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23 1574년 12월 하순
노부나가와 카가(加賀) 일향종(一向宗)의 반목(確執)은 역사를 대폭 반복하는 형태로 결판이 났다. 말할 것도 없이 오다 측의 압승이며, 호쿠리쿠(北陸) 지방의 세력구도가 뒤바뀌게 되었다.
이 전쟁에 도중 참전한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은 군신(軍神)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 눈 깜짝할 사이에 혼간지(本願寺) 세력을 구축하더니, 노토 국(能登国)을 지배하에 두었다.
전후처리(戦後処理)에 애를 먹고 있던 시바타(柴田)는, 켄신에게 한 발 뒤쳐지면서도 카가 국을 지배하에 두었다. 이로서 호쿠리쿠 정벌은 완료되어, 양자가 각각 지배력을 강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켄신의 영토가 확대되게 되었으나, 노부나가는 이것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토우고쿠(東国)에서 혼간지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카가 일향종 정벌, 실로 수고하였다"
노부나가는 시바타를 시작으로, 카가 일향종 정벌에 참전한 무장들에게 감사장과 상을 하사했다.
외국(唐物)의 다기(茶器)까지는 주어지지 않았으나, 시바타는 다화회(茶会)를 주최하는 것을 허락받아 크게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반대로 혼간지는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카가 일향종을 잃은 것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토우고쿠에 구축해 왔던 교두보가 붕괴한 것이다.
혼간지가 주도한 오다 포위망에 큰 구멍이 뚫려, 반 오다를 내걸었던 동맹은 이 시점에서 와해되었다. 남은 반 오다 세력이 개별적으로 저항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조직적인 저항은 되지 못하고, 기세를 타고 있는 오다 상대로는 성과를 바랄 수 없었다.
현 시점에서는 오다와 강화를 맺고 있는 혼간지였으나, 그 기색(旗色)은 좋지 못하였다. 융성을 자랑하는 오다 가문의 경제력에 압도되어, 혼간지의 경제활동은 축소 일로를 걷고 있었다.
조정에 대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칸파쿠(関白) 취임한 이래로는 눈길을 끌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혼간지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주류파가 되지 못하고 배척된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일이 여기에 이르면, 혼간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적다.
노부나가가 제창하는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상, 혼간지는 가진 것 전부를 던져 노부나가에게 저항하던가, 주의주장(主義主張)을 굽혀서라도 살아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투항할 수밖에 없다.
"휘이ー, 이걸로 대충 다 끝난 걸까?"
시즈코는 목과 어깨를 돌리면서 사무업무로 굳은 몸을 풀었다. 오다 가문은 카가 평정에 들떠 있었으나, 시즈코는 후방지원은 했어도 직접 참전하지 않았기에 어딘가 남의 일이었다.
그 때문에 노부나가로부터 감사장이 보내지지도 않았으나,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잠시나마의 평온을 만끽하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정형화된 사무작업은 아야(彩)들에게 맡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기에, 시즈코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판단과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에 한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신에 대한 회신이었다.
현대라면 메일도 아니고 메신저 어플에서의 한 마디로 끝날 용건이라도 형식을 중시한 서신을 교환했기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운송할 필요가 있다.
시즈코의 지위 향상과 함께 교제나 인사의 중요성이 늘어나, 연말쯤 되면 세밑 선물(お歳暮) 준비에 쫓기게 된다.
교제 범위가 좁았을 때는 직접 시즈코가 가서 인사도 할 수 있었으니, 이제는 그런 걸 바랄 수도 없다.
대리인(名代)을 세워, 무례(不義理)를 사과하는 서신과 함께 세밑 선물을 전달하도록 수배한다.
대리인이라고는 해도 상대의 가문의 격(家格)에 맞는 인선이 요구되었기에, 스케줄 정리에 난항을 겪어서 지금 막 작업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정이었다.
"연말연시 준비도 시작해야지"
세세한 업무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호출이 도착했다. 새해 이후의 아즈치(安土) 이전에 관한 것일까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岐阜)로 향했다.
"양자 결연(養子縁組)……인가요? 굉장히 갑작스런 이야기네요. 그래서, 어느 분과 결연을 맺게 되는 건가요?"
밀담(密談)용의 다실(茶室)이 아니라, 사람은 물리기는 했지만 성 안의 알현실에서 회담을 하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갑작스레 꺼낸 양자결연의 화제를 듣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자식을 어딘가의 집에 후계자로서 양자로 보내는 거라 생각했다.
