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72 1570년 12월 하순
역사적 사실 대로라면 내년 초부터 전투가 시작되는 것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노부나가가 강화를 맺기 전부터 화살의 증산에 주력하고 있었다.
현대라면 듀랄루민제나 카본제의 화살을 써서 반복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전국시대의 이대(矢竹)를 살대로 가공하여 만드는 화살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기본이 된다.
따라서 저격에 쓰이는 화살이 아니라, 많은 수를 쏘기 위한 화살은 질을 따지지 않는다. 얼마나 단시간에 필요 최저한의 품질로 양을 확보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많은 걸 바라고 필요 이상의 질을 추구하면 그만큼 완성이 늦어진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면 시세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특히 궁병이 많아 화살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시즈코 군에게는, 단시간에 범용성이 높은 화살을 확보하지 못하면 계전(継戦) 능력이 저하되어 버린다.
병기로서 통용되는 최저한의 '질'을 확보한 화살을 충분한 '양'을 준비한 후에, '질'을 추구하여 차츰 교체해나가면 된다.
"하루에 3000대인가. 다른 군에도 납품하고 있으니 이대로는 때를 맞추지 못하겠네"
화궁(和弓)을 쓰는 사람은 별개로 치고, 오다 군이 쓰는 견제 목적의 단궁(短弓)은 규격이 통일되어 있기에, 어느 아시가루(足軽)가 사용하더라도 최저한의 성능을 낼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능력에 따라 차이는 발생하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전혀 다르지 않다.
아시가루의 손실을 막으려면 돌격해오는 적병을 화승총으로 쓸어버리면 된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화약이 있어도 충분한 숫자의 화승총을 갖추는 게 어렵다. 윤택한 군자금이 있는 오다 가문이라도, 아무래도 수천 정이나 되는 화승총을 독점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의 균형 문제도 있어 어렵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생각한 것이 간소한 활에 의한 일제 사격, 즉 적에게 화살비를 퍼부어 탄막을 치는 전법을 채용했다.
처음에는 크로스보우를 생각했으나, 활시위의 위력이 약하면 수십미터 앞의 인간도 죽일 수 없는 것이 판명되었다.
컴파운드 보우는 구성 부품도 많고 높은 '질'을 요구하는 무기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간소한 구조의 단궁을 양산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유효 사정거리는 100미터 정도이지만, 뭣보다 훈련을 시키면 화살을 걸고 쏘기까지의 시간을 1, 2초 정도로 짧게 할 수 있다.
설령 100미터를 평균 13초에 돌격해오는 적군이 있다고 하면, 거의 10번이나 화살비를 퍼붓는 것이 가능해진다.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노부나가는 화살의 일제사격 전법을 각군에 채용하도록 했다.
그 활과 화살의 제조를 총괄하고 있는 것이 시즈코였다.
원래 그녀가 확립한 전법이었기에, 대량생산할 수 있는 노하우를 시즈코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대량생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생산되는 활과 화살을 아시가루가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하기 위한 연구가 존재했다.
화살의 길이는 양손을 펼쳤을 때의 길이에서 38.1cm(15인치)를 빼고 2로 나눈 숫자가 적당한 화살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이에서 크게 벗어나면, 활시위를 제대로 당길 수 없고, 또 관절 등을 다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즈코가 취한 대책이, 화살에 맞춰 병사를 모으는 것이다.
즉, 아시가루 한 명 한 명에 화살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화살의 길이의 규격을 통일하고, 그에 적합한 아시가루를 모으는 것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이상의 생산은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어쩔 수 없네. 그럼 우리 군을 뒤로 미루고, 다른 군에 우선적으로 납품해줘. 물론, 영주님께 납품처의 우선순위를 확인받고 나서야"
"알겠습니다"
"맞다맞아, 꽤나 추워졌으니까, 건강에는 주의해. 나는 아까부터 덥지만"
시즈코가 겨울에도 더운 이유는 비트만들이 그녀의 주위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늑대의 체온은 항상 섭씨 40.6도에서 41도로 높고, 거기에 땀을 흘려 체온조절을 하는 게 아니라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서 체온조절을 한다.
"전투식(戦闘食)…… 그 뭐냐, 타케나카(竹中)님에게 '전쟁밥(いくさ飯)'의 메뉴표는 도착했어?"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는 군용식을 전투식이라고 부르면 의미를 알기 어렵다고 하며 시즈코에게 명칭을 전쟁밥으로 변경하자는 편지를 보냈다. 시즈코도 명칭에는 딱히 집착이 없어서, 명칭 변경에 반론하지는 않았다.
이후, 오다 군에서 직접 준비하는 전투용의 식량을 '전쟁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착되었다.
"어제, 무사히 도착했다고 파발마가 왔습니다"
"5리터의 수동 가압식 펌프의 시제품은 완성되었던가?"
"며칠 전에 시제품이 도착하였고, 어제 시즈코 님이 쓰신 보고서와 합께 반송했습니다"
"어라, 그랬던가? 그럼 됐어"
해충을 방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피제(嫌忌剤)를 효율적으로 산포하기 위해, 가압식 핸드 펌프의 제조를 의뢰했었다.
최근에는 이런저런 의뢰나 문의가 쇄도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시제품이 도착해서 직접 검증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검증시에 시즈코가 문제삼았던 것은 분무구의 노즐 정밀도로, 기술적 한계 때문에 조임이 어설퍼서 1회 분무량이 너무 많았다.
휴대용 탱크의 용량을 5분만에 전부 소진해버렸기에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최근에 이것저것 만들어진 게 도착해서, 검증하고 보고서를 돌려보내고 있다보니 까맣게 잊어버렸네"
"피곤하신 듯 하군요.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네. 이제 곧 연말연시니까, 조금 쉬기로 할게"
새해가 되면 곧 노부나가는 군비를 갖추어 히데요시(秀吉)에게 쿄(京)와 호쿠리쿠(北陸)를 잇는 경로(육로와 해로)를 완전히 차단시키고, 니와(丹羽)를 사와 산성(佐和山城)에 입성시켜 기후(岐阜)로부터 남 오우미(南近江) 사이에 있는 도로의 안전을 확보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여기부터 파죽지세로 침공하여, 5월에는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슈(一向一揆)의 정벌, 9월에는 히에이 산(比叡山)을 불태우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내년도 바쁜 전투의 나날들이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가지 수동식의 도구를 재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나같이 그저 그런 성능밖에 나오질 않네. 처음부터 고성능을 바라면 안 되지만)
고성능의 완성형을 알고있는 만큼, 몇 번이나 검증과 개량을 반복하며 모래성을 하늘까지 쌓아올리는 듯한 작업을 생각하자 의욕이 사라지는 시즈코였다.
