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2 1577년 1월 하순



새해가 밝았다. 달력 상으로는 텐쇼(天正) 4년(1577년)이 되어, 역사적 사실에서 노부나가가 아즈치 성(安土城)의 축성(築城)을 개시한 해가 된다.

역사적 사실에 비해 1년 빠르게 완성된 아즈치 성에서 노부나가는 새해를 맞이했다. 오와리(尾張)는 물론이고 일본 전체의 정세도 종래의 역사와 비교해서 크게 변하고 있었다.

특히 백성의 시선에서 본 오다 가문은 융성의 극에 달하고, 반대로 전국시대 최강이라는 이름을 한껏 자랑했던 타케다(武田)의 몰락(凋落)이 두드러졌다.

누가 입 밖에 내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새해야말로 일본의 세력도가 크게 바뀌는 격동의 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에 반해 사이고쿠(西国)의 영웅(雄)인 모우리(毛利)나, 토우고쿠(東国)의 핵심(要)인 호죠(北条)는 새해 벽두부터 내심 부끄러운 심정을 되씹게 된다.

백성들의 하마평(下馬評)에 따르면, 자신들은 순리대로 쓰러져야 할 것이라고 인식되고 있고, 또 그것을 뒤엎을 만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심정적으로도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시즈코는 눈 앞에 버티고 있는(鎮座) 옻칠이 된 찬합(重箱)에 젓가락을 뻗었다. 그녀가 먹고 있는 것은 4단 찬합에 들어있는 오세치(御節) 요리였다.

전개된 각각의 찬합에는 작년 말일부터 준비된 요리가 가득 들어있어, 색색의 요리와 중후한 칠기(漆器)가 자아내는 대비가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애초에 '오세치(御節)'란, 중국에서 전해진 절공(節供, 절(節)이라 불리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마다 풍작을 기념 또는 감사하여 공물을 바친) 행사에 발단하였으며, 일본에서는 나라(奈良) 시대에 조정에서 치러진 절회(節会)에 기인한다.

그렇다고는 하나 나라 시대의 '오세치'는 현대의 그것과 달리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밥과 가득 퍼담아진 나마스(膾)나 조림(煮物), 국, 구이 등의 소박한 것이었다.

시즈코들이 먹고 있는 것 같은 찬합에 가득한 오세치 요리가 일반적이 된 것은, 역사적 사실에서는 타이쇼(大正) 시대 무렵이라고 한다.

원래 '오세치'라는 말은, 다섯 명절(五節句)의 하나인 정월(正月) 7일에 해당하는 인일(人日)에 나온 축하요리 전체를 가리켰다.

참고로 다른 명절은 3월 3일의 상사(上巳), 5월 5일의 단오(端午), 7월 7일의 칠석(七夕), 9월 9일의 중양(重陽) 등이다.

현대에서도 히나마츠리(雛祭り) 등으로 상징되는 3월 3일의 '삼짇날(桃の節句)', 어린이의 날로 인식되고 있는 5월 5일의 '단오절(端午の節句)', 견우(彦星)와 직녀(織姫) 이야기나 소원을 적은 종잇조각(短冊)을 대나무(笹)에 매다는 '칠석(笹の節句)'으로서 우리들의 생활에 뿌리내리고 있다.


"호죠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다.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한 '오다와라 평정(小田原評定, 길게 끌기만 하고 결론이 나오지 않는 회의 등의 의미)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찬합과는 별도로 준비된 대합(蛤) 국물을 한 손에 들고 아시미츠(足満)가 시즈코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그릇에 쿠리킨톤(栗きんとん, ※역주: 강낭콩과 고구마를 삶아 으깨어 밤 따위를 넣은 단 식품)을 산처럼 퍼놓고 아까부터 자작(手酌)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의외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지만, 단 쿠리킨톤과 매운 맛의 청주(清酒)의 조합은 상성이 좋고, 또 쿠리킨톤과 대조를 이루는 대합 국물을 마시는 것으로 자꾸 먹게 되어버린다.

