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2년 히에이 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074 1571년 1월 상순
정월(正月), 노부나가의 주연회(酒宴会)는 해를 거듭할수록 호화현란(豪華絢爛)해졌다.
말린 새끼 멸치(田作り), 흑태(黒豆), 말린 청어알(数の子) 등 축하용 생선 3종은 물론이고, 새우의 우마니(うま煮), 다시마말이, 니시키타마고(錦卵), 다테마키(だて巻き), 생선회(なます) 등 행운을 비는 설 요리가 준비되었다.
술은 탁주(濁酒)가 아니라 귀중한 청주(清酒)가 준비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노부나가의 힘을 과시하는 요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면이 드러나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노부나가는 작년, 외교나 전투 첩보에서 대패를 맛보고, 한때는 존망(存亡)의 위기에 섰었다.
간신히 위기를 벗어난 노부나가였으나, 그 상처는 얕지 않았다.
숙장(宿将)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서의 부상에 의해 전선에 설 수 없게되고, 다수의 무장들과 병사들을 잃고, 대량의 이탈자가 발생해 버렸다.
만성적인 지휘관 부족인 오다 군에게 많은 무장을 잃은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또, 모리 요시나리가 현역에서 물러난 것 때문에, 군 내부의 역학관계가 크게 변했다.
지금까지는 노부나가의 오른팔인 모리 요시나리가 군의 정점이었으나, 그가 은퇴했기 때문에 차점(次点)인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등 5대 장수가 군의 정점을 둘러싸고 서로 견제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5대 장수의 아래가 되긴 하지만, 시즈코 또한 오다 군 내부에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무기탄약의 제조 및 보급, 식량의 증산 등 간접적으로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우사 산성을 지켜낸 것, 그리고 도쿠가와(徳川) 군과 협력했다고는 하나 롯카쿠(六角) 씨를 물리친 무공에 의해, 유력한 무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시즈코 군이 다른 군과 다른 점은 축성(築城) 능력이 높은 점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희생을 최소한으로 억제한 전략을 기본으로 삼는 점이다.
"영주님께서 기분좋게 새해를 맞이하신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새해 인사를 드리려 왔습니다"
정월의 문안인사를 위해 시즈코는 출사(出仕)했다. 시즈코는 기본적으로 매년 정월 2일에 출사하여 노부나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정월의 설날(元旦)에 다도회(茶の湯)가 열리는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전국시대, 다도회는 영주나 무장들 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교양으로서 널리 전해져 있었다.
센노 리큐(千利休)의 딸은 사사(師事)받은 기록이 있으며, 또 히데요시의 생모나 처(北政所)는 센노 리큐에게서 다도를 배웠다.
하지만 코보리 엔슈(小堀遠州)가 센노 리큐나 '오리베 취향(織部好み)'이라는 유행을 가져온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로부터의 다도의 흐름에서 독자적인 화도(華道)를 확립할 때까지, 다도회는 카이세키 요리(懐石料理)를 수반하는 접대가 기본이다.
특히 정월의 다도회는 오다 일족이나 가신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정치색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시즈코는 가능한 한 정월의 다도회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음, 올해도 잘 부탁한다"
시즈코의 인사에 노부나가는 기분좋게 대답했다.
노부나가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항례의 주연회(酒宴会)에 참가하고, 그게 끝나면 귀가이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며칠에 걸쳐 다른 오다 가문 가신들에게 인사하러 다닐 필요가 있다.
연초의 인사가 끝나면, 다음에는 금년의 개발 계획을 정리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오다 가문 내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쓸데없는 정치동란(政治動乱)에 말려드는 결점은 있으나, 대형 프로젝트를 통과시키기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그리고 작년에 무공을 세운 것 때문에 시즈코는 더욱 예산을 획득하기 쉬운 입장이 되었다. 예산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개발의 규모와 숫자는 늘어난다.
"올해는 거울(鏡), 자석(磁石) 육분의(六分儀), 거리 측정기(測距儀), 해시계 컴퍼스(日時計コンパス), 각종 원형 계산척(円形計算尺), 기계식의 해양 크로노미터(chronometer), 스털링 엔진(Stirling engine)…… 좀 숫자가 많으려나"
거울, 자석, 육분의, 거리 측정기, 해시계 컴퍼스, 각종 원형 계산척은 이미 제품이 완성되어 있지만, 이러한 도구류의 규격 통일 및 양산 체제 구축이 계획의 주안점이다.
