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86 1572년 1월 상순



시즈코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월을 보내고, 2일째의 연회에도 얼굴을 내밀고, 3일째 이후에 오다 가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는 것을 마쳤다.

평소에는 시즈코의 곁을 떠나지 않는 호위대(馬廻衆)인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곁에서 시중드는 쇼우(蕭)도 친족이 있는 곳으로 귀성하여, 항상 소란스러운 시즈코의 저택도 잠시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가롭네"


아야(彩)가 끓여준 차를 마시면서 시즈코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밖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추위에 강한 동물들은 뜰에서 활기차게 놀고 있었다.

얼음이 언 연못을 미끄러지며 노는 녀석도 있었다. 가끔 넘어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미끄러져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애교였다.


정월만큼은 세상의 소란스러움(喧噪)도 잊고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직 마츠노우치(松の内, ※역주: 설에 門松(=대문 앞에 세우는 소나무 장식)를 세워 두는 동안(설날부터 7일 혹은 15일까지))인 10일 미명(未明), 미츠히데(光秀)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은 사카모토 성(坂本城) 축성(築城)을 위해 파견한 쿠로쿠와슈(黒鍬衆)에 대해서였다.

직속(子飼い)의 쿠로쿠와슈에서 축성(築城) 전문의 장인들을 선발하여, 얼마간의 자재와 함께 사카모토 성으로 파견했는데, 뭔가 문제가 발생한 건지 미츠히데로부터 장인들의 파견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탄원이 온 것이다.

사카모토 성은 엔랴쿠지(延暦寺)의 감시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성이다. 어설픈 성으로는 문제가 생기기 떄문에, 시즈코는 예정을 조정하여 본래 연말이었던 파견 기간을 해가 바뀌고 연초의 일들이 일단락될 때까지 연장했다.


미츠히데의 건이 끝나자, 그와 교차하듯 노부나가로부터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시가(志賀) 군(郡) 북부(北部)의 성을 공격할 것이므로 무구(武具)의 생산을 명하는 내용이었다.

기술자 마을과 후방 부대인 부츠류슈(物流衆, ※역주: 물류팀)에 무구류를 '컨테이너'로 운반하도록 명했다. 최근의 부츠류슈 컨테이너 수송을 주로 하고 있었다.

컨테이너의 이점은 뭐라 해도 수송 코스트가 대폭 낮아지는 점이다. 규격화된 용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한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을 컨테이너의 숫자만으로 간단히 계산할 수 있는 점도 장점이었다.


후방지원 작업은 가볍게 보여지기 쉽지만, 노부나가와 미츠히데, 그리고 히데요시(秀吉)만은 후방지원 작업은 전쟁을 하기 위해 중요하며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되는 작업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 후방지원 작업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필요하다고 설득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주종관계에 깊은 골이 생기게 된다.

그런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노부나가의 방어망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시즈코의 물자 수송 부대인 부츠류슈의 존재가 크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받은 정보와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물자 운반에 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었다. 정월부터 시간이 남아돌고 있는 오이치(お市)였다.


"심심하구나, 뭔가 없느냐 시즈코"


"책장에 도연초(徒然草)의 사본(写本)이 있습니다"


당연한 듯 죽치고 있는 이치에게 시즈코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도연초는 일본 3대 수필의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지만, 이치에게는 따분한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딱 봐도 건성인 것이 티가 나는 시즈코를 보고 이치는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눈 앞의 서류 정리에 바쁜 시즈코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시즈코―, 심심해―"


"심심해―"


챠챠(茶々)가 두 팔을 벌리며 말하자, 조금 늦게 하츠(初)가 챠챠의 포즈를 흉내냈다.


"비싸게 주고 산 조수인물희화(鳥獣人物戯画)의 사본 전권(全巻)이라면 윗칸에 놔뒀습니다"


조수인물희화란, 당시의 세상이나 풍자 등이 동물이나 인간을 이용해 희화적으로 그려진 두루마리다.


