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4 1577년 3월 하순



토우고쿠(東国) 정벌의 제 1단계인 코우슈(甲州) 정벌은 나가요시(長可)가 이끄는 선발대(先遣隊)의 쾌진격으로 막을 올렸다.

기후 성(岐阜城)을 출발한 나가요시는 병기창(兵器廠)에 억지를 써서 가지고 나온 대포를 사용하여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가 농성하고 있는 키소(木曽) 후쿠시마 성(福島城)을 구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발대보다 더 앞서나간 척후가 가지고 돌아오는 정보를 들어보니, 이 진군 속도로는 도저히 때에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한 나가요시는 비장(虎の子)의 대포를 버린다는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다 군에게 전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 병기인 대포를 아무데나 내다버리는 건 말도 안 된다. 후방까지 수송하려고 해도 부대를 나누어 호위를 붙일 필요가 있기에, 완전히 이도 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거기서 나가요시는 아예 서전(緒戦)인 이와무라 성(岩村城) 공략에 사용하고, 그 후에는 점령한 이와무라 성 안의 방위설비로 삼으면서 회수를 기다리면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여기서 일본 최초의 포격에 의한 공성전을 받게 된 이와무라 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이와무라 성은 카마쿠라(鎌倉) 시대에 토오야마 카게토모(遠山景朋)가 구축한 산성(山城)에 발단을 두고 있다. 후세에 일본 3대 산성 중 하나로 꼽힐 정도의 위용과 비할 데 없는 견고함을 자랑했다.

역사적 사실에서는 겐키(元亀) 3년(1572년)에 이와무라 토오야마 가문 당주였던 토오야마 카게토우(景任)가 죽은 것을 계기로, 남겨진 여성주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숙모에 해당하는 '오츠야노카타(おつやの方)'는 한동안 타케다(武田)와 싸우면서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이듬해 타케다 측의 무장인 아키야마 노부토모(秋山信友)와 결혼하여 타케다 측으로 변절했기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한편 이 시대에서는 겐키 3년말의 단계에서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전사하여, 정세는 타케다로부터 오다로 크게 기울었다. 역사를 앞당긴 것에 의한 영향인지 토오야마 카게토우가 역사적 사실보다도 일찍 서거하고, 신겐의 서상작전(西上作戦)을 계기로 오츠야노카타는 역시 오다 측에서 타케다 측으로 변절해 버렸다.

당연하지만 친족의 배신에 노부나가는 격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이상이나 그냥 놔두었던 것은 노부나가에게 타케다 측의 중요성이 낮아져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의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에서는 확실히 공략 목표로 설정되어 있었으니, 슬슬 끝장을 내 주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아무리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이와무라 성이라고는 해도, 원군의 희망이 없는 단계에서의 농성은 말도 안 된다.

성이 있는 산의 산기슭에 지어진 망루(物見櫓)에서 오다 군 접근의 보고가 올라온 것을 계기로 상대의 기세를 꺾으려고 영격(迎撃) 부대가 출진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망루에서도 영격 부대에서도 연락이 끊겨버렸다. 이 비정상적인 사태에 대해 성주인 아키야마 노부토모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마냥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에 대해 나가요시는 가장 발이 느린 대포부대를 최전열(最前列)에 둔다는 상식 밖의 부대 운용을 하고 있었다. 이 한 싸움만 탄약이 버티면 된다고 작심(割り切り) 하고 대포를 원없이 써먹을 작정인 것이었다.

전투에서는 일반적으로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쪽이 유리해지지만, 나가요시는 이것을 힘으로 뒤엎어보였다. 자군의 척후(物見)로부터 산문(山門) 뒤에 적이 집결해 있다고 듣자마자, 옆에 세워진 망루 및 산문 일대에 대해 포격을 명했다.

나가요시는 대포 부대를 최전열 중앙에 놓고, 주위를 기습에 대비해 철포대(鉄砲隊)로 방어한 후 관측 사격도 하지 않은 채 포격을 개시했다.

당연하지만 초탄은 노린 지점에 착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 측은 낙뢰같은 굉음과 함께 어떤 공격에도 버틸 수 있으리라고 신뢰하고 있던 돌담(石垣)이 크게 뜯겨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차탄은 우연히도 망루의 중간쯤에 직격하여 망루를 꺾어버렸다. 이것을 본 적들은 공황상태에 빠졌으나, 틈을 두지 않고 계속 날아드는 포탄은 용서없이 방어시설을 파괴해 나갔다.

나가요시 측으로부터는 앙각(仰角)인 관계로 적군은 배치는 알지 못한 채, 맞으면 다행이라는 식으로 그때그때 목표를 수정하면서 마구 쏴갈겼다.

이것을 산기슭의 방어시설이 괴멸할 때까지 반복하여, 병사 한 명의 희생도 내지 않고 나가요시 군은 아키야마 군을 농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본래는 산기슭이 공략되었다고 해도 산꼭대기 부근까지 공격해 올라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기슭과 산꼭대기를 잇는 루트는 후지사카(藤坂)라고 불리는 좌우가 숲으로 둘러싸인 급격한 오르막길 뿐이기 때문이다.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천연의 요새가 가로막는다.