특히 거울은 육분의, 거리 측정기, 자석은 해시계 컴퍼스의 중요한 부품이다. 공업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크로노미터는 나중에라도 괜찮지만, 스털링 엔진은 빨리 됐으면 좋겠네"
1816년, 스코틀랜드의 목사인 로버트 스털링(Robert Stirling)이, 실린더 내의 가스(또는 공기)를 외부에서 가열, 냉각하여, 부피의 변화를 이용하여 동력(仕事)을 얻는 외연기관(外燃機関)을 개발했다.
고압의 증기 보일러 폭발사고를 자주 일으키던 증기기관(蒸気機関)과 달리, 저압 공기를 쓰는 스털링 엔진은 보일러 폭발사고의 위험성이 없었다.
그 장점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많은 스털링 엔진이 제조되었으나, 수십년 후에 가솔린이나 디젤 기관이 발명되면서 동력의 주류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높은 열효율을 증명해보인 스털링 엔진은 그 후에도 연구가 계속되어, 근년(近年)에는 석유 이외의 에너지 이용을 목적으로 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스털링 엔진은 조용한 엔진, 원리상으로 고효율, 가솔린이나 디젤 기관과 달리 배기가스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리고 뭣보다 열원을 가리지 않는 이점이 있다.
다만 엔진을 대형화시킬 수 없어, 출력이 큰 엔진을 만들 경우에는 기밀성(気密性)을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 기술적 과제로 거명된다.
스털링 엔진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시즈코의 제 1목적은 뜨거운 물을 열원으로 한 프리 피스톤(free piston) 스털링 엔진이다.
출력은 작지만 적은 부품으로 제조가 가능한 점과, 열원이 뜨거운 물이면 된다는 이점이 있다.
뜨거운 물로 움직이는 스털링 엔진이 완성되면, 제 2단계는 열원을 뜨거운 물에서 고구마로 변경한다.
고구마가 선택되는 이유는 재배가 쉽고 수확량이 많기 때문에 공중 재배가 가능하며, 건조시키면 석탄 대용의 칩(chip), 발효액을 증류시키면 가솔린 대용의 에탄올(ethanol), 쇠똥과 함께 가열하면 메탄가스를 발생시키는 등, 천연 에너지 중에서도 우수한 에너지 작물이다.
현대에서 작물을 식용이 아니라 연료로 사용하면 가격상승 문제가 발생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식량을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스털링 엔진이 실용화되면,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선박이다.
스크류 프로펠러를 부착하면, 군선(軍船)으로서도 수송선으로서도 이동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이동속도의 향상은, 후방지원능력과 전투능력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맞다, 스크류 프로펠러의 현재 상황을 들어두자"
거기서 시즈코는 간신히 스크류 프로펠러의 현재 상황을 별로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의 그녀라면 있을 수 없는 실책이지만, 시가의 진(志賀の陣)에 의한 제 1차 오다 포위망에 대한 대응에 시간을 빼앗겨, 선박 개혁에 관여할 시간을 전혀 낼 수 없었다.
시즈코는 아야(彩)를 통해 노부나가의 수군인 쿠키(九鬼) 수군(水軍)에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지 않지만,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가 이끄는 쿠키 수군은 오다 군 내에서 몇 안되는 수군이다.
세키가하라(関ヶ原) 전투에서 서군(西軍)에 가담해, 패배하여 자결할 때까지 노부나가나 히데요시(秀吉) 휘하의 수군으로서 쿠키 수군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의 경력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제 1차 키츠(木津) 하구(川口) 전투에서 참패한 후에 건조한 철판을 두른 대형의 아타케부네(安宅船), 소위 말하는 철갑선(鉄甲船)의 건조이다.
현재 철갑선은 건조되고 있지 않지만, 스크류 프로펠러의 실용화, 모우리(毛利) 군이 사용하는 호우로쿠다마(焙烙玉), 사이카슈(雑賀衆)가 사용하는 호우라쿠히야(焙烙火矢)에 대한 대책, 용골의 실용화를 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지만, 노부나가의 이해를 얻었기에 연구 자금이 고갈될 일은 없었다.
스크류 프로펠러가 실용화되면 이동 속도가 증가하고, 용골이 실용화되면 군선의 충돌공격이 가능해진다.
전국시대에 존재하는 군용선박은 대형의 아타케부네, 중형의 세키부네(関船), 소형의 코하야(小早) 등 세 종류가 기본이다.
그밖에도 병사나 군량을 운반하는 니부네(荷船), 세키부네나 니부네에 누각(井楼)을 설치하여 높은 위치에서 적의 군용선박을 공격하는 세이로부네(井楼船) 등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본 배는 용골을 사용하지 않고, 판재(板材) 못과 '걸쇠(かすがい)'로 연결하는 조선법을 채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가볍고 쾌속하다는 이점은 있으나, 서양이나 중국의 배보다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충돌에 의한 파손에는 약하다.
