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10 1573년 8월 중순



"히익! 어, 어째서 네놈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아사쿠라(朝倉) 마고하치로(孫八郎) 카게아키라(景鏡)는 공황 상태에 빠져 외쳤다. 그의 눈 앞에는 참수되었어야 할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가 서 있었다.

요시카게의 등 뒤에는, 그의 측근인 토리이(鳥居)나 타카하시(高橋)도 서 있었고, 다시 그 뒤에 코토쿠인(高徳院), 코쇼쇼(小少将)를 필두로 부인(妻)들이 서 있었다. 모두의 표정에는 배신자에 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카게아키라는 아까까지 수다스럽게(饒舌) 떠들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요시카게를 배신하고, 아사쿠라 가문을 휘어잡은 후에 코토쿠인 등도 추방하고, 이치죠다니(一乗谷)를 선물로 오다에 투항할 생각이었는지를.

요시카게들은 그 자초지종(一部始終)을 옆방에서 듣고 있었으며, 도중에 자리를 뜬 미츠히데(光秀)에 이어 방에 들어온 것이다.


카게아키라는 오다 가문에게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이미 버림받았다.

미츠히데의 유도에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배신을 자랑스럽게 떠벌이는 모습에 실망하고, 자신들이 직접 처단할 정도의 가치도 없다며 자리를 떴다.


"뭐, 뭐냐 그 눈은! 네놈 때문에 이치죠다니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물론 들었다. 이 전쟁 뿐만 아니라, 시종 결단을 내리지 못한 우유부단함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지. 약육강식의 난세에서 예능(芸事)에 열을 올린 어리석고 암울한 당주, 그야말로 맞는 말이다"


"그, 그렇다! 네놈의 우유부단함이 오다에게 이득을 보게 한 것이다! 싸움을 싫어하고, 냉혹한 현실에서 눈을 돌린 머저리(腑抜けもの)이다! 백 년의 영화를 자랑한 이치죠다니를 멸망시킨 것은, 요시카게! 네놈이다!"


요시카게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것을 보고, 카게아키라는 자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요시카게를 통렬하게 비난했다.


"네놈 말대로, 후세에 나는 암군(暗君)으로서 이름을 남기겠다"


그러나, 라고 중얼거리며 요시카게는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그에 반해 카게아키라는 빈손이었다. 조금이라도 미츠히데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고 스스로 무장해제를 자청한 결과였다.


"네놈이 배신한 것은 아사쿠라 가문 뿐만이 아니다. 네놈 자신의 목숨만을 아까워하여 지켜야 할 백성들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우매한 나에게 정이 떨어져 저버리는 것은 상관없다. 내 목을 선물로 삼아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했다면 다들 네놈을 용서했으리라……"


"히, 힉! 자, 잠깐! 이곳은 오다의, 아케치(明智) 님의 진이다! 여기서 나를 베면, 네놈의 처자도 연좌(連座)를 면하지 못한다!"


"애초에 다들 각오한 바이다!"


"큭! 미쳤구나"


카게아키라는 사지(死地)를 벗어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활로(活路) 따윈 없었다. 게다가, 이만큼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 오다 군의 병사들이 달려오는 기색도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봤자 구원은 오지 않는다. 애초에, 이 자리는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준비한 카게아키라 단죄(断罪)의 자리였다.


"카게아키라, 나도 곧 따라갈 것이다. 지금부터 고난을 받을 에치젠(越前)의 백성들에게 지옥에서 계속 사죄하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칼이 내려쳐졌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쳐 비스듬하게 베인 카게아키라는, 멍하니 선 채로 상처를 부여잡으며, 쿨럭 하고 피를 토하더니 쓰러졌다.

아사쿠라 가문을, 나아가서는 에치젠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생존을 꾀한 카게아키라의 최후는, 배신자의 말로다운 가여운 것이었다.


"끝났군요"


카게아키라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기다려 미츠히데가 돌아왔다. 미츠히데가 상좌(上座)에 앉자, 요시카게는 칼을 칼집에 넣고, 허리에서 풀어 멀리 던져버린 후 엎드려 절했다.


"배신자의 처리도 끝났습니다. 이제 미련은 없습니다. 제 목으로 이 전쟁의 결판을 짓도록 하지요"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어깨의 짐이 덜어졌습니다. 이치죠다니 백 년의 영화를 수호하는 아사쿠라 가문 당주. 재주 없는 몸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눈을 돌려, 예능에 넋을 뺀 댓가가 이것이군요. 저를 따라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면목이 없습니다만, 겨우 어깨의 짐이 덜어져서 안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시카게의 말에는 아무런 현기(衒氣)도 없었다.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크게 보이려 항상 허세를 부리던 어깨의 힘이 빠져, 평온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에치젠의 지보(至宝), 이치죠다니는 잿더미로 변하겠지요. 에치젠의 백성들은 아사쿠라 가문을 섬긴 벌을 받고, 당신은 그것을 지켜본 후 참수되게 됩니다. 아사쿠라 가문 당주 최후의 의무, 훌륭하게 수행하십시오"


