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겐키(元亀) 원년(元年), 제 1차 오다(織田) 포위망
063 1570년 1월 상순
매년, 설날(元旦) 다음 날에 열리는 노부나가 주최의 주연(酒宴)에 시즈코는 평소와 같이 참가했다.
올해는 지난 해와 달리 노부나가에게 '새해 선물'을 올린 시즈코였으나, 이것은 창고 안에 잠자고 있는 군수품을 노부나가에게 헌상하는 것과 창고 정리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물론, 노부나가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창고를 싹 비울 기세로, 모리 요시나리(森可成),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사쿠마 노부모리(佐久間信盛), 키노시타 토우키치로 히데요시(木下藤吉郎秀吉),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삿사 나리마사(佐々成政) 등 중진들에게도 선물을 보냈다.
시즈코에게는 모르는 새 쌓여 있던 것들을 방출하여 창고정리를 한 정도의 인식이었으나, 말단의 가신들에게는 작은 나라 수준의 군사 행동이 가능한 인물로 보였다.
게다가 누구나 두려워하는 노부나가에 대해 지극히 자연스럽게 대하며, 중진들과 하나같이 우호 관계가 있는 인물이라고 하면, 신규 가입한 가신들에게는 굉장한 인물로 보여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작년보다 더욱 주목을 끌어모으며 이런저런 인물들로부터 인사받는 입장이 된 시즈코였으나, 그 상황에 그녀는 학을 떼고 있었다.
표면상으로는 생글거리는 미소로 대응하면서도, 인사해 오는 인물들의 야망에 위장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붙어 위를 노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꾸밈 없는 속내였다.
사람이 올 때마다 위가 욱신거리는 그녀를 배려했는지, 모리 요시나리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여 가신들을 쫓아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평온한 주연을 만끽하고 있었던 시즈코였으나, 노부나가가 손짓으로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평온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르셨습니까, 영주님"
"아까 니와와 다도회에서 쓸 만한 말이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네……? 다도회…… 말씀이십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종이와 먹은 이미 준비해 두었느니라"
(그쪽의 걱정이 아닌데요…… 라는 말은 못 하겠지……)
시즈코의 대답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던 것처럼, 노부나가는 그녀의 앞에 종이와 먹을 준비했다. 포기한 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종이에 어떤 사자숙어를 썼다.
"일기(一期)……일회(一会)?"
그것은 다도의 정신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인 '일기일회'였다.
센노 리큐(千利休)가 남긴 말이라고 하지만 본인이 직접 쓴 것은 없다. 그의 제자인 야마노우에 소우지(山上宗二)의 저서에 리큐의 말로 등장할 뿐이다.
의미는 일기가 불교 용어의 일생(一生)을 가리키는 말이며, 인생에서 단 한번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성의를 다 하는 마음가짐을 가리킨다.
참고로 '일기일회'라는 사자숙어로서 널리 알린 것은, 에도(江戸) 시대 말기의 히코네(彦根) 번주(藩主)이자 에도 막부의 대로(大老, ※역주: 에도 막부의 관직으로, 쇼군을 보좌하는 가장 높은 직위)도 맡았던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이다.
(뭐, 센노 리큐, 이마이 소우큐(今井宗久), 츠다 소우규(津田宗及) 등 천하삼종사(天下三宗匠)가 있는 시대에 내 말 따윈 금방 잊혀질 거야)
아직 살아있는 인물의 말을 쓰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했으나, 이 이상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어, 라고 그녀는 자신을 설득했다.
"일기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기간이라는 의미. 일회란 주로 법요(法要) 등에서 하나의 모임이나 회합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같은 곳에 머무르는 일은 없습니다. 다도회에 임할 때, 이 사람과의 다도회는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성의를 다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일기일회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한동안 시즈코가 쓴 글자를 보고 있던 노부나가였으나, 갑자기 부드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세상만사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이라는 것이냐. 재미있구나, 당장 다도실에 교훈으로서 걸어놓지"
"네, 네에…… (괜찮으려나, 아무래도 이건…… 뭐 말해봤자 소용없나)"
노부나가는 명물사냥이라고 야유받을 정도로, 군사력과 재력을 배경으로 다기를 매집하고 있었다.
그 행위가 야만인이라고 뒷말을 듣고 있기에, 다기를 매집하기만 하는 야만인이 아닌 다도에 정통한 문화적인 말을 하는 문화인이다, 라고 주위에 알리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성 하나에 맞먹는 가치까지 올라가는 다기이지만, 시즈코가 볼 때는 씻지 않은 불결한 그릇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부터 다기는 새로운 은상(恩賞), 다도는 정치에 깊게 관여하며 권력의 연출 장치가 된다.
그런 다도에 얽혀봤자 좋을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시즈코는 가능한 한 다도에는 관여하지 말자고 정했다.
(문득 생각이 났는데 다기는 씻고 있으려나. 아니 안 씻을까)
현대에서 다도의 체험입학을 해본 시즈코였지만, 예의범절, 매너, 차 끓이는 법, 기타 이런저런 규칙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예의범절이나 매너는 중요한 것이라고 이해는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차를 즐긴다기보다 예의범절의 발표회라는 느낌을 받아버린 것이다.
결국, 다도는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그녀는 다도의 사상이나 철학만을 배우기로 했다.
그 이후 노부나가에게 얽히는 일은 없었고, 주위에 사교적 미소를 뿌리면서 시즈코는 주연을 마쳤다.
새해 벽두부터 정신적으로 피곤해진 그녀는 돌아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주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귀로에 올랐다.
