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6 1577년 4월 상순



히데요시(秀吉)가 안고 있는 문제란 '시즈코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으로 집약된다. 시즈코는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에 취임한 이래로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히데요시로부터의 문의가 유독 많았다.

자신의 영지인 이마하마(今浜, 현재의 나가하마(長浜))의 운영에 실패했을 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의존해버린 것이 발단이었지만,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강심제(カンフル剤, kamfer)나 마찬가지인 시즈코의 경제 대책은 자신이 내놓는 시책과의 차이를 부각시켜 버렸다.

이 때문에 자신의 시책에 자신을 갖지 못하여, 큰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시즈코에게 의견을 구하게 되어, 그 자세를 본 오다 가문 내의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히데요시를 시즈코의 꼭두각시 인형(操り人形)이라고 야유했다.

그런 와중에, 간신히 하리마(播磨) 평정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올린 것으로 히데요시가 재평가되고 있었다. 난세에서는 전쟁 수완이 뛰어난 것이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경위를 감안하면, 아리마(有馬) 온천(温泉) 개발에 다시 시즈코의 조력을 구하는 것은 히데요시의 평가를 낮추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우려하고 있었다.


"코우베(神戸) 항구의 개발에 관해서는 제가 발안자이기에 각 방면에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거기에 아리마 온천 개발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안건에 제가 관여하면, 하시바(羽柴) 님의 체면을 구기게 되지 않을까요?"


코우베 항구는 시즈코가 주력하고 있는(肝煎り) 안건이라, 조정(朝廷) 방면에 관해서는 고노에(近衛) 가문이, 무가(武家) 사회에 관해서는 노부나가의 연줄을 단단히 이용하여 조정을 꾀했다. 그렇기에 코우베 항구 개발에 관해서 대놓고 불평을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었다.

정치적 뱃심(腹芸)에 능한 히데나가(秀長)는, 시즈코가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마 온천 개발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면 체면을 버리고라도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겨우 재평가되고 있는 형님의 평가는 다시 땅바닥을 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背に腹は代えられぬ)입니다"


아리마 온천 개발의 결과로서 창출될 부(富)는, 이러한 불리함을 덮고도 남는 이익을 히데요시에게 가져올거라고 히데나가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고심 끝의(苦渋) 결단에 대해 순풍이 되는 움직임도 있다.


"이것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만, 실은 쵸소카베(長宗我部) 님의 영토에 항만도시를 건설할 계획이 있습니다. 게다가 상업으로 되돌아간 사이카슈(雑賀衆)와 연계하여, 내륙으로부터 하천을 통해 사카이(堺)를 경유하여 코우베까지 이어지는 일대 상권(商圏)을 구축하는 구상입니다"


"그렇게까지 큰 이야기가 비밀로 되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가 당연한 의문을 말했다. 그 물음에 대해 시즈코는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한 끝에, '백문이 불여일견(百聞は一見に如かず)'이라고 판단하고 소성(小姓)에게 지도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잠시 후, 이 시대에서는 이례적인 정밀도를 자랑하는 키나이(畿内)에서 츄고쿠(中国) 지방, 시코쿠(四国)를 경유하여 큐슈(九州)까지 그려진 지도가 놓였다.

시즈코는 역시 소성에게 준비시킨 긴 탁상(長机) 가득히 지도를 펼치고, 히데나가들에게 이것을 보도록 손짓했다. 당시의 가치관으로 지도라고 하면 극비 중의 극비이기에 칸베에는 움찔해버렸지만, 히데나가나 한베에(半兵衛)가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따랐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륙과 사카이를 잇는 동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栓)이 혼간지(本願寺)입니다. 그들이 퇴거하면 호쿠리쿠(北陸)에서 이마하마, 비와 호(琵琶湖)를 경유하여 우지가와(宇治川), 요도가와(淀川)를 통해 내해(内海)로 나갈 수 있습니다"


시즈코는 호쿠리쿠에 위치하는 에치젠(越前)에 손가락을 놓고, 엣츄(越中)와 노토(能登) 사이를 빠져나가 카가(加賀), 에치젠을 거쳐 비와 호가 있는 오우미(近江)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그대로 비와 호의 남단에서 하천을 따라서, 도중에 아구라이케(巨椋池)를 경유하여 오사카 만(大阪湾)으로 빠져나갔다.

