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6 1573년 6월 상순
"에취! 으으……,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
케이지(慶次)가 코타로(虎太郎)와 술판을 벌이고 있을 무렵, 시즈코는 유태인 소녀 '모미지(紅葉)'를 대동하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방문 목적은 망고가 수확 시기가 되었기에, 우선 노부나가에게 헌상하기로 한 것이다.
망고는 비교적 빠르게 상하는 과일이다. 현대의 환경에서도 냉장으로 며칠, 냉동이어도 2개월 정도밖에 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간편하게 냉장 시설을 사용할 수 없는 전국시대인만큼, 작부(作付け, ※역주: 작물을 심는 것) 시기를 엇갈리게 하여, 수확 시기가 흩어지도록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년에는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없어 한꺼번에 작부를 해 버렸다.
그 때문에 같은 시기에 대량의 망고가 익어버리게 되어, 수요량을 공급량이 상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었다.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생각없이 유통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썩게 놔두는 것도 아깝다.
뭔가 좋은 처분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을 때 떠올린 것이 집들이 연회(新築祝い)를 틈타 초대객들에게 대접하는 것이었다.
현대라면 생식(生食) 이외에도 망고 처트니(chutney)나 잼 등으로 가공하여 장기보존도 가능하지만, 하나같이 대량으로 설탕을 사용하는데다, 처트니의 경우에는 귀중한 후추나 다른 향신료 등도 필요해진다.
아직 설탕이나 향신료가 귀중한 전국시대에서는 코스트상 포기할 수밖에 없어, 많은 사람이 모이는 집들이 연회에서 생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가장 유용한 소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해, 운반하는 걸 돕게 해서. 다들, 주상(上様) 상대로는 위축되어 버려서 말야……"
"괘, 괜찮, 습니다"
모미지는 기특하게도 시즈코에게 작은 주먹을 쥐어보이며 의욕이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본인은 기합을 넣고 있는 모양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든든함보다 어린애 특유의 사랑스러움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 저 사람들은"
모퉁이를 돌았을 때, 시즈코는 낯익은 세 사람을 발견했다. 도쿠가와(徳川) 가문 가신(家臣)들인 타다카츠(忠勝), 한조(半蔵), 야스마사(康政)였다. 상대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채,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타다카츠를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이 방이면 되겠지. 그럼 간다"
"음. 하나, 둘ー"
구령소리와 함께 한조와 야스마사가 또다시 만취하여 제정신이 아닌 상태(酩酊)인 타다카츠를 방으로 던져넣었다.
그야말로 집어던진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익숙한 동작이었으며, 던져지는 타다카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일단 타다카츠가 무사히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조가 한숨을 쉬었을 때, 두 사람은 이쪽을 바라보는 시즈코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어이쿠, 시즈코 님.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헌데, 뭔가 기묘한 것을 들고 계시군요"
"무엇이라고요ー!"
한조가 시즈코에게 말을 건 순간, 갑자기 각성(覚醒)한 타다카츠가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타다카츠를 던져넣은 방의 바깥은 툇마루(縁側)와의 사이에 있는 복도(廊下)로 되어 있어, 방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두 사람은 타다카츠의 돌진을 정통으로 받았다.
갑작스런 일에 두 사람 모두 낙법조차 치지 못하고 들이받혀 날려간 기세대로 툇마루에서 정원으로 얼굴부터 다이빙했다.
그것이 그치지 않고, 타다카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격돌에 다리가 꼬여, 앞으로 고꾸라져 복도를 핥게 되었다.
얼굴부터 정원으로 떨어져 몸을 새우처럼 꺾은 채 쓰러진 한조와 야스마사, 얼굴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어서 몸부림치는 타다카츠.
극히 흔한 복도에서의 대화가,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무사에게 있어 너무나도 불명예스러운 참상을 보고, 시즈코는 살짝 모미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다들, 지위가 있으신 분들이니, 지금 본 것은 잊도록 해"
"네, 네에"
시즈코의 말을 솔직하게 받아들인 모미지는, 시즈코가 손을 떼자 자기 손으로 자기 눈을 가리고 주위의 광경을 보지 않으려 했다.
시즈코가 다시 타다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타다카츠에 의해 날아간 두 사람이 일어서서 타다카츠와 치고받으며 싸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저건, 말릴 수 없겠네"
취객이라고는 해도, 맹장(猛将) 세 사람이 치고받는 것이다.
시즈코 같은 여자가 말리러 들어가봤자 간단히 날아가 버릴 것이 눈에 선했다. 언제 끝날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으나, 결판의 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타다카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두 사람도 나름 꽤 술을 마셨다. 그 상태에서 격렬한 운동 같은 걸 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기다려! 두 사람 다…… 우풉, 위험하다……"
"으윽…… 여, 여기는 일시 휴전……"
"그렇…… 군"
치밀어오르는 구토감에 이성이 되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늦었다. 세 사람 다 취객의 벌건 얼굴에서 푸른 색을 넘어서 흙빛으로 바뀌더니, 입을 틀어막고 달려나갔다.
