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4 1574년 1월 하순
오다 군에 의한 군사 지원을 거절한다. 시즈코는 그 요청의 의도에 대해 생각했다.
"이쪽에서 부탁해 놓고 무슨 뻔뻔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쵸소카베(長宗我部)가 시코쿠(四国)의 패자(覇者)인 의미가 없습니다. 오다 님이 우연히 이야기를 한 것이 쵸소카베이며, 거기에 필연성은 없고 누구든 상관없었다는 게 됩니다"
이케(池)의 표정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사실 그 말대로라서, 시코쿠를 다스리기에 충분한 기량이 있다면 노부나가는 쵸소카베를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쵸소카베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우쭐할 정도로 현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코쿠를 통치하려면, 얕보인 채로는 지장이 생깁니다"
시즈코가 추측할 것도 없이, 이케 자신이 이유를 말했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현재, 쿠키 수군의 활약만이 부각되며 쵸소카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오다 군이 쵸소카베에게 '시코쿠를 통일시켰다'라고 누구나 생각하리라.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거라면 직접 주상(上様)께 상소를 드리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미요시(三好) 건으로 화가 나 계시지만, 올바른 도리가 있다면 분명히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 예에,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노부나가에게 상소하라고 하자, 이케는 갑자기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태도를 보고 시즈코에게는 짚이는 곳이 있었다. 승산(勝ち筋)이 보이기 시작한 후에 자신들에게도 활약할 장소를 달라고 청하는 것은 확실히 뻔뻔한 이야기이다.
최종적으로는 시코쿠의 안녕으로 이어지며 오다에게도 이익이 있는 일이지만, 이 제안을 한다는 것은 노부나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노부나가의 신경을 잘못 건드려서 쵸소카베까지 한꺼번에 멸망시켜버리라는 말이 나오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래서 노부나가 자신도 여러 모로 인정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중간에 서서 중재해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주상께서는 감정적이 되시긴 하지만, 감정에 맡긴 채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드문데…… 뭐, 이런 특징은 평소에 알고 지내지 않으면 모르겠지)
그리고 쿠키 수군의 실전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한꺼번에 물렸다가 역전당할 수는 없으니, 단계적으로 물리게 하여 본래의 목적으로 운용을 시작해도 좋을 무렵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방침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없다. 뭣보다 아직 미요시는 건재하여 노부나가의 의향을 이루지 못한 점이 걸린다.
"흐ー음. 주상을 설득하려고 하면, 그 나름대로의 근거가 필요합니다. 5년…… 아니, 3년 안에 미요시를 멸망시키실 수 있겠나요?"
"3년! 아니…… 이걸 하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오다 님께서도 저희들을 저버리시겠죠. 반드시 멸망시켜 보이겠습니다"
"(이게 절대 조건이라는 건 아니지만, 저쪽에는 그 정도의 각오를 해 주는 편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제가 주상께 말씀드리지요. 시간은 좀 걸릴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이 건에 대해서는 아케치(明智) 님의 지원도 있습니다. 즉시 결단해 달라는 생각 따윈 애초에 하지 않았습니다"
이케가 한 말에서, 시즈코는 누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했다. 애초에 쵸소카베는 미츠히데(光秀)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으로 세력 구도는 크게 변화했다.
이 요청을 계기로 다시 미츠히데의 영항력은 강해진다. 오다에게도 좋고, 쵸소카베에게도 좋고, 시즈코에게도 이득이 있다. 당연히 미츠히데의 이익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연 지장(智将)으로 이름높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절묘하게 이해관계를 조정해보인다고 시즈코는 감탄할 정도였다.
(의욕적(乗り気)으로 보인 것이 오해를 부른 걸까? 시코쿠가 통일된다면 누가 다스려도 나는 상관없는데)
시즈코로서는 시코쿠의 토지에 거대한 과수(果樹) 재배지대(栽培地帯) 벨트를 예정하고 있었다.
시코쿠는 중앙을 동서로 시코쿠 산맥(四国山脈)이 가로지르고, 그것을 경계로 북부와 남부는 기후가 크게 달라진다. 옛부터 한해(干害, ※역주: 가뭄 피해)를 입기 쉽고, 수경재배(水耕栽培)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조량이 좋은 산지에 물빠짐이 좋은 토양을 선호하는 과수를 심어 일본의 수요를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대로, 에히메 현(愛媛県)에서 귤 등의 감귤류를 재배하고, 카가와 현(香川県)에서는 올리브를 키우고, 평야(平野) 지대에서는 쌀만큼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밀(小麦)을 키울 생각으로 이것저것 수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물게 시즈코가 지배지에 대해 욕심을 보였기에, 미츠히데로서도 경계를 해버렸다는 배경이 존재했다.
