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4 1573년 5월 중순



시즈코는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되었었다고 해야 할까.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으로부터의 항복 수락을 전하는 서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릴 때, 노부나가의 대응은 빨라도 다음 날 아침이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전달받은 노부나가는 내용을 파악하자 정무를 중단하고, 정확성이 높은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는 결단을 내렸다.

준비에 시간을 잡아먹는 호위대(馬廻衆)를 놔두고 혼자서 말을 몰아 먼저 달려갔다.

강의과단(剛毅果断). 가장 빠르게 행동하는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사람은 없었다.

통상 한나절은 걸리는 거리를, 말을 바꿔타며 겨우 몇 시간만에 질주한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시간대였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으로부터의 서신에 대해 묻고 싶은 것(疑義)이 있으니, 사자(使者)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질풍신뢰(疾風迅雷)처럼 이동했을 노부나가였으나, 그에게서는 피로감 등은 보이지 않고 넘쳐나는 패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건네받은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거칠게 닦은 후, 다짜고짜 용건을 꺼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기세에 멍해졌지만, 즉시 그의 요구를 이해하자 카네츠구(兼続)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회견 절차를 갖추었다.

카네츠구 자신도 노부나가를 알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알현에 임했다.


"사자님께 묻지. 즉시 결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상대가 설령 어린애(童)라고 해도, 노부나가는 우에스기 가문의 사자로서 취급했다. 카네츠구도 예상보다 꽤나 빠른 알현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영주님(御実城様)께서 숙고(熟考)하신 결과입니다"


"우에스기의 가신(家臣)들에게 불만은 없었는가"


"불만이 있던 없던, 영주님의 결단에 따르는 것이 가신. 물론 소생에게 불만 따윈 없습니다"


"우에스기가 바라는 요구란 무엇인가"


"그에 대해 소생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햇사옵니다. 다만, 난세(乱世)의 종언(終焉)과 백성들에 충분한 먹거리를 줄 수 있는 것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즈코조차 압도되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겁먹지 않고 말을 늘어놓은 카네츠구를 노부나가는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씩 하고 한층 깊은 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너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이냐"


"영주님께서 신하의 예를 취하실 때까지 인질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영주님께서 약정을 어기신다면, 이 목,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 나이 치고는 훌륭한 각오로군. 흠…… 대략 그쪽의 사정은 파악했다. 수고했다. 물러가도 좋다"


"옛"


"밤도 깊었으니 밖을 돌아다니기는 불편하겠지. 특별히 시즈코의 집에 방을 마련하게 할 테니, 한동안 몸을 쉬도록"


"과분한 배려, 황공하옵니다"


카네츠구 자신도 (요구에 대해) 듣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는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질의를 마친 노부나가는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하고 독백했다.


"큭큭큭, 이렇게까지 노린 대로 움직이면 어쩐지 무섭기까지 하군"


사람들을 물리고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노부나가는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을 쳐부수고, 쌍벽을 이루는 우에스기 켄신까지 굴복시킨 것이다.

그것들을 겨우 반년만에 해낸 것이니, 노부나가가 아니더라도 웃음이 멈추지 않을 상황이리라.


"아자이(浅井)와 아사쿠라(朝倉)가 초조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굼벵이(愚図) 놈들이, 내 서신을 무시한 것을 후회하고 있겠지. 실로 유쾌하구나!"


한발 빨리 시류(時流)를 판단한 우에스기와, 대조적으로 우둔한 아자이, 아사쿠라의 행동을 돌아보고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이 때의 노부나가의 모습을 기록한 책에 '각별(格別)한 만족감'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노부나가가 기뻐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우에스기의 굴복(臣従)이라는 사건은 그의 패도(覇道)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며, 천하통일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시즈코! 술창고를 열고 술을 대접하거라!"


그 후, 겨우 쫓아온 호위대(馬廻衆)나 소성(小姓)들도 함께하여 조촐하지만 연회(宴)가 열렸다. 평소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노부나가도, 이 때 만큼은 모두와 잔을 나누며 술잔을 비워댔다.

그리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출발하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풍처럼 기후(岐阜)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쓸데없이 혼자서 달려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노부나가의 갑작스런 행동에 겨우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노부나가의 습격(襲来)으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후 그로부터의 접촉은 없었고, 또 싸움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라,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카네츠구는 인질이라는 취급이었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그를 데리고 나가서 마을에서 놀며 돌아다녔다. 한가로운 분위기에 기분도 느슨해져, 시즈코도 오랜만에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카카오 나무는 성목(成木)이 되었고, 커피 나무도 70cm 정도까지 성장하였으며, 후추는 순조롭게 포기 수를 늘려서 양산에 기세가 붙었다. 라이치나 망고스틴 등의 남국(南国) 계열 과수(果樹)의 생육도 순조로웠다.

