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7 1573년 8월 상순
정신없었던 6월과 정반대로, 7월은 비교적 평온하게 지나갔다. 가끔 나가요시(長可)가 출전하고, 불완전연소였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돌아오는 정도로, 이렇다 할 변화는 없었다.
사이조(才蔵)는 평소대로 시즈코의 호위에 전념하고, 타카토라(高虎)는 쿠로쿠와슈(黒鍬衆)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기에 빈번하게 집을 비우게 되어, 얼굴을 보이는 적이 드물었다.
한편, 케이지(慶次)는 카게카츠(景勝) 등 인질의 감시라는 명목으로, 매일 그들과 함께 놀러다니고 있었다.
시즈코는 집들이 연회(新築祝い) 소동으로 정체되어 있던 정무를 처리하는 나날을 보냈지만, 정무 담당자들이 사무 작업에 숙달되기 시작했기에 의사 결정을 하면 나머지 처리를 이어받아주게 되어, 직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다는 상태와는 인연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 평온한 나날들도, 7월 중순에 들어서자 끝을 고했다. 노부나가가 드디어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가문 토벌의 호령을 내렸다.
이 출전에서는 노부나가 스스로가 총대장으로 출전하고,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 구(旧) 키묘마루(奇妙丸))도 부대장이라는 지위로 노부나가를 따르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호출되어, 그녀 자신도 출전하게 되었다. 오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노부나가의 의지(意気込み具合)를 내외에 천명했다.
"에ー, 이번 싸움에서 주상(上様)께서는 아자이, 아사쿠라 두 가문을 멸망시키실 생각이십니다. 상대도 물러설 곳이 없기에 죽기살기로 저항할 것이 예상됩니다. 방심하다가 다치거나 하지 않게 빈틈없이 대응하죠"
평소대로 어딘가 맥이 빠진 시즈코의 훈시에, 작전회의에 모여든 평소의 멤버 8명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우리들은 아사쿠라 가문의 대응에 집중합니다. 아자이 가문 측의 공략은 하시바(羽柴) 님이 진행하고 계셨기에, 지금까지대로 하시바 님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현장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괜히 나섰다가 불화를 부르면 본말전도니까요. 하시바 님 측에서 의뢰가 있으면 대응하는 정도로 좋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주상으로부터 하명이 있겠죠"
그 말대로, 시즈코는 자군(自軍)을 아사쿠라 가문에만 집중할 예정이었다.
이것은 전술한 대로, 히데요시(秀吉)가 선임으로서 아자이 가문에 대응하고 있던 것도 있지만, 아사쿠라 가문이 사용하는 성채(城砦)가 아자이 가문의 배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였다.
특히 오오즈쿠 성(大嶽城)은 이 싸움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이 된다. 오오즈쿠 성은 아자이 가문의 거성(居城)인 오다니 성(小谷城)과 마찬가지로 오다니 산(小谷山)의 북쪽에 위치하는 성이다.
오다니 성보다 북쪽에 지어져, 아사쿠라 가문의 거성인 이치죠다니 성(一乗谷城)의 중계점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즉, 이곳을 노부나가에게 함락당할 경우, 아자이 가문은 목젖에 칼이 들이밀어진 상태가 된다.
아자이 가문은 아사쿠라 가문과 완전히 분단되어, 병력 수에서 밀리는 아자이-아사쿠라 측의 유일한 이점인 연대(連携)를 취할 수 없게 되어 각개 격파당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에 앞서 아시카가(足利) 쇼군(将軍) 가문이 쿄(京)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뭐,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뭔가 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은 쇼군 추방 후에 이루어질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이름뿐인 쇼군이니까, 아예 처치해 버리면 뒷탈(後腐れ)이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말야ー"
"주상께서는 쇼군을 살해한 찬탈자라는 악명을 싫어한 거겠죠. 거기에 형식상으로는 상대가 항복하고 그걸 받아들인 것이니, 사리(筋)는 지켜야 해요"
"흐ー음"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가 대답했다. 딱히 깊은 의도는 없었는지, 나가요시는 성의없는 대답을 하여 대화를 끝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오우미(近江)로 출전하여, 도중의 작전회의에서 말하겠어요. 평소대로, 준비를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걸로 작전회의는 종료에요. 예정일까지는 각자 예기를 북돋아주세요"
아자이-아사쿠라 전투 출전의 작전 회의는 단시간에 끝났다.
기본적으로 시즈코가 전달 사항을 늘어놓았을 뿐, 상의할 만한 내용이 거의 없었던 것이 원인이다. 노부나가는 아자이-아사쿠라 두 가문의 영토를 빼앗은 후, 엣츄(越中) 일향종(一向宗)까지 박살낼 생각이었다.
엣츄 일향종은 에치고(越後), 미노(美濃), 에치젠(越前)에 둘러싸이게 되어 완전히 갈 곳을 잃는다.
그렇게 되면 노부나가에게 굴복하거나, 몰락해가는 타케다(武田)에게 비호를 요청하거나, 그도 아니면 자포자기하여 어딘가로 쳐들어가거나를 선택하게 된다.
엣츄 일향종이 그것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노부나가로서는 상황이 좋았다. 엣츄 일향종만 처리하면,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의 병력은 키슈(紀州) 문도(門徒)들만이 남게 된다.
혼간지는 히에이 산(比叡山) 등의 종교 세력(寺社勢力)과는 달리, 자체적인 승병(僧兵) 집단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강점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도들을 동원한 잇코잇키(一向一揆)라는, 필요할 때 임시로 편성되고, 용무가 끝나면 해산되는 자유도가 높은 전력이다.
그 기초는 문도들이며, 그것이 감소하면 필연적으로 혼간지의 영향력은 약체화된다.