현대에서도 전해지는 찬합에 담긴 오세치 요리에는 엄밀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2단이나 3단의 것에서 5단을 넘는 호화로운 것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4단 찬합이야말로 정석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숫자의 3이 완성이나 안정을 나타내기에, 그 위에 한 층을 더 얹는다는 발전성을 바라는 재수를 비는(験担ぎ) 것이거나, 4라는 숫자가 사계절을 나타내어 1년을 내포한다는 의미를 가지거나 하기 때문이다.

다만, 사(四)는 죽을 사(死, ※역주: 일본어에서도 넉 사와 죽을 사는 독음이 '시'로 같음)를 연상시키기에 재수가 나빠서, 독음을 요(与)로 바꾸어 넷째 단(与の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도 훗날에 생긴 예법(作法)이기는 하나, 찬합에도 양식이 정해져 있어, 바깥이 검정색이고 안쪽이 붉은색(朱)인 것이 정식 색상이 되었다.

안에 담는 요리에도 정석(定番)이 존재하여, 시즈코는 첫째 단에 어묵(かまぼこ)이나 검은 콩 이외의 명절 반찬(祝い肴)을, 둘째 단에는 도미(鯛)나 방어(鰤), 새우(海老) 등의 재수가 좋다고 하는 해산물의 구이를, 셋째 단에는 홍백 나마스나 연근 초무침(酢れんこん) 등의 초무침(酢の物)을, 넷째 단에는 토란(里芋) 등 산에서 나는 것들(山の幸)을 사용한 조림을 채워넣었다.


"빈말로도 농업에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칸토(関東)의 땅에서 왕도 낙토(王道楽土)를 건설하여, 칸토 8주(関八州) 국가의 맹주이자 칸토의 왕으로 불리기 직전에 창을 맞대지 않고 항복은 할 수 없다는 걸까요? 타케다 침공이 3월에라도 시작될테니, 그때까지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사회생의 한 수를 둘 수 없다면 외통수에 몰린 상황은 뒤집히지 않을텐데요"


"아마도 역사적 사실대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멸망하겠지. 하지만 우세하다고는 하다 방심은 금물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는 옛말(故事)도 있지"


"이긴 후에 투구끈을 조여라(勝って兜の緒を締めよ)고 하니까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요. 위험해요(剣呑), 위험해"


자만한 끝에 마무리에 실수하여, 마지막 순간에 역전당해서는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한다.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볼 때 토우고쿠 정벌은 한번 실패한 후에 권토중래(捲土重来)를 꾀한 공세이다.

이번에 토우고쿠를 완전히 정벌하지 못하고 비기거나, 하물며 패배를 당할 경우, 오다 군 전체의 강함을 의심받게 될 수 있다.

사태는 시즈코 한 사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오다 군의, 나아가서는 노부나가가 천하인(天下人)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 의심받게 된다.

의문이 끼어들 여지조차 없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었다.


"토우고쿠가 정리되면 모우리는 곧 무너진다. 그렇게 되면 큐슈(九州) 세력만이 남게 되겠지. 그러고보니 토호쿠(東北)의 다테(伊達) 가문은 어떻게 되었지?"


"키묘(奇妙) 님께서 대(対) 호죠 전의 일환으로 이것저것 흔들고 계시는데, 썩 좋은 대답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이것도 시간 문제라고 생각해요"


"호죠에 대한 경제 전쟁의 추이를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자격은 없지. 남겨진 시간은 많지 않지만, 어디 선진적(先進的)인 테루무네(輝宗) 님은 어떻게 움직일까?"


