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2년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
132 1575년 11월 중순
"이번 싸움은 패전이지만, 키묘(奇妙)를 사지(死地)에서 무사히 끌고나오고 피해를 억제한 것으로 상벌을 상쇄하겠다"
제후들이 늘어서 있는 알현실에서 노부나가로부터 받은 말은 질책은 아니었다. 시즈코로서는 패전의 책임을 물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예상외의 조치였다.
"우세이면서 확실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태풍 때문에 군을 흩트렸다. 즉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다. 패전의 책임은 키묘가 지겠으나, 너도 당분한 칩거(蟄居, 폐문(閉門)하고 자택 근신하는 것)를 명한다"
"예, 옛!"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말에서 그 뒤에 숨겨진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노부나가로서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상 시즈코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내린 밀명을 완수한 데다, 대장의 궁지를 구해 생환시킨다는 어려운 사명을 달성했다.
그래서 대외적인 상벌로서 공과(功罪)를 상쇄하고, 실질적으로 공직(公職)에서 해임(免除)하는 칩거를 명했다. 야심가인 가신들에게는 징벌이 되겠지만, 시즈코에게는 포상이 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에 시즈코에게 내려진 칩거의 경우, 오다 가문의 공식 행사에 대한 참가가 금지되고, 또 조정에 출사(出仕)하는 것도 금지된다.
하지만, 시즈코의 후계자가 자라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영주로서의 임무는 시즈코가 수행할 필요가 있다. 오다 가문의 사정과는 별개로 조정으로부터 임명받은 예사(芸事) 보호에 대해서도 차질없이 수행할 의무가 있었다.
실질적인 제한으로는 자기 영토를 나갈 때는 노부나가의 허가가 필요해지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택 근신이 아닌 오와리(尾張) 근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의 실험운용은 포기했지만, 이제 곧 카메라의 현장(実地) 실험이 시작되지. 이것도 예사 보호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면 실제 시험에도 참가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호우류우지(法隆寺), 아니면 토우다이지(東大寺)의 쇼소인(正倉院)일까?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 같은 것도 기록에 남길 의의가 있지! 후훗, 기대되네)
카메라가 실용화되면, 기록을 남긴다는 의미에서는 비약적인 진보가 된다. 시즈코는 어디까지나 문화적인 측면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지만, 사진은 그 순간의 세계를 잘라내어 보존한다.
당연히 노광(露光) 한계 등은 있지만, 자신이 본 그대로의 정보를 '있는 그대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초래하는, 척후나 정찰은 물론이고 관측 등에서도 비약적인 진보를 촉진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후에 알릴 때까지 저택에서 근신하고 있도록. 다음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오명을 씻을 기회를 줄 테니, 비열한 호죠(北条)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라. 그 때까지 영지에서 힘을 축적하고 있도록"
"옛"
노부나가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음 토우고쿠 정벌이 있을 것을 명확히 말했다. 가신들은 시즈코에 대해 동정인지 연민(憐憫)인지 구별되지 않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오명을 씻을 기회라고 하면 듣기엔 좋지만, 많은 희생을 치를 필요가 있는 국면에 서게 되는 것인데, 사명을 다해도 겨우 실점을 만회하는 것 뿐이다.
이래서는 채무를 진 것 같다, 고 가신들은 생각했다. 노부나가가 총애할 터인 시즈코에게조차 이런 엄격한 처분을 내린 것으로 가신들은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가신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明日は我が身)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시즈코는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암중에 휴가를 받아 당분간 정치에 관여할 필요가 없어진데다, 오다 가문은 호죠에 대한 적대 자세를 명확히 했다.
일이 여기에 이른 이상, 호죠 토벌에 대한 신중파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토우고쿠 정벌에 대한 분위기를 키우는 것을 노부나가가 맡아주게 되어, 시즈코는 어깨의 짐이 조금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노부나가에게 깊이 머리를 숙이고 알현실을 나온 후, 시즈코는 어떤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감시역(お目付け役)인 시즈코에게조차 벌이 내려졌는데, 총책임자인 노부타다(信忠)에게는 얼마만큼 엄격한 조치가 내려졌을까?