따라서 노부나가는 동일본(東日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엣츄 일향종의 씨를 말려, 혼간지의 문도를 자기 영토의 서쪽에만 한정시킬 생각이었다.
"이걸로 오케이"
시즈코는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여 노부나가에게 보낼 서신을 준비했다.
이번의 싸움에서는 공격이 아니라 후방 지원에 전념할 필요가 있었다. 오우미는 영토의 중앙에 비와 호(琵琶湖)가 존재하는 관계상, 필연적으로 평야 부분이 적어져 영토 대비 수확량이 다른 곳보다 떨어진다.
그렇기에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은 어렵고, 이세(伊勢)나 미노, 오와리(尾張)에서도 군수물자를 운송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선임인 히데요시도 물자 보급에 관해 미노로부터의 지원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이번에 전군이 오우미에 전개하게 되면, 물자의 조달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 우려를 회피하기 위해서도, 시즈코의 후방지원부대가 병참을 담당하여 과부족없이 물자 공급을 할 필요가 있었다.
"아, 군이 움직이면 인질인 요로쿠(与六) 군들은 어떻게 하지? 케이지 씨에게 맡길까. 나머지는 이걸 쇼우(蕭) 짱에게 맡기고, 출납(出納) 관리는 아야(彩) 짱이 하니까…… 음, 이거면 되겠지?"
필요 서류를 작성한 시즈코는, 소성(小姓)을 불러 쇼우에게 전달하도록 명령했다. 그 후에는 쇼우와 아야가 필요한 것을 갖춰서 후방지원부대에 연락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 오다 가문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인 병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지 경영도 순조롭고, 이번의 싸움에서 받을 영향도 적지. 고노에(近衛) 님은 쿄로 이주하신 후에 칸파쿠(関白)가 되실 게 확정되었으니…… 고서(古書) 편찬(編纂) 사업도 본격화되려나"
오우닌의 난(応仁の乱) 이후의 혼란기에 귀중한 고서가 유실되고, 지금도 여전히 고서가 흩어져 없어지고(散逸) 있는 것을 걱정한 시즈코는, 역사적 사실에서는 하나와 호키이치(塙保己一)가 편찬한 '군서류종(群書類従)'과 마찬가지로, 흩어져 없어진 고서를 편찬하는 사업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다만, 이 사업은 공가(公家)나 종교 세력(寺社)에 다대한 영향력을 갖는 사키히사(前久)의 협력이 필요불가결했다.
다행히도 보전 사업에 흥미를 보인 사키히사는 시즈코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다만, 현물을 양도받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본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즉, 원본을 빌려서 사본을 만들고, 그걸 가지고 편찬하는 방식이 된다.
방대한 시간과 인원, 비용이 필요해지는 것 치고는 이익은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돈보다도 꾸준히 이어진 역사의 집대성인 고서가 사라지는 것을 문제시하여, 잉여(余剰) 기미였던 개인 자산에서 비용을 내기로 약속했다.
문화에 가치를 인정하고 고서를 남기려고 하는 사업은, 의외로 조정을 포함한 공가 사회나 종교 세력 등의 문화인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덕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대에서는 10권밖에 남아있지 않은 '일본후기(日本後紀)' 전 40권이, 사본이기는 하나 15세기 이래 1세기를 거쳐 재결집하게 되었다.
조정 비장(秘蔵)의 서적에 대헤서도 사본 제작 허가를 얻을 수 있었고, 공가나 종교 세력들이 비장하고 있는 다양한 고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는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해지며, 단시간에 사본 제작이 끝나는 고서 따윈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카미교(上京)가 불타버렸지만, 그게 없었으니 고서들이 남아있던 걸까? 뭐, 어쨌든 서적의 소실이나 분실은 후세에 큰 손실이니까, 만회가 가능한 지금 전집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해야지"
여담이지만, 하나와 호키이치는 계 1273종의 편집에 40년 가까운 세월을 들였다. 그 이상의 고서가 모일 듯한 시즈코의 고전(古典) 전집(全集) 편찬사업은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해질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사키히사가 칸파쿠라는 조정의 정점에 취임하는 시기에 시작해야 한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편찬에는 고노에 님도 협력해 주실테니, 이후에는 끈기있게 사업을 계속하는 것 뿐이지만 말야"
시즈코가 벌인 고서(※역주: 원문에서 고서랬다가 고전이랬다가 일관적이지 않음) 전집 편찬사업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먼저 가능한 한 고서의 사본을 얻는다. 이 사본을 바탕으로, 기재된 문자를 규격화된 한자와 히라가나(平仮名), 카타카나(カタカナ)로 옮겨적는다.
이것은 고서에 쓰인 문자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규격통일된 표기를 사용하여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정보로서 남기는 것이 목적이다.
문자의 통일이 완성되면, 그것들을 활판인쇄(活版印刷, 현대의 원고용지와 마찬가지의 세로쓰기(縦書き) 줄맞춤(段組み) 포맷)하여 서적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사본을 그대로 인쇄할 수 있는 목판이 완성되면 종료된다.
"그럼, 달리 일거리는 없고…… 이리 와, 비트만"
방 구석에서 얌전히 있던 비트만들에게 시즈코는 손짓을 하며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에 전원이 벌떡 일어나서 쏜살같이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시즈코가 비트만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는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화답했다. 즉시 카이저들도 나도나도 하면서 조르기 시작해,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원의 머리를 차례대로 쓰다듬었다.
"좋아! 산책이라도 할까!"
한동안 오랫만의 스킨십을 즐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날씨도 좋았기에 밖에 나가려고 생각했다.
