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2년, 이세(伊勢) 평정



053 1569년 1월 상순



그 질문에 시즈코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타임 슬립 직후라면,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전국시대에 오래 눌러앉아 버렸다. 금생의 이별이라고 생각한 것 만으로도 무의식중에 가까운 사람들이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런 그녀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미츠오는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뭐 빠르게 결론을 내는 것은 어렵겠죠. 하지만 각오는 해 주십시오. 그 때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츠오는 타임 슬립 이야기를 억지로 끝맺었다.


거기서 미츠오는 자신은 시즈코와 처음 만나는 것이며, 아시미츠도 시즈코와의 대화를 우선하여 자신의 소개를 해 주지 않은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런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새삼스럽지만 자기소개를 하지요. 제 이름은 미츠오, 풀 네임은 다나카(田中) 미츠오입니다. 별볼일없는 평사원이죠. 사실은 이런 말투가 아닙니다만, 정중한 말투를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버릇이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되돌리죠. 제가 현대에서 관여하던 업종은 축산업입니다만, 저는 축산을 행하는 계약농가가 아니라, 축산 경영을 보좌하는 쪽입니다. 아, 부업으로 음식점의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요리 실력에는 그럭저럭 자신이 있습니다"


"축산 경영을 보좌하는 쪽……?"


요리 실력을 자랑한 미츠오였지만, 그쪽은 보기좋게 상대해주지도 않았기에 약간 낙심했다.

하지만 바로 기분을 고쳐먹고는 헛기침을 하고 이야기를 이었다.


"네, 축산도 원래는 농업의 일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논밭에서 작물을 키우는 것과, 소나 돼지를 키우는 축산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실제로는 혼동하시는 농가 분들이 많고, 그 중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밭을 갈아엎고 축산으로 전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축산의 기초를 가르쳐주거나, 사료를 제공하거나, 해충에 대한 대처법, 육식가공업자 등의 출하처를 알선하는 등, 축산업의 일련의 흐름을 종합 서포트하는 일입니다"


"과연…… 그럼, 축산업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으시다는 거군요?"


그 물음에 미츠오는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감이지만 저는 축산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시대에 있는 당연한 품종에 대해서밖에 대처법을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닭이라고 하면 계란용 품종으로는 화이트 레그혼, 육용 품종으로는 브로일러 종이 유명하죠.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만, 원종(原種)에 가까운 닭에 대해서는……"


미츠오의 지식은 어디까지나 현대에서 사육되고 있는 품종에 대해서다. 도중의 품종이나, 초기의 품종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미츠오의 잘못이 아니다. 그 업종에 있다고 해서 역사를 자세히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적다.


"……그렇다고 하셔도, 기초라는 건 그렇게 바뀌는 게 아니지요. 어느 정도 원종에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네에…… 뭐어…… 이 길에서 15년은 밥을 벌어먹었으니까요"


시즈코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축산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다고는 해도, 미츠오는 그 업종에서 15년은 일했다.


그렇다면 실행하지 못하고 좌초되어 있던 계획을 재개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지식이 있더라도, 그가 막심한 고생을 할 것은 훤히 보였다.

그래서 시즈코의 이 계획의 성패는 미츠오의 의욕에 달려 있었다.


"흐―음, 좀 여쭙겠는데, 미츠오 씨는 지금부터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 말입니까? 저는 이 시대에 뼈를 묻을 각오입니다"


시즈코의 질문에 미츠오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현대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도 없고, 딸도 시집보내서 현세에 미련이랄 만한 미련이라고 하면 손주의 얼굴을 보는 것 정도입니다. 그보다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힘을 쥐어짜 살아가는 데 필사적이 되었고, 정신이 들어보니 매일매일이 대단히 충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자, 같은 일본인데 모르는 표정을 보여주는 세계가 있고, 자신의 요리 실력을 높이 평가해주는 사람들도 있어 보람을 느끼고 있는 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가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군요, 시즈코 양.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자라는 동물은 단순합니다. 죽을 뻔 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농담거리로 삼아버릴 정도로 말이죠. 뭐 그런 고로 다나카 미츠오, 전국시대에서 제 2의 인생을 걷겠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흠…… 그렇다면 제2의 인생으로서, 저희들과 함께 오다 영지에서 축산을 견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물론, 막심한 고생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미츠오 씨의 의욕에 달린 거니까요"


팔짱을 끼고 미츠오는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아시미츠가 작게 웃음을 띄우면서 속삭였다.