지본묵화(紙本墨画, ※역주: 수묵화나 뭐 그런 의미 같은데 검색해봐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음) 작품으로 갑(甲), 을(乙), 병(丙), 정(丁)의 4권으로 구성되며, 토끼와 개구리가 씨름(相撲)을 하고 있는 묘사가 있는 갑권이 특히 유명하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현대의 만화(漫画)에 통하는 효과 등도 포함된 작풍(作風) 때문에,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만화"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유래(成立)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으며, 각권에 이어지는 내용이 없고 필치(筆致)나 화풍(画風)도 다르기 때문에, 12~13세기에 걸친 폭넓은 연대에 복수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다른 작품을 집대성한 결과, 조수인물희화가 완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청소납언사(清少納言抄=침초자(枕草子), ※역주: 세이쇼나곤(清少納言)이라는 여류작가의 수필작품), 방장기(方丈記) 같은 건―"


"에잇, 그게 아니다. 따분한데 뭔가 재미있는 건 없느냐고 묻고 있는게다"


"친정에 가셔서 느긋하게 지내시는 건 어떠신가요"


"흥, 나는 아자이(浅井) 가문의 배신을 저지하지 못했단 말이다. 친족들은 다들 나를 꺼리고 있지. 오라버니 이외에는 다들 서먹서먹하더구나"


이치의 말을 들은 시즈코는 자신의 실언(失言)을 깨달았다. 이치는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이 동맹을 맺기 위해 아자이 가문에 시집갔다. 그러나 아자이 가문은 집안 소동 끝에 가장(家長)인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가 쫓겨나 버렸다.

동시에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치가 친족들로부터 백안시당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뭐랄까…… 죄송합니다"


"상관없다. 오라버니의 위광(威光)을 등에 업고 지껄이는 놈들 따윈 내버려두면 된다. 그런 치졸한 놈들 따윈 놔두고 말이다, 시즈코는 내 심심풀이를 돕거라"


"돕거라―"


"돕거라―"


이치, 그리고 딸들인 챠챠와 하츠가 나란히 재촉했다. 이 이상 화제를 돌리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본심을 말하면 조금 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뭐라 해도 얼핏 보기에는 그냥 적당한 사무처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중요한 처리를 중요한 듯 하면 사람의 인상에 남기 쉽다. 하지만, 지금처럼 잡담을 섞어가며 하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즉, 타인의 인상에 남지 않기에 정보가 새어나갈 우려가 적다. 결점이 있다고 하면, 지금의 이치처럼 작업에 끼어들어버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고로(高炉)의 주역은 아시미츠(足満) 아저씨고 나는 재료를 갖추기만 하는 거니까,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도 없나)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어젯밤 눈이 많이 내렸으니 썰매(ソリ)라도 타죠"


썰매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은 순간 이치가 눈을 빛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으나, 어찌어찌 참으며 준비를 했다.

필요한 것을 갖춘 후, 시즈코는 이치들을 데리고 병사 훈련소로 왔다. 지금은 정월 휴가도 겹쳐 아무도 없었다.


(훈련용의 언덕이지만, 여기면 되겠지)


본래는 앞으로 수그린 자세로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병사들의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이것저것 다 따질 수는 없었다. 정비된 언덕 같은건 잘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보도(歩道)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된다.


"겨, 겨우 다 올라온 것이냐. 후―, 피곤하구나"


설피(雪皮, かんじき)를 장비하고 있다고는 해도, 훈련받지 않은 이치들에게는 언덕을 오르는 것은 중노동이다. 정월 휴가라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마(駕籠)로 오르는 것은 포기하게 할 수 밖에 없다.


"체력을 길러 주세요. 뭐, 일단 이것에 타십시오"


"으, 음. 이러면 되느냐?"


들은 대로 시즈코는 썰매에 탔다. 삐져나온 의복을 썰매 안으로 밀어넣은 후, 시즈코는 이치의 등에 손을 댔다.


"그럼, 다녀오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시즈코는 이치의 등을 강하게 밀었다. 기세가 붙은 썰매는 눈 위를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가속해갔다.


"오, 오, 오~~~~~~~~~~~~~!"


썰매가 미끄러지는 동안 이치는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완만하지도 않은 언덕이라, 딱히 설명도 없이 미끄러지게 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운 놀이기구(絶叫マシン)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럼 아야 짱은 하츠 님을, 나는 챠챠 님을 테우고 미끄러질게―"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것을 직접 본 탓인지, 아야의 표정이 약간 굳어져 있었다. 그에 반해 하츠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에, 아야는 작게 한숨을 쉬고 썰매에 탔다.

이치와 마찬가지로 아야의 등을 밀어 미끄러지게 했다. 그게 끝나자 챠챠를 썰매에 태우고, 시즈코는 발로 땅바닥을 걷어차 기세를 붙인 후 썰매에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햐아아―――!"


"햐―――!"


