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80 1571년 9월 중순



정치의 세계란 알쏭달쏭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쿄(京)에서 기후(岐阜), 기후에서 오와리(尾張)로 돌아온 시즈코들은, 군을 해산한 후 각자 귀로에 올랐다. 1개월 만의 집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변한 것이라고 하면, 갈 때와 달리 사람 수가 늘어난 것이었다.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 치고는 초라…… 실례, 소박한 저택이군요"


"실례일세, 한조(半蔵) 님. 하지만 아무래도 작다는 느낌은 드는군"


도쿠가와(徳川) 가신단(家臣団) 중, 도쿠가와 십육신장(十六神将)의 일각이 되는 핫토리 한조(服部半蔵), 그리고 도쿠가와 삼걸(三傑) 중 한 명이 되는 혼다 타다카츠(本多忠勝) 두 사람이 시즈코의 집을 보고 감상을 말했다.


노부나가와 이에야스(家康) 사이에 뭔가의 거래가 이루어져, 두 사람이 시즈코에게 맡겨지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 밖에 시즈코는 알지 못했다.

정보 보안면에서 문제없을까 생각했으나, 시즈코에게 있는 기술의 태반은 각지로 흩어졌다. 이제와서 그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기보다는 각지에 밀정을 배치하는 편이 빠르다.

남아있는 것은 전국시대에는 재현할 수 없는 현대 물품이나, 아니면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들 뿐이다.


"(그래도 일단, 주의는 해야겠지) 주의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특히 산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태반이 야생동물의 영역이기에, 외적(外敵)을 쫓아내려고 공격해오니까요. 특히 안쪽의 광엽수림(広葉樹林) 지역에는 곰이 나오니 유의해 주십시오"


본토에 서식하는 동물들 중,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위치하는 동물이 반달곰이다.

곰 중에서는 소형으로 분류되는 반달곰이지만, 시속 30km에서 60km로 달리는 각력과 그 상태를 수 시간 유지할 수 있는 스태미너, 작은 칼 정도는 되는 발톱을 가진 팔에서 뿜어지는 공격은 관목(灌木)조차 꺾어버린다.

따라서 반달곰에게 공격받으면 인간 따위는 남아나지 않고, 뒷발로 서서 머리라도 공격받게 되면 목부터 위쪽이 몸통과 작별하게 될 정도이다.


그런 그들의 식생활은 의외로 초식 경향이 강한 잡식이다. 도토리나 밤 등을 주식으로 하지만, 곤충이나 동물의 사체, 맹금류의 새끼나 초식동물의 유생을 잡아먹기도 한다.

곰이라고 하면 연어(鮭)를 즐겨먹는 이미지는 있지만, 연어를 먹는 곰은 반달곰이 아니라 불곰이나 그리즐리이다.


"배려를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 마을에서는 여러가지 동물을 사육하고 있습니다. 구경하는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만, 가능한 한 접촉은 피해 주십시오. 영주님의 지시로 사육하고 있는 귀중한 동물이 많기에, 만에 하나 죽게 해버리면 도쿠가와 님께 막대한 금액을 청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 하나는 살 수 있을 정도의 금액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짐승입니까"


"우리 나라의 고유종인 뇌조(雷鳥), 남만의 개, 고양이, 원숭이, 그리고 장수의 상징인 땅거북(象亀)입니다. 특히 남만 고양이는 영주님이나 고노에(近衛) 님이 아끼고 계시기에, 확실하게 질책을 받으시겠지요"


야생동무르이 태반은 먹이가 풍부한 낙엽(落葉) 광엽수림 지역에 있지만, 침염수립 지역에는 뇌조가 서식하고 있다.

현대에서는 일본 고유종인 일본 뇌조는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오와리에 있는 작은 산에도 서식이 확인된 것을 보면, 예전에는 더 광범위하게 서식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비상 능력(飛翔能力)이 낮기에 암컷이나 새끼, 알이 여우나 까마귀 등의 천적에게 노림받기 쉬운데, 시즈코의 주변에는 천적을 포식하는 동물이 많았기에 뇌조에게는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고산 지대가 영역인 뇌조가, 평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내려온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잘 알겠습니다. 명심하도록 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만, 우선 두 분께서 지내실 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시즈코는 병사 한 명에게 타다카츠와 한조의 안내를 부탁했다. 물론, 두 사람은 도쿠가와 가신이기에 시즈코가 사는 구역이 아니라 외곽부분에 있는 집에 머물게 된다.


"아쉽군"


진심으로 낙담한 타다카츠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한 조치겠지. 아무리 주군과 오다 님이 정하신 일이라고는 하나, 그리 쉽게 가까이 살게 할 이유는 없지"


귀찮은 듯한 표정의 한조가 뻔한 일이라며 타다카츠에게 태클을 걸었다. 한조는 조금 더 먼 집으로 안내될 거라 생각했으나, 시즈코의 집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집이었다.