"해 보는게 어떠냐, 미츠오. 입장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지지. 그게 재미있는 것이라면 더 좋지. 어차피 현대에 얽매일 것은 하나도 없지 않나. 큰맘먹고 모험하는 것도 재미있지. 뭐, 걱정하지 마라. 실패해도 누를 끼치는 건 네 몸 하나니까"


부추기는 건지, 아니면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건지 모를 아시미츠의 말이었지만, 미츠오는 조금 생각한 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 군요. 요리 뿐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온 축산의 지식과 경험을 썩히는 것도 아까우니까요"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츠오는 시즈코 쪽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 후회나 불안의 빛은 없었다. 기대에 가슴을 부풀리며 미지와의 조우를 기대하는 듯 보였다.


"그 이야기, 받아들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라고 해도…… 으―음, 닭은 지금 품종으로 괜찮겠죠. 돼지는 류큐(琉球) 왕국(※역주: 오키나와)에서 1385년에 도래한 혈통의 흑돼지(아구)를 들여오죠. 분명히 지금의 류큐 왕국은 정치적 부패가 심각해서, 어느 정도의 돈만 쥐어주면 흑돼지를 들여오는 것도 가능할 거에요. 그리고 멧돼지의 사육도 시야에 넣어서―"


"꽤, 꽤나 많군요"


닭과 소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미츠오는 시즈코가 늘어놓은 품종에 약간 주춤했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물리는 짓은 남자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아, 소는 꼭 필요해요. 천연두(天然痘)의 대책으로서 소는 필수니까요. 산양은 유아의 젖 대용으로 쓸 수 있어요. 소보다 알러지 반응이 적으니까, 산양도 필수네요……"


전국시대에 가장 유행했던 2대 질병, 그것이 홍역(麻疹)과 천연두였다.

홍역은 전염력이 대단히 강하고 합병증을 일으키기 쉽다. 천연두도 강한 감염력과, 일설에 의하면 40%라는 높은 치사율로 맹위를 떨쳤다.

특히 천연두는 우두(牛痘)를 사용한 종두(種痘)가 개발되는 18세기 말까지, 때로는 나라나 민족이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과연, 확실히 우두는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지요. 저나 아시미츠 씨, 시즈코 양은 예방접종을 받았지만, 이 시대 분들은 받지 않았으니, 천연두 백신으로서는 필수겠군요"


시즈코의 시대에서는 전 국민에게 정기 예방접종이 의무화되어 있엇다. 이것은 바이러스를 사용한 세균병기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박멸이 선언된 질병이 다시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전과 다른 것은 예방 접종은 권장이 아니라 의무였으며, 위반하면 '고의로 질병을 만연, 유행시키려고 한' 죄로 벌금형 또는 금고형에 처해진다.

그만큼 세균병기에 의한 테러를 경계한 것이지만, 예방접종의 의무화는 여러 단체로부터 반발이 일었다.

반대하는 단체가 감정론으로 항의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정부는 항의를 무시하고 예방접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가 특히 중요하군요"


"그렇지요. 수고를 끼칠 거라 생각하지만, 잘 부탁드려요"


미츠오가 축산 대상으로 하는 것은 소, 흑돼지, 산양, 멧돼지, 닭이다.

광대한 토지와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지만, 교통 편의성 등의 이유로 개척이 이루어지지 않은 땅은 얼마든지 있다.


"미츠오의 이야기는 끝인가?

그럼 다음은 나로군. 이라고는 해도, 과거의 일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시미츠라는 이름도 가명이지"


"아, 분명히 시즈코 양에게 도움받았을 때부터 과거의 기억이 없으였지요 아시미츠 씨는"


미츠오의 말에 아시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먼저 아시미츠라는 이름은 가명으로, 그의 본명은 누구도 모른다. 본인도 기억해내려 해도 수수께끼의 단어가 떠오를 뿐, 중요한 풀 네임은 기억해낼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가 떠올린 단어를 늘어놓고 '아시미츠(足満)'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시즈코에게 발견되었을 때, 피투성이의 만신창이, 거의 빈사의 중상으로 쓰러져 있었다.

숨도 거의 넘어갈 상태였기에, 시즈코의 신고로 달려온 구급대원들도 십중팔구는 긴급 후송중에 숨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그였으나,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장기간의 재활이었다.

먼저 그는 극도의 영양실조, 전신타박상에 긁힌 상처에 도검에 의한 상처, 목숨에 관계될 정도로 깊은 자상이 네 군데. 그런 만신장이인 상태에서도 아시미츠는 뽑아든 칼을 손에서 놓지 않고 굳게 쥐고 있었다.

3개월은 침대에 누워만 있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후로부터는 의사도 놀랄 정도로 경이적인 회복력을 보여, 겨우 반년만에 퇴원하여 정기 통원치료로 전환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그의 처우에 대해서 의사는 골치가 아팠다.

