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8 공습(空襲)



엣츄(越中) 쿠로다(黒田) 세력의 화살이 닿는 거리보다 훨씬 앞에서 시마다(島田) 하사(三曹)의 포가 불을 뿜었다. 첨벙첨벙하고 강물을 밀어내면서 장갑차의 포는 두번 세번 굉음을 발했고, 나무로 된 망루(櫓)나 대(棚)가 맥없이 박살났다. 특히 6, 7명의 병사가 올라가 있던 망루는, 그 받침 부분에 직격탄을 맞고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쿠로다의 병사들도 용감했다. 아마도 100% 죽을 것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음에도, 그래도 짐승같은 고함을 지르며 돌진해왔다. 장갑차의 병사들이 상당히 겁을 먹은 것을 기숡에 서 있는 이바는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격(銃火)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 돌출되어 있던 쿠로다 병사들은 모두 맥없이 총격을 받고 물가에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시마다는 뭔가를 깨달은 듯, 강기슭으로 단번에 차량을 올라가게 한 후, 경사가 끝나고 평탄해지기 시작하는 부근에서 갑자기 차량의 방향을 바꾸어 적에 대해 옆구리를 보였다. 상대가 아무런 화력도 없는 것을 알기에 부린 재주이다. 병사들은 일제히 뛰어내려 그 뒤로 숨었다.

가볍지만 소리만큼은 요란한 장갑차의 포가 연속적으로 불을 뿜고, 놀랍게도 기총(機銃)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마루오카(丸岡)와 시마다가 이때다 하고 쏴갈기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찌르는 사람이 있기에 돌아보니, 젊은 일병(一士)이 무전기(tranceiver)를 들고 서 있었다.


"적은 농가를 방패로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마다의 목소리가 무전기 속에서 들려왔다.


"농가는 태우지 마라. 우회해서 소사(掃射)해라"


이바가 명령하자, 장갑차는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전진을 시작했다. 이미 화살 소리는 사라졌고, 병사들은 차량 뒤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이바는 카게토라(景虎)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와- 하는 환성을 올리며 나가오(長尾) 부대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소름끼칠 듯한 칼날의 빛이 잠시동안 강을 뒤덮었다.


"이건 엄청난 칼싸움(チャンバラ)인데"


무전기 속에서 시마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새 6, 7명의 대원이 이바 주위에 몰려들어 총을 겨누고 반대편 기슭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 라는 기쁨보다, 이바는 바위밭을 떠나온 사내들의 태도에 감격하고 있었다.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바위밭을 떠나는 것은 이바 자신에게도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게토라 씨들이 적을 쫓고 있습니다. 이미 싸움(斬り合い)이 벌어지는 곳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도망치는 녀석들을 쫓아 점점 멀리 가고 있습니다. 이런 근거리 전투에서는 전혀 쏠 수 없습니다"


이바는 시마다의 보고를 정확(的確)하다고 생각했다. 칼과 창의 전투로는 금방 격투가 되기 십상이다. 다음 기회에는 피아간의 거리를 충분히 확보해두지 않으면 뭘 위한 근대 화기인지 모르게 된다.


"요시아키(義明) 님이시오……?"


갑자기 무전기에 카게토라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이바입니다. 말씀하십시오(역주: 일본에서 무전기로 통신할 때 どうぞ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버(over)'에 해당하지만, 여기서는 대화의 흐름을 고려하여 일부러 '말씀하십시오'로 의역함)"


"들리는 걸까?"


카게토라가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있는 모양이다.


"들립니다. 말씀하십시오"


"오오, 들렸다"


"카게토라 님, 말씀하십시오"


"어떻소. 이대로 미야자키(宮崎) 요새를 함락시킬 수는 없겠소이까"


이바는 즉시 대답했다.


"요새를 불태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돌아와 주십시오. 카게토라 님만 오셔도 됩니다……"


"오오, 그렇소?"


그 말만 하고 통신이 끊기고, 이윽고 반대편 기슭의 사면(斜面)을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가 혼자서 달려내려와 강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카게토라는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이바는 카게토라와 나란히 바위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시아키 님에게 어떤 계책이 있는지, 이제 그것만이 기대되어 달려왔소이다"


카게토라는 약간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요새를 태우러 가죠"


"저 요새는 견고하게 지어져 있소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목조(木造) 아닙니까"


"그렇소.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는 하오만……"


"그럼 간단합니다. 둘이서 불태워 버리죠"


"둘…… 나와 그대가 말이오?"


카게토라는 발을 멈추고 말했다.


"시미즈(清水) 상사(一曹)에게 헬기를 준비시켜라. 적의 요새를 불태울 것이다"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은 조금 부러운 듯한 표정으로 이바를 보더니 즉시 달려갔다.


"카게도라 님은 배멀미를 하시는 편입니까"


"아니오. 배멀미는 하지 않소"


"그럼 안심입니다. 요새를 불태우고, 덤으로 적의 모습을 하늘에서 구경하고 오죠"


카게토라는 기겁하여 멈춰섰다.


"하늘……"


"나는 겁니다"


이바는 짓궂게 웃었다. 음…… 하고 신음하는 카게토라의 등을 가볍게 치며,


"카게토라 님 정도 되시는 분이, 하늘 한두번 나는 정도가 뭐라고 그러십니까"


라고 놀렸다.


"송구스럽소. 요시아키 님은 참으로 호탕한 말씀을 하시는구료. 하늘 한두번이라니, 이건 꼭 우리 주군께 들려드려야 하겠소"


카게토라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듯 했다.

시미즈 상사는 이미 헬기에 시동을 걸고, 히라이 상병이 나무 상자를 두 개 짊어지고 와서 헬기 안에서 뚜껑을 비틀어 열고 있었다.

카게토라와 이바가 탑승하자, 히라이는 내릴 기색도 보이지 않고 기세좋게 문을 닫고는 이바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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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7 출격(出撃)



"의논(談合)은 끝나셨소이까……"


카게토라(景虎)가 남성적인 얼굴에 미소를 띠며 돌아와 이바(伊庭)에게 말했다.


"그리 대단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부대의 규율을 이곳에 오기 이전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카게토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들의 전통(しきたり)은 아무래도 잘 이해되지 않는데, 장수와 병사의 규율이 조금 지나치게 느슨한 게 아니외까?"


이바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카게토라 님 같은 분이 보시기에는 오합지졸로 보이겠지요"


카게토라는 애매한 미소로 그에 답했다.


"그런데, 첩자의 보고로는 아무래도 쿠로다(黒田) 놈이 대군을 움직일 낌새이오"


"결전을 걸어올 생각일까요"


"글쎄,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 미야자키(宮崎) 요새 너머에 있는 마츠쿠라(松倉), 나메리카와(滑川), 신죠(新庄), 토야마(富山) 등 진보(神保) 가문, 시이나(椎名) 가문 등의 각 성이 전투 준비에 바쁘다고 하오. 진보, 시이나 양 가문은 옛부터 우리 에치고(越後)의 적……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 놈이 교묘하게 부추겨 대군을 유도한 것인지도 모르오"


입는 자신의 지도를 펼쳤다.


"쿠로베(黒部), 토야마…… 과연, 이 사이에 있는 병력이 일제히 이쪽으로 향하게 되면, 이거 꽤 큰(ちょっとした) 싸움이 되겠군요"


"그렇소. 꽤 큰……"


카게토라는 이바의 표현이 느낌이 좋은 듯 흉내냈다.


"숫자는……"


"1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오. 7천이나, 7천 5백"


이바는 신음했다.


"이곳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7천이 움직이려면 사흘은 필요할 것이오"


운동성(運動性)이 나쁜 군사행동(軍事)이군, 이라고 이바는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이 강을 확보해 두죠"


"뭐라고 하셨소?"


"사카이가와(境川)를 우리들의 방어에 이용하지요"


카게토라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카이가와를……"


"강 건너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강 저편에는 사카이(境)라는 이름의 땅이오. 백성의 집이 두 채. 이쪽보다는 약간 완만한 땅으로, 도로(街道) 외에는 숲과 밭 뿐이오"


"그러면 당신의 병사들을 모아 주십시오. 강의 저쪽 기슭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여, 엣츄(越中) 세력이 왔을 때의 제 1차 방어선으로 삼습니다. 강에 방어진을 치고 제 1차 방어선이 뚫렸을 때의 제 2차 방어선으로 하죠. 그리고 강을 건너오면 이쪽이 제 3의 방어선……"


카게토라는 입을 딱 벌리고 이바를 보았다. 천연의 방어 거점의 앞쪽에는 반드시 그것을 지키는 진지를 구축한다는 군사 사상의 초보적인 내용이, 이 시대의 무장에게는 천재적인 발상(ひらめき)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적지에 파고들어 수비를 굳힌다…… 이거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카게토라는 솔직히 고개를 숙였지만, 이바는 장갑차의 차장인 시마다(島田)의 성격을 계산에 넣은 것에 불과하다.

카게토라들은 쿠로다의 땅에 쳐들어가 싸우는 것이 우선 큰일이지만, 이바는 그런 적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다.


"언제 치고 나갈 생각이시오"


"지금입니다"


그것은…… 이라고 말하려던 카게토라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어 매서운 미소를 짓더니 빙글 몸을 돌려 달려갔고, 길로 나서자 큰 소리로 외쳤다. 공사 인부들이 즉시 무장병으로 모습을 바꾸어, 약 150명 정도의 부대가 대오(隊伍)를 갖추었다.


