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4년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종언(終焉)


108 1573년 8월 중순



8월 11일. 히데요시(秀吉)로부터 정치적인 공작(調略)을 받고 있던 야키오 요새(焼尾砦)를 지키는 아사미(浅見) 츠시마노카미(対馬守)가 꺾여서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그 소식은 즉시 노부나가에게 전해져,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 이은 정치적 책략의 성공에, 시즈코를 제외한 오다 가문의 주요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야키오 요새가 함락된 이상, 남은 것은 오오즈쿠 성(大嶽城) 뿐이었다. 오오즈쿠 성까지 히데요시가 함락시킬 경우, 이번의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토벌에서의 제 1공은 히데요시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오다 가문 내에서의 히데요시의 발언력은 더욱 강해지기에, 그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한편, 권력 다툼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에게는 동요도 없고, 담담하게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진으로의 물자 반입 및 텟포슈(鉄砲衆)의 배치를 하고 있었다.

야키오 요새 소식을 들은 시바타 카츠이에나 마에다 토시이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게 되어 필요 이상으로 발이 묶였지만 대략 예정대로 일을 마쳤다.

이튿날인 12일, 역사적 사실에서는 밤중에 뇌우(雷雨)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시즈코는 낮의 구름의 움직임 등을 볼 때 날씨가 나빠지는 것은 다음날로 미뤄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시즈코의 예측대로, 12일 밤에는 바람은 강했지만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


"날씨가 나빠지는 걸 마냥 기다린다, 는 것도 할 일이 없어 꽤나 따분하네"


케이지(慶次)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이런 날씨에 맡긴 작전이라"


"상관없어. 요는 하늘이 우리들의 편을 들지, 아니면 적에게 붙을지, 그런 천명(天命)을 점치는 것도 멋진 일이야. 그런데, 정말로 할 거야? 나는 전혀 상관없지만, 실패하면 아무리 시즛치라고 해도 호되게 혼나는 정도(大目玉)로는 끝나지 않을 걸?"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다, 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즈코의 대꾸에 의표를 찔려 일순 멍해진 케이지였으나, 파안(破顔)하더니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다른 뜻(含むところ)이 일체 없는, 유쾌해서 견딜 수 없다는 웃음이었다.


"시즛치도 웬걸, 훌륭한 카부키모노(傾奇者)잖아. 확실히 보통이라면 하지 않겠지. 바로 그러니까 재미있어. 내 병사들은 의욕이 넘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에 끼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야"


"자칫 잘못하면 추위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의욕적인 말이 나오는 건 놀랍네요"


"그럴지도. 하지만, 계책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놈들의 표정은 꽤나 볼만하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케이지 부대 중에서도 강자(猛者)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왔다.

대장인 케이지의 영향인지, 다들 제각기 튀는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傾いていた). 개중에는 어지간한 무공을 세우지 않으면 들 수 없는 붉은 창(朱槍)을 들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자, 먼저 케이지 씨한테 이야기했지만, 이번의 계책이 승인되었어요. 계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전에 이야기한 내용에서 변경은 없어요. 최고(ここ一番)로 튀어보일 기회(傾きどころ)에요. 자신의 인생관(生き様)을 적에게 똑똑히 보여주세요"


시즈코의 말에 모여든 카부키모노들은 굵직한 미소를 떠올렸다. 기세(意気込み)는 충분했고, 이후에는 때가 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13일. 아침부터 하늘은 흐리고 비가 올 기색이 농후하게 감돌고 있었다. 아침 일찍 시즈코는 자기 진에서 고용한 츄우겐(中間)들의 명부를 보고 있었다.


"여기랑…… 이 집단은 꽤나 오랜 기간동안 고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슬슬 익숙해져서 의식이 느슨해질 듯 하니까, 일처리를 잘하면 보수를 더 얹어줘요. 숙련자라면 보수가 많아도 문제없겠죠"


"그래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나게 되어 버립니다만……"


"자신의 목숨을 도박판(賭け皿)에 걸고 있는 그들에게 정신론(精神論)이나 근성론(根性論)은 먹혀들지 않아요. 일의 성과에 따른 적절한 평가와 보수를 주면 그들은 최대로 힘을 발휘해요. 격전을 거듭하는 우리 군에서 반복해서 고용하고 있다면, 역전의 병사로 대우해 줘야죠. 일의 성과에 따른 보수를 주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도 촉발되어서 분발하게 될 거에요. 게다가 불평이나 하며 제대로 일하지 않는 패거리는 매사 구실을 붙여 일하지 않게 돼요. 그런 자들은 다음부터 고용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츄우겐을 고용하면, 항상 같은 구성으로 오는 사람들이 생긴다. 츄우겐으로서 한데 묶어(十把一絡) 취급하는 게 아니라 성과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시즈코는 말한 것이다.


