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텐쇼(天正) 3년 애도(哀惜)의 시간(刻)


150 1576년 10월 중순



"이번의 타케다(武田) 침공에 대해서는 주상(上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사정없이 날뛰어도 괜찮지만…… 적당히 해줘?"


"원한을 남길 만한 실수는 하지 않으니까 안심해"


지나치게 불온(不穏)한 말투에 안심할 수 있는 요소가 오히려 줄어들었지만, 노부나가로부터 직접 마음대로 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점도 있어 묵인하기로 했다.

나가요시(長可)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은 다 전했기에, 다음으로 타카토라(高虎) 쪽을 바라보았다.


"토우도(藤堂) 군은 토우고쿠(東国) 침공이 아니라 서쪽의 방어를 맡기게 되었는데, 뭔가 요청 같은 것 있어?"


"특별히 없습니다. 뭐라 해도 재미있는 '도구'를 맡겨주셔서, 이렇게까지 가슴이 뛰는 것은 처음일지도 모릅니다"


"아아, '그거' 말이지. 취급이 어려운 게 난점이지만, 잘 쓸 수 있겠어?"


"사전에 이론만큼은 아시미츠(足満) 님에게 좌학(座学)으로 확실히 배웠으니, 쓰는 것만이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만들라고 하시면 또 다르겠습니다만"


"으ー음, 니켈을 처리할 수 있는 로(炉)는 오와리(尾張)에만 있으니까. 게다가 광석 자체가 일본에서는 나지 않으니 수입하고 있는 만큼 비싸게 먹히지……"


"아시미츠 님이 말씀하신 전기를 쓰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토우고쿠 침공이라는 화려한 전과를 올릴 수 있는 기회에 참가하지 못하는데도 타카토라는 낙담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이고쿠(西国) 쪽에 배치된다는 것은 손해보는 역할(貧乏くじ)이나 마찬가지지만, 어떤 발명품의 존재가 그를 전공 같은 사소한 일에서 해방시켜버렸다.

이번에 타카토라에게 맡겨진 장비는, 오와리에 남는 시즈코가 있는 곳에도 같은 것이 하나 배치되고, 전선에 나가는 노부타다에게도 하나 배치되게 되어 있다.

가동부는 적지만 부품의 소모율이 높기에, 시즈코의 힘으로도 현재 3대를 가동시키는 것이 고작이라는 게 현 상황이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아시미츠가 나왔기에 시즈코는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맞다, 아시미츠 아저씨는 조금 별도 행동이 되겠지만, 사도가시마(佐渡島) 정벌을 부탁할 수 있을까요?"


"사도(佐渡)라…… 과연, 알겠다"


"궂은 일을 떠넘겨서 미안해요"


사도가시마는 현대의 니이가타(新潟) 현(県) 서부에 위치하는 외딴 섬이다. 일본 유수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금광산의 존재로 유명한데, 역사적 사실에서 금광맥이 발견된 것은 사반세기(四半世紀) 정도 뒤인 1601년의 일이다.

'사도 금산(佐渡金山)'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금광산과 은광산의 총칭으로, 개중에도 아이카와(相川) 금은산(金銀山)의 규모가 커서, 단순히 사도 금산이라고 말한 경우에는 아이카와 금은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도 에도(江戸) 막부의 중요한 재원으로서 중히 여겨져, 최전성기에는 1년에 금을 400kg, 은을 37t이나 생산했다는 세계에서도 유수의 광산이다.

아이카와 금은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밖에도 츠루코(鶴子) 은산(銀山)이나 니이보(新穂) 은산, 니시미카와(西三川) 사금산(砂金山) 등 유망한 광산이 잠자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서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가 1589년에 멸망시킬 때까지 혼마 씨(本間氏)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아시미츠는 혼마 씨를 역사에 앞서 멸망시키는 것이 된다.