따라서 충돌 공격용의 고정 무장인 충각(衝角) 공격을 받으면 항행 불능에 빠지거나 최악의 경우 침몰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충각에는 아군 선박과 충돌했을 때 피해가 심각해진다는 결점이 있어, 사용할 때는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며칠 후, 요시타카(嘉隆)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 개발이 한참 진행중이라 상대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오다 님께 그때그때 보고하고 있습니다"였다.
정말로 상대할 시간이 없는건지, 아니면 2중 보고에 의한 정보유출을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을 알 수 없지만 상대의 대응이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무난한 답변을 쓴 편지를 보내는 데 그쳤다.
"후추의 성장은 어땠더라. 볼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이 틈에 체크해두자"
후추의 하우스 재배는 처음에는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후추의 수확이 가능하다.
내년 이후에는 묘목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아, 서서히 일본 국내의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
"순조롭네. 고기 요리에 후추는 필수니까…… 뭐 지금은 그렇게까지 필요없지만"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고기에 자주 쓰이는 후추는, 서양인에 비해 일본인의 소비량이 적은 점이다.
그에 반해, 고추(唐辛子)의 소비량은 크게 증가한다. 고추 자체가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고추를 주로 한 조미료(mixed spice)인 시치미(七味) 고추(七味唐辛子)를 만든 것이 원인이었다.
노부나가의 출점 러시에 의해 각 업계는 정신없이 바빴다. 특히 건축업계가 바빠서, 쿄(京)에 있는 목수들로는 부족하야 각지에서 목수들이 호출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목수들의 식사였다. 특히 지방의 목수들은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서 일하러 와 있기에, 식사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단순한 요리점에서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이유는, 목수들이 배불리 먹는 것을 꺼려하여 식사를 잘게 나누어 먹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를 하기보다, 얼른 식사를 끝내는 쪽이 좋다, 는 것 때문에 패스트 푸드 종류, 특히 카케소바(かけ蕎麦)가 선호되었다.
카케소바는 추운 시기에 선호되는 먹거리였기에, 가을에서 겨울에 걸친 건축 공사에 종사하는 목수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도 당연했다.
초기의 고명은 파 뿐이었지만, 작년에 고로(五郎)가 쿄에 체류하고 있을 때, 새로운 고명으로서 튀김 찌꺼기, 고춧가루(一味唐辛子), 시치미 고추를 시험했다.
이 때, 그는 스스로 소바를 뽑는 게 아니라 국수집(そば屋)에 의뢰하여 새로운 고명을 시험했기 때문에, 근처에 있던 목수들이 고로의 행동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의견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고로는, 새로운 고명을 목수들에게 시식하게 했다. 그 중에서 시치미 고추가 가장 높게 평가되고, 그 이야기가 목수들 사이에서 퍼져 순식간에 대유행하게 되어 버렸다.
"내년의 고추 생산은 엄청나지겠네. 뭐, 지금은 시치미 고추 정도에밖에 쓰지 않고, 그 이외에 수요가 나올 거라곤 생각되지 않으니 괜찮지만"
후추의 하우스 재배를 체크한 후, 다른 농작물이나 과수원의 상황도 확인했다.
과수는 수확이 성공하면 묘목이 순차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보내져 생산량의 증가가 꾀해지도록 계획되어 있었기에, 과수원에는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었다.
과수의 증산도 접붙이기와 꺽꽂이 기술 덕분에, 몇 년 안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
'복숭아 밤 3년, 감 8년, 매실은 가뿐히 13년, 유자는 어처구니없이 18년(그 밖에도 패턴이 있음)'(※역주: 뭔가 일본어식의 가락맞추기로 보임, 원문은 桃栗3年柿8年、梅はすいすい13年、柚子は大馬鹿18年)이라고 할 정도로, 씨앗에서부터 재배한 경우에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접붙이기로 재배하면 유자라면 3년에서 4년, 늦어도 5년이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물론, 비료나 재배 방법에 따라 그 이상 느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4년이면 과실을 수확할 수 있다.
매실도 4년에서 5년으로, 꺽꽂이나 접붙이기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품종일수록 효과를 발휘한다.
"귤을 수확한 다음 컴파운드 보우의 연습을 할까"
무장들이 숙박하는 무가저택(武家屋敷)과 함께 궁도장(弓道場) 등 몇 가지 훈련장도 건축되었다. 시즈코는 귤을 세 개 정도 수확한 후, 약 100미터 거리의 과녁장(遠的場)에 들어갔다.
거의 시즈코 전용이라고 해도 좋은 도장이지만, 표적은 3개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시즈코도 겨울의 추위가 혹독한 시기 외에는 과녁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와 다리만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며 기마 사격을 주축으로 훈련하는 시즈코와 궁기병대에게, 움직이지 않는 과녁은 그다지 훈련이 되지 않았다.