시즈코와 챠챠, 둘 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미끄러졌다. 약 100m 정도 미끄러지자 언덕을 다 내려오게 되었다.


"후―, 재밌었어. 어라, 오이치 님은?"


이마의 땀을 닦은 시즈코는, 먼저 미끄러져 내려왔을 이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주위를 둘러보자, 썰매를 안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이치의 등이 보였다.


"대단히 마음에 드신 모양이라, 한번 더 미끄러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거 다행이네"


"시즈코―, 한번 더―"


"한번 더―"


이치의 행동력에 어꺠를 움츠렸을 때, 챠챠와 하츠가 썰매를 태워달라고 재촉해왔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小姓)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두 대의 썰매를 짊어졌다.




30번 정도 미끄러지자 몸이 차가워졌기에, 시즈코들은 썰매타기를 마치고 차가워진 몸을 덥히기 위해 온천에 들어갔다.


"후~, 극락이로다"


이치는 가장자리에 턱을 올리고 온천을 만끽했다. 챠챠나 하츠는 유모에게 보조를 받으며 탕에 들어가 있었다.


"(하― 치유된다) 아야 짱도 충분히 몸을 덥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시즈코도 아야를 데리고 온천을 만끽하고 있었다. 당초에 신분이 다른 자신이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며 사양한 아야였으나, 차가워진 몸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한 시즈코가 억지로 데려왔다.


(새로운 온천이 발견되어서 이용하기 편해진 게 다행이네―. 뭔가 계획서를 보니, 내 새 집은 데지마(出島) 처럼 되어 있는데…… 뭐 괜찮으려나)


본래, 온천관(温泉館)은 시즈코의 집이 대개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사용불가에 가까웠다. 하지만, 물 확보를 위해 우물을 팠을 때, 어떤 지점에서 현재 솟아나고 있는 온천과 동등한 온천이 솟아났다.

처음부터 온천이 솟아나던 곳와 새로 솟아난 온천은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노부나가는 계획을 변경하여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시즈초의 집 안에 포함시키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지금까지 최초의 온천을 기점으로 저택이 증개축되고 있었으나, 새롭게 솟아난 온천을 중심으로 새로운 저택을 건축하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온천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후우, 기분좋구나. 시즈코의 새 저택이 완성되면 나는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되는 것이 유감이다만"


시즈코의 새 집이 완성되면, 원래의 온천관은 노부나가가 관리, 새로운 온천은 시츠코 일동의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치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애초에 이치가 노부나가의 별장에 사는 것은 일시적인 조치다. 사정이 바뀌면 어딘가의 성으로 이동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런가요?"


"오라버니는 친족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나를 이리로 보내셨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머지 않아 챠챠나 하츠는 어딘가로 시집가겠지. 그렇게 되면 나도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오라버니께서 아자이 가문을 멸망시키면, 나도 신쿠로(新九郎, ※역주: 여기서는 아자이 나가마사를 말함) 님과 계속 부부로 있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상락(上洛)을 위해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을 맺기 위해 이치는 나가마사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히사마사(久政)가 배신한 시점에서 아자이 가문과 오다 가문의 동맹은 파기되었다.

현재는 히사마사가 추방한 나가마사를 노부나가가 보호하고 있는 관계상, 나가마사와 이치의 혼인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부나가가 히사마사의 본거지인 오다니 성(小谷城)을 합락시킨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확실치 않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치와 나가마사의 혼인은 끝나고, 이치는 다른 누군가에게 시집가게 되리라.

뭐라 해도 오이치는 절세의 미인이다. 시집갈 곳은 얼마든지 있으리라. 하지만 오이치는 그것으로 행복할 것인가, 는 본인 밖에 알 수 없다.


"그건 어떨까요. 쓸모없어졌으니 함부로 버린다, 라는 인상은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타인의 평가 따위 오라버니가 신경쓰실 리가 없다. 항상 어딜 보고 계신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머나먼 무언가를 이야기하시듯 말씀하시지.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라버니는"


"단순히 당대 제일의 자유분방한 분(気儘人, ※역주: 내키는 대로 충동적으로, 다소 독선적으로 행동한다는 사람이란 의미인데,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의역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핫핫핫, 그건 시즈코가 오라버니와 같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겠지. 우리들 범인(凡人)에겐 무리다. 그렇기에 오라버니는 시즈코를 매우 마음에 들어하시지"


"항상 굉장히 어려운(無茶) 일만 맡기시니, 조금은 치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오라버니가 '시즈코라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오라버니는 재능이 넘치시기에 뭐든지 혼자서 결정하고, 가신들에게는 지시대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시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을 시즈코에게 맡기고 계시니, 오라버니께서 마음에 들어하신다고 생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만"


그런 걸까, 라고 시즈코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치의 말대로, 나름 자유롭게 일을 떠맡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어떻게 노부나가가 맡긴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떄문에 영 실감이 되지 않았다.

