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1 훈련(演習)



심야의 국도 8호를 자위대(自衛隊)의 차량이 서쪽으로 질주해갔다. 10대, 15대씩 그룹을 짓는 차량들의 무리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었고, 그 일순의 고요함을 바위투성이의 해변(磯)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뒤덮고 있었다.


자위대는 북부(北部), 동북(東北), 동부(東部), 중부(中部), 서부(西部)의 다섯 개 방면대(方面隊)로 국토 방위에 임하게 되어 있다. 지금 국도 8호를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동부방면대 제12 사단(師団)이다.


같은 날 밤, 서부방면대에 소속된 키타큐슈(北九州)의 제4 사단은 칸몬(関門) 터널을 통과하여, 산인(山陰)의 바닷가를 따라 뻗어있는 국도 191호를 고속으로 북상중이었다. 히로시마(広島) 현(県) 카이다(海田) 쵸(町)에 사단 사령부가 있는 중부방면대 제13 사단은, 제10 사단의 수비범위인 와카사(若狭) 만(湾)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쿄(東京)-네리마(練馬)의 제1 사단 사령부도, 그 전위(前衛)에게 통상의 수비범위를 넘게 하여 오오마치(大町), 나가노(長野), 이이야마(飯山)의 선에 전개중이었다.


한편,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 역시, 우라니혼(역주: 혼슈(本州) 중에서 동해에 면한 지방을 일컬음)의 장대한 해안선을 담당하는 마이즈루(舞鶴) 경비구(警備区)의 전 함정이 노토(能登) 반도(半島) 앞바다에 집결하고, 제1, 제3 호위대군(護衛隊群)과 구레(呉)의 제1 잠수대군(潜水隊群)이 그에 합류하기 위해 어두운 밤바다 위를 고속 이동중이었다. 그리고, 이 움직임과는 별개로 미국 제7 함대의 일부가 세력 불명인채로 부산(釜山)을 경유하여 동해(역주: 원문에는 당연히 일본해(日本海)로 되어있지만 동해로 씁니다)로 들어와 있었다.


훈련(演習)이다. 그리고 훈련은 정보통제도 그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 밤의 병력 대이동에 관하여 그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고 해도 좋다. 하물며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차에 처넣어져서 밤새 흔들리고 있는 하급 대원들은, 훈련의 목적은 고사하고 행선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올 무렵, 국도 8호에서 이토이가와(糸魚川)을 지나, 사카이가와(境川)의 다리 기슭에 있는 토야마(富山) 현의 표식을 읽은 제12 사단 최후미의 대원들은, 이것이 평소와는 달리 대규모의 훈련인 것을 깨달았다.

이토이가와에서 서쪽으로, 오야시라즈(親不知), 코시라즈(子不知)을 지나서 사카이가와에 이르는 구간은, 옛부터 호쿠리쿠도(北陸道)의 험한 곳(難所)으로 유명하다. 사카이가와는 에치고(越後)와 엣츄(越中)의 국경으로서 오랫동안 호쿠리쿠(北陸)의 땅을 구분하였고, 호쿠리쿠 본선(本線)의 역이 있는 이치부리(市振)에는 에치고 측의 관문(関所)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카기아와는 니이가타(新潟) 현과 토야마 현의 현 경계(県境)이며, 동시에 자위대 동부방면대와 중부방면대의 수비 경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동부방면대 소속의 제12 사단이 그것을 넘어서 중부의 제14 사단의 지역으로 들어간 것은 대원들에게 꽤나 신선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서 사카이가와의 코앞에서 정지한 대원들도 있었다. 육막(陸幕, 역주: 육상막료감부(陸上幕僚監部)의 약칭) 제4부의 마츠도(松戸) 수품보급소(需品補給所)와 츠치우라(土浦) 무기보급소(武器補給所)에서 온 수품과(需品科) 및 무기과(武器科) 대원들로, 그들은 제1 사단의 수송대나 제12 사단의 보급대와 협력하여 사카이가와의 하구(川口)에 임시 야전 보급소를 설영중이었다.


앞은 바다, 뒤는 호쿠리쿠 본선과 국도 8호를 사이에 두고 바로 산. 해안 오른쪽은 격랑(激浪)이 바위를 물어뜯는 오야시라즈, 왼쪽은 바로 사카이가와로, 앞바다에 노토 반도가 시커멓게 수평선을 감추고 있다.


보급소의 대원들은 비교적 이번 훈련의 개요에 대해 자세히 듣고 있었다. <적>의 압력이 홋카이도(北海道)의 어딘가와 노토 반도 소토우라(外浦, 역주: 이것이 고유 지명인지 아니면 일반 명사인지 잘 모르겠슴)에 가해졌다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최강이라고 하는 치토세(千歳)의 제7 사단은, 그 기계화 수준 덕분에 지금쯤은 벌써 아사히카와(旭川)에 도달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동부의 12사단과 마찬가지로, 칸사이(関西)의 제3 사단도 노토에 집결하고, 그 구멍을 구레의 제13 사단이 메우며, 그리고 그 제13 사단을 큐슈(九州)의 제4 사단이 커버한다. 이것은 일본 전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훈련인 것이다.


사카이가와의 하구에 설치된 임시 보급소는, 동부방면 총감부(総監部)에 의해 이치부리 야전보급소라는 명칭이 주어졌으나, 실제로는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 뚜렷해졌다. 이 대규모 훈련 계획의, 아주 작게 어긋난 부분이었던 것이다.


최초로 이 지정 지점에 도착한 것은 동부방면대의 직할부대인 지구(地区) 보급소의 보급대와, 소우마하라(相馬原)에 있는 제12 사단 사령부의 수송대의 일부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육막 제4부의 수품과 부대와 무기과 부대, 거기에 수송과(輸送科) 부대가 혼성으로 도착했다. 그 후에 경비를 위해 12사단의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이 60식 장갑차에 타고 왔다.


예정대로의 물자가 예정 시간 내에 보기좋게 집적된 것은 좋지만, 각자 소속이 다른 이 대원들의 지휘를 통일시킨다는 배려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해가 떠오르자, 대원들 사이에 왠지 낯간지러운 듯한,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돌며, 각자 무리를 지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것은 훈련이 대규모가 될수록, 후방부대에서 자주 발생한다. 책상 위에서 짜여진 계획의 결함이 현장에서 일으키는, 일종의 <분위기를 깨는(白け)> 현상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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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또는 전국 코마치 고생담)의 번역을 하는 짬짬이, 기분전환 삼아서 예전부터 번역해보려고 했던 전국자위대의 번역을 병행해보려고 합니다.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과 마찬가지로 번역시 참고하는 것은 네이버 일한사전, 구글, 나무위키 등으로, 가독성을 위해 출처를 일일이 표시하지는 않겠습니다.


각 장의 서브챕터 단위로 번역을 진행하는데, 각 서브챕터의 내용은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고유명사나 기타 용어 등은 최대한 검색 등을 통해서 조사하고 있으나 오류가 적지 않을 것이니, 잘 아시는 분은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차


제 1장

훈련(演習)

이변(異変)

증발(蒸発)

상투를 튼 사내(髷の男)

토론(議論)

가상적(仮想敵)

제 2장

사자(使者)

켄신(謙信)

전투(戦闘)

지도(地図)

황금(黄金)

의견(意見)

출격(出撃)

공습(空襲)


제 3장

범죄(犯罪)

시간의 신(時の神)

전령(伝令)

복선(伏線)

해전(海戦)


제 4장

현실(現実)

무지개(虹)

책모(策謀)

연출(演出)


제 5장

활기(活気)

격전(激戦)

귀경(帰京)

군기(軍旗)

오다와라(小田原)

차륜진(車懸り)

부(富)

합류(合流)


제 6장

교토(京)

오오가키(大垣)

니와 나가히데(庭長秀)

성(城)

전선령(銭撰令)

월야(月夜)

충신(忠臣)

해답(解答)


결말(むす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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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 목차  (0) 2019.10.23
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8 1572년 12월 하순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의 전사. 그 소식이 신겐(信玄)에게 전해진 것은, 시즈코가 타케다(武田) 군으로의 돌격명령을 내리기 직전이었다.

다들 전령이 가져온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감정이 이해를 거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타케다는 이 일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타케다 가문 최강으로 이름높은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이끄는 적비대(赤備え), 40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전장에서 살아오며 긁힌 상처 하나 입지 않았던 불사신 바바 노부하루. 두 사람을 잃은 타케다는 양 팔이 뜯겨나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영주님(お屋形様)!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지 않으면 타케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됩니다! 소생에게 돌격을 명해 주십시오!"


이 시점에서라면 타케다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즉, 계전(継戦)이냐 철수(撤退)냐이다. 하지만 주력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타케다와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의 전력은 비등한 상태였다.

승리할 확률이 있을 때 퇴각한다는 선택은 그들의 긍지가 용납하지 않았다. 뭣보다 여기서 퇴각하면, 지금까지 얻은 전과가 전부 물거품으로 변하는데다, 치른 희생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린다.

타케다의 명령을 따르기로 한 토오토우미(遠江)의 영주들도 다시 변절할 선물(手土産)로서 타케다를 추격할 것은 뻔했다.

명예만을 위해서라면 굴욕에 견디며 권토중래(捲土重来)의 때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군을 동원해놓고 전과가 없는 철수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과의 계전보다도 손해가 크다고 판단되었다.


"제 3진을 보내라. 놈들을 이 이상 우쭐하게 만들지 마라"


계전을 결정한 신겐은, 본진을 제외한 전군에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 호령에 전군에 활기가 돌았다.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야마가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하루의 군은 괴멸되었으나, 타케다에는 용맹한 무장이 부족하지 않았다.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 마사유키(昌幸) 형제에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요네쿠라(米倉) 탄고노카미(丹後守)가 가세하면, 기세가 붙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되밀어내는 것도 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신겐은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전군이 적비대나 바바 군과 충돌하여 간신히 두 사람을 처치했다고 생각했다.

신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한 것은 정보 부족이었다. 전장은 극도로 혼란되어, 패인(敗因)은 둘째치고 유력 무장의 전사 보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우선시되었기에, 신식총(新式銃)이나 작렬통(炸裂筒)의 위협은 아직 신겐에게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신겐이 자신의 실책을 이해했을 때는, 모든 것이 늦은 상태였다. 전령으로부터 급보가 전해졌다.


"주군(ご注進)!! 증원이…… 오다의 증원이 나타났습니다! 그 숫자는 대략 8000!"


"뭣이라!"


최악의 타이밍에 나타난 증원에 제아무리 신겐이라도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노부나가는 방어를 최대한으로 깎아내면서 원군(後詰め)을 보냈을 테니, 추가적인 증원 같은 건 뒤집어 털어봐도 나오지 않는다.

오와리(尾張)를 버리고 구원하러 달려왔다고도 생각했으나, 그렇게 되면 이 자리에서 승리를 거두더라도 오다-도쿠가와는 공멸한다.

어디서 8000이나 되는 전력을 짜냈는가. 신겐의 안목으로도 그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영주님! 원군이 내건 군기에 시바타(柴田)에 아케치(明智), 니와(丹羽) 등 이름높은 무장들의 문장(旗印)이 있습니다! 이대로는 제 2진이 버티지 못합니다!!"


"주군!! 추가로 삿사(佐々)에 마에다(前田), 하시바(羽柴), 모리(森)의 깃발이 확인되었습니다!"


"영주님! 오다의 맹공을 받고 나이토 님의 군은 괴멸! 나이토 님은 전사하신 것 같습니다!"


"사나다 님의 군도 패했습니다! 사나다 사에몬노죠(真田左衛門尉) 님은 전사! 무토 키헤에(武藤喜兵衛, 사나다 마사유키) 님의 모습도 본 자가 없습니다! 아마도 전사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모리 산자에몬(森三左衛門)이 나타났습니다!! 노도의 진격을 거듭하여 병사들이 전의를 잃고 물러나고 있습니다!!"


신겐에게 연달아서 부보(訃報)가 전해졌다. 증원의 출현과 함께 균형을 이루던 천칭(天秤)은 크게 기울었다. 단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손을 놓고 있다가는 타케다는 패배한다.


(뭐가, 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거냐!)


신겐은 불가해(不可解)한 증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당장의 대처에 주력했다. 이 상황은 나란히 장기를 두기 시작한 국면에서 상대방만이 많은 장기말을 숨겨 가지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장에서 마주치기 전부터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계략(絡繰り)을 꿰뚫어보지 못한 스스로의 어리석음(不明)이 부끄러웠다.

역전(歴戦)의 강자(強者)인 신겐은, 동요를 억누르고 몸매무새를 바르게 한 후, 코우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를 부르도록 명했다.

즉시 코우사카 마사노부가 나타나자, 신겐은 그에게 가까이 오도록 손짓했다.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코우사카 마사노부는 신겐의 바로 곁에 무릎을 꿇었다.

신겐이 뭔가를 속삭였을 때, 코우사카 마사노부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그대로 신겐의 얼굴을 응시하는 코우사카에게, 신겐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 알겠사옵니다!"


뭔가 머뭇거리듯이 코우사카 마사노부는 눈을 감고, 신겐을 마주본 후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신겐은 그 뒷모습을, 감정을 죽인 채 말없이 전송했다.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오다 쪽은 케이지(慶次)와 타카토라(高虎). 타케다 측은 나이토 마사토요에 사나다 노부츠나,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 형제 등이 부딪히고 있을 때,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와 일기토를 벌이고 있었다.


"으라차차차차차차차차!!"


경묘(軽妙)한 기합소리와 함께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의 맹공을 전부 받아내보였다.

전장에서도 여전히 눈을 끄는 카부키모노(傾奇者)의 차림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위(武威). 신겐으로부터 장래를 촉망받은 맹장, 사나다 노부츠나와 호각으로 겨루는 케이지에 사나다 군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핫하ー! 댁의 동생은 조금 부족했는데, 댁하고라면 재미있는 승부를 할 수 있겠어"


동생이란 마사유키가 아니라 사나다 마사테루 쪽이었다. 케이지에게 목숨을 잃은 사나다 마사테루 대신, 지금은 형인 사나다 노부츠나가 명공(名工) 아오에 사다츠구(青江貞次)가 벼려낸, 길이가 1미터는 되는 진태도(陣太刀)로 케이지와 싸우고 있었다.


"괴물같은 놈…… 내 공격을 이렇게 쉽게 받아내다니"


"쉽지는 않지만 말야. 댁의 공격을 받아내는 건 실수가 용납되지 않으니 필사적이라고"


할버드(halberd)를 겨누며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를 칭찬했다. 이만한 강적과 만날 수 있었던 행운, 그리고 자신의 힘이 그와 나란히 한다는 현실, 케이지의 가슴이 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것을 즐기는 것이냐. 이해할 수 없군"


"죽음을 앞둬야 삶을 실감할 수 있지. 그러니 좋은 거 아니겠어!"


노부츠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케이지는 이 일기토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교차되는 목숨의 다툼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듯한 웃음에, 사나다 노부츠나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카부키모노가…… 무사인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간단해. 이해같은 건 안 해도 돼. 댁의 전부를 부딪혀 주면 되는거야"


대화가 끝남과 동시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쉬익 하는 칼날이 우는 소리를 내며 할버드와 진태도가 날을 부딪히는 소리였다. 몇 번 울려퍼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소리가 멎었을 때가 결판이 났을 때라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는군. 그만한 무용이 있다면, 어디든지 사관할 수 있었을텐데. 타케다에 왔다면 호용(剛勇)한 무사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을"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삐딱해서 말이지. 나는 자유롭게 살고, 스스로 정한 죽을 자리에서 생을 마치고 싶은 거야. 딱딱하고 숨막히는 근시(近習) 같은 건 사양이라고"


"고노에(近衛)의 딸을 섬기면서 근시는 싫다는건가. 완전히 모순이로군"


치고받는 사이사이에 서로 대화를 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재주였다. 그걸 어렵잖게 해내는 케이지도 경탄할 만 하지만, 그것을 힘들지 않게 받아내는 사나다 노부츠나도 무서운 무사였다.


"하핫! 확실히 밖에서 보면 근시인가. 지금의 주인은 나를 속박하려고 하지 않지. 물론 최저한의 일은 해야 하지만, 그것만 하면 내 방식을 존중해 주거든. 용맹스러움은 전혀 없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여서 놔주질 않아. 나와 상성이 좋았던 거겠지"


"핫, 웃기고 있군! 수하를 속박하지 않는 주인에, 속박되지 않음에도 떠나지 않는 수하라. 양쪽 다 모순되어 있으니 상성은 좋겠지"


칼날을 부딪힌 충격으로 양쪽 다 크게 거리를 벌렸다. 간격은 벌어졌으나,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서로의 참격의 간격이 되는, 긴장감을 품은 위치였다.

다음 일 합이 승부를 가른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에서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이해했다.

죽고 죽이는 와중에서도 계속 웃음을 떠올렸던 케이지도, 시즈코조차 본 적 없는 진지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그것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본래 깃발이었을 천쪼가리를 하늘로 날려올려, 두 사람 사이에 그것을 펄럭이며 떨어지게 했다.

펄럭인 천에 서로가 가려진 순간, 두 사람은 움직였다. 양쪽 모두 한 동작에 간격을 좁혀, 손에 든 무기를 상대를 향해 내리쳤다.

케이지의 할버드와, 사나다 노부츠나의 진태도는, 그러나 교차하지 않고 휘둘러졌다. 양쪽 모두 참격의 기세를 타고 땅바닥을 찍고, 그 자세 그대로 정지했다.


정숙이 자리를 지배하며,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윽고 케이지가 무릎을 꿇고, 조금 간격을 두고 사나다 노부츠나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내…… 생애 최고를 뛰어넘는가"


땅바닥에 박힌 칼을 지팡이삼아 사나다 노부츠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부근까지 비스듬하게 베여 있었다.

한편 케이지도, 몸에 두른 갑주가 깨지고, 오른쪽 어깨에서 쇄골에 걸쳐 일직선으로 베인 상처가 나서 약간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크큭, 끝내주는군. 그런 재주……를 부리면, 무사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돌진(踏み込み)과 참격은 사나다 노부츠나 쪽이 위였다. 케이지는 사나다 노부츠나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였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회피를 버리고, 혼신의 일격을 날렸다. 그에 반해 케이지는 날아오는 참격을 회피하면서 역공을 했다.

케이지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케이지의 상식을 벗어난 반응속도, 무거운 할버드를 나뭇가지처럼 다루는 경이적인 완력, 전력의 돌진이면서 몸을 피할 수 있는 순발력,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극한 상태에서의 집중력이 갖춰져 처음으로 가능한 일격이었다.

자기 몸에 새겨진 상흔(傷痕)을 보고 그것을 이해한 사나다 노부츠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하나 묻고 싶어. 당신, 이게 진 싸움이라고 알고 있었지? 어째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은거지?"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사나다 노부츠나가 대답했다.


"……이 싸움에서 깨달았다. 지금부터는 철포(鉄砲)의 시대가 되지. 활이나 칼, 창 밖에 재주가 없는 무사는 언젠가 시류(時流)에 휩쓸려간다. 내가 평생에 걸쳐 닦아올린 기량이 쓸모없는 것이 되지. 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몸을 던져 저항한 것이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이 일전에서 싸움의 양상이 변하여, 철포의 숫자가 승패를 결정할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개인의 무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사의 시대의 종언(終焉)임을 이해했다.

이해는 했으나, 사나다 노부츠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그는 이곳,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가 자신이 죽을 장소임을 깨달았다.


"철포에 죽는 것 따위 견딜 수 없다! 나는 무사다! 최후에는 싸움터에서, 내가 인정한 남자와의 싸움 끝에 죽고 싶다!"


사나다 노부츠나는 격하게 기침을 하며 입가에서 피를 흘렸다. 근시들이 다가오려 했으나, 그는 그것을 손으로 제지했다. 이미 자신이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사는 법, 죽는 법에 집착하는 네놈이라면 알겠지. 나는 내 숙원(本懐)을 이루었다"


케이지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할버드를 힘있게 쥐었다.


"먼저 가 있어. 뭐, 금방 다시 만날거야. 그러면 술이라도 마시자고"


"음! 네놈이 사는 모습, 저 세상에서 구경하며 기다리겠다"


그것이 사나다 노부츠나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케이지는 할버드로 사나다 노부츠나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사나다 노부츠나의 죽은 얼굴은 평온하여, 이 세상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는 듯 맑고 깨끗한 표정이었다.


"사나다 사에몬노죠, 진정한 무사로다"


사나다 마사테루에 이어 사나다 노부츠나까지 전사하자 사나다 군의 사기는 와해되었다. 무릎을 꿇고 엎어져 무기를 버리고 죽은 주인을 애도(偲)했다.


"실례하오"


그런 병사들을 헤치고 말에 탄 한 사람의 무장이 앞으로 나왔다.


"할 건가?"


분위기를 볼 때 무사라는 것을 안 케이지는, 할버드를 가볍게 치켜올리며 물었다. 하지만 무장은 고개를 가로젓고, 허리에 찬 칼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내 목숨으로 형님 두 분의 목, 그리고 병사들의 목숨을 구해주시오"


"……당신, 이름은?"


"무토 키헤에. 무토 가문에 양자로 간 몸이지만, 그대에게 쓰러진 사나다 사에몬노죠의 동생이오"


그렇게 말하면서 무토 키헤에, 뒷날의 사나다 마사유키는 갑주를 벗었다. 토시(籠手)와 정강이 보호대(臑当)만 찬 상태가 되자 다시 케이지의 얼굴을 보았다. 대답은 어느 쪽이냐고 그의 눈이 묻고 있었다.


"알았어. 당신의 제안, 받아들이지"


잠시 생각한 후 케이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케이지는 사나다의 목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금 이상의 지위 따위 족쇄일 뿐이다. 대장의 목 같은 게 없어도 충분한 보수를 얻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 말을 하면, 자기 목숨을 걸고 병사들의 구명을 청한 무토 키헤에에게 창피를 주게 된다.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적당한 때에 풀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감사하오. 다들, 잘 들어라. 이제 이 싸움은 끝이다. 형님들을 잘 장사지내다오. 잘 부탁한다"


"예, 옛!"


사나다의 병사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힘있게 대답했다. 재빨리 사나다 마사테루와 사나다 노부츠나의 목을 겉옷(陣羽織)으로 감싸고, 패군(敗軍)의 병사라고는 생각되지 않은 통솔을 보이며 떠나갔다.

병사들의 움직임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무토 키헤에는, 죽음을 각오한 자 특유의 맑은 눈으로 철수하는 병사들을 배웅했다.

이윽고 사나다 가문의 병사들이 모두 떠나게 되자, 케이지가 무토 키헤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 목을…… 이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당신, 우리 대장을 만나보지 않겠어?"


"뭐라고?"


케이지의 기묘한 제안에 무토 키헤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케이지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댁을 죽이는 것보다, 우리 대장에게 만나게 하는 편이 재미있을 거라고 내 감이 속삭이고 있거든"


"그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내 목을 베어, 무공의 증거로서 제출하면 되지 않나"


"자자, 잠깐 내 농담에 어울려 달라고"


"알았다. 애초에 내 목숨은 네게 맡겨놓았으니, 네 여흥에 어울리도록 하지"


"그렇게 나와야지. 자, 그러면 얼른 가자고"


"잠깐, 지금부터 말인가? 네 앞에는 전장이 있고, 무공을 세울 기회가 여기저기 있는데? 그걸 버리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패주하고 있는 타케다 군이라면 손쉽게 무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용명을 떨친 무장이나 지장(智将)을 처치하면, 포상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다.

그 기회를 버리고, 무토 키헤에를 시즈코에게 만나게 하려는 의미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 싸움, 처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랐어. 그렇기에 재미있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 말대로, 승기는 이쪽에 있지. 추격은 다른 녀석들에게 맡겨두면 돼. 나는 포상을 원해서 수급을 긁어모으는 얄팍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지"


"이…… 삐딱한 놈이"


"자주 듣는 소리야. 자, 병사들이여. 나는 본진으로 돌아간다. 너희들은 마음대로 해도 좋아"


그 말을 들은 케이지의 병사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대장님, 버리고 가는 건 너무하잖아요"


"맞아요맞아요, 대장님이 돌아가면 같이 갑니다"


"뭣보다 대장님을 따라 돌아가면, 이 이상 싸움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니까요!"


"야야, 겐로(玄朗) 영감한테 들리면 작살난다"


병사들이 왁 하고 웃었다. 누구 하나 타케다 군을 쫓아가서 공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케이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후, 넉살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병사들을 돌아본 후 외쳤다.


"좋았어, 나보다 못하지 않은 바보들아. 시즛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ー!"


"오ー!"


케이지의 말에 병사들이 무기를 들어 화답했다.

이리하여, 케이지 부대는 다른 군이 승전의 기염을 토하는 가운데 당당히 본진으로 돌아간다는, 보통 사람에겐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

물론, 케이지의 행동에 후세의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골머리를 앓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자니, 시즈코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 3진에 포진하고 있던 스와 카츠요리의 군이 물러나고, 대신 본진에서 다른 군이 앞으로 나오려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카츠요리를 물러나게 하는 노림수는 뭘까 고민한 시즈코였으나, 그 이유는 금방 깨달았다. 신겐은 패배를 받아들이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각오를 굳힌 것이다.


"텟포슈(鉄砲衆) 앞으로! 타케다가 최후의 공세에 나선다!"


"옛!"


전고가 울리고, 텟포슈가 돌출햇다. 시즈코는 폭죽이 매달린 화살을 재더니, 그것을 하늘을 향해 쏘았다.

공중에서 몇 개의 폭죽이 터졌다. 북과 폭죽의 심호를 들은 오다 군이 후퇴했다. 열이 올라서 물러나지 않는 부대도 잇었으나, 시즈코 군이 개입하여 억지로 후퇴시켰다.

그렇게 오다 군은 '소정의 위치까지 이동'했다. 오다 군의 맹공을 받던 타케다 군은, 갑작스레 느슨해진 압력을 괴이쩍게 여겼다.

전장에 찾아온 잠깐의 휴식에, 타케다 군은 반격을 하는 게 아니라 자군의 진형을 재편하는 쪽을 우선시했다.


오다 군이 물러나면서도 좌우로 벌려가는 모습은, 마치 타케다 군을 삼키려고 하는 듯 했다.

그 움직임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자가 있다면, 오다 군이 학익진(鶴翼陣)으로 변경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신이 아닌 타케다 군은, 지금이야말로 호기라며 전력을 온존하는 것을 우선시하여, 오다 군의 행동에 대해 확인하는 것을 게을리했다.

그거야말로 타케다 군 최후의 일격을 둔화시켜, 결정적인 패배로 이끄는 요인이 되었다.


"텟포슈에게 탄종 전환을 전달! 탄환은 2식 관탄(弐式カ弾)에서 2식 산탄(弐式サ弾)! 탄두의 색으로 구별하여 혼동되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시키세요!"


"옛!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전령이 시즈코의 명령을 복창한 후, 즉시 말을 타고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다시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을 확인하자, 시즈코의 예상대로 주위의 군이 집결해 있었다.

타케다 군이 패주하여 물러서는 것을 깊게 쫓아들어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진이 세로로 길게 늘어졌을 때, 뼈아픈 카운터 공격을 걸어 반격한다는 게 타케다의 속셈이었으나,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후방으로 물러났기 때문에 헛물만 켠 셈이 되었다.

하지만 작전을 변경할 기색은 없었으며, 곧 타케다 군의 선봉대가 움직였다. 그에 이어지는 형태로 후속도 차례차례 돌격해왔다.


"주군, 탄종 전환이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이제 놈들이 살상 거리에 도달할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관측수(高見)는 타케다의 선봉대가 '표식을 넘으면' 알리도록"


"옛!"


적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굵은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세웠다. 그걸 주위 사람들이 받치고, 맨 위까지 올라가 거기에서 쌍안경으로 적의 상황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관측수이다.

시력은 물론, 높은 곳에서도 정확한 관측이 가능한 균형감각과, 불확실한 발판에 겁먹지 않는 담력이 요구되었다. 관측수의 보고에 따라서 전황이 판단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주군! 놈들이 표식을 넘었습니다!"


"신호를 보내라! 2식 관탄 일제 사격으로 선봉대의 기세를 저지하는 것이다!"


전고로 신호가 보내짐과 동시에, 좌우 4백 정, 합계 1천 정이나 되는 총성이 울려퍼졌다. 살상 거리에 들어와 있던 타케다의 선봉대는 손에 든 목제(木製) 방패와 함께 관통당하여 차례차례 땅에 쓰러졌다.


"계속 쏴라! 방패수가 없어지면 2식 산탄으로 면제압(面制圧)을 한다. 명중 정밀도는 신경쓰지 마라!"


"옛!"


텟포슈는 차례차례 발포했다. 그 때마다 타케다 군의 병사들이 재미있을 정도로 쓰러져갔다. 종래의 화승총과는 달리 직진성이 뛰어난 신식총이기에, 한데 모여서 사격할 필요가 없다.

장전이 끝나자마자 각자 자의로 사격하기 때문에 사격 간격에는 편차가 발생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일제 사격을 하는 쪽이 제압력도 높고 효과적이지만, 지금은 타케다의 기세를 꺾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끊임없이 총탄이 날아다니는 수시 사격(随時射撃) 쪽이 유리했다.

그리고 떨어진 밀도를 메우기 위한 2식 산탄이었다.


2식탄(弐式弾)이란, 현대에서 말하는 이중장전탄(二重装填弾)으로 분류되는 탄환이다. 대단히 거칠게 말하면 약실 안에 탄두를 두 개 세로로 겹쳐서 장전한 탄환이다.

두 발의 탄두를 날리기 때문에 장약량(装薬量)은 많아지고 탄환도 무거워져서 많은 숫자를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필할 만한 것은 그 압도적인 관통성능에 있었다.

격발한 화약이 우선 뒤쪽의 탄두에 에너지를 전달하여 앞쪽의 탄두를 밀어내고, 이어서 뒤쪽 탄두도 날아가기 떄문에, 앞의 탄두가 뚫은 구멍에 뒤쪽 탄두가 돌입하여 그 구멍을 더욱 깊게 파며 전진한다.

목제 방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관통성에 특화된 탄종. 그것이 2식 관탄, 관은 관통탄의 관(カ)이다. (※역주: 원문에서는 2식 '카(관통의 일본어 발음인 칸츠으(かんつう)에서의 '카' 부분)'탄으로 되어 있으나, 읽기 편한 쪽을 우선시하여 관탄으로 번역했음. 이하 2식 산탄도 마찬가지로 '사'탄으로 되어 있으나 '산탄'으로 번역)


하지만 관통력이 높아지는 반면, 타격력이 일점에 집중되기에, 어쩔 수 없이 제압 범위라는 면에서는 떨어진다.

그걸 보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2식 산탄이다. 이것은 앞서의 이중장정탄의 뒤쪽에 위치하는 탄두를 약간 기울여두는 것으로, 한번의 사격으로 두 곳으로 공격을 가능하게 한 탄환이다.

직진하는 것은 앞의 탄두 뿐으로, 뒤쪽의 탄도는 조준점에서 상하좌우로 약간 엇나간 지점에 착탄한다. 당연히 도달거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2번째 탄두의 어긋남은 커지게 된다.

이에 의해 사선(射線)에서 몸을 피했음에도 그 몸에 총탄이 박히는 타케다 병사들이 속출했다. 참고로 2식 산탄의 산(サ)은 산탄(散弾)의 산이다.


이러한 이중장전탄은 베트남 전쟁 때 개발되었으나, 연발총이 당연한 근대 전투에서 중량 증가라는 디메리트를 덮을 정도의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발식의 총이라면 평가는 바뀐다. 한 동작에 2발을 쏠 수 있고, 관통력과 공격범위의 각각에 맞춰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은 컸다.

그리고 총성의 숫자보다 많은 탄환을 흩뿌리는 제압력은 대단하여, 타케다 군의 기세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어져갔다.


"주군! 타케다의 기세가 멈췄습니다! 잡병들부터 뒤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주군! 해냈습니다!"


관측수가 흥분하며 보고를 올렸다. 그 보고를 듣고 옆에 시립해 잇던 겐로도 환호했다.

하지만 시즈코는 보고를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고 전황의 변화를 계속 관찰했다.


"우선 승리하고, 그 후에 싸움을 하라. 그런 후, 이긴 후에도 투구의 끈을 조여라"


"옛? 뭐라고 하셨습니까?"


의미를 알 수 없어 겐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들도 시즈코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 없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싸움이란, 상대에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그런 후에 승기(勝機)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두 가지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싸움을 하여, 승리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거에요. 하지만 승리의 미주(美酒)는 승자를 오만하게 만드는 독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승리해도 방심하지 않고, 다음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투구 끈을 조일 것을 명심하라, 라는 격언이에요. 뭐 저 나름대로의, 싸움에 대한 철학일까요"


"과, 과연. 항상 앞을 내다보시는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타케다에게 승리한다는 대승리(大金星)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보다, 슬슬 어떤 작전이었는지 저희들도 알 수 있도록 개요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겐로는 칭찬했으나, 시즈코는 미묘한 표정을 떠올릴 뿐이었다. 기분이 상했는가, 하고 당황한 겐로는 서둘러 화제를 바꾸었다.

수하의 칭찬을 솔직히 기뻐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시즈코는, 표정을 조이면서 겐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세한 것들은 생략하고 한 마디로 하자면, 상대를 공황상태에 빠뜨려서, 조직적인 통솔을 잃어버리게 하여 우위에 선다. 그게 제가 이번에 쓴 계책의 개요에요. 차례차례 예상밖의 상황으로 몰아넣어, 처음 보는 공격(初見殺し)으로 압도하여 상황을 악화시키죠. 영문도 모르고 몰려서 시시각각 악화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누구나 착란 상태에 빠져요., 공포나 초조함은 전염되어, 공황에 빠진 병사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떤 한 점을 넘어서면 병사들은 통솔에서 이탈하여 군의 지휘계통은 붕괴하죠. 그렇게 되면, 이후에는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이에요"


"예, 예에…… 하지만 개중에는 이해가 빠른 자나 배짱이 두둑한 자들도 있는 게 아닙니까? 병사들이 겁먹은 정도로 천하의 타케다 군이 붕괴하게 되는 걸까요?"


아직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겐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생각한 의문을 차례차례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인데, 그건 있어도 문제없어요. 목숨을 주고받는 전장에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 천 명 중에 한 손으로 꼽을 정도겠죠. 저들은 총력전을 걸어왔어요. 3만이나 되는 대군 중, 수십명 정도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대다수의 병사들이 공황상태라면 그 목소리는 지워지죠. 그들은 정예무비(精鋭無比)한 대군이 강점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게 되려 패착이 된 거에요"


대군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기고 있는 동안에는 대단히 강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 보는 공격을 다수 이용하여 그 강함을 국소적인 승리로 꺾어보였다.

지휘계통이 와해되면, 병사의 숫자가 3만이건 10만이건 별 차이는 없다. 오히려 미쳐 날뛰는 병사들의 절대 숫자가 많아져, 지휘하는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의 목소리는 병사들에게 전달되지 않게 된다.


"다음 대답인데, 한 번의 패배 뿐이라면 타케다 군은 금방 재기하여 대세를 만회하겠죠. 제 1진의 패배도, 오다 군이 기적적으로 이긴 것이라며 오명을 씻는 것을 노리고 분기할지도 몰라요"


시즈코는 지휘도(指揮刀)를 대신하는 쿠제(kuse)를 전장 쪽으로 향했다. 이미 승패는 결정나서, 타케다 군이라고 부를 만한 집단은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연이어서 패배를 맛보았죠. 제 2진의 패배는 오다 군의 실력이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하고, 타케다 병사들의 마음에 의심(猜疑)의 씨를 뿌리게 되죠. 틈을 두지 않고 제 3진까지 패배하면, 씨앗은 싹을 틔우고 의혹은 패배의 공포라는 꽃을 피워요. 죽음의 공포는 병사들을 잠식하고, 몸을 위축시켜,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마음이 꺾이죠"


헐레벌떡 도망치는 타케다 병사들이 시즈코의 눈에 들어왔다. 갑주를 벗어던지고, 허리에 찬 칼을 내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도망치는 모습이.

타케다 병사들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도 시즈코의 마음은 평온했다. 자칫 잘못하면 저 꼴을 보였을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자신에게도 찾아올지 모른다, 고 생각하면 타케다 병사들의 모습을 도저히 비웃을 수 없었다. 얼른 싸움터에서 은퇴해서 농업에만 종사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조차 생각했다.


"마음이 꺾인 상태에서 여전히 분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대부분은 목숨을 아까워하여,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주하는 것을 선택하죠. 지휘계통이 붕괴하고, 병사들이 마음이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으로 가득하면, 설령 신겐 그 사람이라도 흐름을 바꾸거나 할 수는 없겠죠"


누구의 눈에도 알기쉽게 승패가 결정되었을 경우, 잡병들은 보신(保身)을 꾀한다. 그건 당연한 생각이었다. 어지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잡병들은 무장을 위해 순사(殉死)한다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공포에 휩싸인 잡병들은 앞다투어 도망치고, 그걸 본 자들도 나도나도 하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잡병에 이어 아시가루(足軽) 들조차 도망치기 시작하면, 붕괴는 결정적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군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무장들은 어쩔 수 없이 패배를 받아들이게 된다.


"과연…… 아! 주군! 도쿠가와의 군기가 타케다의 후방에 나타났습니다!"


타케다 군의 배후에,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던 도쿠가와 군 8000이 갑자기 나타났다. 도주하던 타케다 군(이었던 자들)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유일한 퇴로인 배후를 차단당했다는 것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이성을 붕괴시켰다. 잡병들은 조금이라도 적병이 적은 쪽으로 가려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그것은 타케타 일족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정보다 조금 늦었지만, 별 문제는 없네요"


이것이야말로 1년에 걸쳐 시즈코가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을 조사했던 이유이다.

도쿠가와 군이 '어떤 장소'에서 타케다 군의 배후로 돌아들어가는 시간. 그 때에 오다 군이 어디에 있어야 포위가 완성되는가, 타케다 군을 어디로 유인하면 좋은가, 그걸 알기 위한 조사였다.

많은 비용을 들인 것 치고는 평범한 내용으로 생각되지만, 이 포위의 유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사였다.


오다 군이 학익진(鶴翼陣)을 펼치고, 타케다 군이 중앙의 일점돌파를 꾀한다. 거기서 학익의 군은 투입하지 않고 중앙군만으로 타케다 군을 막아내어 그 기세를 꺾는다. 타케다 군의 진격이 멈췄을 때, 유일한 퇴로인 후방을 도쿠가와 군이 틀어막는다.

하늘에서 보면 오다 군의 중앙을 정점으로 한 이등변삼각형 안에 타케다 군이 갇힌 것이 된다. 어느 방향을 향하더라도 두터운 적병에 가로막혀 이제 도주조차 할 수 없다.

신겐 정도의 인물이 자신이 놓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다.

상황을 헤아렸기 때문에야말로 타케다 군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떤 수를 짜내던 자신들이 살아남는 미래는 없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잡병이나 아시가루 뿐만이 아니라, 무장들도 인정했습니다. 자신들의 패배를"


타케다 군은 격퇴된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완벽한 패배를 맛보았다고 인식했다.

타케다 스스로가 패배를 인정했다는 사실은, 반 오다 연합의 각 세력(諸氏)들에 격진을 일으키리라. 타케다의 깃발 아래 모였던 반 오다 연합의 의도는 근본부터 뒤엎어진 것이다.


"이걸로 외통수에요. 이 이상 싸워봤자 타케다에게 승리는 없어요. 쓸데없는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서도 타케다에게 투항하라고 권고하세요"


"옛!"


4박자로 전고가 울렸다. 그것은 승리가 확정되어 적병에게 투항을 권고하라는 신호(符丁)였다. 포위당했으면서도 저항하는 타케다 군에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투항을 권고했다.

일부는 여전히 저항하려 했으나, 대부분은 권고에 응하여 무장을 해제했다. 강하게 저항하던 집단도, 신식총의 총구를 들이대고 발밑에 총탄을 쏘아넣자,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투항했다.


"다들! 함성을 질러라! 우리들의 승리다!!"


시즈코가 승리의 함성(勝ち鬨)을 지르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뒤를 따랐다. 타케다 군은 차례차례 무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큰 혼란도 일어나지 않은 채 역사에 이름높은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막을 내렸다.




도쿠가와 군의 도착이 약간 늦었기에, 아깝게도 스와 카츠요리와 코우사카 마사노부를 놓쳤다. 하지만 신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그들의 도망은 사소한 일이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신겐이 포박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시즈코는 포박된 것은 대역(影武者)인 타케다 노부카도(武田信廉)가 아닌가 조금 의심했다.

하지만 간자(토비카토(鳶加藤))가 입수한 타케다 신겐의 의류(衣類)와 포박한 타케다 신겐의 냄새가 일치한 것에 따라 타케다 신겐 본인이라고 단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역인 노부카도도 포박되었다. 갑양군감(甲陽軍鑑)대로 신겐과 대단히 닮았기에, 구별하기 위해 대역 쪽에는 색깔 있는 천으로 팔을 묶고, 그만은 신겐이나 근시(近習)들과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실은 시즈코는 신겐을 죽일지, 아니면 포박할지 마지막까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것은 노부나가나 이에야스(家康)의 정치적 의도가 얽힌 것이 원인이었다.

신겐이 침공한 것은 어디까지나 토오토우미(遠江)이며, 그곳은 노부나가가 아니라 이에야스의 영토이다.

신겐과 이에야스의 싸움에서 오다 군이 필요 이상으로 활약하면, 이에야스는 그렇다치고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사이에 불만이 남는다.

따라서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오다 군이 처치하지만, 신겐의 수급(首級)은 이에야스에게 일임한다는 것이 가장 타당한 판단이었다. 이에야스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계책이 전달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고른 선택지는 포박이었다.

신겐을 죽이지 않고 포박한 이유는, 역시 정치적인 의도 때문이었다. 도망치는 신겐을 처치하면, 진짜 신겐은 도망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타케다 군을 붕괴시킬 준비는 오다 군이 갖추었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부록(添え物)이라고 생각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한 판단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살아있는 신겐을 포박하여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포박까지의 일련의 흐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다와 도쿠가와 양쪽이 짠 계책이었다고 강변할 수 있다.

누가 봐도 이에야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병력을 온존시켰다가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채가는 모양새지만,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선뜻 내주는 영주(国人)는 없다.

중요한 부분을 취할 수 있을 만한 공헌이 있었다고 세상은 판단한다. 승자만이 역사를 이어갈 권리를 얻는다. 아무리 타케다 측이 아니라고 외쳐도,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이라고 단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신겐만큼은 싸움에서 단순히 처치한다, 는 결론은 되지 않는다. 그 후의 외교 카드, 국내에서의 정치적 의도 등, 다양한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얽히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이것은 신겐 뿐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아 이에야스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신겐이 포박되었기에 타케다에게 싸울 힘은 거의 남지 않았다. 스와 카츠요리가 타케다 가문을 계승하더라도, 점점 포위망이 좁혀져 으깨질 것이 뻔하다.

뭣보다 카츠요리는 지금부터 딜레마에 빠진다. 타케다의 힘을 되찾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터무니없은 징수를 했기에, 이미 카이(甲斐)에 남은 돈은 거의 없다.

돈이 없으면 힘을 되찾을 수 없다. 하지만, 돈을 지금 이상으로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모으면 타케다 가문은 붕괴한다. 답이 안 나오는 이율배반이 지금부터 카츠요리를 덮치게 된다.


"휘이, 끝났다. 전부 외줄타기였지만, 어찌어찌 이쪽의 예상대로 진행됐네"


피로를 토해내려는 듯, 시즈코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며 어깨의 힘을 뺐다. 얼핏 보기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외줄타기의 작전이었다.


먼저 타케다가 호우다 언덕(祝田の坂) 입구에 진을 치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었다. 이것에 실패했을 경우, 지금의 상황이 되었을지는 대단히 의문이다.

왜냐하면 도쿠가와 군은 같이 출진한 척 하며 사실은 하마마츠 성(浜松城)에서 미카타가하라 대지를 크게 우회하여 호우다 언덕 출구로 이동, 시즈코의 신호를 받고 입구로 돌입했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군의 이동 루트 및 행군 시간까지 시즈코는 면밀하게 조사했으나, 도쿠가와 군이 호우다 언덕 출구에 도착하는 시각과 오다 군이 타케다 군을 상대하는 시각은 거의 같은 시각이 아니면 신겐에게 계책을 간파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만약 호우다 언덕 출구에 타케다 군이 기다리고 있었다면,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도쿠가와 군은 순식간에 박살나고, 시간은 걸릴지언정 시즈코의 계책도 간파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시즈코의 계책은 근본부터 뒤엎어졌다. 만약을 위해 시즈코는 호우다 언덕을 파뒤집어서 타케다 군이 행군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다만, 신겐이 그걸 무시하고 진군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호우다 언덕 입구에서 타케다 군이 진을 쳤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시즈코는 내심 쾌재를 올렸다.

단, 호우다 언덕을 파뒤집은 것 때문에 도쿠가와 군의 도착이 약간 늦어졌다, 는 실패도 발생시켰다.


다음으로 갑자기 나타난 오다 군의 무장들은 어디서 어떻게 이동시켰는가.

그건 단순명쾌한 이야기로, 아시미츠(足満)가 싸움 전에 물자를 피스톤 수송했을 때 수송의 호위병으로서 하마마츠 성에 들어가 있었다.

그 후에는 시즈코의 군에 있던 본래의 물자수송 병사들을 호위병과 바꿔치기하면, 다소 인원수가 증감한 정도로 얼핏 봐서는 차이를 알 수 없다.

뭣보다 피스톤 수송을 하여 인원의 출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의 인원이 다르다는 건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리하여 비밀리에 하마마츠 성에 오다 군의 정예들이 포진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급거 불려온 것이 아니라, 시즈코가 병사들을 융통해달라고 사전에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등 무장들 본인이 나올줄은 시즈코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부른 가장 큰 이유는 타케다 군에게 놀라움을 주기 위해서다. 싸움에서 혼란으로 사고가 정지하는 것은, 때때로 치명적인 패배를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타케다 신겐처럼, 직감이 아니라 이론으로 싸움의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에게 예상 외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사고(思考)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 바바 노부하루와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전사하고 갑자기 오다 군의 증원이 나타난 것에 의해 혼란스러워진 신겐은, 차례차례 군이 와해되어 가는 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간신히 신겐의 사고가 정상화되어 타케다 군을 재편하기는 했으나, 상황을 바꾸려고 시도한 일점돌파는 신식총에 의한 면제압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하지만 신겐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코우사카 마사노부에게 일점돌파가 실패했을 경우, 스와 카츠요리를 데리고 후퇴하라고 명령했다. 그 때문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스와 카츠요리를 놓치게 되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완전히 타케다를 괴멸시킨다는 노부나가의 의도는 달성하지 못했으나, 그래도 이 이후에 타케다가 오다에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다만 타케다의 멸망은 노부나가의 비원(悲願)이기에, 설령 타케다가 약간의 병사밖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더라도 완전히 멸망시킬 것이리라.


"훌륭합니다. 계책이 깨끗하게 들어맞으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투항병의 처리를 마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시즈코를 치하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 사상자는 얼마나 나왔나요?"


타케다 군의 사상자는 상상도 되지 않지만,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에 얼마만한 사상자가 나왔는지 그것은 시즈코도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런 걸 파악하기 전에 차례차례 계책을 실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진정된 지금, 타케나카 한베에가 조사하여 겨우 사상자의 숫자가 판명되었다.


"후훗,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들의 사상자는 100 정도입니다. 도쿠가와와 함치면 300에서 400이 되겠지만, 이건 코우사카나 스와의 저항이 예상 이상으로 격렬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타케다의 총 전력을 상대로 이 숫자는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과장스러운 손짓이나 몸짓을 하며 놀라는 타케나카 한베에였는데, 냉정한 그도 이번의 사상자의 숫자는 놀라운 결과였다. 동시에, 신식총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지어 부상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도 이해했다.


"카하하하, 타케다가 꼬리를 말고 내빼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겠지! 그 우에스기(上杉)조차 본 적이 없는 광경, 정말로 속이 다 시원하군!"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이라는 건 찬성하겠지만, 너무 품위없이 떠드는 게 아니다"


"뭐 어떠냐. 이럴 때는 요란하게 떠드는 편이 다들 실감이 나는 법이다"


뒷정리를 마친 시바타나 미츠히데, 삿사 등 오다 가문의 무장들이 시즈코가 있는 본진으로 돌아왔다. 조금 늦게 모리 요시나리(森可成)나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돌아왔다.

그리고 타케다의 배후에 위치했던 도쿠가와 군이 돌아오게 되어 겨우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집결하게 되었다.

나가요시(長可)나 케이지는 그들보다 먼저 돌아와 있었으나, 모리 요시나리에게 칭찬받아서 감격에 겨워있는 나가요시를 진정시키기 위해 현재 시즈코의 곁에는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시즈코 님. 우선 저희 도쿠가와의 위기를 구해주셔서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돌아온 이에야스가 시즈코를 보자마자 머리를 숙이고 감사의 말을 했다. 뒤에 있던 타다카츠(忠勝)나 한조(半蔵)도 이에야스를 따랐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별로 면식이 없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나, 그들의 근시들, 거기에 병사들까지 마찬가지였다.


"머, 머리를 드십시오, 도쿠가와 님. 저 같은 것에게 숙여도 되는 머리가 아닙니다"


"아니오. 당신이 없었다면 우리 나라는 타케다에게 유린당했을 겁니다. 이 이에야스의 머리로 괜찮다면 얼마든지 숙이겠습니다"


곤란하네,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시선을 돌렸으나, 보기좋게 전원이 그 시선을 피했다. 배신자들, 이라고 내심 우는 소리를 하면서 이에야스가 머리를 들기를 기다렸다.


"도쿠가와 님"


이윽고 이에야스가 머리를 들었을 때, 사쿠마(佐久間)와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투구를 벗더니 이에야스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와 내통했다는 의심을 한 저희들의 무례,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도쿠가와 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얄팍한 생각(浅慮)으로 도쿠가와 님과 가신 분들을 모욕한 저희들의 죄, 깊이 사죄드립니다"


"도쿠가와 님의 뜻에 따라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 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흘려버리십시다"


"도쿠가와 님의 관대하신 뜻, 감사드립니다"


오다와 도쿠가와 사이에 있던 앙금이 사라지고 동맹이 굳건해졌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꼭두서니 빛(あかね色)으로 물들어 있었다.

싸움을 시작한 것이 점심 무렵이었으니, 이래저래 몇 시간은 싸웠다는 것을 시즈코는 새삼 인식했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타케다와의 싸움 후에 할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은 그걸 잊고 승리에 취해서 떠들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하마마츠 성으로 돌아갈까요"


"아, 그 전에 한 가지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바로 의논해야 할 일이 있었나, 하고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달리 귀여운 몸짓(仕草)에 타다카츠가 기절하려고 했으나, 뜨뜻미지근한 표정을 떠올린 한조와 야스마사(康政)가 재빨리 시즈코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렸다.

이에야스의 뒤쪽에서 수수께끼의 공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시즈코는 이에야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포박한 신겐이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난리라서 말입니다"


"아하, 네? 저를요?"


"예. 아무래도 저희들만으로 결정할 수 없어서, 판단을 여쭈러 왔습니다"


이에야스 왈, 신겐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시즈코와 만나게 해달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즈코는 어디까지나 노부나가의 가신이기에, 이에야스의 의향만으로 만나게 할 수도 없었다.


"만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패전의 원한을 말할 뿐일 것이다. 그런 헛소리를 들어줄 필요는 없겠지"


시즈코가 생각하기 전에 아시미츠가 즉각적으로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다. 다들 판단을 망설이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결론을 내리는 건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으ー음, 딱히 상관없을 것 같긴 한데, 마지막에 만나는 게 나라면 나중에 불명예가 되지 않을까요?"


목이 잘리기 직전에 여자와 만났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신겐의 명예가 상처를 입지 않을까 시즈코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기 때문에 신겐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문제없을 것이다. 본인이 선택한 길인데, 그 결과를 본인이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쩔 것이냐"


"그런가요. 뭐 저쪽이 바란다면, 나는 딱히 문제없지만 말이에요"


시즈코의 한 마디로 면회가 실현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최대의 공로자를 혼자 가게 할 수는 없었다. 사후처리에 몇 명 남겨놓기는 했으나, 태반의 사람들이 호위로서 시즈코를 따라가게 되었다.


(엄청난 상황이 되었네)


평소 이상으로 주위가 엄중하게 굳혀져 있는 것에 시즈코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자신이 얼빠진 짓을 하면 그건 다른 사람의 불명예도 되기 때문에 호위를 받아들였다.

이동이라고는 해도 그리 긴 거리를 걷는 것은 아니었다. 신겐은 포로로 잡혔지만, 병 때문에 이동시킬 수 없어서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임시로 세워진 진 안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근시들도 또한 마찬가지로 포박되어 있었다.


지위도 고려하여 중앙에 이에야스, 좌측에 타다카츠 등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우측에 시즈코와 사이조(才蔵), 아시미츠, 그리고 시바타와 삿사 등의 오다 가문 가신들이 위치하게 되었다.

각자가 소정의 위치에 자리잡자 이에야스는 신겐을 데려오도록 명했다. 잠시 후 손이 뒤로 묶인 신겐을 병사들이 데리고 왔다.


신겐은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갑주나 투구는 착용하고 있지 않고 중(坊主)을 방불케 하는 복장이었다. 호흡 소리는 거칠어서 한눈에도 상태가 나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기다리셨습니다. 당신의 요청대로, 고노에(近衛) 님의 따님을 모셔왔습니다"


신겐의 눈이 희번득거리며 시즈코를 포착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려는 그 눈에,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할 뻔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시미츠가 앞으로 나와 신겐에게서 시즈코를 가렸다.


"살기를 뿜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아니, 괜찮아요. 그보다 안 보이니까 비켜줘요"


신겐을 마주 노려보는 아시미츠였으나, 시즈코에게 거칠게 취급받고 맥없이(悄然) 물러났다. 자신에게 기합을 넣은 후, 시즈코는 한 호흡을 두고 신겐을 마주 바라보았다.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문득 신겐이 웃음을 떠올렸다.


"훗, 이런 맹한 계집에게 나는 패한 것인가. 하지만,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로다"


그건 신겐 나름의 칭찬이었으나, 시즈코는 누구와 만나더라도 매번 맹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에 울고 싶어졌다.

어째서 그런 평가가 되는 것인지 이상하게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다른 무장들처럼 기백이 없고, 자칫 겁이라도 주면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은 외모와 분위기를 가진 것이 원인이라고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고노에의 딸이여, 이름은 뭐라고 하느냐"


"어, 아, 네. 시즈코라고 합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그대는 이 나를 쓰러뜨렸다. 당당하게 행동해주지 않으면 내 이름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며 신겐은 웃었다. 그는 그저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대패배, 그것이 시즈코 같은 사람에게 당한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신겐은 막연히 생각했다.


"아니, 저 뿐만이 아니라, 다들 따라와 준 덕분입니다. 저는 뒤에서 이것저것 말하기만 한 것 뿐이에요"


"후하하핫! 천하의 타케다와의 승리를 우쭐해하지 않다니. 어디까지나 눈에 띄는 게 싫다, 인가. 너는 뭘 하더라도 스스로를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지. 그렇기에 주위에서도 놓쳐버렸다. 나 자신도, 안 좋은 예감만 들었지 설명이 되지 않았기에 무시해 버렸지. 후훗, 완패로다"


그건 누구나 귀를 의심할 말이었다. 신겐이 명확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것도 완패라는 말로. 말을 꺼낸 신겐보다도, 오다-도쿠가와의 무장들 쪽이 동요했다.

주위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신겐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을 꺼낼 때마다 그는 마음 속에서 매듭을 짓고 있는 듯 했다. 신겐의 표정이 서서히 의연(毅然)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도쿠가와의 꼬맹아. 내게서 훔쳐간 지휘부채(軍配団扇)를 시즈코 님께 넘겨라. 그건 네놈 따위가 가져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불손한 태도로 신겐은 이에야스에게 명령했다. 신겐의 당당한 태도에, 승자 측인 이에야스가 당황하고 있었다.

자리의 분위기에 휩쓸린 이에야스는 병사에게 명하여 신겐의 지휘부채를 가져오도록 했다. 잠시 후 병사가 신겐의 지휘부채를 쟁반에 얹어 돌아왔다.


"그거다, 틀림없군. 어서 넘겨라"


"저어ー, 분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죄송한데, 지휘부채보다 라이쿠니나가(来國長)라던가 이즈미노카미카네사다(和泉守兼定) 쪽이 좋은데요……"


시즈코가 작게 손을 들며 머뭇머뭇 신겐에게 말했다. 라이쿠니나가란 타케다 신겐이 애용했던 패도(佩刀)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신겐이 죽은 후, 우여곡절을 거쳐 에도(江戸) 시대에 야나기사와(柳沢) 미노노카미(美濃守) 요시야스(吉保)가 신겐의 선조 대대의 위패를 모신 절(菩提寺)인 에린지(恵林寺)에 봉납했다. 그 밖에도 (2대째) 이즈미노카미카네사다라고 신겐이 사용했던 애도(愛刀)가 있다.

시즈코에게는 신겐의 지휘부채를 받아도 쓸 데가 없었기에, 받을 수 있다면 그가 애용한 칼 쪽이 좋았다.


"……크, 큭큭큭, 하하하핫! 소문대로 칼 수집가라는 건가. 상관없다, 가져가라. 네가 가진다면 안심이다"


무슨 이유로 시즈코가 맘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겐은 배포좋게 칼까지 시즈코에게 주었다. 이리하여 시즈코 앞에 신겐이 사용했던 지휘부채와 애도가 놓였다.

일순간 칼을 보고 눈을 반짝인 시즈코였으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자 즉시 표정을 조였다.


"다음에는 천하(泉下, 저세상)에서 싸워보자"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끝난 신겐은, 이제부터 참수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고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이렇게 피곤한 건 사양이에요"


"웃기지 마라, 이기고 도망치는 것 따위 용납할 수 없다. 천하에서 가신들과 절차탁마하여, 이번엔 내가 네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마"


시즈코의 대답이 히죽 웃은 신겐이었으나, 갑자기 그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격하게 기침을 했다. 세 번째의 기침에서 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신겐은 위암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그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위생병을 부르려고 했다.


"됐다, 내 몸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지"


입 안의 피를 뱉어버린 후, 신겐은 호흡을 정돈했다. 침착함을 되찾자, 그는 주위의 놀라움을 무시하고 일어섰다.


"또 만나자"


그것이 신겐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해가 지기 전, 그는 타다카츠의 손에 의해 목이 떨어졌다.

타다카츠가 신겐의 목을 벤 이유는, 신겐이 포박당했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전국시대 최강의 이름에 걸맞는 최후를 보여준 데 대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무장들 나름의 배려(手向け)였다.

그리고 신겐의 목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일 없이, 신겐의 근시들의 손에 의해 카이로 귀국했다.

타케다(武田) 토쿠에이켄(徳栄軒) 신겐(信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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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7 1572년 12월 하순



타케다(武田) 군의 돌격을 본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군도 지지 않으려는 듯 포효를 올리며 타케다 군을 맞아 싸우려 돌격했다.

타케다의 기마대(騎馬隊)는 유명하지만, 기마대란 기마병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마의 이점은 그 돌파력과 기동력에 있다.

상대에 재빠르게 접근하여 일격을 먹이고 이탈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물론 기마대만으로 돌격해서는 의미가 없다.

모처럼 박아넣은 쐐기는 밀어넣지 않으면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다. 후속 부대가 무너진 곳을 넓혀야 전과가 올라간다.


아직 일본에서는 말에게 거세수술(去勢手術)을 하지 않고 눈가리개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 밀집해서 나란히 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말은 시야가 350도나 되고, 원래 겁이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밀집하는 것을 싫어한다. 오늘날의 경마 등에서는 블링커(blinkers)라고 불리는 눈가리개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다.

설령 타케다가 말을 나란히 달리게 할 수 있다 해도,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 같은 장애물이 적은 장소에서조차 기마만으로의 운용은 하지 않으리라.

그걸 증명하듯, 타케다의 군학서(軍学書)인 갑양군감(甲陽軍鑑)에도 기병 운용에 관한 기재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말은 대장과 소수의 기병만으로 문제없고, 싸움의 주력은 보병이다.

말을 다수 나란히 하여 상대에게 돌진하는 것 따위는 싸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는 기술이 보인다.


그렇기에 피아를 불문하고 군의 주력은 보병이 된다.

돌격의 기세 그대로 백병전으로 돌입하는 건가라고 생각되었으나, 양군 모두 활의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방패를 나란히 세워 사격의 응수가 되었다.

선봉을 맡은 자들이 서로 화살을 쏘아대며 교착 상태에 빠지는가 싶었을 때, 문득 메마른 총성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갑작스런 총성에 놀란 타케다 군이었으나, 총알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맹렬히 화살을 퍼부어왔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총성이 울려퍼졌으나, 이미 타케다 군은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경향이네"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던 시즈코는, 그들이 소리의 인식에 실수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자군과 타케다 군을 번갈아가며 비교했다.


"좋아좋아, 우선은 '팽팽한' 게 중요해. 처음부터 '이길 수' 있지만, 그러면 상대가 경계를 하니까. 우선은 타케다 군에게 이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야지"


그로부터 한동안 시즈코는 쌍안경으로 최전선을 확인했다.

오다 군과 타케다 군의 소규모 충돌이 교착되고 있는 상황이 사반각(四半刻) 정도 이어졌을 무렵, 시즈코는 쌍안경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던 인물을 발견하자 그녀는 말을 걸었다.


"끝났어요?"


"예, 주군. 신식총(新式銃)의 교정은 완료했습니다. 이걸로 명중 정밀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입니다"


"좋아요. 각자에게 전달, 준비가 끝나는 대로 최전선으로 나가라고 하세요. 전원 다 모이면 저도 앞으로 나갑니다"


"그,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전선에서는 지금도 격렬한 화살의 응수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시즈코의 갑주가 특제품이라고 해도 갑주가 가리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상관없어요. 장수가 목숨을 걸지 않는데 병사가 따라오겠어요?"


"주군…… 옛! 주군은 이 목숨과 바꿔서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부탁해요"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냈다. 시즈코의 신호를 확인한 장수들은 휘하의 병사들을 소정의 위치로 이동시켰다. 텟포슈(鉄砲衆)가 앞으로, 그리고 그 뒤로 나가요시(長可) 부대가 이동했다.

시즈코는 텟포슈와 나가요시 부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텟포슈들은 머리 위에 방패를 들고 있었으며, 이미 화살이 날아오는 위치에 있었다. 시즈코의 위치도 조금만 벗어나면 화살이 날아올 위험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거의 예정대로'의 위치에 있었다.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텟포슈들이여! 힘들고 괴로운 훈련에 잘 견뎌주었다!"


기분을 고쳐먹고 시즈코는 총탄을 장전하고 사격 준비에 들어가 있는 텟포슈를 고무시켰다.


"자랑스러워하도록! 훈련에 견딘 그대들은 지금, 영광스러운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후 수천, 수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군들의 등 뒤를 쫓겠지! 그야말로 어둠을 헤치는 광명이니라!"


지휘용 부채(軍配)를 대신한 쿠제(kuse)를 하늘높이 치켜들고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첫 한 걸음을 내딛는 정예들이여! 타케다에게, 이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신의 일격을 보여주도록 하자! 전원 조주운ー! ……일제 발사아(斉射)ーーーーー!!"


시즈코가 쿠제를 타케다 군을 향해 내리침과 동시에, 최전선에 늘어서 있던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타케다 군의 최전선을 구성하는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군의 방패수들이 벌집으로 화했다.




그 광경은 타케다 군은 물론, 사격을 한 텟포슈들조차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약간 어긋났기에 증폭된 파열음이 울려퍼졌나 싶더니, 전선을 지탱하고 있던 방패수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어린 대나무를 태우는 듯한 소리가 났나 싶더니, 방패로 몸을 지키고 있었을 병사들이 방패와 함께 쓰러지는 광경은 누구의 눈에도 비정상으로 보였다.


텟포슈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총에 수백 미터를 노릴 수 있는 포텐셜이 있는 것을 몰랐다.

훈련에서는 근거리에서 작은 과녁을 노리고 사격을 반복했기에, 이만한 거리조차 살상범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차탄(次弾) 장전!"


시즈코의 호령에 의해 텟포슈들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피해를 입은 타케다 군보다는 훈련을 거듭하여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게 된 텟포슈들이 회복이 훨씬 빨랐다.

반사적으로 총탄을 장전한 텟포슈는, 그대로 조준을 하고 사격태세를 취했다.


"일제 발사아ーー!"


이번에는 총성이 나란히 뇌명(雷鳴)처럼 울려퍼졌다. 또다시 타케다 군이 크게 줄어들었다. 세번째의 장전은 침착함을 되찾아서 사격후에 즉시 완료되어, 곧장 사격태세가 갖춰졌다.


"일제히 발사하라!"


시즈코의 목소리와 함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은 빗(櫛)의 이빨이 빠지듯 털썩털썩 쓰러져갔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균형을 이루어 소규모 충돌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 순식간에 오다 군의 우세로 기울었다.

하지만,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열세를 인식할 틈은 없었다. 총성이 진동할 때마다 무수한 시체가 양산되는 것이다. 화승총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총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래의 화승총에게 방패를 관통할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빠른 발사간격이 혼란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타케다 군은 역전(歴戦)의 부대. 원인은 몰라도 결과로부터 판단할 수는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고싶지 않아ーー!!"


그것은 총성과 함께 병사가 죽는다. 총성이 들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라는 공포였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방패도 갑옷도 소용없어, 풀처럼 단지 베여나갈 뿐이라는 사실이 간담(心胆)을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 해도 밀집해 있었기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총탄은 차례차례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ーーーー보였다!)


쌍안경으로 상황을 확인하던 시즈코의 눈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완전히 와해된 것, 그리고 배후에 있는 타케다 군 최강의 적비대(赤備え),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군이 들어왔다.

재빠르게 쌍안경에서 눈을 뗀 후, 시즈코는 의욕이 넘치고 있는 나가요시(長可) 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래 기다렸다, 용사(猛者)들이여! 오야마다 군은 붕괴했다! 이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없다! 자 너희들이 나갈 차례다! 함성을 질러라! 그리고 훌륭하게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고 와라! 적비대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니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가장 선두에 있던 나가요시가 시즈코 이상으로 포효했다. 그것은 뱃속까지 울리는 사나운 짐승의 포효였다. 그리고 나가요시 나름의 독려이기도 했다.

나가요시의 포효를 들은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사기를 돋우었다. 이윽고 포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가요시는 무기를 타케다 군 쪽으로 향했다.


"전원, 돌격이다아ーー!!!"


나가요시 군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즈코와 텟포슈들은 나가요시들이 포효를 지르고 있는 동안 그들이 지나갈 길을 터주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땅을 울리며 함성을 지르고 나가요시 군은 나케다 군의 최전선이 된 야마가타 마사카게 군에게 돌격했다.

귀기(鬼気)가 감도는 기세로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를 보고, 약간 남아있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이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배후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갑자기 전위(前衛)가 무너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 앞으로 다가온 적을 보고 그는 즉시 작은 학익진(鶴翼陣)을 전개하여 맞아싸우도록 병사들에게 명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돌출한 적에 대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있는 학익진은 이치에 맞다. 포위하여 두들겨버리면 보병의 돌격 따윈 뻔한 것이다.


그 판단은 나가요시 부대가 통사의 보병이었을 경우에 한정한다면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즈코가 준비한 대 타케다용 병기는 신식총 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뭐냐, 저놈들은!"


야마가타의 학익진 중앙을 향해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는, 얼핏 보기엔 무턱대고 돌진하기만 하는 무사들의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대에서 화살비가 퍼부어져, 중앙에 도착하기 전에 힘이 다할 거라고 적비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요시 부대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를 유지한 채 달렸다.

눈이 좋은 사람은 눈치챘으리라. 나가요시 부대에 쏟아진 화살은 대부분이 튕겨나가서 갑주에 꽂혀잇는 화살조차 거의 없었다는 것을.


"핫! 엄청나구만, 이 갑주는. 버드나무에 바람부는 듯(柳に風) 화살을 받아넘기는데"


선두에서 말로 질주하는 나가요시가 우스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가 말하고 잇는 동안에도 오른팔의 토시(篭手)에 화살이 명중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화살촉이 달려있을 화살은, 곡면을 미끄러지더니 꽂히지 않고 빗겨갔다.

대장격인 나가요시만이 특별한 게 아니다. 말단의 아시가루(足軽)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의 광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갑주에도 채용되어 있는 2식 장비(弐号装備)였다. 석영(石英) 유리를 고열로 처리하여, 섬유가 될 때까지 잡아늘린 유리섬유를 짜넣은 갑주였다.

현대에서는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에도 사용되고 있는 유리섬유이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강화 플라스틱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쌀과 삼베를 사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은 실용화되어 있지만, 갑주를 만들 정도의 강도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금속섬유와 유리섬유를 교차로 짜넣어 갑주의 표면을 형성하고, 갑주 아래에 입는 홑옷(帷子) 부분에도 유리섬유를 짜넣어 가벼우면서 강인한 갑주를 실형했다.

다만 고전적인 제법으로 유리섬유를 만들고 있기에 불순물도 많은데다 강도를 우선시했기에 수명이 짧다.

전국시대 기준으로는 무서운 방어력을 자랑하는 반면, 2~3년이면 열화되어버리는 쓰고 버리는 물건(使い捨て)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비가 되었다.

물론 강성(剛性)만 높아서는 충격이 침투하여 병사가 대미지를 입게 된다.

하지만 팩티스(factice)를 충격흡수재로 끼워넣거나, 메쉬(mesh) 형태로 섬유를 짜넣거나 해서 인성(靭性)을 향상시켜, 비로소 화살 정도라면 끄떡도 없는 강도를 실현했다.


"이놈들, 요술(妖術) 같은 것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외침과 동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지휘봉을 특정한 패턴으로 휘둘러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제 2진에 대기하고 있는 타케다 군의 제장(諸将)들에게 전선의 이상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어떤 작전의 실행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저건…… 다들, 물러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신호가 무엇인지 이해한 적비대는,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질서있는 훌륭한 철수 행동은 나가요시들에게도 전황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발을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학익진을 펼치는 것도, 2호 장비에 놀라 부대를 물리는 것도 상정한 대로의 전개였으므로.


적비대들이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명령에 따라 좌우의 날개를 남기면서 중앙만이 후퇴해갔다. 중앙이 후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적의 전선은 후퇴와 함께 세로로 늘어지고 V자의 안쪽으로 유인되어, 간격이 벌어진 좌우 양익으로부터의 장시간의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장시간의 맹공에 노출되어 궁지를 벗어나고자 후방이나 좌우로 도망치는 패거리를 친다. 실제로 제 2진의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나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등이 가세하고자 달려와서 나가요시 부대를 포위하려고 하고 있었다.


"좋았어! 저놈들이 걸려들었다! 용기병(竜騎兵)들, 부탁한다!"


하지만 나가요시에게는 포위망이 닫히려고 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호기였다. 그는 함께 따라온 용기병, 니스케(仁助)나 시키치(四吉)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호령 하에 일제히 컴파운드 보우를 조준하더니, 학익진의 좌우 날개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밀집한 지대에 활을 쏘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의 중심으로 날아간 화살의 숫자는 약 30대. 적병의 숫자에 비하면 한 대에 한 명을 죽이더라도 새발의 피에 불과했으리라.


화살은 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 중력에 따라 낙하했다. 통상의 화살이라면 기세를 잃으면 끝이지만, 그 화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병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폭심지(爆心地) 부근에 있던 적비대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굉음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충격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버티지도 못하고 날아가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두통을 수반하는 이명(耳鳴り)이 적비대의 시각과 청각을 빼앗았다.


시야가 트였을 무렵, 그들은 오늘 몇번째가 될 지 모르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발생원(発生源)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는, 절구 모양의 큰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이명 사이사이로 간신히 들리기 시작한 귀에 들리는 것은 병사들의 절규였다. 주위는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직격을 당해 몸의 일부를 잃은 사람, 파편을 맞고 몸 속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 눈이나 귀에서 피를 흘리고 구토하면서 가늘게 꿈틀대는 사람.

말조차 갈기갈기 찢겨 검붉은 내장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주위에 멀쩡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새겨진 것은, 피리 소리와 함께 지옥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무자비한 죽음을 선고하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친다, 라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운좋게 경상이었던 적비대가 고깃조각(肉片)으로 변했다.

폭풍과 함께 휘말려올라가, 예전에 적비대였던 자들의 팔이나 다리가 긴 체공시간을 마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피와 내장과 분뇨의 비가 쏟아져, 정지된 사고가 격렬한 취기(臭気)에 노출되어 강제적으로 되돌려져, 심장을 움켜잡힌 듯한 공포에 절규했다.


"자, 장난 아닌데, 저 작렬통(炸裂筒). 확실히 시즈코가 사용할 곳을 잘못 판단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한 것도 납득이 간다"


작렬통이란, 다이너마이트를 봉입(封入)한 통을 매단 특수한 화살을 가리킨다.

본래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밀폐공간 쪽이 충격을 분산시키지 않아서 높은 위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개방 공간에서 사용했을 경우, 충격의 대부분이 개방 공간으로 방출되어 효과가 격감한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손바닥에서 폭발하면 화상으로 끝나는 폭죽(爆竹)도, 주먹을 쥔 상태에서 폭발하면 손가락을 뿌리째 날려버리는 위력이 된다.

하지만 본래는 바위를 파쇄하고 산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이다.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터질 경우 아무리 위력이 감소되더라도 인간 정도는 남아나지 않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폭풍보다도 큰 효과를 내는 것이 소리다. 신식총도 그렇지만, 작렬통도 소리의 효과를 계산하여 설계되어 있다.

특징적인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죽는다. 상대에게 그렇게 각인시키면, 소리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소리가 나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어 전투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미지의 것이라면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어떤 원리로 죽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대처도 할 수 있겠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대처는 때때로 어렵다.

거기에 공포가 더욱 판단을 둔하게 한다. 소리 공포증(音恐怖症)이라는 병명도 있을 정도로, 정체불명의 소리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기만 해도 발광하고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자…… 드디어 보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


학익진을 전개하고 다시 양 날개를 두텁게 했기에 정면의 방어가 얇아져 있었다. 이거야말로 나가요시가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나가요시는 포효하더니 뒤의 보병들의 속도를 무시하고 말의 속도를 올렸다.

갑자기 나가요시가 돌출한 것을 깨달은 직속 병사들(随伴兵)도 당황해서 속도를 올렸으나 반응이 늦었다. 한편, 적비대들은 양 날개의 괴멸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나가요시가 육박하여 드디어 교전권(交戦圏) 안에 들어왔음에도, 적비대들은 사고가 마비되어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네놈의 목을 받으러 왔다아아아!! 얼른 내게 목을 내놔라아아아!!!"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거대한 무기——바디시(bardiche)——가 최전열에 있던 적비대들을 휩쓸었다. 나가요시가 송곳(錐)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광범위하게 뚫린 구멍을 넓히기 위해 후속 병사들도 돌격했다.

날려져가서 땅바닥을 기게 되어 간신히 궁지(窮地)에 몰렸음을 깨달은 적비대들이었으니, 이미 마음이 꺾여 있었다.

위축된 마음으로는 본래의 힘을 절반도 내지 못하여, 정강무비(精強無比)하다는 적비대들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돈이 굴러다니는 거나 마찬가지구만ー!"


"적비대를 죽여라! 썩어도 타케다의 적비대다. 목의 가치는 높다고!"


나가요시 부대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제각기 외치면서 적비대를 처치해갔다. 눈을 번들거리며 적비대를 노리는 광경은 비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적비대를 노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적비대의 목은 말단의 아시가루라고 해도 제법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난 갑주를 몸에 두르더라도, 작렬통이라는 광범위 파괴병기가 있더라도, 죽음의 공포는 간단히 극복할 수 없다.

그 공포를 극복하는 데는 명예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나가요시라는 선두를 달리며 견인하는 존재, 그리고 처치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욕망이,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고 있었다.

죽음을 당하는 적비대의 입장에서는 명예나 체면은 없는거냐, 라고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아시가루나 잡병들의 입장에서는 명예가 밥먹여주지는 않는다.


"목이다!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포상을 위해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뒤섞여, 나가요시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노리고 돌격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적비대를 처치한다는 혼돈스러운 전장이 출현했다.




"거 참…… 요란하네"


상황을 살피고 온 척후의 보고에,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시가루라도 목 하나당 넉넉한 포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쌍안경으로 다른 장소를 보니, 사이조와 아시미츠의 군이 바바 노부하루 군, 케이지와 타카토라의 군이 나이토 마사토요와 사나다(真田) 형제와 싸우고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제 2진의 보좌를 요구한 것처럼, 시즈코도 남은 네 명에게 나가요시의 보좌를 명했다. 작렬통으로 제 2진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하고, 그 옆구리에 각자 구멍을 뚫는 형태로 돌격했다.


텟포슈도 각각 300씩 데리고 있었기에, 타케다 군 제 2진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보좌에 참가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기는 커녕 케이지나 사이조, 아시미츠, 타카토라와 싸우기만도 벅찼다.

특히 아시미츠의 부대가 이질적이었다. 전신에 화살이 꽂혀있는 상태에서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며 적진에 돌격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입에서 침을 흘리고,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에,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힘으로 철봉을 휘둘렀다. 그런 자들이 100명 가까이 되었다.


"쏴라"


아시미츠의 명령에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멍한 눈을 한 자들은, 비틀비틀 일어서더니 다시 철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광경에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다.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쏘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뭣보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놈들은 아군이 아니다. 타케다의 간자이지. 놈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을 죽여라"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의 정체, 그것은 노부나가가 포박한 타케다의 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시미츠는 무서운 짓을 했다.

다투라(Datura)에서 추출한 마약 성분을 기반으로, 의식 혼탁이나 섬망 상태가 강하게 발현되도록 개량한 약을 정제하여, 간자들에게 투여하여 마인드 컨트롤을 실시했다.

반복적인 약의 투여와 세뇌에 의해, 간자들은 인격이 붕괴하여 단지 명령받은 대로 싸우는 살육 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지금 바바 노부하루 군을 덮쳐가고 있는 자들도, 약물 투여에 의한 황홀감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기에, 총격을 받아도 쇼크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혈은 확실히 몸의 힘을 빼앗고, 육체의 손실은 그 수명을 줄이고 있었다.

비정(非道)한 작전이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쓰고 버리는 간자를 재활용하고 있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좋아, 돌격이다"


대충 처리된 시점에서 아시미츠는 병사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일순 주저했으나, 아시미츠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그 뒤를 쫓았다.

휘하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바바 노부하루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돌격해오는 오다 군에 대해 손쓸 방법이 없어, 차례차례 병사들이 유린되어 갔다.


"치잇! 저렇게까지 사악한 계책을 쓰다니!"


군의 재편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바바 노부하루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분기(奮起)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의 등불은 지금 막 꺼지려 하고 있었다.


"소용없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라고 선언했지 않았더냐"


바바 노부하루의 앞을 아시미츠가 가로막았다. 직속 부하(子飼い)가 아시미츠의 발을 묶으려 했으나 일격에 베여죽었다.


"하지만 과연 바바 노부하루, 여기까지 버틴 건 칭찬해주지"


"네 이놈……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 것이냐. 네놈에게는 무사의 긍지라는 것이 없는 것이냐!"


약물로 미치게 한 병사를 돌격시키고, 그 등 뒤에서 아군과 함께 적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소행이라고 바바는 생각했다.


"흥, 네놈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알겠느냐, 바바 노부하루. 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었다. 하지만 쿄(京) 패거리들은 내가 방해된다고 생각했을 때, 암살이라는 수단을 취했지"


"그것과 지금 이것에 무슨 관계가 있나!"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아. 뭐가 어쨌든 무가(武家)의 두령(棟梁)인 정이대장군을 암살한 것이다. 암살의 어디에 정도(正道)가 있느냐. 하지만 암살된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그러긴 커녕 다음 정이대장군을 세웠지. 자, 대답해봐라, 바바 노부하루. 정론을 이야기하겠다면, 어째서 내가 암살당했을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느냐!"


"큭!"


"이해되었느냐. 네놈의 정도는, 네놈에게 편리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암살당했을 때 이해했다. 이 세상에는 정도도 사도(邪道)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ーーーー"


칼 끝부분을 바바 노부하루에게 향하더니, 아시미츠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을 이었다.


"승자에게만 정도가 있으며, 패자에게는 정도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이 놈, 궤변을…… 큭!"


어떻게든 되받아치려고 바바 노부하루가 아시미츠를 마주 노려보았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시미츠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승리를 확신하고 패자인 바바 노부하루를 조소하는 웃음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아시미츠의 태도를 괴이쩍게 생각한 바바 노부하루의 귀에 말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려 한 순간, 그의 눈에 사이조가 창을 겨누고 돌격해오는 광경이 비쳤다.


"바바 노부하루!! 그 목, 받아가겠다!"


주위의 병사들도 아시미츠에게 의식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사이조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처음부터 아시미츠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생각은 없었다. 사이조가 바바를 처치하기 위한 미끼 역할에 철저했던 것이다.


타케다의 이야기를 아시미츠가 몇 번이나 걷어찬 것은, 바바 노부하루가 나올 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바 노부하루와 회담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그를 도발하고 모멸한 것도, 자신을 보면 바바 노부하루가 반드시 싸움을 걸어올 거라고 아시미츠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만한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지독할 수 없는 욕을 먹으면 박살내버리고 싶은 감정이 생겨난다.

그렇게 내심 분노에 떠는 바바 노부하루를 최전선으로 끌어내, 깊게 파고들어왓을 때 바바 노부하루를 사이조가 처치한다는 작전이다.

도중까지 사이조의 군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뒷받침 역할(陰役)에 철저했던 것도, 바바 노부하루와 그의 병사들에게 사이조의 군은 두려워할 게 못된다고 방심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찌감치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딱히 그가 맨 처음 처치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지휘능력이나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 바로 그렇기에 수십년 동안이나 긁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전쟁터에서 날뛰어 왔다.

그리고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싸움의 후반이 되면 될수록 성가신 존재가 된다.


타케다 사천왕(武田四天王)이나 타케다 24장(武田二十四将)을 아무리 많이 처치하더라도, 중요한 타케다 신겐을 처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타케다 군이 아무리 많이 살아남더라도, 신겐의 목만 취하면 남는 장사다.

그 정도로 신겐의 목은 중요했으며, 그 최대의 장애물이 되는 인물이 바바 노부하루였다. 첫 싸움에서 그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전략상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통상의 전투를 걸어봤자 다소 피해를 줄 뿐이지 상대가 재편을 꾀하게 될 게 뻔하다.

그렇기에 사악하고 비정하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의 목을 베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아시미츠가 채용되었다.

심리적인 동요가 전혀 없이 사람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버리는 아시미츠의 작전을 실행하여, 처음으로 바바 노부하루는 적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싸우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분노를 느끼며 아시미츠에게 의식을 집중했기 때문에, 최초이자 최후라고도 할 수 있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호기가 생겨난 것이다.


순식간에 지금까지의 아시미츠의 언동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라고 바바 노부하루는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칼로 사이조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가 늦어, 바바 노부하루가 칼을 뽑는 것보다 빠르게 사이조의 창이 번쩍했다.


바바 노부하루의 목이 허공에 날았다. 날아간 목은 몸통과 분리된 덧을 모른 채 공중에서 여전히 악귀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땅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바바의 머리는 이윽고 뭔가에 부딪혀서 굴러가는 걸 멈추었다. 바바의 머리가 부딪힌 것은 사이조의 발이었다.

그는 바바의 머리를 잡더니 하늘높이 치켜들며 선언했다.


"바바 미노노카미(美濃守)의 목, 카니 사이조(可児才蔵)가 베었다아!!"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바바 노부하루와 아시미츠, 사이조가 싸우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는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은 곁에 따르는 병사는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직속 부하이며, 정예 중의 정예다. 설령 마음이 꺾이지 않았더라도 적비대에 밀릴 자들이 아니다.

직속 부하들이 무기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비대가 베여 쓰러졌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숫자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되었겠지만, 심리적으로 패배한 상태인 적비대는 나가요시에게 가까이 가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나가요시가 외쳤다. 그게 직속 부하들에게 힘이 되는지, 그가 고함칠 때마다 직속 부하들에게 기력이 넘쳤다.

바디시를 휘두르며 방해되는 적병들을 쳐 쓰러뜨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나가요시는 적비대의 포위를 돌파했다.

적비대의 후방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시야에 포착하자, 나가요시는 바디시를 고쳐잡았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퇴로나 주위를 신경쓸 여유 따위는 머릿속 한 구석에조차 없었다.

다만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렸다. 야마가타 마사카게 쪽도 나가요시를 확인했으나, 그는 후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후방에 위치한다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적에게 목젖을 찔려 도망쳤다고 하면 적비대의 이름은 땅에 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병사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할 때 겁먹고 도망쳤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이미 야마가타 마사카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양 어깨에는 지금까지의 적비대의 명예와 일족의 명예, 그리고 적비대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명예가 얹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후퇴하지 않았다. 도망친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설령 파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꼬맹이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십 년은 이르다!"


나가요시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되받아친 후,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고삐를 쥐고 돌격했다. 설마 하던 단기(単騎) 돌격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측근들은 깜짝 놀란 후 다급하게 그를 뒤쫓았다.


"꼬맹이가 아니야! 내 이름은 카츠조(勝蔵)! 모리(森) 카츠조(勝蔵) 나가요시(長可)다! 자알 기억하고 지옥에 떨어져라!!"


"주둥이는 살았구나! 내 이름은 야마가타(山県) 사부로(三郎) 효에노죠(兵衛尉) 마사카게(昌景)!! 네놈을 명부(冥府)로 보낼 사람의 이름이다!!"


일기토가 된다. 쌍방의 직속 부하들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실을 이해하자, 일기토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났다.

그 외에 달려온 타케다의 적비대나 나가요시의 병사들도, 일기토가 시작될 거라는 걸 이해하자 각자의 등 뒤에 위치했다.


[알겠느냐 카츠조. 네놈이 야마가타와 상대할 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명심해라. 수많은 전쟁터를 겪어온 야마가타와 네놈은 압도적으로 경험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져서 경험이 많은 쪽이 압도하게 되지]


나가요시는 아버지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말을 떠올렸다.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야마가타 마사카게와 상대해보니 처음으로 깨달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비할 데 없이 강한(大剛) 무사인 것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짓눌려 버릴 듯한 중압감,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의 기백, 하나같이 지금의 나가요시에게는 없는 것들 뿐이었다.


[젊음에 맡긴 기세 따위, 역전의 강자(猛者)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게다가 야마가타는 궁지에 몰린 상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일기당천의 사병(死兵)인 점을 명심해라]


(알겠어, 아버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진짜 강적이라는 걸 말야!!)


바디시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나가요시는 최초의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성공하면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나가요시가 전사하는 것은 확정이다.

이미 큰 전과를 올린 나가요시에게는 불리한 도박이 된다.

하지만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베지 못하면 승리는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나가요시들은 이름높은 타케다의 적비대를 자신들의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가요시가 패한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전부 물거품이 된다. 한 때의 승리 따위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놓치면 즉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 그 목, 받았다아아아아!!!"


(흥, 애숭이가. 마상창(馬上槍)의 어려움을 되씹으며 죽거라!)


마상창을 다루려면 상당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타케다 군조차 대부분의 무장은 마상창을 쓰지 않고 돌격 후에는 항상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서 싸운다.

애초에 말은 싸움터를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며,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나 기세의 유리함을 이용한 돌격이나, 기동력을 살려 보병으로서는 불가능한 우회 후의 측면 공격이라는 후방 교란이 주된 운용이 된다.

그렇기에 전장의 꽃이기는 하나, 말의 발이 멎으면 단숨에 우위성을 잃는다. 마상창에는, 한 번 기세가 죽으면 모든 행동이 허점이 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이 팔, 네놈에게 주마!"


한 팔을 희생하여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고, 말의 조작이 흐트러진 틈에 나가요시를 처치한다.

그것이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취한 작전이었다. 최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단히 유효한 전법이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가 바디시를 휘둘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한 발로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바디시의 공격을 받은 순간, 그는 토시(篭手)와 함께 자신의 팔이 분쇄되는 소리를 들었다.


(뼈가 부서졌나. 하지만…… 뭣!)


뼈가 부서졌으나 팔 자체는 무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치명적인 착각을 했다. 나가요시의 완력은 그가 알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나를, 얕보지 마라아아아아!!!!"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는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했다.

바디시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을 절단하고, 그 칼날은 그의 목으로 육박했다. 아래에서 휘둘러 쳐올리는 칼날에 갑옷째로 팔이 잘린다는 예상 외의 사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방어하지 못한 채 나가요시의 공격을 받았다.


"우오옷!"


기세가 지나친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베는 것과 동시에 낙마했다. 말은 기세를 유지한 채로 달려가더니, 조금 달리다 발을 멈추었다. 반면에 나가요시는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 이럴 수가…… 커흑…… 이런 꼬맹이의…… 어디에 이런 힘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입에서도 피를 흘리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가요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요시의 일격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과 함꼐, 왼쪽 옆구리를 통과하여 옆으로 빗겨나 있던 목까지 갈라 놓았다.

누가 봐도 살아날 수 없을 거라 알 수 있는 상처였다. 자신의 상황을 직감한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히죽하고 태연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무사한 오른팔로 칼을 쥐었다.


"꼬맹이…… 아니,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여! 훌륭하다. 하지만 이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네놈의 손에 죽진 않는다. 내가 죽는 모습을…… 똑똑히 보아라!"


말이 끝나마자마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베여 떨어진 머리에서 선혈이 뿜어졌다. 나가요시는 호흡을 정돈하고,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머리에 합장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죠의 죽음, 훌륭하다. 비할 데 없이 강한 무사란, 그를 위해 있는 말일 것이다"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칭찬했다. 자신의 공격이 닿지 않았다면 목이 떨어진 것은 자신 쪽이었다. 합장을 마치자,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씨익 웃은 것처럼 보였다.

나를 처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가요시는 웃음을 떠올리더니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조의 목,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가 베었다아!!"




나가요시가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사이조가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한 시간은 거의 동시였다. 약간 시즈코 쪽에 보고가 도착하는 게 빨랐다. 그게 승부를 결정지었다.


"북을 울려라!!"


"옛!!"


전고(陣太鼓)가 둥둥둥하고 울려퍼졌다. 한번만이 아니라, 세 박자가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그걸 들은 시즈코 군은 물론, 좌우에 있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 그리고 후방의 도쿠가와 군에 변화가 일어났다.


"기다렸다, 제군들! 눈 앞에 무공이 굴러다니는데도 지금까지 참아준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참을 필요는 없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의 말에 병사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쿠제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약간 늦게 병사들이 그에 따랐다.

군기(軍旗) 등 이런저런 것들을 치켜들었기에, 타케다 측에서는 오다-도쿠가와 군의 후방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후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쿠가와의 군기가 하나도 없다, 라는 상황을.


도쿠가와의 군기는 없어졌으나 병사들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들고 있는 군기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이런이런, 드디어 나설 차례군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깃털부채(羽扇)로 부채질하는 인물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였다. 그만이 참가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병사들은 히데요시(秀吉)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틀림없는 히데요시의 군이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군만이 아니다.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군은, 시바타(柴田) 군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해치울 줄이야. 다들!! 여자한테 질 수는 없다!!"


이끌고 있는 무장은 설마하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였다. 그들 이외에도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 이런저런 오다 가문 가신들의 군기가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타케다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다들!! 타케다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다! 베고, 베고, 닥치는 대로 베어라!"


여기저기서 무장들에 의한 고무(鼓舞)가 들려왔다. 타케다의 측근 중의 측근을 처치한 것은 이미 전군에 퍼져 있었기에, 타케다라고 듣고 겁먹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야마가타를 처치할 줄이야.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후방의 오다 군 속에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평소의 갑주를 입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적을 해치웠는지 알 수 없는, 애용하는 십자창(十文字槍)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무리를 하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장남인 모리 요시타카(森可隆)가 모리 요시나리의 몸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을 끼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피가…… 내 피가 끓고 있단다. 어깨의 부상으로 포기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피가 끓는 것에는 이길 수 없다. 안심해라, 이걸로 마지막이니라"


"아버지…… 알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음껏 싸워 주십시오"


"내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타케다는 지나치게 사치스럽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싸우는 것은 정말로 이게 마지막이 된다. 그러니 내 무용을 그 눈에 똑똑히 새겨 두어라"


"옛! 아버지의 웅자(雄姿), 제 눈에 똑똑히 새겨 두겠습니다!"


요시타카의 대답에 모리 요시나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의 사기는 열기처럼 흘러넘쳐 아지랑이처럼 흔들려보였다. 남은 것은 시즈코가 전군 돌격을 명령하는 것 뿐으로, 그게 언제인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를 따르라!! 전군, 돌격ーーーーーー!!!"


그리고 그 때는 왔다. 시즈코의 호령과 함께, 오다 군은 포효를 내지르며 타케다 군에게 돌격했다.


돌격하는 것은 오다 군 뿐이었다. 그럼 도쿠가와 군은 어디에 있는가. 홀연히 사라진 도쿠가와 군이,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신겐이 그걸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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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6 1572년 12월 하순



12월 22일. 후세에 '전국시대의 종언(終焉)' 단서(端緒)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 변곡점의 아침.

시즈코는 목욕재계(禊)를 하고 있었다. 냉수로 몸을 깨끗하게 씻은 후 흰 옷(白装束)으로 몸을 감쌌다.

흰 옷은 다른 이름으로 '수의(死に装束)'라고도 하며, 옛날에는 산실(産室)에서 착용했고, 후에 할복(切腹) 등의 흉사(凶事)에 입는 옷으로 정착되었다.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가 히데요시(秀吉)에 대해 오다와라 성(小田原城) 공격에 지각한 것에 대한 해명을 할 때 입고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 해명하여 할복을 면했다는 일화도 있다.

어느 쪽이든, 흰 옷은 결사의 각오를 나타낸다. 따라서 시즈코 스스로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명확한 결의표명이 되었다.


"오늘이라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저는 전부터 그런 예감이 들었어요"


흰 옷을 입은 시즈코는 병사들 앞에 섰다. 그녀는 복장은 달랐지만 그 태도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태연자약한 태도는 병사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이제 곧 타케다(武田)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들이닥치겠죠. 그렇다면 우리들의 사명은 단 하나. 누구에게 이빨을 드러낸 것인지 그들에게 뼈저리게 알게 해주어, 두번다시 우쭐하지 못하도록 쳐부술 뿐!"


가상(仮想)의 적을 쳐 쓰러뜨리는 듯한 손동작을 하며 시즈코는 호령했다.


"이곳은 도쿠가와(徳川) 영토이지만, 놈들은 반드시 오다 영토에도 침공할 것이다! 우리들의 본토(本土)인 오다 영토에 놈들의 침입을 허용하면, 곳곳에서 약탈, 살육, 악독한 짓거리(乱妨取り)를 자행하겠지. 결코 그런 행패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우리들은 불퇴전(不退転). 설령 이 몸이 썩어문드러지더라도, 죽어서 호국(護国)의 귀신이 되리라!"


"오오!"


"우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들의 부모를! 처자를! 미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제 분수를 모르고, 우리들이 유유낙낙(唯々諾々) 따를 거라 생각하는 그 헛된 자만심(増上慢)!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타케다의 위광을 휘두르면 뭐든지 뜻대로 될 거라 생각하는 산골 원숭이(山猿) 따위, 사지(死地)를 기고, 흙탕물을 마시고, 돌을 씹으면서도 견뎌낸 강병들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승리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다들! 함성을 질러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가 포효하며 병사들을 고무했다. 마지막 말에 화답하듯, 땅을 울릴 듯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이른 아침부터 대대적으로 동원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그 대호령에 경악했다.

침묵을 찢는 거대한 목소리도 그렇지만, 뭣보다 병사들의 표정이 달리 보였다. 연회에서의 느슨한 표정이 아니라, 세차게 날뛰는 무사의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전원에게 2호 장비(弐号装備)를 명합니다. 그리고 겐로(玄朗) 할아버지, 사격 정밀도가 높은 사람을 200명 모아주세요. 별도의 임무를 하달합니다"


"옛!"


2호 장비란 중무장이 아니라 기동력에 중점을 둔 장비이다. 숫자는 형식번호에 지나지 않아, 1호 장비(壱号装備) 쪽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들을 필요로 하는 때는 금방 옵니다. 그 때까지 각자 예기를 돋구어 주세요"


기염을 토하는 병사들에게서 등을 돌려 시즈코는 부대장인 겐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시즈코로부터 명령을 받은 그들은,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러 달려나갔다.

병사들의 사기나, 정연히 행동하는 높은 통솔력에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시종 압도되어 있었다.

농성전은 수비적이 되어, 전황의 악화에 따라 사기는 떨어져간다. 무장들은 어떻게 사기를 유지할지에 부심해온 것이다.

그런데 시즈코 군은 참전 직후라는 점을 감안해도 압도적으로 사기가 높았다. 자군과의 차이는 무엇이냐는 의문이 가로놓였다.


"당신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군요"


시즈코의 연설을 멀리서 보고 있던 야스마사(康政)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을 받았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성전을 벌일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다. 하마마츠 성은 견고한 성이다. 신겐은 오다와의 결전을 앞두고 쓸데없이 병력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책략을 써서 도쿠가와를 성에서 끌어내어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方)에서 야전(野戦)으로 끌어들여 조기 결전으로 박살내버리는 것이 타케다에게는 상책(上策).

굳게 문을 걸어잠그고 농성하고 있는 적이 스스로 치고나오게 한다. 보통은 쉽지 않지만, 이번에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답은 단순했다. 하마마츠 성을 우회해서 다음 성을 노린다.

타케다의 진군을 성에 틀어박혀서 멀거니 보고만 있으면, 원군을 받아놓고 오다를 저버린 배신자라고 후대(末代)에까지 전해지리라.

그런 상대와 손을 잡을 사람은 없고, 또 가신들도 내일은 자기가 그렇게 당할 것이라며 떠나간다.

결과적으로 이에야스(家康)는 불리한 것을 잘 알면서도 치고 나올 수밖에 없어, 타케다는 전장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다는 우위를 얻는다.

신겐(信玄)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하지 않고 미카타가하라로 향하여, 호우다(祝田) 언덕(坂) 바로 앞에 진을 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우다 언덕은 출구로 갈수록 좁아진다.

대군을 상대로 습격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지형이며, 이에야스가 적은 병력(寡兵)의 불리함을 메꾸어 작은 승리를 거두러 움직일 것으로 신겐은 내다보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선택지를 좁히기 위해, 신겐은 또 하나의 계책을 추가했다.


"오야마다(小山田)를 불러라"


신겐에게 호출된 인물은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였다. 그는 후다이카로우슈(譜代家老衆, ※역주: 대대로 섬겨온 가신 가문 출신의 가신들) 중 한 명으로, 신겐의 종조카(従甥, 사촌의 아들)이다.


"가까이 와라. 네게 한 가지 일을 맡기겠다"


신겐의 곁으로 다가가 오야마다는 귀를 기울였다. 신겐은 그에게 뭔가를 속삭였는데, 곁에 대기하고 있던 소성(小姓)에게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였다.

신겐의 지시를 다 듣자, 오야마다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수로 도쿠가와는 외통수에 몰린다. 우리들의 수(手番)를 놓도록 하자"


오야마다에게 계책을 내린 후, 신겐은 정지시켜놓았던 군을 다시 진군하게 했다.


한편, 하마마츠 성에 있는 이에야스는 신겐의 행동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목표로 한 것 까지는 예상한 대로다. 하지만, 미카타가하라 부근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여기에서 성을 공격할지, 아니면 병력을 나누어 길을 재촉할지,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볼 필요가 있다"


이에야스는 아침부터 작전회의를 열어, 신겐의 행동에 과민해져 있었다. 뭐라 해도 이건 일생일대의 무대(大一番). 나라가 멸망하느냐 살아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사소한 정보라도 놓치지 않겠다고 혈안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긴장은 가신들에게도 전염되어, 진 안은 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만큼은 부채를 부치며 느긋한 태도였다. 분위기에 휩싸여 긴장해서 시야가 좁아지면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이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다와 도쿠가와의 협공을 피해 타케타가 철수할지도 모릅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오. 만약 철수한다면 지금까지 항복시킨 영지는 반기를 들겠지. 뭔가의 계책을 부려 우리들을 칠 거라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결론이 나지 않는 의논을 반복하고 있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에 깔려죽어버리겠지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들의 야단법석을 신경쓰지 않고 시즈코는 가만히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조금 후면 타케다 군이 공격해온다. 그 때부터 시즈코의 타케다 전투의 계책이 시작된다.


"주군(ご注進)! 타케다 군이 진군을 개시! 그 때 병력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도박도 우리들의 승리다!"


보고를 들은 이에야스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이에야스에게 타케다 군의 분할은 문제가 아니었다. 대단히 신중한 계책을 취하는 타케다가, 하마마츠 성을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쪽이 더 불리했다.

애초에 결과만 놓고 보면,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二俣城)을 저버리기만 한 것이 되기 떄문이다. 물론 신겐에게도 철수는 손해를 보겠지만 이에야스 만큼은 아니다. 철수를 선택할 가능성은 적지 않았다.


"지금부터 농성전이 된다. 다들, 긴장하도록!"


갑주로 몸을 감싼 이에야스가 휘하의 무장들에게 호령했다. 이 때 그는 대망의 승기(勝機)에 눈이 멀어, 척후의 보고 후에 시즈코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타케다 전군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떄문에 눈앞의 준비로 주의가 소홀해져, 타다카츠(忠勝)조차 시즈코의 존재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음? 시즈코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군)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한조(半蔵)였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부하 한 명을 불러서 시즈코를 찾도록 가만히 명했다.

이제와서 도망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모습을 감출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던 한조는, 시즈코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부하에게 조사를 명했다.


"아ー, 슬슬 시작되려나"


작전회의에서 무단으로 모습을 감춘 시즈코는, 겐로(玄朗)와 정예 총병(銃兵) 200을 이끌고 어떤 장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시즈코 이외에는 진을 친 장소의 이점을 알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따르고 있었다.

감시와 호위를 맡은 도쿠가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시즈코는 생긋 웃을 뿐 그들에게도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타케다 군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갈 뻔한 겐로였으나, 시즈코의 가냘픈 손(繊手)이 그의 어깨에 얹혀져 제지하고 있었다.


"아직이에요. 당신들이 나갈 차례는 좀 더 뒤에요"


"하,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싸우지 않으면, 여기에 잠복하고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문답을 하고 있을 때, 타케다 군의 공성부대가 하마마츠 성에 투석(投石)을 개시했다. 방패에 등을 맡기고, 시즈코는 투석의 간격을 재고 있었다.


"나갈 차례는 있어요. 하지만, 아직 안 돼요. 투석은 위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탄이나 체력을 좀 더 소모했을 때가 호기(好機)에요"


옜부터 투석은 검이나 창, 활과 어꺠를 나란히 하는 훌륭한 병기였다. 그냥 던지기만 하는 것뿐이라면 기술도 필요없고, 값싸면서 나름대로 위력도 있으며, 탄은 어디든지 굴러다니고 있다.

숙련자가 다루면 활보다도 멀리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투석을 인지(印地)라고 부르며, 손으로 던지거나 투석기를 사용하거나 수건으로 던지는 등, 다양한 형태의 투석 기술이 있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병들(投石衆)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장공기(信長公記)나 미카와 이야기(三河物語)에서는 '수역지자(水役之者)' 등의 투석부대에 관한 기재는 있으나,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공격했다는 기재는 없다.

에도(江戸) 시대에 오독(誤読)된 것은 계기로, 오늘날까지 오야마다 노부시게가 투석부대를 이끌었다는 명확한 증가가 없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속설(俗説)로 정착되었다고 생각되고 있다.


"오호, 이런 돌을 쓰고 있구나"


던져진 돌을 몇 개 주워들어 시즈코는 방패에 숨어 확인했다. 돌이 방패를 때리는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방패에는 특별한 가공을 해 두었기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군! 느긋하게 관찰하고 있을 상황이 아닙니다. 슬슬 도쿠가와 군도 수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시작할까요. 나는 좀 더 상대를 '띄워주고' 싶었지만요"


돌을 한 곳에 모은 후, 시즈코는 지휘채(采配) 대신 큰 나기나타(長刀)처럼 보이기도 하는 쿠제(kuse)를 들었다.


"점점 투석 간격이 길어지고 있어요. 상대의 탄이 줄어들고 있으니, 다음 투석을 기다려 투석병을 저격해 주세요"


"예, 옛. 알겠습니다"


"우선 100명이 일제히 사격(斉射)하고, 즉시 교대해서 다음 100명이 쏘는 거에요. 그 동안 처음의 100명은 장전하고 대기. 이걸 반복해서, 마지막에는 전원이 일제히 사격하는 게 작전이에요. 이제 곧… 좋아, 투석이 이제 곧 끝난다…… 지금이에요!"


선언함과 동시에 시즈코는 힘차게 일어섰다. 겐로들도 따라서 일어서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을 시야에 포작했다.


"발사!"


시즈코가 쿠제의 창끝을 타케다 군 쪽을 향해 내려치자, 죽 늘어선 100자루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100명에 의한 일제 사격이었으나, 그 사격 타이밍은 완전히 딱 맞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기관총 같은 단속적(断続的)인 총성이 하마마츠 성의 한켠에 울려퍼졌다.

갑작스런 총격에 놀란 도쿠가와 병사들이었으나, 곧 그 경악은 다른 색깔로 칠해졌다.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 중, 앞열을 맡고 있던 100명 중 4할이 쓰러져 있었다.

감시병(物見)에게서 보고된 투석병들의 총 숫자는 약 300. 한 번의 사격으로 부대의 1할이 소모된 셈이다.


100발 중 40발 명중으로는 절반 이상 빗나간 것이지만, 처음 사격인 것과, 상대를 시인(視認)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기에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다음 호령을 내렸다.


"다음, 발사!"


"예…… 옛!"


처음으로 실전 투입된 신식총(新式銃)의 위력을 인식한 텟포슈(鉄砲衆)는, 엄청난 위력이 입을 벌리고 멍해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 자리를 물러났고, 후열(後列)이 재빠르게 총을 겨누고 발포했다.

지나치게 빠른 후속 사격에 대응하지 못한 타케다 군의 투석병들은, 몸을 피할 수조차 없이 다시 많은 병사들을 잃었다.

거기에 숨통을 끊듯 제 3차 사격이 덮쳐갔다. 결국 부대를 수습하지조차 못한 채 대부분의 투석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신들은 약하지 않아. 다만 시류(時流)를 타지 못했어. 그 뿐이야"


말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내리쳤다. 제 4차 사격은 총공격이 되어, 200개나 되는 총탄이 겨우 십수명의 타케다 병사들을 관통했다.

아군의 시체에 가로막혀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납탄의 폭풍 앞에서 타케다 병사들은 벌집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시즈코는 개피리(犬笛)를 불었다. 반드시 전황을 지켜보는 군감(軍監)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시즈코는 그들을 습격하기 위한 병사들을 배치해두고 있었다.


"으아악!"


멀리서 희미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매복하고 있던 것은 비트만 패밀리와, 그들의 명령에 따르도록 조교된 개(犬) 군단이다.

깊고 빽빽한 수풀이나 뒤쪽이 보이지 않는 나무 뒤에 숨어도 늑대나 개는 속일 수 없다.

아무리 주의깊게 숨어있어도, 체취로 위치를 들키게 된다. 아무리 발이 빠른 사람이라도, 늑대나 개에는 도저히 당할 수 없고, 전속력으로 계속 달릴 수 있는 한계도 슬플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사냥개로서 교육된 개들은, 목표가 되는 인간이 지칠 때까지 추격하고, 빈틈이 생길 때까지 몰아붙인다.

피로 때문에 달릴 수 없게 된 사람을 집단으로 덮쳐서, 상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방심하지 않는다.

존재가 노출된 시점에서 타케다 군의 군감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목이 있으면 설득력이 있을텐데… 저 안에서 목을 찾을 수 있을까?"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며 시즈코는 타케다 군의 시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겐로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일별하더니,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투석병들을 이끌고 있던 장수를 확인하지 않고 공격했기 때문에, 어디에 장수들과 사병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거기에 겹쳐 쓰러진 시체는 300구 가까이나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원하는 수급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팔짱을 끼고 신음한 시즈코였으나, 결국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수급을 포기했다.


"그럼, 일생일대의 연기를 해볼까요"


기지개를 한 번 켠 후, 시즈코는 쿠제를 걸머지고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때를 조금 거슬러올라가, 작전회의 장소에 있던 이에야스는 혼란스러워하고 잇었다.


"한번 더 묻겠다. 적의 숫자는 300, 이 틀림없느냐?"


"예, 옛. 놈들은 단속적으로 투석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다시 확인한 이에야스였으나, 척후로부터의 대답은 전과 다름없었다. 이에야스는 팔짱을 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타케다 군이 300이라고? 어떻게 된 거냐, 300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적다.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하마마츠 성에 제대로 된 피해조차 줄 수 없지. 신겐 땡중놈(坊主)이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겨우 300으로 뭘 하고 싶은거냐?)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에야스는 초조해져서, 비지땀을 흘리며 더욱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이에야스는 혼란시키는 것이말로 노림수가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주 웃기고 있군! 내가 병사를 이끌고 박살내주겠다! 겨우 300 정도, 개수일촉(鎧袖一触)이다"


"잠깐 기다리게. 300뿐이라고 장담은 못하지. 버리는 말에 낚여서 나갔다가 본대가 버티고 있을 경우 무의미하게 병력을 소모할 뿐이다"


"하지만 이대로 보고만 있으면 우리들의 체면 문제가 있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적의 노림수를 알 수 없어 의견이 갈려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오다 가문 가신들은 그 분규(紛糾)를 조용히 바라볼 뿐, 적극적으로 의논에 참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흠, 도쿠가와 님. 물론, 치고 나가시겠죠? 아니면 지성(支城)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 버티지 못합니다. 설마 타케다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때 우리들이 등뒤를 찌르는 작전을 잊으신 겁니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것이 서서히 초조함을 느낀 사쿠마(佐久間)가 이에야스에게 진언했다. 사쿠마도 300명의 뒤에 대군이 버티고 있을 가능성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봤자 확증은 얻을 수 없는 이상, 300명의 병사들을 박살내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대군이 버티고 있을 경우에는 즉시 철수할 필요가 있지만, 그 때에 나올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다리시오. 아무래도 타케다의 속셈이 보이질 않소. 1만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뭣 때문에 300 정도를 파견했는지…… 그렇군!"


간신히 이에야스는 타케다의 노림수를 눈치챘다. 그리고 눈치챔과 동시에, 이미 승패는 결정지어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농성하면 300 정도에 겁먹고 틀어박혀 아군을 저버렸다는 오명이 후세까지 따라붙는다.

이에야스가 판단을 망설이고 있는 동안, 타케다는 유유히 미카와(三河)를 침략한다. 그렇게 되면 미카와와 토오토우미(遠江)는 분단되어, 미카와의 탈환은 절망적이 된다.

타케다에게 미카와를 빼앗긴다. 그것은 도쿠가와가 본거지를 잃는 것과 동시에, 오다 가문과도 분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대로 치고나가서 만약 300의 배후에 본대가 버티고 있다면 유린당한다. 타케다는 이에야스가 치고 나올 것을 계산에 넣고 간단히 철수를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는 당분간 군으로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그 동안 타케다는 미카와로 병력을 진군시키리라.


어느 쪽을 선택해도 승리는 없다. 그것에 이에야스는 떄가 늦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도쿠가와와 오다가 분단되면, 어느 쪽인가가 먼저 멸망당하고, 그 후에 남은 한 쪽이 멸망당하는 미래밖에 없다는 것도.


"도쿠가와 님,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이대로는 우리들의 패배는 필연적! 어서 출진 명령을!"


"기, 기다려 주시오, 사쿠마 님. 알 수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을 알지 못하여, 우리들은 타케다의 기보(棋譜) 대로 움직이고 있는게 아닌가, 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습니다. 타케다의 속셈은 알 수 없습니다만, 300 정도에 농성을 계속하면 후세에까지 비웃음당할 것이 뻔합니다"


"그렇…… 소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대답이 궁한 이에야스에게 사쿠마나 히라테(平手)가 짜증을 느꼈다. 잠시 기다렸으나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이에야스에게, 사쿠마의 짜증이 정점에 달했다.


"어째서, 망설하시는 겁니까. 혹시…… 처음부터 타케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요!"


사쿠마가 말한 순간, 그 때까지 분규하고 있던 장내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터질 듯이 긴장된 것으로 변화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주군이 우롱당한 것에 격분하여 사쿠마를 노려보았다.


"웃기지 마라! 우리들이 얼마나 오다를 위해 진력해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격앙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이다. 사쿠마의 대사는, 도쿠가와가 오다를 배신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배신자라는 욕을 먹고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의심받으면 더욱 그렇다.

무수한 적의에 노출된 사쿠마였으나, 겁먹는 기색도 없이 다시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갑자기 사쿠마가 앞으로 기울더니 기세좋게 바닥을 굴렀다.


"시끄럽다, 멍청이가 재잘대지 마라"


사쿠마가 바닥을 구른 이유는, 소리도 없이 사쿠마의 등 뒤로 돌아간 아시미츠(足満)가 용서없이 걷어찼기 때문이다. 낙법이고 뭐고 없이 이마를 바닥에 처박은 사쿠마는, 아픈 곳을 손으로 눌렀다.


"아시미츠 님,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시즈코 님의 가신이라고 하나, 이러한 행패는 용납되지 않소!"


"멍청이가 멍청한 소리를 하니까 멈춘 것 뿐이다. 어리석은 자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해라!"


히라테의 격앙도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날 뻔 했으나, 그 전에 시즈코가 작전회의 장소로 들어왔다.


"아ー, 여러분 기다리셨…… 아니 뭔가요, 이 분위기는"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쿠마가 이마를 손으로 감싸면서 히라테와 함께 아시미츠에게 따지고 있었으나, 아시미츠는 태연한 표정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일촉즉발(一触即発)의 분위기이면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사쿠마 님, 히라테 님, 미즈노(水野) 님. 여기 이것, 영주님으로부터의 명령서(指示書)입니다"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작전대로 진행하는 쪽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받아온 주인장(朱印状)을 사쿠마들에게 건넸다.

내용은 '시즈코의 명령에 따라라, 아니면 일가족 몰살(根切り)이다'로 대단히 알기 쉬웠다. 내용을 알고 놀랐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이라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어, 사쿠마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우선 보고를. 하마마츠 성에 온 타케다 병 300명은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뒤에 대군은 버티고 있지 않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소?"


"네,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을 정도로 진지한 표정의 이에야스에게 내심 겁을 먹은 시즈코였으나,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태도를 취했다.


"방금, 사쿠마 님께 우리들 도쿠가와 가문이 오다를 타케다에게 팔아넘긴 것인가, 라는 추궁을 받았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소"


"저는 도쿠가와 님의 배신 따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으십니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군을 보내겠다고 결단하신 영주님을. 만약 도쿠가와 님이 배신했다면, 영주님꼐서는 원군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도쿠가와 님을 믿으셨기에 영주님께서는 원군을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신인 제가 영주님을 믿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닙니까"


시즈코의 말에 이에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믿었으니, 시즈코는 이에야스를 믿는다.

하극상이 당연하고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팔아넘기는 시대에서, 이에야스는 그렇게까지 노부나가를 신뢰하고 있는 시즈코에 놀라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노부나가가 부러웠다.


"당신에게 그렇게까지 신뢰받는 오다 님에게, 약간이지만 질투를 했습니다. 어흠… 거짓이 없는 당신의 눈을 믿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다짜고자 죄송합니다만, 지금부터 어떤 계책을 실행합니다. 한 번만 말씀드릴테니, 잘 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시즈코는 년 단위로 덥혀온 계책을 말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이에야스도, 도중부터 시즈코의 계책에 죽죽 빨려들어갔다.

이에야스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인지, 가신들도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정말로 가능한 건가?"


마지막까지 들은 이에야스는 의문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노부나가나 시즈코의 행동이, 계책을 듣고 겨우 전체가 이어져 있는 것을 이에야스는 이해했다.

하지만, 최종적인 도달지점이, 작전이 성공할지는 아직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하다 불가능하다가 아닙니다. 하는 겁니다. 불안하시면 도쿠가와 님께서는 농성하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오다 군 만으로…… 아니, 제 군만으로도 작전을 실행합니다"


잠시 생각한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눈을 보았다. 망설임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눈이었다. 여기서 자신이 계책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시즈코는 자신의 군 만으로 실행할 것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눈으로 또렷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정 쪽으로 고개를 든 이에야스는 눈을 감았다. 10초 정도 지났을 무렵, 이에야스는 눈을 뜨고 시즈코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의 운명, 당신에게 맡기지요!"


뺨을 힘껏 후려쳐 기합을 넣은 후,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계책에 찬성한다고 선언했다.


"다들! 준비하라! 우리들 미카와 무사의 의지를 보여주자!"


"주군…… 옛!"


멍하니 있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었으나, 이에야스의 선언을 듣자마자 표정이 변했다. 전사(いくさ人)의 표정이 된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공기가 찌릿찌릿 진동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기합을 넣었다.

이에야스도 지지 않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목소리를 높일 떄마다 가신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말을 끌고와라! 우리들 도쿠가와의 힘, 저놈들의 눈에 똑똑히 새겨주자!"




싸움 준비가 끝나자,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2만은 하마마츠 성에서 출진했다. 전군은 미카타가하라 대지(台地)를 북상하여, 몇 갈래의 길을 통해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 부근으로 향했다.

시즈코들은 도착하기 전부터 범상치않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합류한 신겐의 본대 2만 7000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도중에 복병의 습격이 없었던 것은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복병을 알게되어 오다-도쿠가와 군이 철수할 가능성을 고려한 것인지, 어쨌든 타케다 군의 깃발이 보일 때까지 습격은 받지 않았다.


"도착했네요"


시즈코의 예상대로, 그리고 지형을 바탕으로 계산한 지점에 타케다 군은 포진하고 있었다.


"이것이…… 타케다 군인가"


타케다 군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나가요시(長可)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즉시 얼굴을 후려쳐 기합을 넣으며, 위압감에 삼켜질 뻔 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좋았어! 쳐부숴주마!!"


"기합을 넣는 건 좋지만, 도가 지나쳐서 쓸데없이 힘을 빼지 마라"


"지금부터 즐거운 싸움이 시작된다고. 촌스러운 소리는 하는 게 아니지"


"……내 생애에서 가장 가혹한 하루가 되겠지"


나가요시, 사이조(才蔵), 케이지(慶次), 타카토라(高虎)가 각자 나름대로 기합을 넣으면서 시즈코의 곁을 떠나 지정된 배치에 당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전송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내 각 부대에 빠르게 배치에 당하도록 명했다.


중핵은 시즈코 군, 좌우에 사쿠마, 히라테, 미즈노, 후방을 도쿠가와 군이 담당했다.

진형은 봉시진(鋒矢陣)에 가깝지만, 화살표 끝부분에 텟포슈가 배치되고, 게다가 화살표 중앙에 시즈코가 있는 점이 종래의 봉시진과 달랐다.


"오늘만큼은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없네"


말 위에서 시즈코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 풀어준 후,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다. 시즈코에게는 병사들을 고무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의무가 있다. 손동작이 잘 보이도록 하얀 장갑을 착용했다.


"들어라!! 우리 병사들아!!"


병사들이 일제히 시즈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 간격을 둔 후,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우리들의 앞에 있는 것은, 일본 최강으로 이름높은 타케다 군이다! 그리고 이름높은 무장들이 모두 모여 있다! 그야말로 타케다 군의 총력이 결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력이 결집이라는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상대는 일본 최강의 군대, 그 군대의 모든 것이 결집되어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이 병사들에게 엄습했다.


"하지만 그들을 앞에 두고 말하겠다! 그들은 어제까지 상대가 약했던 덕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을 마침과 동시에, 시즈코는 쿠제를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나는 믿는다! 우리들은 타케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예인 것을! 놈들에게 보여주자꾸나! 일본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자꾸나! 우리들의 진짜 힘을!!"


"오, 오오오오!!"


불안을 날려버리려는 듯 병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손에 든 무기를 치켜들며 고함을 지르자, 그걸 본 뒤의 병사들이 뒤를 잇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놈들을 얕보지 마라!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놈들은 강자가 아니다. 우리들의 무공(武功)의 초석이다! 제군들! 무공을 세워 이름을 높여라!"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거의 모든 병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떨어져 있떤 타케다 군의, 신겐이 있는 장소까지 들릴 정도였다.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허세라고 보았는지, 타케다 군 사이에는 조용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꽤나 허세를 부리는군"


"우리들 적비대를 앞두고 여전히 기염을 토한 것은 칭찬해 줄만 하지. 오다-도구카와 연합군을 칭찬해주자!"


"사기만으로 우리들에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설프다고밖에 할 수 없지!"


타케다 군에게는 고무(鼓舞)의 내용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방심과도 닮은 과소평가에, 개중에는 모멸적인 말까지 들려왔다.


타케다 군은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고 있었다.

선봉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그 배후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두 군이 제 1진.

좌익에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 중앙에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우익에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 마사테루(昌輝), 마사유키(昌幸) 3형제의 세 군이 제 2진.

좌익에 스와 카츠요리(諏訪勝頼, 뒷날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 중앙에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 우익에 요네쿠라(米倉) 탄고노카미(丹後守)의 세 군이 제 3진.

그리고 가장 뒤에 타케다 가문 일족이나 코사카 마사노부(高坂昌信)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끄는 본진이 있었다.

합계 4진으로 구성되는 타케다 가문 최강의 포진은, 불꽃처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타케다 신겐이 내릴 공격명령 뿐이었다.


(역시 그 불안(胸騒ぎ)은 기우(気の迷い)였나. 하지만, 사기가 높은 상대는 방심할 수 없지)


오다-도쿠가와 군의 목소리를 얕보는 사람이 많은 타케다 군에서, 신겐만이 목소리를 듣고 반대로 긴장을 조였다. 적은 한 번 떨어지려던 사기를 드높인 것이다. 긴장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다소의 장애가 될 뿐 신겐은 승리를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다-도쿠가와 군은 유리한 농성을 버리고, 신겐이 가장 자신있는 야전(野戦)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옛부터 야전은 병사의 숫자가 많은 쪽이 우세하다.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많이 잡아도 2만 몇천 정도. 그에 반해 타케다 군은 3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포진하고 있다.

숫자상으로는 수천의 차이지만, 수천의 차이는 간단히 메울 수 있는 차이가 아니다. 승리를 확신한 신겐은, 불안했던 것은 기우라고 단정하고 지휘채를 손에 들었다.


공격명력이 떨어진다. 그 정보는 신겐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 깜짝할 사이에 타케다 군 전체에 퍼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신겐은 신경쓰지 않고 지휘채를 하늘높이 들어올렸다.


"외통수이니라"


그렇게 말하며 신겐은 지휘채를 오다-도쿠가와 군으로 향했다. 그것이 공격명령이라고 이해한 순간, 신호병(貝役)이 소라고둥(法螺貝)을 불고, 북치는 병사가 전고(陣太鼓)를 힘있게 두들겼다.

그 소리를 들은 타케다 병사들은 공기를 뒤흔드는 포효를 내지르며 오다-도쿠가와 군에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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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5 1572년 12월 중순



12월 1일, 드디어 노부나가가 움직였다. 그는 주요 가신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다. 도쿠가와(徳川)로 보내는 원군으로 우리들의 힘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드디어 명확한 방침을 내보였다. 이 말에 의기헌앙(意気軒昂)한 모습을 보이는 가신들이었으나, 결전의 자리가 될 장소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야스(家康)의 거성(居城)인 하마마츠 성(浜松城)은 남북 약 500m, 동서 약 450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일직선으로 곡륜(曲輪)이 늘어선 특징적인 '제곽식(梯郭式)'이라는 건축 양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 고저차(高低差) 때문에 본채(本丸)의 뒤쪽은 천연의 방어선이 되어, 공격하기 어렵고 지키기 쉽다는 방어력이 우수한 성이었다.


그 때문에 가신들은 타케다 전은 농성전이 주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옛부터 농성전은 힘든 것이다. 수비를 굳히고 상대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소모전이 되기 때문에, 서로의 인내를 겨루는 양상을 띠게 되어 양쪽 모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해진다.

게다가 상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친 타케다였다. 처음부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은 뻔히 보였다.

누가 파견될 것인지, 가신들의 관심사는 그곳에 집약되어, 노부나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원군은ーー"


가신들 일동이 몸을 앞으로 내미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누구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인사(人事)를 발표했다.


"이거 참, 놀랍군요"


노부나가의 작전(采配)에 따라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돌아가던 도중, 문득 히데나가(秀長)가 입을 열었다.

히데나가의 말에 히데요시(秀吉)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나가가 발표한 인사는 그만큼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노부나가는, 도쿠가와에게 보내는 원군으로서 후계자인 키묘마루(奇妙丸)를 총대장으로 삼고, 시즈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의 군을 그 휘하에 배속시켜, 도합 수만 명이나 되는 대군단을 조직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원군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병력이다. 그리고 하마마츠 성 뿐만이 아니라,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군을 주위의 성에 배치하여, 하마마츠 성이 공격받았을 때의 보좌역을 수행할 것을 명했다.


하마마츠 성에는 노부나가가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시즈코 군을 거의 전부 보낸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도 도합 수천의 군을 이끌지만, 실질적인 주력은 시즈코 군이었다.

도쿠가와 군 8000과 합치면, 숫자상으로는 타케다에 필적한다.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키묘 님을 총대장으로 세우실 줄이야. 하지만, 도쿠가와에게는 확실히 전해지겠지요. 영주님께서 이 싸움에 거시는 기세(意気込み)를. 이마가와(今川)와의 결전 이래 처음으로 목숨을 건 대승부가 되겠군요"


"나는 영주님께 요코야마 성에서의 활약을 직접 칭찬받았다. 영주님이 모두의 앞에서 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건 이마가와 때 이후 처음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근거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히데요시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마가와의 상락 떄에도 붙으면 필패(必敗)일 거라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쪽이 승리했다. 이번의 타케다 전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히데요시였다.


"하지만 유감이군요. 타케다를 깨부수면, 그 무위(武威)는 천하에 울려퍼지겠죠. 그 무공에는 누구던 한 수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놈아! 분별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요코야마에서 아자이-아사쿠라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군요"


농담을 하는 히데나가를 히데요시가 꾸짖었다. 히데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라는 태도였으며,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히데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형님께서도 조금은 생각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음, 뭐, 그렇지. 그렇기에 계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옅은 웃음을 띄우며 히데나가가 찔러보았다. 히데요시는 헛기침을 하여 동요를 얼버무린 후, 내심을 읽힌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 모습에 한층 더 웃음이 깊어진 히데나가였으나, 히데요시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말의 걸음을 재촉했다.


"핫핫핫, 형님은 도망쳐버리셨군"


"너무 놀리면 안 됩니다. 하시바(羽柴)님도 애태우고 계시겠죠"


"그렇겠지요. 뭐, 어떻게 되겠지요. 그놈은 끈질기니까요"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히데요시를 따라잡기 위해 말의 속도를 올렸다.




노부나가로부터 도쿠가와의 원군을 명받은 시즈코는, 케이지(慶次)들에 그치지 않고 부대장들까지 집합시켰다. 시즈코로부터 전달받을 것도 없이, 도쿠가와에 원군으로 파견된다는 이야기는 다 퍼져 있었다.

하지만 새삼스레 시즈코에게 듣게 되면 군으로서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기서 선언하기로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군은 도쿠가와의 원군으로서 출진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동요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태반은 예측했던 대로라는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게 이것저것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원군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대로 출진해서, 평소대로 싸우고, 그리고 평소대로 승리합니다. 이상"


간결하기 짝이 없는 말에 불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시즈코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모두를 해산시켰다.

대장이 평소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상, 자신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평소대로 하면 된다고 결론짓고 각자 그 자리를 떠났다.

남은 것은 케이지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足満) 등 다섯 사람 뿐이었다.


"그럼 아시미츠 아저씨에게는 물류(物流)를 맡겼어요. 남은 사람들은 평소대로 지내 주세요. 출진하는 날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알겠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다섯 명도 해산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는 각자 주어진 일을 했다. 나가요시나 사이조, 타카토라는 훈련, 케이지는 변함없이 지내면서 간자의 처치, 아시미츠는 물류를 모았다.

시즈코도 평소처럼 서류를 처리하고, 틈나는 대로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쿠마나 히라테와 달리, 시즈코들은 지나치게 평소대로라서 주위가 안달복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출진하기 사흘 전, 후타마타 성(二俣城)의 공략에 고전하고 있던 타케다 군과 도쿠가와 군의 공방전이 점입가경에 들 무렵, 시즈코는 텟포슈(鉄砲衆)를 모았다.

이유는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겐로(玄朗)는 시즈코의 명령대로 가장 숙달된 그룹과 가장 서투른 그룹을 모았다.

각자 그룹별로 준비된 과녁에 사격을 시켰다. 결과는 과연 수위(首位) 그룹이라고 감탄하게 되었다.

흔들림없이 사격을 반복하고, 장전 속도도 아주 좋았다. 그에 반해 최하위 그룹은 장전은 문제없었지만, 사격태세에 들어갈 때까지 애를 먹고, 발사 간격이 길었다.


"흠, 조금 신경쓰였지만 문제는 없네"


최하위 그룹의 결과를 본 시즈코는 안심했다.

수위 그룹은 매분 9에서 10발을 발사하고, 최하위 그룹은 6에서 7발이었다. 확실히 결과를 보면 실력은 상당히 편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분 5발을 밑돌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겐로가 너무 형편없다고 말하길래 시즈코는 매분 4발 이하인가 하고 초조해했으나, 이 결과라면 충분히 허용범위였다.


"하지만 주군, 이래서는 너무 차이가 나는 게 아닙니까?"


겐로가 진언하자 시즈코는 손가락으로 과녁을 가리켰다.


"사격 횟수에서는 떨어지지만, 사격 정밀도는 높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전원이 과녁을 보았다. 시즈코의 지적대로, 수위 그룹의 착탄 위치는 흩어져 있었으나, 최하위 그룹 쪽은 중심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좋을지는 쓰기 나름. 그러니까 단순히 사격 속도만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정하는 건 성급해요.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아요"


"예, 옛! 주군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제 얕은 소견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송구해할 것 없어요. 그럼 정밀 사격이 가능하다고 하면…… 스코프로 사격이 가능하려나. 하지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무리려나"


스코프를 단 볼트액션 라이플에 의한 원거리 저격으로 전령을 처치하는 것을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전령이 줄어들면 지휘계통은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없게 된다.

이번의 타케다 전에서는 사격 정밀보도다 사격 횟수에 의한 면제압(面制圧)을 우선시했기에, 정밀도가 높은 저격총은 상정하지 않았다. 약간 후회한 시즈코였으나, 없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자신감은 오만으로 이어지지만, 자신이 없으면 각오가 서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이걸로 문제는 없어요. 얼마 있으면 출진할테니, 그 때까지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해요"


"옛!"


전원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했다. 그 후, 겐로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시즈코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다, 라"


형편없다고 매일 갈굼당하던 그룹 중 한 명, 나가마사(長政)는 시즈코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군, 이라고 나가마사는 생각했다.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중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 모두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눈으로 보고, 반대로 의역이 넘치는 상태가 되었다.


"주…… 야차(夜叉) 님. 왜 그러십니까"


멍하니 서 있는 나가마사가 걱정된 엔도(遠藤)가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에 제정신이 든 나가마사는, 일단 머리 속에 있던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제 곧 타케다와의 싸움이다. 기합을 넣어야겠지"


"예.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에게 이길 수 있을까요. 저 아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습니다만, 솔직히 소생은 그런 결과가 될 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글쎄. 시즈코 님이 무얼 생각하고, 무얼 보고 있는지, 그건 형님(義兄上)처럼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만한 일을 해내왔는데, 이제와서 타케다만 무리였습니다, 라고는 하지 않겠지. 실제로 이런 총을 준비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마사는 신식총(新式銃)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그 사격을 보았을 때는 누구나 간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총의 명수라고 하는 사람조차 맞히는 게 어려운 거리를, 기초훈련을 마쳤을 뿐인 신병이 맞혀버렸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우연히 실력이 좋은 사람이 사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직접 사격을 할 때마다 신식총의 무서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장전 속도가 빠르다. 종래의 화승총으로는 숙련자조차 1분에 1발 쏘는 게 고작이다.

그게 익숙하지 않은 병사조차 6발을 쏠 수 있다. 공격 횟수(手数)가 6배인 것이다. 거리를 좁히기 전에 벌집이 될 것이 뻔하다.


"확실히 그건……"


엔도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신식총의 성능은 싫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텟포슈에 배속되어 있었으니까.


"확실히 55간(間)…이나 되는 거리에서 맞힐 수 있으니 경이적입니다"


미타무라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55간이란 약 100m이다. 여기서 신식총의 성능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것을 눈치채게 된다.

신식총의 사정거리는 800m이다. 100m로는 성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즈코의 책략이었다.

과녁의 높이나 중심점의 크기를 변경하는 것으로, 실제는 800m 거리라도 노릴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겉보기에는 100m 정도밖에 날아가지 않는 총이라고 간자들에게 오인시킨다.

100m라면 현행의 화승총으로도 닿는 거리다. 연사 속도는 눈을 크게 뜰 정도이지만, 싸움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병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다. 훈련을 하자"


이리하여 사용하고 있는 본인들조차 총의 성능을 모르고, 자신이 얼마만한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식총의 진가는 아직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오다가 도쿠가와에 원군을 보낸다. 그 소식은 각 방면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갔다.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했으면서 여전히 병력을 보낼 여력을 남기고 있었나 하고 적들은 놀랐다.

하지만 신겐(信玄)은 당초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며, 기후(岐阜)에도 여전히 2만에서 3만 정도의 병력이 남아있을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 예측은 올바른 것이어서,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에는 2만 정도의 병력이 국방을 위해 남겨져 있었다.


"흠, 역시 그렇게 나왔나"


오다 군의 원군의 진용을 알게 된 신겐은 보고를 받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타마타 성을 힘으로 공격해서는 손해가 크다고 본 신겐은, 그 수원(水源)을 끊기로 했다.

후타마타 성의 수원인 텐류가와(天竜川)에 튀어나온 정루(井楼, 취수시설(取水施設))을 대량의 뗏목을 흘려보내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물 공급을 끊었다.

후타마타 성에는 우물이 없어, 저장되어 있는 빗물만으로는 병사들의 음용수를 댈 수 없다. 성주인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는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신겐에게 항복했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군의 원군이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내용은 시즈코 군 1만,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들은 각자 1500 정도의 수하들(手勢)을 이끌고 있어, 합계 1만 5천 정도가 되었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병력이 적은 것은, 하마마츠 성 뿐만 아니라 다른 성에 수하들을 분산 배치했기 때문이다.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하고 있는 동안, 다른 성으로부터 타케다 군의 배후를 찔러 협공하는 작전이다.

그 외에 키묘마루가 이끄는 병력 1만이 시라스카(白須賀, 현재의 시즈오카(静岡) 현(県) 코사이(湖西) 시(市)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애먹었던 포위전을 반대로 타케다 군에게 걸겠다는 보복(意趣返し)이다.

어쨌든 타케다 군의 전력의 집중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극적이지만 가장 승률이 높은 책략이었다. 문제라고 하면 그 작전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신겐에게 예측되었던 점이다.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시즈코는, 성 전체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다. 섣부른 소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를 대동하고 사쿠마들과 함께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흠, 솔직히 말해, 시즈코 님의 예측으로는 승률이 어느 정도이오?"


도중에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사쿠마가 질문했다. 들리지 않는 척 하고 있는 히라테나 미즈노였으나, 열심히 사쿠마와 시즈코의 대화를 의식하고 있었다.


"으ー음, 뭐 지금 상태로는 8할이려나요"


"……그건 패할 확률이 8할이라는 것이오?"


불안해진 사쿠마가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자신의 발언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이상했지만, 딱히 알려져도 상관없기에 시즈코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지금 상황으로는 8할은 이겼다고 봐도 좋습니다"


"뭐요?"


의미를 알 수 없어 시즈코에게 캐물으려 했던 사쿠마였으나, 그 이상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이에야스가 있는 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입구가 열리고 시즈코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 원인은 이에야스가 고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이나 공포가 가신들에게 전달되고, 그걸 느낀 가신들도 고뇌하고 있었기에, 방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었다.


"저희들, 도쿠가와의 원군으로 왔습니다"


병력으로는 시즈코 군이 최대규무이지만, 오다 가문 가신으로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쿠마였기에, 그가 전군을 대표하여 이에야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그는 시즈코나 사쿠마들이 들어온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안고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꽤나 중증인가)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신 중 한 명이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그제서야 겨우 사쿠마들을 알아챈 이에야스는 서둘러 차림새를 바로하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 생각을 좀 하고 있었소. 다짜고짜 죄송하지만 작전회의를 열고 싶소. 다들, 모여 주시오"


그 말만 하고 이에야스는 다급히 방을 나갔다. 1분 1초라도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에야스의 표정에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또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사쿠마가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쪽으로 화제를 돌리지 말아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렸다.


"가죠"


"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이동하는 데 섞여서 시즈코와 사쿠마들도 작전회의 장소로 이동했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는 있었으나, 그래도 옥외로 나왔기에 약간 개방감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보다 우선 타케다가 포위하고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에 대해 상의하고 싶소"


작전회의 장소에서 입을 열자마자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의제로 올렸다. 현재 상황에서 코앞에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소홀히 하면,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다.

