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5 1574년 3월 상순
2월. 공기가 맑게 개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싹이 트는 계절인 봄을 절실히 기다리게 될 시기. 시즈코 저택의 주방에서는 취사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선은 수온이 낮은 쪽이 맛있다고 한다. 낮은 수온에 견딜 수 있도록 몸에 다량의 기름기를 축적하기 때문인데, 이것은 생선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겨울에 수확하는 무(大根)가 단맛이 나는 것도, 추위에 견디기 위해 수분을 줄이고 대신 당분을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물(真水)은 0도에서 얼어붙지만, 설탕물(砂糖水)은 얼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비점 상승(沸点上昇), 응고점 강하(凝固点降下)'라는 현상이다. 참고로 기온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끝부분은 해충 등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매운 맛이 나게 되는 거라고 한다.
"홋홋…… 겨울에는 역시 방어무조림(ブリ大根)이지"
입에서 열기를 발산시키며 시즈코가 중얼거렸다.
방어무조림이란 일본 전국에 전해지는 향토요리(郷土料理)인데, 토야마 현(富山県)의 겨울 방어(寒ブリ)를 쓴 그것이 유명하다. 여러가지 배리에이션이 존재하지만, 방어와 무를 간장으로 조리는 것은 공통되어 있다.
유통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동해(日本海) 쪽과 태평양 쪽에서 잡힌 방어의 가격에 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홋카이도(北海道)에서 남하하여, 동해의 거친 파도를 이겨내고 토야마 만(富山湾)까지 도착한 '히미(氷見) 겨울방어'는 겨울의 미각의 왕(王者)이라고도 불린다.
당연히 유통이 발달하지 않는 전국시대에서 신선한 '히미 겨울방어' 따위 바랄 수도 없었기에, 시즈코가 조리에 사용한 것도 오와리(尾張)에서 잡힌 약간 작은 방어이다.
"생선을 먹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생선 같은 건 진흙냄새가 나거나 극단적으로 짜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이건 참을 수 없군요!"
소년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마사유키(昌幸)가 절찬했다. 오늘밤은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와 그의 아들들, 노부유키(信之), 유키무라(幸村, 노부시게(信繁))를 초대한 저녁식사였다.
산간 지방(山国)인 카이(甲斐)에서는 바다 생선 따위 바랄 수도 없다. 진흙 냄새가 나는 민물고기(川魚)나, 장기간의 운반에 견딜 수 있게 강하게 염장(塩蔵)된 것에 한정된다.
고급품인 설탕(砂糖)을 아낌없이 쓰고, 간장(醤油)과 미림(みりん)을 넣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생강(生姜)과 함께 조린 방어는 마사유키의 마음을 소년으로 되돌릴 정도의 것이었다.
"오늘 항구에 갓 올라온 방어가 들어왔거든요. 엣츄(越中)의 방어에 비하면 떨어지지만, 오와리의 방어도 제법 좋아요"
"세상에! 이것 이상가는 것이 또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마사유키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흥분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을은 긴장해서 쭈뼛거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린애가 사양 같은 거 하는게 아니야. 저쪽의 어른들을 보라고? 맛있는 걸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많이 먹고, 얼른 커야지"
어린애들을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열어젖혀진 맹장지 사이로 보이는, 옆 자리에서는 케이지들이 밥통(櫃)에서 밥을 퍼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쟁반과 함께 나온 밥그릇(椀)으로 먹었지만, 번거롭다는 듯 밥통째로 가져오게 해서는 밥주걱을 집어넣어 호쾌하게 먹고 있었다.
어느 틈에 술까지 꺼내서는, 손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회를 벌이는 상황이었다.
나쁜 어른의 표본이기는 하지만, 먹는 모습도 호쾌하여 사양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시즈코가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본래는 주인으로서 질책해야 하지만, 마사유키 자신이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기에 내버려두었다.
시즈코로서도 식사는 즐겁고 떠들썩하게 하는 편이 맛있다고 생각하였기에 마음대로 하게 하기로 했다.
한편, 노부유키와 유키무라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권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무가(武家)의 남아(男児)로서 엄격한 예절 훈련을 받아왔다. 아버지나 아버지의 상사인 시즈코 앞에서 실례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망설이고 있었다.
"어린애가 어른의 사정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도 돼. 잘 먹고, 잘 놀고, 잘 공부해. 그게 어린애가 할 일이니까"
다시 한 번 촉구하자, 그제서야 두 명은 기세좋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매콤달콤하게 조려진 방어의 맛은 어린아이의 예민한 미각조차 매료시켰다.
그렇다고는 해도, 둘 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애였기에 먹을 수 있는 양도 뻔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을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바라보고 있던 마사유키가, 두 명이 식사를 마치는 시점을 가늠하여 말했다.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노부유키도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약간 뒤늦게 유키무라도 그에 따랐다.