하지만 출발 직전, 그녀는 노부나가의 소성에 의해 멈춰세워졌다.
"영주님께서 시즈코님에게 내리시는 상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말과 함께 소성은 장방형의 나무 상자를 시즈코에게 내밀었다. 내용물이 뭔가 확인하기보다 집에 돌아가서 수면을 취하는 쪽을 우선시한 시즈코는, 딱히 아무 말도 없이 나무 상자를 받아들고 귀가했다.
다음 날, 피로가 풀린 시즈코는 나무 상자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져, 조용히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오래 사용되어 군데군데 지저분해져 있는 한 자루의 화승총이 들어 있었다.
정비가 필요하다고 느낀 시즈코는, 아야에게 천과 물, 끓는 물, 그리고 가느다란 막대기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화승총의 분해는 할 수 있지만, 방아쇠 구조는 특주품이니까 주의해야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군용으로 쓰이는 무구류는 구조가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단순한 구조 쪽이 유지관리를 하기 쉽기 때문이다. 화승총도 예외는 아니라 부품 수가 적고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다.
우선 총신(銃身, 배럴)과 총상(銃床, 개머리판), 그리고 가장 주의해야 할 브리치 플러그(breech plug)를 분리한다.
주의하는 이유는 화승총 안에 화약이 눌러붙어, 찌꺼기가 나사산에 끼어 굳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블리치 플러그는 굳어있지 않았고, 방아쇠의 구조도 단순했기 때문에, 시즈코는 화승총의 분해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화승총의 구조는 극비 정보로 일반에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시즈코는 상세한 구조를 문헌으로 배웠고, 게다가 화승총의 분해 쇼에 몇 번이나 가본 적이 있다. 따라서 화승총의 구조는 세세한 곳까지 머리 속에 들어 있었다.
분해가 끝나면 다음은 세정이다. 흑색화약의 찌꺼기는 수용성이기 때문에 물로 닦으면 대부분 닦인다.
물로 닦이지 않은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각 부품을 수건으로 닦는다. 그게 끝나면 마지막 마무리로 뜨거운 물을 총신에 붓는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총신이 가열되어, 그 열로 수분이 증발하는 원리이다.
도중부터 조마조마해하며 보고 있는 아야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시즈코였으나, 그녀도 '전장식 총은 뜨거운 물로 닦는다'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놀랐기에 그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꽤나 지저분하네…… 응, 이걸로 깨끗해졌어"
세정에 쓴 물이나 뜨거운 물이 탁해진 걸 보니, 유지관리를 게을리했던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아, 맞다. 아야 짱, 동백기름(椿油)을 가져다 줄래?"
"동백기름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유채 기름(菜種油)과 마찬가지로, 식물 기름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시즈코는 그 밖에도 콩, 참깨, 해바라기, 땅콩, 쌀겨, 홍화(紅花), 동백기름을 제조했다.
하지만 콩은 군수품, 참깨는 경작지에 비해 수확량이 미미했고, 쌀겨는 겨에서 채취할 수 잇는 기름의 양이 적었다.
그에 반해 해바라기는 풋거름(緑肥) 용으로 육성, 땅콩은 노부나가에게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고, 홍화나 동백나무는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 때문에, 기름용의 가공품으로서 대량으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었다.
해바라기나 땅콩과 달리, 일본에서 홍화나 동백나무가 이용된 역사는 오래 되었다.
특히 동백나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가집(歌集)인 '만요슈(万葉集)'에서도 노래되며, 옛부터 아름다운 꽃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동백나무 목재는 가구, 장식품, 공예품, 땔감용. 나뭇재(木灰)는 주조(酒造)나 염색(草木染め), 열매에서 얻을 수 있는 기름은 최고급의 튀김기름, 화장품, 의료용 재료로서 중히 여겨져 왔다.
특히 동백기름은 카마쿠라(鎌倉) 시대에 확립된 채소 요리(精進料理)에 튀김기름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되었다.
시즈코가 동백기름의 준비를 부탁한 이유는, 동백기름이 녹방지용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에도 시대에 식칼의 손질용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현대에서도 도검이나 식칼, 조각도의 손질용으로 쓰이고 있다.
게다가 동백기름은 머리카락의 케어에도 쓰인다. 전국시대, 길고 윤기있는 검은머리는 미모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한 헤어케어에 동백기름은 중히 여겨졌다.
잠시 후 돌아온 아야에게서 동백기름을 건네받은 시즈코는, 솔을 사용하여 총신 표면에 얇게 발랐다.
"표면에 바른 정도지만, 이걸로 당분간은 괜찮으려나―"
화승총에는 탄소를 거의 포함하지 않은 연철이 쓰이고 있다. 따라서 동백기름을 바를 필요성은 거의 없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 시즈코가 동백기름을 바른 이유는, 만약을 대비해 녹방지용의 기름을 발라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아……"
"하지만 양이 적네. 좀 더 동백나무를 늘리면 기름을 많이 얻을 수 있는데, 어째서 다들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시즈코 님이 아니라면, 신성목(神聖木)인 동백나무에 대해 그렇게 호쾌한 짓은 할 수 없습니다"
동백나무는 영력이 깃든 성스러운 나무, 신성목으로서 옛부터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었다.
다만 영력을 1mm도 믿지 않는 시즈코는, 언제나처럼 동백나무에서 삽목(挿し木, ※역주: 꺾꽂이에 쓰는 나무)이 되는 부분을 잘라냈다.
물론, 그녀가 삽목을 채취한 동백나무는 신성목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흔한 보통의 동백나무였다.
