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3 1577년 3월 하순



항만 개발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던 도중, 정신을 차려보니 한 달 이상이 지나 있었다. 사이고쿠(西国)에서는 돌발적인 소규모 충돌이 발생하기는 했으나, 대규모 전투로 발전하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주로 공격하는 쪽이 소극적이 되어 있는 것에 기인하는데, 그 배경에는 노부나가로부터 히데요시(秀吉) 및 미츠히데(光秀)에 대해 "침공속도를 늦추고 기반을 다지도록 하라"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사이고쿠 정벌을 뒷받침하는 유통의 거점이 되어 있는 것은 여전히 쿄(京)로, 쿄에서 탄바(丹波)를 경유하여 하리마(播磨)로 보급선이 늘어져 있었다. 전선으로의 보급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서도 조속하게 물류의 전선기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셋츠(摂津), 탄바에 대해서는 거의 제압이 완료되어 있었기에, 제 1단계로서 물류 거점을 탄바까지 밀어올린다. 다음으로 탄바와 하리마의 경계 부근에 중계기지를 마련하여, 최전선인 북 하리마 및 동 하리마를 뒷받침하는 구상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적에게 들키지 않고 진행하기 위해서도, 히데요시와 미츠히데 두 사람은 소규모 충돌을 계속하면서도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육로(陸路)는 탄바에서, 해로(海路)는 셋츠 경유로 하리마 국 경계까지 물류망이 이어졌고, 두 분의 진력에 의해 지역의 안정화도 아주 잘 되고 있네요. 코우베(神戸) 항구의 개발은 순조롭나요?"


"토우도(藤堂) 님의 정기보고에 따르면 계획에 큰 지연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바닷속 작업이 발생하는 돌제(突堤)의 공사가 지연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리도 아니지요. 에치고(越後) 같은 곳과 비교하면 따뜻하다고는 해도 아직 봄이 되려면 멀었으니까요. 무리해서 수중 작업이 가능한 숙련공을 잃는 것은 피하고 싶으니, 돌제의 공사는 계획을 재검토하죠"


오와리(尾張)와 비교하면 따뜻한 경향에 있다고는 하나, 본래 겨울 바다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수지(樹脂)로 된 웻 수트(Wet Suit)를 개발하고는 있으나, 단열이 충분치 않아 장시간의 작업에는 견딜 수 없다.

돌제가 없어도 소형의 선박이라면 정박 가능하기에, 해운(海運)은 보조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고, 당분간은 육로를 중심으로 한 물류망으로 운용하게 된다.

항만도시를 정비하는 데 있어 항구만 생겨도 의미가 없다. 해로를 통해 운반되어 오는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반할 육로의 정비도 병행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잔뜩 항구만 만들어서 어쩔 건데?"


시즈코의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가요시(長可)가 물었다. 그가 지적한대로, 시즈코는 코우베 항구 뿐만이 아니라 오다 가문의 지배 아래 있는 각지에서도 항만도시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오와리와 사이고쿠를 잇는 항로의 중간점에 위치하는 키이(紀伊, 현재의 와카야마 현(和歌山県)) 방면에도 항만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즈코는 정력적으로 노부타카(信孝)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물류를 지배하면 자연스레 적의 움직임이 보이게 되거든.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이게 제일 빠른 길이야"


"그런 건가. 확실히 전쟁처럼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에 걸맞는 물자가 움직이게 되니, 자연히 시즈코가 알게 되는 건가……"


히데요시의 손으로 아카시(明石) 부근까지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시즈코는 사탕과 채찍을 병용하면서 기존의 효우고(兵庫) 항구 및 아마사키(尼崎) 항구를 지배하에 두었다. 거기에 항만 운용에 엄격한 룰을 적용하여 새는 화물(抜け荷, 소위 말하는 밀수(密輸))을 단속했다.

