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3 1576년 6월 상순



때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 5월 중순 무렵. 폐렴이라고 생각되는 증상으로 요양하고 있던 비트만의 용태(容体)는, 시즈코의 헌신적인 간호 덕도 있었는지 회복을 보였다.

위험한 상태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병에 의해 잃어버린 채력은 노령의 비트만에게는 쉽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자고 있는 시간 쪽이 길어져 버렸구나……"


시즈코는 잠들어 있는 비트만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체온이 생명을 느끼게 해주는 반면, 표면에 탄력이 없어지고 얄팍해진 피부를 통해 뼈의 존재가 느껴져버리는 것이다.

예전(在りし日)의 비트만은, 설령 자고 있어도 시즈코가 다가가면 발소리에 반응하여 벌떡 일어나 달려왔는데, 이미 그러한 활력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시즈코로서도 이대로 자게 해주고 싶었으나, 마음을 독하게 먹고 비트만의 몸을 흔들어서 그를 깨웠다. 이대로 계속 자게 해버리면, 다리가 쇠약해져버려서 두 번 다시 걷지 못하게 된다고 미츠오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의식을 되찾은 비트만은 눈이 아니라 냄새로 시즈코를 느끼고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갓 태어난 어린 사슴처럼 떨리는 발로 일어서더니 그녀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천천히 해. 천천히 해도 돼"


조금 나아가다 쉬는 것을 반복하면서, 헛간에서 나와 부근을 산책했다. 예전에는 단번에 질주할 수 있었던 거리가 묘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비트만의 재활은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최후를 깨달은 비트만이, 빈번하게 산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을 장소를 산으로 정한 것이리라. 시즈코로서는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봄에서 여름 사이라는, 신록(新緑)이 싹을 틔우고 매일 그 성장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생명력 넘치는 계절인데 반해, 시즈코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늙은 존재가 떠나가고 새로운 생명이 대두(台頭)한다는 것은 자연에서의 세대교체의 섭리이지만, 오만(我侭)이라는 소리를 듣더라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늘도 더워지겠네. 슬슬 돌아갈까?"


사반각(四半刻,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거기서 휴식과 수분보급을 한 후에 같은 시간을 들여서 돌아갔다.

이 일련의 산책이 시즈코와 비트만의 일과에 더해진 이래, 서서히 비트만의 신체 기능은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유별난 거구를 자랑하고 있던 비트만이었기에, 자신의 골격이 갖는 중량이 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명백했다.

짧은 산책을 마친 비트만 이 이후, 하루의 대부분을 자면서 보내게 된다. 그에 따라 비트만이 수면중에 실례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변의(便意)를 컨트롤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그가 늙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시즈코는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시즈코는 비트만이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정기적인 청소를 빼먹지 않게 배려하고 있다.


"힘냈구나. 수고했어"


그렇게 말을 걸면서 시즈코는 비트만의 털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시즈코는 비트만의 침상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웅크리는 바르티를 바라보았다.

비트만의 짝인 바르티도, 비트만과의 접촉이 가장 길었던 때문인지, 조금 늦게 같은 증상이 발병한 것이다.

비트만보다 체력이 있었던 점이나, 집단감염을 의심하여 정기적으로 관찰했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우보다 빠른 조기 발견과 조기 대응으로 이어졌다.

바르티의 용태는 비트만에 비해 훨씬 경증이었지만, 그래도 체력의 소모와 쇠약은 피할 수 없어, 이렇게 같은 헛간에서 지내게 하고 있다.

비트만과 바르티는, 시즈코를 초기부터 뒷받침해준 가족이다. 그 두 마리 모두 죽음의 기척이 다가오고 있는 것에 시즈코는 공포를 느꼈다.

시즈코는 바르티 곁에 쭈그려앉아 그녀의 몸에 손을 대려 했으나, 결국 손대지 못하고 힘없이 손을 내렸다.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만지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바르티의 노화를 알게 되는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미안해"


사과의 말을 하면서, 알려고 할 용기를 갖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을 통감하고 있었다.



인물에 대한 평가라는 것은, 평가하는 쪽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 영토의 영민들이나 부하들에게 경애받고 있는 시즈코도, 반대로 오다 가문에 적대하는 쪽에서 볼 때는 원적(怨敵)이 된다.

그리고 노부나가나 시즈코가 추진하는 경제 정책에 의해 세력을 늘리는 사람이 있으면, 당연히 그만큼 몰락(凋落)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것은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그 뒤에서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경제의 본질이기에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원칙이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자는 도태된다는 적자생존의 원칙이지만, 패자의 입장에 몰린 자들은 왕왕 변화를 탄생시킨 사람에게 원한을 품는다.