성능면에서 불충분하더라도 요구되는 성능을 만족한 물건은, 일단 실용화하여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이 시험 사용하는 것으로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완전히 세련된 완성형보다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운용하기에 최적인 형태를 도출해낼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자기 혼자서 판단하기보다,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의견을 집약하여 꾸준히 이상형에 근접시키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즈코밖에 검증을 할 수 없어, 기술자 마을과 그녀 사이에서 개수나 시험을 반복하여 시즈코의 합격 판단을 받아 제품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많은 제품을 세상에 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시즈코 혼자이고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병목현상(작가 주: 다른 것을 아무리 향상시켜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치명적인 부분을 가리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씩 '도구'가 갖춰지기 시작하고 있어. 슬슬 편해졌으면 하는데…… 왠지 바빠지네. 그러고보니 고노에(近衛) 님이 말한 '두 번째 어려운 부탁'은 결국 뭐였을까. 그 이후 뭐라고 말할 기색이 없으니)
그 '두 번째 어려운 부탁'이 사키히사(前久)와 유자(猶子)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는 그녀는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한 그녀는,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온천에 들어갈까 하고 생각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의 기후(岐阜)에서, 노부나가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가 오다 가문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던 말던, 그는 오직 기회를 엿보며 자복(雌伏)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요시나리(可成), 솔직하게 묻겠다. 나는 이미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야나가와나베(柳川鍋, ※역주: 미꾸라지 요리의 일종)를 먹으며 마주보고 있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에게 노부나가는 그렇게 물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놀라움을 드러내며, 다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화내지 않고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됐다. 네 태도를 보니 잘 알겠다"
"……죄송합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확실히 나는 패했다. 한 때, 쿄를 지배했던 나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지금의 나는 초라해 보이겠지"
"영주님"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리 요시나리는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적당한 말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 모리 요시나리의 심정을 헤아린 노부나가는, 평소와 같이 대담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걱정하지 마라, 요시나리. 나는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남아준 충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적을 하나씩 쳐부수고, 이 손에 천하를 쥐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주님!! 소생은 늙은 몸이지만, 영주님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분골쇄신할 각오입니다"
"네가 있어주어 다행이다. 당장 미안하지만 네게 부탁이 있다"
"옛, 뭐든지 하명하십시오"
왼쪽 어깨를 부상당해 이미 창을 잡을 수 없는 모리 요시나리였으나, 노부나가의 명령이라면 몸에 창을 비끄러매고서라도 싸울 기세였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부탁은 그의 예상 밖의 내용이었다.
"부탁이라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시즈코에 대해서다"
"옛, 시즈코 님이 뭔가……?"
"너도 알고 있겠지. 이번에, 시즈코는 수많은 무훈을 세웠다. 그게 문제다"
무공을 세우는 게 문제, 라는 노부나가의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즈코는 자신이 쓰러진 후에도 병사들을 이끌고 우사 산성(宇佐山城)의 전선에 서서, 아자이(浅井)-아사쿠라(朝倉) 연합군을 저지한 공로자이다.
그 뒤에 과로로 쓰러졌지만 그녀를 대신하여 나가요시(長可)가 각지에서 반 오다 군을 쳐부수고, 도중에 복귀한 시즈코도 케이지(慶次)와 사이조(才蔵)를 데리고 가세하여, 남 오우미의 교통망을 회복시켰다.
지금까지 시즈코를 '전쟁터에서 아무 공도 세운 적 없고 단지 운이 좋기만 한 여자'라고 야유하던 패거리도 할 말을 잃을 정도의 공적이었다.
그녀가 세운 공적의 뭐가 문제인지 모리 요시나리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시즈코가 싸우는 방식은 '이단(異端)'이다. 수급(首級)을 취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정한 승리 조건을 위해 싸우지. 나는 그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상으로 시즈코가 무공을 세울 경우, 녀석이 '여자'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시즈코는 나이 스물을 넘겨서, 이미 혼인할 적령기(適齢期)를 놓쳤다. 하지만 생각해보거라, 요시나리. 무훈도 있고, 내정(内政)에도 영향력을 갖는 시즈코가 홀몸이라는 것은, 녀석이 갖는 영향력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을 의미하지"
전국시대의 통례에서는 빠르면 10세 이전, 늦어도 18세까지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진다.
오이치(お市) 처럼 21세에 결혼하는 예도 있지만, 이것은 노부나가가 오이치를 놔주기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실은 오이치는 한 번 결혼했다가 뭔가의 이유로 이혼한 후에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와 재혼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혼 경험이 없고, 20세인데도 독신인 시즈코는, 전국시대 기준으로 말하면 혼기를 놓친 여성이라는 말을 듣는 입장이다.
"예전처럼 쓸데없는 소동은 사양이다. 녀석을 정략결혼의 장기말로 쓸 수는 없다. 시즈코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의(秘儀)가 잠자고 있기에, 누군가와 결혼시키는 것도 문제다. 녀석의 입장을 강화하면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간단히 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지"
"영주님의 양자(養子)로 삼으시는 것입니까"
"양자로 삼는 것도 생각했지만, 후계자 문제 때문에 반드시 다툼이 일어난다. 나로서는 시즈코에게는 오다 가문의 분가(分家) 하나를 맡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자로 삼기보다, 녀석에게 내 아이를 양자로 받게 하는 편이 좋지. 하지만 단순히 양자를 받게 해도 안 된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아이여야 하지"
전국시대에는 양자 입양, 정략결혼이 당연한 것이었으며, 천하인(天下人)에 가까운 노부나가도 예외없이 자기 자식을 양자로 보내거나, 인질로서 내놓거나 했다.
시즈코에게 노부나가의 자식을 양자로 받게 하여, 그녀를 오다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시즈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노부나가의 자식을 후계자로 삼는 것으로,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심을 주위에 알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다 가문의 일원이 될 경우, 친족으로부터의 시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오다 가문으로 끌어들이려면, 양자를 받게 하였으나 입장은 미묘, 하다는 대단히 까다로운 밸런스가 요구된다.