드물게 헤아림이 둔한 시즈코의 모습에 노부나가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 자식을 네게 양자로 보낸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네에, 그건 참으로…… 네!?"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흘려듣고 있던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당사자라고 선고되자 얼빠진 소리를 냈다. 당황하여 자세를 바로한 후,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노부나가가 중대사를 갑작스레 말하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비밀리에 처리될 만한 일이 아니다.
"너 자신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귀인지도 모를 놈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영주의 후계자가 부재인 상태로는 백성들도 불안을 느낄테고, 뭣보다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놈들이 나타나게 된다"
"……뭐, 확실히 그렇군요"
시즈코의 감각으로는 슬슬 결혼을 의식할 나이이지만, 평균수명이 짧은 전국시대에서는 이미 퇴물(年増)로 분류된다.
이 시대, 유력자의 자녀라면 빠르면 10세가 되기 전부터, 늦어도 10대 후반쯤 되면 배우자를 얻는다.
20세를 넘어서도 미혼인 상태라는 것은, 불문(仏門)에 귀의(帰依)하여 출가한 것이라도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직은 사전 통보(内示) 단계라고는 해도, 장차 오와리를 맡을 영주에게 후계자가 없다고 하면 집안 소동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게 어울리는 남자가 없다. 지금 너는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인 고노에 가문(近衛家)의 영애(姫). 그리고 오다 가문에서도 견줄 사람이 없이 출세가 빠르다(出世頭). 네가 남자가 아니기에 원숭이놈(※역주: 히데요시)이 제일 출세가 빠른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말이다. 네 입장은 수하의 장수에는 머무르지 않고, 나라의 초석이 되어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지간한 사람으로는 네가 맡은 중책을 나눠맡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상의 자녀분을 양자로 삼아라, 그런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하지만, 후계자가 생겼다고 하면 집안 사람들도 너를 보는 눈이 달라지겠지"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가 긍정했다. 시즈코는 여자이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후계자를 만들지 않았기에, 출세 경쟁에 방해된다고 간주되지 않아왔다.
그러나, 이제와서 주인 가문인 노부나가의 자식을 후계자로 얻었다고 하면, 주위의 인식은 달라진다.
기다리고 있으면 사라져 주는 1대 한정의 공로자에서, 세습에 의해 오다 가문의 중신의 지위를 점유할 수 있는 장애물로.
"그래서, 네게 맡길 자식은 '사연이 있'다……"
시즈코의 후계자가 '사연이 있'기만 하면, 시즈코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리라도, 시즈코만 없어지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게 하여 밸런스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보좌역으로서 요시나리(可成)를 붙이겠다. 녀석이라면 부족하지 않겠지"
"부족은 커녕, 너무 거물입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그……"
"공신(功臣)을 한직(閑職)으로 몰아넣는 것처럼 보이느냐? 나는 애초에 남의 말(風評)을 신경쓰지 않고, 요시나리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다.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놈은 '공수신퇴(功遂身退) 천지도(天之道)(공을 이루었으면 후진(後進)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 올바른 도리이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을 인용하여 말했다. 늙은 몸으로 후진의 육성에 관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말이지"
"본인들이 납득하였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래서, '사연이 있'다 라고 하시면?"
노부나가에게 자식에 대해 묻자, 그물게 미간을 찡그리며 복잡한 표정을 떠올렸다. 마음 속으로 다양한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그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쌍둥이다"
그래도 간신히 뱉어낸 말로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출산 자체가 어려운 일(難事)이었던 전국시대에서, 한 번의 임신으로 얻을 수 있는 아기(赤子)는 한 명이라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쌍둥이나 세쌍둥이는 비정상적인 사태로서, 종종 모자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되었기에 기피되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개나 고양이처럼 한 번에 많은 자식을 낳는 '짐승배(畜生腹)'라고 경멸되어, 무사히 태어났다고 해도 아기를 '처분(処分)'하는 것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거친 일(荒事)이 생업인 무가에서 노부나가의 피를 잇는 직계는 중요하며, 후계자 다툼의 씨앗이 되지 않는 만일에 대한 대비로서 오늘까지 살아있게 했었던 것이리라.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쌍둥이를 맡기는 이유. 그것은 노부나가 자신이 완강하게 말로 꺼내려 하지는 않지만, 오다 가문에 두고 있는 한 불우한 입장에서 평생 썩게 되는(飼い殺し) 자기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고 헤아렸다.
