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68 1570년 8월 하순



후추 재배는 예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시즈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대가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인지를 통감했다.


후추의 묘목 90그루, 씨앗을 100개 구입하여, 오와리(尾張)로 운반했을 때는 묘목이 45그루, 씨앗은 70개.

거기서 자라난 묘목은 놀랍게도 12그루. 씨앗에 이르러서는 발아한 것이 6개라는 참담한 결과였다.

게다가, 묘목은 도중에 2그루 정도 시들어 버리고, 거기에 발아한 씨앗은 2개가 발아한 후 며칠만에 변색하여 그대로 썩어버렸다는 덤까지 붙었다.


2개월 정도 재배하여 건강한 묘목은 10그루, 발아한 후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씨앗은 4개 뿐이었다.

성장한 후추가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최대의 난관이 하나 남아있었다. 현재 상태로는 일본의 겨울을 날 수 없는 점이다.

그것을 위한 대책으로서, 비닐하우스의 건설에 서둘러 착수했다. 하지만, 보통의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약간의 시설이 추가되기 때문에 건설에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후추 재배에 분투하면서 시즈코는 프로이스와 회담했다. 목적은 추가적인 작물의 입수였다.

플랜트 헌터(plant hunter)가 없는 이상, 해외의 작물을 손에 넣으려면 프로이스 등 예수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괴혈병 건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평소에는 로렌초가 따라오던 프로이스의 뒤에, 몇 명의 젋은 수도사들이 시립하고 있었다.

다들 15세에서 17세의 젊은이였는데, 딱 한 명 수녀(修道女)가 있는 것에 시즈코는 내심 놀랐다.


(이 시대에, 시스터(Sister)가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가?)


의문으로 생각했지만 어딘가 유복한 집안 아가씨가 수녀로 파견되었다, 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세의 카톨릭 교회에서 수녀는 누구든지 될 수 있었지만, 취급에는 격차가 존재했다.

양가의 여자는 그에 걸맞는 기부금을 가지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수도원 내에서도 나름대로 대우를 받았다. 가벼운 작업만 할당되고, 글을 배우고, 다양한 서적에서 신의 가르침을 배웠다.

반대로 일반인의 수녀는 취사, 세탁, 청소나 농사일 등의 중노동이 할당되었다. 그런 걸 생각해볼 때, 일본에 온 수녀는 상당히 신분이 높은 사람의 딸, 이라는 것이 된다.


(아니, 어쩌면 마녀 사냥에서 도망치기 위한 걸지도……?)


"죄송합니다. 이들은 제 아래에서 수행을 하고 싶다고 바란 이들입니다. 수행중의 몸이면서 남을 가르치다니 대단히 주제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시즈코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프로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수도사들에 대해 설명했다. 소개받은 그들은 시즈코를 바라보면서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따라 시즈코도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새로운 작물을 의뢰하러 왔습니다. 물론, 의뢰 내용에 걸맞는 자금은 준비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시즈코는 소성을 불렀다. 큰 나무 상자와 서류가 올려진 쟁반을 프로이스의 앞에 놓고 소성들은 인사를 한 후 물러났다.

서류부터 손에 든 프로이스는 내용을 훑어보았다. 다 본 후, 그는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고 말을 꺼냈다.


"두건재상께서는, 동물 뿐만이 아니라 식물에도 흥미가 있으십니까?"


"……우리 나라는 전쟁과 재해가 이어져, 항상 백성들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언젠가 영주님께서 일본을 통일하더라도, 중요한 백성들이 굶어서는 이야기가 안 되지요. 따라서, 다종다양한 작물의 연구가 급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정말 다종다양하군요. 바나나, 카카오, 커피, 망고스틴, 라이치, 람부탄(rambutan), 드래곤 프루츠, 망고, 무화과(イチジク). 과일이 많이 보이고, 처음 듣는 이름도 많군요"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 오던 도중…… 각지에서 먹었던 과일입니다. 주의할 작물은 카카오와 커피이겠죠. 카카오는 스페인 제국이, 커피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조금 번거로울지도 모르지만, 무리라면 그건 그거대로 좋습니다. 언젠가 기회는 오겠지요"


"(이 나라에 왔다……? 처음부터 일본이 목적지였던 것일까요) 커피는 이교도의 음료, 라고 동료로부터 들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커피는 1454년에 일반 민중의 음용(飲用)이 정식으로 인정되자, 중동,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퍼졌다.

유럽에 커피가 전래되자 단번에 커피 열풍이 일어났으나, 당시 커피콩은 터키의 전매품이었다.

싹이 나지 않도록 한 번 끓여서, 비밀을 엄수할 수 있는 전문의 장인에 의해 굳혀질 정도로 치밀했다.

카카오도 마찬가지로 스페인의 엄격한 비밀로 지켜져, 100년 넘게 카카오 열매는 주변국에서는 단순한 양의 똥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에는 큰 맹점이 있었다. 아즈텍 사람들은 카카오의 씨앗을 알고 있었지만, 카카오팟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적다.

그리고, 커피도 터키는 씨앗의 발아에 신경쓰고 있었지만, 커피 나무를 꺾꽂이로 늘릴 수 있는 것은 모른다.

지나치게 비밀을 엄히 지킨 것에 의해 발생하는, 반출 금지품 이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은 점을 노린 밀수방법이다.

그다지 칭찬할 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편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해외의 작물은 수입할 수 없다.

시즈코 자신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카카오와 커피였으나, 타임슬립 때에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함부로 노부나가에게 건넨 것, 그리고 콩 커피가 대용품이라고 노부나가에게 알려준 것 때문에 필요하게 되었다.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얘기지만, 기대에 가슴을 부풀리는 노부나가를 앞에 두고 거절할 수 있을 리도 없어, 이렇게 프로이스로부터 카카오나 커피의 묘목을 입수할 수 있도록 교섭하는 상황이 되었다.


"커피가 이슬람의 음료이기 때문입니까"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그러한 대답을 드린 것도 이해해 주실거라 생각합니다"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커피 같은 맛있는 음료를 악마가 독점하는 건 용납될 수 없다. 세례를 내려 놈들에게서 빼앗아주자, 고. 이교도의 농담입니다만, 저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즈코의 대답에 프로이스는 말문을 잃었다. 프로이스 뿐만이 아니라 로렌초, 뒤에 시립하고 있던 수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게 된 프로이스는, 시즈코의 예상을 뒤엎고 크게 웃었다.