노부나가는 토우고쿠 정벌을 앞두고 노부타다에게 "신겐(信玄)이 없다 하나 카츠요리(勝頼)는 전쟁의 명수(いくさ巧者). 결코 얕보지 말고 신중하게 임하라"고 말했다.
노부타다는 젊은이면서도 첫 전투를 보기좋게 제압하고, 기세를 타고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조급해하는 부하들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부주의한 장소에 진을 친 결과 태풍을 맞았다.
부하의 고삐를 제대로 쥐지 못했다는 명백한 추태이기에, 노부타가가 질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는 내 잘못도 있어. 그에게 패배를 배우게 한다는 거에 지나치게 고집해서, 그를 보좌하는 입장에 있으면서 보좌를 게을리 해버렸어)
시즈코가 자성하면서 걷고 있을 때 노부타다의 소성(小姓)이 그녀를 불렀다. 들어보니 노부타다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즉석에서 수락하고 소성에게 안내받아 노부타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부타다와의 회견은 성시(城下町)에 건설중인 그의 저택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노부타다의 희망에 따라 시즈코와의 1대 1 대담이 되기에, 사이조(才蔵)나 소성들도 물러나게 하자 실내에는 둘 만이 남았다.
"이거 말야? 아버지에게 힘껏 얻어맞은 흔적이지"
시즈코는 노부타다를 보고 숨을 들이켰다. 왼쪽 눈 아래에서 뺨에 걸쳐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노부타다는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익살스러운 태도로 노부나가에게 맞았다고 이야기했다.
얻어맞은 곳은 크게 부어올라, 왼쪽 눈의 아래쪽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있었기에 시야가 나빠 보였다. 아마 입 안도 터진 듯, 말하면서 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치료해야지! 일단 얼음주머니를 가져오게 할 테니——"
"아니, 이대로 괜찮다. 이건 내가 져야 할 실패의 낙인(烙印)이다. 나이가 많은(年かさ) 수하들이 반발할 것을 두려워하여 위험을 용인한 내 한심함(ふがいなさ)의 증거지"
상처를 치료하려고 한 시즈코를 노부타다가 제지했다. 시즈코는 두 배는 부풀어오른 뺨을 보고 낭패스러워했으나, 노부타다는 별로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노부타다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니 반성도 할 수 있지만, 태풍 속에서 비바람을 피하려고 헤매인 끝에 동사(凍死)한 장병들은 후회조차 할 수 없는 거라고 자조해보였다.
"그건 우리들 장수들 전원이 져야 할——"
"시즈코, 나는 토우고쿠 정벌의 총대장이다. 그곳에 진을 친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나다. 과정이 어찌되었던, 최종적으로 결단한 것이 나인 이상, 모든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패전의 책임은 총대장 뿐만이 아니라 무장들 전원에게 있다고 시즈코는 말하려 했으나, 노부타다가 억지로 말을 막았다.
노부타다는 올바르게 패배를 배웠다.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시즈코의 진력(尽力)에 의해 목숨을 건졌다. 다행히 다음으로 이어지는 기회를 얻었다.
노부타다는 실패를 가슴에 새기고,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내일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고 있었다.
"자포자기했을 줄 알았는데, 기운이 있어보여 안심했어"
"드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감정에 맡겨 자포자기해봤자 내 발목을 잡으려고 노리고 있는 패거리들을 기쁘게 할 뿐이다. 쇠는 뜨거울 때 쳐야 한다. 언제까지나 미적거려서야 부하들을 실망시키게 되어버리지"
"알고 있다면 굳이 간언할 것까지도 없네"
시즈코는 자세를 바로하고 정면에서 노부타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타케다(武田)와 호죠에게 답례는 하겠지?"