"시마다 하사(三曹). 장갑차(APC) 출동 준비"


옛, 하고 기세좋게 대답한 시마다는, 마루오카(丸岡) 일병(一士)과 함께 차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키무라(木村) 상병(士長).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을 정렬시켜라"


군장 소리가 나며 열 명의 보명이 APC 옆에 정렬했다.


"사카이가와를 도하(渡河)하여, 전방 적진을 파괴하고 에치고 병사들의 활동을 엄호하라. 목적은 교두보 확보 및 우군 방어전선의 구축"


장갑차가 굉음을 내고, 열 명의 병사가 그것에 뛰어 올라탔다.


"출발"


이바는 장갑차 앞을 천천히 걸어서 전국시대의 호쿠리쿠도(北陸道)로 나가자, 오른손을 휘둘러 장갑차를 우회전시켰다. 장갑차는 지금, 그 본래의 목적을 위해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카게토라 님. 병사들이 저 차보다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지시해 주십시오"


"알겠소"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는 자군의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들으며 이바의 마음에 문득, 바위밭을 떠나는 데 대한 불안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여 이대로 고립된 입장이 되기보다는, 이 시대에 참가하는 확실함 쪽이 훨씬 자신을 행복하게 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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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6 의견(意見)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의 초계정(哨戒艇)은, 잔교(桟橋)가 없어진 바위밭에 접안했다. 타고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은, 주위에 이질적인 복장의 시대인(時代人)들이 있는 것을 보고도 그다지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계셔 주셨습니까. 정말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진심으로 안도한 태도로 모두와 악수하며 걸었다.


"자네들은 어디까지 갔던 건가"


"어딘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항구랑 항구는 죄다 쬐끄맣고, 거기에 모습이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알고 있는 장소나 우군과 만날 때까지라고 생각해서 갈 수 있는 데까지 갔습니다만 그러다보니 해가 져버려서……. 밤이 지나고 육지를 보니 겨우 상황이 이해된 셈입니다. 소위(三尉) 님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시대를 뛰어넘어 엄청나게 옛날로 되돌아 와버린 것이군요. 연료가 아슬아슬해져서 간신히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만, 만약 이곳이 원래 시대로 돌아가버렸다면이라는 생각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대원들이 줄줄이 바위밭 가장자리로 모여들었기에, 이바는 갑자기 생각난 듯 쌓여있는 탄약 상자 위로 올라갔다.


"싸정은 이미 다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았다. "아직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지진에는 여진(余震)이라는 반동(揺り戻し)이 있으니, 자연계에는 우리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복원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서, 우리들은 하루를 24등분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해도 좋다. 시공연속체(時空連続体)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이 지금의 우리들의 기대에 따라서 움직여 줄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들이 영구하게 이 세계의 인간으로서 존재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견해를 말하자면 대단히 비관적이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초계정의 하사(三曹)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우리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시간 이변이, 자연계의 복원력으로 우리들을 귀환시킨다고 하면, 그것은 대단히 짧은 시간에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다른 시대의, 게다가 우리들이 그 줄거리를 알고 있는 과거에 개입할 여지를 줄 리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과거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는가. 어리석은 얘기지만, 나는 지금 막 그것을 깨달았다"


"그건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아가타(県) 일병이 안경을 빛내며 말했다.


"말해봐라. 이것은 전원이 대등한 의견교환이다"


"말하겠습니다"


아가타는 맨 앞줄로 나서며 말했다. "자연계까 우리들을 과거에 개입하게 하지 않는다면, 설령 개입하더라도 최소한도 내에서 그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시간은 우리들을 이곳에 표류시키고 방치했기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역사가 우리들 때문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그런 관점도 있다. 나도 아가타의 의견에 따르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감상적인 문제로 이치에는 맞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쩐지 돌아갈 수 없다는 예감이 든다"


"불길한 예감은 분명히 다들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정상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이미 시대에 대한 개입을 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 자연계의 그 무엇보다도 강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복원력이 발동될 정도로 아직 우리들이 가한 상처는 크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가타는 우리들이 더욱 큰 개입을 하면, 시간은 우리들을 귀환시킬지도 모른다고 하는 거군"


장갑차의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손을 들었다.


"시마다 하사, 발언하겠습니다"


"좋다"


이바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시간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해"


시마다는 굵은 목소리로, 대단히 평이(平易)한 말투로 말했다. 발언시의 규칙에 따른 말투와,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을 때의 평어체(仲間言葉)에, 그의 고참대원다운 모습이 드러나 있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강 저편의 사무라이들과 전쟁을 한판 해버렸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어. 생각해봐, 화살과 창의 세계에 이만한 도구를 가지고 왔다고. 누구에게도 사양하거나 신경쓸 필요 없이 갈겨대고 쓰러뜨려서, 하기 나름에는 일본을 정복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남자로 태어나서 이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없어. 게다가 이곳은 전국시대라고 하잖아. 학교에서 배웠지만, 백성들도 귀족(公家)들도, 이 시대 녀석들은 연이은 전쟁으로 지쳐 있어. 일본을 누군가가 하나로 통일해주지 않으면 곤란한 시대야. 한번 해보자고. 쇼와(昭和)의 일본인을 지키는 거나 이 시대의 일본인을 지키는 거나 똑같은 얘기야"


탄약상자 위에서 이바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카게토라는 배려한 것인지 도로 공사 현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튼, 우리들은 어느 쪽이든 이 시대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확실히 상당한 양의 휴대식량이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이곳의 영주인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 씨의 원조를 받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고, 만일의 귀환에 대비하여 당분간은 이곳을 떠날 수도 없지. 그렇다면, 이 바위밭에서 자급자족하는 생활도 어쩔 수 없다는 거다"


"소위님께 맡기겠습니다"


초계정의 세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어지간히 불안했던 것이리라. 의논을 거듭하여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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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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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가리아




제 2장


05 황금(黄金)



카게토라(景虎)는 적극적이었다.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는 강기슭에서 오야시라즈(親不知)의 험한 곳(難所)으로 올라가는 호쿠리쿠도(北陸道)의 도로폭을 장갑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넓히고 길을 고르게 다지는(整地) 것을 제안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부터 무사(武士)와 백성(百姓)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인원을 동원하여 공사에 착수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모습은, 이 명령이 얼마나 자신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하고 합리적인 것인지를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였다. 카게토라의 지배가 잘 먹히고 있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공사 모습은, 반대쪽 기슭의 쿠로다(黒田) 군을 자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쪽 기슭에도 사람 모습이 늘어났고, 이윽고 급조한 것이긴 하나 삼엄한 대(棚)와 망루(櫓)가 출현했다.

카게토라는 그 진지구축을 보고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전쟁수레(いくさ車)의 화통(火筒)이 불을 뿜으면, 저런 요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재가 될 것이다"


라고 부하 무사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새 여자들이 취사도구를 가지고 모여들어, 공사에서 일하는 사내들이나 철조망 안의 자위대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양쪽의 밥도 반찬도 전혀 구별이 없는 것을 보고, 이바는 카게토라의 신경이 의외로 섬세한 것에 놀랐다. 식량의 분배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 이런 경우에 장수(将)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心得)이라는 것을 이바는 자위대의 간부교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요시아키 님"


부지런하게 여기저기 지시하며 돌아다니고 있던 카게토라가, 점심 무렵이 되자 눈을 반짝거리며 이바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표시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오?"


카게토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바다 건너의 사도(佐渡)였다. 이바는 의자에 앉아서 카게토라가 건네준 지도를 무릎 위에 펼치고, 옅은 파란색으로 나타난 그 부분을 보았다.


"아……"


다음 순간, 이바는 어처구니없는 듯 카게토라를 올려다보았다. 카게토라는 뭔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당신은 놀라운 사람이군요"


"저는 놀라거나 하지 않았습니다만……"


이바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현대어(現代語)의 애매함을 창피하게 느꼈다 (역주: 현대 일본어에서 '놀라운 사람(驚いた人)'이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놀란(驚いた) 사람(人)'이라는 뜻이 됨).


"아니, 경탄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거 송구스럽소이다"


"거꾸로 여쭙겠습니다만, 카게토라 님의 영지(領国), 아니 코이즈미 씨(小泉氏)의 영토인 이 에치고(越後)의 경제 상태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경제……"


이바는 볼펜을 꺼내어 지도 구석의 여백에 써 보였다.