"요시나리, 부탁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사연이 있는 내 아이의 교육을 담당해다오. 지금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워온 네게 이런 일을 부탁하는 것은 견딜 수 없지만, 너 이외에 이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를 섬기기 시작한 후 16년 동안 많은 무공을 세웠다.
노부나가의 가독(家督) 상속과 오와리 국(尾張国) 통일에 진력하여,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와의 오케하자마(桶狭間) 전투에 참가했고, 그가 상락(上洛)할 때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와 함께 선봉을 맡았다.
6월에 일어난 아네가와(姉川) 전투에서는 이소노 카즈마사(磯野員昌) 부대의 진격을 저지하고, 우사 산성 전투에서는 계속 선두에 서서 싸웠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모리 요시나리는 옛날부터, 그리고 지금부터도 오른팔인 것에 변함은 없다.
그런 모리 요시나리를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아니라, 잘해봐야 말석의 분가가 될 정도의 자식의 교육을 맡으라고 하는 것이다.
모리 요시나리가 굴욕이라고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대로, 특수한 사정의 시즈코를 이해하고, 그녀를 보좌할 수 있는 것은 모리 요시나리 외에는 있을 수 없었다.
"영주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생은 창을 잡지 못하는 밥벌레입니다만, 이 늙은 뼈가 도움이 된다면 그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그 대임(大任), 훌륭하게 달성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모리 요시나리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남들이 보면 좌천(左遷), 그것도 말석으로 쫓겨나는 것으로 보이리라. 하지만, 시즈코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이해하고 있는 모리 요시나리는, 노부나가가 얼마나 고심해서 낸 결론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시즈코는 아무리 공적을 세워도 뒤집을 방법이 없는 디메리트, 즉 여자라는 사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지금부터도 변하지 않는다. 이 여자라는 입장이, 때로는 그녀의 존재를 위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노부나가는 그것을 사전에 예방하려고 생각했다, 고 모리 요시나리는 이해했다.
"부탁한다, 요시나리"
모리 요시나리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는 온화한 웃음을 떠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제 1차 오다 포위망을 극복했지만, 오다 가문에 불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의 덕을 보고 있던 인간들은 손바닥을 뒤집고는, 다양한 구실을 가져다대며 반 오다 연합 측에 붙으려 했다.
떠나가는 인간은 쓸모없는 무능한 것들이라고 떨쳐버린 노부나가였으나, 이 상황 하에서 이탈하지 않는 가신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을 충분히 위로했다.
당연하지만 시즈코를 필두로 미츠오(みつお), 아시미츠(足満) 등 타임슬립 팀은 노부나가를 배신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또 그녀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즈코 등 타임슬립 팀은, 충성을 맹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시미츠는 전투에서, 미츠오는 요리나 축산에서, 시즈코는 농업이나 다수의 기술 관계로 오와리(尾張)-미노(美濃)를 번영시켰다.
특히 시즈코는 몇 년에 걸친 농업 개혁으로, 전국시대에서는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오와리에 식량을 넘치게 만들었다.
오다 가문 영토에 한정시킬 경우, 식량을 손에 넣기 위해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강탈할 필요가 없었고, 농한기(農閑期)에 목숨을 걸고 돈을 벌러 나갈 정도로 곤궁하지도 않았다.
오와리-미노의 도로를 정비하고, 치수(治水)를 행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산업을 발전시켜, 사람과 물자가 넘치는 나라가 된 것도 그에 앞장선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기술을 전수했기 때문이다.
이탈자들 중 일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시즈코를 빼가는 것은 반 오다 연합에게 좋은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도중에 있는 관문의 통행료를 50배로 올려도 포기하지 않겠다니, 그 의욕을 다른 데서 발휘해 줬으면 좋겠네"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대책도 취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현 시점에서 책략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것이 시즈코, 아시미츠, 미츠오, 고로(五郎) 등 네 명이다. 앞의 세 명에 고로가 추가된 이유는, 그가 세 명으로부터 다수의 요리 레시피를 전수받아, 지금에 와서는 노부나가, 노히메(濃姫)의 전속 요리인에 가까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고로는 사키히사의 연회에서 요리장(料理長)을 맡은 적도 있어, 지금의 오와리-미노에 있는 식재료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이도 모였군. 화톳불 피우는 데라도 쓸까?"
눈 앞에 있는 편지의 산을 보면서 아시미츠가 어깨를 움츠렸다. 종이만으로 웬만큼 작은 산이 생길 정도의 양이, 그들이 얼마나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정치에는 흥미가 없어. 요리 실력이 올라간다면 생각해보겠지만,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제일 좋은 건 오다 가문이지"
"배신하고 간 곳에서 입장이 보장된다는 보장은 없지요. 어디까지나 '빼내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경우, 배신한 후에는 모른척한다면 몰라도 제거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 아저씨의 말대로, 배신한다고 해서 전혀 좋을 일이 떠오르질 않아"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고로는 요리 이외에 흥미는 없지만, 그건 뒤집어 말하면 요리의 길을 위해서라면 오다 가문도 배신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의미했다.
"제가 입수한 정보로는, 반 오다 연합은 구심점이 없어요. 즉, 설령 고로 씨가 배신해도, 반 오다 연합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돼요"
시즈코 나름대로 부드럽게 고로를 설득했다. 현재, 배신해봤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 뿐이다.
특히 여기서 노부나가를 저버리는 것 같은 짓을 했다간, 그의 머리가 몸통과 작별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알고 있어. 아무리 정치에 둔한 나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오다 가문을 배신하면, 잘해야 두 토막 난다는 건. 신세를 지고 있는데, 상황이 나쁘니까 안녕이라는 건 아무래도 신의(信義)에 어긋나지"
"현명한 판단이다. 뭐 안심해라. 배신한다면 내가 깨끗한 수급으로 만들어주마"
"그것의 어디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같은 편에게 처분당하는 쪽이 낫다, 는 건가요?"
세 명의 이상한 콩트에 머리가 아파진 시즈코였다.
하지만 세 명 모두 책략에 넘어갈 기색은 없어서 그녀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설프게 타임슬립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면, 확실하게 진흙탕 싸움이 일어난다.
시즈코는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일단 이후에도 책략이 이어질거라 생각하지만, 전부 영주님께 보고하도록 부탁드려요"
전원의 의사가 통일되었다고 인식한 시즈코는, 그 말과 함께 회의를 끝냈다.
