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65 1570년 5월 중순



노부나가의 도발행위에 아사쿠라(朝倉)는 손쓸 방법도 없이 철수했다. 그 사실에 아사쿠라 가문 가신들과 아자이(浅井)의 친 아사쿠라 파는 충격을 받았다.

아사쿠라 가문이라고 하면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이어지는 명가 중의 명가이며, 제 2의 쿄(京)라고 불릴 정도로 쿄 문화가 꽃피는 우아한 문화도시를 이치쵸다니(一乗谷)의 성시(城下町)에 건설한, 명실공히 손에 꼽는 힘을 가진 영주이다.

쿄에 가까운 것 때문에 아사쿠라 가문은 조정이나 쇼군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쇼군 가문으로부터는 매년같이 쇼군이 직접 에치젠(越前)을 방문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으로 아사쿠라 가문은 명가가 아니라, 그만한 도발행위를 당해도 이치죠다니로 도망쳐가는 얼간이라는 인상을 주위에 심어주게 되어버렸다.

이 일로 몇 명인가의 가신이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를 저버리고 장래성이 있는 오다 가문으로 변절하게 되었다.


굴러떨어지듯 몰락한 것은 히사마사(久政)도 마찬가지였다.

노부나가와 나가마사(長政)의 회담 때 추태를 보인 히사마사는, 친 아사쿠라 파의 가신들로부터 '친 아사쿠라파의 수장으로서는 약간 문제가 있다'고 보이게 되었다.

이쪽도 장래성을 단념한 아자이 가문의 가신들이, 손바닥을 뒤집어서 나가마사 진영으로 변절했다.


아자이 히사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서서히 세력을 잃어간다. 거기까지는 노부나가가 예상한 범위 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통한의 실패를 한다. 두 사람을 지나치게 조급하게 몰아붙인 것, 그리고 방심해 버린 것이다.

노부나가는 아자이 가문의 가신들은 강한 쪽에 붙는 체질인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사쿠라도 내부 붕괴를 저지하기 위해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궁지에 몰린 히사마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리고 나가마사에게도 히사마사를 주시하도록 조언하지 않았다.


1570년 (겐키(元亀) 원년(元年)) 5월 14일, 역사적 대사건이 발생한다.

아자이 히사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의 두 사람이 결탁하여 일으킨, 아자이 나가마사의 암살 미수 사건 '오다니(小谷) 성 사변'.

이 날 일어난 '오다니 성 사변'이야말로 겐키의 혼란의 시작이었으며, 동시에 제 1차 오다 포위망이 시작된 날이었다.




1570년 (겐키 원년) 5월 11일, 아사쿠라 가문 가신의 일부가 오다 가문의 영토인 미노(美濃)를 침공했다.

이 일에 노부나가가 격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를 정벌군의 총대장으로 임명한 후, 그에게 "일체의 항복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직접 섬멸을 명하고 출진시켰다.


아사쿠라 군은 금방 섬멸할 수 있을 거라고 노부나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1570년 (겐키 원년) 5월 14일, 원군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나가마사를, 갑작스레 거병한 히사마사 군이 덮쳤다.

쿠데타의 발발에 혼란에 빠진 나가마사 군은, 히사마사 군에게 차례차례 쓰러져 갔다. 나가마사 본인이 칼을 휘두르며 저항했으나, 한 번 혼란에 빠진 군의 재편은 극히 어려웠다.

나가마사는 나오츠네(直経)의 진언을 받아들여, 처자식과 약간의 가신을 데리고 오다니 성에서 탈출했다.


다수의 병사들을 잃으면서도 나가마사는 탈출에 성공했으나, 이 일로 나가마사 진영은 괴멸 상태가 된다.

히사마자 진영에 기세가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냉큼 손바닥을 뒤집어 나가마사 진영으로부터 다수의 가신들이 변절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나가마사를 따른 가신은, 그의 오른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엔도 나오츠네(遠藤直経)와 그의 동료(朋輩)인 미타무라 이치자에몬(三田村市左衛門) 이외 몇 명의 가신들과 병사 3천이었다.

절망의 늪에 빠진 나가마사였으나, 그는 얼마간의 희망을 걸고 처자식을 데리고 미노를 향했다.


아사쿠라 군의 미노 침공과 오다니 성 사변으로부터 아자이 히사마사와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결탁한 것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수중에 남은 군 중 1만의 병사를 히데요시(秀吉)에게 주어 오우미(近江) 국 침공을 명했다.

명목상으로는 '오이치(お市)의 구출'이었지만,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나가마사 군을 구원하도록 비밀리에 명했다.


겨우 하루만에 진군한 히데요시였으나,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나가마사 군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가마사 군은 히사마사 군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어서 이동하고 있는데다, 군의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져서 발견하기 어렵게 되어 있었다.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는 간자를 풀었지만 좋은 정보는 얻지 못하여, 다만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나가마사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군이 먼저 나가마사와 합류해 있었다.

그것은 멀리 동남아시아에서 도착한 후추의 묘목과 씨앗을 받으러 갔던 시즈코 군이었다.


"사진(斜陣) 1천 5백! 좌익에 궁 5백 전개! 니스케(仁助), 시키치(四吉, ※역주: 독음 불확실), 궁기병(弓騎兵) 10기를 이끌고 궁병과 말을 중점적으로 저격!"


시즈코가 히사마사 군과 싸우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 불행이 겹친 결과였다.

먼저 시즈코는 프로이스로부터 후추의 모와 씨앗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행군 훈련을 겸하여 무구를 완전히 장비한 쿠로쿠와슈(黒鍬衆)를 포함한 전군을 데리고 쿄로 들어갔다.

거기서 후추의 모와 씨앗을 수령한 후, 곧장 오와리(尾張)로 귀환했다면 아자이 가문의 소동이 발발하기 전에 기후(岐阜)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괴혈병의 특효약이 예상 이상으로 효과를 발휘했기 떄문에, 예수회는 시즈코에게 입막음료를 겸해서 후추의 모와 씨앗과 함께, 헌상용의 동물을 일본으로 가져왔다.

당초에 예수회는 몇 마리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콩나물의 효과에 놀라서 약간 혼란스러워진 와중에 지시를 남발했기 때문에, 연락 내용이 말옮기기(伝言ゲーム)처럼 바뀌어버렸다.

최종적으로 각지에서 동물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착각되어, 다양한 동물들이 모아졌다.


먼저 친한 사이인 이슬람 상인으로부터 터키시 앙골라의 암수 3쌍을 사들였다.

터키시 앙골라란, 터키의 산악 지대에서 자연발생한 품종이다. 터키시는 '터키의'라는 의미, 앙골라란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옛 명칭이다.

16세기에 유럽에 건너갔을 때부터 현대와 다르지 않은 용모가 기록되어 있기에, 적어도 유럽에 건너가기 수백년 전에는 품종으로서 확립되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고양이 등록협회(CFA)에 등록되어 있는 터키시 앙골라는 원종(原種)이 아니다. 이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유럽인이 숫자를 늘리기 위해 페르시안과 교배시킨 것 때문에, 순수한 터키시 앙골라가 터키 국외에서는 멸종되었다.