"변변치 못해 죄송합니다(お粗末様でした). 두 사람은 배부르게 먹었어?"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고 있던 시즈코가,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시즈코가 말을 건 두 명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시즈코 님, 이렇게 환대해 주셨음에도 뻔뻔한 이야기입니다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상관없어요. 가능할지 아닐지와는 별도로, 언제든지 들어볼 생각은 있으니까요"
"옛. 그럼, 사양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문이 자자한 시즈코 님의 도서실(図書室)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시즈코의 도서실이란, 그녀가 모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고금(古今)의 서적(書物)들이 한 곳에 모인 건물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문자 그대로 한 방(一室)이었지만, 장서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창고(蔵)가 되고, 새 저택에서는 아예 독립된 건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명칭은 전부터 바뀌지 않아, 누구나 도서실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도서실은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널리 개방되어 있으며, 카게카츠(景勝)나 카네츠구(兼続)처럼 저택에서 기거하는 사람들에게도 열람 허가를 주고 있었다.
그러나, 마사유키같은 외부인이 이용하는 것은 어렵다. 시즈코가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즈코 저택에 출입하는 데 필요한 수속이 번거롭기 때문이다.
"으ー음, 안전 면에서도 책의 반출은 허가할 수 없네요. 그렇지, 7일마다 하루만 도서실 출입을 허가하죠. 모처럼이니 아이들도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요?"
"저 뿐만 아니라 자식(愚息)들에게까지 배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첩보를 관장하는 마사유키로서는 군침이 넘어가는 대상인 도서실의 출입을 7일에 하루라고는 해도 허락받은 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다.
사서(司書)인 할아범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아야(彩)에게 건네주었다. 내일이 되면 즉시 심사와 수속을 해 줄 것이다.
시즈코로서는 도서의 대출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외부로 반출하는 것은 분실이나 정보의 유출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기에 도서실 내부에서의 열람으로 한정시키기로 했다.
"허가증이 발행되면 연락할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부자가 나란히 멋지게 예를 올렸다. 통상의 일 때문에 바빠서 그다지 도서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마사유키와는 대조적으로, 7일마다 반드시 방문하는 노부유키가 카게카츠와 함께 도서관의 터주로 불리게 될 때까지 그다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3월에 들어서, 시즈코가 정한 새 달력으로는 봄이 되었다. 평소에는 사람들의 출입도 적은 시즈코 저택의 한 구석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그곳은 시즈코 밑에서 일하는 문관들의 사무실(仕事部屋). 현대에서 말하는 결산보고서(決算報告書)에 해당하는 것을 아야를 필두로 한 그녀의 부하들이 총동원되어 작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손익계산서(損益計算書) 다 됐습니다!"
"확인합니다. 다음은 이쪽을 부탁해요"
방에는 아야를 포함하여 총 20명 정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맹장지를 걷어내고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었으나, 그래도 묘하게 비좁게 느껴졌다.
그 원인은, 복도(廊下)까지 밀려나가 있는 서류의 산이었다. 전원이 주판(算盤)을 한 손에 들고 자료를 검산(検算)하거나 새로운 서류를 작성하는 등, 각자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달의 마감일도 나름 바쁘지만, 이번에는 모든 부서의 연간(通年) 총결산(総決算)이기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의 상황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아야도, 이 때 만큼은 여유를 잃고 분투하고 있었다.
"내용 확인이 끝났습니다. 결재해 주시면 청서(清書)로 돌리겠습니다"
문관들이 각자가 담당한 분량을 가지고 와서 아야의 자리에 놓인 결재를 기다리는 문서함에 서류를 쌓아놓았다.
현대와 같은 복사기 따윈 존재하지 않기에, 여러 부가 필요한 서류는 지금도 청서반(清書班)이 별실에서 필사적으로 베껴적고 있다.
방에는 문관들이 경과를 보고하는 목소리 외에는 모두가 주판을 튕기는 소리나, 종이와 붓이 마찰하는 소리, 서류를 말리거나 먹이나 물을 보충하거나 하는 몸종(小間使い)들이 일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각 부서를 총괄하는 아야는, 쌓인 서류를 확인하고 크로스 체크(cross-check)를 반복하여 틀린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아야의 승인을 얻은 서류만이 시즈코에게 보내어지고, 최종적으로는 노부나가에게 도착하게 된다.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많고, 그 반면 문관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방에 가득찬 사람들의 표정에는 귀기(鬼気)가 서려 있었으며, 평소에는 제 세상인 양(我が物顔) 활보하는 비트만들도 이 며칠 동안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기결산서(通期決算書)가 완성되었습니다.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서류와 격투를 벌이기를 14일. 간신히 마무리된 서류를 손에 들고 아야는 시즈코 앞으로 나아갔다.
