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7 1572년 12월 하순
타케다(武田) 군의 돌격을 본 오다(織田)-도쿠가와(徳川) 군도 지지 않으려는 듯 포효를 올리며 타케다 군을 맞아 싸우려 돌격했다.
타케다의 기마대(騎馬隊)는 유명하지만, 기마대란 기마병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마의 이점은 그 돌파력과 기동력에 있다.
상대에 재빠르게 접근하여 일격을 먹이고 이탈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물론 기마대만으로 돌격해서는 의미가 없다.
모처럼 박아넣은 쐐기는 밀어넣지 않으면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다. 후속 부대가 무너진 곳을 넓혀야 전과가 올라간다.
아직 일본에서는 말에게 거세수술(去勢手術)을 하지 않고 눈가리개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 밀집해서 나란히 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말은 시야가 350도나 되고, 원래 겁이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밀집하는 것을 싫어한다. 오늘날의 경마 등에서는 블링커(blinkers)라고 불리는 눈가리개를 장착하는 경우가 있다.
설령 타케다가 말을 나란히 달리게 할 수 있다 해도,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 같은 장애물이 적은 장소에서조차 기마만으로의 운용은 하지 않으리라.
그걸 증명하듯, 타케다의 군학서(軍学書)인 갑양군감(甲陽軍鑑)에도 기병 운용에 관한 기재가 있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말은 대장과 소수의 기병만으로 문제없고, 싸움의 주력은 보병이다.
말을 다수 나란히 하여 상대에게 돌진하는 것 따위는 싸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는 기술이 보인다.
그렇기에 피아를 불문하고 군의 주력은 보병이 된다.
돌격의 기세 그대로 백병전으로 돌입하는 건가라고 생각되었으나, 양군 모두 활의 사정거리에 들어서자 방패를 나란히 세워 사격의 응수가 되었다.
선봉을 맡은 자들이 서로 화살을 쏘아대며 교착 상태에 빠지는가 싶었을 때, 문득 메마른 총성이 공기를 찢어발겼다.
갑작스런 총성에 놀란 타케다 군이었으나, 총알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맹렬히 화살을 퍼부어왔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총성이 울려퍼졌으나, 이미 타케다 군은 신경쓰지 않았다.
"좋은 경향이네"
쌍안경으로 타케다 군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던 시즈코는, 그들이 소리의 인식에 실수를 범했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자군과 타케다 군을 번갈아가며 비교했다.
"좋아좋아, 우선은 '팽팽한' 게 중요해. 처음부터 '이길 수' 있지만, 그러면 상대가 경계를 하니까. 우선은 타케다 군에게 이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어야지"
그로부터 한동안 시즈코는 쌍안경으로 최전선을 확인했다.
오다 군과 타케다 군의 소규모 충돌이 교착되고 있는 상황이 사반각(四半刻) 정도 이어졌을 무렵, 시즈코는 쌍안경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찾던 인물을 발견하자 그녀는 말을 걸었다.
"끝났어요?"
"예, 주군. 신식총(新式銃)의 교정은 완료했습니다. 이걸로 명중 정밀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입니다"
"좋아요. 각자에게 전달, 준비가 끝나는 대로 최전선으로 나가라고 하세요. 전원 다 모이면 저도 앞으로 나갑니다"
"그,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전선에서는 지금도 격렬한 화살의 응수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시즈코의 갑주가 특제품이라고 해도 갑주가 가리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상관없어요. 장수가 목숨을 걸지 않는데 병사가 따라오겠어요?"
"주군…… 옛! 주군은 이 목숨과 바꿔서라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부탁해요"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시즈코는 신호를 보냈다. 시즈코의 신호를 확인한 장수들은 휘하의 병사들을 소정의 위치로 이동시켰다. 텟포슈(鉄砲衆)가 앞으로, 그리고 그 뒤로 나가요시(長可) 부대가 이동했다.
시즈코는 텟포슈와 나가요시 부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텟포슈들은 머리 위에 방패를 들고 있었으며, 이미 화살이 날아오는 위치에 있었다. 시즈코의 위치도 조금만 벗어나면 화살이 날아올 위험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시즈코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거의 예정대로'의 위치에 있었다. 순조롭게 계획이 진행되는 것에 시즈코는 옅은 미소를 떠올렸다.
"텟포슈들이여! 힘들고 괴로운 훈련에 잘 견뎌주었다!"
기분을 고쳐먹고 시즈코는 총탄을 장전하고 사격 준비에 들어가 있는 텟포슈를 고무시켰다.
"자랑스러워하도록! 훈련에 견딘 그대들은 지금, 영광스러운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이후 수천, 수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제군들의 등 뒤를 쫓겠지! 그야말로 어둠을 헤치는 광명이니라!"
지휘용 부채(軍配)를 대신한 쿠제(kuse)를 하늘높이 치켜들고 시즈코는 말을 이었다.
"첫 한 걸음을 내딛는 정예들이여! 타케다에게, 이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게, 혼신의 일격을 보여주도록 하자! 전원 조주운ー! ……일제 발사아(斉射)ーーーーー!!"
