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4년 격세지감(隔世の感)


158 1577년 4월 상순



텐모쿠 산(天目山)이란, 현재의 야마나시 현(山梨県) 코우슈 시(甲州市) 타이와쵸(大和町) 토쿠사(木賊)에 존재하는 산이다. 옛날 무로마치(室町) 막부(幕府)에 쫓긴 타케다 씨(武田氏) 13대 당주인 타케다 노부미츠(武田信満)가 자결하여, 여기서 타케다 씨의 맥이 한 번 끊어졌다.

그 후 재건된 타케다 가문 최후의 당주인 카츠요리(勝頼)가, 텐모쿠 산을 결판의 장소로 선택한 것은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비교적 표고가 낮은 텐모쿠 산의 산봉우리 부근에 세워진 카츠요리의 진은 철거되고, 잡초를 베어내고 땅바닥을 단단히 고른 듯, 시야가 잘 트인 광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침 안개가 낀 가운데, 그 광장의 중앙에서 카츠요리가 걸상(床几)에 팔짱을 끼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 약간의 직속 수하들만을 거느린 노부타다(信忠)가 산길을 똑바로 올라왔다.


"……왔는가"


노부타다의 모습을 확인한 카츠요리가 중얼거렸다. 카츠요리는 수하들을 멀리 물려두고, 결전장에는 누구도 다가가지 않도록 엄명해놓았다.

카츠요리는 천천히 일어서더니, 곁에 세워두었던 붉게 칠한 대신창(大身槍)을 손에 들었다. 카츠요리의 모습은 타케다가 자랑하는 적비대(赤備え)의 군장을 착용하고, 위압적인 모습의 투구(面頬)까지 장착한 완전무장 상태였다.

그에 대해 결전장에 나타난 노부타다는 이 시대의 상식에 맞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기토(一騎打ち)를 신청한 것은 그쪽일 터. 승패에 관계없이 자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업신여기는 것인가?"


카츠요리의 물음에 대해 입회인(見届け人)인 나가요시(長可)를 제외한 부하들을 창이나 칼이 닿지 않는 위치까지 물리며 대답했다.


"업신여겼다면 일기토 따윈 하지 않고 끝장을 냈을 것이오. 카이(甲斐) 타케다의 무(武)를 잇는 사나이라고 인정했기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 보아하지 기력도 체력도 충분한 것 같군"


"베품(施し)을 받아서 하는 말은 아니나, 정말 그런 모습으로 괜찮은 것인가?"


질문을 받은 노부타다는 확실히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발에는 오다 군 표준의 목이 높은(編み上げ) 부츠에 현대의 카고 팬츠 같은 투박한 바지(下履き) 위에 정강이받이(脛当)를 차고 있었다.

몸통에는 아무래도 몸통갑주(胴鎧)를 두르고, 허리 부분을 커버하는 쿠사즈리(草摺, ※역주: 아래 링크 참고)는 카츠요리와 다르지 않았다. 어깨에서 팔꿈치까지 덮어야 할 오오소데(大袖, ※역주: 아래 링크 참고)는 없고, 손목에서 팔꿈치까지를 덮는 토시(籠手)가 약간 대형화되어 있었다.

머리 부분에는 투구 종류를 일체 쓰고 있지 않은 무방비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었다.


"설마 이제와서 화살을 쏘아붙이는 짓은 하지 않을 것 아니오? 그러니 경험에서 뒤지는 쪽 나름대로 연구를 한 것이지"


노부타다는 그렇게 말하고 수하로부터 자신의 키보다 약간 긴 단창(手槍)을 받아들고는 물러나게 했다. 나가요시는 마주보는 두 사람의 중간 정도에 서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두 사람의 동향을 지켜보았다.

당세구속(当世具足)으로 완전 무장하고 장대한 대신창을 무기로 삼은 카츠요리에 대해, 간격에서 뒤지는 단창 외에는 허리에 장검(太刀)을 차고는 있는 게 보이는, 명백한 경장(軽装)인 노부타다는 아무래도 불리해보였다.

노부타다의 준비가 갖춰진 것을 본 카츠요리는 손에 든 대신창을 머리 위에서 크게 원을 그리듯 돌려보이더니 옆으로 내리며 노부타다 쪽으로 창끝을 향하고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지금부터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무예로 뜻을 나타내도록 하지. 언제라도 오라!"