게다가 부두에 대규모의 창고를 건설하고 중기(重機)를 이용하여 화물을 부리기 떄문에, 종래의 인력으로 운반하는 방식과는 효율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어느 쪽을 이용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한 번 벌어진 차이는 계속 벌어질지언정 좁혀질 일은 없어서, 물류는 시즈코의 손에 의한 독점 내지는 과점(寡占) 상태가 되어 있다.


"아무리 나라도 재미(道楽)로 항만 개발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확실히 이유(目論見)가 있어서 하는 거거든?"


"오다 가문의 가신들 중에서도 아직 시즈코의 항만 개발을 쓸데없다고 단정하는 패거리가 있으니까 말이지. 뭐 이렇게 이례적인 화물의 움직임이 있을 때 그 징후를 탐지할 수 있게 되면 적도 힘들어지겠지"


"아무래도 자급자족하고 있는 물자나, 하리마보다 서쪽에서 운반되어 오는 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무구(武具) 종류에 관해서는 그렇지도 않으니까. 특히 화약은 사카이(堺)를 장악하고 있으니, 주상(上様)의 허가가 없으면 운반조차 할 수 없고 말야"


"설령 새는 화물로 반입하려고 해도, 길 없는 산야(山野)를 혼자서 주파하지 않는 한 반드시 네게 탐지되겠지"


물류망을 구축한 시즈코는, 운송회사를 창업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최대 업체로 부상했다. 독점상태가 되면 경쟁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에, 회사를 여럿으로 나누어 독립채산제(独立採算制)로 한 뒤에 노부나가와 노부타다(信忠)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는 것으로 기술의 발전이나 업무의 개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다만 경영권을 맡겼다고는 해도, 시즈코가 대규모 출자자인 것에 변함은 없어서, 업계 전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인재를 육성해서 회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게 재미있거든. 아마도이지만, 나는 전쟁보다 이런 일 쪽이 성격에 맞는다고 생각해"


"뭐, 시즈코는 전투에 관해서는 일반인 수준을 넘지 못하니까. 예전에는 이상한 활을 쓰게 하면 놀라운 부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고 말야. 묘하게 감이 좋으니 지휘관으로서는 그럭저럭이지만, 그래도 비범하다고는 할 수 없겠네"


"우사 산성(宇佐山城)에서 패전을 경험한 이래, 머지않아 짐덩어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후방지원 부대를 주력으로 한 거야. 이거라면 전쟁을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실제로 싸움을 하는 카츠조(勝蔵) 군들을 징원할 수 있으니까. 타케다(武田)와의 전투에서는 변화하는 전황을 최전선에서 즉각 판단하고 그에 대응하는 지시를 할 필요가 있었으니 예외적으로 전선에 있었지만 말야. 금후에는 인재부족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전선에 설 일은 없지 않을까?"


"당연하지! 누가 널 대신할 수 있다는 거야. 안 그래도 요즘에는 나중에 필요해질 물건까지 미리 보내져오니까 네가 전선에 나온 게 아닌가 하고 초조해져 있는데"


"경향과 대책이야. 기록은 그냥 남기기만 해서는 아깝잖아? 분석하고 활용하면 상황에 맞춰서 필요해질 물건의 경향이 보이게 되거든"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인간은 종종 성공체험을 바탕으로 행동을 패턴화시키기 일쑤이다. 그리고 개인을 묶어 군을 구성할 경우에는, 더욱 개성은 집단에 매몰되어버리고 패턴화로 수렴된다.

충분한 양의 사례가 축적되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한해서는 높은 정밀도로 필요한 물자 등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항상 예측하지 못한 사태는 발생할 수 있기에, 유비무환(転ばぬ先の杖)으로서 잉여 물자나 예비 부재(部材) 등도 '항상 일정량이 비축'되도록 수배하고 있는데, 도움이 되었을 때만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것이기에 미래를 예지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특훈 안 하고 있지?"


