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1년, 상락(上洛)



051 1568년 12월 중순



노히메 전속 요리사들과 시즈코 일행 양 쪽이 마을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일 없이, 시즈코 일행이 먼저 마을에 도착했다.

그녀는 마을에 도착한 후, 5백 명의 병사를 해산시키고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케이지는 술을 한 손에 들고 목욕탕으로, 나가요시는 갑주을 입은 채로 산으로 돌격, 남은 사이조만이 시즈코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병사들도 익숙한 평소의 광경이었다.


시즈코는 짐을 정리한 후 밭으로 이동했다. 배추가 수확 시기였기에, 오늘 수확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재배하고 있는 배추는 대형이었기에 대바구니(籠)에 하나나 둘 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사이조도 대바구니를 등에 메고 수확을 도왔다.

시즈코가 메고 있는 대바구니에 둘, 사이조가 메고 있는 대바구니에 둘,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는 것 하나, 합계 다섯 개를 수확했다.


"시간적으로 배추절임(浅漬け)을 만들 수 있으려나"


"소생은 이러한 작물을 처음 봅니다. 그 때문에, 조금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물이 적은 전국시대, 다종다양한 작물이 손에 들어오는 환경은 그것만으로도 오락거리가 된다.

까다로운 성격의 사이조는 처음에는 과한 사치는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시즈코에게 '모든 것은 부처님 앞에서는 평등'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하여, 그녀가 지정한 식생활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새로운 생활습관이 몸에 밴 지금은, 술은 즐기는 정도로 마시고, 닭이나 사슴 등의 짐승고기, 말린 생선이나 말린 오징어 등의 해산물, 마을에서 재배하고 있는 야채류를 가리지 않고 먹고 있다.


"배추절임과 소금절이(塩漬け)를 만들까. 밤에는 전골 재료이려나―"


"기다려 주십시오, 시즈코 님. 그런 말씀을 들으면 더 배고파집니다"


"아아, 미안해. 배추절임은 금방 만들 수 있으니까 얼른 만들까"


수확한 배추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때, 시즈코는 그녀를 찾고 있는 아야와 길이 어긋나 버렸다.

그 때문에, 노히메가 노부나가의 별장에 있는 것도 모르고, 시즈코는 평소에 들어가지 않는 조리장에서 배추 요리를 시작했다.


"배추절임은 매실장아찌랑 염장 다시마가 있으면 좋겠네"


기본적으로 배추는 유산균 발효시켜 먹는 절임식품이 아니다. 따라서 다른 것과 달리 간단한 절임요리를 만들 수 있다.

우선 배추를 잘 씻는다. 다음으로 심 부분을 5mm 정도, 잎 부분을 1cm 정도로 썰어서 대발에 담는다.

염장 다시마도 적당한 사이즈로 자르고, 매실장아찌는 씨앗을 빼고 손으로 적당한 사이즈로 찢는다.

물기를 뺀 배추, 매실, 염장 다시마를 그릇에 넣고, 가볍게 주물저부면서 세 가지 재료를 섞는다.

부드러워지면 그릇 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뚜껑을 덮고 30분 정도 재워둔다.


"자, 완성!"


재워둔 배추를 씻지 않고 가볍게 짠 후에 접시에 담기만 하면 완성이다.


"……매실장아찌가 들어있기에 약간 시큼하지만 맛있습니다. 밥이 당기는 게 문제군요"


"뭐 그렇지"


추임새를 넣으며 시즈코는 배추 하나를 사등분했다. 남은 세 개는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천으로 감싸서 차고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상온(5도에서 10도)에서도 통째로는 3주일 동안은 보관 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빙실(氷室) 같이 0도에 가까운 환경에 두면 4주일 가까이 보관할 수 있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을 조금씩 수확하려고 하고 있지만, 가능한 한 장기보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시즈코였다.


