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7 1577년 4월 상순



타케다(武田) 영토는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동쪽으로부터는 오다 군이 노도의 기세로 공격해오고 있었고, 퇴로가 되어야 할 남쪽으로부터는 도쿠가와(徳川) 군이 착실하게 쳐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타케다 가문을 이끄는 카츠요리(勝頼)와 영민(領民)들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어 있었다. 특히 타케다 영토의 서쪽 끝 부근, 미노(美濃)와의 국경 부근의 마을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국과 내통하여 오다 군을 영내로 끌어들이기까지에 이르렀다.

이는 주로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에 의한 정치적 책략(調略)의 영향이 크지만, 본래 당주(当主)를 보좌해야 할 일족들(一族衆)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영민들을 돌아보지 않는 압정(圧政)을 펼친 카츠요리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영내의 상황은 적군이 다가올수록 심각함을 더해가서, 결국 타케다 가문 일족들의 필두(筆頭)인 아나야마 노부타다(穴山信君)가 오다 가문으로 변졀한 것을 계기로 조직이 완전히 붕괴했다.

주군을 저버린 일족들은 오다 군을 마주치자 일찌감치 항복하고, 또는 조금이라도 유리한 전후(戦後)를 맞이하기 위해 오다 군에게 편의를 봐 주는 사람도 많이 나왔다.


"이름높은(名にし負う) 타케다의 운명도 이제 여기까지다. 그대는 부모가 있는 호죠(北条)로 돌아가도록"


카츠요리는 회한(悔恨)이 묻어나오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카츠요리에게 오다 군이 곧 타카토 성(高遠城)에 다가온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아내인 호죠 부인(北条夫人, 호죠 우지야스(北条氏康)의 6녀라고 하는데, 이름은 확실하지 않기에 이렇게 호칭한다) 및 적자(嫡子)인 노부카츠(信勝)를 후방의 이와도노 산성(岩殿山城)으로 피난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이와도노 산성을 다스리는 타케다 가문 후다이(譜代)의 장로(家老衆)이자 타케다 24장(将) 중 한 명으로도 꼽히는 오야마다 노부시게(小山田信茂)는 이미 오다 가문으로 변절한 상태라, 사전 연락(先触れ)을 보냈더니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뜻이 담긴 대답이 돌아오게 되어 카츠요리는 패배를 깨달았다.

퇴로가 끊긴 카츠요리에 대해 아들인 노부카츠는 함께 자결하자고 진언하기까지 했다. 예전에 신겐(信玄)을 섬겼던 많은 무장들이 카츠요리를 떠났으며, 예전의 주군에게 칼끝을 향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자취를 감추거나, 보신(保身)을 위해 카츠요리의 거성(居城)인 신푸 성(新府城)으로 공격해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과 적자인 노부카츠의 목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요하지만, 동맹을 맺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던 호죠 부인의 목까지는 베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카츠요리는 아내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이지만, 호죠 부인은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죠에서 시집왔을 때부터 이 몸은 시로(四郎) 님과 함께 있사옵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고 싶사옵니다"


"……그런가"


아내의 결의를 들은 카츠요리는 번의(翻意)를 촉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당주인 카츠요리가 처자식을 도망치게 하려고 했던 것 때문에 신푸 성에 몰려 있던 장병들도 앞다투어 도망치고 있어, 이제는 그녀를 호죠까지 데려갈 직속 부하들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다.


"이미 오다 군은 타카토 성에 접근하여, 머지않아 함락(落城)되겠지. 후방을 지키고 있던 아나야마가 도쿠가와와 호응하여 공격해오겠지만, 그보다도 빨리 오다 군이 이곳으로 밀어닥칠 거라 보고 있다"


카츠요리는 머지않아라고 말했으나, 이 시점에서 이미 타카토 성은 함락되어 있었다. 이미 사기가 붕괴한 타케다 군은, 나가요시(長可)들 별동대와 합류한 노부타다(信忠)가 이끄는 본대의 맹공을 견뎌내지 못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함락되어 버렸다.