미츠히데는, 이 이야기를 중재하는 것으로 쵸소카베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시즈코에게 다른 뜻이 없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시즈코로서도 미츠히데가 고삐를 쥐어준다면, 준비가 헛되지 않게 되기에 바라는 바라고 할 수 있었다.
각자 다른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이해가 일치했기에, 원만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전원의 합의를 얻게 되자, 이케는 시즈코, 미츠히데 양쪽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퇴출했다. 미츠히데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용무가 있는 거라고 헤이란 시즈코는 내심 진절머리를 냈다.
억지로 자리를 떠도 되었으나, 다음에 갈 곳이 히데요시(秀吉)였기에 엉뚱한 혐의를 받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하여 참기로 했다.
"번거로운 이야기를 가져와서 죄송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님 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타마(珠)는 폐를 끼치고 있지 않습니까?"
"타마 짱 말인가요? 요즘에는 일도 잘 배워서 손이 안 가고, 건강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에는 신기한 동물을 봤다느니, 아름다운 채색이 된 유리(玻璃)를 봤다느니……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도무지 불안한 내용들 뿐이라서……"
시즈코의 대답에 미츠히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마에게서 오는 편지로는 근황조차 알 수 없어 불안해져서 이렇게 묻게 된 것이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무장(武将)이라고 해도 부모. 역시 자기 자식은 신경쓰이는 것이겠지)
세상에서는 오다 가문에서 가장 출세가 빠른 것(出世頭)으로 이름높은 미츠히데도, 자기 자식의 일이 되면 부모의 표정을 보였다. 체면을 차리는 것도 있겠지만, 의외로 정이 많은 성격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 후, 타마의 근황에 대해 시즈코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두세마디 더 나눈 후, 미츠히데는 안심하고 자리를 떴다.
정신차려보니 상당한 시간이 지나 있어, 시즈코는 히데요시로부터 사전 연락이 필요없다고 들었기에 그 길로 히데요시를 찾아갔다.
그러나, 타이밍 나쁘게 오우미(近江)에서 긴급한 연락이 도착하여 히데요시는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를 데리고 기후(岐阜)를 출발했다는 것이었다. 회견은 연기려나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대리인(名代)으로서 남은 히데나가(秀長)와 만나게 되었다.
"우선, 이쪽에서 불러놓고 자리를 비운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이마하마(今浜, 나가하마(長浜)의 옛 이름. 히데요시가 이주한 후에 나가하마라고 부르게 되었다)에서의 축성에 조력해 주신 점, 형님을 대신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히데나가는 시즈코에 대해 사의(謝意)를 표하면서 깊이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고개를 숙였다.
"아니오, 순조로운 듯 하여 안심했습니다"
"공방 마을(工房街)의 보청(普請, ※역주: 건축이나 수선)을 현지 주민들에게 맡겨주신 것을 형님은 대단히(殊の外) 기뻐하고 계십니다. 올해 겨울에는 굶주리는 백성이 없을 것이라면서요"
"현지의 지형지리에 익숙한(土地勘) 현지 분들을 고용하는 쪽이 합리적이니까요"
히데나가로부터 정중한 감사를 받고 시즈코는 조금 당황했다.
보청이란, 널리(普) 청한다(請)는 글자 그대로, 사회 기반을 지역 주민들이 만들고 유지해가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시즈코가 한 것은 나가하마에 대규모 유리 공방지대(工房地帯)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와리(尾張)에서 시작된 유리제품 제조였으나, 점차 오와리에서만으로는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기술자들도 늘리고 규모를 확대하고 싶었으나, 시즈코의 영지는 주위가 농지(農地)에 둘러싸여 있어 용지의 확보가 어렵다.
원래는 실험적으로 소규모로 시작한 산업이었으나, 기술이 확립된 지금에 와서는 채산성이 높은 우수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제조업이라는 것은 왕왕 생활 양식이 특이하기에 거주구에서는 격리되어 집중시키는 쪽이 효율도 좋다. 시즈코가 어딘가에 광대한 토지를 확보할 수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손을 들어올린 것이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는, 새로운 영지의 주요 도로를 따른 일등지(一等地)를 확보하여 유리 공방을 유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마하마는 교통의 요충이지며, 수도인 쿄(京)에도 적당히 가까워서 사치품(奢侈品)으로 간주되는 유리 제품의 생산지로 삼기에는 좋은 입지라고 할 수 있었다.
"오와리 키리코(尾張切子)의 술잔은 폐하(帝)께서도 애용하시는 물건이라고 하니, 언젠가 이마하마로부터 헌상될 것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군요"
"그건 어떨까요? 폐하께 바치는 헌상품은, 품평회에서 최상으로 평가된 물건이지요. 제 기술자들도 그렇게 쉽게 그 영예를 양보하진 않을거라 생각하는데요?"