시즈코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요시가 쉬고 있는 것에 의문을 품고 물었다. 노부나가가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호령을 내린 이래로, 나가요시와 그 부하들은 연일 특훈이라 칭하고 행군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2월에 들어서서 연습은 격일(隔日)이 되고, 1주일에 한 번이 되고, 최근에는 기본 교련 이외에는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음, 오늘은 완전 휴양일로 했어. 행군할 때의 움직임은 몸이 기억할 때까지 훈련시켰으니, 남은 건 숙련도(練度)를 유지하며 몸 상태를 갖추는 쪽으로 바꾸었지"


"과연. 확실히 그 훈련 내용으로는 부상도 끊이지 않을테고, 몸 상태가 나빠지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그럼 특훈은 전혀 안 하는 거야?"


"아니, 격주로 1, 2회 실시하고 있어"


거친(粗暴) 행동이 눈에 띄기 때문에 뇌까지 근육으로 꽉 찬 듯이 생각되기 십상인 나가요시이지만, 의외로 행동은 계산에 뒷받침되어 있다. 격렬한 훈련을 반복하면 근력 등은 향상되지만, 피로의 축적에 비례하여 면역력이 계속 저하된다.

적당히 회복기를 두지 않으면, 언젠가 회복이 따라잡지 못하게 되어 훈련이 역효과가 되는 것이다. 나가요시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이른 단계에서 기초를 주입시키고, 이후에는 그것을 유지하며 부대 전체의 건강상태를 베스트로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아무래도 특훈 이외에는 먹고 자기만 하는 생활은 계속하기 어려우니까. 인간은 그렇게 장기간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아. 가끔은 맛있는 걸 먹고 술을 마시며 놀아야지"


"그 자리에 상사인 네가 있으면 다들 불평을 말할 수 없으니까 여기 있다는 거네?"


"힘든 훈련을 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불평 한 마디 하고 싶어지겠지. 그걸 계속 담아두는 건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말야. 어때, 나도 제법 생각하고 있지?"


그렇게 말하고 가슴을 펴는 나가요시를 보고, 시즈코는 그의 성장을 기쁘게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초봄도 끝나가는 3월이 되자, 행군 연습의 비율이 늘어나는 대신 기초수련의 내용은 줄어들고, 식사나 수면시간도 배려하도록 지시가 나왔다.

병사 숙소(兵舎)에서 나오는 식사 내용도 원정중에는 보급하기 어려운 생야채나 과일에 계란 요리의 등장빈도가 올라갔다. 고단백 저칼로리였던 종래의 식사에서, 여차할 때의 비축이 되는 지방이 되기 쉬운 당분(糖質)이나 기름기(脂質)가 중심으로 이행되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에 의해 병사들의 몸집도 달라져갔다. 강철의 선을 묶은 듯 조여진 육체에서, 그 위에 얇게 지방의 층이 붙은 (비교적) 날씬한 씨름선수(力士) 체형이라고 하면 상상하기 쉬울까.


"크으윽…… 아, 아프지는 않아!"


그렇게 육체개조를 하고 있는 그들이 열심히 달라붙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목욕하고 나온 후의 발 경락 마사지였다.

발단은 에치고(越後) 사람들 중 한 명이 탈의실 구석에 새롭게 설치된 나무로 된 발 경락 매트를 이용한 것이었다. 이것은 욕실용의 '발판(すのこ)'을 만들었을 때 남은 자투리 재료(端材)와, 군용 부츠의 밑창을 만들었을 때 남은 수지를 조합하여, 판 사이에 놓고 밟아도 잘 미끄러지지 않게 처리가 되어 있다.

목재 표면에 강가에서 주운 듯한 표면이 깎여나가 둥글어진 돌이 몇 개나 박혀 있는 이상한 물체. 주의사항에는 맨발로 '천천히' 올라서도록 적혀 있었다.

주의사항을 읽지 않았던 그는, 발 경락 매트에 기세좋게 뛰어 올라서 버렸다. 직후에 터져나온 절규와 발을 부여잡고 바닥에 뒹구는 남자가 한 명 생겨났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목욕탕을 이용하고 있던 사람들 전원이 달려오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리고 목욕탕의 관리자로부터 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으면 아프게 느껴지지만, 문제가 없으면 딱 좋은 자극이 된다고 듣고 쇼크를 받게 된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다! 나를 봐라!"