무모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에야스에게는 후타마타 성에 원군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도쿠가와 님, 실은 저희들은 영주님으로부터 계책을 받아왔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쪽의 시즈코로부터 들어주십시오"


"(너무해, 통째로 떠넘겼어) 어흠, 그럼 이후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쿠마로부터 설명을 통째로 떠넘겨진 시즈코였으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대화에 참가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우선 후타마타 성으로 원군은 보내지 않습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소"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즉각 거절을 표명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웅성거리긴 했으나 이에야스의 의견을 지지했다.


"기다려 주세요, 딱히 아무 의미 없이 원군을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군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이미 후타마타 성은 함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즈코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이에야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후타마타 성은 하마마츠 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견고한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고 하면, 하마마츠 성은 거의 알몸을 드러낸 것이라 해도 좋다.

특히 원군을 보내지 못하고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는 걸 방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에야스에게는 뼈아팠다.


"하마마츠 성에 농성하여, 저쪽이 포위한다면 다른 오다 군이 배후를 찌르고, 하마마츠 성을 떠나 다른 장소를 친다면 우리들이 타케다의 배후를 칩니다. 신겐 땡중(坊主)이 공성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영주님의 계책입니다"


"으, 음…… 전군으로 이동하면 배후를 공격받을테니, 신겐은 반드시 병력을 남길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다른 장소에 가는 병력이 줄어들지. 이 성은 쉽게는 함락되지 않소. 과연, 신겐은 병력을 크게 쪼개야 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 납득한 이에야스였으나 불안은 남아 있었다. 과연 신겐이 이쪽의 계책에 걸려들 것인가, 였다.

만약 신겐이 하마마츠 성을 포위하지 않았을 경우, 배후는 찌를 수 있으나 지성(支城)을 저버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변절하는 자가 속출할 위험성이 있었다.


"주군, 이건 지나치게 위험한 도박입니다"


"하지만 이미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면, 이 계책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이에야스의 말대로, 도쿠가와 가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다.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 노부나가의 계책이 된다. 이 이상 많은 걸 바랄 여유는 없었다.


"그러하면 농성을 대비하여 저희 군에서 군비를 반입하려고 합니다. 후타마타 성 공략으로부터 생각하면 2일 정도입니다만, 그 동안에 대량의 물자를 반입할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그건 문제없소. 죄송하지만 지금의 비축량만으로는 불안하지. 그쪽에서 준비해 주신다면 그건 고마운 제안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이 아까우니 바로 수배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시즈코는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에 내심 만족하며, 아시미츠에게 수송작전 개시의 연락을 할 것을 사이조에게 명했다. 사이조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럼 다른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그 후에는 신겐이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오는 것을 기다릴 뿐, 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다른 의제는 없는지 물었다.




달리 명확한 의제가 없었기에, 작전회의는 금방 끝났다. 아시미츠는 명령을 받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나가서 키묘마루가 있는 시라스카로 향했다.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기 전부터 시즈코는 보급병들을 시라스카에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 후에는 피스톤 수송을 반복하여 가능한 한 많은 물자를 하마마츠 성으로 운반할 뿐이다.

아시미츠의 행동은 신속했다. 필드 스코프와 깃발을 이용하여 겨우 30분 만에 시라스카의 보급부대에 연락을 취했다. 보급부대는 연락을 받음과 동시에 행군을 개시했다.

하마마츠 성으로 컨테이너를 실은 보급부대가 열을 지어 이동했다. 보급병들은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후, 지정된 장소에 컨테이너의 내용물을 하역하고, 그 동안 보급부대의 호위병들이 잡무를 처리했다.


장사진을 이루는 컨테이너를 멀리서 본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압도적인 물량에 기겁했다. 그리고, 이거라면 장기간 농성에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컨테이너의 내용물은 대부분이 타케다 군을 무찌르기 위한 군수물자이지 농성을 위한 생활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즈코와 그들은 약간 생각이 어긋나고 있었다.


"실로 장대한 광경이군"


멀리서 보고있던 한조(半蔵)가 중얼거렸다. 컨테이너의 열은 끊길 기색이 없어, 이 뒤로 얼마나 더 운반되어 올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오늘은 12월 21일, 원군으로 온 지 이틀 동안 반입된 물자를 생각하면, 시즈코가 다른 영주(国人)들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라는 소문이 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이거라면 잘 될거다, 한조!"


"알았다. 알았으니까 남의 등을 치지 마라. 네놈은 적당히라는 걸 좀 배워라"


팡팡하고 등을 치는 타다카츠에게 한조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했다. 다른 사람들은 타다카츠의 흥분한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군"


"뭐 호의를 가진 여자에게 '이 싸움,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혼다(本多)님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헤이하치로(平八郎)가 우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우하하하하! 질투냐? 남자의 질투는 꼴사납다고!"


거 성가시네,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받은 느낌이었다. 조금 격려해달라고 부탁한 야스마사(康政)는 새삼 후회했다. 좀 더 완곡적으로 말해달라, 고 말했어야 했다고.


"하여, 주군께선 어디 계신가?"


"시즈코 님이 데려온 짐승이 궁금하다고 하시며 시즈코 님이 있는 곳에 계시네"


"음, 그건가. 확실히 놀라웠지. 주군께서 흥미를 가지시는 것도 어쩔 수 없군"


시즈코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비트만 패밀리를 하마마츠 성으로 데려왔다. 평소에는 카이저와 쾨니히 뿐이지만, 이번에는 패밀리 전원이다.

카이저만으로도 놀라운데, 그게 전원 집함이 되면 신화적으로까지 보일 광경이다. 그리고, 그 거구의 짐승들을 간단히 부리는 시즈코에게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싸움, 결과를 알 수 없게 되었군"


야스마사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직감이긴 하나, 어떤 확신이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 농성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 고.




이에야스는 비트만 패밀리가 집합해있는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크다 크다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만한 거구들이 모여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담력시험도 겸하여 이에야스는 비트만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반응한 것은 쾨니히였으나, 거의 시간차 없이 다른 늑대들도 이에야스의 행동을 감지했다.

얼핏보면 딴청을 부리고 있었으나, 귀는 빈틈없이 이에야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비트만 패밀리가 움직인다. 그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이에야스는 발을 멈췄다. 늑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전쟁에서 다져진 감이 이에야스에게 위험한 라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훌륭한 체구로군.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이에야스의 평가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시즈코에게는 언제까지나 어리광쟁이인 아이들이다. 하지만 평가가 높은 것은 주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서 당황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평소보다 경계심이 강하네요"


"하핫, 괜찮습니다. 무리한 이야기를 한 건 이쪽이니까요"


조금 잡담을 나눈 후, 시즈코와 이에야스는 아시미츠가 운반해온 물자를 시찰하러 갔다. 이틀 뿐이라는 점도 맞물려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혼잡했다.

운반된 컨테이너에서 여러 개의 카트(カゴ台車)가 꺼내졌고, 그것들이 분류에 따라 손으로 미는 카트(手押し台車)에 실려 보관 장소로 운반되어갔다.

내용물을 전부 꺼낸 컨테이너는 빈 카트를 수납하여 되돌아갔다. 연이어서 들어오니 정리하는 담당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운반되어온 물자는 상자에 식별변호만이 적혀 있었기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시즈코는 식별번호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인물들에게는 그냥 나무상자를 어떤 이유로 구별해놓았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왜 그러냐 시즈코,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작업원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찰하고 있으니, 총책임자인 아시미츠가 시즈코들이 온 것을 깨달았다.


"좀 신경쓰여서, 도쿠가와 님과 시찰하고 있어"


"그러냐. 뭐, 신경쓸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순조롭다"


그렇게 말하며 아시미츠는 시즈코에게 보드를 내밀었다. 받아들고 내용을 확인하니 순조롭게 물자가 반입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시즈코는 물자 수송의 호위병의 흐름에 눈을 돌렸다. 물자의 반입과 함께 속속 입성하여, 반출과 함께 조용히 퇴출했다. 이쪽도 순조… 로웠다.


"문제없네"


뒤에서 홀로 남겨진 이에야스였으나, 시즈코 본인이 문제없다고 말하는 이상 뭔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이 얼마만큼 운반되어오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오늘밤은 이걸 병사들에게 나누어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아시미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나누어준 것, 그것은 술이다. 내일은 농밀(濃密)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오늘밤이 달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째째한 소리를 하는 법 없이, 저녁식사는 대단히 푸짐하게 내놓았다. 병에 담겨있던 요리들이 차례차례 개봉되어 병사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텅 빈 술통이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굴러다녔다.


"마치 축제로군"


한조와 타다카츠, 야스마사가 시즈코 군의 떠들썩함에 놀랐다. 얼핏 보면 타케다와 싸우기 전의 최후의 만찬으로도 보이지만, 세 사람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며칠 정도지만, 시즈코들에게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눈치챌 정도니, 주인인 이에야스도 눈치채고 있을거라고 이해했다.

왜냐 하면 시즈코 군이 떠들썩하게 노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가서 낄 수 있으면 끼어서 놀고 와라, 고 가신들에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본인은 그대로 시즈코 군이 있는 곳으로 끼어들러 갔다.


"하여간 괘씸하군…… 우물우물…… 내일부터 농성인데, 후우후우…… 이래서는 맥이 빠지는 게 아닐까"


"헤이하치로, 산처럼 요리를 쌓아놓고 먹으면서 말해도 설득력은 전혀 없다"


"네놈들도 요리를 손에 들고 있지 않느냐"


맛있을 듯한 냄새에 이기지 못하고 세 사람 모두 한 손에 요리를 들고 걷고 있었다. 타다카츠 같은 경우에는 접시에 밥을 얹더니, 그 위에 산더미같은 반찬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조나 야스마사도 접시에 몇 가지 요리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게다가, 요리는 별로 먹지 않았지만, 이에야스는 사카이(酒井)와 함께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불안한 것이겠지. 그러니 떠들썩하게 놀 수 있을 때는 노는거다"


타케다의 행군 속도를 볼 때 농성전은 내일부터 시작된다, 고 다들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옛부터 농성전은 비참한 상태가 되기 쉽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 시시각각으로 줄어가는 군비, 부상당해도 도망칠 곳조차 없는 상황은 정신을 마모시킨다.

게다가 타케다는 월동 장비를 가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농성전은 어떻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다들 떠들썩하게 즐기며 내일을 잊는다.


"이제와서 말해봤자 소용없다. 할 수 있는 일은 할 것이다"


"지금은 네놈의 속편함이 위안이로군. 충분히 마음편하게 준비해둬라"


"이봐, 사람을 만사태평한 인간 취급하지 마라"


"아니냐?


"아니야!"


한조의 지적에 타다카츠는 반론했다. 하지만 곧 세 사람 모두 뿜었다. 그들은 이 때만큼은 시시각각 밤이 지나 내일이 다가오는 것을 잊고 떠들썩하게 즐겼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으나, 시즈코들도 크게 흥분해 있었다.

이럴 때 대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 그야말로 장례식(お通夜) 같은 청승맞은 밤을 보내게 된다. 억지 기운으로 보이더라도 위에 서는 사람은 솔선하여 즐거워해보일 필요가 있었다.


"좋았어ー!"


큰 모닥불을 앞두고, 케이지의 원숭이춤이나 사이조의 연무(演武),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춤 등이 선보여졌다.

모닥불은 캠프 파이어라고도, '친목(親睦)의 불'이라고도 하며, 결속력을 높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다들 모닥불을 둘러싸고 떠들썩하니 즐기고 있었다.


"아ー 내가 바로…… 다음이 뭐더라?"


"이 등신!"


만담(漫才) 같기도 하고 카부키(歌舞伎) 같기도 한 쇼에 다들 큰 소리로 웃었다. 술기운도 있지만, 누군가가 모닥불 앞으로 뛰쳐나와 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선보이고 있었다.


"술기운이라는 건 무시 못하겠네"


열기가 버거워진 시즈코는,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져서 시원한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녀였으나, 분위기만으로도 취한 기분이 들었다.


"물이다"


"고마워"


아시미츠에게서 찬물을 받아들었다. 불기운에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물이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휴 하고 한숨을 돌린 시즈코는, 컵을 한 손에 쥔 채로 병사들의 난리법석을 보았다.


"내일은 드디어 결전이니, 미련이 없도록 실컷 떠들썩하게 놀게 할 필요가 있지"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무혈(無血)의 승리는 무리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면 훌륭한 선전이 되니까. 내일은 압도해 보이겠어"


주위는 내일부터 길고 괴로운 농성전이 시작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즈코를 필두로 한 몇 명 만은, 내일은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타케다를 쓰러뜨릴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 고생하며 이것저것 준비해온 것이다. 최소한 타케다의 주력이 괴멸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피가 배어내는 훈련에 따라와 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


"예상으로는 사상자는 거의 200. 그 정도는 나올 거라 생각해둬라"


"200이라…… 좀 더 줄이고 싶지만, 타케다 군 상대로 그 숫자라면 감지덕지려나"


"감지덕지는 커녕, 타케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귀를 의심할 거다. 켄신(謙信)조차 비기는 게 고작이었던 타케다, 그 군이 완전히 괴멸하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지"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이번의 책략에는 다른 오다 가문 중진(重鎮)들도 찬동해 주었다.

각 진영에 이런저런 속셈은 있지만, 타케다를 쳐부순다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시즈코로서는 문제없었다.

그 후, 어떤 특권이나 명예가 따라올지도, 그녀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로서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안심해라. 타케다를 쳐부순 군, 이라는 게 되면 쓸데없이 다투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켄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호죠(北条)와 결탁해서까지 싸우려고 들진 않겠지"


"그러기를 바래. 이 이상, 싸움이 계속되어서 나라가 피폐해져가면 곤란하니까. 다들 이런저런 생각은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영주님에 의한 오다 막부(幕府)의 천하통일이 가장 나은 미래라고 생각해"


"누구나 납득하는 미래 같은 건 없다. 나는 시즈코를 믿는다. 그러니 시즈코는 스스로가 믿는 길을 가라. 그게 설령 잘못되었다고 해도 말이지. 잘못되었는지 올바른지는,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판단을 맡겨라"


"응, 힘낼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꼭 말려줘"


"그걸 시즈코가 바란다면, 나는 목숨과 바꿔서라도 말려보이지"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오버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걱정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끝나면, 그녀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관계없이, 시즈코는 정치의 세계에서 발판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타케다라는 위험이 사라지만,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은 뻔히 보였다.


(타케다를 깨부수고,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一揆)를 멸망시키고, 아자이(浅井)을 멸망시키고, 아사쿠라(朝倉)를 멸망시킨다. 바보 동생놈은 모리(毛利)가 있는 곳으로 날려버리면, 이제 일본은 오다 가문이 거의 장악한 셈이 되지. 그렇게 되면, 혼간지(本願寺)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다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천하가 보이는 위치에 노부나가는 서게 되지. 그렇게 되면, 시즈코의 힘을 노리고 몰려드는 잡초들은 얼마든지 생겨난다)


원하지 않는 권력투쟁에 말려들게 되면, 과연 시즈코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만큼은 아시미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령 시즈코가 변하더라도 아시미츠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즈코를 지킨다, 적은 멸망시킨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아시미츠는 확신하고 있었다.


"긴장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뭐, 나중 일은 일단 제쳐두지. 지금은 내일 일을 생각하자"


"……그러네. 내일, 이네"


컵에 남은 물을 다 마신 후, 시즈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기가 맑은 덕분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보였다.


"내일, 역사가 크게 바뀐다"


시즈코의 작은 중얼거림은 가까이 있던 아시미츠에게조차 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은 채 밤하늘로 빨려들어가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란은 계속되었으나, 밤이 깊었을 무렵, 내일을 대비해 다들 곯아떨어졌다.


12월 22일,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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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4 1572년 11월 하순



10월 3일, 오다 가문에 격진(激震)이 흘렀다.

타케다(武田)가 움직였다. 신겐(信玄)이 이끄는 2만 2천의 군세가, 본거지인 코우후(甲府)에서 출진했다는 보고가 도착한 것이다.

신겐이 출진하기 전에,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와 아키야마 토라시게(秋山虎繁)가 각각 5000의 병사를 이끌고 진군하고 있는 걸 볼 때, 타케다가 가진 힘을 총동원하여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진용을 볼 때도 명확히 알 수 있듯이 목표는 도쿠가와(徳川) 뿐만이 아니다. 그 배후에 있는 오다 가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이해했다.


노부나가는 기후(岐阜)를 떠나 오우미(近江)에 있는 요코야마 성(横山城)에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에 대비한 상황을 확인하고 있을 때 타케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말의 숫자, 마바리(小荷駄)의 규모를 볼 때 겨울을 나는 것을 상정한 대원정(大遠征)입니다. 병사의 숫자에서도 도쿠가와와의 소규모 충돌이 아니라, 타케다 가문이 가진 전력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타케다의 모든 전력. 그 말에 제장(諸将)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아자이-아사쿠라가 계속 성에 틀어박혀 있던 이유를, 쇼군(将軍) 요시아키(義昭)가 오다 가문과의 관계를 끊은 이유를,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혼간지(本願寺)가 활발해진 이유를.

그 대답이 타케다 가문의 대원정이었다.


감이 좋은 자들은, 한 번은 풀어졌던 오다 포위망이 다시 닫히려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냥감을 몰아넣고, 숨통을 끊는 것은 타케다가 해 준다.

오다 포위망에 참가하는 면면들은 사냥감이 도망칠 수 없도록 하고 기다리면 된다. 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였다.

노부나가만은 태연했으나, 맹장(猛将)으로 이름높은 시바타(柴田)조차 긴장 때문인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화, 황공합니다만 아뢰옵니다. 이 사실에 의해 타케다와 오다의 우호 관계는 깨졌습니다. 즉시 도쿠가와에 원군(後詰め)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군은 보내지 않는다"


미츠히데(光秀)가 현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상식적인 대책을 상신했으나, 노부나가는 단박에 기각했다. 그 말을 듣고 제장들에게도 동요가 흘렀다.


"하지만 도쿠가가와 깨지면 다음은 우리 오다 가문. 그렇게 되면 우리들에게 승산은 없습니다. 이 상황 하에서 보낼 수 있는 병력은 한계가 있겠지요. 하지만 도쿠가와만으로는 패배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아무도 버린다고 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의 말에 제장들은 더욱 당황했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케다 군이 코우후에서 출진했다는 보고는, 오와리(尾張)에 있는 시즈코에게도 도착했다.


"아, 그렇구나"


하지만 보고를 받은 아야(彩)의 당황과는 대조적으로, 시즈코는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다. 그 부동(不動)의 태도를 보고, 시즈코와 장기를 두고 있던 케이지(慶次) 쪽이 놀라고 있었다.


"그렇구나, 가 아닙니다! 타케다라고요!!"


"워워, 진정해. 당황해봤자 상황은 변하지 않아. 아, 아시미츠(足満) 아저씨에게 이리로 오도록 전해줘. 가는 김에 창고에서 그걸 가져와 줬으면 좋겠다고 전해주겠어?"


"어, 아, 네"


"이 판이 끝나면 케이지 씨는 평소의 면면을 불러와줘요. 뭐 아시미츠 아저씨가 도착하지 않으면 자세한 이야기는 못 하지만"


"어, 음"


시즈코의 흔들림없는 모습에 아야는 약간 냉정함을 되찾았다. 대답하고 즉시 곳곳에 지시를 내리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다급한 발소리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시즈코는 자기 차례에 수를 두었다.


"당황하다 넘어지지 않으면 좋겠네"


"나는 시즛치의 침착함이 이해가 안 되는데. 타케다라고 듣고 눈썹 하나 까딱 안 한 녀석은 시즛치 정도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당황해서 상황이 변한다면 얼마든지 당황해보이겠어. 하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아. 그럼 당황해봤자 손해잖아? 어이쿠, 감사!"


"앗"


케이지도 내심으로는 동요하고 있었기 떄문인지, 평소에는 놓치지 않는 수를 놓쳐 중요한 말(大駒)인 비차(飛車)를 간단히 먹혀 버렸다.

자신의 각(角)과 교환하여 시즈코의 비차를 잡아 시즈코의 행동력을 빼앗을 방침이었기에, 전황은 열세는 커녕 괴멸 상태로 몰려버렸다.


"……틀렸군, 지금 상황으론 제대로 싸울 수 없어. 항복이야"


"동요하면 빈틈이 생겨버리니까요. 자, 케이지 씨. 그 사람들에게 연락을 부탁해요"


장기말을 한 손으로 가지고 놀면서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연락 담당을 의뢰했다. 케이지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면서 방을 나갔다.

아무도 없어진 방에서 시즈코는 확신했다. 이미 분수령은 넘었고, 활로는 타케다를 쳐부순 뒤에만 생기는 것이다.


"후훗, 딱히 불안이 없…… 는 건 아니지만 말야"


인간의 감정은 체취(体臭)에도 나타난다. 시즈코의 불안을 냄새로 눈치챈 비트만들이 몸을 부벼댔다.

시즈코는 괜찮다고 말하듯 쓰다듬었지만, 비트만들은 그대로 시즈코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최초로 아시미츠가 도착하고, 이어서 케이지가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멤버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장인 케이지, 나가요시(長可),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 시즈코 군 본대의 부대를 이끄는 겐로(玄朗),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였다.

시즈코 군 본대에는 이밖에도 대장급 사람들은 있지만, 시즈코가 처음에 이야기를 터놓는 것은 이 8명이라고 정해두었기에, 최초의 작전회의는 이 멤버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럼, 이미 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타케다 군이 코우후에서 출진했습니다"


회의용의 방으로 이동해서 처음으로 입을 연 시즈코는 전원을 향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서상 작전(西上作戦)이 개시되었음을 알렸다.

타케다 군의 출진에 놀라는 사람, 반대로 투지를 불태우는 사람, 평소와 다름없는 사람,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아시미츠 이외에는 다들 어떤 공통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주군, 타케다의 출진은 알겠습니다. 그것과 저희들이 모인 것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타케다의 출진은 확실히 오다 가문 존망의 위기이다. 하지만 노부나가로부터 지령이 없는 상태에서 작전회의를 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전원의 공통된 의문이었다.


"아ー…… 벌써 얘기해버려되 되려나요? 거의 확정인데, 도쿠가와의 원군으로 가는 건 우리들이거든요"


"네에엣!?"


"어이쿠, 진정해요. 자세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할게요"


당황하는 면면들을 진정시키면서, 시즈코는 아야에게 사람들을 물리도록 지시했다. 아야의 움직임에 맞춰 비트만들도 시즈코의 뜻을 따라 소정 범위를 감시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잠시 후 저택에서 사람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기밀이 샐 위험이 없어진 단계에서 시즈코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대략적인 하마마츠 성(浜松城) 주변 지도에요. 타케다는 가진 전력을 총동원하고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도쿠가와와 소규모 충돌을 할 생각은 아니지요"


"대략적인 병력수는?"


"야마가타(山県) 사부로(三郎) 효에노죠(兵衛尉)는 병력 5000을 이끌고 시나노(信濃)에서 미카와(三河)로, 아키야마(秋山) 호우키노카미(伯耆守)는 병력 5000을 이끌고 동(東) 미노(美濃)로, 타케다 군 본대는 병력 2만 2000을 이끌고 코우후에서 출진하여 미카와를 향해 진군하고 있어요. 아키야마는 동 미노의 견제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병력수는 2만 7000이네요"


"약 3만입니까. 그만한 병력을 상대로 우리들만으로는……"


겐로의 표정이 절망으로 흐려졌다. 그가 의기소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 군의 전군을 동원해도 1만 정도, 도쿠가와의 진용은 확실하지 않지만 국력으로 볼 때 마찬가지로 총동원해봤자 1만이라고 하면, 양 군을 합쳐 2만 가까이 되기는 한다.

숫자의 단계에서 지고 있는데다, 상대는 두 배가 되는 병력과 호각을 이룬다는 정강무비(精強無比)한 타케다 군이다. 승산이 없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의 불리는 어떻게 해도 뒤집을 수 없지요. 그러니 무기의 질로 숫자를 보충합니다"


망을 끝냄과 동시에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 가져오게 한 신형 화승총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전원의 시선이 거기에 쏟아졌으나, 얼핏 봐서는 눈에 익지 않은 부품이 몇 개 달린 화승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야야, 화승총만으로는 방법이 없어. 아니면 뭐야, 이건 굉장한 성능을 숨기고 있는거야?"


나가요시가 화승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시즈코에게 의문을 표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은 안 했지만 나가요시와 같은 생각이었다.


"겉보기에는 기묘한 화승총으로밖에 안 보이니까. 화승(火縄, ※역주: 도화선)을 쓰지 않게 되었으니 화승총이 아니야. 일단 명칭은 나중에 붙이기로 하고, 신식총(新式銃)이라고 부르기로 할게. 어쨌든 타케다 전의 분리를 뒤집을 장비 중 첫번째야"


"무기 성능만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문제없어. 싸움에도 법칙성이 있거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무기 성능에 병력수의 2승(乗)을 곱한 숫자를 전투능력으로 대입하는거야. 그 계산에 따르면, 숫자의 우위를 뒤집으려면 무기 성능으로 크게 앞설 수밖에 없어. 카츠조(勝蔵) 군의 의문은 당연하지만, 백문은 불여일견. 그 성능을 보면 의문 같은 건 날아갈거야"


시즈코가 말하는 싸움의 법칙이란, 란체스터의 제2 법칙을 가리킨다.

현대에서는 비즈니스 전략 등에 인용되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으나, 원래는 전투의 수리(数理) 모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란체스터의 제2 법칙을 꺼내려면, 기관총같이 혼자서 복수의 인간을 공격할 수 있는 병기가 전제로서 필요해진다.

따라서 신식총이라도 단발식(単発式)이라, 타케다 군과의 싸움에서 란제스터의 제2 법칙을 적용하기에는 좀 불안하다.

즉, 모두의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허풍이다.


"뭐, 말보다 보는 게 빠르지. 지금부터 아시미츠 아저씨가 성능을 보여줄거야. 그럼 부탁해"


"알았다. 다들, 따라와라"


테이블에 놓인 신식총을 집어들고, 아시미츠는 전원에게 말하며 일어섰다. 남겨진 면면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시즈코에게 시선을 보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시즈코는 수통의 물을 입에 머금고 삼킨 후에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입으로 아무리 말해봐야,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는 사실 쪽이 설득력에서 우위를 가진다. 시즈코에게 재촉받고는 각자 아시미츠의 뒤를 따랐다.


"자, 다들 어떤 표정을 하고 돌아오려나"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건조한 총성(銃声)이 높이 울려퍼졌다. 다들 멍해 있으려나, 아니면 환희하고 있으려나, 어느 쪽일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각자의 성격에서 반응을 상상한 시즈코는 혼자서 깔깔 웃었다.


"타케다 전이 끝나면 오퍼레이션 리서치도 도입할 수 있으려나?"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을 하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오퍼레이션 리서치(Operation Research)——줄여서 OR이라고 부르는 것——이란, 모든 문제를 과학적, 즉, '이치에 맞는 방법'을 사용하여 해결하기 위한 '문제 해결학(問題解決学)'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미국이 독일, 일본에 대해 효과적으로 승리를 얻기 위해 연구했을 때 태어난 학문이다.

란체스터의 법칙이나 게임 이론을 조합하여, 효율적으로 승리를 얻을 방법을 모색했다.

최근에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뮬레이션'도 OR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OR는 군사에 발단을 두고 있으나, 그것에 그치는 학문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OR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역사 그 자체가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분석하여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게 하는 수법, 소위 말하는 '능숙한 방법'의 축적. 그것이 OR의 정석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전 세계의 OR 연구자들이 매일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여 그에 대한 문제 해결의 수법을 연구하고 발표하고 있는 'OR학회' 같은 것까지 존재하고 있다.

이 '분석과 의사결정'에 대한 효과적이 어프로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대단히 폭넓은 응용력을 갖는다고 평가되는 근거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표준적인 사고방식으로 만들고 싶네. 여러가지 분야를 자극받을테도, 축적해가기만 해도 재산이 되니까"


보급시키고 싶은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OR 수법이 보급되는 것에 의한 각종 산업 업계에 대한 자극이다.

오다 가문이 발전시킨 산업은 이색적이며, 외부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극히 적다.

내부에서만 굳어져버리면 문제가 발생해도, 그건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에 붙잡혀서, 이윽고 벽에 부딪혀서 동맥경화처럼 언젠가는 파열된다.

그러한 것들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OR을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착수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 보급시킬지를 생각하고 있자니, 다급한 발소리가 여럿 다가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서 돌아온 걸까, 하고 생각한 순간, 입구의 맹장지가 본래 움직이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시즈코오! 저건 뭐냐!!"


예상대로 맨 먼저 뛰쳐들어온 것은 나가요시였다. 케이지, 사이조와 다른 사람들도 그 뒤를 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맹장지는, 반대측에 맹장지에 꽂혀 무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통째로 한 세트 새로 사야겠네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수통의 물을 들이키고 냉수를 끼얹는 듯한 말을 했다.


"일단 전원의 급료에서 맹장지 수리비를 빼겠어요"


"어!? 저, 저건 맹장지가 멋대로 날아간 것 뿐이거든"


"농담이에요. 다들 의문은 있겠지만, 일단 얌전히 앉아요"


닫을 수 없게 된 입구를 일별하면서 전원이 소정의 위치에 앚았다. 아야에게 부탁해서 예비 맹장지를 세워걸어 급한 불을 껐을 때 아시미츠도 돌아왔다.

그가 앉은 것을 확인한 후, 시즈코는 이야기를 재개했다.


"뭐 본 대로에요.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내가 이것저것 준비했던 것은 알았겠죠?"


"어, 뭐. 저런 거, 어떻게 만든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시즈코가 뭔가 준비하고 있었던 것만은 알겠어"


"그거면 됐어요. 나는 어디까지나 상황을 준비한 것 뿐이에요. 마지막에 붙잡는 건 당신들의 의욕에 달렸어요"


다 말하지 않아도 전원이 이해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원군이지만, 시즈코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정에서 패한 적이 없는 타케다 군. 그 최초이자 최후의 패배를 우리들이 안겨주는 거에요. 어때요? 누구도 하지 못했던 대박(大金星)이에요. 압도적 불리함을 뒤집은 승리, 이거야말로 원군의 진면목(真骨頂) 아니겠어요?"


오다를 쳐부수려고 전군을 총동원하여 원정하고 있는 타케다 군을, 반대로 오다 군——정확히는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이 쳐부순다.

병력수도 숙련도도 압도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이 작전이 성공하면 오다 가문의 이름은 천하에 울려퍼진다.


"카츠조 군, 슬슬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겠지. 그러니까 너는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조를 처치해 줘"


"야마가타……인가!"


타케다 군의 선봉장(先駆け武将)으로, 타케다 군 최강의 적비대(赤備え)를 이끄는 야마가타 마사카게에게 시즈코는 나가요시를 부딪힐 생각이었다.


"무서워?"


"당연하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야마가타의 목을 딸 의욕이 넘치기 시작했어!"


나가요시의 군은 젊은이들이 많아 경험이 부족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많기에 무서운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적비대에 대한 공포심이 적다. 즉, 적비대를 봐도 기세를 유지한 채 싸울 수 있다.


"사이조 씨는 바바(馬場)를 처치해 줬으면 해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바바에게 가장 잘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사이조 씨의 군이라고 생각해요. 케이지 씨, 요키치(与吉) 군, 아시미츠 아저씨는 돌격 신호만 내리겠지만, 그 이후에는 각자의 판단으로 자유롭게 움직여줘요"


"하지만, 그래서는 시즈코 님의 주변이……"


"사이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시즈코는 이해했다. 이해한 상황에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전원이 목숨을 거는 거에요. 나 혼자 안전한 장소에 있어도 사기가 떨어질 뿐이에요. 처음에 지시를 내리면 총지휘관은 불필요. 게다가 상대는 타케다, 내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아요. 대장이 선두에 서게 되면 병사들은 분발하여 승리를 믿을 수 있게 되니까요"


"시즈코 님…… 옛! 소생은 목숨을 걸고 바바를 처치하겠습니다!"


"잘 부탁해요. 그리고 겐로 할아버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줘요"


"옛! 모아서 어찌할까요?"


겐로의 질문에 시즈코는 아시미츠가 사용한 신식총을 손에 들더니 그걸 겐로에게 건네주었다.


"이번의 타케다 전, 기세를 바꾸는 것은 텟포슈(鉄砲衆)가 될 거에요. 겐로 할아버지의 역할은 텟포슈를 이끄는 거에요. 니스케 씨나 시키치 씨도 마찬가지지만, 말을 타면서 총을 사용하니까 느낌은 좀 다르려나요"


"예? 어, 옛!?"


세 사람이 나란히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총(鉄砲)을 다루는 집단이라고 하면 사이카슈(雑賀衆)나 네고로슈(根来衆)처럼, 그것만으로도 용병집단으로 성립할 정도의 무장집단이 된다.

그걸 이끈다고 하면 대단한 출세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시즈코 군 내부에서만이 아니다. 외부에도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주는 것은 기회 뿐이에요. 이름을 드높일지, 아니면 웃음거리가 될지, 그건 당신들에게 달렸어요"


"으……"


"나는 당신들을 믿고 있어요. 이 총을 다루는 선구자가 될 것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을"


절묘하다, 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겐로들은 내력이 파란만장하기에, 시즈코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 바로 그렇기에 시즈코 군 안에서 순조롭게 출세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즈코 군 내부에서의 평가에 그치고, 다른 오다 군에서는 어차피 잡병이라는 취급이었다. 이름있는 부모로부터 지위를 물려받은 패거리와 전혀 무명인 사람들은 대접에 차이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의 싸움에서 텟포슈의 존재감을 드러내면, 그 명성은 만민(万民)이 알게 된다.

전과에 따라서는 아군이 그 이름을 듣고 안도하고, 적은 그 이름을 듣고 공포에 떠는 존재조차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불우한 대우를 감수하고 있던 그들에게는 시즈코의 신뢰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저를…… 알겠습니다, 주군. 저는 주군의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저, 저희들도입니다. 주군, 저희들 일동, 분투하여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감격에 겨워 시즈코를 향해 깊이 절했다. 조금 오버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무명은 커녕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그들이다.

이번에는 일생일대의 대승부, 전에 없던 무공을 올릴 찬스이며, 이걸 놓치면 이제 희망은 없다. 그만큼 큰 기회라는 것을 세 사람은 이해했다.


"사람을 다 모으면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신식총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세요"


"옛!"


"그밖에도 의문이 있으면 말해요. 가능한 한 대답해줄게요"


전원을 둘러보며 물었으나, 아무도 의문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원의 눈에는 투지가 깃들어, 스스로의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 특유의 패기가 넘치고 있었다. 충분한 반응을 느낀 시즈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모두의 기합은 충분하네요. 그럼 오늘은 이걸로 해산, 각자 훈련과 휴식을 충분히 취하면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려줘요"


"오오!"


시즈코의 마무리 말에 전원 기백이 담긴 목소리로 화답했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나가요시는 가장 먼저 방을 나갔다. 이어서 겐로, 니스케, 시키치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케이지만은 자리를 뜨지 않고 앉은 채로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라고 느낀 시즈코는, 상황을 살피고 있던 아시미츠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고민했으나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쳐지나갈 때 케이지와 뭔가 이야기를 한 후 아시미츠는 방을 나갔다. 남은 것은 시즈코와 케이지 뿐이었으나, 케이지는 바로 입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꽤나 전부터 궁금했는데, 시즛치는 어쨰서 겐로 할아범을 높게 평가하는 거야?"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자니, 문득 케이지가 입을 열었다. 손을 멈추고 다시 케이지를 바라본 후, 시즈코는 조용히 웃음을 떠올렸다.


"주인(主人)에게 간언(諌言)할 수 있는 사람은 전장에서 가장 먼저 창을 내지르는 사람보다 소중한 법"


"……"


시즈코의 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명언인 "주인의 악행(悪事)을 보고 간언하는 가노(家老)는, 전장(戦場)에서 가장 앞장서 창을 찌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마음을 먹은 것(※역주: 의역 내용이 정확한지 모르겠음)"이 베이스가 되었다.

주인의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본인이나 주위에서는 힘을 과신하기 쉬워진다. 그 상태에서는 주인의 악행이나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는 것은 어렵다.

또, 주인 쪽도 창피를 당했다는 생각이 앞서기에, 아무리 올바른 의견이라도 간언을 싫어하게 된다.


"스스로 말하기도 뭣하지만, 내 지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줄어들거야. 그리고 충고하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면 틀림없다, 라는 인식이 만연해져. 그런 걸 막기 위해서도, 겐로 할아버지는 귀중한 사람이야. 중용하지 않는 쪽이 이상해"


"과연. 그런 이유가 있었나"


"확실히 겐로 할아버지의 무공은 미묘해. 이번에 텟포슈의 두령으로 발탁한 것은 적지않은 반발이 있을거야. 하지만, 타케다 전이 끝나면 텟포슈의 존재는 유력자들의 눈에 들게 될 거야. 그렇게 되었을 때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으로는 곤란해. 설령 윗사람에 대해서라도 잘못이 있으면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안 돼"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고, 주인(使う側, ※역주: 사용자나 고용주라고 하자니 조금 이상하여 의역함)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서인가"


"맞아. 물론 나도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거든? 하지만, 간언을 받는다는 건, 적지않게 문제 의식을 주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발을 멈추고 한 발 물러서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거야. 그렇게 하면 대실패를 하기 전에 방향수정을 할 수 있잖아?"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는 미소가 깊어졌다. 누구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귀찮은 법이다.

자신과 동조하여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패거리를 중용하게 되어, 이윽고 간언은 귀에 닿지 않게 된다.


(과연. 그래서 겐로 할아범이 가장 높이 평가받는 거군.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생각하는 바가 있어도 말로 꺼내지 않지. 하지만 겐로 할아범은 보신(保身)보다도 시즛치를 우선시하여 간언하지. 그 차이를 시즛치는 이해하고 있는건가)


단순히 겐로의 처지를 알고 동정하는 건가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점에 케이지는 안도했다.

시즈코는 철저히 비정해지지 못하는 어설픈 면이 있기에, 그게 나쁜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겐로의 대발탁은 과거의 헌신에 대한 온정인가 하고 생각햇으나, 내심을 듣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했다.

조금 안심했으나, 금후에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었기에, 이제부터도 시즈코의 행동은 항상 지켜보자고 그는 생각했다.


"맙소사, 그냥 어설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네"


"어째서 나는, 아무 생각도 없다고 생각되는 걸까"


"어쩔 수 없어. 시즛치의 행동은, 결과가 보여야 처음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잘 모르면 기세만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거든"


"에엑~, 꽤 알기쉽게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불평했다. 하지만 시즈코 기준의 시점에서 보면 알기 쉬운 것이지, 부감(俯瞰)적인(※역주: 위에서 내려다본다는 뜻, 여기서는 (시즈코가) 역사나 미래의 각종 지식을 가진 것을 바탕으로 한) 시점을 갖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기 어렵기 짝이 없다.


"그건 시즛치 뿐이겠지. 자, 의문도 해소되었으니, 마을에서 놀다 올까"


원하는 때 원하는 일을 한다. 타케다와의 싸움을 앞두고 주위가 필사적으로 훈련을 하고 있던 어쨌던, 놀고 싶으니까 논다. 그것이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라는 존재이다.


"늦어지면 저녁밥 못 먹을거야"


"그거 큰일이네. 뭐, 지나치지 않게 놀고 올게"


케이지는 시즈코에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방을 나갔다. 쓴웃음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케이지를 따라 손을 흔들어 그를 배웅했다.

케이지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방에 남은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정리를 마친 후 시즈코도 방을 나와서 그 길로 자기 방으로 갔다. 방에 돌아오자 미리 내용을 적어둔 서신을 노부나가에게 보내도록 수배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가)


서상 작전이 실시된 이상, 이제 시즈코는 멈춰서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가는 것 외에 길은 없다.

타케다가 멸망할지, 아니면 시즈코 군이 전멸할지, 찾아올 미래는 둘 중 하나이다. 물론, 호락호락 져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타케다가 출진한 이상, 치고 나갈 각오였다.


(생각해봤자 소용없지만, 지금부터 여러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야 해. 그걸 생각하니 좀 우울하네)


책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아군조차 기만할 필요가 있다.

대체적으로 기만하는 상대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얻을 수 있는 효과도 그에 비례해 커진다. 하지만, 거짓말이 서투른 자신이 타인을 기만할 수 있을 것인가, 시즈코의 고난은 이어진다.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지, 말의 앞뒤가 맞는지, 의식해서 사람을 속여본 적이 적은 시즈코에게는 허들이 높은 난제였다.


"……뭐, 어떻게 되겠지"


생각해도 소용없다고 결론지은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타케다 군은 파죽지세로 침공하고 있었다. 사흘에 하나의 성을 함락시키며, 이에야스의 거성(居城)을 목표로 맹렬히 진격하고 있었다.

타케다 군 본대와는 별대로, 야마가타가 미카와로부터도 침공하고 있었기에 미카와의 군을 움직일 수 없어, 이에야스는 토오토우미(遠江)의 병력 8000밖에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같은 편의 영주(国人)들이 타케다 측으로 변절하는 것을 두려워한 이에야스는, 10월 14일에 출진하여 미카노가와(三箇野川)나 히토코토자카(一言坂)에서 타케다 군과 싸웠으나, 병력이 열세였기에 자연스레 패퇴했다.


하지만 타다카츠(忠勝) 등 충신들의 활약도 있어, 주요 무장은 싸움터에서 탈출하여 하마마츠 성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이 때의 타다카츠의 활약상에 신겐이나 타케다 가문 가신들은 감탄하여,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는 도쿠가와에게는 과분한 자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도 타케다 군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11월에 들어서도 전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손쓸 방법은 없는 건가"


이에야스는 절망적인 말을 내뱉았다.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히토코토자카의 일전에서 피아의 전력차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도쿠가와에 타케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희망 따윈 없었다.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리다. 오다도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했다. 우리들에게 병력을 보낼 여유는 없다"


가신 중 한 명이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아자이에 아사쿠라, 혼간지 등 오다 포위망에 관여한 자들로부터 집요한 공세를 받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이에야스에게 병력을 보낼 여력은 없다.

그걸 알고있기 때문에 오다에 원군을 요청하는 안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주군, 이대로는 도쿠가와는 끝장입니다. 이제는 타케다에게 투항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도 이제와서 무리다. 타케다는 미카와와 토오토우미를 유린할 때까지 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항복하자는 안도 나왔으나, 이제와서 항복이 받아들여지진 않을거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항복이 이루어져도, 땅을 뺏기고 오다에 대한 첨병으로서 이용당하고 소모될 것은 뻔히 보였다. 어느 쪽으로 가도 지옥(行くも地獄戻るも地獄)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딱 맞았다.


"주군, 한 가지 신경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한조(半蔵)가 이에야스에게 진언했다. 어쨌든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던 이에야스는 한조의 발언을 허가했다.


"혼다 님이 대단히 집착(執心)하고 있는 시즈코 님이, 전군을 오와리에 배치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누, 누누누누누누가 지지집착한다고!"


눈에 띄게 동요하는 타다카츠였으나 한조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스운 광경에, 가신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떠올렸다. 무거운 분위기가 약간은 가벼워졌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했다.


"그건 기묘한 이야기군. 지금 오다 님에게 병력을 놀려둘 여유는 없지.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뭔가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이와무라 성(岩村城)으로 갈 병력이 아닐까요?"


동(東) 미노(美濃)에서 권위를 휘둘렀던 이와무라 성의 성주 토오야마 카게토우(遠山景任)가 5월에 병으로 죽었다. 노부나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동 미노에 가신을 파견하여 이와무라 성을 점령했다.

카게토우의 처이자 노부나가의 숙모(叔母)인 오츠야노카타(おつやの方)는, 노부나가의 5남인 오다 카츠나가(織田勝長)를 양사자(養嗣子, ※역주: 구민법에서, 호주 승계인의 신분을 가진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은 당주의 자리를 이어 오다 카츠나가의 후견인(後見人)이 되었다.


그러나, 타케다의 서상 작전이 개시되자, 오츠야노카타는 타케다 군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이와무라 성에 있던 노부나가의 군을 쫓아내고 타케다로 변절했다.

이 갑작스런 배신에 노부나가는 격노했다.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라, 오츠야노카타의 배신에는 동 미노에 있던 토오야마 씨족(諸氏)들도 반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카미무라(上村)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카미무라 전투는 겐키(元亀) 원년(元年)과 겐키 3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으며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일족의 배신이니, 철저하게 짓밟겠지요. 동 미노의 지배도 확립할 수 있으니까요"


"확실한 증거는 있느냐?"


"예. 시즈코 군은 싸움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병사의 단련도 하고 있으니, 틀림없을거라 생각됩니다"


얼핏 앞뒤가 맞는 이야기였으나, 이에야스는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한조의 보고에 따르면 시즈코 군은 시즈코와 노부나가가 공들여 키워낸 군이다.

눈앞에 타케다라는 위협이 닥쳐오는 가운데, 일족의 뒷처리에 시즈코 군을 투입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알았다. 일단 타케다를 해결한다. 일단은 그걸 생각하자"


하지만 말과는 반대로, 타케다를 해결할 계책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11월 하순쯤 되니 오다 가문 내에는 긴박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들려오는 것은 타케다 군의 쾌진격에 대한 보고 뿐으로, 그 이외에 희망적인 화제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타케다라는 괴물에게 모든 것이 삼켜진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절망에 가까운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 무렵이 되어서도 노부나가는 명확하게 타케다와 싸울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얼핏 노부나가의 행동은 소심해보인다. 하지만 상대가 타케다라면, 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다들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는 서류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차례차례 운반되어오는 물자의 체크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하지만 하나같이 중요한 물자였기에,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총의 부품이 아직 부족해. 이대로 계산하면 500개 정도 부족할 거야)


고민 끝에, 시즈코는 할당량을 두 배로 해서 달성한 사람에게는 평소보다 많은 포상금을 주기로 했다.

일부 숙련공이라면 기대에 부응해 줄 것이다. 이걸로 아슬아슬하게 부품이 필요수에 달할 거라 예상되었다.

소성(小姓)에게 돈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의 열쇠와 증산(増産) 지시서를 함께 던져주고는 시즈코는 다음 서류에 달라붙었다.

갑주 아래에 입는 장비에 관해서, 생산 자체는 늦어지지 않았으나 여유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역시 예비는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수 주일 간의 증산을 지시했다. 이쪽도 할당량의 배를 달성한 사람에게는 많은 포상금을 약속했다.


"보통이 아닌 블랙 노동이 되겠지만, 이 몇 주일 동안은 참아달라고 할 수밖에 없네"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타케다가 총력을 기울여 도쿠가와 영토를 공격하고 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도쿠가와 다음은 오다가 될거라고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타케다와의 결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오다 영토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제와서 감춰봐야 의미가 없기에, 시즈코는 거꾸로 그것을 이용해서 전시동원(戦時動員)이나 마찬가지의 무리를 떠넘기고 있었다.

무리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고 있으나, 타케다에게 유린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일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걸로 때에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저쪽은 더 힘들겠지만"


모든 서류의 결재를 마친 시즈코는 책상 위에 엎어졌다. 병사들에 대한 훈련은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담당하고 있었기에, 그쪽은 다른 의미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평소에 가혹한 훈련을 받고 있는 시즈코 직할 부대에서조차, 요시나리의 훈련은 훈련이 아니라 죽이려고 드는 거다, 라고 투덜댈 정도였다.

나가요시의 경우에는 평소에는 밤에 만큼은 기운이 넘쳤는데, 요시나리의 훈련에 참가한 이래로는 저녁식사 전에 돌아와서 목욕과 식사를 마치면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겐로 할아버지는 고생할 것 같네"


겐로는 재능이 있는 병사 1000명을 엄선하여 텟포슈로 조직했다.

하지만 창설 당시부터의 인원으로 결속력이 강한 궁기병대(弓騎兵隊)와는 달리, 여러 부대에서 뽑아온 통일성 없는 부대였기에, 처음에는 삐걱대면서 제대로 부대 운용을 할 수 없었다.

요즘 들어 간신히 결속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지금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것도 이유가 되어 훈련에 대폭 지연이 발생했다. 예정으로는 다 끝났어야 할 훈련이, 아직 반 이상이나 남아있었다.

그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던 시즈코였으나,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간자 대책도 될 거라 생각한 시즈코는, 훈련 예정을 크게 변경했다.

진보가 늦은 것이 거꾸로 유리하게 작용하여, 훈련 내용을 바꾼 영향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때가 되기를 기다릴 뿐, 인가"


조금 계획을 수정했으나, 이대로 가면 모양새가 갖춰지는 것은 12월 10일 전후가 될 예정이었다. 그 무렵이 되면, 타케다는 이미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로 향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이후에는 승리의 여신이 이쪽에 미소를 지어준다면, 오다 가문이 승리를 주울 수 있다.

하지만 싸움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그걸 어떻게 받아넘겨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궤도 수정을 할지, 마음에 걸리는 점은 그것 뿐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벌써 11월도 끝이네. 슬슬 영주님에게서 도쿠가와에 원군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올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문득 다급한 발소리가 시즈코의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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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3 1572년 9월 하순



오다 가문과 맺은 약정(約定)도 있어, 츠루히메(鶴姫)는 아기의 목이 꼿꼿해지는 4개월 무렵까지 입원생활을 해야 했다.

미츠오도 가끔은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속편하니 좋다고 생각했으나, 곧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어떻게 혼자서 살았던 것일까, 라고. 가족을 얻고 함께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예전의 고독한 생활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네놈, 홀몸(独身)을 놀리는 거냐"


"아저씨, 자랑질(惚気)이라면 오다 나으리 상대로 해줘"


"타진(たじん鍋, ※역주: Tajine(طاجين))이란 그릇 모양도 그렇고 물도 넣지 않는 해괴(面妖)한 요리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군요. 야채가 이렇게 달아지다니"


아시미츠(足満), 고로(五郎), 그리고 최근 알게 된 시로(四郎)에게 상담했다. 하지만, 세 사람으로부터의 대답은 도저히 미츠오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심한 말이군요. 시로 씨는 아예 이야기조차 듣지 않으시잖습니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소생이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그러네. 그보다 아저씨는 자랑질이 취미인 건가. 듣고 있는 이쪽이 다 부끄럽네"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은 여자하곤 인연이 없는 생활인데, 용서없이 자랑질하러 오는군"


아주 냉담(けんもほろろ)했다. 그러면서 미츠오가 준비한 요리는 사양않고 먹는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의외로 사이가 좋아졌군요"


"네놈이 우의(友誼)을 맺었으니,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뭐 처음의 고로만큼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잠깐만, 아시미츠 씨. 나를 처음엔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대로도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먹을 수 있을지 아닐지 아슬아슬한 존재로 바꾸는 가짜(似非) 요리사"


"너무해! 요리에 실패는 항상 있는 법이라고!"


"시끄럽다. 생선 초조림(酢煮魚)을 가르쳤을 때, 조금만 넣으면 된다고 했는데 식초만 가지고 조린 건 용서할 수 없어"


"윽, 그건…… 그"


"뭐ー 그건 우리가 가르치는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네"


맛국물(出汁)에 식초를 작은술로 1~2술 정도 넣고 생선을 조리면 풍미가 확 좋아진다.

초절임(酢締め) 생선과 마찬가지로 비린내가 옅어지고 단백질의 응고작용도 있어 조릴 때 형태가 망가지는 것을 막아주는 일석이조의 조리법이다.

하지만 고로는 요리 이름밖에 기억하지 못해서, 차가운 식초에 생선을 집어넣고 조린다는 폭거를 감행했다.

비린내가 나는데다 목이 멜 정도로 신맛도 강하여, 입으로 가져가도 삼키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독극물(劇物)이 탄생했다. 거부하는 고로에게 억지로 먹였지만.


"에잇, 술이다! 술을 가져와라ー! 마시지 않고는 못해먹겠다"


"에에엑…… 뭐 괜찮습니다만"


아시미츠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말에 미츠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오, 아저씨. 뭔가 만들테니 주방을 빌릴게"


한숨을 쉬며 미츠오가 일어서자, 고로가 술안주라도 떠올렸는지 주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미츠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자, 아시미츠와 시로만이 남았다. 알고 지낸 기간이 짧은 시로는 대화의 주제를 열심히 생각했고, 아시미츠는 그다지 수다스럽지는 않았기에 고요함이 자리를 지배했다.


"……아시미츠 님은 특이하시군요"


침묵을 깬 것은 시로였다. 그는 묵묵히 식사를 하는 아시미츠에게 의문으로 생각하고 있던 점을 말했다.


"그리 보이느냐"


"식사하실 때조차 당신은 토시(篭手)를 벗지 않으십니다"


"과연 랍파(乱波, 역주: 닌자를 가리키는 말 중 하나로, 여기서는 타케다(武田)의 닌자라는 의미)라는 건가. 보통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눈치채는군"


순간 시로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식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이상할 건 없지. 타케다로부터 도망쳐온 랍파의 이야기는 내 귀에도 들어왔다. 어째서 도망쳤는지는 모르나, 흥미도 없다"


"그렇, 습니까. 처음부터 정체를 알고 계셨군요. 하지만, 어째서 당신께서는 저를 못 본 척 하시는 겁니까"


"내게는 벨 이유가 없다. 네놈이 오다를 조사하던 말던, 나와는 관계없지. 타케다 밑이 싫어서 도망처왔다고 해도 말이다. 내게 베이고 싶으면 친구에게 손을 대 봐라. 그럴 기색을 보인 순간에는 그 목을 날려주지"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군요. 미츠오 님은 제게 잘 대해주십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파렴치한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역시, 카이(甲斐)에서는 세금이 무겁더냐"


아시미츠는 카이에 대해 현대에서 얻은 정보가 있다. 융성(隆盛)함을 자랑하는 강국으로서 이름을 떨친 카이도, 매년같이 전쟁을 벌인 덕분에, 전비(戦費)를 메꾸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던 것이다.

특히 유명한 것이 신겐(信玄)의 아버지인 노부토라(信虎)와 신겐의 서자(庶子)인 카츠요리(勝頼)다. 노부토라의 낭비는 그렇다치고, 카츠요리는 금광(金山)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세금을 다른 곳에 쓸 수 밖에 없어, 결과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된 것이지만.

또, 타케다 가문에서는 세금의 징수를 가신들이 하고, 가신들에게는 그럴 재량이 부여되어 있었기에 신겐이라도 참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영지마다 세금이 제각각이었으며, 장소에 따라서는 곤궁해질 정도의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시로가 예전에 어디에 있었는지는 흥미가 없는 아시미츠였으나, 출분(出奔, ※역주: 도망쳐서 행방을 감춤)할 정도라는 상황을 볼 때 타케다에게 지배되는 땅에서 살고 있었을 거라고 어림짐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타케다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에야스(家康)나 노부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대체적으로 국주(国主)의 직할령(お膝元)에서는 측량(検地)도 엄격하지 않고 세율도 낮게 억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지배한 땅에는 엄격한 측량이 이루어졌고, 소비된 전비를 보충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예상사였다.

지배 체재를 쇄신(刷新)하는 이상 비용도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신참자(新参者)에게는 대체적으로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고, 노역이나 병역 등 그 외의 봉사까지 요구되는 가혹한 징세를 받는 경우가 많다.

도쿠가와(徳川)에서 타케다로 변절하려 한 가신들의 영지에서는, 세금이 지금 이상으로 무거워질 것을 이해한 영민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금을 바치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아예 한 가닥 희망에 걸어보았다고 하면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어느 세상이던 신참자는 엄격한 취급을 받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세금이 너무 무겁다. 역시 금의 생산량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신겐이라고 하면 금광 개발이 유명하지만, 만년에는 생산되는 금이 고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하지 않다. 신겐의 금광인 쿠로카와 금광(黒川金山)이나 카이오쿠 금광(湯之奥金山)은 에도(江戸) 시대에 들어선 후에도 금을 계속 산출했다.

그렇기에 금광에서 금이 고갈된 게 아니라, 실제로는 타케다 가문의 재정난이나 기술적인 문제에 의해 채굴이 틀어졌던 것이다.


금광에서 금을 파내려면 인건비가 엄청나게 들어간다. 그리고 금광에서 파낸 금광석은 그대로는 가치가 없다. 제련(精錬)하여 금으로서의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겨우 금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카이의 금광은 광맥이 노출되어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지표면을 조금 파는 것만으로 금을 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땅 속 깊이 파내려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광에는 낙반(落盤), 붕괴(崩落), 함몰(陥没)이 늘 따라붙는다. 이 때문에 갱도를 보강하면서 파내려갈 필요가 생겼다.

갱도가 뻗어나갈 때마다 채산성은 악화되고, 게다가 타케다 가문은 채굴하는 이상의 페이스로 금을 필요로 했기에, 서서히 카네호리슈(金堀衆, ※역주: 타케다 가문에서 금 채굴을 전담하던 집단)에게 줄 임금이 부족해졌다.

그로 인해 카네호리슈가 명령에 따르지 않게 되어, 금의 산출량이 떨어진다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즉, 금광이 고갈된 것이 아니라, 재정난과 기술부족이 금 고갈의 원인이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 카이의 금광이 부활한 것은, 갱도를 파는 법이나 금은 개주(金銀吹替え) 등, 광산에서의 채광과 제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했기 때문이다.

가장 진보한 것은 '수평 갱도(横相(요코아이)라고도 부름)'라는 수법이다.

종래의 채굴법은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하들어간다. 이 때문에 지하수가 용출되면 배수(排水)를 할 수 없어, 우량 광맥이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평 갱도는 사전에 시험적으로 파서, 광맥이 있는 부분을 찾아 수평적으로 파들어간다. 이에 의해, 갱도를 굴착했을 때 지하수가 나와도 배수가 용이해졌다.

반면, 광맥이 뻗어 있는 방향을 시험적으로 파서 조사할 수 없을 경우 이 채굴법은 쓸 수 없다. 고도의 측량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채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세금을 내지 못하고 차례차례 굶어죽어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고 소생은 어머니와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오다 영토로 도망친 것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의 이곳이라면 그렇게 간단히 소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금 어설펐군. 놈들은 오다 영토라도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실험체가 늘어났으니 결과적으로 네놈들 랍파들의 행동은 내게 이득이 되었지"


실험체, 라는 말에 시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포를 느꼈다. 그것을 꿰뚫어본 아시미츠였으나, 그는 작게 웃음을 떠올릴 뿐,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셨습니다. 아니, 뭡니까, 이 미묘한 분위기. 아시미츠 씨, 또 뭔가 무서운 소리를 해서 겁주거나 한 건 아니겠죠"


조금 긴장을 품은 침묵이 내려앉았으나, 악의 없는 미츠오의 말로 단번에 흩어졌다. 시로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고, 아시미츠는 방금 전의 미소를 거두어들였다.


"무례한 녀석이군. 나도 장소를 구별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맞아맞아. 문병에 따라간 우리들을 내버려두고 부인과 둘만의 세계를 만드는 아저씨가 아니라고"


미츠오에 이어 고로도 되돌아왔다. 고로는 큰 접시에 몇 가지 안주를 담아왔다. 큰 접시를 테이블 가운데 놓고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건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했잖습니까"


"첫번째니 용서했지만, 두번째는 없다. 네놈의 문병에는 두번다시 따라가지 않는다"


"호오…… 미츠오 님은 그 정도로 애처가(愛妻家)이신 겁니까"


테이블 한켠에 놓인 술을 잔에 따르면서 시로가 의문점을 말했다.


"잘 물어봤어 시로 씨. 아저씨는 말야, 따라간 우리들을 방치하고 부인을 포옹하질 않나, 사랑을 속삭이질 않나, 나중에는 우리들의 존재를 잊지 않나, 정말 장난이 아니었어. 게다가 따라가달라고 부탁한 건 아저씨라고"


"하지만 부부 사이를 길게 유지하는 비결은 원활한 소통과 피부의 접촉(※역주: 스킨십)이니까요. 나이가 몇 살이 되더라도 피부의 접촉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렇다니까. 나는 두번째부터는 안 따라갔지. 고로는 따라간 모양이지만,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아저씨를 뒤에서 걷어차버리고 싶어졌지만, 부인의 눈이 무서워서 얼른 물러났어"


"무슨 말씀이신가요. 츠루히메 씨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닙니다"


(안 되겠군 이 놈)


세 사람이 나란히 한숨을 쉬었다. 시로는 츠루히메와 만난 적은 없지만, 미츠오의 태도로 볼 때 츠루히메가 미츠오에게 상당히 반해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듯, 각자 잔에 술을 따르고 고로 특제의 술안주를 집어먹었다.


"애초에 시로 씨도 부인이 있잖습니까"


"소생, 미츠오 님처럼 적나라한 사정은 밝히지 않슴돠"


"시로 씨, 혀가 꼬이는데"


고로가 지적하자 시로는 좌우로 몸을 흔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탁자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플 것 같은 소리가 났으나 시로는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대신 기분좋게 자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시로 씨 술 못 마시는 거였나! 아저씨, 시로 씨를 눕히자고"


"술은 셀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일단 토해도 괜찮도록 옆으로 눕히죠…… 어, 이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었어요! 급성 알코올 중독일지도 몰라요! 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맙소사, 소란스럽구만"


서둘러서 시로에게 달려가는 고로와 미츠오를 바라보며 아시미츠는 술잔을 기울였다.




9월 하순, 이미 타케다 군은 싸움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약간의 부하들을 데리고 이에야스의 거성(居城),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향하는 일행이 있었다.

타케다 사천왕 중 한 명,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였다. 후세에 '지용(智勇)이 항상 제장(諸将)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고 평가되며 영주(国人)가 될 수 있는 기량을 가졌다고 전해진 인물이다.

그 최후에 대해서도, 신장공기(信長公記)에 비할 데 없는 활약을 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미요시 씨(三好氏) 본가(本家) 최후의 당주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의 최후에 대해서와 같은 평가이다.

70회 이상 전쟁터에 나섰으면서 최후의 나가시노(長篠) 전투에서까지 단 한 번도 긁힌 상처조차 입지 않았기에, 현대에서는 '불사신의 오니미노(鬼美濃)'라고 평가된다.

다른 타케다 가문 사천왕보다 출세는 늦었지만, 후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무장이다.


그런 그는 타케다 가문에 대한 반골심(反骨心)이 격화되고 있는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신겐은 보고를 받았을 때 "과연 바바 미노노카미(馬場美濃守)"라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한편, 이에야스는 바바의 방문에 깜짝 놀라 벌벌 떨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의 지시도 있어, 곧바로 대응할 수 없다고 말하자, 바바는 미카타가하라(三方原) 대지(台地)의 북쪽 끝에 있는 네아라이마츠(根洗松)에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타케다 군이 도쿠가와 군을 기다렸다고 전해지는 장소가 네아라이마츠라고 하는데, 그곳을 바바가 지정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주군, 만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타케다와는 전쟁을 한 지 수 년째,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 따위 없습니다"


가신 중 한 명이 진언했으나, 이에야스는 마음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가신의 말대로, 타케다와 이제와서 나눌 이야기는 없다. 동맹 파기도 타케다가 일방적으로 했던 것이다.

동맹 파기로부터 소규모 충돌(小競り合い)을 거듭한지 수 년이 지났다. 전황은 일진일퇴의 상태로, 타케다가 다시 동맹을 맺으려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만나지. 여기서 도망치면 웃음거리가 된다. 겁쟁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주군…… 옛!"


생각 끝에 이에야스는 바바를 만나기로 했다. 이 회담 신청에서 도망치면, 미카와(三河)는 겁쟁이들의 무리라고 타케다가 선전할 것은 뻔히 보였다.

이러한 조롱은 오래 간다. 지금까지 같은 편이었던 지방 유력자들이, 타케다로 변절할 가능성도 있다.

으스스하고 무서운 회담이 되겠지만, 이에야스는 거절한 후에 받게 될 디메리트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에야스는 사카이 타다츠구(酒井忠次)를 성에 남겨,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경우 타케다 가문은 암살이나 꾀하는 겁쟁이, 라는 선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그 후에 미카와가 부당한 취급을 받는 것만큼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에야스의 의사였다.


타다카츠(忠勝)나 야스마사(康政), 한조(半蔵) 등 측근들을 이끌고 이에야스는 네아라이마츠에 도착했다. 거기서 일행은 놀랄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바바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병사는 후방으로 물려놓고, 자신은 윗옷은 벗은 채로 칼도 좀 떨어진 곳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후방에 있는 병사들도, 맨 앞열은 무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누가 봐도 빈손(丸腰)이며, 호위하는 자들조차 없었고, 병사들도 만일의 사태 때 즉시 달려올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그게 한층 더 바바에게 으스스한 느낌을 받게 했다.

타케다를 증오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빈손인 상태로 회담에 임하고 있으니.


"어이쿠, 의외로 허리가 가벼웠군. 얼마간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오 춥군. 아무래도 늙은 뼈에 맨몸은 힘들구먼"


이에야스가 도착한 것을 안 바바가, 표표(飄々)한 태도로 말했다. 그는 추위에 몸을 떨더니, 벗어놓았던 웃옷을 입었다.


"주군, 놈은 빈손입니다"


한조가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한조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에야스는 알고 있었다. 이만한 담력과 여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에야스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바의 여유는 이에야스를 얕보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라는 점이었다.


"먼저 말해두겠소. 회담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한 사람 더, 이 자리에 불렀소. 그 인물이 도착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오"


바바는 그렇게 말하더니 등지고 있던 나무에 기대어섰다. 정중한 말투도 반대로 바바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조금 망설인 이에야스였으나,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던져버리더니 바바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등지는 형태로 앉았다. 가신들은 당황했으나, 이에야스의 표정을 본 순간 그의 각오를 이해했기에 침묵했다.


"홋홋홋, 여차하면 대담해지는군. 정말로 영주님(屋形様)의 사람보는 눈은 무섭군"


"뭣이?"


"서두르지 마시오. 곧 기다리는 사람이 도착할테니"


바바의 말대로, 말발굽 소리가 이에야스의 귀에 들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말발굽 소리 하나 뿐으로, 그 이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는 처음에는 파발마라도 온 건가 생각했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의 주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에야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아, 네놈은!"


맨 먼저 반응한 것은 이에야스가 아니라 타다카츠였다. 왜냐하면 말에 타고 나타난 것은 아시미츠였기 때문이다. 다른 인물은 아시미츠, 정확히는 아시미츠가 타고 있는 말에 놀랐다.


현대에서는 맥이 끊어졌다고 하는 데스트리어는, 큰 체격과 중무장을 견딜 수 있는 명마로 이름높다. 하지만 그것은 순혈종의 맥이 끊어진 것 뿐이며, 중세나 근세에서 교잡도 이루어졌다.

마종의 취급에 대해서도 현대와 같은 DNA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대략적으로 마종을 정했다. 그 떄문에 전혀 다른 복수의 품종을 하나의 마종으로서 취급한 경우도 있다.

즉, 오늘날까지 이어진 마종에도 데스트리어의 혈통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당시에도 전쟁 이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라는 평가였으며, 말이 전쟁의 꽃이 아니게 된 시대에 남아있었다고 하기에도 미묘한 부분이긴 하다.


"계속 거절당했지만, 드디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이군요, 아시미츠 님. 아니…… 쇼군 각하(公方様)"


쇼군(公方)이라는 단어에 이에야스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주위의 시선 따윈 전혀 개의치 않고 말에서 내려 적당한 곳에 앉았다.


"이야기는 들어주마"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입을 다물었다. 거만한 태도였으나, 바바는 신경쓰지 않고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는 이에야스였으나, 질문해봤자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바바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미카와와 전쟁을 시작한 지 수 년, 타케다와 도쿠가와 사이에는 원망(怨嗟)이 소용돌이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어떤 제안을 하겠소"


"제안이라고……?"


"우리들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길게 싸우고 있는 그대를, 영주님도 우리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소. 그렇기에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는 것은 아깝지"


"이제와서 우리들 상대로 정치적인 공작(調略)이라고?"


"그렇소. 나는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도록 설득하러 왔소"


"그런 제안,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에야스는 노성을 지르며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바바는 이에야스의 분노를 보고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알고 있소. 만약 도쿠가와 님이 타케다 가문의 편을 들면, 오다 가문이 가만있지 않겠지. 그대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오다 가문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문제는 없어지지 않소?"


그 대사로 이에야스는 깨달았다. 타케다의 목적은 도쿠가와 영토가 아니라 오다 영토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한 이에야스는 경악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에 반해 바바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떠올렸다.

다만 아시미츠만은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설마!"


"생각하신 대로요. 이번에 우리는 전쟁을 할 것이오. 하지만 우리들의 목적은 도쿠가와 님, 그대의 목이 아니오. 오다 가문…… 오다 단죠노죠(織田弾正忠)를 쓰러뜨리는 것이오"


노부나가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과장도 뭣도 아니라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할 만한 힘이 타케다 가문에는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쓰러뜨릴 것인가, 라는 생각이 이에야스의 뇌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즉시 머리에서 털어내고 이에야스는 바바를 노려보았다.


"우리들이 오다를 치려면, 우선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님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지. 하지만, 그대를 전쟁에서 죽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영주님의 생각이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타케다 가문에게 도쿠가와 가문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라고도 들리는 말이었다. 설령 전쟁이 벌어져도, 언제든지 이에야스를 쳐부술 자신이 있기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바바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소규모 충돌을 거듭해온 전쟁이지만, 승리라 할 만한 것은 얼마 안 되었다.

그리고 오다를 친다면, 타케다 가문은 총력전을 걸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처럼, 타케다 가문이 목적을 이루었다고 병사를 물릴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이에야스는 그 상태에서 타케다 가문에게 이길 자신은 없었다.


"쇼군 각하도 전쟁에서 죽이게 되면 우리들은 역적이라는 비난을 받겠지.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오실 것을 권하러 왔습니다"


"……"


"그리고 우리들은 히에이 산(比叡山)을 품고 있소. 우리들의 대의(大義)는 부동(不動)입니다"


바바의 말을 정리하면, 타케다 가문이 오다 가문을 치려면, 우선 오다 영토의 배후에 위치하는 도쿠가와 영토에 대해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타케다 가문은 이에야스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에, 전쟁에서 쓰러뜨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에야스를 한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 경우 걱정되는 오다 가문을 타케다 가문이 쳐부순다고 확약하면, 타케다 가문 아래로 들어오는 데 망설일 것은 없어진다.

아시미츠도 마찬가지다. 만에 하나, 쇼군을 죽이면 이유를 불문하고 타케다 가문의 명예, 그리고 신겐의 패도(覇道)에 상처가 생긴다. 그렇기에 타케다 가문으로 들어오던가, 아니면 전쟁이 벌어지는 도중에 어딘가에 몸을 숨겼으면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여 주시겠소? 이대로 오다 가문의 편을 들면, 천하의 대역적(悪逆人) 편을 든 영주라는 비난을 후세(末代)에까지 받게 될 것이오"


"네 이놈!"


"분노는 눈을 흐리지. 한번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시오. 오다 가문은 지금까지 그대에게 무언가 해 주었소? 오다 가문은 그대들 미카와가 금후(今後)를 맡길 만한 상대이오?"


초조함과 분노한 표정의 이에야스, 그에 반해 냉정하게 타이르는 듯한 바바, 이 자리에서 아시미츠는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아니, 단순히 공기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끝난 것 같군"


그 말만 하더니 아시미츠는 조용히 일어서서, 몸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말에 올랐다.


"어디로 가실 셈입니까?"


"나는 처음에 말했다. 이야기는 들어주겠다…… 고. 이야기가 끝난 이상,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아까의 대답만은 해주지. 네놈이 말하는 쇼군은 죽었다. 그 찌꺼기(搾り滓)는 아직 현세에 머물러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소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오다를 신용하고 있지는 않다"


바바는 아시미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어떤 것을 깨달았다. 아시미츠의 눈은 얼음처럽 차갑고, 그리고 광기의 색을 띠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고, 괴물이나 가질 수 있는 눈빛이라는 것을 바바는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현세에서 믿음을 두는 상대는 단 한명. 나는 그 사람이 바란다면 만 명의 적과도 싸우고, 죽으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 목을 베겠다.  그 사람을 위해 살고, 그 사람을 위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 이외에는 모두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 뿐이다"


고삐를 놓더니 아시미츠는 손가락으로 바바를 가리켰다.


"그리고 네놈들에게 이용가치는 없다. 이용가치가 생길 가능성도 없다. 기껏해야 흰소리(大言壮語)만 했다가 꼴사납게 웃음거리가 되는 게 고작이다"


"뭣이라고요"


이번에는 바바의 표정이 변했다. 바바 뿐만이 아니라, 바바의 뒤에 있던 병사들의 안색도 변했다. 아시미츠의 말을 도발, 모욕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쏘아져오는 시선을 받아도 아시미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흥,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놈들이. 후세에 수치를 남기고 싶지 않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벌벌 떨고 있어라"


다시 고삐를 잡더니, 아시미츠는 말을 돌렸다. 바바나 이에야스를 등졌을 때, 그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이 전쟁, 이긴…… 것은 우리들이다"




아시미츠는 바바의 대답을 듣지 않고 말을 달려 가버렸다. 남겨진 것은 긍지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바바 등 타케다 가문과, 마지막까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한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뿐이었다.

미묘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이에야스도 바바의 제안을 거절했다. 바바는 딱히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고 바로 떠났다.

바바가 사라진 이상, 이에야스도 네아라이마츠에 있을 필요도 없어, 가신들을 데리고 거성으로 돌아갔다.


이에야스가 바바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노부나가를 신용했기 때문이 아니다. 고집(意地)과 긍지는 있었으나, 무엇보다 아시미츠의 느낌이 으스스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마지막에 아시미츠가 중얼거린 말을 이에야스는 떠올렸다. "이기는"가 아니라 "이긴"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디에 타케다 가문에 '이긴' 것이라는 요소가 있는지, 이에야스에게는 그게 걸렸다.

허풍일 가능성은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태도로 볼 때 도저히 허풍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조, 쇼군…… 아니, 아시미츠 님이 그렇게까지 단언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해다오"


"옛!"


명을 받은 한조였으나, 쉽지 않을 것을 느꼈다. 하지만 미카와의 명운(命運)을 결정할 중요한 일이기에, 지레 약해질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편, 아시미츠는 스스로의 역할을 다했기에, 매일 취미에 몰두하고 있었다. 시즈코에게 보고를 하고, 약의 효과도 아주 좋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타케다를 포함한 전원의 행동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장기를 두는 것은 시즈코가 할 일이고, 금후의 자신의 역할은 간자의 시선을 모으는 일이기에 놀고 있어도 문제없었다.


수확 시기도 겹쳤기에, 다양한 식재료를 미츠오의 집에 가져가서 연회를 열었다. 각자 일이 있지만, 아니, 일 때문에 평소에 만나지 못하기에, 더욱 자주 연회를 열게 되었다.


"술이 부족하다, 술이 부족해"


"오늘밤은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거다ー"


기묘한 노래를 부르면서, 아시미츠는 고로(五郎)와 어깨동무를 하고 수수께끼의 댄스를 선보였다. 그걸 시로(四郎)와 미츠오(みつお)가 장단(音頭)을 맞추며 부추겼다. 전원이 보기좋게 만취해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미츠오의 딸의 목이 자리를 잡기 때문에, 그에 따라 츠루히메(鶴姫)도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기에, 신나게 떠들고 놀 수 있는 게 지금뿐이라는 점도 있어, 네 명의 술판(どんちゃん騒ぎ)은 실로 떠들썩했다.

목장(牧場)이 있기 때문에, 이웃 사람이 시끄럽다고 항의할 일도 없다.


"여기여차, 여기여차, 둥둥둥, 슥슥, 보물이 나온다. 어기여차, 어기여차, 둥둥둥"


이번에는 미츠오와 시로가 소쿠리(ざる)를 양손으로 잡고 땅을 파는 동작을 하며 춤을 추었다.


"좋았어, 아저씨ー!"


참으로 초현실적(シュール)인 광경이었으나, 만취해있는 사람에게는 관계없다. 재미있으면 다른 건 모두 무시된다.

그 후에도 흉내를 내거나, 미츠오가 자랑질(惚気)을 해서 세 사람이 야유를 하거나, 기묘한 마임-마임 비슷한 춤을 추어 전원이 구토하거나 하는 등, 여러가지 의미에서 카오스적인 연회가 되었다.


"자, 슬슬 해도 지겠군. 미츠오를 병원으로 데려다줄까"


밖을 보니 일 각(刻)만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았다. 연회라고는 해도 현대와는 달리 대낮부터 하기 때문에 해가 지면 연회는 끝난다.

요즘 미츠오는 집이 아니라 츠루히메가 입원해있는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새벽에는 집에 돌아가 일을 하고, 다시 밤이 되면 츠루히메가 있는 곳으로 간다.

애처가(愛妻家)의 모습에 시즈코도 쓴웃음을 지었을 정도지만, 말릴 이유도 없기에 미츠오용의 침대를 준비했다. 현재까지는 미츠오가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정리 끝났다. 그럼 갈까. 나와 고로는 병원에 갔다가 지옥거리(地獄通り)를 구경(冷やかし)하러 갈 건데, 시로 님은 어쩌실 건가"


지옥거리란, 소위 말하는 유곽(遊郭)이 모인 거리를 가리킨다. 유곽 거리에서는 분수에 맞는 가게를 고르지 못해서 엄청난 대금을 물게 되는 바람에 전 재산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한 소문들에 꼬리가 붙어, 언제부터인가 유곽 거리는 실패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경계의 의미도 담아 지옥거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모처럼 권유해주셨지만, 처자가 있는 몸이니 지옥거리는 사양하겠습니다"


"뭐, 그렇네. 나랑 아시미츠 씨만 구경하러 갔다올게"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외출 준비를 마친 네 사람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했다. 도중까지는 함께였으나, 마을에 들어섰을 때 미츠오와 시로, 아시미츠와 고로의 두 패로 나뉘었다.

아시미츠와 고로는 두 사람과 헤어진 후, 그대로 지옥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흘려들으며 걸었다.

충분히 구경했을 때 지옥거리를 빠져나와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한 잔 걸치고 돌아갈 속셈이었다.


"그럼, 또 봐ー"


"음, 조심해서 돌아가라"


적당한 포장마차(屋台)에서 간단한 안주로 한 잔 걸친 후, 아시미츠는 고로와 헤어졌다. 비틀거리며 걷는 고로를 등 뒤에서 배웅한 후, 아시미츠는 술을 마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걸음걸이로 귀가했다.




아시미츠로부터 보고를 받은 시즈코는, 한층 더 신겐이 계책에 휘말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신겐이 오다 영토에 간자를 풀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시즈코도 알고 있었다.

오다 영토의 정보를 바탕으로 신겐이 상락(上洛)할 시기를 변경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보고에 의해 시기가 변경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신겐은 가신들의 의견을 일치시키려고 고심하고 있다. 아시미츠가 그만큼 도발했는데 공격할 시기를 바꾼다고 말하면 가신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이렇게 빼서…… 대충 이렇게 되려나…… 역시 네아라이마츠 주변이 포진지(布陣地)려나)


지형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를 보고, 시즈코는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를 네아라이마츠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네아라이마츠는 당시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호우다 언덕(祝田の坂, 현대에는 호우다 옛 언덕(旧坂)이라고 부름)에는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통설(通説)에 따르면, 이에야스가 농성하는 하마마츠 성을 무시하고 타케다 군은 미카타가하라 방면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그 이동선상에 호우다 언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도쿠가와 군은 농성에서 타케다를 치고 나가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한다.

하지만 호우다 언덕을 이동중이었던 타케다 군은, 도쿠가와 군이 배후를 습격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반전해서 정면 충돌했다고 한다.


이 통설에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는 호우다 언덕은 어두컴컴하고 출구로 다가갈수록 좁아진다.

이러한 장소에서 일제히 반전하여, 거기에 3만이나 되는 군세가 조금도 흐트러짐없이 어린진(魚鱗陣)을 전개하는 것은, 당시의 군 사정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만약 신겐이 일제 반전을 가능하게 했다 하더라도, 손자병법(孫子兵法)에 기재되어 있는 피해야 할 지형에 가까운 호우다 언덕을 싸움터로 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농성에서 공격으로 작전을 갑자기 변경했을 때, 원군(後詰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사쿠마(佐久間) 등이 같이 따라갔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이라고는 해도, 오다 군에게 이에야스가 타케다 군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에 이점이 있지 않는 한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사쿠마 등이 타케다 군의 배후를 치는 것에 반대했다는 자료는 없다.


원군이 3천이라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 원군의 장수인 사쿠마,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는 각각 유력한 무장들이다.

특히 사쿠마는 미츠히데(光秀)와 히데요시(秀吉)가 태두(台頭)하기 전까지 오다 군 내에서 가장 유력한 무장의 지위에 있었다.

그만한 인원들을 파견하면서 합계 병력이 고작 3천으로는 농성을 전제로 하더라도 불안하다. 애초에 신장공기에 병력수의 기재가 없고, 다른 자료는 병력수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고려한 결과, 시즈코는 어떤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애초에 만 단위로 파견했지만, 타케다가 함락한 성에서 농성을 하더라도 공성(城攻め)조차 하지 않고 지나가도 문제없도록 이중의 계책을 세운 게 아닐까)


그것은 오다의 원군은 여럿이었다, 라는 것이다. 오다 군의 원군은 2만 가까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하마마츠 성 하나가 아니라, 하마마츠 성을 포함하는 여러 성에 나누어 파견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타케다 군은 하마마츠 성을 함락시키지 않으면 오와리(尾張), 미노(美濃)를 공격해 들어가도 항상 등 뒤의 도쿠가와 군을 신경쓸 필요가 있다.

따라서 타케다 군으로서는 이에야스가 간단히 군사행동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는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하마마츠 성은 견고하기에, 농성을 하게 되면 간단히 함락시킬 수는 없다.


성이 공격받으면, 다른 성에 있는 오다 군이 구원하러 달려갈 수 있도록 원군을 분산배치했다.

그리고 상황을 이해한 타케다 군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못박힌 상태로 만들어 시간을 버는 것이 노부나가의 작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무리 월동 장비가 있다고 해도, 타케다 군에게는 끊임없이 싸울 수 있는 체력이 없다. 군비(軍備)가 고갈되면 귀환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거라면 만 단위로 원군이 파견되었다, 고 기재되어 있는 갑양군감(甲陽軍鑑)이나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자료와 아귀가 맞는다. 겨우 3천으로 무장들이 하마마츠 성에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호우다 언덕에 있는 타케다 군을 배후에서 급습하는 작전을 이에야스가 내더라도 사쿠마들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타케다의 병력이 줄면 그만큼 기후(岐阜)에 있는 노부나가의 부담이 줄어들고, 타케다도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오로지 견디고 견뎌서, 타케다가 허용된 시간을 다 쓰기를 기다린다, 라고 하면 한심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방팔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노부나가에게는 이 작전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한심한 상태 쪽이, 어설프게 타케다의 긍지를 상처입혀 또다시 여세를 몰아 공격받는 사태가 되지는 않는다.

몸을 낮춰 상대가 강하다고 띄워서 우쭐하게 하는 편이 노부나가에게는 안전하다.


(음ー, 역시 어렵네)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장기말을 움직였다. 타케다 군이 어린진을 전개할 가능성은 높다. 배후를 칠 수 있을거라 생각한 상대가 놀라고 있을 때 단번에 박살내 버린다는 작전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에야스가 학익진(鶴翼陣)을 펼친 것은 잘못이라고 종종 이야기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반드시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익진은 정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기만 하면 공방 양쪽으로 우수한 진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통은 열세인 쪽이 학익진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작전일 뿐이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애로(隘路, ※역주: 좁고 험한 길)였고, 미카타가하라 전투 후에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전을 벌이는 것을 생각하면,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차선이라고는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쪽은 이런 작전으로…… 이런 식으로…… 좋아, 이걸로 완성이네)


모든 기보(棋譜)의 기록을 마치자, 시즈코는 그것들을 정리해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보냈다. 조금 기다리면 타케나카 한베에로부터 지적이 들어간 것이 돌아온다.

이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미카타가하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시즈코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 피곤해. 두 번 다시 안 할거야, 이런 거"


육체적인 피로도 그렀지만, 사람이 잔뜩 죽는 작전을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로한 시즈코였다. 그러나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어떤 결과를 낼 지에 따라 오다 군의 미래가 결정된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도, 그리고 그녀 자신을 위해서도,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시즈코는 손으로 턱을 괴고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작전대로 되면 상황은 일변하지. 바깥쪽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 내부도 이것저것 바뀌게 돼. 하아~~, 만약 지금 상태에서 현대로 돌아가도 위험한 인간 코스가 아닐까)


시즈코는 이미 현대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갑자기 현대로 되돌려질 가능성은 제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오와리에 와서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양복(洋服, ※역주: 현대의 서양식 옷을 통칭함) 같은 건 이제와서 입을 생각도 들지 않고 키모노(着物)가 아니면 어색했다. 그리고 품 속이나 허리에 칼을 차지 않으면 어딜 가더라도 침착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전국시대라면 문제없지만, 현대에서 키모노에 칼을 차고 있으면 틀림없이 경찰서 신세를 진다. 잘못하면 정신병을 의심받아 입원 조치이다.


"(덮어놓고 일하다보니 생각하지 못했는데, 다들 어쩌고 있으려나) 엄마, 걱정하고 있으려나"


"어머니가 어쨌느냐?"


"으엑!"


갑자기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려 놀란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당황해서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짓궃은 장난이 성공하여 즐거워보이는 노히메(濃姫)가 있었다.


"멍하니 있던데, 뭔가 생각할 일이 있었느냐?"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몇 번이나 불렀지만 대답히 전혀 없기에, 방에서 쓰러져 있는게 아닌가 걱정했느니라. 들어와보니 뭔가 중얼거리고 있기에 귀를 기울인 것 뿐이니라"


"하아, 이제 됐습니다. 고민하는 게 바보스러워졌어요"


노히메를 보고 있자, 자신의 고민이 사소하게 생각되기 시작한 시즈코였다.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린 후, 다시 노히메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무슨 용무이신가요? 또 뭔가 드시러 오셨나요?"


"밥을 먹으러 온 건 아니다만, 뭐, 마츠(濃姫)들과 차를 마실 것이니 시즈코도 어떠냐 하고 부르러 왔느니라"


"그거 거절할 수 있는 건가요?"


"거절해도 좋느니라. 그 경우에는 끌고갈 뿐이니 말이다"


그건 사실 거절할 수 없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에서 지적했다. 아예 어린애처럼 땡깡을 부려볼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상한 모습으로 끌려가도 곤란하기에 생각하는 데만 그쳤다.


"알겠습니다, 가겠어요. 그러니까 달라붙지 말아 주세요"


"시즈코가 말하는 수킨싶, 이라는 것이니라"


어느 틈에 시즈코의 뒤로 돌아간 노히메가 시즈코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노히메는 시즈코의 어깨에 턱을 올리더니, 고양이처럼 볼을 부볐다.


"처음에는 무슨 바보같은 짓을, 이라고 생각했다만, 이게 의외로 좋더구나. 주군께서는 창피하신지 두번다시 못하게 하신다만"


"뭐,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니까요. 저도 꽤나 창피하거든요"


"창피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느니라. 나는 시즈코를 좋아하고 있으니. 그렇군, 아까 뭔가 어머니를 생각하던 모양인데, 쓸쓸하다면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해도 좋느니라"


"……못 당하겠네요, 노히메 님께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노히메 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기에 그건 무리한 이야기네요"


"시즈코도 제법 컸구나. 자, 그럼 갈까"


등 뒤에서 떨어지더니, 노히메는 일어나서 다실(茶の間)로 향했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에 시즈코는 일순 멍해졌으나, 금방 머리로 이해되자 일어서서 노히메의 뒤를 쫓았다.


"오늘의 차과자(茶菓子)는 무엇일고?"


등 뒤에서 쫓아오는 시즈코의 발소리를 들으면서 노히메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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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2 1572년 9월 상순



미츠오(みつお)는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 육아에 필요해질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필요해졌을 때 허둥대지 말고 사전에 사두자고 생각한 것이다.


"최우선은 아기끈(抱っこ紐)일까요. 그게 있기만 해도 아기를 안은 채로 양손을 쓸 수 있어서 비약적으로 편해지니까요"


쇼핑이라고 해도 현대처럼 풍부한 품목이 갖춰져 있을 리도 없어, 필연적으로 구입하는 물품 수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오와리(尾張)에만 있는 육아의 수고를 경감해주는 획기적인 제품, 아기끈(子守帯(아기띠)라고도 함, ※역주: 아기끈, 아기띠 모두 의역입니다)과 분무기(霧吹き) 등 두 가지 만큼은 구입할 예정이었다.

아기끈은 부모가 장착하여, 아기를 안을 때 양손을 쓸 수 없게 되지 않기 위한 도구이며, 분무기는 아기의 하반신을 씻기 위한 도구이다.

당연하지만 아기는 스스로 변의(便意)를 제어할 수 없다.

현대같은 고성능 기저귀 같은 건 바랄 수도 없으니 실례(粗相)를 할 때마다 갈아줄 필요가 있지만, 매번 따뜻한 물에 담궈서 씻어주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럴 때 분무기가 활약한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미지근한 물을 넣은 분무기로 아기를 씻어주고 새 기저귀로 갈아주는 것이다.


"점주(店主), 이것 주십시오"


"매번 감사합니다"


아기끈 쪽은 간단히 구입할 수 있었다. 화폐경제가 침투하여 물물교환이 아니라 돈(金子)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편리했다.

물물교환으로는 양쪽이 원하는 물건의 가치가 맞도록 밸런스를 맞춰야 하기에, 본래 필요없는 것까지 구입하게 되는데다, 무엇을 등가(等価)로 볼지 파악하는 눈썰미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돈을 건네고 상품을 받아서 가방에 넣고 가방을 메었다. 다음으로 찾을 것은 분무기다.

아기끈은 용도가 한 가지라서 취급하는 가게를 파악하기 쉽지만, 분무기는 다르다. 원예(園芸)에도 사용하고, 화장(化粧)에도 쓰인다.

가게의 분류가 거리(街道) 별로 구별되어 있다고 해도, 분무기를 뭐에 분류할 지는 점주 마음이다.


"물건이 가득하네요. 처음으로 쿄(京)에 갔을 때는 농담인가 싶었을 정도로 썰렁했으니까요, 이 북적임은 좋은 일이군요"


줄지어 서 있는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목표한 물건을 찾았다. 사반각(四半刻) 후, 농기구를 취급하는 가게에서 원하는 물건을 발견했다. 크기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어 있어, 대, 중, 소 중에 대자와 중자 분무기를 골랐다.

대자는 자신이 쓰는 것이며, 중자는 츠루히메(鶴姫) 용으로 고른 것이다.

육아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각자 다른 책임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며, 어머니만이 아기를 돌보게 해서는 의미가 없다.

첫째 아이였던 딸 때는 뭐가 뭔지 몰라 우왕좌왕하다 실패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고 있다.

배를 아파하며 자기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달리, 남자 부모는 자기 아이와 교류를 통해서 아버지의 자각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세상은 난세, 내일도 알 수 없는 시대에 희롱당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와 츠루히메 씨의 육아가 서서히라도 퍼져나가면, 그런 불행한 아이들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요)


오와리, 미노(美濃)에 한정되긴 하나, 어린아이의 사망률은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 버려지는 아이들도 다소 줄었다.

설령 아이를 버려야 하는 상황에 빠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오다 가문이 거두어서 시설에서 어릴 때 부터 가신(家臣)으로 키우고 있다.

물론 아무리 오다 가문이라도 무제한으로 거두어들였다간 파탄이 나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을 두고는 있다.

그리고 한 번 오다 가문에 거두어진 아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부모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선발에서 떨어지면 죽었을 목숨이다. 그런 부모에게 맡길 수는 없다.

하지만 오다 영토 내로 한정하면 위생 환경도 좋고, 영양 상태도 비교적 좋기 때문에 일찍 죽어버리는 아이들은 줄어들었다.

물론 현대와 비교하면 의료 기술이 떨어지므로, 운없이 병을 얻어 쉽게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미츠오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실례했습니다"


당황해서 앞을 보자, 부딪힌 상대가 안고 있던 짐이 땅바닥에 흩어졌다.

땅에 떨어진 것은 야채 종류였다. 밟혀버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미츠오는, 순간적으로 쭈그려앉아 서둘러 야채를 주워모았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실례했습니다. 생각을 하다보니 앞을 보고 있지 않았군요"


상대도 사죄의 말을 하며 미츠오와 마찬가지로 야채 줍는 것을 도왔다. 다행히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서 누구에게도 밟히지 않고 야채들을 모을 수 있었다.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었지만, 주인은 가볍게 손으로 털 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못쓰게 되었으면 변상해드릴테니, 사양말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쪽의 잘못이기도 하니…… 꼭 보상을 해주시겠다고 하면,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차 말입니까? 딱히 상관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이 근처는 잘 알지 못하여, 어딘가 쉴 수 있는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미츠오의 안내로 근처에 있는 찻집(茶屋)으로 이동해 한숨 돌린 후, 미츠오는 그 남자에게 여러가지를 물었다. 그 남자는 시로(四郎), 병에 걸린 어머니의 요양을 위해 최근에 오와리로 왔다고 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쪽으로 오는 것은 일종의 도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쪽에 온 이후로 어머니의 용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 때는 금생(今生)의 이별을 각오했습니다만 안도했습니다. 처자식에게도 고생을 시켰지만, 겨우 안심시킬 수 있을 듯 합니다"


시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츠루히메에게 고생을 시켰기에, 미츠오는 시로에게 공감을 느꼈다.


"자녀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요?"


"(세는 나이(数え年)로) 4살이 됩니다.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항상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쪽으로 온 후로는 개구쟁이가 되어서 골치를 썩고 있습니다"


"하핫, 하지만 귀엽지요. 저도 바로 얼마 전에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거 축하할 일이군요"


그 말과 동시에 시로는 찻잔(茶碗)을 들었다. 의도를 헤아린 미츠오는, 찻잔을 손에 들고 시로의 찻잔과 건배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우리들의 친교가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바라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차를 단숨에 마셨다. 다 마시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라는 것은 빨리 지나가는 법으로, 순식간에 반 각(刻)이 흘렀다.

아무래도 차 한잔으로 죽치기에는 조금 거북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점주에게 오래 자리를 차지한 것을 사과하고 가게를 나섰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죠"


"조심해 가십시오. 인연이 있어 또 만나게 된다면, 이번에는 맛있는 술이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만"


한 손을 들더니 시로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갔다. 그야말로 담백한 이별이었으나, 미츠오는 이상하게도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고로(五郎) 씨 이외에는 처음이네요. 이쪽의 친구가 생긴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다지 타인과 접하지 않았구나라고 미츠오는 생각했다. 그만큼 매일이 충실했다고도 할 수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금 판단이 서지 않았다.


"뭐, 괜찮겠지. 츠루히메 씨에게 돌아갈까요"


가방을 고쳐 메고는 미츠오는 츠루히메가 있는 병원으로 발을 옮겼다.




9월에 들어서도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는 성에 틀어박힌 상태였다.

그 침묵은 오다를 두려워하고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제장(諸将)들이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 돌연 노부나가는 히데요시(秀吉)에게 성을 맡기고 자신은 기후(岐阜)로 귀국했다.

그 때까지 계속 아자이-아사쿠라 포위를 지휘하고 있던 노부나가가 9월도 반이 지난 16일에 돌연 귀국한 것을 주요 무장들은 괴이쩍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품었다. 뭔가 좋지 않은 정보가 들어와서 그것 때문에 귀국한 게 아닐까 하고.

그것을 시사(示唆)하듯, 가신들은 일단 풀렸던 포위망이 서서히 재결성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번과 달리, 퇴로(退路)가 끊긴 것은 아니고, 쿄(京)가 적의 손아귀에 떨어질 기색도 없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기후로 귀국했다. 이 상태에서 포위망을 형성해봤자 오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는 없다.

그래도 포위망이 형성되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다 측 무장들이 그에 대해 이런저런 예상을 하고 있을 때, 하나의 중대한 위기에 생각이 미쳤다.


"타케다(武田)가 공격한다, 입니까"


그 중대한 일을 걱정한 히데나가(秀長)는, 단도직입적으로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오다 포위망을 구축해봤자, 오다를 상대로 뼈아픈 일격을 줄 수 있는 전력 따윈 없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한 번 무너진 포위망을 다시 한 번 구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레 대답이 나오겠지요?"


"흠…… 확실히 타케다의 움직임은 최근에 수상쩍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실례지만, 뭔가 생각이 있으십니까?"


"설마요. 하지만 약간,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타케나카 한베에에게 타케다의 오다 침공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뭔가를 탐색하듯 눈을 가늘게 뜬 히데나가였으나, 곧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렸다.


"가능하면 학문이 얕은(浅学) 소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많은 군자금을 준비할 수 없습니다, 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격해와도, 성에 틀어박혀 계속 저항하면 됩니다. 언젠가 그들의 군자금은 바닥나서 고향(国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혼간지(本願寺)가 있습니다. 그들이 자금을 제공하면, 타케다는 몇 년이고 싸울 수 있을 겁니다"


"설령 혼간지가 자금원조를 하더라도, 병사들의 마음까지는 살 수 없을 겁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걸로 표면적으로는 납득한 히데나가였다. 하지만 이 때, 타케나카 한베에가 시즈코와 비밀스런 회담을 가졌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형인 히데요시는, 전투식(戦闘食)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으로 납득하고 있다. 하지만, 그거라면 어째서 회담을 비밀로 하고 있는가, 그것이 히데나가에게는 걸리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말할 리는 없겠지요. 뭐, 상황을 보니 배신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기회가 있다면 알 수도 있겠죠)


모르는 걸 아는 것은 즐겁지만, 모르는 걸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도 즐겁다. 히데나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 이상 타케나카 한베에에게 깊게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코 님에겐 언제나 놀라는군요. 저번의 포위망, 상대의 노림수를 정확히 읽고 오다 가문에 유익한 가신은 빈틈없이 살려낸 수완은 훌륭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지요. 과연 이번의 침묵도 또한, 뭔가의 묘안(妙案)이 있어서의 행동일지도 모르겠군요. 후훗…… 시시한 결말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시즈코 님)




오다 가문 가신들이 각자 생각과 의혹을 품고 있을 무렵, 신겐(信玄)은 거의 모든 가신을 불러모았다. 그 중에는 뒷날의 타케다 사천왕(武田四天王)이라고 불린 바바 노부후사(馬場信房)나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의 모습도 있었다.


"우리들까지 소집이라니, 영주님(御屋形様)께서는 진심이신 모양이군"


"오다의 꼬맹이를 비틀어버리는 데 우리들이 전군(全軍)으로 달려들 필요도 없지만, 땡중(坊主)들이 귀찮게 하는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아키야마(秋山) 님, 그대는 오다가 오우미(近江)에 눈을 돌리고 있는 동안 놈의 지성(支城)을 공격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상황인가?"


"이봐, 아무리 영주님의 저택이라고는 해도, 큰 소리로 말할 내용은 아니지 않나"


각자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었으나, 신겐이 들어오자마자 대화는 딱 멈추었다. 신겐은 평소처럼 앉더니,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신무월(神無月, 음력 10월) 초부터 오다 영토를 공격한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신 일동이 엎드려 절했다(平伏). 이미 필요한 대화는 끝난 상태였다. 이후로는 준비를 갖추고 오다 영토로 침공하는 것 뿐이기에, 작전회의(軍議)는 금방 끝났다.


"그야말로 신속(神速). 허나 오다의 꼬맹이 정도에 쓸데없이 작전회의를 여러 번 열 필요도 없지"


"음. 영주님의 기보(棋譜)대로 움직이면 문제없지. 항상 승리는 확정되었으니, 이후에는 외통 장기(詰め将棋)를 둘 뿐"


이에야스(家康)와 노부나가를 쳐부술 계획은 세워져 있었다. 어느 정도 오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병법의 "이기는 군대는 승리를 얻은 후에 개전한다(勝軍は勝利を得てから開戦する)"를 실천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았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승리하고 있는 상태를 만들어 두면, 어떻게 진행되던 지지는 않는다.

그건 잘못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이라면, 전투를 개시한 순간 승리는 확정된다. 단, 신겐을 제외한 그들은 매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자신들이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을 얻으려 한다면, 당연히 상대도 "더욱 빨리 상대를 외통수로 몰아놓은 바둑판"을 얻으려 한다는 것을.


"각자, 실수 없이 싸울 준비를 해 두어라"


가신들에게 못을 박는 의미에서 신겐은 약간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한편, 기후로 돌아간 노부나가는, 각 방면의 정보 수집을 비밀리에 하고 있었다.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는 해도, 타케다가 공격해온다, 라는 사실에 그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지성 중 하나, 이와무라 성(岩村城)에서 타케다와 국지전(小競り合い)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명백한 도발 행위, 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원군을 보낼 여유는 없다.

지금, 여기서 원군을 보내면 대(対) 타케다 전투에서 필요한 병력이 더욱 줄어든다. 그렇다고는 해도 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다른 자들도 타케다에게 기울어져버린다.


(알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즈코의 작전이라는 것을…… 하지만, 역시 답답하군(重苦しい). 이런 기분은 이마가와(今川)의 상락(上洛) 보고를 들었을 때 이후 처음이다)


이미 신형 화승총, 이미 화승총이 아니라 다른 계통의 총으로까지 진화한 총이 수백정 제조되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다.

그래도 노부나가는 불안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총은 강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타케다를 굴복시킬 수 있을지 노부나가는 의문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그걸 시즈코에게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모두 맡기겠다'라는 선언에 그녀는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 물음을 던지면 자신은 시즈코를 신용하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걸로 시즈코와의 사이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노부나가의 전권 위임은 그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한 번 보낸 신뢰를 의심하는 것은 솥의 무게를 묻는 (鼎の軽重を問う, 실력자의 실력이나 능력을 의심하는 것, ※역주: 초(楚) 장왕(莊王)의 고사인 문정경중(問鼎輕重)) 어리석은 행동, 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던, 내가 아무리 생각해봤자, 타케다를 무찌를 계책을 찾지 못했지. 그 총과 시즈코의 작전, 그리고 녀석이 말한 '새로운 기술'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저번의 포위망에서도 녀석은 훌륭하게 해냈지. 여기서는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때, 자유분방하게 자고 있던 터키시 앙골라 토라지로(虎次郎)가 노부나가의 시야에 들어왔다. 잠깐 토라지로를 보더니, 그는 표정을 풀었다.


(그래, 초조해봤자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시즈코는 나보다, 아니, 오다 가문의 누구보다도 가장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것이다. 녀석이 목숨을 걸고 있는데, 내가 우왕좌왕해서 어쩌겠다는 거냐. 평소처럼 듬직하게(どっしり)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토라지로의 등을 쓰다듬었다. 기분좋다고 말하는 듯, 토라지로는 표정을 풀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데굴거리면서 더 쓰다듬으라고 재촉했다.

턱 아래나 머리 등을 쓰다듬자, 토라지로는 완전히 흐늘흐늘해진 상태였다. 그 무렵에는 노부나가의 불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음. 처음에는 짐승 따위, 라고 생각했는데,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기분이 좋구나. 뭐였더라…… 분명히 마음의 불안을, 시즈코는 스투레수? 라고 했었지. 좋구나, 마음이 가벼워진다"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노부나가였으나, 그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오다 가문은 성이나 요새(砦) 안에 있는 식량 창고 부근에 고양이를 풀어서 키우고 있다. 이것은 식량 창고에 있는 식량을 노리는 쥐에 대한 대책이다.

옜부터 일본, 아니, 세계의 위정자들은 식량 창고에 침입하는 쥐 때문에 골머리를 썩혔다. 그 쥐 대책 중 가장 효율이 좋은 방법이 고양이를 풀어 키우는 것이다.

일설에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집고양이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리비아 살쾡이(リビアヤマネコ)를 식량 창고 주위에 풀어 키우고, 다른 장소로 식량을 운반하는 배에도 동승시켰다고 전해진다.


고양이는 쥐 사냥 능력이 높고, 또 식량 창고에 있는 식량을 먹어치우거나 하지 않는다. 생후 2개월부터 적절한 훈련을 시키면 사람에게 적의를 보이는 일도 없다.

수컷보다 암컷이 대접받는데, 고양이과는 암컷이 사냥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주의해야할 점은 부모가 쥐 사냥의 경험을 쌓았을 것과, 새끼는 클 때까지 부모에게서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사냥 수법이 전해진다. 전술한 대로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사냥의 수법을 보여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육아기의 어미 고양이는 특히 우수한 사냥꾼으로 변모한다. 이것은 모성본능이 강한 어미 고양이가, 둥지(巣)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기 자식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많은 사냥감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키우는 고양이가 주인에게 자신이 사냥한 쥐나 곤충의 시체를 가져오는 것은, 주인을 사냥을 못하는 미숙한 새끼 고양이라고 생각해서 식량을 나눠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오다 가문에서도 식량 창고를 노리는 쥐 대책을, 고양이를 풀어 키우는 것으로 해결했다. 쥐 대책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 싸고, 간자 등의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먹이도 사냥하는 쥐만으로도 문제없고, 괜히 사람이 손을 대어 수렵 본능을 둔하게 만들 수도 없다. 물론, 사냥 성과가 나쁘면 먹이를 주기도 하지만.


"하하핫, 귀여운 녀석"


손을 끌어안고 부비부비거리는 토라지로를 보고, 노부나가의 뺨이 자연스레 늘어졌다. 하지만, 토라지로를 예뻐하는 것에 너무 집중하여, 그는 자신에게 향해진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달라붙는 시선을 눈치채자, 재빨리 토라지로를 안아들고 거리를 벌렸다.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작은 칼(小刀)을 품에서 꺼내 던지려고 했다.

그러나, 시선의 주인이 누군지 깨닫자, 노부나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무얼 하고 있느냐"


아까까지의 긴박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노부나가의 표정에 어이없음이 떠올랐다. 입구가 약간 열리고, 거기서 얼굴을 비추고 있는 인물은 노히메(濃姫)였다.

그녀는 작게 미소를 짓더니, 입구를 조용히 열었다.


"주군께서 사랑스러운 여아라도 희롱하고 계신가 하여, 이렇게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멍청한 것. 애초에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았지 않으냐"


노히메의 태도를 볼 때, 딱장대(堅物)인 노부나가가 토라지로와 놀고 있는 것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짜증난다고 생각한 노부나가였으나, 추태를 보인 것은 그였기에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창피만 더 당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여, 무슨 용무냐"


노부나가는 토라지로를 어깨에 태우고 있는 동안 옆에 앉은 노히메에게 질문했다. 상식을 초월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노히메였으나, 이유도 없이 노부나가가 있는 곳을 찾아오는 경우는 없다.


"재미없어서 그럽니다"


"뭣이?"


"대단히 큰일(一大事)이 벌어지고 있는데, 주군께선 전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야말로 둔감할 정도로 동요하지 않으십니다. 조금은 우왕좌왕해서 소첩을 즐겁게 해주시옵소서"


"네 악취미에 대해서는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하고, 이제와서 우왕좌왕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후에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어머나, 매일 밤 그렇게 고민하시던 주군께서, 이제와서 묘안이라도 떠오르신 건가요"


"알고 싶으면 스스로 답을 찾아라"


"후훗, 확실히 답을 간단히 알게되면 재미없지요. 조각을 하나 찾아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것 또한 재미이겠지요"


거의 부부간의 대화라고 하기 힘들었으나, 이번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노부나가와 노히메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이런 느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이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부부 사이는 최악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노히메에게 다가가는 간자들은 많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간자들은 몸으로 알게 된다.


"그렇다고는 하나, 실마리(足懸かり)는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고 소첩의 가슴속에 묻어두지요. 주군, 소첩의 생각을 알고 싶으시면, 스스로 대답을 찾아 주세요"


"아까의 되갚음이냐. 흥, 멍청이가. 네 생각은 훤히 알고 있다. 몇 년동안 너와 부부로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냐"


"어머나, 이거 기쁜 이야기네요. 주군께선 그토록 소첩을 생각해주시고 계신 건가요"


"좋을대로 생각해라"


"그럼 좋을대로 생각하지요. 자, 그럼 주군, 소첩은 시즈코에게 가겠습니다. 곧 맛있는 것이 많이 손에 들어오는 시기. 마츠(まつ)나 네네(ねね)도 불러서 식도락을 즐기고 오겠사옵니다"


달력으로는 가을에 들어서, 쌀을 포함한 많은 식재료가 모이는 시기이다. 시즈코 군은 직업군인이므로 농사일은 관계없지만, 백성(百姓)이었던 때가 그리운지 가까운 마을의 수확을 돕는 경우는 있다.

시즈코 자신도 중진(重鎮)으로 한계까지 출세하였지만 농사일은 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각국의 과일들은 지금 시즈코가 있는 곳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망고에 이어 바나나라는 작물을 수확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노히메에게 들어왔다.


"……좋을대로 해라"


노부나가는 노히메의 목적이 바나나인 것을 헤아렸으나,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바나나는 재배 시기에 따라 수확 시기가 달라진다. 또, 현대의 씨없는 바나나와 달리, 전국시대에는 원종(原種)이라고도 할 수 있는 씨있는 바나나밖에 없다.

현대 일본의 농림수산성(農林水産省)에 의한 정의(定義)로는, 바나나는 과수(果樹)로 분류된다. 농림수산성의 기준으로는 1년초를 야채(野菜), 다년초를 과수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유통상으로서는 과일로 분류되고 있는 수박이나 멜론 등도 1년생 식물이며, 야채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야채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로서 '주식(主食)'이 있으며, 일본에서는 쌀이 주식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구미(欧米)에서는 쌀은 야채로 분류된다.

무엇을 야채로 하고, 무엇을 과실(果実)로 할지는 지역에 따라 정의가 달라진다.


"바나나라고 해도, 씨앗이 딱딱한데다 많아서 먹기 힘들어. 거기에 현대의 품종만큼 달지 않아"


현대의 바나나는 당분이 높지만, 야생 바나나는 말처럼 달지 않다.

개중에는 매쉬 포테이토에 가까운 식감을 주는 품종도 있으며, 과실이라기보다는 굽거나 튀겨서 요리의 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또, 얼핏 보면 과실 이외에 이용할 수 있는 부위가 없을 것 같은 바나나이지만, 바나나를 수확할 후의 줄기 부분에서 튼튼한 섬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섬유는 성질이 삼베(麻)와 흡사하여, 대용품으로서 다양한 제품에 이용되고 있다.

바나나의 줄기에서 섬유를 뽑아내는 해섬(解繊) 공정에서, 화학약품에 의한 처리가 불필요한데다 수고가 별로 들지 않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현대에서는 그 재배량 때문에 산업폐기물 취급인 바나나 줄기이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시즈코가 있는 곳에서만 소량 생산될 뿐이다.

따라서 따로 수고를 들여서까지 섬유를 얻을 필요는 없고, 기후를 타지 않는 삼베로 충분하다.


그 밖에도 파인애플의 잎사귀로부터도 섬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치고는 얻을 수 있는 섬유량이 적어 생산성이 낮은 경향이 있다.

파인애플의 잎사귀에서 얻을 수 있는 섬유로 만들어지는 천은 필리핀에서 피냐(piña)라고 불리며, 우의(羽衣) 같이 얇고 섬세한 직물로 전해지고 있다.

피냐의 생산성이 낮은 하나의 원인은 엽맥 섬유(葉脈繊維)이기에 끊어지기 쉬워서, 필요한 길이로 자아내려면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참고로, 현대에서는 다루기 쉬운 견사(絹糸)를 날실(経糸)로 이용한 실크 피냐(piña silk)가 개발되어, 생산성과 수요가 늘어났다.


"꽃봉오리(つぼみ)도 먹어봤지만, 의외로 보통이네"


바나나는 보라색 꽃이 피고, 그게 시든 후에 위에서 순서대로 과일로 변한다. 하지만, 끝부분에 큰 수술(雄しべ)이 남고, 이 수술은 과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잘라낸다.

내버려둬도 알아서 땅으로 떨어지지만, 잘라내면 과일에 더욱 많은 양분이 보내어진다. 또, 일본에서는 익숙하지 않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꽃봉우리도 야채로 취급되어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바나나의 꽃봉우리는, 죽순처럼 껍질을 벗겨서 안쪽 부분만을 먹는다. 식감은 꽃봉우리와 닮았으나, 생으로는 조금 먹기 힘들고, 위생상의 관점에서도 끓는 물에 데쳐먹는 쪽이 좋다.

동남아시아에서는 갱 후어플리(แกงหัวปลี, 이름 그대로 바나나 꽃봉우리 스프, ※역주: 발음은 구글번역에서 들리는 대로 적었는데, 정확한 발음명칭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지적 바람)가 정석이다.


"뭐 내버려뒀다 썩어도 아까우니, 바나나를 수확해서 돌아가자"


벌레가 붙지 않도록 자루를 씌워놓은 바나나에서, 잘 익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선별해서 수확했다. 현대에서는 익기 전에 수확해서 운반 도중에 후숙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상품이 아니기에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씨앗으로부터도 재배할 수 있지만, 바나나는 뿌리에서 나오는 흡아(吸芽)를 분주(株分け)하여 늘리는 쪽이 좋다. 그렇다고는 해도, 씨앗이나 흡아나 성장 스피드나 수확 시기는 별 차이가 없다.

단순히 조리에 쓰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씨앗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것 뿐이다.

다만 분주는 클론이 늘어날 뿐으로, 품종개량을 하기 위해서는 씨앗을 채취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우량개체의 과일은 식용으로 쓸 수 없다.

씨앗과 흡아, 양쪽 모두 재배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 형질을 고정시켜가는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작물과 다르지 않다.


"좋아, 돌아가자"


바나나가 든 바구니를 메고 시즈코는 비날하우스를 나섰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도중에 눈에 익은 가마(駕籠)가 보였다. 반사적으로 시즈코는 몸을 돌렸다.


"에잇, 도망치다니 어떻게 된 것이냐"


하지만 몸을 돌린 순간, 등 뒤에서 양 어깨를 붙잡혔다. 어느 틈에 다가와서 등 뒤로 돌아갔는지 시즈코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모른다.


"도망친 게 아니에요ー. 준비가 필요하려나ー 라고 생각한 것 뿐이에요ー"


약간 교과서를 읽는 듯한 말투로 시즈코는 변명했다. 변명은 통하지 않은 듯, 대답 대신 볼이 잡아당겨졌다.


"그쪽에는 부엌도 창고도 없느니라. 나를 피하다니 쓸쓸하구나"


"아아으이, 아우에어(알겠으니, 놔 주세요)"


"오오, 그랬지. 그래서, 바구니에 든 것은 무엇이냐?"


시즈코의 볼을 잡아당기는 것을 그만둔 직후, 노히메는 재빠르게 시즈코가 바구니를 가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안에는 본 적도 없는 형상을 한 것이 들어있어, 노히메는 즉시 흥미가 일었다.


"남만의 과일인 바나나에요. 전에 카톨릭(伴天連)에게 헌상받아서 영주님께서도 드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기록으로서 남아있는 것 중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바나나를 먹은 것이 노부나가라고 한다.

어쩌면, 그 이전에 바나나를 먹은 일본인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기록에 없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현대의 씨없는 바나나는 돌연변이로 태어난 것이기에, 당시에 노부나가가 먹은 것은 씨가 잔뜩 들어있는 바나나라고 생각되고 있다.


"오오, 그랬지. 뭔가 씨가 잔뜩 들어서 먹기 힘들다, 라고 불평하셨었지"


"뭐 그렇네요…… 아무리 봐도, 그대로 먹는 것은 아니죠"


원종 바나나에는 단단한 씨가 가득 들어있다. 이걸 씨없는 바나나로 만들려면, 원종 바나나를 '2배체(二倍体, diploid)'(염색체 숫자가 2의 배수로 되어 있음) 상태에서 '3배체(三倍体, triploid)'(염색체 숫자가 3의 배수로 되어 있음) 상태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염색체가 3배체로 변이하면 세포 분열이 불규칙해진다. 그에 따라 씨앗이 잘 생기지 않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숙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서는 작물 뿐만 아니라 물고기 등도 3배체로 만드는 방법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히다오오아마고(飛騨大天女魚, ※역주: 검색해봐도 한글 명칭이나 영어 명칭 등을 찾을 수 없어 그대로 적음) 등 일부에서는 방법이 확립되어 실용화되어 있다.

그 이유는 성적으로 성숙하지 않기 때문에 산란에 영양을 빼앗기지 않게 되고, 육질도 변하지 않은 채 계속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몇 가지 이유는 있으나, 3배체의 동식물의 최대의 이점은, 인간이 식용하는 데 편리하고, 자손을 남길 수 없기에 생태계에 대미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3배체 물고기의 자연 수역(水域)으로의 방류는 수산청(水産庁)의 요강(要綱)으로 금지되어 있음)


"생선처럼 씨앗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냐?"


"아마고(アマゴ) 말인가요? 그건 알을 미지근한 물에 담그기만 하면 환경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바나나는 방법이……"


아마고의 수정란을 통상적인 환경에서 키우면 2배체의 염색체를 갖는 아마고가 탄생한다. 하지만, 수정란을 미지근한 물에 담근다는 환경변화를 일으키면, 3배체의 아마고가 탄생한다.

인간이 볼 때는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이나 별 차이는 없지만, 물고기에게는 따뜻한 물이라는 시점에서 큰 환경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에 의해 3배체의 아마고가 탄생한다. 통상 1년이면 산란하고 수명을 다하는 아마고가, 3배체가 되면 산란하지 않고 몇 년 동안 계속 성장한다.


염색체의 변화, 라고 하면 유전자 조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실제는 미지근한 물에 담그거나 통상적인 환경에는 없는 수압을 가하는 등, 동식물에게 환경 변화라고 인식시켜서 본래 배제되는 염색체를 유지시켜 3배체로 만들고 있는 것 뿐이다.

또 '초남성 증후군(supermale syndrome)'이나 '초여성 증후군(triple X syndrome)',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s syndrome)' 등, 인간에게도 3배체 같은 염색체의 돌연변이는 일어난다.


"아마고는 연어(鮭)의 부록 같은 거였고, 3배체로 하는 쪽이 이득이니까요"


"처음에 그게 아마고라고 했을 때는 나를 놀리는 줄 알았느니라"


3배체 아마고는 성장 상황에 따라 무려 1kg까지 성장한다. 평균 100g인 2배체 아마고와 비교하면 다른 물고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600g의 3배체 아마고를 내놓았을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꿀밤을 맞을 뻔 했다.


"약간의 환경 변화로 본래와는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되니, 생물이란 건 참 신비하지요"


"그럴듯한 말을 해서 내 질문을 피해가지 말거라"


"들켰나요. 바나나로도 가능하지만, 식물은 꽤 어렵거든요. 그래서 3배체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언제 생길지는 확답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현대에서는 2배체의 씨앗 없는 바나나도 존재하지만, 그건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체이다. 그렇게 간단히 3배체, 2배체의 씨없는 바나나가 생기면 고생할 일이 없다.


현대에서는 씨없는 수박 등도 나돌고 있지만, 아마고나 은어(鮎)보다 손이 많이 간다. 우선 통상적인 수박을 재배하고, 싹이 날 시기에 콜히친(Kolchizin) 등의 약품을 싹에 바른다.

이걸 그대로 키우면 4배체(tetraploid)의 수박이 된다. 이듬해, 4배체의 수박에서 채취한 씨앗을 뿌려, 2배체의 수박과 수분(受粉)시켜 키운다.

키운 수박에서 씨앗을 채취하면, 그 씨앗은 3배체의 씨앗이 되어 있다. 그걸 키우면 3배체, 즉 씨없는 수박이 탄생한다. 단순 계산으로 3년이나 걸리는 셈이다.

그동안의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씨없는 수박이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마. 우선은 시즈코가 들고 있는 바나나인가 하는 걸 즐겨보도록 하지"


"(아, 역시 먹는구나) 그럼, 여기 있습니다"


시즈코는 바구니에 들어있던 바나나에서 한 송이를 골라, 가장 끝의 바나나를 하나 뗴어냈다. 노히메에게 건네자, 그녀는 바나나를 받아들고 껍질을 벗겼다. 잠시 열매를 감상한 후, 한 입 먹었다.


"단맛 속에 아련한 신맛이 있다. 그게 단맛을 돋우는구나. 씨앗의 처리가 조금 번거롭다만"


씨있는 바나나는 으름(アケビ)과 마찬가지로, 씨앗째로 입에 넣어 가식부(可食部)와 씨앗을 입 안에서 분리한다. 조금 먹기 피곤한 방법이지만, 씨앗이 단단해서 씹어부수는 것보다는 편하다.

씨앗을 씹어부술 정도로 노히메의 턱힘은 강하지 않다. 필연적으로 먹으면서 가식부와 씨앗을 입 안에서 분리하여 씨앗을 뱉어낸 후 가식부를 즐기고 있었다.


"주군께서 먹기 힘들다고 하신 것도 납득이 가는구나"


그런 말을 하면서도 바나나를 세 개 먹어치운 노히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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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1 1572년 8월 중순



7월 19일, 노부나가는 거의 모든 가신들을 모아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갑주 착용식(具足始の儀)을 치렀다.

다른 말로 요로이키조메(鎧着初)라고도 하며, 무가(武家)의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갑주를 착용하는 의식을 말한다. 보통은 성인식(元服)과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식 규정은 아니라서 키묘마루처럼 성인식 전에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처럼 13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2년 후인 15세 때 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렇기에 첫 갑주 착용식과 성인식은 동일시되기 일쑤이지만 별개의 것이다.


첫 갑주 착용식이 끝난 다음에는 오다니 성(小谷城)에 틀어박힌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를 토벌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약 5만의 군세를 이끌고 출진했다.

북 오우미(北近江)에 도착한 후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初陣式)을 치렀다. 이로써 노부타다에 관한 일련의 의식들은 종료된 것이 된다.


"이 정세 하에서 이름있는 무장들이 잘 모여주었다"


노부나가가 첫 출전식에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들 신하 일동, 굳게 단결하여 키묘(奇妙) 님을 지켜내고 아자이 가문을 쳐부숴보이겠습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에 아명(幼名)인 키묘로 불리고 있지만, 갑주를 입은 모습은 늠름한 무장이었다.

평소에는 엄한 표정을 짓는 노부나가도, 후계자인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이 무사히 치러진 것이 기뻤는지, 어느 정도 표정이 누그러져 있었다.


"다들, 마시도록"


노부나가의 말에 무장들은 축하주를 마셨다. 지금부터 아자이를 침공하게 되는데, 그들에게 긴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아자이 가문에 예전같은 힘은 없고, 당장이라도 꺼질 바람 앞의 등불 상태였다.

아사쿠라(朝倉)도 지금까지 도망치던 태도 때문에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는 이름높은 명가(名家)가 아니라 그냥 얼간이(腰抜け)로까지 평가가 추락한 상태였다.

노부나가는 적대하는 영주(国人)들과 혼간지(本願寺), 엔랴쿠지(延暦寺)에 의한 포위망도 풀려서 아자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제 2차 포위망이 착착 형성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자이와 아사쿠라를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영주님, 각국에서 축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소성(小姓)으로부터 선물(贈答品) 목록을 받아들고 노부나가는 그것을 읽었다. 다 읽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켄뇨(顕如)도 타케다(武田)도 교활한(食えぬ) 너구리로다"


포위망으로 뭉개버리려는 상대에게 보란 듯 축의(祝儀)를 보낸다. 그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외교적 의례와 정치적 스탠스는 별개라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노부나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놈들의 발밑을 무너뜨려서 이쪽이 내려다봐 준다, 라. 과연, 확실히 오노(お濃, ※역주: 노히메)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놈들의 얼굴이 볼만하겠다)


"영주님,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축의 목록에 있는 이름을 보며 노부나가가 사악한 표정으로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신경쓰인 호리(堀)가 머뭇거리며 질문했다.


"켄뇨도 타케다도 교활한 너구리로다"


그에 반해 노부나가는 종이를 말아 호리에게 던져주며 아까와 똑같은 말을 했다. 둥글게 말린 종이를 받아든 호리였으나, 노부나가의 진의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노부나가가 뭔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큰 잔인데 바닥에 조금 고일 정도밖에 술이 없다니 거 참 멋대가리 없네"


한편,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에 있던 시즈코는, 잔에 병아리 눈물만큼 따라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금주령이 아직 풀리지 않은 그녀는, 형식상으로 술이 나오는 자리에서도 술이 아닌 물을 받았었다. 하지만 물잔은 재수(縁起)가 나쁘기에, 절대로 취하지 않을 양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시즈코는 몰랐다.

노부나가가 완고하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약간 궁금해졌지만, 딱히 술이 마시고 싶은 이유도 없었기에 궁금해 하는데만 그치고 있었다.


"후훗, 하지만 포위망도 풀려서 다행이군"


"그렇지. 아니면 이렇게 평화롭게 치를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여전히 건재하니, 긴장을 풀었다간 단번에 영토를 잃게 되겠지"


무장들의 대화가 시즈코의 귀에 들어왔다. 현 상황을 보는 한, 오다 가문에 위기는 닥치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이 평화로운 표정과 말투 쪽이 각 방면의 간자를 속일 수 있어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슬슬 진지하게 간자들을 파악해 둬야겠네. 하지만 내가 해봤자 무리일테고…… 누가 적임일까)


아시미츠(足満)가 가장 적임이지만, 군사 방면은 다 떠넘기고 있었기에 아시미츠의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아시미츠 본인은 무리라면 무리라고 말을 하는 성격이기에 쓸데없는 배려는 필요없지만, 시즈코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기에 그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상담해볼까. 그래서 이후의 방침을 결정하자)


결론을 낸 시즈코는, 이후에는 첫 출전식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첫 출전식이 끝나면, 그녀는 아자이 침공에 참가, 가 아니라 오와리(尾張)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타케다 전(戦)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몇 가지 물자가 그녀의 창고에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신형 화승총의 부품까지 들어있었으나, 그것들은 케이지(慶次)들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화물의 관리(差配)를 하고 있는 아야(彩)도 내용물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얼핏 봐서는 철봉이나 나무 틀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제조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최종적인 형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 듣지 못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아무래도 수백 년이나 들여서 탄생시킨 기술이나 연구 끝에 세련된 도달점이니까. 그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겠지)


애초에 화승총을 기능별로 부품으로 분해하여 각각 부품 단위로 대량으로 제조한다는 생각조차 지나치게 이단적이라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조 기술은 극비 중의 극비, 구조도 간단히는 알려지지 않는 시대이다. 완성형을 보지 못하면 그것은 뭔가의 도구 정도라고 생각되기 쉽다.


(간자에게 교양(教養)이 있으면 곤라한 사람들이 참 많지. 그러니까 간단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술이라고 해봐야 입을 약간 적실 정도로는 마신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축하 선물들이 운반되어 왔다. 적대하고 있는 켄뇨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6녀 마츠히메(松姫), 도쿠가와(徳川) 등등 각 방면으로부터 다양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선물은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대단히 값비싼 것들이었으나, 선물받은 본인인 키묘마루는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았다.


"키묘, 뱃속(腹の中)은 보이지 마라"


"아버지…… 옛, 죄송합니다"


적으로부터의 시혜(施惠)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직 풋내기로군이라고 생각하며 옆에서 보고있던 노부나가가 쓴소리를 했다. 지적받고 깨달았는지, 그 이후 키묘마루는 속마음을 표정에 드려내지 않았다.




첫 출전식이 끝나고, 드디어 아자이 침공이라는 상황이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전군을 이끌고 공성, 이 아니라 오와리로 귀환할 것을 노부나가에게 명령받았다.

이유는 동쪽이 수상하기에 견제(抑え)하라, 이다. 다른 무장들이 볼 때는 무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상황이지만, 시즈코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준비에 착수했다.

단,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 축성(築城) 예정이 있었기에, 후방 지원부대 중 쿠로쿠와슈(黒鍬衆)와 일부의 부대만 남기게 되었다.


"아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귀가라니 김새는걸"


"어쩔 수 없지. 오다 나으리는 우리들을 쓰고 싶지만, 우리들만 써서 다른 사람이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도 문제니까"


"알고 있지만 말야. 모처럼 날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견제 역할이라니 할 맛이 안 나"


불평불만을 말하는 나가요시(長可)를 케이지가 달랬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해도 결정은 뒤집어지지 않지만, 그로서는 불평을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 발산을 위한 것이리라.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실컷 투덜거리게 놔두기로 했다.

이럴 때, 여자보다는 같은 남자끼리 이해가 잘 통한다는 점도 있다.


"그럼, 준비가 끝나면 오와리로 귀환. 그 후에 우리들은 평소와 같이 훈련. 달라질 것 없는 나날들이 되겠지만, 이 훈련이 언젠가 도움이 될 테니 열심히 하도록 하죠"


"옛!"


나가요시와 케이지 이외의 무장급 사람들이 대답했다. 시즈코 군도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서 꽤나 회복되어, 지금은 1만에 달하는 군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본인이 움직이는 군은 2000에서 3000 정도로, 나가요시, 케이지,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 등 5명이 각각 1000에서 2000의 병사들을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후방 지원부대를 더하면, 다른 유력 무장들과 동등한 세력이 된다. 노부나가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한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여어, 시즈코. 배웅하러 왔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에게 키묘마루가 찾아왔다.


"이런, 키묘 님. 배웅해주시다니 황공하옵니다. 하지만, 수행원도 없이 다니시는 건 부주의하십니다"


"그만둬, 딱딱하게 대하지 마. 너한테 그런 소릴 들으면…… 그, 뭐냐, 소름이 끼친다고"


"심한 말이네. 하지만 호위 정도는 데리고 와. 우리 쪽에서 몇 명 붙여줄테니, 돌아갈 때는 호위랑 같이 가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시즈코는 겐로(玄朗)에게 호위병을 몇 명 차출하도록 지시했다. 그걸 듣고있던 키묘마루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위라니 숨이 막혀. 나는 좀 느긋하게 있고 싶다고"


"영주님의 후계자가 첫 전투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영주님은 물론이고 주변의 무장들도 한심하다고 욕먹고 불명예를 얻게 되는데?"


첫 출전식은 화려하게 치렀기에, 노부나가에 적대하는 면면들이 키묘마루의 암살을 꾀해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키묘마루는 태어났을 때부터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될 것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오늘 처음으로 확정된 것이다.

후계자를 잃는 것은, 전국시대에 있어 사활문제(死活問題)가 된다. 아무리 노부나가가 자식이 많더라도, 말하긴 뭐하지만 키묘마루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알ー았어, 알ー았다고. 하여튼, 그렇게까지 내 실력은 믿음이 가질 않는거냐. 이 갑주, 네 신기술…… 이 도입되어 있잖아?"


"……뭐 그렇긴 한데. 하지만 과신은 금물이야. 죽을 때는 정말 어이없이 죽으니까"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키묘마루는 혼노지(本能寺) 사변 때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는 이미 시즈코가 배운 역사와는 달라져 있다.

사소한 계기로 본래 죽어야 했을 사람이 살고,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걸 생각하면 키묘마루가 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시즈코에게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 나도 첫 출전에서 멍청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 여기는 시즈코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드물게 시즈코가 신신당부를 하는 점이 신경쓰여, 키묘마루는 시즈코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후, 자유분방한 태도를 거두고 겐로가 데려온 호위에 둘러싸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자, 이쪽은 오와리로 돌아가죠"


"그 전에,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즈코 님"


이번에야말로 귀가, 라는 상황에 또 방해가 들어왔다. 어이없는 느낌을 받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거기에는 싱긋 웃는 표정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있었다.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시즈코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타케나카 한베에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를 팔랑거리며 중얼거렸다.




타케나카 한베에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하는 것이 반나절 정도 늦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눈에 뜨일 정도로 타케다나 혼간지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특별히 영향은 없었다.


7월 21일, 노부나가는 준비가 갖춰지자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니와(丹羽), 히데요시(秀吉)에게 히바리 산(雲雀山)과 토라코젠 산(虎御前山)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그들은 마을을 불태우며 불꽃처럼 공격해 들어갔다.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지키는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도 병사를 보냈으나, 이미 아츠지 사다유키는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내통을 들키지 않기 위한 기만 공작에 지나지 않았다.


23, 24일에는 에치젠(越前)과의 국경 부근을 중심으로, 잇코잇키(一向一揆)를 꾀한 사찰 및 신사(寺社)나 마을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 싸움에서 근처의 주민들이나 승려들이 오다 군에게 죽음을 당했다.

동시에 미츠히데(光秀)가 중심이 되어, 비와 호(琵琶湖) 방면에서 공격해 올라가 일향종(一向宗)들의 증원을 막았다.


순조롭게 적 세력을 무찔러간 노부나가는, 27일에 토라코젠 산에 축성을 명했다. 재빠르게 주변 탐색을 마친 후, 쿠로쿠와슈가 토라코젠 산에 들어가 축성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성이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히사마사(久政)는 손가락을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다 군을 쫓아낼 수 있는 병력은 없어, 공격해봤자 박살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과도 차단된 고립 상태의 그는,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사쿠라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원군을 요청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의 봉기로 위기에 처해 있다, 라는 히사마사의 거짓 정보에 속은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직접 1만 5천의 군을 이끌고 에치젠을 출발했다.

하지만, 오우미(近江)에 도착하여 오다 군이 건재한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오오즈쿠 산(大嶽山)에 진을 치고 그대로 틀어박혀 버렸다.


그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토라코젠 산의 축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몇 가지 시설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견고한 방어벽 등 주요 설비는 이미 기능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하지만 착실하게 마무리해가는 쿠로쿠와슈의 솜씨를 보고 노부나가는 희색이 만면했다. 한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발을 구르고 있었다.


대치 상태(睨み合い)가 계속되던 도중, 아사쿠라 측에 움직임이 있었다. 8월에 들어섰는데도 축성의 방해, 저지를 하지 않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단념했는지, 아사쿠라 가문 가신인 마에바 나가토시(前波長俊) 부자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마에바 나가토시가 변절한 다음 날, 기회주의적(日和見) 태도를 취하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진절머리가 났는지, 아니면 변절한 마에바 나가토시를 이용하여 정치적 공작(調略)을 했는지, 토다 나가시게(富田長繁)나 토다 요지(戸田与次), 케야 이노스케(毛屋猪介) 등 아사쿠라 가문 가신들이 차례차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이렇게 변절이 많아지면 재미가 없군요, 아버지"


첫 출전식 이후 눈에 띄는 출격은 없었으나, 예정대로의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키묘마루는 기문이 좋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키묘마루의 발언을 듣고 작게 미소를 떠올렸다.


"아직 젊구나, 키묘. 상대가 궁지에 몰렸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


"하지만, 아사쿠라는 틀어박힌 상태고, 아자이도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승리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습니까"


"바로 그래서이다"


노부나가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키묘마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한 부분(勘所)을 판단하는 것은 실전 경험을 쌓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노부나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도망치는 병사들은 나오겠지. 허나, 남은 병사들은 이미 배수(背水)의 진, 사병(死兵)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것이다. 사병의 강함은 네놈도 알고 있겠지. 예전에, 우리 군에서도 사병이 되어 싸운 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


그제야 겨우 키묘마루는 노부나가의 진의를 깨달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상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단지 앞쪽에만 활로(活路)를 찾아 필사적이 되기 때문에 뼈아픈 반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병이라는 것은 아군이라면 든든하지만, 적이 되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그렇다. 아사쿠라나 아자이의 병사들이 사병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가능성이 있다. 적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적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두려움은 겁장이의 증거가 아니다. 그 두려움이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심모원려(深謀遠慮)는 놀라울 뿐입니다. 천학비재(浅学非才)한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한층 더 정진하겠습니다"


"됐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실수를 감추고, 더군다나 남에게 떠넘기는 놈들은 평생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놈은 일찌감치 베어버리는 쪽이 좋지"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더니, 노부나가는 무장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선언했다.


"한동안 대치가 계속되겠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곧 기회는 온다"




8월에 들어서 조금 상황이 움직였으나, 여전히 오다와 아자이-아사쿠라 사이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아사쿠라에게 결전을 신청했으나, 요시카게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 소심함(臆病っぷり)을 야유하면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남기고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이동했다.

히데요시 군만 남았음에도 여전히 아자이-아사쿠라에게 움직임은 없었다.


"이거 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틀어박혀만 있으니 재미없군요"


정시 보고(定時報告)를 받아든 히데나가(秀長)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단순한 대치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은 아니다.


"영주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여전히 감시만 하라,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입니다. 어째서 한번에 공격해 함락시키지 않는 걸까요"


마찬가지로 정시 보고를 받은 타케나카 한베에를 보면서 히데나가는 팔짱을 꼈다. 뭔가를 묻고 싶은 듯 보였지만, 타케나카 한베에는 그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지금부터 일어날 큰 일을 앞두고 가능한 한 병력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일부러 소극적으로 보이는 작전을 계속 취했다.


"이쪽이 약한 면을 보이면 그들은 얕보고 치고 나올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생각한 것보다 아사쿠사는 주위가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하핫, 이거 엄격하시군요. 하지만, 그의 소심함(弱腰) 덕분에 이쪽으로 변절한 사람은 몇 명이나 있습니다. 여긴 일단 계속 그대로 있어줫으면 하는군요. 물론, 무장으로서 전공은 세우고 싶습니다만"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ーーーー"


타케나카 한베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을 때, 거친 발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히데나가 쪽도 발소리를 들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의 귀에 들릴 정도로 거친 발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지금 돌아왔다ー. 하여튼, 인사하러 돌아다니는 건 피곤하구만"


"어서 오십시오, 형님"


히데요시였다. 그는 적당한 장소에 앉더니, 소성에게 차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래서, 아자이-아사쿠라에 움직임은 없느냐?"


