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5 1576년 6월 상순



비트만과 바르티, 두 마리의 부보(訃報)는 노부나가에게도 즉시 전해졌다.


"그래, 갔는가"


보고를 다 들은 노부나가는 그 한 마디만 중얼거리고, 그 날의 예정을 전부 중지하도록 지시를 내린 후, 누구도 들이지 말라고 엄명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매사를 예정대로 처리하고 싶어하는 노부나가로서는 이례적인 직무태만이지만, 도저히 그걸 지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노부나가가 풍기는 분위기가 갑자기 잘 갈린 칼날처럼 예리해져, 자칫 말실수를 했다간 베여죽을 것이 예상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노부나가가 나간 후에도, 남겨진 소성(小姓)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굳은 상태였고, 원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꽤나 일찍 돌아오셨군요"


노부나가가 자기 방으로 이어지는 맹장지를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붉은 융단(緋毛氈) 위에 우아하게 앉아서, 붉게 칠해진 술병(銚子)에서 잔으로 술을 따르고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부나가의 정실(正室)인 노히메(濃姫)였다.

노부나가는 본래 오와리(尾張)에 있어야 할 노히메가, 아즈치(安土)에 있는 저택(屋敷)의 자기 방에 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녀가 신출귀몰한 것은 늘 있는 일이라며 일찌감치 따져묻기를 포기했다.

노부나가는 불쾌한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노히메가 내민 잔을 받아들더니 단숨에 비웠다.


"이거이거, 주군답지 않게 드시는군요. 무어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사옵니까?"


"다 알고 왔으면서 뻔뻔하구나!"


노부나가는 노히메에게 거칠게 술병을 뺏어들고는 잔에 콸콸 술을 부어서 노히메에게 내밀었다. 노히메는 생긋 웃더니, 잔을 받아들어 마찬가지로 단숨에 비웠다.


"그래서, 너는 시즈코와 함께 있는 게 아니었느냐?"


"호홋. 자기 일 때문에 벅차할 때 윗사람이 있어서는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지요. 다행히 시즈코를 떠받쳐줄 사람은 짚이는 바가 있기에, 전언을 남기고 이쪽으로 와서 소첩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했나이다"


"……무어라 말했느냐"


마음의 기미(機微)를 교묘하게 조종하는 노히메가 남긴 말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노부나가가 물었다.


"당분간 네 일에만 신경쓰거라. 뒷일은 내가 잘 돌봐줄 터이니, 푹 쉬도록. 사례는 저번의 '초코렛케이크'면 되느니라 라고 했지요"


"후……. 그 녀석이 부담가지지 않도록 구체적인 사례까지 요구하다니. 너도 꽤나 시즈코에게는 무른 것 같구나"


"주군만 하실까요. 게다가 딴 마음 먹지 않고 그만큼 헌신해주는 신하가 달리 어디 있사옵니까?"


"확실히 그렇군. 그럼 시즈코는 네게 맡기겠다. 나는 내가 할 일이 생겼다"


"어머나, 그래서는 소첩이 청을 드리러 온 의미가 없사옵니다.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의 마음(我が侭)도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옵니까?"


"흥! 어차피 나는 여심(女心) 따윈 모른다. 마음대로 말해보거라"


깔깔 웃으면서 노히메가 말하자,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찡그린 표정으로 일어나려던 동작을 멈추고 다시 주저앉았다.

말없이 노부나가가 내민 잔에, 노히메는 술병에서 술을 따르며 시즈코를 위해 노부나가가 수고해줬으면 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노부나가는 끼어들지 않고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술잔의 술을 다시 한번에 비웠다.


"거 참 번거롭군. 하지만 네가 말한다면 그것이 시즈코를 위한 것이겠지. 뜻대로 해라. 나는 영주(国人)로서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버렸다. 갑자기 인기척이 사라진 방 안에서, 노히메는 작게 중얼거렸다.


"참 요령 없으신 분이라니까"



비트만과 바르티가 시즈코의 곁을 떠난 밤이 지나고, 시즈코는 예정대로 산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을 폐쇄했다.

산은 옛부터, 신(神)과 동일시되었기에 사람의 섭리가 통하지 않는 땅이며, 늙은 짐승은 그 몸을 젊은 짐승에게 내맡기는 것으로 생명이 이어져간다.