롯카쿠(六角) 씨로부터 이탈한 코우가슈(甲賀衆)였으나, 그게 그대로 노부나가에 대한 복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애초에, 코우가슈가 사는 방식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다. 불안정한 사회 정세에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력이나 인술(忍術)을 행사해왔다.
롯카쿠 씨에게 협력하던 이유도, 코우가슈의 존속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롯카쿠 씨의 쇠퇴를 직접 보고, 그들은 노부나가 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코우가슈는 결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노부나가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코우가슈가 신하가 된다고 해도 그것은 표면적인 것(面従腹背)이 된다.
미묘한 입장에 처한 코우가슈였으나, 그런 그들에게 충격적인 정보가 들어왔다.
"이럴 수가…… 그만한 돈을 어디에 보유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 시작은 오와리(尾張)에 풀어놓았던 척후로부터의 보고였다.
노부나가가 오와리 각지에서 짐수레로 뭔가를 모으고 있다, 그러한 보고를 받은 코우가슈는 시노비(忍び, ※역주: 흔히 말하는 닌자의 명칭 중 하나)의 숫자를 늘렸다.
짐수레의 내용물이 뭔지 조사하려고 했으나, 엄중한 경비 속에 운반되는 짐수레에는 가까이 갈수도 없었다. 다만 깊이 패인 바퀴자국에서 상당히 무거운 물건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짐수레의 내용물을 알게 되는 기회가 찾아왔다. 기후(岐阜)로 넘어가려던 때에, 짐수레 중 하나의 바퀴가 파손되며, 내용물이 성대하게 쏟아졌던 것이다.
운반되고 있던 것은 금(金)막대기(延べ棒)였다. 그것도 몇 개라는 적은 숫자가 아니라, 몇십개, 어쩌면 100개 이상 되는 금막대기가 실려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지만, 더욱 눈이 튀어나올 만한 사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차바퀴의 파손을 볼 때 수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오다 병사는, 금막대기를 앞뒤의 짐수레에 분산하여 싣기로 했다. 그 앞뒤에 있는 짐수레에도, 똑같이 대량의 금막대기가 실려 있었다.
최종적으로 금막대기는 86개, 은(銀)막대기가 52개 실려 있었다. 앞뒤의 짐수레에도 옮겨 실을 때 금막대기가 보였기에, 코우가의 첩자들은 화물 전체가 금은막대기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에 당황한 그들은 다른 척후들과 의견을 정리한 후, 즉시 코우가슈에게 정보를 보냈다.
보고를 받은 코우가슈의 두목(頭目)은 즉각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열었다.
"그만한 돈이 있다면, 우리들을 멸망시키는 것 따윈 아무것도 아니오!"
"그렇소. 우리들 따위 하룻밤에 멸망당할 것이오. 여기는 오다의 신하가 되는 쪽이 살아남을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노부나가가 대량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는 것의 가부를 따지는 상태에서, 노부나가의 신하가 되는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자신들이 노부나가에 대해 내부적인 불안요소(獅子身中の虫)인 것을 이해하고 있기에 코우가슈는 당황했다. 인간은 초조해지면 사고나 시야가 좁아져서, 본래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다.
만약 척후들이 대량의 금막대기에 놀라 당황하여 보고를 올리지 않고 지긋하게 조사를 했다면 노부나가가 친 함정을 눈치했으리라. 태반의 짐마차에는 금막대기가 실려있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노부나가가 대량의 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로 인식했다. 이후, 노부나가를 조사하여 금막대기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그것은 '노부나가가 감추고 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게 된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오다는 우리들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낼 것이오. 늦어도 새해가 될 무렵에는 답을 내야 합니다"
코우가 53가문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의논할 것도 없이 결론은 나와 있었다. 자금력이 약한 코우가슈로는 윤택한 자금을 가진 노부나가를 적으로 돌리게 되면 승산은 없다.
반 오다 연합군에 참가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으나, 구심점이 없는 반 오다 연합군으로는 설령 참전해봤자 이용만 당하다 소모될 가능성이 높았다.
몇 번이나 열린 회의 끝에, 코우가슈는 노부나가의 신하가 될 것을 결정했다.
노부나가에게 신하가 되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모치즈키 가문(望月家)과 야마나카 가문(山中家)에서 정예의 시노비들을 인질로서 노부나가에게 바쳤다. 그에 맞춰 각지에 흩어져있는 코우가의 시노비들에게 귀환할 것을 명했다.
코우가슈가 신하가 될 것을 청해온 것에 노부나가는 득의의 미소를 짓고는, 그들에게 일정한 자치를 인정하면서도 이후의 작전행동을 하나하나 오다 가문에게 알릴 것을 명했다.
또, 바쳐진 인질 이외에도 몇 명의 시노비들을 고용하여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등의 가신들에게 내렸다.
우수한 코우가의 시노비들은 제 6군에 포함되어,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정보수집 측면을 강화한 노부나가는, 당장 제 6군에게 이런저런 정보수집을 명했다.
기후에 있는 노부나가의 거관(居館)은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노부나가의 매제(義弟)가 되는 나가마사(長政), 그의 가신인 엔도(遠藤)와 미타무라(三田村), 나가마사의 처이자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お市)가 노부나가와 대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속세를 떠난 사람과 마찬가지였던 나가마사였으나, 지금은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어, 반년 전의 추태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형님, 그렇게 놀라실 일입니까?"
미소를 짓는 나가마사였으나, 반대로 노부나가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나가마사의 요청은 노부나가에게도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네가 일개 병졸이 되겠다, 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하핫, 항상 형님께는 놀라기만 했습니다. 가끔은 매제의 도락(道楽)에 어울려주시는 것도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웃는 나가마사였으나, 금방 표정을 조였다.
"우선, 얼간이나 다름없던 저를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이상 형님께 응석을 부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과 일개 병졸이 된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이냐"
"어려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의 저는 아자이(浅井) 가문에서 추방된 몸. 그리고, 아자이 가문은 오다 가문을 배신했습니다. 이후,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이미 아자이 가문은 멸망하는 것이 숙명. 그리고, 역사에 배신자의 일족으로서 이름을 남기겠지요"
나가마사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다 가문과 아자이 가문은, 병력도 자금력도 규모가 너무 차이가 난다. 게다가 노부나가는 배신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나가마사를 당주로 앉혀 아자이 가문을 존속시킨다던가 하는 희망은 없다.