"물산(物産), 축적(蓄積), 장사(商い)의 수지(収支)…… 즉, 풍요로움의 상태입니다"


"에치고는 금곡(金穀)의 나라라고 하지만, 지금의 우에스기(上杉) 가문은 꽤 궁한 형편이외다"


카게토라는 목소리를 낮추어, 이 사내로서는 드물게 쑥스러워하면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전비(戦費)의 충당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렇소. 특히 선대(御先代) 시절에 아가노가와(阿賀野川) 너머의 오쿠고오리(奥郡)가 이로베(色部) 일족의 손에 떨어져, 쌀의 산지(米倉)를 하나 빼앗긴 상황이라서 말이오"


"그럼, 사도에서 황금(黄金)이 난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그건 알고 있소. 사도의 니시미카와무라(西三川村)는 옛부터 사금(砂金)이 났고, 근년에는 코후가와(国府川)의 어딘가에 황금이 산이 잠자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퍼쳐, 사도의 산야(山野)를 살피고 다니는 광맥꾼(山師)들이 늘어났다는 모양이오. 하나, 아직 그 황금의 산을 발견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외다"


이바는 볼펜 뒤를 눌러서 붉은 잉크로 바꾼 후, 카게토라의 지도에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산은 이곳일 것입니다. 십중팔구, 이곳을 파면 황금이 나옵니다. 아니면 은(銀)일 수도 있습니다만, 은으로 괜찮다면 틀림은 없습니다. 이 츠루시(鶴子)라는 곳에 잠자고 있을 것입니다"


"역시 그러한가. 어젯밤 내내 이 지도를 보았소만, 보면 볼수록 에치고를 철저하게 드러내고 있기에, 사도의 이 표시는, 어쩌면 황금이 있는 곳을 나타내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소이다. ……그건 그렇고, 그대는 놀라운 사람이외다"


카게토라는 이바의 말투를 흉내내며 유쾌한 듯 웃었다. "땅에 묻혀있는 황금을, 자기 손바닥 위를 가리키듯 가리켜 보이다니, 그야말로 귀신이 따로 없군요……"


"사도에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까"


"음, 보내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광맥꾼 백 명을 당장이라도 긁어모아 황금백은(黄金白銀)을 파내어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가지고 오게 하겠소"


"하지만, 그 때문에 사도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습니까"


"사도의 혼마 씨(本間氏)는 명가(名家)이외다. 허나, 아무리 요리토모(頼朝) 공(公) 때부터의 명가라 하나, 지금은 가세가 기울어 가신(家人)들 숫자도 백 명도 되지 않소. 황금이 나오면 코이즈미 가문만이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택(余恵)은 반드시 혼마 가문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 하면, 우리에게 반발하여 피를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仕儀). 늙었다고는 하나 혼마 가문에는 아직 그렇게 이치가 보이지 않는 자는 없을 거외다…… 허나, 만에 하나 혼마 가문이 대든다면, 에치고 일국의 안녕(安泰)을 걸고서라도 단번에 짓밟아버릴 뿐이오"


카게토라는 북쪽 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외쳤다. 그 근본적으로(根太く) 사나운 논리에, 이바는 어깨가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이 사내의 뇌리에 그려져 있는 조국이란, 사카이가와(境川)에서 네즈가세키(鼠ケ関)에 이르는 에치고 일국, 즉 니이가타(新潟) 현(県)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데와(出羽), 미치노쿠(陸奥), 시모츠케(下野), 코우즈케(上野), 시나노(信濃), 히다(飛騨), 엣츄(越中), 카가(加賀), 노토(能登), 그리고 에치젠(越前), 미노(美濃)…… 그 나라들은 모두 외국이며, 자신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완전한 타인인 것이다. 이만한 걸물(傑物)에게 이 정도로 좁은 세계관을 가지게 하고, 쇼와(昭和) 시대에서는 흔하디 흔한(凡愚) 자신에게 이 정도로 넓은 세계를 파악하게 하고 있는 역사의 흐름(積み重ね)에, 이바는 어쩐지 전율스러움을 느꼈다.

그 때 멀리 바다 위에서 폭음이 들려와 두 사람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엇, 그대들을 마중하러 온 것이외까?"


카게토라는 크게 당황하여 말했다. 다가오고 있는 것은 토야마(富山)로 간다고 말하고 출발한 초계정(哨戒艇)이었다.


"유감이지만, 저것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표류자입니다"


이바는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빠르군. 물 위를 말보다도 빠르게 달려오다니. 저것 보시오, 저렇게 시원스럽게 박차는 모습을"


초계정은 카게토라의 말대로, 거친 파도 위를 박차고 뛰어오르며 다가왔다. "어떠한 수군(水軍)도 저 빠르기에는 당할 수 없겠소. 이거 참"


카게토라는 군사적 견지에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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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4 지도(地図)



"고맙소"


해가 저물어오는 바닷가에서,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는 이바(伊庭) 소위(三尉)에게 그렇게 감사의 말을 했다. 철조망 주위에 쿠로다(黒田) 병사들의 시체가 몇 굴러다니고 있었고, 부상당한 무사들이 자위대원들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무서운 도구로소이다"


카게토라는 장갑차의 바디를 두들기면서 말했다. "뭐라는 이름이오?"


이바는 뭔가 말하려다가, 곤란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장…… 전차(戦車)라고 하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전차. 전쟁 수레(車)입니까. 아니, 이것 하나만 있으면 에치고(越後)의 싸움도 하루도 안 되어 진정되겠군요"


카게토라는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듯한 눈동자로 그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한번 더, 저걸 쏘아주실 수 있겠소이까"


이바는 그 어린애같은 바람에 미소를 지었다.


"어디를 향해 쏠까요"


"저곳에"


카게토라는 강 어귀에 있는 작은 소나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백 미터 정도의 거리이다.


"너무 가깝습니다. 저 쯤은 어떨까요"


이바는 맞은편 기슭에 보이는 뾰족한 바위를 가리켰다. 그것은 해가 지기 시작한 바다를 배경으로 예각적(鋭角的)인 실루엣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것을……"


카게토라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시마다(島田) 하사(三曹). 강기슭에 튀어나온 저 암각(岩角)에 포격해보게"


"라저. 그런데 좀 너무 가깝지 않습니까"


"세상에. 저래도 말이오?"


카게토라는 신음했다. 이바들의 역사에 따르면 타네가시마 토키타카(種子島時堯)가 시마즈 타카히사(島津貴久)에게 포르투갈 총을 헌상한 것이 텐분(天文) 12년(역주: 1543년). 이 세계에서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무사가 철포(鉄砲)의 철자도 모르는 것은 확실했다.

천천히 조준하고, 이윽고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반대편 기슭의 바위는 보기좋게 날아갔다.

카게토라는 어린애처럼 양손의 손가락을 귓구멍에 꽂고 생침을 삼켰고, 손가락을 뺴더니 묘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시아키(義明) 님을 우리 진(陣)으로 맞아들이고 싶군요"


이바는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우리들의 무력은 자위(自衛)를 위한 것입니다. 타인을 해치기 위해서는 쓸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해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 될 거라 생각하오만……"


"그것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리사욕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은 자연히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그러자 카게토라는 호탕하게 웃었다.


"과연, 역시 요시아키 님이시오"


그렇게 말하고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이 카게토라, 감복했소이다. 우리들을 괴롭히는 이로베(色部), 쿠로다 놈들은 하나같이 사리사욕. 영민(領民)을 도탄(塗炭)에 빠뜨리고 천하를 어지럽히며 혈족의 신의(信義)에 반하면서도 조금도 수치스러워하지 않소. 잘 말씀해 주셨소이다. 어느 쪽이던 의(義)에 따라 행동하신다는 본심, 틀림없이 보았소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 주인인 코이즈미(小泉) 에치고노카미(越後守)께 틀림없이 전하겠소"


맑은 눈동자에 넘치도록 신뢰를 담아보이는 카게토라에 대해, 이바는 그 해석이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이후에 쿠로다 측은 공격해올까요? 이미 우리들은 중립을 지키는 데 실패해 버렸으니……"


"그야 물론, 틀림없이……"


"그렇게 되면, 그에 대비해야 하겠군요"


"다만……"


카게토라가 드물게 말을 흐렸다.


"다만, 뭡니까"


"공격대(寄手)가 나타나는 것은 언제일까이오. 오늘밤일지, 내일일지, 모레일지"


이바는 이 시대의 템포가 조금 이해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투도 상당히 슬로우 템포로 전개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발생하는 것은, 전략적인 타이밍보다 오히려 우발적인 '계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따라서 카게토라 같은 인물도 정확한 예측은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이바는 문득, 이 시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근대화기가 무엇 하나 없더라도 승리해나갈 수 있을 듯한 예감을 받았다.

이바는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에게 말해서 이 일대의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우리들은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카이가와(境川). 카스가야마(春日山)는 이것입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가운데 지도를 펼치고, 일일이 알기쉽게 손가락으로 가리켜나가자, 카게토라는 홀린 듯 그것을 쳐다보았다. "적의 전선기지(前線基地)는 어디쯤일까요"

카게토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얼굴을 들어 이바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산의 모양도 강의 굽이도, 적지의 상황이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지 않소. 이래서는 싸움이 되질 않겠소이다"


"한 장 드리지요"


"이것을 저에게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카게토라는 희색이 만면해졌다.


"예, 다만, 무익한 살인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 사이로……"


그러면서 이바는 국도 8호(国道八号)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이 지도에 있듯이, 길의 폭을 넓히고 길을 고르게 다져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 APC…… 아니 전차가, 언제 어느 때라도 적을 무찌를 수 있으니까요"


"음, 음"


카게토라는 흥분하여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오, 그렇다면 이 강 어귀에 요새(砦)가 하나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로군요"


그렇게 외치더니 일어나서 반대쪽 기슭을 노려보았다.


"요시아키 님의 힘을 빌려, 미야자키(宮崎) 요새에 있는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의 목을 벤다면, 카미고오리(上郡) 일대는 예전처럼 조용해질 것이 틀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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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2장


03 전투(戦闘)



이바(伊庭) 소위(三尉) 등, 시간 이변과 조우하여 시대를 표류한 자위대원들이 도착한 것은, 서력 1500년대의 어딘가인 모양이었다. 나가오 카게토라(長尾景虎)라고 이름을 밝힌 사내는 그 해를 에이로쿠(永禄) 3년이라고 말했으나, 이바나 히라이(平井)의 지식으로는 환산할 방법도 없었고, 또 설령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연대로 환산했다고 해도, 과연 그게 정확히 이 시대와 그들의 고향인 시대의 시간차를 나타낼지 어떨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일직선으로 같은 시대를 역행한 것이 아니라, 약간이지만 양상(様相)이 다른 별개의 차원으로 날아들어 버린 듯 했다.