"옛! 잘 알겠습니다"


"도구류의 정비는 제대로 되었어요? 도구가 좋고 나쁘고에 따라 효율이 달라지니까요"


"예, 문제없습니다. 기술자들이 전량 검사하여 문제없다고 보증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노동 사이사이에는 휴식을 취하고 하고 있죠? 어떤 사람이라도 장시간 일하면 피로가 쌓여요. 피로가 쌓이면 판단을 잘못하거나, 생각지 못한 실수를 하거나 하니까요"


"과부족없이 휴식시간을 두고 있습니다. 덕분에 대단히 기운이 넘치는 츄우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럼 좋아요. 당신들도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세요. 일하면 피곤해져요. 그건 육체 노동이든 두뇌 노동이든 마찬가지에요. 누군가가 탓한다면 저한테 보고하세요. '신하(臣下)를 챙기는 것(保障をする)'은 제 의무니까요" 


"옛! 시즈코 님의 배려,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부하의 말에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항상 말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오다 군에서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縁の下の力持ち)이에요. 결코 화려한 활약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오다 군이 쾌진격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뒷바라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강철같은 결속으로 흔들림 없는 실적을 쌓아올려, 이제부터도 오다 군의 병참을 계속 담당합니다"


"옛!!"


후방지원부대의 대장들은 시즈코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본진을 떠났고, 그와 교차하듯 케이지나 사이조(才蔵)들이 시즈코가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이 하늘 모습과 비 냄새…… 이제 곧 날씨가 나빠질 거에요. 그게 개시의 신호……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 잘 부탁해요"


"맡겨둬. 재미있는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게"


나가요시(長可)가 힘있게 주먹을 쥐며 기합을 어필했으나, 케이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령 나가요시가 폭주하더라도 케이지가 함께라면 어떻게 해 주려나,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시즈코는 이번의 작전에 한 가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가요시가 폭주해버린다는 가능성.

최근, 나가요시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키나이(畿内) 각지의 소동 진압 임무에 나섰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착임하는 것과 동시에 뚝 하고 소동이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나가요시의 악명은 키나이에도 퍼져 있어, 타케다(武田)의 적비대(赤備え)조차 쓰러뜨리는 잔학무도(悪逆非道)한 무뢰한(無頼漢)으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작은 소동이 발생하더라도 나가요시가 달려갔을 무렵에는 해결되어 있어, 그의 불완전연소에 의한 욕구불만은 쌓여만 갈 뿐이었다.

이제 충분히 적과 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혈기가 넘치는 나가요시가 폭주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사이조 씨와 요키치(与吉, 타카토라(高虎)) 군에게는 본진의 수비를 부탁해요. 텟포슈의 태반을 각지에 파견했으니, 본진에는 약간의 텟포슈와 용기병(竜騎兵) 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방심하지 말도록 부탁해요"


"옛!"


텟포슈는 겐로(玄朗)가 대대장(大隊長)을 맡고, 그 아래에 200명 정도를 1개 부대로 하여 지휘하는 대장들이 몇 명 존재한다. 그 대장 중 한 명이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였다.

그의 출신에서 볼 때는 그런 지위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는 단지 일개 병졸로서 재출발하여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엔도(遠藤)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이제는 완전히 숙련된 텟포슈가 되어 있었다.

그 나가마사가 지휘하는 부대를, 시즈코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히데요시가 있는 곳에 배치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아케치(明智) 님이 용기병 50을 써서 아사쿠라의 진을 흔들고 있었지. 그건 주상께서 도발하라고 명하신 건가?"


"아마 그렇겠죠. 적의 소모를 노리고 계시니까요. 용기병의 기동력이라면 한번 부딪히고 즉시 철수하는 일격이탈(一撃離脱) 전법을 쓸 수 있으니 딱 어울릴 거에요"


용기병은 신식총(新式銃)을 장비한 기병대이며, 말에 탄 채로 장거리 저격이 가능한 병종이다.

정밀사격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말에서 내리지만, 그 이외에는 기동력을 살려 적과 접촉,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일방적으로 사격을 퍼붓거나 적을 끌어들이며 사격을 계속한다는, 종래에는 없었던 공격이 가능해진다.

말에 의한 기동력과 신식총의 압도적 성능에 의해, 겨우 50기 뿐인 용기병이라도 10배의 적을 교란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다만 기병인 이상, 시야가 양호하고 발밑의 지반이 든든해야 한다는 제약은 피할 수 없다.


"멀리서 보고 있었는데, 아사쿠라 군 입장에서는 거슬리기 짝이 없겠지. 그만큼 일방적으로 당해도 요시카게(義景)가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금쯤 아사쿠라의 가신들은 요시카게에게 따지고 있었지. 이번만큼은 요시카게의 생각이 맞지만 말이다"


아시미츠(足満)가 웃으면서 시즈코의 말을 보조했다.

현 시점에서는 어디의 진을 공격해도 신식총으로 무장한 텟포슈가 100명 이상 있다. 백병전의 거리까지 다가갈 무렵에는 많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을 게 뻔하다.

그걸 생각하면 도발에 응하지 않고 수비를 굳히는 요시카게의 전법이 이치에 맞는다. 단, 기습을 받고 총탄을 뒤집어쓰는 쪽은 오래는 버틸 수 없다.