"하지만, 저도 예전에는 아자이 가문의 당주였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와의 결판은 저 스스로 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배신자가 병사를 빌려달라는 말은 입이 찢어져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형님 및에서 일개 병졸부터 시작하여 올라가는 것밖에 방법은 없습니다"
"……만약, 그 전에 내가 네 아버지를 쓰러뜨린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건 하늘의 뜻이라는 것. 제게는 아버지를 쓰러뜨리는 무대에 설 자격이 없었다는 것이겠죠. 형님, 저를 가신으로 삼는다던가 하는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형님의 가신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은 필연적입니다"
"순조롭게 네 아버지를 쓰러뜨린 후에는 어쩔 것이냐"
노부나가의 물음에 나가마사는 상쾌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아자이 가문은 멸망할 운명. 아버지를 처치한 후에는…… 그렇군요, 형님의 발 밑을 위협할 존재가 될까요"
"웃기지 마라"
나가마사의 말을 노부나가는 웃어넘겼다. 나가마사의 굳은 각오를 알게 된 지금, 말없이 지켜보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핫, 너무 큰 꿈을 이야기했군요…… 형님,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 좋은 자라면, 형님의 군문에 투신하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긍지를 버려가면서까지 목숨을 아까워할 생각은 없습니다.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이게 제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법입니다"
"네 각오, 확실히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 하시면?"
조건이라는 말에 나가마사는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노부나가는 대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나가마사와 이치(市)를 바라보며 조건을 말했다.
"이따금 이치에게 얼굴을 보이러 가라. 이치의 표정이 흐려지면 네놈 머리에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아라"
"하핫, 그거 무섭군요. 형님의 벼락은 뼈가 저린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먼저 노부나가가 웃고, 이어서 나가마사가, 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 이치 등이 웃었다.
"매제여, 만약 모든 것이 끝난 후,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죽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돌아보아라"
"죽었다고 생각하고…… 말씀입니까?"
노부나가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나가마사는 아버지 히사마사(久政)를 쓰러뜨린 후, 배를 갈라 자결할 생각인 것을.
주위의 평가는 별개로,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의 고지식한 성격을 좋아하고 있었다. 타인에게서 요령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우직할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이 노부나가에게는 눈부시게 보였다.
"뭘 해도 자유…… 하지만 그 자유는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것. 그러나 죽은 자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지.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보아라. 자신을 버리고,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날개치는 새들처럼 자유롭게, 뜻대로 살아보아라. 죽는 건 그 이후에도 늦지 않겠지"
"형님…… 모두 꿰뚫어보고 계신 겁니까. 그렇군요…… 죽은 이가 되어 산다, 그것도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키는 대로 살고, 때가 되면 땅을 베개삼아 죽는다. 아자이 가문의 당주로서는 불가능한…… 하핫…… 사치라…… 큭…… 으윽……"
끝까지 말하기 전에 나가마사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예전에 롯카쿠 씨의 지배를 떨쳐내고 훌륭하게 싸우는 모습으로 많은 가신들을 취하게 하였던 북 오우미(北近江)의 지배자가 울었다.
전국시대에서 배신은 흔한 일이지만, 실패는 자신의 목숨만으로는 보상할 수 없고, 연좌제로 일족도당이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도저히 배신하지 않을 수 없는 정세에 몰릴 것을 고려하여 일족의 혈통이 끊기지 않도록, 다른 가문에 양자를 보내거나 딸을 시집보내거나 하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아자이 가문의 경우는 그런 대처를 하지 않아서, 이번의 배신에 대한 처벌 범위는 물론 나가마사에게도 미친다.
말하자면 나가마사는 이미 사형수이며, 현재는 단지 집행유예의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태도는 북 오우미를 지배하는 영주일 때도, 죄인이 된 지금도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가문이라는 전국시대의 틀을 넘어서, 한 개인으로서의 나가마사를 존중해주는 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뭉클했다.
정신이 들어보니 자신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울음을 그친 나가마사는 시원해진 듯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노부나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노부나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번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은 전해졌다.
머리를 든 나가마사는, 이번에는 엔도와 미타무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엔도, 미타무라, 나는 일개 병졸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이런 나이지만, 따라와주지 않겠느냐"
"주군…… 옛, 어디까지나 함께 하겠습니다"
엔도와 미타무라는 터질 듯한 눈물을 참고, 주먹을 굳게 쥐며 나가마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느 시대이고 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히사마사가 다시 북 오우미의 지배자가 되었지만 노부나가에게 패한 것으로 정세가 혼란스러워졌다.
가신들의 일부는 나가마사를 처자식과 함께 추방한 것에 반발하여, 표면적으로만 따르면서(面従腹背) 노부나가에게 귀순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혼간지 세력에게 패배한 것 때문에, 오우미 국의 내정은 더욱 혼란되어 의견의 대립을 낳았다.
지금은 오우미 국의 토호(土豪)들은 누굴 따라야 이기는 편에 설 수 있을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도 권력을 둘러싼 다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오다 군이라고 하면 모리 요시나리가 필두였으나, 그는 우사 산성 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전선에 설 수 없게 되었다.
모리 요시나리는 군사 관계에서 물러나, 노부나가의 정무를 보좌하는 입장이 된다.
모리 가문은 장남인 모리 요시타카(森可隆)가 가문을 잇고, 군사 관계는 차남인 나가요시가 맡았으며, 3남인 란마루(蘭丸, ※역주: 모리 나리토시(森 成利)), 4남인 보우마루(坊丸, ※역주: 모리 나가타카(森 長隆)), 5남인 리키마루(力丸, ※역주: 모리 나가우지(森 長氏))가 소성으로서 노부나가를 섬기게 되었다.
모리 요시나리의 6남인 타다마사(忠政)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부나가의 소성으로 섬기게 할지는 보류되었다.
자신의 입장을 우위에 서게 하려고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키노시타 히데요시(木下秀吉)의 5대 장수가 권력투쟁을 벌였다.
각 무장은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여, 역량은 거의 같았다. 그런 그들이 가장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인물이, 권력투쟁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시즈코와, 그녀가 이끄는 시즈코 군이었다.