이바는 카게토라로부터, 당시의 주요한 사회 정세를 듣고, 자신들이 다른 차원(異次元)에 온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오와리(尾張)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 의해 죽었을 터인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는 그 해 3월에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병사해버렸고, 뭣보다 오다 노부나가나 오다 가문 자체의 존재를 이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사내는 모르는 것이다. 또, 토우카이(東海)에서 한참 고생중이어야 할 마츠다이라(松平) 가문, 즉 도쿠가와(徳川) 가문도 이바가 알고 있는 역사처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시카가(足利) 막부(幕府)가 붕괴하여 전국시대 소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고나라(後奈良), 오오기마치(正親町)로 이어지는 천황가(天皇家)의 계보(系譜) 같은 것은 이바가 알고있는 지식대로인 듯 햇다. 즉, 중요한 역사의 기둥이 되는 부분은 같지만, 어디를 어떤 무사가 다스리고, 누구를 누가 쓰러뜨렸냐라는 세세한 부분은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종방향과 마찬가지로 횡방향으로도 무한한 변화를 갖는 여러 차원에 이어져있는 것이라 하면, 이 세계는 이바들이 있었던 세계와 미묘하게 달라진 이야기를 갖는 다른 차원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바들의 역사에서는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될 터인 이 사내는, 켄신, 즉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던 무한한 가능성의 하나를 이바들의 세계의 동일 인물과는 다른 방향으로 선택해서 살고 있는 사내인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걸물(傑物)로 보였다. 이 카게토라도, 카스가 산성(春日山城) 성주 코이즈미 유키나가(小泉行長)의 부장(部将)으로서, 가장 분위기가 험악한 엣츄(越中) 국경(国境)의 수비를 맡고, 그곳에 자위대(自衛隊)라는 이물질이 등장했음에도 극히 합리적인 자세를 보이며 훌륭하게 어려운 문제를 처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꽤나 해도 기울었군요. 그럼 내일 아침, 바로 쌀이나 된장(米噌) 같은 것을 가져오게 하겠소"


"감사드립니다"


의외인 것은, 이바 소위는 그 카게토라에 대해 전혀 뒤떨어져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시대의 전체적 느낌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강점이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카게토라는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라는 사내에게 흥미와 경의를 느낀 듯 했다.


카게토라가 일어서서 가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 저편에서 심상치않은 함성이 터졌다. 그제서야 강을 보니, 상당한 인원이 강을 건너서 반대쪽 기슭으로 전진하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쿠로다(黒田)의 정찰대(物見)입니다"


3열 종대(縦隊)로 늘어서 있던 남자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외쳤다. 이바들은 뒤섞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없었으나, 아무래도 엣츄 측의 척후(斥候) 4, 5명이 강을 향해 수비태세를 갖추고 있던 카게토라의 부하에게 발견되어 쫓기고 있는 듯 했다. 강의 한복판에서 두 명 정도 창에 찔려 가라앉았.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나머지를 사내들이 무턱대고 쫓고 있었다.

그 때, 반대쪽 기슭에 백 명 정도의 무사들이 나타나 깃발을 들어올렸다. 크고작은 30여개 정도의 깃발이 서남풍에 휘날리며 위세좋게 펄럭이고 있었다. 그 깃발 아래쪽에서 일제히 짧은 활시위 소리가 울려퍼지고, 화살이 검은 호를 그리며 빗발처럼 사카이가와(境川)로 쏟아졌다. 경장(軽装)인 에치고 측 인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압도당하여 다급히 철수했다.

기마(騎馬) 무사가 10기 정도, 물방울을 튕기며 강으로 들어갔다. 하얀 칼날을 번쩍이며 등을 보인 사내들의 머리 위로 덮쳐갔다.


"가라……"


카게토라는 큰 소리로 외치며, 장검(大刀)의 칼자루를 쥐고 달려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부대가 맹렬하게 강으로 달려갔다. 반대쪽 기슭에서는 보병의 병사들도 내보냈다.


"3대 1이야"


장갑차 위에 머리를 내밀고 있던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말했다. "저 양반(大将), 당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리는 없다. 우에스기 켄신이니까"


히라이 상병(士長)은 기도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말발굽 소리와 거친 욕설이 뒤섞였다.


"소위님. 적은 어느 쪽입니까"


헬기의 바로 옆에 있던 대원이 외쳤다.


"쏘지 마라. 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바가 목청껏 외쳤다.

길을 따라 에치고 병사들이 한덩이가 되어 물러났다. 그것을 강 저편에서 다가온 병사들이 에워싸듯 하며 베어넘겼다.

죽음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지 못하고 에치고 병사들은 차례차례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바다를 등지고 뒷걸음쳤다. 그리고, 카게토라가 숙적(宿敵)이라 말한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의 병사들이 기세를 타고 그들을 찌르고 베었다…….

이바의 "쏘지 마라"라는 외침은 이걸로 몇 번째였을까. 그는 목이 심하게 말라서 연이어 생침을 삼켜야 했다.

길에서부터의 언덕길을 카게토라가 점차 후퇴해왔다. 혼자서 4, 5명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기마 무사가 2기, 그 공격측(寄手)에 비집고 들어와 덮쳐누르는 듯한 기세로 카게토라를 노리기 시작했다. 카게토라는 단숨에 달려서 20미터 정도 물러난 후 갑자기 옆으로 뛰었다. 그곳은 바위로, 기마 습격을 피하는 데는 절호의 위치였다. 그러나, 고립된 카게토라를 보고 쿠로다 병사들이 15, 16명, 엄청난 살기를 띠고 달려왔다. 앞의 4, 5명은 이미 바위에 올라가서 카게토라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었다.


"요시아키(義明) 님……"


갑자기 카게토라는 그렇게 불렀다. 바위 위에 떡 버티고 서서(仁王立ち) 씨익 웃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놀고 있던 어린아이가 지나가던 친구(仲間)에게 인사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삿된 구석(邪気)이 없고, 계산(利害)도 없고, 승패조차 초월한 남자의 미소였다.

요시아키…… 그렇게 이름을 불린 이바 소위는, 그 생각지도 못한 친근함에 감동했다. 성이 아닌 이름으로 서로 부른다. 그런 친구를 잃은지 몇년이 지났을까. 초등학교 친구들조차 서로를 이미 성으로 부르고 있었다.


"카게토라, 죽지 마라"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이바 소위는 64식 자동소총을 집어들더니, 미군식의 돌격자세로 카게토라에게 몰려드는 쿠로다 병사들을 향해 숙련된 짧은 연사(短連射)를 퍼부으며 전진했다.


"치사합니다, 소위님"


시마다 하사는 그렇게 고함치고는 장갑차 안으로 들어가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승무원인 마루오카(丸岡) 일병(一士)이 당황하여 장갑차에 뛰어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포탑이 회전하여 언덕길을 내려오는 3기의 무사의 한가운데를 조준하자, 듬직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인마(人馬)는 맥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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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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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02 켄신(謙信)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배려하여 가져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은 외통수 장기(詰将棋) 같은 대화를 계속했다. 대화의 흐름 하나로 영구히 접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회담을, 두 사람은 끈기있게, 원하는 방향을 찾으며 계속했다.


"지금 에치고(越後)는……"


이라며 사내는 정세를 이야기했다. "북쪽으로 이로베(色部) 씨, 남쪽으로 아시나(蘆名), 우에스기(上杉), 무라카미(村上)의 각 가문, 그리고 서쪽으로는 진보(神保) 씨와 그것을 등 뒤에서 조종하는 아사쿠라(朝倉) 씨로 둘러싸여, 그야말로 다난(多難)한 때를 보내고 있소이다. 우리 주군이신 코이즈미(小泉) 에치고노카미(越後守)는 맹주(明主)이시나, 아무래도 강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싸움에 쫓기고 있어, 예전에 우리 영지(領国)였던 아가노가와(阿賀野川) 이북을 이로베 일족에게 빼앗겨도 되찾을 여유가 없는 상황이외다. 여기에 당신들과 싸우게 되면, 먼저 이 사카이가와(境川) 맞은편 기슭의 미야자키(宮崎) 요새(砦)에 있는 쿠로다 히데하루(黒田秀春) 놈이 기뻐하며 치고 나올 것이 틀림없소"


그렇기에 이 문제는 온건하게 처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바(伊庭)도 그 점에서는 이의가 없었다.


"기일(期日)에 관해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희들이 완전히 우군에게 버림받았는지 어쩐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언제 이 상태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당분간 이 지점을 떠날 수 는 없습니다. 한 발자국이라도 이곳을 떠나면, 그야말로 돌아갈 수 있을 것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건 오히려 반가운 일이오. 당신들이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으시던, 싸울 걱정만 없다면 전혀 상관없소. 그러나, 이곳에 수십일이나 가만히 있는 것은 불편하시지 않겠소이까?"