예전에 주군으로 섬겼기 때문인지, 미츠히데의 목소리에는 애절함이 있었다. 하지만, 요시카게가 죽지 않고서는 이 싸움의 결판은 바랄 수 없다. 어떻게 손을 쓰더라도 그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목을 이치죠다니가 보이는 장소에 묻어 주십시오. 설령 잿더미가 되어서라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그것은……"


미츠히데는 망설였다. 이치죠다니를 불태워버린 후, 그 계기가 된 요시카게의 묘(墓所)가 가까이 있을 경우 백성들의 증오는 어디로 향한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어떤 죄를 지어도 죽으면 다들 부처(仏)라고는 하나, 곤경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런 입바른 소리가 통용될 것인가, 묘가 파헤쳐지고 죽은 후에도 모욕받는 것이 아닐까 하고 미츠히데는 생각했다.


"쭉은 후, 이치죠다니를 지켜보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겠다고 백성들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달게 받아들이지요. 이치죠다니의 멸망을 초래한 저야말로 그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거기까지 각오하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츠히데가 부탁을 받아들인 것으로, 아사쿠라 가문의 운명이 정해졌다. 요시카게는 이치죠다니의 멸망 후에 참수, 토리이와 타카하시는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겠다(菩提を弔う, ※역주: 네이버 일한사전에서 검색되는 표현이긴 한데, 여기서는 남은 평생 고인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요즘 흔히 쓰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하는 단순한 인사말과는 다름)고 했다.


"훌륭한 각오였습니다. 이 어미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요시카게의 등 뒤로 코토쿠인이 말을 걸었다. 죽으러 가는 아들을 전송하는 어미의 마음 속은 어떠할까. 표정은 감출 수 있어도 목소리까지는 다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코토쿠인은 속세를 떠나 남은 평생 요시카게의 명복을 빌며 지내게 된다.

코쇼쇼나 요히라(四葩)도 출가하여 비구니(尼)가 되어, 마찬가지로 명복을 비는 것을 택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희망할 경우 원하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었다.

히데요시(秀吉) 등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약한 대응이지만, 미츠히데는 결판이 난 지금 쓸데없는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형(刑)의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 마지막 이별(別離)을 준비하십시오"


미츠히데의 선언으로 예전의 주종(主従)은 결별(決別)했다. 요시카게들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아사쿠라 가문의 조상 대대로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인 신게츠지(心月寺)에서 통고(沙汰)를 기다리게 되었다.


이치죠다니의 외연(外縁)부에 설치된 임시 진에서 미츠히데로부터 경위를 들은 시즈코는, 저물어가는 낙일(落日)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남은 건 아자이(浅井) 가문 뿐…… 아자이 가문이 멸망하면, 전국시대는 종언(終焉)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


아사쿠라는 멸망하고, 아자이도 곧 뒤를 따른다. 타케다(武田)는 이미 시간 문제이며, 우에스기(上杉)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었다.

남은 대국은 아키(安芸, 현재의 히로시마(広島) 현(県) 서부(西部))의 모우리(毛利)와, 큐슈(九州)를 나눠먹고 있는 류조지(龍造寺), 시마즈(島津), 오오토모(大友) 등 세 가문을 들 수 있다.

시코쿠(四国)의 유력자(雄), 쵸소카베(長宗我部)는 미츠히데를 통해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어 시코쿠 통일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상, 쵸소카베도 노부나가에게 복종하게 된다.

토우고쿠(東国)의 호죠(北条)는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고 있찌 않지만, 타케다가 쇠퇴하고 우에스기도 포섭된 이상, 거취의 판단이 강요되어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몇 년만 지나면 오다 가문에 의한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어)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라는 조건부이기는 하나, 시즈코는 전국시대의 종언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치죠다니가 미츠히데의 손에 의해 함락되고 아사쿠라 가문이 멸망했다는 소식은 아자이를 공략중이던 히데요시의 진에도 전해졌다.


"지금이 호기(好機)다! 책략(調略)과 진군을 밀어붙여라! 큰 도박이지만, 여기가 승부의 갈림길이다!"


아사쿠라 가문 멸망의 소식에 적과 아군이 모두 동요하는 가운데, 히데요시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노부나가에게 판단을 묻지 않고 독단으로 오다니 성(小谷城)으로 단번에 치고올라갔다.

후에 '오다니 성 하룻밤 함락(一夜落とし)'이라고 칭해지는, 히데요시의 약진(躍進)을 결정한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한편, 아자이 쪽은 전투를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아자이의 편을 드는 자들은 없었고, 유일한 희망(頼みの綱)이었던 아사쿠라 가문도 스러졌다. 아자이는 이미 가라앉는 배가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오다니 성을 지키는 방어시설에서 병사들이 도망쳐, 히데요시의 쾌진격을 막는 자들은 없었다.


히데요시는 오다니 성의 혼마루(本丸, ※역주: 예전에 등장했을 때는 본채라고 의역했으나, 여기저기 일본 성 특유의 구조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등장하는 관계로 여기서는 혼마루라는 독음을 적었음)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자, 히데나가(秀長)가 이끄는 책략조(調略組)와 히데요시 자신과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이끄는 공성조(城攻め組)로 군을 나누었다.