"이건 천일 건조해 두자"


"소생은 밥이 먹고 싶군요. 그러고보니 아야 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가 점심식사 때 장시간 집을 비우는 일 같은 건 없었을 텐데요……"


"희한한 일도 다 있네―"


그렇게 말한 후, 천일 건조용의 배추를 안고 시즈코는 집 밖으로 나갔다. 순간, 아까까지 화제에 올랐던 아야가 눈 앞으로 지나갔다.

하지만 바로 정지한 후, 굉장한 기세로 시즈코 쪽을 돌아보며 그녀 쪽으로 달려왔다.


"후우, 하아…… 찾아다녔습니다, 시즈코 님"


"어라? 영주님에게서 전령이라도 왔어? 미안, 배추를 수확하고 있어서 어딘가에서 길이 엇갈렸는지도 모르겠네"


이마의 땀을 닦으며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는 아야에게 시즈코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뺨이 상기되어 있던 아야였으나, 호흡이 진정되자 평소의 포커 페이스로 돌아왔다.

아까워라, 라고 잠깐 생각한 시즈코였다.


"노히메 님께서 내방하셨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상대를 부탁드립니다"


"에―, 또 왜……"


"보기 드문 요리사를 자랑…… 어흠, 소개하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그쪽이 본심이네. 알았어, 일단 아야 짱에겐 미안하지만, 잠깐 도와줘. 아, 밥 남은 거 있으면 사이조 씨한테 내주면 고맙겠어"


"문제없습니다. 오늘 아침 지은 밥이 남아있을 겁니다. 그걸 사이조 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 말만 하고 아야는 바로 사이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히메가 데려온 보기드문 요리사, 라는 얘기였으나, 그녀는 그다지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시즈코의 요리에 대한 생각이, 주로 '값싸고 먹기 편하고 영양이 풍부한 요리'가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식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는다.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 마음이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보기드문 요리사인가요. 흥미는 생기지만, 사치스러운 미식은 제 분수에 맞지 않습니다"


"오오, 시즈코도 제법 말을 잘하게 되지 않았느냐. 뭐, 네가 볼 때는 재미도 없겠지만, 가끔은 내 취향에 맞춰 주거라"


"네에……"


"참참, 오이치(お市)에게도 '가끔은 이쪽으로 놀러오거라'라고 편지를 보내 부르긴 했다만, 아자이(浅井) 님이 허가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하여튼, 그릇이 작은 남자는 이래서 곤란하느니라"


"(대, 대답하기 곤란한 소리를……) 뭐, 뭐어, 부인이 걱정되시는 게 아닐까요……?"


오이치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는 부부사이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전해지는 역사에 따르면 노부나가를 배신한 후에도 부부 사이에 금이 가는 일 없이 사이좋은 부부로 살았다.

오이치는 차차(茶々,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측실(側室)), 하츠(初, 쿄고쿠 타카츠구(京極高次)의 정실(正室)), 고우(江,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으 후처(継室)) 등 세 명의 아이가 있다.

차차가 태어난 것이 에이로쿠(永禄) 12년이라고 하니, 지금은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았지만.


"(아, 그럼 아이가 태어날 것 같으니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 걸까. 그거라면 납득)"


"뭘 중얼거리고 있는게냐. 그보다, 배추인가 하는 것의 요리는 아직이냐. 나는 아주 기대하고 있노라"


기다리기 힘들다는 느낌으로 노히메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위기가 반대로 시즈코를 냉정하게 만들었는지, 그녀는 보기 드물게 태연했다.

그것은 곧 바쳐질 요리보다도, 현재 착수하고 있는 연구개발에 의식을 빼앗겨 있었다. 현재의 주된 연구는 세탁기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유황을 소량이나마 입수할 수 있었기에, 팩티스의 연구도 병행하여 개시하기로 했다.

타이어의 고무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이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고무의 대용품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성능이 기대되었다.


(그러고보니 보리로 오트밀을 만들어야지. 이유식으로서는 우수하니까…… 보리 냄새가 강하니까 호불호는 갈릴 것 같지만)


재배한 귀리는 가을 무렵에 심었는데 이미 수확 가능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정확한 품종명을 알 수 없었기에 확실히 단언할 수는 없었으나, 가을부터 심으면 겨울에, 봄 무렵부터 심으면 가을 무렵에 수확이 가능한 성장이 빠른 품종일 거라고 예측했다.