예전에 시즈코는 츠루히메(鶴姫)가 임신했을 때 당시의 출산에 관한 상식을 철저할 정도로 파괴했다.
임신의 메커니즘은 말할 것도 없고, 아기를 가지기 쉬운 날의 법칙에 대해서도 공개하여, 오다 가문 내부의 비전(秘中)으로 취급되고 있다.
오다 가문 내에서 후계자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집안에는, 시즈코에게 배운 노히메 전속 시녀가 파견되었고, 그에 의해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수많은 인습(因習)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온 시즈코가, 쌍둥이를 멋지게 키워낸다면, 쌍둥이에 대한 주위의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노부나가가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자세한 것은 요시나리에게 들어라"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알현실을 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란마루(蘭丸)의 안내를 받아 요시나리가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사정에 대해서는 주상께서 말씀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소개하지요. 남자 쪽이 시로쿠(四六), 여자 쪽이 우츠와(器)라고 합니다"
요시나리는 시즈코에게 양자가 될 쌍둥이를 소개한 후, 그 자신의 입으로 상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두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남자 쪽은 아침 4시에서 6시 사이에 태어났기에 시로쿠라고 이름붙여지고, 여자 쪽은 출산 직후에 남자아이가 산유(産湯)로 씻겨지는 동안 옆의 통(桶)에 넣어진 것 때문에 우츠와(※역주: 그릇)이라고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참으로 성의없는(場当たり的) 네이밍이라 어이가 없어지지만, 노부나가의 자식들은 왕왕 그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피가 통한 부모는 아니지만, 오늘부터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겠어. 잘 부탁해"
시즈코의 말을 듣고 쌍둥이는 나란히 예의바르게 머리를 숙였다. 두 사람의 나이는 14세, 만으로는 13세이다. 하지만, 시즈코의 눈에는 나이보다 꽤나 작아보였다.
참고로 그들을 낳은 모친은 산후의 예후(肥立ち)가 좋지 않아 치료한 보람도 없이 죽었다.
전국시대의 관습에 따르면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다고 하여 한쪽만을 양자로 내보내거나, 양쪽 다 처분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 자신의 강한 의향에 의해 특례적으로 둘 다 시즈코의 양자가 되게 되었다.
"재수가 좋고 나쁨 같은 건 시즈코에게는 관계없다. 어미를 잃은데다 부스럼(腫物) 취급받으며 아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을 겪었다. 다름아닌 시즈코가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런 이유로 떼어놓자는 것이냐?"
쌍둥이는 재수가 나쁘니 공신(功臣)인 시즈코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노부나가에게 진언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는 의외로 인정어린 말(人情じみた言葉)로 물리쳤다.
이것을 본 가신들은, 드디어 시즈코도 노여움을 샀나 하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까지 이상으로 중용될 징조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억측들을 제외하더라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두 사람에게 흐르는 노부나가라는 패왕(覇王)의 피가 시즈코에게 맡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나요?"
"주상께서는 '시즈코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시즈코 님은 스스로가 생각하시는 어머니로서 행동하십시오. 무가(武家)의 관습에 밝지 못하신 것은 알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은 제가 보충하겠습니다. 늙은 몸에는 애보기(子守)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핫핫핫"
"아뇨, 모리(森) 님을 보모(子守) 취급이라니…… 도저히 감히……"
자신을 노인이라 칭하는 요시나리였으나, 그를 앞에 두고 '늙었다'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없다.
현역인 케이지(慶次)조차 "예전에도 무서웠지만, 지금 쪽이 더 무섭다"고 말했고, 사이조(才蔵)는 "뽑아든 칼(抜き身の刀) 같던 무위(武威)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면도칼(剃刀) 같은 예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인 나가요시(長可)의 경우에는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던 등이 다시 멀어졌다"고 말했다.
3인 3색의 평가였지만, 공통된 점은 '요시나리는 지금 쪽이 무섭다'였다.
"어머니로서, 인가요"
시즈코는 요시나리의 말을 되씹으면서 쌍둥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몸단장은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벼락치기였으며, 평소에 소홀히 대해졌던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방임주의(放任主義)인 것을 이용하여, 재수도 나쁘고 거의 틀림없이 후계자가 되지 않을 쌍둥이에 대해 유모(乳母)가 거칠게 대응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시중을 담당했던 유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요시나리하고만 함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그래서, 두 사람의 유모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즈코가 묻자, 요시나리는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시즈코에게 가까이 가서 귓말을 했다.