묻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일까, 히데요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그 물음에 히데나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걸 본 히데요시는 보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자이는 알겠지만, 아사쿠라는 뭘 하러 왔냐는 게다. 저놈들, 이대로 틀어박혔다가 겨울이 되면 에치젠으로 돌아갈 생각일까?"


"그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겨울이 되면 길이 눈으로 막혀버리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눈이 녹을 때까지 귀국할 수 없게 됩니다"


"못해먹겠구만. 오, 수고했다. 차를 놔두고 물러가도 좋다"


이야기 도중에 소성이 차를 가져왔다. 히데요시는 쟁반에서 찻잔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한입 마셨다. 차갑다고 하긴 어렵지만, 여기저기 걸어다닌 몸에는 미지근한 차라도 맛있었다.


"뭐, 영주님께서는 감시만큼은 게을리하지 마라, 고 하셨다. 우리들은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일 뿐. 몸이 녹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 뭐냐, 적당히 운동을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좋아,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자, 오늘 저녁식사는 뭘까. 오랜만에 시즈코의 다이도코로슈(台所衆)가 있으니, 기대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히데요시의 말에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에서 제외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하자 군을 해산시켰다. 8월은 더운 시기이기에, 훈련 자체는 느긋하지만 가볍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케이지나 나가요시 등 무장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책임이 있는 입장이므로, 항상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용은 훈련이라기보다는 기합(シゴキ)에 가까웠다.

특히 나가요시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직접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함은 보고있는 쪽이 불안해질 정도였다.


"뭐냐, 그 엉거주춤한 꼬락서니는! 그런 자세로 적을 처치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느냐!!"


"주, 죽겠다…… 아니, 죽을소냐!"


"겨드랑이가 어설프다!"


"쿠엑!"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나가요시였으나, 요시나리는 용서없이 그를 때려눕혔다. 짜부러진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나가요시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몇 번이나 똑같은 실패를 하고 있는데, 네놈은 머리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짓은 못 한다. 모두 몸으로 기억해라. 안심해라, 몇 번을 잊어버리던 그 때마다 내가 몸에 새겨주마"


"어, 어디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제길!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아버지에게서 한 판을 따겠어!"


"좋은 기백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질 못하는구나!!"


"커흑!"


나가요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요시나리는 빈틈투성이가 된 그의 몸에 통렬한 일격을 후려쳤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는지, 나가요시는 주위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땅바닥에서 몸부림치며 굴렀다.

하지만 요시나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추가 공격을 넣었다. 간발의 차로 회피한 나가요시였으나, 누가 봐도 만신창이인 것은 명백했다.

요시나리는 어깨를 다친 후 일선에서 물러난 몸이지만, 지금의 광경을 보면 지금이라도 전쟁터를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된 거냐, 늙어빠진 영감(耄碌爺) 한 명 쓰러뜨리지 못해서야, 네놈은 일개 병졸조차 되지 못한다"


"어, 어디가 늙어빠졌는지 묻고 싶은데. 하지만, 지금은 우슨 소릴 해봐야 소용없어…… 오늘이야말로 한 판을 따겠어어어어어!!!"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더니,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 돌격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요시나리와 오래 치고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일기토의 응수(駆け引き)에서는 요시나리가 한 수 위였다.


"어설프다!!"


"크어억!"


결국, 오늘도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서 한 판도 따지 못하고 훈련을 마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을 하고 있을 무렵, 타케다는 열심히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적인 오다 군은 물론이고, 아군 측의 혼간지나 아자이-아사쿠라도 마찬가지로 조사하고 있었다.


"모두 영주님(御屋形様)이 예측하신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혜안이 정말 놀라우십니다"


"놈들은 내게 있어 장기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겐(信玄)은 보고서를 근처로 하나씩 던져버렸다. 이미 알고 잇는 보고를 그는 새삼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차례차례 보고서를 읽고 버리는 신겐에게 가신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조사한 내용도, '그 내용으로 보고가 올라올 것'이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버려질거래 생각했을 때, 신겐은 하나의 보고서를 손에 들었을 떄 움직임을 멈추고, 그대로 보고서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신겐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그러나, 신겐은 주위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했다.


"귀국했다, 고?"


"예? 옛, 이번의 오다의 아자이 침공, 고노에(近衛)의 딸은 제외되었습니다. 적자의 첫 출전식에는 참가했습니다만, 그게 끝남과 동시에……"


"귀국시킨 이유는 무엇이냐"


"고노에의 딸은 너무 많은 무공을 세웠기에, 주위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신이 말한 이유에 신겐은 납득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성격이라면 반대로 시즈코에게 더 무공을 세우게 해서 주위의 무장들을 닥달하는 쪽이다.

무공을 너무 많이 세워서 전선에서 뺐다, 라는 건 표면적 이유(建前)이고 본심이 어딘가 감춰져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 이라고 신겐은 생각했다.


(또 고노에의 딸인가. 오다 놈…… 무얼 생각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딸에게 어떤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거냐)


간자들을 닥달하여 시즈코의 정보를 수집하게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어디를 찔러봐도, 하나같이 중요한 정보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니히메(仁比売)의 후계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니히메의 존재 자체가 노부나가의 정치적 공작이라고 신겐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오다의 꼬맹이치곤 제법이군.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하면 그건 반대로 주위에 의혹을 키우게 되지) 아시미츠인가 하는 쪽은 어떻게 되었나"


"옛…… 이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라서, 전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탁월한 기예의 소유주로,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가 반대로 당했습니다"


"빨리 처리하라. 아시미츠가 그 자라면 장기말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 말만 하고 신겐은 가신을 물리쳤다. 가신은 서둘러 물러나고, 그와 교대하듯 다른 가신이 신겐에게 다가왔다.


"영주님께 보고드립니다!"


"다 말할 필요 없다. 알고 있으니"


"예, 옛!"


보고를 하기 전에 모든 것을 꿰뚫려보인 것에 가신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즉시 절을 하고는, 보고서를 쟁반 위에 놓고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놓여진 보고서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신겐은 생각에 잠겼다.


(뭐든지 기보(棋譜) 대로일 터이다. 그런데 무엇이냐, 이 불길한 설레임(胸騒ぎ)은)


신겐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걸 없애려고 그는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아시미츠는 동행(伴)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주위에조차 간자가 얼쩡거리고 있었기에, 그놈들을 처분하는데는 혼자인 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비된 길을 걷고 있자, 전방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자, 여자가 한 명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레벨이었다.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는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여자의 옆을 그냥 지나쳤다.

10발자국 걸었을 때 여자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거짓 울음을 그쳤다, 라는 것이다.


"여자의 눈물조차 그냥 지나치는 건가. 소문대로의 남자네"


아시미츠는 발을 멈추었으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땅바닥에 앉아있던 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는 것을 감지했다.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는 아시미츠에게 딱히 불만을 느끼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영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슬슬 좀 편지를 받아줬으면 하는데"


그제서야 아시미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뒤돌아본 아시미츠에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면서 품 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빼앗듯이 편지를 손에 쥐더니, 아시미츠는 곧장 편지를 찢어버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의 파편을 버리더니, 깜짝 놀란 여자의 얼굴에 주먹을 후려쳤다.


"뭐냐, 이 쓰레기는. 쓰레기 주제에 사람의 말을 하는 건가"


맞고 날아가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가까이 있던 나무 등걸까지 끌고갔다.

이빨이 부러지도, 코에서 피를 흘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끌리는 고통을 겪고 있던 여자였으나, 시야에 들어온 나무 등걸을 보고 지금부터 그가 무엇을 할지 이해했는지,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 그만……"


여자는 마지막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 전에 아시미츠가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한 번 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파열음이 축축한 소리로 바뀌었을 무렵, 붙잡고 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피와 체액과 육편이 뒤섞인 웅덩이에 여자는 얼굴을 처박았다.

그 자리에서 경련하고만 있는 여자를 아시미츠는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여자의 경련이 멈추었을 무렵, 아시미츠는 여자에게 흥미를 잃고 그대로 방치한 채 자리를 떴다.


아시미츠가 떠나가고 잠시 시간이 흘렀을 무렵, 어딘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들은 조용히 여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한 명이 여자의 목에 손을 대고,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군"


"들은 것보다 더한 냉혹함이군. 여자라고 해도 적이라면 관계없다, 는 건가"


남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여자의 시체를 눈에 띄지 않은 위치로 이동시켰다.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게 했지만, 시체를 방치해 둘 수도 없었다.


"다음 방법을 생각해야겠군"


시체를 치운 남자들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에 다른 한 명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가 동료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얼마나 재빨리 현장에서 도망칠 수 있는가가 생존의 비결이다"


경악한 표정을 짓는 남자에게, 아시미츠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남자의 동료는 목이 정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타케다의 쓰레기냐, 아니면 호죠(北条)의 버러지냐. 어느 쪽이든, 내 주위를 캐고 다니는 놈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미츠는 남자를 베어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발도가, 아직도 멍해 잇던 남자의 몸을 뼈까지 갈라버렸다.


"예외없이 벤다. 언젠가 동료들도 뒤따라갈 것이다. 안심하고 죽어라"


남자의 몸에서 피가 간헐천처럼 뿜어져나왔으나, 아시미츠는 말없이 칼을 집어넣고는 조용히 떠나갔다. 뒤에 남겨진 것은 세 구의 시체 뿐이었다.




시즈코 군의 면면은 순조롭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간자들이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훈련 내용 자체가 알려져봤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간자들은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시키고 있는 훈련이 대체 뭘 목적으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위에 보고해봤자, 쓸데없이 혼란을 가중시킬 뿐 요령부득이다.

이건 예언자(予言者)가 어떻게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설령 미래를 엿보았다고 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을 표현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예로 든 요령부득의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경향이네. 이거라면 12월까지는 맞출 수 있겠어"


병사의 체력 측정 데이터를 확인한 시즈코는, 12월까지는 충분한 성과가 있을 것을 확신했다. 다른 데이터도 문제없어서, 병사들의 기초체력 향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병사들 측에서 보면 다소 수수께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매일 훈련하는 것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불만을 말하는 일은 없었다.


이 무렵, 시즈코는 병사들 같은 훈련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몸이 녹슬지 않을 정도로는 훈련을 하고는 있었으나, 무장들이 하고 있는 힘든 훈련은 받고 있지 않았다.

병사들이나 무장들이 볼 때는, 시즈코가 앞으로 나서는 건 심장에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후방에서 지휘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어쨌든 태반의 무장들이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후방에서 지시를 내리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뭐 수수께끼지만, 깊이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시즈코가 할 일은 그 밖에도 많아서, 그 중의 하나인 쌓여있는 서류를 처리했다. 화압(花押)을 가지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역시 인감(印鑑)쪽이 간편했기에 오직 도장(押印)만 찍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国人)나 공가(公家)와는 달리, 시즈코는 먹으로 날인하는 흑인장(黒印状) 쪽이었다. 인판장(印判状)이라고는 해도 정식 서류로 취급된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날인, 문제가 있으면 의문점을 기재하여 되돌려보냈다. 대량으로 쌓여 있던 서류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처리가 끝난 서류를 소성들에게 명하여 다음 공정으로 넘겼다.


"아ー, 끝났다 끝났어. 사무처리라는 건 피곤하네"


어깨를 통통 두드리면서 시즈코는 굳어버린 몸을 풀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입구를 재주좋게 열어젖히고 비트만들이 들어왔다.

시즈코가 일하는 중에는 방해하지 않지만, 일이 끝나면 사양할 필요없이 마음껏 시즈코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비트만들이었다.

일하는 중이던 말던 마이웨이를 관철하는 마눌고양이 마루타(丸太)는 언제나의 정위치(定位置)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나 하나, 설표인 윳키, 시로초코는 고양이과답게, 들어오고 말고는 자기 마음대로였다. 오늘은 웬일로 시로초코가 들어왔다.

들어왔다고는 해도, 적당한 곳에 앉더니 내키는대로 쉬고 있는 것 뿐이지만.


"내 방은 휴게소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카이저의 등에 엎드려 북슬거림을 만끽하는 시즈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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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0 1572년 7월 하순



스크류 선박에는 과제가 남았지만, 스털링 엔진, 고로(高炉) 및 그에 부수되는 시설들 모두 큰 트러블 없이 무사히 시운전을 완료했다.

그 때문에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대 안건이 일단락되자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인지, 미뤄두고 있던 어떤 시설의 시찰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이쪽은 이미 본격 가동되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시찰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의 수장이라는 입장상 방치해둘 수도 없어 시즈코는 케이지(慶次) 들을 데리고 공장으로 향했다.


"휘익ー, 이쪽도 크구만"


고로의 시설도 거대했지만, 이번에 시찰하는 시설ー오다 가문이 설립한 '제사(製糸) 공장'ー은 광대한 부지를 가진, 다른 의미에서 거대한 시설이었다.

공장의 부지는 네 개의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종업원들이 사는 거주구획(居住区画), 학교에 병원, 보육소, 상점, 음식점 등이 있는 상업구(商業区)라고도 불리는 지원구획(支援区画), 누에(蚕)의 사육에서 누에고치(繭)의 건조까지의 공정을 담당하는 누에 생산구획(蚕生産区画), 외부에서 반입되는 삼베(麻)나 목면(木綿)의 섬유, 건조를 마친 누에고치로부터 실을 뽑아내는 조사구획(繰糸区画)이다.


"유리랑은 달라서 양산이 절대적 요건이었으니 년 단위로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오와리(尾張) 굴지의 대규모 시설로 오다 가문 내에서는 유명한 장소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즈코 일행은 공장의 정문을 통과했다.

이미 하나의 마을(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규모의 공장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전제된 마을과는 달리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정문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노부나가나 시즈코 등 공장 운영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시설 내에서 살고 있는 종업원들이나 물자의 반입/반출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뒷문이나 옆문을 이용해서 출입하는 것이다.


"우선 누에치는 방(蚕室) 부터 보도록 하죠"


시즈코가 그렇게 말하자, 공장의 책임자인 공장장이 직접 누에치는 방이 있는 구역으로 안내했다.

노부나가를 창업자 겸 사장으로 친다면 시즈코는 영업 총괄 본부장에 필적하는 입장이기에, 공장에서는 최종 책임자인 공장장도 다급하게 달려와 안내역을 맡고 있는 것이다.


누에치는 방은 합계 14동(棟)이 있었다.

10개 동이 통상의 누에를 사육하는 동, 2개 동이 누에 알을 부화시켜 2령(齢)이 될 때까지 사육하는 동, 1개 동이 인공 사료나 품종 개량의 연구를 하는 연구동, 그리고 마지막 1개 동이 특수한 누에 품종인 '코이시마루(小石丸)'를 사육하는 동이다.

누에는 발육 정도를 나타나는 말로서 '잠령(蚕齢)'이라는 것이 있다.


알에서 부화한 누에는 전신에 털이 나 있어 애누에(毛蚕)나 까만 색이라 개미(蟻)처럼 보이기 때문에 애누에(蟻蚕, ※역주: 蟻는 개미라는 뜻의 한자)라고도 불리는 상태를 1령으로 세고, 첫 탈피(脱皮)를 마친 것을 2령, 이후 탈피를 거듭할 때마다 3령, 4령으로 부르며, 누에고치를 만드는 단계까지 성숙한 개체를 5령이라고 부른다.


1개 동마다의 사육 수는 무려 2만에서 3만에 달한다. 5월부터 11월이라는 한정된 기간에 1년분의 견사(絹糸)를 확보하려면, 그만큼 많은 누에고치를 준비할 필요가 있기 떄문이다.

누에의 먹이라고 하면 뽕나무(桑) 잎이지만, 여기서는 시험적으로 인공 사료도 사용하고 있다.

인공 사료는 건조시킨 뽕나무 잎을 가루로 만든 것을 주재료로 하여, 옥수수의 전분이나 기름을 짜낸 후의 탈지대두(脱脂大豆)를 가루로 만든 것, 비타민 종류를 보충하기 위한 메밀(蕎麦) 가루, 유자(柚子) 껍질을 건조분쇄한 가루 등을 혼합했다.

신선한 뽕나무 잎을 얻을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필요성이 낮지만,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루 상태로 되어 있기에 장기 보존이 가능하며, 저장 장소도 크게는 차지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

인공 사료로의 사육과 병행하여, 누에의 생태에 관해서도 자세히 연구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이나 품종 개량을 위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연구이다.


그리고 통상 품종과는 다른 계열에서 사육되고 있는 코이시마루는, 나라(奈良) 시대 때부터 사육되기 시작한 누에의 품종이며, 현재의 품종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일본에 옛부터 있는 재래종(在来種)인 코이시마루는, 대단히 가늘면서도 질 좋은 실을 자아낸다. 그 실은 힘있는 탄력과 비할 데 없는 광택을 겸비하여, 현대에서도 최고급의 견사로 친다.

반면, 통상의 누에보다 누에고치 하나당 채취할 수 있는 실이 짧아, 통상 품종이라면 평균 1300m에서 1500m 정도가 되는 데 반해, 코이시마루는 길어봤자 5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산란수도 적고 질병에 약하기 때문에 다른 누에와는 환경을 구별하여 사육해야 하므로, 대량 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은 품종이기도 하다.

이러한 디메리트만 눈에 띄는 코이시마루지만, 그 견사로 짠 직물은 다른 것과는 한 획을 긋는 광택과 탄력을 가지기 떄문에, 최고급품으로서 항상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점심때라서 아무도 없네요"


누에는 2령이 되면 아침과 저녁에 두 번, 먹이의 교환과 사육상자의 청소를 한다.

누에의 사육상자는 뚜껑이 없는 나무 상자의 바닥에 누에섶(蚕籠)을 놓고, 잠망(蚕網)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먹이가 되는 뽕나무 잎을 빽빡히 깔고, 마지막으로 누에를 올려놓는다.

누에의 사육방법은 잠령에 따라 구별되며, 1령에서 3령의 누에에게는 뽕나무 잎을 가로세로 1cm 크기로 잘라준다.

청소 방법도 간단하여, 누에 위에 새로운 뽕나무 잎을 놓은 잠망을 덮어씌운다. 그 상태로 30분 정도 기다리면, 누에는 새로운 먹이가 있는 잠망으로 이동한다.

이 새로운 잠망을 다른 누에섶 위에 덮어씌우고, 이동하지 않은 누에를 옮긴 후, 오래된 뽕나무 잎이나 탈피한 껍데기, 똥이 쌓인 누에섶을 청소하고 다음 이동에 대비하면 된다.


4령부터는 가지뽕 사육(条桑育)이라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뽕나무를 가지째로 잘라, 그 상태 그대로 누에의 먹이로 주는 사육법이다.

먹이주기와 청소는 아침저녁 두 번으로 변함이 없지만, 4령에서 5령에 걸쳐 몸 길이가 단번에 커지기 때문에 과밀함을 피하여 사육 상자를 2개 사용해 사육을 계속한다.

청소 방법은 2령부터 변하지 않지만 먹는 먹이의 양이 늘어나므로, 점심때 먹이의 양을 체크할 필요가 있다.


통상의 양잠농가(養蚕農家)라면 아침저녁은 누에를 돌보고, 낮에도 뽕나무에 달라붙어야 하기 때문에 한산한 시기 이외에는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게 된다.

그러나 뽕나무 밭을 밖에 두고 매일 신선한 뽕나무 잎이 운반되어오는 이곳은 다르다.

아침저녁은 변함없이 바쁘지만, 점심때는 먹이가 남은 상황을 확인하고, 적을 경우 보충하는 정도 외에는 거의 할 일이 없다.

5령쯤 되면 영견(営繭, 누에고치 만들기)에 대비해 성대한 식욕을 발휘하기 때문에, 빈번하게 먹이를 보충해주고 영견을 시작하려고 하는 누에가 없는지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즈코들이 시찰하고 있는 장소는 4령의 누에가 사육되고 있는 구역이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는 저녁 때까지 충분한 먹이가 사육 상자에 준비되어 있었다.

딱히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으나, 공장장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아하하, 이게 참,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공장장이 비지땀을 닦으며 변명했다. 그가 쩔쩔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시즈코가 시찰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공장을 시찰했던 노부나가가, 공장 내에 감도는 이완(弛緩)된 분위기에 불쾌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장장 이하 몇 명의 책임자들은 노부나가에게 직접 설교를 듣고, 더 긴장감을 가지고 일에 종사하라는 꾸중을 들은 참이었다.

시즈코가 정한 복무규정에 일정한 품질과 생산 숫자를 유지한다면 근무 태도는 불문에 붙인다는 조항이 없었다면, 몇 명의 목이 물리적으로 날아갔을 가능성까지 있었다.


"딱히 신경쓰진 않아요. 생산량을 유지한다면, 의 이야기지만요"


안도한 공장장에게 못을 박아두면서도 시즈코는 다음 사육 공정으로 이동했다.

누에는 부화한지 약 3주일 후에 영견을 시작할 시기에 도달한다.

그 무렵의 누에를 숙잠(熟蚕)이라고 부르며, 먹이를 전혀 먹지 않게 된다. 몸은 체내의 견사선(絹糸腺)에 모인 견물질(絹物質)이 체표(体表)를 통해 보이면서 암황색(暗黄色)으로 보이게 되며, 그 때 약간이지만 몸이 줄어든다.

그렇게 된 개체는 뽕나무 잎째로 이동시킨 후, 위에서 그물망을 덮어놓는다. 그렇게 되면 답답한 공간에서 도망치려고 누에가 그물망 사이를 통해 위로 이동하나다.

딱 좋게 이동했을 때 그물망째로 걷어올리면, 누에의 배설물과 뽕나무 잎, 그리고 그물망에 얽힌 누에를 분리할 수 있다.


영견하는 누에와 쓰레기의 분리가 끝나면, 다음은 상족(上蔟)을 한다. 짚 등으로 엮은 섶(蔟, ※역주: 잠족(蠶蔟)이라고도 함)이라 불리는 그물망에 누에를 옮기는 작업이다.

수십마리 정도라면 한 마리 한 마리 수작업으로 옮겨도 문제없지만, 수만 마리를 상족시키는 경우에는 방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을 줄이는 방법이 회전족(回転蔟) 이다.

회전족에는 특수한 섶을 사용한다.

바깥틀과 안틀이라는 크기가 약간 다른 두 개의 나무 틀을 금속 부품(金具)으로 십자로 교차하도록 고정하고, 거기에 미닫이문(障子) 처럼 격자 형태로 짜인 섶을 여러 단 설치하여 금속 부품으로 고정한다.

이 격자 하나하나에 누에가 들어가 누에고치를 만들게 된다.

회전족의 핵심은, 섶을 매달아서 누에 자신에게 격자 틀 속으로 이동하게 하는 점이다. 원리는 단순하여, 우선 회전족에 일정 숫자의 누에를 올려놓고 매단다.

누에는 안전한 영견 장소를 찾아 섶 안의 칸에 한 마리씩 들어간다.

칸에 들어가지 않은 누에는 안전한 장소를 찾아 위로 이동하고, 누에가 한 곳에 너무 많이 모이면 누에 자신의 무게로 중심이 이동하여, 이윽고 회전족 자체가 바깥틀과 안틀을 고정하고 있는 금속 부품 겸 회전축을 중심으로 빙글 하고 반회전한다.

그렇게 되면 위에 있어야 할 누에들은 자신이 아래로 이동한 것을 깨닫고, 다시 위를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칸을 발견해 영견을 시작한다. 이것이 반복되며 모든 누에가 균등하게 칸에 들어간다.

물론 회전하는 기세로 떨어지는 누에도 있지만, 회전족 아래에는 약간 떨어진 곳에 천(布)이 펼쳐져 있어, 떨어져도 다시 사람이 회전족으로 옮겨주면 문제없이 영견을 해준다는 구조이다.


떨어진 누에를 보조하는 것 이외에는 내버려둬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는 작업이지만, 이 때의 온도와 습도 관리가 대단히 어렵다.

누에고치의 품질은 상족 후 3일에서 4일째에 결정되기 때문에, 이 작업이 가장 신경을 소모한다.

상족하는 계절에 따라 적절한 기온과 습도가 변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는 있지만, 대략 7일에서 8일째에 고추따기(収繭)라고 부르는, 섶에서 누에고치를 뗴어내는 작업을 한다.

누에고치를 만드는 게 느린 누에도 있기에, 공장에서는 누에가 누에고치를 만들기 시작한지 10일 후에 고추따기를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누에고치를 떼어내는 작업은 풀솜벗김틀(毛羽取り機)이라는 기계를 사용한다. 이것은 섶에서 누에고치를 떼어내고 누에고치에 붙어있는 보풀(毛羽)을 제거하는 기계이다.

누에고치의 보풀이란, 누에가 섶에 누에고치를 만들 때, 발판(足がかり) 삼아 뱉어낸 실이나 쓰레기 등을 가리킨다. 이것을 남겨두면 누에고치끼리 엉키거나 하기 때문에 제거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기계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는 누에고치 긁개(繭掻棒, ※역주: 의역임)라고 불리는 도구로 섶에서 누에고치를 떼어내고, 누에고치에 붙어있는 보풀을 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풀솜벗김틀(毛羽取り器, ※역주: 한자가 달라 구별하기 위해 원어를 병기함)로 제거했다.

이 공장에서도 수동이기는 하나 누에고치 긁개와 풀솜벗김틀(毛羽取り器)을 준비해두고 누에고치의 회수와 섶에 붙어있는 보풀을 제거하는 공정을 한 번에 수행하기 떄문에 효율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제거된 보풀은 삶아서 씻은 후 이불 솜(中綿) 등에 쓰인다.


"현재는 마침 누에고치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네요. 가동 상황을 확인하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마지막 건조실로 가죠"


섶에 누에를 올려놓은 날짜를 확인하자, 아직 고추따기를 할 날이 아니었다. 설정된 날자는 며칠 후였기에, 지금부터 보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올라오는 견사의 품질에 문제는 없었기에, 특별히 문제는 없을거라 판단하고 시즈코는 마지막 작업인 건조실로 향했다.


"예, 옛!"


공장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건물(棟)에서 나오자, 시즈코는 근처에 있는 굴뚝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누에고치는 그냥 놔두면 안쪽의 번데기(蛹)에서 성충(成虫)이 누에고치에 구멍을 내고 나와버린다. 이걸 막기 위해 약 100도 가까운 열풍을 6시간 정도 쬐어 건조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누에고치 안의 누에가 죽고, 누에고치인 상태로 장기 보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참고로, 열풍을 쬐는 설비가 없는 경우에는, 며칠 냉동시켜서 누에를 죽게 한 다음 천일(天日) 건조하는 방법도 있다.


"흠흠, 여기서 건조시킨 걸 자루에 담아서, 마지막으로 저온에 습기가 적은 창고(蔵)에 보관되는 거군요"


"예, 옛. 그런 순서로 하고 있습니다, 예"


건조를 마친 누에고치는 일단 창고에 보관된다. 양잠(養蚕)은 5월에서 11월까지 동안만 할 수 있기에, 그 동안에 1년 내내 견사를 생산할 수 있도록 1년분의 누에고치가 준비된다.

따라서 누에를 키우기만 하는 것이라면 공장 외의 장소에서도 하고 있다.

생산 거점을 늘리지 않고 집중형의 공장으로 만든 이유는, 완전히 폐쇄된 환경에서 일관적인 생산이 가능하고, 그리고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순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순환형 공장에서는 생산물에 부산물, 폐기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재활용한다. 특히 누에는 '누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버릴 게 없다.

평소라면 폐기되는 먹고 남은 먹이나 똥, 탈피한 껍질, 수확했을 때의 뽕나무 부스러기 등은, 건조시켜서 섞으면 비료나 가축의 사료가 된다.

특히 누에의 똥을 건조시킨 것은 잠사(蚕沙)라고 하는 한방약(漢方薬)이 되기도 한다. 현대의 아이스크림이나 녹색 껌(gum)의 녹색 색소는 잠사에서 엽록소를 추출하여 이용하고 있다.


재활용하는 것은 딱히 누에나 뽕나무 뿐만은 아니다. 사람의 배설물이나 남은 식재료도 재활용한다. 기본적으로는 비료로서 재활용한다. 견사를 뽑은 후에 나오는 누에의 번데기는 잉어(鯉)의 먹이로 이용한다.

비료는 공장 밖에 있는 논밭에 이용되거나, 또는 다른 마을에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거나 한다.


공장은 그밖에도 누에고치나 목면(木綿), 삼베에서 실을 뽑는 구역이나, 기직(機械織り) 등으로 천을 짜는 구역도 있지만 이번에는 양잠 구역만 시찰하였다.

시즈코는 서류가 보관되어 있는 공장장들의 공장장관(工場長館)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작업 보고서나 일지(日誌), 대장(台帳),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원인과 대책을 정리한 것 등, 다양한 서류를 확인했다.


"공장 내부의 청소 상태 등의 직장 환경, 도구 손질, 서류 기록을 확인하는 한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 순간, 공장장 이하 간부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개중에는 성대하게 한숨을 쉬며 안도하는 자도 있었다.

저번의 노부나가의 시찰이 어지간히 무서웠던 걸까, 하고 시즈코는 내심 생각했으나 입 밖으로 내어 물어보면 그들이 곤란해하기에 의문을 도로 삼켰다.


"이번에는 양잠 구획만 하고, 다른 구획은 나중에 시찰하기로 할게요"


"예, 옛.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 맞다. 현 시점에서의 견본장(見本帳)을 꺼내 주세요. 영주님께 문양(文様)이나 무늬(柄)의 설계를 검토받겠습니다"


하지만 안도한 것도 순간, 다시 그들은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견본장이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견사나 목면, 삼베 등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천(生地)을 작게 잘라서 대지(台紙)에 붙인 장부(帳面)이다.

현대의 컬러 인쇄된 카탈로그나 리플릿(leaflet)과 달리, 진짜 천이 붙어 있기에 색감(色合い)이나 촉감, 소재의 질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아무리 고품질의 소재를 사용해서 옷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견본이라고는 해도 옷 한벌쯤 되면 방대한 양의 실을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색감이나 질감, 무늬(図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 단위의 작은 조각을 여러 개 준비하여, 견본장으로서 제시하여 디자인을 확인한 후에 주문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고객은 생각한 대로의 옷을 얻을 수 있고, 제작하는 쪽은 쓸데없는 소비가 없어 양쪽에 이득이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견본장은 옷, 나아가서는 소재인 실의 매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자료로 간주되며, 1년에 최저 한 번은 갱신된다.

견본장에 없는 디자인의 옷도 만들어지고는 있지만, 주문을 받은 장인이 처음부터 만들기 때문에 납품될 때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결점이 있었다.


"이쪽이 견본장입니다"


"고마워요"


공장장으로부터 견본장을 받아든 시즈코는 가볍게 안을 확인했다. 이미 디자인 패턴은 200종류를 넘고 있었다.

실제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그만한 숫자의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 오늘 시찰은 이걸로 종료합니다"


견본장을 품에 안고, 굳어 있는 공장장들에게 시즈코는 그렇게 말했다.




저택으로 귀가한 시즈코는 견본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모양은 물론이지만 염색의 견본장이기도 하다.

이건 사람에 따라 '짙은 색'이나 '옅은 색'에 대한 이미지가 다른 것이 원인이다. 하얀 천과 색(色) 견본장을 사용하면, 필연적으로 완성된 것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색의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색 견본장은 염색한 천을 붙여놓았다. 하지만, 이래도 색의 미스매치는 발생해버린다.


천의 염색방법에는 다양한 수법이 있으며, 그에 따라 색감이 미묘하게 달라지므로 생각했던 색과 다른 색감으로 보여버린다.

또, 사람의 눈은 같은 색이라도 작은 천쪼가리를 본 후에 옷감(反物)을 보게 되면 농염(濃淡)이 다르게 느껴버린다.

이런 요소들이 겹쳐서 완성된 옷감에 대해 구매자는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끼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현재, 하얀 천과 색 견본장이 아니라, 완성된 옷감을 구매자에게 고르게 하는 이유는, 완성된 것에 대해 구매자가 색감이 다르다고 느끼게 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뭐ー, 이 시대에선 색감이 다르다느니 뭐니 하는 소리 할 상황은 아니지만 말야"


색의 미스매치라고 했지만, 바꾸어 말하면 구매자에게는 '약간의 색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섬세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시즈코의 고객 중 그만큼 섬세한 인물은 없지만, 이후에도 없을 거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완성된 옷, 착용감(着心地)을 확인하지 않았었던가"


시즈코는 옷(着物), 정확히는 화복(和服)의 기원이 된 코소데(小袖)의 착용감을 확인했다. 갈아입고 잠시 음음거리며 살핀 후, 겉옷(羽織)을 입고 다시 상태를 확인했다.


"어ー이, 시즈코. 심심하구나, 같이 심심풀이를 하거라"


큰 거울(姿見) 앞에서 옷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있짜니, 오이치(お市)가 사양하는 법도 없이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시즈코에 대한 배려고 나발이고 없었지만, 지적해봤자 개선될 리도 없다. 애초에 오이치의 자유분방함은 노부나가도 포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뭐냐, 그 희한(珍妙)한 차림새는"


수수(地味)한 화살깃(矢羽根) 문양(矢絣(야가스리)라고도 함) 코소데, 그 위에 감색(紺色)에 꽃잎을 수놓은 금자수(金刺繍)의 겉옷(羽織)을 입고 있는 시즈코를 보고 오이치가 괴이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금자수라고 해도 선명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고, 나쁘게 말하면 칙칙한 색감, 좋게 말하면 침착한 색감이었다.


"희한하다니 실례네요. 세상의 유행을 앞서가는 복장이라고요"


"그러냐. 하지만 지금은 유행하고 있지 않는 것이지? 그러니 희한한 차림새라고 할 수 있겠구나"


"큭, 아픈 곳을. 그래서, 무슨 용무이신가요?"


냉정한 지적에 반론할 수 없었던 시즈코는, 머리를 긁으며 화제를 돌렸다.

오이치도 그렇게까지 신경쓰던 것은 아닌 듯, 용무를 묻자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으로 양손을 짝 하고 쳤다.


"오오, 그랬지. 심심하니 함께 심심풀이를 하거라"


"바쁘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서신의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뭐냐, 재미없구나. 가끔은 일을 잊고 노는 것도 중요하노라"


"그냥 본인께서 놀고 싶으신 거죠? 어쨌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아야(彩) 짱에게 혼나니까, 놀이 상대는 다른 사람을 찾아주세요"


"안 된다, 나는 심심하느니라"


이 자기본위를 지탱하는 절대적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하지만 입씨름(押し問答)을 해봤자 오이치가 포기할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그건 1년 가까이 알고 지낸 시즈코에게도 충분히 짐작되었다.


"애초에 한가하시다면 자녀분들 상대를 해 주세요"


"아무 걱정도 필요없다. 유모에게 맡겨놓았느니라"


"아…… 그러신가요"


무슨 말을 해도 무리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포기하고 오이치의 심심풀이에 함께하기로 했다.




7월 10일, 시즈코는 어떤 용무로 쿄(京)로 향했다.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갑주 착용식(具足始の儀)이 19일로 결정되었기에, 그 전에 어떤 거래를 처리해두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주(真珠)의 거래였다. 진주의 질과 생산량을 계산한 결과, 이듬해부터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지금까지는 상인에게 매각하고, 그 후 종교 세력(寺社)이나 무가(武家)들을 상대로 판매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시즈코가 손에 넣고 싶은 판로는 해외, 즉 유럽 각국이었다.


진주는 인류가 최초로 마주친 보석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진주는 '토리하마 펄(Torihama Pearl)'이라고 불리는 약 5500년 전의 죠몬(縄文)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위지왜인전(魏志倭人伝),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만엽집(万葉集) 등에도 진주의 기술이 보이며, 나라(奈良) 시대의 보물로서 쇼소인(正倉院)에 보존 상태가 좋은 진주가 4000개 이상이나 보관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는 페르시아 만이나 홍해(紅海), 스리랑카 주변에서 나는 천연 진주인 오리엔탈 펄(Oriental Pearl)이다.

이쪽도 기원전부터 역사가 있으며, 20세기에 양식 진주가 태두할 때까지 진주의 일대 산지였다.

그밖에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캘리포니아 반도에서 남미 페루, 유럽에서는 스코틀랜드나 옥일의 강에서 채취할 수 있는 담수(淡水) 진주가 유명하다. 채취된 진주는 왕후귀족이나 교회에 공급되었다.


즉, 시즈코의 비즈니스 상대는 교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회였다. 이유는 기독교(キリスト教)는 진주를 종교적인 장식으로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진주를 동일시하는 사상이 옛부터 있었다. 기독교의 이단인 그노시스 파(Gnostics)도 진주는 가장 이상적인 완성형의 상징으로 삼았다.

진주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독교 뿐만이 아니다. 이슬람교나 불교에서도 진주는 귀중한 보물로서 취급된다.

또 종교 뿐만이 아니다. 유럽 각국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귀족들은, 진주를 가장 희소한 보석으로 생각하여 권력의 상징으로 이용했다.

종교나 권력자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진주는 전세계적으로 장수(長寿)의 약이라고 생각되어,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믿어져 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광석은 아니지만, 인류가 처음으로 마주친 보석이며, 고대로부터 사람들을 계속 매료시켜온 것이다.


"이 동그란 구슬 따위에 남만인이 비싼 돈을 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말야"


나가요시(長可)는 해열제(解熱剤) 삼아 가지고 있는 진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리도 아니다. 일본에서도 진주는 귀하게 취급받고는 있지만, 유럽처럼 장식품으로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나가요시가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시즈코가 크고작은 걸 합쳐서 많은 진주를 생산하고 있는 관계로, 도저히 값이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진주는 옛부터 달이랑 관계가 있다고 해서 물의 심벌 취급이니까. 카톨릭(伴天連)의 성경에도 진주는 여러 번 등장하고, 영적(霊的)으로 완성된 물건이라고 보고 있거든. 그러니까 거절할 일은 없을거라 생각해"


나가요시의 의문에 시즈코가 대답했다. 하지만, 영적이라느니 물의 심벌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어도 나가요시에게는 영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던 도중에 귀찮아졌는지 진주를 허리에 찬 주머니에 집어넣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쿄에 도착한 다음날, 시즈코는 항상 입는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것을 마침과 동시에, 오르간티노를 필두로 프로이스나 수도사 등 많은 예수회 멤버들이 시즈코의 저택을 방문했다.

무리도 아니다. 상담(商談) 인사 대신으로 특팔갑(特八甲)의 진주를 30알 정도 보냈던 것이다. 총명한 오르간티노라면 그것 만으로도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했으리라.


"갑작스런 내방에도 불구하고 알현의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르간티노가 대표로 머리를 숙였다. 과연 오르간티노, 라고 시즈코는 감탄했다. 내심으로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서도 그걸 표정에 전혀 내보이지 않고 평소의 부드러운(柔和)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얼굴을 드십시오. 이번에는 딱딱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장사 이야기이니, 조금 차가운(厳しい) 면이 나올지도 모르겠군요"


"하핫,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잡담도 좋지만 지나치게 기다리시게 하는 것도 문제군요. 우선 저희들의 상품을 보아 주십시오"


양손을 쳐 신호를 하자, 소성(小姓) 들이 한 손에 쟁반(膳)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쟁반에는 진주가 몇 알 놓여 있었으며, 소성들은 그것을 오르간티노들의 앞에 놓고는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충분히 보아 주십시오. 우리 나라에서 생산된・・・・・ 진주입니다"


생산이라는 말에 순간 반응한 오르간티노였으나, 질문을 입에 올리지 않고 쟁반에 놓여진 진주를 아래에 깔린 천째로 손에 들었다. 색이나 광택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 형태도 완벽한 원에 가까워서, 천으로 감싸 한 알을 들어올리자 천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지금까지 보아 온 진주는 형태가 어그러져서, 동그란 건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훌륭한 품질의 진주입니다"


진주의 질은 장식품에 둔한 오르간티노도 감탄할 정도의 완성도였다. 다만, 둔하다고 해도 진주를 보는 오르간티노는 어떤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이것은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훌륭할 정도의 완벽한 원형, 하나라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만한 숫자를 모으려면 뭔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유럽에서는 담수산(淡水産) 진주를 사용하고 있기에, 해수산(海水産) 진주와는 색감이나 광택이 다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형태가 거의 균일한 점에 그는 위화감을 느꼈다.

보통은 조금은 형태가 다른 것이 섞여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진주가, 오싹할 정도로 형태가 색이 통일되어 있었다. 이 위화감과 시즈코의 행동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진주라고 추측했다.


"혜안(慧眼)이 놀라우십니다. 이웃 나라에서 진주의 기술을 습득하여 드디어 우리 나라에서의 진주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의 손을 탄 것을 저희 주님께 바칠 수는 없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시즈코는 이해하고 있었다. 숭배하는 대상에게 천연의 것이 아닌 양식산을 바치는 것은, 설령 알맹이가 똑같다고 이해하고 있더라도 저항감이 있으리라.

바로 그렇기에 시즈코는 진주를 예수회가 아니라 그들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급하기로 목표를 정했다.


"그건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쓰라, 고 강요하는 것은 무례라는 것도요. 하지만, 왕후귀족들은 어떨까요?"


그 한 마디에 오르간티노는 시즈코가 말하고 싶은 것을 대충 헤아렸다.


"실례했습니다. 두건재상님께서는 저희들이 아니라, 저희들을 지원해주고 있는 왕후귀족들에게 팔려고 생각하신 건가요"


"실례인 것은 알지만,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국의 상인들 중 본국에 있는 왕후귀족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따라서 저희들은 당신들에게 진주를 팔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결(キメ)이 곱고, 다른 진주에는 없는 투명감이 있는 광택은 아름답다, 고 저 개인은 좋은 진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판매를 하게 되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그리고 이 진주가 왕후귀족들에게 받아들여질지도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입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이라고 저희들이 역설해도, 당신들이 볼 때는 정체를 알수없는 진주 비슷한 무언가, 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합니다. 판매 이야기, 라고 말했습니다만 이 자리는 말하자면 사전 거래입니다"


지금에야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아코야 진주지만, 전국시대에는 아코야 진주의 거래 따위 전무한 거나 다름없다. 유럽의 왕후귀족들이 기피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승산이 있었다. 중세나 근대 유럽은 진주 조개를 지나치게 남획하여, 진주의 유통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든 것, 콜롬부스가 일본의 진주에 열을 올렸던 것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다.

따라서 예수회가 교회의 장식품으로서 쓰지 않더라도, 왕후귀족들은 진주를 귀하게 칠 가능성은 있다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면, 제가 다음에 무슨 말씀을 드릴지도 이해하시겠군요"


시즈코를 시험하듯이 오르간티노가 말했다. 생긋 웃는 분위기는 무너뜨리지 않았으나, 그것이 마음 속에서 뭘 생각하고 있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게 했다.

그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한 시즈코는, 입구에 있던 소성에게 신호하여 어떤 것을 가져오게 했다. 잠시 후 몇 개의 오동나무(桐) 상자가 올려진 쟁반이 오르간티노 앞에 놓였다.


"왕후귀족들에게 보이기 위한 진주와, 그 진주를 사용한 장식품을 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충분히 구경시켜 주십시오"


시즈코의 말을 들은 오르간티노는 웃음을 떠올렸다. 그녀의 대답은 오르간티노에게 있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다는 말을 들어도, 일본에 있는 오르간티노에게 큰 돈을 움직일 정도의 힘은 없다. 또, 설령 진주를 구입해도 진주가 좋고 나쁜 것은 장식품으로 만들어보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다.

진주와 진주를 사용한 장식품, 두 가지가 있으면 유럽의 왕후귀족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리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연 총명하신 두건재상님이십니다. 그럼 이것들을 이용하여 왕후귀족들의 반응을 살피도록 하지요. 만약, 그들의 마음에 든다면 다시 상담(商談)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본국은 여기서 아득히 먼 장소,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양해해 주십시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대화를 끝으로 시즈코와 오르간티노의 상담은 끝났다. 상담이 끝난 후, 잠시 대화를 나누고 오르간티노는 교회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시즈코의 저택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반 각(刻) 정도 지나자, 시즈코는 남장을 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으아~, 피곤해. 덥썩 물거라고 생각했는데, 꽤나 신중한 태도를 보였네"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서 몸을 풀었다. 남장은 몸의 여기저기를 고정하기 때문에 몸이 굳어버린다. 끝난 후, 몸을 풀어두지 않으면 다음 날에는 비참한 상태가 된다.


"카톨릭(伴天連)은 장사를 싫어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꽤나 이야기에 잘 따라왔네"


나가요시도 기지개를 켜서 몸을 풀었다. 딱딱한 이야기가 영 맞지 않는 그는, 비즈니스 이야기조차 어깨가 뻣뻣해졌다.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으나, 그 시선은 항상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사이조(才蔵)는 항상 시즈코를 감쌀 수 있는 위치에 몸을 두고, 전신의 힘만을 뺀 탈력(脱力) 상태였다. 케이지는 얼핏 빈틈투성이로 보였으나, 한 손이 항상 칼을 쥐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시즈코를 습격해도 잘해봐야 세 사람 중 누군가가 부상을 당하는 정도이고, 운이 나쁘면 반대로 습격한 사람이 베이는 게 고작이다.


그들이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 상담이 끝났을 무렵부터 세 사람은 간자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로부터는 살의(殺意)도 적의(敵意)도 느껴지지 않고, 그냥 흐릿한 안개같은 기척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적지에 들어와 있으면서 이 정도로 존재를 지울 수 있는 실력에 세 사람은 혀를 내둘렀다.

세 사람은 경계하면서도 상대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특정할 수 없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었다. 상대는 토비카토(鳶加藤)이므로.

세 사람이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 토비카토는, 그대로 사라지듯 시즈코의 저택에서 물러났다. 간자가 떠난 것을 알게 되자 세 사람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일을 하나 더 처리할까요"


아무 것도 모르는 시즈코는 편지를 꺼내면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한편, 오르간티노는 교회로 돌아가서 같은 파벌 사람들을 모았다. 예수회는 하나로 뭉친 듯 보이지만 비둘기파와 매파의 두 파벌이 존재한다.

예수회의 비원은 중국(中国, ※역주: 아래 내용을 볼 때 츄고쿠가 아니라 중국을 말하는 듯)에서의 카톨릭(キリスト教) 포교이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라'가 활동의 기본 방침이다. 하지만 그 의견에 찬동하지 않는 인물도 있어, 일본 포교는 항상 의견이 갈렸다.


그런 예수회의 불행은, 매파에 속하는 카브랄(Francisco Cabral)이 일본의 포교 총책임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르간티노는 금후의 포교가 불안하다고 한탄했다고도 전해진다.

그 외에 매파에 속하는 인물이 가스파르 코엘료(Gaspar Coelho)이다. 그는 일본인을 카톨릭(キリスト教)으로 개종시켜 일본을 카톨릭 국가로 만들어, 이웃나라인 중국 침공의 첨병으로 삼을 계획까지 세웠다.

그렇기에 코엘료는 특히 나쁜 평가를 받아서, 같은 예수회에서도 '카톨릭(伴天連) 추방령이 내려진 건 그 사람 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회(※역주: Ordo Fratrum Minorum)나 도미니코 수도회(※역주: Ordo fratrum Praedicatorum)에서 볼 때, 예수회는 온건파,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들의 모임 취급으로, 코엘료가 딱히 별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코엘료 같은 인물이 다수파를 점하는 수도회 쪽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사가 왔을 경우, 일본에서 이만큼 포교가 퍼지지는 않았으리라.


"두건재상님에게 진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빌리면, 이것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듯 합니다"


모여든 비둘기파의 사람들에게 오르간티노는 아코야 진주를 보여주었다. 아코야 진주의 광채에 다들 감탄성을 발했다.


"이러한 것을 만들어내다니, 두건재상님은 신의 영지(英知)을 얻은 사람입니까"


"카브랄 님이 경계하여 만나지 않는 것도 납득이 갑니다. 지금까지 만난 일본인과는 전혀 달라요"


아무리 인공물(人工物)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들은 진주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광채에 매료되어 있었다. 성급한 사람은 이미 어떤 방법으로 시즈코에게 진주를 얻어낼지 계산하고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신에게 바칠 수는 없다, 고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만, 이 진주는 매력적인 보석입니다"


천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에서 진주를 굴리면서 오르간티노는 말했다. 양식(養殖) 진주를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주저하는 그였으나, 유럽의 왕후귀족들에게 파는 것에 대해서는 기피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활동자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르간티노 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의 활동자금을 얻기 위해서도 이 진주는 유용합니다"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청결한 인물이 아니면 만날 수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는데도 자금이 필요합니다"


"슬픈 일이지만, 이 나라에서 포교하기 위해서는 많은 활동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고아(Goa)에 자금을 신청해도 잘 납득해 주질 않습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수도사들이 각자 생각을 말했다. 누더기를 입고 포교하는 것은 카톨릭(キリスト教)에서 올바른 포교 스타일이지만, 일본에서는 대부분 문전박대당했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냄새다. 냄새는 습도에 의해 증폭되기 때문에, 건조한 유럽에서는 문제없더라도, 고온다습한 일본에서는 몸을 청결하게 하지 않으면 심하게 냄새가 난다.

태어났을 때(産湯) 이후로는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는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도 냄새로 위치를 알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에 반해 유럽에서는 목욕하면 병에 걸리기 쉽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선교사인 그들도 원래는 상류 계급 사람들로, 개중에는 군인이나 의사에서 선교사가 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은 카브랄 님을 화나게 합니다"


적응주의(適応主義)에 의해 입욕에 대한 혐오감은 옅어졌으나,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본 포교의 수장인 카브랄이 적응주의에 부정적이라, 선교사들이 청결한 차림새를 하는 것을 혐오하고 있었다.


"포교하기 위해서는 현지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권력자의 비호를 얻지 못하면, 포교도 잘 되지 않지요. 어째서 카브랄 님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시는지"


"그렇습니다. 포교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데,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포교를 위해서라면 설령 혐오하는 것이라도 신의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극복한다. 그 각오로 일을 하고 있는데, 카브랄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모두 부정했다.

그 때문에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카브랄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자자, 여러분.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숨을 고르고 일단 진정하지요"


"하지만 오르간티노 님……"


"여러분의 불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미운 상대를 용서하라, 고요. 카브랄 님은 우리들이 깨닫지 못한 점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감사할 지언정, 미워할 분은 아닙니다"


오르간티노의 말에 전원이 침묵했다. 그가 그렇게까지 말하면 이 이상의 불평은 그냥 화풀이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우선 진주에 관해서는 보류하죠. 몇 개를 고아에 보내서 그 대답을 받은 후 다시 취급에 대해 의논하도록 하지요"


이 이상의 대화는 카브랄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는 자리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오르간티노는, 약간 억지스럽긴 했으나 대화를 종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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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9 1572년 7월 상순



혼간지(本願寺)와 타케다(武田)가 주도하는 포위망은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었으나, 포위되어 있을 터인 오다 영내에는 전시(戦時) 특유의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다 영내에 잠복하고 있는 혼간지의 간자들로부터는, 오다 가문은 타케타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고, 포위망이 좁혀져오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 보고를 들은 켄뇨(顕如)나 그의 측근들은 계책이 성공한 것에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후세에 '오오사카노사유우오타이쇼(大坂之左右之大将)'라고 불리는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의 경우에는 보고를 듣자마자 "이겼다"고 중얼거렸을 정도였다.


"약병(弱兵) 투성이인 오다가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는 타케다와 백 번을 싸워봐야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저번에는 아사쿠라(朝倉)의 멍청이(阿呆)가 발목을 잡아 오다가 도망치게 해버렸지만, 이번에는 패배를 모르는 타케다다. 놓친다는 만에 하나도 있을 리가 없다"


이 인식은 혼간지 뿐만 아니라 반 오다를 표방한 영주나 쇼군(将軍) 요시아키(義昭)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타케다는 30년 이상 다른 나라에게 국토를 침략당한 적이 없고, 반대로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며, 최악의 경우라도 비기는 싸움으로 끝냈다.

반대로 오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오와리(尾張) 병사들은 약졸(弱卒)로서 유명하며, 타케다가 보유한 카이(甲斐)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다섯 명에 필적한다고 야유받을 정도의 평가였다.


"이번에는 타케다에게 맡기자. 우리들이 괜히 설쳤다가 타케다의 행보를 어지럽히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타케다로부터의 요청에 응하여 움직이고, 우리들은 제후(諸侯) 들의 중재(取りまとめ)나 뒷받침 역할(裏方仕事)에 충실하도록 하자"


"옛!"


켄뇨의 지시(下知)를 받은 측근들은 각자 해야 할 일에 착수했다.

그들의 머리에는 타케다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밖에 없어, 예측하지 못한(不測) 사태에 대한 대비 따윈 뇌리를 스치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약병이라도 사지(死地)에 몰리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窮鼠猫を噛む)'라는 속담이 말하듯, 포식자에 대해 이빨을 드러내고 그 목젖을 물어뜯는 경우조차 있다는 것을.


게다가 또 하나의 오산이 있었다. 오와리 병사들은 결코 약병 따위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다르다.

애초에 오와리에는 비옥한 토지가 많아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이 용이했다.

한편, 험준한 산악부에 있는 카이에서는 입에 풀칠하는 데도 상당한 실력을 요구받았다. 즉, 생존 경쟁으로 단련되어 있기에 기초가 되는 저력(地力)이 다른 것이다.

이것에 기인하는 병사 한 명 한 명의 실력차이가 약병의 오와리와 정강(精強)한 타케다라는 평가를 얻는 한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인을 전쟁터로 끌어내는, 비상비군(非常備軍)을 비교한 경우에 한한다.


일반인이라도 훈련에 따라서는 운동선수에 필적하는 신체능력을 얻을 수 있듯이, 기초 능력이라는 건은 단련을 거듭하여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농민을 징병하여 아시가루(足軽)로 삼는 전국 시대에, 그들을 훈련시킨다는 생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직속 수하나 가신들의 친족 등, 제한된 장병 후보들로 한정시킨다면 전투 훈련도 실시되고는 있었다.

이 상식을 노부나가는 깨버렸다. 풍부한 재력을 배경으로 병농분리(兵農分離)를 시행하여, 상비군을 보유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즈코는 이것에 한술을 더 떴다. 신병의 소모율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의 병사 훈련소를 건설하고, 철저한 신병 훈련을 실시하도록 진언했던 것이다.

그 결과, 약병이라고 조롱받던 오와리 병사들은 일변(一変)했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기초 훈련은, 그것을 수료한 병사들 사이에서 '부처(仏)의 1주일, 수라(修羅)의 3개월, 지옥의 반년, 죽음을 바라는 3개월'이라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다만 시즈코의 병사훈련소를 수료한 사람은, 가혹한 경험에 걸맞는 이익을 향유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훈련 수료자는 사관할 곳이 부족하지 않다. 그들의 고용주가 되는 무장들은, 그 훈련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육친의 정이 끼어드는 부모 밑에서 끌어내 적자(嫡子)를 훈련소에 집어넣는 사람까지 있었다.


두번째로 기본적인 수준의 문답이 가능하고 범죄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일체 신분을 묻지 않는 점이다.

장자 상속이 상식인 전국 시대나 에도 시대에서, 가문을 이을 적자(嫡男) 이외의 사람은 사실대로 말하면 불우한 취급이었다.

적자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경우의 예비로서, 집안의 한 방에 감금되어(留め置かれ) '방살이(部屋住み)'라고 불리게 된다.

자신의 가문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도 허락되지 않으며, 가장의 안색을 살피는 더부살이 같은 취급을 받았다.

대가 바뀌어 적자가 가문을 이어도 방살이는 변하지 않는다. 당주가 된 적자에게 키워지면서 당주에게 만에 하나의 일이 있을 경우를 대비할 뿐인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평생 썩는(飼い殺し) 인생이 싫어서 봉공(奉公, ※역주: 다른 사람 밑으로 일하러 감)이나 양자(養子)로 가는 차남 이하의 사람들도 많았다. 예비는 한 명만 있으면 되기에 3남 이하는 '방살이'조차 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적자의 입장에는 책임이 따른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모두 물려받는 대신, 자신의 가족은 물론이고 형제자매를 먹여살리며, 형제가 봉공할 곳이나 양자로 갈 곳을 찾고, 자매가 시집가게 되면 지참금을 줄 책임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보면 양자나 봉공이라는 선택지가 있는만큼 일본은 나은 축이었다.

세계, 특히 유럽에서는 봉공이나 양자로 간다는 생각은 독일의 일부 지역밖에 없었고, 기본적으로 가장에게 평생 키워지며 썩어가던가 약간의 손절금(手切れ金)을 받고 쫓겨나는 게 보통이다.

그 때문에 친지들 사이에 후계자 싸움이 벌어지기 쉽고, 가장이 사망했을 경우에 죽음을 애도하기는 커녕 축복하는 경우조차 있었다.

다만 재산을 상속받은 자에게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형제자매에 대한 책임이 주어졌다.

그 밖에도 성직자가 되는 길이나, 기사로서 왕을 섬기는 길도 있지만, 특권은 유력자들이 독점하고 있어, 자신이 속하는 일족이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마지막 장점은, 훈련 기간중에는 식사와 거처가 보장되는 점이다. 병사로서의 적성이 없어 탈락하더라도, 최종 판단까지의 확인 기간이 존재한다.

그 동안에는 하루 세 번의 식사와 따뜻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어지는 훈련은 가혹하기 짝이 없기에, 단순히 숙식을 위해 지원하는 것은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는다.


반 오다 필두인 혼간지나 아사쿠라, 아자이(浅井)가 암약하고 있을 무렵, 쇼군 요시아키도 또한 비밀리에 획책을 하고 있었다.

죽이 맞지 않아 미묘한 사이가 되어 있긴 하나, 표면상으로는 생글거리며 노부나가를 상대하면서 뒤로는 대결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

1570년의 제 1차 오다 포위망이 붕괴한 지 2년, 제 2차 오다 포위망이 착실히, 그리고 조용히 노부나가의 발 밑으로 다가들고 있었다.




6월 하순, 스크류 선박 시운전을 위해 시즈코는 치타 반도(知多半島) 방면으로 향했다. 시운전이기에 나가라가와(長良川)에서도 문제없었으나, 스크류 선박은 외양(外洋)에서 활약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에서 시운전하는 편이 이치에 맞는다. 반대로 말하면 하천은 스크류 선박을 고집할 필요는 없고, 현재의 일본 배(和船)로 충분히 커버되었다.


"그럼 시작해 주세요"


노부나가로부터 시찰의 전권을 부여받은 시즈코가, 시운전 개시의 신호를 보냈다.

이번에 시운전하는 스크류 선박은 2가지 타입을 준비했다. 1인승과 2인승의 2종류이다.

1인승은 그 이름 그대로 오직 한 명의 승무원이 모든 것을 조작한다.

조타장치와 스크류가 일체화된 현대의 모터 보트처럼 되어있어, 조타와 출력 조정을 모두 혼자서 할 필요가 있다.

2인승은 장치가 나뉘어 있어, 조타수와 출력조정수가 서로 연대하며 배를 조작한다.

3인승 이상으로 만들지 않는 이유는, 장치가 단순하기에 전임(専任) 이외의 승무원은 방해되기 떄문이다. 애초에 조종에 가혹한 훈련을 요구하기 떄문에 잉여 인원 같은 건 둘 여유가 없다.


배의 기본 구조는 양쪽 모두 공통되어 있다. 외연기관(外燃機関)인 스털링 엔진의 회전을 크랭크 기구를 통해 전달하여, 수지(樹脂)로 된 스크류를 회전시키는 구조이다.

각 타입의 차이점은 그 엔진 출력에 있다. 전임의 조종수를 준비할 필요가 있는 대신 장치를 대형화시킬 수 있고, 대형화에 수반하여 출력이 크게 증강된다.

탑재되는 시스템 및 파츠 종류가 공통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 기간이 장기화된 것은, 기어박스와 토크 컨버터에 원인이 있었다.

스크류 선박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스크류의 회전 속도와 회전력을 동적으로 재빨리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변속 기구인 기어박스와 토크 컨버터가 필요해졌다.


탈건 전반에 걸쳐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정지 상태에서 초동(初動)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속도는 늦더라도 강한 힘(토크)가 필요해진다.

한편, 스피드가 실린 상태에서는 회전수가 적으면 그게 저항이 되어버리기에, 작은 힘이라도 고속으로 회전할 필요가 생긴다.

이 상태를 전환하기 위해 기어박스가 필요해지며, 그 전환을 스무스하게 하기 위해 토크 컨버터가 필요해졌다.


다만 토크 컨버터의 개발은 대단히 힘들어서 아직 개발 전망이 서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기어의 변경은 클러치 방식으로 조작하게 해 놓았다.

유압(油圧)에 의한 배력(倍力) 기구가 없기 때문에 기어 체인지에는 힘이 필요하여, 전문의 인원을 필요로 했다.


"이(イ) 형부터 시작해 주세요"


타입의 명칭이 길었기에, 시즈코는 1인승 타입을 이 형, 2인승 타입을 로(ロ) 형이라고 개발 코드네임을 붙였다. 그게 그대로 명칭으로 채용되어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이 형, 시험 시작!"


구호를 맡은 아시가루가 북을 쳤다. 그에 호응하여 이 형의 배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론 수업(座学)이나 모의 기계로 훈련하고 있다고는 해도, 실기(実機)를 만지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움직임이 어색했다.

개중에는 기어 체인지에 애를 먹어 개시 위치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한 배도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이어서 로 형을 시작해 주세요"


"로 형, 시험 시작!"


이 형이 순항 속도에 달했을 무렵, 2인승인 로 형이 시험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임 담당자가 있었기에 스무스하게 속도가 올라갔다.


"순조로운가?"


이 형, 로 형 모두 순조롭게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즉시 실전 투입할 수 있으려나, 하고 시즈코는 낙관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 시험에는 따라붙기 마련인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응? 경고 호루라기(警笛)? 무슨 일이 있었나?"


시험이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갑자기 비상 사태(異常)를 알리는 경고 호루라기가 울려퍼졌다.

즉시 전령이 달려가서 비상 사태의 이유를 시즈코에게 보고했다. 그것은 시즈코도,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쿠키(九鬼) 수군(水軍)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동력이 정지했다고요?"


"옛. 고속 운전중에 돌연 기관이 정지햇습니다. 현재 기술자들이 원인을 특정하는 중입니다"


기어를 고속 회전시킨 상태에서의 이동 시험중, 이 형과 로 형 모두 엔진이 정지하는 트러블이 발생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몇 번이나 일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시즈코도 비상 사태라는 것을 이해했다.


(엔진 정지를 일으켜? 기어 개발에서 놓친 게 있었나?

아니, 그럴 리는 없어. 기어박스의 설계도를 확인했지만, 초짜가 보기에도 비정상이라고 할 만한 기구는 없었어. 게다가 저속 상태에서는 문제없이 동작하고 있어. 기어가 바뀌고 있는 이상 기어비의 차이에 따른 트러블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개발자가 한 척의 기어박스를 분해해서 조사중이었기에, 그 결과에 따라 방침이 바뀐다. 만약, 기어박스에 문제가 있다면, 개수에 얼마만큼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긴박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보고를 목매어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흩어진 것은 그로부터 1각(刻) 후였다.


"……즉, 회전수가 모자라서 기관이 정지했다, 는 건가요?"


보고를 들은 시즈코는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엔진 정지가 반복된 이유는, 스크류 프로펠러의 변형이 상정한 것보다 커서 물의 저항이 커졌기 때문에 고속 기어에서의 토크 부족으로 회전수가 낮아져, 지정된 회전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달리 원인은 없는지 기어박스를 분해해서 조사했으나, 모든 파츠에 고장난 부분은 없었고, 연결부에도 문제는 없었다.


즉시 청취 조사(聞き取り調査)를 했다. 해가 지기 조금 전에 청취 조사를 마친 시즈코들은, 결론은 내일 내기로 하고 그 날은 해산했다.

다음 날, 청취 조사 결과를 확인한 일동은, 금후의 방침을 의논했다.


"이번 시험에서 스크류 선박의 유용성을 실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형, 로 형 모두 저속 회전에서의 시험밖에 하지 못했습니다만, 검증 결과 노(櫂)로 낼 수 있는 속도를 상회하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이번에 발생한 고속 회전시의 문제는 기어비를 조정해서 토크 폭에 여유를 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스크류 선박은 실용 단계에 들어섰다는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모인 일동에게 시즈코가 선언했다. 청취 조사나 기구의 조사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스크류 프로펠러의 변형은 소재를 바꿀 수밖에 없고, 금속으로 만들면 무거워지며 가공도 어렵다.

기어박스의 구조에는 문제점이 없었기에, 저속 기어와 고속 기어 사이에 중간 속도의 기어를 끼워놓는 것으로 해결을 꾀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기구 자체에 큰 트러블이 존재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다, 라는 점에 일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스크류 프로펠러는 외양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기구이다.

그렇기에 노부나가의 기대는 크다. 수 년의 개발을 거쳐 행하는 시험에서 꼴사나운 결과를 냈다간 어떤 벌이 내려질지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고속 회전시의 시험 항목은 전부 제외하고, 저속 회전시의 시험만을 재개했으나, 작은 트러블이나 인원의 숙련도에 기인한 조작 미스 등이 발생하긴 했지만 치명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운전의 시험 결과를 노부나가에게 보고하기 위해 시즈코는 시험 결과서를 정리했다. 노부나가 용이기에 비즈니스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맨 처음에 결론을 기재한다.


하천에서의 소규모 운용에 한정할 경우 현재의 추진기인 노를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임.

단, 노젓는 배(艪櫂船)는 대형화나 일정한 속도에 달하면 즉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형선을 적은 인원으로 운용하여 대량 수송을 실현할 경우에는 원동기 엔진식 스크류 선박이 유리함, 이라는 결론이 되었다.

참고로 노와 스크류 프로펠러 모두 물을 밀어내어 추진력을 얻는다는 원리는 같지만, 노의 경우 저속 소형선에는 적성이 높은 데 반해, 스크류 프로펠러는 레저 보트에서 수송 탱커까지 폭넓게 커버할 수 있다.


"현재의 하천 수송에서는 이점은 적다. 해운에서의 대량 및 고속 수송을 실현하는 것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노부나가가 떠올릴 의문의 대답을 시즈코는 가능한 한 시험 결과서에 기재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의문을 느끼면 폭풍처럼 질문을 던져오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기 때문에, 노부나에게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은 다들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보고서를 스스로 제출한 기술자도 몇 명 있었으나, 보고서가 퇴짜를 맞은데다 질문으로 뒤덮인 종이 다발도 따라오고, 거기에 대답은 아직이냐 하고 화살같은 재촉이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퍼진 후, 시즈코가 쓰는 것이 불문율(暗黙の了解)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에 기술자들은 의외로 시즈코에게 꼼짝도 못 한다.

어떤 기술자는 말한다. 노부나가의 질문은 단순히 대답을 말하면 되는 게 아니라, 노부나가 본인을 납득시킬 이론을 세워서 말해야 한다, 고.

본인이 기술을 완벽히 습득해도, 그것읋 타인이 이애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는 다른 재능이다.


"으ー음, 이 정도면 되러냐. 왠지 요즘, 중간 관리직 같은 입장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이라고 해두는 게 좋겠지"


다 쓴 두꺼운 보고서를 시즈코는 운반용의 목제 서류 케이스에 넣었다. 이후에는 몸종(小間使い)들이 노부나가에게 전달될 때까지의 처리를 맡아준다.

서류 케이스를 쇼우(蕭)에게 건네며 노부나가에게 발송할 것을 의뢰한 후,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 몸을 풀었다.


"후이~, 다음은 개량형 스털링 엔진과 고로(高炉)의 확인이네. 그쪽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으니, 나는 시험 날짜까지 느긋하게 지낼 수 있겠어"


"손이 비셨다면, 이 서류의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몸을 쭉 펴고 있던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과 동시에, 어느 틈에 바로 옆에 서 있던 아야(彩)가 산더미같은 서류를 내밀었다.




한 마디로 고로라고 해도, 선철(銑鉄)을 만드는 '제철(製鉄)'과, 제철된 철을 강철(鋼)로 제련(精錬)하는 '제강(製鋼)'의 2단계 운용 공정이 존재한다.

'선철'은 기본적으로 가늘고 긴 자라목(とっくり) 틀(型)의 머리 부분(頂)부터 코크스와 철광석을 번갈아가며 투입해 고로 내부의 열로 철광석을 녹이는 작업이다.


고로에 투입된 코크스는, 고로 하부에서 유입되는 열풍에 의해 연소한다. 고로에 따라서는 보관 환원제(保管還元剤)로서 미분탄(微粉炭) 등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연소된 코크스는 환원 가스가 되는 일산화탄소나 수소를 발생시킨다. 이 환원 가스가 고로 내부의 상승기류가 되어 철광석을 녹임과 동시에 철광석에 포함되는 불순물을 제거(환원)한다.

즉, 코크스는 철광석을 녹일 수 있는 온도를 고로 내부에 형성하는 것과, 철광석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환원제라는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환원 가스에 의해 불순물이 제거된 용선(溶銑, 녹은 철)은, 그대로 중력을 따라 고로 바닥으로 흐른다.

그리고 고로 하부에 있는 연소중의 코크스와 접촉하여, 코크스가 발열할 때 발생하는 탄소와 반응하여, 탄소를 수 퍼센트 포함하는 철이 되어 고로 바닥 부분(湯溜まり部)에 모인다.,

이 때, 철광석에 포함되는 불순물은 용선 위에 층이 되어 모인다. 이것을 슬래그(slag)라고 하며, 녹은 철과는 별도로 고로에서 배출된다. 슬래그는 제철시의 부산물로서 재이용된다.


철광석에 포함되는 산소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용해(溶解)까지의 프로세스를 일거에 처리할 수 있는 고로의 원형은, 14~15세기에 독일의 라인 강 지류에서 탄생했다.

초기에는 물레방아(水車)로 풀무(ふいご)를 움직여 송풍량(送風量)을 늘리고, 열원(熱源)과 환원제(還元剤)로 목탄(木炭)을 이용했다.

연료로서 코크스가 이용된 것은 18세기 초엽이기에, 그 때까지 많은 나무가 벌채되었고, 결과적으로 삼림이 파괴되어갔다.

그 밖에도 경작지(田畑) 개간(開墾) 등의 이유는 있으나, 고로에 의한 철 생산이 유럽의 삼림 감소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 고로가 탄생한 지 약 300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고로가 근대적인 화학 플랜트보다 우위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한 설비로 불순물의 제거를 하면서 용선을 일거에 수행할 수 있는 점이다.

또, 고로는 다른 화학 플랜트와 달리 수명이 길다. 매일 고온 환경에 24시간 노출되는 고로이지만, 고로 내부의 벽돌을 십수년마다 갈아주기만 하면 조업(操業)을 계속할 수 있다.

24시간 365일 연속 조업하는 고로에 있어, 수명이 길다는 것은 필수라고도 할 수 있는 요구이다.

다른 화학 플랜트의 경우, 파손 부분에 따라서는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도 고로는 우위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걱정되네"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 시즈코는 불안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고로의 시운전은 한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의 단독 시험이 수행된 후, 마지막으로 결합 시험이 수행될 예정이다.

오늘은 고로에서 중요한 설비인 송풍기(送風機), 그 동력이 되는 스털링 엔진의 시운전 날이다.

스케줄에 여유를 두고 있다고는 해도, 시운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후의 시험 날짜가 밀리게 되어, 마지막 시험 공정인 고로의 결합 시험 날짜가 늦어져 버린다.

하나라도 스케줄이 늦어지면 전체가 늦어지는 크리티컬 패스(critical path)이기에, 지금까지와 달리 시즈코도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었다.


"대장(大将)이 불안해하면 아랫사람도 진정하지 못한다. 듬직한(どっしり) 태도를 보여라"


안절부절 못하는 시즈코를 아시미츠가 다독였다. 그는 시즈코와는 반대로 평소의 침착냉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심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시미츠 쪽이 침착해보였다.


"그렇게 말해도. 아, 맞다. 그쪽의 소결(焼結) 시험은 끝났어?"


"……그건 내가 없어도 문제없다. 게다가 철광석의 분쇄부터 시작하니까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


철광석은 사이즈가 획일적이지 않기에, 그대로 고로에 장입(装入)하면 막힘(目づまり)을 일으킨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철광석을 일단 분쇄하여 가루로 만들고, 마찬가지로 가루로 만든 코크스와 십수 퍼센트의 석회석(石灰石)을 섞어 구워서 형태를 통일하는 공정을 소결이라고 한다.

소결은 하지 않지만 형태를 맞추는 것은 석탄 코크스나 바이오 코크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밑준비들을 끝낸 후에야 철광석이나 코코스 종류가 고로에 투입된다.


"바이오 코크스의 이용가치가 얼마나 될지, 는 일찌감치 실증시험을 마쳐두고 싶네"


환원제가 되지는 않지만 열분해 가스의 연소 효과로 고로 내부의 온도를 석탄 코크스만 쓸 때보다도 높게 올릴 수 있어, 결과적으로 용해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만 어떤 비율로 대체할 수 있는지, 이것만큼은 실증시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현대와는 달리 시험용의 고로를 제조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것 뿐만이 아니겠지. 바이오 코크스가 있으면 스털링 엔진의 열원으로도 쓸 수 있다. 작동 가스가 공기일 때 1kw의 발전이 가능한 독일제만큼 고품질의 것은 바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헬륨 가스가 대세인 와중에 독일은 공기로 하고 있으니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덕분에 우리들은 편하게 된 거지. 이 자리에서 헬륨 가스의 생성은 너무 번거로우니까"


최대 출력 1kw 클래스에서 작동 가스가 공기인 스털링 엔진은 실용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스펙 그대로의 수치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출력은 얼마간 떨어질 것이다.

약 2백 년 전의 설계인 엔진이 현재, 특히 군용 잠수함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디젤 기관이나 원자로보다 정숙하고, 그것들이 내는 폐열(廃熱)로 동작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대 일본의 소류(そうりゅう)형 잠수함에는 AIP(비대기의존(非大気依存)) 추진기관이라 불리는 스털링 엔진이 탑재되어 있다.

하지만, 소류형 잠수함에 스털링 엔진이 탑재된 이유는, 효율적인 연료전지가 없어서 수소를 저장할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만에 하나의 사고를 고려하여 연료전지의 탑재가 보류되었기 때문이지만.


"고로가 완성되면, 드디어 강철(鋼)의 생산에 착수할 수 있어. 공업품은 철보다 단단한 강철이 필수니까 큰일이야. 그리고, 부품을 만드는 건 처음에는 수작업이라는 부분도…… 호브(hob) 판이라던가"


호브 판이란 톱니바퀴의 톱니 절삭(歯切り) 가공에 쓰이는 톱니 절삭기(歯切り盤)의 일종이다. 톱니 절삭 가공이란 호브라고 불리는 전용의 절삭공구를 회전시켜, 톱니 가공전의 부재(톱니바퀴 블랭크(blank)라고도 한다)에 톱니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옛부터 톱니바퀴는 중요한 부품이긴 했으나, 호브 판을 사용한 공업적인 생산이 가능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그 때까지 톱니바퀴의 제조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은 수작업이니까. 균일한 사이즈의 톱니바퀴를 대량으로 원한다면 꼭 호브 판이 필요해지지"


"톱니바퀴는 중요한 부품이니까. 철제의 호브로 놋쇠(真鍮) 절삭용의 호브 판 제작은 성공했지만, 역시 철제 톱니바퀴가 필요해. 목제 톱니바퀴는…… 호브 판보다 실톱(糸鋸)이지만"


철제의 호브로 놋쇠 톱니바퀴를 제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철제의 톱니바퀴는 강철제의 호브가 필요해진다. 목제는 강도가 다르기에, 호브 판을 쓰기보다 실톱으로 자르는 쪽이 낫다.


"지금은 수작업이 많으니까, 덕분에 기어박스를 양산할 때는 꽤나 부담을 줘버렸어. 뭐, 고로가 완성되면 철제 호브와 같은 걸 강철로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여전히 편하다고 하면 편한 걸까"


(그 최초의 수작업이 제일 고생스러운 건데…… 뭐 시즈코가 고생하는 건 아니니 괜찮은가)


어떤 업계에서도 선구자는 항상 고생한다. 하지만 호브 판이 있으면 톱니바퀴의 양산이 가능해져서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에, 앞을 내다본다면 필요불가결한 공작기계다.


"공작기계는 만드는 것보다 사양 통일이 귀찮지만 말야. 자, 슬슬 스털링 엔진 준비가 끝난 걸까?"


헛기침을 한 시즈코는 억지로 화제를 바꾸어, 호브 판 등을 표준화나 규격화했을 때의 지긋지긋한 기억을 머릿속에서 억지로 털어냈다.

뒤를 잇는 사람들이 곤란하지 않도록, 시즈코는 기술자 마을에서 쓰이는 것은 전부 표준화나 규격화시켰다.

이에 의해 다음 세대는 기술의 습득을 효율좋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오감이나 몸으로 기억한 것이 중요하지만.

하지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쓰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다.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즈코에게 그런 작업은 처음에 가까운 체험이라는 것도 지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표준화나 규격화의 서류를 써서 장인들과 회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시 회의, 라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이 고생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번이었기에, 시즈코의 마음고생은 헤아릴 수 없다. 그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싫다는 딜레마를 품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주군, 방금 보고가 들어왔는데, 사반각(四半刻, 약 30분) 후에 시험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약간 뾰로통해(やさぐれ) 있을 때, 시즈코의 의문을 들은 겐로(玄朗)가 그녀의 지시를 받기도 전에 곳곳에 확인하러 가서 그 결과를 시즈코에게 보고해왔다.

우수한 부하가 있어서 행복하네, 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표정을 조였다.


"좋아요. 그럼 시간이 되면 이동하죠"


사반각 후, 시즈코들은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그 무렵에는 어딘가 가 있던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도 돌아와 있었다. 나가요시(長可)의 옷이 약간 피로 지저분해져 있었는데, 씨름(角力)할 때 묻었다는 이유에 시즈코는 납득하고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실제로는 여기저기 숨어있던 간자들을 찾아내서 샌드백처럼 두들겨패며 심문했을 뿐이었지만.


시험장에 도착하자, 이미 스털링 엔진의 실린더가 덥혀져 있었다.

이번에 시험에 쓰이는 스털링 엔진은 2피스톤 엔진이었다.

2개의 피스톤과 각각에 연결되어 있는 가열부(加熱部)와 냉각부(冷却部), 그리고 일시적으로 작동 유체(作動流体)를 저장하는 재생기(再生器) 등 네 가지가 주된 부품이다.

작동 유체란 다른 이름으로 동작 가스(動作ガス)라고도 불린다. 외연기관은 외부에서 얻은 열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변환할 필요가 있으며, 이 변환시에 쓰이는 물질이 작동 유체라고 불리는 것이다.

스털링 엔진에서는 기본적으로 대기압(大気圧)의 공기, 고성능의 경우에는 압축한 헬륨 가스나 수소 가스가 이용된다.


이번에는 헬륨 가스나 수소 가스가 아니라 공기 가스를 이용한 스털링 엔진이다.

동작은 우선 가열부에서 가열된 공기가 크랭크 기구 중 고온(高温) 측에 있는 피스톤과 실린더를 움직이고, 이어서 고온의 공기가 냉각부로 이동하여 냉각(冷却) 측에 있는 피스톤과 실린더를 움직인다.

그 후에는 작동 유체가 가열과 냉각을 반복하는 것으로 고온 측과 냉각 측 각각의 피스놑의 왕복 운동이 커넥팅 로드(connecting rod)를 통해 크랭크의 회전 운동으로 변환된다.


크랭크의 회전 운동은, 출력축(出力軸)을 통해 기어박스로 전달된다.

기어박스는 속도를 낮추어서 토크를 올리거나, 속도를 높여 토크를 낮추는 등 용도에 따라 구별하여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는 송풍기를 위해 고속의 저 토크 기어박스가 필요하다.

기어박스의 톱니바퀴의 조합을 송풍기용으로 설정하고, 마지막으로 기어박스의 출력축에서 날개(羽根車)에 회전 운동을 전달하여 고로 내부로 열풍을 보낸다.


이만큼 대규모의 설비를 투입해서 가능해지는 것이 고로에 병설(併設)되는 열풍로(熱風炉)이다. 열풍로에 의해 고로 내부의 온도가 높아져, 출선량(出銑量)이 비약적으로 증대된다.

송풍하는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만, 현대처럼 1천 도를 넘는 열풍을 송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하루에 수 톤의 철을 생산할 수 있으니, 전국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생산력이다.


고로는 고성능이지만 사철(砂鉄)을 쓸 수 없는 결점이 있다.

이것은 사철에 포함된 티타늄이 고로 내부에서 가열되면 산화 티타늄이 되어, 녹은 철의 흐름을 저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고로에는 티타늄이 적은 철광석 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철광석은 일본에서는 산출량이 적어서 해외의 산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산출국은 중국이지만, 중국의 철광석은 철 함유량이 적기 때문에 가성비가 나쁘다.

따라서 인도, 베트남, 태국 등 복수의 국가에서 철광석을 수입했다.

전국 시대에 일본으로 철광석 및 석탄의 수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남만(南蛮) 무역에 큰 권리를 가지고 있는 예수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걸맞는 은(銀) 막대기(延べ棒) 필요해졌지만.


"의외로 은이 많이 들었네. 뭐 고로가 성공하면 그들에게도 이익이 있으니, 선행투자라는 거겠지만"


얼핏 장사와는 관계없어보이는 예수회였으나, 확실히 남만 무역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각국과 유럽, 또는 일본과의 교역로는 예수회와 그들의 뒤에 있는 카톨릭 교회가 움켜쥐고 있다.

따라서 교역으로 배가 나갈 때마다 상인들은 그들에게 돈을 내야 한다. 좋게 말하면 헌금, 나쁘게 말하면 교역료를 이용하는 보호비(みかじめ料)이다.

게다가 그들은 아시아에 점재(点在)하는 항구나, 아시아 지역 최대의 노예시장인 마카오 등에서 일정한 권익을 가지고 있었다.

즉, 시즈코가 남만 무역을 하면 할수록, 예수회는 상인들로부터 헌금을 징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큰 돈이 품에 들어오니, 교역이 왕성해지게 하기 위해서라면 배포좋게 투자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즈코가 수출품을 늘렸기에 교역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예수회의 재정은 점점 좋아졌던(右肩上がり) 것이다.


"그런 것보다, 슬슬 스털링 엔진이 움직인다"


"어이쿠 이런. 지금은 눈앞에 집중해야지"


아시미츠의 지적에 사고의 늪에서 되돌아온 시즈코는, 쓸데없는 잡념을 머리에서 털어버렸다. 시선을 스털링 엔진 쪽으로 돌리자, 몇 명이 출력축에 있는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스털링 엔진은 작동 유체를 덥히기만 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피스톤을 움직여 작동 유체의 흐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작동 유체가 일정한 온도차에 도달하지 않으면 스털링 엔진은 외연기관으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턱에 손을 대고 기술자(職人)들을 지켜보았다. 그게 약간 압박감을 주었는지, 기술자들은 작은 목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며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30회 정도 핸들을 돌렸을 무렵, 드디어 스털링 엔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옷"


나가요시가 감탄성을 발했다. 케이지나 사이조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스털링 엔진에 시선이 못박혀있었다. 조금 후 출력이 필요 수치에 도달했을 무렵, 기어박스를 통해 송풍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릿했던 풍력이, 금방 땅바닥의 흙먼지를 날려버릴 정도의 파워가 되었다. 실제로 열풍을 보내는 시험은 다른 날에 할 예정이었으나, 현재 상황을 보는 한 딱히 문제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녀의 확신은 옳았다. 고로의 온도를 높이는 열풍로의 시험은, 최종 시험까지 큰 문제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고로에 관한 시운전을 했으나, 하나같이 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작은 문제가 쌓여서 며칠 시험 예정이 어긋났으나, 만회할 수 있는 범위였다.

스크류 선박의 트러블에 비하면 무서울 정도로 문제랄 만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고로의 시험은 최종 시험까지 종료되었다.

관계자들에게 치하의 말을 하고 성대한 기념 파티를 연 후, 모든 보고서를 노부나가에게 제출한 시즈코는 잠시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휘이ー, 한때는 어떻게 되나 싶었어"


"고생했다, 시즈코"


자기 방의 책상에 엎드려서 휴식을 취하는 시즈코에게 아시미츠가 위로의 말을 했다.

고로의 시험이 끝나면,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출전식(初陣式)까지 딱히 할 일은 없다.

그는 할아범(爺)에게서 스파르타 식의 특훈을 받고 있기에 이 자리에는 없지만, 소문(風の噂)으로는 그런대로 봐줄만해지고 있다고 한다.

오다 가문의 적자(嫡男)로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 하기를, 이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아시미츠 아저씨도 수고했어요ー. 이것저것 손이 미치지 않는 부분을 도와줘서 고마워요ー"


시즈코도 아시미츠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신경쓰지 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였으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다시 책상에 엎드린 시즈코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고로에 대한 향후의 일을 생각했다.


제철이 가능해지면 다음에는 제강(製鋼)을 하고 싶지만, 시즈코에게는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제철을 하기 위한 전로(転炉)는 내화(耐火) 벽돌과 마찬가지로 딜레마를 품고 있다.

즉, 강철을 만드는 전로를 위해 강철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전로를 받치는 지주(支柱)와 움직이기 위한 횡봉(横棒)이 강철이 아니면 강도가 부족하여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 때문에 시즈코는 한 가지 궁리를 해야 했다. 고로에서 만든 철을 일단 성형하여, 일본도처럼 두들겨서 필요한 탄소량을 함유한 강철로 바꾼다.

하지만 용선(溶銑)을 그대로 성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phosphor)이나 유황이 섞여 있어, 강철로 만들어도 약해져 버린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용선 예비처리(溶銑予備処理)라고 하는 공정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용선에 함유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기본적으로는 탈규(脱珪), 탈인(脱リン), 탈유황(脱硫黄) 세 가지를 한다. 그러기 위해 투입되는 재료는 석회(石灰), 산화철(酸化鉄), 형석(蛍石) 등이다.

이것들을 용선에 투입하여 교반(攪拌, ※역주: 휘저어 섞음)한다. 이 때, 산소는 투입하지 않는다. 산소를 투입하면 용선이 고온이 되어 결과적으로 탈인 반응이 둔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석회나 산화철은 입수하기 쉽고, 형석도 일본에서 산출(기후(岐阜) 현(県) 히라이와(平岩) 광산(鉱山) 등)되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


용선 예비처리를 한 철을, 일본도의 기술로 제련하여 강철로 만든다. 그것들로 전로를 만들어야 간신히 강철의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품질의 강철을 추구한다면 전로로 제련한 후, 강철에 함유된 성분의 농도를 조정하는 2차 제련 공정을 할 필요가 있다.

2차 제련은 제강의 최종 공정에 해당하며, 그리고 강재(鋼材)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공정이다.

현대에서는 고로에서 제련, 용선 예비처리, 전로에서 제련, 2차 제련이라는 4공정이 고급 강철을 제조하는 표준적인 공정이다.


"고로에서 제조한 철을 제련해서 만든 강철이라"


고로의 시험은 문제없이 종료되었다. 슬래그가 꽤 나왔지만, 처음부터 슬래그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없이 철을 녹여서, 전로는 아니라도 제련하여 강철을 만들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석탄을 코크스로 변경하는 코크스 로(炉)나, 고로에서 나오는 슬래그도 부산물로서 재이용된다.

특히 코크스 로는 다양한 부산물이 손에 들어온다. 연소 배기가스(燃焼排ガス)를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면 공해를 일으키기에, 배출된 가스는 정제(精錬)하여 깨끗한 배기가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


코크스 로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연소실(燃焼室), 벽돌로 된 벽으로 만들어진 탄화실(炭化室)이 교차로 배치된 로이다.

연소실에서의 열이 탄화실에 있는 석탄을 가열한다(蒸し焼き). 생성된 코크스는 고온이기에 고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냉각된다.

냉각에 물을 사용하면 품질이 떨어지므로, 건식(乾式) 소화설비(消火設備)라 불리는 장소에서 불활성(不活性) 가스(질소 등 화학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 기체)를 사용하여 냉각시킨다.

이 때 발생하는 고온 가스를 사용하여 발전용의 터빈을 돌리는 증기를 생성하는 시스템도 있다.


석탄을 가열하면 휘발 성분이 가스가 되어 방출된다. 가스에는 거친(粗) 경유(軽油)나 황산(硫酸), 암모니아 등의 유효 성분이 함유되어 있기에, 그대로 밖으로 방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먼저 고온의 가스를 암모니아수로 냉각시킨다. 코크스 로 가스에 함유된 황화수소(硫化水素)나 염소(塩素) 가스를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데는 농도가 옅은(希薄) 암모니아수가 가장 좋다.

그 후에는 극약(劇薬)이 제거된 가스에서 타르나 거친 경유, 황산, 암모니아를 정제하고, 남은 가스는 코크스 로의 연료로 재이용한다.

참고로 황산과 암모니아를 사용하여 질소 비료의 황산 암모늄(다른 명칭은 유안(硫安))을 생성하거나, 그것들을 재료로 질산(硝酸) 암모늄(다른 명칭은 초안(硝安))을 생성할 수 있다.


유안은 비료로서 중요하지만, 초안은 비료 외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초안은 물과 섞으면 흡열(吸熱) 반응을 일으키기 떄문에, 순도(純度)를 일부러 낮춘 초안과 물을 섞어서 얼리면 휴대용 보냉제(保冷剤)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초안은 조금만 취급에 실수하면 폭발하여 주위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다. 그 떄문에 시즈코는 순도를 극도로 낮춘 초안을, 휴대용 보냉제로서 취급하는 것에만 한정시키려고 생각했다.


"완성도는 좋은 느낌이네. 이거라면 전로의 지주도 반년 정도면 완성될까?"


"글쎄. 소량은 잘 풀려도 대량 생산이 되면 성공하지 못하는 케이스는 자주 있지"


"뭐, 그건 조금씩 생산량을 늘려가며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확인해 봐야지"


고로의 시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걸로 완료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기술은 나날이 진보한다. 지금의 고로로는 철의 품질이 나쁘다. 지금부터 수십년, 어쩌면 백년 이상을 들여 천천히 연구하며 고품질의 철이나 강철을 생산하게 된다.

철이나 강철의 품질이 높아지면, 지금은 나무로 만든 배도 언젠가 철로 바뀐다. 철로 바뀌면 지금보다 더욱 대형의 배를 건조할 수 있어, 물류도 크게 변하게 된다.

그러나 고품질의 강철은 동시에 강력한 대포를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고로나 전로의 기술을 응용하여 폭약(爆薬)을 제조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하지만 기술이란 건 어차피 도구이며, 평화를 위해 쓰일지, 아니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위험한 것이 될 것인지, 그것은 쓰는 쪽의 의사에 의해 좌우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버-보쉬 법(Haber-Bosch Process)이 있겠다.

하버 보쉬 법이 탄생하기 전까지, 인류는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 토지의 생산력에 맞는 인구로 억제하지 않으면 등차수열(等差数列) 적으로 증가하는 생활 자원이 반드시 부족해진다는 생각)"에 의한 빈곤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버-보쉬 법에 의해 암모니아의 합성이 가능해지자 많은 화학 비료가 탄생하여, 농작물의 수확량 등 생활 자원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에 의해 인류는 처음으로 '맬서스 트랩'을 극복, 인구는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만약 현대에서 하버-보쉬 법에 의한 암모니아 합성이 불가능해졌을 경우, 약 30억 명이 굶어죽을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번영에 크게 공헌한 하버-보쉬 법이지만, 암모니아의 합성은 동시에 폭약의 원료가 되는 질산의 대량 생산도 가능하게 했다.

현대에서는 '오스왈트(Ostwald) 법(암모니아 산화법(酸化法)이라고도 한다)'에 의한 공업적 제법이 쓰이고 있는데, 이 때 암모니아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오스왈트 법이란 암모니아를 산소와의 혼합 기체로 만들어, 백금과 백금 광석에 함유된 불순물의 하나인 로듐(rhodium)을 1할 정도 섞은 것을 촉매(触媒)로서 가열한다.

그렇게 하면 일산화질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질소로 변한다. 이 이산화질소를 온수(温水)와 반응시켜 질산과 일산화질소를 발생시킨다.

마지막 공정에서 발생한 일산화질소는 다시 이용되어, 다시 이산화질소가 되어 질산과 일산화질소가 된다.


이렇게 오스왈트 법을 이용하면 암모니아와 공기(순수한 산소 쪽이 생산량은 늘어난다), 온수가 있으면 폭약을 제조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정세에 영향받지 않고 자국내에서 질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기에, 지금까지 자원이 떨어지면 끝났던 전쟁이 장기화되게 되었다.

이 떄문에 하버-보쉬 법은 '평시(平時)에는 비료를, 전시(戦時)에는 화약을 공기에서 만든다'고 형용되게 되었다.


"일단 품질을 향상시키는 건 당연하다 치고, 당분간은 민간에서 사용해서 검증한 후에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되려나ー"


그걸로 문제없다고 말하듯 아시미츠는 시즈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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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8 1572년 5월 상순



피자의 역사는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피짜라고 불리는 그 요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평평하게 늘린 빵반죽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어 구워내는 심플한 요리다.

원반 모양의 평평한 빵은 세계 각국에 보이지만, 위에 토핑을 얹어 굽는다는 방법이 현재의 피자의 조리법과 닮은 것 때문에 이집트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의 피자에 가까운 요리가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후반, 나폴리의 노점이었다.

당초에는 서민의 음식으로서 친숙해진 피자였으나 세련되고 세분화되어가서, 19세기 초에는 피자 전문점이라는 의미의 피체리아(pizzeria)가 등장하는 등, 이탈리아의 폭넓은 층에 침투해 갔다.

피자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요인은 토마토에 있다. 피자에 빠질 수 없는 재료인 토마토는, 스페인 인이 대항해 끝에 남미의 잉카에서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에는 유럽에 토마토를 가지고 돌아갔으나, 당초에는 식용으로 생각되지 않았었다.

토마토와 같은 가지과의 식물 벨라도나(Belladonna)가 유럽에서는 유독 식물로 유명했기에 오로지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여기서 기근이 이탈리아를 덮친다. 식량 확보에 고심하던 서민들은, 누구도 쳐다보지도 않던 토마토의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굶어죽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해 토마토를 먹어보니 정말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이탈리아 요리에 붉은색을 곁들이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야기를 피자로 되돌리자. 당초에는 나폴리의 빈민층이 먹는 것이라는 위치였던 피자였으나, 이탈리아 왕비 마르게리타(Margherita)에게 헌상되어, 그녀가 사랑했기에 일반에 퍼져나갔다.

왕비가 좋아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인 마르게리타 피짜는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다. 토핑은 심플하니 세 종류, 바실리코(basilico, 바질(basil)),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소스만을 사용한다.

그녀가 이 요리를 사랑한 이유로, 세 가지 토핑이 갖는 색깔이 이탈리아 국기를 연상케 한 점이다. 심플하기에 얼버무림이 통하지 않는,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 시험받는 나폴리 피짜의 임금님이다.


여담이지만, 피자와 피짜는 전혀 다른 요리이다. 그냥 본국풍의 발음이 피짜인 것이 아니라, 재료부터 먹는 방법까지 다르다.

피짜가 이탈리아 요리인 데 반해, 피자는 피짜를 기초로 미국에서 개량된 미국 요리이다.

피짜가 원칙적으로 한 사람당 한 장을 먹는데 대해, 피자는 한 장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일이 많다.

도우(dow)라고 불리는 반죽의 맛과 식감을 주역으로 삼는 피짜에 대해, 피자는 토핑이야말로 메인이며, 반죽은 곁들이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피자에서는 정석적 토핑인 옥수수나 감자, 마요네즈는 미국에서조차 이질적으로 비치는 듯 하다. 원조인 이탈리아인이 일본의 피자를 피짜라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강변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야기다.


그런 피짜를 16세기의 일본에서 재현해보인 것이 시즈코였다. 이유는 물론 노부나가이다.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는 오와리(尾張)에서 나는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의논한 결과,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鶴の一声)으로 시작되었다.

현대에서는 다양한 토핑이 올라가 있는 피자였으나, 그만한 재료를 준비하는 데는 수고가 든다. 그래서 나폴리 피짜의 대표이자 심플하고 맛있는 마르게리타 피짜가 선택되었다.


그래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질은 재배가 쉽기 때문에 그다지 수고가 들지 않지만 문제는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이다. 특히 모짜렐라 치즈는 어렵다.

모짜렐라 치즈는 물소(水牛)의 젖을 원료로 만들지만, 전국시대의 일본에 물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수입해서 사육하려고 해도, 다습한 환경인 일본에서는 대단히 손이 많이 가서 어렵다.

하지만 물소 젖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대용은 가능하다. 소에서 짠 우유에 레몬즙과 약간의 소금을 넣어 끓이면 모짜렐라 치즈의 대용품은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리코타(Ricota) 치즈에 가깝지만, 이것저것 따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년 내내 토마토를 입수 가능한 현대와 달리 딱 좋게 익은 토마토가 열매를 맺고 있을 리도 없어서, 케첩에 양파와 마늘, 가루치즈, 소금과 후추를 섞어 토마토 소스의 대용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이자 최대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즈코는 피자의 반죽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었다.


"설마 이 나이에 피짜를 구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으로 미츠오(みつお)에게 물어봤더니, 운좋게도 그는 피짜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다. 어째서 경험이 있냐고 하면, 매번 그렇지만 부업의 아르바이트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일했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어업을 돕거나, 농가에서 수확을 돕거나, 실로 경험이 풍부한 미츠오였다.


"하지만, 피짜 아궁이에서 굽는 쪽을 경험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그 가게는 본격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서요. 사장이 일부러 이탈리아까지 벽돌을 사러 갔었다고 합니다. 바질도 자택에서 재배하고, 모짜렐라 치즈를 들여올 곳을 찾는 등, 꽤나 진지했죠ー"


"이것저것 경험하셨군요"


"……그 시절은 불경기였거든요. 샐러리맨의 박봉으로는 딸을 고생시키지 않을 만한 수입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미츠오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에 아시미츠(足満)가 손을 얹고 위로했다. 시즈코 자신은 현대의 노동을 거의 해본 적이 없지만, 생계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쪽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먹을 수 있다는 거군요. 대뱃살(大トロ)을 마음껏 먹다니, 저쪽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니까요"


"참치도 그렇지만, 다양한 생선이 적당한 가격으로 손에 들어오는 건 좋지"


어두운 화제로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생각했는지, 미츠오는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말했다. 아시미츠도 시즈코도 쓸데없니 무거운 분위기를 끌고 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에게 맞장구를 쳤다.


"참치는 인기가 없으니까요. 뭐 피빼기와 신경빼기(神経抜き), 그 후에 바닷물로 만든 얼음을 만들지 못하면 속살이 익어서 맛없어지니까요"


참치는 도미(鯛) 등 다른 생선과 마찬가지로, 죠몬(縄文) 시대부터 식용으로 쓰인 친숙한 생선이다. 하지만, 참치는 에도(江戸) 시대 중반까지는 인기없는 생선이었다. 그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쿄(京)는 도미 등 흰살생선을 최고로 치고, 그 이외의 생선은 하급어(下魚)로 취급했다. 참치는 붉은살 생선이기에 당연하지만 저급어(低級魚)로 보았다.

다음으로 에도 시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참치는 '시비우오(鮪)'나 '시비(宍魚)'였는데, '죽는 날(死日)' 등 죽음을 연상시키는 단어와 발음이 겹쳐, 싸움 전에 길흉을 따지는(験を担ぐ) 무사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또, 붉은 살이기에 짐승 고기와 닮았다고 하여 '육(宍, 짐승 고기라는 의미)'의 한자가 쓰여, 옛부터 있는 육식 금지의 사상 때문에 기피되기 일쑤였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도 참치는 저급어 취급으로, 당시의 시(川柳) 중에 '참치장수(鮪売り)가 간단하다며(安いものさと) 나타(鉈)를 꺼내(鉈を出し)' (※역주: 제대로 된 식칼이 아니라 나타, 그러니까 마체테 비슷한 칼로 마구 썰어 팔았다는 의미로 보임)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참치가 값싼 생선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에도 시대 후기가 되어 쥠초밥(握り寿司)이 등장하자, 그 때까지 밭의 비료로 취급받던 참치의 지위가 겨우 향상되었다. 그리고, 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어(高級魚)의 반열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 고급어의 반열에 들지 못했던 것은, 참치를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야케(やけ)'라 불리는 선도 열화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참치는 배 위로 올라오면 심하게 난동을 부려 체온이 금방 40도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참치의 살이 변색되어버려, 겉보기와 맛이 열화된다.

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차게 식히지 않으면 피 속의 효소(酵素)가 근육을 분해하여 산화가 촉진되어 시큼한 맛이 된다.

에도에 도착할 무렵에는 겉보기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부는 상온(常温)에서 며칠 방치된 것처럼 변한다. 이 때문에 참치는 '맛없는 생선'이라 생각되었다.


전국시대, 참치의 미야케(身焼け)를 일으키지 않고 운반하려면, 주낙(延縄) 어법으로 낚아올린 참치에 피빼기와 신경빼기를 한 후, 바닷물 얼음에 재워 항구로 가지고 돌아올 필요가 있다.

항구에 가지고 돌아온 후에도 처리는 계속된다. 바닷물 얼음에 재운 채로 운반하여, 시즈코 전용이자 전국시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냉동고에 넣어 2~3일 냉동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참치 내부에 있는 기생충을 사멸시킬 수 있다. 냉동처리가 끝난 후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고 얼음물 해동을 하여 참치의 살을 숙성시킨다.

여기까지 하면 간신히 현대와 동등한 생식(生食)이 가능한 참치로서 취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최신 시설을 이용한 -60도 이상으로 급속 냉동하여 세포의 변화를 방지한 참치와 비교하면 약간씩 세포의 열화는 발생하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낚아올린 참치보다 훨씬 맛은 좋다.


"급속 냉동이 가능하면 좋겠지만요ー. 아무래도 무리겠죠. 뭐, 대뱃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건 행복합니다. 술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렇다고는 해도, 수백 kg짜리 참치는 잘 걸리지 않네요. 잘해봐야 100kg면 큰 편입니다"


"근해에도 흑참치 같은 건 있는 모양이니까. 의외로 근해에 생선이 풍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잡담을 하며 다 구워진 피짜를 그릇에 담고, 그것을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리들에게 건넸다. 받아든 호리들은 그것들을 노부나가들이 있는 큰 방(広間)으로 날랐다.

아무래도 수십인분의 피짜를 굽는 것은 굉장한 중노동이었다. 다 구워진 피짜는 차례차례 무장들의 위장 속으로 사라져갔다. 몇 장을 구워도 끝날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후ー, 아무래도 슬슬 더워졌어"


피짜 아궁이의 불이 줄어들 기색은 없고, 설령 화력이 떨어지면 장작이 차례차례 투입되었다. 그 열기가 새어나와 주위에는 봄을 넘어서 한여름 같은 더위였다.

장시간 열기에 노출된 몸은 수분을 요구했다. 시즈코는 물에 설탕과 소금, 레몬즙을 넣은 스포츠 드링크를 한 모금 마셨다.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 깊이 스며드는 차가운 스포츠 드링크는 최고였다.


"……저녁 식사인 참치는 속편하게 끝났으면 좋겠네. 근데, 어째서 내가 이런 걸 들여오면 다들 아무 말도 안해도 모여드는 걸까"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즈코였으나, 그 이유를 그녀가 알게 되는 일은 없었다.




시즈코가 아무 말도 안 해도 노부나가나 무장들이 식재료의 반입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즈코의 저택에 때를 같이하여 모여드는 데는 간단한 까닭이 있었다.

그녀의 임시 저택이 정해졌을 때부터, 시즈코 저택의 주위에는 노부나가나 주요 무장들의 친족으로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시종(側仕え)이나 고용인이었으나, 그들은 평소부터 시즈코의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여 그것을 자세히 주인에게 보고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원래는 아야가 그 임무를 맡았지만, 아야의 지위도 높아지며 다양한 일거리를 맡게 되어, 시기 적절한 보고를 올리는 것이 어려워졌기에 급거 대역으로서 친족들의 고용인이 선발된 것이다.


동향이라고 해도 전부는 아니고, 오직 먹을 것에 관한 것이었다.

시즈코는 현대의 요리를 미츠오나 아시미츠, 때로는 고로(五郎)와 함께 재현해고, 그것들의 레시피를 정기적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마을의 식당가조합(飲食街組合)에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레시피를 기본으로, 각 요리사들이 나름대로의 개조를 했기에, 언제부터인가 식당가는 일식, 양식, 중식이 뒤섞인, 무국적 요리나 창작 요리에 가까운 것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식욕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맛있는 요리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예를 들면 해삼(ナマコ)이다. 현대에서도 일본산의 말린 해삼은 세계 최고급품이다. 전국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서도 해삼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하지만 바로 가까운 곳에 재료가 있고, 그 조리법이나 맛이 널리 알려지면 평가는 뒤바뀐다. 해삼 식초(ナマコ酢)나 해삼 내장(고노와다) 등이 술안주로 서민에게 알려지자 단번에 수요가 뛰어올랐다. (※역주: 일본이 이 고노와다에 아주 환장을 하기 때문에, 예전에 한국에서 나는 해삼의 고노와다는 외화벌이를 위해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고 국내 유통이 금지된 적이 있었다고 하여, 산지에서나 조금(정말 조금) 맛볼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함)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던 재료의 수요가 높아지면 남획되어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지만, 시즈코가 대대적으로 양식업을 하고 있었기에 '해삼도 양식이 가능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되어,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조합을 만들어 해삼의 연구가 수행되게 되었다.

해삼의 양식은 시즈코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연구를 시즈코는 대대적으로 장려하여,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기술 원조까지 했다.


해삼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과 쾌적한 수온을 유지해줘야 하지만, 먹이는 다른 양식어가 먹고 남긴 것이나 배양한 돌말류(珪藻), 적당한 해초 분말이면 문제없다.

이러한 해삼의 양식업 착수가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여, 방어나 참돔, 잿방어, 넙치(광어), 참전갱이, 참고등어, 보리새우 등 생선이나 새우의 양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다만, 의욕적으로 양식이 이루어지는 것은 식용 가능한 생물 뿐이며, 관상용 잉어(緋鯉) 같은 관상용 품종을 키우는 것 같은 별난 짓을 하는 것은 시즈코 뿐이었다.


양식업의 발달에 따라, 시즈코의 마을이나 항구 마을에는 다종다양한 식재료가 식탁에 올라오게 되고, 그 여파가 다른 마을까지 퍼져나가, 결과적으로 오와리의 구석구석까지 경제효과가 파급되었다.

땅을 지배하는 노부나가나 무장들은 아무 것도 안 해도 세수(税収)가 올라가니까 쓸데없는 참견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장들도 인간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욕구는 있다. 아니 오히려 남들보다 배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폭제인 시즈코들이 가까이 있으니, 그녀들을 감시하면 한발 빨리 요리를 접할 수 있다. 그런 속셈이 맞물려 시즈코의 동향은 감시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이 알게되면 "무슨 짓을 하는거야"라고 어이없어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짜인가 하는 것은 잘 먹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쌀이 좋구나. 남만인들은 저런 것을 매일 먹고 질리지 않는 것이냐"


마르게리타 피짜를 맛본 노부나가는 감상을 말했다.

다들 그의 감상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매일 쌀을 먹고 있는 일본인을 보고 서양인도 같은 감상을 느끼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지적했다.

한동안 담소한 후 해산되었으나, 저녁식사에 참치가 나올 것이기에 다들 귀가하지 않고 각자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즈코와 미츠오, 아시미츠, 고로에게 휴식 시간은 없다. 다음은 저녁 식사인 참치의 밑준비를 해야 한다.

아무리 고로가 미리 밑준비를 한다고 해도 그 혼자서 처리할 수 있을리가 없다. 피짜의 작업이 끝나자, 그대로 고로의 보조를 맡았다.

잠시 휴식한 후 조리장으로 이동하였는데, 설실(雪室)에서 숙성된 참치의 살을 앞에 두고 고로가 신음했다.


"시비…… 참치라는 건 부위가 많구만. 뭘 만들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아"


한마디로 참치의 살이라고 해도 배와 등, 볼, 정수리(脳天), 꼬리 등 다양한 부위에서 고기를 얻을 수 있다. 부위별로 명칭은 다르지만, 기름이 오른 정도에 따라 대뱃살(大トロ), 중뱃살(中トロ), 살코기(赤身)로 분류된다.

확실히 밑처리를 해두었기에, 미야케가 발생한 갈색이 아니라 깨끗한 붉은색 고기였다. 대뱃살도 기름이 듬뿍 올라 있었다.


"회(刺身)와 초밥(寿司)으로 참치의 맛을 느끼게 한다고 치고…… 그밖엔 뭐가 좋을까요?"


메뉴가 고민된 시즈코가 미츠오에게 물었다. 솔직히 시즈코도 고로와 마찬가지로 회와 초밥 이외에 이렇다 할 요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식할 때도 회와 초밥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아, 결국 그걸로 끝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들이 먹을 차례따. 회와 초밥만으로는 심심하다.


"으ー음, 이만큼 많이 있으니, 야마카케(山かけ丼, ※역주: 다랑어회에 산마즙을 곁들인 요리) 덮밥일까요. 와사비나 본양조(本醸造) 간장도 있으니 맛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아, 선물로 참치 병조림(ツナ, ※역주: 흔히 말하는 참치캔의 참치인데, 적당한 단어가 없어 문맥상 참치 병조림이라고 의역했음)을 만들죠"


"참치 병조림이라고 하면 마요네즈를 뺄 수 없지. 하지만 참치마요는 위험하다, 밥이 지나치게 당겨"


"아시미츠 씨는 참치마요를 원하시는군요. 본양조의 쌀식초에 갓 낳은 계란, 갓 짜낸 유채기름(菜種油)이 있군요. 마요네즈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아저씨가 말하는 마, 마욘네-즈? 가 뭔진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만들어줘"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참치 병조림은 마늘에 생강, 소금, 유채기름이군요. 아, 그러고보니 후추가 있었죠. 이걸로 맛에 깊이를 낼 수 있습니다"


"후추는 아직 귀중하니까, 너무 많이 쓰지 마라?"


미츠오, 고로, 아시미츠 등 세 명은 참치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요리를 했다. 끼어들 여지가 없네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그럼 요리는 세 사람에게 맡길게요. 나는——"


"그럼 그 동안, 저와 같이 차라도 한 잔 어떠시겠소?"


"우와악!"


어느 틈에 등 뒤에 서 있었는지, 상쾌한 미소를 떠올린 사키히사(前久)가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예상밖이었기에 시즈코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핫핫핫, 놀라게 해버린 듯 하군요"


"……무얼 하러 왔느냐"


갑작스런 사키히사 등장에 놀란 고로와 미츠오였으나, 아시미츠는 꿍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아시미츠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받고도 사키히사는 표표(飄々)한 태도로 대답했다.


"아니, 저녁식사가 좀 궁금해져서 말이지. 잠깐 놀려주러 왔네. 그랬더니 뭔가 즐거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서 말이지.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여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게지"


생글거리며 대답한 후 사키히사는 시즈코 쪽을 보았다.


"실례했소이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놀래킨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어, 아뇨, 이쪽이야말로 이상한 소리를 내서 죄송합니다. 아, 차라면 기쁘게 함께하지요"


"그거 고맙군요. 그럼 나와 시즈코 님은 이만 실례하지. 세 사람 모두, 맛있는 저녁 식사를 기대하고 있겠네"


승락을 얻은 사키히사는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사키히사는 멍해있는 표정의 고로와 미츠오, 불쾌한 듯한 표정의 아시미츠에게 사람좋은 웃음을 던지고는 주방에서 나갔다.




그 날의 참치 잔치(マグロ尽くし)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에도 시대의 사람들은 지방살(脂身)에 약하지만,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전쟁이 계속되기 떄문에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한다.

필연적으로 에너지가 되는 지방살도 많이 섭취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얘기는 관계없이, 지금까지 맛없어서 먹을게 못 된다고 하던 참치가, 실은 어느 정도의 처리를 하면 맛있는 생선이 된다는 쪽이 충격적이었다.

시비라는 불길한 이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노부나가를 시작으로 오다 가문 가신들은 정신없이 참치 요리를 즐겼다.


"맛있었다. 하지만, 시비로는 이름이 영 좋지 않군. 이후에는 시비가 아니라 참치라고 부르도록"


이름의 불길함은 노부나가의 절대적 명령 한 마디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참치의 사치스러운 부분밖에 맛보지 못했다. 좀 더 참치의 장점을 맛보았으면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 수를 준비했다. 현대에서도 대인기인 참치 병조림을 준비하여 노부나가들에게 뿌렸던 것이다.

참치 병조림은 굴(牡蠣)의 기름절임처럼 기름으로 저온 가열하는 요리이다. 모양도 신경쓸 필요 없고, 참치의 남은 부분을 기름으로 가열해서 기름과 함께 병에 담으면 된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 참치마요 주먹밥을 내자, 그야말로 광희난무(狂喜乱舞)가 벌어져, 다들 참치마요 주먹밥을 탐닉했다.

아침식사 후에 병에 담은 참치 병조림을 나누어주었는데, 수십개나 되던 참치 병조림은 하나도 남김없이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가신들이 가지고 돌아가 버렸다.


"무, 무서운 참치마요!"


잔뜩 있던 참치 병조림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에 고로는 아연실색했다. 참치 병조림이 남으면 술안주로 삼으려 했던 고로의 생각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남은 것이라고 하면, 시즈코가 등사판 인쇄한 참치마요의 레시피와 마요네즈의 레시피 뿐이었다.

팥소(餡) 때처럼 주먹밥 내용물의 논쟁이 벌어지지 않아 시즈코는 만만세였으나, 고로는 그렇지 못했다.


"말했잖나. 참치마요는 위험하다고"


그런 그에게 아시미츠는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의 말을 했다. 미츠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볼을 긁고 있었다.


"뭐ー, 이후에는 참치도 잔뜩 들여올 수 있을테니, 다음 기회를 기대하시죠, 네?"


"그렇다, 고로. 오다 나으리는 마음에 들어하셨으니, 이후에는 얼마든지 기회는 있을거다"


심하게 낙담한 고로를 아시미츠와 미츠오가 달랬다. 처음에는 낙담했던 고로도, 다음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참치 시식회가 끝난 지 며칠 후, 시즈코의 저택은 며칠 전의 떠들썩함이 거짓말 같은 고요함에 휩싸여 있었다. 작물의 재배 상황을 차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시즈코는 조용한 것을 기뻐했다.

재배하고 있는 남국의 과일 중 가장 수확 시기가 가까워진 것이 망고였다. 둥그런 망고가 잔뜩 있었으며, 앞으로 몇 달만 지나면 잘 익은 과실이 된다. 수확 후에는 접붙이기(接木)로 묘목을 만들어 늘리면 된다.

씨앗부터 키우면 최소라도 6년, 길면 10년 가까이 걸리므로 씨앗부터 재배하지는 않는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 드래곤 프루츠 등은 재배에 성공했을 뿐, 아직 열매를 맺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

뭣보다 이 품종들은 접붙이기나 꺽꽂이(挿し木) 기술을 사용해도 열매를 맺을 때까지 몇 년은 걸리는 것이다. 특히 직사광선에 약한 망고스틴과, 직사광선이 필요한 라이치의 상성이 나쁘다.

한 쪽은 햇빛에 주의하고, 한 쪽은 햇빛을 쪼이게 할 필요가 있어, 묘목이 작은 상태에서는 혼동하여 실패할 우려도 있었다.

운좋게 성공했지만, 다음에는 수확하기 위한 높이에 주의해야 한다.


"무화과는 분명히 첫 해에는 수확하면 안됐지. 게다가 물을 좋아하는 성질…… 요즘 들어 생각이 드는데, 이만한 숫자를 한번에 재배하려고 생각한 건 실패였을지도"


카카오나 커피만으로 만족하면 좋았을걸, 이라고 시즈코는 최근들어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필요한 대응이 너무 뒤죽박죽이라, 각자의 재배 구획에 정보를 정리한 서류를 놓게 했다.

손질이나 육성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그것들을 읽고 혼란되지 않게 한 덕분에 지금까지 착오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는 수확할 수 있는 것이 빨라도 내년, 카카오에 이르러서는 3년 이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드래곤 프루츠나 무화과는, 첫해째의 열매에서 씨앗을 빼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 두 품종 모두 식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은 내년부터다.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탄은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빨라도 심은 후 3년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남만 과일 중에서 가장 간단한 작물이 드래곤 프루츠다.

드래곤 프루츠는 선인장류에 속하기 떄문에 재배 자체는 어렵지 않으며, 병충해나 불량환경에도 강하기 때문에 딱히 농약을 쓰지 않고 1년에서 2년이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게다가 과실 뿐만이 아니라 꽃봉우리(蕾)나 꽃도 식용할 수 있고, 특별히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남만 과실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에서는 상당히 함부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흙에서 양분을 빨아들여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늘리는 방법도 씨앗과 꺽꽂이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뭣보다 씨앗으로부터도 발아율이 좋기에 금방 늘어난다. 다만 추위에는 약하므로 밖에서 재배할 수는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꺼내서 키우는 일은 없다.


"파인애플도 잔뜩 늘어났는데, 슬슬 소비량에 맞지 않으니 숫자를 줄여볼까"


지금까지는 두 개 정도의 비닐하우스가 있었으나, 새로운 저택을 짓게 된 관계로 두자릿수에 달하는 숫자가 건축되게 되었다.

온천의 수량(湯量) 관계로 온실 하우스로 만들 수 있는 숫자는 제한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를 재배할 수 있다.

확장되는 것은 비닐하우스 뿐만이 아니다. 논밭이나 닭이나 집오리, 거위(鵞鳥)에 오골계(烏骨鶏) 등을 사육하는 구획도 새롭게 정비된다. 물론 확장 규모 때문에 이전하는 것은 아직 나중의 이야기였지만.


"후추가 순조롭게 겨울을 나서 안심했어. 이거라면 묘목을 늘리는 것도 문제없네"


마지막으로 후추 나무를 확인하여, 순조롭게 겨울을 나고 있는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를 떠났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의 집을 방문한 이후, 카네츠구(兼続)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끔 케이지(慶次)와 함께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에 외출하는 정도로, 하루종일 방에서 데굴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시즈코 관찰에 질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건지, 어떤 마음으로 카네츠구가 활동을 삼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즈코로서는 초기의 감시에 가까운 행동이 없어져서 꽤나 속이 편해지긴 했다.


"신세졌소.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지"


그리고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서 4월, 완전히 눈이 녹았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에치고(越後)로 귀환하는데 문제없는 시기가 되자, 카네츠구는 그 말만 남기고 시즈코의 집에서 떠나갔다.

침울한 이별도 없이, 바람에 흐르는 구름 같은 느낌이었다. 시즈코는 또 홀연히 나타나서 대충 집에 죽치고 앉았다가 바람같이 떠나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코가 준비한 선물을 빼먹지 않고 가지고 돌아간 것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뭐랄까, 자유로운 바람의 아들이라는 느낌이었네"


살짝 중얼거린 시즈코의 카네츠구에 대한 인물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평가를 받은 카네츠구는 일향종(一向宗)을 가볍게 따돌리고 며칠 후에 켄신(謙信)의 거성(居城)인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으로 귀환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영주님(お実城様)"


성으로 돌아오자 켄신으로부터 즉시 호출이 떨어졌다.


"잘 돌아왔다. 여행길에 피곤할텐데 미안하지만, 바로 오와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느냐"


싱긋 웃는 표정으로 말하는 켄신이었으나, 반대로 사네츠나(実綱)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카네츠구는 카게카츠(景勝)의 근시(近習)이다. 그 역할을 잊고 혼자서 오다가 있는 곳으로 갔으니 불쾌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카게카츠 본인은 "요로쿠(与六)는 바람의 아들이니까요"라며 별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옛, 영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은 느긋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작은 분쟁은 종종 일어났습니다만, 그것을 전문으로 다루는 자들이 있었기에 큰 소동으로 발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한 틀에 박힌 보고는 필요없다. 요로쿠, 네가 느낀 것을 솔직히 말해라"


노키자루(軒猿)가 올리는 것 같은 보고를 켄신은 원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카네츠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꼈는지였다. 켄신의 진의를 이해한 카네츠구는 자세를 바로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시즈코 님은 한 마디로 말하면 신비(不思議), 합니다. 소생도 이런저런 소리를 듣습니다만, 시즈코 님은 그보다 한층 더 불가사의한 존재입니다. 무욕…… 은 아니군요. 타인의 욕심은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그 욕심을 잘 자극해서, 원하는 대로 일을 시키는 수완은 훌륭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듣기좋은 소리만으로 사람이 움직인다면 정치하는 자들이 고생할 일은 없다. 명예, 땅, 명품(名物), 돈 등,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기에 사리사욕, 말하자면 이득을 얻지 못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의 의견에 찬동하고 편을 들더라도, 결국 그 인물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노부나가는 당연하지만 시즈코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을 편드는 자들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 물론,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준 이익에 걸맞는 일은 시키고 있다.

일도 하면서 쌍방에 이익이 늘어나는 것이니, 일을 맡게 된 자들은 필사적으로 성과를 낸다.


"호오, 시즈코 님은 사람의 욕망 따위 이해하지 않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만"


"겉보기와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에게는 이익으로 보답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해하려 들거나, 얕보고 속이려 들면, 그러한 의도의 정도에 관계없이 치명적인 보복을 합니다. 예를 들면 어제 술잔을 나누던 상대라도, 마치 표정이 뒤집히는 것처럼 대응이 바뀝니다"


"단념(思い切り)이 빠른 구석이 있는 것인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강점이 되지. 하여, 배신한 상대에게는 어떠한 처분을 내리더냐"


"배신한 상대가 개심(改心)한다면 용서합니다. 물론, 배신에 걸맞는 가혹한 노역이 주어집니다만, 몇 번인가 항복 권고를 하고, 그래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씨를 말립니다(몰살)"


"잘 알았다"


"옛"


카네츠구의 보고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켄신은 머릿속으로 카네츠구의 보고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지금부터 어떠한 행동이 에치고에게 좋을지 생각했다.


(타케다(武田)는 움직인다. 북쪽으로는 에치고 일향종, 동쪽으로는 타케다, 남쪽으로는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宗), 서쪽으로는 혼간지(本願寺). 아사쿠라(朝倉)나 아자이(浅井)도 있지만, 크게 나누면 이 네 군데가 오다를 포위하고 있지)


제 2차 오다 포위망은 조용히, 착실하게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번같은 이런저런 세력이 아니라, 이번에는 모두 혼간지가 주도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오다의 패배는 필연. 우리 에치고라도 타케다와 전쟁을 하면 잘해봐야 비기겠지. 하지만 내게는 도저히 오다의 패배가 보이질 않는다. 타케다도, 혼간지도, 그리고 우리들도, 이 포위망에 숨겨져 있는 작은 비틀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일본 최강의 타케다 군은 과장은 아니다. 신겐(信玄)은 통산 72회의 전투를 벌여, 개중 3번밖에 패배하지 않았다. 그 3번도 젊었던 시절, 유명한 토이시 함락전(戸石崩れ)에서 무라카미(村上) 세력에게 패배한 것 뿐이다.

그 이후로는 이겼던가 아니면 비겼던가 둘 중 하나였다. 이 승리에서 무서운 점은, 자국이 공격받았을 때의 승리는 하나도 없이, 모두 신겐이 다른 나라를 침공했을 때의 승리라는 것이다.

즉 타케다 신겐은 평생 다른 나라에게 공격받은 적이 없다. 타케다 군의 강력함을 다른 나라가 두려워하여 주저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겐이 이끄는 타케다 군은 일본 최강의 군단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 인식은 켄신 뿐만이 아니다. 제 2차 오다 포위망을 주도하고 있는 혼간지, 불태워진 엔랴쿠지(延暦寺), 요시아키(義昭)에 아사쿠라, 아자이도 같은 인식이다.

다들 타케다가 오다 영토를 공격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번의 오다 포위망은 어떻게 노부나가를 괴롭혀서(信長) 타케타 대책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는가가 핵심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이라고 하면 대답할 수 없지만, 내 감이 아니라고 속삭인다)


켄신은 타케다가 움직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무언가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신의 감이, 오다가 타케다에게 패한다는 생각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다.


"한 가지 묻겠다만, 시즈코 님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더냐"


"예? 아뇨, 그런 기색은 없었으며, 수하들도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그만 물러가도 좋다"


카네츠구를 물러나게 한 후 켄신은 턱에 손을 대고 다시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예측이 세워져갔다. 켄신에게 있어 타케다가 멸망하던 오다가 멸망하던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어떠한 선택지가 에치고에 가장 좋을 것인가, 그것이 켄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조금 더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군. 타케다가 움직인다면 호죠(北条)나 우리 중 어느 쪽과 동맹을 맺어 배후 걱정을 없애려 들겠지. 그 때, 시즈코 님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 이후에 결정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즈코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을 깨달은 켄신은, 놀라면서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켄신에게 보고를 마친 카네츠구는, 팔짱을 끼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 시즈코 님에게 빌린 돈을 변제할 방법을 모색해 볼까"




5월 상순을 지났을 무렵, 제 2차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지형 조사팀으로부터 보고서가 올라왔다. 면밀한 지형에 더해 표고(標高), 각 지점(地点)마다 온도와 습도까지 데이터로서 정리되어 있었다.

이미 데이터로서는 완성되어 있었으나,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나중에 한번 더 할 예정이었다. 제 3차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는, 좀 더 군사적인 면에서의 조사가 된다.

타케다 군이 포진할 장소는 어디인가,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은 어떻게 이동하는 것이 최적인가 등, 대(対) 타케다 전에서 필요한 조사를 전부 수행한다.


"뭔가 열심히 조사하고 있다만, 잊어버리지는 말거라?"


조사 보고서를 숙독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료에서 얼굴을 들고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팔짱을 끼고 으스대고 있는 키묘마루(奇妙丸)가 있었다.


"잊다니 뭐를?"


뭔가 예정이 있었나, 라고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기다려! 알겠냐, 이제 곧 내 첫 출전식(初陣式)이 있다. 시즈코, 꼭 참가해라"


"아아……"


지적받은 시즈코는 겨우 떠올렸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타케다 상대를 이에야스(家康)에게 떠넘긴 노부나가는, 겐키(元亀) 3년 7월에 전군을 오우미(近江) 방면에 소집시켰다. 거기서 노부나가는 적자(嫡男)인 노부타다(信忠)의 첫 출전식을 치렀다.


"7월인가. 좀 이것저것 겹치니까 될 지 모르겠네"


팔짱을 끼고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아직 결정사항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올라온 보고서들을 볼 때 6월과 7월은 중요한 계획의 시제품(試作品)이 선보이게 된다.

그중 하나는 개발에 몇 년이나 걸렸지만 겨우 6월 하순에 완성이 예정된 수동식의 스크류 선박, 그리고 7월 상순에 내화(耐火) 벽돌이나 코크스로 철을 녹이는 고로(高炉)가 있다.

특히 고로는 스털링 엔진의 시제품의 시험과 세트로 수행된다. 스크류 선박은 아직 여유가 있지만, 고로와 스털링 엔진의 시운전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7월 하순의 아자이 공격이 노부타다의 첫 출전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자이 공격에 대해서는 시즈코의 귀에도 들어와 있다. 즉, 7월 하순에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이 치러질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자 어떡한다.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겨도 되지만, 전군을 이끌고 가지 않으면 챠마루(茶丸)군은 삐질 것 같으니까 말야)


아무래도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을 제끼고 연구 개발 쪽에 집중하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노부나가로부터는 모든 것에 우선하여 성공시키라는 엄명을 받았다.


(어라, 이거 오랜만에 위험ー한 상황 아니야?)


시운전이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트러블이 발생하여 잘 동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것들을 첫 출전식까지 처리하고 참가하라, 는 것이 지금의 시즈코의 임무이다.

그것에 생각이 미친 시즈코는 얼굴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야야, 아무래도 내 첫 출전식을 제낀다고는 하지 마라?

어째서인지 성인식(元服)은 아직이지만, 첫 출전식은 최초의 영광스런 자리라고. 그곳에 네가 없으면 재미없잖아"


"알고 있어. 제끼거나 하진 않지만, 지금 떠안고 있는 안건들을 처리한 후 참가해야 하니 꽤나 빡빡힌 예정이라는 생각이라 그래"


"그럼 좋아. 다른 이야기인데, 너는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음ー, 새로운 공장의 지형 조사. 버섯 재배를 공업화시킬 거거든"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 조사를 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진짜 목적은 노부나가 이외에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이에야스에게조차도 가짜 목적을 말하고 본의(本意)를 밝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면 된다. 지금은 괜히 비밀을 아는 사람을 늘리지 않고 정보를 은폐하는 것이 선결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키묘마루조차 속인다는 것이 시즈코의 생각이었다.


"버섯 재배?"


시즈코의 꿍꿍이에 보기좋게 걸려든 키묘마루가 질문했다. 서류를 뒤적이는 척을 하며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조사 보고서를 치운 후,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하여 분위기를 바꾸었다.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한데 버섯은 재배가 가능한 게 있거든. 물론, 사람이 키운 버섯은 자연 속에서 자란 버싯이랑은 맛이나 향이 다르지만 말야"


버섯은 발생 조건에 따라 재배 방법이 다르지만 원목(原木), 균상(菌床), 퇴비(堆肥)、임지(林地) 재배의 네 종류를 기본으로 재배를 한다.

인공 재배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서, 16세기에 유럽에서 멜론 재배가 행해졌을 때, 동시에 주름버섯(ハラタケ) 종류의 버섯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버섯의 인공 재배가 시작되었다.

가장 빨리 버섯의 인공 재배에 성공한 나라는 프랑스로, 17세기에 머쉬룸(mushroom, ※역주: 보통 영어로 '버섯'을 뜻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정한 품종을 가리키는 듯함)의 인공 재배를 성공시키고, 18세기 초엽에 식물학자가 인공 재배의 기본적인 방법을 확립시켰다.

그로부터 1세기에 걸쳐, 19세기에 프랑스로부터 유럽이나 미합중국으로 인공 재배의 기술이 전해졌다.

한편, 일본은 에도 시대에 표고버섯의 인공 재배를 했지만, 종균(種菌)을 인공적으로 배양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다지 안정적으로 버섯을 얻을 수는 없었다.


"만가닥버섯(ブナシメジ) 같은 건 꽤 간단하니까 성공했지만, 다른 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말야"


만가닥버섯이나 팽이버섯(エノキタケ), 맛버섯(ナメコ)은 일본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버섯류이다.

인공 재배가 대단히 용이하고 대량 생산하기 쉬운 이점이 있다. 현대와 같은 시설은 없어도 인공 재배 가능한 이점도 있다.

하지만 버섯균은 다른 균보다 약하기 때문에, 경합균(競合菌)을 차단할 수 있는 현대의 시설에서 재배하는 것과는 달리, 전국 시대의 인공 재배는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다만 맛버섯은 해로운 균에 대한 저항력이 다른 것에 비해 강하고, 그 때문에 가정에서도 쉽게 재배할 수 있다.


버섯균의 조직 배양은, 버섯의 일부를 잘라서 배양하는 조직 분리라는 수법을 사용한다.

우선 신선한 버섯을 준비하고, 멸균 처리한 날붙이로 버섯을 반으로 가른다. 오래된 버섯을 쓰지 않는 이유는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버섯의 내부 조직을 채취하여, 그것을 한천(寒天) 배지(培地)에 올려놓는다(置床). 그 후에는 성공할 경우 조직에서 버섯 균이 자란다.

본래는 무균 상태에서 접종(接種)을 하지만, 전국 시대에는 무균 환경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시즈코는 모닥불 옆에서 접종을 했다.

불에 의한 상승기류가 발생하여, 그것이 배지(培地)에 균이 달라붙은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팽이버섯의 폐배지(廃培地)에서 독황토버섯(コレラタケ, 독버섯)이 자라는 일이 많다.

따라서 식용 버섯의 배지니까 문제없다고 오해하고 먹었다간 큰일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네가 키운 표고버섯은 맛있지만, 버섯은 영 먹은 것 같지 않은 게 문제다"


"뭐 버섯이라는 건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니까"


만가닥버섯은 어떤 요리에도 잘 어울리며, 팽이버섯은 냄비요리(鍋物)나 끓인 요리(煮物)에 쓰이고, 맛버섯은 된장국이나 볶음 요리의 건더기로 쓰이는 등, 시즈코가 인공 재배하고 있는 버섯은 이용 범위가 넓다.

다만 표고버섯은 달라서, 이 버섯만큼은 영주나 무장 등, 지배 계급 사람들이 스테이터스 심볼(status symbol)로서 이용하고 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시즈코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반 사람들이 먹는 식재료와, 지배 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쓰는 식재료로 필연적으로 갈리게 된다. 버섯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만가닥버섯, 후자는 표고버섯이 된다.

특히 표고버섯은 해외로 수출되는 중요한 상품이기에, 막대한 숫자를 생산하려고 해도 유통되는 양은 노부나가에 의해 완전히 컨트롤되고 있었다.


"쌀에 야채, 생선에 버섯, 정말 이것저것 손대고 있구나. 뭐, 그 덕분에 나는 매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창고에서 썩어버리니까 상관없지만 말야. 네 경우에는 너무 거리낌이 없어. 조직을 채취하기 위한 버섯까지 먹어버릴 줄은 몰랐다고"


인공 재배가 확립된 버섯이라면, 조직을 얻을 수 있다면 재배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잡균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기에, 숫자로 밀어버리는(下手な鉄砲も数撃ちゃ当たる) 작전으로 커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시즈코가 아시아에서 수입한 새송이버섯(エリンギ)을 일본에서 재배하려 하고 있는데, 그게 그야말로 숫자로 밀어버리는 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톱밥에 묻어서 운반하더라도 수입에는 몇 개월 가까이 걸린다. 시즈코의 손에 들어올 무렵에는 썩어버릴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즈코가 새송이버섯을 일본에서 채취하지 않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이유는, 새송이버섯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버섯이기 때문이다. 지중해(地中海)의 기후 지대에서 중앙 아시아의 초원(ステップ) 기후 지대가 원산지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는 옛부터 인기있는 식용 버섯이지만, 일본에서는 최초로 인공 재배된 것이 1990년대로 비교적 새로운 버섯이다.

하지만 금방 재배 기술이 일본 전역에 보급되어, 지금은 대량 재배가 이루어져 적당한 가격으로 시장에 나돌고 있다.

일본에서는 자루(柄) 부분이 굵고 긴 것이 선호되는 데 반해, 유럽에서는 갓(傘)이 펼쳐진 상태가 선호되는 등, 같은 버섯이라도 선호되는 크기나 굵기, 상태가 다르다.


"미안, 술안주로 딱 좋길래 말야"


"뭐가 술안주야. 말린 버섯만 골라 먹고 있는 걸 보니 노리고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버섯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건조시키는 편이 오래 보존할 수 있다.

날것인채로는 냉장고에 넣고 1주일 정도지만, 적절한 순서를 지켜 말린 버섯은 통풍이 잘 되는 어두운 곳에 보존하면 최장 1년은 간다.

말리는 것은 딱히 장기보존만이 이유는 아니다. 태양광을 쬐어 말리는 천일건조(天日干し)라면, 에르고스테롤(ergosterol)이 비타민 D로 변화하기 떄문에 날버섯보다 비타민 D가 늘어난다.

또, 말리면 맛이 응축되고, 그 후에 물로 불리거나 하면 맛성분이 물에 녹아나와 좋은 맛국물을 낼 수 있다.


"글쎄. 그 때는 어두웠고, 적당한 걸 가져간 것 뿐이라고"


끝까지 시치미를 떼는 키묘마루였다.


"그래…… 뭐 이후를 생각해서 윳키랑 시로초코에게 입구를 경비시키고 있으니까 다음부터 길을 잘못 들 일은 없을거야"


"아! 비겁하다!"


"비겁하다니 실례네. 작전이라고 해줘"


키묘마루와 그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사람 기척이 났다. 궁금해져서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맹장지가 조용히 열렸다.


"이야기는 전부 들었습니다, 키묘 님"


"헉! 할아범(爺)!"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들켜버린 키묘마루가 정말로 난리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할아범은 전혀 동요하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영주님의 뒤를 이으실 분이 어찌 이렇게 한심하실 수가. 이 할아범, 오늘만큼은 절대로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키묘 님의 응석을 받아드린 것을 오늘만큼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아니, 딱히 응석을 받아줬던 기억은 없는데……?"


태클을 걸어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으나, 할아범은 키묘마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눌렀다. 어디서 손수건을 꺼낸거냐, 라는 태클은 걸지 않은 키묘마루였다.


"이제 곧 첫 출전식인데, 이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서질 않습니다. 키묘 님! 할아범은 마음을 고쳐먹고 악마가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시 교육시켜드릴테니 안심하십시오! 자, 가십시다!"


"어이 잠깐! 놔라 할아범! 일단 냉정하게 이야기를 좀 말야아아아아아아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키묘마루를 포획하더니, 반론을 용납치 않는 분위기로 할아범은 키묘마루를 끌고갔다.