특히 궁기병대는 시즈코 부대 중에서도 유일한 정예부대이다. 그 때문에 특히 엄격한 훈련 내용이 실시되고 있다.
흐름이 빠른 강에서 과녁을 흘려보낸 후, 그걸 75m 이상의 거리에서 기마 사격하는 훈련을 본 오다 가문 가신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야간 훈련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밤눈이 밝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과녁이라면 50m 가까이 떨어져도 8할의 명중률을 보였다.
"……으―음, 미묘하네"
설령 100미터 떨어져 있어도, 요령만 알면 과녁에 명중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뭣보다 의욕을 잃게 하는 것은 혼자라는 것이었다. 호적수가 있기에 훈련에 의욕이 나는 것이고, 혼자서 화살을 명중시켜봐야 중압감은 느껴지지 않고 재미도 없다.
"안 되겠네, 훈련에 집중이 안 돼. 이거라면 겨울 산악용 장비를 하고 사슴을 찾는 편이 낫겠어"
늘어진 상태에서 훈련해도 의미는 없다는 것을 이해한 시즈코는 훈련을 중단하고 궁도장을 정리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 님"
귀가하는 모습이 보였는지, 현관에서 아야가 마중해 주었다. 지저분한 곳을 털어내고, 컴파운드 보우 등을 그녀에게 넘기며 정리를 부탁했다.
"그러고보니 아야 짱은 정월에 집에 안 가?"
케이지(慶次)나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키묘마루(奇妙丸)는 정월인 관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야는 한 번도 집에 간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더 생각해보면 아야의 가정 사정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걸 시즈코는 이제와서 깨달았다.
"영주님께 듣지 못하셨나요. 제게는 돌아갈 집도, 의지할 친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 처럼 집에 돌아갈 일이 없습니다"
"어…… 그, 괜찮으면 알려줄 수…… 있을까?"
"딱히 감출 일은 아니니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은 난세입니다. 어디에나 있듯이, 제 부모님이나 형제는 전투에 말려들어 살해당했습니다. 친족은 기억이 없기에, 살아있는지 죽었는지조차 모릅니다"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아야 본인에게서 들은 내용에 시즈코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아야는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듯, 평소의 냉정하고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후 이런저런 일을 거쳐 영주님이 주워주셔서, 지금은 시즈코 님을 섬기는 몸이 되었습니다"
"응…… 왠지 미안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디에나 있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신경써주실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안심해주십시오. 몸은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시즈코 님께 병이 옮을 일도 없습니다"
시즈코의 아야에 대한 첫인상은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를 듣고 그건 오해였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아야는 10세도 되기 전에 어른스러운 아이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과연, 처음에 내 방을 뒤졌던 건, 그런 임무를 받았기 때문이구나)
갑자기 몸종이 주어진 의미에 대해 시즈코는 간신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뭘 하려는 건 아니고, 또 이제와서 과거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생각도 그녀에겐 없었다.
당시의 노부나가는 시즈코를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자 몸종에게 감시하게 한 것은 시즈코를 어느 정도 배려했다고 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 뭐, 나는 아야 짱의 과거를 알았다고 해서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거나 하진 않을테니, 아야 짱도 출생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출생을 속이는 것 따윈 무장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니까"
후에 오다 가문 가신들 중 투톱이 되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 두 사람의 출생에 관한 것은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경력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지만, 초창기에는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아, 정말로 공을 세웠는지 수상한 면이 있다. 그에 비하면 아야가 과거에 노예생활을 했던 것 따위는 시즈코가 볼 때는 신경쓸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신경쓰지 않으니까, 아야 짱도 신경쓸 것 없어"
무거워지기 시작한 분위기를 흩어버리듯, 시즈코는 대화를 억지로 끊었다.
시즈코가 살고 있는 곳에는 온천이 솟아나고 있다. 매일 상당한 탕이 솟아나와 강으로 흘러가고 있으나, 전혀 고갈될 기색이 없었다.
화산이 부근에 없기에 비화산성(非火山性) 온천으로 분류되지만, 그 열원(熱源)은 명확하지 않다.
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은 겨울에도 따뜻하여, 몸을 녹이기 위해 많은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은 동물 대집회(大集合)라고 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 동물 대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동물도 있었다. 작년에 출산한 암컷 터키시 앙골라, 하나였다.