"유모는, 쌍둥이에게 해온 일을 자신의 몸으로 맛보고 있소"
그렇게 말하며 내밀어진 글에는 유모에게 내려진 처벌이 쓰여 있었다. 쌍둥이를 맡고 있던 유모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니글렉트(neglect, 육아포기)를 했었다.
두 사람에 대해 극히 위압적으로 굴고, 외부에 대해 최소한의 형식을 갖추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돌봄을 거부했다. 말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번거롭게 하면 폭력으로 응했다.
주어지는 식사도 최저한이어서, 비교적 풍요로운 오와리에서 두 사람의 발육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그것에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무리 기피되는 자식(忌み子)이라고는 해도, 유모 따위가 노부나가의 자식을 함부로 다루어도 될 리가 없다. 유모의 소행이 발각되었을 때, 노부나가가 물리적으로 목을 날려버리려 했는데, 요시나리가 제지했다.
"아이들에게 준 고통을 생각하면 편히 죽게 하는 것 같은 자비는 필요없습니다. 두 사람에게 한 일을, 같은 세월만큼 그 몸에 새겨주는 것이야말로 벌이 되겠지요"
요시나리의 진언을 받아들여, 노부나가가 내린 판결은 '14년의 유폐(幽閉)'였다. 두 사람의 유모는 누구도 찾아올 일 없는 지하로 쫓겨나, 항상 폭력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형벌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지만, 이미 유모의 눈에서는 빛이 꺼져가고 있다고 서신은 글을 맺고 있었다.
"일단, 목욕하자!"
처참하고 가혹(苛烈)한 처벌에 전율하며 현기증이 나는 머리를 흔들면서, 기분을 새롭게 하기 위해 시즈코는 입욕을 제안했다.
쌍둥이를 데리고 저택에 돌아온 후, 시즈코는 목욕탕 준비를 명했다. 그에 병행하여 두 사람의 옷을 준비(見繕う)하도록 쇼우(蕭)에게 의뢰한 후, 시즈코 자신이 우츠와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자, 조금 쓰릴 테니 눈을 감아ー"
우츠와의 머리를 감겨주면서 시즈코는 주의를 당부했다. 이성(異性)인 시로쿠의 입욕에 대해서는 같은 또래의 소성(小姓)들에게 맡겨두었다.
13세쯤 되면 이미 사춘기를 맞이하여, 여자인 자신이 몸을 씻겨주는 것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입욕하고 알게 된 것인데, 우츠와는 시즈코의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랐다.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다만 몸을 내맡겼다.
예의를 차리고(遠慮)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어떤 지시에도 주저없이 따르는 걸 볼 때 그런 것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몸을 다 깨끗하게 씻었을 무렵에는 다소는 마음을 열어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지만, 그 기대는 보기좋게 박살나게 되었다.
"휘이ー. 목욕은 좋네. 하루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것 같아"
먼저 우츠와를 탕에 들어가게 한 후, 시즈코도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갔다.
원래는 시즈코에게는 산더미처럼 쌓일 정도의 일거리가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것과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에 대한 인사 등 의례적인 것 일체를 맡아주었기에 그녀의 부담은 단번에 줄어들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휴가에 당황한 시즈코였으나, 노부나가는 처음부터 이 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애초에 겨울은 농한기(農閑期)로, 외교(外交)를 제한해버리면 시즈코 자신이 손대야 할 일은 없다.
육아에 전념하라는 대의명분 아래, 워커홀릭인 시즈코에게 강제적으로 휴가를 쓰게 하는 일석이조의 책략이었다.
(현장에서 손을 떼는 대신 연구개발비를 두 배로 해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일에만 몰두한 인상은 없는데 말야)
지금까지도 일하는 것이 너무 과하다고 말했으나 전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시즈코에게 답답해진 노부나가의 조치였으나, 시즈코 자신에게는 과하게 일을 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확실히 매일 뭔가 할 일에 쫓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즈코 기준으로는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잠도 충분히 자고 있었다.
하지만, 밤새 일을 한다는 것 같은 개념이 없는 시대에서 보면, 시즈코는 명백하게 오버 워크라서 보는 쪽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손에 뜬 물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우츠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저런 표정(百面相)을 짓기라도 했나 하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쑥스러운 미소를 떠올리면서 말했다.