그러한 자들이 볼 때 시즈코는 질서의 파괴자이며, 원적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타도해야 할 폭군으로 비친다. 만인의 호의를 받는 것 따위 불가능하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시즈코도 각오하고 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 그것은 내심의 자유로 끝나는 범주에 머물러 있는 경우로 제한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 순간, 그것은 처벌의 대상이 된다.


"잠깐 실례. 좋아, 다들 모여 있군. 죽어라"


어떤 키친야(木賃宿)에 묵고 있던 낭인(牢人) 한 명을, 나가요시(長可)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후려갈겼다. 낭인들에게는 침입자(闖入者)인 나가요시는, 마치 인사라도 하는 듯한 가벼운 느낌으로 쇠몽둥이(金棒)를 휘둘렀다.

낭인들이 나가요시를 적이라고 인식하기 전에, 첫번째 낭인의 경추(頸椎)를 부수고 바닥에 박힌 쇠몽둥이가 다시 들어올려져, 두번째 낭인의 머리통을 석류(柘榴)처럼 터뜨려버렸다.

실내에 4명이 있던 낭인들 중 두 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참살되자, 그제서야 남은 두 사람이 각자의 무기를 쥐었다. 그러나, 칼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은 한 명 뿐으로, 다른 한 명은 일어서기 전에 나가요시가 치켜올린 기세대로 집어던진 쇠몽둥이에 복부를 관통당하여 벽에 못박혔다.


"네, 네놈! 어디서 온 놈이냐!?"


마지막 한 명이 뽑아든 칼을 겨누며 외쳤으나, 기세좋게 파고든 나가요시는 강철로 된 토시(篭手)를 휘둘러 낭인의 칼을 쥔 손을 후려갈겼다.

그 결과, 꽉 잡은 칼자루와 토시 사이에 낀 낭인의 손가락이 박살났고, 떨어뜨린 칼을 나가요시에게 빼앗겨 버렸다.


"상대가 맨손이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라도 한거냐? 이런 대량 생산된 싸구려로 날 베려고 하다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낭인이 박살난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격통으로 절규하려고 입을 연 순간, 어느 틈에 등 뒤로 돌아가 있던 나가요시가 밧줄로 된 재갈(猿轡)을 물렸다.


"소란 피우지 마라. 내키지는 않지만, 네게 물어볼 게 있는 사람이 있거든.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그 이외에는 무슨 짓을 하던 죽인다"


명백히 기분이 나쁜 모습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나가요시가 낭인에게 말했다. 격통과 죽음의 공포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면서도, 낭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세로저었다.

확연히 순종적으로 변한 낭인을 재미없다는 듯 바라보면서, 나가요시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병사들은 낭인을 밧줄로 묶고, 허리에 묶은 밧줄(腰縄)을 잡고 어딘가로 연행해갔다. 실내에 남은 것은 말할 수 없는 세 구의 시체와, 그것들의 생산자인 나가요시 뿐이었다.

나가요시가 벽메 못박힌 낭인에게서 쇠몽둥이를 빼내려고 하자, 시체의 품에서 방수를 위한 것인지 기름종이로 싸인 물체가 미끄러 떨어졌다.

나가요시가 거칠게 기름종이를 찢자, 안에서 네 번 접힌 큰 종이가 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강철 토시를 벗고 내용을 확인하자, 그것은 연판장(連判状)이었다.

연판장이란 목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서약의 증거로서 이름을 적은 것이며, 배신을 방지하기 위한 담보이기도 했다.


"제길! 이놈이 주모자였냐. 어ー이! 이놈도 가져가줘"


중요 서류인 연판장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 낭인이야말로 습격부대의 리더이며, 그들을 고용한 흑막과 이어지는 인물이었다.

연판장에 흑막의 이름이 있을 것을 바라면서도, 나가요시는 짜증 때문에 행동이 조잡해진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나가요시의 기량이라면, 처음 두 사람은 그렇다치고 남은 두 사람은 생포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결과는 보는 대로. 거칠게 날뛰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죽일 필요가 없는 자까지 죽여버렸다.


"칫! 짜증나는구만"


나가요시의 짜증은 시즈코에 기인하고 있었다. 시즈코와의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즉, 시즈코의 곤경에 대해 자신을 의지해주지 않는 것과, 실제로 아무 힘도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짜증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즈코가 약해져 있을 때야말로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이런 걸로밖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나가요시가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불평은,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라졌다.