"실례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확실히 두건재상의 말씀대로입니다. 악마의 힘이 되는 커피에 세례를 내리고 놈들의 독점을 막는 것도 신의 뜻에 맞는 일이겠지요"


한바탕 웃은 프로이스는 금방 시원하고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작물의 건은 잘 알겠습니다. 자료의 그림으로 찾아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시간이 걸릴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이스와의 회담은 원만하게 끝났다. 커피나 카카오의 입수는 어렵지만, 일거리에 걸맞는 자금을 건네주었다. 그렇기에, 입수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그들의 수완에 달렸다.

시즈코가 예수회에 씨앗이나 묘목의 입수를 의뢰하는 것은 그들의 영향력이 그 이유이다.

보라색 양배추(紫キャベツ)나 결구형(結球型)의 양배추, 강낭콩(いんげん豆), 올리브, 닝보 금감, 염소, 양 등 평범하게 손에 들어오는 것들은 약간 돈을 얹어주면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입수가 가능하다.


염소나 양은 털이나 고기는 물론이고, 풀베기 동물로서도 우수하다. 경사지의 제초는 염소, 평지의 제초는 양으로 각각 잘하는 부분이 다르지만,  약간 수고를 들이기만 하면 제초를 해준다.

두 종류 모두 털, 가죽, 고기, 젖 등 버릴 부분이 적고, 특히 털은 방한복으로서 우수하다.

따라서, 염소의 자넨(Saanen) 종이나 캐시미어(Kashmir) 종, 양의 셰틀랜드(Shetland) 종이나 사우스다운(Southdown) 종(올드(Old) 사우스다운) 등 많은 품종을 수입했다.

양이라고 하면 스패니시 메리노(Spanish Merino)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18세기의 스페인 독립전쟁에 여러 나라들이 개입하여, 전리품으로서 스패니시 메리노를 가지고 갈 때까지 문외불출의 비장의 품종이다.


"강낭콩과 양배추, 보라색 양배추, 청경채(チンゲン菜), 닝보 금감은 씨앗을 늘리는 중. 화분에 심었지만 올리브도 재배중. 염소와 양은 미츠오 씨에게 맡기는 중. 으―음, 이 정도가 포르투갈 상인의 한계일까"


곤란한 장소에 있는 작물이라면 상인들은 바로 엉거주춤한 태도가 된가. 하지만 선교사들은 다르다.

그들은 고난의 길을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 부분의 정신력이 다르기에, 시즈코는 예수회를 통하기로 했다.

물론, 기독교(キリスト教)의 가치관이 강하다는 결점은 있지만, 그래도 플랜트 헌터를 조직해서 파견하는 것보다는 싸다.


"남만의 소도(小刀)와 재료가 되는 철괴(鉄塊)를 수입하지 않나, 카톨릭 교도(伴天連)들에게 과일 씨앗을 의뢰하지 않나, 정말 시즛치는 이래저래 바쁘네. 들어본 적도 없는 과일의 맛은 기대되기는 하는데"


"남만의 소도라니 다마스커스 나이프 말이야?"


케이지(慶次)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허리에 차고 있는 소도를 만지작거렸다.

전장 450mm, 날 길이 295mm, 날 두께 5mm, 층 구조는 알 수 없다는 성능이었다. 핸들(나이프를 쥐는 부분)의 소재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인도라는 걸 생각하면 물소의 뿔일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칼집(sheath)은 두꺼운 소가죽제로, 견고하고 튼튼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져있어, 장인의 고집을 느낄 수 있었다.

잠금장치 부분 등의 일부에는 인도산의 진주가 사용되어 있었다.

인도는 12세기에는 면(綿)을 환원제(還元剤)로 사용하여 금속 아연을 제련하고 진주를 제조하고 있었다.

그 기술은 16세기에 중국으로 넘어가, 이후 중국도 금속 아연과 진주를 제조했다.


"하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이십니까. 명도(名刀)를  수집하시더니, 갑자기 저희들에게 칼을 하사하시고 남만의 소도를 구하시는 것에 이 사이조(才蔵), 약간 의문을 느낍니다"


"좀 사정이 생겼거든"


아네가와(姉川) 전투 이후, 아시미츠(足満)는 정식으로 시즈코의 가신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천하오검(天下五剣) 중 하나인 '미카즈키 무네치카(三日月宗近)'를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겼다.

천하오검은 시즈코가 정력적으로 모으고 있었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하사한 적이 없다. 아시미츠만 가지고 있는 상태로는 보기 좋은 상황이 아니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따라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도우지기리 야스츠나(童子切安綱)를 케이지, 오니마루 쿠니츠나(鬼丸国綱)를 사이조에게 양도했다. 나가요시(長可)에게는 주지 않았지만, 오오텐타 미츠요(大典太光世)나 쥬즈마루 츠네츠구(数珠丸恒次)가 손에 들어오게 되면 양도하기로 약속했다.


노부나가가 아네가와 전투 이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시카가(足利) 가문의 보물인 오오텐타 미츠요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밖에도 후타츠메이노리무네(二つ銘則宗), 호네바미 토우시로(骨喰藤四郎), 다이한냐 나가미츠(大般若長光) 등 아시카가 가문의 보물들을 가지고 돌아온 것을 보면, 밀서의 건으로 정치적인 교섭을 했을 거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하지만 쥬즈마루 츠네츠구는 니치렌(日蓮) 상인(上人, ※역주: 승려에 대한 존칭)의 세 가지 유품으로, 미노부(身延) 산 쿠온지(久遠寺)에 보관되어 있는데, 어떻게 손에 넣으실 생각일까?)


생각해 보았으나 그럴듯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은 시즈코는 과감하게 생각하는 것을 단념했다. 깊이 생각하면 뭔가 좋지 않은 결과가 보일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프로이스 씨와 회담에 투서함(目安箱)의 내용물 회수에, 이동거리가 긴 일거리 뿐이네"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시즈코는 불평했다.

프로이스와의 회담으로 새로운 품종의 수입을 계획한 시즈코였으나, 목적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투서함의 내용 확인이라는 중요한 일거리가 있었다.


투서함은 1721년(쿄호(享保) 6년)에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가 설치했다고 전해지지만, 사가미(相模) 국의 호죠(北条) 씨나 카이(甲斐) 타케다(武田) 씨 등, 전국시대에도 투서함 제도를 실시한 사람들은 있었다.