일부러 열매를 수확하는 이유는, 귀리로 만드는 오트밀이 갓난아기의 이유식으로서 높은 코스트 퍼포먼스를 갖기 때문이다.


오트밀을 만드는 법은 단순하여, 탈곡한 보리를 으깨거나 갈아서 가루 형태로 만드는 것 뿐이다.

카나카나 표시로는 알기 어렵지만, auto meal이 아니라 oat(귀리) meal(식사)이며, 귀리를 사용한 식품 전반을 가리킨다. (※역주: 알다시피, 일본어는 으 발음이 없고 기본적으로 모음이 아이우에오라서, 오트(oat)와 오토(auto)가 똑같이 オート가 된다)

물이나 우유를 넣고 불려서, 과일이나 견과류를 넣은 뮤즐리(Muesli).

설탕이나 벌꿀을 넣고 식물기름을 묻혀 오븐에서 구운 것을 그라놀라(granola)라고 부른다.


어째서 오트밀이 이유식으로서 높은 코스트 퍼포먼스를 가지는지는 실로 간단한다.

먼저 귀리는 재배에 수고가 들지 않는다.

대충 재배해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알아서 성장해간다. 물론, 적절한 환경이라면 성장 속도는 더 빠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으나, 작물과 달리 세세하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

다음으로 오트밀은 현미에 비해 식물 섬유가 약 3.5배, 철분은 2배, 칼슘의 경우에는 5배나 풍부한 식품이다. 비타민이나 미네랄, 단백질도 풍부하여 영양 밸런스가 굉장히 좋다.

GI수치가 낮기에 탄수화물이 많은 것치고는 지방으로 잘 변하지 않으며, 인슐린 수치가 낮기에 기초대사가 향상된다.

건조식품이기에 적절하게 보존하면 1년 가까이 보존할 수 있다. 잡탕죽(雑炊)이나 죽(おじや)(※역주: 기본적으로 雑炊이나 おじや는 동의어로도 쓰이는 모양인데, 지역이나 개인에 따라 다르게 구별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며, 여기서는 후자는 그냥 '죽'으로 번역했음)처럼 먹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갈아서 이유식으로도 쓸 수 있다.


장점뿐인 오트밀이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 상태 그대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하다. 다음으로 보리 냄새가 강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뭣보다, 물에 끓이기만 해서는 맛이 없다는 점이다.

그 점을 해결한다면 오트밀은 대단히 우수한 식품이 된다.


(달게 하기보다, 죽이나 리조또 스타일이 좋을거라 생각하는데…… 된장으로 끓인다던가 하는 건 괜찮지 않을가……?)


"실례합니다. 시즈코 님, 영주님으로부터 전령이 왔습니다. 긴급한 호출입니다"


"……또 무슨 호출……?"


"바로 올 것, 이라고밖에 듣지 못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서둘러 주십시오. 호위대나 병사들은 이미 수배해 두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급할 용건이 있었던가?)


어쨌든 호출받았는데 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안타깝구나. 어쩔 수 없지, 요리사들에게 배추인가 하는 것의 요리라도 만들게 해야겠구나"


"죄송합니다. 이 벌충은 나중에……"


시즈코는 노히메에게 사과한 후, 준비를 갖추고 바로 노부나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때, 시즈코는 도중에 노히메의 전속 요리사들이 멀리서 보고 있던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눈치챘더라면, 그녀는 제정신으로 노부나가에게 갈 수 없었으리라.


길이 엇갈리는 운명이 되어버린 시즈코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노부나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도착 직전부터 해가 질 기색이 보였기에, 오늘밤은 누군가의 집에 묵게 되려나 하고 막연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희망적 관측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날, 노부나가에게 불려간 일행은 도중에 몇 번 휴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아침까지 도로 정비에 대해 왁자지껄하고 뜨겁게 토론하게 되었다.




12월의 어느 날,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에 노부나가와 주요 가신단이 집합해 있었다.