"네놈도 무릎이 후들거리고 있잖나!"


발바닥 근육이 피로했었던 것일까, 아니면 서 있는 자세에 문제가 있어서 중심이 흐트러졌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장심(土踏まず)이라는 평소에 자극을 받을 일이 잘 없는 곳이 민감해져 있었던 것일까.

다들 발 경락 매트에 도전했다가 격침되는 것을 반복하여, 언제부터인가 목욕하고 나오면서 줄을 서서 순서대로 발 경락 매트에 올라서서 그 위에서 안 아픈 척 참는다는 광경이 풍물시(風物詩)가 되었다.

처음에야 전원이 몸부림을 쳤지만, 그러면서 다들 자극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정말로 몸 상태가 좋고 나쁜 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하여 인기를 모으게 되어, 몸이 식지 않도록 규칙적으로 입욕하기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어딘가 평화로운 건강지향 붐에 들끓고있던 3월이 지나갈 듯한 하순에, 드디어 노부타다가 주요 부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의 개시를 선언했다.


"다들 잘 들어라! 우리들이 그 패전에서 배우고, 비밀리에 혹독한 훈련을 해온 것을 잘 모르는 쿄나 사카이의 참새(雀)들은 "이번에도 또 꼬리를 말고 돌아올 것이 틀림없다"고 지저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들의 힘은 주상께서 휘두르시는 칼날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언정, 결코 얕보여도 되는 것이 아니다. 얼굴에 옹이구멍이 뚫린 참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노부타다가 토한 기염에, 집결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어 화답했다. 열병장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다들 즉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즈코 저택에서도 이 움직임은 다를 것이 없어, 나가요시가 이끄는 부대가 타케다 전에서 선봉(一番槍)을 맡기 때문에 부대의 편제나 장비의 점검에 분주했다.

그래도 출정 자체를 향해 평소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도 있어, 일시적인 소동은 빠르게 진정되어가고 있었다.


"특훈에서 얻은 힘을 실컷 발휘하고 와"


"음! 맡겨둬, 무사의 숙원(本懐)을 이룰 기회니까 말이지. 즐기고 오겠어!"


시즈코의 말에 나가요시는 주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이 상황에 이르면 잔소리나 충고 같은 것은 필요없고, 서로가 재회를 전제로 한 인사를 나누고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이놈들아! 까짓 타케다의 찌거기(残滓) 따위가 뭐라는 것이냐! 우리들의 힘을 세상이 알도록 해주자!"


"오오!!"


나가요시가 부하들에게 호령을 하자, 다들 나란히 주먹을 한 곳을 향해 치켜올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시즈코는, 나가요시 군의 병사들에게서 김(湯気)이 피어오르는 착각을 받았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진 열기가 흔들흔들 피어오르는 듯 보이는 광경에, 모두가 이 때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이리하여 나가요시 군이 오와리에서 타케다의 본거지인 카이(甲斐)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가요시 군도 합류하여 무려 수만명으로 불어난 노부타다 군의 '본대'가 기후 성(岐阜城)에서 화려하게 출진했다.




때는 노부타다의 출진으로부터 한 달 정도 거슬러올라간다. 당시의 타케다는 아슬아슬하게 군으로서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그치고 있어, 무엇 하나라도 실수했다간 붕괴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붕괴로 이어지는 개미 구멍 하나가 뚫려 버렸다. 대(対) 오다의 최전선에서 침공을 막는 역할을 맡겨놓고, 지원은 커녕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여 힘을 깎아먹는 카츠요리(勝頼)에 대해 불만이 커져가고 있던 시나노(信濃) 국의 키소다니(木曾谷)의 영주,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가 노부나가의 회유(調略)에 응했다.