그의 단말마(断末魔)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서류를 꺼내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일을 계속 하자"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그게 그녀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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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7 1572년 3월 상순



※역자 코멘트: 카네츠구의 시즈코에 대한 말투가 평어에서 경어로 바뀌는데, 항상 그렇지만 이 경어법 관련한 처리가 매우 골치아픕니다-ㅅ-. 시즈코와 그 일행들 사이의 대화도 경어법이 일관적이지 않고, 단순히 공적인 대화와 사적인 대화의 차이를 넘어선 수준이라, 일단 시즈코는 나가요시를 제외한 자기 수하들에게는 반경어, 나가요시나 아야, 쇼우 등에게는 평어를 쓰는 것으로 통일하고, 카네츠구에게는 시즈코가 기본적으로 평어를 쓰고, 카네츠구가 시즈코에게 하는 말은 그냥 그대로 번역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파"


이마에 손을 대고 시즈코는 신음했다. 카네츠구(兼続)가 간단히 정체를 밝혀버린 덕분에, 시즈코의 호위들은 경계심을 높이고 있었으나,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사이조(才蔵) 같은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일 경우 손을 쓸 분위기였다. 하지만, 카네츠구 쪽은 주위의 반응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시즈코 님을 보러 왔어. 정체를 감추고 엿보는 것 따윈 성격에 맞지 않아. 뭣보다 나는 간자가 아니야"


머리를 감싸쥐는 시즈코에게, 두통의 씨앗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전히 경계는 풀지 않았지만, 돌봐줄 역할로 임명된 케이지(慶次)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오다와 우에스기(上杉)의 전쟁이 될 뻔 했어, 정말로"


"전쟁이 벌어지면 어쩔 수 없다. 전쟁터에서 모든 결판을 짓겠다, 라고 영주님(お実城様)이라면 말씀하시겠지. 전쟁을 터지게 한 내가 화려하게 산화한다면 더욱 좋고"


"그렇게 '잠깐 나갔다 올게'라고 하는 분위기로 죽는다는 소리 하지 말아줘. 네가 일찍 죽으면 이래저래 곤란하거든"


우에스기 가문의 후계자 다툼에서, 라고 시즈코는 마음 속으로 덧붙였다.


요로쿠, 훗날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죽은 후,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와 우에스기 카게토라(上杉景虎) 사이에 벌어진 내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오타테의 난(御館の乱) 이후, 포상과 맞바꾸어 카게카츠 진영으로 변절해 큰 공적을 남긴 모우리 히데히로(毛利秀広)가, 야마자키 슈우센(山崎秀仙)의 의견에 의해 포상이 취소된 것에 격분하여, 나오에 노부츠나(直江信綱)와의 회담 도중에 야마자키 슈우센 및 나오에 노부츠나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후계자를 잃은 나오에 가문은, 카네츠구를 나오에 노부츠나의 처 오센(お船)의 데릴사위로 맞아들인다. 카네츠구는 나오에 가문을 잇게 되자 카노우 히데하루(狩野秀治)와 함께 우에스기 가문을 계속 뒷받침했다.


"아, 혹시 그 때, 같이 있었던 연상의 아이는 나가오 키헤이지(長尾喜平次) 씨(氏) (나가오 키헤이지 아키카게(顕景) 훗날의 우에스기 카게카츠)?"


"용케 맞췄네. 설마 그런 장소에서 수행원도 없이 다닐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아. 그 때의 간자들의 놀란 표정은 볼만했다고"


"장난이 너무 심한데"


"주군께서는 그 때의 일에 감사하시고 싶다고 하셨지만, 이번에는 내가 멋대로 온 거라서 기다려 달라고 말씀드렸지"


뭘 생각하고 쿄(京)에 파견했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도 모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우에스기 가문과 얽힐 생각이 없는 시즈코였으나, 저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우에스기 가문은 꽤 으스스하지. 깊게 얽혔다간 데이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여기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으려나)


전국시대의 상식을 뒤엎은 것은 오다 노부나가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게 비견될 수 있는 괴짜가 우에스기 켄신이다.

독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당시의 사상, 신조, 도덕관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을 여럿 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도중 시즈코 일행은 어떤 마을로 들어갔다.

작년부터 노부나가가 운영, 관리를 맡긴 마을로, 시즈코의 저택에서도 적당히 가까우면서 항구 마을로 통하는 주간 도로(主幹道路, ※역주: main street)가 정비되어 있었다.

항구 마을에서 각 방면을 잇는 도상에 마을이 있었기에, 마을 안에는 상인들의 모습이 많았다.

시즈코의 저택이 가깝다는 입지상, 시즈코 군의 태반이 이 마을에 기거하고 있어, 병사들이나 그 친지들도 상인들에 뒤지지 않는 세력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이 있다고 하면 당연히 돈이 굴러들어온다. 상인들이 항구 마을에서 기후(岐阜)나 쿄(京)로 갈 때, 우선 이 마을에서 숙박하기 때문에 오와리(尾張) 령에서도 굴지의 번화함을 보이고 있었다.


시즈코의 저택이 있고 시즈코 군이 집결해 있기에, 주민들의 태반은 시즈코가 이 땅의 영주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대관(代官)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도시 계획은 지배자인 노부나가가 하지만, 이 마을에 한해서는 모든 권한을 시즈코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근대적 설계가 포함된 마을은 다른 마을과는 한 획을 긋는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가장 이채를 발하는 것은 도로, 그것도 가도(街道)를 그대로 끌어들인 중심가(目抜き通り)였다.

중세, 근세의 일본에서는 주로 군사적인 이유로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다. 길이 없는 곳을 진군할 것을 강요하면 적을 소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외 중의 예외가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개발한 신겐 제방(信玄堤)이나 봉도(棒道)다. 이것은 신겐이 갖는 카리스마, 자금력, 인심 장악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대규모 공공 사업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큰 제방이나 가도 정비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시(城下町)를 벗어나면 논두렁길(あぜ道) 정도, 그것도 구불구불 구부러져서 대단히 이동하기 힘든 길들 뿐이었다.


이러한 길은 물류가 정체되기 쉽고, 또 교차점(십자로(辻))에서의 유괴가 발생하기 쉽다. 그런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즈코는 폭이 넓은 직선의 주간도로를 정비했다.

또 가드레일에 해당하는 목제의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여 보행자와 우마차나 마차를 분리, 보도와 차도의 경계를 설정했다.

이 덕분에 항구 마을과의 물류가 대폭 증가, 오와리는 물론이고 미노(美濃)에까지 다양한 물자들이 흘러들게 되었다.

물론, 사람의 이동이나 물류가 증가한다는 것은, 그대로 다른 나라의 간자들이 들어오기 쉬워지지만, 그것은 엄격한 법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시즈코 님, 저건 무엇이지?"


시즈코의 옆을 걷고 있던 카네츠구가, 길 옆에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시즈코는 그게 뭔지 이해했다.


"저건 우마음수조(牛馬飲水槽). 문자 그대로, 소나 말을 위한 급수장(給水場)이야"


우마음수조란 문자 그대로 우마용의 수조(水槽)이다. 마시는 물이므로 사람이 마셔도 문제없지만, 소나 말에 맞춰 수조의 높이나 폭이 설계되어 있기에 사람이 마시기엔 맞지 않았다.


"우마용의 급수조라니 희한하군"


"상인들에게는 꽤 인기거든. 그 때문에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면 주위 사람들한테 몰매를 맞으니까 나쁜 장난은 치지 않는 게 좋아. 어이쿠"


카네츠구에게 설명하고 있던 도중, 시즈코의 말이 우마음수조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항구 마을로 갔었기에 수분 보급이 불충분했던 걸까,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말이 좋을대로 하게 놔두었다.

우마음수조에 도착하자, 말은 머리를 움직여 물을 마시고 싶다고 어필했다. 시즈코가 우마음수조를 보니, 내용물이 거의 없었기에 물을 퍼올릴 필요가 있었다.


"알았어. 지금 물을 넣어 줄게"


말을 쓰다듬어 진정시킨 후, 시즈코는 우마음수조 옆에 있던 수동식 펌프를 움직여 물을 퍼올렸다. 물이 적당히 받아졌을 때 말이 얼굴을 들이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 줘. 심심하면 근처를 관광하고 와도 좋아"


가신이 가져다놓은 걸상(床几)에 앉아서 시즈코는 어꺠의 힘을 뺐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카네츠구였으나, 시즈코를 관찰하러 온 것이기에 시즈코의 곁을 떠나는 건 본말전도(本末転倒)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옆에 앉았다.

지나치게 무방비한 그녀가 걱정된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오, 시즈코 님 아니십니까. 이런 데서 휴식이라니, 부디 저희 찻집을 이용해 주세요"


"아쉽지만 내가 아니라 말이 휴식중이야"


보도를 걷고 있던 남자가 멈춰서더니 시즈코에게 싹싹하게 말을 걸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카네츠구는 깜짝 놀랐지만 주위는 익숙한 기색으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유감이네요. 어이쿠 이런, 얼른 돌아가지 않으면 애엄마에게 혼나겠네요. 부디 애용해주십쇼"


말하자마자 남자는 뛰는 듯한 걸음걸이로 떠나갔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람들이 시즈코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떄로는 유머를 섞어가며 대답했다.


"시즈코 님, 이런 데서 한가하게 계시면 겐로(玄朗) 님의 벼락이 떨어집니다요"


"그 때는 도망칠테니 안심하세요"


"그런 데서 뭉개지 마시고 제 가게에서 돈 좀 쓰고 가 주세요―"


"핫핫핫, 내게 돈을 내게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오거라―"


눈 앞의 광경이 믿겨지지 않아 카네츠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동안에도 차도는 그가 처음 보는 인력거나 마차가 속속 통과해 갔다.

그들은 시즈코의 옆을 지나갈 때, 머리를 숙이거나 쓰고 있던 모자를 벗거나 하며 인사했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대답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라기보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끼리 인사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멍해져 있는 그에게, 히죽히죽 웃음을 떠올린 케이지가 한 마디 했다.


"자알 구경해 두라고, 저게 시즛치다"




결국, 마을이 궁금해진 카네츠구는 일단 시즈코와 헤어져 마을을 구경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시즈코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케이지에게 길안내를 맡긴 후, 그대로 수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 케이지도 시즈코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되자, 어디의 가게에 있겠다고 카네츠구에게 알려준 후 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시즈코들에게서 신뢰받고 있는 건지, 아니면 업신여겨지고 있는건지 종잡을 수 없다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괜찮은 건가 저거. 사이조 님은 내 행동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저래뵈도 케이지 님도 시즈코 님의 호위대(馬廻衆)였지? 전혀 정반대인데 용케 다투지 않는군"


케이지로부터 건네받은 돈주머니를 품 속에 넣고, 카네츠구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으로 향했다. 가까이 가자 그것은 종이 무더기가 들어 있는 나무 상자였다.


"어째서, 이런 장소에 종이 무더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카네츠구는 가장 위에 있는 종이를 집어들었다. 종이에 쓰인 내용은, 이 마을에 있는 숙박시설의 정보 잡지였다.

마을에는 몇 군데 여관(旅籠)이 있어, 혼자 여행하는 행상(行商)부터 대인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호상(豪商)까지 폭넓은 사람들에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을의 어디쯤에 숙박 시설이 있고, 얼마만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처음 오는 상인들에게는 알 방법이 없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이용자가 모르면 의미가 없다. 좋은 것이 알아서 퍼지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발신하지 않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인 것이다.


그것들을 해소하는 것이, 마을 곳곳에 배치된 여관 안내 잡지였다. 카네츠구가 집어든 것은 그 중 한 권이다.

물론 정보 잡지는 무료 배포다. 한 권에 얼마를 내라, 라는 째째한 짓은 안 한다. 하지만, 뒷면에 '아는 사람에게 책자를 양도하여 퍼뜨려 주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흐ー음, 저녁 식사(夕餉)는 없지만 요리점이 늘어서 있는 도로가 있으니, 그쪽을 이용하라는 건가. 내일 아침 식사(朝餉)는 나오는 거군. 그걸로 숙박료를 낮추고 있는 건가. 오오! 요금을 내면 창고에 짐을 맡아주는 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군"


카네츠구는 통행인의 방해가 되지 않는 장소까지 이동하더니 여관 정보 잡지를 다시 펼쳐들었다.

내용은 모두 새로운 것들 뿐이었다. 카네츠구는 감탄성을 내며 정보 잡지를 읽어나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수상쩍은 듯 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았다.


"뭐냐, 이 점수표라는 건…… 호호, 자주 이용하는 손님에게는 이런저런 특전을 붙여주는 거군. 여관에 따라서 바뀌고, 손님은 어디에 숙박할지 고민하겠군"


여관에는 조합(組合)이 있고, 그 조합은 포인트 카드를 발행하고 있다. 가입한 여관에 숙박하면 포인트가 붙어, 점수에 따라 다양한 특전이 제공된다.

포인트로 얻을 수 있는 특전은 각 여관이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

다양한 특전이 준비되어 있어, 비교적 낮은 포인트라도 오와리(尾張)의 특산품을 받을 수 있는 등, 외부인에게는 탐나서 견딜 수 없는 품목들이었다.


"과연. 밥은 식당(飯屋), 숙박은 여관으로 구별해 놓았으니 숙박료를 낮출 수 있군. 게다가 상부상조(持ちつ持たれつ)하는 관계이니, 어딘가의 조합에 계속 돈이 모이는 일도 없겠군"


중얼거리면서 카네츠구는 요리점이 늘어선 도로로 발길을 옮겼다. 요리점이 나란히 늘어서있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지만, 그 이상으로 술이 저렴하다는 것이 카네츠구에게는 중요했다.

게다가 오와리나 미노의 술은, 주군인 켄신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술이다. 뭣보다 술고래인 에치고(越後) 사람으로서 다른 나라의 술을 궁금해하지 말라는 것이 무리한 이야기다.

그러나 거의 다 간 시점에서 그는 발을 멈추었다. 술을 마시면 과연 자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자문자답했다. 답은 금방 나왔다.


(다, 다음에 오자. 아무래도 연이어서 돈을 요구하는 건 파락호(破落戸)나 다름없지)


유곽에서 아픈 맛을 본 카네츠구는 단장(断腸)의 심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후에는 머릿속에서 술 생각을 털어내고 냉정하게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크게 5개의 구획이 설정되어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다양한 공공 시설이 늘어서 있었다. 중심에서 우측으로 농업 관계의 구획이 2개, 좌측은 위쪽이 상업, 아래쪽이 공업지구로 되어 있었다.


가장 떠들썩한 장소는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상업지구였다. 다양한 상품이 늘어서 있고, 손님을 부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만큼 물건이 넘치면, 강도(夜盗)나 도둑(物取り)이 빈발하는 게 아닌가 하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까이 있던 사람을 붙잡고 질문했을 떄 해결되었다.

마을에서는 범죄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있어, 정기적으로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을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쫓는 전문 추적부대까지 있다는 것이었다.

대장장이(鍛冶) 일가를 살해한 범인을 쫓아 아즈치(安土) 근처까지 쫓아가 포박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로 추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범죄자가 자포자기하게 되기 쉽지만 재범이 일어나지 않는 점, 범죄에 대해 엄격한 태도가 강한 억지력이 되어 상인이나 여행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게다가 기후(岐阜)의 시장과 달리, 시끄럽다기보다는 활기찬 분위기였다. 자세히 조사하지 않아도 활발한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주(国人)를 알고 싶으면 백성을 보아라, 켄신의 말을 카네츠구는 떠올렸다.


(다들 생기가 넘치는군. 오다 가문이 사방팔방에 적 투성이가 되어도 계속 싸울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인가)


대부분의 지배자는 백성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는다. 하지만, 오다 가문이 지배하는 오와리, 미노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공존한다. 백성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신 세금을 낸다. 세금을 받은 오다 가문은 백성을 지킨다.

백성이 없으면 오다 가문은 먹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백성들만으로는 평화를 향유하는 것은 불가능.


(이거 영주님(お実城様)이 버겁다고 생각하실만 하군. 우리들과 같은 힘…… 아니, 그 이상이다)


무사(いくさ人)이기에 오다 가문과의 전쟁은 기대하고 있던 카네츠구였다. 하지만, 전쟁을 하지 않아도 오다 가문과 우에스기 가문이 손을 맞잡으면, 많은 백성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닌가, 라고도 생각했다.


(어떻게 보고할지, 이야기가 까다롭게 되어 버렸군)


쓴웃음을 지으며 카네츠구는 케이지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즈코 관찰은 지금부터다, 느긋하게 즐기자고 생각하면서 그는 한 발을 내딛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카네츠구와 헤어져 먼저 집으로 귀가한 시즈코는 그에 대해 아야(彩)에게 이야기했다. 그에 대한 아야의 대답은 지극히 단순했다.

오다와 우에스기는 동맹이지만, 가신이 교류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그걸 멋대로 자택에 끌어들여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것인가가 아야에게는 의문이었다.


"어차피 영주님(お館様)이시니까 그의 행동도 빈틈없이 조사하고 계시겠지. 거기다 지금 그는 중요한 안건에 관계하고 있지 않으니까. 뭐, 영주님에게는 어떻게 할지 확인은 하겠지만"


"그건 그렇습니다만……"


"뭐, 신경쓰지 않아도 문제없어. 어설프게 몰래몰래 하는 것 같으면 '우에스기 가문의 무사가 간자 흉내라니 언어도단(言語道断)'이라고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한다면 비트만들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니까"


시즈코의 저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비트만 패밀리의 영역이다. 사람에 의한 감시와 동물에 의한 감시를 양쪽 다 돌파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만약 카네츠구가 몰래 간자 흉내를 낸다면, 그 점을 찔러 주도권을 쥐면 된다. 그러지 않고 당당하게 하더라도, 지금의 시즈코에게 감춰야 할 비밀은 없다.


"그렇다곤 해도 방심은 금물. 당분간 비트만들이나 마루타(丸太) 정도를 방에 들여놓을까. 꽤나 경계심이 강하니까, 마루타는"


아야는 흘깃 마루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경계심 제로로 배를 다 드러낸 채, 게다가 대자로 누워 자고 있는 마루타를 보고 경계심이 높다는 말을 들어도 머릿속에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트만들이 있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하여, 아야는 마루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는 영주님께 편지를 보낼 준비를 해 오겠습니다"


처음에는 읽고 쓰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아야였으나, 시즈코가 확실히 교육시킨 덕분에, 지금은 읽기, 쓰기, 주판이 가능한 재녀(才女)가 되었다.

지기 싫어하는 쇼우(蕭)도 분투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공부(勉学)한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아직 읽고 쓰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피를 이었기 때문인지, 주판 실력은 쑥쑥 늘고 있었다.


"잘 부탁해ー"


"다른 사람들에겐 쇼우 님이 연락하시게 하겠습니다. 저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임시 주택에 옮겨살기 시작한 이후인지, 아니면 새로운 저택은 대인원을 전제로 한 것인지, 오다 가문 가신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을 시즈코의 시녀 또는 저택의 고용인, 허드렛일꾼(下働き) 등으로 파견하게 되었다.

임시 저택이라고는 해도 아야나 쇼우만으로는 다 관리할 수 없어, 그것 자체는 고마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 아야가 평민 출신이라는 것이 집의 관리에서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시즈코가 있는 곳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실력과 운이 필요불가결하다.

지금에야 수백의 병사를 맡고 있는 겐로(玄朗)였으나, 처음에는 대장장이였으며 마을을 습격당해 노예가 되었고, 그 후에 노예로 구매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강도가 되었으나 시즈코의 부대에게 진압당했다.

간신히 처벌은 면했으나, 이번에는 고기방패(肉盾)에 가까운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살아남아, 다양한 무공을 세워 간신히 시즈코 부대에 편입된 경력의 소유주이다.

궁기병대(弓騎兵隊)의 대장격인 니스케(仁助)와 요키치(四吉)도 파란만장(波瀾万丈)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들이 시즈코를 신봉하는 것도, 나락(どん底)을 경험하고 밑바닥(最底辺)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실력만을 평가해주기 때문이다.


저택 안에서도 시즈코의 실력주의는 변함이 없어, 재녀가 된 아야를 곁에 두고 집안의 관리 총괄역(取りまとめ)으로 채용하고 있다.

다만,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있었다.

인사(人事)에 신분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사전에 들어도, 지금까지 신분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그리 간단히 의식을 바꿀 수 없는 걸까라고 시즈코는 약간 포기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어설픈 짓을 했다간 가장(家長)으로부터 호된 질책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생각하는 것으로만 그치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뭐하면 아야 짱을 내 여동생으로 삼는 방법도 있어"


"……저 같은 것에겐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그래서는 시즈코 님께 모두 의존하는 것이 됩니다. 조금 더 제 몸 하나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 뭐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감사합니다. 그 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야기는 이만 마치고, 이쪽의 서류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깊이 예를 올린 후, 아야는 시즈코의 눈 앞에 서류를 쌓아올렸다. 끼익, 하고 책상이 비명을 지른 것은 결코 환청이 아닐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메마른 웃음을 떠올리면서 첫 서류를 한 장 들어올렸다.


"하, 하핫, 꽤 많네"


"금년도의 계획을 세우는 달이기에, 이것저것 처리할 서류가 많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중으로 검토(精査)를 부탁드립니다"


"에엑ー, 뭐 하긴 하겠지만 말야,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줘"


"오늘 중에 검토를 부탁드립니다"


당부하듯 다시 말한 후, 아야는 노부나가에게 카네츠구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쉰 후, 다시 종이로 눈을 돌렸다.


"……흐ー음, 꽤나 착안점이 좋은 계획이네"


"오, 이런 곳에 있었구나 시즛치"


서류와 부속된 자료를 훑어보고 있을 때, 생긋 미소를 띤 케이지가 들어왔다. 예의고 나발이고 없이 입구의 맹장지를 기세좋게 열어젖히거는, 그 기세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걸 보고도 시즈코는 맹장지가 망가지지 않을지 걱정할 뿐이었다.


"요로쿠(与六) 님 때문이죠"


"정답. 그래서ーーー"


"밤새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술을 내달라, 고는 하지 않겠죠?"


순간, 케이지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었다. 손으로 얼굴을 괴고 시즈코는 생긋 미소를 떠올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케이지를 향해 말을 이었다.


"안주로 카라스미가 좋겠다, 고도 하지 않겠죠?"


"아, 아니 그 말이 맞아. 역시 시즛치, 잘 알고 있네ー. 그러니 부탁해, 응?"


전부 꿰뚫어보여진 것을 안 케이지는, 양손을 모아 시즈코에게 합장했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던 시즈코였으나, 생각하는 것도 바보스러워져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녁 식사는 방어(ブリ)와 야채의 냄비요리에요. 그 때 술을 마시지 않겠다면 허가할게요"


"윽, 냄비요리에 술 금지는 가혹한데"


"이래뵈도 꽤 양보하고 있는 거에요. 원래는 안 된다고 할 상황이니까요"


팔짱을 끼고 신음한 케이지였으나, 아무래도 이 이상의 양보는 불가능했다.

시즈코가 돈을 대신 내준 것(立て替え) 때문에도 꽤나 고생했으니, 여기는 시즈코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이외에 케이지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할 수 없지, 그 조건을 받아들일게"


"그럼 저녁 식사 후에 열쇠를 받으러 와요. 창고 지하실로 가는 열쇠도 같이 줄테니까"


창고(蔵)는 지상 2층이 기본이지만, 술을 보관하는 창고만은 지하 1층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지하 쪽이 보존에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1층이나 2층의 경우, 사람이 창고의 문을 열 때 습도나 온도가 변화해 버린다. 그 점에서, 지하는 설비가 갖춰져 있다면 문을 여닫는 정도로는 기온이나 습도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품질 유지, 그리고 간단히 가지고 나갈 수 없게 하기 위해, 일부러 술은 지하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잘 부탁해ー"


대화가 끝나자 케이지는 손을 살래살래 흔들고 나갔다. 한 번 한숨을 쉰 후, 시즈코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 후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그녀는 서류의 처리를 계속할 뿐이었다.




카네츠구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집 안에 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는 것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시즈코가 케이지들과 식탁을 함께 둘러앉은 것이었다.

무사의 식사라고 하면 현미(玄米)가 듬뿍, 그것도 적미(赤米)나 흑미(黒米)가 기본이다. 반찬(副食)도 절임(漬け物)이나 매실장아찌(梅干し) 등 짠 것들 뿐이고, 잘해봐야 야채를 익힌 것(煮物)이 나오는 정도였다.

그런데 밥은 백반(白飯), 된장국은 겨된장(糠味噌)이 아니라 콩된장(豆味噌), 주찬은 야채와 방어의 냄비요리였다. 그것도 백반을 먹고 있는 것은 시즈코 뿐만이 아니라, 케이지나 사이조 등의 가신들, 그리고 시녀인 아야까지 백반이었다.

밥 뿐만 아니라 반찬도 하나같이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독이 어쩌니 하기 이전의 이야기라고 카네츠구는 경악했다.


"어라, 입에 맞지 않았나?"


카네츠구의 젓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가 식사를 멈추고 질문했다. 그 말에 정신이 든 카네츠구는 다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백반 같은 건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놀랍군요"


"일단 영양가를 생각해서 가끔 적미나 흑미를 섞는 경우는 있어. 저쪽의 결식아동들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어이없는 표정으로 시즈코는 어떤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케이지와 사이조, 나가요시(長可)가 떠들썩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서로 다투듯 냄비 요리를 집어 밥과 함께 퍼먹고는 추가 주문을 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백반만으로도 충분한 양을 확보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영양가를 생각해서 현미식이나 백반이라도 5% 정도의 적미나 흑미를 섞어서 비타민이나 미네랄 종류를 보충하고 있었다.

또 적미나 현미는 백미(白米)와 함께 밥을 지으면 보기에 아름다워지고, 적미나 흑미의 독특한 향기를 즐길 수 있는 밥이 된다.

전부 적미나 흑미로 하면 맛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밥이 되지만, 이런 '카야쿠(かやく) 밥'으로 만들어서 밥에도 다양한 배리에이션을 주고 있었다.

물론, 항상 백반을 먹는 케이지들에게는 적미나 흑미 같은 걸 섞은 밥이나 현미밥은 별로 평가가 좋지 않았지만.


"그건 그렇고, 시녀까지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계시군요"


"응? 방어는 그렇다치고, 냄비요리의 야채나 쌀은 내가 재배한 거고, 된장은 내가 만든 거야. 그러니까 그다지 돈은 안 들었어"


"네?"


시즈코의 말을 듣고 카네츠구는 더욱 고민했다.


(잠깐잠깐, 재배라고?

어째서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이 백성(百姓) 흉내를 내는 거냐. 이건 그녀 나름대로 재력을 알리지 않게 하기 위해 얼버무리는 건가? 아니, 아냐. 아무리 봐도 진심인 눈빛이다. 도저히 사람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그 자신도 우에스기 가문에서 카부키모노(傾奇者)라느니 비상식적(常識知らず)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시즈코의 언동은 그런 카네츠구조차 곤혹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달리 생각하자, 요로쿠. 재배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그냥 관리하고 있을 뿐이겠지)


"그러고보니 시즛치, 최근에 만든 시설은 뭣 때문에 만든 거야?"


"그건 방류할 연어(鮭)의 치어(稚魚)를 키우고 있는 곳이에요"


억지로 납득하려던 카네츠구였으나, 케이지와 시즈코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로 다시 사고가 나락으로 떨구어졌다.


(잠깐잠깐, 방류라고?

연어의 치어라니, 대체 뭣 떄문에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아니 그보다, 어째서 시즈코 님이 직접 키우고 있는거냐. 아니, 가신이라고 해도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판인데, 자신의 기술은 가급적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


연어나 송어(マス) 류의 인공 부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산란 시기의 물고기를 잡아서 물이 묻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채란(採卵)하여 수정(受精)시킨 후, 부화에 적합한 환경의 수조(水槽)에 담근다.

이것이 근년에 연어나 송어 류의 인공부화에 쓰이고 있는 건도법(乾導法)이라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19세기 후반에 C.G. 앳킨스(Atkins) 박사에 의해 확립되었다.

참고로, 물이 묻지 않게 하는 이유는, 물이 묻으면 알이 수정되었다고 생각하여 수정된 알과 똑같이 성장하지만, 결코 부화하지 않는 미수정란(未受精卵)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다른 사람이 키우고 있는 치어랑 함께 방류할거에요. 재작년부터 하고 있으니, 앞으로 1년이나 2년은 성과가 나오지 않겠지만. 뭐, 내년 쯤에 잔뜩 돌아올거라고 생각해요, 연어"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잠깐. 연어가 잡히는 강은 봉토(知行地)로 내려질 정도의 강이라고. 타케다는 잡은 연어의 절반 가까이나 세금으로 내게 하고 있어. 그 연어를 늘리는 기술을, 어째서 쉽게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냐!)


그가 고민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실은 시즈코는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어, 그녀의 기술을 다른 사람이 알더라도 딱히 문제없게 하고 있다.

그것이 특허(特許)이다. 특허란 사회에 유익한 발명을 한 인물이나 조직이, 일정기간 독점적인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상공업을 독점하거나, 특허를 이요하고 싶은 사람들로부터 특허료를 징수하거나 할 수 있다. 특허는 양날의 검이기는 하나, 장인들이 유익한 기술을 감춘 채 기술이 소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 발명자가 개발 의욕을 잃거나, 새로운 사업, 새로운 시장의 개척에 대한 의욕을 잃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물론, 제한없는 우선권(優先権)은 아니다. 시장 독점에는 일정한 제한이 걸리며, 특허료에 대해서도 지불하는 쪽이 불복할 경우 이의 신청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가장 중요한 것인데, 특허로 인정된 내용을 다른 나라에 팔면 엄격한 처벌이 가해진다.

기술의 랭크에 따라 달라지긴 하나 최저한이라도 일가 전원 참수, 기초 연구 등의 근간기술(根幹技術)일 경우 멸족(族滅), 소위 말하는 일가친지(一族郎党) 전원이 참수에 처해지는 경우도 있다.

일족 이외의 관계자가 있다면, 관계자에게도 고문을 포함한 심문이 가해진다.

특허에 관해서는 다양한 형법이 제정되어 있지만, 정보 누설이나 스파이 행위는 특히 엄격한 대응이 취해지도록 되어 있다.


(으음ー, 모르겠군)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카네츠구는 실컷 고민하고,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얌전히 백반을 먹으려고 밥을 입에 넣은 순간, 입구의 맹장지가 기세좋게 열어젖혀졌다.


"시즈코오…… 하리하리나베가 연기라는 건 어떻게 된 일이냐~!"


기세좋게 맹장지를 열어젖힌 것은 오이치(お市)였다. 뒤에서 챠챠(茶々)와 하츠(初)가 양손을 펼쳐 맹장지를 기세좋게 열어젖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기세좋게 맹장지를 열어젖히는 것이 예법인가, 라고 카네츠구는 반쯤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말씀드렸잖아요. 고기를 숙성시키기 때문에 조금 기다려야 한다고요"


"음, 듣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모른다"


"그걸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해체 전에 숙성되어 있다고는 해도,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요. 괜찮습니다, 내일은 먹을 수 있으니까요"


고래는 인간보다 다소 체온이 높다. 그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부패하지 않도록 복부를 갈라(내장은 버리지 않고 남겨둠), 16시간 정도 바닷속에 넣어 온도를 저온으로 유지하여 고기를 숙성시킨다.

포경 후, 항구로 운반된 고래는 신사(神事)를 치른 후에 이 작업을 반드시 거친다. 따라서 신사가 끝난 후, 하루를 기다리지 않으면 고래 고기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건 사전에 전달했을텐데, 오이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크윽, 어쩔 수 없지. 그럼 오늘은 그 냄비요리로 용서해주마"


"용서해주시고 뭐고, 이건 제 저녁 식사인데요…… 아니 그보다 그쪽에도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텐데요"


"식어빠진 밥 따윈 먹을 게 못 된다. 게다가 맛있는 것은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거다, 라고 노히메(濃姫) 님도 말씀하셨지. 에잇, 이 어미는 너희들을 돌봐주지 않을 것이다. 시즈코에게 돌봐달라고 해라"


말이 끝나자마자 오이치는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챠챠나 하츠도 옆에 앉으려 했으나, 오이치는 무정하게도 자기 자식을 내쳤다.

하지만 익숙한 듯, 챠챠와 하츠는 그대로 시즈코 쪽으로 가서 적당한 장소에 자리잡았다.


(남자도 여자도 관계없다. 맛있는 것은 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 것, 인가. 정말로 파격적인 이야기군…… 하지만 나쁘지 않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네츠구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목욕(風呂)이란 좋은 것이군"


인생 첫 입욕(入浴)을 경험한 카네츠구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전신이 뜨끈뜨끈한 상태인 카네츠구는, 케이지가 머물고 있는 암자로 향했다.

임시 저택의 뜰에 있는 암자는 크게 잡아도 6첩(畳, ※역주: 6첩은 약 3평 정도)로,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속세에서 동떨어진 정숙한 분위기(風情)가 있었다.


"우선 한잔(一献) 하지"


케이지가 준비한 찻잔(茶碗) 두 개에 술을 따르더니, 하나를 카네츠구에게 내밀었다. 카네츠구가 받아들자, 케이지는 씩 웃으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카네츠구도 그에 따랐다.


"특이한 그릇이로군"


"시즛치 말에 따르면 대폿술(茶碗酒)이라는 거지. 본래는 차를 마시는 그릇으로 술을 마시다니, 대단히 통쾌하지 않나"


"확실히 그렇군"


다도회(茶の湯)는 상류 계급의 오락으로 정착되어 있지만, 그것을 위해 쓰이는 그릇으로 일부러 술을 마신다. 파격적인 이야기지만, 실로 시원스러운(小気味よい) 이야기라고 카네츠구는 생각했다.

술이 달빛을 반사하는 것을 꺠달은 카네츠구는, 찻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물처럼 맑군. 달빛을 비추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어"


"구경하는 건 거기까지 하고, 일단은 마시자고"


말이 끝나자마자 케이지는 찻잔을 기울여 단번에 잔을 비웠다. 조금 늦게 카네츠구도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찻잔의 술을 단번에 마셨다.


"……맛있군! 그 말밖에 못 하겠어"


"좋은 것에 말은 필요없지"


빈 찻잔에 서로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군…… 음, 이 안주도 맛있군. 술이 계속 당기는데"


카라스미를 한 조각 입에 넣고, 이어서 술을 입 안에 흘려넣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맛이 입 안에 퍼져나갔다.

술안주 같은 건 항상 소금절이(塩)로, 그것도 몇 번 마실 때마다 한 번 먹으면 다행이었던 카네츠구에게 카라스미는 기대하지도 못했던 절품(逸品)이었다.

그 이후로는 술맛이 뛰어남을 인정하며 두 사람은 담소했다. 이야기하는 내용은 다양했다. 물론, 기밀에 관한 것은 서로 가볍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아니, 하지만 정말로 부럽군. 이런 술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지. 우리 주군께서 칭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시즛치는 봉토가 없으니까. 땅을 주지 못하는 대신, 이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융통해주지. 뭐 가끔 과하게 마셨다가 혼나는 경우도 있지만"


혼나고 있는 것치고는 전혀 변함이 없는 분위기의 케이지였다. 웃으면서 카네츠구가 찻잔을 입에 가져갔을 때,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풍겨왔다.

궁금해져서 주위를 둘러보자, 케이지도 냄새를 알아챈 듯 열심히 냄새가 어디서 풍겨오는 지 찾았다.


"들어가겠다"


그 말과 함꼐 맹장지가 열렸다. 이어서 큰 접시를 한 손에 들고 사이조와 나가요시가 방에 들어왔다. 냄새가 풍겨오는 곳은 사이조가 들고있는 그릇인 것을 두 사람은 깨달았다.

큰 접시를 중앙에 놓더니 사이조는 적당한 장소에 앉았다. 가지고 있던 술병을 큰 접시 옆에 놓고는 나가요시도 마찬가지로 앉았다.


"네가 이쪽으로 오다니 별일이군. 오, 구운 닭(焼き鳥)이라니 호화롭잖아"


"……시즈코 님께서 '남자들이 이야기할 떄는 이거잖아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술과 안주를 내려주셨다"


"꽤나 멋진 배려잖아. 그럼 당장…… 음, 맛있군"


지금도 카네츠구를 경계하는 사이조에게, 시즈코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그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라는 걸 케이지는 이해했다.

나가요시는 신경쓰지 않고 있는 건지, 재빨리 술을 자신의 찻잔에 따르더니 구운 닭을 한 손에 들고 사이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단 마셔라. 더 못 마시겠다는 말은 못할 거다"


말이 끝나자마자 비어 있는 카네츠구의 찻잔에 사이조가 술을 찰랑거리게 따랐다. 꽤나 마신 카네츠구였으나 그는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이, 에치고 사람을 얕보지 말라고.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따라진 술 따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카네츠구는 술을 단번에 비웠다. 씩 웃더니, 사이조는 자신의 찻잔을 내밀었다. 따라봐라, 라는 의미라고 이해한 카네츠구는, 마찬가지로 술을 찰랑거리게 따랐다.

사이조도 카네츠구와 마찬가지로 술을 단번에 비웠다.


"얕보지 마라, 꼬마야. 이쪽은 술고래(大酒飲み)와 항상 상대하고 있지. 에치고 사람 따위 한 손으로 비틀어주마"


"그쪽이야말로 에치고 사람을 얕보지 말라고. 케이지 님과 먼저 마셨던 정도로 내가 불리해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주지"


그 이후에는 서로 술을 단번에 마시고,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이래저래 부추기면서 자신들도 열심히 마셔댔다.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와 기세로 떠들썩하게 마셔댔기에, 다음 날 네 사람은 나란히 숙취(二日酔い)에 가까운 상태가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술자 마을이나 양조 마을(醸造街)은 설령 우에스기 가문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없지만, 항구 마을과 시즈코가 관여하고 있는 마을은 평범하게 출입할 수 있었다.

양쪽 모두 해당되는 것이지만, 요리점이 늘어선 장소는 위장이 자극받는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특히 항구 마을은 해산물이 풍부하게 모이는 관계로 요리점이 많았고, 그 때문에 각 가게가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어느 가게나 뱃속에 호소하는 냄새로군"


주위에 감도는 냄새를 맡으며 카네츠구는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먹고 싶어질 정도로 향기로운 요리의 향기였다.


"하핫, 여기는 시즛치가 관리하는 장소니까. 하나같이 맛있찌만, 역시 제일 인기 있는 건 장어집(鰻静)이겠지. 거기는 시즛치에게서 비전의 소스(タレ)인가 하는 걸 받아서 장어덮밥(鰻丼)이나 장어찬합(鰻重)을 시작한 모양인데 이게 엄청나게 유행이야. 장어가 잔뜩 잡힌 날에는 장사진이 생긴다고"


옆을 걷고 있던 케이지가 어느 가게에 들어갈 지 고민하면서 카네츠구에게 설명했다.


"먹어보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인기라면 줄을 서는 것도 큰일이겠군"


"유행이 지나차서 종종 싸움까지 벌어질 정도지. 덕분에 시즛치가 장어의 양식까지 계획하게 되었어"


"……전에도 들었지만, 어째서 굳이 늘리려고 하지? 생선 같은 건 얼마든지 잡힐텐데"


양식이란 대상의 생물을 인공적으로 키우는 산업이다. 현대처럼 해양자원의 고갈이 걱정된다면 몰라도, 외양(外洋)에도 나가지 못하는 시대에서는 해양자원이 고갈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수백년에 한 번 꼴의 기상이변이 일어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전국시대의 기후는 현대보다 춥기는 해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양자원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


"잡혔다고 해서, 백성들의 입에 얼마나 들어갈까"


"뭐?"


일순, 카네츠구는 케이지의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케이지는 담배가 들어 있지 않은 담뱃대를 입으로 아래위로 움직이면서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생선이 풍족하게 잡혀봤자, 백성들이 그 생선을 얼마나 먹을 수 있겠어. 높은 양반들만 먹고 아랫사람들이 먹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즉, 운이 필요한 바다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확실히 잡을 수 있는 먹거리(食い扶持)를 늘린다, 라는 건가"


"오다 나으리가 천하를 통일하면, 자연스럽게 싸움은 사라져 가겠지. 지금까지처럼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할 수 없게 되지. 그렇게 되면 서로 뺏고 빼앗게 되는 거야. 쟁탈전을 벌이면 이윽고 모든 것을 다 먹어치워버리게 되지"


조금 쓸쓸한 듯한 목소리로 케이지는 말을 이었다. 그는 순수(生粋)한 무사(いくさ人)이다. 싸움이 사라지면 그는 죽을 장소를 잃어버린다. 무사에게 있어 죽을 장소를 잃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그래도 그는 시즈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설령 싸움터를 잃게 되더라도, 그녀가 노부나가 밑에서 만들려고 하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복잡(難儀)한 성격이라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무사로서 죽을 장소를 찾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보고 싶다, 그런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이쿠, 거기 계신 건 케이지 님 아니십니까"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기에 케이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살집이 좋은 뚱뚱한 여성이 있었다. 종자(お供)인 여성이 뒤에 서 있는 것을 보니 높은 지위의 사람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사키(咲)님인가. 별일이군, 이쪽까지 나오다니"


"호호홋, 겨우 이쪽에 가게를 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거든요. 예비 조사(下見)도 겸해서 견학을 왔지요"


본명은 불명, 창녀(女郎) 들로부터는 사키라고 불리는 여성은, 항구 마을에 있는 유곽, 제 2구(二之区)의 유력자였다. 코토(琴)와 오토(音)가 날씬하고 미인인데 반해, 사키는 살이 찐 편인데다 결코 미인이라고는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항상 상냥하고, 때로는 엄하면서도 애정 있는 질타를 하는 사키는, 제 2구의 창녀들로부터 '엄마'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고 있었다.


"아, 당신 쪽은 창독(瘡毒) 환자가 나왔었지"


예전에 사키가 관리하던 제 2구에서 창독, 다른 명칭은 매독(梅毒)이라고 하는 감염증에 걸린 사람이 나와버렸다. 그것도 시즈코의 마을에 지점을 낼 허가를 내주기 직전이었다.

기본적으로 성행위로 감염되는 병이기에,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에 지점을 낼 허가는 취소되고, 새로운 환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 조건에 더해졌다.


"한 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시즈코님 덕분에 겨우 나았습니다"


"오ー, 그렇다는 건 제 2구 폐쇄는 해제된 건가"


매독이 발생한 이상,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 시즈코는 제 2구를 일시적으로 봉쇄했다. 장사는 끝장이었지만, 이것만큼은 계약 관계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호호홋, 겨우 다시 장사 시작이지요. 지금부터 손해본 걸 메꿔야 하니까요. 그럼, 전 이만 실례하지요"


케이지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사키는 동행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흐ー음, 이런저런 일이 있군. 어이쿠, 이런. 우리도 술을 사서 돌아가지"


"꽤나 흥미깊은 얘기였어. 오늘 밤 술안주로 삼자고"


웃으면서 두 사람은 술가게로 갔다. 시즈코의 창고에 술은 잔뜩 있지만, 가끔은 밖에서 파는 술도 마시고 싶어진 두 사람은, 적당한 술을 몇 종류 구입해서 귀로에 올랐다.

도중에 아무 일도 없이 귀가한 두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의 저택 앞까지 왔을때 이변을 눈치챘다.


"엉? 왠지 사람이 많은 거 아닌가"


평소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며 사람의 출입도 적은 편인 시즈코의 저택 앞이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신분이 높은 사람의 종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들을 피해 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즉시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가 콧구멍을 간지럽혔다. 잘 맡아보니 발효 식품 같은 시큼한 느낌이었는데, 상당히 특이한 향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설마!"


뭔가에 생각이 미친 케이지가 서둘러 달려나갔다. 순간 놀란 카네츠구였으나 즉시 그의 뒤를 쫓았다. 예민한 후각으로 향기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던 케이지였으나, 잠시 후 그는 발을 멈추게 되었다.


"이 앞에는 주군께서 계시오. 누구라도 지나갈 수 없소"


케이지 앞을 가로막고 선 것은 호리(堀)였다. 그를 보고 케이지는 발을 굴렀다. 누가 이 집에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제길, 뭔가 하려고 하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설마 오늘이었을 줄이야!"


"포기하시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카네츠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케이지에게 물으려고 카네츠구가 입을 벌리려던 순간, 복도(廊下) 안쪽에서 반론을 허용치 않는(有無を言わせぬ) 박력이 담긴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호리는 옆으로 비켜나서 무릎을 꿇었다. 케이지도 속이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복도 옆으로 비켜섰다.


"맛있는 것은 다 같이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단, 내가 가장 먼저 맛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안쪽에서 나타난 것은 노부나가였다. 그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르고 잇는 카네츠구를 쳐다보더니, 입술 끝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네놈이 우에스기에서 온 녀석이냐"


그 한 마디에 그 자리를 고요함이 지배했다.

식은땀을 흘린 카네츠구는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카네츠구는 노부나가에게서 느껴지는 중압감을 겨우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에스기 카게카츠의 오른팔이 되었을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근시, 그것도 12세 정도의 풋내기다.

수많은 전장을 달리며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발호(跋扈)하는 쿄에서 몇 년이나 공가(公家)나 불가(仏家)와 싸우고, 때로는 협력하며 정치를 휘어잡고 있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발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카네츠구는 최대한 허세를 부렸다.


"훗…… 호리, 곧 시즈코가 남만의 음식인 '피자'라는 걸 구울 것이다. 너는 사람들을 데리고 그걸 나르게 해라. 갓 구운 것이 맛있다는 것 같으니, 빨리 날라오도록 엄히 명해라"


모든 것을 꿰뚫어본 노부나가였으나, 카네츠구의 허세는 지적하지 않고 호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순 카네츠구를 본 호리였으나, 곧 정중하게 노부나가에게 예를 올리고 조용히 떠나갔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다면 시즈코와 백성들을 잘 봐두어라. 그곳에 네놈이 원하는 답이 있다"


그 말만 하고 노부나가는 한 번 돌아보는 법도 없이 카네츠구의 옆을 지나쳐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노부나가가 사라지고 잠시 후, 카네츠구는 겨우 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여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 정도로 노부나가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다. 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방심하면 목젖을 물어뜯길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저것이…… 적이라면 불가조차 멸망시키는 제육천마(第六天魔))


노부나가의 별명이 되어 있기도 한 제육천마. 하지만,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노부나가가 처음은 아니다.

유명한 인물로서는 최초로는 엔랴쿠지(延暦寺)의 천태좌주(天台座主)에 올랐으나, 후에 환속(還俗)하여 아시카가 쇼군(足利将軍)이 된 아시카가 요시노리(足利義教)도, 엔랴쿠지와 적대했을 때 제육천마의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 밖에도 두 번째로 엔랴쿠지를 불태웠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 등, 엔랴쿠지와 적대하면 엔랴쿠지 관계자나 민중들로부터 제육천마의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람이군)


카네츠구는 잠시 홀린 듯이 노부나가가 떠나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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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6 1572년 1월 상순



시즈코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월을 보내고, 2일째의 연회에도 얼굴을 내밀고, 3일째 이후에 오다 가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것을 마쳤다.

평소에는 시즈코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호위대(馬廻衆)인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곁에서 시중드는 쇼우(蕭)도 친족이 있는 곳으로 귀성하여, 항상 소란스러운 시즈코의 저택도 잠시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가롭네"


아야(彩)가 끓여준 차를 마시면서 시즈코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밖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추위에 강한 동물들은 뜰에서 활기차게 놀고 있었다.

얼음이 언 연못을 미끄러지며 노는 녀석도 있었다. 가끔 넘어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져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애교였다.


정월만큼은 세상의 소란스러움(喧噪)도 잊고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직 마츠노우치(松の内, ※역주: 설에 門松(=대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를 세워 두는 동안(설날부터 7일 혹은 15일까지))인 10일 미명(未明), 미츠히데(光秀)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사카모토 성(坂本城) 축성(築城)을 위해 파견한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해서였다.

직속(子飼い)의 쿠로쿠와슈에서 축성(築城) 전문의 장인들을 선발하여, 얼마간의 자재와 함께 사카모토 성으로 파견했는데,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건지 미츠히데로부터 장인들의 파견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탄원이 온 것이다.

사카모토 성은 엔랴쿠지(延暦寺)의 감시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성이다. 어설픈 성으로는 문제가 생기기 떄문에, 시즈코는 예정을 조정하여 본래 연말이었던 파견 기간을 해가 바뀌고 연초의 일들이 일단락될 때까지 연장했다.


미츠히데의 건이 끝나자, 그와 교차하듯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시가(志賀) 군(郡) 북부(北部)의 성을 공격할 것이므로 무구(武具)의 생산을 명하는 내용이었다.

기술자 마을과 후방 부대인 부츠류슈(物流衆, ※역주: 물류팀)에 무구류를 '컨테이너'로 운반하도록 명했다. 최근의 부츠류슈 컨테이너 수송을 주로 하고 있었다.

컨테이너의 이점은 뭐라 해도 수송 코스트가 대폭 낮아지는 점이다. 규격화된 용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을 컨테이너의 숫자만으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었다.


후방지원 작업은 가볍게 보여지기 쉽지만, 노부나가와 미츠히데, 그리고 히데요시(秀吉)만은 후방지원 작업은 전쟁을 하기 위해 중요하며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작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 후방지원 작업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설득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주종관계에 깊은 골이 생기게 된다.

그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노부나가의 방어망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시즈코의 물자 수송 부대인 부츠류슈의 존재가 크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받은 정보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물자 운반에 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정월부터 시간이 남아돌고 있는 오이치(お市)였다.


"심심하구나, 뭔가 없느냐 시즈코"


"책장에 도연초(徒然草)의 사본(写本)이 있습니다"


당연한 듯 죽치고 있는 이치에게 시즈코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도연초는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치에게는 따분한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성인 것이 티가 나는 시즈코를 보고 이치는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눈 앞의 서류 정리에 바쁜 시즈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시즈코―, 심심해―"


"심심해―"


챠챠(茶々)가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조금 늦게 하츠(初)가 챠챠의 포즈를 흉내냈다.


"비싸게 주고 산 조수인물희화(鳥獣人物戯画)의 사본 전권(全巻)이라면 윗칸에 놔뒀습니다"


조수인물희화란, 당시의 세상이나 풍자 등이 동물이나 인간을 이용해 희화적으로 그려진 두루마리다.


지본묵화(紙本墨画, ※역주: 수묵화나 뭐 그런 의미 같은데 검색해봐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음) 작품으로 갑(甲), 을(乙), 병(丙), 정(丁)의 4권으로 구성되며, 토끼와 개구리가 씨름(相撲)을 하고 있는 묘사가 있는 갑권이 특히 유명하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현대의 만화(漫画)에 통하는 효과 등도 포함된 작풍(作風)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만화"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유래(成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며, 각권에 이어지는 내용이 없고 필치(筆致)나 화풍(画風)도 다르기 때문에, 12~13세기에 걸친 폭넓은 연대에 복수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다른 작품을 집대성한 결과, 조수인물희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청소납언사(清少納言抄=침초자(枕草子), ※역주: 세이쇼나곤(清少納言)이라는 여류작가의 수필작품), 방장기(方丈記) 같은 건―"


"에잇, 그게 아니다. 따분한데 뭔가 재미있는 건 없느냐고 묻고 있는게다"


"친정에 가셔서 느긋하게 지내시는 건 어떠신가요"


"흥, 나는 아자이(浅井) 가문의 배신을 저지하지 못했단 말이다. 친족들은 다들 나를 꺼리고 있지. 오라버니 이외에는 다들 서먹서먹하더구나"


이치의 말을 들은 시즈코는 자신의 실언(失言)을 깨달았다. 이치는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이 동맹을 맺기 위해 아자이 가문에 시집갔다. 그러나 아자이 가문은 집안 소동 끝에 가장(家長)인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가 쫓겨나 버렸다.

동시에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치가 친족들로부터 백안시당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뭐랄까……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오라버니의 위광(威光)을 등에 업고 지껄이는 놈들 따윈 내버려두면 된다. 그런 치졸한 놈들 따윈 놔두고 말이다, 시즈코는 내 심심풀이를 돕거라"


"돕거라―"


"돕거라―"


이치, 그리고 딸들인 챠챠와 하츠가 나란히 재촉했다. 이 이상 화제를 돌리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심을 말하면 조금 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뭐라 해도 얼핏 보기에는 그냥 적당한 사무처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중요한 처리를 중요한 듯 하면 사람의 인상에 남기 쉽다. 하지만, 지금처럼 잡담을 섞어가며 하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즉, 타인의 인상에 남지 않기에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적다. 결점이 있다고 하면, 지금의 이치처럼 작업에 끼어들어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고로(高炉)의 주역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고 나는 재료를 갖추기만 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도 없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어젯밤 눈이 많이 내렸으니 썰매(ソリ)라도 타죠"


썰매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은 순간 이치가 눈을 빛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으나, 어찌어찌 참으며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을 갖춘 후, 시즈코는 이치들을 데리고 병사 훈련소로 왔다. 지금은 정월 휴가도 겹쳐 아무도 없었다.


(훈련용의 언덕이지만, 여기면 되겠지)


본래는 앞으로 수그린 자세로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병사들의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었다. 정비된 언덕 같은건 잘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보도(歩道)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된다.


"겨, 겨우 다 올라온 것이냐. 후―, 피곤하구나"


설피(雪皮, かんじき)를 장비하고 있다고는 해도, 훈련받지 않은 이치들에게는 언덕을 오르는 것은 중노동이다. 정월 휴가라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마(駕籠)로 오르는 것은 포기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체력을 길러 주세요. 뭐, 일단 이것에 타십시오"


"으, 음. 이러면 되느냐?"


들은 대로 시즈코는 썰매에 탔다. 삐져나온 의복을 썰매 안으로 밀어넣은 후, 시즈코는 이치의 등에 손을 댔다.


"그럼, 다녀오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이치의 등을 강하게 밀었다. 기세가 붙은 썰매는 눈 위를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가속해갔다.


"오, 오, 오~~~~~~~~~~~~~!"


썰매가 미끄러지는 동안 이치는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완만하지도 않은 언덕이라, 딱히 설명도 없이 미끄러지게 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놀이기구(絶叫マシン)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럼 아야 짱은 하츠 님을, 나는 챠챠 님을 테우고 미끄러질게―"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것을 직접 본 탓인지, 아야의 표정이 약간 굳어져 있었다. 그에 반해 하츠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고 썰매에 탔다.

이치와 마찬가지로 아야의 등을 밀어 미끄러지게 했다. 그게 끝나자 챠챠를 썰매에 태우고, 시즈코는 발로 땅바닥을 걷어차 기세를 붙인 후 썰매에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햐아아―――!"


"햐―――!"


시즈코와 챠챠, 둘 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졌다. 약 100m 정도 미끄러지자 언덕을 다 내려오게 되었다.


"후―, 재밌었어. 어라, 오이치 님은?"


이마의 땀을 닦은 시즈코는, 먼저 미끄러져 내려왔을 이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썰매를 안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이치의 등이 보였다.


"대단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라, 한번 더 미끄러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시즈코―, 한번 더―"


"한번 더―"


이치의 행동력에 어꺠를 움츠렸을 때, 챠챠와 하츠가 썰매를 태워달라고 재촉해왔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小姓)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두 대의 썰매를 짊어졌다.




30번 정도 미끄러지자 몸이 차가워졌기에, 시즈코들은 썰매타기를 마치고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온천에 들어갔다.


"후~, 극락이로다"


이치는 가장자리에 턱을 올리고 온천을 만끽했다. 챠챠나 하츠는 유모에게 보조를 받으며 탕에 들어가 있었다.


"(하― 치유된다) 아야 짱도 충분히 몸을 덥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시즈코도 아야를 데리고 온천을 만끽하고 있었다. 당초에 신분이 다른 자신이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며 사양한 아야였으나, 차가워진 몸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시즈코가 억지로 데려왔다.


(새로운 온천이 발견되어서 이용하기 편해진 게 다행이네―. 뭔가 계획서를 보니, 내 새 집은 데지마(出島) 처럼 되어 있는데…… 뭐 괜찮으려나)


본래, 온천관(温泉館)은 시즈코의 집이 대개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사용불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물 확보를 위해 우물을 팠을 때, 어떤 지점에서 현재 솟아나고 있는 온천과 동등한 온천이 솟아났다.

처음부터 온천이 솟아나던 곳와 새로 솟아난 온천은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계획을 변경하여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시즈초의 집 안에 포함시키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지금까지 최초의 온천을 기점으로 저택이 증개축되고 있었으나,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저택을 건축하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온천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후우, 기분좋구나. 시즈코의 새 저택이 완성되면 나는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는 것이 유감이다만"


시즈코의 새 집이 완성되면, 원래의 온천관은 노부나가가 관리, 새로운 온천은 시츠코 일동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치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애초에 이치가 노부나가의 별장에 사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다. 사정이 바뀌면 어딘가의 성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런가요?"


"오라버니는 친족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나를 이리로 보내셨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머지 않아 챠챠나 하츠는 어딘가로 시집가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오라버니께서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키면, 나도 신쿠로(新九郎, ※역주: 여기서는 아자이 나가마사를 말함) 님과 계속 부부로 있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상락(上洛)을 위해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을 맺기 위해 이치는 나가마사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히사마사(久政)가 배신한 시점에서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현재는 히사마사가 추방한 나가마사를 노부나가가 보호하고 있는 관계상, 나가마사와 이치의 혼인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히사마사의 본거지인 오다니 성(小谷城)을 합락시킨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확실치 않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치와 나가마사의 혼인은 끝나고, 이치는 다른 누군가에게 시집가게 되리라.

뭐라 해도 오이치는 절세의 미인이다. 시집갈 곳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하지만 오이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인가, 는 본인 밖에 알 수 없다.


"그건 어떨까요. 쓸모없어졌으니 함부로 버린다, 라는 인상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타인의 평가 따위 오라버니가 신경쓰실 리가 없다. 항상 어딜 보고 계신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머나먼 무언가를 이야기하시듯 말씀하시지.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라버니는"


"단순히 당대 제일의 자유분방한 분(気儘人, ※역주: 내키는 대로 충동적으로, 다소 독선적으로 행동한다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의역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핫핫핫, 그건 시즈코가 오라버니와 같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겠지. 우리들 범인(凡人)에겐 무리다. 그렇기에 오라버니는 시즈코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시지"


"항상 굉장히 어려운(無茶) 일만 맡기시니, 조금은 치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오라버니가 '시즈코라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오라버니는 재능이 넘치시기에 뭐든지 혼자서 결정하고, 가신들에게는 지시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시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시즈코에게 맡기고 계시니, 오라버니께서 마음에 들어하신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만"


그런 걸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치의 말대로, 나름 자유롭게 일을 떠맡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노부나가가 맡긴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떄문에 영 실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우쭐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비굴해지지 않고, 평소대로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포경선(捕鯨船)이 돌아오는구나. 그 날 저녁은 냄비 요리(鍋), 그것도 하리하리나베(はりはり鍋)이려나"


"……쿄우나(京菜, ※역주: 가짓과의 야채)와 다시마(昆布)를 요구하신 건 그 때문인가요"


옛부터 교토(京都)에서 재배되었기에 쿄우나라고 불리며, 현대에서는 미즈나(水菜)라고 불리는 가지과의 작물과 고래고개를 사용한 냄비 요리가 하리하리나베이다.

하리하리의 유래는, 미즈나의 아삭아삭한 식감을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냄비요리와 달리 다시마로 맛국물을 내고 고래고기와 미즈나만 넣는 간소한 냄비요리이다.


"후훗, 시즈코가 항구마을에서 어업 관계에 관여하고 있으니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것을 생선에 하더구나. 뭐라고 했더냐…… 처리(絞め)?"


"이케지메(活け締め)와 신케이지메(神経絞め)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것이다"


생각이 난 듯 이치는 양손으로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케지메란 어획한 후에 생선에 하는 처리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피를 뺴어 선도를 유지하는 처리법을 말하지만, 단순히 생선을 죽이는 것을 이케지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식칼로 하지만 '손갈고리(手カギ)'라고 하는 도구 쪽이 범용성이 높기 때문에, 항구 마을에서는 '손갈고리'로만 이케지메를 하고 있었다.


신케이지메란 이름 그대로, 생선의 숨골(延髄) 및 중추신경(中枢神経)을 파괴하는 처리법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연수베기(延髄斬り), 신경뽑기(神経抜き)라고도 한다.

이케지메와 달리, 신케이지메는 송곳(錐)으로 뇌와 연수를 파괴하고, 등뼈를 따라 피아노줄이나 철사(針金) 등을 넣어 충추신경을 파괴한다는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이 처리를 하는 이유는, 생선의 사후경직을 늦추어 선도(鮮度)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신케이지메는 작은 생선이나 중형의 생선에는 하지 않는다. 신케이지메 처리를 하면 살이 물러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케지메는 일본에서 발상된 기술이지만, 이케지메가 꽃을 파운 것은 냉동기술이나 수송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한 쇼와(昭和) 버블 시대 이후가 되어 의외로 역사는 짧다.

그것은 옛날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 중심이었기에, 생선의 선도를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에서는 선도가 높은 생선의 수요가 생겨났다. 그 때문에 이케지메나 신케이지메라는 기술이 태어나게 되었다.


"단순히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생선의 피가 남아있으면, 그게 원인이 되어 부패가 빨라지거든요"


"과연.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것저것 다 생각한 행동인 것이냐"


"……자주 듣는 말인데, 저는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그럼, 슬슬 나갈까. 현기증을 일으켜도 좋지 않으니 말이다"


눈을 반쯤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를 무시하고, 이치는 재빨리 온천에서 나갔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이치를 따라 온천에서 나갔다.

몸을 닦고 욕의(浴衣)로 갈아입은 후, 시즈코는 얼음을 넣은 보리차(麦茶)를 마시며 한숨 돌렸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물에 초석(硝石)을 넣으면 열을 빼앗으니까 얼음을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지. 뭐, 공기식 제빙기가 있으니 우리 집은 그런 고생은 필요없지만)


물에 초석을 넣으면 초석이 물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낮춘다. 그렇게 생겨난 초석이 들어간 얼음에 초석을 더 섞어서,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물을 식히면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 후에는 초석이 든 얼음을 물과 초석으로 분리하여 초석을 회수한다. 이렇게 하면 시기에 관계없이 몇 번이고 초석을 사용하여 얼음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애초에 초석을 쓰지 않고 공기만으로도 제빙기나 냉동고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시즈코는 효율은 좋다고 하기 어렵지만, 초기형의 공기식 제빙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제빙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제빙기 자체가 아니라, 얼음의 가치가 변화하는 것에 기인한다.

제빙기가 일반적이 되면 얼음의 가치는 격감하여, 현재 제빙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얼음을 유통시키는 물류에도 영향이 미친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정체되고, 많은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얼음은 사치품이라는 위치가 딱 좋은 것이다.


공기식 제빙기는 단순한 원리로 되어 있으나, 효율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얼음판 한 장 만드는 데 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은 얼음을 만드는 것에 한정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오거(auger) 방식이라는 구조로, 차게 식힌 원기둥의 벽에 물을 천천히 흘린다.

원기둥의 벽에 생긴 얼음막을 깎아서 모은 후, 마지막에 압력을 가해 원하는 형태의 얼음을 만드는 것 뿐이다. 흘려넣는 작업으로 하는 것이라서 대량의 얼음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음은 만들 수 없다.


(스털링 엔진의 완성은 아직인가―. 저번의 보고로는 겨우 검증기(検証機) 개발에 돌입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유압이나 공기압이 있는 것만으로 이만큼 작업 효율이 올라갈 줄은 몰랐어)


시즈코는 잊고 있지만, 엔진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엔진이라는 기관이 탄생된 것이 산업혁명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원시적인 엔진이라고는 해도, 스털링 엔진이 완성되면 가능한 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진다.

코스트를 무시한다면 발전기나 냉장고, 에어컨 등도 가능해진다.

물론 개발했다고 해도 코스트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기에, 잘해봐야 노부나가같은 한정된 권력자가 이용하는 데 그치겠지만.


"시즈코―, 차―"


두 손을 펼쳐 챠챠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차를 요구했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챠챠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기쁜 듯 받아들더니 챠챠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렸다. 온천에서 뜨거워진 몸에는 딱 좋았던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한잔 더―"


"……찻잔, 두 개 정도 더 필요하겠네"


시즈코의 예상은 적중하여, 챠챠를 발견한 이치와 하츠도 마찬가지로 얼음을 넣은 차를 요구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시즈코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케이지 이외에는 설날에서 7일이 지나면 시즈코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전원이 한숨 돌린 지 며칠 후, 시즈코는 항구마을로 갔다.

새해 첫 포경선이 귀환한 것을 맞이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항구마을에서는 포경이 성행하고 있었으나, 다른 것과 달리 포경에는 다양한 조직이나 규칙이 존재한다. 우선 포경을 하는 사람은 모두 포경조합(捕鯨組合)에 가입해야 한다.

가입 날짜는 물론이고 신장이나 체중, 연령이나 건강 상태 등이 기록된다. 그러한 정보들은 모두 고래절(鯨寺)에 보관된다.


고래절이란 포경한 고래를 위한 위패(位牌)를 만들고, 계명(戒名)을 붙여 공양탑(供養塔)을 건립 및 관할하는 절이다. 일본에는 몇 개가 있으며, 가장 유명한 절은 시코쿠(四国) 하치쥬핫카쇼(八十八箇所)의 류우즈 산(龍頭山) 콘고쵸지(金剛頂寺)이다.

절에는 고래를 위한 위패나 공양탑, 포경조합의 명부(名簿) 외에, 포경장(捕鯨帳)이라고 불리는 포경에 관한 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포경장에는 포경한 날짜와 시간, 잡힌 고래의 크기, 대략적인 장소, 관여한 포경조합의 멤버 리스트, 해체한 부위의 매각처나 처분 방법 등, 포경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생선과 달리 고래에는 세세한 규칙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경장에 기록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운좋게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라 하더라도 일체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이것은 고래가 해안가로 떠밀려온다는 것은 바다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밖에도 포경한 고래는 바로 해체하지는 않고, 일정한 순서에 따른 신사(神事)를 치른다는 규칙이 있다.


우선 고래절에 포경 보고를 하고, 주지(住職)가 고래에 계명을 붙인다.

그 후, 고래의 혓바닥을 잘라내어 바다에 흘려보낸다. 이것은 '우리들은 고래에 감사하며 남김없이 활용하겠습니다'라는 서약을 해신(海神)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혓바닥을 바다에 흘려보내고, 해신의 사자라고 간주되는 범고래(シャチ)가 고래의 혓바닥을 먹은 경우, 해신에 대한 서약은 전달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때, 만에 하나 범고래가 혓바닥을 먹지 않은 경우, 해신이 마음 속으로 켕기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포경된 고래는 공양탑을 세운 후에 정중하게 장사지낸다.


"혓바닥이라고 해도 꽤 무거워……"


지구에 존재하는 최대의 동물인 대왕고래(シロナガスクジラ)는, 혓바닥만으로도 중량이 약 4톤이나 된다. 그보다 작은 개체라고는 해도, 수백 kg의 무게가 나가는 혓바닥을 운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용의 운반차가 없으면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미안하군요, 설날에 허리를 다쳐서 말입니다. 허허허"


허리를 통통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래절의 주지가 사과했다. 본래는 고래절의 주지가 운반차를 밀지만, 허리를 삐끗했기에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리로서 시즈코가 선택되었다. 나 아니라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지위니 뭐니 성가신 것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신사니까 도와달라, 고 할 수도 없고. 아아, 벌써 혓바닥을 노리고 범고래가 모여들기 시작했네"


몇 마리인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고 주위를 정찰하는 '스파이 호핑'이라고 불리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식량을 운반해오는 운반차를 발견한 것이 무리에 전달된 듯 하다.

처음에는 3마리 정도밖에 없었던 항구에, 10마리 이상의 범고래가 모여들었다. 범고래는 한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는 종이지만, 식성이나 사이즈에 따라 대략 4가지로 분류된다.

큰 개체라면 고래조차 사냥하는 범고래로, 그런 그들이 좋아하는 고래의 부위는 혓바닥과 입이다.

여담이지만 범고래라고 하면 귀엽게 들리는데 영문 명칭은 '킬러 웨일(Killer Whale)', 학명은 '명계(冥界)의 마물(魔物)'이라는 무서운 이름이 붙어 있다.


"뀨잉뀨잉"


거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울음소리로 우는 범고래들. 남은 건 운반차를 소정의 위치까지 이동시키고, 주지가 공양의 기도(祈祷)를 올린 후,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흘려보내면 완료된다.


"앗! 이놈이!"


운반차를 다 옮겼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칼을 한 손에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지스님, 물러나세요!"


시즈코의 목소리에 주지도 비상 상태임을 깨달았는지,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며 운반차 뒤로 숨었다. 그걸 보고도 남자의 행동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 목표는 시즈코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쩌지. 신사라서 날붙이 종류는 전부 두고와 버렸어!)


날붙이 종류는 '벤다'라는 것 때문에 불길하다고 여겨져, 신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쓰지 않고 휴대가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주위를 둘러싸는 호위들도 신사라는 것 때문에 떨어져 있던 것도 불행이었다.

상대는 작은 칼만 보이고 있었으나, 그 이외에도 뭔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그 남자를 노리고 돌이 날아왔다.

시야의 바깥에서 날아온 돌을 피하지 못하고, 남자는 두 개의 돌에 맞은 충격으로 밸런스를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졌을 때 작은 칼을 놓친 듯 하여, 작은 칼은 땅바닥을 굴러 시즈코의 발 밑으로 미끄러져왔다. 찬스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은 칼을 빼앗으려 달려나갔다.

한편, 몸을 일으킨 남자도 작은 칼이 앞에 굴러가고 있는 걸 깨닫고 당황해서 일어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으라차―!"


약간의 차이였으나 남자 쪽이 빠르게 작은 칼을 붙잡았다. 하지만, 남자가 일어서기 전에, 시즈코가 남자의 얼굴을 힘껏 걷어찼다.

작은 칼을 잡는 것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있던 남자는, 시즈코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얻어맞아 그 기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아무리 시즈코가 여자라도 의식의 바깥쪽에서 발차기를 맞으면 뼈아픈 일격이 된다. 특히 머리는 잘만 맞추면 뇌를 뒤흔들러 행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시즈코의 발차기가 뇌까지 대미지를 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남자가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용케 의식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을 기뻐했다.


"작은 칼이라니 위험하네 위험해. 자, 얼른―――――――――"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경련하고 있던 남자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을 비틀어 일어나더니, 도망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서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당황해서 바다 쪽을 보았다.

뛰어든 남자가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어 시즈코가 주위를 둘러보자,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남자의 주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허공을 날았던 남자의 몸이 수면에 내팽개쳐졌다. 틈을 주지 않고 남자의 몸이 다시 허공을 날았다. 남자가 허공을 날 때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보이는 것을 보니 꼬리나 몸 전체를 활용하여 내던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고래가 쳐올리는 힘은 강력하여, 100kg짜리 바다사자(アシカ)를 수면에서 20m 이상 날려보낼 수도 있다.

일설에는 꼬리로 사냥감을 수면 위로 집어던지는 행위는 새끼에게 사냥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현대에도 확실한 이유는 판명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령 범고래가 장난으로 쳐올렸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생명의 위기에 처하는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5번 정도 날려지는 것을 보고 있자, 시즈코 근처에 범고래들이 몰려들었다. 물기둥을 뿜고 있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범고래들이 어서 고래 혓바닥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주지스님, 주지스님. 범고래들이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얼른 신사를 재개하죠"


겁에 질려 있는 주지를 재촉하여 신사를 재개했다. 혼란스러웠던 것인지 이것저것 빼먹은 주지였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틈은 없었다.

모두 끝나자 시즈코는 운반차를 기울여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떨어뜨렸다. 즉시 범고래들이 모여들어 고래의 혓바닥을 차례차례 뜯어먹었다.

남자를 가지고 놀고 있던 범고래들도 고래 혓바닥을 확인했는지, 마지막으로 남자를 꼬리로 날려버린 후에 쏜살같이 고래 혓바닥이 있는 곳까지 왔다.

무리 중에는 범고래의 새끼가 있는지, 어른들에 섞여 열심히 고래의 혓바닥을 먹고 있었다.


"후우, 간신히 항구가 부서지지 않고 끝났네. 주지스님, 돌아가죠"


남자가 쓰던 작은 칼을 주워들고, 슬슬 주저앉을 듯한 주지와 함께 돌아갔다.


(음―, 직접적인 살상 행위에 나섰다, 라는 건 위험인물로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아무래도 궁금하지만, 어차피 저 남자는 신분을 알려주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타케다(武田). 하지만 지금도 침묵하고 있는 호죠(北条)도 수상하려나. 우에스기(上杉)는 암살 따윌 했다간 가신들의 결속이 산산조각날테니 그런 건 실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으려나)


작은 칼의 제작자를 확인하면 흉기의 출처를 어느 정도는 특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미묘한 부분이다. 살고 있는 장소에서 구입했는지, 아니면 임무 도중에 손에 넣었는지 시즈코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지 기대하진 못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작은 칼을 집어넣었다. 주지를 데리고 신사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일별했다.


"우발적인 문제가 일어났지만, 어찌어찌 신사는 마쳤습니다. 해신님의 사자는 고래의 해체를 허락하셨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가 무사히 신사가 끝났음을 고하자, 그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소의 문제는 있었으나, 올해의 첫 포경의 신사는 완료되었다. 그 후에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진 알 수 없었다. 범고래가 몇 번인가 던져올리다 싫증난 이후에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찾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시즈코는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보다도 항구 마을의 경비대(警備衆)가 날듯 달려와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土下座) 것을 진정시키는 쪽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자, 자, 사람은 누구나 실패는 있는 법이에요. 이번 사건으로 배를 가를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실패를 어떻게 만회할지를 생각해 주세요"


"예, 옛―! 시즈코 님의 관대함(寛恕)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울 것 까지야) 아직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건강에 주의하면서 직무를 수행해 주세요"


한번 더 깊이 고개를 숙인 후 경비대원들은 떠나갔다. 자객보다도 경비대에 대응하는 것에 피곤해진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돌로 원호해준 건 고마웠어요. 하지만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시즈코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자객에게 돌을 던진 인물인 케이지, 그리고 쿄에서 만났던 연하의 소년 쪽을 돌아보았다.


"우연이야. 그보다 돌을 던진 건 이 녀석 쪽이 빨랐으니, 인사는 이 녀석에게 해줘"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야. 게다가 전에 쿄에서 신세를 졌으니까"


히죽 웃으며 케이지는 엄지손가락으로 연하의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묘하게 좋은 것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듣자하니 유곽(花街)에서 만나서 의기투합, 그대로 함께 떠들썩하게 놀았다는 것이다.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들었을 때, 시즈코의 어깨에 척 하니 손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자 생근 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코토(琴)가 그곳에 있었다.


"시즈코 님, 그 두 사람의 계산, 지불해 주시겠나요"


그녀는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기세좋게 케이지 쪽을 돌아보자, 두 사람 다 시즈코에게 양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었다.


"……얼마인가요"


이런 일로 호위대가 끌려가서 감옥에 쳐넣어지는 것은 수치다,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대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코토는 생긋 웃으며 청구하는 금액을 제시했다.


"……얼마나 놀면 그만한 금액이 되는 건가요"


"두분 모두 그야말로 즐겁게 노셨으니까요, 최상급의 접대를 해드리지 않는다면 저희들의 수치입니다"


"노린 거군요"


"시즈코 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의 말을 코토는 유유히 받아넘겼다. 이 이상 추궁해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지갑을 꺼냈다.


"여기 있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또 이용해 주십시오"


"이런 건 두번은 사양이에요"


시즈코의 불평에 킥 웃은 후, 코토는 시즈코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조심하십시오. 저 어린애(童子)는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近習)인 요로쿠(与六)입니다.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만 하고 코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정체에 머리가 아파졌으나, 지금 그 말을 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입을 다물었다.


"나 참, 둘 다 나중에 출세하면 갚아줘요. 그럼 돌아가죠"


"아, 잠깐 기다려줘"


전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것을 소년, 훗날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인 요로쿠가 제지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발을 멈추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일단 이야기는 들어볼게"


"아까 노자가 다 떨어졌어. 눈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당분간 신세지고 싶어"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노자가 없으면 일하면 되잖아. 이 근처에는 숙식이 포함된 노동 정도는 모집하고 있거든"


머리가 아파졌다. 설령 그가 나오에 카네츠구가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숙식 포함 노동을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거절하여 그게 켄신(謙信)에게 전해져 나쁜 인상을 주게 되어버리면 큰 문제다.

노부나가가 켄신과 신겐(信玄)에 대해 직접 대결을 피하고 회유하는 정책을 항상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정책을 박살내버릴 수는 없다.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한 시즈코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생각했다.


"시즛치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 당분간 머물러. 그거라면 문제없겠지?"


고민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케이지는 작은 암자(庵)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곳에서 시즈코의 저택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눈에 띈다.

전원에게 이야기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보다, 일부러 빈틈 하나를 만들어 케이지에게만 이야기해두는 쪽이 효율적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지었다.


"……그럼 그걸로. 제대로 '대응'하면 아까 빌려준 돈은 없던 걸로 해줄게요. 실패하면 두 배로 받을 거에요"


"좋았어! 꼬마야, 조금 좁지만 내 암자에서 묵어라"


"신세지는 입장이니 장소에 불평하거나 하진 않아. 눈이 녹을 때까지 신세 좀 지겠어"


두 사람은 굳은 악수를 교환했다. 막역(莫逆)한 친구라고 말하듯 사이가 좋아진 두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머리가 아파지는 얘기였다.


"어이쿠, 잊고 있었군. 내 이름은 요로쿠,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야. 지금부터 잘 부탁해, 핫핫핫핫!"


지금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카네츠구의 말 한 마디에 그 계획은 기초부터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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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5 1571년 12월 하순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환담을 나누고 있을 무렵, 케이지(慶次)들도 따분함을 주체하지 못해 빙 둘러앉아 담소하고 있었다. 도중에 나가요시(長可)도 끼어들어 한층 더 시끌벅적해졌다.

유일하게 란마루(蘭丸)만은 안절부절 못하며, 수시로 노부나가와 시즈코가 사라진 맹장지 저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야, 란(蘭). 아까부터 두리번두리번 정신사납다"


보다 못해, 라기보다는 진심으로 번거로워하고 있는 나가요시가 약간 눈을 가늘게 뜨며 란마루를 노려보았다.


"혀, 형님은 신경쓰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람을 물리고 여자와 밀회라니, 저는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하고 있는 건 헛추측(邪推)이다. 그런 쪽으로의 걱정은 해봤자 소용없어. 거기에 방해되니까 딴데로 가라"


란마루의 필사적인 호소도 누구네 집 개가 짖냐는 듯, 나가요시는 왼손으로 귀를 파면서 오른손 검지를 란마루에게 보이고는 좌우로 움직이며 손사래를 쳤다.


"주군의 명령이시다. 우리는 그에 따를 뿐. 따르지 못한다면, 너는 소성을 맡을 수 없지"


얕보는 태도에 란마루는 크게 화를 냈지만, 호리(堀)가 그를 다독였다. 작게 한숨을 쉰 후, 호리는 나가요시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군. 란마루는 주군께서 시즈코 님을 중용하시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어린애(童)의 비뚤어짐(僻み)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어 주게"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갑자기 소성으로 임명되어서, 어른(一人前)이 된 기분으로 주제넘게 말참견을 하게 된 거겠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도 시즈코가 여자라서 그런 걸테고. 아―, 못쓰겠네, 꼬맹이(餓鬼)의 질투는 보기 흉하다고"


나가요시도 완전히 똑같은 말을 했던 것을 알고 있는 케이지와 사이조(才蔵)는 나가요시에게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냈다.


"그,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저는 주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럼 주군의 명령에는 따라야지"


"크윽!"


나가요시와 란마루가 싸움, 아니 나가요시가 일방적으로 란마루를 놀리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와 시즈코는 국책(国策)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중국(唐)을 공격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천하통일 후의 해외 정책이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성급한 이야기였다.

해외까지 시야에 넣은 의논이 가능한 것도, 시즈코가 가져온, 전국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확한 측량에 의한 정밀한 세계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부나가는 일본이 얼마나 작고 벽지(僻地)에 있는지, 또 유럽이 무서울 정도로 멀리 있으며, 그 까마득한 땅으로부터 일본까지 손을 뻗쳐오는 남만인(南蛮人)들의 수완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남만인들이 귀중햐게 여기는 향신료의 산지를 무시하면서까지 세계의 끝에 있는 호주(豪州)로 방향을 잡는 것의 이점을 말하라"


"우선은 이쪽을 보아 주십시오"


노부나가의 질문에 시즈코는 세계지도에 부속된 자료집에서 요약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그것에는 호주에 잠자고 있는 금, 은, 구리, 철 등의 지하자원에 관한 매장량이 적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하면 농업국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방대한 천연자원을 가진 자원국이기도 하다.

특히 알루미늄의 원료가 되는 보크사이트의 매장량은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장소에 따라서는 땅 위에 광맥이 노출되어 있어 노천 채굴이 가능하다.

본토(本島)와 태즈매니아(Tasmania) 섬이 발견된 것은 1642년 무렵이나, 당시의 유럽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해도 가볍고 가격이 나가는 향신료를 캘 수 없다면 불모의 땅이라고 간주했다.


"항해 기술이나 수송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지금에야 향신료는 귀중하게 여겨집니다만, 언젠가는 대량생산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져 가치가 내려갑니다. 하지만 지하자원은 산출되는 토지를 지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가볍게 요리에 쓸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것이 후추 재배의 계기였으나, 노부나가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니 시즈코의 취미(道楽)가 순식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향신료의 산지 확대와, 대량 생산에 의한 가치의 저하를 증명한 것이었다.

지금에야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전략 물자로서 중요시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공업화에 필수적인 금속 자원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나타내듯, 오와리(尾張)에서의 후추 생산을 성공시켰다.

그 결과, 험한 바다를 넘어 해외로 진출하지 않아도, 수고만 들이면 일본도 향신료의 산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노부나가도, 시즈코로부터 헌상된 후추를 유럽 상인들이 비싸게 매입한 것에 의해 간신히 시즈코의 의견이 올바르다는 것을 이해했다.


"또, 대륙의 동부와 남부는 비옥한 곡창지대입니다. 자연재해도 적기 떄문에, 방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남부 산악지대는 강설지대(降雪地帯)이지만, 그 이외의 동부와 남부는 비교적 온난한 기후에 비옥한 곡창지대이다.

대륙 전체에서 보면 얼마 안 되는 땅이지만, 생산량은 일본의 총생산량을 웃돈다.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는 물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으나, 그냥 풀어놓는(野放図) 축산을 중시한 것에 따른 폐해이며, 계획적으로 농업을 운영하면 문제되지 않는다.


"쌀은 어떠냐"


"충분히 재배 가능합니다"


그다지 알려져있지는 않으나,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쌀은 재배되고 있다.

쌀 재배 뿐만 아니라, 벼농사(稲作), 곡식 농사(穀作), 콩과(マメ科)의 목초(牧草) 재배와 방목(放牧)을 로테이션으로 하는 것으로 제한된 땅에서 정말로 많은 산물을 얻을 수 있다.

일본과 달리 자연재해가 적고, 그러면서 사계절에 가까운 계절감이 있기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벼농사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선주민(先住民)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성지(聖地)를 침범하지 않는 한 우호적입니다. 그들의 성지는 불모의 황야 부분에 있기에, 저희들이 신경쓸 일은 없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선주민족인 애버리지니(Aborigine)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성지 울루루(Uluru, 영국의 탐험가가 에이어즈락(Ayers Rock)이라고 이름붙였다)에 침입하지 않으면 우호적인 태도로 접해온다.

설령 피부색이나 외모가 다르더라도 그렇다. 그런 이유로 영국인 입식자(入植者)들은 처음에는 그들과 다툼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입식자인 영국의 유형수(流刑囚)들은 점차 오만한 태도를 취하게 되어, 이윽고 스포츠 헌팅이라고 칭하고 많은 애버리지니를 학살하기에 이르렀다.

사우스 웨일즈 주의 도서관에는, 당시의 영국인 입식자들이 애버리지니의 학살을 스포츠 감각으로 즐겼던 것을 나타내는 일기장이 남아있다.

1600년 무렵에는 100만명, 700개 이상의 부족이 있었던 애버리지니는 1937년까지 백인에 의해 학살당하여, 태즈매니아 섬의 애버리지니는 절멸, 오스트레일리아 본토는 수만 명 정도로까지 줄어들었다.

그 이후에도 오만한 백호주의(白豪主義)에 의한 강제 동화 정책이 실시되어, 1970년까지 많은 애버리지니들이 강제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버리게 되었다.


"저로서는 그들과 우호적으로 접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그들과 다툴 의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깊이 관여하는 것은 금물이며……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가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적인 스포츠 헌팅, 물가에 독을 풀거나, 애버리지니를 외딴 섬에 내버려두어 굶어죽게 하거나 하는 짓을 한 영국 입식자들이지만, 시즈코에게는 백인지상주의 같은 사고는 티끌만큼도 없다.

물론, 속셈(下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부족이라고는 해도 선주민족과의 커넥션을 얻게 되면, 다른 부족과 대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즈코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옥한 곡창지대에서의 농산물과 지하자원이다. 타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독립국으로서의 체재를 갖출 필요는 있지만, 그것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만인의 침략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는 군사력도 필요한가"


"호주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대륙입니다. 나라를 만드는 데는 10년, 20년은 보는 게 좋겠지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만든다는 것이구나.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어깨를 움츠린 노부나가는, 말과는 달리 즐거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백성조차 없는 장소에 나라를 세우려면 방대한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선은 눈 앞의 적을 처리하지 않으면, 호주에서의 국가 수립 같은 건 그림의 떡이지"


"옛. 우선은 타케다(武田)이겠죠. 하지만 이쪽은 문제없습니다. 현재까지는 타케다는 제 계획(棋譜)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든든하구나. 나는 네 계책을 따라 타케다와 일을 벌이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겠다. 속이 검은 너구리(※역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도 타케다와 표면적으로 대립하지 말라고 서신을 보냈다. 지금쯤 너구리놈은 꽤나 부루퉁해 있겠지"


"……대답은 삼가겠습니다. 타케다 다음은 우에스기(上杉)…… 라고는 해도 사도(佐渡)의 금광(金山)이 목적이므로, 우에스기에 대해서는 유화(宥和) 정책으로 문제없겠지요. 타케다는 오다의 이름을 일본 전역에 떨치기 위한 산제물(生け贄)이니 멸망시켜야 합니다만"


"타케다가 산제물이냐.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발언이구나"


말과는 달리 노부나가는 대답하게 웃었다. 그는 시즈코에게 설명을 듣고, 이미 타케다와 전쟁을 해도 이길 수 있는 계획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전면에 드러내면 타케다가 경계하여 움직이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코우슈(甲州)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5명에 필적한다'. 노부나가에게는 어떻게든 그 말을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 평소에도 전쟁시에도, 병사의 이미지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병의 이미지가 붙는 것만으로 쓸데없는 전쟁을 회피할 수 있으며, 동시에 적에게 보이지 않는 압력을 줄 수 있다.


"앞서도 말했으나 네게 우선적으로 자금(金子)을 주겠다. 충분히 준비하여, 마음껏 이름을 날려라"


"옛!"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시즈코 군 중에 유일하게 시식회(試食会)에 참가하지 않은 아시미츠(足満)는 신사(神社)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대나무숲에서 대나무를 모으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나무를 필요로하지 않았던 아시미츠였으나, 바이오 코크스를 만들 수 있다면 대나무는 좋은 원료가 된다. 하지만, 수분을 빼는 데 시간이 걸리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벌채하여 건조시키고 있었다.

가장 적합한 원료는 메밀껍질(そば殻)로, 알갱이의 굵기나 수분량이 거의 이상적이다. 건조나 분쇄 가공은 필요없고, 메밀껍질을 그대로 바이오 코크스 제조에 투입할 수 있다.

아직 메밀껍질은 중요시되고 있지 않다. 용도로서는 토양 만들기(土作り)에 이용되거나, 베개의 소재로 쓰이는 정도로, 그것들도 꼭 메밀껍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메밀껍질은 바이오 코크스의 원료로서는 이상적인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메밀껍질만으로는 불안하기에, 아시미츠는 다양한 재료로 바이오 코크스를 제조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사람을 고용할까. 아니, 벌채에 시간이 걸리지. 나라면 칼로 금방 할 수 있지만, 다른 자들은 나타(鉈)라도 준비할 필요가 있으니 번거롭군"


아시미츠가 허리에 차고 있는 칼(太刀), 분류적으로는 대태도(大太刀)에 속하는 칼은, 현대 과학과 전통 기술이 융합되어 탄생한 걸작이었다.

실전을 위해 칼날이 두꺼운 칼날이 불룩하게(蛤刃) 되어 있는 아시미츠의 칼은, 참격 능력(斬撃能力)이라면 어떠한 명도(名刀)라도 추종을 불허한다. 손질이 조금 번거로운 점을 제외하면, 지고(至高)의 무기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그가 손에 장비하고 있는 토시(小手)에도 같은 기술이 사용되었다.


당연하지만 대나무를 베는 것 정도는 아시미츠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한 그루, 나란히 있을 경우에는 몇 그루의 대나무를 한꺼번에 벌채할 수 있다.

오해되기 쉬운데, 일본도는 다루기가 어려워서, 초짜(素人)가 명도를 휘둘러도 금방 못쓰게 된다. 마찬가지로 달인이라고 해도 무딘 칼을 쓰면 금방 칼날의 이빨이 빠진다.

탁월한 실력을 가진 자가 명품을 다루어야 처음으로 일본도는 진가를 발휘한다. 그 정도로 일본도를 다루는 데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역자 코멘트: '천재만이 다룰 수 있는 최고의 검(=무기)'이라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무기에 대한 허상적 클리셰로군요)


"흡!"


적당한 사이즈로 보인 대나무를, 아시미츠는 기합과 함께 뿌리 부분을 절단했다. 조금 지나 중력을 따라 쓰러진 대나무를 치운 후, 뿌리 쪽을 허리에 찬 나타로 십자로 쪼갰다.

이것은 절단면에 물이 고여서 모기가 생기는 것을 막는 것과 동시에 빨리 썩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정도면 되겠지. 경트럭이라도 있으면 한번에 옮길 수 있는데, 그건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겠지"


아시미츠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일본도로 대나무를 벌채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시즈코의 시대였기 때문에, 칼로 하는 벌채는 이래저래 수고가 들어갔지만, 벌채 후의 운반은 대단히 편했다.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경트럭에 싣고, 짐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로 묶으면 고생없이 운반할 수 있었다.


(광차(トロッコ) 같은 게 있다면…… 아니, 관두자. 운반되는 모습이 대단히 우스꽝스럽겠군)


대나무와 함께 자신이 광차로 운반되는 모습을 상상한 아시미츠였으나, 즉시 그것을 머리 속에서 털어냈다. 바이오 코크스용과는 다른 용도로 필요한 청죽(青竹)을 짊어진 아시미츠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나 그 발은 즉시 멎었다. 그와 동시에 어딘가로부터 화살이 날아와 아시미츠의 바로 옆의 땅바닥에 꽂혔다.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수(射手)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한숨과 함께 땅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았다.

화살의 중앙 부근에 종이가 묶여 있었다. 소위 말하는 화살편지(矢文)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한번 본 후, 아시미츠는 대나무를 짊어지고 신사로 돌아갔다.


"어라, 시간이 꽤 걸리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신사에 돌아가자 아저씨즈(s) 중 한 명인 미츠오(みつお)가 생선을 해체하며 말을 걸어왔다. 다른 한 명인 고로(五郎)는 필사적으로 불의 세기를 조정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츠루히메(鶴姫)와 시녀인 시바(柴)가 있었다.


"적당한 청죽을 찾다보니 시간이 걸렸다. 이쪽도 준비를 시작하지"


"잘 부탁합니다"


미츠오의 말에 아시미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운반해온 청죽에 가지치기(대나무 가지를 잘라내는 행위)를 한 후,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다음으로 대나무 마디를 1번 밑으로 전부 뚫었다.

여기까지가 아시미츠의 작업이었다. 필요한 처리를 마친 아시미츠는, 그 걸음으로 고로가 조정하고 있는 모닥불에 다가가더니, 아까 날아온 화살편지를 던져넣었다.

순식간에 편지째로 화살에 불이 붙었지만, 아시미츠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다시 미츠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다가와서 갑자기 화살을 던져넣은 것에 고개를 갸웃한 고로였으나, 아시미츠가 기괴한 행동을 하는 건 항상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불을 조정하는 작업에 집중했다.


"생선을 망지(網脂, ※역주: 소나 돼지의 내장 주변에 붙어있는 그물 모양의 지방. 한글로는 적당한 단어가 검색되지 않았음)로 감싸 대나무에 넣고, 그 후에는 대나무를 굽기만 하면 민물고기의 청죽구이(青竹焼き)가 만들어집니다"


"다음에는 청죽으로 지은 밥이군. 그 사이에 돼지국(豚汁)이 만들어지면 완벽하다"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입니다만"


"어-이, 아저씨랑 아시미츠 씨. 불 준비가 다 됐어-"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항상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세 사람은 요리를 계속했다. 기본적으로 밑준비를 한 후에 대나무째로 굽는 요리가 많았기에, 대나무를 조리용으로 가공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굽는 것 뿐이다. 미츠오는 부인을 돌봐주기라도 해라"


준비가 끝나고 대나무를 굽기 시작했을 무렵, 아시미츠는 미츠오에게 말했다. 고로도 같은 의견인지, 휘파람을 불며 미츠오를 힐끗 보았다.


"뭡니까, 기분나쁘게요. 또 뭔가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죠?"


"호~, 끝까지 시치미를 뗄 셈이냐. 그래서…… 부인은 몇개월째냐"


아시미츠의 지적에 미츠오의 표정이 굳었다. 당황해서 고로 쪽을 쳐다보자, 그는 미츠오의 표정을 보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모두 알려졌다는 것을 이해한 미츠오는, 몸을 작게 움츠리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언제 눈치채셨나요?"


"처음부터다. 네놈의 태도는 뻔하지. 평소와 달리 묘하게 부인을 신경쓰고 있으면 누구든 눈치채지. 하여간, 뭐~가 어린애니까, 냐. 할 건 빠짐없이 다 했구만"


"아니, 저도 말이죠.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수치심이 들었는지, 미츠오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몸을 흔들었다. 아시미츠는 미츠오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솔직해져라, 미츠오"


"아니 잠깐 기다려 주세요. 아시미츠 씨라면 아시겠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말입니다"


시대 운운하면 고로가 수상쩍게 생각하므로, 그 부분만 목소리를 작게 하며 미츠오는 반론했다. 그러나, 아시미츠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어깨를 움츠렸다.


"창피해할 필요는 없다. 남자는 다들, 젊은 여자를 좋아하니까"


"그 말투는, 제가 지조(節操)없는 남자라는 걸로 들리잖습니까"


"아니냐?"


"전력으로 부정하겠습니다. 아니, 딱히 츠루히메 씨가 싫은 건 아니거든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멋지고, 공주님(姫君)이면서도 오만한 구석도 없고, 정말 멋진 옛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라고 할까요. 축산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중노동인데, 싫은 표정 없이 도와주고…… 아니 뭡니까"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미츠오였으나, 아시미츠와 고로는 배가 다 부르다는 듯한 태도였다. 고로의 경우 이마에 손을 대고 보라는 듯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들으셨습니까 고로 씨. 이게 전설의 '미츠오의 자랑질(惚気)'이지요"


"알고 있답니다 아시미츠 씨. 분명히 오다 나으리께서 딸을 측실로 받아달라고 했을 때 아저씨가 성대하게 자랑질을 해서 없었던 일이 된 사건 말이군요"


"그렇지요 고로 씨. 오다 나으리를 앞에 두고 반 각(刻) 가까이 자랑질을 한 그겁니다. 정말 뜨겁지 뭐에요"


"그러네요 아시미츠 씨. 저는 벌써 더위 떄문에 땀으로 범벅이에요"


아주머니들이 우물가에서 수다를 떠는 것(井戸端会議)처럼 아시미츠와 고로는 땅바닥에 쭈그려앉아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미츠오는 머리를 감싸쥐고 눈 앞의 두 사람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미츠오, 너는 부인을 아껴주고 와라"


"맞아, 아저씨. 이대로는 대나무가 아저씨의 자랑질에 타버리겠어"


하지만 두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도 쇠귀에 경읽기이고, 들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성대하게 한숨을 쉰 후, 아시미츠와 고로에게 "요리를 부탁합니다"라고 중얼거리고 츠루히메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요리는 이제 끝난 건가요, 미츠오 님"


옅게 미소지으며 츠로이메는 미츠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까까지 앉아있던 장소에서 비켜서 거기에 미츠오가 앉게 하려고 생각한 츠루히메였으나,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미츠오는 어깨에 손을 얹어서 멈추게 했다.


"안 됩니다, 좀 더 몸을 아껴 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츠루히메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미츠오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아까까지 불가에 있었기에 겨울바람의 추위에 뼈가 조금 시렸다.

하지만 미츠오는 결코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츠루히메의 어깨에 캐시미어(cashmere) 숄(stole)을 걸쳐주었다. 정성껏 키운 캐시미어 산양으로부터 얻은 털을,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에 가져가서 짠 명품이다.


(정확히는 캐시미어는 아니지만, 귀찮으니 캐시미어라고 해두죠. 하지만, 시즈코 씨는 굉장하네요. 그만한 사람들을 종이 한 장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미츠오 개인이 털을 가져가도 틀림없이 문전박대당할 것이 뻔하다. 사실, 시즈코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여주기 전에는 쌀쌀맞은 반응을 보였다.

캐시미어 산양의 털에서 실을 만들고, 그것들을 지정한 색으로 염색한다.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는 있으나, 비단(絹)이나 목면(木綿)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짜면 원하는 제품은 완성된다.

말로 하는 건 쉽지만, 그 차이를 정확히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장인들의 입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이 가져온 것 따위 얽히고 싶지 않은 것이 본심이었다.


(하지만, 시즈코 씨의 편지를 보여주자 태도가 확 바뀌었죠. 그건 굉장한 태도변화였습니다)


"왜 그러시나요, 미츠오 님?"


생각에 잠겨있는 미츠오를 츠루히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니, 별 거 아닙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한 것 뿐입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우(親友)가 두 명이나 있고, 이렇게 사랑스러운 부인이 곁에 있으니까요"


말하면서 츠루히메의 어깨를 감싸안고 미츠오는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몇 년 동안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것인데, 츠루히메는 공주님으로 대우받기보다 한 개인으로서 대우받는 것을 선호했다.

그것은 전국시대, 여성은 정치의 도구나 약탈품이라는 취급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츠루히메는 갓난아기 때, 몸이 약했기에 친족에게 함부로 다루어졌다.

그 때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츠루히메에게 입장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가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생겨났다.


"괜찮습니다. 소첩은 어디로도 가지 않습니다. 미츠오 님을 남기고 죽지도 않습니다. 돌을 씹어먹더라도 살아남아 보이겠습니다"


미츠오의 마음 속의 말을 헤아린 츠루히메는, 미츠오의 손에 자신의 손을 덮었다. 순간 놀란 미츠오였으나 즉시 미소를 떠올리면서 어깨를 안은 팔에 약간 힘을 주었다.


"죄송합니다. 당신에게 그녀를 겹치는 듯한 말을 해버려서. 이래서는 언제까지고 몹쓸 남편이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츠오 님은 소첩에겐 과분할 정도의 남편이십니다"


츠루히메는 미츠오의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으며 한 점의 흐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츠오는 어깨를 감싸안았던 팔을 풀더니 츠루히메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탕을 뱉을 정도로 달콤하구만"


"보고 있는 이쪽이 다 부끄럽네요"


"놀리지 마세요. 모처럼의 분위기를 다 잡쳤잖습니까"


아시미츠와 고로의 놀림에 미츠오는 한숨을 섞어 말했다.




혼간지(本願寺)의 요청에 응한 카이(甲斐) 국(国)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이 무렵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다 가문을 뭉개버릴 계획이 서 있었으며, 그의 생각대로 각국이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정세 속에서, 단 하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있었다.

그의 생각에서 벗어난 인물, 그것은 시즈코였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기보다, 이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앞서가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애초에 같은 무대에 서 있지 않고 마음대로 농락당하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은 동향을 읽을 수 없군. 어린 계집에 한 명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하면 그 뿐이지만, 뭔가가 걸린다)


겨우 여자아이 한 명에게 자신이 그리는 악보(譜面)가 뒤집힐 거라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오랜 세월 동안 전장에서 길러진 감과 경험이 시즈코에게 주의하라고 경종을 울렸다.

따라서 안심하기 위해서 정보를 모으고 있으나, 이게 생각처럼 모이질 않았다. 표면적(外枠)인 정보는 모여도 중요한 부분의 정보가 구멍이 뻥 뚫린 듯 빠져 있었다.

중요한 직책을 맡거나 비장의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건가 싶더니, 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노부나가에 아까운 기색도 없이 넘겼다.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으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신겐은 짜증이 나고 있었다.


시점을 바꿔보자고 생각하여, 신겐은 시즈코가 아닌 주위의 무장들로부터 정보를 얻으려고 햇다. 그러나,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먼저 케이지는 가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만 눈에 띄었다. 아무 연락도 없이 며칠 집을 비웠나 싶더니, 돌아와서도 시종 먹고 마시기만 할 뿐이었다.

신겐을 포함한 타케다 가문 가신들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시즈코가 노부나가에게 불려가 성으로 가고 있을 때, 케이지는 정을 통한 여자와 항구 마을을 산책하고 있었다는 정보였다.

호위대(馬廻衆)이면서 전혀 그 책무를 수행하지 않고, 경호를 받아야 할 시즈코 자신이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주종관계냐면서 신겐 이하 타케다 가문 가신들이 머리를 감싸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밖의 인물들도 접촉해 보았으나, 사이조는 시즈코에게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데다, 나가요시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회유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와 입장이 난처해질 이야기 어느 쪽도 마찬가지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가요시에 이르러서는 역린(逆鱗)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 그때까지 웃고 있다가 돌연 표변(豹変)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를 죽였다.

그 두 사람보다 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이 아시미츠였다. 왜냐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내면에 파고들려는 자는 예외없이 죽였다.


(이색적인 자들만 모인 무장들을 제어할 수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만큼 자기 주장이 강한 자들을, 어떤 수법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냐)


시즈코에게는 부하들에게 포상으로 나누어줄 수 있는 봉토(知行地)가 없다.

또, 노부나가로부터도 봉토가 주어지는 기색도 없었다. 그렇기에, 전국시대 초기(初期)의 사고방식이 강한 타케다 가문으로서는 시즈코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즈코를 이해하려면, 노부나가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

오다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달리 가신들에게 주는 것은 봉토가 아니라 지위와 금전(金銭)이다. 소위 말하는 화폐경제를 권장하고, 고용도 금전 거래로 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이 시즈코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주위가 따라오지 않는다. 물건을 생산하는 봉토보다, 생산물을 살 수 있는 금전을 받는 쪽이 '이득이다'라고 생각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토지를 개발하여,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발전시켜, 시장에 물건이 넘치는 상태를 만든다. 그렇게 얻어진 돈을 일단 모아서, 가신들에게 뿌려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가신들은 받은 돈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생활하며 사치도 즐긴다.

그러면 자연을 상대로 토지를 경작하며 운에 좌우되는 수확을 기다리기보다,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賃金)을 받는 쪽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집안 소동이나 가신들끼리의 다툼이 많았던 신겐에게는 시즈코의 속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전력으로 오다에 대해 조사해라"


지금 이상으로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느낀 신겐은, 가신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아하핫, 꽤나 유쾌한 상황이 되었구나"


노키자루(軒猿)로부터 돌라온 시즈코에 대한 보고를 듣고, 켄신(謙信)은 호쾌하게 웃었다. 간자들의 정보를 듣고 얼굴을 찡그렸던 신겐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웃을 일이 아니옵니다, 영주님(お実城様). 오다는 착착 적을 없애가고 있습니다"


카게츠나(景綱)가 헛기침을 하며 쓴소리를 했다. 그가 머리아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때는 존망의 위기에 섰던 노부나가였으나, 현재는 거꾸로 포위망에 참가했던 영주(国人)들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롯카쿠(六角) 씨는 멸망, 아자이(浅井) 씨는 대부분의 지성(支城)이 함락되었고, 아사쿠라(朝倉) 씨는 카네가사키 성(金ヶ崎城)까지 함락된 상태다. 엔랴쿠지(延暦寺)는 사카모토(坂本)에 있는 미츠히데(光秀)가 눈을 번득이고 있어, 재기(再興)할 기색조차 없었다.

혼간지는 이시야마(石山) 혼간지까지는 함락되지 않았으나, 잇코잇키슈(一向一揆衆)가 몇 번인가 오다 군을 공격했지만 지나치게 산발적이라 효과는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렇게 반(反) 오다를 외쳐놓고는 아직까지도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걸 어떻게 웃지 않겠느냐"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손만 빨고 있어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겠지요"


카게츠나의 말에 켄신은 씩 웃었다. 그도 이대로 노부나가가 포위망을 깨부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카이의 괴물(巨獣), 타케다가 움직이면 오다 군은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겠지요. 그들의 강함은, 칼날을 맞대어본 우리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요"


타케다와 우에스기(上杉), 그리고 호죠(北条)는 때로는 동맹을 맺고, 때로는 전쟁을 벌이는 관계다. 타케다나 호죠의 강함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타케다의 전쟁을 모르는 오다 군은 10분의 1에 불과한 타케다 군에게 박살날 것이 눈에 선했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켄신은 카게츠나의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 반대로 말하면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놓치고 있는 맹점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그는 최근들어 생각하게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타케다 군과의 전쟁을 너무나 가까이 느끼고 있었기에, 변화나 기회를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들은 타케다와 몇 번이나 싸웠다. 그렇기에야말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어쩌면, 오다 군은 우리들은 생각지도 못한 맹점을 찔러서 타케다 군을 격파할지도 모른다"


"설마, 그럴 리가요"


말하면서도 카게츠나는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다. 노부나가는 악운(悪運)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강운(強運)으로, 본래는 멸망당했어야 할 오다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많은 피해를 입으면서도 살아남았다.

이번에도 설마, 라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카게츠나는 생각해버렸다.


"물론, 대단히 쉽게 패하는 경우도 있겠지. 하지만, 오다 님은 악운을 가진 분이다. 거기에 시즈코 님의 존재도 있지. 그녀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과연 그만한 힘이 있을까요"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의 그녀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노키자루가 말하고 있다. 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타케다와의 싸움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결말을 예상할 수 없게 되지"


매사에 비할 데 없는 성과를 보여온 시즈코가, 유독 군사(軍事)에 관련해서만은 손대지 않는 것에 켄신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한 영지(叡智)의 소유주가 군사에 대해서는 어둡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 켄신은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오다가 크게 움직일 떄, 그 기점(起点)은 시즈코 님이 되겠지. 타케다도 호죠도 시즈코 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후에는 그녀의 정보를 얼마나 모을 수 있는지가 승부의 열쇠가 될 것이다"


"옛, 노키자루에게는 사소한 것이라도 보고를 올리도록 명하겠습니다"


"'그들'을 쓸 수 있다면 금방 접촉할 수는 있겠지만, 억지로 밀어붙이다간 기회를 놓치지"


켄신은 시즈코가 쿄(京)에 있을 때, 그녀에게 접근하게 시킨 2인조를 떠올렸다. 기후(岐阜)나 오와리(尾張)에서 우연을 가장해 만나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주위에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게 할 위험도 있다.


"그게…… 저……"


켄신의 말을 들은 카게츠나가, 보기드물게 우물거리는 태도를 취했다.


"왜 그러느냐, '그들'에게 뭔가 문제라도 생겼느냐?"


"……저, 말입니다. 그 녀석이 '시즈코 님을 구경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오와리로 가 버렸습니다. 며칠 전에"


"―――――――풉, 푸하하핫!

그거 참 유쾌한 이야기로다. 그 녀석은 시즈코 님을 보고 뭔가 심금을 울리는 것을 느꼈던 것이겠지. 내버려 두어라. 놔두면 알아서 불쑥 돌아오겠지"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켄신이었으나, 곧 표정을 풀고 크게 웃었다. 그런 켄신을 보고 카게츠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시식회는 대성황으로 끝났다. 도중에 시바타(柴田)와 히데요시(秀吉)의 싸움을 중재하기 위해 술을 사용한 후, 즉석의 연회(宴会)가 되어버린 점을 모른척 한다면, 말이지만.


12월도 후반에 접어들어, 큰 싸움도 없었기에 정월(正月) 준비에 들어간 시즈코에게 큐지로(久治郎)가 찾아왔다. 뭔가 주문했었던가, 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시즈코에게 큐지로는 어떤 것을 보여주었다.


"잊으셨습니까, 시즈코 님. 꽤나 예전이지만, 남만인(南蛮人)에게 이것을 받도록 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항상 그렇듯 속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큐지로가 보인 것, 그것은 새장이었다. 새장 뿐만이 아니라, 짐승을 넣는 소형의 우리(檻) 몇 개가 발 밑에 있었다.

그제서야 시즈코는 큐지로가 무엇을 가져왔는지에 생각이 미쳤다. 잊고 있었던 것을 사과한 후 그를 응접실로 안내하려 했다.


"아뇨아뇨, 바쁘신 것 같으니, 대금만 받으면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큐지로는 이마를 탁탁 치며 사양했다. 정월을 앞두고 있으니 장사 이야기가 많은 걸까,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의 말을 따라 아야에게 대금을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뭔가 필요하시면, 꼭 저를 불러 주십쇼"


약속한 금액에 조금 더해 건네주자, 그는 아주 기분좋게 떠나갔다. 그와 교차하듯 비트만들이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시즈코가 있는 곳에 오면 평소에는 어리광을 부리지만, 이번에는 즉시 새로운 동물들의 냄새를 느꼈는지 우리에 대해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경계하고 있었다.


"워워, 괜찮아. 그리고 이건 중요한 동물이니까 다치게 하면 안 돼"


비트만들을 쭉 쓰다듬어준 후, 시즈코는 아야(彩)와 쇼우(蕭)와 함께 셋이서 우리를 집 안으로 운반했다. 처음 보는 동물들에 두 사람은 질겁했지만, 실은 시즈코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즈코가 유럽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동물은, 시즈코의 시대에는 멸종해버린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남획(乱獲)에 의해 19세기에 멸종한 큰바다쇠오리(オオウミガラス)였다. 외모가 펭귄을 닮았지만 대형의 바다새로 분류된다.

전장이 80cm 이상으로, 바다쇠오리(ウミスズメ) 종류 중에서 가장 큰 몸을 가진다. 남극에 있는 펭귄과 닮았는데, 본래는 큰바다쇠오리가 펭귄이라고 불렸었다.

하지만 멸종해버린 지금, 남극 펭귄이 펭귄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인간에 대해 경계심이 별로 없고, 오히려 스스로 인간에게 다가올 정도로 호기심이 왕성하다. 먹이를 주려고 우리에서 내보내자, 경계심 없이 시즈코에게 다가왔다.

펭귄과 꼭 닮아서 귀엽다고 생각했으나, 환경의 변화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고려하여 지나치게 귀여워히지 않는 정도로 억제하고 먹이를 주었다.


큰바다쇠오리의 체크 겸 먹이주기를 마치자, 다음에는 마찬가지로 남획에 의해 19세기에 멸종한 바다밍크(ウミベミンク)였다.

큰바다쇠오리와 다른 점은, 큰바다쇠오리는 식용으로 포획되었으나, 바다밍크는 모피(毛皮)를 목적으로 포획되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모피와 고기를 노리고 바다밍크 사냥을 했으나, 유럽으로부터의 입식자들이 더욱 열심히 모피의 수요를 채우려고 남획을 거듭했다.


이쪽은 경계심이 강하여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나, 바다밍크가 특별히 경계심이 강한 것이 아니라 밍크 종류는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다.

모습을 보니 배고플 거라 짐작한 시즈코는, 남아있던 생선을 우리에 던져넣었다. 그 순간, 바다밍크는 생선으로 쇄도하여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배가 불러서 만족했는지, 그대로 드러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답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고민되는 부분이었으나, 얌전해졌으니 됐다고 생각하고 그들도 큰바다쇠오리와 마찬가지로 사육지(飼育地)로 운반했다.


마지막이 멸종 동물 중 가장 유명한 새인 나그네비둘기(リョコウバト)다. 조류 중에서도 가장 개체수가 많아, 일설에는 50억에서 60억 마리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그네비둘기도 앞서의 두 종과 마찬가지로, 유럽이나 미국인에 의한 남획이 원인으로 20세기 초반에 멸종했다.

나그네비둘기의 고기는 대단히 맛있다고 하여, 도시에서도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그에 더해 미국은 화약의 원료인 초석(硝石), 유황(硫黄), 목탄(木炭)을 쉽게 입수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 때문에, 그 그림자로 대낮을 어둡게 할 정도의 무리를 짓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면 나그네비둘기와 납탄이 같이 떨어져 내렸다.

그 후에는 탄을 재활용하여 계속 쏘면, 화약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나그네비둘기를 사냥할 수 있었다.


막대한 숫자를 자랑하던 나그네비둘기였으나, 번식력은 약하여 얼마 안 되는 개체만으로는 번식하지 못하고, 또 숫자가 많았던 점 때문에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워서, 그러는 동안 새끼(ヒナ)까지 계속 남획되었다.

19세기 말, 그 때까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있었던 나그네비둘기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보호에 나섰으나, 이미 기울어진 저울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거기에 숫자가 줄어든 것 때문에 나그네비둘기의 가치가 올라가고, 그에 따라 밀렵자들이 끊이지 않아, 20세기 초에 야생종(野生種)이 사냥꾼의 총에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야생종의 나그네비둘기가 멸종되었다.

동물원에서 약간이나마 사육되었던 나그네비둘기였으나, 야생종이 멸종된 지 수십년 후, 마지막 개체가 노쇠하여 죽게 되어 나그네비둘기라는 종은 멸종되었다.


"일본도 그렇지만, 앞뒤 생각 안 하고 사냥하는 건 어떻게 안 되나"


개체수가 많은 것이 꼭 좋지는 않다. 한 마리가 줄어들어봤자, 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쉽게 사냥당하게 된다.

예전에 일본에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따오기(トキ)가 있었으며, 에도(江戸) 시대에는 따오기가 너무 많아서 논밭이 황폐화되어 버렸기에, 백성들이 윗사람들에게 따오기의 수렵 허가를 탄원했던 기록도 있다.

하지만 메이지(明治) 시대에 들어선 후 겨우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해 버렸다.

깃털 목적의 사냥, 환경의 급격한 변화, 농약에 의한 수은중독 등, 다양한 요인이 겹쳐 21세기 초에 일본 고유종인 따오기는 멸종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따오기는 중국의 따오기 뿐이다.


"일본의 도토리로도 괜찮으……려나?"


잘게 부순 도토리 열매를 줘봤는데, 나그네비둘기는 딱히 신경쓰지 않고 먹이에 달려들었다.


나그네비둘기의 먹이는 나무열매나 씨앗으로,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 이동했다. 도토리 외에도 초목(草木)의 씨앗이나 열매, 작은 곤충에 지렁이 등도 먹는다.

아메리카 대륙의 기후는 다종다양했기에, 먹이가 풍부한 지역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단은 생태 관찰이라도 할까"


아주 약간 나그네비둘기의 고기가 궁금해진 시즈코였으나, 큰 돈을 내고 구입한 나그네비둘기를 쓸데없이 줄이고 싶지 않았기에 자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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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4 1571년 12월 하순



타코야키(たこ焼き)와 붕어빵(たい焼き), 오방떡(大判焼き)의 대 시식회를 앞두고, 시즈코는 자신이 이권을 쥐고 있는 항구마을로 갔다.

시즈코는 굴(牡蠣)이나 김(海苔) 양식(養殖), 또 일부의 계류시설(係留施設)을 관리, 운용하는 권리를 가지고, 정박하는 선박에서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몸이다.

하지만, 시즈코는 세수(税収)의 태반을 양식장의 확장에 재투자하고 있다. 그 덕분에 당초에는 굴밖에 없었던 양식 대상은 바지락(アサリ)에 가리비(ホタテ), 전복(アワビ), 소라(サザエ) 등 폭넓게 취급하는 데 성공했다.

여담이지만 담수생(淡水生)의 재치조개(シジミ)도 별도로 양식장을 준비하여 생산에 착수했다.

식용 이외의 품종으로는 진주조개로 유명한 아코야 조개(阿古屋貝)에도 손을 뻗쳐, 양식에 의한 진주의 안정적인 공급을 개시했다.

대형의 식용 조개로 기대한 소라나 전복은 사육이 어려워서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바지락이나 재치조개, 가리비는 양식의 전망이 확보되어, 안정적 공급을 향한 스타트를 끊었다.

자금원으로서 기대한 진주 양식은 천연의 아코야 조개도 사용했기에 진주의 질에 편차가 있었으나 알이 굵은 것들을 다수 수확할 수 있었다.

조개 자체도 정리되어 양식하는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알이 균일한 8mm 사이즈의 진주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번에는 갑(甲) 진주가 많네"


"옛, 금년의 진주는 질이 좋은 것 같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진주 양식의 지휘자인 우두머리(親方)가 뒤통수를 긁으며 웃음을 띠웠다.


진주는 그 크기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시즈코는 위로부터 직경 8mm의 것을 갑, 7mm를 을(乙), 6mm 이하를 병(丙) 등급으로 정했다.

8mm를 넘는 앍이 굵은 진주가 얻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9mm 이상은 규격외로서 갑이 아니라 최저 등급인 정(丁) 등급으로 했다.

이것은 9mm 이상의 진주를 얻으려고 하면 생육기간을 늘릴 필요가 있어, 조개의 사망 리스크가 크게 높아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도박이 되어버리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도박에 이겨도 10mm 정도가 한계이며, 대부분 리스크에 걸맞지 않는 결과가 되는 것이 다른 하나의 이유였다.

이러한 이유로 진주 양식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큰 사이즈를 얻으려는 의식 자체를 억제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생산된 진주는 등급에 따라 용도가 구별되었다.

갑을의 상위 랭크는 보석으로서 장식용으로 사용되지만, 을 이하의 하위 랭크의 것들은 약용(진주는 양질의 칼슘이기에 분말로 만든 가루약(散薬)이 해열제로 쓰인다)이나 화장품 등의 재료로 사용했다.

또, 아코야 조개 자체도 식용에 적합하지만,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포획을 금지했다.

진주를 꺼낼 때에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조개관자(貝柱)는 예외적으로 양식업자와 주변 주민들에 더해, 시즈코들 관리자 측에 속하는 사람들만이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조개관자 이외의 고기조각은 내장을 제외한 일부를 새로운 진주의 핵(核材)으로 재활용하고, 남은 부분도 유기물은 비료로 가공했다.

조개껍질 자체도 아름다운 진주질을 갖는 아코야 조개는, 조개껍질조차도 가공하면 미술공예품으로 쿄(京)나 사카이(堺)에서 인기가 좋았다.


"좋아, 계산 끝. 세금을 빼고 대충 이 정도의 가격이겠네"


진주에 한정되지 않고 양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양식이 자리를 잡아 질, 양이 안정될 때까지 판로를 가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규정된 품질에 미치지 못하는 물건을 시장에 유통시킨 결과 양식산은 자연산에 비해 떨어지는 2급품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또한 시즈코가 관리하는 마을 전체의 평가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양식업자도 인간인 이상 밥줄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 그래서 양식이 안정될 때까지는 전량을 시즈코가 사들여 선별하여 어용상인(御用商人)에게 납품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정된 생산 실적을 올린 업자들만이 시즈코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판로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완전히 자유로운 독자 판로는 허가되지 않고, 노부나가가 관리하는 도매 조합(卸組合)을 통해서만 매매가 가능하게 되어있다.


"오오, 감사합니다"


시즈코가 돈이 든 나무 상자를 진주 우두머리에게 건네주고, 그 대신 우두머리는 진주를 하나하나 목면(木綿)으로 감싸 외벽이나 서로 접촉하지 않도록 배려된 나무 상자를 시즈코의 병사에게 건넸다.


"아,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근처에 사는 꼬맹이가 뭔가 묘하게 냄새나는 돌을 주웠다고 합니다. 분명히, 시즈코 님께서는 그런 돌을 모으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아직 필요하십니까?"


상자를 8할 정도 쌓았을 때 어떤 것을 떠올린 우두머리가 말했다.


"……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네. 가능하면 현물이 있으면 좋겠어"


"옛, 알겠습니다. 어이! 스케(助, ※역주: 이게 이름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를 가진 명사인지 정확히 모르겠음) 네 아들내미한테 그놈이 주웠다는 냄새나는 돌을 가져오라고 전해줘!"


가까이 있던 젊은이들에게 우두리가 소리쳤다. 젊은이들은 허리를 펴더니 급히 달려나갔다. 잠시 후, 오랫동안 표류했는지 뾰족한 부분이 닳아 둥그래지고 희게 변색된 돌과, 14세 정도의 남자애를 데리고 돌아왔다.


"으악, 냄새! 확실히 냄새가 굉장한데"


코를 부여잡고 우두머리는 손을 흔들어 냄새를 쫓았다. 한편 시즈코는 젊은이들에게서 작은 누름돌(漬物石) 정도 크기의 돌을 받아들고 면밀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표류에 의해 외부가 깎여나간데다 자외선에도 노출되고 산화되어 있었지만, 표층에 특징적인 부리(嘴) 모양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생각했떤 물건이 맞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웃었다.


"이건 바로 내가 찾던 물건이네. 일단 무게는…… 대충 700g이려나. 표면은 깎아내야 하지만, 이 정도로 큰 거라면 비싸게 사들일게"


"사들이신다니…… 그 냄새나는 걸 말입니까? 참고로 얼마 정도입니까?"


"일단 60관(貫)에 어때?"


"60관!?"


60관은 현대의 금전 가치로 따지면 약 600만 엔이다. 몇 만엔으로 1개월을 살 수 있는 그들에게 600만은 터무니없는 거금이 된다.


"이웃나라에서 이걸 귀중하게 여겨서 수요가 있거든. 하지만 고래가 특정한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물건이야. 우리는 포경(捕鯨)을 하고 있지만 아직 입수하지 못했으니 너는 정말로 운이 좋아"


그렇게 말하고 악취를 뿜는 하얀 돌, 아니 향유고래(マッコウクジラ)의 결석(結石)인 용연향(龍涎香)을 가리켰다.

용연향은 결석이긴 하나 귀중한 천연 향료이다. 향유고래를 해체했을 때 몸 속에서 얻거나, 배설된 결석이 해안가에 떠밀려온 것을 우연히 줍는 것 이외에는 입수할 방법이 없다.

용연향은 물보다 비중(比重)이 가벼워서 해면(海面)에 떠서 표류하기 때문에 운에 따라서는 일확천금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소재이기도 하다.

현대의 이세 만(伊勢湾)에는 어패류(魚貝類)의 서식밖에 확인되어있지 않으나, 20세기 무렵까지는 고래나 범고래(シャチ) 같은 대형 해양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세 만 근처에 우연히 지나가던 향유고래가 있었고, 그 개체가 담석(胆石)을 가지고 있었으며, 게다가 이 타이밍에서 몸 밖으로 배설되었고, 외양(外洋)으로 흘러가지 않고 표착하여, 해안가에서 파도에 의해 깨지기 전에 우연하게 어린애가 주웠다는,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은 것이 이 용연향이라고 할 수 있다.

용연향은 그 자체로는 악취밖에 나지 않지만, 다른 향료와 섞어서 태우면 그 향을 오래 유지하면서 부드럽고 중후한 향을 더한다는, 달리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아, 네네. 60관으로 좋습니다"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받고, 이거라면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욕심이 생긴 꼬맹이였으나, 즉시 치명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자신이 냄새나는 돌을 주웠다는 것은 우두머리나 젊은이들에게도 다 알려져 있는데다, 큰 돈에 팔아넘겼다는 사실도 알려진다.

이제와서 가격을 끌어올리면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모르는데다, 시즈코는 이 지역 일대에 일거리를 주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로부터 돈을 뜯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여기는 시즈코가 제시한 금액에 넘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래? 그럼 60관을 가져오게 할게"


병사 중 한명에게 60관을 가져오게 한 시즈코는 스케의 아들에게 나무상자를 넘겼다. 그리고 용연향을 소중하게 상자에 넣은 후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용무 끝. 돌아갑니다"




진주가 든 나무상자를 가지고 돌아간 시즈코는, 즉시 크기와 등급으로 분류된 진주를 더 세세하게 선별했다.

체크의 기준은 다양했지만, 기본은 광택, 상처 유무, 형상, 색상(色味)의 네 가지로 선별했다.

우선 진주의 형상이 완전한 구체인지 어그러짐이 있는지를 체크한다. 완전한 구체인지를 확인하는 이유는, 진주는 완전한 원(円)을 그리며, 원(円)을 연(縁, ※역주: 일본어로는 독음이 같음, '운'이라는 의미가 있음)이라고 써서 운을 불러오는 물건(縁起物)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상처 유무나 광택은 겉보기에 관계뙨다. 아무리 완전한 원형이더라도 상처가 있거나 광택이 살지 않은 진주로는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색상을 체크하는 이유는, 진주질은 백색만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으로 색상을 띠기 때문에 검은 색상이나 붉은 색상을 가진 진주가 생겨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코야 조개로부터 얻을 수 있는 진주는 백색을 최상으로 치며, 다른 색을 가진 진주는 하급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체크가 끝난 진주는 최고 품질을 특(特), 고품질을 상(上), 저품질을 하(下)로 추가로 세분화시킨다.

진주 중에 최고 품질이 '특팔갑(特八甲)'(8mm의 최고품질 진주) 및 '특칠갑(特七甲)'(7mm의 최고품질 진주)이 되며, 이어서 '상팔갑(上八甲)', '상칠갑(上七甲)', '하팔갑(下八甲)', '하칠갑(下七甲)'으로 설정된다.

품질이 좋은 것은 보석과 장신구로 취급되며, 품질이 낮은 것은 가공품으로 돌려진다.


"이게 특팔갑만으로 만든 진주 목걸이. 이쪽은 은(銀)과 진주로 된 비녀(簪)려나"


시즈코는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고, 머리에 섬세한 은세공에 진주가 상감(象嵌)된 비녀를 꽂았다.

목걸이는 단순히 8mm 진주를 이은 것 뿐이지만, 비녀는 매화꽃을 모티브로 하여 가지와 잎에 꽃잎을 섬세한 은세공으로 표현하고, 알이 굵은 순백의 진주를 배치하여 고급감을 내는 한편, 일부러 색을 띤 코럴 오렌지(coral orange)의 진주를 화심(花芯)에 배치하고 주변에 금으로 된 암술대(花柱)를 곁들인, 다이내믹하고 도전적인 의욕작(意欲作)이다.

차분한 은색과 백색이 고급감을 감돌게 하고, 지나치게 크지 않은 장식이 차분한 어른의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네, 네에. 잘 어울리십니다"


하지만, 아야(彩)와 쇼우(蕭)의 반응은 미묘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비녀는 다양한 머리모양이 유행한 에도(江戸) 시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쓸데없는 장식을 하지 않고 윤기있는 머리카락을 아름답다고 본 전국시대에서는 미묘한 반응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반응이 시원찮네. 역시 별로인가"


아야도 쇼우도 머리장식은 달고는 있었지만, 머리카락을 묶지는 않는다. 그에 반해 시즈코는 머리를 묶은 후에 머리 장식을 단다는 것은 전국시대의 패션에서 볼 때는 이단아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져도, 기이한 눈초리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뇨, 그런 건"


"핫핫핫, 뭐 머리를 늘어뜨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나한텐 좀 안 어울리려나"


쇼우가 다급히 커버하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늘어뜨린 머리를 쳐주는 전국시대였으나, 어느 세상이건 새로운 유행이란 괴짜(奇矯) 취급을 받는 법이지, 라고 시즈코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뭐, 그건 그렇고, 며칠 후면 시식대회(試食大会)인데, 팥(小豆)이나 설탕(砂糖) 운반은 완료되었어?"


"아, 네. 식재료는 전부 운반을 마쳤습니다. 기술자 마을로부터 지정하신 도구 종류를 한 벌(一式) 씩 전부 들여왔습니다. 남은 건 전날에 고로(五郎) 님이 팥소(餡)의 조리에 착수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팥소는 하룻밤 재워두면 맛이 안정되고 부드러운 단맛이 된다. 조리 중에도 재워두는 공정이 있기는 하지만, 완성 후에 하룻밤 재워두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시간과 수고가 드는 이유는, 일본 과자(和菓子)에 있어 팥소의 맛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팥소의 맛이 나쁘면, 아무리 고급 식재료를 쓰더라도 과자 자체를 다 망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만드는 붕어빵(たい焼き)이나 오방떡(大判焼き)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껍질과 팥소 뿐이다. 팥소의 맛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코야키(たこ焼き) 용의 다시마와 카츠오부시도 문제없네. 근데, 이렇게 보니 이세 만(伊勢湾)에서 다시마를 생산할 수 없는 게 아쉬워"


다시마의 양식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걸 하려면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슈(一向一揆衆)가 방해된다.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세 만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없다.

하지만 시즈코는 그렇게까지 비관하고 있지는 않았다. 타케다(武田) 군과 마찬가지로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를 굴복시킬 작전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잘만 하면 타케다 군과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를 한번에 제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세 만은 완전히 노부나가가 장악하게 되어, 시즈코는 다시마 양식에 착수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상황은 순조롭네. 예정대로 신겐(信玄)은 도쿠가와(徳川)에게 트집을 잡아서 토오토우미 국(遠江国)을 침략하고 있어)


오다와 타케다, 오다와 도쿠가와, 타케다와 도쿠가와는 상호 동맹국이다. 하지만 에이로쿠(永禄) 12년(1569년)에 타케다 측이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여, 타케다와 도쿠가와(타케다와 오다는 수년 후에 동맹 파기)는 적대 관계가 되었다.

이후, 타케다가 멸망할 때까지 오다-도쿠가와와 타케다 사이에 동맹관계가 부활하는 일은 없었다. 이에야스(家康)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타케다 가문에 대한 방어 강화가 목적이다.


(그런 시기에 그 두 사람을 여기에 놔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뭐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 조사 후에 돌아갔지만)


예상 외의 사건이기는 했으나, 시즈코의 계획에서 볼 떄는 사소한 문제였다. 계획은 틀어지지 않고 간단히 궤도 수정을 할 수 있었다.


(예정으로는 1500…… 아니, 1300이네. 탄(弾)은 4만, 그건 15발, 발파(発破)는 3000 정도지만, 쓸 수 있는 건 1500 정도려나. 어느 쪽이든, 란체스터의 법칙(※역주: 상호간의 무기의 성능이 동등할 경우 다수가 소수를 훨씬 적은 피해로 쉽게 이길 수 있다는 법칙)으로 계산한 결과는 아주 좋아. 나머지는 계획대로, 그들이 출진하면 돼. 그렇게 되면, 8할의 확률로 승리를 거둘 수 있어)


아무리 역사를 잘 알아도, 사람이 역사적 사실대로 움직인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이에야스(家康)가 예상 외의 행동을 취했기 때문에 시즈코는 약간 계획의 궤도를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행동은, 오히려 시즈코에게 바람직한 것이었다. 역사를 알고 있다는 이점에 안주하여 무의식중에 방심하기 시작했던 시즈코의 마음을 다잡아주었던 것이다.

기분좋은 긴장감을 준 이에야스에게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랐다.


"시즈코 님, 아시미츠(足満) 님이 오셨습니다"


"어라, 뭔가 긴급한 보고가 있는 걸까. 아, 두 사람은 다시 일하러 가도 돼"


아시미츠가 직접 찾아왔다는 것에 뭔가 긴급한 보고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아야와 쇼우에게 자리를 비키도록 말했다.

두 사람은 시즈코에게 인사를 한 후 방을 나갔다. 그녀들과 교대하듯이 아시미츠가 방으로 들어왔다.


"희한하네, 아저씨가 먼저 찾아오다니"


"간신히 마지막 일이 끝나서 말이지"


그 말에 시즈코의 표정이 약간 움직였다. 현대의 기술을 알고 있는 아시미츠에게 시즈코는 다양한 일을 극비리에 의뢰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일이라고 하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완성했어? 그 어려운 걸"


"유압(油圧) 시스템과 온도 유지에 고생했지만. 말보다 실물을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품 속에서 검은 덩어리를 꺼낸 아시미츠는 그것을 시즈코에게 던졌다. 검은 덩어리를 한 손으로 받아든 시즈코는, 감촉을 확인하기 위해 몇 번 쥐어본 후, 그것을 눈 앞으로 가져갔다.

지긋하게 검사한 후, 시즈코는 싱긋 웃었다.


"응, 틀림없네. 우리들의 시대에서 쓰이던 바이오 코크스(bio-cokes)에 손색없는 물건이야"


"아무래도 그 시대만큼 재료가 풍부하진 않지. 하지만, 이걸로 연료 문제는 클리어다. 드디어 만들 수 있어. 고로(高炉)를 말이지"


바이오 코크스란 식물성 폐기물을 재료로 만들어진 석탄 코크스의 대용품이다.

대충 말하자면 천연의 석탄이 만들어질 떄의 압력과 온도를 식물성 폐기물에 가하면 된다. 하지만 규정된 압력을 얻기 위해서는 유압(油圧) 프레스가 필요불가결하며, 이 시스템을 만드는 데 막대한 노력이 들어갔다.

또, 열은 특정한 온도를 넘어서면 재료가 되는 식물성 폐기물이 타서 재가 되고, 밑돌게 되면 바이오 코크스를 생성하기 위한 화학반응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규정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유압만큼 까다롭지는 않았다. 단순히 가열된 것에 물을 끼얹으면 그 때의 물의 반응으로 현재의 온도는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네. 남은 건 남만에서 석탄을 수입해서 코크스를 만드는 것. 부산물로 황산(硫酸)이나 암모니아, 유황(硫黄)을 얻을 수 있어. 코크스를 얻을 수 있으면 강철을 제련할 수 있지"


바이오 코크스의 결점은, 그것 하나만으로는 석탄 코크스의 대용품이 되지 않는 점이다. 석탄 코크스는 1500도를 넘는 열량을 낼 수 있으나, 바이오 코크스만으로는 1400도가 한계이다.

또, 석탄 코크스와 달리 환원작용을 가지지 않아, 그 때문에 온도 유지에 필요한 연료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석탄 코크스는 직접 만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귀중품이다. 가능한 한 사용량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몰래 할 필요는 없네. 타케다도 착착 오다 가문을 쳐부술 준비를 하고 있을테니까"


"조사해 봤지만, 혼간지(本願寺)의 대머리가 보낸 거병 요청의 서신에 답장을 했더군. 타케다의 대머리는 지금부터 생트집을 잡아 속이 시커먼 너구리에 대한 침공을 강화하겠지"


"아니, 두 사람 다 삭발했으니까 머리카락은 없지만 말야. 그건 그렇고, 좋은 경향이네. 출진하면 거의 승리는 결정된 거니까. 뭐, 방심은 금물이지만"


시즈코의 말에 아시미츠는 조용히 웃었다. 사키히사(前久)가 봤다면 몇 번이고 다시 봤을 정도로,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보급 루트는 내게 맡겨라. 하마마츠 성까지 피스톤 수송이 가능한 루트는 몇 개 파악해두고 있다"


"전쟁은 최종적으로 맛있는 밥을 많이 먹은 쪽이 이기는 거니까. 특히 처음에는 농성이라고 듣게 될 테니까, 얼마나 맛있는 밥을 줘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게 하는가가 중요해"


"통조림은 무리지만 병조림이라면 가능하다. 밥도 병조림으로 보존이 가능한 것도 검증이 끝났다. 다만, 역시 통조림만큼의 보존력은 바랄 수 없지. 뭐, 금방 병사들의 뱃속으로 들어갈테니 이번에는 신경쓸 필요는 없겠군"


병조림이란 식초나 술, 야채 등을 병 속에 넣는 행위와, 병조림을 끓여서 안의 식품을 장기 보존하는 방법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후자는 뒷날 금속으로 만들어진 통조림으로 바뀌지만, 그것은 19세기에 들어선 후의 일이다.


"생선 조림이나 굴의 식용유 절임 같이 해산물로 만든 게 좋겠네. 성 안에 틀어박히게 되니까, 해산물은 진수성찬으로 보일테니"


"건더기가 든 된장 큐브를 양산해야겠군. 보통의 된장국 자체가 성 안에서는 사치품이지만 시기가 시기니까, 추울 때 마시는 된장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


"오케이―, 식량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네. 뭐, 시기가 시기니까 부패는 걱정없지 않을까. 여름이라면 좀 걱정이지만 말야"


병참의 의미에서 시즈코는 아시미츠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전국시대, 아니, 일본인은 병참을 경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건 화려하게, 단시간에 결판이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화려한 승리도, 평범한 작업을 거듭하여 얻은 결과이다.

싸움에서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싸우기 전부터 승리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식량의 현지 조달을 해라, 라고 손자(孫子) 병법에 적혀 있다고 챠마루(茶丸) 군에게 가르쳤지만 라야. 뭐, 로지스틱스(※역주: 물류)는 어려워. 나도 이것저것 조사해봤고, 프로가 쓴 책을 몇 권이나 읽어봤어. 그런 그들도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하니까 말야"


"뭐 그런 문제도 내가 처리하지"


"알았어. 병참에 대한 전권을 줄테니, 아시미츠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줘. 나한테는 사후보고해도 상관없어"


"……내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간단히 수락하는구나"


"즉단즉결(即断即決)이 필요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일일이 나한테 허가를 받으라고 하는 건 시간낭비야. 결과만 알 수 있으면 문제없어. 무슨 일이 있을 때 책임을 지는건 내 일이니까"


시즈코의 대답에 아시미츠는 옅게 웃었다. 하극상의 시대에 제장(諸将) 들에게 권력을 주고, 거기에 보고를 그때그때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제후들은 크게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시즈코라는 모체(母体)에서 뱀이 몇 마리나 풀려나는 셈이지. 뱀만 주시하고 있으면 시즈코에게 잡아먹히고, 시즈코에게만 고집하면 뱀에게 잡아먹힌다. 적으로 돌리면 까다로운 상황이지)


케이지(慶次), 나가요시(長可),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그리고 자신까지 5명. 타카토라는 아직 조금 부족하지만, 각자가 지금은 어엿한 무장으로까지 급성장했다. 게다가 우사 산성(宇佐山城)의 전투에서 잃은 정예병들도 복구되고 있었다.