오늘은 이 마을에서 생산된 자기(磁器)를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자기의 재료를 타국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오다 영지 내에서는 공공연하게 자기의 매매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생산지를 속여 타국의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고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일본에서 자기가 생산된 것은 에도 시대에 들어선 이후이며, 그 때까지는 중국이 만드는 도자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라고 하는 것만으로, 예를 들면 디자인이 취향이 아니더라도 비싼 물건이 되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자기는 남만인(南蛮人, ※역주: 유럽인)에게도 비싸게 팔아넘길 수 있다.


애초에 유럽 귀족은 중국의 자기를 '하얀 황금'이라고 부르며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유럽 자기의 최고봉이라 칭찬받는 독일의 마이센 제품은 전 세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마이센도 원래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동경이 자기 생산의 시작이었다.

독일의 작센 선제후로, 신성 로마제국 폴란드 왕을 겸임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Friedrich August II)는 열렬하게 동양 자기를 사랑했다.

아예 드레스덴의 츠빙거(Zwinger) 성에 '일본궁'이라는 수집한 일본의 자기를 보관하는 건물을 지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최우선 사업으로서 동양의 자기 같은 것을 자국에서 생산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에서 생산되는 자기는, 주로 세 가지 색깔이 사용되고 있다.

구리의 녹을 사용한 적색, 철의 녹을 사용한 흑색, 그리고 군청색 잿물(呉須)을 사용한 청색이다.

이 세 가지 색깔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자기는 깊은 색을 띠고 있어, 노부나가가 한눈에 반했을 정도였다.

특히 그는 발색이 어려운 적색을 주로 하는 아카에(赤絵)를 선호했다.


"호오! 이번에는 꽤나 많구나"


노부나가가 기분좋은 표정으로 앞에 잇는 아카에의 자기를 쓰다듬었다.

그의 말대로, 자기는 다양한 종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전위적인 디자인의 그릇부터, 식사에 쓰기보다는 장식하는 타입의 자기까지 있었다.

무늬도 아양하여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장식에 공이 들어가 있었다.


아카에 자기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처음으로 성공했던 사카이다 카키에몬(酒井田柿右衛門)의 아카에 자기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에서는 한 종류의 적색밖에 사용하지 않았으나, 카키에몬 양식은 밝은 '화적(花赤)', 감의 색깔을 나타내는 깊이감 있는 '농적(濃赤)', 선을 그리기 위한 거무스름한 주황색(カバ) 등 세 종류의 적색을 사용하고 있다.

그 세 종류의 적색을 낳는 조합 방법은 사카이다 가문에 전해지는 "적회구각(赤絵具覚)"에 쓰여 있으나, 내용은 카키에몬의 이름을 계승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전 중의 비전이다.

특별히 공개된 일부에는, '염분을 뺀 산화철'을 사용한다, 고 재료 중 하나가 쓰여 있었다.

문자 그대로 산화철을 물에 담궈 염분을 빼는 것이다. 이 작업은 대단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여, 최소 십 년은 걸린다고 한다.


카키에몬 양식이 아닌 다른 방법이지만, 아카에 자기용의 적색을 만드는 법을 시즈코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쪽도 재료를 갖추는 데 최소 5년은 걸린다.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는 당분간 구리의 녹을 사용한 적색으로 대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약 4백 장 있습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자기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자기의 판매를 개최합니다"


그 말과 함께 자기 벼룩시장이 개최되었다.


자기 벼룩시장이라고 해도, 보통의 벼룩시장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매매로 움직이는 돈의 액수의 단위가 다르다. 아무리 양산되고 있다고는 해도, 자기는 아직 고급품의 부류에 들어간다.

또 작품이 마음에 들면 '선행투자'라는 명목으로 장인에게 직접 돈을 건넬 수 있다.

장인이 직접 판매하는 것으로 중간 마진을 없애고, 또 장인들은 자신들의 평가를 직접 알 수 있다. 뭣보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은 완고함을 가진 장인도 있지만.


(응, 잘 되고 있는 걸까?)