키소는 그의 친동생을 인질로 오다에 바치고 타케타로부터 이탈할 것을 맹세했다. 그 인질이 기후 성에 도착한 것은 3월 15일이었다. 타케다에게 들키지 않도록 비밀리에 이동했던 키소의 친동생은, 호위가 붙여져서 다시 노부나가가 있는 아즈치(安土)까지  이동했다.

이것을 계기로 노부타다는 가신들에게 고했다.


"지금부터 코우슈(甲州) 정벌의 선발대(先遣隊)를 파병한다"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개전의 허가를 주상께 받지 못했――"


"이 상황에서 불허하실 리가 없다. 게다가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려서는 늦는다! 타케다가 키소의 배신을 알기 전에 공격한다! 지금부터는 일각을 다투지 않으면 기선을 제압할 수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시작해라!"


"죄송합니다만, 선발대의 일부가 준비되지 않았습……"


"선발대의 임무를 받아놓고 준비하지 않은 덜렁이(粗忽者) 따위 내버려둬라! 지금 당장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


"옛. 고노에 시즈코(近衛静子) 님 휘하의 모리(森) 님은, 하명만 하시면 즉시 출발할 수 있다고……"


그 보고를 들은 노부타다는, 자기 군의 부하에게 선봉을 맡기기보다,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실리를 택했다. 나가요시 및 그 시점에서 준비가 되어있던 선발대를 즉시 출진시켰다.

이것이 3월 18일의 일로, 3월 22일에 수만의 군세를 이끌고 본대가 다른 루트를 향해 출진했다.

나가요시 군을 포함하는 새 선발대는, 기후 성을 출발하여 에나(恵那, 현재의 기후 현(岐阜県) 에나 시(恵那市))에 있는 이와무라 성(岩村城)을 목표로 했다.

그들은 이와무라 성을 함락시켜 중계지로 삼은 후, 타케다로부터 이탈한 키소가 다스리는 키소 후쿠시마 성(福島城, 현재의 나가노 현(長野県) 키소 군(木曽郡) 키소 정(木曽町))으로 들어가, 그 후 스와 호(諏訪湖) 부근에 위치하는 우에하라 성(上原城)을 공략한 후에 남하할 예정이었다.

그 후, 적의 수괴(首魁)인 타케다 카츠요리(武田勝頼)가 있는 신푸 성(新府城)을 향해 북쪽으로 도는 진로를 계획하고 있었다.

한편, 본대인 노부타다 군은 이와무라 성까지는 같은 루트를 타고, 그 후에 남쪽으로 도는 루트로서 루트 상에 있는 타키자와 성(滝沢城), 마츠오 성(松尾城, 현재의 나가노 현 이이다 시(飯田市)), 이이다 성(飯田城)을 함락시키며 북상하여, 남쪽으로부터 신푸 성으로 치고 올라가는 진로를 예정하고 있었다.

이 루트들은 예전부터의 과제였던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유행지를 피하면서 동시에 대군이 이동 가능하다는 진로가 된다. 일본주혈흡충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본주혈흡충은 한 번이라도 기생당하면 즉각 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면서 반복적으로 몇 번이나 기생당하는 것으로 중증화되기에, 대책을 취한 상태에서 하천이나 유행지를 피하면 충분히 대처 가능한 것이다.


"호오,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출진했는가. 재미있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볼만하겠구나"


기후 성에서 오와리를 경유하여, 전신(電信)으로 노부타다 출진의 보고를 받은 노부나가는 씨익 웃었다. 그는 아시미츠(足満)가 가져온 전신이라는 혁명적인 통신 수단이 전쟁의 향방을 바꿀 것이라고 확신하고, 즉시 호죠(北条) 공격의 임무를 맡는 별동대를 포함하는 나머지 토우고쿠 정벌부대에 호령하여 출격명령을 내렸다.


오다 가문의 주요 무장들이 오우미(近江) 일원에서 곧장 동쪽을 향해 출진해가는 모습을 본 백성들은, 드디어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 정벌에 나섰다며 떠들어댔고, 그 정보는 킨키(近畿) 지역에 퍼지게 되자 상인들의 손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전국으로 확산되어갔다.

