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1 1575년 10월 중순
오와리(尾張)에 남은 아시미츠(足満)는, 기술자 마을에 존재하는 병기 공장(兵器廠)에 틀어박혀 있었다.
전선에서 파발마(早馬)로 전달된 박격포의 운용 데이터와, 파손 부위의 스케치를 바라보며 아시미츠는 신음하고 있었다.
"화포 자체가 미성숙한 지금이라면, 야포(野砲)와 박격포의 장점만을 취합한 병기가 통용될까 하여 개발했으나, 선인(先人)이 다져놓은 길을 따르지 않는 독자적인 병기는 그리 쉽게 완성되지 않는가……"
파손된 현물은 중량이 있기에 파발마로는 운반할 수 없어서 종이에 먹으로 그려진 부품 그림 뿐이었지만, 그래도 무엇이 원인으로 고장이 발생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아시미츠가 개발한 박격포는, 엄밀히는 박격포라 부를 수 없다. 박격포란 높은 사격각(射角)을 취하여 발사의 충격을 지면으로 흡수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어, 사정거리나 정밀도를 희생하는 대신 대단히 심플하고 가벼운 포이다.
그에 반해 사정거리나 명중 정밀도를 요구받은 화포가 야포나 캐논포라고 불리는 포가 된다. 장대한 포신과 견고한 지지대(支持架)를 필요로 하는 복잡하면서 중량급의 포이다.
박격포가 더 간소하고 더 경량이라 운반성(可搬性)이 우수한 방향성을 갖는 것에 비해, 야포나 캐논포는 더 멀리, 더 정확하게 포탄을 날리게 한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전술한대로 박격포는 사정거리나 정밀도를 희생하여 심플한 발사구조를 실현했기에, 서로 상반되는 설계 사상을 갖게 되었다.
아시미츠는 시즈코가 태어난 시대로 흘러들어갔을 때, 도서관에 다니면서 화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긴 사정거리와 큰 위력을 가진 병기에 매료되어, 각각의 포의 구조와 이점이나 결점, 진화의 발자취를 머리에 쑤셔넣었다.
거기에, 화포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 과도기의 지금이라면, 야포나 캐논포보다도 구조가 심플하면서, 순수한 박격포보다도 사정거리가 길고 정밀도가 높은 포가 만능병기로서 통용될 거라 생각했다.
"역시 격라식(隔螺式) 폐쇄기(閉鎖機)는 공정 정밀도상 어려운가"
격라식 폐쇄기란, 포신의 뒤쪽에서 포탄을 넣은 후, 나선형의 홈을 판 스크루를 끼우는 것으로 포를 폐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포탄이 발사될 때의 폭발에 의한 추진력을 포탄에 남김없이 전달할 수 있다.
폐쇄기 상부에 존재하는 핸들을 돌리는 것으로 뚜껑의 개폐 및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구조가 복잡해지고, 가동부가 많기 때문에 고장이 발생하기 쉬워졌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그곳에 문제가 발생하여, 핸들을 떼어낸 후에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식으로 운용했다고 했다. 스크루를 조이고 푸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사간격이 길어졌지만, 운용 자체에는 문제가 없기에 그대로 운용했다.
그리고 다음 문제가 드러났다. 그것은 포를 구성하는 소재의 강도 부족이었다. 반복되는 포격에 의한 열과 충격 때문에 서서히 포신에 비틀림이 발생하여, 이윽고 박격포 2문 중 한쪽의 포신에 균열이 생겨 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거기서 폭압이 새어나가고, 최악의 경우에는 포신이 폭발하여 대참사를 일으킨다. 이 때문에 포탄은 아직 남아있었으나 포격을 중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숫자의 원리를 뒤집는 병기의 완성은 아직 멀었나. 시즈코가 궁지에 몰려서 그 포탄을 쓰지 않고 끝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아시미츠는 보고서를 한 손에 들고 기술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별(場所)한 장소에는 시즈코에게 건네준 것과 같은 형태의 포탄이 나무 상자에 든 상태로 안치되어 있었다.
나무 상자가 놓인 선반에 붙은 이름표에는 '백린탄(白燐弾)'이라고 적혀 있었다. 백린탄이란 현대에도 존재하는 연막탄의 일종이며, 봉입된 백린이 대기중에서 연소하면 습기를 흡수하여 시인성(視認性)을 저해하는 대단히 투과성이 나쁜 연막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아시미츠가 시즈코의 몸을 지킬 최종 수단으로 맡긴 무기가 그냥 연막일 리가 없다. 아시미츠가 준비한 백린탄에는 소이(焼夷) 효과가 부여되어 있었다.