다음으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터키에 있는 터키시 앙골라가 멸종의 위기에 처해 버렸다.

1950년대에 들어서, 터키의 앙카라 동물원에서 보호 사육되던 것을 미국 군인이 발견하여 미국으로의 수입을 교섭했다.

그러나 터키에서 '살아있는 국보'로 소중히 여겨지던 터키시 앙골라에 대해 유럽과 미국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기억하고 있던 터키는 국외 반출에 난색을 표했다.

최종적으로 미국에 수입되어, 태국의 지보(至宝)인 시아미즈(Siamese, ※역주: 샴 고양이)와 교배하여, 페르시안같은 통통한 체형에서 원래의 슬립한 체형으로 되돌리는 번식계획이 시작되었다.

결국 현대의 터키시 앙골라는, 터키시 앙골라와 페르시안과 시아미즈의 세 가지 품종에서 태어난 품종이다.

물론, 시즈코에게 건네어진 터키시 앙골라는, 페르시아나 시아미즈와 교배되지 않은 원종의 터키시 앙골라였다.


다음으로 인도에 주재하는 카톨릭 선교사가 희한한 개(독일 원산의 목양견(牧羊犬) 저먼 셰퍼드(German Shepherd))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섭해서 암컷을 몇 마리 사들였다.

출항 직전, 어떤 포르투갈 상인이 스페인 상선에서 큰 거북을 샀다고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반쯤 협박해서 여섯 마리를 사들였다.

그리고 출항 후, 보급 목적으로 들린 류큐(琉球) 국에서 장사하고 있던 중국인 상인에게서 진공작(真孔雀)의 암수 두 쌍을 사들였다.

예수회는 프로이스의 보고서대로 개, 고양이, 새를 모으고, 거기에 희한한 동물로서 땅거북(象亀)을 추가하여, 그 모든 동물들이 사카이(堺)에서 쿄로 운반되고, 그리고 시즈코에게 인도되었다.


사람을 동물원 원장이나 뭐 그런 걸로 착각하는 거 아닌가, 하고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였으나, 불행은 또 찾아왔다.

시즈코에게 동물을 떠넘긴 후, 프로이스는 로렌초와 함께 사카이의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쿄를 떠났다.

게다가 땅거북을 한 번 보려고 시즈코가 있는 곳을 찾아온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와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땅거북이 아니라 터키시 앙골라의 매력에 함락되었다.

두 사람은 가신들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고양이를 예뻐한 후, 시즈코에게 한 마리 양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두 사람의 열의에 두 손을 든 시즈코는 발정기에 두 마리를 만나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수컷 터키시 앙골라, 호소카와 후지타카에게 암컷 터키시 앙골라를 양도했다.


하지만 쿄에서의 소동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터키시 앙골라는 날씬한 몸과 섬세한 털(被毛) 때문에 예민한 고양이라고 생각되기 쉬운데, 의외로 근육질에 순응력이 높은 고양이다. 다만 다른 고양이와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하여, 기본적으로는 단독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런 터키시 앙골라는 높은 곳과 상하운동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때문에 아케치 미츠히데, 호소카와 후지타카 각각의 고양이방에 캣타워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시즈코는 쿠로쿠와슈를 데리고 각각의 고양이방에 캣타워를 설치하기 위해, 쿄에서 쓰는 저택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 동안, 나가요시(長可)와 다른 병사들은 남은 암수 두 쌍을 예뻐했는데, 어느 날 시즈코가 없을 때 한 마리의 터키시 앙골라를 캣 케이지에서 내보내 버렸다.

모험심이 강한 터키시 앙골라는, 앗 하는 사이에 저택 밖으로 뛰쳐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것에 당황한 나가요시들이 갑주를 입고 고양이 대수색을 개시하여, 도중에 경라대와 쿄의 백성들까지 말려든 대소동을 일으켰다.

최종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간 터키시 앙골라를 회수한 것은, 사건과 관계없던 케이지(慶次)였다.


대소동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축제 기분으로 즐겼으며, 게다가 터키티 앙골라의 외모에 한눈에 반한 백성들이 속출하여, 연일 시즈코에게 고양이를 양도해 달라는 부탁이 급증했다.

최종적으로 고양이의 양도는 일체 거부, 새끼 고양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후, 시즈코 대(隊)는 구충이 끝난 터키시 앙골라, 땅거북, 진공작, 셰퍼드를 데리고 오와리를 향했다.


오우미 국을 통과하던 도중에 히사마사의 쿠데타가 발발했다. 게다가 병사는 적지만 오다 군이 오우미 국에서 진군하고 있다, 는 정보를 입수한 히사마사가 오다 군(알맹이는 시즈코 군)을 무찌르기 위해 습격을 가해왔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즈코도 자신의 불행에 한탄하고 싶어졌다. 다만 히사마사의 습격에 시즈코 군은 와해되기는 커녕, 거꾸로 군의 의지가 통일되고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터키시 앙골라였으나, 장비를 완전히 갖추고 있다고는 해도 병사 4천 정도로는 좀 불안하다.


히사마사 군을 격퇴한 후, 시즈코는 미노 국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퇴각했다. 하지만 나가요시와 그의 병사들이 살기를 띠고 있었기에, 퇴각 명령이 전해지기 전에 도망친 히사마사의 병사들을 추격해갔다.

그걸 말리기 위해 남은 시즈코 군이 서둘러 그들을 쫓았지만, 합류한 장소는 히사마사가 나가마사를 쓰러뜨리기 직전인 전장이었다.


나가마사 진영으로부터 새로운 적이라 의심받고, 히사마사 진영으로부터는 오다 군을 무찔러야 한다고 공격받고, 거기에 반응한 나가요시가 히사마사 군에 돌격하여, 그야말로 혼돈스러운 전투로 변해 버렸다.

다행히 나가마사의 얼굴을 알고 있던 시즈코는, 우선 주위의 나가마사 군을 설득하면서, 나가마사의 진중까지 들어와있던 히사마사 군을 쫓아냈다.

나가마사의 진중이 안정되자, 시즈코는 나가마사들에게 자신들은 오다의 원군이라고 말하고, 함께 히사마사를 격퇴하기 위한 협력을 제안했다.


방금 전까지 죽기 직전이었던 것도 있어 나가마사는 시즈코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오다의 원군이 왔다는 것을 병사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령을 내보냈다.

연이은 패전이나 현지 백성들의 배신으로, 당초 3천 명이었던 나가마사 군은 이제 1천 명 정도까지 숫자가 줄었지만, 오다 군의 원군이 왔다는 정보에 그들은 잃어버리려던 사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시즈코 군 4천과 나가마사 군 1천은, 히사마사 군 6천과 거리를 두고 대치하는 동안 진형을 재편했다.