외국인이라고 생각된 그였으나, DNA 검사 결과, 일본인 특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아시미츠는 틀림없이 일본인이긴 했지만,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에 관한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존재였다.

도검에 의한 상처 등 외상에 사건성이 있는 경우 의사에게는 신고할 의무가 있지만, 담당의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극도로 경찰을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게다가 아시미츠는 경찰이 뭔지 모른다, 는 상황이었기에,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보류되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병원이나 의사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다릅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시미츠는 시즈코의 부모가 보증인이 되어 신병을 인수하게 된다.


"뭐 처음에는 고생했어요. 뭐라 해도 기억상실…… 욕실이나 화장실 사용법, 휴대전화나 TV등의 가전제품 사용법, 뭐 하나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어째서인지 가전제품은 무서워하기까지 했지요"


"어쩔 수 없지. 내게는 모든 게 미지의 존재였으니까. 이거고 저거고 당연한 듯이 있는데, 그것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겨진 고아 같은 기분이었다"


"TV를 처음 봤을 때는 비참했어요. 뭔가를 두려워한 끝에, 봉으로 후려쳐서 파괴해버렸으니까요. 그 뒤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언니가 보고 싶은 방송을 못 보게 되어서, 발광한 언니와 아시미츠 아저씨가 대판 싸웠으니까요"


"……그런 일도 있었군"


같이 살기 시작했을 당초의 일을 떠올린 건지, 시즈코는 그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시미츠에게는 창피한 추억이었으리라. 그는 볼을 살짝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과연, 평소에 쿨한 아시미츠 씨도 그런 과거가 있었군요"


"딱히 쿨하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뿐이지. 뭐, 생활에 익숙해지는 건 간단했다. 다만 과거의 나는 싱거운 맛을 좋아했는지, 좀 진한 맛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은 고생했지"


"그런가요. 그건 그렇고 기억상실인 것 치고는 의외로 박식하신 아시미츠 씨는 어디서 그만한 지식을?"


"호적이 없는 아시미츠 아저씨는 아르바이트 같은 건 못 했으니까요. 그래서 집에 있는 책을 읽었는데…… 중간에 도서관에 틀어박혔었죠"


구해준 보답으로서 아시미츠는 뭔가 도우려고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그는 농사일의 초보자였으며, 현대 지식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기에 우선은 지식의 흡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다행히 아시미츠는 머리가 좋아서,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1년쯤 지나자 의무교육 레벨은 문제없는 레벨까지 흡수했다.

그 후, 책을 읽는 것에 눈을 뜬 그는, 도서관에 가서 다양한 서적을 읽어댔다.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특히 심리학을 좋아하여, 다양한 서적을 찾아 이곳저곳의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또 이야기가 빗나갔군. 어쨌든 나는 자신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다. 아시미츠라는 이름을 가진 아저씨라고 생각해주면 돼. 그렇지, 잊기 전에 말해두지. 미츠오가 가져온 현대의 물건들이 든 가방은 시즈코의 손으로 넘어간 모양인데, 그 외에도 조금 더 있다. 라고는 해도, 가족의 사진이나 약간의 조미료 외에는 자잘한 것들이군. 내 물건은 시즈코도 알고 있지만, 칼 두 자루와 토시(籠手) 뿐이다.


"그 칼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버스 사고에 말려든다는 건 상상이 안 가는데요…… 라고 말해봤자 소용없겠죠. 어흠…… 그럼 마지막으로 저네요. 그렇게 말해도 이름이 시즈코인 것과, 얼마 전까지 여고생이었습니다 정도밖엔 없네요―"


억지스러운 헛기침을 하고 시즈코는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나 소개라고 해도 할 말은 적었다.

애초에 현대에서 뭘 하고 있었는가, 라고 말해도 여기에서는 무의미하고 아무 소용도 없다.


"명목상으로는 영주님, 즉 오다 님의 휘하인 모리 님의 휘하…… 라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허울좋은 심부름꾼이네요"


"과연…… 입장적으로는 시즈코 양이 제일 고생하고 있군요. 저희들은 그냥 요리사니까요"


"익숙해졌어요, 영주님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는"


하지만 노부나가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전부 부응했기에 시즈코는 홀몸이면서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묘한 기분이 드는 그녀였다.


"일단 저는 변함이 없고, 미츠오 씨는 축산. 그렇게 되면 아시미츠 아저씨는…… 신사(神社)의 신주(神主)?"


시즈코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신사의 신주는 예상 밖이었는지, 아시미츠는 기묘한 것을 보는 눈으로 시즈코를 보았다.


"실례합니다, 분명히 노부나가는 종교를 싫어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런데 신주 같은 걸 하면 죽음을 당하는 게?"


