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2 1573년 12월 중순
시즈코 밑에서 뿌리를 내린 마사유키(昌幸) 등 사나다슈(真田衆)는, 환경의 차이도 있어 당황하기는 했으나, 1개월도 지나기 전에 오와리(尾張)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기쁜 오산(誤算)으로서, 간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평가해주는 마사유키를 의지하고 타케다(武田) 가문의 간자들이 속속 출분(出奔)하여 모여들었다는 것이 있었다.
"돌아가신 신겐(信玄) 공(公)이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간자들을 그대로 몽땅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그에 반해 타케다 가문은 고심해서 구축한 정보망을 잃고, 지금은 매일의 연락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더군요. 우리들은 누워서 떡먹기(濡れ手で粟を掴む)로 그들의 손발을 잘라낼 수 있는 겁니다.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시즈코의 가신 중 한 명이 마사유키 밑으로 간자들만이 늘어가자, 외부인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것을 걱정하여 시즈코에게 경고를 했다.
그에 대한 시즈코의 대답이 이것이었다. 확실히 숫자가 늘어나면 관리가 어려워진다. 타케다 가문에서 보내어진 간자도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마사유키가 손을 써서 품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의 지적대로, 현재의 타케다 가문은 정보망이 기능하지 않아, 자신들의 영토 이외의 정세 같은 건 전혀 모르는 쇄국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적국에 접하는 영지를 가진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바깥의 정보를 필요로하여 간자들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한 번 기운 저울이 되돌아가지는 않았다.
'미츠모노(三ツ者)', '유랑 무녀(歩き巫女)' 같은 첩보원(諜報員)들을 총괄하고 있던 조직이 붕괴하여 외부의 정보가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국내를 정리하는 데 필사적인 카츠요리(勝頼)는 이것들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꽤나 사람이 늘어났네요. 저번의 보고 시점에서 200명 정도였다고 했는데, 매일 합류해오고 있는 모양이니 실제 숫자는 더 많겠지요"
"신겐 공 직할의 집단도 있었으니, 실태를 파악하고 있던 것은 신겐 공 뿐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사유키는 모여드는 간자들을, 자신을 정점으로 한 조직에 포함시키고, 재편된 조직의 개요를 시즈코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마사유키는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지휘계통이 붕괴된 조직을 재구축하고, 새로운 첩보망으로서 전개하여, 수시로 각지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체재를 갖춰가고 있었다.
급조된 조직이라 그런지 정보 밀도의 편중이 존재하기는 하나, 인원이 고르게 배정되면 정보를 고르게 얻을 수 있기에, 큰 문제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무리하게 지휘계통을 바꿀 필요는 없겠네요. 종래의 지휘계통 위에 사나다 님을 두는 것과, 감사요원(監査要員)을 끼워넣는 정도일까요? 급격한 조직 개편은 혼란을 불러옵니다.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바꿔가죠"
"옛"
"그건 그렇고, 단기간에 용케 이만큼 조사했네요. 주상(上様)께서도 칭찬하셨습니다. 지금부터의 활약에도 기대하고 있겠어요"
"기대에 부응하도록 분투(奮励) 노력하겠습니다"
마사유키에게는 지금이 승부처(正念場)였다. 예전의 무공 따위 오다 가문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일하면 일할수록 평가받아, 활약할 장소가 넓어진다.
간자 조직을 쇄신하여 각지의 정보를 적절히 수집하고, 그것들을 집약, 정사(精査)하여 노부나가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체제. 이 시스템 구축을 통해 무공으로 평가받았다.
오가 가문에 있어 유용하다면, 그 공은 전쟁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평가 방침은, 휘하에 병력을 갖지 못한 마사유키에게 대단히 고마운 것이었다.
사나다 가문을 출분하면서 유능한 장병들은 대부분 본가(本家)에 두고 왔다. 마사유키는 어디까지나 '후계(家督) 다툼에 패하여 추방되었다'라는 모양새가 아니면 안 된다.
자신에게 추격대까지 보낸 본가였지만, 자신이 원인이 되어 옛 보금자리(古巣)에 엉뚱한 의혹을 받게 하는 것에 부끄러운(忸怩たる) 마음이 있었다.
"너무 과하게 몰두하지는 마세요"
보기에도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는 마사유키를 보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충고했다.
겨울도 깊어져 12월에 들어서자, 전쟁의 기색은 멀어졌다. 농한기(農閑期)야말로 싸움을 걸기 좋은 건 상식이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긴박한 이유가 존재했다.
오다 가문에 관한 것만 들어도, 쿄(京)나 오우미(近江) 등 키나이(畿内)의 곡창지대로부터의 세금을 집계해보니, 대규모의 흉작(不作)임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측량(検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평균적인 수확량의 계산은 못하고 있었으나, 백성들의 말에 따르면 예년의 6할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지배지에서 식량에 여유가 있는 것은 미노(美濃)와 오와리 뿐으로, 새롭게 산하에 편입된 키나이의 영지에서는 여유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예년 수준인 경우에도 간신히 먹고 살 정도라는 상태였기에, 4할이나 부족하다고 하면 비상사태라 할 수 있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백성들은 굶주리고, 일향종(一向宗)이 선동하면 쉽게 잇키(一揆)로 발전한다. 잇키가 발생하면 사카이(堺)와 쿄, 오와리를 잇는 물류(物流)의 대동맥(大動脈)이 정체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노부나가는 미노나 오와리의 잉여미(余剰米)나, 새로운 지배지용으로 쌓아놓고 있던 비축미(備蓄米)까지 방출했다.
이 시책의 덕분도 있어, 키나이에서의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노부나가에게 전쟁이 가능할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당장 닥친 위협도 없었기에, 노부나가는 지배지 전역의 통치 강화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의해 각지의 통치를 맡고 있던 가신들도, 측량이나 농업개혁 같은 부국정책을 중시한 영지 경영에 힘쓰게 되었다.