노부나가의 호령 하나로 즉시 군사 행동이 가능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종래의 농업이란 모든 사람들이 종사하는 살기 위한 작업이었으나, 다양한 개혁과 효율화가 가해진 오다 가문에서는 분업화된 하나의 산업에 불과하게 되었다.

평균적으로 종래의 절반 이하의 노력으로 농작업이 수행되기 때문에, 단순 계산으로도 오다 군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인구 대비 다른 나라의 배가 된다. 이들은 예비역이나 반농반병(半農半兵)인 사람들도 포함하기 때문에, 직업군인은 훨씬 적다.

그래도 이 시대에서 상비군(常備軍)을 조직하고 운용이 가능한 것은 노부나가 뿐이리라. 즉, 오다 가문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비밀로서, 상비군과 그 외의 혼성부대로 군을 나누는 것에 의해 돌발사태에 대한 즉응성(即応性)을 높인 결과였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 카츠요리의 귀에도 노부타다 출진 소식이 들어가게 된다. 이 보고를 카츠요리가 받은 것은 키소 요시마사의 배신을 알게 되어 타케다 노부토요(武田信豊)를 대장으로 삼아 토벌군을 보낸 후였다.

이에 맞서는 키소는, 이대로는 오다 가문의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토벌군에게 포위당할 것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행군을 지체시키기 위해 성을 나가서 야전(野戦)을 걸고자 출진했다.

그에 대해 토벌군은 이마후쿠 마사카즈(今福昌和)가 지휘하는 부대가 선행하여 키소 후쿠시마 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자는 3월 28일, 토리이 고개(鳥居峠, 현 나가노 현(長野県) 시오지리 시(塩尻市) 나라이(奈良井))에서 격돌한다. 초전(初戦)은 지리적인 이득이 있는 키소 군이 우세하게 진행되나, 타카토 성(高遠城)에서 파견된 토벌군의 원군이 더해지자 즉시 뒤바뀌어 방어에 급급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희생을 내면서도 키소 요시마사는 패주하여 키소 후쿠시마 성에 농성했다. 한편, 키소 군을 물리친 토벌군은, 토리이 고개에 가까운 나라이나 사이카와(犀川)에 진을 치고 키소 군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수 없다고 초조해진 키소는, 사자를 파견하여 카츠요리에게 변명을 시도했다. 당연하지만 키소로부터의 변명은 묵살되었고, 카츠요리 자신은 아들인 노부카츠(信勝)를 데리고 신푸 성에서 우에하라 성으로 이동했다.


"으ー음, 주혈흡충(住血吸虫) 대책을 중시한 게 역효과가 났네. 역시 때를 못 맞췄나……"


그 보고를 노부타다 군에게서 전신(電信)으로 받은 시즈코는, 예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된 것에 탄식했다.


"무어 유쾌한 일이라도 있었더냐?"


시즈코의 옆에서 우아하게 차를 즐기고 있던 노히메(濃姫)가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시즈코의 그것에는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렇게 혼자서 시즈코 저택을 방문하고 있었다.


"키소 요시마사가 토리이 고개에서 타케다 군과 격돌하여 패전했습니다. 키소는 키소 후쿠시마 성으로 도망쳤습니다만, 타케다 군이 나라이가와(奈良井川)에 진을 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흠. 타케다는 키소를 패주시켰지만, 처치하지는 못하고 농성을 허용해버렸다는 것이냐. 그놈은 주군의 군이 다가가고 있는 상황에서 키소 후쿠시마 성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은 뼈아프겠구나. 한편으로 키소를 품고 있는 우리들도 초전에서 패전이라니 모양새가 좋지 않구나"


"그렇네요. 야전에서 승리해놓고 키소 후쿠시마 성을 포위하는 것도 아니고 나라이가와까지 '후퇴'한 것이 고전한 것을 말해주고 있군요. 그리고 이 사태는 카츠요리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寝耳に水)겠네요. 승리 소식을 들었을텐데, 성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까요"