그래도 몇 사람이 말렸기에, 채취한 삽목의 숫자는 예정의 절반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실생(実生, ※역주: 씨앗부터 자라는 것)의 경우 개화까지 수 년, 길면 10년 정도 걸린다. 그에 비해 꺾꽂이를 하면 1년에서 2년 만에 개화하는 경우가 많다.
시즈코는 동백꽃의 품종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암꽃술을 가진 결실용(結実用)의 동백나무를 늘리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동백나무를 씨앗부터 키우는 것에 대한 메리트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동백나무는 타가수분(他家受粉)으로 열매를 맺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열매를 맺게 하려면 인공수분을 시켜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품종개량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렇게 신경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야. 동백나무가 늘어나면, 동백기름이 늘어나서 다들 만만세?"
"제겐 무리입니다"
"으―음, 뭐 괜찮으려나. 그리고, 동백나무 잎과 찻잎을 비비면(揉捻) 동백차(椿茶)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쪽 준비도 해 둬야겠네"
"현재 동백나무 관리에 그다지 사람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잎을 수확할 때는 인부를 고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우선은 동백기름을 만드는 장인은 늘릴까"
동백기름을 채취하려면 꽃이 떨어진 후에 열리는 열매에서 씨앗을 채취하여 천일(天日) 건조한 후에 찌고, 이것을 '각동(角胴)'이라고 불리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인력압착기에 넣고 짜낸다. 게다가 장기간의 보존에 견딜 수 있도록 기름을 고온으로 끓이고, 천으로 대강 한 번 거른 후 화지(和紙)로 제대로 걸러서 간신히 투명한 황금색의 동백기름을 얻을 수 있다. 수율은 원료인 씨앗 10kg에 대해 한 되(升) 반(약 2.7리터)로 비교적 양호했다.
부산물로 얻을 수 잇는 동백기름 찌꺼기는, 천일 건조 후에 비료로 배포했다.
정제된 동백기름의 태반은 노히메들이 사들였다. 가끔 출입하는 상인들이 사들인다는 얘기였는데, 어디로 팔러 가는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시즈코에게 남는 양은 얼마 안 되지만, 개인 소비를 생각하면 충분한 양이기에 그녀는 그걸로 만족하고 있었다.
줄이려고 하고 있는 돈이 거꾸로 늘어나는 것을 모른 척 한다면, 이지만.
또 동백나무와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벌꿀과 밀랍 채취는 특수한 기구가 완성되어 효율이 올라갔다.
그것은 스크류를 회전시키며 압력을 가하는 압축제랍기(圧縮製蝋器)이다.
벌꿀은 회수한 벌통의 벌집에 칼집을 넣으면 중력에 의해 떨어지지만, 그걸로 전부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남은 것을 짜낼 필요가 있다.
밀랍도 끓인 물에 녹인 후, 목면 자루에 넣어 짤 필요가 있다. 벌꿀고 밀랍도 짜내는 방법은 인력 뿐만 아니라 고생스럽기 때문에 시즈코는 압축제랍기의 제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압축제랍기는 벌꿀 채취와 밀랍 채취 양쪽에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만 스크류 기술이, 화승총에 쓰이고 있는 군사기술이기 때문에 금속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즈코는 금속보다 강도는 떨어지지만, 공구만 있으면 간단히 양산할 수 있는 목제 볼트와 너트를 제조했다.
이점은 재료가 금속보다 입수하기 쉽고, 다이스, 밑마무리탭(下仕上げタップ, ※역주: 용어가 검색되지 않아 직역함), 마무리 탭(仕上げタップ)이라고 불리는 공구를 쓰면 크기를 통일해서 제조하기 쉬운 점이다.
금속보다 굵은 둥근 봉을 사용하지만, 선반을 쓰면 굵기의 조정은 쉬웠다.
금속의 스크류 제조를 금지한 노부나가도, 이러한 꼼수로 대응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하지만 바로 기분을 다잡고, 목제 복트와 너트의 이용가치의 연구에 착수했다.
벌꿀이나 밀랍용으로 압착기를 제조하여 효율을 올린 이유는, 단순히 두 가지 물건의 수요가 높은 점이었다.
벌꿀은 말할 필요도 없이 찬합(重箱)식 벌통이 없으면 채취하기 어려운 고급품이다.
그리고 밀랍은 일본 벌꿀을 유도하는 금릉변(金稜辺)과 함께 사용되거나, 왁스로서 사용되거나, 식물 기름을 섞어서 립이나 핸드크림, 양초로서 사용되는 등 활용 방법은 많다.
특히 식물 기름과 밀랍을 섞은 양초는 그을음이 적고 부드러운 빛을 내는 이점 덕분에 대인기 상품이었다.
압축제랍기는 구조를 응용하면, 유채 씨앗(菜種)이나 땅콩 등의 함유량이 높은 식물에서 유지(油脂)를 짜내는 압착기에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식물 기름은 벌꿀이나 밀랍에 비해 많은 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번에 많이 짜낼 수 있는 수차동력식의 대형 압착기가 제조되었다.
"그러고보니 케이지 씨가 없는데, 어디 나갔어?"
"예년과 마찬가지로, 창고에서 이것저것 꺼내서 본가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반 개월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케이지가 창고에서 꺼내간 것의 목록을 시즈코에게 내밀며 아야가 말했다.