"시즈코가 신경쓸 필요는 없다. 오다의 패도(覇道)에는 필요하겠지"


참고로 사도가시마에 관해서는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에도 금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때, 당시에도 금이 산출되었던 것은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 표층(表層)에서조차 금을 함유한 광석이 노출되어 있었던 것인데, 문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노부나가는 꽤나 예전에 시즈코로부터 헌상받은 이래로, 전쟁의 전략을 짤 때에 일본지도를 읽고 있었는데, 사도에 다수의 금산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에 대해 시즈코에게 물어서 사도가시마에 거대한 금산이 잠자고 있는 것을 알게 된 노부나가는, 즉각 조정에 손을 써서 사도가시마에 관한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카마쿠라(鎌倉) 시대부터 사도가시마를 계속 지배하고 있는 혼마 씨가 순순히 응할 리도 없어서, 노부나가는 다른 유력한 영지로의 전봉(転封, 나라(国)를 바꿔주는 것)도 타진했으나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이 타진이 혼마 씨를 자극했는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오다에 대한 적대를 결의한 낌새조차 있었다.

이 아시미츠의 임무에 대해서는 노부나가로부터 직접 명령이 내려왔는데, 노부나가로부터의 서신에는 표면적인 임무로서 혼마 씨와의 교섭에 아시미츠를 발탁한다고 되어 있었다.

묘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 시즈코는, 그곳에 모략의 냄새를 감지했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챈대로, 아시미츠는 처음부터 교섭 따윈 할 생각이 없었다.

노부나가의 입장에서 좋은 조건으로의 제안을 걷어찬 시점에서 혼마 씨는 멸망시켜야 할 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나다(真田) 씨는 타케타 침공에 참가합니다. 그게 끝나면 호죠(北条) 쪽으로 가 주세요. 사이조(才蔵) 씨는 처음부터 호죠로 부탁해요. 아, 사나다 씨는 타케타 영토에서 소문을 흘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면 어떠한 소문을 흘릴까요?"


"카이(甲斐)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현지 가격의 3배로 사겠다는 내용을 비밀리에 퍼뜨려 주세요"


"과연. 타케타가 눈치챘을 때는 반수 가까운 물자가 유출되었다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군요? 다급하게 물자를 사모으려 해도 영지 내에는 물건이 없고, 되사들이려 해도 3배 이상의 값을 치러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타케다는 설상가상(じり貧)이군요"


"머리가 밝은 상인이라면 대세(潮目)를 느끼고 상품을 판 후에는 그 길로 타케타 영토에서 도망치겠지. 품 속이 두둑해진 상인에게서 사재(私財)를 뜯어낼 수도 없고, 외부로부터 사들이려면 싯가의 3배 이상의 가격이 붙는건가. 시즈코는 여전히 지독한 방법을 생각하는구만"


"무기를 맞부딪히는 것만이 전쟁은 아니야.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전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데"


나가요시의 말에 시즈코는 반론했다. 그녀는 목숨이 아까워서 전쟁터에 서지 않게 된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시즈코의 전쟁터에서의 가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누군가로 대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득히 미래를 바라보고 국가 건설을 계속 지원할 수 있는 유능한 관리(能吏)로서의 시즈코는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기에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전쟁터에는 주위에서 절대로 내보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시즈코는 직접 전투 이외의 지원 전반에 주력하게 되었다. 무구(武具)의 제조, 정비는 물론이고 식량이나 연료, 의류에 의료품, 나아가서는 병사들의 정기검진이나 카운셀링에 의한 멘탈 케어 등도 포함할 정도다.

또, 상업 및 유통의 총 책임자(総元締め)적인 입장을 살려, 다양한 방면으로부터 항상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 시즈코의 커넥션은 조정(朝廷)을 시작으로, 칸사이(関西) 일원(一円)의 상업권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유력한 무장인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나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도 시즈코에게 큰 빚이 있기에, 다양한 파벌의 무가 사회에도 상당한 융통력을 가진다.