목적지는 아마도 측간이겠지, 라고 시즈코는 이해하고는 눈을 계속 가리고 있는 모미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눈을 떠도 돼. 그럼 갈까? 모미지 짱"
모두 못본 적으로 하자, 누구에게든 그게 제일 온당한 결과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모미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리하여 그들의 체면은 지켜졌다.
생각지도 못한 소동에 말려들었으나, 그것들 전부를 없었던 일로 한 시즈코는, 대량의 망고를 들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기 직전, 예상치 못하게 노부나가와 마주쳐버렸다.
"그 녀석이 이번에 고용한 남만의 계집이냐"
시즈코 뒤에 낯선 소녀가 서 있는 것을 깨달은 노부나가가 모미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자 놀란 모미지는, 그래도 짐을 든 채로 엎드려 절했다.
"네, 착한 아이입니다"
"엎드리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들어라. 흠, 머리는 검지만 눈이 우리와 다르구나. 비취(翡翠)같은 푸른색(碧色)을 띠고 있군. 이런 남만인도 있는가"
모미지의 머리카락은 약간 곱슬머리인 흑발이며, 눈동자는 파란색을 띤 녹색이었다.
선교사들과는 약간 느낌(面持ち)이 다른 모미지의 외모가 신기한 건지, 아니면 서양인의 골격에 흥미를 가진 건지, 노부나가는 모미지를 자세히 관찰했다.
배려가 없는 시선에 노출되어 위축된 모미지는, 다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주상, 모미지가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 쯤에서 용서해 주십시오"
"딱히 적의를 보인 건 아니다. 신기한 눈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빛의 정도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이 보석처럼 아름답구나"
턱에 손을 대며 노부나가는 모미지의 눈을 칭찬했다. 마음에 없는 말 같은 걸 할 리가 없는 노부나가의 말에, 노여움(勘気)을 두려워한 모미지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방인(異人)을 품는 것에 대해 뭔가 말하는 놈도 나오겠지만, 내가 허락하겠다. 네가 나를 위해 일하는 한 쓸데없는 소리(文句)는 못하게 하겠노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여, 시즈코. 뭘 들고 있는 게냐? 아아, 아마타마(甘珠, ※역주: 직역하면 단 구슬)이냐"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시즈코가 바구니 속에서 하나 꺼내서 보여주자, 그는 망고의 별명을 말했다.
최근 알게 된 것이지만, 노부나가는 자신이 마음에 든 것에 대해 별명을 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의 네이밍 센스는 너무 뜬금없어서 다른 사람에겐 이해하기 어렵지만, 간결하게 특징을 포착하고 있었다.
"네, 이번에 수확을 하게 되었기에, 우선 주상께 헌상할 겸, 식후의 감미(甘味)로서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쁘지 않다. 마침 단 과일이라도 집어먹을가 생각했던 참이다. 남만의 케이크인가 하는 건 달지만, 너무 달아서 끈적인다고 느꼈지"
그 한 마디로 망고의 처리방법이 확정되었다. 시즈코는 망고를 주방으로 운반하여, 서둘러 접시에 담아 내도록 명했다.
망고를 생식할 경우, 현대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있는 씨를 피하여 과실을 세 개로 자른다.
씨앗이 있는 중앙부를 제외하고, 양쪽의 과실에 대해 껍질에 거의 닿을 정도로 주사위 모양으로 칼집을 넣은 후, 마지막으로 껍질을 뒤쪽에서 밀어 꺾으면 먹기 좋은 형태가 된다.
노부나가에게 제공되지 않은 씨앗이 붙은 부분은, 과육과 씨앗으로 나누어진다. 과육 부분은 혜택(役得, ※역주: 직업이나 업무 수행 중에 얻게 되는 이득을 말함)으로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위장으로 들어가지만, 씨앗은 껍데기(外殻)와 속껍질(渋皮)을 벗긴 후에 재배로 돌려진다.
이 망고의 씨앗은, 꺽꽂이(挿し木)와는 별도로 키우기 때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려면 최소한 6년 정도 걸린다.
이것은 시즈코가 해외에서 들여온 다양한 품종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꺽꽂이나 분주(株分け)에 의한 카피가 아니라 씨앗부터 재배하면, 유전이나 돌연변이에 의해 부모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 경우가 있다.
더 달고, 더 싱싱한 우량 품종을 얻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려고 씨앗부터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 잊을 뻔 했다. 사모님(奥方)들께도 가져다드려"
시즈코는 노히메(濃姫)들에게도 망고를 내놓도록 명령한 후, 모미지와 함께 주방을 나섰다.
시즈코 저택의 집들이 연회는 떠들썩하면서도 탈없이 종료되었다.
