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42 1576년 5월 하순



노부나가들이 떠들썩한 꽃구경(花見) 주연(酒宴)을 열고 있을 때, 이시야마(石山) 혼간지(本願寺)에서는 대조적으로 버려진 폐허 같은 고요하고 쓸쓸한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혼간지 내부에서는 라이렌(頼廉)이 이끄는 온건파가 주류가 되고, 쿄뇨(教如)처럼 철저 항전을 부르짖는 강경파는 세력을 잃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조직이 더욱 과격하고 급진적이 되는 것이 예상사이며, 예외가 되지 않고 쿄뇨 등 강경파도 무장해제에 응하지 않고 산 속의 승방(僧房)을 점거하고 틀어박혔다.

또, 어느 쪽의 세력에도 속하지 않는 승려들은, 휴대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이미 포위가 풀린 혼간지에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본 신도들도 혼간지의 말로를 깨닫고, 가라앉는 배에서 쥐가 도망치듯 앞다투어 흩어졌다.

무장 해제에 응했다고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환경이었던 혼간지 안에는 다양한 물자가 비축되어 있어, 신도들은 내친 김이라고 말하듯 냄비나 솥 같은 생활 잡화까지 가지고 가버렸다.

예전에는 각 산문 앞에 산처럼 쌓여 있던 무구(武具) 종류는 오다 군이 가져가 버렸기에, 신도들이 손에 넣을 수 있던 돈이 될만한 물건이 제한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 보고를 받은 라이렌은 "그런가"라고만 중얼거렸을 뿐, 뭔가 조치를 취하려 하지는 않았다.


"법주(法主)님"


라이렌은 켄뇨(顕如)가 유폐되어 있는 감옥 앞에 서 있었다. 현재의 혼간지 대표는 라이렌이며, 법주의 자리에서 쫓겨난 켄뇨는 일개 승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라이렌에게 법주란 켄뇨 밖에 없다. 오다 가문과 교섭하기 위해서는 혼간지 대표가 될 수 밖에 없었기에 켄뇨를 유폐시킨 후에도, 라이렌 자신이 법주라 칭하는 일은 없었다.


"법주님"


땅거미가 지려고 하는데 등불조차 켜지 않는 감옥의 주인을 향해 라이렌이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라이렌은 대답이 없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변명을 하더라도 혼간지에게 있어 자신은 배신자에 지나지 않는다.

켄뇨가 완강하게 대화를 거부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대답이 없어도 이렇게 매일 찾아와서 그날그날의 보고를 어둠을 향해 계속하고 있었다.


"법주님, 오다와의 강화(和睦)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강화에 의해, 우리들은 오다의 관리 아래 놓이게 되며, 그 증거로서 이곳 혼간지를 내줄 것입니다"


노부나가와의 강화에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 그것이 일향종(一向宗)의 총본산(総本山)인 이시야마 혼간지의 포기였다.

이시야마 혼간지는 일본 각지에 흩어진 혼간지 문도들에 있어 신앙의 거점(拠り所)이며,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와 햇수로 10년 이상에 걸쳐 싸울 수 있었던 요새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노부나가가 강화를 맺는 최저 조건으로서 혼간지로부터의 퇴거를 요구할 것은 확실했다. 뒤집어 말하면, 혼간지만 제압하고 있다면, 각지에서 잇코잇키(一向一揆)가 발발하더라도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전비(戦費)을 보충하기 위해 다양한 조건을 들이대겠지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신도'들은 사이카슈(雑賀衆)가 받아주기로 하였습니다"


라이렌은 예전부터 켄뇨가 신경쓰고 있던 신도들의 금후(今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단 신도들은 처벌을 받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수를 썼으나, 상층부의 지도자들에 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라이렌은 노부나가와의 밀약에 의해, 혼간지 문도에 대해서는 혼간지 퇴거 후에도 신앙(信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언질을 받았다.

노부나가가 혼간지에 금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무력을 가지는 것의 금지,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개입 금지이다.