"어쩔 수 없어요. 총격을 받아도 계속 버텨라, 고 해도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어선 견딜 수 없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슬슬 그 고생도 끝나겠죠. '그 사람'이 하시바(羽柴) 님과 접촉한 모양이니…… 며칠 안에는 결판이 나지 않을까요"


"영고성쇠(栄枯盛衰)는 세상의 상리(定め). 명가(名家)의 미명(美名)에 안주하여 정진(精進)을 잊은 자에게 미래는 찾아오지 않지"


"뭐, 미련이 남지 않게 깨끗하게 목을 쳐 주는게 무사의 정이라지. 맡겨둬, 내가 일도양단해줄게"


"에잇, 카츠조 군. 일도양단하면 안 돼. 이번 작전은 요시카게가 핵심이라고"


"안심해, 시즛치. 카츠조가 바보짓을 할 것 같으면 후려갈겨서라도 막을테니까"


케이지가 때려서 막으면, 그 자리에서 대 난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해진 시즈코였으나, 시즈코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적 앞에서 아군끼리 싸우는 것만큼은 참아줘요"


"실례네. 나도 상황을 파악하는 분별은 있…… 겠지?"


"어째서 자기가 말해놓고 의문으로 생각하는 거야. 괜히 더 불안해지잖아. 뭐 여기서 말해봤자 소용없나. 하지만, 이번에는 케이지 씨랑 카츠조 군 밖에 활약할 기회가 없는데, 다른 두 사람은 혹시 불만 같은 거 있어요?"


사이조와 타카토라는 본진의 수비. 케이지들이 날뛰고 있을 때도 시즈코의 호위라는 중대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地味) 임무를 맡는다. 아시미츠의 경우에는 본진에서 나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화려한 전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불만은 없느냐고 시즈코는 물어보았다.


"소생은 오랜만에 호위대(馬廻衆) 다운 일을 할 수 있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쟁터에서의 무공을 세우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다고(吉) 감이 속삭이고 있기에 불만도 없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희망이 있으면 말해줘요. 가능한 한 맞춰볼테니"


"시즈코 님의 배려(心遣い)에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사이조와 타카토라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망설이지 마라. 시즈코는 단지 명령하면 되는 거다. 나는 그에 응할 뿐이다"


아시미츠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망설임없이 단언했다. 그답다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요, 그럼 이야기는 끝이네요. 자, 나는 지금부터 키묘(奇妙) 님을 달래고 올게요. 가까이 있으면서 이틀이나 내버려두다니 어떻게 된 거냐, 라고 펄펄 뛰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그건 중요한 일이군. 힘내, 시즛치"


무거운 한숨을 쉬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진심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말을 하며 그녀를 전송했다.




노부타다의 진은 불온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기분이 나쁜 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노부타다 때문에 진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를 뿜고 있는 듯 했다.

노부타나는 이미 노부나가의 후계자로서 내외에 알려져, 언젠가 천하인(天下人)의 뒤를 이을 것이 결정되었다. 그걸 생각하면, 가신들은 노부타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언동을 두려워하게 된다.


"슬슬 댓발이나 나온 입을 좀 집어넣어 줬으면 좋겠네"


다만 시즈코가 볼 때는 챠마루(茶丸, 키묘마루(奇妙丸)) 시대의 인상이 강하여, 언제까지나 손이 가는 남동생처럼 생각되었다.

성인식(元服)을 치른 이래로, 노부타다는 노부나가의 명에 따라 각지에서 싸우고는 있지만 한 번도 시즈코와 전장에 함께 나간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시즈코가 싸워온 전장은, 언제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호담한 것으로 유명한 노부나가라도 적자(嫡男)를 그런 장소에 둘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의 아자이-아사쿠라 토벌이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다. 노부타다는 그렇게 기대로 가슴을 부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시즈코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머무르고 있고, 각 진영의 지원이나 조정에 전념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쁜 듯 하지만 전선에 나올 기색은 없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한 노부타다에게 가신들은 위축되어, 결과적으로 그의 본진은 기능부전에 빠져 있었다.


"시즈코가 아버님의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해도, 대신할 사람이 없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번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아자이-아사쿠라 양쪽을 멸망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자이는 하시바 쪽이 처치하겠지. 이쪽이 나설 일은 없어. 아사쿠라는 아버님이 직접 계책을 짜고 계시지. 만에 하나라도 우리들이 나설 장면은 없을 거다. 이 싸움이라면 시즈코와 함꼐 싸울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렇게 땡깡을 부려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이게 내 땡깡이라는 것도, 함부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입으로는 이해하고 있는 듯 하나, 도저히 납득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 노부타다의 태도에 시즈코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우선 노부타다의 가신들을 물러나게 했다. 그들이 있어봤자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긴장을 강요당한 그들에게야말로 휴식이 필요하다.

가신들을 떨어뜨려놓은 것으로 비밀의 작전같은 연출을 할 수 있고, 노부타다의 본심도 끌어내기 쉬워진다는 일석이조의 계책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한 건 하시바 님과 아케치 님 양쪽이 관계되어 있는걸까?"