카츠요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발을 멈추고 노부타다의 반응을 살폈다. 그에 대해 노부타다는 간격에서 불리하기에 섣불리 치고들어가지도 못하고 발을 끌며 조금씩 간격을 좁혔다.

반 발자국만 더 가면 단창이 상대에게 닿을 위치에서 카츠요리가 움직였다. 옆으로 쥐고 있던 대신창을 손바닥 안에서 미끄러뜨리듯 전방으로 찔러내어, 예비동작이 거의 보이지 않음에도 충분히 위력이 실린 찌르기를 뻗어냈다.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을 노부타다였지만, 반응이 반 박자 늦었기에 회피할 시간이 없어 대신창의 진로상에 단창을 세워 창끝을 빗나가게 하고, 그 반동으로 역방향으로 몸을 피했다.

카츠요리의 대신창은 창날 길이가 1척(尺, 약 30cm) 이상이라, 그 칼날(刀身)이라고도 부를 만한 창끝이 단창의 자루를 깎아내며 파고들었다.

본래는 중량이 있는 대신창을 다루는 것은 어려워서, 위력이 실린 찌르기를 회피당하면 큰 빈틈이 생겨날 터였다.

그러나 카츠요리는 측면으로 빗나간 힘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옆쪽을 향한 힘에 자신의 힘과 추가로 몸의 비틀림까지 더하여 몸을 꺾듯이 하며 컴팩트하게 대신창을 회전시켜, 대각선 위쪽에서 후려치는 듯한 일격을 날렸다.

피한 곳에서 후려치듯이 내려쳐지는 일격을 본 노부타다는, 단창으로 완전히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몸을 날려 옆으로 뛰어 회피했다.


땅바닥을 구르면서 일어난 노부타다가 본 것은, 다시 옆으로 잡은 대신창을 겨누고 있는 빈틈이 없는 카츠요리의 모습이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잘못 판단했군)


이 일기토를 타진하기 전부터 카츠요리 개인의 무위(武威)에 대해서는 간자(間者)에게 조사하게 했다. 그러나, 부대의 지휘에 뛰어나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어도, 카츠요리 본인이 무예에 뛰어나다는 정보는 결국 들어오지 않았다.

이름높은 무예자들이 모여 있는 타케다 가문에서 카츠요리 본인은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라고 노부타다가 판단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 갑주, 겉보기와 같은 무게가 아니군?"


"겨우 일 합에 거기까지 꿰뚫어본 건가. 사전 평판(前評判) 따위 믿을 게 못 되는군. 애초에 이쪽은 도전하는 입장. 오다 칸쿠로(織田勘九郎), 이대로 간다(推して参る)!"


카츠요리의 지적은 정확했다. 노부타다의 갑주는 모두 특별제로, 오와리(尾張)의 최첨단의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간 명품이다.

평범한 천으로 보이는 카고 팬츠도, 녹인 유리가 솜사탕(綿菓子)을 만드는 기계 같은 것으로 불어져서, 원심력을 이용하여 가늘게 가늘게 뽑은 유리 섬유를 표면에 짜넣었다.

당연히 그대로는 피부에 닿으면 가느다란 베인 상처가 생겨서 따끔거리기에, 뒷면에는 통상적인 천 재질이 대어져 있다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것만이라면 조금 튼튼하고 잘 타지 않는 천에 지나지 않지만, 정강이받이나 토시 부분에 쓰인 장갑판은 한술 더 떴다.

오와리에서만 만들 수 있는 강철을 냉간(冷間) 선인발(線引き)이라는 기법으로 상온(常温) 상태에서 가늘게 잡아뽑는다. 이것은 물레방아(水車)나 가축의 힘(畜力)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증기 기관에 의한 거대한 힘을 균일하게 지속적으로 가할 수 있게 되어야 처음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에 의해 피아노줄 정도는 되지 못하더라도, 철사(針金)라기보다 가느다란 연줄(タコ糸) 정도의 강선(鋼線)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을 메쉬(mesh) 형상으로 짜넣은데다 북가시나무(赤樫)의 얇은 판에 몇 겹이고 붙이고, 그것들을 수지(樹脂)로 굳힌 것이다.