"단숨에(一気呵成) 치고 올라가라! 시간을 주면 다른 자들도 따라오게 된다. 지금이라면 공을 독점할 수 있다!"


히데요시는 병사들을 고무하면서 오다니 성을 공략했다. 그 때, 시즈코에게서 빌린 텟포슈(鉄砲衆) 250이 한층 이채(異彩)를 뿜고 있었다.

아자이 측의 철포부대(鉄砲部隊)가 사정거리 밖에서 총격을 받고 차례차례 쓰러졌다.

화승총(火縄銃)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직진성이 가져오는 긴 사정거리와, 미리 부대가 숨어있는 장소를 알고 있는 듯 선정된 위치로부터의 저격이 맹위를 떨쳤다.

텟포슈에 의한 선제의 일격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옆에서 히데요시의 선봉대(先駈け)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 분쇄해 갔다.

아자이 측도 다수의 '쿠니토모즈츠(国友筒)'라 불리는 화승총을 갖추고 있었으나, 발포하기 전에 사수가 죽음을 당했기에 의미가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히데요시의 군세가 시미즈다니(清水谷)의 급경사로부터 쿄고쿠마루(京極丸)를 급습하여 함락시켰으나, 이 전투에서는 산노마루(山王丸), 코마루(小丸) 등 두 개의 곡륜(曲輪)을 정면에서 돌파하여, 겨우 반나절만에 쿄고쿠마루에 접근했다.


"아마도 당주인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는 혼마루에 있을 것이다! 먼저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 본채를 고립시킨 후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말을 들은 나가마사(長政)는 반사적으로 부정할 뻔 했다.


(아니, 아버님은 쿄고쿠마루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설명하기 힘든 부자(親子)의 직감으로, 나가마사는 아버지는 히사마사가 쿄고쿠마루에 있을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책략조의 히데나가가 나카마루(中丸, ※역주: 독음이 츄우마루인지 나카마루인지 확실하지 않음)에서 합류해왔다.

나카마루를 지키는 아자이 가문 중신인 아자이 시치로 이노리(浅井七郎井規), 민타무라 사에몬노죠(三田村左衛門尉)、오오노기 시게토시(大野木茂俊) 등이 변절하여 히데나가의 무대를 들여보냈기에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쿄고쿠마루에 도착했다.

히데요시의 군세는 쿄고쿠마루의 출입구인 방어시설, 코구치(虎口)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 좁은 넓이 때문에 숫자의 유리함을 살리지 못하여, 히데요시 측에도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합류한 히데나가는 책략의 경과 보고를 겸하여, 알아낼 수 있었던 정보를 히데요시에게 귀엣말로 전달했다.


"형님, 아카오(赤尾) 미마사카노카미(美作守)는 혼마루에 틀어박혔다고 합니다"


아카오 미마사카노카미 키요츠나(清綱)는 아자이 가문 중신 중의 중신이다.

아카오에 카이호 츠나치카(海北綱親), 아메노모리 키요사다(雨森清貞, 아메노모리 야헤에(雨森弥兵衛)의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음)를 더한 세 명은, 아자이 삼장(三将)으로 불리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아카오가 쿄고쿠마루 같은 중요 거점을 지키지 않고 혼마루에 틀어박혀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아마도 아자이 나가마사 님의 적자(嫡男)인 만푸쿠마루(万福丸)를 지키고 있는 것이겠지"


"과연…… 히사마사에게는 직계의 후계자, 나가마사 님이 이쪽에 붙었다고 해서 죽이거나 하지는 않겠죠. 분명히 열 살 정도의 어린아이, 차기 아자이 가문 당주로서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치에 맞는군요"


여기서 쿄고쿠마루를 함락시켜버리면 남은 혼마루는 벌거숭이가 된다. 하지만, 쿄고쿠마루와 혼마루 사이에는 폭이 약 25m나 되는 거대한 해자(大堀切)가 가로놓여있다.

히데요시의 진격을 막는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혼마루로부터의 원군이 달려오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턱에 손을 대고 금후의 방침을 생각했는데,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기에 히데나가에게 명령했다.


"아카오에게 만푸쿠마루를 데리고 투항하면 오다니 성의 성주로 삼겠다고 타진해라"


"주상께 상의 없이 성주의 약속은 아무래도 독단이 너무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상관없다! 오다니 성만 함락시킬 수 있다면 주상께서도 용서하실 것이다! 내가 출세할 수 있을지 아닐지의 갈림길(瀬戸際)이다! 어서 책략을 실행해라!"


"네에네에, 사람을 참 부려먹으시는군요 형님도"


히데요시의 기세에 히데나가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쿄고쿠마루는 함락되었다.

병사들에게 조사하게 했으나, 히사마사 발견의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더 참지 못하게 된 히데요시는 먼저 혼마루를 함락시키기로 했다.


"수괴(首魁)인 히사마사는 혼마루에 있다! 쿄고쿠마루를 거점으로 하여 혼마루로 치고 올라간다!"