나가요시들의 공성에서도 드러났듯이, 기술 레벨이 동떨어진 상태에서의 농성전은 성립하지 않아서, 당주인 카츠요리에게 함락 보고를 전할 전령을 도망치게 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노부타다는 함락된 타카토 성에 최저한의 병사들만 남기고 즉시 신푸 성을 향해 진군했기에, 카츠요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까지 육박하고 있었다.


"저승길(死出の旅)을 갈 준비도 제대로 할 겨를이 없다니 오다 나으리(殿方) 께서도 성미가 급하시군요. 하지만 조용히 목숨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본때를 보여주지요"


"그렇군. 카이(甲斐)의 타케다가 여기 있다고 보여줘야 하겠지"


이미 죽음을 기다릴 뿐이라는 상황에 놓인 호죠 부인의 익살(軽口)에 카츠요리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카츠요리는 즉시 표정을 조이고 말했다.


"후카시 성(深志城)으로부터의 전령이 가져온 보고가 사실이라면, 타카토 성은 이미 함락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푸 성을 지킬 병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대들에게 평온한 최후를 선택하게 해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


"시로 님께서는 치고 나가실 생각이시지요? 그렇다면 시로 님께서 숙원(本懐)을 이루시는 것을 지켜본 후에 뒤를 따르겠사옵니다. 게다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성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사옵니다"


지금 신푸 성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상처를 입어 도망칠 수 없는 병사들이나, 설령 도망쳐봤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카츠요리가 직접 키워낸 직속(子飼い) 부하들은 남아있었으나, 그러한 은의(恩義)나 충의(忠義)에 의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가라앉은 배에서 도망치는 쥐새끼들처럼 앞다투어 도망친 자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감사해도 벌은 받지 않을것이라고 카츠요리가 감상적이 되어 있을 때, 맹수의 울음소리같은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 이거야 원(これはしたり). 부부의 오붓한 대화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으나, 뱃속 벌레가 울어젖혀 버렸소이다"


비감한 장면(愁嘆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허를 찔린 카츠요리가 호죠 부인을 등 뒤로 감추며 목소리의 주인의 정체를 따져물었다. 방심이 없었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카츠요리 역시 버젓한 무인으로, 이 정도로 가까이까지 접근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카츠요리의 눈에 비친 인물은 무기(寸鉄)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으나, 올려다봐야 할 정도의 거구에 한 눈에 알 수 있는 늠름한 근육이 터질 듯 법의(法衣)에 감싸인 괴위(魁偉)한 모습이었다. 생물로서의 본능이 카츠요리에게 도망치라고 외치는 것을 의지의 힘으로 억눌렀다.


"잠시 기다릴 생각이었으나, 들켜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요. 소인(拙者)은 별볼일없는 수행자(山伏)인 카레이(華嶺)라 하외다. 타케다 시로 님이 맞습니까?"


"이제와서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내가 타케다 시로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내 목이냐?"


"핫핫핫, 농담은 그만두시지요. 아직 수행중이라고는 하나 예전에는 승려를 꿈꾸었던 몸, 목숨을 빼앗을 때는 그 목숨을 남김없이 먹는 것을 스스로의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동족을 먹고 싶지는 않군요"


카레이교자(華嶺行者)는 그렇게 말하고 쾌활하게 웃었으나 카츠요리는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 산에서 곰을 만났을 때에도 느꼈던, 거대한 짐승이 뿜어내는 열기와 같은 기운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그 날의 곰은 변덕으로 떠나갔지만, 이 괴인은 그러지 않으리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호죠 부인을 도망치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빈틈을 엿보았으나, 카레이교자는 딱히 무슨 자세를 취하고 있지도 않은데 빈틈이랄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그 카레이 님이 내게 무슨 볼일이지?"


"오다 칸쿠로(勘九郎) 님으로부터의 전언을 맡아가지고 왔습니다. 마츠히메(松姫)를 싸움에서 피하게 해준 것에 보답하고 싶으니, 타케다 시로 님과 일기토(一騎打ち) 승부를 하고 싶습니다. 하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일기토라고!?"