노부나가에게 종교란 생활의 규범이자 정신을 기댈 곳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부처의 위광을 빌려 신도들의 미래를 제어(舵取り)하려는 것 따위 불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언가 움직임이 있다면, 다시 오겠습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켄뇨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라이렌에게 그것은 매번 있는 일이었기에, 감옥을 향해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라이렌이 떠나가고 얼마 후, 어둠 속에 잠긴 감옥 안에서 오뇌(懊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라이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육친의 정을 끊지 못하겠다. 내가 좀 더 일찍 쿄뇨를 처단했더라면……"


그 이상의 말이 흘러나오지는 않았고, 감옥은 다시 고요함에 휩싸였다.




한편, 하리마(播磨)에서는 히데요시(秀吉)가 고전하고 있었다. 하리마란, 오늘날의 효고(兵庫) 현(県)의 남서부에 해당한다. 영내에 히메지(姫路) 항구 등의 큰 항구를 가지고 있기에 항만도시를 중심으로 경제가 발달되어 있어, 그 때문에 많은 세력들이 서로 이권을 둘러싸고 다투게 된다.

카마쿠라(鎌倉) 시대부터 조정이나 무가(武家), 불가(仏家) 등이 식지(食指)을 뻗친 것으로 전란에 휘말려, 그 때문에 중앙 정권에 대해 강한 반골정신을 품기에 이르렀다.

개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아카마츠씨(赤松氏) 였다. 그들은 일본 역사상 조정이나 막부(幕府) 등의 체제에 가장 반항한 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1333년, 후에 아시카가(足利) 막부를 열고 쇼군(将軍)이 되는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가 쿄(京)를 공격했을 때, 카마쿠라 막부의 중요 거점이었던 로쿠하라 탄다이(波羅探題)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때 하리마 영주들을 이끌고 큰 공을 세운 것이 아카마츠씨 제 4대 당주인 아카마츠 노리무라(赤松則村, 후에 출가하여 법명을 엔신(円心)이라 했다)였다.

그 후, 켄무(建武) 정권으로부터 냉대받았기에(정쟁(政争)에 휘말려들었다고도 한다), 타카우지의 거병에 호응하여 켄무 정권을 쓰러뜨리고 무로마치(室町) 막부의 성립에 다대한 공헌을 한다.

그 후에는 아시카가 쪽을 편들고 있었으나, 무로마치 막부 6대 쇼군이자 공포정치를 지향하여 가혹(苛烈)한 처단(処断)을 거듭하여 만인공포(万人恐怖)의 별명을 가지게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를 연회 자리에서 살해해보인 것도 아카마츠 미츠스케(赤松満祐)이다.

이렇듯 아카마츠씨는 정권의 세력다툼에 휩쓸리는 일이 많았고, 그 때문인지 독립독보(独立独歩)의 기풍을 가지며 반골정신도 유독 높다.

특히 자신의 '밥줄'을 빼앗기려고 할 때, 그 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되게 된다.


"핫핫핫. 꽤나 기개(気骨)가 있잖은가"


그러한 배경 때문에 히데요시의 하리마 공략은 그 아카마츠씨에 의한 맹렬한 반격을 받고 난항을 겪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어려움(苦境)과는 별개로, 시즈코 군에서 파견된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지휘하는 저격부대(狙撃部隊)는 착실하게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신병기의 실전시험(実地試験)을 하기 위해 히데요시 군에 참가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황이 좋지 않았기에, 바보처럼 솔직하게 원군을 요청했다라는 걸 밝히면 고전하고 있는 히데요시 군의 사기는 붕괴해 버린다. 그래서 노부나가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특수부대로서 취급하여, 유격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다른 부대와의 접점을 최소화한다.