시즈코는 벼룩시장의 상황을 관찰했다. 모리 요시나리가 대접을 손에 들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는 청색으로 그림이 그려진 대접이 취향인 모양이다.

히데요시는 금장 처리된 그릇, 타케나카 형제는 평소에 쓸 법한 타입의 식기, 니와는 그릇보다도 항아리가 취향인 모양이다. 각자 취향에 맞는 자기를 찾아서 구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바와 삿사는 대단히 전위적인 디자인의 그릇이 취향인 듯 했다. 삿사의 경우, 어떻게 봐도 식기로서의 의미를 잃은 그릇을 보며 환희하고 있었다.


"오오, 다들 굉장히 기뻐하네…… 나도 뭔가 살까?"


하지만 시즈코는 노부나가만큼 자기를 고급품이라 생각하지 않기에, 식기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여 구매욕이 일지 않았다.

도중에 말을 걸어온 장인이나 가신들의 상대를 하며, 시즈코는 윈도우 쇼핑을 즐겼다.


"오, 이건 케이지 씨한테 맞으려나…… 이건 사이조 씨. 이쪽은 쇼우조 군일까. 이 예쁜 건 아야 짱에게 사다주자. 으―음, 혼다 님에게도 몇 장 보낼까"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케이지 등의 선물을 사는 데 그쳤다.

이유는 그들은 참가자로서도, 또 시즈코의 호위로서도 참가할 수 없었다. 안됐지만 인선은 노부나가가 했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


"시즈코 님, 그대도 자기 고르시는 것이오?"


목소리에 반응하여 돌아보자 만면에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시바타와 삿사가 있었다.

약간 움츠러든 시즈코였으나, 그들은 대단히 기분이 좋은 것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러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어떻게 감사할지 모르겠소이다"


"그렇지요. 그대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까지 초대하는 그 도량에, 소생의 속좁음이 부끄러울 뿐이외다"


"어, 아뇨…… 초대자를 정하신 건 영주님이십니다……만"


당황해서 부정하였지만 흥분해 있는 그들에게 시즈코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이쿠, 불러세워 미안하오. 그럼 우리들은 이만"


"뭔가 곤란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힘을 보태지요. 실례하겠소"


입을 모아 시즈코를 칭찬한 후, 두 사람은 기분좋게 떠나갔다.

남겨진 시즈코는, 그저 멍하니 두 사람을 전송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벼룩시장은 대성공으로 끝났다.

이런저런 뒷정리를 다른 사람에 맡기고 먼저 귀가한 시즈코는, 사온 자기를 각자에게 건네주었다.

케이지에게는 몇 종류의 술잔, 나가요시에게는 돈부리(どんぶり) 밥그릇, 사이조에게는 찻잔(湯のみ, ※역주: 찻잔이라고 해도 흔히 생각하는 홍차 등을 마시는 데 쓰는 찻잔이 아니라, 흔히 음식점에서 나오는 자기로 된 물컵 형태의 것을 말함), 아야에게는 색색의 화려한 작은 그릇을 몇 장 주었다.

타다카츠 용으로 준비한 넓적하고 얇은 접시를, 시즈코는 편지 한 장을 동봉하여 함께 발송을 의뢰했다.

다들 시즈코가 선물한 자기에 기뻐했다. 케이지는 술잔을 받아들자마자 술을 한 손에 들고 사이조와 나가요시에게 목욕탕으로 가지고 했을 정도였다.


자기 벼룩시장이 끝난 후에는 평온했다. 하지만 그녀가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연말 가까이까지 농사일이 거의 없는 시즈코는, 쉬는 틈에 다양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노부나가에게 '이거야말로 기후(岐阜)!라는 특산 요리로 뭐 생각나는 게 없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식의 명력은 아니고 어느 쪽이냐 하면 단순히 뭐 좋은거 없겠냐라는 질문에 가깝다.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지만 노부나가의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콩으로 두부나 유부(油揚げ), 유부에서 유부초밥(稲荷寿司), 오징어밥(イカ飯), 닭튀김(唐揚げ) 등의 단품에서, 새우덮밥이나 오야코 덮밥(親子丼, ※역주: 닭고기와 계란이 들어가는 덮밥) 등의 덮밥류.