"농업개혁은 좋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날 의지하는 건 그만했으면 좋겠어"
노부나가의 지배지 곳곳에서, 농업지도를 할 수 있는 인원을 파견해 달라느니, 비상식적일 정도의 짧은 납기로 농기구를 대량으로 준비해 달라느니 하는 요구가 올라오는 것에 시즈코는 진절머리를 내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현지에서 산업을 일으켜서 내수(内需)를 확대하는 방침을 취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生き急ぐ) 무장들에게 기다리라는 것도 가혹한 이야기였다.
현지 근처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상인들의 연줄을 통해 융통하고, 그것조차 어려운 것은 시즈코가 준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새에도 계절은 흘러가 12월도 중반이 되었다. 연말(年の瀬)을 앞두고 다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시즈코도 바쁜 일의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돈이 든 나무 상자를 들고 가신들의 집으로 갔다.
"시즈코 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황송합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달려갔을텐데요"
겐로(玄朗)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타케다 군의 격퇴로 시작하여, 그 후의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전투에서도 눈부신 무공을 세운 겐로는, 노부나가로부터 무사의 신분(士分)을 받았다.
무사의 신분이라고 해도 아시가루(足軽)가 아니라, 말을 타는 것을 허락받는 무사의 신분으로 대우받았다.
성(名字)을 쓰는 것을 허락받은 겐로는, 성을 오와리쿠스노키(尾張楠木), 이름(仮名)을 겐로라 하고, 휘(諱)를 시즈코에게서 한 글자를 받아 시즈오키(静興)라고 쓰게 되었다.
신분에 걸맞는 의류나 가구(調度), 무가 저택(武家屋敷)등도 주어졌고, 노부나가로부터 하사(拝領)받은 칼을 차,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내일조차 알 수 없는 거렁뱅이(食い詰め者)였던 시절에서 보면 믿을 수 없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이루어, 주위에 어엿한 승리자(成功者)로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자신을 키워준 시즈코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한층 더 충성을 맹세했다.
"이런 기회라도 없으면 겐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요. 올 안 해, 정말로 수고했어요"
시즈코가 그렇게 말하자, 뒤에 시립하고 있던 소성이 앞으로 나왔다. 소성은 겐로의 앞에 상(膳)을 놓고, 인사를 한 후 뒤로 물러났다.
시즈코는 자신이 안고 있던 나무 상자에서, 미농지(美濃紙)로 포장된 돈을 꺼내 늘어놓은 후, 상을 겐로 쪽으로 밀었다.
현대에서 말하는 겨울 상여금이다. 연말에서 새해에 걸친 기간에는 이것저것 필요해진다.
새롭게 가문을 일으킨 겐로의 경우 한층 더 그렇기에, 그것을 보태주기 위해서도 시즈코가 포상금을 제도화했다.
"각별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다른 가신들에게도 나눠주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을 신경써주는 시즈코에게 겐로는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겐로는 공손히 상에서 돈을 받아들어 품 속에 넣었다.
"사실은 근황 같은 거 묻고 싶지만, 오늘밖에 모두의 집을 돌 시간이 없으니, 미안하지만 실례할게요"
"옛!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말도 다가오고, 사람들의 통행도 많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시즈코 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는 일본 전체의 손실. 이 겐로, 무슨 일이든 제쳐놓고 달려갈테니, 용건이 있으시면 불러 주십시오"
"네, 충분히 주의할게요. 하지만 연말은 푹 쉬어요. 몸을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옛!"
가볍게 대화를 나눈 후, 시즈코는 겐로의 저택을 떠났다. 지금부터 니스케(仁助) 등의 집도 돌 필요가 있다.
원래는 시즈코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저택으로 불러서 포상을 건네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나, 시즈코 직속의 공을 세운 가신들만이라도 직접 가서 사는 모습을 확인하고 그 공을 치하하고 싶다는 시즈코의 마음에, 근시(近侍)들도 결국 두 손을 들어, 줄지어서 상을 주러 다니고 있다.
물론, 전원을 다 도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기에, 안전상의 배려 등에서도 측근이나 특히 공을 세운 자들로 대상이 한정되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아, 있다 있어"
탁 트인 땅에 덩그러니 서 있는 도장(道場) 같은 건물에 시즈코는 아시미츠(足満)와 함께 들어갔다.
"아니 시즈코 님.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목적의 인물은 사이조(才蔵)였다. 이 건물은 수련장(鍛錬場, ※역주: 원어는 '단련'이지만, 우리말에서는 '단련'이라고 하는 것보다 '훈련'이나 '수련'이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수련으로 번역)이라고 하여, 나가요시(長可)가 애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사이조나 타카토라(高虎)도 촉발되어 단련을 하게 되었다.
케이지(慶次)는 뭔가 이유를 붙여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수련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카부키모노(傾奇者)로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다는, 그 나름의 긍지가 있었다.
"수련을 중단시켜서 미안해요. 자, 전에 말했던 겨울의 포상금을 주려고 왔어요"
"시즈코 님이 직접 오시지 않아도, 부르시면 제가 갔을텐데요"
"신경쓰지 말아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웃으면서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서 돈을 받아서 그것을 사이조에게 직접 건네주었다. 사이조는 의복을 단정히 하고 인사를 한 후 돈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수련은 순조롭나요?"
"부끄럽지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즈코는 질문하면서도 사이조가 매달아놓았을 종이를 보았다. 시즈코의 시선 끝을 보며 사이조가 자조하면서 대답했다.
사이조가 하고 있는 수련은 단순했다. 들보(梁)에 실을 매달고, 그 끝에 구멍이 뚫린 종이를 매단다.