방심하고 있는건가라고도 생각했으나, 사람과 짐승이 상시 감시하고 있는 장소에 숨어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땅 뿐만이라면 모르겠으나, 하늘로부터도 감시되고 있는 상황은, 사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숨어드는 데만 해도 막대한 수고가 들겠군. 게다가 경비가 가장 허술할 터인 산에는 맹수가 살고 있다. 얼핏 보면 어설픈 듯 하면서 빈틈없는 경비체제로군)


반달곰은 아침이나 저녁 등 어두컴컴한 시간대에 활동하는 박명박모성(薄明薄暮性) 동물이다. 하지만 그건 기본적인 얘기고, 개체나 환경에 따라서는 대낮이나 밤중에도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사슴이 다수 서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멧돼지나 일본 늑대도 서식이 확인되었다. 작은 산에 다수의 동물들이 정착했지만, 그걸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산의 먹이는 풍부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주변 지역에 살게 되면 곤란하기에 내쫓고는 있지만, 산의 대부분은 짐승들의 근거지로 변해 있었다. 시즈코가 사용하고 있는 장소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닐테지, 한조 님"


침묵하고 있는 한조를 타다카츠는 힐끗 노려보았다. 그 반응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한조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당분간 재미있는 일이 이어지겠군, 이라고 생각한 것 뿐일세"




혼다 타다카츠, 핫토리 한조 두 사람은 당장 시즈코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식사 방법이나 시간, 목욕, 그 외에 미카와(三河)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 습관에 얼이 빠졌다. 그래도 며칠 지나니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5일이 지났을 무렵에는 두 사람은 완전히 녹아들어서, 타다카츠는 목욕, 한조는 청주(清酒)의 포로가 되었다. 한조는 저녁 식사와, 그 후 가끔 케이지(慶次) 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했다.


양자가 표면적인지, 아니면 정말로 사이가 좋아졌는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서로 으르렁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지켜보기로 했다.

뭣보다 최근에 태어난 저먼 셰퍼드 울프독의 교육에 바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다려!"


총 10마리의 셰퍼드 울프독은, 순식간에 시즈코의 명령에 따라 멈춰섰다. 카이저와 셰퍼드로부터 5마리, 쾨니히와 셰퍼드 사이에서 2마리, 리터와 셰퍼드 사이에서 3마리가 태어났다.

역시랄까, 비트만과 바르티 사이에서는 새끼가 태어나지 않았다. 환경이 안정되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야생 환경은 아니었기에, 자손을 남기는 본능이 옅어진 게 아닐까 시즈코는 생각했다.

야생의 환경에서는 번식하더라도, 사육 환경에서는 번식행동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안정된 식사와 위험이 없는 영역을 얻게 되면,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생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게 되는 게 원인이라고도 한다.


(아차차. 지금은 울프독의 훈련을 해야지)


모든 개체에 공통되는 것은 쫑긋 선 귀, 더부룩하게 늘어진 꼬리, 체격이 단단하고 유연성이 있는 몸에 윗털과 아랫털이 있는 더블 코트, 그리고 늑대를 방불하게 하는 날카로운 눈매였다.

반사속도나 지구력, 종합적인 운동신경이 대단히 높아, 생후 수 개월밖에 안 되었음에도 성체의 시바견(柴犬)에 필적하는 개체도 있었다. 하지만 울프독에 공통되는 내면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났다.


우선 카이저의 새끼들은 몸이 크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이 많았지만, 한가해지면 문제행동을 일으키기 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훈련시키기 전부터 리더에 대해 대단히 순종적이었다.

다음으로 쾨니히의 새끼들은 평소에는 쿨하게 행동하지만, 상대해주지 않으면 갑자기 어리광을 부리는 귀찮은 성격을 가진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세 종류 중 가장 복종심이 강했다.

마지막으로 리터의 새끼들은 상황 판단 능력이 대단히 우수하여, 다른 울프독들은 명령이 떨어진 후에 반응하지만, 리터의 새끼들은 시즈코의 거동을 보고 명령을 예측하여 행동했다.


"고생하시는군요"


울프독을 훈련시키고 있는 시즈코에게 한조가 말을 걸었다. 요 며칠, 시즈코를 감시하고 있던 그는, 시즈코가 특수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다수의 동물이 따르고, 아시가루(足軽) 들에게 '주군(殿)'으로서 존경받으며, 성격이 까다로운 무장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표리가 다른 하극상의 세상에서, 혈연 관계가 없는 가신들이 강철같은 결속을 굳히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정상적이다.

그러면서 느긋한 '여유'가 존재하고, 긴장감이 부족한 듯 보였다. 무질서하게 보이며 질서가 있고, 각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 보이면서, 시즈코를 중심으로 규칙성을 가지고 운용되고 있었다.

그것이 며칠 동안 시즈코라는 정점에서 말단의 머슴(下男)에 이르기까지 조사한 한조의 결론이었다.


"그렇지 않아요. 개를 훈련시키는 건 주인의 의무니까요"


"호오…… 소생은 개를 키워본 적은 없습니다만, 훈련은 주인의 의무입니까"


말하면서 한조는 시즈코를 향해 살기를 뿜었다. 하지만 시즈코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그녀의 주위에 있는 늑대개들만이 살기에 반응했다. 늑대개들은 낮게 으르렁거리며 내며 한조를 위협했다.


"오, 오, 왜 그래? 괜찮아, 안심해"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늑대개들을 쓰다듬으며 시즈코는 늑대개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잠시 한조를 노려보던 늑대개들이었으나, 한조가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자 으르렁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살기에 반응하지 않다니, 이 소녀는 정말로 난세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조사 대상이라고는 해도 한조는 시즈코의 무방비함에 약간 걱정이 느껴졌다. 한숨을 쉰 순간, 한조는 등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하여,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땅바닥을 굴렀다.


"시즈코 니임! 무사하십니까!?"


한조를 날려버린 인물은 타다카츠였다. 그는 톤보기리(蜻蛉切)를 한 손에 들고 초인적인 속도로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우연히 그가 달리던 경로상에 한조가 있었던 것 뿐, 타다카츠는 의도적으로 그를 날려버린 것은 아니다.