육성 환경이 최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조로운 성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비옥한 토양과 기후 조건 등으로 적당한 스트레스가 걸리는 환경에 있는 것이 식물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여, 빠르게 성장하여 자손을 남기려고 하고 있는게 아닐가 하고 시즈코는 추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다 가문의 중신(重臣)이 된 것 때문에 농사일에만 관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각 작물마다 담당자를 배정하고 실제 작업에서는 손을 떼고 있었다.

고생하여 들여온 작물에 관여하지 못하는 불만은 있었으나, 생육이 순조로운 것을 시즈코는 기뻐했다.


"슬슬 바나나의 3배체(倍体)에도 도전해 볼까. 아마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를 조합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역시 바나나는 씨없는 바나나여야지"


자연환경에서 우발적으로 바나나의 3배체가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시즈코는 씨없는 수박 등과 마찬가지로 2배체와 4배체의 교배에 의해 3배체 바나나가 발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3배체를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약제인 콜히친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통풍(痛風)용의 약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부작용도 강하기 때문에, 현대에서는 통풍에 콜히친이 처방되는 경우는 드물다.


"뭐, 뭐든지 시험해봐야 하니까, 4배체 바나나 만듥기 도전부터 시작했지만…… 3배체가 나오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현대의 씨없는 수박을 만드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바나나의 싹에 아마도 추출할 수 있었을 콜히친 추출액을 처리햇다.

다만, 이게 성공했는지, 애초에 콜히친이 정상적으로 추출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콜히친의 추출 자체는 수입한 콜키쿰(イヌサフラン, Colchicum autumnale, autumn crocus)의 종자(種子)나 인경(鱗茎)을 에탄올로 열처리하면 추출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결정화하려면 초산(酢酸) 에틸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추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 믿고 처리를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방식이다.

애초에 4배체가 얻어질 확률 자체가 많아봤자 10퍼센트 정도이므로, 씨없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으ー음, 걱정없이 밭일에 전념할 수 있는 건 즐겁네"


비닐하우스(엄밀히는 비닐이 사용되지 않음)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기세좋게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일을 끝내면 툇마루(縁側)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수박이라도 먹자,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아, 맞다. 슬슬 다들 자리가 잡혔을 무렵이니, 집들이(新築祝い)라도 할까"


그 후에 시즈코는 이 발언을 후회하게 된다.




시즈코가 집들이 연회를 연다. 그 정보는 순식간에 노부나가나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귀에도 들어갔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게도, 조금 늦게 도쿠가와(徳川) 가문과 주요 가신들에게도 정보가 흘러갔다.

시즈코로서는 한식구끼리 조촐한 연회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사방천지에서 집들이 축하 선물(新築祝い)이 산더미처럼 도착했다.

급히 참가자 명부를 작성한 쇼우(蕭)가, 씨족(氏族) 별로 정리된 명부를 시즈코에게 건넸는데, 시즈코는 건네받은 명부의 두께를 보고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기ー, 어째서 이렇게 많이 축하 선물을 받은걸까? 그보다 나, 집들이 이야기는 주상 외에는 알리지 않았는데?"


"그건…… 시즈코 님이시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의미를 모르겠어 쇼우 짱. 어쨌든 식재료도 집기(什器)도 부족할테니 잔뜩 사들여와. 이걸 보여주면 돈은 아야 짱이 준비해 줄 테니까"


"옛! 그럼, 사야 할 것들 목록을 준비할테니,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응, 잘 부탁해"


기운좋게 인사를 한 후 쇼우는 방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고 시즈코는 다시 한 번 명부를 읽어보았다.

위로는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에서 시작하여, 아래로는 정말 어디의 누구냐고 묻고싶어지는 사람들까지 참가자 숫자는 부풀어올라 있었다.

어디서 정보가 샌 걸까, 라고 조금 경계심을 품은 시즈코는 케이지를 불렀다.


"그야 시즛치지. 지금은 나는 새를 떨어뜨릴 기세인 시즛치의 동향. 누구라도 그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저택은 눈에 띄니까 감출 방법이 없어"


불려온 이유를 알게 된 케이지는, 반쯤 어이없어하면서도 대답했다.

좋든 나쁘든 시즈코는 감시받고 있다. 당사자가 평상시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그녀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뭔가를 하면, 적어도 오다 영토 내에서는 전원에게 훤히 알려진다.

다른 영토인 도쿠가와 가문에까지 전해진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리라.


