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원년(元年) 키나이(畿内)의 사회기반 정비
116 1574년 3월 하순
시즈코는 중단했던 청서(清書)를 재빨리 끝낸 후,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알현에 임했다. 소성(小姓)이 도착을 알리고 시즈코가 방으로 들어가자, 미츠히데(光秀)의 사자는 엎드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인사치레는 필요없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해가 질 때 찾아와서 그 날을 넘길 수도 없다는 용건이니만큼, 시즈코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고자 재촉했다.
송구스러워하면서도 미츠히데의 사자가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쿄(京)의 치안이 회복된 이래, 상인들이 들여오는 다양한 물건들이 유통되어, 공가(公家) 들은 물론이고 서민에게까지 폭넓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큰 길에는 큰 가게들이 늘어서서 진기한 것들을 팔고 있다.
개중에서도 가회(歌会)나 다도회(茶会)에 빠질 수 없는 과자를 취급하는 상점은 공가들의 심부름꾼들이 경쟁하듯 상품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황(帝)이 주최하는 어전 가회(歌御会) 자리에서, 반(反) 고노에(近衛) 파의 공가들이 제공된 차과자(茶請け)에 트짐을 잡았다.
말하자면, 근년 조정에 유행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노에 가문에서 시작된 것으로, 천황의 위광(威光)까지 흐려져 버렸다.
고노에 가문만 우쭐하게 하지 말고 천황의 권위가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불경(不敬) 죄를 물을 수 있는 도발적인 발언이지만, 이렇게까지 얕보이면 천황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천황은 조정에 가까운 미츠히데를 의지하여, 고노에 가문을 통하지 않고 공가들을 놀라게 할 과자를 요청했다.
"……격조높고, 그러면서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맛있는 과자 말인가요……"
용건을 듣기 전부터 안 좋은 예감은 들었지만, 나쁜 예감일수록 잘 맞는다. 격조 따위와는 거리가 먼 서민파의 시즈코로서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저희들도 백방으로 손을 썼습니다만, 결국 이거다 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햇습니다……. 하지만, 제 주인은 시즈코 님이라면 좋은 지혜를 빌려주실거라고……"
"흠……"
시즈코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눈부시게 머리를 굴렸다. 대략적인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으며, 사자가 지참한 미츠히데의 서신으로부터 공가들의 노림수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조정 내부의 권력투쟁의 일환인 것이다. 조정에서의 역학(力学)이 고노에 가문의 독무대인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는 세력이 있으며, 그들이 수하(手勢)를 이용하여 천황을 도발했다는 배경이 있었다.
실제로, 천황은 고노에 가문에 의지하지 않고 미츠히데에게 협력을 타진했다. 고노에 가문 일파를 배제하는 첫걸음에는 성공했으나, 천황이 의지한 상대가 나빴다.
조정의 사정에도 밝은 미츠히데는, 공가들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최선의 한수로서 시즈코를 지목했다.
시즈코는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사자의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올린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시즈코의 할아버지가 황수포장(黄綬褒章, ※역주: 우리나라의 산업 포장에 해당함)을 받게 되어, 당시의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기념품의 존재였다.
"(그거라면 격조높고 천황의 권위를 나타낼 수 있겠네) 폐하께서 직접 의뢰하신 것이라면 거절할 수도 없겠군요.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폐하의 위광을 나타낼 수 있는 과자의 건, 잘 알겠습니다"
노부나가에게 문의해볼까도 생각했지만, 흑막의 노림수가 드러난 이상 받아들이라고밖에 말하지 않을 것은 명백했다.
미츠히데의 사자가 돌아간 후, 시즈코는 다시 천황에게 어울리는 과자에 대해 생각했다.
연출에 관해서는 참고할 수 있는 것이 있기에 문제없다. 중요한 내용물을 어떻게 할까에 대해, 시즈코는 지혜를 쥐어짜게 되었다.
"확실히 나밖에 할 수 없는 의뢰려나. 고노에 님이 지나치게 힘을 가지는 걸 경계하고 있는 거겠지"
꽤나 어려운 문제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단순히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기만 하는 거라면 미츠히데에게도 가능한 이야기다.
그의 인맥(伝手)을 이용하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의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희한한 과자를 준비하는 것도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시즈코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
"천황이 자발적으로 찾아낸 오다 가문에 속하지 않는 세력. 그것을 내세워서 조정에서의 세력을 양분하려는 자들이 있다…… 라"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오다 가문과 친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며, 조정에게 노부나가는 최대의 스폰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정도 굳게 단결된 조직(一枚岩)은 아니라, 전원이 노부나가의 영향 아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세력 기반에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품은, 오다 가문에 반항적인 공가도 존재했다. 무가(武家)나 불가(仏家)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가 내에서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키히사의 칸파쿠(関白) 취임 이래, 이 파워 밸런스가 크게 무너진 것이리라.