시즈코가 뭔가 말하기 전에 미츠오가 손을 들며 의문을 입에 올렸다.


노부나가가 불교도를 싫어하고, 기독교(伴天連)를 보호하여 쿄에서 포교를 허가했지만, 결고 기독교를 믿은 적은 없었다.

히에이(比叡) 산 엔랴쿠지(延暦寺)나 그밖의 절과 신사를 불태우거나, 혼간지(本願寺)의 잇코잇키(一向一揆) 무리를 철저히 학살하거나, 기독교의 신자였던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에게 '선교사를 죽이고 성당을 불태우겠다'라고 협박하거나 했다.

노부나가가 종교에 대해 냉혹비정한 태도를 관철한 것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적이라면 신이나 부처조차 베어버린다, 며 야유받은 노부나가였지만 그건 좀 다른 게 아닐까, 하고 시즈코는 최근에 생각하고 있었다.


"영주님께서는 종교가 싫다, 라기보다 특정 종교가 권력을 가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걸로 보입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종교가가 정치에 관여하지 마라, 겠죠. 하지만 종교 세력은 기득권익을 침해당하지 않으려고 반발했으니, 사원이 가진 검단권(検断権)을 없애기 위해 철저하게 탄압한 거겠죠"


중세 일본에서 경찰, 치안유지, 형사재판에 관한 직무나 행위, 권한을 총칭한 말을 검단(検断)이라고 하였으며, 검단을 행할 권한을 검단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세 일본에서는 검단권을 영주인 무사와 사원의 두 세력이 가진다는 이중지배구조가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혼간지는 명확하게 혼간지로서의 영토를 갖지 않고, 엄연하게 영주가 존재했다.

하지만 영민은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면서도 혼간지에 귀의한다는 지배구조가 되어 있었기에, 영주와 사원의 검단권이 중복 존재하고 있었다.


노부나가가 목표로 하는 천하포무(天下布武)란, 무사에 의한 일본의 일원 통일이다.

사원의 검단권을 모두 없애고, 영주인 무사만이 검단권을 가진다는, 정교분리원칙을 철저히 하려고 했다.


"현대의 우리들이라면 몰라도, 근대까지 영민들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주님의 행동은 불교를 철저히 탄압하는 것처럼 보였겠죠"


"하지만 노부나가는 혼간지의 잇코잇키 무리들을 몰살시키거나, 스스로 신을 칭하듯이 제육천 마왕(第六天魔王)을 자칭했었죠"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자신을 불법(仏法)의 수호자라고 선언한 편지에, 영주님은 확실히 자신을 제육천마왕이라고 칭하며 답신했습니다. 제육천마왕은 불교에서 신앙을 방해하는 욕망을 관장하는 천마(天魔)입니다만, 동시에 제육천마왕을 마주하는 것에 의해 신앙을 깊게 하는 일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위트에 넘치는 답장을 쓴 사람이, 스스로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요. 뭐어 후세에는 확실히 신이 되었지만요……"


"네?"


후세에 노부나가는 신이 되었다, 라는 말에 미츠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교토(京都)에는 메이지(明治) 천황에 의해 노부나가를 주 제신(主祭神, ※역주: 해당 신사에서 모시는 가장 중요한 신)으로 삼은 타케이사오(建勲) 신사(구 명칭 타케시오리타(健織田) 신사(社))가 있지. 덤으로 자식인 노부타다(信忠, ※역주: 키묘마루)도 같이 모시고 있다"


미츠오의 의문에 아시미츠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본이 외국 세력에 침략받지 않은 것은, 천하포무를 목표로 삼아 일본을 하나로 통일한 노부나가의 덕분이다.

그렇게 생각한 메이지 천황은, 메이지 2년 11월 8일(1869년 12월 10일)에, 천하포무, 조의부흥(朝儀復興) 등을 추진한 노부나가를 찬양하기 위해 타케시오리타 신사의 창건을 결정했다.

타케이사오 신사는 노부나가의 업적을 기념하여 국가안태(国家安泰), 난국돌파(難局突破), 대원성취(大願成就)의 신사로 친다.


"애초에, 오다 씨는 에치젠 국(越前国) 뉴 군(丹生郡) 오다(織田)의 오다 츠루기 신사(織田劔神社)의 신관을 지내던 일족입니다. 후에 에치젠 수호직(守護職, ※역주: 태수, 치안 책임자) 시바(斯波) 씨를 따라, 그가 수호를 맡고 있던 오와리로 이주한 것 뿐입니다. 즉 영주님은 신관 일족이며, 나름대로의 종교 지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신사에 관해서는 상당히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제가 건립을 지휘했던 '오우신(櫻信) 신사'도 영주님의 취향이 꽤나 들어가 있으니까요"


"오우신 신사?"