아자이-아사쿠라 연합군을 사카모토(坂本)에서 저지하고, 엔랴쿠지(延暦寺)나 아자이-아사쿠라를 견제하는 수단이자 쿄의 요로(要路)를 잇는 최중요 거점인 우사 산성 함락을 막아냈으며, 롯카쿠 세력을 괴멸로 몰아넣은 무훈은, 시가의 진(志賀の陣)에서 노부나가의 위기를 구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식량이나 무구 보급 면에서도 그녀가 같은 편이라면 이런저런 융통을 받을 수 있다. 오대 장수들의 고민이라고 하면, 미노-오와리의 특산품은 거의 그녀가 관여하고 있고, 본인이 무욕(無欲)이기 때문에 그녀를 끌어들일 책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즈코 군은 노부나가 직속의 부대라는 위치이며, 후에 후계자인 키묘마루(奇妙丸)가 지휘권을 이어받을 것이 내정되어 있다. 자신들의 신하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최종적으로는 직접 만난다, 편지를 쓴다, 가끔 선물을 한다는 기본적인 것 이외에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정작 시즈코 본인은, 갑자기 편지가 늘어난 것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지만.
그런 시즈코는 내년도부터 시험을 개시하는 수경재배(水耕栽培)에 달라붙어 있었다.
수경재배란 땅을 쓰지 않는 양액재배(養液栽培) 방법이다.
수경(水耕) 물재배(水栽培)라고 하여, 종래에는 불가능했던 뿌리채소 종류의 재배가 가능하며, 원예에서도 울타리 없는 재배에 이용되고 있다.
이 재배방법으로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이 와사비(わさび, ※역주: 와사비는 국내에서는 고추냉이라고 쓰는데, 이 명칭 자체에 여러가지로 논란이 있는 듯 하고, 또 품종명을 적을 때 문제가 생겨서 그냥 와사비로 쓰겠음) 재배이다.
와사비는 맑은 물(清流)과 적절한 수온, 산소를 많이 머금고 직사광선을 받지 않는 장소 등 재배 조건이 까다로운 작물이다. 필수는 아니지만 물을 순환시킬 경우에는, 대량으로 공기를 불어넣는 설비가 필요해진다.
우선 맑은 물이 필요한 이유는, 와사비가 방출하는 이소티오시안산 알릴(allyl isothiocyanate)을 씻어내기 위해서다.
많은 작물은 땅 속에 있는 인산이나 수분을 뿌리에 있는 VA균을 이용하여 모으는데, 와사비에는 VA균이 없기 때문이 경쟁력이 약하다.
그래서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이라는 물질을 흙 속에 방출하여 다른 식물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이 물질은 동시에 와사비 자신의 성장도 저해한다. 이 현상을 자가중독(自家中毒)이라고 한다.
여담이지만 와사비를 곱게 가는 이유는, 세포 안에 있는 미로시나제(myrosinase)라는 효소와 시니그린(sinigrin) 배당체(配糖体)라는 성분이 반응했을 때, 매운맛 성분인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자가중독을 막기 위해서도, 와사비는 항상 흐르는 물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이 때, 물이 탁할 경우 탁기의 주성분인 점성분(粘土分)이 퍼져서 와사비의 뿌리가 산소부족을 일으킨다. 이 장해가 일어나기 때문에, 와사비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면 자라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적절한 수온이 필요한 이유인데, 와사비는 평균 수온 15도 이하가 적정 수온이다. 16도를 넘으면 물 속에 녹아있는 산소량이 부족해져버린다.
와사비의 성장에 산소는 중요하여, 가급적 차가운 물(평균 수온 12도)이 바람직하다. 수온이 낮을수록 산소가 녹아들기 쉬운 것이 그 이유이다.
재배용의 물을 순환시키는 경우, 물에 공기를 불어넣는 이유는 물에 녹은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을 날려버리기 위해서이다.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은 휘발성이 높기 때문에, 폭기(曝気, 액체에 공기를 공급하는 행위)를 하면 축적을 막을 수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자갈(砂利)이나 작은 돌(小石)만 있고 점성분이 없으며, 수온이 평균 13도에서 14도 정도, 물은 산소가 풍부하게 녹아 있고, 가급적 그늘진 곳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자연 환경을 이용한 재배는 토지를 가리지만, 수경재배는 재배에 필요한 조건을 갖추기 쉽다.
시즈코가 와사비 재배용으로 준비한 환경은 단순했다. 우선 물 공급조(供給槽), 다음으로 공급조를 다단식으로 설치한다. 맨 위의 고추쟁이 재배조 위에 여과조(ろ過槽)를 설치한다.
여과조는 구멍이 뚫린 바닥판을 다단식으로 설치하고, 각각의 여과조에 화산암(火山岩)을 깐다. 이 여과조에 물을 샤워처럼 공급한다.
화산암에 접촉하는 것으로 여과되고, 또 물의 유입을 샤워식으로 하는 것으로 물의 표면적을 늘려 산소를 포함하기 쉽게 했다.
이 깨끗한 물이 와사비의 재배조로 흘러든다. 각 재배조의 출구에는 배출구가 존재하여, 이 장소를 거쳐 아래쪽의 재배조로 물이 흘러가는 구조이다.
맨 아래의 재배조까지 통과한 물은 물 공급조로 되돌아가, 폭기를 하는 조로 보내진다. 현대라면 에어펌프를 쓰면 폭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전국시대에 에어펌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 듯 보이지만, 음압(負圧)의 원리를 이용하여 에어펌프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물 공급조보다 아래에 폭기조(曝気槽)를 만들고, 물 공급조에 연결된 대나무제의 배수 파이프를 연결한다.
그 배수 파이프에 스트로 정도의 직경을 갖는 구멍을 뚫고, 팩티스(factice)로 만든 튜브(이하, 에어튜브라고 함)를 통과시켜 앞쪽 끝을 비스듬하게 자른다.
비스듬하게 자른 끝을 배수 출구 쪽으로 향하게 한 후, 에어튜브의 반대쪽을 공기중에 노출시킨다.
공기에 접촉하는 것으로 진공압(음압)이 발생하여, 압력이 공기를 끌어들여 물에 대량의 산소를 공급한다.
이 음압의 원리를 응용하여 물에 산소를 대량으로 보내고, 동시에 이소티오시안산 알릴을 날려버린다.
단적으로 말하면 주변에 있는 재료로 만든 디퓨저(diffuser)이다. 이 물을 쓸어올려 여과기로 보내면, 다시 산소를 잔뜩 머금은 깨끗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구조이다.
시즈코가 와사비 재배에 사용하는 순환형의 다단 와사비 재배장치이다. 산소공급된 물 공급조의 물을 수격(水撃) 펌프로 끌어올려 여과조에 흘려넣는 장치를 만들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처리된다.