그리고 투서함의 투서(目安)는 소장(訴状)을 말하며, 에도(江戸) 시대에는 그냥 상자(箱)라고만 불리웠다. 상자가 투서함으로 바뀐 것은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이다.


투서는 당초에 다양한 것들이 허용되었으나, 얼마 안 가 엄격한 룰이 적용되었다.

먼저 내용은 에도 시대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도움되는 의견'이나 '관리들의 악행, 부정에 관한 통보'의 두 가지만이 투서 내용으로 인정되었다. 그 밖에는 대상외(対象外)로 취급되지만 파일링되어 관리된다.

주소(마을의 이름)과 이름을 명기한다. 투서할 수 있는 날은 2개월에 한 번,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 사이 뿐이었다.


이만큼 세세한 규정이 있음에도, 매번 많은 투서가 모여들었다. 진위가 의심스러운, 확인이 곤란한 민원도 적지 않게 들어있었으나, 정치에 유효하게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한 정보도 들어 있었다.

물론, 모든 민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개중에는 우선도가 낮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개발할 수 있는 토지의 진언을 받아들여 새 논밭(新田)의 개발을 하거나,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위해 아동보호시설을 건설하거나, 산적의 통보를 받고 토벌을 하거나, 하천(河川) 이용에 관한 중재를 하는 등, 투서함의 의견을 바탕으로 실현된 정책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에도 잔뜩 들어있겠지"


"투서함이 너무 대인기를 끌어서, 관리하는 병사들에게 술을 선물하는 관습이 생겨버렸으니까"


투서함의 내용물은 백성의 인기를 모으거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준비된 상자다. 문제(不備)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상자가 놓여 있는 동안에는 몇 명의 보초가 배치된다.

하지만, 계절이 겨울이라면 눈이 내리는 가운데 아무 난방기구도 없는 상태에서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여름이라면 폭염 속에서 그늘에 들어가지 못하고 보초를 서야 한다.

교대도 없고 혹독한 환경에서 보초를 서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 시즈코는 자신의 술창고에서 한 홉(升) 만큼의 청주를 병사들에게 선물했다. 그것이 언제부터인지 술을 바라고 투서함의 보초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매번 선별하느라 고생하게 되었다.


술은 전국시대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며, 동시에 막대한 부를 가져오는 물건이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기까지, 고품질의 술이라고 하면 대사원(大寺院)에서 주조(酒造)되는 승방주(僧坊酒)였다. 따라서, 노부나가는 그들의 술을 대항 세력으로 생각하고, 그 명성을 뭉개기 위해 대사원에 간자를 침투시켰다.

물론, 대사원 측도 노부나가의 양조 마을에 간자를 침투시켰지만, 대부분이 번견(番犬)에 의해 발각되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갔다.


"앗싸, 왔다―――아, 죄, 죄송합니다! 수, 수고하십니다!?"


투서함이 놓인 장소에 도착하자, 시즈코의 모습을 본 병사가 펄쩍 뛰듯 기뻐했다. 그러나, 사이조가 노려보는 것을 깨닫고 즉시 태도를 바로했다.


"말 위에서 실례할게. 정각이 되었으니 투서함 설치는 끝난 것으로 합니다. 이 후에는 부대장에 보고하고 해산해도 좋아. 술은 보냈으니까 나중에 동료랑 마시도록 해. 이야기는 이상, 뭔가 질문이 있어?"


"아뇨, 없습니다!"


"……뭐, 좋겠지. 수고했어. 나머지는 이쪽에서 처리할게"


마음이 딴데 가 있는 상태의 병사에게 반쯤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였으나, 길게 붙잡아두는 것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여 못본척 하기로 했다.

점점 더 험악해지는 사이조의 얼굴에 겁을 먹으면서도 병사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오, 이번에도 꽤나 묵직하네"


투서함을 안아들자, 시즈코는 상자에서 묵직한 중량을 느꼈다. 하지만 안에 들어있는 것은 종이, 허리가 빠질 정도의 무게는 아니었다.


"잠시, 괜찮겠습니까"


말에 투서함을 매단 후에 말에 타려고 시즈코가 등자에 발을 얹은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자에서 발을 뗴고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운수(雲水, 수행승(修行僧))가 시즈코를 보고 있었다. 그는 깊이 눌러쓴 삿갓을 들어올려 얼굴을 보인 후 깊게 고개숙여 인사했다.


"실례합니다, 소승은 후시키안(不識庵)이라고 합니다. 그 상자에 대해 조금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지금 여쭈어보아도 괜찮을까요?"


"아, 네. 상관없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범위라면 제가 대답해드리지요"


사람 좋은 미소를 떠올린 시즈코는, 운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이조는 말에서 내리고, 케이지는 말에 탄 채로, 그러나 운수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케이지가 시즈코를 안아올려 도망치고, 그 동안에 후위로서 사이조가 창을 휘두를 태세였다. 말로 하지 않아도 호흡을 맞춰 움직인 두 사람에게 운수는 약간이나마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즉시 미소를 띄우고는 시즈코에게 질문했다.


"당신께서 가지고 있는 상자는, 백성들이 의견을 투서하는 상자라고 들었습니다. 실례입니다만, 백성으로부터 의견을 공모하는 이유를 소승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떤 이유로 백성들로부터 의견을 구하고 계시는 건가요"


"지배하는 쪽이 지배받는 쪽에 무언가를 말하듯, 지배받는 쪽도 지배하는 쪽에게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있지 않겠나요. 지배받는 쪽의 목소리에 지배하는 쪽이 귀를 기울이고, 동시에 지배하는 쪽의 목소리에 지배받는 쪽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나라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어버립니다"


시즈코의 말에 운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짐승처럼 이익만을 좆는 전국시대에서, 시즈코처럼 쌍방의 이익이 되는 의견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상(理想)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실행하는 것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해한 운수는,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며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을 위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멸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만을 위해서 타인을 멸시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의 생각은 훌륭하고, 그리고 몽상을 말하는 것 뿐만이 아니군요"


"그렇게까지 훌륭한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듣기는 좋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요. 백성에게서 개발할 수 있는 토지의 보고를 받고 개척을 해도, 결국은 세금이 늘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무료 양성소를 건설하는 것도, 노동력이 되는 백성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개척할 수 있는 토지를 공공사업으로 개발해도, 걷을 수 있는 세금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투서함은 백성들의 불만을 듣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오다 가문의 이익을 제일로 생각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투서함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책을 세워도, 오다 가문의 이익이 높은 것부터 추진되고, 낮은 것은 뒤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것이지요. 보십시오, 백성들의 얼굴을. 다들, 좋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운수의 말을 듣고 시즈코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난세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내일은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미소였다.