카레이교자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카츠요리는 괴이쩍은 표정을 떠올렸다. 일기토를 할 것까지도 없이 이미 대세는 결판이 났고, 압도적으로 우위인 오다의 총대장인 노부타다가 위험한 짓을 하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소인은 무사가 아니라 그 뜻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쓰러지기 보다, 대장들끼리의 일기토에서 산화하시는 쪽이 명예가 되지 않겠소이까?"


"내가 처음부터 진다는 말투로군"


"핫핫핫. 칸쿠로 님은 실로 제 주인께서 직접 단련시키신 분. 젊다고 방심했다가는 자기 목이 떨어진 것도 깨닫지 못하실 거외다"


"나 역시 무문(武門)의 명문, 타케다의 당주이다. 그리 쉽게 져줄 수는 없다!"


"그리하면 결투(果し合い)로 자웅을 결하시겠다는 뜻으로 보아도 좋겠습니까?"


카레이교자의 물음에 카츠요리는 눈에 열기를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아까까지의 체념(諦観)에 물들었던 카츠요리가 아니라, 무인다운 패기에 가득찬 사나이(偉丈夫)의 모습이 있었다.


"각오는 틀림없이 확인했소이다. 차후 사자가 상세한 이야기를 전하러 올 것입니다"


의외로 붙임성있는 미소를 떠올린 카레이교자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공중제비를 넘으며 열려 있던 문(板戸) 밖으로 몸을 날렸다. 카츠요리도 다급하게 뒤를 쫓았으나, 그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앞서도 말했듯이 타카토 성은 전투가 시작된 후 겨우 하루만에 함락되었다. 그 이유는 실로 단순하여, 패러다임 시프트라고도 불러야 할 혁명적인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다.

선발대(先遣隊)인 나가요시 군과 본대인 노부타다 군은 타카토 성을 눈앞에 두고 합류하여, 사전에 전달된 정보 및 변절한 타케다 측 무장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퇴로를 차단하도록 포진했다.

약간 멀찌감치 포진하고 그 날이 가기 전에 타카토 성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진군 속도가 늦은 부대를 기다려 부대를 재편성할 시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과 함께 전투 북(戦太鼓)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굉음이 울려퍼지며, 견고할 터인 성문이 안쪽으로 날아갔다. 이것은 야음(夜陰)을 틈타 성문에 폭약을 설치해 둔 결과이지만, 타케다 측에서는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 혼란을 틈타 정면에서는 노부타다 군이 대거 밀어닥쳤다. 때를 같이하여 뒤쪽에서는 척탄통(擲弾筒)을 장비한 나가요시 군이 차례차례 방어 설비를 파괴하며 공격해 올라갔다.

애초에 도망자가 줄을 이어 수비병도 줄어든 상태에서 방어 설비를 아랑곳하지 않는 맹공을 받고, 전의를 상실하고 투항하는 자들이 속출했다.

높이 떠오른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성주인 니시나 모리노부(仁科盛信)는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분투하기는 했으나 오야마다 다이가쿠노스케(小山田大学助)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패배를 깨달았다.

부하 장수들에게 자신의 목을 가지고 오다에게 투항하라고 전한 후 자결했다.



전국시대에서도 굴지의 규모를 자랑한 타카토 성이 함락된 요인은 오로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견고한 성에 틀어박혀 싸우면, 자군의 배가 되는 적을 상대로도 선전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대구경의 포나 고성능의 화약 앞에서는, 종래의 성문이나 성벽은 조금 튼튼한 칸막이에 지나지 않는다.

타케다도 완강하게 구태의연한 전법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철포(鉄砲)의 중요성은 이해하고 있었으며, 나름대로 숫자를 갖추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성공체험에 뒷받침된 기마대 편중의 부대 편성이나 철포를 경시하는 흐름을 뒤집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기마대의 돌격 거리를 훨씬 상회하는 사정거리와 충분한 명중 정밀도와 위력을 갖춘 신식총(新式銃)의 등장에 의해 그것들은 과거의 것이 되었다.