철판과 다름없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면서도, 중량은 5분의 1 정도라는 완전히 오버 테크놀러지의 방어구로 완성되었다.


다음에는 자신이 선공을 하기 위해 노부타다가 달렸다. 당세구속은 화살을 막기 위해 틈새를 적게 하는 설계가 되어 있어, 방어력이 높은 반면 시야가 필연적으로 좁아진다.

카츠요리와 마주보고 왼쪽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시야에서 벗어나면서, 게다가 쓰는 팔의 뒤쪽을 돌아들어가는 것으로 추가 공격을 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하려는 작전이었다.

이것에 대한 카츠요리의 대응은, 노부타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리고 몸을 구부린다는 기묘한 것이었다. 몸을 작고 둥글게 구부리는 모습에, 노부타다는 극한까지 눌려 축적된 반동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았다.

등골에 얼어붙는 고드름이 꽂히는 듯한 오한에, 노부타다는 즉시 그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생각대로 노부타다의 발 밑에 섬광이 지나갔다. 뒤늦게 풍절음이 들려올 정도로 날카로운 참격이 지나가고, 짧게 베여서 정리되었던 잡초들이 더욱 짧아졌다.

어떤 자세에서도 자유롭게 창을 휘두를 수 있는 비범한 체간(体幹)과, 날카로운 찌르기(刺突, ※역주: 칼날 등으로 찌르는 것을 가리킴) 및 참격을 낳는 괴력(剛力). 천하무쌍의 장수(侍大将, ※역주: 의역했음)라고 부를 수 있는 무서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도망치기만 해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지금 건 간담이 서늘했소. 카이의 무사는 다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중거리에서는 승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노부타다는, 아까처럼 카츠요리의 공격이 닿기 어려운 방향으로 달리면서도 거리를 좁혔다.

대신창 같은 자루가 긴 무기는, 밀착 간격에 들어가버리면 리치가 거꾸로 단점이 되어 공격이 맞지 않게 되어버린다.

당연히 그 정도는 숙지(知悉)하고 있는 카츠요리는 창을 지탱하는 왼팔을 안쪽으로 접고, 자루를 밀어내는 오른손을 크게 바깥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컴팩트한 참격을 날려왔다.

간발의 차이로 이것을 피한 노부타다는, 카츠요리의 눈 앞까지 육박했다. 대신창의 창끝은 카츠요리의 뒤쪽 멀리 돌아가 있어, 지금이 호기라는 듯 노부타다가 크게 치고 들어갔다.

퍼엉! 이라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노부타다가 크게 후퇴했다. 노부타다의 몸통갑주는 측면이 우그러져, 자세히 보면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대체 뭔가 그건!? 바위라도 두들긴 것 같군"


예상대로 카츠요리가 날린 것은, 창의 밑둥(石突)에 의한 찌르기(打突, ※역주: 날붙이가 아닌 것으로 찌르는 것을 가리킴)였다. 옆으로 쓸어가는 참격에서 직선의 찌르기로 이어지는 빈틈없는 연계에, 노부타다는 비장의 몸통갑주가 우그러진데다 간격 밖으로 튕겨나가 버렸다.


"시즈코 특제의 갑주지! 그리 쉽게 뚫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라!"


그렇게 포효하더니 노부타다는 세 번째의 돌격을 감행했다.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 아래에서는, 예상 이상으로 기력 및 체력을 소모한다.

유효타는 되지 않았지만 뼈아픈 일격을 먹은 노부타다보다도, 그때그때 카운터를 날려 체력을 온존하고 있는 듯 보인 카츠요리 쪽이 피로해 있었다.

시야의 바깥에서 찔끔찔끔 거슬리는(厭らしい) 공격을 해오는 노부타다의 행동은, 상상 이상으로 카츠요리의 체력을 깎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카츠요리의 피로는 발한(発汗)을 촉진하여, 흡수의 한계를 넘어선 땀방울이 한쪽 눈을 막았다.

그 순간적인 빈틈이라고도 할 수 없는 빈틈이 운명을 갈랐다. 크게 치고 들어온 노부타다는 단창을 카츠요리의 눈앞의 땅바닥에 박아넣더니, 허리의 장검을 뽑아 구르듯 카츠요리의 겨드랑이 아래를 빠져나갔다.

