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미녀 고생담

戦国小町苦労談


작가: 夾竹桃


어느 날, 한 명의 소녀가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했다.

그야말로 신의 변덕, 악마의 심심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뜬금없이.


소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있는 극히 보통의, 그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다.


전국 시대를 살아남는다 - 그것 뿐이다.





번역: 가리아



에이로쿠(永禄) 11년, 상락(上洛)



050 1568년 8월 중순



8월 15일, 노부나가는 요시아키(義昭)를 방문하여 기후(岐阜)로 귀국할 뜻을 전했다.

다음 날, 노부나가는 요시아키로부터 겉장에 '어부(御父) 오다(織田) 단죠노죠(弾正忠)'라고 쓰인 감사장을 받았다.

동시에 아시카가(足利) 가문의 문장인 '키리몬(桐紋)'과 '히키료스지(引両筋)'를 받았다.


요시아키의 후원에 사의를 표하는 것과 함께, 그는 '쿄 치안유지 경라대'의 5천 명과, 아케치 미츠히데를 필두로 한 몇 명의 무장들, 그들을 호위하는 병사들을 쿄에 배치시키고, 나머지를 데리고 기후를 향했다.

도중에 아자이 나가마사의 거성인 오다니(小谷) 성에서 회담에 하루를 소모했으나, 나흘 후인 8월 19일에 오다 군은 기후에 도착했다.

거기서 상락군을 위해 결성된 오다 군은 해산되어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피곤해―"


시즈코는 케이지와 사이조, 나가요시를 데리고 자기 집에 도착했다. 갑주나 활, 백팩의 내용물 등을 정리한 후, 일동은 온천에 들어가 몸을 치유했다.

1개월 가까이 제대로 목욕을 하지 못했기에 몸은 굉장히 지저분했다. 무환자나무 분말로 몸의 구석구석까지 씻은 후, 가볍게 탕에 들어가기만 하고 욕탕에서 나왔다.

그 이후에 논밭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을 사람들이나 아야에게 맡겨두었다고는 해도, 역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안심되지 않는 시즈코였다.

수박을 적당히 수확한 후, 덩굴풀로 짠 그물에 넣어 개울에 담궈 차갑게 했다.


"어서 오십시오, 시즈코 님. 마중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귀가했을 때는 없었단 아야가, 짐을 들고 모습을 나타냈다.


"오, 어서 와―. 어디 갔다 왔어?"


"노히메 님과 오네 님과 오마츠 님께 수박을 가져다드리고 왔습니다"


"……묘하게 갯수가 적다 했더니, 그 사람들이 먹었구나……"


밭을 봤을 때 수박의 숫자가 뿌린 씨에 비해 적은 것에 의문을 느꼈던 시즈코였는데, 그 위화감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수박은 열매가 맺힌 윗부분의 덩굴손이 땅에 붙은 부분까지 완전히 짙은 갈색으로 변하면 수확해도 된다, 고 알려준 탓인가, 라고 약간 후회하는 그녀였다.


"노히메 님도 그러시지만, 특히 오마츠 님께서 수박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습니다. 댁에서도 재배하고 싶다, 고 하셨는데, 이건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 아야는, 마츠로부터의 선물인 코소데(小袖, ※역주: 겉옷의 일종), 책이나 두루마리 그림(絵巻物) 등을 시즈코에게 보여주었다.


"……딱히 선물 같은 건 필요없는데 말이지. 내년에 재배하는 양을 늘리면 될 뿐이니까. 아, 하지만 영주님, 그리고 도쿠가와 님이나 혼다 님에게도 보낼 거니까, 엄선할 수 있을 만한 숫자는 남겨놔 줘"


"그 점은 확실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파발이 왔습니다. 내일 영주님, 모리 님이나 시바타 님 등의 무장 분들, 그리고 챠마루 님이 이쪽으로 오십니다"


"어째서 한꺼번에 오는 거야……"


"온천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한 마디로 납득한 시즈코였다. 지금은 노부나가나 그의 측근은, 입욕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시즈코를 싫어하는 시바타나 삿사도, 온천 개발의 공로만큼은 그녀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을 정도였다.

특히 노부나가는 온천 의자, 한손잡이통(片手桶), 목욕물통(湯桶), 무환자나무 분말과 재를 넣은 나무상자, 몸을 씻는 브러시(거의 수세미에 가까움)라는 5점 세트를 상비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성에도 설치 가능하고 간단히 쓸 수 있는 욕탕을 고안해라, 라는 터무니없는 명령을 오카베(岡部)에게 내린 노부나가였다.

이것 때문에 오카베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하…… 또 바빠질 것 같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날이 이어지는 것에 시즈코는 묵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다음 날, 시즈코의 마을에 도착한 노부나가는 즉시 입욕했다. 두발과 몸을 씻고, 욕조에 몸을 담궈 피로를 풀엇다.

그것이 끝나자 목욕탕에서 나와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후 측근들을 전원 집합시켰다.