히데요시의 호령에 병사들이 함성으로 대답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쿄고쿠마루의 북쪽에 위치하는 코마루에서 아자이 히사마사는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코마루는 히사마사가 은거한 후의 거처이며, 나가마사로부터 가문(家督)을 되찾은 히사마사는, 쿄고쿠마루가 공격받고 있다고 듣자마자 코마루에서 출진하여 쿄고쿠마루로 달려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쿄고쿠마루에서 히사마사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나가마사와 엔도(遠藤), 미타무라(三田村)는 쿄고쿠마루의 숨겨진 방에서 히사마사를 발견했으나, 숨겨진 방 자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용하여 그의 존재를 은폐했다.


"……왜 그러느냐, 내 목을 베지 않을 것이냐"


히사마사는, 이 상황에서도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아들을 괴이쩍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이 자리에는 그 외에도 아자이 코레야스(浅井惟安, 후쿠쥬앙(福寿庵)이라는 별명(庵号)을 가진다)와 무악사(舞楽師)인 모리모토(森本) 츠루마츠타이후(鶴松大夫) 두 사람이 있었다.

이제 여기까지라고 각오한 히사마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술잔을 나눈 후 자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직전에 나가마사가 숨겨진 방으로 들어선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 아버님의 참수는 피할 수 없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아버님의 진의를 여쭘고 싶습니다. 어째서 아버님은 완고하게 형님(義兄上)에게 계속 거역하신 것입니까? 타케다(武田)가 패했을 때, 지금부터는 오다의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신 겁니까!?"


"그렇다. 타케다가 패했다고 듣고, 우리들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아자이의 편을 들어 함께 멸망하는 것은 아사쿠라 정도일 거라고도 이해했다"


"그렇다면! 그 때 오다에 투항했다면……"


"그럴 수는 없다!"


나가마사의 말을 끊으며 히사마사가 말했다.


"그것만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오우미(近江)는, 내가 롯카쿠(六角)의 침공을 막아내고, 얼마만큼 좌절과 쓴맛을 보면서도 지켜낸 나라다. 그걸 어떻게 생판 남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나가마사의 질문에 대해 히사마사는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그는 필사적(一所懸命)이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오우미에 집착했다. 그렇기에 오우미를 넘기고 오다의 신하가 된다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었다.


"물론, 이 결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나는 용맹했던 돌아가신 아버지나, 전투에 능한 너와는 대조적으로 전투의 재능이 없었다. 아카오에게는 '천하태평한 세상이었다면 주군께서는 명군이 되셨겠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난세를 살아남을 재주는 없었던 것이다"


히사마사는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난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들인 나가마사라는 것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오우미를 지켰으면 했다. 하지만, 나가마사는 오우미보다도 넓은 세계를 꿈꾸며 뛰쳐나가 버렸다.

고루한 노인(旧弊)으로 변한 자신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조상들이 사랑한 오우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오다니 성을 공격해들어온 무장…… 분명히 하시바(羽柴)라고 했더냐. 그놈의 맹렬한 진격을 보고 깨달았다. 이 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내 멋대로의 행동(我儘)에 마지막까지 함께하려고 한 가신들에게 자유를 명했다. 목숨을 아껴 도망치는 것도 좋고, 나와 함께 싸워 산화하는 것도 좋고, 살아남은 자들을 모아 적에게 투항하는 것도 좋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이다. 아카오에게는, 그놈(※역주: 히데요시)이 책략을 부리면 그에 응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아카오에게는 네 적자인 만푸쿠마루를 맡겨두었지"


"만푸쿠마루가 살아있는 겁니까!"


"멍청한 놈! 이유도 없이 손자를 죽이는 사람은 없다. 만푸쿠마루에게는 아자이 가문을 맡길 생각이었다……"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일별했다. 격렬하게 대립하기는 했으나, 나가마사가 밉다고 손자를 죽일 정도로 노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만푸쿠마루에게 다음 대의 아자이 가문을 맡기기 위해 당주로서 키워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아자이 가문은 오다가 만드는 세상에서 배신자로서 이름을 남기겠지. 너도 이제 아자이라는 성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자이의 망령인 내가 모든 오명을 받아들이겠다!"


그렇게 소리높여 외친 후 히사마사는 나가마사를 떠밀어버렸다. 갑작스런 일에 낙법도 취하지 못하고 나가마사는 등부터 벽에 충돌했다.

폐의 공기가 밀려나와 기침을 하는 나가마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히사마사는 단도를 쥐더니 가로 일자로 배를 갈랐다.


"사루야샤마루(猿夜叉丸)야…… 너는 아자이에 얽매이지 말고 살거라……"


"아……, 아버님!!"


"아자이의 죄와 오명은 내가 짊어지겠다. 너는 내 목을 가지고 아자이의 종언(終焉)을 지켜보아라. 하지만, 죽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누구에게 무슨 소리를 듣던, 너는 살아라"


"아버님……"


나가마사가 달려가기 전에, 아자이 코레야스가 카이샤쿠(介錯, ※역주: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것)으로서 히사마사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히사마사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가마사는 몸을 떨면서 히사마사의 머리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아버님…… 저는 어리석었습니다. 오우미에 고집하는 아버님을, 시세(時世)를 읽지 못하는 고집불통 노인이라고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나가마사는 흘러넘치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고 펑펑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오우미는 할아버님, 아버님이 가신들과 피투성이가 되며 손에 넣은 땅. 롯카쿠를 상대로 대승한 것으로 우쭐해져, 오우미 한 나라에 그칠 그릇이 아니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승리도 아버님이 꾸준히 준비를 해오셨기에 가능했던 것……. 저는 정말로 불효자입니다"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대고 이야기했다.