연소중의 백린이 불꽃 입자가 되어 쏟아져내려, 연막을 무시하고 시즈코를 추격하려 한 자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화상을 입힌다. 달라붙은 백린 자체가 화학적으로 연소하기 때문에 쉽게 불을 끌 수 없어, 노출된 피부 등에 닿을 경우 몸이 불타는 지옥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시야를 차단하면서 추격도 저지하기 때문에, 도망친 방향조차 파악하게 하지 못하는, 철수시에는 대단히 유효한 병기이지만,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서는 아군까지 파멸로 몰아넣기 때문에 도망칠 때 밖에 쓸 수 없는 운용이 어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타케다(武田) 영토로 침공해 들어간 노부타다는, 때 아닌 태풍에 직격당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전공을 목표로 조급해하는 부하들을 제대로 억누르지 못하고 시야를 차단하는 것조차 없는 평야부에 진을 쳤기 때문에 피해가 확대되었다.
격렬한 비바람에 노출되어, 잡병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인솔하는 장병들조차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에, 노부타다의 주위에는 호위대(馬廻衆) 등 최저한의 측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전날의 혈기왕성하게 진격을 주장하던 작전회의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참담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칠게 날뛰는 대자연의 맹위 앞에 박살이 난 노부타다는, 예전에 시즈코가 말했던 "싸움에 이기고 있을 때일 수록 사소한 실책이 군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말을 되씹고 있었다.
한편, 타케다 측에서는 카츠요리(勝頼)가 갈등하고 있었다. 정찰로부터 보고를 받고 노부타다의 본대가 태풍에 의해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되었으나, 이걸 호기로 보아 추격대를 내보낼지 망설이고 있었다.
호우(豪雨)에 의해 대지는 진흙탕으로 변해 있어, 타케다가 자랑하는 기마대의 기동력은 죽어버린다. 게다가 무적이라고 불리웠던 신겐(信玄)조차 쳐부순 시즈코 군의 존재가 있었다.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도깨비 상자 같은 존재이며, 타카텐진 성(高天神城)에서의 전투에서는 하늘에서 죽음의 돌덩이를 쏟아붓는다는 요술같은 수법으로 우군인 호죠(北条) 군을 괴멸로 몰아넣었다.
노부타다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이면서, 치명적인 역습을 받을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하여 추격의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카츠요리는 오다를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타케다 가문의 태세를 재정비할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오다에 대해 타케다는 얕볼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할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그 때 타이밍 좋게 호죠로부터 공투(共闘)의 제안이 있었다. 만약 신겐이 살아있었다면 원군을 의지하지 않고, 호죠의 제안의 뒷면에 존재하는 노림수까지 꿰뚫어보고 응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타케다 가문 내부에서 고립되어 궁지에 몰려 있던 카츠요리는, 영주(国人)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아서 정치적인 시야가 부족한 점도 있어, 호죠의 감언(甘言)에 달려들어 버렸다.
그리고 일단 뚜껑을 열어보니, 타카텐진 성에서의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대패. 호죠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었던 간에 도저히 수지가 맞는 것은 아니었으리라.
그래도 노부타다의 목을 취하면 본전은 찾는다. 하늘에서 떨어진 절호의 기회인데, 카츠요리는 좋지 않은 예감을 떨치지 못해 주저하고 있었다.
카츠요리는 자국 영토에 있는 타카토오 성(高遠城)으로 철수했으나, 호죠는 달랐다. 카츠요리를 부추겨 싸움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에게 일방적으로 박살나서 간과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무엇하나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서는 설령 말석이라 할지라도 오다 가문에 관계되는 무장의 수급(首級)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태풍이 밀어닥쳤다.
다행히 철수하던 길에 있던 절에 몸을 맡겨 태풍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때 노부타다 군의 본진이 태풍으로 괴멸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눈 앞에 대장의 목이라는 대박(金星)이 대롱거리게 되자, 호죠 군은 급거 군을 재편성하여 노부타다 군의 본진터에 습격을 가했다. 아무리 큰 추태를 연출하였더라도, 차기 오다 가문 당주의 목을 딴다면 메꾸고도 남는다.
그러나, 애초에 패주중이었기에 사기도 낮고, 속력 우선으로 부상자를 운반하는 짐수레를 끄는 말까지 기마로 삼아 억지스런 편성을 했기에, 오합지졸에 뒤죽박죽인 부대가 탄생했다.
한편, 노부타다 군의 본진터에는 이미 나가요시(長可)와 케이지(慶次)가 도착하여 본진의 재편을 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들의 협력도 있어, 토사(土砂)가 무너져 통행이 불가능해진 길을 피해 뒷길(裏道)을 지나서 일찌감치 합류할 수 있었다.
시즈코의 허가를 받지 않고 출진했기에 많은 물자는 가지고 올 수 없었고, 병력(手勢)도 소수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과병(寡兵)이라 해도, 평소부터 나가요시의 무지막지한 행군에 따라가는 일기당천의 강자(猛者)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약간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지참한 양식이나 의약품에 의해 노부타다 군의 본진도 다소 진정되고 있었다. 그곳에 호죠 군 잔당이 진흙탕을 헤집으며 대열을 길게 늘인 상태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시즈코 군 제식 채용의 원안경(遠眼鏡, ※역주: 망원경)으로 한발 빨리 그것을 발견한 나가요시 군은, 꼼꼼히 준비를 갖추고 매복을 걸었다. 신식총(新式銃)은 숫자가 제한되어 있기에, 노획(전장에서 적으로부터 탈취하는 것)한 화승총(火縄銃)까지 사용하여 일제 사격으로 기습했다.
