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3년 결전(決戦),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


091 1572년 8월 중순



7월 19일, 노부나가는 거의 모든 가신들을 모아서 노부타다(信忠, 키묘마루(奇妙丸))의 첫 갑주 착용식(具足始の儀)을 치렀다.

다른 말로 요로이키조메(鎧着初)라고도 하며, 무가(武家)의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갑주를 착용하는 의식을 말한다. 보통은 성인식(元服)과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정식 규정은 아니라서 키묘마루처럼 성인식 전에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타케다 요시노부(武田義信)처럼 13세에 성인식을 치르고 2년 후인 15세 때 하는 케이스도 있다.

그렇기에 첫 갑주 착용식과 성인식은 동일시되기 일쑤이지만 별개의 것이다.


첫 갑주 착용식이 끝난 다음에는 오다니 성(小谷城)에 틀어박힌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를 토벌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약 5만의 군세를 이끌고 출진했다.

북 오우미(北近江)에 도착한 후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初陣式)을 치렀다. 이로써 노부타다에 관한 일련의 의식들은 종료된 것이 된다.


"이 정세 하에서 이름있는 무장들이 잘 모여주었다"


노부나가가 첫 출전식에서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들 신하 일동, 굳게 단결하여 키묘(奇妙) 님을 지켜내고 아자이 가문을 쳐부숴보이겠습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기에 아명(幼名)인 키묘로 불리고 있지만, 갑주를 입은 모습은 늠름한 무장이었다.

평소에는 엄한 표정을 짓는 노부나가도, 후계자인 키묘마루의 첫 출전식이 무사히 치러진 것이 기뻤는지, 어느 정도 표정이 누그러져 있었다.


"다들, 마시도록"


노부나가의 말에 무장들은 축하주를 마셨다. 지금부터 아자이를 침공하게 되는데, 그들에게 긴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아자이 가문에 예전같은 힘은 없고, 당장이라도 꺼질 바람 앞의 등불 상태였다.

아사쿠라(朝倉)도 지금까지 도망치던 태도 때문에 오다 가문 가신들 사이에서는 이름높은 명가(名家)가 아니라 그냥 얼간이(腰抜け)로까지 평가가 추락한 상태였다.

노부나가는 적대하는 영주(国人)들과 혼간지(本願寺), 엔랴쿠지(延暦寺)에 의한 포위망도 풀려서 아자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제 2차 포위망이 착착 형성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자이와 아사쿠라를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두들겨놓을 필요가 있었다.


"영주님, 각국에서 축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소성(小姓)으로부터 선물(贈答品) 목록을 받아들고 노부나가는 그것을 읽었다. 다 읽자 노부나가는 작게 웃었다.


"켄뇨(顕如)도 타케다(武田)도 교활한(食えぬ) 너구리로다"


포위망으로 뭉개버리려는 상대에게 보란 듯 축의(祝儀)를 보낸다. 그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외교적 의례와 정치적 스탠스는 별개라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노부나가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놈들의 발밑을 무너뜨려서 이쪽이 내려다봐 준다, 라. 과연, 확실히 오노(お濃, ※역주: 노히메)의 말에도 일리가 있군. 모든 것이 끝났을 때, 놈들의 얼굴이 볼만하겠다)


"영주님, 뭔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축의 목록에 있는 이름을 보며 노부나가가 사악한 표정으로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신경쓰인 호리(堀)가 머뭇거리며 질문했다.


"켄뇨도 타케다도 교활한 너구리로다"


그에 반해 노부나가는 종이를 말아 호리에게 던져주며 아까와 똑같은 말을 했다. 둥글게 말린 종이를 받아든 호리였으나, 노부나가의 진의를 알 수 없어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노부나가가 뭔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큰 잔인데 바닥에 조금 고일 정도밖에 술이 없다니 거 참 멋대가리 없네"


한편, 노부타다의 첫 출전식에 있던 시즈코는, 잔에 병아리 눈물만큼 따라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금주령이 아직 풀리지 않은 그녀는, 형식상으로 술이 나오는 자리에서도 술이 아닌 물을 받았었다. 하지만 물잔은 재수(縁起)가 나쁘기에, 절대로 취하지 않을 양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시즈코는 몰랐다.