성벽에 둘러싸여 구불구불하게 휘어진(九十九折) 길에 의해 적 부대를 길게 늘려, 총안구(銃眼)나 성가퀴(矢狭間)로부터 공격을 가한다는 정석적인 방어는 힘없이 먹히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하필이면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는 대포를 사용하여 성벽을 일직선으로 뚫어가며 전진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곳곳에 분산되어 배치된 병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졌고, 최단거리를 공격해 들어왔기에 물을 채운 해자(堀) 이외에는 발목을 잡지도 못했다.


"타카토 성을 하루만에 함락시키고, 나아가서 대장인 카츠요리를 일기토로 처치한다. 타케다가 자랑한 '무(武)'와 '군(軍)' 양쪽을 철저하게 박살내어 승자와 패자의 모습을 뚜렷하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가요시는 유쾌한 듯 웃으면서 옆에 서 있는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함락된 타카토 성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노부타다는 어느 정도의 부대를 남겨두고 진군을 개시했다.

지금까지 별동대를 이끌고 있던 나가요시는 충분히 전공을 세웠다고 하여 후방으로 돌려져, 대장인 노부타다를 곁에서 모시는, 영예롭기도 하면서 폭주하는 나가요시를 매어둘 목줄이기도 한 역할이 주어졌다.


"이 싸움에 앞서, 타케다 님은 내 아내가 될 마츠히메를 에린지(恵林寺)로 피신시켜준 은혜가 있다. 이대로 무명의 병사에게 죽기보다는 일기토로 결판을 내는 쪽이 무사로서 바라는 바이겠지"


"확실히 어설프게 도망쳤다가 패잔병(落ち武者) 사냥에 걸려들거나 하면 비참한 최후가 되겠군요"


"그리고 타케다가 오다 앞에 굴복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여주는 이점도 있지"


"이제와서 일기토를 방해하려는 발칙한 놈(不心得者)은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두 분께서 자웅을 결하는 자리에는 소생이 동행하지요"


"자네만 믿겠네, 오니무사시(鬼武蔵, 나가요시의 별명)"


그렇게 말하고 노부타다와 나가요시는 마주보고 웃었다. 시즈코 저택에서는 서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였으나, 전쟁터에는 엄격한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무법자로 보이는 나가요시였으나, 군에서의 상하관계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 자리에 걸맞는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의 전령(早馬)에 따르면 조만간 주상(上様)께서 이쪽으로 오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시즈코 님도 오시겠군요"


"아버지와 시즈코, 어느 쪽도 대체 불가능한 우리 군의 급소. 가능성이 낮다고는 하나, 한 번에 잃을 우려가 있는 우를 범하지는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만"


"과연. 주상께서는 저희들의 모습을 보신 후, 후지(富士) 산을 구경하시고 오와리(尾張)로 돌아가신다고 하였습니다. 후지 산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요?"


"후지 산은 시즈코도 신경쓰고 있었지. 하지만, 그 주변은 도쿠가와의 영토이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동안에 노부타다가 이끄는 본대는 신푸 성에 도착했다. 사전에 사자가 파견되어 카츠요리와 교섭한 결과, 신푸 성은 무혈(無血) 개성(開城)하여 노부타다의 본대는 그대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카츠요리는 자신의 직속 부하들만을 이끌고 텐모쿠(天目) 산에 진을 쳤고, 거기서 일기토를 할 예정이었다. 신푸 성 안에 남겨져 있는 것은 병자들이나 부상자들, 투항할 의사가 있는 자들이 무장을 해제한 후 한 방에 모아져 있었다.

가능성은 낮다고 하나 속임수(騙し討ち)를 경계하면서 진군했지만, 카츠요리는 약정한 대로의 조치를 취한 후 철수하였고, 노부타다는 군을 기동력 중시의 소부대로 재편성했다.