단창이 방해가 되어 창을 질러내지 못한 카츠요리의 오른팔이 하늘을 날았다. 카츠요리의 오른 팔의 뿌리부분에서 선혈이 뿜어졌으나, 신경쓰지 않고 창을 버리고 왼손으로 허리의 장검을 뽑으려 손을 뻗었다.

다시 등 뒤에서 참격이 날아와, 이번에는 왼팔의 팔꿈치부터 앞부분이 날아갔다. 양 팔을 잃은 카츠요리는 패배를 깨닫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등을 쭉 펴며 외쳤다.


"훌륭하다! 이 상처로는 곧 소생의 목숨도 사라지겠지. 자결하려고 해도 팔이 없군. 카이샤쿠(介錯, ※역주: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쳐주는 것)를 부탁할 수 있겠나?"


그것에 노부타다가 응하여 외쳤다.


"박빙의 승리였소. 부족한 몸이지만 카이샤쿠를 해드리지"


노부타다는 그리 말하고, 등을 쭉 뻗어 목이 보이도록 머리를 숙이고 있는 카츠요리의 등 뒤에 서서, 장검을 높이 쳐들었다.


"하라!"


카츠요리의 말과 함께 칼날이 휘둘러쳐 내려지고, 한 칼에 카츠요리의 목이 떨어졌다. 뒤늦게 몸이 앞으로 쓰러지며 타케다 가문 최후의 당주는 세상을 떠났다.


"이 갑주가 없었다면, 천하(泉下, ※역주: 저세상)에 간 것은 나였겠지. 타케다 시로(武田四郎), 진정한 무사였노라"




타케다 카츠요리의 전사, 이 소식은 오다 가문의 손으로 퍼져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 전토로 전해졌다. 아무리 몰락했더라도 전국시대 최강으로 불렸던 타케다 가문의 멸망은, 일본 전역의 영주(国人)들을 떨게 만들었다.

이에 의해 오다 가문이 무가(武家)의 두령(頭領)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 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엄밀하게 말하면 호죠(北条)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상 묵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불구대천(不倶戴天)의 원수가 되었던 타케다 가문의 멸망에도 노부나가는 단 한 마디 "그러냐"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타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던 타케다 가문이지만, 막상 멸망했다고 듣자 가슴에 남은 것은 메우기 힘든 공허감이었다.

이익에 밝고 성질이 급한 사카이(堺)의 상인들은, 후에 노부나가에 대해 축하 선물을 보내고, 입을 모아 타케다 가문을 깎아내리고 오다 가문을 칭송했다. 그런 영언(佞言, 아첨하는 말)을 내뱉는 패거리는 모두 말없이 위압(威圧)했다.

노부나가가 내뿜는 뼛속까지 추워지는 듯한 시선과, 물리적 압력을 동반하는 듯한 침묵을 견딜 수 없게 된 상인들은 얼른 그 자리를 물러나게 되었다.


시간은 되돌아가서 노부나가와 노부타다 군 및 도쿠가와(徳川)-아나야마(穴山) 연합군이 집결할 수 있는 장소로서 신푸 성(新府城)이 선택되어, 관계자들이 모여 전후 처리를 의논하게 되었다.

카츠요리를 처치한 노부타다 군이 먼저 입성하여 준비를 갖추고, 남부로부터 진군해온 도쿠가와-아나야마 연합군이 합류했다. 그들은 무혈개성(無血開城)이긴 했지만 약탈이 있었는지 황폐해진 성 안을 청소하여 겉보기에는 문제없도록 했다(表面を取り繕った).

그러한 보이지 않는 노력 끝에, 뒤늦게 달려온 노부나가 및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노부나가는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논공행상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관계자들을 모았다.


"이번의 승리는 오랫동안 타케다의 침공에 저항해 왔던 미카미노카미(三河守) 님의 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 제 1공으로서 상을 준 것은 이에야스(家康)였다. 그가 타케다의 침공에 대해 버텨냈기 때문에 오늘의 승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제 2차 토우고쿠(東国) 정벌에서는 큰 전공을 세우지 않았으나, 과거의 성과를 감안한 평가였다.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 대해 스루가 국(駿河国)을 내렸다.