게다가 수하에 사나다 마사유키(真田昌幸)가 지휘하는 간자(間者) 조직이 있기에, 개인 레벨의 소문에 이르기까지 망라되는 전국시대 최고의 정보통이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생각한 건데, 내가 전혀 전쟁터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적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어용상인인 '타나카미야(田上屋)'가 여기저기서 시즛치의 위업을 선전해대고 있으니 사망설은 흐르지 않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으스스하겠지. 착실하게 시즛치의 영향력이 자신의 발 밑까지 뻗어오고 있는데 동향은 파악할 수 없으니까 말야"


사망설이라는 말이 나온 시점에서 사이조가 눈썹을 찌푸렸다. 케이지(慶次)의 말은 영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다 가문 안에 있다면 시즈코의 존재와 정보는 들어오지만, 한 번 외부로 나가게 되면 새어나오는 정보가 격감한다.

그러면서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국시대 최강이라고 칭송받았던 타케다를 쓰러뜨린 공로자이자, 오다의 융성을 떠받치는 원동력이 된 심복(懐刀), 장사에 조금이라도 관여하면 싫어도 시즈코의 이름은 귀에 들어온다.

오다 가문이 토우고쿠에 대해 공세에 나서는 것은 언젠가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만, 그 때가 되어도 시즈코의 동향만큼은 파악할 수 없다.

실제로 전쟁의 기운을 느끼고 있을 타케다나 호죠의 수뇌진은 초조해서 견딜 수 없으리라.


"으ー음. 내 노출에 관해서는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으려나요. 뭐, 그건 금후의 과제겠네요"


금후에도 때를 보아 작전회의를 열고 세부적인 조정을 할 필요가 있지만, 중요(喫緊)한 화제는 바닥났다. 평소라면 그 자리에서 해산을 선언하지만, 시즈코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곳곳에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돈을 썼으면 하는데, 누구 하고 싶은 사람 있어요?"


시즈코가 질문을 던진 순간, 아시미츠와 사이조 이외의 전원이 손을 들었다.



시즈코에게 모여드는 돈은 방대하다. 이미 경제규모로 사카이(堺)를 능가하는 기세였기에, 부의 편중(偏在)이 현저해져 있었다.

노부나가가 전략적으로 돈을 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다 쓰지 못하거나, 또는 현금이 아니기에 쓰기 어려운 돈이 쌓여버린다.

국가 사업인 아이치(愛知) 용수(用水) 관련의 대규모 토목공사 때 발행한 채권의 변제에 쓴다는 방법도 있지만, 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에서는 매년 일정 액수를 적립하여 정기적으로 갚는 쪽이 경제효과도 높다.

노부나가로부터는 시즈코가 이거다 하고 생각하는 일에 적당히 출자하라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 지시가 내려와 있지만, 그렇게 그때그때 딱 좋은 투자처 같은 게 발견될 리도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는 와중에도, 오다 영토 내에서 유통되는 화폐 이외에 유입되고 있는 외화(外貨)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되어 버렸다.

이것에 관해서는 적절한 장소에서 소비하지 않으면 타국의 경제에서 화폐 부족이 일어나, 화폐의 희소성이 높아짐에 따라 물가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외화의 존재를 시즈코도 사태가 심각해질 때까지 놓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다 가문 영향력 아래 있는 상업권에서는 오다 가문이 관리하는 통화(通貨)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다 영토 내에서는 외화가 과다해져, 환전상의 수중에서 쌓여가고 있던 외화는 오다 영토 내에서는 사용이 불편하지만, 모아두면 점차 가치가 올라가기에 사장(死蔵)된다. 이리하여 문제가 표면화되었을 때는 오다 가문의 영향 아래에 있는 쿄(京)에서조차 디플레이션의 영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즉 시즈코는 어떻게든 쌓이고 쌓인 외화를 사들여서 외부로 다시 환류(還流)하는 흐름을 만들어내야 하게 되었다.