나아가서는 소형의 흙냄비를 사용한 키리탄포(きりたんぽ鍋, ※역주: 밥을 반 정도 으깨어 꼬치에 끼워 구운 것; 또, 이것을 닭고기∙채소 등을 넣고 끓인 아키타(秋田) 지방의 향토 요리)나 백숙(水炊き), 멧돼지 전골(ぼたん鍋) 등을 준비했다. 뱀장어도 생각했으나, 뱀장어는 조리가 어려운데다 이미 우지 강에서 잡히는 뱀장어로 만드는 통초밥(姿鮨)이 평판이 좋았기에 제외했다.

시식 담당인 케이지나 나가요시 등에게는 호평이었으나, 노부나가가 볼 때는 '무조건 이게 좋다'라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유일하게 자라 전골에 노부나가는 흥미를 가졌다.

조금 생각해보고 자라라면 명산품이 될 거라 생각한 시즈코였으나, 자라를 모으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았다.

자라는 수온이 낮으면 동면해버리기에, 겨울에 자라를 모으는 것은 어렵다.

양식을 시작하려면 따뜻해지고 산란 시기인 6월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줄을 긋고…… 계산식에 대입하면 이만한 거리가 필요하니까…… 음, 이걸로 양식장으로서의 면적은 확보했어. 이젠 시기가 올 때까지 방치하면 되겠지)


자라 양식을 시작하이게는 충분한 넓이였다.

설계도의 이미지와 실제의 넓이가 일치하는 지 확인하러 갔더니, 다소 비좁은 느낌이었지만 문제없는 수준이라고 느꼈다.

슬슬 시설을 추가할 공간이 없어졌지만, 지금 당장 시설이 필요할 안건은 없다.

자라의 양식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해서 노부나가에게 제출했다. 노부나가는 자라를 양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으로, 긴급연락망을 써서 시즈코를 호출했다.


"수온과 서로 잡아먹는 점, 소란스러운 점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 자라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하나 저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 영주님의 희망에 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의 양식이 가능할지는 현 시점에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흠……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자세는 높이 산다. 결과가 따르면 더욱 좋지"


그렇게 말하며 노부나가는 소성을 불렀다. 즉시 한 명의 소성이 나무 상자를 안고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공손하게 나무 상자를 내려놓은 후, 인사를 하고 소성은 뒤로 물러났다.


"이번은 미리 비용을 건네두마"


"네, 네에!?"


나무 상자의 내용물은 돈이었다. 거금이라고 해도 문제없을 정도의 액수가 들어 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노부나가의 행동에 시즈코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해가 느리구나. 나도 자라 전골이 마음에 들었으니, 이렇게 자금을 내놓는 것이다. 즉, 그 정도로 네 성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 네에…… 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 몇 번이나 말하지만 기대하고 있느니라"


약간 뼈가 있는 웃음을 떠올리며 노부나가는 그렇게 말했다.




눈이 돌 정도로 바쁘다.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정도로 연말을 맞이하는 노부나가는 정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성과 중에서도 요시아키(義昭)를 통하지 않고 직접 조정과 연결되는 루트를 확보한 것이 가장 컸다.

물론 비공식 루트에서의 접촉으로, 공식적으로는 쇼군인 요시아키를 통해야 한다.

회사에 비유하면, 정이대장군인 요시아키는 총괄본부장, 노부나가는 총괄본부 밑의 일개 부장이라는 위치가 된다.

사원이 직속 상사를 건너뛰고 수뇌부인 조정에 직접 접촉하거나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걸 허용하면 조직이 붕괴한다.


요시아키에게 알려지면 불리한 입장이 되는데, 그렇게까지 하여 조정과의 연결을 추구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조정에서 종교 세력(寺社勢力)을 쫓아내는 것이다. 조정과 가까웠던 헤이 가문(平家)이 멸망한 이래, 조정은 주변에 의지하는 상태이다.