"뭔가 살기를 느꼈습니다만, 안심하십시오! 이 혼다 타다카츠! 누구 하나 시즈코 님께 접근시키지 않겠습니다!"


"어, 아니, 그…… 그건 그렇고 한조 님이"


"음? 오오, 한조 님. 시즈코 님의 앞인데, 아무리 거리낌없는 성격이라 하나 누워 있다니 실례가 지나치군"


타다카츠는 순순히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타다카츠로부터 1미터에서 2미터 앞에 한조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한조를 날려버렸다고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쓴소리를 했다.

잠시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한조였으나, 갑자기 소리도 없이 일어나더니 말없이 타다가츠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힘껏 그를 후려갈겼다.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인가, 는 이쪽이 할 말일세!"


갑자기 눈 앞에서 드잡이질이 벌어진 것에 시즈코는 안절부절 못 했다.


"어이가 없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아시미츠(足満)가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시즈코와 달리, 말 그대로 타다카츠와 한조의 드잡이질을 어이없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들의 바보같은 소란이겠지. 시즈코, 말려들면 위험하다. 이런 멍청이 두 명은 내버려두고 차라도―――"


아시미츠는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 전에 타다카츠가 한조와 마찬가지로 아시미츠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한조와 달리 아시미츠는 공중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더니, 낙법을 치며 화려하게 착지했다.


"네 이놈! 거리낌없이 시즈코 님의 어깨에 손을 얹다니 용서할 수 없다! 소생조차 손대본 적이 없…… 커흠커흠! 어쨌든 여인에 대해 지나치게 뻔뻔하구나!"


아까까지 드잡이질을 하고 있던 타다카츠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아시미츠에게 고함쳤다. 아시미츠는 격앙된 타다카츠를 무시하고, 왼손을 목에 대고 우두둑 우두둑 하고 뼈를 울렸다.


(아, 큰일났다 이거)


한 눈에 봐도 아시미츠가 화가 나 있는 것을 시즈코는 알 수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했으나, 이렇게 되면 시즈코의 목소리도 아시미츠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재미있는 소리를 지껄이는 꼬맹이구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부터 땅바닥 맛을 실컷 맛보게 해주마. 말해두지만 네놈에게 시즈코를 주진 않는다"


"뭣! 네, 네놈, 시즈코 님과 어떤 관계냐"


"훗, 네놈과 달리 시즈코가 요만~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지"


아시미츠는 승리를 자랑하는 듯한 표정으로 타다카츠의 질문에 대답했다. 절망감을 떠올린 타다카츠였으나, 양손으로 얼굴을 치며 기합을 넣었다.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지만,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끝내줫으면 좋겠는데요…… 아니, 하하하"


쭈뼛거리며 말해봤지만 예상대로 양쪽 다 시즈코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가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즉, 네놈을 쓰러뜨리면, 시즈코 님과 함께 꽃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군"


"꼬맹이가 밝히기엔 100년은 이르다. 돌아가서 유모의 젖이라도 빨아라"


순간, 공기가 파열되는 소리가 귀에 들린 듯한 시즈코였다. 타다카츠와 드잡이질을 했던 한조도,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소리없이 타다카츠로부터 물러났다.


"네놈과는 사이좋게 지낼 수 없을 것 같군"


"우연이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한 참이다"


서로 그런 말을 하면서 타다카츠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아시미츠는 칼과 토시(篭手)를 벗어 근처에 놓았다. 분노가 마음을 지배했더라도, 칼부림은 금기라고 생각할 만한 이성은 남아있었다.

무기에 이어 상의를 벗더니, 약속한 듯 근처로 던져버렸다. 타다카츠 것은 한조가, 아시미츠 것은 시즈코가 회수하여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사람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말없이 서로 노려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아시미츠와 타다카츠 두 사람 모두 허리를 약간 낮추었다. 칼부림을 하지 않고 싸우는 방법, 그건 씨름(相撲)이다.

씨름이라면 훈련이라는 명목이 생긴다. 다소 상처를 입더라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용서를 빌 거라면 지금이다"


"웃기지 마라, 꼬맹아. 와라, 상대해주마"


서로 주고받은 말 뒤에 흐르는 약간의 정적, 그것을 먼저 깬 것은 타다카츠였다. 약간 늦게 아시미츠도 움직였다. 서로 몸통박치기(ぶちかまし)를 날려, 살과 살이 부딪혔다.

하지만 어깨부터 부딪혔을 때의 소리는 마치 흙벽으로 된 창고(蔵)에 나무망치를 힘껏 후려갈겼을 때와 같은 소리였다. 그만큼 격렬한 몸통박치기를 했음에도 어느 쪽도 뒤로 밀려나지 않고 서로 밀고당기고 있었다.


"흥!"


잠시 둘 다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으나,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은 아시미츠가 타다카츠를 메다꽂았다. 나가떨어진 타다카츠는 바로 일어서더니, 다시 아시미츠에게 몸통박치기를 했다.


"두 사람 다 기운이 넘치네"


반쯤 어이없어하면서 시즈코는 두 사람의 씨름을 구경했다. 네 번 정도 승패가 갈렸을 무렵부터 서서히 관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타다카츠나 아시미츠와 마찬가지로 상의를 벗고 씨름에 끼어들기도 했다. 물론, 끼어든 것은 시즈코 쪽 사람들만은 아니었다.