"우리도 물류의 한계가 있으니 이른 단계에서 항복해 준다면 오우슈(奥州) 일대의 통치를 맡겨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걸 깨달을 수 있을지 어떨지에 달렸네요"


호죠 씨는 칸토 일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토호쿠에도 손을 뻗쳐 다테나 아시나(蘆名), 사타케(佐竹)에게도 협력을 받아 거대한 반 오다 연합을 결성하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결속되어 있지만, 그 실태는 반석(一枚岩)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다테와 아시나는 서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고, 사타케는 어디까지나 협력관계에 있을 뿐이지 호죠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으로도 키나이(近畿)에서 츄우부(中部)-토우카이(東海) 지방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오다 연합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하다. 반 오다 연합이라기보다도 상호불가침 및 궁지에 빠졌을 때의 상호지원을 위한 구조라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예전에 혼간지(本願寺)가 맹주가 되어 구축했던 반 오다 포위망보다도 결속력이 약하다고 판단하고, 노부타다(信忠)는 성장의 여지가 있지만 곤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테 가문을 지목하여 정치적 책략을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2중, 3중으로 보험을 들어놓는 의미로서도, 아시나나 사타케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다테 가문이 오우슈를 통일하고 토호쿠의 패자가 되기에, 장래성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본텐마루(梵天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아명)는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노부타다는 다테 가문이 이쪽의 정치적 책략에 동조하면 좋고, 아니면 두각을 나타내기 전에 없애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급조된 연합은 허술하지. 혼간지의 제 2차 오다 포위망에서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호죠의 중신 놈들은 성공체험에 고집하여, 불리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있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船頭多くして船山に上る)'고 하니까요. 백성이나 부하들의 의견을 잘 듣고 공화제에 가까운 정치 형태를 실현하고 있는 것은 훌륭하지만, 조직이 비대화되면서 의사결정이 둔중해지는 건 피할 수 없었던 거겠죠"


"어느 쪽이든 호죠와 우리들은 공존할 수 없다. 함께 설 수 없는 이상은 멸망시킬 뿐, 어차피 산화할 거라면 깨끗하게 산화하게 해주는 것이 무사(武士)의 정이지"


"네, 하지만 아시미츠 아저씨는 사도가시마(佐渡島)를 부탁해요. 가능하다면 빨리 처리하고 지원하러 달려와줬으면 좋겠네요. 조정에서 허가를 받았다고는 해도, 실효지배하고 있는 혼마 씨(本間氏)가 말없이 따를 리가 없으니 충분히 주의해주세요"


"알았다. '빠르게 처리하지'"


애초부터 실력행사를 염두에 두고 있던 아시미츠였으나, 시즈코의 희망이라면 늦을 수는 없다. 그다지 선택할 생각도 없었던 공략 수단이, 조기 해결을 꾀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가혹한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올해 안에 모우리(毛利)까지 처리되면 좋겠지만요. 시코쿠(四国)는 동맹관계에 있는 쵸소카베(長宗我部)가 분투하고 있고, 키나이는 거의 평정되었으니…… 예상밖이었던 건 혼간지의 철수가 늦어지고 있는 정도일까요. 신도들을 좀 너무 많이 보냈네요"


혼간지는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시모츠마 라이렌(下間頼廉)이 창구가 되어 지휘하여 이시야마(石山) 혼간지에서 퇴거할 것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이시야마 혼간지에서 생활하고 있던 방대한 신도들이었다.노부나가는 혼간지를 궁지에 몰기 위해, 예전의 혼간지의 영토를 깎아내면서 거기에 살고 있던 신도들을 혼간지로 쫓아보냈다.

결과적으로 이시야마 혼간지는 허용량 한계의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신도들을 품게 되어, 막상 이시야마 혼간지를 퇴거하려고 해도 그들에게 안주(安住)할 땅을 줄 수 없어 빌빌거리고(四苦八苦) 있었다.

