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37 1576년 1월 중순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을 보았기에, 시즈코는 방문자 명부를 꼼꼼히 뜯어보다 못해, 등불에 비추며 뒤쪽부터 확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해도 화려한 묵흔(墨痕)으로 쓰여진 이름이 변화할 리는 없고, 물론 본래 있었던 이름에 덧쓰인 것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달필(達筆)이라 잘못 읽은 게 아닐까 했는데, 아무리 봐도 칸베 산시치로 (神戸三七郎, 오다 노부타카(織田信孝))잖아. 아니 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당연히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애초에 시즈코는 오다 가문 적류(嫡流, 이 경우, 노부나가, 노히메(濃姫), 노부타다(信忠))와는 친하게 지냈지만, 서류(庶流)에 위치하는 노부타카와의 교류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류 중에 교류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면, 노부나가의 친여동생인 이치(市)를 들 수 있지만, 그녀들은 오다 가문의 사람이 아니라 아자이(浅井) 가문의 사람으로 간주된다.

노부타카에 관해서는, 예전에 이세(伊勢) 도로 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노부나가의 분노를 사서, 자칫 참수당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상황을 시즈코가 진정시킨 경위가 있고, 그 후에도 이세 방면 개발 사업에서 협력한 적은 있지만 그 외에 내왕이 없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


"노림수는 알 수 없지만, 면회를 거절할 수도 없고, 만나볼까"


노부타카의 속셈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노부나가의 직계(直系)에 해당하는 인물인 만큼 어설프게 대응할 수는 없다.

즉시 답장을 쓴 후, 노부나카가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사자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시즈코는 새해 인사 희망자들에 대한 대응에 끌려나와 있었다. 이번의 대응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으로, 대응 순번에 신분이 고려되지 않고 접수한 순서대로 실시되게 되었다.

노부타카에게는 전날 사자를 통해 면회의 순서를 앞당기는 것에 대해 타진했으나, 그런 배려는 필요없다고 사양하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오후 첫번째로 접수했다고 전했다.

그의 신분을 감안하면 순서를 앞당겨도 문제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고지식하게(律義) 순서를 지키는 부분이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와 다른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칸베 산시치로 님께서 오셨습니다. 안내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알겠어요. 안내하세요"


시즈코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부터의 인사를 받을 시간이 다가올 무렵, 소성(小姓)이 노부타카의 내방을 알려왔다.


(노부카츠가 얽히지 않으면 상식인이지…… 무슨 용건일까?)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노부타카의 이미지는, 노부카츠와 함께 뭔가 문제를 일으키는 유감스러운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이세(伊勢) 일대의 개발 사업을 진행했을 때 받은 보고로부터는 성실(実直)하고 총명한 호인물(好人物)이 되어 있어 시즈코의 이미지와 달라져 있었다.


"삼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오랫동안 연락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지내셨습니까?"


노부타카는 시즈코와의 회견에서 당당하면서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있었다. 매사 노부카츠에게 대항심을 품고 성마른 행동을 보이는 이미지와는 크게 동떨어진 노부타카의 모습이었다.

침착한 태도와 세련된 행동으로, 새해 벽두부터 바쁜 시즈코를 배려하는 모습조차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노부타카가 뛰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노부나가의 재능을 가장 짙게 이어받고 있는 것은 노부타다(信忠)이지만, 노부타카도 노부타다에게는 뒤지더라도 그렇게 크게 뒤떨어진 것은 아니다.

노부카츠가 얽히면 유감스러운 부분이 클로즈업되어버려, 그 인상이 인물의 이미지로서 정착되어 버렸다는 불운한 사내였다.


(이 애는 노부카츠가 얽히면 이래저래 추태를 보이지만, 그 이외에는 큰 공적도 없는 대신 '뼈아픈 실패도 하지 않았지')


좋게 말하면 견실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극적인 것이 노부타카였다.

자신의 영지에 관해서도, 노부나가의 수법을 본보기로 삼아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으며, 싸움에 관해서도 견실한 전술을 선호하는 숙련자(巧者)이다.

영토상으로는 가까이 위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노부타카 측이 적극적으로 관여해오지 않았기에, 시즈코로서는 노부타카에 관한 정보를 모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 탓에 어떤 속셈으로 노부타카가 움직이고 있는지를 읽지 못하고 있었다.


(으ー음, 잡담하러 왔을 리가 없으니, 여기는 약간 운을 띄워볼까?)