그 결과, 히데요시 군의 대부분에게 저격부대의 존재는 부스럼을 만지는 듯한 취급이 되었다. 게다가 행동을 함께한 부대들은 저격부대의 용맹함과는 동떨어진 전술에 대해 비난이나 모멸에 가까운 인상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도 개인의 무용이 존중받는 히데요시 군에게 그들의 전투교의(戦闘教義, doctrine)은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엄폐물 뒤에 숨고, 높은 곳에 포진하여 적을 찾고, 병졸을 모아 지휘하고 있는 하사관만을 저격하기만 하고는 냉큼 후퇴해버리는 것이다.

직접적인 교전은 가능한 한 회피하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적군의 예상 침공 루트 위에 함정을 설치하여 발을 묶은 후에 일방적으로 학살하면서 도망친다는, 전쟁터의 명예에서 가장 동떨어진 전법을 취한다.

시쳇말로 하면 비겁하고 치졸하여, 히데요시 군의 장병들이 볼 떄는 찔끔찔끔 적에게 출혈을 강요하고 있을 뿐, 결정적인 전과를 올리지 않는 겁장이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법은 반골정신이 넘치는 아카마츠씨에게 보기좋게 들어먹혔다. 적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군의 하사관들만이 차례차례 당한다는 상황에 빠지면, 통상적인 정신력으로는 견디지 못하고 병사들도 앞다투어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는 하사관들이 우선 겁을 먹는다. 왜냐하면 하사관을 제외하면 공격받지 않으니, 부대를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카마츠씨에 한해서는 이 상식이 들어맞지 않았다.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무턱대고 들이대는 것이었다. 먼저 대장의 갑주가 무겁고 두꺼운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조차도 관통하는 것을 보자, 체면(外聞) 따윈 버리고 몸에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방패를 붙이기까지 했다.

그래도 착탄의 충격에 의한 낙마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드디어 말에서 내려 아시가루(足軽)들과 섞여 행군해온다는 체면 따윈 내다버린 모습을 보였다. 이것에는 제아무리 마사유키라도 경악하여 위의 말이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비겁한 전법에도 꺾이지 않고, 지혜를 쥐어짜 대처하면서 곧장 다가오는 적에 대해, 어디까지나 교전을 회피하는 전법을 관철하는 마사유키의 태도에 히데요시 군의 장수들은 일부러 들으라는 듯 험담하게 되기까지 했다.


"대장. 저런 소리 하게 놔둬도 되는 거야?"


저격부대 중 한 명, 키쿠(菊)가 철수준비를 하면서 마사유키에게 물었다. 키쿠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저격병(sniper)라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 병과임에도 그녀는 여성이다.

게다가 저격병과 세트로 운용되는 관측수(spotter)는 그녀의 오빠인 이치로(一郎)와 여동생인 치사(ちさ)가 담당한다. 그녀들은 다른 군과 비교해도 예외 투성이인 시즈코 군에서조차 드문, 남매가 3인 1조(three-men cell)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녀들이 종군하는 이유는 각각 다르다. 키쿠는 경애하는 시즈코를 위해서이며, 오라비인 이치로는 여동생들을 굶기지 않고 배부르게 먹여줄 수 있어서이고, 최연소인 치사는 언니오빠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딱히 상관없다. 우리들은 애초에 이물(異物)이니, 꺼려지는 것은 당연하지. 우리들은 그들이 할 수 없는 저격이라는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다. 반대로 그들은 소수인 우리들은 할 수 없는 근접 공격을 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쓰임새가 근본적으로 다른 도구인 것이지. 생선을 손질하는 데 톱은 쓰지 않잖느냐? 그런 것이다"


마사유키는 키쿠의 자칫 건방지다고도 할 수 있는 말투를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자신도 신분 차이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뭐 나를 평가해주시는 건 시즈코 님이니까, 다른 쓰레기(塵芥)들이 뭐라고 하던 상관없지만 말야. 그렇지만 시즈코 님까지 모욕당하는 건 참을 수 없거든?"


