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4 1576년 6월 상순



벌레 울음소리조차 끊긴 밤중. 시즈코는 손등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차가움에 눈을 떴다.

시즈코는 가신들에게 협력을 부탁한 이래, 두 마리와 같은 헛간에 침구를 들여와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뭔가 달랐다.

실내를 비추는 달빛에 의지해 주위를 확인하니, 비트만과 바르티의 침상이 비어 있었다.

애초에 채광용의 창문(突き出し窓)이 닫혀 있었기에 달빛이 비추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광원(光源)을 따라가보니, 역시 헛간의 입구가 열어젖혀진 상태였고, 거기서 푸른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람을 느낀 손등을 달빛으로 향해보니, 약간 젖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마리가 이별의 인사를 하고 간 것이리라.


"드디어 가버리는구나……"


이 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어버린 침상을 직접 눈으로 보니 쓸쓸함이 가슴에 치밀어올랐다.

볼을 흐르는 뜨거운 것을 느끼고, 시즈코는 자신이 눈물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거칠게 소매로 눈물을 닦았지만, 끊임없이 넘처흐르는 눈물은 멈춰주지 않았다.

이제 그들과의 이별(別離)은 피할 수 없으나, 전송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거라고 그녀는 몸을 일으켜 달려나갔다.

초여름이라고는 하나 밤의 공기는 차갑다. 시즈코가 달빛의 세계로 뛰쳐나가자, 옆에서 그녀에게 상의를 걸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시미츠(足満) 아저씨…… 어째서 여기에?"


"그런 얇은 옷으로는 감기 걸린다. 뭐, 두 마음 먹는 법 없이 널 섬겨준 충신들이 길을 떠나는 것(門出)이다. 전송하는 사람이 있어도 벌은 안 받겠지. 게다가 우리들 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아시미츠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자, 본채(母屋)의 툇마루(縁側)에 케이지(慶次)와 카네츠구(兼続)의 모습이 보였고, 더 안쪽에는 시로쿠(四六)도 있는 듯 했다.

시즈코가 아시미츠와 함께 저택의 정문까지 가자, 평소에는 닫혀 있는 문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최소한의 등불(燈明)만 켜놓고 좌우에 시립하고 있었다.

말없이 인사를 하는 문지기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두 사람은 문 밖으로 걸어나갔다. 달빛만이 어둠을 비추는 가운데, 두 마리의 늑대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서서히 작아지는 뒷모습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달려나가 버릴 듯한 자신을 억누르느라 필사적이었다.


"웃으면서 보내주거라 시즈코. 금생(今生)의 이별이기는 하나, 저 녀석들은 멋지게 맡은 바 책무를 해낸 것이다. 늙고 추레해져 볼썽사나운 시체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들의 긍지를 인정해주는 것이 주인이 할 일이다"


넘치는 눈물과 미쳐 날뛰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즈코는 자신의 양 뺨을 힘껏 손바닥으로 때렸다. 정숙이 지배하는 창백한 세계에서 박수를 치는 듯한 소리가 성대하게 울려퍼졌으나, 아픔 덕분인지 눈물도 멎고 각오가 섰다.


"고마워요, 아시미츠 아저씨. 우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전송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뿐이니까요"


비탄에 잠겨 울며 전송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헌신과 충의에 감사를 표하고, 언젠가 자신도 갈 곳으로의 출발을 웃는 얼굴로 전송하는 것만이 주인으로서 마지막 할 일이리라.

그렇게 시즈코가 각오를 굳히고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실로 많은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산으로 떠나가는 두 마리를 전송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불요불급(不急不要)의 야간 외출이 금지된 백성들은, 각자의 집에서 현관문 앞에 앉아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두 마리의 모습을 전송하고 있었다.

백성들에게도 시즈코의 곁에 붙어서 백성들에게 좋은 영주인 그녀를 지키는 늑대들은, 언제부터인가 짐승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되어 있었다.