앞으로 1년만 있으면 충분히 타케다 군에 대항할 수 있는 군이 되리라.


"알았다. 병참은 내게 맡겨둬라"


1년 후가 기대되는군, 이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시미츠는 옅게 웃었다.




타코야키나 붕어빵의 시식회 당일, 노부나가의 정원 주변은 대단히 소란스러웠다. 뭐라 해도 주요 가신들, 그들의 정실(正室)이나 적자(嫡子)까지 노부나가가 초대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만 있으면 가신을 불러 이벤트를 개최하는 노부나가를 보고, 그가 축제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인원수가 인원수다보니, 정월 설날과 마찬가지로 출입구부터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 경호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시즈코 님이 오셨습니다―!"


마중하는 역할의 병사가 큰 소리로 내방객의 이름을 외쳤다. 맨 끝의 병사로부터 200미터 가량을 무장한 아시가루(足軽)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시즈코는 그 모습을 흘긋 보며 일그러진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렇게까지 거창한 이벤트가 될 줄은 생각하지 않았었기에, 이 마중은 지나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 초대받은 손님들은 중진(重鎮)들 뿐이라는 걸 떠올리고, 지나친 경비는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흠"


헛기침을 하여 기분을 새로 한 후, 표정을 굳히고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항상 하는 남장이었지만 허리에는 오오카네히라(大包平)를 차고 있었다. 양산품보다는 폼이 날 거라 생각해서 오랜만에 창고에서 꺼낸 명품이다. 배 앞에 찬 단도는 항상 가지고 다니는 다마스커스 나이프였다.

수행원(従者)은 호위대(馬廻衆)인 케이지와 사이조였다. 사이조는 정장 차림이었으나 케이지는 이런 자리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관철하고 있었다. 즉, 언제나의 카부키모노(傾奇者) 차림새였다.


(뭐랄까…… 굉장한 마중이네. 역시 나오지 않고 뒤에서 타코야키를 굽고 싶었어)


표면적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내심으로는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노부나가가 이따금 개최하는 시식회는 이렇게까지 대대적이지 않다.

평소에는 가신들의 노고를 위로할 때, 명목상으로는 노부나가 주최의 시식회로서 새로운 요리를 대접했었다.

이만큼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경호도 전쟁시의 진영과 같은 레벨로 하면서까지 시식회를 연 전례는 없다.


(미츠타다(光忠)가 만든 칼을 줄 테니 얼굴을 내밀어라, 라고 했지만 낚이는 게 아니었어)


영지(知行地)는 필요없고, 포상금도 필요한 만큼 외에는 부하들에게 뿌리고, 미식이나 차도구(茶道具)에 흥미가 없는 시즈코가 유일하게 열광하고 있는 취미가 명품 수집이다.

아무래도 소우자사몬지(宗三左文字) 같은 노부나가의 애도(愛刀)는 손에 넣을 수 없었지만, 그 이외에 손에 들어온다면 무슨 어려움이라도 무릅쓰고 손에 넣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부나가가 소유하고 있는 미츠타다가 만든 칼(太刀)이 하사된다는 이야기만으로 평소에 싫어하는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 어슬렁어슬렁 얼굴을 내민 것만 봐도 명백했다.


(아무래도 짓큐 미츠타다(実休光忠)는 아니겠지. 아마, 후세에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燭台切光忠)라고 불린 쪽이려나. 아니, 요시테루(義輝)에게서 하사받은 모가미 미츠타다(最上光忠)일 가능성도)


미츠타다가 만든 칼 중 가장 윰병한 것이, 노부나가로부터 히데요시(秀吉), 히데요시로부터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로 소유주가 바뀐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이다.


하지만, 미츠타다가 만든 칼은 그 밖에도 몇 종류인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노부나가가 이상할 정도로 집착하고, 혼노지(本能寺) 사변 당시 마지막으로 휘두른 칼이 짓큐 미츠타다라고 한다.


모가미 미츠타다는 아시카가(足利) 쇼군(将軍)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명품인데, 요시테루가 노부나가에게 하사했다. 그 후, 노부나가는 모가미 요시아키(最上義光)를 데와노카미(出羽守)로 임명했을 때의 그에게 기념품으로서 모가미 미츠타다를 주었다.

모가미 요시아키는 기뻐했으나, 그 후 여러가지 이유로 히데요시에게 모가미 미츠타다를 몰수당해버렸다.

히데요시에게서 히데요리(秀頼)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후 이에야스, 히데타다(秀忠) 등 여러 인물들을 거친 끝에, 마지막에는 모가미 가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재는 칼과 소유자는 모두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외에 미츠타다가 만든 칼들도 노부나가는 수집하여, 그 숫자는 총 30자루 이상은 되었다고 한다. 이 정도까지 수집한 이유는, 노부나가가 미츠타다가 만든 화려한 칼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뭐 괜찮으려나. 아마도, 헤시키리하세베(へし切長谷部) 같은 건 무리일테고, 낚이는 건 이번만이려나. 그보다 바다 저편(外洋)에 대해 알고 싶다, 고 한 게 신경쓰여. 일단 이것저것 자료는 준비했지만 말야)


그리고 그녀는 몰랐으나,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는 확실치 않은 츠루마루쿠니나가(鶴丸国永)나 정 3위(正三位)의 지위를 가진 히노모토고우(日本号) 등,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부려먹을 때를 위해 하사할 명품들을 여러가지 소유하고 있었다.

다만 내놓는 것을 아껴서 시즈코에게는 몇 개 없는 것처럼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정원에 들어서자 풍경이 확 바뀌었다. 시들은 나무들이라는 살풍경함이 아니라, 푸르름이 넘치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얼마 안 되지만 꽃이 피어 있어, 그것이 겨울 풍경으로서 색을 곁들이고 있었다.


"오오, 굉장하네"


눈 앞의 광경을 보고 시즈코는 감탄성을 냈다. 정원의 곳곳에 양탄자(毛氈)가 깔려 있는 긴 의자(長椅子)에 커다란 파라솔(妻折傘, 爪折傘이라고도 함)이 세워져 있었다.

붉은 색을 좋아하는 노부나가답게 양탄자와 파라솔 모두 붉은 색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겨울의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담소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게냐―. 츠부앙(粒あん)의 맛을 모르다니, 이 얼간이가!!"


"얼간이에 멍청이는 네놈이다. 코시앙(こしあん)의 맛을 모르는 원숭이놈이 잘난 듯 떠들다니!!"


"츠부앙은 코시앙처럼 맛이 끝까지 똑같지 않다. 씹을 때마다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데, 그걸 모르다니!"


"멍청이. 코시앙은 만들고 남은 것을 가지고 한 가지를 더 만들 수 있다. 츠부앙처럼 다 섞어버리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다!"


"뭣이라!"


"해볼테냐 원숭아!"


산책하는 도중, 시바타(柴田)와 히데요시가 항상 그렇듯 츠부앙과 코시앙으로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린 후, 시즈코와 사이조와 케이지는 일제히 몸을 돌려 못본 척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타코야키나 붕어빵, 오방떡이 구워지는 광경을 보고 시즈코는 그리운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현대 같은 소스는 없기 때문에, 타코야키는 간장 맛국물로 먹게 되었다.

그 외에도 레몬 간장이나 마요네즈, 폰스(ポン酢) 등도 있다. 타코야키 전용의 소스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소스에는 향신료나 허브가 듬뿍 사용된다.

전국시대의 일본에서는 향신료나 허브를 모으는 것은 어렵기에, 이번에는 다른 조미료로 먹게 하기로 했다.


"호호홋, 맛국물로 먹는 타코야키는 맛있구나. 붕어빵도 버리기 아깝지만, 타코야키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점이 좋도다. 나는 뭐든 좋지만, 이 폰스인가 하는 게 취향에 맞는구나"


"저는 된장이 취향에 맞는군요. 네네 님은 역시 간장인가요?"


"호홋, 간장 냄새가 참을 수 없군요. 요즘에는 소비가 편중되어 남편이 곤란한 표정을 하기에, 가끔은 된장도 쓰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모자라면 시즈코의 창고에서 원하는 만큼 가져가면 되느니라. 이렇게 맛있는 것을 말 안하고 있었으니, 그 정도는 해도 불만은 없겠지"


(뭔가 굉장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쪽을 눈치채기 전에 도망치자)


노히메(濃姫)를 필두로 무장의 아내들도 모여서 대화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끔 불온한 대화가 귀에 들어온 시즈코였으나, 얽히면 끝장이고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모르기에 전략적 후퇴를 했다.


"마치 축제날(縁日) 같은 분위기네"


여기저기서 즐거운 듯한 대화가 들렸다.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걸 잊고 다들 지금을 즐기고 있었다.


"축제날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우물우물…… 붕어빵은 꽤 맛있군"


"케이지 님, 양 팔 가득 안고 입에 가득 무는 것은 무인으로서 조심성이 부족하외다"


"입에 파를 묻히고 있는 녀석이 할 말이 아닌데"


어느 새인가 케이지와 사이조는, 양 팔에 타코야키나 붕어빵을 안고 있었다. 정원을 만끽하는 것도 지겨워졌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적당한 긴 의자에 앉았다.


"즐기고 있느냐"


한숨 돌렸을 때 타이밍 좋게 노부나가에게 발견되었다. 그는 호리 히데마사(堀秀政)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그리고 딱 봐도 나이어린 소성(小姓)을 데리고 있었다.

시기로 볼 때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자식인 모리 란마루(森蘭丸)(신장공기(信長公記)에는 란(蘭)이 아니라 란(乱)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알기쉬움을 중시하여 란마루(蘭丸)를 사용함)일거라고 시즈코는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영주님. 물론 즐기고 있습니다"


"그대로 있도록. 흠, 내 눈에는 너보다 뒤의 두 사람 쪽이 만끽하고 있는듯 보인다만"


케이지는 노부나가가 나타나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붕어빵을 먹고 있었다. 한편 사이조는 직립부동으로 서 있었으나, 입 주변이 타코야키의 간장 맛국물에 들어간 파로 범벅되어 있었다.

이마를 손으로 짚은 시즈코를 일별한 노부나가는 호쾌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지금의 노부나가는 매우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잊기 전에 처리해 두지. 따라와라"


뭐를, 이라고 일순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즉시 미츠타다가 만든 칼을 하사해준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걷기 시작한 노부나가들의 뒤를 시즈코들이 따라갔다.

간혹 란마루가 머리만 돌려 시즈코를 보았으나, 몇 번째인가에 그걸 눈치챈 호리가 란마루의 머리를 쿡 찔렀다.

그 후, 두 사람은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누었으나, 그건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호리가 란마루를 꾸짖는 것처럼 보였다.

뭘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은 시즈코는, 뒤에 있는 케이지와 사이조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두 사람도 호리와 란마루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서부터는 시즈코 뿐이다. 나머지는 기다리고 있거라"


시즈코 이외의 사람을 일별, 이라기보다 노려보며 못박은 후, 노부나가는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케이지는 어깨를 움츠린 후, 가까이 있는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자세를 풀었다. 케이지의 자유분방함에 사이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 앉는 것을 보니, 케이지와 마찬가지로 시즈코의 용무가 끝나기를 기다릴 생각인 듯 했다. 호리와 츠네오키도 사이조를 따라 케이지의 근처에 앉았다.


(이건 괜찮은 걸까……?)


"란마루,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라"


유일하게 소성인 란마루만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런 란마루를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호리가 한숨을 섞어 란마루에게 말했다. 몇 번인가 시선을 방황시킨 후, 란마루도 호리 근처에 앉았다.


(아, 역시 모리 란마루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도 방에 들어갔다. 등 뒤에서 란마루의 강한 시선을 느꼈으나, 맹장지를 닫기 직전에 머리에 주먹을 내려치는 소리가 시즈코의 귀에 들렸다.

적의(敵意)나 살기(殺気)는 아니었으나, 어째서 란마루가 저런 태도를 취하는지 알 수 없어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회가 있으면 본인이나 모리 님한테 물어볼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몇 개인가의 빈 방을 경유하여 시즈코는 목적한 방에 도착했다. 보안상의 이유라고는 해도, 방을 계속 들락날락하는 것은 아무리 시즈코라도 진절머리가 났다.


"늦다, 시즈코"


방에 들어가자마자 상좌(上座) 쪽에서 노부나가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말처럼 화가 난 모습은 아니고, 오히려 즐거운 듯한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딱히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형식에 얽매일 생각은 없으니, 너도 편하게 있어도 좋다"


그 말대로 노부나가는 대단히 릴랙스한 상태였다. 어느 정도 긴장감이 없이 보였으나, 그것은 시즈코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보다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기에,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긴장을 풀고 있는 것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저어, 그런데 눈 앞에 늘어놓여진 칼들은 대체……?"


노부나가와 시즈코 사이에, 칼걸이(太刀掛)에 장식된 칼이 10자루 놓여 있었다. 하사되는 것은 미츠타다가 만든 칼 한 자루일텐데, 눈 앞에 10자루나 칼이 있는 것에 시즈코는 곤혹스러워졌다.


"훗, 미츠타다가 만든 것이 가지고 싶다면 스스로의 눈으로 맞춰보아라. 보기좋게 미츠타다의 칼을 골라낸다면 골라낸 칼을 네게 주마"


으스대면서 노부나가는 시즈코의 질문에 대답했다. 콜렉션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마음과, 이만한 숫자를 모은 것을 자랑하고 싶은 노부나가였다.

콜렉션을 눈 앞에 두면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같이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마스크와 장갑, 그리고 도검을 쥐기 위한 천을 꺼냈다.

마스크는 도검에 침이 튀지 않기 위해, 장갑과 천은 도검에 먼지나 오물이 묻지 않도록, 또 묻었을 경우에 닦아내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시즈코는 도검유(刀剣油) 등 도검용의 손질 도구를 꺼냈다.


"……꽤나 준비가 좋구나"


"만에 하나를 생각하여 준비해 두었습니다"


반쯤 어이가 없어진 노부나가의 중얼거림에 대답하고, 시즈코는 왼쪽부터 순서대로 도검을 확인했다. 모든 칼을 다 확인한 시즈코는, 미츠타다가 만든 것은 6자루 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도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오쿠리카라히로미츠(大倶利伽羅広光)에 츠루마루쿠니나가, 헤시키리하세베, 소우자사몬지네. 근데, 어째서 시험하려고 생각한 걸까. 뭐 괜찮겠지, 이걸 받자)


모든 칼을 확인하고 도구를 갈무리한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머리를 한 번 숙이고 어떤 칼을 손에 쥐었다.


"그럼 이 미츠타다가 만든 한 자루를 가지고 싶습니다"


말을 끝내기 전에 노부나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시즈코가 고른 미츠타다가 만든 칼은 노부나가가 사랑해마지 않는 짓큐 미츠타다이기 떄문이다.


짓큐 미츠타다는 구별법이 존재한다. 이름의 유래가 된 미요시 짓큐(三好実休)가 최후에 미츠타다로 적을 베었을 때, 칼날의 이빨이 약간 빠져 버렸다. 이것이 미츠타다가 만든 다른 칼들과 짓큐 미츠타다를 구별하는 방법이다.

이 구별 방법은 시즈코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비슷한 기록이 있다.

노부나가가 사카이의 호상(豪商) 들에게 미츠타다가 만든 칼들을 늘어놓고 짓큐 미츠타다가 어떤 것인지 맞춰 보아라, 라고 말했을 때, 감정인(鑑定人)으로서 이름높은 키즈야(木津屋)가 보기좋게 짓큐 미츠타다를 맞춰냈다.

이 때, 키즈야가 20자루 이상 있던 미츠타다가 만든 칼 중에서 짓큐 미츠타다를 맞춘 방법이, 짓큐 미츠타다에 있는 칼날의 이빨이 빠진 부분이라는 이야기였다.

아즈치 성(安土城)에서 벌어진 짓큐 미츠타다 맞추기 게임이었기에, 그 이전의 짓큐 미츠타다에도 칼날의 이빨이 빠진 부분이 있었으며, 동시에 노부나가가 소유하고 있는 미츠타다가 만든 다른 칼들은 칼날에 이빨이 빠진 칼이 없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라, 시즈코. 좀 더 다른 칼도 보지 않겠느냐. 자, 이건 정말로 훌륭한 만듦새이니라!"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오오쿠리카라히로미츠를 손에 쥐고 재촉하듯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누가 봐도 노부나가가 동요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시즈코는 대단히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 이상, 영주님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실례가 됩니다. 저 같은 것은 이 칼날의 이빨이 빠진 한 자루로 충분하옵니다"


"큭…… 네 이놈, 알고 있구나"


"무엇을 말이옵니까"


보통의 하사품이라면 시즈코도 적당한 걸로 끝냈겠지만, 안타깝게도 시즈코도 열을 올리는 도검이 하사품이다. 그렇기에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큭큭큭, 시즈코도 제법 컸구나"


잠시 당황했던 노부나가였으나, 갑자기 뻔뻔한 웃음을 지었다. 진정한 것도 있겠지만, 이만큼 자기 뜻을 고집하는 시즈코에게 호감을 느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네겐 약점이 있지. 시즈코…… 명령이다. 짓큐 미츠타다를 내게 헌상해라! 대신 명품을 두 자루 주겠다"


"우와, 비겁합니다!"


시즈코의 약점, 그것은 노부나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생트집에 가까운 난제를 어떻게든 해결하다보니,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명령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었다.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쥐고 생각했다. 그녀 안에서는 충견(忠犬) 정신과 명품 수집 정신이 다투고 있었다. 잠시 후 시즈코는 한숨을 쉬며, 그와 동시에 절충안을 노부나가에게 제시했다.


"그러시다면…… 짓큐 미츠타다를 헌상하는 대신, 미츠타다가 만든 칼 한 자루와 다른 두 자루의 칼을 원합니다!"


"음, 좋다"


자포자기해서 말한 절충안이었으나 노부나가는 쉽게 수락했다. 그에게는 짓큐 미츠타다만 돌아온다면 다른 칼은 내줘도 문제없다는 것이리라. 아니, 조금 달랐다.


"……어, 어느 틈에 칼이 줄었어!"


처음에는 미츠타다의 칼 6자루와 다른 칼 4자루였으나, 지금은 오오쿠리카라히로미츠에 츠루마루쿠니나가, 헤시키리하세베, 미츠타다다 만든 칼 두 자루 등 합계 5자루밖에 놓여있지 않았다.

어느 틈에 노부나가가 칼을 치운 것이다. 거기에 지금, 시즈코의 눈 앞에 놓여있는 칼들은, 원래부터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하사할 예정이었던 칼들 뿐이었다.


"여, 여기서 째째함을 발휘하시다니"


"째째하다니 무례한 녀석이구나. 고도의 흥정술이라고하지 못하겠느냐"


"크으으윽. 그, 그럼 오오쿠리카라히로미츠와 하세베쿠니시게(長谷部国重, 헤시키리하세베), 그리고 이 미츠타다가 만든 칼(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를 원합니다"


"좋다. 세 자루 다 가져가도록"


시즈코가 항복한 모습을 보고 노부나가는 승리감에 넘친 표정을 지었다. 이길 수 있으려나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역시 조정이나 쇼군, 영주(国人)들과 정치적 흥정을 계속해온 노부나가였다.

시즈코 정도의 책략으로는 승산은 없었다. 애초에 시즈코도 진심으로 짓큐 미츠타다가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세 자루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을 기뻐하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세 자루는 손으로 들고 운반할 수 없었기에,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와 헤시키리 하세베를 등에 지고, 오오쿠리카라히로미츠를 손에 들고 운반하기로 했다.


"돌아가서 가신들에게 신경쓰는 것도 귀찮군. 당분간 나와 이야기를 하자"


"(일단, 저도 가신인데요……) 옛, 알겠습니다"


시즈코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부나가는 품 속에서 붕어빵과 오방떡이 든 봉투를 꺼내서 자신의 눈 앞에 펼쳤다. 허리의 대나무 수통을 꺼내고는, 뚜껑을 열어 안에 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럼, 무엇부터 이야기할까"


이거 장기전(長丁場)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내심으로 질색하면서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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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3 1571년 11월 하순



시즈코가 키묘마루(奇妙丸)에게 폭탄발언을 했을 무렵, 어떤 신사(神社)의 신주(神主)는 성대하게 재채기를 했다.


"음, 누가 내 이야기를 하고 있군"


코를 문지르며 아시미츠(足満)는 툴툴거렸다. 그런 그의 발 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언제쯤부터인지 신사에 눌러앉은 고양이로, 당초에는 쫓아냈으나 그래도 신사에 눌러앉은 고양이들에게 아시미츠가 손을 들고 내버려두기로 했다.

고양이는 형제인 듯 항상 함께 있었다. 거기에 친구도 있는지 삼색(三毛)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적도 있지만, 형제 이외에는 항상 함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형제라. 훗, 내 동생은 끝이 없는 멍청이라 곤란하군. 이미 아시카가(足利)에 세상을 다스릴 힘은 없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다니 말이다"


현대에서 자신의 죽음 후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시미츠는 자신이 습격당했을 때, 쇼군(将軍) 가문의 위광(威光)은 이미 없고 아시카가 가문은 멸망할 운명이라고 깨달았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쇼군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면 몰라도, 암살이라는 비열한 수단으로 반역을 하고, 거기에 주위는 그 행동을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는 쇼군 따위 껍데기만 남은 존재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암살하려 했던 것을 용서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고양이와 햇빛을 쬐고 있다니, 꽤나 귀여운 행동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시미츠는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미요시(三好)의 바보놈들을 죽일지 생각하는 중이다"


"그거 무서운 얘기군"


말을 건 인물, 사키히사(前久)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당연한 듯 그의 옆에 앉더니 품에서 도자기(陶器)로 된 마개 달린 술병(とっくり)을 꺼냈다.


"좋은 술을 구했지. 하늘을 안주삼아 마시지 않겠나?"


"……어차피 안 마신다고 하면 멋대로 마실 거 아닌가. 마음대로 하라"


"그럼, 마음대로 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사키히사는 잔을 두 개 꺼내어 각자에 술을 부었다. 말없이 잔을 손에 쥐고 묵묵히 아시미츠는 반 정도를 단번에 들이켰다.


"내게 붙어있어봤자 네놈에게 이득은 없다"


"벗과 이야기하는데 손득 계산은 풍류가 없지. 애초에 내가 이익만을 좇는다면 일부러 이곳에 오지는 않네"


"……일리있군"


중얼거린 후, 아시미츠는 잔을 기울여 남은 술을 다 마셨다. 빈 잔에 사키히사가 미소를 띄우며 술을 따랐다. 술이 가득찬 잔을 내려놓고, 답례로서 아시미츠는 사키히사의 잔에 술을 따랐다.

한층 더 짙어진 미소를 지으며 사키히사는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역시 시즈코 님인가?"


순간, 잔을 입에 댄 채로 아시미츠가 굳었다. 몇 초 후, 감정의 고삐를 다시 잡은 아시미츠는, 사키히사를 일별한 후 잔을 비웠다.


"……최근, 타케다(武田)의 간자가 많아졌다. 시즈코의 근처에조차 말이다. 찾아내는대로 처리하고는 있지만 전혀 줄어들 기색이 없다. 오다는 저택으로 수비를 강화하는 모양이지만, 많은 인원을 동원한다는 건 쓸데없이 간자가 끼어들 여지를 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인가!"


신경이 곤두섰는지 아시미츠는 잔을 쥐어부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다(怒髪天を衝く)라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분노하는 아시미츠의 옆에서 사키히사는 태평하게 잔을 기울였다.


"그렇게까지 걱정되면, 여길 나가서 시즈코 님에게 가면 되지 않는가"


"그게 가능하면 고생할 일이 없다. 귀찮은 일이 있어서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거 어렵군"


그렇게 말하고 사키히사는 술을 비웠다. 한편, 짜증이 가라앉지 않는 아시미츠는, 자기 손톱을 물어뜯으며 감정의 제어를 시도했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아시미츠가 발산하는 살의(殺意)라고도 할 수 있는 분위기에 위축되겠지만,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발호(跋扈)하는 복마전(伏魔殿)인 조정(朝廷)을 쥐락펴락하는 칸파쿠(関白) 직책도 맡았던 사키히사는 갈대밭에 부는 바람인마냥 멀쩡한 표정으로 받아넘기고 있었다.


"자자, 그런 표정을 짓지 말게. 아무래도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사키히사는 어떤 방향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약간 러프한 차림새였으나, 허리에 두 자루 칼을 차고 남장한 인물이 서 있었다.


"얼래, 제가 방해한 건가요?"


태평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남장한 인물, 시즈코는 뒤통수를 긁었다.




오와리(尾張)의 어떤 장소, 주위에 차폐물은 없고, 또 사람이 숨을 수 있을 만한 그늘도 없는 장소에 노부나가와 몇 명의 가신들이 모였다.

주위에는 시즈코나 미츠히데(光秀) 직속의 정병들이 거리를 두고 에워싸듯 경비하고 있었다. 사람은 커녕 고양이 새끼 한 마리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사냥개 부대나 경비대(警備衆)도 경호에 참가하고 있었기에, 비밀스러운 대화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모여든 가신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모리 요시나리(森可成), 아시미츠(足満), 그리고 시즈코 등 5명이었다.

8명 이상 모이면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기에, 그 이하의 인원으로 금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걸맞는 인물을 모은 결과였다.


"훗, 이번에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


상좌에 앉은 노부나가가 웃음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미츠히데나 타케나카 한베에, 모리 요시나리는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아시미츠와 시즈코는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었다.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꾼 후, 시즈코는 말했다.


"먼저 작년의 싸움, 저 같은 것의 계책을 채용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예정대로 패배를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엔랴쿠지(延暦寺) 공격, 이걸로 타케다를 '끌어낼' 상태가 갖춰졌습니다"


세 사람의 표정이 굳은 이유, 그것은 작년의 패배가 처음부터 미리 짜여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놀랐으나 그들은 곧 어떤 것에 생각이 미쳤다.

주요 무장들은 부상은 입었더라도 한 명도 전사하지 않은 것. 배신자가 몇 명이나 나왔으나 유능한 무장들은 노부나가 곁에 있는 것이었다.


"상관없다. 나는 네 계책에서 가치를 발견했다. 그것 뿐이다"


"감사합니다. 중신 여러분께도 일패도지(一敗塗地)하여 결코 적지 않은 피해를 끼쳤습니다만, 이것도 최종적으로 오다 가문의 승리를 얻기 위한 것이기에, 부디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니, 승패는 병가지상사. 아까의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으니, 신경쓰지 마시오"


아직 표정은 굳었으나, 상황을 이해하고 납득이 갔는지 모리 요시나리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에 따라 미츠히데나 타케나카 한베에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을 태도를 보고 시즈코는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며 옆에 놓여 있던 종이를 펼쳤다.


"제 1차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조사로, 여러가지 좋은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걸로 점점 더 타케다는 불리해집니다. 뭐 불리함을 감추기 위해 전군을 이끌고 나오겠지요. 그 숫자는…… 약 3만 정도일거라 생각됩니다"


"3만!"


자기도 모르고 미츠히데가 목소리를 높였다. 타케다 군 3만이라는 것은, 냉정침착한 미츠히데가 당황할 정도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시즈코는 미츠히데의 걱정을 가볍게 흘려버렸다.


"숫자에 의지하는 자는 숫자에 당하는 법입니다. 3만은 확실히 위협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만한 숫자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적비대(赤備え), 헐거운 화살촉(ゆる矢じり, ゆる鏃) 등의 군사적인 면, 공병 공성(工兵攻城)이나 편익포위(片翼包囲), 딱다구리(きつつき) 전법 등의 전술적인 면 등, 타케다 가문의 군사교리는 기발한 전술은 별로 없고, 기본에 조금 개량을 가한 정도의 것이 많다.

그곳에 타케다 병사의 순수한 강력함과, 그를 이끄는 무장들의 질이 높은 것이야말로 타케다 군 최대의 무기다. 그렇기에 야전(野戦)에 강하며, 그 증거로 신겐(信玄)은 평생동안 두 번밖에 전술적 패배를 겪지 않았다.

타케다 병사가 강한 이유는, 코우슈(甲州)라는 혹독한 생활 환경이 표한(剽悍)하고 늠름한 병사를 낳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카와(三河)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세 명에 필적한다', ' 코우슈 병사 한 명은 오와리 병사 다섯 명에 필적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타케다 병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강인한 전사였다.


그 중에서도 정예병을 모은것이 유명한 '타케다의 적비대'이다. 오부 토라마사(飯富虎昌)가 창설하고, 그가 죽은 후에는 동생인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가 계승한 전국시대 최강의 부대이다.

이 타케다의 적비대 중의 특공대(特攻隊)가 무토우 키헤에(武藤喜兵衛), 훗날의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이다.

10배의 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격파하는 적비대는, 훗날의 적비대 정예 신화를 낳았다. 이 신화를 따라, 도쿠가와(徳川) 최강 부대인 '이이(井伊)의 적비대'와 사나다가 이끄는 '사나다의 적비대'가 태어났다.


하지만, 전국시대 최강이라 이름높은 타케다 군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타케다 가문 당주의 권력이 약한 점'이다.

가신들의 발언력이 강하여, 봉건제(封建制)를 채택하고 있으나 과두정치(寡頭政治)에 가까워서, 당주가 독단으로 재가를 내리고 가신들이 수락하는 체제가 아니다.

또,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쾌진격을 거듭한 이유의 태반이, 유능한 부하의 공적이나 헌책(献策, ※역주: 계책을 올림)이었기에, 독립독보(独立独歩)의 기풍이 강하여 당주를 중심으로 결속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약육강식을 체현하는 신겐의 외교 방침은, 동맹을 맺어도 상대가 약체화된 순간 배신하고 영토 침략을 계속했기에, 동맹 상대와의 신뢰성을 쌓지 못하여, 항상 뒤통수를 맞을 위험성을 품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장기간의 출진을 하기 어려워서, 단기간에 승패를 결정지을 필요에 쫓겼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타케다 신겐이 죽은 후, 카츠요리(勝頼)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가신단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신겐은 가신들의 의견을 듣고, 중요한 일은 가신과 의논하여 결정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합의제(合議制)에 가까워서, 우수한 리더이기는 했으나 의장 겸 조정자로서 가신들 사이의 다툼을 중재하는 데 부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가신들끼리 다투어도 신겐에게는 막을 방법이 많지 않았다는 셈이다. 애초에 가신들은 독자적인 영토와 병사들을 가진 소국의 영주로, 각각이 싸울 힘을 가진 자들이다.

전원의 의견을 정리하여 행동하지 않으면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이 상태를 타파하려고 한 것이 노부토라(信虎)였으나, 아들인 신겐이 그를 추방해버렸기에, 타케다 가문 당주의 독재력(独裁力)을 강화할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구식의 군사 제도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이다. 동원하는 병사들은 농병(農兵)과 지방의 토착 무사(地侍)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철포(鉄砲)의 장비 비율도 보통 정도였다.

약졸(弱卒)과 강병(強兵)의 차이를 없애버리는 철포를 싫어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금부족이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쨌든 타케다 병사의 철포 장비는 크게 뒤떨어졌다.

이것은 철포가 전래된 지 5년 후에는 철포에 신시대(新時代)의 가능성을 깨달은 노부나가와 대극(対極)에 있는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타케다는 강적입니다. 그렇기에, 최대 인원으로 덤벼오는 그들을 맞아싸워 완전히 박살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혼간지(本願寺)가 깔아놓은 오다 포위망을 깰 방법은 없습니다"


호각의 힘을 갖는 우에스기(上杉), 호죠(北条) 등은 별도로 치더라도, 타케다를 쳐부순다는 것은 오다 포위망에 참가하는 대부분의 영주들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아자이(浅井)나 아사쿠라(朝倉)는 물론이고, 혼간지에 협력하는 영주들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하다. 그 정도로 타케다는 빅 네임(Big Name)이자 반 오다 세력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타케나카 한베에가 의문을 제기했다. 평온한 표정을 하고는 있었으나, 반대를 용납치 않는 박력이 느껴졌다.


"시즈코 님의 계책은 흐름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타케다를 쳐부술 근거를 제시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힘으로 정강무비(精強無比)한 타케다 군 3만을 쳐부술 수 있다고 확신시키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은 노부나가도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설명에 아무 의문점도 없고, 시계열(時系列) 적으로 위화감은 없고, 대략 타케다 군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모두 예측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상대하는 타케다 군을 어떻게 쓰러뜨릴지, 시즈코의 이야기는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었다.


"몇 가지 '병기'를 쓸 것입니다만, 가장 크게 활용할 것은 '이것'이겠죠"


시즈코가 망설임없이 타케나카 한베에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을 때, 아시미츠가 신형 화승총을 주위에 보이도록 들어올렸다.


"저와 아시미츠 아저씨가 개발한, 현행 화승총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초장거리를 유효 사정거리로 가지는 신형 화승총입니다"


신형 화승총이란, 샤프스(Sharps) 군용 카빈을 베이스로, 엔필드(Enfield) 총이나 윈체스터(Winchester) M1873 카빈 등, 다수의 총의 장점을 가져온 총이다.

유효 사정거리는 830m, 발사속도는 매분 9발, 중량은 4.6kg, 초속은 420m/s, 탄은 종이 탄피(紙薬莢)를 한 발만 후장하는 방식이다.

무연화약(無煙火薬)을 쓰면 초속이 600m/s 이상이 되며 납이 녹아버리기에, 사용하고 있는 화약은 갈색화약(褐色火薬)이다.

종이 탄피는 현대에서 일반적인 센터파이어(centerfire)식 뇌관을 채용하고 있다. 발사 후에 갈색 화약이 타고남은 찌거기는 종이에 달라붙기 떄문에, 총신 내부의 더러움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단순 계산하면 1분 이내에 최소 9명을 사살할 수 있다. 100정이 있다면 1분에 900명을 사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수백미터 저편의 적을 겨냥하면,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가능하다.


참고로, 무연화약을 쓴 실탄은 탄속이 너무 빨라서 마찰열에 의해 납의 용융(溶融)이 일어나, 몇 발만 발사하면 탄이 막히는 정도면 다행이고, 최악의 경우 폭발을 일으켜 총신이 파열되어 발포자가 위험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 피복강탄(被覆鋼弾,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이다.

하지만 피복강탄은 가공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비싸기에, 많은 수량을 준비할 필요가 있는 탄약(소모품)으로서는 채용할 수 없어 성능이 떨어지는 갈색화약과 종이 탄피로 대용했던 것이다.


"완성된 것이냐!"


그렇게 외치며 노부나가는 기세좋게 일어섰다. 당장이라도 신형 화승총을 빼앗아들 듯한 분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 시즈코였으나, 헛기침을 하고는 아시미츠로부터 신형 화승총을 받아들었다.


"상세한 것은 비밀입니다만, 제가 가진 기술 모두를 쏟아부었습니다. 몇 가지 재료는 남만(南蛮)으로부터 수입하였습니다만, 그들은 그것들의 가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 듯 합니다. 뭐 그 덕분에 백금(Platinum)과 마찬가지로 싸게 입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만"


현대에서는 대단히 비싼 금속인 백금이지만, 대항해시대에는 가짜 은 취급을 받아 대량의 백금이 바다에 폐기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유럽에서 귀하게 여겨지던 은으로 착각하여 약탈해서 가지고 돌아갔으나, 은의 가공시설에서는 전혀 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은의 융점(融点)은 약 960도이지만, 백금의 융점은 약 1770도이다.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백금을 은의 가공시설에서 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것은 시즈코도 다를 게 없지만, 그녀는 백금이 거의 산화하지 않는 성질을 이용하여 백금을 가공했다.

분말형태로 가공한 후, 분말치금(粉末冶金)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보관하기 쉬운 잡아늘린 막대기(延べ棒) 형태로 성형한 것 뿐이지만.

스페인 상인이나 포르투갈 상인에게 일본이 녹일 수 없는 은을 매입한다는 이야기가 퍼진 덕분에 상당한 양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태도를 볼 때 바보 취급당하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속고 있는 쪽이 유리했기에 시즈코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속고 있는 척 하는 정도로 막대한 양의 백금이 입수할 수 있으니 이득인 것이다.


"우선 성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아케치 님, 조금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양쪽 다 준비를 마친 후, 노부나가들은 화승총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1km 정도의 초장거리까지 사격용의 표적이 준비된 장소였다.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1km 밖의 표적을 맞출 사격 능력은 없지만, 최대 사정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준비했다.


"우선은 아케치 님부터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 미츠히데는 종래의 화승총을 겨누고, 21간(間, 약 38m)에서 사방 1척(尺)의 표적을 관통시켰다. 당시의 화승총이나 탄환의 성능을 생각하면 경이적인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에 사관(仕官)했을 때, 25간(약 45m)에서 사방 1척의 표적에 맞췄다는 이야기도 영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과연 아케치 님이십니다. 그럼, 신형 화승총의 성능을 보아 주십시오"


샤프스 총에 종이 탄피를 장전한 후 시즈코는 총을 겨누었다.

탄환의 장전 방법이 너무나 달랐기에, 노부나가들은 시즈코가 뭘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즈코에게 말을 걸기 전에 시즈코가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폭발음이 났나 싶더니 61간(약 110m) 저편에 있던 사방 1척의 표적이 산산조각났다.


"후우…… (아아, 다행이야. 자신만만한 얼굴로 설명해놓고 빗나갔으면 창피하다는 레벨로는 안 끝났겠지)"


예정한 표적과는 달랐지만, 보기좋게 명중한 것에 시즈코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들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명백히 배 이상의 거리의 표적에 명중시켰다.

그것도 직선상에 있는 표적에 말이다. 화승총은 탄환이 구체(球体)이기에, 위력은 그런대로 있으나 발사시에 총신 내부에서 좌우로 흔들리기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탄환을 똑바로 날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그걸 시즈코의 화승총은 어렵잖게 해냈다. 일찍부터 화승총을 연구하고 있던 노부나가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흠, 보시는 대로입니다"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노부나가들에게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간신히 머리로 이해되었는지, 노부나가는 표정을 조이더니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나는 확신했다, 타케다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시즈코, 그 화승총을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하라.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겠다"


"옛!"


시즈코의 대답에 노부나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히데나 타케나카 한베에, 모리 요시나리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캐물어봐야 메리트가 없었기에, 의문을 속으로 삼켰다. 원리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어쨌든 노부나가로부터 예산을 받아냈기에, 시즈코는 1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신형 화승총을 제조하기로 했다. 간자 대책을 고려하여, 부품별로 따로 생산하여 마지막으로 조립하는 방식을 채용한다.


그 후, 이런저런 의논을 하고 각자 해산하게 되었다. 시즈코는 실질적인 타케다 전(武田戦)의 총사령관이 되었으나, 명목상으로는 키묘마루(奇妙丸)가 총사령관이 된다.

자신이 제일 위에 있으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제부터 시즈코는 타케나카 한베에와 타케다 전의 계책을 의논하거나, 미츠히데의 철포대(鉄砲隊)의 힘을 빌리거나, 모리 요시나리와 함께 병사들을 훈련시키거나 하게 된다.

바빠지겠지만, 이 싸움이야말로 오다 가문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적당히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피곤해―"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더 이상 자신감이 넘칠 수 없는 표정으로 설명했기에, 태도에 어울리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 할 일이 많아서 시즈코는 약간 우울해졌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거냐"


한동안 걷다가 문득 아시미츠가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떤 것을 품 속에서 꺼냈다.


"아무래도 이게 비밀병기, 라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잖아요?"


시즈코가 꺼낸 것, 그것은 현대에서는 일반적으로 팔리고 있는 접이식 우산이었다.


"……나와 미츠오, 그리고 시즈코의 접이식 우산. 충분한 양이다"


"그러네요. 하지만, 어째서 다들 접이식 우산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특히 미츠오 씨가 가지고 있었던 게 이상해요"


찰나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극히 짧은 순간이었으나 아시미츠의 표정이 씁쓸하게 일그러졌다. 그것은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시즈코가 알려 했기 떄문인지, 아니면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을 시즈코가 입에 올렸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시즈코에게 접이식 우산이 3개 있는 것은 단순한 의문이었으나, 아시미츠에게는 시즈코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그는 알고 있는 사정이라는 것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아시미츠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접이식 우산 같은 건, 그 시대라면 누구든지 가지고 있지. 유비무환, 이라는 거다"


"뭐― 그러네요. 갑자기 비가 온다던가 자주 있는 일이니까"


대단한 의문이 아니었던 시즈코는, 아시미츠의 말에 납득하고는 접이식 우산을 품 속에 넣었다. 아시미츠는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마음 속으로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시즈코. 하지만 나는…… 이제 두번 다시 네가 우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단다)




11월 하순이 되자 한층 더 추위가 혹독해져,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조사에서 몸이 안 좋아진 사람들이 늘어났기에, 시즈코는 지형조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를 마쳤기에 타카토라(高虎)가 돌아오고, 이어서 비공식 참가(陣借り)를 마친 케이지(慶次)와 나가요시(長可)가 돌아왔다. 하지만 시즈코의 집은 대 개수중이었기에 그들도 시즈코용의 임시 거처에서 먹고 잘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케이지는 어디에 살던 케이지였다. 다만, 마음대로 목욕을 할 수 없는 것만이 그들의 불만이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예산은 얼마든지 좋다(青天井), 라는 언질을 받은 시즈코는, 예산을 무시하고 곳곳에 방대한 숫자의 부품 생산을 명했다. 그 후, 시즈코가 할 일은 대(対) 타케다 전투에서 결과를 낼 뿐이다.

모든 것은 시즈코가 생각한 대로 각 세력이 움직이고 있었다. 혼간지도, 엔랴쿠지(延暦寺)도, 타케다도, 우에스기도, 그리고 도쿠가와도였다. 이 때 만큼은, 모든 세력이 시즈코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모든 세력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시즈코는 겨울이 되자 늘어나는 편지의 답장을 쓰고 있었다.

추위 때문에 실내에 있는 일이 많아진 탓일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으나, 상대방은 겨울에는 시즈코로부터의 답장이 빠르기 때문에 시기를 골라 편지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편지 상대가 매년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히데요시(秀吉)나 타케나카 한베에, 시바타(柴田), 니와 (丹羽), 삿사(佐々),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은 전부터 편지를 보내왔지만, 이 무렵에는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하야시 히데사다(林秀貞), 호리 히데마사(堀秀政) 등의 유명한 무장들로부터도 편지가 오게 되었다.

가끔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한 무장들로부터도 오지만, 대부분은 나름대로 가신들 중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들 뿐이었다.

생각났다는 듯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편지와 함께 터키시 앙골라에 관한 시(和歌)를 두꺼운 책자(冊子)로 보내왔다.

역사적 자료로서는 일급품이기에, 그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목구멍에서 손이 튀어나올 정도로 가지고 싶어할 물건이리라.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읽는 게 피곤한데다 길다보니 매번 잘도 이만큼 쓸 수 있네라고 어이없어지는 물건이었다.


"오, 또 편지라도 왔어?"


평상복(着流し) 차림의 케이지는 시즈코에게 말을 거는 것과 동시에 가까운 곳에 앉더니 사양하는 법도 없이 가까이 있던 편지를 집어들었다.

프라이버시가, 라고 일순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시즈코에게 전해지는 편지는 모두 검열된 것이기에 이제와서 누가 봐도 곤란할 내용 같은 건 쓰여있지 않으므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단순히 써야 할 답장의 숫자가 많다보니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가하면 오이치(お市) 님 상대를 부탁해"


"핫핫핫, 내게 그 말괄량이 공주님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편지를 원래 장소로 되돌려놓고 케이지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흘려버렸다.

오이치는 처음에는 얌전했다. 얌전했다, 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다르고 낯선 생활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만도 벅차다는 상태였다.

그러나, 일단 생활에 익숙해지니 그야말로 노부나가의 친여동생, 이것저것 주위의 사물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시녀의 말 따윈 마이동풍, 때로는 혼자서 설렁설렁 산책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편지를 보내 부드럽게 주의를 주려고 생각했다.


"오이치답구나. 책임은 그 녀석 자신이 지는 것이다. 내버려 둬라"


하지만 돌아온 편지는 짧았고, 그리고 시즈코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볼 때 오이치의 행동은 기행(奇行)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런 성격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별개지만, 어쨌든 멋대로 나다니다가 밖에까지 나가면 곤란하기에, 시즈코는 문지기에게 오이치를 통과시키지 말라고 명령했다.


"겨울은 금년도의 개발품을 검증할 필요가 있는데…… 곤란하네"


큰 피로감을 느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즈코의 개발 계획은 기본적으로 1월부터 2월에 예산을 획득하고, 4월까지 계획을 정리하여 기술자 마을에 발주한다.

그 후에는 시즈코가 노부나가를 따라 군사 행동을 취하기 떄문에, 쌀의 수확을 하는 9월에서 10월까지 진행은 완전히 맡겨놓은 상태다. 수확이 완료된 후, 각 계획의 잔행 상황을 듣고, 지연되고 있다면 재촉을 한다.

완성되어 있다면 검증용 제품을 받아서 최종 체크를 한다. 시즈코의 검증에 합격하면 계획은 보기좋게 완료, 세세한 후처리를 하고 프로젝트는 종료된다.

노부나가의 군사 행동이 봄에서 여름에 걸쳐 집중되기에, 이러한 계획의 흐름이 되어 있는 것이다. 시즈코가 겨울에 자택에 틀어박히기 십상인 이유는, 농한기(農閑期)다보니 검증할 시간을 비교적 내기 쉽다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 어째서 붕어빵(たい焼き) 틀이나 타코야키(たこ焼き) 틀, 오방떡(今川焼き, 大判焼き, 二重焼き, 御座候 등 복수의 애칭이 있음) 틀을 만들려고 생각한 걸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의 나를 두들겨 패버리고 싶어"


금년에 계획을 세운 것은 거울(鏡), 자석(磁石), 육분의(六分儀), 측거의(測距儀), 해시계 컴퍼스(日時計コンパス), 각종 원형 계산자(円形計算尺), 기계식의 해양 크로노미터(chronometer), 스털링 엔진(Sterling engine) 등 여덟 가지였다.

거울, 자석, 육분의, 측거의, 해시계 컴퍼스, 각종 원형 계산자는 이미 양산체제에 들어가기만 하면 될 뿐으로, 거기까지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기계식의 해양 크로노미터는 배 위에서 안정시키는 것에 시간이 걸려서, 아직도 시제품의 제조조차 착수하지 못했다. 스털링 엔진은 단순히 시행착오의 연속으로 그다지 만족스럽게 진척되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의외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추가로 전구(電球)용 유리를 발주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뭘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즈코는 붕어빵 틀과 타코야키 틀, 오방떡 틀의 개발을 발주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검증용 제품이 도착해서 시즈코가 머리를 감싸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팥소(あん)는 집안의 불화의 씨앗이 되니까 만들지 않는 편이 좋은데 말야"


"우리 숙부는 츠부앙(つぶあん) 파에 들어가 있었지"


웃으면서 말하는 케이지였으나, 시즈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뭐라 해도 '팥소'의 취향은 금기에 가깝다. 어설프게 다른 '팥소'를 깎아내렸다가는 중진(重鎮)들의 벼락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여실히 나타난 것이 양갱(羊羹)의 난(乱)이었다.


양갱의 난에서 태반의 사람들은 코시앙(こしあん)이나 츠부앙 파로 갈라졌다. 다만 미츠히데는 말차(抹茶), 니와나 모리 요시나리는 유자(柚), 타키카와(滝川)와 사쿠마, 하야시는 소금, 노부나가는 밤(栗) 등 취향은 세분화되었다.

양대 파벌 중에서 코시앙 파 필두가 시바타, 츠부앙 파 필두가 히데요시라는, 대단히 싸움이 벌어지기 쉬운 사람들이 필두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시바타는 친구인 마에다 토시이에가 츠부앙 파, 히데요시는 동생인 히데나가(秀長)와 타케나카 한베에가 코시앙 파였기에, 더더욱 상대를 용납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히데나가가 코시앙 파라는 것을 알았을 때, 히데요시는 시저(Caesar)가 심복인 브루투스(Brutus)의 배신을 비난했을 때와 비슷한 대사(※역주: 유명한 "Et tu, Brute?"를 말하는 듯)를 내뱉았다고 한다.


"나는 뭐든지 좋아. 맛있는 게 중요해"


"그만큼 결단력이 있으면 그런 말다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야"


현대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는 츠부앙 파 vs. 코시앙 파 논쟁, 전국시대에 결판이 날 리도 없어서, 두 사람은 시즈코가 개최하는 오와리(尾張)-미노(美濃) 센류(川柳, ※역주: 5-7-5글자로 된 일본 시의 일종) 대회에서도 다투었다.


"뭐― 만드는 건 좋지만, 오늘은 안 되겠네. 챠마루(茶丸) 군이 없으니, 만들었다간 또 화낼 것 같고"


저번의 소금가마구이(塩釜焼き)에서 따돌림당한 것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키묘마루는 요즘 시즈코에게 물건이 올 때마다 '다음에는 꼭 불러라'고 입아프게 고함치고 있었다.

따라서 오늘, 노부나가에게 가 있는 동안 붕어빵을 만들었다간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삐질 것이다.

그가 삐지면 이래저래 귀찮아지므로, 시즈코는 기후(岐阜)로 파발마(早馬)를 보냈다. 내용은 키묘마루의 귀가가 언제인지를 묻는 것 뿐이었으나, 이것이 시즈코에게 불행을 부르게 된다.


다음 날, 파발마 대신 대량의 팥(小豆)과 설탕이 시즈코에게 배달되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동봉된 편지를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노부나가와 오다 가문 가신들(一族一門衆), 그 가족들도 시식에 참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대량의 팥과 설탕이 보내어진 이유는, 그만큼 대인원으로 참가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추가로 문제가 발생했다.


"나를 따돌리다니, 시즈코도 많이 컸구나"


팥과 설탕을 가져온 것은 지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노히메(濃姫)였다. 그녀는 자주 와서 익숙한 다른 사람의 집처럼,  출입금지 간판이 서 있는 구역도 용서없이 들어왔다.

기대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효과가 전혀 없는 것에 시즈코는 약간 머리가 아팠다.


"딱히 따돌리려던 것은"


"뭐 좋다. 헌데 요즘, 새를 들여다 가지고 놀고 있다고 들었다만? 그 묘하게 시커먼 새도 그 중 하나인 것이냐?"


어떤 닭을 부채로 가리키며 노히메가 물었다.

지금 시즈코가 예뻐하고 있는 새는 오골계(烏骨鶏)라는 닭의 품종이었다. 이름 그대로 뼈까지 새카맣다는, 다른 닭에는 없는 특이한 특징을 가진다.


원산지는 여전히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역사적으로는 중국산의 품종이 유명하다.

옛부터 중국에서는 영조(霊鳥)로 취급되었으며, 11세기에는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에, 14세기에는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録)'에도 그 기술이 보이는 오래된 품종이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닭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으며, 거기다 그 살이나 뼈, 내장까지 검은 색을 띠고 있다.

그리고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계란도 영양면에서 일반적인 계란과는 동떨어진 우수성을 가지기에 각국에서 약용으로 중히 여겨진 적이 있다.

애초에 산란수가 적어서 절대적인 숫자가 적기 떄문에 현대에서도 값비싼 계란, 닭고기로서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 지역에서 자란 오골계 중에서 우수한 개체를 선별하여, 그것들을 조합하여 산란수가 많은 순혈의 오골계 품종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네, 이웃나라의 닭입니다. 그 밖에도 들여오고 있습니다"


오골계 외에 코친(九斤黄, Cochin) 종이라는 중국의 토종닭도 시즈코는 들여왓다. 이름 그대로 대형의 닭이라, 브로일러(broiler) 종이 약 2.5kg인데 비해, 코친 종은 통상 4kg에서 5kg까지 성장한다.

이 코친 종과 오와리의 토종닭을 조합한 품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고야(名古屋) 코친이다. 시즈코가 코친 종을 들여온 것도 나고야 코친에 가까운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어…… 사츠마 닭(薩摩鶏)에 도도(Dodo) 새, 타조도 들여왔습니다"


사츠마에서 키워지는 토종닭을 사츠마 닭이라고 한다. 그 역사는 오래되어, 헤이안(平安) 시대에서 카마쿠라(鎌倉) 시대의 무장인 시마즈(島津) 씨의 조상인 시마즈 타다히사(島津忠久) 때부터 사육되었다고 한다.

성질이 난폭하여 투계(闘鶏)에 적합한 성격이지만, 검고 긴 꼬리에 붉고 선명한 몸 색깔도 맞물려 대단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어 관상용으로도 사육되었다.


일본 3대 토종닭으로 꼽히는 마지막 한 종류, 히나이 닭(比内鶏)은 태국에서 수입된 군계(軍鶏)와 아키타 현(秋田県) 북부에서 사육되던 토종닭을 교배시켰다고 한다.

이쪽은 아키타 현 북부라는 입지가 오다 가문의 세력권 밖이었기에 아무래도 입수는 어렵다고 단념하고, 시즈코는 히나이 닭을 베이스로 한 품종개량 계획을 중지했다.


한편, 도도새는 발견된 지 겨우 100년도 되지 않아 멸종한 새이다. 야생 생물치고는 대단히 경계심이 옅어, 처음 보는 인간에게도 경계하지 않고 다가갈 정도였다.

그 때문에 유럽의 입식자(入植者) 들에 의한 포식이 일반화되고, 또 입식자들이 반입한 작은 동물들이 야생화하여 도도새를 습격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땅 위에 둥지를 만드는 등 여러가지 요인이 겹쳐, 도도새는 순식간에 멸종했다.


유럽에 반입된 기록을 볼 때 환경 적응 능력이 높고,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수율(歩留まり)도 좋았으며, 거기에 성격이 온순하기에 사육도 쉬울거라 판단한 시즈코는, 예수회를 통해 도도새를 일본으로 수입했다.

시즈코의 예상대로 어느 정도 높은 환경 적응 능력이 있는 것은 판명되었지만,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다른 닭들과는 달리 격리된 장소에서 사육하고 있었다.

지금 판명된 것은 새끼를 키울 때만 경계심이 강하지만, 그 이외에는 사람을 무서워하기는 커녕 적극적으로 다가올 정도로 경계심이 없었다.


마지막이 타조였다.

조류 최대의 새인 타조는 경이적인 생명력과 환경 적응 능력을 가지고, 상처나 질병에도 강하며, 잡식이라 생활 부산물인 야채 부스러기 정도로 사육하는 것이 가능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이미 사육되었던 기록이 있으며, 고기 뿐만 아니라 가죽이나 지방 등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성체의 경우 더위나 추위, 높은 습도에도 잘 견디며, 감염증에 강하고, 조용하고 얌전하며, 냄새도 나지 않고, 높은 번식능력을 가지며, 영역 다툼을 하지 않는 타조를 사육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른 닭들과 달리 1년 가까운 사육 기간이 필요하지만, 잡식이기에 목초(牧草)나 야채 부스러기 등의 식물 주체로 사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가지 난점을 들자면, 경이적인 생명력을 가지기에 목을 잘라내는 정도로는 즉사하지 않고, 생명의 위기에 처하면 시속 60km나 되는 속력을 지탱하는 심장이 전력으로 전신에 혈류를 공급하는 것이다.


타조 고기는 조직이 치밀하고 섬세하며 튀는 맛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말하자면 전신이 닭가슴살에 가까운 육질을 가지고 있기에, 앞서 말한 상태로 방치해두면 한계를 넘어서는 혈류가 공급된 전신의 모세혈관이 파열되어, 고기의 구석구석까지 혈류로 시뻘겋게 물든다.

일단 이 상태가 되어버리면, 원래 담백하고 섬세한 고기이므로 피비린내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결점이 있었다.

여담이지만 현대에서는 탄산가스 등으로 재운 상태에서 잡는 것으로 전술한 현상을 회피하고 있다.


"뭔가 처음 듣는 이름이 많구나"


"그야 뭐, 닭의 품종 개량을 하기 위해 모으고 있으니까요……"


닭은 소나 돼지와 달리 생명 사이클이 짧아 품종 개량에 걸리는 시간이 짧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품종은 손쉽게 사육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또, 닭은 사육하기 쉬운 데 비해 영양가가 높은 것도 높이 평가된다.

다만 이번에 들여온 닭들 중에서 가장 문제가 있다고 하면 오골계이리라. 닭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영양가를 자랑하는 오골계이지만, 검은색 때문에 식욕이 일지 않는 모습이 되기 쉽다.


"호호홋, 언제가 될 지 모르겠다만, 맛은 기대하고 있겠노라"


그 말만 하고 노히메는 시원스럽게 떠나갔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던 시즈코였으나, 잠시 후 노히메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오골계의 사육 작업을 재개했다. 그러나, 그 손은 금방 멈췄다.


"잊고 있었노라. 뭔가 최근에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나를 부르지 않다니 어찌된 것이냐?"


떠난 줄 알았던 노히메가 어느 틈에 등 뒤까지 다가와서 시즈코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 귓가에서 속삭였다.


"다음에는 잊지 말거라"


노히메는 어깨에 얹은 손에 약한 힘을 넣으며 경고했다. 시즈코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만족한 노히메는 생긋 웃더니, 양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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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2 1571년 10월 상순



엔랴쿠지(延暦寺)는 히요시타이샤(日吉大社)의 앞마당(門前町)이기도 했던 사카모토(坂本)가 멸망한 것만으로 노부나가에게 굴복했다.

본산인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는 무사했으나 도저히 승산이 없었기에 이대로 싸워봐야 패배는 틀림없다는 것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그건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라, 이것이 원인으로 엔랴쿠지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지금까지처럼 고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토양이 조성되었다.

엔랴쿠지의 종주(宗主)인 천태좌주(天台座主)는 히에이 산에서 쫓겨났고, 그에 대해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이나 조정은 탓하지 않았다.


엔랴쿠지의 근본중당(根本中堂)과 대강당(大講堂), 히요시타이샤는 소실되었고, 사찰의 영토(寺領, 社領)는 노부나가에게 모두 몰수되었다.

그 영토들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나카가와 시게마사(中川重政),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에게 분배되었다. 다섯 명은 각자의 영토를 가지면서, 여력을 파견하여 분배받은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다.


천태좌주인 카쿠죠(覚恕) 법친왕(法親王)을 필두로, 노부나가와 교섭했던 쇼카쿠인 고우세이(正覚院豪盛) 등은 카이(甲斐)까지 도망쳐서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에게 비호를 요청했고, 신겐은 그에 응하여 그들을 보호했다.

또, 엔랴쿠지에 대한 노부나가의 조치를 알고 "노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천마(天魔)가 둔갑(変化)한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다음 날인 13일, 전후 처리를 아케치 미츠히에데게 맡기고 노부나가는 정예만을 이끌고 상락했다. 그 동안, 각 군은 오우미(近江)의 잇키(一揆)를 각개격파해 나갔다.

쿄(京)에 들어가 엔랴쿠지 토벌의 보고와 전후 처리에 관한 공작(根回し), 각종 인사 등의 정무를 처리한 후 노부나가는 기후(信長)로 귀환했다.

쿄에 체제하던 도중 신경쓰이는 소문을 몇 번이나 들은 노부나가는, 원인으로 생각되는 아시미츠(足満)를 호출했다.


"네놈, 마츠나가(松永)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던 소문은, 타카츠키 성(高槻城)을 포위하고 있던 마츠나가 군에 대해서였다.

유리한 전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전선을 이탈하여 자국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잠그고 틀어박혀버려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수하의 간자를 풀어 뒷조사를 해본 노부나가는, 아마도 아시미츠의 짓이라고 짐작했다.

아시미츠의 짓이라고 짐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미요시 3인방(三好三人衆)과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에게 암살당할 뻔 했다. 깊은 증오를 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훗, 조금 겁을 준 것 뿐이다. 대단한 건 아니지"


노부나가의 물음에 아시미츠는 웃으며 대답했다.

꿈쩍도 안하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그였으나, 마츠나가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자기 손으로 죽인 상대가 살아 있었고, 힘을 기른데다 자신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적전 도주도 납득이 간다.


"쫑알쫑알 떠들지 마라, 변명은 듣지 않겠다. 소우이(宗渭, 미요시 소우이(三好宗渭), 미요시 3인방 중 한 명)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으냐"


"네놈에겐 죽음조차 사치다"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복수할 의미라고?

네놈이 멀쩡히 밥을 먹으며 살고 있고, 네놈이 하루를 더 사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내가 평온하게 잠들기 위해 네놈들은 벌레처럼 죽어라!"


마츠나가 히사히데, 히사미치(久通) 부자를 향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시미츠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떠올렸다.


"당분간은 얌전해지겠지. 뭐 너무 겁을 먹어서 정신이 이상해질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적당히 하라"


"노력해보지"


그건 NO라고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이해한 노부나가는 아시미츠에게 그 이상 무언가 말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자히 히사마사(浅井久政)에 대한 공작을 마친 시즈코 군은, 뒷처리를 히데요시(秀吉)에게 맡긴 후 오와리(尾張)로 귀환했다. 이번에는 결코 적지 않은 부상병이 나왔으나, 죽은 사람의 숫자는 양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에 그쳤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대응을 겐로(玄朗)에게 맡긴 후, 시즈코는 이번의 싸움에서 공이 있는 자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그 중에는 나가마사(長政)도 들어 있었다. 그는 100명의 병사가 주어졌으며, 거기에 엔도(遠藤)와 미타무라(三田村)가 요리키(与力, ※역주: 직속 부하 정도의 의미)로서 주어졌다. 원래는 나가마사의 가신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시즈코 휘하의 병사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의 포상으로, 그들은 지금까지처럼 우연을 가장할 필요 없이 당당히 나가마사를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애초에 두 사람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시즈코가, 부대 내부에서 쓸데없는 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세 사람을 한 곳에 모은 것 뿐이었지만.


전후처리를 마치고, 논공행상도 일단락된 후, 시즈코는 중요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것은 후추의 수확이다.

인도나 동남아시아 각국에서는 3월에서 5월에 걸쳐 수확하지만, 심은 시기나 기후 때문인지, 시즈코의 후추밭은 8월에서 10월이라는 늦은 수확 시기가 되어 버렸다.

8월 하순 무렵부터 열매를 맺은 후추였으나, 여전히 작은 열매가 달렸을 뿐이라 9월이 지나고, 간신히 9월말을 전후하여 열매가 크게 성장했다. 줄기성 식물인 후추 나무는 줄기 하나당 약 2kg의 열매가 달린다.

하지만 시즈코가 재배한 후추는 토양이 적합하지 않았던건지 아니면 온도가 부족했던 건지, 열매가 맺히는 게 신통치 않아서, 열매를 맺은 10그루에서 합계 5kg 정도밖에 수확할 수 없었다.

본래의 기대 수확량으로는 약 20kg가 기대되었으나, 금년에는 열매는 고사하고 꽃조차 피지 않은 나무가 4그루나 있어, 투자한 금액을 고려하면 대적자가 확실한 흉작이었다.


"후추다, 후추다"


수수께끼의 춤을 추며 시즈코는 후추를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을 기뻐했다. 전국시대의 일본에서 후추 재배 같은 건 꿈 같은 소리인데, 그걸 약간이지만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게는 수확량이 적은 흉작보다, 약간이라도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이 기뻤다.


"화이트 페퍼(white pepper)와 블랙 페퍼(black pepper)를 만들고, 그걸 섞어서 후추를 만들자"


후추의 열매를 원료로, 수확 시기나 제법의 차이에 의해 블랙 페퍼, 화이트 페퍼, 그린 페퍼(green pepper), 핑크 페퍼(pink pepper)가 만들어진다.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에 수확하고, 그것을 원료로 블랙 페퍼를 만들 수 있다. 이번에는 완전히 익었기 때문에, 만드는 것은 화이트 페퍼였다.


화이트 페퍼는 블랙 페퍼와 달리, 우선 물에 침지(浸漬)시켜 완전히 발효시킬 필요가 있다. 발효 후에 껍질을 벗기고 천일(天日) 건조시키면 완성이다. 한편, 블랙 페퍼는 덜 익은 열매를 천일 건조시키기만 하면 완성된다.

현대 일본의 가정에서는 블랙 페퍼와 화이트 페퍼를 블렌드한 분말 형태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말 형태로 만든 것은 향이 날아가기 쉬운데다 유통기간이 짧아진다.

알갱이(粒) 형태라면 블랙, 화이트 페퍼는 상온에서 최장 3년은 간다. 따라서 전국시대라면 페퍼 밀(pepper mill)에 알갱이를 넣고 필요할 때마다 갈아쓰는 게 가장 좋다.


전동 밀(mill) 같은 건 바랄 수도 없지만, 페퍼 밀은 목제로 된 수동식이 가장 폼이 난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몇 개월 전에 중심이 잘록한 목제 페퍼 밀을 남만 선박에서 구입했었다.

후추는 포함되지 않고 용기 뿐이며, 대형의 짐도 아니기에 운반하기 쉬워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덤으로 부패를 억제하기 위해 넣던 로리에(월계수(月桂樹)의 잎을 건조시킨 향신료)와 월계수의 묘목도 구입했다.

잡초나 마찬가지인 묘목에 큰 돈을 내는 시즈코에게 남만 상인들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으나, 돈을 후하게 지불하는 시즈코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거래가 성립하지 않게 되는 건 곤란했기에, 화물(積荷)로서 운반해온 나무 상자에 가득한 로리에와 몇 그루의 묘목을 그녀에게 양도했다.


월계수는 자택으로, 페퍼 밀은 기술자 마을에 보내 똑같은 것을 만들도록 의뢰했다. 꽤 많은 숫자를 구입했기에 몇 개는 구조를 알기 위해 분해되었으나, 그 덕분에 빠르게 재현할 수 있었다.

허브로 분류되는 월계수는 방치 재배(放置栽培)에 적합했기에, 플랜터에 옮겨심은 후에는 적당히 물만 주는 것 이외에는 내버려두는 식으로 재배했다.

그래도 순조롭게 성장하니, 허브의 생명력은 무서운 것이었다.


"닭고기 오케이, 소금 오케이, 로리에 오케이, 발아현미(発芽玄米) 오케이, 후추 오케이, 계란 오케이, 준비 완료네"


화이트 페퍼가 완성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프로이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녀가 원했던 중마종(重馬種)인 데스트리어가 드디어 기후(岐阜)로 운반된 것을 알리는 편지였다.

지금까지 노부나가가 쿄에서 기후로 이어지는 요소(要所)를 봉쇄하고 있었기에, 안전한 도로를 이용할 수 없어 말의 운반이 늦어져 버렸다.

하지만, 사카모토를 파괴한 것으로 일대의 봉쇄가 해제되어 드디어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고 편지에 적혀 있었다. 또, 편지에는 만나줫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 고 추신이 적혀 있었다.


(음~, 상황적으로 볼 때 쿄 포교 책임자인 그네키 솔디 오르간티노(※역주: Organtino, Gnecchi‐Soldi, Gnecchi‐Soldo라고도 쓰는 모양)일까나. 큐슈(九州) 포교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카브랄(Francisco Cabral)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그네키 솔디 오르간티노는, 겐키(元亀) 원년(元年) 5월에 일본으로 와서, 이후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이탈리아인 선교사이다.

인품이 좋고 일본인을 좋아하는 그는 많은 일본인에게서 우르간바테렌(宇留岸伴天連, ※역주: 오르간티노의 '오르간'과 카톨릭을 뜻하는 '바테렌(伴天連)'을 합친 말)으로 사랑받으며, 노부나가나 히데요시 등 당대의 권력자들과 지기(知己)가 되었다.

밝고 매력적인 인품, 적극적으로 일본어와 일본의 관습을 배우고, 1573년부터 1년에 걸쳐 법화경(法華経)을 연구하여, 착임한 지 3년 만에 킨키(近畿) 지방의 신도를 1만 5천명까지 늘린 큰 공적을 세웠다.

1577년부터 30년에 걸쳐 교토(京都) 지구의 포교 책임자를 맡은 것을 보면, '적응주의(適応主義)'를 실시하여 일본인으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은 것을 엿볼 수 있다.


오르간티노와 대조적으로 거명되는 인물이, 큐슈 포교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카브랄이다.

그는 당시의 포르투갈 인 모험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인과 일본 문화에 대해 마지막까지 부정적, 차별적인 태도였다.

카브랄은 적응주의를 맨 먼저 부정하고, 전임자인 코스메 데 토레스(Cosme de Torres)의 방침을 완전히 무시하였으며, 일본인을 저급한 국민으로 불렀기에, 일본인 신도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골(溝)이 생겨 버렸다.

최종적으로 포교 책임자의 자리에서 1581년에 해임되어 인도의 고아(Goa)로 돌아가게 되었다.


여전히 현지의 신도는 전무, 교회는 하나도 없으며, 연이은 전란 상태의 일본에서,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이 기독교(キリスト教)의 포교를 할 수 있는 것은 코스메 데 토레스의 공적에 의한 것이다.

그는 당시의 유럽인을 뛰어넘은 사상인 '적응주의(선교사들이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문화를 따라 사는 것)'을 행하여, 자비에르(※역주: 아마도 Francis Xavier를 말하는 듯)의 숙원이었던 교토에서의 포교를 달성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일본에서 쿄나 사카이(堺), 야마구치(山口) 등에 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신도들이 생겨난 것은 자비에르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꾸준히 활동해온 토레스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카브랄은 1573년에 야마구치로 갈 때까지 쿄에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 생각했으나 프로이스가 만나게 하고 싶다, 라고 하니 오르간티노일 거라고 시즈코는 판단했다. 그는 프로이스와 마찬가지로 쿄의 포교를 담당하고 있기에, 그라는 쪽이 납득이 간다.


"뭐, 그건 그렇다치고…… 오랜만에 요리를 만들자. 이번에는 값비싼 향신료인 후추를 사치스럽게 쓴 요리야"


아야(彩)와 쇼우(蕭)는 돕겠다고 했으나, 도움받을 일은 없으므로 자신들의 일에 전념하도록 명했다.

이번에 시즈코가 만드는 것은 닭고기의 소금가마구이(塩釜焼き)였다.

우선 내장을 뺀(袋抜き, 겉모습은 그대로 유지하며 내장과 뼈를 밖으로 빼는 기법) 닭(丸鶏)을 물로 씻어서 피(血合い)나 지저분한 것을 제거한다. 동시에 뱃속에 넣는 발아현미를 물로 씻어 10분 정도 물에 담가둔다.

그게 끝난 후, 닭은 물기를 잘 털어내고, 발아현미는 소쿠리(ザル)에 올려둔다.

다음으로 갓 갈아낸 후추를 닭 전체에 반죽하고, 텅 빈 뱃속에 발아현미와 로리에를 섞은 것을 7할 정도 채워넣은 후, 대나무 꼬치 등으로 엉덩이를 꿰매듯 하여 닫는다.

닭의 밑준비가 끝나면 다음에는 소금가마이다. 흰자를 가볍게 거품을 내고, 거기에 소금을 넣어 잘 섞는다.


섞은 소금을 돌가마(石窯)의 받침대(土台)에 두께 1cm 정도로 깔고, 그 위에 닭은 올려놓고, 닭 전체를 덮도록 두께 1cm 정도의 소금 돔(dome)이 생길 때까지 소금을 바른다.

이것을 돌가마에서 1시간 반 정도 가열하고, 불을 줄인 후 여열(余熱)로 30분 정도 뜸을 들인다.

돌가마에서 꺼내면, 그 후에는 망치 등으로 소금을 깨고 안에서 닭을 꺼내면 완성이다.

뱃속에서 채워넣었던 것을 꺼내고, 찜구이된 닭고기를 찢어서 섞은 후, 소금과 직접 닿아서 염분이 강해진 살이 적은 부분은 따로 떼어내어 스프의 건더기로 썼다.


"이 다음에는……"


품에서 부채를 꺼낸 후, 시즈코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요리를 부채로 붙었다. 꽃의 꿀에 몰려드는 벌레처럼, 맛있을 듯한 냄새에 이끌린 면면들이 다가왔다.

집 전체에 냄새가 퍼지도록 부채질을 하고 있자 사이조(才蔵), 이어서 케이지(慶次), 나가요시(長可), 마지막으로 아시미츠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전원 모여들었다.


"굶주린 자들(腹ぺこ)아. 오늘은 남만인이 좋아하는 후추를 사용한 요리로다"


"예―이!"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쌍수를 들고 기뻐했다. 두 사람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는, 아야나 쇼우, 타카토라(高虎)도 부르면서 요리를 내왔다. 안타깝게도 키묘마루(奇妙丸)는 노부나가에게 가 있어, 할아범(爺)과 함께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돌아오면 시끄럽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자리에 앉았다. 두 손을 모아 식전 인사를 하자, 케이지들도 그것을 따라했다.


"굉장해, 맛있다. 그냥 현미인데, 맛이 배어들어서 맛있어"


"이 스으프, 적당히 닭고기 맛이 녹아들어 맛있군"


"――! ――!"


하이텐션으로 외치며 발아현미를 먹는 나가요시, 천천히 맛보면서 닭고기 스프를 마시는 사이조, 말없이 밥을 퍼먹는 타카토라, 어디선가 술을 꺼내서는 자작으로 한잔 하면서 먹는 케이지 등, 테이블 위는 혼돈 상태였다.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으나, 아야나 쇼우도 맛있다고 먹고 있는 모습에 조금 안도했다. 유일하게 먹어본 경험이 있는 아시미츠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히 먹고 있었으나,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후추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 것 같네)


맛에 까다로운 케이지들도 만족하고 있는 것에 성과를 확신한 시즈코는 주먹을 약간 힘있게 쥐었다.


며칠 후, 시즈코는 프로이스와 회담하기 위해 항상 그렇듯 남장을 준비하고, 평소에는 따라오지 않는 케이지와 사이조, 나가요시, 타카토라를 데리고 기후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최종 체크를 마치고, 시즈코는 회담에 대비하여 일찍 취침했다. 다음 날, 2시간 전에 모든 준비를 마친 시즈코는, 프로이스의 방문을 기다렸다.


"프로이스 님이 오셨습니다"


"안내하라"


잠시 후 소성(小姓)에게 안내된 프로이스들이 알현실로 들어왔다. 루이스 프로이스, 로렌초 료사이(ロレンソ了斎), 동행한 수녀, 그리고 사람 좋아보이는 선교사 등 네 명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알현의 영광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항상 그렇듯 프로이스가 절하며 인사하고, 다른 세 사람이 프로이스에 이어 인사했다. 평소대로의 광경으로 보였으나, 시즈코에게는 프로이스의 표정이 약간 어색해보였다.


"얼굴을 드십시오. 하여, 오늘은 소생이 의뢰한 짐을 가져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짜고짜 실례인 것은 알지만, 우선은 말을 보여주십시오. 그 후에 느긋하게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약간 애매모호한 태도의 프로이스를 배려하여, 시즈코는 먼저 말에 대한 것을 처리하기로 했다. 잠시 망설인 프로이스였으나, 사람 좋아보이는 선교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는 시즈코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우, 우와아……"


말이 매여져 있는 마굿간(厩)으로 안내된 시즈코들 중에서, 먼저 타카토라가 거마인 데스트리어를 보고 기겁했다. 나가요시나 사이조도, 본 적이 없는 대형종(重種)이 가지는 대형동물 특유의 위압감에 표정이 굳었다. 유일하게 케이지만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호오, 멋진 말이군요"


실물을 그림 등에서 보아 알고 있는 시즈코는, 실물의 거대함이나 열을 뿜는 듯한 위압감에 놀라면서도, 강한 힘이 느껴지는 데스트리에게 호감을 느꼈다.

데스트리어는 성질이 온순하고 순종적이라, 처음 보는 시즈코가 쓰다듬어도 딱히 저항흔 하지 않았고, 오히려 냄새를 맡는다거나 콧등을 손이나 팔 등에 대어보거나 했다.

설령 시즈코가 얼굴을 감추고 있어도 말은 인간의 마음을 간단히 꿰뚫어본다. 무서워하면 말도 경계하고, 반대로 친근하게 대하면 말도 그에 화답해준다.

합계 5마리의 데스트리어를 관찰하고, 시즈코는 그들이 약간 피로해하는 것을 알았다.


"긴 여행으로 말도 피곤한 듯 하니, 마굿간(厩舎, 馬小屋, ※역주: 사전으로는 그냥 '마굿간'이라고 나오는데, 규모나 구조에 따라서 명칭의 구별이 있는 듯 한데 정확히는 모르겠음)에 넣고 물과 사료를 듬뿍 주세요. 톱밥은 새것으로 깔아놓았었지요. 그리고 고양이는 풀어놓았나요"


시즈코는 마굿간을 관리하는 말구종(馬丁)에게 질문했다. 마굿간(厩舎)이란 말하자면 말을 위한 집이다. 남향의 넓고 밝고 청결한 방은 최저 조건이라고 해도 좋다.

말은 청결한 동물이기에, 자신의 방이 더러울 경우 스트레스를 받는다. 톱밥은 목재를 재단할 때 생기는 미세한 나무 가루들이다. 제재(製材)를 하면 일상적으로 대량 발생한다.

톱밥은 짚(敷き藁)을 까는 것 만큼은 아니지만 보온 효과가 있으며, 소취(消臭) 효과도 있다. 분뇨 냄새를 억제할 수 있기에 말과 관리하는 사람 양쪽의 정신 위생상 좋은 소재이다.

프리패브(prefab) 공법에서 사용하는 일정한 규격의 목재를 매일 제조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톱밥을 입수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톱밥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에, 그녀는 만약을 대비하여 짚도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마굿간에 고양이를 풀어놓는 이유는 쥐 대책, 그리고 말과 고양이는 의외로 사이가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옛! 모두 문제 없습니다"


"좋아요. 다섯 마리의 피로가 풀리면 오와리로 운반합니다. 그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도록 하세요"


말도 피곤할 때 지나치게 신경쓰면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줄 뿐이다. 시즈코는 약간 담백하다고도 할 수 있는 태도로 말과 헤어진 후, 사이조들을 거느리고 프로이스들과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

알현실로 돌아가자 시즈코는 소성에게 차를 준비하게 했다. 두건을 쓰고 있기 때문에 약간 마시기 불편했으나, 어찌어찌 목을 축인 시즈코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소생의 용무는 끝났습니다. 다음은 그쪽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지요"


애초에 시즈코는 프로이스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대강 예상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에게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는 제가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실례, 제 이름은 오르간티노라고 합니다. 이후 잘 부탁드립니다"


"귀하가 고명한 그네키 솔디 오르간티노 님이시군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밝히지도 않은 풀 네임을 듣게 된 것에 오르간티노는 약간 반응을 보였으나, 금방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핫, 재상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이름을 물으려고 생각한 오르간티노였으나, 이 자리에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일본인의 권력자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기피한다.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언령(言霊)을 믿고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즈코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노부나가로부터 정체를 밝혀도 좋다는 명령이 없기 때문일 뿐, 오르간티노의 생각과는 약간 엇나가 있긴 하지만.


"하여, 어떤 용건이십니까?"


"이거 참, 재상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던가요. 오다 님에 대해 알고, 저희들과 친구가 된다고. 그에 따라 저도 저희들에 대해 알아주셨으면 하여, 당신과 친구가 되기 위해 왔습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니오, 저도 말이 지나쳤습니다. 이해해 주셨으니, 시작할까요. 우리들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 대화는 계속되었으나, 오르간티노는 생긋 웃는 표정을 시종 허물지 않았다.




시즈코와 오르간티노의 회담은 몇 시간에 걸쳤다. 오르간티노의 이야기는 폭넓어서, 일본에 살면서 놀란 일이나 감동한 일을,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가끔 프로이스가 유럽과 일본 문화의 차이점을 화제에 올리거나, 시즈코가 일본은 물론, 서양이나 동남아시아 각국, 인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여 오르간티노를 놀라게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오르간티노의 독무대였다.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고, 3시의 간식을 함께 먹었으나 화제는 전혀 바닥나지 않았다. 결국, 해가 질 무렵이 되어 드디어 회담 자리는 끝났으나, 둘 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오랫동안 함께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아뇨, 소생도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또 대화를 즐기도록 하지요"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오르간티노는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후, 프로이스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오랜만에 역사에 대해 대화할 수 있었던 시즈코는 감개가 무량했다. 충실한 느낌과 만족감이 있었으며, 지금이라면 대부분의 일은 용납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아아, 역시 당시 사람들은 잘 알고 있네. 내가 모르던 세세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어서 최고야)


사이조나 케이지가 봐도 시즈코가 대단히 기분이 좋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두 사람은 시즈코와 오르간티노가 한 이야기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는 할 수 없었으나, 남만인에게도 시즈코 수준의 지식을 자랑하는 인물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에 약간 불안과 놀라움을 느낀 두 사람이었다.


"허허, 이거 참 놀랍군요. 저렇게 우리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한편, 오르간티노도 시즈코의 박식함에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즈코로부터는 서양인데 대한 두려움이나 편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또, 권력자에게 흔한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쪽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에 응하여 경계심을 늦추고 우호적인 태도로 대응해왔다.


"오르간티노 님도 놀랍습니다만, 그것에 따라갈 수 있는 두건재상님에게도 새삼 놀랐습니다"


"아니오, 프로이스 군.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어선 안 됩니다. 이쪽이 성의를 보이면, 그들은 그에 응해 줍니다. 이 나라에서는 정직한 것이 미덕이니까요"


프로이스가 약간 경계심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에 대해, 오르간티노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이며 그의 생각을 부정했다.

일본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오르간티노다운 생각이었다. 그는 저서에서도 유럽인은 현명하다고 하나 일본인에 비하면 야만스럽다, 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선교사들 중에서 누구보다 일본인을 좋아하고, 가장 일본인을 잘 이해한 인물이다.


"이 나라에서는 성의야말로 최고의 전략, 정직함이야말로 최고의 전술입니다. 특히 권력자는 우리들의 경계심에 민감합니다. 어설프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도, 항상 성실한 태도로 있을 것을 명심해 주세요"


"예, 옛"


유럽에서는 유명인이 된 프로이스도, 일본에서의 포교에 관해서는 오르간티노에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와 오랫동안 이야기했습니다만, 두건재상님을 신도로 만들자, 라는 생각에 저는 반대합니다. 그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 특정 종교를 편드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공평하게 하기 위해, 그는 어떤 종교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자, 그건 그의 정치에 대한 생각입니다"


표정이 흐려진 프로이스의 걱정을 오르간티노는 일소에 부쳤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는 사람좋은 웃음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들을 도와준 와다(和田) 님의 예도 있습니다. 두건재상님은 신도는 아니지만, 우리들과 적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교도라고 거절하기보다, 우호의 손길을 내미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카프랄 님은 웃었습니다만"


말의 내용과 달리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은 없이, 오르간티노는 태연한 태도였다. 이 부분은 고지식한 프로이스와, 사소한 것을 신경쓰지 않는 오르간티노의 성격의 차이가 드러났다.


"하지만, 카프랄 님과는 만나게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라는 프로이스 군의 의견에는 찬성입니다. 카프랄 님으로는 재상님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그의 긍지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것 같고, 어설프게 재상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문제니까요"


"예. 와다 님이 전사하신 지금, 우리들은 오다 님, 그리고 두건재상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급무입니다. 실례라고는 생각합니다만, 타카야마(高山)님으로는 역부족입니다"


"타카야마 부자는 포교를 너무 서두르고 있습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라는 말이 머리 속에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는 머지 않아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 사면초가에 빠지겠죠. 프로이스 군, 그들에게는 자중하도록 당부해 두십시오"


자중, 이라는 부분에서만 오르간티노는 약간 어조를 강하게 하여 프로이스에게 명령했다.


"예"


프로이스의 대답에 만족하고는, 오르간티노는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역시 쿄에서 유행병을 억제한 인물과 두건재상님은 동일인물이군요. 감추고는 있지만 성별의 차이까지는 완전히 감추지 못했지요. 하지만, 어째서 정체를 감추는 것일까요. '그녀'가 우리들에게 정체를 밝히는 것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거기까지 생각하고 오르간티노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멈추었다.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죠. 감추고 있다는 것은 뭔가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는 것이겠죠. 우리들은 와다 님이라는 좋은 지원자를 잃었습니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했다가 강대한 지원자인 오다 님까지 잃을 수는 없지요. 두건재상님이 여자라는 것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정하신 일이니까요)


오르간티노는 시즈코의 건에 대해서도 주님이 정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회견으로부터 5일 후, 말의 피로가 풀렸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다섯 마리의 데스트리어를 오와리로 운반했다.

하지만 대형종이 다섯 마리나 나란히 있으면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뿜는다. 체고(体高, 어깨까지의 높이)가 평균 160cm로 당시의 일본인 평균을 상회하기에 머리 위치는 올려다보는 높이가 된다.

거구이기에 보폭이 넓고 자세가 낮은 걸음걸이가 특징인 데스트리어는, 평범하게 걷기만 해도 다른 것을 추월해버린다. 따라서 견인 방법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경험을 쌓는다는 구실로 한 마리에만 마구(馬具)를 장착시켰으나, 나름 키가 큰 편인 시즈코도 타는데 고생했다.

시야의 높음에 약간 식은땀이 흘렀으나, 간신히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오와리까지 도착했다.


"꽤, 꽤나 피곤하네. 난 마차 타입이야, 응"


케이지에게 '마음에 드는 것 한 마리를 골라요'라고 말한 후, 시즈코는 허리를 문지르며 문을 통과했다. 비트만들의 거친 환영을 받고, 이어서 셰퍼드 패밀리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이름을 정하지 않았네. 좋아…… 너는 사쿠라(サクラ, ※역주: 벚꽃), 너는 츠바키(ツバキ, ※역주: 동백나무), 너는 키쿄(キキョウ, ※역주: 도라지). 오늘부터 그렇게 부를테니까 잘 기억해 둬"


셰퍼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시즈코는, 셰퍼드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걸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멍해 있던 셰퍼드들이었으나, 그게 자신들을 부르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작게 짖었다.

상황을 보니 마음에 들었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약간 힘주어서 셰퍼드, 사쿠라나 츠바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새끼들 이름까지는 무리네. 번호로 부른다는 것도 멋대가리 없고"


생후 1년 미만이지만, 울프독들은 쑥쑥 성장하고 있었다.

울프독은 정한(精悍)한 얼굴, 날카로운 후각, 셰퍼드와 마찬가지로 쫑긋 선 귀, 반사신경과 운동신경이 우수하고, 북슬북슬한 처진 꼬리가 특징이다.

주인에 대해 충실하고 애정이 깊으며, 스트레스를 받은 환경에서도 인내심이 강하지만, 늑대 특유의 신중함과 주의깊음, 경계심도 가지고 있었다.


개의 유순함과 늑대의 주의깊음을 겸비한 울프독은, 체고가 평균 30cm, 체중은 10kg 전후에서 20kg로, 생후 수 개월이면서 이미 중형견 정도의 체구가 되어 있었다.

개는 반년에서 2년 정도면 성견이 된다. 이대로 순조롭게 자라면 체고는 65cm에서 75cm, 체중은 35kg에서 45kg까지 성장할 거라는 계산이다.

결점을 들자면 적으로 간주한 상대에게는 짖기 전에 공격을 시작하는, 공격성이 높은 일면을 가지고 있는 점, 단독보다 2, 3마리 쪽이 잠재능력을 내기 쉽다는 점이다.


"그래그래, 착하지"


체구가 중형견 클래스라도, 울프독들은 아직 어렸다. 뭐든지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전력으로 어리광을 부리는 것은 부모의 피 떄문인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데스트리어를 오와리로 운반한 지 며칠 후.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마리를 선택한 케이지였으나, 정작 그 말에게 타는 것을 거부당하고 있었다. 지금도 타려다가 실패하고 힘껏 내떨쳐져서 강에 처박혔다.

그래도 서서히 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기에, 슬슬 탈 수 있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기운이 넘치네"


"벌써 4일째입니다. 매일 긁힌 상처 투성이로 돌아오는데 전혀 포기할 기색이 없습니다"


이마 앞에 손을 대고 구경하는 시즈코의 의문에 사이조가 대답했다. 그만큼 말에게 거절당하고 포기하기는 커녕, 길들여보이겠다고 정열을 불태우는 케이지에게 사이조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정열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에 약간 부럽다고도 느꼈다.


"아직 멀었다!"


올라탔다가 말에게 거부당해 낙마했다. 그걸 반복하길 열흘째, 겨우 케이지와 말 사이에 변화가 찾아왔다.


데스트리어가 케이지를 보더니 그의 어깨를 가볍게 물었다. 몇 번 살짝 물더니, 말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타라, 고 말하는 듯한 모습을 보고, 케이지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착된 마구를 쓰다듬은 후 말에 올라탔다. 지금까지처럼 말이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고, 소리높여 울음소리를 냈다.

며칠에 걸친 말과의 격투 끝에, 케이지는 데스트리어에게 자신의 등에 태우기에 어울리는 인물이라고 인정받았던 것이다.


"달려라아!"


케이지의 말과 함께 말은 달렸다. 순발력은 좋다고 하기 어려웠으나, 흐르는 듯이 깨끗한 폼이었다.

과연 100kg를 넘는 중장보병(重装歩兵)을 태우고 달리는 군마(軍馬)였다. 2미터 가까운 케이지를 태우고도 지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키소 말(木曽馬)이라면 어림도 없고, 금방 스태미너가 떨어질 게 뻔하다.


"이 하늘까지 달려올라갈 듯한 속도! 오늘부터 너는 마츠카제(松風)다!"


연일에 걸쳐 격렬한 격투를 벌였기에 여기저기 긁힌 상처 투성이인 모습이었던 케이지였으나, 그 표정은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10월에 들어서자마자 이에야스(家康)로부터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지형조사 허가가 떨어졌다. 물론, 시즈코들 뿐만이 아니라 타다카츠 부대(忠勝隊)의 감시하에서 지형조사가 이루어진다.

사전에 준비해 두었던 덕분에, 시즈코들은 당황하는 일 없이 짐수레에 조사 기재를 싣고 미카타가하라 대지로 향했다.


"오오, 역시 넓네"


남북 약 15km, 동서 약 10kg에 표고는 낮은 지점은 25m였으나, 가장 높은 지점은 110m나 되었다.

텐류가와(天竜川)의 선상지(扇状地)가 융기되어 형성된 것이기에, 얼핏봐서는 완전히 평평한 장소는 적고 언덕이 많은 분위기였다.


'우선은 대지(台地)의 형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 다음으로는 표고 측정이 필요하겠네"


타케다(武田) 군은 3만이나 되는 대군으로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진을 쳤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 오다-도쿠가와(徳川) 연합군이 포진했던 점을 생각하면, 자연히 싸움터가 될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된다.

역사적 사실에서 싸움터가 된 장소와 주위의 지형을 정확히 파악하면, 타케타 전투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쉬워진다.


"좋―아, 이 지점에 천막을 설영하자"


지형의 상황 파악도 겸하여 걷다 보니, 시즈코들은 상당한 인원이 진을 치기에 최적의 지점을 발견했다.

대나무로 만든 지주(支柱)를 동물 가죽으로 감고, 땅바닥에 멍석(筵)을 깔아 천막을 설영했다. 겨울에도 어느 정도 추위나 모래먼지 등을 막을 수 있는 천막은, 지형조사에 딱 맞는 장비였다.

다들 익숙해져 있었기에 짐을 짐수레에서 내리고 각자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천막의 설치가 끝나니 식사 시간대였다.

식사라고 해도 주먹밥과 된장국(味噌汁), 그밖에는 절임 등의 반찬 뿐이었다. 하지만 된장국은 시즈코가 타케나카 한베에와 함께 생각해낸 즉석 된장국이다.


전국시대의 즉석 된장국이라고 하면 이모쿠키나와(芋茎縄), 또는 토요토미(豊臣) 가문 5대 부쿄(五奉行)의 일각을 담당했던 마시타 나가모리(増田長盛)가 고안한 즉석 된장국이 유명하다.

하지만 시즈코와 타케나카 한베에가 함께 고안한 즉석 된장국은 고형(固形) 큐브 형태를 하고 있다. 된장에 다시마(昆布)나 카츠오부시(かつお節)를 넣어 맛국물 된장으로 만든 후, 건조야채를 넣어 큐브 형태로 만들면 끝이다.

그 후에는 필요할 때 끓는 물에 타서 먹으면 된다. 기본적으로 이모쿠키나와와 다르지 않지만, 이모쿠키나와는 된장국이라기보다 맑은 장국(すまし汁)에 가깝다.

장기 보존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모쿠키나와에 비하면 맛은 훨씬 좋다. 몸이 따뜻해지는 된장국 쪽이 좋지만, 물을 끓일 수 없는 경우에는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반합(飯盒)도 있으면 좋겠지만 현대의 알루미늄제와 달리 전부 철제이기에 무거워서 개인 휴대에 적합하지 않다.


"따뜻한 된장국은 그 자체로 정의네"


머그컵에 넣은 된장 큐브를 시즈코는 대나무로 만든 일회용 젓가락으로 녹여서 마셨다. 이어서 주먹밥(お握り)을 베어물었다. 조금 차가웠으나 소금맛이 배어들어 맛있었다.

내용물(具)은 매실장아찌(梅干し), 국물을 내고 남은(ダシガラ) 다시마로 만든 츠쿠다니(佃煮), 마찬가지로 국물을 내고 남은 카츠오부시로 만든 가다랑어포(おかか)였다. 맛국물을 낸 후의 다시마나 카츠오부시라고는 해도, 수고를 좀 들이면 충분히 주먹밥의 내용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아까부터 씨름(角力)을 하고 있다는 건…… 또 주먹밥의 내용물로 다투고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내버려둬도 문제없습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타다카츠 부대 사람들이 씨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젠 익숙한 광경이라고 말하듯 시즈코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물음에 한조(半蔵)는 적당히 대답했다.


시즈코에게 그럴 생각은 없었으나, 그녀나 케이지들의 생활 스타일은 천천히 타다카츠 부대를 침식해들어가고 있었다.

물들기 쉬운 사람은 며칠 만에 물들고, 완고한 사람도 겨우 몇 주일 만에 함락되어 버렸다. 그런 그들이 가장 많이 다투는 원인, 그것이 주먹밥의 내용물 다툼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실장아찌 파벌, 츠쿠다니 파벌, 가다랑어포 파벌 등 3개 세력이 다투고 있었으나, 그 중에는 주먹밥 재료로는 좀 아닌 것 같다, 는 의문을 품게 하는 것까지 재료로 취급되었다.

그런 그들이 주먹밥의 내용물로 다툴 때, 결판내는 방법이 씨름이었다. 그렇기에 미카와(三河) 무사들끼리 씨름이 벌어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주먹밥의 내용물로 다투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현재는 매실장아찌 파벌인 헤이하치로(平八郎)가 최대 파벌이군요"


"아니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거, 말리지 않아도 되나요?"


"바보(阿呆)에게 듣는 약은 없습니다"


영 성의없는 태도였으나, 한 번 말리려고 했다가 타다카츠에게 던져진 경험상, 한조는 저 상황의 그들에게 얽히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학습한 것이리라.

뒤에서 씨름으로 불꽃이 튀어도 냉정한 태도로 주먹밥을 입 속 가득 우물거리고 있었다.

도중에 아시미츠가 씨름에 참가하여 타다카츠와 대접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이야말로 네놈을 쓰러뜨리겠다!"


"웃기지 마라, 꼬맹아! 내게 이기려면 1000년은 이르다!"


식후의 차를 마시고 있자니 씨름이 벌어지는 쪽에서 노성이 들려왔으나, 시즈코는 전부 흘려들었다.




도착한 날은 이런저런 일이 있어 기분이 느슨해졌던 사람들이었으나, 다음날부터 전원 기분을 다잡고 조사에 착수했다.

시즈코가 조사에 계속 달라붙어있을 필요는 없지만, 킥스타트 만큼은 반드시 참가해야 햇다.

킥스타트가 끝나면, 기본적으로는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보고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릴 뿐이다.

스털링 엔진이나 측거의(測距儀) 등도 마찬가지로, 최근의 시즈코는 프로젝트의 예산을 획득하는 것과 계획을 입안하기만 하는 입장이다.

가끔 개발에 관여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만, 신분이 높아진 것 때문에 주위에 사람들이 따라오는 상태로는 주위의 방해가 될 뿐이었다.

계획을 통과시키기 쉬운 이점을 얻은 대신, 시즈코는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잃었다. 이미 그녀는 자기 자신의 뜻만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입장인 것이다.


계획서대로 인원을 배치하고 조사를 개시하게 한 후, 타카토라와 그 전용의 참모를 몇명 배치한지 1주일 후, 시즈코에게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때를 같이하여 타다카츠에게도 이에야스로부터의 서신이 도착했다. 양쪽이 글 내용을 미리 맞춘 건 아니지만, 취해야 할 행동은 같았다.

시즈코는 전투병의 절반을 이끌고 오와리로 귀환했고, 타다카츠들은 한조의 수하들만을 남기고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향했다.


"곤란하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역시 반응해버린 건가"


오와리로 향하던 도중, 시즈코는 곁에 있던 사이조에게 투덜댔다.

서신에는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에 타케다가 반응했다'라는 내용이었다. 오다 군만이 이동하면 침략행위로 보이겠지만, 이에야스의 가신들과 함께 행동하면 쓸데없는 자극은 주지 않을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예상은 어설펐다. 타케다는 평소의 절반 정도의 군에 대부분이 후방지원병인 시즈코 군에도 반응하여 도쿠카와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오다-도쿠가와 양쪽은 지금 타케다와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따라서 양쪽 다 병사들을 물리라는 명을 내렸다.


(뭐,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는 순조롭네. 이거라면 1년이 아니라 반년만 있으면 대부분의 데이터는 모이려나)


당초에는 1년 걸릴거라 생각했으나, 예상보다 쿠로쿠와슈의 솜씨가 좋았다. 지형조사는 현지에서의 계측과 끊임없는 계산인데, 다들 당황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지형조사가 개시되면 시즈코가 할 일은 이미 없다.

현대에서도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아래에서 올라온 서류를 확인하거나, 보고서를 읽거나, 문제에 대해 인원을 할당하기만 하게 된다.

시즈코는 오와리에 도착하자 군을 해산시켰다. 그 후, 주인장에 기재된 나머지 절반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사는 집 근처에 마을(街)을 만들테니 번영시켜라, 라는 건 너무 대책없는 거 아닌가요)


노부나가는 미노(美濃)의 기후(岐阜)에서 오와리의 항구도시까지를 잇는 선 위에 몇 개의 마을을 건설했다. 자연스럽게 생긴 마을과 달리, 일반적인 상인들의 이동거리를 계산하여 하루만에 도착할 수 있는 지점에 마을을 건설하고 있었다.

마을 안에는 숙박시설이나 음식점 거리 등, 상인들이 돈을 쓰기 쉬운 환경으로 만들었다. 지역마다 다양한 장사를 시켜서, 오와리-미노 전체에 사람과 물건이 넘쳐나게 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물론, 상인에게 장사를 시켜서 세금의 징수액을 높이는 것도 계산에 넣고 있었다. 이러한 성질의 마을이 시즈코의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새롭게 건설되게 되었다.

그 마을을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번영시키는 수단은 묻지 않겠으니 스스로 떠오르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도 좋다, 라는 조건이 붙었던 것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보다 현지에서 읽지 못한 쿠로쿠와슈의 보고서를 읽자"


하지만, 마을이 생긴다고 해도 바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한동안 시간이 걸린다.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경과보고에 따르면, 두 번 정도 밤에 강도(夜盗)의 습격을 받았으니 거의 손해없이 물리쳤다고 한다. 또, 조사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어, 1개월만 지나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낼 수 있다, 고 적혀 있었다.


"오호― 역시 우수하네, 쿠로쿠와슈. 다들 빼가려고 난리인 것도 납득이 가"


보고서를 읽은 후에 할 일은 없다. 사무 방면의 인원도 조금씩 모으고 있었기에, 지금에 와서는 시즈코는 서류를 읽어보고 승인할 뿐이다.

아무래도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인물은 채용할 수 없었으나, 그래도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숨겨진 우수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일거리를 다른 사람에게 할당하고 있는 덕분에, 최근의 시즈코는 자유로운 시간을 내기가 쉬워졌다. 그 대신 24시간 관계없이 이야기거리를 가져오는 노부나가의 상대를 할 필요가 있지만.


"주인장 건은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비트만이나 윳키를 충분히 예뻐해줘야지"


방에서 데굴거리고있는 비트만 등 동물들을 시즈코는 남김없이 쓰다듬으며 스킨십을 했다.

일 각 정도 쓰다듬고 있었는데, 문득 시즈코의 귀에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입구의 맹장지를 쳐다보고 있자니, 기세좋게 맹장지가 열어젖혀졌다.


"시즈코오! 어째서 나를 부르지 않은 거냐아!"


맹장지를 기세좋게 열어젖힌 것은 키묘마루였다. 그가 피눈물을 흘릴 듯한 기세로 고함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은) 상대가 타다카츠라면 일격에 녹아웃시켰겠지만, 흥분하고 있는 키묘마루에게는 효과가 제로였다. 시즈코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키묘마루는 몸통박치기를 할 듯한 기세로 시즈코에게 달려들었다.


"또 맛있는 걸 먹―――― 아야야야얏! 야, 그만둬! 아야야야야얏!"


갑작스런 일이었기에 시즈코의 방어본능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여, 달려드는 키묘마루를 붙잡고 그라운드 기술(寝技)을 걸었다.


"――――헛!"


키묘마루의 관절에서 위험한 소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 간신히 현재 상황을 파악한 시즈코가 다급하게 기술을 풀었다. 아픈 부분을 문지르며 키묘마루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부주의하게 접근한 것은 자신인 것이 켕겼는지,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아픔이 가실 무렵, 키묘마루는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로했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자세를 바로했다.


"아―, 미안해. 언니의 교육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게 되어버려서"


"뭐, 뭐어 됐다. 그보다, 얼마 전에 맛있는 것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나도 먹고싶으니 만들어라"


"응? 아, 그거. 무리"


"야야야야!! 어째서 무리인 거냐아―!"


시즈코의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드는 키묘마루였으나, 고함쳐봤자 그가 닭고기의 소금가마구이를 먹을 수는 없다.

시즈코에 대한 행패가 보아넘길 범주를 넘었다고 판단한 비트만들이 당장이라도 키묘마루를 덮치려고 자세를 낮추고 있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키묘마루의 손을 잡더니 이번에는 관절기를 걸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줄래? 닭을 통째로 한마리 쓰기 때문에, 그건 바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크어어어어억!! 아파, 아프다고! 알았다, 알았으니까 놔라!"


한숨을 한 번 쉰 후, 시즈코는 관절기를 풀었다. 둘 다 난리를 쳤을 때 흐트러진 의복을 바로 한 후, 키묘마루는 오늘 두 번째로 헛기침을 했다.


"하여간, 벌레도 못 죽일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 의외로 사정이 없구나 너는"


"이 애들이 물 것 같아서 긴급수단을 취한 것 뿐이야. 뭣보다 관절은 빼지 않았으니까 문제없어"


"……역시 너는 무서워. 이야기가 샜군. 그래서, 그 소금가마구이인가 하는 건, 언제라면 먹을 수 있는거냐. 나는 빨리 먹고싶다"


꺾였던 관절 부분을 풀면서 키묘마루가 닭고기의 소금가마구이를 재촉했다. 그의 귀에 들어갓다는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노부나가도 같은 목적으로 찾아올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러니 그 뿐만이 아니라 노부나가의 몫도 준비해야 한다. 키묘마루와 달리, 노부나가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것은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며칠 안에 준비할거야. 닭을 한 마리 통째로 해체하는 거라서 엄선해야 하거든"


"흐―음, 손이 많이 가는 것이군. 어? 야, 시즈코. 저 나무상자는 무엇이냐? 꽤나 엄중하게 봉인되어 있는데"


방 한 구석에 떡하니 놓여진 나무상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키묘마루가 물었다.

나무상자만이라면 딱히 이상한 구석은 없지만, 그 나무상자는 튼튼한 밧줄로 단단히 묶여서, 일부가 튼튼한 기둥에 묶여 있었다.


"아, 저거. 으―음, 말해도…… 되려나. 뭐, 괜찮으려나"


팔짱을 끼고 고민한 후, 시즈코는 평소의 표정으로 폭탄발언을 했다.


"저 안에는 신형 화승총(火縄銃)이 들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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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1 1571년 9월 중순



노부나가에 의해 사카모토(坂本)가 잿더미로 변하고 있을 무렵, 시즈코는 칙명을 받고 히데요시(秀吉)와 함께 오다니 성(小谷城)을 공격하여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를 못박아두고 있었다. 물론 시즈코 군, 히데요시 군으로 구성된 연합군(寄り合い所帯)이었으나, 지휘계통은 각각 독립되어 있었다.

양 군은 수비측의 요충지인 정면 출입구(大手口)를 공격하고 있었다.

정면 출입구는 성의 방어의 핵심인 동시에 급소이기도 하다. 여기를 뚫리면 적군이 대거 공격해들어오기에 방어 측에서도 많은 인원을 할당하여 정예를 배치해두고 있었다.

시기적으로는 노부나가의 사카모토 공격 전부터 포위공격을 하고 있었으나, 공성은 방어측이 유리하여 일진일퇴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열세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열세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시즈코 군은 정예부대를 물러나게 하고, 신병이나 숙련도가 낮은 부대만을 이용하여 규칙적인 전투를 반복하고 있었다.

매일 정해진 시각에 전투를 시작하여, 무리하게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느긋하게 압력을 가하는 데 치중하고,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철수했다.

적 측에서 본다면 쓸데없이 소모할 뿐 전과를 올릴 수 없는 어리석은 책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상대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기 위한 함정이다. 즉, 오다 군은 낮에만 공격해오고, 밤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방어를 담당하는 자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7일이나 같은 짓을 계속하면 야간 순찰도 소홀해지기 일쑤이다. 그 방심이야말로 시즈코가 절실히 원하는 것이었다.


"그럼 여러분, 오늘은 12일입니다. 영주님의 사카모토 공격은 끝났을 무렵이겠죠. 그렇다면, 우리들도 슬슬 공격으로 전환해도 될 때입니다. 실컷 무공을 세우죠"


모인 사람들을 향해 시즈코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여전히 패기(気負い)를 느낄 수 없는 태도의 시즈코였으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조(才蔵)는 그녀가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자세히 설명하기보다 보는 게 빠르겠죠"


그 말만 하고 이야기를 끝낸 시즈코는, 겐로(玄朗)에게 부탁하여 지정된 병사들을 모았다. 또, 사이조에게 츠키가세 성(月ヶ瀬城)으로부터 어떤 것을 회수하도록 명했다.


"오늘, 조금 위험한 것을 사용합니다. 광범위하게 영향이 미치므로, 평소보다 부대를 뒤로 물려서 대기해 주십시오"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병사들이었지만, 뒤로 물러서라는 명령에 불만은 없었다.

각 소대에 연락이 전해지자 시즈코는 활을 손에 들고 일어섰다.

평소처럼 정면 출입구 앞에 도착하자, 먼저 와 있던 히데요시가 시즈코의 모습을 보자마자 히데나가(秀長)와 한베에(半兵衛)를 데리고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슬슬 뭘 할 건지 가르쳐 줬으면 좋겠군. 한베에는 알고 있는 듯 한데, 내게도 말해주질 않는다"


"후훗, 소생도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만 시즈코 님과의 약속이라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 계책을 선보인다고 하시니,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지요"


이번의 작전은 한베에에게만 사전에 설명해두었다. 하지만 한베에도 개요만 들었고 자세한 내용까지는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정보 유출을 경계해서 그러는 건가 하고 그들은 생각했으나, 시즈코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정면 출입구를 공격하고 있는 이상, 아자이(浅井) 측으로부터의 간자가 자군에 섞여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그들에게 '뭔가를 한다'라고 알려주기 위해, 시즈코는 핵심 부분만을 은폐하며 일부러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하핫, 말로 설명하는 건 간단합니다만…… 그보다 보는 쪽이 빠를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 어째서냐. 아무래도 개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단계까지 와서 간자를 경계할 필요도 없잖나?"


"형님, 아무래도 시즈코 님은 자신이 있으신 듯 합니다. 여긴 일단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이라면…… 그렇군요, 청주(清酒) 한 잔이라도 받도록 하죠"


여전히 알고 싶은 듯한 태도의 히데요시 때문에 시즈코가 곤란해하고 있자, 히데나가가 싱긋 웃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아무래도 동생인 히데나가가 그렇게 말하자, 히데요시는 순순히 물러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실행할 때는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신딘당부한 후, 히데요시는 두 사람을 데리고 자신의 진으로 돌아갔다. 떠나갈 때 히데나가가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시선을 보내오는 것을 보니, 실행 직전에 히데요시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겠다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과연 히데나가네. 정말로 히데요시를 다루는 게 능숙해. 어떤 의미에서는, 히데요시를 조종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


히데요시가 망설이면 슬쩍 등을 밀고, 히데요시가 화를 내면 잘 달래서 화를 풀게 하고, 히데요시가 바라는 것을 가장 먼저 손에 넣어온다.

어떤 의미에서는 히데요시를 컨트롤하고 있다고 해도 좋은 히데나가였으나, 그는 항상 생긋 웃는 표정을 지을 뿐 결코 스스로의 무공을 자랑하는 적은 없었다.


(뭐 준비는 완료되어 있지만, 어젯밤의 일은 알고 있다고 봐도 좋겠네)


눈치가 빠른 히데나가다. 시즈코가 지금까지 해온 일을 볼 때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대략 파악하고 있으리라. 아마도 타케나카 한베에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대략 그 흐름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다, 라고 시즈코는 생각하면서 소정의 장소로 이동했다.


"반 각(刻)(약 1시간) 후에 개시합니다"


말 그대로 시즈코는 1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1시간 후, 정오가 되기 전에 드디어 시즈코가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는 먼저 히데요시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불렀다.


"드디어냐. 기다리다 지쳤다!"


기대에 가슴을 두근거리는 히데요시에 한베에와 히데나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린애처럼 들떠 있는 히데요시에 시즈코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지금부터 할 일은 지극히 간단합니다. 저 문을 파괴할 겁니다"


한 번 헛기침을 하여 분위기를 바꾼 후, 시즈코는 정면 출입구에 있는 정문(大手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정문을 파괴한다, 그게 가능하면 지금의 상황은 크게 바뀔 것이다. 시즈코가 뭘 할지 이해한 세 사람이었으나, 바로 의문이 떠올랐다.


"어떠한 방법으로 정문을 파괴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정문의 파괴 방법이었다. 정문의 파괴가 목적이라면, 지금까지 시즈코가 평범한 전투를 반복해 온 것과 모순된다.

방어하는 아시가루들을 섬멸할 기색도 없이 단지 소모를 반복해왔던 것과 뭔가 관계가 있는건가, 그것을 세 사람은 알 수 없었다.


"자자, 지금부터 보여드릴테니, 잠시 기다려 주세요"


곤혹스러워하는 세 사람을 가볍게 넘긴 후 시즈코는 딱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말에 타고, 쌍안경으로 정문을 확인했다. 찾는 것이 확실히 부착되어 있으며, 상대편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메가폰을 입에 대고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정문을 지키는 아자이 병사들에게 고합니다. 슬슬 진지하게 침공하겠습니다. 우선 정문을 부술테니, 죽고싶지 않은 사람은 정문에서 떨어져 주세요"


박력도 없고, 반대로 맥이 빠질 듯한 목소리가 정문에 울려퍼졌다. 순간 멍해졌던 아자이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자, 여기저기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예상의 범주였기에 시즈코는 메가폰을 내려놓더니 활을 조준했다.


(아무래도 여기서 빗나가면 창피하지. 잘― 조준해서)


"어이어이, 화살로 성문을 파괴하겠다는 거냐. 농담은 그 말투만으로 충분한데"


아자이 병사들이 야유를 했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정문에 설치된 어떤 것을 노렸다. 조준이 맞았다고 느낀 순간, 시즈코는 화살을 날렸다. 그것은 호를 그리며 깔끔하게 정문의 한 지점에 명중했다.


순간,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을 수반한 대폭발과 함께 정문이 뒤쪽으로 날아갔다.


직선상에 있던 아자이 병사들을 깔아뭉개면서 3미터 정도 날아간 후, 거대한 정문은 중량감있는 소리를 울리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낙하시의 충격으로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모래먼지가 걷히고 시야가 트였지만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자이 병사들도, 오다 병사들도, 그리고 시즈코의 뒤에 있던 히데요시나 한베에, 히데나가까지, 누구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시즈코는 활을 내리고는 다시 메가폰을 입에 대호, 아까와 변함없는 기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정문의 파괴가 끝났으니, 지금부터 침공을 개시합니다. 지금부터 열을 셀 동안만 항복을 받겠습니다. 전군으로 공격할 것이니 빨리 판단해 주세요. 그럼 하나―, 둘―, 셋―"


너무나 황당한 상황에 멍해있던 오다 병사들이었으나, 시즈코의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카운트에 겨우 자신들이 할 일을 떠올리고 전투준비를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시즈코가 무슨 짓을 한 결과로서 정문이 날아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넷―, 다섯―"


궁기병대(弓騎兵隊)도 혼란에서 깨어나 당황하며 활을 들었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여기저기서 오다 병사들이 돌격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여덟―, 아홉―"


"기, 기다려! 하, 항복이다. 그쪽에 투항할테니, 공격하지 말아줘!"


이제 시즈코가 팔을 내리면 침공이 시작되기 일보 직전에, 아자이 병사들 측에서 항복 의사를 표했다. 시즈코는 손을 올린 채, 망원경을 한 손에 들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얼래, 좀 너무 심하게 놀래켰나? 굉장히 겁먹어서, 약간 불쌍해지네)


멍하니 선 채로 굳어 있는 자, 벌벌 떨며 머리를 감싸쥔 자, 개중에는 실금(失禁)한 채 기절한 자도 있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일격에 성문을 날려버리는 무기가 있으며, 그것은 자신들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리라. 뿌리부터 뜯겨 날아간 원래 성 정문이었던 물체에 자신의 미래를 겹쳐보고 절망한 게 아닐까,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주의깊게 관찰했으나 아자이 병사들에게 저항의 의사가 없다고 판단하자, 시즈코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무기를 모두 뒤로 던진 후, 양손을 머리 뒤에서 깍지끼고 땅바닥에 엎드려 주세요. 한 명이라도 서 있거나, 무장 해제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저항의 의사가 있다, 고 간주합니다"


그 말대로 아자이 병사들은 소지하고 있던 모든 무기를 뒤로 던졌다. 기절해 있는 자는 부근에 있던 자들이 허리에 찬 칼이나 창을 빼앗아서 뒤로 힘껏 던졌다.

다급히 무장해제를 마친 자들부터 땅바닥에 엎드렸다. 눈에 보이는 범위 안에 서 있는 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시즈코는, 아직까지 곤혹스러운 모습의 병사들에게 호령했다.


"선행대(先行隊), 정문 상황을 확인!"




"예…… 옛!"


일순, 멍해 있던 바람에 반응이 살짝 늦은 겐로였으나, 즉시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 후 500명을 이끌고 정면 출입구를 돌파했다.

버려진 무기들을 회수하고 아자이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했으나, 저항의 의사는 느껴지지 않았다.


"한명씩 갑주를 벗긴다. 어깨를 친 사람부터 일어나라!"


무기가 오다 군의 진까지 운반된 것을 확인한 겐로는, 다음으로 아자이 병사들 전원의 갑주를 압수했다. 시간이 걸리기에,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아자이 병사들의 갑주를 벗겼다.

무장 해제가 끝나면 약간의 노자와 하루이틀치의 식량을 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아무래도 마지막 조치는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는지, 아자이 병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오다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우리 주군께서는 대단히 자비로우시다. 네놈들 같은 잡병들의 죽음에도 슬퍼하시지. 그렇기에 항복한 자는 무장을 해제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면 보내주도록 되어 있다"


곤혹스러워하는 아자이 병사들의 의문에 겐로가 대답했다. 그는 시즈코와는 달리 박력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주군의 자비도 한 번 뿐이다!

네놈들, 언제까지나 주군의 자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다음에 싸움터에서 만나면 용서없이 베어버릴 것이다. 자, 그만 가라!"


말을 끝내자 겐로는 아자이 병사들을 쫓아냈다. 차례차례 병사들이 무구를 벗어던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정문에 있던 아자이 병사들은 한 명도 남지 않고 돌아갔다. 정문 파괴에 말려든 시체도 깊은 구멍을 파고 생석회와 함께 매장한 후, 흙을 볼록하게 쌓아 간소한 묘를 만들었다.


"해체(解体)다!"


아자이 병사들을 정면 출입구에서 몰아낸 후, 겐로는 병사들을 배치하며 큰 소리로 명령했다. 그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 쿠로쿠와슈(黒鍬衆)가 함성을 지르며 건물로 돌격했다.

그들의 임무는 방어시설의 해체였다. 평소에 건물을 짓는 일이 많은 그들은, 거의 할 일이 없는 해체라는 작업에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판자를 뜯어내고, 때로는 파괴하거나 하면서 건물을 해체해 갔다. 해체된 자재는 순차적으로 운반되어, 중고 자재로서 오우미(近江) 상인연합(商人連合)에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오다 군은 오다니 성의 방어망을 파괴할 수 있었고, 쿠로쿠와슈는 해체 작업에 만족했으며, 오우미 상인연합은 자재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다들 행복한 상황이었다.

굳이 불행한 사람을 들자면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 그리고 자신이 쌓아올린 방어시설이 눈 앞에서 해체되어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 나가마사(長政)이리라.


"팍팍 해체하라!"


겐로가 쿠로쿠와슈를 재촉했다. 그에 대해, 쿠로쿠와슈는 손도끼를 휘두르며 파괴음으로 대답했다.


한편, 오다 군의 본진에 있는 시즈코는, 히데요시로부터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었다.


"폭약이라고? 그만한 양으로, 어떻게 정문을 파괴한 것이냐?"


"그게 말이죠. 자세한 계산은 생략하겠습니다만――"


호기심이 끊이지 않는 히데요시에게 시즈코는 넌더리가 났지만, 그가 끝나도 뒤에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하루는 날아가겠네, 라고 시즈코가 포기했을 때, 갑자기 히데나가가 입을 열었다.


"형님, 슬슬 저희들에게도 질문하게 해 주십시오. 아까부터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엇,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없습니다. 형님은 이후 질문 금지입니다"


드물게 강경한 말투가 된 히데나가에, 히데요시는 마지못한 태도로 물러났다.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모습에 히데나가는 쓴웃음을 짓더니, 타케나카 한베에 쪽을 보았다.


"아마도 같은 질문을 하시겠지. 그렇다면 한베에 님부터 하시오"


"이거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싸움, 시즈코 님은 무엇을 꾸미고 계신 겁니까?"


히데나가에게 인사를 한 후, 타케나카 한베에가 질문했다. 히데나가도 그가 말한 대로 같은 질문을 할 생각이었던 듯,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히데요시가 시즈코에게 질문하고 있는 동안, 타케나카 한베에는 지금까지 시즈코가 한 일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정문을 간단히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서, 그녀는 오늘까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평범한 전투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적을 정면 출입구에 몰아놓기 위한 평범한 전투인가 하고 타케나카 한베에는 생각했으나, 정문을 간단히 파괴한 지금, 다른 속셈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그는 결론지었다.


"딱히 대단한 속셈은 아닙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알쏭달쏭한 상태를 만들었다'일까요"


"알쏭달쏭한 상태?"


수줍게 웃는 시즈코의 말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앵무새처럼 되물었다.


"제 설명을 들으신 타케나카 님은, 제가 부린 '수작'을 알고 계시죠. 하지만 아자이 측은요? 또, 이 싸움을 보고 있던 간자들은?

그럼, 그들이 본 저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가 되지 않겠나요"


"음, 확실히……"


시즈코가 한 것은, 현대에서도 하는 문을 파괴하는 방법이다.

문의 연결부위를 따라 셈텍스(Semtex) 등의 플라스틱 폭약을 붙이고, 마지막으로 대각선으로 붙인 후 가운데 부분에 신관을 매설한다.

그 뒤에는 신관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폭시키면, 폭발의 충격으로 문이 뒤쪽으로 날아가던가, 문을 고정하는 금속구 부분만이 파괴되어 그 자리에 쓰러진다.

이번에 시즈코가 한 것도 그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셈텍스가 아니라 알프레드 노벨(Alfred Bernhard Nobel)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폭약인 젤리그나이트(Gelignite)를 사용했다.

규조(珪藻) 다이너마이트와는 달리, 젤리그나이트는 니트로글리세린이 배어나오지 않는 이점 떄문에 당시부터 편리한 폭약이었다.


(금광이나 은광용으로 다이너마이트의 개발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산물이 생겨버렸었지)


최근에는 안포(ANFO ※역주: Ammonium Nitrate Fuel Explosive) 폭약에 의해 대체되어 빛을 보지 못하는 폭약이지만, 광산 개발에 사용되는 폭약이라고 하면 다이너마이트가 유명했다.

니트로겔에 질산 암모늄, 감열소염제(減熱消炎剤, 식염(食塩) 등)을 섞으면 광산채굴용의 다이너마이트가 완성된다.

하지만, 니트로글리세린은 불안정한 물질로, 제작에 고도의 설비가 요구된다. 게다가 니트로 셀룰로오스를 니트로글리세린과 혼합할 때, 온도와 농도 관리에 실패하면 폭발사고가 일어난다.


현대에서도 가압하여 고온에서도 안정되도록 한 후에 혼합하지만, 전국시대에 가압실(加圧室)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시즈코는 가압실의 대용품으로서 저온실(低温室)을 만들고 거기서 혼합하는 방법을 채용했다.

혼합에 시간이 걸리는데다 소량밖에 혼합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다이너마이트의 위력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 가치가 있다.


"야간 전투는 없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후에 야음(夜暗)을 틈타 폭약을 설치했으니, 그 수작을 모르는 적은 성문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도 문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 불안이 자신을 좀먹는 중압이 되어, 이윽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부성(付城) 전술과 조합하면, 적은 더 이상 정상적인 상태로 있을 수 없게 되지요"


"하지만,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상대는 끈질깁니다만"


타케나카 한베에의 의문은 온당한 것이었다. 아무리 방어시설에 불안을 느껴도, 그것만으로는 사람은 간단히 망가지지 않는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버텨내는 사람이 나타나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확실히 한 명이나 두 명 정도는 버틸 수 있겠죠. 하지만, 버텨서 해결될 문제일까요?"


"……버텨봤자 무의미, 라는 겁니까"


"부성 전술로 주위를 포위당한 상태에서 원군은 기대할 수 없다. 성을 지키는 정문은 아주 간단히 순식간에 돌파당한다. 오다 군은 그 밖에도 숨겨진 수가 있지 않을까? 지금의 성과 병사들로 지켜낼 수 있을까?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무의미하게 깊이 생각해버리죠. 그리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 무너지면…… 이미 의사 결정은 어려워집니다"


오다 군이 부성을 이용하여 원군을 끊고, 견고해야 할 정문을 일격에 날려버렸다. 이것은 확실히 결과가 남아 있기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날려버렸는지를 알 수 없다.

결과가 보이는데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는, 상대에게 더없는 불안감을 주게 된다. 그 밖에도 뭔가 숨겨진 수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에 빠져 정신적인 소모를 강요받는다.


공포가 아닌 불안을 느끼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공포는 구체적인 대상을 수반하지만, 불안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불안은 제어하는 데 막대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오다 군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라는 불안은 막연하고, 그 불안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거기에 걱정을 더하면 부정적인 사고에서 더욱 강한 불안을 느끼게 되어버린다.


"(뭐어, 태반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가 짠 이론이지만) 마지막에는 항복해오겠지요. 큰 피해도 없이 상대의 병력을 고스란히 자군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멋대로 자폭하고, 멋대로 항복해 주니까요"


시즈코의 공성은 기본적으로 아시미츠가 고안한 것이다.

우선 부성으로 포위하여 원군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고, 성에 있는 자들을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켜 정보가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만든다. 다음으로 성 내부에 불안과 걱정의 씨앗을 심어 냉정함을 깎아낸다.

이미 주위는 포위당한 상태이다. 오다 측은 초조해 할 필요가 없고, 설령 적이 치고 나와도 부성까지 철수하여 견고한 성에 틀어박혀 맞아싸우면 된다. 이윽고 적은 공략을 단념하고 자신의 성으로 도망쳐 돌아간다.

빠져나갈 수 없고, 외부의 정보가 일체 들어오지 않게 되면 성 내부에서는 항복인지 철저 항전인지로 의견이 갈려, 가신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난다.


이렇게 적당히 불화가 만연했을 때, 누군가가 내부 정보를 흘린 것처럼 보이는 공작을 하여, 가신들이 서로 의심하는 상태에 빠지게 한다.

정보 누설의 용의자로 몰리게 된 인물은 정보를 누설하지 않았다, 는 악마의 증명을 강요받게 된다. 하지만, 누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변명하거나 혐오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론하거나 하면, 주위에서 수상한 태도로 보이게 된다.

가엾은 용의자는 목숨이 걸려 있으니 필사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런 것조차 깨닫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뒷말이나 험담의 응수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며, 마지막으로는 파벌이 생겨나 칼부림을 벌이는 사태로 발전한다.


마지막 마무리로서 시즈코 측에서 배신을 권장한다. 가장 먼저 투항한 자만 목숨을 구해주겠다, 고 외부에서 알려 배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설령 항복 권유에 응하지 않더라도, 적당한 사람을 한 명 유괴하면 된다. 그 후에는 멋대로 서로를 의심하여 있지도 않은 배신자를 찾으려 혈안이 된다.

아무리 견고한 성에 틀어박히더라도, 성을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이 꺾이면 쉽게 함락된다.


"이쪽은 소모하지 않고, 상대도 윗사람들만 멋대로 자멸해갑니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손쉽게 자원을 징수할 수 있죠…… 어, 왜 그러시나요?"


설명하고 있는 도중에, 히데요시 등 세 명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시즈코는 깨달았다. 뭔가 거슬리는 말을 한 건가, 하고 불안해진 시즈코였으나, 그걸 부정하듯 타케나카 한베에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문제없습니다. 약간 놀란 것 뿐입니다"


"그, 그러신가요. 그럼 설명은 이쯤 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시즈코의 제안에 히데요시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벙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악랄한 공성을 생각해내는 녀석이군"


자신의 진으로 돌아가던 도중, 문득 히데요시가 말했다. 타케나카 한베에와 히데나가도 같은 의견인지, 고개를 끄덕여 히데요시의 의견에 찬동했다.

세 사람 모두 상상력이 풍부했기에, 시즈코가 생각한 것을 실제로 당했을 경우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에 빠질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원군이 오지 않는다. 내부에 불화가 생기면 탈주병은 끊이지 않는다. 대체 누굴 믿어야 될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미 군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 겠군요"


하늘을 올려다보며 히데나가가 가볍게 말했다. 그걸로 어느 정도 기분이 누그러졌는지, 히데요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베에, 그렇게까지 지독할(苛烈) 필요는 없다. 적이 가여울 지경이다"


"그건 적을 공포에 빠뜨려서, 주위에 항복을 재촉하는 것도 계산에 넣고 있으니, 그렇게까지 지독한 계책은 아닙니다"


"끄렇군요. 공격받고 있는 성은 정보를 차단당해도, 외부의 성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방법으로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면…… 간단히 함락될지도 모르겠군요"


"으…… 으하하핫! 무, 물론 나도 깨닫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두 사람이 납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초조해졌는지, 히데요시가 식은땀을 흘리며 얼버무렸다. 뻔히 보이는 태도였지만 타케나카 한베에와 히데나가는 깊게 지적하지 않고 쓴웃음을 짓는 데 그쳤다.


(……과연,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히데요시와 히데나가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타케나카 한베에는 어떤 것을 이해했다.


(시즈코 님이 하고 있는 것은, 희생을 최소화하며 성을 함락시키는 것. 성을 고립무원으로 만들어,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하여, 항복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그걸 본 주위는, 다음은 자기 차례다, 라고 두려워하게 되지)


타케나카 한베에는 시선을 히데나가 쪽으로 돌렸다. 싱긋 웃고 있는 히데나가였으나, 그의 눈은 웃고있지 않았다. 타케나카 한베에는, 그가 자신과 같은 해답을 얻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력이 아닌 심리전으로 함락시킨다. 간단히 흉내낼 수 없는 무서운 전술이군. 지금부터 시즈코 님에게 함락되는 성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한 불가사의한 상태가 되겠군)


다음 차례는 츠키가세 성인가, 라고 타케나카 한베에는 마음 속에서 덧붙였다.




시즈코-히데요시 연합군의 본대가 오다니 성의 정문을 공략하고 있던 무렵, 별동대가 츠키가세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전술은 변함없이 주위를 이중, 삼중으로 부성으로 둘러싸 보급로를 차단하고 원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는 공격했다 물러나고, 공격했다 물러나는 지연 전술을 반복했다.

원군이 오지 않는 것, 보급선이 완전히 끊긴 것 때문에, 성을 지켜낼 자신이 없어진 츠키가세 성의 성주 츠키세 단고노카미 요리츠구(月瀬丹後守頼次, ※역주: 독음 확실치 않음)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 성채를 지은 노부나가였으나, 바로 서쪽에 츠키가세 성이 있어 자칫 잘못하면 협공당할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노부나가에게 츠키가세 성과, 가까이 있는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은 전략적으로 반드시 함락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시즈코의 쿠로쿠와슈를 동원하여, 프리패브(prefab) 공법을 응용하여 개발한 '하룻밤 부성(一夜付城)'을 이용해 두 성을 둘러싸게 했다.


하룻밤 부성은 현대의 프리패브 기술처럼, 부성을 지을 장소에서 자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리 안전한 장소에서 부성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 가공하고, 부성을 지을 장소에서 조립하는 방법이다.

히데요시의 스노마타 성(墨俣城)에서 따서 이름붙은 공법은, 겉보기는 완성되어도 알맹이는 텅 비었다는 결점이 있다.

그러나, 눈 앞에 하룻밤 새에 부성이 생긴다는 것은, 성에 틀어박힌 병사나 백성들의 전의를 꺾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아랫사람들이 모조리 전의를 잃어버리면, 성주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항복밖에 없게 된다.


이걸 증명하듯, 츠키가세 성을 지키는 병사들은 날이 갈수록 전의를 잃어갔다.

첫날에 부성이 완성되고, 둘째 날에 성 안에서 불화가 생겼으며, 셋째 날에 야마모토 산성의 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정보를 알게 된 그들은 항복 의사를 밝혔다.

야마모토 산성의 정보는 거짓이지만, 주위에 적의 성이 있는 상태는 그들에게 막막한 느낌을 들게 하여,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리를 잃게 했다.


"좋아, 필요한 만큼은 입수했다"


시즈코로부터 의뢰받은 것을 손에 넣자, 사이조는 당장 시즈코-히데요시 연합군 본대로 향했다.


"공성전을 벌이지 않고 츠키가세 성을 함락시켰으나, 소생은 좀 불만족스러운 느낌입니다"


종자(従者)들 중 한 명이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쟁터의 공훈에 따라 출세를 노릴 수 있으나, 시즈코의 전법은 거의 싸울 일이 없었다. 이래서는 공훈 운운 이전의 문제였다.


"츠키가세 성은 아자이-아사쿠라(朝倉)에게 중요한 거점이다. 그것을 피해 없이, 싸우지 않고 함락시키는 것의 어려움을 생각해라. 병법에서도 말했다. 싸워서 성을 함락시키는 것은 하책(下策), 싸우지 않고 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상책(上策)이라고 말이다"


"옛……"


약간 납득이 가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사이조는 종자를 무시하고 본진으로 서둘렀다. 그에게 시즈코의 곁에서 장기간 떨어져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초조해졌다.

말에 약간 무리를 시키며, 보통 걸릴 시간의 2/3만에 본진에 도착한 사이조는, 곧장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작전회의를 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이조는 시즈코가 히데요시들과 함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신히 시즈코의 모습을 보았을 때, 사이조는 작기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곧장 절을 하며 말했다.


"시즈코 님. 명령하신 대로 적당히 선별한 자들로부터 그것을 받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외로 빨랐네요. 병사들에게는 휴식을 취하게 하세요. 다음 야마모토 산성은…… 영주님에 달렸으려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사이조에게 부탁했던 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편지(文)였다. 그러나, 그녀가 편지를 펼치자, 그 안에는 백지, 아니, 그 사람이 썼다고 증명하는 화압(花押)만이 구석에 쓰여 있었다.

함께 있던 히데요시나 타케나카 한베에는 물론이고, 히데나가도 그걸로 뭘 할건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어이, 시즈코. 그 백지는 뭐에 쓸 것이냐?"


궁금해진 히데요시가 부채로 편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편지를 펼쳐서 히데요시들에게 보이며 시즈코는 대답했다.


"뭐라고 하셔도, 이것에 오다 가문에 내통한다는 내용을 기재할 뿐이에요. 뭐, 편지를 받을 사람은 오다니 성에 틀어박혀 있는 아자이입니다만"


"츠키가세 성은 함락시켰잖나? 왜 굳이 내통한다는 편지를 쓰는 거냐?"


"내통한다는 편지와는 별도로 '사람 마음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무너져가는 결속을 보는 것은 허무한 일이구나'라는 편지를 첨부할 겁니다. 그 후에 편지를 읽은 아자이가 어떻게 판단할지는…… 뭐 마음대로 하라고 하죠"


"……? ――억!?"


처음에는 알 수 없었던 히데요시였으나,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타케나카 한베에나 히데나가, 사이조도 해답을 깨닫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시즈코가 지금부터 펼칠 계책이 성공하면, 야마모토 산성은 악마의 증명을 강요받게 된다. 내통하는 편지가 아자이의 손에 들어가면, 그는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에 츠키가세 성이 함락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그리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통한 자가 있다고 아자이가 생각하기만 하면 이득이다. 영주(国人)는 애초에 가신의 배신에는 만반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야마모토 산성도 마찬가지, 라는 말만으로 아자이 히사마사는 의심에 빠지게 된다. 야마모토 산성도 똑같이 함락되면, 그들은 더욱 열세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내통자가 있다면, 자신들의 움직임이 알려진다.

만약 내통자의 손에 의해 야마모토 산성이 함락된다면 원군이 섬멸당할 우려가 있다. 더 이상 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는 아자이에게, 원군의 괴멸은 피하고 싶은 사태다.

하지만, 영주는 지성(支城)에 원군을 보낼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게을리하면 가신들은 일족을 지키기 위해 영주를 간단히 배신한다.

원군을 보낼지, 아니면 내버릴지, 아자이 히사마사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리라.


"아자이는 골머리를 썩히고, 가신들(家中)은 서로를 의심하고, 근거 없는 혐의를 받은 야마모토 산성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겠지요. 그대로 방치해두면 아자이 가문의 단결은 쉽게 무너지고, 멋대로 내분을 시작할 겁니다. 아자이 가문이 적당히 약해졌을 때 단번에…… 쳐부숩니다"


쳐부순다, 라는 말과 동시에 시즈코는 테이블을 강하게 쳤다. 좀 아팠지만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고 말을 이었다.


"오다니 성은 견고한 성입니다. 하지만 굳세고 단단한 벽도, 단 하나의 균열이 원인이 되어 붕괴합니다. 얼마나 성을 견고하게 만들던, 병사들의 마음이 꺾이면 함락됩니다. 이번의 계책으로 아자이 가문에 균열을 만들면, 나중에 유리하게 작용하겠지요"


그 말을 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히사마사가 함부로 야마모토 산성의 성주,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를 의심하여, 사다유키와 히사마사 사이에 골(溝)이 생겼다. 그리고 그 골은 없어지기는 커녕,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넓어질 뿐이었다.

결코 얕지 않은 골로까지 넓어졌을 때, 아츠지의 마음에 마(魔)가 끼게 되었다. '노부나가와 내통한다'는 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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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0 1571년 9월 중순



정치의 세계란 알쏭달쏭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쿄(京)에서 기후(岐阜), 기후에서 오와리(尾張)로 돌아온 시즈코들은, 군을 해산한 후 각자 귀로에 올랐다. 1개월 만의 집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 하면, 갈 때와 달리 사람 수가 늘어난 것이었다.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 치고는 초라…… 실례, 소박한 저택이군요"


"실례일세, 한조(半蔵) 님. 하지만 아무래도 작다는 느낌은 드는군"


도쿠가와(徳川) 가신단(家臣団) 중, 도쿠가와 십육신장(十六神将)의 일각이 되는 핫토리 한조(服部半蔵), 그리고 도쿠가와 삼걸(三傑) 중 한 명이 되는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 두 사람이 시즈코의 집을 보고 감상을 말했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家康) 사이에 뭔가의 거래가 이루어져, 두 사람이 시즈코에게 맡겨지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 밖에 시즈코는 알지 못했다.

정보 보안면에서 문제없을까 생각했으나, 시즈코에게 있는 기술의 태반은 각지로 흩어졌다. 이제와서 그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보다는 각지에 밀정을 배치하는 편이 빠르다.

남아있는 것은 전국시대에는 재현할 수 없는 현대 물품이나, 아니면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들 뿐이다.


"(그래도 일단, 주의는 해야겠지) 주의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특히 산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태반이 야생동물의 영역이기에, 외적(外敵)을 쫓아내려고 공격해오니까요. 특히 안쪽의 광엽수림(広葉樹林) 지역에는 곰이 나오니 유의해 주십시오"


본토에 서식하는 동물들 중,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하는 동물이 반달곰이다.

곰 중에서는 소형으로 분류되는 반달곰이지만, 시속 30km에서 60km로 달리는 각력과 그 상태를 수 시간 유지할 수 있는 스태미너, 작은 칼 정도는 되는 발톱을 가진 팔에서 뿜어지는 공격은 관목(灌木)조차 꺾어버린다.