"으ー음, 그냥 좀 신경쓴 식사회가 될 예정이었는데, 엄청 큰 일이 되어버렸네"


"포기할 수밖에 없어. 무토(武藤) 아저씨도 말했지만, 시즛치에게 줄을 대보려는 놈들은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지.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패거리는 조심해야돼"


"작작 좀 했으면 좋겠어요. 권력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권력투쟁은 나라 안을 너덜더덜하게 만들 뿐이라고요"


"그러네. 하지만 시즛치는 여기저기 투자하고 있잖아? 그게 남들이 보기에는 사정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거야. 돈과 권력, 사람이 길을 잘못 들기에는 충분하지"


"돈도 권력도, 결국 뭔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 쪽이 이 세상엔 많은 거야"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주의하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도 좋지 않아"


"그럴게요. 미안해요, 오래 붙잡아둬서"


"신경쓰지 마. 요로쿠의 상대를 하는 건 재밌거든. 문제가 있다고 하면, 요로쿠가 인질이라는 입장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는 점일까?"


켄신이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래,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켄신과 연락을 했다. 그 때 교환된 문서에 의해, 카네츠구는 정식으로 오다 가문에게 맡겨진 몸이 되어, 켄신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올 때까지의 기간 동안 사실상의 인질로서 취급되게 된다.

이 정도의 중대 안건에 인질이 근시(近習) 한 명이냐고 노부나가는 의심하기도 했지만, 만약 켄신이 약정을 어기면 어린애 한 명에게 책임을 씌워 내버렸다고 선전할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여 카네츠구의 신병을 인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카네츠구는 케이지 감시 하에 시즈코 저택에서 묵고 있었다.

하지만, 감시가 붙어있다고는 해도 행동이 제한되는 경우 같은 건 거의 없고, 때때로 둘이서 함께 거리로 나가서는 밤늦게 돌아온다는 경우도 흔했다.


"그건 케이지 씨에게도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


"실례네. 제대로 감시는 하고 있어"


"감시라는 명목 하에 데리고 놀러다니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점심때쯤 일어났다고 생각했더니 카네츠구를 데리고 어딘가로 놀러가고, 돌아와서는 배불리 밥을 먹고 잔다.

케이지는 방심을 유도하여 본성을 보고 있다, 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놀고 있는 걸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카네츠구도 예의가 필요한 장소에서는 무가(武家)다운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케이지와 어지간히 상성이 좋은지, 둘이 함께 있으면 즉시 정신이 느슨해진다. 얼핏 보기에는 얼빠져 보이지만, 이런저런 입장을 다 배제하고 나이에 맞는 소년다움이 드러난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면 된 건가. 좀 있으면 우에스기가 주상께 인사드리러 올 테니, 그 때까지라고 생각하면 눈감아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런 거지. 그럼, 난 이만 실례하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방을 나갔다. 스킵(skip, ※역주: 한 발씩 번갈아서 껑충껑충 뛰는 것)이라도 할 것 같을 정도로 즐거운 분위기라고 느꼈기에, 또 거리에라도 놀러갈건가 하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그럼…… 우에스기는 언제쯤 오려나. 뭐, 그건 주상께서 생각하고 계실테니 신경쓸 필요는 없으려나. 나는 집들이 참가자 처리를 하자"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책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즈코가 집들이 준비에 정신이 없을 무렵,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켄신의 항복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혼간지는 다급하게 노부나가에게 강화를 타진해왔다.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충격을 받았지만, 노부나가에게 그들은 이미 의식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었다.

노부나가는 혼간지와의 강화 조건으로, 반드시 통화발행권(通貨発行権)을 인정하게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통화발행권의 중요성을 혼간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통화발행권을 손에 쥐려는 노림수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노부나가가 그 밖에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혼간지에 제시한 것은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부풀리기(ふっかけ)'이다.

도어 인 더 페이스 테크닉(door in the face technique)이라고 불리는, 요구의 낙차(落差)를 이용한 교섭술이다. 일본에서는 양보적 요청법(譲歩的要請法)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처음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 당연히,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한다.

거기서 서서히 요구를 낮추어, 최종적으로 자신이 원한 요구를, 마치 그만큼 양보했다고 생각하게 하여 상대에게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는 교섭술이다.

이것은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라던가 '호의를 보인 상대에게는 호의로 보답한다' 등, 베품(施し)이나 호의를 받았을 경우 뭔가 답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라고 불리는 심리 법칙을 이용하고 있다.


그런 교섭술을 쓰는 이유는 명백하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양보했다'는 시늉을 대외적으로 보이면서 자신이 바라는 요구만을 확실하게 통과시킬 생각이었다.

혼간지는 뭔가 생트집을 잡아서라도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교섭해올 것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혼간지 측으로부터는 우는 소리에 가까운 탄원서가 도착했다.