"비트만, 바르티. 너희들의 삶을 인정하고, 감사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어. 나는 너희들의 주인이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해"


모두에게 전송받으며 멀어져가는 그림자는, 열려진 상태인 산으로 이어지는 외문(外門)을 지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팽팽해졌던 실이 끊어진 듯, 그 자리에 주저않은 시즈코에게 밤의 정숙을 찢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아오오오오ー옹"


시력은 쇠퇴했으나, 그들의 민감한 후각은 전송하러 나와 있던 시즈코의 존재를 느낀 것이리라.

이별을 아쉬워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준 주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쥐어짜 마지막 인사를 보낸 것이다.

단 한 번의 울음소리였으나, 시즈코는 그래도 비트만과 바르티와의 사이에 확실히 존재했던 인연(絆)의 증거를 느꼈다.

이별의 의식은 끝난 것이다.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리는 끊기고, 두 마리는 어둠 속에 솟아 있는 산 속으로 사라져갔다.



본채의 툇마루에서는 케이지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수다스러운(饒舌) 케이지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다만 달을 올려다보면 잔을 비워갔다.

그의 왼쪽에는 카네츠구가 앉아, 마찬가지로 평온한 표정으로 술을 핥듯이 마시고 있었다. 동석하고 있는 시로쿠는, 두 사람과 달리 진정되지 않는 모습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요?"


시로쿠가 결심하고 케이지에게 물었다. 시로쿠의 질문은, 비트만과 바르티가 헛간에서 떠나는 것을 그냥 말없이 전송한 것에 대해서이다.

툇마루에서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전송하고 있는 케이지는, 그 뒷모습에 대고 "잘 가라(達者でな)"고만 말하고, 카네츠구는 "언젠가 우리도 갈 거다. 또 보자"고 말하고 잔을 비웠다.

어른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혼란을 일으킨 시로쿠였으나, 두 마리가 모습을 감추는 의미를 들었던 그는, 떠나가는 그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게 전부였다. 케이지와 카네츠구는 떠나가는 두 마리에 대해 시즈코에게 알리지조차 않고, 다만 툇마루에서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시로쿠에게는 그게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어,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를 진정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이미 각오를 굳혔다. 쓸데없는 도움은 녀석들의 각오에 먹칠을 하는 게 되지. 믿고 보내주는 게 예의라는 거다"


"그렇지. 그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했소. 뜻밖의 이별이 아닌, 각오한 이별이오. 동정이나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인 실례가 되겠지"


방치(neglect)를 당하며 성장하고, 시즈코 저택에서의 두터운 대우에 의해 인간다움 감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시로쿠로서는,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신뢰하는 케이지의 적요(寂寥)함을 띤 눈을 보자, 그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시로쿠의 모습을 두 명의 어른은 다만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세상은 항상 부조리에 가득 차 있다. 그것과 어떻게 마주하고 타협해 가는지야말로 성장이 된다.

그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시로쿠의 갈등을 비웃지 않고, 또 아는 척 하며 대답을 떠넘기지도 않고, 그가 소화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로쿠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역시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논리가 아니라 '느낌으로' 납득하는 종륲의 것이겠지요. 저로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어찌어찌 그렇게만 말한 시로쿠에 대해, 케이지는 술을 조금만 따른 잔을 내밀었다.


"모른다는 게 지금의 네 해답인거야. 해답이라는 건 쌓여나가면서 바뀌는 거지. 지금의 너는 모르더라도, 미래의 너는 다른 해답을 찾을지도 몰라. 단지 녀석들은 축축한 이별을 바라지 않을테니, 이걸 마시고 저 녀석들을 보내줘"


"……내일은 학교를 쉬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에 대비해 단 것을 준비해 두지요"


"엉?"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 시로쿠가 숙취 때문에 학교를 쉴 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나, 단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괴이쩍어하는 두 사람에게 시로쿠가 말했다.


"어머니(義母上)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숙취를 피하고 싶으면, 당분과 수분을 보급해 두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이라고"


술에 포함된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오면, 곳곳에서 흡수된 알코올의 대부분을 간장(肝臓)이 분해한다.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으나, 알코올의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에 의해 당신생(糖新生, 포도당의 생산)이 억제되어 버린다.