"당연하지. 도쿠가와(徳川)를 물어뜯은 보복은 했지만, 오다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에 대해 아직 버릇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이번 일로 뭐든지 내가 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우에스기(上杉) 내부의 친(親) 호죠 파에 대한 대처를 시즈코에게 맡기고 싶다. 시즈코의 밑에는 간첩(間諜)에 능한 자들이 있지 않느냐? 나는 그 동안 타케다와 결판을 내겠다. 그렇게 하면 호죠만 남게 되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포석을 구는 거네. 하지만, 군을 움직이게 되면 주상(上様)의 판단을 아우르지 않으면……"
"문제없다. 아버지에겐 시즈코의 손을 빌리는 것, 타케다에 대한 보복의 개요를 이야기하고 승낙을 받았다. '튼튼한 화살이라고 생각하며 지푸라기에 기댄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그것은 다소 바뀌기는 했으나, 예전에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했던 말이었다. 아마도 노부나가가 뒤에서 손을 써서 노부타다의 귀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리라.
노부타다는 그것을 잘 씹어 자신의 재기에 거는 신념으로서 노부나가에게 이야기해보인 것이다.
노부나가가 그린 그림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이번의 패전에 의해 노부타다가 배운 것은,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첫 패전과 가신들의 면전에서 질책당한다는 좌절을 맛보았음에도 불만을 품지 않고 재기를 향해 최선의 수를 둘 수 있다.
이번의 패전을 거쳐 노부타다는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사내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한다(男子三日会わざれば刮目して見よ, ※역주: 삼국지에 나오는 '괄목상대(刮目相待)'라는 고사성어의 변형(원래는 '사내'가 아니라 '선비')으로 보임)'는 그야말로 이것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다음 토우고쿠 송격에서 시즈코는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을 들려주지 않겠느냐?"
"처음부터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에게 출진을 요청할거야. 그렇게 되면 에치고(越後)에 둥지를 튼 친 호죠 파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지. 타케다와 호죠가 멸망해버리면 그들은 고립되어 파벌을 유지할 수 없게 돼. 그들이 우에스기 가문의 주류가 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될 테니까"
"과연 시즈코로구나. 이번 싸움에서는 친 호죠 파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우리들의 패배로 놈들은 기세가 붙어 있겠지. 거기서 빈틈을 보여주면 간단히 달라붙는다는 계산인가!"
"야심을 버리지 않는 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봉기(蜂起)밖에 없어. 켄신에게는 사전에 부대를 매복시켜놓고 진군하게 해서, 봉기 소식이 전해진 순간 반전해서 매복시킨 부대로 포위하면 일망타진. 그들에게는 성을 침대삼아 전사할 각오 같은 건 없을테니, 일부러 도망칠 길이나 하나 남겨놓으면 고생하지 않고 처치할 수 있을거야"
노부타다는 시즈코의 이야기를 듣고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엿볼 수 없는 것이라, 미래를 예측해도 불확정요소는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좁혀버려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는 시즈코의 전략안은 두렵기까지 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생각하면서 쓰러져 가리라. 결판은 바둑판(盤) 밖에서 이미 났고, 현실은 감상전(感想戦)처럼 진행되어 가는 것이다.
"시즈코도 심보가 고약해졌구나. 그건 아시미츠(足満)의 영향인가?"
"남 들을까 무섭네! 나는 아군의 희생을 조금이라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 뿐이야. 그들에게는 이미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어. 야심 때문에 그것을 뿌리치고 적대하는 길을 선택했으니, 그에 걸맞는 결말은 각오해야 하잖아?"
"친 호죠 파 놈들은 노름판(賭け皿)에 제놈들 목숨이 얹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겠지. 그 때까지는 실컷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난동피우는 손오공처럼 우쭐하게 놔두면 된다"
"헤ー, 서유기(西遊記)에서 인용하다니, 최신 서적도 읽고 있나보네?"
"그래, 아버지는 남만(南蛮)에 눈을 돌리고 계시니, 나는 반대로 당(唐, 외국 전반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명나라(明)를 의미함)에서도 배운다. 나는 언젠가 오다 가문을 이을 몸. 아버지가 걸어가신 발자국을 따라가기만 해서는 의미가 없다. 두고 봐라 시즈코. 나는 반드시 재기하여, 오다 가문에는 노부타다가 있다는 말이 나오게 하겠다!"
주먹을 굳게 쥐며 노부타다는 자신의 결심을 말했다.