결국 우쭐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비굴해지지 않고, 평소대로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포경선(捕鯨船)이 돌아오는구나. 그 날 저녁은 냄비 요리(鍋), 그것도 하리하리나베(はりはり鍋)이려나"


"……쿄우나(京菜, ※역주: 가짓과의 야채)와 다시마(昆布)를 요구하신 건 그 때문인가요"


옛부터 교토(京都)에서 재배되었기에 쿄우나라고 불리며, 현대에서는 미즈나(水菜)라고 불리는 가지과의 작물과 고래고개를 사용한 냄비 요리가 하리하리나베이다.

하리하리의 유래는, 미즈나의 아삭아삭한 식감을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냄비요리와 달리 다시마로 맛국물을 내고 고래고기와 미즈나만 넣는 간소한 냄비요리이다.


"후훗, 시즈코가 항구마을에서 어업 관계에 관여하고 있으니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것을 생선에 하더구나. 뭐라고 했더냐…… 처리(絞め)?"


"이케지메(活け締め)와 신케이지메(神経絞め) 말씀이신가요?"


"그래, 그것이다"


생각이 난 듯 이치는 양손으로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케지메란 어획한 후에 생선에 하는 처리법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는 피를 뺴어 선도를 유지하는 처리법을 말하지만, 단순히 생선을 죽이는 것을 이케지메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식칼로 하지만 '손갈고리(手カギ)'라고 하는 도구 쪽이 범용성이 높기 때문에, 항구 마을에서는 '손갈고리'로만 이케지메를 하고 있었다.


신케이지메란 이름 그대로, 생선의 숨골(延髄) 및 중추신경(中枢神経)을 파괴하는 처리법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연수베기(延髄斬り), 신경뽑기(神経抜き)라고도 한다.

이케지메와 달리, 신케이지메는 송곳(錐)으로 뇌와 연수를 파괴하고, 등뼈를 따라 피아노줄이나 철사(針金) 등을 넣어 충추신경을 파괴한다는 숙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이 처리를 하는 이유는, 생선의 사후경직을 늦추어 선도(鮮度)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신케이지메는 작은 생선이나 중형의 생선에는 하지 않는다. 신케이지메 처리를 하면 살이 물러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케지메는 일본에서 발상된 기술이지만, 이케지메가 꽃을 파운 것은 냉동기술이나 수송기술이 눈부시게 진보한 쇼와(昭和) 버블 시대 이후가 되어 의외로 역사는 짧다.

그것은 옛날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이 중심이었기에, 생선의 선도를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에서는 선도가 높은 생선의 수요가 생겨났다. 그 때문에 이케지메나 신케이지메라는 기술이 태어나게 되었다.


"단순히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생선의 피가 남아있으면, 그게 원인이 되어 부패가 빨라지거든요"


"과연.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 이것저것 다 생각한 행동인 것이냐"


"……자주 듣는 말인데, 저는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요"


"그럼, 슬슬 나갈까. 현기증을 일으켜도 좋지 않으니 말이다"


눈을 반쯤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를 무시하고, 이치는 재빨리 온천에서 나갔다.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쉰 후 이치를 따라 온천에서 나갔다.

몸을 닦고 욕의(浴衣)로 갈아입은 후, 시즈코는 얼음을 넣은 보리차(麦茶)를 마시며 한숨 돌렸다.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물에 초석(硝石)을 넣으면 열을 빼앗으니까 얼음을 만드는 건 의외로 간단하지. 뭐, 공기식 제빙기가 있으니 우리 집은 그런 고생은 필요없지만)


물에 초석을 넣으면 초석이 물의 열을 빼앗아 온도를 낮춘다. 그렇게 생겨난 초석이 들어간 얼음에 초석을 더 섞어서, 아무 것도 넣지 않은 물을 식히면 얼음이 만들어진다.