혼다 타다카츠와 핫토리 한조가 노부나가, 엄밀하게는 시즈코에게 맡겨지는 형태가 되었으나, 맡겨진 것은 그들 두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혼다 타다카츠 부대(本多忠勝隊) 중, 정예 중의 정예인 가신들이 30명 정도 행동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 30명 중에는, 혼다 종가(宗家)의 후계자로서 타다카츠를 키워낸 숙부인 혼다(本多) 히고노카미(肥後守) 타다자네(忠真).

'혈창(血鑓) 쿠로(九郎)'라는 별명을 가진, 전쟁에 관한 것을 타다카츠에게 교육시킨 나가사카(長坂) 히코고로(彦五郎) 노부마사(信政).

타다카츠가 병에 걸려 누워 있을 때, 그 대신 군졸을 지휘했던 사쿠라이(桜井) 쇼노스케(庄之助) 카츠츠구(勝次).

혼다 가문의 필두(筆頭) 가노(家老)인 츠쿠시(筑紫) 소우자에몽(惣左衛門) 히데츠나(秀綱).

츠쿠시 씨 일족과 함께 가노로서 대대로 혼다 가문을 뒷받침해온 카지(梶) 씨 가문의 카지(梶) 킨페이(金平) 카츠타다(勝忠) 등, 쟁쟁한 인물들이 타다카츠 부대(忠勝隊)로서 참가하고 있었다.


이에야스의 잘 이해할 수 없는 명령 떄문인지, 아니면 환경이 변화한 것에 의한 스트레스인지, 다들 상의를 벗고는 씨름에 참가했다.

참가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따라 관객들도 씨름에 열광했다. 때로는 내던져진 선수(力士)들이 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뭐 이런 방식도 있는 걸까"


씨름을 하는 사람 숫자가 늘어났을 즈음부터, 시즈코는 위험하다고 느끼고 조금 떨어진 건물의 2층에서 견학하고 있었다. 원래는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하면 안 되지만, 다들 씨름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자, 다음은 누가 상대냐!"


"그럼 소생이 상대하도록 하지!"


상대를 집어던진 케이지가 씨름판(土俵) 위에서 알통을 드러내며 두들겼다. 그의 도전에 타다카츠 부대의 누군가가 손을 들며 씨름판 위로 올라갔다.

씨름을 한 덕분인지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다니 도쿠가와니 하는 그런 벽은 사라져 있었다. 차를 홀짝이면서 시즈코는 씨름을 즐기고 있는 남자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남자는 단순하네―. 하지만, 그런 점은 부러워"




타다카츠들이 시즈코의 마을에 체류한 지 1주일 후,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내용을 확인하자, 이번에 시즈코가 그들을 맡게 된 것은, 그녀가 도쿠가와의 영토를 조사하기 위한 밑준비라는 얘기였다.

이에야스가 시즈코의 지형 조사를 받아들인 것은, 어른의 여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최대한의 허세였다. 가신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의사 표명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의 진의를 알고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거꾸로 이에야스의 요구를 간단히 받아들일 정도의 도량을 보였다.


노부나가가 시즈코가 있는 곳에 이에야스의 부하들을 두어도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시즈코가 손대는 모든 사업에 시즈코가 키 맨(key man)으로서 구속되어 있었으나, 아시미츠와 미츠오(みつお)가 합류한 이후로는 분업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던 점이 크다.

현 체제에서는 시즈코가 농림수산업 및 연구개발, 미츠오가 축산 관계, 아시미츠가 군사 전반으로 명확히 분업화가 되어 있다.

다른 나라에서 가장 주시하고 있을 군사 사정은 아시미츠가 총괄하고 있기에, 시즈코에 대해 간첩을 보내봐야 이미 군에서 채용되어 실전 배치가 끝난 물품에 관한 기술정보가 나오는 정도이다.


게다가 시즈코와 아시미츠 사이에 한정시킬 경우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리터러시(literacy)의 장벽이 높아, 딱히 방첩(防諜)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다.

예를 들면 시즈코가 다이너마이트를 필요로 할 경우, 아시미츠 이외의 사람에게라면 다이너마이트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시미츠 상대라면 '발파(発破) X개, O월까지 필요"라고만 하면 충분하다.

말소리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발파'와 '다이너마이트'를 연결짓는 것조차 어렵다.

그래도 생활을 함께 하며 접하는 시간이 장기간에 걸칠 경우 어렴풋이나마 내용이 파악될 위험도 있지만, 모든 것을 이해했을 무렵에는 진부해져서 기밀이 아니게 된다.

이 때문에 장래적으로 적이 될 가능성이 있는 도쿠가와 가신을 시즈코의 곁에 두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그러한 정치적 조절(駆け引き)은 모르는 시즈코였으나, 주인자을 볼 때 시즈코가 원하는 장소의 지형 조사가 가능하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그럼, 남은 1년 동안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의 대지(台地)를 어디까지 조사할 수 있으려나)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겐키(元亀) 3년 12월 22일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에서 일어난, 타케다(武田) 군과 오다-도쿠가와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타케다 군은 당시의 타케다 씨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병력인 3만이었기에 문자 그대로 총력전이었던 것과, 이에야스가 대패한 것으로 유명한 전투이다.

역사적 사실이 어떠한 흐름이었는지 파악하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딱 한 가지 알 수 없는 점이 있었다. 그것이 당시의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이었다.

현대에서는 원형을 보존하고 있지 않았기에, 대체 어떤 모양인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는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는, 타케다와의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사였다.


