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5 1572년 12월 중순



12월 1일, 드디어 노부나가가 움직였다. 그는 주요 가신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타케다(武田)를 쳐부순다. 도쿠가와(徳川)로 보내는 원군으로 우리들의 힘을 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치(旗幟)를 명확히 하지 않았던 노부나가가, 드디어 명확한 방침을 내보였다. 이 말에 의기헌앙(意気軒昂)한 모습을 보이는 가신들이었으나, 결전의 자리가 될 장소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야스(家康)의 거성(居城)인 하마마츠 성(浜松城)은 남북 약 500m, 동서 약 450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대지(台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일직선으로 곡륜(曲輪)이 늘어선 특징적인 '제곽식(梯郭式)'이라는 건축 양식을 채용하고 있었다.

그 고저차(高低差) 때문에 본채(本丸)의 뒤쪽은 천연의 방어선이 되어, 공격하기 어렵고 지키기 쉽다는 방어력이 우수한 성이었다.


그 때문에 가신들은 타케다 전은 농성전이 주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옛부터 농성전은 힘든 것이다. 수비를 굳히고 상대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소모전이 되기 때문에, 서로의 인내를 겨루는 양상을 띠게 되어 양쪽 모두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로해진다.

게다가 상대는 천하에 이름을 떨친 타케다였다. 처음부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은 뻔히 보였다.

누가 파견될 것인지, 가신들의 관심사는 그곳에 집약되어, 노부나가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원군은ーー"


가신들 일동이 몸을 앞으로 내미는 가운데, 노부나가는 작게 웃음을 떠올리며 누구도 예상조차 하지 못한 인사(人事)를 발표했다.


"이거 참, 놀랍군요"


노부나가의 작전(采配)에 따라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돌아가던 도중, 문득 히데나가(秀長)가 입을 열었다.

히데나가의 말에 히데요시(秀吉)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나가가 발표한 인사는 그만큼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노부나가는, 도쿠가와에게 보내는 원군으로서 후계자인 키묘마루(奇妙丸)를 총대장으로 삼고, 시즈코, 사쿠마(佐久間), 히라테(平手), 미즈노(水野)의 군을 그 휘하에 배속시켜, 도합 수만 명이나 되는 대군단을 조직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원군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병력이다. 그리고 하마마츠 성 뿐만이 아니라,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군을 주위의 성에 배치하여, 하마마츠 성이 공격받았을 때의 보좌역을 수행할 것을 명했다.


하마마츠 성에는 노부나가가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던 시즈코 군을 거의 전부 보낸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도 도합 수천의 군을 이끌지만, 실질적인 주력은 시즈코 군이었다.

도쿠가와 군 8000과 합치면, 숫자상으로는 타케다에 필적한다.


"저도 놀랐습니다. 설마 키묘 님을 총대장으로 세우실 줄이야. 하지만, 도쿠가와에게는 확실히 전해지겠지요. 영주님께서 이 싸움에 거시는 기세(意気込み)를. 이마가와(今川)와의 결전 이래 처음으로 목숨을 건 대승부가 되겠군요"


"나는 영주님께 요코야마 성에서의 활약을 직접 칭찬받았다. 영주님이 모두의 앞에서 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건 이마가와 때 이후 처음이다. 바로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근거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히데요시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마가와의 상락 떄에도 붙으면 필패(必敗)일 거라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쪽이 승리했다. 이번의 타케다 전도 반드시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히데요시였다.


"하지만 유감이군요. 타케다를 깨부수면, 그 무위(武威)는 천하에 울려퍼지겠죠. 그 무공에는 누구던 한 수 물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놈아! 분별없는 소리 하지 마라. 요코야마에서 아자이-아사쿠라를 견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군요"


농담을 하는 히데나가를 히데요시가 꾸짖었다. 히데나가는 면종복배(面従腹背)라는 태도였으며,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진 히데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형님께서도 조금은 생각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음, 뭐, 그렇지. 그렇기에 계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옅은 웃음을 띄우며 히데나가가 찔러보았다. 히데요시는 헛기침을 하여 동요를 얼버무린 후, 내심을 읽힌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 모습에 한층 더 웃음이 깊어진 히데나가였으나, 히데요시는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말의 걸음을 재촉했다.