"네,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신사가 있습니다. 당초에는 단순한 신사가 될 예정이었지만, 영주님께서 상당히 손을 대셔서, 지금은 아예 다른 물건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알리기 위해 시즈코가 건립한 오우신 신사는, 그녀의 예정으로는 작은 본전(本殿)과 종이 있으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 기외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 시즈코에게 불만을 느꼈는지, 아니면 스스로 신사를 설계하고 싶어졌는지, 언제부터인지 노부나가가 이것저것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신사의 경계를 정비하고, 시설이나 설비를 차례차례 더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노부나가의 손에 의해 보통의 신사로서 손색이 없는 규모로 확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흥이 돋았는지 마개조라고도 할 수 있는 확장은 가속되어, 노부나가의 신사 건립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아무리 메이지 시대에 신사가 국가의 관리하에 들어가기 전까지 신사 그 자체의 구성은 통일성이 없었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의미불명의 설정이 된 신사를 받아도 시즈코는 곤란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마개조에 만족하셨는지, 건조가 끝나자 아무 말씀도 안 하시게 되었지만요. 그러니까 신주라기보다는 관리인일까요"


"성직자가 늘어나면, 교육자의 설득력이 붙으려나. 서당(寺子屋)도 대부분 불승들이 운영했으니"


"그것도 있겠네요. 어쨌든 이걸로 각자 방향성은 정해졌어요. 미츠오 씨가 가장 일찍 바빠지실 것 같은데, 잘 부탁드려요"


"이거 좀 노력해야겠네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미츠오였으나, 목소리에서는 허세는 있어도 난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은 아시미츠, 미츠오 두 사람의 고용주인 노히메의 설득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이건 쉽게 양해를 얻었다.

일단 노히메의 요리는 8할이 미츠오 담당으로, 남은 두 사람은 보좌밖에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아시미츠를 빼가는 것을 노히메는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츠오의 배속변경에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흑돼지나 산양 등, 축산을 하는 것으로 짐승고기의 배리에이션이 늘어날 것이라고 듣자마자 미츠오의 전속을 허가했다.

정확히는 완전한 전속은 아니고, 미츠오는 노히메 전속의 요리사 겸 축산농가라는 입장이지만.

흑돼지나 사냥 고기를 맨 처음 먹게 하는 것을 조건으로, 노히메는 미츠오에 대한 원조를 약속했다.

전속 요리사로서는 갑작스레 홀로 남게 된 고로였으나, 그는 낙담하기는 커녕 '노히메 님을 감동하게 할 요리를 만들어 보이겠다!'라며 기합을 넣을 정도는 되는 요리사였다.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분주했다. 미츠오의 첫걸음은 큐지로(久治郎)나 다른 상인과 함께 흑돼지나 산양을 찾아서 오키나와(沖縄), 큐슈(九州)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아시미츠를 신사의 관리인으로 삼는 주인장(朱印状)을 요청하는 편지를 썼다. 얼마 후 그로부터 아시미츠를 관리인으로 삼는 것을 허가하는 주인장이 도착했다. 이걸로 아시미츠는 정식으로 신사의 관리인으로 채용되었다.

그 아시미츠는 원래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과 처음에는 삐걱댔지만, 과묵하지만 성실한 성격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서 금방 친해졌다.


한편, 시즈코는 어떤 특수한 설비의 건조에 착수했다.

그것은 얼핏 보면 대형의 흙벽으로 만든 광(土蔵)으로 보였으나, 내용물은 마개조된 설실(雪室)이었다.

흙벽으로 만든 광은 광 내부의 온도와 습도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 기능을 이용하여 눈을 쓴 천연의 냉장고를 만드는 것이다.

소빙하기인 전국시대,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것은 드물지 않았기에, 대량으로 모으는 것은 쉬웠다.


다만 현대의 냉장고와는 달리, 광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는 않았다.

실험용의 통의 물이 얼어붙은 날도 있었고, 얼지 않고 물 상태를 유지한 날도 있었다. 거기에서 시즈코는 광의 온도는 마이너스 5도에서 5도 사이 정도일 거라 추측했다.

게다가 광의 지하에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작은 방을 만들었다. 콘크리트의 냉복사(冷輻射) 작용을 이용한 천연의 냉동고였다.

이쪽도 역시 온도는 일정해지지 않았으나, 냉동야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마이너스 18도 이하일 거라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겨울 동안에는 눈을 모으는 것이 가능하지만, 역시 동해 쪽과 다르게 태평양 쪽은 눈이 내리지 않게 될 때까지의 기간이 짧았다.

에치젠(越前) 근방으로부터의 운반 루트를 구축하고 싶었던 시즈코였으나, 에치젠이 노부나가의 영토가 될 때까지 그것은 불가능하다.