즉, 알코올을 많이 섭취하면 자연스럽게 저혈당 상태가 되어, 외부에서 당분을 섭취하도록 뇌가 명령을 내려 공복을 느끼게 된다.

술을 마신 후의 '마무리'로서 라멘이 인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탄수화물인 면(麺)보다도, 분해흡수가 빠른 단것이 적합하기 때문에, 포도당이 주성분인 라무네 과자 등은 최적의 해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러한 욕구를 무시하고 당분 보급을 게을리하면, 기상시에 혈당치가 저하되어 있기에 두통이나 권태감 등의 숙취 증상이 나타난다.


오해가 없도록 말해두자면, 음주 후에 대량의 당분을 보급했다고 해도 음주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주량이나 개인의 알코올 분해능력에 따라 숙취를 확실히 회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하물며 '해장술(迎え酒)'이라면서 숙취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술을 마시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왜냐하면 술에 포함된 당분에 의해 일시적으로 증상은 개선되지만, 그 알코올을 분해하기 위해 추가로 대량의 당이나 수분이 소비되기 때문에, 나중에 더 심각한 증상을 불러오게 된다.

음주 후에 단 것을 먹는 것은, 숙취를 예방하기 위한 효과가 비교적 높은 것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몸에 맞는 주량을 알고 적당히 즐기는 것이다.


"물론, 확실히 숙취가 없어진다는 보장은 없고, 어디까지나 예방책이라고 합니다"


"아아! 과연, 그래서 시즛치의 연회에서는 도중에 물을 마시게 하거나 마지막에 단 것이 나오거나 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연회 도중에 과자를 내는 건 어렵기에, 티가 나지 않도록 당분을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요리를 내거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거 참 고마운 배려로군. 그런 체면(体面)까지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가능한 것은 역시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어"


"그렇네요"


시로쿠는 케이지가 시즈코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자기 일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아직도 쑥스러워서 말로는 못 하고 있지만, 시로쿠는 시즈코를 어머니로서 경애하고 있으며, 또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우츠와(器)는 이른 단계에서 시즈코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주위는 생각하고 있으나, 유년기를 함께 보낸 시로쿠만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우츠와 나름의 처세술이라는 것을. 상대에게 노골적인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자신에게 적대감을 보이지 않게' 한다는 슬픈 처세술이다.

우츠와가 놓인 환경에서는, 상대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조차 악의(害意)로 돌려받은 경위가 있어, 새로운 환경 아래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우츠와의 몇 안되는 자위수단이었다.

그런 우츠와조차 지금은 진심으로 시즈코를 어머니로서 경애하고 있다. 세상에서 단절되었던 경위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浮世離れ) 성격까지는 바꿀 수가 없지만, 시즈코는 그것조차 이해하며 받아들여주고 있다.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우츠와보다 훨씬 증상이 심한(重篤) 사람들을 알고 있기에, 조금 엉뚱(突飛)한 행동을 하는 아이구나 하는 정도라며 신경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츠와에게는, 지금까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따돌림당하거나 학대받았던 것을 떠올리면 시즈코는 우츠와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의 비호자(庇護者)을 자임(自任)하고 있는 시로쿠에게도 얻기 힘든 이해자였다.


"시로쿠 님은 꽤나 시즈코 님을 경애하고 계시군"


"그렇군요. 어머니께는 감사드리고 있고, 진심으로 존경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께서 슬퍼하시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소를 지어주시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머니께서 납득하신 이별에 개입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것인지, 평소에는 마음 속에 감춰좋은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왔다.