"핫핫핫, 형님은 도망쳐버리셨군"


"너무 놀리면 안 됩니다. 하시바(羽柴)님도 애태우고 계시겠죠"


"그렇겠지요. 뭐, 어떻게 되겠지요. 그놈은 끈질기니까요"


그런 대화를 나눈 후,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히데요시를 따라잡기 위해 말의 속도를 올렸다.




노부나가로부터 도쿠가와의 원군을 명받은 시즈코는, 케이지(慶次)들에 그치지 않고 부대장들까지 집합시켰다. 시즈코로부터 전달받을 것도 없이, 도쿠가와에 원군으로 파견된다는 이야기는 다 퍼져 있었다.

하지만 새삼스레 시즈코에게 듣게 되면 군으로서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기에 여기서 선언하기로 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군은 도쿠가와의 원군으로서 출진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동요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태반은 예측했던 대로라는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게 이것저것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간결하게 정리합니다. 원군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소대로 출진해서, 평소대로 싸우고, 그리고 평소대로 승리합니다. 이상"


간결하기 짝이 없는 말에 불안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시즈코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모두를 해산시켰다.

대장이 평소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이상, 자신들은 스스로의 역할을 평소대로 하면 된다고 결론짓고 각자 그 자리를 떠났다.

남은 것은 케이지와 사이조(才蔵), 나가요시(長可),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足満) 등 다섯 사람 뿐이었다.


"그럼 아시미츠 아저씨에게는 물류(物流)를 맡겼어요. 남은 사람들은 평소대로 지내 주세요. 출진하는 날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알겠습니다"


시즈코의 말에 다섯 명도 해산했다. 그로부터 1주일 정도는 각자 주어진 일을 했다. 나가요시나 사이조, 타카토라는 훈련, 케이지는 변함없이 지내면서 간자의 처치, 아시미츠는 물류를 모았다.

시즈코도 평소처럼 서류를 처리하고, 틈나는 대로 농작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사쿠마나 히라테와 달리, 시즈코들은 지나치게 평소대로라서 주위가 안달복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출진하기 사흘 전, 후타마타 성(二俣城)의 공략에 고전하고 있던 타케다 군과 도쿠가와 군의 공방전이 점입가경에 들 무렵, 시즈코는 텟포슈(鉄砲衆)를 모았다.

이유는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겐로(玄朗)는 시즈코의 명령대로 가장 숙달된 그룹과 가장 서투른 그룹을 모았다.

각자 그룹별로 준비된 과녁에 사격을 시켰다. 결과는 과연 수위(首位) 그룹이라고 감탄하게 되었다.

흔들림없이 사격을 반복하고, 장전 속도도 아주 좋았다. 그에 반해 최하위 그룹은 장전은 문제없었지만, 사격태세에 들어갈 때까지 애를 먹고, 발사 간격이 길었다.


"흠, 조금 신경쓰였지만 문제는 없네"


최하위 그룹의 결과를 본 시즈코는 안심했다.

수위 그룹은 매분 9에서 10발을 발사하고, 최하위 그룹은 6에서 7발이었다. 확실히 결과를 보면 실력은 상당히 편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매분 5발을 밑돌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겐로가 너무 형편없다고 말하길래 시즈코는 매분 4발 이하인가 하고 초조해했으나, 이 결과라면 충분히 허용범위였다.


"하지만 주군, 이래서는 너무 차이가 나는 게 아닙니까?"


겐로가 진언하자 시즈코는 손가락으로 과녁을 가리켰다.


"사격 횟수에서는 떨어지지만, 사격 정밀도는 높은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전원이 과녁을 보았다. 시즈코의 지적대로, 수위 그룹의 착탄 위치는 흩어져 있었으나, 최하위 그룹 쪽은 중심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좋을지는 쓰기 나름. 그러니까 단순히 사격 속도만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정하는 건 성급해요.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아요"


"예, 옛! 주군이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제 얕은 소견이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송구해할 것 없어요. 그럼 정밀 사격이 가능하다고 하면…… 스코프로 사격이 가능하려나. 하지만 많이 준비할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무리려나"


스코프를 단 볼트액션 라이플에 의한 원거리 저격으로 전령을 처치하는 것을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전령이 줄어들면 지휘계통은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대군의 유리함을 살릴 수 없게 된다.