"곤란한 건 그것입니다. 저희들의 물자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이 식량입니다"


"도움을 드리지요. 단, 신명(神明)을 걸고 적으로 돌아서지 않는다고 맹세해 주신다면 말이오"


"그거야 뭐…… 당신들 뿐만 아니라, 강 저편에 있는 쿠로다인가 하는 사람의 병사들과도 전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쿠로다 세력과는 싸우게 될 거요(역주: 원문의 討たれい라는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음). 히데하루 놈과는 지금 한창 전쟁중이외다"


"허허……"


이번에는 이바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카이가와가 엣츄와 에치고의 경계인 이상, 이곳에 분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 사내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전투 상태가 되어 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느긋한 풍경이었다. 사내가 분노한 표정으로 설명한 것에 따르면, 쿠로다 히데하루라는 인물은 원래 코이즈미 가문의 가신(家臣)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비밀리에 시나노(信濃)의 우에스기 가문과 내통하여, 주군인 코이즈미 에치코노카미 유키나가(行長)가 호쿠에츠(北越)의 이로베 가문을 치러 나간 사이에 돌연 반기를 들어 영지를 지키고 있던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晴景)를 죽여버린 것이다. 하루카게는 이 사내의 형에 해당하며, 그 후에 카스가 산성(春日山城)에서 쫓겨나자 엣츄의 진보 가문으로 가서, 하필이면 그 에치고 측 최전선인 미야자키 요새의 수비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슬러올라가면 나가와 가문과도 혈연관계가 있는 사이인 모양이라,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증오가 양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거 곤란하군요"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 반대편 기슭을 보았다. "당신과의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면, 저 양반(あちらさん)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는 거군요"


"과연, 저 양반이라……"


이바의 말투가 웃겼는지 사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실례입니다만, 한번 더 당신의 성함을"


옆에서 말없이 듣고있던 히라이 상병이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가오 헤이조 카게토라(長尾平三景虎)"


사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위(三尉)님, 이 분은 혹시……"


"뭔가 상병(陸士長)"


"나가오 카게토라, 그……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아닐지요"


이바는 깜짝 놀라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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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01 사자(使者)



이바(伊庭) 소위(三尉)의 손목시계는 그 때 3시 무렵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시 몇분인지 이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전원의 손목시계가 완전히 엉망진창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 누구도 설명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들을 덮친 시간 이변에 관계되어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연의 돌제(突堤)를 형성하고 있는 그 바위밭의 주위에 초긴급으로 철조망이 쳐지고, 대원들이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이바 소위는 진정되지 않은 모습으로 그 진지 안을 걸어다니며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 45분 간격으로 장갑차 앞쪽의 길을 보고 있었다.


"소위님, 무얼 신경쓰고 계신 겁니까"


반라의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보다 못한 듯 물었다.


"안 된다. 빨리 옷을 입어라"


이바는 히라이 상병을 보더니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자신은 푹 젖은 상태로, 어깨나 팔 부근은 이미 마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곧 마릅니다"


"빨리 입어라. 손님이 올 거다"


"손님이라뇨……"


"강 저편에서 사무라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었잖나. 그들에게 우리는 침입자다. 반드시 사자(使者)가 올거다"


"사자입니까"


히라이 상병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니와가 사용한 사자라는 단어가, 아까 강 건너편에 보였던 사무라이들의 모습과 겹쳐서 대단히 옛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


"이바 소위님, 전방에 적입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반사적으로 이바와 히라이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국도(国道) 8호가 있었던 부근에서 창끝이 반짝하고 빛났다. 히라이는 당황해서 셔츠를 걸치고 소매에 팔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전원에게 명령이 있을 때까지 발포하지 말라고 해라. 단, 결코 큰 목소리를 내지 마라. 상대를 자극할 만한 행동은 일체 삼가도록"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 장갑차 앞으로 나왔다.


길에 40명 정도의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통솔이 잡힌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한동안 바다를 향해 횡대(横隊)를 짜고 있었으나, 개중 약 절반 정도가 강을 향해 빠릿한 걸음걸이로 이동하고, 나머지 20명 정도가 길에서 벗어나 장갑차로 통하는 언덕길을 내려왔다. 하지만 이윽고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정지하여, 3열종대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창이 10자루 정도 파란 하늘을 향해 늘어섰고, 그 끝부분에 달린 짧은 칼날(白刃)이 끊임없이 태양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났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가죽 상의를 걸친 사내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아마도 싸움터에서 입는 겉옷(陣羽織) 같은 것일텐데, 그건 약간 짧은 편인 감(紺)색의 바지(袴)나, 허리에 찬 큰 칼(大刀)과 잘 매칭되어 있어서, 자위대원들이 입고 있는 전투복에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전적으로 보였다.


사내의 몸은 탄탄했고, 키(上背)도 꽤 커 보였다. 다만 복장의 가로폭이 넓어서, 그런 복장이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키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피부는 햇빛에 검게 타 있었고, 눈썹은 검고 굵었으며, 긴 구렛나룻이 정한(精悍)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관모(冠)를 쓰지 않은 머리에는 이마부터 깨끗이 깎여 있었고, 후두부로부터 정수리로 굵은 상투(髷)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 무사는 헬리콥터가 보이는 위치로 오자 발을 멈추고, 꾸밈없는 태도로 감탄한 듯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주위에 쳐진 철조망을 알아차리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그 가시 부분을 쿡 하고 찔러보았다. 조금 아팠던 듯, 깜짝 놀란 듯이 손가락 끝을 바라보더니, 하얀 이빨을 보이며 이바 소위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바는 그에 낚인 것처럼 미소로 답했다.


"좋은 날씨(日和)외다"


뱃속에 스며드는 듯한 중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이바는 천천히 턱을 끌어당겨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날리던 것은 저것이오이까?"


"그렇습니다"


이바가 대답했다. 그 말투에 다소의 위화감이 있었던 것이리라. 사내는 "호오, 호오"라며 감탄한 듯한 탄성을 내고, 이바의 얼굴을 보며 걸어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바가 말했다.


"허허, 기다리셨다 함은?"


"이쪽의 영토 안에 이런 무리가 출현했으니 당연히 어느 분이던 이야기하러 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바 요시아키(伊庭義明)라고 합니다. 부하는 합계 27명. 그 밖에도 세 명, 배에 탄 자들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자리를 비우고 없습니다"


"나가오(長尾) 헤이조(平三) 카게토라(景虎)라고 하오"


사내는 천천히 인사하며 말했다. "카스가야마(春日山) 성주(城主), 코이즈미(小泉) 사에몬(左衛門) 고로(五郎) 유키나가(行長)님을 섬기고 있으나, 다만 지금은 카츠야마 성(勝山城)에 거하며 엣츄 입구(越中口, 역주: 확실하지 않음)를 지키고 있소"


"호오, 이 부근에 성이 있는 겁니까"


그러자 사내는 뒤돌아보며 왼쪽의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부근이 우리 카츠야마 성이오"


"저희들은 이 부근의 사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른다라…… 하면 뭣 때문에 이곳으로 오셨소"


이바 소위는 당혹한 듯 잠시 눈을 감더니, 자조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표류자(漂流者)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거 고생이시겠구려"


사내의 표정에 약간 의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배는 어쩌셨소"


"지금 현재, 저희들은 버려진 상황입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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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6 가상적(仮想敵)



작은 초계정은 엔진이 수리되어 힘찬 소리를 내기 시작한 직후였다. 마치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듯, 산에 가려진 사카이가와(境川)의 하류쪽에서 더 큰 엔진 소리가 들리고, 그것은 이윽고 제트 헬리콥터 특유의 금속성 울림이 되어 날아올랐다.


이유는 뚜렷하지 않는 환성이 바위밭의 사내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V-107이 숲 위로 모습을 드러내, 몹시 놀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경사진 자세로 튀어나오더니, 착지 지점을 찾아 보급소 위를 호버링했다. 상공에서 당황한 듯 잠시 그러고 있었으나, 이윽고 장갑차보다 꽤나 앞쪽의, 절벽 끝부분의 바위밭에 사뿐히 착지했다. 큰 기체의 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굴러떨어지듯 뛰쳐나와서는 장갑차를 향해 달려왔다. 둘 다 상사(一曹)였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바(伊庭) 앞에서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초계정은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파도를 박차고 떠나갔다.


헬리콥터 또한 타임 슬립에 말려든 모양이다. 시간 이변은 바위밭의 보급소를 저변(底辺)으로 하는 입방체(立方体) 속에서 일어난 듯 했다. 헬리콥터는 순간적으로 시대를 이동하여, 그 직후에 그 돌풍에 휩쓸려 강의 상류에 착지해버린 것이다. 상공에서 가옥이나 사람을 꽤나 목격했다고 한다.


"마치 이건 칼싸움의 세계입니다"


파일럿은 그렇게 말하며 목을 움츠렸다.


"야, 들었냐"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은 칼싸움 시대로 와버린 거다. 굉장하잖아. 저것 봐, APC에 버톨(Vertol, 역주: V-107)에 초계정. 거기에 다들 64식 소총을 가지고 있다고. 너, 64식은 1분에 몇 발 쏠 수 있는지 말해봐라"


장갑차 아래에서 젊은 대원이 대답했다.


"예. 7.62mm NATO탄을 실용 최대속도 분당 100발입니다"


"저것 봐라. 트럭 25대에 석유가 잔뜩 실려있고, 바주카나 지뢰나 MAT까지 있는 모양이야. 재미있어졌잖아"


시마다는 그렇게 말하며 소리높여 웃었다. "로빈슨 크루소치곤 아주 좋아. 무슨 시대인진 모르지만, 하여간 이곳 녀석들이 불쌍하구만"


"하사,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이바가 나무랐다.


"맞은편 기슭에서 뭔가 하는 모양입니다"


옷을 벗어 장갑차 위에 널고 있던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외쳤다. 다들 일제히 사카이가와의 엣츄(越中) 쪽을 보았다. 꽤나 거리가 있었으나, 반대편 기슭의 절벽 위에서 칼과 창을 번쩍이는 무사(武士)로 보이는 한 무리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시마다는 잽싸게 장갑차로 들어가서, 작은 포탑을 선회시켰다.