"저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 조금 싸움에 능할 뿐인 범백(凡百)의 장수인데, 위대하신 형님의 눈에 띈 것으로 자신까지 특별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였는데……"


나가마사는 이를 악물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더니 뺨을 때리며 얼굴을 들었다.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 반드시 이루어 보이겠습니다.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더라도 살아남아, 난세의 끝을 지켜보고, 저 세상에서 아버님께 들려드리지요"


나가마사는 히사마사의 머리에 서원(誓願)한 후, 그 머리를 소중히 천으로 감쌌다.




아자이 히사마사의 할복 후, 아자이 코레마사와 모리모토 츠루마츠타이후도 주군을 따라 할복 자결했다. 주군인 히사마사와 같은 장소에서는 감히 할 수 없다며, 뜰로 내려가서 배를 갈랐다.

나가마사가 직접 두 사람의 카이샤쿠를 맡고, 그들의 목을 엔도와 미타무라에게 맡겼다. 히사마사의 목은 자신이 들고 히데요시가 있는 곳으로 보고하러 갔다.


"히사마사는 자결했나. 혼마루도 곧 함락되겠지. 나가마사 님은 그 목을 주상께 전하러 가시오"


히사마사의 수급이 올라온 것으로 히데요시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가 수급을 취할 필요는 없지만, 아자이의 멸망을 나타내기 위해 히사마사의 목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마사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고 노부나가가 있는 본진으로 향했다. 도중에는 아무도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죽은 자도 산 자도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 본진에 도착했다.


"다들, 자리를 비우도록"


노부나가는 나가마사가 올려든 히사마사의 목을 보고 가신들에게 명령했다. 가신들은 적 대장의 목에 흥분하는 일 없이 숙연하게 진에서 나갔다.


"히사마사의 최후는 어땠느냐?"


"오우미의 국주(国主)에 어울리는 최후였습니다. 아버님과 마지막으로 대화해보고 스스로의 미숙함과 어리석음(不明)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대한 꿈에 취해, 그 패도(覇道)의 진실(中身)을 보지 못했습니다"


"……"


"저로서는 도저히 형님과 나란히 설 수 없습니다. 아버님은, 매사의 표면만을 보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제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그대로 오우미의 국주로 있었다면, 이곳에 목이 나란히 놓여있었겠지요"


자조를 떠올리며 나가마사는 말했다. 노부나가는 그 모든 말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가마사가 모든 것을 토해낼 때까지 기다렸다.


"저는 결국, 무엇도 될 수 없었습니다. 아자이는 아버님이 끝내셨습니다. 저는 그냥 나가마사로서 이 난세의 향방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천명(天命)을 가진다. 네 천명은 패도의 증인(見届け人)이었던 것 뿐이다. 나도 히사마사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방법을 바꿀 수 없다. 자신을 고쳐 바라보고, 이제부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너를 부럽게까지 생각한다"


"설마요! 형님께서 저 따위를 부러워하시다니……"


노부나가의 말에 나가마사는 경악했다. 노부나가는 천하에 손이 닿을 거리에 있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무가(武家)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선망하는 위치에 있다. 그 노부나가가, 나가마사가 부럽다고 말한 것이다.


"나가마사여. 천하의 패도를 가는 자는 고독하다. 누구에게도 약점을 보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할 수 없다. 수많은 쓰레기들(塵芥)로부터의 증오를 한 몸에 받고, 때로는 함께 걷는 가신들에게 죽음을 명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목숨과 뜻(想い)을 맡은 이상, 나는 멈출 수 없다. 나아가는 길 끝이 낭떠러지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멈춰서서, 뒤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할 수 있는 네가 부럽다"


그것은 나가마사가 갖지 못한 시점에서의 말이었다.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의 시선을 깨닫고는, 자조기미로 말을 이었다.


"너는 내 패도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네 주인인 시즈코가 말하는 미래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 녀석은, 나보다 더욱 앞을 보고 있다"


"형님, 그것은……"


"하지만, 시즈코가 어떠한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던,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먼저 일본을 손에 넣는다. 시즈코가 그리고 있는, 끝을 볼 수 없는 꿈(見果て)의 저편이 어디에 있던, 나는 나의 발걸음으로 걷는다. 너도 네 발걸음으로 쫓아와라. 나는, 먼저 꿈의 끝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다"


완곡하기는 하나 노부나가는 나가마사를 배려하고 있었다. 싸움으로 가득한 난세의 끝을 목표로, 같은 길을 걷는 노부나가가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한 것이다.