방어측은 산 속에 병사들을 매복시킬 수도 있고, 또 높은 위치를 이용하여 중량물(重量物)을 굴리기만 해도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한 우위성을 가진다.

한편 공격자인 나가요시는, 또다시 힘으로 이것을 돌파하게 된다.

거듭된 포격을 받고 여기저기 붕괴했다고는 해도, 역시 돌담으로 된 산성은 견고하여, 대포를 산꼭대기를 향해 늘어놓고 곡사 탄도의 포격을 명했다.

아시미츠(足満)의 손으로 마개조를 거친 대포는 구조적으로 암스트롱 포에 가까워서, 포신에 새겨진 라이플링과 밀착하도록 탄체에도 홈을 파놓은 모밀잣밤나무(椎) 열매(実) 형상의 포탄, 소위 말하는 미니에 포탄을 사용하여 개량된 갈색화약으로 쏘아내는 구조이다.

여담이지만 공업화가 진행된 것에 따라 황산(硫酸)이나 질산(硝酸)을 사용할 수 있는 관계로 화약을 무연화약(無煙火薬)으로 전환시키려는 흐름이 되어 있었는데, 현장에서는 아직 재고가 윤택한 갈색화약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꾸준한 기술개량의 결과, 나가요시가 사용하는 대포는 조금 구형이 되지만 그래도 최대 사정거리가 2000미터를 자랑하게까지 되었다. 그에 대해 이와무라 성은 표고 700미터를 좀 넘는 정도이니, 일부러 위험한 등판 루트를 가지 않고도 산기슭에서 곡사로 포격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동떨어진 기술 수준의 병기에 공격당한 쪽은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산기슭으로부터의 연락이 끊겼기 때문에 정찰을 내보낼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산기슭에서 끊임없이 천둥소리(雷鳴) 같은 포성이 울려퍼졌다.

경사와 고저차가 있기에 착탄점을 관측할 수 없어 포격의 명중 정밀도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목표가 컸기 때문에 그런대로 맞았다. 높이 쌓여진 견고한 돌담도, 높은 곳이라는 지리적 우위성조차 의미가 없는 나가요시의 공격에 아키야마의 마음은 꺾여 버렸다.

설령 당주가 항전을 명했다 하더라도, 앞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한 군중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옥과 같은 반 각(刻, 약 1시간)이 지났을 때, 나가요시로부터 투항을 권고하는 사자가 파견되어,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성주인 아키야마 노부토모는, 그 처인 오츠야노카타와 함께 붙잡혀, 이후에 합류해올 후속 부대에 맡겨지게 되었다. 난공불락으로 이름높은 이와무라 성이, 겨우 반나절도 되지 않아 함락된 것이다.




나가요시가 이끄는 선발대의 쾌승은, 전신(電信)에 의해 요점만이 속보로서 전해졌다. 이후에 보내진 상세한 소식은, 시즈코 저택에 상주하고 있는 통신수(通信手) 부대가 수신하여, 사무원(事務方)이 청서(清書)하여 시즈코에게 전달되었다.

자기 집에 앉아서 시나노(信濃) 국의 전황을 손금 들여다보듯 파악하는 시즈코의 모습을 본 노부나가는 내심 신음하고 있었다. 개명적(開明的)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노부나가조차 전신이 가져오는 혁신성은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다.

임시 속보나 정시 연락을 통해 그때그때 갱신되어가는 입체 지도상의 전황도(戦況図)와 물자의 잔량을 보고 노부나가는 전쟁의 방법이 근본적으로 바뀐 순간에 서 있음을 자각했다.

노부나가는 코우슈 토벌의 선발대 및 본대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입체 지도 위에 화살표 모양의 장기말로서 배치되어 있는 예상 진로상에 존재하는 공격 목표를 보았다.

나가요시 등 선발대는 이와무라 성을 나와 북상하면서 키소 후쿠시마 성으로 향한다.

농성하고 있는 키소 요시마사가 버텨낸다면, 합류한 후에 타케다 군을 쳐부수고, 토리이(鳥居) 고개(峠)를 빠져나가 키쿄가하라(桔梗ヶ原, 나가노 현(長野県) 시오지리 시(塩尻市))를 경유하여 스와 호(諏訪湖)로 가는 진로를 잡는다.

한편 노부타다(信忠)가 이끄는 본대는 이와무라 성을 출발하여, 텐류가와(天竜川)를 따라 남하하면서 타키자와 성(滝沢城)을 함락시킨다.

여기서 북상하면서 신푸 성(新府城)을 향하며 도중에 있는 마츠오 성(松尾城), 이이다 성(飯田城), 오오시마 성(大島城)을 공략, 타카토 성(高遠城)에서 선발대와 합류하여 이곳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스와 호 연안(沿岸)의 우에하라 성(上原城)을 거쳐 신푸 성으로 향하는 진로가 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쪽의 루트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타케다 군 방어의 핵심이 되는 것이 타카토 성이다. 타카토 성은 타케다에게 있어 스와에서 이나(伊那)로 향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슨푸(駿府)나 토오토우미(遠江)를 견제하는 전선기지가 된다.