노부나가가 완고하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약간 궁금해졌지만, 딱히 술이 마시고 싶은 이유도 없었기에 궁금해 하는데만 그치고 있었다.


"후훗, 하지만 포위망도 풀려서 다행이군"


"그렇지. 아니면 이렇게 평화롭게 치를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여전히 건재하니, 긴장을 풀었다간 단번에 영토를 잃게 되겠지"


무장들의 대화가 시즈코의 귀에 들어왔다. 현 상황을 보는 한, 오다 가문에 위기는 닥치지 않았기에, 그들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다.

오히려 이 평화로운 표정과 말투 쪽이 각 방면의 간자를 속일 수 있어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슬슬 진지하게 간자들을 파악해 둬야겠네. 하지만 내가 해봤자 무리일테고…… 누가 적임일까)


아시미츠(足満)가 가장 적임이지만, 군사 방면은 다 떠넘기고 있었기에 아시미츠의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하고 시즈코는 걱정하고 있었다.

아시미츠 본인은 무리라면 무리라고 말을 하는 성격이기에 쓸데없는 배려는 필요없지만, 시즈코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기에 그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나중에 상담해볼까. 그래서 이후의 방침을 결정하자)


결론을 낸 시즈코는, 이후에는 첫 출전식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첫 출전식이 끝나면, 그녀는 아자이 침공에 참가, 가 아니라 오와리(尾張)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물론 타케다 전(戦)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몇 가지 물자가 그녀의 창고에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신형 화승총의 부품까지 들어있었으나, 그것들은 케이지(慶次)들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다. 화물의 관리(差配)를 하고 있는 아야(彩)도 내용물이 무엇인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얼핏 봐서는 철봉이나 나무 틀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제조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최종적인 형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 듣지 못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아무래도 수백 년이나 들여서 탄생시킨 기술이나 연구 끝에 세련된 도달점이니까. 그 기초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겠지)


애초에 화승총을 기능별로 부품으로 분해하여 각각 부품 단위로 대량으로 제조한다는 생각조차 지나치게 이단적이라 전국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조 기술은 극비 중의 극비, 구조도 간단히는 알려지지 않는 시대이다. 완성형을 보지 못하면 그것은 뭔가의 도구 정도라고 생각되기 쉽다.


(간자에게 교양(教養)이 있으면 곤라한 사람들이 참 많지. 그러니까 간단한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거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즈코는 잔에 담긴 술을 비웠다. 술이라고 해봐야 입을 약간 적실 정도로는 마신 느낌조차 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축하 선물들이 운반되어 왔다. 적대하고 있는 켄뇨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6녀 마츠히메(松姫), 도쿠가와(徳川) 등등 각 방면으로부터 다양한 선물들이 도착했다.

선물은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대단히 값비싼 것들이었으나, 선물받은 본인인 키묘마루는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았다.


"키묘, 뱃속(腹の中)은 보이지 마라"


"아버지…… 옛, 죄송합니다"


적으로부터의 시혜(施惠)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직 풋내기로군이라고 생각하며 옆에서 보고있던 노부나가가 쓴소리를 했다. 지적받고 깨달았는지, 그 이후 키묘마루는 속마음을 표정에 드려내지 않았다.




첫 출전식이 끝나고, 드디어 아자이 침공이라는 상황이 되었을 무렵, 시즈코는 전군을 이끌고 공성, 이 아니라 오와리로 귀환할 것을 노부나가에게 명령받았다.

이유는 동쪽이 수상하기에 견제(抑え)하라, 이다. 다른 무장들이 볼 때는 무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상황이지만, 시즈코는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 준비에 착수했다.

단, 토라고젠 산(虎御前山)에 축성(築城) 예정이 있었기에, 후방 지원부대 중 쿠로쿠와슈(黒鍬衆)와 일부의 부대만 남기게 되었다.


"아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귀가라니 김새는걸"


"어쩔 수 없지. 오다 나으리는 우리들을 쓰고 싶지만, 우리들만 써서 다른 사람이 무공을 세울 자리를 빼앗는 것도 문제니까"


"알고 있지만 말야. 모처럼 날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견제 역할이라니 할 맛이 안 나"


불평불만을 말하는 나가요시(長可)를 케이지가 달랬다. 이제와서 무슨 소리를 해도 결정은 뒤집어지지 않지만, 그로서는 불평을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 발산을 위한 것이리라.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실컷 투덜거리게 놔두기로 했다.