"공격해 올까요?"


히라이 상병이 말했다.


"기다려, 침착해라. 하사에게 발포하지 말라고 말해라"


히라이 상병은 다급히 장갑차로 뛰어올라갔다.


"다들 발포하지 마라. 가만히 상황을 보고 있는 거다. ……보급대원, 철조망의 포장(梱包)을 풀어라. 풀어서 이 지점에 침입하지 못하게 헬리콥터가 있는 쪽부터 철조망을 치는거다"


이바 소위(三尉)는 그렇게 명령하고, 맞은편 기슭의 무사들을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전투는 할 수 없다. 저것도 일본인이다"


그 옆에서 키무라(木村) 상병은 생기를 되찾은 듯, 부하들인 보통과 대원들을 정렬시켜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하러 달려갔다.

파도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오고, 하구(川口)의 수면을 기듯이 제비(燕) 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30명 정도의 자위대원들이, 확고한 지휘계통도 없는 채로, 자주적으로 경계를 갖춰갔다.


지켜야 할 국민도 없이 시대에 고립된 채, 지금 그들은 일본인을 가상적(仮想敵)으로 간주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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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5 토론(議論)



상투(髷)를 튼 남자는 그 이상 다가오려고 하지 않고 허둥지둥 도망쳐 버렸다.


"뭡니까, 저 남자는"


그 질문에 이바(伊庭)는 조금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어쩌면, 현지인(現地人)일지도 모른다"


"현지인……"


다들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좋아. 반론이 있다면 사양않고 말해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바는 입술을 핥았다. "이곳은 쇼와(昭和)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떨어진 거다"


침묵하고 있었다. 누구도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고, 믿기지도 않겠지. 하지만 철도 선로가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국도(国道) 8호도 사라져버렸고, 차도 사람도 지나가지 않는다.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아까부터 나는 그 이외의 이런저런 설명을 생각해보았지만, 그 이외의 적당한 답이 없다. 어쩌면 이 바위밭째로 옮겨져서 어딘가 먼 장소로 와버린 걸까라고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저건 분명히 노토(能登) 반도(半島)이고, 이쪽의 지형도 변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있었던 거다. 우리들을 쇼와 시대에서 날려버린 무언가가……"


"타임 슬립입니다"


무기대원인 카노(加納) 일병(一士)이 오른손을 들고 말했다.


"그럼 훈련이 끝나도 원대로 복귀할 수 없는 겁니까"


12사단의 보급대원이었던 사토(佐藤) 이병(二士)이 말하자, 이바는 그제서야 쓴웃음 같은 걸 떠올렸다.


"만약 내가 생각한 대로의 상황이라면, 이미 훈련 따윈 없다"


"즉 우리들은 고립되어버린 거군요"


장갑차 위에서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놀랍게도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거다"


이바는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언제 쇼와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마루오카(丸岡). 소위(三尉)님을 곤란하게 하지 마라. 이건 천재지변이다. 소위님도 그런 건 모르신다고"


시마다는 부하인 마루오카 일병을 윽박질렀다.


"하지만 소위님. 조금 더 정세를 살핀 후에 결론을 내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발언자는 동료들의 등 뒤에 숨은 듯 알 수 없었다.


"정세……"


이바는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몇 명 정찰을 내보내죠"


보통과 대원인 키무라(木村) 상병(士長)이 말했다.


"안 돼. 만약 거기 일병이 말하는 타임슬립이라면, 그건 지진 같은 것일지도 모르잖나. 여진(揺り戻し)으로 즉시 원래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싫습니다. 정찰하러 나간 동안 다들 원래 시대로 돌아가면, 말 그대로 버림받게 되어버립니다"


키무라의 부하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제각기 그렇게 말했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하지 못하겠나"


키무라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고함쳤다.


"소위님"


학교의 학생처럼, 그 부하들 중 한 명이 이바의 얼굴을 보며 손을 들었다.


"말해봐라"


이바는 그 안경을 쓴 젊은 사내에게 말했다.


"아가타(県) 일병입니다"


그 사내는 큰 소리로 말한 후, "이건 완전히 초상(異常)적인 상황으로, 우리들 자위대원의 의무의 범위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른 시대로 우리들이 표류했다고 하면, 이 시대에는 다른 사회가 있고, 우리들이 복종해야 할 모든 법률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서 우리들 사이에는 계급은 없고, 전원이 대등한 개인으로서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뿐이냐"


"예"


시마다 하사가 군화발로 장갑차의 어딘가를 걷어차고 있는 듯 했다. 쾅쾅쾅 하고 묘하게 텅 빈 소리가 계속 울려퍼졌다.


"맙소사. 꼬맹이(餓鬼)들을 돌보는 건 피곤하군요"


시마다는 동정하듯 이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지"


"아가타 일병입니다"


"음. 아가타 일병의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자위대의 질서를 해체하고, 그러고 어쩔 것인가. 만약 그 쪽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쁘게 그렇게 하겠다. 하지만 전투 집단으로서의 체제를 풀 수 있겠느냐. 아까 왔던 상투를 튼 남자가 이 부근의 주민이라고 하면, 이미 이 시대의 경찰조직…… 무사인지 관리(役人)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으로 보고하러 달려가고 있겠지. 우리들은 현재 이곳에 상륙한 침입자라는 모양새가 되어 있다. 무력행사도 있을 수 있지.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키무라 상병이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히 훈련을 받은 상급자가 지휘를 해야 합니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그 때, 초계정으로 온 해상자위대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저희들은 해상자위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니이가타(新潟) 항(港)에서 토야마(富山) 항으로 저걸 회송(回送)하는 도중에 고장을 일으켜 이 보급소에 들린 것 뿐입니다. 이쪽의 결정이 어찌되었든, 저희들은 엔진을 수리해서 즉시 토야마 항으로 급행해야 합니다"


"말도 안 돼. 이 땅이 어떻게 변해있는지 모르겠느냐"


이바는 분연히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어디까지나 해상자위대원입니다. 어쨌든 일단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초계정의 세 사람은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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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04 상투를 튼 사내(髷の男)



장갑차 옆에 웅크리고 있던 키무라(木村) 상병(士長)은, 문득 어깨 언저리가 심하게 젖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굳게 닫혀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지금 양 무릎을 꼭 껴안고 가슴을 그 무릎에 괴로울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 의식한 순간, 전신의 경직이 풀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완전히 어두웠던 세계가 점차 분홍색(桃色)으로 변하며, 이윽고 대낮의 태양빛이 내려쬐이는 바위 표면(岩肌)과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가……. 키무라 상병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굳게 깍지낀 두 손의 손가락을 풀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트럭과 물자의 산이 보였다. 하지만, 비가 한바탕 쏟아진 것처럼 모두 물방울에 젖어 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을까. 일어설 때 근육의 저항감으로 가늠해보니 꽤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기억이 끊긴 느낌을 볼 때 그것은 일순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공포가 마음을 지배하여, 빨리 뭔가 수를 써야 한다는 절박한 자위(自衛) 본능이 발동하고 있었다.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자, 대원들은 모두 똑같이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키무라는 불안해져서 동료들을 흔들어 깨우고 다녔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라고……"


어깨를 흔들자 사내들은 대단히 완만한 동작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키무라 자신도 그랬듯, 크게 숨을 내숴면서 천천히 눈을 떠 가는 듯 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일어서서 주위를 불안한 듯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뭐지. 폭풍(爆風, 역주: Storm이 아니라 Blast의 의미)이었나"


"폭풍…… 그러고보니 쿠웅 하고 흔들렸지"


"하지만, 어디서 폭발이 있었던 거지?"


장갑차의 주위에서 그런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바위 광장의 첨단부(とっさき)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은 일순 겁먹은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즉시 달려나갔다.


파도에 휩쓸린 것이리라. 바위에서 꽤나 떨어진 물 속에 이바(伊庭) 소위(三尉)와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초계정이 그 바로 옆에 떠 있어, 두 사람을 구출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초계정 위에는 세 명의 해상자위대원의 모습이 보였으며, 한 명이 큰 소리로 잔교(桟橋) 가장 끝부분까지 오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가자 흔들거리며 지금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무로 된 잔교의 끝부분으로 간 대원들은, 초계정에서 던져진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바위로 돌아왔다. 초계정은 밧줄로 잡아끌려져서 잔교에 가볍게 부딪혔다. 그러자 잔교는 휘청하고 무너지며 그대로 바다 위에 떠 버렸다.


물 속에 있던 두 사람은 초계정에서 손을 떼고 그 떠 있는 판자를 붙잡고 바위로 돌아왔다. 여러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온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바위 위에 섰다.


"소위님,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주위를 둘러싼 대원들이 일제히 물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파도에 휩쓸렸다"


히라이 상병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바 소위는 산을 바라본 채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선 채로 굳어 있었다.


그 옆으로 초계정의 세 명이 차례차례 뛰어내려왔다.


"왠지 으스스한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 명은 하사(三等海曹), 두 명은 이병(二等海士)이었다.


이바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25, 6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내들의 계급장을 확인하듯 바라본 이바 소위는, 자신보다 상급자가 없는 것을 알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변했다.


"APC의 뒤쪽에 공터(空地)가 있다"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걷기 시작했다. "하사(三曹). 자네가 차장인가"


"예"


"자네는 차로 돌아가서 듣고 있어주게. 침입자가 있으면 큰 소리로 알리도록"


명령받은 장갑차의 차장은 잽싸게 대원들 사이를 빠져나가 차로 달려올라갔다.