평소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시즈코가 드물게 자부심을 드러내보였다. 자신의 진퇴를 걸고 키워낸 산업이니만큼 애착도 강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정도의 산업을 이마하마로 옮겨도 괜찮으신 겁니까?"
"오와리의 공방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유리 산업이 퍼지는 것 자체는 대환영이지요"
"하하하, 겸손하시군요. 부를 자기들끼리(身内) 독점해버리는 것이 인지상정. 널리 민초(民草)들에게 부를 나누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도 여전히 어렵지요. 자, 너무 길게 이야기할 수도 없으니, 형님께 받은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네에"
"이마하마는 유리와 비단(絹)의 생산지로서 개발을 진행한다. 하지만, 양쪽 모두 필수품이 아니기에 미래의 전망에 불안감이 있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이마하마 외에는 없다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히데요시의 상담이란 '나가하마에 특산품(特産品)을 만들고 싶다'였다. 확실히 나가하마를 포함하는 오우미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기록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질 좋은 견사(絹糸)나 견직물(絹織物)의 산지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서는 그것도 과거의 영광에 불과하다. 오우미가 산출하는 비단 제품이 품질이 좋더라도 생산량이 부진하고, 거듭되는 전란으로 기술자(技術者)나 장인(職人, ※역주: 職人은 보통 '장인'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 사용되는 뉘앙스는 '기술자'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職人은 기술자로 번역하고 있었으나, 여기서는 따로 기술자라는 표현이 등장했기에 職人을 장인으로 번역했음)들을 잃었다.
한 마디로 특산품이라고 해도 즉각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분간은 쌀의 생산량을 늘리는데 주력하여 특산품을 낳을 바탕을 쌓아올려야 한다. 하지만, 나가하마에서의 쌀농사에는 한 가지 과제가 존재했다.
후세의 이야기가 되지만, 오우미 지방에는 수해(水害)가 빈발했다. 아네가와(姉川)나 타카토키가와(高時川, ※역주: 아네가와의 반대되는 뜻으로서 이모우토가와(妹川)라고도 함)가 범람하거나, 이건 남부에서의 이야기이지만 타나카미 산(田上山)이 원인이 되어 세타가와(瀬田川)가 범람하기도 했다.
양질(良質)의 목재를 꾸준히 제공해온 타나카미 산도, 에도(江戸) 시대에는 '대머리 타나카미(田上の禿)'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민둥산(禿山) 지대가 되었다.
한 번 비가 내리면, 대량의 토사(土砂)가 세타가와로 흘러들어가, 하류 지역의 마을(集落)들이 이전할 정도의 피해를 냈다.
메이지(明治) 시대가 되자 본격적인 치수(治水) 공사가 정부 주도로 시행되어, 그 때 생겨난 것이 유명한 '네덜란드 언제(オランダ堰堤)'이다.
"오우미는 수해가 많고, 그 때문에 치수공사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치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오! 그거 든든하군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어떻게든 수도(都)에 가까우면서도 수입이 안정되어 있는 오와리-미노(美濃) 지방에 영지를 원하는 가신들도 있습니다. 수해에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면, 오우미의 수리(水利)는 멋진 매력이 되겠지요"
이 시대의 일본에서 경제의 중심지는 오와리이다. 물류 면에서는 사카이(堺)에 한 발 양보한다고는 하나, 언젠가 일본의 현관문을 맡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거기서 멀리 떨어진 오우미의 땅으로, 영민들은 오다 가문 일당(一党)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고려하면, 히데요시의 가신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는 것도 납득할 수 있다.
히데요시가 상담해온 것도, 나가하마의 장래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신들이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형님께서 상황을 정리하시고 본인이 시즈코 님을 찾아뵐 테니 그 때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전향적으로 검토해주신다는 회답만을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것으로 히데나가와의 회담은 종료되었다. 히데나가는 히데요시에게서 맡은 용건을 전달한데다 시즈코의 협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로 귀로에 올랐다.
(치수라고 하면 영주의 기량이 시험받는 분야. 아무 대가도 없이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니…… 그녀의 권세는 그 정도에까지 이른 것일까요? 그녀는 쌀이야말로 힘이며, 돈이나 권력의 근원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똑같이 노부나가라는 주군을 모신다고는 해도, 시즈코와 히데요시의 관계는 현대풍으로 말한다면 그룹 회사 내부의 경쟁사(競合他社)이다.
그룹 전체가 착수하고 있는 주력상품 '쌀'에 관한 기술을 나눠준다는 것은 스스로의 어드밴티지를 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즈코는 기술공여를 수락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쌀본위제도(米本位制度)'에서 탈피하여 아득히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의 속셈이 어찌되었던, 형님께서 이마하마로 옮겨가시면 지금까지와 같은 관계(付き合い)는 바랄 수도 없지요. 지금은 장래로 이어지는 포석을 둘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이것이 훗날 형님께 이익을 가져오기를 기대하도록 하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부주의하게 시즈코와의 거리를 줄이면, 그것은 주위의 경계를 초래한다.