노부타다와의 회견을 마친 시즈코는 곧장 자기 영토로 돌아갔다. 칩거 지시도 내려졌으니, 전쟁을 하는 동안 쌓인 일거리 등을 처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운 동안의 일은 아야(彩)를 필두로 하여 고용한 문관들에게 권한을 위임(委譲)했기 때문에 기존의 안건에 대해서는 과부족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규 안건이나 돌발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는 시즈코의 판단을 아우를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서류들은 시즈코의 책상의 문서함에 쌓여서 결재를 기다리게 된다.
물론, 시간상 결재를 기다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문관들의 합의로 결정하던가, 파발마를 보내어 시즈코에게 전달하는 등으로 대응한다.
"으ー음…… 당장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뿐이네"
시즈코의 기반은 농업에 있다. 지금에야 생산에서 가공, 유통까지 포괄하여 운영하는 6차 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나, 물자가 없으면 얘기가 되지 않기에 기점은 1차 산업이 된다.
그리고 농업의 질을 좌우하는 큰 요인에 수리(水利)가 있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이 있듯이, 생명에 직결되는 농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수리권(水利権)은 많은 소동의 원인이 되었다.
시즈코의 경우에는 노부나가가 강권(強権)으로 수리를 파악하여 도시 계획을 입안하고 시즈코에게 농지를 맡겼다.
처음부터 가능한 한 평등한 수리를 부여하는 계획 아래 농지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도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구의 증가나 호농(豪農)들에 의한 농지의 통폐합 결과, 서서히 밸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증가 일로를 걷고 있는 인구를 먹여살리기 위해 농지는 점점 확장되었다.
한없이 넓어지는 농지에 대해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을 만한 체재는 미처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수리를 둘러싸고 농민들끼리 다툰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노부나가가 제정한 법에 의해, 허가를 받지 않고 하천에 손을 대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면, 대관(代官)을 통해 영주인 시즈코에게 수리의 조정을 부탁하는 진정(陳情)을 넣는 것 뿐이었다.
(이 농지에 물을 돌리면 하류 지역(下流域)이 부족할 것은 뻔히 보여. 이건 근본적인(大元) 수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아이치(愛知) 용수(用水)는 아직 진전이 없어. 조정지(調整池)를 준비해서 수량을 늘릴 수밖에 없나…… 조사가 필요하겠네)
저쪽을 손대면 이쪽이 탈이 난다는 상황의 진정서를 바라보며 문관들이 첨부해 놓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끙끙거리며 처리해갔다.
시즈코는 며칠간 달라붙어 서류를 집중해서 모두 처리했다. 귀찮고 섬세한 작업이지만, 수리권을 소홀히 하면 나라의 근간인 '식(食)'이 붕괴해 버린다. 시즈코로서는 결코 대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소우에키(宗易) 님으로 부터인가. 하세가와(長谷川) 님은 시험에 응할 결단을 했구나. 이쪽은 기한을 정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금년 연말까지를 기한으로 삼고 싶다는 요청인가. 그걸로 의욕이 생긴다면 뭐 좋을대로 하게 할까"
승낙하는 내용의 답장을 쓴 후, 시즈코는 처리가 끝난 문서함에 넣었다. 이것은 문관들에게 회수되어, 정식 서한으로서 정리되어 발송되게 된다.
"다음은, 쿄(京)로부터의 보고인가"
쿄에 배치한 간자들로부터의 보고를 정리한 서류를 넘기면서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보통은 마사유키(昌幸)가 확인하여 그의 권한으로 결재하기 때문에 시즈코에게까지 올라오는 서류는 드물다.
뭔가 큰 문제라도 일어났나하고 약간 불안감을 품으며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확실히 이건 자신이 아니라 노부나가에게까지 보고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었다.
(예수회가 갈라졌나……)
보고에 따르면 발단은 쿄에 있는 기독교도들(キリシタン)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며, 간자가 예수회와 거래하는 상회나 유력자들 등의 동향 등을 기초로 뒷조사를 한 결과, 아무래도 진실인 것 같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시즈코와도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오르간티노와, 일본 교구(教区)의 책임자인 카브랄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브랄은 오르간티노가 비단 등을 사용한 화려(華美)한 복장을 착용하고 있어, 청빈(清貧)해야 할 성직자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난했다.