그것은 유구한 옛날부터 반복되어 온 자연의 이치이자 법칙이었다. 그것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하다못해 그 모습을 사람들 눈에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가족인 시즈코의 바람이었다.

시즈코가 폐산 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것도, 그만한 시간이 있으면 그들의 유해는 백골화될 거라 예측하고, 그것을 회수하여 장사지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농담은 하지 말아줘"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시즈코는 봉서(封書)의 내용을 다 읽자, 어깨를 떨구면서 말했다. 시즈코의 부탁으로 함께 내용을 확인했던 아야(彩)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시즈코의 말에 대답했다.

시즈코가 농담인가 하고 의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조서(詔書)라고 하는, 천황(帝)의 명령을 전달하는 공문서였기 때문이다.

내용은 시즈코가 금족령(禁足令)을 내린 산을 신체산(神体山, 신이 깃들었다고 하는 산)으로 정한다는 것이었다.


"조서라는 건 작성 절차가 복잡한데다, 폐하(帝)는 물론이고 공경(公卿, ※역주: 조정에서 벼슬을 하는 3품 이상의 고관)들 전원의 승인이 필요한 거 아니었던가?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잖아…… 언제부터 정해졌던 거지?"


조서란 문자 그대로 조(詔, みことのり, 천황의 명령)을 전하는 서류이다. 즉, 국가에 큰 일이 있을때 공포(発布)되는 중요 서류이며, 격식이나 절차가 중시되는 즉위(即位)나 개원(改元, ※역주: 연호를 바꾸는 것) 등 의례적일 때 사용된다.

시즈코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시작한 것에 대해 공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근대 일본사에서 가장 유명한 조서가 쇼와(昭和) 천황(天皇)(※역주: 히로히토 일왕)이 내렸던 '대동아 전쟁(大東亜戦争) 종결(終結)의 조서'로, 소위 말하는 옥음방송(玉音放送)의 원고가 된 것이다. (※역주: '대동아 전쟁'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가리켜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의도가 담긴 명칭이긴 하나, 여기서는 작가가 해당 전쟁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쓴 게 아니고 그냥 해당 문서의 명칭의 일부이기에 원문대로 대동아 전쟁이라고 옮김)

현대에서도 국회의 소집이나 중의원(衆議院) 해산, 참의원(参議院)의 통상선거(通常選挙) 등이 있을 때 발행된다고 하면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상(喪)이 끝난 1년 후에 건립 예정인 신사에 대해서도, 시텐노우지(四天王寺)에서 콘고우구미(金剛組, ※역주: 시텐노우지 건설에 관여했던,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가 파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이름높은 번장(番匠, 현대에서 말하는 궁전목수(宮大工))들이 자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석공(石工)으로 유명한 아노우슈(穴太衆)는 언제라도 달려올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잠깐, 잠깐! 뭔가 점점 일이 커지는 거 아니야? 나는 작은 신사(社)를 세워서 그 아이들을 기리려고 했을 뿐인데……"


시즈코의 말에 아야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시즈코의 자기 평가가 낮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보게 되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시즈코는 아무리 큰 일을 해내더라도 항상 대신할 사람이 있는 일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이 근저(根底)에 깔려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시즈코의 대역을 해낼 수 있는 인물 따위 있을 리가 없다.

즉, 시즈코의 동향은 항상 유력자들의 이목을 끌어들이게 된다. 그런 시즈코가 모든 공직에서 벗어나 일 개인으로서 긴 휴가를 가진다라는 정보를 입수하면 어떻게 될까?

숙적(宿敵)으로 간주되었던 혼간지(本願寺)와의 결판이 난 직후의 일인만큼, 이상한 상상을 하는 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 때 노부나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시즈코를 위해서 번장들을 모집했기에 이번의 소동으로 발전되었다.


"폐하나 조정(朝廷)의 의향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번장에 대해서는 예상되는 바가 있습니다"


"어!? 무슨 얘기야?"


"시즈코 님, 당신꼐서 지금까지 베풀어오신 은혜가 되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으ー음, 원한을 살 만한 기억은 꽤 많지만, 은혜갚음을 받을 건 그렇게 없는 것 같은데……"


도무지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듯 아야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도 시즈코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라, 결국 말로 하기로 했다.