"목욕 끝나면 밥 먹자"
입욕시에 알몸을 보고 깨달은 것인데, 우츠와의 영양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야위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성징(性徴)이 시작되는 지금 시기라면 아직 늦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필요한 영양을 섭취하게 해야 한다.
"자, 나갈까"
시즈코가 말하자 우츠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준비되어 있던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방으로 돌아가자 이미 식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먼저 와 있었는지, 깨끗해진 모습의 시로쿠가 요시나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럼, 식사를 하죠"
시즈코와 요시나리가 쌍둥이를 가운데 두는 평소와는 다른 자리 순서로 앉힌 후, 시즈코는 식사 개시를 고했다.
쌍둥이를 양자로 받은지 1주일이 경과했다.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우츠와도, 지금은 시즈코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지? 어째서 대화가 없는 걸까……"
쌍둥이가 시즈코 저택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시즈코는 낙담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시즈코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점이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저것 말을 걸기는 하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로, 부정의 의사조차 표시해주지 않았다.
고용인들의 이야기로는 몇 명인가와는 대화를 하고 있다고 들었기에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닌만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움받는 걸까? 그렇겠네, 갑자기 어머니입니다라고 해도 곤란하겠지……"
시즈코는 팔짱을 끼면서 현 상황을 개선할 방법을 모색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의사소통을 거절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쪽의 물음에 대해서는 반응해준다.
다만, 자발적으로 말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도 시즈코에 대해서만 그런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으ー음. 아! 혹시 주상께서 붙이신 이름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그 센스는 좀 아니지. 성인식(元服)도 가까우니, 뭔가 특별한 이름을 생각하자. 이거라면 두 사람의 희망도 들을 수 있고, 대화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이 시대,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는 성인식을 기회로 아명(幼名)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빠져든 시즈코는, 두 사람의 침묵을 노부나가의 네이밍에 대한 불만이라고 단정하고, 묘한 방향으로 엉뚱하게 달려가기(迷走) 시작했다.
엉뚱하게 달려가고 있다고는 해도, 명확한 지침을 얻은 시즈코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평소답지 않게 경쾌한 느낌으로 복도를 걸어, 모퉁이 바로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너 말야, 아직 시즛치랑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
케이지와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고 자신의 이름이 들렸기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다.
엿듣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케이지의 상대가 아마로 시로쿠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벽에 달라붙듯 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것뿐만은 아니잖아? 뭘 물어봐도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려고는 하지 않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거야?"
"그 분에게…… 시즈코 님께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안 그래도 기피되는 쌍둥이를 떠맡았는데, 이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조마조마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일순 케이지와 눈이 마주쳤다.
시즈코는 당황해서 머리를 숨겼지만, 잘 생각해보면 기척에 민감한 케이지가 자신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벽에 달라붙듯 하며 모퉁이 너머를 엿보았다.
역시 케이지의 대화 상대는 시로쿠였다. 케이지는 시로쿠와 함께 덧문 밖 툇마루(濡れ縁)에 앚아서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체구가 큰 케이지와 나란히 있으니 불안해질 정도로 체격이 작은 시로쿠의 시선은 정원이 아니라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핫핫핫. 그거 크게 나왔군! 시즛치에게 미움받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항상 상식을 깨는 시즛치가 쌍둥이라는 것만으로 싫어할 리가 없어. 애초에, 정말로 싫다면 오다 나으리에게 그렇게 말했겠지. 시즛치는 그래도 용서되니까 말야"
"그건……"
"여기서 7일을 지내보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시즛치가 한 번이라도 너희들을 싫어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어? 세상의 상식을 비웃는 이 저택에서의 생활에는 놀랐지? 그걸 탄생시킨 굉장한(とびっきり) 괴짜(変人)가 시즛치라고. 쌍둥이라서 재수가 없어? 그럼 저기서 느긋하게 굴러다니고 있는 녀석들도 재수가 없는 걸까?"
그렇게 말하며 케이지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뱃대(煙管)로 정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비트만이 누워 있었으며, 그 옆에 짝인 바르티가 달라붙어 있었다.
무슨 용무인가 하고 고개를 돌렸으나, 케이지가 손을 살래살래 흔들자,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시 둥글게 몸을 말았다.