그 조정 안에서도 가장 영향력을 갖는 것이 종교 세력이다. 하지만 조정에 대한 영향력을 손에 넣으려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용한 것이 시즈코의 성인 아야노코우지(綾小路)였다. 아야노코우지 가문은 아야노코우지 토시카즈(綾小路俊量) 이후 맥이 끊겼다.

이츠츠지 가문(五辻家)에서 아야노코우지 타카아리(綾小路高有)가 1613년에 들어설 때까지 가문 이름의 부활은 없다. 그야말로 딱 좋은 이유였다.


노부나가는 조정에 대해 헌금, 그리고 오와리 쌀이나 자기, 종이 등의 일용잡화를 선물로 보냈다.

갑작스런 선물에 조정이 놀랄 것을 예견하고, 노부나가는 이유를 적은 편지를 한 통 동봉했다.

아야노코우지 토시카즈에게는 숨겨진 자식이 한 명 있었다는 것, 그 자식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기에 가문의 기록에서 말소된 것, 그래도 얻은 이익을 조정에 헌상한다는 것, 병으로 누워 있기에 직접 인사드리러 가지 못하는 것을 사죄하는 것.

편지에는 허실을 뒤섞으면서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도록 거창하게 쓰여 있었다.

시즈코 본인이 알게 되면 배를 잡고 웃을 내용을, 오오기마치(正親町) 천황은 모두 믿었다.


조정의 재정은 핍박하였고 권위도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어, 대부분의 공가(公家)나 무가(武家)에게서 버림받았고, 헌상금 등의 지원을 하는 인물은 모우리 모토나리(毛利元就), 혼간지(本願寺) 법주(法主)인 켄뇨(顕如), 상락한 노부나가 뿐이었다.

곤궁한 조정의 재정과 권위가 회복되긴 하였으나, 천황은 그들이 곤경에 빠져 있는 자신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정의 권위를 이용하기 위해 헌금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천황은 요시아키보다 자신의 입장, 그리고 현실을 진절머리날 정도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욕심없는 헌상에 마음이 끌린 것이다.


천황이 이것을 무조건적으로 믿은 것은, 노부나가가 봉정(奉呈)해왔다는 점이 크다.

만약 자신이 노부나가라면 일부러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이름을 써서 선물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으로 선물해도, 병으로 누워 있는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숨겨진 자식에게 알려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소문의 내용으로부터 천황이 상상한 노부나가의 이미지는, 대가 없는 행위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타산적인 인물이었다. 결코 이런 일을 할 인물이 아니다.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숨겨진 자식이 이름조차 없는 것을 천황은 가슴아파하며, 자신의 휘(諱)에서 '니(仁, 타인에 대한 친애의 정이라는 의미)'의 문자를 따서 '니히메(仁比売)'라는 이름을 내렸다.

또 노부나가에게 '니히메를 잘 요양시키도록'이라는 칙명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니히메'에게 '종4위상(従四位上)'의 품계를 내린다는 이례적인 상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헌상금을 바친 모우리 모토나리의 '종5위하(従五位下)'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건 똑같은 선물이라도, 니히메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조정 따위 돈과 물건만 건네주면 된다'라는 노골적인 생각이 엿보였다. 그에 대해 니히메의 선물은, 상대를 배려하여 고른 선물들이었다.


물러터진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천황 자신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공가나 황가로부터 버림받고, 많았던 장원의 지배권을 잃고, 무가에 이르러서는 자신들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머릿속에 없었다.

종교 세력은 설령 난세라고 해도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무장 집단이 되어 있는 현실에 한탄하는 천황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선물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정은 좋은 느낌으로 니히메에게 경도되고 있군"


천황에게서 도착한 편지를 전부 읽은 노부나가는, 한번 숨을 내쉰 후에 감상을 말했다.

그에게 조정은 이용하기만 할 존재. 하지만 조정의 정치력은 얕볼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험으로서 조정과의 커넥션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군께서 갑자기 편지를 써라, 고 하시길래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꽤나 공을 들이셨군요"


곁에 있는 노히메가 킥 하고 웃었다. 지금 방에 있는 것은 시중 담당이나 소성은 없이 두 사람 뿐이었다.