그만큼 준비했던 술을 남김없이 마셨는데도 인사불성에 빠진 사람이 없었으니, 에치고(越後) 사람들에는 주호(酒豪)가 많다는 것은 정말이구나라고 감탄했다.
예상대로, 시즈코가 켄신(謙信)과 차분히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적으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신하가 되었다고는 해도, 즉시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내에서도 주목받는 중진(重鎮)인 시즈코에게 거리낌없이 접촉했다가는,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오다 가문에게 알랑거린다는 이미지를 주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 각각의 가신들끼리 다툼을 시작할 것이 눈에 선했기에, 켄신으로서도 남들의 눈이 있는 상태에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되었다.
그러한 의도를 헤아리고 있었는지, 노부나가도 켄신의 태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주(国人)의 비애(悲哀)려나. 마음 속을 터놓고 나누고 싶은 말도 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겠지. 그럼, 슬슬 괜찮으려나?)
조직끼리 얽히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긴장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오다 가문 가신(家中)들조차 서로 견제하고 있는 현 상황에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시즈코는 아야(彩)를 대동하고 감옥으로 향했다.
시즈코 저택에 갖춰진 지하 감옥은, 단단한 암반이 깎여나가 생겨난 천연의 동굴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출입구는 견고한 쇠창살로 막혀 있어, 빈손으로 갇히게 되면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감옥의 입주자(入居者)는, 사나다(真田) 가문을 섬기는 간자였다.
"깨어 있어?"
"깨어 있다"
감옥의 쇠창살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즈코가 어둠에 대고 말했다. 잠시 간격을 두고, 감옥 안에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놀랍게도 되돌아온 것은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즉시 이해했다. 타케다(武田) 가문은 유랑무녀(歩き巫女)를 많이 쓰고 있기에, 간자가 여자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는 것을.
"미안해, 부자유스럽겠지만 조금 더 참아줘.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입막음을 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자신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다. 사치스런 소리를 하자면, 손발의 족쇄를 풀어줬으면 하는데"
"그건 당신의 자유를 뺏는 동시에, 당신의 몸을 지키는 것이기도 해. 지금은 풀어줄 수 없어.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겠어?"
"나는 건네준 서신 이외의 것은 듣지 못했다"
"서신에서 대략적인 사정은 파악했지만, 그 이외에 알리고 싶은 정보가 있지 않아?"
시즈코의 물음에 간자는 침묵했다. 이건 묵비(黙秘)가 아니라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고 헤아린 시즈코는 계기를 부여했다(呼び水をさす).
"(지금, 억지로 캐물어봐도 소용없으려나) 뭐, 괜찮겠지. 일단 조금만 더 참아줘. 아, 탈출하려고는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아무리 나라도 그건 감싸줄 수 없으니까"
"……잘 알고 있다. 한 가지만 전하고 싶군. 주군(主)의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당장은 올 수 없지만, 반드시 당신에게 달려오겠다고 하셨지"
"알고 있어.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걸 그에게 전하기 위해서도 얌전히 있어줘. 며칠만 참으면 돼. 그럼"
들을 것은 들었다. 그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아야를 데리고 감옥을 나섰다.
시즈코가 말한대로, 사나다 가문의 간자는 며칠 후, 적당한 이유를 붙여 풀어주었다.
그 때 서신의 답장은 들려보내지 않았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있기에, 간단히 구두로 대답을 전하기로만 했다.
"자, 이번에야말로 평화가 올 거야"
기지개를 켜며 몸을 푸는 시즈코였으나, 그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평화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사나다 가문의 간자를 풀어준 지 일주일 후. 계절은 장마(梅雨)로 변하여 날이 갈수록 더워지는 가운데,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있는 기후 성(岐阜城)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은 시즈코가 담당하고 있는 인프라 정비 사업의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노부나가는 혼간지(本願寺)와의 강화(和睦)가 성립한 이래, 정력적으로 인프라 정비에 착수했다.
쿄(京) 주변은 물론이고, 오우미(近江)나 이세(伊勢)를 경유하여 미노(美濃), 오와리(尾張)에 이르는 대동맥(大動脈)을 정비하는 대사업이었다.
미카와(三河)나 에치고(越後)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에야스(家康)가 인프라 정비에 의욕을 보였기에, 조만간 제 2차 인프라 정비사업으로서 계획에 포함되게 된다.
"금일 하늘 맑음(本日は晴天なり, ※역주: 무선전화설비의 테스트 등에서 쓰이는 표현. 단순히 의미는 '오늘은 날씨가 좋음'이지만, 옛날식의 말투라서 일부러 저렇게 번역함), 이랄까"
장마 기간중에 멀리 나가게 되었으나, 기후 성으로 가는 날은 다행히 맑은 하늘이었다.
우비(雨具) 준비가 필요없었기에 가는 것은 쉬웠으나,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기후에 도착한 후에도 날씨가 악화될 기색은 없었다.