시즈코가 그어보인 경로는 동해(日本海) 측과 태평양 측을 잇는 거대한 유통 경로로 성립된다. 종래에는 전부 육로를 통하거나, 북쪽으로 도는 경우 츠가루(津軽) 해협(海峡)을 빠져나가 크게 우회하거나, 또는 남쪽으로 돌아서 칸몬(関門) 해협을 빠져나가 빙 돌아서 세토(瀬戸) 내해를 경유할 필요가 있었다.

호쿠리쿠 지방은 육로이기는 하나, 나머지를 수운(水運)으로 일직선으로 잇는 새 유통로는 엄청난 시간의 단축을 실현한다. 시간이 단축되면 그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니, 이 유통로가 창출하는 권익은 막대한 것이 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쵸소카베 님이 다스리는 토사(土佐)에 항만을 정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오다의 지배권을 잇는 유통로를 면종복배(面従腹背)의 자세를 고수하는 사카이에게 움켜쥐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사카이를 배제하더라도 성립하는 항로를 성립시키기 위해, 오와리(尾張)에서 키이(紀伊)를 경유하여 토사를 잇고, 거기서 더욱 멀리는 명(明) 나라나 남만(南蛮)과의 교역을 실현합니다. 우선 치쿠젠(筑前)까지 연결하기만 해도 사이고쿠(西国)의 유통을 지배할 수 있겠지요"


혼슈(本州)와 시코쿠를 잇는 세토 대교(大橋)나 아카시(明石) 해협 대교, 세토우치(瀬戸内) 시마나미(しまなみ) 해도(海道) 등의 혼슈-시코쿠 연락교(連絡橋)는 당연히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량의 육상물류를 실현할 철도는 시야에 넣고 있지만, 바다를 격한 지역을 이으려면 해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혼자서 너무 잘나가면 미움받는 것이 예상사이기에 사카이를 상권에 포함시키고는 있으나, 급소를 쥐었다고 우쭐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경로를 동시에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과연. 이미 모우리(毛利)와의 '전쟁 이후'를 내다보고 계시는 것이군요"


시즈코의 말에서 칸베에는 모우리의 멸망을 확정 사항으로 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모우리의 패배를 의심하고 있지 않다. 다소는 고전을 강요받을지도 모르지만, 지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녀의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지 의문을 품은 칸베에였으나, 그녀의 경력을 돌이켜보면 짐작이 갔다. 시즈코가 올린 최대의 무공이라고 하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과의 결전이 되지만, 그 이외에는 애초에 전쟁 자체를 벌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이자면, 초기의 전력(戦歴)을 보면 패전 쪽이 많다. 그래도 그녀가 착실히 세력을 확대해온 것을 생각하니 경악할 만한 사실이 떠올랐다. 즉, '싸우지 않고 이긴다'를 체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으로 발전시켜 치고받을(切り結ぶ) 것도 없이, 그 이전의 단계에서 결판을 내버려서 적대 세력을 모조리 병탄(併呑)하고 있다는 사실에 칸베에는 전율을 느꼈다.


"네,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패할 생각으로 싸우고 계시는 건가요?"


"물론 이깁니다!"


히데나가가 약간 말을 끊듯이 대답했다.


"여러분게서 착실하게 승리를 쌓아가신다면 모우리 토벌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 남은 것은 그것이 빠른지 느린지라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시즈코의 말을 들은 칸베에는 자기도 모르게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도 그녀의 진의를 깨달은 듯, 두 사람은 잠시 마주보았다. 시즈코가 말한 일대 유통로는 단순히 경제권의 확립에 그치지 않는다.


(모우리 포위망……)


이 거대 상권이 성립되어버리면, 모우리는 사지가 잘려나가게 된다. 제아무리 모우리라 해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데다 경제에서도 차단되면 저항 따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유일하게 오다 가문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동해측으로 나가려면 험한 산맥을 넘어야 하기에 도저히 장사로서 수지가 맞지 않는다. 이 상황으로 몰리게 된 단계에서 모우리는 이미 외통수에 걸린 것이다.


"그럼, 본론인 아리마 개발에 대해서입니다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시다는 말씀은?"


"남만에는 '나무를 감추려면 숲 속'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즉, 더 큰 계획의 일부로 포함시켜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상(上様)께서 친히 선언해주신다면, 제가 원조할 대의명분이 되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비축되었던 돈을 꽤나 써버렸기에,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건은 1만 관(貫, 현재의 화폐가치로 약 10억 엔) 정도입니다"


"1만!!"


