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피소드 3




04 소년이여, 카레이(かれい)를 먹어라



카레이교자(華嶺行者)는 괴위(魁偉)한 풍모의 소유주이기에, 시즈코 저택은 물론이고 근린(近隣)에도 이름이 알려진 존재이다.

거리에 있으면 그나마 행자(行者)나 수도자(山伏)로도 보이겠지만, 산 속에서 맞닥뜨리면 텐구(天狗)나 요괴(妖怪) 같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번에도 카레이교자가 밤의 산속을 질주하고 있을 때, 모닥불 같은 빝이 보였다. 슬슬 식사라도 할까 생각하고 있던 때였기도 하여, 마침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불씨나 얻으려고 다가갔다.

예상대로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있던 지저분한 행색의 남자들은, 어둠 속에서 모닥불의 빛을 받아 떠오른 카레이교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절규하며 도망쳤다.

참으로 형용하기 힘든 침묵이 내려앉은 자리에는, 카레이교자와 양팔을 뒤로 묶이고 재갈이 물린 상태로 쓰러져 있는 소년만이 남았다.

소년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으나, 잠시 후 절망했는지 눈을 꼭 감고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소년이 절망하여 죽음을 각오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때의 카레이교자는, 해가 지기 전에 잡은 젊은 암사슴을 어깨에 짊어지고, 내장은 상하기 쉽기에 폐기했지만 걷다보면 피도 빠질 거라고 생각하여, 목에서 피를 흘리는 암사슴의 머리가 늘어져 있는 것이다.

떨어진 위치에서도 농밀하게 풍기는 피냄새와, 피에 젖은 사슴 털가죽이 발하는 짐승 냄새는 대형 육식동물을 연상시켰다. 다가오는 죽음 그 자체인 카레이교자는, 그러나 모닥불 앞에 털썩 주저안았다.

소년이 몸을 굳히고 있을 때, 지그시 허리 쪽을 붙잡혀서는 엄청난 힘으로 끌어당겨졌다. 소년은 자신의 몸에 짐승의 이빨이 박히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으나, 그 순간은 아무리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 뿐만 아니라, 무슨 요술을 부린 건지,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새끼줄과 재갈이 사라지고 자유를 되찾은 것을 깨달았다.


"나…… 나는 살아난…… 건가?"


소년은 자신의 무사함을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모닥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예상대로 모닥불 건너편 쪽에, 만면에 웃음을 떠올린 카레이교자가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았던 소년을 칭찬해주고 싶지만, 실제론은 다리가 떨려 일어설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침묵한 채로 계속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카레이교자를 소년은 바라보았다. 험상궂은 용모지만, 미소를 떠올리고 있자 신비한 애교가 있어, 여기서 처음으로 소년은 상대가 사람 형상의 어떤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御身)께서는 산의 신이시옵니까?"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주한 괴인에게 말을 걸었다.


"핫핫핫. 소승(拙僧)은 그런 거창한 자가 아니오. 불씨를 빌릴까 해서 온 여행중인 승려외다. 곤란하셨던 모양인데 별 일은 없소이까?"


눈 앞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웟으나, 카레이교자의 태연한 모습과 침착한 말투에 소년의 긴장은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실례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이다. 고개를 드시오"


카레이교자의 말대로, 그는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멋대로 상대가 도망친 것 뿐이다. 소년의 구속을 풀어준 것도 한 손을 조금 놀린 것 뿐이다.


"소생(某)은…… 가문 이름은 이제 쓸 수 없군요. 소생은 시치스케(七助)라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흠, 뭔가 사연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소승은 카레이(華嶺)라 하외다. 친한 사람들은 카레이교자라 부르고 있지요"


일순 말을 흐린 것만으로 사연이 있다고 꿰뚫어보기는 했으나, 그에 대해 묻는 법도 없이 대화를 계속하는 카레이교자와 소년은 차츰 분위기가 편해져갔다.