주인장이 도착하자 시즈코는 가신들을 불러모았다.

이번에는 케이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아시미츠, 그리고 타카토라(高虎) 등 다섯 명이었다. 아직 수습(見習い)인 타카토라가 호출된 것을 케이지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시즈코 나름대로 생각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다.


"미카타가라하 대지의 지형조사 허가가 내려왔습니다. 지금부터 조사대를 결성해서, 1년에 걸쳐 면밀하게 조사합니다. 당분간 쿠로쿠와슈(黒鍬衆)가 움직이기 어렵게 되지만, 쿠로쿠와슈도 꽤나 인원이 늘어났기에 그다지 문제는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시즈코가 거느린 쿠로쿠와슈는 인원은 물론,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리패브(prefab) 공법을 기본으로 하여, 전국시대에 맞춰 개량한 독자적 공법에 의한 진지구축 덕분에, 오다군 내부에서는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로마 군단병을 목표로 한 쿠로쿠와슈는, 우수한 백병전투원이자 공병이기도 했다.

평소에는 토목공사가 주된 임무로 견고한 진지의 설영, 사찰을 항구적인 주둔지로 개조, 진군을 위한 공도(公道) 정비 등 다양한 임무에 종사한다.

그들이 만든 도로는, 후에 노부나가가 상업 루트의 하나로서 이용할 정도의 완성도였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일이 많으며 전장에 설 일이 적은 그들이지만, 그 실력은 노부나가조차 감탄시킬 정도로, 노부나가 휘하의 오카베(岡部)도 몇 번인가 그들의 도움을 받아 일을 했다.


시즈코가 결성하고 키워낸 쿠로쿠와슈는 말하자면 오다 군을 그늘에서 뒷받침하는 부대이다.

이번에 미카타가하라 대지의 지형조사에 시즈코는 쿠로쿠와슈 중에서 지형관계의 전문가를 포함한 2000명의 부대를 데려갈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원수가 늘었다고는 해도 2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지형조사에 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다. 뭣보다 쿠로쿠와슈는 수요가 높은 부대이다. 상당한 불만이 나올 것이 뻔히 보였다.

시즈코가 키운 부대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직의 일원인 이상 본래의 기능을 훼손할 정도로 인원을 동원하는 것은 중진인 시즈코라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따라서 2000명이라는 과다한 인원을 요청은 했지만, 실제로 데려갈 수 잇는 것은 절반 이하가 될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뭐― 쿠로쿠와슈는 그들의 높은 능력 떄문에 요청이 끊이질 않는 부대니까…… 지형 조사에 동원할 수 있는건 기껏해야 1000명이 한계겠지요. 그래서, 조사대에는 저와 아시미츠 아저씨와 사이조 씨, 그리고 요키치(与吉) 군을 데려갑니다. 케이지 씨와 카츠조(勝蔵) 군은 비공식 참가(陣借り)려나요"


"비공식 참가라니…… 일부러 나눌 필요 없고, 전원 같이 이동하면 되잖아"


"아무래도 전군으로 도쿠가와 영토에 이동하는 건 문제가 있지. 케이지 씨와 카츠조 군의 군은 강하다는 평판이고, 대외적으로도 전력의 절반 정도로 보여두지 않으면 주위에 쓸데없는 자극을 주게 되어 버리는 거야"


시즈코 군은 오다 군 내에서, 그리고 다른 영주들 사이에서도 나름대로 유명하다. 시즈코 군의 전 병력이 도쿠가와 영토로 이동하면, 도쿠가와에 대해 적의가 있다고 판단될 수 있고, 도쿠가와가 납득하더라도 근처의 다른 나라들이 전쟁 준비로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긴장감을 높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노부나가를 위해서도 쓸데없는 소동을 불어일으키는 짓은 삼가야 한다.


"흐흥,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


강하다는 평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가요시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넉살좋은 태도에 케이지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를 건드렸다가 이야기가 중단되면 귀찮다고 생각하고는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전에 말했던 말, 그건 언제쯤 도착하지?"


"아―, 그거. 저번에 연락이 와서, 9월중이나 그쯤이라고 들었어요. 아마도이지만 조사는 10월쯤일테니, 출발하기 전까지는 올거에요"


예수회에 의해 데스트리어는 일본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중마종(重馬種)으로 분류되는 데스트리어는 운반하는 것도 고생이지만, 뭣보다 유지하기 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이 문제 때문에 아랍종과는 달리, 배를 몇 척이나 사용하면서도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으로 코끼리를 운반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 점을 볼 때 대형 동물(重種)의 운반은 가능하다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큰 돈을 들여서 운반할 수 있었던 게 겨우 몇 마리 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예상외로 비용이 많이 든 것에 머리를 감싸안았다.


"뭐, 달리 질문이 없으면 이만 끝내려는데, 질문 있어요?"


"요키치는 뭣 때문에 데려가는 거야?"


케이지의 질문에 사이조와 아시미츠가 약간 반응했다. 요키치는 아직 수습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지형조사라는 중요한 임무에 데려갈 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즈코가 데려가려는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다.