"자각이 없으시다는 것도 문제군요. 시즈코 님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난세에서 다른 곳까지 원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드문 일인지 이해해 주십시오. 당신께서는 기술의 보호나 계승을 목적으로 손을 내미셨겠지만, 건강이 나빠진 번장을 받아들이거나 자금원조를 제안하거나 한다는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란 말입니다. 자기 팔다리를 자르는 심정으로 동료를 저버려야 했던 그들이,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된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ー, 목수(大工) 일에 사고는 항상 따르는 거니까, 그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건 사용자 측의 태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야. 나한테 은의(恩義)를 느껴줄 거라면 그걸 다른 사람한테 돌려줬으면 좋겠네. 분명히 은혜돌림(恩送り, ※역주: 우리말로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임의로 의역함, 영어로는 pay it forward라고 하는 듯)이라고 하지? 다만, 그런 거라면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으니, 이번에는 고맙게 받기로 할까"


"그러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부처(仏)의 가르침에 '현정유수(懸情流水) 수은각석(受恩刻石) (정을 베푼 일은 물에 흘려보내고(※역주: 잊어버리라는 뜻), 받은 은혜는 돌에 새겨서 잊지 말라는 뜻)'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시즈코 님께서 물에 흘려보내신 은혜가, 돌고 돌아 되돌아왔다고 생각하시고, 그들의 은혜갚음을 받아들여 주십시오"


"은혜갚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는게 두렵지만, 이번에는 솔직히 도움이 되네. 아무래도 역사적인 신사를 건립하는 기술은 우리들은 가질 수 없으니까"


"이것도 하늘의 뜻(配剤)이겠지요. 시즈코 님께 고난이 찾아오면, 그것을 돕겠다는 제안(申し出)이 있는 것이니까요. 당신께서 지금까지 타인에게 베풀어오신 공덕(功徳)을 하늘이 지켜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잘못된 길을 가시려 한다면,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신하의 의무입니다"


"……고마워"


평소답지 않게 마음을 담아 말하는 아야를 앞두고, 시즈코는 간지러움을 느끼면서도 감사를 표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시즈코는, 머리를 흔들어 혼란스러움을 진정시켰다.

조서의 건에 대해서는 조정이 선의만으로 움직일 리도 없기에, 뭔가 꿍꿍이속(下心)이 있는 것이리라.

그래도 한 번 공포된 조서가 취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그에 의한 영향을 제어하는 것이 위정자의 책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생활의 일부를 산에 의존하고 있는 백성들이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 하지만, 전례가 없는 일인만큼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솔직히, 신체산이 되는 걸로 어떤 영향이 나올지는 예측이 되지 않아. 다만, 좋던 나쁘던 혼란을 틈타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은 나올테니, 평소 이상으로 주의해야해"


"네, 알겠습니다. 저희들의 힘에 부칠 것 같으면, 주상(上様)의 힘도 빌릴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괜한 걱정이라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말야. 게다가 이 세상에 있는 비극이라는 건, 악의에서 비롯되는 것보다 선의에서 비롯되는 쪽이 많지. 비트만과 바르티의 상을 치르는 동안 정도는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했는데……"


"시즈코 님께서는 지금까지 지위에도 재산에도 명예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으셨으니, 처음 보는 빈틈 때문에 기가 산 것이겠죠. 그러한 무례한 놈(慮外もの)들에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니 뭐, 적극적으로 적대하지 않아도 돼. 다만 주의는 하자"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함께 주의하자며 말을 마무리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녀들의 걱정은 기우(杞憂)가 되었다.

조정으로부터의 간섭에 대해서는,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조서를 막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철저하게 손을 써서 이후의 움직임을 모조리 봉쇄했다.

사키히사와는 대조적으로 노부나가는 정면에서 공가(公家)들을 규탄했다. 몸을 바쳐 섬겨준 신하의 공을 기려 휴양을 주었는데 거기에 소동의 씨앗을 가져온다는 것은 오다 가문에 대한 도전이냐고 물은 것이다.

한 쪽은 무가(武家)의 정점이 되어가고 있는 노부나가와, 칸파쿠(関白)라는 공가의 정점인 사키히사에게 양쪽에서 끼이게 되자,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버린 것을 깨달은 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시즈코로서는 거창한 의식 같은 건 치를 생각도 없었으나, 공포되어버린 조서의 영향은 어떻게 할 수 없어, 비트만과 바르티를 산의 진수신(鎮守神)으로 삼는 지진제(地鎮祭)가 치러지게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지진제라고 되어 있으나, 그 내실은 장례(葬儀)와 장송(葬送)도 겸하고 있었다. 본래는 한식구끼리 조용히 치를 생각이었기에, 이렇게까지 큰 일이 되는 것은 예상밖이었다.