"이쪽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역을 맡은 호리(堀)에게 안내된 방에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의 부름을 기다렸다. 계획은 순조 그 자체로, 큰 문제도 없기에 보고에 불안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의 여정을 짧게 계산하여, 경비병도 사이조(才蔵)를 포함한 얼마 안 되는 수하만 데리고 왔다.
"이번의 보고에는 딱히 걱정할 만한 사항은 없네. 당초에 휴일(休日) 제도를 도입한다고 건의했을 때는 설명하는 데 한나절이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가 될 때까지 명확하게는 휴일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쉬는 것은 우란분재(齋)와 연말(盆暮れ正月), 설날(正月), 그리고 축제일 등의 특별한 날에 한정되었다.
다만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에게는 가(假)라고 하는 정기 휴일이 있었다.
매일이 노동이고 몸을 쉴 틈도 없어서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위에 말한 휴일을 제정했다.
막연히 매일 일하기보다, 휴일을 정해 완급을 조절하여, 노동자가 건강하게 페이스 조절(メリハリ)을 하며 일하는 것으로 효율이 올라가고,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된다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설명했다.
요일의 제정은 오와리에밖에 침투해있지 않기에, 인프라 정비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간이적은 휴일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제도는 대단히 단순명쾌했다. 그날그날의 노동에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날이 6일 모이면 다음 날은 하루종일 휴일로 했다. 반대로 말하면, 목표 미달이 계속되면 영원히 휴일은 오지 않는다.
이 휴일은 노동에 면제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일에 상당하는 급료가 지급되는, 말하자면 '유급휴가'였다. 휴일을 지내는 방법에 규정은 없었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뭘 해도 좋다고 하였다.
노동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술을 마시던 행락(行楽)을 가던 자유였다.
미지의 제도이기는 하나, 노동자에게는 불이익은 커녕 유리한 제도이며, 휴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노동자들은 다들 열심히 휴일을 얻으려고 분투했다.
종래의 일하는 방식에서는, 날씨를 이유로 일이 없어도 급료는 나오지 않았기에, 일하지 않고도 급료를 받을 수 있는 특전에 분기(奮起)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부름이 늦네……. 휴일 제도의 성과를 듣고 싶다고 하셨으니, 슬슬 부름이 와도 좋을 텐데……"
그런 말을 딱히 누구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시즈코의 귀에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생각한 후, 옆에 있는 사이조에게 얼굴을 돌렸다.
"기분 탓은 아니죠?"
"소생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저건 맹장지가 찢어지는 소리일까요?'
"으ー음, 수상한 자(曲者)가 침임했다…… 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일단 확인하러 가죠"
여차하면 사람을 부르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와 수하의 병사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며 소음이 계속되고 있는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주의하면서 다가갔으나, 소음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대기실(控えの間)까지 들릴 정도의 소음이 끊기지도 않는 것에, 시즈코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긴장을 조였다.
"이 어리석은 놈이!!"
"아, 아버님! 기다…… 커흑!"
노부나가의 노성이 들린 순간, 전원이 유사시(荒事)에 대비해 전투태세에 들어갔으나, 이어지는 노성의 내용을 이해하자 몸에서 힘을 뺐다.
흘러나오는 내용을 볼 때 노부나가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사태는 아니고, 노부나가 자신이 친족 중 누군가에게 격노하고 있다고 전원이 헤아렸다.
시즈코가 눈짓을 하자, 사이조를 필두로 모든 병사들이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돌렸다. 노부나가가 주위를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관여되지 않는 편이 좋은 게 당연했다.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 내가 직접, 그 목을 날려주마!!"
노부나가의 노기가 가라앉지 않는 것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시즈코는, 자기가 생각해도 손해보는 성격이라고 어이없어하면서 중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실내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분노한 표정으로 뽑아든 칼을 치켜들고 있었으며,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두 명의 남성을 베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두 사람은, 안색이 푸른 색을 넘어서서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코나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노부나가에게 얻어맞고 걷어차인 것은 틀림없었다.
최근 한동안 좋은 일이 계속되어 어지간한 일에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웬일로 이 정도로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호리나 란마루(蘭丸)가 필사적으로 다독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다가갔다.
"주상, 지나치게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습니다"
"웬 놈이냐! 음, 시즈코냐. 너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이 쓰레기들을 처단한 후에 네 보고를 듣도록 하지"
"주상, 무례를 무릅쓰고 간언드리겠습니다. 분노에 휩쓸려 가신을 베면, 후대에 수치로서 전해질 것입니다. 여기는 일단 칼을 거두시고, 일의 전말과 주상의 뜻을 이 시즈코에게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뭐가 원인으로 노부나가가 이 정도로 격앙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노기에 휩쓸려 가신, 그것도 친족의 목을 날렸다고 하면 불명예가 될 것은 틀림없었다.
평소답지 않은 시즈코의 장광설이 노부나가에게 어느 정도 냉정함을 되찾게 했는지, 진절머리 난다는 듯 혀를 차고는 노부나가는 칼을 칼집에 넣어 란마루에게 던져주었다.
