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2 1573년 3월 중순
3월에 들어서자, 노부나가는 아시미츠(足満)에게 밀명을 내렸다. 내용에 대해서는 시즈코에게까지 비밀이었으며, 아시미츠가 출발하기 직전에 집을 비운다고 말했기에 그 존재를 인식했을 정도였다.
자신의 가족(身内)에게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위험이 미칠 우려는 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아시미츠도 그걸로 좋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거라 생각하고 일체의 의문을 삼킨 채 전송했다.
타이밍 나쁘게 시즈코도 또한 쿄(京)에 갈 필요가 생겨, 시간적으로 캐물을 여유도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설령 물어봤다고 해도 알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확신하고 있는 아시미츠는 복잡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시미츠가 받은 밀명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대동하고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눈이 녹기 전의 잔설(残雪)이 많이 남아있는 시기에 일부러 하는 강행군. 정치적으로도 위험도적으로도 시즈코에게는 덮어두는 편이 그녀의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좋다고 아시미츠는 판단했다.
"이번 길은 목숨을 건 가혹한 것이 된다. 굳이 날 따라올 필요는 없다"
"신경쓰지 말게. 내가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니. 가끔은 객기를 부리는 것도 좋겠지"
돌려서 따라오지 말라고 하는 아시미츠였으나, 사키히사는 이해하면서도 흘려들었다. 뜻을 꺾는 것(翻意)은 무리라고 생각한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방한대책은 확실히 해 둬라. 겨울의 산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니, 준비를 게을리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말할거라 생각해서, 사전에 시즈코 님에게 방한 장비의 준비를 의뢰해 두었지"
아시미츠가 사키히사를 노려보는 시선에 위험(剣呑)한 빛이 서렸다. 하지만, 시선을 받는 본인은 표표(飄飄)한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것을 예측하고 반년이나 전에 의뢰했네. 이번 건과 연결짓지는 못하겠지. 우연히 이번에 처음 쓰는 것 뿐, 설산을 상정한 본격적인 것일세"
"……그런가"
사키히사가 나무 상자에서 꺼내기 시작한 장비를 보고 아시미츠는 납득했다.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는, 기름과 밀랍으로 처리되어 발수(撥水) 능력을 가진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안쪽에는 기모(起毛) 처리된 털가죽을 붙여놓아, 보온능력도 높아 보였다.
마찬가지로 가죽제의 장화도 기모 처리는 물론이고, 앞부분에 충진물(詰め物)이 들어 있었고, 바닥면에는 징(鋲)이 박혀있어 미끄럼 방지 가공도 되어 있었다.
게다가 휴대용의 간이 설피(かんじき)까지 들어있어, 상황에 맞춰 구별하여 쓰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의류도 두꺼운 천을 주머니 모양으로 꿰매고 안쪽에 솜을 넣은(※역주: 누빔) 실용성이 높은 것이었다.
외견으로 볼때는 조금 뚱뚱해질 정도로 입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제품의 질을 알고 있는 아시미츠가 볼 때도 보증할 수 있는 장비였다.
"눈보라가 칠 때 필요해지니, 두건(頭巾)이나 목도리(襟巻)도 준비해 둬라"
"그런가, 충고에 감사하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도 자네가 챙겨주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네"
"웃기지 마라"
사키히사의 대답에 본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아시미츠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라고 등을 돌리더니 사키히사를 두고 걸어갔다. 사키히사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그의 등 뒤를 쫓아갔다.
아시미츠가 에치고(越後)로 출발하는 한편, 시즈코도 쿄로 출발했다. 병사들을 데리고 쿄에 들어간 후, 그녀는 즉시 최초의 목적인 타지마 소(但馬牛)의 매입을 실시했다.
타지마 소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에 편찬된 속 일본기(続日本紀)에도 등장하는, 옛날부터 이 나라(本邦)에 뿌리내린 소다.
현대 일본의 와규(和牛) 중 8할 정도가 타지마 소의 계통이라, 와규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품종이다.
타지마 소의 특징은 뭐라 해도 그 맛에 있다. 물론 통상의 소와 마찬가지로 농경(農耕)이나 하역(荷役)에도 쓰이지만, 수명이 길고 여러 번 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번식력이 왕성하다는, 축산에 적합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옛부터 거론(取り沙汰)되어온 타지마 소는, 이후에도 다양한 기록(書物)에 그 모습을 남기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히데요시(秀吉)가 오오사카 성(大阪城)을 축성했을 때, 단 하루 뿐이지만 무사의 신분이 부여된 타지마 소까지 존재한다.