지금까지는 세력 유지에 급급하여 표면적으로 반항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하를 버림패로 쓰게 되더라도 큰 도박을 걸어온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상대는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흑막까지 한꺼번에 뭉개버리는 것은 무리겠지만, 물어뜯어온 이상 팔다리 하나 쯤은 받아야겠지"
직접 자신들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천황의 위엄을 빌려 도박을 한다. 나쁘지 않은 수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략이 뛰어난 미츠히데의 눈에는 그 속셈이 뻔히 보였다는 데서 그들의 운이 다한 것이다.
간신히 찾아온 평화로운 시간에 쓸데없는 짓을 꾸며 여가를 빼앗겼으니, 그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으면 시즈코의 속이 풀리지 않는다.
이걸 기회로, 흑막의 목젖 앞에 칼날을 들이미는 것이 중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좋아! 내용물은 그렇다치고, 겉포장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걸리니까 얼른 시작하자"
좋은 작전을 떠올린 시즈코는, 각처에 협력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붓을 들었다.
각처에 편지를 날린지 며칠이 지나, 시즈코가 머물고 있는 쿄의 저택에는 편지를 받은 상대들이 모여 있었다. 고노에 사키히사,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 등 세 사람이었다.
시즈코는 시제품(試作品)을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나쁘지 않은 취향이군요"
시험 제작된 그릇(容器)을 보며 호소카와가 감상을 말했다. 시즈코가 참고로 한 것은 봉보니에르(Bonbonnière, 봉봉 용기(容器)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황실(皇室)의 경사(慶事)의 축하연(祝宴)에서 답례품(引き出物)으로 나누어주었던 '과자그릇(菓子器)'이었다.
펼친 부채를 본떠, 유황으로 표면을 그슬린 은(いぶし銀)으로 표면을 마무리한 손바닥 사이즈의 봉보니에르는 우아하면서 중후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고급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천박하지 않은 풍격(風格)을 갖추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과자는, 오와리의 술곳간(酒蔵)에 특별히 만들게 한 특히 진한 탁주를 넣은 일본주 봉봉이라고 불러야 할 만한 과자였다.
국화를 본딴 봉봉을 깨물면, 안에서 걸쭉하고 농후한 당액(糖液)이 퍼져나간다. 특별히 발효를 끝낸 거르지 않은 전국(醪)을 부숴넣어, 증류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농도를 올린 탁주를 써서 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럽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과자의 발안자(発案者)를 '니히메(仁比売)'로 한다는 겁니까"
미츠히데의 말에 시즈코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상대의 노림수는 노부나가와 미츠히데의 사이를 나쁘게 하는, 말하자면 이간(離間) 공작(工作)이다.
노부나가가 고노에 가문의 딸인 시즈코를 내세우고, 그에 대해 미츠히데는 천황의 신임이 두터운 '니히메'를 받든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로서는 오다 가문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동일인물이다. 그 사실을 모르면 적인 셈이다.
이걸 기회로 미츠히데에게는 반 오다 세력의 공가들이 접촉을 시도해오겠지만, 그 모두가 노부나가에게 그대로 알려지게 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분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는 계책이 성공했다며 마각(馬脚)을 드러낸다는 것인가"
사키히사가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핵심이 되는 가회(歌会)는 카노 쇼에이(狩野松栄)의 그림에 대해 시를 지어 그 완성도를 겨룬다는 것이다.
그림의 선정은 사키히사가 하고, 호소카와가 시를 생각하고, 미츠히데와 친밀한 사이인 공가가 그 시를 읊어 상을 탄다. 소위 말하는 조작(出来レース)이지만, 무대 뒤편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한, 적측인 사키히사가 끼어 있기에 들킬 일은 없다.
"이럴 때는 제 3자를 끼워넣는 게 좋지. 어딘가에 트집을 잡으면 여러 방면에 싸움을 거는 셈이 되니까"
시즈코는 속이 시커먼 남자들의 술책(駆け引き)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림은 카노 파의 것이고, 시에 대해서는 호소카와가 저명한 시인(歌人)과 협력하여 상을 타는 데 어울린다는 언질을 받는다.