이번의 타케다 전에서는 사격 정밀보도다 사격 횟수에 의한 면제압(面制圧)을 우선시했기에, 정밀도가 높은 저격총은 상정하지 않았다. 약간 후회한 시즈코였으나, 없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자신감은 오만으로 이어지지만, 자신이 없으면 각오가 서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이걸로 문제는 없어요. 얼마 있으면 출진할테니, 그 때까지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도록 해요"


"옛!"


전원의 대답에 시즈코는 만족했다. 그 후, 겐로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시즈코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단점을 탓해서 위축시키기보다, 장점을 발견해서 칭찬해서 성장시키는 편이 좋다, 라"


형편없다고 매일 갈굼당하던 그룹 중 한 명, 나가마사(長政)는 시즈코의 말을 되씹고 있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여태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군, 이라고 나가마사는 생각했다.

동시에 노부나가가 시즈코를 중용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위 그룹과 최하위 그룹 모두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눈으로 보고, 반대로 의역이 넘치는 상태가 되었다.


"주…… 야차(夜叉) 님. 왜 그러십니까"


멍하니 서 있는 나가마사가 걱정된 엔도(遠藤)가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에 제정신이 든 나가마사는, 일단 머리 속에 있던 이런저런 생각을 털어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보다, 이제 곧 타케다와의 싸움이다. 기합을 넣어야겠지"


"예. 하지만…… 정말로 타케다에게 이길 수 있을까요. 저 아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습니다만, 솔직히 소생은 그런 결과가 될 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글쎄. 시즈코 님이 무얼 생각하고, 무얼 보고 있는지, 그건 형님(義兄上)처럼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저만한 일을 해내왔는데, 이제와서 타케다만 무리였습니다, 라고는 하지 않겠지. 실제로 이런 총을 준비해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마사는 신식총(新式銃)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처음으로 그 사격을 보았을 때는 누구나 간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총의 명수라고 하는 사람조차 맞히는 게 어려운 거리를, 기초훈련을 마쳤을 뿐인 신병이 맞혀버렸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우연히 실력이 좋은 사람이 사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직접 사격을 할 때마다 신식총의 무서움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장전 속도가 빠르다. 종래의 화승총으로는 숙련자조차 1분에 1발 쏘는 게 고작이다.

그게 익숙하지 않은 병사조차 6발을 쏠 수 있다. 공격 횟수(手数)가 6배인 것이다. 거리를 좁히기 전에 벌집이 될 것이 뻔하다.


"확실히 그건……"


엔도나 미타무라(三田村)도 신식총의 성능은 싫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텟포슈에 배속되어 있었으니까.


"확실히 55간(間)…이나 되는 거리에서 맞힐 수 있으니 경이적입니다"


미타무라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55간이란 약 100m이다. 여기서 신식총의 성능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상한 것을 눈치채게 된다.

신식총의 사정거리는 800m이다. 100m로는 성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시즈코의 책략이었다.

과녁의 높이나 중심점의 크기를 변경하는 것으로, 실제는 800m 거리라도 노릴 수 있는 훈련을 하면서, 겉보기에는 100m 정도밖에 날아가지 않는 총이라고 간자들에게 오인시킨다.

100m라면 현행의 화승총으로도 닿는 거리다. 연사 속도는 눈을 크게 뜰 정도이지만, 싸움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병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금은 말해봤자 소용없다. 훈련을 하자"


이리하여 사용하고 있는 본인들조차 총의 성능을 모르고, 자신이 얼마만한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식총의 진가는 아직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고 있었다.




오다가 도쿠가와에 원군을 보낸다. 그 소식은 각 방면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갔다. 사방을 적에게 포위당했으면서 여전히 병력을 보낼 여력을 남기고 있었나 하고 적들은 놀랐다.

하지만 신겐(信玄)은 당초부터 예상하고 있었으며, 기후(岐阜)에도 여전히 2만에서 3만 정도의 병력이 남아있을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그 예측은 올바른 것이어서,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에는 2만 정도의 병력이 국방을 위해 남겨져 있었다.


"흠, 역시 그렇게 나왔나"


오다 군의 원군의 진용을 알게 된 신겐은 보고를 받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타마타 성을 힘으로 공격해서는 손해가 크다고 본 신겐은, 그 수원(水源)을 끊기로 했다.

후타마타 성의 수원인 텐류가와(天竜川)에 튀어나온 정루(井楼, 취수시설(取水施設))을 대량의 뗏목을 흘려보내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물 공급을 끊었다.