인사를 시작으로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항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잡다한 이야기(世間話)를 줄곧 나누고 있었지만, 노부타카가 아까부터 몇 번이나 본론을 꺼내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기에 좀 거들어주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작년말에는 이세(伊勢) 신궁(神宮)에서의 큰 액막이(大祓)에 많은 참배객들이 모였다고 하던데, 제법 성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가끔 산적(野盗)이 나왔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만, 참배객들에게 큰 피해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이세 참배객의 보호에 관해서는 주상(上様)께서도 신경쓰고 계시니까요"


노부나가는 항상 "나는 종교의 씨를 말리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하는 게 아니다. 신앙을 미끼로 신자를 모아서, 숫자를 믿고 권력을 가지려고 야심을 품는 패거리를 배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것은 휘하의 무장들 뿐 아니라, 와판(瓦版, ※역주: 에도(江戸) 시대에 찰흙판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기와처럼 구워 신문이나 공보 비슷하게 배포하던 것. 유명한 요미우리(読売) 신문의 요미우리라는 단어가 원래 이 와판을 팔고 다니던 것을 뜻한다 함)을 통해 널리 백성들에게도 노부나가의 말이 알려지도록 하고 있었다.


(그건 프로파간다(propaganda)라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되니, 그 부분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관여하고 있는 거겠지)


전국시대에서는 와판조차 획기적인 매스미디어이기에, 현대의 신문에 가까운 포지션을 확립하고 있다.

여전히 펄프 종이가 개발되지 않아, 갱지(わら半紙)에 등사판 인쇄한 와판이라고 해도 원가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와판 사업에 큰 조성금(助成金)을 내는 것으로 널리 값싸게 와판을 백성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부나가에게도 값싼 투자라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매스미디어를 장악하는 것에는 그만한 지출을 허용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즉, 스폰서인 노부나가에게 유리한 정보를 흘리는 것으로, 백성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사고(思考)가 유도된다'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노부나가의 정책 덕분에 오다 영토 내에 한정한다면 식자율(識字率, ※역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비율)도 향상되어 있어서 현재로서 그의 정책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참, 이세 신궁이라고 하니 출입하는 상인들이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칸베 님의 시간이 괜찮으시면 들어보시겠습니까?"


"이세 신궁에 관여된다고 하면 남의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꼭 듣고 싶습니다!"


노부타카는 옳거니라고 말하듯 달라붙었다. 시즈코는 그의 태도에서 그의 본론이 이세 신궁에 관한 무언가에 있다고 때려맞췄는데,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노부타카로서는 자신의 약점을 여인인 시즈코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한 주저가 있었으나, 그녀가 먼저 화제를 꺼내준다면 꽤나 이야기를 꺼내기 쉬워진다.

노골적으로 기분이 좋아진 노부타카를 보고, 시즈코는 약간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세 신궁에 대한 참배(参詣)에 관해, 해로(海路)를 이용할 수 있다면 쾌적한 여행이 됩니다만, 민초(民草)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비싼 뱃삯은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로(陸路)는 도로가 정비되었다고는 해도, 고저차에 따른 경사(勾配)도 있어 안온하다고는 하기 어렵지요"


"그렇습니다. 육로를 이용하면 시간이 걸리고, 그에 비례하여 많은 식량이 필요해집니다. 그렇지만 휴대할 수 있는 짐에는 한계가 있어, 육로를 걷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짐을 줄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과연 칸베 님, 상인들이 한 이야기도 바로 그것입니다. 도로의 길이에 비해 식사나 잠자리를 제공할수 있는 시설이 부족합니다. 지금은 행상인들이 길가에서 노점을 여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겨울이 되면 노숙은 힘들고, 눈이라도 내리면 즉시 물류가 끊겨버립니다. 물론 영주이신 칸베 님께서는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그러한 진정은 몇 번이나 받았습니다. 풍요로운 계절이라면 부근의 마을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만, 겨울에는 마을에도 잉여 식량은 적어서 죽는 사람조차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상황의 인식이 다르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즈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참배객의 증가에 맞추어 숙박지 마을(宿場町)을 확대하고, 상인들에게 점포를 임대하는 것은 어떨까요?"


"장사 허가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쪽이 점포를 준비해서 상인들에게 임대하라는 말씀입니까!?"