시즈코가 쿠제를 타케다 군을 향해 내리침과 동시에, 최전선에 늘어서 있던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타케다 군의 최전선을 구성하는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 군의 방패수들이 벌집으로 화했다.
그 광경은 타케다 군은 물론, 사격을 한 텟포슈들조차 숨을 들이킬 정도였다.
약간 어긋났기에 증폭된 파열음이 울려퍼졌나 싶더니, 전선을 지탱하고 있던 방패수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어린 대나무를 태우는 듯한 소리가 났나 싶더니, 방패로 몸을 지키고 있었을 병사들이 방패와 함께 쓰러지는 광경은 누구의 눈에도 비정상으로 보였다.
텟포슈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쓰는 총에 수백 미터를 노릴 수 있는 포텐셜이 있는 것을 몰랐다.
훈련에서는 근거리에서 작은 과녁을 노리고 사격을 반복했기에, 이만한 거리조차 살상범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차탄(次弾) 장전!"
시즈코의 호령에 의해 텟포슈들의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피해를 입은 타케다 군보다는 훈련을 거듭하여 머리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게 된 텟포슈들이 회복이 훨씬 빨랐다.
반사적으로 총탄을 장전한 텟포슈는, 그대로 조준을 하고 사격태세를 취했다.
"일제 발사아ーー!"
이번에는 총성이 나란히 뇌명(雷鳴)처럼 울려퍼졌다. 또다시 타케다 군이 크게 줄어들었다. 세번째의 장전은 침착함을 되찾아서 사격후에 즉시 완료되어, 곧장 사격태세가 갖춰졌다.
"일제히 발사하라!"
시즈코의 목소리와 함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은 빗(櫛)의 이빨이 빠지듯 털썩털썩 쓰러져갔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균형을 이루어 소규모 충돌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 순식간에 오다 군의 우세로 기울었다.
하지만,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열세를 인식할 틈은 없었다. 총성이 진동할 때마다 무수한 시체가 양산되는 것이다. 화승총이 쓰이고 있다는 것은 총성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종래의 화승총에게 방패를 관통할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빠른 발사간격이 혼란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타케다 군은 역전(歴戦)의 부대. 원인은 몰라도 결과로부터 판단할 수는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고싶지 않아ーー!!"
그것은 총성과 함께 병사가 죽는다. 총성이 들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라는 공포였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방패도 갑옷도 소용없어, 풀처럼 단지 베여나갈 뿐이라는 사실이 간담(心胆)을 얼어붙게 했다.
하지만 적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 해도 밀집해 있었기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총탄은 차례차례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다.
(ーーーー보였다!)
쌍안경으로 상황을 확인하던 시즈코의 눈에,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이 완전히 와해된 것, 그리고 배후에 있는 타케다 군 최강의 적비대(赤備え),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군이 들어왔다.
재빠르게 쌍안경에서 눈을 뗀 후, 시즈코는 의욕이 넘치고 있는 나가요시(長可) 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래 기다렸다, 용사(猛者)들이여! 오야마다 군은 붕괴했다! 이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없다! 자 너희들이 나갈 차례다! 함성을 질러라! 그리고 훌륭하게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하고 와라! 적비대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니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가장 선두에 있던 나가요시가 시즈코 이상으로 포효했다. 그것은 뱃속까지 울리는 사나운 짐승의 포효였다. 그리고 나가요시 나름의 독려이기도 했다.
나가요시의 포효를 들은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사기를 돋우었다. 이윽고 포효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가요시는 무기를 타케다 군 쪽으로 향했다.
"전원, 돌격이다아ーー!!!"
나가요시 군이 달리기 시작했다. 시즈코와 텟포슈들은 나가요시들이 포효를 지르고 있는 동안 그들이 지나갈 길을 터주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 있었다.
땅을 울리며 함성을 지르고 나가요시 군은 나케다 군의 최전선이 된 야마가타 마사카게 군에게 돌격했다.
귀기(鬼気)가 감도는 기세로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를 보고, 약간 남아있던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병사들이 엉금엉금 기어 도망쳤다.
오야마다 노부시게 군의 배후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갑자기 전위(前衛)가 무너진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 앞으로 다가온 적을 보고 그는 즉시 작은 학익진(鶴翼陣)을 전개하여 맞아싸우도록 병사들에게 명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돌출한 적에 대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있는 학익진은 이치에 맞다. 포위하여 두들겨버리면 보병의 돌격 따윈 뻔한 것이다.
그 판단은 나가요시 부대가 통사의 보병이었을 경우에 한정한다면 올바른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즈코가 준비한 대 타케다용 병기는 신식총 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그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뭐냐, 저놈들은!"
야마가타의 학익진 중앙을 향해 돌진해오는 나가요시 부대는, 얼핏 보기엔 무턱대고 돌진하기만 하는 무사들의 자살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좌우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대에서 화살비가 퍼부어져, 중앙에 도착하기 전에 힘이 다할 거라고 적비대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가요시 부대는 쏟아지는 화살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기세를 유지한 채 달렸다.