이럴 때, 여자보다는 같은 남자끼리 이해가 잘 통한다는 점도 있다.


"그럼, 준비가 끝나면 오와리로 귀환. 그 후에 우리들은 평소와 같이 훈련. 달라질 것 없는 나날들이 되겠지만, 이 훈련이 언젠가 도움이 될 테니 열심히 하도록 하죠"


"옛!"


나가요시와 케이지 이외의 무장급 사람들이 대답했다. 시즈코 군도 우사 산성(宇佐山城) 전투에서 꽤나 회복되어, 지금은 1만에 달하는 군이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즈코 본인이 움직이는 군은 2000에서 3000 정도로, 나가요시, 케이지, 사이조(才蔵), 타카토라(高虎), 아시미츠 등 5명이 각각 1000에서 2000의 병사들을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후방 지원부대를 더하면, 다른 유력 무장들과 동등한 세력이 된다. 노부나가가 무공을 세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한 것도 납득할 수 있는 세력이었다.


"여어, 시즈코. 배웅하러 왔다"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시즈코에게 키묘마루가 찾아왔다.


"이런, 키묘 님. 배웅해주시다니 황공하옵니다. 하지만, 수행원도 없이 다니시는 건 부주의하십니다"


"그만둬, 딱딱하게 대하지 마. 너한테 그런 소릴 들으면…… 그, 뭐냐, 소름이 끼친다고"


"심한 말이네. 하지만 호위 정도는 데리고 와. 우리 쪽에서 몇 명 붙여줄테니, 돌아갈 때는 호위랑 같이 가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시즈코는 겐로(玄朗)에게 호위병을 몇 명 차출하도록 지시했다. 그걸 듣고있던 키묘마루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위라니 숨이 막혀. 나는 좀 느긋하게 있고 싶다고"


"영주님의 후계자가 첫 전투에서 쓰러지기라도 하면, 영주님은 물론이고 주변의 무장들도 한심하다고 욕먹고 불명예를 얻게 되는데?"


첫 출전식은 화려하게 치렀기에, 노부나가에 적대하는 면면들이 키묘마루의 암살을 꾀해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키묘마루는 태어났을 때부터 노부나가의 후계자가 될 것이 내정되어 있었으나, 오늘 처음으로 확정된 것이다.

후계자를 잃는 것은, 전국시대에 있어 사활문제(死活問題)가 된다. 아무리 노부나가가 자식이 많더라도, 말하긴 뭐하지만 키묘마루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알ー았어, 알ー았다고. 하여튼, 그렇게까지 내 실력은 믿음이 가질 않는거냐. 이 갑주, 네 신기술…… 이 도입되어 있잖아?"


"……뭐 그렇긴 한데. 하지만 과신은 금물이야. 죽을 때는 정말 어이없이 죽으니까"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키묘마루는 혼노지(本能寺) 사변 때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는 이미 시즈코가 배운 역사와는 달라져 있다.

사소한 계기로 본래 죽어야 했을 사람이 살고,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걸 생각하면 키묘마루가 멋대로 움직이는 것도 시즈코에게는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뭐, 나도 첫 출전에서 멍청하게 죽고 싶지는 않아. 여기는 시즈코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드물게 시즈코가 신신당부를 하는 점이 신경쓰여, 키묘마루는 시즈코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 후, 자유분방한 태도를 거두고 겐로가 데려온 호위에 둘러싸여 본진으로 돌아갔다.


"자, 이쪽은 오와리로 돌아가죠"


"그 전에,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즈코 님"


이번에야말로 귀가, 라는 상황에 또 방해가 들어왔다. 어이없는 느낌을 받으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리니, 거기에는 싱긋 웃는 표정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가 있었다.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시즈코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타케나카 한베에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를 팔랑거리며 중얼거렸다.




타케나카 한베에와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환하는 것이 반나절 정도 늦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눈에 뜨일 정도로 타케다나 혼간지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에, 특별히 영향은 없었다.


