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5 1577년 4월 상순



잔설(残雪)도 녹아 도로(街道)의 왕래가 회복된 3월 하순, 동해(日本海)를 바라보는 츠루가(敦賀) 항구에 아시미츠(足満)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군을 이끌고 에치고(越後)로 들어가 사도가시마(佐渡島)로 향하려고 생각했으나, 눈에 갇힌데다 집안 소동을 끌어안고 있는 에치고는 마치 벌레독(蟲毒)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다.

설령 동맹관계에 있다고는 해도 오다(織田) 가문의 수하가 진군하면 쓸데없는 알력을 발생시키게 될 거라고 시즈코에게 설득되어, 와카사(若狭) 국에서 츠루가로 집결했다.

우에스기(上杉) 가문에 대한 배려 따윈 없는 아시미츠였으나, 다름아닌 시즈코의 바람이었기에 계획을 수정했다.

와카사에 들어가기는 했는데, 달력상으로는 봄이었지만 아직 동해의 파도는 높고 거친 상황이었기에 아시미츠들은 며칠 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날짜가 늘어날 때마다 아시미츠의 기분은 가속도적으로 나빠져서, 부하들조차 '뜨끔할' 듯한 긴장감을 느낄 무렵, 드디어 날씨가 회복되었다.

이 때를 놓칠 수 없다고 아시미츠들은 선단을 꾸려 츠루가 항구에서 출항했다. 오다 가문의 지배권 안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면장(免状)을 가지고 있는 시즈코는, 아시미츠들이 보급을 받을 수 있도록 사도가시마 직전에 보급기지를 마련해두었다.

현재의 이시카와 현(石川県) 북부에 위치하는 와지마(輪島)에 보급물자를 집적해두고, 선단이 한번에 정박할 수 있을 정도의 허용량이 없는 와지마 항구에 순차적으로 기항하여 보급을 실시한 후, 다시 집결하여 사도가시마의 마노(真野) 만(湾)에서 상륙했다.


한데, 외딴 섬이라고 해도 사도가시마는 큰 섬이다. 이 섬의 내부에는 혼마 씨(本間氏)가 다섯 개의 씨족으로 나뉘어 서로 패권을 다투고 있다는, 전국시대의 축소판 같은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곳 사도가시마는 금은 광산(金銀山)으로 성립되고 있는 섬인 만큼, 각 씨족들은 금광산을 지배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무렵이 되면 장남 가문(惣領家)인 사와다(雑太) 혼마 씨는 세력이 약화되고, 대신 지방 마름(郷地頭, ※역주: 마름(地頭)은 일본 중세의 장원(莊園)에서, 조세(租稅) 징수·군역(軍役)·수호(守護) 등을 맡았던 관리자, 향(郷)은 '지방'을 뜻하는 것으로 보여 지방 마름으로 번역)이라 불리는 자들이 태두하기 시작했다.

즉, 니시미카와(西三河) 금광산을 지배하는 하모치(羽茂) 혼마, 니이보(新穂) 금광산을 가지고 있는 쿠지(久知) 혼마와 카타가미(潟上) 혼마, 츠루시(鶴子) 은광산을 확보한 카와하라다(河原田) 혼마와 사와네(沢根) 혼마이다.

개중에서도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섬의 북부를 세력하에 둔 카와하라다 혼마와, 남부를 지배하는 하모치 혼마였다. 이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입지적으로 편리했던 사와네 혼마를 아시미츠는 교묘한 말로 변절시켰다.

그리고 오다의 군기(軍旗)를 내건 선단이 사도가시마 남서부에 위치한 마노 만에 나타났을 때, 이것을 맞아 싸우기 위해 연안에 포진했던 것일 사와네 혼마 씨가 한번 싸우기는 커녕 그들을 불러들임으로서 그의 배신이 드러나, 다가오는 전란의 징조에 전 섬이 벌집을 쑤신 듯한 상태가 되었다.


한 마디로 상륙이라고 해도 선단 규모가 되면 그에 걸맞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이것을 저지하려고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카와하라다 성을 가지고 있는 카와하라다 혼마였다.