하지만 부상이 심한 나가마사 군은 나가마사를 지키기 위해 후방으로 물러나 있었고, 실제로는 히사마사 군 6천과 시즈코 군 4천의 대치였다.

양측의 대치는 돌격 준비가 갖춰진 히사마사 군에 의해 깨어졌다.

돌격해오는 히사마사 군에 대해, 시즈코는 안행진(雁行陣)을 펼쳤다. 그리고 선두의 아시가루(足軽)들을 콘크리트로 보강된 대나무 다발로 굳혔다.

사방(斜方)을 밀집시키는 것으로 정면으로부터의 돌격을 피하고, 그 사이에 측사(側射)로 히사마사 군을 공격하는 작전이다.


"상대는 6천 정도! 그렇다면 한 명이 둘을 죽이면 된다!"


히사마사의 제멋대로인 태도에 열이 뻗친 시즈코는, 적절한 지시를 각 부대에 날려서 절처하게 히사마사 군을 몰아붙였다.

평소에 화내지 않는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 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시즈코를 보고, 시즈코 군 중 몇 명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궁병 사격! 신경쓰지 마라! 적은 어차피 대단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있는 대로 쏘아붙여라!"


5백 명에 의한 화살비에 적의 병사들은 차례차례 목숨을 잃었다. 운좋게 화살비를 피할 수 있었던 병사들도, 사진(斜陣)을 구성하는 중보병의 손도끼나 칼(剣鉈)에 목숨을 잃었다.

적의 궁병이나 기병은, 컴파운드 보우를 장비한 궁기병의 종횡무진한 움직임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했으나, 상대도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다. 화살비 속을 돌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라 생각하고 일단 뒤로 물러났다.


"피리를 불어서 케이지, 사이조(才蔵), 카츠조(勝蔵) 부대에 돌격 신호를 보내라!"


피리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사진의 전곡(前曲)과 후곡(後曲)에서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 부대가 앞으로 나와 히사마사 군을 좌우에서 협공했다.

정공법으로 소모전을 벌이다 갑자기 포위당한 히사마사 군은 당황하여 시즈코 군의 습격에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죽어라죽어라죽어라! 남의 고양이에 손대는 놈은 이 도깨비 방망이로 패죽여주마!"


큰 소리로 외치면서 나가요시는 약간 길게 만든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그가 모닝스타를 휘두를 때마다 선혈이 흩날렸다. 그 뿐만 아니라 나가요시 부대의 아시가루들도, 창이나 칼로 적병을 베어넘겼다.

물론, 케이지 부대나 사이조 부대도 그들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당황하고 있는 적병을 쓰러뜨려 갔다.


시즈코 군에게 포위당한 히사마사 병사들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돌격하려고 해도 시즈코 부대 본군은 사진으로 단단히 지켜지고 있어서 중앙 돌파는 불가능, 거기에 궁병에 의한 일제 사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히사마사 진영은, 포위망에서 가장 얇은 부분으로 강행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포위가 얇은 부분은 나가요시들이 히사마사 병사들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포위를 약하게 해둔 것 뿐이었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유인당한 히사마사 명사들은, 차례차례 말못하는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히사마사는 나가마사 토벌대 6천 중 무려 2천이나 되는 사상자를 내게 되었다.


"좋아! 적이 철수하는 것에 맞춰서 이쪽도 철수한다! 깊게 추격하는 것은 엄금, 저쪽에는 아직 멀쩡한 군이 남아 있으니까!"


나가마사 토벌군을 격퇴했으나, 아자이 히사마사의 본군은 멀쩡하게 남아 있다. 그에 반해 시즈코 군에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3할 가까운 부상병이 발생했다.

나가마사 병사들도 피로의 한계에 달해 있어, 이 이상의 추격은 뼈아픈 반격을 당할 것이라 생각한 시즈코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아 길길이 뛰고 있던 나가요시의 뒷덜미를 붙잡고 철수를 개시했다.

승리에 흥분하고 있던 병사들에게도 당부하여, 필요없는 짐에 모두 불을 지른 후 시즈코는 나가마사와 함께 철수를 개시했다.


오후 3시경에 간신히 히데요시 군의 척후에게 발견되어, 시즈코 군과 나가마사 군은 히데요시 군과 합류했다. 이로서 나가마사 군, 시즈코 군, 히데요시 군을 합쳐서 1만 5천의 병력으로 팽창했다.


"훌륭하네. 용케 아자이 비젠노카미(備前守)님의 궁지를 구했군"


"아, 네. 감사합니다"


히데요시에게 칭찬받은 시즈코였으나, 그녀는 거의 무아지경이었기에 도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갑자기 히사마사 병사들에게 습격받아,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격퇴한 무렵부터 히데요시에게 합류할 때까지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따라서 시즈코 군의 아시가루들이 묘하게 시즈코를 두려워하는 이유로 모른 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내일은 세키가하라(関ヶ原)에 도착하네. 놈들도 이 이상 깊게 추격할 수 없으니, 내일 도착하면 일단 안심이지"


히데요시의 말은 결코 자만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히사마사와 오우미 국의 상황, 아사쿠라 군의 움직임, 그것들을 정리하여 생각해서 나온 결론이 '아자이 히사마사는 이 이상 군을 움직일 수 없다'였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생각은 옳았다. 히사마사가 독자적으로 군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이상 군을 멋대로 움직이려고 해도 가신들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쿠데타가 아자이 가문을 위한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따라온 가신들을 앞에 두고, 히사마사는 다시 아자이 가문 당주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다시 오우미 국의 영주임을 천명해야 한다.

그 이외에도 아사쿠라나 다른 반 오다 조직과 연계를 강화하는 등, 이 이상 나가마사에게 시간을 들일 수 없는 것이다.


"오우미 국과 동맹이 해소된다고 하면, 기후와 쿄를 잇는 요로(要路)의 안전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없네. 이미 영주님께서는 오우미 침공을 향해 움직이고 계시지. 이번에는 시즈코도 종군할지도 모르겠군. 누가 뭐라 해도 이번에 최고의 활약을 보인 것은 그대이니까"


"그렇군요. 이번에는 아무래도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어디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지 조사하는 것부터 해야 했으니까요"


"(척후를 내보낼 여유가 없었다는 건가)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뺨을 긁적거리며 시즈코가 중얼거릴 때, 문득 된장 냄새가 콧구멍을 간지럽혔다.


"오, 이제야 왔나. 어서 가지고 오너라―!"


히데요시도 된장 냄새가 나는 것을 깨닫자, 더 기다릴 수 없다는 태도로 급사를 재촉했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약간, 아니, 평소보다 상당히 기름기가 떠 있는 된장국이었다.


(페미컨(pemmican)과 구운 된장 볼(ball)과 말린 밥을 섞은 거군요)


그것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시즈코가 생각한 전시 식사(戦時飯) 중 하나였다.