히데나가는 때가 무르익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다음으로 이어지는 한 수를 둘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났다.
(무리하게 다가가려고 하면, 이쪽도 가진 패를 내보이게 됩니다. 그녀가 하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우리들에게는 주옥같은 의미를 가지지요. 조용히, 천천히 낚아챈다. 흠…… 나쁘지 않군요)
이런 공작(工作)도 꽤 재미있다. 그렇게 생각한 히데나가는, 무의식중에 소리내어 웃었다. 호위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가 그것에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쵸소카베의 건을 보고하려고 알현을 신청했을 때, 예상보다도 빠르게 수락의 답변이 돌아왔다. 안 좋은 예감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에 임했다.
"달력(暦), 인가요"
"음. 지금까지의 달력을 폐지하고, 새로운 달력을 제정한다. 새로이 퍼뜨리는 달력은, 네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달력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달력을 제정한다는 것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과 맞먹는 천하인(天下人)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옛부터 태음력(太陰暦)이 사용되었고, 메이지(明治) 6년에 태양력(太陽暦)으로 바뀔 때까지 실로 다양한 달력이 사용되었다.
"1년을 365일과 3각(刻, 6시간)으로 정하고, 12개월을 1년으로 하고,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한다. 2월을 윤년(閏年)의 조정월(調整月)로 하고, 평년(平年)은 29일, 윤년에서는 30일로 정한 달력 말입니까?"
"그렇다. 하루를 24시간으로 하고, 한 시간을 60개의 분으로 나누고, 다시 1분을 60개의 초로 나누는 것이었더냐? 꽤나 번거롭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매년 보고해 오는 연간(年間) 온도 경향(温度傾向)이나 작부(作付け)와 수확량(収量)의 자료를 보고 그 유용성을 이해했다"
태음력이란 달의 운행을 강하게 의식한 달력이며, 날짜와 달의 모습(見かけの形)이 일치한다. 따라서 달만 떠 있다면 그 날이 며칠인지 달력이 없어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태음력에서는 실제의 계절과 날짜가 점점 어긋나버려서, 날짜와 연동된 계절별 현상을 기대하는 근대 농법과는 상성이 나쁘다.
그래서 시즈코는 그레고리 력(暦)을 기준으로 독자적인 달력을 정리했다. 평년을 365일로 하는 관계상, 단순히 홀수 달을 31일, 짝수 달을 30일로 해서는 1년이 366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현대의 역법(暦法)과 마찬가지로, 2월을 29일로 하고, 400년에 97회의 윤년을 두는 방식을 채용했다.
어째서 2월을 하루 줄인 것인가 하면, 선인(先人)이 2월로 정하고 그것이 통용되고 있는 이상, 뭔가의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업에 있어 편리하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걸 정식으로 채용해도 괜찮을까요?"
어디까지나 농업을 하면서 매년 같은 날짜 쯤에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을 의식하게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그것을 노부나가는 일본 전토에서 사용하는 기본적인 달력으로서 제정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역사의 선별을 견뎌낸 그레고리 력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고친 것이기에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농업은 나라의 근간이다. 날짜와 계절이 일치하면, 윤달(閏月) 같은 번거로운 것도 필요없지. 물론, 급격한 변혁은 혼란을 가져오니, 당분간은 옛 달력과 병용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미 노부나가의 마음 속에서는 결정 사항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 이상의 이득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그는 앞서 한 말을 뒤집지 않는다.
시즈코는 번의(翻意)를 촉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용하면서 문제(不具合)가 생기면 그때그때 수정하는 방침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자, 내 용무는 끝났다. 네 용건은 무엇이냐?"