사정거리도 명중 정밀도도 다른 무기를 사용한 사격 따위 초장에 한 번 밖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가요시 군은,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들을 남겨놓은 채 화승총을 던져버리고 돌격했다.
"으랏차아아!!"
나가요시가 애용하는 모닝스타가 기마의 다리를 분쇄했다. 진흙탕에 발이 묶여 속도가 떨어졌다고는 해도, 갑주를 입은 상태에서 낙마한 무장의 운명은 밟혀죽을 수밖에 없다.
운나쁘게 머리부터 떨어진 무장은 목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인 무참한 시체로 변했다. 총격을 받고 발이 멈췄을 때 옆에서 공격받은 호죠 군은 군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기다렸다가 긴 무기(長物)를 들고 소부대로 공격해오는 나가요시군에 대해, 연대를 잃은 개인들에 불과한 호죠 군에게 승산은 없었다.
"휘익ー! 여전히 엄청난 기세구만. 자, 이쪽도 질 수 없지"
나가요시 군의 돌파력에 휘파람을 분 케이지는, 호죠 군이 재편하고 있던 창 부대의 후방에서 기습을 걸었다. 설령 연대가 되지 않는 잡병이라도, 창을 들려놓고 충분한 숫자를 모으면 적의 돌격을 막는 방패가 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기습을 받아 한창 혼란에 빠진 와중에 그래도 창 부대를 재편한 호죠 군의 지휘관은 우수했으나, 케이지의 책략은 그를 뛰어넘었다.
기마 뿐만 아니라 보병을 수반하고 있던 것을 볼 때 혼란이 가라앉으면 태세를 재정비할 거라 읽은 케이지는, 수풀에 몸을 숨기고 등 뒤로 돌아가, 그야말로 나가요시 군에게 반격하려고 하던 딱 그 때에 덮쳐갔다.
기습에 이은 기습을 받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말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무장이 갑자기 낙마했다. 뒤늦게 울려퍼진 메마른 총성이 그가 총격을 받은 것을 알려주었다.
발이 멎어 멍하니 선 기병 따위,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의 적은 아니었다. 보병의 방어를 넘어 말 위의 무장을 차례차례 쏘아 떨어뜨렸다.
호죠 군의 대열이 길게 늘어진 것도 좋지 않게 작용하여, 전력의 축차(漸次) 투입이라는 추태를 초래했다.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무장들을 가엾게 생각했으나, 케이지가 사정을 봐 주는 일은 없었다.
"이쪽은 나설 차례가 없어서 한가했거든. 여긴 한바탕 화려하게 가보실까!"
말과 함게 케이지가 들고 있던 할버드가 번쩍했다. 발밑이 불안정했기에 크게 내딛지 못하고 다리에 힘을 준 상태에서의 횡베기였으나, 잡병의 목 세 개가 허공을 날았다.
"좋았어! 한번 더!"
경쾌한 고함 소리와 함께 기세를 죽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빙글 회전한 케이지가, 이번에는 한 발 내딛으며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이번에는 목이 아니라, 할버드의 회전반경 안에 존재했던 잡병들이 열 명 정도 맞아 쓰러졌다.
긴 무기의 원심력과 중량이 있는 도끼가 뿜어내는 참격은 잡병들의 갑주를 박살내고 절명시켰다. 그 참상을 목격한 잡병들은 무기를 내던지고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도망쳤다.
"도망치지 마라! 나랑 싸우라고!!"
적이 도망쳤다고 해서 곱게 보내줄 나가요시 군이 아니었다. 그들은 도망치는 적들의 등 뒤로 따라붙어 칼로 베어넘기고, 주운 창으로 찌르고, 창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도망친 적에게는 돌을 던져 공격했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단말마(断末魔)의 외침 소리가 울려퍼지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토우고쿠(東国) 녀석들은 철포(鉄砲)가 없는거냐? 이래서는 상대가 안 되잖아!!"
아무리 나가요시가 강하다고 해도, 철포 앞에서는 똑같이 목숨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토우고쿠에 철포나 화약이 흘러가지 않도록 조이고 있었기에, 토우고쿠의 철포 보유수 그 자체가 적었던 것이다.
당연히 호죠 군도 철포는 보유하고 있지만, 기병을 주체로 한 기습을 할 생각이었기에 거의 가져오지 않았고, 거기에 혼란의 한복판에서 화승(火縄)이 젖어버려 발포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히익! 악마(鬼)다! 지옥문이 열렸다ー!!!"