메이지(明治) 시대에 외래종과의 교잡으로 추가적인 품종 개량을 추구한 결과, 순혈종이 격감해버려서 한 떄는 멸종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후에 기적의 네 마리라고 불리는 순혈종이 남아있던 것에 의해 부활하여, 오늘날의 와규를 탄생시킨 것이다.
긴 역사를 가진 타지마 소의 매입을 하는 것은, 노부나가가 타지마 소의 고기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용소(御用牛) 같은 취급이 되어, 쿄에 갈 때마다 타지마 소를 사들여서 미츠오(みつお)에게 사육과 품종개량을 맡겼다.
시즈코가 매입해오는 타지마 소는 순혈종이라, 품종개량된 현대의 지식은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고 외래종과 교잡 같은 걸 하려고 했다가는 메이지 시대의 실패를 반복해버리게 된다.
순혈종의 좋은 점을 남기면서 더욱 좋은 맛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해졌으나, 미츠오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들인 소를 상인이 오와리(尾張)까지 운반하지만, 이번에는 시즈코 자신의 쿄 체재가 단기간이기에 그녀가 오와리로 돌아갈 때 함께 운반하게 되었다.
사전에 교섭은 끝났기에 딱히 다투는 일 없이 거래는 성립되었다. 이후에는 시즈코가 쿄로 오게 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뿐이었다.
"아무리 지나도 남장은 익숙해지지가 않네"
시즈코가 쿄를 방문한 이유. 그것은 외국의 기사(技師)를 포섭하는 것이다. 포섭한다고 해도, 현대처럼 기술을 가진 개인이 멋대로 망명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국가에 유익한 기사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은 국력의 저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빠져나갈 구석은 있지만, 그러면 빼앗긴 쪽이 경계심을 품게 된다.
정치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시즈코는 맹점이 되어 있는 루트를 통해 기사를 사들였다.
단적으로 말하면 노예 매매이다. 노예로 전락한 기사를 사들인 것이다.
물론 기사가 노예로 전락한 경우, 국가가 그 매각처에 눈을 빛내며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매각처에서 다시 전매(転売)된 경우에는 꼭 그렇지는 않았다.
광산 노동 등의 가혹한 노역으로 소모될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추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노예 매매가 본격화되고 대규모화되기 전이기에 가능한 편법(荒業)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항해시대라고도 하는 전국시대에서도 노예의 매매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가까운 중국, 마카오는 아시아 최대의 노예 집적지가 되어 있었다. 높은 기술을 가진 노예를 감추는데는 안성맞춤인 장소가 된다.
"……하지만, 굉장한 이유로 노예로 삼네,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이번에 사들인 노예 4명의 경력서를 확인하고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을 떠올렸다. 4명 모두 화형이라는 극형이 내려졌으나, 관대한 처분이라는 명목으로 광산 노동으로 변경되었다.
관대한 처분이라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노예로서 팔아치우는 것이니 말은 하기 나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어디어디…… 천동설(天動説)을 부정했다? 허가없이 주님의 우상(偶像)을 만들었다? 교회의 가르침을 비판했다? 뭐야 이게. 바테렌(伴天連)은 바보밖에 없는 거냐?"
시즈코가 보고 있는 경력서를 등 뒤에서 엿보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독교를 모르는 나가요시에게는 그게 죽을 죄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역사적 배경도 포함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시즈코조차 바보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대단히 진지하게 하고 있던 것이 중, 근세까지의 기독교권(教圏)이다.
"저쪽은 대단히 진지해. 사회는 급격한 변혁을 싫어하니까, 우리들에게는 바보스럽게 생각되는 내용이라도, 사회를 뒤흔드는 큰 죄가 되는거야"
"시즈코 님, 노예상인이 왔습니다"
경력서를 쟁반 위에 되돌려놓음과 동시에 소성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항상 쓰는 두건을 쓰고, 나가요시에게 소정의 위치에서 대기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들여보내세요"
소성에서 명령한 후 조금 지나자, 포르투갈인으로 보이는 노예상인과, 그가 데려온 남녀 네 명이 실내로 안내되었다.
야심만만한 포르투갈인 모험가 출신의 상인인 듯, 불손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동시에 장사꾼답게 돈줄이 될 수 있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려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의외로 만만찮네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인사를 나누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만, 상인은 이후에도 계속적인 거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 나불나불 떠들며 자신을 선전하려고 했다.
"주군, 아케치(明智) 님께서 오셨습니다"
슬슬 시즈코를 포함한 전원의 노여움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그 때, 겐로(玄朗)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내방을 알려왔다.