다음으로 타케다 씨의 본국이기도 한 카이 국(甲斐国)은, 쿠로호로슈(黒母衣衆) 필두이자 토우고쿠 정벌에서 노부타다를 모신 카와지리 히데타카(河尻秀隆)에게 주어졌다.

다음으로 이나 국(伊那国)은 노부타다의 직속 신하인 모우리 나가히데(毛利長秀)에게, 코우즈케 국(上野国)과 시나노 국(信濃国)의 일부는 타키카와 카즈마스(滝川一益)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타키카와에게 주어진 영토에는 예전의 사나다 령(真田領)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당사자인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는 이미 오와리에 뼈를 묻을 생각이었기에 딱히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타케다 씨가 멸망했기에 내전 상태에 빠져든 영토에 대해서는, 이번의 토우고쿠 정벌에서 출중(出色)한 공을 세운 나가요시에게 주어지게 된다.

겉보기에는 손해보는 역할을 떠맡은 모양새가 된 나가요시였으나, 노부나가는 나가요시라면 그것들을 진압하면서 잘 다스릴 수 있을거라 판단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의 총대장이자, 카츠요리를 직접 처치한 공로자이기도 한 노부타다에 대해서는 아무런 포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총대장이면서 지시를 어기고 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기토를 한 벌이다!"


노부나가는 그렇게 내뱉듯 말했다. 확실히 오다 가문의 적자(嫡子)이면서, 생명의 위험이 있는 일기토를 벌인 것은 경솔한 짓이었으리라.

그러나 토우고쿠 정벌의 절반을 이루어낸 공적과 상쇄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는 가운데, 노부나가가 이어서 말했다.


"저놈에게는 타케다의 유아(遺児)인 마츠히메(松姫)를 처로 맞아들이는 것을 허가해 주었다. 타케다의 복권(復権)은 용납하지 않지만, 피의 존속을 허락한 것으로 상으로 간주한다"


여기까지 듣자 노부나가의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어서 노부나가는, 마지막까지 카츠요리를 따라 싸운 충신 50여명에 대해 "적이지만 훌륭하다"라고 평하고, 본인을 포함한 일가친지(一族郎党)에게 죄를 묻지 않을 것을 확약하고 생활을 보장(安堵)했다.

반대로 타케다 가문이 열세에 몰린 후에 배신하고, 그러면서 오다 가문의 편을 들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그 우유부단함의 죄를 물어 엄벌에 처해졌다.

가문의 존속을 위한 배신은 전국시대의 예상사라서, 그것만을 이유로 가문 단절로 몰아넣거나 하지는 않지만, 학살을 포함한 약탈을 벌인 자는 참수되었다.

그 가혹한 대응을 본 키소 요시마사(木曾義昌)는, 가장 먼저 배신한 것에 대해 죄를 물을까 공포에 질렸지만, 영지의 가증(加増, ※역주: 늘어남)과 보장(安堵)을 받고 깜짝 놀랐다.

반대로 미묘한 시기에 배신을 타진해왔던 아나야마에 대해서는 대응이 까다로웠다. 이미 도쿠가와의 신하가 되어서, 노부나가라도 해도 그 인사(人事)에 대해 참견할 수는 없다.


"코우슈(甲州)에는 '도로카부레(泥かぶれ)'라는 병이 있지. 아나야마 님은 이에 대한 진두지휘를 해 주시게.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오다 가문 상담역(相談役)이 나중에 알릴 테니, 이 병의 근절을 위해 진력하시오"


노부나가의 말을 들은 아나야마는 안도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로카부레'라는 죽음의 병에 대해 처음부터 지휘계통을 재구축하는 것보다, 현지의 주민과 연결고리가 있는 영주를 책임자로 세우는 쪽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된 것이다.

이에 의해 아나야마의 영토는 보장되어, 도쿠가와 가문 수하의 신하로서 일하면서 코우슈 전역을 잠식하는 죽음의 병과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옛! 이 아나야마, 목숨을 걸고 이행하겠나이다"


노부나가의 결정과 그것을 받아들인 아나야마를 보며 이에야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남부로부터 침공해왔던 도쿠가와 군은, 코우슈 분지 부근의 유행지에서 '도로카부레'의 확진자(罹患者)를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제 2차 토우고쿠 정벌에서 남부로부터 북상하는 루트를 취한 도쿠가와 군에 대해, 시즈코는 이에야스에게 '도로카부레'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전했다.