목록을 받아든 시즈코는 대충 훑어보았다. 여전히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을 가지고 갔네, 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뭐, 설날이니까"
"반 개월은 설날을 크게 지난 것 같습니다만……"
"딱히 신경쓸 것 없어. 어차피 이제 곧 바빠질테니, 이 틈에 휴식을 취해두는 것은 중요해"
마치 확정 사항인 것처럼 말하는 시즈코에게 아야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아야는 그 이상 깊게 추궁하지는 않았다. 막연하나마 시즈코에게서 깊이 캐묻는 것을 거절하는 의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의 없는 상황에 아야는 동요해버렸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물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아니, 분명히 정보망에서 뭔가 들으신 것 뿐…… 그것 뿐일 거에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 아야였으나, 불안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1월 23일, 노부나가는 요시아키(義昭)에게 궁중 법도(殿中御掟)의 추가 5개 조항을 승인하게 했다.
이것은 지난 해에 승인하게 한 궁중 법도 9개 조항(에이로쿠(永禄) 12년 1월 14일)과 궁중 법도 추가 7개 조항(에이로쿠 12년 1월 16일)보다 훨씬 엄격한 쇼군의 권력, 정치권한 규정이었다.
특히 중요시된 것이 4번째 조항인 '천하의 거동, 무엇이던 노부나가에게 맡겨졌으니, 누구에게도 의하지 않고, 상의(上意)를 구할 것 없이, 분별에 따라 행할 것"이다.
의미는 "천하의 정치에 대해 쇼군은 노부나가에 맡겼으므로, 노부나가는 누군가를 따를 필요는 없고, 또 쇼군의 뜻을 아우를 필요도 없이, 노부나가 자신의 판단으로 행할 수 있다"이다.
합계 21개 조항의 궁중 법도는 노부나가와 요시아키의 불화를 드러나게 했다. 하지만 양자의 사이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대립이 결정적이 된 것은, 겐키(元亀) 연간(에이로쿠 13년 4월 23일)에 들어선 후였다. 그 때까지 노부나가와 요시아키 사이에 불온한 분위기는 있었으나, 표면적으로는 온화한 상황이었다.
2월에 들어서자 시즈코의 상황이 좀 변했다.
먼저 시즈코의 상관은 모리 요시나리이지만, 군속은 제 5군의 임시 소속이며, 4천 명의 병사가 추가로 내려졌다.
케이지와 사이조는 시즈코의 호위대라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들도 군속은 제 5군이 되었다.
나가요시는 작년의 이세(伊勢) 침공에서, 약관 11세임에도 훌륭한 활약을 한 것에 대한 상으로서, 1월 말에 성인식의 허가가 내려졌고, 게다가 노부나가로부터 이름 한 글자를 하사받아 '모리 카츠조 나가요시(森勝蔵長可)'라는 이름을 쓰는 것을 허락받았다.
군속은 아버지인 모리 요시나리가 있는 제 3군이 아니라, 제 5군 시즈코 대의 부대장이 되었다.
시즈코는 케이지, 사이조, 나가요시에게 각각 천 명의 병사를 주고, 남은 천 명과 쿠로쿠와(黒鍬) 부대의 5백 명을 자신의 휘하에 넣었다.
게다가 활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컴파운드 보우를 장비한 궁기병대(弓騎兵隊)를 결성했다. 단, 궁기병대의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겨우 30명이었다.
제 5군은 수송임무가 없는 시기에, 다른 군과 달리 오와리(尾張), 미노(美濃)에 있는 모든 길이란 길에 매커덤 포장의 정비 공사를 맡았다.
기술자 마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원이 투입되어, 오와리, 미노의 길들이 매커덤 포장으로 정비되었다.
급피치로 도로 정비를 한 덕분에, 노부나가가 제창한 평시(平時), 군사(軍事)의 물류 관리 시스템은 예정보다 조금 빨리 가동하기 시작했다.
말의 수요에 대해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노부나가는 말로 끄는 치중차(輜重車)와 인력으로 끄는 치중차 두 가지를 준비하고, 나아가 화물선으로 물자를 운반하는 하천 루트를 구축했다.
말로 끄는 치중차는 최대 적재량이 인력보다 많고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길지만, 운반비가 높아서 간단히 치중차를 늘릴 수 없다.
인력의 치중차는 말보다 이동 속도가 늦고 이동 거리도 짧지만, 가격이 싸서 치중차를 쉽게 늘릴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
하천 루트는 한 번에 운반할 수 있는 양이 가장 많지만, 운반 루트가 강의 흐름에 좌우되고, 날씨가 나쁜 날에는 운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각각 일장일단은 있으나, 상인들은 화물에 맞춰 사용하는 운반 방법을 선택했다.
치안 유지에 관해서는 엄격하게 대응했다. 치중차를 써도 치안이 나쁘면 상인의 신용은 얻을 수 없다. 신용을 얻지 못하면, 돈이 오와리, 미노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도적은 이유를 불문하고 최저 금고형, 경우에 따라서는 참수되는 경우도 있었다.
금고형도 취급은 심해서, 간신히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을 강요받는다. 이것은 말을 듣지 않은 아이를 때려서 말을 듣게 하는 방법에 가까웠다.
고생하고 싶지 않으면 도적질이나 산적질을 하지 말고 노부나가가 정한 법률을 지키라는 것이다.
도적이 구축되고 치안이 향상되며, 오와리, 미노에 있는 길들이 매커덤 포장으로 정비되어 갔다. 도로 포장이 끝나면 그 지역은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지역이 부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다 가문을 둘러싼 불온한 분위기는, 그들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갈수록 강해져 갔다.
여전히 그녀의 후각은 비정상적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즈코였다.