눈이 좋은 사람은 눈치챘으리라. 나가요시 부대에 쏟아진 화살은 대부분이 튕겨나가서 갑주에 꽂혀잇는 화살조차 거의 없었다는 것을.
"핫! 엄청나구만, 이 갑주는. 버드나무에 바람부는 듯(柳に風) 화살을 받아넘기는데"
선두에서 말로 질주하는 나가요시가 우스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가 말하고 잇는 동안에도 오른팔의 토시(篭手)에 화살이 명중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화살촉이 달려있을 화살은, 곡면을 미끄러지더니 꽂히지 않고 빗겨갔다.
대장격인 나가요시만이 특별한 게 아니다. 말단의 아시가루(足軽)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의 광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갑주에도 채용되어 있는 2식 장비(弐号装備)였다. 석영(石英) 유리를 고열로 처리하여, 섬유가 될 때까지 잡아늘린 유리섬유를 짜넣은 갑주였다.
현대에서는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에도 사용되고 있는 유리섬유이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강화 플라스틱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쌀과 삼베를 사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은 실용화되어 있지만, 갑주를 만들 정도의 강도를 가지지는 못했다.
그래서 금속섬유와 유리섬유를 교차로 짜넣어 갑주의 표면을 형성하고, 갑주 아래에 입는 홑옷(帷子) 부분에도 유리섬유를 짜넣어 가벼우면서 강인한 갑주를 실형했다.
다만 고전적인 제법으로 유리섬유를 만들고 있기에 불순물도 많은데다 강도를 우선시했기에 수명이 짧다.
전국시대 기준으로는 무서운 방어력을 자랑하는 반면, 2~3년이면 열화되어버리는 쓰고 버리는 물건(使い捨て)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비가 되었다.
물론 강성(剛性)만 높아서는 충격이 침투하여 병사가 대미지를 입게 된다.
하지만 팩티스(factice)를 충격흡수재로 끼워넣거나, 메쉬(mesh) 형태로 섬유를 짜넣거나 해서 인성(靭性)을 향상시켜, 비로소 화살 정도라면 끄떡도 없는 강도를 실현했다.
"이놈들, 요술(妖術) 같은 것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는 끝나지 않는다!"
외침과 동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지휘봉을 특정한 패턴으로 휘둘러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제 2진에 대기하고 있는 타케다 군의 제장(諸将)들에게 전선의 이상 상황을 알림과 동시에, 어떤 작전의 실행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저건…… 다들, 물러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신호가 무엇인지 이해한 적비대는,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 질서있는 훌륭한 철수 행동은 나가요시들에게도 전황의 변화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발을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학익진을 펼치는 것도, 2호 장비에 놀라 부대를 물리는 것도 상정한 대로의 전개였으므로.
적비대들이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명령에 따라 좌우의 날개를 남기면서 중앙만이 후퇴해갔다. 중앙이 후퇴하면 어떻게 되는가.
적의 전선은 후퇴와 함께 세로로 늘어지고 V자의 안쪽으로 유인되어, 간격이 벌어진 좌우 양익으로부터의 장시간의 공격에 노출되게 된다.
장시간의 맹공에 노출되어 궁지를 벗어나고자 후방이나 좌우로 도망치는 패거리를 친다. 실제로 제 2진의 바바 노부하루(馬場信春)나 나이토 마사토요(内藤昌豊) 등이 가세하고자 달려와서 나가요시 부대를 포위하려고 하고 있었다.
"좋았어! 저놈들이 걸려들었다! 용기병(竜騎兵)들, 부탁한다!"
하지만 나가요시에게는 포위망이 닫히려고 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호기였다. 그는 함께 따라온 용기병, 니스케(仁助)나 시키치(四吉)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호령 하에 일제히 컴파운드 보우를 조준하더니, 학익진의 좌우 날개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밀집한 지대에 활을 쏘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상대의 중심으로 날아간 화살의 숫자는 약 30대. 적병의 숫자에 비하면 한 대에 한 명을 죽이더라도 새발의 피에 불과했으리라.
화살은 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 중력에 따라 낙하했다. 통상의 화살이라면 기세를 잃으면 끝이지만, 그 화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병사들이 하늘을 날았다.
폭심지(爆心地) 부근에 있던 적비대는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굉음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충격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다.
너무나 큰 충격에 버티지도 못하고 날아가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와 두통을 수반하는 이명(耳鳴り)이 적비대의 시각과 청각을 빼앗았다.
시야가 트였을 무렵, 그들은 오늘 몇번째가 될 지 모르는 충격을 받았다. 충격의 발생원(発生源)이라고 생각되는 장소는, 절구 모양의 큰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이명 사이사이로 간신히 들리기 시작한 귀에 들리는 것은 병사들의 절규였다. 주위는 아비규환의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직격을 당해 몸의 일부를 잃은 사람, 파편을 맞고 몸 속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 눈이나 귀에서 피를 흘리고 구토하면서 가늘게 꿈틀대는 사람.