자기도 모르게 외쳐버린 칸베에였으나, 계속 말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그는 시즈코가 중장기적으로 출자해주게 된다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즈코는 이 자리에서 당장 1만 관이라는 거금을 준비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리 오다 가문의 중진(重鎮)이라고는 해도, 일 개인이 독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갑자기 칸베에는 이해했다. 시즈코라느 격류를 가두고 있는 거대한 제방(堰)이라는 것을. 그녀가 한 번 움직이면, 터무니없는 규모의 인원, 물자, 돈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놓칠 리 없는 게 당연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주상께 보증(お墨付き)을 받는다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겠지요"


시즈코의 협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한 한베에는 가만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쁘게 말하면 거대 상권 구축의 떡고물을 받아먹는 모양새가 되지만, 번영을 누릴 수 있다면 아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주상께 이야기를 가져가게 되면 상당한 시일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침 주상께서 이곳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노부나가를 만나기 위한 절차를 모색하기 시작한 바로 그 때 시즈코가 폭탄발언을 던져넣었다. 설마하던 장날(ニアミス, ※역주: near-miss. 원래는 (보통 비행기끼리의) 비정상적인 접근 또는 아깝게 빗겨갔다는 의미인데, 그걸 그대로 직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여기서는 가는 날이 장날의 '장날'로 의역했음)에 시즈코 이외의 면면의 안색이 새파래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노부나가가 시즈코 저택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에 새롭게 준비된 통신기(通信機)의 시험운용을 하는 것이 포함된다. 시즈코에게 억지를 써서 임무를 마치고 해체를 기다릴 뿐이던 검증용의 통신기를 사용가능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아즈치 성(安土城)으로 운반시킨 후 오와리와 아즈치를 통신으로 연결하여, 어느 정도의 상황파악과 지시를 내리는 것이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아주 좋아서,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시즈코 저택에서 쉬면서 아즈치에서 지시를 내리고(差配) 있는 것과 큰 차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혁명적인 통신 수단은 군사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나 경제라는 생활에 직결된 분야조차 일변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배치되어 있지 않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자재(機材)가 애초에 고가인 점. 그리고 통신을 제어하는 기술자나, 제한된 시간에 더욱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절차(手順)에 숙련된 통신수(通信手)가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이러한 문제들을 낙관시하고 있었다. 일본에 철포(鉄砲)가 전래된 이후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듯이, 이 정도의 편리함을 가져오는 기술이 지지받지 않을 리가 없다.

전신(電信)은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으며, 기술을 독점하고 있기에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되겠지만, 언젠가는 일본 각지를 통신으로 연결한 정보망이 구축될 것이다. 그것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그것들을 메우고도 남을 이익을 창출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흠, 이거면 되었겠지. 상황이 변할 때마다 연락하도록 전하라"


"옛!"


그렇게 말하고 노부나가는 대기하고 있던 소성에게 직접 작성한 서류를 맡겼다. 소성은 이 서류를 사무 담당자(事務方)에게 맡겨 통신 양식에 따라 청서(清書)하게 하고, 전신실(電信室)로 운반된 그것은 전파에 실려 아즈치로 전달되게 된다.

지금쯤 멀리 떨어진 아즈치에서는 호리(掘)가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을 읽고 있을 것이다. 전신 기술은 아직 여명기(黎明期)였기에, 통신 품질이 나빠서 남성의 낮은 목소리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통신수는 모조리 여성이 기용되어, 전신실은 여성의 직장이 되어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오와리라면 고도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다수 존재한다. 여성에 학문은 필요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오와리만큼은 마치 특이점(特異点)처럼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노부나가는 완전히 전신의 세계에 매료되어, 그 편리성을 탐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요 인물과의 면회쯤 되면 며칠 걸려도 아즈치로 돌아갈 필요가 생기지만, 그 이외의 경우라면 오와리에 있으면서 정무를 수행할 수 있다.

'一所懸命(열심히)'라는 말이 있듯이, 토지에 집착하여 목숨을 거는 무사(武士)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역주: 一所(한 곳)이라는 의미에 대한 말인듯), 노부나가는 토지에 대한 집착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즈코가 전신을 비밀로 하는 이유를 잘 알겠군. 이것은 무서운 '힘'이니라.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다니, 신불(神仏)에게나 가능했던 공상(空想)의 세계가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혼자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통신을 이용한 새로운 전략이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럴 때, 맹수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가 노부나가의 배에서 울려퍼졌다.