"오다 가문이라는 큰 나무의 그늘을 함께 공유하는 자들이라고는 하나, 결국은 다른 군이기에 우리들의 상식은 통용되지 않는다. 뭐, 그들도 공공연한 자리에서 시즈코 님을 비난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기를 기도하도록 하지"


"키쿠, 품에 넣은 수첩(帳面)을 꺼내봐라. 역시 암살장(暗殺帳)이냐…… 그렇게 매번 들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 참아라"


그렇게 말하고 이치로는 키쿠에게서 빼앗은 수첩에서 한 장을 찢어냈다. 거기에는 아까 저격부대에 대한 악담을 구실로, 비겁한 싸움만 하는 건 주군이 연약해서(女々しい) 라는 둥의 말을 한 자의 특징과 소속부대가 적혀 있었다.

이치로의 역시라는 말대로, 키쿠가 이런 보복을 꾸미는 것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야음(夜闇)을 틈탄데다 사고로 위장하여 습격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녀의 손에 의해 다친 사람은 다섯 손가락으로는 셀 수 없다.


"흠. 할 거면 시즈코 님께 결코 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저기…… 사나다 님. 언니를 부추기지 말아 주세요. 언니는 시즈코 님 일이 되면 제동이 걸리지 않으니……"


재미있어하며 키쿠를 부추긴 마사유키에 대해 치사가 불평을 했다. 그녀의 말대로, 키쿠는 시즈코 교(教) 원리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즈코에게 빠져 있어, 숭배 대상인 시즈코에 대한 모욕에는 처단으로 대응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뭔가 다른 보복수단이나 진정(ガス抜き) 수단을 찾지 않으면 머지않아 죽는 사람이 나올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농담은 그만두고, 의외로 잘 명중하는군. 저격이라는 건 10번에 한 번 맞으면 잘 맞는 편이라고 들었다만"


"그건, 내가 우수하기 때문이야. 시즈코 님께 직접 칭찬을 받았을 정도니까!"


연령으로 볼 때 슬플 정도로 빈약한 가슴을 편 키쿠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애니나 영화의 그것과는 달리, 현실의 저격병은 무서울 정도로 평범한 작업을 반복하는 인대력이 요구된다. 격앙되기 쉬운 키쿠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녀는 특이한 상황 아래에서 비정상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격의 훈련이란 저점(狙点)을 정하고 사격하고, 그 다음에 관측을 하여 차이를 기록한다는 작업의 반복이 된다. 변화가 거의 없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사격할 때마다 환경수치나 결과를 세세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겐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주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될 정도로 몰입하기 쉬운 기질을 가지고 있어, 침식을 잊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얻기 힘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이 성질은 일상생활에서는 족쇄가 될 뿐이다. 특히 그녀가 자란 농촌 등에서는, 잡초베기를 부탁받으면 비가 오던 해가 지던 묵묵히 잡초베기만을 반복하는 키쿠를 요령 없는 아이라고 헐뜯었다.

농촌 같은 공동체에서는, 주위의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것이 요구되지만, 그녀에게 그런 것은 어렵다. 따라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계속 밥값 못하는 밥벌레라고 불리며 업신여김 당해왔다.

그런 그녀를 발탁한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였다. 그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을 현대에서는 자폐증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라고 부르며, 그런 사람들의 존재와 특징을 알고 있던 시즈코는 키쿠가 가진 천성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것은 경이적인 집중력 및 그 지속력과, 초인적인 시간, 공간 인식 능력이었다. 그녀는 시계를 보지 않고도 거의 정확하게 시간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물체와의 거리를 거의 오차없이 맞췄다.

시즈코는 그녀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장소로서 측량부대와 저격부대를 소개했고, 키쿠 남매들의 생활은 비약적으로 향상되게 된다. 이러한 배경도 있어서인지, 키쿠는 자신을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준 시즈코에게 경도되어, 지금은 시즈코와 신불(神仏)은 동등한 존재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또 시작이냐……"


"땀이 눈에 들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시즈코 님이 이마에 감아주신 수건을 아직도 감실(神棚)에 모셔두고 있으니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반복된 키쿠의 자기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치로와 치사는 그 모든 것을 뜨뜻미지근한 눈빛으로 흘려들었다. 마사유키도 당초에는 놀랐으나, 지금은 멈출 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제일이라며 흘려듣고 있었다.