말조차 갈기갈기 찢겨 검붉은 내장을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주위에 멀쩡한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새겨진 것은, 피리 소리와 함께 지옥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들의 귀에, 무자비한 죽음을 선고하는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친다, 라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 전에, 운좋게 경상이었던 적비대가 고깃조각(肉片)으로 변했다.
폭풍과 함께 휘말려올라가, 예전에 적비대였던 자들의 팔이나 다리가 긴 체공시간을 마치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피와 내장과 분뇨의 비가 쏟아져, 정지된 사고가 격렬한 취기(臭気)에 노출되어 강제적으로 되돌려져, 심장을 움켜잡힌 듯한 공포에 절규했다.
"자, 장난 아닌데, 저 작렬통(炸裂筒). 확실히 시즈코가 사용할 곳을 잘못 판단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한 것도 납득이 간다"
작렬통이란, 다이너마이트를 봉입(封入)한 통을 매단 특수한 화살을 가리킨다.
본래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밀폐공간 쪽이 충격을 분산시키지 않아서 높은 위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개방 공간에서 사용했을 경우, 충격의 대부분이 개방 공간으로 방출되어 효과가 격감한다.
알기 쉬운 예를 들자면, 손바닥에서 폭발하면 화상으로 끝나는 폭죽(爆竹)도, 주먹을 쥔 상태에서 폭발하면 손가락을 뿌리째 날려버리는 위력이 된다.
하지만 본래는 바위를 파쇄하고 산을 무너뜨리는 다이너마이트이다.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터질 경우 아무리 위력이 감소되더라도 인간 정도는 남아나지 않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폭풍보다도 큰 효과를 내는 것이 소리다. 신식총도 그렇지만, 작렬통도 소리의 효과를 계산하여 설계되어 있다.
특징적인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죽는다. 상대에게 그렇게 각인시키면, 소리 그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소리가 나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어 전투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미지의 것이라면 효과는 더욱 높아진다.
어떤 원리로 죽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대처도 할 수 있겠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대처는 때때로 어렵다.
거기에 공포가 더욱 판단을 둔하게 한다. 소리 공포증(音恐怖症)이라는 병명도 있을 정도로, 정체불명의 소리는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기만 해도 발광하고 실신하는 경우도 있다.
"자…… 드디어 보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
학익진을 전개하고 다시 양 날개를 두텁게 했기에 정면의 방어가 얇아져 있었다. 이거야말로 나가요시가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나가요시는 포효하더니 뒤의 보병들의 속도를 무시하고 말의 속도를 올렸다.
갑자기 나가요시가 돌출한 것을 깨달은 직속 병사들(随伴兵)도 당황해서 속도를 올렸으나 반응이 늦었다. 한편, 적비대들은 양 날개의 괴멸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나가요시가 육박하여 드디어 교전권(交戦圏) 안에 들어왔음에도, 적비대들은 사고가 마비되어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네놈의 목을 받으러 왔다아아아!! 얼른 내게 목을 내놔라아아아!!!"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거대한 무기——바디시(bardiche)——가 최전열에 있던 적비대들을 휩쓸었다. 나가요시가 송곳(錐)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광범위하게 뚫린 구멍을 넓히기 위해 후속 병사들도 돌격했다.
날려져가서 땅바닥을 기게 되어 간신히 궁지(窮地)에 몰렸음을 깨달은 적비대들이었으니, 이미 마음이 꺾여 있었다.
위축된 마음으로는 본래의 힘을 절반도 내지 못하여, 정강무비(精強無比)하다는 적비대들이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돈이 굴러다니는 거나 마찬가지구만ー!"
"적비대를 죽여라! 썩어도 타케다의 적비대다. 목의 가치는 높다고!"
나가요시 부대의 아시가루나 잡병들이 제각기 외치면서 적비대를 처치해갔다. 눈을 번들거리며 적비대를 노리는 광경은 비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적비대를 노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적비대의 목은 말단의 아시가루라고 해도 제법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방어력이 뛰어난 갑주를 몸에 두르더라도, 작렬통이라는 광범위 파괴병기가 있더라도, 죽음의 공포는 간단히 극복할 수 없다.
그 공포를 극복하는 데는 명예만으로는 무리가 있다. 나가요시라는 선두를 달리며 견인하는 존재, 그리고 처치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욕망이,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게 하고 있었다.
죽음을 당하는 적비대의 입장에서는 명예나 체면은 없는거냐, 라고 분개할지도 모르지만, 아시가루나 잡병들의 입장에서는 명예가 밥먹여주지는 않는다.
"목이다!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포상을 위해 목을 내놔라아아아아!!!!!"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뒤섞여, 나가요시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노리고 돌격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적비대를 처치한다는 혼돈스러운 전장이 출현했다.