본심을 들켜 경악한 표정을 떠올리면서 노부타다는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려운 추리는 아냐. 적자이면서도 눈에 띄는 무공이 없는 너랑, 주상을 따라 각지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중신(重臣), 어떻게 해도 비교해버리고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여전히 날카로운 건지 맹한 건지 판단하기 어렵구나. 그래, 나는 초조하다. 애초에 나이부터 다르니까 비교해도 소용없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무공을 세울 수 있는 전장은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노부타다도 시즈코 상대로 허세를 부릴 필요가 없어서인지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시즈코의 예상은 옳았다. 노부타다의 무공이라고 하면 나가시마(長島) 일향종(一向宗) 토벌이지만, 그건 충분히 판이 깔린 상황을 틈탄 것 뿐으로, 솔직하게 자랑할 수 없었다.

전장에 나간 것(いくさ働き) 자체가 몇 년밖에 되지 않으니, 생애의 절반 이상을 계속 싸워온 히데요시나 미츠히데(光秀)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노부타다 자신도 그렇게 이해하고는 있지만, 마음만 조급해져 버린다.

이대로 대단한 무공도 없이 노부나가의 후계자(後釜)가 되어봐야, 과연 부하들은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인가라고.

하다못해 천하인의 자리에 걸맞는 무공을 스스로의 손으로 쟁취하고 싶다고 노부타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내 지론(持論)인데 말야, 인생은 등산에 비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 산의 높이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누구나 정상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 그 길은 여의치 않고(不如意) 시련에 가득차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여정(道行)에 망설이게 되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망설인 이유를 '남 탓'으로 해버리면 두번 다시 걸어갈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해"


"……"


"챠마루 군, 너는 초조해하고 있어. 하시바 님, 아케치 님, 그리고 누구보다도 주상이 걸어오신 산의 높이와 그 발걸음(歩調)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말야, 목표로 하는 정상도,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도, 계속 걸어가는 발걸음도 사람마다 다 달라. 타인의 발걸음을 보고 초조해져서 자신의 발걸음이 엉켜서 주저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네가 지금 걸을 수 있는 발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쪽이, 멈춰서서 초조해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갈 수 있어"


시즈코의 이야기를 다 들은 노부타다는 볼을 긁었다.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타인을 질투할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해서도 지금은 일단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라는 것이다.

시즈코다운, 에두르면서도 배려에 가득한 말에 노부타다는 잔뜩 들어갔던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ー 이제 됐어! 시즈코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 스스로의 소심함(小ささ)이 싫어진다"


얼굴에 손을 대고 노부타다는 하늘을 보았다.


(이래서는 언제까지나 어린애 취급이겠군)


성인식을 치르고 사회적으로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바깥쪽 뿐으로, 알맹이는 여전히 어린애인 채라는 것을 노부타다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타인의 무공에 초조해져서 주위에 화풀이나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곤경에 처할수록 뻔뻔스럽게 웃어라, 예전에 시즈코가 했던 말을 노부타다는 떠올렸다.


"그래서, 기분은 나아졌어?"


"나아졌다 나아졌어. 그래서, 말이지. 뭔가 좋은 계책은 없어?"


전환이 빠른 건 장점이네, 라고 내심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잠시 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귀 좀 빌려줘. 실은 말야ーー"




8월 13일 밤, 강풍과 뇌우를 동반하는 격렬한 비가 쏟아졌다. 후세에서도 '이날 밤은 폭풍우였다'라고 신장공기(信長公記)나 아사쿠라 가문의 기록에 남아 있다.

옥외에 있으면 1분도 지나지 않아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천둥 소리와 퍼붓는 빗소리로 주위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오오즈쿠 성을 지키는 자들은 다들 안으로 틀어박히고, 얼마 안 되는 보초(物見)들만이 어둠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 출진이다!!"


코를 붙잡혀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어둠 속에서, 노부나가는 호위대만을 이끌고 오오즈쿠 성으로 출진했다. 그 앞의 야키오 요새는 이미 함락되었기에, 그들은 상처없이 오오즈쿠 성으로 접근했다.

목적지인 오오즈쿠 성의 불빛이 보이게 될 듯할 때, 노부나가는 이변을 눈치챘다. 적측이 야습을 눈치채고 응전하고 있는 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즉시 그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달았다.


"쳐라!! 쳐라!!"


노부타다가 이미 오오즈쿠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예상밖의 사태였으나, 이런 계책을 떠올릴 듯한 인물에 생각이 미치자 미소를 떠올렸다.

크게 고함치고 있는 노부타다의 근처까지 말을 몰아가서 뇌우에 지지 않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키묘!! 내게 상의도 없이 공격을 하다니!!"


노부나가의 목소리를 들은 노부타다가 돌아보았다. 그는 노부나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버님!! 뇌우는 오다 가문에게 길조(吉兆)!!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잖습니까!!"


"말 하나는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다들!! 키묘에게 지지 마라!! 쳐라!!!"


노부타다의 호위대에 더해, 노부나가의 직속 부하들도 공성에 가세했다.

이 사태에 대해, 오오즈쿠 성의 수비를 맡은 사이토 교부쇼유(斉藤刑部少輔)나 수하의 병사들은, 시종 선수를 빼앗기고 있었다.

