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3 1573년 4월 중순
노부나가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귀가길에 올랐다.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 저택(静子邸)의 본전(本殿)에서 고용한 노예 네 명을 기다리게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알현실로 걸음을 서둘렀다.
"갑작스럽지만, 네 사람은 각자 일을 맡아줘요. 코타로(虎太郎) 씨는 서적(書物)의 번역을, 야이치(弥一) 씨와 루리(瑠璃) 씨는 각자 금속 가공과 융단(絨毯) 제조법의 전수, 모미지(紅葉) 짱은 어떤 식물의 재배 기록을 관리해 주겠어?"
유럽 각국에서 쓰여진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하려면 현대의 사전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즈코가 가져온 전자사전 종류는 현대어의 그것으로, 중, 근세의 문법이나 어법과는 다를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번역가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하는 게 가장 빠르고 손쉽다.
언어학자이자, 모국에 있을 때부터 번역을 하던 코타로는, 라틴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그리스어까지 능통했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밑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복수의 언어를 알고 있었기에 교회의 눈에 띄어, 이단 심문을 받게 된 것이지만.
"번역 자체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뭔가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신 것 같군요"
"보수라고 하긴 뭐하지만, 지동설(地動説)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주지요"
지동설이라는 단어를 듣고 코타로의 눈썹이 꿈틀했다.
당시의 주류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다른 천체는 지구의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는 설, 즉 천동설(天動説)이었다.
이에 대해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지구나 그 외의 행성(惑星)은 태양 주위를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있다고 외친 것이 지동설이다.
지동설로 유명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이지만, 최초로 제창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라고도 한다.
기원전 2세기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의 차고 이지러짐, 달과 태양의 거리, 달과 태양의 크기에서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쪽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달과 태양의 거리에 관해, 아리스타르코스는 '달이 상현(上弦)이나 하현(下弦) 달일 때, 태양은 바로 옆에서 지구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지구와 달은 일직선의 위치 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그 때의 달과 지구의 앙각(仰角)을 측정하면, 지구로부터 달, 또 지구로부터 태양까지의 거리를 삼각측량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계측을 하여, 그 결과로부터 태양은 지구에서 볼 때 달의 19배(실제로는 약 390배)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그는 월식(月食)으로부터 달의 크기를 계측했다. 월식은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숨기 때문에, 달에 비치는 지구의 그림자로부터 지구의 크기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햇다.
그리고 그것들을 계측하여, 지구의 직경은 달의 3배(실제로는 약 4배)라고 계측 결과를 정리했다.
이러한 데이터로부터 태양은 지구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고 그는 결론짓기에 이르렀다.
가설을 세워 실증하고, 그 데이터에서 도출한 결론으로부터 아리스타르코스는 '지구보다 큰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쪽이 자연스립다'라며 지동설을 발표했다.
물론, 중세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천문학의 권위자들로부터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가 어디 있나. 신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일축되고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2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16세기의 중세 유럽, 카톨릭 사제인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아리스타르코스의 연구 결과에 착안하여, 오차나 결점을 독자적인 계산으로 보완하여 재계측한 결과, 지동설이 올바르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의 상식인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것을 두려워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 직전에 겨우 발표했다.
어째서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의 발표를 두려워하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는가.
그 이유는 성경에 '신은 대지를 움직이지 않게 했다'라는 한 줄이 있었던 것 뿐이었다.
즉, 천동설을 부정하는 것은 성경이 틀렸다고 규탄하는 것이 되고, 나아가서는 신을 부정한다는, 기독교 국가에서는 사활문제가 되는 위험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완강하게 지동설을 부정해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고 태양계 같은 천체는 우주에 무수히 있다고 제창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는 이단 심문에 넘겨져 이단으로 선고받았음에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기에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된 후, 그의 유해는 강에 버려졌고, 교회는 유족에게 장례식이나 묘의 설영(造営)을 금지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교회의 지독한 대응을 알고 있었기에, 이단 심문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올바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내가 여기서 올바르다고 주장해봤자 당신은 납득하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올바른지 어떤지는 당신이 증명하면 됩니다. 내가 제시한 근거가 틀렸다면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하면 되겠지"
"과연, 어쨌든 제 눈으로 실험하여 확인해야 하겠군요"
시즈코의 말에 코타로의 웃음이 깊어졌다.