"알겠다"
마침 잘 됐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그걸 핑계로 상인을 쫓아냈다.
상인으로서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언질을 원했겠지만, 주위가 발하는 위험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후회하는 심정으로 떠나갔다.
"신세를 지네요, 겐로 할아버지"
상인이 나간 후,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미츠히데의 내방은 겐로가 즉석에서 꾸며낸 거짓말이었다. 요인(要人)들끼리 사전 연락도 없이 상대를 방문하는 것 따윈 있을 수 없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겐로가 눈치챌 정도의 노여움(鬱憤)을 눈치채지 못한 상인의 무신경함(図太さ)은, 어떤 의미에서는 칭찬할 만한 것이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도저히 흉내내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도 아니고, 흉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소생은 이만"
겐로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시즈코는 한번 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네 사람의 노예에게 시선을 돌렸다.
40줄의 남성, 30줄의 남성과 20대로 보이는 여성, 10대로 보이는 소녀 등 네 명이다.
애초에 시즈코는 외국인과의 접점이 적었기에 외국인의 용모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10대의 소녀는 대단히 이질적이었기에 그녀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다.
머리를 감지 않았기에 기름으로 떡져있었지만, 촉촉한 검은 머리에 보석이라고 착각할 듯 선명한 녹색 눈(翠眼)이 인상적이었다.
경력서에 따르면 연장자인 남자는 복수의 언어를 다룰 수 있다고 한다. 언어학자라는 전력(肩書)도 있었기에, 통역 겸 번역자로서 채용했다.
30줄의 남성은 금속가공 기술자이며, 여성은 부인이 아니라 남성의 여동생에 해당한다. 기술자는 남성 뿐이고, 여동생은 연좌제로 노예로 전락된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마지막 소녀가 수수께끼였다. 직업의 기재가 없는 대신, 마녀의 자식이라는 기재가 있었다. 이걸 볼 때 아마도 약사(薬師)일 거라고 시즈코는 어림짐작했다.
"………배가 고프겠지. 나는 옷을 갈아입을테니, 그들에게 식사를 주도록"
경력서를 죽 읽어보고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이었다.
노예에게 이름은 필요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주인이 붙이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름이 없어서는 불편하다.
어쨌든, 우선은 배를 채울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뭣보다 답답한 남장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자신의 처우를 결정하지 않고 퇴출한 주인에게 곤혹스러워진 그들을 놔두고, 시즈코는 얼른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평소의 차림새로 갈아입은 후, 다시 실내로 돌아와 상좌에 앉았다.
시즈코의 맨얼굴을 보고 네 사람은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소녀를 제외한 전원에게, 자신들보다 젊은 여자가 주위에 있는 남성들보다도 상좌에 앉아있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식사는 입에 맞았나?"
시즈코의 질문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인 소녀였다. 그는 목을 삐끗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장자인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이었지만, 식사의 내용에 문제는 없는 듯 묵묵히 먹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제공된 식사의 맛에 놀라며 불만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식사는 치킨 크림 스튜에 하얀 빵, 사슴고기 튀김(唐揚げ), 생야채 샐러드, 그리고 맑은 물이었다.
현대의 유럽에서는 육식화가 진행되어 빵이나 야채는 곁들이는 것 취급이다. 하지만, 근대 초기까지는 일본과 다름없이 곡물 중심의 식사를 했다.
서민들 뿐만 아니라 부농(豪農)이나 지방 영주(地方領主), 하급 귀족(下級貴族) 등의 식사도 곡물이 주체였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세금으로서 징수되는 밀(小麦)이 아니라 호밀(ライ麦), 귀리(えん麦)나 보리(大麦), 메밀(蕎麦) 등을 거칠게 갈아서 물이나 우유로 끓인 포리지(porridge)나, 그보다도 옅게 하여 물로만 끓인 그루엘(gruel)이라는 죽으로 먹었다.
빵은 빵가루를 만들 때 제분(製粉)할 필요가 있다. 제분(粉挽き)은 영주의 전권 사업이며, 영주 소유의 제분소(粉挽き所)를 사용하여 사용료를 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택의 돌절구(石臼)를 사용하여 거칠게 가는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고운 가루로 만들려고 해도 시간을 들이면 마찰열로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에 거친 가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소금(食塩)조차 넣지 않고 물만으로 개어, 보존을 제일로 생각하여 굽기(焼しめる) 때문에 딱딱하고 퍼석퍼석한 빵이 되었다.