7월 21일, 노부나가는 준비가 갖춰지자 시바타(柴田)나 사쿠마(佐久間), 니와(丹羽), 히데요시(秀吉)에게 히바리 산(雲雀山)과 토라코젠 산(虎御前山)을 공격하도록 명했다. 그들은 마을을 불태우며 불꽃처럼 공격해 들어갔다.

아츠지 사다유키(阿閉貞征)가 지키는 야마모토 산성(山本山城)에도 병사를 보냈으나, 이미 아츠지 사다유키는 오다 측과 내통하고 있었기에 이것은 내통을 들키지 않기 위한 기만 공작에 지나지 않았다.


23, 24일에는 에치젠(越前)과의 국경 부근을 중심으로, 잇코잇키(一向一揆)를 꾀한 사찰 및 신사(寺社)나 마을들을 모두 불태웠다. 이 싸움에서 근처의 주민들이나 승려들이 오다 군에게 죽음을 당했다.

동시에 미츠히데(光秀)가 중심이 되어, 비와 호(琵琶湖) 방면에서 공격해 올라가 일향종(一向宗)들의 증원을 막았다.


순조롭게 적 세력을 무찔러간 노부나가는, 27일에 토라코젠 산에 축성을 명했다. 재빠르게 주변 탐색을 마친 후, 쿠로쿠와슈가 토라코젠 산에 들어가 축성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성이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히사마사(久政)는 손가락을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다 군을 쫓아낼 수 있는 병력은 없어, 공격해봤자 박살날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세력과도 차단된 고립 상태의 그는,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러서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사쿠라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원군을 요청했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의 봉기로 위기에 처해 있다, 라는 히사마사의 거짓 정보에 속은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는 직접 1만 5천의 군을 이끌고 에치젠을 출발했다.

하지만, 오우미(近江)에 도착하여 오다 군이 건재한 사실을 알게되자마자 오오즈쿠 산(大嶽山)에 진을 치고 그대로 틀어박혀 버렸다.


그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도, 토라코젠 산의 축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몇 가지 시설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견고한 방어벽 등 주요 설비는 이미 기능하고 있었다.

재빠르게, 하지만 착실하게 마무리해가는 쿠로쿠와슈의 솜씨를 보고 노부나가는 희색이 만면했다. 한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 것에 발을 구르고 있었다.


대치 상태(睨み合い)가 계속되던 도중, 아사쿠라 측에 움직임이 있었다. 8월에 들어섰는데도 축성의 방해, 저지를 하지 않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단념했는지, 아사쿠라 가문 가신인 마에바 나가토시(前波長俊) 부자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마에바 나가토시가 변절한 다음 날, 기회주의적(日和見) 태도를 취하는 아사쿠라 요시카게에게 진절머리가 났는지, 아니면 변절한 마에바 나가토시를 이용하여 정치적 공작(調略)을 했는지, 토다 나가시게(富田長繁)나 토다 요지(戸田与次), 케야 이노스케(毛屋猪介) 등 아사쿠라 가문 가신들이 차례차례 오다 측으로 변절했다.


"이렇게 변절이 많아지면 재미가 없군요, 아버지"


첫 출전식 이후 눈에 띄는 출격은 없었으나, 예정대로의 쾌진격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키묘마루는 기문이 좋았다. 하지만, 노부나가는 키묘마루의 발언을 듣고 작게 미소를 떠올렸다.


"아직 젊구나, 키묘. 상대가 궁지에 몰렸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무는 법이지"


"하지만, 아사쿠라는 틀어박힌 상태고, 아자이도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방적인 승리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습니까"


"바로 그래서이다"


노부나가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 키묘마루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한 부분(勘所)을 판단하는 것은 실전 경험을 쌓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노부나가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도망치는 병사들은 나오겠지. 허나, 남은 병사들은 이미 배수(背水)의 진, 사병(死兵)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것이다. 사병의 강함은 네놈도 알고 있겠지. 예전에, 우리 군에서도 사병이 되어 싸운 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