이미 지동설이 상식인 세계에서 살아온 시즈코가 코타로에게 지동설을 확인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시즈코가 '결과'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구는 자전하고 있다,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면 그녀의 근거는 '그렇게 배웠으니까'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코타로에게 근거를 제시하고, 실제로 계측하게 하여 증명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동설을 증명할 근거라고 한 마디로 말해도, 상세히 파고들면 여러가지가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에 위성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공전의 근거로 삼았고,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나 태양의 흑점의 움직임에서 행성이 자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케플러의 법칙을 확립한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에 의한 천문표 '루돌프 표(※역주: 루돌프 행성 운행표)'(당시의 행성 운행표(星表)와 비교하여 30배나 되는 정밀도를 가지고 있었다)도 발표되어, 지동설에 유리한 근거는 얼마든지 나와 있었다.
그래도 반론은 적지 않았다. 개중에서도 '지구가 한 번도 정지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의 '운동의 법칙'이나 '만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관성(慣性)을 정식화한 것에 의해 지동설의 의문이 모두 해소되었다.
다만, 아무리 근거있는 데이터가 나와도, 카톨릭 교회가 지동설을 승인한 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로부터 수백년 후인 1992년이었다.
"융단, 인가요"
"그래요. 그게 나중에 단통(緞通, ※역주: (중국·인도·페르샤 등이 원산지인) 여러 가지 무늬의 두꺼운 양탄자)으로 이어지니까요"
"저어…… 단통이라는게 뭔가요"
"말하자면 융단의 친척, 이라고도 할까요. 뭐, 세세한 걸 신경쓸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알고 있는 융단의 제법을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면 문제없어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알아서 멋대로 개조하겠죠"
코타로와의 대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루리가 시즈코에게 말을 걸었다.
단통이란 깔개(敷物)용 직물의 일종으로 중국제의 융단을 가리킨다. 융단과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물건이다. 이런저런 차이점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두께이다.
페르시아 융단은 대단히 얇은 융단이지만, 단통은 두께를 준 융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제법도 크게 달라서, 페르시아 융단은 날실(経糸)과 씨실(横糸)을 엮지만, 단통은 씨실에 날실을 통과시킬 뿐이다.
"네, 네에……"
"과거를 끄집어내게 되겠지만, 융단 제법의 전수가 끝나면 그 후에는 조언이나 감독을 하는 정도면 문제없어요"
이것은 후에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일인데, 루리는 한때 아랍에서 노예로 팔려서 융단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했었다.
때로는 기술자들을 돕는 경우도 있었기에, 제법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 알게 된 제법을 오와리의 기술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그녀가 할 일이다.
단, 모든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진짜 기술자와는 다르기에 간략화된 순서 등으로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배운 기술자들이 알아서 보완할 거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페르시아 융단은 일본과 별로 관련이 없는 듯 생각되지만,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이미 일본으로 수입되었다.
당대의 권력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페르시아 융단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여, 재단하여 전쟁터에 나갈 때 입는 겉옷(陣羽織)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은 간단히 들리지만, 융단이나 단통은 외화(外資)를 얻기 위한 귀중한 상품이 될 거에요. 그러니 그 점만은 주의해 주세요"
"네, 알겠, 습니다"
"좋아요. 야이치 씨는 이제와서 이야기할 건 없겠죠. 마음대로 물건을 만들어 주세요. 나머지는 기술자들이 보고 멋대로 대항의식을 불태우며 흉내내서 뭔가를 만들겠죠"
"……그러기만 하면 됩니까?"