"형님, 저는 어리석은데다 맥까지 빠졌던 모양입니다. 형님의 패도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벗어나 방관자가 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도망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형님의 말에 각오가 섰습니다. 아무리 꼴사납더라도,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속 발버둥쳐, 형님의 발자국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냐…… 나가마사. 어엿한 무사의 표정이 되었구나. 내가 걷는 길은 험난하다. 각오하고 따라와라"


결연하게 얼굴을 든 나가마사에게 노부나가는 말했다.


"너는 나와 함께 끝까지 꿈을 꾸고, 이치(市)를 행복하게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노부나가는, 드디어 에치젠과 오우미를 장악했다.


"강북(江北) 아자이 옛 영토 전부(浅井跡一職進退)를 하시바 츠쿠젠노카미(筑前守)에게 일임한다"


"이치죠다니의 처리, 아케치 코레토휴우가노카미(惟任日向守)에게 일임한다"


북 오우미(北近江)는 히데요시가 다스리고, 에치젠의 일부는 미츠히데가 통치하게 되었다.

미츠히데는 이미 사카모토(坂本) 일대를 다스리고 있어, 그게 이유이기도 한지 에치젠의 지배지는 약간 작아졌지만, 이걸로 두 사람 모두 10만 석(石)이 넘는 영주(国人)가 되었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모두 신참자(新参者)임에도, 오다 가문을 대대로 섬겨온 후다이(譜代)의 신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시즈코는 지배는 없지만, 막대한 재화에 더해 고서(古書)나 예술품(芸術品) 같은 문물이 내려졌다.

아자이, 아사쿠라가 남긴 문물에 더해, 에치젠이나 오우미의 기술자들 등의 인재도 보수로 하사되었다.

논공행상도 큰 문제 없이 끝나고, 이후에는 귀국하기만 하면 될 터였다.


(뭐지, 이 상황은……)


시즈코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즈코는 자신의 진에서 오른쪽을 미츠히데와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고, 좌측에는 히데요시의 그의 가신들에게 막혀 있었다.

두 유력자(雄)들에게 문자 그대로 샌드위치가 되어 시즈코는 탄식했다. 그들은 쿠로쿠와슈(黒鍬衆)를, 나아가서는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에 협력을 요청하려고 했다.

이 시대, 자신의 지배지에는 거점이 되는 성을 짓는다. 이것은 그 땅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명확히 하고, 내외에 오다 가문의 세력권 안이라는 것을 알리는 시위행위이기도 했다.


"실은 전부터 댁(お前様)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


"핫핫핫, 그거 이상한 우연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시즈코를 끼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는 서로 견제해댔다. 이 무렵 쿠로쿠와슈는 석공(石工) 집단인 아노우슈(穴太衆)도 받아들여, 성곽 건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좋게 말하면 투박(無骨)한, 나쁘게 말하면 실용 일변도의 성을 건축했었다. 그러나, 사카모토 성(坂本城)의 건축에서 실용성은 유지하면서 미관도 겸비하게 되었다.

숙련된 기술이 승화된 결과인데, 사카모토 성은 아름다운 성으로서 일약 천하의 이목을 모았다. 그 이래로, 지배지에 세우는 성은 지배자의 얼굴로서 아름다움도 요구되게 되었다.


히데요시도 미츠히데도 모두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히데요시에게는 첫 성이 된다. 건축에 들이는 기합은 미츠히데보다도 강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츠히데도 에치젠에는 보통이 넘는 집착이 있었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아사쿠라 요시카게 밑에서 10년을 지냈던 땅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인 우위성을 이야기하자면, 동해(※역주: 원문은 日本海)에 접한 에치젠은 츠루가 항구(敦賀港)를 가지기에 동해 주변의 해운(海運)의 요충지로서 주목받고 있었다.

츠루가 항구의 권익 자체는 노부나가가 장악하더라도, 해로에서 육로로 이어지는 도로를 장악하면 얻을 수 있는 권익은 막대하다. 미츠히데에게 에치젠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땅이 된다.


(곤란하네……)


히데요시와 미츠히데 모두 서로 한 발자국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제아무리 쿠로쿠와슈라고 해도 한 번에 두 개의 성을 지을 수는 없다.

무리하게 인원을 쪼개봤자 우열(優劣)이 발생하게 되고, 떨어지는 쪽의 축성을 허용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으면……)


한 달이 지나면, 도로 정비를 담당하던 쿠로쿠와슈의 태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 하지만, 어느 족도 한 달이나 기다린다는 끈기가 필요한 이야기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시즈코! 아직 진에 있었느냐, 마침 잘 되었다"


시즈코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거친 발소리와 함께 노부나가가 진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북 이세(北伊勢)가 소란스럽다. 진압하러 키묘(奇妙)를 보내기로 했다. 시즈코에게는 그 녀석의 보좌를 맡기겠다"


"옛"


기가 막힌 타이밍(渡りに船)에 시즈코는 냉큼 달라붙었다.


"거기 둘. 성은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쿠로쿠와슈가 없어도 진행할 수 있는 준비는 있겠지. 인력(人手)을 보내줄테니, 준비를 하고 쿠로쿠와슈를 기다려라"


"예, 옛!"