"저거 말야, 시즛치가 가장 신뢰하는 가신이야. 짐승배를 싫어한다면, 애초에 짐승 같은 걸 곁에 둘 리가 없어. 저렇게 큰 짐승을 집 안에 두는 괴짜를 달리 본 적 있어?"
실례네! 라고 시즈코가 드물게 분개했다. 시즈코 자신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나, 그녀가 저질러온 상식파괴를 열거하면 양손양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는 어림도 없다.
"네.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무엇 하나 통용되지 않아요"
"그렇지. 그 비상식적인 건 불쾌해? 처음에는 당황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른 곳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지. 게다가 말야, 너는 좀 어린애답지가 않아. 어린애로 있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여기서는 어린애로 있어도 돼. 어린애니까 좀 더 어른을 의지하라고. 그게 어린애의 특권이야"
"그러네요. 그 분은, 지금까지의 어른과는 달라요. 그렇기에 그 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시즛치는 너희들의 어머니가 되려고 하고 있어. 내 태도에도 불만을 말하지 않는 시즛치야. 너희들이 서먹서먹하게 구는 것(他人行儀)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조금은 신용해보는 게 어때?"
"……"
"뭐, 갑자기 태도를 바꿀 수는 없겠지. 우선은 인사 정도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때? 자, 나는 슬슬 실례하겠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케이지는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시즈코가 숨어있는 반대쪽으로 떠나갔다. 남겨진 시로쿠는, 케이지가 떠난 후에도 툇마루에 앉아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했다.
케이지가 떠난 것과 동시에 시즈코도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두 사람의 대화를 떠올렸다. 문득, 예전의 아야(彩)을 떠올렸다.
아야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것은 자신의 입장이 불안정하여,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둘러 어른이 될 필요가 있었다.
시로쿠도 또한, 어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리라. 그는 유년기를 버리고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애로 있을 수 없는 어린애라……"
13년. 자신이 지내온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그들이 보아왔을 세계는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을 생각하니 시즈코는 마음이 괴로워졌다.
"시즈코 님. 이 서류에 재가를 부탁드립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는지, 아야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즈코는 겨우 바깥쪽으로 의식을 돌렸다.
"아, 미안해. 생각을 좀 하고 있었어. 서류네, 고마워"
"제 역할이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마도 방 입구에서 몇 번이나 불렀으리라. 그래도 반응이 없었으니 실내로 들어오며 불렀을 것이다. 명백하게 쓸데없는 수고가 늘어난 것인데, 아야의 태도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게 참으로 기분좋게 느껴져,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파안(破顔)했다.
"고마워. 다음부터는 주의할께"
"……아닙니다. 외람되다고는 생각하지만, 조금 참견을 하겠습니다. 시즈코 님, 지금의 당신께서는 아이들에게 대가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
아야의 발언에 시즈코는 멍해졌다. 너무나 예상밖이라서 아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떠올려 주십시오. 저와 둘이서 살았을 때를. 고용인(家人)도 없고, 이런 저택도 아니고, 외풍(隙間風)이 들이치는 허름한 집(安普請)이었습니다만, 당신께서는 항상 웃고 계셨습니다"
이어지는 아야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간신히 이해했다. 아야도 또한 어른스러운 어린애였다. 그런 그녀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행동했었던 걸까.
답은 자연히 나왔다. 신분이나 출신 따위 신경쓰지 않고, 아야의 태도가 어떠하던 자신은 아야를 귀여운 여동생처럼 대하며 매일 자신의 즉흥적인 생각(思い付き)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렀다.
"건방진(かまびすしい) 말씀을 드렸습니다. 꾸중은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시즈코 님께서 웃는 표정이 아니시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시즈코 님의 웃는 표정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불안한 것입니다. 당신의 웃는 얼굴에는 그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아야는 머리를 땅에 대며 말을 이었다. 주인을 화나게 할 것을 각오한 간언(諫言)이었다. 그리고 내용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시즈코는 자각하지 못하는 와중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대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걸 지적받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볼을 긁었다.
"그러네. 나는 언제부터인지, 어린아이가 내게 마음을 열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어. 나도 아직 멀었네…… 나는 우선 두 사람이 가족이 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했었던 거네. 응, 고마워 아야 짱"
"아닙니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딱딱하네. 그런 아야 짱은 벌로 나한테 꼭 안기는 거야!"
자, 이리온이라고 말하듯 양팔을 펼치는 시즈코에 대해 눈이 가늘어지는 아야. 다분히 어이없음을 품고 있는 시선에 시즈코는 움찔할 뻔 했으나, 뜻을 정하고 말했다.
