표서(表書き)를 확인했다. 한편, 그들이 무엇 때문에 놀라고 있는지 모르는 카게카츠와 카네츠구 등 에치고 팀이었다.

다만, 술친구인 케이지가 눈을 빛낼 정도로 좋은 술이 늘어서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대감이 부풀었다.


"뭐, 술은 마셔보지 않으면 모르겠지요. 거기에 시음용 잔이 있으니까 잠깐 맛보시겠어요?"


시즈코는 술통 하나를 쓰러뜨리고 '맞춤못(ダボ, ※역주: 확실하지 않음)'이라고 불리는 나무 마개를 빼서 '주둥이(呑み口)'를 끼웠다. 다시 술통을 세운 후, '주둥이'의 마개를 뺐다.

시음용의 잔이라며 꺼내온 것은, 붉게 칠해진 큰 잔(大盃)이었다. 그 큰 잔에 찰랑찰랑 부어진 술을 들고 네 사람이 먼저 창고를 나서고, 시즈코가 다시 자물쇠를 잠궜다.

무도장의 씨름판으로 돌아가자, 다들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즈코들이 돌아온 것을 깨닫자, 앉아있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모여들었다.


"승리의 미주 중 하나를 골라서 가져왔어요. 돌려서 마시게 되겠지만, 참가자는 차례대로 맛을 보도록 해요"


큰 잔을 들고 있던 케이지가, 우선 에치고 측이 마셔야 한다며 카게카츠에게 건넸다.

상당한 중량이 있는 큰 잔을 받아든 카게카츠는, 술잔에서 피어오르는 감미로운(芳醇) 향기에 깜짝 놀랐다.

다들 숨을 멈추고 지켜보는 가운데, 큰 잔에 입을 대고 술을 입 속으로 흘려넣었다.


"오오, 이것은……"


입에 머금고 굴리며, 혀 위에서 맛보고, 마지막으로 목구멍 속으로 내려보냈다(嚥下).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한숨이 새어나왔다.

단 한 모금, 하지만 한 모금. 그가 맛본 술은, 단 한 모금으로 그를 매료시켰다. 어떻게 담그면 그렇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투명할 정도로 맑으면서도 어딘가 탁주(濁り酒) 같은 끈적한 느낌(口当たり)이 있었다.

달고 부드러운 느낌이면서, 목구멍을 불태울 듯 강한 주정(酒精)이 몸에 스며들었다. 목구멍을 지났을 때에 느껴지는 꽃과 같은 향기는 그의 미간의 주름을 펴게 했다.

그의 반응을 보고 그 술이 얼마나 맛이 있는건가 하면서 목젖을 울리는 에치고 인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시즈코는, 순서대로 큰 잔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관객석에 술창고의 열쇠를 놓았다.


"자, 승리의 미주는 마음에 들었어요? 상품은 이것과 동등한 술이, 여기에 있는 전원이 뒤집어쓸 정도로 마셔도 남을 정도 있어요. 자, 실력에 자신있는 사람은 나서보세요!"


시즈코의 부추김에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단체전의 매칭은 전에 없던 규모가 되었다.


"그럼, 양쪽 모두 부상만은 입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세요"


시즈코는 그 말만 하고 씨름판을 떠났다. 무도장에서 밖으로 나온 직후, 등 뒤에서 대환성이 들려왔다.

벌써 드잡이질이 시작된 모양이다. 우에스기 쪽에 약간 머뭇거림(遠慮)이 보였기에 약간 부추겨보았는데, 예상 이상의 효과였구나라고 새삼 생각했다.


"뭐, 조심해도 다치는 사람은 나오겠지. 미리 의사를 수배해 둘까"


시즈코가 상황을 살피러 왔을 때 이상의 떠들썩함을 보이는 무도장을 뒤로 하고, 시즈코는 아야가 있는 안채(母屋)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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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