"반년이다. 반년의 유예를 주어도 여전히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친자(親子)의 연을 끊겠다! 이게 최후의 자비인 줄 알아라!"
바닥에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두 사람에게 내뱉은 후, 노부나가는 어깨로 숨을 쉬며(肩を怒らす) 걸었다. 간신히 칼부림 소동(刃傷沙汰)을 피할 수 있었던 것에 전원이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솔직히, 저렇게까지 노하신 주상을 말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안색이 새파래진 호리가 시즈코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쓰레기 취급받은 두 사람은 멍한 상태여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호리는 노부나가의 칼을 받아든 채로 굳어있는 란마루의 어깨를 쳤다.
그걸로 제정신이 든 란마루에게, 호리는 의사를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쓰레기라고 불린 두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이리라. 란마루는 칼을 내려놓고는 서둘러 달려나갔다.
위험한 외줄타기이긴 했으나 어찌어찌 참극을 회피한 시즈코에게는, 아직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느냐! 시즈코, 너는 따라오지 못하겠느냐! 나머지는 물러나라! 바보 아들놈에게는 일에 착수하라고 전해라!"
"(아아,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그럼 여러분, 실례하겠습니다"
노부나가가 열어젖힌 맹장지 저편에서 노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진척 보고에 더해, 노부나가의 넋두리(愚痴)를 받아준다는 일거리가 추가되었다. 사이조들에게는 먼저 돌아가도록 전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뒤를 쫓았다.
"하여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멍청한 자식놈들이다!"
시즈코가 내민 항아리에서 콘페이토(金平糖)를 한웅큼 집어 입에 털어넣고 거칠게 씹어부수며 노부나가가 내뱉았다.
"노여움의 원인은 이세의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 나가시마(長島)를 함락시킨 지금, 오와리와 이세와의 해운(海運)은 내가 장악했다. 그렇기에야말로, 오와리와 이세에서 뻗어나가는 도로 정비는 중요해진다. 항구에서 운반되는 물건들과, 그것을 운반하는 상인들의 왕래가 활발해지면 질수록 오다 영지는 윤택해진다. 육로(陸路)의 정비는 속도가 관건인데, 바보 아들놈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혼간지 쪽 놈들에게 허를 찔리는 상황이다!"
(상인들로부터 소문을 듣고있었지만, 그다지 진척되지 않았구나, 도로정비)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넋두리에서 사태의 전말에 대해 대략적인 추측을 했다.
이세는 키이(紀伊) 반도(半島)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세 만(伊勢湾)을 장악한 지금, 노부나가는 전국으로부터의 해운을 받아 육로로 연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쿄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럿 있는 쪽이 바람직하다. 설령 다시 오다 포위망이 구축되어 해상 봉쇄를 당하더라도, 육로가 건재하다면 노부나가를 가두는 것은 곤란해진다.
어느 한 쪽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으면, 병력 수송도 물자 운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세를 포함하는 지역은 가파르고 험준한(急峻) 지대라서 교통편이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산을 깎아서 길을 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만, 그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요?"
"다소의 지연이라면 문제삼지 않는다. 실패에서 배우고, 다음에 활용하면 된다. 문제는 놈들이 책임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납득했습니다"
만회 불가능한 실패가 아니라면, 노부나가는 실패에 대한 처벌을 내리더라도 만회할 기회 또한 준다. 만회할 수 있으면 좋고, 실패하면 거기까지다.
노부나가의 임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는 이것이 전부다. 물론, 몇 번이나 실패를 반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걷는 길이라면, 나도 실패에 대해 고려한다. 그 실패를 연구하는 것으로 뒤를 잇는 자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이지. 하지만, 멍청한 자식놈들은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낭비하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도 뒤처리를 해준 이후보다도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덤까지 붙여서 말이지"
"새로이 반년의 유예를 주신 것이 마지막, 이라는 것인가요. 확실히, 그 말씀을 들으면 충분히 온정을 베푸신 것이군요. 이래도 실패한다면, 참수를 당해도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말이다. 자, 불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네 보고를 들어보자"
노부나가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바꾸었다. 시즈코도 본론으로 들어가며 표정을 조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삼스레 보고할 내용은 거의 없었다. 이건 집에 빨리 갈 수 있겠다, 고 그녀는 내심 웃었다.
"보고라고 하셔도, 현재 상황은 제 2단계, 제 54공정까지 차질 없이 끝났습니다. 계획보다도 앞서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빠르구나. 제 54공정이라고 하면, '다음 달부터 개시될 예정' 아니었더냐? 예정된 것 이상이라는 것은 훌륭하다. 지금부터도 한층 더 분발하도록"
"감사합니다. 노동자들에게는 약간의 휴가와 포상을 주고 예기를 가다듬도록 명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날씨가 나빠지기 쉬운 시기이므로, 노동 환경이나 위생 환경에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마의 시기는 우천시에는 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어, 공기(工期)가 늦어지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무리한 노동을 강요할 가능성이 생긴다.