따라서 반달곰에게 공격받으면 인간 따위는 남아나지 않고, 뒷발로 서서 머리라도 공격받게 되면 목부터 위쪽이 몸통과 작별하게 될 정도이다.


그런 그들의 식생활은 의외로 초식 경향이 강한 잡식이다. 도토리나 밤 등을 주식으로 하지만, 곤충이나 동물의 사체, 맹금류의 새끼나 초식동물의 유생을 잡아먹기도 한다.

곰이라고 하면 연어(鮭)를 즐겨먹는 이미지는 있지만, 연어를 먹는 곰은 반달곰이 아니라 불곰이나 그리즐리이다.


"배려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 마을에서는 여러가지 동물을 사육하고 있습니다. 구경하는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만, 가능한 한 접촉은 피해 주십시오. 영주님의 지시로 사육하고 있는 귀중한 동물이 많기에, 만에 하나 죽게 해버리면 도쿠가와 님께 막대한 금액을 청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 하나는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짐승입니까"


"우리 나라의 고유종인 뇌조(雷鳥), 남만의 개, 고양이, 원숭이, 그리고 장수의 상징인 땅거북(象亀)입니다. 특히 남만 고양이는 영주님이나 고노에(近衛) 님이 아끼고 계시기에, 확실하게 질책을 받으시겠지요"


야생동무르이 태반은 먹이가 풍부한 낙엽(落葉) 광엽수림 지역에 있지만, 침염수립 지역에는 뇌조가 서식하고 있다.

현대에서는 일본 고유종인 일본 뇌조는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오와리에 있는 작은 산에도 서식이 확인된 것을 보면, 예전에는 더 광범위하게 서식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비상 능력(飛翔能力)이 낮기에 암컷이나 새끼, 알이 여우나 까마귀 등의 천적에게 노림받기 쉬운데, 시즈코의 주변에는 천적을 포식하는 동물이 많았기에 뇌조에게는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고산 지대가 영역인 뇌조가, 평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내려온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만, 우선 두 분께서 지내실 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시즈코는 병사 한 명에게 타다카츠와 한조의 안내를 부탁했다. 물론, 두 사람은 도쿠가와 가신이기에 시즈코가 사는 구역이 아니라 외곽부분에 있는 집에 머물게 된다.


"아쉽군"


진심으로 낙담한 타다카츠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조치겠지. 아무리 주군과 오다 님이 정하신 일이라고는 하나, 그리 쉽게 가까이 살게 할 이유는 없지"


귀찮은 듯한 표정의 한조가 뻔한 일이라며 타다카츠에게 태클을 걸었다. 한조는 조금 더 먼 집으로 안내될 거라 생각했으나, 시즈코의 집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이었다.

방심하고 있는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사람과 짐승이 상시 감시하고 있는 장소에 숨어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땅 뿐만이라면 모르겠으나, 하늘로부터도 감시되고 있는 상황은, 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숨어드는 데만 해도 막대한 수고가 들겠군. 게다가 경비가 가장 허술할 터인 산에는 맹수가 살고 있다. 얼핏 보면 어설픈 듯 하면서 빈틈없는 경비체제로군)


반달곰은 아침이나 저녁 등 어두컴컴한 시간대에 활동하는 박명박모성(薄明薄暮性) 동물이다. 하지만 그건 기본적인 얘기고, 개체나 환경에 따라서는 대낮이나 밤중에도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사슴이 다수 서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멧돼지나 일본 늑대도 서식이 확인되었다. 작은 산에 다수의 동물들이 정착했지만, 그걸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산의 먹이는 풍부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주변 지역에 살게 되면 곤란하기에 내쫓고는 있지만, 산의 대부분은 짐승들의 근거지로 변해 있었다. 시즈코가 사용하고 있는 장소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닐테지, 한조 님"


침묵하고 있는 한조를 타다카츠는 힐끗 노려보았다. 그 반응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한조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당분간 재미있는 일이 이어지겠군, 이라고 생각한 것 뿐일세"




혼다 타다카츠, 핫토리 한조 두 사람은 당장 시즈코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식사 방법이나 시간, 목욕, 그 외에 미카와(三河)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 습관에 얼이 빠졌다. 그래도 며칠 지나니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5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두 사람은 완전히 녹아들어서, 타다카츠는 목욕, 한조는 청주(清酒)의 포로가 되었다. 한조는 저녁 식사와, 그 후 가끔 케이지(慶次) 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했다.


양자가 표면적인지, 아니면 정말로 사이가 좋아졌는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서로 으르렁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지켜보기로 했다.

뭣보다 최근에 태어난 저먼 셰퍼드 울프독의 교육에 바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다려!"


총 10마리의 셰퍼드 울프독은, 순식간에 시즈코의 명령에 따라 멈춰섰다. 카이저와 셰퍼드로부터 5마리, 쾨니히와 셰퍼드 사이에서 2마리, 리터와 셰퍼드 사이에서 3마리가 태어났다.

역시랄까, 비트만과 바르티 사이에서는 새끼가 태어나지 않았다. 환경이 안정되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야생 환경은 아니었기에, 자손을 남기는 본능이 옅어진 게 아닐까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생의 환경에서는 번식하더라도, 사육 환경에서는 번식행동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안정된 식사와 위험이 없는 영역을 얻게 되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생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게 되는 게 원인이라고도 한다.


(아차차. 지금은 울프독의 훈련을 해야지)


모든 개체에 공통되는 것은 쫑긋 선 귀, 더부룩하게 늘어진 꼬리, 체격이 단단하고 유연성이 있는 몸에 윗털과 아랫털이 있는 더블 코트, 그리고 늑대를 방불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였다.

반사속도나 지구력, 종합적인 운동신경이 대단히 높아, 생후 수 개월밖에 안 되었음에도 성체의 시바견(柴犬)에 필적하는 개체도 있었다. 하지만 울프독에 공통되는 내면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났다.


우선 카이저의 새끼들은 몸이 크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 많았지만, 한가해지면 문제행동을 일으키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훈련시키기 전부터 리더에 대해 대단히 순종적이었다.

다음으로 쾨니히의 새끼들은 평소에는 쿨하게 행동하지만, 상대해주지 않으면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는 귀찮은 성격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세 종류 중 가장 복종심이 강했다.

마지막으로 리터의 새끼들은 상황 판단 능력이 대단히 우수하여, 다른 울프독들은 명령이 떨어진 후에 반응하지만, 리터의 새끼들은 시즈코의 거동을 보고 명령을 예측하여 행동했다.


"고생하시는군요"


울프독을 훈련시키고 있는 시즈코에게 한조가 말을 걸었다. 요 며칠, 시즈코를 감시하고 있던 그는, 시즈코가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다수의 동물이 따르고, 아시가루(足軽) 들에게 '주군(殿)'으로서 존경받으며, 성격이 까다로운 무장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표리가 다른 하극상의 세상에서, 혈연 관계가 없는 가신들이 강철같은 결속을 굳히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이다.

그러면서 느긋한 '여유'가 존재하고, 긴장감이 부족한 듯 보였다. 무질서하게 보이며 질서가 있고, 각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 보이면서, 시즈코를 중심으로 규칙성을 가지고 운용되고 있었다.

그것이 며칠 동안 시즈코라는 정점에서 말단의 머슴(下男)에 이르기까지 조사한 한조의 결론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개를 훈련시키는 건 주인의 의무니까요"


"호오…… 소생은 개를 키워본 적은 없습니다만, 훈련은 주인의 의무입니까"


말하면서 한조는 시즈코를 향해 살기를 뿜었다. 하지만 시즈코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그녀의 주위에 있는 늑대개들만이 살기에 반응했다. 늑대개들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내며 한조를 위협했다.


"오, 오, 왜 그래? 괜찮아, 안심해"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늑대개들을 쓰다듬으며 시즈코는 늑대개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잠시 한조를 노려보던 늑대개들이었으나, 한조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자 으르렁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살기에 반응하지 않다니, 이 소녀는 정말로 난세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조사 대상이라고는 해도 한조는 시즈코의 무방비함에 약간 걱정이 느껴졌다. 한숨을 쉰 순간, 한조는 등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하여,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시즈코 니임! 무사하십니까!?"


한조를 날려버린 인물은 타다카츠였다. 그는 톤보기리(蜻蛉切)를 한 손에 들고 초인적인 속도로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우연히 그가 달리던 경로상에 한조가 있었던 것 뿐, 타다카츠는 의도적으로 그를 날려버린 것은 아니다.


"뭔가 살기를 느꼈습니다만, 안심하십시오! 이 혼다 타다카츠! 누구 하나 시즈코 님께 접근시키지 않겠습니다!"


"어, 아니, 그…… 그건 그렇고 한조 님이"


"음? 오오, 한조 님. 시즈코 님의 앞인데, 아무리 거리낌없는 성격이라 하나 누워 있다니 실례가 지나치군"


타다카츠는 순순히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타다카츠로부터 1미터에서 2미터 앞에 한조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한조를 날려버렸다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쓴소리를 했다.

잠시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한조였으나, 갑자기 소리도 없이 일어나더니 말없이 타다가츠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힘껏 그를 후려갈겼다.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인가, 는 이쪽이 할 말일세!"


갑자기 눈 앞에서 드잡이질이 벌어진 것에 시즈코는 안절부절 못 했다.


"어이가 없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아시미츠(足満)가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시즈코와 달리, 말 그대로 타다카츠와 한조의 드잡이질을 어이없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들의 바보같은 소란이겠지. 시즈코, 말려들면 위험하다. 이런 멍청이 두 명은 내버려두고 차라도―――"


아시미츠는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 전에 타다카츠가 한조와 마찬가지로 아시미츠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한조와 달리 아시미츠는 공중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더니, 낙법을 치며 화려하게 착지했다.


"네 이놈! 거리낌없이 시즈코 님의 어깨에 손을 얹다니 용서할 수 없다! 소생조차 손대본 적이 없…… 커흠커흠! 어쨌든 여인에 대해 지나치게 뻔뻔하구나!"


아까까지 드잡이질을 하고 있던 타다카츠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아시미츠에게 고함쳤다. 아시미츠는 격앙된 타다카츠를 무시하고, 왼손을 목에 대고 우두둑 우두둑 하고 뼈를 울렸다.


(아, 큰일났다 이거)


한 눈에 봐도 아시미츠가 화가 나 있는 것을 시즈코는 알 수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 되면 시즈코의 목소리도 아시미츠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재미있는 소리를 지껄이는 꼬맹이구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부터 땅바닥 맛을 실컷 맛보게 해주마. 말해두지만 네놈에게 시즈코를 주진 않는다"


"뭣! 네, 네놈, 시즈코 님과 어떤 관계냐"


"훗, 네놈과 달리 시즈코가 요만~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지"


아시미츠는 승리를 자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타다카츠의 질문에 대답했다. 절망감을 떠올린 타다카츠였으나, 양손으로 얼굴을 치며 기합을 넣었다.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끝내줫으면 좋겠는데요…… 아니, 하하하"


쭈뼛거리며 말해봤지만 예상대로 양쪽 다 시즈코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가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즉, 네놈을 쓰러뜨리면, 시즈코 님과 함께 꽃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군"


"꼬맹이가 밝히기엔 100년은 이르다. 돌아가서 유모의 젖이라도 빨아라"


순간, 공기가 파열되는 소리가 귀에 들린 듯한 시즈코였다. 타다카츠와 드잡이질을 했던 한조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소리없이 타다카츠로부터 물러났다.


"네놈과는 사이좋게 지낼 수 없을 것 같군"


"우연이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 참이다"


서로 그런 말을 하면서 타다카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아시미츠는 칼과 토시(篭手)를 벗어 근처에 놓았다. 분노가 마음을 지배했더라도, 칼부림은 금기라고 생각할 만한 이성은 남아있었다.

무기에 이어 상의를 벗더니, 약속한 듯 근처로 던져버렸다. 타다카츠 것은 한조가, 아시미츠 것은 시즈코가 회수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말없이 서로 노려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아시미츠와 타다카츠 두 사람 모두 허리를 약간 낮추었다. 칼부림을 하지 않고 싸우는 방법, 그건 씨름(相撲)이다.

씨름이라면 훈련이라는 명목이 생긴다. 다소 상처를 입더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용서를 빌 거라면 지금이다"


"웃기지 마라, 꼬맹아. 와라, 상대해주마"


서로 주고받은 말 뒤에 흐르는 약간의 정적, 그것을 먼저 깬 것은 타다카츠였다. 약간 늦게 아시미츠도 움직였다. 서로 몸통박치기(ぶちかまし)를 날려, 살과 살이 부딪혔다.

하지만 어깨부터 부딪혔을 때의 소리는 마치 흙벽으로 된 창고(蔵)에 나무망치를 힘껏 후려갈겼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그만큼 격렬한 몸통박치기를 했음에도 어느 쪽도 뒤로 밀려나지 않고 서로 밀고당기고 있었다.


"흥!"


잠시 둘 다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으나,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은 아시미츠가 타다카츠를 메다꽂았다. 나가떨어진 타다카츠는 바로 일어서더니, 다시 아시미츠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두 사람 다 기운이 넘치네"


반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두 사람의 씨름을 구경했다. 네 번 정도 승패가 갈렸을 무렵부터 서서히 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타다카츠나 아시미츠와 마찬가지로 상의를 벗고 씨름에 끼어들기도 했다. 물론, 끼어든 것은 시즈코 쪽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혼다 타다카츠와 핫토리 한조가 노부나가, 엄밀하게는 시즈코에게 맡겨지는 형태가 되었으나, 맡겨진 것은 그들 두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혼다 타다카츠 부대(本多忠勝隊) 중, 정예 중의 정예인 가신들이 30명 정도 행동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 30명 중에는, 혼다 종가(宗家)의 후계자로서 타다카츠를 키워낸 숙부인 혼다(本多) 히고노카미(肥後守) 타다자네(忠真).

'혈창(血鑓) 쿠로(九郎)'라는 별명을 가진, 전쟁에 관한 것을 타다카츠에게 교육시킨 나가사카(長坂) 히코고로(彦五郎) 노부마사(信政).

타다카츠가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 대신 군졸을 지휘했던 사쿠라이(桜井) 쇼노스케(庄之助) 카츠츠구(勝次).

혼다 가문의 필두(筆頭) 가노(家老)인 츠쿠시(筑紫) 소우자에몽(惣左衛門) 히데츠나(秀綱).

츠쿠시 씨 일족과 함께 가노로서 대대로 혼다 가문을 뒷받침해온 카지(梶) 씨 가문의 카지(梶) 킨페이(金平) 카츠타다(勝忠) 등, 쟁쟁한 인물들이 타다카츠 부대(忠勝隊)로서 참가하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잘 이해할 수 없는 명령 떄문인지, 아니면 환경이 변화한 것에 의한 스트레스인지, 다들 상의를 벗고는 씨름에 참가했다.

참가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따라 관객들도 씨름에 열광했다. 때로는 내던져진 선수(力士)들이 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뭐 이런 방식도 있는 걸까"


씨름을 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났을 즈음부터, 시즈코는 위험하다고 느끼고 조금 떨어진 건물의 2층에서 견학하고 있었다. 원래는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하면 안 되지만, 다들 씨름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자, 다음은 누가 상대냐!"


"그럼 소생이 상대하도록 하지!"


상대를 집어던진 케이지가 씨름판(土俵) 위에서 알통을 드러내며 두들겼다. 그의 도전에 타다카츠 부대의 누군가가 손을 들며 씨름판 위로 올라갔다.

씨름을 한 덕분인지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다니 도쿠가와니 하는 그런 벽은 사라져 있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시즈코는 씨름을 즐기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남자는 단순하네―. 하지만, 그런 점은 부러워"




타다카츠들이 시즈코의 마을에 체류한 지 1주일 후,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내용을 확인하자, 이번에 시즈코가 그들을 맡게 된 것은, 그녀가 도쿠가와의 영토를 조사하기 위한 밑준비라는 얘기였다.

이에야스가 시즈코의 지형 조사를 받아들인 것은, 어른의 여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최대한의 허세였다. 가신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의사 표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의 진의를 알고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거꾸로 이에야스의 요구를 간단히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보였다.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이에야스의 부하들을 두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시즈코가 손대는 모든 사업에 시즈코가 키 맨(key man)으로서 구속되어 있었으나, 아시미츠와 미츠오(みつお)가 합류한 이후로는 분업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던 점이 크다.

현 체제에서는 시즈코가 농림수산업 및 연구개발, 미츠오가 축산 관계, 아시미츠가 군사 전반으로 명확히 분업화가 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서 가장 주시하고 있을 군사 사정은 아시미츠가 총괄하고 있기에, 시즈코에 대해 간첩을 보내봐야 이미 군에서 채용되어 실전 배치가 끝난 물품에 관한 기술정보가 나오는 정도이다.


게다가 시즈코와 아시미츠 사이에 한정시킬 경우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리터러시(literacy)의 장벽이 높아, 딱히 방첩(防諜)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다.

예를 들면 시즈코가 다이너마이트를 필요로 할 경우, 아시미츠 이외의 사람에게라면 다이너마이트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시미츠 상대라면 '발파(発破) X개, O월까지 필요"라고만 하면 충분하다.

말소리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발파'와 '다이너마이트'를 연결짓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도 생활을 함께 하며 접하는 시간이 장기간에 걸칠 경우 어렴풋이나마 내용이 파악될 위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이해했을 무렵에는 진부해져서 기밀이 아니게 된다.

이 때문에 장래적으로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도쿠가와 가신을 시즈코의 곁에 두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한 정치적 조절(駆け引き)은 모르는 시즈코였으나, 주인자을 볼 때 시즈코가 원하는 장소의 지형 조사가 가능하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럼, 남은 1년 동안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의 대지(台地)를 어디까지 조사할 수 있으려나)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겐키(元亀) 3년 12월 22일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 일어난, 타케다(武田) 군과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타케다 군은 당시의 타케다 씨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인 3만이었기에 문자 그대로 총력전이었던 것과, 이에야스가 대패한 것으로 유명한 전투이다.

역사적 사실이 어떠한 흐름이었는지 파악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딱 한 가지 알 수 없는 점이 있었다. 그것이 당시의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이었다.

현대에서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지 않았기에, 대체 어떤 모양인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는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는, 타케다와의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사였다.


주인장이 도착하자 시즈코는 가신들을 불러모았다.

이번에는 케이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아시미츠, 그리고 타카토라(高虎) 등 다섯 명이었다. 아직 수습(見習い)인 타카토라가 호출된 것을 케이지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시즈코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다.


"미카타가라하 대지의 지형조사 허가가 내려왔습니다. 지금부터 조사대를 결성해서, 1년에 걸쳐 면밀하게 조사합니다. 당분간 쿠로쿠와슈(黒鍬衆)가 움직이기 어렵게 되지만, 쿠로쿠와슈도 꽤나 인원이 늘어났기에 그다지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시즈코가 거느린 쿠로쿠와슈는 인원은 물론,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패브(prefab) 공법을 기본으로 하여, 전국시대에 맞춰 개량한 독자적 공법에 의한 진지구축 덕분에, 오다군 내부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로마 군단병을 목표로 한 쿠로쿠와슈는, 우수한 백병전투원이자 공병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토목공사가 주된 임무로 견고한 진지의 설영, 사찰을 항구적인 주둔지로 개조, 진군을 위한 공도(公道) 정비 등 다양한 임무에 종사한다.

그들이 만든 도로는, 후에 노부나가가 상업 루트의 하나로서 이용할 정도의 완성도였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일이 많으며 전장에 설 일이 적은 그들이지만, 그 실력은 노부나가조차 감탄시킬 정도로, 노부나가 휘하의 오카베(岡部)도 몇 번인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일을 했다.


시즈코가 결성하고 키워낸 쿠로쿠와슈는 말하자면 오다 군을 그늘에서 뒷받침하는 부대이다.

이번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에 시즈코는 쿠로쿠와슈 중에서 지형관계의 전문가를 포함한 2000명의 부대를 데려갈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원수가 늘었다고는 해도 2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지형조사에 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다. 뭣보다 쿠로쿠와슈는 수요가 높은 부대이다. 상당한 불만이 나올 것이 뻔히 보였다.

시즈코가 키운 부대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직의 일원인 이상 본래의 기능을 훼손할 정도로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중진인 시즈코라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따라서 2000명이라는 과다한 인원을 요청은 했지만, 실제로 데려갈 수 잇는 것은 절반 이하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뭐― 쿠로쿠와슈는 그들의 높은 능력 떄문에 요청이 끊이질 않는 부대니까…… 지형 조사에 동원할 수 있는건 기껏해야 1000명이 한계겠지요. 그래서, 조사대에는 저와 아시미츠 아저씨와 사이조 씨, 그리고 요키치(与吉) 군을 데려갑니다.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은 비공식 참가(陣借り)려나요"


"비공식 참가라니…… 일부러 나눌 필요 없고, 전원 같이 이동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전군으로 도쿠가와 영토에 이동하는 건 문제가 있지. 케이지 씨와 카츠조 군의 군은 강하다는 평판이고, 대외적으로도 전력의 절반 정도로 보여두지 않으면 주위에 쓸데없는 자극을 주게 되어 버리는 거야"


시즈코 군은 오다 군 내에서, 그리고 다른 영주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유명하다. 시즈코 군의 전 병력이 도쿠가와 영토로 이동하면, 도쿠가와에 대해 적의가 있다고 판단될 수 있고, 도쿠가와가 납득하더라도 근처의 다른 나라들이 전쟁 준비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긴장감을 높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도 쓸데없는 소동을 불어일으키는 짓은 삼가야 한다.


"흐흥,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


강하다는 평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가요시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넉살좋은 태도에 케이지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를 건드렸다가 이야기가 중단되면 귀찮다고 생각하고는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말했던 말, 그건 언제쯤 도착하지?"


"아―, 그거. 저번에 연락이 와서, 9월중이나 그쯤이라고 들었어요. 아마도이지만 조사는 10월쯤일테니, 출발하기 전까지는 올거에요"


예수회에 의해 데스트리어는 일본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중마종(重馬種)으로 분류되는 데스트리어는 운반하는 것도 고생이지만, 뭣보다 유지하기 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이 문제 때문에 아랍종과는 달리, 배를 몇 척이나 사용하면서도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으로 코끼리를 운반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 점을 볼 때 대형 동물(重種)의 운반은 가능하다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큰 돈을 들여서 운반할 수 있었던 게 겨우 몇 마리 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예상외로 비용이 많이 든 것에 머리를 감싸안았다.


"뭐, 달리 질문이 없으면 이만 끝내려는데, 질문 있어요?"


"요키치는 뭣 때문에 데려가는 거야?"


케이지의 질문에 사이조와 아시미츠가 약간 반응했다. 요키치는 아직 수습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지형조사라는 중요한 임무에 데려갈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즈코가 데려가려는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아―, 요키치 군은 쿠로쿠와슈와 함께 토목 기술의 공부에요"


"옛! 저, 저기― 시즈코 님. 소생이 쿠로쿠와슈와 함께 할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예상외의 말에 타카토라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머뭇거리며 시즈코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요키치 군에게는 축성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쿠로쿠와슈와 함께 토목기술을 배웠으면 하는거야. 뭐, 억지로 시키려는 건 아니거든? 그런 걸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아, 아니…… 예. 시즈코 님께서 자질이 있다고 하신다면, 소생에게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좀 놀라기는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축성 기술에 정통했다고 평가되는 토우도 타카토라(藤堂高虎)이지만, 그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에도(江戸) 시대 초기이다. 따라서 시즈코는 타카토라에게 쿠로쿠와슈 밑에서 건축기술을 배워서 축성 기술의 재능을 조기에 꽃피우길 바랬다.


"미안해, 무리한 얘기를 해서. 아무래도 무장(武将)을 그런 곳에 배치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납득해줘서 다행이야"


참고로 시즈코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타카토라는 시즈코의 설명에는 납득했으나, 아시미츠와 사이조로부터의 살기에 가까운 시선을 받고, 거절했다간 그 후가 두려워져서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있다.


"그럼, 달리 없어요? 없으면 회의를 종료합니다"


"옛!"


시즈코의 회의 종료 선언에, 전원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8월 28일, 일본에 있는 예수회의 선교사들에게 있어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시라이카와라(白井河原) 전투에서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을 비호해왔던 와다 코레마사(和田惟政)가 전사했다.


호소카와(細川) 씨의 내분(에이쇼(永正)의 착란(錯乱)) 이래로, 셋츠(摂津) 국은 항상 전란의 땅이었다.

현재는 와다 코레마사와 이바라키 시게토모(茨木重朝),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와 나카가와 키요히데(中川清秀)가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에는 진정되었으나, 아직 하나로 뭉치지는 못했다.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노부나가가 패한 이후, 억지력이 사라져 양자는 다시 대립했고, 8월 28일에 시라이카와라를 끼고 양측의 연합군이 대치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이 전투는 세대교체의 상징적 전투이기도 했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셋츠 삼대 슈고(摂津三守護)(와다 코레마사는 그 중 한 명)가 무대 위(表舞台)에서 퇴장하고, 아즈치(安土) 모모야마(桃山) 시대의 무장들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와다 코레마사와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을 비호하고 있는 타카야마 토모테루(高山友照), 우콘(右近) 부자는, 와다 코레나가(和田惟長, 와다 코레마사의 자식)과 함께 타카츠키 성(高槻城)의 방어를 강화했으나, 아라키-나카가와 연합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상황은 더욱 악회되어,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와 그 자식인 히사미치(久通),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 시노하라 나가후사(篠原長房) 등이 타카츠키 성의 포위에 참전했다. 그들은 타카츠키 성의 성시(城下町)를 이틀에 걸쳐 불태우고 철저히 파괴했다.


지금까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프로이스였으나, 이대로는 타카츠키 성 주변에 있는 카톨릭 교회(キリスト教会)가 파괴될 것을 걱정하여, 로렌초 료사이(ロレンソ了斎)를 오다 노부나가에게 파견하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셋츠 국이라고 하면 키나이(畿内)의 요충지, 천하인이 되고자 하는 노부나가의 발밑에서 일어난 전투에 그는 조정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9월 9일에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를 사자로 파견하여, 즉각적인 정전과 쌍방의 타카츠키 성으로부터의 철수를 권고했다. 그러나, 양쪽 군 모두 노부나가의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체면이 뭉개진 노부나가였으나, 이 결판은 9월 말까지 늦어지게 된다.


타카츠키 성에서 와다 코레나가와 타카야마 부자, 아라키-나가카와 연합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의 악명을 일본 전역에 떨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겐키 2년(1571년) 9월 12일, 해가 뜨기 전에 노부나가는 약 3만이라는 대군으로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를 포위했다.

정확하게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가 아니라, 엔랴쿠지의 승병들이 사용하는 길, 그리고 사카모토(坂本)의 육로와 해로의 출입구였다. 병사들이 빈틈없이 둘러싼 모습에, 사카모토의 장로들(老人衆, ※역주: 딱히 어떤 고유명사라기보다는 그냥 한자 그대로의 뜻 같은데, '노인들'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 것 같아 임의로 '장로들'이라고 의역함)은 금을 바치며 공격 중지를 탄원했다.


"이것이 무가(武家)의 싸움이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되돌려보냈다.

전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카모토의 승병들은, 비교적 포위망이 약한 히요시타이샤(日吉大社)의 중심부(奥宮)인 하치오우지 산(八王子山)에 틀어박혔다.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가도록 노부나가가 꾸민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리고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노부나가는 전군에 총공격을 명하여, 전투라는 이름의 학살이 막을 올렸다.

오다 군은 우선 사카모토, 카타타(堅田) 주변에 불을 놓고, 그것을 신호로 곳곳에 있는 무장들이 소라고둥(法螺貝) 소리와 함성(鬨)을 올리며 공격해 올라갔다.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사쿠마 노부모리, 타케이 세키안(武井夕庵)、나카가와 시게마사(中川重政)、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그리고 시즈코 군에서 아시미츠와 모리 나가요시(森長可)가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달리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가 없는 이유는, 히사마사(久政)의 견제로서 시즈코 본대와 함께 오다니 성(小谷城)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익! 사, 살려―― 끄악!"


"목숨만은…… 아악!"


여기저기서 비명과 애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오다 군 중 누구 한 사람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담담하게 사카모토에 있던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승병은 물론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또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목을 베었다.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태우고, 적이라면 갓난아기조차 용서없이 죽이던 오다 군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히에이 산 엔랴쿠지의 본당(本堂)이라 할 만한 장소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히요시타이샤에 틀어박힌 승병들을, 사찰째로 불태워버린 오다 군이, 말이다.


노부나가가 엔랴쿠지의 본당을 방치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애초에, 그는 엔랴쿠지의 모든 것을 멸망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시의 엔랴쿠지는 군사 거점이며, 사카모토를 필두로 거대 상업도시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려들은 히에이 산을 내려가 사카모토나 시모사카모토(下坂本)를 생활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엔랴쿠지는 인라이(院来), 슈토(堂衆)、가쿠세이(学生)、쿠닌(公人)이라는 승려의 네 가지 계층이 있었으며, 부패의 중심은 쿠닌이라 불리는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여색을 탐닉하고, 물고기나 새를 태연히 먹어댔다. 또, 유흥비가 모자라면 법의료(法儀料)나 시주(布施) 등을 훔치고, 부정한 뇌물을 받았으며,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에도 손을 댔다.

때로는 상대를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집이나 땅, 여자 아이들까지 담보로 잡고는 폭력으로 돈을 받아냈다.

또, 쿠닌은 엔랴쿠지의 권력을 배경으로 산령(山領, ※역주: 아마 엔랴쿠지가 관할하던 영지라는 의미로 짐작되지만 정확히 모르겠음)의 공물(年貢)을 독촉하고, 유사시에는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무기를 든 채 각지에서 마음껏 날뛰었다.

때로는 요여(神輿)를 들고 쿄에 난입하여,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사카모토의 히요시야마 곤겐(日吉山権現)은 엔랴쿠지와 마찬가지로 전국에 다수의 사찰을 두고 전국적인 권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카모토하마(坂本浜)를 외항(外港)으로 삼고 술을 한냐탕(般若湯), 창녀(遊女)를 연잎(蓮の葉)이라는 은어로 부르며, 엔랴쿠지에 참배(参詣)하는 단체가 이용하는 여관(旅籠)이나 환락가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것은 '신장공기(信長公記)'에 '천하의 조롱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늘(天道)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을 정도의 부패함이었으며, 승려들의 대부분이 속세에 물들어 향락에 빠져 신앙을 잊고 있었다.


엔랴쿠지는 노부나가의 화공을 '겐키의 법난(法難)'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봐도 노부나가는 히에이 산을 전부 불태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사카모토 주변 일대를 완전히 봉쇄했기에, 엔랴쿠지에 대해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 목격한 제 3자는 한 명도 없었다.

노부나가의 화공에 관해서는 프로이스의 보고서나 '언계경기(言継卿記)', '어탕전상일기(御湯殿上日記)' 등 여러 기록에 남아 있으나,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오다 군의 화공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들은 이야기(伝聞)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들은 이야기'란 도중에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장식된다.


노부나가의 히에이 산 엔랴쿠지 화공이, 그 때까지 정설로 여겨지던 대학살이 아니라 실은 과장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쇼와(昭和) 시대에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판명되었다.

발굴조사에 관여한 카네야스 야스아키(兼康保明) 씨는 '노부나가가 불태운 건물은 사카모토 중당(中堂)과 대강당(大講堂) 뿐'이라고 보고했다.

또, 엔랴쿠지의 건물은 겐키 이전에 폐쇄(廃絶)된 것이 많아, 출토된 유물은 겐키 시대에 소실(焼亡)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 거의 없었다.

노부나가보다도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에 의한 엔랴쿠지 화공 쪽이 철저했으며, 이 때 대부분의 주요 시설이 소실되었다는 것도 판명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히에이 산의 주인은 오오기마치 천황(正親町天皇)의 동생인 카쿠죠(覚恕) 법친왕(法親王)이었다. 만약, 노부나가가 산 전체를 불태워버렸다면 그도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며, 노부나가를 조정의 적(朝敵)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히에이 산 화공 후에도, 오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에 대해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며, 딱히 이렇다 할 대응을 취했다는 기록도 없다.

또, 카쿠죠 법친왕도 조정에 대해 공작을 벌이지 않고, 엔랴쿠지를 비호하고 있던 타케다 가문에 의지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그대로 히에이 산 화공의 소문을 방치했던 노부나가였으나, 이번에 그는 제 6군을 이용하여 정보를 쿄나 사카이(堺)에 퍼뜨렸다.

'엔랴쿠지를 썩게 한 것은 사카모토에 있는 자들'이라던가 '오다 가문은 이 이상 부처를 사칭하는 악귀들을 두고볼 생각은 없다' 등, 마치 엔랴쿠지의 부패를 개탄하여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 의해 오다 군이 사카모토에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9월 초에는 쿄나 사카이에서 공공연한 사실로서 정착되어 있었다. 그 동안, 재산을 가지고 사카모토에서 도망친 자들을 노부나가는 쫓지 않았다.

나아가 사카모토 부근에 오다 군을 배치한 것은 9월 10일로, 다시 말해 9월 12일이 되어도 남아 있던 자들은 오다 군을 얕보았거나 철저 항전을 할 각오인 자들, 이라는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넣었다.


이제와서 그들이 난리를 쳐도 이미 늦었던 것이다.

쿄나 사카이에서는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속보(瓦版, 신문)이 뿌려져, 사카모토를 침공하기 전부터 노부나가에게 유리한 정보가 정착되어 있었다.

또, 코우가슈(甲賀衆)들에게 사카모토에서 도망친 자들을 연기하게 하여 정보를 확산시켰다. 정보전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둔 노부나가는, 일체 사정을 봐주거나 사양함이 없이 사카모토를 멸망시켰다.


"일체의 구별 없이 몰살(鏖殺)시켜라"


목숨을 구해달라는 탄원이 오다 군에게 수없이 들어왔으나, 노부나가의 대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공격한다는 정보는 일부러 흘렸고, 전날에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도 보였다. 그럼에도 철저 항전할 자세라면 어쩔 수 없다.

이 이상 발칙한 놈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오탁(汚濁)에 물든 추태를 보이기 전에 베어버리는 것이 자비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주위에 얘기했다.

지금까지 엔랴쿠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자들도, 사카모토에 사는 승병들의 추악함을 직접 목격하고 노부나가의 생각이 바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손에 사정을 두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한 가지 책략을 강구해두고 있었다.


"한번 더 묻겠다. 어째서, 사카모토의 사람을 놓아주었느냐"


그것은 아시미츠에 의한 아군의 감시였다. 아군이라고 해도 오다 군이 아니라, 이번의 사카모토에 종군한 오다 가문 가신들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다.

이것을 행한 이유는, 히데요시가 사카모토 침공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히에이 산 화공에서 오다 군이 사카모토를 불태웠을 때,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노부나가의 명령대로 철저히 사카모토를 파괴했다.

하지만, 요코가와(横川) 방면을 담당한 히데요시는 사카보토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못본 척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태업을 한 셈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히데요시가 인도주의자라서도, 도망친 사람들을 동정해서도 아니었다.

어째서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명령에 충실했고 히데요시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의 출생이 관계된다.


히데요시는 농민 출신이며, 미츠히데나 시바타와 달리 유력자와의 연줄이 거의 없다. 하급 아시가루(足軽) 출신이라고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다른 가문과의 연줄이 없는 것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에 반해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가문의 역사가 있었으며, 유력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다. 이 차이가 사카모토를 공격햇을 때 대응의 차이로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즉, 히데요시는 유력자와의 연줄을 손에 넣기 위해, 사카모토에서 도망쳐온 자들 중에 '힘이 있는 자들' 만 놓아준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어, 히데요시는 천하를 손에 넣었을 때 사카모토로부터 막대한 상납금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런 것을 노부나가는 모르지만, 그는 돈 때문에 적을 놓아주는 아군이 나타나고, 그 때문에 포위망을 돌파당하는 것을 걱정하여, 아시미츠에게 아군의 감시를 명했다.


"그, 그것은……"


아시미츠의 물음에 무장은 말끝을 흐렸다. 가까운 곳에 널브러진 어미와 아이 두 명의 시체를 일별했다. 그는 모자의 모습에 자신의 처자를 겹쳐보아버려,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봐 주어 버렸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수하(토비카토(鳶加藤)를 필두로 하는 닌자 집단)가 자초지종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의해 그 모자는 즉시 포박되어, 문답무용으로 참살당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무장의 눈 앞에 내던지며 아시미츠가 추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카모토의 사람은 한 명도 살려두면 안 된다. 자비는 일체 필요없다. 그 명령을 어긴 이유를 대답해라"


아시미츠가 노려보자 그 무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에게는 아시미츠의 눈이 아군을 보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등골에 한기를 느꼈기에 한 발자국 물러선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태도를 켕기는 곳이 있다고 판단한 아시미츠는 눈을 약간 가늘게 떴다.


"세 명으로 용서하겠다"


"뭐……?"


"네놈이 놓아준 사람 만큼의 머리로 용서하겠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시미츠의 말에 무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놓아준 사람 숫자와 같은 숫자만큼 그 자신의 부하를 죽여라, 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망설이고 있는 무장을 보고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휘더니, 팔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순식간에 어딘가에서 화살이 날아와, 무장에 근처에 있던 아시가루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오다 님의 명령은 몰살이다. 그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놈에게 볼일은 없다"


항의하려던 무장이었으나, 아시미츠들의 살기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삼켰다.

이제와서 간신히 그 무장은 이해했다. 아시미츠는 자신들을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그와 명확하게 적대하게 되면, 아시미츠는 즉시 자신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몰살시키리라. 그리고 그가 자신들을 처분하더라도 그에 대한 처벌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그 무장은 충분히 이해했다.


"죄송하오. 다음부터는 주의하지"


오기(意地)와 긍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는 것을 택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무장은 후자를 선택했다.


"다음은 없다"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무장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 뒤에 남겨진 것은 굴욕으로 이를 갈고 있는 무장과 가신들, 그리고 무참하게 살해당한 모자의 시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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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9 1571년 8월 중순



7월 상순, 시즈코는 2000의 정예병을 이끌고 쿄(京)로 상락(上洛)했다.

이번의 목적은 노부나가가 터키시 앙골라의 새끼를 천황에게 헌상하기 위한 종군이다. 그래도 정병은 완전 무장하고 언제든지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상태였다.

집 안을 관리하는 아야(彩)와 오이치(お市) 등을 오와리(尾張)에 남겨두고, 그 이외의 멤버인 시녀인 쇼우(蕭), 무장인 케이지(慶次),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등 세 명과 수습(見習い)인 타카토라(高虎)가 상락에 참가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평소의 키소 말(木曽馬)이 아닌 아랍 종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용하고 있다고 해도, 타고 있는 것은 시즈코와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등 네 명 뿐이었다. 나머지 기병과 타카토라, 쇼우는 키소 말에 타고 있었다.


케이지를 필두로 요란한 차림새를 한 카부키모노(傾き者) 들도 눈에 띄었지만, 그보다 더욱 쿄 백성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이 시즈코였다.

구체적으로는 시즈코 본인이 아니라 그녀의 주위에 있는 짐승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눈에 띄었다.

체고(体高) 약 155cm로 비교적 큰 아랍종, 말을 에워싸듯 한 비트만 일가, 시즈코의 왼팔에 시로가네, 말 머리 위에 아카가네, 시즈코의 앞에 쿠로가네 등, 시즈코가 데리고 있는 동물들이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비트만 일가이리라. 시바 견(柴犬)이나 일본 늑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체구, 눈빛은 날카롭고, 늠름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가 그들을 데려온 것은 최근 놀아주지 못했기에 데려온 것 뿐으로, 그다지 깊은 의미는 없었다.


시즈코는 쿄에서 항상 이용하고 있는 거관(居館)으로 들어가서 터키시 앙골라의 건강 상태를 체크했다.

귀, 눈, 입, 코, 숨, 몸, 피부, 털을 체크하고, 다음으로 기묘한 행동이나 식욕부진이 없는지 체크했다. 간단한 체크였지만 모두 이상이 없는 것을 알게 되자 고양이를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노부나가에게 보내면 시즈코의 일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이후에는 지시가 있을 때까지 거관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된다. 대기라고 해도 웬만큼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쿄의 거리에서 놀아도 문제없었다.

케이지는 큰 돈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가요시는 매번 그렇듯 스모 도장(相撲部屋)으로 도장깨기, 사이조는 저택을 나가진 않았지만 바둑이나 장기 삼매경인 등, 쇼우와 타카토라 이외에는 노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놀러가죠"


저택의 주인인 시즈코도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기에 쿄의 거리로 나가기로 했다. 멤버는 시즈코, 사이조, 타카토라, 쇼우였다.

평소에는 하기 힘든 윈도우 쇼핑을 즐기는 시즈코였으나, 기후(岐阜)에 비해 시장이 작은 것도 있어 그다지 눈을 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팔리고 있는 물건들에는 기후의 시장에는 없는 '전통'의 향기가 있었다.


"전통적인 물건은 있지만, 이렇다 하게 재미있는 물건이 없네"


"시즈코 님께서는 재미있는 물건을 만드시는 쪽이신 게…… 음?"


뭔가를 발견했는지 사이조가 손으로 전원을 제지했다. 그의 시선 끝을 보니, 뭔가 인파가 생겨 있었다. 사이조의 반응을 보니, 그다지 좋은 의미에서의 인파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요키치(与吉) 군, 경라대에 연락. 쇼우 짱은 만일을 대비해서 우리 병사들 중 100명 정도 불러와 줘. 이런 건 시간과의 승부야. 자, 움직여!"


재빠르게 지시를 내리는 시즈코에 비해, 이런 종류의 경험이 적은 두 사람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가 독려를 하자 자신들이 할 일을 이해했는지, 각자 목적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사이조 씨,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하죠. 느긋하게 상황을 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보이진 않으니까요"


"옛. 하지만 신변에는 주의해 주십시오. 인파에 섞여 수상한 자가 시즈코 님을 노릴지도 모릅니다"


"응, 객기부리진 않을거에요. 경라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만 있으면 돼요"


두 사람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인파로 다가갔다. 거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두 사람의 귀에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대화를 들어보니 한 쪽이 노성을 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이조는 대화의 내용에서 일촉즉발의 사태라는 걸 이해하자, 시즈코의 앞으로 나서더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황께서 계시는 쿄에서 무슨 소란이냐! 이곳에서 다툼은 엄히 금지된 것을 잊었느냐!!"


그건 평소의 사이조에게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노성이었다. 너무나 큰 목소리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인상을 쓰며 돌아봤지만, 전쟁에 나가는 무사(いくさ人)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사이조를 보고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사이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인파가 갈라졌다.


"양쪽 다 무기를 조용히 내려놓아라! 주위를 잘 살펴라!!"


다툼의 중심에 도착하자, 사이조는 당사자 양쪽에게 경고했다.


"뭐, 뭐야 이 자식은, 갑자기 큰 소리를…… 윽!"


사내가 불평했지만, 사이조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도중에 말을 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자들 전원을 일별한 사이조는, 손에 들고 있는 창의 뒷부분(石突)으로 땅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둔중하고 큰 소리에 구경꾼들이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동을 일으킨 한 쪽의 집단도, 사이조에게서 뿜어지는 기백에 주춤했다.


"자, 무기를 집어넣어. 그쪽 두 사람도 괜찮지?"


시즈코는 소동을 일으킨 남자들의 반대쪽에 있는 두 명의 소년에게, 가능한 한 적의를 느끼게 하지 않는 미소를 띠고 물었다. 두 사람은 고민되는 듯, 나이가 어린 소년 쪽이 계속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기를 거두는 편이 제일 좋다고 결론을 내리고, 손에 들고 있던 칼을 칼집에 넣었다.

여전히 반대측의 리더인 듯한 사내는 칼을 손에 들고 불손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사이조가 창을 겨누자 다급히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왜 소란을 피우고 있던 걸까?"


"켁, 너한테 이야기 할……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부루퉁한 얼굴로 외면하던 사내였으나, 사이조의 살기에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했다. 그래도 태도를 바꾸지 않는 걸 보니, 부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이리라.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찌만, 그걸 지적해봐야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 것을 이해하고는 시즈코는 두 명의 소년 중, 나이가 많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 있는 부부의 아이가, 그 남자의 말로는 노예라고 했다. 하지만 부부는 양자라고 말했지. 내가 보기에는 부부가 옳다고 느꼈다. 그래서 부부의 편을 들었다"


"그렇다고 하는데, 틀림없어?"


"맞아. 그 녀석은 노예상인에게서 5관문(貫文)에 샀다고. 난전의 소란에 틈타 도망쳤는데, 겨우 발견한 거야"


양쪽의 이야기를 정리하니 산적 같은 남자가 5관문에 노예를 샀다. 그러나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 말려들어 그 와중에 노예가 도망쳤다. 우여곡절 끝에, 부부의 양자가 된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좀 빗나가는데, 두 사람 다 이 부부와 아는 사이야?"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두 사람의 정체였다. 보기에 연상인 쪽은 15세, 연하인 쪽은 11세 정도였다.

연상 쪽이 차림새가 좋은 것을 보면, 무가(武家)의 자식과 소성(小姓)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 추론이 올바르다고 가정했을 경우, 소년들이 굳이 부부를 도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방심하다 당했는지, 주인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연하의 소년은 어깨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나와 부부 사이에 혈연은 없다. 하지만 약한 자를 못본 척 하는 것은 내 신념에 어긋난다"


"……그것뿐이야?"


"그 이외의 이유 같은 건 없다"


망설임없이 단언하는 모습에 시즈코는 소년이 속 검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만약 그런 생각을 했다면, 아까의 문답에서 조금 더 말을 신중히 골랐을 터였다. 하지만 소년은 서투르면서도 말에 일절 꾸임이 없었다.


"응, 고마워. 그럼, 부부에게 묻도록 하지요. 그 애를 양자로서 맞아들였다는 말인데, 어디서 맞아들인 거죠?"


"어, 아, 네. 그…… 저기, 오다 가문이 관리하는 고아원입니다"


"그럼 양자 입양 증서가 있을 텐데, 그건 잘 보관하고 있나요?"


오다 가문 관할의 고아원은 노예 판매장이 아니라, 부모를 잃은 아이를 자립시켜 사회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까라서 태반은 장인의 공방에 제자로 들어가지만, 드물게 양자로서 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그 때, 고아원을 관할하는 오다 가문의 조직에서 발행되는 공문서가 '양자 입양 증서'이다.


"아, 네! 확실히 받았습니다!"


"그럼 그게 진짜라고 가정하면…… 대금을 청구할 곳은 오다 가문이 되니까, 그쪽과 이야기해 주세요"


산적의 리더 격에게 시즈코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고아원에 있는 고아가 정말로 노예이며 도망 노예였던 경우, 매입 대금을 오다 가문이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노예 상인에게서 고아를 산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이다. 증명할 수 없는데다, 노부나가의 기분이 나쁠 경우 뼈아픈 댓가가 기다리고 있다.


"우, 우우우우우우웃기지 마! 이쪽은 5관문(貫文)이나 손해를 본…… 윽!"


격앙된 사내는 다시 칼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은 사라지고, 완전무장한 아시가루(足軽)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깨닫고 움직임을 멈췄다.


"주군, 명령하신 대로, 100명을 모아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산적들의 마음이 꺾이려 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노련한 병사들이 시즈코의 앞에서 공손하게 예를 올리며 한 말에 산산이 박살나 버렸다.


그 후에는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정리되었다. 건네받은 양자 입양 증서를 조회해보았으나 위조가 아닌 것이 증명되어, 부부의 주장이 옳은 것이 증명되었다.

산적들은 소동을 일으킨 죄로 경라대에 연행되어갔다. 젊은 소년들은 부부를 지켰기에 문책을 받지는 않았으나, 경라대를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엄중한 주의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소년의 상처를 확인했는데, 예상외로 깊어서 봉합이 필요한 상처였기에 치료하려고 했으나, 소년이 완강히 거절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상처, 대단치 않다"


"으―음, 그렇게 말해도 상처가 붙으면서 썩는 경우가 있거든?"


전국시대의 무장은 상처의 치료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이것은 치료를 받으면 나약한 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이유였다. 반대로 백성들은 독자적인 치료법을 이용하여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한편, 전장에서의 치료방법이라고 하면 실로 거칠어서, 현대 기준으로는 효과가 의심스러운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전투에서의 부상 중 많은 화살 상처의 경우, 화살을 힘으로 잡아뽑은 후에 안정시키는 것 뿐이었다.

게다가 안정시킨다고는 해도 자면 죽는다고 하여 자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게다가 식사도 주지 않는다는 고문에 가까운 난폭한 것이었다.

전장에는 약 같은 건 없었기에, 근처에 있는 것을 이용한 수상한 민간요법이 만연했다.

예를 들면 말똥을 달인 물을 마시면 피가 멎는다던가, 소변을 마시면 통증이 완화된다던가 하는 미신이 받아들여졌다.


시즈코는 그러한 치료 방법을 폐지하고, 부상병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금창의중(金瘡医衆)을 종군시켰다.

현대 의학만큼 고도의 치료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현대 의학 중에서 부상병의 치료 방법이나 약학을 배운 금창의(金瘡医)는, 시즈코 군의 전사자를 줄이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부상당한 시즈코 군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잘 죽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이유였다.


"으…… 문제없다!"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그 상처가 원인이 되어 반년 후에 죽거나, 상처가 썩어서 구더기가 생기거나 한 끝에 뼈까지 균이 들어가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맛보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뭐 억지로 권하진 않을게"


설득하고 있는건지 협박하고 있는 건지 구별이 잘 안 가는 시즈코의 말에, 연하의 소년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지만 고개를 가로저어 자신의 상상을 머릿속에서 털어냈다.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연상의 소년은, 무거운 한숨을 쉬고는 시즈코 쪽을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만, 그를 치료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상처로는, 정말로 당신의 말씀대로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주군…… 고집을 부려 죄송합니다. 소생도 치료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연상의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섬기는 상대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고집을 부릴 수 없다고 생각한 연하의 소년은, 머리를 땅바닥에 비빌 기세로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 다 고개를 들어. 하지만 시장의 한 구석을 점거하고 치료하는 것은 문제네. 두 사람이 괜찮다면이지만, 내 집으로 와 줬으면 하는데…… 문제없겠어?


"문제없습니다"


"주군, 어린애(童)라고는 해도 모르는 자를 집에 들이는 것은……"


지금까지 말이 없던 겐로는, 사이조를 보면서 시즈코에게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사이조는 겐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매사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본 겐로도 이마에 손을 짚고 신음소리를 낸 후,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지요, 주군께서는 사이조 님도 어이없어할 정도로 무방비였습니다. 이제와서 늙은이의 잔소리 따위, 간단히 흘려들으시겠죠"


"아니아니아니, 금창의중을 데리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들한테 부탁할 거에요. 게다가 겐로 할아버지 속을 지나치게 썩이지 않게 주의하고 있거든요"


전력으로 부정하는 시즈코였으나 사이조와 겐로는 나란히 한숨을 쉴 뿐이었다. 제대로 호위도 붙이지 않고 쿄의 거리를 싸돌아다니고 있는 시점에서 완전히 방심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잔소리를 마음 속으로 집어넣고 겐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 주군, 설마 그대로 귀가하실 거라고 말씀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냥 무시당해버려서 울고 싶은데…… 아니, 그냥 돌아갈 건데요?"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런 그녀에게 어이가 없어졌는지 겐로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귀가하실 거라면 이곳에 있는 저희들이 호위하겠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주군! 주군께서는 스스로를 너무 가볍게 여기십니다!"


"네, 네. 잘 부탁해요?"


괜히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겐로의 말에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겐로였으나, 병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고함쳤다.


"이놈들아! 주군께서 저택으로 돌아가신다! 전원, 위치로!"


겐로의 말에 병사들이 튕기듯 일제히 시즈코의 주위를 둘러쌌다. 누구도 접근시키지 않는 방어진에 시즈코는 건조한 웃음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하, 하하…… 이제 그냥 맘대로 하세요) 그, 그럼…… 돌아갑니다―"


겐로의 목소리와는 반대로 맥빠지는 목소리로 시즈코는 병사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소년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하여, 실을 뽑을 수 있게 되는 것이 2주일 후였다.

최악의 경우에는 금창의중을 남겨두고 기후로 귀환하게 되지만, 노부나가 쪽도 이래저래 시간이 걸리고 있어서 조금 더 쿄에 체류하게 되었다.


"조정(朝廷)이란 데는 이래저래 복잡한 일(決まり이 많은 것 같으니까. 쇼우 짱, 장작 세 개 줘"


예정외의 체류에 시간이 남아돌게 된 시즈코는, 저택에 갖춰져 있는 내화 벽돌제의 아치형 돌가마에서 과자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 돌가마로 구운 과자는 카스테라였다. 물론, 그걸 혼자서 다 먹는 것은 아니다.


"여기, 장작 세 개 입니다"


"응, 고마워"


장작을 받아들자, 시즈코는 바로 두 개를 던져넣어 화력을 올렸다. 불의 상태를 보니 세 개나 필요없다는 걸 알자, 남은 하나의 장작을 옆에 내려놓았다.


"집을 마냥 비워두면 도적이 침입한다니 고전적이네"


평소에 쓰이지 않는 저택에 사람이 들어오면, 짐을 노리고 도둑이 침입한다. 그리고 숨어드는 인간은 가급적 사람이 적은 시간을 노린다.

시즈코나 케이지들이 집을 비웠을 때, 돈 되는 물건을 노리고 도둑이 세 명 숨어들었다.

다만 도둑의 침입을 한발 빨리 알아챈 비트만들과 시로가네, 쿠로가네, 아카가네가 문답무용으로 그들을 덮쳐갔다.

그 결과, 첫번째 도둑은 비트만들에게 목, 손, 다리를 물려 반쯤 죽은 상태가 된 끝에, 바르티가 마무리라고 말하는 듯 도둑의 목을 물어뜯었다.

두 번째 도둑은 시로가네의 발톱이 안와(眼窩)를 관통하고 뇌까지 파고들어 즉사, 세 번째 도둑은 아카가네와 쿠로가네의 발톱에 눈과 폐, 내장을 파괴당한 끝에 연못에 떨어져 질식사했다.


겐로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시즈코는 병사들을 시켜 똑바로 보고 싶지 않은 시체를 내가게 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도, 뇌나 내장이 드러난 시체는 보고싶지 않은 건지, 천을 덮어 보이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 도적 침입 사건 이후, 시즈코가 있는 저택에 병사들이 순찰을 돌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비트만들은 스트레스라도 쌓여 있었던 걸까,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사건 이후부터 그들과 노는 때가 많아졌다.

평소 이상으로 시즈코가 신경써주게 되자 비트만 일가, 시로가네, 쿠로가네, 아카가네의 기분은 고양되었다.

돌가마에서 카스테라를 굽고 있을 때도 놀아달라고 말하듯이 시로가네는 날개를 시즈코를 치고 있었다.


"미안해, 오늘은 손님이 올 거야"


사과의 말을 하면서 시즈코는 시로가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로가네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좋아하여, 기분좋은 듯 시즈코에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시즈코의 쓰다듬이 끝나자 한 번 울더니 날아올랐다. 저택에 있는 마음에 드는 나무에 내려앉더니, 거기서 다시 한 번 울었다.


"후훗, 내일은 놀 수 있으니까 오늘은 참아줘"


말이 끝나자 시즈코는 다시 돌가마 쪽을 향했다. 이윽고 맛있어 보이는 카스테라가 구워졌을 무렵, 소성이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손님이 왔음을 고했다.


"여기로 안내해 줘"


"아뇨, 그게…… 저"


소성이 우물거리는 것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치료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 는 이유로 소년들이 오늘 찾아올 것은 소성이나 병사들에게 전달해 두었다.

설령 두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데려오더라도, 그건 친족 중 누군가라던가 아니면 짐꾼인 인부 정도다. 그 정도로 소성이 이렇게까지 당황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따라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혹시 다른 사람이 찾아왔어?"


"예…… 도쿠가와(徳川) 님께서, 오셨, 습니다……"


"……미안, 한번 더 물어도 될까?"


자기 귀를 의심한 시즈코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서 소성에게 질문했다.


"아뇨, 거짓말도 뭣도 아니고, 도쿠가와 님께서 오셨습니다"


"에엑―, 어째서?

나, 초대한 기억도 없고, 애초에 여기에 있다고 전한 기억도 없다고. 이, 일단 손님 방으로 모셔 주겠어? 여길 정리하고――"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저에겐 툇마루(縁側)로 충분하지요"


소성에게 이에야스(家康)를 손님 방으로 안내하라고 지시를 내리려 했으나, 시즈코의 목소리를 끊으며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상황에서는 한 명 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쥐고 머뭇거리며 물었다.


"도쿠가와 님…… 이시군요. 아니 아무래도 툇마루는 실례가……"


"핫핫핫, 여기에 있는 것은 맛있을 듯한 냄새에 이끌려 온 너구리입니다, 시즈코 님"


대답하기 곤란한 말이었다. 머리를 진정시킨 후, 시즈코는 이에야스 쪽을 돌아보았다.

툇마루 안쪽에 있는 이에야스는 싱긋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뒤에 호위 무장들이 있었는데,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혼다(本多) 님에 사카키바라(榊原) 님에…… 핫토리(服部) 님? 꽤나 엄중한 경호네)


이에야스는 시즈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적당한 장소에 걸터앉았다. 호위역인 세 사람도 각자 소정의 위치로 이동했다.


"죄송하군요. 헤이하치로(平八郎)가 달콤한 냄새가 난다고 하여, 약간 억지스럽지만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주, 주군!? 소, 소생은 그런 의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이유를 이야기하는 이에야스에게, 타다카츠(忠勝)는 당황하여 부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한조(半蔵)나 야스마사(康政)도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으나, 시즈코는 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카스테라를 자르기 위해 날붙이를 꺼낼 테니, 가능하면 반응하지 말아 주세요"


만약을 위해 미리 말을 하면서 시즈코는 손을 씻은 후, 빵 자르는 칼을 꺼냈다. 보통의 날붙이와 달리 물결모양의 칼날(波刃)이긴 했으나, 역시 무장인 세 사람은 무의식중에 반응하고 있었다.

약간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여열(余熱)을 뺀 카스테라의 사방을 잘라냈다. 그게 끝난 후 일정한 두께로 자르면 완성이다.


"주군, 예의 두 사람 말입니다만 급한 용무가 생겨버려서 이곳으로 올 수 없게 되었다는 연락이 방금 들어왔씁니다"


카스테라를 접시에 담고 있을 때, 소성이 아니라 겐로가 보고를 올렸다. 보고를 들은 시즈코는 내심 아쉽게 생각했으나,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용무라면 어쩔 수 없네요"


"예. 듣자 하니 고향에 있는 부모가 병에 걸렸다고…… 그러한 사정은 편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입니다"


내밀어진 편지를 받아든 시즈코는 편지를 펼쳤다. 부모가 병에 걸려 방문할 수 없게 된 것, 갑작스러운 일이라 죄송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시즈코는 편지를 곱게 접어 품 속에 넣었다.


"인연이 있으면 다음 기회가 찾아오겠지요. 그 때 감사를 받으면 되는 거에요"


"아뇨, 그들은 편지와 함께 답례품을 보내왔습니다. 이쪽의 칼(太刀)이 그것입니다"


"이러다가 일곱 자루 정도 칼을 차고 다닐 것 같네요……"


전국시대에서 표준적인 선물이라고 하면 황금, 말, 칼의 세 가지였다.

드물게 노부나가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에게 병풍(屏風)을 보낸 것처럼 진기한 물건을 선물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선택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선물되는 것이 칼이었다.


"뭐 선물에 뭐라고 하는 것도 좋지 않겠죠. 고맙게 받기로 하죠"


창고에 보관하게 되겠지만, 이라고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린 시즈코였다.

구워진 카스테라를 16조각으로 커팅하여 두 조각씩 접시에 담았다. 3개 모두 16조각으로 커팅했으나, 노부나가에게 하나, 유곽(花街)에 있을 케이지에게 하나씩 전달하도록 의뢰했다.

시즈코에게는 나가요시도 슬슬 케이지와 행동을 함께 하고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에, 케이지에게 전달해주면 문제없을거라 판단했다.


"특이한 식감이로군요"


푹신한 식감과 부드러운 입맛에 이에야스는 절찬했다. 타다카츠나 한조들도 같은 생각으로, 입에 넣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카스테라를 즐기던 이에야스였으나, 갑자기 접시를 내려놓고는 자세를 바로했다. 그에 따라 시즈코도 무의식중에 자세를 바로했다.


"오늘은 시즈코 님께 부탁이 있어 오게 되었습니다"


"부탁…… 인가요?"


"걱정하지 마시길. 오다 님의 허가는 받아 두었습니다"


이에야스가 눈짓을 하자 한조가 서장(書状)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받아들고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노부나가의 주인장(朱印状)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들어 이에야스에게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받은 이에야스는, 싱긋 하고 사람좋은 미소를 떠올리면서 부탁을 말했다.


"우리 헤이하치로와 한조를 당분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시즈코에게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한편, 시즈코의 본래 손님인 두 명의 소년은, 며칠에 걸쳐 어떤 장소로 향했다. 도착 후, 그들은 그 장소의 주인과 만나는 것을 허락받고,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돌아왔습니다, 영주님(御実城様)"




화승총에 라이플링을 새기는 작업을 시즈코에게 부탁받은 지 1년, 아시미츠(足満)는 겨우 완성을 보았다.

총에 라이플링을 새기는 방법은 크게 나누어 두 종류가 있다.

라이플링 브로치(rifling broach)라고 불리는 전용 공구로 절삭가공을 하는 방법과, 냉간단조법(冷間鍛造法, cold hammering, ※역주: cold forging이라고도 함)이라 불리는 해머 기계로 쳐서 라이플링을 성형하는 방법 등 두 종류이다.


냉간단조법은 제조설비가 대형화되는 결점은 있으나, 라이플링에서 약실까지 한번에 성형할 수 있어 대량 생산에 적합한 방법이다.

그러나 수압이나 유압을 사용하여 초 고압 프레스를 하는 설비 같은 건 전국 시대에서 바랄 수 있을 리 없었다. 필연적으로 브로치 칼날에 의한 절삭가공밖에 선택지는 없었다.


브로치 칼날에 의한 절삭가공은 문제없었으나, 가공시간이 대단히 길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작업은 우선 라이플링 브로치를 총신에 넣고 돌리면서 빼는 것을 몇 번 반복한다. 다음으로 칩(burr)으로 불균일해진 라이플링의 산을 리이머(reamer)를 통해 균일하게 만든다.

라이플링의 산이 균일해지면, 라이플링 브로치 작업을 다시 한다.


기술보다도 정신적으로 힘든 작업 내용이었다. 도중에 수차(水車) 동력으로 라이플링을 새기는 시설을 건설했으나, 토크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톱니바퀴를 끼워넣어 토크를 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나, 중요한 칩을 깎아내어 라이플링의 산을 균일하게 만드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하루에 몇 시간만 작업을 하고, 남은 시간은 다른 부품을 제조하는 것으로 정신적 부담을 해소했다.


화승총은 한 자루 만드는 데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린다. 하지만 라이플링을 새긴 화승총은, 라이플링을 새기는 작업에 5일이 걸리기에, 최하 6일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어박스나 토크 컨버터, 절삭가공과 칩 제거를 번갈아 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조금 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겠지만, 하나같이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아시미츠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포기했다.


(밀조(密造) 권총에 관한 프로그램을 봤을 때 겨우 그런 일에 며칠이나 걸리다니 나약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의외로 정신적으로 힘들군. 약간이지만 노예가 있으면 좋겠는걸…… 정보 보안면에서 문제가 있으니 안 되지만)


최종 공정에 들어간 화승총의 총신을 체크하면서 아시미츠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것이 완성되면 시즈코도 기뻐할 거라 생각하니, 사그러들던 기력도 되살아났다.

총신이 완성되어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라이플링의 성능을 활용하는 미니에 탄의 제조 도구가 필요해진다. 그게 끝나면 총신을 조립하고 마지막으로 시험 사격을 하면 완성이다.


"겨우 한 자루 완성했다"


겉보기에는 엔필드(Enfield) 총에 가까워서, 지금까지의 화승총처럼 볼에 대고 쏘는 형태가 아닌 견착형의 총상(銃床)이었다.

이걸로 갑주를 입고도 들기 편해지는 형태를 연구할 필요가 생겼으나, 이건 그가 윈체스터 M1873 카빈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문제였다.

옆에서 보면 쓸데없는 고생을 떠안은 아시미츠였으나, 그는 총의 형태를 연구할 때 가장 빛나고 있었다.


(남만 총입니까)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 성능은 나중에 보여주지. 먼저 보고를 들어볼까"


들고 있던 화승총을 테이블 위에 놓고 아시미츠는 의자에 앉았다. 토비카토(鳶加藤)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반 오다 연합 중, 가장 오다 가문에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엔랴쿠지(延暦寺)입니다. 아자이(浅井) 가문은 지금 군사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아사쿠라(朝倉) 가문은 당주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 그것이 가신들 사이에서 불만이 되고 있습니다. 혼간지(本願寺)는 일부가 이것을 기회로 잇코잇키(一向一揆)의 나라를 세우자고 소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역시 가장 눈에 거슬리는 조직은 쿄에 가까운 엔랴쿠지인가"


(……외람됩니다만 엔랴쿠지는 위험합니다. 지금의 엔랴쿠지는 타케다(武田) 가문이 비호하고 있습니다. 만약 엔랴쿠지를 치면, 그것은 강대한 힘을 가진 타케다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됩니다)


엔랴쿠지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승려인 사이쵸(最澄)에 의해 문을 연, 긴 역사를 갖는 천태종(天台宗)의 본산 사원이다.

주지(住職)는 천태좌주(天台座主)라고도 불리며, 콘고부지(金剛峯寺)와 나란히 헤이안 불교의 중심이었다.

황실이나 귀족의 존숭(尊崇)을 얻어 큰 힘을 가지게 되자, 강대한 권력으로 원정(院政, ※역주: 옛날 상황(上皇)이나 법황(法皇)이 천황(天皇)을 대신하여 그 거처인 院에서 행한 정치)을 했던 시라카와 법황(白河法皇)조차 제어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무장화(武装化)가 진행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수행을 게을리하고 주색에 탐닉하며, 그들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싸움에 나가서 사람을 죽이던가 요여(神輿, ※역주: 여기서는 쇼군을 말하는 듯)에게 집단으로 떼를 쓰거나 하는 집단으로 변해 있었다.


"훗, 그 자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지만, 도망쳤다고 생각되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군. 그렇지…… 그 놈을 박살내서 관록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군"


(타케다 가문을 멸망시킨다…… 고 하셨습니다만, 그런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알겠느냐, 토비카토.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강자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타케다던, 우에스기던, 엔랴쿠지던, 혼간지던, 언젠가는 패하여 멸망한다. 물론, 우리들도 멸망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


(……)


"애초에 나는 멸망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말이다. 그럼, 이야기는 끝이다. 당장 딱히 큰 일거리는 없지. 타케다의 유랑무녀(歩き巫女, ※역주: 적당한 단어가 검색되지 않아 임의로 번역함. 뜻은 특정 신사 등에 소속되지 않고 전국을 떠돌며 일하던 무녀를 말하며, 예능인이나 창녀 일을 겸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는데, 여기서는 타케다의 간자로서 일하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나 우에스기의 노키자루(軒猿)…… 그렇군, 요즘 이래저래 귀찮게 하는 도쿠가와의 이가모노(伊賀者, ※역주: 흔히 말하는 이가(伊賀)의 닌자)를 처리해라. 심문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대단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을테니"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라고 말하듯, 아시미츠는 품에서 돈이 든 자루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는 화승총을 걸머지더니, 그는 토비카토에게 더 말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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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8 1571년 5월 중순


간자 사냥이 벌어진 며칠 후, 홍역의 감염자는 확 줄었다. 4월 말에는 신규 감염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격리 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사람들도 거의 무사히 퇴원해갔다.
지금도 여전히 오다 가문의 영향력 밖에서는 맹위를 떨치고 있는 홍역이었으나, 한 번 감염되면 체내에 항체가 만들어져, 10년 이상에 걸쳐 감염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밖에서 온 감염자가 쿄(京)에 들어오더라도, 다시 쿄 안에서 홍역이 유행하지는 않는다. 그 후에는 MR(홍역, 풍진(風疹) 혼합) 백신을 준비할 수 있으면 완벽하지만, 현대에서도 제로 상태에서 환경을 구축하고 제조하려면 몇 년은 필요하다.
전국시대에서는 더욱 시간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히 완성되진 않을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지금 상태로 가면 실용화는 30년에서 40년 후라고 예상되고 있었다.

저택 앞의 인파도 줄어들고, 쿄는 평소의 조용함을 되찾고 있었다.

"슬슬 오와리(尾張)로 돌아가도 문제없을 것 같네"

전령이 보내온 보고서를 다 읽은 시즈코는,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판단했다.
홍역의 감염자 수는 감소하는 경향이었고, 4일 이상 신규 감염자는 없으며, 임시의 격리 병동도 절반 이하로 충분하다는 상황이라면, 이 이상 쿄에 머무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 종이에 파묻힌 생활이 겨우 끝나네"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주무르는 나가요시(長可)였으나, 그는 그가 말한 만큼 서류 정리에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볼 때는 다소의 사무 처리라도 서류에 파묻힌 생활로 느껴졌던 것이리라.

"카츠조(勝蔵) 군이 서류 정리를 땡땡이치고 나한테 떠넘긴 건은 불문에 붙일까 했는데, 그런 소리를 할 여유가 있다면 아직 더 할 수 있겠네"

약간 비난을 담아 시즈코는 나가요시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그 이상 뭔가 말할 생각은 들지 않아, 그녀는 피곤한 듯 한숨을 쉬었다.

"카츠조…… 네 이놈, 바깥에서 놀고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시즈코 님께 서류를 떠넘겼던 것이냐"

반응한 것은 사이조(才蔵)였다. 목소리의 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아, 아니 잠깐! 이, 이건 말이지, 중요~한 사정이 있었다고. 응, 그러니까, 조금 진정하자……고?"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칼을 쥘 듯한 분위기의 사이조에게 나가요시는 당황하여 양손을 흔들며 변명했다.

모의전 이후, 나가요시의 마음 속에서 사이조는 '화나게 하면 안 되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싸움(荒事)에 익숙해 있기에 보통 사람이 화를 내는 정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가요시는 사이조의 분노에 순수한 두려움을 느꼈다.
특히 나가요시는, 그가 옅게 미소를 띄우는 것은, 겉에 달라붙은 미소를 띄우는 눈빛 속에 광기를 품고 있다고 느꼈다.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고 하긴 어려운 나가요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이조는 화나게 해서는 안 되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좋아. 그 변명이라는 걸 들어볼까"

"어, 응. 그, 말이지"

"단, 시답잖은 이유라면 용서하지 않겠다"

정말로 나가요시의 변명이 사이조의 귀에 들어갔는지 수상할 정도로 그는 조금씩 나가요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사이조의 실력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나가요시는, 그의 분노를 어떻게든 진정시키려 했다.
그 옆에서, 싸움은 남자의 훈장이라고 말하는 듯 케이지(慶次)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네요. 이쪽은 두통거리가 잔뜩 생겼는데"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방의 한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구석에는 당장이라도 넘칠 듯 서신이 가득 찬 상자와, 선물로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서신의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얼핏 보기에도 질이 좋은 종이가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보낸 사람은 귀인(貴人)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카톨릭(伴天連)에 종교 세력(寺社), 쇼군 가문(将軍家), 조정(朝廷), 천황의 측근인 고관들(公卿衆), 궁중(禁裏) 관계자 등등 쿄의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열렬한 권유가 끊이질 않는군"

말의 내용과는 달리 케이지는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시즈코에게는 고민거리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각 세력이 그녀에게 정신이 팔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옛부터 유행병은 사회나 경제, 문화 면에 다대한 악영향을 끼쳐왔다.
한 번 감염력이 높은 병이 유행하면 수만 명, 많을 경우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짧은 기간 동안 주민의 7할이 사망한 케이스도 있었다.
일본에서는 홍역은 역병신(疫病神)으로 신격화되어, 천연두나 수두와 함께 '3대 질병(お役三病)'이라고 할 정도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유명하여 다른 질병이 가려지기 일쑤인데, 천연두나 홍역도 충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감염되면 높은 확률로 죽음에 이르는 병을, 희소한 약제(薬剤)를 쓰지 않고 신불(神仏)에게 기도하지도 않고 방역했다.
위로는 벼슬아치들(公家衆)이나 조정 관계짜, 아래로는 노예나 거지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감염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병을 극복하고, 자기 발로 걸어서 퇴원했다.
홍역이 유행했는데 극히 소수의 병사자만으로 억제했다. 이것은 전 일본의 권력자들을 진감(震撼)시켰다.
홍역 방역에 비협조적인 종교 세력이나 무가(武家)들은 '오다가 병든 사람을 죽여 바꿔치기했다'라느니 '이매망량(魑魅魍魎)을 부려 쿄에 병을 일으켰다'느니, 생트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문을 퍼뜨렸지만, 태반의 사람들은 오다의 지혜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부나가의 지혜의 출처가 명확했기에, 시즈코에 대해 스카우트 공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노부나가 이외에는 섬길 생각은 없는 시즈코였으나, 매일같이 권유가 들어오면 기분이 처진다.

"나한테 돈을 쓸 바에야, 치안 유지에 돈을 썼으면 좋겠어. 안 그래도 잇키(一揆) 때문에 치안이 악화되어서, 지금도 사람들에게 여유가 없는데 말야"

쿄는 노부나가의 치안 정책으로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오와리(尾張)나 미노(美濃)와 달리, 사람들의 생활에 여유가 없었기에 경범죄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치나 문화의 중심인 쿄에서는, 다양한 세력들이 뒤섞여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

"그러고보니 케이지 씨 용으로 주문한 말,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라고 했었지. 쿄에 남아 있다가 받을래요?"

"핫핫핫, 시즛치는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군"

"뭐 그러네. 이번의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에는 늦겠지만, 다음 싸움까지는 도착하려나ー"

아랍 종과는 별도로, 시즈코는 케이지 전용의 말을 프로이스에게 주문했었다. 어째서 케이지 전용이냐고 하면, 시즈코가 1년 전에 원했던 말을 제대로 탈 수 있는 게 케이지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데스트리어(Destrier)라. 현대에는 맥이 끊겼지만, 군용의 중마종(重馬種) 중 특히 대형에 제일 스태미너가 뛰어난 종류였지)

중세 유럽에서는 중장기병(重装騎兵)의 군마로서 체격이 큰 마종이 요구되었다.
현대의 중세를 그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거구를 가지고, 순발력이 뛰어난 말보다도 안정된 지구력이 요구되었기에 체고(体高)는 낮으면서 다리도 두꺼운 것이 선호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훌륭하고 강한 군마가 데스트리어다. 대형이라고는 해도 당시의 사람들과 비교해서의 이야기로, 그 체고는 현대의 서러브레드(Thoroughbred)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능은 압도적이라 그레이트 호스(Great Horse)라고 불렸다.
안타깝게도 현대에서는 맥이 끊긴 마종인 데스트리어지만, 오늘날의 중마종으로 그 대형마로서의 유전자는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실제로 전장에서 사용된 군마로서는 코서(Courser)가 가장 유명하며, 어원인 Corsiero(싸우는 말)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그대로, 전쟁에서 타는 말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에 반해 데스트리어는 전쟁보다도 마상 시합이 주된 용도였다. 이것은 데스트리어가 대단히 고가라서, 경우에 따라서는 코서의 약 30배나 되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대형의 말로 유명한 것은 페르슈롱(Percheron) 종이지만, 현대와 같은 사이즈가 된 것은 근대 이후로, 중세, 근세 시대에는 데스트리어와 크게 차이 없는 크기였다.

"누구 있어요?"

사이조와 나가요시의 소란을 구경하는 것에 싫증이 난 시즈코는, 입구를 향해 말했다. 직후에 거친 발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아까 시즈코가 말을 건 장소에서 소리가 멈췄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겐로(玄朗)의 목소리가 입구 저편에서 들려왔다. 대체 귀가 어떤 구조를 하고 있는건지 약간 궁금해진 시즈코였으나, 요즘 피로가 쌓인 그녀는 금방 생각을 멈추었다.

"내일은 오와리로 귀환할 테니까, 데려온 병사들 전원에게 귀환 준비를 명령해둬요. 끝나면 휴식을 취하고, 내일에 대비할 것도요. 이 이상, 쿄의 정치에 휘말리는 것도 지겨우니까요ーーーー"

말하는 도중에 하품이 나온 시즈코였다. 홍역 때는 육체적 피로였지만, 현재는 정신적 피로 쪽이다. 게다가, 상대는 이쪽의 사정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문을 걸어잠그고 몸이 좋지 않은 것을 이유로 만나지 않더라도, 상대쪽에서 오는 압박으로 시즈코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앗, 미안해요. 아무튼, 나는 이 이상 쿄에는 남지 않아요. 내일은 오와리로 귀환할 거에요. 그 후의 이야기는 오와리에 도착한 후에 하죠. 이상의 내용을 전령에게 전해 주세요"

"옛! 잘 알겠습니다. 주군도 피곤하실 테니, 번거로운 일(露払い)은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부탁해요"

시즈코의 말에 짧게 대답한 후, 겐로는 이번에는 재빠르게, 동시에 발소리를 가능한 한 죽이고 물러났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짜증과 피로가 얼굴에 드러나 있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탓에 둔해져 있는 사고회로를 억지로 가동시켰다.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평소보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는 간신히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서투른 사람의 생각은 시간 낭비일 뿐이니(下手の考え休むに似たり),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단 하나였다.
시즈코는 카이저와 비트만을 가까이 끌어당기더니, 딱히 누구에 대해 하는 게 아니라 혼잣말처럼 결론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잘래. 내일이 되면 깨워줘요"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시즈코는, 다음날 각 세력으로부터의 권유에 일괄적으로 거절하는 답장을 보내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오와리로 귀환했다.
오와리의 자택에 도착하자, 시즈코는 즉시 노부나가로부터의 주인장(朱印状)을 아야(彩)로부터 받아들었다. 내용을 확인하자, 그녀의 예상대로 나가시마 잇코잇키에 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강행군을 할 정도로 급한 내용도 아니어서, 기후(岐阜)로 갔을 때 기진맥진해서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쿄에 종군한 인원들 전원에게 교대로 합계 이틀간의 완전 휴양을 명령했다.

2일 후인 5월 초순.
제대로 휴식을 취한 시즈코는 마음을 다잡고는, 나가시마 잇코잇키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군의 간부들을 소집했다.
소집한 사람은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아시미츠(足満), 그리고 궁기병대(弓騎兵隊)의 대장인 니스케(仁助)와 요키치(四吉) 등 6명이었다. 타카토라(高虎)는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쇼우(蕭)는 시녀였기에 아야와 마찬가지로 참가할 수 없었다.

"이번의 나가시마 잇코잇키에 대한 진군 말인데요, 주인장에는 '마음대로 하라'고밖에 적혀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쪽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게 되었어요"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뭘 해야 좋을지 혼란스럽군"

아시미츠가 불만을 말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는 않는 건지 작게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확실히 결정되어 있으니까 안심해요. 우선 적의 상황부터 설명할게요. 나가시마 잇코잇키슈(一向一揆衆)는 나가시마 성(長島城)과 14개의 성채(城砦)로 방어력을 높이고 있어요. 나가시마 성을 공격하는 건 어려우니, 이번에는 무시할 거에요"

나가시마 성을 중심으로 오오시마 성(大島城), 나카에 성(中江城), 오다미사키 성채(小田御崎砦), 오오토리이 성(大鳥居城), 카토리 성채(香取砦), 야나가시마 성(屋長島城), 마츠노키 성채(松ノ木砦), 시노바시 성(篠橋城), 이치노에 성채(一ノ江砦), 우구이우라 성채(鯏浦砦), 에비에 성채(蛯江砦), 카로토 성채(加路戸砦), 오시츠케 성채(押付砦), 토노메 성채(殿名砦) 등 14개의 성채를 구축하고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는 오다 군에 저항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제 1차 나가시마 침공은 4일 정도만에 끝난 것을 볼 때, 시즈코는 힘으로 성채를 공격해도 쓸데없이 병사를 소모할 뿐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의 주역은 궁기병대, 지휘는 아시미츠 아저씨에게 맡기겠어요. 예의 병기는 완성된 걸 계산에 넣고 있는데, 괜찮아요?"

"과연, 그런 얘기인가. 문제없다, 예의 병기는 운용시험도 마쳤다. 하천(河川) 위에서 사용했는데, 하루 방치해 둔 것도 사용할 수 있었지"

"그럼 문제없네요"

"어이, 무슨 얘기야. 나도 알 수 있게 설명해 줘"

이야기의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난 나가요시가 약간 거친 말투로 의문을 입에 올렸다.

"미안해. 그럼 우선 지도를 봐 줄래?"

시즈코는 킨키(近畿) 지방과 츄부(中部) 지방을 대충 그린 지도를 탁상 위에 펼쳤다. 전원이 그것에 시선을 돌린 것을 확인하자, 시즈코는 작은 지휘봉을 한 손에 들고 설명했다.

"우선 이번에 수행할 작전의 주 목적은 사이카슈(雑賀衆) 제거에요. 사이카슈(雑賀衆) 제거에요. 사이카슈가 혼간지(本願寺)에 협력하고 있는 건 다들 알고 있지요?  그럼 영주님께서 나가시마를 공격하면, 그들은 반드시 쿠와나(桑名) 방면에서 해로(海路)를 이용해 나가시마에 보급지원을 할 거에요. 이 보급대를 제거하는 게 이번의 목적이에요"

"과연, 보급대를 제거하면 물자와 인원 양쪽으로 피해를 줄 수 있지. 하지만, 바다 위에서 활을 다루는 건 어렵지 않을까"

"그건 이해하고 있어요. 게다가 보통의 활로는 적 방어 시설에 상당히 다가가야 해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도 궁기병대의 실력이 필요한 거에요"

말에서 내린 상태에서는 발 밑이 불안정한 장소에서의 저격을 해내고, 한편 말 위에서도 충분한 저격 훈련을 쌓은 궁기병대라면 배 위에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보급대를 노릴 수 있다.
문제는 배 위에서의 저격에 관한 숙련도가 낮은 점이지만, 전투가 길어야 며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눈감을 수 있다.

"그만큼 멀면 적의 판별이 힘든 거 아냐?"

"무슨 말이야. 바다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배는 모조리 물고기밥으로 만드는 거야"

무심하게 중얼거린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는 지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답 내용에 질문한 나가요시 자신이 놀랐지만, 그녀는 딱히 신경쓰지않고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오다 가문의 각오를 보여줄 필요도 있어요. 그러니 일일이 상대를 확인한 후에 예의바르게 공격하거나 하는 게 아니에요. 선수필승(先手必勝), 물자고 인원이고 뭐든지 다 가라앉혀버려요"

"항복해온 경우엔 어떻게 할 거지?"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시미츠는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그의 의도를 이해했는지, 시즈코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전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요. 물자고 인원이고 모조리 바닷속으로 가라앉히는 거에요. 알겠어요? 여기서 약점을 보이면, 놈들은 점점 오다 가문을 얕볼거에요. 그게 장래에 많은 희생을 낳게 되어요. 우리 편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이번에는 어설픈 소리를 할 여유는 없어요"

"아니, 그건 이해하고 있어. 사이카슈가 물고기 밥이 되던 말던 상관없다고. 그런데, 시즈코의 이야기로는 군의 대부분이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들은 뭘 하는 거야?"

나가요시의 의문은 당연했다. 시즈코의 작전으로는 궁기병대와 아시미츠밖에 움직일 구석이 없었고, 그 이외의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등 주력부대에 관해서는 담당 위치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동원해놓고 작전에 종사시키지 않는 상태로는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뭔가 활동을 시켜두지 않으면 좋지 않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음~, 역시 모양새가 안 좋네. 아무래도 1만 중에 50명밖에 움직이지 않는 건 문제려나. 하지만 할 일이…… 아, 맞다. 그럼 그걸 하죠"

나가시마 주변의 지도를 떠올리면서 시즈코는 1만의 병사에게 뭔가 할 일을 줄 수 없을지 생각했다.
잠시 후 그녀는 어떤 전술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거라면 어느 정도 명분이 서며, 나아가 아군의 피해를 억제할 수 있을거라 확신했다.

"시즈코 님, 뭔가 묘안이 있으십니까?"

"단순히 말하면 부성(付城) 전술을 할 거에요. 부성은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설명할게요. 라고 해도 적의 거점의 바로 옆에 이쪽의 거점을 만드는 것 뿐이지만요"

부성이란 적의 성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는, 간이 방어 거점을 가리킨다. [※1]
구조가 비교적 간소하더라도 적의 성을 공격해 함락시킬 수 있고, 또한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적의 성의 근처에 부성을 짓는 전술은 옛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을까"

부성은 하나 정도라고 생각하는 나가요시는, 시즈코의 부성 전술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시즈코의 부성 전술은 자신의 부성을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적 성의 연대를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것으로 외부와의 연락을 끊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방대한 노동력과 토목건축기술, 물자의 수송 능력, 적의 맹공을 막아낼 수 있는 무기 탄약과 병력이 필요해지지만, 그에 걸맞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오와리 측이라면 인프라 정비가 되어 있었기에, 부성용의 물자 반입이나 노동력을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건 부성을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알겠어, 카츠조 군? 예를 들면 이 검은 원이 적의 성이라고 하자. 이 경우, 내가 만드는 부성은 주위를 둘러싸도록 만들게 하는거야"

새하얀 종이의 중심에 검은 원을 그리더니, 시즈코는 검은 원의 주위를 감싸는 육망성(六芒星)을 그리고, 각 정점에 각각 원을 그렸다.

"이 부성 전술의 이점은 이쪽의 피해가 크게 줄어드는 거에요"

부성의 방어 성능을 향상시키면, 설령 적이 치고 나와도 부성에 틀어박혀 양 옆의 부성과 연대하면 간단히 방어할 수 있다. 부상병도 후방으로 보내 부성 안에서 치료하면, 사상자 수를 현격하게 줄일 수 있다.

"적도 바보가 아냐. 원군을 보내올텐데,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적도 후방을 치기 위해(後詰) 원군을 보내올 테지만, 그 때는 부성에 틀어박혀 화살이나 철포를 쏘면 문제없어요. 방어력이 있는 부성에 틀어박혀 있으면, 이윽고 상대는 공략을 단념하겠죠. 그렇게 되면 이쪽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항복시키던, 말려죽이던 마음대로에요"

초기에는 적 성을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적 존재였던 부성이지만, 노부나가가 대규모화 및 네트워크화시킨 것에 의해, 시간은 걸리지만 상대의 성을 확실하게 함락시키는 전술이 되었다.
노부나가도 이것을 바로 깨달은 것은 아니고, 고육지책으로 오다니 성(小谷城)을 부성으로 둘러싸고 공격했을 때, 부성 전술의 유효성을 깨달았다.
이후, 그는 부성 전술을 자주 사용하여 견고한 성을 공략해갔다. 또, 부성 전술은 가신들에게도 채용하게 하여, 히데요시(秀吉)가 톳토리 성(鳥取城)을 공격할 때, 그는 부성 전술을 이용한 대규모 병량 공세를 펼쳤다.

"네가 생각하는 건 여전히 지독하군"

"하지만 전술로서는 흠잠을 데가 없다. 원군이 오지 않으니, 성 안에서 항복이냐 철저 항전이냐로 의견이 갈리겠지. 오다 측으로 변절하는 자가 나오면, 적은 더욱 부담이 늘어나게 되기도 하고"

"자재라던가 자금이 잔뜩 필요하지만…… 오다 나으리는 '마음대로 해라'라고 써놓았으니.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지ー"

"토목공사라면 츄우겐(中間)을 고용하면 문제없으니까요. 나로서는 오와리 측에 있는 이치노에 성채나 우구이우라 성채를 공격하고 싶어요. 사실은 쿠와나 방면을 제압하면 좋겠지만…… 이번엔 포기하지요"

"흠, 상황에 따라서는 성채에 해상 보급을 할 가능성이 있군. 거길 내가 공격하면, 상대는 더욱 절망의 늪에 빠져들겠지"

"해상 봉쇄는 쿠키(九鬼) 수군(水軍)의 도움을 받을 거에요. 스크류 프로펠러는 아직이지만, 용골(竜骨)을 채용한 군선(軍船)은 건조하고 있으니까요. 숫자는 아직 20인가 30 정도지만…… 충분한 숫자라고 생각해요"

스크류 프로펠러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아직 시험 단계로,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의 목재를 용골로 삼는 용골선(竜骨船)의 건조는 실용화되어 있다.

옛부터 일본에서 건조되는 화선(和船)은, 판재(板材)나 꺽쇠(かすがい) 등을 사용하여 배를 만드는 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용골이 있는 배보다 경량이라는 메리트는 있지만, 반면 강도가 약해서 충돌에 약하다는 디메리트가 있다. 이 때문에, 화선은 선체를 사용한 전술이 서양의 배보다 적다.

"그럼 정리하죠. 우선 군을 셋으로 나눕니다. 아시미츠 아저씨를 필두로 쿠키 수군과 궁기병대에 의한 해상봉쇄와 수송대 제거를 담당하는 제 1군. 우구이우라 성채를 노리는 케이지, 카츠조 부대의 제 2군. 그리고 이치노에 성채를 노리는 저와 사이조 부대의 제 3군이네요. 자금은 필요한 만큼 제공할테니 신청해 주세요"

"휘익ー, 통이 크구만"

"돈을 내는 건 영주님이니까요.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 마음대로 하는 거에요. 그리고, 잊기 전에 말해 두겠는데, 상대는 잇코슈(一向衆)니까 설득은 무의미해요. 그럼 다른 게 없다면 해산합니다"

딱히 이의는 나오지 않았다. 목적이 뚜렷하고, 거기에 목적을 향한 경로도 잡혀 있었다.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들은 물론이고, 아시미츠도 이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즈코는 전원을 일별한 후, 조용히 일어서서 전원에게 고했다.

"그럼 각자 준비에 착수해 주세요. 해산!"



제 1차 나가시마 침공은 역사적 사실 대로 1571년(겐키(元亀 2년) 5월 12일, 노부나가는 5만의 병사를 이끌고 이세(伊勢)로 출진했다.
전군이 뭉쳐서 출진한 것이 아니라, 군단은 넷으로 나뉘어서 공격해 들어갔다.
츠시마(津島)에 진을 친 노부나가 본군(本軍), 나카스지구치(中筋口)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군단, 서쪽 강기슭(西河岸, ※역주: '니시가시'라는 지명인지 서쪽 강기슭이란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겠음)의 오오타구치(太田口)에서 공격하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군단, 그리고 이치노에 성채 방면에서 공격하는 시즈코 부대였다.

처음에는 2개 군으로 나누어 공격하려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이치노에 성채의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던 것 때문에 제 2군과 제 3군을 동원하여 이치노에 성채에 대해 전력으로 부성 건축에 착수했다.
제 2군은 오와리(尾張) 측에서, 제 3군은 노부오키(信興)가 지키는 코키에 성(小木江城) 측에서 부성을 건축했다. 좌우로 나눈 이유는 바람의 방향에 있었다.

프리패브(prefab) 공법을 이용해 겨우 하루만에 부성이 건설된다. 뒷날 오다 군 내에서 '하룻밤 부성(一夜付城)'이라고 불리는 부성 건축법이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었다.
외면을 뒤덮는 석고 보드는 하루를 더 들여서 순차적으로 콘크리트 블록으로 교체되어 견고한 외벽을 가진 부성이 완성되었다.
건축중, 강의 반대측에 있는 부성을 파괴하기 위해 몇 번인가 잇코슈가 치고 나왔으나, 세 방향으로부터의 공격으로 격퇴했다.
그리고 3일째, 겨우 생각대로의 방향으로 바람이 불게 되었기에, 시즈코는 첫번째 비밀병기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단기 결전을 목표로 한다. 최소한 30발은 발사할 것이니, 준비된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발사하라!"

시즈코의 첫번째 비밀병기를 든 아시가루(足軽)들이 그녀의 호령과 함께 재빠르게 움직였다.

시즈코의 첫번째 비밀병기는 봉화시(棒火矢)였다.
봉화시는 질냄비 불화살(焙烙火矢)이라고도 불리며, 흑색화약을 추진력으로 사용하는 원시적인 로켓탄이다. 화약량의 조절이나 순풍에 의해 비거리는 달라지지만, 사정거리가 3km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로켓의 연료는 흑색화약이 아니라 초산칼륨과 설탕, 콘 시럽을 사용한 연료이다.
적산화철(弁柄, ※역주: 산화제2철)을 섞으면 더욱 강력해지지만, 이번에는 그것들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보류했다.
그리고 앞부분에는 특수한 약품을 재어놓았다. 자세한 사항은 생략하겠지만 설탕과 농황산(濃硫酸, ※역주: 농도 90% 이상의 황산), 그리고 어떤 약품을 섞으면 비오는 날에도 불이 붙는 물질을 정제할 수 있다.
이것을 콜크 비슷한 것으로 뚜껑을 덮고, 착탄과 동시에 내용물이 폭발하여 비산하게 만들면 여기저기서 화재가 일어난다.

병사 한 명이 부성으로 신호를 보냈다. 시즈코들이 봉화시를 이치노에 성채로 쏘아놓을 타이밍을 알리는 신호였다.
부성 쪽으로부터의 대답을 확인한 시즈코는, 지휘도(지휘봉 대용의 일본도)를 이치노에 성채 쪽으로 향했다.
발사의 신호라고 이해한 아시가루들은, 일제히 봉화시를 이치노에 성채로 향했다.

"쏴라!"

시즈코의 호령과 함께 주위가 연기로 뒤덮였다. 봉화시는 대량의 연기를 발생시키기에 주위의 시야가 일순 차단되었다. 하지만 바람 방향이 이치노에 성채를 향하고 있었기에 연기는 곧 걷혔다.
다섯 발 발사하여,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발은 이치노에 성채의 일부에 꽂혔다.

"4번포와 2번포만 발사각을 변경! 나머지는 즉시 차탄(次弾)을 발사하라!"

"알겠습니다! 차탄 장전―――――――――― 장전 완료했습니다! 발사합니다!"

아시가루의 목소리와 함께, 봉화시가 차례차례 발사되어갔다. 이치노에 성채 안에서 여기저기 화재가 일어나, 얼핏 봐도 진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을 무렵, 성채에서 다수의 잇코슈가 뛰쳐나왔다.
일부는 우구이우라 성채 쪽으로 도망쳤지만, 태반은 자포자기한 듯 부성으로 공격해왔다. 하지만 철저히 방어에 집중하고 있는 부성을 공략하는 것은 어려워서, 잇코슈는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그 동안 시즈코 부대는 제방을 끊어 윤중(輪中) 내부를 물바다로 만들었지만, 증수기(増水時)가 아니었기에 효과는 별로 없었다.

"……정리를 어서 마쳐라!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코키에 성으로 돌아간다!"

"옛!"

그 후, 짧은 시간에 철수 준비를 마친 시즈코 부대는 코키에 성으로 귀환했다. 각 부성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타카토라가 차례대로 귀환했다.
네 사람은 코키에 성에 도착한 후 각자 휴식을 취했다. 타카토라는 눈 앞에서 사람이 산 채로 타죽는 광경을 떠올렸는지, 구석으로 가더니 구토를 했다.

"나약한 녀석이군. 저래선 좀 힘들거라 생각하는데"

"확실히 그건 기분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놈들을 보면 사정을 봐주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습니다. 시즈코 님께서 철저히 처치하라고 명하신 이유, 놈들을 보고 이해했습니다. 보통은 항복을 권고하겠습니다만, 놈들에겐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멸망시키던가 멸망당하던가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니, 나도 꽤 충격이 컸어. 주위의 눈이 없었으면 토했을 거야. 한마디 더 하자면, 그 무참하기 짝이 없는 참상을 보고 태연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카츠조 군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사람이 산 채로 불타는 광경을 본 후, 말린 고기를 태연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신경이 굵지는 않았다. 조금 구토가 밀려올라왔지만, 그걸 간신히 억눌렀다.
총대장인 자신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건 병사들의 사기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통이겠지"

"……네 보통은 내 보통하곤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하아…… 진정됐어. 아 맞다. 이치노에 성채 공략에 쓴 부성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일부터 우구이우라 성채를 공략할거야. 이치노에 성채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지금쯤 우구이우라 성채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을거라 생각하니까, 내일부터는 좀 힘들겠네"

시즈코의 예상은 반만 맞았다. 이치노에 성채에서 우구이우라 성채로 도망친 도망병들은, 오다 군에 관해 법석을 부리고 있었지만 그건 봉화시에 관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요란한 공격이기에 봉화시는 인상에 남기 쉽다.
그에 반해 부성 전술은 얼핏 보면 부성을 약간 과도하게 설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부성으로 포위함과 동시에 봉화시로 불바다 작전을 결행했기에, 부성 전술의 가치가 이해되지 않았다.

"부성으로 성채를 포위하다니, 재미있는 전술을 생각하는군. 항상 녀석에겐 놀라고 있지만, 이번에도 당했군"

하지만 무엇이든 예외는 있다. 휘하의 장병들이 봉화시 이야기로 떠들썩한 가운데, 노부나가는 부성 전술의 유효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는 봉화시의 약점을 금방 이해했다. 봉화시는 초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기지만, 그것만으로는 적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는 있어도 성채를 함락시킬 수 없다.
따라서 부성으로 성채를 포위한 후, 봉화시로 이치노에 성채를 불태워버린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봉화시가 주력이라면 부성전술은 무대 뒤편의 존재(縁の下の力持ち)이다. 어느 한 쪽이 빠져도 전술로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봉화시는 윤중에서는 사용하기 좋을 뿐, 다른 곳에서는 사용하기가 어렵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일반적인 성채는 많은 병사들이 전개할 수 없는 까다로운 지형인 산 속 등에 구축되기 때문이다. 부주의하게 화공 같은 걸 했다가는 산불을 일으켜 자군 진지까지 불바다가 되어버린다.

반면 윤중은 하천(河川) 가운데의 모래톱(中州)에 제방을 쌓아 생활 환경 자체를 둘러싸고 있다. 고생해서 방벽을 넘어 내부로 공격해 들어갔다고 해도 상류의 제방을 끊어버리기만 하면 물에 휩쓸려 격퇴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원거리로부터 불을 질러 일방적으로 공격해버리는 쪽이 손해는 적다. 또, 윤중은 제방에 의해 주위에서 격리되어 있기에, 불이 번질 걱정이 없어 안심하고 화공을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대군을 전개하기 어려운 윤중 지대라면, 부성을 구축하여 군을 작게 나누는 것은 합리적이다.

"훗, 주위의 마을들을 불태워버린 후 철수하려고 했는데 취소다. 다른 군단에 전령을 보내라! 부성으로 잇코슈의 성채를 둘러싸고 하나씩 공략하라고 말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5월 16일에 철수한 오다 군에게 잇코슈가 역습을 걸어 우지이에 보쿠젠(氏家卜全)과 그의 가신 몇 명을 처치했지만, 노부나가가 철수 시기를 몇 주일간 미루었기에 그들이 죽는 일은 없었다.
6월 6일, 이치노에 성채, 우구이우라 성채, 카로토 성채를 함락시킨 노부나가는, 부성에 병사와 당번(在番) 무장을 배치시키고 남은 군을 모두 철수시켰다.

우연히도 노부나가가 철수하는 날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간쇼지(願証寺) 4세(四世)인 쇼우이(証意)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급사한 날과 같았다.
그 쇼우이는 6월 6일 이후에도 살아있었으나, 역사적 사실대로 피해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타도(多度)를 방문했을 때, 숨어 있던 오다 병사들에게 저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승승장구 하고 있던 오다 군이 나가시마에서 철수한 이유는 복잡했다.
우선, 시즈코는 겨우 4일 정도라는 것을 전재로, 단기 결전용의 장비로 진군했다.
그리고 나가시마 주변은 대군을 전개할 수 없는 땅이라는 것을 전제로 두 개의 군단으로 나누어, 시즈코와 사이조가 이치노에 성채를 공략하는 동안, 케이지와 나가요시의 제 2군이 다른 루트를 이용하여 우구이우라 성채를 공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치노에 성채가 견고한 요새라는 것을 깨닫고, 전력을 분산시킨 채 시간을 잡아먹었다가는 적에게 제방을 끊겨 윤중이 물바다가 되어 단기 결전의 전제가 붕괴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제 2군을 멈추고, 전군으로 이치오네 성채를 공략하는 작전으로 변경했다.
이 시점에서 시즈코는 이치노에 성채 공략을 위해, 모든 병기와 자재를 소모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그 때문에, 큰 돈을 들여 츄우겐들에게 토목공사를 시켜 급피치로 부성을 건설했다.
이후에는 이치노에 성채를 불바다로 만들고, 제방의 위에 있는 가옥들을 전부 태워버리고, 농지에 소금을 뿌린 후, 제방을 수복 불가능한 정도까지 파괴했다. 이걸로 남은 건 철수 명령을 기다릴 뿐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부성 전술의 유효성을 깨달아서, 오다 군이 차례차례 부성 전술로 성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론, 갑작스런 작전 변경에 사쿠마 노부모리 군단과 시바타 카츠이에 군단이 효율좋게 움직일 수 있을 리도 없었고, 또 부성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공략은 지지부진했다.

노부나가로서는 손해를 막기 위한, 또 나가시마 잇코잇키슈(長島一向一揆衆)는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이길 수 없다는 예감이 든 데 따른 작전 변경이지만, 예상 이상으로 대혼란을 일으켜 버렸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노부나가였으나 이미 때는 늦어서, 군의 사기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이치노에 성채에 사용한 자재를 재활용하고, 그것들을 써서 노부나가 본군과 시즈코 군단으로 우구이우라 성채와 카로토 성채를 공략했다.
그러나 전략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느낀 노부나가는, 승리에 흥분하기 시작한 전군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다소 곤혹스러워하기는 했지만 전군이 명령에 따라 나가시마에서 철수했다. 한편,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는 갑자기 철수한 오다 군을 경계하고, 함정을 두려워하여 습격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리하여 제 1차 나가시마 침공은 종막을 고했다.

6월 10일, 나가시마에서 돌아온 시즈코들은 사기가 늘어져 있었다. 적으로부터의 습격으로 생각대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라면 털어버릴 수라도 있지만, 이번은 아군에게 발목을 잡힌 모양새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번 싸움은 이겼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나가요시조차 미묘한 표정으로 이번의 싸움을 돌이켜보고 있었다.

"이번은 패배네. 좋은 결과가 아니야"

식사를 하면서 시즈코는 투덜거렸다. 적으로부터의 공격이라면 몰라도, 아군의 행동으로 군단이 혼란에 빠진 것은 지나치게 꼴불견이었다.

"하지만 세 개의 성채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건 승리라고 할 수 없는 걸까요"

그녀의 투덜거림에 대해 타카토라가 의문을 입에 올렸다. 쇼우도 같은 생각인지, 타카토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걸로는 잇코슈를 억누를 수 없어. 코키에 성에서 가장 먼 부성은 버텨봐야 한 달이겠지"

"성채를 공략하더라도, 그 땅의 지배를 유지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부성을 이용당할 수는 없으니, 제대로 지켜낼 수 없다면 파괴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사이조와 나가요시가 두 사람의 의문에 대답했다. 그들의 말대로, 시즈코는 아직 아사쿠라(朝倉), 아자이(浅井)가 건재한 이상, 현 상태의 오다 군으로는 나가시마 주변을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나가시마 잇코잇키슈가 움직이기 어려워지도록, 제방의 파괴나 의도적인 염해(塩害)를 자행했다.
이치오네 성채가 강 바로 앞에 존재하고 있기에, 제방을 끊으면 성채의 일부는 물바다가 되는 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가시마의 제방은 배수를 고려하여 일부에만 제방이 쌓여 있다.
따라서 시즈코는 제방에 손을 써 놓으면 증수기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서 수해를 입을 거라 판단하고 여기저기 파괴 공작을 해놓았다.
만약 공작이 발각되어도 상대방이 처음부터 제방을 다시 쌓는 게 빠르다고 판단할 정도로 철저하게 손을 썼다.

다음으로 농지다운 농지나 가옥이 있던 자리에 소금을 뿌려 염해를 일으켰다. 염해란 농작물이나 기타 식물이 염분에 의해 해를 입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는 바닷가 지역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소금을 뿌리면 내륙부에서도 인위적으로 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염해를 입으면 작물의 대사(代謝)가 저해되고, 또 영양을 흡수하는 뿌리가 염분으로 파괴되어 버린다.
담수(真水)를 흘리면 제염(除塩)할 수 있지만, 소금이 빠질 때까지 밭을 쓸 수 없게 되기에, 테러 전술(嫌がらせ)로서는 나름 효과는 있다.

"뭐, 2개월 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결국, 큰 성과 없이 끝났으니, 오다 군의 패배라고 생각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니, 딱히 비관하고 있는 건 아니야. 승패는 병가지상사, 라고 하니까.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고 하고, 반성할 점을 검토하여 다음번에 활용하자고"

이걸로 이야기는 끝, 이라고 대화를 종료한 후, 시즈코는 식사를 재개했다.



여름의 햇살이 느껴지는 날, 나가시마 침공에서 귀환한 아시미츠는 당분간 신사(神社) 업무에 전념하고 있었다.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이번의 오다 군의 행동에 그는 어이가 없어져서 당분간 종군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시즈코가 부탁하면 즉시 갑주를 몸에 걸치고 전장으로 가겠지만.

이번의 그의 성과는 좋다고는 하기 어려웠다. 레이더도 뭣도 없는 상태에서 바다 위의 어딘가에 있는 수송대를 찾아내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쌍안경이나 필드 스코프가 있다고 해도, 발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운에 달린 것이다. 게다가 해가 지기 전에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수색 시간이 4시간에서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1주일 동안은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고, 거기서 다시 4일을 의미없이 낭비했다. 하지만 해상 봉쇄 작전을 수행한 지 15일째, 간신히 사이카슈의 수송대를 발견했다.
그 이후에는 일방적인 습격이 되었다. 코하야(小早, ※역주: 소형 쾌속선)나 세키부네(関船, ※역주: 중형선)라면 몰라도, 아타케부네(安宅船, ※역주: 대형선)의 속도는 느리다. 100미터 이상 떨어지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불화살 정도로는 군선을 격침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불화살 외에 화살촉에 흑색 화약을 채워넣은 작약 화살(炸薬矢)을 쏘았다. 착탄한 지점을 파괴하여 선체에 구멍을 뚫는 것이 목적이다.
비밀병기 2호의 작약 화살은 보기좋게 아타케부네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보급대의 호위들은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차례차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가까이 가면 화살로 집중포화를 맞았기에 수송대는 도망치려 했지만 추격당하여 물고기밥이 되어갔다. 당연하지만 아시미츠는 항복을 허용하지 않아서, 백기를 든 군선도 용서없이 침몰시켰다.
6할의 배를 격침시키고, 거기에 수송대가 싣고 있던 짐을 대부분 바다로 던져버리고 목숨만 간신히 건져 나가시마로 도망쳐들어갔으니 훌륭한 성과라 해도 좋다.

거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아시미츠와 쿠키 수군이었지만, 이 날부터 오다 군이 나가시마에서 철수할 때까지 사이카슈의 수송대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고 있으니, 정말로 작은 신사의 신관이로군"

빗자루로 청소하고 있는 아시미츠에게,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사키히사(前久)가 말을 걸었다.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차를 마시는 모습은, 그에 대해 잘 알지 못ㅎ나다면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의 당주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놀리는 거라면 돌아가라"

"쌀쌀맞군. 모처럼 벗이 찾아왔지 않은가. 하다못해 좀 정감있게 환영할 수 없겠는가?"

아시미츠의 딱딱한 태도에 어깨를 움츠리는 사키히사였지만, 그는 사교성 미소(愛想笑い) 하나 떠올리는 법 없이 점점 더 태도가 딱딱해져갔다. 그에 대해 사키히사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입으로 말하는 것만큼 신경쓰고 있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뭐냐"

"그렇게 조급해하지 마시게. 나로서는 좀 더 벗과 대화로 꽃을 피우고 싶으니. 그 정도도 맞춰줄 수 없는가?"

"……마음대로 해라"

"그럼, 마음대로 하도록 하지"

사키히사의 태도에 혀를 찬 아시미츠였으나,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빗자루를 고쳐줘고는 사키히사에게 등을 돌리고 청소에 전념했다. 거절의 의사가 느껴지는 태도였지만, 사키히사는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이건 내 혼잣말이지. 내용은 대단한 건 없으니, 흘려들어도 좋네"

그렇게 말하고는 사키히사는 아시미츠로서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시즈코 님을 양자…로서 고노에(近衛) 가문에 맞아들일 걸세"

순간, 아시미츠의 손이 멎었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후, 빗자루를 던져버렸다.

"가신에게 배신당하고, 부모에게 배신당하고, 그리고 친구에게도 배신당하는가. 내 생애는 배신당하는 일의 연속이군"

말하면서 아시키츠는 사키히사 쪽을 돌아보더니 허리에 차고 있는 칼에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사키히사는 작게 웃었다. 눈 앞에 당장이라도 칼을 뽑으려고 하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재미있는 듯 웃었다.

"……뭘 웃고 있나"

"아니, 그 태도로 잘 알았네. 자네가 시즈코 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말일세. 자자, 흉칙한 물건에서 손을 떼고 내 이야기를 듣게나"

잠시 사키히사를 응시하고 있던 아시미츠였으나, 이윽고 무거운 한숨을 쉬더니 칼에서 손을 떼었다.

"양자의 건은 자네를 시험해 본 것 뿐이지. 하지만 시즈코 님을 유자(猶子)로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일세"

"……"

"성급하면 손해일세.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듣게. 시즈코 님이 오다 님 밑에서 이룬 공적은, 누구도 흉내조차 낼 수 없지. 하지만 그녀는 여자이고 홀몸일세. 그녀의 권력을 탐내어 정략 결혼을 노리는 패거리는 무수히 많겠지"

다시 칼에 손을 뻗을 뻔한 아시미츠였으나, 사키히사의 말을 듣고 손을 멈췄다.

정략결혼, 그것은 아시미츠가 가장 걱정하고 있던 이야기였다.
현대보다도 가문과 가문끼리의 관계(繋がり)가 중시되는 전국시대, 쌍방의 가문의 관계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이루어졌다.
하지만 정략결혼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쌍방의 가문이 서로를 신경쓰며, 신중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타국의 가문과의 혼인은, 각각의 나라의 영주들로부터 승인을 얻는 것이 필수 요건이었다.
전국시대 최초의 분국법(分国法)이라고 하는 '이마가와카나(今川仮名) 목록(目録)'에서는, 가신들에게 영토(領国) 이외의 지역과의 사적인 혼인 관계를 금하고 있다.

"시즈코 님에게는 '가문'이 없지. 그렇다면 책략을 꾸미는 어리석은 자들은 늘어날 걸세"

"흥, 그 때문에 고노에 가문을 이용하겠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아시미츠의 말에 사키히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략결혼을 하는 것은 가문끼리의 관계를 맷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하지만 정략결혼을 할 떄, 가문끼리의 관계에는 '가문의 격(格)'이라는 것이 중요시되었다.
따라서 영주의 자식과 백성의 딸이 결혼하는 것 같은 일은 드물다, 기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고노에 가문에 걸맞는 가문이, 이 일본에 얼마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게다가 그녀는 오다 가문의 중신(重鎮), 나와 오다 님의 양쪽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녀와 혼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반대로 말하면 네놈들 두 명이 납득한다면, 그녀의 의사 따위는 무시하겠다는 거겠지. 그 경우, 나는 용서없이 네놈들 둘 앞을 가로막을 것을 잊지 마라"

"하핫, 그럴 리는 없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다 가문이 풍요로워진 이유가 가득 들어 있지. 오다 님이, 그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그렇다면…… 혼인이 아니라 양자를 내리던가 하겠지"

"시시한 이야기로군"

사키히사와의 대화를 끝낸 후 아시미츠는 던져버린 빗자루를 주워들었다. 이미 쓰레기 같은 게 떨어져 있지 않은 경내를 청소하는 모습은, 마치 쓸데없는 불결함을 털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작년, 그녀는 내 아이라고 오다 가문 가신들 앞에서 말한 것, 듣지 못했는가?"

"듣기 싫어도 들렸지. 그 때문에 그녀 주변에 원숭이…가 얼쩡거렸다"

"후훗, 그만큼 주위는 그녀에게 넋이 나간 게지"

"……웃을 수 없는 농담이군"

아시미츠의 말에, 사키히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남은 차를 다 마셨다.

"한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나. 아시미츠 님은 어째서, 시즈코 님에게 고집하는 건가. 내가 보아도, 그녀는 걸출한 영지(叡智)를 가진 인물이지. 하지만, 그 뿐일세. 자네가 집착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네만"

"……"

"사소한 의문이지만, 나로서는 이상하게 생각되어서 말일세"

"예전에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던 나를, 그 아이는 필요로 해 주었다. 단지 그것 뿐이다"

"응? 그건 무슨……?"

아시미츠의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사키히사였으나, 그는 그 이상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시미츠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이어지는 말을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결국 나는 아시카가(足利) 쇼군 가문(将軍家)으로서의 나로서밖에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시미츠라는 남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 그 아이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게 설령 자신의 피를 나눈 동생이라도 말이지)

빗자루를 잡은 손을 멈추더니, 아시미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시미츠들의 상공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참고문헌】

[※1 부성전술]
 서적명:역사군상(歴史群像) 디지털 아카이브스<오다 노부나가와 전국시대>노부나가를 승리로 이끈 부성과 기동전술이란?
 출판일:2014년 6월
 판:Version1.0(Kindle판)
 저자:橋場日月
 회사:학연(学研) 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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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7 1571년 4월 하순


오다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장병들의 정강함(精強), 장수들의 전술안(戦術眼), 그리고 병사들을 통솔하는 힘을 과시한 것은 딱히 시즈코 군만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참가하고 있는 아케치(明智) 군과 시바타(柴田) 군도, 시즈코 군과는 다른 강함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파괴력에 관해서는 오다 가문 제일의 맹장인 시바타 군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본진을 움직이는 일 없이 상대하는 군을 격파하는 용병술은, 키나이(畿内)의 영주들을 떨게 했다.
한편, 아케치 군은 천변만화하는 변화무쌍한 용병술을 보였다.
전체를 관찰할 수 있는 관객들은 아케치 군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허실을 뒤섞은 운용에 현혹되어 진짜 공격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런 판에 시야가 제한된데다가 혼전 상태인 상대측에게는 생각도 못한 곳에서 돌격을 당하고, 방어로 전환하면 협격을 당해서 숫자를 끌어모으면 본대와 분단되는 식으로 농락당했다.
어느 새 본대가 산산이 조각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대장기는 빼앗긴 상태였다.
항상 대응이 늦어져,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은 채 패배를 강요당했다. 아케치 군과 상댛나 무장은 말할 수 없는 공포에 떨었다.

도중부터는 모의전이 아니라 오다 군의 강함을 과시하는 시위 행동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말해도 아무 소용없는데다, 설령 입에 올렸다가는 겁장이라고 매도당할 것은 명백했다. 조건이 같은 이상 오다 군의 목표를 깨부수지 못한다면 패자의 변명이라는 비난은 면할 수 없다.
따라서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상금에 눈이 먼 시점에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 후에는 귀신같은 강함으로 정면에서 깨부수는 시바타 군인가, 그도 아니면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농락하는 아케치 군인가, 싸움마다 모습을 바꾸며 임기응변을 체현한 시즈코 군 중 누구에게 요리될 것인가, 그것 뿐이었다.
결국, 모의전은 오다 3군이 우승을 다투는 모양새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군도 아케치 군에게 맥없이 쓰러졌다. 시즈코는 시바타 군과 상대하게 되어, 이긴 쪽이 아케치 군과 싸우는 조합이 되었다.

"어설픈 잔재주는 관두죠. 저쪽은 전투 경험이 풍부해요. 급조한 책략을 써봤자 통용되지 않을 건 뻔하니까요. 다들, 그들은 백전노장의 정병들, 그리고 뭣보다 오늘까지 살아남은 강한 운의 소유주들이에요"

시즈코의 말에 병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굴복할 듯한 정도의 중압감이었다. 지금까지의 어딘가 나사빠진 군대가 아니었다. 말단 병사들까지 정예인, 진짜 강자라는 것을 이해했다.

"이번에는 단순해요. 기책(奇策)을 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형태로, 정면에서 전군 돌격을 감행합니다. 적과 아군이 뒤섞이는 백병전이 되겠지만, 저쪽은 기세가 없고, 반대로 이쪽은 기세를 유지한 채로 적군 속으로 돌격할 수 있어요. 솔직히, 이것 이외에 시바타 군에게 취할 수 있는 전술은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케이지(慶次) 등도 같은 생각이었다. 시바타 군에 대해 다양한 전술을 사용해서 시뮬레이션 해봤으나, 도저히 이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오다 군이라고 해도 공동으로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시즈코들은 시바타 군이 싸우는 모습을 들은 것 외에는 모른다.
거기다, 시즈코가 지금까지 해온 정책들은 딱히 시즈코 군만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다 군 전체의 밑바탕이 향상되어 있다. 타군이라도 병사들의 훈련도 쾌히 받아들였다.

(곤란하네. 이런 형태로 자신이 해온 결과를 알게 될 줄이야)

이것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양군, 준비를!"

사회진행자의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퍼졌다. 그 목소리에 따라, 양군 모두 소정의 위치로 이동했다. 남은 건 개시 신호를 기다린 후, 시즈코가 즉시 돌격 신호를 내면 된다.

"전투 시작!"

개시 신호가 귀에 들림과 동시에, 시즈코는 돌격 신호를 냈다.

"돌격!"

하지만, 그 목소리는 하나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군을 움직이지 않았던 시바타 군 또한, 시즈코 군과 마찬가지로 전군 돌격을 감행했다.
이것에 약간이나마 시즈코 군이 동요했다. 이 작은 동요가 패인이 되었다. 돌격의 기세는 시바타 군이 앞서, 최초의 격돌에서 시즈코 군은 기세가 꺾여 버렸다.
이렇게 되면 기세를 되찾는 것은 어렵다. 거기에, 적과 아군의 구별이 되지 않는 혼전 상태이다. 후방으로 물러서 다시 돌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혼전에 의해 케이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시즈코 등 네 명은 분단되어 버렸다.

"배후가 허술하군요, 시즈코 님!"

재편성을 하려고 시즈코가 움직이려던 때, 시바타가 정예를 이끌고 그녀를 배후에서 급습했다.

(설마 본군의 돌격 자체가 미끼!
혼전의 틈에 후방에서 급습이라니, 정면에서 상대를 깨는 것을 좋아하는 시바타 님이, 설마 이런 전술을 쓸 줄이야!!)

후방에서 군을 움직이며, 무력도 어느 쪽이냐 하면 활이나 화승총 등 원거리 무기가 특기인 시즈코에게, 접근전이 특기인 시바타는 상성이 대단히 나빴다.

"(이렇게 되면……) 우오오오오오오옷!"

하지만, 지금 여기서 도망치면 군이 완전히 와해될 거라고 순간적으로 판단한 시즈코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시바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음!? 다른 자들은 끼어들지 마라!!"

시즈코의 돌격은 시바타에게도 예상 밖이었는지, 순간적으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순, 전투에 익숙한 그는 즉시 표정을 굳히더니 시즈코의 공격을 받아쳐갔다.

(어리석군. 마상창은 말의 제어를 잃기 쉽다는 것을 그녀가 모를 리는 없을텐데!!)

"에잇―!"

"흥…… 뭣!!"

공격 자체는 단조로워서 시바타는 어렵잖게 막아냈다. 평소라면 그 이후, 말의 자세가 흐트러져서 제어불능에 빠질 터였다.
하지만, 시즈코는 고삐를 놓은 상태에서 말을 제어하여, 약간 자세가 흐트러졌을 뿐 즉시 자세를 바로잡더니 시바타에게 다시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싸울 수 있다고는 해도, 역전의 맹장인 시바타에게 벼락치기 무술이 통용될 리가 없었다. 5합 정도 겨뤘을 뿐이지만, 그걸로 시바타는 시즈코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았다.
그 이후의 시즈코는 시바타의 공격을 막기에만도 벅차게 되었다.

(크윽! 일격이 무거워!! 이건 오래 못 버티려나)

자신이 버티고 있는 동안, 주위에 있는 시바타 군의 병사들을 제압하여 그를 고립시킨다. 그런 불리한 도박이 시즈코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정예 중의 정예, 간단히 쳐부술 수 있는 장수가 아니었다.

결국, 시즈코가 버틴 것은 2분 정도로, 시바타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졌다.
아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시즈코는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 없어, 재빠르게 말에서 내린 시바타에게 어이없이 대장기를 빼앗겼다.

"승자, 시바타 군-!"

모의전은 상대의 대장기를 빼앗으면 결판이 난다. 사회진행자가 높은 나무 대(櫓)에서 시바타 군의 승리를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시바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핏 보기에 시바타의 전격전(電撃戦)은 시즈코 군을 완전히 박살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도박 투성이의 위험한 승부였다.
시바타는 정예를 자신의 주위에 배치하고, 남은 병사들을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의 세 명을 막기 위해 투입했다.
시바타 군의 병사들은 케이지들의 병사보다 숙련도가 낮았기 때문에, 장시간 치고받으면 와해될 것은 불보듯 뻔했다. 따라서, 시바타는 정예와 함께 크게 우회하여, 배후에서 시즈코를 습격했다.
후방에서 지휘를 하는 시즈코였기에, 반드시 군의 후방에 있을 거라고 그는 예측했다. 그 예상은 적중하여, 시바타는 시즈코를 발견하자마자 주위를 싹 무시하고 시즈코에게 돌격했다.
마지막에는 운이 작용하기는 했으나 시즈코를 패배시키고 대장기를 빼앗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어째서 후방으로 물러나지 않은 것이지)

시즈코의 성격을 볼 때 병사들을 앞으로 내보내고, 후방에서 화살을 쏠 거라고 시바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시즈코가 단독으로 시바타에게 전투를 걸어왔다.
잠시 고민한 시바타였으나, 문득 시야에 들어온 시즈코 군을 보고 해답이 뇌리에 떠올랐다.

(과연. 대장이 부하를 지키지 않으면 부하들은 따라오지 않는다. 또 부하가 대장에게 충의고 뭐고 느끼지 않게 되어, 따라서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전국시대, 어지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지성(支城)이 공격받으면 영주들은 원군을 보낼 의무가 있다.
만약 원군을 보내지 않는다면, 지성의 사람들은 영주를 신용하지 않게 되어, 적에게 투항하거나 성을 버린다.
이 현상이 습격당한 성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성에도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영주들은 지성을 함락당하지 않기 위해, 또 가신들로부터의 신용을 잃지 않기 위해 반드시 원군을 보낸다.

이것은 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총대장이 일어서야 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병사들은 총대장을 신용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만 신경쓰며, 최악의 경우 탈주병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자리에서 시즈코가 시바타에게 돌격하지 않으면, 시즈코 군은 완전히 와해되어 재편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시즈코는 무모하더라도 돌격해왔다.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시즈코도 또한 앞에 나설 각오가 있다고 주위에 보여주었다, 고 시바타는 결론지었다.

(효율을 추구하는 그녀답지 않은 행동.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나쁘지는 않소, 시즈코 님)

마음 속으로 한바탕 웃은 후, 시바타는 결승전에 대비해 마음을 새롭게 했다.

결승전은 시바타 군과 아케치 군이었다. 양쪽 모두 일장일단은 있지만, 시바타는 힘으로, 아케치는 전술로 단점을 보완하여,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체력의 차이로 시바타 군이 아케치 군의 본군을 쓰러뜨리고, 시바타가 미츠히데(光秀)로부터 대장기를 빼앗았다.

"이번의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지금 이상으로 정진하라"

무릎을 꿇고 있는 시바타에게 노부나가는 지극히 보통의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에게 있어 오다 군 중 누군가가 우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번의 모의전은, 그것을 주위에 알리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2위는 시즈코가 즉각 기권했기에 아케치 군의 차지가 되었다. 이미 시즈코에 군에게 아케치 군과 싸울 수 있을 만한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객기를 부렸다간 최악의 경우 사망자가 나온다. 애초에 상위 3위를 오다 군이 휩쓸어버린 시점에서 시즈코에게는 싸울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케치 군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2번이나 연속으로 싸우고도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시바타 군 쪽이 비정상이었다.

"물러서야 할 때에 물러선다, 그것은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렵지. 긍지, 명예, 오명, 타인으로부터의 비방이나 조소…… 그것들이 생각을 둔하게 만들지. 하지만 너는 그것들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물러설 것을 결단했다. 또 한층 성장했구나"

노부나가도 당초의 목적을 이룬 이상, 이 이상의 자군의 손해는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하고 시즈코의 기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끝날 때 그럴듯한 격언을 입에 올려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앴다.


3위의 포상을 받은 시즈코였으나, 돈을 받아도 쓸 데가 떠오르지 않아, 한 웅큼 정도의 돈을 작은 주머니에 넣은 후, 나머지를 사이조에게 건네어 병사들에게 분배하도록 명했다.
쓸 데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쓰게 해라, 였다.
예기치 않은 임시 보수에 흥분한 병사들이었으나, 건네받을 때 사이조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받았기에 경솔한 행동을 하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쿄(京)도 꽤나 안정되었네. 상락(上洛) 당시의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

"여기저기 시체가 굴러다니고 벌레가 들끓었습니다. 십자로(辻, 교차로)에는 반드시 시체의 산…… 게다가 시체를 노리고 들개나 곰이 나오는 지경이었습니다. 그 황폐함에서 겨우 몇 년 만에 용케 여기까지 복구되었군요"

노부나가가 상락했을 때, 쿄는 지독한 상황이었다.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으로부터 100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파고의 흔적은 수복되지 않고, 또 치안을 지키는 자들은 지방으로 도망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쿄에는 시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데다, 썩어문드러져 파리나 구더기가 들끓고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현대의 교차로에 해당하는 십자로에도 시체의 산이 있었다. 썩은 고기를 먹는 까마귀나 들개, 멧돼지까지 도시 안에 모습을 보였다.
치안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노상강도(夜盗)나 도둑, 산적(野武士)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상인이나 부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상락하여 쿄의 실권을 쥔 후, 노부나가가 한 것은 시체의 처리와 치안 유지, 도시의 청소였다.
무력으로 노상강도나 도둑을 섬멸하고, 방치되어 있는 시체를 도시 밖으로 운반하여 매장하고, 쿄의 구석구석을 청소하여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주위에 알렸다.
또, 치안유지대에 도보 순찰을 시켜, 경미한 범죄라도 단속하게 했다. 이에 더해 고아들을 고아원에 들어가게 하여 노상강도나 도둑이 되지 않도록 교육을 실시했다.

얼핏 보면 노부나가에게 이득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는 키나이(畿内)의 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것이 상락시의 목적 중 하나였기에, 확실히 그에게 이익으로 연결되는 행동이었다.
다만 아무도 그가 계획하는 유통에 의한 경제활동의 활발화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그것 뿐이다. 이 때의 노부나가의 행동이 확실히 이해된 것은, 그가 상락한 지 무려 수백년 후의 일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노부나가가 계획한 비전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섰던 것이다.

"주군, 방금 전령이 와서 와다(和田) 님과 프로이스 님이 내일 찾아온다고 합니다"

사이조와 잡담을 나누며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맹장지 저편에서 겐로(玄朗)가 보고를 올렸다.

"어라, 프로이스 님은 이해하겠는데, 거기에 와다 님까지 오시다니 희한하네요. 딱히 문제는 없으니, 내일 방문을 허가하지요"

"옛!"

(정말, 뭐가 목적이지)

의문을 느꼈지만, 딱히 접점이 없는 와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리도 없는 상태로 시즈코는 다음 날을 맞이했다.
모의전이 끝난 지 2일 후, 와다 코레마사(和田惟政와 루이스 프로이스, 로렌초 료사이(ロレンソ了斎), 프로이스 밑에서 수행하고 있는 수도사들이 찾아왔다.
지금까지도 프로이스가 방문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와다 코레마사까지 따라온 적은 지금까지 없었기에, 조금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시즈코는 남장을 하고 프로이스들과 회담했다.

"오늘은 바쁘신 와중에 귀중한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프로이스를 시작으로 전원이 깊이 머리를 숙였다. 어째서 그들은 노부나가가 아니라 자신을 만나러 온 건지 알 수 없어, 시즈코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볼 수 밖에 없었다.

"얼굴을 드십시오. 하여, 소생에게 무슨 용무이신지요"

"그럼 소생이 먼저 말씀드리지요"

와다의 말과 함께 소성이 쟁반을 날라왔다. 눈 앞에 놓인 쟁반에 시선을 돌리자, 정중하게 포장된 서신이 한 통 놓여 있었다.
시즈코는 와다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후, 쟁반의 서신을 열고 읽었다. 숙독한 후,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며 서신을 접어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죄송합니다만, 편지의 내용에 찬동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시즈코는 쟁반을 와다 쪽으로 밀었다. 웬만해서는 거절하지 않는 시즈코가 명확한 거절의 의사를 보인 것이 케이지들의 표정이 변했다.
서신의 내용은 모르지만, 좋지 않은 내용이 쓰여져 있는 것이라고 세 사람은 생각했다.

"그만둬요. 그들도 서신의 내용은 모르고 있겠지요. 자세히 밝히진 않겠지만, 아마도 보낸 사람의 독단이에요. 알고 있다면, 주위에서 말렸을 테니까요"

곤혹스러운 모습의 와다를 노려보는 나가요시를 시즈코는 손으로 제지했다. 시즈코의 예상대로, 와다는 단지 서신을 시즈코에게 전달해달라고 명령받았을 뿐으로, 그 내용은 전혀 듣지 못했다.

"(외교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치 센스가 나빠서 장점을 제대로 살리질 못하네) 서신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와다 님께서 곤란해지시겠죠. 여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가주시는 편이, 양쪽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소생은 생각합니다. 와다 님의 의견을 들어보죠"

말을 하라고 해도 대답하기 곤란한 와다였다. 서신의 내용은 모르지만, 내용이 좋지 않다면 자신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상대는 오다 가문의 중역(重鎮), 자칫 잘못하면 또 봉토(知行地)를 몰수당하게 된다.
서신을 받아들고 품에 넣은 후, 와다는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대의 말대로, 나는 서신의 내용을 알지 못하오.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서로 모르는 것으로 하는 편이 좋겠지"

다시 찾아오겠소, 라고 와다가 일어서려던 순간,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에 반응한 세 명이 시즈코를 감싸려고 움직였지만, 그들의 귀에 들린 것은 신음소리였다.
전원이 소리의 출처를 찾았다. 장소는 바로 판명되었다. 와다의 발 밑에서 프로이스가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원의 의식이 와다에게 쏠려 있었기에, 그가 쓰러진 것을 눈치채는 것이 늦어 버렸다.

"프로이스 님!"

로렌초나 젊은 수도사들이 쓰러진 프로이스를 일으켰다. 도움을 받아 일으켜진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프로이스는 어깨로 거칠게 숨을 쉬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시즈코조차 프로이스가 의식이 혼탁한 상황인 것을 뚜렷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감기인가 하고 생각했던 시즈코였으나, 시기를 따져보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엇다.

"실례"

주위 사람들읋 헤치고 시즈코는 프로이스의 옆으로 이동하더니, 프로이스의 열이나 눈의 상태를 진찰했다.
프로이스의 체온은 불처럼 뜨거웠으며, 눈에는 결막염(結膜炎)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발진(発疹)이 나타나 있었다.

"질문드리겠습니다. 요 며칠, 프로이스 님은 고열로 앓아누우시지 않았나요. 그 때, 기침이 심하지는 않았나요"

"예? 아, 네…… 확실히 프로이스 님은 요 며칠 앓아누우셨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시즈코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프로이스는 어떤 병에 걸려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시즈코는 지금부터의 계획을 머릿속에서 세워갔다.

"그는 어떠한 병에?"

"프로이스 님은 적반창(赤斑瘡)에 걸렸습니다. 아마도 발진기(発疹期)…… 나흘 동안은 발열이 계속되겠지요"

적반창이라는 말에 와다의 표정이 굳었다. 옛날에는 적반창, 현대에는 홍역(麻疹)이라 불리는 병은 천연두(天然痘)나 수두(水痘)와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병이다.
특히 전국시대는 천연두나 홍역이 가장 유행했던 시기이다. 에도(江戸) 시대 이후에도 영양부족이 원인으로 종종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죽었다.
시즈코를 필두로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그리고 그들의 병사들은 홍역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지만, 와다나 젊은 수도사들은 항체를 가지고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게 누구 없느냐!"

"부르셨습니까, 주군!"

시즈코의 고함소리에 겐로가 즉시 달려왔다. 그는 방을 한 번 보고, 심상치 않은 사태라고 짐작했다.

"쿄에 홍역이 유행할 가능성이 높다. 아케치 님에게 급건을 보내, 서둘러 대책이 필요하다고 연락해라. 당장 할 일이 없는 자들에게 격리 병동을 만들 준비를 시켜라. 숫자는 15, 하지만 30개를 만들 생각으로 대응하라"

"옛!"

정중하게 예를 올린 후, 겐로는 그 자리에서 달려나갔다. 즉시 그의 호령이 울려퍼지고, 시즈코의 저택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얼마 안 지나 위생병 5명이 방으로 달려들어오더니, 아직까지 사태가 이해되지 않는 수도사들을 밀어젖히고 프로이스를 진찰했다. 결과는 시즈코와 동일했다.

"주군께서 예상하신 대로, 홍역이옵니다. 아마도, 균은 쿄의 곳곳에 퍼져 있는 듯 합니다……"

"서둘러 감염자를 격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케치 님, 그리고 쿄 치안유지 경라대와 협력하여 병을 봉살(封殺)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많은 사람들이 병으로 쓰러지겠지요. 당신들에겐 고생을 시키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잘 부탁합니다"

머리를 숙이는 시즈코에게 위생병들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머리를 드십시오, 주군. 주군이 안 계셨다면 저희들은 모두 죽었을 겁니다. 큰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면, 이제부터 바빠지는 것 정도는 사소한 일입니다"

프로이스를 들것에 실은 후, 위생병들은 그를 격리 병동으로 옮기기 위해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유감이지만 당신들도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그들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간신히 사태를 파악할 수 있던 로렌초들이었으나, 그들이 뭔가 행동을 하기 전에 새로운 위생병들이 방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그들을 연행해 갔다.
들렸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시즈코는 그들에게 선언했다. 프로이스들과 행동을 함께 했던 그들이 감염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수도사인 그들이 카톨릭 교도(キリシタン)들과 함께 행동하며, 그것이 감염된 사람을 더욱 늘렸을 가능성이 높은 이상, 감염력이 강한 병에 걸린 사람들 격리 시설에 수용하는 것 이외에 취할 수 있는 대책은 없다.

"우리들도 할 일을 합니다"

시즈코의 말에 세 명은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쿄에 홍역이 유행할 가능성이 농후, 라는 시즈코의 보고에 아케치들은 물론이고, 기후(岐阜)로 돌아가 있던 노부나가도 충격을 받았다.
노부나가나 가신들 중 일부가 며칠 전까지 쿄에 있었지만, 그러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게 겨우 며칠 만에 상황이 바뀌는 것에, 새삼스레 질병의 무서움을 인식했다.
쿄의 치안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상업 활동의 정체, 적대 세력이 폭동을 선동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오다 가문이 주도하여 유행병을 막아내면, 그것은 주위에 오다 가문의 힘을 보여주게 된다.
홍역의 유행을 억제하는 것은 장래적으로 오다 가문의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나 키나이의 영주들에게 시즈코의 지시에 따르도록 명했다.

"편하다고 하면 편하지만…… 남장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피곤해"

미츠히데나 영주들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이 도착하자마자, 다음날에는 시즈코에게 인사를 하러 와서 지시를 요청했다.
유행병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영주건, 조정이건, 종교 세력(寺社)이건, 상관없이 맹위를 떨친다. 그 무서움을 키나이의 영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시즈코가 그들에게 내린 지시의 내용은 대단히 간단했다.
호소카와(細川)와 미츠히데에게는 조정이나 쇼군(将軍) 가문에 대한 대응을 추가로 의뢰했으나, 그 밖에는 감염되었다고 의심되는 자들은 격리 병동(長屋, ※역주: 긴 건물 내부에 칸을 막아 여러 가구가 살 수 있게 되어있는 일종의 연립주택 같은 건물)에 격리한다. 지정된 식사를 준다. 풀어주는 것은 회복기로부터 4일 후. 대응하는 자들은 과거 10년 동안 홍역에 걸려 항체를 가진 자들로 한정했다.

프로이스의 홍역 감염 발견으로부터 5일, 연쇄 반응을 일으키듯 홍역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환자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상황을 보니, 3주일 정도 전부터 쿄는 홍역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생각해도 좋았다.

"주군. 시바타 님, 니와(丹羽) 님、타키카와(滝川) 님、키노시타(木下) 님、모리(森) 님,、삿사(佐々) 님으로부터 지원병력이 왔습니다"

"지원병력……? 아, 확실히 이래저래 사람이 많이 빠져서 치안 유지가 불안해지네요. 그 이야기, 고맙게 받겠다고 연락해 주세요"

홍역 대책에 쫓겨 쿄의 치안유지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내다보고 병력을 빌려준 것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그들에게 감사했다.

"옛"

예를 올린 후 전령 병사는 재빠르게 떠나갔다. 하지만, 그와 뒤바뀌듯이 다른 전령 병사가 왔다.