그 후에는 초석이 든 얼음을 물과 초석으로 분리하여 초석을 회수한다. 이렇게 하면 시기에 관계없이 몇 번이고 초석을 사용하여 얼음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애초에 초석을 쓰지 않고 공기만으로도 제빙기나 냉동고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시즈코는 효율은 좋다고 하기 어렵지만, 초기형의 공기식 제빙기를 개발했다. 그러나, 제빙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

그 문제는 제빙기 자체가 아니라, 얼음의 가치가 변화하는 것에 기인한다.

제빙기가 일반적이 되면 얼음의 가치는 격감하여, 현재 제빙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얼음을 유통시키는 물류에도 영향이 미친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정체되고, 많은 경제적 손실이 예상되는 것이다. 얼음은 사치품이라는 위치가 딱 좋은 것이다.


공기식 제빙기는 단순한 원리로 되어 있으나, 효율은 좋다고는 하기 어렵다. 얼음판 한 장 만드는 데 현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은 얼음을 만드는 것에 한정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오거(auger) 방식이라는 구조로, 차게 식힌 원기둥의 벽에 물을 천천히 흘린다.

원기둥의 벽에 생긴 얼음막을 깎아서 모은 후, 마지막에 압력을 가해 원하는 형태의 얼음을 만드는 것 뿐이다. 흘려넣는 작업으로 하는 것이라서 대량의 얼음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음은 만들 수 없다.


(스털링 엔진의 완성은 아직인가―. 저번의 보고로는 겨우 검증기(検証機) 개발에 돌입했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유압이나 공기압이 있는 것만으로 이만큼 작업 효율이 올라갈 줄은 몰랐어)


시즈코는 잊고 있지만, 엔진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상징이다. 엔진이라는 기관이 탄생된 것이 산업혁명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원시적인 엔진이라고는 해도, 스털링 엔진이 완성되면 가능한 일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진다.

코스트를 무시한다면 발전기나 냉장고, 에어컨 등도 가능해진다.

물론 개발했다고 해도 코스트가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기에, 잘해봐야 노부나가같은 한정된 권력자가 이용하는 데 그치겠지만.


"시즈코―, 차―"


두 손을 펼쳐 챠챠는 시즈코가 들고 있는 차를 요구했다. 이래서는 어느 쪽이 소성인지 모르겠네, 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시즈코는 챠챠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기쁜 듯 받아들더니 챠챠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렸다. 온천에서 뜨거워진 몸에는 딱 좋았던 듯,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한잔 더―"


"……찻잔, 두 개 정도 더 필요하겠네"


시즈코의 예상은 적중하여, 챠챠를 발견한 이치와 하츠도 마찬가지로 얼음을 넣은 차를 요구했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시즈코였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케이지 이외에는 설날에서 7일이 지나면 시즈코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전원이 한숨 돌린 지 며칠 후, 시즈코는 항구마을로 갔다.

새해 첫 포경선이 귀환한 것을 맞이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항구마을에서는 포경이 성행하고 있었으나, 다른 것과 달리 포경에는 다양한 조직이나 규칙이 존재한다. 우선 포경을 하는 사람은 모두 포경조합(捕鯨組合)에 가입해야 한다.

가입 날짜는 물론이고 신장이나 체중, 연령이나 건강 상태 등이 기록된다. 그러한 정보들은 모두 고래절(鯨寺)에 보관된다.


고래절이란 포경한 고래를 위한 위패(位牌)를 만들고, 계명(戒名)을 붙여 공양탑(供養塔)을 건립 및 관할하는 절이다. 일본에는 몇 개가 있으며, 가장 유명한 절은 시코쿠(四国) 하치쥬핫카쇼(八十八箇所)의 류우즈 산(龍頭山) 콘고쵸지(金剛頂寺)이다.

절에는 고래를 위한 위패나 공양탑, 포경조합의 명부(名簿) 외에, 포경장(捕鯨帳)이라고 불리는 포경에 관한 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포경장에는 포경한 날짜와 시간, 잡힌 고래의 크기, 대략적인 장소, 관여한 포경조합의 멤버 리스트, 해체한 부위의 매각처나 처분 방법 등, 포경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생선과 달리 고래에는 세세한 규칙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경장에 기록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운좋게 해안가로 떠밀려온 고래라 하더라도 일체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이것은 고래가 해안가로 떠밀려온다는 것은 바다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그밖에도 포경한 고래는 바로 해체하지는 않고, 일정한 순서에 따른 신사(神事)를 치른다는 규칙이 있다.


우선 고래절에 포경 보고를 하고, 주지(住職)가 고래에 계명을 붙인다.