"분명히 어머니와 늑대들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수 없는 연(絆)이 있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조금 부럽기도 하군요. 저희들은 아직 그만한 관계를 구축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선인(先人)이 쌓아올린 결과니까 어쩔 수 없지요. 다만 당신들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미래에 어떠한 관계가 될 것인지는 두 분에게 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요로쿠(与六) 님. 그렇군요, 그들이 빠진 빈 공간을 저희들이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건 아니다, 시로쿠"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하며 시로쿠가 말한 내용을 케이지가 부정했다. 생각지 못했던 반론에 케이지 쪽으로 눈을 돌리자, 케이지는 평소와 달리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대신이 될 필요는 없는거야. 누구도 저 녀석들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해선 안 되지. 너는 네 방식으로 시즛치를 뒷받침해 주는 거다. 그리고 그것은 먼 '언젠가'가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야. 여기에 있으면 잊어버리기 십상인데, 이 세상은 아직 난세(乱世)다.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거라고는 누구도 보증 같은 건 할 수 없으니까 말야"


"그렇지요. 케이지 님의 말대로, 오늘을 힘껏 산 사람에게만 내일은 미소짓는 겁니다. 매일을 힘껏 살고 있으면, 막상 최후를 맞이할 때도 웃으며 갈 수 있겠지요"


그것은 무사(いくさ人)다운 생사관(死生観)을 가진 대사였다. 케이지도 카네츠구도 난세의 거친 파도를 뚫고 살아온 몸, 언제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명심해 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케이지는 시로쿠의 '비트만들을 대신'하여 '언젠가 그 자리를 대신하자'라는 생각을 부정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후회는 항상 나중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아직 어리광이 다 빠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만연(漫然)하게 내일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떨구는 시로쿠를 보고, 케이지는 그 가느다란 어깨를 꽉 잡으며 히죽 웃어 보였다.


"뭐, 이건 마음가짐의 이야기야. 아니 뭐, 우리들도 완벽하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다만,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마음(心意気)과, 후회하지 않기 위한 각오라는 거지"


케이지가 그렇게 말하고 미소짓자, 시로쿠의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슥 하고 빠졌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고지식한 시로쿠에게는 좀 과도한 독려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케이지는 자신이 시로쿠 또래였을 때 대체 뭘 했었던가 하고 떠올려보면 도저히 설교 같은 걸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미래가 있는 젊은이가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아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도 모르게 참견해버리는 것도 선배(先達)의 예상사라는 것이리라.

그것을 귀찮게 생각하지도 않고 올곧게 받아들이고 있는 시로쿠에게 케이지는 호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조금 부럽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먼저 쉬겠다며 떠나가는 시로쿠를 전송하며, 케이지와 카네츠구는 다음 대의 오와리(尾張)에 대해 상상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비트만과 바르티의 걸음은 언제 멈추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소 회복되기는 했으나, 서로 몸을 지탱하며 달빛이 비추는 산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두 마리의 체력은 이미 다하여,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몸이 휴식을 요구하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저앉아버리면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두 마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일생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든 첫 만남(出会い)을 가져온 장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이윽고 산길의 중턱 정도에 있는, 아무 특별한 점도 없는 조금 트인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전에 비트만이 바르티를 데리고 돌아왔을 때, 무법자들에게 시즈코가 습격받았던 장소였다.

시즈코의 궁지를 구하고, 바르티와 함께 진정한 의미에서 시즈코의 가족이 된 장소. 두 마리는 이곳을 자신들이 죽을 장소로 정하고 있었다.

두 마리는 어느 쪽이 먼저랄 것도 없이 다리가 꺾어져 쓰러졌다. 비트만이 산기슭 쪽으로 눈을 돌리자, 어둠 속에 오도카니 빛나는 점이 있었다.

저 빛이 있는 곳에 시즈코가 있다. 그곳을 바라보면서 최후를 맞이할 수 있는 이 땅은, 두 마리에게 최고의 침상이었다.

비트만도 바르티도,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대해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또, 그 생애의 대부분을 지낸 이 땅에 비하면 아무런 애착도 없었다.

두 마리는 서로 털을 골라준 후, 최후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


명백하게 산꼭대기 쪽에서 두 마리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두 마리의 마음에 직접 울려퍼지는 무언가였다.

비트만과 바르티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 천천히 일어섰다. 신기하게도 이미 다했다고 생각된 활력이 가득 차 있어, 지금까지보다도 더 굳건한 발걸음으로 산꼭대기를 향했다.