"예. 시코쿠 통일에 전망이 섰으니, 쿠키 수군을 쵸소카베에게서 빼내어 해상 봉쇄 임무를 수행하게 했으면 합니다"
"호오…… 그 노림수는 어디에 있느냐"
노부나가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시즈코와 이케의 대화를 몰라도, 미츠히데나 쵸소카베의 속셈은 헤아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할지 판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주(国人)나 종교 세력(寺社勢力)에 속하지 않는 철포(鉄砲) 용병집단(傭兵集団) 사이카슈(雑賀衆)에 대한 대책에 이용합니다. 사이카슈의 대부분은 소규모 세력의 집단입니다만,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市)가 이끄는 사이카토(雑賀党), 오오타 사다히사(太田定久)가 이끄는 오오타토(太田党)의 2대 재지영주(在地領主)의 세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 대해 당근과 채찍에 의한 이간 공작(離間工作)을 하려고 합니다. 오오타토에게는 정치적 책략을 포함한 당근을 주고, 사이카토에 대해서는 해상봉쇄라는 채찍을 휘두릅니다"
"그런 허를 찌르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단번에 공격해서 멸망시킨다는 방법도 쓸 수 있겠지. 그걸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현재의 군사력을 생각하면 그 방법도 취할 수 있습니다만,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지역에는 사이카슈 외에도 코우야 산(高野山), 코카와데라슈(粉河寺衆), 쿠마노산 산(熊野三山), 네고로지슈(根来寺衆) 등 다섯 세력이 서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 돌출된 새로운 세력이 발생하면, 그들은 외적을 배제하기 위해 손을 잡아, 오다 가문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을 형성하겠지요. 안 그래도 지리적 이점이 없는데다 까다로운 사이카슈를 상대해야 합니다. 다른 세력까지 참전해오면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사이카슈만 노려서 각개격파를 꾀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흠"
"혼간지(本願寺)의 편을 드는 사이카슈라고 하나, 개중에서도 명확하게 오다 가문에 적대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이카토에게는 해상봉쇄를 하여 그들의 자금원인 해운(海運)이나 무역(貿易)을 차단합니다. 한편, 네고로지슈에 가까운 오오타토에게는, 그들을 통해 이익을 주어 우대합니다. 같은 세력 안에서 명확하게 균형이 깨지면, 내부 항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쿠키 수군을 쓰고 싶다는 것이냐?"
"사이카토도 해운이나 무역에 손을 대고 있는 이상 독자적인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과 싸워 승리하고,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해상봉쇄를 실행한다고 하면 쿠키 수군 이외에는 불가능합니다. 쵸소카베도 수군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거기까지의 숙련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시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혼간지는 우리들과의 강화(和睦)를 깨고 공격해오겠지요. 그들의 전력을 지탱하는 것은 모우리(毛利) 수군, 무라카미(村上) 수군, 그리고 사이카슈의 수군. 이들이 해상으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하여 지원을 꾀하겠죠. 하지만, 이미 쿠키 수군이 포진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후, 후하하하핫!"
갑자기 노부나가가 홍소(哄笑)했다. 갑작스런 일에 시즈코는 당황했으나, 그녀의 곤혹스러움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노부나가는 한바탕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너는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구나"
"예? 아니, 칭찬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싸움이란, 직접 칼날이나 화살을 주고받는 것 뿐만이 아니다. 사전에 얼마만큼 준비를 했는가, 그것이야말로 싸움의 근간이지. 가신 녀석들은 많은 병사를 보유하면 된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네가 가장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얄궂은 이야기구나"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웃음을 떠올리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좋다. 쿠키 수군은 네 뜻대로 해라. 쵸소카베의 속셈대로 되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음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옛"
노부나가의 결정을 듣고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쵸소카베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오다 가문에게 가치가 있는 한 수를 적보다 앞서 둘 수 있게 된다.
장기간 머나먼 시코쿠에서 전투행위를 계속해온 쿠키 수군에게는 충분하게 위로를 해줄 필요가 있다. 장비의 보급이나 개수도 포함하여 충분한 보수와 휴식을 주어, 다음 작전에 대비하게 하기로 했다.
(예상 이상으로 순순하게 받아들여졌네. 나가하마의 특산품을 생각할 시간을 얻을 수 있겠어. 으ー음…… 나가하마의 특산품에 대해서는 명나라(明)에서 기술을 계승한 '치리멘(ちりめん, ※역주: 바탕이 오글쪼글한 비단)' 견직물이 좋겠지. 분명히 '하마치리멘(浜ちりめん)'이라고 불리웠으니…… 응, 그게 좋겠어)
역사적 사실에서의 '치리멘' 견직물은, 텐쇼(天正) 시대에 건너온 명나라의 직공(職工)이 일본에 전했다고 한다.
센슈(泉州) 사카이에 발단을 두는 '치리멘' 견질물은, 그 생산지가 사카이에서 쿄(京)로, 쿄에서 탄고(丹後)로 옮겨간다. 훗날 '하마치리멘'이라고 불리는 나가하마에서의 생산은, 나카무라 린스케(中村林助)와 이누이 쇼쿠로(乾庄九郎) 두 사람이 탄고에서 기술을 배워오고, 또 탄고에서 기술자를 파견받아 기술을 정착시켰다.