인원수가 인원수인 만큼, 그들 모두가 폭도로 화하게 되면 근린(近隣) 일대의 치안이 땅에 떨어지기에, 노부나가는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통해 원조하면서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이렌이 켄뇨(顕如)를 계속 유폐하고 있는 이유, 추측이지만 전후 처리의 불만을 그에게 향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겠죠"


"하극상을 꾀한 이상, 오명은 자신이 뒤집어쓸 생각이겠지"


켄뇨의 소재에 대해서는 밝혀져 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안쪽의 사원(院)에 유폐되어 있을거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노부나가도 시즈코도 굳이 켄뇨를 출두시키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무장 해제가 된데다, 축적되어 있던 많은 재산은 신도들을 위해 환금하여 지급되었기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게다가 신앙의 기반(拠り所)이 되는 이시야마 혼간지를 잃은 상태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켄뇨가 재기를 꾀하려 해도 그의 말을 따를 사람은 적을 것이다. 이미 결판은 나 버린 것이다. 누구나 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가혹한 삶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켄뇨로서도 이제와서 일을 거칠게 만드는 짓은 안 하겠죠. 설령 한다고 해도, 규모가 확대되기 전에 진압될 것은 뻔히 보일테니까요"


무장 집단으로서의 혼간지는 죽었다. 라이렌의 책략에 의해 간신히 종교로서의 혼간지 교단이 목숨을 잇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간자들에 의해 항상 감시되어, 무장 봉기의 기색이 탐지된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당할 것이다.

라이렌은 그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지만, 일말의 불안이 남아 있었다. 강경파였던 쿄뇨(教如)의 동향이 파악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번 더 파란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대로 순조롭게 일이 끝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시즈코였다.



작년의 정월은 노부나가의 배려에 의해 '비교적' 온당한 정월을 보냈던 시즈코였으나, 올해에는 다른 중신들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스케줄의 인사 행각(行脚)이 되었다.

노부나가나 노부타다, 의부인 사키히사를 시작으로 한 윗사람들에 대한 인사가 끝나면, 동격(同格)끼리 인사하러 다니게 된다. 이것이 일단락되어도 끝이 아니다.

이번에는 자신이 오와리에서 정월 인사를 받을 차례가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앞으로 나서면 되는 상위자(上位者)에 대한 인사와 달리, 인사를 받는 쪽은 상상 이상으로 노력을 요구받는다.

가볍게 누구와도 면회해서는 쓸데없는 의심을 받는다(鼎の軽重を問われる, 통치자로서의 능력을 의심받는다)

여기서의 주역은 시즈코가 아니라, 그들을 상대하는 가신단이 되기에 시즈코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결재 등의 이유로 시즈코의 판단을 요청받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맡기게 되므로 한가해진 시즈코는, 호출이 올 때까지 회식 늑대인 카이저 일가와 지내는 것으로 정신의 안정을 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월 무드는 1월 하순이 되자 일변했다.


"하시바(羽柴) 님은 포위(攻囲) 작전 중이니까 무구의 보급은 우선순위를 낮추고, 대신 식료품과 의료품, 생활잡화를 늘려서 발송하세요"


마츠노우치(松の内, 1월 중순까지)는 암묵적인 휴전 협정이 있었기 때문인지 조용했지만, 서쪽으로는 하리마(播磨), 탄바(丹波) 평정과 혼간지의 해체작업. 동쪽으로는 타케다, 호죠 정벌을 향한 작업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탄바 평정을 담당하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는, 작년 시점에서 대세를 결정지었고, 현재는 지반 굳히기에 착수하고 있기 때문이지 눈에 띄는 큰 움직임이 없다.

필연적으로 공성을 계속하고 있는 히데요시(秀吉)에게 주목이 모아지고 있었다.

문제의 히데요시는, 이곳이 자신의 분수령이 될 것을 이해하고 있어, 자군의 기강을 바로잡은 후 신중하게 공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명예보다 실리를 택하는 운용이 효과를 보았는지, 히데요시 군은 연전쾌승을 거듭하여 아카시(明石)까지 진공하는 데 성공했다.