그 후, 고래의 혓바닥을 잘라내어 바다에 흘려보낸다. 이것은 '우리들은 고래에 감사하며 남김없이 활용하겠습니다'라는 서약을 해신(海神)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혓바닥을 바다에 흘려보내고, 해신의 사자라고 간주되는 범고래(シャチ)가 고래의 혓바닥을 먹은 경우, 해신에 대한 서약은 전달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때, 만에 하나 범고래가 혓바닥을 먹지 않은 경우, 해신이 마음 속으로 켕기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여, 포경된 고래는 공양탑을 세운 후에 정중하게 장사지낸다.


"혓바닥이라고 해도 꽤 무거워……"


지구에 존재하는 최대의 동물인 대왕고래(シロナガスクジラ)는, 혓바닥만으로도 중량이 약 4톤이나 된다. 그보다 작은 개체라고는 해도, 수백 kg의 무게가 나가는 혓바닥을 운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용의 운반차가 없으면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미안하군요, 설날에 허리를 다쳐서 말입니다. 허허허"


허리를 통통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래절의 주지가 사과했다. 본래는 고래절의 주지가 운반차를 밀지만, 허리를 삐끗했기에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리로서 시즈코가 선택되었다. 나 아니라도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지위니 뭐니 성가신 것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신사니까 도와달라, 고 할 수도 없고. 아아, 벌써 혓바닥을 노리고 범고래가 모여들기 시작했네"


몇 마리인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고 주위를 정찰하는 '스파이 호핑'이라고 불리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식량을 운반해오는 운반차를 발견한 것이 무리에 전달된 듯 하다.

처음에는 3마리 정도밖에 없었던 항구에, 10마리 이상의 범고래가 모여들었다. 범고래는 한 종류밖에 존재하지 않는 종이지만, 식성이나 사이즈에 따라 대략 4가지로 분류된다.

큰 개체라면 고래조차 사냥하는 범고래로, 그런 그들이 좋아하는 고래의 부위는 혓바닥과 입이다.

여담이지만 범고래라고 하면 귀엽게 들리는데 영문 명칭은 '킬러 웨일(Killer Whale)', 학명은 '명계(冥界)의 마물(魔物)'이라는 무서운 이름이 붙어 있다.


"뀨잉뀨잉"


거체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울음소리로 우는 범고래들. 남은 건 운반차를 소정의 위치까지 이동시키고, 주지가 공양의 기도(祈祷)를 올린 후,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흘려보내면 완료된다.


"앗! 이놈이!"


운반차를 다 옮겼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 좋은 예감이 든 시즈코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칼을 한 손에 들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지스님, 물러나세요!"


시즈코의 목소리에 주지도 비상 상태임을 깨달았는지,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며 운반차 뒤로 숨었다. 그걸 보고도 남자의 행동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 목표는 시즈코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 어쩌지. 신사라서 날붙이 종류는 전부 두고와 버렸어!)


날붙이 종류는 '벤다'라는 것 때문에 불길하다고 여겨져, 신사에서는 기본적으로 쓰지 않고 휴대가 허용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주위를 둘러싸는 호위들도 신사라는 것 때문에 떨어져 있던 것도 불행이었다.

상대는 작은 칼만 보이고 있었으나, 그 이외에도 뭔가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불리한 상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어딘가에서 그 남자를 노리고 돌이 날아왔다.

시야의 바깥에서 날아온 돌을 피하지 못하고, 남자는 두 개의 돌에 맞은 충격으로 밸런스를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고꾸라졌을 때 작은 칼을 놓친 듯 하여, 작은 칼은 땅바닥을 굴러 시즈코의 발 밑으로 미끄러져왔다. 찬스라고 판단한 시즈코는, 작은 칼을 빼앗으려 달려나갔다.

한편, 몸을 일으킨 남자도 작은 칼이 앞에 굴러가고 있는 걸 깨닫고 당황해서 일어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으라차―!"


약간의 차이였으나 남자 쪽이 빠르게 작은 칼을 붙잡았다. 하지만, 남자가 일어서기 전에, 시즈코가 남자의 얼굴을 힘껏 걷어찼다.

작은 칼을 잡는 것에만 의식을 집중하고 있던 남자는, 시즈코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얻어맞아 그 기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아무리 시즈코가 여자라도 의식의 바깥쪽에서 발차기를 맞으면 뼈아픈 일격이 된다. 특히 머리는 잘만 맞추면 뇌를 뒤흔들러 행동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시즈코의 발차기가 뇌까지 대미지를 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남자가 일어나지 않는 걸 보고 용케 의식을 끊을 수 있었던 것을 기뻐했다.