"영주가 펼치는 정책의 결과는 백성의 얼굴에 나타납니다. 당신이 이익을 계산하여 정책을 펼치시더라도, 백성들이 미소를 띠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정책에 감사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그런 소리를 들으니 쑥스럽네요"


운수가 칭찬하는 말에 창피해진 시즈코는, 창피함을 얼버무리기 위해 볼을 가볍게 긁었다. 그 반응이 풋풋하다고 느낀 운수는, 상냥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쉽지만, 벗과 약속이 있기에,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네. 조심해서 가시길"


삿갓의 끈을 다시 조인 후, 운수는 시즈코에게 깊게 머리를 숙였다. 그를 따라 시즈코도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든 운수는 마지막으로 작게 미소를 떠올린 후, 시즈코들로부터 떠나갔다.


"특이한 사람이었네"


"어…… 그러네"


운수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시즈콘느 말에 타면서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케이지로부터 어영부영한 대답이 돌아온 것을 미심쩍게 여긴 시즈코는 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케이지는 평소 보지 못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시선을 깨닫자, 평소의 거북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잠깐 옛날 생각이 났어. 자, 떨떠름한 얘기는 끝. 얼른 돌아가자고"


"어, 아, 응. 그러네, 얼른 돌아갈까"


말하자마자 시즈코는 말고삐를 조정해서 귀로에 올랐다. 그녀의 뒤에 케이지와 사이조는 나란히 서더니, 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대화했다.


"(몇 명 있었지)"


"(아무리 적게 잡아도…… 40은 되겠지)"


"(아무 일도 없었으니 다행이지만, 빈틈없이 사람이 배치되어 있다니, 저 중은 어딘가의 높은 양반인가)"


그 말과 동시에 케이지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는 깨닫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운수의 주위에 호위로 생각되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꼈고, 게다가 전원이 임전태세에 있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르지만 주의해둘 필요는 있지. 간자를 보낼까?)"


"(소용없어. 금방 미행을 들켜서 처리될 게 뻔해. 이번에는 이대로 물러나자)"


결론이 나온 두 사람은 운수를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고 평소대로의 표정을 지었다. 시즈코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시키지 않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배려였다.

케이지는 품 속에서 담뱃대(煙管)를 꺼내서 불을 붙인 후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죽음을 각오하다니, 사이조는 꽤나 시즛치에게 반해 있는 모양이군. 훗, 물론 나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반은 흥미였다. 아무리 노부나가의 명령이라고 해도, 여자의 호위대(馬廻衆)가 되라니 바보 취급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케이지는 강한 흥미를 가졌다.

그걸 이해한 상황에서 일부러 노부나가가 시즈코에게 호위대를 내린 이유를. 그 대답은 바로 나왔다.


시즈코는 다음 행동의 예상이 되지 않아, 어딘가 눈을 뗄 수 없는 인물이다.

잘 차려입고 노부나가와 회담하나 싶더니, 다음 날에는 작업복 차림새로 흙을 파헤치고 있다. 노부나가에 종속되어 있나 했더니, 정면에서 반론할 때가 있다.

내버려두면 무슨 짓을 할 지 알 수 없어,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게 시즈코에 대한 케이지의 인물 평가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자신만에 그치지 않고, 사이조나 나가요시, 그리고 병사들도 똑같을 거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기근(飢饉)을 없애기 위해 천하를 손에 넣는다. 오다 나으리와는 다른 천하를 부르짖은 시즛치의 꿈――― 좋은 걸, 크고 깊고, 그러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꿈이야)


담배연기를 뿜어낸 후, 케이지는 시즈코의 등을 보았다. 사람은 우두머리의 꿈의 깊이로 그를 따를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 꿈이 깊고 클수록, 아랫사람은 우두머리가 몇 번 패하더라도 일어서고, 한 번 싸움에 나서면 목숨을 버린 무인이 된다.

그 점을 생각하면 시즈코의 꿈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그리고 바다보다 넓다고 케이지는 생각했다.


"(이 나라를 통일하는 것은 과정. 진짜 천하통일은 누구나 밥을 먹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 최후의 적은 하늘 그 자체…… 지나치게 무모한 얘기군. 하지만 그게 좋다. 그 정도로 큰 꿈이니까 좋은 거다!) 시즛치, 오늘 저녁은 뭐지?"


뜨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케이지는 미소를 띄우고 저녁식사에 대해 시즈코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시즈코는 이마에 손을 대고 메뉴를 생각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말이 없던 사이조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저번에, 미츠오 님이 만드신 볶음밥과 스프, 그건 맛있었습니다"


"어이어이 사이조, 슬그머니 요구를 하지 말라고. 그렇다면, 나는 오야코동(親子丼)이라는 게 좋겠어"


"말하는 건 자유지만, 실제로 요리하는 건 아야(彩) 짱인 걸 잊지 말아줘"


두 사람의 요구에 시즈코는 어이가 없어져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정말로 싫어한다는 느낌은 없고, 오히려 저녁식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저녁식사 후의 술은 얼마나 마시고 싶어?"


케이지와 사이조는 얼굴을 마주보고 끄덕인 후, 상쾌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1홉(1.8리터)"


"안 돼. 4합(合, 720ml)로 참아"


허가가 떨어지지 않자 두 사람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시즈코는 생긋 웃은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일을 도와준다면, 한 사람당 7합(1.2리터)까지 허가를 내줄 수도 있지요. 그럼, 두 분의 대답은?"


시즈코의 제안을 두 사람은 즉각 수락했다.




7월 21일.

예전에 키나이(畿内)를 지배한 미요시(三好) 3인방(三人衆)은 아와(阿波) 국 이와쿠라 성(岩倉城) 성주(城主) 미요시 야스나가(三好康長)나 미요시 씨의 가신인 아와 국 우에자쿠라 성(上桜城) 성주 시노하라 나가후사(篠原長房) 등의 협력을 얻어 아와 국에서 이즈미(和泉) 국으로 바다를 건넜다.

7월 27일에 상륙하자, 그들은 즉시 진격하여 셋츠(摂津) 국 나카지마(中島)의 텐마가모리(天満森)에 포진했다..

맹주 자리에 관령(管領, ※역주: 쇼군을 보좌하여 정무를 총괄하던 벼슬) 가문의 적류(嫡流)인 호소카와 아키모토(細川昭元)를 앉힌 미요시 3인방 군의 병력은 약 1만 3천이었다.