야전에서 승리한 경우, 보통은 추격을 하여 패주중인 군을 몰아넣는다. 그것을 포기하고 나라이가와까지 후퇴하여 진을 친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는 공성을 할 만한 여력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호홋. 키소 한 명이 배신한 것만으로 기둥뿌리가 흔들리다니, 타케타도 쇠락했구나"


"타케다의 약체화를 꾀하도록 지시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힘이 떨어졌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흠, 타카토라(高虎) 군에게서 하리마 평정의 물자 상황이 도착했네요. 아, 카츠조 군에게서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호오, 속보라고 했는고? 무어라 하고 있느냐?"


"억지를 써서 가지고 나간 대포 말입니다만, 진군 속도의 족쇄가 되어서 이와무라 성에 놔둘테니 회수하러 와 달라고……. 그래서 가지고 가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한건데"


시즈코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통신수가 받아적은 전신 내용을 청서(清書)한 것이 차례차례 전달되어 왔다. 이번의 전쟁은 종래와는 달리 양면 작전(二正面作戦)을 동시 진행하기 때문에, 중심지인 오와리에는 양쪽의 정보가 그때그때 들어오는 것이다.


"그야말로 요술이로구나, 그 전신인가 하는 것은. 이곳에 앉아서 하리마와 시나노의 정보가 그때그때 들어오다니 말이다"


"과연 노히메 님, 눈이 높으시네요. 이걸 본 높으신 분들은, 전령이 가져오지 않는 정보 따윈 신용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전신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보 발신원(情報発信源)은 신용할 수 있습니다만, 그 부분을 이해하시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즈코가 사용하고 있는 전신(좁은 의미로는 통화(通話)를 하고 있기에 전화(電話)이지만, 여기서는 전파를 사용한 통신 전반을 가리키는 넓은 의미의 전신을 가리킴)은, 역사적 사실에서도 세계를 축소시켰다는 말까지 들은 혁신적인 기술이다.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전자 공작의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 기껏해야 중학교 이과(理科) 수업 및 고등학교의 물리(物理)에서 배우는 정도의 기초 뿐이다. 그래도 시즈코가 초기에 필사한 전자기(電磁気)의 교과서는, 아시미츠의 지식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전신기(電信機, 송신기(送受信))가 실용화된 후에도 아시미츠는 추가적인 개량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 시점에서는 전신기 자체가 너무 크고, 전원을 확보하기 위한 발전기도 소형화하거나 전지의 성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다.

전신기에는 납 축전지(鉛蓄電池)가 병설되어, 상시 수력발전기로부터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수력발전기라고 해도, 폭포 같은 큰 낙차를 이용한 터빈 방식의 것이 아니라, 하천 등의 흐름에 대해 드릴 같은 구조의 나선식(螺旋式) 수차를 설치하는 발전기이다.

이 발전기는 다소의 고저차(高低差)와 어느 정도의 수량(水量)만 있으면 전신기 한 대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발전량을 확보할 수 있다. 시즈코가 원래 있던 시대에서는 신기할 것도 없는 발전기이지만, 이 발전기를 전국시대에서 재현하는 데는 몇 가지 과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문제는 축받이(軸受け)였다. 축받이란 회전하는 축을 지지하면서 부드러운 회전을 실현하는 기구를 가리킨다. 핸드 스피너 등에서 축받이에 의한 마찰의 경감으로 회전력이 유지되는 모습을 떠올리면 잘 이해될 것이다.

축받이의 핵심을 구성하는 작은 강철 구슬, 소위 말하는 볼 베어링을 완전한 구 형태의, 일정한 규격에 따른 치수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업력이 없으면 안 되며, 또 소재가 되는 철강이나 유압 프레스에 기계와의 마찰을 경감시키는 작동유(作動油), 무섭도록 단단한 쇠구슬을 정밀하게 연마하는 장치 등 열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시즈코가 지금까지 배양해온 오와리의 기술력을 결집시킨 정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이 일련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전신의 장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 않더냐?"