제 1단계는 매달린 종이를 창으로 벤다. 제 2단계는 종이를 찌른다. 최종 단계는 문(鎧戸)을 열고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를 베거나 또는 찌른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막상 실행하려고 하면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길이 3미터 정도의 스테인리스제 낚싯대를 준비해서, 끝부분에 젖은 청바지를 매단다.
그 상태에서, 가능한 한 낚싯대를 길게 잡고 끝부분을 대(台座)에 올리려고 하는 난이도일까.
중심이 전방으로 치우쳐 있기에, 앞쪽 끝부분(先端)을 정지시키는 것조차 어렵고, 뒤쪽 끝부분(末端)을 잡고 있기에 약간의 움직임이 앞쪽 끝부분에서는 큰 움직임이 되어 나타난다.
이것이 사이조가 사용하는 대신창(大身槍)쯤 되면, 창날(穂先)이 2척(尺)을 넘는 다마스커스 강으로 되어있기에, 그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앞서 말한 중심 밸런스에 더해, 자루 자체가 무게로 휘기 때문에, 표적이 되는 종이에 맞추는 것조차 보통 사람에겐 어렵다.
"베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찌르려고 하니 이야기가 다릅니다"
과연 창의 명수인 사이조답게, 앞쪽 끝부분의 흔들림도 없이 기합(気合)과 함께 일섬(一閃)으로 표적을 갈라 보였다. 다음으로 창을 몸 가까이 당겨 허리에 대고 자세를 취한 후, 창을 바짝 당겼다 찔러냈다.
하지만, 창의 앞쪽 끝부분은 표적에서 벗어난 공간을 관통했다. 창이란 기본적으로는 후려치는 것이지만, 전쟁터에서는 그렇게 딱 좋게 창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이조는, 좌우로 공간이 없어도 공격할 수 있는 찌르기나, 찌르기에서 참격(斬撃)으로 변화시키는 수련을 스스로의 과제로 삼고 있었다.
쓸 것인지 아닌지는 상황에 달렸지만, 쓸 수 있는 패(手札)가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위에서 아래로 중량을 실어 후려치면 갑주 위에서도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만, 날카롭게 찌르고 거둘 수 있다면 상대를 처치한 후 더욱 빠르게 다음 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후려쳐서 넘어뜨린 후에 찔러죽인다는 두 동작보다도, 찌르고 거두면 다음 공격 준비도 된다. 이상적으로는 일격일살(一撃一殺)이 바람직하다.
이 생각은 당연히 전쟁터에서도 유효하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등에서 호위를 맡는 호위대(馬廻衆)로서의 개념이 강하게 드러나있었다.
군중에 섞여 귀인(貴人)을 습격하는 자를, 사람들의 틈새로 재빠르게 처치한 후 다음 공격에 계속 대비한다.
군중뿐만 아니라 동료를 방패로 삼는 경우도 고려하여, 약간의 간격이라도 찔러낼 수 있는 정밀도를 몸에 익히려고 열심히 생각한 끝의 수련이었다.
"뭐, 이런 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참고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니가 긴 무기를 쓸 때는 비틀면 앞쪽 끝부분이 안정된다고 말했었어요"
"호오! 비트는 것입니까?"
"뭐더라, 자이로 효과? 어쨌든 창을 회전시키면서 찌르면, 앞쪽 끝부분은 안정되는 모양이에요"
"비튼다…… 뭔가 빛이 보인 느낌이 듭니다"
"손끝에서만 비틀면 반대로 더 흔들린다고 했던가요? 뭐, 주워들은 이야기니까 참고 정도로만 들어요"
"옛, 명심하겠습니다. 제 노력이 올바른지, 계속 자문자답하면서 수련하겠습니다"
"그럼 좋아요"
사이조의 말에 시즈코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겨울 상여금 전달을 마친 시즈코는, 드디어 연말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전처럼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그녀에게는 답답하더라도 지시를 내리고 수하들에게 작업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으ー음, 새해맞이(年越し) 준비는 재미있는데 말야"
소매를 걷어올리며 의기양양하게 새해맞이 준비에 참가하려던 시즈코였으나, 아야(彩)와 쇼우(蕭)에게 "주인께서 준비에 바쁘시게 되면 고용인(家人)들의 능력을 의심받게 됩니다. 부디 자중해 주십시오"라는 충고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시즈코는 해야 할 작업을 리스트업하여 그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그 후에는 일체 할 일이 없어져버렸다.
실질적으로 집 안의 일은 아야와 쇼우가 관장하고 있으며 시즈코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에, 예상외로 시간이 남아돌게 되었다.
부하가 우수하면 편하지만, 할 일이 없어 무료해지는 것도 곤란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위에 서는 사람의 숙명이지"
시즈코의 불평에 아시미츠가 대답했다.
이전에는 시즈코 한 명에게 부하(負荷)가 집중되었으나, 전쟁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지면서, 아야나 쇼우가 집을 지키면서 단련이 되어 그녀들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늘어났다.
이제 시즈코에게 남은 것은 보고를 듣는 것과, 그녀가 아니면 결재할 수 없는 사안이나,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 등에 한정된다.
"내 역할은, 돈을 마련하는 것(金策)과 각 부서의 조정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어요"
"사장이나 회장이 일의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 났으니 밭일이라도 하는게 어떠냐"
"……없어요. 다들 우수해서, 내가 작업할 게 없어요"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섬세한 작업이 요구되는 일부 품종의 재배를 제외하면, 시즈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작업은 없어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작물에 담당자가 붙어서, 처음에야 조언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훌륭하게 성과를 내고 있었다.