루리와 마찬가지로, 야이치가 할 일도 단적으로 말하면 기술의 계승, 그것 뿐이었다. 단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였으니 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상관없어요. 이런 건 위에서 이야기를 해봐야 기술자들은 움직이지 않아요. 대항심을 불태울 상황을 만들면 알아서 움직이는 법이에요"
두 사람에게는 평소에 하던 일이라도, 시즈코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다. 그걸로 좋은 기술이 확립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지는 그녀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질 않는다. 따라서 해외의 기술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도입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해요ー. 그럼 마지막으로 모미지 짱. 너는…… 그렇지, 님 나무(インドセンダン)의 재배 기록이라도 관리해 주겠어?"
"네, 네!"
말을 걸자 깜짝 놀랐는지, 모미지는 허리를 펴며 대답했다. 뭔가 긴장할 만한 말을 했나, 라고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진정해. 어느 정도는 가르쳐주겠지만, 그게 확실한지 어떤지를 확인하는 게 일이야. 별로 어렵지는 않거든? 올바르다면 재배할 수 있는 것이고, 틀렸다면 시들 뿐이니까"
"어, 시들게 해도, 되는 건가요?"
"확실히 검증한 결과라면야. 무의미하게 시들게 할 생각은 없거든? 뭘 어떻게 했더니 시들었다, 라는 기록은 남겨줘. 그런 기록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진실에 도달할 열쇠가 되는거야"
"네. 아, 알겠습니다"
모미지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모미지에게 재배시키는 님 나무(영어 명칭 Neem, 이후 님으로 표기함)은, 이름 그대로 인도 원산의 식물이다 (※역주: 일본어 명칭인 インドセンダン은 직역하면 인도 멀나무라는 의미).
인도에서는 옛부터 만능약으로서 가정에 상비된 나무인데, 최근에 해충 퇴치 효과가 있는 것이 밝혀졌다.
나무 전체에 뭔가의 효과가 있어,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आयुर्वेद, Ayurveda)에는 님의 씨앗이나 나무껍질, 잎사귀를 쓴 약이 여럿 기재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씨앗이나 나무껍질에 함유되어 있는 오일이다. 아자디락틴(azadirachtin)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이 수백 종류나 되는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다.
또, 이것을 섭취한 벌레는 성장 호르몬의 작용이 방해받아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만한 효과가 있는데, 곤충 이외의 동물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기름을 짜낸 씨앗 찌꺼기를 가루로 만든 것은 님 파우더(Neem powder)라고 하며, 땅 속에 숨은 해충을 퇴치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효과는 1, 2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기에, 정기적으로 님 파우더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미지 짱의 일이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네. 끊임없이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 뿐이니까"
화학 농약을 입수할 수 없는 전국시대에서 님 나무나 씨앗에서 얻을 수 있는 오일 등은 화학 농약과 동등한 능력을 가진 편리한 존재이다.
다만 님 나무는 열대지역이 원산이기 때문에, 기온과 습도에 주의하며 재배할 필요가 있다. 내한(耐寒) 온도는 10도로, 그루(株)가 작을 때는 특히 추위에 약하다는 결점이 있다.
재배의 평균 기온은 20도에서 25도, 햇볕이 잘 들면서 물빠짐이 좋은 땅이 필요하다. 물빠짐이 나쁘면 뿌리가 썩는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縄) 등의 아열대 지역에서밖에 야외(戸外) 재배를 할 수 없고, 일본의 혼슈(本州)에서는 겨울이 되면 실내(戸内) 재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필연적으로 화분에 심어 재배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버린다.
나무 그 자체가 해충 대책이기에 질병이나 해충은 거의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은 있찌만, 재배 그 자체는 나름 난이도가 높다.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해"
한숨 돌린 후 시즈코는 다시 전원을 둘러보았다.
"그럼 대략적인 일의 설명은 했다고 생각해. 이건 전원에게 해당되는 말이지만 맡은 일만 제대로 하면 비는 시간에는 뭘 해도 좋아. 물론, 우리나라를 적대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그에 걸맞는 보답을 하겠지만 말야"
보답이라는 단어에 조금 긴장한 네 사람이었으나, 시즈코는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평범하게 우리 나라의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생활하면 거의 문제는 없어. 궁금한게 있으면 질문하러 와도 좋아. 중요한 건 혼자서 끌어안지 않는 거야"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소근소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잘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의식주에 대해 안내하게 하지. 소성(小姓)들, 안내하도록"
네 사람의 대답에 만족한 시즈코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소성들에게 네 사람을 안내할 것을 명했다.