"요시나리, 사카이(堺)에 대한 보고를 들어볼까"


"옛! 사카이 무리에 대해서는 한 발자국만 남은 상태입니다. 이마이(今井) 님의 결사적인 탄원과 큐지로를 이용한 공작이 주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부나가가 키나이(畿内)의 인사를 하거나 요시아키와 어울리고 있었을 때, 부하들에게 명령한 것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동안, 노부나가는 자신을 손님맞이의 미끼로 써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모았던 것이다.

키나이의 인사나 쿄의 치안 회복, 조정에 대한 탄원 등을 하면, 주위가 무시할 수 없었기에 싫어도 노부나가의 동향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노부나가의 뒤에 숨어서 활동하고 있던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원숭이, 칸온지(観音寺) 성 부근의 상황은"


"현재도 롯카쿠의 수하들이 쥐새끼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 달만 있으면 모두 진압해 보이겠습니다"


"그 지역은 교통의 요충지다. 반드시 장악해야 한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니와, 오우미(近江)의 상인 연합 쪽은 어떠냐"


"딱히 반대는 없이 우리들에게 협력하겠다고 합니다. 다만, 미노(美濃)에서 쿄 까지의 기간 도로 정비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많다고 합니다. 아마도 북 오우미를 지배하는 아자이 가문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흠…… 일정 간격마다 여관을 준비하고, 기간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기서 숙박시키게 하는 건 어떠냐. 그렇게 하면 미노에 도착하는 동안, 돈이 오우미에 떨어진다. 상인들은 도의에 반하지 않는 한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돈이 떨어지는 것으로 놈들의 욕심을 자극하면 고개를 세로젓기 쉬워지겠지"


"옛, 그 방향으로 다시 교섭해 보겠습니다"


미카와(三河), 오와리(尾張), 미노(美濃), 오우미(近江), 쿄(京) 사이에 기간도로를 구축하여 육상 교통로로 삼는다. 그리고 도로를 이용하는 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한 기준으로서, 1km마다 킬로 포스트가 아닌 일천총(一粁塚)을 설치한다.

그리고 여행의 표준 장비을 한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마다 여관을 준비한다. 여관은 짐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엄중한 창고를 함께 갖도록 하여, 장사꾼들이 장사할 물건을 안심하고 운반할 수 있는 대책을 취한다.

그것이 노부나가가 생각하는 상업도로 구축 계획이다. 노부나가는 현재의 물물교환에 의한 경제에서 화폐를 이용한 경제로 변경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악화(悪貨)나 카피품이 어느 정도의 양이 되면 정규 화폐로 교환하는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상인과 상품의 유동성을 높이는 것이 화폐 경제를 촉진하는 데 있어 최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사카이나 그 외 상업 지역이 축적하고 있는 부를 각지로 방출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시즈코, 쿄에서 모은 장인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네. 가족을 포함하여 300여명의 장인들은 모두 기후나 주요 마을에 분배했습니다. 다만 요리사가 열 명 정도 있었습니다만, 노히메 님께서 시험을 하신다고 하고 데려가셨습니다……"


"……뭐 좋다. 요리사라면 그다지 영향도 없겠지. 그 녀석은 내버려 둬라"


"알겠습니다"


시즈코가 맡은 역할은 쿄에서 죽치고 있는 솜씨 좋은 장인들을 모으는 것이다.

치안의 열악함 때문에 재료의 입수가 곤란, 또는 입수할 수 있어도 바가지를 쓰게 되고, 조합도 결성 당초의 목적을 잊고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런 쿄의 현실에 탄식하며 부루퉁해 있는 장인들에게 '기후에서 실력을 갈고닦아 쿄의 장인들에게 복수할 생각은 없는가'라고 떠 보았다.

장인들의 폭은 대장장이에 한정되지 않고, 베를 짜는(機織) 장인이나 목공 장인 등 폭넓게 모았다. 그 중에는 쿄에 집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태반은 노부나가의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

최종적으로 가족을 포함하여 300명, 기술자는 다방면에 걸쳤지만 100명 이상이 모였다. 그런 그들을 어느 정도 모아서 기후로 몰래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에 300명을 이동시킨 것은 아니므로, 100명 이상의 기술자가 기후로 이주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와리에 있는 시즈코의 기술자 마을과 경쟁시켜, 오와리, 미노에 새로운 문화를 구축한다. 전에 말했던 양조(醸造) 마을에 대해서도 허가하지"


"감사합니다"


시즈코의 대답에 노부나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전원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규모가 커진 우리 군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군의 구조를 바꾼다. 각자 정신차리고 듣거라"


그 말에 무장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군의 구조를 변경한다, 는 것은 자신들의 진퇴를 좌우하는 중요 사항이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움직이는 제 1군과 제 2군. 요시나리를 필두로 하는 제 3군. 아케치를 필두로 하는 제 4군. 니와를 필두로 하는 제 5군. 타키카와를 필두로 하는 제 6군. 합계 6개의 군이다"


노부나가는 지금까지의 중앙집권화, 절대복종형에서 권한 이양형으로 서서히 변경해나갈 생각이었다.