나가요시가 자신의 무력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에게 청가를 낸 후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던 시즈코에게서 호출을 받았다.

입으로는 갑작스런 호출에 대한 불평을 말하면서도, 나가요시는 발걸음도 경쾌하게 시즈코 저택으로 향했다. 도중에 케이지(慶次)와 합류하여, 그와 잡담을 나누면서 객실(座敷)로 들어갔다.

지정된 시간보다 일렀음에도 불구하고, 시즈코를 제외한 전원이 모여 있었다. 평소라면 시즈코 자신이 가장 먼저 방에 들어와 모두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기에, 뭔가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시즈코가 도착한 것은 예정 시각의 직전이었다. 모두에게 늦은 것을 사과하며 상좌(上座)에 앉는 시즈코의 안색은 확연하게 나빴고, 곁에 평소에는 동석하지 않는 아야(彩)와 쇼우(蕭)를 대동하고 있는 것이 모두의 불안을 부채질했다.

초췌해진 모습의 시즈코에게 아시미츠(足満)가 가장 먼저 말을 걸었지만, "괜찮아요"라고밖에 대답하지 않았기에 그 이상은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요. 오늘은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어서 모이게 했어요. 이것은 공인(公人)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私人)으로서의 부탁이니 거부해도 상관없어요. 다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으니 여러분의 힘을 빌려줬으면 해요"


"섭섭한 소리 하지 마라. 네가 바라는 것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해결해 주겠다. 얼른 원하는 걸 말해라"


시즈코의 서두(前口上)에 대해 아시미츠가 대답했다. 그의 말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총의(総意)이기도 했다.

난폭하게 들리기도 하는 아시미츠의 말에 뒷받침된 요령 부족한 상냥함에 시즈코는 약간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것은 비트만이 자신이 죽을 곳으로 정했을 산을 금족지(禁足地, 역주: ※출입금지 지역)로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비트만은 시즈코의 곁을 떠나 산으로 돌아간다.

비트만의 마지막(終) 거처(棲家)이며 묘비(墓標)가 되기도 하는 산을 어지럽혀지고 싶지 않다는 것 뿐인, 완전한 시즈코의 개인적 감정에 발단한 이기적 행동(我が侭)이다.

물론, 산이라는 것은 부근 주민들에게 있어 공유재산이며, 살아갈 양식을 내려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다. 영원히 금족지로 하는 것 따위 가능할 리도 없으니, 기한을 정할 필요가 있다.

시즈코는 그 기간을 비트만이 자신의 곁을 떠난 후, 그 유해가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시간으로서 1년으로 정했다.

금지가 해제된 후에는 산을 개방하지만, 산꼭대기에 늑대를 모시는 신사(神社)를 건립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듣자, 모여든 사람들은 시즈코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었다.

산이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은혜는 막대하지만, 1년 동안으로 한정해버리면 시즈코의 사재로 충분히 벌충할 수 있다.

그럼 어째서 시즈코가 그러지 않는지는 명백하다. 권력자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해 공유재산을 독점하여 모두에게 불편을 강요하게 되면, 금지가 해제된 후에 건립되는 신사나 산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상황은 생활의 보상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고, 기득권익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전례가 없는 일인만큼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대비하거나 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영주와 영민은 부모자식 관계에 빗대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시즈코가 하려고 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의 밥그릇에서 밥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리를 밀어붙여 이치를 억누르기 위한 무력도 필요해진다.


"뭐야, 나한테 딱 맞는 일이잖아! 좀 더 빨리 말하라고"


가장 먼저 나가요시가 가볍게 말했다. 자신의 이기적 발상으로 모두에게 궂은 역할을 떠넘긴다고 속을 썩이고 있던 시즈코는, 희희낙낙하며 수락하는 나가요시에게 놀랐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거야. 너는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하기만 하면 돼. 그걸 해결하는 게 우리들의 일이야"


"그렇군, 카츠조(勝蔵)가 웬일로 좋은 말을 하는데"


"어이! 웬일이라니 무슨 뜻이야"


사이조(才蔵)의 지적에 나가요시가 반론했으나, 사이조는 괴이쩍다는 듯 그를 마주보았다.


"자신의 평소의 행실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텐데……"


"모르니까 묻고 있는 거야!"