"자, 연이은 싸움으로 다들 피곤할 거라 생각하니, 오늘은 여기서 충분히 영기(英気)를 비축하여 내일의 결전에 대비하도록"


노부타다의 호령에 의해 군은 신푸 성에서 휴식을 취했다. 군 끼리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고, 남은 것은 대장들끼리의 일기토라는 영웅담(英雄譚) 같은 전개에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른 침을 삼키고 있었다.

날이 밝자 노부타다는 직속의 정병 1천 명만을 이끌고 곧장 텐모쿠 산으로 향했다. 기마를 중심으로 편성했기에, 노부타다의 부대는 겨우 한나절 정도에 카츠요리가 진을 치고 있는 텐모쿠 산 기슭에 도착했다.

곧 해가 질 무렵이기도 했기에, 서로의 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노려본다는 기묘한 구도가 되었다. 그리고 노부타다가 일기토의 시간(刻限)을 전하기 위해 사자를 보내려 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노부타다의 진을 찾아왔다.


"재미있군. 만나도록 하지"


노부타다의 진을 찾아온 것은 타케다 카츠요리 본인이었다. 사전 연락도 없이 몇 명의 종자만을 데리고 찾아온 카츠요리를, 노부타다는 자기 진으로 맞아들이며 정면에서 마주보는 형태로 대면했다.

카츠요리는 일기토를 제안한 노부타다를 신뢰해서인지, 전쟁 복장인 상태이긴 했으나 칼을 맡겨놓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가. 나는 타케다 시로, 아버지 신겐의 뒤를 이은 타케다 가문 20대 당주이외다"


"처음 뵙겠소. 나는 오다(織田) 단죠노죠(弾正忠)의 적자(嫡子), 칸쿠로이외다. 그럼, 서로 칼날을 맞대려 하는 전날 밤에 직접 진을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이오이까?"


노부타다의 질문에 카츠요리는 깊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우선은 패군(敗軍)의 장인 내게 예의를 갖춰주신 점에 감사드리오. 내일은 일기토에서 자웅을 결하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 이기던 간에 우리 군은 귀군에게 투항할 것이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든 카츠요리의 눈은 죽어 있지 않았다. 성을 나와 진을 치고 있었기에 약간 지저분해져 있긴 하나, 카츠요리는 패기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뻔뻔하다는 것은 알지만 부탁드리겠소. 승패의 여하에 관계없이 나는 자결할 것이오. 대신 내게 따라와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해주시기 바라오"


"귀하와 아드님(御嫡男) 이외에 대해서는 내 이름에 걸고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겠소. 단, 주군의 뒤를 따르려는 자들은 막을 수 없소이다"


"감사드리오. 그렇다면 일기토를 앞두고 이 이상 자리를 함께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만 실례하겠소"


카츠요리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따라와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줄 것을 탄원했다. 그리고 노부타다는 카츠요리와 그의 아들인 노부카츠 이외에 대해서는 보증할 뜻을 확약했다.

이 시대에서는 대장과 그 적자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책임을 지우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그것을 얻어낸 카츠요리는 노부타다의 진을 떠나려 했다.


"기다리시오. 보아하니 충분히 준비를 갖추지 못하신 것으로 보이오. 다른 천막에 목욕물과 식사를 준비시킬테니, 잠시 기다려 주시오"


"이미 온정은 충분히 받았소. 이 이상은 필요없소이다"


"동정하는 것이 아니오. 일기토 상대가 볼품없어서는 내가 곤란하오. 만전의 태세를 갖춘 귀하에게 승리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도 받아들여 주시오"


"……알겠소"


카츠요리는 노부나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무를 추구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마지막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의가 무뎌지지 않도록 머리를 숙인 채 등을 돌리며 카츠요리는 노부타다와의 회담을 끝냈다.