"아―, 요키치 군은 쿠로쿠와슈와 함께 토목 기술의 공부에요"


"옛! 저, 저기― 시즈코 님. 소생이 쿠로쿠와슈와 함께 할 이유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만"


예상외의 말에 타카토라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머뭇거리며 시즈코에게 이유를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요키치 군에게는 축성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쿠로쿠와슈와 함께 토목기술을 배웠으면 하는거야. 뭐, 억지로 시키려는 건 아니거든? 그런 걸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아, 아니…… 예. 시즈코 님께서 자질이 있다고 하신다면, 소생에게 이의는 없습니다. 다만 좀 놀라기는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축성 기술에 정통했다고 평가되는 토우도 타카토라(藤堂高虎)이지만, 그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에도(江戸) 시대 초기이다. 따라서 시즈코는 타카토라에게 쿠로쿠와슈 밑에서 건축기술을 배워서 축성 기술의 재능을 조기에 꽃피우길 바랬다.


"미안해, 무리한 얘기를 해서. 아무래도 무장(武将)을 그런 곳에 배치하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납득해줘서 다행이야"


참고로 시즈코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타카토라는 시즈코의 설명에는 납득했으나, 아시미츠와 사이조로부터의 살기에 가까운 시선을 받고, 거절했다간 그 후가 두려워져서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있다.


"그럼, 달리 없어요? 없으면 회의를 종료합니다"


"옛!"


시즈코의 회의 종료 선언에, 전원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8월 28일, 일본에 있는 예수회의 선교사들에게 있어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시라이카와라(白井河原) 전투에서 프로이스 등 선교사들을 비호해왔던 와다 코레마사(和田惟政)가 전사했다.


호소카와(細川) 씨의 내분(에이쇼(永正)의 착란(錯乱)) 이래로, 셋츠(摂津) 국은 항상 전란의 땅이었다.

현재는 와다 코레마사와 이바라키 시게토모(茨木重朝),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와 나카가와 키요히데(中川清秀)가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에는 진정되었으나, 아직 하나로 뭉치지는 못했다.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노부나가가 패한 이후, 억지력이 사라져 양자는 다시 대립했고, 8월 28일에 시라이카와라를 끼고 양측의 연합군이 대치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이 전투는 세대교체의 상징적 전투이기도 했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셋츠 삼대 슈고(摂津三守護)(와다 코레마사는 그 중 한 명)가 무대 위(表舞台)에서 퇴장하고, 아즈치(安土) 모모야마(桃山) 시대의 무장들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와다 코레마사와 마찬가지로 선교사들을 비호하고 있는 타카야마 토모테루(高山友照), 우콘(右近) 부자는, 와다 코레나가(和田惟長, 와다 코레마사의 자식)과 함께 타카츠키 성(高槻城)의 방어를 강화했으나, 아라키-나카가와 연합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상황은 더욱 악회되어,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와 그 자식인 히사미치(久通),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 시노하라 나가후사(篠原長房) 등이 타카츠키 성의 포위에 참전했다. 그들은 타카츠키 성의 성시(城下町)를 이틀에 걸쳐 불태우고 철저히 파괴했다.


지금까지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프로이스였으나, 이대로는 타카츠키 성 주변에 있는 카톨릭 교회(キリスト教会)가 파괴될 것을 걱정하여, 로렌초 료사이(ロレンソ了斎)를 오다 노부나가에게 파견하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셋츠 국이라고 하면 키나이(畿内)의 요충지, 천하인이 되고자 하는 노부나가의 발밑에서 일어난 전투에 그는 조정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9월 9일에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를 사자로 파견하여, 즉각적인 정전과 쌍방의 타카츠키 성으로부터의 철수를 권고했다. 그러나, 양쪽 군 모두 노부나가의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체면이 뭉개진 노부나가였으나, 이 결판은 9월 말까지 늦어지게 된다.


타카츠키 성에서 와다 코레나가와 타카야마 부자, 아라키-나가카와 연합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무렵, 노부나가의 악명을 일본 전역에 떨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

겐키 2년(1571년) 9월 12일, 해가 뜨기 전에 노부나가는 약 3만이라는 대군으로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를 포위했다.

정확하게는 히에이 산 엔랴쿠지가 아니라, 엔랴쿠지의 승병들이 사용하는 길, 그리고 사카모토(坂本)의 육로와 해로의 출입구였다. 병사들이 빈틈없이 둘러싼 모습에, 사카모토의 장로들(老人衆, ※역주: 딱히 어떤 고유명사라기보다는 그냥 한자 그대로의 뜻 같은데, '노인들'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 것 같아 임의로 '장로들'이라고 의역함)은 금을 바치며 공격 중지를 탄원했다.


"이것이 무가(武家)의 싸움이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되돌려보냈다.

전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사카모토의 승병들은, 비교적 포위망이 약한 히요시타이샤(日吉大社)의 중심부(奥宮)인 하치오우지 산(八王子山)에 틀어박혔다. 그곳으로 도망쳐 들어가도록 노부나가가 꾸민 것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리고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노부나가는 전군에 총공격을 명하여, 전투라는 이름의 학살이 막을 올렸다.

오다 군은 우선 사카모토, 카타타(堅田) 주변에 불을 놓고, 그것을 신호로 곳곳에 있는 무장들이 소라고둥(法螺貝) 소리와 함성(鬨)을 올리며 공격해 올라갔다.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사쿠마 노부모리, 타케이 세키안(武井夕庵)、나카가와 시게마사(中川重政)、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그리고 시즈코 군에서 아시미츠와 모리 나가요시(森長可)가 전투에 참가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달리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가 없는 이유는, 히사마사(久政)의 견제로서 시즈코 본대와 함께 오다니 성(小谷城)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익! 사, 살려―― 끄악!"


"목숨만은…… 아악!"