그들은 미리 모아둔 백 척 가까운 배들과 육상으로부터의 부대로 협공하기 위해 출격했다. 그리고, 적을 시야에 포착할까 말까 하는 단계에서 산산이 박살나 버렸다.

애초에 관측 정밀도 및 병기의 유효사정거리가 차원이 달랐기에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는 상황을 본 각 혼마 씨들은 전율하여, 쇠락했다고는 하나 장남 가문인 사와다 혼마 씨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이리하여 사와다 혼마의 호출로 씨족들의 대표가 모였는데, 아시미츠 군의 압도적인 전력을 보고 우쭐한 사와네 혼마는 '호가호위(虎の威を借りる狐, ※역주: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를 해버렸다.

말인즉슨, 혼마들 사이에서 아무리 강해봤자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이니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개명적(開明的)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자신은 그것을 한 발 빨리 깨달았기에 단장(断腸)의 아픔을 감수하며 그들을 맞아들였다.

쓸데없이 피를 흘릴 것이 아니라, 전봉(転封)을 약속받을 수 있을 때 항복하는 것이 상책이다. 자신이 주선해 줄테니 신천지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털어놓았다. 


이것을 들은 다른 혼마 씨들은 당연히 격노했다. 씨족의 총의(総意)로서 철저 항전하기로 결정한 것을 파기한데다, 외환(外患)이라는 재앙을 불러들여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너희들도 똑똑해져라"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교섭은 결렬되어, 사도가시마는 진흙탕의 내전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사와네 혼마 본인은 오랫동안 혼마 씨의 저변(底辺)에서 억압받았던 반동으로 실책을 저지른 것을 깨달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운명의 톱니바퀴는 움직였고, 혼마 씨를 멸망의 길로 굴리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현대 일본의 형법(刑法)에서도 외환 유치(誘致) 죄는 정해져 있다. 외환 유치란 외국의 세력과 통모(通謀)하여 자국에 대해 무력 행사를 하게 하는 국가반역죄의 하나로, 이 매국 행위에 대한 형량은 사형 뿐이다.

아직까지 적용된 예는 없지만, 연좌제(連座制)가 폐지된 현대 사법(司法)에서 가장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는 것만 봐도, 국가의 존망을 뒤흔드는 중죄로 생각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사도가시마에서 아시미츠들은 틀림없는 외환이며, 이것을 안으로 불러들여 버린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알게 되면 사형 반대론자들도 입을 다물 것이다.


"우리들은 외부인(外様, ※역주: 사전에는 '방계' 등의 의미로 나오는데, 문맥상 '외부인'이 맞는 것 같아 의역함). 어디까지나 혼마의 싸움은 혼마의 손으로 결판을 내야 할 것이다. 너희들이 선두에 서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되지"


유지되고 있던 사도가시마의 균형을 근본부터 파괴하여 전란의 소용돌이로 밀어넣은 아시미츠는 그렇게 말했다. 아시미츠들은 후방에서 독전(督戦) 및 원조(援助)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역은 사와네 혼마가 아니면 안된다고 하여, 사와네 혼마는 선두에 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사와네 혼마와 나머지 혼마 씨와의 대립구조가 성립하고, 사와네 혼마는 항상 최전선에서 계속 소모되어 갔다. 처음에야 나야말로 혼마의 두령(頭領) 자격이 있다며 혈기왕성했으나, 아시미츠의 원호는 소극적이라서, 자군의 소모가 쌓여감에 따라 불신이 싹트게 된다.

그에 대해 아시미츠는 자신들이 활약해서는 혼마의 싸움이 되지 않는다고 후방에 계속 머물렀고, 죽었다 깨어나도 아시미츠들에게 이길 수 없는 사와네 혼마는 손잡을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며 후회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시미츠는 사와네 혼마에게 적의 투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명목상으로는 포로를 먹여살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으나, 여자나 아이들, 노인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취급한다고 하여 사와네 혼마는 전율했다.

주위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돕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로 다툰다고 해도 암묵적인 공감대로서 지나친 행위에 대한 금기가 존재한다.