타카토 성은 타케다 신겐의 손으로 오오시마 성이나 이이다 성과 함께 대규모의 확장이 되어 있어, 타케다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 라인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타카토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타케다의 멸망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푸 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타카토 성보다 동쪽에는 타카토 성조차 함락시킬 수 있는 군대에게 대응할 수 있는 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자의 보고에 따르면 타케다는 호죠(北条)로부터 부족한 군비(軍備)를 융통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죠로부터의 원군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겠지요"


미간에 주름이 진 표정으로 입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노부나가에게 시즈코가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의 계획으로는 노부나가는 아즈치 성(安土城)에서 연락을 받게 되어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혼자서 오와리(尾張)까지 와 버렸다.

노부나가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을 노히메(濃姫)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것만으로 그 가능성을 시즈코에게 말하지 않았다. 시즈코의 눈이 죽은 생선처럼 흐려 보이는 것은 결코 기분 탓 같은 것이 아니다.


"호오! 원군이 아니라 군비를 바란 것이냐"


"타케다에게도 무가(武家)의 두령(頭領)으로서의 긍지가 있습니다. 또 호죠에게도 타케다의 지원에 쪼갤 여유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어쨌든 무구나 식량, 화살에 철포와 탄약이 도착한 모양입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전국(戦局)은 움직이지 않겠지요"


"우리 쪽의 군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만사 차질없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에 하시바(羽柴) 님 등 사이고쿠(西国)를 제압하고 계시는 분들께 추가 식량 발송도 완료하였습니다"


"흠. 완벽하다는 것이냐"


"아닙니다, 주상(上様). 병참(兵站)에 완벽하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듣고 노부나가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찌푸려졌다. 높아지는 긴장감에 주위 사람들은 침묵했으나, 시즈코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계속했다.


"전황이라는 것은 항상 유동적으로 변합니다. 이걸로 완벽하다고 손을 멈추면, 그 시점부터 정보가 진부해지기 시작하여, 현장과 후방 사이에 어긋남(齟齬)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피하려면 항상 '꾸준히 완벽하게 하려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럼, 언제가 되면 준비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은 후세에서 역사를 연구하는(紐解く) 학자들이 판단하게 되겠지요"


판단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다라고 시즈코가 단언했다. 이것을 들은 노부나가는 눈꼬리를 내리며 미소짓더니, 시즈코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마구 헤집었다.


"좋은 기개다! 하지만 항상 지나치게 긴장(気負)하고 있으면 머지 않아 대 실패를 저지를 것이다. 여기서는 솔직하게 칭찬받거라"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엉망진창이 된 시즈코의 머리를 통통 하고 쓰다듬었다.


"예, 예에……"


"좋아. 그렇지, 나는 목이 마르다. 뭔가 모두가 절찬하고 있는 음료가 있다고 들었느니라. 여기서도 나만 따돌릴 생각이냐?"


조금 민폐라는 듯 빗 대신 손(手櫛)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하면서 시즈코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어지는 노부나가의 말에 그가 일부러 오와리까지 나온 이유 중 하나에 짐작이 갔다.


(누구한테 벌꿀 레몬의 이야기를 들은 거지?)


토우고쿠 정벌을 앞두고 나가요시가 훈련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 시즈코가 운동부 연습을 떠올리고 레몬의 벌꿀절임을 만들게 한 것이 일의 발단이다.

육체 피로시의 비타민 보급과 빠른 영양 섭취에 적합한 레몬의 벌꿀 절임을 만들고, 남은 절임즙(漬け汁)을 버리기도 아깝다고 생각하여 소량의 소금을 넣고 물로 희석한 벌꿀 레몬 드링크로 가공했다.

이것 역시 훈련 후의 병사들에게 차게 식혀서 제공했더니 절찬을 받았으며, 그 상쾌한 새콤달콤함과 몸에 스며드는 듯한 맛이 입소문을 통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나가 버렸다.


(같은 것을 내는 것도 센스(芸)가 없고…… 으ー음, 탄산수로 희석해서 벌꿀레몬 소다로 만들까? 이거라면 일본 최초라고 할 수 있을테니)


독특한 자극은 있지만, 탄산이 들어간 주스를 처음으로 마시는 것이 된다고 하면 노부나가의 기분도 좋아지리라.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제공할 음료를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즈코는 노히메의 존재를 미처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일본 최초를 노리려고 한다면, 그녀가 없을 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의 진군 속도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가요시의 출발보다 4일 늦게 뒤를 쫓기 시작한 본대였으나, 나가요시가 대포를 가지고 나간 것도 있어 이와무라 성에 도착했을 때는 그 차이가 하루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가요시가 대포를 이와무라 성에 남겨놓고 간 것 때문에 다시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가 점령하에 있는 이와무라 성에 도착하여, 전후 처리나 중계거점으로서의 정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선발대는 키소 후쿠시마 성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押っ取り刀) 키소 후쿠시마 성에 도달한 선발대였으나, 성은 포위되기는 커녕 좀 떨어진 지점에 진을 친 타케다 군과 대치하고 있고, 때때로 소규모 전투가 발생하는 정도라는 상황에 김이 빠지게 된다.