이 때문에 빵이라고 하면 스프에 적시거나 음료로 불려서 먹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 먹고 있는 빵은 놀랄 정도로 하얗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함유 수분량도 많고, 소금은 물론이고 계란이나 버터까지 넣어 충분히 발효시킨 극상품이었다.
부드럽고 단맛조차 느껴지는 하얀 빵에 그들이 도연(陶然)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양에서 사냥(狩猟)은 귀족의 특권으로 취급되었고, 사냥감의 고기들 중에서는 사슴 고기가 가장 선호되었기에, 사슴 고기는 사치스러운 고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최상의 사치로 친 것은 생야채였다.
현대 일본에서는 누구나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이것은 발달된 유통이나 우수한 보존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발달하지 않은 중세에서는, 신선한 생야채 같은 것은 전용의 밭이나 고용인을 집 안에 두고 있는 한정된 왕후(王侯), 귀족(貴族)들의 먹거리였다.
서민들은 설령 생산자라 하더라도 팔고 남은 말라비틀어지고 썩기 시작한 야채를 먹었으며, 생야채를 먹는다는 것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아무도 안 뺏어간다"
허겁지겁 먹어대는 그들에게 시즈코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대귀족이라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진수성찬을 앞두고 그들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튜, 튀김에 생야채 샐러드, 산더미처럼 준비된 빵이 위장 속으로 사라져 갔다.
"(저기 시즈코, 정말 괜찮은 거야?)"
그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요시가 시즈코에게 귓말을 했다. 괜찮다, 는 말의 의미를 즉시 이해한 시즈코는,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리고는 나가요시에게 귓말로 대답했다.
"(일정한 조사는 빠짐없이 했어. 그걸 했으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네 명밖에 모으지 못한 거야)"
나가요시가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들이 유럽 각국이나 기독교(伴天連)의 스파이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노예가 실은 일본 국내의 내정(内情)을 수집하는 역할을 맡은 스파이라는 가능성은 시즈코도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조사'를 아시미츠에게 의뢰했다.
그리고 그의 '스크리닝(screening) 검사'를 마치고 문제없다고 인증된 것이 지금 눈 앞에 있는 네 사람이다.
"(뭘 어떻게 '검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아시미츠 아저씨가 문제없다고 보증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거든?)'
"(어…… 확실히 아시미츠 아저씨는 지독(苛烈)하니까. 그럼 괜찮은가)"
아시미츠가 조사했다, 라는 그 한 마디에 나가요시는 납득했다. 나가요시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시즈코가 문제없다고 판단한 다른 이유는 그들이 '파문(破門)'된 점이다.
파문이란 교의(教義)에 반하는 신도를 종문(宗門)에서 추방하는 것을 말한다. 파문되면 기독교 신자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는데, 중, 근세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신자로서 인정받는 권리나 자신이 소유하는 재산, 파문된 사람이 왕족이라면 왕위나 영토, 게다가 적자(嫡子)에게 그것들을 상속할 권리를 잃는다.
게다가 교회에서 종교적 의식을 받을 권리를 잃어, 죽은 후에도 묘에 들어갈 권리조차 잃게 된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추방된다', 그것이 중, 근세의 기독교의 파문이다.
중세에서 유명한 사건으로서 '카놋사(Canossa)의 굴욕' 등 공격적인 면도 있지만, 파문은 기본적으로는 이단적 신앙을 막는 교회의 조치이다.
그렇기에 교의의 해석 차이에 의한 성직자끼리의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 서로 파문되는 상호 파문(相互破門)이라는 결말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11세기에 기독교회와 동방정교회(東方正教会)로 분열되었으나, 이 때 쌍방의 최고위 책임자가 상호파문된 것이 분열의 이유이며, 상호파문의 가장 유명한 예로 들어진다.
(이 경력서를 보니, 제일 나이가 어린 소녀는 서자(庶子)인가. 이거 또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 같네)
서자란 기독교 세계에서는 '불의(不義)한 자식'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자에게는 부모에게서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를 시작으로 하는 많은 권리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또 세간으로부터도 냉랭한(厳しい)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독교의 교의, 즉 신학적으로 성행위는 원죄(原罪)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한 혼인의 결과로서 자손을 얻기 위한 성행위는 신에게 인정받은 것이기에 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정당한 혼인 이외의 성행위는 신의 의지를 거역하고 악마의 유혹에 빠진 죄가 무겁고 사악한 행위로 생각되게 되었다.