그들을 맞이한지 3주일이 지났다. 표면적으로는 딱히 말썽도 없었고, 처음에는 기술자들과 다소 삐걱대기는 했으나, 신기함(物珍しさ)에서 오는 서먹함이었기 때문에 2주일이 지나자 사이가 좋아졌다.
루리는 사람이 어려운 모양이라, 오빠인 야이치의 뒤에 숨는 일이 많았다. 물론 기술자들의 부인들에 의한 기관총같은 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면도 부정할 수 없다.
코타로는 번역을 재빠르게 마친 후, 지동설의 검증에 착수했다. 거의 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웠으나, 가끔 나와서는 케이지들과 술을 마셨다.
와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는 걸 듣고, 곧 와인 양조에 손댈 가능성이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이치는 과묵한 기술자로, 묵묵히 제품 제조에 열중하고 있었다.
결코 기술자들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기독교도들로부터 계속 거절당해왔기에 어떻게 접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술자들과 술을 마시면서, 무뚝뚝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씩 말을 하게 되었다.
모미지는 진지했다. 진지함이 지나쳐 일에 너무 열을 올리게 되어버리는 것이 옥의 티였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세 사람과 달리 타인과 접할 기회가 적었기에, 일본어의 습득은 조금 늦어지는 느낌이었다.
"응, 문제없네"
3주일이 지난 후 시즈코는 아야(彩)로부터 네 사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내용은 충분했고, 특별히 문제가 될 점은 보이지 않았다.
"네 사람 모두 기대 이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하면, 시즈코 님이 모미지에게 너무 신경을 쓰셔서 본래의 일이 늦어지고 있는 점이네요"
"아ー 그건, 미안해. 어떻게든 때에 맞출게"
"신경쓰시는 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시면 모미지가 다른 사람의 질투를 사게 됩니다. 시즈코 님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계신 몽입니다. 뭐든지 적당히 부탁드립니다"
"오, 질투일까? 나는 항상 아야 짱이 너무 좋은데?"
말하자마자 시즈코는 아야를 껴안으려 했다. 하지만, 아야는 샥 하고 몸을 젖혀 시즈코의 포옹을 피했다.
"부ー, 아야 짱은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
"바보같은 말씀 마시고, 스스로의 일을 끝내 주십시오. 10만 석을 다스리는 것이니, 지금 이상으로 서류가 늘어납니다"
"그걸 대비한 직원들은 다 준비해놨어. 나는 결재할 뿐이라서 그렇게까지 일은 늘어나지 않아"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10만 석을 다스리라고 했을 때부터 통치에 필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10만 석 중, 5만 석은 사키히사가 어떻게 다스릴지에도 달렸지만, 남은 5만 석은 시즈코 혼자서 다스려야 한다. 그래서, 시즈코는 5만 석을 세분화하고, 각자 전임(専任)의 대관(代官)을 두었다.
세금 관리의 가장 작은 단위를 다스리는 사람을 시장(市長), 복수의 시장 위에 서는 사람을 구장(区長), 그 구장들을 통솔하여 가장 위에 서는 것이 시즈코이다.
시즈코가 주로 하는 일은 법 정비, 세제 개혁, 시장 개혁, 토지의 소유자 정리, 인프라 개발, 금융 개혁, 예산의 입안과 집행이다.
"금융에는 은행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주상께서 통화 발행권을 얻을 필요가 있지. 뭐, 지금도 은행은 가동시키고 있으니 문제는 없지만"
은행에는 '금융중개(金融仲介)'와 '결제기능(決済機能)'과 '신용창조(信用創造)'의 3대 기능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보다도, 은행은 백성들로부터의 신용이 중요해진다. 신용이 없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금융중개는 할 수 없다. 신용없이 결제 기능은 사용되지 않는다. 신용없이 신용창조는 할 수 없다.
뭐든지 백성들로부터 신용이 있을 것, 이것이 없으면 백성들이 돈을 맡기지 않고, 빌려준 돈이 제대로 변제되지도 않는다.