"아카시를 되찾아도 여기부터가 난제네. 아카시 항구와 아마사키(尼崎) 항구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 해운(海運)으로의 물자 수송이 가능해진 반면, 이 거점을 지키기 위한 병력을 항상 쪼개야 하고, 해군을 조직할 필요도 있겠네"


말할 것도 없지만 아카시 항구와 아마사키 항구는 우량한 항구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곳들을 수중에 넣은 것으로 군자금은 물론이고 병참 유지라는 면에서 원정군이라는 불리함을 뒤엎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술한 대로 모우리가 지원하는 무라카미(村上) 수군(水軍)에 의해 해상봉쇄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마사키 항구에 관해서는 오다 세력권에 더 가깝기에 쉽게 손을 댈 수 없겠지만, 아카시 항구는 최전선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정이 달라진다.

최전선으로 직접 물자를 운반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지만, 적의 손에 떨어지면 다시 궁지에 몰리게 되므로, 지금까지처럼 공세일변도로 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게다가 아와지(淡路) 섬을 세력하에 두고 있지 않기에, 그곳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할 필요도 있었다. 아카시 항구는 요충지이지만, 이곳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히데요시는 생각했다.


"주상(上様)으로부터 신 항구(코우베(神戸) 항구) 개발 허가는 내려왔어요?


"옛! 전날에 재가를 받았습니다. 그에 따라, 사업계획대로 기사(技師) 집단을 파견했습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아이치(愛知) 용수(用水)와 맞먹는 대규모의 국가사업이 될 거에요. 당분간은 전선에 대한 물자보급을 목적으로 하지만, 장래를 내다보고 설계하도록 지시해 주세요"


히데요시가 타진하고 시즈코가 입안한 것이 코우바 항구의 개항(開港)이었다. 롯코우(六甲) 산맥에서 오사카 만(大阪湾)에 걸친 험준(急峻)한 지형에 의해 해저가 크게 깎여나가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고 있기에 코우베에는 좋은 항구가 될 천혜의 소양이 있었다.

현대 일본에서도 5대 항구의 하나로 꼽히며, 국제 전략항만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코우베 항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오와다(大輪田)의 정박지(泊り)라고 불린 효고(兵庫) 항구가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는 효고 항구와 코우베 항구의 위치는 반도(半島)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늘어선 부채 형상을 취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본-송나라(日宋)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효우고 항구였으나, 전국시대의 발단이 된 오우닌의 난(応仁の乱)에 의해 황폐화되어 버렸다.

한편, 훗날의 코우베 항구가 되는 장소에는 작은 한촌(寒村)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메이지(明治) 시대에 정부가 개항장(開港場, 외국 무역용의 항구)으로서 효고 항구를 지정하고 해역을 상세히 조사해보니, 단순한 후미(入り江)에 지나지 않았던 코우베 쪽이 항구로서 적합하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거류지(居留地)가 설치되고 코우베 항구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개항 당초에는 부두(波止場)의 길이가 짧고 수심이 얕았기에 대형선이 가로댈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심이 깊은 위치까지 돌출된 신항부두(新港埠頭)가 증축되게 되어, 국제 항만도시로서 발전하게 된다.


(발견된 것은 메이지 이후. 즉 지금은 한촌이 있을 뿐인 벽지(僻地). 덕분에 주상이나 하시바 님을 설득하느라 고생했지만, 장래를 내다본다면 단연 이쪽이지)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기득권익(既得権益)이 생겨나 있기에 이해관계의 조정이 까다롭다. 그보다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무구(無垢)한 토지에 새로운 항구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쪽이 모든 권익을 쥘 수 있어 이득이 크다.

한촌의 주민들에게 이주할 곳을 제시하고 퇴거시키면 이 계획에 참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항만의 규모가 확대되면, 현재의 코우베 항구처럼 두 개의 항구를 합쳐 코우베 항구로 부르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 발전하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장래의 과제로서 후계자에게 맡기게 되리라.