그리고 천황의 위광을 나타내는 과자는, 눈이 높아진 사키히사가 봐도 발군(出色)의 완성도였다. 그림도 시에도 트집을 잡히지 않고, 상품(恩賜品)의 발안자는 천황이 아끼는 사람이다.
반 오다 가문의 공가들은 기세가 붙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 미츠히데라는 독을 마시고, 가진 패를 드러내어 실각한다는 미래를 향해 자기 발로 나아가게 되리라.
"승인을 받은 듯 하여 다행입니다. 그럼, 여러분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각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의 성과는 직방(覿面)이었다. 미츠히데는 반 오다의 공가들의 환심을 사서, 알게 된 정보를 사키히사에게 흘리는 것으로 반 오다 세력의 손발을 잘라나갔다.
그들은 의지할 곳을 찾아 미츠히데에게 기울었지만, 미츠히데와 사키히사가 공모하고 있었기에 사육(飼い殺し)되는 꼴이 되었다.
"순조롭네, 순조로워"
어전 가회(歌御会)에서 선보여진 봉보니에르는 천황의 위럼을 충분히 나타내었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사되는 물건으로 정착되었다. 용기에는 쥬로쿠야에오모에기쿠(十六八重表菊), 소위 말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황실에만 납품되게 되었다.
계속해서 황실에 봉보니에르를 납품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의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세 사람에게 뒤를 맡기고 쿄를 떠났다.
기후 성(岐阜城)에 도착한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지정한 그의 다실(茶室)로 향했다. 다실의 작은 출입구(躙り口)를 어렵지않게 통과하여 다른 사람이 없는 실내로 들어갔다.
방 밖에 호위는 서 있었지만, 내부의 대회는 밖으로는 새어나가지 않는다. 호위조차 배제할 필요가 있는 화제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자연스레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이걸 보아라"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도착에 대해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하기 전에 접혀진 서신을 던져주었다.
마주보고 앉은 노부나가에서 화로(炉)를 넘어 날아온 편지가 다다미(畳) 위를 미끄러져 시즈코에게 도달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고 내용을 읽었다.
내용은 호죠(北条)의 동향에 관한 보고서였다. 호죠 가문에 잠복시킨 간자가 보낸 정보인데, 읽어나가던 시즈코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건…… 까다롭게 되었군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굼벵이(愚図)라고 얕보았는데, 이렇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평가를 수정해야겠지"
호죠 가문의 당주, 호죠 우지마사(北条氏政)가 오다 가문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로서, 오랫동안(連綿) 계속 칸토(関東)를 지배해온 호죠 가문의 자부심이 있었다.
설령 오다 가문에 굴복하더라도, 호죠 가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武田)와의 전쟁이 된다. 영토를 조금 차지하는 싸움이 아니라, 쌍방의 존망(存亡)을 건 총력전(総力戦)의 선봉(先鋒)을 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민들에게도 막대한 부담을 강요하게 되고, 오다 가문의 이익에 따라 이용당하다 망하는 미래가 예상된다.
이 이상 결단을 미룰 수는 없어, 오다 가문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케다와 손을 잡고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도, 호죠 우지마사는 여전히 결단을 보류하고 있었다.
"이걸 보고,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에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케다는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에서 패배를 맛본 이후, 우에스기(上杉)의 남하(南下)를 걱정하여 호죠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기우에 그쳤습니다만…… 지금도 여전히 동맹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케다 정벌을 나서면 호죠와도 창칼을 맞대게 되겠지요"
잠재적인 적은 그밖에도 존재했다. 그것은 아군인 우에스기 가문이 품고 있는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7남(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의 존재였다.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예전에 양자로 들인 그의 진영이, 호죠의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불투명했다.
"훗…… 외국(唐, 여기서는 중국의 당(唐) 왕조가 아니라 막연하게 외국을 가리킴)의 고사(故事)에, 어려운 일에 맞서는 자세를 화살에 비유한 일화가 있지. 한 대의 화살은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의 화살을 묶으면 부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지……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말썽꾸러기. 이 세 놈이 견고하게 결탁하면, 아무리 우리들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고전을 강요받게 된다"
노부나가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모우리 모토나리(毛利元就)의 '화살 세 대의 가르침(三矢の教え)'을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우리 모토나리가 아들 세 사람에게 전했다고 하는 '화살 세 대의 가르침'은 후세에서의 창작으로 간주된다.