호죠 군의 아시가루(足軽)가 비통하게 외쳤다. 그의 눈에는 뒤집어쓴 피로 새빨갛게 물든 채 본 적도 없는 무기를 휘둘러 차례차례 아군을 때려죽이고 다니는 나가요시가 지옥의 옥졸(獄卒)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후우. 속은 시원해졌는데, 냄새가 장난 아니군"
주위에서 비명이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가요시는 품에서 수건(手拭い)을 꺼내 피투성이 얼굴을 닦았다. 쌓여 있던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었던 것도 있어, 피화장(血化粧)이 닦여나가자 상쾌한 미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애초에 숫자에서 밀리기 떄문에 나가요시 군은 이 이상의 추격을 중단하고 케이지들과 합류하여 노부타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수, 수고하였다. 그…… 다치지는 않았느냐?"
전신에 적의 피나 육편(肉片), 내장 조각(臓物)이 달라붙은 상태인 나가요시는 속이 뒤집힐 듯한 피냄새를 풍기고 있어 도저히 무사하게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 전투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상태인 케이지는 나가요시가 부상을 입었다는 생각 같은 건 하고 있지 않았다.
"문제없습니다. 있는 대로 흩어버렸기에 금방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디만, 이곳은 적지의 한복판. 오래 이야기를 할 여유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지나온 뒷길로 안내해드리겠으니, 시즈코가 기다리는 중계지까지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 그렇구나. 알겠다, 다들 부피가 큰 짐은 버려도 상관없다. 철수한다!"
승전에서 일전(一転)하여 패주하는 것에 노부타다가 난색을 표할 거라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솔직하게 철수를 받아들여준 것에 케이지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독단전횡도 노부타다의 목숨을 지켜냈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며, 본래는 징벌을 받아야 할 행동으로, 자칫하면 모반이라고 단정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대체 뭘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노부타다가 목숨을 잃을 거라고 주장하며 케이지를 설득하여 억지로 출진한 나가요시도 안도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케이지를 선두에 세우고, 중간쯤에 노부타다를 배치하고, 후위(殿)는 나가요시가 맡는다는 대열로 물자 집적 거점을 향했다. 노부타다는 나가요시에게 협력한 마을사람들은 물론이고, 도중에 지나친 마을들에서 호죠 군에게서 빼앗은 금품을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오다 군의 편을 들면 이익이 있다는 것이 되니 다음에 왔을 때의 협력을 얻기 쉬워진다. 게다가 설령 타케다 군이나 호죠 군이 추격대를 보냈다 하더라도, 도중의 마을들의 사정이 좋다면 그들은 그쪽에 시선을 빼앗겨 추격이 느슨해질지도 모른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아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추가적인 국력의 약체화를 초래하게 된다. 일석이조의 책략이지만,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
그래도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싹은 트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음으로 이어지는 투자로 삼기 위해, 노부타다는 사비(身銭)를 들여서라도 타케다 영토의 영민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며(施し) 철수해갔다.
다행히 타케다, 호죠 양측의 추격을 받는 일 없이 노부타다는 시즈코가 기다리는 중계기지에 도착했다.
노부타다는 철수를 결정했을 때 우군인 도쿠가와 군에게도 연락을 보내어, 시즈코 군, 타키카와(徳川) 군과 함께 도쿠가와 군도 합류해 있었다.
"이번에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한 명의 탈락자도 내지 않으신 도쿠가와 님과의 차이를 절감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젊으신 당신께서 나이든 저와 같은 일을 하실 수 있으시면 연장자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궁지에 몰렸음에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해야 할 것, 타케다를 쫓아내고 뼈아픈 일격을 안겨준 것으로 만족하도록 하지요"
"각별하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은 일단 오와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세세한 전후 처리에 대해서는 나중에 논의드리지요"
이에야스(家康)로서는 자국 영토를 침공한 타케다-호죠 연합군을 쫓아낸데다, 역으로 얼마간의 타케다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노부타다 군은 큰 피해를 입은 모양이지만, 자신의 군에는 피해랄 만한 것은 전무했다. 대단히 좋은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이에야스의 예상으로는, 이번의 실패를 발판삼아 노부타다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다음에 토우고쿠 정벌이 일어날 때는, 이번의 반성도 검토하여 만반의 상태로 임하여 반드시 타케다를 타도해 보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군인 동안에는 든든하지만, 자신이 천하를 노린다면 반드시 눈 앞을 가로막을 강적이 될 편린(片鱗)을 느끼고 있었다.
노부타다와 시즈코는 이에야스와 헤어진 후 오와리로 돌아갔다. 시즈코는 오와리에서 전후처리를 하고, 노부타다는 한 발 먼저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아즈치(安土)로 떠나갔다.
시즈코 자신도 노부나가에 대한 보고 의무가 있지만, 노부타다가 먼저 보고하고 다음에 시즈코가 보고한다는 형식을 취하지 않으면 노부타다의 체면을 뭉개게 되어 버린다.
신속한 정보전달이 요구될 정도로 정치가 얽혀 있는 상태라, 체면을 중시한다는 건 귀찮네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자신의 군을 해산시켰다.
(태풍의 도래는 예상 밖이었지만, 주상(上様)의 과제는 해결된 걸까)
노부타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人事)을 모두 하여 급제점 이상의 운용을 해내 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아군의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한 그의 편을 들지 않았다.