문자의 읽고 쓰기를 교육시켰기에 재배 기록이 작성되고, 우수한 사람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교재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것들 전부가 출세욕 같은 게 아니라 항상 바쁜 시즈코를 편하게 해주자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녀로서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망고라던가 남국(南国) 계열의 과실(果実)에서도 손떼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카카오도 내년 5월 쯤에는 열매를 맺을 것 같고…… 커피콩도 순조롭고……. 새로운 작물의 씨앗이라도 수입할까요"
"생각하는 건 상관없지만, 아까부터 손이 멈춰있다. 생각할 시간(持ち時間)은 이제 없으니까 고려 시간을 다 쓰기 전에 다음 수를 둬라"
모래시계를 가리키면서 아시미츠는 장기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국(戦局)은 이미 시즈코의 패배개 9할쯤 확정된 상태였다. 중요한 말(大駒)인 비차(飛車)는 남아 있었지만, 적진에 홀로 남겨져 움직이지 못하고 보기좋게 사실상 죽은 상태였다.
왕을 둘러싼 말들도 반쯤 붕괴되어, 아시미츠에게 한 수의 여유가 생기면 시즈코의 패배가 확정된다. 시즈코로서는 아시미츠에게 계속 장군(王手)을 부르지 않으면 즉각 패배한다는 낭떠러지에 몰려 있었다.
"아니, 여기에 계마(桂馬)를 두면, 견제(合駒)는 할 수 없으니 외통수(詰み)죠!"
"안타깝지만, 그래서는 장기말(駒)이 하나 모자란다. 자, 이렇게 도망치면 다음 장군은 부를 수 없지"
"크으으으윽"
장기판을 핥을 듯 쏘아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장군을 부를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수가 비게 되면 그 후에는 아시미츠의 장군 연타를 막아내지 못하고 패배(投了)하게 된다.
"졌어요. 이 녀석한테 속았네요…… 에잇"
패배를 선언하는 말을 하고 고개를 숙인 시즈코였으나, 지는 것은 분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승패를 가른 아시미츠의 '은(銀)'을 향해 자신의 '보(歩)'를 손가락으로 튕겨 날렸다.
"그만둬라"
튕겨나간 장기발을 아시미츠가 잡아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 솔직히 태도를 고친 시즈코에 대해 아시미츠 주도로 복기(感想戦)를 하여, 각각의 국면에서의 최선의 수를 모색했다.
그게 끝나자 장기판과 장기말을 치우고, 아시미츠는 완전히 식어서 미지근해진 차로 목을 축였다.
"다음은 지지 않아요. 오랜(積年) 굴욕을 풀거에요!"
"그렇게 말하지만 꽤나 패배가 쌓여 있다. 감정에 내맡기지 말고 패한 원인을 연구해서 정진해라"
"내가 장기(将棋)를 가르쳐 줬는데!!"
"뭐, 그건 나이를 괜히 먹은 건 아니라는 거지"
시즈코가 리턴 매치(再戦)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다시 장기판을 되돌려놓고 장기말을 늘어놓았다. 시즈코다 자신의 장기말을 늘어놓은 후, 후리고마(振り駒, ※역주: 일본 장기에서, 선수(先手)·후수(後手)를 정하기 위해 세 개 또는 다섯 개의 ‘歩’를 장기판 위에 던지는 것)를 하여 선수를 정했다.
"그렇지, 새 집으로 옮긴 이후 저택 안이 시원해졌구나"
이번에는 시즈코가 선수를 잡아, 서로 장기말을 두는 소리만 나고 있을 때 문득 아시미츠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전의 시즈코 저택에서는 부지(敷地) 면적에 비해 물건이 많아서, 어수선(雑然)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새 집으로 옮긴 이후에는 고용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인지, 세세한 곳까지 눈이 가서 정리정돈이 철저하게 이루어진 느낌이 있었다.
"5S를 가르쳐서 철저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PDCA 사이클 같은 건 아직 무리겠지만, 5S는 기본이니까요"
5S란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서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슬로건이다.
"정리(整理), 정돈(整頓), 청소(清掃), 청결(清潔), 예절(躾)의 5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어, 로마자로 표기하면 모두 머릿글자가 S가 되기에 5S라고 부른다 (※역주: 정리 - seiri, 정돈 - seiton, 청소 - seisou, 청결 - seiketsu, 예절 - sitsuke).
5S란 특별한 이념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명확히 하고,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로 임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기업에 따라서는 항목을 더욱 추가하여 7S나 10S로 하는 경우도 있다.
시즈코는 이 가장 기본적인 5S를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철저하게 주입시켰다.
매일 아침 사훈(社訓)을 외우게 하는 경영자처럼, 5S를 확인하게 하는 시간을 각 식사 전에 두고, 암송할 수 있으면 반찬이 하나 늘어난다는 눈에 보이는 사탕을 주었다.
이건 젊은 사람일수록 즉각적인 효과가 있어서, 고용인들의 업무 수행에 대해 아야나 쇼우에게서 듣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우수자를 모두의 앞에서 칭찬했다.
5S를 철저히 하면 시즈코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수 있다고 하여, 모두가 경쟁하듯 5S를 배우고 또 실천했다.
이 덕분도 있어, 새 집에서는 설거지칸(洗い場)에서 물에 담궈둔 채로 놓여있는 식기(食器) 등도 보이지 않게 되고, 뚜껑이 열린 상태인 큰 상자(長持)도 자취를 감추었다.
확실히 정리정돈이 구석구석까지 미친 일터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도 있어, 사소한 실수나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금은 더욱 효율이 좋은 정리정돈법을 모색하여, 축적된 노하우를 체계화시키는 데까지 이르러 있었다.
"읽고쓰기와 주판에 더해, 이런 생활의 기초를 가르치면 다른 집에서 일할 때도 도움되니까요"
"이제는 시즈코의 도서관(図書館)에서 책을 읽는 하녀도 있는 모양이더군"
당초에는 많지 않았던 장서(蔵書)도, 수집이 계속됨에 따라 방을 압박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한 장의 미농지(美濃紙)를 둘로 접어 철하는(綴じる), 봉철(袋綴) 식의 소위 말하는 화장본(和装本, ※역주: 일본 재래식으로 제본한 책)으로 책을 관리하기로 했다.