후타마타 성에는 우물이 없어, 저장되어 있는 빗물만으로는 병사들의 음용수를 댈 수 없다. 성주인 나카네 마사테루(中根正照)는 병사들의 목숨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신겐에게 항복했다.


때를 같이하여, 오다 군의 원군이 하마마츠 성에 도착했다. 내용은 시즈코 군 1만,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들은 각자 1500 정도의 수하들(手勢)을 이끌고 있어, 합계 1만 5천 정도가 되었다.

사쿠마나 히라테, 미즈노의 병력이 적은 것은, 하마마츠 성 뿐만 아니라 다른 성에 수하들을 분산 배치했기 때문이다. 하마마츠 성에서 농성하고 있는 동안, 다른 성으로부터 타케다 군의 배후를 찔러 협공하는 작전이다.

그 외에 키묘마루가 이끄는 병력 1만이 시라스카(白須賀, 현재의 시즈오카(静岡) 현(県) 코사이(湖西) 시(市)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애먹었던 포위전을 반대로 타케다 군에게 걸겠다는 보복(意趣返し)이다.

어쨌든 타케다 군의 전력의 집중을 용납하지 않는다. 소극적이지만 가장 승률이 높은 책략이었다. 문제라고 하면 그 작전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신겐에게 예측되었던 점이다.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시즈코는, 성 전체에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다. 섣부른 소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시즈코는 사이조를 대동하고 사쿠마들과 함께 이에야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흠, 솔직히 말해, 시즈코 님의 예측으로는 승률이 어느 정도이오?"


도중에 부채로 입가를 가리면서 사쿠마가 질문했다. 들리지 않는 척 하고 있는 히라테나 미즈노였으나, 열심히 사쿠마와 시즈코의 대화를 의식하고 있었다.


"으ー음, 뭐 지금 상태로는 8할이려나요"


"……그건 패할 확률이 8할이라는 것이오?"


불안해진 사쿠마가 다시 질문했다. 어째서 자신의 발언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지 이상했지만, 딱히 알려져도 상관없기에 시즈코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지금 상황으로는 8할은 이겼다고 봐도 좋습니다"


"뭐요?"


의미를 알 수 없어 시즈코에게 캐물으려 했던 사쿠마였으나, 그 이상 질문할 기회는 없었다. 이에야스가 있는 방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입구가 열리고 시즈코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 원인은 이에야스가 고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안이나 공포가 가신들에게 전달되고, 그걸 느낀 가신들도 고뇌하고 있었기에, 방 전체가 음울한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었다.


"저희들, 도쿠가와의 원군으로 왔습니다"


병력으로는 시즈코 군이 최대규무이지만, 오다 가문 가신으로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쿠마였기에, 그가 전군을 대표하여 이에야스에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로부터의 대답은 없었다. 그는 시즈코나 사쿠마들이 들어온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안고 뭐라고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건 꽤나 중증인가)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가신 중 한 명이 이에야스에게 귓말을 했다. 그제서야 겨우 사쿠마들을 알아챈 이에야스는 서둘러 차림새를 바로하고는 입을 열었다.


"실례, 생각을 좀 하고 있었소. 다짜고짜 죄송하지만 작전회의를 열고 싶소. 다들, 모여 주시오"


그 말만 하고 이에야스는 다급히 방을 나갔다. 1분 1초라도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에야스의 표정에 불안의 어두운 그림자가 또렷하게 떠올라 있었다.

사쿠마가 시즈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쪽으로 화제를 돌리지 말아줘, 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렸다.


"가죠"


"음"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이 이동하는 데 섞여서 시즈코와 사쿠마들도 작전회의 장소로 이동했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는 있었으나, 그래도 옥외로 나왔기에 약간 개방감이 느껴졌다.


"지금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보다 우선 타케다가 포위하고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에 대해 상의하고 싶소"


작전회의 장소에서 입을 열자마자 이에야스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의제로 올렸다. 현재 상황에서 코앞에 있는 후타마타 성의 원군을 소홀히 하면,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의 결속을 유지할 수 없다.