페미컨은 캐나다 및 아메리카에 사는 인디언들의 전통적인 휴대 보존식이다.

여름에도 주의하기만 하면 1주일은 품질을 유지한다. 다만, 이 페미컨은 고기나 야채, 과일을 동물성 지방으로 밀봉해서 굳히는 것이기에 대단히 기름지다.

따라서 그대로는 확실히 배탈이 나는 사람이 생긴다. 그래서 한 번 불에 올려 액상화시킨 기름기를 좀 줄이는 공정을 추가했다.


그래도 기름이 번질대는 밥을 먹는 것은 저항감이 있기에, 닭가슴살 등 지방이 적은 고기를 맛국물용 된장으로 감싼 고기 된장볼을 풀어넣어 돼지국 비슷하게 만든 후, 말린 밥을 섞기로 했다.

쓸데없는 기름기를 완전히는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전시에는 고칼로리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평소에 페미컨의 야전식을 먹게 되면 틀림없이 몸에 탈이 난다.


"기름기가 너무 많군. 하지만 군사행동시에 과식은 좋지 않으니, 이걸로 먹는 양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좋은 쪽이려나?"


"흠, 아직 개량할 점은 있군요. 그러고보니 시즈코 시, 활을 장비시킨 기병…… 뭐라고 하셨었죠?"


"어, 아, 궁기병 말씀이군요"


궁기병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기사(騎射, ※역주: 말에 타고 활을 쏘는 것)를 하는 기병을 말한다. 하지만 이 궁기병은 우수한 기마술과 궁술, 그리고 안장이나 등자 등의 우수한 마구(馬具)가 필요해진다.

필연적으로 말이 생활의 일부에 녹아들어 있는 유목민들이 궁기병을 구성하기 쉽다. 흔히 활을 장비한 기병을 용기병(竜騎兵)이라 부르지만, 실제는 총 등의 화기를 장비한 기병을 용기병이라 부른다.


궁기병의 메리트는 우수한 기동력과 탁월한 궁술에 의한 높은 명중률이다.

특히 위장 퇴각과 기사(騎射)의 전술을 취한 궁기병은 보병의 천적이 되었다. 같은 기동력을 가진 경기병조차 궁기병에는 애를 먹었다.

일본에는 평지가 적지만, 시즈코의 부대에 있는 궁기병들은 컴파운드 보우의 이점을 살려 '적의 인식범위 밖에서 기사(騎射)를 하고, 상대가 눈치채기 전에 안전지대까지 퇴각한다'는 장거리 사격전술을 기본으로 했다.

뛰어난 궁술은 물론이고 탁월한 기마술도 동시에 요구되기 때문에, 구성인원수가 겨우 30명으로 소수 정예였다.


훈련도 상식을 벗어난 내용이었다. 말고삐를 쓰지 않고 다리 만으로 말을 조종하여 산악지대를 주파시킨다.

급류에 휩쓸리며 떠내려오는 과녁을, 강의 흐름에 대해 수직으로 말을 달리게 하면서 75m 이상의 거리에서 맞추게 한다.

날아다니는 새나, 강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쏘아 맞추는 훈련도 한다. 물론, 남김없이 다 먹는 것도 훈련 내용이다. 그 이외의 기초 훈련은 나가요시가 지도하고, 거기에 다양한 좌학(座学) 등도 습득하게 했다.

집안이나 혈통에 좌우되지 않지만, 재능과 노력과 다소의 운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이 시즈코의 궁기병 부대였다.


"맞습니다. 듣기로는 1정(약 100m) 거리에서 화살을 맞추는 부대라고 하더군요"


"기사와 즉시 퇴각이 기본 전술이니까요. 멀리서 맞출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여, 그런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활 같은 원거리 무기가 '무사의 무기가 아니다'고 생각되게 된 것은, 에도(江戸) 시대에 일어난 시마바라(島原)의 난을 진압한 이후였다.

그 때까지 활은 결코 비겁자의 무기가 아니었다. 카마쿠라(鎌倉) 시대에는 화궁(和弓)을 쓰는 기병이 주전력이었으며, 전국시대의 영주나 무장들은 활이나 화승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다.

이론적으로 화궁은 30m가 갑주를 관통할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되며, 화승총은 그 두 배인 60m라고 한다.

100m 떨어지면 화궁이나 화승총의 살상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전국시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시즈코의 궁기병은 갑주를 관통할 수 있는 거리가 약 100m, 살상범위는 150m였다. 맞은 곳이 나쁠 경우 200m 저편의 사람도 사살할 수 있다.


"그런데 아자이 님이나 오이치 님께서는 어디 계신가요?"


"아무래도 아버님의 거병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조용히 놔두고 있지"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상태라도, 고지식한 나가마사에게는 부모에게 목숨을 노림받은 것은 심신 양면에서 충격이었다.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을 보고, 히데요시나 타케나카 한베에는 조용히 내버려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나가마사는 히데요시나 타케나카 한베에, 시즈코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세키가하라에 도착한다. 거기부터는 기후까지 일직선이지. 아사쿠라도 구축이 끝났을테니, 오늘은 피로를 풀도록"




다음 날, 히데요시와 시즈코, 그리고 나가마사의 연합군은 해가 뜨기 전부터 이동을 개시했다.

히사마사가 습격할 가능성이 낮더라도, 간자를 이용한 비정규군의 습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이상, 빠르게 미노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히사마사의 추격은 없었고, 일행은 세키가하라를 통과하여 기후에 도착했다. 기후에서 연합군은 해산되었고, 나가마사와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시즈코는 오와리로 향했다.

하지만 기후에서 출발하기 직전, 터키시 앙골라의 건으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보고할 것을 명령받았다.

그 후, 우여곡절을 거쳐, 노부나가와 그와 함께 터키시 앙골라를 본 사키히사(前久)도, 아케치 미츠히데 등과 똑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포기의 경지에 달한 시즈코는,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양도 조건을 전한 후, 수컷을 노부나가, 암컷을 사키히사에게 양도했다.

그 때,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땅을 빌려쓰고 싶다고 청했다. 터키시 앙골라에 홀딱 빠진 노부나가는, 통크게 4000평(약 13000 평방미터)이나 되는 토지를 시즈코에게 내렸다.


언질을 받은 시즈코는 캣타워의 설영을 쿠로쿠와슈에게 의뢰한 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도망치고 싶었던 시즈코는 행군 속도를 빠르게 하여, 해가 지기 1각 전에 자택에 도착했다.

부상병을 다시 치료한 후 군을 해산시켰다. 치료를 마친 병사들부터 각자 귀로에 오르고, 시즈코들은 마을의 문을 통과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 님. 오시는 도중에 있었던 일은 들었습니다. 목욕 준비는 이미 마쳐놓았으니, 피로를 풀어 주십시오"


마중나온 아야의 말에 따라 네 명은 목욕탕에서 몸을 치유했다.

입욕 후, 시즈코는 우선 땅거북에 호박, 뽕나무잎, 칡의 잎, 들풀, 소송채를 주었다.