물 속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가 뱃속에 자리잡고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등의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다름아닌 시즈코로부터의 정보인 것과, 상세한 병리(病理)에 대해 키록된 자료 및 사진이라는 설득력이 높은 시각 정보가 결정타가 되었다.

그러한 이유도 있어서인지, 이에야스는 아나야마를 받아들인 후에 현지를 안내하게 했다. 거기서 그는 지옥도에 나오는 아귀(餓鬼)처럼 배가 부풀어오르고 팔다리가 막대기처럼 바싹 마른 주민들을 보게 된다.


그 이후 이에야스는 '도로카부레'에 대해 만전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로부터 감염되는 것을 우려하여 시즈코로부터 대여받은 생석회를 뿌리거나, 방비를 갖춘 병사들에게 잡초를 베게 하는 등 안전을 확보하면서 진군했다.

그 결과, 진군 속도는 대폭 떨어져서 신푸 성이 함락될 때까지 합류할 수 없었으나, 실제로 방역을 하면서 진군한다는 얻기 힘든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이 '도로카부레'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는 없다. 중간 숙주인 미야이리가이(ミヤイリガイ)를 경유하지 않으면, 감염능력을 갖는 세르카리아(cercaria)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 분변이나 오줌에 포함된 벌레알이 하천으로 흘러들어, 미야이리가이를 경유하여 간접적으로 감염되는 경우는 있다.

미지의 공포스러운 죽음의 병의 현 상황을 알게 된 이에야스는, 아나야마가 '도로카부레'를 박멸하는 데 주력하는 것에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이것으로 논공행상을 끝내겠다. 나는 지금부터 아즈치(安土)로 돌아갈테니,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연락이 있을 것이다"


"기다려 주십시오, 오다 님"


할 말을 마친 노부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걸음으로 방을 나가려고 했을 때 이에야스가 불러세웠다. 노부나가가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냈지만,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고 말을 이었다.


"들으니 후지(富士) 산을 구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부디 저희 영토를 이용해 주십시오. 후지 산을 마주보는 명당(景勝地)을 안내해드리지요"


"……확실히 후지 산은 험난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그 제안을 고맙게 따르기로 하지"


"맡겨 주십시오"


제아무리 노부나가라도 직접 후지 산을 등산할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야가 탁 트인 언덕에서 일출을 반사하여 빛나는 후지를 사진에 담아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는 짐작가는 바가 없어서, 계획성이 없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거기에 이에야스의 제안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에야스가 솜씨를 보일 상황이 된다. 노부나가 일행의 안내를 맡는다는 것은, 그 길의 사전 정리도 포함된다.

즉 도중에 건달패거리와 조우하는 것 같은 해프닝이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에야스는 가신들에게 지시를 내려, 노부나가 일행이 통행할 루트를 정하고는 그 정비를 명했다.

가는 길에 산이 있으면 산적 토벌을 하고, 물이 불어나 다리가 끊어진 강이 있다면 벼락치기 공사로 재건시켰다. 게다가 숙소가 되는 절이나 사찰에 관해서는, 사전 연락을 보내어 총력으로 청소를 하게 하고, 금은을 기진(寄進)하여 숙방(宿坊)은 물론이고, 노부나가를 따르는 병사들의 침상까지 만들게 했다.

그렇게 이에야스가 분발하고 있는 와중에, 노부타다와 나가요시는 잠시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의 싸움은 대체적으로 순리대로 결판이 났군요"


"뭐, 총대장이 공이 없다는 흠은 생겼지만 말이지"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농담을 하는(混ぜっ返す) 노부타다의 모습에 나가요시는 짓궂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주 목적인 혼인 허락은 딱 받아내시는 부분은 빈틈이 없으시군요"


"타케다의 당주를 처치했다는 명성과, 토우고쿠 정벌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실적. 이것들이 갖춰지면 마츠(松)를 처로 맞아들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


"아무래도 좀 지나치게 멋대로 행동하셨다고 주상(上様)께서는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만?"


"신상필벌을 철저히 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화내고 계신 듯 보이지만, 결국 처벌(お咎め) 없이 용서받았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지"


"그 노기는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뭐 좋겠죠. 그보다 노부카츠(信勝)는 어땠습니까?"