키소 후쿠시마 성에 들어간 선발대는 성주인 키소 요시마사와 합류하여 부대를 재편성하여, 농성에서 일전(一転)하여 타케다 군에게 급습을 가했다. 애초부터 지리적 이점은 키소 측에 있고, 주변 지리를 샅샅이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요란하게 보병부대를 늘어놓더니 타케다 군을 위압하듯 진군을 개시했다.

예상 이상의 규모가 된 나가요시-키소의 연합부대를 본 타케다 군이 당황하고 있는 동안, 산을 샅샅이 알고 있는 키소 군의 안내를 받은 나가요시 군의 신식총(新式銃) 부대와, 키소 군의 철포대나 궁병대가 산봉우리에 숨어서 위치를 잡았다.

개전 신호는 신식총에 의한 일제 사격 소리로 시작되었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대군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 옆에서 강렬한 일격을 받은 것이다.

거리가 있었던 것과, 나무에 방해되어 조준이 틀어진 점도 있어 그렇게 많은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식의 바깥쪽에서 공격을 받은 타케다 군은 패닉을 일으켰다.

그 동안에도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정면에서 거리를 좁히고 있었고, 거기에 주위에서 화살이나 철포의 탄환이 쏟아붓는 상황에 타케다 군은 대나무나 나무를 엮은 방패로 방어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으로 혼전으로 끌어들여 화살이나 철포의 비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다.

한편,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타케다 군의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처럼 후퇴를 시작하였고, 타케다 군은 총탄와 화살에 쫓기듯이 토리이 고개로 끌려들어가버려, 여기서 양군이 본격적으로 격돌하게 되었다.

토리이 고개는 험준한 외길이기에 대군이 충돌하기에는 부적합하여, 필연적으로 부대가 길고 가늘게 늘어지게 된다. 전방은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에 막히고, 뒤는 아군 부대가 가득하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데 거기에 측면에서 총격을 받는다는 사지(死地)에 타케다 군은 끌려들어와 버렸다.

이리하여 타케다 군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면서 허둥지둥 패주하였고, 이것을 나가요시-키소 연합부대는 매복시켜놓았던 철포 및 궁병대와 합류하여 추격하게 된다.


후퇴를 거듭한 타케다 군은 나라이가와(奈良井川)와 그 지류(支流)인 타가와(田川) 사이에 낀 키쿄가하라에 진을 재구축했다.

나라이가와의 선상지(扇状地)이며, 벌판(原野)이 넓게 펼쳐진 대지(台地)인 키쿄가하라는 대군끼리 충돌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입지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타케다 군은 그 때까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서, 이미 숫자의 우위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승전으로 기세에 탄 나가요시-키소 연합군과 숫자에서 밀리는데다 사기가 저하된 타케다 군이 충돌하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시종 오다 측 우세로 상황이 진행되어, 타케다 군은 또다시 산산히 흩어져 패주하게 된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사냥하는 것이 전국시대의 관습이지만, 여기서 나가요시-키소 연합군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 이상의 추격은 허가할 수 없다! 남쪽을 통해 침공하고 계시는 칸쿠로(勘九郎) 님(노부타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도 이곳 키쿄가하라에 진을 치고 우에하라 성을 공격할 발판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나!"


"적의 대부분은 북쪽의 후카시 성(深志城, 훗날의 마츠모토 성(松本城))을 향해 도망쳤다. 이걸 방치해두면 우에하라 성을 공격할 때 배후를 찔릴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나가요시는 어디까지나 추격을 주장하는 데 대해, 선발대의 군감(軍目付)으로서 동행하고 있는 오다 나가마스(織田長益)는 발판을 굳혀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의견이 갈렸다.

나가마스는 노부나가의 동생에 해당하기에, 제아무리 나가요시라도 이걸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가요시는 자신의 주장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가마스의 의견에 따를 생각도 전혀 없었다.


"나는 주상께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말씀을 들었다! 게다가 후카시 성에는 바바 마사후사(馬場昌房)가 틀어박혀 있다고 하잖아! 여기에 타케다의 잔당이 합류하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어버린다고!"


나가요시는 작전회의 장소에 놓여있던 긴 테이블(長机)에 힘껏 주먹을 내리치며 외쳤다. 나가요시의 완력에 테이블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며, 위에 놓여 있던 전황을 나타내는 약도 등이 흩어졌다.


"아니면 뭐야?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적이 태세를 정비하는 걸 손가락을 빨며 지켜본 결과, 보기좋게 등 뒤를 찔려서 졌습니다라고 너는 주상 앞에서 말할 수 있냐!?"


나가요시는 격정에 휩싸인 채 다리가 부러진 테이블의 잔해를 움켜쥐고 던져버렸다. 결코 가볍지 않은 테이블이 가볍게 허공을 날아, 막사를 지탱하는 기둥(幕串)에 부딪히더니 성대하게 쓰러뜨리면서 박살났다.