"큭큭큭, 어리석은 놈들"


노부나가는 싱글벙글 웃으며 미리 준비해둔 '2번째'의 강화 조건이 쓰인 서신을 혼간지에 보냈다. 당연히, 그것도 혼간지가 거부할 것은 예상한 바였다.

설령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해도 노부나가에게는 본래의 조건에 덤으로 붙어오는 것이다. 거절당하면 세 통 째의 강화 조건을 보낼 뿐이다. 어느 쪽으로 결과가 나오던 노부나가에게 손해는 없었다.


"곧 비명을 지르겠지. 다른 곳에서 압력이나 항의(苦情)가 들어오면 대답을 늦춰라. 금방 참지 못하고 행동을 일으킬 것이다"


교섭이 난항을 겪어 싸움을 걸어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노부나가는 두 번이나 양보해보인 것이다.

교섭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싸움을 걸어온다면 혼간지에게 대의(大義)는 없다. 도량을 보인 노부나가와, 자기본위에 도량이 좁은 혼간지. 사람들이 어느 쪽을 지지할지는 명백했다.

당황해서 강화를 신청한 시점에서 혼간지에 승산은 없었다. 노부나가는, 언제 켄뇨(顕如) 등이 강화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자포자기(破れかぶれ)하여 싸움을 걸어올지 남몰래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속이 시커먼 외교와는 인연이 없는 케이지는, 오늘도 카네츠구를 데리고 오와리(尾張)를 여기저기 산책하고 있었다.

카네츠구는 인질의 신분이지만, 감시역인 케이지는 전혀 신경조차 쓰고있지 않았다. 카네츠구를 데리고 온종일 놀러다니고 있었다.


"음…… 소문으로 들은 것처럼, 민초(民草)들의 표정이 밝군. 병자나 말라비틀어진 노인 따윈 어디에도 없어. 어린애들(童子)조차 기운차게 뛰어놀고 있군"


"지금은 이렇지만, 10년 전만 해도 말도 아니었어. 오다 나으리는 이 주변 일대를 갈아엎어버리고 상행위 자리를 만들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정도니까"


비옥한 대지가 많은 오와리이지만, 물론 모든 땅이 비옥했던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말라비틀어진 땅에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부터 가는 곳은, 시즛치가 처음으로 손을 댄 마을에 살던 녀석들이 있는 곳이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기대되는군"


그런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은 시즈코가 처음으로 맡았던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카네츠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괴이한 광경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되었다.

늘어서 있는 비닐하우스, 물방앗간(水車小屋)과 연결된 수직농장(垂直農場) 용의 설비 등, 그의 뇌리에 있던 전원풍경과는 전혀 다른 경관이었다.


"이 무슨…… 뭐지 이건?"


카네츠구는 눈 앞의 광경에 혼란스러워져 멍하니 멈춰서 있다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인마! 누구야, 밭을 어지럽히는 녀석은!"


옆쪽에서 날아온 노성(怒声)에 카네츠구는 그제서야 제정신이 들었다. 무의식중에 상당한 거리를 걸었던 듯, 그의 발은 밭의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케이지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건지, 카네츠구로부터 시선을 떼고 있었기에 그도 카네츠구가 밭에 걸어들어간 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구야 너희들…… 아니,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아, 너는 빨리 밭에서 나와!"


간신히 케이지도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아직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카네츠구를 붙잡아 밭에서 끌어낸 후,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는 남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 내가 눈을 뗀 바람에 밭을 어지럽혀 버렸네"


"아, 아니아니,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으니 괜찮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어린애는 누굽니까?"


"아ー 시즛치의 손님, 일까?"


인질이라고 하면 듣기에 나쁘다고 생각하여, 케이지는 카네츠구의 정체를 얼버무렸다. 남성도 그렇게까지 카네츠구에게 흥미는 없었는지, 케이지의 말을 듣고 납득한 표정을 떠올렸다.


"미안합니다. 본 적도 없는 광경이었기에, 넋이 나가버려 논밭을 어지럽혀버렸소.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고함쳐서 미안했어. 아, 나는 타고사쿠(田吾作)라고 해. 촌장…… 시즈코 님의 손님이라면, 우리들에게도 손님이야. 아무 것도 없는 곳이지만, 천천히 있다 가라고"


"요로쿠라고 합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이쪽에서 보면 하나같이 새로운 것을 뿐이군요"


아까와는 정반대로 타고사쿠는 우호적인 태도가 되었다. 시즈코의 이름을 꺼낸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뀌는 건가, 라고 카네츠구는 새삼 시즈코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건 그렇고, 여전히 수수께끼의 것들이 많구만"