"알겠나. 전원 육지의 상황을 잘 관찰해봐라"


장갑차 뒤쪽에 약간 비어 있는 장소로 오자, 이바는 얼어붙은 표정을 유지한 채로, 정렬도 시키지 않고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숨을 들이켰다. 호쿠리쿠(北陸) 본선(本線)이 사라져 있었다. 국도(国道)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카이가와(境川)에 걸려 있던 콘크리트 다리도, 슬레이트 지붕의 민가도, 전신주도 전선도……. 그리고 산에서 뻗어나온 짙은 녹음이 이 천연의 돌제를 침범하듯 덮쳐오고 있는 것이다.


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장갑차의 옆에서 공터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멈춰라. 가면 위험하다"


이바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움찔한 듯 뒤돌아보았다.


"다들 사라졌어……"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래. 아무래도 이곳엔 우리들 뿐인 듯 하다"


반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저항하고 싶다. 하지만, 방금 경험한 그 정체모를 감각. 고독감, 공포, 그리고 비참한 무력감. 그것들이 자신들이 놓인 무상(無常)한 입장을 강제적으로 인정하게 해버리는 것이다.


"알겠나. 침착해라.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정함이다. 이 집적 지점에서 한 명도 나가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다"


대원들 사이를 침묵이 지배했다.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전원이 그저 완전히 변해버린 육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위님"


장갑차 위에 있던 차장인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낮은 목소리로 그 침묵을 깼다.


"누가 옵니다"


이바가 재빨리 돌아가서 차량에 숨어 살펴보자,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명의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큰 바구니(籠)를 메고 있는 듯 했다.


그 인물은 갑자가 멈취서더니, 다급하게 바구니를 땅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숙이는 듯한 자세가 되더니, 5, 6걸음씩 그늘(物陰)에서 그늘로, 짧게 끊어 달려왔다.


어느 새 전원이 장갑차 뒤로 몸을 숨기고 그 남자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저거 봐, 저 머리"


뒤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히 지저분한 봉발(蓬髪)이었으나, 점점 다가오고 있는 그것은 명백하게 상투(髷)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투(ちょん髷)잖아"


퍼런 왜바지(もんぺ) 같은 것을 입은 상투머리를 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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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3 증발(蒸発)



바위투성이의 해변가에 파고든 절벽에 달라붙는 듯한 모습으로 민가가 세 채 정도 나란히 있었다. 물방울과 바닷바람이 스며들어 검게 변색한 나무로 된 계단식 사다리(段梯子)가 개중 한 채의 뒤쪽에서 해변가로 내려져 있었다. 계단식 사다리가 닿아있는 해변가 바위 주변에는 40명 정도의 대원들이 한 덩이가 되어, 각자 다른 자세로 휴대 식량(携帯口糧)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 대원들의 3분의 2 이상은 바다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산처럼 쌓인 보급물자와, 그 주변을 둘러싼 트럭. 그쪽을 볼 때 가장 왼쪽 길에 장갑차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완전무장한 보통과(普通科) 대원 10명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임시 보급소의 분위기에 관계없이 묘하게 정연하게 서 있었다.


어떤 사람은 그 보통과 대원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앞바다에서 와서 곧 접안할 것 같은 해상자위대의 초계정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 몇 명인가는 특징적인 제트 헬리콥터의 엔진음에 자기도 모르게 바로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관객들의 눈 앞에서, 이 전대미문의 대 이변은, 실로 어이없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집적해두었던 보급물자의 산이, 그 사이로 보이고 감춰지던 사람 그림자와 함께, 차량과 함께, 일순간에 지워진 것이다.  초계정도 60식 장갑차도 완전 무장한 보통과 대원들도, 그리고 마침 바로 위에 있던 헬리콥터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만약 마술이라면, 일순간 해가 기울어 어두워진 것이나 일진광풍 같은 것이 그 기괴함을 연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일어난 이변(異常)은 지금 그곳에 있었고, 그리고 사라졌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어라……"


말끝의 톤이 올라가는(尻あがり), 어느 쪽이냐 하면 약간 늘어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거지"


대원들의, 그 평범하고 그다지 동요도 없는 제일성(第一声)이야말로, 이 이변의 끝없는 황당함을 상징하고 있는 듯 했다. 사람에게 놀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의 이변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먼저 생각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으며, 갑작스런 소실(消失)을 착각이라고 느끼고 눈을 껌뻑인 사람은 차라리 나은 편이다. 밤새 물자를 운반해온 것 자체를 의심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곳에 자신이 서 있는 것조차 의심하여, 꿈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한 사람도 있었다.


제일 처음 그 천연의 돌제(突堤)로 걷기 시작한 사내의 경우, 스스로 뭘 의심해야 할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듯 했다. 5, 6걸음 걷다가, 빙글 몸을 돌리더니 주박(呪縛)에 걸린 듯 움직이지도 못하는 동료들을 향해 사교성 웃음(愛想笑い)으로도 보이는 의미불명의 미소를 지었다.


"없어……"


그 짧은 한 마디가, 남자들 사이에서 공통의 체험이었다는 현실감을 되돌렸다.


"없어"


2, 3명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없어졌어……"


군화 바닥이 바위를 밟고, 지뢰밭으로 향하는 듯 머뭇거리며 발을 옮겼다.


"없어"


겨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여유가 생겼다.


"분명히 있었어"


그렇게 서로 확인했다.


"사라졌어. 어디로 간 거지"


전투복 차림의 횡대(横隊)가, 조용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확인하듯이 물자의 산이 있었던 바위 광장 쪽으로 전진했다. 트럭이 없다. 장갑차가 없다. 초계정도 없다. 드럼통이 사라지고, 탄약이 사라지고, 화약이 사라지고, 식량이 사라지고, 그리고 동료들이 사라졌다. 강한 바다 향기와 밀어닥치는 파도소리만이 남겨진 그 바위 광장을 향해, 대원들은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그저 숨을 들이키며 걸어갔다.


소리높은 전기기관차의 경적소리가 산 아래를 지나가고, 육중한 열차 소리가 초여름의 햇빛이 넘치는 해변의 공기를 뒤흔들었다.


어느 부대의 지휘관인지, 한 명이 집합 호령을 내렸다. 자기 자신의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해 부하들의 질서를 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는 어찌되었던, 그것은 이 때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치였으리라. 애초에 소속이 제각각인 대원들은, 이변에 떨고 있는 개인에서 싸우기 위한 집단 구성원으로 변화하는 것에 의해 이해 불가능한 현상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차례차례 호령이 떨어지고, 바위 광장에 군화발소리가 어지럽게 울려퍼졌다.


뒤집어진 산 모양(逆山形)의 선이 세 개에 별이 하나인 소매 기장(袖章)을 단 한 사람의 상병(士長)이, 짧은 횡대를 구성한 부하들을 앞두고 적절하기 짝이 없는 지시를 내렸다.


"이건 해석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현재 위치를 확보하라"


화창한 초여름의 대낮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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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2 이변(異変)



하구(川口)의 오른쪽 기슭은 꽤 넓은 천연의 돌제(突堤)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검고 건조한 바위 위에 드럼통이나 네모난 나무상자, 듀랄루민의 중형 컨테이너 등이 빽빽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평소에 그곳에 놓여있는 배나 선구(船具), 어망(漁網) 같은 것들은 사전에 지역 주민과 교섭하여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 두었다.


국도에서 차로 그 장소로 들어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어서, 마지막으로 온 60식 장갑차가 집적 지점에서 방향전환하여 국도 쪽으로 짧은 포신을 형하고 정지하자, 이제 그것으로 차량의 진입은 불가능해졌다.


60식 장갑차는 APC라 불리며, 완전 무장한 병사 10명을 태우고 45km/h의 스피드로 이동할 수 있으며, 1일 기동능력은 200km를 넘는 국산의 신예 차량이었다. 차장(車長)은 시마다(島田) 하사(三曹)로, 그가 태우고 온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의 리더는 키무라(木村) 상병(陸士長)이다.


실전이라면 이미 보급 활동에 바빴을 테지만, 훈련에서는 완전히 할 일이 없어 따분할 뿐이었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국도 8호를 지나는 자위대 차량은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민간의 트럭이나 승용차가 바쁘게 달려갈 뿐이었다. 다만, 지역 주민들은 평소와 달리 하늘에 헬리콥터의 모습이 많은 것을 깨달았다.


"전 부대가 우치나다(内灘)에 집결하고 있는거야"


바다 위의 하늘을 토야마(富山) 방면을 향해 날아가는 헬리콥터를 보면서 제1 사단에서 파견된 수송대의 지휘관, 이바(伊庭) 소위(三尉)가 말했다. 바다 향기가 감도는 바위 위에 앉아있는 전투복 차림새의 남자들은 그걸 흘려듣는 듯 말없이 파도가 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등뒤에 쌓여올려진 물자의 산을 에워싸는 형태로 그들의 트럭이 나란히 서 있었다.


"낚시하면 낚이려나"


누군가가 살짝 중얼거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몇 개 떠 있었고, 초여름의 햇살이 사위를 태우고 있었다 (역주: 원문은 初夏の陽ざしがモロに鋲幅を焼く인데, 아무리 검색해봐도 鋲幅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음).


"그보다 헤엄쳐서 작살을 찌르겠어. 그 편이 나아"


단단한 어깨 근육을 춤추듯 몇 번 위아래로 흔들면서 히라이(平井)라는 상병(士長)이 말했다.