그것도 가능한 한 조속히 대처해야 하여, 이제 낭비 운운을 신경쓸 수 있는 시기를 지나 버렸다.


"나는 돈의 낭비를 싫어해서 모으게 되기 일쑤이지만, 당신들은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요?"


그녀 자신이 말했듯 시즈코가 돈을 쓰는 경우, 쓴 이상으로 뭔가의 리턴을 예측한 소비를 하기 떄문에, 이 문제의 해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당초 시즈코가 투자하려고 했던 것은 토지개발에 항만사업, 대외무역의 확충 등이었기에, 노부나가로부터 제동이 걸려 버렸다.

노부나가로서는 시즈코가 자신의 신변에 돈을 써서, 그 지위에 걸맞는 저택이나 보석 장식품에 의복 등을 갖출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즈코에게서 노부나가에게 도착한 것은 신규 사업에 대한 기획서였다. 어떤 계획도 중장기적으로 수입이 기대되는 잘 짜인 것이었다.

그런 만큼 노부나가는 엄청나게 뒤통수를 맞은 허탈감을 느끼고, 결국 그는 시즈코 자신에게 돈을 쓰게 하는 것을 포기하고, 부하들에게 쓰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맡겨줘! 돈을 벌어오라고 하면 곤란하지만, 쓰는 것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가슴을 펴고 나가요시가 흰소리를 했다.


"퇴짜맞은 것 이외에도 문화 진흥에 돈을 써 봤지만, 그것도 그냥 그랬던 것 같아"


"어, 칼을 모으거나, 낡은 절을 수선하거나, 비장의 뭐시긴가를 보며 돌아다니기만 한 거잖아? 하세가와(長谷川)인가 하는 얌생이를 데리고 갔던가?"


"하세가와 씨는 즐거워 했지만 말야"


시즈코는 오섭가(五摂家) 필두(筆頭) 고노에(近衛) 가문의 딸이며, 조정으로부터 예사(芸事) 보호의 수호자로 임명되어 실제로 다양한 자료를 편찬하고 발표한다는 실적을 남기고 있다.

이 때문에, 본래는 문외불출(門外不出)의 것이나 비밀리에 감춰져 있는 보물조차도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세가와로서는 리큐(利休)의 연줄을 통해서도 열람이 불가능했던 비보(秘宝)를 볼 수 있게 되어, 그것들에 자극을 받는 것과 동시에 그것들에 사용된 기술을 흡수해 나갔다.


"그 하세가와인가 하는 녀석은 결국 직속으로 삼을 거야?"


"과제를 내는 게 아니라, 평시에 그가 만들고 있는 작품을 슬쩍 봤는데, 그게 결정타였어. 그는 기합을 넣기보다 어깨에서 힘을 빼고 있는 쪽이 실력을 발휘하기 쉬운지도 모르겠어"


하세가와는 예전에 시즈코가 낸 시험에 실패했다. 그렇기에 시즈코는 시험으로서 통지하지 않고, 그가 평소에 만들고 있는 것을 정기적으로 회수하여 그때그때 확인하기로 해 보았다.

시즈코는 회화(絵画)에 대한 심미안(審美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을 받을 때마다 장족의 성장을 보이는 하세가와의 재능에는 눈이 크게 떠지는 것이 있었다.


"그 자신이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도 영향을 받아서 재능의 편린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부자가 모두 장래가 기대되네"


"그것만을 위해서 집까지 준비해주는 두터운 대우가 내겐 이해되지 않아"


"미술의 세계는 감성에 의한 부분이 크거든. 입에 풀칠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작품 제작에 할애해 줬으면 하는거야"


시즈코가 하고 있는 것은 중세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패트런(patron)과 닮았다. 그에 의해 하세가와 일가의 생활의 질은 크게 향상되었다.

의식주에 불안이 없는 상태에서 많은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환경 속에서, 하세가와는 지금 그야말로 재능을 개화시키는 중이었다.