노부타다의 군세의 접근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성문에 접근을 허용하여, 칼날이 목젖에 들이대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 뇌우에서는 우군이 눈치채고 달려와줄 가능성은 낮았고, 원군을 부르려 해도 오다 군의 포위를 뚫고 어느 쪽으로 달리면 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혈기왕성한 오다 군을 상대로 겨우 수백 명의 피로할 대로 피로한 병사들만으로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폭풍우를 받으면서도 기세등등한(逸る) 오다 군과 대조적으로, 코앞까지 적이 쳐들어온 상황이 된 아사쿠라 병사들의 사기는 계속 떨어졌다.


"아버님의 직속에 지지 마라, 쳐라!!"


이리하여 노부나가와 노부타다의 전격(電撃) 작전에 오오즈쿠 성은 겨우 몇 시간만에 함락되었다. 오오즈쿠 성의 낙성(落城)은, 비가 그친 다음 날 이른 아침까지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벌써 오오즈쿠가 함락되었다는 것이냐!"


오오즈쿠 성 함락 소식에 아자이-아사쿠라는 공황 상태에  빠졌으나, 오다 군도 적지않게 동요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야키오 요새를 함락(調略)시킨지 겨우 이틀, 이걸로 아자이-아사쿠라는 외통수의 국면을 맞이한다.

노부나가의 전격적인 행동에, 가신들조차 상황 파악이 필요한 상태였다. 히데요시는 히데나가(秀長)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그밖의 주요 가신들을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설마 주상께서 친히 함락시키실 줄이야…… 키묘 님께서 먼저 공격하셨다고 하니, 우리들은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히데요시는 탄식하면서도 흥분이 식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지도를 펼치고는, 아자이와 아사쿠라가 완전히 분단된 상태를 붓으로 적어넣었다.

전령이 가져온 서신에는, 노부나가는 그대로 쵸노 성(丁野城)을 공격하러 가고, 노부타다는 오오즈쿠 성의 수비가 맡겨졌다.

이 때, 통상적으로는 일가친지까지 몰살될 장병들을, 어째서인지 노부나가는 아사쿠라 본진으로 쫓아버렸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는지, 히데요시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히데요시만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무장들도 마찬가지로 노부나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부나가는 쵸노 성을 책략(調略)을 써서 수중에 넣고, 성을 지키던 적병들을 쫓아낸 후, 쵸노 성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그것들이 끝나자, 노부나가는 쵸노 성 부근에서 무장들을 소집했다.


"오늘 밤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알겠느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아사쿠라는 반드시 철수한다. 놈들의 등 뒤를 찔러 아사쿠라를 섬멸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재삼 무장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말에는 망설임이 전혀 없어, 그가 오늘 밤의 아사쿠라 철수를 확신하고 있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예언이라고도 해야 할 발언을 들은 무장들은,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발언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미 아자이-아사쿠라 모두 시체나 다름없으며, 그걸 겨우 며칠만에 해낸 노부나가의 수완은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신이 아닌 인간. 적이 후퇴하는 날짜까지 맞출 수 있는 것인가 하고 쉽게는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노부나가의 분노를 사더라도 아사쿠라 철수의 근거를 들었더라면, 그들의 뼈아픈 실패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리라.




"역시, 어떤 무장도 움직일 기색이 없네"


해가 저물어도 전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시즈코는 탄식했다.

노부나가가 거듭 아사쿠라 군의 철수를 예고했으나,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등 무장들의 진은 고요했다.

지도와 전황을 보면 일목요연한데, 노부나가가 설명하지 않은 걸까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사쿠라 본진은 타나카미 산(田上山)에 있다. 본진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보이는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들이 어떤 심경에 빠질 것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를 저지르며 가신들의 신뢰를 잃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요시카게는 무리를 무릅쓰고 출병했다.

아사쿠라 가문의 주력 중신들이 출진을 거부하여, 장병들의 사기가 낮은 상태에서의 출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이 함락되었다.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장병들을 붙잡아둘 힘은 없었다. 여기서 철저 항전을 부르짖어봤자, 누구 하나 따라오지는 않을 것이다.

퇴로를 차단하고 억지로 싸우는 상황에 몰아넣어도 장병들의 마음은 철수로 기울어져 있다. 싸우면 일단 이길 수 없고, 여기서 패배하면 아사쿠라 가문은 붕괴한다.

싸움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솔선하여 오다 가문과 내통하는 자가 생길지도 모른다.


"키묘 님은 오오즈쿠 성에서 움직일 수 없으니 그렇다치고…… 슬슬 아케치 님 쯤은 뭔가 행동을 시작할 것 같긴 하려나ー"


아사쿠라 야습에 관해 시즈코는 호출되지 않아서, 아자이의 견제 역할로서 사이조, 타카토라와 함께 본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태평한 모습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와 별의 운행에 대해 떠올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느긋한 시간은, 소성(小姓)이 급한 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리에 끝을 고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이 급히 진으로 오셨습니다"


"서울러서 이쪽으로 안내해주세요. 아마도 시간 여유는 없을테니까요"


"예? 옛"


마치 미츠히데의 용건을 알고 있는 듯한 시즈코의 말에 멍해졌던 소성이었으나, 즉시 발길을 돌려 미츠히데와 세 명의 가신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무례함은 알고 있습니다만 시간이 없기에, 서로 속을 떠보는 것은 생략했으면 합니다"


"용건은 아사쿠라 군에 대한 야습에 관한 것이지요? 주상께서 재삼 말씀하신 듯, 일단 틀림없이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겠지요"


"저 자신의 우둔함이 아쉽습니다만, 지금 가장 주상의 마음을 이해하고 계시는 건 시즈코 님이시지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가르침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도 섞여 있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시즈코의 서두(前置き)에 미츠히데는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누구이건, 가르침을 청하는 경우라면 고개를 숙인다. 다른 사람에겐 할 수 없는 행위였다.