시즈코는 이전부터 코우베 항구를 개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히데요시가 일대를 제압한 것에 의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배경이 있었다.


"본래는 한촌의 현지 백성들을 고용해서 현지에 부를 떨어뜨리는 게 상책입니다만, 모우리 측의 공작이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 항만 개발에 관여하는 단순노동자 이상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이쪽에서 보내는 것으로 대처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시바 님에 대해서는 일단락되었다고 하고…… 아케치 님에게 필요해질 것은 정치공작을 하기 위한 정보와 돈이려나요?"


정치의 세계는 청탁병탄(清濁併せ呑む, ※역주: 도량이 커서 어떤 사람이나 받아들이다)이라고 하듯, 생활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겉보기에 깨끗하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빠르게 지반을 굳히기 위해 필요해지는 것은, 누가 키 맨이 되는가라는 정보와, 그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돈이었다.

미츠히데는 오다 가문에 속하는 자들이 다수파가 되도록 다수파 공작을, 반 오다로 모여 있는 자들에게 이간(離間) 공작을, 현지 유력자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으로 주변 일대의 민심을 획득하는 로비 공작을 할 예정이라고 시즈코는 전달받았다.

다만 돈에 굽실거리는 자들은 더욱 큰 이익을 제시받으면 쉽게 배신하기에 감시가 필요해진다. 그래도 선조대대의 원한 등의 감정에 뿌리내린 관계보다는 다루기 쉽고, 이익을 계속 제공하는 한은 순종적이다. 필요없으면 관계를 끊으면 되기에 뒤탈도 없다.


"사이고쿠와 관해서는 적설(積雪) 등으로 교통이 단절되는 일은 일단 없으니, 이제부터는 사이고쿠의 정세가 중요해지려나요. 좋았어, '그걸' 가지고 있는 토우도(藤堂) 군에게 연락을 긴밀히 하도록 전해주세요"


"옛"


토우도 타카토라(藤堂高虎)가 가지고 있는 장비, 그것은 전신기(電信機)였다. 현대에서는 누구나 당연히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의 선조라고도 할 수 있는 기계이다.

전신의 기술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해지기에, 간단히 설명하면 음성을 전기신호로 변환하여, 그것을 증폭한 후에 전파로서 날려보내, 다른 수신기에서 수신한 신호를 증폭하여 다시 음석으로 변환하는 것으로 실현되는 무선통신이다.

이것을 이용하는 것으로, 시즈코는 오와리에 있으면서 사이고쿠의 정보를 직접 입수할 수 있고, 또 토우고쿠 정벌의 상황을 그때그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사이고쿠에 관해서는 도중의 영역이 지배하에 있기에 중계기지를 설치하는 것이 용이하여, 현 시점에서는 송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토우고쿠 정벌에 관해서는 발전 설비와 전파 중계설비를 그때그때 설명하면서 진군해야 하기 때문에, 준비에 방대한 노력과 자금이 한창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러한 기술들을 실현하는 핵심이 된 인물이 아시미츠이다. 그는 타임 슬립했을 떄, 어린아이들조차 자신의 통신 단말을 가지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엄청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기초적인 지식은 은닉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알자, 어째서인지 몹시 배우고 싶어졌던 것이다.


기억상실이었기에, 그 기묘한 열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모른 채 대형 도서관에 매일 드나들면서, 중학교 수준의 전자회로에서 시작하여, 광석 라디오를 거쳐 전자공작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전파의 정체가 자계(磁界)와 전계(電界)의 상호 작용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수 있었을 무렵에는, 스스로 회로 설계도를 그려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전국시대에서도 발전기와 모터를 제조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전파의 송수신은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신호 증폭이라는 점에서 길이 막혀 버렸다.