(평민의 서자라는 것만으로도 괴로울텐데, 거기에 종교재판에 넘겨져 마녀로 판단된 여자의 딸, 게다가 교회에서 파문이라.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시즈코는 전원이 식사를 마친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구나, 라고 생각한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머릿속을 새로이 했다.
"식사는 만족했으려나? 아무도 남기지 않은 걸 보니 만족했다고 생각하지. 그럼 먼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줘"
헛기침을 한 후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후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적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뭐 일본어의 공부를 시켰으니 당연한가) 그럼 좋아. 너희들의 경력은 확인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경력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마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험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건 참고 정도다. 우리 나라, 적어도 주상(上様)의 통치 아래 있는 땅에서는 출신이나 피부색으로 차별은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파문? 서자? 모두 고려할 가치가 없다. 인종이나 신앙이 다르더라도 유능하기만 하면 된다"
옅게 웃은 후, 시즈코는 경력서를 둘둘 말아 뒤로 던져버렸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으나, 시즈코는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나쁜 풍습(因習)을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의에 반하더라도 그게 유익하다면 나는 인정하지. 애초에 나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니 교의에 따른 판단 같은 건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
"너희들은, 지금 먹은 식사를 다시 한 번 먹고 싶지 않은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게 스스로의 재주를 보여라. 너희들의 재주가 뛰어나다면, 나는 그에 걸맞는 보수를 지급하지. 내가 할 말은 이상이다. 뭔가 질문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사양말고 하도록"
위엄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시즈코는 약간 거드름을 피우는 말투로 네 사람에게 선언했다.
네 사람은 각자 고민하고, 때로는 넷이서 서로 상의했다. 이윽고 결론이 나왔는지,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헛기침을 했다.
"아ー, 제가 대표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유창한 일본어로 남성이 말했다. 어쩌면 프로이스보다 일본어를 잘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상관없다. 말하라"
"그럼…… 우선 저희들에게 충분한 양식을 내려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식사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나라가 얼마나 부유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
"아까 당신은 출신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묻겠습니다. 저희들은 유태인입니다. 그걸 알고도 아까의 말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역주: 원문에는 평어와 경어가 뒤섞여있는데, 아마도 일본어가 아직 조금 서투르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지만, 뒷부분은 또 경어가 이어지길래 어째 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전부 경어체로 통일했음)
유태인. 현대에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종이지만, 중, 근세에서 그들의 취급은 탄압이라는 한 마디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중세에서는 '유태인은 어떠한 권리도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유럽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생략하겠지만, 유태인은 당시 유럽 전체에서 미움받고 있었다.
가장 흔한 유태인에 대한 비난이 '그들은 고리대금업자(高利貸し)이다'라는 점이다.
오해가 없도록 부연하겠는데, 유태 교에서도 고리대금업은 금지되었고, 종종 지도자들인 랍비들에 의해 고리대금업의 금지가 설파되었다.
하지만, 대부업 이외에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면 유태 교의 랍비들도 고리대금업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유태 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탈무드에 있는 금지 내용을 완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세 기독교(キリスト教)의 성직자들은 자산가들이었으며, 성직자 이외에도 다양한 직업(役割)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로 대부업이 있었다. 다만, 중세 교회는 성직자의 대부업을 종종 금지했다.
1179년의 제3 라테란(Lateran) 공의회(公会議)에서 '대부업을 하는 기독교도는 기독교도로서 매장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라는 선언을 했다.
하지만, 돈을 빌리는 쪽인 왕이나 귀족, 상인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돈을 빌려줄 존재가 필요했다.
지금까지 돈을 빌려주는 상대가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회의 위광(威光)을 두려워하여 임차(賃借)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가 대부업에서 구축되고 유태인이 그 뒤를 이었을 때, 유럽인들의 적의는 유태인을 향하게 되었다.
평소에 경시하고 있는 유태인에게서 돈을 빌린다. 그것만으로도 굴욕인데, 높아진 적의를 품은 기독교도들은 돈을 빌렸으면서 유태인 따위에게 돈을 갚고 싶지 않다, 고 생각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런 반감을 이용하여, 돈을 갚을 수 없게된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벗어날 수단, 이라는 핑계를 대고 빚을 갚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유태인이 무기 휴대 금지, 토지 소유를 금지당한 것에 착안하여, 폭동을 일으켜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틈에 차용증(借金の証文)를 파기하는 자들도 나타났다.