크기도 형식도 제각기 다른 두루마리(巻物)나 종이 뭉치(紙束)를 정리해서 모아, 규격화된 미농지에 등사판 인쇄하여 실로 철했다. 원본은 창고에 보관하고, 복제본에 일련번호(連番)를 붙여 목제 책장에 꽂아두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서고(書庫)라고 불렸으나, 시즈코가 평소에 도서실(図書室)이라고 불렀기에, 언젠가부터 도서실이라는 호칭이 퍼지게 되었다.
"학습의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해요. 적성이 있는지는 본인에 달렸지만"
"배운 것은 헛되지 않지. 지식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재산이 되니까 말이다"
시즈코의 말에 아시미츠는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자(従者)들은 새해맞이 준비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주인인 시즈코는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다. 오랜만에 책이라도 읽으려고 그녀는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즈코 님"
도서실에는 선객(先客)이 있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에서 바쳐진 인질로서 머물고(逗留) 있는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 훗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이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더니, 나무 책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시즈코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한 후 말했다.
"최근에는 도서실의 터주(主)로 불리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예. 이곳에는 고금동서(古今東西)의 책들이 모여 있어, 모두 읽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돈을 뿌려서 여기저기서 긁어모았으니까. 돈이 꽤나 들었지만, 그에 걸맞는 수집은 되었다고 생각해"
"장서의 양만 따진다면 승원(僧院) 쪽이 많겠죠. 하지만, 양과 질이 전혀 다릅니다. 이만큼 넓은 범위에 걸친 영지(叡智)가 집약되어 있는 장소는 이 일본 전체를 찾아봐도 이곳 이외에는 없겠지요"
"그렇게 말해주면 모은 보람이 있네"
"게다가 일부를 제외하고 그 대부분을 무료로 개방하다니, 처음에는 제정신인가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용하면서 그 의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흐ー음, 그 의의라고 하면?"
"모두가 이곳에서 지식을 얻으면, 오다 가문 전체의 교양이 높아집니다. 아랫사람이 공부하고 있는데 윗사람이 배우지 않아서는 본보기가 서지 않지요.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공부에 힘쓰게 되어, 오와리 전체에 지혜가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요"
"꽤나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된 모양이네"
"다만, 남만의 책은 난해하여, 일본의 언어로 고쳐 쓰여져 있음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필기체에서 인쇄용의 블록체로 고쳐서 그걸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거야. 원본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서 나도 못 읽을 정도지"
"저것도 읽기 쉽게 되어 있는 것입니까……"
키헤이지는 아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남만인인 코타로(虎太郎)가 해독해주지 않으면 그런 독특한 글씨(くせ字)는 구별할 수 없어"
인질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즈코의 시원스런 태도에 키헤이지도 긴장이 누그러졌는지, 꽤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란 감성으로 쓰여진 책에는, 일본의 책에는 없는 재미(趣)를 느낍니다. 가능하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남만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으ー음, 남만어 사전도 만들고는 있지만 말야. 다만, 아무래도 사본으로 만들지 않은 원서는 폐가(閉架) 서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열람하려면 주상의 허가가 필요하니까 대출은 무리려나?"
시즈코의 말대로, 그녀의 도서관의 폐가 서고에는 현대에서 말하는 희귀본(稀覯本)이 산더미처럼 잠자고 있었다.
예를 들면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1543년에 출판한 '천체(天球)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판본(初版本).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ò di Bernardo dei Machiavelli)의 '군주론(君主論)'이나 '전술론(戦術論).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의 '우신예찬(痴愚神礼賛)' 이나 '교정판(校訂版) 신약성서(新約聖書)'.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발표했다고 하는 '95개조 반박론(論題)' (※역주: 면죄부의 능력과 효용성에 관한 토론).
155년에 리용(Lyon)의 마세 보놈(Macé Bonhomme)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고 하는 노스트라다무스(M. Michel Nostradamus)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집(Les Prophéties de M. Michel Nostradamus)'의 초판본 등이다.
개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수고(手稿, ※역주: 손으로 쓴 원고)라는, 현대에서는 유실된 것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진위 여부(真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2만 페이지나 될 듯한 방대한 자료가 만에 하나 진품일 경우, 유실되는 것은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한 시즈코가 사들인 것이다.
그밖에도 카톨릭 교회가 위험시하고 있는 서적의 리스트인 '금서목록(禁書目録)'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책들도 있었다.
그러한 책들이 일본으로 반입된 데는, 위정자(為政者)나 종교가(宗教家)들의 타협이라는 배경이 있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는 금서로 지정된 서적은 처분하고 싶다. 하지만, 방대한 자금을 들여 만들어진 책을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아깝다.
가능하다면 들어간 비용은 회수하면서 현물은 어둠 속으로 묻어버리고 싶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거기서 선택된 것이 일본으로의 매각이었다. 비 기독교 국가이자, 왕성한 지식욕과 돈을 아끼지 않는 구매력에 상인이나 선교사들이 앞다투어 책을 가지고 왔다.
통상적으로는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 서적 같은 건 소수의 호사가(好事家)들이 사모으는 정도지만,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매입을 선언했다.
그 결과, 서양에서 반입되는 서적의 대부분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카톨릭 교회로서도 위험한 지식은 처분되고, 대가로서 적지 않은 돈을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쌍방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 시즈코는 서양의 책을 제한없이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을 코타로가 블록체로 옮겨쓴 것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 제판(ガリ切り)되어 등사판 인쇄로 돌려진다.