어지간히 가혹한 작업이었는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아야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 서클이 생겨 있었고,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었다.
"네,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연락하겠지만, 오늘 일은 이걸로 끝내세요. 서류 사정(精査)이 완료되면 5일간의 특별휴가를 지급합니다. 부서 내에서 조정해서 각자 휴가를 쓸 수 있게 계획해 주세요"
특별휴가란, 유급휴가와는 별도로 그때그때 지급되는 유급의 휴가이다. 단순히 유급휴가 날짜가 늘어났다고 생각하면 알기쉽다.
"감사합니다"
"단, 특별휴가는 3월, 4월 두 달 동안만 쓸 수 있으니, 어렵다고는 생각하지만 조정을 부탁해요"
"맡겨 주십시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 수고했어요. 오늘은 푹 쉬어요"
다른 사람의 눈이 있기에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나, 시즈코는 피로가 역력한 아야가 얼른 쉬었으면 했다.
매사에 아무렇지 않은 척(強がる)을 하는 경우가 많은 아야도, 아무래도 꾸밀 여유도 없었는지 약간 비틀거리며 방을 나갔다.
결산서의 확인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 시즈코가 작업하는 것은 아니다. 시즈코가 확인을 하고 있으면 서류 작성자인 아야들이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가 손대는 사업은 하나같이 차입금(借入金)이 없는, 말하자면 무차금(無借金) 경영(経営)이기에 확인은 쉽다.
사람, 물건, 돈의 흐름이 서류만으로 확실하게 추적되어, 이번 분기에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고, 자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된다.
그 이외에는 각 서류간의 수치에 관한 관련성 체크를 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하기 위한 요약서를 첨부하여 완성된다.
"그럼 결산서는 넣어두고, 먼저 빌렸던 책을 돌려주러 가자"
시즈코는 결산서를 자물쇠가 달린 서랍에 넣고, 도서실에서 빌렸던 책을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섰다.
도서실에 들어가자, 열람석에 진을 치고 책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작은 뒷모습은, 한 명이 카게카츠, 다른 한 명이 노부유키였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노부유키가 이용하는 날이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카운터로 가서 사서에게 반납 절차를 부탁했다.
반납을 마친 시즈코는, 다음에 빌릴 책을 물색하기 위해 책장 사이를 돌아다녔다.
이용자는 모두 책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소중히 다루고는 있지만, 인기있는 서적은 손땀이나 손기름 떄문에 어쩔 수 없이 상하고 있었다.
('열 권을 읽느니 한 권을 옮겨써라(十遍読むより一遍写せ)'라는 말도 있으니, 사본(写本)을 권장해서 매입하기라도 할까?)
이 속담(諺)이 의미하는 것은 독서의 요령이다.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보다 내용을 한 번 옮겨쓰는 편이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본을 만들기 위한 전문 부서가 있기는 하나, 장서의 숫자는 방대하여 책이 늘어나는 속도에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번 인쇄된 책이라고는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인쇄해 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지질(紙質) 관계상 한번 더 제판(ガリ切り, 등사판 인쇄(ガリ版印刷)의 원판을 만드는 것)부터 다시 해줘야 하니까……)
경질(硬質)의 펄프지와는 달리, 화지(和紙, ※역주: 일본 종이)에 왁스(蝋)를 바른 것을 제판에 사용하고 있기에 내구성에도 문제가 있어, 한 권만 인쇄하는 등의 세세한 대응(小回り)을 할 수 없다는 배경도 있었다.
시즈코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말이 걸려왔다.
"엇, 시즈코 님.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책이 정신이 팔려서 실례했습니다"
그 점에서, 사본이라면 종이와 붓만 있으면 본인의 노력만으로 책이 늘어난다. 개가(開架) 서고(書庫)에 있는 책은 기밀성도 낮기에 내용을 기억하더라도 문제없고, 사본 자체를 사들이면 유출될 일도 없다.
이거라면 양쪽에 메리트가 있으니, 사본 제작 키트라도 만들까 하고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았다.
볼에 홍조(紅潮)를 띄우고 말을 걸어온 것은 노부유키였다.
아직 어린 노부유키의 목소리는 높고 잘 들렸기에 이용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주시(注視)했으나, 카게카츠는 익숙해졌는지 신경쓰지 않고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올 때마다 인사할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고 꽤나 읽고 있는 모양이네? 열람석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아침부터 계속 있던 거야?"
시즈코가 쿡쿡 웃으면서 묻자, 노부유키는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네, 녜에. 이곳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이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분야별로 책도 정리되어 있어, 안내를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놀랐습니다!"
최근 비슷한 절찬을 들었네, 라며 카게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 같은 자세를 취해서 몸이 굳었는지, 카게카츠는 등받이가 달린 의자에 체중을 맡기고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던 참이었다.