"작은 칼이라니 위험하네 위험해. 자, 얼른―――――――――"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경련하고 있던 남자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을 비틀어 일어나더니, 도망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어서 도망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시즈코는 당황해서 바다 쪽을 보았다.

뛰어든 남자가 허공을 날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어 시즈코가 주위를 둘러보자,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남자의 주위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허공을 날았던 남자의 몸이 수면에 내팽개쳐졌다. 틈을 주지 않고 남자의 몸이 다시 허공을 날았다. 남자가 허공을 날 때 범고래의 등지느러미가 보이는 것을 보니 꼬리나 몸 전체를 활용하여 내던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고래가 쳐올리는 힘은 강력하여, 100kg짜리 바다사자(アシカ)를 수면에서 20m 이상 날려보낼 수도 있다.

일설에는 꼬리로 사냥감을 수면 위로 집어던지는 행위는 새끼에게 사냥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현대에도 확실한 이유는 판명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령 범고래가 장난으로 쳐올렸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생명의 위기에 처하는 위험한 공격이라는 것이다.


5번 정도 날려지는 것을 보고 있자, 시즈코 근처에 범고래들이 몰려들었다. 물기둥을 뿜고 있는 것을 보고, 시즈코는 범고래들이 어서 고래 혓바닥을 내놓으라고 재촉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주지스님, 주지스님. 범고래들이 굉장히 화가 나 있어요. 얼른 신사를 재개하죠"


겁에 질려 있는 주지를 재촉하여 신사를 재개했다. 혼란스러웠던 것인지 이것저것 빼먹은 주지였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틈은 없었다.

모두 끝나자 시즈코는 운반차를 기울여 고래의 혓바닥을 바다로 떨어뜨렸다. 즉시 범고래들이 모여들어 고래의 혓바닥을 차례차례 뜯어먹었다.

남자를 가지고 놀고 있던 범고래들도 고래 혓바닥을 확인했는지, 마지막으로 남자를 꼬리로 날려버린 후에 쏜살같이 고래 혓바닥이 있는 곳까지 왔다.

무리 중에는 범고래의 새끼가 있는지, 어른들에 섞여 열심히 고래의 혓바닥을 먹고 있었다.


"후우, 간신히 항구가 부서지지 않고 끝났네. 주지스님, 돌아가죠"


남자가 쓰던 작은 칼을 주워들고, 슬슬 주저앉을 듯한 주지와 함께 돌아갔다.


(음―, 직접적인 살상 행위에 나섰다, 라는 건 위험인물로 보이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아무래도 궁금하지만, 어차피 저 남자는 신분을 알려주는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겠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타케다(武田). 하지만 지금도 침묵하고 있는 호죠(北条)도 수상하려나. 우에스기(上杉)는 암살 따윌 했다간 가신들의 결속이 산산조각날테니 그런 건 실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도 좋으려나)


작은 칼의 제작자를 확인하면 흉기의 출처를 어느 정도는 특정할 수 있지만, 그것도 미묘한 부분이다. 살고 있는 장소에서 구입했는지, 아니면 임무 도중에 손에 넣었는지 시즈코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지 기대하진 못하겠네,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작은 칼을 집어넣었다. 주지를 데리고 신사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일별했다.


"우발적인 문제가 일어났지만, 어찌어찌 신사는 마쳤습니다. 해신님의 사자는 고래의 해체를 허락하셨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시즈코가 무사히 신사가 끝났음을 고하자, 그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소의 문제는 있었으나, 올해의 첫 포경의 신사는 완료되었다. 그 후에 남자가 어떻게 되었는진 알 수 없었다. 범고래가 몇 번인가 던져올리다 싫증난 이후에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찾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시즈코는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보다도 항구 마을의 경비대(警備衆)가 날듯 달려와서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는(土下座) 것을 진정시키는 쪽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면목이 없습니다"


"자, 자, 사람은 누구나 실패는 있는 법이에요. 이번 사건으로 배를 가를 필요는 없어요. 그보다 실패를 어떻게 만회할지를 생각해 주세요"


"예, 옛―! 시즈코 님의 관대함(寛恕)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울 것 까지야) 아직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는데, 건강에 주의하면서 직무를 수행해 주세요"


한번 더 깊이 고개를 숙인 후 경비대원들은 떠나갔다. 자객보다도 경비대에 대응하는 것에 피곤해진 시즈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돌로 원호해준 건 고마웠어요. 하지만 설마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어요"


시즈코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자객에게 돌을 던진 인물인 케이지, 그리고 쿄에서 만났던 연하의 소년 쪽을 돌아보았다.