그렇게 하여 원본과 복제된 인쇄물에 관리번호를 붙이고, 원본과 원어판은 폐가 서고에 보관되고, 일본어 번역판에 관해서도 검열을 받아 문제없다고 판단된 것만이 개가(開架) 서고에 공개되고 있다.
그리고 개가 서고에 진열된 서적이라면, 시즈코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열람이 가능했다.
시녀들은 '침초자(枕草子)'나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등에 열중하고, 소성(小姓)들은 '도연초(徒然草)'를 읽고 내용에 관해 토론했다.
등사판 인쇄에 적합한 얇고 튼튼한 종이를 준비할 수 없는 것과, 진열 공간의 물리적 문제에 의해 여러 권이 있어야 할 책은 항상 누군가의 손에 있어, 순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도 꼽히는 '방장기(方丈記)'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하면 인기가 없었다.
"뭐, 남만의 언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익히면 좋을 거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대환영이니까. 게다가 다른 나라의 사상도 절대 무시할 수 없거든. 환경이 다르니까 모든 것을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개념도 있고 말야"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가지고 돌아온 서적이 놓여 있는 책장에서 한 권을 빼들었다.
이 도서실에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은 암묵적인 룰이 딱 하나 있었다. 새롭게 도서실에 진열된 책을 최초로 읽는 것은 시즈코라는 룰.
그 때문에, 이치죠다니에서 가져와서 복제되기를 기다리는 원서가 진열된 책장은 아무도 손대지 못한 상태로, 시즈코만이 순서대로 빌려서 읽고 있는 상태였다.
"좋아, 오늘은 이것의 대출을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시즈코는 책과 함께 나무패(木札)를 사서(司書)에게 건넸다. 시즈코의 도서실에서 사서를 맡고 있는 것은, 키묘마루(奇妙丸)의 교육 담당이기도 했던 할아범(爺)이었다.
키묘마루가 성인식을 치르고 노부나가 밑에서 활동하게 되자, 그는 감시역(お目付け役)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되었다.
시즈코는 교양도 있고 학문에 조예(造詣)도 깊은 인재를 묻히게 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여, 도서실의 사서로 일하지 않겠냐고 타진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대우는 파격적으로 좋았기에, 할아범은 쾌히 받아들였다. 그 이래, 시즈코의 도서실에서의 대출을 전담하고 있었다.
도서실에서 책을 빌리는 방법은 현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우선 사서에게 신청하여 개인용의 도서실 이용 카드에 해당하는 나무패를 받는다. 빌리고 싶은 책을 대출대까지 가져가서, 자신의 나무패와 함께 제출한다.
사서인 할아범이, 책의 관리번호를 나무패와 대장(台帳)에 기입하고, 대장에는 추가로 대출 날짜와 대출받은 사람을 기입한다. 나무패는 사서가 맡아서 도서실에서 관리하고, 책을 반납하면 나무패를 돌려준다.
책을 험하게 다루거나 훼손하거나 하면 피해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기입을 마친 후 할아범은 시즈코에게 책을 건네주고, 나무패를 벽에 설치된 대출패 보관함에 끼워넣었다.
"그럼, 나는 실례할게. 너무 몰두하지 말고 가끔은 바깥 공기를 쐬는 것도 중요해"
책을 받아든 시즈코는, 독서에 집중하는 키헤이지에게 말을 건 후 도서실을 나왔다. 책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귀에 그녀의 충고가 들렸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책을 안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도중, 시즈코는 어디에 잠깐 들리기로 했다.
"안녕? 잘 되어 가요?"
"어이쿠, 주인님. 웬일로 직접 오셨습니까. 손으로 더듬어가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코타로가 관리하는 와인 양조장(醸造蔵)이다. 양조장이라고는 해도 부지 대부분이 저장 공간으로 이용된다.
와인은 레드, 화이트, 로제의 세 종류가 있으며, 주요 제조 공정은 공통된다. 레드 와인은 껍질째로 담그고, 화이트 와인은 껍질이나 씨를 제거하고 발효시킨다.
로제 와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제법이 존재하지만, 코타로는 세녜(Saignee) 방식이라고 불리는, 도중에 껍질을 제거하고 발효시키는 제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수확된 코우슈(甲州) 포도는 옅은 적자색(赤紫色)의 껍질을 가지고, 과실은 부드러운 인상의 연분홍색(薄桃色)을 띠었다. 신맛은 약하고 단맛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와인 제조에 적합하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서양에서 와인 제조의 권익은 교회가 쥐고 있어, 그들은 한결같이 포도밭을 개간해서 양조 기술을 갈고닦았다.
개중에는 교회를 찾는 순례자들에게 와인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어,이것이 선술집(居酒屋)의 원조라고도 전해진다. 또, 현대에서처럼 와인을 병입(瓶詰め)하여 코르크로 마개를 하게 된 것은 17세기 말의 일이다.
그런 배경도 있어, 교회의 비의(秘儀)에 속하는 와인의 제법은 비밀로 지켜져, 와인 그 자체라면 몰라도 포도의 씨앗이나 묘목에 이르면 즉시 반출이 어려워진다.
예수회에 요청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전망이 보이지 않아, 일본에서 와인 양조를 하려면 코우슈 포도를 쓸 수 밖에 없었다.
"통에 넣었다는 건 지금부터 숙성하는 거에요?"
"떡갈나무(樫)로 된 작은 통에서 발효를 했는데, 고향의 오크(Oak)와는 달라서 어떤 향이 붙을지 모르겠습니다. 맛을 보았을 때는 약간 싱거운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코타로가 담근 것은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
우선 수확된 포도 열매를 송이(房)에서 한 알씩 떼어낸다. 이 때 포도를 씻으면 표피에 붙어있는 효모균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씻지 않도록 한다.