이것은 오다 반대파가 군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게릴라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데 대한 대책이었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매번 중앙의 자신들에게 문의하고 있어서는 대응이 늦어진다.

뭐든지 직접 결정하던 시절의 노부나가를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경탄할 만한 일이다.


6군의 역할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직접적인 전투력보다, 정치나 군사의 두뇌를 담당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제 1군.

오다 군 내부에서 엄선된 정예로 구성되는 주력인 제 2군.

모리 요시나리를 대표(御名代)로 하여 그 아래로 복수의 군단장으로 구성되는 제 3군.

쿄의 치안유지, 장군가의 신변경호 인원으로 구성되는 제 4군.

모든 종류의 전투 지원이나 후방 지원 등, 병참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인원으로 구성되는 제 5군.

정보 수집 등의 첩보 활동, 협력자의 포섭, 타국의 정보 조작 등의 모략 활동 등, 오다 군의 정보기관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제 6군.


제 3군만 특수하여, 군단장 단위로 전투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노부나가가 전장에 없을 경우에도 군단장 단위로 조직적인 전투가 가능해진다.


"지금 당장 익숙해지라고 하지는 않겠다. 적어도 이세(伊勢)를 평정할 때까지는 지금 이대로 갈 것이다. 하지만 이세를 평정하면 지금보다 적이 늘어날 것은 틀림없다.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쪽도 군의 구성이 지금 이대로여서는 불리하다"


거기서 노부나가는 생각했다. 생각한 결과가, 언제든지 전투를 할 수 있는 상비군을 각 방면에 파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만에 하나, 노부나가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다. 서로 공통의 목표를 인식하고, 어느 정도 권한을 이양하면 된다.

게다가 구체적인 내용을 지시하지 않고, 뭘 어떻게 할지를 각자 생각하게 하면 간자에 대한 대책도 된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으면 상대는 대책을 검토조차 할 수 없으므로.


"요시나리는 당분간 나와 행동을 함께 하라.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시간을 들여서라도 알아야 한다"


"옛"


"아케치가 담당하는 것은 쿄의 수호이다. 니와, 너는 후방지원군을 담당한다"


"알겠습니다"


"타키카와, 너는 정보기관을 담당한다. 자세한 내용은 훗날 이야기하겠으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은 미리 말해두겠다"


"옛"


전원의 대답에 노부나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나가나 모리 요시나리, 타케나카 한베에나 시즈코가 회합을 가지고 있을 무렵, 기후에 있는 노히메는 시즈코가 모아들인 요리사 10명에 대해 어떤 시험을 하고 있었다.

내용은 '쿄 분위기의 요리를, 이쪽이 준비한 재료로 만들어라'였다. 처음에는 간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요리사들이었으나, 재료를 본 순간 그런 어설픈 생각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재료의 9할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식재료였던 것이다. 고구마나 양파 등의 생야채, 말린 야채에 말린 새우에 말린 생선 등의 건물(干物), 조미료는 소금과 된장과 흑설탕과 간장 등이 놓여 있었다.

조리 기구도 마찬가지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들 뿐이었다. 요리사들은 당연히 노히메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녀는 야무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시험해보지 않고 처음부터 무리라고 말하는 거짓말장이들 따위 영주님께서는 흥미가 없으시다. 이 정도의 시험조차 통과할 수 없다면 짐을 싸서 당장 쿄로 돌아가도록. 영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쿄의 요리사'가 아니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요리사'이니라"


노히메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쿄의 요리와 기후의 요리를 융합시켜, 새로운 요리 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꼭 요리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문화도 쿄와 융합시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따라서 '쿄의 요리'를 고집하는 인재는 필요없었다. 원하는 인재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인재였다.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요리사들은 화를 내며 돌아가 버렸다. 남은 요리사는 한 명, 그리고 그의 조수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노히메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요리사를 보았다.


"기대하고 있겠노라"


그 말만 하고 그녀는 요리사들 앞에서 떠나갔다. 노히메가 떠나고 잠시 후, 간신히 진정이 된 요리사가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오다 나으리의 부인께서는 성격이 대단하시다고 들었는데……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성격이시군"


"하지만 고로(五郎) 씨. 저 분의 말은 정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알고 있어, 아저씨. 돌아간 녀석들은 결국 쿄의 요리사라는 긍지를 버릴 수 없었던 거겠지"


세 명 중 가장 젊은 고로라고 불린 남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쿄에서는 어떤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더라도 '전통이 아니다'라는 한 마디로 무시당했다.

그래서 다들 쿄를 빠져나와 기후에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고 고로는 아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녀석들은 어딜 가도 불만만 늘어놓는 인간들이었다.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것에 고로는 자신이 사람이 보는 눈이 없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저는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언제쯤 되어야 이름을 기억해 주실 건가요"


입으로는 불만을 말하면서도 정말로 싫은 건 아닌지, 미츠오라는 이름의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말다툼을 해도 의미는 없지. 저 부인의 말씀을 노부… 오다 나으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면, 돌아간 아홉 명에게 미래는 없겠지"


"그러네, 아시미츠(足満) 씨 말이 맞아. 생각해봤자 소용없어. 될 대로 되겠지"


고로는 그렇게 말하며 식재료를 탁자 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눈 앞의 식재료는 그야말로 미지(未知)와의 조우였다.