카브랄의 말로는, 오르간티노는 상인들과 결탁, 돈벌이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신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오르간티노는, 전임자인 토레스(Cosme de Torres)가 말했듯이 일본에서 몸단장을 소홀히 해서는 모멸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고국이 아닌 일본에서 몸단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스스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모을 필요가 있으며, 그러기 위한 노력은 포교를 위해 불가결한 행위이고, 자신에게 신벌(神罰)이 내려지지 않는 이상 신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반론했다.
현장에 나서지 않는 카브랄의 눈에는 오르간티노가 상업주의의 주구(走狗)로 전락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건조한 조국과 달리, 습윤(湿潤)한 일본에서는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그에 걸맞는 노력과 돈을 필요로 한다.
자금과 수고를 들여 청결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인물에게 경의를 표한다. 하루종일 실내에 틀어박혀 있는 카브랄과, 포교를 위해 정력적으로 돌아다니는 오르간티노 등 현장의 수도자들은 애초에 필요한 의복의 양부터 다른 것이다.
예수회 내에서의 계급(位階)으로는 카브랄 쪽이 상위였으나, 현장에서 포교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지지는 오르간티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게다가 오르간티노는 천하인(天下人)으로 지목받고 있는 노부나가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제아무리 카브랄이라고 해도 쉽게 손대지 못하고 있었다.
"뭐 카브랄이 부임했을 떄부터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카브랄은 종교가로서는 우수하고 예수회에서도 엘리트이지만, 이상을 고집하는데다 유럽 중심주의자니까. 지금의 일본의 정세 하에서의 포교를 생각하면 오르간티노가 목표로 하는 융화책(融和策)이 바람직한데…… 뭐, 이건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네. 아마도 진주의 수출에 식지(食指)를 꿈틀거린 것이 본국의 높으신 분들의 역린을 건드린 걸까?"
진주는 성경에서도 최고의 보석으로서 등장한다. 관용구로서 유명한 '돼지 목에 진주(豚に真珠)'라는 말도, 성경에 쓰인 '돼지 앞에 진주를 던져서는 안 된다'라는 일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카브랄의 눈에는 일본의 진주 거래를 장악하여 막대한 이익을 낳으려고 하는 오르간티노가 배신자(背信者, ※역주: 원문에 흔히 쓰이는 裏切者가 아닌 背信者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 일반적인 '배신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배교자(背教者)나 이단자라는 느낌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한자 그대로 표기했음)로 보이는 것이리라.
"거래되는 진주가 양식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 카브랄은 홧병으로 죽는 게(憤死) 아닐까?"
묘한 상상을 하며 시즈코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 속을 새롭게 한 후, 시즈코는 보고서를 계속 읽었다.
"예수회의 분열은 기독교도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네"
이번 사건이 아니라도, 카브랄의 포교 방침은 선교사나 일본인 신도들과의 사이에 골을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카브랄의 방침이 갖는 치명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카브랄의 방침에 따르면 기독교야말로 지상(至上)의 가르침이며, 미숙하고 조야(粗野)한 현지의 종교 따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이 시대의 쿄에서는 각 종파에 의한 설법(説法)이 여기저기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은 각자의 종교의 교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 설령 글을 읽고 쓰지 못하더라도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농담같은 신도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의 설법에 얼굴을 내미는 백성들은, 볼품없는 차림새를 하고 있더라도 선교사 뺨치는 지식을 가지고 이론으로 무장하고 있는 경우조차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기존의 종교나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선교사는 공부가 부족하며 머리가 나쁘다라고 간주되어 경멸받았다.
일방적으로 기독교의 미점(美点)만을 계속 늘어놓는 설법으로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아, 카브랄의 방침은 일본의 신자들 뿐만 아니라 포교자인 선교사들로부터도 기피되게 되었다.
구세(救世)를 외치는 종교가 유행하는 배경에는 사회 정세가 불안하다는 요인이 있다. 노부나가에게로 권력이 일점 집중되어 치안이 안정된 쿄에서는 선교사들의 가르침도 썩 와닿지 않는다는 뒷사정도 있었다.