생각난 김에 하자(思い立ったが吉日)는 듯 갑자기 일어선 시즈코를,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올려다보던 비트만들이었으나, 시즈코가 외출 준비를 시작하자 목적을 헤아리고는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무리의 우두머리인 시즈코가 선두를 걷고, 그 옆 또는 뒤에서 꼬리를 흔들며 쫓아갔다.
"오늘은 좋은 날씨네!"
넓은 정원에 나오자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면서 실컷 햇빛을 쬐었다.
최근 틀어박혀서 사무처리만 하고 있었기에, 오랜만의 태양은 조금 눈부셨다. 비트만들도 시즈코를 따라 제각기 기지개를 켰다.
"내일도 날씨가 좋으면 햇볕이나 쬐는 것도 좋을지도"
좋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빌면서, 시즈코는 비트만들과 함께 걸었다.
다음날은 아쉽게도 비가 올 듯한 날씨였다.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최후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반납하고, 적자인 요시히로(義尋)를 아시카가 가문의 후계자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요시아키 자신은, 쿄를 떠나 빈고(備後) 국으로 하향한다. 적자인 요시히로를 차기 정이대장군으로 만들기 위해 노부나가가 책임을 지고 키워낸다는 이야기였으나, 누구나 요시히로를 인질이라 보고 있었다.
요시아키 자신의 퇴위도 건강 문제(体調不良)에 의한 것으로 발표되었으나, 누구의 눈에도 노부나가의 손에 의한 추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썩어도 전 쇼군이라는 위광은 남아서, 그의 생활이 곤궁해질 일은 없었다.
대외적으로는 아시카가 막부가 존속하고 있지만, 쿄의 백성이나 조정, 공가, 타국의 영주(国人)들은 막부가 멸망했다고 생각했다.
후세의 역사서에는 1573년 7월 하순, 무로마치 막부 멸망이라고 기록된다.
요시아키가 쿄에서 추방당했기에, 그를 통한 노부나가의 간접적인 지배는 끝나고, 노부나가 자신이 천하인(天下人)으로서 행동하는 시대가 막을 올렸다.
노부나가는 즉시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예전 직할지(御料所)를 자신의 영토로 접수하고, 현재의 원호(元号)를 겐키(元亀)에서 텐쇼(天正)로 개원(改元)했다.
또, 지금까지 막부가 하고있던 업무를 자신의 가신이자 교토(京都) 쇼시다이(所司代, ※역주: 무로마치 막부에서의 장관 대리, 차관 정도의 직위)인 무라이 사다카츠(村井貞勝)에게 하도록 명했다.
"시대가 변하겠네. 지금부터는 주상의 시대…… 아니, 다들 왜 그래요?"
쿄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읽으면서 시즈코는 시대의 변곡점(変わり目)을 직접 겪을 수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감회가 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니…… 더워"
그것은 전원이 더위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모습을 봐도 명백했다. 올해는 예년보다도 기온이 몇 도나 높아서, 현대에서 말하는 폭염(猛暑)이 이어지고 있었다.
케이지 같은 경우에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속옷 차림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사이조는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을 떠올리면서도 그럴 기력이 솟지 않는지 잔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털가죽을 두르고 있는 비트만 패밀리, 타마나 하나 등의 동물들도 타는 듯한 햇살을 피해 그늘에 머무르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의 시즈코 저택에서, 기운이 넘친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네요. 출진도 가까워졌으니, 뭔가 대책을 생각해야 할지도요?"
"그보다…… 어째서 시즈코는 멀쩡한 거야. 나는 더워서 죽을 것 같아"
"어째서라니, 여름은 더운 거잖아요?"
시즈코도 더위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에 고기압이 상주하기 때문에, 일본의 여름은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 기후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빙하기(小氷河期)인 전국시대의 여름은, 현대 일본의 혹서일(酷暑日)이 계속되는 작열지옥(灼熱地獄)보다는 꽤나 시원하다.
에어컨에 의한 열섬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포장된 도로의 열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별로 불지도 않는 바람을 차단할 정도로 건물이 밀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밀성(気密性)이 높은 건축 양식까지 더해져 실온(室温)이 계속 오르지도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더한 지옥을 실제 체험으로 알고 있는 시즈코가 볼 때, 이 정도의 더위는 다소 불쾌한 정도이며, 케이지들처럼 익어버릴 정도로 덥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네요. 빙고(氷室)에서 수박이라도 꺼내서 먹는 건 어때요?"
수박의 9할은 수분으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시원함(涼)을 연출하는 여름의 단골 과실이라 할 수 있다.
또, 붉은 과육에서 알 수 있듯이 베타(β) 카로틴이나 리코펜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며, 의외로 칼륨도 많이 함유하고 있기에 피로 회복이나 이뇨 작용이 높다.
단지 수분이 많은 단 과실이 아니라,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합리적인 디저트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나치게 먹으면 몸에 좋지 않지만, 그건 수박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아ー, 확실히 우물물로 식힌 수박이나 토마토는 맛있지"
"자자, 늘어지지 말아요! 지금 준비하게 할 테니 기운을 내요(しゃきっとしなさい)"
잠시 후 차갑게 식은 수박과, 아까까지 우물물로 차게 식히고 있던 갓 수확한 토마토가 나왔다.
"음ー, 더운 날에는 역시 이거군"
케이지들은 찬물이 든 통에 발을 담그면서, 토마토나 수박을 먹으며 폭염을 이겨냈다.
출진 준비도 끝나고, 예정일까지 한가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시즈코는 농기구를 걸머지고 밭으로 가고 있었다.