설령 모두에게 미움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동네조리(村八分)라고 하여, 화재나 장례식 때 만큼은 돕는다는 것이 가장 좋은 예이리라. 그리고 다음 세대를 짊어질 여자 아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것 같은 행위는 명확하게 금기에 저촉되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져 버렸다. 이미 다른 혼마 씨와 대립해버린 이상, 아시미츠의 협력을 얻지 못하게 되면 다른 혼마 씨는 사와네 혼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가도 지옥, 뒤로 가도 지옥이라면이라는 심정으로 사와네 혼마는 아시미츠의 요구(要望)를 수용했다. 그것이 혼마 일족 전체의 파멸을 결정짓는 최후의 한 수(一押し)가 되는 것을 사와네 혼마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아시미츠에 의한 멸족(族滅)의 최초의 희생이 된 것은 카와하라다 혼마였다. 사와다 혼마에 의한 중재가 결렬된 이래, 각자가 전쟁 준비를 갖추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카와하라다 혼마는 다른 혼마 씨에 의한 증원을 기대하고 카와하라다 성에 농성한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화력을 갖추고 있을 경우, 이 전법은 성립될 수 없다.

성문 및 성벽을 화포로 파괴당하고, 강제로 뚫린 큰 구멍에서 사와네 혼마의 병사들이 밀려들었으며, 나아가 자군의 화승총(火縄銃)을 뛰어넘는 사정거리와 정밀도의 신식총(新式銃)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버렸다.

카와하라다 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함락되었고, 성주인 혼마(本間) 사도노카미(佐渡守) 타카츠나(高統)는 막아낼 수 없음을 깨닫자 성에 불을 질러 자결했다. 그리고 이 일전에서 붙잡힌 사람들은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형되었다.

그 악랄한 행위는 목숨만 간신히 건져 도망친 사람들이나 다른 혼마 씨의 척후(斥候) 등에 의해 알려져, 사와네 혼마는 혼마 일족의 배신자로서 불구대천(不倶戴天)의 원수가 되었다.

이 카와하라다에서의 학살로 인해, 사와네 혼마의 당주인 혼마 사마노스케(本間左馬助)는 지옥으로의 편도 티켓을 들고 달려나가게 된다.


다음으로 아시미츠는 사와네 혼마에게 섬 남부의 최대 세력이었던 하모치 혼마를 공격하게 했다. 최전선에 서서 직접 칼날을 부딪히는 사와네 혼마의 병사들이야 소모되었지만, 하모치 성도 별다른 저항 없이 함락되었다.

카와하라다 성에서의 학살에 대해 알고 있던 하모치 성주인 혼마 타카모치(本間高茂)는 근신(近臣) 들과 함께 친동생이 성주를 맡고 있는 아카도마리 성(赤泊城)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틈을 주지 않고 추격이 따라붙어, 아카도마리 성도 맥없이 낙성(落城)해 버린다.

그 때 최후의 싸움에서 지휘를 하고 있던 사와네 혼마 당주인 사마노스케가 '유탄'에 의해 전사하여, 승자가 없는 상태로 혼마 일족의 4백년이나 되는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듯 외환이라는 위협은 문화도 가치관도 다른 자에 의한 침략으로, 미증유의 재앙이 되어 덮쳐온다. 사도가시마에 파멸을 가져온 외환인 아시미츠는, 재미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본토에서 오다 가문의 대관(代官)을 맞아들여 따르도록 사와네 혼마의 잔당들에게 명령하고는 사도가시마를 떠났다.




장소는 바뀌어, 지금 마침 오와리(尾張) 항구에 한 척의 아타케부네(安宅舟)가 입항하고 있었다. 오와리 항구는 일본 유수의 거대 항구로, 항만시설이 충실하기에 대형 선박이 몇 척이나 정박하여 북적이고 있다.

항구로 이엉지는 항만도시오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결과, 항구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의 대도시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매일 많은 배가 오가고, 그에 따라 막대한 돈이 시즈코의 품으로 굴러들어온다.