노부나가는 전신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식사를 하는 것도 잊고 몰두하고 있었다. 머리는 흥분으로 맑아져 있었지만, 제대로 연료를 보급받지 못한 몸이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뭐가 재미있는지, 노부나가는 크큭 하고 웃더니 소성에게 명했다.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도록 시즈코에게 전하라"


"예, 옛!"


소성은 노부나가의 말을 듣자마자 문자 그대로 나는 듯 달려갔다.


"이런 어정쩡한 시간에……"


노부나가의 요구를 전해들은 시즈코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주군인 노부나가를 접대하기 위해, 당연하지만 오찬(昼餐)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노부나가는 "필요없다!"라는 한 마디로 잘라버리고 전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시간이 지나 식어버린 요리를 낼 수도 없고, 그것들은 이미 신하들의 뱃속에 들어가 버렸다. 게다가 지금은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의 중간이라는 실로 어정쩡한 시간이라서, 요리사들도 자신들의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었을 때였다.

그럴 때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라고 하니까 답이 없었다. 평소라면 저녁 식사 때까지 기다릴 노부나가가, 뭘 생각했는지 간식이 아니라 식사를 원하는 것이다. 시즈코는 호스트(亭主)로서 이것에 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

최근 갑자기 식(食)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노부나가의 식사는 어렵다. 사고가 둔해진다며 술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 차를 요구하고, 다양한 식재료에 대해 독자적인 집착을 발휘한다.

기본적으로는 진한 맛을 좋아하지만, 야채류에 관해서는 조린 것(煮物), 삶은 것(炊きもの) 보다도 찜 요리(蒸し料理)를 선호하는데, 그런가 하면 고기 요리를 낼 때는 야채에도 강한 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식사 같은 건 배에 들어가면 뭐든 좋다고 말하던 시절이 그리웠다.


"어쩔 수 없나. 휴식중에 미안하지만 요리사들에게 준비하도록 말해줘"


"알겠습니다"


뱃속의 벌레가 울어제낄 정도로 배가 고팠던 노부나가는, 평소답지 않은 왕성한 식욕을 발휘하여 차려진 요리를 남김없이 비웠다. 게다가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본래 시간에 맞춰 차려진 만찬에도 얼굴을 내밀어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를 했다.

제아무리 대식가(健啖家)라고 해도 아무래도 과한 식사량이라, 중년의 영역에 달해 있는 노부나가는 배탈이 나서 드러눕게 된다.


"……저는 만찬 시간을 늦추거나 중지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복통으로 앓아누워있는 노부나가에 대해 시즈코는 쓴소리를 했다. 거북해진 노부나가는 고개를 돌리며 이불을 끌어올리고는 시즈코의 말을 흘려들었다.

아무래도 노부나가가 과식으로 앓아누웠다고는 할 수 없기에, 시즈코와 비밀스런 회담을 하고 있다고 하여 사람들을 물리쳐놓고 안쪽 방(奥の間)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딱히 배가 아픈 건 아니다. 네녀석이 걱정이 많은 것 뿐이다"


"네네. 알겠으니 이걸 드셔주세요"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노부나가에 대해, 시즈코는 항변을 흘려들으면서 찻잔(湯呑)을 내밀었다. 즉효성이 있는 위장약 따윈 존재하지 않기에, 시즈코가 내민 찻잔의 내용물은 무를 갈아서 천으로 거른 뒤, 소량의 벌꿀을 넣어 마시기 편하게 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팽만감(膨満感)에서 오는 구역질에는 학을 떼었는지, 얌전히 이 간이 위장약을 비우고는 다시 시즈코에게 등을 돌리면서 말했다.


"대머리쥐(ハゲネズミ)의 수하들이 와 있는 것 같더구나"


노부나가가 말하는 대머리쥐란 히데요시를 가리키며, 수하한 말할 것도 없이 히데나가 및 한베에와 칸베에를 나타낸다. 원숭이를 닮은 것으로 유명한 히데요시였으나, 노부나가는 그의 궁상맞은 얼굴을 가리켜 대머리쥐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의 히데나가들은 시즈코와의 회담 후, 준비부족인 상태에서 노부나가와 만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여겨, 시즈코 저택의 한 방을 빌려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을 시작했다.