터키시 앙골라는 9월 무렵부터 발정기에 들어가서, 2개월 후인 11월 무렵에는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아케치 미츠히데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는 출산 실패로 사산, 노부나가와 사키히사(前久)는 3마리가 태어났으나 1개월이 지나기 전에 두 마리가 사망했다. 추위에 새끼고양이가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시즈코가 있는 곳에는 천연의 난방실에 하나가 자리잡고, 거기서 4마리 출산했다. 남탕측을 점거했기 때문에 남성진들은 며칠이나 목욕탕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딱히 불만을 말하지 않고 흐뭇한 미소와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새끼고양이의 출산에 흥분했던 나가요시의 경우에는, 찬물로 목욕해도 문제없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다. 물론, 나중에 감기에 걸려 드러누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로부터 1개월은 필드 스코프로 상황을 확인하면서도 어미 고양이인 하나에게 맡겨놓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에게 너무 신경을 쓰면, 스위치가 전환된 것처럼 갑자기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의 육아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나면 새끼 고양이에게는 이런저런 교육을 시켜야 한다. 특히 1개월 무렵부터는, 어미 고양이의 모유 뿐만이 아니라 이유식도 먹일 필요가 있다.
새끼 고양이가 부모 고양이로부터 자립하는 생후 6개월까지의 교육이나 육아로 새끼 고양이의 성격이나 능력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생후 1개월의 새끼 고양이라고 하면, 뭐라 해도 장난감에 대한 반응이 대단히 좋았다.
원래는 어미 고양이가 살아있는 쥐를 주지만, 쥐를 발견하면 잡아먹는 동물이 많기 때문에 쥐를 발견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워져 있었다.
그 대신 팩티스로 구체(球体)를 만들어서, 천으로 보호된 간이 고무공을 줬는데, 반응은 예상 이상이었다. 매일 고무공을 상대로 놀고, 가끔 나가요시가 몰래 고양이 장난감(猫じゃらし)으로 상대를 해주었다.
나가요시는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하나가 있는 장소는 필드 스코프로 감시할 수 있는 위치였기 때문에, 금방 모두가 알게 되었다.
지적하면 화를 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다만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셰퍼드는 며칠 편차가 있기는 했으나, 나란히 발정기에 들어갔다. 생후 몇년인지 모르지만, 2년은 넘었다고 생각해서 시즈코는 세퍼드들을 베이스(台雌)로 한 계획을 개시했다.
그것은 회색 늑대를 종견(種犬)으로, 저먼 셰퍼드 독을 베이스로 하는 저먼 셰퍼드 울프독(wolfdog) 계획이었다. 교배 계획은 네덜란드 원산의 사를로스 울프혼드(Saarloos Wolfhond, ※역주: 사를로스 울프독(wolfdog)이라고도 함)에 가깝다.
울프독(늑대개)이란 이름 그대로 개와 늑대의 교잡종, 또는 교배를 통해 태오난 개의 품종을 가리킨다.
고도의 사회성을 가지며, 우수한 청력과 후강을 가지고, 높은 지성을 갖는 늑대개이지만, 독립성이 대단히 강하다. 현대에서도 늑대개가 적은 이유는, 훈련이 어려운 부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시즈코는 그냥 가지고 싶어서 울프독 계획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금 상태로는 자신은 역사의 한 구석에 남더라도, 비트만이나 카이저, 쾨니히 등은 남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는 그들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는 증거를 역사에 새기고 싶었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늑대는 무리의 최상위의 페어만 교미하지만, 현재 상황은 예외적으로 무리의 정점에 있는 시즈코가 아니라 비트만과 바르티가 교미하고 있다.
여기에 카이저나 쾨니히, 아델하이트 등을 개와 교미시키면 과연 무리가 성립해 줄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시험삼아 루츠와 셰퍼드를 넣어봤지만, 갑자기 격리된 것 때문에 루츠의 스트레스가 올라가 맥없이 실패했다.
리터는 부모의 교미를 봤었는지, 교미하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재빠르게 교미했다.
참으로 재빠른 행동이지만, 역시 모르는 개와 같이 있게 되는 건 스트레스였는지, 한동안 어리광부리는 버릇이 나왔다.
아델하이트는 넣어지자마자 셰퍼드에 대해 격한 공격성을 보여서 실패했다.
쾨니히는 대단히 담백했다. 즉시 상황을 이해했는지 셰퍼드와 교미했다. 하지만 끝난 후에는 빨리 꺼내달라고 말하는 듯 울부짖었기에 시즈코는 서둘러 그를 풀어주었다.
카이저도 쾨니히와 마찬가지로 이해력은 높았지만 이쪽은 더 심각했다. 당분간 시즈코 곁을 떠나지 않고, 그녀가 자고 있을 때도 곁에 있을 정도로 어리광부리는 버릇이 나왔다.