그제야 겨우 키묘마루는 노부나가의 진의를 깨달았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상대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면, 단지 앞쪽에만 활로(活路)를 찾아 필사적이 되기 때문에 뼈아픈 반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사병이라는 것은 아군이라면 든든하지만, 적이 되면 까다롭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그렇다. 아사쿠라나 아자이의 병사들이 사병이 되어 우리들을 덮쳐올 가능성이 있다. 적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적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 두려움은 겁장이의 증거가 아니다. 그 두려움이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심모원려(深謀遠慮)는 놀라울 뿐입니다. 천학비재(浅学非才)한 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한층 더 정진하겠습니다"


"됐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알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실수를 감추고, 더군다나 남에게 떠넘기는 놈들은 평생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놈은 일찌감치 베어버리는 쪽이 좋지"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더니, 노부나가는 무장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선언했다.


"한동안 대치가 계속되겠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곧 기회는 온다"




8월에 들어서 조금 상황이 움직였으나, 여전히 오다와 아자이-아사쿠라 사이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노부나가는 몇 번인가 아사쿠라에게 결전을 신청했으나, 요시카게는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 소심함(臆病っぷり)을 야유하면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남기고 요코야마 성(横山城)으로 이동했다.

히데요시 군만 남았음에도 여전히 아자이-아사쿠라에게 움직임은 없었다.


"이거 참, 아자이도 아사쿠라도 틀어박혀만 있으니 재미없군요"


정시 보고(定時報告)를 받아든 히데나가(秀長)가 어깨를 으쓱하며 중얼거렸다. 단순한 대치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뿐만은 아니다.


"영주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여전히 감시만 하라, 주의를 게을리하지 마라, 입니다. 어째서 한번에 공격해 함락시키지 않는 걸까요"


마찬가지로 정시 보고를 받은 타케나카 한베에를 보면서 히데나가는 팔짱을 꼈다. 뭔가를 묻고 싶은 듯 보였지만, 타케나카 한베에는 그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노부나가로서는 지금부터 일어날 큰 일을 앞두고 가능한 한 병력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타케나카 한베에는 일부러 소극적으로 보이는 작전을 계속 취했다.


"이쪽이 약한 면을 보이면 그들은 얕보고 치고 나올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생각한 것보다 아사쿠사는 주위가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하핫, 이거 엄격하시군요. 하지만, 그의 소심함(弱腰) 덕분에 이쪽으로 변절한 사람은 몇 명이나 있습니다. 여긴 일단 계속 그대로 있어줫으면 하는군요. 물론, 무장으로서 전공은 세우고 싶습니다만"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ーーーー"


타케나카 한베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을 때, 거친 발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 뿐만이 아니라 히데나가 쪽도 발소리를 들었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누군가의 귀에 들릴 정도로 거친 발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지금 돌아왔다ー. 하여튼, 인사하러 돌아다니는 건 피곤하구만"


"어서 오십시오, 형님"


히데요시였다. 그는 적당한 장소에 앉더니, 소성에게 차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래서, 아자이-아사쿠라에 움직임은 없느냐?"


묻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일까, 히데요시는 쓴웃음을 지으며 질문했다. 그 물음에 히데나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걸 본 히데요시는 보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아자이는 알겠지만, 아사쿠라는 뭘 하러 왔냐는 게다. 저놈들, 이대로 틀어박혔다가 겨울이 되면 에치젠으로 돌아갈 생각일까?"


"그 가능성이 가장 높겠지요. 겨울이 되면 길이 눈으로 막혀버리니까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눈이 녹을 때까지 귀국할 수 없게 됩니다"


"못해먹겠구만. 오, 수고했다. 차를 놔두고 물러가도 좋다"


이야기 도중에 소성이 차를 가져왔다. 히데요시는 쟁반에서 찻잔을 들어올리더니 그대로 한입 마셨다. 차갑다고 하긴 어렵지만, 여기저기 걸어다닌 몸에는 미지근한 차라도 맛있었다.


"뭐, 영주님께서는 감시만큼은 게을리하지 마라, 고 하셨다. 우리들은 그 명령을 따라 움직일 뿐. 몸이 녹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 뭐냐, 적당히 운동을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형님"


"좋아,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자, 오늘 저녁식사는 뭘까. 오랜만에 시즈코의 다이도코로슈(台所衆)가 있으니, 기대해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히데요시의 말에 히데나가와 타케나카 한베에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에서 제외된 시즈코는, 오와리로 귀국하자 군을 해산시켰다. 8월은 더운 시기이기에, 훈련 자체는 느긋하지만 가볍다고는 하기 어렵다.