"거 참…… 요란하네"
상황을 살피고 온 척후의 보고에, 시즈코는 메마른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시가루라도 목 하나당 넉넉한 포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예상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쌍안경으로 다른 장소를 보니, 사이조와 아시미츠의 군이 바바 노부하루 군, 케이지와 타카토라의 군이 나이토 마사토요와 사나다(真田) 형제와 싸우고 있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제 2진의 보좌를 요구한 것처럼, 시즈코도 남은 네 명에게 나가요시의 보좌를 명했다. 작렬통으로 제 2진의 발을 묶는 데 성공하고, 그 옆구리에 각자 구멍을 뚫는 형태로 돌격했다.
텟포슈도 각각 300씩 데리고 있었기에, 타케다 군 제 2진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보좌에 참가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기는 커녕 케이지나 사이조, 아시미츠, 타카토라와 싸우기만도 벅찼다.
특히 아시미츠의 부대가 이질적이었다. 전신에 화살이 꽂혀있는 상태에서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내며 적진에 돌격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입에서 침을 흘리고, 어딜 보는지 알 수 없는 멍한 눈에,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힘으로 철봉을 휘둘렀다. 그런 자들이 100명 가까이 되었다.
"쏴라"
아시미츠의 명령에 텟포슈가 일제히 사격했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하지만 멍한 눈을 한 자들은, 비틀비틀 일어서더니 다시 철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광경에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은 공포에 떨었다.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쏘는 것도 비정상적이지만, 뭣보다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놈들은 아군이 아니다. 타케다의 간자이지. 놈들과 함께 바바 노부하루의 병사들을 죽여라"
철봉을 휘두르는 자들의 정체, 그것은 노부나가가 포박한 타케다의 간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시미츠는 무서운 짓을 했다.
다투라(Datura)에서 추출한 마약 성분을 기반으로, 의식 혼탁이나 섬망 상태가 강하게 발현되도록 개량한 약을 정제하여, 간자들에게 투여하여 마인드 컨트롤을 실시했다.
반복적인 약의 투여와 세뇌에 의해, 간자들은 인격이 붕괴하여 단지 명령받은 대로 싸우는 살육 기계로 전락해 있었다.
지금 바바 노부하루 군을 덮쳐가고 있는 자들도, 약물 투여에 의한 황홀감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있었기에, 총격을 받아도 쇼크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출혈은 확실히 몸의 힘을 빼앗고, 육체의 손실은 그 수명을 줄이고 있었다.
비정(非道)한 작전이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쓰고 버리는 간자를 재활용하고 있는 정도의 인식이었다.
"좋아, 돌격이다"
대충 처리된 시점에서 아시미츠는 병사들에게 호령을 내렸다. 병사들은 일순 주저했으나, 아시미츠가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그 뒤를 쫓았다.
휘하의 병사들이 공포에 질려, 바바 노부하루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돌격해오는 오다 군에 대해 손쓸 방법이 없어, 차례차례 병사들이 유린되어 갔다.
"치잇! 저렇게까지 사악한 계책을 쓰다니!"
군의 재편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바바 노부하루는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분기(奮起)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의 생명의 등불은 지금 막 꺼지려 하고 있었다.
"소용없다. 이 싸움, 이긴 것은 우리들이라고 선언했지 않았더냐"
바바 노부하루의 앞을 아시미츠가 가로막았다. 직속 부하(子飼い)가 아시미츠의 발을 묶으려 했으나 일격에 베여죽었다.
"하지만 과연 바바 노부하루, 여기까지 버틴 건 칭찬해주지"
"네 이놈……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 것이냐. 네놈에게는 무사의 긍지라는 것이 없는 것이냐!"
약물로 미치게 한 병사를 돌격시키고, 그 등 뒤에서 아군과 함께 적을 쓸어버린다. 그야말로 악귀나찰(悪鬼羅刹)의 소행이라고 바바는 생각했다.
"흥, 네놈은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알겠느냐, 바바 노부하루. 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었다. 하지만 쿄(京) 패거리들은 내가 방해된다고 생각했을 때, 암살이라는 수단을 취했지"
"그것과 지금 이것에 무슨 관계가 있나!"
"모르겠느냐, 어리석은 놈아. 뭐가 어쨌든 무가(武家)의 두령(棟梁)인 정이대장군을 암살한 것이다. 암살의 어디에 정도(正道)가 있느냐. 하지만 암살된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않고, 그러긴 커녕 다음 정이대장군을 세웠지. 자, 대답해봐라, 바바 노부하루. 정론을 이야기하겠다면, 어째서 내가 암살당했을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느냐!"
"큭!"
"이해되었느냐. 네놈의 정도는, 네놈에게 편리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암살당했을 때 이해했다. 이 세상에는 정도도 사도(邪道)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ーーーー"
칼 끝부분을 바바 노부하루에게 향하더니, 아시미츠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을 이었다.
"승자에게만 정도가 있으며, 패자에게는 정도를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
"이 놈, 궤변을…… 큭!"