북쪽으로는 토호쿠(東北) 지방에서, 남쪽으로는 큐슈(九州)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측에 위치하는 다양한 장소에서 끊임없이 배들이 찾아오고 나간다. 개설 당초의 오와리 항구는 츄우부(中部) 및 토우카이(東海) 지방과 사카이(堺)를 잇는 지방 항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다 가문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항만 설비는 충실해지고, 그와 반비례하듯이 세율이 낮게 억제되었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 유수의 무역항으로 치고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오와리에만 존재하는 특산품의 품목이 충실해짐에 따라, 키이(紀伊) 반도를 끼고 서쪽의 사카이, 동쪽의 오와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공업화가 진행된 끝에 기계화된 항만 설비에 의해 명실공히 일본 제일의 처리능력을 가진 항구라고 할 수 있으리라. 코우베(神戸) 항구가 개설된 이래, 정기편(定期便)도 개통되어 사이고쿠(西国)와의 유통량이 늘어났다.

이 확립된 항로에 편승하여 시코쿠(四国)를 다스리는 쵸소카베(長曾我部)와도 정기편을 통해 이어진다. 그런 와중에, 지금 막 계류삭(もやい綱)에 의해 계류된 배의 갑판에 나와 있던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와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이것이 오와리 항구……. 아타케부네도 거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배는 어떤가! 마치 거인의 나라를 방문한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구나……"


오와리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선박들은, 쿠키(九鬼) 수군(水軍)으로부터 불하된 것이나, 시험적으로 건조된 끝에 민간으로 방출된 것들도 많았고, 외륜선(外輪船) 등은 겉보기부터 이질적이기에 그들의 눈을 끌었다.

게다가 대형의 동력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하역하는 모습은, 거인의 팔이 움직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팔이 운반한 컨테이너에서 반출되는 화물을 차례차례 삼키는 거대한 창고는 마치 거인의 입이었다.

일본 최첨단이자 토우고쿠(東国) 최대의 물자집적지, 그것이 시즈코가, 나아가서는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오와리 항구였다.


"상상 속 이야기(お伽噺ばなし) 같지요? 이것들 모두를 실질적으로 관리하시는 것이 시즈코 님이십니다. 명목상은 오다의 도련님(若様, 노부타다(信忠)를 말함)의 직할이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완전히 위임받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세상에……"


그 때까지 아타케부네의 선장과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하시바 히데나가(羽柴秀長)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칸베에에게 이야기해보였다.

눈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만으로도 압도되고 있던 칸베에는, 이만한 규모의 항구가 창출하는 부가 어느 정도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것들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리마(有馬) 개발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이야기도 납득이 되었다.


"이곳 오와리를 관장(仕置, 영지의 통치 전반을 가리킴)하시는 것이 시즈코 님, 미노의 통치 및 오와리의 감독을 하고 계시는 것이 도련님이라고 생각하시면 알기 쉬우실 겁니다"


"여인의 몸으로 이 정도의 영지를 맡고 계시는 겁니까!?"


"쉿, 큰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면 큰일입니다. 이곳 오와리는 시즈코 님께서 멸사봉공(滅私奉公)하시어 키워내신 땅, 그렇기에 백성들은 누구나 그분을 경애하고 있습니다"


"혈기왕성한 뱃사람들이라면 말보다 먼저 주먹이 날아오겠군요"


히데나가는 처음으로 오와리를 방문하는 칸베에에게 그렇게 조언했다. 시즈코 본인은 대놓고 매도당하거나 하지 않는 한, 뒷담화에 대해서는 당연히 있는 거라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용서하기 어려운 폭거가 된다. 실제로 생각없는(向こう見ず) 젊은 선원이 대놓고 시즈코를 비판했을 때, 나이든 선원들이 모조리 달려들어 바다에 처박아버렸다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만이라면 우스갯소리로 끝나겠지만, 아이치(愛知) 용수(用水)로 빈곤의 나락에서 구원받은 치타(知多) 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그들에게 시즈코는 구세주이자 밝은 미래의 상징적인 존재이기에, 그것을 더럽히는 존재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배제된다. 즉, 운 좋으면 몰매(袋叩き), 운이 나쁘면 두 번 다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우선은 여관으로 가서 한숨 돌리도록 하지요. 그 후에는 다 같이 뭐라도 먹으며 즐겨볼까요"


"우리들은 유람(物見遊山)을 온 것이……"


칸베에가 항변하려 했으나, 히데나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탄식하는 칸베에를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린 한베에가 그에 뒤따르고, 칸베에도 어쩔 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관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온 일행 중에서 가장 들떠서 모두를 끌고다니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칸베에였다.