"아까운 기색도 없이 쓰게 하고 있는 그림도구(画材)도 제법 가격이 나가잖아?"


"필요경비야. 카츠조(勝蔵) 군도 연습도 없이 내일부터 단궁(短弓)을 마상에서 쏠 수 있게 되라고 하면 곤란하잖아?"


"뭐, 그건 무리겠네"


"그는 지금, 번데기를 벗어나서 우화(羽化)하고 있는 나비야. 크게 날개를 펼쳐서 세계로 날아가고 싶으면 한동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걸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 아니겠어?"


"내겐 이해되지 않는 세계야"


눈썹을 좁히고 입을 삐죽거리는 나가요시의 모습에 시즈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야기가 크게 벗어나버린 것을 깨달은 시즈코는, 헛기침을 하여 노선의 수정을 꾀했다.


"이야기를 되돌려서, 그럼 목적의 도시에 도착하면 이 수표(手形)를 가까운 타나카미야에서 현금화해. 전액 다 써도 상관없으니까"


"오, 이야기는 끝났나. 뭐, 카츠조는 아니지만, 나도 돈을 쓰는 것에는 자신이 있으니까 말야. 안심하고 맡겨줘"


케이지의 말에 시즈코는 생각했다. 가능한 한 빨리 출발하고 싶지만, 노부나가에게 아즈치(安土)를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주상께 오와리로 돌아갈 뜻을 전하고 올테니, 각자 출발 준비 만큼은 해둬요"


시즈코가 청가(暇乞い)를 냈을 때, 노부나가는 즉시 그것을 허락했다. 오다 가문의 세력 밖에서 돈을 쓰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전쟁을 앞둔 지금 시기에 주요 수하 무장이 멀리 나가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우선은 아즈치를 나서서 쿄로 가, 며칠 체재한 후 사카모토(坂本)로 향하고, 이마하마(今浜)에 들렀다가 미노(美濃) 경유로 오와리로 돌아가는 순서를 취한다.

이 경로의 각지에서 돈을 쓰며 돌아다닐 필요가 있는데, 시즈코는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여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어? 벌써 다 썼어?"


쿄에 도착한 이후, 의부(義父)인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와 상의를 하거나, 사키히사가 주최하는 가회(歌会)에 얼굴을 내밀거나 하며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시즈코는, 나가요시가 돈을 다 쓴 것에 놀랐다.


"흐흥. 이것만큼은 시즈코보다도 내 쪽이 잘 맞지. 돈은 혼자서 쓰기보다, 여럿이 쓰면 단번에 없어진다고"


나가요시가 돈을 쓴 방법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 중 유망한 사람들을 골라 밥이나 술을 사주고, 각자에게 어느 정도 뭉텅이 액수의 돈을 건네고 마음대로 쓰라고 했을 뿐이다.

나가요시의 부하는, 다시 자신의 부하들에 대해 나가요시가 했던 것처럼 뿌렸다. 이에 의해 수직형(垂直型)의 돈의 흐름이 생겨났다.

각자가 제각기 원하는 장소에서 돈을 쓰기 떄문에, 고급점(高級店)에서 대중점(大衆店)까지 다양한 장소에 돈이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수평적으로도 돈이 퍼져나가, 폭넓게 돈이 흘러갔다.


"과연. 나는 자신이 집약해서 큰 돈을 쓰는 쪽이 효과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소액씩 분산해서 소비로 돌리는 쪽이 빠르게 쓴다는 면에서는 이치에 맞네. 그런데, 예산 이상으로 돈을 쓰라고 말한 기억은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나가요시에게 청구서 다발을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나가요시의 이름으로 외상 처리된 방대한 금액이 적혀 있었다. 물론, 전액 시즈코가 대납했다.

돈이 부족해져서 외상으로 한 거겠지만, 자신의 소속을 이야기했으니 청구서가 시즈코에게 오는 것은 명백하리라.