군세 속에는 훗날 혼간지(本願寺)를 도와 노부나가를 괴롭히는 키이(紀伊) 국의 사이카슈(雑賀衆)를 이끄는 사이카 마고이치(雑賀孫一, 스즈키 시게히데(鈴木重秀)), 북 이세(北伊勢)의 나가시마(長島)에 망명중인 사이토 타츠오키(斎藤龍興) 등이 있었다.


8월에 들어서도 미요시 3인방은 진군을 계속하여 옛 영토를 회복했다. 이어서, 쿄(京)로의 침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하여 셋츠 국 이타미(伊丹) 성의 성주, 이타미 치카오키(伊丹親興)를 공격했다.

게다가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에 가까운 노다(野田)와 후쿠시마(福島)에 성채를 구축하자, 아와지(淡路) 국에서 미요시 일족인 아타기 노부야스(安宅信康)가 달려와서 아마가사키(尼崎)에 진을 쳤다.

셋츠 국 이케다 성(池田城)에서는 성주인 이케다 카츠마사(池田勝正)가, 미요시 3인방의 책략에 말려든 가신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와 일족인 이케다 토모마사(池田知正, 이케다 카츠마사의 적자)에 의해 이케다 성에서 추방당했다.

이케다 카츠마사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케다 가문의 일족이 되어 있던 아라키 무라시게는, 이 혼란을 틈타 이케다 가문을 장악한다.


이 사태를 무겁게 본 쇼군(将軍) 요시아키(義昭)는 노부나가에게 연락하고, 키나이의 슈고(守護) 들에게 미요시 3인방의 토벌명령을 내렸다.

요시아키의 명령에 카와치(河内) 슈고인 미요시 요시츠구(三好義継)와 카와치 하반국(下半国)의 슈고 하타케야마 아키타카(畠山昭高)는 응하여, 카와치 국 후루하시 성(古橋城)에서 미요시 3인방의 침공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진군을 멈추지 못하고 후루하시 성은 함락되었다.


야마토 국(大和国) 슈고인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도 야마토와 카와치의 국경에 있는 시기 산성(信貴山城)으로 옮겨, 이 성을 거점으로 미요시 3인방을 맞아싸울 채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후방에 있는 츠츠이(筒井)나 하시오(箸尾) 등의 영주들이 준동(蠢動, 힘없는 자들이 소란을 일으키는 것)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미요시 3인방을 공격하러 나갈 수 없었다.


노부나가는 미요시 3인방의 진군에 격노하여, 소모된 병사들을 보충하고, 8월 20일에 기후(岐阜)를 출발하여, 23일에 쿄의 숙소인 혼노지(本能寺)에 들어갔다.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한 후, 25일에 진군을 재개하여, 26일에 노다, 후쿠시마에서 5k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텐노지(天王寺)에 본진을 두었다.

노부나가는 선두 부대를 텐마(天満), 카와구치(川口), 와타나베(渡辺), 칸자키(神崎), 난바(難波) 등 곳곳에 배치하여 노다, 후쿠시마의 성채에 틀어박힌 미요시 3인방을 멀리서 포위했다.

현대의 오사카(大阪)에는 그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전국시대의 노다, 후쿠시마는 하천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였다.


열세였던 키나이의 슈고들은 오다 군 4만의 도착에 활기가 솟아났고, 반대로 미요시 3인방은 병력을 내지 않고 농성전 태세를 취했다.

아네가와(姉川) 전투에서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노부나가는, 힘으로 밀어붙이지는 못하고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가는 작전을 취했다.

또, 노부나가는 8월 30일에 요시아키의 출진(出馬)을 강하게 요구하였고, 요시아키는 이에 응해 출진하여, 8월 3일에 셋츠 나카지마에 있는 호소카와 후지카타(細川藤賢)의 거성으로 들어갔다.


노다,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노부나가와 미요시 3인방의 전투여말로, 일본 역사상 최초의 철포(鉄砲)끼리의 전투라고 하며, 쌍방 모두 격렬한 철포 공격의 응수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노부나가로부터 명령을 받은 아시미츠와 궁기병대 40명, 그리고 호위역할의 병사 백 명이 각 진지를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인가"


미요시 3인방과 서로 화승총을 쏘아대고 있는 장소 중 하나에 아시미츠와 궁기병대 20명, 호위역할의 병사 50명이 도착했다.

미리 이야기를 들었던 병사가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요시 병사들은 저쪽에 있습니다!"


병사가 가리킨 방향을 쌍안경으로 관찰하니, 그의 말대로 미요시 병사들이 천연의 벽이나 자신들이 만든 벽을 차폐물로 삼아 화승총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보병은 스탭 슬링(staff sling) 준비를 해라"


그 말과 함께 보병들이 스탭 슬링에 벽돌을 장전하고, 궁기병대가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미요시 병사들이 화승총을 쏘기 위해 얼굴을 내민 순간, 궁기병대가 화살을 쏘았다. 그 숫자는 21대, 그리고 적병에게 명중한 숫자는 19대, 그야말로 9할 이상의 명중률이었다.

상대방이 동요한 것을 확인한 보병들이, 스탭 슬링을 휘둘러 벽돌을 투척했다.

벽돌은 그냥 햇빛에 말리기만 한 것이지만, 그래도 폭과 길이가 10cm, 두께 5cm의 벽돌은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가 된다.

예상대로, 병사들 중 몇 명이 머리를 직격당해 땅바닥에 쓰러졌다.


"좋아, 충분하겠지.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그렇게 말하고 아시미츠들은 지금의 현장을 이탈하여, 또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화승총을 쓴느 병사들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아시미츠들의 임무였다.

이번의 임무에 연사능력은 필요없었기에, 아시미츠들은 컴파운드 보우의 위력을 증가시켰다.

그 덕분에 사정거리가 늘어났다. 화승총의 살상거리는 200m 정도 되지만, 갑추를 관통하는 거리는 50m 정도이다. 100m는 충분히 상대를 살상할 수 있는 거리이다.

따라서, 화살을 쏘면 즉시 후방으로 물러나서 화승총의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 그 동안 스탭 슬링을 장비한 보병이 벽돌을 투척하는 작전이었다.