어떤 맛이 날 지, 어떤 요리에 맞을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로의 얼굴에 불안은 없었다.

오히려 미지와의 조우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로 씨, 역시 요리사군요. 보통은 저만큼 모르는 식재료를 늘어놓으면 말로 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거라 생각되는데요?)"


아시미츠의 옆으로 슬쩍 이동한 미츠오가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우리에게는 친숙한 식재료지만)"


"(그렇다고 하면, 역시 아시미츠 씨가 찾으시는 사람은 노부나가의 곁에 있다는 건가요?)"


미츠오의 말에 아시미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표정을 지은 그는 한 번 눈을 감았다 뜨더니 동시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걸 보고 확신했다. 역시 그녀는 이 오다 가문의 어딘가에 있어)"




3인 3색, 각자의 생각이 있었으나 일단은 노히메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쿄 분위기의 요리를, 이쪽이 준비한 재료로 만들어라'라는 내용에서 기후의 식재료를 사용하요 쿄 요리를 만들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쿄 분위기의 요리'에 해당하는 게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쿄 분위기의 요리라고 하면 소금이겠지요. 하지만 소금만으로는 안 돼요. 기후나 오와리는 분명히 된장이 유명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저씨, 그런 건 잘 아네. 하지만 나는 된장 요리 같은 건 만들어 본 적이 없고…… 애초에 된장의 맛이 쿄에 있는 것과 너무 틀려"


"미츠오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쪽의 간장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된장 요리와 간장 요리 두 가지. 이걸로 쿄 분위기의 화(和)의 요리가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간장 요리는 내가 담당하지"


"아시미츠 씨, 뭘 만들 생각인가요?"


"화(和) 볶음밥이다. 다행이 말린 새우나 말린 야채가 있고, 프라이팬도 있으니 문제없겠지"


아시미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고로였으나, 어쨌든 한 가지 요리를 만들어 준다면 고맙다고 생각했다.

솔직한 얘기로, 그는 요리사였지만 미츠오와 아시미츠에 비해 경험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뭐, 뭐 잘 부탁해. 나는 어쩔까…… 이렇게 된 거, 세 명이서 한 가지씩 만들까?"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그 노선으로 요리를 만들죠. 저는 야채와 닭고기의 된장볶음을 만들겠습니다. 고로 씨는 쿄의 요리를 부탁드립니다"


"어? 그거 문제되는 거 아냐?"


"쿄 분위기라는 얘기지만, 일단 비교대상이 없으면 안 되죠. 그러니까 쿄의 요리, 된장 요리, 간장 요리를 늘어놓죠"


"호오호오, 아저씨 의외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네"


"아저씨가 아니라 미츠오입니다"


그런 콩트를 하면서 세 사람은 각자의 요리를 만들었다.

이윽고 전원 요리가 완성되기 직전, 이라는 시점에서 갑자기 노히메가 조리장에 나타났다. 아까와 다름없이 내심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슬슬 때가 되었나 싶었느니라. 어떠한 요리가 완성되는지 견학하러 왔지…… 흠, 말린 새우의 간장볶음밥, 야채와 닭고기의 된장볶음, 그리고 쿄의 요리인가. 과연, 비교 대상이 필요하니 쿄의 요리를 하나 만들었다는 것이냐"


노히메의 말에 세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번 보고 세 사람이 각각 만들고 있는 요리를 맞췄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리고 세 사람의 모습을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띠고 보고 있던 노히메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말을 이었다.


"딱히 놀랄 것도 없지 않느냐. 애초에 요리 소재는 이쪽이 준비한 것이니라. 뭐 본업은 아니기에 소재의 조합을 보고 대략적으로 추측해본 것 뿐이니라. 내가 맞췄다고 해서 실격시키지는 않는다. 어서 맛있는 요리를 가지고 오너라"


시종 여유가 있는, 그리고 마음 속이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짓고 있는 노히메는, 세 명에게 그 말만 하고는 등을 돌려 조리장을 나갔다.

세 사람은 그녀가 나간 출구를 바라보며 잠시 그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후, 그들은 요리를 노히메에게 인정받아, 오다 가문의 요리사로서의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요리사, 가 아니라 노히메 전속의 요리사라는 지위였지만.




9월 중순, 전작의 작물을 모두 수확한 후, 휴경하는 밭 이외에 후작의 작물을 심기 시작했다.

수확했다고 해도 해바라기, 수박, 오크라, 감자, 백화두(白花豆)는 씨앗을 늘리기 위해 식용으로 쓸 수는 없다.

다행히 감자의 경우에는 중간지(中間地, ※역주: 표고 200m에서 400m 사이의 지역을 말하는 듯)에서 재배한다면 9월에 심고 12월 상순에 수확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작(連作) 장해 때문에 3년은 간격을 둘 필요가 있으므로, 벽돌로 플랜터(Planter)를 만들어서 겨울에 재배가 가능한지 시험할 예정이었다.