그 몸 하나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카레이교자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확실한 지성을 느끼게 하는 화법과는 정반대의 파격적(破天荒)인 행동에 소년은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자, 수관(樹冠) 사이로 창백한 달이 보였다. 시치스케는 이 정도로 웃은 것은 대체 얼마만인가 하며 기억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순간 시무룩한 표정을 떠올렸지만, 갑자기 눈썹의 힘을 풀더니 몸에서 힘을 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난 것도 뭔가의 인연. 카레이교자 님의 이야기와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지만, 소생의 신변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전에는 불문(仏門)에 몸을 두었던 적도 있지요. 방황하는 중생(衆生)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려워하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그리하여 시치스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국(戦国)의 세상에서는 흔해빠진 이야기였다.

이름에 칠(七)이 들어가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자식이 많았던 집안의 시치스케의 형제들은, 부친의 급사를 계기로 골육의 후계자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치스케는 다툼에서 패하고,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에 의해 도망치게 되어, 고향(国許)을 쫓겨나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후계자 다툼을 벌일 정도의 집안이었기에 지금까지 여행 같은 걸 해본 적도 없는 시치스케는, 금방 노자를 다 써버려서 근근히 연명하는 생활이 되었다.

미칠듯이 배는 고팠지만, 자신의 긍지가 어쩔 수 없이 방해를 하여 도둑으로 전락하지는 못하고, 아예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여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그렇게 산 속을 걷고 있자니, 아까의 산적 같은 패거리와 마주치게 되어, 이것만큼은 팔지 않고 있던 호신용 칼(懐刀)을 시작으로 가진 것을 몽땅 빼앗기고 인신매매자(人買い)에게 팔려가기 직전이었습니다"


"과연, 그거 고생하셨겠군요. 하지만, 죽고 싶다니 거 참 몹쓸 얘기외다"


"소생의 인생은 가문을 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는 필요없다는 소리를 듣고,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이었습니다만, 가문에서 쫓겨난 자신의 무력함에 어처구니가 없어져, 사는 데 지쳤습니다"


"흠, 그렇다면 시치스케 님. 소승이 한 가지 음식을 대접하지요. 배가 고프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며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뭣! 아무리 은인이라고 하나, 쓸데없는 생각이라니 들어넘길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렇지 않소이까? 배가 고프면 흥분하기 쉽지요. 그리 기다리게 하지는 않을테니, 잠시 쉬고 계십시오"


격앙하여 대드는 시치스케의 분노를, 카레이교자는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받아흘리고, 메고 있던 배낭(背嚢)에서 큰 쇠냄비(鉄鍋)를 꺼내 불에 올렸다.

시치스케는 카레이교자의 능숙한 솜씨에 분노도 잊고 홀린 듯 보고 있었다. 카레이교자는 근처에 있던 돌이나 나무조각 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즉석의 화덕을 만들어냈다.

그을린 냄비 표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려, 카레이교자는 품 속에서 기름종이 싼 흰 지방살을 꺼내 냄비에 던져넣었다.

흰 지방살이 가열되며 투명한 기름이 되자, 달콤한 듯 향기로운 듯한 냄새가 주위에 감돌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시치스케가 침을 꿀꺽 삼키자, 카레이교자는 어디에서 주워온 것일 호두(オニグルミ, ※역주: 검색해보니 가래나무 열매라고 하는데, 호두의 일종인지 비슷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래에서 호두라고 하니 그냥 호두라고 번역)를 맨손으로 깨서 알맹이를 꺼내고, 이것도 어디에서 채집한 것일 주아(むかご)와 함께 볶기 시작했다.

기름에 호두의 향기가 옮겨갔을 때, 암사슴의 등심(背肉)을 한입 크기로 잘라 차례차례 냄비에 던져넣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향기가 피어오르자, 시치스케는 달려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카레이교자는 젖버섯(チチタケ)이나 달걀버섯(タマゴタケ), 건조시킨 행자 마늘(行者ニンニク) 등도 던져넣더니 물을 붓고, 시치스케 쪽을 보며 히죽 웃고는 소중한 듯 꺼낸 용기에서 뭔가 노란색 가루를 냄비에 한웅큼 던져넣었다.