그 날은 희한하게 바람이 강해서 더위는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평소에는 나무 그늘이 정위치인 비트만들도, 시즈코의 뒤를 기운차게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는 시원한 날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름의 햇살은 강하다. 시즈코는 수제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흐흥~. 여름이야말로 밭일의 본편(本番)이지요"
쌀은 가을 무렵에 수확기를 맞이하기에, 미묘하게 농한기(農閑期이기도 한 여름에 밭일에 힘을 쏟는다. 여름 야채 등의 가지치기(整枝)나 잎사귀 따기(摘葉), 그리고 수확이 기본적인 작업이다.
익숙한 손길로 시즈코는 작물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재빠르게 가지치기와 잎사귀 따기를 했다. 수확 시기인 야채나 과일은 바구니에 넣고, 솎아낼 것은 땅에 묻었다.
"비트만은 이쪽. 카이저, 그 바구니 갖다줘. 아델하이트, 이 끈 당겨줘…… 좋아, 고정됐어. 이제 놓아도 괜찮아"
비트만 패밀리와 협력하여 밭일을 처리했다. 비트만들도 익숙해져서, 시즈코의 지시에 정확하게 반응해서 일을 척척 해냈다. 점심때를 조금 넘겼을 무렵, 예정된 작업은 종료되었다.
"음ー, 이걸로 완료. 이동을 생각하면 8월 3일이나 4일이 출진일테니, 앞으로 며칠은 밭일을 할 수 있겠네"
기지개를 켠 후, 시즈코는 나무 그늘에서 휴식했다. 비트만들은 시즈코의 주위에 진을 치자 시즈코와 마찬가지로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 살포시 불어와서 햇볕에 탄 몸을 식혀주었다.
기분좋은 따스함(陽気)에 졸음을 느낀 시즈코였으나, 땀을 흘린 채로 잤다간 확실하게 감기에 걸리기에 뺨을 때려 기합을 넣었다.
"좋ー아, 땀을 흘리자. 그 후에 느긋하게 쉬는거야"
카이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시즈코는 벌떡 일어났다. 농기구의 정리를 허드렛일꾼(下働き)에게 맡긴 후, 시즈코는 흙과 땀 투성이가 된 몸을 목욕탕에서 씻어냈다.
목욕탕을 나온 후에는 약간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가볍게 사무처리를 하며 보냈다.
출진 전의 긴장감을 띠면서도 느긋한 분위기는, 오다 가문 중진이 되어버린 그녀에게 허락된 약간의 휴식이었다.
조용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전쟁터로 갈 날은 확실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이 평온한 일상을 그녀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어머, 윳키랑 시로쵸코잖아. 희한하네"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입구를 열고 설표인 유키와 시로쵸코가 들어왔다. 두 마리는 시즈코가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소매를 물고 잡아당겼다.
앉아있기만 할거면 이쪽에 신경쓰라, 는 의사표시였다. 시즈코로서도 급한 서류는 아니었기에, 책상 위에 내려놓고 윳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즈코가 일을 중단한 것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비트만 패밀리였다.
그들은 시즈코의 일을 중단하는 폭거에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일단 일이 끝났다는 걸 알자 표정을 조인 후 발군의 팀워크로 시즈코의 주위에 포진했다.
정위치(定位置)를 확보하고 승리의 표정(勝ち誇った顔)을 떠올리는 비트만들이었으나, 윳키와 시로쵸코는 자리 순서에 집착이 없는지, 비트만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꼬리를 흔들거리며 시즈코에게 아양을 부렸다.
"그렇게 밀집하면 덥거든. 자자, 너는 턱을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했지?"
머리나 턱을 쓰다듬고 있자, 어느 틈에 타마와 하나도 방에 들어와 있었다. 시로가네나 쿠로가네, 아카가네는 열어젖혀진 맹장지 밖에서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시즈코의 주위는 어지간한 동물원 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시즈코는 뒤에 있던 카이저의 등을 쓰다듬은 후, 그 위에 머리를 올리고 드러누웠다.
"이게 제일 마음이 편해지네"
중얼거리면서 다시 기분좋은 피로를 느낀 시즈코는, 저항하지 않고 의식의 끈을 놓았다.
실컷 밭일을 하고 비트만 패밀리를 시작으로 동물들과 노는 나날을 보내다가 맞이한 출진의 날.
시즈코는 비트만들에게 집을 지킬 것을 부탁하고, 출진을 위해 갑주를 입었다. 전쟁용 복장(戦装束)을 걸쳤을 때, 평소의 느슨한 표정을 떠올리는 시즈코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아자이-아사쿠라와의 싸움도 마지막이다. 이번에 결판을 낸다"
"옛!!"
"자, 출진이다!!"
병사들의 호응에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떠올린 시즈코는 출진 호령을 내렸다. 행군을 시작한 지 조금 지났을 때, 시즈코는 카네츠구(兼続)가 전송하러 온 것을 발견했다.
시즈코는 미소를 띠고는, 오른손을 왼쪽 상박(二の腕)에 대고, 왼팔을 위로 굽히는, 소위 말하는 승리 포즈(ガッツポーズ)를 취해보였다.
낯선 몸짓에 놀란 카네츠구였으나, 알통(力こぶ)을 솟게 해보이는 몸짓이라는 걸 깨닫자 미소를 떠올리며 시즈코와 같은 포즈를 취했다.
단지 그 뿐이었지만 어쩐지 의미는 통했다고 시즈코는 느꼈다.
8월 6일, 오다니 성 포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시즈코가 진에 도착했다. 동시에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의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노부나가 측으로 변절했다는 소식이 오다 진영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비밀리에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던 아츠지였으나, 짐짓 오다 측으로 변절할 것을 내외에 선언했다. 이 소식을 받았을 때, 노부나가는 기후(岐阜)에서 오우미로 출진했다.