어떻게든 되받아치려고 바바 노부하루가 아시미츠를 마주 노려보았을 때, 그는 이상한 것을 느꼈다. 아시미츠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승리를 확신하고 패자인 바바 노부하루를 조소하는 웃음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인 아시미츠의 태도를 괴이쩍게 생각한 바바 노부하루의 귀에 말이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려 한 순간, 그의 눈에 사이조가 창을 겨누고 돌격해오는 광경이 비쳤다.
"바바 노부하루!! 그 목, 받아가겠다!"
주위의 병사들도 아시미츠에게 의식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사이조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처음부터 아시미츠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생각은 없었다. 사이조가 바바를 처치하기 위한 미끼 역할에 철저했던 것이다.
타케다의 이야기를 아시미츠가 몇 번이나 걷어찬 것은, 바바 노부하루가 나올 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바 노부하루와 회담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그를 도발하고 모멸한 것도, 자신을 보면 바바 노부하루가 반드시 싸움을 걸어올 거라고 아시미츠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냉정해지려고 노력해도, 그만한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지독할 수 없는 욕을 먹으면 박살내버리고 싶은 감정이 생겨난다.
그렇게 내심 분노에 떠는 바바 노부하루를 최전선으로 끌어내, 깊게 파고들어왓을 때 바바 노부하루를 사이조가 처치한다는 작전이다.
도중까지 사이조의 군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뒷받침 역할(陰役)에 철저했던 것도, 바바 노부하루와 그의 병사들에게 사이조의 군은 두려워할 게 못된다고 방심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찌감치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딱히 그가 맨 처음 처치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지휘능력이나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 바로 그렇기에 수십년 동안이나 긁힌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전쟁터에서 날뛰어 왔다.
그리고 전황의 분석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싸움의 후반이 되면 될수록 성가신 존재가 된다.
타케다 사천왕(武田四天王)이나 타케다 24장(武田二十四将)을 아무리 많이 처치하더라도, 중요한 타케다 신겐을 처치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반대로 말하면 타케다 군이 아무리 많이 살아남더라도, 신겐의 목만 취하면 남는 장사다.
그 정도로 신겐의 목은 중요했으며, 그 최대의 장애물이 되는 인물이 바바 노부하루였다. 첫 싸움에서 그를 처치하려고 생각한 것은 전략상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통상의 전투를 걸어봤자 다소 피해를 줄 뿐이지 상대가 재편을 꾀하게 될 게 뻔하다.
그렇기에 사악하고 비정하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의 목을 베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아시미츠가 채용되었다.
심리적인 동요가 전혀 없이 사람을 당연하다는 듯 쓰고 버리는 아시미츠의 작전을 실행하여, 처음으로 바바 노부하루는 적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싸우는 상황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분노를 느끼며 아시미츠에게 의식을 집중했기 때문에, 최초이자 최후라고도 할 수 있는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할 호기가 생겨난 것이다.
순식간에 지금까지의 아시미츠의 언동은 자신을 처치하기 위한 계책이었다, 라고 바바 노부하루는 깨달았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칼로 사이조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때가 늦어, 바바 노부하루가 칼을 뽑는 것보다 빠르게 사이조의 창이 번쩍했다.
바바 노부하루의 목이 허공에 날았다. 날아간 목은 몸통과 분리된 덧을 모른 채 공중에서 여전히 악귀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땅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바바의 머리는 이윽고 뭔가에 부딪혀서 굴러가는 걸 멈추었다. 바바의 머리가 부딪힌 것은 사이조의 발이었다.
그는 바바의 머리를 잡더니 하늘높이 치켜들며 선언했다.
"바바 미노노카미(美濃守)의 목, 카니 사이조(可児才蔵)가 베었다아!!"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바바 노부하루와 아시미츠, 사이조가 싸우고 있는 동안, 나가요시는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은 곁에 따르는 병사는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걸로 충분했다.
그들은 나가요시의 직속 부하이며, 정예 중의 정예다. 설령 마음이 꺾이지 않았더라도 적비대에 밀릴 자들이 아니다.
직속 부하들이 무기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적비대가 베여 쓰러졌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숫자로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되었겠지만, 심리적으로 패배한 상태인 적비대는 나가요시에게 가까이 가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에에에!!!!"
나가요시가 외쳤다. 그게 직속 부하들에게 힘이 되는지, 그가 고함칠 때마다 직속 부하들에게 기력이 넘쳤다.
바디시를 휘두르며 방해되는 적병들을 쳐 쓰러뜨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나가요시는 적비대의 포위를 돌파했다.
적비대의 후방에 있던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시야에 포착하자, 나가요시는 바디시를 고쳐잡았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퇴로나 주위를 신경쓸 여유 따위는 머릿속 한 구석에조차 없었다.
다만 일직선으로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노렸다. 야마가타 마사카게 쪽도 나가요시를 확인했으나, 그는 후퇴라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후방에 위치한다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 적에게 목젖을 찔려 도망쳤다고 하면 적비대의 이름은 땅에 떨어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병사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중요할 때 겁먹고 도망쳤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이미 야마가타 마사카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양 어깨에는 지금까지의 적비대의 명예와 일족의 명예, 그리고 적비대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명예가 얹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후퇴하지 않았다. 도망친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설령 파멸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꼬맹이가! 내 이름을 부르기에 십 년은 이르다!"