시즈코의 시선을 깨달은 카게카츠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든 책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는 열람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영리(利発)하고 어른스럽기는 하나, 그는 20세가 채 되지 않는 젊은이였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으면 빈틈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는 산처럼 쌓인 책을 정리하여, 조금이라도 어지럽다는 인상을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어머니에게 정리하라는 말을 들은 어린애 같다고 시즈코는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았다.
"꽤나 다양한 분야에 흥미가 있구나?"
노부유키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실용서(実用書)에서 오락서(娯楽本)까지 있어 장르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았다. 무사의 자식이 좋아하는 전기(戦記)도 있고, 농업이나 원예(園芸)에 관한 책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예. 저(某)는 어떤 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자고 정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목록을 보고, 흥미가 있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것에 흥미를 가지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읽는 것만으로 끝내면 아깝지. 읽은 내용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견문(見分. ※역주: 작가가 독음이 같은 見聞을 잘못 쓴 것으로 보임)을 넓히도록 해"
"옛,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아, 그러고보니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같이 점심식사라도 어때? 키헤이지(喜平次) 군도 같이 올 거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즈코의 권유에 카게카츠는 망설임없이 대답햇다. 모처럼의 권유를 거절할 이유도 없고, 케이지가 자신의 소성(小姓)인 카네츠구(兼続)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있다는 이유도 컸다.
소성이 주인을 방치하고 놀러나간다니 언어도단(言語道断)이라고 생각될 법 하지만, 카게카츠 자신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부모의 품에서 멀리 떨어진 인질 생활이니, 가끔의 자유 정도는 허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즉시 대답한 카게카츠와는 대조적으로 약간 망설힌 노부유키는, 그래도 카게카츠에게 촉발되었는지 경쟁하듯 대답했다.
"좋아좋아. 그러면 나중에 사람을 보낼게. 그때까진 자유롭게 독서하고 있어"
이 이상 오래 있으면 독서의 방해가 된다. 특히 노부유키는 7일에 한 번인 귀중한 기회이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도서실에서 나갔다.
점심식사는 장어구이 덮밥(ひつまぶし)이었다. 문자 그대로 배터지게(鱈腹) 먹은 두 사람은, 오후의 수마(睡魔)와 싸우느라 고생했다.
시즈코들이 평온하게 지내고 있을 때,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는 쿄(京)에서 세력 확대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강권(強権)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뇌물을 주는 것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문화를 발신(発信)하고, 예술이나 유흥(遊興)을 진흥(振興)했다. 그는 빈번하게 공가(公家)들을 초대해서는 오와리에서 유래한 신기한 문물을 선보였다.
그것은 치안이 악화된 쿄를 버리고 지방의 장원(荘園)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쿄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상락(上洛) 이후, 철저한 단속으로 치안이 안정되어, 황폐해졌던 쿄가 옛 광채(輝き)를 되찾은 점도 컸다.
게다가 사키하사의 저택에는 다른 곳과는 다른 연구(工夫)가 적용되어 있었다. 교토(京都)는 분지(盆地)로, 겨울이 되면 차가운 공기가 정체되어, 소위 말하는 '몸속까지 스며드는 추위(底冷え)'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밀(気密)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는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는, 여름에는 쾌적하더라도 겨울에는 화로를 끌어안고 견디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추우면 사람의 활동성이 떨어져버린다. 현대에서는 단열성이 우수한 의복이 많이 있어 야외에서도 옷을 든든히 입으면 상당한 추위에 견딜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그런 의복은 존재하지 않고, 그냥 옷을 껴입는 것만으로는 우아하지 않다고 사키히사는 생각했다. 우아하게, 그러면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거기서 사키히사가 취한 대책이란, 오와리에서 기술자를 초빙하여 자택의 부지(敷地) 내에 기밀성이 높은 별채(別邸)를 짓는 것이었다.
외벽을 회반죽을 바른 흰 벽으로 마감하고, 내부를 중공 구조(中空構造)로 하여, 그 사이에 단열제로서 펠트를 끼워넣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별채의 외관과 내부의 공간에 차이가 있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도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키히사의 연구는 이것에 그치지 않았다. 시즈코의 지식을 바탕으로, 체감온도(体感温度)에 습도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가습기까지 준비했다.
물론, 전기식의 가습기 같은 것이 아니라, 물을 넣은 용기를 아래로부터 덥혀 증기를 보내는 원시적인 가습기이다. 하지만, 건조한 겨울의 공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어려운 것은 우아해야 하는 것이었다. 노골적으로 대책을 취해놓은 것이 보여서는 우아하지 않다.
그 때문에 가습기는 마룻바닥 아래의 공간에 설치되고, 펠트로 감싼 단열 파이프를 통해 조용히(密かに) 공기를 보낸다.