잘 되면 봄에는 밭에서, 겨울에는 벽돌 플랜터의 2회 수확이 가능해진다.

감자는 고구마와 마찬가지로 비타민 C가 풍부하며 불과 물에 의해 잘 파괴되지 않는 작물이다. 그 밖에도 비타민 B1, B2, B6, 칼륨이 풍부하고, 장기간의 보존도 가능한 겨울의 보존식이다.

양산화에 성공할 수 있다면 고구마와 마찬가지로 긴급시의 비상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까운 것은 가지 과의 식물로 분류되는 감자는 녹색 부분에 인체에 유해한 솔라닌(solanin)이 많이 들어 있어, 고구마처럼 잎이나 줄기를 식용으로 쓸 수 없다.


쌀의 수확에도 착수했다. 토모호나미(ともほなみ) 계열은 1반(10a) 당 6가마니, 이름없는 쌀은 1반(10a) 당 8가마니였다.

각각 2ha만큼 심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토모호나미 계열은 112가마니, 이름없는 쌀은 145가마니였다. 양쪽 다 유기 재배이면서 농약을 쓴 쌀과 동등한 수확량을 목표로 개발된 쌀이지만, 예상 이상의 수확량에 시즈코 자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수확량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지만, 이 두 가지 쌀에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식감이 종래의 쌀과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전국시대의 쌀은 주로 적미(赤米; 대당미(大唐米))와 흑미(黒米)이다.

적미는 나라(奈良) 시대부터 쌀의 주역이지만 상당히 질이 나빠서, 갓 지은 밥이라도 점착성은 거의 없다. 흑미의 경우에는 소금을 넣어서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그 맛은 짐작이 갈 것이다.

수백년도 넘게 맛에 연구를 거듭해온 성과인 쌀을 노부나가가 받아들일지, 그건 그야말로 신만이 아실 일이었다.


일종의 도박이었으나 시즈코에게는 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만에 하나, 받아들여졌을 경우를 고려해서 준비에 착수했다.

우선 두 종류의 쌀에서 랜덤으로 한 가마니씩 빼놓았다. 나머지는 전부 볍씨로 삼아서 각각 다른 창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빼놓은 쌀을 탈곡하여 현미로 만들었다. 그리고 현미를 반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반을 정미했다.

이 현미와 백미를 각각 밥으로 지어서, 소금간만 한 주먹밥을 만들어 노부나가에게 시식하게 할 것이었다.

어느 형태를 마음에 들어할지는, 실제로 노부나가가 먹기 전까진 알 수 없다. 모두 마음에 들어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모두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보험으로서 부하들 몫의 주먹밥도 만들어 두었다. 노부나가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더라도, 모리 요시나리나 니와 등이 마음에 들어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재배를 계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위통을 느끼며 시즈코는 노부나가를 알현했다.


"오늘은 영주님께서 맛을 보아주셨으면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호오, 맛이라. 대체 뭘 맛을 보라는 것이냐?"


"쌀이옵니다"


그렇가 말하며 시즈코는 입구 쪽에 있는 사이조에게 눈짓을 했다. 사이조는 입구의 문을 약간 열고, 근시(近侍)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쟁반을 든 소성들이 들어오더니, 그들은 그것을 노부나가와 부하들 앞에 두었다.


"주먹밥이냐"


쟁반 위에는 주먹밥이 올려진 그릇이 여섯 개 있었다. 각각의 그릇 밑에는 번호가 적힌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이번의 쌀은 적미나 흑미와는 계통이 다르기에, 식감이나 맛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양산을 하기 전에, 여러분께서 맛을 보아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좋다, 다들 들거라"


그로부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예상대로 토모호나미 계열과 이름없는 쌀의 주먹밥을 먹었을 때,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시즈코는 알 수 없었다.


모든 주먹밥을 다 먹은 노부나가는, 시즈코라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취향에 맞지 않았나하고 시즈코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시즈코, 너는 정말 곤란한 녀석이다"


"이, 입에 맞지 않으셨사옵니까?"


"그 반대다 멍청아. 네놈 때문에 지금까지 먹었던 밥이 흙탕물로 지은 반죽으로밖에 생각되지 않게 되었느니라"


"아, 네……"


주위를 일별하자, 모리 요시나리 등의 부하들도 쌀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백미냐 현미냐에 따라 취향이 갈려 있었으나, 누구의 접시에도 적미의 주먹밥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현대의 쌀은 전국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여졌다.

대량생산의 길이 열린 것에 안도한 시즈코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두 가지 쌀 모두 맛있다. 내년 이후에 양쪽 다 양산에 힘쓰도록"


"네. 저기, 1번 쌀은 오와리의 환경 이외에는 재배할 수 없는 쌀이라…… 아마도 3번, 4번 쌀 쪽은 대량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너와 각 마을에서 1번 쌀 생산에 힘쓰도록. 숫자로 말하는 것도 번거롭군. 1번은 오와리 쌀, 3번은 기후 쌀이라고 이름짓도록 하지"


(그건 나쁘지 않은…가? 하지만 토모호나미 계열이라는 이름은 기니까)


시즈코도 쌀의 이름에 집착은 없었고, 이름 없는 쌀 쪽은 한자의 독음을 몰랐다. 노부나가가 붙인 이름이라면, 이후에 이름 때문에 쓸데없는 혼란을 초래할 일도 없으리라.