"이 이상 새가슴(腑抜け)과는 같이 못 해먹겠다! 나는 내 멋대로 하겠어. 남고 싶은 녀석들은 이 진에 틀어박혀 있어라! '그건' 후카시 성을 공격하는 우리들이 가져갈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내뱉은 나가요시는, 그야말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모습으로 진을 나가버렸다. 신중파를 이끄는 나가마스는 나가요시가 태풍같이 날뛰는 모습이 아연실색했지만, 그래도 그를 말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군감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것은 명백한 군법 위반이지만, 거칠게 날뛰는 나가요시를 상대로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가요시에게 동조하는 무리들도 그를 따라 진에서 나가서 썰렁해진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작전회의는 계속되었다.


"모리(森)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루를 꼬박 발이 묶였다. 이 이상 지체할 수는 없어"


나가요시의 뒤를 쫓으며 측근 한 명이 물었다. 나가요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손바닥을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했다.

나가요시의 대응에 탄식하면서도 측근은 바쁘게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보고 있는 곳에는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銃兵) 100명이 각자의 장비와 짐의 확인을 하고 있었다.


오다 가문과 타케다 가문의 운명이 교차하고, 그 후의 성쇠(盛衰)를 결정지은 '미카타가하라(三方ヶ原) 전투'에서 전쟁에 관한 일대 패러다임 시프트가 발생했다.

지금은 시즈코의 부하로서 간자를 총괄하고 있는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의 형인, 죽은 사나다 노부츠나(真田信綱)가 깨달았듯이 단순히 병사의 많고 적음이 전쟁의 추세를 결정짓는 시대는 끝을 고했다.

철포가 전래된 이후로 그러한 경향은 있었으나, 신식총의 등장에 의해 결정적이 된다. 즉, 얼마나 철포와 총탄을 많이 준비할 수 있는지가 승패를 좌우하는 큰 요인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철포라고 해도, 종래의 화승총(火縄銃)과 시즈코 군이 제식 채용하고 있는 신식총은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미카타가하라 전투가 증명해버렸다.

그 후에도 신식총의 확충이 꾀해진 결과, 신식총을 장비한 총병은 정규병 3000명을 넘고, 훈련중이나 예비역이 된 예비병이 500명, 거기에 총병의 관측수도 담당하는 지원병(支援兵)이 3500명을 정원으로 하는 대부대가 되어 있다.

약 7000명이라는 대인원을 총괄하는 것은 초창기부터 변함없이 시즈오키(静興, 겐로(玄朗)를 말함)이지만, 아무래도 직할로 관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기에 정규총병 500명, 지원병 500명을 합쳐 1000명으로 7개의 대대(大隊)를 구성하고, 각각에 대대장을 두어 총괄한다.

게다가 대대 밑에 정원 250명의 중대(中隊)를 4개 배치하고, 그 밑에 정원 50명의 소대(小隊)를 5개라는 편제를 취하고 있다. 신식총병의 수요가 높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소대 단워로 파병이 이루어진다.


"정말로 총병 2개 소대 100명 전원을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들은 선발대 전체에 대해 배정된 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건 지원병 뿐이니까, 전원 데려가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여기에 두고 가면 또 자신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고 빼가기들을 시작할 테니 말이야. 실전부대(実働部隊)를 권위를 세우는 장식품으로 쓰려는 바보에게는 아깝잖아?"


"아무도 빼가기에 응하지 않으니 점점 권유 수법이 억지스러워진다는 불평이 있었습니다. 설령 빼가봤자 장비와 숙련도 유지조차 할 수 없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열광적인 시즈코 신자들이 꽤 있으니까"


"모리 님께서도 한통속이시죠"


"뭔가 말했느냐?"


"아니오, 아무것도"


나가요시가 노려보았지만, 측근은 모른 척 하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어 보였다. 측근의 태도에 혀를 한 번 찬 나가요시였으나, 의외로 그런 측근을 그는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리 님, 후카시 성을 공략하신 후에는 다시 이리로 돌아오는 겁니까?"


"그럴 예정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출발 준비를 하고 오겠습니다"


평지에 쌓은 성(平城)이라고는 해도, 혼마루(本丸), 니노마루(二の丸), 산노마루(三の丸) 모두 해자(水堀)를 격하고 있기에 방어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후카시 성을 당연한 듯 공략할 수 있다는 전제로 말하는 주인을 든든하게 생각하는 측근이었다.