금융중개는 이름 그대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중개를 하는 기능이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돈을 빌리는 사람 사이를 잘 조정하여, 거래의 리스크나 코스트를 경감할 수 있다.
결제기능은 예금을 사용하여 현금을 쓰지 않고 송금이나 지불을 하는 기능이다. 결제기능은 은행의 네트워크와 풍부한 자금이 있어야 처음으로 실현된다.
신용창조는 어렵게 들리지만, 간단히 말하면 예금과 대부를 반복하는 것으로 처음에 은행이 받은 금액의 몇 배나 되는 예금 통화를 창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A씨와 B씨가 각자 1천만엔씩 은행에 맡겼다고 하자. 이 때, 은행에는 2천만엔의 본원적(本源的) 예금이 존재한다.
이 중, 준비예금(準備預金)이라는 일정한 금액을 남기고, 남은 금액을 대부의 자금으로 돌린다.
그리고 C씨가 은행에서 1천만엔을 빌렸을 때, 은행에는 A씨 예금 1천만엔, B씨 예금 1천만엔, C씨에 빌려준 1천만엔 등 합계 3천만엔이 은행의 계좌예금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최초의 본원적 예금이 2천만엔이었기에, 은행에는 새롭게 1천만엔의 신용이 창조된 것이 된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통화가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원활해진다. 이 기능을 신용창조라고 한다.
다만 이름 그대로, 은행에 신용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기능이다.
"뭐ー 은행이라고 해도, 지금은 신용이 없으니 돈을 맡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지만"
은행이 생긴다는 것은 즉시 돈을 맡아준다, 라는 게 되지는 않는다. 은행이라는 기능 자체가 처음이며, 돈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 것으로 일정한 신용을 얻었는지 서서히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얼마 되지 않는 정도다.
하지만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고객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신용을 획득할 수밖에 없다.
"서서히이긴 하지만 예금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역시 출입하는 상인들이 일제히 맡긴 것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출입하는 상인, 특히 큐지로(久治郎)는 은행의 메리트를 남보다 빨리 깨달았다. 그것은 현금을 은행에 맡겨두면 서류(紙)를 주고받는 것만으로 돈을 처리할 수 있어, 현금을 들고다니는 것보다 몇 배나 안전하다는 것이다.
설령 결제가 실행되지 않더라도, 계좌의 잔고만 확보해 두면 은행의 책임이 되므로 큐지로의 신용에 흠이 가지 않는다.
큰 상담(商談)을 마무리할때도, 자본주(金主)를 찾아서 상대마다 조건을 붙이며 교섭하지 않아도, 은행측이 많은 자본주들을 모아서 중개해 주므로, 많은 자금을 더욱 싸게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돈거래가 빠르고 쉽다, 이 두 가지가 큐지로에게 큰 메리트였다.
"큰 돈이 예금되었네. 이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내외의 적은 용서없이 철저하게 단속해줘. 한패가 있다면 토할 때까지 용서없이 취조하는 것도 허가할게"
"네. 경비에 관해서는 최상위의 상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시큐리티가 확실한 것, 이게 우선 신용을 얻는 첫걸음이다. 경비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 시큐리티 대책도 없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바보는 없다.
돈을 약탈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한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신용은 얻을 수 있다.
특히 전국시대에서는, 은행강도범은 그 자리에서 베어버리고 일가친지를 연좌시켜 효수(晒す)하는 정도의 태도가 아니면 안 된다.
"법적으로도 은행강도범의 살해는 문제없지만, 다 죽여버리면 배후관계를 밝힐 수 없으니까. 그 부분은 확실히 대응하도록 말해줘"
"잘 알고 있습니다"
"잘 부탁해ー. 아마 몇 달 동안은 큰 움직임도 없을거라 생각하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런 말을 한 시즈코는 후에 이 때의 발언을 후회한다.
그 빅 뉴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뉴스를 알게 되었을 때, 누구나 "설마 그럴리가"라고 입을 모았다.