거북의 종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스페인 상선에서 사들였다는 이야기가 정말이라면, 갈라파고스 땅거북일 가능성이 높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1535년에 갈라파고드 제도가 발견된 이래, 서양인들에게 살아있는 식량과 물통으로 취급되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건기에는 물이 고갈되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갈라파고스 땅거북에는 심장 부근에 있는 심낭(心嚢)이라는 장소에 물을 저축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 때문에, 유럽의 포경선이나 상선의 선원들이 음료수를 목적으로 많은 땅거북을 포획했다.

고기가 달고 대단히 맛있는 점, 물을 저축하는 능력이 있는 점, 발이 느린 점, 먹이를 주지 않아도 몇 개월은 사는 점을 이유로 땅거북은 계속 남획되었다.

마스카렌 제도(Mascarene Islands)의 로드리게스(Rodrigues) 섬에서는, 1732년부터 1771년 사이에 28만 마리의 땅거북이 식량으로서 포획된 기록이 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 중 가장 유명한 개체는, 2012년 6월 24일에 사망한 핀타섬 땅거북인 론섬 조지(Lonesome George)이다.

핀타섬 땅거북 최후의 한 마리이며, 번식을 시도했으나 가까운 아종과의 번식은 모두 실패, 근연종의 암컷을 써서 알의 인공부화를 시도했으나 모조리 실패로 끝났기에, 론섬 조지는 멸종 위기종의 상징이었다.


"아니 인도에서 왔으니까 알다브라 땅거북의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니지. 하지만 등껍질이 돔(dome) 형태네…… 뭐, 아무래도 괜찮으려나"


등껍질이 돔 형태인 것을 볼 때 식량이 풍부한 장소에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먹이에 달려드는 모습을 보니, 몇 개월 가까이 식사를 주지 않았던 것도 확실했다.

땅거북을 사육할 경우, 운동량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기에 먹이의 빈도는 하루에 한 번, 마른 잎사귀나 섬유질이 많은 풀을 중심으로 한 먹이를 주는 것과, 비닐하우스 등의 온실이 필요해진다.


"셰퍼드는 질병도 고려해서 4개월이나 5개월은 격리할 필요가 있으려나"


질병을 고려해 격리된 셰퍼드들이었으나, 운동부족이 되지 않도록 넓은 땅을 준비했다.

또 잠자리가 될 개집도 설치하여 비나 이슬을 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먼 셰퍼드는 인류가 품종개량 끝에 탄생시킨 견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간주된다.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풍부하며, 주인에게 충실하다. 또 훈련을 좋아하여 높은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엘리트견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훈련을 잘못 시키면 지배욕이 강하고 공격적인 성격이 되어, 이것을 교정하는 것은 어렵다.

정한(精悍)한 얼굴이나 탄력있고 강인한 몸 때문에 애완동물로서도 인기가 높으며, 경찰견이나 군용견으로서 대단히 우수하다.


다만 시즈코가 수령한 저먼 셰퍼드는 현대에서 경찰견이나 군용견으로 사역되고 있는 저먼 셰퍼드가 아니라, 원종이라는 단어가 붙은 올드(Old) 저먼 셰퍼드이다.

작업견종의 능력을 중시하여 번식되어 온 견종이기 때문에, 근육질의 체격에 다리도 저먼 셰퍼드보다 굵은 편이다. 등은 평평하지만 목은 두껍고 튼튼하며, 또 허리도 튼실하다.


"진공작들은 당분간 연못에서 참아줘―"


저먼 셰퍼드의 처리를 마친 후, 시즈코는 진공작들을 간이 울타리로 둘러싼 거처로 이동시켰다.

진공작은 비취색의 장식깃털이 아름다운, 꿩 종류 중 가장 큰 새이다. 낙엽이나 곤충 등 대단히 잡식성이 강하며, 입에 들어오는 곤충이나 무척추동물, 양서류 등 다양한 것을 먹이로 삼는다.

게다가 신경독의 내성을 가지고 있기에, 독전갈이나 킹 코브라 등의 독사류도 즐겨 먹는다.


"야채라고 하면 나물(菜) 종류, 부추, 파, 양파였던가. 뭐 적당한 야채 부스러기를 약간 모자라게 놔두면 되려나"


도망치지 않도록 울타리를 설치하고, 땅거북과 마찬가지로 진공작들에게 먹이를 준 시즈코는, 마지막으로 불행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려 하고 있는 터키시 앙골라를 비트만들과 만나게 했다.

진입 금지의 울타리에는 가까이 가지 않도록 교육시켜놓았기에, 비트만들이 땅거북이나 진공작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터키시 앙골라는 얘기가 다르다. 속박을 무엇보다 싫어하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터키시 앙골라는, 처음에 얼굴을 익혀놓게 하지 않으면 포식될 가능성이 높다.

예상대로, 비트만들은 터키시 앙골라에게 경계심을 명확히 드러냈고, 터키시 앙골라도 대형의 포식동물인 비트만들을 보고 울음소리를 냈다.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무언가를 받아들였는지 비트만들은 경계심을 늦췄고, 터키시 앙골라는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멈췄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시즈코는, 지금이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여 터키시 앙골라를 캣 케이지에서 꺼냈다.

순간, 케이지에서 한 마리의 터키시 앙골라가 뛰쳐나왔다. 활발함을 볼 때 수컷이라고 생각되는 터키시 앙골라는, 비트만들의 주위를 쫄래쫄래 돌았다.

귀찮다고 생각했는지 카이저가 앞발로 밀듯이 터키시 앙골라를 넘어뜨렸다.

그게 재미있었는지, 아니면 반격할 생각이었는지, 일어난 터키시 앙골라는 잽싸게 카이저에게 접근하더니 카이저의 앞발에 고양이 펀치를 후려쳤다.

발톱이 닿아서 아팠는지, 카이저는 다시 터키시 앙골라를 넘어뜨렸다. 그리고 고양이 펀치의 응수를 받고, 다시 넘어뜨렸다.


시즈코의 눈 앞에서 인의(仁義) 없는 늑대 펀치 vs 고양이 펀치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내버려두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시즈코는, 카이저와 터키시 앙골라의 전투를 시야 밖으로 밀어내고, 워디안 케이스에 들어있는 후추의 묘목과 씨앗을 확인했다.


(역시 바닷길은 힘들었나…… 들은 이야기로는 상당수의 묘목이 있었지만, 썩어있는 묘목이 많이 있네)


묘목의 손상이 경미한 것을 기뻐해야 할지, 라고 할 정도로만 썩어있는 묘목은 숫자가 적었다.

시즈코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가 묘목에 취한 조치가 다행히 좋았기 때문에, 시든 것을 면한 묘목이 많았다. 만약 그녀 이외의 사람이 수령했다면, 7할은 못쓰게 되었으리라.