무모하다는 말을 들어도 이에야스에게는 후타마타 성에 원군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도쿠가와 님, 실은 저희들은 영주님으로부터 계책을 받아왔습니다. 자세한 것은 이쪽의 시즈코로부터 들어주십시오"


"(너무해, 통째로 떠넘겼어) 어흠, 그럼 이후에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쿠마로부터 설명을 통째로 떠넘겨진 시즈코였으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언제 대화에 참가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우선 후타마타 성으로 원군은 보내지 않습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소"


시즈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이에야스는 즉각 거절을 표명했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도 웅성거리긴 했으나 이에야스의 의견을 지지했다.


"기다려 주세요, 딱히 아무 의미 없이 원군을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원군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이미 후타마타 성은 함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시즈코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이에야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후타마타 성은 하마마츠 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견고한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고 하면, 하마마츠 성은 거의 알몸을 드러낸 것이라 해도 좋다.

특히 원군을 보내지 못하고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는 걸 방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에야스에게는 뼈아팠다.


"하마마츠 성에 농성하여, 저쪽이 포위한다면 다른 오다 군이 배후를 찌르고, 하마마츠 성을 떠나 다른 장소를 친다면 우리들이 타케다의 배후를 칩니다. 신겐 땡중(坊主)이 공성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영주님의 계책입니다"


"으, 음…… 전군으로 이동하면 배후를 공격받을테니, 신겐은 반드시 병력을 남길 것이오. 그렇게 되면 다른 장소에 가는 병력이 줄어들지. 이 성은 쉽게는 함락되지 않소. 과연, 신겐은 병력을 크게 쪼개야 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 납득한 이에야스였으나 불안은 남아 있었다. 과연 신겐이 이쪽의 계책에 걸려들 것인가, 였다.

만약 신겐이 하마마츠 성을 포위하지 않았을 경우, 배후는 찌를 수 있으나 지성(支城)을 저버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변절하는 자가 속출할 위험성이 있었다.


"주군, 이건 지나치게 위험한 도박입니다"


"하지만 이미 후타마타 성이 함락되었다면, 이 계책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이에야스의 말대로, 도쿠가와 가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다.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 노부나가의 계책이 된다. 이 이상 많은 걸 바랄 여유는 없었다.


"그러하면 농성을 대비하여 저희 군에서 군비를 반입하려고 합니다. 후타마타 성 공략으로부터 생각하면 2일 정도입니다만, 그 동안에 대량의 물자를 반입할 허가를 받고 싶습니다"


"그건 문제없소. 죄송하지만 지금의 비축량만으로는 불안하지. 그쪽에서 준비해 주신다면 그건 고마운 제안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시간이 아까우니 바로 수배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


시즈코는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는 것에 내심 만족하며, 아시미츠에게 수송작전 개시의 연락을 할 것을 사이조에게 명했다. 사이조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럼 다른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그 후에는 신겐이 미카타가하라 대지에 오는 것을 기다릴 뿐, 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즈코는 다른 의제는 없는지 물었다.




달리 명확한 의제가 없었기에, 작전회의는 금방 끝났다. 아시미츠는 명령을 받는 것과 동시에 병사들을 이끌고 하마마츠 성을 나가서 키묘마루가 있는 시라스카로 향했다.

이에야스의 대답을 듣기 전부터 시즈코는 보급병들을 시라스카에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 후에는 피스톤 수송을 반복하여 가능한 한 많은 물자를 하마마츠 성으로 운반할 뿐이다.

아시미츠의 행동은 신속했다. 필드 스코프와 깃발을 이용하여 겨우 30분 만에 시라스카의 보급부대에 연락을 취했다. 보급부대는 연락을 받음과 동시에 행군을 개시했다.

하마마츠 성으로 컨테이너를 실은 보급부대가 열을 지어 이동했다. 보급병들은 하마마츠 성에 도착한 후, 지정된 장소에 컨테이너의 내용물을 하역하고, 그 동안 보급부대의 호위병들이 잡무를 처리했다.


장사진을 이루는 컨테이너를 멀리서 본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은 압도적인 물량에 기겁했다. 그리고, 이거라면 장기간 농성에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컨테이너의 내용물은 대부분이 타케다 군을 무찌르기 위한 군수물자이지 농성을 위한 생활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즈코와 그들은 약간 생각이 어긋나고 있었다.


"실로 장대한 광경이군"


멀리서 보고있던 한조(半蔵)가 중얼거렸다. 컨테이너의 열은 끊길 기색이 없어, 이 뒤로 얼마나 더 운반되어 올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오늘은 12월 21일, 원군으로 온 지 이틀 동안 반입된 물자를 생각하면, 시즈코가 다른 영주(国人)들에게 뒤지지 않는 존재라는 소문이 나 있는 것도 납득이 갔다.