"어설프게 움직이면 바테렌(伴天連) 추방령이 떨어진다는 현실을 카브랄은 이해하고 있는걸까? 지금은 주상께서 포교의 자유를 담보하고 있지만, 포교의 실패(不首尾)를 빌미로 정치에 손을 대면……"
종교가가 정치적인 야심을 품고 신도들의 숫자를 배경으로 권위를 휘두르는 것을 노부나가는 대단히 싫어한다. 혼간지(本願寺)나 엔랴쿠지(延暦寺)도 부처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정치권력을 수중에 넣어 무장했기 떄문에 적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떄문에 노부나가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서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와 무려 11년에 걸친 전쟁을 벌이고, 엔랴쿠지에게도 집요하게 무장 해제를 요구하며 결국 사카모토(坂本)를 불사르기에 이르렀다.
"뭐, 나가사키(長崎)에서의 전례가 있으니 추방령이 떨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겠지"
키나이 지역(近畿圏)에 거점을 둔 기독교도들에게는 큰일이었지만, 시즈코는 필연적인 사상으로서 가볍게 흘려버렸다.
예수회와 시즈코와의 관계성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부나가가 바테렌 추방령을 내리면 시즈코로서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무리하게 감싸거나 할 만한 관계도 아니고, 통치자가 법을 가벼이 여기는 모습을 보이면 언젠가 백성들도 법을 가벼이 여기게 된다. 그것만큼은 통치자가 범해서는 안 될 최대의 금기였다.
"아! 하세가와 님의 건에 대해서는 보충을 해야겠네! 과제에 착수하는 데 부족한 것이 있으면 사양말고 말하라고 첨부해야지"
아까 처리가 끝난 문서함에 넣었던 서신을 꺼내어 여백에 문자를 작게 써넣었다. 조금 예의에 벗어나기는 하나, 격식에 따른 형식이 필요한 상대도 아니고, 의도가 전해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문서함에 되돌려놓았다.
"자자, 어떤 작품이 완성될까"
하세가와 신슌(長谷川信春)의 작품, 지금부터 기대되어 어쩔 줄 모르는 시즈코였다.
"어디어디 우에스기 가문으로부터인가…… 흠, '방어치기(鰤起こし)'에 협력해 주는구나!"
방어치기란 이시카와 현(石川県) 카나자와(金沢) 지방에서 쓰이는 말이다.
호쿠리쿠(北陸)에서는, 11월 중순 무렵부터 12월에 걸쳐 심하게 천둥이 치거나 맹렬하게 바람이 불어닥치는 날이 있어, 그걸 가리켜 '방어치기'라고 부르고 있다.
이 무렵에 동해(日本海)를 회유하고 있는 겨울 방어(寒鰤)가 잡히기 시작하기에, 어부들이 그물을 '친다(起こす)'는 것과 자고 있는 방어를 '깨운다(起こす)'라는 의미를 합쳐 '방어치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회유해오는 방어는 그 몸에 기름이 듬뿍 올라 대단히 맛있다고 한다. 미식의 추구에 여념이 없는 시즈코로서는 당연히 놓칠 수 있을 리 없어, 예전부터 켄신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시즈코가 아는 바다는 태평양(太平洋) 쪽이며, 그 이외에는 비와 호(琵琶湖) 등의 호수에 지나지 않는다. 겨울의 동해의 거친 파도에 대해 경험이 없는 시즈코들이 대항할 수 있을 리 없어, 방어를 잡기 위해서는 켄신의 협력이 불가결했다.
첨언하면, 잡힌 방어를 신선한 상태로 아즈치(安土)나 쿄, 오와리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길을 수호하는 시바타(柴田)의 협력도 필요했다. 시바타는 오다 가문 내부의 인물이라 일찌감치 수락을 받을 수 있었으나, 켄신의 경우에는 한동안 시간을 필요로 하여 이제 겨우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강을 이용해서 한번에 운반하고 싶지만, 보냉용의 얼음을 윤택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도중에 썩어버리겠지…… 계절적으로 호수의 얼음을 잘라내도 괜찮겠지만"
동해 측에서 잡아올린(水揚) 겨울 방어를 멀리 떨어진 아즈치까지 운반하려면 이런저런 절차가 필요해진다.