캡사이신 폭탄을 쓰면 간단히 전멸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시미츠는 캡사이신 폭탄의 대상은 사이카(雑賀) 텟포슈(鉄砲衆)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카 텟포슈는 독자적인 전법으로 화승총의 연사를 가능하게 했지. 즉, 다른 텟포슈보다 뭉쳐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사이카 텟포슈는, 캡사이신 폭탄가 높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아시미츠는 사이카 텟포슈를 우선적으로 처치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철포끼리의 사격전에서 오다 군이 열세인 장소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오다 군이 대단히 고전하고 있는 장소를 아시미츠는 몇 군데 발견했다.


"이곳인가. 너희들, 작전대로 시작한다"


사이카 텟포슈를 상대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아시미츠는 컴파운드 보우의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노다, 후쿠시마에서 오다 군과 미요시 3인방이 전투를 벌이고 있던 무렵, 시즈코를 필두로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와 병사들 7500명은 오와리에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종군 명령이 왔지만, 시즈코는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물론 종군할 수 없는 이유를 확실히 설명하여 노부나가에게 어째서 종군할 수 없는지를 전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사지(死地)로 간다는 걸 전해야겠네"


시즈코는 전군을 정렬시킨 후, 급조된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단상 위에서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연상인 사람, 연하인 사람, 앞길 창창한 젊은이, 처자가 있는 사람, 예전에는 자신보다 신분이 높았던 사람, 단지 먹고살기 위해 따르는 사람, 그리고 이런 자신을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동경해주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섞인 군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금부터 죽으러 가라고 선언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모두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운명의 톱니바퀴를 파괴하려면, 도망치는 것을 생각하는 것 따위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들은 지금부터 우사 산성(宇佐山城)으로 간다"


시즈코의 말에 병사들이 술렁거렸다.

우사 산성은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와 아자이 히사마사(浅井久政)의 남진에 대비하고, 또 비와 호수(琵琶湖)와 북국가도(北国街道)를 제압하기 위해 노부나가가 모리 요시나리(森可成)에게 명하여 오우미(近江) 시가 군(滋賀郡)에 건설한 성이다.

지금, 노부나가가 싸우고 있는 장소는 셋츠 국, 이동할 장소로서는 너무 멀었다.


"다양한 정보를 취합한 결과, 아자이, 아사쿠라가 좋지 않는 것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들은 오다 본군이 협공받지 않도록 후위 부대가 되어, 우사 산성에서 놈들의 남진을 막는 인간 방패가 된다"


병사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즈코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의 우사 산성에는,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을 맞아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우사 산성이 떨어지게 되면, 놈들은 당당하게 쿄를 지배하에 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셋츠 국에 남겨진 영주님께서는 퇴로를 잃고 이윽고 쓰러지시게 된다. 즉, 우사 산성은 적군을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성이다"


"……"


"오다 가문이 멸망하면, 많은 사람들은 학살당한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한다. 그것을 막으려면 우리들이 피를 흘리며 목숨을 걸고 적의 남진을 저지할 수밖에 없다. 한번 더 말하겠다. 우사 산성에서 적군을 저지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멸망한다"


고요함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 한 명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다만 똑바로 시즈코를 본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모두에게 묻겠다. 우리들의 생활은, 선조들이 피와 목숨을 바친 댓가로 성립되어 있다. 만약…… 만약 당신들의 마음 속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리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빌려줬으면 한다"


지금처럼 침묵이 무겁고 괴롭다고 느낀 적은 없어,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첫 마디 말부터 병사들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말없이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주군"


묵직한 침묵 속에, 한 명의 아시가루(足軽)가 앞으로 나었다. 그의 이름은 겐로(玄朗, ※역주: 원문에는 독음이 없음)라고 한다. 시즈코를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여, 그녀를 '주군'으로서 모시는 곧 초로(初老)가 될 사람이었다. 그는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오더니 쾌활한 미소를 떠올렸다.


"어려운 말씀을 하시다니, 주군답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는 그냥 저희들에게 '가서 죽어라'고 명령하시면 됩니다"


"겐로…… 할아버지"


"여전히 눈을 뗄 수 없고, 내버려둘 수 없는 분이시군요, 주군께서는. 싸우는 의의가 뭐라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겁니다. 상황은 단순합니다., 자, 저희들에게 명령해 주십시오. 사지(死地)로 간다, 고"


겐로의 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진 시즈코는 얼른 손을 눈가에 댔다. 지금부터 우사 산성으로 가면, 많은 피가 흐르고, 무수한 목숨이 사라질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한 일은 모두 영주님을 위해…… 하지만, 우사 산성은 나를 위한 거야. 나는 명장(名将) 같은 눈부신 매력도 없고, 단지 흙을 갈던 꼬마 계집애야. 이런 날 위해서 목숨을 버려도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마음 속으로 부르짖으면서도, 시즈코는 눈가에서 손을 떼고 힘있게 주먹을 쥐었다. 두 어깨는 지금이라도 당장 깔려죽을 듯 무거웠다. 하지만, 시즈코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힘차게 치켜올렸다.


"명령을 내리겠다(御下知有り)"


망설이고, 고민하고, 괴로워한 끝에 내놓은 대답이, 그녀가 가야 할 길이라고 시즈코는 확신했다.

따라서, 지금의 그녀에게 망설임은 일체 없었고, 옆의 잔디는 전혀 푸르게 보이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현대로 돌아간다던가, 그런 건 이제 생각하지 않겠어. 나는 이 시대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겠어) 우리들은 우사 산성으로 간다. 하지만 명심하라. 우사 산성에서 전투가 일어나더라도, 우리들의 이름이 역사에 남을 일은 없다"


"――!"


"하지만! 우리들의 피와 목숨이 이 나라의 내일을, 평화로 인도하는 것이다! 다들, 얼굴을 들어라! 무기를 손에 들어라! 우리들의 긍지와 각오를 적에게 보여주자!"


순간, 병사들이 하늘높이 주먹을 치켜들며 함성을 내질렀다. 그들의 열기를 느낀 케이지나 사이조, 나가요시는 무의식중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멀리에서 시즈코를 지켜보고 있던 토비카토(鳶加藤)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열기…… 나잇값도 못하고 전투에 대한 흥분이 치밀어오르는군)


아시미츠가 열을 올리는 모습이 신경쓰여 슬며시 시즈코를 지켜보고 있던 그는 겨우 이해했다. 그녀는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눈을 뗄 수 없는 인물이다.