노부나가가 말한 중국의 '서진록(西秦録)'의 고사나, 몽골 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일화, 이솝 우화 등 세계 각지에서 그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호기(好機)라고도 볼 수 있지. 이걸로 키묘(奇妙)에게 싸움에서 '지는 법'을 배우게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한 발만 잘못 디뎌도 칸토에 반 오다의 교두보가 생겨버린다는 위기(瀬戸際)인데, 노부나가의 입에서는 예상밖의 말이 흘러나왓다.
시즈코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노부나가는 즐겁다는 듯 웃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싸움에서 지는 법…… 입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승패는 병가지상사. 하지만, 키묘는 패배를 모른다. 상승무패(常勝無敗)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언젠가 반드시 패배를 맛볼 때가 온다. 하지만, 지는 싸움에도 잘 지는 방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빠른 단계에서 포기하고 재기로 이어지는 유리한 상황에서 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는 것을 모르면, 스스로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간신(佞臣, 주군에게 아첨하는 부하)에 둘러싸여 스스로의 패인(敗因)을 찾으려고조차 하지 않게 되겠지. 그런 놈에게 천하를 지배할 자격은 없다"
시즈코의 말을 자르며 노부나가는 노부타다의 바람직하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했다.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욱 높은 목표를 향해 반성,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해진다. 내가 뒷처리를 해줄 수 있는 동안 키묘에게는 '내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배우게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약함을 마주했을 때, 자신이 깔보았던 사람들이 자신보다도 강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케다, 호죠, 우에스기의 삼국동맹(三国同盟)이 성립되어도 좋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젊은 키묘라면 노회(老獪)한 호죠에게 패하더라도 수치가 되지는 않는다"
"호죠가 적대하지 않고 군문(軍門)에 들어올 가능성은……"
"없다. 호죠가 아무리 얼간이라도, 한 번도 창칼을 맞대지 않고 항복하지는 않는다. 호죠를 얕보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으면 놈에게는 승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 바탕에 있는 것이 호죠 가문의 긍지인지, 아니면 고난을 받을 영민들을 생각해서의 자비인지도 모르지만, 호죠는 반드시 내게 이빨을 드러낸다"
"거기까지 내다보시면서도 패하실 것입니까"
호죠는 우유부단해서 기치(旗幟)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불확정요소(不確定要素)가 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토우고쿠 정벌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거기까지 내다보면서도 일부러 후계자인 노부타다의 수행의 기회로 삼는다. 평범한 영주(国人)로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는 비정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싸움에서 지게 되면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조차도 만회할 수 있다고 호언(嘯)하고 있는 것이다.
즉, 호죠도 타케다도 우에스기도 노부나가의 예상의 범주를 넘지 못하고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패한 후의 국면까지 꿰뚫어보는 노부나가의 안력(眼力)에 시즈코는 어쩐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시즈코, 네게는 키묘의 감시역(目付役)을 명한다"
"감시역인가요?"
"패배를 모르는 키묘는, 열세에 몰리게 되면 역전할 방법을 모색하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장래에 화근을 남기는, 어설픈 패전을 연출하게 된다. 네가 눈을 빛내어, 불리한 도박에 나서려고 하는 키묘를 제지(掣肘)하는 것이다. 키묘가 진심으로 경의를 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지. 몇 안 되는 존재인 네 말이라면 흥분(逆上)한 키묘의 귀에도 들릴 것이다"
"미력하지만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승락의 말과 함께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러가지 걱정거리(懸念事項)는 존재했으나, 이번만큼은 노부타다의 안건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흠…… 패전한 후에 재기를 다짐하는 말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격려(景気づけ)입니까?"
"패전에서 배우고, 그리고 재기에 거는 키묘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말이 좋겠다. 패배를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게 하는, 단순하면서도 힘있는 말이 좋겠지"
"그렇군요……"
시즈코는 턱(頤)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꾸미든 패배는 패배, 그걸 받아들인 후의 긍정적인 자세를 강하게 나타낸다. 꽤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아까의 고사에서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럼, 이런 건 어떻겠습니까? 다발이 된 화살은 꺾이지 않지만, 다발이 된 지푸라기는 쉽게 꺾이지.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굵은 화살이라고 착각한 것이 패인이로다!"
"……훗, 큭큭큭, 하하핫! 지고도 여전히 과대평가를 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냐! 어지간한 승산(勝算)을 보이지 않으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말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재미있도다!"
시즈코의 제안에 노부나가는 소리높여 웃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와의 알현 후, 쿄로 곧장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천황으로부터 계속적으로 하사품(恩賜品)의 주문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미츠히데를 통해 들어와서, 식재료나 기술자를 오와리와 미노에서 수배할 필요가 생겼다.