현대라면 대형의 수조에 넣어서 살아있는 채로 방어를 운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바랄 수도 없다. 그렇게 되면 필요해지는 것은 물고기의 이케지메(活け締め)라고 부르는 기법이 된다.
물고기에 한정되지 않고 많은 동물들은 그 육체를 움직이기 위해 ATP(아데노신 3인산, adenosine triphosphate)라 불리는 물질을 소비한다. ATP는 호흡으로 체내 물질을 소비하는 것으로 생성된다.
온도가 낮은 물 속에서 생활하는 물고기에게 있어 잡혀올려진 후의 상온(常温)의 땅 위는 작열(灼熱)의 지옥이 된다. 이 때문에 물고기는 체내의 aTP가 고갈될 때까지 있는 힘껏 날뛰게 된다.
이렇게 죽은 물고기는 체온 상승으로 자신의 살을 태우고, ATP를 다 소비한 몸은 사후 경직이 발생하며, 몸 안에서 근육이 분해되는 자기소화반응이 시작된다.
참치 등의 거대한 물고기는 이 경향이 현저하여, 미야케(身焼け)라고 부르는 변색을 일으킨 살은 신맛을 띠게 되어 개도 먹지 않는다고 불린 어육(魚肉)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물고기의 선도(鮮度) 저하를 막는 것이 이케지메라고 불리는 기법이다. 잡아올려진 물고기에 대해 그 자리에서 이케지메를 하는 것으로 물고기를 즉사시켜 ATP의 소비를 막음으로서 사후 경직을 늦출 수 있다.
이케지메는 물고기의 척추(脊髄)를 절단하여 뇌로부터의 신경 신호를 차단함으로서 물고기를 즉사시킨다. 하지만, 그래도 근육은 반사(反射)에 의해 움직이므로, 철사(針金) 같은 가늘고 긴 금속을 사용해 연수(延髄)를 파내어 연수와 함게 신경을 긁어내 버린다.
이것과 병행하여, 상온이 되는 순간 잡균의 번식이 시작되어 비린내의 원천이 되는 혈액을 몸 밖으로 방출시켜 선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가리켜 이케지메라고 부른다.
이러한 처리를 함으로서 물고기의 선도를 장기간에 걸쳐 유지할 수 있어, 냉장환경 하에서 천천히 자기소화를 촉진시켜, 근육을 분해하여 이노신산(inosinic acid)으로 변화시키는 숙성 등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물고기의 처리는 화학이네"
이케지메를 함으로서 조리 시간에서 역산(逆算)하여 방어의 유통을 계획할 필요가 있어, 그에 맞춰 얼음이나 톱밥 등을 준비할 양을 정하게 된다.
이케지메 뿐만이 아니라, 잡아올린 직후에 아가미와 내장을 떼어내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것은 바닷물에서 산소를 취하는 아가미에는 다양한 잡균이 달라붙어 있어 부패나 악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내장은 기생충의 온상으로, 물고기가 죽으면 내장은 가장 먼저 부패하기 시작한다. 이 때, 기생충은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내장을 벗어나 근육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어, 내장을 제거하는 데는 선도를 유지하면서 기생충 리스크를 회피한다는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다양한 수고를 거쳐 겨우 노부나가의 입으로 들어가는 방어가 된다.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수고를 들이는 것은 노부나가가 겨울의 풍물시(風物詩)로서 방어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한 것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태평양 측에서 잡힌 방어를 먹었던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겨울 방어라면 더 지방이 올라서 맛있고, 이케지메를 하면 선도를 유지한 채로 오와리까지 운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것에 기인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노부나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겨울 방어를 맛볼 수 있게 하라고 시즈코에게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식사에 고집하지 않고 물에 만 밥(湯漬け)으로 만족하셨던 주상이 그립네……"
사정을 아는 사람이 들으면 "네가 원인이잖아!"라고 큰 소리로 지적당할 불평은 겨울의 밤하늘로 빨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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