하늘이 그에게 미소짓는 시기를 기다리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신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어쩔 방법이 없는 불합리한 실패도 일어날 수 있어. 스스로가 뼈아픈 실패를 하지 않는 한 배울 수 없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지…… 어떤 의미에서 하늘은 나에게 미소지은 걸까?)
노부나가가 노부타다에게 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패배를 연출하려고 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패배를 모르는 대장은 우세할 때는 듬직하지만, 한 번 열세에 몰리면 버티지 못한다. 패배가 소리없이 다가오는 기색을 자신의 피부로 느끼고 패배의 기척에 민감해지지 않으면 언젠가 발목을 잡힌다.
이것만큼은 누구도 가르칠 방법이 없고 스스로가 패배 속에서 배울 수밖에 없기에, 위험을 각오하고 자신의 자식을 천길 낭떠러지(千尋の谷)로 떨어뜨리는 것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이 패배는 노부타다에게 많은 것을 줄 것이다. 자신들의 세력(手勢)을 잃은 아군(身内)으로부터 규탄을 받거나, 대외적으로 전쟁을 잘 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노부나가는 그 역경(苦境) 속에서 노부타다가 다시 일어설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 혼자서는 어렵더라도, 곁에 있는 듬직한 선도역(先導役)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키묘(奇妙)님이 연서(恋文)라니 말야"
시즈코는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고 표정이 풀어졌다. 노부타다가 토우고쿠 정벌에 의욕적으로 착수하고 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보통 이상으로 열중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후다이(譜代)의 가신들에 얕보이지 않도록, 자신이야말로 다음 대의 오다 가문을 짊어질 존재라고 어필하려고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니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속된(下世話) 말이지만 남자가 의욕을 쥐어짤 때, 그 그늘에는 여자의 존재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시즈코는 역녀(歴女)의 교양으로서 노부타다에 관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여자를 위해 분발하는 것도 남자의 주변머리(甲斐性)라고 생각하여 지켜보고 있었다. 패전을 거쳐 오와리로 귀환하던 도중, 물어보려면 지금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노부타다에게 물어보았다.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타케다에 고집한 이유는, 혹시 마츠히메(松姫)일까?"
그 순간, 노부타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주위를 굳히고 있는 호위들과는 거리가 있어, 그의 이변을 눈치챈 것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있는 시즈코 뿐이었으리라.
마츠히메란, 지금은 세상에 없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6녀로, 에이로쿠(永禄) 12년(1569년)에 노부타다 11세, 마츠히메 7세에 약혼했다.
그러나, 신겐의 서상작전(西上作戦)에 의해 이 약혼은 파기되게 된다. 전국시대의 약혼은 현대의 그것돠는 달리 결혼과 거의 같은 의미로, 약혼한 시점에서 처는 남편에 대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약혼이 파기된 후에도 마츠히메는 노부타다에게 마음을 바쳐, 비밀리에 서신을 교환하며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마츠히메에게는 약혼 파기 후에 몇 번인가 혼담(縁談)이 들어왔지만, 그녀는 결코 고개를 세로젓지 않았다.
당시의 여성은 정치의 도구이며, 적이 된 노부타다에게 정조를 지켜 혼담을 계속 거절하는 마츠히메가 받는 대우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편지를 통해 그 상황을 알고 있던 노부타다는 그녀를 구출하려고 분발했었던 것이다.
"시즈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었느냐?"
"누구라니, 편지를 전달하는 간자들의 총 책임자(元締め)는 나거든? 편지는 주상께서 검열하시고, 나는 내용까진 보진 않지만 어디로 전달되는 지는 알고 있거든요?"
노부타다는 말 위에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몸부림쳤다. 평소에 짐짓 여자에게는 관심없습니다라는 태도를 보여왔던 누나에게 자신이 직접 쓴 러브레터를 들킨 심경이라고 하면 그의 고뇌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노부타다는 한결같이 자신을 사모해주는 마츠히메에게 끌리게 되어, 언제부터인지 그도 그녀에게 연애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약혼이 파기되고 서로가 적과 아군의 진영으로 갈린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마츠히메가 놓인 상황을 알게 되고,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구출할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합이 들어가지 않는 남자는 없으리라.
"아, 아니다 시즈코. 너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차기 오다 가문 당주인 이 내가, 겨우 여자 한 명에게 그렇게 공사혼동적인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느냐?"
"딱히 나는 마츠히메도 이유였을까라고 물어본 것 뿐이지, 그게 주 요인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
그야말로 자기 무덤을 판(語るに落ちる) 격으로, 노부타다는 다시 얼굴을 감싸고 말 위에 엎드렸다.
"괜찮지 않아?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분발할 수 있는 남자애는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틀리…… 지 않다. 이제 됐다. 그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알았어. 하지만, 의외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다고 생각하는데"
"잠!! 잠깐 기다려라 시즈코! 그, 그건 누구냐? 말해라ー!!"