설실과는 다른 작업을 하기 위해, 시즈코는 노부나가 직영의 어촌으로 발을 옮겼다.

이세(伊勢) 만(湾)에 접한 토우카이(東海) 지방에는, 옛부터 이 시기에 먹던 어떤 생선이 있었다. 그것은 숭어(ボラ)이다.

겨울의 숭어는 '찬숭어(寒ボラ)'라고 하여, 기름이 올라 맛있는 생선으로서 중히 여겨지고 있다. 구별법은 간단해서, 찬숭어는 눈에 지방이 껴서 흐릿한 상태가 되어 있다.

현대에서는 오염된 하천의 영향을 받아 냄새가 강한 숭어가 많지만, 전국시대에는 오염된 하천은 적었기에 냄새가 적은 숭어가 많았다.

애초에 숭어의 냄새의 원인은 피이며, 피빼기 처리를 제대로 하면 찬숭어가 아니더라도 냄새를 상당히 억제할 수 있다.


다른 생선이 아니라 숭어를 선택한 것은 딱히 다루기 쉽기 때문만은 아니다.

숭어의 난소를 소금에 절인 후에 건조하면, 일본 3대 진미라고 하는 카라스미(カラスミ)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카라스미 제조는 첫 시도, 10월에 잡은 숭어는 난소를 적출하는 데 몇 번이나 실패했고, 어쩌다 용케 적출해도 피빼기가 잘 되지 않아 냄새가 났다.

11월은 비교적 나아졌지만 소금 간을 실패해서, 도저히 진미라고는 할 수 없었다.

12월에 간신히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명산품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술안주로는 좋다, 고 노부나가의 평가는 좋았다.


카라스미와는 별도로, 숭어의 살코기를 이용한 훈제 만들기도 전수했다.

숭어는 30cm에서 50cm 정도 되며, 말리기보다는 모아서 훈제 처리하는 쪽이 효율적이다.

훈제는 건어물로는 완전히 억제할 수 없는 '지방의 산화'와 '세균의 발생'을 해결하기 때문에, 건어물보다 보존성이 우수하다.

게다가 훈제로 만들면, 어느 정도 잃어버린다고는 해도 숭어는 영양가 높고, 또 훈제로 생으로 먹는 것과는 다른 풍미나 맛이 가미된다.

추위나 거친 바다 때문에 고기잡이에 나갈 수 없는 날이 많은 혹한기의 식량사정을 개선할 수 있는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 될 숭어의 훈제를 버릴 수는 없다.


그리고 시즈코는 굴(牡蠣)의 양식도 시작했다.

굴은 우유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 일본에서는 '바다의 현미(玄米)'라 불린다.

죠몬(縄文) 시대부터 귀중한 먹거리였던 굴은, 일본에서는 텐몬(天文) 시대(1532-1555) 무렵에 양식이 이루어진 기록이 있다.

사실은 좀 더 이른 단계, 작년 8월까지는 준비하고 싶었지만, 상락(上洛)과 그 후의 처리에 정신이 없었기에, 이듬해로 미뤄지게 되어 버렸다.

양식하는 굴은 일본 2대 굴 중 하나인 참굴(真牡蠣)이었다. 이것은 일본 전역에서 수확할 수 있으며, 채묘(採苗)로부터 1년만에 출하할 수 있다.

3년만 지나면 씨가 굵어지지만, 생존확률이 해마다 낮아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1년 만에 출하된다.

사실은 태평양으로부터의 쿠로시오(黒潮)와 이세 만으로부터의 바닷물, 그리고 키소 삼천(木曽三川)과 미야(宮) 강으로부터의 담수가 적당히 섞이는 우라무라(浦村) 만 주변에서도 양식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남(南) 이세는 노부나가의 영토가 아니기에, 이세 침공이 끝난 후에 사업을 시작하자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넓은 바다를 굴 양식에만 쓰는 것은 아깝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는, 굴 양식 이외에 김과 미역 양식에도 손을 댔다.

현대의 마른 김이 등장하는 것은 에도 시대 이후로, 전국시대에는 생김이 주류였다. 하지만 희소가치가 높은 것 치고는 김은 불우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김이나 미역의 주된 산지에 이세 만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김의 양식은 가능하다고 시즈코는 생각했다.


김도 미역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 9월 하순에서 11월로 농번기가 끝난 직후다.

미역의 양식 기간은 11월에서 이듬해 5월 무렵, 김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다.

튜브(浮き輪)를 쉽게 만들 수 없었기에, 김은 지주식(支柱式)으로 양식하게 되었다. 대량의 대나무 목재를 준비할 필요가 생겼으나, 시즈코는 자신의 대나무 숲에서 준비했다.