리터와 달리 카이저는 거구였기에 어리광을 받아주는 데 좀 고생했지만, 무리가 붕괴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값싼 대가라 생각하고 당분간 카이저들의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이걸로 세 마리의 유전자가 이어져, 그 후에는 태어나는 강아지들 중에서 우량 개체를 선별하고, 다시 시바견(柴犬) 등과 교배해나가는 것으로 우수한 저먼 셰퍼드 울프독이 탄생한다.
그들의 자식들이, 손주들이, 후세에 경비견으로 활약할 것을 시즈코는 바랐다.
"수컷 부채머리 독수리를 부탁했는데, 금방 수송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네. 아카와 쿠로는 알아서 데려올거라 생각하지만, 우리 집에 둥지를 만들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보고서를 읽은 시즈코는 머리가 아팠다. 부채머리 독수리는 짝을 평생 바꾸지 않는 맹금류이기에, 수컷 부채머리 독수리를 일본으로 보내달라고 프로이스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부채머리 독수리를 포획하는 것은 어렵고, 게다가 시로가네가 수컷을 마음에 들어할지가 미지수였다. 아카가네와 쿠로가네의 경우에는 품종을 알 수 없었다. 두 마리는 자력으로 짝을 찾게 할 수밖에 없다.
"시즈코 님, 바테렌(伴天連, ※역주: 여기서는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카톨릭이라고 하기 보다, 설명적인 목적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부르는 명칭으로서 바테렌이라고 썼음)으로부터 예의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오! 드디어 도착했나! 당장 온천실(温泉室)…로 그걸 옮겨놔줘!"
읽고있던 보고서를 근처에 던져버리고 시즈코는 의기양양하게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한숨을 쉰 후, 아야는 시즈코가 던져버린 보고서를 주워들었다.
"의외로 빨리 썩네, 카카오는"
열어본 과실 중 태반이 썩어있었기에, 시즈코는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가 프로이스에게 부탁한 식물, 그것은 작년에 의뢰한 커피와 카카오의 묘목과 씨앗이다.
일본에서는 재배가 불가능하다고 흔히 생각되는 카카오지만, 실은 이즈(伊豆)에서 카카오 재비를 하고 있는 농장은 몇 군데 있다.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카카오를 어떤 방법으로 재배하는가, 그 비밀이 온천에서 나오는 폐탕(排湯)이다.
온천에서 나오는 탕은 태반이 쓰이지 않고 버려지고 있다. 시즈코의 온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태반이 이용되지 않고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달걀의 부화에 쓰거나, 자라의 양식지(養殖池)로 보내거나, 새들의 목욕탕이 되는 등 그럭저럭 활용하고는 있지만, 하나같이 온천 폐탕이 반드시 불가결한 설비는 아니다.
온천 폐탕이 있기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가 눈독을 들인 작물이 후추였다.
그리고, 재배에 필요한 비닐하우스 비슷한 것이 완성되었기에, 온천 폐탕을 비닐하우스 안으로 흘려보내면, 열대우림(熱帯雨林) 기후를 가상적으로 만드는 온천탕기재배(温泉湯気栽培)가 가능하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온천탕기재배 또는 온천열재배(温泉熱栽培)라고 부르는 재배방법은 딱히 시즈코가 생각해낸 것은 아니다. 표고(標高) 800m, 오쿠히다(奥飛騨) 온천향(温泉郷)에서 온천 폐탕을 사용한 바나나 재배에 성공한 재배 농가가 있다.
그는 이미 바나나 뿐만 아니라 야자나 카카오, 드래곤 프루츠 계열의 재배에도 성공하여, 온천 폐탕을 이용한 재배가 다대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증명했다.
이즈에서 카카오를 무농약 재배하는 데 성공한 농가도 있고, 이를 상업 이용하였기에 낮은 코스트로 재배할 수 있는 것도 증명되었다.
현대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전국시대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비닐하우스를 위한 비닐을 모으는 것, 그리고 쇠파이프 같은 금속 파츠를 모으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오카베(岡部)가 부드러운 나무와 단단한 나무를 조합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훌륭한 목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냈다.
요구를 실현해 준 오카베에게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 시즈코였지만, 정작 오카베 본인은 '이제 좀 살려줘'라는 기분이었다.
오카베의 협력 하에, 전국시대 유일의 열대우림 기후를 재현한 비닐하우스가 세 개 완성되었다.
온천에서 나오는 탕의 태반을 비닐하우스로 흘려보내게 되었지만, 온천의 탕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한정되어 있었기에, 노부나가가 이용할 대만 제한하면 문제없었다.
현대의 비닐하우스와 다른 점은 온천 폐탕을 보내기 위해 시즈코의 집에서 가까운 장소에밖에 설치할 수 없었던 점과, 세 개의 비닐 하우스 중 하나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시즈코의 집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점이다.