하지만, 케이지나 나가요시 등 무장급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책임이 있는 입장이므로, 항상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용은 훈련이라기보다는 기합(シゴキ)에 가까웠다.

특히 나가요시는 모리 요시나리(森可成)가 직접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함은 보고있는 쪽이 불안해질 정도였다.


"뭐냐, 그 엉거주춤한 꼬락서니는! 그런 자세로 적을 처치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느냐!!"


"주, 죽겠다…… 아니, 죽을소냐!"


"겨드랑이가 어설프다!"


"쿠엑!"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나가요시였으나, 요시나리는 용서없이 그를 때려눕혔다. 짜부러진 개구리 같은 소리를 내며 나가요시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몇 번이나 똑같은 실패를 하고 있는데, 네놈은 머리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짓은 못 한다. 모두 몸으로 기억해라. 안심해라, 몇 번을 잊어버리던 그 때마다 내가 몸에 새겨주마"


"어, 어디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제길!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아버지에게서 한 판을 따겠어!"


"좋은 기백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오질 못하는구나!!"


"커흑!"


나가요시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더니 요시나리는 빈틈투성이가 된 그의 몸에 통렬한 일격을 후려쳤다. 치명적인 타격이었는지, 나가요시는 주위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땅바닥에서 몸부림치며 굴렀다.

하지만 요시나리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추가 공격을 넣었다. 간발의 차로 회피한 나가요시였으나, 누가 봐도 만신창이인 것은 명백했다.

요시나리는 어깨를 다친 후 일선에서 물러난 몸이지만, 지금의 광경을 보면 지금이라도 전쟁터를 맡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떻게 된 거냐, 늙어빠진 영감(耄碌爺) 한 명 쓰러뜨리지 못해서야, 네놈은 일개 병졸조차 되지 못한다"


"어, 어디가 늙어빠졌는지 묻고 싶은데. 하지만, 지금은 우슨 소릴 해봐야 소용없어…… 오늘이야말로 한 판을 따겠어어어어어!!!"


입 속에 고인 피를 뱉어내더니,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 돌격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요시나리와 오래 치고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일기토의 응수(駆け引き)에서는 요시나리가 한 수 위였다.


"어설프다!!"


"크어억!"


결국, 오늘도 나가요시는 요시나리에게서 한 판도 따지 못하고 훈련을 마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아사쿠라 침공을 하고 있을 무렵, 타케다는 열심히 정보수집을 하고 있었다. 적인 오다 군은 물론이고, 아군 측의 혼간지나 아자이-아사쿠라도 마찬가지로 조사하고 있었다.


"모두 영주님(御屋形様)이 예측하신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혜안이 정말 놀라우십니다"


"놈들은 내게 있어 장기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겐(信玄)은 보고서를 근처로 하나씩 던져버렸다. 이미 알고 잇는 보고를 그는 새삼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차례차례 보고서를 읽고 버리는 신겐에게 가신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조사한 내용도, '그 내용으로 보고가 올라올 것'이 마치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 버려질거래 생각했을 때, 신겐은 하나의 보고서를 손에 들었을 떄 움직임을 멈추고, 그대로 보고서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신겐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에 가신들 사이에 동요가 퍼져나갔다. 그러나, 신겐은 주위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했다.


"귀국했다, 고?"


"예? 옛, 이번의 오다의 아자이 침공, 고노에(近衛)의 딸은 제외되었습니다. 적자의 첫 출전식에는 참가했습니다만, 그게 끝남과 동시에……"


"귀국시킨 이유는 무엇이냐"


"고노에의 딸은 너무 많은 무공을 세웠기에, 주위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가신이 말한 이유에 신겐은 납득하지 않았다. 노부나가의 성격이라면 반대로 시즈코에게 더 무공을 세우게 해서 주위의 무장들을 닥달하는 쪽이다.

무공을 너무 많이 세워서 전선에서 뺐다, 라는 건 표면적 이유(建前)이고 본심이 어딘가 감춰져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 이라고 신겐은 생각했다.