"주군. 쇼군 가문의 사자가 와 있습니다만……"

"호소카와 님께 가게 하세요. 쇼군 가문에 대한 대응은, 전부 호소카와 님께 부탁드리고 있어요. 조정에서 와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그들의 상대를 할 여유가 없어요"

"옛"

요 며칠, 연달아 올라오는 정보에 대응하기만도 바쁜데, 거기에 조정이나 쇼군 가문의 상대를 하는 것은 시즈코에게는 불가능했다.

"(바쁠 때일수록 윗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네. 좀 더 진득하게 행동해 줬으면 좋겠어) 위생대(衛生衆)의 도착은 아직인가요?"

"내일 아침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케이지 씨, 카츠조(勝蔵) 군. 지원병력을 둘이서 나눠서 쿄의 치안유지를 담당해 줘요. 사이조 씨는 제 호위를…… 반 오다 연합(反織田連合)의 움직임을 읽을 수 없는 상태이니까, 긴장하고 임무를 수행해 주세요. 치안 악화를 노리는 상대라면, 다소 거칠게 다루어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각자 무기를 한 손에 들고 두 사람은 방을 나갔다. 다른 의미에서 피바람이 불 가능성이 높았지만, 치안 유지에는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걸 게을리하면, 상대가 약점을 파고 들어온다.
그 후에도 1시간에 20명 정도의 전령 병사들를 상대하고 간소한 점심식사를 한 후, 시즈코는 쿄에 있는 17개의 격리 병동 중, 프로이스가 들어가 있는 제8 격리 병동으로 갔다.

"슬슬 열이 내렸을 무렵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로이스 님의 상태는 어떤가요"

"옛. 오늘 아침에는 의식도 뚜렷하고, 이쪽의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3일 후에는 퇴원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프로이스를 담당하는 위생병을 잡고 이야기를 듣자, 오늘 아침부터 차도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회복기에 들어서도 홍역은 여전히 감염력을 가지기 떄문에, 며칠 동안은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고마워요. 그건 그렇고, 여기도 단번에 사람이 늘었네요"

"예. 이곳은 제 8 격리 병동입니다만, 이미 수용 한계에 달했습니다"

"제 18, 19 격리 병동을 서둘러 준비시키고 있지만, 그것도 금방 한계에 달할지도 모르겠네요"

"홍역의 감염력은 무섭습니다. 뭐라 해도 며칠 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려왔으니까요. 이건 그야말로 질병과의 전쟁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물론, 저희들은 패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위생병은 힘있게 주먹을 쥐며 의욕을 보였다. 그는 천연두로 양친을, 홍역으로 형과 누이동생과 자기 자식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생병들은 질병으로 가족을 잃은 자들이 많다. 현대라면 병원에 가면 될 정도의 병에 의해서다.
가까운 사람을 잃었을 때의 원통함이 원동력이 되어, 위생병이라는 전국시대에서는 바보 취급받기 쉬운 일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솔선해서 행하는 힘이 되고 있었다.

"(그들의 장래의 의료를 짊어질 사람들이 되겠지요) 우리들이 여기서 노력하면, 나라는 평안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옛!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소생은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고개를 숙인 후, 위생병은 가볍게 달려갔다. 그가 담당하는 환자는 두 손으로는 셀 수 없었다.
좀 더 위생대를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러려면 지금 이상으로 무공(武功이 필요했다. 군을 충원하려면 무공을 세우는 것 이외에 방법은 없다.

"실례합니다. 프로이스 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병으로 쇠약해져 있을 때는 사소한 일이라도 다툼으로 발전한다. 쓸데없는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프로이스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개인실로 이동시켰다. 그 방에 시즈코는 사이조와 함께 들었다.

"아, 두건재상님. 콜록콜록…… 이런 모습으로 실례합니다"

"신경쓰지 마시고 안정을 취해 주십시오. (전부터 생각했는데, 어째서 나는 두건재상이라고 불리는 걸까. 뭔가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물어볼 수도 없고…… 아니 자기소개를 하지 않은 탓인가. 하지만 이걸 쓰고 있으라고 한 건 영주님이시니, 정체를 밝혀도 되는 걸까)"

"콜록콜록, 기침이 아직 계속 나옵니다만 콧물은 멎었습니다. 발진은 조금 더 지나면 깨끗하게 없어질 것입니다. 바쁘신 시기일텐데 폐를 끼쳤습니다"

쿄에 있으면 원치 않아도 정보는 들어오는 것일까, 아니면 와다로부터 오다 가문의 사정에 대해 들은 것일까, 프로이스는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사죄했다.

"사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유행병에 걸리셨고, 소생은 병의 유행을 막고 싶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래도 감사의 마음은, 콜록콜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죽음의 늪에 있었던 것을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병에 걸렸을 때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카톨릭 교도지만, 그는 일본 문화를 숙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일은 고형(固形) 식사를 하실 수 있겠지요. 며칠은 더 답답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부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네, 그건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렇게까지 해주셔서 참 면목이 없습니다"

"카톨릭(伴天連)이던, 땡중(生臭坊主)이던, 위생병에게 있어 병에 걸린 사람들은 한 사람의 환자. 환자를 돕는 것이 위생병의 임무입니다. 소생은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시겠다면, 그들에게 표시해 주십시오"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프로이스에게 등을 돌렸다. 하지만, 방을 나가려다가 프로이스 쪽을 다시 돌아보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일행의 수도사님께서도 홍역에 걸리신 듯 합니다. 당분간 이 병동에 격리하겠습니다만, 만전의 태세로 대응하고 있으니 안심해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사이조가 방의 문을 닫았다.


홍역의 맹위는 엄청나서, 프로이스 감염 발견으로부터 1주일 후에는 3000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카타르 기(catarrhal period)의 프로이스와 접촉하여 거기서 감염자가 퍼진 건지, 아니면 원래 감염자가 있었고 프로이스는 그 인물로부터 감염된 건지, 이제와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은 홍역의 감염 확대를 저지하지 못하여, 키나이 일대는 물론이고 츄고쿠(中国) 지방、츄부(中部) 지방, 나아가서는 칸토(関東) 방면까지 홍역은 퍼져나갔다.
다행히 키나이에는 노부나가, 그리고 조정이나 쇼군 가문이 홍역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각국에 명령했기에, 이 시기에 사건을 일으키는 괘씸한 인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시즈코가 역병 대책을 계속 실시했던 덕분에,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에서는 소규모 유행은 발생했지만, 금방 봉쇄되어 대유형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이번의 홍역 유행은 교통편이 좋아진 것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좋다.
현대에서는 비행기나 선박에 타면 전세계를 이동할 수 있지만, 이게 본래는 풍토병(風土病)이었던 질병을 세계에 퍼뜨린 원인이 되어 버렸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노부나가가 일본의 상업 활동을 활발화시키려고 오와리나 미노, 키나이의 교통망을 정비한 결과, 상인이나 그들에게 고용된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동하게 되었다.
그것이 극히 한정된 지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러 있던 질병을 각지에 퍼뜨려버리게 된다.
질병을 검사할 도구가 없는 이상, 교통편을 개선하는 것은 질병의 유행을 돕는 폐해를 감수해야 했다.

"상황 보고를 부탁드려요"

"옛. 현재, 300명의 위생병을 20개의 격리 병동에 배치시켜, 홍역의 치료를 담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역의 맹위는 엄청나서, 쿄 주변만 해도 환자는 1만에 달할 기세입니다. 아마도 종교 세력들(寺社)이 비협조적인 것이 감염 확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프로이스의 감염 발견으로부터 2주일 후, 시즈코는 항례의 상황 보고를 받았으나 좋은 내용이라고는 하기 어려웠다.
병에 걸리면 신불(神仏)에게 기도하는 풍조와, 종교 세력들이 비협조적인 것이 영향을 끼쳐 방역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종교 세력들 뿐만이 아니었다. 반 오다 연합에 있었던 무가들 또한 방역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각 진영의 정치적인 속셈도 맞물려, 시즈코들이 방역할 수 있는 범위는 쿄 주변이 한계였다.
그런 관계로 쿄에서의 홍역에 의한 사망자는 합병증을 일으킨 자들 수십명 뿐이었으나, 키나이의 일부에서는 홍역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들이 이미 10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조사할 수 없는 키나이 이외의 상태는 추측할 수밖에 없었지만, 항체를 가진 상인들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비참하다는 말 한 마디로는 끝나지 않는 상태였다. 상업도시가 죽음의 도시로 화한 곳도 있다고 했다.

물론, 협조적인 인물도 있다. 호소카와 가문이나 쿄의 유력자들은 오다 가문의 요청을 쾌히 받아들여, 격리 병동을 지을 토지를 준비해주거나 다양한 구호 물자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또, 프로이스가 치료받은 것 때문에 예수회 측도 솔선하여 협력을 자원해 주어, 그런 관계로 카톨릭 교도(キリシタン)들도 시즈코에게 협조적이었다.
종교 세력들 중에도 협조적인 곳은 있었다. 키나이나 나가시마(長島)는 비협조적이었으나, 미노나 오와리의 혼간지(本願寺)는 노부나가에게 협조적이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들이 관할하는 지역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 그 이외의 장소에서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입수해 주세요. 백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형태로 차이를 알게 하면 우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겠지요"

오다 가문과 그 이외의 장소에서 사망자 수의 추이에 차이가 있다면, 명확한 죽음을 느끼고 있는 백성들은 종교 세력들이 아니라 오다 가문으로 올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종교 세력을 의지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싫다는 상대를 구해줄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은 없다.

"옛,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를 올려 주세요. 전령(早馬)의 숫자가 적을 경우 신청하면 4명 정도는 늘릴 수 있어요"

각 격리 병동에는 보고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전령을 6명 배치하고 있었다. 사소한 휴먼 에러(human error)가 때로는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기에, 사소한 내용이라도 보고를 올리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전령을 두어도 보고를 올리기 어려운 환경으로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몇 명의 병사를 써서 보고를 상시 올리게 하여, 격리 병동에 보고를 올리기 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격리 병동에서 스무스하게 보고가 올라가면, 그 후에는 사령부에 있는 시즈코나 병사들이 꼼꼼히 검토하여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해결 방법을 정리한 서류를 격리 병동으로 보낸다. 물론,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그 대응 방법을 다른 격리 병동에서 쓸 수 있을 가능성도 고려하여, 사후에라도 보고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렇게 모인 노하우집이 정리되어, 마지막으로 노부나가에게 보고되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축적된 지식이야말로 노부나가의 비장의 카드 중 하나라고 해도 좋다.

"옛!"

보고를 마친 병사는 예를 올리고는 방을 나갔다. 그 밖의 보고도 다 들은 시즈코는 미츠히데에게 전달할 보고서를 작성했다.
입장상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시즈코는, 보고서로 상황을 알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우필(右筆)을 써서 보고서를 쓰는 게 아니기에 그만큼 시간 손실이나 인식 차이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전부 시즈코가 써야 했다.
도중에 보고를 받으면서 미츠히데에게 보낼 보고서를 다 쓰자, 오늘의 시즈코의 업무는 끝났다.

"응~! 아무래도 사무처리만 하자니 피곤하네. 내일은 비트만들이 도착할테니, 앞으로 2주일 정도는 대기하게 되려나"

며칠이면 돌아갈 거라서 비트만들을 데려오지 않았으나, 몇 주일 동안 쿄에 체류할 필요가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그들을 불러오는 쪽이 효율이 좋다.
호위역에 그들이 가세한다면 그보다 더 든든할 수 없다. 케이지나 나가요시가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곁에 사이조가 있다고는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시즈코의 우려는 들어맞았다. 케이지나 나가요시, 사이조가 자리를 비우기 십상인 그녀의 저택에는 간자가 숨어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것이 위장하기 좋은 상황이 되어, 간자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 버렸다. 물론, 겉보기와는 달리 정보의 보안이 철저한 시즈코였기에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던 간자는 없었다.
그래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말단에 흘러다니는 정보로부터 중핵 부분을 유추할 가능성도 있다. 가능한 한, 정보가 새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정보가 새어나갔을 때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억제할 대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딱히 눈에 띄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고, 다음 날 시즈코가 있는 곳에 비트만들이 도착한다. 그것을 경계로 간자들이 시즈코에게 접근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24시간 비트만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다,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곳에 들어가려고 해도 금방 그들이 눈치채기 때문이다.

비트만들을 부른 이유는 그밖에도 있었다.
홍역은 합병증이 없다면 10일에서 14일 정도에 완치된다. 지금은 프로이스의 감염을 확인한 후 15일이 지난 무렵이었기에, 초기에 격리 병동으로 옮겨진 환자들이 완치되어 순서대로 풀려나고 있었다.
파악된 것 만으로도 약 1만 2500명이, 노부나가의 영향력이 있는 키나이에서의 환자 수였다.
그 중, 사망자는 합병증이나 영양실조로 죽은 아이들이 약 60명, 어른이 약 30명, 60세를 넘은 사람들이 약 120명 뿐이었다.
즉, 홍역이 완치된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기에, 지금 이상으로 인원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시기에 호위가 불안하다고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비트만들을 불렀다.

오다 가문의 영향력이 없는 지역은 감염자가 지금도 계속 증가하여, 그 중 8할이 병사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쿄 주변은 감염자 수에 대해 사망자 숫자가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적었다.
이유는 현대에서도 실시되는 비타민 A를 섭취하게 했기 때문이다. 홍역 감염이 농후한 인물에게는, 사전에 비타민 A를 투여하면 사망률이 감소하는 것이 현대에서는 증명되어 있다.
하지만 비타민 A를 대량으로 추출, 농축하는 공장이 없기에, 시즈코는 식사에 쑥(よもぎ), 소송채(小松菜), 계란 노른자(卵黄)를 포함시켜 비타민 A를 경구섭취하게 했다.
비타민 A는 간장에서 만들어지며, 필요 이상으로 생성되지 않도록 제한되기 때문에, 과잉 섭취의 걱정은 필요없다.
계란 노른자는 그렇다치고 쑥이나 소송채는 재배가 용이하고 입수하기 쉬운 작물이기에 많은 환자들에게 섭취하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주위의 경호를 포함해여 준비를 마친 시즈코였으나,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의 예상과는 다른 형태로 인원이 분산되게 되었다.
합병증이 일어난 사람과, 저항력의 강화가 늦었던 사람들 이외에, 홍역에 걸린 환자들은 목숨을 잃지 않고 병이 낫게 되었다.
그리고 홍역이 완치된 사람들은 시즈코의 저택을 찾아와서 감사의 말을 하며 절을 했기에, 저택에는 인간 장벽이 생겨 버렸다.
그 결과, 간자들에게는 사람의 출입이 잦은 상황을 틈타 숨어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서서히 병자들이 줄어들고, 그와 반비례하여 저택에 사람들이 밀어닥쳤기에, 시즈코들은 저택 주변이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지지 않도록 병사를 배치했다.
병사들로부터의 시선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저택 내부로 침입하는 것은 어렵다.
전령 병사의 복장을 하고 침입하려 해도, 들어갈 때 문지기가 소속과 전령 번호를 묻고, 이것을 모르는 간자는 대답하지 못하여 그대로 포박되었다.

"안 돼. 어딜 가나 사람, 사람, 사람 투성이다. 이래서는 숨어드는 건 불가능해"

인적이 드문 좁은 길에 네 명의 간자가 비밀리에 모였다.
사람의 출입이 잦았을 때는, 소속과 전령 번호의 확인에 의한 시간 손실과 간자가 숨어드는 리스크를 저울질하여, 시산 손실을 줄이는 쪽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현재는 환자 수가 줄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 손실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때문에 소속과 전령 번호를 확인하게 되어, 그걸 모르는 간자는 느닷없이 알 수 없는 질문을 받고 대답이 궁해지고, 대답하지 못하는 자를 수상하게 여긴 위병들에게 포박되고 있었다.

"어쩌지, 이대로는……"

간자들의 목숨은 가볍다. 유익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잘해야 좌천, 아니면 책임을 물어 참수당한다.
자신들의 목숨이 가볍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간자들은 핵심 부분에 해당하는 정보를 얻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었다.

"찾―았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소리없이 다가오는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 등골에 오싹 하고 한기가 느껴진 순간, 그 자리에 있던 간자들 중 세 명은 뛰어 물러섰으나, 마지막 한 명은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 있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살이 뭉개지는 소리와 액체가 비산하는 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서 있던 간자의 머리가 박살나며, 보기에도 무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부터 남의 주변을 얼쩡거리던 쥐새끼들은 너희들이냐"

간자 한 명을 바디시로 절명시킨 나가요시가, 남은 간자들을 일별하며 말했다. 갑작스런 나가요시의 등장에 간자들은 동요했으나, 즉시 냉정을 되찾고 무기를 손에 들고 나가요시와 대치했다.
3대 1이라는 보통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나가요시는 즐거운 듯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입술을 핥더니 나가요시는 간자들을 위협하듯 바디시를 치켜올렸다.
두께감 있는 바디시의 칼날에, 간자들은 잠깐이지만 움찔했다. 그 잠깐의 틈을 나가요시는 놓치지 않았다.
간자와의 거리를 단번에 좁히더니, 가장 앞에 있던 간자의 머리에 바디시를 후려쳤다. 두개골이 박살나고 뇌장과 뇌수가 함께 비산했다.
흩뿌려진 액체를 피하려고 간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어 가렸다. 빈틈 투성이 상태가 된 간자의 옆구리에, 나가요시의 바디시가 파고들었다.
몸통을 반쯤 절단당한 간자는 낙법 따윈 취하지도 못하고 흙벽에 처박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3대 1이 1대 1이 되자, 남은 간자는 깜짝 놀랐다.

"도망치지 않은 것은 칭찬해 주마. 그럼, 머리가 박살나는 쪽이 좋으냐? 아니면 몸통이 두 토막 나는 쪽이 좋으냐? 원하는 죽음을 선택하게 해주마"

오만한 대사였으나, 실력 차이를 생각하면 큰소리치는 것도 당연했다. 간자는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나가요시가 살려놓은 상태인 것이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목숨은 사라진다. 그걸 이해한 간자는 한 줄기 땀을 흘렸다. 이 자리를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그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쓸모없는 짓이었다.
침묵하고 있는 간자에 대해, 나가요시는 아무 말 없이 바디시를 휘둘렀다. 중량감 있는 칼날이 원심력으로 가속했다. 간자의 다리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 한쪽 다리는 잘려나가고, 다른 한 쪽 다리는 무릎뼈가 분쇄되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잠시 시간차를 두고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이 간자의 전신을 관통했다. 하지만 절규한 것도 잠깐이고, 나가요시가 바디시에서 모닝스타로 바꿔쥐더니, 풀스윙하여 오른쪽 어깨를 강타했다.
오른쪽 어깨 뿐만이 아니었다. 왼쪽 어깨, 팔꿈치, 배, 턱 등 나가요시는 말없이, 하지만 미소를 띤 채 간자를 구타했다. 찢겨져나간 간자의 육편이 벽이나 땅바닥에 달라붙고, 피와 기름이 땅바닥이나 벽을 물들였다.
이윽고 말못하는 시체로 화한 간자를 내려다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나가요시는 말했다.

"하여간, 쓸데없이 시간을 들이게 하지 말라고. 아―, 좀 개운하네"

간자의 시체를 걷어차버린 후, 나가요시는 물러서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처참한 광경을 보고 구토가 치밀어오르는 병사도 있었지만, 토했다간 무슨 말을 들을 지 몰라 억지로 삼켰다.

"어차피 대단한 걸 가지고 있진 않을 거다.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려"

신원을 증명할 것은 무엇 하나 없을거라 나가요시는 예상했다. 따라서 간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처리했다.
간자를 남모르게 처리하고 있는 것은 나가요시 뿐만이 아니다. 시즈코 군의 대장급들도 마찬가지로 간자 사냥을 하고 있었다.
쿄 안에 있는 간자들을 차례차례 처리한다. 그것은 살아 남아있는 간자들에게, 다음은 네 차례다라고 가르쳐주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간자들은,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떠나갔다. 남은 것은 오다 가문이 풀어놓은 간자들이거나, 아니면 완전히 녹아든 간자들의 두 종류 뿐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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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6 1571년 4월 상순



시즈코는 손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말머리를 돌렸다. 그녀가 겐로(玄朗) 쪽으로 말머리를 향한 것을 보고 케이지(慶次)나 병사들도 시즈코를 따랐다.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다급하게"


"아까 전령이 왔습니다. 영주님께서 내일, 저택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땀을 흘리면서 겐로가 시즈코에게 전령의 내용을 전달했다. 이 시기에 노부나가가 호출하다니 희한한 일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또 뭔가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건가, 아니면 평소와 같은 변덕인가,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그녀에게는 간다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알겠어요. 내일 아침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옛!"


기운좋게 대답한 후,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겐로는 달려서 그 자리를 떠났다. 시즈코는 호위병이나 케이지(慶次),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쇼우(蕭)에게 내일에 대비해 준비하도록 명령했다.

노부나가의 거관(居館)으로 가는 것 자체는 자주 있는 일이기에 각자 탈없이 준비할 수 있다. 이번에는 견학을 겸해 쇼우나 타카토라(高虎)도 동행시키며 시즈코는 노부나가의 거관으로 향했다.

아시미츠(足満)만이 없었으나, 시즈코와는 다른 루트에서 노부나가에게 호출된 듯 했다. 즉, 아시미츠만 노부나가는 다른 계통의 인물로 취급하고 있다, 고 시즈코는 이해했다.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아시미츠 아저씨는 뭘 한 걸까?

요즘 묘하게 위험한 독초를 입수하고 있던데, 그쪽과 관계가 있는걸까)


아시미츠는 몰래 독초를 수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즈코는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해외로부터의 입수 루트를 구축한 것은 시즈코 자신이었기에, 오다 가문의 연줄을 이용하여 해외에서 수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녀가 알게 된다.

하지만 시즈코는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아시미츠가 감추고 있다는 것은, ,그걸 모르는 쪽이 좋다는 의미이다. 어설프게 모든 것을 파악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해서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시즈코는 상황을 알면서도 아시미츠를 신용하여 일체 캐묻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기로 결정했다.


"영주님, 시즈코 님이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라"


노부나가의 명령과 함께 소성이 조용히 맹장지를 열었다.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자, 시즈코의 눈에 노부나가와 모리 요시나리(森可成),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 타키카와(滝川), 아케치(明智), 아시미츠(足満) 등 쟁쟁한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수집 담당인 타키카와가 있는 것에 시즈코는 약간 고개를 갸웃했으나, 비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전원 모였군. 그럼, 당장 이야기를 시작하지"


노부나가의 말에 전원이 표정을 조였다. 그가 일부러 소집을 한 인물들이었다. 중대한 대화가 될 것은 간단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현재 상황을 이제와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주변국은 적 투성이, 배신자는 속출, 이라는 참담한 상태다. 이걸 타파하려면 하나씩 적을 없애가는 수밖에 없다"


의리가 두터운 우에스기(上杉)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오다 가문에 적대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타케다(武田)도 명확한 적의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오다 가문의 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아사쿠라(朝倉) 가문, 아자이(浅井) 가문, 타케타 가문, 엔랴쿠지(延暦寺), 혼간지(本願寺), 사이카슈(雑賀衆), 나가시마(長島) 등 사방팔방이 적 투성이다. 타케다와 달리, 적극적으로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우에스기 가문도 방심할 수 없는 상태다.

오히려 우에스기 가문 같은 태도가, 섣불리 적대하는 자들보다 질이 나빴다. 아군인 척 하는 적은 대응을 잘못하면 대의명분을 얻을 수 없고, 또 내부에서 상대에게 동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쉽다.


"아케치, 너는 변함없이 쿄(京)를 확보해둬라. 쇼군(公方)이 또다시 좋지 않은 일을 꾸미겠지만, 적당히 받아넘겨두도록"


"옛!"


노부나가의 말에 미츠히데(光秀)가 대답했다. 누가 어딜 담당할 것인가, 를 전달하는 자리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자신의 담당이 어디가 될지 조금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불려왔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개인의 재량이 인정받았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소에 따라 좋은 활약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권력은 별로 원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발언력을 획득하려면 권력도 필요해지겠네. 뭔가 공을 세워서 토지의 인프라 정리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이대로는 오와리(尾張)-미노(美濃)만이 번영하는 데 그쳐버리니까)


토지의 지배권을 임시로라도 받을 경우, 시즈코가 먼저 하는 것은 인프라 정비이다. 사람과 물건을 움직여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하려면, 우선 인프라 정비가 만전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

인프라 정비가 끝나면 치안유지가 되지만, 그 무렵에는 다른 사람이 토지를 지배하고 있을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장기간 특정한 토지에 묶어두지 않기 때문이다.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는 존재이며, 토지의 생산력이 안정기에 들어가면 다시 자기 밑으로 돌아오게 해도 문제없다.


"시즈코, 너는 원숭이나 타케나카와 함께 아자이-아사쿠라를 막아라. 단, 아시미츠는 나와 함께 행동해라"


"옛! (아― 역시 아시미츠 아저씨는 다른 담당인가. 아마, 히에이 산(比叡山) 쪽이려나?)"


대답을 하면서 시즈코는 아시미츠가 별도 계통으로 호출된 이유를 이해했다. 하지만, 일부러 아시미츠만을 나누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노부나가가 그 정도로 사람을 자기 밑에 두려고 생각할 정도로 얄팍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네게 할 이야기가 있다. 남도록"


그 후에도 각자 담당이 정해졌다. 하지만 분담 작업에 들어가는 것은 나가시마를 공략한 후, 라는 것이었다.

목 앞에 들이밀어진 칼 같은 나가시마를 방치해두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한동한 군사 행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놓아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가시마 상대라면, 이런저런 '병시'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나가시마에서 병력의 손해는 줄여두고 싶네. 라이플링 화승총은 아직이고, 그런 데서 폭약을 썼다간 나중에 지배하기가 어려워지지. 으―음, 역시 원거리 계열의 병기려나)


대화로 해결되면 제일 편하지만, 상대는 이쪽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취할 방법은 하나, 상대를 대화 자리에 앉히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한다.

다만, 나가시마를 철저하게 멸망시켜버리는 것으로 다른 잇코잇키(一向一揆)를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도, 노부나가가 나가시마 잇코잇키에 대해 지독한 대응을 했기에 다른 잇코잇키가 숨을 죽였다.

시즈코도 그걸 본받아 나가시마 잇코잇키에 대해 자비없는 작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게 다른 잇코잇키를 억눌러서 양쪽 모두가 쓸데없는 피해를 입지 않는 결과가 된다.

어떠한 작전을 펼칠지 생각했으나, 이렇다 할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노부나가의 이야기를 다 들은 시즈코는 군을 이끌고 귀로에 올랐다.


노부나가의 이야기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으로, 시즈코의 집을 새로 무가 저택(武家屋敷)으로 짓겠다는 것이었다. 신분과 집의 규모가 맞지 않는 것을 노부나가는 전부터 신경쓰고 있었다.

시즈코는 규모가 큰 집이 필요없었지만,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해 시즈코가 신분에 맞는 집을 가지는 것은 노부나가에게 필요한 조건이었다.

그에 맞춰 시즈코가 사는 주변도 다양한 확장을 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뭐든지 다 결정된 사항이라, 시즈코가 의견을 개입시킬 여지는 하나도 없었다.

이것은 시즈코에게 맡겨두면 토지를 논밭에 잔뜩 할당하기 때문이다. 비닐하우스 관계상 어느 정도의 의견은 낼 수 있었으나, 채용될지는 반반이었다.


(머리가 아파…… 그만한 규모가 되면, 둘만으로는 부족해. 처음부터 사람을 늘릴 걸 전제로 계획을 세운 거구나)


무가 저택이 되면, 아야(彩)와 쇼우(蕭) 만으로 집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10명의 고용인이 필요해진다. 집에 들어가는 것도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번거로워진다.

그 대신 비트만들의 침소, 아카가네, 시로가네, 쿠로가네의 오두막, 땅거북들이 겨울을 날 오두막, 셰퍼드들의 침소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노부나가의 계획이 완료되면, 어떤 의미에서는 격리 시설이나 마찬가지인 장소가 된다. 예를 들면 오다 영토 내에서의 쇄국 지역(鎖国地域), 에도(江戸) 시대에 존재했던 데지마(出島) 같은 것이다.


"……폐탕을 버리는 곳을 해자(堀)처럼 만들어서 약간 따뜻한 탕으로 둘러쌀까. 그거라면 온난한 기후의 동물들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프로이스 님에게 편지를 보내볼까"


시즈코에게 노부나가의 행동은 과잉으로 보였으나, 노부나가에게 시즈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주위에 간자가 늘었다고 보고를 받고, 그에 대해 시즈코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노부나가가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 노부나가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시즈코였으나, 명령인데다 명확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노부나가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오와리에 도착하자 시즈코는 군을 해산시키고, 각자 귀가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 먹이를 한 손에 들고 시즈코 전용의 연못으로 왔다.

시즈코 전용의 연못에는 홍백(紅白) 또는 홍색(紅一色)의 잉어와 컬러풀한 금붕어(金魚)가 입하되어 있었으나, 마침 바쁜 시기에 입하되었기에 그녀가 잉어와 금붕어를 떠올리는 게 조금 늦어졌다.

다행히 금붕어와 잉어는 잡식성이라 기본적으로 뭐든지 먹는다. 자칫하면 죽은 동료도 먹는다.

잉어는 하루에 몇 번씩 먹이를 줘야 하지만, 금붕어는 하루에 한 번으로 문제없다.


"자~, 먹이다"


먹이를 연못에 던져넣은 순간, 잉어나 금붕어들이 무서운 기세로 먹이에 달려들었다. 5분에서 15분 정도면 다 먹을 수 있는 양을 넣은 후, 시즈코는 잉어나 금붕어의 상태를 확인했다.

질병이나 상처는 없이 건강하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잉어나 금붕어의 연못에는, 드물게 위험한 생물이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얌마 마루타. 이 물고기는 네 먹이가 아냐"


연못을 들여다보는 마눌고양이인 마루타를 시즈코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안아올렸다. 아카가네나 쿠로가네는 새로운 물놀이터를 준비해주자 잉어나 금붕어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지만, 마루타만은 달랐다.


"후냐아아아아아!! 후욱―! 후욱―!"


갑자기 안아올려진 마루타가 위협하는 소리를 냈지만, 다리를 버둥거릴 뿐 박력은 전무했다. 그러다가 지쳤는지, 다리를 축 늘어뜨리고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시즈코는 마루타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 타마와 카이저가 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부근에 묘하게 큰 고양이, 가 아니라 환상의 동물이라고 하는 설표 두 마리가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흑백의 반점 모양은 환상적이었지만, 지금은 흙으로 지저분해져 이래저래 모양새가 안 났다.


"윳키―, 시로초코―, 이런 데서 자면 지저분해진다"


설표로 판명된 후 수컷의 이름이 윳키, 암컷의 이름을 시로초코라고 지었다. 두 마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자는 쪽이 우선인지 꼬리를 흔들 뿐 두 마리 모두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한편, 카이저와 타마는 시즈코의 모습을 확인하자, 노는 것을 멈추고 시즈코에게 달려왔다.


"후갸악!"


먼저 카이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도착하고, 이어서 도착한 타마가 처음에 카이저의 등에 올라가고, 다음에 옆구리에 끼워져 있는 마루타의 등을 밟고 시즈코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등에 충격을 받았기에 마루타는 놀라서 주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마루타의 등을 발디딤대로 삼은 타마는 시즈코의 어깨 위에서 데굴거리며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카이저도 마루타의 놀람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시즈코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결국, 주위를 둘러봐도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는지, 마루타는 다리를 늘어뜨리고 다시 자기 시작했다.


"옳―지옳지, 추우니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애교를 부리는 두 마리의 턱을 쓰다듬어준 후, 시즈코는 어깨에 타마를 태우고, 왼쪽에 마루타를 끼우고, 오른쪽에 카이저를 데리고, 조금 뒤쪽에 어느 새 일어난 윳키와 시로초코를 데리고 현관을 열었다.

아야나 쇼우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두 명의 마중은 없었다. 조금 쓸쓸하게 생각하면서도, 시즈코는 집에 들어가자 일직선으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

맹장지를 열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부근에서 뒤엉켜 자고 있는 비트만 패밀리였다.


"……내 방은 너희들 침실이 아니거든. 아니, 확실히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는 있지만. 뭐 어쩔 수 없나"


마루타와 타마를 바닥에 내려놓고, 시즈코는 비치 체어에 누웠다. 원래는 해변이나 풀 사이드에 놓이는 비치 체어지만, 모처럼 넓은 방에 있으니까라면서 실내용으로 개조했다.

다만 실내용 비치 체어는 키소 노송나무(木曽檜)와 먹감나무(黒柿)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쓸데없이 고급품이었다. 쿠션도 비단과 목면과 삼베를 듬뿍 썼기에, 안락함은 최고였다.

그 밖에도 실내용의 해먹 등, 쾌적하게 뒹굴거리는 데 관해서는 충실하게 갖춰진 방이었다.


"……타마와 하나는 고양이집(猫ちぐら)을 쓰는데, 너는 어째서 내 배 위에 올라오는 걸까"


자신의 배 위에 올라와 있는 마루타를 쿡쿡 찌르면서 시즈코는 그렇게 불평했다. 마루타는 그녀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거기가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둥글게 몸을 말고 있었다.

마루타가 있는 것을 알게 된 비트만들이, 방해된다고 말하듯 마루타를 쿡쿡 찔렀지만, 당사자는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고 있었다.


"괜찮겠지"


그 말만 중얼거리고, 시즈코는 옅에 있던 아델하이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즉시 나도, 라는 태도로 비트만들이 모여든 것은 애교였다.




4월에 들어서자 시즈코는 군을 이끌고 쿄로 향했다. 진군 목적이 아니라 정기적인 순회가 목적이었다.

노부나가에게 쿄를 잃는 것은 사활문제이다. 정기적으로 오와리, 미노에서 쿄, 쿄에서 오와리, 미노를 순회시켜 이상이 없는지 눈을 빛내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를 필두로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의 세 무장과 병사 500의 군을 구성했다. 타카토라는 시기상조, 아야와 쇼우는 남겨두고, 비트만들은 군사행동도 아니고 단순한 순찰이었기에 남겨두게 되었다.

아시미츠눈 정체 문제로 쿄에 갈 수 없지만, 시즈코가 그의 뒷사정을 알 수 있을 리도 없어, 긴급시의 대응 멤버로서 오와리에 남겨 놓았다.


쿄의 순회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일이었기에, 통상의 군사행동과 다름없는 장비로 수행한다.

영락전문기(永楽銭紋旗)를 사용하고, 말단 병사까지 무구를 장비시켰다. 얼핏 보면 군사 행동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이채(異彩)를 발하는 존재가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시즈코와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다. 정확히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손에 들고있는 무기였다.


시즈코가 들고 있는 무기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푸른 칼날과 자루 끝부분에 붉은 천이 감겨있는 것이 특징인 쿠제(kuse)라 불리는 의례용(儀礼用) 글레이브다.

케이지는 할버드(halberd), 나가요시는 바디시(bardiche)였다. 하지만 할버드와 바디시에는 일본도나 창의 제조기술이 응용되어 있었다.

케이지는 처음에 여러가지 무기를 다뤘지만, 최종적으로 할버드의 화려함에 반했다. 독자적인 개조를 하여, 다목적인 할버드가 더욱 다목적화되어, 문자 그대로 케이지 전용의 무기가 되었다.

나가요시의 바디시는 두꺼워서 중량감이 있다. 문자 그대로 '투구째 뭉개버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무기였다.

흉악한 외관 떄문에 독특한 위압감이 있는 바디시는, 보는 사람을 공포에 질리게 한다.


사이조만 보통의 대신창(大身槍)이었지만, 창신의 재료가 다마스커스 강이라는 특수한 강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19세기에 맥이 끊긴 다마스커스 강의 제조기술이었으나, 전국시대에는 많이 남아 있었다. 이미 많은 잉곳을 입수한 시즈코는, 다마스커스 강으로 창을 만들 것을 도공들에게 의뢰했다.

처음 보는 다마스커스 강에 도공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 강으로 만들어진 나이프를 보고 반하여, 몇 번인가 실패한 끝에 시즈코가 바라는 창신이 완성되었다.

나뭇결 무늬의 문양이 있는 대창신을 본 사이조는, 처음 본 순간 반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대창신을 손에 들고, 평소의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억지스러울 정도로 대창신을 가지고 싶다고 부탁했다.

항상 침착냉정한 사이조가 보인 미친듯한 정열을 보고 시즈코는 이의 따위 있을 리도 없어 그에게 대창신을 주었다.


3인 3색, 각자 반한 무기를 손에 넣었으면 할 일은 하나다. 새로운 무기였지만 손에 잘 맞는 무기를 들고 그들은 잇코슈(一向衆)가 일으키는 소규모 분쟁에, 때로는 용병처럼 참가(陣借り)하면서까지 전쟁터에서 날뛰었다.

그렇기에, 바디시로 인간을 두토막낸 나가요시는 '귀참무사(鬼斬武者)', 전쟁터에서도 괴짜 행동을 하는(傾く) 케이지는 '오다 가문 제일의 카부키모노(傾奇者)', 가지고 갈 수 없는 수급에 대나무 잎(笹)을 물려놓은 사이조는 '대나무잎의 사이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무기를 시험하는 데 너무 집중했기에, 종종 보수를 받는 것을 잊어 지갑 사정이 허전해져, 최종적으로 세 사람은 시즈코에게 돈을 빌렸다.


쿄에 도착한 후, 시즈코는 군에 배정된 저택으로 들어갔다. 무장 해제 후, 계획대로 돈을 200명에게 주고 휴식, 100명에게 저택의 경비, 남은 200병에게는 대기를 명했다.

약간이지만 돈을 쓰게 하는 것이나, 현지에서 물건을 사게 하는 것으로 쿄의 경제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물론, 노부나가가 정한 법을 어기는 것, 도박이나 여자를 사는 것, 뇌물로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금제를 깨는 자에게는 엄격한 처벌이 내려졌다. 내용이 악질적인 경우 목이 잘려 효수되는 경우도 있다.

상락(上洛) 때도 노부나가는 여자의 얼굴을 엿본 죄, 일전(一銭)을 훔친 죄로 잡병 두 명을 베어버렸다. 소위 말하는 '노부나가의 일전 참살(信長の一銭切り)'은, 오다 군에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는 것의 선전으로서 사용되었다.

엄격한 규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여자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폭행한 자, 식당에서 밥값을 떼어먹은 자, 금제를 깬 자들은 지위에 관계없이 참수되어 효수되었다.


"하지만, 나는 일이 있어서 움직일 수 없어요. 윗사람이 일을 하고 있으면 아랫사람들이 속편하게 놀지 못할거라 생각하니, 두 사람은 평소대로 놀아줘요"


"알겠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케이지와 나가요시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군의 규율이 높아도, 그것만으로는 숨이 막힌다.

긴장을 푼다는 의미에서도, 병사들에게는 충분히 놀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가 일을 하고 있으면, 병사들은 신경쓰여서 만족스럽게 놀 수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케이지나 나가요시를 요란하게 놀게 하여 그들의 죄책감을 없앴다. 참고로, 사이조가 참가하지 않는 것은 그 자신의 성격에 의한 부분이 컸다.

돈을 받아든 두 명은 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두 사람의 태세변환에 사이조는 어이가 없어져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어요. 누구나 답답한 매일을 보내고 싶진 않으니까"


"소생은 시즈코 님의 호위대 임무를 맡은 이래, 오늘까지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부터도 변하지 않습니다"


"후훗, 고마워요. 쿄에서는 기대할게요"


"옛!"


사이조의 대답에 만족한 시즈코는 책상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에치고(越後)의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 있는 켄신(謙信)은, 요즘 오다 영토, 특히 시즈코의 정보 수집에 열심이었다.

자신도 그렇지만 오다 가문 가신들도 만만찮은 자들 투성이였다. 그 안에서 중진(重鎮)으로 올라가려면, 고노에(近衛) 가문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뭔가의 능력이 있고, 그것이 주위도 납득할 재능이라고 켄신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흠……병원에 방적공장(紡績工場)이라고? 몇 가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구나"


노키자루(軒猿)로부터의 조사 보고를 카게츠나(景綱)에게서 들은 켄신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노키자루 자신도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노에 시즈코가 나타난 후, 오다 가문의 자금 사정은 압도적으로 윤택해졌습니다. 또, 백성들에게는 굶주림에 괴로워하지 않고, 난세를 느낄 수 없는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는지 실로 기이합니다"


괴상하다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카게츠나가 대답했다. 그 자신도, 노키자루의 보고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노키자루의 보고가 올바르지 않다면, 오다 가문이 유복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설명은 된다. 요는 건물과 마찬가지다. 백성이라는 토대가 굳건하다면, 다소의 일도 견뎌낼 수 있다. 지금의 난세는 무가(武家), 공가(公家), 불가(仏家, 승려가 있는 절) 모두가 백성들에게서 모든 걸 빼앗는다. 전쟁이 일어나면 뭐든지 약탈하고, 그런 끝에 인신매매를 하지. 그것은 나도 다를 바 없다……어디나 똑같은 짓을 하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에는 굶주린 백성들로 넘쳐나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 바로 거기에 그녀의 강점이 있는 것이다"


켄신이 하고 싶은 말이 이해되지 않아 카게츠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나라건 굶주리는 자들이 많다. 그건 우리 나라도 다름없지. 하지만, 거기에 굶주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하고, 백성들에 먹거리를, 입을 옷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줄 수 있는 자가 나타났다. 그렇다면 억압받던 백성들은, 그 자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가 된다. 그 차이는 우사 산성(宇佐山城)과 노다(野田), 후쿠시마(福島)에서 여실히 드러났지"


"확실히, 그렇군요. 혼간지와 오다 군의 전쟁은, 오다 군이 방어 일변도였습니다. 하지만, 우사 산성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지켜냈지요. 잡병들에게는 도망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카게츠나의 말에 켄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의 대부분은 먹거리 확보를 위한 약탈전이다. 또는, 먹거리를 줄이기 위한 전투이다.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고, 아무도 다른 나라에 대해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누구나 자기 나라만으로 벅차서, 다른 나라를 고려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시즈코 님은 알고 있었다. 우사 산성이 뚫리면, 오다 가문이 멸망한다는 것을. 그것은 쇼군(公方様)과 오다 가문 아래에서 안정을 되찾은 치세(治世)가 또다시 난세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난세로 되돌아가면, 또 백성들은 약탈당핮다. 그 의식이 시즈코 님과 그녀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있었기에, 큰 희생을 치르면서도 아사쿠라-아자이 연합군으로부터 우사 산성을 지켜냈지"


우사 산성 전투에서 오다 군의 피해는 그야말로 비정상적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제 4차 카와나카지마(川中島) 전투를 뛰어넘는 사망자를 낸 우사 산성 전투에 대해 알게 된 주변국들은, 오다 군의 처절함에 공포를 느꼈다.

그만한 사망자를 낸 것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만한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오다 군은 최후까지 싸웠다는 것에 대해서이다.


"역시, 시즈코 님 쪽에 도리(義)가 있다. 혼간지 측의 요청은 무시하라. 구태의연하게 백성들을 착취해온 자들과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자들, 과연 어느 쪽이 더 하늘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보고 싶노라"


"옛! 하지만, 오다가 우리 나라를 노렸을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카게츠나의 걱정은 당연했다. 지금은 오다와 우에스기는 동맹 관계이지만, 언젠가 오다는 우에스기의 영토로 침공해 올 것이다. 그 때, 켄신은 어떠한 대응을 할 것인지가 마음에 걸렸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전투에서 후회없는 결판을 짓는 것이지. 내가 패하면, 새로운 세상이 하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 반대로 내가 이긴다면, 하늘은 내게 무언가를 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니라"


"……영주님(御実城様)"


"그러기 위해서도 시즈코 군을 철저히 조사하라. 우리 군과 오다 군이 전투를 벌였을 때, 반드시 그 자들이 핵심이 된다. 내 예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느니라"


"알겠습니다. 노키자루들에게 자세히 조사하도록 명령해두겠습니다"


켄신은 카게츠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만약, 내가 오다와 전투를 벌일 때 그녀가 변치 않은 상태라면, 아마도 하늘은 그녀를 사랑하겠지. 하지만, 그걸로 좋다.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그 초석이 될 각오는 되어 있다)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쥐고 신음했다. 매번 있는 일이지만 노부나가의 즉흥적인, 뒤통수를 치는 듯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에 두통이 느껴졌다.


"모의전(試し合戦)에 참가하라니…… 사전에 좀 얘기해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설령 쿄로 출발하기 전에 들었다고 해도, 과연 참가를 수락했을지는 그 자신도 의문이었다. 전투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시즈코도 손을 쓰지만, 그 이외에는 가능한 한 눈에 띄는 행위는 삼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다 가문의 위신에 관계되니, 할 수 밖에 없으려나"


내키지는 않지만, 이 시기에 모의전을 하는 이유는 이해했다. 노부나가로서는 오다 군은 아직 건재하다는 모습을 주위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작년에 그만큼 연이어 대패했던 오다 군은, 주변국들에게 약간 얕보이게 되었다. 따라서, 오다 군의 강함을 주위에 과시하자고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시즈코의 대답 따윈 하나마나인 듯, 이야기는 착착 진행되었다. 오다 군으로부터는 아케치 군, 시바타 군, 그리고 시즈코 군이 나가게 되었다.

키나이(畿内)에서도, 노부나가가 상위자에게 지급할 상금을 목적으로 몇 개의 군이 참가했다. 그리고 시즈코가 쿄에 도착한 지 4일 후, 쇼군(将軍)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와 조정의 사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부나가가 주최하는 모의전이 시작되었다.


"아―응,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모의전이니까, 평소의 전투랑은 좀 성격이 달라요"


누가 봐도 기력이나 박력이 전부한 시즈코가, 느긋한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병사의 숫자는 규칙에 따라 100명으로 정해졌다.

시즈코는 궁기병대에서 5명, 나머지 보병 95명으로 구성했다. 개중, 시즈코 부대에서 35명,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로부터 각각 20명의 정예병으로 구성되었다.

병사 100명과 5명의 무장, 합계 105명의 군으로 모의전이 치러진다. 시즈코는 무장의 숫자가 3명밖에 없었으나, 5명을 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규칙 때문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시즛치―. 좀 기백을 보여줘~"


케이지가 놀리자 주위가 웃음을 터뜨렸다. 시즈코는 얼굴 전체를 덮는 가면(総面을 쓰고 있었기에 외견은 무시무시했지만, 목소리가 느긋했기에 군 전체의 분위기는 느슨했다.


"핫핫핫, 그건 무리한 주문이라는 거에요. 하지만 뭐 진지하게 얘기해볼까요. 첫 전투의 상대는 셋츠(摂津) 반국(半国) 슈고(守護) 와다(和田) 님. 막부의 신하인만큼 방심은 금물이에요"


"나는 기합이 충분히 들어갔어. 선봉은 내게 맡겨줘!"


기합이 충분히 들어간 나가요시가 외쳤다. 하지만, 그가 외치지 않더라도 나가요시가 선봉에 설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즈코의 다음 말에 모두가 놀랐다.


"아, 카츠조(勝蔵) 군은 방어 담당이야"


"어 야! 잠깐 기다려!"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들어. 알겠어? 이번에는 오다 군의 위신을 보여주는 거야. 카츠조 군이 선봉에 서서 그대로 상대를 쓰러뜨려도 의미는 없어. 이럴 때는, 예상외의 인물이 예상외의 위치에 배치되어야 오다 군의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거야"


항의를 한 나가요시였으나, 시즈코의 설명에 말을 삼켰다. 시즈코의 말은 옳았다. 설령 나가요시가 막부군을 휩쓸어도, 호용무쌍(剛勇無双)의 젊은 무사인 그라면 당연하다고 주위는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방어를 담당하고, 다른 인물이 혈로를 개척한다면, 주위는 놀라며 오다 군의 인재층이 두터운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돌격은 사이조 씨한테 부탁해요. 케이지 씨는 유격대, 돌격 신호는 내가 내겠지만, 그 이후에는 전장 상황을 보면서 독자적으로 움직여줘요"


"옛! 알겠습니다"


"휘익―, 맘대로 하라니 시즛치는 대담하네"


"크윽…… 나도 돌격하고 싶었어"


차분한 태도의 사이조와, 즐겁다는 듯한 웃음을 떠올린 케이지, 약간 낙심하고 있는 나가요시 등 3인 3색의 태도였다.


"첫인상이 중요하니까. 괜찮아, 상대에 따라서는 다음 돌격은 카츠조 군일지도 몰라"


"진짜냐! 좋아, 약속이다! 다음은 내가 돌격할 거라고!!"


"아니, 그러니까 상대에 따라서라고…… 뭐 괜찮으려나. 다음 군은 부상자가 많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사전에 전달해 둘까"


사람 참 간사하게도 다음에 돌격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가요시는 쌍수를 들고 기뻐했다. 다음 모의전에서는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지을 수 없었다.


"시즈코 님, 정말로 소생이 돌격대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곤혹스러운 모습의 사이조가 시즈코에게 말했다. 곤혹이라기보다는 뭔가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무엇이 그를 망설이게 하고 있는지 이해한 시즈코는, 사람 좋은 웃음을 떠올리면서 말을 꺼냈다.


"망설일 필요는 없어요. 저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어요. 그러니까,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해방시켜 주세요"


그 말만 하고 시즈코는 정해진 위치로 말을 걷게 했다. 일순간 놀란 표정을 지은 사이조였지만, 다음 순간, 평소에 떠올리는 일이 없던 대담한 웃음을 떠올리더니 시즈코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얼굴을 들었을 때, 사이조의 표정은 침착한 자의 표정이 아니라, 그야말로 난폭자(荒くれ者)라고 부를 수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투 개시!"


와다 군과 시즈코 군이 소정의 위치에 자리잡은 후, 조금 지나가 신호역의 병사가 개시 신호를 외쳤다.

개시의 신호가 들린 순간, 사이조와 20명의 병사들은 돌격을 개시했다. 방어전에서 뛰어난 실적을 가지고 있는 사이조가 창을 들고 돌격하는 모습에 주위는 놀라움으로 술렁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 경악으로 변모했다.


"걸리적거린다!!"


창 부대와 격돌하기 직전, 사이조들은 말에서 내려서 창 부대에 돌격했다. 창 부대가 가진 봉은 장창(약 5미터). 그에 반해 사이조 부대가 가진 창은 수창(手槍, 약 2.7미터)로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주위는 사이조가 창의 밥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사이조 부대는 창 부대의 창을 피하고 품으로 파고들더니 수창을 상대의 배에 힘껏 후려쳤다.


몇 명의 병사가 나가떨어졌다. 개중에는 1미터 이상 날아간 사람도 있었다.

사이조와 그의 병사들의 돌격에, 와다 군의 병사들은 걸레짝처럼 나가떨어져, 순식간에 10명이 넘는 병사들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내가 악마(鬼)조차 잡아먹는 나찰(羅刹)이라 불린 카니 사이조(可児才蔵)다! 몸 다치는 게 무섭지 않다면 내 길을 막아보아라!"


전장 한복판에서 사이조가 포효했다. 그 목소리는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요시아키나 조정의 사자, 노부나가나 키나이의 영주들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와다 군은 공포에 질려, 무기를 내던지는 자,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실금(失禁)하는 자도 있었다.

그들을 후려갈겨 창 부대를 괴멸시킨 후, 사이조는 그 기세 그대로 와다 군의 본대로 돌격을 개시했다.


"어떻게 된 거냐! 키나이의 장수는 겨우 이 정도냐!!"


시즈코의 밑으로 온 이후의 사이조는, 사려깊고 항상 침착한 분위기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래는 미노에서 제일 호용무쌍한 젊은 무사였으며, 난폭하고 조야한 무장이었다.

처음에는 주위의 설득으로 내키지 않지만 조용한 태도를 취했던 그였으나, 어느 새 지금의 스타일이 정착되어 버렸다.

본인도 과거를 되돌아볼 때, '어째서 소생은 그렇게 난동을 부렸던 것일까'라고 의문을 입에 올릴 정도였다. 그 때문에, 사이조는 주위에서 침착냉정한 무장으로 생각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잠자는 짐승은 항상 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짐승을 밖으로 내어 시즈코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이라고 생각하자 사이조는 한 발짝을 앞으로 내딛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 시즈코로부터 '아무 문제 없음'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사이조는, 내면에 잠자고 있던 짐승을 밖으로 해방시켰다.


짐승의 포효를 지르며 병사들을 휩쓸어버리는 사이조의 모습을 보고 와다 군의 마음은 완전히 꺾였다.


"슬슬…… 때가 되었으려나. 케이지 부대, 돌격. 도중에 내가 장난을 치겠지만 신경쓰지 말아요"


"핫하―, 그거 기대되는데. 그럼 다녀오겠어!"


말하자마자 케이지 부대는 말을 달리게 했다. 시즈코의 예상대로, 측면에서 공격하기 위해 케이지 부대는 외곽을 따라 이동했다.


"뭐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일은 해야지"


가볍게 어깨를 돌린 후, 시즈코는 우는살(鏑矢)을 시위에 걸었다.


"……3, 2, 1, 발사"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우는살은 케이지 부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와다 군은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무의식중에 반응해버렸다. 시간적으로는 잠깐이지만, 그것이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었다.


"으악! 측면에서 적이!? 크아악!"


정면에서 사이조 부대, 그리고 측면에서 케이지 부대의 공격을 받고, 와다 군의 본대는 괴멸했다. 남은 자들이 자포자기하여 시즈코 부대 쪽으로 향했지만, 나가요시 앞에 전원 손도 못 쓰고 쓰러졌다.


"대장기, 잡았다!!"


모의전은 죽고 죽이는 전투가 아니다. 따라서, 병사들에게는 목숨 대신의 표시용 천을, 총대장에게는 대장기를 주고 싸우게 했다.

병사들은 상대방에게 표시용 천을 빼앗기면 전사로 취급되고, 거기서 전장으로부터 퇴장하게 된다. 그리고 무장이 가진 대장기를 상대에게 빼앗기면, 그 시점에서 승패가 결정된다는 규칙이다.

흥분해서 지나치게 치고받는 경우도 있지만 표시용 천은 뒤통수에 매달기 때문에, 등 뒤에서 몰래 다가온 자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승자, 오다 군!"


사회진행자가 높은 나무 대(櫓)에서 시즈코 군의 승리를 외쳤다. 선언을 해도 치고받는 자들이 몇 명인가 있었지만, 주위가 뜯어냈다.

그러나, 호용무쌍한 사이조는 가까이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케이지도 사이조 상대라면 적당히 상대할 수 없어서 양쪽 모두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어떡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거기까지에요"


어느 새 와다 군의 코앞까지 이동한 시즈코가, 아직도 수창을 휘두르는 사이조에게 말을 걸었다.

패기는 없고, 박력도 전무한 거나 다름없는 목소리였으나, 지금까지 야생마처럼 날뛰던 사이조가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사이조는 수창을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시즈코 쪽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흥분하여, 냉정함을 잃었습니다"


"내재된 짐승을 해방하라, 고 말한 건 저…… 소생입니다.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 어렵다고 한다면, 다음 모의전에서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 주세요"


"관대하신 배려, 감사드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사이조는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만큼 미쳐날뛰고 있던 사이조를 단 한 마디로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것에 와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영주들도 말을 잃었다. 유일하게 이유를 알고 있는 노부나가만이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철수한다!"


"옛!"


시즈코의 호령에 따라 병사들이 정렬하고,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는 움직임으로 대열을 맞추어 행진했다. 기계같이 정확한 움직임은 아름다워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새는 떠나는 자리를 어지럽히지 않는다(立つ鳥跡を濁さず)는 말처럼, 시즈코 군의 깨끗한 철수는 주변국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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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5 1571년 3월 상순



따뜻한 공기가 흐르기 때문에 몸을 녹이러 동물들이 모여드는 것은 시즈코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케이지(慶次)가 먼저 방에 죽치고, 이어서 나가요시(長可)가 죽치고, 다음으로 사이조(才蔵), 키묘마루(奇妙丸)와 할아범 등, 순식간에 남자들은 방 안에 집결했다.

지금은 케이지가 뭔가의 번역을 하고, 사이조와 할아범이 장기를 두고, 키묘마루가 낮잠을 자고, 나가요시가 밖에서 스트레칭이나 근육 트레이닝을 하는 등, 각자 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추우니까 어쩔 수 없지"


엎드려 누워 있는 키묘마루가 시즈코의 말에 반응했다.

표정을 조이고 진지한 얼굴로 대답한 키묘마루였으나, 등에 터키시 앙골라라 올라타있는 탓에 한없이 폼이 살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 비니루…… 라는 건 어떤 물건이냐? 비도 바람도 통과시키지 않으면서 햇빛은 막지 않는다는 신기한 구조를 하고 있구나"


"습관상 비닐하우스라고 말해버렸지만, 정확히는 비닐은 아니야.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말하고 시즈코는 온실로 되돌아갔다. 잠시 후 온실에서 나온 그녀는, 호박색(琥珀色)의 사각진 덩어리를 키묘마루 앞에 놓았다.


"이게 소재야"


"뭐냐 이건. 전혀 닮지도 않은 묘한 물건을 내놓고, 나를 놀리는 거냐"


"그게 아니야. 이걸 가열해서 잡아늘리면 밖에 있는 것처럼 투명하고 얇은 막 형태가 되는거야"


비닐이란 비닐기(基)를 갖는 화학물질의 총칭이지만, 시즈코가 꺼낸 그것은 소위 말하는 아메서브(飴サブ, ※역주: 한글 명칭을 검색할 수 없었음. 서브는 'substitute(대용품)'의 약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유채 기름(菜種油)에 염화황(塩化硫黄)을 첨가하여 제조할 수 있는 팩티스(factice)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 등에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olyvinyl chloride; PVC)과는 달리 고무에 가까운 성질을 갖는 물건이지만 가격이 싸고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비닐만큼의 중량대비 인장강도(引張強度)를 갖지 못하는 결점은 있으나, 시트 형태로 만들어 하우스의 피복으로 쓰는 데는 충분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유리를 사용한 온실로 하지 않은 이유는, 태풍이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유리 하우스 건축이 불가능한 점, 판유리를 한 장 제조하는 시간과 코스트를 무시할 수 없는 점 때문이다.

유리의 주성분은 규소(silicon), 즉 광물이라서 보기보다 훨씬 중량이 나간다.

이 때문에 목재나 대나무 지주(支柱)로는 중량을 제대로 지탱할 수 없다. 또 파손되었을 때의 교체도 위험한 점이 많아 후보에는 올라갔지만 채용되지는 못했다.


역사를 뒤흔들 기술 발전이 아주 간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 옆에서는, 나가요시가 장난감(猫じゃらし)으로 새끼 고양이들과 놀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나가요시의 장난감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2개월 이상 지났기에, 새끼 고양이들은 자립할 준비에 들어간 것이리라.

형제들과 놀거나, 나가요시의 장난감에 정신이 팔리거나 했으며, 어미 고양이인 하나 곁에 있는 새끼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었다.


"잘됐네―, 놀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하면서 놀이에 질린 새끼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자, 이번에는 새끼 고양이들과 놀고 있던 나가요시가 반응했다.


"나, 나는 그저 고양이의 반응에서 전쟁터 감각을 기르고 있는 것 뿐이야. 차, 차차차착각하지 말라고! 사나이가 되서 고양이 따위에 회유될―"


"네네, 그러네―. 카츠조(勝蔵) 형아는, 틈만 나면 아침부터 밤까지 놀아주지―"


"들으라고 임마!"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반론하는 나가요시의 말을 시즈코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다. 다시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새끼 고양이들이 놀아달라고 울기 시작한 것을 듣고 급히 장난감을 새끼 고양이 앞에 흔들었다.


"귀여워하는 건 좋지만 말야. 터키시 앙골라는 단독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지나면 네 마리 모두 거세해서 양도하게 되는데……?"


말의 의미를 이해한 순간, 나가요시는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으로 불타버렸다. 생후 1개월 쯤에서 이야기했을텐데, 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그의 태도를 볼 때 듣고 있지 않았던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이미 노부나가가 양도할 상대를 결정해놓았기에, 이미 나가요시가 무슨 말을 해도 늦었다.

지금까지 귀여워한 것을 생각하면 나가요시가 약간 가엾게도 생각되었으나, 이것 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시즈코는 방으로 돌아가 서류를 정리했다.


이런저런 서류들이 있지만, 시기적으로 터키시 앙골라들의 거세수슬에 관한 내용이 많다.

터키시 앙골라 뿐만이 아니라, 고양이의 거세수술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쓸데없는 번식을 막는 것이다.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양이는 1년에 세 번의 출산이 가능하며, 1회의 출산에서 4마리에서 6마리를 낳는 높은 번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1년에 최저 12마리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고양이의 발정기는 생후 6개월 정도쯤에 오기 때문에, 만약 4년을 살았다고 하면 한 쌍당 50마리를 낳을 수 있다.

물론, 혹독한 자연환경에서는 태반의 새끼 고양이들이 병사나 부상 등, 다양한 이유로 목숨을 잃는다.


번식능력이나 발정기의 시기는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품종이던 높은 번식능력을 가지고 있다.

계속 늘어나는 고양이를 사육할 수 있는 재력 따위, 지금의 일본에서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육의 한계를 넘으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잘해봐야 버려지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먹이가 되어 버린다.

태어나서 바로 버려지는 것과 생식 능력을 빼앗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지 찬반양론은 있으나, 시즈코로서는 일본 고양이의 혼혈화와, 모르는 사이에 번식하는 것을 막는 것을 생각하여 거세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한 마디로 거세라고 해도 그걸 할 기술이 없다. 또 마취 같은 의료도구도 없다.

다행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국시대에는 고양이를 먹는 풍습이 있어, 몇 번이나 해체해본 사람들은 꽤 있엇다.

동물학적으로 고양이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거세수술에 관해서는 문제없었다.


역시 문제가 된 것은 마취였다. 전국시대에 준비할 수 있는 마취는 다이에틸에테르(diethyl ether)밖에 없는데, 이 다이에틸 에테르를 정제하는데도 에탄올(ethanol)에 황산(硫酸, sulfuric acid)을 섞어 가열할 필요가 있다.

에탄올을 입수하는 것은 쉽지만, 문제가 된 화학약품은 황산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가열한 유황과 질산칼륨(potassium nitride, 초석(硝石, saltpeter))으로 황산은 정제할 수 있다.

황산이 있으면 질산(硝酸, nitric acid), 염산(塩酸, hydrochloric acid)을 정제할 수 있는데, 현재 공업 생산은 불가능하고 소량밖에 생산할 수 없다.


어쨌든 다이에틸에테르를 소량이나마 생산 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이 정제기술, 조금 응용하면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제조에 쓸 수 있는 점과, 이 화학약품들이 하나같이 현대에서 말하는 극물(劇物)로 지정되는 것들이기에 엄중한 관리가 필요했다.

따라서 고양이의 거세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다 영토 내에 겨우 두 사람밖에 없었다.


"성적은 좋은데, 그 두 사람 굉장히 사이가 나쁘지"


둘 다 이미 수백 마리의 고양이의 거세수술을 했다. 물론, 실패해서 고양이가 죽은 적도 있다.

현대에서도 거세수술은 실패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보다 환경이 나쁜 전국시대에서 8할 가까운 성공률을 유지하고 있으니 좋은 실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기, 어느 쪽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해?"


옆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자고 있는 하나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당연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시즈코는 최근 두 사람이 했던 피임 수술의 결과 보고서를 읽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은데…… 고양이 바보네, 이 두 사람"


시즈코가 고민하는 이유,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엄청나게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중증 애묘가(愛猫家)인 점과, 자신의 부인과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는 점이 똑같았다.

동족혐오 때문인지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치면 다툼을 일으키고, 둘 다 나란히 집에서 쫓겨나서 근처 이웃들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실력좋은 고양이 의사 두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 바보 두 사람'으로 이웃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물론 이웃 사람들도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서 존경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추운 날에 덜덜 떨면서 중재를 졸라대는 모습 쪽이 인상에 강하게 남아, 영 훌륭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흑인장(黒印状)을 낼 수밖에 없겠네. 후아――, 오늘은 햇빛도 따뜻하고, 이대로 사치스럽게 낮잠이나 자볼까"


방에 들어오는 햇빛이 겨울 치고는 따뜻하여, 시즈코는 가벼운 졸음기를 느꼈다. 목면 모포의 따뜻함도 겹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시즈코는 주위를 재빠르게 정리하고 가까운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아아…… 봄의 이불도 저항하기 어렵지만…… 겨울의 낮잠도…… 나쁘지 않네)


다가오는 부드러운 졸음기에 몸을 맡긴 시즈코는, 그대로 의식의 끈을 놓았다.




1월이 되자마자 노부나가는 요코야마 성(横山城)에 있는 히데요시(秀吉)에게 쿄(京)와 호쿠리쿠(北陸)를 잇는 일체의 교통 차단을 명하고, 와사 산성(和佐山城)에 니와(丹羽)를 넣어 기후(岐阜)와 남 오우미(南近江)의 교통을 확보하는 등, 신년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각 무장들도 활발하게 활동하여 다양한 임무에 당하고 있었지만, 시즈코 군 만큼은 평화 그 자체였다.


2월 하순, 유럽에서 홉(hop)이 도착하자, 시즈코는 즉시 재배에 착수했다.

사전에 일조(日照) 조건이 좋은 땅에 마그네시아 석회(苦土石灰)를 섞어서 물빠짐이 좋은 석회질의 용토(用土)로 만든 땅에 심은 후, 줄기를 얽히게 하기 위한 지주(支柱)를 세웠다.

마지막으로 수동 가압식 펌프로 목초액(木酢液)을 살포하면 대충 작업이 끝난다.

내한성(耐寒性)이 강한 홉은 일본의 겨울도 견딜 수 있기에, 어려움없이 옥외(屋外) 재배를 할 수 있다. 이후에는 4년 후에 홉을 수확하면 맥주의 원재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손에 들어온다.

맥주 효모균(酵母菌)도 있으면 좋겠지만, 홉이 없으면 효모균만 가지고 있어도 쓸 데가 없다.


비트만들과 사슴 사냥을 하거나, 시로가네로 매사냥을 하거나 하면서 시즈코 군은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풍이라는 것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으로, 평온한 시즈코에게 소동이 일어났다.


"……저기,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자기 귀를 의심한 시즈코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마주보고 있는 마츠(まつ)에게 질문했다. 그에 대해 그녀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시즈코의 부탁에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질문에 대답했다.


"내 아이를 시즈코의 시녀로 삼는다, 는 오다 님의 하명이시니 포기하거라"


말의 내용과 반대로 마츠는 대단히 즐거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츠의 차녀, 쇼우(蕭) 공주(姫, ※역주: 한국어에서의 '공주(princess)'와는 조금 의미가 다른, '명문가의 아가씨'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지만, 딱히 적당한 말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공주로 직역하겠슴)를 시녀로 삼는다, 는 터무니없는 주인장(朱印状)에 시즈코는 머리가 아파졌다.

게다가 주인장은 그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시즈코의 머리를 더 아프게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뭐냐, 챠챠(茶々) 님도 시녀? 아자이(浅井) 가문을 섬기던 토우도 요키치(藤堂与吉)를 내린다?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슈(一向一揆衆)를 공격할 때, 병력을 6천 내일테니 별동대로서 충분히 활약해라? 뭔가 이것저것 한꺼번에 와서 머리가 아프네"


"호호홋, 오다 님은 시즈코에게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 못난 여식이 무례를 저지르면 충분히 벌을 주도록 하거라"


"네에, 저기, 말이죠…… 시녀를 주셔도, 그…… 어떻게 해야?"


"시즈코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느니라. 애초에, 챠챠 님을 시녀로 삼은 건 노히메(濃姫) 님께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라 생각되느니라. 나 같은 범인(凡人)으로는 노히메 님의 생각 같은 건 헤아릴 수 없지만 말이다"


마츠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와 노히메의 생각을 추측했다.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와 마츠의 딸인 쇼우는, 나카가와 미츠시게(中川光重)의 정실(正室)이다. 언제 결혼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노부나가와 노부타다(信忠)가 혼노지(本能寺) 사변으로 횡사(横死)한 후, 쇼우를 며느리로 맞았던 인연으로 토시이에를 섬겼던 점을 볼 때, 적어도 1582년까지 혼인한 것은 확실하다.

쇼우가 태어난 해인 1563년으로부터 생각해보면, 슬슬 혼인하여 출가할 연령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급거, 시녀로서 채용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자이 가문을 섬기던 토우도 요키치는 토우도 타카토라(藤堂高虎)네. 사이조 씨랑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주군을 바꿨지만, 어째서인지 이 사람은 변절자 소리를 들었지)


타카토라는 몇 명이나 주군을 바꾼 변절자, 또는 주구(走狗)라는 평가를 들으며, 소설 등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주군을 몇 번이나 전전한 카니 사이조(可児才蔵)는, 유교(儒教)의 가르침이 무사들에게 침투한 에도(江戸) 시대에도 인기가 높았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막부(幕府) 말기(末期)의 막부군(幕府軍)과 관군(官軍)의 싸움 속에서, 토우도(藤堂) 씨가 이끄는 츠 번(津藩)이 취한 행동에 원인의 일단이 있다고 전해진다.

츠 번은 당초, 히코네 번(彦根藩)과 함께 관군을 맞아싸웠으나, 막부 측이 열세인 것을 알자마자 관군으로 변절하여, 막부 측에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관군의 닛코(日光) 토우쇼 궁(東照宮)에 대한 공격 명력은 '번조(藩祖, ※역주: 번(藩)의 시조)가 받은 큰 은혜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 배신 행동이 타카토라의 악평을 결정지어버렸다고 전해진다.


"뭐, 뭐 깊이 생각해도 어쩔 수 없나. 우선은 자기소개를 할까. 그 뭐냐, 내 이름은 시즈코, 편하게 불러도 좋아"


시즈코가 말을 걸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쇼우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즉시 양 손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조아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즈코 님! 소첩의 이름은 쇼우라고 합니다! 섬길 수 있는 영광을 받아 삼가 기뻐해 마지않습니다!"


"어, 응, 잘 부탁해…… 그, 고개를 들어도 되거든?


"옛!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쇼우는 일거수 일투족이 기운이 넘치는 아이였다. 남자 못지 않은(男勝り) 소녀라는 건 이런 아이를 말하는 건가, 라고 시즈코는 현실도피를 하면서 마츠 쪽으로 시선만을 돌렸다.


"호호홋, 이 아이는 시즈코의 활약을 들은 이래로 그대를 동경해서 말이지. 그럴 때, 시즈코에게 시녀를 붙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재미…… 마침 좋다고 생각했노라"


"지금, 재미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오늘 점심은 무엇이냐. 나는 조금 기대하고 있다만"


시즈코의 지적에 노골적인 태도로 딴청을 피우는 마츠였다. 다시 지적해봤자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챠챠 님과 토우도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입니다"


"고지식하구나, 시즈코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실례되지만, 저는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모으려고 합니다. 떠넘겨진 사람이 내부에서 불화를 일으켜서 발목을 잡게 되는 사례는 일일이 다 셀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각자의 생각을 확인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정도의 무공을 세운 이상, 시즈코는 많은 가신을 거느리고 필요 이상의 무공을 올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괜히 젊은 무사를 보내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곤란하기도 했다.


"우선은 이야기가 빠른 챠챠님 부터군요. 오이치 님도 모셔와 주겠어?"


"네, 알겠――"


"명을 받듭니다! 즉시 전하고 오겠습니다!"


아야에게 오이치, 챠챠, 그리고 시녀와 유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쇼우가 기세좋게 일어나더니, 주위의 반응을 무시하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시즈코와 아야가 멍하니 있자, 마츠가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즐거운 듯 말했다.


"저 아이는 일직선이라서 말이지"




잠시 후 쇼우는 오이치, 챠챠, 하츠(初), 오이치의 시녀, 챠챠의 유모, 하츠의 유모를 데리고 왔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고려한 넓은 방이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10명 이상이 한 곳에 모이면 비좁게 느껴져버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뵙는 건 두번째입니디만, 우선 자기소개를 하지요. 제 이름은 시즈코, 편하신 대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나는 오이치니라. 이 쪽이 챠챠, 저쪽이 하츠다"


순서가 밀려 있는 것도 생각하여, 자기소개가 끝난 시즈코는 즉시 본론을 꺼냈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만, 오이치 님. 이번 건에 대해 뭔가 말씀하실 것은 없으신가요"


"오라버니가 정하신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게 이의 같은 건 없다. 게다가 애초에, 키요스 성(清洲城)에 살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어라, 남편과 떨어지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건가)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이곳은 일종의 방어시설입니다. 따라서, 이후에는 그렇게 간단히 아자이 님과 만나실 수 없게 됩니다만, 그 점은 이해해주시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다. 게다가 얼빠진 남편에게 기합을 넣으려고 나는 여기에 온 것이니라"


이어서 오이치는 시즈코에게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의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일개 병졸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을. 물론, 실은 시즈코의 부대에 있다는 것은 숨기고 있었다.


당초에는 키요스 성에 살게 할 예정이었으나, 도중에 계획을 변경해서 오이치들을 시즈코가 있는 곳에 살게 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없이 시즈코가 있는 곳에 살게 하면 불만이 생긴다. 그걸 회피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챠챠를 시즈코의 시녀로 삼고, 장래적으로는 하츠도 시녀로 삼는다는 이야기로 만들어 전원을 이사시켰다.

전원이 이사하는 이유는, 챠챠가 아직 한 살이 좀 넘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하츠의 경우에는 아예 생후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교육을 시킬 오이치들이 같이 사는 것이라는 논리였다.


"여전히 복잡한 일을 만드시네요, 영주님께서는. 뭐 그렇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여러가지로 폐를 끼칠 거라 생각하지만, 잘 부탁한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들의 저택이 완성될 때까지, 노부나가가 사용하고 있는 별장이 임시 거처가 되었다. 즉 오이치와 그녀의 딸들은 시즈코에게 이웃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이 장소에 살려면 이것저것 알려줘야 할 것들이 있다.


"나중에 전해드리겠습니다만, 이 주변은 다른 곳과 좀 달라서…… 이것저것 배우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도 오라버니에게서 들었느니라. 희한한 짐승들이 많다고 들었지. 오오, 그렇지. 분명히 남만 개와 남만 고양이도 있었지. 나는 조금 흥미가 있다. 빨리 보고 싶구나"


"(아아, 응…… 역시 영주님과 남매구나. 말이 안 통하는 느낌이 있어)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한명 더, 이야기를 들을 인물이―"


어린애처럼 눈을 빛내는 오이치를 타이르고 있을 때, 갑자기 거친 발자국 소리가 시즈코의 귀에 들렸다. 그 발자국 소리가 이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이해한 전원이 입구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순간, 문이 파괴되는 기세로 열어젖혀졌다.


"어이, 시즈코! 이 멍청이는 누구야!"


입구를 기세좋게 열어젖힌 것은 나가요시였다. 그는 한 팔에 끼고 있는 인물을 시즈코에게 보여주면서 따져물었다.

연이어 두통거리가 굴러들어온 것에, 시즈코의 평소에는 끊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자, 카츠조 군. 끼고 있는 사람을 거기에 내려놓고, 이리로 와"


평소보다 약간 톤이 낮아진 시즈코의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움찔한 나가요시는 얌전히 끼고 있던 인물을 내려놓고 시즈코 앞에 앉았다.


"우선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 이유를 들어볼까?"


"으…… 그게 말이지, 내가 타마랑 하나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저 멍청이가 갑자기 시비를 걸었어"


"그렇구나―, 응. 그건 박살나도 어쩔 수 없네. 하지만 말야, 문답무용으로 손님에게 사형(私刑, ※역주: 린치)을 가하는 건 문제거든"


그렇게 말하며 시즈코는 모래시계를 꺼냈다. 약 5분만에 모래가 다 떨어지는 그것을 나가요시에게 보여주면서, 시즈코는 그에게 선고했다.


"벌로서 이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과수원의 간판까지 왕복 세 번"


"크억, 과수원이라니 언덕 위에 있는 거기냐!"


과수원은 수목이 햇빛을 받기 쉽게 하기 위해서, 사면(斜面)에 조성되어 있다. 결코 경사가 급한 언덕은 아니지만, 쉬운 언덕도 아니다.

보통이라면 다소 지치는 정도지만, 작심하고 달리게 되면 언덕의 기복으로 체력을 격심하게 소모한다.

지금의 나가요시라면 왕복 한 번이라면 5분 이내에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왕복 세 번이라면, 마지막 왕복은 이미 기력(気力)과의 승부다.


"응, 맞아. 뭔가 문제가 있어? 우리 훈련은―"


"'못 하는 아이는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철저하게 합시다'. '못 하는 아이가 할 수 있게 되면 칭찬해준 후, 더욱 강도를 높여 훈련을 시킵시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아이는 못 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강도를 계속 올려 훈련을 시킵시다'……였죠"


도중에 경어(敬語)로 바뀐 나가요시였으나, 그 정도로 시즈코가 용서해줄 리도 없어서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손님에게 폭력을 휘두른 건 그대로 흘려넘길 수는 없거든. 그럼, 모래시계의 왕복이 끝날 때까지 왕복 8번, 힘내"


(늘어났어!)


"그럼 3, 2, 1…… 자, 시작"


"잠깐, 너…… 우,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뭔가 말하려던 나가요시였으나 시즈코가 듣지 않을 것을 깨닫자마자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시즈코를 제외한 전원이 뛰쳐나간 나가요시를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아야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치료를 부탁해"


그 후, 9분 55초에 보기좋게 왕복 8번을 마친 나가요시였으나, 그의 무릎은 한동안 후들거리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 마츠는 쇼우를 남겨두고 귀가했고, 오이치들도 챠챠나 하츠들과 함께 노부나가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시즈코의 집에 남은 것은 쇼우와 타카토라 두 명 뿐이었다.


"다시 자기소개를 하지요. 내 이름은 시즈코, 주위 사람들은 편한 대로 부르고 있고, 나도 신경쓰지 않으니가 편한 대로 불러도 돼"


"……제 이름은 토우도 요키치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생각이 있겠지만, 우선은 필요한 이야기를 할게. 우리의 봉록(俸禄)은 봉토(知行地)가 아니라 돈(金子)으로 지급해. 평소에는 1개월마다 기본 급료를 지급하고, 전투시에는 활약에 따라 봉록의 금액이 주어지는 형식이야. 참고로 나는 봉록으로 줄 봉토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거든"


노부나가의 토지에 대한 생각은 다른 영주들과는 달라서, 오다 가문이 지배하는 토지는 전부 오다 가문의 것이고, 가신에게 내리는 토지는 일시적으로 오다 가문을 대리하여 관리인을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가신들은 '지점장(支店長)' 같은 위치에 있으며, 토지나 그 토지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오다 가문의 것이다.

또, 생산된 것은 일단 오다 가문에 전부 모아져서, 거기서 가신들에게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한 것들을 나눠주고 있었다.

당연히 지점장은 전근(관리하는 토지의 변경)이 빈발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토지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에,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가 혼노지 사변을 일으켰다고도 전해진다.


"다음으로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건, 전부 영주님의 것이니까 함부로 취하는 건 금지. 다음으로,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의 목록은 아야 짱이 관리하고 있으니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우선 창고의 목록을 확인해 줘"


"네"


"마지막으로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우리 마을에 있는 동물들은 거친 아이들이 많으니까, 함부로 싸움을 걸지 않는 편이 좋아"


"네"


"그 밖에도 세세한 부분은 있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되려나. 여기까지, 요키치 군은 뭔가 느낀 게 있었을까? 싫으면 지금 말해줘. 그렇다고 여기에서의 대우가 변하지는 않지만, 다음에 사관할 곳 정도는 소개해줄게"


시즈코의 말을 들은 타카토라는 잠시 생각한 후, 시즈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그럼, 지금 제가 느낀 것을 정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이곳에 오기 전에는 솔직히, 여자가 지휘하는 부대 따위 별 것 아니다, 라고 얕보고 있었습니다. 그 부대에 있는 무장들도 여자에게 알랑거리는 나약한 패거리라고 얕보았기에, 카츠조 님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결과는 보기좋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박살이 났습니다"


"……"


"그 결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껏해야 우물 안 개구리, 세상에는 저보다 강한 사람은 무수하게 있다는 것을. 이번의 패배는, 아자이 님에게 감사를 받았다는 것으로 기고만장해 있던 제게 딱 좋은 약이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후, 타카토라는 깊이 머리를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런 미숙한 저입니다만,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응, 네 각오는 알겠어. 지금부터 잘 부탁해"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과 함께, 타카토라는 다시 한번 머리를 깊이 숙였다.




시즈코 군에 토우도 타카토라가 가세하고, 시즈코에게 마츠의 차녀, 쇼우와 오이치의 장녀, 챠챠가 시녀로 주어졌다. 하지만 챠챠가 시녀가 되는 것은 시즈코의 마을에 오이치를 살게 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시즈코 자신도 시녀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챠챠가 시녀의 일을 하지 않아도 문제없었다.


타카토라는 기초훈련을 나가요시에게서, 창 등의 무예와 예의범절을 사이조, 두 사람의 보좌로서 케이지가 훈련시키고 있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깨달은 그는, 세 명의 혹독한 훈련에도 견뎌냈다.

훗날 쿠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축성능력(築城能力)의 명인(名人)인 것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타카토라에게 축성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거나, 쿠로쿠와슈(黒鍬衆)에게 배우게 하거나 했다.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내린 것으로, 타카토라는 소성 정도의 입장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병졸 취급이었다. 그래도 특별한 훈련을 받고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는 좋은 대우였다.


쇼우는 기운이 넘치는 소녀였지만, 동시에 지기 싫어하는 소녀이기도 했다. 나기나타(薙刀)가 특기지만 창을 든 사이조에게 손도 못 써보고 패배한 이후, 그에게 이기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었다.

가끔 시녀의 일도 잊어버리고 사이조에게 승부를 걸었지만, 여전히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전패하고 있었다.


3월에 들어서자 시즈코가 의뢰한 물건들이 차례차례 도착했다. 소비자인 무사들과 달리 생산자도 겸임하고 있는 시즈코는, 생산한 것이 팔리면 이익을 얻게 된다.

도자기 등 공예품은 계절을 따지지 않지만, 농작물은 가을에서 겨울에 집중되어 있다.

해산물인 굴(牡蠣)이나 김(海苔), 봄에서 여름에 걸쳐 수확하는 농작물도 있지만, 기본은 가을에 수확하는 작물의 수익이 가장 많다.


농가에서 직접 작물을 사들이고, 그것들을 가공업자에게 넘겨 가공시켜, 운송업자에게 지정된 장소로 운반시킨다.

다른 루트로 운송업자에게 쓰레기나 분뇨를 회수하게 하고, 그것들을 퇴비 제조공장으로 운반시켜 쓰레기를 퇴비로 만든다. 완성된 퇴비는 백성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이것들을 시즈코는 총괄하고 있었기에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농가도 성시(城下町)까지 나갈 필요 없이 돈이 들어오고, 가공업자나 운반업자는 정기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며, 가공품을 이용하는 사람은 쓰레기나 분뇨를 치우지 않아도 된다.

시즈코가 혼자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 전원이 이득을 보고 있는 상태였다.


다양한 사업으로 얻은 이익으로, 시즈코는 기술자 마을에 발주를 넣는다. 수입을 얻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잉 수입을 방출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다.

기술은 하루아침에 몸에 붙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하루만에 꽃피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진보시키고 문화를 꽃피우게 하려면 사람들이 절차탁마(切磋琢磨)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국시대나 현대나, 사람을 움직이려면 돈이 없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비로소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시즈코의 입장은 대단히 좋았다. 애초에 생산자인데다, 현재는 생산자와 경영자의 입장을 겸임하고 있다.

농작물 뿐만 아니라 가공식품, 실이나 천 등의 직물품(織物品), 해산물인 굴이나 김, 미역 등의 양식품(養殖品), 기술자 마을이나 주조(酒造 마을에서 나오는 술이나 공업품 등, 1년 내내 뭔가의 이익을 얻고 있다.

이미 노부나가에게서 급료를 받는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입장인 것이 지금의 시즈코였다. 보통, 이렇게 혼자서만 잘나가는 상태가 되면 주위의 질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시즈코가 업종을 늘리고 다양한 물건들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면, 그에 비례하여 오다 가문의 경제 상황도 점점 좋아진다.

노부나가의 주머니 사정이 윤택해지면, 그가 가신들에게 호화로운 생활을 시켜주기 위해 쓰는 금액도 급증한다.

이 흐름을 이해하고 있는 가신들은, 시즈코를 실각시키면 돌고 돌아 자신들의 목을 조이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시즈코가 질시를 받지 않도록 지켜주고, 쓸데없는 소동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시하고 있다.


윤택해지는 것은 딱히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가신들 뿐만이 아니다. 시즈코는 윤택한 이익을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에게 분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에게도 이익분배를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씨름(角力) 대회나, 오와리(尾張)-미노(美濃) 센류(川柳, ※역주: 일본 시의 일종) 대회, 스도쿠(数独) 대회, 면적미로(面積迷路, ※역주: 퍼즐의 일종인듯) 대회, 바둑, 장기대회 등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고, 상위 입상자에게 포상금도 주고 있었다.

돈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그와 함께 수요가 늘어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돈이 돌게 된다. 돈이 사람들에게 고루 퍼지면 신기하게도 다툼이 잘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돈을 여기저기에 퍼지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은 쾌적한 환경을 한 번 알게 되면,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불편을 감수하고 생활하는 것은, 그보다 편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모를 때 뿐이다.

돈으로 쾌적한 생활환경을 얻고, 그 생활에 푹 빠지면 두번다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종교(寺社) 세력들은 사람들을 선동하기가 어려워진다.

지금 생활을 버리고 노부나가에 대항해라, 라는 말을 들어도 생활을 버리면서까지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사람을 조종하려면 미래에 기대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 쪽이 유리하다. 미래의 전망이 캄캄하기에 땡중들의 말에 속아 마음껏 이용당한다.

백성들을 다른 세력의 공작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생활을 보장하여, 다른 세력의 말을 들어도 이득은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큰 돈이 움직인 관계로 시즈코에게 오는 경리 서류는 방대했다.

간신히 주판(算盤)을 다룰 수 있게 된 아야는, 매일 이런 종류의 서류와 격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쇼우가 시즈코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쇼우 짱, 오늘의 예정은 뭐였지?"


"옛, 오늘 예정된 방문자는 없습니다. 도착한 문서는 전부 조사가 끝났습니다"


쇼우의 보고를 들은 시즈코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말 위에 타고 있었지만 시즈코는 다리만으로도 말을 어느 정도 컨트롤 가능했기에, 고삐를 놓아도 문제없다.


(으―음, 아야 짱을 사무-경리 담당, 쇼우 짱을 시중이나 스케줄 관리 담당으로 나눴는데, 아직 어딘가 좀 삐걱거리네)


챠챠나 하츠는 아직 아기였기에 일을 시킬 수 없지만, 쇼우는 웬만큼 교양 수업을 받았기에 시녀로서 흠잡을 데 없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일을 두 사람에게 시키는 것은 효율이 나쁘기에, 각기 다른 역할로 나누었다.

지금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있지만, 장래적으로는 아야가 사무, 경리, 창고 담당, 쇼우가 시즈코의 시중, 스케줄 관리 담당이 된다.

아야 쪽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裏方)을 도맡게 되는데, 이것은 시즈코가 아야 쪽을 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츠의 딸이라도, 그다지 오래 알고 지내지 않은 쇼우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을 시즈코는 망설였다.


딱히 예정은 없었지만, 시즈코는 밖을 설렁설렁 쏘다녔다.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주변의 간자들이 번거로워져서 그에 대한 대책을 위해 돌아다니고 있다.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오다 가문이 패한 이후, 몇 명이나 되는 배신자가 나왔는데, 그 중의 누군가가 시즈코에 대한 정보를 판 모양으로, 간자의 숫자가 예년보다 증가해 버렸다.

수백명의 위병과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그리고 비트만 패밀리, 아카가네, 쿠로가네, 시로가네가 눈에 불을 켜고는 있으나, 역시 간자의 숫자가 많다보니 쉽게 근절시킬 수 없었다.


그런데 시즈코가 관리하는 산에는 반달곰(ツキノワグマ)이 다수 살고 있었다. 반달곰은 다른 개체를 배제하는 고정된 영역을 가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개체간의 활동 범위가 크게 겹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고정된 영역을 가지지 않기에, 식량이 부족해지면 풍족한 땅을 찾아 행동 범위를 넓히는 습성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고, 반달곰 이외에 먹이를 다툴 상대가 없으며, 대형 육식동물이 살지 않는 조건이라면, 산이 반달곰의 천하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때문에 간자가 들어가기 힘든 산이 되었지만, 겨울에는 대부분의 개체가 동면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간자들이 숨어들기 쉬워졌다.


이제는 사냥하면 사냥할수록 늘어나는 것이 현재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자신이 움직여서, 적당히 거짓을 섞어 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리기로 했다.

사람을 신용하게 만들려면 진실을 보여주면 된다. 설령 중요한 부분은 거짓으로 되어 있어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으면 사람은 얻은 정보를 전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조사해봤자 무의미한데 말야. 그렇다고 해서 방해받게 되면 일에 지장이 생기니…… 귀찮네―"


주변국은 이미 코너에 몰린 상태였다. 노부나가를 유일하게 멸망시킬 수 있는 기회는 제 1차 오다 포위망, 그것도 노부나가가 쿄로 돌아가기 전밖에 없다. 그 이후에는 몸풀이 경기(消化試合)가 될 뿐이다.

노부나가가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가 가진 츠루가 항구(敦賀港)를 원하는 줄 알았는데, 비와 호(琵琶湖)를 중심으로 한 수상 운송을 빠른 단계에서 육로를 주체로 한 육로 운송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아사쿠라를 서둘러 멸망시킬 이유도 없어졌다.


(아사쿠라는 언젠가 멸망시키겠지만, 사카모토(坂本) 보다는 우선순위가 낮으려나?)


육로를 중시하게 된 노부나가가 다음에 원할 장소, 그것은 쿄에 가깝고 키나이(畿内) 유수의 대 상업도시인 사카모토(坂本)이다.

사카모토는 천황, 쇼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권력을 갖는 엔랴쿠지(延暦寺)의 문전도시(門前町)이다.

전국에 있는 엔랴쿠지 소유의 장원 영지로부터 도착한 생산물이나 쿄로 운반되는 물자들이 모이는 사카모토는, 금융업자인 전당포(土倉)나 운송업자인 바샤쿠(馬借, ※역주: 말을 이용한 개인운송업)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가구수(戸数)도 시타사카모토(下阪本)의 카라사키(唐崎)나 히에이츠지(比叡辻)는 3천 가구를 넘을 정도로, 쿄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히데요시가 오사카 성(大阪城)을 건축하여 정치, 경제의 중심이 쿄에서 오사카로 이동하기 전까지, 사카모토는 오우미(近江) 지배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주군―!"


지금부터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겐로(玄朗)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역자 코멘트 ※※


본문중의 토우도 타카토라는, 국내에서는 도도 다카도라라고 표기하는데, 여기서는 일본어 발음에 맞춰 적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명량'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노란 옷을 입은 저 인물이 바로 토우도 타카토라입니다. 영화 중반부부터는 계속 '리… 슌신…!'만 중얼거린 바로 그 아저씨죠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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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4 1571년 1월 상순



정월(正月), 노부나가의 주연회(酒宴会)는 해를 거듭할수록 호화현란(豪華絢爛)해졌다.

말린 새끼 멸치(田作り), 흑태(黒豆), 말린 청어알(数の子) 등 축하용 생선 3종은 물론이고, 새우의 우마니(うま煮), 다시마말이, 니시키타마고(錦卵), 다테마키(だて巻き), 생선회(なます) 등 행운을 비는 설 요리가 준비되었다.

술은 탁주(濁酒)가 아니라 귀중한 청주(清酒)가 준비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노부나가의 힘을 과시하는 요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면이 드러나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노부나가는 작년, 외교나 전투 첩보에서 대패를 맛보고, 한때는 존망(存亡)의 위기에 섰었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노부나가였으나, 그 상처는 얕지 않았다.

숙장(宿将)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서의 부상에 의해 전선에 설 수 없게되고, 다수의 무장들과 병사들을 잃고, 대량의 이탈자가 발생해 버렸다.

만성적인 지휘관 부족인 오다 군에게 많은 무장을 잃은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또, 모리 요시나리가 현역에서 물러난 것 때문에, 군 내부의 역학관계가 크게 변했다.

지금까지는 노부나가의 오른팔인 모리 요시나리가 군의 정점이었으나, 그가 은퇴했기 때문에 차점(次点)인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등 5대 장수가 군의 정점을 둘러싸고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5대 장수의 아래가 되긴 하지만, 시즈코 또한 오다 군 내부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무기탄약의 제조 및 보급, 식량의 증산 등 간접적으로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우사 산성을 지켜낸 것, 그리고 도쿠가와(徳川) 군과 협력했다고는 하나 롯카쿠(六角) 씨를 물리친 무공에 의해, 유력한 무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시즈코 군이 다른 군과 다른 점은 축성(築城) 능력이 높은 점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희생을 최소한으로 억제한 전략을 기본으로 삼는 점이다.


"영주님께서 기분좋게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새해 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


정월의 문안인사를 위해 시즈코는 출사(出仕)했다. 시즈코는 기본적으로 매년 정월 2일에 출사하여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정월의 설날(元旦)에 다도회(茶の湯)가 열리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전국시대, 다도회는 영주나 무장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교양으로서 널리 전해져 있었다.

센노 리큐(千利休)의 딸은 사사(師事)받은 기록이 있으며, 또 히데요시의 생모나 처(北政所)는 센노 리큐에게서 다도를 배웠다.

하지만 코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센노 리큐나 '오리베 취향(織部好み)'이라는 유행을 가져온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로부터의 다도의 흐름에서 독자적인 화도(華道)를 확립할 때까지, 다도회는 카이세키 요리(懐石料理)를 수반하는 접대가 기본이다.

특히 정월의 다도회는 오다 일족이나 가신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정치색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시즈코는 가능한 한 정월의 다도회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음, 올해도 잘 부탁한다"


시즈코의 인사에 노부나가는 기분좋게 대답했다.

노부나가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항례의 주연회(酒宴会)에 참가하고, 그게 끝나면 귀가이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며칠에 걸쳐 다른 오다 가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다닐 필요가 있다.


연초의 인사가 끝나면, 다음에는 금년의 개발 계획을 정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오다 가문 내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쓸데없는 정치동란(政治動乱)에 말려드는 결점은 있으나, 대형 프로젝트를 통과시키기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작년에 무공을 세운 것 때문에 시즈코는 더욱 예산을 획득하기 쉬운 입장이 되었다. 예산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개발의 규모와 숫자는 늘어난다.


"올해는 거울(鏡), 자석(磁石) 육분의(六分儀), 거리 측정기(測距儀), 해시계 컴퍼스(日時計コンパス), 각종 원형 계산척(円形計算尺), 기계식의 해양 크로노미터(chronometer), 스털링 엔진(Stirling engine)…… 좀 숫자가 많으려나"


거울, 자석, 육분의, 거리 측정기, 해시계 컴퍼스, 각종 원형 계산척은 이미 제품이 완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도구류의 규격 통일 및 양산 체제 구축이 계획의 주안점이다.

특히 거울은 육분의, 거리 측정기, 자석은 해시계 컴퍼스의 중요한 부품이다. 공업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크로노미터는 나중에라도 괜찮지만, 스털링 엔진은 빨리 됐으면 좋겠네"


1816년, 스코틀랜드의 목사인 로버트 스털링(Robert Stirling)이, 실린더 내의 가스(또는 공기)를 외부에서 가열, 냉각하여, 부피의 변화를 이용하여 동력(仕事)을 얻는 외연기관(外燃機関)을 개발했다.

고압의 증기 보일러 폭발사고를 자주 일으키던 증기기관(蒸気機関)과 달리, 저압 공기를 쓰는 스털링 엔진은 보일러 폭발사고의 위험성이 없었다.

그 장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많은 스털링 엔진이 제조되었으나, 수십년 후에 가솔린이나 디젤 기관이 발명되면서 동력의 주류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높은 열효율을 증명해보인 스털링 엔진은 그 후에도 연구가 계속되어, 근년(近年)에는 석유 이외의 에너지 이용을 목적으로 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스털링 엔진은 조용한 엔진, 원리상으로 고효율, 가솔린이나 디젤 기관과 달리 배기가스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리고 뭣보다 열원을 가리지 않는 이점이 있다.

다만 엔진을 대형화시킬 수 없어, 출력이 큰 엔진을 만들 경우에는 기밀성(気密性)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 기술적 과제로 거명된다.


스털링 엔진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시즈코의 제 1목적은 뜨거운 물을 열원으로 한 프리 피스톤(free piston) 스털링 엔진이다.

출력은 작지만 적은 부품으로 제조가 가능한 점과, 열원이 뜨거운 물이면 된다는 이점이 있다.

뜨거운 물로 움직이는 스털링 엔진이 완성되면, 제 2단계는 열원을 뜨거운 물에서 고구마로 변경한다.


고구마가 선택되는 이유는 재배가 쉽고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공중 재배가 가능하며, 건조시키면 석탄 대용의 칩(chip), 발효액을 증류시키면 가솔린 대용의 에탄올(ethanol), 쇠똥과 함께 가열하면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 등, 천연 에너지 중에서도 우수한 에너지 작물이다.

현대에서 작물을 식용이 아니라 연료로 사용하면 가격상승 문제가 발생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식량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스털링 엔진이 실용화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선박이다.

스크류 프로펠러를 부착하면, 군선(軍船)으로서도 수송선으로서도 이동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이동속도의 향상은, 후방지원능력과 전투능력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맞다, 스크류 프로펠러의 현재 상황을 들어두자"


거기서 시즈코는 간신히 스크류 프로펠러의 현재 상황을 별로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의 그녀라면 있을 수 없는 실책이지만, 시가의 진(志賀の陣)에 의한 제 1차 오다 포위망에 대한 대응에 시간을 빼앗겨, 선박 개혁에 관여할 시간을 전혀 낼 수 없었다.

시즈코는 아야(彩)를 통해 노부나가의 수군인 쿠키(九鬼) 수군(水軍)에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지 않지만,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가 이끄는 쿠키 수군은 오다 군 내에서 몇 안되는 수군이다.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에서 서군(西軍)에 가담해, 패배하여 자결할 때까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秀吉) 휘하의 수군으로서 쿠키 수군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의 경력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제 1차 키츠(木津) 하구(川口) 전투에서 참패한 후에 건조한 철판을 두른 대형의 아타케부네(安宅船), 소위 말하는 철갑선(鉄甲船)의 건조이다.


현재 철갑선은 건조되고 있지 않지만, 스크류 프로펠러의 실용화, 모우리(毛利) 군이 사용하는 호우로쿠다마(焙烙玉), 사이카슈(雑賀衆)가 사용하는 호우라쿠히야(焙烙火矢)에 대한 대책, 용골의 실용화를 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지만, 노부나가의 이해를 얻었기에 연구 자금이 고갈될 일은 없었다.

스크류 프로펠러가 실용화되면 이동 속도가 증가하고, 용골이 실용화되면 군선의 충돌공격이 가능해진다.


전국시대에 존재하는 군용선박은 대형의 아타케부네, 중형의 세키부네(関船), 소형의 코하야(小早) 등 세 종류가 기본이다.

그밖에도 병사나 군량을 운반하는 니부네(荷船), 세키부네나 니부네에 누각(井楼)을 설치하여 높은 위치에서 적의 군용선박을 공격하는 세이로부네(井楼船) 등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본 배는 용골을 사용하지 않고, 판재(板材) 못과 '걸쇠(かすがい)'로 연결하는 조선법을 채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가볍고 쾌속하다는 이점은 있으나, 서양이나 중국의 배보다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충돌에 의한 파손에는 약하다.

따라서 충돌 공격용의 고정 무장인 충각(衝角) 공격을 받으면 항행 불능에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침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충각에는 아군 선박과 충돌했을 때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결점이 있어, 사용할 때는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며칠 후, 요시타카(嘉隆)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개발이 한참 진행중이라 상대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오다 님께 그때그때 보고하고 있습니다"였다.

정말로 상대할 시간이 없는건지, 아니면 2중 보고에 의한 정보유출을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상대의 대응이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무난한 답변을 쓴 편지를 보내는 데 그쳤다.


"후추의 성장은 어땠더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이 틈에 체크해두자"


후추의 하우스 재배는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후추의 수확이 가능하다.

내년 이후에는 묘목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아, 서서히 일본 국내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순조롭네. 고기 요리에 후추는 필수니까…… 뭐 지금은 그렇게까지 필요없지만"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고기에 자주 쓰이는 후추는, 서양인에 비해 일본인의 소비량이 적은 점이다.

그에 반해, 고추(唐辛子)의 소비량은 크게 증가한다. 고추 자체가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고추를 주로 한 조미료(mixed spice)인 시치미(七味) 고추(七味唐辛子)를 만든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의 출점 러시에 의해 각 업계는 정신없이 바빴다. 특히 건축업계가 바빠서, 쿄(京)에 있는 목수들로는 부족하야 각지에서 목수들이 호출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목수들의 식사였다. 특히 지방의 목수들은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서 일하러 와 있기에, 식사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단순한 요리점에서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이유는, 목수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꺼려하여 식사를 잘게 나누어 먹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기보다, 얼른 식사를 끝내는 쪽이 좋다, 는 것 때문에 패스트 푸드 종류, 특히 카케소바(かけ蕎麦)가 선호되었다.

카케소바는 추운 시기에 선호되는 먹거리였기에, 가을에서 겨울에 걸친 건축 공사에 종사하는 목수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당연했다.

초기의 고명은 파 뿐이었지만, 작년에 고로(五郎)가 쿄에 체류하고 있을 때, 새로운 고명으로서 튀김 찌꺼기, 고춧가루(一味唐辛子), 시치미 고추를 시험했다.

이 때, 그는 스스로 소바를 뽑는 게 아니라 국수집(そば屋)에 의뢰하여 새로운 고명을 시험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목수들이 고로의 행동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의견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고로는, 새로운 고명을 목수들에게 시식하게 했다. 그 중에서 시치미 고추가 가장 높게 평가되고, 그 이야기가 목수들 사이에서 퍼져 순식간에 대유행하게 되어 버렸다.


"내년의 고추 생산은 엄청나지겠네. 뭐, 지금은 시치미 고추 정도에밖에 쓰지 않고, 그 이외에 수요가 나올 거라곤 생각되지 않으니 괜찮지만"


후추의 하우스 재배를 체크한 후, 다른 농작물이나 과수원의 상황도 확인했다.

과수는 수확이 성공하면 묘목이 순차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보내져 생산량의 증가가 꾀해지도록 계획되어 있었기에, 과수원에는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었다.


과수의 증산도 접붙이기와 꺽꽂이 기술 덕분에, 몇 년 안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

'복숭아 밤 3년, 감 8년, 매실은 가뿐히 13년, 유자는 어처구니없이 18년(그 밖에도 패턴이 있음)'(※역주: 뭔가 일본어식의 가락맞추기로 보임, 원문은 桃栗3年柿8年、梅はすいすい13年、柚子は大馬鹿18年)이라고 할 정도로, 씨앗에서부터 재배한 경우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접붙이기로 재배하면 유자라면 3년에서 4년, 늦어도 5년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물론, 비료나 재배 방법에 따라 그 이상 느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4년이면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매실도 4년에서 5년으로, 꺽꽂이나 접붙이기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품종일수록 효과를 발휘한다.


"귤을 수확한 다음 컴파운드 보우의 연습을 할까"


무장들이 숙박하는 무가저택(武家屋敷)과 함께 궁도장(弓道場) 등 몇 가지 훈련장도 건축되었다. 시즈코는 귤을 세 개 정도 수확한 후, 약 100미터 거리의 과녁장(遠的場)에 들어갔다.

거의 시즈코 전용이라고 해도 좋은 도장이지만, 표적은 3개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시즈코도 겨울의 추위가 혹독한 시기 외에는 과녁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와 다리만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며 기마 사격을 주축으로 훈련하는 시즈코와 궁기병대에게, 움직이지 않는 과녁은 그다지 훈련이 되지 않았다.

특히 궁기병대는 시즈코 부대 중에서도 유일한 정예부대이다. 그 때문에 특히 엄격한 훈련 내용이 실시되고 있다.

흐름이 빠른 강에서 과녁을 흘려보낸 후, 그걸 75m 이상의 거리에서 기마 사격하는 훈련을 본 오다 가문 가신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야간 훈련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밤눈이 밝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과녁이라면 50m 가까이 떨어져도 8할의 명중률을 보였다.


"……으―음, 미묘하네"


설령 100미터 떨어져 있어도, 요령만 알면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뭣보다 의욕을 잃게 하는 것은 혼자라는 것이었다. 호적수가 있기에 훈련에 의욕이 나는 것이고, 혼자서 화살을 명중시켜봐야 중압감은 느껴지지 않고 재미도 없다.


"안 되겠네, 훈련에 집중이 안 돼. 이거라면 겨울 산악용 장비를 하고 사슴을 찾는 편이 낫겠어"


늘어진 상태에서 훈련해도 의미는 없다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훈련을 중단하고 궁도장을 정리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 님"


귀가하는 모습이 보였는지, 현관에서 아야가 마중해 주었다. 지저분한 곳을 털어내고, 컴파운드 보우 등을 그녀에게 넘기며 정리를 부탁했다.


"그러고보니 아야 짱은 정월에 집에 안 가?"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키묘마루(奇妙丸)는 정월인 관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야는 한 번도 집에 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더 생각해보면 아야의 가정 사정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걸 시즈코는 이제와서 깨달았다.


"영주님께 듣지 못하셨나요. 제게는 돌아갈 집도, 의지할 친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 처럼 집에 돌아갈 일이 없습니다"


"어…… 그, 괜찮으면 알려줄 수…… 있을까?"


"딱히 감출 일은 아니니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은 난세입니다. 어디에나 있듯이, 제 부모님이나 형제는 전투에 말려들어 살해당했습니다. 친족은 기억이 없기에,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릅니다"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아야 본인에게서 들은 내용에 시즈코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아야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듯, 평소의 냉정하고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후 이런저런 일을 거쳐 영주님이 주워주셔서, 지금은 시즈코 님을 섬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응…… 왠지 미안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신경써주실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안심해주십시오. 몸은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시즈코 님께 병이 옮을 일도 없습니다"


시즈코의 아야에 대한 첫인상은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를 듣고 그건 오해였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아야는 10세도 되기 전에 어른스러운 아이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과연, 처음에 내 방을 뒤졌던 건, 그런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구나)


갑자기 몸종이 주어진 의미에 대해 시즈코는 간신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뭘 하려는 건 아니고, 또 이제와서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생각도 그녀에겐 없었다.

당시의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자 몸종에게 감시하게 한 것은 시즈코를 어느 정도 배려했다고 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 뭐, 나는 아야 짱의 과거를 알았다고 해서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거나 하진 않을테니, 아야 짱도 출생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출생을 속이는 것 따윈 무장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니까"


후에 오다 가문 가신들 중 투톱이 되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 두 사람의 출생에 관한 것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경력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지만, 초창기에는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아, 정말로 공을 세웠는지 수상한 면이 있다. 그에 비하면 아야가 과거에 노예생활을 했던 것 따위는 시즈코가 볼 때는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으니까, 아야 짱도 신경쓸 것 없어"


무거워지기 시작한 분위기를 흩어버리듯, 시즈코는 대화를 억지로 끊었다.




시즈코가 살고 있는 곳에는 온천이 솟아나고 있다. 매일 상당한 탕이 솟아나와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나, 전혀 고갈될 기색이 없었다.

화산이 부근에 없기에 비화산성(非火山性) 온천으로 분류되지만, 그 열원(熱源)은 명확하지 않다.

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은 겨울에도 따뜻하여, 몸을 녹이기 위해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은 동물 대집회(大集合)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 동물 대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동물도 있었다. 작년에 출산한 암컷 터키시 앙골라, 하나였다.


터키시 앙골라는 9월 무렵부터 발정기에 들어가서, 2개월 후인 11월 무렵에는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아케치 미츠히데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는 출산 실패로 사산, 노부나가와 사키히사(前久)는 3마리가 태어났으나 1개월이 지나기 전에 두 마리가 사망했다. 추위에 새끼고양이가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시즈코가 있는 곳에는 천연의 난방실에 하나가 자리잡고, 거기서 4마리 출산했다. 남탕측을 점거했기 때문에 남성진들은 며칠이나 목욕탕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딱히 불만을 말하지 않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새끼고양이의 출산에 흥분했던 나가요시의 경우에는, 찬물로 목욕해도 문제없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감기에 걸려 드러누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로부터 1개월은 필드 스코프로 상황을 확인하면서도 어미 고양이인 하나에게 맡겨놓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에게 너무 신경을 쓰면, 스위치가 전환된 것처럼 갑자기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의 육아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나면 새끼 고양이에게는 이런저런 교육을 시켜야 한다. 특히 1개월 무렵부터는, 어미 고양이의 모유 뿐만이 아니라 이유식도 먹일 필요가 있다.

새끼 고양이가 부모 고양이로부터 자립하는 생후 6개월까지의 교육이나 육아로 새끼 고양이의 성격이나 능력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생후 1개월의 새끼 고양이라고 하면, 뭐라 해도 장난감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좋았다.

원래는 어미 고양이가 살아있는 쥐를 주지만, 쥐를 발견하면 잡아먹는 동물이 많기 때문에 쥐를 발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져 있었다.

그 대신 팩티스로 구체(球体)를 만들어서, 천으로 보호된 간이 고무공을 줬는데,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매일 고무공을 상대로 놀고, 가끔 나가요시가 몰래 고양이 장난감(猫じゃらし)으로 상대를 해주었다.

나가요시는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하나가 있는 장소는 필드 스코프로 감시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금방 모두가 알게 되었다.

지적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다만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셰퍼드는 며칠 편차가 있기는 했으나, 나란히 발정기에 들어갔다. 생후 몇년인지 모르지만, 2년은 넘었다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세퍼드들을 베이스(台雌)로 한 계획을 개시했다.

그것은 회색 늑대를 종견(種犬)으로, 저먼 셰퍼드 독을 베이스로 하는 저먼 셰퍼드 울프독(wolfdog) 계획이었다. 교배 계획은 네덜란드 원산의 사를로스 울프혼드(Saarloos Wolfhond, ※역주: 사를로스 울프독(wolfdog)이라고도 함)에 가깝다.


울프독(늑대개)이란 이름 그대로 개와 늑대의 교잡종, 또는 교배를 통해 태오난 개의 품종을 가리킨다.

고도의 사회성을 가지며, 우수한 청력과 후강을 가지고, 높은 지성을 갖는 늑대개이지만, 독립성이 대단히 강하다. 현대에서도 늑대개가 적은 이유는, 훈련이 어려운 부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시즈코는 그냥 가지고 싶어서 울프독 계획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금 상태로는 자신은 역사의 한 구석에 남더라도, 비트만이나 카이저, 쾨니히 등은 남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는 그들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는 증거를 역사에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늑대는 무리의 최상위의 페어만 교미하지만, 현재 상황은 예외적으로 무리의 정점에 있는 시즈코가 아니라 비트만과 바르티가 교미하고 있다.

여기에 카이저나 쾨니히, 아델하이트 등을 개와 교미시키면 과연 무리가 성립해 줄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시험삼아 루츠와 셰퍼드를 넣어봤지만, 갑자기 격리된 것 때문에 루츠의 스트레스가 올라가 맥없이 실패했다.

리터는 부모의 교미를 봤었는지, 교미하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재빠르게 교미했다.

참으로 재빠른 행동이지만, 역시 모르는 개와 같이 있게 되는 건 스트레스였는지, 한동안 어리광부리는 버릇이 나왔다.

아델하이트는 넣어지자마자 셰퍼드에 대해 격한 공격성을 보여서 실패했다.

쾨니히는 대단히 담백했다. 즉시 상황을 이해했는지 셰퍼드와 교미했다. 하지만 끝난 후에는 빨리 꺼내달라고 말하는 듯 울부짖었기에 시즈코는 서둘러 그를 풀어주었다.

카이저도 쾨니히와 마찬가지로 이해력은 높았지만 이쪽은 더 심각했다. 당분간 시즈코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가 자고 있을 때도 곁에 있을 정도로 어리광부리는 버릇이 나왔다.

리터와 달리 카이저는 거구였기에 어리광을 받아주는 데 좀 고생했지만, 무리가 붕괴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값싼 대가라 생각하고 당분간 카이저들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이걸로 세 마리의 유전자가 이어져, 그 후에는 태어나는 강아지들 중에서 우량 개체를 선별하고, 다시 시바견(柴犬) 등과 교배해나가는 것으로 우수한 저먼 셰퍼드 울프독이 탄생한다.

그들의 자식들이, 손주들이, 후세에 경비견으로 활약할 것을 시즈코는 바랐다.


"수컷 부채머리 독수리를 부탁했는데, 금방 수송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 아카와 쿠로는 알아서 데려올거라 생각하지만, 우리 집에 둥지를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보고서를 읽은 시즈코는 머리가 아팠다. 부채머리 독수리는 짝을 평생 바꾸지 않는 맹금류이기에, 수컷 부채머리 독수리를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프로이스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부채머리 독수리를 포획하는 것은 어렵고, 게다가 시로가네가 수컷을 마음에 들어할지가 미지수였다. 아카가네와 쿠로가네의 경우에는 품종을 알 수 없었다. 두 마리는 자력으로 짝을 찾게 할 수밖에 없다.


"시즈코 님, 바테렌(伴天連, ※역주: 여기서는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카톨릭이라고 하기 보다, 설명적인 목적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부르는 명칭으로서 바테렌이라고 썼음)으로부터 예의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오! 드디어 도착했나! 당장 온천실(温泉室)…로 그걸 옮겨놔줘!"


읽고있던 보고서를 근처에 던져버리고 시즈코는 의기양양하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한숨을 쉰 후, 아야는 시즈코가 던져버린 보고서를 주워들었다.




"의외로 빨리 썩네, 카카오는"


열어본 과실 중 태반이 썩어있었기에, 시즈코는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가 프로이스에게 부탁한 식물, 그것은 작년에 의뢰한 커피와 카카오의 묘목과 씨앗이다.

일본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흔히 생각되는 카카오지만, 실은 이즈(伊豆)에서 카카오 재비를 하고 있는 농장은 몇 군데 있다.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카카오를 어떤 방법으로 재배하는가, 그 비밀이 온천에서 나오는 폐탕(排湯)이다.


온천에서 나오는 탕은 태반이 쓰이지 않고 버려지고 있다. 시즈코의 온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반이 이용되지 않고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달걀의 부화에 쓰거나, 자라의 양식지(養殖池)로 보내거나, 새들의 목욕탕이 되는 등 그럭저럭 활용하고는 있지만, 하나같이 온천 폐탕이 반드시 불가결한 설비는 아니다.


온천 폐탕이 있기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가 눈독을 들인 작물이 후추였다.

그리고, 재배에 필요한 비닐하우스 비슷한 것이 완성되었기에, 온천 폐탕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흘려보내면, 열대우림(熱帯雨林) 기후를 가상적으로 만드는 온천탕기재배(温泉湯気栽培)가 가능하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온천탕기재배 또는 온천열재배(温泉熱栽培)라고 부르는 재배방법은 딱히 시즈코가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표고(標高) 800m, 오쿠히다(奥飛騨) 온천향(温泉郷)에서 온천 폐탕을 사용한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재배 농가가 있다.

그는 이미 바나나 뿐만 아니라 야자나 카카오, 드래곤 프루츠 계열의 재배에도 성공하여, 온천 폐탕을 이용한 재배가 다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증명했다.

이즈에서 카카오를 무농약 재배하는 데 성공한 농가도 있고, 이를 상업 이용하였기에 낮은 코스트로 재배할 수 있는 것도 증명되었다.


현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국시대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비닐하우스를 위한 비닐을 모으는 것, 그리고 쇠파이프 같은 금속 파츠를 모으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오카베(岡部)가 부드러운 나무와 단단한 나무를 조합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훌륭한 목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냈다.

요구를 실현해 준 오카베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 시즈코였지만, 정작 오카베 본인은 '이제 좀 살려줘'라는 기분이었다.


오카베의 협력 하에, 전국시대 유일의 열대우림 기후를 재현한 비닐하우스가 세 개 완성되었다.

온천에서 나오는 탕의 태반을 비닐하우스로 흘려보내게 되었지만, 온천의 탕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한정되어 있었기에, 노부나가가 이용할 대만 제한하면 문제없었다.

현대의 비닐하우스와 다른 점은 온천 폐탕을 보내기 위해 시즈코의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밖에 설치할 수 없었던 점과, 세 개의 비닐 하우스 중 하나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시즈코의 집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점이다.


겨울에도 기온이 20도 이상, 그리고 높은 습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후추의 재배도 비교적 편해졌다.

장래적으로는 후추의 재배 수를 늘릴 예정이지만, 여유가 생겼기에 시즈코는 비닐하우스에서 후추만 재배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나나를 재배하려 생각했지만, 씨없는 바나나는 우연의 산물로 태어난 것이기에, 전국시대에는 팥알만한 단단한 씨앗이 들어있는 씨있는 바나나밖에 없다.

다른 과일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렇다할 과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콩(大豆)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시즈코의 뇌리에 어떤 작물이 떠올랐다. 그것이 카카오 나무다.


처음으로 카카오의 씨앗을 손에 넣은 유럽인은 콜롬부스이다. 그는 제 4차 항해에서 현재의 온두라스 부근에서 카카오의 씨앗을 손에 넣어 스페인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하지만 이용방법까지는 모르고 가지고 돌아갔기에, 그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유럽에서 카카오의 가치를 처음 깨달은 사람은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de Monroy y Pizarro)로, 그는 1519년에 아즈텍에서 이용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래로, 설탕이나 향신료를 첨가한 쇼콜라토르(chocolatre, ※역주: 초콜렛의 원형)는 상류 계급에게 환영받아, 1526년에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섬에 재배지가 건설되었다.


시즈코로서는 트리니타리오(Trinitario) 종을 원했지만, 트리니타리오 종은 씨없는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18세기에 우연의 산물로서 태어났기에 입수 불가능한 품종이다.

따라서 전국시대는 유럽의 상류 계급을 매료시킨 크리올로(Criollo) 종, 값싼 포라스테로(Forastero) 종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는 스페인이 독점한 상태가 되어 있는 카카오는,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밀로 지켜지고 있어 입수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로이스는 괴혈병(壊血病)의 치료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예수회 내부는 물론, 유럽 각지의 왕후귀족(王侯貴族)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줄을 대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많았기에, 그 점을 이용하여 프로이스는 스페인 상인에게 카카오의 씨앗을 비밀리에 반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 상인으로부터 카카오의 씨앗을 받아든 프로이스는 편지와 함께 노부나가에게 보냈고, 노부나가는 편지를 보고 카카오의 씨앗을 시즈코에게 보냈다. 카카오의 씨앗을 받아든 시즈코는 프로이스에게 대금과 함께 막대한 헌금을 했다.


많은 헌금을 한 이유는, 프로이스가 쿄(京)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자금이 모자랐고, 또 각 조직으로부터 건축자재를 파괴 또는 도난당하는 등 방해공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즈코는 카톨릭(キリスト教) 신앙이 싹튼 것도 아니고, 하물며 프로이스 등 카톨릭(伴天連) 들을 동정한 것도 아니다.

예수회를 통하여 해외의 작물을 수입하기 위해 선행투자의 헌금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으아―, 썩어서 굉장한 냄새네. 빨리 무사한 씨앗을 빼내서 얼른 화분에 심자"


한 개의 열매에 평균 30알 정도 있는 카카오의 열매를 깨서, 무사한 씨앗을 빼내어 그대로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부패한 카카오의 열매에서도 다소 기대를 품고 씨앗을 빼냈지만, 9할 가까운 씨앗이 썩어 있었다.

그래도 씨앗이 많았던 덕분에 두 품종 모두 30에서 40개의 씨앗을 채취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손으로 인도네시아의 자와(Java) 섬에 전해졌다고 해도, 역시 전국시대는 운송능력이 나쁘네. 으헥, 냄새―. 얼른 소각처분해버리자"


참고로, 카카오는 1560년에 인도네시아의 자와 섬에 전해졌으나, 상업생산이 개시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선 이후이다.


커피와 달리 카카오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되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유는 카카오의 식물학적 특성에 있다.

카카오의 나무는 음수(陰樹)로, 성장할 때까지 다른 나무의 그늘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카카오는 강한 햇빛에 약하여, 단일 작물을 광대한 면적에서 일거에 재배할 수 없는 작물인 것이다.

하지만 규모의 메리트를 얻지 못하는 대신, 바나나와의 혼합재배에는 적합하다. 따라서 소규모 농가가 짬짬이 키우기에는 적합한 작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야생종(野生種)의 바나나가 아니라 카사바(cassava)를 요구할 걸 그랬나. 뭐,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바나나가 자랄 때까지 적당히 그늘이 될 만한 걸 놔두자"


카카오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줄 피룡가 있어, 그러기 위해서 바나나 묘목과 함께 심는 경우가 많다.

바나나 쪽이 성장은 빠르고, 크고 널찍한 잎사귀가 그늘을 만드는 데 최적이기 때문이다. 또, 카카오는 4년째부터 열매를 수확할 수 있지만 바나나는 그보다 빠르기 때문에 먼저 수확할 수 있는 점도 이유이다.


그 밖에도 카카오 열매를 재배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우선 평균 기온이 22도에서 25도, 최저라도 연간 1500mm의 강수량이 필요하다. 다만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 또, 평균 기온이 15도 이하가 되면 안 된다.

습도가 항상 높은 것도 중요하여, 강 등이 근처에 있는 땅이 적합하다. 결코 건조한 바람을 맞게 해선 안 된다.

흙은 점토질(粘土質)이라도 문제없지만, 뿌리를 내리기 위해 흙이 깊을 것, 그리고 부엽토(腐葉土) 등에 의해 비옥할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2년 동안에는 직사광선을 50% 이상 차단할 것이다. 2년이 지나면 그늘을 제거해도 문제없지만, 이 조건이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서 카카오 재배의 환경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일본에서 비닐하우스 재배를 했을 경우, 중유(重油)나 경유(軽油)에 의한 난방비만으로 월 백만 엔에서 2백만 엔이 드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바나나나는 자주 나무와 혼동되는데, 식물 분류학상으로는 풀이 된다.

카카오의 꽃이 수분(受粉)할 확률은 자연수분으로 1%, 인공수분으로 3%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2년에서 3년이면 다 자란 나무가 되지만, 꽃을 피워도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낮아, 7년 정도 열매를 맺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운이 좋으면 2년째부터 카카오 씨앗을 수확할 수 있지만, 별로 기대할 수는 없다.


카카오가 끝나면 다음에는 커피나무였다.

커피의 묘목은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직사광선을 피해서 화분에 심었다. 커피나무는 1m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꺽꽂이를 하는 시기는 5월에서 7월 무렵이 이상적이지만, 도착하는 시기를 조정할 수 없는 이상 욕심은 부릴 수 없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한 앙갚음을 할 생각인지, 수백 그루나 되는 커피나무의 묘목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시들어버린 것이 많이 보였다.

플랜트 헌터가 목숨을 걸고 가져와둔 묘목에 감사하며, 시즈코는 커피 묘목을 하나씩 화분에 심어갔다.

남은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스탄, 드래곤 프루츠, 망고, 무화과의 묘목이나 씨앗고 각각 필요한 조치를 했다.

마지막으로 다 심은 화분들을 늘어놓으면 완성이다. 몇 년만 지나면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국(南国) 과일이 자라는 장소가 된다. 지금부터 열매가 맺히는 게 기대된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화분들을 다 늘어놓은 후, 썩은 묘목이나 필요없어진 쓰레기를 소각처분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 후, 생석회와 함께 구덩이에 묻었다.


"이걸로 4년 후에는 초콜렛을 만들 수 있으려나. 아니, 발효라던가 건조 같은 게 있으니, 그렇게 간단히 되진 않으려나"


바로 현대의 것 같은 달콤한 초콜렛이 만들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바라는 초콜렛이 되려면,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노부나가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단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남겨진 기록에서 추측되고 있었다.

곶감이나 콘페이토(金平糖)를 즐기는 걸 보면,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주연(酒宴)을 매년 열고 있는 것만 봐도, 노부나가는 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많이 마시지 못하는 체질인 거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그렇다면 단 것은 어떨까, 라고 생각해서 귤 등의 과일을 헌상해보니,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스낵파인도 혼자서 하나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니,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잘 생각해보니, 영주님은 세계 최초의 초콜렛 과자를 먹은 사람?)


화분에 심은 파인애플도 하우스 안으로 이동시키고, 작엄을 마친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면서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즉시 차가운 바람이 몸을 급격하게 식혔다.

비닐하우스 안은 겨울이라도 일본의 한여름날이지만, 밖은 겨울의 추위가 퍼져있었다. 온천 폐탕 덕분에 그럭저럭 따뜻하지만, 역시 겨울의 추위와 섞여버리기에 약간 쌀쌀함은 느껴진다.


"……딱히 상관은 없는데 너희들 너무 늘어진 거 아냐?"


비닐하우스와 이어지는 방에서 늘어져 있는 남자들에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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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73 1570년 12월 하순



연말(年の瀬)이 다가오며 추위가 한층 혹독해질 무렵, 의외의 인물이 사키히사(前久)를 방문했다.


"우선 삭막한 패거리를 물려주지 않겠나. 풍류를 알지 못하는 촌뜨기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해 주게. 이곳에는 무기 하나 놓아두지 않았지. 맨손인 내게 당할 그대도 아닐테니"


예상외의 진객(珍客)에 놀란 사키히사였으나, 생긋 웃으며 독설을 내뱉았다. 방문객은 통렬한 비아냥에 개의치않고 싱긋 미소를 띄우더니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다.


"꽤나 갑작스럽고, 그리고 뜬금없는 방문이로군, 에치고(越後)의 용(龍) 양반"


"허허헛, 내가 운수(雲水)의 차림새로 돌아다닐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니 말이지"


짓궂은 장난이 성공한 어린애처럼 웃으며,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사키히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의 생각대로, 켄신이 기후(岐阜)에 있는 사키히사를 방문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타케다(武田)의 시노비(忍び)들도, 켄신은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 밤은 달이 좋군. 정원을 안주삼아 달구경이나 하며 분위기를 내 볼까"


"……좋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오다 가문에 몸을 의탁하고 있지. 그걸 절대 잊지 마시게나"


켄신에게 경고한 후, 사키히사는 그를 툇마루(縁側)로 안내했다. 12월 하순이라고 하면 한겨울이지만, 켄신은 기후조차 능가하는 혹한의 에치고(越後) 태생으로, 이 정도의 추위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사키히사에게는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기에, 명주실을 이중으로 짜넣은 카쿠소데(角袖, ※역주: 각진 소매의 옷) 코트를 걸쳤다.


"오늘밤은 춥군. 처음부터 칸(燗, ※역주: 술을 뜨끈하게 데워 마시는 것)으로 마시지"


"칸?"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켄신은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사키히사는 그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고 몸종에게 아츠칸(熱燗, ※역주: 데운 술)의 준비를 명했다. 잠시 후 몸종이 데운 술(燗酒)과 안주를 얹은 그릇을 날라왔다.

술병(とっくり) 하나를 집어들더니, 사키히사는 잔에 술을 따라 켄신에게 내밀었다. 다소 당황한 켄신이었지만, 사키히사에게서 잔을 받아들고 시선을 잔으로 내렸다.

바닥에 푸른 고리(蛇の目) 모양이 그려져있는 것 이외에는 하얀색의 잔이었다. 하얀 바탕 부분으로 색을 보고, 감색(藍色)과 하얀 바탕의 경계로 투명도를 보았다.

달빛을 반사하여 푸르게 빛나는 데운 술에 켄신은 잠시 홀린듯 바라보았다. 이윽고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사키히사와 잔을 부딪혔다.


"우선은 우리들의 재회에 건배"


"그렇군, 우리들의 재회에 건배"


각자 잔을 기울여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익숙해져 있는 사키히사는 그렇다치고, 처음 겪어보는 데운 술의 맛에 놀란 켄신이었으나, 즉시 마음을 바로잡고 맛을 즐겼다.


"맛있군"


"그렇지. 이건 오다 가문 가신들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명품. 오늘같은 날에 마시기 적합하지"


말하면서 사키히사는 정원으로 얼굴을 돌렸다. 켄시도 그를 따라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의 어둠에 뚜렷히 떠올라있는 달, 청명하게 비추어지는 정원, 귀를 간지럽히는 잎사귀들이 스치는 소리.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운 겨울의 정경이 그곳에 있었다. 겨울 특유의 맑은 공기에 떠오르는 메마른 풍경에, 켄신은 호위를 꺼려한 이유를 깨달았다.

조용히, 다만 말없이 눈 앞의 정원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것이 대단히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켄신은 생각되었다. 그리고, 자신이라도 덧없이 아름다운 장소를 맨발로 어지럽히는 만행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참으로 덧없는 아름다움. 자네가 노키자루(軒猿, ※역주: 닌자의 명칭 중 하나)를 꺼려한 이유를 알겠네"


"이 정원은 내 자신작이지. 땀냄새나는 무지렁이는 필요없네"


정원을 바라보며 사키히사는 잔을 기울였다. 켄신도 똑같이 잔을 기울였다.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며 술을 즐기던 두 사람이었으나, 문득 켄신이 입을 열었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묻지 않는겐가"


"억지로 물어봐도 대답해 줄겐가?"


켄신의 의문에 사키히사는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켄신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사키히사는 거의 흥미가 없었다. 다만, 옛 친구와 잔을 나누는 것만으로 만족이었다.

예전에 조정(朝廷)과 아시카가(足利) 정권의 권위 부활의 맹약을 맺고 타케다(武田)와 호죠(北条)에 야망을 분쇄당해 결별했던 두 사람이었으나, 우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훗, 이대로는 단순히 놀래키기 위해 방문했다고 생각될 것 같군. 그렇지……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내가 찾아온 이유는, 자네의 딸이 관계가 있지"


"딸……? 설마……"


이 때 처음으로 사키히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떠올렸다. 대담한 웃음을 떠올린 켄신은, 잔의 술을 비우고는 말을 이었다.


"타케다와 전쟁을 했을때도 이 정도로 놀란 적은 없었지. 정치에 여자를 쓰다니, 라고. 그렇기에 다들 속고 있는거지. 타케다의 시노비도, 호죠의 시노비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네. 그렇지? 겉보기에는 오다 가문이나 모리 가문이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말일세"


"……"


"나도 그녀와 만나지 않았다면 간자의 보고를 일소에 부쳤겠지. 하지만, 그 아이와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간자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겠네"


거기서 말을 끊고, 잔의 술을 비운 후 켄신은 한숨을 쉬었다.


"나라의 초석은 백성, 우리들 무사는 백성으로부터 영지를 안전하게 지키는 대신 수확물을 받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네.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그 아이는 백성을 번영시키고 있지. 그리고, 자신의 이익도 얻어 힘을 기르지. 간자가 눈을 까뒤집었네. 그 아이가 가진 힘은 120만석의 영주에 필적한다고 말일세"


"……나를 찾아온 이유는, 설마 중개를 해달라는 헛소리는 아니겠지. 그 아이는 고노에(近衛) 가문의 지보(至宝). 그리 간단히 다른 곳에 보낼 수는 없지. 게다가, 지금은 오다 님 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 그 애가 싫어하지 않는 이상, 오다 님 밑에서 떼어낼 수는 없네"


이야기가 까다롭게 됐군, 이라고 사키히사는 마음 속으로 신음했다. 타케나다 호죠는 오다 가문의 군사 방면을 주시하고 있기에, 농업이나 어업 등은 소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켄신은 다르다. 그는 백성의 영지를 맡아가지고 있는 것이 무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타케타나 호죠와는 달리, 시즈코의 생산 기술을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잠깐. 네 이놈…… 오늘 찾아온 이유는 설마"


켄신의 속셈을 생각하고 있던 사키히사는, 켄신이 오늘 찾아온 이유는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계산된 것임을 깨달았다.

해답을 찾아낸 사키히사에게, 켄신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뭘, 잡아먹으려는 게 아닐세. 단지, 한번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 뿐이지. 그대의 딸, 고노에 시즈코 님과 말이야"




연말연시에 대비하여, 사키히사는 시즈코에게 다종다양한 상품을 구입하고 있었다. 그 상품들이 도착하는 날이, 켄신이 방문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때때로 노부나가가 접대하는 경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키히사의 접대는 시즈코가 한다.

평상시에 상품을 배달하는 것만이라면 시즈코 자신이 오지는 않지만, 연말이라는 이유고 그녀는 인사도 겸해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켄신은 그 시기에 맞춰 오다 가문 가신들이라도 상급 무장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시즈코와 회담 자리를 손에 넣었다. 간단히 쫓아낼 수 없는 이상, 사키히사가 위장통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즈코 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라"


마음 속으로 으르렁거리면서 사키히사는 시즈코를 안내하도록 명했다. 그 옆에서 켄신은 재미있는 듯한 미소를 띄우고는 시즈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즐거워하면 할수록, 사키히사는 위장통이 심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안심해라)"


그렇게 말하는 켄신이었으나, 사키히사는 켄신의 표정을 보고 전혀 안심할 수 없었다. 확실히 한바탕 말썽이 일어날 예감을 느낀 사키히사는, 무거운 것을 뱉어내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말과 함께 조용히 입구가 열렸다. 먼저 두꺼운 옷을 입은 시즈코가, 이어서 카이저와 쾨니히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무 대비도 없이 거대한 짐승을 보게 되자 켄신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사키히사가 킥 하고 웃었다. 머리로 이해가 된 켄신은, 뺨을 붉히면서 헛기침을 하며 얼버무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 애들이 떨어지질 않아서…… 그, 무섭지 않거든요?"


뒤통수를 긁으며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켄신은 자세를 바로하고는, 다시 카이저와 쾨니히를 보았다.

본 적도 없을 정도의 거구였으나, 결코 조야한 느낌이 아니라, 신비스러울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상관없소. 하지만, 처음에는 놀랐으나 보면 볼수록 단정한 모습이군"


시즈코는 눈 앞의 승려(켄신)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시가의 진(志賀の陣)이 끝난 이후, 비트만들은 시즈코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형편상 짐승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에서는 얌전히 떨어지지만, 입구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다. 특히 카이저는 어렸을 때부터의 어리광부리는 버릇이 부활하여, 24시간 찰싹 달라붙었다.

여기저기 이동한 것 때문에 애정 부족을 느낀 건가, 하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고노에 님. 목록의 확인입니다만…… 괜찮으신가요?"


내용의 확인과, 외부인이 있는 상태에서도 문제없느냐는 두 가지 의미를 담아서 시즈코는 사키히사에게 물었다. 그는 켄신을 한 번 쳐다본 후, 무거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키히사의 태도에 의문을 느낀 시즈코였으나, 깊게 파고들면 그가 곤란해할거라 생각하고 그 이상 질문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시즈코는 보따리에서 서류를 꺼내더니 내용을 최종 확인한 후 사키히사에게 건넸다.


"소금, 설탕, 된장, 간장, 미림(味醂), 술, 녹차, 우롱차(烏龍茶), 홍차, 기후 쌀(岐阜米), 오와리 쌀(尾張米)…… 등등 상당한 양입니다. 다소 부엌이 좁아질거라 생각합니다"


"상관없다. 연초에는 지기(知己)를 불러 연회를 열 예정이지. 정월 3일이 지나면 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라면 몇 달은 생활할 수 있는 양을 며칠만에 소비한다. 얼마나 사람을 부를 건지 조금 궁금해졌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떠오른 질문을 되삼켰다.

그 후, 짐을 확인하고 싶다고 시즈코에게 말하고 사키히사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를 데리고 나갔다. 재빠른 움직임에 켄신도 어이가 없었지만, 머리로 이해되자 작게 웃었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친구을 방에 놔둔 채로 밖으로 나온 것에 시즈코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사키히사는 팔짱을 끼고 신음한 후,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시즈코 님. 내 두 번째 어려운 문제는, 그대를 내 유자(猶子)로 삼는 것이오. 하지만, 이 일은 오다 님과의 사이에서만 이야기된 것이지"


"어, 아, 네, 어?"


엄청난 폭탄 발언을 들은 시즈코였으나, 그녀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사키히사는 시즈코 쪽을 돌아보더니 절박한 표정을 짓고 말을 이었다.


"그것을, 카부키모노(傾奇者)보다 질이 나쁜 저 대악당(大悪党)은, 어째서인지 알고 있소. 저 사내가 누군데, 틀림없이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겠지. 그래서, 여기는――"


"그렇게 섭섭한 소리를 하지 말게나"


대화 도중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사키히사의 몸이 굳었다. 하지만, 말을 건 인물은 그다지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대단히 자연스러운 발걸음으로 사키히사들에게 다가왔다.


"실례, 저는 단지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이 녀석이 잔걱정이 많아서 말이오"


켄신은 시즈코 앞에 서더니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아직까지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시즈코였으나, 조건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 표정의 사키히사였지만, 이윽고 탄식하더니 툇마루에 앉았다.


"후시키안(不識庵) 님. 이 아이는 바쁜 몸이니, 너무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네. 짧게 끝내 주시게"


대책을 세워봐야 깨질 것을 이해한 사키히사는, 켄신이 바라는 대응을 하면서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면서 유도하는 편이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사키히사의 속셈을 헤아린 켄신은, 사키하사에게 감사와 사죄를 담아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다시 시즈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전에도 만났지만, 다시 소개하지요. 소승은 후시키안이라고 합니다.


"시즈코, 입니다. 그…… 그 성함, 과 고노에 님의 친구분이시라는 것은…… 에치고의 용, 이라고 불리는 분이신가요?"