8월 8일, 노부나가가 야마다무라(山田村) 부근에 포진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아사쿠라는 다음은 없다고 이해했는지 전군을 이끌고 출진하여 키노모토(木之本) 부근에 포진했다.
오다 군과 아사쿠라 군은 타카토키가와(高時川) 또는 야마다가와(山田川)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오다 군은 아사쿠라 군과 대치하면서, 오다니 성의 견제로서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도 병사를 배치했다.
여담이지만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본진을 두었다는 것만 알려져 있고, 다른 무장들을 어떻게 배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상으로서는 아사쿠라 일문 사람들(一門衆, ※역주: 고유명사인지 그냥 명사인지 확실하지 않음. 일어 위키에는 혼간지의 특정 집단에 한정된 의미로서의 고유명사로 설명되어 있음)이 요시카게의 본진을 둘러싸듯 배치되고, 노부나가와 대치하는 타카토키가와 부근에 야마자키 요시이에(山崎義家) 등이 포진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에 대해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등을 배치하고, 토라고젠 산에 하시바 히데요시, 그 부근에 노부타다 두 사람이 아자이의 견제로서 배치되었다.
노부나가 본진과 토라고젠 산의 중간쯤에 있는 쵸노 성(丁野城)의 견제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배치되었다. 그밖에 이나바 잇테츠(稲葉一鉄)나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등이 노부나가의 본진 부근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가 어디에 포진했는가 하면, 그건 노부타다의 곁이었다. 하지만, 노부나타의 곁에 진은 있었으나, 정작 시즈코는 그 장소에 없었다.
"토라고젠 산의 요새는 수리가 필요…… 오다니 성의 견제로 텟포슈(鉄砲衆) 250을 배치. 물자는 우선 열흘치를 놔두겠어요. 6일이 지나면 보급부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시즈코 부재의 이유는, 이번의 주 목적이 병참 담당이기 때문이다.
노부나가로서는 이번 싸움으로 아자이-아사쿠라를 멸망시킬 생각이었기에 확실하게 일을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총대장인 자신이 여기저기 이동할 수도 없다.
그래서 지목된 것이 시즈코이다.
타케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으로, 시즈코는 적극적으로 전과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그러나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발언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파견 등의 원조를 받는 입장이기에, 다른 무장들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번거로운 방법이네. 하지만 천하가 가끼워지면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테고, 주상께서 움직이시면 영향력이 너무 크니 어쩔 수 없나)
기본적인 배치는 노부나가의 결정이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시즈코에게 일임되어 있었다.
보기에 그럴싸한(体の良い) 조정자 역할을 떠맡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노부나가가 정치적인 재량을 시즈코에게 맡기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신뢰의 증거로 생각하기로 했다.
토라고젠 산에 물자가 운반되는 대열이 이어졌다. 아자이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도 물자 운반에 사용되는 리어카의 숫자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이 계책은 나름 효과가 있었던 듯, 아자이 군은 오다 가문이 운용하는 압도적 물량에 전율하고 있었다.
"순조로운 것 같군요"
후방지원부대에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있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마저 내린 후, 시즈코는 타케나카 한베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네, 순조롭습니다. 이쪽에는 텟포슈를 250 배치하겠습니다. 뭐, 아자이는 남은 병력이 적으니까 공격해 오지는 않을거라 생각합니다만, 만일에 대비해서요"
"이쪽의 조사에 따르면 많아봤자 2000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느낌이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고도 합니다. 지나치게 몰아붙이다가는 뼈아픈 반격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방심은 금물이죠. 그런데 어떤 용건이신가요?"
타케나카 한베에다 순수하게 잡담을 하려고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고는 그녀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오다지 성을 함락시키느냐 마느냐에 하시바의 무공은 크게 좌우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잡담할 여유 따윈 없다, 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헤아리신 대로입니다. 실은 하시바 님이 시즈코 님께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합니다. 그리 많은 시간은 뺏지 않겠습니다. 잠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아케치 님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이었으니, 그리 많은 시간은 낼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요"
시즈코는 부탁에 응하면서도 내심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미 오다 가문 내부의 유력자들끼리 서로 견제하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이 무렵, 미츠히데는 다른 가신들보다 발언력이 강해져 있었다. 노부나가의 의도를 이해하여 쿄를 지배하고, 사카모토(坂本)에서는 명군(名君)의 이름을 한껏 드높이고 있었다.
신중 일변도인가 하면, 때때로 대담한 정치적 책략(調略)을 구사해보는 등, 그 일처리 솜씨는 노부나가가 직접 칭찬할 정도였다.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바라지 않는 시즈코가 볼 때는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빨라진다고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가신들이 볼 때는 탐탁찮은 이야기였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남은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타케나카 한베에의 안내를 받아 히데요시의 진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작전회의장에서 지도를 앞에 두고 끙끙대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히데요시는 한 발 빨리 시즈코를 발견하자마자 생글생글 사람좋은 웃음을 떠올렸다.
"오오! 기다렸다, 시즈코. 아니,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하군. 실은 긴히 부탁할 일이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를 지도 앞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무공을 세울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지금까지의 고생에 보답받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도 더욱 높은 보수와 지위를 얻고 싶어 필사적이었다.