"헤헷, 여긴 시즈코 님이 바쁘셔서 못 하시는 일을 이것저것 맡고 있으니까요. 덕분에 다른 마을에서 온 녀석들은 거의 다 쩔쩔매고 있지요"


"괜찮다면,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카네츠구의 말에 타고사쿠는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떠올렸다. 옆에서 케이지가 쓴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카네츠구는 타고사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 잠깐 기다려줍쇼…… 있다, 이거군. 우선 이걸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간 타고사쿠였으나, 금방 뭔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카네츠구는 타고사쿠가 들고 있는 것을 지긋이 바라보았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얼핏 보기에는 투명한 상자에 초목(草木)이 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 수경재배(水耕栽培)라고 하는 새로운 농법이거든요. 시즈코 님은 이 녀석의 연구를 하고 싶으신 것 같지만,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우리가 수경재배의 연구를 맡은 겁니다. 관리가 어렵고, 저는 배운 게 없으니 흙도 없는데 어째서 자라는지 모르지만 말이죠"


수경재배란 종래의 흙에서 재배하는 농법과 달리, 물에 담궈서 재배하는 농법이다. 통상적으로는 무기(無機) 비료(肥料)를 사용하지만, 현대에서는 유기(有機) 액체비료(液肥) 등 유기 비료를 사용한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확실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안 가는군요"


"그렇지! 뭔지 모르겠지만 자라거든! 정말, 시즈코 님은 머리부터 우리와는 다르다고!"


수경재배에도 놀랐지만, 카네츠구가 가장 놀란 것은 시즈코가 생각한 것을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듯 기뻐하는 타고사쿠였다.


"타고사쿠 님은,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요"


"헤헷, 뭐 지금에야 다들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거든. 왜냐하면 갑자기 여자, 그것도 우리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애가 촌장이 되었으니까. 아무리 오다 님의 명령이라도 그건 좀…… 이라고 생각하는 녀석이 잔뜩 있었지"


"촌장……? 혹시 시즈코 님은 예전에 이곳의 촌장을 맡으셨던 겁니까?"


"어! 우리 마을은 세금으로 바칠 수확(年貢)의 양이 나빠서 말야. 그 때, 마을을 없애지 않는 대신, 시즈코 님이 파견되었다는 이야기야.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순식간에 굶어죽어가던 마을이 부활했다고. 저기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많은(年嵩) 애가 있지? 저 녀석, 예전에는 빼빼 마른 굶주린 꼬맹이였는데, 지금은 배터지게 밥을 먹고 크게 자랐어. 저 녀석 엄마가 밥을 준비하는게 큰일이라고 투덜거릴 정도의 대식가라고"


타고사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카네츠구는 얼굴을 돌렸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다들 혈색이 좋은 피부를 하고 있었다. 타고사쿠가 가리킨 인물은, 그 중에서도 한층 키도 크고 폭도 넓었다.


"어때, 시즛치가 목표로 하는 세상이 조금은 보였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케이지가, 아이들이 노는 광경에 못박혀있는 카네츠구에게 질문했다. 아이들을 홀린 듯 보고 있던 카네츠구가, 케이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충분해. 하지만, 이래서는 무사(いくさ人)는 필요없어지겠군. 슬픈 이야기지만, 이런 세상에 싸움만을 업으로 하는 자들은 소용없을테니까 말야"


그렇게 말하는 카네츠구는, 말과는 달리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5월 중순,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강화가 성립했다. 노부나가가 가장 원했던 통화발행권을 그는 보기좋게 획득했다.

그 밖에도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들에 대해 편의를 제공할 것, 토지의 소유자 정리에 협력할 것, 경제 발전을 목표로 한 도로 정비 등의 인프라 사업에 자금을 출자할 것 등, 그 밖에도 세세한 내용이 정해졌다.

주위에서 보면 노부나가가 토지를 얻은 것도 아니고, 또 배상금을 얻은 것도 아니다. 꽤나 온당한 강화로 보였으나, 혼간지 자체는 노부나가를 경계하는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미 목표를 달성한 노부나가는 신경쓰지 않고 가신들에게 통화의 개발을 서두르도록 명했다.


"교통편이 좋아지면 반드시 경제는 발전한다. 자금은 혼간지가 낼테니, 신경쓰지 말고 많은 사람을 고용해라. 특히 생활이 곤란한 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주어라"


그와 함께 노부나가는 도로 정비도 가신들에게 명했다. 어찌되었던 도로 정비가 가장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길 없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물건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류를 촉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쿄(京) 주변에만 길이 정비되어 있어서는 부족하다. 일본 각지, 벽지(僻地)에까지도 노부나가는 모든 장소에 길을 낼 생각이었다.

물론, 도로에 관해서는 운용부터 관문(関所)까지 여러 가지 법이 정해져 있었다. 이러한 법들에 대해서는 혼간지도 준수하도록 약속하게 했다.