이것은 에도 시대 중기(中期)의 일로, 현 시점에서는 사카이에서조차 퍼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정에서 받은 예사(芸事)의 수호(守護)에, 동료 가신들의 상담을 해주고, 자신의 영지도 관리해야 하지. 너도 항상 정신없이 바쁘구나"
"주상께서 일본을 통일하시게 되면 느긋하게 휴가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것에게는 아까울 정도의 우수한 가신들이 받쳐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네 가신들은 우수하지. 신뢰할 수 있는 가신이란 얻기 힘든 것이다. 절대 함부로 다루지 말아라"
"옛"
"널 위해서 내게 직접 담판까지 지었던 겐로(玄朗)는 내 밑에 두고 싶을 정도다. 너를 맹신하지 않는 점이 아주 좋더군"
고개를 숙이는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는 웃으면서 겐로의 이름을 꺼냈다. 성(名字)을 얻은 겐로의 휘(諱)는 시즈오키(静興). 그의 휘를 정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겐로가 휘를 정할 때, 그는 주군인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고 싶다고 청했다. 시즈코는 이것을 쾌히 승낙하여, '시즈(静)' 한 글자를 내렸다.
그러나, 겐로가 세운 전공은 눈부신 것으로, 노부나가에게서 직접 '나가(長)'의 한 글자를 받는 영예를 얻었다. 관례로 볼 때는 시즈코의 주군에 해당하는 노부나가의 한 글자를 우선시한다.
이렇게 주군, 또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게서 이름 중에 한 글자를 받는 것을 편휘(偏諱)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편휘에서는 통자(通字)와는 다른 글자가 내려지는데, 드물게 통자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통자란, 그 집안에서 대대에 걸쳐 사용되는 글자를 가리키며, 노부나가의 경우에는 '노부(信)'의 글자가 해당된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信秀)에게서 노부나가로, 노부나가에서는 노부타다(信忠)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편휘의 관례에 따르면, 여러 사람에게서 이름을 받게 되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휘가 편휘와 통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겐로의 경우,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나가(長)'를 위에 두고, 아래에 '노부(信)' 나 '시즈(静)', 코(子)' 등의 주군의 이름을 피한 통자를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겐로로서는 꼭 시즈코의 편휘를 쓰고 싶었다. 고뇌한 끝에 겐로가 내린 판단은, 노부나가의 편휘를 반납하는 것이었다.
"소생이 지금의 신분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시즈코 님께서 키워주셨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시즈코 님께 편휘를 청해놓고, 주상으로부터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하여 바꾸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소생 따위가 주상께서 하사하신 것을 반납하는 것은 만 번 죽어 마땅한 무례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겐로, 목숨을 걸고 청원합니다. 시즈코 님의 편휘를 쓰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하신다면, 이 목을 주상께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하사된 것을 거절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위가 된다. 흰 옷(白装束)을 입고 노부나가에게 청원하는 겐로에 대해, 오다 가문 가신들은 실컷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중인환시리에 모욕을 당한 장본인인 노부나가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사람은 신분이 높아짐에 따라 초심을 잊어가지. 하지만, 이 겐로는 어떠냐! 일문(一門)의 두령(頭領)이 되어서도 여전히 시즈코에 대한 은의(恩義)를 잊지 않았다. 나와 시즈코에게 모두 예의를 지키기(筋を通す) 위해, 분노를 사서 죽음을 명령받을 것을 각오하고 청원하는 그 결벽함(潔さ), 실로 훌륭하다!"
이 한 마디로 판결이 내려졌다. 노부나가가 좋다고 한 이상, 주위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로서 노부나가로부터의 편휘는 없었던 것이 되고, 겐로는 시즈오키라는 휘를 사용하게 되었다.
"모두의 충의(忠義)를 받을 가치가 있는 주군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엎드린 채 대답했기에 노부나가도 시즈코 본인도 깨닫지 못했으나, 시즈코는 자랑스러운 듯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귀가한 시즈코는 급히 달력을 문서화하는 데 착수했다. 노부나가가 안건을 채용한다는 것은, 나아가서는 세상에 공표할 초안(草案)을 제출하라는 의미라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노부나가 자신은 명확히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즈코에게 명령한 이상 성과에는 그에 걸맞는 보수가 지급된다. 화려함은 없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의 치세를 지탱하는 받침대가 되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달력은 예전에 책정했을 때의 초고(下書き)가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자신의 행리(行李, 대나무나 등나무 등으로 짠 옷농(葛籠))을 뒤집었다. 그녀의 초고를 기초로 한 초안은 이와 같다.
제 1장 역법(暦法)
제 1조 계절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날짜 수를 1년으로 정한다. 해가 뜨고, 진 후, 다시 떠오를 때까지를 1일로 정한다.
이에 따라, 1년을 365일로 정한다. 단, 365일로는 약간 계절과 역법에 어긋남이 발생하므로, 윤년(閏年)을 두어 이를 조정한다.
제 2조 윤년이란 1년을 366일로 하는 해로 정한다. 또, 365일인 해를 평년(平年)이라 정한다.