"네. 도로가 정비되고 치안이 좋아졌기에, 오와리(尾張) 일대를 시작으로 자금 사정이 좋아진 백성들이 너도나도 참배하러 외출하는 작금, 그들의 수요에 대응하는 것은 급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점포를 준비할 수 있는 상인의 경우 당연히 그 숫자가 적기 때문에 도저히 수요를 맞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큰 자금이 필요해지는 점포를 이쪽에서 준비해주는 것으로, 소규모 상인들에게도 참가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에는 큰 가게의 상인들이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을테니, 분리를 시킵니다. 큰 가게의 상인들에게는 유복한 층을 상대하게 하고, 우리들은 저렴함을 원하는 여행자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것입니다"


"과연! 신규 참가의 문턱을 낮추고, 우리들은 매상에 부과하는 세금과 임대료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인군요.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형태가 되는 큰 가게의 상인들에게도, 직접 점포를 준비한다면 세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말해주면……"


"과연 칸베 님, 임기응변(当意即妙)이 뛰어나시군요. 물건을 파는 가게에 관해서는 이걸로 좋다고 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여관이겠지요. 이미 있는 여관은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쉽게 묵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준비하는 여관에서는, 땔나무와 쌀값 정도로 묵을 수 있는 대신 큰 방에서 혼숙(雑魚寝)한다는 것은 어떨까요?"


시즈코가 말한 여관의 원안(原案)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에도(江戸) 시대에 사용된 여관의 방식이다.

시즈코가 말하는 낮은 가격에 잠만 자는 여관을 키친야(木賃宿, ※역주: 싸구려 여인숙)이라 부르며, 개인 방이 주어지고 식사도 제공되는 형식의 여관을 하타고(旅籠)라고 불렀다.

키친야는 문자 그대로 자취하기 위한 땔나무와 주식인 쌀을 제공할 뿐인 여관으로, 식사 준비 등은 공용의 화덕(竈)을 사용하여 스스로 할 필요가 있었다.

숙박비에 관해서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에, 현대의 화폐가치로 환산한 일례를 들어본다면 키친야에서는 1박 800~900엔 정도인 것에 대해, 하타고에서는 4000~7000엔 정도로, 5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설정되어 있었다.


"흠, 노숙과 비교하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데다 화덕도 쓸 수 있다고 하면 이용자는 많아지겠지요. 숙박지(宿場)마다 그러한 여관이 있다고 하면, 이세 참배의 안전성은 높아져서 더욱 많은 집객(集客)도 기대할 수 있겠군요"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과연 주상의 혈통, 이해가 빠르고 응용도 잘하네)"


"하지만, 모든 숙박지에 대해 상응하는 숫자의 점포를 준비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자금 문제가 골치로군요"


"우선은 숙박지 사이의 거리가 멀고 불편한 입지를 선택해 시작하면 될 것입니다.다음 숙박지까지의 거리가 멀다고 하면, 조금 비싸게 먹히더라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고 하겠지요. 새로운 숙박지 마을을 처음부터 만들게 되면 많은 자금이 필요해지지만, 이거라면 금방이라도 시작할 수 있고, 잘 돌아가는 것 같으면 차례때로 전개해가면 되겠지요"


"그렇군요. 이미 여행길이 힘들다고 하는 목소리가 있으니,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만에 하나, 장사가 실패하더라도 건물만 남아있으면 우리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는 계산인가요"


"사람이 움직이면 그에 따라 물건이 움직입니다. 그곳에는 반드시 장사할 기회(商機)가 있으니, 여관이나 가게가 아니더라도 물자를 비축해 둘 창고로서 이용한다면 헛되지는 않겠지요"


"우리들은 이세 참배에서의 참배객들에 대해 이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면,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는 영주와의 차이를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겠군요"


그 대책을 세우지 않는 영주인가 하는 게 누군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지만, 어설프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일도 없다며 침묵을 지키고 미소를 떠올리는 데 그치는 시즈코.


"과연 명성이 자자한 '오다 가문 상담역(織田家相談役)',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 안건을 가지고 돌아가 신하들 모두와 협의하지요…… 즉단즉결(即断即決)을 하지 못하는 게 제가 생각해도 한심하지만, 성격이니 어쩔 수 없군요"


노부타카는 자조하듯이 중얼거렸다. 과단(果断)하기로 정평이 난 노부나가와 비교하여 스스로를 비하하고 있는 듯 생각된 시즈코는, 무의식중에 말을 꺼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신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담하시는 칸베 님이시기에 뒷받침하려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실 것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스스로를 비하하면 나를 따르는 가신들도 비하하게 되는 것인가요. 제 생각이 얕았습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아니오,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니, 시즈코 님의 말씀은 실로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처럼 남의 위에 서게 되면, 역정을 사게 될 것을 알면서 간언하는 사람은 적지요. 이것만으로도 오늘, 이곳으로 찾아온 가치가 있었습니다"


노부타카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시즈코에게 새해 인사를 하도록 권한 아버지, 오부나가의 진의를 깨달았다.