"이 주변의 바다에는 전복이나 소라가 있겠죠"


"어, 있어. 나는 토야마 출신이니까 이 주변에 대해선 잘 알아. 맛있다고"


히라이 상병의 큰 목소리는 꽤나 떨어진 곳에 있는 무기과(武器科) 대원들이 있는 곳까지 들렸다. NATO탄이라고 쓰인 나무 상자 더미에 기대어 있는 카노(加納) 일병(一士)은, 그걸 듣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수영하고 싶네"


카노 일병은 입대 1년차로 이제 막 만 19세가 되었으며, 히라이 상병도 21세. 다들 대단히 젊었다.


"저 배는 이리로 올 생각인 모양이네"


수송대의 지휘관인 이바 소위가 말했다. 토야마 쪽에서 온 초계정(哨戒艇)이, 함수(艇首)를 뚜렷하게 이쪽으로 돌려서 다가오고 있는 중이었다.


일어선 이바 소위와 히라이 상병은, 어선용으로 만들어진 위태해 보이는 나무로 된 잔교(桟橋)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엔진을 단속적(断続的)으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고장인 모양인데"


직업상이라고는 해도, 역시 정확하게 엔진 소리를 귀로 구별해낸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마주보았다.

탄약상자에 기대어 있던 카노 일병은 그 배는 보지 못했지만, 바로 위를 날고 있는 헬리콥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 타고 있네"


빈 채로 날고 있다. 감으로 그걸 깨달은 듯 했다. V107이라 불리는 그 대형 제트 헬리콥터는 무장병 26명을 태우고 220km를 날아간다. 카노는 바로 얼마 전에 그것에 탔을 때의 괴로운 훈련이라도 떠올린 것이 틀림없다. 착지(降着) 10초 이내에 전개하라. 이탈시에는 20초 이내에 탑승하라. ……그 명령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괴로움이 아직 몸의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이다. 헬기는 떠 있었다. 착지 전개는 차라리 괜찮지만, 이탈 탑승시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점프해서 달라붙어야 하는 것이다.


"진짜 심했어"


올려다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변은 그 순간에 일어났다.


쿠웅……. 대지가 한 번 흔들렸다. 아니, 대지가 한번에 낮아진 듯 했다. 쌓여올려졌던 나무 상자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돌풍이 소용돌이치며 지나갔다. 바다가 부풀어오르고, 파도의 물방울이 장갑차 근처까지 덮쳐갔다. 모든 차량이 흔들흔들거리고, 카노는 풍압으로 숨이 막힐 듯 했다. 그 때문인지 방향감각이 헝크러져, 바다가 어느 쪽이고 산이 어느 쪽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공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여, 카노는 바위에 주저앉은 채 무의식중에 양쪽 무릎을 끌어안고 그 사이에 얼굴을 묻으려 하고 있었다. 카노 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기괴한 자세로 웅크려버렸다. ……그것은 마치 태아(胎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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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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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01 훈련(演習)



심야의 국도 8호를 자위대(自衛隊)의 차량이 서쪽으로 질주해갔다. 10대, 15대씩 그룹을 짓는 차량들의 무리에는 약간의 간격이 있었고, 그 일순의 고요함을 바위투성이의 해변(磯)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뒤덮고 있었다.


자위대는 북부(北部), 동북(東北), 동부(東部), 중부(中部), 서부(西部)의 다섯 개 방면대(方面隊)로 국토 방위에 임하게 되어 있다. 지금 국도 8호를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은, 동부방면대 제12 사단(師団)이다.


같은 날 밤, 서부방면대에 소속된 키타큐슈(北九州)의 제4 사단은 칸몬(関門) 터널을 통과하여, 산인(山陰)의 바닷가를 따라 뻗어있는 국도 191호를 고속으로 북상중이었다. 히로시마(広島) 현(県) 카이다(海田) 쵸(町)에 사단 사령부가 있는 중부방면대 제13 사단은, 제10 사단의 수비범위인 와카사(若狭) 만(湾) 방면으로 진출하고, 도쿄(東京)-네리마(練馬)의 제1 사단 사령부도, 그 전위(前衛)에게 통상의 수비범위를 넘게 하여 오오마치(大町), 나가노(長野), 이이야마(飯山)의 선에 전개중이었다.


한편, 해상자위대(海上自衛隊) 역시, 우라니혼(역주: 혼슈(本州) 중에서 동해에 면한 지방을 일컬음)의 장대한 해안선을 담당하는 마이즈루(舞鶴) 경비구(警備区)의 전 함정이 노토(能登) 반도(半島) 앞바다에 집결하고, 제1, 제3 호위대군(護衛隊群)과 구레(呉)의 제1 잠수대군(潜水隊群)이 그에 합류하기 위해 어두운 밤바다 위를 고속 이동중이었다. 그리고, 이 움직임과는 별개로 미국 제7 함대의 일부가 세력 불명인채로 부산(釜山)을 경유하여 동해(역주: 원문에는 당연히 일본해(日本海)로 되어있지만 동해로 씁니다)로 들어와 있었다.


훈련(演習)이다. 그리고 훈련은 정보통제도 그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날 밤의 병력 대이동에 관하여 그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고 해도 좋다. 하물며 아무 전조도 없이 갑자기 차에 처넣어져서 밤새 흔들리고 있는 하급 대원들은, 훈련의 목적은 고사하고 행선지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하늘이 어렴풋이 밝아올 무렵, 국도 8호에서 이토이가와(糸魚川)을 지나, 사카이가와(境川)의 다리 기슭에 있는 토야마(富山) 현의 표식을 읽은 제12 사단 최후미의 대원들은, 이것이 평소와는 달리 대규모의 훈련인 것을 깨달았다.

이토이가와에서 서쪽으로, 오야시라즈(親不知), 코시라즈(子不知)을 지나서 사카이가와에 이르는 구간은, 옛부터 호쿠리쿠도(北陸道)의 험한 곳(難所)으로 유명하다. 사카이가와는 에치고(越後)와 엣츄(越中)의 국경으로서 오랫동안 호쿠리쿠(北陸)의 땅을 구분하였고, 호쿠리쿠 본선(本線)의 역이 있는 이치부리(市振)에는 에치고 측의 관문(関所)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카기아와는 니이가타(新潟) 현과 토야마 현의 현 경계(県境)이며, 동시에 자위대 동부방면대와 중부방면대의 수비 경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동부방면대 소속의 제12 사단이 그것을 넘어서 중부의 제14 사단의 지역으로 들어간 것은 대원들에게 꽤나 신선한 자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를 넘어서 사카이가와의 코앞에서 정지한 대원들도 있었다. 육막(陸幕, 역주: 육상막료감부(陸上幕僚監部)의 약칭) 제4부의 마츠도(松戸) 수품보급소(需品補給所)와 츠치우라(土浦) 무기보급소(武器補給所)에서 온 수품과(需品科) 및 무기과(武器科) 대원들로, 그들은 제1 사단의 수송대나 제12 사단의 보급대와 협력하여 사카이가와의 하구(川口)에 임시 야전 보급소를 설영중이었다.


앞은 바다, 뒤는 호쿠리쿠 본선과 국도 8호를 사이에 두고 바로 산. 해안 오른쪽은 격랑(激浪)이 바위를 물어뜯는 오야시라즈, 왼쪽은 바로 사카이가와로, 앞바다에 노토 반도가 시커멓게 수평선을 감추고 있다.


보급소의 대원들은 비교적 이번 훈련의 개요에 대해 자세히 듣고 있었다. <적>의 압력이 홋카이도(北海道)의 어딘가와 노토 반도 소토우라(外浦, 역주: 이것이 고유 지명인지 아니면 일반 명사인지 잘 모르겠슴)에 가해졌다는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최강이라고 하는 치토세(千歳)의 제7 사단은, 그 기계화 수준 덕분에 지금쯤은 벌써 아사히카와(旭川)에 도달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동부의 12사단과 마찬가지로, 칸사이(関西)의 제3 사단도 노토에 집결하고, 그 구멍을 구레의 제13 사단이 메우며, 그리고 그 제13 사단을 큐슈(九州)의 제4 사단이 커버한다. 이것은 일본 전역을 아우르는 대규모 훈련인 것이다.


사카이가와의 하구에 설치된 임시 보급소는, 동부방면 총감부(総監部)에 의해 이치부리 야전보급소라는 명칭이 주어졌으나, 실제로는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는 것이 뚜렷해졌다. 이 대규모 훈련 계획의, 아주 작게 어긋난 부분이었던 것이다.


최초로 이 지정 지점에 도착한 것은 동부방면대의 직할부대인 지구(地区) 보급소의 보급대와, 소우마하라(相馬原)에 있는 제12 사단 사령부의 수송대의 일부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육막 제4부의 수품과 부대와 무기과 부대, 거기에 수송과(輸送科) 부대가 혼성으로 도착했다. 그 후에 경비를 위해 12사단의 보통과(普通科) 대원들이 60식 장갑차에 타고 왔다.


예정대로의 물자가 예정 시간 내에 보기좋게 집적된 것은 좋지만, 각자 소속이 다른 이 대원들의 지휘를 통일시킨다는 배려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해가 떠오르자, 대원들 사이에 왠지 낯간지러운 듯한,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돌며, 각자 무리를 지어 제각기 자리를 잡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것은 훈련이 대규모가 될수록, 후방부대에서 자주 발생한다. 책상 위에서 짜여진 계획의 결함이 현장에서 일으키는, 일종의 <분위기를 깨는(白け)> 현상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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