제 3조 윤년이 되는 해는, 이하의 규칙으로 구한다.
제 3조-제 1항 연수(年数)가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2항 연수가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정한다
제 3조-제 3항 제 2항에서,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정한다
제 4조 1년을 12로 나누어 각각을 달(月)이라 정하고, 1월부터 12월까지로 한다
제 5조 홀수 달을 31일로 정하고, 짝수 달을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1항 2월을 윤년의 조정월로 정하여, 평년은 29일, 윤년은 30일로 정한다
제 5조-제 2항 3월에서 5월까지를 봄, 6월에서 8월을 여름, 9월에서 11월을 가을로 정하고,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를 겨울로 정한다
제 6조 옛 역법의 사용을, 새 역법 시행 후 10년 동안은 인정하기로 한다.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에서도 새 역법 이외에는 사용을 금한다.
"아! 기년법(紀年法)에 대해서도 정해야지. 으ー음…… 역시 황기(皇紀)가 익숙해지기 쉬우려나"
역법의 초안을 정리하면서, 기점(起点)이 되는 시점을 정하지 않은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그레고리력을 베이스로 하고 있기에 서력(西暦)이 어울리지만, 서양의 성인(聖人)의 생일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천황제(天皇制)와 연결된 황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황기란, 정식 명칭을 진무 천황(神武天皇) 즉위기원(即位紀元)이라고 부르며,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참고로 일본이 제정한 기년법이다.
"역법과는 달리 기년법도 제정해야겠네. 시각법(時刻法)도 필요하려나"
다른 종이를 준비하여, 시즈코는 기년법과 시각법의 조문을 적어넣었다. 그녀의 안(案)은 다음과 같다.
제 2장 기년법
제 1조 초대 천자(天子), 진무 천황의 즉위를 기원(紀元)으로 한다.
제 2조 즉위년은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 일본기(日本紀)에서 구한다.
제 3조 제 1, 제 2조에 의해, 금년을 황기 2234년으로 한다.
제 3장 시각법
제 1조 시각의 단위는 '시(時)', '분(分)', '초(秒)'로 정한다. 1일은 24시간으로 하고,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정한다.
제 2조 9시를 정자(正子), 12시를 정오(正午)로 정한다.
제 3조 정자 및 정오는, 별도로 정하는 자오선(子午線)을 햇님(天道様)이 통과하는 시각으로 한다.
제 4조 시각을 12지(十二支)로 세는 것을 시각법 시행 후 10년간은 인정한다. 단, 10년 경과 후에는 어떠한 문서도 시각법 이외의 사용을 금한다.
"후ー, 이 정도려나"
시즈코는 조문을 다 쓰자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오해의 여지가 없는 문장으로 룰을 정하는 것은 예상 이상으로 피곤했다.
자연을 상대로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쪽이 성격에 맞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일본이 평화로워지면 이런 사무처리는 더 늘어날 것이다.
"이것의 청서(清書)을 부탁해요"
시즈코는 서류를 근시(近侍)에게 맡겼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려면 초안을 기초로, 정식 서류로 작성하는 작업이 필요해지는데, 그것은 시즈코의 역할이 아니다.
본래는 우필(右筆)이라 불리는 문관이 담당하지만, 시즈코 저택에서는 서류를 담당하는 문관 중 누군가가 청서하여, 필두 문관(筆頭)이 확인하는 흐름이 된다.
그것을 시즈코가 최종 확인하고, 문제없다고 판단되면 노부나가에게 제출된다.
번거로운 절차(手順)를 거치게 되지만, 노부나가도 지금은 많은 결재를 하는 몸이다. 노부나가에게 제출하는 서류는 그가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작성하는 게 바람직하다.
"귀찮지만, 반려되어 오면 괜히 수고가 더 들어가니까"
자신을 위로하듯 시즈코는 어깨를 주물렀다.
며칠 후, 시즈코의 초안을 기초로 한 정식 서류가 노부나가에게 전달되었다.
역법 전반의 정식 서류가 완성되기 전, 시즈코는 매일 들어오는 서신을 읽고 있었다.
겨울은 강설(降雪)에 의해 주요 도로 이외에는 통행불능이 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격감했다. 이 때문에, 시즈코가 집에 있을 것을 예상하고 서신이 오는 경우가 많다.
처음으로 읽은 서신의 발신인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었다.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금주령(禁酒令) 때문에 몸 상태가 좋아졌다'였다.
"가려움도 가라앉았구나. 알코올 의존증의 이탈기(離脱期)는 벗어났다고 봐도 되려나"
알코올 의존의 상태에서 주량의 감량 또는 금주를 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일련의 증상을 가리켜 이탈증상(離脱症状, ※역주: 금단증상)이라고 한다. (작가 주: 알코올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탈증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초기에는 손이나 전신의 떨림, 발한(発汗)이나 집중력의 저하, 환각(幻覚)이나 환청(幻聴) 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을 조기이탈증상(早期離脱症状)이라 부른다.