겨울에도 기온이 20도 이상, 그리고 높은 습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후추의 재배도 비교적 편해졌다.
장래적으로는 후추의 재배 수를 늘릴 예정이지만, 여유가 생겼기에 시즈코는 비닐하우스에서 후추만 재배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나나를 재배하려 생각했지만, 씨없는 바나나는 우연의 산물로 태어난 것이기에, 전국시대에는 팥알만한 단단한 씨앗이 들어있는 씨있는 바나나밖에 없다.
다른 과일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으나, 이렇다할 과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콩(大豆)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시즈코의 뇌리에 어떤 작물이 떠올랐다. 그것이 카카오 나무다.
처음으로 카카오의 씨앗을 손에 넣은 유럽인은 콜롬부스이다. 그는 제 4차 항해에서 현재의 온두라스 부근에서 카카오의 씨앗을 손에 넣어 스페인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하지만 이용방법까지는 모르고 가지고 돌아갔기에, 그 가치를 깨달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유럽에서 카카오의 가치를 처음 깨달은 사람은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의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de Monroy y Pizarro)로, 그는 1519년에 아즈텍에서 이용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래로, 설탕이나 향신료를 첨가한 쇼콜라토르(chocolatre, ※역주: 초콜렛의 원형)는 상류 계급에게 환영받아, 1526년에는 트리니다드(Trinidad) 섬에 재배지가 건설되었다.
시즈코로서는 트리니타리오(Trinitario) 종을 원했지만, 트리니타리오 종은 씨없는 바나나와 마찬가지로 18세기에 우연의 산물로서 태어났기에 입수 불가능한 품종이다.
따라서 전국시대는 유럽의 상류 계급을 매료시킨 크리올로(Criollo) 종, 값싼 포라스테로(Forastero) 종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는 스페인이 독점한 상태가 되어 있는 카카오는,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밀로 지켜지고 있어 입수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로이스는 괴혈병(壊血病)의 치료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예수회 내부는 물론, 유럽 각지의 왕후귀족(王侯貴族)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줄을 대고 싶어하는 인물들이 많았기에, 그 점을 이용하여 프로이스는 스페인 상인에게 카카오의 씨앗을 비밀리에 반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 상인으로부터 카카오의 씨앗을 받아든 프로이스는 편지와 함께 노부나가에게 보냈고, 노부나가는 편지를 보고 카카오의 씨앗을 시즈코에게 보냈다. 카카오의 씨앗을 받아든 시즈코는 프로이스에게 대금과 함께 막대한 헌금을 했다.
많은 헌금을 한 이유는, 프로이스가 쿄(京)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자금이 모자랐고, 또 각 조직으로부터 건축자재를 파괴 또는 도난당하는 등 방해공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즈코는 카톨릭(キリスト教) 신앙이 싹튼 것도 아니고, 하물며 프로이스 등 카톨릭(伴天連) 들을 동정한 것도 아니다.
예수회를 통하여 해외의 작물을 수입하기 위해 선행투자의 헌금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으아―, 썩어서 굉장한 냄새네. 빨리 무사한 씨앗을 빼내서 얼른 화분에 심자"
한 개의 열매에 평균 30알 정도 있는 카카오의 열매를 깨서, 무사한 씨앗을 빼내어 그대로 화분에 씨앗을 심었다.
부패한 카카오의 열매에서도 다소 기대를 품고 씨앗을 빼냈지만, 9할 가까운 씨앗이 썩어 있었다.
그래도 씨앗이 많았던 덕분에 두 품종 모두 30에서 40개의 씨앗을 채취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손으로 인도네시아의 자와(Java) 섬에 전해졌다고 해도, 역시 전국시대는 운송능력이 나쁘네. 으헥, 냄새―. 얼른 소각처분해버리자"
참고로, 카카오는 1560년에 인도네시아의 자와 섬에 전해졌으나, 상업생산이 개시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선 이후이다.
커피와 달리 카카오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에서 생산되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이유는 카카오의 식물학적 특성에 있다.
카카오의 나무는 음수(陰樹)로, 성장할 때까지 다른 나무의 그늘에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카카오는 강한 햇빛에 약하여, 단일 작물을 광대한 면적에서 일거에 재배할 수 없는 작물인 것이다.
하지만 규모의 메리트를 얻지 못하는 대신, 바나나와의 혼합재배에는 적합하다. 따라서 소규모 농가가 짬짬이 키우기에는 적합한 작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라면 야생종(野生種)의 바나나가 아니라 카사바(cassava)를 요구할 걸 그랬나. 뭐, 없는 건 어쩔 수 없지. 바나나가 자랄 때까지 적당히 그늘이 될 만한 걸 놔두자"
카카오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줄 피룡가 있어, 그러기 위해서 바나나 묘목과 함께 심는 경우가 많다.