(묘목이 하나…… 둘…… 전부 다 해서 45그루, 씨앗은 70알. 이거라면 씨앗의 발아는 5알, 묘목은 14그루가 기대치네)


대량의 자본을 투입해서 후추의 묘목을 90그루, 씨앗을 100개 구입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피해를 입어서, 묘목은 45그루, 씨앗은 70개까지 숫자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생각하기로 했지만, 후추 재비는 처음에 최대 최악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워디안 케이스에서 육성하고 있지만…… 씨앗의 발아율이 역시 너무 나빠……"


최대의 난관, 그것은 발아율의 저조함이다.

통상, 후추 재배는 삽목용의 어린 줄기를 묘목으로 3개월에서 4개월을 들여 키운다.

다음으로 지주(支柱)를 대어 묘목을 정식(定植)하고, 그 후에는 성장시키는 것 뿐이다. 빠르면 1년 반, 늦어도 2년부터 수확이 가능해지며, 최대 25년 동안 한 그루의 후추에서 약 2kg 수확할 수 있다.


하지만 씨앗으로부터 육성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발아 온도는 25도에 호광성(好光性), 게다가 건조하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 발아 온도가 대단히 타이트하여, 현대라면 보온 히터 등이 있지만 전국시대에 그런 편리한 도구는 없다.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문제가 되는 발아 온도를, 어떻게 유지할지가 난관이었다.


후추 나무는 높이 5미터에서 9미터까지 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높이가 요구된다.

시즈코는 후추의 묘목을 화분에 심고, 씨앗은 뜨거운 물에 적신 천으로 감쌌다. 그러한 조치들이 끝나자, 그녀는 전국시대식 비닐하우스 1호로 운반했다.

비닐하우스라고 해도, 육성 장소만이 비닐로 덮여있을 뿐으로, 그 이외의 장소는 유리창이나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강도를 유지하기 위함과 온도 조절을 하기 위함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제의 비닐은 석유 비닐보다 내구성, 기능성이 뒤떨어지며, 게다가 잘 분해되지 않는 (분해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점이 없다.

시험해보지 않고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시즈코는 짧으면 5년, 길어도 10년에 한 번은 비닐을 전부 새로 갈아야 할 필요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후추는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에서 재배되는 열대성 식물이다. 7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으며, 4도 이하가 되면 문답무용으로 시든다.

일본에서는 겨울이 되면 4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별로 드물지 않다. 따라서 온도 조정을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했다.


온도를 알기 위해서는 온도계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시즈코는 알코올식 온도계(한난계(寒暖計))를 제작했다. 알코올식 온도계는 정밀도는 나쁘지만, 구조가 심플하고 붉게 착색한 감온액(感温液, 알코올)을 사용하기에 수은보다 안전하다.


후추는 습도에도 민감하므로, 시즈코는 모발습도계를 제작했다.

이것은 모발의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 기상청의 기상업무관측 등에서도 쓰이고 있는 신뢰성이 높은 습도계이다. 다만 핵심이 되는 모발에 따라 성능이 좌우되는 결점이 있다.


온도계와 습도계는 원기(原器)가 되는 것이 필요했으나, 시즈코는 언니의 구입품인 트래블 킷(travel kit)의 온도계와 습도계를 원기로 삼았다.

이에 의해 온도계와 습도계의 성능이 보장되어, 시즈코는 본격적으로 후추 재배에 착수했다.




초기의 후추 재배는 계측 일변도였다. 매일, 온도와 습도를 기록하고, 후추의 묘목의 상태를 기록하고, 씨앗의 발아 상황을 기록하고, 그것들을 정리하는 작업 뿐이었다.


"응…… 24호 짱, 오늘 사망을 확인"


번호가 붙여진 묘목들 중, 시즈코는 새카매진 후추의 묘목 24호를 잡아뽑았다. 재배 개시로부터 십수일이 지난 5월 30일에 이미 12그루가 못쓰게 되었다.

씨앗은 더욱 비참하여, 70개 중에 발아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하나 뿐이었다.


"기온과 습도가 나쁜 걸까. 좀 더 생각해보자……"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묘목이 다섯 그루, 발아한 씨앗은 하나 뿐이라는 상태다. 지금까지 순조로운 재배를 거듭해온 시즈코였으나, 아무래도 후추를 전국시대에서 재배하는 것은 어렵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계측기나 약품이 없는 전국시대의 일본에서, 후추의 묘목이 다섯 그루나 성장하고 있는 것에 시즈코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8호, 13호, 21호는 순조롭고, 36호와 41호는 조금 기운이 없는 걸까"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 못 쓰게 된 걸까 하고 생각한 묘목들 중, 무려 10그루나 되는 묘목이 되살아났다.

이것에 시즈코는 대단히 기뻐했으나, 그 희망을 짓밟는 것처럼 다음 날에 두 그루의 묘목이 기세를 잃었다.

한 번 묘목이 시들게 되면 시즈코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재배 기록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손을 써서 시들지 않도록 분투했지만, 그 노력이 허망하게도 묘목은 시들어 버렸다.

70그루 중, 성장을 계속하는 묘목은 12그루 뿐이었다. 카톨릭 교도가 운반해 왔다고 12사도냐, 라는 식으로 자조적인 기분이 들기 시작한 시즈코였으나, 두 손으로 뺨을 때리며 기합을 넣었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생각한 시즈코는, 접붙이기를 한 귤과 레몬밭으로 이동했다. 이쪽은 후추와 달리 성장률이 높아서, 벌써 대부분의 접지(穂木)에서 싹이 터 있었다.

조금 더 성장하면 방수용의 밀랍을 바른 목면천을 걷어내고 식목 화분(植木鉢)에 옮겨심어 각지로 발송할 예정이었다. 발송되는 묘목의 태반이 귤이었지만, 레몬도 약간 발송된다.

남은 묘목은 과수원의 한 구석에 심어지고, 밑나무(台木)를 심었던 땅은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밑나무를 심게 된다.


과수원에는 새로운 친구들도 늘어났다. 중국 원산지의 금감(金柑), 닝보 금감(寧波金柑), 체리(サクランボ), 중국종 양앵두(シナミザクラ)였다.

중국종 양앵두는 중국앵두(中国桜桃), 카라미자쿠라(唐実桜)라고도 불리며, 헤이안(平安) 시대의 기록에 '앵두(桜桃)'라는 이름으로 나올 정도로 오래된 재배종이다.

하지만 현대 일본에서는 단양 앵두(甘果桜桃)가 주류로, 신맛이 강한 산과앵두(酸果桜桃)나 중국앵두가 시장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체리는 많은 재배종이 자가불결실성(自家不結実性, 스스로의 꽃가루로는 수분되지 않고, 다른 품종의 꽃가루를 수분함)이지만, 중국앵두는 자가결실성이라서 한 그루로도 열매를 맺는다.

두 가지는 식목 화분으로 재배하고 있지만, 닝보 금감은 접붙이기, 중국종 양앵두는 씨앗을 심어 재배하고 있다.