그에 반해 후기이탈증상(後期離脱症状)은, 음주를 그만두고 2~3일 후에 나타난다. 환시(幻視)나 소재식 장애(見当識障害, ※역주: 자기가 시간적·공간적·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 라는 의식(의식의 이상(異常)을 판정하는 근거가 됨)), 비정상적 흥분이나 발열, 발한, 떨림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러한 이탈증상들은 강한 불쾌감을 동반하여,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술을 계속 마신다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켄신은 수족의 부종(浮腫) 외에 전신의 가려움도 호소했으나, 그것들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이탈기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신에 적힌 근황에는 '요즘에는 식사가 맛있게 느껴진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의 건강에 대해서는 금후에도 주의해서 관찰할 필요가 있지만, 시즈코처럼 영구 금주령(永久禁酒令)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잘 됐네 잘 됐어. 켄신의 후계자 싸움은 아직 표면화(顕在化)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 진영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 같으니까"
후계자 싸움은 당분간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은 했으나, 호죠(北条) 가문이 멸망에 직면했을 때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가장(家長)인 켄신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도 그는 건강을 유지해줘야 한다. 건강에 주의하지 않은(不摂生) 기간이 긴 만큼 장수(長寿)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도 향년 49세가 아니라 7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면 충분히 역사는 바뀔 수 있다.
반대파에게도 조금씩 이익을 줘서 회유와 포섭(取り込み)을 하면, 다른 사람의 땅을 빼앗지 않고도 자국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었다.
(흐ー음. 아직 켄신이 건재하고 당분간은 이쪽의 지시에 따라준다는 상황은 고맙네. 눈이 녹을 무렵부터 인프라 정비도 개시될 전망이고…… 다만 동해(日本海) 쪽에서는 눈이 내리는 시기가 기니까,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현대와 같은 제설용 중장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제설을 할 수 있다고 해도, 눈을 버릴 땅도 확보할 수 없다. 눈을 운반하기 위해서도 정비된 인프라가 필요해진다.
현 단계에서 기계화된 제설기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연료의 확보나 한랭지(寒冷地)에서의 동작 시험 등 클리어해야 할 과제도 많다.
언젠가는 개발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달리 우선시해야 할 안건을 품고 있기에 전망이 서지 않고 있었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하기보다 실제로 감독하는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적임이겠지. 왕왕 말이 좀 부족하지만……"
켄신의 서신을 치우고, 시즈코는 다음 편지를 손에 들었다. 발신인의 이름이 사키히사(前久)였기에, 무슨 일이 있나 하여 내용을 진지하게 음미했다.
그러나, 읽어나감에 따라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공가(公家)에 대한 정치적 책략을 하려고 하니 식재료니 뭐니를 보내달라, 는 건 알겠어. 하지만 마지막의…… 왜 고양이를 보내달라는 거야? 딸에게 사쿠야(開耶, 사키히사가 기르고 있는 터키시 앙골라의 이름. 코노하나사쿠야비메(木花開耶姫)에서 따온 이름)를 뺏기기 일쑤? 거기까진 책임 못 져……"
최근에 터키시 앙골라가 처와 딸에게 달라붙어버려 상대해주지 않아서 쓸쓸하니 새 고양이를 보내달라, 라고 편지에는 우아(雅)한 필치로 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설마, 역사적 사실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에게 보낸 서신과 마찬가지인 서신을 받은 건 역사적으로 귀중하려나?"
역사적 사실에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사키히사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그 답례로 '고양이는 부인에게 빼앗겨 내 손에 없소. 딸도 절실히 원하고 있지만 모르오. 우선은 내 것이 있었으면 하오"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일화가 존재한다.
암묵적으로 딸의 것도 조르는 사키히사의 유쾌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문서이지만, 부탁받는 쪽은 배겨낼 수가 없다.
"그렇게 딱 좋게 새끼 고양이를 확보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번식기에 막 들어간 현재 상태에서는 일단 무리일 것이고, 설령 새끼 고양이를 수배할 수 있다고 해도 사키히사를 따를지는 고양이에 달렸다. 이상적으로는, 사키히사와 새끼 고양이를 만나게 하여 그가 마음에 든 새끼 고양이를 양도하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사키히사는 이미 칸파쿠(関白)의 지위에 있어,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또, 자칫 이상한 것을 보냈다가는 오다 가문의 체면에도 관계된다. 사키히사 자신이 납득해도, 주위가 똑같이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다.
"응, 다음이다 다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시즈코는, 다음 서신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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