바나나 쪽이 성장은 빠르고, 크고 널찍한 잎사귀가 그늘을 만드는 데 최적이기 때문이다. 또, 카카오는 4년째부터 열매를 수확할 수 있지만 바나나는 그보다 빠르기 때문에 먼저 수확할 수 있는 점도 이유이다.
그 밖에도 카카오 열매를 재배하는 데는 조건이 있다.
우선 평균 기온이 22도에서 25도, 최저라도 연간 1500mm의 강수량이 필요하다. 다만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 또, 평균 기온이 15도 이하가 되면 안 된다.
습도가 항상 높은 것도 중요하여, 강 등이 근처에 있는 땅이 적합하다. 결코 건조한 바람을 맞게 해선 안 된다.
흙은 점토질(粘土質)이라도 문제없지만, 뿌리를 내리기 위해 흙이 깊을 것, 그리고 부엽토(腐葉土) 등에 의해 비옥할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2년 동안에는 직사광선을 50% 이상 차단할 것이다. 2년이 지나면 그늘을 제거해도 문제없지만, 이 조건이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서 카카오 재배의 환경을 갖추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일본에서 비닐하우스 재배를 했을 경우, 중유(重油)나 경유(軽油)에 의한 난방비만으로 월 백만 엔에서 2백만 엔이 드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바나나나는 자주 나무와 혼동되는데, 식물 분류학상으로는 풀이 된다.
카카오의 꽃이 수분(受粉)할 확률은 자연수분으로 1%, 인공수분으로 3%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2년에서 3년이면 다 자란 나무가 되지만, 꽃을 피워도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낮아, 7년 정도 열매를 맺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운이 좋으면 2년째부터 카카오 씨앗을 수확할 수 있지만, 별로 기대할 수는 없다.
카카오가 끝나면 다음에는 커피나무였다.
커피의 묘목은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직사광선을 피해서 화분에 심었다. 커피나무는 1m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 않는다.
꺽꽂이를 하는 시기는 5월에서 7월 무렵이 이상적이지만, 도착하는 시기를 조정할 수 없는 이상 욕심은 부릴 수 없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한 앙갚음을 할 생각인지, 수백 그루나 되는 커피나무의 묘목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시들어버린 것이 많이 보였다.
플랜트 헌터가 목숨을 걸고 가져와둔 묘목에 감사하며, 시즈코는 커피 묘목을 하나씩 화분에 심어갔다.
남은 망고스틴이나 라이치, 람부스탄, 드래곤 프루츠, 망고, 무화과의 묘목이나 씨앗고 각각 필요한 조치를 했다.
마지막으로 다 심은 화분들을 늘어놓으면 완성이다. 몇 년만 지나면 일본에서 유일하게 남국(南国) 과일이 자라는 장소가 된다. 지금부터 열매가 맺히는 게 기대된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화분들을 다 늘어놓은 후, 썩은 묘목이나 필요없어진 쓰레기를 소각처분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 후, 생석회와 함께 구덩이에 묻었다.
"이걸로 4년 후에는 초콜렛을 만들 수 있으려나. 아니, 발효라던가 건조 같은 게 있으니, 그렇게 간단히 되진 않으려나"
바로 현대의 것 같은 달콤한 초콜렛이 만들어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노부나가가 바라는 초콜렛이 되려면,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노부나가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단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남겨진 기록에서 추측되고 있었다.
곶감이나 콘페이토(金平糖)를 즐기는 걸 보면,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확실하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주연(酒宴)을 매년 열고 있는 것만 봐도, 노부나가는 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많이 마시지 못하는 체질인 거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그렇다면 단 것은 어떨까, 라고 생각해서 귤 등의 과일을 헌상해보니,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스낵파인도 혼자서 하나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보니,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잘 생각해보니, 영주님은 세계 최초의 초콜렛 과자를 먹은 사람?)
화분에 심은 파인애플도 하우스 안으로 이동시키고, 작엄을 마친 시즈코는 기지개를 켜면서 비닐하우스를 나왔다. 즉시 차가운 바람이 몸을 급격하게 식혔다.
비닐하우스 안은 겨울이라도 일본의 한여름날이지만, 밖은 겨울의 추위가 퍼져있었다. 온천 폐탕 덕분에 그럭저럭 따뜻하지만, 역시 겨울의 추위와 섞여버리기에 약간 쌀쌀함은 느껴진다.
"……딱히 상관은 없는데 너희들 너무 늘어진 거 아냐?"
비닐하우스와 이어지는 방에서 늘어져 있는 남자들에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는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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