"지금쯤, 주상께 말씀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계시겠지요. 한동안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흥, 간신히 좋아지기 시작한 흐름을 어지간히 끊고 싶지 않은 걸로 보이는구나. 대머리쥐는 요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니(鳴かず飛ばず) 말이다"


노부나가의 말대로, 히데요시의 주머니 사정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것은 히데요시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고, 전쟁을 하면 할수록 돈을 잃는 것은 세상의 법칙이다.

전쟁은 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날개돋친 듯 줄어들고, 설령 영지를 얻어냈다고 해도 거기서 수익이 나는 것은 나중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간신히 적자를 내지 않고 있는 미츠히데(光秀)는 보기드문 수완을 가지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었다.


"최근 생각없이(安易) 잉여 자금을 환류(還流)시켰기에, 자신의 통치가 성공한 요인이라고 믿는 분들이 늘고 있어서……"


시즈코는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준비를 하는 한편, 자신이 있는 곳에 쌓여있던 잉여 자금을 오다 영지의 각지에서 뿌렸다.

그야말로 외적 요인에 의해 솟아난 호경기에 기분이 좋아진 영주들은, 그것을 자신의 수완에 의한 것이라고 자만하는 풍조가 보이게 되었다.


"내버려둬라. 그 정도로 착각하는 놈들은 스스로 매운 맛을 보기 전엔 이해하지 못한다"


시즈코는 자신의 부족함을 후회하고 있었으나, 노부나가는 도움의 손길(梃子入れ)의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자들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었다.


"……좋아. 어찌 되었든, 사카이가 과도하게 부유해지는 것을 견제하는 의미에서도 아리마 개발에는 의미가 있겠지. 녀석들에게 돈을 내주어라"


"알겠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냐?"


"저도 주상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내는 이상, 그냥 다 떠넘기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성공시킬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말로든 뭐로든 참견할 것이니까요"


시즈코의 말을 들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음을 떠올렸다. 시즈코로서도 노부나가로부터의 명령이라면 이의는 없다. 게다가 직접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즈코가 융자를 한다고 하면, 창구가 되는 것은 어용 상인인 '타나카미야(田上屋)'가 가게를 내게 된다. 이미 전국 규모의 타나카미야가 현대에서 말하는 은행업을 담당하는 것이다. 아리마 온천의 이권은 이미 시즈코가 움켜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될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보아라"


"맡겨 주십시오"


노부나가의 신임을 얻은 시즈코는,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노부나가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튿날이 되어, 히데나가는 시즈코로부터 노부나가의 허가를 받았다는 뜻을 전달받았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사태가 진행되었기에 히데나가로서는 재미없었으나, 처세술에 능한 그는 그래도 표면상으로는 태도를 꾸며보였다.

불만을 추호도 드러내지 않고 시즈코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히데나가 일행은 오와리를 떠났다. 그들은 오와리 항구에 도착하자, 때마침 출항 직전이었던 코우베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우리들의 엉성한 계획 같은 건 필요없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재미는 없지만, 우리들이 역할을 달성한 것에는 변함이 없소. 그것도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조건의 융자를 받았다는 덤까지 따라왔지요"


히데나가는 갑판에 나가서 해면(海面)을 보면서, 옆에서 계속 찌푸린 표정을 짓고 있는 칸바에에게 말을 걸었다. 배가 만(湾)을 나와서 안정적인 항행에 들어가자, 히데나가가 할 일이 없어 난감해하던 칸베에를 갑판으로 불러낸 것이다. 혼자 남겨진 한베에는 뱃멀미를 하지 않는 체질 덕분에 오와리에서 손에 넣은 책들을 읽기로 한 듯, 히데나가의 말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초기 비용으로서 1만 관. 거기에 사업계획을 책정하여 제출하는 것과 병행하여, 반 년에 한 번 시즈코 님이 지정하시는 회계 보고인가 하는 걸 제출하면, 다시 추가로 2만 관을 융자해 주신다, 라"


"이야기가 지나치게 좋군요. 이것에 함정(裏)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거기에 그 회계 감사(会計監査)라는 것이 수상쩍습니다.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이 다 드러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리마 개발 자체가 '그림의 떡(絵に描いた餅)'이 되겠지요"


칸베에는 회계 보고의 견본으로서 건네받은 책자와, 복식부기(複式簿記)의 기본이 적힌 서적을 앞에 두고 절망적인 표정을 떠올렸다. 실무에 관여할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 히데나가는 회계 보고를 압도적으로 가볍게 보고 있었다.