각각의 수배가 끝날 때까지 쿄에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파발마(早馬)를 통해 전하기로 하고 그대로 자택으로 향했다.
이번에 천황에게 헌상한 봉보니에르는 재료부터 엄선해서 최고의 기술자의 손으로 마무리되었다. 오와리 최고의 기술자를 쉽게 빼내가게 둘 수는 없기에, 도제(徒弟)를 쿄로 파견하도록 손을 썼다.
일본주 봉봉에 대해서도, 원재료(原材料)야 오와리에서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재료만 반입하면 현지에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황실 애용(御用達)의 과자점을 쿄에 열기로 했다.
시즈코는 기술자들의 이동이나 기계설비 등의 반송(搬送)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썼다.
그 덕분인지, 쿄까지 가는 도중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올바르다.
반 오다 파의 공가들은 방해를 획책하여, 깡패(荒くれもの) 들을 고용하여 도적(野盗)을 가장한 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같은 날에 주변에서 산적 토벌이 이루어져, 그들은 습격 전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게 되었다.
습격의 실패를 알게 된 공가들은, 다음 한 수를 강구하려고 햇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깡패들을 고용한 공가의 심부름꾼이 구속되어, 줄줄이 사탕으로 그들의 행적이 드러나버렸다.
도마뱀 꼬리를 자르는 수준이 아니라 머리와 몸통을 남기고 팔다리가 전부 뜯겨나간 반 오다의 공가들은, 길고 괴로운 자복(雌伏)의 시간을 강요받게 된다.
그 후에는 차질없이 만사가 진행되어, 쿄에 도착한 후 몇 주일이 지나자, 다음 하사품의 용기가 될 봉보니에르를 헌상할 수 있었다. 최종 마무리에 관해서는 오와리에서밖에 할 수 없었기에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천황이나 공가들에게 탄성을 지르게 할 만한 물건이 완성되었다.
천황에의 헌상은 의뢰를 받은 미츠히데가 했으나, 발안자인 '니히메'에게 천황으로부터 하사품이 도착했다. 천황의 위광을 선양(発揚)시키고 체면을 지킬 수 있게 한 데 대한 답례였다.
시즈코는 오동나무(桐)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향목(香木)인 백단(白檀)의 나무조각을 섭새긴(透かし彫り) 아름다운 부채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시원함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향을 즐기기 위한 부채였다. 요양중의 몸이면서도 천황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고생한(骨を折った) '니히메'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는 몰건이었다.
천황으로부터의 하사품을 소중히 품 속에 넣은 시즈코는, 결연하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럼 돌아가죠"
쿄에서의 인수인계나 잔무(残務) 처리를 마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했다.
자택으로 돌아온 시즈코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들을 확인했다. 아야(彩)가 배려하여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 위로 놓인 서류를 주욱 훑어보았다.
역시랄까,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한 요청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우미(近江)에서는 치수공사(治水工事), 에치젠(越前)에서는 츠루가(敦賀) 항구의 항만정비(港湾整備), 오우미로 이어지는 상업적 이용에 견딜 수 있는 도로 정비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이 줄지어 있었다.
게다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노부나가가 거점을 아즈치(安土)로 옮길 것이 결정되어, 그 밑준비로서 아즈치에서의 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외에는 결재서류가 아니라 토우고쿠의 정치적 책략에 대한 보고서가 늘어서 있었다. 내용을 확인하니, 카츠요리(勝頼)라기보다 타케다 가문이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적혀 있었다.
타케다 가문의 중신들이 카츠요리를 얕보고, 그 태도에 반발한 카츠요리는 강경한 정책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영주들 사이의 불화에서 오는 채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은 영민(領民)들이다.
카이(甲斐) 국에 잠입시킨 간자들의 손에 의해, 타케다 가문의 불화나 추문(醜聞)은 밑바닥 계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백성들은 카츠요리라는 암군(暗君)은 물론이고, 암군을 제어하지 못하는 타케다 가문 자체에도 불만을 가지도록 유도되었다.
중신들 중 누군가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라도 카츠요리를 당주로서 지지하여 일치단결한다면 백성들의 불만은 얼마간 누그러졌으리라. 그러나, 이미 쌍방의 관계는 수복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이건 예상밖이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카츠요리라기보다 타키데 가문 전체가 백성들의 신용을 잃고 있어. 주상께서는 패하는 싸움을 예상하고 계시지만, 싸움을 벌이기 전에 타케다 가문이 자멸할 것 같아"
역사적 사실에서도 카이 침공으로부터 1개월만에 대세는 결판이 났다. 이 상황이라면 1년도 가지 않아 타케다와 개전(開戦)하게 될 가능성도 생겼다. 이대로 카츠요리의 구심력이 계속 떨어지만, 일찌감치 타케다를 쳐부수고 여세를 몰아 호죠까지 쳐들어가서 승리를 주울 가능성조차 있다.