송풍구는 교창(欄間, ※역주: 문·미닫이 위의 상인방과 천장과의 사이에 통풍과 채광을 위하여 교창(交窓) 따위를 붙여 놓은 부분)으로 덮어서, 얼핏 보아서는 구멍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마룻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冷気)를 차단하기 위해 다다미(畳) 아래에서 펠트를 깔아, 별채의 실내는 놀라울 정도로 쾌적한 환경이 되어 있었다.
"과연 고노에 님. 유리(玻璃) 장지문(障子)이라니 아름답습니다. 따뜻한 실내에서 겨울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각별하군요"
"아뇨아뇨, 저로서는 이 별채(離れ)를 준비하는 것만도 벅찹니다. 쿄에서 쫓겨난 촌놈(鄙, 田舎者)이 여러분을 충분히 대접하고 있는 것인지 내심 불안하군요"
시즈코에게서 직접 배운 차완무시(茶碗蒸し, ※역주: 계란찜의 일종)에 대만족하여 입맛을 다시며 초대받은 공가들이 입을 모아 사키히사를 칭찬했다. 사키히사는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공가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늘은 사키히사가 주최한 가회(歌会, ※역주: 일본 시(和歌)를 짓고 서로 발표, 비평하는 모임)가 있었고, 그 후에 딱 적당한 시간이라는 이유로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몸을 안쪽부터 덥혀주는 식사와 절품(絶品)으로 이름높은 오와리의 청주(清酒)를 먹은 공가들은, 사키히사의 재력과 최첨단의 문화에 취했다.
여담이지만 천황(天皇)이 주최하는 가회는 어전 가회(歌御会)라고 하여, 그 해의 첫 가회를 첫 어전 가회(歌御会始, 타이쇼(大正) 시대에 歌会始로 개칭됨)라고 부른다.
이러한 조장 내부의 권력투쟁은 일견 노부나가들에게 아무 이익도 가져오지 않는 듯 생각되었으나, 투자하기체 충분한 이점이 있었다.
세상은 무가(武家) 사회가 되었다고는 해도, 명목상으로는 뭘 하더라도 조정(朝廷)의 권위가 필요해진다.
이렇게 사키히사를 중심으로 파벌을 만들어 두면 여러 모로 편리해진다(融通が利く). 공가들에게 군사력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꾸준히 이어온 역사와 권위는 이용가치가 높았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공가들이 장원으로부터의 수입을 잃고, 토지나 재산을 담보로 상인들에게서 돈을 빌리고 있는 공가도 있다.
개중에는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서,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까지 빼앗기고 허름한 빈 집으로 이주하여 생활자금을 빌리며 근근하게 생활하는(爪に火を点す) 공가까지 있었다.
사키히사가 많은 공가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면, 그런 공가들의 경제 상황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溺れる者は藁をもつかむ)'라는 말처럼, 약간의 경제 원조로 사키히사의 파벌로 들어와 조정에 대한 발언력을 한층 더 강화시켜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책략을 노부나가가 쓰면 공가들의 긍지에 상처를 입힌다. 귀족들의 미묘한 심리(機微)를 잘 알고 있는 사키히사를 통해서 공작을 하는 쪽이 성공률도 높았다.
"겸손하시기는요. 아 그렇지, 따님(ご息女)의 소문, 제(麻呂) 귀에도 들리더군요"
"이거 괜한 이야기로 귀를 번거롭게 해드렸군요. 저는 쿄를 떠난 이후 오랫동안 무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 왔습니다. 덕분에 딸도 여자답지 않게 이것저것 손을 대고 있어 아직 시집을 갈 기색도 없군요"
"하지만, 따님의 조력이 있어 모두 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 공가와 무가를 잇는 가교(架け橋)로서 보기 드문 재주를 가지고 있다더군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공가가 웃었다. 여기서부터 서로의 속을 살피는 것(腹の探り合い)에는 사키히사가 실력을 발휘할 자리가 된다. 사키히사는 접대용 미소(愛想笑い)를 떠올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많은 포고령을 발표했다. 역법(暦法), 도량형(度量衡), 새 화폐(新貨幣) 등을 시작으로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쳤다.
개중에는 사키히사를 통해 천황(帝)을 움직여, 공가들의 토지에 대한 덕정령(徳政令)도 내렸다. 덕정령은 채무(借金)의 불이행(踏み倒し)으로, 채권자(債権者)에게는 물론 환영받지 못한다.
상인들의 조합(組合)을 통해 노부나가에게 진정서가 도착했으나, 그는 '곤경을 틈타 터무니없는(法外) 이자를 받으며 선조 대대로 내려온 토지나 저택을 속여 빼앗은 악랄한 자들에게만 적용된다'라고만 대응했다.