괜히 이름에 대해 말을 꺼낼 필요가 없다고 시즈코는 생각을 고쳐먹고, 그가 붙인 이름을 쓰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내년부터 오와리 쌀과 기후 쌀의 생산에 힘쓰겠습니다"


내년도 또 바빠지겠다, 그렇게 생각한 시즈코였다.




9월 중순, 시즈코는 양계(그 중에서도 채란(採卵))을 위해 준비해둔 땅을 재정비했다.

닭은 이미 근린 일대에까지 사육이 퍼져있어, 광대한 사육장을 유지할 필요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즈코는 닭에서 집오리 사육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집오리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사육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옛부터 일본에 전래되고 있다. 게다가 잡식성이라 기본적으로 뭐든 먹는다.

산란으로부터 30일 정도에 새끼가 부화하고, 새끼가 알을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은 5개월에서 6개월, 번식이 가능해지는 성적 성숙(性成熟)은 생후 6개월에서 7개월 정도이다.

즉 1년이면 새로운 세대가 산란 가능해지는 것이다. 다만 결점으로서 집오리는 닭보다 부화율이 낮고, 사육하면 알을 품지 않는 개체가 되기 쉽다.

고기를 얻는 데 6개월 정도 걸리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뭐라 해도 최대의 매력은 깃털이다.

30마리 정도면 다운 자켓 한 벌, 150마리 정도면 오리털이불 한 채를 만들 수 있다. 극한지에서의 작업복에 사용되는 다운 페더를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정비를 마치자마자, 시즈코는 당장 출입하는 상인들에게 집오리의 조달을 의뢰했다.

하지만 이 때, 시즈코는 요구하는 숫자를 전하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실수를 했기 때문에, 상인에게서 예정 외의 양을 구입해야 하게 되었다.

시즈코로서는 30마리에서 40마리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200마리를 훌쩍 넘어버렸고, 거기에 거위까지 섞여 있었다.

집오리와 거위는 겉보기가 닮은데다, 전국시대에는 제대로 분류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섞여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을 시즈코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국, 급거 거위용의 사육장을 설치하고, 입하된 집오리 중에서 병약해 보이는 개체를 솎아냈다.

거위는 18마리, 집오리는 우량건강체 50마리까지 줄였다. 남은 집오리는 깃털을 뽑고 고기는 주위에 나눠주거나 비트만들의 위장으로 들어갔다.


그 도중에 어떤 것을 떠올린 시즈코는, 다시 출입하는 상인들에게 입하를 의뢰했다.

그것은 메밀의 열매의 껍질, 즉 메밀 껍질이었다. 메밀 껍질은 정말로 쓰레기 취급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시즈코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던 상인들은 곤혹스러워했다.

대체 뭐에 쓸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나, 상당한 금액으로 사들여 주었기 때문에 잔뜩 준비해서 시즈코에게 팔았다.

모아들인 메밀껍질을 선별한 후, 시즈코는 그것들을 천일(天日) 건조했다. 천일 건조가 충분히 끝난 뒤에 베개에 채워넣었다.

저가격, 그리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메밀베개다.


메밀베개의 역사를 살펴보면, 나라 시대에 최고급의 베개로서 쇼소인(正倉院, ※역주: 나라의 토우다이지(東大寺)에 있는 목조 창고. 나라 시대의 건축물로 많은 미술품, 공예품, 및 기록이 소장되어 있다)에 보관될 정도였다.

코스트 퍼포먼스가 뛰어나지만, 쓸 때마다 메밀껍질이 뭉개져서 가루가 흘러나오는 결점이 있다.

또, 물세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용물은 반년에서 1년마다 한 번 갈아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베개 커버와 메밀껍질을 채울 튼튼한 천이 있다면, 당시 흔히 쓰이던 나무 베개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메밀껍질을 천일 건조하는 동안 깃털을 모았다.

상당한 숫자의 깃털이 모였기에, 시즈코는 그것들을 가공해서 방한복을 네 벌 만들었다.

이것은 모두 비단으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방한성을 높이기 위해 비단이 복잡하게 짜여 있고, 그 안에는 다운 페더라는 현대의 코트에 필적하는 방한복이었다.

양산할 수 있으면 눈 속에서도 행군이 가능해지지만, 비단과 다운 페더의 소비량이 장난이 아니었기에, 잘해봐야 노부나가나 그의 측근들에게까지밖에 준비할 수 없으리라.


"역시 대량의 견사를 사용한 가치가 있어. 따뜻하네"


코트라기보다 망토에 가까운 방한복을 입은 시즈코는, 가을의 추위도 티끌만큼도 느끼지 못했다.

중세 서양에서 망토라고 하면 권위의 상징이었으나, 시즈코는 겉모습보다도 기능성을 중시했기에, 망토 치고는 수수했다.