다음 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로워서 흥분이 식지 않은 칸베에와, 촌뜨기(お上りさん)의 뒷바라지를 한베에에게 떠넘겨놓고 빈틈없이 휴가를 만끽한 히데나가는, 명백히 피로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의 한베에를 데리고 시즈코 저택으로 향했다.

히데나가 일행은 시즈코 저택에 도착하자 목욕(湯浴み)을 하도록 권유받고, 시즈코의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대기실에서 쉬고 있었다. 당초의 예정으로는 점심 시간을 지난 후의 면회였으나, 소문이 자자한 시즈코 저택을 한 번 보고 싶다고 칸베에가 말했기에 예정을 앞당길 수 있을지 타진했던 것이다.

시즈코 본인은 점심식사 시간이었기에 함께 식사를 하려고 생각했지만 아야(彩)에게 기각당해버렸다. 그렇게까지 파격적으로 두터운 대우를 해서는 상대에게 잘못된 인식을 주게 되어버리는 것과, 안 그래도 바쁜 시즈코에게 하다못해 점심식사 정도는 느긋하게 했으면 하는 배려에서였다.


"호오! 이거 좋은 차가 나오는군요. 향기로우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이 느껴지는군요"


칸베에는 긴장 떄문에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만, 시즈코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 한베에와 히데나가는 준비된 다과(茶請け)를 우물거리면서 차를 마시며 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래도 한베에는 사이고쿠에서의 싸움이 신경쓰이는 모양이었으나, 히데나가는 완전히 신경을 끄고 있었다. 아무리 고민해봤자 오와리에 있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오와리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고 히데나가는 생각했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에 히데나가들이 도착한 지 반 각(刻,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고, 시즈코의 준비가 갖춰졌다고 소성(小姓)이 알려왔다.

이 때가 되자 각오가 선 칸베에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리고 일어났고, 일행은 알현실로 안내되었다.


알현실에서는 이미 시즈코가 기다리고 있었으며, 히데나가 일행은 엎드려서 각자 인삿말을 한 후에 나란히 고개를 들었다.

히데나가의 대각선 뒤쪽에 앉아있는 칸베에는, 히데나가의 어깨 너머로 처음 보는 시즈코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처음에 든 감상은 생각 외로 작다는 것이었다.

전국시대의 세상에서는 큰 여자의 부류에 드는 시즈코였으나, 그녀의 업적과 일화가 앞서나간 결과, 누구나 그녀를 체구가 큰 여걸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실제의 시즈코는 농사일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인지, 고운(優し気) 얼굴도 있어 날씬하고 우아한 여성(手弱女)으로 보였다. 노히메(濃姫)처럼 한번 보면 알 수 있는 위엄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칸베에는 정발로 그녀가 입지전(立志伝) 속의 인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진정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의문이 빗나갓음은 금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를 섬기는 사람들은 딱 봐도 패기에 넘치고, 자신의 직책에 긍지를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섭가(五摂家)의 아가씨(姫)라는 지위나, 노부나가의 총신(寵臣)이라는 것만으로는 부하들의 사기는 올라가지 않는다.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상대를 섬기기 때문에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정말로 시즈코 님께 진심으로 반해 있는 것이겠지. 이익만을 가지고 자기 편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정으로까지 이어진 관계는 굳건해진다. 확실히 무서운 분이군)


기본적으로 주종관계라는 것은 이익에 의해 성립된다. 주인에게서 주어지는 이익이 있기에 은혜갚음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주인이 자신이나 자신의 일족을 지켜주기 때문에 주인을 목숨바쳐 섬기는 것이다.