노부타다가 평정심을 잃고 외쳤으나, 시즈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린 채 흘려들었다. 주위를 굳히고 있는 호위대(馬廻衆)도 늘 있는 일이라고 흐뭇하게 지켜볼 뿐 두 사람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참고로 노부타다를 궁지에서 구출해낸다는 초대박(大金星)을 터뜨린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행위에 대해서인데, 결과만 놓고 보면 큰 공인 반면, 군대라는 강기숙정(綱紀粛正)을 제일로 여기는 조직에서는 중대한 위반도 범한 것이다.
그들은 직속 상사인 시즈코에게 무단으로 군을 움직이고, 거기에 극비 취급인 신식총(新式銃)이나 총탄까지 반출하여 사용했다. 이것은 현대 일본에 비유한다면, 자위대(自衛隊)가 최고 지휘감독자인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의 허가를 받지 않고 멋대로 출격하여 타국과 전투를 벌인 것과 마찬가지인 폭거(暴挙)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이 없었다면 노부타다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은 높아서, 대외적으로는 나가요시와 케이지는 출진하지 않았고 노부타다는 혼자 힘으로 적을 물리치고 도망쳤다는 것이 되었다.
물론 그들의 목숨을 건 행동에 대한 보수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그들을 따른 부하들에 대해서는 딱히 처벌받거나 하지 않고, 정당한 군무에 종사한 것으로 보수가 지불된다.
한편, 그들을 이끈 두 사람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징벌이 주어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만한 짓을 해버리면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그들을 감쌀 수 없다.
나가요시와 케이지의 두 사람에게는 명예도 보수도 없고, 노부타다의 개인적인 인상이 좋아진 것이 유일한 보수이리라. 그들에게 주어진 징벌은, 견책(譴責) 처분(실패나 부정을 엄하게 질책하는 것)이 되어 군법위반자(軍規違反者)로 기록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봉급도 깎이고, 휴가나 자유재량권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제한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군이 단독으로 행동했으니까 내부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설령 같은 오다 군이라도 다른 조직과 합동으로 작전행동을 하고 있는 도중에 독단전횡을 저질렀다간 최악의 경우 모반이라고 판단되어 사형에 처해질테니 주의해줘요. 행동의 발단이 카츠조(勝蔵) 군 개인의 감이었다고 해도, 상담을 하면 무시하지는 않을거라 약속할테니 두 번 다시 하지 말 것. 대외적으로는 '없었던 일'이 되어 있으니, 이 건에 관해서는 관계자 전원에게 함구령(箝口令, 타인에게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겠어요"
시즈코는 관계자 전원을 모아놓고 부하들의 면전에서 두 사람에게 처벌을 이야기했다. 부하의 눈 앞에서 견책을 받는 것은 두 사람에게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두 사람 다 시즈코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달게 처분을 받아들였다.
나가요시의 감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이유로 군을 움직이게 되면 시즈코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시즈코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고 생각한 끝에 한 행동이지만, 역으로 시즈코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오와리로 돌아가는 길에서 두 사람은 말에 타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영창(営倉)을 대신하는 짐수레에 처박히게 되는 근신처분에 대해서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가 군을 해산시키고 저택으로 돌아가자, 아야(彩)를 필두로 쇼우(蕭), 시로쿠(四六), 우츠와(器) 등 시즈코와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시즈코를 마중했다. 파발을 통해 싸움에 졌다는 것은 전해졌고 시즈코가 무사한 것도 전해졌을 테지만,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의사와 의약품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조금 과보호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면서 겨우 자신의 집에 돌아왔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다녀왔어, 다들 마중나와줘서 고마워. 아ー, 졌다 졌어. 이만한 대패는 우사 산성(宇佐山城) 이래 처음이려나? 나중에 주상께 꾸중을 듣겠지만, 우선은 목욕을 하고 싶네. 준비해 줄 수 있겠어?"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바로라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싸움 후에도, 밭일 후에도 일을 마친 후에는 우선 목욕이라고 말했었기 떄문인지 입욕 준비는 갖춰져 있었다. 아야를 필두로 시녀들의 손을 빌려 시즈코는 전쟁용 복장(いくさ装束)을 벗고 다급하게 목욕탕으로 향했다.
재빠르게 몸을 씻은 후, 약간 뜨거운 욕조에 어깨까지 푹 담갔다.
"끄아아…… 후우…… 천연 온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 권리(役得)만큼은 포기할 수 없네"
서서히 올라오는 열기에 떠밀리듯 입에서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시즈코는 온천을 만끽했다. 넓은 욕조에서 팔다리를 쭉 뻗고 크게 기지개를 켜자 마치 전신에 뭉쳐 있던 피로가 욕조에 녹아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극락같은 기분에 자기도 모르게 잠들 뻔 했으나, 간신히 버티면서 평소보다 긴 목욕을 즐겼다. 딱 좋게 달궈진 피부에 시원하게 바깥공기를 쬔 후, 옷을 갈아입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시즈코의 방을 아지트로 삼고 있던 비트만이나 설표인 윳키와 시로쵸고와 함께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y)라는 건 정말 효과적이네. 이 시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야"
주인의 귀환에 대한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해주는 비트만들의 환영을 받으며 타케다-호죠 연합군과의 싸움도 과거의 일이 되어갔다.