차용증(借用書)이 파기되면 유태인의 소유자(대부분은 왕)는 변제를 청구할 수 없게되어(※역주: 원문이 조금 이해가 안 가는데, 유태인에게 왕이 있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소유자라는 것은 유태인 채권자를 뜻하고 채무자가 대부분 왕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일단은 직역했음), 결과적으로 채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한번 더 선언하지. 너희들은 유능함을 증명하면 된다. 출신이나 피부색 같은 건 사소한 일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씀을 신용하고,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내가 섬기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사양하지 않고 말하도록. 뒤를 쫓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착각하지는 말도록. 자신의 재주에 안주하여 정진(精進)하는 것을 잊었을 때, 나는 용서없이 너희들을 내치겠다"
가장 나이많은 남성이 반응을 보였으나, 시즈코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유태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목표를 가지고 끊임없이 걸어가는 것으로 사람은 사람다운 존재가 되는 것이며, 사는 의미를 갖는다, 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단지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릴 뿐인 가축은 필요없다"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무릎을 치며 표정이 풀렸다. 그것은 모멸이 아니라 환희의 웃음으로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젊으신데도 잘 배우셨군요. 사실을 말하면, 말씀을 나눠보기 전에는 어떤 바보 상대를 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인은 입만 살았지 머리 쪽은 텅 빈 분들이 많았거든요"
웃음을 거둔 남성은 자세를 바로했다. 그걸 본 나머지 세 사람도 그에 따랐다.
"저희들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마음껏 저희들을 부려 주십시오"
"너희들의 주인으로서 합격, 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만점이라고 하진 않겠습니다만, 최고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성은 웃었다. 이번에는 나머지 세 사람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떠올렸다.
조용히 상황을 듣고 있던 나가요시들은 곤혹스러워했으나, 시즈코와 유태인들 사이에 흐르는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아, 깜빡할 뻔 했군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만 아니라면야"
"아니오, 단순한 청입니다. 저희들에게 이름을 주십시오"
남성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조스럽게 웃으면서 남성은 말을 이었다.
"저희들은 유태인. 다툼에 져서 기독교로 개종되어, 지금까지 굴욕적인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저희들은 태어날 때 받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새롭게 태어나서 출발지로 삼고 싶습니다"
레콘키스타(Reconquista) 달성 후, 기독교로 개종된 유태인이나 북서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도들은 신(新) 기독교도(cristianos nuevos)라고 불렸다.
하지만 개종자라는 의미에서의 콘베르소(converso)나, 심한 경우에는 마라노(marrano, 스페인어로 돼지, 더러운 사람이라는 모욕)으로 멸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종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강제 개종령이 떨어지거나, 경제적인 곤란이나 사회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이거나 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동하는 것은 희랍어나 아랍어로 된 이름을 버리고 세례명을 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또, 개종하는 것으로 유태인 공동체로부터는 비판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기독교도들로부터는 항상 배교의 의심을 받았다.
개중에는 개종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규제의 대상에서 풀려나 권력을 얻어 벼락출세한 유력한 유태인도 있었다.
"그건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일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이제 종교에 휘둘리는 건 사양입니다. 하나같이 자기들에게 유리할 때만 동료 취급을 하고, 곤란할 때는 내쳐버립니다. 그런 놈들과는 결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내뱉듯이 남성이 말했다. 시즈코가 시선만을 나가요시들에게 돌리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봐도 남성의 말에 거짓은 없다고 판단되었다.
애초에 아시미츠의 조사를 통과한 이상, 어딘가로부터의 스파이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흠…… 그럼 나중에 이름을 알려주지. 오늘은 그만 쉬도록"
"주인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이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남성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후일, 시즈코는 그들에게 이름을 주었다. 가장 유창하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가장 나이많은 남성은 '코타로(虎太郎)', 과묵한 30대의 남성에게는 '야이치(弥一)', 그 여동생은 '루리(瑠璃)', 10대의 소녀는 '모미지(紅葉)'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패배한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는, 모우리(毛利) 가문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몸이 나빠져 정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어 장기 요양을 위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지위를 천황(帝)에게 반납한다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쿄의 백성들이나 주변국의 백성들은 거의 믿지 않았고, 노부나가에게 반역했기에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직 짐정리나 인원 확보 등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요시아키가 쿄를 떠나는 때, 그것이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가 문을 닫는 날이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막부를 멸망시켰다는 소문(外聞)이 떠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역할은 요시아키의 자식을 다음 대의 정이대장군에 걸맞는 자로 키워내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반 오다 세력에 견제를 날린 후,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후(岐阜)에 도착했을 무렵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았기에 시즈코는 기후에 남기로 했다.