(또 고노에의 딸인가. 오다 놈…… 무얼 생각하고 있느냐. 그리고 그 딸에게 어떤 힘이 숨겨져 있다는 거냐)


간자들을 닥달하여 시즈코의 정보를 수집하게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어디를 찔러봐도, 하나같이 중요한 정보가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니히메(仁比売)의 후계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니히메의 존재 자체가 노부나가의 정치적 공작이라고 신겐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오다의 꼬맹이치곤 제법이군.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하면 그건 반대로 주위에 의혹을 키우게 되지) 아시미츠인가 하는 쪽은 어떻게 되었나"


"옛…… 이게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자라서, 전혀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탁월한 기예의 소유주로,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가 반대로 당했습니다"


"빨리 처리하라. 아시미츠가 그 자라면 장기말의 가치가 올라간다"


그 말만 하고 신겐은 가신을 물리쳤다. 가신은 서둘러 물러나고, 그와 교대하듯 다른 가신이 신겐에게 다가왔다.


"영주님께 보고드립니다!"


"다 말할 필요 없다. 알고 있으니"


"예, 옛!"


보고를 하기 전에 모든 것을 꿰뚫려보인 것에 가신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즉시 절을 하고는, 보고서를 쟁반 위에 놓고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

놓여진 보고서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신겐은 생각에 잠겼다.


(뭐든지 기보(棋譜) 대로일 터이다. 그런데 무엇이냐, 이 불길한 설레임(胸騒ぎ)은)


신겐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걸 없애려고 그는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의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아시미츠는 동행(伴)도 없이 혼자 걷고 있었다. 최근에는 자신의 주위에조차 간자가 얼쩡거리고 있었기에, 그놈들을 처분하는데는 혼자인 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정비된 길을 걷고 있자, 전방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자, 여자가 한 명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미츠가 볼 때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레벨이었다.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그는 걸음걸이를 늦추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여자의 옆을 그냥 지나쳤다.

10발자국 걸었을 때 여자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거짓 울음을 그쳤다, 라는 것이다.


"여자의 눈물조차 그냥 지나치는 건가. 소문대로의 남자네"


아시미츠는 발을 멈추었으나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등 뒤에서 땅바닥에 앉아있던 여자가 천천히 일어서는 것을 감지했다.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는 아시미츠에게 딱히 불만을 느끼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영주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 슬슬 좀 편지를 받아줬으면 하는데"


그제서야 아시미츠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뒤돌아본 아시미츠에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면서 품 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빼앗듯이 편지를 손에 쥐더니, 아시미츠는 곧장 편지를 찢어버렸다. 갈기갈기 찢어진 편지의 파편을 버리더니, 깜짝 놀란 여자의 얼굴에 주먹을 후려쳤다.


"뭐냐, 이 쓰레기는. 쓰레기 주제에 사람의 말을 하는 건가"


맞고 날아가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가까이 있던 나무 등걸까지 끌고갔다.

이빨이 부러지도, 코에서 피를 흘리며, 머리카락을 잡아끌리는 고통을 겪고 있던 여자였으나, 시야에 들어온 나무 등걸을 보고 지금부터 그가 무엇을 할지 이해했는지, 안색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 그만……"


여자는 마지막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그 전에 아시미츠가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한 번 뿐만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여자의 얼굴을 나무 등걸에 내려찍었다.

파열음이 축축한 소리로 바뀌었을 무렵, 붙잡고 있던 여자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피와 체액과 육편이 뒤섞인 웅덩이에 여자는 얼굴을 처박았다.

그 자리에서 경련하고만 있는 여자를 아시미츠는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여자의 경련이 멈추었을 무렵, 아시미츠는 여자에게 흥미를 잃고 그대로 방치한 채 자리를 떴다.


아시미츠가 떠나가고 잠시 시간이 흘렀을 무렵, 어딘가에서 두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들은 조용히 여자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한 명이 여자의 목에 손을 대고,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군"


"들은 것보다 더한 냉혹함이군. 여자라고 해도 적이라면 관계없다, 는 건가"


남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여자의 시체를 눈에 띄지 않은 위치로 이동시켰다. 신분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게 했지만, 시체를 방치해 둘 수도 없었다.