인프라 사업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대사업이므로,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 노동자를 혹사시켜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인프라 사업과는 별도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말해봐라"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수하에 따르면 쿄나 오우미 등에서는 물물교환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속히 화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페를 늘린다, 라는 말에 노부나가의 표정이 변했다.
안색에서 추측컨대, 노부나가도 화폐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에 대해 유효한 조치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부나가를 무지하다고 비웃을 수는 없다. 경제학 따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서 화폐를 늘린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리 사고가 유연한 노부나가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 생각하느냐. 역시, 화폐가 문제인 것이냐"
"통화(通貨) 발행에 관한 권한은 조정으로부터 오다 가문이 위임받았습니다. 최상책은 불환지폐(不換紙幣)로 경제를 컨트롤하는 것입니다만, 그것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화(銀貨), 금화(金貨)를 주조하여, 시장의 거래 규모에 맞는 화폐량을 담보하는 것이 급무라고 생각됩니다"
"돈이 모자라면, 만들면 된다라. 훗……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역시 한번에 건너뛰는 식(一足飛び)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가"
노부나가는 자조하듯 웃었다. 화폐가 부족하면,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여 투입한다. 대단히 간단한 대책이지만, 그 해답조차 자신은 찾아내지 못했다.
시즈코가 지금도 여전히 지혜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평범한 것들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노부나가는 이해했다.
"최종적으로 목표한 지점은 보이고 있습니다만, 현재 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우선은 아전(鐚銭, ※역주: 표면이 닳아버리거나 불순물이 섞인 돈)을 구축하고, 새로운 화폐로서 금, 은, 동전을 유통시키는 것이 선결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어째서 화폐가 줄어드는 것이냐? 그걸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
"그렇군요…… 가령 일본 전체에 동전(銅銭)이 1천만닢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발행 당시에는 일본에 1천만닢의 동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통을 거치는 과정에서 동전은 마멸되거나, 녹여서 불순물을 섞어 구리(銅)의 비율을 줄이거나 하여 아전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아전의 존재와 정전조문(精銭条文)에 의해, 유통되는 화폐의 숫자가 변합니다. 알기 쉽게 절반이 정전(精銭), 절반이 아전이라고 가정합니다. 아전은 5닢에 정전 1닢으로 친다고 하면, 동전 자체는 1천만닢이 있지만, 정전 5백만닢과 아전 1백만닢의 합계 6백만 문(文)밖에 통용되지 않게 됩니다. 당초에 유입된 동전의 숫자보다 화폐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화폐의 가치가 올라가고, 반대로 물가가 떨어집니다"
영락전(永楽銭)은 명나라(明)에서 수입하고 있는 동전이다. 화폐 공급량이 제로인 현 상황에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는 줄어들기만 할 뿐이다.
지금은 정전이더라도, 언젠가 아전으로 바뀌고, 나아가 화페 가치를 끌어올려,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 경제에 빠져든다.
그야말로 지금이 디플레 경제 상태이다. 이것을 해소하려면 내수의 확대가 바람직하다고 한다.
하지만 내수를 확대하려 해도, 거래량에 걸맞는 만큼의 화폐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시즈코는 기존의 역사를 본받아, 동전뿐만이 아니라 금이나 은의 화폐도 투입하도록 진언했다.
"주상께서 정하신 정전조문은, 금의 '무게'에 대해 교환할 수 있는 '돈'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화폐는 계속 줄어듭니다. 금이나 은을 가공하여 화폐로서 유통시키고, 그런 후에 공공 투자를 하여 내수의 확대를 노리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흠…… 금이나 은은 남만과의 거리에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걸 우리 나라에서도 사용한다는 것이냐. 당면의 과제는 시장에 존재하는 화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조속히 금이나 은을 모아서 새로운 화폐를 주조할 필요가 있겠구나"
"새로운 화폐의 모양 같은 건 정하셨습니까?"
"지나치게 기발(奇抜)해도 쓰기 불편하겠지. 영락전과 비슷한 모양이면서 위조를 방지할 수 있으면 된다. 물론, 위조한 놈에게는 일가친지 몰살(根切り)이 기다리고 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옛부터 통화 위조는 중죄…… 일가친지 몰살, 즉 일족 도당을 모두 죽이는 정도가 타당합니다"
"이야기는 결정되었구나. 당장 기사들을 모아라. 기사들에게도 엄한 감시를 붙여라. 금은으로 돈을 만드는 것이다. 사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부터 통화 제조에 종사하는 것은 엄격한 감시 하에 놓였다.
에도(江戸) 시대에서는, 에도 막부(江戸幕府)가 통화를 제조하는 킨자(金座), 긴자(銀座), 도우자(銅座)라는 화폐주조기관을 설립하고, 각각의 기관(座)에 통화를 제조하게 했다.