"결국,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둥지를 튼 친(親) 호죠 파는 봉기하지 않았네. 타카텐진 성에서의 압승을 듣고 시기를 미룬 것 뿐일까?"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궐기(決起)에 호응하여 뭔가 행동을 일으킬거라 생각되었던 친 호죠 파는 기분나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본래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싸움이 장기화되어,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노부나가로부터의 원군 요청에 응하여 출진하여 자리를 비웠을 때 행동할 셈이었으리라.
그들의 예상으로는 타카텐진 성은 타케다-호죠 연합군의 손에 떨어져, 적어도 농성전으로 싸움이 장기화될 거라 내다보았던 것이리라.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격전(電撃戦)으로 결판이 나버려서 원군 요청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켄신이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허튼 짓은 할 수 없어서 면종복배(面従腹背)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마각(馬脚)을 드러내 주면 편했을텐데…… 어느 쪽이든, 이번 일로 호죠는 곤경에 처하게 되겠네"
호죠가 당당하게 적대하여 정면에서 싸웠다면 노부나가에게도 일고(一考)의 여지가 있었으리라. 설령 패배하여 오다에게 항복하게 되더라도 호죠 가문의 존속이 허락될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고식(姑息)적으로 허점을 찔러, 중립을 가장하면서 기습을 가하는 듯한 짓은 노부나가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 이후, 호죠 가문의 태도는 신뢰할 수 없다고 하여 가문 단절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떠한 생각으로 호죠는 거병하였는가?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생각하면, 도저히 수지가 맞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폭거에 시즈코의 사고는 출구 없는 미로에 빠져들었다.
"정보가 부족하네. 생각하는 걸 관두자"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깨닫고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훌륭해"
시즈코는 전달된 칼을 손에 들고 빛에 비추어보며 황홀하게 중얼거렸다. 뺨을 상기시키고 황홀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어, 다른 사람이 보면 사랑이라도 하고 있는 듯 했으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람잡는 칼(人斬り包丁), 즉 일본도(日本刀).
명백히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으로 보였으나, 시즈코의 도검 수집벽은 주지의 사실이 되어 있어 그걸 입 밖으로 내어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즈코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옛날 칼(古刀)이 아니라, 예전부터 의뢰해서 드디어 완성된 도검이었다.
그것도, 제조방법이 전국시대의 것이 아니라, 일부러 카마쿠라(鎌倉) 시대의 수법으로 제련된 물건이었다.
현대에서는 실전되어 버린 기술이지만, 도검수집의 과정에서 기술을 전하는 일족이 발견되었기에 시즈코가 일족의 보호와 맞바꾸어 의뢰한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린 그 칼이 드디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시즈코가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자, 자리를 비웠던 동안 도착한 편지들을 처리할까"
실컷 감상하여 만족한 후, 시즈코는 칼을 칼집에 넣어 사슴 뿔로 만든 칼걸이(刀掛け)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흥분의 여운을 흩어버리고, 귀가한 이래 결재를 보류하여 제끼고 있던 서류에 손을 댔다.
우선순위가 높은 쪽부터 위로 가도록 쌓여진 서류를 파라락 넘기면서 그 분량을 보고 진절머리가 났다. 게다가, 가득 쌓인 서류를 기합으로 처리하고,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아즈치로 갔다가 다시 오와리로 돌아왔을 때 똑같은 분량이 쌓여있다는 미래를 그녀는 아직 모른다.
"가을은 수확 관계도 있어서 이것저것 판단할 것들이 많네"
서류의 태반은 보고였으며, 결재할 것은 그리 많지는 않다. 보고서는 대충 훑어보는 정도였으나, 그 중 한 장에 시즈코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호오! 운석(隕石)과 운철(隕鉄), 양쪽 다 손에 들어왔구나"
시즈코가 말하는 운철이란 현대에서의 '시라하기 운철(白萩隕鉄) 1호'이다. 1890년에 토야마 현(富山県) 카미이치가와(上市川) 상류에서 절임용 누름돌(漬物石, ※역주: 절임을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서 쓸데없는 수분을 빼기 위해 절임통 뚜껑 위에 올려놓는 무거운 돌)를 찾고 있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철운석(鉄隕石)은 크기에 비해 대단히 무겁기에 절임용 돌로 적합하다)). 또, 그 발견으로부터 2년 후에 같은 지역에서 '시라하기 운철 2호'가 발견되었다.
시즈코가 운철의 장소를 알고 있었던 이유는, 이 운철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장도(長刀) 두 자루에 단도(短刀) 두 자루인 유성도(流星刀)의 일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서 메이지(明治) 시대에 에노모토 타케아키(榎本武揚)가 그러했듯이, 자신도 운철로 만든 칼이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시대의 흐름(時勢)도 시즈코를 도왔다. 켄신이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것을 계기로, 켄신에게 허가를 받아 운석 수색을 개시했다. 그것이 드디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운석은 1885년에 타나카미 산(田上山)에서 한 백성(百姓)이 우연히 발견한 일본 최대의 운석이다. 타나카미 운석이라고도 불리며, 이쪽도 철운석이라 그 중량은 무려 173.9kg나 나갔다.