"성장했다면 무서운 실력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카츠요리가 전사한 후, 자결해서 뒤를 따를 거라 생각되었던 노부카츠였으나, 예상을 뒤엎고 노부타다에게 일기토를 신청했던 것이다.

애초에 아버지를 패배시킨 노부타다에게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마지막에 한 방 먹이겠다고 도전한 것이리라.

결과는, 제대로 치고받는 일도 없이 한 칼에 베여 쓰러졌다. 일기토를 앞두고 노부카츠는 가신들에게 뒤를 따르는 것을 금했기에, 그들은 무장을 버리고 오다 군에게 투항했다.

검분(見分)이 끝난 카츠요리의 목과 노부카츠의 유체를 돌려받은 호죠 부인(北条夫人)은, 출가하여 평생 그들의 명복을 빌며 살 것이라 했다.


"그보다도 문제는 '도로카부레'로군. 뭔가 시즈코가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인데, 자세한 보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방침으로서는 유행지에서 주민들을 격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했었는데"


"어!? 병마에 당한 녀석들을 움직여도 괜찮은 거야?"


놀랐는지, 얼결에 원래 말투로 돌아온 나가요시가 노부타다에게 물었다.


"어, 듣자 하니 뱃속에 벌레가 들어앉는 병인 모양이다. 병자의 뱃속에 들어찬 벌레들은 어지간해서는 다른 인간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더군"


"아, 사진으로 지겹게 봤던 그거로군. 새끼손톱 끝부분보다도 작은 크기인 모양인데,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들이 우글거린다는 건 소름이 끼지는 이야기야"


"듣자 하니 기생충이라는 생물인 모양이야. 타인의 생혈(生血)을 빨아 살을 찌우는 거머리 같은 생물이군"


"과연.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성가시지만, 그 뭔가 하는 조개를 씨를 말리면 되는 거지?"


"그래. 하지만, 그게 터무니없이 어렵다고 들었다. 조개의 숫자가 까마득하게 많은데다, 물이 있는 곳 뿐만 아니라 땅에도 있어서, 조금이라도 남기게 되면 순식간에 불어난다고 하더군……"


'도로카부레'의 근절이라는 장대한 난제의 일단을 얼핏 엿본 두 사람은, 그 밑 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일에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도로카부레' 박멸의 제 1보는 역사적 사실대로 병리해부(病理解剖)로 막을 올렸다. 아무리 병리적 메커니즘(機序)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배를 열어 간장(肝臓)의 상태를 확인하고 틀림없이 '일본주혈흡충(日本住血吸虫)'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정해야 한다.

다행히 전시(戦時)였기에 검체(検体)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전사한 유체들 중 키가 작고 야위었으며 배가 부풀어 있는 자들을 골라 배를 열었다.

종군하고 있던 방역부대인 금창의중(金瘡医衆)은, 물이 새지 않는 수지(樹脂)로 된 장갑이나 앞치마(前掛け)로 몸을 감싸고, 유체의 배를 열어 간장을 노출시킨 후, 그 문정맥(門脈)에 칼을 넣었다.

절개된 문정맥 내부에는 벌레알이 가득 차 염증을 일으켰고, 그것을 부풀어오른 살이 감싸는 육아종(肉芽腫)이 형성되어 있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도로카부레'의 병변(病変)과 그 원인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작업들과 병행하여 중간 숙주인 미야이리가이의 회수, 마을 사람들에 대한 청취 조사가 이루어져, 급속도로 연구 거점이 구축되어 갔다.

'도로카부레'를 규명(究明)하는 금창의중들은 시즈코에게서 역사적 사실대로의 실험을 하도록 지시받았기에, 정해진 수순(手順)에 따라 착착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 체제가 갖춰지는 것을 지켜본 노부나가는, 강기슭을 피해 도쿠가와 군과 함께 남하하면서 후지 산을 향하고 있었다.


"이게 일본 제일로 이름높은 영봉(霊峰), 후지인가!"


이에야스에게 안내된 장소에서 바라보는 후지 산은 그야말로 절경(絶景)이었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들판(裾野)에서 산기슭까지 물들이는 푸르름이 선명하게 보였으며, 도중부터 희게 잔설(残雪)이 남은 산꼭대기 부분이 빛나는 듯 했다.