노부타카는 시즈코를 적류 편을 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편견(思い込み)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 짧은 시간에 헤아릴 수 있었다.

노부카츠와의 사건으로 폐를 끼친 것도 있어 스스로가 사양하여 관계를 멀리하고 있었을 뿐, 그녀는 내밀어진 손을 쳐내거나 하지는 않는다.

노부타카와 노부카츠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쓸데없는 소동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한쪽을 편들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그녀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지. 아버지가 시즈코 님을 중용하시는 것도 당연한 것인가)


이곳에 올 때까지, 어떻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고 시즈코로부터 이익을 끌어낼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바로 그렇기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고민을 시즈코에게라면 털어놓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탁월한 식견을 가지신 시즈코 님께, 한 가지 상답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상담…… 입니까?"


"조금 복잡한 사정이기에 바로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복잡한 사정이라는 말을 듣고, 시즈코에게는 짐작가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견원지간인 노부카츠와의 불화(確執)에 관한 일이라고 짐작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 좋을 내용이 아니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선수를 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소성을 불러, 최저한의 경비를 남기고 사람들을 물리도록 전했다. 시즈코의 신변을 호위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이조(才蔵)조차 맹장지 한 장 건너편의 방으로 물렸다.

그것을 보고 노부타카도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시즈코에게 맡기고, 자신의 종자(従者)들도 다른 방으로 물러가게 했다. 그것이 시즈코의 성의에 답하는 것이 될 거라고 노부타카는 생각했다.

사람들을 물린 후, 실내에 고요함이 가득하게 되자 떄를 보아 노부나카가 입을 열었다.


"이미 헤아리고 계시듯, 상담의 내용이란 우리들 형제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말하기도 꺼려집니다만, 저는 큰 공적을 세우지 못하는 대신, 뼈아픈 실패를 범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예외적으로 이세 도로 정비에 관해 아버지에게 직접 질책받는다는 추태를 보였습니다만, 아버지는 그 이후의 성과로 공과 죄를 상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노부타카의 인식은 틀리지 않았다. 오다 가문의 중신들이 보는 가운데 노부나가에게 얻어터진 끝에 자칫 참수까지 당할 뻔 했으나, 노부나가는 스스로의 실패를 후회하고 행동을 고치는 사람에게는 관대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부나가가 공과 죄를 상쇄한다고 했다면, 예전의 실패는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도 좋으리라.


"바로 그렇기에, 여전히 언동을 고치지 않고 똑같은 실패를 거듭하는 놈보다 아래에 놓인다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역시 노부카츠보다 서열이 낮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구나. 확실히 실력주의인 오다 가문에서 뚜렷하게 공적에 차이가 나고 있는데 서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나……)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타카가 노부카츠를 싫어했다고 말하는 1차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지위(立場)를 생각하면, 그러한 자료가 남을 리 없다는 것도 시즈코는 이해하고 있었다.

설령 존재하였더라도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노부카츠 측에서 말소할 것이고, 노부타카 측의 가신들도 추문을 꺼려하여 증거가 남지 않도록 손을 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압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노부나가조차 그의 내면에 관한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의 심정을 토로하는 듯한 자료나 그 인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만한 자료는,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전국시대의 관습상 남을 가능성은 적다.


"예전에 주상께서는, 피를 나눈 친동생과 후계자 싸움을 벌이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우와 제 경우는 사정이――"


"그 후계자 싸움을 뒤에서 조종했던 것이 친어머니였다고 하면 어떠십니까? 주상 스스로는 결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만, 그 심정은 결코 평온하지는 않으셨겠죠. 다름아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골육상쟁을 주상께서 기피하시는 것도 이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려던 노부타카였으나, 이어지는 시즈코의 말에 입을 다물게 되었다.

아버지인 노부나가가 친동생과 후계자 싸움을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뒤에서 손을 쓴 것이 다름아닌 노부나가의 어머니였다는 것은 몰랐다.