"후ー, 키나이(畿内)의 정무(政務)만 해도 바쁜데, 거기에 토우고쿠 정벌의 감시역이라. 머리가 아파……"
골치아픈 문제가 산적해 있는 현실 앞에서 시즈코는 기분이 축 처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3월 하순이 되자, 시즈코는 자기 영지에 배포할 모(苗)의 생육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동시에 모내기에 사용할 각종 도구의 정비까지 지시했다.
오와리, 미노의 영민들은 직접 볍씨(種籾)를 뿌리지 않는다. 매년, 오다 가문에 의해 육모(育苗)된 모를 지급받아 이것을 심는다.
볍씨가 아닌 모의 상태까지 생육되어 있기에 발아율(発芽率)을 신경쓸 필요도 없고, 환경의 변화에도 강하다. 오다 가문이 육모를 대항하는 동안, 백성들은 아라오코시(荒起し, ※역주: 경작의 준비 작업으로 논밭을 대충 갈아 엎는 일)라고 하는 논밭의 정비를 한다.
빠른 사람은 1월이나 2월부터 아라오코시를 시작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논밭을 가지지 않은 백성은 기온이 풀리는 3월 무렵부터 착수한다.
오다 가문이 모를 관리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볍씨를 직접 확보할 필요가 없다. 오다 가문은 모를 지급하는 것으로 안정적인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모의 바탕이 되는 볍씨는, 세금으로 징수된 것 중에서 준비되기 때문에 백성들 측에 부담은 없으며, 모에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파기를 명령할 수 있어 질병이 만연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양쪽 모두에게 메리트가 있는 제도이지만, 모를 얼마만큼 준비할 수 있는지가 수확량으로 직결된다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와리, 미노에 지급되는 모는 시즈코의 영지 내에서 전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각지로부터의 보고로는, 현재는 문제없는 것 같네"
"네. 순조롭게 생육되고 있습니다. 작년에 선별하신 볍씨도 순조롭습니다"
서류를 확인하면서 시즈코는 아야에게 보고를 받았다. 심은 모가 순조롭게 생육하고 있다는 것은, 올해도 기대한 대로의 수확량을 예상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개척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년부터는 에치젠이나 오우미에도 모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양쪽 모두 수확량(石高)보다는 우선 지역의 안정화를 꾀하는 쪽이 선결이기는 하지만.
"오우미는 치수공사가 밀려 있네. 몇 번이나 세금을 경감해달라고 탄원했던 게 괜한 게 아니구나"
현대의 시가((滋賀) 현(県)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오우미는 수해(水害)가 많은 지역이었다. 특히 아네가와(姉川や野洲川)나 야스가와(野洲川) 유역은 수해가 끊이지 않는 지역이기도 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야스가와는 10년에 한 번 꼴로 수해가 일어났다. 주민들에게는 일상다반사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50년쯤 살면 몇 번은 겪는 이벤트다.
"우선은 하천(河川)의 확장공사가 있고, 거기에 쿄로 이어지는 수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와 호(琵琶湖)는 방대한 수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물을 배출하는 출구는 요도가와(淀川, 세타가와(瀬田川)라고도 한다) 단 하나 뿐이다. 그렇기에, 요도가와가 토사(土砂) 등으로 막히게 되면, 갈 곳을 잃은 호숫물이 범람하게 된다.
현대에는 치수나 이수(利水) 목적으로 만들어진 세타가와 아라이제키(洗堰, ※역주: 댐(dam)의 일종인 듯)가 존재하지만, 전국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는 난고 아라이제키(南郷洗堰)라는 옛 아라이제키가 건조되었다.
아라이제키 같은 설비가 없다면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가 기록에는 남아있다. 메이지 29년(※역주: 1896년)에 발생한 홍수에서는, 범람한 비와 호의 물이 2개월 넘게 빠지지 않았다.
히코네(彦根)에서는 8할 이상의 지역이 수몰되었고, 오오츠(大津)에서는 중심부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야스가와도 물이 터져, 유역에 존재했던 거주구는 몇 개월에 걸쳐 수몰되게 되었다.
비와 호는 키나이의 중요한 수원(水源)이지만, 한 번 이빨을 드러내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칠게 날뛰는 용으로 변하는 존재이기도 했다.