"이건 명령이에요"
"그런 시덥잖은 명령을 하지 말아주세요"
"알겠어? 아야 짱. 권력이라는 건 이럴 때 쓰는 거야!"
좋은 미소를 띠고 잘라 말하는 시즈코를 보고 아야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양팔을 펼친 채 기다리고 있는 시즈코를 보고, 글러먹은 언니를 바라보는 여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자신이 굽혀야 한다고 판단한 아야는, 한숨을 쉬더니 쭈뼛거리며 시즈코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후후. 항상 마지막에는 굽혀 주네"
"시즈코 님이 고집이 세서 그렇습니다……"
두 사람이 껴안고 있던 시간은 짧았다. 약간 시간을 두고 아야는 시즈코의 포옹에서 스륵 하고 빠져나왔다. 닌자(忍者)같네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좋아! 기운을 받았어. 그럼, 나는 시로쿠나 우츠와를 찾아올게. 그리고, 지금처럼 두 사람을 꼭 안아주고 올게"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합니다만?"
"핫핫핫. 대(大)는 소(小)을 겸한다고 하니까 괜찮아 아야 짱"
껄껄 웃으며 시즈코는 방을 나갔다. 혼자 남겨진 아야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방을 나가려다 깨달았다.
"시즈코 님, 서류를 잊으셨어요…… 아 진짜……"
아야는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듯 머리를 흔들고 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결재의 기한을 적어서 시즈코의 책상(文机)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놔두고 나갔다.
생각을 고쳐먹은 시즈코는, 어떤 의미에서는 태도를 싹 바꾸었다. 어딘가 자신은 어른이니까라면서 폼을 잡고 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한 표면적인 것들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스트레이트로 두 사람에게 전하도록 접했다.
상대의 안색을 살피는 것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노골적이라고도 생각될 정도의 감정 전달 방식을 택했다.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허그(hug)를 해보거나,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자거나 하는 등, 시즈코가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을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타인으로부터 애정 표현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시로쿠나 우츠와는 당황했으나, 마찬가지로 애정을 표시하면 탐욕스럽게 받아들이는 비트만들을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참고로 고양이과의 동물들은 과하게 신경써주려고 하는 시즈코를 기피하여 그녀를 낙담하게 했지만.
"저는, 가족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핫핫핫, 그래서 말했잖아? 시즛치에게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고 말야.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지?"
불평(愚痴)하는 모양새였지만 어딘가 기쁜 듯 이야기하는 시로쿠를 보면서 케이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츠와 앞에서 저 짐승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어요"
"딱히 상관없잖아? 시즛치도 본성을 보이고 있으니, 너도 본심으로 부딪혀주면 되는거야"
"그런 건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는 한숨을 쉬었다. 친족은 물론이고 유모에게까지 꺼려졌던 자신들이 이곳에 온 후로는 되롭다고 느낄 틈조차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냥 무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꾸짖고, 무엇이 나빴던 것인지를 확실히 들려준다.
이쪽이 입을 다물고 있어도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계속하며 밭일이니 학교니 생각나는대로 끌고다닌다.
"하지만, 이상하게 불쾌하게 느껴지지는 않지?"
지금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지적당하자 시로쿠는 자기도 모르게 케이지를 쳐다보았다.
"그렇군요. 요즘에는 우츠와도 웃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군요"
동성(同性)이라는 점도 있어서인지, 우츠와는 요즘 시즈코를 잘 따르게 되었다. 셋이서 잘 때도, 가끔 같은 이불에서 자는 경우가 있다고 시로쿠는 우츠와에게 들었다.
적의나 혐오감을 받는 것보다 가족으로 다루어지고 애정을 가지고 접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거라고 시로쿠는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는 있지만, 같은 때에 태어나서 같은 경우를 견뎌온 동지이자 자신보다도 약한 우츠와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습득한 어른의 껍질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서두를 필요는 없어. 시즛치는 성과를 요구하는 게 아니야. 네가 정말로 시즛치를 신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솔직해지면 되는거야"
"네"
"뭐, 시즛치의 후계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게 고된 수행도 필요하지만 말야, 와하핫"
"……무리겠죠. 그 분은 입지전(立志伝)적인 인물, 그것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걸물(傑物)입니다. 그렇게 높은 목표에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어요"
"그야 그렇지. 가능하다고 해도 곤란하고, 네가 목표로 할 것은 그게 아냐. 아무리 발버둥쳐도 너는 시즛치가 될 수 없어. 그러니, 너는 네가 생각하는 훌륭한 어른이라는 것을 목표로 하는거야"
"그게 시즈코 님이라서 곤란한 겁니다만…… 감사합니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시로쿠는 그 나름대로 시즈코에 대해 알아보고 다녔다. 고용인을 시작으로, 도서관의 사서 등에게도 물어보고 다니며 좋든 싫든 이해하게 되었다.