에치고의 용이라는 말에 켄신의 표정이 굳었다. 이전에는 정체를 꿰뚫어본 기색도 보이지 않았던 시즈코가, 이번에는 즉시 켄신의 정체를 간파했다.

켄신은 얼굴만 사키히사 쪽으로 돌렸다. 그는 켄신이 놀라는 모습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다시 시즈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켄신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했다.


"만약 내가 에치고의 용이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실 것이오?"


"딱히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후에 몰래 오셨다고 해도 지금은 눈이 내리는 계절이니, 이래저래 불편하신 점 많으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즈코의 대답에 켄신과 사키히사는 할 말을 잃었다. 에치고의 용, 성장(聖将), 군신(軍神)이라는 별명이 붙었듯이, 우에스기 켄신은 타케나다 호죠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장이다. 그의 목을 원하는 사람들은 별의 숫자만큼 많다.

그런 켄신을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앞두고, 목을 취할 야심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으며, 거꾸로 그가 돌아가는 길을 걱정하는 시즈코에게는, 제아무리 사키히사라도 예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대답이었다.

살기가 일절 느껴지지 않고, 켄신들이 놀라는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즈코를 켄신은 똑바로 바라보았다. 방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눈이라고 켄신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허허허헛, 참으로 기분좋은 말이로다"


"네, 네에"


호쾌하게 웃는 켄신에 시즈코는 곤혹스러워졌다. 한바탕 웃은 후, 켄신은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떠올렸다.


"그대에게는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에겐 없는 바람을 느끼오. 참으로 상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게 해주는 바람이외다"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는 전국시대의 상식을 몇 번이나 뒤집는 사고방식의 소유주임을 그녀는 떠올렸다.


투서함을 회수할 때, 시즈코는 눈 앞의 인물이 켄신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 후시키안이라는 이름이 걸리기는 했지만, 에치고의 영주인 켄신이 호위도 없이 기후에 올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바로 그렇기에, 다들 켄신의 술수에 걸려들어, 누구 하나 그의 정체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바라건대, 계속 변함없이 있어주었으면 하외다"


"네, 네에, 감사, 합니다?"


"허헛, 오랜만에 마음속이 다 시원해지게 웃었소. 답례로 한 잔 올리고 싶다고 하고 싶지만, 그대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차를 한 잔 올리지요, 물론 이놈이 퍼뜨리고 있는 고노에류 전차도(近衛流煎茶道)의 예법으로 말이오"


고노에류 전차도는, 다도(茶道)의 일종인 전차도(煎茶道)를 사키히사가 나름대로 개량한 다도의 일종이다. 말차도(抹茶道)와는 달리 도구는 찻주전자(急須), 찻잔(湯飲み), 끓인 차를 식히는 그릇(湯冷まし), 찻잎 등 네 가지만 있으면 된다.

마시는 법에 추천하는 방법은 있지만, 엄격한 예법은 없다. 마주보고 책상다리를 한 채 마셔도 좋고,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마셔도 좋고, 선 채로 마셔도 좋은 등, 세세한 규정은 하나도 없다.

사키히사의 전차도는 마음가짐(心構え)과 접대(もてなし)에 대한 철학, 그리고 추천하는 순서 뿐이다.


마음가짐이나 접대에 대한 철학은 말차도와 큰 차이가 없다. 순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키히사는 아래의 방법을 추천하고 있다.

먼저, 차모임(茶会)을 여는 호스트는 멀리서 어렵게 찾아와 준 사마들에 대해, 목을 축이는 목적으로 미지근한 차를 낸다. 마음으로 차를 마시고 진정된 사람들에게 조금 뜨거운 차와 과자를 낸다.

그 후에는 잡담을 하거나,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는 등, 각자 편한 대로 시간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적당한 온도로 끓인 차를 내면 끝이다.


차는 녹차, 우롱차, 홍자, 호지차(ほうじ茶) 등 뭐든지 좋다. 내는 순서도 종류도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다. 처음에 녹차를 내고, 마지막에 우롱차를 내는 것도 허용된다.

각자가 자신들에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마시는 법으로 마시면 되었다. 이 완만한 규정과 차도구(茶道具)의 저렴함이 인기를 끌어, 고노에류 전차도는 무가(武家)나, 공가(公家), 주로 여인들에게 대유행했다.


여담이지만 녹차, 우롱차, 홍차는 전부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ia sinensis)라는 동백과의 차나무에서 만들어진다. 세 종류의 차이점은 찻잎의 가공 방법이다.

나무의 생잎을 건조, 발효시켜 말들 때, 발효시키지 않은 차를 녹차, 약하게 발효시킨 차를 황차(黄茶), 백차(白茶), 강하게 발효시킨 차를 우롱차, 완전히 발효시킨 차를 홍차라고 부른다. 누룩균(麹菌)에 의한 후발효차(後発酵茶)는 흑차(黒茶)라고 부른다.

따라서, 현대에서는 일본의 차나무에서 만들어지는 국산 홍차가 있다.

인도-스리랑카의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하지만,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 떪은 맛이 적고 산뜻한 맛, 약간의 단맛이 특징이다.


"맙소사, 변함없이 자기 고집을 부리는 사내로세"


켄신의 말에 사키히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겨울의 추위에 견디면서 아시미츠(足満)는 오우신 신사(櫻信之社)의 한 구석의 땅을 갈고 있었다.

그 자신이 갈고 있는 이유는, 지금부터 키우려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여 함부로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시즈코가 알게 되면 불태워버리겠지. 가능한 한 얼버무리도록 하자)


심는 것은 5월로 아직 멀었지만, 언제 바빠질지 모르기에 시간이 있을 때 꾸준히 갈아두자고 아시미츠는 생각했다.

손바닥만한 땅밖에 쓰질 않기 때문에 1각(刻)도 걸리지 않아 아시미츠는 땅을 다 갈았다. 이마의 땀을 닦으며 그는 가까이 있는 돌에 걸터앉았다.


(희한한 일을 하시는군요)


"봄에 키우는 게 특수하니까"


어디선가 토비카토(鳶加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그다지 신경도 쓰지 않고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땀을 다 닦자 그는 몸을 움직여 근육을 풀었다.


(그건 이전에, 타케다의 간자에게 쓰신 것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지나치게 많이 알면 목숨을 잃는다, 토비카토. 뭐 좋아, 네놈은 쓰는 걸 본 적이 있으니, 특별히 가르쳐주지. 내가 키우는 것은 세뇌를 위한 독초이다. 남만에서는 앤젤 트럼펫(Angel Trumpet)이나 다튜라(Daturas)라고 부르지"


엔젤 트럼펫, 다튜라, 다투라, 만다라케(曼陀羅華) 등 여러가지 이름을 가진 흰독말풀(朝鮮朝顔, 이하 다투라)은, 대단히 위험한 독을 가진 1년초(一年草) 또는 고목(高木)이다.

다투라에는 브루그만시아(キダチチョウセンアサガオ, Brugmansia) 속(属)과 흰독말풀 속(属)이 존재한다. 양자의 차이점은 나무가 되는지 풀이 되는지와 꽃이 피는 형태이다.

브루그만시아 속은 높은 나무 또는 낮은 나무로, 꽃이 아래쪽을 향해 핀다. 그에 반해 흰독말풀 속은 1년초 또는 다년초(多年草)로, 꽃이 위를 향해 핀다.

통칭 앤젤 트럼펫이라고 불리는 종류가 브루그만시아 속, 다투라라고 불리는 종류가 흰독말풀 속이다.

공통점은 양쪽 다 유독 식물로, 대단히 위험한 식물이라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흰독말풀의 조선(朝鮮, ※역주: 흰독말풀속의 일본 명칭인 朝鮮朝顔는 그대로 읽으면 조선 나팔꽃이라는 뜻)은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해외에서 들어온 것, 이라는 의미이다.

또, 나팔꽃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있지만 다투라는 가지 과에 속하며, 메꽃(ヒルガオ) 과인 나팔꽃과는 종이 다르다.

그리고, 1804년에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하에서의 유방암 적출 수술을 한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青洲)가 쓴 다투라는, 메텔(Metel)이라고 불리는 인도 원산의 풀 종류의 다투라이다.


(미치광이풀(ハシリドコロ, 스코폴리아 뿌리)을 쓴 독초와 같은 종류입니까)


"세뇌에 쓰기엔 이쪽이 좋다"


아시미츠가 수입한 다투라는 대단히 위험한 독초이다.

인도에서는 다투라를 이용해 상대를 만취(酩酊) 상태로 만든 후 강도짓을 하는 다투레아스(Datureas, ※역주: 알파벳 스펠링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라는 범죄 조직이 존재했는데, 그 조직이 사용했다고 하는 다투라가 아시미츠가 키우고 있는 다투라이다.

독의 효과가 너무 강해서 상대가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는 타케다나 호죠의 간자이다. 따라서, 아시미츠는 털끝만큼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시즈코 이외의 사람들의 목숨은 길 옆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정도의 가치조차 없지만.


"하시시(hashish)로는 생각대로 사고(思考)를 제어할 수 없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지만, 이쪽이라면 제어하기 쉽고, 밖으로 샐 걱정도 없지"


(설마…… 그 30명은……)


"이야기는 이상이다, 토비카토. 이 이상 캐물으려면 그 목을 각오하라"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낸 후, 아시미츠는 도구를 정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말없이 아시미츠가 갈아놓은 밭을 보고 있던 토비카토였으나, 이윽고 마음 속에 있는 시커먼 것을 뱉어내려는 듯 중얼거렸다.


(목숨을 버린 병사…… 라. 당분간 사이카슈(雑賀衆) 주변은 난리가 나겠군)




12월의 어느 날, 시가의 진에 대한 논공행상이 노부나가의 거성(居城), 기후 성(岐阜城)에서 열리게 되었다.

노부나가 최대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시가의 진에서 각자 충분히 활약하였기에, 그는 간신히 멸망의 위기를 넘겼다.


"제 1공! 모리 산자에몬 요시나리(森三左衛門可成)!"


활약의 순위를 매기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굳이 1위를 정하라면 모리 요시나리 이외에는 없다. 그의 활약에 의해 노부나가는 쿄(京)를 빼앗기지 않았고, 그리고 등 뒤에서 습격받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전장에 서지 않더라도 인맥을 이용한 외교로 반 오다 연합의 일부에 책략을 성공시키는 등, 누가 봐도 그가 시가의 진에서 최고의 활약을 한 것은 명백했다.


"요시나리, 망국의 위기를 이겨낸 활약, 실로 훌륭하였다"


"옛!"


요시나리에는 명품 다기(茶器) 두 점, 돈, 그리고 봉토(知行地)가 내려졌다. 그 후에도 시바타(柴田)나 삿사(佐々),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 니와 나가히에(丹羽長秀),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등 많은 무장들에게 포상이 내려졌다.


"(저기말야, 우리들은 포상이 없을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케이지(慶次)가 시즈코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야 그렇지. 이번에 우리들은 명령을 무시했으니까. 우사 산성(宇佐山城) 함락을 저지한 걸로 상쇄된 거 아냐?)"


"(……뭐 원래는 노다(野田)-후쿠시마(福島)로 참전했어야 했던 거니 어쩔 수 없나)"


케이지도 포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는지, 금방 납득하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애초에 시즈코는 논공행상에 흥미가 없었다. 주어지는 것은 보물, 다기, 칼, 말인데, 시즈코에게는 하나같이 다루기 까다로운 것들 뿐으로, 받아도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하사하는 게 고작이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와사비의 재배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 쪽이 강했다.


"이상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들 외에 무공을 기리는 두 가지 특별 무공이 있다"


논공행상은 끝이라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진행자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시즈코는 진절머리가 났다.


"첫번째는 우사 산성을 지켜낸 병사들이다. 그들의 용감무쌍한 분투(獅子奮闘) 없이 우사 산성을 지켜낼 수 없었다. 목숨을 버리고 싸운 무사들은, 특별무공으로 기려야 할 것이다"


묵념할 듯한 분위기로 노부나가가 말했다. 특별무공은 그 자신이 말할 것인지, 진행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눈을 감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목숨으로서 조국의 초석이 된 영령들이여, 편히 잠들라"


노부나가의 말을 들은 가신들이, 누구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합장하고 기도했다. 묘비 없는 땅에 잠든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윽고 전원이 합장이 끝났을 무렵, 노부나가는 눈을 뜨고 두번째의 특별무공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두번째도 우사 산성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우사 산성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고, 반역한 롯카쿠(六角)를 철저히 짓밟아 오우미 국(近江国)의 안정에 기여하였으며, 코우가슈(甲賀衆)에 대한 책략을 용이하게 하였다. 공식적인 무대에 서지 않고, 무공을 탐하지 않고, 다만 무대 뒤편에서의 역할에 진력한 자들에게, 나는 두 번째의 특별무공을 내리고 싶다"


(아,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시즈코 군 총대장, 시즈코! 마에다 케이지(前田慶次), 카니 사이조(可児才蔵), 모리 카츠조(森勝蔵)! 그대들의 활약, 실로 훌륭하였다"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으나, 호명되었으니 앞으로 나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다 가문 가신들로부터 상찬의 눈빛, 그와 동시에 따라붙은 질투와 반감 등의 악의.

정(正)과 부(負)의 감정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다수의 전투를 거쳐 늠름해졌는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배짱이 두둑해졌는지, 시즈코는 가신들의 악의를 가볍게 흘리고 노부나가의 앞으로 이동했다.


"호오…… 전쟁이란 사람을 이만큼 늠름하게 성장시키는 것인가. 걷기 시작한 갓난아이가 훌륭한 표정을 짓는 장부(をのこ)로 변했구나"


누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노부나가는 혼잣말을 하며 대담한 미소를 떠올렸다. 시즈코가 눈 앞에 앉자, 노부나가는 표정을 조였다.


"시즈코, 마에다 케이지, 카니 사이조, 모리 카츠조, 그대들의 활약, 훌륭하였다"


봉록(俸禄)은 전원 공통으로 칼, 말, 돈이 내려졌으나, 시즈코에게만 명품 다기 한 점과 영락전문기(永楽銭紋旗, ※역주: 영락전(永楽銭) 문양이 그려진 깃발(旗))이 내려졌다.

영락전문기는 노부나가가 깃발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깃발 문양은 미즈노(水野) 씨、쿠로다(黒田) 씨、센고쿠(仙石) 씨가 받은(拝領) 게 고작이고 가신들에게 내려지는 경우는 적으며, 따라서 대단히 명예로운 것이다.


"이상으로 논공행상은 끝나지만, 한 가지 모두에게 알려둘 이야기가 있다"


노부나가가 가볍게 손뼉을 쳐 소성에게 신호를 보내자, 입구의 맹장지가 조용히 열렸다. 거기서 방으로 들어온 것은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였다.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시즈코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해했다. 한층 두통이 심해졌지만, 노부나가가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키히사는 부드러운 미소를 더올리며 시즈코의 옆까지 이동하더니 그 자리에 앉았다.


"다들 궁금해하고 있을테니, 슬슬 시즈코의 정체를 밝히겠다"


그 말에 주위가 술렁였다. 시즈코의 성은 아야노코우지(綾小路)였으나, 아무리 조사해봐도 시즈코가 아야노코우지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증거는 없었다.

상락 후에도 노부나가는 몰래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에게 조사하게 했으나, 그녀에 관한 정보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노부나가가 어딘가에서 주워와서, 지금은 중히 쓰이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일의 시작은 현 쇼군(将軍)의 형님이신 검호(剣豪) 쇼군과 오다 님께서 밀회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우에스기(上杉) 가문과 갈라선 이후, 꿈을 맡길 수 있는 무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오다 님과 검호 쇼군의 밀담. 저는 이것을 호기(好機)라고 보고, 억지를 부려 밀담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받아, 거기서 오다 님께 힘을 빌려드릴 약속을 했습니다. 그게 그녀입니다"


(거 참 잘도 그런 거짓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네…… 나한텐 무리야)


사키히사는 새빨간 거짓말을 막힘없이 늘어놓았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키히사의 말이 사실이다.


"여러분께서도 어렴풋이 느끼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만, 그녀에게는 고노에 가문의 이름을 쓰는 것을 금하였습니다. 하나는 간자 대책, 또 하나는 재주를 보이는데는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쪽이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맘대로 하세요……)


여전히 사키히사의 9할이 거짓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에 대해, 시즈코는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야노코우지 시즈코(綾小路静子)가 그녀의 본명이지만,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는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의 이름이 사실로 정착되었다. 시즈코가 고노에 가문 출신이라는 것에 무장들은 놀라고, 그녀에게 어느 정도 두려움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으며, 케이지에 이르러서는 "사람은 하루에 쌀이 3합(合)만 있으면 살 수 있어. 그보다 술이 마시고 싶어"라며 시즈코의 성보다 술 쪽이 중요했다.

결국, 시즈코가 고노에 가문의 사람이던 아니던 주위에는 대단한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녀의 지식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담력에 납득이 갈 뿐이었다.


파란은 있었으나 신속하게 이루어진 논공행상으로부터 며칠 후, 시즈코에게는 노부나가에게서 100명의 아시가루(足軽)가 긴급하게 주어졌다.

그녀는 병사의 취급에 골치를 앓았다. 지금까지도 병사의 증감(増減)은 자주 있던 일이었지만, 100명 정도가 주어진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응, 어쩌지. 당분간 신병훈련을 시키면 되려나"


"항상 하던 것처럼 체력 측정부터겠지"


골치를 앓고 있는 시즈코에게 나가요시가 지적했다.

시즈코 군은 병사들에 대해, 처음에는 체력 측정이라는 이름의 솎아내기를 하고 있었다. 체력 측정에서 탈락한 사람은 병참대(兵站隊)에 맞는 시즈코가 입안한 훈련을, 체력 측정에 합격한 사람은 나가요시 자신이 몸으로 체험한 특별훈련을 시켰다.

어느 쪽이던 나가요시의 감독 아래 훈련을 받게 되는데, 그의 훈련은 다른 군대에서도 호평이라 가끔 외부에서 훈련에 참가하는 자들도 있었다.


시즈코 군은 전투에 관여하는 전투군(戦闘軍)과, 후방지원을 담당하는 병참군(兵站軍)의 두 가지로 나뉘어 있다.

병참군은 토목공사를 하는 쿠로쿠와슈(黒鍬衆) 외에 무장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다이도코로슈(台所衆), 부상병을 치료하는 킨소이슈(金瘡医衆), 위생이나 방역, 병의 치료를 담당하는 에이세이슈(衛生衆), 무기나 식량을 경호, 운반하는 부츠류슈(物流衆), 척후를 담당하는 셋코슈(斥候衆), 전령이나 파발마등의 통신 관계를 담당하는 츠으신슈(通信衆), 군용견을 다루는 케이비슈(警備衆) 등이 있다.

원활하게 군사작전을 진행하려면, 후방지원의 충실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겁장이 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로마 군의 힘은 병참에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군에 있어 병참은 중요한 존재이다. 또, 유방(劉邦)에 소하(蕭何), 조조(曹操)에 순욱(荀彧) 등, 유명한 인물들에는 병참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반드시 존재했다.


노부나가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진 않았으나, 전투는 그것이 벌어질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즈코가 후방지원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때로는 그녀의 아이디어를 슬쩍 채용하기도 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설령 적이 특기로 하는 전술, 전략, 이론조차 자군(自軍)에 채용한다. 이 빠른 상황판단이 노부나가의 강점이기도 했다.


시즈코는 나가요시의 의견을 듣고 잠시 생각한 후, 그를 바라보며 결론을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달릴게. 요즘 바빠서 훈련을 많이 빼먹었으니까"


"그러냐. 이번에는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그런 대화를 하며 두 사람은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후 100명의 병사들이 기다리는 광장까지 이동했다.

미리 정렬시켜둔 덕분에, 큰 노력 없이 시즈코와 나가요시는 100명 앞에 섰다.


"에―, 자 주목―. 이야기는 사전에 들었을거라 생각하니,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지금부터 체력 측정을 합니다"


나무로 된 발판 위에 올라가, 나무로 된 메가폰을 써서 시즈코는 100명의 병사들에 말했다. 역시, 랄까 벌써부터 패턴이 되고 있는 듯, 신병들은 시즈코를 깔보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멀리서 보고 있는 케이지나 사이조, 그리고 시즈코 옆에 있는 나가요시는, 그들의 태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흥미진진하다는 웃음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 약 50분이다. 나머지는 체력 측정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운동에서 비명을 지른다. 대충 20분이나 버티면 오래 버틴 축이다.


"원래는 움직이기 쉬운 복장으로, 라고 하고 싶지만, 오늘은 그 복장 그대로 부탁드립니다"


그로부터 10분 정도 후 체력 측정, 아니 단순한 런닝이 시작되었다. 선두는 말할 필요도 없이 시즈코, 그 뒤를 100명의 신병들이 나란히 달릴 뿐이었다.

규칙은 단순하여, 시즈코가 체력의 한계에 달할 때까지 달린다, 전원이 기권한다,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시즈코를 제외하고 남지 않는다 중 하나였다.


"오―, 제법 열심히 하는데. 아마 두 바퀴도 돌기 전에 반은 탈락하겠지만 말야"


멀리서 보고 있던 케이지였으나, 가까이서 보는 편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틈에 나가요시 옆에 서 있었다.

눈 위에 손을 올리고 재밌다는 듯 보고 있는 케이지와 달리, 나가요시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은 한 바퀴나 돌면 다행일걸. 모래 위를 달리는 건 보기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니까. 이런 종류의 훈련을 경험한 적이 없는 신병들에게는 힘들겠지"


나가요시의 생각은 옳았다. 한 바퀴 500미터의 레인을 달릴 뿐이지만, 모래 때문에 지면을 강하게 박찰 수가 없다. 필연적으로 단단한 지면보다 힘을 많이 쓰게 된다.

한 발자국만이라면 작은 차이였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니나나를까, 두 바퀴를 돌았을 무렵에는 8할 가까이 지칠 대로 지쳐서 다리를 끌고 있었다.


"2바퀴 완료―. 자자, 아래를 보면 더 힘들어요"


그에 반해 시즈코는 아직 여유만만이라는 표정이었다. 처음과 다름없는 페이스를 유지하며 세 바퀴 째에 돌입했다. 반도 달리기 전에 7할이 체력의 한계를 호소하며 발을 멈추었다.

세 바퀴 째의 골에 도착한 것은, 시즈코를 제외하면 겨우 한 명 뿐이었다. 그 인물도 네 바퀴 째를 완주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에, 시즈코는 거기서 체력 측정을 멈추었다.


"전원 탈락 같으니 종료"


시즈코의 종료 선언에 신병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곧바로 그들은 절망을 알게 되었다.


"그럼 10분 휴식 후, 다음에는 턱걸이(懸垂)를 합니다"


체력 측정이 끝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신병들은, 문자 그대로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런 그들을 멀리서 보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훗, 역시 익숙하지 않으면 매제도 힘든 건가"


노부나가였다. 그는 나가마사(長政)로부터 '신병부터 다시 시작하겠다'고 상담을 받았을 때, 맨 먼저 시즈코 군에 던져넣을 것을 떠올렸다.

다른 곳에서는 정체 때문에 귀찮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 점에서, 시즈코 군은 괴짜들이 수두룩한 군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인물이 들어가도 딱히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시즈코 군은 신분이나 혈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재능과 운이 있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운명과 싸워라 매제여. 만약, 네게 운명을 굴복시킬 힘이 있다면, 반드시 재기할 수 있으리라"


노부나가는 아자이(浅井) 가문을 멸망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년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다니 성(小谷城)은 견고함을 자랑하는 성이다. 그러나, 어떤 성이라도 단독으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과 식량의 보급 루트를 전부 끊어버리면, 안쪽으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지금부터 2년, 그 때까지 힘을 키워라"


누구에게 대고 말하는 게 아니라 노부나가는 작게 중얼거렸다. 호위대(馬廻衆)가 반응하기 전에 노부나가는 말머리를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요양을 마친 모리 요시나리가, 연말 인사를 겸하여 시즈코의 집을 방문했다. 그것 자체는 딱히 문제도 없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그러나, 뭘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요시나리가 나가요시와 대련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왼팔에 장애가 남아, 지금도 약간 저림이 있는 요시나리로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자, 시즈코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진짜 창으로 대련하다 살상 사태가 나면 전원이 책임을 져야 하기에, 장봉(長棒)으로 대련하게 되었다. 요시나리는 봉을 몇 번 휘둘러서 감촉을 확인한 후, 나가요시 쪽을 향했다.


"사양할 필요는 없다. 나를 적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덤벼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나가요시가 요시나리를 향해 달려갔다.


처음에는 요시나리가 열세에 몰리는게 아닌가, 하고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시즈코나 케이지, 사이조는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가요시의 완패였다.

두 사람의 주위에는 치고 들어갈 때의 생긴 발자국 투성이였는데, 그 대부분이 나가요시의 발자국이었다. 요시나리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나가요시의 공격을 흘려내고, 그대로 기세를 붙여 나가요시를 공격했다.

50대가 다 된, 그것도 왼팔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젠장! 젠장!"


거친 목소리를 내면서 나가요시는 장봉을 휘둘렀다. 초조함과 한 번도 맞부딪히지 못하는 짜증 때문인지, 그냥 무턱대고 휘두를 뿐이었다. 그런 공격이 요시나리에게 맞을 리가 없어, 간단히 회피당했다.


"크억!"


빈틈투성이의 모습을 드러낸 나가요시의 몸통에, 요시나리의 장봉이 호되게 작렬했다. 아픈 나머지 무릎을 꿇은 나가요시였으나, 요시나리는 용서없이 장봉으로 요시나리의 손을 후려쳤다.

승부의 결과는 누가 봐도 요시나리의 압승이었다. 나가요시 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단련시키기위해 이런저런 훈련을 시켰던 시즈코 본인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실력은 좋지만, 교활함은 아직 멀었구나"


나가요시가 떨어뜨린 장봉을 주워든 후, 요시나리는 대련의 감상을 말했다.

다소 호흡이 거칠어지긴 했으나, 아직 한참 여유가 느껴졌다. 반면, 나가요시는 어깨로 숨을 쉬고 있어, 체력을 극심하게 소모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술에 너무 의지하고 있다. 카츠조, 너는 기본을 너무 소홀히하고 있다. 그래서는 아무리 덤벼봐야 나를 쓰러뜨릴 수는 없다"


요시나리의 말에 나가요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의 지적대로, 도중부터 기술을 남용하고, 그게 맞지 않았기에 다음 기술을, 이라는 진흙탕에 빠진 것을 나가요시는 깨달았다.

그가 약간의 지적으로 해답을 얻은 것에, 요시나리는 작게 웃음을 떠올렸다.


"알겠느냐, 카츠조. 기술로 상대(兵)에게 두려움을 주지 마라. 찌르기 한 번,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찌르기만으로 상대를 두려워하게 해라. 그걸 할 수 있으면 어엿한 무사라고 할 수 있다"


"……예"


나가요시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떠올리고는 나가요시는 그를 일으켜세웠다. 나가요시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 그는 나가요시의 성장을 기뻐했다.

하지만, 요시나리가 그것을 말로 하지는 않았다. 말주변이 없는데다, 나가요시는 칭찬하면 우쭐하기 쉽다. 하지만, 말로 하지 않더라도, 요시나리의 손을 통해 마음은 나가요시에게 전해졌다.

이윽고 흙을 다 털어낸 요시나리는, 나가요시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내 등을 넘어서라, 카츠조. 너라면 할 수 있다"


"아버지…… 응,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아버지의 등을 넘어서 보이겠어!"


나가요시의 대답에 요시나리는 작게 미소지으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요시를 단련시킨 후,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를 찾아갔다.

설령 전선에서 물러나서 장남에게 가문을 잇게 하더라도 그가 노부나가의 오른팔이자 가장 신뢰받고 있는 인물임에 변함은 없다.

정치나 외교의 보조, 인맥을 살린 교섭, 다음 세대의 육성 등, 부상당하기 전과 다름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시즈코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의뢰한 물건들을 연말까지 끝내려고 했는지, 여러가지 물건들이 배달되었다. 연말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번째는 유리로 된 샬레(Schale)였다.

샬레란 미생물의 배양 실험에 쓰이는 유리로 된 납작한 그릇으로, 한천 배지(寒天培地)를 평판 배지(平板培地)로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독일의 세균학자 율리우스 리하르트 페트리(Julius Richard Petri)가 발명한 이래, 일반적인 용기로서 과학 실험에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이 용기가 필요한 이유는 페니실린의 제조와 관계가 있다. 제조처의 규모는 작지만, 페니실린의 제조는 시작되었다.

제조된 페니실린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샬레에 한천 배지를 만드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샬레는 유리로 되어 있기에 생산이 따라오질 못했다. 그래도 필요한 수를 갖추기 위해 시즈코는 몇 번이고 생산을 의뢰했다.

지금은 페니실린 용출액(溶出液)이지만 정제도가 올라가면 알코올의 탈수작용으로 결정화(結晶化)시켜 분말로 만드는 것도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천연 페니실린, 현대에서는 페니실린 G(벤질페니실린, Benzylpenicillin)이라고 불리는 항생물질은 기본적으로 그램 양성구균(グラム陽性球菌, Gram-positive bacteria)에 활용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매독(梅毒)이다. 매독 스피로헤타를 치료할 때, 페니실린 G가 다른 항생제(抗菌薬)보다 효과적이다.


매독은 제1 감염경로가 성행위(性行為)이지만, 임신중, 출생시의 모자감염(母子感染)에 의한 선천성 매독도 있다.

배양이 불가능하기에, 1998년에 모든 게놈의 DNA 배열이 결정되긴 했으나, 현대에서도 병원성(病原性)의 기구(機構)는 거의 해명되어 있지 않다. 다만, 토끼의 고환 안에서는 어째서인지 배양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512년에 처음으로 매독이 기록상에 등장했다.

매독이 서양의 역사에 나타난 것이 15세기 말(다만 여러가지 설이 있기에 확정된 것은 아니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겨우 수십년 만에 일본에 도달했다는 것이 된다.

무서운 기세로 퍼져나간 매독은 페니실린이 발견될 때까지 치료약은 없어서, 일본에서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유우키 히데야스(結城秀康), 마에다 토시나가(前田利長), 아사노 요시나가(浅野幸長) 등의 저명 인사들이 매독으로 사망했다.


페니실린이 발견될 때까지 매독에는 수은 요법(水銀療法)이나, 의도적으로 말라리아에 감염시켜 고열 상태로 만들어서 체내의 매독 트레포네마(Treponema pallidum)의 사멸을 확인한 후, 키니네(kinine)를 투여하여 말라리아 원충을 사멸시킨다는, 대단히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료법도 시행되었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발견된 이후, 그러한 치료법은 자취를 감추었다.

현대에서도 매독 트레포네마는 항생물질에 대한 내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단계에 따라 다르긴 하나 최고 12주 정도 동안 페니실린 G를 투여하면 치료된다.


여담이지만 미합중국 앨러배마(Alabama)주의 터스키기(Tuskegee)에서 빈곤층의 흑인 400명에서 600명을 대상으로, 정부기관이 매독의 생체실험을 1932년부터 40년에 걸쳐서 실시했다.

소위 말하는 터스키기 매독 인체실험은, 매독 말기에 일어나는 다양한 중증 합병증을 연구할 목적으로 실시되어, 환자에게 질병에 대해 알리지 않고, 치료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했다.

또, 건강체(健康体)인 사람은 건강진단 후, 혈액에 악성의 질병이 있다는 거짓을 알리고, '치료'의 이름 하에 매독을 주사하여 의도적으로 감염시켰다.

게다가 1946년 7월에서 1948년 12월에 걸쳐, 같은 보험기관이 중남미의 과테말라에서도 매독의 인체실험(소위 말하는 과테말라 매독 인체실험)을 한 것이 2010년에 밝혀졌다.

이 인체실험의 무서운 점은, 질병이 어떻게 감염되는지 판명된데다 치료법이 확립되어 있는 시대에 시행된 점이다.


샬레는 페니실린 용이지만, 두 번째로 도착한 것은 개똥쑥(クソニンジン)이다. 학명은 알테미시아(Artemisia)라고 한다.

입에 내기 꺼려지는 일본 명칭(※역주: 일본 명칭은 직역하면 '똥당근')이지만, 악취 같은 것은 없고 쑥과 라벤더 특유의 냄새가 난다.

건조시키면 더욱 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영문 명칭은 Sweet Wormwood(달콤한 향쑥)이라고 한다.

다만, 개똥쑥의 번식력은 허브로 분류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왕성하다. 1년초이지만 지하경(地下茎)이 남아 있으면 거기서 번식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개똥숙의 에테르 추출물 알테미시닌(Artemisinin)은, 키니네에 내성을 갖는 말라리아에게도 경이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재배는 손쉬우며, 자연에서 유래된 약 중에서도 비교적 간편한 특효약이다.

말라리아의 특효약이라고 하면 키니네가 가장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키나(quina, kina)의 재배가 불가능하다.


동남아시아를 경유해서 유럽 상인들이 일본에 내방하는 전국시대, 말라리아 대책의 약을 가질 필요성이 있었다.

최초로 말라리아의 감염이 확인되는 시기는 기원전 8천년에서 1만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의 고대 도시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것으로 생각되는 인골(人骨)이 발굴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 무렵,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Cleopatra)도 말라리아로 고생하였으며, 그에 관한 부조(relief)도 발굴되었다. 이 부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말라리아 유행의 기록이라고 한다.

게다가 말라리아는 열대지역 특유의 질병이 아니다.

북극권에 가까운 핀란드에서도 20세기 초에 수천명이 감염되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감염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일본도 감염 범위 바깥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오랜 세월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말라리아였으나, 1880년에 알제리 주재 프랑스 육군 군의(軍医) 샤를 라브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이 환자의 혈액에서 말라리아 병원충(原病虫)을 발견했다.

그리고 영국의 의사, 로널드 로스(Sir Ronald Ross)가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것은 모기라는 것을 증명한 것은 1897년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이, 시즈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방한복 세트였다.

구체적으로는 장갑, 양말, 복대, 도자기로 만든 탕파(湯たんぽ, 湯婆) 등 4점 세트였다. 이것들을 쓰는 것은 시즈코가 아니라, 그녀의 거점을 방위하고 있는 병사들이다.


시즈코가 사는 장소는 노부나가의 배려에 의해 항상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름의 더위도 겨울의 추위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무리 일이라고는 해도, 이래서는 몸이 상한다.

여름의 더위와 함게 겨울의 추위 대책은 꼭 필요하다. 방위하고 있는 병사들이 추위 때문에 손이 얼어서 중요할 때 움직이지 못해서야 이야기가 안 된다.

따라서, 추위 속에서도 병사들이 가능한 한 만전의 상태로 있을 수 있도록 대첵을 세우는 것은 중요했다.


"에―, 주목!

지금부터 방한구 4점을 두 벌씩 지급할테니, 받은 사람부터 착용하세요. 또, 이번에는 실용검증(実地検証)도 겸하고 있으므로, 사용감에 대한 감상을 들을 겁니다"


"옛!"


시즈코의 선언을 신호로, 4점 세트를 포장한 보따리가 두 개씩 병사들에게 건네어졌다. 병사들은 즉시 복대, 장갑, 양말을 신고, 도자기로 만든 탕파에 뜨거운 물을 넣었다.


"따뜻하다…… 나, 이 시기에는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게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여기서 술이 있으면 완벽, 하다는 건가?"


"그만둬. 그런 짓을 했다간 오다 님의 벼락이 떨어진다"


추위가 완화되어 여유가 생겼는지, 여기저기서 병사들은 잡담을 나누었다. 방한화를 배치할 수 있으면 완벽하지만, 현재로서는 코스트가 너무 들어서 병사들에게 돌릴 여유는 없다.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아야(彩) 등 측근에게 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만큼 성능은 보증되어 있어, 물이나 눈이 녹은 길을 걸어도 목이 긴 신발처럼 물이 스며드는 일은 없었다.


"자, 잡담도 좋지만 받은 사람부터 순서대로 임무에 복귀해 주세요. 겨울 동안에는 이 4점을 착용하도록 합니다. 가끔 사용 소감을 물어보러 갈 거니까 즉시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아, 옛!"


느슨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병사들이, 시즈코의 독려에 당황하여 대답을 하고 표정을 조였다.

다 입은 병사들은 예비 보따리를 한 손에 들고 각자 소정의 위치로 돌아갔다. 전원이 수령을 마치자, 시즈코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좋―아, 연말까지 할 일은 다 끝났네―. 뭐, 내년이 되자마자 할 일이 있지만 며칠은 푹 쉴 수 있어"


팔을 빙글빙글 돌리며 시즈코는 굳은 어깨를 풀었다. 하지만, 새해가 지나면 또 일거리가 생긴다. 이 바쁜 몸은 언제 쉴 수 있는 걸까, 하고 때때로 생각하는 시즈코였다.


"내년에야말로 실컷 놀면서(左団扇) 생활해주겠어"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시즈코는 잊고 있었다. 작년 연말에도, 똑같은 것을 결의했던 것을.

그리고 안타깝게도 세상의 정세는 그녀에게 안식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무명이었던 시즈코 군은, 우사 산성 전투에서 충격적인 초전을 장식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자마자 오우미 국의 패자(覇者) 롯카쿠 씨를 괴멸시킨 것에 각국은 놀라서 정보를 얻으려고 많은 간자를 풀었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그녀의 주위도 서서히 소란스러워져간다. 아무리 그녀가 조용한 생활을 원하더라도, 시즈코의 파란만장한 생활은 지금부터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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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72 1570년 12월 하순



역사적 사실 대로라면 내년 초부터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강화를 맺기 전부터 화살의 증산에 주력하고 있었다.

현대라면 듀랄루민제나 카본제의 화살을 써서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전국시대의 이대(矢竹)를 살대로 가공하여 만드는 화살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기본이 된다.

따라서 저격에 쓰이는 화살이 아니라, 많은 수를 쏘기 위한 화살은 질을 따지지 않는다. 얼마나 단시간에 필요 최저한의 품질로 양을 확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많은 걸 바라고 필요 이상의 질을 추구하면 그만큼 완성이 늦어진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시세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특히 궁병이 많아 화살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시즈코 군에게는, 단시간에 범용성이 높은 화살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전(継戦) 능력이 저하되어 버린다.

병기로서 통용되는 최저한의 '질'을 확보한 화살을 충분한 '양'을 준비한 후에, '질'을 추구하여 차츰 교체해나가면 된다.


"하루에 3000대인가. 다른 군에도 납품하고 있으니 이대로는 때를 맞추지 못하겠네"


화궁(和弓)을 쓰는 사람은 별개로 치고, 오다 군이 쓰는 견제 목적의 단궁(短弓)은 규격이 통일되어 있기에, 어느 아시가루(足軽)가 사용하더라도 최저한의 성능을 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능력에 따라 차이는 발생하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전혀 다르지 않다.


아시가루의 손실을 막으려면 돌격해오는 적병을 화승총으로 쓸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화약이 있어도 충분한 숫자의 화승총을 갖추는 게 어렵다. 윤택한 군자금이 있는 오다 가문이라도, 아무래도 수천 정이나 되는 화승총을 독점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의 균형 문제도 있어 어렵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생각한 것이 간소한 활에 의한 일제 사격, 즉 적에게 화살비를 퍼부어 탄막을 치는 전법을 채용했다.


처음에는 크로스보우를 생각했으나, 활시위의 위력이 약하면 수십미터 앞의 인간도 죽일 수 없는 것이 판명되었다.

컴파운드 보우는 구성 부품도 많고 높은 '질'을 요구하는 무기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간소한 구조의 단궁을 양산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유효 사정거리는 100미터 정도이지만, 뭣보다 훈련을 시키면 화살을 걸고 쏘기까지의 시간을 1, 2초 정도로 짧게 할 수 있다.

설령 100미터를 평균 13초에 돌격해오는 적군이 있다고 하면, 거의 10번이나 화살비를 퍼붓는 것이 가능해진다.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노부나가는 화살의 일제사격 전법을 각군에 채용하도록 했다.


그 활과 화살의 제조를 총괄하고 있는 것이 시즈코였다.

원래 그녀가 확립한 전법이었기에, 대량생산할 수 있는 노하우를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대량생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생산되는 활과 화살을 아시가루가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한 연구가 존재했다.


화살의 길이는 양손을 펼쳤을 때의 길이에서 38.1cm(15인치)를 빼고 2로 나눈 숫자가 적당한 화살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이에서 크게 벗어나면, 활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 없고, 또 관절 등을 다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즈코가 취한 대책이, 화살에 맞춰 병사를 모으는 것이다.

즉, 아시가루 한 명 한 명에 화살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화살의 길이의 규격을 통일하고, 그에 적합한 아시가루를 모으는 것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상의 생산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우리 군을 뒤로 미루고, 다른 군에 우선적으로 납품해줘. 물론, 영주님께 납품처의 우선순위를 확인받고 나서야"


"알겠습니다"


"맞다맞아, 꽤나 추워졌으니까, 건강에는 주의해. 나는 아까부터 덥지만"


시즈코가 겨울에도 더운 이유는 비트만들이 그녀의 주위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늑대의 체온은 항상 섭씨 40.6도에서 41도로 높고, 거기에 땀을 흘려 체온조절을 하는 게 아니라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서 체온조절을 한다.


"전투식(戦闘食)…… 그 뭐냐, 타케나카(竹中)님에게 '전쟁밥(いくさ飯)'의 메뉴표는 도착했어?"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는 군용식을 전투식이라고 부르면 의미를 알기 어렵다고 하며 시즈코에게 명칭을 전쟁밥으로 변경하자는 편지를 보냈다. 시즈코도 명칭에는 딱히 집착이 없어서, 명칭 변경에 반론하지는 않았다.

이후, 오다 군에서 직접 준비하는 전투용의 식량을 '전쟁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착되었다.


"어제, 무사히 도착했다고 파발마가 왔습니다"


"5리터의 수동 가압식 펌프의 시제품은 완성되었던가?"


"며칠 전에 시제품이 도착하였고, 어제 시즈코 님이 쓰신 보고서와 합께 반송했습니다"


"어라, 그랬던가? 그럼 됐어"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피제(嫌忌剤)를 효율적으로 산포하기 위해, 가압식 핸드 펌프의 제조를 의뢰했었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의뢰나 문의가 쇄도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시제품이 도착해서 직접 검증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검증시에 시즈코가 문제삼았던 것은 분무구의 노즐 정밀도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조임이 어설퍼서 1회 분무량이 너무 많았다.

휴대용 탱크의 용량을 5분만에 전부 소진해버렸기에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최근에 이것저것 만들어진 게 도착해서, 검증하고 보고서를 돌려보내고 있다보니 까맣게 잊어버렸네"


"피곤하신 듯 하군요.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네. 이제 곧 연말연시니까, 조금 쉬기로 할게"


새해가 되면 곧 노부나가는 군비를 갖추어 히데요시(秀吉)에게 쿄(京)와 호쿠리쿠(北陸)를 잇는 경로(육로와 해로)를 완전히 차단시키고, 니와(丹羽)를 사와 산성(佐和山城)에 입성시켜 기후(岐阜)로부터 남 오우미(南近江) 사이에 있는 도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여기부터 파죽지세로 침공하여, 5월에는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슈(一向一揆)의 정벌, 9월에는 히에이 산(比叡山)을 불태우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도 바쁜 전투의 나날들이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가지 수동식의 도구를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나같이 그저 그런 성능밖에 나오질 않네. 처음부터 고성능을 바라면 안 되지만)


고성능의 완성형을 알고있는 만큼, 몇 번이나 검증과 개량을 반복하며 모래성을 하늘까지 쌓아올리는 듯한 작업을 생각하자 의욕이 사라지는 시즈코였다.

성능면에서 불충분하더라도 요구되는 성능을 만족한 물건은, 일단 실용화하여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이 시험 사용하는 것으로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완전히 세련된 완성형보다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운용하기에 최적인 형태를 도출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자기 혼자서 판단하기보다,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의견을 집약하여 꾸준히 이상형에 근접시키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즈코밖에 검증을 할 수 없어, 기술자 마을과 그녀 사이에서 개수나 시험을 반복하여 시즈코의 합격 판단을 받아 제품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많은 제품을 세상에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시즈코 혼자이고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병목현상(작가 주: 다른 것을 아무리 향상시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치명적인 부분을 가리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도구'가 갖춰지기 시작하고 있어. 슬슬 편해졌으면 하는데…… 왠지 바빠지네. 그러고보니 고노에(近衛) 님이 말한 '두 번째 어려운 부탁'은 결국 뭐였을까. 그 이후 뭐라고 말할 기색이 없으니)


그 '두 번째 어려운 부탁'이 사키히사(前久)와 유자(猶子)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는 그녀는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녀는,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온천에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의 기후(岐阜)에서, 노부나가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가 오다 가문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던 말던, 그는 오직 기회를 엿보며 자복(雌伏)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요시나리(可成), 솔직하게 묻겠다. 나는 이미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야나가와나베(柳川鍋, ※역주: 미꾸라지 요리의 일종)를 먹으며 마주보고 있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에게 노부나가는 그렇게 물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놀라움을 드러내며, 다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화내지 않고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됐다. 네 태도를 보니 잘 알겠다"


"……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확실히 나는 패했다. 한 때, 쿄를 지배했던 나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지금의 나는 초라해 보이겠지"


"영주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리 요시나리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적당한 말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 모리 요시나리의 심정을 헤아린 노부나가는, 평소와 같이 대담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걱정하지 마라, 요시나리. 나는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남아준 충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적을 하나씩 쳐부수고, 이 손에 천하를 쥐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주님!! 소생은 늙은 몸이지만, 영주님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분골쇄신할 각오입니다"


"네가 있어주어 다행이다. 당장 미안하지만 네게 부탁이 있다"


"옛, 뭐든지 하명하십시오"


왼쪽 어깨를 부상당해 이미 창을 잡을 수 없는 모리 요시나리였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이라면 몸에 창을 비끄러매고서라도 싸울 기세였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부탁은 그의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부탁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시즈코에 대해서다"


"옛, 시즈코 님이 뭔가……?"


"너도 알고 있겠지. 이번에, 시즈코는 수많은 무훈을 세웠다. 그게 문제다"


무공을 세우는 게 문제, 라는 노부나가의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즈코는 자신이 쓰러진 후에도 병사들을 이끌고 우사 산성(宇佐山城)의 전선에 서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연합군을 저지한 공로자이다.

그 뒤에 과로로 쓰러졌지만 그녀를 대신하여 나가요시(長可)가 각지에서 반 오다 군을 쳐부수고, 도중에 복귀한 시즈코도 케이지(慶次)와 사이조(才蔵)를 데리고 가세하여, 남 오우미의 교통망을 회복시켰다.

지금까지 시즈코를 '전쟁터에서 아무 공도 세운 적 없고 단지 운이 좋기만 한 여자'라고 야유하던 패거리도 할 말을 잃을 정도의 공적이었다.

그녀가 세운 공적의 뭐가 문제인지 모리 요시나리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시즈코가 싸우는 방식은 '이단(異端)'이다. 수급(首級)을 취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정한 승리 조건을 위해 싸우지. 나는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상으로 시즈코가 무공을 세울 경우, 녀석이 '여자'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시즈코는 나이 스물을 넘겨서, 이미 혼인할 적령기(適齢期)를 놓쳤다. 하지만 생각해보거라, 요시나리. 무훈도 있고, 내정(内政)에도 영향력을 갖는 시즈코가 홀몸이라는 것은, 녀석이 갖는 영향력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을 의미하지"


전국시대의 통례에서는 빠르면 10세 이전, 늦어도 18세까지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진다.

오이치(お市) 처럼 21세에 결혼하는 예도 있지만, 이것은 노부나가가 오이치를 놔주기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실은 오이치는 한 번 결혼했다가 뭔가의 이유로 이혼한 후에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재혼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혼 경험이 없고, 20세인데도 독신인 시즈코는, 전국시대 기준으로 말하면 혼기를 놓친 여성이라는 말을 듣는 입장이다.


"예전처럼 쓸데없는 소동은 사양이다. 녀석을 정략결혼의 장기말로 쓸 수는 없다. 시즈코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의(秘儀)가 잠자고 있기에, 누군가와 결혼시키는 것도 문제다. 녀석의 입장을 강화하면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간단히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


"영주님의 양자(養子)로 삼으시는 것입니까"


"양자로 삼는 것도 생각했지만, 후계자 문제 때문에 반드시 다툼이 일어난다. 나로서는 시즈코에게는 오다 가문의 분가(分家) 하나를 맡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자로 삼기보다, 녀석에게 내 아이를 양자로 받게 하는 편이 좋지. 하지만 단순히 양자를 받게 해도 안 된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아이여야 하지"


전국시대에는 양자 입양, 정략결혼이 당연한 것이었으며, 천하인(天下人)에 가까운 노부나가도 예외없이 자기 자식을 양자로 보내거나, 인질로서 내놓거나 했다.

시즈코에게 노부나가의 자식을 양자로 받게 하여, 그녀를 오다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시즈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노부나가의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것으로,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심을 주위에 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다 가문의 일원이 될 경우, 친족으로부터의 시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오다 가문으로 끌어들이려면, 양자를 받게 하였으나 입장은 미묘, 하다는 대단히 까다로운 밸런스가 요구된다.


"요시나리, 부탁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사연이 있는 내 아이의 교육을 담당해다오. 지금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워온 네게 이런 일을 부탁하는 것은 견딜 수 없지만, 너 이외에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를 섬기기 시작한 후 16년 동안 많은 무공을 세웠다.

노부나가의 가독(家督) 상속과 오와리 국(尾張国) 통일에 진력하여,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와의 오케하자마(桶狭間) 전투에 참가했고, 그가 상락(上洛)할 때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와 함께 선봉을 맡았다.

6월에 일어난 아네가와(姉川) 전투에서는 이소노 카즈마사(磯野員昌) 부대의 진격을 저지하고, 우사 산성 전투에서는 계속 선두에 서서 싸웠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모리 요시나리는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부터도 오른팔인 것에 변함은 없다.

그런 모리 요시나리를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아니라, 잘해봐야 말석의 분가가 될 정도의 자식의 교육을 맡으라고 하는 것이다.

모리 요시나리가 굴욕이라고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특수한 사정의 시즈코를 이해하고, 그녀를 보좌할 수 있는 것은 모리 요시나리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영주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생은 창을 잡지 못하는 밥벌레입니다만, 이 늙은 뼈가 도움이 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 대임(大任), 훌륭하게 달성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모리 요시나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남들이 보면 좌천(左遷), 그것도 말석으로 쫓겨나는 것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시즈코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이해하고 있는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낸 결론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시즈코는 아무리 공적을 세워도 뒤집을 방법이 없는 디메리트, 즉 여자라는 사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도 변하지 않는다. 이 여자라는 입장이, 때로는 그녀의 존재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그것을 사전에 예방하려고 생각했다, 고 모리 요시나리는 이해했다.


"부탁한다, 요시나리"


모리 요시나리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는 온화한 웃음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제 1차 오다 포위망을 극복했지만, 오다 가문에 불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덕을 보고 있던 인간들은 손바닥을 뒤집고는, 다양한 구실을 가져다대며 반 오다 연합 측에 붙으려 했다.

떠나가는 인간은 쓸모없는 무능한 것들이라고 떨쳐버린 노부나가였으나, 이 상황 하에서 이탈하지 않는 가신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을 충분히 위로했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를 필두로 미츠오(みつお), 아시미츠(足満) 등 타임슬립 팀은 노부나가를 배신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또 그녀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즈코 등 타임슬립 팀은, 충성을 맹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시미츠는 전투에서, 미츠오는 요리나 축산에서, 시즈코는 농업이나 다수의 기술 관계로 오와리(尾張)-미노(美濃)를 번영시켰다.

특히 시즈코는 몇 년에 걸친 농업 개혁으로,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오와리에 식량을 넘치게 만들었다.

오다 가문 영토에 한정시킬 경우, 식량을 손에 넣기 위해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강탈할 필요가 없었고, 농한기(農閑期)에 목숨을 걸고 돈을 벌러 나갈 정도로 곤궁하지도 않았다.

오와리-미노의 도로를 정비하고, 치수(治水)를 행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산업을 발전시켜, 사람과 물자가 넘치는 나라가 된 것도 그에 앞장선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기술을 전수했기 때문이다.

이탈자들 중 일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시즈코를 빼가는 것은 반 오다 연합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도중에 있는 관문의 통행료를 50배로 올려도 포기하지 않겠다니, 그 의욕을 다른 데서 발휘해 줬으면 좋겠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취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현 시점에서 책략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것이 시즈코, 아시미츠, 미츠오, 고로(五郎) 등 네 명이다. 앞의 세 명에 고로가 추가된 이유는, 그가 세 명으로부터 다수의 요리 레시피를 전수받아, 지금에 와서는 노부나가, 노히메(濃姫)의 전속 요리인에 가까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고로는 사키히사의 연회에서 요리장(料理長)을 맡은 적도 있어, 지금의 오와리-미노에 있는 식재료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이도 모였군. 화톳불 피우는 데라도 쓸까?"


눈 앞에 있는 편지의 산을 보면서 아시미츠가 어깨를 움츠렸다. 종이만으로 웬만큼 작은 산이 생길 정도의 양이, 그들이 얼마나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정치에는 흥미가 없어. 요리 실력이 올라간다면 생각해보겠지만,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제일 좋은 건 오다 가문이지"


"배신하고 간 곳에서 입장이 보장된다는 보장은 없지요. 어디까지나 '빼내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경우, 배신한 후에는 모른척한다면 몰라도 제거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아저씨의 말대로, 배신한다고 해서 전혀 좋을 일이 떠오르질 않아"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고로는 요리 이외에 흥미는 없지만, 그건 뒤집어 말하면 요리의 길을 위해서라면 오다 가문도 배신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의미했다.


"제가 입수한 정보로는, 반 오다 연합은 구심점이 없어요. 즉, 설령 고로 씨가 배신해도, 반 오다 연합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돼요"


시즈코 나름대로 부드럽게 고로를 설득했다. 현재, 배신해봤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 뿐이다.

특히 여기서 노부나가를 저버리는 것 같은 짓을 했다간, 그의 머리가 몸통과 작별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알고 있어. 아무리 정치에 둔한 나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오다 가문을 배신하면, 잘해야 두 토막 난다는 건. 신세를 지고 있는데, 상황이 나쁘니까 안녕이라는 건 아무래도 신의(信義)에 어긋나지"


"현명한 판단이다. 뭐 안심해라. 배신한다면 내가 깨끗한 수급으로 만들어주마"


"그것의 어디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같은 편에게 처분당하는 쪽이 낫다, 는 건가요?"


세 명의 이상한 콩트에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하지만 세 명 모두 책략에 넘어갈 기색은 없어서 그녀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설프게 타임슬립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면, 확실하게 진흙탕 싸움이 일어난다.

시즈코는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일단 이후에도 책략이 이어질거라 생각하지만, 전부 영주님께 보고하도록 부탁드려요"


전원의 의사가 통일되었다고 인식한 시즈코는, 그 말과 함께 회의를 끝냈다.




롯카쿠(六角) 씨로부터 이탈한 코우가슈(甲賀衆)였으나, 그게 그대로 노부나가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코우가슈가 사는 방식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다. 불안정한 사회 정세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력이나 인술(忍術)을 행사해왔다.

롯카쿠 씨에게 협력하던 이유도, 코우가슈의 존속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롯카쿠 씨의 쇠퇴를 직접 보고, 그들은 노부나가 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코우가슈는 결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노부나가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코우가슈가 신하가 된다고 해도 그것은 표면적인 것(面従腹背)이 된다.

미묘한 입장에 처한 코우가슈였으나, 그런 그들에게 충격적인 정보가 들어왔다.


"이럴 수가…… 그만한 돈을 어디에 보유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 시작은 오와리(尾張)에 풀어놓았던 척후로부터의 보고였다.

노부나가가 오와리 각지에서 짐수레로 뭔가를 모으고 있다, 그러한 보고를 받은 코우가슈는 시노비(忍び, ※역주: 흔히 말하는 닌자의 명칭 중 하나)의 숫자를 늘렸다.

짐수레의 내용물이 뭔지 조사하려고 했으나, 엄중한 경비 속에 운반되는 짐수레에는 가까이 갈수도 없었다. 다만 깊이 패인 바퀴자국에서 상당히 무거운 물건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짐수레의 내용물을 알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기후(岐阜)로 넘어가려던 때에, 짐수레 중 하나의 바퀴가 파손되며, 내용물이 성대하게 쏟아졌던 것이다.

운반되고 있던 것은 금(金)막대기(延べ棒)였다. 그것도 몇 개라는 적은 숫자가 아니라, 몇십개, 어쩌면 100개 이상 되는 금막대기가 실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지만, 더욱 눈이 튀어나올 만한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차바퀴의 파손을 볼 때 수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오다 병사는, 금막대기를 앞뒤의 짐수레에 분산하여 싣기로 했다. 그 앞뒤에 있는 짐수레에도, 똑같이 대량의 금막대기가 실려 있었다.

최종적으로 금막대기는 86개, 은(銀)막대기가 52개 실려 있었다. 앞뒤의 짐수레에도 옮겨 실을 때 금막대기가 보였기에, 코우가의 첩자들은 화물 전체가 금은막대기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에 당황한 그들은 다른 척후들과 의견을 정리한 후, 즉시 코우가슈에게 정보를 보냈다.

보고를 받은 코우가슈의 두목(頭目)은 즉각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그만한 돈이 있다면, 우리들을 멸망시키는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니오!"


"그렇소. 우리들 따위 하룻밤에 멸망당할 것이오. 여기는 오다의 신하가 되는 쪽이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부나가가 대량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는 것의 가부를 따지는 상태에서,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는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자신들이 노부나가에 대해 내부적인 불안요소(獅子身中の虫)인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코우가슈는 당황했다. 인간은 초조해지면 사고나 시야가 좁아져서, 본래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만약 척후들이 대량의 금막대기에 놀라 당황하여 보고를 올리지 않고 지긋하게 조사를 했다면 노부나가가 친 함정을 눈치했으리라. 태반의 짐마차에는 금막대기가 실려있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노부나가가 대량의 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로 인식했다. 이후, 노부나가를 조사하여 금막대기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노부나가가 감추고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게 된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오다는 우리들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낼 것이오. 늦어도 새해가 될 무렵에는 답을 내야 합니다"


코우가 53가문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의논할 것도 없이 결론은 나와 있었다. 자금력이 약한 코우가슈로는 윤택한 자금을 가진 노부나가를 적으로 돌리게 되면 승산은 없다.

반 오다 연합군에 참가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으나, 구심점이 없는 반 오다 연합군으로는 설령 참전해봤자 이용만 당하다 소모될 가능성이 높았다.


몇 번이나 열린 회의 끝에, 코우가슈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결정했다.

노부나가에게 신하가 되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모치즈키 가문(望月家)과 야마나카 가문(山中家)에서 정예의 시노비들을 인질로서 노부나가에게 바쳤다. 그에 맞춰 각지에 흩어져있는 코우가의 시노비들에게 귀환할 것을 명했다.


코우가슈가 신하가 될 것을 청해온 것에 노부나가는 득의의 미소를 짓고는, 그들에게 일정한 자치를 인정하면서도 이후의 작전행동을 하나하나 오다 가문에게 알릴 것을 명했다.

또, 바쳐진 인질 이외에도 몇 명의 시노비들을 고용하여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등의 가신들에게 내렸다.

우수한 코우가의 시노비들은 제 6군에 포함되어,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정보수집 측면을 강화한 노부나가는, 당장 제 6군에게 이런저런 정보수집을 명했다.




기후에 있는 노부나가의 거관(居館)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노부나가의 매제(義弟)가 되는 나가마사(長政), 그의 가신인 엔도(遠藤)와 미타무라(三田村), 나가마사의 처이자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お市)가 노부나가와 대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속세를 떠난 사람과 마찬가지였던 나가마사였으나, 지금은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어, 반년 전의 추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형님, 그렇게 놀라실 일입니까?"


미소를 짓는 나가마사였으나, 반대로 노부나가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나가마사의 요청은 노부나가에게도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네가 일개 병졸이 되겠다, 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핫, 항상 형님께는 놀라기만 했습니다. 가끔은 매제의 도락(道楽)에 어울려주시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웃는 나가마사였으나, 금방 표정을 조였다.


"우선, 얼간이나 다름없던 저를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이상 형님께 응석을 부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과 일개 병졸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이냐"


"어려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아자이(浅井) 가문에서 추방된 몸. 그리고, 아자이 가문은 오다 가문을 배신했습니다. 이후,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아자이 가문은 멸망하는 것이 숙명. 그리고, 역사에 배신자의 일족으로서 이름을 남기겠지요"


나가마사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다 가문과 아자이 가문은, 병력도 자금력도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난다. 게다가 노부나가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나가마사를 당주로 앉혀 아자이 가문을 존속시킨다던가 하는 희망은 없다.


"하지만, 저도 예전에는 아자이 가문의 당주였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와의 결판은 저 스스로 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배신자가 병사를 빌려달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님 및에서 일개 병졸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는 것밖에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그 전에 내가 네 아버지를 쓰러뜨린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건 하늘의 뜻이라는 것. 제게는 아버지를 쓰러뜨리는 무대에 설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겠죠. 형님, 저를 가신으로 삼는다던가 하는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형님의 가신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은 필연적입니다"


"순조롭게 네 아버지를 쓰러뜨린 후에는 어쩔 것이냐"


노부나가의 물음에 나가마사는 상쾌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아자이 가문은 멸망할 운명. 아버지를 처치한 후에는…… 그렇군요, 형님의 발 밑을 위협할 존재가 될까요"


"웃기지 마라"


나가마사의 말을 노부나가는 웃어넘겼다. 나가마사의 굳은 각오를 알게 된 지금, 말없이 지켜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핫, 너무 큰 꿈을 이야기했군요…… 형님,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 좋은 자라면, 형님의 군문에 투신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긍지를 버려가면서까지 목숨을 아까워할 생각은 없습니다.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게 제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법입니다"


"네 각오, 확실히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 하시면?"


조건이라는 말에 나가마사는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노부나가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나가마사와 이치(市)를 바라보며 조건을 말했다.


"이따금 이치에게 얼굴을 보이러 가라. 이치의 표정이 흐려지면 네놈 머리에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아라"


"하핫, 그거 무섭군요. 형님의 벼락은 뼈가 저린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먼저 노부나가가 웃고, 이어서 나가마사가, 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 이치 등이 웃었다.


"매제여, 만약 모든 것이 끝난 후,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돌아보아라"


"죽었다고 생각하고…… 말씀입니까?"


노부나가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가마사는 아버지 히사마사(久政)를 쓰러뜨린 후, 배를 갈라 자결할 생각인 것을.

주위의 평가는 별개로,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의 고지식한 성격을 좋아하고 있었다. 타인에게서 요령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우직할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이 노부나가에게는 눈부시게 보였다.


"뭘 해도 자유…… 하지만 그 자유는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것. 그러나 죽은 자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보아라. 자신을 버리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날개치는 새들처럼 자유롭게, 뜻대로 살아보아라. 죽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겠지"


"형님…… 모두 꿰뚫어보고 계신 겁니까. 그렇군요…… 죽은 이가 되어 산다, 그것도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키는 대로 살고, 때가 되면 땅을 베개삼아 죽는다. 아자이 가문의 당주로서는 불가능한…… 하핫…… 사치라…… 큭…… 으윽……"


끝까지 말하기 전에 나가마사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예전에 롯카쿠 씨의 지배를 떨쳐내고 훌륭하게 싸우는 모습으로 많은 가신들을 취하게 하였던 북 오우미(北近江)의 지배자가 울었다.


전국시대에서 배신은 흔한 일이지만, 실패는 자신의 목숨만으로는 보상할 수 없고, 연좌제로 일족도당이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도저히 배신하지 않을 수 없는 정세에 몰릴 것을 고려하여 일족의 혈통이 끊기지 않도록, 다른 가문에 양자를 보내거나 딸을 시집보내거나 하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아자이 가문의 경우는 그런 대처를 하지 않아서, 이번의 배신에 대한 처벌 범위는 물론 나가마사에게도 미친다.

말하자면 나가마사는 이미 사형수이며, 현재는 단지 집행유예의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태도는 북 오우미를 지배하는 영주일 때도, 죄인이 된 지금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가문이라는 전국시대의 틀을 넘어서, 한 개인으로서의 나가마사를 존중해주는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뭉클했다.

정신이 들어보니 자신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울음을 그친 나가마사는 시원해진 듯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노부나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노부나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번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은 전해졌다.

머리를 든 나가마사는, 이번에는 엔도와 미타무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엔도, 미타무라, 나는 일개 병졸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이런 나이지만, 따라와주지 않겠느냐"


"주군…… 옛, 어디까지나 함께 하겠습니다"


엔도와 미타무라는 터질 듯한 눈물을 참고, 주먹을 굳게 쥐며 나가마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시대이고 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히사마사가 다시 북 오우미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노부나가에게 패한 것으로 정세가 혼란스러워졌다.

가신들의 일부는 나가마사를 처자식과 함께 추방한 것에 반발하여, 표면적으로만 따르면서(面従腹背) 노부나가에게 귀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혼간지 세력에게 패배한 것 때문에, 오우미 국의 내정은 더욱 혼란되어 의견의 대립을 낳았다.

지금은 오우미 국의 토호(土豪)들은 누굴 따라야 이기는 편에 설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오다 군이라고 하면 모리 요시나리가 필두였으나, 그는 우사 산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전선에 설 수 없게 되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군사 관계에서 물러나, 노부나가의 정무를 보좌하는 입장이 된다.

모리 가문은 장남인 모리 요시타카(森可隆)가 가문을 잇고, 군사 관계는 차남인 나가요시가 맡았으며, 3남인 란마루(蘭丸, ※역주: 모리 나리토시(森 成利)), 4남인 보우마루(坊丸, ※역주: 모리 나가타카(森 長隆)), 5남인 리키마루(力丸, ※역주: 모리 나가우지(森 長氏))가 소성으로서 노부나가를 섬기게 되었다.

모리 요시나리의 6남인 타다마사(忠政)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부나가의 소성으로 섬기게 할지는 보류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우위에 서게 하려고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키노시타 히데요시(木下秀吉)의 5대 장수가 권력투쟁을 벌였다.

각 무장은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여, 역량은 거의 같았다. 그런 그들이 가장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인물이, 권력투쟁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시즈코와, 그녀가 이끄는 시즈코 군이었다.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을 사카모토(坂本)에서 저지하고, 엔랴쿠지(延暦寺)나 아자이-아사쿠라를 견제하는 수단이자 쿄의 요로(要路)를 잇는 최중요 거점인 우사 산성 함락을 막아냈으며, 롯카쿠 세력을 괴멸로 몰아넣은 무훈은,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노부나가의 위기를 구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식량이나 무구 보급 면에서도 그녀가 같은 편이라면 이런저런 융통을 받을 수 있다. 오대 장수들의 고민이라고 하면, 미노-오와리의 특산품은 거의 그녀가 관여하고 있고, 본인이 무욕(無欲)이기 때문에 그녀를 끌어들일 책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즈코 군은 노부나가 직속의 부대라는 위치이며, 후에 후계자인 키묘마루(奇妙丸)가 지휘권을 이어받을 것이 내정되어 있다. 자신들의 신하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최종적으로는 직접 만난다, 편지를 쓴다, 가끔 선물을 한다는 기본적인 것 이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정작 시즈코 본인은, 갑자기 편지가 늘어난 것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지만.


그런 시즈코는 내년도부터 시험을 개시하는 수경재배(水耕栽培)에 달라붙어 있었다.

수경재배란 땅을 쓰지 않는 양액재배(養液栽培) 방법이다.

수경(水耕) 물재배(水栽培)라고 하여, 종래에는 불가능했던 뿌리채소 종류의 재배가 가능하며, 원예에서도 울타리 없는 재배에 이용되고 있다.

이 재배방법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이 와사비(わさび, ※역주: 와사비는 국내에서는 고추냉이라고 쓰는데, 이 명칭 자체에 여러가지로 논란이 있는 듯 하고, 또 품종명을 적을 때 문제가 생겨서 그냥 와사비로 쓰겠음) 재배이다.


와사비는 맑은 물(清流)과 적절한 수온, 산소를 많이 머금고 직사광선을 받지 않는 장소 등 재배 조건이 까다로운 작물이다. 필수는 아니지만 물을 순환시킬 경우에는, 대량으로 공기를 불어넣는 설비가 필요해진다.

우선 맑은 물이 필요한 이유는, 와사비가 방출하는 이소티오시안산 알릴(allyl isothiocyanate)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많은 작물은 땅 속에 있는 인산이나 수분을 뿌리에 있는 VA균을 이용하여 모으는데, 와사비에는 VA균이 없기 때문이 경쟁력이 약하다.

그래서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이라는 물질을 흙 속에 방출하여 다른 식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이 물질은 동시에 와사비 자신의 성장도 저해한다. 이 현상을 자가중독(自家中毒)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와사비를 곱게 가는 이유는, 세포 안에 있는 미로시나제(myrosinase)라는 효소와 시니그린(sinigrin) 배당체(配糖体)라는 성분이 반응했을 때, 매운맛 성분인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자가중독을 막기 위해서도, 와사비는 항상 흐르는 물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이 때, 물이 탁할 경우 탁기의 주성분인 점성분(粘土分)이 퍼져서 와사비의 뿌리가 산소부족을 일으킨다. 이 장해가 일어나기 때문에, 와사비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적절한 수온이 필요한 이유인데, 와사비는 평균 수온 15도 이하가 적정 수온이다. 16도를 넘으면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부족해져버린다.

와사비의 성장에 산소는 중요하여, 가급적 차가운 물(평균 수온 12도)이 바람직하다. 수온이 낮을수록 산소가 녹아들기 쉬운 것이 그 이유이다.


재배용의 물을 순환시키는 경우, 물에 공기를 불어넣는 이유는 물에 녹은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을 날려버리기 위해서이다.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은 휘발성이 높기 때문에, 폭기(曝気, 액체에 공기를 공급하는 행위)를 하면 축적을 막을 수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자갈(砂利)이나 작은 돌(小石)만 있고 점성분이 없으며, 수온이 평균 13도에서 14도 정도, 물은 산소가 풍부하게 녹아 있고, 가급적 그늘진 곳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자연 환경을 이용한 재배는 토지를 가리지만, 수경재배는 재배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쉽다.


시즈코가 와사비 재배용으로 준비한 환경은 단순했다. 우선 물 공급조(供給槽), 다음으로 공급조를 다단식으로 설치한다. 맨 위의 고추쟁이 재배조 위에 여과조(ろ過槽)를 설치한다.

여과조는 구멍이 뚫린 바닥판을 다단식으로 설치하고, 각각의 여과조에 화산암(火山岩)을 깐다. 이 여과조에 물을 샤워처럼 공급한다.

화산암에 접촉하는 것으로 여과되고, 또 물의 유입을 샤워식으로 하는 것으로 물의 표면적을 늘려 산소를 포함하기 쉽게 했다.

이 깨끗한 물이 와사비의 재배조로 흘러든다. 각 재배조의 출구에는 배출구가 존재하여, 이 장소를 거쳐 아래쪽의 재배조로 물이 흘러가는 구조이다.

맨 아래의 재배조까지 통과한 물은 물 공급조로 되돌아가, 폭기를 하는 조로 보내진다. 현대라면 에어펌프를 쓰면 폭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전국시대에 에어펌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음압(負圧)의 원리를 이용하여 에어펌프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물 공급조보다 아래에 폭기조(曝気槽)를 만들고, 물 공급조에 연결된 대나무제의 배수 파이프를 연결한다.

그 배수 파이프에 스트로 정도의 직경을 갖는 구멍을 뚫고, 팩티스(factice)로 만든 튜브(이하, 에어튜브라고 함)를 통과시켜 앞쪽 끝을 비스듬하게 자른다.

비스듬하게 자른 끝을 배수 출구 쪽으로 향하게 한 후, 에어튜브의 반대쪽을 공기중에 노출시킨다.

공기에 접촉하는 것으로 진공압(음압)이 발생하여, 압력이 공기를 끌어들여 물에 대량의 산소를 공급한다.

이 음압의 원리를 응용하여 물에 산소를 대량으로 보내고, 동시에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을 날려버린다.

단적으로 말하면 주변에 있는 재료로 만든 디퓨저(diffuser)이다. 이 물을 쓸어올려 여과기로 보내면, 다시 산소를 잔뜩 머금은 깨끗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구조이다.


시즈코가 와사비 재배에 사용하는 순환형의 다단 와사비 재배장치이다. 산소공급된 물 공급조의 물을 수격(水撃) 펌프로 끌어올려 여과조에 흘려넣는 장치를 만들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처리된다.

배수 밸브에서 배수된 물도, 수차(水車)와 톱니바퀴(歯車)를 이용한 퍼올리기 장치를 경유하여 물 공급조로 되돌아간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면 해충을 가능한 한 피할 수 있다. 물도 수온이 높아지면 근처 산에 있는 지하수로 교환하면 된다.

매일 수온 체크는 필요하지만, 그 이외에는 물의 교환 정도이다. 1년만 지나면 훌륭한 사와 와사비(沢わさび)가 자라난다. 2년간 재배하면 전국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와사비를 수확할 수 있다.


"참와사비(本わさび)는 미노에서 발견했고, 자갈이나 작은 돌은 근처에 있는 강에서 가져오면 되니까. 2ha 정도 넓이를 썼으니 4만개 정도 재배할 수 있으려나?"


"여전히 재배수의 단위가 이상하구나. 하지만 와사비를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우리 나라도 풍족해지겠지"


와사비 재배장치를 시즈코와 함께 보고 있던 키묘마루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사비는 아스카(飛鳥) 시대(※역주: 593~686)부터 재배되었던 기록이 남아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에도(江戸) 시대 전기(前期)이다.

전국시대에 와사비는 재배되지 않았으며, 식용은 자생하고 있는 와사비를 수확한 것 뿐이었다.


"뿌리, 줄기, 잎, 꽃 등 버릴 데가 없으니까. 뭐 다들 원하는 건 뿌리 부분이겠지만"


"쿄에서 들었는데, 듣자 하니 그걸 가는데 상어 가죽? 이라는 걸 쓴다고 하더군"


"어려운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촘촘하게 천천히 갈면, 매운맛 성분이 잘 나오거든. 그런 의미에서도 상어가죽이 제일이야"


키묘마루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시즈코는 수온을 확인했다. 겨울의 추위도 있었지만 수온은 12도로 와사비를 재배하기 좋은 온도였다.

유리 제조가 가능해졌기에 막대형 수은 온도계의 제조도 가능해졌다.

양산이 어렵지만 이용가치가 높았기에,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나 수온, 지온(地温) 체크용으로 합계 10개의 제조를 의뢰했다.

막대형 수은 온도계 덕분에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도 관측하기 쉬워져, 실온 확인 작업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1년생 참와사비와 2년생 참와사비를 구별해서, 재배하면서 품종개량을 할까"


자생 와사비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재배하고 있는 와사비와 섞으면, 언젠가 수경재배에 적합한 품종이 태어난다. 태어나는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항상 같은 품종을 계속 재배하는 것보다는 낫다.


"음―, 작업 끝. 다음에는 술을 돌릴 준비를 해야겠네"


"힘들겠구나. 뭐 기후 주조 회사(岐阜酒造会社)의 설립자니까, 힘내라고밖에 할 수 없군"


"그렇게 거창한 입장에 설 생각은 없었는데 말야"


키묘마루의 말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와리, 미노의 주조 업계는 얼마 전까지 괴멸 상태였다.

그러나 시즈코가 양조 마을에 포함시켜 재건을 꾀하고 술의 배리에이션을 늘린 것으로, 탁주(濁酒)는 물론이고 기후 쌀(岐阜米)이나 오와리 쌀(尾張米)로 만들어지는 청주(清酒), 고구마를 원료로 한 고구마 소주(芋焼酎), 화이트 리커(white liquor)를 쓴 매실주(梅酒) 등의 과실주(果実酒), 당밀(糖蜜)을 원료로 한 럼주(rum) 등, 지금에 와서는 이름높은 주조 지역이 되었다.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술은 명칭을 '기후주(岐阜酒)'로 통일하고, 오와리, 미노에서 주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기후 주조 회사'라는 조직에 가입시켰다.


기후 주조 회사는 양조 마을과 상인들 사이의 가교 노릇을 하는 조직이다. 전국시대, 상품을 정직하게 배달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빼앗고 상인을 살해,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등 살벌한 시대였다.

그러한 사태가 되지 않도록 상인들이 안전하게 술을 매매할 수 있고, 과당경쟁을 억제하며, 상인들을 하나의 회사에 소속시켜 세금의 징수를 일원화시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후 주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주조가(酒造家)와 상인들을 잇는 회사로, 가입 자체는 무료이다. 하지만 주조가에서 술을 사려면 '주식(株式)'이라고 불리는 것을 구입할 필요가 있다. 기것은 현대에서 말하는 출자금(出資金)에 해당한다.

이 출자금이 많은 사람일수록 양조 마을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기에, 주식의 보유수는 늘어난다. 주식의 보유수에 따라 살 수 있는 술의 한도량이 정해진다.


술을 사는 것 자체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양조 마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기에, 다양한 특전이 붙는다.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기후 주조 회사의 운영에도 관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주식의 보유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의견이 받아들여지기 쉽다.

의제(議題)를 제기하는 것은 한 주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가능하지만, 가결(可決)에는 기발행 주식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찬성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술의 가격은 주식 미보유자보다 저렴하다. 예를 들어, 주식보유자가 100문으로 1리터를 구입할 수 있는데 반해, 주식 미보유자는 100문으로 700ml밖에 구입할 수 없다.

또, 이익이 난 경우 1년에 한 번 이익 분배가 이루어진다. 분배는 돈(金子)으로 받을지 술(酒)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주식의 양도는 가능하지만, 오다 가문에 반기를 들면 주식의 권리는 모두 소멸한다.

주식을 나타내는(表章) 유가증권(有価証券)으로서의 주권(株券)을 발행하지만, 반권방식(半券方式)으로 절반을 오다 가문이 보관하고, 남은 절반을 구입자가 보관한다.

권리를 행사할 때는 대조 작업이 이루어지며, 또 의사록(議事録)을 작성하여 누가 어떤 목적으로 권리를 행사했는지 기록된다.

주식의 보유수는 설립을 승인하고 군사력을 대여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30%, 총괄직인 모리 요시나리가 11%, 브랜드를 설립한 시즈코가 10% 보유하고 있다.

남은 49%를 상인들이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노부나가와 모리 요시나리, 시즈코의 의견이 일치하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세 명 중 누군가를 설득하여 납득시키면 노부나가가 반대해도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노부나가의 독단이 되지 않도록, 그 자신이 배려한 결과였다. 상이들에게 이득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출자금을 내게 할 계산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술의 구입은 양조 단계에서 대략적인 생산량이 계산되어, 총량이 주식 보유자들에게 전달된다.

그걸 들은 상인들이 오다 가문으로 구입할 술의 양을 신청한다.

그 후에는 생산된 술을 오다 가문이 일단 사들인 후, 상인들에게 배달하고 술의 양에 맞는 주세를 가산한 대금을 청구한다. 대금을 지불하면 상인들은 안전하게 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판매되지 않는 술은 주조가(酒造家)가 직접 소비하는 몫이나 근처에 나눠줄 분량을 제외하고 오다 가문이 전부 사들인다.


시즈코는 매년 10%로 구입할 수 있는 한계까지 술을 구입하고 있다. 그녀가 마시는 게 아니라,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 키묘마루가 마시기 위해서다.

그래도 오와리, 미노에서 생산되는 술의 1할은, 개인 소비로는 어림없는 양이다. 따라서 잉여분을 무장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술의 배리에이션이 늘어난 결과, 각 무장들이 선호하는 술들이 보기좋게 갈려버렸다.

시바타(柴田)나 삿사(佐々)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럼주를,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는 매실주, 모리 요시나리나 히데요시는 청주, 니와는 고구마로 만든 소주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럼주는 출하량이 빡빡하네"


폐당밀(廃糖蜜)로 만드는 럼주는 장기간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일본주처럼 담근 그 해에 출하할 수가 없다.


"뭐 현재는 두 사람밖에 안 마시니까 괜찮지만"


현재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밖에 마시지 않지만,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면 지금의 생산체제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다. 생산체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와사비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집으로 돌아간 후, 시즈코는 아야(彩)가 준비한 목록을 훑어보았다.

술의 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아직 주판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계산하는 부분만 공백이었다.

시즈코는 주판을 책상 위에 놓고, 팔 술의 양과 금액, 남는 술의 양을 계산했다.


"그러고보니 술은 양갱(羊羹)처럼 다투지 않았어?"


고양이와 놀면서 사색에 잠겨 있던 키묘마루가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응,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던 걸 생각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양갱은 일반적으로 팥(小豆)이 주체인 팥소(餡)를 틀에 넣고 우무(寒天)로 굳힌 일본 과자를 가리킨다.

우무로 확실히 굳힌 것을 연양갱(煉羊羹), 우무를 적게 해서 부드럽게 만든 것을 물양갱(水羊羹)이라고 한다.

또, 우무 대신 밀가루나 갈분(くず粉)을 섞어 찐 것을 찐양갱(蒸し羊羹)이라고 한다.

양갱은 당도가 대단히 높기 떄문에, 적절한 상태라면 상온에서 1년 이상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이 특징을 살려 현대에서는 비상식량, 또는 군대의 영양보조식품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로 고효율의 양갱을, 시즈코가 오다 군의 전쟁밥으로 채용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바타와 히데요시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취향으로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들 뿐만이 아니라 아케치 미츠히데, 니와 나가히데, 타키카와 카즈마스, 모리 요시나리 등 무장들마다 취향이 갈려 버렸다.

이 소동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였다.


현대의 양갱은 다채로운 종류가 있지만, 전국시대에는 설탕을 사치스럽게 쓴 설탕양갱과, 설탕을 쓰지 않고 팥만으로 만든 양갱 두 가지가 주류이다.

거기서 시즈코는 현대와 마찬가지로 코시안(こしあん), 츠부안(つぶあん), 밤(栗), 말차(抹茶), 소금(塩), 벌꿀(蜂蜜), 유자(柚), 홍차(紅茶) 등 풍부한 종류를 만들어냈다.

어느 정도의 그룹은 생겼지만, 취향이 완전히 갈려버린데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양갱이야말로 최고라고 말하여, 전쟁밥으로 채용하는 게 곤란해졌다.

어설프게 한 가지만을 채용하면 그거야말로 가신들 사이의 다툼으로는 끝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소동을 즐기기에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양갱의 난(羊羹の乱)'이라고 불린 일련의 소동은 양갱의 이름을 퍼뜨림과 동시에, 전쟁밥으로 채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다투지 않게 되었지만, 물밑에서는 아직 다투고 있거든"


진정된 듯 보였지만 가신들 사이에서의 양갱 다툼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먹거리의 취향에 의한 다툼이기에, 노부나가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다.


"식사의 취향은 어렵구나"


"뭐, 그 덕분에 가게가 생겼으나,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결과? 라고도 할 수 있을…… 까?"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의 양갱 열풍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퍼져나가, 지금은 스테이터스 심볼의 하나가 되었다. 아랫사람들은 양갱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꿈꾸면서 주야로 무공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윗사람들은 포상용으로 양갱을 사고 술안주로 하거나, 차와 양갱을 즐기거나 한다. 이렇게되면 시즈코 혼자서는 다 대처할 수 없는 양이 요구된다.

어쩔 수 없이 시즈코는 고로를 감독으로 삼아, 기후에 오다 가문 전속의 감미처(甘味処, ※역주: 단 간식을 파는 가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자를 그대로 읽었음)인 '기후야(岐阜屋)'를 개점했다. 또, 보존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주문생산 방식으로 했으나, 그래도 반년 뒤까지 예약이 밀려 있었다 (※역주: 위에서는 양갱의 보존능력이 좋다고 써놓고 여기서는 보존능력이 약하다고 써놓은 이유를 모르겠음).


"슬슬 아야 짱 혼자서는 서류를 다 처리하지 못하니, 사무, 경리 담당이 있으면 좋겠네"


하지만, 사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무훈을 세워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목표로 하는 자들은 많이 있지만, 주군을 그림자 속에서 보필하는 문관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이미 다른 주군을 섬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무를 담당할 사람은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키워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야 짱은 우수하지만…… 아무래도 무리를 시킬 수는 없으려나)


어떻게 안 되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간단히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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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71 1570년 12월 하순



시즈코는 남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대기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품의한 의견도 노부나가에게 계속 기각되고 계속 전후 처리(戦後処理)를 담당하라는 말만 들었다.

바쁠 때에는 방문해서 시즈코를 뒤흔들던 면면들도 소식이 없었다.

키묘마루(奇妙丸)는 노부나가와 함께 히에이 산(比叡山) 포위전에 나가 있었고, 나가요시(長可)는 아시미츠(足満)와 함께 코키에 성(小木江城)의 방어, 신출귀몰한 노히메(濃姫)였으나 지금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전몰자(戦没者)니 상이자(傷痍者)에 대한 대응은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에게도 조력을 구했다.

우선 전몰자들을 위해 위령비(慰霊碑) 및 공양탑(供養塔)을 건립했다. 다음으로 각 사찰에 쌀을 시주하여 공양을 의뢰했다. 이번의 전쟁에서 전몰자는 천명 이상이나 되었으며, 개중에는 원래 노예였던 자들이나 전과자들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는 전원에게 같은 양의 쌀을 내어서, 모두 똑같은 공양을 의뢰했다.

그것 하나만 해도 주위를 놀라게 한 시즈코였으나, 주위의 경탄을 신경쓰지 않고 '어떤 사람이든 죽으면 시체(仏). 그러니 속세의 죄과(罪科)도 지위(地位)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여 더욱 감동시켰다.

상이자들에게는 의사를 모아 임시 치료원을 설립하고, 거기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알선하고 위문편지를 보냈다.


대규모의 시책을 필요로 한 것은 전몰자 유족에 대한 대처에 관해서였다.

조의금 등의 일시금을 지급하면 그 자리에서의 지원은 가능하지만, 돈을 벌어올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언젠가 곤궁해질 것은 명백했다.

재혼할 수 있다면 좋지만, 과부(남편과 사별한 후 재혼하지 않는 여성)가 되면, 언젠가 몸을 망치는 것은 필연적이다.

뭔가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한 결과, 시즈코가 떠올린 것은 방적공장(紡績工場)을 세워, 거기에 여공(女工)으로 취직시키는 방법이었다.


방적이란 이름 그대로 면(綿)이나 마(麻), 비단(絹), 양모(羊毛) 등을 실로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건물에서 하던 방적도, 지금은 평지에 쌓은 성(平城)과 맞먹는 넓이를 가진 공장으로 발전했다.

광대한 토지에 공장을 세우면, 많은 종업원이 필요해진다.

방적 업무에 관련된 사람과 업무를 서포트하는 사람, 병원이나 격리병동(隔離病棟) 등 질병의 유행을 막는 사람,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들을 맡는 보육소, 다음 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을 교육하는 서당(寺子屋), 공장을 지키는 위병(衛兵)이 필요하다.


공장 하나로 다양한 고용이 발생하게 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유행성의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이다.

감염력이 높은 질병이 유행하면, 그것만으로도 공장을 포함하는 주위 일대가 죽음의 마을로 변해버린다. 항생물질이나 치료약이 없는 전국시대에서, 방역(防疫, 질병을 미리 방지하는 것)은 사활문제였다.

질병의 유행을 막으려면, 자연 치유력과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이 두 가지를 높이려면 의식주는 물론, 공중위생(公衆衛生), 법질서 등 다양한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대부분이 재혼했지만…… 역시 과부가 되는 사람들이 생기네. 세이프티 하네스(safety harness) 숫자를 늘려야겠어"


세이프티 하네스, 정확히는 베이비 하네스(baby harness)라고 부르며, 걸을 수 있게 된 젖먹이 유아가 부모에게서 멋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도구이다.

시작된 것은 중세 유럽으로, 당시에는 걷기 시작한 젖먹이 유아들의 보행을 보조하기 위해 옷에 꿰매붙인 끈 형태의 것이었다. 그것이 시대와 함께 역할이 바뀌며, 현대의 것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수백년의 역사가 있으며, 주로 상류 귀족 사이에서 유행했고, 만년의 루이(Louis) 14세와 가족을 그린 초상화 등에도 베이비 하네스는 등장하고 있다.

물론 현대와 다름없이 당시부터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작은 사고라도 죽음으로 직결되는 시대 배경 떄문인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용하는 귀족들은 많았다.


"뭐 그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서는 엄청나게 불평이었지. 오랜만에 권력을 써서 보급시켰어"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전국시대에도 현대에도, 어린아이가 느닷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다름이 없다.

어머니가 넘어진 아이를 도와 일으키려고 하는 찰나, 다른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나가 강에 빠져 익사했다는 이야기는 몇 건이나 시즈코의 귀에 들어왔다.

아무리 보육소를 만들더라도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를 짋어질 아이들의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도, 세이프티 하네스의 보급은 필요 불가결했다.

하지만, 유럽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반대 의견은 나왔다. 원래는 시간을 들려 침투시키는 것이지만, 목숨의 문제인만큼 보급은 급선무였다.

따라서 시즈코는 평소 잘 쓰지 않는 권력을 행사하여, 어머니들에게 서양식 이름을 피하고 미아끈(迷子紐)이라고 부르며 착용 지도를 하고, 불시 검사를 하여 사용하지 않는 부모에게 벌칙을 내렸다.


"뭐, 미아끈의 생산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 지금은 공중재배(空中栽培) 보고서를 정리할까"


시즈코는 고구마(薩摩芋)의 공중재배에서 얻은 실험결과를 정리하여 노부나가에게 제출할 필요가 있었다.

고구마의 공중재배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역시 크기가 땅에서 키울 때보다 한층 작았다.

하지만 고구마의 크기는 4개월을 피크로 하여, 그 이상은 시간을 들여도 별로 성장하지 않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로부터 4월에서 8월, 그리고 7월에서 11일의 이기작(二期作, ※역주: 1년에 두 번 재배하여 수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전기(前期)는 고구마, 줄기, 잎사귀를 수확할 수 있고, 후기(後期)는 고구마와 줄기를 수확할 수 있다.

고구가마 조금 작더라도 2기작을 하면 전체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셈법이다. 실제로, 전용면적 1평방미터의 삼각선반 5단(三角棚五段)으로 재배한 결과, 200kg의 단작 수량(単作収量, ※역주: 한 번의 재배에서 수확한 양을 말하는 듯)을 달성했다.

2기작을 하면 단순 계산하더라도 1평방미터당 40kg의 단작 수량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실험 때문에 잔뜩 생겨버린 고구마네"


고구마 칩스를 먹으면서 시즈코는 투덜거렸다. 애초에, 비상식량으로서 일정 수량을 재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험을 위해 고구마를 추가로 재배한 것이다.

당연하지만 수확량은 예년보다 많다. 하지만 고구마의 소비량은 변하지 않기에, 고구마 칩스 같은 걸로 만들어서 간식용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뭐 보고서는 조금만 더 쓰면 완성되겠네. 그보다 오늘은, 얼마 안 되는 외출일이니까 준비해야지"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엄격한 이동 제한을 부과했으나, 1개월을 경계로 제한을 완화했다. 그것은, 꼭 그녀가 나가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말의 수령이었다. 말이라고 해도 키소 말(木曽馬) 처럼 일본에 옛부터 있는 말이 아니다.

해외, 그것도 현존하는 개량마 중 최초로 확립된 아랍종이다.

말의 품종으로 유명한 서러브레드(Thoroughbred)도, 이 아랍종과 영국 고유의 품종인 헌터 등의 품종을 교배시킨 결과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평평한 땅을 달리는 데 적합한 말로, 스태미너가 높아서 장거리를 달릴 수 있다.

반면, 대단히 식사량이 많고 키소 말과 달리 고저차(高低差)에 약하며, 식사가 시원찮으면 본래의 잠재능력을 끌어낼 수 없다.

국토의 6할이 산지인 일본에서는 쓸 데가 마땅치 않지만, 키소 말과 교배하면 고저차에 강하고, 튼튼하며 시원찮은 식사에도 잘 견디고, 유지관리도 비교적 용이한 앵글로아랍과 동등한 말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프로이스와 만날 때 하는 남장을 한 후, 시즈코는 그와 만나 수컷 30마리, 암컷 20마리, 합계 50마리를 수령했다. 그리고 말 중에 가장 좋은 개체를 골라 마구(馬具)를 장비시켰다.

노부나가가 보면 확실하게 한 마리 내놔라, 고 말할 것은 뻔했기에, 그 전에 제일 좋은 개체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좋은 말입니다"


"마음에 드시니 다행입니다"


키소 말에 타고 있는 프로이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아랍종을 일본으로 수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진력해준 부분이 크다. 물론, 무상의 봉사는 아니다. 서로 이해가 일치한 결과이다.


유럽은 1500년에는 아랍종을 수입했기에, 그 말을 50마리 정도 일본으로 돌리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다만 아랍종은 서양의 군사와 관계가 깊어서, 당초에는 예수회도 난색을 표했다. 일본에서의 터키시 앙골라 소동을 고려해서, 예수회는 고양이로 얼버무릴 수 없을지 생각했다.


중세 유럽은 고양이에게 암흑시대라고 해도 좋다. 마녀의 사역마라고 생각되어, 특히 검은 고양이가 혐오받은 시대로, 많은 고양이가 근거없는 죄로 산 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고양이가 악의 상징으로 간주된 이유는, 카톨릭이 그노시스(※역주: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 파를 '검은 고양이로 모습을 바꾼 악마와 손을 잡고있다'고 비난한 것이 시초이다.

이 일로 검은 고양이가 박해받게 되고, 나아가 마녀사냥으로 대표되는 이단자 사냥과 연관되어, 고양이는 마녀의 사역마가 되어 버렸다.

고양이가 줄어들자 쥐가 늘어나고, 그에 따른 페스트 균을 가진 벼룩이 확산되어버린 결과, 중세 유럽에서 페스트가 대유행했다.

이것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더욱 많은 고양이를 학살해갔다. 하지만 그것은 페스트를 옮기는 벼룩이 달라붙은 쥐를 더 늘어나게 해서 페스트의 유행을 돕는 결과가 되었다.


한편, 일본이나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는 옛부터 신비로운 생물로 중히 여겨졌다. 저장한 곡물에 피해를 주는 쥐를 잡아먹는 고양이는 귀중한 파트너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에 대한 숭배가 강하여, 기르던 고양이가 죽으면 주인은 상을 치르고, 고양이를 미이라로 만들어 관에 넣어 정중하게 장사지냈다.


일본에서도 검은 고양이는 복고양이(福猫)라고 부르며 대단히 중하게 여겨졌다.

그 중에서도 우다(宇多) 천황이 선대 코우코(光孝) 천황에게 선물받아 5년동안 키워온 고양이 사육일기 '관평어기(寛平御記)'에 나오는 중국(唐)에서 온 검은 고양이는 특히 유명하다.

또, 침초자(枕草子)에 나오는 이치죠(一条) 천황도 고양이를 사랑하여, 새끼 고양이가 태어나자 사람과 같은 의식을 치러 '묘부노오모토(命婦のおもと)'라는 이름과 5위(位)의 지위를 내렸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예수회가, 어쨌든 고양이로 어떻게 얼버무리라고 프로이스에게 편지와 함께 산고양이를 잔뜩 보내왔다.

그러나 프로이스는 예수회의 명령을 거부하고, 의에 어긋나는 태도는 이 나라에서 가장 혐오된다고 반론, 예수회 본부에게 아랍종을 보내도록 설득했다.

최종적으로 설득을 받아들인 예수회는, 거세되지 않은 아랍종 50마리를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프로이스는 보내져온 마눌고양이(マヌルネコ)나 묘하게 큰 흰 고양이를 잘 이용하여 시즈코에 대해 말의 운송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사과의 표시로서 헌상했다.


산고양이들이 강제로 포획된 것을 알게 된 시즈코는, '이번 같은 일로 소생에게 동물을 헌상할 필요는 없음. 이번에는 받아들이겠지만 이후에는 부주의한 남획을 자제할 것'이라고 프로이스에게 전했다.

일본의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걱정한 발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프로이스에게는 불교의 가르침이 관계된 것으로밖에 전달되지 않았다.


(하지만 뭐 처음에는 병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외로 야생동물은 생명력이 강하네)


마눌고양이는 균이 적은 고지대에 서식하는 산고양이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견디지 못하고 병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로 운반되는 도중에 튼튼해진건지, 아니면 많은 개체 중에 가장 강한 마눌고양이만 살아남은 건지, 어쨌든 마눌고양이는 기운차게 날뒤고 있었다.

야행성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야행성인 쥐 종류를 문답무용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비교적 소형의 산고양이이기는 하나, 쥐를 노리는 라이벌이 동족인 고양이들을 제외하면 일본 수달(日本川獺) 정도인 점과, 대형의 육식동물에게 노림받을 걱정이 없다.

다만 비트만 등 회색늑대 일가와, 맹금류의 왕자인 부채머리 독수리인 시로가네, 밤의 맹금류인 아카가네와 쿠로가네에게는 대들지 않았다.


묘하게 큰 흰 고양이는 종류가 확실하지 않았다. 반점 같은 모양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동물을 판별할 수 있을 정도로 시즈코는 동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근대에는 동물보호의 개념이 없기 떄문에, 멸종 위기종인 동물들도 태연하게 포획한다. 그걸 생각하면 흰 고양이는 귀중한 동물일 가능성도 있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키워보는 것 이외에는 판단재료가 없었다.

현재 상태에서 알고 있는 것은 암수 한 쌍, 그리고 두 마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반출되었다는 것 뿐이다.


마눌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하여 생각보다 잘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흰 고양이는 처음에는 경계했으나, 시즈코가 먹이를 주는 존재라고 인식했을 떄부터 경계심이 옅어져, 지금은 시즈코의 뒤를 따라 걷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쪽도 고양이 특유의 변덕스러움으로, 따라올지 아닐지는 그들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커다란 흰 고양이는 종류를 알 수 없었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류했지만, 마눌고양이는 그 둥글둥글한 외모 때문에 '마루타(丸太)'라고 이름붙였다.


(흰 고양이 쪽은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드네. 뭐 자세히 생각하는 건 관두자. 그보다 모처럼 동물을 수입해다 주니까, 이 틈에 멸종된 도도새도 요구해 볼까)


노부나가가 고양이를 마음에 들어했기에 고양이의 예산이 주어졌다고는 해도, 이 이상 동물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멸종된 동물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도도새는 발견된 지 겨우 100년만에 멸종된 날지 못하는 새다. 1598년에 존재가 공식적으로 보고되고, 1681년을 마지막으로 목격정보가 사라져서 멸종되었다고 전해진다.

기회가 있다면 부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도망친 대형의 맹금류,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려나) 프로이스 님, 이전에 도망쳤다고 한 대형의 새,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대형의 새…… 아, 그 새 말씀이십니까. 확증은 없습니다만, 선원이 동료와 함께 일본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는 소문이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가벼운 기분으로 프로이스에게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도망친 맹금류가 동료까지 데리고 있었다는 점에, 일말의 불안을 느낀 시즈코였지만 지금은 쓸데없이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호호, 그거 무섭군요. 뭐 지금은 신경써도 소용없겠지요. 그보다도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로이스 님, 이 말을 운반하는 동안, 소생과의 약속은 지켜주셨습니까?"


"예. 말을 운반하는 데 300명의 선원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한 명도 피를 토하는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즈코가 프로이스와 거래한 것은, 괴혈병(壊血病)의 치료방법이었다.

콩나물 재배가 확실히 효과가 있다, 고 그들에게 증명하려면 괴혈병에 걸리지 않는 것과, 괴혈병에 걸린 사람이 치료되는 것 두 가지를 증명해야 했다.

그 중, 첫번째는 후추의 묘목이나 씨앗을 운반할 때 증명되었다.

또 하나의 콩나물을 섭취하는 것으로 괴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하려면, 인도에서 3개월 이상의 시간을 들여 일본으로 말을 운반해줄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는 약 반년에 걸쳐 아랍종을 운반하게 되었으나, 이 기간 동안 선원들이 한 번도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기에, 콩나물 섭취의 효과를 증명할 수 있었다.


식민지 정책이 가속될 불안이 있었던 시즈코였으나,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은, 이 치료방법을 카톨릭 교회의 비의(秘儀)로 삼았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원인불명의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피를 토하는 병입니까. 소생은 괴혈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괴혈병, 입니까?"


"이빨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다음으로 피부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탈력감이나 둔한 통증이 심해지며, 이윽고 죽음에 이르는 병. 그 원인은 해상 생활에서는 보충할 수 없는 야채의 부족. 이웃나라인 명(明)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이 방법'에 착안하였습니다"


"과연, 그런 의미에서 '괴혈병'이라는 것인가요"


"예. 하지만 이것으로 괴혈병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지겠죠"


"그렇군요. 이걸로……"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 그 반응을 확실히 느낀 프로이스였다.




11월 중순, 혼간지(本願寺)에서 파견된 방관(坊官)인 시모츠마 라이탄(下間頼旦) 등이 이끄는 잇키슈(一揆衆)는, 그 숫자가 수만명으로까지 불어나있었다.

북방세력 48가(北勢四十八家)라고 불린 이세 국(伊勢国) 북부의 북 이세(北伊勢) 지역에 세력을 가진 성주(城主), 호족(豪族) 중 일부가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에 가담하는 등, 오다 가문에 반기를 드는 존재들은 착실히 늘어갔다.

그들은 이토(伊藤) 씨 일족이 성주를 맡고 있는 나가시마 성(長島城)을 함락시키고는 그 성을 나가시마 잇코잇키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어서 노부토모(信興)가 지키는 코키에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자, 그들은 기세를 몰아 코키에 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절망(絶望)'이라는 한 단어였다.


코키에 성은 콘크리트 성벽 등, 최신의 건축기술이 도입된 견고한 요새로 변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봐도 단순히 힘으로 밀어붙여서는 함락시킬 수 없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성벽에는 숫자의 폭력에 의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접근한 잡병들이, 갑자기 쓰러진 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현대의 사람이라면 독가스나 생물, 화학병기(BC병기)를 의심하겠지만, 전국시대에 그런 병기는 개발되어 있지 않다.

나가시마 잇코잇키슈에게는, 사람이 갑자기 쓰러졌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어가는 모습은, 남겨진 잇키슈의 전의를 심각하게 저하시켰다.


낮 동안에는 대단한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철수한 잇키슈였으나, 곤란에 처한 무리를 그냥 보낼 이유는 없다.

적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밤중에 게릴라전을 걸어, 철저히 괴롭혔다 (harassment).

순찰병을 발견하면 크로스보우로 저격하여 부상을 입힌다. 폭죽을 터뜨려서 수면을 방해한다.

적이 지나갈 만한 곳에 함정을 설치한다. 여기저기서 화재 소동을 벌이는 등, 나가요시가 주도하여 매일 밤 괴롭혀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아시미츠가, 밤부터 심야까지는 나가요시가 주도하여 나가시마 잇코잇키슈에 대응했다.

두 사람의 작전은 정공법도 있었지만 비겁자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악랄한 방법도 있었으나, 철저히 상대를 두들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공통되어 있었다.

여자 아이의 구별도 없이 잇키슈라면 적으로서 멸망시킬 각오를 품고 있었다.


코키에 성을 포위하면서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는 일부 병사들을 쿠와나 성(桑名城)으로 보내, 성주인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를 패주시켰다.

주위의 성들도 차례차례 함락시켜 고립무원 상태로 만든 후, 시모츠마 라이탄은 코키에 성에 항복을 권했다.

하지만 코키에 성으로 간 사자는 목이 잘리고, 거기에 머리가 나타로 두 토막이 나서 성 밖으로 던져졌다. 세 번 정도 똑같이 사자를 보냈지만, 하나같이 대답은 똑같았다.


"자, 야습은 이제 못하겠군. 그렇다곤 해도, 놈들은 공격해올 수 없어. 수수께끼의 즉사공격을 병사들이 무서워하고 있으니까"


"밝혀져봐야 달라질 건 없다. 그건 우리들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을 조금 손봐서 위험한 독으로 바꿔놓은 것 뿐이니까"


서로 노려보기만 하는 전투가 끝난 어느 날, 아시미츠와 나가요시 두 사람은 금후의 전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노려보기만 하다 끝날 리는 없어. 놈들, 뭔가 수작을 부려오겠지"


"……뭐, 히에이 산 쪽에서 책략을 쓰고 있다면, 포위한 채로 끝난다는 것도 있을 수 있지"


아시미츠의 말은 옳았다. 노부나가는 오다 포위망의 구축을 주도하고 있는 요시아키(義昭)를 이용하여 각 방면과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가 거절하고, 오다 포위망을 더욱 강화한다면 노부나가의 목숨도 위험하다.

그러나 강화를 중개하는 것으로, 반 오다 연합군에게도 노부나가에게도 쇼군(将軍)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 요시아키는, 조정에 칙허(勅許)를 주청(奏請)했다.

노부나가를 몰아붙여놓고 노부나가를 처치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것이 요시아키에게 전략적 안목이 없음을 엿볼 수 있었다.


"주위에는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없다. 따라서 지하에서 공격해올 가능성은 낮지"


"만약 공격해 온다면?"


"연락견은 귀가 좋지. 땅 속에서 파나가는 소리를 들을 거다. 장소를 특정할 수 있으면, 그 후에는 기름을 흘려넣고 불사르면 된다"


좁은 동굴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일산화탄소 중독사가 잔뜩 발생하니까, 라고 아시미츠는 마음 속에서 덧붙였다.

화톳불이 보이는 장소를 바라보면서, 아시미츠는 작게 중얼거렸다.


"한번에 공격해 들어와주면 편한데 말이지"


"아무래도 적도 바보가 아니니까. 죽는다는 걸 알면서 돌격은 안 하겠지"


아시미츠는 흔한 기체이지만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을 사용했으나, 그걸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1000에서 2000이다.

세상에는 일상적으로 흔한 것들에 조금 손을 보면 순식간에 인체에 위험한 독가스로 변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산소는 필요하지만, 그 농도는 21% 정도로 유지되어 있다.

그보다 낮아져도, 그보다 높아져도 인체에는 어느 정도 영향이 생긴다. 만약 산소농도가 6%가 되면 순식간에 의식을 잃고, 호흡정지가 일어나서 6분만에 죽음에 이른다.


그가 한 것은 그에 가까웠다.

냄새가 없고 공기보다 비중이 무거우며 위험한 상태의 환경을 만들면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만 결점으로서 아시미츠가 한 공격은 범위가 좁았다. 시간이 지나면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무독화되어버리는 것을 골랐기에, 잘해봐야 반경 10m 정도였다.

그래도 효과는 절대적이라, 갑자기 쓰러진 사람을 도우려고 한 사람까지 말려들었다.

굳이 요새화를 한 것도, 공격해오는 적병을 모으기 위한 포식으로 삼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방어력을 높인다는 의미에서도 요새화는 필요했다.


"이쪽도 여유는 없다. 당분간 방어에 철저하면서 히에이 산 쪽에서 움직이기를 기대하지"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를 못박아놓은 상태에서 버티고, 그 동안 노부나가가 강화를 성공시킨다.

그것이 아시미츠의 작전이었다. 도저히 숫자의 차이를 메울 수 없는 이상, 끝까지 버티는 것 이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로켓 불꽃도 연막탄도 캡사이신 폭탄도, 상대가 통상의 아시가루(足軽)라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병(死兵)이며, 그들에게 죽음이란 극락(極楽)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게다가 일향종(一向宗) 문도들은 불교라는 종교에 의해 결속되어 있는 집단이다. 그들이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상, 싸움에 패하더라도, 자신들이 있는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일향종 문도를 어떻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신속하게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그 숫자를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쌍방 피해를 감수해도 좋다면 방법은 있지만, 만약 노부나가가 그걸 쓰려고 해도, 1년은 기다릴 필요가 있군)


아시미츠는 겨우 하루만에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를 전멸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독가스나 위험한 기체가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폭력이었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그 무기를 이미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언제 방아쇠를 당기는가 하는 것 뿐이다.


"아시미츠 님, 잇키슈로부터 사자가 왔습니다"


"베어버리고 와라"


"옛"


연락병도 처음부터 대답을 알고 있었는지, 물 흐르는 듯한 대응이었다.

잠시 후 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 두 사람이었지만, 별로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적이 취할 가능성이 있는 전법에 대한 대처를 생각했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 지 알 수 없는 이상, 당분간 감시할 수밖에 없나"


결국, 감시 이외에 유효한 방법이 없다고 이해한 두 사람은, 감시를 강화하는 방침으로 합의했다.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는 지금 이상으로 오와리(尾張)에 침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숨을 돌린 미요시 3인방(三好三人衆)은, 카와라바야시(瓦林), 이바라키 성(茨木城)을 공략하여 기세를 놓였으나, 그래도 한계라는 것은 있었다.

만약 노부나가에게 배후를 공격받을 경우, 그들은 당장 고립되게 된다. 협력 체제가 불안정한 상태인 이상, 무리했다간 자멸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도 마찬가지였다. 오와리에는 국방(国防)을 맡는 병사들이 각지에 존재한다.

그리고 코키에 성을 무시하고 안쪽으로 전진하면, 국방의 병사들에 의해 분단당한다.

군의 지휘가 가능한 사람이 미노(美濃), 오와리에 있는 이상, 그건 결코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하려면 코키에 성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방어력의 코키에 성 공략은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인간은 무의미한 죽음을 가장 두려워한다.

가까이 가면 죽는 것을 잇코잇키슈가 인식하고 있는 이상, 무의미한 돌격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잇코슈가 모두 나무아미타불(南無阿弥陀仏)을 외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병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을 봐도 노부나가가 일향종 문도들을 몰살시켰을 때, 다른 문도들은 오다 군에게 반항하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며 숨을 죽였다.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를 이해한 나가시마 잇코잇키슈는, 코키에 성을 앞두고 속절없이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히에이 산과 노부나가, 나가시마 잇코잇키슈와 코키에 성의 수비대.

양쪽 다 교착상태에 빠져, 길게 끄는 포위전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된 노부나가는, 이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각지에 있는 작은 반 오다 세력을 괴멸시키는 작전으로 전환했다.


우선 코키에 성에 있는 나가요시의 병사 2000명에 예비 1000명을 추가하여, 오우미(近江)의 일향종 문도와 결탁한 롯카쿠(六角) 세력을 괴멸시키도록 명령했다.

그들은 미노와 쿄(京)의 교통을 차단하고 있어, 보급로가 끊기는 사태는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다.

요코야마 성(横山城)에 있는 히데요시(秀吉)와 니와(丹羽)도, 미노와 쿄의 교통을 차단하고 있는 일향종 문도를 괴멸하기 위해 출진했다. 쿄로 접근하는 미요시 3인방은 와다 코레마사(和田惟政)가 분전하며 틀어막고 있었다.


세타(瀬田)-쿠사츠(草津) 사이에 전개한 도쿠가와(徳川)의 원군에는,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나 사카키바라 야스마사(榊原康政) 등 주력급이 롯카쿠 세력과 소규모 전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는 케이지와 사이조에게 각각 1000의 예비병력을 주어, 도쿠가와를 돕도록 파견했다.

하지만 여기서 노부나가의 예상을 뒤집고, 시즈코가 궁기병대 50을 거느리고 케이지들과 함께 출전했다.

서둘러 막으려 했으나 "국가의 위기에 속편하게 누워있을 수 없습니다"라는 시즈코의 말에, 노부나가는 대답이 궁해졌다.

결국, 국방을 담당하는 사람을 모아 병력을 500정도 주고 그녀의 출전을 묵인하기로 했다.


미노(美濃)-오와리의 수비력은 약해졌지만, 노부나가는 반 오다의 봉화가 이어지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나가요시는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는 악마적인 직감력으로 적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풍부한 지력으로 효율적으로 롯카쿠 세력을 쳐부쉈다.

그 철저한 섬멸전에 적은 물론이고, 아군의 예비병력 1천까지도 공포에 떨엇다.

11월 상순에 출진한 히데요시들은, 16일까지 일향종 문도들이나 롯카쿠 세력을 축출하고 교통을 회복시켰다.


원군인 도쿠가와 군의 원군이라는 복잡한 입장의 시즈코들은, 무사히 그들과 합류한 후 즉시 롯카쿠 세력이나 소규모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뭉쳐서 움직이기보다 두 부대로 나뉘어 행동하는 편이 효율적이라 생각하고, 그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그리고 주위가 떨떠름해할 정도의 타다카츠의 강한 의향을 반영하여, 시즈코와 타다카츠와 한조(半蔵), 케이지와 사이조와 야스마사의 두 패로 나누고, 나머지를 진의 방어에 돌렸다.

시즈코를 홀로 두는 것에 케이지들은 불안을 느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잡병은 무시하고, 부대장만을 철저하게 노린다"


시즈코의 선언대로, 잡병들은 전혀 노리지 않고 부대장만을 철저하게 노렸다. 도망쳐서 숨으려고 해도 화승총의 표준 사정거리인 50m를 넘는 위치에서 저격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대응할 수 없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소생을 방해하게 놔두진 않겠다!!"


패기가 넘치는 타다카츠는 문자 그대로 적을 휩쓸어버리고 있어, 아무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롯카쿠 세력을 발견하면 대부분 그가 처음으로 돌격하고, 그에 이끌려 타다카츠의 병사가 적진의 한복판에 돌격하며, 시즈코와 한조가 그것을 지원하는 것이 기본 패턴이었다.

그 덕분에 한조는 시즈코를 관찰할 여유가 어느정도 생겼으나, 동시에 타다카츠의 행동에 어이가 없음을 느꼈다.


(활솜씨는 우수하고, 지휘능력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훈을 버리고 이기는 것만에 집중하는 모습은 이질적이군. 역시 주군의 말씀대로, 그녀의 주위가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질적인 인간들이 모여드는 것인가)


"우측의 적에 돌격할 기색이 보여. 견제 화살의 일제 소사(掃射)로 기세를 제압한다"


(……묘하게 감이 좋지만, 헤이하치로(平八郎)님의 연모는 깨닫지 못하는 둔감함이 있군. 안타깝군, 헤이하치로 님. 동정은 하지만 공감은 못하겠소)


거기서 생각하는 것을 멈춘 한조는, 롯카쿠 세력의 괴멸을 위한 생각으로 전환했다.


"우리들은 시즈코 님의 소사(掃射) 후, 적의 우측으로 돌격한다! 시즈코 님, 신호를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좋아, 지금이다 소사 개시!"


잠시 후 시즈코가 호령을 내림과 동시에, 화살비가 적진의 우측에 집중적으로 쏘아졌다.

더없이 기막힌 타이밍에 소사를 받은 적병들은, 돌격의 기세가 꺾여 우왕좌왕했다.


"간다, 돌격 개시―!"


갑작스런 측면 공격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한조가 병사들을 이끌고 돌격했다. 부대를 재편하는 도중에 돌격을 받아, 이미 적은 조직적인 반격이 불가능해졌다.

얼마 안 가 전투의 결판이 나고, 롯카쿠 세력이나 소규모 세력에 의한 반 오다군은 괴멸상태에 빠졌다. 간신히 도망친 자들도 끝까지 한조의 추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어지간히 제압된 모양이군"


저녁식사를 마친 케이지가, 입으로 담뱃대를 놀리면서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시즈콰 사이조, 그리고 도쿠가와 군의 타다카츠, 한조, 야스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미 롯카쿠 씨의 세력은 이미 멸망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수의 무장이 전사하고, 원래 많지 않았던 병사들을 대부분 잃어, 이제는 군을 유지하는 것조차 곤란한 상태였다.

무장이나 병사가 적은 것에 착안한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은, 2군 체제를 4군 체제로 변경하여, 각지의 반 오다 세력을 진압해갔다.

세분화되자 롯카쿠 측은 적은 병력을 다시 쪼갤지, 아니면 거점을 버릴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롯카쿠 씨가 거점을 버린다면, 이미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원군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거점을 사수하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아래의 글이 쓰인 짧은 권고문을 거점에 보내면 된다.


"복종이냐, 아니면 죽음이냐, 후회하지 않는 쪽을 택하라"


단순한 권고문에, 롯카쿠 가문에 협력하고 있는 영주들은 즉시 이해했다. 이미 자신들의 운명은,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의 손에 쥐어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결국, 버려진 거점은 전부 항복하고, 이후 반 오다 연합군에 협력하지 않을 것을 확약받았다.

자기 목숨이 아까워 거점을 버린 것 때문에, 롯카쿠 가문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자들이 생겨났다. 그 중에는 지금까지 다대한 지원을 하고 있던 코우가슈(甲賀衆)도 있었다.

가신들이 차례차례 연합군으로 변절하여, 예전에 남 오우미(南近江)의 유력자였던 롯카쿠 가문의 위광(威光)은 지금은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반 오다 세력의 맹공은 격렬하여, 오다 군의 상황이 좋아질 기색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각지에서 반 오다 세력을 제거하려고 분투하는 오다 군이었으나, 정세는 악화될 뿐이었다.

11월 말이 되어도 히에이 산에 틀어박힌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군은 항복할 기색을 보이지 않고, 각지의 반 오다 세력도 세력을 더해가기만 했다.

와카사(若狭)에서는 일시적으로 실각했던 타케다 노부카타(武田信方)가 복권하자, 오오이 군(大飯郡)이나 오뉴 군(遠敷郡)에서 반 오다 세력이 반격에 나섰다.

11월 25일에 물류의 거점인 카타다(堅田)의 방어를 굳히려 하였으나, 11월 26일에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이 히에이 산에서 치고 나왔다.

전투는 대격전이 되어, 마에바 카게마사(前波景当)를 전사시켰으나, 오다 군은 사카이 마사타카(坂井正尚)나 안도 우에몬노스케(安藤右衛門佐)가 전사하여 오다 군은 괴멸되었다.

카타다의 이카이 노부사다(猪飼昇貞), 이소메 마타지로(居初又次郎), 바바 마고지로(馬場孫次郎)가 노부나가와 내통했으나, 카타다의 싸움에서 패배하였기에 그들은 카타다를 버리고 비와 호(琵琶湖)를 건너 도주했다.


2개월 이상 포위는 계속되었으나, 여전히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 이상의 계전(継戦)은 한계라고 판단한 노부나가는, 11월 30일에 조정과 요시아키를 움직여 강화를 획책했다.

이 때, 노히메도 상황을 볼 때 노부나가가 강화 쪽으로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니히메(仁比売)의 이름을 이용하여 조정에 손을 썼다.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이나 그 후의 지방에서 발발할 난전 등, 전화(戦火)의 기억이 남아있는 조정은 오다 군과 반 오다 세력의 전투를 멈추기 위해 움직였다.

사키히사(前久) 또한 반 오다 연합을 멈추기 위해, 쿄의 유력자들을 교묘하게 부추겨, 반 오다 연합 안에 계쩐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계전에 불안을 가지고 있던 아사쿠라는 가장 먼저 요시아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지막까지 강화에 반대했던 엔랴쿠지(延暦寺)였으나, 조정에서 윤지(綸旨)가 내려오자 투덜거리면서도 받아들였다.

12월 13일에 미이데라(三井寺)에서 노부나가는 아사쿠라와 강화를 체결하고, 아사쿠라 씨가 구축한 츠보카사 산성(壺笠山城)에서 인질 교환을 했다.


이 때, 노부나가는 여러 통의 탄원서(起請文)를 요시카게(義景)에게 제출했고, 그 중에는 '천하는 아사쿠라 님에게, 나는 두번다시 천하를 넘보지 않겠음'이라고 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막부 체제와 요시아키의 추대(推戴) 하에 있던 노부나가는 '천하를 넘보지 않는다'라고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잘해봐야 '쿄를 넘보지 않겠음' 정도의 뉘앙스이리라.

때로는 수치도 체면도 버릴 수 있는 노부나가라면, 이 정도를 써서 상대를 띄워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

오우미 북군(近江北郡)의 3분의 1을 아자이, 3분의 2를 노부나가가 차지한다는 것도, 인질교환을 아사쿠라가 지은 성에서 한다는 것도, 위기를 벗어나지 않으면 내일이 없는 노부나가에게는 이의 따위 있을 리도 없어, 자존심(挟持) 따위는 길 옆에 버리고 태연하게 받아들였다.


다음 날인 14일에 즉시 진을 걷어낸 노부나가는, 큰 눈이 내리는 가운데 기후(岐阜)로 돌아갔다.

각지에 흩어진 반 오다 연합에 대응하던 군도, 노부나가를 따르듯이 진을 걷어내고 미노나 오와리로 돌아갔다.

한발 늦게 아자이, 아사쿠라도 진을 걷어내고 본거지로 철수했다. 혼간지나 엔랴쿠지도 산문(山門)은 안전할 것이라는 윤지를 받고 병사를 물렸다.

여기서 노부나가의 생에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까지 했던 겐키(元亀) 원년(元年)의 2대 전투 '노다(野田)-후쿠시마(福島) 전투'와 '시가의 진(志賀の陣)'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자만심이 불러온 이 2대 전투는, 그렇게 간단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많은 병사들을 잃고, 가신들을 다수 잃고, 몇 개의 성이 함락당하고, 대량의 이탈자가 생겨버렸다.

각지에서 반 오다 세력은 기세를 더해가고, 그 기세에 오다 가문이 멸망할거라 생각한 자들 중에서 이탈자가 생겼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오다 군은 이후에도 계속 이탈자가 나오게 된다.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일정한 휴식을 주었다.

또 전사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공양미를 기진(寄進)하고, 부상당한 가신들에게 위문의 편지를 보냈다.

지금까지 복종하고 있던 가신들 중 일부가, 오다 군의 의외의 약함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세금을 내지 않고 일부를 자기 주머니에 챙겨 사복을 채우려고 하기 시작했다.

이것에 대해 노부나가는 토착 무사들(地侍)을 용서없이 징벌하여, 백성들에 대한 신뢰를 얻는 것과 함께 정치적인 불안에서 발생하는 치안 악화를 억제했다.


"남만의 말은 크구나"


내정이 자리를 잡은 후, 노부나가는 시즈코가 수입한 아랍종 50마리를 시찰하러 왔다.

아랍종은 체고(体高)가 약 150cm로, 일본에 있는 키소 말 등의 평균 130cm에 비해 20cm나 높다.

키소 말이라도 145cm 등 비정상적으로 큰 말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130cm대가 많다.


"타보시겠습니까?"


"음, 준비해라"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지시를 내렸지만, 그녀는 이미 준비는 마쳐두고 있었기에 말이 바로 나왔다.

씩씩하게 말에 올라타더니, 그는 말의 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다기(茶器) 콜렉터이자 말 콜렉터이기도 한 노부나가는, 아랍종이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아, 아마도 한 마리 내놓으라고 하겠네, 이거)


말에 올라탄 노부나가의 얼굴을 보고, 시즈코는 다음에 나올 노부나가의 말을 예측했다. 잠시 걷게 하거나 조금 달리게 하거나 해본 후,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예상대로의 말을 했다.


"마음에 들었다. 내게 한 마리 보내라"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예상대로 노부나가는 말을 한 마리 원했다. 멋대로 고르면 기분이 상할 거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원하는 말을 고르게 하기로 했다.

한 마리씩 지긋하게 관찰한 후, 노부나가는 한마리의 숫말을 골랐다. 체고 148cm로 평균보다 조금 작았지만, 아랍종들 중에서 가장 다리가 굵었다.


"이 녀석이 마음에 든다"


"알겠습니다. 마구를 준비하겠습니다"


군마로서 사용되고 있는 키소 말과 아랍종은, 체고나 다리의 굵기 등이 다르다.

또, 아랍종은 서러브레드나 앵글로아랍의 조상이기도 하기에, 필연적으로 승마에 쓰는 마구 쪽이 잘 맞는다.

카우보이들이 쓰던 웨스턴 식의 안장이나 재갈(馬銜はみ), 그걸 고정하는 두락(頭絡), 말고삐, 말발굽(護蹄 또는 蹄鉄) 등, 마구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마구를 착용하면 말의 운동능력이 향상되고, 보기에 좋아지며, 말을 달리는 노부나가가 돋보인다.

문제는 마구의 재료비가 무시할 수 없는 점이다. 특히 안장은 장시간 타고 있어도 피로해지지 않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사슴가죽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마구만 해도 큰 돈이 들어간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말을 나란히 하고 걷는 두 사람은 처음에는 말이 없었지만, 잠시 후 노부나가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타인에게 들려줄 수 없는 혼잣말이었다. 그는 오다 가문 당주로서,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약한 소리를 하면 지금의 가신단은 총체적으로 붕괴하여, 오다 가문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뭐든지 예외는 있는 법이다. 노부나가에게는 그런 푸념이나 약한 소리를 해도 용납되는 상대가 약간이나마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시즈코였다.


"가신의 대다수는 이탈하여 반 오다를 표방하고 있다. 내가 만사가 순조로울 때는 아첨을 하다가, 실추하기 시작하니 손바닥을 뒤집는구나. 쓰레기들에게는 정말로 구역질이 난다"


"불행을 알기에 행운을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주님, 그런 쓰레기들을 위해 시간을 쓰시는 것은 아깝습니다. 지금은 이 열세에서도 충의를 다하는 충신들이 있는 '행운'을 음미하도록 하죠. 그리고 별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냉큼 사라져준 '행운'을 기뻐하도록 하지요"


"……후, 후하하하하하!!!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쓸모없는 쓰레기들이 멋대로 적대해주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놈들을 멸망시킬 대의명분이 있다, 라는 것이냐"


시즈코의 말에 일순 멍해진 노부나가였으나, 다음 순간 입을 벌리고 웃었다.

자신의 고민이 바보스럽고, 그리고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이해된 것이다. 얼마든지 적대해라, 이 상태에서 떨어져나가는 가신 따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라고 망설임없이 떨쳐버릴 수 있었다.


"너는 멍한 것 같으면서도 가끔 날카로운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서 재미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하다"


"네? 무엇인가요?


"너는 내 밑으로 온 후,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게 네 긍지인가 생각했으나, 이번의 싸움에서 너는 철저히 무장들만을 처치했지. 알고 있느냐? 네 궁기병대는 '무장척살단(武将殺し)'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야기를 되돌릴까. 너는 사람을 죽인 것을 두려워하였느냐? 아니면…… 후회하였느냐?"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후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노부나가의 말에 시즈코는 힘없이 웃었다. 그녀는 똑바로 앞을 보더니, 먼 하늘 저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최적이라고 생각한 길을 그저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길을 다 걸었을 때, 뒤돌아보고 후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설령 제가 선택한 길 때문에, 최악의 결말을 초래했다고 해도…… 말입니다"


"……"


"그리고 후회하는 것은, 그 때의 자신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후회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미숙한 자신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실패의 원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다음에 살리려고 하는 편이 중요합니다. 아니요…… 그 길을 선택한 자로서의 의무입니다."


"그렇게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말해도 설득력은 없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시즈코는 자신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비통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지적받자 그녀는 겨우 깨닫고,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내게는 오다 가문 당주로서의 책무가 있다. 어설프게 너만을 상냥하게 대할 수는 없지. 그러니, 괴로워지면 동료를 의지해라. 너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설령 네가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어깨를 빌릴 수 있는 친구와 함께 걸어라"


"네……"


"그럼 칙칙한 이야기는 끝이다. 뭔가 맛있는 것이라도 먹고 영기(英気)를 비축하기로 할까"


"갑작스레 여쭈어서 죄송합니다만, 설마 요리를 만드는 게 저는 아니겠지요?"


"어서 돌아가지 않으면 소성들이 걱정하겠구나"


말을 꺼내자마자 노부나가는 말을 달리게 하여 마굿간으로 향했다.

노부나가의 행동에 얼이 빠진 표정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상황이 이해된 순간 노부나가에게 외쳤다.


"어라―, 아까까지의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 자, 잠깐 영주님――――!!! 듣고 계신가요―――!! 슬슬 좀 외출용의 요리사를 고용해 주세요――!!"


겨울 하늘에 시즈코의 고함소리가 허무하게 울려퍼졌다.




오다 군은 반 오다 연합이 구축한 포위망에 의해 대규모 작전에 실패하고, 거기다 다수의 이탈자가 생긴다는 굴욕을 맛보았다.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대패를 당한 오다 군을 보고, 우쭐해지는 패거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필두가 현 쇼군인 요시아키였다. 그는 오다 군의 약점을 알게되자마자, 노부나가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려고 각지에 있는 반 오다 세력을 규합하여, 오다 포위망을 견고하고 구축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부나가가 없었으면 쇼군이 될 수 없었던데다, 그럴듯한 권위나 박력이 없다.

혼간지나 엔랴쿠지는 그에게 따를 의무나 의리가 없었다. 아자이나 아사쿠라도 마찬가지인데다가, 소규모의 반 오다 세력들도 굳이 결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이 마지못해 결탁한 반 오다 연합을 보고, 요시아키는 노부나가도 이것으로 끝났다고 착각했다.

그는 각지의 반 오다 세력에 "오다를 쳐라!"고 격문을 보내어 반 오다 세력을 지금 이상으로 늘리려고 했으나, 어떤 세력도 리스크와 리턴을 고려하여 이야기를 반쯤은 건성으로 들었다.


요시아키가 밀서를 뿌리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는 국경 부근에서 일어난 유괴미수 사건의 대응으로 바빴다.

지금까지는 오다 군을 두려워하던 그들이었으나, 대패의 소식을 듣자마자 오다 영토에서 사람을 유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세키가하라(関が原)를 봉쇄하고, 요코야마 성에 있는 히데요시나 니와가 도로를 봉쇄했기에 전부 미수로 그쳤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그들의 만행에 격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부나가는 나가요시를 유괴범 정벌대의 대장으로 임명하고 철저한 단속을 명했다.


이 인사에 유괴범 패거리들은 물론이고, 뒤가 구린 곳이 없는 정규의 수속을 밟은 인신매매업자들도 공포에 떨었다.

나가요시라고 하면 귀신도 울며 도망칠 정도로 잔학무도하기 짝이 없는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무장, 이라는 것이 그들의 공통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붙잡히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고 생각한 유괴범 패거리는 거미새끼들이 흩어지듯 도망쳤다.


그러나 도망친 정도로 나가요시가 용서할 리도 없었고, 그는 노부나가가 기대한 대로의 활약을 보였다. 남김없이 붙잡아서는 훈도시(褌, ※역주: 일본식 속옷. 긴 천 한 장을 기저귀처럼 감아서 입음) 이외에는 모두 몰수하고, 거기다 '혼내기(折檻)'를 사칭한 고문을 했다.

그 모습은 유괴당한 사람들이, 증오스러울 유괴범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나가요시에게 탄원할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로 나가요시가 멈추면 아무도 고생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노부나가가 명령한 것을 실행하고, 그에 더해 마음대로 날뛴 나가요시의 악명 덕분에, 유괴범들은 겨우 1주일만에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 이해해. 이해는 하는데, 나한테 항의하는 건 그만뒀으면 좋겠어"


잔뜩 쌓인 항의 서한을 훑업존 후, 시즈코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가요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항의서를 보낸 사람도, 노부나가나 모리 요시나리보다는 시즈코 쪽에 보내는 편이 쉽다. 필연적으로 나가요시에 대한 항의문이 시즈코에게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가요시 본인으로서는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른 것 뿐인데 이렇게 항의받는 것 자체가 불쾌했다.


"하지만 뭐, 남의 무기를 멋대로 가지고 나갔으니, 이런 얘기를 해두지 않으면 본보기가 서질 않지?"


단순히 날뛴 것 뿐이라면 잔소리 좀 하고 끝이다. 하지만, 시즈코가 도공들에게 의뢰한 남만 무기를 나가요시가 가지고 나간 것 때문에, 잔소리로는 끝나지 않게 되어 버렸다.

의뢰한 무기는 할버드(halberd), 바디시(bardiche), 글레이브(glaive), 폴 액스(pole axe), 방천화극(方天画戟), 구르카 나이프(kukri), 워 사이드(war scythe, 戦鎌) 등 다양했는데, 나가요기사 가지고 나간 것은 바디시와 구르카 나이프 두 가지였다.

바디시는 아시가루보다 경장비(軽装備)인 유괴범들 상대로 쓰는 물건이 아니다.

과잉 공격이 되는 바디시를 휘두르고, 그걸 쓰기 어려운 장소에서는 나타와 구르카 나이프로 유괴범들 상대로 흉맹(凶猛)한 백병전을 펼친 덕분에, 양쪽 모두 극악한 무기라는 인상이 붙어 버렸다.

군의 상징 무기로 쓰려고 생각했던 시즈코에게, 두 가지 무기의 나쁜 인상은 도저히 지울 수 없어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게 되었다.

그 후, 케이지가 할버드를 써보고, 워 사이드는 겉보기가 좋지 않다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최종적으로 장식을 단 의례용의 글레이브인 쿠제(kuse)가 채택되었다.


"알고 있으면 빨리 끝내줘"


"카츠조(勝蔵), 말이 지나치다. 조금은 시즈코 님의 마음고생을 생각해라"


곁에 있던 사이조가 쓴소리를 했다. 케이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가요시를 편들지도 않았다.

두 사람으로부터의 무언의 위압에, 제아무리 나가요시라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기분이 고양되어 있는지, 침착하지 못하고 어딘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으―음? 항의문에 화내고 있는 것…… 뿐만이 아닌가?)


아무래도 나가요시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평소의 나가요시라면 불손한 태도로 흘려들을텐데,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기분이 고양되어 있다기보다, 자신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 아―, 그런가. 벌써 그럴 나이구나"


한동안 나가요시의 상태를 관탈하고, 그리고 그의 경력을 떠올린 순간, 간신히 시즈코는 나가요시의 수상한 거동의 이유를 이해했다.

그걸 깨달으니, 나가요시가 몸매무세에 신경을 쓰거나, 시즈코나 아야(彩)의 특정 부위를 보더니 즉시 시선을 피하거나, 묘하게 반항적인 태도를 취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시즈코 님? 뭔가 짚이시는 곳이 있으십니까?"


"아니, 카츠조 군도 제 2차 성징기(性徴期, 사춘기(思春期))에 들어섰구나 하고 생각해서. 하지만 나는 엄마가 아니니까 나한테 반항해도 곤란해"


"제2차 성징기?"


그 말에 세 사람이 나란히 고개를 갸웃했다. 마찬가지로 곁에 있던 아야는, 그게 당연한 일인 듯 종이와 먹을 꺼냈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야. 제2차 성징기라는 건, 몸과 마음이 모두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화하는 시기를 말해. 타인의 말이 불쾌하게 느껴지고, 이성(異性)의 신체에 흥미를 가지고, 자기 자신이 이상하게 신경쓰이는 식으로, 마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카츠조 군 자신이 그걸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야"


"큭, 그, 그런 건가"


"저기 말야, 카츠조 군. 아무리 나라도 네 시선이 어딜 향하는지 정도는 알거든?

뭐 그 부분은 남자의 본능이라는 걸로 눈을 감아주겠지만, 이상한 짓을 하면 비트만들과 즐거운 산악달리기를 하게 만들거에요"


"아, 아니 아무래도 그런 짓은 안 해. 신세를 지고 있으니…… 까 (바보냐! 너한테 무슨 짓을 했다간 혼다(本多) 헤이하치로(平八郎)가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나는 자살하고 싶은 생각 같은 건 없어!)"


자기도 모르게 말할 뻔한 나가요시였으나, 직전에 멈추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 제2차 성징기라고 하는건가? 그거 때문에 나는 마음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야?"


"몸도 그래. 변성(変声, 목소리가 바뀜)하거나, 어깨 폭이 넓어지거나, 근육이 발달하거나, 얼굴이 변화하거나, 성적으로 성숙되거나 하는거야. 사람에 따라서는 심하지 않지만, 카츠조 군의 경우에는 계단을 달려올라가는 기세로 온 거 아닐까?

그러니까 몸의 성장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서, 지금처럼 거친 느낌이 된 게 아닐까― 하는거야. 의사가 아니니까 단언은 못 하겠지만"


하지만 나가요시가 폭주하는 이유를 알아도 시즈코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제2차 성징기는 부모로부터의 자립이나 타인과는 다른 '자신'이라는 것을 확립시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리하게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칫 잘못하면 나가요시의 정신적인 면이 어떻게 될 지 예측할 수 없었다.

여기는 그가 아무리 괴로운 표정을 지어도 참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일단 제2차 성징기를 알기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카츠조 군이 폭주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가져갈까. 그 다음에는 케이지 씨나 사이조 씨, 무슨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도 있을테니, 남자끼리인 쪽이 이야기하기 편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상관없어. 그리고, 카츠조는 당분간 내 방에서 자라. 네가 이상하게 폭주해서 시즛치를 덮쳤다간 늑대밥이 될 것 같으니까"


"……시즈코 주위에 있는 늑대가 일어나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공격받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 거냐. 뭐, 뭐어, 진정될 때까지는 케이지에게 신세를 지겠어.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따라가질 않아"


"아침에 일어났더니 피투성이 시체가 있더라, 라는 건 사양이야"


"아니,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어"


"그렇게 바라고 싶어. 자, 이걸로 이야기는 끝. 이쪽에서 이것저것 설명해둘 테니까, 카츠조 군은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어떨까. 원래는 안 되지만, 지금이라면 창고의 술은 두 통(樽)까지는 허가할게"


"그거 좋네. 술을 한 손에 들고 남자끼리 대화해 보자고"


말하자마자 나가요시의 멱살을 붙잡더니, 케이지는 그대로 웃으면서 그를 납치해갔다.


"기다려 임마! 갑자기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에에잇, 놔라――!!"


나가요시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시즈코는 잠시 생각한 후 그를 외면하기로 했다. 나가요시에게 케이지의 강제적인 부분은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괜찮겠지, 아마도"


어쩐지 건성스러운 느낌이 배어나온 시즈코의 말에, 사이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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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