"예, 타케나카(竹中) 님 같은 분은 전신의 가능성에 매혹되어서, 지금도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통신기나 그 기술자들을 부리려면 자신도 최저한의 지식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겠죠"


시즈코는 노히메의 말에 대답하면서, 전신을 통해 들어오는 포진 상황을 나타내는 '입체 지도(立体地図)' 위에 배치된 말(駒)을 움직였다.


"그것이 예사(芸事) 보호를 빙자하여 만들어낸 지도인가 하는 것이더냐?"


"누가 들으면 오해하실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 이건 꾸준한 측량의 결과입니다. 확실히 예사 보호의 일환으로 찾아갔을 때 측량한 것도 있습니다만……"


"호호호, 말은 하기 나름이구나. 조정(朝廷)의 권위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


시즈코의 앞에 떡하니 놓여 있는 입체지도는, 지형의 기복이 실제의 축척(縮尺)에 따라 어느 정도 재현된 디오라마 같은 것이다.

한 번 산 속에 들어가버리면 등고선(等高線)도 알 수 없기에 시야가 트인 장소로 한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행군할 수 있는 정도의 길은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마을의 규모나 하천의 위치, 다리의 유무 등, 싸움을 하는 데 중요해지는 정보는 빠짐없이 재현되어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얻는 데 있어 측량기기와 사진이 크게 활약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사진 자체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사전 준비라고 하면 측량을 하더라도 추궁받을 일은 없다. 거기에 조정의 권위, 나아가서는 천황(帝)의 권위를 한껏 활용하여 사진의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측량하는 곳에 대해서는 반드시 풍경사진을 촬영하고, 그 중에 탈이 날 일 없는 몇 장을 현지의 유력자에게 기증하고 있다.

또, 그 사진에 채색을 한 것을 천황에게 헌상하고 있고, 그것이 대단히 호평을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대놓고 촬영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궁궐(内裏)에 틀어박혀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에게, 시즈코에게서 헌상되는 사계절마다의 풍경사진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그 마음을 크게 위로해주는 것이 되어 있었다.


"저도 조정에는 꽤나 편의를 보아 주고, 금전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계속 지원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해도 벌은 안 받겠지요?"


"좀 더 직설적으로 대가를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만 말이다. 시즈코는 그쪽 방면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모양이구나. 이렇게까지 해주고 얻은 것이 정 3위(正三位)와 곤츄나곤(権中納言, ※역주: 벼슬의 명칭으로, 작중에서는 문맥상 명예직에 가까운 것으로 보임) 뿐이 아니더냐?"


"그렇게 말씀하셔도, 궁중에 입궐(参内)하라고 해도 곤란하니, 가벼이 보일 일 없으면서 큰 영향력도 가지지 않는게 제일이지요"


"시즈코는 자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느니라. 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유행하는 물건들은 무엇 하나 손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게 쿄의 상류계급 사이에서 한결같은 소문이니라"


노히메의 말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시즈코가 다양한 산물을 탄생시키고,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연출을 곁들여 선전해온 결과, 공가(公家)의 유행에 오와리 양식(尾張様)이라는 브랜드가 확립되었다.

식료품은 말할 것도 없고, 차나 과자 같은 기호품에 술이나 향신료 등도 오와리의 것이야말로 일류로 치게 되었으며, 그 모든 산업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는 시즈코의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어 있었다.


"환담하시는 중 실례합니다! 시즈코 님, 주상께서――"


다급한 발소리를 내며 맹장지 너머로 말을 걸어온 소성(小姓)이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중간에 끊겨버려서 나머지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소성을 밀어젖히듯 하며 실내로 들어온 인물은 입을 열자마자 말했다.


"또 재미있는 것을 하고 있구나, 시즈코. 나를 끼워주지 않다니 섭섭하지 않느냐!"


"늦으셨군요, 주군"


깜짝 놀라는 시즈코의 옆에서, 노히메는 부채를 펼치고 재미있는 듯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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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