"사푸렛사... 였던가? 아시미츠(足満)님께서 주신 부품은 굉장하지만, 총을 쏜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맘에 안 드네"


키쿠는 그렇게 말하며, 총구에 비틀어넣는 형태로 접속된 부품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서프레서(소음기, suppressor)란, 총구에 장착하는 것으로 총탄의 발사음이나 섬광을 경감하는 장치이다.

서프레서의 원리는, 총탄이 발사될 때 기세좋게 총구에서 뿜어지는 연소 가스를 분산시키는 것으로 소리를 억제한다는 것이다. 콜라의 페트병을 기세좋게 열면 푸쉭 하고 큰 소리가 나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비틀면 쉭 하고 기체가 빠지는 소리밖에 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개인적인 취향은 둘째치고, 키쿠에게도 아시미츠는 두려운 존재였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것에는 정평이 난 키쿠였으나, 아시미츠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존 본능에 기반한 공포로 몸이 굳는다.

시즈코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키쿠였으나, 아시미츠에게만큼은 거역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누가 그를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鬼)'라고 말해도 순순히 납득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험 데이터는 확실히 기록해라?"


"붙였다 떼었다 할 때마다 조준을 다시 조정해야 하니까 귀찮은데…… 계속 해야 해?"


키쿠는 자신의 저격 스타일에 고집(拘り)이 있어, 평소의 절차를 변경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부품에는 시즈코 님께서도 기대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빨리 수첩을 돌려줘! 바로 기록하고 다음 사격 준비를 해야 해!"


이치로의 말 한 마디에 즉시 태도가 바뀌는 키쿠에게 일동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사유키가 이끄는 저격부대가 현재 뭘 하고 있느냐고 하면, 저격병이라는 병과의 단독운용 및 다른 부대와 연계하여 운용했을 경우의 실전 훈련이었다.

기본적으로 저격병은 전투의 결정력이 될 수 없다. 애초에 특수한 병장(兵装) 및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숫자를 준비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물량에 의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대단히 약하여, 한 번이라도 적의 접근을 허용하면 도주하는 것조차 어렵다. 반면, 적에 대해 몇 배의 사정거리를 자랑하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운용하면 적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훈련을 쌓더라도, 실제 전쟁터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지, 또 어떻게 목적을 달성할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오빠, 적은?"


"남서 방향, 거리 약 300미터, 고저차는 대략 마이너스 30미터다"


오빠인 이치로가, 시차식(視差式) 측거기(測距儀)를 사용하여 계측 결과를 전달했다.


"치사?"


"주위의 야생동물이 반응하지 않고 있으니, 부근에 인간은 없네. 아직 이쪽은 발견되지 않았어"


"오케이(了解). 4발 쏘면 이동할 거니까 준비 부탁해"


키쿠는 그렇게 대답하고 육안으로는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표적을 향해 연이어 네 번 사격했다.

치사가 계속 주변을 경계하고, 오빠인 이치로가 측거기에서 망원경으로 바꿔잡고 사격 결과를 전달했다.

결과는 2발 명중, 한 발이 근처에 맞았고(至近弾), 남은 한 발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갓는지 착탄을 관측할 수 없었다.

명중률 5할이라고 하면 낮게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대에서 총이라는 것은 일단 탄이 똑바로 날아가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코앞이라고 할 정도의 거리까지 끌어들여서, 많은 숫자로 탄막을 쳐야 간신히 전력이 된다.

그런 상식을 비웃는 것처럼 소리도 없이 날아드는 죽음의 탄환(礫)에 맞고 아군이 죽었다는 사실은 병사들의 발을 멎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마른 나뭇가지를 사용한 간이 삼각대에서 키쿠가 총신을 분리하고, 분해할 수 있는 부품을 분해하여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치로가 부피가 나가는 짐을 한꺼번에 짊어지고, 치사가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면 이동이 시작된다.