그것은 시즈코도, 계책을 실행한 노부나가조차 예상외의 사건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을 진감시킨 일대 뉴스. 그것은 에치고(越後)의 용, 즉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수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소식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시즈코 저택이었다.
"시즈코 님을 뵙고 싶소!"
자칫하면 뻔뻔한 태도로도 보이는 소년이 문지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4월 중순을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소년이라고는 해도 차림새는 훌륭하고 풍채도 어엿한 무사라고 생각되었기에, 문지기는 잠시 머뭇거린 후 사람이 찾아온 것을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쇼우(蕭)에게 스케줄을 확인했으나, 그녀는 누군가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통은 돌아가라고 할 상황이지만, 혼자서 찾아온 사람을 함부로 돌려보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소년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알현실에서 소년의 모습을 보고 간신히 시즈코는 소년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라, 요로쿠(与六) 군이잖아. 이래저래 1년만…… 인가? 이번엔 무슨 용무일까?"
"오늘은 배알할 기회를 주셔서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오늘 찾아뵌 것은ーー"
가벼운 태도로 방문의 이유를 묻는 시즈코에 대해, 카네츠구(兼続)는 자세를 단정히하고 공손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뱃속의 벌레가 성대하게 울어제꼈다.
침묵이 자리를 지배했다. 다들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말을 집어삼켰다. 누구의 뱃속 벌레인지는 다들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 밖에 꺼내어 말하는 것은 꺼려졌다.
볼을 긁던 시즈코는, 천정을 바라보며 어떻게 할까 생각한 후,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급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기로 하죠. 오늘은 좋은 생선이 들어왓으니, 맛의 감상을 들려줬으면 하네요"
"……예, 옛.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인 카네츠구의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기껏 폼을 잡았는데, 보기좋게 마각을 드러내 버렸으니 창피해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시즈코는 깊게 지적하지 않고 손뼉을 쳐서 소성들에게 점심식사 준비를 명했다. 잠시 후, 진수성찬에는 거리가 멀지만 따뜻해보이는 식사가 전원의 앞에 놓여졌다.
"그럼 들도록 하죠"
"잘 먹겠습니다"
식전의 인사를 한 후, 다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낀 카네츠구는, 처음에는 천천히 먹었지만, 공복에는 이길 수 없었던 듯 도중부터 퍼넣듯 먹고 있었다.
저번에 우정이 싹텄는지, 그냥 단순히 배가 고팠던건지, 케이지나 나가요시(長可)도 식사를 하는 스피드가 올라갔다.
"밥을 더 줘! 밥그릇(椀)으론 부족해. 나는 밥통(お櫃)째로 가져와!"
"아, 치사해! 야, 소성, 내게도 밥통으로 부탁해! 케이지보다 큰 걸로 말야!"
"케이지 님, 카츠조(勝蔵), 너희들 시즈코 님 앞에서ーー"
"나도 질 수 없군! 가장 큰 밥통으로 밥 추가 부탁해!"
사이조가 쓴소리를 했지만, 그 목소리는 케이지나 나가요시에게는 닿지 않았다. 뭔가 불이 붙었는지, 카네츠구까지 밥통으로 밥 추가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에잇! 소성이여! 나(某)에게도 밥통으로 가져와라!"
드디어 사이조의 경쟁심에도 불이 붙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였다.
"다 어디에 들어가는 걸까"
눈 앞에서 벌어지는 많이먹기(大食い) 경쟁에 시즈코는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먼저 나가요시가 탈락하고, 이어서 사이조,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일대일 대결(一騎打ち)이 되었으나, 몸 크기 때문에 케이지가 승리하는 결과가 되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그 모습을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본 시즈코였다.
차를 다 마시고 쟁반 위에 올려놓은 후, 신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워 있는 카네츠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온 걸까?"
"우풉, 편지를 전하러 왔어. 그리고, 빌린 돈의 변제도 겸해서"
뱃속이 괴로운 듯한 모습으로 카네츠구는 편지, 이어서 돈이 든 자루를 내밀었다. 양쪽을 소성이 받아들고 안을 확인한 후 시즈코에게 가져왔다.