노부타다로서오 이 일기토에는 큰 의미가 있다. 타케다의 총대장을 자기 손으로 처치하는 것에 의해 처음으로 가슴을 펴고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자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질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었으나, 승패는 병가지상사이기에 노부타다도 목욕물을 가져오게 하여 몸을 씻고 수염을 정리하고, 머리카락에 기름을 발라 정돈했다.

내일이 되면, 일본의 추세(趨勢)를 좌우하는 일기토가 벌어진다.




긴장이 고조되는 카이에서 멀리 떨어진 오와리에서는, 시즈코가 오랜만에 조용히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시즈코 저택에 머물고 있던 노부나가가, 전화(電話)에 의한 정시 연락을 통해 노부타다와 카츠요리의 일기토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다급하게 직속 부하들을 모아 카이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 왈 "만에 하나라도 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하나에 대비해야 한다. 괜한 걱정이었다면 유람이나 즐기자"라는 것으로, 속도를 중시한 편성을 한 군을 이끌고 곧장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진로는 노부타다의 침공 루트를 따라가는 형태가 되어, 노부타다의 군이 구축한 중계 기지마다 말을 바꿔타고 가는 강행군이 된다.

당초에는 시즈코를 동행시킬 예정이었으나, 우연히도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가 노부나가와 동행하게 되어서 시즈코는 오와리에서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 분이 함께 유람 여행이라니, 주군도 참 팔자가 좋으시구나"


노부나가가 오와리를 떠난 것과 교대하듯 기후(岐阜)를 지키고 있던 노히메(濃姫)가 시즈코를 찾아왔다. 이번의 노부나가와 사키히사에 의한 토우고쿠(東国) 원정은 십중팔구 유람 여행이 될 거라 판단한 노히메는 드물게 투덜댔다.

시즈코는 노부타다가 자리를 비운 동안 기후 성을 맡아보고 있어야 할 노히메가 이런 곳에 있어도 되는가 하고 물었으나, 정작 본인은 입가에 손을 대고 매력있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까지 자리를 비웠으니 발칙한 것들이 움직이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시즈코가 자랑하는 전신(電信)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후와 오와리 정도라면 모두 내 손바닥 위에 있느니라"


일부러 자리를 비움으로서 내버려두고 있던 용의자들을 유인해낼 생각이라는 것을 헤아린 시즈코는 어쩐지 무서워졌다.

노히메가 아무리 우수한 첩보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인 거리가 엄연히 가로막고 있다. 어떻게 그녀가 정보를 얻고 있는지, 시즈코로서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노히메 님께서는 사전에 막으려고는 생각하시지 않으시는 건가요?"


"호호호. 사람이 욕심을 가지는 한 악의 싹은 사라지지 않느니라. 그런 걸 아무리 뽑아도 끝이 없지. 그렇다면 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가까운 존재를 통해 적당히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확실히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변함없으니, 벌을 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부추기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마(魔)가 낀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마라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 숨어있는 것이니라. 진짜 마가 자라기 전에 내가 솎아내주고 있는 것이지. 친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니라"


시즈코도 조직을 이끄는 지위에 있기에 노히메가 하려는 말은 이해하고 있었다. 누구나 달콤한 유혹에는 저항하기 힘들기에, 엄격히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쉽게 휩쓸려 버린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신앙이라거나 주군에 대해 손득(損得)을 초월한 은의라거나 하는 것인데, 노히메는 그런 불확실한 것에 의지하지 않고 일벌백계를 통해 경고하는 것이다.

결코 입 밖으로 꺼내거나 태도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지켜보고 있다"고. 그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고를 해도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니 인간의 업보라는 것은 구제불능인 것이다.


"언니, 이곳에 계셨습니까"


"이치(市) 아니냐. 내게 무슨 볼일이 있느냐?"


노히메와 이야기하면서도 시즈코가 업무를 계속하고 있을 때 오이치까지 나타났다. 이거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이 되질 않겠네라고 시즈코가 포기하려 했는데, 아무래도 용무가 있는 것은 노히메였기에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시즈코는 말없이 귀만 기울인 채 업무를 계속했다.