"자각조차 없었던 거냐……"


한숨을 쉬는 사이조를 보고 나가요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로 모르겠다는 나가요시의 모습에 주위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카츠조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은 시즈코 님이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입니다"


"시즈코 님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저희들의 명예가 되겠지요"


"맞아맞아, 시즛치는 좀 더 우리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라고"


"케이지의 말대로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너를 위해서라면, 우리들은 힘을 아끼지 않는다"


모두의 따뜻한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시즈코였으나,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모두의 마음 씀씀이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럼 다시 여러분에게 부탁할게요. 내 가족인 비트만이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내 이기적인 생각으로 그 산을 1년간 폐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처리하기 위해 여러분의 힘을 빌려 주세요"


시즈코는 꾸밈없는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고 힘을 빌려달라고 청했다.

그에 대한 모두의 대답은, 모인 사람 숫자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들의 표정에는 드디어 시즈코가 자신들을 의지해준 것에 대한 기쁨조차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시즈코에게 받은 은혜를 갚을 때라고 모두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에 시즈코에게서 맡겨지는 임무라면, 어느 정도의 절차나 작업순서 등이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적인 의뢰였기에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시즈코에게 여유가 없다는 것도 이유였으나, 이번에 한해서는 목적만을 이야기하고 다 떠넘기는 방식이라는 쪽이 유리했다. 왜냐하면 평범하게 작업을 진행할 때는 지침이 되는 절차가,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약간 거추장스러워지기 떄문이다.


"이제부터, 시즈코 님에 대한 접촉(取り次ぎ) 의뢰는 전부 '주상(上様)'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쇼우는 아야와 상담한 끝에 노부나가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상황이 좋지 않은(弱っている) 시즈코에게 접촉해보고자 선물이나 면회를 핑계로 찾아오는 어중이떠중이(有象無象)를 차단해 줄 것을 청했다.

윗사람을 창구로 삼는다는, 보통의 경우라면 무례한 청이지만, 노부나가는 이것을 쾌히 수락한데다 접촉을 바랬던 자들의 명단을 요구했다.

시즈코의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그녀에게 접촉하려고 하는 패거리들의 신분도 높아졌다. 아무리 쇼우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딸이라고 해도, 어차피 아무 권한도 갖지 못한 소녀이며, 상대의 체면을 뭉개지 않도록 정중하게 거절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참, 나는 시즈코가 마음 편하게 휴양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모두에게 말했을텐데, 일부러 녀석의 영지까지 밀고 들어가서 면회를 요청하려 한 패거리들이 있는 모양이다"


급거 노부나가로부터 호출을 받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제후들을 앞에 두고, 그는 쇼우에게서 받은 서류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며 잡담이라도 하는 듯 입을 열었다.

노부나가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을 때보다도 조용히 규탄해올 때가 무섭다. 아마도 손에 들고 있는 서류에 의해 증거를 확보했으나, 지금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내 결정을 따르지 못하겠다면 누구든 처단하겠다'라는 무언의 압력이 자리를 묵직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설마' 여기에 모인 모두들 중에 그러한 어리석은 자는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부하들이 멋대로 행동할지도 모르는 것이니 다시 한번 명하겠다. 휴양중인 시즈코에 대한 간섭은 용납하지 않겠다. 설령 수하가 멋대로 한 일이라도 연좌하여 처벌할테니 명심하라"


노부나가의 선언은 오다 영토 내에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문에 쿄의 공가(公家)들이나 호상(豪商)들도 부르르 떨었고, 영주(国人)들도 부하들을 단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이야기는 노부나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 아시미츠(足満) 등 세 사람에 의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어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불 속의 밤을 주우려고 해도, 자신이 타죽을 정도의 폭염에 팔을 집어넣을 수 있을만큼 배짱좋은 자는 없다.

그들의 진력(尽力) 덕분에 시즈코 저택은 오랜만에 고요함이 가득하게 되어, 고용인(家人)들이 완벽(十全)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


"폐산(閉山)에 따른 영향을 서류상으로 확인하는 것과 병행하여, 현지에 사람을 파견하여 수치로서 보고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영향을 조사합니다"


시즈코의 금고지기인 아야는, 과거분의 납세 기록을 검토하여 보상에 필요한 예산의 대략적인 수치를 산출하고 있었다.

그것과 병행하여 현지의 주민들이 평소에 산나물 채집이나 불쏘시개용의 마른 잎사귀 등을 모으는 것 등의, 서류상으로는 나오지 않는 영향을 조사하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시책의 경우, 포고(発布) 전의 절차가 중요해진다.

아무리 불이익을 입은 만큼 보전해준다고 말해도, 유력자의 구두약속만으로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르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현지의 유력자인 명주(名主, ※역주: 촌장 같은 것)나 책임자(取りまとめ役) 등을 통해 설득하게 했다.