물론, 그만큼 비할 데 없는 성능으로 완성되었다.


"시즛치가 만드는 건 기묘한 것들이 많지만 편리하기도 하군"


화려한 문양의 망토를 걸친 케이지가, 담뱃대를 아래위로 까딱거리며 말했다.

담배는 들어있지 않은 듯, 담뱃대에서는 연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추위 따윈 기합으로 견딜 수 있어. 하지만, 이 겉옷(羽織)은 나쁘지 않아"


생각나는 모든 것을 집어넣은 무늬의 나가요시는, 콧김을 뿜어대며 기세좋게 말했지만 망토는 빈틈없이 걸치고 있었다.


"기합으로 어떻게 될 거라면 시즈코 님께서는 추위 대첵을 세우시지 않겠지. 그렇다면, 사람의 몸은 마음먹기 만으로는 견딜 수 없다는 얘기다"


아타고곤겐(愛宕権現, ※역주: 일본의 신 중 하나)이 그려진 망토를 걸친 사이조는, 나가요시의 말을 냉정하게 받아쳤다.


네 사람의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수수하지만 고급감이 감도는 망토를 걸친 시즈코. 카부키모노로밖에 보이지 않는 화려한 무늬의 망토를 걸친 케이지.

잡다하니 혼돈을 체현한 게 아닌가 싶은 희한하기 짝이 없는 무늬의 망토를 걸친 나가요시. 아타고곤겐이 그려진 망토를 걸친 사이조.

익숙하지 않은 차림새 때문에 사람들은 네 명을 카부키모노라고 굳게 믿었다.


"그럼, 영주님께서는 무슨 용무로 부르신 걸까"


그의 용무가 그야말로 지금 착용하고 있는 망토라는 것을 그녀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잠시 후였다.




10월이 되기 전, 시즈코는 땅콩의 수확에 착수했다. 기본적으로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건조땅콩으로 수확하는 것이다.

땅콩은 땅 속에서 콩 부분이 열매를 맺는 좀 특이한 작물이다. 땅 위에 있는 부분은 필요없지만, 수확이나 천일건조에 편리하기에 한꺼번에 수확한다. [*1]

뿌리째 뽑아낸 땅콩은 진흙을 씻어내고, 몇 개를 다발로 묶어서 대나무 장대에 뿌리를 위로 하여 걸어놓는다. 이 상태로 2주일 정도 천일 건조한다.

건조 공정 종료의 판단은 콩깍지를 흔들어서 안의 콩이 껍질에 부딪히는 딸깍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면 된다.

여기까지 오면 콩 이외의 부분은 필요없어지기에 줄기에서 콩깍지를 떼어낸다. 여기까지 오면 여러분에게 친숙한 껍질이 붙은 땅콩 상태가 된다.

그리고 대발 같은 것에 펼쳐놓고 며칠 천일 건조하면 건조땅콩이 완성된다.

천일 건조한 땅콩은 곰팡이가 피는 일은 있지만 1년 이상 보존이 가능하다. 곰팡이가 핀 경우에는 물로 씻어서 다시 천일 건조하면 다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생산자만의 특권인데, 갓 따낸 땅콩은 진흙을 털어내고 소금물에 데치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조리법은 땅콩이 생야채 상태일 때만 먹을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땅콩은 건조시키지 않으면 오래 보존할 수 없는 작물인 것이다.


한 그루에 20에서 30깍지(약 70~100g) 정도, 전체 숫자는 6700깍지 정도지만, 절반 가까이는 내년의 씨앗으로 삼을 것이기에, 식용 가능한 양은 3천 깍지 정도가 된다.

하지만 땅콩은 어린아이(키묘마루나 나가요시)에게는 호평이었으나, 어른(노부나가나 모리 요시나리 등)에게는 평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기름기가 많은 식품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시즈코는 추측했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최초로 땅콩을 재배한 것은 카나가와(神奈川) 현 오이소마치(大磯町)의 농가, 와타나베 케이지로(渡辺慶次郎)라고 한다.

그는 1871년(메이지(明治) 4년)에 요코하마(横浜)의 친척으로부터 땅콩 씨앗을 받아서 시험삼아 자신의 밭에서 재배했다.

땅콩의 지하 결실성(地下結実性)을 모르고 수확 때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생략한다. 그는 이 작물을 판로에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1877년(메이지 10년)에 막과자 가게에 팔았더니 큰 반향이 있어, 경제 재배의 전망이 섰다고 한다.


9월에 12월 상순까지 수확하는 작물은 다양했다.

수고를 줄이기 위해, 수확한 작물은 현물을 보내지 않고 목록을 작성하여 노부나가에게 제출했다.

그 후, 노부나가를 통해 어용 상인에게 매각, 가공하여 지정된 창고로 운반, 그대로 지정된 목제 사일로로 운반하는 등의 지시서가 도착했다.

이것들에 따라 작물은 처리되었다. 이 때, 역시 단위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노부나가는 느꼈는지, 시즈코에게 MKS 단위계의 채용을 전하는 서류가 도착했다.