조정으로서는 산꼭대기에서 의식을 치를 생각이었으나, 시즈코가 금족(禁足)을 완강하게 굽히지 않았고, 또 그녀의 후견인 두 사람이 그것을 지지했기에 산기슭에서 개최하게 되었다.

참석자들도 쟁쟁한 인물들 투성이였고, 그러한 권위를 신경쓰지 않는 카부키모노(傾奇者)인 케이지(慶次)나, 방약무인(傍若無人)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나가요시(長可)조차, 시즈코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사람들은 모여 있으니까 용서해 주겠지?)


산꼭대기를 향해 시즈코는 눈을 감고 비트만과 바르티가 자신들을 지켜봐주기를 기도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천황의 위신에 관련되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천황의 대리인으로서 칸파쿠인 의부 사키히사를 필두로, 그의 파벌에 속하는 공가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또, 야마시나 토키츠네(山科言経) 등의 문인(文人)들도 참가했다.

토키츠네는 이 날의 사건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누구도 이름조차 모르는 산을 영산(霊峰)으로 삼는 제사(祭事)이지만, 시종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오와리 사람들은 모두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며,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참가자의 면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놀랍게도 혼간지(本願寺)로부터도 대리인(名代)이 참석했다. 아직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사자를 보내고, 또 그것을 받아들인 오와리 측의 도량넓음에는 놀랐다. 실컷 호된 꼴을 당한 상대조차 경의를 표하게 할 정도의 인물이란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목격한 시즈코의 모습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것은, 다분히 허를 찔렸기 때문일까.

그 이외에도 이 날의 일을 기록한 문인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지진제 그 자체보다도, 그 후에 열린 음복 잔치(直会)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다.


오다 가문에서는 노부나가, 노부타다(信忠), 노부타카(信孝) 세 명이 참석하고, 노히메나 오이치(お市) 등은 참가를 삼갔다.

노히메는 시즈코가 요란하게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어, 조금이라도 부담이 가벼워지도록 뒷바라지(裏方) 전반에 대한 협력을 자원해주었다.

그녀의 조력 덕분에 다소의 여유를 가지고 제사에 임하고 있는 시즈코는,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노부타다에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노부타카는 다른 누구에게 붙잡혔는지 이 자리에는 없었다.

담담히 고개를 숙이는 시즈코에 대해, 노부나가는 그녀에게 몸을 일으키게 하더니 어린애에게 하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일에 시즈코가 놀라 눈을 크게 떴으나, 노부나가는 상냥한 눈빛으로 "너는 잘했다"고만 말하고 가버렸다.

노부타다도 노부나가를 따라 걸어갔으나, 시즈코와 엇갈릴 때 그녀의 어깨를 두 번 가볍게 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가능한 그 나름의 최대의 위로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졌으나 눈물을 닦고 그들을 전송했다.


애초부터 정형화된 절차가 정해져 있는 지진제인 만큼 그다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종료되자, 연회에 해당하는 음복 잔치로 이행되었다.

음복 잔치란 신주(神酒)로 건배하고, 공양 음식(お供え物)을 다 같이 먹는 것을 말한다.

생각지 못하게 큰 일이 되어버렸으나, 그곳은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오와리의 산물이 어디 한번 보라는 듯 제공되어, 누구나 본 적도 없는 요리나 술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즈코의 식구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제사(祭事)라서, 술이 들어가버리니 엄숙한 분위기 따윈 날아가버리고 대단히 시끌벅적해져갔다.

기분이 처지고 있던 시즈코에게 이런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고마웠다.


"시즈코 님, 소승(拙僧)도 약간 설교 흉내를 내도록 하죠"


대구(鱈)의 카레튀김과 야채볶음 큰 접시를 혼자서 비운 카레이교자(華嶺行者)가, 회장 구석에서 혼자 서 있는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명백히 괴이한 풍모를 하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않고, 시즈코 자신도 눈 앞에 올 때까지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카레이교자는 시즈코가 진정하길 기다려, 결코 큰 목소리는 아닌데 신기하게도 뚜렷하게 귀에 남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시즈코 님께서는, 당신 곁을 떠난 두 마리에 대해 충분한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고 후회하고 계시겠죠.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라는 것입니다.아무리 만전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후회는 남을테고, 신불(神仏)이 아닌 당신께서 아무리 손을 써도 완벽(十全)한 배려 같은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레이교자의 말은 결코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마음에 스르르 스며들어왔다.