"남만의 과일은 단 것이 많구나"
수확된 귤의 시식을 마친 노히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감상을 말했다.
가을에서 겨울 초순에 걸쳐 수확되는 귤을 2월에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귤의 과실은 나무에 늦게까지 열리게 해 두면 단맛이 증가하고 신맛이 적어져 굉장히 맛있어진다.
극조생온주(極早生温州) 귤처럼 신맛의 감소가 빠르고 단맛이 거의 증가하지 않는 예외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늦게까지 열리게 두면 맛있어지는 품종은 많다.
하지만 동백새나 직박구리의 먹이가 되기 쉽고, 또 늦게까지 과실을 열리게 두면 내년의 착화(着花) 숫자가 적어지는 결점이 있다.
이것을 회피하기 위해, 시즈코는 바깥쪽이나 윗쪽에 있는 귤을 12월 초순의 수확시기에 수확하고, 나무의 안쪽에 있는 귤에는 새에 먹히지 않도록 자루를 씌워두었다.
"과실을 맺는 나무가 한 그루라니 쓸쓸하구나"
"어머나, 뻔뻔하시군요 노히메 님. 시즈코가 귤 나무를 늘리기 위해 이곳저곳에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은 잘 아실 텐데요"
마츠의 지적대로, 시즈코는 귤과 레몬, 그리고 유자 나무를 늘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귤이나 레몬, 유자 등의 감귤 품종을 늘리기 위해서는 접붙이기가 제일 좋다고 한다.
꺾꽂이는 뿌리를 내리는 비율이 낮고, 씨앗부터 재배할 경우에는 열매를 맺기까지 10년 이상이라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에 반해 접붙이기는 접본(台木)에 쓰이는 탱자나무를 입수하기 쉽고, 또 감귤 품종과 활착(活着), 친화성이 높다. 그리고 빠르면 3년, 늦어도 7년 정도면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다.
"오늘의 차과자는 메밀과자(そばぼうろ)인가"
메밀과자의 '보우로(ぼうろ)'는 포르투갈어로 '케이크'를 의미하는 '볼로(bolo)'가 어원이다.
일반적으로는 가볍게 씹히고 입 속에서 사라락 녹는 식감이 특징이지만, 개중에는 카스테라처럼 구워낸 것도 존재한다.
모양도 둥근 것에서 납작한 것, 전병처럼 큰 것이나 작은 것 등 다양했다.
여담이지만 '메밀과자'는 메이지(明治) 말기, 교토의 '카와미치야(河道屋)'라는 메밀국수 가게에서, 보우로의 재료에 메밀가루를 넣어 매실 모양으로 구운 것이 시작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마루보우로(丸ぼうろ)'는 사가(佐賀) 시의 명과이다.
"요즘은 어떠신가요?"
"미츠오와 아시미츠가 고로에게 요리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아직 미츠오의 수준에는 달하지 못했느니라"
"하아…… 그런가요"
"농담이니라. 단적으로 말하면, 좋은 상황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시즈코가 물은 내용은 오다 가문을 둘러싼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파악하기 쉬운 노히메가 '좋은 상황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의미를 시즈코는 진절머리날 정도로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역사의 큰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걸까)
1570년에 일어나는 역사적 사건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의 동맹 파기, 아네가와(姉川) 전투, 그리고 혼간지(本願寺) 법주(法主) 켄뇨(顕如)의 봉기에서 시작되는 시가(志賀)의 진(陣, ※역주: '공방전' 쯤으로 볼 수 있을 듯)이다.
특히 시가의 진의 초반에 일어나는 사카모토(坂本) 전투가 문제였다.
이 싸움에서 노부나가의 오른팔인 모리 요시나리(森可成), 아오치 시게츠나(青地茂綱), 노부나가의 동생인 노부하루(信治) 등 세 명이 전사한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혼간지가 봉기한 것으로, 나가시마(長島) 잇코잇키(一向一揆)가 발생하여 코키에(小木江) 성을 포함하는 오와리의 성들 몇 군데가 공격받는다. 이 싸움에서 코키에 성을 지키던 노부나가의 동생, 노부오키(信興)는 분전한 끝에 자결했다.
노부오키는 노부나가로부터의 신임이 두터운 동생으로, 그가 죽음을 당하자 노부나가는 잇코잇키 무리에 대해 강한 증오를 가지게 되어 일체 용서하지 않게 되었다고도 한다.
(코키에 성의 개수 공사는 만전, 하지만 이시야마(石山) 혼간지가 봉기하지 않으면 일이 까다로워지지. 이럴 때 여자는 불편하네―. 무공이 없으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까)
사전에 준비를 하는 것은 남녀에 관계없이 할 수 있지만, 역시 전장에서는 여자의 취급은 낮아진다.
무장을 설득하려면, 역시 마찬가지로 무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설득은 어렵다.
(슬슬 피할 수 없으려나. 분명히…… 사카모토 전투가 결단해야 할 날이 될 거라 생각해)
무장들과 원활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무공을 올린다. 그것은 인생으로서의 선택, 되돌아갈 수 없는 중요한 결정을 시즈코가 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인부를 모집하기 쉬운 농한기,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시즈코는 오와리 각지에서 개간을 하고 있었다.
오와리는 산간지역이 적은 비옥한 대지였으나, 오랜 세월에 걸친 난세의 영향으로 황폐화된 마을은 많고, 또 개간되지 않은 지역도 많이 남아 있었다.