"그런데, 사나다 님도 용서가 없네. 대장격을 대충 다 처리했더니, 다음에는 '눈'을 빼앗으라고 하니까"


체력이 있는 이치로가 선두를 맡고, 그 바로 뒤에 몸이 가벼운 치사가 따르며 진로를 지시한다. 최후미(最後尾)의 키쿠는 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면 된다.

사전 조사로 발견해 둔 다음 저격 지점까지 다들 묵묵히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키쿠가 앞쪽에 말을 걸었다.


"척후(斥候)나 선도자(先導役), 보초(物見) 등을 먼저 처치해 두면 놈들의 진군 속도는 확 떨어지니까"


마사유키는 각각의 저격대를 돌며 지시를 내리고 있어 이미 이곳에는 없지만, 그가 키쿠들에게 명령한 것이 위의 내용이었다.

적의 무장은 자신의 명령을 중계할 하사관을 잃고, 이어서 적을 찾기 위한 눈을 잃었다. 제아무리 아카마츠 군의 무장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이 되면 철수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적의 저격에 대비하여 밀집대형을 취한 후, 병사를 지휘하여 후퇴했다. 저격수들이 적의 무장을 노리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히데요시의 요청을 받고 파견된 저격부대가 차례차례 적장을 쓰러뜨린다는 화려한 전과를 올려버리면, 히데요시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아군끼리 전공을 다퉈서 어쩌겠다는거지?"


"전공을 다투게 하는 쪽이 간단히 사기를 올릴 수 있으니까겠지. 오히려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사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즈코 님께서 걸출하신 것 뿐이야"


"쓸데없는 얘기는 슬슬 그만해. 곧 도착할 거야"


세 사람의 예정된 저격 지점에 도착하자, 이치로와 치사가 주변을 경계하면서 적의 흔적이 없는지를 확인하며 돌아다녔다. 안전이 확보된 시점에서 키쿠가 저격 포인트를 정하고, 그 주변에 짐을 내려놓은 후 다시 총을 조립했다.

딱히 사전에 미리 짠 것도 아닌데 세 사람 모두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어, 촌각의 지체도 없이 저격 준비가 갖춰져갔다.


"좋아, 배치 끝. 지시를 부탁해"


총신에 금속 가이드로 연결된 총탄을 장전하고 키쿠는 사격 태세를 취했다.




5월에 들어선 이래, 노부나가의 기분은 악화의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짜증스러움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다만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표정하게 말이 없는 노부나가의 기분을 맞춰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노히메(濃姫)라 하더라도, 노부나가의 기분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


노부나가의 짜증스러움의 원인은, 그가 손에 든 서신에 있었다. 그것은 시즈코로부터 온 '청가(暇乞い, 현대에서 말하는 휴가신청)'의 서신이었다.

그 내용이란 비트만에 이어 짝인 바르티도 건강이 나빠져, 두 마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다.

처음(最初期)부터 자신과 함께 있어준 충신의 마지막에 가능한 한 곁에 있어주고 싶기에, 당분간 일을 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청가에 대해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드디어 쉴 생각이 들었나'라고 안도했을 정도였다. 그럼 뭣 때문에 짜증이 났느냐고 하면, 자신의 어리석음(不明)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정말 나 자신이 한심하군. 시즈코가 청가를 요청하기 전에 그 녀석의 어려움을 헤아려주지 못하다니……)


돌이켜보면 시즈코를 주워온 지 1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무리한 난제(無理難題)를 떠넘겨왔으나, 시즈코는 공사 양면에서 자신을 뒷받침해 주었다.

만약 '시즈코를 주워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자신이 있었을까'라고 자문할 경우, 즉각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으리라.