시즈코보다도 훨씬 많은 삶과 죽음을 전송해온 사람이 도달한 경지에서 나오는 말은, 시즈코의 후회를 오만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을 조금 가볍게 해주기도 했다.


"죽음이란 종언(終焉)이 아닙니다. 가족인 두 마리가 빠진 일상의 시작이며, 남겨진 사람은 각자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떠나간 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좋겠지요. 하지만 그것에 붙잡혀서는 안 됩니다"


"……"


"이러한 신사(神事)를 열지 않아도, 산으로 돌아간 그들은 우리들을 지켜봐 주겠지요. 오다 님께서 부르짖는 천하포무(天下布武). 대단한 생각입니다만 산들이 볼 때는 그조차도 찰나(刹那)의 꿈. 설령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 스러지더라도 산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주겠지요. 당신께서는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셔서(気負い過ぎ), 거꾸로 당신 자신이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겠지요. 바로 잊어버리시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당신을 지금 뒷받침해주는 사람들을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조금 기분이 편해졌어요"


"이거 참, 땡중(生臭坊主)이 주제넘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지금을 소홀히 하신다면, 두 마리도 안심하고 잠들 수 없음을 잊지 마시길"


그렇게 당부를 하며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카레이교자는 인파 속으로 되돌아갔다. 아까까지의 아득히 먼 곳을 바라모는 듯한 투명한 눈빛은 사라지고, 강렬하게 식욕을 자극하는 카레 전골의 냄새에 흔들흔들 이끌려가는 모습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그 너무나 큰 낙차(落差)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공복감을 떠올렸다. 그 때까지는 손을 대려고도 하지 않았던 요리에 젓가락을 뻗어 입에 넣고 씹자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비트만과 바르티의 헌신에 의해 시즈코는 이 전국의 세상에서 삶을 이었다. 그들의 주인으로서 시즈코가 해야 할 책무란, 비탄에 잠기는 일이 아니라 그들이 남겨준 생명을 다음 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자식인 카이저나 쾨니히 등은 동족의 자손을 남기지 않았으나, 울프독이라는 형태로 그 피를 남기고 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것이 끊겨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이해했다.


"달이 예쁘네"


음복 잔치라 칭한 연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으나, 서서히 그 규모는 작아지고 있었다. 잠들어버린 사람이나 취해 쓰러진 사람들은 그때그때 아시미츠(足満) 등이 밖으로 실어내가고 있었기에, 회장에 남아있는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급사(給仕)나 정리를 하고 있는 몸종(小間使い)이나 허드렛일꾼(下働き)들에게 뒤를 맡기고 시즈코는 음복 잔치 자리에서 나왔다.

이미 날은 완전히 저물어서, 하늘에는 현대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맑은 달의 모습이 보였다.


"슬슬 자야지.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노부나가도 노부타다도 결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시즈코는 그들이 자신의 복귀를 바라고 있는 것을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다.

시즈코는 그것에 대해서는 박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충분한 시간을 받았고, 개인적인 감정과 영주로서, 또 노부나가의 신하로서 수행해야 할 책무는 별도이다.

게다가 이걸로 그들(※역주: 비트만과 바르티)과 결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즈코의 인생은 지금부터도 계속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한, 때때로 그들을 그리워할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부터 큰 일이 되려나"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독백했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통해 많은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었으나,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천성의 감에 의해 그것을 감지한 노부나가는 자복(雌伏)의 시간을 끝내고, 웅비(雄飛)의 때를 맞이한 것을 천하에 알리려 할 것이다.


"주상께서는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신 걸까? 아무래도 지나치게 우쭐한 생각일까"


자조기미로 중얼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녀의 생각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이제부터 단번에 공세에 나선다. 그러기 위해서도 자군의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는 시즈코의 존재가 필요불가결했다.

그녀가 만전의 상태를 되찾을 때 까지는 싸움을 시작(戦端を開く)할 수는 없다고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그녀가 전선(戦線)에 복귀하면 노부타나와 시즈코의 제 2차 토우고쿠(東国) 정벌(征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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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 1576년 5월 하순  (8) 2020.06.13
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