서류에 따라 시즈코는 기술자 마을의 장인들에게 해당 공구의 생산을 지시했다. 실제로 쓰는 도구와 연습용의 2세트가 완성될 때마다, 공구류를 노부나가가 지정한 장소로 운반했다.


수완좋게 처리하던 시즈코였으나, 면화에서만 예상 밖의 문제가 생겼다.

면화는 건조나 씨앗 빼기 등의 처리를 마치면, 일단 노부나가가 지정한 장소로 운반하게 되어 있다.

질이 좋은 것을 세금으로서 바친 후의 나머지가 시즈코나 작업을 담당한 마을 사람들의 몫이 된다. 가공법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면화를 노부나가에게 팔아치웠지만, 이불 등의 가공법을 알고 있는 시즈코는 당장 어린이 사이즈의 이불을 생산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전에, 노부나가로부터 이불의 생산을 금지하는 주인장(朱印状)이 도착했다. 이불은 하사품으로 쓸 것이기 때문에 시즈코가 이불을 생산하면 곤란하다, 라고 적혀 있었다.

굳이 주인장으로 명령하지 않더라도 한 마디 말로 되는 거 아니었나, 하고 시즈코는 노부나가에게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주인장을 통한 명령이라면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하기로 한 시즈코는 마스크나 손수건 종류의 생산으로 전환했다.

고무류가 없기 때문에, 마스크는 목 뒤에서 묶는 타입의 것이었다.

손수건을 만들게 되자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는 손을 씻읍시다'를 실행할 수 있다. 하지만 소품이 늘어난다는 것은, 세탁물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금후, 방한복 등 의류나 소품 종류가 늘어날 때마다, 부인들의 세탁에 관한 부담이 커지리라.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탁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지만, 프로펠러를 돌리는 모터가 없는데다 전기가 없다.

결국, 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소형 세탁기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형이라도 완성되면, 차가운 개울의 물에 견디면서 빨래판으로 세탁할 필요가 없어진다. 세제에 관해서는 무환자나무의 분말이 있다.

최악의 경우, 잡균의 번식을 막기 위해 끓는 물에 30분 정도 담궈 두면 세탁물의 잡균은 소멸한다.

크랭크나 나무 나사 등, 개발에 필요한 기술은 다방면에 이르지만, 완성되면 세탁의 집중화가 가능해진다.

동력부가 특수하기 때문에, 이것만큼은 설계도를 그려서 다 떠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즈코가 기술자 마을로 가서, 개발자들을 모아 설명하면서 몇 번이나 회의를 열 필요가 있었다.


"오늘도 시즈코는 없는 것이냐?"


그것이 불만인 사람, 노히메는 오늘도 기분이 저조한 모습으로 아야에게 시즈코의 동향에 대해 물었다.


"네……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외출하셔서, 돌아오시는 건 저녁 무렵이 될 듯 합니다"


"모처럼 요리사를 자랑하러 왔건만, 시즈코가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되지 않느냐"


"네, 네에……"


애초에 기별도 없이 갑자기 내방하시기 때문이잖아요, 라고 생각한 아야였지만 결코 지적하지 않고 애매한 미소를 띄우며 대응했다.


"주군께서도 뭔가 하고 계셔서 상대해주시지 않으신다. 오네와 마츠와 함께 시간을 때우려 해도, 시즈코가 없어서는 좀 재미가 없느니라"


"그렇군요"


오늘도 넋두리를 듣는 날이 되는 건가, 하고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아야는 적당히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점심 때를 지났을 무렵, 전령인 병사가 시즈코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항상 해가 질 무렵에야 돌아오시는데 희한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아야는 노히메에게 시즈코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오,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내가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오라고 전하거라"


"이, 일단 5백 명의 병사를 데리고 있기에, 시간은 제법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상락 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시즈코에게는 5백 명의 병사가 따라붙게 되었다.

다른 병사들과 달리 토목건축에 관계가 있거나, 부모가 토목건축 기사였거나 하는 장점 등을 이유로 기술력을 중시하여 모아진 병사들이다.

현재로서는 기술력이나 작업 속도가 떨어지지만, 장래적으로는 즉석에서 다리를 건축할 수 있다거나, 진이나 참호를 단시간에 만들어내거나, 프리패브(prefab) 가건물(小屋) 같은 간소한 건물을 건축할 수 있는, 현대에서 말하는 공병부대로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집단 생활을 시키고, 식생활도 개선시키고 있다.


"문제없느니라. 나도 요리사를 데려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령을 보내어 요리사들을 데려오도록 전하거라"


"네"


쓸데없는 소란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는데, 라고 속으로 바라지 않을 수 없었던 아야였다.




【참고문헌】


[*1]ヤマポン総合研究所/趣味と田舎自慢系シンクタンク

 地産地消を楽しむ 野の幸・ホームフルーツ・手作り作品などなど

 自家製手作り加工食品

 落花生の焙煎

 참고URL: www.geocities.jp/yamapon65/tisantisyou_rakkasei_bais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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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리아