일부 상인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이 덕정령은 대체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부흥하고 있는 쿄의 토지를 계속 품어서 원한을 사기보다, 얼른 돌려주고 공가의 환심을 사는(取り入る) 쪽이 이익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법이나 도량형을 제정하는 것은 지배자의 증거. 일본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틀림없이(否応なく) 노부나가의 시대가 왔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때를 같이하여 노부나가는 조정으로부터 종3위(従三位) 참의(参議)에 임명되었다. 참의란 대신(大臣)이나 납언(納言, ※역주: 일본 관직명의 경우, 가독성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자와 일본 독음을 경우에 따라 번역에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 다음가는 중요한 직책으로, 조정의 최고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의 관직 중 하나이다.
이름 그대로, 조정의 정무에 관한 의사(議事)에 참여할 수 있는 직책이다. 국정에 관여하는 고관(高官)이므로 취임하려면 조건이 존재한다.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동시에 종3위를 받았기에 참의가 될 수 있었다.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노부나가가 쿄에 체류중의 경비는 소수라도 유사시의 즉응력(即応力)이 높은 시즈코의 군이 맡게 되었다. 주력은 사이조(才蔵)가 이끌고 종군하고 있으며, 케이지와 나가요시(長可)는 유격대(遊撃隊)가 되었다.
케이지는 대기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쿄에 도착하자마자 부대를 남겨놓고 혼자서 홀연히 사라졌다.
나가요시는 부대를 이끌고는 있었으나 케이지와 큰 차이가 없어, 경라(警邏)라고 칭하며 쿄의 거리로 끌고나갔다.
대기소(詰所)에 남아있는 것은 시즈코 직속의 용기병(竜騎兵, 총기병(銃騎兵)) 부대와 사이조 군 뿐이었다.
시즈코 자신도 케이지와 나가요시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지 않았기에, 적의 입장에서는 언제 케이지나 사이조와 조우하게 될 지 알 수 없어 긴장을 강요받는 상황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졌다.
"요키치(与吉) 군은 단독으로 아즈치(安土) 주변의 환경조사(環境調査).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는 오와리에서 내 대리. 뭔가, 나는 군을 유지하기 위한 장식품(置物)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만큼 시즈코 님께 구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즈코 님께서 계시는 것만으로 쿄의 백성들은 안심한다는 것이겠지요. 부디, 경거망동은 삼가시고 여기서 진득하게 계셔 주십시오"
시즈코의 중얼거림에 사이조가 다독였다. 노부나가의 영향인지, 시즈코에게도 갑자기 혼자서 말을 몰아 달려나가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단, 현재의 시즈코는 공가 필두(筆頭)인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이자, 오다 가문에서도 중진(重鎮)이라 불리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신분(肩書)과는 대조적으로 육체적으로는 연약한 여성으로, 혼자서 좋지 않은 일(厄介ごと)에 말려들게 되면 목숨을 잃을 위험조차 있었기에, 부하들은 살아도 사는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니 그…… 그 때는 폐를 끼쳤어요. 뭐 불평은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런 짓은 이제 안 할 거에요"
까딱하다 책임문제가 되어, 경비 책임자인 사이조가 할복하겠다는 말을 꺼냈기에, 시즈코는 혼자서 몰래 다니는 일은 없어졌다.
참고로, 천하인에 가장 가까운 노부나가는, 입장이 변해도 혼자서 암행(お忍び)이라 칭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불평 정도라면, 이 사이조가 얼마든지 받아드리겠습니다"
"종4위하(従四位下)에 서임되어 버렸으니까요. 아무래도 경솔한 행동은 할 수 없어요"
조정으로부터 예사(芸事)의 수호를 맡은 시즈코는, 그와 병행하여 종4위하의 품계를 받았다. 단, 관직은 주어지지 않아 무관(無官)이다.
원래는 품계(位階)를 내릴 예정은 아니었으나, 조정 측에서 의뢰한 형식을 취하는 이상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는 모양새가 나쁘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높은 지위에 임명할 수도 없었기에, 소위 말하는 명예찍으로서 종4위하에 임명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시즈코의 다른 이름인 '니히메(仁比売)'는, 당대의 천황으로부터 종4위상을 받았다.
조정을 분규(紛糾)하게 만든 시즈코의 서임이었으나, 당사자인 시즈코는 완전히 밖으로 밀려나 있어(蚊帳の外), 그녀에게는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대신해 받았다는 통지만이 도착하고 그녀에게는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조정 내에 자신의 세력이 늘어나 발언력이 커지는 것이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다. 이미 시즈코는 천하에 이름이 알려진 여걸(女傑)이 되어 있어, 이제와서 감출 의미는 별로 없었다.
"뭐, 품계(官位)를 받아봤자 하는 일에는 변함은 없으니, 내일의 준비를 해 둬야겠네요"
손에 든 산더미같은 종이 뭉치를 치면서 시즈코는 입을 열었다.