"실은 여기부터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의견이 갈려서 말이지. 모두와 의논해보았지만, 이렇다 할 좋은 의견이 없다. 그래서, 시즈코에게 외부인인 제 3자의 시점에서 본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네…… 원하신다면 괜찮습니다만"
대답하면서도 시즈코는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히데요시의 동생인 히데나가(秀長)만이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대장인 히데요시의 방침이라고는 해도, 외부인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까지 작전회의에 참가해서 머리를 쥐어짠 사람으로는 탐탁할 리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적의(敵意)로도 해석될 수 있는 시선 속에서 위장이 아프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지도의 한 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번 싸움에서 초점(焦点)이 되는 장소, 그것은 야키오 요새(焼尾砦, ※역주: 검색해봐도 焼尾의 독음을 알 수 없어 임의로 적음), 오오즈쿠 성(大嶽城)이 됩니다. 특히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자이와 아사쿠라의 연락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반대를 무릅쓰고 출진한 아사쿠라는 아자이를 저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지형적 이점(地の利)은 상대측에 있습니다.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히데나가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다른 사람들은 히데나가가 시즈코의 의견의 허점을 지적한 것으로 알고 히죽거리는 웃음을 떠올리며 지켜보았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붓을 들어 지도에 뭔가를 그려넣더니 들어올려보였다.
"그건 이걸 보시고도 같은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을 듣고 히데나가를 포함한 전원이 지도를 바라보았으나,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타케나카 한베에가 즉시 적군의 병력이 시계열적으로 변화하는 모양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늦게 히데나가도 깨닫고 신음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핫핫핫, 형님. 보는 법만 알면 실로 명료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오즈쿠 성을 함락시키고, 아자이가 오다이 성에서 오오즈쿠 성을 탈환하기 위해 출진했다고 하죠. 그 움직임이 이 기호입니다. 오다니 성에 남은 병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형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다니, 뻔하지 않느냐. 오다니 성의 방비가 줄어들었다면, 그 틈을 찔러 공격…… 앗!"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간신히 히데요시도 이해했다. 시즈코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를.
"그렇습니다. 아자이나 아사쿠라가 오오즈쿠 성으로 향한다면, 숫자에서 앞서는 오다 군에게는 그들의 배후를 칠 호기입니다. 숫자에서 밀려 신중해져 있는 상대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어정쩡한 병력으로는 탈환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을 파견하면 본진이 함락됩니다. 유일한 연락로는 분단되어, 서로의 생각(思惑)을 알 수 없게 됩니다. 완전히 외통수로 몰아넣은 반상(盤面)입니다.
타케나카 한베에가 부채로 시즈코가 그려넣은 기호와 의미를 해설하면서 설명했다. 히데요시의 가신들도 그제서야 시즈코의 뜻을 이해하고, 동시에 경탄했다.
머리를 맞대고 계속 고민했던 자신들이 깨닫지 못한 것을, 시즈코는 너무나 간단히 깨닫고 지적해 보였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지만, 동시에 질 수 없다고 분발하게 되었다.
"즉, 우리들만으로 야키오 요새와 오오즈쿠 성, 이 둘을 함락시키면 대 전공(大戦功)이 확정된다는 것입니다, 형님!"
"말 안해도 알고 있다! 과연…… 이 둘, 아니 오오즈쿠 성만이라도 함락시키면 승리의 저울은 우리들에게 기울게 된다!"
"주상께서 저 위치에 본진을 두신 것도, 이걸 내다보신 것이겠지요. 아마도 며칠 안에 뭔가 움직임이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그 때 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고 시즈코는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여 시간을 추측했다. 지금부터 출발하면, 미츠히데가 있는 곳에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거라 계산했다.
미츠히데의 군은 유격대이기에 규모가 작아서, 물자 운반이나 텟포슈의 배치에 그다지 시간이 들지 않는다.
내일은 아사쿠라 방면의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의 진에 갈 예정이기에, 오늘 업무는 예정대로 끝날 계산이었다.
"그럼 시간이 촉박하여,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시즈코는 히데요시들에게 인사했으나, 이미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지도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 필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공에 대한 집념이 히데요시 군의 강점이리라. 시즈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몸을 돌렸다.
(과연 시즈코 님. 정확하게 사태의 핵심을 꿰뚫어보고 그걸 알기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군. 자자, 이번 싸움을 그녀는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시즈코가 작전회의장에서 떠나는 모습을, 히데나가는 즐거운 듯 웃으며 전송했다.
조금 발길을 서둘러서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진에 도착했다. 사전에 통보했기에, 경비하는 병사에게 용건을 전하자 즉시 물자의 반입이 시작되었다.
미츠히데가 공략하는 쵸노 성 공격 부대에는 텟포슈가 100명 배치된다.
히데요시에게 250, 시바나타 마에다에게 450이라는 비율을 보면 적게 보인다. 이건 미츠히데의 부대가 유격대로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인원을 데리고 다니면 필연적으로 행군 속도가 늦어지므로, 100명만 배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츠히데의 진에는 텟포슈 외에도 용기병(竜騎兵,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騎兵))이 50기 배치되었다.
텟포슈 100에 용기병 50, 이들을 운용하여 미츠히데는 쵸노 성을 공격한다.
"수고하십니다, 시즈코 님"
물자 반입의 지휘를 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미츠히데가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는 내심 한숨을 쉬면서, 그러나 생긋 웃는 표정으로 미츠히데에게 대답했다.
"아케치 님"
"아, 딱딱한 인사는 생략하지요. 신속한 물자 반입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쪽의 텟포슈도 탄약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신식총의 배치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다. 높은 공작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제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종래의 화승총이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적에게 노획되는 것을 노부나가가 두려워하여 배치할 곳을 엄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약에 관해서는 시즈코가 초기부터 계속 제조하고 있었기에, 다른 영주들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충분한 양을 공급할 수 있었다.