할 말을 다 하자 노부나가는 가버렸다. 톱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면, 이후에는 그에 따라 조용히 진행할 뿐. 시즈코는 북 이세를 진압하면 그대로 귀국할 수 있겠다고 기뻐했다.

축성에 필요한 건축자재의 수배로 두 사람이 다시 으르렁거리기 전까지는.




히데요시와 미츠히데의 대립에 말려들어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두 사람을 잘 다독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이 새로운 불씨를 찾아내기 전에, 시즈코는 얼른 노부타다(信忠)를 따라 북 이세로 향했다.


"북 이세의 말썽꾸러기(跳ねっ返り) 놈들, 한꺼번에 밟아주겠다"


노부타다(키묘마루(奇妙丸))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아사쿠라 공격도, 아자이 공격도 전선에 설 수 있었던 건 초반 뿐으로, 그 이후에는 후방에서 손가락을 빨며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쌓이고 쌓인 울분을 북 이세에서 발산시키려는 속셈이었다. 나이가 젊고 공을 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노부타다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한 재치(機転)도 뛰어나, 명장의 그늘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만 산 놈들 같으니. 자기 뒤도 제대로 못 닦는 거냐"


눈 깜짝할 사이에 북 이세를 진압하고 기후(岐阜)로 돌아가는 길에 노부타다가 투덜거렸다. 이세에 관해서는 노부나가의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와 3남인 노부타카(信孝)가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노부나가로부터 도로 정비의 허술함을 추궁받아서 다른 모든 것을 내던지고 정비를 추진한 결과, 일향종의 암약에 의한 폭동을 선동당해버렸다.

또다시 실책를 보인 두 사람에게 노부나가는 진압을 명하지 않고, 노부타다를 파견하게 되었다.


"대장이 직접 돌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든지 처음이 중요한 거다"


시즈코의 쓴소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노부타다는 대꾸했다. 북 이세에 도착한 노부타다는, 전황을 파악하자 기마 부대만을 이끌고 적의 중심부라고 간주된 집단을 단숨에 박살냈다.

노부타다의 수읽기는 정곡을 찔러, 반란은 주도자를 잃고 붕괴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적진 속에 고립되어서 전사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가신들은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가신들이 입아프게 노부타다에게 쓴소리를 했기에, 노부타다도 옹고집이 생겨 듣지 않겠다는 태도가 되어버려, 감시역(お目付け役)인 시즈코가 나서야 하게 된 것이다.


"뭐, 괜찮지만"


시즈코에게까지 잔소리를 듣자 아무리 노부타다라도 반성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전령이 달려왔다.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인가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타다에게 말해 전군을 정지하게 했다.

전령에게서 서신을 받아들도 노부타다와 함께 내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에치고(越後)인가……"


"음, 뭐냐? 우에스기가 배신하기라도 했다는 거냐?"


"아냐. 우에스기에 기술 공여를 할 것이니 그 회담에 참가하라는 이야기야. 으ー음, 너는 관계없으려나? 응, 직접적으로는 관계없네. 어쨌든 일단 오와리(尾張)로 돌아가서 군을 재편성해야겠네"


"이대로 기후에서 가면 되는 것 아니냐"


"군사행동은 계획을 바탕으로 움직이니까, 마음대로 성의 물자를 쓸 수는 없어. 에치고로 갈 계획을 다시 짜야 해. 그리고 며칠 정도 쉬고 싶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북 이세 진압 축하 연회에는 나와라"


"여유가 있으면"


그 후에는 딱히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은 기후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노부타다가 시즈코 저택을 습격하여 억지로 축하 연회 자리로 끌고나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싸움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낸 후가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그녀는 오와리로 귀환하자 군을 해산시키고, 목욕탕에 들어가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 쇼우(蕭)와 마주쳤다. 기막힌 타이밍이라 말하듯, 에치고의 우에스기를 방문할 때 가져갈 토산품(土産)을 수배해달라고 부탁했다.

예의범절(礼儀作法)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지만 어차피 벼락치기였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무가의 딸인 쇼우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잘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쇼우가 토산품을 건넬 상대와 선물을 물건을 고르는 동안, 시즈코는 짧은(束の間) 자유를 만끽했다. 아무리 우에스기 가문이 신하로 들어왔다고 해도, 여전히 오다 가문에 복종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많다.

그것을 잘 알면서 시즈코를 에치고로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우에스기가 청한 빈객(賓客)인 시즈코에 대해 어떠한 불상사(不手際)가 있을 경우, 그것은 우에스기에게 큰 과실이 된다. 우에스기 가문 내부의 인사에 간섭당해도 켄신(謙信)으로서는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미끼로서 생각하면 시즈코는 적임이었다. 가장 먼저 우에스기 가문이 초빙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며, 노부나가의 대리인(名代)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신분이 있는, 집안도 실적도 흠잡을 데 없지만 여자이다.