"다음 방법을 생각해야겠군"


시체를 치운 남자들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에 다른 한 명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남자가 동료 쪽으로 얼굴을 돌리자, 그곳에는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얼마나 재빨리 현장에서 도망칠 수 있는가가 생존의 비결이다"


경악한 표정을 짓는 남자에게, 아시미츠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남자의 동료는 목이 정상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타케다의 쓰레기냐, 아니면 호죠(北条)의 버러지냐. 어느 쪽이든, 내 주위를 캐고 다니는 놈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시미츠는 남자를 베어버렸다. 전광석화 같은 발도가, 아직도 멍해 잇던 남자의 몸을 뼈까지 갈라버렸다.


"예외없이 벤다. 언젠가 동료들도 뒤따라갈 것이다. 안심하고 죽어라"


남자의 몸에서 피가 간헐천처럼 뿜어져나왔으나, 아시미츠는 말없이 칼을 집어넣고는 조용히 떠나갔다. 뒤에 남겨진 것은 세 구의 시체 뿐이었다.




시즈코 군의 면면은 순조롭게 훈련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간자들이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훈련 내용 자체가 알려져봤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간자들은 시즈코가 병사들에게 시키고 있는 훈련이 대체 뭘 목적으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위에 보고해봤자, 쓸데없이 혼란을 가중시킬 뿐 요령부득이다.

이건 예언자(予言者)가 어떻게라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이 설령 미래를 엿보았다고 해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을 표현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예로 든 요령부득의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경향이네. 이거라면 12월까지는 맞출 수 있겠어"


병사의 체력 측정 데이터를 확인한 시즈코는, 12월까지는 충분한 성과가 있을 것을 확신했다. 다른 데이터도 문제없어서, 병사들의 기초체력 향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병사들 측에서 보면 다소 수수께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매일 훈련하는 것만으로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불만을 말하는 일은 없었다.


이 무렵, 시즈코는 병사들 같은 훈련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몸이 녹슬지 않을 정도로는 훈련을 하고는 있었으나, 무장들이 하고 있는 힘든 훈련은 받고 있지 않았다.

병사들이나 무장들이 볼 때는, 시즈코가 앞으로 나서는 건 심장에 좋지 않으니 가능하면 후방에서 지휘를 했으면 좋겠다, 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어쨌든 태반의 무장들이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여 시즈코는 후방에서 지시를 내리는 방향으로 조정했다.


"뭐 수수께끼지만, 깊이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시즈코가 할 일은 그 밖에도 많아서, 그 중의 하나인 쌓여있는 서류를 처리했다. 화압(花押)을 가지고 있는 시즈코였으나, 역시 인감(印鑑)쪽이 간편했기에 오직 도장(押印)만 찍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国人)나 공가(公家)와는 달리, 시즈코는 먹으로 날인하는 흑인장(黒印状) 쪽이었다. 인판장(印判状)이라고는 해도 정식 서류로 취급된다.

서류의 내용을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날인, 문제가 있으면 의문점을 기재하여 되돌려보냈다. 대량으로 쌓여 있던 서류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처리가 끝난 서류를 소성들에게 명하여 다음 공정으로 넘겼다.


"아ー, 끝났다 끝났어. 사무처리라는 건 피곤하네"


어깨를 통통 두드리면서 시즈코는 굳어버린 몸을 풀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입구를 재주좋게 열어젖히고 비트만들이 들어왔다.

시즈코가 일하는 중에는 방해하지 않지만, 일이 끝나면 사양할 필요없이 마음껏 시즈코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비트만들이었다.

일하는 중이던 말던 마이웨이를 관철하는 마눌고양이 마루타(丸太)는 언제나의 정위치(定位置)에서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터키시 앙골라인 타마나 하나, 설표인 윳키, 시로초코는 고양이과답게, 들어오고 말고는 자기 마음대로였다. 오늘은 웬일로 시로초코가 들어왔다.

들어왔다고는 해도, 적당한 곳에 앉더니 내키는대로 쉬고 있는 것 뿐이지만.


"내 방은 휴게소가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카이저의 등에 엎드려 북슬거림을 만끽하는 시즈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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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