시즈코가 여자의 몸이면서 오다 가문의 중진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겨우 10년도 되지 않아 그녀가 쌓아올린 거대한 재력과 권력, 군사력이 결집되어 있는 이 땅을.
"이런 데 있었네"
한동안 양쪽 다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아까까지 화제로 삼았던 시즈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지는 뒤쪽으로 쓰러지듯 하며 돌아보고, 시로쿠는 몸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시즈코 쪽을 향하여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 긴장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케이지 씨, 망년회(忘年会) 겸 환영회(歓迎会)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아……"
질문을 받고 케이지는 떠올렸다. 연례행사(恒例)가 된 망년회를, 시로쿠나 우츠와의 환영회를 겸해 성대하게 할 거니까 참가자의 의향을 확인해달라고 의뢰받았던 것을 잊고 있었다.
카네츠구(兼続)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까지는 기억에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우물거리는 케이지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는 대략적인 사정을 헤아렸다.
"대답은 모레까지 해 줄래요? 노파심에서 말해두지만, 참가표명이 없는 경우에는 참가하지 않는 걸로 간주될 거에요. 참가하지 않아도 벌칙은 없지만 식사는 준비되지 않으니까, 그 경우에는 따로 외식을 해야 할테데……"
"아니, 참가할거야! 나는 물론 참가하지만, 요로쿠(与六, 카네츠구)의 대답을 듣지 못해서 보류하고 있었어"
"요로쿠 군이라면 얼마 전에 주인인 나가오 키헤에지(長尾喜平次,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군과 함께 '참가하겠다'고 대답을 받았어요"
"그, 그랬었나. 아니, 서로 연락이 어긋난 모양이네.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
"그럼, 케이지 씨도 참가네요. 아, 요로쿠 군은 주빈(主賓)이니까 강제 참가야. 그럼, 나중에 봐요들"
할 말을 마치자 시즈코는 서둘러 떠나갔다. 케이지는 이마에 솟은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해위험해, 모처럼의 망년회를 놓칠 뻔 했어"
"망년회라는 게 뭔가요?"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시즛치가 연말에 여는 연회야. 한 해의 노고를 치하하고, 새롭게 맞이하는 해에 대해 마시고 먹고 떠드는 연회지"
"그건 꽤나 거창한 연회로군요"
"그렇지? 게다가, 시즛치는 이런 특별한 시기(節目)의 행사에는 힘을 쏟거든. 해를 거듭할 때마다 요리나 술의 종류가 늘어나고 내용도 호화로워지고 있어. 뭐, 그에 비례해서 참가인수도 증가 일로를 걷고 있지만 말야"
"그러고보니 남만인도 고용하고 계시더군요. 그건 저도 놀랐습니다"
"핫핫핫. 눈은 파랗고 덩치가 크니까. 하지만, 이야기해보면 재미있는 영감님이야. 여자들과는 접점이 없어서 사람됨을 모르겠지만 말야"
모미지(紅葉)는 한결같이 작물의 연구나 성장기록을 관리하기 때문에 농장(圃場)이나 밭에 있는 경우가 많아 케이지와 얽힐 기회가 거의 없다. 모미지 자신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에 교우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교섭없음(没交渉)을 보완하듯, 코타로(虎太郎)는 사교적이었다. 주인인 시즈코에게는 예의바르게 행동하지만, 케이지와는 10년은 된 친구처럼 거리낌없이 대하고 있었다.
지위(立場)로 따지면 케이지 쪽이 윗줄이지만, 그런 지위를 신경쓰지 않고 대하는 코타로를 케이지는 좋게 보고 있었다.
"기회가 있으면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거야. 망년회에도 나올테니까. 여기가 아니면 결코 해볼 수 없는 체험이니까, 젊었을 때 이것저것 경험을 쌓아두라고?"
곤혹스러워하는 시로쿠에 대해 케이지는 가벼운 말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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