무의식중의 그녀의 언동을 눈으로 쫓고 있는 것을 깨달은 토비카토는, 작게 미소를 떠올렸다.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당신의 동향을 지켜보겠습니다, 시즈코 님)




노다, 후쿠시마에 있는 오다 군의 면면은, 시즈코 부대의 위치를 알 수 없는 것에 약간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안심해라. 녀석들은 지금,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라는 말은 결코 하지 않고, 노부나가는 어디까지나 심플하게 '임무중'이라고만 대답했다.

단순한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가신들의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하여, 오다 가문 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목의 대상인 시즈코의 본군은, 사카모토(坂本) 수비대이자 우사 산성의 성주인 모리 요시나리 곁에 있었다.

하지만, 성 안에 있는 것은 시즈코와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와 약간의 병사들 뿐으로, 남은 병사들은 우사 산에 부비 트랩(Booby Trap)을 설치하고 있었다.

부비 트랩을 설치하는 이유는, 시즈코들이 우사 산에 도착했을 때 엔랴쿠지(延暦寺)의 승병(僧兵) 집단에게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쫓아내는 데 성공하고 무사히 우사 산성에 들어갈 수 있었던 시즈코들은, 거기서 모리 요시나리들이 엔랴쿠지의 승병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있는지 알 수 없는 이상, 승병의 존재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거꾸로 승병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단을 강구했다.


그 수단이란, 정신적인 면에 주는 위력이 높은 부비 트랩을 설치하는 것이다.

부비 트랩은 지리적인 잇점을 살리거나, 심리적인 맹점을 찌르거나 하는 게릴라 전술의 하나이다.

사카모토 수비대는 시즈코의 군을 합쳐도 1만 정도, 그에 반해 연합군은 3만으로 몇 배나 차이가 난다.

지금부터 오게 될 아자이, 아사쿠라, 엔랴쿠지의 연합군을 상대로, 시즈코는 부비 트랩을 이용하여 승병들의 정보 전달 속도를 늦추고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작전에 나섰다.


병사에게 부상을 입히는 함정이라는 목적 때문에 사카모토 수비대의 면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던 부비 트랩이었으나, 반대로 현자에서 트랩을 설치하고 있는 병사들은 진절머리날 정도로 이해했다.

24시간, 함정의 공포에 떠는 승병들 중 몇 명인가가 정신적으로 피폐하여, 무릎을 끌어안고 떨고 있는 모습을 본 이후로, 설치하고 있는 병사들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시즈코가 엔랴쿠지의 승병에 대응하고 있는 동안, 드디어 역사적인 대사건이 일어났다.

9월 12일 밤중, 이시야마 혼간지의 법주(法主), 켄뇨(顕如)가 거병하여 노다, 후쿠시마의 전투에 참전했다.

물론, 오다 군이 아니라 미요시 3인방 측에 붙었다. 이 날부터 노부나가와 켄뇨의 오랜 싸움이 되는 '이시야마 전투(石山合戦)'가 시작되었다.


막부(幕府, 오다) 세력과 미요시 3인방 세력의 항쟁에, 지금까지 중립적인 자세를 고수하던 이시야마 혼간지가 거병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노부나가가 엔랴쿠지의 산문령(山門領)을 빼앗은 것 때문에, 언젠가 자신들의 영토도 빼앗기는 게 아닐까 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다음으로 쿄뇨(教如)나 쇼이(証意) 등, 노부나가를 불적(仏敵)으로서 정벌해야 한다는 강권파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노부나가의 포진이 이시야마 혼간지를 둘러싸는 형태라서, 미요시 3인방의 다음은 자신들이 표적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느꼈다.

노부나가의 그때까지의 경위를 보아도, 다음 목표는 자신들일 거라 생각한 켄뇨는, 드디어 궐기에 나선 것이다.


다만, 시즈코의 뒷공작이 효과를 발휘하여, 켄뇨가 거병을 생각한 것은 9월에 들어선 이후였고, 그리고 거병은 최종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궐기에 대해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이고, 이시야마 혼간지가 일어섰다고 하면 키나이의 다양한 세력들이 노부나가 토벌을 위해 일어서게 된다.

그것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이해한 노부나가는, 아까까지 앉아있던 걸상(床机)을 걷어차며 외쳤다.


"철수한다!"




본래 10일에는 노부나가에게 혼간지가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본진을 텐마가모리에서 노다, 후쿠시마로부터 10정(町) 정도 북쪽에 해당하는 에비에(海老江)로 옮겼다.

텐마가모리는 이시야마 혼간지와 노다, 후쿠시마의 중간지점에 있으며, 좌우로 끼어 있다는 입지적으로 문제가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비에도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좌우로 끼어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쇼군인 요시아키가 죽으면 자신의 입장도 위험하다. 그 점을 이해한 노부나가는 노다, 후쿠시마의 전투에서 전개할 병사들을 물리고 요시아키를 수행(供奉)하여 나카지마로 나가기로 했다.

이번의 연락은 확실성을 필요로 했기에, 노부나가는 연략견을 여러 마리 풀었다. 애초에 개를 연락용으로 쓴다는 발상이 혼간지 세력에는 없었기에, 연락견은 노림받지 않고 목적한 장소에 도착했다.

화급한 사태라는 것을 이해한 각 진의 무장들은 즉시 철수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13일에는 벌써 이시야마 혼간지 세력이 오다 세력에게 철포를 발포하여 교전상태에 들어갔다.

오전에는 우세했던 오다 세력도, 오후에는 수세에 몰렸다.

다음 날 14일에 혼간지 세력은 이시야마를 나와 텐마가모리까지 다가왔다. 대응하기 위해 노부나가도 병사를 내어, 요도가와(淀川) 제방(堤)에서 양 군이 격돌했다.

오다 군의 1번 타자는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였으나 부상을 입었기에 물러나고, 그 대신 2번 타자로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가 제방길의 한가운데(中筋, ※역주: 이게 고유 지명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가운데라는 말인지 불분명함)를 전진하여, 거기서 좌우에서 적군이 쇄도했기에 난전이 되었다.

이 날도 오전에는 우세였지만 오후에는 방어전이 되기 시작하여 노무라(野村) 엣츄노카미(越中守)가 전사하고, 마지막에 미요시 3인방의 군이 끊은 요도가와 제방에서 노부나가의 진은 침수되는 등 참담한 결과로 끝났다.


사태는 더욱 나쁜 방향으로 발전한다.

미요시 3인방에게 강화를 타진하지만 완전히 거부당하고, 그들의 원군으로서 네고로슈(根来衆), 사이카슈(雑賀衆), 유카와슈(湯川衆), 키노쿠니오쿠고호리슈(紀伊国奥郡衆), 도합 약 2만의 전력이 지원하러 왔다.