"아니, 이건 내가 낼 생각이었어"


"상관없어. 네 이후의 급료에서 일정 금액을 계속 공제할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사카모토에서는 삼가주겠어? 쿄에서는 고노에 가문의 이름으로 신용이 있으니까 외상이 먹히지만, 사카모토에서 했다간 영업방해로 보일거거든?"


"아, 알았어"


몇 가지 가벼운 트러블이 발생하긴 했으나, 시즈코는 들르는 곳곳에서 나름의 자금을 뿌리는 데 성공했다. 금후에는 돈을 쓰는 사람의 폭(間口)을 넓히는 정책도 경우에 따라서는 유용하다는 것을 시즈코는 배웠다.



시즈코가 오와리로 돌아간 다다음날, 그녀는 케이지를 데리고 카게카츠가 있는 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의 거처(住居)로 초대받아 들어가자, 에치고(越後)에서 인질로 왔던 사람들 모두가 모여 있는 것을 눈치챘다.

이 상황을 얼핏 본 케이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헤아렸으나, 시즈코가 입에 올린 말은 그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어렴풋이 헤아리고 계신 듯 하니 확실하게 말하겠어요. 내년에 에치고에 큰 전기(転機)가 찾아오겠지요. 그에 대해 각자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인하겠습니다"


케이지의 예상으로는 에치고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전달할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즈코는 그걸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자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물은 것이다.

그들은 에치고가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서 바쳐진 인질이다. 어떻게 하고 싶고 뭐고 그들에게 선택지 같은 건 없다. 본국이 배신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오와리에 체재할 뿐이다.


"인질로서의 입장은 일단 제쳐두세요. 당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오와리를 탈출하여 친(親) 호죠 파에 합류하는 길. 하나는 우에스기 가문으로 돌아가 가문을 위해 친 호죠 파를 토벌하는 길. 마지막 하나는 일이 끝날 때까지 이곳 오와리에 뿌리를 내리는 길. 지금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하는 것도 제가 허용하겠습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전에 당신께 묻고 싶습니다. 어째서, 우리들에게 선택지를 주는 겁니까? 당신의 입장이라면, 우리들은 인질로서 오와리에 계속 있는 쪽이 유리한 게 아닙니까?"


카게카츠의 의문에 대해 시즈코는 생긋 미소를 떠올렸다. 시즈코는 노부나가로부터 카게카츠들의 관리가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인질이 멋대로 없어지면 그 책임을 추궁당해 곤란해지는 게 아닌가 하고 카게카츠는 물은 것이다.


"주상께서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셨고, 지금이니까 말하는 겁니다만 애초에 인질이라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시즈코와 노부나가가 내놓은 답은 달랐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인질을 쓸데없이 썩히는 것보다, 고향 이외의 세계와 새로운 가치관을 알게 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알고 싶었다.

끝없이 넓은 세계의 일단(一端)을, 오와리라는 창을 통해 살짝 엿보고도 여전히 구태의연한 가치관에 계속 속박되는 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의 성질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그들이 된다.

외부로 나가 넓은 세계를 보고도 여전히 자신의 가문 존속에만 급급하는 인질이라면 아예 본가와 함께 통째로 멸망시켜버리자는 것이 노부나가의 의향이기도 하다.


"하하하. 과연, 이건 우리들에게 주어진 졸업시험이라는 것이군요? 당신께서 뿌리신 씨앗이 어떠한 열매를 맺는지, 똑똑히 보여드리지요!"


시즈코의 말에 대해 카게카츠는 쾌활하게 웃어보였다. 카게카츠가 떠올린 미소와, 그에 이은 가신들의 열의에 찬 눈을 보니, 새삼 대답을 들을 것도 없었다.