새롭게 지어진 시즈코의 기후용 저택에 군을 놔둬도 되었지만, 이렇다 할 목적도 없고, 또 노부나가로부터 지시도 없었기에, 지휘를 겐로(玄朗)에게 맡기고 오와리에 동착하는 대로 군을 해산시키라고 명했다.
"또 변덕이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이 무렵의 노부나가는 다실(茶室)을 밀회 장소로 삼고 있었기에, 시즈코가 안내된 장소도 다실이었다.
보통의 다실과 다른 점은, 조금 떨어진 장소에 경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게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
"주상, 부르셨습니까"
"들어와라"
다실 밖에서 말을 걸자 즉시 노부나가에게서 입실 허가가 떨어졌다. 시즈코는 숨을 한 번 내쉰 후, 조용히 손님용 입구로 걸어갔다.
다실에 있는 손님용 입구는 '무릎걸음입구(躙り口, ※역주: 직역)'라고 불리고 있다. 좁은 입구이기에 무릎을 대고 들어갈 필요가 있고, 기세좋게 발을 들이미는 것은 불가능하여, 급소를 상대에게 보이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으로 적의가 없음을 보일 수 있다. 무릎걸음입구는 센노 리큐(千利休)가 배의 내부구조(舟座敷, ※역주: 검색해봐도 정확한 의미가 걸리지 않아 확실하지 않음)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 한다.
아직 센노 리큐의 와비차(わび茶, ※역주: 다도(茶道)에서, 다구(茶具)나 예법보다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경지를 중시하는 일)는 대성(大成)하지 않았기에, 손님용의 입구는 약간 낮은 정도로 억제되어 있었다. 물론, 다실에 들어가려면 무기나 방어구를 풀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실례합니다"
입구를 조용히 열고 인사를 한 후 시즈코는 다실로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아까 남만의 노예를 샀다고 들었다"
시즈코의 앞에 차가 놓였다. 노예를 산 이유를 말해라, 라는 뜻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찻잔(茶碗)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노예 구입의 이유를 말했다.
"남만의 기술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전할 수 있는 기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퍼뜨리기 위해서는 노예 상인으로부터 기술자를 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는 이유로는 약하다"
"그러기 위한 언어학자입니다"
"호오?"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흥미를 보인 것을 확신했다.
"바테렌(伴天連)이 우리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이쪽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저쪽에서 언어의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게 끌어들이려 해도 상대가 경계심을 품게 되어버립니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언어학자는,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금은 노부나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시즈코는 그런 차이점을 생략했다.
"하지만, 노예라면 그런 쓸데없는 마찰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자가 파고들 가능성은 있으니, 그 점은 아시미츠 아저씨가 검사했습니다"
"흠…… 바테렌 놈들의 언어라. 확실히 알아둬서 손해는 없구나"
턱에 손을 대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남만의 언어를 알아두어서 손해는 없다. 놈들이 밀담(密談)하고 있는 내용도 알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시미츠가 검사했다면 간자로서 끈이 달려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점이 있다는 걸 알게되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차가 식는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끓인 차를 마셨다. 많이 식어서 미지근해졌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4, 5회에 걸쳐 차를 다 마셨다.
"그럼 남만의 노예의 건은 됐다. 우리 나라 이야기를 하자"
"알겠습니다"
"네가 내놓은 계책대로, 붙잡은 일향종(一向宗) 놈들을 대량으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로 보내줬다. 처음에는 효과가 보이지 않았찌만, 최근의 보고를 듣고 겨우 네 속셈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부나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시즈코로서는 역사적 사실에서 벌어진 노부나가의 학살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 이외의 효과가 있었나 하고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혼간지는 지금, 나가시마(長島) 잇코슈(一向衆)를 먹이기만도 벅차지. 교의(教義) 때문에 저버릴 수는 없다. 무구(武具)가 없기에 병사로 삼을 수도 없지. 굶주린 놈들을 받아들이면 치안이 흐트러지고 역병이 유행한다. 아주 좋은 계책이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간신히 깨달았다. 나가시마 잇코슈에 얼마만한 인구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2만 명이 타죽었다고 하니 적어도 수만 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만한 난민이 이시야마 혼간지로 밀어닥친다. 받아들이는 측인 이시야마 혼간지에 있는 켄뇨(顕如)와 측근들은 머리를 감싸쥐었을 것이 틀림없다.