"토지는 전부 조사(検地)하라. 방해하는 자는 무력으로 침묵시켜도 좋다. 토지의 소유주는 자발적(差出方式)으로 결정하라"


토지의 소유자를 확정시키기 위해, 도로 정리와 함께 가신들에게 명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토지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여, 지배 체제를 정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교 세력(寺社勢力)이나 공가(公家)가 가진 장원(荘園)을 포함하여, 대체 어디에 얼마만한 토지가 있는 정확한 수치를 손에 넣는 것이다.

영토 내부를 일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치가 필요 불가결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징세(徴税)를 하면 혼란은 적어지고 지역간에 차이가 나는 것에 의한 항쟁도 사라지게 된다.


"알겠느냐, 절대 소홀히 하지 마라. 측량(検地)을 얼버무린 자는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打ち首)할 것이다"


그 한 마디에 가신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노부나가는 규율을 깨뜨린 자를 지위를 막론하고 참수한 과거가 있다. 따라서 조사를 대충 얼버무렸다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문 폐쇄(お家取り潰し)에 가까운 징벌이다.

그것을 이해한 가신들은, 노부나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절대 소홀히하지 않고 맡은 일을 수행해나갔다.


한편, 노부나가와 혼간지가 강화한 것에 의해 켄신은 카가(加賀)나 엣츄(越中)의 일향종(一向宗)과 간접적인 강화를 하게 되었다. 물론, 조부(祖父)의 대부터 싸워온 사이이므로 강화라고는 해도 순순히 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혼간지가 강화한 것과, 강화 조건에 '노부나가를 찾아오는 자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자는 오다 측에서 어떻게 처분하던지 혼간지는 간섭하지 않는다, 는 조건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군. 쿄에서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나란히 오다 님이 있는 곳으로 가다니"


켄신은 정예병 5000을 이끌고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을 나섰다. 아무리 노부나가와 혼간지 사이에 약속이 되었다고 해도, 켄신은 그것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군 중에는 나오에 카게츠나(直江景綱)나 카와다 나가치카(河田長親) 등, 켄신의 측근들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혼죠 사네요리(本庄実乃) 등에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치고(越後)를 맡겼다.


"……내 몸은 오다 가문에 있으며, 오래 전부터 이미 쇼군(将軍)이 아니다. 이번은 예외 중의 예외이다"


"핫핫핫, 그렇겠지. 지금은…… 어이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네만?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말아주게"


아시미츠(足満)는 켄신에 대해 마지못해 대꾸를 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사키히사(前久)가 아시미츠를 놀렸다.

말하는 도중에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았기에, 사미히사는 마지막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입가에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명백히 재미있어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한 아시미츠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혀를 찼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게. 이제 곧 만날 수 있을테니"


"……네놈,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으음? 말해도 좋은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키히사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해한 아시미츠는 혀를 찬 후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핫핫, 너무 놀린 모양이군. 기다리게 친구여. 아무 의미도 없이 놀린 게 아닐세. 자네는 짜증스러…… 어흠, 지나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네. 좀 더 웃는 게 어떤가"


"쓸데없는 참견이다. 내가 복잡한 표정을 짓던 말던 네놈에겐 관계없지 않느냐"


"친구로부터의 조언일세. 조금은 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아시미츠와 사키히사의 투닥거림을 켄신은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부럽다고까지 생각했다. 두 사람은 별 뜻 없이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겉치레(建前)를 배제한 채 본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얻기 힘든 기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에치고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무사가 토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 때문에 내란이나 가신들끼리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초기의 우에스기 가문에서는 지역별로 파벌이 생길 정도였다.

초기의 켄신의 측근인 오오쿠마 토모히데(大熊朝秀)가 행방을 감추고(出奔), 후에 타케다 가문에 들어간 것도 에치고의 특수한 환경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또는 파벌투쟁의 영향으로 쫓겨났다고도 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켄신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친구 같은 건 바랄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부럽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친구란 좋은 것이다. 거리낌없이 말을 주고받고, 곤란한 길을 걸으려 하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군"


"영주님(御実城様)"


"미안하다. 단지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한 것 뿐이다"


그 말만 하고 켄신은 말의 걸음을 빠르게 했다. 말을 건 카게츠나는 켄신의 마음 속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헤아렸다.

하지만, 그 말을 카게츠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말하면 켄신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혼간지에서 독립 경향이 강한 카가나 엣츄의 일향종이라도, 아무래도 켄신의 정예병과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 군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길에 요여(神輿)를 놓는 등 약간의 방해공작을 하면서 본격적인 대치는 피했다.