나가요시가 이끄는 부대가 키쿄가하라를 출발하여 오로지 후카시 성을 향해 북상했으나, 적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의 뒤를 쫓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는 점도 있지만, 후카시 성은 무려 16개나 되는 성이 주위에 존재한다는 요새 지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그 중 어디로 잔당이 도망쳐 들어갔어도 이상하지는 않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북상을 계속하던 나가요시 군이었으나, 진로를 따라 가장 남쪽에 위치하는 아카기 성(赤木城)이 보이는 위치까지 전진했을 때 발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느닷없이 나가요시가 전군 정지를 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가요시의 명령으로 주위의 산들을 망원경으로 둘러보자, 딱 길이 좁아지는 곳의 벼랑 위에 몇 명의 병사가 매복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용케 눈치채셨군요"


"아니, 나도 보인 것 아니다. 하지만, 나라면 여기에 병사를 매복시키겠지라는 좋은 위치였으니 말이지, 만약을 위해 확인하게 한 것 뿐이다. 적은 이쪽에게 들켰다고 생각하지는 않을테니, 잠시 휴식하는 척 하면서 '그것'을 준비해라"


그리하여 나가요시가 지시한 대로 부대 전체가 잠시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자, 그에 대해 아카기 성의 복병들은 조금이라도 적의 정보를 얻으려고 엄폐물(物陰)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요시 군의 병사들은 휴대하고 있는 수통에서 물을 마시거나, 휴대식량을 먹거나 하면서 주위를 계속 경계했다.

아카기 성의 병사들은 몸짓으로 누군가에게 신호를 하고 있는 듯 하여, 보이지 않는 장소에도 병사들이 숨어있을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나가요시의 호령에 따라 다시 행군을 개시하듯 보인 나가요시 군이었는데, 행군 치고는 묘한 형태로 대형을 짜고 있었다.

그리고 무기를 가지지 않고 큰 짐을 메고 있는 병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배낭에서 가죽 자루로 감싸인 봉 모양의 물건을 꺼내 뭔가 작업을 개시했다.

그것은 빛을 반사하지 않도록 매트(matte)한 검정색으로 도장된 강철제로 생각되는 통 모양의 물체에 다리가 하나 달린 듯한 기묘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45도 정도 경사지게 지면에 설치한 후, 양 무릎으로 끼우듯 하여 고정하고, 통의 앞쪽으로부터 주먹 크기의 물체를 굴려넣었다.

처음에 일어난 일은 펑 하고 뱃속에 울리는 듯한 중저음, 이어서 기묘한 통 모양의 부품이 불을 뿜었다. 수수께끼의 공격은 벼랑 위에 숨어 있던 아카기 성의 부대를 가볍게 뛰어넘어, 먼 후방에 풍절음과 함께 죽음의 비를 뿌렸다.


나가요시가 사용한 것은 일반적으로 척탄통(擲弾筒)이라고 불리는 병기였다. 아시미츠가 만든 그것은 추발식(墜発式, 떨굼 방식)이라 불리는 구조를 하고 있어, 포구의 앞쪽에서 포탄을 떨궈넣어, 그 포탄 아랫부분의 파이어링 핀이 격돌하는 것으로 발화한다.

포탄 아랫부분에는 발사용의 폭약이 들어 있어, 이것이 기폭하여 포탄 아랫부분을 팽창시키며 배후로 연소 가스를 뿜어내는 것으로 발사된다. 폭압에 의해 팽창된 포탄 아랫부분은, 포신에 설치된 라이플링에 맞물리면서 회전하며 직진력을 얻는다.

발사된 포탄은 안정익(安定翼)이라 불리는 날개 모양의 부품에 의해 높은 확률로 앞부분부터 착탄하여, 그 충격으로 다시 포탄 내부의 폭약이 기폭하면 폭풍과 함께 금속 파편을 흩뿌려 주변을 공격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수류탄을 쏘아내는 그레네이드 런처를 설치형으로 만든 박격포에 가까운 병기였다. 쏘아닌 포탄은, 숲 속이라는 점도 있어 나무들에 가로막혀 직격한 것은 적었다.

그러나, 상공에서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는 쇳조각을 맞은 쪽은 견딜 수 없다. 광범위에 걸쳐 무차별적으로 흩뿌려지는 파편들에 의해 아카기 성의 많은 병사들이 부상당하고 공황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포격을 저지하기 위해 돌격하러 한 것일까.

어쨌든 숨어 있던 장소에서 뛰쳐나오더니, 그 중 일부가 나가요시 군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 기다리고 있었던 나가요시 군이 순순히 공격당하는 것을 기다릴 리도 없어서, 신식총의 총격이나 활의 사격에 의해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흥, 보아하니 이와무라 성에서 도망친 녀석이 정보를 전했군. 대포를 앞에 두고 농성은 무의미하다고 깨닫고, 야전(野戦)을 걸기 위해 매복하고 있었던 거겠지"


"이 앞에는 코야 성(小屋城)이 있습니다만, 그쪽도 치고 나올까요?"


"어떨까? 지금의 공격을 받고 도망친 녀석이 알린다면 농성할지도 모르지. 그거라면 그거대로 공격할 방법은 있다"


과연 나가요시의 말대로, 다음 코야 성에서는 성문을 닫아걸고 농성했다. 장기전이 되면 보급을 받을 수 없는 나가요시 군이 불리해지기에, 척탄통으로 이번에는 철갑탄(徹甲弾)을 쏘아넣어 성문을 파쇄하고, 같은 요령으로 방벽을 무효화시켜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했다.