특히 가장 가치가 높은 금화를 주조하는 킨자는, 막부로부터 엄격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고위의 직책(役職)에 부임할 수 있는 가문을 한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으로서 채용될 때는 서약서의 의무화, 작업자에 의한 상호감시체제, 봉행소(奉行所)로부터의 순시(巡視) 등이다.
특별히 에도 막부가 엄격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에서도 지폐 제조에 관한 기술은 극비 취급이 기본이며, 관련되는 직원이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제한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서약서의 의무화, 직원의 상호 감시, 제 3자에 의한 순시 등의 규정이 필요하겠군요. 각 직원에게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 자를 밀고하면 포상금을 준다고 말해두면 배신자도 나오기 어렵겠지요"
"역시 빈틈없구나"
시즈코의 설명에 노부나가는 히죽 웃었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의 신하의 예를 취했지만, 그 하나만으로 신종(臣従)이 담보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신하의 증거로서 인질이 노부나가에게 보내질 것이 결정되었다.
누굴 보낼 것인가라는 선별은 의외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인질이 되는 것은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였다. 이것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가 호죠(北条) 가문 출신인 데 비해, 카게카츠는 우에다(上田) 나가오(長尾) 가문 출신인 것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에치고 나가오 씨는 오랫동안 가문 내부의 권력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우에다 나가오 가문과 코시(古志) 나가오 가문은 현재도 적대하고 있어, 코시 나가오 가문의 입장에서는 인질의 건은 카게카츠를 추방할 둘도 없는 찬스였다.
카게카츠는 카네츠구(兼続) 등 약간의 측근만을 데리고 에치고를 출발했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기후(岐阜)에 도착하여 노부나가에게 인사를 마쳤다.
노부나가는 카게카츠가 보내어진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인질로서 맞아들였다.
원래대로라면 기후의 성시(城下町)에서 생활하겠지만, 미노와 에치고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연락도 취하기 쉽다는 불안이 있었기에, 카게카츠는 오와리에서 인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와리의 경우, 카게카츠를 돌봐줄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아ー, 뭐ー, 그렇게 되지 않을까ー 라고 생각했었어"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성의없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미노에 카게카츠를 계속 두게 되면, 켄신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오와리까지의 경우 물리적인 거리가 가로막는다. 간자를 보내려 해도 발견될 가능성은 높아지기에, 켄신도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없다.
"주상의 명령입니다. 견실하게 실행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질인가. 그래서, 란마루. 너, 시즈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냐?"
다부진 표정으로 말하는 란마루에게, 나가요시가 히죽히죽 웃으며 훼방을 놓았다. 하지만, 란마루는 나가요시의 말을 흘려들었다.
"주상의 명령에 이의 따위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형님, 이 자리에서 저는 주상의 사자(使者). 그런 거친 말투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게 되었구나"
"자, 거기, 일일이 트집을 잡지 마. 받아들이는 건 딱히 문제 없어요. 세세한 지시는 전부 적혀있으니까요. 그래서, 우에스기 가문의 인질의 취급에 대한 건 이족에 일임된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거죠?"
"예. 주상께서는 '귀여워해줘라'는 전언을 받았습니다"
"잘 알겠어요. 수고하셨어요"
딱히 질문이 없었던 시즈코는 거기서 대화를 종료시켰다. 그 후, 란마루가 기후로 돌아가고, 이쪽의 지시에 따라 카게카츠들이 측전(側殿) 중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일들이 끝나자 카게카츠와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알현을 신청했다. 도착 인사일 거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즉시 부르도록 소성(小姓)에게 명령했다.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라고 합니다. 길어질지, 아니면 짧아질지는 모르지만, 그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히구치 요로쿠(樋口与六)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신세를 지겠습니다"
"이야기는 들었어요. 몇 가지 행동에 제한은 두겠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도 상관없어요"
시즈코는 두 사람에게 세세한 제한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과도한 제한을 둔 결과, 감시측의 인원 부족에 빠져버려서는 얘기가 안 된다.
또, 아무리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겠다고 결정해도,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런 패거리들에게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인질의 취급은 엄격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불만을 가진 사람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짓을 하면, 노부나가나 켄신이 제재(粛正)를 가할 때 대의명분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흑심(下心)도 있었다.
"지금 있는 집 안이라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상관없지만, 외출시에는 이쪽에서 사람이 따라붙으니까 그것만 주의해줘요"
"과분한 온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면, 대충 이 정도일까? 나머지는 감시역인 케이지 씨에게 그때그때 물어주세요"
그 후, 카게카츠와 카네츠구는 케이지를 따라 퇴출했다. 나가기 직전에 술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케이지와 카네츠구의 대화가 들렸기에, 시즈코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술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이제 곧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침공일까, 라고 시즈코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금속 가공에 종사하고 있던 전직 노예인 야이치(弥一)와 루리(瑠璃)가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호출한 기억이 없었기에 뭔가 상담할 일이 있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는 두 사람을 만나기로 하고, 귀찮지만 알현실까지 이동했다.