"돈은 아야 짱에게 건네줘요. 편지는 내용을 확인하겠어요"
"옛"
명을 받은 소성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이제와서 말하기도 그렇지만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야?"
"네가 가져왔으니, 돈자루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도 없겠지"
대자로 누워 있는 카네츠구의 질문에 시즈코는 편지를 펼치면서 대답했다. 애초에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돈을 카네츠구는 일부러 가지고 왔다.
그렇다면 내용물을 확인할 필요는 없고, 빌려간 금액이 확실히 들어 있을 것이다, 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돈보다 편지 내용이 뭐냐……가 중요하지. 어디보자……)
드러누워있는 인간들을 내버려두고, 시즈코는 편지의 글자를 좇았다. 읽음에 따라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읽었을 때 시즈코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편지를 읽었다.
네 번 정도 편지를 다시 읽은 후, 시즈코는 곱게 편지를 접었다.
"혹시 몰라 확인하는데, 농담이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농담으로 끝날 내용이 아니겠지. 설령 농담이라면 여기에 오기 전에 내 목이 날아갔을걸"
"그러네…… 미안, 설마 이럴리가, 라는 내용이었거든"
"뭐 편지를 보면, 누구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겠지. 내용을 들었을 때 나도 내 귀를 의심했어. 하지만 영주님(御実城様)이 숙고하신 결과로 내리신 결론이야. 나는 그것에 따를 뿐이지"
"그래, 알았어"
카네츠구의 대답을 들은 후, 시즈코는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필묵을 준비하세요!"
입구로 얼굴을 돌리고 시즈코는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거의 내지 않는 시즈코의 큰 목소리에 소성이 무슨 일인가 당황하며 지필묵을 준비했다.
준비된 종이에 시즈코는 편지의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2통을 썼다.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화압(花押)을 찍어 곱게 접었다.
그리고 원래 편지를 함께 넣어 나무상자에 봉인한 후 소성을 불렀다.
"빠른 말을 바꿔타면서 주상께 가장 빠르게 전달하도록 전령에게 전하세요"
"옛!"
편지를 소성에게 건네주고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있음을 신신당부하도록 명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소성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뛰쳐나가듯 방을 나갔다.
"……무슨 내용인데?"
지나치게 다급한 모습에 편지가 궁금해진 나가요시가 머리만 들어서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아래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을 하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나가요시가 질문해온 것을 깨닫자 요약한 문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여기에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의 신하가 되겠으니(臣従), 그것을 주상께 전해달라, 는 내용이 적혀 있어"
"…………으억!?"
처음에는 멍한 표정을 떠올리고, 이어서 머리를 몇 번 흔든 후,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는 나가요시. 이윽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는지, 케이지나 사이조조차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가짜, 는 아니겠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랑 고노에(近衛)님이 함께 이름을 올렸으니(連名), 가짜나 농담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뭣보다 요로쿠 군을 써가면서까지 이쪽을 속일 이유도 없어. 거짓 하나 없이(正真正銘), 이건 우에스기 가문의 항복 문서야"
"진짜냐……"
편지가 진짜라고 이해하자 나가요시가 놀란 목소리를 냈다. 우에스기 켄신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호적수라고 평가될 정도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전투 한 번 벌이지 않고 항복에 동의하는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쪽이 무리한 얘기다.
"하지만, 한 번도 전투를 하지 않고 항복한다는 것에 용케 동의했네"
"……만약 오다 가문과 싸울 경우, 우에스기 가문은 에치고를 업고 싸우게 되니까. 무사라면 전력차를 신경쓰지 않고 화려하게 산화한다는 길도 있겠지만, 백성을 업고 그런 짓을 하면 망국의 싸움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긍지를 버리더라도 에치고에 있어 뭐가 가장 좋을지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게 아닐까"
노부나가와 켄신이 전투를 벌일 경우, 노부나가는 방면군(方面軍)을 파견하지만 켄신은 본인이 출진하는 본토결전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설령 전투에서 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지만, 켄신은 패하면 거기서 끝이다.