여기저기서 비명과 애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하지만, 오다 군 중 누구 한 사람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담담하게 사카모토에 있던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승병은 물론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또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목을 베었다.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태우고, 적이라면 갓난아기조차 용서없이 죽이던 오다 군이었으나, 이상하게도 히에이 산 엔랴쿠지의 본당(本堂)이라 할 만한 장소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히요시타이샤에 틀어박힌 승병들을, 사찰째로 불태워버린 오다 군이, 말이다.


노부나가가 엔랴쿠지의 본당을 방치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애초에, 그는 엔랴쿠지의 모든 것을 멸망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시의 엔랴쿠지는 군사 거점이며, 사카모토를 필두로 거대 상업도시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려들은 히에이 산을 내려가 사카모토나 시모사카모토(下坂本)를 생활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엔랴쿠지는 인라이(院来), 슈토(堂衆)、가쿠세이(学生)、쿠닌(公人)이라는 승려의 네 가지 계층이 있었으며, 부패의 중심은 쿠닌이라 불리는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여색을 탐닉하고, 물고기나 새를 태연히 먹어댔다. 또, 유흥비가 모자라면 법의료(法儀料)나 시주(布施) 등을 훔치고, 부정한 뇌물을 받았으며, 악질적인 고리대금업에도 손을 댔다.

때로는 상대를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고 집이나 땅, 여자 아이들까지 담보로 잡고는 폭력으로 돈을 받아냈다.

또, 쿠닌은 엔랴쿠지의 권력을 배경으로 산령(山領, ※역주: 아마 엔랴쿠지가 관할하던 영지라는 의미로 짐작되지만 정확히 모르겠음)의 공물(年貢)을 독촉하고, 유사시에는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무기를 든 채 각지에서 마음껏 날뛰었다.

때로는 요여(神輿)를 들고 쿄에 난입하여,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사카모토의 히요시야마 곤겐(日吉山権現)은 엔랴쿠지와 마찬가지로 전국에 다수의 사찰을 두고 전국적인 권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카모토하마(坂本浜)를 외항(外港)으로 삼고 술을 한냐탕(般若湯), 창녀(遊女)를 연잎(蓮の葉)이라는 은어로 부르며, 엔랴쿠지에 참배(参詣)하는 단체가 이용하는 여관(旅籠)이나 환락가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것은 '신장공기(信長公記)'에 '천하의 조롱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늘(天道)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을 정도의 부패함이었으며, 승려들의 대부분이 속세에 물들어 향락에 빠져 신앙을 잊고 있었다.


엔랴쿠지는 노부나가의 화공을 '겐키의 법난(法難)'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을 봐도 노부나가는 히에이 산을 전부 불태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사카모토 주변 일대를 완전히 봉쇄했기에, 엔랴쿠지에 대해 무슨 짓을 했는지 직접 목격한 제 3자는 한 명도 없었다.

노부나가의 화공에 관해서는 프로이스의 보고서나 '언계경기(言継卿記)', '어탕전상일기(御湯殿上日記)' 등 여러 기록에 남아 있으나,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오다 군의 화공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들은 이야기(伝聞)를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들은 이야기'란 도중에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장식된다.


노부나가의 히에이 산 엔랴쿠지 화공이, 그 때까지 정설로 여겨지던 대학살이 아니라 실은 과장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쇼와(昭和) 시대에 실시된 발굴 조사에서 판명되었다.

발굴조사에 관여한 카네야스 야스아키(兼康保明) 씨는 '노부나가가 불태운 건물은 사카모토 중당(中堂)과 대강당(大講堂) 뿐'이라고 보고했다.

또, 엔랴쿠지의 건물은 겐키 이전에 폐쇄(廃絶)된 것이 많아, 출토된 유물은 겐키 시대에 소실(焼亡)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 거의 없었다.

노부나가보다도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에 의한 엔랴쿠지 화공 쪽이 철저했으며, 이 때 대부분의 주요 시설이 소실되었다는 것도 판명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히에이 산의 주인은 오오기마치 천황(正親町天皇)의 동생인 카쿠죠(覚恕) 법친왕(法親王)이었다. 만약, 노부나가가 산 전체를 불태워버렸다면 그도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며, 노부나가를 조정의 적(朝敵)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히에이 산 화공 후에도, 오오기마치 천황은 노부나가에 대해 태도를 바꾸지 않았으며, 딱히 이렇다 할 대응을 취했다는 기록도 없다.

또, 카쿠죠 법친왕도 조정에 대해 공작을 벌이지 않고, 엔랴쿠지를 비호하고 있던 타케다 가문에 의지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그대로 히에이 산 화공의 소문을 방치했던 노부나가였으나, 이번에 그는 제 6군을 이용하여 정보를 쿄나 사카이(堺)에 퍼뜨렸다.

'엔랴쿠지를 썩게 한 것은 사카모토에 있는 자들'이라던가 '오다 가문은 이 이상 부처를 사칭하는 악귀들을 두고볼 생각은 없다' 등, 마치 엔랴쿠지의 부패를 개탄하여 그 원인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손에 의해 오다 군이 사카모토에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9월 초에는 쿄나 사카이에서 공공연한 사실로서 정착되어 있었다. 그 동안, 재산을 가지고 사카모토에서 도망친 자들을 노부나가는 쫓지 않았다.

나아가 사카모토 부근에 오다 군을 배치한 것은 9월 10일로, 다시 말해 9월 12일이 되어도 남아 있던 자들은 오다 군을 얕보았거나 철저 항전을 할 각오인 자들, 이라는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넣었다.