나가요시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되받아친 후,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고삐를 쥐고 돌격했다. 설마 하던 단기(単騎) 돌격에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측근들은 깜짝 놀란 후 다급하게 그를 뒤쫓았다.
"꼬맹이가 아니야! 내 이름은 카츠조(勝蔵)! 모리(森) 카츠조(勝蔵) 나가요시(長可)다! 자알 기억하고 지옥에 떨어져라!!"
"주둥이는 살았구나! 내 이름은 야마가타(山県) 사부로(三郎) 효에노죠(兵衛尉) 마사카게(昌景)!! 네놈을 명부(冥府)로 보낼 사람의 이름이다!!"
일기토가 된다. 쌍방의 직속 부하들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사실을 이해하자, 일기토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났다.
그 외에 달려온 타케다의 적비대나 나가요시의 병사들도, 일기토가 시작될 거라는 걸 이해하자 각자의 등 뒤에 위치했다.
[알겠느냐 카츠조. 네놈이 야마가타와 상대할 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명심해라. 수많은 전쟁터를 겪어온 야마가타와 네놈은 압도적으로 경험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리해져서 경험이 많은 쪽이 압도하게 되지]
나가요시는 아버지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말을 떠올렸다. 들었을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야마가타 마사카게와 상대해보니 처음으로 깨달았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비할 데 없이 강한(大剛) 무사인 것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짓눌려 버릴 듯한 중압감, 피부가 찌릿찌릿할 정도의 기백, 하나같이 지금의 나가요시에게는 없는 것들 뿐이었다.
[젊음에 맡긴 기세 따위, 역전의 강자(猛者)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게다가 야마가타는 궁지에 몰린 상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일기당천의 사병(死兵)인 점을 명심해라]
(알겠어, 아버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진짜 강적이라는 걸 말야!!)
바디시를 쥔 손에 힘을 넣었다. 나가요시는 최초의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성공하면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처치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나가요시가 전사하는 것은 확정이다.
이미 큰 전과를 올린 나가요시에게는 불리한 도박이 된다.
하지만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베지 못하면 승리는 없다. 이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나가요시들은 이름높은 타케다의 적비대를 자신들의 무대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나가요시가 패한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전부 물거품이 된다. 한 때의 승리 따위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놓치면 즉시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야마가타 마사카게에에에!! 그 목, 받았다아아아아!!!"
(흥, 애숭이가. 마상창(馬上槍)의 어려움을 되씹으며 죽거라!)
마상창을 다루려면 상당한 수련을 필요로 한다. 타케다 군조차 대부분의 무장은 마상창을 쓰지 않고 돌격 후에는 항상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서 싸운다.
애초에 말은 싸움터를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며,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나 기세의 유리함을 이용한 돌격이나, 기동력을 살려 보병으로서는 불가능한 우회 후의 측면 공격이라는 후방 교란이 주된 운용이 된다.
그렇기에 전장의 꽃이기는 하나, 말의 발이 멎으면 단숨에 우위성을 잃는다. 마상창에는, 한 번 기세가 죽으면 모든 행동이 허점이 되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이 팔, 네놈에게 주마!"
한 팔을 희생하여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고, 말의 조작이 흐트러진 틈에 나가요시를 처치한다.
그것이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취한 작전이었다. 최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대단히 유효한 전법이었다.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게 했으리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가 바디시를 휘둘렀다.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한 발로 나가요시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바디시의 공격을 받은 순간, 그는 토시(篭手)와 함께 자신의 팔이 분쇄되는 소리를 들었다.
(뼈가 부서졌나. 하지만…… 뭣!)
뼈가 부서졌으나 팔 자체는 무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치명적인 착각을 했다. 나가요시의 완력은 그가 알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나를, 얕보지 마라아아아아!!!!"
고함 소리와 함께 나가요시는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했다.
바디시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을 절단하고, 그 칼날은 그의 목으로 육박했다. 아래에서 휘둘러 쳐올리는 칼날에 갑옷째로 팔이 잘린다는 예상 외의 사태에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방어하지 못한 채 나가요시의 공격을 받았다.
"우오옷!"
기세가 지나친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베는 것과 동시에 낙마했다. 말은 기세를 유지한 채로 달려가더니, 조금 달리다 발을 멈추었다. 반면에 나가요시는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 이럴 수가…… 커흑…… 이런 꼬맹이의…… 어디에 이런 힘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입에서도 피를 흘리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경악한 표정으로 나가요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가요시의 일격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팔과 함꼐, 왼쪽 옆구리를 통과하여 옆으로 빗겨나 있던 목까지 갈라 놓았다.
누가 봐도 살아날 수 없을 거라 알 수 있는 상처였다. 자신의 상황을 직감한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히죽하고 태연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무사한 오른팔로 칼을 쥐었다.