품계를 받아 승전(昇殿)을 허락받는 전상인(殿上人)이 되더라도 시즈코가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는 것은 노부나가이고, 정치적 뱃심(腹芸)을 부릴 수 없는 자신이 정치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노부나가의 일본 통일을 향한 자복(雌伏)의 때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얌전히 장식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일본의 현관문인 사카이(堺)에 가까운 쿄까지 온 것이다. 조금 정도 취미를 즐겨도 벌은 받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시즈코는 정력적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
출자(出自)나 배경 등은 묻지 않고, 쿄의 백성이던, 멀리서 찾아온 행상(行商)이던, 평소에는 관계가 없는 종교(寺社) 관계의 사람이던, 이 시대의 역사나 풍토를 알고 있는 정보원(情報源)을 찾고 있었다.
특히 시즈코가 좋아한 것은 예수회가 데려온 노예들이었다. 흑인 뿐만이 아니라 실로 다양한 인종이 노예로 취급되고 있었다.
아마도 스페인 인으로부터 얻었을 아즈텍 인이나 인디언, 아랍 계열, 아시아 계열의 인종도 있어, 외모 만으로도 혼돈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노예라고 하면 가장 먼저 흑인 노예를 들 수 있지만, 어떤 인종이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있었다는 산 증거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노예상에게 돈을 지불하고 노예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노예들의 삶이나 노예가 되기 전의 생활 습관, 문화, 풍습에 종교나 사상 등에 대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들었다.
질문받는 쪽은 옛날 이야기를 하기만 하면 노역을 면제받고, 게다가 약간의 보수까지 받을 수 있다. 다들 기쁘게 자신의 지식을 개진(開陳)해 주었다.
물론 일본인 이외의 노예에 대해서는 노예상이 통역을 붙여줄 필요가 있어 나름 비용이 꽤 들었지만, 책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즈코는 만족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런 이야기들을 요약해 기록하여, 후에 당시의 풍물을 알 수 있는 서적으로 편찬할 생각이었다.
현재 시즈코가 열심인 것은 인디언 노예가 말하는 선주민(先住民)의 문화에 대해서였다.
아즈텍 인 노예에게는 대화조차 거절당했으나, 인디언 노예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차이가 생긴 이유는 단순하여, 인디언의 가치관에 기인했다. 인디언 노예가 속하는 부족은 독수리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있어, 길들인 자에게는 일정한 경의를 표한다.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독수리의 깃털도 중요한 아이템이며, 그들이 쓰는 깃털장식은 '워 버넷(War Bonnet)'이라고 불리며,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한 훈장으로서 하나씩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경계받았다. 그러나, 그들이 교섭할 때 하는 파이프 담배(煙草)를 돌려피울 때 '용감한 자에게라면 대답하겠다'고 그가 선언했기에, 시즈코는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를 인디언 노예에게 보여주었다.
그들 인디언에게 담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이프로 담배를 피운다는 행위는, 파이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하늘 위에 사는 위대한 존재와 대화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 때문에 화평 교섭이나 거래 때에는 파이프 담배를 돌려피워서 약속을 위대한 존재에게 서약했다. 위대한 존재가 증인이 되어 서약한 내용은 절대로 깨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용감한 자여. 우리들은 죽음을 특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육체를 버리고 혼만 남게 되는 것 뿐이다. 혼은 불멸이며, 생명은 계속된다"
"어떤 걸 먹었어?"
"버팔로(buffalo)나 카리부(caribou) 등을 사냥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곡물이다. 콩이나 옥수수, 호박도 먹었다. 콩이나 옥수수는 건조시켜(乾して乾燥させて) 저장했다"
통역을 통하고 있었기에 짧은 문장으로 집약되어버렸으나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았다. 인디언 노예의 말을 받아적고, 다음 질문을 계속했다.
점심 때가 되자, 그들의 식생활에 맞춘 옥수수의 포리지(porridge)를, 여름에 수확하여 보존해두었던 스위트 콘으로 만들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삶아서 불리기만 해도 달콤한 스위트 콘에 인디언 노예는 놀랐지만, 그가 생각하는 포리지의 맛과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 자신이 솜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용감한 자여, 또 만나자"
헤어질 때도 인디언 노예의 태도는 담백했다. 언제 누구에게 팔려갈지 모르는 신세인데, 그는 그것을 비관하고 있는 기색조차 없었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으며,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 모습을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꽤나 모였네"
자택의 창고에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를 보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종이의 원료에는 닥나무(楮), 삼지닥나무(三椏), 안피나무(雁皮), 삼(麻) 등 4종류를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자생하고 있는 것을 수확하거나 상인에게서 사들였지만, 시즈코는 종이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대대적인 원재료 생산에 착수하기로 했다.