노부나가는 지금 이상으로 오와리의 세수(税収)를 늘리기 위해, 황폐화된 촌락의 부활이나 황무지를 개간하는 경지 면적의 확장 계획을 세웠다.
한 마디로 개간이라고 해도 인력, 축력(畜力), 기계 개간의 세 종류가 있다.
현대라면 불도저 등의 대형 중장비에 의한 기계 개간을 하여 단기간에 용지의 개척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전국 시대에 대형 중장비 같은 것이 존재할 리도 없으니, 인력이나 축력 중 어느 한 쪽 밖에 선택지는 없다.
그래서 시즈코는 부근의 촌락에서 소나 말을 빌려오고, 인부를 다수 고용하는 것으로 작업 시간의 단축을 꾀했다.
또 3남, 4남 등 농지를 가지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촌락으로의 이주를 타진했다.
인부는 츄우겐(中間, 용병 같은 것)이나 돈을 벌러 나온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인신매매에 의한 노동 노예도 포함되어 있었다.
츄우겐은 충성심이 없고, 몸의 위험을 느끼면 바로 도망을 꾀하는 결점이 있다. 하지만 보충하기 쉽고, 이쪽의 사정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노예도 나쁘게 말하면 보충을 하기 쉽고, 이쪽의 사정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특히 전쟁이 집중되기 쉬운 농한기에는, 노예의 가격이 통상적인 2관문(약 20만 엔)에서 20문(약 2천엔)까지 급락한다.
하지만 노예의 가격이 싸더라도,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거나 할 수는 없다. 본보기 목적으로 일하지 않은 노동자를 죽이는 행위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런 짓을 하면 사람은 성장하지 않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노동 의욕이 솟지 않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 인부들이지만, 그런 그들의 노동 의욕을 올리는 방법은 대단히 간단하다.
그것은 노동에 의한 사망률의 저하, 불평불만의 개선, 열심히 일하는 자나 열심히 노력하는 자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그에 걸맞는 상을 주고, 일을 잘 해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부들의 노동 의욕을 향상시켜, 결과적으로 전체의 작업 효율이 올라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히데요시의 '키요스(清洲) 성의 돌담 건축을 3일만에 완료"했을 때의 대응이었다.
히데요시는 인부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누어 작업 장소를 분담시키고, 나아가 빠르게 작업을 끝낸 조는 빨리 끝낼수록 상을 많이 주겠다고 약속하여 서로 경쟁시켰다.
즉, 히데요시는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상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인부들의 마음을 장악하는 것으로, 보기좋게 3일 만에 공사를 완공시킨 것이다.
하지만 올바르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츄우겐이나 노예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상의 의미가 반감된다.
그래서 올바르게 평가받은 자들에 대한 포상에 관한 이야기, 부정을 저지른 자에 대한 벌칙에 관한 이야기, 시사(時事) 화제 등을 정리한 노동자용의 안내판(瓦版)을 작성하여 배포했다.
항상 노동 조건의 개선을 꾀하고 있기에 츄우겐이나 노예뜰의 노동 의욕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그들 중에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자들이 나타난다.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 사람을 이끄는 것을 잘하는 사람, 작업 효율을 올린 사람, 노동자의 불평불만의 해소가 능숙한 사람 등이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작업이 진전되지 않고 나태해지는 사람,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여 주위와 다투는 사람, 부정한 방법으로 평가받으려 하는 사람 등, 나쁜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노동 의욕은 올라가서, 당초의 예정보다 빠르게 개간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
"응, 좋은 느낌이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300만 석까지 생산력이 올라가려나"
"계산대로 되면 단위가 두 자릿수가 올라가네. 뭐, 예정대로 되지 않아도, 자릿수가 하나 올라가는 건 확정이군"
시즈코가 보고 있는 보고서를 집어든 케이지가, 주판을 튕기면서 중얼거렸다. 원래는 나가요시를 위해 가르쳤던 주판인데, 의외로 제일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 케이지였다.
그는 솜이 물을 흡수하듯, 주판이나 아라비아 숫자, 수학의 공식을 습득했다.
이미 현대 초등학생, 어쩌면 중학생이 배우는 내용까지 습득하고 있는 상태지만, 케이지는 그쯤에서 수학의 학습을 중단했다. 그 이유는, 정말 케이지다운 이유였다.
"뭐든지 조금 모르는 편이 좋은 거야. 전부 이해해 버리면, 모르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게 되니까"
그가 주판을 튕기는 모습에서 그 말을 떠올린 시즈코는 킥킥 웃었다. 재밌다는 듯 웃는 시즈코를 따라서 케이지도 웃었다. 하지만 떠올린 것은 좋은 추억뿐만은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주판에서 생각났어. 또 마에다 마타자에몬(前田又左衞門) 님을 놀린 건 아니지?"
시즈코의 지적에 케이지는 시선을 피했다.
애초에 케이지가 시즈코에게 주판을 배운 이유는, 숙부인 마에다 토시이에(利家)를 놀리기 위해서였다.
시즈코는 처음에 케이지가 토시이에를 놀리는 것이 주판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케이지가 한 것은, 토시이에가 처리할 일거리를 미리 처리해두는 것이었다. 마에다 가문의 결제는 크고작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토시이에 자신이 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부나가의 다도 담당(茶坊主)이었던 쥬아미(拾阿弥)에게 여러 번 모욕을 받고 끝내 베어죽여버린 코우가이키리(笄斬り) 사건에 의한 2년 동안의 낭인 생활에서 돈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츠로부터 '인색(吝嗇, 구두쇠라는 의미)'하다고 야유받는 토시이에였으나, 그 성격 덕분에 마에다 가문의 재정은 건전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결제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케이지가 토시이에를 놀리는 방법이었다. 그것도 서류에다가 직접 써넣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 답을 적은 별도의 종이를 첨부해 둔다는 공을 들인 것이었다.