"우연이야. 그보다 돌을 던진 건 이 녀석 쪽이 빨랐으니, 인사는 이 녀석에게 해줘"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야. 게다가 전에 쿄에서 신세를 졌으니까"


히죽 웃으며 케이지는 엄지손가락으로 연하의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가 묘하게 좋은 것에 시즈코는 고개를 갸웃했다. 듣자하니 유곽(花街)에서 만나서 의기투합, 그대로 함께 떠들썩하게 놀았다는 것이다.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들었을 때, 시즈코의 어깨에 척 하니 손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자 생근 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 코토(琴)가 그곳에 있었다.


"시즈코 님, 그 두 사람의 계산, 지불해 주시겠나요"


그녀는 왼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말했다. 기세좋게 케이지 쪽을 돌아보자, 두 사람 다 시즈코에게 양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었다.


"……얼마인가요"


이런 일로 호위대가 끌려가서 감옥에 쳐넣어지는 것은 수치다, 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대금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코토는 생긋 웃으며 청구하는 금액을 제시했다.


"……얼마나 놀면 그만한 금액이 되는 건가요"


"두분 모두 그야말로 즐겁게 노셨으니까요, 최상급의 접대를 해드리지 않는다면 저희들의 수치입니다"


"노린 거군요"


"시즈코 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시즈코의 말을 코토는 유유히 받아넘겼다. 이 이상 추궁해도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시즈코는, 무거운 한숨을 쉬면서 지갑을 꺼냈다.


"여기 있어요"


"매번 감사합니다. 또 이용해 주십시오"


"이런 건 두번은 사양이에요"


시즈코의 불평에 킥 웃은 후, 코토는 시즈코의 귀에 입을 가져갔다.


"(조심하십시오. 저 어린애(童子)는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近習)인 요로쿠(与六)입니다.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만 하고 코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정체에 머리가 아파졌으나, 지금 그 말을 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즈코는 입을 다물었다.


"나 참, 둘 다 나중에 출세하면 갚아줘요. 그럼 돌아가죠"


"아, 잠깐 기다려줘"


전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그것을 소년, 훗날의 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인 요로쿠가 제지했다.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에 발을 멈추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일단 이야기는 들어볼게"


"아까 노자가 다 떨어졌어. 눈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당분간 신세지고 싶어"


"너는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노자가 없으면 일하면 되잖아. 이 근처에는 숙식이 포함된 노동 정도는 모집하고 있거든"


머리가 아파졌다. 설령 그가 나오에 카네츠구가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숙식 포함 노동을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를 거절하여 그게 켄신(謙信)에게 전해져 나쁜 인상을 주게 되어버리면 큰 문제다.

노부나가가 켄신과 신겐(信玄)에 대해 직접 대결을 피하고 회유하는 정책을 항상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 정책을 박살내버릴 수는 없다.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한 시즈코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생각했다.


"시즛치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 당분간 머물러. 그거라면 문제없겠지?"


고민하고 있는 시즈코에게 케이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케이지는 작은 암자(庵)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곳에서 시즈코의 저택으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사람들의 눈에 띈다.

전원에게 이야기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보다, 일부러 빈틈 하나를 만들어 케이지에게만 이야기해두는 쪽이 효율적이라고 시즈코는 결론지었다.


"……그럼 그걸로. 제대로 '대응'하면 아까 빌려준 돈은 없던 걸로 해줄게요. 실패하면 두 배로 받을 거에요"


"좋았어! 꼬마야, 조금 좁지만 내 암자에서 묵어라"


"신세지는 입장이니 장소에 불평하거나 하진 않아. 눈이 녹을 때까지 신세 좀 지겠어"


두 사람은 굳은 악수를 교환했다. 막역(莫逆)한 친구라고 말하듯 사이가 좋아진 두 사람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머리가 아파지는 얘기였다.


"어이쿠, 잊고 있었군. 내 이름은 요로쿠, 우에스기 가문의 근시야. 지금부터 잘 부탁해, 핫핫핫핫!"


지금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고 있던 시즈코였으나, 카네츠구의 말 한 마디에 그 계획은 기초부터 산산조각으로 분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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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