두 마리는 자신들이 산을 향한 것처럼, 산이 자신들을 불러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망설임없이 곧장 산꼭대기로 걸음을 옮겼다.

비트만과 바르티가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때마침 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빼꼼 드러내며, 빛의 기둥이 천지를 잇듯이 산꼭대기의 한 구석을 비추었다.

두 마리는 자신들을 맑게 비추는 달을 향해 힘껏 포효했다. 그 힘찬 포효는, 멀리 산기슭의 시즈코에게까지 들렸으리라.



후세에 '오오카미(大神, ※역주: 한자가 일본어로 '늑대'의 한자와 음이 같음) 신사(神社)'의 기원(縁起)은 이렇게 적혀 있다.

전국시대의 총아(申し子), 아야노코우지 시즈코(綾小路静子)를 돕기 위해 하늘은 두 마리의 거대한 늑대를 보냈다. 그 모습은 눈처럼 희고 빛나는 듯한 털을 가진, 곰조차 능가하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전화(戦火)가 끊이지 않는 일본을 우려한 하늘이, 난세의 마왕(魔王)인 '오다 노부나가'에게 그녀를 보냈다. 시즈코라는 여걸(女傑)은, 키가 6척을 넘는 늠름한 체구를 자랑하며, 신산귀모(神算鬼謀)로 노부나가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비할 바 없는 신력(剛力無双)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그 무서운 두뇌로 전국시대 최강을 구가했던 타케다(武田)를 쳐부쉈다. 또, 늑대에 타고 전쟁터를 달리며, 스스로 선봉에 서서 적을 분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녀들도 노부나가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지자 그 역할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갈 때가 왔다. 그녀와 두 마리의 신의 사자(神使)들은, 산꼭대기에 도착하자 달에게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하늘을 가르고 빛의 기둥이 땅으로 뻗어내려와, 산꼭대기와 하늘은 빛의 기둥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빛에 이끌리듯, 한 사람과 두 마리는 하늘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녀와 두 마리의 늑대의 공적을 기려, 노부나가는 산꼭대기에 '오오카미 신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시즈코가 실제로 이걸 봤다면 웃음을 터뜨렸을 기원이지만, 이것은 후세 사람들이 산과 신사의 권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야기를 이것저것 계속 갖다붙인 결과였다.

애초에 오오카미 신사의 제신(祭神)이 된 비트만은 회색 늑대였고, 바르티도 같은 종류일 것이다. 빛나는 듯한 순백의 털 같은 것은 가지고 있었을 리가 없고, 아무래도 곰과 비교하면 꽤나 작다.

게다가 전국 시대의 세상에서는 큰 여자(大女)의 부류였다고는 하나, 시즈코는 체구가 작았고 비할 바 없는 신력과는 거리가 멀다.

나가요시(長可)를 필두로 한 부하들이 저지른 사건이 어째서인지 시즈코의 짓으로 전해진 결과, 그녀는 고릴라가 이럴까 싶은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曰く), 맨손으로 갑주를 입은 무사를 때려죽였다로 시작하여, 길 아닌 길을 늑대에 타고 달려가서, 하룻밤에 오와리에서 쿄(京)에 도착했다는 황당무계한 것까지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그런 후세의 사람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길이 불편한 산속의, 그것도 산꼭대기라는 외딴 위치에 있음에도 오오카미 신사는 대단히 북적였다.

시즈코의 신산귀모의 덕을 입으려는 학업성취(学業成就)를 필두로, 가내안전(家内安全), 액막이(厄年厄祓い), 사업안전(事業安全), 장사번성(商売繁盛), 사업번성(事業繁盛), 수험필승(受験必勝), 무병무탈(無病息災), 질병쾌유(病気平癒), 출산안전(出産安産), 신체건강(身体健康), 교통안전(交通安全), 소원성취(心願成就), 재난해결(諸災消除) 등 온갖 것들(八方除)에 효험이 있다고 믿어졌다.

다만, 시즈코가 평생 독신으로 지냈기에, 결연(縁結び)만큼은 이 신사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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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