"꼬맹이…… 아니,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여! 훌륭하다. 하지만 이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네놈의 손에 죽진 않는다. 내가 죽는 모습을…… 똑똑히 보아라!"
말이 끝나마자마 야마가타 마사카게는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어 떨어뜨렸다. 베여 떨어진 머리에서 선혈이 뿜어졌다. 나가요시는 호흡을 정돈하고,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머리에 합장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죠의 죽음, 훌륭하다. 비할 데 없이 강한 무사란, 그를 위해 있는 말일 것이다"
나가요시는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칭찬했다. 자신의 공격이 닿지 않았다면 목이 떨어진 것은 자신 쪽이었다. 합장을 마치자, 나가요시에게는 야마가타 마사카게가 씨익 웃은 것처럼 보였다.
나를 처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나가요시는 웃음을 떠올리더니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목을 하늘높이 치켜들었다.
"야마가타 사부로 효에노조의 목,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가 베었다아!!"
나가요시가 야마가타 마사카게를, 사이조가 바바 노부하루를 처치한 시간은 거의 동시였다. 약간 시즈코 쪽에 보고가 도착하는 게 빨랐다. 그게 승부를 결정지었다.
"북을 울려라!!"
"옛!!"
전고(陣太鼓)가 둥둥둥하고 울려퍼졌다. 한번만이 아니라, 세 박자가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그걸 들은 시즈코 군은 물론, 좌우에 있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 그리고 후방의 도쿠가와 군에 변화가 일어났다.
"기다렸다, 제군들! 눈 앞에 무공이 굴러다니는데도 지금까지 참아준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이제 참을 필요는 없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시즈코의 말에 병사들이 포효를 내질렀다. 시즈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쿠제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약간 늦게 병사들이 그에 따랐다.
군기(軍旗) 등 이런저런 것들을 치켜들었기에, 타케다 측에서는 오다-도쿠가와 군의 후방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후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쿠가와의 군기가 하나도 없다, 라는 상황을.
도쿠가와의 군기는 없어졌으나 병사들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들고 있는 군기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다.
"이런이런, 드디어 나설 차례군요"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깃털부채(羽扇)로 부채질하는 인물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였다. 그만이 참가한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병사들은 히데요시(秀吉)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틀림없는 히데요시의 군이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군만이 아니다.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한 군은, 시바타(柴田) 군의 군기를 들고 있었다.
"설마 정말로 해치울 줄이야. 다들!! 여자한테 질 수는 없다!!"
이끌고 있는 무장은 설마하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였다. 그들 이외에도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 등, 이런저런 오다 가문 가신들의 군기가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가 아니면 타케다에게는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다들!! 타케다를 처치하면 후세까지의 영광이다! 베고, 베고, 닥치는 대로 베어라!"
여기저기서 무장들에 의한 고무(鼓舞)가 들려왔다. 타케다의 측근 중의 측근을 처치한 것은 이미 전군에 퍼져 있었기에, 타케다라고 듣고 겁먹는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야마가타를 처치할 줄이야. 훌륭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리고 후방의 오다 군 속에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평소의 갑주를 입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적을 해치웠는지 알 수 없는, 애용하는 십자창(十文字槍)을 쥐고 있었다.
"아버지. 무리를 하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장남인 모리 요시타카(森可隆)가 모리 요시나리의 몸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걱정을 끼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피가…… 내 피가 끓고 있단다. 어깨의 부상으로 포기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하지만 피가 끓는 것에는 이길 수 없다. 안심해라, 이걸로 마지막이니라"
"아버지…… 알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음껏 싸워 주십시오"
"내가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타케다는 지나치게 사치스럽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싸우는 것은 정말로 이게 마지막이 된다. 그러니 내 무용을 그 눈에 똑똑히 새겨 두어라"
"옛! 아버지의 웅자(雄姿), 제 눈에 똑똑히 새겨 두겠습니다!"
요시타카의 대답에 모리 요시나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의 사기는 열기처럼 흘러넘쳐 아지랑이처럼 흔들려보였다. 남은 것은 시즈코가 전군 돌격을 명령하는 것 뿐으로, 그게 언제인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나를 따르라!! 전군, 돌격ーーーーーー!!!"
그리고 그 때는 왔다. 시즈코의 호령과 함께, 오다 군은 포효를 내지르며 타케다 군에게 돌격했다.
돌격하는 것은 오다 군 뿐이었다. 그럼 도쿠가와 군은 어디에 있는가. 홀연히 사라진 도쿠가와 군이, 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신겐이 그걸 알게 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다.
'취미번역 > 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9 - 1572년 12월 하순 (6) | 2019.07.26 |
---|---|
098 - 1572년 12월 하순 (5) | 2019.07.23 |
096 - 1572년 12월 하순 (4) | 2019.07.17 |
095 - 1572년 12월 중순 (9) | 2019.07.14 |
094 - 1572년 11월 하순 (6) | 2019.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