만들어지는 종이의 품질을 생각하면, 안피나무를 재배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안피나무는 생육이 늦고 또 재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재배가 용이하며 매년 안정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닥나무를 주로 하고, 삼지닥나무를 부재료로 키우기로 했다.
"하지만, 과연 에치젠(越前) 화지. 좋은 걸 만드네. 미노(美濃) 화지도 지지 않지만, 역시 장지문(障子)이나 포장지(包み紙)용이지"
청서(清書)용으로 준비한 에치젠 화지의 매끄러운 표면을 쓰다듬으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에치젠 제압 후, 시즈코는 에치젠의 기술자들을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당연히 화지 기술자도 있었다.
화지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시즈코는 화지 생산의 거점을 세우고 화지 기술자들을 그곳에 던져넣었다.
환경 차이에 당황했던 에치젠의 화지 기술자들도, 익숙한 도구나 설비가 없는 것만 빼면 좋은 대우인 것을 알자 열심히 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시즈코는 미노 화지 기술자들과 마찬가지로 솜씨가 좋은 기술자를 골라 '명인(名人)'이나 '달인(達人)'의 칭호를 내렸다.
하지만 칭호를 받은 기술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만든(漉) 종이가 다른 기술자들의 것과 따로 취급되는 것과 약간 보수가 늘어나는 것 외에는 대우에는 변함이 없다.
기술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이것은 판매하는 입장에서의 품질보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명인'이나 '달인'이 만든 종이가 질이 좋은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그 상품 가치도 자연히 달라진다.
좋은 것을 싸게 제공한다는 사고방식은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당연한 시대의 가치관이며, 공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국시대에서는 좋은 물건에는 그에 맞는 가격이 붙었다.
완성된 상품의 매매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서서히 '명인'이나 '달인'의 칭호를 갖는 기술자들에게 환원되는 보수는 늘어간다.
성과에 걸맞는 보수가 약속된다면, 기술자들은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더욱 좋은 물건을 만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하여, 전체적으로 미노 화지의 기본적인 품질도 올라간다.
단, 품질이 좋으면 팔린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좋은 물건에는 그에 걸맞는 포장이 있으며, 가격에 걸맞는 선전이 필요해진다.
설량 일반인이 손댈 수 없는 가격이라도, 비싸지만 좋은 제품이라면 가격이 비싸더라도 사들이는 사람은 있으며, 사용자의 주변에 그 상품가치가 퍼져나간다.
물론, 선전에만 그치지 않고 가격 설정에도 이런저런 연구를 한다. 심리적(心理的) 가격 설정(価格設定)이라고 불리는 가격 설정을 했다.
구매자는 가격이 비싼 것에는 가치가 있고, 가격이 낮은 것에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명성가격(名声価格)이라고 부른다.
또, 복수의 선택지가 제시되어 고급품, 중급품, 보급품을 늘어놓으면, 많은 사람들은 중급품을 선택하기 쉽다. 이것을 단계가격(段階価格)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매자 심리를 찌른 가격을 제시하여, 시즈코는 구매자층을 분리시켰다.
즉, 에치젠 화지를 고급 브랜드 상품으로 삼고, 미노 화지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을 중급품, 일반적인 품질의 것을 보급품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연구를 한 가치가 있어, 각각의 화지는 서서히 침투해갔다.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청서해버리자"
시즈코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낮에 수집한 이야기의 내용을 에치젠 화지에 청서해갔다.
경필(硬筆, ※역주: 연필이나 펜 등의 총칭)에 익숙했던 시즈코는 당초에 모필(毛筆, ※역주: 붓)에 고생했으나, 이제는 붓 쪽이 빠르게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明智) 님의 사자가 왔습니다"
이제 곧 정리가 끝날까 싶을 때, 소성이 사자의 내방을 알려왔다. 중요한 부분은 끝났다고는 해도, 시즈코로서는 얼른 다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제 곧 해도 질테니, 내일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요"
방에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대략의 시각을 추측했다. 이제 곧 해가 질 거라 생각한 시즈코는, 지금은 바쁘니까 다른 날에 다시 와 달라는 뜻을 전하도록 명했다.
소성은 짧게 대답한 후, 말을 전하러 갔다. 소성이 떠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작업을 재개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시즈코 님. 뭔가 화급(火急)한 용무라고 하시며, 오늘 중에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몇 장만 남았을 때 소성이 돌아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다 쓴 초고(下書き)의 매수(枚数)를 세었다.
"……조금 기다리라고 전해요. 먼저 방으로 안내해서 차와 차과자(お茶請け)를 내주도록 해요. 그리고 케이지 씨…… 는 아마 없겠네. 사이조 씨 등을 불러줘요"
"알겠습니다"
10분 정도에 끝내자. 그렇게 결의한 시즈코는 다시 붓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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