바로 그렇기에, 얼마 안 되는 기간에 오다 가문 가신들(家中)의 필두(筆頭)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각 진영의 포진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아시고 계실거라 생각하니 생략하겠습니다. 우선, 아사쿠라 군의 시점에서 생각해 주십시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놓고 미츠히데와 시즈코가 마주보았다. 탁자 위에는 현재 상황을 나타낸 지도가 놓여 있었다. 시즈코는 그 지도에 붓으로 작은 선과 화살표를 써넣었다.


"아사쿠라 군의 장병들은, 오오즈쿠 성과 쵸노 성 방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겠죠. 두 개의 성이 함락된 지금, 아사쿠라 군은 오다니 성(小谷城) 부근(近辺)의 방벽을 잃은 상태입니다. 방어 시설도 없는 본진에서 철저 항전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죠"


"흠"


"다음으로 아사쿠라 가문 당주인 요시카게입니다. 그는 과거의 실패와 이 전황에 의해 구심력을 잃었습니다. 애초에, 이 싸움에서도 '몸이 안 좋아서'라며 출진을 거부한 가신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자이의 운명(命運)이 다한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지금, 이치죠다니(一乗谷)에서 방어하는 쪽이 이치에 맞으니까요. 그리고 철수한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쪽으로 변절하는 무장들이 생겨나니까요"


"과연. 거기까지 읽는다면 아사쿠라 군이 오늘 밤 철수한다고 주상께서 예고하신 것도 당연한가요"


요시카게에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 지금까지처럼 우유부단(優柔不断)하게 행동하다가 기회를 놓치면, 이번에야말로 가신들에게 버림받게 되어 그 목을 선물로 오다 가문으로 변절하려는 자가 나올 가능성까지 있다.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도, 요시카게는 즉각 결단했다. 물론, 이치죠다니로 철수하는 결단이다.


요시카게의 입장에서는 첫 영단(英断). 하지만 노부나가는 요시카게가 그렇게 결단하는 것까지 계산해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노부나가는 오늘 밤 아사쿠라 군은 후퇴한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슬슬 아사쿠라 군의 철수가 시작될 때가 아닐까 합니다"


2만이나 되는 군을 이끌고 철수하려면 신속한 행동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사쿠라 군은 지금까지 신속한 행군을 해본 경험이 없다. 게다가 전날의 폭우에 의해 지면은 진흙탕으로 변해 있는 상태이다.

평소 이상으로 시간이 걸릴 것은 명백했다.


"아케치 님께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시즈코는 미츠히데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미츠히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밀어진 서신을 받아들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저희 진에 남아있는 텟포슈에 대한 명령서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명령서를 가진 사람의 지시에 따르라'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제 몸은 뒤의 두 사람에게 맡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사쿠라 군을 섬멸하는 것이 주상의 목적입니다. 누가 무공을 세웠다, 라는 것에 집착하여 공격할 기회를 놓치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주상이시니까요"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갚도록 하지요. 이 자리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시 미츠히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뒤에 있는 가신들도 그에 따랐다. 시즈코도 그를 따르는 모양새로 미츠히데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기를 들자, 미츠히데는 즉시 몸가짐을 바로하고 명령서를 품 속에 넣더니 재빨리 나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시즈코는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 님, 아케치 님을 너무 편드시는 것이 아닙니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던 타카토라였으나, 미츠히데가 떠나가자 의문을 입에 올렸다.

쓴소리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구석구석 골고루(満遍なく) 지원하고 있던 시즈코가, 미츠히데에게만 눈에 보이는 지원을 한 것이 그에게는 의문이었다.


"딱히 아케치 님이 아니더라도, 처음에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라도 괜찮았어. 아무도 안 왔다면 텟포슈를 빌려줄 일도 없었지. 이번의 주상의 발언을 가신들 중에서 가장 믿고 있던 것이 아케치 님이었던 것 뿐이야"


"하지만, 굳이 텟포슈를 다 빌려주실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유는 분명히 있어. 생각의 실마리를 줄까? 철포는 쏘면 큰 소리를 내지. 이걸로 대답을 알 수 있을거야"


"…………아!"


힌트를 받은 타카토라는 곤혹스러워했으나, 이윽고 어떤 해답에 도달했다. 이해한 타카토라를 보고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야습의 개시를 알리는 효시(嚆矢)가 되지. 내 지원은, 맨 먼저 공격한다는(一番槍) 신호를 다른 무장들에게 보낼 권리를 얻은 것에 불과해. 뭐, 전투가 시작한 걸 알게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나올 것 같긴 하지만"


신식총이던 화승총(火縄銃)이던, 화약이 폭발하는 이상 큰 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진다. 소리가 들리면 눈치빠른 사람은 깨달을 것이다. 아사쿠라 군은 철수하고, 그것을 오다 군이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시즈코는 어깨의 힘을 빼며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뭐, 내일에는 결과가 나올거야"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야음을 틈타 철수할 것을 결정했다. 그는 약간의 병사들을 남겨 소리를 내도록 명령했다.