"응…… 뭐 좋지는 않지만 포기할게"
"미안해, 시즛치. 나는 그냥 숙부님의 일을 돕고 있는 건데, 어째서인지 원망을 받거든"
"적당히 해. 그런데 요즘, 창고에 있는 청주가 줄고 있는―"
시즈코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전에 케이지가 잽싸게 몸을 돌려서 방에서 다급하게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어진 시즈코였으나, 머리로 이해하게 된 그녀는 아야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시즈코 님"
"창고의 청주를 마신 건 케이지 씨, 그리고 추측이지만 카츠조 군이라고 생각해. 뭐, 그건 아무래도 좋고, 이 서류를 영주님께 보내줘"
곁에 두고 있던 두꺼운 종이다발을 집어든 시즈코는 그것을 아야에게 내밀었다. 받아든 아야는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훑어보았다.
"조선(造船)에 관한 서류입니까?"
"농지 개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슬슬 배에 대한 것을 물으실 거라 생각해. 그래서, 이쪽에서 준비할 수 있는 정보를 정리해 뒀어"
자료는 배의 추진기인 스크류 프로펠러에 관한 정보였다.
플라스틱에 유리 섬유를 강화재로 혼합한,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의 배(FRP 선박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도 제조는 가능하다.
하지만 배를 폐기할 때에 문제가 발생한다. FRP 선박은 폐기처리나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FRP 폐선은 해체, 분쇄하여 콘크리트의 원재료로서 재이용하는 기술은 존재한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실용화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검증해보기 전에는 확증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한 문제가 있어, 시즈코는 FRP 선박의 정보 공개를 미루었다.
"알겠습니다. 영주님께 전해 올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 말대로, 아야는 며칠 내에 노부나가에게 시즈코의 서류를 전달했다. 그걸 받아든 노부나가는 즉시 쿠키(九鬼) 수군을 이끄는 쿠키 요시타카(九鬼嘉隆)에게 스크류 프로펠러의 연구를 할 것을 명령했다.
때는 조금 거슬러올라가, 추위가 몸에 스며드는 1월 하순.
이세의 운영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고 쿄나 오와리, 미노의 정무가 자리를 잡았을 무렵, 노부나가는 사키히사나 이에야스, 자신의 가신들과 함께 매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매사냥은 참매(大鷹)나 새매(灰鷹), 송골매(隼) 등의 맹금류를 훈련시켜, 조류나 토끼 등의 작은 동물을 잡게 하여 성과를 겨루는 사냥의 일종이다.
일본의 매사냥의 역사는 오래되어, 매사냥에 관련된 책이 몇 권이나 남아있다.
818년에 편찬되어 현존하는 매사낭 기술 교과서로서 두번째로 오래된 '신수응경(新修鷹経)', 아사쿠라 소우테키(朝倉宗滴)가 사육했던 참매가 번식에 성공한 세계 최초의 기록'양응기(養鷹記)', 고노에 사키히사가 집필한 매사냥의 전문적인 해설서를 겸하는 가곡집(歌集) '용산공응백수(龍山公鷹百首)' 등이 있다.
카마쿠라(鎌倉) 시대 때부터 무가에도 매사냥이 퍼졌고, 전국시대에는 영주나 무장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공가 및 공가의 수종(随身)들에 의한 매사냥도, 후에 에도 막부를 여는 이에야스가 금지할 때까지 대표적인 오락 중 하나였다.
무가가 매사냥을 하는 이유는, 매를 날리는 순간을 간파하는 것으로 전쟁터의 감을 키우고, 적진의 예비 조사를 겸한 정찰 임무를 할 수 있으며, 가신들을 수족처럼 움직이는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노부나가와 이에야스의 매사냥 에피소드를 보면, 자랑하는 매를 타인에게 뽐내고 싶은 게 제일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대건 남자들은 변함이 없는 걸까―)
1주일 정도 전에, 사키히사는 한 쌍의 참수리(大鷲)를 포획해서 가지고 돌아갔다.
표면적인 이유는 참수리의 사육과 매사냥의 훈련을 경험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본심은 순수하게 일본 최대의 맹금류인 참수리가 가지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시즈코는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부엉이(木菟)들을 훈련시켜야겠네"
시즈코가 보호한 올빼미 형제는 머리에 귀 모양의 깃털(羽角)이 있는 올빼미, 부엉이라고 분류되는 품종이었다.
아무래도 품종명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 길이를 측정해보니 형의 몸 길이가 75cm, 동생의 몸 길이가 73cm로, 부채머리 독수리의 몸 길이 105cm에 뒤떨어지지 않는 체구였다.
알맹이는 아직 제대로 사냥도 못하는 병아리였으나, 형제 모두 옅은 갈색과 짙은 갈색이 섞여 있었고, 훌륭한 귀와 날카로운 눈, 그리고 당당한 모습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올빼미는 야행성으로 진화한 맹금류로, 본래 낮 동안에는 거의 활동하지 않고 밤중에만 활동한다.
이것은 독수리나 매에게 포식당할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포식자가 없으면 낮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밤에는 자는 생활을 하는 개체도 있다.
낮에 활동할 수 있다고 해도 눈의 구조상, 햇빛이 강한 날에는 얌전히 있는 경우가 많다.