"이거라면 잘 될거다, 한조!"


"알았다. 알았으니까 남의 등을 치지 마라. 네놈은 적당히라는 걸 좀 배워라"


팡팡하고 등을 치는 타다카츠에게 한조는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했다. 다른 사람들은 타다카츠의 흥분한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군"


"뭐 호의를 가진 여자에게 '이 싸움,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혼다(本多)님이에요'라는 말을 들으면, 헤이하치로(平八郎)가 우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우하하하하! 질투냐? 남자의 질투는 꼴사납다고!"


거 성가시네, 그것이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받은 느낌이었다. 조금 격려해달라고 부탁한 야스마사(康政)는 새삼 후회했다. 좀 더 완곡적으로 말해달라, 고 말했어야 했다고.


"하여, 주군께선 어디 계신가?"


"시즈코 님이 데려온 짐승이 궁금하다고 하시며 시즈코 님이 있는 곳에 계시네"


"음, 그건가. 확실히 놀라웠지. 주군께서 흥미를 가지시는 것도 어쩔 수 없군"


시즈코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비트만 패밀리를 하마마츠 성으로 데려왔다. 평소에는 카이저와 쾨니히 뿐이지만, 이번에는 패밀리 전원이다.

카이저만으로도 놀라운데, 그게 전원 집함이 되면 신화적으로까지 보일 광경이다. 그리고, 그 거구의 짐승들을 간단히 부리는 시즈코에게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 싸움, 결과를 알 수 없게 되었군"


야스마사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직감이긴 하나, 어떤 확신이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 농성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 고.




이에야스는 비트만 패밀리가 집합해있는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크다 크다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이만한 거구들이 모여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담력시험도 겸하여 이에야스는 비트만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반응한 것은 쾨니히였으나, 거의 시간차 없이 다른 늑대들도 이에야스의 행동을 감지했다.

얼핏보면 딴청을 부리고 있었으나, 귀는 빈틈없이 이에야스 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인 모양이군"


한 발자국만 더 다가가면 비트만 패밀리가 움직인다. 그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이에야스는 발을 멈췄다. 늑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전쟁에서 다져진 감이 이에야스에게 위험한 라인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훌륭한 체구로군.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이에야스의 평가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떠올렸다. 시즈코에게는 언제까지나 어리광쟁이인 아이들이다. 하지만 평가가 높은 것은 주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죄송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라서 당황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평소보다 경계심이 강하네요"


"하핫, 괜찮습니다. 무리한 이야기를 한 건 이쪽이니까요"


조금 잡담을 나눈 후, 시즈코와 이에야스는 아시미츠가 운반해온 물자를 시찰하러 갔다. 이틀 뿐이라는 점도 맞물려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혼잡했다.

운반된 컨테이너에서 여러 개의 카트(カゴ台車)가 꺼내졌고, 그것들이 분류에 따라 손으로 미는 카트(手押し台車)에 실려 보관 장소로 운반되어갔다.

내용물을 전부 꺼낸 컨테이너는 빈 카트를 수납하여 되돌아갔다. 연이어서 들어오니 정리하는 담당자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운반되어온 물자는 상자에 식별변호만이 적혀 있었기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시즈코는 식별번호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이에야스 등 도쿠가와 가문 인물들에게는 그냥 나무상자를 어떤 이유로 구별해놓았는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왜 그러냐 시즈코,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작업원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찰하고 있으니, 총책임자인 아시미츠가 시즈코들이 온 것을 깨달았다.


"좀 신경쓰여서, 도쿠가와 님과 시찰하고 있어"


"그러냐. 뭐, 신경쓸 필요는 없다. 하나같이 순조롭다"


그렇게 말하며 아시미츠는 시즈코에게 보드를 내밀었다. 받아들고 내용을 확인하니 순조롭게 물자가 반입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시즈코는 물자 수송의 호위병의 흐름에 눈을 돌렸다. 물자의 반입과 함께 속속 입성하여, 반출과 함께 조용히 퇴출했다. 이쪽도 순조… 로웠다.