현대라면 트랜지스터나 다이오드에 의해 극히 간단히 가능한 일이, 전국시대에서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아시미츠는 트랜지스터가 실용화되기 전의 진공관을 사용하기로 했다.

현 시점의 공작기술이 있다면 진공관 자체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고열이 가해지기에 핵심(基幹) 부품인 필라멘트의 소모율이 대단히 높아서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다는 결점이 있었다.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르는 진공관을 보완하기 위해, 전자회로는 규모가 대단히 커져서(冗長化) 거대화된다. 회로가 비대화되니 구리선(銅線)의 저항도 무시할 수 없게되어, 필요로 하는 전력도 크게 증가했다.


현대의 필라멘트에 쓰이고 있는 것 같은 텅스텐이 있다면 좋겠지만, 애초에 융점이 섭씨 3000도를 넘는 금속을 녹이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또, 텅스텐을 함유하는 광상(鉱床) 자체가 대부분 중국에 분포하고 있고, 거기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에 집중되어 있기에 조달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현재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로(炉)를 사용하여 정제할 수 있는 고융점(高融点) 합금인 니켈과 크롬의 합금을 사용하여 필라멘트를 만들고 있다.

참고로 음성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여, 와인 양조의 부산물로 얻어지는 주석산(酒石酸) 나트륨의 결정, 소위 말하는 로셸염(Rochell Salt, ※역주: potassium sodium tartrate)을 사용한다.

주석산 나트륨의 포화용액을 만들어서 가능한 한 큰 결정을 분리(析出)해내면 준비는 완료된다. 종이컵 바닥에라도 붙여서 고정하고, 전극을 연결한 상태에서 종이컵에 대고 말하면 미약한 전류가 흐른다.

이 전극에 전선을 연결해 연장하여, 도중에 신호증폭기를 연결해서 똑같은 다른 종이컵에 전기신호를 입력시키면, 종이컵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경위 끝에 개발된 무선(無線) 전신기는, 대형이면서 거치형(据え置き型)이기는 하지만, 현 시점에서도 오와리와 쿄(京)를 통신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이고쿠에 관해서는 이상이려나요. 토우고쿠에 대해서는 뭔가 보고가 있나요?"


"현 시점에서는 특필할 만한 보고는 없습니다. 타케다는 만성적인 물자의 공급부족에 빠져 있어, 생활 필수품을 마련하는 데도 애를 먹고 있는 듯 합니다. 식량을 조달하는 게 고작이라는 상황이라, 전쟁 같은 건 말도 안 되겠지요"


"아주 좋군요. 자신들이 간신히 먹고살고 있는 상황이라도 적은 쳐들어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니, 계속 압박을 늦추지 않도록 사나다(真田) 씨에게 전해주세요"


"옛. 잘 알겠습니다"


"너무 조였다가 난민이 대량 발생해도 곤란하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조절을 잘 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잠시 순찰을 하고 오겠어요"


간자와의 창구를 담당하고 있는 연락담당자와의 회담을 마친 시즈코는 자리를 떴다. 호위인 사이조(才蔵)를 대동한 시즈코는, 에치고로부터 맡아놓고 있는 인질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요즘 연무관(練武館, 소위 말하는 무도장(武道場))에 죽치고 있어, 오늘도 예외 없이 다들 연무관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닫혀져 있던 도장의 문을 사이조가 손을 뻗어 밀어젖혔다. 처음에 느낀 것은 겨울의 한기에도 아랑곳하지않는 숨이 턱 막힐 듯한 열기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단련을 하고 있었으며, 웃옷을 벗고 하카마(袴, ※역주: 검도복의 바지같은 주름잡힌 치마처럼 생긴 바지)만 입은 모습으로 창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쿠, 시즈코 님. 이런 장소에까지 오시다니 무슨 일이십니까?"