"김과 미역, 그리고 굴. 이 세 가지를 바다에서 양식하자. 김과 미역은 1년, 굴은 1년에서 2년. 순조롭게 진행되면 5년 후에 양식 사업이 궤도에 오르겠지. 완성형이 되려면 10년 정도 필요하겠지만"


이것도 그물이나 밧줄의 원재료인 마(麻) 섬유, 그리고 지주 등에 쓰이는 대나무를 풍족하게 가지고 있는 시즈코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김 같은 걸 어디다 쓰는 거냐"


"음, 마를 대량으로 쓰면서까지 양식인가를 할 필요가 있는건가"


키묘마루와 나가요시가 입을 모아 의문을 표시했다.

호위 3인방은 항상 함께 다니지만, 키묘마루까지 따라온 것에는 제아무리 시즈코라도 머리가 아파졌다.


"유비무환. 급해졌을 때 부족하다고 해봤자 늦어. 평소에 얼마나 밑준비가 잘 되어 있는지가 중요해"


"그런 건가"


"가끔 있지. 급한 상황이 되어서, 큰일이라고 말해봤자 늦는다고. 위기관리 능력은 중요하거든?"


"과연……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케이지가 화로에서 굽고 있던 작은 물고기. 그것도 뭔가의 준비인가"


"……들어넘길 수 없는 말이 들렸지만, 지금은 일단 넘어가겠어"


육지의 작물 생산을 궤도에 올린 시즈코는, 다음으로 해산물에 대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김, 미역, 굴의 양식. 그리고 작은 물고기인 혼모로코(ホンモロコ, ※역주: 잉어과의 담수어. 한국어 명칭은 따로 없는 듯)와 미꾸라지(ドジョウ)의 양식이었다.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김, 미역, 굴을 그녀가 버릴 리가 없다.

지금까지 해산물에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는, 마 섬유를 풍족하게 생산할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모로코와 미꾸라지의 양식이네. 뭐 영주님이 땅을 빌려주셨으니까 실행할 수 있는 거지만. 미꾸라지는 장어에 필적하는 영양을 가지고 있고, 혼모로코를 양식하면 땅이 비옥해져"


노부나가는 시즈코에게 "좀 더 좋은 집에 사는 게 어떠냐"라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넓은 땅과 장인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넓은 땅을 혼모로코와 미꾸라지의 양식장으로 대개조해버렸다.

나름 넓은 땅이, 거의 양식장이라는 이름의 연못으로 뒤덮인 것에 노부나가의 머리가 아파졌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미꾸라지는 그렇다치고 혼모로코에는 어떤 문제가 있엇다.

비와(琵琶) 호수에서 산 채로 운반할 필요가 있는데, 현대라면 수온을 유지하거나 산소농도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에어 펌프나 수온계)가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물론 전국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방법을 써서 오와리까지 운반할 것인가, 이것이 시즈코에게 최대의 문제였다.

결국, 무식한 방법이 가장 심플하고 계획 실현 가능성이 높은 해결법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장인들을 써서 비와 호수에서 양식장 사이의 각지에 점재(点在)하는 여관에 혼모로코를 일시적으로 방류해서 보관할 수 있는 연못을 만들게 했다.

그 연못을 써서 혼모로코를 산 채로, 오와리까지 운반한다는 무식한 작업을 성공시켰다.

당연히, 약한 개체는 운반 도중에 죽었지만, 그것은 운반을 담당한 사람들의 위장 속으로 들어갔다.


"(저거 분명히 집을 짓는게 어떠냐, 라고 내려진 상이었지?)"


"(그렇지. 장인들은 안됐지만, 시즈코 님이시니 어쩔 수 없지)"


노부나가가 두통에 시달린 원인을 이해하면서도, 두 사람은 '완곡한 표현을 쓴 노부나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 두 사람, 뭐 하고 있는거야? 이곳 이외에도 돌아볼 거니까, 느긋해할 여유는 없어―"


설실의 설치 작업이나 어촌의 기술 전수 등, 농한기라고 해도 시즈코는 매일 바쁜 것에 변함은 없다.

그런 바쁜 그녀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시즈코에게 전달된 편지의 발신인은, 아케치 미츠히데와 히데요시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노부나가와 함께 니죠 성을 건설하고 있다. 그 두 사람이 공동으로 편지를 보내다는 무슨 일인가 하고 시즈코는 순간적으로 의아해했다.