"강바닥 준설(川浚) 세금이 추가로 들겠네"
강바닥 준설이란 강바닥에 쌓인 토사나 오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오우미의 치수의 역사는, 요도가와에 대한 강바닥 준설이라고 해도 좋다.
역사적 사실에서 에도 시대에는 오사카(大阪)에 준설 명가금(冥加金)이라 불리는, 수리(水利)의 덕(恩恵)을 보는 데 대한 대가가 존재했다. 이것은 적립금(積み立て)의 측면도 가지고 있어, 이것을 재원으로 하여 강바닥 준설이 실시되었다.
어느 쪽이든, 근간에 있는 것은 유입량에 대해 유출량이 제한되는 것에 기인한 범람이다. 아라이제키의 정비에 그치지 않고, 요도가와를 확장하여 소통 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었다.
"직접적으로 덕을 보는 쿄나 사카이(堺)는 물론이고, 수운(水運)을 이용하는 에치젠 등에서도 임시 세금을 징수하는 듯 합니다. 제도가 안정되면 징수액 자체는 낮게 억제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카가(加賀) 국에도 청구할 수 있으려나? 과연…… 흠"
"수운의 이용 상황을 보는 한, 청구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합니다"
비와 호를 이용하는 지역에 평등하게 세금의 부담을 요구한다. 강바닥 준설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며, 남는 것으로 하천 확장도 할 수 있는 절묘한 제도라고 시즈코느 생각했다.
교통망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육운(陸運)와 해운(海運)이 주역이며, 하천을 이용한 수운 등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전국시대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의 사후(死後)에 히데요시가 비와 호의 호상이권(湖上利権)을 지배했듯, 수송로로서도 중요한 존재였다.
중앙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수운과 달리, 크게 우회해야 하는 육로는 운송시간도, 그에 드는 비용도 늘어나는 경향에 있었다.
비와 호의 호상권(湖上権)을 노부나가가 쥐고 있는 이상, 세금의 납부를 거부하면 수송로가 닫히게 될 것은 뻔하다. 카가 일향종(一向宗)은 증오스러운 노부나가에 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그럼, 일향종들은 얌전히 말을 들으려나? 뭐, 응하게 되면 지출이 쌓여서 점점 목이 조여들겠지. 반항하면 무력에 의한 제압이 기다리고 있고. 응, 빠른지 늦을지의 차이밖에 없네"
"새로운 육로를 열려고 해도, 오우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다 가문의 가신.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카가의 일향종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마지막 일격만 남은(後一押し) 상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뒷일은 시바타(柴田) 님에게 달렸으려나. 여기서 분발하면 호쿠리쿠(北陸) 일대가 시바타 님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되네. 그렇게 되면 삿사(佐々) 님이나 마에다(前田) 님(※역주: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도 호쿠리쿠의 다이묘(大名)인가"
"성공하면 가문 내에서 한 발짝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아케치 님이나 하시바(羽柴) 님도 지지 않습니다. 특히 아케치 님은 키나이에 있는 수송로의 권익을 대부분 쥐고 계십니다. 또, 시즈코 님께서 제공하신 수송선이 예상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어, 사카모토(坂本)는 쿄의 현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해양에서는 실패라고 결론지어진 중형 수송선이 비와 호에서는 각광을 받았다. 다소의 악천후 따위 끄떡도 하지 않고, 하루만 있으면 나가하마(長浜)에서 사카모토까지 항행하는 속도를 자랑했다.
또, 스크류 추진이기에, 배의 이동에 노(櫂)릃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에 의해 절약할 수 있었던 공간을 화물 스페이스로 전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결점은 증기기관이기에 목탄(木炭)이나 석탄(石炭)을 필요로 하는 것이나, 홀수선(喫水)이 낮아서 운반하는 중량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오래 가지 않는 화물 등을 운반하는 상인들은 몇 척이나 되는 배를 수배하여 화물을 운반하게 된다. 배에 적재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물건이나, 많은 화물을 운반하는 경우에는 육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호위나 인부(人足)의 수배를 생각하는 등 추가로 비용이 먹히게 되었다.
"아ー, 그거 말이지. 활약할 자리가 생겨서 다행이야. 기술자들도 기뻐하고 있었고"
"편수를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하시바 님이나 아케치 님에 달렸으려나ー. 뭐, 어느 쪽도 장사할 기회가 늘어나니까 싫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또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될지도……"
비와 호의 호상권은 오다 가문이 쥐고 있지만, 비와 호에서 사용되는 상선 루트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현재는 계속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오우미의 복구를 우선시하고 있었기에 히데요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주도권을 탈환하려고 미츠히데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업이 번성함에 따라 수운의 중요도는 커져간다. 그에 비례하여 생기는 권익도 거대해지기에, 그들의 대립(因縁)은 깊어지고 있었다.