이렇게까지 손쉽게 성을 공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의 요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일대는 몇 년 전에 야케다케(焼岳) 화산의 분화 피해를 입고 아직 다 복구되지 않았다. 애초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적기에, 소수 부대의 나가요시 군에게 실컷 유린당해 버린 것이다.

다음으로 막아선 이가와 성(井川城)의 경우에는, 포탄이 날아들자마자 병사들이 쓰고 있던 '삿갓(笠)을 흔들어(당시에 투항할 때 하던 신호)' 차례차례 투항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성주도 항복하여, 거의 무혈입성이 되었다.

실제로는 척탄총의 포탄은 시즈코 군에게도 비용이 부담되어 그렇게까지 대량으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쏟아져서 착탄과 동시에 광범위하게 피해를 흩뿌리는 미지의 병기에 타케다 군은 진심으로 공포에 떨었다.

최종적으로 후카시 성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포탄이 열 몇발이라는 상황까지 소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일제 사격을 받은 것만으로 적군이 항복하고, 그에 따라 주변의 성들도 무장 해제에 응하게 된다.




한편 사이고쿠에서는 히데요시(秀吉)의 하리마(播磨) 평정이 가경(佳境)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부나가로부터 발판을 굳히라는 명령을 받은 히데요시는, 코데라 마사모토(小寺政職)에게서 빼앗은 히메지 성(姫路城)의 개축에 착수했다.

이것은 모우리(毛利) 정벌의 전선거점으로 삼는다는 명목이었으나, 빈틈없이 혼마루에 천수(天守)를 증축하도록 지시하여 방어기능보다도 외관의 호화로움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히데요시가 미츠히데(光秀)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의 진력에 의해, 이제 곧 하리마 평정이 이루어진다. 여기가 중요한 시점이니라!"


히데요시는 부하들의 일처리를 칭찬하면서도 박차를 가했다. 하리마와 타지마(但馬)가 평정되면 본격적으로 모우리 공격이 시작되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모우리와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획책하고 있었다.

이것을 놓치면 미츠히데와의 차이가 결정적이 된다고 생각한 히데요시에게는, 조금이라도 빨리 하리마를 평정하고 그 이후의 전쟁에 대한 준비가 갖춰져 있음을 노부나가에게 어필하려는 속셈이 있었다.

당연히 히데요시의 이런 움직임은 미츠히데도 잘 알고 있어, 두 사람은 서로 경쟁하듯 맡은 지역의 평정을 서두르고 있다.


"타케나카(竹中) 님, 하리마는 작년에 흉작(不作)이었던 지역이 많아, 백성들은 물론이고 장병들조차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굶지 않음(食い扶持)을 보장해 준다면 이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히데요시가 하리마 정벌에서 손에 넣은 것 중에, 스스로 그 자신에게는 과분하다고 평가한 쿠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통칭 쿠로다 칸베에(黒田官兵衛), 이후에는 잘 알려진 칸베에(官兵衛)라고 씀)가 타케나카 한베에(竹中半兵衛)에게 의견을 말했다.

노부나가가 하리마 침공에 착수했을 무렵부터 칸베에는 노부나가의 장래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칸베에는 원래 전술한 코데라 마사모토를 섬기고 있었으나,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가 모반의 징후를 보인 것에 호응하려고 했기에 주군에게 간언했으나 거꾸로 감옥에 유폐되었다.

최종적으로 아라키는 모반에는 이르지 않았으나, 코데라는 히데요시의 정치적 회유(調略)에 응하지 않았기에 전사하게 되었고, 그 때 유폐되어 있던 칸베에는 구출되어서 히데요시를 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노부나가에게 반항했던 코데라의 가신이었기에, 인질로서 아들인 쇼우쥬마루(松寿丸)를 내놓았음에도 신용받지 못했고, 인질의 대우도 결코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한 것이 타케나카 한베에였다. 한베에는 이른 단계에서 칸베에의 능력을 발견하고, 히데요시에게 그의 대우를 개선하도록 호소했던 것이다.

그것을 안 칸베에는 한베에의 대우에 크게 감사하며, 그에 대한 감사를 자손 대대로 잊지 않도록 석병(石餅)이라는 타케나카 가문의 문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흠. 먹을 것을 줘봤자 그 때가 지나면…… 이라는 상황이 되지 않겠소?"


"그건 굶지 않을 최저한도로 조절하여, 이것에 감사할지 불만을 품을지로 선별하는 것입니다. 불만을 품는 패거리를 감시하고, 모반의 징후가 있다면 처치하면 되겠지요. 적어도 굶지 않을 것을 보장했다는 대의(大義)는 있습니다"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은 날카로운 수완이군요"


한베에는 칸베에의 계책에 감탄했다. 칸베에는 한베에에게 대우받기 전부터, 신용받지 못함에도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리마 평정의 계책을 내놓았다.

히데요시의 하리마 정벌이 차질없이 진행되게 된 것은 한베에와 칸베에가 서로 영향을 끼치게 된 덕분이리라. 뭣보다 칸베에는 하리마에 대해 정통하여, 그가 세우는 계책은 알고 있더라도 회피하지 못하고 보기좋게 들어맞았다.