절경에 취해 있던 노부나가는 제정신을 차리자, 즉각 기술자들에게 이 풍경(眺望)을 사진에 담도록 명했다. 망원렌즈나 고감도 필름 등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의 촬영은 난항을 겪었으나, 그래도 간신히 아름다운 후지 산을 담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시종 기분이 매우 좋았던 노부나가였으나, 이에야스는 물 위의 백조처럼 우아한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무리해서까지 노부나가를 초대하여 접대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금후의 오다 가문에 대해 도쿠가와 가문이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타케다의 침공을 막는 최전선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인정받았던 도쿠가와 가문이다. 그 타케다 가문이 멸망한 이상, 금후에는 그 이용가치의 저하에 의해 도쿠가와 가문의 지위가 하락할 우려가 있었다.

이미 호죠를 공격해 멸망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도쿠가와 가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낙관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의 코우슈 정벌에서 대활약한 나가요시의 전과를 보면, 오다 가문 혼자서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예전부터의 약정에 따라 스루가를 얻었으나, 이 다음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 없다"


현재의 도쿠가와 가문은 미카와(三河), 토오토우미(遠江), 스루가의 세 나라를 품고 있으나, 이대로 오다 가문이 약진을 거듭한 경우에는 자주독립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적어도 금후 십 년을 내다보고 행동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이에야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겨 시끌벅적한(湧きたつ) 도쿠가와 가문에서 이 얼얼할 정도의 긴장감을 품고 있는 것은 이에야스 뿐이었다. 다른 가신들은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이 계속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도 동맹의 중요 인물인 노부나가를 대접하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사라는 인식은 공통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을 가로막은 것인 텐류가와(天竜川)의 도하(渡河)였다.


"아바레텐류(暴れ天竜, 텐류가와를 말함, ※역주: 직역하면 '난폭한 텐류')에 다리를 놓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미증유(未曾有, 옛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의 대공사입니다!"


"코텐류(小天竜)라면 놓을 수 있겠지만, 오오텐류(大天竜)는 불가능합니다"


"여기는 안전을 꾀하여 배편으로 건너도록 하죠"


현재의 텐류가와는 유역(流域)이 일원화되어 있지만, 이 시대에는 동쪽에 한 줄기, 서쪽에 두 줄기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동쪽을 오오텐류, 서쪽을 코텐류라고 불렀으며, 스와 호(諏訪湖)를 수원지로 가져 방대한 수량을 자랑하는 하천이었다.

그 때문에, 한 번 큰 비가 내리면 빈번하게 홍수를 일으켜서 '아바레텐류'라고까지 불리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겐로쿠(元禄) 시대에서 메이지(明治) 초기에 이르는 약 170년 동안 40회의 크고 작은 홍수가 발생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5년에 한 번은 홍수가 발생한다는 계산이니 다리를 놓는 것 따위 꿈 같은 소리여서, 놓아봤자 떠내려갈 게 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그 '아바레텐류'를 제어하여 배를 띄워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판을 놓은 선교(船橋)를 놓겠다고 제안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해내야 사람이 감동하는 것이라고 설득하여, 얼마나 자금이 들던 성공시키라고 엄명했다.

그리하여 노부나가 일행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변 일대에서 배를 닥닥 긁어모으고, 목수들을 유괴나 다름없이 데려와서 공사를 하게 했다.


이러한 결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노부나가가 텐류가와에 도착할 무렵에는 훌륭하게 일렬로 이어진 선교가 완성되어, 일행이 다 건널 때까지 무너지지도 않았다.

벼락치기 공사를 한 탓인지 배의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교판(橋板)이 여기저기서 기울어 있거나, 걷기에 어려울 정도의 단차가 생겨 있거나 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그것들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종 매우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즐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게 기분이 좋은 노부나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의 노기를 띠고 있는 시즈코의 모습이었다.

평소 온화한 사람일수록, 표변했을 때의 낙차가 크다고 한다. 그것을 몸으로 알게 된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닥쳐올 재앙을 생각하고 몸을 떨었다.




※ 갑주 관련 정보 링크: https://www.touken-world.jp/tips/1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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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