열여젖혀진 입구에서 불어들어오는 찬바람으로 시즈코의 존재를 눈치챈 카게카츠(景勝)가 땀을 닦으며 말을 걸어왔다.

시즈코는 그들에게 자신에게 상관하지 말고 훈련을 계속하라고 말하고는, 카게카츠를 연무관 한 구석으로 데려갔다.


"오늘은 전달사항이 있어서 왔습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렸습니다만, 드디어 전원분의 입욕 허가증(入浴手形)이 준비되었습니다"


"오오!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하면 일자리(働き口)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그쪽에 대해서는 정식 명령서가 도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주상의 재가는 받았으니 가까운 시일내에 허가할 수 있겠지요"


시즈코의 대답을 듣고, 카게카츠를 시작으로 에치고의 모두는 환희에 들끓었다. 입욕 허가증이란 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기 위한 허가증이다.

그들도 상당히 오와리 양식의 생활에 물들어 있어, 단련을 하여 땀을 흘린 후에는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몸을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까지는 케이지(慶次)가 동행하고 있으면 단체로서 입욕이 허가되었으나, 그가 없을 경우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씻을 뿐이었다.

이제와서 그들이 나쁜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무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寸鉄を帯びられない) 목욕탕 출입을 자유롭게 허가하는 것은 시즈코 한 사람의 재량의 범주를 넘어섰다.

최종적으로 노부나가가 내린 판단은, 한 번에 다섯 명까지의 입욕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주의사항으로서 오랫동안 목욕하는 것을 주의할 것과, 목욕탕에 주류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마도 케이지가 처음에 해 보였겠지만, 욕조에서 술 한 잔을 한다는 것은 에치고 사람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제아무리 에치고 사람(술고래)이라도 목욕탕에서 폭음(深酒)을 하면 기절하는 게 당연했다. 자칫 욕조에서 익사할 뻔한 소동이 발생하여, 이후의 주류반입은 엄히 금지되었다.


또, 카게카츠가 말한 일자리라는 것은, 본격적인 직업 알선이 아니라, 임시 아르바이트의 부류였다.

인질의 입장으로는 자리를 잡고 직업에 종사할 수도 없지만, 격일(隔日)로 한나절 정도의 일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질이기에, 비교적 유복한 무사와 같은 정도의 대우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여름 무렵에 근방(界隈)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맥주와 닭꼬치나 해산물을 듬뿍 사용한 반죽이 떠 있는 '오뎅(おでん)'으로 한잔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재량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용돈을 늘리고 싶다는 것이다. 최저한의 생계와는 별도로 사치의 부류에 들어가기에, 그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시대극에서는 무사의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지우산(番傘) 만들기가 단골이지) 노동에 관해서는 갑자기 외부로 나가는 것은 어렵기에, 우선 제 저택의 보수나 마을의 도로 보수 등에 종사하시게 됩니다"


오와리의 시즈코 저택도 그럭저럭 세월이 흐르면서 곳곳에 노휴화(老朽化)의 징후가 보이게 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노휴화라는 것도 표층 부분이나 가동부 등의 부하가 걸리는 장소에 한정된다.

이 정도의 보수라면 전문 목수나 쿠로쿠와슈(黒鍬衆) 등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현장을 지휘하는 사람으로서 몇 명의 목수와, 그들을 보좌하는 노동력으로서의 에치고 사람들이 있으면 충분하다.


"각별하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다들! 지금부터 바빠질 것이다! 그러나 맛있는 것을 먹고, 욕조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오오!!"


(기초 체력은 있겠지만, 무도(武道)와 목수일은 쓰는 근육이 다르다고 하니, 안마사(按摩師)도 수배해 둘까)


기염을 토하고 있는 카게카츠를 보고 흐뭇하게 생각하면서도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대비를 시작했다.

먼저 몇 명씩 한 조가 되어 번갈아가면서 노동에 종사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익숙하지 않은 노동으로 전신근육통을 앓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