칸베에도 한베에라는 자신과 동등한 두뇌(知恵者)의 의견을 듣고 한층 더 갈고닦은 계책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계책을 받아들이는 히데요시의 도량과, 그 계책을 실행할 수 있는 실전부대의 활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오, 이런 곳에 계셨소이까"


칸베에와 한베에가 서로 계책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홀연히 히데나가(秀長)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대로의 표표(飄飄)한 태도로 옅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히데나가의 모습을 본 칸베에와 한베에의 표정이 조여졌다. 칸베에는 히데요시를 섬기기 시작한 당초부터 그에 대해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접하게 되어 사람됨을 알게 되자, 틀림없는 요주의 인물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준비가 갖춰졌습니다. 곧 코우베(神戸) 항구로 이동하여, 그 후에 배로 오와리로 향합니다. 작전회의도 좋지만, 이번의 오와리 행은 중대사입니다. 그쪽에도 의식을 할애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리마(有馬)의 재건이었지요. 하지만, 히데나가 님께서 말씀하시는 시즈코 님인가 하시는 분이 정말로 자금을 대어 주시는 겁니까?"


"예, 틀림없이 출자하실 겁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가 투자하는 사업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도 경쟁하듯 돈을 내놓겠지요"


소문은 여럿 들었지만, 시즈코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칸베에로서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시즈코 님께서 투자하시는 사업은 예외없이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익에 밝은 상인들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지요.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코우베 항구의 모습은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렇게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시즈코를 잘 알고 있는 한베에가 실제 예를 들어 논거(論拠)를 덧붙였다. 칸베에도 신뢰하는 한베에의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확실히 쓸쓸한 한촌(寒村)이었던 코우베가 지금은 많은 상인들도 붐비고 있어, 부근 일대가 활기에 차 있습니다"


코우베는 칸베에의 말대로, 원래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쓸쓸한 한촌에 불과했다. 거기에 시즈코의 개발에 의해 간이적인 군항(軍港)이 정비되자마자, 노도와 같은 기세로 상인들이 밀려들어왔다.

현지의 상황을 잘 아는 칸베에에게는, 갓 정비되었을 뿐이라 아직 작은 코우베 항 주위의 한적한 토지를 앞다투어 사들이고, 토지가 부족하면 벌판을 개척하면서까지 정비하는 모습에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한발 빨리 자신의 가게를 갖춘 상인들은, 다른 곳에서 운반되어오는 화물을 사들이거나, 선원들 상대로 장사를 시작하거나 하는 등 활발하게 상업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 성장의 연쇄는 점점 가속되어, 지금은 항구도시(港町)라고 해도 손색없는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거기에 직접 배를 준비하여, 해상 운송업자(廻船問屋)의 하청(走り)이라는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카이(堺) 같은 대규모 항구의 경우, 기득권익이 딱 맞물려 있어 신규 참가가 어렵지만, 이곳 코우베 항구라면 서쪽에서 도착한 화물을 오와리까지 운반하는 것만으로도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코우베 항구를 기점으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딱히 바다에 관한 일 뿐만은 아니다. 몸 하나로 서쪽으로 동쪽으로 화물을 운반하는 보따리상(棒手振)이 다수 유입되었다.

멜대(天秤棒) 하나를 어깨에 메고, 앞뒤로 화물이 든 통을 매달아 행상하는 그들은, 근거리의 운반이나 판매를 담당하는 자신들이 활약할 곳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판단대로, 코우베 항구의 확장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항만 관계짜나 상인들, 나아가서는 그 상품을 사들이는 일반인까지 그들의 고객이 되었다.

너무나도 급격한 번영에 해산물은 물론이고, 청과물(青物) 등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게 되어, 항구도시 바깥쪽에 위성도시 같은 농지(農地)까지 펼쳐지게 되었다.

수리(利水)가 뛰어난 하천 옆의 경작지는 인기가 높아서, 대상인(大商人)이라 불리는 사람들까지 사재를 털어 개척을 시작하는 상황이다. 일등지(一等地)는 이미 시즈코가 확보하고 있었기에, 바깥쪽으로 개발이 계속 확장되어갔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위에 점점 사람이 모여들어 이미 항구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시즈코 님은 계획 단계의 시점에서 쌀과 술쌀(酒米), 콩, 메밀(蕎麦) 및 야채를 평지에서 재배하고, 경사지(傾斜地)에서는 과일 재배를 하겠다고 전해 오셨습니다"


"꽤나 폭넓게 취급하시는군요"


"아뇨아뇨, 이것은 농업만의 이야기로, 사업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농업 이외에도 임업(林業), 수산업(水産業)에 토목공사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만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솔직히 말해 큰 은혜가 있는 한베에의 말이 아니라면 칸베에는 "그런 만능의 존재 같은 것 있을 수 없다"고 일소에 부쳤을 것이다. 히데나가도 한베에의 말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정말일 거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꼭 눈으로 보고 싶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다. 이 이상 정보를 얻어봤자 인물상은 애매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칸베에는 시즈코와 만나는 것이 기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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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