생각대로, 두 사람은 상담할 일, 이라기보다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시즈코와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었다.
"집을 가지고 싶어요?"
그건 둘이서 살 집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상담이었다. 각자 일하는 장소가 다르기에, 현재 야이치와 루리는 따로따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없었기에, 이것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이서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허가 없이 생활(待遇)을 바꾸면 질책받을 거라고 야이치가 생각하여, 시즈코에게 허가를 받으러 왔다는 이야기였다.
"응, 딱히 상관없어요. 그걸로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면 이쪽도 거절할 이유는 없어요"
시즈코의 허가를 받자 야이치와 루리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일인가, 라고 생각했으나 노예 생활이 길었기에 그들은 고용주의 허가를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그런데 일은 순조롭나요?"
"네. 처음에는 어색한 관계였습니다만, 지금은 여러분이 매우 잘 대해주십니다. 다만, 기술자들의 진지함, 만은 지금도 어색합니다. 조금, 따라가기 힘듭니다"
"젊은 사람이나 정열적인 사람으로부터는 선생님이나 스승이라고 불려서 기쁩니다. 하지만, 다들 너무 진지하여, 이쪽이 반대로 미안해져 버립니다"
"그런가요, 그거 다행이네요. 뭐 우리 기술자들은 지는 걸 싫어하니까요. 두 사람의 기술을 배워서 언젠가 그걸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야이치나 루리와 기술자 마을의 기술자들의 관계는 양호했다. 그들이 만드는 상품도 날개돋친 듯 팔린다, 까지는 아니지만 서서히 주목받게 되고 있었다.
특히 1mm 정도의 가느다란 바늘 모양의 은이나 금으로 세공한 허리띠(帯飾り)는, 평소에 장식품을 달지 않는 무가(武家)의 부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인기 상품이 되어 있었다.
"고마운 이야기, 입니다. 하지만, 동포들이 지금도 불우한 취급을 받고 있다, 고 생각하면, 저는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근본이 성실한 건지, 야이치는 자신만이 구원받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루리가 야이치의 등을 문지르며 위로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하, 네가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걱정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된 게냐"
시즈코가 건넬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어느 새 코타로가 야이치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야이치가 돌아보았으나, 그런 그를 보고 코타로는 코웃음을 쳤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애숭이가 우쭐하지 마라. 자기 몸 하나 뜻대로 하지 못하는 네가, 다른 사람의 몸을 걱정하다니 웃기는구나"
"……네"
"지금은 자신의 기반을 다지고, 자신이 홀로 설 수 있게 되는 걸 우선시해라. 다른 사람을 돌봐주는 건 그 다음이다"
주인인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보다, 같은 유태인인 코타로의 말이 납득하기 쉬웠는지, 아까까지 외곬으로 생각하며 고민하고 있던 야이치였으나, 지금은 고민이 해결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야이치의 표정에 만족했는지, 코타로는 히죽 웃으며 앉았다.
"미안합니다, 주인님. 오늘은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만"
"이제와서 늦은 얘기네요. 이번에는 괜찮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순서를 지켜 주세요"
"노력하죠. 그래서, 이야기라는 건 와인을 만들고 싶으니, 그 환경을 갖춰 줬으면 합니다"
누구에게 배운 거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근히 건방진 말투에 마음 속으로 태클을 걸던 시즈코였으나, 와인이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기독교에서 와인이란 '신의 피'이며, 대단히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실은 유태 교에서도 와인은 기쁨의 상징, 안식일에 기도를 드리는 등 중요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대 교에는 계율에 적합한 카슈루트(kashrut, 코셔(Kosher)라고도 한다)라는 식사 규정이 있다.
카슈루트를 엄격하게 지킨다면, 와인은 유태 교도가 순서에 따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병에 담은 것 이외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카슈루트에 적합한 와인을 이교도가 만져도 마찬가지로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건 계율에 따른 포도주를 만들고 싶다는 건가요?"
"응? 아핫핫핫, 계율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순수하게 와인이 마시고 싶어진 것 뿐입니다. 하지만 포도를 모으는 건 지금의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니, 주인님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거라면 몇 달만 기다리면 코우슈(甲州) 포도가 수확할 시기가 될 거에요. 그 때, 생식에 맞지 않는 것을 와인용으로 쓰죠"
"잘 부탁합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코타로는 몸을 돌려, 용무는 끝났다고 말하듯 알현실을 나갔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졌으나, 케이지와 시즈코만은 웃고 있었다.
'취미번역 >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8 - 1573년 8월 중순 (6) | 2019.10.21 |
---|---|
107 - 1573년 8월 상순 (9) | 2019.10.18 |
105 - 1573년 6월 상순 (6) | 2019.10.13 |
104 - 1573년 5월 중순 (5) | 2019.09.25 |
103 - 1573년 4월 중순 (6) | 2019.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