닝보 금감의 밑나무가 되는 탱자나무의 재배수를 지금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이곳에 계셨습니까, 시즈코 님"


과수원의 상태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야가 말을 걸어왔다. 약간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니, 급보가 도착하여 다급하게 시즈코가 있는 곳으로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급보야?"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습니다. 아사쿠라와 아자이 정벌의 건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야에게서 편지를 받아들고 확인해보니, 그녀의 말대로 주인장에는 대나무 화살(竹矢)을 증산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나무 화살은 화살대(矢軸)의 재료에 이대(矢竹)를 사용하며, 장인들이 숙련된 솜씨로 정성껏 제조한다.

하지만 시즈코에게 화살은 '예술품'이 아니라 '소모품'이라는 인식이었다. 따라서 장인을 데려다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부품을 제조하여 마지막에 조립하는 공업생산 방식을 채용했다.


화살촉(矢尻), 화살대, 화살깃, 오늬(筈)를 규격에 따라 제조하여, 마지막에 조립하고 검품하여 출하한다.

시즈코의 반(半) 공업생산 체제는 처음에야 불량품이나 시간 손실이 많았으나, 점점 불량률이 낮아져서 지금은 장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효율좋게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대나무 화살은 지금의 배를 생산해줘. 그리고, 임시 보수를 지불할 준비도 해 줘"


"알겠습니다"


"전투의 준비도 필요하네. 가능하면 오와리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뭐 2개월 후라면 괜찮으려나"


"그리고 기술자 마을에서 레…… 렌즈가 도착했습니다. 상당히 엄중한 봉인이 되어 있어서, 내용물을 검사할 수 없었습니다"


"괜찮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바로 알 수 있는 물건이니까"


곤혹스러운 표정의 아야를 보니, 엄중한 봉인이 된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용물이 시즈코가 생각하는 대로의 물건이라면, 엄중하게 봉인한 이유는 내용물을 검사받는 것을 피하려는 것보다, 뚜껑을 열었을 때 안에 있는 것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약간 파손되기만 해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니, 장인들이 운반중의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당연했다.


"……대체, 뭘 만드신 건가요?"


"음―, 전투의 상식을 뒤엎는 물건이야. 나중에 아야 짱에게도 보여줄게"


아야의 질문에 시즈코는 어깨를 움츠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기술자 마을에서 도착한 상자를 아야에게서 받아들고 시즈코는 엄중한 봉인을 풀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시즈코의 예상대로, 크고작은 다양한 대물렌즈와 직각 프리즘이 들어 있었다.


(겨우…… 겨우 만들 수 있겠네. 쌍안경과 필드 스코프)


유리 제조를 한 최대의 목적, 그것은 쌍안경과 필드 스코프의 두 가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후추 재배와 합쳐 시즈코는 대량의 자산을 투입하여 대물 렌즈의 완성을 서둘렀다.

유리 연마기가 없는 이상, 렌즈나 프리즘의 완성도는 장인들의 실력에 달리게 된다. 단기간에 장인들에게 유리 제조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질타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겨우 끝났다.


(좋아, 조립하자)


대물렌즈가 들어있는 상자를 손에 들고, 시즈코는 대적(大敵)인 먼지를 제거한 후, 물건을 놔두지 않은 방으로 이동했다.

먼지의 대부분은 의류나 이불, 카펫 등의 면 먼지이다. 발생원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 남은 건 공기의 대류를 만들어, 가능한 한 먼지를 불어내도록 하면 먼지는 쌓이지 않는다.

몸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방에 들어가서 렌즈와 프리즘을 조립했다.


(이번의 대물렌즈는 대형이지만, 기회가 있으면 소형의 대물렌즈를 만들어서 현미경도 만들까)


소형의 대물렌즈가 있으면, 시즈코의 시대에 보급되어 있는 페이퍼 크래프트(papercraft) 현미경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9할이 종이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렌즈만 필요한 극히 심플한 설계이다.

게다가 렌즈도 정밀기계로 제조한 정밀 커브 글래스 렌즈가 아니라, 보통의 구면렌즈로 문제없다. 종이의 모양을 바꾸기만 하면 명시야(明視野) 현미경이나 형광(蛍光) 현미경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

개발도상국에서도, 거의 공짜로 만들 수 있는 역병검출도구로서, 또 현미경으로 간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교육도구로서, 페이퍼 크래프트 현미경은 대단히 우수한 성능을 가진다.


(페이퍼 크래프트 현미경의 렌즈를 만드는 게 문제려나. 그 후에는 질병이라던가 그럴 때밖에 필요없지. 애초에 나는 의학에 관련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게 아니고…… 장래에 누군가가 필요할 때 쓸 정도려나)


문제점이 있다고 하면, 대물렌즈가 작아진다는 점이다. 현미경에 사용하는 크기의 렌즈라도, 연마에는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핀셋으로 집을 정도의 렌즈 제조는 불가능에 가깝다.

사용 빈도를 생각하면 페이퍼 크래프트 현미경보다, 구조가 심플한 광학 현미경 쪽이 현실적이다.


(뭐, 장래의 과제로 삼자. 현미경만 있어봤자 쓸 데가 없으니까)


현미경은 장래의 과제로 결론지은 후, 시즈코는 쌍안경의 조립에 집중했다. 얼핏 단순하고 간단할 것 같은 작업이지만, 쌍안경의 조립은 신경을 소모한다.

특히 정립(正立) 프리즘은 2, 3개의 직각 프리즘을, 정확히 90도씩 비틀어 조립할 필요가 있다.

이 각도에 실패하면, 정확히 정립하지 않고 사물이 기울어 보이는 '쓰러짐(倒れ)'이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시즈코는 조립한 후 체크하여, 실패했다면 분해, 조정, 재조립을 했다. 결국, 쌍안경 3개와 필드 스코프 2개를 만드는 데 십수회의 조정을 했다.

완성된 것은 노부나가용의 6배율 30구경과 8배율 42구경 쌍안경, 30배와 60배의 필드 스코프, 그리고 자신을 위한 7배율 50구경 쌍안경 등 도합 5개였다.


필드 스코프는 별명이 지상 망원경이라고 하여, 정립 프리즘을 포함하고 있는것이 천체 망원경과의 큰 차이점이다.

쌍안경와 필드 스코프의 차이는 주로 사용 용도이다.

필드 스코프는 측량이나 지형 파악, 정점(定点)에서의 적군 감시 등에 쓰인다. 반면 쌍안경은 전장에서의 전개 확인이나 상황 확인 등에 쓰인다.

시즈코는 자신을 위한 7배율 쌍안경을 들고는, 미세 조정하면서 성능을 확인했다.


(조금 무겁지만, 성능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네. 다음은 필드 스코프의 성능을 확인하자)


핀트를 맞추는 손잡이를 조정하면서 시즈코는 필드 스코프로 주위를 확인했다. 하나같이 요구 성능을 만족시키고 있었기에, 최종 확인은 문제없다는 결론을 냈다.