"문제없네"


뒤에서 홀로 남겨진 이에야스였으나, 시즈코 본인이 문제없다고 말하는 이상 뭔가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이 얼마만큼 운반되어오고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오늘밤은 이걸 병사들에게 나누어줘"


시즈코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 아시미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나누어준 것, 그것은 술이다. 내일은 농밀(濃密)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어쩌면 오늘밤이 달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째째한 소리를 하는 법 없이, 저녁식사는 대단히 푸짐하게 내놓았다. 병에 담겨있던 요리들이 차례차례 개봉되어 병사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텅 빈 술통이 자리가 비좁을 정도로 굴러다녔다.


"마치 축제로군"


한조와 타다카츠, 야스마사가 시즈코 군의 떠들썩함에 놀랐다. 얼핏 보면 타케다와 싸우기 전의 최후의 만찬으로도 보이지만, 세 사람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며칠 정도지만, 시즈코들에게는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눈치챌 정도니, 주인인 이에야스도 눈치채고 있을거라고 이해했다.

왜냐 하면 시즈코 군이 떠들썩하게 노는 것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가서 낄 수 있으면 끼어서 놀고 와라, 고 가신들에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본인은 그대로 시즈코 군이 있는 곳으로 끼어들러 갔다.


"하여간 괘씸하군…… 우물우물…… 내일부터 농성인데, 후우후우…… 이래서는 맥이 빠지는 게 아닐까"


"헤이하치로, 산처럼 요리를 쌓아놓고 먹으면서 말해도 설득력은 전혀 없다"


"네놈들도 요리를 손에 들고 있지 않느냐"


맛있을 듯한 냄새에 이기지 못하고 세 사람 모두 한 손에 요리를 들고 걷고 있었다. 타다카츠 같은 경우에는 접시에 밥을 얹더니, 그 위에 산더미같은 반찬을 올려놓고 있었다. 한조나 야스마사도 접시에 몇 가지 요리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게다가, 요리는 별로 먹지 않았지만, 이에야스는 사카이(酒井)와 함께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들 불안한 것이겠지. 그러니 떠들썩하게 놀 수 있을 때는 노는거다"


타케다의 행군 속도를 볼 때 농성전은 내일부터 시작된다, 고 다들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옛부터 농성전은 비참한 상태가 되기 쉽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싸움, 시시각각으로 줄어가는 군비, 부상당해도 도망칠 곳조차 없는 상황은 정신을 마모시킨다.

게다가 타케다는 월동 장비를 가지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농성전은 어떻게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다들 떠들썩하게 즐기며 내일을 잊는다.


"이제와서 말해봤자 소용없다. 할 수 있는 일은 할 것이다"


"지금은 네놈의 속편함이 위안이로군. 충분히 마음편하게 준비해둬라"


"이봐, 사람을 만사태평한 인간 취급하지 마라"


"아니냐?


"아니야!"


한조의 지적에 타다카츠는 반론했다. 하지만 곧 세 사람 모두 뿜었다. 그들은 이 때만큼은 시시각각 밤이 지나 내일이 다가오는 것을 잊고 떠들썩하게 즐겼다.




도쿠가와 가문 가신들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으나, 시즈코들도 크게 흥분해 있었다.

이럴 때 대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 그야말로 장례식(お通夜) 같은 청승맞은 밤을 보내게 된다. 억지 기운으로 보이더라도 위에 서는 사람은 솔선하여 즐거워해보일 필요가 있었다.


"좋았어ー!"


큰 모닥불을 앞두고, 케이지의 원숭이춤이나 사이조의 연무(演武),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춤 등이 선보여졌다.

모닥불은 캠프 파이어라고도, '친목(親睦)의 불'이라고도 하며, 결속력을 높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다들 모닥불을 둘러싸고 떠들썩하니 즐기고 있었다.


"아ー 내가 바로…… 다음이 뭐더라?"


"이 등신!"


만담(漫才) 같기도 하고 카부키(歌舞伎) 같기도 한 쇼에 다들 큰 소리로 웃었다. 술기운도 있지만, 누군가가 모닥불 앞으로 뛰쳐나와 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선보이고 있었다.


"술기운이라는 건 무시 못하겠네"


열기가 버거워진 시즈코는,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져서 시원한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술을 마실 수 없는 그녀였으나, 분위기만으로도 취한 기분이 들었다.