사기를 북돋우는 함성(鬨)을 지르면 철수하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을 오다 군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병사라면 도망치는 것도 쉽다. 밤이 지나면 철수를 들키기 떄문에, 남겨놓는 병사들은 주변 지리를 잘 아는 자들을 골랐다.


하지만, 그런 잔재주는 확신을 얻은 노부나가에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함성의 보고를 들은 오다 가문 가신들은 아사쿠라가 철수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으나, 노부나가와 미츠히데는 철수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했다.

철수하는 아사쿠라 군을 최초로 덮쳐간 것은 미츠히데였다. 그와 노부나가는 다른 무장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군이 없다는 것은 미츠히데에게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했다.


"쏴라!!"


아사쿠라 군의 후위(殿)에 따라붙자마자, 미츠히데는 우선 텟포슈로 선수를 쳤다. 어둠 저편에서 굉음과 함께 총탄이 날아온다. 아사쿠라 군은 어지간히 혼이 빠질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아사쿠라 군은 패닉에 빠졌다. 차례차례 병사들이 쓰러져가는 참상에, 모두 앞다투어 도망치려고 생각했다.

종자(従者)는 주인(主人)을, 주인은 종자를 밀어젖히고 도망치려고 하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곳곳에서 펼쳐졌다.

다른 무장들이 참전했다면, 이렇게 사정없이 총탄의 비를 쏟아부을 수는 없었으리라.


텟포슈로 실컷 아사쿠라 군의 공포를 부추긴 후,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아케치 군의 주력이 아사쿠라 군을 덮쳐갔다. 이미 싸울 의사조차 없는 아사쿠라 병사들이었으나, 아케치 군은 용서없이 베어넘겼다.

아케치 군이 전진할 때마다 진흙투성이의 아사쿠라 병사들의 시체가 나뒹굴며 시산혈해(屍山血河)가 이러할까 싶은 광경이 벌어졌다.

주변에는 피와 내장이 풍기는 쇠(鉄)와 녹(錆) 냄새가 가득하고, 여기저기에 타다 버린 말이나 무구, 군기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사쿠라 군이 얼마나 혼란에 빠졌는지 쉽게 엿볼 수 있는 증거였다.


아케치 군은 아사쿠라 군의 배후를 급습했다. 갑작스레 총격을 얻어맞은 아사쿠라 병사들은, 적의 규모도 어디서 공격받은지도 모르고 어쨌든 앞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앞은 전날의 폭우로 질퍽거려서 마음대로 전진할 수 없다. 이윽고 죽음은 등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여 혼란에 박차가 가해졌다.

앞에 가는 병사를 짓밟더라도 자신만은 살고 싶다며 무턱대고(遮二無二) 도망친 결과, 아군을 짓밟더라도 도망치려고 하는 광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뭣이라!! 주상과 아케치 님이 아사쿠라 군에게 야습을 걸었다고!!"


다음 날 아침, 아사쿠라 군을 추격할 것을 자신이 명령한 자들의 도착을 기다리지 않고 노부나가가 소탕전에 나선 것에, 오다 가문 가신들은 겨우 깨달았다.

준비를 하면서 함성 소리에 완전히 방심해버렸던 그들은, 다급하게 노부나가를 쫓았다. 그들이 노부나가를 따라잡은 것은 토네자카(刀根坂)의 바로 앞이었다.

도중의 시체나 무구가 굴러다니는 모습을 볼 때 격렬한 소탕전이 벌어진 것은 명백하여, 오다 가문 가신들은 스스로의 실수를 이해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다"


가신들에게는 아사쿠라 병사들의 참상보다 노부나가의 조용한 분노 쪽이 무서웠다. 노부나가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갑작스레 명령한 게 아니라, 사전에 선봉 무장까지 결정된 상태에서의 태만이다.

결과적으로 무공은 미츠히데가 독점하게 되었으나, 그에 대한 불만을 표정에조차 드러낼 수 있을 리도 없어, 실수한 무장들은 고개를 숙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선봉을 맡았던 자는 앞으로 나와라"


노부나가의 말대로 시바타나 히데요시가 앞으로 나섰다. 노부나가는 전원에게 한 방씩 주먹을 내려쳤다. 범한 실수에 비해 지나치게 온건한 벌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참수 명령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이걸 기회로 아사쿠라를 섬멸한다"


"옛!"


"낑깡(미츠히데)! 너는 이놈들을 이끌고 아사쿠라를 추격해라"


그 순간, 아사쿠라 토벌의 최대 공로자는 미츠히데로 결정되었다.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킨 공적은 미츠히데가 받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해도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키는 데 힘을 보탰다, 라는 입장에 불과하다.