"시즈코도 있다니 마침 잘 됐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출발하신 것을 마치 재고 있었던 것처럼, 친족 중 한 명이 내게 언니의 소행(所業)에 대해 떠들고 다니더군요. 아무래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어서 언니께도 상담드리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아아, 그 녀석 말이냐? 주군 앞에서는 빌려온 고양이처럼 얌전히 행동하지만, 이렇게 빈틈을 보이면 당장 마각을 드러내지. 그야말로 범의 위세를 빌리는 여우로다"


그에 대해 노히메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듯,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소를 떠올렸다. 이러한 뒷공작은 본인에게 알려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눈 앞에 드리워진 먹이에 달려들어 버린 꼴이 되었다.


"오늘 마지막 정시 연락은 아까 끝났으니, 긴급이 아닌 한 주상께 연락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호호호. 이런 사소한 일로 주군의 심기를 어지럽힐 것도 없겠지. 오다 가문 내부에서 조용히 대처할 것인데, 이치도 그걸로 괜찮겠느냐?"


"언니께서 아시고 계신다면 상관없습니다"


시즈코는 아직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의 지위를 반납하지 않아서 이렇게 오다 가문 내부의 추문까지 듣게 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대부분은 노히메가 대처한다.

시즈코는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만을 듣게 된다. 조금 소화불량이긴 하지만, 이걸 캐물어봐야 얻는 것도 없었기에 내버려두고 있었다.


"뭘 하실 생각이신진 모르겠지만, 너무 일이 커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호호호.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이 그대로 되돌아오는 것 뿐이다. 그야말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 아니냐?"


(아, 이거 내쫓기는 거구나)


오다 가문 내에는 적류(嫡流)와 서류(庶流)라 불리는 구분이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본가(本家)와 분가(分家)에 해당하는데, 노부나가도 따져보면 서류 출신이었다.

그러나, 적류였던 아버니 노부히데(信秀)의 정실(正室)이 이혼(離縁)당하고 노부나가의 어머니가 후처(継室)가 된 것으로 노부나가는 노부히데의 후계자가 되어 적류로 편입되게 된 경위가 있다.

서류는 적류를 뒷받침할 의무가 있는 것과 동시에, 적류도 서류를 안정(安堵)시킬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구조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야심을 품고 자신이 적류가 되려는 자들은 항상 일정하게 나타난다.

적류의 비호를 받으면서 그에 대해 이빨을 들이대려고 하는 버릇없는 개의 말로 따위 뻔한 것이다.


"안 그래도 전시(戦時)인데, 집안 소동 같은 건 일으키지 말아 주세요"


"그놈 정도로는 그다지 소란도 안 일어난다. 얌전히 있으면 모른 척 해주었을 것을…… 어리석도다"


(보이는 곳에 먹이를 매달아뒀으면서 이런 말이라니)


"분수를 모르니 파멸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지"


"이치의 말대로니라. 나도 걸려온 싸움은 받아줘야 하지"


"싸움조차 안 되잖아요……"


시즈코가 성대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야말로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손오공(孫悟空)'과, 그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았던 '석존(釈尊)' 같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참으로 시즈코는 상냥하구나. 하극상을 꾸민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꿈을 이루려 도전하는 것. 그 꿈이 깨졌다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뒷담화(陰口)를 하고 다니는 게 죽음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설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죠……"


"그런 뒷담화라는 것은 의외로 성가신 법이니라. 들은 쪽이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조금씩 앙금처럼 마음에 쌓여서, 뭔가의 계기로 싹을 틔우기 때문이지"


"이치의 말대로니라. 그러니 내가 나쁜 짓은 파멸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들이대주는 것이지. 참으로 관대하지 않느냐?"


이미 그 사람의 미래는 정해져 버린 것 같다고 시즈코는 깨달았다. 어울리지 않는 야심을 품은 그는, 과연 물어뜯으려 든 상대의 거대함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이름을 들어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그에게 조금이지만 연민을 느낀 시즈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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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