그 때 발생한 변화를 시치스케는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나쁘게 말하면 산나물(山菜)의 잿물(アク) 같은 것이 떠다니던 진흙탕같던 국이,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향기로운 국물로 변한 것이다.

죽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치스케의 몸은, 생명력 덩어리 같은 향기에 솔직히 반응했다. 즉, 성대하게 꼬르륵 하고 울어제낀 것이다.


"자, 몸은 정직하지 않소? 머리로 죽고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도, 맛있어 보이는 먹거리를 앞에 두면 살고 싶다고 외치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외다"


"큭! 하지만, 소생은 이 정도로 배가 고파지는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라 하는 요리입니까?"


"후후후.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見果てぬ) 천축(天竺)의 향기, 소승의 이름을 따온 지고의 명품, 그 이름을 '카레이(かれい)'라고 하외다"


"카레이……"


꿀꺽 하고 시치스케의 목젖이 울렸다. 충분히 불이 통해 끓었을 때, 카레이교자는 나무 그릇에 카레를 가득 퍼담아 시치스케에게 건네주었다.


"본래는 갓 지은 밥에 부어먹는 것이 극상(極上)이오만, 산 속이기에 국으로 끓였습니다. 자, 실컷 드시오. 이것이 '카레이'! 이것이야말로 사는 의미라는 것이오!"


시치스케는 카레이교자의 말을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국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가슴 가득히 빨아들이자 뇌수가 마비되는 듯 했다.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집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나무 그릇에 직접 입을 대고 흘려넣듯 퍼먹었다.

과장이 아니라 시치스케의 동공이 커지고, 전신의 땀구멍에서 땀이 분출되었다. 혀에서는 감칠맛과 매운맛이 폭발하며, 뇌에는 끊임없이 쾌락이 흘렀다.

소년다운 왕성한 식욕으로 단숨에 그릇을 비우고, 말없이 카레이교자에게 내밀었다. 카레이교자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넘칠 정도로 그릇을 채워서 되돌려주었다.

그러부터 두 사람은 각자 쾌재를 부르면서 매혹의 요리에 취하여 그 훌륭함을 찬양했다.


"푸웁…… 이, 이제 더 안 들어간다……"


시치스케는 대구(鱈)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드러낸 채 누워있었다. 카레이교자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훑어먹더니, 시치스케와 마찬가지로 벌렁 드러누웠다.


"자 그럼, 시치스케 님. 아직도 죽고 싶다고 생각하시오?"


"크흐흐…… 짓궂은 말씀 하지 마시지요. 이 정도의 체험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할 리가 없지요. 과연, 배가 고프니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는 건 지당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소승은 이것을 먹고 싶었기에 사관(仕官)하여, 카레이 가루를 원하는 만큼 주시는 주인께 은혜를 갚고 있소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멋진 것들로 가득하군요. 소생이 멋대로 세상을 덧없이 여기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미워하여 솔직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군요"


"시치스케 님, 갈 곳이 없다면 소승의 주군을 섬기지 않겠소? 뭐가 어찌되었든 밥은 배불리 먹여주시는데다, 카레이 같은 훌륭한 요리를 맛보게 해주신다오"


"모처럼이니,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단지 맛있는 밥을 먹기 위해 산다는 것도 재미있겠으니 말입니다"


"그러신가. 그러면 오늘밤은 산을 베개삼고 달을 보며 자도록 하지요. 아침이 되면 산을 내려가 제 주인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그렇게 말하더니 카레이교자는 금방 색색거리며 잠들었고,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곁눈으로 보고 있던 시치스케는 부풀어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파격적이지만 매력이 넘치는 카레이교자가 주인으로 받드는 존재. 아직 보지 못한 주군에 대한 망상을 하면서 시치스케는 잠에 빠져들었다.



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