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자위대
戦国自衛隊
작가: 半村 良
번역: 가리아
제 1장
04 상투를 튼 사내(髷の男)
장갑차 옆에 웅크리고 있던 키무라(木村) 상병(士長)은, 문득 어깨 언저리가 심하게 젖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굳게 닫혀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은 지금 양 무릎을 꼭 껴안고 가슴을 그 무릎에 괴로울 정도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 의식한 순간, 전신의 경직이 풀리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완전히 어두웠던 세계가 점차 분홍색(桃色)으로 변하며, 이윽고 대낮의 태양빛이 내려쬐이는 바위 표면(岩肌)과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가……. 키무라 상병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안고 굳게 깍지낀 두 손의 손가락을 풀고 천천히 허리를 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트럭과 물자의 산이 보였다. 하지만, 비가 한바탕 쏟아진 것처럼 모두 물방울에 젖어 있었다.
얼마 동안이나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을까. 일어설 때 근육의 저항감으로 가늠해보니 꽤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기억이 끊긴 느낌을 볼 때 그것은 일순간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한 공포가 마음을 지배하여, 빨리 뭔가 수를 써야 한다는 절박한 자위(自衛) 본능이 발동하고 있었다.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자, 대원들은 모두 똑같이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키무라는 불안해져서 동료들을 흔들어 깨우고 다녔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라고……"
어깨를 흔들자 사내들은 대단히 완만한 동작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다. 키무라 자신도 그랬듯, 크게 숨을 내숴면서 천천히 눈을 떠 가는 듯 했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일어서서 주위를 불안한 듯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바람은 뭐지. 폭풍(爆風, 역주: Storm이 아니라 Blast의 의미)이었나"
"폭풍…… 그러고보니 쿠웅 하고 흔들렸지"
"하지만, 어디서 폭발이 있었던 거지?"
장갑차의 주위에서 그런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바위 광장의 첨단부(とっさき)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들은 일순 겁먹은 듯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즉시 달려나갔다.
파도에 휩쓸린 것이리라. 바위에서 꽤나 떨어진 물 속에 이바(伊庭) 소위(三尉)와 히라이(平井) 상병(士長)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초계정이 그 바로 옆에 떠 있어, 두 사람을 구출하려고 하는 참이었다. 초계정 위에는 세 명의 해상자위대원의 모습이 보였으며, 한 명이 큰 소리로 잔교(桟橋) 가장 끝부분까지 오라고 고함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올라가자 흔들거리며 지금이라도 부러질 듯한 나무로 된 잔교의 끝부분으로 간 대원들은, 초계정에서 던져진 로프를 붙잡고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바위로 돌아왔다. 초계정은 밧줄로 잡아끌려져서 잔교에 가볍게 부딪혔다. 그러자 잔교는 휘청하고 무너지며 그대로 바다 위에 떠 버렸다.
물 속에 있던 두 사람은 초계정에서 손을 떼고 그 떠 있는 판자를 붙잡고 바위로 돌아왔다. 여러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온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바위 위에 섰다.
"소위님, 이건 어떻게 된 겁니까"
그 주위를 둘러싼 대원들이 일제히 물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파도에 휩쓸렸다"
히라이 상병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바 소위는 산을 바라본 채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선 채로 굳어 있었다.
그 옆으로 초계정의 세 명이 차례차례 뛰어내려왔다.
"왠지 으스스한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 명은 하사(三等海曹), 두 명은 이병(二等海士)이었다.
이바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사내들을 둘러보았다. 25, 6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내들의 계급장을 확인하듯 바라본 이바 소위는, 자신보다 상급자가 없는 것을 알자 절망적인 표정으로 변했다.
"APC의 뒤쪽에 공터(空地)가 있다"
이바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닷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걷기 시작했다. "하사(三曹). 자네가 차장인가"
"예"
"자네는 차로 돌아가서 듣고 있어주게. 침입자가 있으면 큰 소리로 알리도록"
명령받은 장갑차의 차장은 잽싸게 대원들 사이를 빠져나가 차로 달려올라갔다.
"알겠나. 전원 육지의 상황을 잘 관찰해봐라"
장갑차 뒤쪽에 약간 비어 있는 장소로 오자, 이바는 얼어붙은 표정을 유지한 채로, 정렬도 시키지 않고 갑자기 그렇게 말했다.
"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숨을 들이켰다. 호쿠리쿠(北陸) 본선(本線)이 사라져 있었다. 국도(国道)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사카이가와(境川)에 걸려 있던 콘크리트 다리도, 슬레이트 지붕의 민가도, 전신주도 전선도……. 그리고 산에서 뻗어나온 짙은 녹음이 이 천연의 돌제를 침범하듯 덮쳐오고 있는 것이다.
대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장갑차의 옆에서 공터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멈춰라. 가면 위험하다"
이바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움찔한 듯 뒤돌아보았다.
"다들 사라졌어……"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래. 아무래도 이곳엔 우리들 뿐인 듯 하다"
반론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저항하고 싶다. 하지만, 방금 경험한 그 정체모를 감각. 고독감, 공포, 그리고 비참한 무력감. 그것들이 자신들이 놓인 무상(無常)한 입장을 강제적으로 인정하게 해버리는 것이다.
"알겠나. 침착해라.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냉정함이다. 이 집적 지점에서 한 명도 나가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이다"
대원들 사이를 침묵이 지배했다.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전원이 그저 완전히 변해버린 육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위님"
장갑차 위에 있던 차장인 시마다(島田) 하사(三曹)가 낮은 목소리로 그 침묵을 깼다.
"누가 옵니다"
이바가 재빨리 돌아가서 차량에 숨어 살펴보자,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명의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큰 바구니(籠)를 메고 있는 듯 했다.
그 인물은 갑자가 멈취서더니, 다급하게 바구니를 땅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숙이는 듯한 자세가 되더니, 5, 6걸음씩 그늘(物陰)에서 그늘로, 짧게 끊어 달려왔다.
어느 새 전원이 장갑차 뒤로 몸을 숨기고 그 남자의 움직임을 쫓고 있었다.
"저거 봐, 저 머리"
뒤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대단히 지저분한 봉발(蓬髪)이었으나, 점점 다가오고 있는 그것은 명백하게 상투(髷)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투(ちょん髷)잖아"
퍼런 왜바지(もんぺ) 같은 것을 입은 상투머리를 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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