"뭐, 주 목적은 염전(厭戦)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거지만, 이렇게 노골적이면 아무래도 생각을 좀 해야될지도 모르겠네"
염전이란 전쟁을 싫어하는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까지나 정치가 불안정해서는, 짧은 생각(短慮)에 전쟁을 택하는 멍청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키나이에서만이라도 전쟁을 혐오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아직 병농분리(兵農分離)가 완전하지 않은 이상, 병사의 태반은 백성들이다. 그 백성들이 전쟁을 싫어하게 되면, 전쟁을 하고 싶어도 병사가 모이지 않는다. 또, 칼사냥(刀狩り)도 하기 쉬워진다.
칼사냥에 의한 무장해제, 상인들의 활발한 활동, 치수 등의 공공 사업에 의한 재해 대책, 쌀이나 야채 등의 생산력 향상, 이것들을 실시함으로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간다.
생활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목숨을 걸면서까지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적어진다. 농한기(農閑期)에 개척 등의 일거리를 만들면, 전쟁에 나가려는 마음은 한층 더 옅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는 전쟁보다, 견실하게 일하면 확실히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거리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세(伊勢)는 관할 밖이지만, 오우미나 에치젠에 관해서는 안정될 때까지 몇 년은 필요하려나"
"그 동안 혼간지(本願寺)를 정벌하시는 건가요?"
"아니, 혼간지의 정벌은 하지 않아. 세세한 조건은 있지만, 일향종의 존속을 인정하는 대신 이시야마(石山)에서 퇴거하라는 게 요점이려나"
"그것은……"
지금까지 멸망시킬 기세였던 노부나가의 행동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아야는 생각했다. 그런 아야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시즈코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켄뇨(顕如)를 '교섭하는 자리에 앉히는 데' 힘을 쏟고 있으니까. 그리고 혼간지를 완전히 멸망시키면 거꾸로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어버리니까, 살려두는 편이 좋아"
"그렇습니까?"
"흠…… 그럼 시즈코 언니가 아야 짱에게 정치 이야기를 해주도록 할께요"
아야에게 정치를 가르친다는 상황이 재미있는지, 시즈코는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그에 대해 아야는, 그다지 흥미가 있다는 기색도 없이 시즈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 혼간지가 멸망했다고 가정하자. 그 경우, 신자들은 어떻게 할까?"
"개종할까요?"
"그러네. 하지만 신앙(信仰)은 내면의 문제야. 내일부터 다른 종파로 갈아타세요, 라는 말을 들어도 곤란하겠지? 내일부터는 기독교(伴天連)를 믿어라, 는 말을 들으면 아야짱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은……"
"그래, 당황하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걸 강제하면 탄입이 되고…… 억압받은 신도들은 일치단결해서 들고일어나서, 위정자에 대해 이빨을 들이대는거야. 그렇게 되면, 피비린내나는 종교전쟁이 시작되어버려"
"그걸 막기 위해서인가요?"
"그래. 적에게 마지막 도망갈 길을 준비해 두는 것은 중요해. '혼간지를 위해서'라는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변명거리가 있다면, 아랫사람들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반대로 도망칠 길이 없으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저항하는거야. 게다가……"
"게다가?"
"혼간지의 경제력이나 다른 세력과의 연계는 아깝거든. 완전히 멸망시키기보다, 죽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되살아나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신의 장기말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 두는 편이 편리한 거야"
일단은 납득한 아야였다. 하지만, 의문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즈코 님의 생각이시고, 주상의 생각은 아니지요?"
"오, 좋은 부분을 눈치챘네, 아야 짱. 확실히 세세한 점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하지만 나와 주상의 생각은 크게 어긋나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럴까요. 주상의 언동을 생각하면 화해(和睦)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건 아야 짱 나름대로 생각해서 해답을 도출하면 돼. 괜찮아, 내 말을 듣고 스스로 생각해서 의문을 품게 된 아야 짱이라면 분명히 가능할거야"
"칭찬받아서 송구스럽습니다만, 뭔가 대답을 얼버무리신 것처럼 생각됩니다"
"에엑ー, 거기는 기뻐해야 하는 상황 아냐ー?"
"과대평가입니다"
불만스럽게 말하는 시즈코였으나, 아야는 시즈코의 말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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