"그래도 주상께서는 동생의 모반을 한 번은 용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생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하신 어머니가 다시 동생을 내세워 배신했다면, 아무리 주상이시라도 처분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으셨겠지요. 그렇기에, 주상께서는 자기 자식이 지위를 둘러싸고 골육상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한 번 정한 서열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여주면, 야심을 품은 제 3자의 개입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었습니까……"


"물론, 이것은 제 추측이고, 주상의 마음 속은 들여다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칸베 님께서 아무리 공을 쌓으셔도, 반대로 키타바타케(北畠) 님께서 어떤 실패를 하시더라도, 형제간의 서열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납득하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아니, 이해되었습니다. 제가 가진 불만은, 아버지가 저를 인정해주시지 않는 것은 제 어머니의 신분이 낮기 때문이라고 섣불리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그 놈은 이미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피를 보고 있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서로 사이가 틀어지도록 부추겨졌다고 짐작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본인들께서 어찌되셨던, 각각을 모시는 가신들 사이에서 이해가 충돌하게 되면 반드시 역학관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것을 극력 배제하기 위해 고려된 결과가, 형제간의 서열 부동인 것이겠죠. 최상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심정(心情)이 관계되는 일이기에 달리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령이 없으신(不器用) 주상께서 최대한으로 보이신 혈육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은 마음도 진정되지 않으시나요?"


"후후, 요령이 없는 것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것이군요. 아아, 목에 걸렸던 가시가 빠진 느낌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확실한 정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아버지와 형님(여기서는 노부타다를 가리킴)의 패업(覇業)을 그늘에서나마 뒷받침하지요"


노부타카의 표정은 침착해져 있었다.

이미 대립구조가 생겨버린 노부카츠와의 불화는 그렇게 간단히는 없어지지 않지만, 적어도 노부타카 측에서 싸움을 거는 것은 없어질 거라고 시즈코에게는 생각되었다.


('사내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한다(男子三日会わざれば刮目して見よ, ※역주: 삼국지에 나오는 '괄목상대(刮目相待)'라는 고사성어의 변형(원래는 '사내'가 아니라 '선비')으로 보임)'라는 속담이 있는데, 노부타카가 변한다면 할복을 명령받게 되는 미래도 변하려나? 키묘(奇妙) 님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지만, 노부타카가 느닷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것도 주상께서 뒤에서 손을 쓰시고 계신 것 같으니…… 어쩔 수 없네)


시즈코가 본 노부타다는, 때때로 노부타카를 신경쓰는 기색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후계자(跡目)에 관한 형제간의 심리적인 불화가 있는 걸까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부타카와 접하는 동안 노부타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노부타카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노부나가의 재능을 짙게 물려받고 있다. 그가 노부타다와 비교할 때 명백하게 한 수 떨어지고 있던 것은, 스스로의 심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서로 발목잡기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명백한 결점이 극복된다면, 카리스마 타입의 노부타다와는 다른 호소력(訴求力)을 가진 영주(国人)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숨기고 있었다.

중앙집권형의 노부나가나 노부타다와는 달리, 노부타카를 이해하고 그를 뒷받침하려고 가신단(家臣団)이 힘을 모은다는, 말하자면 역사적 사실에서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에 가까운 국가 건설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에서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를 생각하면, 노부타다의 초조함도 기우라고는 잘라 말할 수 없다.

그런 상대의 성장을 촉진한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라고 알게 되면 노부타다로서는 불만 한 마디 정도는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즈코의 사람됨을 노부타다 자신도 좋아하고 있는 것이니 불만이라기보다는 투덜거림에 지나지 않고, 노부타다는 동생의 성장을 쓴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고 보니, 형님께서는 무탈하십니까?"


"연말에 뵈었을 때는 별 일 없으신 모습이었습니다. 새해가 된 이후로는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만, 내일 주상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갈 때 뵙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뭔가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전해드리겠습니다만?"


"아니, 무탈하시다면 됐습니다. 시즈코 님이라면 아실까 해서 여쭤본 것 뿐입니다"


"아뇨아뇨, 보모(お守り) 흉내를 내야 했던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모르는 일 쪽이 많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까 (시즈코 님이 품은 형님에 대한 인상은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에 대한 누이의 그것이군. 과연 형님이 시즈코 님을 아버지에게서 빼앗을 수 있을까?)"


노부타다가 시즈코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노부타카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을 가엾게 생각하면서도, 재미있으니 말없이 지켜보기로 했다.


다음 날, 시즈코로부터 노부타카와의 전말(顛末)을 들은 노부나가는 한 마디만 중얼거렸다.


"아는 척 나불대기는"


그렇게 일견 기분나쁜 듯 보이는 태도를 취한 노부나가였으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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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