다음으로 포도 열매를 가볍게 압착해서 과즙을 짜내고, 준비한 작은 통에 통째로 옮겨서 발효 공정으로 들어간다.
그 후에는 하루에 몇 번 저어주어 곰팡이가 슬지 않게 하면서 몇 주일에 걸쳐 발효시킨다.
어느 정도 발효가 진행된 단계에서, 세녜(프랑스어로 피빼기를 의미한다)를 하여, 액체 속에 껍질이나 과육, 씨앗의 비율을 높여 응집감(凝集感)을 낸다.
이렇게 추출된 부분이 레드 와인이 되며, 남은 부분은 로제 와인으로서 다음 공정으로 진행된다.
여기까지를 1차 발효라고 하며, 1차 발효가 끝나면 과즙만을 추출하고, 남은 껍질이나 씨앗에 강한 압력을 가해 압착한다. 이것들의 혼합물을 다시 알코올 발효시킨다.
이게 끝나면, 저장용의 통으로 옮겨서 숙성시킨다. 여기까지의 공정을 2차 발효라고 한다.
이 후에는 숙성 기간이 지남에 따라 통의 하부에 앙금(澱)이라 불리는 다양한 침전물이 모이기 떄문에, 앙금빼기(澱引き)라는, 위쪽의 맑은 부분(上澄み)만을 다른 통으로 옮기는 작업을 몇 번 한다.
숙성을 마친 와인은 남은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과되고, 마지막으로 병입을 한다.
하나같이 단순한 작업이지만,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이나 숙성시키는 통의 재질, 통의 가공처리나 숙성시키는 기간 등에 따라 와인의 맛은 변화한다.
같은 와인이라도 숙성 없이 마시는(若飲み) 것과, 장기간의 숙성을 거친 후 마시는 것은 다른 풍미를 보인다.
와인을 마시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으로서 디캔터(decanter)를 들 수 있다. 가게 등에서 보틀(bottle)을 주문하면, 탁상용의 용기에 옮겨담아준다. 이 용기를 디캔터라고 부른다.
엄밀히 말하면 '카라페(carafe)'와 '디캔터'의 두 종류가 있으며, 각각 용도가 다르지만, 여기서는 디캔터만을 다루기로 한다.
와인을 디캔터에 옮겨담는 것을 디캔터쥬(décantage, ※역주: 디캔팅(decanting))라고 부르며, 주로 침전된 앙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다.
병입 후에도 와인의 숙성은 계속되어, 그 과정에서 색소 성분이나 타닌(Tannin)이 결합하여 앙금이 된다. 이 앙금은 와인의 맛을 크게 해치기 때문에, 일부러 옮겨담는 것으로 앙금을 제거하는 것이다.
장기간 숙성된 빈티지(vintage) 와인은 디캔터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단, 와인의 종류에 따라서는 디캔터에 옮기면 매력을 잃는 경우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잘 되면 맛있는 와인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피 같은 색상이 기피될지도 모르겠지만요"
"팔리지 않으면 제가 책임을 지고 소비할테고, 남만인들에게 줄 선물도 되겠지요"
"부디 과음에는 주의해 주세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몸이 나빠지기 전에 취해 쓰러지니까요"
"그건 그거대로 감기 같은 거에 걸리니까 걱정인데요"
"혼자서 마시는 건 자제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이 이상 집요하게 말해봤자 역효과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그를 신용하기로 했다.
"뭐, 적당히 마시세요. 나는 마실 수 없지만, 주상께서는 와인에 흥미를 가지신 모양이니까요"
"숙성이 끝난 단계에서 잘 만들어진 것을 골라 헌상하겠습니다"
"맡기겠어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발길을 돌려 와인 양조장을 나갔다.
미노와 오와리의 시장에는 소량이지만 노부나가의 신 화폐(新貨幣)가 유입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라가질 못해, 시장에서는 혼재되어 이용되고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동화(銅貨)의 유입에 의해 약간씩이기는 해도 아전(鐚銭)이 회수되기 시작하여, 시장에서 화폐의 열화(撰銭)에 기인하는 소동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폐의 명칭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노부나가였으나, 가장 친숙한 동화가 종래의 영락전(永楽銭)과 마찬가지로 원형에 구멍이 뚫려 있었기에, '앞을 볼 수 있다', '장사의 운(円, ※역주: '원(동그라미)'이라는 뜻인데, 운수(縁)라는 한자와 일본어 독음이 같음)이 좋아진다'라고 하여 언제부터인지 엔(円)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장의 움직임과 별개로, 시즈코는 새 집 옆에 새로운 시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숙(私塾), 현대에서 말하는 사립학교(私立学校)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도제(徒弟) 제도처럼 선배가 후배에게 가르쳐 전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나, 선배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는 후배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선배들은 본래의 업무가 소홀해지고 수배에 대해서도 교육의 질(度合い)에 편차가 생긴다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거 학교를 건축하여, 전문의 교육기관으로서 독립시키기로 했다.
학교라고는 해도 수용 인원은 백 명도 안 되고, 단층집(平屋) 구조인데다 방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단, 교실 이외에도 특수 교실로서 도서실, 기술실(技術室), 가정과실(家庭科室), 음악실(音楽室), 미술실(美術室), 무도장(武道場)에 운동장(運動場) 등, 현대의 중학교 정도의 설비는 갖춰져 있었다.
뭐든지 맨땅에 박치기(手探り)하는 식으로 시작한 학교이기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시즈코의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만으로 한정되었다.
교육 내용은 기본적인 문자의 읽고 쓰기에 더해, 주판(算盤)을 이용한 사칙연산(四則演算)까지를 필수로 쳤다.
이 밖에도 필수 기술로서 요리에 재봉, 청소에 세탁 같은 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가르쳤다.