시즈코가 있던 시대에서는 도쿄의 국립과학박물관의 입구 저면에 전시되어 있던 물건인데, 시즈코가 이걸 원한 이유는 단순했다. 하늘로부터 날아온 것이라, 운을 따지는(縁起を担ぐ) 일이 많은 무가(武家)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즈코 자신의 수집욕도 작지 않은 이유였으나, 노부나가 자신은 운을 따지지 않더라도 부하들에게 상으로 내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무상으로 헌상할 생각 따윈 전혀 없어, 그의 비장의 도검 등과 교환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 당사자의 내심과는 별개로,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냥 돌멩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기에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안심해, 나도 모르겠다"
시즈코의 양자인 시로쿠는 시즈코가 득의만면한 미소와 함께 이 운석을 보여줬을 때, 곤혹스러워하며 그렇게 말했다. 시로쿠의 옆에서 시즈코의 설명(講釈)을 듣고 있던 케이지도 상쾌한 미소를 떠올리며 동의했다.
큰 돈을 내고 한 아름도 더 되는 바위 덩어리를 사들였다고 들었을 때는 시즈코가 제정신인지 의심했다. 확실히 같은 크기의 돌에 비하면 무겁지만, 그렇다고 그게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아, 사물의 핵심을 이해하는(粋を理解する, ※역주: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음) 케이지로서도 수상쩍은 물건이었다.
"마에다(前田)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뭐, 시즛치의 말처럼 절임용 누름돌로는 좋아 보이지만, 그 이외에는 모르겠어. 뭐,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잖아. 시즛치가 기뻐하는 것 같으니 돈을 낸 가치는 있었다는 거지"
"그런 건가요……"
이전과는 달리 묘하게 시즈코를 의식하고 있구만이라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부모가 큰 인물(大人物)이라면 자식은 위축되거나 반발하는 법인데, 시로쿠의 모습은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왜 그래?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시즈코 님께서 저희들에게 애정을 주고 계신다는 건 주위 분들의 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잘 실감이 나지 않달까요,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츠와는 느끼는 건지 완전히 시즈코 님께 마음을 열고 시즈코 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시즈코 님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걸까 생각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와하하핫!"
시로쿠가 시즈코를 신경쓰고 있는 이유를 알고 케이지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시로쿠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져서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웃으시는 건 너무합니다!"
"미안미안, 네가 웃겼던 게 아니야. 좀 예상외의 사실에 기뻐져서 말이지. 뭐, 방향성이 틀렸지만 말야"
시로쿠의 항의에 케이지는 솔직히 사과했다. 담뱃대(煙管)를 재떨이(煙草盆)에 두들겨 재를 떨어뜨린 후 케이지는 다시 담배를 채우며 말을 이었다.
"애정 같은 건 이해하는 게 아니야. 배아파서 낳았으니 자식을 사랑하는 걸까? 먹고 살 길이 없어서 자기 자식을 버리는 부모 따위 썩어날 정도로 많아. 너는 어설프게 머리가 돌아가다보니 쓸데없는 걸 생각하는 거야. 시즛치를 믿고 본심으로 부딪히면 되는 거라고"
만약 자신에게 남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케이지는 말을 이었다.
"쑥스러움(恥)도 남의 눈치(外聞)도 걷어차버리고, 거절당하면 어쩌지라는 생각 같은 건 하지말고 시즛치에게 안기고 와. 사람의 체온이라는 건 백 마디 말을 하는 것보다 애정을 전해주거든?"
"네……"
일단 대답은 했으나,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일 뿐 전혀 행동하려고 하지 않는 시로쿠의 등을 케이지가 떠밀었다.
"야야, 어머니에게 어리광부리는 건 어린애의 특권이거든? 뭘 주저할 필요가 있어. 얼마 안 가서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된다고. 하지 않고 후회하기보다, 하고 후회하는 쪽이 좋아. 시즛치가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잘 안되면 내가 좋은 곳에 데려가 줄게"
케이지의 말에 시로쿠는 말이 막혔다. 시로쿠의 태도에 기분이 좋아진 케이지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정했으면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얼른 갔다와. 지금이라면 시즛치도 바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하고 케이지는 시로쿠를 억지로 일으켜세워 등을 떠밀어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돌아보자, 케이지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각오를 굳힐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시로쿠는 머뭇거리며 걸어갔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간신히 그 말만 하고, 고민이 해결되어 상쾌한 기분이 든 시로쿠는 기합을 넣고 시즈코의 방으로 갔다.
그 후, 시즈코의 방까지 간 건 좋은데, 중요할 때 말이 나오지 않아 풀이 죽은 채 돌아온 시로쿠를, 케이지가 위로해준다며 홍등가(色街)로 데려가려고 한 것을 아야가 발견하고(見咎め) 벼락을 떨어뜨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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