상대에게는 얕보기 쉽고, 적의를 보이기 쉽다. 그런 상태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즉시 대응하여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인재라고 하면 시즈코 이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맙소사, 상대를 위축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또한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인원수라)


꽤나 까다로운 임무라고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시즈코로서는 거절하기는 커녕 바라던 바였다. 문제의 싹은 커지기 전에 뽑아버리는 게 가장 좋다. 이것은 농업에 대한 시즈코의 지론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크게 의욕을 보이고 있었으나, 사절단의 진용을 알게 된 노부나가가 제동을 걸었다.

'정치가 관계되는 교섭 자리에 밀고 당기는 응수를 하지 못하는 네가 가지 마라. 아시미츠(足満)를 대리인으로 보내라'는 지시였다.

기합을 넣었던 만큼 김이 샌 기분이 든 시즈코였으나, 자신이 가지 않아도 아시미츠가 특유의 후각으로 나쁜 싹을 뽑아 줄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시미츠와 함께 협의한 결과, 에치고에는 아시미츠가 병사 3000을 이끌고 가게 되었다.

단, 기술지도를 할 사관(士官) 이외의 텟포슈(鉄砲衆)는 전부 두고간다. 텟포슈는 적은 인원으로도 위협적이라, 쓸데없이 에치고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것을 막기 위한 판단이었다.

켄신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만 정도이며, 켄신 이외의 가신들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많아봤자 1000을 약간 넘는 정도일 것이다.

켄신이 배신하면 제아무리 아시미츠라도 끝장이지만, 그 경우에는 에치고에 숙청의 태풍이 몰아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란에 가담한 일족은 모조리 몰살을 당하게 된다.

노부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로부터의 배신을 대단히 싫어한다. 다음 지배자가 누가 되던, 어리석은 지도자를 섬긴 에치고의 백성들은 길고 괴로운 시련을 강요받게 된다.


"이렇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내 대리로 에치고에 가줄 수 있겠어요?"


"시즈코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잘 알았다"


시즈코의 긴한 부탁이라고 하면 아시미츠에게 거부는 없었다. 켄신이 시즈코를 신경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시즈코가 직접 에치고로 가는 사태는 회피하고 싶었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노부나가도 같은 의견이며, 아시미츠는 그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사키히사(前久)였으나, 그의 경우에는 시즈코가 에치고로 간다면 자신도 동행할 생각이었다.


"기술 공여를 해봤자 사람이나 물자의 교유가 없으면 시작되질 않아요. 우선은 도로가 정비되어야 처음으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와 줄래요? 언젠가는 영토 내에서 통용될 화폐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기상조겠지요"


"도로정비만으로 문제없겠지. 제설 도구나 융설제(融雪剤) 이야기만 해도 우에스기 입장에서는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일 것이다"


"유리 제품의 소재로서 컬릿(cullet)을 만들 때 염화칼슘(calcium chloride)이 부산물로 산더미처럼 병산(併産)되니까요.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만, 충분히 주의해줘요. 켄신 자신은 신용할 수 있어도, 가신들이 야심을 품지 않았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충분히 주의하지.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시즈코는 사나다(真田) 가문의 동향에 주의해라. 놈들, 슬슬 집안싸움(内輪もめ)에 박차가 가해지기 시작했지. 머지 않아 내란이 벌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일단 간자를 통해서 듣고는 있는데, 친 타케다 파(親武田派)와 오다로 갈아타는(鞍替え) 파벌이 대립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계속 상황을 보겠지만, 그쪽으로 연락이 가면 보호를 부탁해요. 적대한다면 용서는 필요없어요"


"이제와서 적대한다면 그런 놈들의 미래는 뻔하다"


사나다 가문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 있었다.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의 오다 가문으로 갈아타려는 혁신파(革新派)와, 신겐(信玄)으로부터의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친 타케다의 보수파(保守派)로 갈려 있었다.

혁신파가 세력을 얻은 이유로서,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의 억지 징세에 의한 점이 컸다.

신겐의 시대에도 시장에 대한 화폐의 공급 부족 때문에 화폐 가치의 상승을 초래하여, 결과적으로 물가의 하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카츠요리가 추가적으로 징세 때의 화폐 기준을 조였기 때문에 급격한 디플레를 초래해 버렸다.

노부나가의 지배지 이외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두고 그것을 통과한 아전(鐚銭)이라면 징세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신겐의 방침을 이어받아, 정전(精銭) 이외의 것으로의 납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떄문에, 급격하게 시장에서 화폐가 고갈되어, 지금까지의 두 배는 되는 기세로 디플레가 진행되었다.

카츠요리에게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탄원서가 끊임없이 도착했으나, 그는 그 모두를 묵살하고 있었다.


"먼저 참을성이 바닥나는 것은 친 타케다 파겠지. 설령 불안요소(獅子身中の虫, 우에스기)와 손을 잡는다 쳐도, 사나다 가문 당주가 전쟁터에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가 아니라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였던가요? 그는 승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쪽의 계책을 즉시 채용할 정도로 유연하니까, 어쩌면 뭔가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행동을 취할지도 모르겠네요. 나로서는 어서 이쪽으로 와줬으면 하는데 말이에요. 여차할 때는 잘 부탁해요"


"뭐, 좋은 소식은 자면서 기다리라고 하잖느냐? 기대하지 말고 기다려다오"


그다지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아시미츠는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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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