뭔가의 운명(巡り合わせ)으로 천하인(天下人)에 손이 닿을 곳까지 왔다고 해도, 지금처럼 반석같은 체제는 구축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개중에서도 제일가는 계기(転機)는,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을 저지했을 때이리라. 누구나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노부나가 자신조차, 자군의 승리를 3할로 예측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신겐이 이끄는 타케다 군은 강했다.


(단 하루의 싸움이 내 입장을 뒤바꿔놓았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직전가지는 '오다의 천하도 여기까지다'라고 자신을 저버리고 떠나가는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밤이 지나 이튿날이 되어, 미카타가하라 전투의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손바닥을 뒤집는 자들이 속출한 것이다. 그 날을 경계로 대세(潮目)가 확연히 바뀌었다.

그만큼 큰 일을 해낸 최대의 공로자임에도, 시즈코만은 전투를 전후하여 전혀 변한 곳이 없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전혀 들뜬(気負った) 기색이 없이, 점심식사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나 하는 것 같은 가벼운 태도로 귀환 인사를 했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그 때 처음으로 시즈코가 무섭다고 느꼈다. 시즈코는 때때로 자신보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시즈코에게 있어 미카타가하라 전투란, 이판사판의 운명을 건 결전이 아니라, 오늘과 연속되는 내일로 이어지는 일상의 연장일 뿐이었다.

그런 시즈코가 지금, 명백하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놓인 상황을 알려 하지 않았던 자신을 부끄러워함과 동시에, 묘한 이야기이지만 인간다운 감정을 자신에게 드러내준 것을 기쁘게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짐승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언제 어느 때나 시즈코의 곁에 있던 최초의 벗이니 말이다"


노부나가는 그 늑대에 대해 시즈코가 품는 심정은 육친의 그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의 말하지 않는 시즈코의 부탁이다. 노부나가로서는 만난(万難)을 물리치고라도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거의 없다. 하다못해 시즈코가 사소한 일에 붙잡히지 않도록 손을 써 주는 것이 주군의 도리인가……"


그렇게 말하더니 노부나가는 우필(右筆)을 불러 몇 장의 서신을 쓰게 하여 곳곳에 보내게 했다.

하다못해 시즈코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시즈코에게 귀찮은 일을 가져올 만한 패거리를 미리 견제하는 것이다.


"훗"


거기까지 신경쓰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노부나가는 웃었다. 그의 가혹한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상대를 배려해준 일 따위 한 손으로 꼽을 정도 뿐이다.

천하인이라고 떠받들어지는 자신이, 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이 차이가 있는 시즈코에게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10년 이상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항상 녀석에게는 놀라게 된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악마같다고 형용되는 자신에게 이런 일면이 있었다니 신선한 놀라움이었다.

전국시대에서는, 타인을 지나치게 믿는 것은 자살행위다. 설령 피가 이어진 육친이라고 해도, 야심을 위해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시즈코만은 다르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항상 배신에 대비하고 있는 나 자신이 멍청이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신기함 때문에 주워온, 쓰고 버릴 장기말이었다. 그 장기말은 차례차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여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데다, 새롭게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르쳐주었다.

아첨을 하지 않기에 때때로 부딪히는 경우도 있지만, 시즈코는 항상 정직했다. 얼핏 노부나가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듯 보여도, 항상 노부나가의 이익이 되도록 움직여주었다.


"생각해보면, 그 녀석이 내게 바란 것은 묘한 것들 뿐이었다. 밭을 경작할 인부에서 시작하여, 남만이나 명나라(明)에서 재배되고 있는 작물이 씨앗이라느니, 본 적도 없는 짐승이라느니. 그러다가 종교세력(寺社)이나 공가(公家)의 낙서(落書き)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돌아버린 건가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립군…… 그리고 이번에는 휴식을 원한다니, 정말이지 시즈코에게는 휘둘릴 운명인 모양이다"


말의 내용과는 반대로, 노부나가의 표정에 직전까지의 언짢음은 없고 오히려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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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