"물이다"


"고마워"


아시미츠에게서 찬물을 받아들었다. 불기운에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물이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휴 하고 한숨을 돌린 시즈코는, 컵을 한 손에 쥔 채로 병사들의 난리법석을 보았다.


"내일은 드디어 결전이니, 미련이 없도록 실컷 떠들썩하게 놀게 할 필요가 있지"


"그런 불길한 말은 하지 마. 무혈(無血)의 승리는 무리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면 훌륭한 선전이 되니까. 내일은 압도해 보이겠어"


주위는 내일부터 길고 괴로운 농성전이 시작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즈코를 필두로 한 몇 명 만은, 내일은 개수일촉(鎧袖一触)으로 타케다를 쓰러뜨릴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 고생하며 이것저것 준비해온 것이다. 최소한 타케다의 주력이 괴멸하는 결과를 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피가 배어내는 훈련에 따라와 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


"예상으로는 사상자는 거의 200. 그 정도는 나올 거라 생각해둬라"


"200이라…… 좀 더 줄이고 싶지만, 타케다 군 상대로 그 숫자라면 감지덕지려나"


"감지덕지는 커녕, 타케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귀를 의심할 거다. 켄신(謙信)조차 비기는 게 고작이었던 타케다, 그 군이 완전히 괴멸하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지"


아시미츠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준비는 갖춰졌다. 이번의 책략에는 다른 오다 가문 중진(重鎮)들도 찬동해 주었다.

각 진영에 이런저런 속셈은 있지만, 타케다를 쳐부순다는 목적이 일치한다면 시즈코로서는 문제없었다.

그 후, 어떤 특권이나 명예가 따라올지도, 그녀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로서 쓸데없는 싸움이 줄어드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안심해라. 타케다를 쳐부순 군, 이라는 게 되면 쓸데없이 다투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켄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호죠(北条)와 결탁해서까지 싸우려고 들진 않겠지"


"그러기를 바래. 이 이상, 싸움이 계속되어서 나라가 피폐해져가면 곤란하니까. 다들 이런저런 생각은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영주님에 의한 오다 막부(幕府)의 천하통일이 가장 나은 미래라고 생각해"


"누구나 납득하는 미래 같은 건 없다. 나는 시즈코를 믿는다. 그러니 시즈코는 스스로가 믿는 길을 가라. 그게 설령 잘못되었다고 해도 말이지. 잘못되었는지 올바른지는,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판단을 맡겨라"


"응, 힘낼게.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꼭 말려줘"


"그걸 시즈코가 바란다면, 나는 목숨과 바꿔서라도 말려보이지"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오버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걱정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일말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타케다와의 싸움이 끝나면, 그녀가 바라던 바라지 않던 관계없이, 시즈코는 정치의 세계에서 발판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타케다라는 위험이 사라지만, 오다 가문 내분에서도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은 뻔히 보였다.


(타케다를 깨부수고, 나가시마 잇코잇키(長島一向一揆)를 멸망시키고, 아자이(浅井)을 멸망시키고, 아사쿠라(朝倉)를 멸망시킨다. 바보 동생놈은 모리(毛利)가 있는 곳으로 날려버리면, 이제 일본은 오다 가문이 거의 장악한 셈이 되지. 그렇게 되면, 혼간지(本願寺)도 시간은 걸리겠지만 오다에게 복종하는 것 외에 길은 없다. 천하가 보이는 위치에 노부나가는 서게 되지. 그렇게 되면, 시즈코의 힘을 노리고 몰려드는 잡초들은 얼마든지 생겨난다)


원하지 않는 권력투쟁에 말려들게 되면, 과연 시즈코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만큼은 아시미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령 시즈코가 변하더라도 아시미츠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시즈코를 지킨다, 적은 멸망시킨다,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아시미츠는 확신하고 있었다.


"긴장할 생각은 없는데 말이지. 뭐, 나중 일은 일단 제쳐두지. 지금은 내일 일을 생각하자"


"……그러네. 내일, 이네"


컵에 남은 물을 다 마신 후, 시즈코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공기가 맑은 덕분에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보였다.


"내일, 역사가 크게 바뀐다"


시즈코의 작은 중얼거림은 가까이 있던 아시미츠에게조차 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은 채 밤하늘로 빨려들어가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한동안 소란은 계속되었으나, 밤이 깊었을 무렵, 내일을 대비해 다들 곯아떨어졌다.


12월 22일,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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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