켄신에게 있어 노부나가와 전투를 벌일 경우,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연전(連戦)이 상대의 힘이 다할 때까지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건 싸움에서, 적과의 전력차를 뒤집을 수 없는 경우, 결국 계속 소모되어 마지막에는 반드시 패배한다. 그 때, 에치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전투를 벌여도 벌은 받지 않는 거 아냐?"
"우에스기 가문 입장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거든"
에치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을 때, 켄신은 무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소심(臆病)한 행위라는 비난을 외부에서 받고 내부에서 많은 비판이 터져나오더라도 이 시기에 항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주상의 적, 또는 적이 될 것 같은 패거리들은 서쪽에 혼간지(本願寺), 혼간지를 따르는 사이카슈(雑賀衆)나 일향종(一向宗), 모우리(毛利) 가문, 아자이(浅井) 가문, 아사쿠라(朝倉) 가문. 동쪽은 명확하게 적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호죠(北条) 가문에 오우슈(奥州, ※역주: 현대의 후쿠시마(福島) 현, 미야기(宮城) 현, 이와테(岩手) 현, 아오모리(青森) 현에 해당)의 영주(国人)들, 등 잔뜩 있어. 이 상태에서 우에스기 가문이 싸움을 벌일 경우, 상황이 나빠진 후에 항복해도 주상께서 받아들이지 않게 돼. 왜냐하면, 타케다 가문에 이어 우에스기 가문을 격파했다, 라는 관록이 붙으니까. 그 쪽이 몇 배나 외교적으로 유리해지거든"
"어, 음"
이해가 잘 안되는지 나가요시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케이지는 일부러 흘려듣고, 사이조는 진지하게 듣고는 있었지만 내용은 절반 정도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계속 대자로 드러누워있었다. 담력이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신경이 굵은건지 판단이 고민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주상께는 우에스기 가문을 굴복시켰다, 는 관록이 붙겠네. 다만, 그것과 맞바꿔서 우에스기 가문이 무슨 말을 할 지, 가 신경쓰여"
"항복하는 거니까 머리 숙이고 끝, 아냐?"
"아니, 그럴 리 없잖아. 항복한다고 해도 조건은 내걸겠지. 아마도 우에스기 가문에게 항복 조건을 교섭하는 자리야말로 외교라는 이름의 전쟁터가 되겠지"
아래턱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켄신이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서 무얼 제시해 올지를.
가장 유력하게 생각되는 것은 토지(土地)다. 에치고의 영주는 토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전 영토의 소유권을 인정받는다(安堵)는 조건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
그 밖에 생각되는 것은 칸토칸레이(関東管領, ※역주: 무로마치(室町) 막부가 칸토(関東)를 다스리기 위해 카마쿠라(鎌倉)에 둔 벼슬)를 유지(固持)하는 것이다. 요시아키(義昭)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을 반납한다고 해도, 무로마치 막부가 내린 모든 직책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 누군가가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때까지,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에 의한 무로마치 막부의 잔재(残滓)는 계속 남는다. 설령 권위와 권력을 잃고 완전히 노부나가의 손아귀에 들어간 상태라고 해도.
"(아니, 칸토칸레이는 인정되지 않으려나. 그걸 인정했다간 우에스기 가문은 오다 가문을 뒷배경으로 삼아서 칸토 일원의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하겠지. 아무래도 그건 인정할 수 없어. 가장 유력한 타협안은 켄신의 신변보장과 토지의 소유권 인정이려나) 어쩄든 주상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가 문제네. 내일 아침에는 오시겠지. 주상을 모셔야 하니 오늘중에 식료품을 구입해 둬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낼 요리의 식재료를 사두도록 밖에 있는 소성에게 명했다. 소성은 대답을 한 후 시즈코의 명령을 전당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했다.
"그리고 모포를 한 장 가져와요. 호담한 아이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니까"
"예? 옛"
조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소성은 명령을 따랐다. 구매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식료품을 구매할 것을 전하고, 모포를 한 장 들고 돌아왔다. 시즈코에게 모포를 건넨 후, 소성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정말로 호담하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대자로 누운 채 잠들어있는 카네츠구에게 모포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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