"부족해지면 말씀해 주십시오. 추가로 3백 30관(약 500kg)까지라면 자유롭게 써도 좋다고 주상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약 500kg라는 물량에, 가까이 있던 병사들이나 시동(小間使い) 몇 명이 반응했다. 눈치가 빠른 미츠히데는, 그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군요. '저희 진에만 해도 3백 30관'이나 더 융통해 주실 여유가 있다는 것이군요. 그리고 '본진에는 그 이상'의 여유가 있다니, 그건 정말 잘된 일입니다"
반응을 보인 시동이나 병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여, 다급히 일을 다시 시작했다. 너무나도 노골적이라 미츠히데로서는 드물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이거 참 안 되겠군요. 나이를 먹으면 저도 모르게 젊은이들을 놀리고 싶어집니다"
"때로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자, 이거 서서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이 후의 예정은 없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저녁이라도 하시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떠보기(腹芸)를 앞두고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하지만 히데요시 때와 마찬가지로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저녁식사는 질박(質素)한 것이었다. 최소한의 영양은 섭취할 수 있었기에 문제는 없었지만 미적 화려함은 없었다.
사치라고 하면 그뿐이지만, 역시 식사는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 님, 잠시만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식사였으나, 그것은 미츠히데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시즈코에게 말을 걸게 되어 끝을 고했다. 미츠히데의 모습을 보고 시즈코도 긴장을 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요"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맡고 있는 사카모토의 도시(街)에 대해 상담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건 어떤 내용인가요?"
사카모토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延暦寺)의 관문도시(門前町)나 석조(石積み) 도시(町)라고 한다. 특히 아노우슈(穴太衆, ※역주: 일본의 근대 초기에 해당하는 쇼쿠호(織豊) 시대(역주: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활약한 석공 집단)의 아름다운 석조가 유명하다. 현대에서는 나라에서 중요 전통적 건조물 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 사카모토에서 미츠히데에게 맡겨진 역할은, 엔랴쿠지의 감시와 비와 호의 지배, 거기에 쿄로 통하는 도로 확보다. 그러기 위해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사카모토 성의 축성을 명했다.
미츠히데는 축성에 조예(造詣)가 깊고, 그렇기에 사카모토 성을 비와 호의 물을 이용한 수성(水城) 형식(形式)으로 설계했다. 거기에 대천수(大天守)와 소천수(小天守)를 얹은 호화현란(豪華絢爛)한 성으로 축성했다(※역주: 천수(天守)란 천수각(天守閣)이라고 하는, 일본의 성 중심부에 위치하는 가장 높은 망루 부분을 가리킴).
역사적 사실에서는 텐쇼 10년(※역주: 1582년)에 아케치 미츠히데가 성에 불을 질러 일족과 함께 자살할 때까지, 사카모토 성은 아즈치 성(安土城) 다음가는 아름다운 성이라고 루이스 프로이스가 평가했다.
현재의 사카모토 성의 대부분이 비와 호의 호수 밑바닥에 잠들어있어,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돌담(石垣) 뿐이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들은 사카모토의 도시를 한 번, 철저하게 불태웠습니다. 그렇기에 주민들의 반발이 강하여 통치에 조금 애를 먹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시즈코 님의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라면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사는 집이 불태워진 것에 기인하는 악감정은 아무리 상대의 비위를 맞춰주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노력할 정도라면, 도로를 정비하여 조금이라도 생활 환경을 향상시키는 쪽이 유익합니다"
백성을 소중히 여기는 시즈코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가혹한 의견에 미츠히데는 약간 멍해졌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백성들은 누가 지배자이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을 지켜주는, 좋은 미래를 주는 지배자'를 환영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면 도시를 불태운 우리들은 생활의 파괴자이니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가재(家財)를 빼앗은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품을 사람은 없다. 적지 않게 불만이 있는 게 당연하다.
특히 사카모토의 도시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의 관문도시로서 번성했었다.
엔랴쿠지로부터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아 단물을 빨고 있던 사람들이 볼 때, 오다 가문은 자신들의 밥줄을 빼앗은 증오스러운 상대이다.
"이걸 전제로 하면, 권력자를 회유하는 것이 흔히 실시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라면 권력자도 빈민(貧民)도 모두 평등하게 한 개인으로 취급하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통치를 실시하겠습니다. 처음에는 불만도 나오겠죠. 하지만, 그러한 불만들 중에 '무엇을 해소하면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가?'를 생각해서 정책을 펼치면 불만의 목소리는 서서히 작아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소수파를 무시하고 탄압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것은 전원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전원의 최대 행복이 최상. 하지만 신이 아닌 한 불가능한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은 사소한 일로도 충돌하는 생물이다. 전원의 최대 행복을 실현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상은 전원의 행복이라고 정해두고, 현실적으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다. 이것이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가장 '나은' 정책이 아닐까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
미츠히데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동석하고 있던 아케치 가문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했나, 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발언을 돌이켜보았다. 자신이 말한 내용은 민주주의의 사상에 가까웠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를 설파해 봤자 찬동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떄문이다. 민주주의에서도 그렇지만, 그런 사상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게 된 후에 사상이 태어나는 것이다.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데 적용하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할 뿐으로 사회는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진다.
"아, 이거, 얼마 전에 읽은 남만의 책의 영향이 나왔군요. 죄송합니다, 머리를 비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겠습니다"
"아, 예……"
서둘러 변명을 하며 시즈코는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다행히 미츠히데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까와 다름없이 멍한 상태였다.
"사카모토니까, 역시 비와 호에 항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수운(水運)은 물론이고, 사카모토의 경관은 훌륭합니다. 이 경관을 즐기는 관광선 같은 것도 운행한다던가…… 그렇게 하여 사카모토에 돈이 떨어지게 되면, 서서히 불만은 사라져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 비와 호는 이런 모양이니…… 항로는 이곳과 이곳을 잇는 느낌으로 어떨까요"
도중에 종이와 붓을 가져오게 하여 시즈코는 종이에 비와 호의 모습을 대충 그렸다. 그곳에 사카모토와 오오츠(大津), 아즈치(安土), 나가하마(長浜) 등을 그려넣고 동그라미를 친 후, 그것들을 선으로 연결했다.