요여란 단적으로 말하면 신이 계시는 가마(輿)이다. 그렇기에, 요여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가져다 버려라"


하지만, 방해공작이라고 해도 아시미츠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반대로 아시미츠의, 어떤 의미에서는 냉혹하다고도 할 수 있는 현실주의(realism)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길에 놓인 요여를 쓰레기로 단정하고, 부근의 절벽에서 던져버렸다. 중량이 있는 요여가 낙하의 충격으로 여기저기 박살이 났다.

무참한 모습이 된 요여를 일별조차 하지 않고 아시미츠는 행군을 재개했다. 신벌(神罰)을 두려워하여 가까이 가려 하지 않는 켄신의 병사들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무섭군. 그는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인가"


역전의 맹장(猛者)인 카케츠나조차 신벌에 대해서는 두려워한다. 오히려 카게츠나의 태도야말로 전국시대의 무사로서는 보통이었다. 아시미츠처럼 요여를 태연하게 던져버리는 짓이 가능한 쪽이 이단(異端)이었다.


"그에게는 신도 부처도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겠지요. 제게는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만. 뭐, 녀석의 생각 따윈 누구도 이해할 수는 없겠죠"


"저런 자를 데리고 있으면서 오다 님은 불안해지지 않는 것입니까"


"아무래도 처음에는 놀랐겠죠. 하지만, 때로는 그와 같은 인물조차 부릴 필요가 있다, 고 오다 님은 생각하고 계시겠죠. 때때로 그에게 임무를 명하고 있습니다. 저 정도로서는 오다 님이 무엇을 목적으로 임무를 맡기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습니다만"


말과는 반대로 사키히사가 가벼운 말투로 카게츠나의 의문에 대답했다.

아시미츠는 신불(神仏)에 대한 경의도, 우려움도, 아무런 특별한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사키히사에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의 아시미츠는 예전에 쇼군(将軍) 시절의 그와는 다르다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아시미츠는 도덕도 윤리도 양심도 내다버린, 얼음처럼 차가운 현실주의자다. 그래도 뿌리 부분이 변하지는 않았기에, 사키히사는 변함없이 아시미츠와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고노에 님도 신벌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한 번은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이어졌지요. 이것도 신불의 배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손득(損得)을 배제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친구라는 것입니다"


"신벌보다 친구와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계시는 겁니까"


"스스로 원하여 신벌에 말려들려는 것 따위, 세상에서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 인연도 그 신불이 내려주신 것. 이것을 소중히 하는 것은 그렇게 우스운 것일까요. 아니, 확실히 우습겠군요"


카게츠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사이가 나빠 보여도, 사키히사와 아시미츠는 깊은 부분에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 손득이나 세상의 소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친구를 위해 움직인다. 심플하고, 그리고 전국시대에서는 이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오, 소생은 부럽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란 그렇게 고마운 것, 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복잡한 표정이 사라지고, 카게츠나는 사람좋은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부나가와 화평을 맺은 혼간지는, 병행하여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타케다(武田) 군은 하룻밤만에 패배했는가,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노부나가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 개월에 걸쳐 알아낸 내용, 그것은 켄뇨(顕如)나 라이렌(頼廉)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럼 오다는, 처음부터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여 행동했다는 것인가?"


켄뇨들을 놀라게 한 내용, 그것은 노부나가가 오다 포위망을 공략할 때, 끌려나온 타케다를 쳐부술 것을 전제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오다 포위망에는 강력한 군이 필요하며, 그리고 그것은 켄신보다 타케다가 맡을 가능성이 높다, 고 노부나가는 예측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타케다는 카이(甲斐)에서 출진하여,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패배를 맛본다.

타케다가 오다 포위망에 참가한 것도, 그 후의 혼간지나 다른 세력이 한 일도, 처음부터 노부나가가 그렇게 되도록 꾸몄다, 라는 것이 된다.

요약하면, 반 오다 연합은 노부나가의 손바닥 위에서 춤춘 것에 불과하다.


"그럼 강화 내용에도 놈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오!?"


"기다리시오. 그건 우리도 생각했소. 하지만, 놈은 토지를 요구하거나 우리들에게 퇴거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소. 게다가, 그 이상 버텼다간 오다에게는 우리들에게 강화의 의사가 없다고 보였을것이오"


"우리들에겐 모우리(毛利)의 지원이 있소. 우리들은 농성하며 오직 버티기만 하면 되오. 돈도 쌀도 무진장(無尽蔵)으로 있지. 그 동안 놈들의 자금줄을 포위하면 자동으로 국력을 잃게 될 것이오"


"외람되지만"


간자들의 보고로 당황하는 켄뇨의 측근들이, 라이렌(頼廉)이 말을 꺼내자 뚝 하고 대화를 멈추었다.