주인이 부하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 인덕(人徳)으로 부하에게서 존경받게 되면 그 관계는 더욱 견고한 것이 된다. 정에 의한 관계는 때로는 이해타산(損得勘定)을 넘어선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손익(損得)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대는 군사(軍師)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랜만에 뵙는데, 별 일은 없으신가요?


"옛! 덕분에 형님과 함께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청에 응해주셨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지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군요, 한참 전쟁중인데 잡담은 어울리지 않겠지요. 본론이라 함은 아리마 개발에 관한 것이겠군요"


시즈코의 입에서 아리마라는 단어가 나온 것에 칸베에는 경악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지명을 거론할 정도로 이쪽의 수가 다 읽히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지원을 요청하는 쪽이기에 입장이 약한데라며 조급해져 버렸다.

한편, 히데나가는 시즈코에게 마음 속을 읽히는 것 따위는 항상 있는 일이라고 신경쓰지 않았으며, "과연 시즈코 님, 현명하신 헤아림이십니다"라는 식으로 맞장구칠 여유까지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아리마의 개발에 지원을 받고 싶어 왔습니다. 다행히 코우베 항구는 순조롭게 시작되었습니다만, 부근의 하리마(播磨)나 셋츠(摂津)에 이렇다 할 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셋츠는 아리마의 땅에 솟는 온천을 이용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히데나가의 말을 들은 시즈코는 지당하다며 긍정했다. 실제로 히데요시(秀吉) 및 히데나가 형제는 이마하마(今浜, 현재의 나가하마(長浜))의 통치에 관해 몇 번이나 실패했다. 그곳에는 거점(御座所)인 이마하마만 부유해지면 되고 나머지는 적당히 하면 된다는 좁은 시야가 이유였으리라.

지금까지의 씁쓸한 경험을 바탕으로, 히데요시는 하리마나 셋츠 일대를 포함시킨 경제권을 부흥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구상은 크지만 구체적인 것(先立つもの)이 없었다. 그럴 때 시즈코가 코우베 항구의 개발을 타진해 왔기에 즉각 달려든 것이다.

시즈코가 손대는 항구라고 하면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실제로 히데요시의 예상대로 코우베 항구는 예전의 한촌(寒村)이었들 때의 흔적조차 없을 정도의 번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항구만으로는 영지 전체가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코우베 항구는 큐슈와 사카이를 잇는 중계지(中継地)이며, 계속된 발전을 바란다면 항구 주변의 지역에 특산품이라던가 멀리서도 찾아오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명승지(景勝地)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때 시즈코의 마을도 당초에 온천으로 이름을 날린 것에 생각이 미쳐, 아리마를 주목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확실히 아리마는 양질의 온천이 솟고 있으니, 개발하면 좋은 탕치장(湯治場)이 되겠지요"


시즈코로서도 아리마 온천의 개발은 매력적이었다. 현재에도 칸사이(関西)의 온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거명될 정도로 유명하며, 역사적 사실에서도 히데요시와 아리마 온천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적 사실대로라면 가까운 장래에 킨키(近畿) 일원(一円)을 덮치게 되는 '케이초(慶長) 후시미(伏見) 지진(地震)' 이후, 아리마 온천 전체의 탕 온도(湯温)가 상승되어버려 입욕에 적합하지 않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것을 걱정한 히데요시는 지진이 난 이듬해부터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벌여, 아리마 온천의 천원(泉源)을 정비했다. 이로서 탕 온도는 안정되었고, 또 어느 정도의 조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아리마 온천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천원에 대해 공사를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의 결단이 아리마 온천의 번영을 뒷받침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시즈코에게는 아리마 온천의 개발을 하는 데 있어 우려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히데요시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는 한베에는 시즈코의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으나,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칸베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은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신하가 되어 고락을 함께 해온 사람과, 하리마 침공에 의해 새롭게 부하가 된 사람의 차이이리라. 히데요시라기보다 하시바 씨(羽柴氏) 일문(一門)이 가지고 있는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인 해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말씀하시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리마가 아니라,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도"


씁쓸한 침묵 이후, 한베에는 그 이유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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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