다만 쌍안경도 필드 스코프도 20개를 만들 수 있는 숫자의 렌즈가 있는데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5개라는 점은, 아직 작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자, 이걸로 오니마루쿠니츠나(鬼丸国綱)을 받을 수 있겠지. 이제 곧 아네가와(姉川) 전투가 시작될테니, 얼른 영주님께 편지를 쓰자"


쌍안경, 필드 스코프의 렌즈 부분에 나무 뚜껑을 씌운 후, 시즈코는 편지를 쓰기 위해 책상으로 갔다.

편지는 노부나가의 호기심이 자극될 내용을 썼다. 전투가 가까워진 것을 이유로 시찰을 나중으로 미루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반(反) 시즈코 파를 침묵시키고 장인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노부나가가 쌍안경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편지를 받아든 노부나가는 글 내용에서 시즈코의 의도를 알아채고, 가신들을 데리고 그녀가 있는 곳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전투의 상식을 뒤엎는다, 라는 이야기였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물었다.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여, 오늘까지 기다리시게 한 것을 깊이 사죄드립니다"


"후훗, 괜찮다. 그럼 그 전에 건네두도록 하지. 가져오거라!"


노부나가의 일갈에 소성이 화려하게 꾸며진 나무 상자를 들고 왔다. 소성이 상자를 열자, 안에는 한 자루의 칼이 들어 있었다. 칼을 소성에게서 받아들고, 노부나가는 그대로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약속했던 오니마루쿠니츠나다. 받아라"


"어, 하지만 아직……"


"상관없다. 네가 자신을 가지고 내놓는 것이다. 그에 걸맞는 물건이겠지. 아니면 너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없는 것이냐?"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받는 데 아무 문제도 없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고 노부나가는 재촉하듯이 다시 칼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시즈코는 오니마루쿠니츠나를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럼, 물건을 볼까"


"예, 이쪽입니다"


칼을 아야에게 맡긴 후,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지정된 장소로 안내했다. 그곳은 적당한 넓이에, 간소한 망루(櫓)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영주님, 저쪽에 팻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어, 보이는구나. 무엇이 쓰여 있는지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시즈코나 노부나가에게서 500m 가까이 떨어진 장소에 작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물론, 너무 멀어서 팻말에 무엇이 쓰여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통 같은 것이, 이번의 주역이라는 것이냐"


"혜안이 놀라우십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우선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제가 시범을 보이겠습니다"


시즈코는 렌즈 커버의 뚜껑을 벗긴 후, 핀트를 맞추고 팻말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 노부나가들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시즈코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기묘한 표정인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이 옆에서 보기에는 통을 들여다보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약간 창피한 생각도 들었으나, 시즈코는 핀트 조정을 완료했다.


"……괜찮습니다. 영주님, 이쪽을 들여다봐 주십시오"


"음"


시즈코의 지시에 따라 노부나가는 필드 스코프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얼굴을 들어올려 놀란 표정으로 팻말을 응시했다.

팻말을 보다가 필드 스코프를 들여다보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한 후, 노부나가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시즈코……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듣겠다. 요시나리, 너도 보아라. 확실히 이것은 전투의 상식이 뒤집어진다"


"옛"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모리 요시나리도 필드 스코프를 들어다보았다.. 그도 노부나가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필드 스코프에서 얼굴을 떼어 팻말을 응시한 후, 다시 필드 스코프를 들여다보는 동작을 반복했다.


"용도는 다릅니다만, 쌍안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쪽도 확인해 주십시오"


시즈코는 준비해놓은 8배율의 쌍안경을 노부나가에게 건넸다. 필드 스코프 때 익숙해졌는지, 노부나가는 그다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쌍안경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이 동그란 부분으로 보이는 방식이 변하는구나. 딱 맞아떨어지면 흐릿하던 세계가 깨끗하게 보이게 되는군. 요시나리,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화, 확실히 이것은 전투의 상식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저렇게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가지 않아도 볼 수 있게 되면, 적에 대한 감시 체제가 크게 바뀌게 됩니다"


"그렇지. 망루가 있는 걸 보니, 저것에도 이 검은 통을 준비해 놓은 것이렷다?"


"예. 저 망루는 약 33척(대략 10m)의 높이입니다. 한 가지만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결코 햇님(태양)을 바라보지 말아 주십시오. 눈이 상하게 됩니다"


시즈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노부나가는 망루에 올랐다. 거기에서 30배의 필드 스코프를 들여다본 후, 뭔가 즐거운 듯한 웃음을 띠었다.


"확실히 이건 전투의 상식이 변한다. 시즈코, 이것을 만드는 것은 어려우냐?"


"이론만 알고 있다면 그 후에는 실제로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에서는 아무도 습득하지 않은 기술입니다. 이제부터 설령 습득한다고 해도 1년은 걸리겠죠. 게다가, 이것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한 소재가 바다에서밖에 나지 않습니다"


유리 제조에서 투명도를 올릭시 위해 소다회(ソーダ灰)가 필요해진다. 게다가 연마제는 금강사(金剛砂, 가넷(garnet) 분말)인 등, 다종다양한 소재를 모아서 처음으로 투명도가 높은 유리가 완성된다.


게다가 현대라면 유리 연마는 기계로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기계가 없는 전국시대에서는 장인들이 연마 솜씨를 갈고닦을 수밖에 없다.

매일 자나깨나 유리에 대해 생각하고, 천을 넘는 유리의 연마 훈련을 하여 간신히 기술이 몸에 붙는 것이다.

물론 그만한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있는 재력이 필요해지지만, 그것은 자금력을 가진 시즈코가 담당했다.


"과연, 즉 그렇게 간단히 손에 들어오는 물건은 아닌 것이구나"


"예"


필드 스코프가 50배율인 경우, 1000m 저편의 사물을 보게 되면 20m까지 다가가서 육안으로 보는 것과 거의 같아진다.

이것은 1000m나 떨어져서 진지(陣幕)를 감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중량은 늘어나지만, 배율을 높이면 더 멀리서 감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통은 이런 정보를 전하기 위해 이동해야 하게 되지만 필드 스코프가 있으면 그것도 필요없다.

적의 진군을 알리는 깃발을 흔들고, 그것을 다른 감시원이 다시 깃발을 흔드는 식으로 깃발 통신을 하면 순식간에 전해진다. 정보의 전달이 재빠르게 이루어진다, 적에게 있어 이만한 위협은 달리 없다.


"시즈코, 이 렌즈인가 하는 것의 성능을 높여라. 이것은 이후, 바다 위에서도 쓸 수 있을테니 말이다. 더욱 좋은 것을 만들어둬서 나쁠 일은 없겠지"


"알겠사옵니다"


노부나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시즈코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약간 목소리의 톤을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다른 이야기다만, 연말에 맛있는 것을 먹었다고 키묘마루(奇妙丸)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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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