아까까지의 어딘가 흐릿한 눈이 아니라, 미래를 쟁취하려는 무사(いくさ人)의 표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답을 들을 것도 없군요. 충분히 즐겨 두세요. 이 땅에서 배운 것은 어딘가 도움이 되겠지요"


"어차피 우리들은 없는 사람 취급받고 있는 인질이니, 전쟁터에서 산화했다고 해도 대세에 영향은 없습니다. 하지만, 숙원(本懐)을 이루게 되면 대성공(大金星)이 되겠지요. 이제와서 호죠를 편드는 세상물정 모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요"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서로 살아 있다면,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무용담을 들려 주세요. 저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상대해 드리는 것은 케이지 씨겠지만요"


금주령(禁酒令) 이야기로 시즈코가 농을 섞어 대답하자, 다들 왁 하고 큰 소리로 웃었다.


"금생(今生)의 이별이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다들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세요"


그 말을 하고 시즈코와 케이지는 카게카츠의 거처를 떠났다. 두 사람의 모습을 전송하는 에치고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머리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자, 그들의 인솔은 케이지 씨에게 맡길게요. 마침 가는 곳은 똑같으니, '여행은 길동무, 세상은 인정(旅は道連れ、世は情け)'이라고 하잖아요?"


그들의 깨끗한(潔い) 태도(生き様)를 보았기 때문인지 들뜬 걸음걸이로 복도를 걸으면서 시즈코는 케이지에게 말했다. 시즈코는 에치고에서 케이지들이 어떤 싸움을 할 지 기대되어 견딜 수 없었다.


"으ー음, 못 들어본 표현(言い回し)이지만 마음에 들었어. 실컷 휘저어놓을테니 보고를 즐겁게 기다려줘"


케이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즐거운 듯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비장의 장난(悪戯)을 떠올린 악동 그 자체였다.

여담이지만 케이지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대사는 에도 시대에 등장한 '에도 이로하카루타(いろはかるた)' 중 하나이기에, 지금의 케이지가 알고 있을 리가 없다.


"카부키모노(傾奇者)의 면목약여(面目躍如)네요. 주 전장이 적지이고, 게다가 과병(寡兵, 전력이 적다는 뜻)이잖아요?"


에치고에 있는 친 호죠 파의 움직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보통제가 시작되었는지, 에치고의 정보는 오와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친 호죠 파가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은 틀림없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궁지에 몰린 자는 생각지 못한 반격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지형적인 이점은 상대측에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싸움을 강요받게 되리라.

게다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과 연대하는 것도 어렵다. 카게카츠들이 가는 것이 만에 하나라도 적에게 알려지면, 숫자에서 밀리는 그들은 포위섬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케이지들은 켄신으로부터 적이라고 의심받지 않게 하면서, 친 호죠 파와 싸워서 아군임을(身の証)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안요소가 산더미처럼 쌓인 외줄타기같은 싸움이 되겠지만, 바로 그렇기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케이지라는 남자였다.


"물론, 재미잇지. 요즘 세상에 이만한 싸움터를 준비해준다는 건, 무인으로서 과분할 정도로 고마운 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아, 일단 이걸 건네둘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시즈코는 품에서 종이다발을 꺼냈다. 표지에 아무 것도 쓰여져있지 않은 일본식으로 제본(和綴じ)된 책자를 손에 든 케이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나 나름대로 지금부터 일어날 법한 상황을 상정해서 세운 작전이에요. 정말 곤란할 때 생각나면 읽어봐요. 필요없다면 불쏘시개로라도 쓸 수 있으니 방해되진 않을 거에요"


시즈코로서는 케이지가 원하는 대로 실컷 싸워줬으면 하고 생각하는 반면, 목숨을 잃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가 생존을 바란다면 가능한 한 생환할 수 있는 구석을 남길 수 있도록 지혜를 쥐어짠 것이다.

케이지는 시즈코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있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책자를 품 속에 넣고는 한 마디 했다.


"고맙게 받아둘게. 갑주 밑에 넣어놓으면 총알막이는 되어 주겠지"


케이지는 그렇게 말하고 책자를 집어넣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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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