선택과목으로서, 희망자에게는 농기구 등의 정비나 수리, 악기의 연주나 악보(譜面) 보는 법, 회화(絵画)나 서예(書道), 꽃꽂이(華道), 다도(茶道) 등의 예사(芸事) 등도 배울 수 있다.
(무예에서 나기나타(薙刀)의 지도(指南)가 가능한 사람은 쇼우 짱이 소개할 사람이 있는 모양인데…… 자, 검술 사범(指南役)은 누구로 할까.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는 아직 멀었고, 츠카하라 보쿠덴(塚原卜伝)은 벌써 죽었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 ※역주: 코우이즈미 노부츠나라고도 함)은 무리겠지. 그렇게 되면, 역시 카미이즈미 노부츠나에게서 면장免状)을 받은 야규 무네토시(柳生宗厳) 밖에 없나. 지금은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를 섬기고 있을테니 어려우려나…… 언제 한 번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상담해 볼까)
"오, 시즈코. 여기 있었냐…… 아,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서 돌아보았다. 노부타다(信忠)가 말 위에서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말에서 내리려고 하는 시즈코를, 노부타다는 손으로 제지했다.
"이쪽에 얼굴을 비추다니 웬일이야?"
"가끔은 시즈코의 얼굴을 봐야지"
그런 말을 하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에게 힐끗힐끗 시선을 던졌다.
그 모습을 볼 때 뭔가 좋은 일이 있었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기는 꺼려지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달라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일부러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토라져버려도 귀찮다고 생각하여 양보하기로 했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훗훗훗, 알아보겠냐? 꼭 알고 싶다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없지"
(귀찮네)
노부타다의 텐션이 올라갈수록 시즈코의 텐션은 끝없이 하강했다. 하지만, 기분이 한껏 좋아져 있는(有頂天) 노부타다에게는 시즈코의 태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듣고 놀라거라, 시즈코! 나는 연초부터 아버님께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총대장으로 임명될 것이 결정되었다!"
"헤ー, 잘됐네"
"야! 좀 더 기뻐해줘도 되잖아!"
"응, 잘됐네. 착하다 착해"
"그만두지 못하겠냐! 난 이제 곧 20살이란 말이다! 머리를 쓰다듬는다고 기뻐할 나이가 아냐!"
머리를 쓰다듬자 노부타다가 창피한 나머지 외쳤다. 그 목소리에 놀란 말이 움직이려 했기에, 고삐를 당겨 제동을 걸었다.
그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노부타다의 머리를 시즈코는 실컷 쓰다듬었다.
"그래서, 토우고쿠 정벌은 언제부터 시작하는데?"
노부타다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멈추더니 시즈코는 토우고쿠 정벌로 이야기를 돌렸다.
토우고쿠 정벌이라고는 하나, 상대는 타케다라고 생각해도 좋다. 우에스기는 이미 신하가 되었지만, 그게 영향을 끼쳤는지 타케다는 점점 더 태도를 경직시켜 오다 측과의 교섭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노부나가로서도 타케다의 태도는 이미 계산에 넣고 있어, 반복되는 교섭은 '대화는 충분히 했다'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나로서는 새해가 되자마자라도 군을 출동시키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사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움직이지 않고 천천히 정보를 모아야해. 특히 적 측의 성의 배치나 보급로, 수원지(水源地)나 하천의 위치 등도 알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 그런 정보들을 입수한 후에 필살의 작전을 짜서 단번에 박살내는 게 이상적이다. 물론, 타케다가 움직이지 않는 게 전제이지만 말야"
"일단은 쳐들어가고 현지에서 작전을 생각한다던가 하는 소릴 했으면 따귀를 때려서라도 말릴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네"
"아무래도 예전의 단기 돌격(単騎突撃)같은 짓은 안 한다. 필승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일격에 처치해야 해"
"도쿠가와, 우에스기와의 연대도 생각해야지"
"그래. 우에스기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아도 돼. 쳐들어갈 기색을 보이기만 해도 타케다로서는 병력을 쪼개야 하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건?"
"호죠(北条)다. 지금도 여전히 놈의 기치(旗幟)는 정해지지 않았어. 하지만, 적이 된다면 타케다과 함께 박살낼 뿐이다"
"카츠요리의 부인은 호죠 사람이니까. 그걸 고려해도 호죠는 움직일 수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걸로 상관없다. 타케다가 멸망하면 호죠가 뭘 어떻게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미 상황은 뒤집을 수 없지. 호죠만 쳐부수면 남는 건 오합지졸들이다. 그 후에는 천천히 압력을 가하면 되지.
이미 머릿속에는 큰 틀의 계획이 보이고 있는지, 노부타다의 태도에는 자신이 넘치고 있었다. 실제로 노부타다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피아의 전력을 생각하면, 신중하게 계획을 진행하여 확실히 타케다만 멸망시킨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든 된다.
오다에게 투항하면 좋고, 아니면 적으로서 쳐부술 뿐. 노부나가의 수법을 흉내내고 있지만, 정석(定石)에 따른 것이며 거기에 크게 잘못된 점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기묘한 불안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다.
(……그만두자. 근거없는 불안으로 손을 멈추면 기회를 잃으니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을때야말로 위태롭다. 호사다마(好事魔多し)라는 옛말이 있듯, 일이 지나치게 생각대로 잘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불안을 털어낸 후,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잘만 하면 토우고쿠는 몇 년 안에 평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랬으면 좋겠군"
시즈코의 말에 노부타다는 태평하게 웃었다.
'취미번역 >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4 - 1574년 1월 하순 (5) | 2019.11.09 |
---|---|
113 - 1574년 1월 하순 (4) | 2019.11.07 |
111 - 1573년 10월 중순 (8) | 2019.10.27 |
110 - 1573년 8월 중순 (7) | 2019.10.24 |
109 - 1573년 8월 중순 (8) | 2019.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