하지만 내용을 읽은 후에는 어이없다는 말만 나왔다. 편지의 내용은 '영주님께서 최근, 땡깡이 심해져서 대응이 어렵소. 시즈코 님이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소'였으니까.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게 해라. 맛이 싱거우니 어떻게 해봐라. 잠자리가 딱딱해서 못 견디겠다…… 그냥 땡깡이잖아……"


"그만큼 신뢰받고 있다, 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편지를 집어던지고 마루 위에 엎어진 시즈코에게 차를 마시고 있던 키묘마루가 태평하게 대답했다.


"안 그래도 이 일대를 재정비할 안건도 있는데…… 거기에 쿄에 계시는 영주님의 땡깡까지는 대응 못 해"


"원인의 일단은 시즈코에게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네가 생각하는 생활 환경은, 하나같이 지나치게 쾌적하니까"


"알고 있어……"


시즈코가 전국시대의 생활 스타일을 개량하여 쾌적한 생활 환경을 구축한다. 그것을 노부나가가 마음에 들어하여 도입한다.

그런 것을 계속한 탓인지, 노부나가는 생활의 쾌적함이 압도적으로 향상되어 버렸다. 아무리 쿄가 당시의 유행의 최첨단이라고는 해도, 수백년 후의 생활 스타일에 미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으―음, 하지만 지금 당장은 못 움직이겠지. 금후를 감안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위해가 가지 않도록 이동시켜야 하고…… 뭣보다 챠마루 군이 이쪽으로 이사할테니까 그 구획이―"


시즈코는 머리를 감싸고 신음했다.

노부나가는 상락을 성공시켜 많은 우군을 얻었다. 이미 일본을 대표하는 영주라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적도 늘어났다. 조금 전까지 토우코쿠(東国, ※역주: 도쿄를 기준으로 한 칸토(関東) 지방)의 시골 영주였던 노부나가가,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영주가 된 것이다.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정책은 서민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권력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기득권익을 침해하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기득권익이라고 해도 생활 기반에 직결되어 있었기에 간단히 침해를 용납할 수는 없었고, 그것이 적을 늘리는 요인도 되었다.

적이 늘어나면서 그의 흠을 찾으려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났다. 거기서 시즈코의 주위가 특이한 환경이라고 생각한 노부나가는,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위해가 가지 않도록 그들을 멀리 떨어뜨려 놓기로 했다.

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노림받는건 사양, 이라고 말하듯이 노부나가의 이주 정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케이지 씨에 사이조 씨, 쇼우조 군도 이쪽으로 이사하겠지. 게다가 무장들이 묵을 숙박 시설도 필요하고…… 그렇다고 해서 논밭은 갈아엎을 수 없고…… 으아아―"


마을 사람들을 전원 이주시킨 후, 노부나가는 온천과 부속 시설을 개량하고, 나아가 어느 정도의 병사들을 장기 주둔 또는 정착시킬 계획을 세웠다.

계획이 진행되어, 우선 시즈코의 마을을 포함하는 다섯 개를 없애 빈 터로 만든다.

거기서 우선 방위 시설을 제일로 고려하여, 주위를 둘러싸는 방위망을 강화한다.

그게 끝나면 노부나가의 별장, 시즈코의 집을 개축. 동시에 케이지나 사이조의 집을 건축, 무장들이 온천에 묵기 위한 숙박시설을 건축한다.

그 안에 뚜렷하게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논밭이 들어가는데, 그보다도 더 놀랄 일이 있다.

노부나가는 별장의 관리를 키묘마루에게 일임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것을 이유로, 그의 교육 담당자도 마찬가지로 이사하지만, 그걸 빼더라도 주위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너에게 교육을 받아라, 라고 아버지는 말씀하고 싶으신 거겠지"


"그거 참 황당한 생각을 하시네, 영주님은. 그런데 계획서 안에 여성용 숙박 시설이 있다는 건……"


계획 중에 논밭과 마찬가지로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 있었다. 그게 아무리 봐도 여성용의 숙박 시설이었다.

그것을 노부나가의 계획에 집어넣을 수 있는 인물은 한 명 밖에 없다. 안 좋은 예감에 오싹거리는 것을 느끼며 시즈코는 키묘마루에게 물었다.

당연히, 그녀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네 예상대로다. 그런 시설을 아버지의 계획에 집어넣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한 분 밖에 없지"


"역시…… 노히메 님이시구나, 이걸 넣은 거. 정원의 한 구석에 수박밭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마츠 님의 희망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네"


"뭐, 포기해라. 딱히 네가 관리하는 것도 아니니까"


무거운 한숨을 쉬는 시즈코에게 키묘마루는 남의 일 처럼 말했다.


"……하아, 영주님의 대응은 다음 달이려나. 그 때까지 참아주면…… 좋겠지만"


"기대는 못 하겠군"


그렇겠지, 라고 시즈코는 중얼거리고 다시 한번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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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