"오다의 경제를 봉쇄하는 것보다, 타케다를 쳐부순 오다의 주력인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의 대책을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지만…… 어차피, 여자 아니오? 뭘 어떻게 할…… 아니, 실례했소"


라이렌의 말에 한 명의 승려가 반론했다. 그러나 라이렌이 노려보자, 그는 다급히 의견을 집어삼켰다. 라이렌은 켄뇨의 측근들을 한 번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자 상대라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들은 그 여자의 계책에 패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여기서 변명을 늘어놓아봐야, 우리들의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얕본 채로 또다시 발목을 잡혀, 손을 쓸 방법도 없을 정도로 패배하는 미래를 바라십니까?"


라이렌의 말에 켄뇨까지 입을 다물었다.

실은 켄뇨로서도 그래봤자 여자라고 약간 얕보고 있었다. 하지만, 군사 지휘관인 동시에 뛰어난 정치가인 라이렌은 시즈코를 얕보지 않았다.

그는 시즈코가 여자이기에 이 정도로 치고 올라올 때까지 누구나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헤아렸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가 여자인 것 때문에 얕보는 인물이 있다. 그건 무서운 일이라고 라이렌은 깨달았다. 왜냐하면 무얼 해도, 어떤 공적을 세워도 얕보이는 것이다.

상대에게 얕보게 할 수 있으면 불리한 상황을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니 시즈코의 입장이 대단히 부럽다고 라이렌은 생각할 정도였다.


"여자라고는 해도, 아니, 여자이기에 상대를 방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즈코의 술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방심은 금물(油断大敵). 우리들은 놈을 여자가 아니라 오다와 어꺠를 나란히 하는 적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을 타케다와 같은 말로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오다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습니다만, 그 시즈코인지 하는 건 완전히 미지의 존재입니다"


"그것을 위한 강화.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시즈코에 대해 조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즈코 본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탁월한 지혜를 가진 것, 칼의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놈은 관리하는 토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그리고 놈이 이끌고 있는 군이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헛기침을 하여 라이렌은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 자신도 여기까지 여자를 적수로 보는 것은 굴욕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분노 때문에 눈이 흐려지면 여자에게 어이없게 패한 나약한 놈, 이라고 후세에 웃음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굴욕보다도 참고 승리를 얻어야 한다, 고 라이렌은 머릿속을 정리했다.


"놈의 군에는 8명의 측근이 있습니다. 모리 카츠조(森勝蔵),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 아시미츠(足満), 토우도 요키치(藤堂与吉),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 전원이 이색적인 출신을 가진 자들이오. 보통이라면 군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개성이 강한 자들을 통솔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지휘능력은 뛰어나다고 봐도 좋습니다"


"확실히…… 특히 마에다 케이지는 우리들의 귀에도 들어올 정도의 카부키모노(傾奇者).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구에도 굴하지 않는 사내가, 어째서 얌전히 군에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거야말로 놈의 강점. 하지만, 어떤 강자에게도 약점은 존재합니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는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렌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대로 오다와 정면 충돌해도 승산은 없다. 또, 농성을 하려고 해도 오다 측에는 수수께끼의 발파통(発破筒)이 존재하기에, 성문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 손으로 악수하는 척을 하면서, 반대쪽 손으로 후려갈길 수 있는 시기까지 오로지 기다린다, 이것이 지금의 혼간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선택지였다.


"지금의 우리들은 오다의 세력을 꺾을 약점을, 고노에 시즈코의 약점을 찾을 때까지 계속 견디는 것이 최선. 비웃는 자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됩니다. 우리들이 마지막에 이기면, 그런 비웃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소! 시모츠마(下間) 형부경법교(刑部卿法橋) 님의 말대로이오!"


작전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한 사람의 승려가 일어서며 흥분한 기색으로 외쳤다. 그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마지막에 이기면 되는 것이오"


"오다에게는 마음대로 말하게 놔두면 되오. 짐승같은 무사에게 구름 위의 존재(雲上人)인 승려가 패할 리가 없소! 마지막에는 부처의 가호가 있는 우리들이 승리할 것이오!"


"당장 농성을 대비해 손을 쓰도록 하지요. 뭐, 돈도 쌀도 무진장으로 있소. 10년이고 20년이고 견뎌내 보이겠소"


지금까지의 침묵이 거짓말인 것처럼, 전원이 의기양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기 저하를 신경쓰고 있던 라이렌은 그들의 태도에 약간 안도했다.


하지만 라이렌도, 그리고 켄뇨도 깨닫지 못했다. 애초에 시즈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지 않고 일부러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면서 그것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서로 보완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대응은 또 바뀌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결국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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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