이제와서 그들이 난리를 쳐도 이미 늦었던 것이다.

쿄나 사카이에서는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속보(瓦版, 신문)이 뿌려져, 사카모토를 침공하기 전부터 노부나가에게 유리한 정보가 정착되어 있었다.

또, 코우가슈(甲賀衆)들에게 사카모토에서 도망친 자들을 연기하게 하여 정보를 확산시켰다. 정보전에서 완전히 승리를 거둔 노부나가는, 일체 사정을 봐주거나 사양함이 없이 사카모토를 멸망시켰다.


"일체의 구별 없이 몰살(鏖殺)시켜라"


목숨을 구해달라는 탄원이 오다 군에게 수없이 들어왔으나, 노부나가의 대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공격한다는 정보는 일부러 흘렸고, 전날에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도 보였다. 그럼에도 철저 항전할 자세라면 어쩔 수 없다.

이 이상 발칙한 놈들이 많은 사람들의 눈에 오탁(汚濁)에 물든 추태를 보이기 전에 베어버리는 것이 자비이다, 라고 노부나가는 주위에 얘기했다.

지금까지 엔랴쿠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있던 자들도, 사카모토에 사는 승병들의 추악함을 직접 목격하고 노부나가의 생각이 바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자신도 모르게 손에 사정을 두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노부나가는 한 가지 책략을 강구해두고 있었다.


"한번 더 묻겠다. 어째서, 사카모토의 사람을 놓아주었느냐"


그것은 아시미츠에 의한 아군의 감시였다. 아군이라고 해도 오다 군이 아니라, 이번의 사카모토에 종군한 오다 가문 가신들 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다.

이것을 행한 이유는, 히데요시가 사카모토 침공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히에이 산 화공에서 오다 군이 사카모토를 불태웠을 때,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노부나가의 명령대로 철저히 사카모토를 파괴했다.

하지만, 요코가와(横川) 방면을 담당한 히데요시는 사카보토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못본 척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태업을 한 셈이지만, 이것은 단순히 히데요시가 인도주의자라서도, 도망친 사람들을 동정해서도 아니었다.

어째서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명령에 충실했고 히데요시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는가. 그것은 그의 출생이 관계된다.


히데요시는 농민 출신이며, 미츠히데나 시바타와 달리 유력자와의 연줄이 거의 없다. 하급 아시가루(足軽) 출신이라고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다른 가문과의 연줄이 없는 것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에 반해 미츠히데나 시바타는 가문의 역사가 있었으며, 유력자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다. 이 차이가 사카모토를 공격햇을 때 대응의 차이로서 여실하게 드러났다.

즉, 히데요시는 유력자와의 연줄을 손에 넣기 위해, 사카모토에서 도망쳐온 자들 중에 '힘이 있는 자들' 만 놓아준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도움이 되어, 히데요시는 천하를 손에 넣었을 때 사카모토로부터 막대한 상납금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런 것을 노부나가는 모르지만, 그는 돈 때문에 적을 놓아주는 아군이 나타나고, 그 때문에 포위망을 돌파당하는 것을 걱정하여, 아시미츠에게 아군의 감시를 명했다.


"그, 그것은……"


아시미츠의 물음에 무장은 말끝을 흐렸다. 가까운 곳에 널브러진 어미와 아이 두 명의 시체를 일별했다. 그는 모자의 모습에 자신의 처자를 겹쳐보아버려, 자신도 모르게 사정을 봐 주어 버렸다.

하지만 아시미츠의 수하(토비카토(鳶加藤)를 필두로 하는 닌자 집단)가 자초지종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의해 그 모자는 즉시 포박되어, 문답무용으로 참살당했다.

그리고 그 시체를 무장의 눈 앞에 내던지며 아시미츠가 추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카모토의 사람은 한 명도 살려두면 안 된다. 자비는 일체 필요없다. 그 명령을 어긴 이유를 대답해라"


아시미츠가 노려보자 그 무장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에게는 아시미츠의 눈이 아군을 보는 눈으로 보이지 않아서 등골에 한기를 느꼈기에 한 발자국 물러선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태도를 켕기는 곳이 있다고 판단한 아시미츠는 눈을 약간 가늘게 떴다.


"세 명으로 용서하겠다"


"뭐……?"


"네놈이 놓아준 사람 만큼의 머리로 용서하겠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시미츠의 말에 무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하면 놓아준 사람 숫자와 같은 숫자만큼 그 자신의 부하를 죽여라, 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망설이고 있는 무장을 보고 아시미츠는 작게 한숨을 휘더니, 팔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순식간에 어딘가에서 화살이 날아와, 무장에 근처에 있던 아시가루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오다 님의 명령은 몰살이다. 그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놈에게 볼일은 없다"


항의하려던 무장이었으나, 아시미츠들의 살기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삼켰다.

이제와서 간신히 그 무장은 이해했다. 아시미츠는 자신들을 아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고, 단지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그와 명확하게 적대하게 되면, 아시미츠는 즉시 자신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몰살시키리라. 그리고 그가 자신들을 처분하더라도 그에 대한 처벌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그 무장은 충분히 이해했다.


"죄송하오. 다음부터는 주의하지"


오기(意地)와 긍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는 것을 택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무장은 후자를 선택했다.


"다음은 없다"


그 말만 하고 아시미츠는 무장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부하들을 데리고 떠나갔다. 그 뒤에 남겨진 것은 굴욕으로 이를 갈고 있는 무장과 가신들, 그리고 무참하게 살해당한 모자의 시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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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