"송구스러우나 주상, 저들은 서둘러 이곳으로 달려온 모습입니다. 병사들도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이니, 헛되이 병사를 소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곳은 가장 피로가 적은 시즈코 님의 군을 빌리고 싶습니다"


"녀석은 오다니 성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금부터 부르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미츠히데의 말에 노부나가는 노려보면서 의문을 말했다. 싸늘한 눈빛을 앞두고 미츠히데는 평소의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미 불러 두었습니다. 이제 곧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미츠히데의 말이 올바른 것을 증명하듯, 노부나가는 조금 멀리서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저만큼 일사불란하게 겹치는 말발굽 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도가 높은 군은 하나 뿐이다.


"핫! 손이 빠른 녀석이구나! 좋다. 아까의 무공을 봐서, 멋대로 시즈코를 불러들인 것은 불문에 부치겠다"


"관대하신 조치, 감사드립니다"


"그럼 이곳에 있는 자들은 병사들을 쉬게 한 후 오다니 성으로 돌아가라! 빠르게 준비하라!"


다른 무장들은 당했다, 라고 이를 갈았다. 만회하려면 시즈코 군의 텟포슈가 필요해진다. 없어도 된다고 하면 좋겠지만, 자군이 입을 피해의 단위가 달라진다.

시즈코 본인이 왔다고 하는 이상, 텟포슈도 데려왔을 것은 확실하다고 무장들은 생각했다. 미츠히데의 교활함과 치밀한 계산에 무장들은 새삼 분노를 느꼈다.


"기다리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주상"


사반각(四半刻) 후, 시즈코가 노부나가가 있는 진에 도착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일별한 후, 미츠히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낑깡, 텟포슈는 몇 명 데려가겠느냐"


"가능하면 돌파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300명만 있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즈코, 텟포슈는 몇 명 데려왔느냐"


"오다니 성 앞의 진에는 겐로를 필두로 예비병을 포함하여 700. 이쪽에는 600을 데려왔습니다"


순간 무장들이 웅성거렸다. 시즈코의 텟포슈는 1000명이라는 대부대다. 하지만 방금 그녀의 말을 믿을 경우, 약간이지만 텟포슈의 총 숫자가 늘어난 것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텟포슈가 있다는 것은, 만회할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 다양한 속셈을 품고 다음에 취할 행동을 생각했다.


"600이라…… 400을 남기고, 나머지 200은 오다니 성으로 배치한다. 너는 400의 텟포슈를 이끌고 낑깡과 함께 아사쿠라 가문을 멸망시켜라"


"옛!"


노부나가에게 인사한 후 시즈코는 즉시 준비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다소 느긋하게 행군하고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도망치는 적을 추격할 속도가 필요해진다.

미츠히데가 어떤 배치를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텟포슈와 호위 역할의 병사들이 최전열(最前列), 그 뒤에 미츠히데의 주력부대, 후방에 시즈코의 군이라는 배치일거라고 짐작했다.


"하시바 님, 지금, 시간은 괜찮으신가요?"


"앙? 뭐냐, 시즈코"


오다 가문 가신들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는 틈을 타서, 시즈코는 히데요시에게 다가갔다. 일거수 일투족을 다른 무장들에게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시즈코는, 생긋 웃는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봉서(封書)를 내밀었다.


"네네(ねね) 님으로부터 편지를 맡아두었습니다. 내용은 부끄러우니까 '진에서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뭐? 어…… 어어, 미안하구나. 하여간 네네 그것이 참"


일순 멍한 표정을 지은 히데요시였으나, 즉시 헤벌레한 표정을 떠올렸다. 멀리서 보고 있던 무장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히데요시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가짜 웃음(作り笑い)이었다.

히데요시는, 시즈코가 뭔가 타인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건네줬다는 것을 즉시 헤아렸다.


"하시바 코이치로(羽柴小一郎) 님께 전해드리려 했습니다만, 그런 편지는 형님께 직접 전해 주십시오, 라고 하시더군요"


"어쩔 수 없는 녀석이군. 고맙다, 시즈코. 나중에 읽지"


거기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무장들도 시즈코들로부터 의식을 돌렸다. 문제없지만 방심은 하지 말자고 시즈코는 긴장을 조였다.

히데요시에게 건넨 것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면 확실하게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도 내용물은 흥미를 끌지 않는 것으로 위장할 필요가 있었다.


(딱히 히데요시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지만, 야차(夜叉, 아자이 나가마사) 씨가 꼭 오다니 성 공격에 참가하고 싶다고 필사적이니)


친지(身内)나 지인이라도 있는 걸까, 라고 시즈코는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오다니 성의 예전 성주이자, 아자이 가문의 당주인 나가마사가, 한번 더 아버지와 이야기할 기회를 얻고 싶어해서였지만.

시즈코의 속셈과 나가마사의 속셈, 그리고 히데요시의 속셈은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오다니 성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었다. 그것이 후에 히데요시의 대활약으로 이어지는 무공의 원천이 된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 나중에 보자고"


가벼운 인사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자기 진이 가까워지자 히데요시는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타케나카 한베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굉장한 기세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어깨로 숨을 쉬고 있는 히데요시는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서둘러 돌아가자. 오다니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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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