애초에 식량은 거의 소지하지 않았고, 무구는 압수당해서 아무 것도 없고, 돈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을 수만 명이나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성질상, 밀어닥치는 난민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이니 사기가 떨어지고, 치안은 악화되고, 자칫 잘못하면 역병이 유행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사재(私財)를 털어서 수만 명의 난민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계책은 쓸만하다. 이후에도 일향종은 껍질을 홀랑 벗겨서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라고 각 방면에 전달했다"
"(효과가 있는 걸 알면 용서없이 계책을 실행하는 건 여전하네) 알겠습니다. 저희 군도 일향종과 상대했을 때, 가능한 적을 죽이지 않고 이시야마 혼간지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음. 자, 다음 이야기인데, 네게 10만 석(石, ※역주: 1석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곡식(쌀)의 양을 말하는 단위)의 영지를 내리겠다"
"네? 저어ー, 토지를 받아도 저는 관리할 수 없습니다만……"
아자이(浅井) 멸망 후에 히데요시(秀吉)가 노부나가에게 맡겨진 영지가 약 12만 석이라고 한다. 즉, 10만 석이라고 하면 미츠히데(光秀)나 히데요시, 시바타(柴田)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영지를 소유하는 것이 된다.
명실공히 다이묘(大名)라 할 수 있지만,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토지의 관리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다.
"서두르지 마라. 우선 10만 중에 5만은 고노에(近衛) 가문의 것이다. 이것은 키나이(畿内)의 토지 정비를 했을 경우, 고노에 가문의 장원(荘園)이 줄어드는 것에 따른 조치이다. 이 5만 석에 대해 너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5만석인데요. 저, 토지의 관리는 무리일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보좌관의 파견은 하겠다. 몇 년만 지나면 토지의 관리에 지장은 없어지겠지"
"(아~, 결정사항인 거군요) 알겠습니다. 이것저것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노부나가의 안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번 그렇지만 갑작스런 명령은 좀 자제해줬으면, 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말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오다 노부나가이므로.
"중간에 낀(板挟み) 보좌관이 위통(胃痛)으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심해라. 쓰러질 정도라면 목을 날리겠다"
그 목을 날린다는 건 해고라는 말인지, 아니면 참수라는 말인지 조금 신경쓰였다. 하지만, 지적하는 것보다 못 들은 것으로 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럼, 이제 곧 키나이는 소란스러워지겠군. 각 진영에 복종과 철저 항전,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놈들은 어떻게 할지 머리를 감싸쥐고 있겠지"
흡족스러운 얼굴고 노부나가는 말했다. 오다 포위망의 앙갚음을 할 수 있게 되어 그는 매우 즐거운 듯 했다. 왜냐하면 반 오다 연합의 생명줄이었던 타케다(武田) 군은 완전히 패배한 것이다.
이 시기, 오다 진영이 일기하성(一気呵成)으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승기가 있을 때 수고를 아끼지 않고 쓸 수 있는 수를 모두 쓰는 것이 노부나가이다.
각 진영에 기치(旗幟)의 선언의 타진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목적이 그것뿐이 아닌 것을 헤아렸다.
이 시기에 항복을 권유하면, 자신의 관대함을 널리 날릴 수 있다. 또, 복종을 거부한 경우, 전쟁도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편지 따윌 보낼 리가 없다. 뭔가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과연"
그리고 시즈코는 헤아렸다. 아시미츠가 급거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 이전에 사키히사가 방한용구를 발주했던 것, 그리고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보낸 복종을 권유하는 편지.
그 모두를 이어붙이자, 노부나가가 각 진영에 복종하라고 요구한 것은 그냥 블러프(bluff)이고 사실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가 손 안에 넣고 싶은 진영은 단 하나다. 그밖에는 노부나가가 보낸 복종의 편지의 대답으로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노부나가에게 사소한 일이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디서 누가 듣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노부나가도 시즈코가 입 밖으로 내어 말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차와 함께 말을 삼킨 시즈코는, 빈 찻잔을 내려놓았다.
※ 번역수정공지: 예전에 jerom님이라는 분이 남겨주신 댓글을 바탕으로 지금껏 별 생각 없이 편의상 일괄적으로 '카톨릭'으로 번역해오고 있었는데, 최근 원문에도 구체적으로 'カトリック'라는 용어가 별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キリスト教'과 '伴天連' 등은 카톨릭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으로서의 '기독교'(후자의 경우 상황 등에 따라 그냥 '바테렌'으로 쓰고 한자를 병기하는 식)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이후 번역시에 새로운 기준을 반영하고, 기번역분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수정에 들어갑니다. 물론 지금껏 해온 분량이 있으니 -ㅅ-;; 수십화 분량을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기번역 분량에서의 수정은 급한 것은 아니니 천천히 수정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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