형제가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전부 똑같은 것은 아니고 세세한 부분에 차이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눈의 색깔이었다. 형은 일출, 일몰시에 적응한 오렌지색(橙色)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동생은 낮에 적응한 황색의 눈을 하고, 항상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는 형과 달리, 때때로 졸린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잡아온 작은 사슴을 쓸게"
부엉이들은 생후 2개월 정도로, 뭔가의 사정으로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것을 시즈코가 보호했다.
따라서 시즈코는 부모 새를 대신하여, 어린 부엉이들을 훈련시킬 의무가 있었다.
훈련이라고는 해도 단거리 비행 훈련, 장거리 비행 훈련, 사냥감을 붙잡는 훈련, 팔 위에 앉히는 훈련 등 기본적인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하는 훈련은, 소형의 사슴을 부엉이들에게 잡게 하는 훈련이었다. 소형이라고는 해도 들토끼나 쥐에 비하면 크기는 급수가 다르다.
하지만 두 마리에게 겁먹은 기색은 없었으며, 오히려 빨리 잡아먹게 해달라는 듯한 태도였다.
깃발을 흔들어서 사슴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슴을 놓아주도록 신호를 보냈다. 구속이 풀린 사슴은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즈코가 확인한 후, 드디어 부엉이들을 풀었다.
미리 사냥감을 정하고 있었던 듯 두 마리는 망설임없이 날아갔다. 날개의 구조상, 날갯소리가 무음에 가까운 부엉이들의 접근을 사슴은 눈치채지 못했다.
접근을 깨달았을 때, 사슴들이 울음소리를 냈지만 이미 때는 늦어, 부엉이들의 발톱이 용서없이 사슴들을 덮쳐갔다.
형은 긴 다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슴의 숨통을 끊고, 동생은 사슴의 측면을 걷어차 급경사를 굴러내려가게 한다는 특이한 사냥 방식을 취했다. 동생이 노린 사슴은 살아있었으나, 뒷다리 뼈가 부러져서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날개를 펼쳐 경계와 위협을 하고 있던 동생 부엉이도, 이윽고 상대가 저항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자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슴의 숨통을 끊었다.
"동생 쪽은 꽤나 유쾌한 사냥방식이네"
시즈코는 동생 부엉이의 사냥 방식에 감탄했지만, 사실 사냥감을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는 것은 희귀한 사냥법은 아니다. 고지대에 사는 산양을 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고 그 후에 둥지로 가져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야생의 환경에서는 다른 동물에게 사냥감을 도둑맞는 문제는 있지만, 발톱으로 움켜쥔 채 사냥감을 끌고갈 힘과 비상 능력이 있다면, 높은 곳에서 사냥감을 떨어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법이다.
"하지만 수컷치고는 크네. 무리에서 이탈한 새일 가능성도 있으니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형의 부엉이는 꽤나 한정적인데"
형제의 품종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두 마리에게 시선을 돌리니, 식사를 마치고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슴은 미묘했을까. 역시 밸런스가 좋은 메추리가 좋았으려나"
사슴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고기가 꽤나 남아 있었다.
흙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던가 둘 중 하나였기에, 사슴의 사체는 방치해둬도 문제없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그녀는 두 마리를 팔에 태우고 말고삐를 다루며 귀가했다.
(……어떡할까. 부채머리 독수리도 부엉이 형제도, 자연으로 되돌려보내야 하려나, 아니면 책임지고 사육해야 하려나)
말 등 위에서 흔들리면서 시즈코는 생각했다. 비트만들과 부채머리 독수리의 차이는, 고유한 이름을 붙였는지 아닌지였다.
고유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대상이 되는 동물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동물의 목숨을 맡아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배려하고, 마지막까지 사육하는 책임과 각오를 짊어지는 것이 된다.
시즈코가 비트만 등 회색 늑대의 사육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게 개를 사육해본 경험과, 개와 늑대의 생태, 습성, 생리에 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부채머리 독수리나 부엉이의 사육 경험은 없다. 특히 부채머리 독수리는 멸종 위기종 중 하나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개인이 사육경험을 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건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간단히 결단을 내릴 수 있으면 고생할 일이 없지)
생태나 습성을 거의 모르는 맹금류들을, 그냥 귀엽다거나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키우면 양쪽 다 불행해질 것은 뻔히 보인다.
하지만 맹금류는 짝의 상대와 마찬가지로, 한 번 주인으로 인정한 상대와 평생 함께한다. 부채머리 독수리나 부엉이들이 시즈코를 따르는 모습을 보면, 양쪽 모두에게 가장 좋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보호한 자신의 어설픔이 부끄러워졌다.
(아―! 관두자 관둬. 어차피 고민해봤자 대답은 나오지 않아. 좋아, 정했어!
한 달…… 한 달 안에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책임을 지고 평생 사육할 것! 지금, 내가 정했어!)
사고회로가 출구가 없는 미로가 되기 시작했을 때, 시즈코는 모두 머릿 속에서 털어내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것은 평생 사육할 것을 결심한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흥분한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 후, 결단을 내린 시즈코는 바쁜 것도 있어서 부채머리 독수리와 부엉이를 사육해야 할지 말지라는 문제를 잊고, 한 달 후에 당시의 결단을 떠올리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뻔한 스토리 같은 결과였으나, 우유부단해지려던 시즈코에게는 좋은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어거지스럽긴 해도 문제를 해결한 시즈코였으나, 곧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이름…… 어떡할까?"
부채머리 독수리와 부엉이 두 마리의 이름이 결정되지 않는 것 때문에 시즈코는 다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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