그래도 납득하지 않는 말썽꾼(跳ねっ返り)들에 대해서는, 무력이라는 알기 쉬운 공통언어로 설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민들은 시즈코에게 호의적이어서 적극적으로 협력 의사를 표시해왔다. 게다가 나가요시의 악명이 나쁜 의미에서 떨쳐지고 있었기에,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려는 바보도 없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영향 범위를 좁힐 수 있겠네요"


"실시 전의 단계'에서는' 말이죠.실제로 금족령(禁足令)이 포고되면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거라고 예상됩니다. 일단 의식주 및 의료에 관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거에요. 괜한 걱정이었다면 그걸로 좋은 겁니다. 실제로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가능한 한 대책을 세우죠"


"네!"


아야가 진두에 서서 조사한 바로는, 그 산에서 가장 큰 재원이 되고 있는 것은 임업(林業)이며, 그 다음이 사냥꾼들이 조수(鳥獣)를 사냥하는 것에 의해 생산되는 피혁이나 깃털, 짐승고기 등의 자원이었다.

다행히 산을 통과하는 도로는 존재하지 않아 유통이 방해되는 일은 없을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휴업보상에 관한 비용 뿐이며, 그밖에도 필요해지는 비용이 있다.

그것은 산의 출입을 금지하면, 당연히 산 속은 사람 눈이 미치지 않게 되므로, 세상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불량배(ならず者)들의 절호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치안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산의 출입을 감시하는 시설과 그러기 위한 인원을 수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생할 수 있는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할 조치를 강구하면서 예산안을 좁혀갔다.



모두를 호출했던 날 이후로, 시즈코는 하루의 대부분은 비트만이 지내는 헛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아야나 쇼우 및 케이지들은 누구 하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시즈코가 마음 편히 비트만들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그들의 성과였기 때문이다.


"하늘이 파랗네"


맑게 갠 오후(昼下がり, ※역주: 정오를 조금 지난 무렵), 툇마루(縁側)에서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은 끝도 없이 푸르게 개어 있었다. 눈을 감으면 초여름 특유의 풀내음을 머금은 바람이 볼을 간지럽혔다.

본채(本邸)에서 떨어진 위치에 있는 헛간 부근은 결코 불쾌하지는 않은 정숙함으로 가득했다. 시즈코는 비트만, 바르티와 함께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위치로부터 자신을 경호해주는 병사들의 존재가 있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 이 정숙은 지켜지고 있었다.

본심을 말하면, 자신과 늑대들만 있게 해줬으면 하지만, 그것을 바라기에는 시즈코는 지나치게 중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늙은 늑대들과 보내는 나날은 자유로웠던 옛날을 떠올려버려, 향수(郷愁)에 마음이 괴로워지고 있었다.


"아아, 또 쓸데없는(益体もない) 생각을 해버리네…… 어떻게 해도 너희들이 건강했던 때를 생각하게 돼……"


시즈코의 뇌리에는 있을 수 없는 가정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모든 중책을 내던지고 일 개인이 된 시즈코와 건강하게 뛰어다니는 늑대들이 있었다.

아무리 망상을 하더라도 지나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쌓아올린 소중한 것들을 내던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가상의 세계로 의식이 향하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애도(哀惜)의 시간(刻)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껴버리기 때문이리라.


(하루가 짦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또 하루가 지나가버려)


정신이 들자 해질무렵이 되어 있어, 차가워진 공기를 타고 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비트만들 곁에서 지내는 무위(無為)한 나날들이, 시즈코의 정신을 점차 진정시켜주었다.

체관(諦観)과는 다른,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시즈코는 점차 도달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항상 바쁘게 달려왔었네. 이렇게 느긋한 시간은 얼마만일까?)


전국의 세상으로 흘러들어온 이래, 항상 비트만은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지지해주었는지 깨달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개'를 키우세요. 아이가 갓난아이일 때 아이의 좋은 '보호자'가 될 겁니다. 아이가 유년기 때, 아이의 좋은 '놀이 상대'가 될 겁니다. 아이가 소년기일 때, 아이의 좋은 '이해자'가 될 겁니다. 그리고 아이가 청년이 되었을 때, 자신의 죽음으로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 줄 겁니다"


예전에 친구가 가르쳐준 영국의 격언(諺)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는 절묘하구나라는 정도의 감상밖에 없었으나, 이제와서는 그 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 했다.


"그래도, 비트만과 만나서 다행이었어"


비트만과 바르티가 자고 있는 헛간에서 석양을 보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그 날'이 언제가 될 지는 몰랐지만, 시즈코는 지금이라면 그들을 보내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날'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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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