배수 밸브에서 배수된 물도, 수차(水車)와 톱니바퀴(歯車)를 이용한 퍼올리기 장치를 경유하여 물 공급조로 되돌아간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면 해충을 가능한 한 피할 수 있다. 물도 수온이 높아지면 근처 산에 있는 지하수로 교환하면 된다.
매일 수온 체크는 필요하지만, 그 이외에는 물의 교환 정도이다. 1년만 지나면 훌륭한 사와 와사비(沢わさび)가 자라난다. 2년간 재배하면 전국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와사비를 수확할 수 있다.
"참와사비(本わさび)는 미노에서 발견했고, 자갈이나 작은 돌은 근처에 있는 강에서 가져오면 되니까. 2ha 정도 넓이를 썼으니 4만개 정도 재배할 수 있으려나?"
"여전히 재배수의 단위가 이상하구나. 하지만 와사비를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우리 나라도 풍족해지겠지"
와사비 재배장치를 시즈코와 함께 보고 있던 키묘마루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사비는 아스카(飛鳥) 시대(※역주: 593~686)부터 재배되었던 기록이 남아있지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에도(江戸) 시대 전기(前期)이다.
전국시대에 와사비는 재배되지 않았으며, 식용은 자생하고 있는 와사비를 수확한 것 뿐이었다.
"뿌리, 줄기, 잎, 꽃 등 버릴 데가 없으니까. 뭐 다들 원하는 건 뿌리 부분이겠지만"
"쿄에서 들었는데, 듣자 하니 그걸 가는데 상어 가죽? 이라는 걸 쓴다고 하더군"
"어려운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촘촘하게 천천히 갈면, 매운맛 성분이 잘 나오거든. 그런 의미에서도 상어가죽이 제일이야"
키묘마루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시즈코는 수온을 확인했다. 겨울의 추위도 있었지만 수온은 12도로 와사비를 재배하기 좋은 온도였다.
유리 제조가 가능해졌기에 막대형 수은 온도계의 제조도 가능해졌다.
양산이 어렵지만 이용가치가 높았기에, 시즈코는 비닐하우스나 수온, 지온(地温) 체크용으로 합계 10개의 제조를 의뢰했다.
막대형 수은 온도계 덕분에 비닐하우스 안의 온도도 관측하기 쉬워져, 실온 확인 작업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되었다.
"1년생 참와사비와 2년생 참와사비를 구별해서, 재배하면서 품종개량을 할까"
자생 와사비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재배하고 있는 와사비와 섞으면, 언젠가 수경재배에 적합한 품종이 태어난다. 태어나는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항상 같은 품종을 계속 재배하는 것보다는 낫다.
"음―, 작업 끝. 다음에는 술을 돌릴 준비를 해야겠네"
"힘들겠구나. 뭐 기후 주조 회사(岐阜酒造会社)의 설립자니까, 힘내라고밖에 할 수 없군"
"그렇게 거창한 입장에 설 생각은 없었는데 말야"
키묘마루의 말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와리, 미노의 주조 업계는 얼마 전까지 괴멸 상태였다.
그러나 시즈코가 양조 마을에 포함시켜 재건을 꾀하고 술의 배리에이션을 늘린 것으로, 탁주(濁酒)는 물론이고 기후 쌀(岐阜米)이나 오와리 쌀(尾張米)로 만들어지는 청주(清酒), 고구마를 원료로 한 고구마 소주(芋焼酎), 화이트 리커(white liquor)를 쓴 매실주(梅酒) 등의 과실주(果実酒), 당밀(糖蜜)을 원료로 한 럼주(rum) 등, 지금에 와서는 이름높은 주조 지역이 되었다.
각 지역에서 만들어진 술은 명칭을 '기후주(岐阜酒)'로 통일하고, 오와리, 미노에서 주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기후 주조 회사'라는 조직에 가입시켰다.
기후 주조 회사는 양조 마을과 상인들 사이의 가교 노릇을 하는 조직이다. 전국시대, 상품을 정직하게 배달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빼앗고 상인을 살해,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등 살벌한 시대였다.
그러한 사태가 되지 않도록 상인들이 안전하게 술을 매매할 수 있고, 과당경쟁을 억제하며, 상인들을 하나의 회사에 소속시켜 세금의 징수를 일원화시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후 주고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기본적으로는 주조가(酒造家)와 상인들을 잇는 회사로, 가입 자체는 무료이다. 하지만 주조가에서 술을 사려면 '주식(株式)'이라고 불리는 것을 구입할 필요가 있다. 기것은 현대에서 말하는 출자금(出資金)에 해당한다.
이 출자금이 많은 사람일수록 양조 마을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것이기에, 주식의 보유수는 늘어난다. 주식의 보유수에 따라 살 수 있는 술의 한도량이 정해진다.
술을 사는 것 자체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양조 마을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기에, 다양한 특전이 붙는다.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기후 주조 회사의 운영에도 관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현대와 마찬가지로 주식의 보유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의견이 받아들여지기 쉽다.
의제(議題)를 제기하는 것은 한 주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가능하지만, 가결(可決)에는 기발행 주식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찬성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술의 가격은 주식 미보유자보다 저렴하다. 예를 들어, 주식보유자가 100문으로 1리터를 구입할 수 있는데 반해, 주식 미보유자는 100문으로 700ml밖에 구입할 수 없다.
또, 이익이 난 경우 1년에 한 번 이익 분배가 이루어진다. 분배는 돈(金子)으로 받을지 술(酒)로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
주식의 양도는 가능하지만, 오다 가문에 반기를 들면 주식의 권리는 모두 소멸한다.
주식을 나타내는(表章) 유가증권(有価証券)으로서의 주권(株券)을 발행하지만, 반권방식(半券方式)으로 절반을 오다 가문이 보관하고, 남은 절반을 구입자가 보관한다.
권리를 행사할 때는 대조 작업이 이루어지며, 또 의사록(議事録)을 작성하여 누가 어떤 목적으로 권리를 행사했는지 기록된다.
주식의 보유수는 설립을 승인하고 군사력을 대여하고 있는 노부나가가 30%, 총괄직인 모리 요시나리가 11%, 브랜드를 설립한 시즈코가 10% 보유하고 있다.