그들은 스미요시(住吉)나 텐노지(天王寺)에 진을 치고 오다 세력에게 철포 3천 자루를 쏘아붙였다.

노다, 후쿠시마 전투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철포끼리의 전투라면, 이 때의 전투는 철포가 전면으로 나온 최초의 전투이다.


이 열세에서도 아시미츠가 지휘하는 궁기병대는 활약했다.

그들은 비열하다느니 정정당당이라느니 하는 적들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철저히 화살로 살상한 후 거짓으로 철수하는 작전을 취했다.

지금까지 철포대를 사살하던 아시미츠였으나, 이 때부터 부상병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들의 화살촉에는 인간에게 위험한 잡균이나 곰팡이가 잔뜩 묻어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보통의 화살촉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화살이 박혀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 단지 감염증으로 죽을 뿐이다.

그 감염증이 만연하게 되면, 오다 군에게도 약간이나마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도적으로 화살의 숫자가 부족했다. 거기에 번거롭게도 동생인 요시아키나 그 가신들이 있었기에, 얼굴을 감추고 있어 시야가 나빴다.

평소에는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그임에도 화살이 은근히 빗나가기 일쑤였다.


(어서 시즈코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초조해진 아시미츠였으나 사태는 생각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13일부터 이어지는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전투는 비기거나 패배가 계속되고 있었다.

형세가 불리함을 느낀 노부나가는 16일에 일시 휴전하고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강화 교섭에 들어갔다.


하지만, 하늘은 노부나가를 버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17일에는 노부나가의 진영에 최악의 정보가 들어왔다.


아자이, 아사쿠라, 엔랴쿠지의 연합군 3만이 오우미를 남하하여 사카모토로 몰려들고 있다, 는 정보가.




9월 13일, 우사 산성에 아자이, 아사쿠라 연합군이 남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노부 성(野府城)을 맡고 있는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하루도 가세하여, 사카모토 수비대의 병력은 1만으로 늘어났다.


"다들, 상황이 지금 이러하다. 쓸데없는 개인적인 사정은 버려라. 그럼 시즈코 님, 그대의 군은 7500,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소. 나는 이 작전회의에 그대가 참가하는 것을 인정하겠소"


사카모토 수비대는 작전회의를 열었는데, 모리 요시나리는 거기에 시즈코,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를 참가시켰다.

세 명은 그렇다치고 시즈코의 참가에 다른 가신들은 반대 의견을 늘어놓았으나, 모리 요시나리는 일축했다.


"하하하…… 여러분이 꺼려하시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은 오다 가문의 위기, 아직 젊은 나이이기는 하나 작전 회의에 참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더니 시즈코는 우사 산성 주변의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간소하고 큼직한 사이즈였다.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 입지를 간단히 알 수 있도록 그려져 있었다.


"이쪽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우선 미요시 3인방의 셋츠 국 침공은, 영주님을 셋츠 국에 못박힌 상태로 만들기 위한 양동입니다. 하지만, 미요시 3인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언가 거대한 세력이 움직일 것이다, 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엔랴쿠지의 승병들의 공격을 받게 되어, 간신히 누가 움직였는지 확신했습니다"


"혼간지 세력 말입니까"


예감은 했지만, 시즈코의 말에 모리 요시나리는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자이, 아사쿠라와 엔랴쿠지는 결탁하여 연합군으로서 오우미 국을 남하해왔습니다. 추측입니다만, 혼간지의 잇코슈(一向衆)도 섞여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 숫자는 3만에서 4만으로 보면 되겠지요"


"3만! 우리들은 1만 밖에 안 되는데……"


모리 요시나리의 가신들에게 동요가 흘렀다. 지금 상태로는 연합군에게 숫자로 짓밟힐 것은 뻔히 보였다.


"……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


"기다려 주십시오. 치고 나가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숫자가 열세일 때 유효한 전법이 있습니다"


"야습(朝駆け夜討ち) 말입니까"


모리 요시나리의 말에 시즈코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검지손가락만을 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유격전(게릴라)입니다"


게릴라란 소규모의 비정규 부대를 운용하여, 미리 공격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임기응변으로 기습이나 매복, 후방 지원의 파괴 등의 교란행위나 공격을 하는 전법이다.

고대부터 게릴라 전술은 존재했지만, 게릴라라는 말이 태어난 것은 1808년에 스페인 독립전쟁에서 스페인 군이나 민중이, 나폴레옹 군에 대해 행한 작전을 '작은 전쟁(※역주: Guerra (전쟁) + -illa(작은))'이라고 스페인어로 부른 것이 어원이다.

우세한 적에 대해, 소모전이나 신경전을 강요하여 정신적인 면으로 데미지를 주거나 할 수 있다. 반면, 게릴라전만으로는 결정적인 군사적 손해를 주는 것은 어렵다.


"다행히, 제 군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천 명 정도 동원하면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건 좋지만,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오?"


야습도 게릴라 전술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예의바른 전투'였다.

반면, 지금부터 시즈코가 하려는 것은 '악독한 짓(外道)'이라고 할 수 있는 전술이다. 과연 그들이 납득할까 하고 시즈코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으―음. 내용을 말씀드려도 되지만…… 그다지 기분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한 마디로 말하면 '악독한' 행위를 하는 것이니까요"


"상관없소. 이것저것 따질 여유는 우리들에게 없소. 영주님께서도 말씀하셨지. 아무리 예의바르게 패배해도, 패배하면 모든 것이 악행으로 화한다. 자신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길 수밖에 없다, 고. 그러니, 나는 어떤 수단이라도 쓸 각오가 되어 있소"


각오를 굳힌 모리 요시나리였으나, 순순히 납득할 수는 없었는지 약간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알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끓는 기름을 퍼붓는다던가, 적진에 대한 방화, 적 세력의 식량에 오수(汚水)를 끼얹는 등의 식량 오염 등입니다. 그 밖에도 있습니다만, 슬슬 그만두는 편이 좋겠지요. 여러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시니"


시즈코의 말대로, 모리 요시나리 가신들 중 몇 명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그들은, 게릴라 전술의 무서움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희들은 존재하지 않는 군, 아자이, 아사쿠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른 척 하시면 문제없습니다"


"……조심하시오"


모리 요시나리의 말은 GO 사인이라고 이해한 시즈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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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