"이상할 건 없겠지. 전투는 거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준비를 잘 갖췄는지가 승부가 된다. 천하통일도 마찬가지다. 천하를 손에 넣기까지 얼마나 천하통일 이후의 준비를 잘 갖췄는지에 따라, 그 후의 평정(平定)이 몇 년만에 끝날지, 아니면 천년동안 계속될지가 결정된다"


"그러기 위해서 일부러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부흥, 이라는 명분을 만드신 것이군요?"


"그렇다"


"호홋, 주군께서 상락으로 시즈코를 데리고 가셨을 때, 소첩은 또 시즈코를 아야노코우지 가문의 부흥에 쓰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책략(搦め手)을 준비하실 줄이야. 이래서 주군께서는 재미있으십니다"


"이상할 것은 아무 것도 없지. 권력을 손에 넣으면 영향력은 늘어난다. 하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시즈코는 지금의 자유로운 환경에 만족하고 있지.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빼앗는 것은, 녀석의 나에 대한 '충의'에 대해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전국시대는 에도 시대와는 달리, 가신은 개인에 대한 충성은 없고, 가문에 대해 충성을 맹세한다.

타케다(武田) 가문의 예를 들면,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아버지인 노부토라(信虎)를 쫓아낸 가신단의 행동은, 당시의 가치관에서 볼 때 단순하게 불충한 자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들이 충의를 맹세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타케다 가문'이며, 노부토라 개인이 아니다. 한편, 노부토라는 가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영민들이나 호족들(国人衆)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며, 도의보다 감정을 우선하는 등 통치자로서의 적성이 부족했다.

어리석은 노부토라를 포기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하루노부(晴信, 信玄(신겐))를 추대하는 편이 타케다 가문의 장래는 밝다고 판단하고 배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에, 노부나가에게 오다 가문이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라는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시즈코는, 사실은 대단히 귀중한 인재인 것이다.

게다가 '가문'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가신과, '주군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가신은, 서로 파벌을 만들어 다툼을 일으키기 십상이지만, 시즈코는 의식주 관계를 쾌적하게 만들고 있기에 이것도 일어나기 어렵다.


"시즈코는 주군께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참참, 맡아가지고 있으라고 말씀하신 책 말인데, 한가해서 읽어봤습니다"


"……내 주위에 간자들이 얼쩡거리고 있었기에 네가 있는 곳에 감춘 것이다만?"


"어라, 그러셨나요. 하지만 꽤나 자극적인 내용들 뿐이더군요. 무경칠서(武経七書), 군주론(君主論), 전략론(戦略論), 전쟁론(戦争論), 지정학(地政学), 정치학(政治学), 조직을 만드는 법(組織の作り方) 등등 다방면에 걸쳐 있더군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알기 쉬웠습니다. 출처는 시즈코겠지요?"


노부나가는 혀를 찼다.

노히메의 개인 방(私室)은 감출 장소로서 우수하긴 하나, 본인이 읽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을 빠뜨리고 있었다.

상대의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노히메는, 글자의 읽고쓰기는 물론이고 폭넓은 견식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시즈코의 책도 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걸 고려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짜증이 났지만, 일어나버린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노부나가는 한숨을 쉬었다.


"소첩은 군주론이 좋았사옵니다. 주군께서는 군주론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타국의 배경을 자세히 알 수 없기에, 몇 가지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 구석은 있다. 하지만 그걸 빼더라도, 물러터진 이상을 버리고 철저한 현실 주장을 관철하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럼…… 아아, 안 되겠군요. 이 이상, 주군의 비장의 책에 대해 입에 올리는 것은. 하지만 소첩도 주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사옵니다"


"……여전히 언어 유희를 좋아하는 녀석이구나. 하지만 싫진 않다"


노히메의 말에 포함된 의미를 이해한 노부나가는, 입가에 웃음을 띄우면서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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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