부기를 조금이라도 배운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본어와 사칙연산을 할 수 있다면 부기의 3급 정도라면 고교생 레벨의 학력으로 충분히 취득이 가능하다. 하지만, 전국시대에서는 고교생 상당의 학력이라는 허들이 이미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생트집을 잡아 융자를 거절할 셈인가라고 생각했더니, 불안하다면 회계에 밝은 인원을 파견, 교육까지 돌봐준다고 한다. 칸베에에게는 시즈코의 노림수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모르겠다…… 이것을 하는 것에 무슨 이익이 있다는 거지?)


칸베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회계 보고라는 것은 기업의 어떤 기준일 시점에서 봤을 때의 업적 평가로, 어폐가 있음을 감안하고 말한다면 통신부(通信簿)에 가깝다.

MG 연수의 훈도(薫陶)를 받은 시즈코의 입장에서는 과거의 성적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경영자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속셈이 있지만, 뭐든지 차례를 건너뛰어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이 때문에, 통일된 평가기준으로 사업 운영을 평가할 수 있는 회계 제도의 도입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출자자인 시즈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영자가 되는 히데요시에게도 이점이 있는 것이지만, 상인 가문(商家) 출신이 아닌 칸베에에게 그것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하리라.


"뭐가 어찌되었든, 좋은 자극이 되었겠지요. 하여, 시즈코 님을 어찌 보셨습니까?"


마치 칸베에의 마음 속이 보이는 것 같은 타이밍에 히데나가가 물었다. 히데나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의 기미(機微)를 헤아리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알고는 있어도 매번 놀라게 된다.


"참으로 가늠할 수 없는(掴みどころの無い) 분이군요. 사람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의 패기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엿볼 수 없는데, 아득히 먼 곳을 내다보고 있는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솔직히 속을 알 수 없습니다"


"후후후. 처음 얼굴을 마주친 정도로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얄팍한 분은 아닙니다. 뭐, 이제부터 싫어도 오랫동안 알고 지나게 됩니다. 천천히 그 눈으로 평가하시는 게 좋겠죠"


"그건 그렇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海の物とも山の物ともつかぬ) 사업에 턱하니 1만 관을 내놓다니 제정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시즈코 님이라도 1만 관은 큰 돈이겠지요? 돈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걸까요?"


"푼돈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분께는 모두 잃더라도 그다지 뼈아프지는 않겠지요. 시즈코 님의 본질은 어디까지 가더라도 백성(百姓)입니다. 불모의 대지에 도전하여 씨앗을 뿌리고, 크게 맺힌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투자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시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준 후에 손을 대어 가꾸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겁니까?"


"코우베 항구의 사업을 보십시오. 바로 그것이야말로 그분께서 하시려는 일의 가장 좋은 표본이겠지요.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싹이 트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씨앗을 뿌리고 손을 대어 가꾸어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아시고 계시는 것이죠"


마치 꿰뚫어본 듯이 웃으면서 히데나가가 말했다. 항만을 만든다는 것은 일대 사업이며, 히데요시도 호상(豪商)이나 유력자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시즈코는 그것을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만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데, 시즈코 저택의 모습(佇まい)은 검소하고, 본인에게도 화려하게 꾸민 부분이 전혀 없었다. 전혀 사욕(我欲)을 느끼게 하지 않는 시즈코의 사람됨을 접하고, 칸베에는 그런 인간이 있는 것인가 하고 실로 수상쩍게 느끼고 있었다.


"그만한 자금력이 있다면, 아리마의 사업을 빼앗겨버리는 게 아닙니까?"


"시즈코 님께 그럴 뜻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능하겠지요. 바로 그렇기에, 결코 억지스러운(無体な)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가능하기에 하지 않는다는 히데나가의 말이 칸베에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히데나가가 시즈코에게 푹 빠져버린 것처럼 보인 칸베에는, 자신이라도 속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경계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처음부터 의심하고 시작하면 본질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충고, 새겨듣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칸베에는 히데나가에게 등을 돌려 선실로 돌아갔다. 말과는 반대로 태도를 딱딱하게 굳힌 칸베에를 보고 히데나가는 혼자서 득의의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건 재미있어질 것 같군요"


히데나가의 중얼거림은 배 위에 부는 바람에 실려,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고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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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