간소하게나마 항로를 그린 종이를 미츠히데에게 건네주었다. 읽고 있는 도중에 진정되었는지, 그는 시즈코가 그린 비와 호의 항로 제안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항구가 있으면 도시는 사람과 물건으로 넘쳐나지요. 사람과 물건이 모이면 상거래가 시작되고,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죠. 사람들에게 활기가 붙으면, 사카모토에 떨어지는 돈도 많아져서 불만도 서서히 작아지겠군요"
"네, 네에……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실패작이 되어버린 중형(中型)의 수송선, 그것을 비와 호의 상선으로 개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호오, 그건 흥미깊은 이야기군요"
시즈코가 말하는 실패작이 된 중형의 수송선이란, 스크류 프로펠러 수송선이다. 물론, 화선(和船)이 아니라 용골(竜骨)이 있는 배다.
건조된 배는 몇 번인가 사용되긴 했으나, 하천에서 쓰기에는 너무 크고, 해상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라는 저평가를 받았다.
그렇기에 실패작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 수송선도 비와 호에서 쓴다면 빛을 보게 되지 않을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행히 실패작이라고 들었음에도 미츠히데는 수송선을 채용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비와 호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을 무렵에는, 미츠히데도, 미츠히데의 가신들도 시즈코가 이야기한 민주주의 비슷한 사상은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것에 내심 쾌재를 부른 시즈코였다. 다만 시즈코는 읽고 있는 책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는다, 라고 미츠히데들이 생각하게 된 것은 깨닫지 못했다.
즐거운 이야기로 하루가 끝, 이라는 식이 되지는 않았다. 해가 지기 직전, 미츠히데의 진으로 노부나가의 사자가 왔다. 내용은 미츠히데가 아니라 시즈코에 대한 것이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본진으로 와라, 였다.
호출 소식을 들은 후 시즈코는 바쁘게 움직였다. 식사를 부어넣듯이 마친 후, 병사들의 작업 상황을 확인하고 남은 일에 대한 지시를 빠르게 내렸다.
"정신이 없어 죄송합니다"
"아뇨아뇨, 천만에요. 즐거운 한 때였습니다. 또 기회가 있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시즈코는 전송하러 나와준 미츠히데에게 사과했으나, 미츠히데 본인으로부터는 신경쓰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후, 시즈코는 말고삐를 쥐었다.
"그럼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시면 남겨놓은 병사에게 물어주십시오. 담당자가 대답해드릴 것입니다. 그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는 말을 달리게 했다. 서둘러 달려가는 시즈코의 모습에 미츠히데는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즈코에게는 그걸 눈치챌 여유조차 없었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본진에 도착하기 전에 밤이 되어버린다. 그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시즈코였다.
다행히 말을 혹사시킨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저녁(日暮れ)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에 본진에 도착했다.
"늦다"
하지만, 노부나가에게서는 입을 열자마자 불만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만큼 급한 용건이 있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면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사죄했다.
"이것을 보아라"
노부나가는 간소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말대로 시즈코는 지도를 보았다. 히데요시의 그것과 달리, 적과 아군의 포진 상황 등 자세한 정보가 지도에 그려져 있었다.
즉, 아자이와 아사쿠라 양 진영에 정치적 책략의 손길이 깊이 침투해 있다고 해도 좋았다. 아니면 이만큼 상세하게 적의 정보를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사쿠라는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이번 출진을 결정했지. 그렇다면, 요시카게에게 반감을 가진 일족이나 가신이, 노부나가의 정치적 책략에 달려드는 것도 당연한가) 거의 승리, 로군요"
"이유를 말해라"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이 노부나가의 귀에도 들어갔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지도의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키오 요새의 공략이 성공하면, 남는 것은 오오즈쿠 성 뿐입니다.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에 몰립니다. 아사쿠라는 이번에 주위의 반대를 물리치고 출진했습니다.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원군으로 달려온 대의명분을 잃게 됩니다"
"계속해라"
"오오즈쿠 성이 함락되면, 아사쿠라 군에 동요가 퍼져나가고, 철수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이것에는 요시카게도 거스를 수 없겠죠. 하지만, 아사쿠라 군이 철수하려면 본진에서 츠루가(敦賀)까지 가늘고 긴 산길을 지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일직선으로 긴 행군을 강요받게됩니다. 이후에는…… 엉덩이를 창으로 찔러주면 끝나게 됩니다"
"그걸 감안해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노부나가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시즈코는 명령받은 대로 노부나가에게 '자신이라면 이렇게 한다'라는 내용을 말했다.
아무래도 큰 목소리로 말할 내용은 아니었기에, 노부나가에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췄지만.
"재미있군. 날씨(天候)에 좌우되지만, 놈들의 혼을 빠지게 할 수 있겠군. 크큭, 그런 그렇고, 이것에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
"계책이라는 것은 '설마 그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군에는 이러한 계책에 딱 맞는 인물이 있습니다"
"유쾌하구나. 야키오 요새의 공략은 내일에라도 끝나겠지. 네 이야기를 듣고 원숭이(※역주: 히데요시)가 필사적으로 계략을 짜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시즈코가 히데요시에게 말한 내용을 노부나가는 어떠한 수단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미츠히데에게 이야기한 내용도 그는 파악하고 있을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만, 미츠히데의 이야기는 흥미의 대상이 아니었는지, 노부나가가 사카모토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어오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바빠지겠구나"
진심으로 즐거운 듯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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