남은 49%를 상인들이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노부나가와 모리 요시나리, 시즈코의 의견이 일치하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세 명 중 누군가를 설득하여 납득시키면 노부나가가 반대해도 의견이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노부나가의 독단이 되지 않도록, 그 자신이 배려한 결과였다. 상이들에게 이득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출자금을 내게 할 계산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다.
술의 구입은 양조 단계에서 대략적인 생산량이 계산되어, 총량이 주식 보유자들에게 전달된다.
그걸 들은 상인들이 오다 가문으로 구입할 술의 양을 신청한다.
그 후에는 생산된 술을 오다 가문이 일단 사들인 후, 상인들에게 배달하고 술의 양에 맞는 주세를 가산한 대금을 청구한다. 대금을 지불하면 상인들은 안전하게 술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조이다.
판매되지 않는 술은 주조가(酒造家)가 직접 소비하는 몫이나 근처에 나눠줄 분량을 제외하고 오다 가문이 전부 사들인다.
시즈코는 매년 10%로 구입할 수 있는 한계까지 술을 구입하고 있다. 그녀가 마시는 게 아니라,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 키묘마루가 마시기 위해서다.
그래도 오와리, 미노에서 생산되는 술의 1할은, 개인 소비로는 어림없는 양이다. 따라서 잉여분을 무장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술의 배리에이션이 늘어난 결과, 각 무장들이 선호하는 술들이 보기좋게 갈려버렸다.
시바타(柴田)나 삿사(佐々)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럼주를,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는 매실주, 모리 요시나리나 히데요시는 청주, 니와는 고구마로 만든 소주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럼주는 출하량이 빡빡하네"
폐당밀(廃糖蜜)로 만드는 럼주는 장기간 숙성시킬 필요가 있다. 그 때문에 일본주처럼 담근 그 해에 출하할 수가 없다.
"뭐 현재는 두 사람밖에 안 마시니까 괜찮지만"
현재는 시바타 카츠이에와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밖에 마시지 않지만,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면 지금의 생산체제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다. 생산체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와사비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집으로 돌아간 후, 시즈코는 아야(彩)가 준비한 목록을 훑어보았다.
술의 양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아직 주판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계산하는 부분만 공백이었다.
시즈코는 주판을 책상 위에 놓고, 팔 술의 양과 금액, 남는 술의 양을 계산했다.
"그러고보니 술은 양갱(羊羹)처럼 다투지 않았어?"
고양이와 놀면서 사색에 잠겨 있던 키묘마루가 문득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응,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던 걸 생각나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양갱은 일반적으로 팥(小豆)이 주체인 팥소(餡)를 틀에 넣고 우무(寒天)로 굳힌 일본 과자를 가리킨다.
우무로 확실히 굳힌 것을 연양갱(煉羊羹), 우무를 적게 해서 부드럽게 만든 것을 물양갱(水羊羹)이라고 한다.
또, 우무 대신 밀가루나 갈분(くず粉)을 섞어 찐 것을 찐양갱(蒸し羊羹)이라고 한다.
양갱은 당도가 대단히 높기 떄문에, 적절한 상태라면 상온에서 1년 이상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다.
이 특징을 살려 현대에서는 비상식량, 또는 군대의 영양보조식품으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로 고효율의 양갱을, 시즈코가 오다 군의 전쟁밥으로 채용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바타와 히데요시 두 사람이, 서로 자신의 취향으로 다툼을 벌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들 뿐만이 아니라 아케치 미츠히데, 니와 나가히데, 타키카와 카즈마스, 모리 요시나리 등 무장들마다 취향이 갈려 버렸다.
이 소동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다름아닌 시즈코였다.
현대의 양갱은 다채로운 종류가 있지만, 전국시대에는 설탕을 사치스럽게 쓴 설탕양갱과, 설탕을 쓰지 않고 팥만으로 만든 양갱 두 가지가 주류이다.
거기서 시즈코는 현대와 마찬가지로 코시안(こしあん), 츠부안(つぶあん), 밤(栗), 말차(抹茶), 소금(塩), 벌꿀(蜂蜜), 유자(柚), 홍차(紅茶) 등 풍부한 종류를 만들어냈다.
어느 정도의 그룹은 생겼지만, 취향이 완전히 갈려버린데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양갱이야말로 최고라고 말하여, 전쟁밥으로 채용하는 게 곤란해졌다.
어설프게 한 가지만을 채용하면 그거야말로 가신들 사이의 다툼으로는 끝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소동을 즐기기에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양갱의 난(羊羹の乱)'이라고 불린 일련의 소동은 양갱의 이름을 퍼뜨림과 동시에, 전쟁밥으로 채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다투지 않게 되었지만, 물밑에서는 아직 다투고 있거든"
진정된 듯 보였지만 가신들 사이에서의 양갱 다툼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먹거리의 취향에 의한 다툼이기에, 노부나가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방치해두고 있다.
"식사의 취향은 어렵구나"
"뭐, 그 덕분에 가게가 생겼으나,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결과? 라고도 할 수 있을…… 까?"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의 양갱 열풍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퍼져나가, 지금은 스테이터스 심볼의 하나가 되었다. 아랫사람들은 양갱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을 꿈꾸면서 주야로 무공을 세우려고 노력한다.
윗사람들은 포상용으로 양갱을 사고 술안주로 하거나, 차와 양갱을 즐기거나 한다. 이렇게되면 시즈코 혼자서는 다 대처할 수 없는 양이 요구된다.
어쩔 수 없이 시즈코는 고로를 감독으로 삼아, 기후에 오다 가문 전속의 감미처(甘味処, ※역주: 단 간식을 파는 가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한자를 그대로 읽었음)인 '기후야(岐阜屋)'를 개점했다. 또, 보존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주문생산 방식으로 했으나, 그래도 반년 뒤까지 예약이 밀려 있었다 (※역주: 위에서는 양갱의 보존능력이 좋다고 써놓고 여기서는 보존능력이 약하다고 써놓은 이유를 모르겠음).
"슬슬 아야 짱 혼자서는 서류를 다 처리하지 못하니, 사무, 경리 담당이 있으면 좋겠네"
하지만, 사무를 담당할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무훈을 세워 입신출세(立身出世)를 목표로 하는 자들은 많이 있지만, 주군을 그림자 속에서 보필하는 문관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설령 있다고 해도 이미 다른 주군을 섬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무를 담당할 사람은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키워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야 짱은 우수하지만…… 아무래도 무리를 시킬 수는 없으려나)
어떻게 안 되나 하고 생각한 시즈코였지만, 간단히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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